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의 무덤에는… /임춘웅 국제부장(서울칼럼)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실각설이 나돌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소련내 인종분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르바초프가 과연 살아 부지할 수 있을 것인지,나아가 그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입방아들을 찧고있던 터였다. 고르비(고르바초프의 애칭)의 실각설은 그 진위가 어떻든 아무래도 예삿일이 아니다.
그의 실각은 그가 줄기차게 추진했던 페레스트로이카의 후퇴를 의미하고 그동안 우리가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던 동구의 변화 물결에도 영향을 미칠게 뻔한 일인 때문이다. 더욱이 페레스트로이카가 조성해 주었던 동서간 화해분위기나 평화 무드에도 얼마간 찬바람이 일게될 것이다.
확실히 그는 세계의 스타다. 누구도 그사실에 이의를 다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미국사람들까지 80년대의 인물로 그를 내세우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뿐이랴. 스타가 없는 세상은 아무래도 재미가 덜하다. 일이 이쯤되고 보면 그의 신변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요즘 세계의 소련문제전문가란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제가끔 한마디씩 하고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애당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는 둥,고르바초프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그의 페레스트로이카는 동구권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갈 것이라는 둥…고만고만한 얘기들에서부터 아주 상반된 전망까지 고르비의 운명이 다채롭게 조명되고 있다.
실패론의 선두는 역시 미국의 학술계간지 디덜러스(DEDULUS)겨울호에 실려 화제가 됐던 「Z」의 분석이다. 공산주의는 스스로 개혁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페레스트로이카는 실패할 수밖에 없고,그런 측면에서 자유세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도울 수 없으며 도와봤자 결국엔 헛수고에 그치고 만다는 논리다. 페레스트로이카의 기본 취지는 개혁하자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공산당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지도해야 하는 체제의 논리에 역행하는 결과가 된다는 얘기다. 기실 고르바초프가 추진했던 페레스트로이카도 공산당 지도하의 개혁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견해로는 소련의 지배엘리트들이아무리 개혁에의 열망에 불타고 있다해도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과를 거둘 만큼 과감한 변혁을 허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분석이다. 소련공산당의 지배상실과 소연방의 해체,나아가 세계무대에서의 힘의 상실로 이어질 개혁의 길을 소련지도자들이 스스로 택할 수는 없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성공쪽을 본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진행돼 버렸다는 관점이다. 그것은 고르바초프나 소련ㆍ동구의 것만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이라는 견해다. 그 누가 저처럼 거대한 역사의 물결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소련의 군부내 보수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를 몰아내고 다시 중앙통제 체제를 강요하더라도 그것은 잠시일뿐 페레스트로이카를 더욱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논지도 편다. 그것은 일시적인 반동일뿐 반동은 페레스트로이카의 힘에 다시 밀리고 그렇게 되면 소련사회는 본질적으로 뒤바뀌는 사태로 급전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질없는 논쟁들인지도 모른다. 고르바초프의 실각따위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고르바초프의 권좌가 무너졌다고 해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좌절되리라고 보는 것은 명철한 시각이 아니다. 고르비는 페레스트로이카가 불가피했던 동구사회의 현상을 대변했을 뿐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페레스트로이카의 한계를 말하고 대안이 없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여기서 문제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기존체제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스탈리니즘,다시 말하면 좌익 전체주의에 대한 자성의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페레스트로이카는 본질적으로 해체기능을 할 뿐 그것 자체가 대안을 수반하거나 동구사회를 재통합하는 기능까지 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은 해체의 시기인지 모른다. 해체의 시기에는 해체될 뿐 바로 재통합으로 이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해체의 속도,해체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문제점들이 충분히 드러난 연후에야 대안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붕괴되고 있는 동구가 재통합의 에너지를 얻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고르바초프 스스로도 그의 페레스트로이카가 빚어내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에 대해 아무런 대안이 없음을 고백한 일이 있다. 그는 지난해 소련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에 쓴 「사회주의사상과 혁명적 페레스트로이카」란 글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고 자문하고 『페레스트로이카는 끝을 알 수 없는 정치적 프로세스일 뿐』이라고 자답했다. 어떤 학자는 페레스트로이카의 효과가 20년 후에나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는 자체의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이미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금세기 마지막 남은 인류의 적인 좌익 전체주의를 무너뜨린 거대한 공적을 이미 남긴 것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기저는 인간화,자유화다.
자유와 휴머니즘은 인류가 추구하는 영원한 가치다. 고르바초프는 실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의 실각여부와 관계없이 페레스트로이카는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먼 훗날 그의 무덤에는 빨간 장미꽃 다발이 끊이지 않고 꽂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