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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국의 뜻 되새기자/ 해외 항일유적 현황·실태

    중국 상해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의 필수 방문코스 가운데 하나는 홍구공원이다.이는 1932년 4월 29일 이곳에서 있은 천장절 기념식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주중 일본공사와 일본군 수뇌 수명을 폭살시킨 윤봉길 의사의 애국혼을느껴보고자 함이리라.윤의사 의거는 단순히 일제의 고관 수 명을 살상한 정도에 그친 게 아니라 당시 임시정부에 대해 미온적이던 장개석 정부의 마음을 돌려놓아 물심 양면의 지원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 항일세력들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러시아·미국 등지에본거지를 잡고 항일투쟁을 전개했다.이들이 활동근거지로 삼은 항일유적지는생생한 ‘민족혼의 현장’이라고 할수 있다.낯선 이국땅에서 접한 선열의 이 름이나 묘소,항일전적지는 후대들에게 애국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정부차원에서 이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수십권의 항일운동 관련 홍보책자보다 선열의 얼이 서린 ‘흔적’ 하나가 민족정신을 고취하는데 훨씬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1910년 한일병합으로 국권을 상실하자 항일세력들은 국내·외에서 국권회복투쟁을 전개하였다.이들은 1919년 전 민족이 궐기한 ‘3·1의거’와 같은 비 폭력 투쟁은 물론 안중근·윤봉길 의사로 상징되는 의열투쟁,그리고 청산리·봉오동전투와 같은 대규모 무력항쟁도 전개했다.국내외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 항일투쟁은 곳곳에 그 애국혼의 ‘흔적’을 남겨두고 있다.그 가운데 임시정부 청사 등 일부는 정부의 복원·보존 노력으로 상태가 양호한 것도 있으나 아직도 많은 유적들이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최근 보훈처가 전문가들의 조언과 자체 현장조사를 통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해외독립운동 관련사적(시설물 포함)은 모두 317개소로 파악됐다.이들중 244개소는 중국지역에 소재하고 있으며,흔히 ‘만주’로 불리는 동북3성일대에 163개소가 밀집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는 러시아 36,일본 4,카자흐스탄 4,대만 2곳 등 총46개소이며,그밖에 미주지역 24개소(미국 22,멕시코 2),유럽지역 3개소(프랑스 1,네덜란드 2)등이다. 중국내 항일전적지는 동북3성 가운데 하나인 길림성에집중돼 있으며 그 가운데서는 용정(龍井)일대가 단연 으뜸이다.90년대 들어 중국관광이 늘어나면서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찾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용정이다.이곳은 우리귀에 낯익은 가곡 ‘선구자’의 고향으로 비암산,일송정을 비롯해 민족시인윤동주의 생가와 묘소가 있어 더욱 한국인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이밖에도인근 교외에 위치한 ‘3·13반일의사릉’을 비롯해 서전서숙·명동촌교회와‘봉오동전투’ 전적지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인근 화룡현에는 3·1의거 이듬해인 1920년 10월 독립군이 일본군 3,000여명을 궤멸시킨 ‘청산리전투’ 현장과 대종교 3종사의 묘소가 남아 있다.흑룡강성 하얼빈에는 안중근의사의 의거현장을 비롯,경박호·사도하자 전투지가 남아있고,영안(寧安)에는 김좌진장군의 묘소와 김 장군이 운영했던 정미소,그리고 신민부 군정파본부,고려공산당 북만지부 건물 등이 남아있다.또요령성 봉천에는 편강렬의사의 전투현장,신빈현에는 양세봉장군 순국지·서로군정서 본부,단동에는 이륭양행(怡隆洋行)건물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이륭양행은 당시 영국식민지인 아일랜드출신 무역상 윌쇼가 경영하던 건물로 임시정부는 그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교통국을 두고 국내와 연락거점으로 활용했었다.집안현,장백현 일대에는 독립군의 유적이 곳곳에 산재해있다.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돼 10여년을 머문 상해에는 임정 청사를 비롯해 임정기관지 독립신문사 터,윤봉길의사의 의거현장인 홍구공원(현 노신공원),애국지사 다수가 묻혀 있는 만국공묘(외국인 묘지),인성학교 등이 남아있다.북경에는 단재 신채호,우당 이회영 선생이 활동했던 흔적과 신한혁명단본부 자리가 남아있고,1932년 윤의사의거후 피난길에 오른 임시정부가 머물다간 진강,가흥,기강,장사,항주 등지에도 백범 김구 선생의 피난처를 비롯해 임정청사 이전지가 더러 남아있다.강소성 남경에는 의열단원들의 합숙지이자 민족혁명단의 본부였던 호가화원이 있다.서안에는 OSS훈련지와 광복군 2지대주둔지가,임정 마지막 정착지인 중경에는 임정 청사를 비롯해 광복군사령부본부건물(현 미원식당 건물) 등이 남아있다.국토 전역에 걸쳐서 항일투사들의 피와 혼이 서려있는 중국은 ‘항일전적지의 진열장’이라고 할만하다. 중국 다음은 러시아로 모두 36개소의 항일독립 유적지가 있다.일제 당시 연해주로 불린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최초의 한인거주지를 비롯해 신한촌,해조신문사 터 등이 남아있고,크라스키노에는 안중근 의사가 동지들과 ‘단지동맹’을 맺은 커리마을이 있다.하바로프스크에는 한인사회당 창당지와 지금은시민휴식공원으로 변한 독립군 전투지,그리고 1937년에 사망한 한인들의 무덤이 남아있다. 또 리르쿠츠크에는 고려공산당 창당대회지(현 레닌거리 23번지 인민의 집)와 이범윤 유배지 등이 남아있다.89년 소련붕괴후 러시아에서 분리된 카자흐스탄에는 ‘봉오동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옛집과 동상,묘소(크질오르다시 공원묘지)가 있으며,계봉우 선생의 묘소도 여기에 있다. 미국에는 한인 이민들이 처음 정착한 하와이를 비롯해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뉴욕 등에 민족세력들의 활동무대가 남아있다.하와이에는 당시 한인들의 구심체 역할을 했던 한인기독교회·한인기독학원을 비롯해 조선국민단 사관학교,하와이국민회관 등이 남아있다.샌프란시스코에는 전명운·장인환 두 의사가 친일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한 현장인 페어부두,스티븐스가 투숙했던 페어호텔이 90년이 넘는 세월속에서도 여전히 옛 모습을 지키고 있다. 이곳엔 대한국민회의 기관지 신한민보의 발간지(페리스트리트 232)도 여전히 남아있다.로스앤젤레스에는 애국지사이자 대표적 재미한인 지도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고가(남가주대 구내소재)와 흥사단중앙회관이 남아있다.이밖에도 캘리포니아 클로세트 윌로스에는 계원 노백린 장군의 한국비행단 설립지가,네브래스카주에는 박용만의 한인소년병학교 설립지(현 헤이스팅스 네브래스터니 농장)가 남아있다.구미위원회 관련 유적은 뉴욕에 있다. 그밖에 프랑스 파리에는 평화회의 대표관과 임시정부 파리통신국,네덜란드에는 ‘헤이그밀사’ 가운데 한사람인 이준 열사의 묘역과 데용호텔이 항일관련 유적지로 기록할 만하다.일본에는 2·8독립선언의 현장인 도쿄기독교청년회관과 김지섭·이봉창의사의 의거현장인 도쿄 궁성의 앵전문과 이중교 일대,즉 일본의 최심장부가 바로 항일유적지인 셈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주)두산 박용만사장“소주부문 팔 계획 전혀 없어”

    박용만(朴容萬) (주)두산 대표이사 사장은 27일 “소주 부문을 팔 계획이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사장은 기자들과 만나 항간에 나돌고 있는 소주산업 매각설은 사실이 아니며 인수자로 거론되는 L그룹과는 전혀 접촉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전략본부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술 부문은 전체 두산의 매출액에서 10%를차지하는 알짜산업”이며 “순매출액 대비로도 7∼8%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향후 두산의 경영전략에 대해서는 “e-비즈니스에 올해 1,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지식기반산업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소개했다.소탈한 성품에 달변인박사장은 오너 3세.고 박두병(朴斗秉) 두산 회장의 5남이다. 안미현기자 hyun@
  • 27회 상공의 날 기념식

    제27회 상공의날 기념식이 15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박태준(朴泰俊) 국무총리,김영호(金泳鎬) 산업자원부 장관,김상하(金相廈) 대한상의 회장 등이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행사에서는 박승복(朴承復) 샘표식품㈜ 회장과 허동수(許東秀) LG정유 부회장이 각각 금탑산업훈장을 받는 등 모범상공인,모범관리자 및 사원 등 총 157명이 정부포상을 받았다.수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 산업훈장 ◇금탑△박승복△허동수 ◇은탑△임성택(林成澤)삼남석유화학(주) 대표△박용만(朴容晩)(주)두산 대표 ◇동탑△이기표(李起杓)(주)케이디파워 대표△신수범(愼秀範)한화석유화학(주) 대표 ◇철탑△강신국(姜信國)(주)오뚜기라면 대표△송인섭(宋寅燮)(주)진미식품 대표 ◇석탑△김백수(金百壽)한국씨엠비(주)대표△노재근(盧在根)(주)한국OA 대표■ 산업포장 △이배구(李培求)(주)양지사 대표△신세철(申世澈)(주)동승아크 대표△다카기 아키요시 (주)한국씨티즌정밀 대표△한영옥(韓瑛玉)AFKO IMEXCO.LTD 회장△임재경(林裁京)이수화학(주) 전무■ 대통령표창 △우베 짐머만ING베어링(주) 대표△권승호(權丞鎬)아성전자부품(주) 대표△박용철(朴容喆)서울판지공업(주) 대표△배대환(裵大煥)수풍산업(주) 대표△강재우(姜載牛)일아산업(주) 대표△신영수(申英秀)ASLA-KAUF 대표△김명환(金明煥)보우텍스(주) 전무△백은순(白銀順)세창상사(주) 차장△박병주(朴炳州)삼성에버랜드 팀장■ 국무총리표창 △박근원(朴根遠)듀폰포토마스크(주) 대표△정인중(鄭寅重)(주)동방이.엔.지 대표△강병우(姜炳羽)아이비콘트롤(주) 대표△황수하(黃秀夏) 태림전자(주) 대표△이경호(李暻浩)성원전기공업(주) 대표△지창환(池昌煥)한국그레이스(주) 대표△사이토 쇼조 고오키상에이코리아(주) 대표△그래그스펜서 (주)보인메디카 대표△오성길(吳成吉)카니발월드 대표△이길상(李佶相)PT.MARS.GAINMADYA 대표△정종헌(鄭宗憲)매일유업(주) 이사△황의창(黃義昶)인탑스(주) 전무△김세희(金世禧)(주)대우팀장■ 산업자원부장관표창 △장용호(張蓉皓)동일산업(주) 대표이사 외 119명
  • 박용만 두산기획본부사장“연봉2배까지 스톡옵션”

    두산을 ‘구조조정의 모범생’으로 만들어 화제를 뿌렸던 박용만(朴容晩)두산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주)두산 대표이사 사장 겸임)이 이번에는 임원인사제도에 과감히 ‘칼’을 들이댔다. 박 사장은 13일 서울 두산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조치로 두산의 임원 인사제도는 미국 유수기업 수준이 됐다”며 “상여금과 스톡옵션제(주식매수선택권제)를 합치면 두산임원의 임금수준은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자평(自評)했다. 박 사장은 “임원 직급단계 축소로 같은 상무라도 보고받고 보고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며 “직급이 아닌 업무와 권한 중심의 조직문화로 바뀌어야한다”고 말했다.임원 퇴직금제 폐지와 관련, “퇴직금은 세제상이나 노후보장 차원에서 우리나라 근로자에게 매우 의미있는 제도”라면서 “그러나 성과와 무관한 임금구조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기업의 비용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용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박 사장은 또 “상여금을 진정한 의미의 ‘성과급’으로 전환,실질적 연봉제를 실현하겠다”며 “매년 3월에 받게 되는 상여금은 연봉의 최고 1.5배까지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내년 3월 정기 주총승인을 얻은 뒤 OB맥주를 제외한 11개 전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스톡옵션제를 도입하겠다”며 “매년 연봉의 최고 2배까지 스톡옵션을 부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새 임원인사제는 국내외 컨설팅사와 지난 1년동안 공동연구해창안한 것”이라며 “일반사원들에 대해서도 이같은 인사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추승호기자 chu@
  • [대한광장] 기업가와 독립운동

    ‘손녀에게 대학까지의 학자금 1만달러를 준다.딸에게는 유한공고 안에 있는 묘소와 주변 땅 5,000평을 물려준다.나의 소유 유한양행 주식 14만941주는 한국 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에 기증한다.아들에게는 대학까지 교육시켰으니 혼자 살아가라’. 이는 지난 1971년에 77세로 별세한 기업가이자 교육가,의약인인 유일한(1895∼1971)이 남긴 감동적인 유언장의 주요부분이다.그는 80평생을 정직한 기업인으로 살아왔다. 오늘날 기업가를 막론하고 앞다퉈 자손에게 엄청난 부를 물려주기 위해 변칙적으로 상속을 한다. 또 현금이다,주식이다,비밀계좌,차가명예금,해외도피 은닉,세금포탈 등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는 짜증나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유일한을 생각하게 된다. 9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904년 9살때 박장현을 따라 떠밀리다시피미국으로 가 박용만이 이끄는 네브래스카주 커니 헤스팅스 등지에서 교육을받는 한편 한인소년병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나라가 일제에 강점당할위기에 놓였었기 때문에 심신을 단련해둔 것이다. 이어 고학으로 미시간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3·1운동때 필라델피아에 가 한인자유대회의 대의원으로 이승만,정한경,임병직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독립이 왜 필요한가를 가두에서 역설하는 등 20대 청년답지 않게 중후한연설로 군중을 압도했다.곧이어 태극기를 들고 번화가를 누비며 소수민족의비애와 고통을 달랬다. 1926년 12월 귀국한 그는 기업경영에 눈을 뜨고 ‘유한양행’을 설립했으며 1920년대 말에는 중국·베트남 등지로 기업을 확장,민족기업의 터전을 닦는 등 종업원들에게 프런티어정신을 심어주었다.좋은 상품의 생산,정직한 납세,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강조하면서 유한양행 설립때부터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하였다. 그것은 곧 ‘이익의 균분’이라는 이상적 배분의 정의를 지킨 기업가 정신이다.그는 기업은 사회와 종업원이 소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았다.오늘날 손꼽히는 대기업체가 문어발식 독존적 경영으로 우리나라 1년 예산에 맞먹는 거액의 빚을 지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그의 경영은 재벌들에게 무모한 경영을 반성하게 해준다. 그는 1940년대 미국에서 게릴라훈련을 위해 ‘냅코작전’이라는 국내 침투조를 직접 만들고 그 조장이 되었으며 이승만 주미외교위원장에게 무력침투를 역설했고 지원도 받았다.그러나 이승만의 독선적 행동을 지적하다가 미움을 산 일도 있었다.그는 정의롭지 못한 일은 끝까지 시정하려는 결백의 사나이기도 하였다. 유일한이 기업가로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은 그 회사의 주요인사들도 몰랐다고 한다.필자는 4년전 유일한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회사로부터 청탁을 받아 미국 기록보존소에서 독립운동 관련자료를 많이 찾았다.그리고 그를토대로 광복 50주년에 건국공로훈장과 독립장을 받도록 했다.필자는 미국에서 찾아온 ‘유일한 독립운동자료’를 토대로 책을 묶은 바 있다. 그는 주변인사가 독립운동에 관해 증언해달라면 ‘내가 뭐 한 것이 있어야지’ 하면서 겸손해 하였다.조그만 항일사실을 크게 부풀려 애국자인 체하는 부류들이 많은 이 때 독립운동가로서 유일한의 행적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수 없다. 그는 생전에 사원들로부터 큰돈이 되는 상품을 새로 개발,시판하자고 제안받았으나 결연히 물리치기도 했다.사원들은 드링크류 생산을 꺼냈다가 꾸지람을 들었고 자동차 생산을 계획했다가 핀잔을 받았다고 한다.건강을 해치고 기업풍토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결핵·간질환 등으로 목숨을 빼앗기는 국민의 보건에 충실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는 것이다.국민이 건강해야 ‘주권’을 지킬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리라. ‘유한양행’은 지금은 그렇게 손꼽히지 않는 기업이지만 친족이 아닌 ‘타성(他姓)사원’에게 회사를 맡겨 족벌체제의 해독을 배제함으로써 오히려 건전한 기업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친족에게 기업을 물려주지 않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유일한을 기업인보다도 독립운동가로 더 기억하고 싶다.기업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지 않으면 존재가치가 없다는 그의 말이 생각난다.
  • 연오랑과 세오녀/홍철 국토개발연구원장(굄돌)

    한반도는 기(氣)를 모으듯 태평양을 향해 웅크린,도약과 질주 직전의 호랑이 모습이라고 독립운동가 박용만 선생께서 묘사한 적이 있다.이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하는 영일만 장기곶(포항시)은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아침의 땅이다. 삼국시대 신라 8대 아달라왕 때,영일만의 한 어촌에 연오랑(延烏郞)이라는 어부와 비단을 잘짜는 그의 아내 세오녀(細烏女)가 살았다. 어느날 연오랑이 바위섬에 앉아 미역을 따고 있는데 갑자기 집채만한 파도가 들이닥쳐 바위를 동쪽 바다로 밀고갔다.연오랑이 바위에 실려 도착한 곳은 왜국(倭國­지금의 일본)이었다.왜국 사람들은 바위를 타고 나타난 연오랑을 신령님으로 맞아들여 왕으로 추대했다.바닷가로 나가 남편을 기다리던 세오녀도 연오랑과 마찬가지로 바위에 실려 왜국으로 건너가 왕비가 됐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사라지자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당황한 왕이 일관을 불러 물으니 “해와 달의 정기가 왜국으로 갔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라고 대답했다.왕은 왜국으로 사신을 보내연오랑·세오녀 부부에게 돌아와 줄 것을 설득했다. 연오랑은 신라로 돌아오는 대신,사신에게 세오녀가 짠 비단을 넘겨주며 “고향을 그리며 해와 달의 정기를 모아 짠 것이니 하늘에 높이 걸어놓고 제사를 지내보시오”라고 말했다.신라사신이 비단을 들고 돌아와 연오랑·세오녀가 살던 영일만의 호랑이 꼬리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 해와 달이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6·25이후 최대의 국난으로 불리우는 IMF시대를 살고 있다.세오녀의 비단 힘을 빌어서라도 해와 달의 정기가 다시금 이땅에 살아나서,웅크린호랑이 대한민국이 태평양을 향해 질주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 OB맥주 4년만에 흑자/작년당기순익 765억원

    ◎보통주에 5% 현금배당 3년 연속 적자를 냈던 OB맥주가 구조조정으로 4년만에 흑자를 냈다. 두산그룹은 12일 지난해 OB맥주가 1조1천1백1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7백6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OB맥주는 12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보통주에는 5%,우선주에는 6%씩 현금 배당을 의결했다. OB맥주는 93∼96년 2천8백억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했었다.OB맥주는 지난해 코카콜라 생산 및 판매권 등 음료사업을 매각해 2천1백20억원의 특별이익을 냈으며 영업비용과 관리비용을 대폭 줄였다. OB맥주는 이날 주총에서 박용오 그룹회장의 동생 박용성 회장을 새로 대표이사로 선임했으며 두산건설 주주총회에서는 박회장과 박회장의 막내동생 박용만 부사장을 새 대표이사로 선임,오너 형제들의 직접 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 두산 오너경영체제로/박용오 회장 건설 맡아

    ◎박용성 회장 OB대표에 두산그룹은 오는 12일과 14일 열리는 주요 계열사 주주총회에서 박용오 그룹회장과 박용성 OB맥주회장 등 오너들이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에 취임,책임경영체제에 들어간다고 6일 밝혔다. 박용오 그룹회장은 현재 맡고 있는 두산상사 대표이사 이외에 두산건설 대표이사를 새로 맡기로 했으며 이사로만 등재되어 있는 박용성 OB맥주회장도 OB맥주 대표이사로 취임할 계획이다.그러나 두산상사 대표이사로 등재되어있는 박용곤 그룹 명예회장은 현직은 유지하되 경영 일선에는 복귀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두산그룹은 그룹 기획조정실을 현재 진행중인 그룹 제3차 구조조정 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한뒤 연내 폐쇄하기로 했다.이에 따라 박용만 기조실장도 계열사를 맡지 않고 당분간 현직을 유지하게됐다.
  • 통산장관초청 30대그룹 기조실장 간담회

    ◎“금융기관 대출금 상환기간 연장을/합병시 등록세부담 경감조치 필요/환율절하 시점 수출확대 모색해야” 27일 전경련 경제인클럽에서 열린 ‘통산부장관 초청 30대 기획조정실장 간담회’는 위기경제의 축소판이었다.기조실장들은 기업의 연쇄부도위기 등 경제난 극복을 위해 대통령 긴급명령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오간 내용을 정리한다. ▲김태일 전경련 이사=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재정확대가 필요하다.신용보증기금 등에 재정지원을 늘려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해야 한다.증시안정을 위해 무기명 장기채권 발행 등 실명제 보완이 필요하며 기업도산 방지를 위해 초단기 대책이 요구된다.무엇보다 금융기관과 기업의 도산을 방지하겠다는 정부 의지가 필요하고 금융기관 대출금의 상환기간 연장을 위한 긴급조치가 강구돼야 한다. ▲이가헌 효성그룹 부회장=경제현실은 수치와 다르다.실제 부도율 금리 환율 등이 지표보다 매우 높다.경제회복을 위해서는 2∼3년간 노력으로는 부족하며 7∼8년 정도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경제계정부 등 리딩그룹(주도층)이 경제실상에 대해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박용만 두산그룹 부사장=기업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제도개선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한계기업을 합병·정리하는데 현실적으로 2년 이상이 걸린다.합병시 자산취득에 대한 등록세 부담이 지나치게 과중하다.제도개선이 어려우면 일정기간 한시적인 유보조치라도 마련돼야 한다. ▲박성석 한라그룹 부회장=금융시장 혼란으로 금융 메커니즘이 붕괴된 상황이다.기업 은행 종금사간의 신뢰감이 무너졌고 5대 그룹 외에는 금융기관이 기업어음(CP) 인수를 거절하고 있다.때문에 만기가 도래한 차입금에 대한 상환기간 연장이 시급하다.금융기관은 12월까지 만기상환되는 어음에 대해서는 연장조치를 취하고 한은이 금융기관에 자금지원을 해주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그룹의 생존을 위해 정리해고를 불가피하게 추진하고 있으나 노조와의 타협이 가장 큰 문제다. ▲이계안 현대그룹 전무=은행이나 기업이 해외에서 자금을 차입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 외화확보방안은 수출 밖에 없다.그러나수출착수금에 대한 규제가 많아 외화조달의 길이 막히고 있다.실제로 현대중공업이 수출착수금을 받을수 있으나 제도상 제약되고 있다.현재 수출착수금 영수한도는 수출금액의 60%를 일시금으로 받고 30%는 제작기간중,10%는 제작기간후 받도록 돼있다.따라서 외한위기 타개까지라도 제도가 완화돼야 한다. ▲노준용 동부그룹 상무=은행의 기능이 회복될 때까지 초단기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수출환어음의 매입은 물론 대출약정에 따른 상환기간 연장도 거절하고 있다.내년 3월까지 정리해야 하는 출자총액한도 초과분,채무보증한도초과분에 대해서도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 ▲손길승 선경그룹 부회장=실물경제의 주체는 기업이므로 기업이 없다면경제는 존립할 수 없다.따라서 우선적으로 기업과 은행의 부도를 막기 위한 초단기 대책이 필요하다.현재 은행이 일람불신용장(at sight L/C)환어음도매입을 거절하는 상환인 만큼 기업부도를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이후기업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토록 해야 한다.국제통화기금(IMF) 자금지원은 장기적인대책이다. ▲정해주 통산부장관=우리 경제가 현재 어려움을 겪는 것은 경제주체가 여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데 있다.그러나 수출 생산 등 실물경제가 호전되고 있는 만큼 함께 노력할 경우 빠른 시일안에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재계에서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특별히 다음과 같은 노력을 해주는게 시급하다.우선 경상수지를 개선하고 외환위기를 타개하는 길은 수출 밖에 없는만큼 환율절하 상황을 수출확대에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실수요에 필요한 외환 이외에는 외환시장에서 매각,환율안정에 협조해 주었으면 한다.강도높은 구조조정으로 경영합리화를 추진하고 기술개발 및 합리화 투자로 경쟁력을 배양해야 한다.정부는 금융기능의 위축으로 실물경제,특히 수출이 어려움을겪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할 계획이다.필요한 대책을 조속히 마련,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기업구조조정에 장애가 되는 요인도 하루빨리 개선하겠다.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도 강구중이다.
  • 두산 음료부문 코카콜라에 매각/4,322억원에

    ◎구조조정차원… 6,100억 유입효과/코카콜라 국내 음료시장 지배력 확대 두산그룹이 음료사업을 미국 코카콜라사에 전격 매각했다.두산그룹은 10일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OB맥주의 음료사업 부문을 4천3백22억원에 코카콜라사에 매각하기로 합의,서울 및 경기도 여주의 음료 공장 시설과 종업원,90여개에 이르는 음료부문 영업권을 코카콜라에 넘긴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코카콜라사는 코카콜라의 국내 직영체제를 완전 구축했다.지난해부터 세계 각국의 보틀러 회사를 직영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코카콜라사는 국내 코카콜라 보틀러 4사 가운데 우성식품과 호남식품을 지난 3월 각각 1천1백억원과 4백85억원에 인수했었다.올해 말에는 경북 충남북 지역 보틀러사인 범양식품을 계약기간이 끝나는대로 인수할 계획이다.코카콜라사는 국내 4사를 인수하는데 7천억원 가량을 투자하게 된다. 코카콜라사가 갖고 있는 브랜드는 코카콜라말고도 환타 킨사이다 파워에이드 스프라이트 암바사 하이씨 우리집 식혜 등 10개가 넘으며 보틀러 4사의 매출을 합치면 4천4백억원에 이른다.국내 업계는 통합 직영 운영으로 코카콜라사가 영업력 강화,규모의 경제 실현,의사결정과정 단순화 등의 효과를 얻게 돼 국내 시장지배력이 더 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해태음료 관계자는 “코카콜라사가 앞으로 통합 영업망을 어떻게 운영하는 가에 달려있지만 일사분란한 영업망을 갖추면 국내 업계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고 했다.코카콜라사는 앞으로 5년동안 3천5백억원을 추가로 투자해 단일체제하의 생산 판매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이를 위해 코카콜라사는 코카콜라 한국보틀링사(CCKBC)라는 단일 회사를 이미 출범시켰다. 한편 이번 매각으로 두산그룹은 2천2백억원의 특별이익을 얻고 음료부문이 보유하고 있는 1천8백억원의 잔여 자산을 매각하면 6천1백억원 이상의 현급 유입 효과를 보게 된다.두산그룹은 코카콜라 원액을 공급받아 병입해 판매하는 사업 방식으로는 부가가치 창출이 어렵고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매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또 OB맥주는 사업권 양도로 지난 3년간 계속된 적자에서 벗어나 보다 건실한재무구조와 수익구조를 갖추게 됐다.이에 앞서 OB맥주는 지난달 두산음료를 합병했었다. 두산그룹 박용만 기획조정실장은 “지난 2년동안 추진해온 구조조정이 일단락됐다”면서 “내년부터 핵심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2단계 구조조정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오늘 통산부세미나/박용만 두산 기조실장 인터뷰

    ◎“구조조정은 특단의 조치 아니다”/“단기적 관점으로 봐선 안돼” 강조/보유 부동산 등 과감한 처분도 방법 『구조조정은 한 시기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아닙니다』 두산그룹의 구조조정 작업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 그룹 기획조정실장 박용만 부사장은 20일 구조조정은 단기적인 관점에서 봐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루에도 몇번씩 구조조정 관련 회의를 여느라 분주한 박실장은 21일 통산부에서 구조조정과 관련한 세미나에 참석,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대해 의견을 발표한다.기업구조조정 방안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 세미나에는 임창렬 통산부장관을 비롯,경제 관련부처 관계자와 전경련,대한상의 관계자들도 참석할 예정이다.박실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가 추진중인 구조조정 관련 정책에 대해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경영자의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할 예정이다. 박실장은 『두산그룹이 진행해온 구조조정 작업은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자평하고 『구조조정을 하려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이 언젠가 가치가 오를 것이라는 식의 막연한 기대를 해서는 안되며 끊임없이 반성해 잘라낼 것은 「성역없이」 냉정하게 잘라내야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은 의지의 표현만으로는 안되며 경쟁력을 키우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하는 박실장은 『내년부터는 계열사의 지휘 스타일을 개선하거나 비즈니스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등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2차 구조조정을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OB맥주의 경영정상화에 대해 박실장은 『내부적으로 구조조정 작업이 잘되고 있고 외부로는 OB라거와 카프리 등의 매출이 늘고 있어 낙관적으로 본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 박용오 회장 일문일답

    ◎“부동산·인원 정리… OB 1위 고수전략 마련중” 다음은 기자단과 박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전 회장의 퇴임은 어떻게 결정됐나. ▲자랑같지만 우리 형제들은 한달에 한번은 조카들까지 모여서 터놓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할 정도로 우애가 좋다.1주일전쯤 형님(박용곤 전 회장)이 형제들을 불러놓고 만 65세가 되는 내년 4월까지 자리를 지키려 했으나 내년 사업계획부터 내가 세우는 것이 좋겠다며 물러날 뜻을 밝혔다. ­앞으로 그룹 운영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그룹에서는 미국 매켄지사와 함께 그룹 경영 전반에 관해 여러 복안을 연구 검토하고 있다.불요불급한 부동산은 정리하고 인원도 줄이며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외국회사의 지분은 처분하는 등 구조조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해외진출도 적극 추진해 그룹매출의 20%를 해외에서 벌어올 계획이다. ­OB맥주의 적자를 타개할 대책은. ▲어려운 건 사실이다.시장점유율이 70%에서 40%대로 떨어졌다.맥주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을 예상해 투자를 많이 하다보니 자금부담으로 더 어렵게 됐다.1위를 하다 2위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1위 자리를 고수해야 되겠다.발표는 이르지만 OB를 성장시킬 수 있는 복안과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취임이후 인사이동은. ▲큰 변화는 없다.상례적인 연말 인사이동 정도는 있을 것이다.OB맥주 유병댁사장도 맡은지 이제 1년 정도밖에 안돼 기회를 주어야하지 않겠나.그도 나름대로 복안을 갖고 있을 것이다. 여섯형제중 다섯째인 박용만 기조실장과 함께 나온 박회장은 『첫 단추를 잘 꿰도록 도와달라』며 인터뷰를 마쳤다.셋째는 박용성 그룹부회장 겸 OB맥주회장,넷째는 박용현▦ 서울의대교수이며 여섯째 용욱씨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 박용만 전 의원 별세/조카에 피습 치료받다

    박용만 전 의원(72)이 19일 하오 6시50분 서울 영동 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했다. 총무처는 5선의원 출신인 박 전 의원이 반공활동 및 의정에 기여한 공로를 고려,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여권의 한 관계자가 이날 밝혔다.이 관계자는 『장지와 장례일시는 유족들과 협의중』이라고 말했다. 박전의원은 지난 3일 경북 영주시 풍기읍 밀양 박씨 문중 산소에서 조카인 박성철씨(무직)에게 왼쪽 가슴을 흉기로 찔려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그동안 치료를 받아왔다. 박전의원은 풍기출신으로 자유당 조직·선전부장을 거쳐 4·9·10·12·13대의원을 지냈고 국회행정위원장과 민자당 상임고문을 역임했다.
  • 박용만 전 의원/친조카에 피습

    【영주=한찬규 기자】 4선 의원을 지낸 박용만씨(72)가 문중 산소에서 성묘중 조카에게 왼쪽 가슴을 찔려 중태에 빠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3일 하오2시쯤 경북 영주시 풍기읍 백신2리 밀양 박씨 문중산소에서 박 전 의원의 조카 박성철씨(70·서울 마포구 대흥동 34의 23)가 『높은 자리에 있을때 집안일을 잘 돌보지 않았다』며 박 전 의원을 흉기로 찔렀다.
  • 이홍구 대표 당고문들과 조찬

    ◎경색정국 타개방안 등 논의/이 대표 “다음주가 고비될것”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위원은 2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민관식·김효영·박용만·황인성·권오태·김수한·최재구·이만섭·권익현씨 등 당 고문들과 조찬을 함께 하며 경색정국 타개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대표는 개원국회 전망과 관련,『개인적으로 다음 주가 상당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본다』며 『우리는 야당이 국회에 들어오면 어떤 문제든 논의가 가능하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데 야당이 이를 어떻게 수용하는지 태도변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고 김철 대변인이 전했다. 국회의장 내정자인 김수한의원은 『야당이 총선만 갖고 투쟁하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며 『마치 장사꾼이 장날을 피해 허송세월을 보내는 격이며 남방셔츠는 여름에 팔아야지 겨울에 팔 수 없지 않으냐』며 야당의 개원거부를 개탄했다고 김대변인이 밝혔다. 한 참석자는 『야당도 자신들의 주장을 국회에 들어와서 열심히 따지는 것이 더욱 유리할 것』이라고 「원내투쟁」을 당부하면서 『7월17일이 제헌절인데지금 야당의 태도는 반제헌적 태도』라며 야당 총재들을 비난했다. 또 다른 고문은 『7월 중순에 국민회의 김대중총재가 다리 수술을 위해 미국에 간다는데 김총재도 여러가지 계산을 할 것이고 무책임하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며 『어쩌면 그 전에 국회문제가 잘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대변인은 『고문들은 대체로 파행국회를 오래 끌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도 부담이 되는 만큼 여야 총무접촉을 통해 대화로 푸는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고 덧붙였다.〈박대출 기자〉
  • 이달의 독립운동가 유일한 선생/서울신문사·보훈처·독립기념관 선정

    ◎미주 항일조직 「해외 한족대회」 주도/민족경제 살리며 26년 유한양행 설립/41년부터 OSS 특수공작대서 활약 국가보훈처는 미주지역에서 한인자유대회,해외한족대회 등에 참여,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유일한 선생(1894∼1971)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1894년 12월13일 평양에서 태어난 선생은 11살때인 1905년 미국으로 유학,네브래스카주 커니에 정착했다.선생은 1909년 박용만이 미주지역에서 최초로 설립한 「한인소년병학교」에 입교,상오에는 농장에서 학비를 벌고 하오에는 학과공부와 군사훈련을 받았다.이 학교에서의 3년간 생활에서 형성된 민족의식과 자주독립 사상은 선생이 전개한 독립운동의 원천이었고 기업경영의 지표로 작용했다. 헤스팅스 고교를 거쳐 미시간주립대학 4학년에 재학중이던 1919년 선생은 「한인자유대회」에 대의원자격으로 서재필,이승만,조병옥,임병직 등과 함께 참가했다. 대학을 졸업한뒤 라초이 식품회사를 설립,여기서 마련된 자금으로 귀국해 26년 유한양행을 설립했으며 연희전문학교 교수로도 활동했다.선생이 유한양행을 설립한 것은 민족의 실력양성과 경제적 자립을 염두에 둔 것이다. 1930년대 들어 일제의 만주침략과 중일전쟁 등으로 국내외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선생은 3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 체류하면서 수출선의 다변화를 위해 유럽 및 중국 시장개척에 노력하는 한편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된「해외한족대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이 대회는 대한민국 임정의 후원 아래 항일독립전선에 모든 역량을 집결하여 광복대업을 촉성하기 위한 대일 민족통일전선의 일환으로 구상된 것이었다. 41년 12월7일 일제의 진주만 폭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선생은 미군 전략정보처(OSS)의 한국담당 고문으로 활약했다.조국광복에 대한 선생의 투철한 의지는 45년 「냅코작전계획」의 참여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OSS가 수립한 이 계획은 반일 민족의식이 투철한 재미한인을 선발,특수공작훈련을 시킨뒤 한국과 일본에 침투시켜 적후방을 교란하려는 작전이었다.45년 1월 이 작전계획의 핵심요원으로 선발된 선생은제1조 조장으로 임명돼 명령을 기다리던 중 일제의 항복으로 작전실행을 하지 못했다. 선생은 46년 7월 미국에서 귀국한 뒤 유한양행을 재정비,사장과 회장,대한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민족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아울러 52년 고려공과기술학교,64년 유한공고 등을 설립운영했고 개인 소유주식을 각종 장학기금으로 출연하는 등 자본의 사회환원에도 힘썼다.특히 69년 기업의 제일선에 은퇴하면서 혈연관계가 없는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인계,전문경영인 시대의 서막을 열었으며 한국에서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천하는 등 기업경영사에 남을 선진적인 일들을 몸소 실천했다.선생은 71년 3월11일 76세로 타계했으며,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지난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황성기 기자〉
  • 두산그룹 조직개편 주도 박용만 기조실장(인터뷰)

    ◎“문어발식 탈피 공격경영”/무한경쟁 대비 계열사 19개로 축소 29개 계열사를 19개사로 축소키로 한 두산그룹의 조직개편안은 박용만 신임 기획조정실장(40)이 만들어내 취임 5일만인 지난 4일 발표한 작품이다.15일 기자 간담회를 가진 박실장은 『두산의 경영체제 개편은 내년에 창업 1백주년을 맞는 상황에서 현재 체제로는 미래를 관리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여기에 문어발식 확장은 안된다는 국민적 공감대와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편성하지 않으면 앞으로 경쟁사회에서 남아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개편 배경을 설명한 박실장은 『규모면에서 중소기업과 비슷하고 독자적 역량이 없는 계열사를 합쳐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려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두산의 조직 개편의 요체는 보수체제에서 탈피해 공격적 경영을 하자는 것.박실장은 지분만 일부 가진 3개 투자 회사를 처분한 것은 소극적 투자는 하지 않겠다는 공격적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최근의 OB맥주 판매부진과 관련해 그는 경쟁체제에서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룹에서는 자율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줄 뿐이고 결국 자기힘으로 재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박실장은 또 『현재 실시중인 연봉제에 사원의 70%이상이 긍정적인 입장』이라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사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78년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딴 박실장은 창업 2세대인 고 박두병 두산회장의 5남으로 박용곤 현회장의 이복동생이다.
  • 두산그룹 인사/두산건설 부회장 민경훈씨/동양맥주 사장 유병택씨

    두산그룹(회장 박용곤)은 29일 동양맥주 유병택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두산정보통신 민경훈 사장은 두산건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두산정보통신 김천사 상무는 대표이사 전무로,그룹 기획조정실 박용만 부실장은 기획조정실장으로 각각 승진됐다.
  • 독립유공 1,442명 발굴·포상/광복 50돌 맞아

    ◎사회주의 계열 이동휘선생 포함/광복군 김광석옹 등 생존자도 28명 국가보훈처는 광복50주년을 맞아 오는 15일 건국훈장 대통령장 등의 훈·포장을 수여할 이동휘 선생 (상해임시정부 국무총리·1873∼1935)등 독립유공자 1천4백42명의 명단을 8일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독립유공자 명단 중에는 이선생을 비롯,임시정부 외무총장과 한국독립당 비서장을 지낸 박용만(1881∼1928·대통령장),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한 유일한(1894∼1971·독립장·유한양행 설립자),안중근의사 친동생인 안공근(1841∼미상·독립장),소설 상록수의 실제 모델이었던 최용신선생(1909∼1935·애족장)등이 포함돼 있다. 이와함께 일제하 일본 도쿄에서 비밀학생결사체인 「우리들」을 결성,활동했던 홍영기국회부의장(77·애족장),6·10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문창모국회의원(87·건국포장),3·1운동 당시 경북 안동지역의 시위를 주도,일경에 의해 살해된 황영남선생(1885∼1919·애국장) 등도 명단에 들어있다. 특히 보훈처는 이동휘선생이 1921년 고려공산당을 결성하는 등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그동안 독립유공자로서 포상을 받지 못했으나,이선생이 공산주의자라기 보다는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회주의활동을 한 것으로 판단돼 이번에 독립유공자로서 포상키로 했다고 밝혔다.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가 우리 정부에 의해 포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발표된 포상대상자들은 대통령장 4명,독립장 95명,애국장 5백44명,애족장 4백30명 등 건국훈장 1천73명이며 건국포장 1백5명,대통령표창 2백64명 등이다. 또한 이들중 생존 독립유공자는 광복군의 일원이었던 김광석선생(77·애족장) 등 28명이며 여성독립유공자는 항일 무장독립투쟁을 벌였던 박차정선생(1910∼1944·독립장)을 비롯,26명이다.
  • “다사다난”… 되돌아본 갑술년의 정관가/정치부 기자 방담

    ◎“세계로 가자”… 건국이후 최대 정부개편/작은 정부·대통령 세일즈외교 새모습/김일성 돌연 사망… 남북 정상회담 무산/정개법 만들어“정치혁명”… WTO안 표결처리「94대미」장식 □참석자 김영만 차장 김명서 〃 김경홍 기자 이목희 〃 최병렬 〃 한종태 〃 문호영 〃 박대출 〃 김균미 〃 진경호 〃 박성원 〃 「세계화」원년으로 기록될 갑술년이 저문다.문민시대가 출범한지도 2년째,도약과 안정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온 한해.대통령이 앞장서 세계화를 위한 외교세일즈에 나섰고 국내에서는 건국 이래 최대규모의 정부조직 개편이 이루어졌다.한치도 눈돌릴 틈이 없었던 해 정치권의 변화를 정치부기자들의 방담으로 돌이켜 본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다사다난」한 한해였다고 말들을 합니다.그러나 실제로 올 한해 정치권에서는 굵직굵직한 변화가 잇따랐고 사회적으로 사건사고도 많아 정말 다사다란 했던 한해였다고 평가될 수 있겠습니다. ○“토지 쿠데타”술렁 ­먼저 정치권의 가장 큰 변화는 김영삼대통령이 세계화를선언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일련의 개혁조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건국 이래 최대 규모인 정부조직개편이 단행됐고 1만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자리를 옮기는 대변혁이 뒤따랐지요.공직자선거법·국회법·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등 정치선진화를 위한 개혁조치도 완료됐습니다. ­김일성의 사망도 세계적인 뉴스였습니다.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기대에 부풀었으나 김일성의 사망으로 원점으로 되돌아갔지요.아직도 김정일체제가 공식적으로 출범하지 않아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북한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는 것 같습니다.북한이 핵사찰을 받아들인 점이라든지 미국과의 회담에 성의를 보이는 점등은 북한의 변화를 예고하는 구체적인 징후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김대통령의 세계화선언은 우리가 변해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을 직시한 판단으로 여겨집니다.이를 위해 김대통령은 올해 러시아·우즈베키스탄·일본·중국방문에 이어 아시아·태평양각료회의에 참석하는등 세계화를 위한 정상들의 외교전쟁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지난 3일 발표된 정부조직 개편은 공직사회는 물론 전체 사회에 충격을 던진 사건이었습니다.공무원들이 「토요일의 쿠데타」라고까지 부르는 조직 개편으로 1백15개과가 없어지고 1천2명이 공직을 떠나게 됐습니다.공직을 떠나게 된 공무원들에게는 참으로 안된 일입니다만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타파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것이 중론입니다.김대통령은 이어 지난 23일 전면 개각과 26일 차관인사를 단행하는 것으로 공직사회에 대한 수술을 마무리했습니다. ○민정계 중진 전면에 ­개각과 관련한 정치권의 얘기를 좀 해봅시다.「12·23」개각은 김윤환·김용태·김중위의원 등 민정계 중진들의 전면부상과 민주계 인사들의 퇴조라는 모양으로 나타났지요.김덕용 서울시지부장이 「새시대 새인물론」을 내세워 구여권 인사들을 「잡탕식」으로 끌어들여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과는 판이하게 나타났습니다.청와대 비서실장 등으로 중용될 것으로 예상됐던 서석재당무위원이 「기대 미달」인 총무처장관에 임명된 것도화제를 불러 일으켰지요.아무튼 민주계인사들의 앞으로의 역할이 주목의 대상입니다. ­국회쪽으로 눈을 한번 돌려볼까요.지난 3월15일은 실로 정치권에서는 역사적인 날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34년 전에는 부정선거로 「4·19」를 촉발시켰던 날이었지만 이날은 정치개혁 입법이 마무리돼 청와대에서 김영삼대통령의 서명식이 있었지요.통합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등은 선진정치를 위한 제도적인 첫 초석을 다졌다는 점에서 여야 구분 없이 뿌듯해 해도 좋을 으뜸사안일 것입니다.특히 통합선거법은 새해 6월에 실시될 엄청난 규모의 첫 지방자치선거에서 현실정치에 성공적으로 접목될 수 있을 것인지 판가름나겠죠. ­올해는 성수대교 붕괴·세무비리사건·장교무장탈영및 사격장총기난동사건등 대형사고가 잇따라 터져 사건마다 정치쟁점화하는 뒤숭숭한 분위기였습니다.따라서 정치권에서는 신문에서 무슨 「사고발생」 기사가 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사고공화국」이라는 자조의 목소리도 컸습니다. ○「사고 공화국」자조도 ­국회법이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된 것도 뜻깊은 일일 것입니다.의원들의 질문시간을 20분 이내로 제한함으로써 소모적인 말다툼식의 질문을 줄이게 된 것이죠.또한 본회의에서 새로 도입된 5분 자유발언제도도 주로 야당의 독무대였지만 여야 의원들이 적절히 활용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회법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이번 정기국회에서 보여준 야당의 모습은 과거와 거의 달라지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민주당은 한달이나 국회등원을 거부하다가 불과 5일짜리 임시국회를 요구했지요.정기국회가 폐회식도 갖지 못하고 곧 이어 임시국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새해 예산안 처리에 대해서는 여야가 함께 비난받아도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민자당은 민주당을 장내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민주당은 장외투쟁에만 매달려 주요한 국정을 외면했습니다.그런데도 서로가 자기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상대쪽만 헐뜯는 듯한 태도는 선진정치의 구현이라는 국민들의 바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세계무역기구(WTO)가입 비준동의안은 1년여를 별러온 야당의 기세에 비해 싱거울 정도로 쉽게 통과됐습니다.민주당은 WTO비준문제를 기회있을 때마다 농어촌 표갈이용으로 써먹었지요.그러나 미국·일본등 주요국들이 10월말부터 「국익」차원에서 이를 통과시키고 국내 여론도 비준반대 보다는 대책마련으로 흐르면서 민주당도 대안제시로 방향을 돌렸지요.그래서 민주당이 도망갈 조건으로 내놓은 것이 「WTO이행 특별법」입니다. 의외로 싱겁게 통과 ­통과과정에서 민주당의 트집도 여전했지요.이행특별법에 민자당이 합의해주자 민주당은 다시 농어촌 보호를 위한 7개 대책을 요구해 민자당의 이한동원내총무가 『이런 신의없는 정치판에서 더 있어야 하나』라고 푸념을 하기도 했지요. ○깨끗했던「8·2보선」 ­선거법 개정후 처음으로 치러진 「8·2」보궐선거는 우리 선거도 변할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선거였다고 평가됩니다.이 선거는 김영삼정부의 개혁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점에서도 여야가 신경을 바짝 쓴 선거였지요.그러나 여야가 유례없이 깨끗한 선거를 치렀다는 여론의 평가를 받은 점은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선거 결과 대구 수성갑에서 박철언전의원의 부인 현경자씨가 압승을 거둠으로써 「TK정서」의 위력을 실감하게 했지요.경주시에서는 민주당의 이상두후보가 승리,TK지역에 민주당의 깃발을 꽂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올해는 민자·민주당 등 정당들도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여야 할 것 없이 지도체제문제와 노선갈등을 겪었으며 내년의 전당대회가 예정되어 있는등 폭풍전야 같은 느낌입니다.아무튼 내년에는 지방자치선거 등으로 정치판이 한층 가열될 것은 틀림 없어 보입니다. ○「세대 교체」불씨 여전 ­민자당에서는 지구당조직책 교체과정에서 계파간에 색깔논쟁이 벌어지는등 진통도 겪었지요.먼저 4월에 재야 노동운동가 출신의 김문수위원장을 부천 소사지구당위원장에 영입하자 민주계인 박용만고문과 민정계의원들은 「빨갱이 당이냐」고 거칠게 항의해 지도부가 곤혹스러워 하기도 했지요.이어 10월에 이우재·정태윤·송철원씨등 재야출신을 다시 영입한데 대해서는 반발이 보다 노골화 됐습니다.안기부장 출신의안무혁의원과 곽정출의원은 김종필대표 앞으로 「이념적 전력」을 가진 인사들의 영입배경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공개질의서를 냈고 노재봉·박세직의원등은 대정부비판으로 이를 노골화하는 갈등도 빚었지요. ­무소속으로 입당했던 정주일의원등 4명과 함께 지난 27일 노태우전대통령의 아들 재헌씨를 대구 동을 지구당에 전격 영입한 것은 구여권 포용의 필요성을 절감한 현정부의 고육지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요.노전대통령과 김영삼정부의 불편한 관계가 크게 개선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민자당의 민주계 실세인 김덕용의원의 「세대교체론」,최형우전내무부장관의 「김종필대표 퇴진론」은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씨」 같습니다.최전장관이 거의 정면공격식으로 JP(김대표의 애칭)문제를 들고 나오자 JP로서도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지도체제 개편문제가 김대통령과 김대표의 주례회동에서 일단 결말이 난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내년 2월의 전당대회가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여전히 안개속입니다. ○민주 당권싸움 가열 ­민자당의 전당대회 못지않게 흥미를 끄는 것이 민주당의 당권싸움과 전당대회가 아닐까 싶은데요.전당대회 개최시기에서부터 지도체제 개편문제에 이르기까지 각 계파의 주장이 제각각입니다.9인9색의 당답다고 할 수 있죠.문제는 이기택대표와 동교동계가 어떻게 의견을 조율하느냐입니다.또 비주류 김상현고문의 행보도 주목됩니다.알려진대로 이대표는 전당대회를 내년 2∼3월,즉 지방선거전에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반면 동교동계는 8월을 고집하고 있죠. ­여기에는 공천권 행사의 문제도 걸려있습니다.동교동계는 지방선거전에 전당대회를 열어 이대표의 권한이 강화되면 자칫 당내 최대주주임에도 불구하고 공천권 행사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반면 이대표는 지방선거후 동교동측으로부터 당권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전당대회를 서두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김대중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의 대외활동이 부쩍 활발했던 점이 눈길을 끕니다만. ○DJ 활발한 움직임 ­지난1월,아·태재단을 창설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기는 합니다만 DJ(김이사장의 애칭)는 여전히 국내 뉴스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인물임에 틀림 없습니다.그의 올 한해 활동은 통일문제에 대한 학술활동과 외국방문을 통한 외교활동으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특히 이달 초 외국의 정상급 지도자 1백50여명을 초청해 서울에서 개최한 「아·태민주지도자회의」는 그의 대외적 위상을 높이는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이사장의 활동이 많았던 만큼 잡음도 있었지요.우선 정치재개설이 끊임없이 일었죠.직접적 계기는 DJ가 지난 5월 한 지방신문과 가진 회견에서 『정치를 해도 민주당을 업지는 않겠다』고 한 말이 불씨가 됐습니다.정치재개의사를 시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었죠.최근 『정당활동도,대선 출마도 않을 것』이라고 그가 못박기까지 이같은 의혹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왔습니다.정치재개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그가 실제로 민주당의 행보에 직간접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봅니다.○신민 집안싸움 추태 ­정치권의 중심에서는 비켜 있었습니다만 제2야당인 신민당의 부침도 많은 화제를 일으켰죠. ­그렇습니다.국민당의 김동길대표와 신정당의 박찬종대표가 통합,신민당을 출범시킨 때가 지난 6월입니다.그러나 박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측이 지난 10월 김대표의 퇴진을 요구하며 각목전당대회를 강행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저물어가는 해와 함께 신민당은 와해직전의 위기에까지 빠지게 됐습니다.한때 원내교섭단체 구성여부가 주목되기도 했습니다만 최근 유수호·김용환·조순환의원이 탈당함으로써 12명의 의원에 불과한 미니정당으로 전락했죠.이 와중에 김·박 두 대표는 대표직을 사퇴하기도 했고요.내분에는 내년에 받을 1백10억여원의 국고보조금도 한 몫 했다고 하겠습니다. ­감사원의 활약은 어떠했습니까. ­문민정부 출범 첫해와는 달리 감사원에서는 활기가 덜했다는 평가를 받고있지만 한편으로는 감사의 내실을 기한 한해였습니다.새정부 출범과 함께 지난해에는 사정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올해에는 사정보다는 부실시공과 예산낭비,민생감사로 방향을 돌렸습니다.특히 부실시공은 이시윤감사원장이 남다른 의지를 갖고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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