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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RBE 대학생 패션쇼’ 이모저모

    임시 가설된 무대를 걷는 모델들의 발걸음은 예사롭지 않았다.사뿐사뿐,하지만 혼신의 힘을 쏟는 발걸음에 대구의 미래가 걸린 양 모델들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제2의 밀라노를 지향하는 대구시가 그 웅비를 알리는 이날,전국에서 선택받은 패션디자인 전공 대학생들은 색색의 화려함으로 대구시의 새출발을 축하했다. 대학생들은 1부와 2부로 나누어 순수와 야망,정열이라는 젊음의 주제를 나름의 완성도와 개성으로 신선한 감각의 의상들을 선보였다.장차 한국의 패션계를 이끌어나갈 주인공답게 때로는 미래적인 테크노 감각으로,때로는 순수로맨틱 패션으로 행사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들이 이날 선보인 의상은 앞서 열린 ‘직물과 패션의 만남전’에서 프로 디자이너들이 선보인 섬세하고 정제된 의상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준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의상들은 장차 우리 패션계의앞날이 밝음을 예고하기에 충분했다. ■ 문희갑(文熹甲) 대구시장을 비롯한 대구시의 정·관계 인사 그리고 대구시를 섬유패션도시로 가꾸어나갈 많은 대구시민들은 학생들의 과감한 실험적 표현과 가끔 엿보이는 프로적인 섬세함에 진정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특히 대구지역 대학 17개 의상관련학과는 패션쇼 관람을 위해 임시휴강까지 하는 뜨거운 성원을 보여줬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이같이 우수한 예비디자이너들이 있는 한 대구의 미래는 밝고 나아가 우리나라 패션산업의 미래 역시 매우 밝다”고 심사소감을 밝혔다. 대구 백종국기자
  • 오부치총리 訪韓 이모저모

    오부치총리는 20일과 21일 고려대 강연과 해인사 방문을 통해 역대 일본총리 방한과의 차별화를 시도,주목을 끌었다.일본으로서는 다소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민족사학’과 ‘호국사찰’에 대한 그의 과감한 접근은 아키히토(明仁)일황의 방한에 앞서 ‘정지작업’ 차원이 아닌가 풀이된다. 오부치총리는 21일 오후 2박3일의 방한일정을 마치고 서울공항에서 간단한환송행사후 도쿄로 떠났다. ▒해인사 방문 오부치총리는 21일 오전 10시30분 경남 합천 해인사에 도착,일주문을 거쳐 경내 대적광전을 참배한 뒤 팔만대장경판고를 돌아봤다.오부치총리는 청화당(淸和堂)에서 ‘구명불견암(求明不見暗)’이란 기념휘호를써 해인사에 전달했다.송월스님은 답례로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로 시작되는 서산대사의 ‘오도송(悟道頌)’을 적어 건넸다.오부치총리는 오후 1시 해인사를 떠났다. ▒고려대 강연 이에 앞서 20일 오후 열린 오부치총리의 고려대 강연은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큰 불상사 없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오부치총리는 강연 20분 전인 오후 2시10분 경호당국의 삼엄한 보호 아래 검은색 리무진을 타고 고려대 정문을 통과했다.고대생 150여명이 ‘과거사 청산’과 ‘어업협정 즉각 파기’를 주장하며 교문 진입 저지와 대강당 시위를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정문 앞에서 1시간 가량 연좌시위를 벌였다.오부치총리는 “안녕하십니까.소개받은 오부치입니다”라고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를 해 600여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았다.오부치총리는 고려대와 연대,와세다와 게이오대 등 네 학교간의 교류시합을 제안하기도 했다.오부치총리는 강연후 金炳琯이사장과 金貞培총장으로부터 고려청자 1점과 여초 김응현선생의 ‘천하위공(天下爲公)’이란 대형서품을 선물받았다.
  • 국군의 날 행사 스케치/“4년만에 보는 위용” 박수갈채

    제 50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1일 오전 10시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기념식이 열린데 이어 오후 3시부터 광화문 등 서울 도심에서 시가행진이 4년만에 펼쳐졌다. 장병들은 이날 행사에서 ‘조국과 함께,국민과 함께’하는 강한 군대의 위용을 한껏 과시,시민들로부터 뜨거운 찬사와 격려를 받았다. ○…기념행사는 식전행사 및 기념식,호국의 불 점화,민군 행진,분열 등의 순으로 2시간여동안 화려하고 웅장하게 진행됐다. 기념식에 이어 C­130,CN­235 등 수송기 8대에 나눠탄 특전사요원 242명이 2,000피트 상공에서 집단강하,적진 침투장면을 연출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어 1만피트 상공에서 여성대원 2명을 포함한 특전사요원 86명이 CH­47헬기에서 뛰어내려 창공에서 오색 연막을 내뿜으며 4,500피트 상공까지 맨몸으로 떨어지다 낙하산을 펼치는 공중묘기를 연출했다. ○…시가행진은 헌병 사이카를 선두로 국군지휘부 군악대 도보부대 등 1만2,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남대문∼시청∼광화문∼서대문로터리 사이 1.2㎞구간에서 1시간여동안 계속됐다. 행진에서는 전국 16개 시·도행진,학생과 어린이를 포함한 각계 각층의 ‘시민행진’과 사물놀이패를 앞세운 ‘한마음 대행진’이 동시에 펼쳐졌다. 대형건물 옥상에서는 색종이가 뿌려졌고 일부 학생들은 군 장병들에게 꽃다발을 걸어주기도 했다. ○…남대문∼광화문∼동대문사이 4㎞구간에서 열린 기계화부대의 행진에서는 155㎜ 자주포를 비롯,포병화력의 핵심인 신형 다연장로켓포(MLRS),장거리지대지 유도탄(ATACMS) 등이 처음으로 선보였다. 하늘에서는 대한항공 제트여객기 2대가 30여분에 걸쳐 오색연기를 내뿜으며 1,500피트의 저고도로 선회비행,축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 궁중의 숙청(秘錄 南柯夢:16)

    ◎“궁궐안 정씨 모두 해직” 어명/황제총애 받는 시종자리 이권·인사청탁 쇄도/오적 이지용 상중에도 여인보내 벼슬 부탁/“모든 정씨 국가에 유해” 상소에 “나가 기다려라”/시종 정환덕 궁내사건 예언시 적중하자 복직 1899년 8월에 선포된 대한국제(大韓國制)는 대한제국의 헌법이었다.이 법에 따르면 황제는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전권을 장악한 전제군주였다.말하자면 서양의 절대왕권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한 셈인데 고종을 루이 14세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누구의 장난인지는 몰라도 당시의 세계 대세로 보아도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체제였다고 할 수 있다. ○시종원 막강권부 부상 이처럼 모든 권력이 고종황제에게 집중되었으니 덕수궁 중화전(中和殿)이 권력의 핵심부가 될 수밖에 없었고 고종의 최측근인 시종원 시종들이 막강한 힘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의 역대 청와대 비서실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았다. 정환덕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므로 모든 이권과 인사청탁이 그를 통해 이루어지게 마련이었다.지방 군수나 관찰사는 물론 중앙의 대신 자리까지도 일개 시종에 지나지 않는 정환덕을 거쳐야만 성사되었다.군부대신 이지용(李址鎔)의 경우가 그 좋은 사례였다. 전 군부대신 이지용은 평양의 명기 죽향(竹香)을 소실로 삼고 있었는데 광무 6년8월 생부가 죽어 상중에 있을 때 죽향을 우리(정환덕)집으로 보냈다.내외를 하느라 나는 발을 치고 죽향을 만나 보았는데 용건은 다름 아니라 “영감께서는 우리 대감(이지용)을 모르십니까? 대감께서는 방금 거상(居喪)중이시라 한번만 문상을 와주시면 천만번 다행이라 하옵니다”는 것이었다.이에 대답하기를 “이 몸이 국사(國事)에 바빠 밤낮없이 함녕전 대청에서 폐하를 모시고 있는 처지라 여가를 낼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예까지 부인을 보냈으니 한번 짬을 내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옛부터 부모의 상중에는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 자식의 도리요 바깥 출입까지 삼가하여야 했는데,감투욕에 불탄 이지용은 정한덕에게 미인계를 써서 기어이 기복(起復=상중에 벼슬을 하는 것)하려 했던것이다. 이지용은 이층 양옥집에 살고 있었다. 문상을 마치고 이지용에게 인사말을 건네기를 예전에 대감이 군부대신으로 계실 때 한번 찾아 뵌 일이 있었는데 그 때는 손님이 집에 가득하고 마당에는 수레와 말이 벌려 있었습니다.그런데 지금은 문정(門庭)이 적막하고 포저(예물)가 뚝 끊기어 있으니 보기에 민망스럽습니다”하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감투란 것은 쓰고 있을 때 즐거울 뿐 벗고나면 허전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것이다.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줄 알면서도 한자리 하려고 버둥거리고 그것이 역사의 강물이 되어 도도히 흐르게 마련이다.이지용은 이름난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요 탐관오리였다.부모가 돌아가셨는데도 미인계를 써서 벼슬을 하여 집안의 불효자가 되었고 나라를 팔아 매국노가 되었다. 물론 정환덕은 이지용이 그런 인물이 될 줄은 모르고 그를 임금께 천거했던 것이지만 어느 해 추상같은 상소가 올라와 궁중 숙청이 단행되었다.전 동부승지(同副承旨) 홍병섭(洪丙燮)의 소장(疏章)이었는데 거기에는 무서운 말이 들어 있었다. 상감께서 물으시기를 “소장의 내용은 무엇이냐” 하시었다. 아뢰기를 “궁궐안을 숙청하라는 내용입니다”하였다.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런 상소는 금후 궁내부에서 받아 물리쳐 버리고 짐에게는 보이지 말라”고 하시었다. 이때 문득 생각하기를 상감의 총애가 날로 융성하고 흡족해지고 있는데 나라일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어 보필하는 신하로서 한자 한치의 공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 탓이라 여겼다. 이야말로 시위소찬(尸位素餐:하는 일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하는 것이라 자책하였다.그래서 대궐문 밖으로 나가 사모관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고 상감께 사죄하니 상감께서는 “네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하시면서 만류하시었다. “소신은 본래 초야에 있어야 할 몸이온데 이처럼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아 밤낮으로 대전을 모시다가 이렇게 탄핵을 받게 되었으니 마땅히 소신에게 과실이 있사옵니다.그러하오니 소신을 초야에 돌아가 살게 하옵소서”하고 간청하였다.그러나 상감께서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너는 본래 국가를 배반하지 않았고 임금에게숨긴 일이 없었다.너는 또 재주를 부려 남을 헐뜯거나 어진이를 투기하여 중상모략한 일도 없었다.너는 아래 사람에게 통통촉촉(洞洞燭燭)하였고 윗사람에게 주야로 성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너는 참으로 충신이라 할 것이다”하시면서 도리어 정삼품직을 하사하셨다. ○“초야로 돌아가겠다” 주청 그러나 시종원 시종 자리란 그렇게 늘 쉽사리 지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그 뒤 얼마나 지났을까.난데없이 궁안에서 종사하는 모든 정씨(鄭氏)는 남녀를 가릴 것 없이 해직시킨다는 어명이 떨어졌다.청천병력과 같은 일이었다.아무 죄도 없이 정씨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궁궐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니 어처구니 없는 처사였다.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어느날 궁중에 “鄭씨 姓을 가진 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국가에 유해하니 모조리 해직하여 쫑아내야 합니다”라는 상소가 올라왔다.내사해 본 결과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은 상궁(尙宮)이 여섯 명이고 내시(內侍)가 열명이고 무감(武監)이 세명,주사(主事)가 세명이었는데 거기다 노비 28명을 합하면 궁중에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63명이나 되었다.이 사람들을 모두 해직시켜 일시에 궁안에서 내쫑아 버린다는 것인데 나(鄭煥悳) 역시 거기에 끼여 있었다. 상감 부자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너는 잠시 너의 본집에 가서 머물러 있다가 처분을 기다리라.너무 바깥 출입을 하지 말도록 하라”고 하시었다.그리고 “혹시 내가 너에게 문의할 일이 있으면 봉서(封書=임금의 私信)로 통지할 터이니 어느 놈이 우리 군신 사이를 이간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었다.이에 나는 “예식관 이용태(李容泰)를 통해 하명하시면 즉시 올라와 뵈옵도록 하겠습니다”하면서 절하고 물러났다. ○“군신 이간질 가당찮다” 상감 부자께서는 서운해 하실 뿐만 아니라 상궁과 시녀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고 말없이 물러나는 나를 지켜 보았다.나도 또한 여러 해 동안 밤낮으로 가까이 모시고 있다가 까닭없이 사퇴하게 되니 옛날 당나라 시인 두공부(杜工部)가 지은 시 “성상께서 늘 사랑하심이 있는데 조정을 물러나니 의지할곳이 없네”는 귀절이 가슴을 쳤다. 어떤 자리를 막론하고 한번 앉았던 자리를 물러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물러나 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일이요 인생의 비애이기도 하다.하물며 무상의 권부를 물러나는 정환덕의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대궐을 물러나 집으로 돌아와 보니 무엇을 잃은 것처럼 허전하기만 하였다.이에 글 한줄 지었으니 “내일 모레 사이 서늘한 밤 자정 달이 서산에 숨을 때 동쪽 정원에 꽃 한송이 떨어질 것입니다(明再明間 凉夜三更 月隱西山之時 花落東園中). 이 글을 봉투에 넣어 이용태에게 주어 상감께 드리도록 했다.아니나 다를까 궁중에 사건이 일어났는데 야밤중에 김상궁이 측간(厠間=변소)에 빠져 죽은 것이다.정환덕은 이 예언 때문에 다시 궁안에 들어와 복직되었다. 상감께서는 “과연 수(數)를 맞히기는 정환덕만한 사람이 없도다“하시면서 나를 칭찬하셨고 궁녀들은 모두 박수갈채를 보내 한번 수(數)보기를 바랐으나 상감이 엄히 금지하셨다.
  • 첼리스트 鄭明和(이세기의 인물탐구:173)

    ◎사색을 길어올린 웅숭깊은 음색/선율마다 무르익은 서정성과 넉넉한 여유/테크닉보다 음의 조화 이뤄내는 경지 터득/80년대 음악 멀리하다 “삶의 목적” 깨달아/드로브자크 협주곡 백미… 제자양성에 보람 첼리스트 鄭明和의 손은 남자손보다 크다. 어깨도 남자처럼 넓다. 잘 생긴 용모에다 목소리도 밝고 건강하다. 시원시원하고 밝은 성격때문인지 음악도 스케일이 크고 넓고 심오하다. 단순히 넓고 클뿐만 아니라 톤에는 힘이 살아있고 음의 마디마다엔 유연하고 확고한 뼈대가 꿈틀거린다. 그에게선 발톱을 세운것 같은 독이나 과시감은 찾아볼수 없다. 단지 무르익은 서정성과 육화된 음악의 포도주가 내면에서 출렁거릴 뿐이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는 타인에 대한 포용력과 너그러움으로 남의 잘못을 가려줄 줄 안다. 초면이라도 구면같이 굴고 좋은 환경에서 잘자란 숙녀답게 반듯한 예의와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다. 만사에 대범한 편이지만 음악에 관해서만은 치열성과 철저성이 대단하다. 승부근성이 투철하여 그가 이화여중에 다닐때는 친구 하나도 사귀지 못한채 낮과 밤은 온통 첼로연습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전국남녀음악경연대회에서 첼로부문 1등상, 서울예고 재학중에 이미 두번의 개인독주회를 가졌고 고2때인 60년에는 한국학생문화사절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와 오사카 순회연주등 그의 이름은 ‘첼로의 천재’로서 소녀시절에 음악계의 중앙에 우뚝서는 존재였다. 오랜 연주경력탓에 그의 음악은 언제부턴가 외형보다 내면을 추구하게 되었고 테크닉보다는 음과 음의 연결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내는 능란한 경지를 터득하고 있다. 음악평론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인 이강숙씨는 ‘정명화의 음악은 팽팽한가 하면 느슨하고 여유로운가 하면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이는 가운데 자신감에 찬 연주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평한다. 그는 과연 무리와 과장이 없이 음악의 ‘순리’를 존중하며 음악의 도리에 순종한다는 자세를 지킨다. 기교에 침몰하거나 장식음으로 청중을 혼도시키기보다 음과 음으로 보석타래를 꾸미듯이 장구하고도 값진 음악을 그때마다 선사해준다. 화사하게꽃가루를 뿌려대는 바이올린의 변화무쌍과는 달리 첼로만의 사색과 철학은 마치 동굴에서 길어올린 갖가지 원석처럼 장중과 비장미마저 풍긴다. 정명화를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다. 서울 명동의 유명한 음식점이었던 고려정의 정준채씨와 이원숙씨 사이의 7남매중 딸로 둘째.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첼로의 거장 피아티골스키를 사사했고 60년대 중반 뉴욕 링컨센터에서 첫연주를 가졌을때 뉴욕타임스는 ‘멋과 재능 그리고 기교의 연주가’로 평했고 워싱턴포스트는 ‘가장 보배로운 첼리스트’로 표현하여 지금까지도 이 찬사는 그를 따라다니는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때까지 동생인 바이올린 정경화나 피아노를 치던 정명훈보다 정명화의 이름은 그들을 리드하고 있었고 그만의 음악적 매력으로 해 세계 첼로계에서도 선두그룹을 달리고 있었다. 파죽지세로 명성을 쌓던 시기인 66년, 고국에 돌아와 첫리사이틀을 열었을때 음악계의 대부이던 평론가 유한철씨는‘예의 타고난 활달함과 연주가다운 낙천성이 몸에 배어 다이내믹한 역성감(力性感)을 실감시켜주는 연주’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세계에 내놓아 자랑할수 있는 젊은이’로 정명화의 장밋빛 미래를 예고한 것도 그 무렵이다. 제네바국제음악콩쿠르에서 첼로부문 1등상을 수상하던 71년에 전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당시 AP통신 기자이던 具三悅씨와 결혼, 부군은 유엔 50주년 총괄국장으로 있다가 최근에는 유니세프총재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자녀는 꽃별과 꽃샘. 장녀 꽃별이 지난주 뉴욕에서 결혼했다. 80년대 로마에 머물던 시기에는 잠깐이지만 첼로연주를 멈춘 적이 있으며 가장 자신있게 연주하던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마저 낯설게 느껴지자 문득 ‘좌절의 시간이 오히려 음악적으로 가장 성숙한 시기’, ‘첼로야말로 무덤까지 끌고갈 동반자이자 삶의 목적 자체임을 깨달을수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94년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교수로 재직하면서 같은해 8월 그는 실로 12년만에 고국에서의 독주회를 가졌고 작곡가 이영조가 그를 위해 작곡한 ‘첼로와 장구를 위한 도드리 1’ 연주는 또한번 음악계에 센세이셔널한 화제와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농현을 뜻하는 피치카토와 글리산도, 높은 음역에서 낮은 음으로 급격히 낙하하는 소리의 대비, 명상적인 지속음과 장식음등 우리만의 얼이 담긴 가야금과 거문고, 해금과 아쟁이 할수 있는 음악적 요소를 첼로로 펼치면서 우리의 소리를 세계음악언어의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를 만들었다. 과연 한국 첼리스트의 자존심과 실력을 마음껏 과시한 자리로 그가 연주를 끝냈을때 객석에서 길게 이어지는 박수갈채는 그칠줄을 몰랐다. 조용하게 데뷔한 연주자가 있는가하면 센세이셔널하게 등장하는 연주자도 있을 것이다. 조용한 강이라고 해서 모두가 깊은 것은 아니며 센세이셔널은 그만한 화제성과 가치성을 지닌다. 일찍이 세계의 매스컴으로부터 ‘발군의 테크닉과 명쾌한 해석, 특히나 그의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은 보헤미아의 향수가 사무친 연주’라는 평과 함께 그의 연주는 지금도 고국의 땅을 밟는 순간의 탄성과 향수와 사랑이 간절하게 얼룩져 듣는 이의 심금을 뜨겁게 울린다. 어릴때는 피아노 성악 바이올린 사이에서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를 방황했고 20대에는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들으면서 자신의 음악성과 장래에 대한 회의에 빠지기도 했으며 30대에 이르자 명성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40대가 넘자 비로소 모든 치열성과 명성에서 벗어나 그는 진정한 음악인의 자유로움을 구가하고 있다. 그래선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가 되어 조국과의 연대를 끈끈히 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게된것을 어느때보다 감사하고 행복과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음악을 관조하고 무르익은 예술성을 내면에 삭이는 시기에 서서 그는 물이 흐르는 듯한 유연함과 여유로움으로 그만의 서조와 광채를 여전히 잃지않고 있다 □그의 길 ▲1944년 서울출생 ▲1961년 서울예고 졸업, 도미 ▲1961부터 줄리아드음악원 및 남가주립대졸업, 거장 레오나드 로즈, 그레고르 피아티골스키 사사 ▲1969년 미 닉슨 대통령 초청 백악관연주,로스앤젤레스필하모닉 협연 ▲1971년 제네바국제음악경연대회 최우수연주상 수상 ▲1972년부터 런던 BBC교향악단을 비롯, 런던필, 베를린 R IAS, 스위스로망드, 로테르담 워싱턴교향악단등과 협연(지휘 주빈메타 루돌프 켐페 안탈 도라티 줄리니등) ▲1976년 뉴욕 링컨센터 바이올린 정경화, 피아노 정명훈과 ‘ 3남매’연주,전미순회연주, 파블로 카잘스탄생 100주년기념연주 1982년 KBS교향악단초청 협연(세종문화회관 대강당) ▲1991년부터 정트리오 음악축제 ▲1994년 국악과의 만남독주회 ‘장구와 첼로를 위한 도드리1( 이영조작곡)’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1995년 UN창설 50주년 UN마약퇴치 친선 사절로 세계순회 연주 ▲1997년 뉴욕에서 유니세프주최‘북한 어린이돕기 모금음악회’ ▲1998년 워싱턴 케네디홀 뉴욕 카네기홀서 ‘나라사랑’음악회, 미국 버몬트 국제음악제연주, 이착펄먼 서머프로그램 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미국 ‘엑설런트 2000’상(92년) 청소년 차이코프스 키콩쿠르 최고지도자상(97년) 아름다운 소리 ‘한·꿈·그리움’(96년 CMI음반레이블 )출반
  • 리틀엔젤스 평양 첫 공연

    한국문화재단(이사장 朴普熙) 소속 리틀엔젤스 예술단이 4일하오 5시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민간단체로서는 분단이후 처음으로 역사적인 남북화합의 공연을 가졌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궁중무인 ‘화관무’로 첫 무대를 장식한 리틀엔젤스는 처녀총각,부채춤,시집가는 날 등 무용을 비롯,‘반갑습니다’ ‘몽금포타령’ ‘선구자’ 등 합창으로 2천석의 공연장을 가득 메운 북한 청중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리틀엔젤스는 5일 봉화예술극장에서 2차 공연을 갖는다.
  • 한나라 구당차원 총력대응 선언

    ◎국회서 해결 안되면 장외투쟁도 병행키로/규탄대회 통해 전의 다지고 내부결속 도모 한나라당은 이번주 들어 여권의 야당파괴공작이 본격화되고있다는 분석에 따라 당력을 총결집,강력 대응키로 했다.국회에서 국정혼란과 야당파괴의 책임을 추궁하되 여의치 않으면 생존권 수호 차원에서 ‘거리투쟁’도 병행할 예정이다. 특히 소속 의원과 지구당 위원장들은 27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金大中 정권의 야당파괴 규탄대회’를 통해 전의(戰意)를 다졌다.여권을 겨냥한 독설(毒舌)과 내부를 향한 독려로 열기가 뜨거웠다.국회 본청 계단에서 결의문과 구호도 낭독했다.지역별 규탄대회도 준비하고 있다. 趙淳 총재는 “대통령과 여당은 북풍과 사정(司正) 등으로 위기의 책임을 한나라당으로 돌린뒤 썩은 고기 파먹듯 하고 있다”며 정계개편 시도를 즉각 포기할 것을 촉구했다.당내 야당파괴 저지 투쟁위원장인 辛相佑 부총재는 “투쟁은 이제부터다.껍데기는 가도 좋다”며 내부 결속을 강조했다. 鄭亨根 정세분석위원장은 보고를 통해 “환란과PCS 등 검찰수사에서 우리당의 어느 한사람도 연루되지 않았다”며 “그러나 여권은 우리당 의원들에게 탈당을 하지 않으면 사정당할 수 있다는 압박감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그는 “처음에는 우리당 의원 20여명이 동요했지만 여권의 몸불리기에 이용만 당하고 팽(烹)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玄敬大 羅午淵 金洪信 李圭正 의원 등이 차례로 나서 국무총리 서리체제의 위헌성,현정권의 경제 실정(失政),야당파괴행위의 실태,특정지역 편중인사 등을 ‘고발’,분위기를 띄웠다.특히 金의원은 “야당파괴는 정치적 간통행위로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내가 ‘삼국지’를 펴냈지만 비겁한 변절자가 성공한 예는 단한건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앞서 상오 총재단회의 직후 金哲 대변인은 “여권은 야당이 발목을 잡아 경제난 극복이 힘들다고 하지만 사실은 DJP정권의 태생적 취약성과 내부의 갈등,특정지역 편중인사가 원인”이라며 “환란과 종금사,PCS 등 경제부문에 대한 검찰수사가 여권의 정계 개편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경제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 IMF시름 떨치고 열광… 환호…/한국 축구,일본 꺾던 날

    ◎한밤 집집마다 만세 함성/역·터미널 TV앞 인산인해 쓰디 쓴 IMF한파 속에 달디 단 환호성이 터졌다. 1일 박빙의 승부로 치러진 한·일 축구전을 지켜본 국민들은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지켜낸 승리의 기쁨에 모처럼 IMF시름을 떨쳐내며 환호했다. 서울 잠실축구경기장에 모인 ‘붉은 악마들’을 비롯,텔레비전 중계방송을 통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경기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IMF한파 만큼이나 긴부상의 터널을 벗어나 결승골을 뽑아낸 黃善洪 선수의 멋진 발리 슛에 너나없이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장대비 같은 봄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 잠실벌은 경기시작 두시간 전부터 후끈 달아 올랐다.비를 맞으며 전광판 아래에 자리한 ‘붉은악마들’를 비롯,7만여명의 관중들은 ‘우리는 챔피언’ 등 응원가를 부르며 우리 선수들을 응원. 우리 선수들의 절묘한 슈팅이나 패스가 나올 때마다 파도타기와 종이가루를 뿌리는 등 폭발적인 응원을 보내던 우리 응원단은 전반 5분을 남기고 먼저 1골을 넣자 ‘이상윤’을 연호하며 축제분위기. 경기장을 붉은색으로 뒤덮은 ‘붉은 악마들’이 ‘대한민국’을 외치자 맞은 편에 앉은 일본응원팀 ‘울트라 니폰’도 ‘니폰’을 외치며 응수. ○…이날 경기장에는 ‘월드컵을 잘치뤄야 IMF를 이겨낸다’는 우리 응원단의 플래카드가 내걸려 눈길. ○…우리 응원단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30여분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승리를 자축. 반면 일본응원단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관중들은 경기 종료후 주위에 흩어진 쓰레기를 주워 미리 준비한 쓰레기봉투에 담아 나오는 등 높은 시민의식을 발휘. ○…승리의 함성은 서울 광화문 네거리과 서울역 대합실 등에서도 터졌다.이날 시내 곳곳에 설치된 대형 멀티비전 앞 도로에는 교복 차림의 중·고생 등 시민들이 모여 열띤 응원을 펼쳤다.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2대의 대형TV 앞에도 열차를 기다리던 승객 및 실직 노숙자 4백여명이 몰려 골이 터질 때마다 환호.
  • 사사키 다케시 도쿄대 교수 도쿄신문 칼럼 요지(해외논단)

    ◎일 여당 개혁보다 정권유지 우선 일본의 정치인들은 개혁을 서둘러야함에도 불구하고 위기관리라는 명분을 앞세워 개혁보다는 정권과 권력유지를 우선하고 있으며 이에따라‘위기의 일상화’가 우려된다고 사사키 다케시(좌좌목의)도쿄대 교수가 지적했다.최근 도쿄신문에 보도된 ‘위기를 인질로 잡은 정치’라는 제목의 그의 칼럼을 요약한다. ○권력 남용 제어못할 가능성 일본 정치의 주제가 반년전까지 ‘개혁’이었다고 한다면 현재의 주제는잘 말해 봐야 ‘위기 관리’,더 심하게 말하면 ‘위기를 인질로 잡은 정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개혁의 모습은 거의 사라져 대부분 과거사가 됐다.하시모토 총리의 6대 개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금융 빅뱅의 충격이 모든 개혁을 날려 버린 것이다. 지난해 가을 금융 시스템의 동요와 경제 비상사태(유사)의 발생은 확실하게 위기관리 문제를 발생시켰다.이에 대해 정치가 상당한 각오로 노력한 것은 많은 국민이 아는 바다.그리하여 대장성의 구래의 행정패턴이 개선됐다.그러나 유착과 접대,낙하산 인사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정치는 위기관리를 깃발로 관료제를 뛰어 넘었다고 하지만 이는 정치로서 ‘금단의 열매’를 맛봤다고 하는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로 위기관리는 어디까지나 유사시 대책일 터이나 이것이 독자적으로 굴러가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유사시는 평상시의 룰을 일시적으로 보류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권력자로서는 대단히 유혹이 크다.알기 쉽게 말하자면 권력남용과 공금남용에 제어가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위기 회피를 위해 무엇이든 한다”고 하는 가지야마 세이로쿠 의원(전 관방장관)의 발언은 이 유혹의 매력을 정치인이 자백하고 있는 말처럼 들린다. 일본정계에는 우편저축으로 주식을 직접 매입해 주가를 지지한다고 하는 발언에서 보이듯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화제가 속출한다.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로서는 박수갈채 감이지만 도대체 3월말의 주가 수준을 1만8천엔으로 한다는 것과위기관리가 어떻게 관계되는 지 의문이다. ○경제위기 정치적으로 이용 정부가 일정한 주가수준에 책임을 갖는 듯한 발상 그 자체가 위기감 비대증후군(위기감 비대증후군)의 전형은 아닌가.게다가 안전보장상의 위기관리 이상으로 경제적인 위기관리는 한계가 확실하지 않으며 경제활동을 일상적으로 왜곡시킬 우려가 높다.실제 지나침에 의해 새로운 모럴 해저드(윤리 결여)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 둘째로 위기를 정권이나 권력자의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타락형태가 나오게 될 우려가 있다.그리고 선거라도 되면 경제위기의 정치적 이용가치는 점점 더 높아지게 된다.야당의 현상태를 보면 이러한 위기 관리의 병리를 체크할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그러나 최대의 문제는 ‘위기의 일상화’에 따라 평상시로 돌아오는 것이 곤란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점이다.일련의 개혁이 산적해 있는 지금 주가대책 이상으로 개혁이 정치의 중대한 과제가 되고 있다.
  • 꽃동네 교육/임영숙 논설위원(외언내언)

    충북 음성 꽃동네가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명소로 새롭게 떠 오르고 있다 한다.경기대,공주대,포항공대등 8개 대학이 올해 이곳에서 2박3일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가졌다는 것이다.뒤늦게 신청했다가 수용시설 부족으로 퇴짜를 맞은 대학들도 있다 한다.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꽃동네는 오웅진 신부가 설립한 사회복지 시설.한 늙은 거지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동냥을 다니며 얻어 먹을 힘도 없는 다른 거지들을 보살피는 것을보고 지난 76년 그들을 위한 보금자리로 마련한 것이다.“얻어 먹을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는 글귀가 새겨진 바위가 입구에 서있는 이곳에는 신생아에서 부터 지체부자유자,행려환자,무의탁 노인등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 2천2백여명이 지금 살고 있다. 꽃동네 부설 ‘사랑의 연수원’에서 이루어지는 대학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전공과정에 대한 설명,학사 행정,교육목표등 일반적인 내용은 물론 오신부의 참된 행복에 대한 강의,사랑과 봉사정신에 관한 영상교육,꽃동네 식구들을 위한 빨래·설겆이·목욕시키기등 봉사활동등으로 구성돼 있다.신입생오리엔테이션이 최근 동문 연예인을 동원한 화려한 쇼,스키장이나 콘도를 이용한 값비싼 행사로 바뀌어 가는 추세속에서 이런 오리엔테이션을 마련한 대학은 박수갈채를 받을 만 하다. 사랑의 결핍때문에 생긴 꽃동네에서 사랑의 삶으로 거듭 태어난 꽃동네 식구들을 보고,개인과 가족과 국가와 인류의 참된 행복을 생각하며,봉사 정신을 체험한 대학생이라면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를 거뜬히 이겨내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걸머질 수 있을 것이다.대학생활의 첫 출발을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함으로서 “그저 자신의 재산과 자신의 핏줄,기껏해 봐야 몇몇 친구들과 늘 지나다니는 길 한모퉁이가 관심의 전부인”(베르나르 쿠슈네 ‘국경없는 의사단’창설자) 무미건조한 보통사람들 대열에서 벗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연수원’은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과 교육관 및 생활관을 갖추고 있다.“꽃동네 오리엔테이션을 거친 대학생들이 멋진 대학생활을 보내고 그들이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사랑의 연결고리가 되기를 기대”하는 연수원 황종현 신부의 염원대로 앞으로 더 많은 대학신입생들이 이곳에서 뜻깊은 새출발을 하기 바란다.
  • 한국출신 레이첼 리양 UN서 연주회

    【유엔본부 연합】 한국 출신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레이첼 리양(9)이 10일(현지시간) 유엔본부 빌딩 로비에서 열린 세계 인권선언 50주년 기념 사진전시회 개막전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리양은 이날 유엔 고위인사및 세계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멘델스존 협주곡(E단조 작품64) 등을 완벽하게 연주,박수갈채를 받았다.
  • 플루트 연주자 김기순(이세기의 인물탐구:148)

    ◎무리속 섞인 진주… ‘미성 연출가’/“연주자는 무대서 악기로 기도” 음악철학 굳건히/국내외 수십회 독주·협연… 한국플루트의 개척자 천상의 피리를 부는 김기순.숱많은 단발머리에 화장기없는 외모는 시간을 멈춘듯 프레시한 분위기다.66년 이대 중강당에서 독주회를 가졌을 때나 중견교수인 지금도 행동과 말씨에서 싱그러운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의상도 마찬가지다.편안한 슬랙스와 터틀넥의 티셔츠를 즐겨입고 테가 둥근 선글라스를 목걸이처럼 걸고 다닌다.무대에서도 심플라인의 검은색 드레스,그때마다 난곡들을 정복해 나가면서 자신의 예술에 천착할줄아는 탐미주의자다.‘만약 내가 교수가 된다면 나이를 앞세워 거드름을 피우거나 권위의식으로 군림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대로 그는 제자들을 가르칠때 ‘나에겐 플루트밖에 없다’든가 ‘플루트에 목숨을 건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한다.‘자신과 싸우면서 자기의 심정을 이중적으로 분리하여 또하나의 나를 관조할 수 있을때까지 끈질기게 추구해 나가라’고 충고할 뿐이다.그 자신도 해마다 독주회와 수많은 국제·국내연주에 참가하면서 데뷔하는 신인처럼 ‘연주자는 무대에서 악기로 기도한다’는 자세를 지킨다. ○‘음반언어’로 감정총괄 지난 93년 호암아트홀에서 스위스의 저명한 알렉산더 메닌과 ‘투 풀루트 리사이틀’을 가졌을때도 청중들이 ‘작품이 가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도록 노련한 유연성’과 ‘섬세하고 투명한 엘레지(비가)의 조화’로 김기순 신비의 절조를 이룩해 내었다.생전에 그의 연주를 빠지지 않고 감상했던 평론가 유신씨는 열의에 찬 그의 연주를 보고 ‘플루트의 색채로 악상을 정밀하게 표현하면서 자신만의 음악언어로 감정을 총괄하고 통제한다’고 호평해왔다.그리고 ‘우리 음악사에서 플루트가 독주악기로 우뚝 서기까지 그의 다양한 활동은 뚜렷한 업적을 주었다’고 부언한다. 지난 88년 스위스 빌라 쉔베르그공원에서 열린 ‘세레나데 88’에서도 그곳의 신문들은 ‘어느 누구도 논박할 여지없는 전문적인 노련함과 유려한 선율로 극장을 가득 메운 청중을 압도하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쓰고 있다.특히텔레만연주에서는 ‘치밀한 폴리포니(다성)와 이탈리아식으로 노래하는 칸타빌레,프랑스식 에스프리와 폴란드의 생기가 융합된 개성적 스타일’로 긴 박수갈채를 끌어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욕심은 난감의 기색이나 소진을 보이지 않는다.이미 85년에 바흐소나타 8개 전곡을 연주했고 텔레만 프랑크 모차르트소나타 전곡완주에 이어 힌데미트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적 도정은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는 알피니스트’에 비유될 정도다.특히 바흐에 관한한 92·93년과 지난 6월에 재도전을 시도하여 오래 다듬고 숙고한 서사시적 풍모를 풍부하게 과시했다.이를 위해 독일의 베렌라이터 카셀과 브라이트코프·헤르텔판 악보를 사용했고 미처 캐내지못한 음의 보석을 공략하기 위해 새로운 탐험을 위한 준비를 끝내고 있다.이러한 김기순의 음악의 조형성은 원로평론가 박용구씨에 의하면 ‘아티스틱한 음악의 철학성이 모래위에 탑을 세우고야 말았다’는 말이 잘 대변해준다. ○음악가정서 태어나 김기순은 원로 작곡가 김성태씨와 윤선항여사의 2남4녀중 딸로 막내다. 위로 두 언니(기숙·기옥씨)들은 성악,바로 손위언니(기정씨)는 첼로를 하는 음악적 가정에서 태어나 음악과의 인연은 숙명적인 셈이다.어릴때는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를 치다가 이화여중에 진학하면서 부친의 조언에 따라 플루트로 돌았고 61년,서울예고 재학중 부산일보가 초청한 ‘천재소년소녀 음악회’에 바이올리니스트 김민 등과 참가한 것이 본격적인 첫무대다.천성적으로 천진하고 순수하면서도 철저한 완벽주의를 동반하는 그의 성격은 하나의 일에 파고들면 ‘끝장을 내고야 마는 극기심’이 대단하다.음악을 살찌우기 위한 종교 철학 문학과 심리학서적 섭렵도 광범위하다.또 ‘인간의 영혼을 구하는 종교와도 같은 예술의 신비’앞에 그는 절대적으로 겸허를 지키면서 연주하기 전에는 반드시 기도에 들어간다.작곡가가 하나의 곡을 작곡할 때의 심경이 내부에 승화되기를 소망하면서 ‘자아도취란 결국 스스로를 파멸할 뿐이며 균형적인 사고와 독자적 예술영역을 소유하는 것만이 연주자 최상의 목표’라고 말한다. 부친 김성태씨가 서울대 음대교수인 덕분에 종로구 동숭동 서울대교수 사택의 쾌적한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부친의 끊임없는 격려와 충고가 음악에서 최선을 다하는 정신력을 기를수 있었다.반드시 완성에 다다른다는 결심때문에 연주가 없을때도 하루 5∼6시간씩 연습,그러나 연주가 없는 때란 거의 없는 편이어서 일년 내내 연주와 연주를 위한 연습이 되풀이 될 뿐이다.가족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부군 박기웅씨(전문경영인)와 두 아들이 있다. ○부친의 격려·충고 큰힘 그는 전형적인 도시기질로 지나친 자기과시는 절제하는 편이다.그래서 여가에는 혼자서 인사동 골동품가게를 기웃거리고 시공을 초월하는 앤틱들 사이에서 그옛날의 향취를 혼자서 즐긴다.그것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생각하는 연습의 연장이기도 해서 남에게 이런 취미를 공개하거나 방해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만사에 구구하게 매달리지 않고 똑바로 자신의 할일에만 정진하는 그를 보고 첼리스트 전봉초씨는 ‘무리속에 섞인 진주같은 예술가’‘세잔의 피리부는 소년같은 천진성’이 어릴때부터의 ‘미점’이라고 조언한다. 우주를 통과하는듯한 저 맑은 바람소리,특히 바흐 소나타 전악장에서 창조자로서의 작곡가의 모든 것을 찬란하게 펼쳐보인다.갈란테(우미)나 풍부한 칸틸레나(서정성),우주의 저편에서 울려오는 공기와 달빛과 녹색이 물든 자연 그대로가 그의 플루트 선율이다.지금 그의 음악은 마음껏 무르익어 남과 견줄수 없는 정점에 와있다.‘이노슨트’라는 특별한 훈장을 달고 세속의 허명에 흔들리지 않은채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인으로서 바로 ‘미국 플루트의 비루투오소인 킨케이드의 분위기가 그의 음악에서도 번져 나온다’는 것에 누구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연보 ▲1944년 서울 출생 ▲1961년 부산일보 초청 천재소년소녀음악회(부산시민회관) ▲1966년 이대 음대 관현악과 졸업,제1회 플루트독주회(이대 중강당) ▲1968년 이대 대학원 졸업 ▲1967년 제2회 플루트독주회,국립극장 ‘플루트음악의 밤’ 독주 ▲1969년 제1회 서울음악제 참가,‘대음악제’ 독주(서울시민회관) ▲1970년부터 이대·서울대 출강,제3회 독주회(국립극장) ▲1974년 제4회 독주회(예술극장) ▲1975년 바로크합주단 협연 ▲1978년 제5회 독주회(세종문화회관) ▲1979년 한국 플루트창립연주회 ▲1980∼93년 브라스앙상블 지휘 ▲1980·83·85년 ‘바흐소나타의 밤’(세종문화 소강당) ▲1987∼현재 이대 음대 교수 ▲1987·88년 ‘투 플루트 리사이틀’(호암아트홀),88세레나덴(스위스빌라 쉔베르그공원) ▲1988년 독주회(호암아트홀) ▲1990∼97년 독주회(예술의 전당,세종문화회관,예음홀,춘천종합예술문화회관,강릉·삼척문화예술회관) 등 20여회와 플루트대축제·청소년음악제·대음악회·서울국제현대음악제 출연 및 각 교향악단협연다수
  • 어제 충주서 임경업 장군 출진행렬/위풍당당한 기상에 환호·갈채

    ◎서울신문사·LG전자 주최/사물놀이­장졸 등 2백여명 장엄한 호위/1만여 시민들의 박수 받으며 2.5㎞ 행진 서울신문사와 LG전자가 공동 주최한 제8회 임경업 장군 출진행렬이 17일 제27회 우륵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충절의 고장 충주에서 위풍당당하게 펼쳐졌다.우리나라 6대 문화제의 하나인 우륵문화제 개막행사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출진행렬에는 4백여명의 출연자와 시민 등 모두 1만여명이 참여해 임장군의 우국충정의 높은 뜻을 기렸다. 조선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강력한 북방정책을 추진하던 장군의 기상을 기리기 위해 치러진 출진행렬은 상오 10시 50분 장엄한 모습으로 충주종합운동장에 들어섰다. 사물놀이팀과 오룡굿팀,임장군 영정,취타대,큰북에 이어 2백여명의 전.후군 호위를 받으며 말을 탄 임장군 행렬이 운동장을 돌며 자리를 잡는 동안 스탠드를 메운 시민들은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내며 행렬을 맞았다. 무속신앙에서 무신 및 군웅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임장군을 모시기 위해 12명의 무녀들로 이뤄진 오룡굿팀이 예로부터 탄금대에 살고 있다는 다섯마리 용을 모시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던 오룡굿을 재현한 뒤 임장군의 혼을 부르는 초혼의식을 치렀다. 이어 현신한 임장군을 즐겁게 하기 위해 11명의 충주여상 학생들로 구성된 부채춤단이 오신굿을 마치자 임장군은 본격적인 출진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단상에 올라 “장졸들아,이 한 목숨을 바쳐 조국을 수호하자”며 출진명령을 내렸다.5백여명으로 이뤄진 초등학교생들이 택견시범을 보이고 임장군이 말을 달려 운동장을 돌며 시민들에게 출진을 고하자 시민들이 일제히 연호하며 출진의 사기를 북돋았다. 이시종 충주시장이 지름 1m 크기의 북을 치며 5번의 출진타고를 하는 동안 하늘에는 비행선이 축하연기를 뿜어냈고 충주 산업대생들이 올해 처음으로 마련한 5백여개의 꽃씨풍선이 높고 푸른 하늘을 수놓았다. 장중하고 화려한 출진행렬식을 마친 임장군 일행은 말을 선두로 서서히 운동장을 빠져나와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2.5㎞에 이르는 시내 일원을 행진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광홍 충북부지사,이 충주시장,장정식 충주시의회의장,최근배 한국문예협회 충주지부장,김기덕 서울신문사감사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 서울신문사 주최 ‘신명의 어울림’ 공주 공연

    ◎서도민요·남사당 어울린 축제 한마당/사물놀이패 장단 맞춰 주민들 ‘덩실덩실’ 제43회 백제문화제의 하나로 서울신문사와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하는 ‘신명의 어울림’ 공연이 10일 하오 7시 충남 공주시내 무령왕릉 연문앞 광장 특설무대에서 1시간30분 동안 성대하게 펼쳐졌다. 심대평 충남지사·이종수 충남도의회 의장·전병용 공주시장·양동호 공주시의회 의장·유병돈 부여군수·김기덕 서울신문사 감사 등 각계 인사와 주민 7백여명이 참관한 이날 공연은 배우와 관객이 한데 어울린 신나는 한마당 시민축제였다. ○…어둠이 깔리면서 시작된 공연의 첫 머리로 남사당놀이가 펼쳐지자 관객들은 진한 흥겨움을 쏟아냈다.사물놀이 패가 무대를 돌자 관객들은 빠른 박수로 호흡을 맞췄으며 공연을 알리는 1백여 개의 깃발이 휘날려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줄타기가 벌어질 때는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3m의 줄위에서 광대가 부채를 들고 각종 재주를 넘을 때마다 우릉찬 박수가 터졌다.아버지 어깨에 올라 탄 어린이도 ‘덩실덩실’ 얼러대며 마냥 즐거워 했다. ○…이어 열린 실내악 공연에서는 우리 가락의 변화가 신선함을 더했다.전통악기로 서양음악 ‘오,솔레미오’를 엇모리 장단으로 연주하고 승무의 반주음악인 대풍류에 모듬북으로 변화를 주기도 했다.각각 제목을 붙인 연주에서 ‘소생’은 생명의 기쁨을 표현했고 ‘길’은 굿거리∼자진모리∼동살풀이∼휘모리 장단으로 넘나들며 다양한 리듬변화를 선보였다. 김주심양(11·공주중등초등학교 5년)은 “우리 음악과 놀이가 이렇게 흥겹고 다양한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고 즐거워 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장고 등 타악기를 중심으로 연주가 계속되고 여기에 서도민요가 어우러자 이들의 흥은 한결 더해 가기만 했다.무대앞까지 나가 한데 어울려 춤을 추는 장관을 연출했다. 공연단은 이에앞서 펼쳐진 백제문화제 서막식에서 남사당놀이 및 민요 등의 공연을 벌이며 행사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 음악이 흐르는 공항/김경운 사회부 기자(현장)

    ◎뜻밖 볼거리에 외국관광객 “원더풀” 슈베르트 ‘세레나데’의 그윽한 선율과 브람스 ‘헝가리안 댄스’의 경쾌한 가락이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일 하오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2청사 3층 대형홀.공항관리공단이 ‘기억에 남는 문화공항’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마련한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58년 국제공항으로 문을 연뒤 처음 열리는 행사다. 코리아 오케스트라와 서울 필하모니 오페라 합창단이 출연했다. 출국장으로 나서던 여행객들도 잠시 발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고 막 입국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눈이 휘둥그래지며 “원더풀”을 연발했다. 뜻밖의 볼거리에 청중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한곡 한곡 연주가 끝날 때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88년 완공된 국제선 2청사 대형홀은 여느 연주회장 못지 않게 고급스러운 실내장식에다 실내 인공림으로 꾸며져 있다.때문에 ‘숲속의 연주회’로 여겨질 만큼 감탄을 자아냈다. 음악회에는 ‘이사도라 던컨’‘대부’‘금지된 장난’등 귀에 익은 영화주제곡과 ‘그리운 금강산’‘경복궁타령’ 등 우리 가곡과 민요도 곁들여졌다. 김포공항은 이미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공항으로 자리잡았다.지난해 이용객수는 3천4백70만여명으로 세계 국제공항 가운데 9위를 차지했고 매년 이용객 증가율도 평균 12.3%나 돼 일본의 나리타공항을 제치고 아태지역에서 단연 1위다. 공항은 그 나라의 얼굴이다.공항의 첫 인상은 어떠한 관광자원보다 소중할 수 밖에 없다. 음악회를 지켜본 공항 이용객들은 “품격있는 국제공항의 주인이라는 자긍심을 일깨워준 훌륭한 행사’라며 흐믓해 했다.
  • 신한국당 경선 참뜻 살려야(사설)

    신한국당이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50일 남짓 앞두고 3일 첫 경선관리위원회와 전당대회준비위를 여는 등 본격 당내 경선전에 돌입했다.그러나 후보 난립에서 비롯된 과열 감정대립 및 대표직 프리미엄 줄다리기,계파와 지역별 편가르기 등 1개월여 계속되어온 치졸한 혼전양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집권당에 그 어느때보다 대권후보가 많은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오랜 권위주의시대,3김시대에 눌려있던 새세대 리더들이 대거 뜻을 펴려 나선 것이고 민주발전을 향한 이들의 경쟁이 제약없이 이뤄짐을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한 것은 경선이 그 참뜻을 살리지 못하고 비생산적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8명이나 되는 다채로운 후보들이 제각기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국면에서 나라가 다시 정치안정과 경제발전을 기할수 있을 것인가 하는 다양한 정책,미래에 대한 비전들을 내놓고 경쟁을 벌인다면 국민은 깊은 관심과 함께 박수갈채를 보낼 것이다.후보와 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그만큼 깊어질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과거 계파 중심의 무슨 협의회,무슨 정치회 모임으로 편을 갈라 계보 지분 챙기기식 세몰이에 몰두하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의원·지구당위원장들도 정치적 가치관과 무관한 지연,학연 등 사적유대를 좇아 줄서는 구태의연한 패거리 정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상이다.이념적 동질성이 없는 단순한 표의 결속과 세력화는 과열,혼탁선거를 부채질하고 민의와 동떨어진 합종연횡을 낳을 우려가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 대표직 프리미엄 다툼은 경선의 정책대결을 가로막는 장애요소로서 속히 해결돼야 한다.당내외 각종 행사참석,대의원 접근등 여러 면에서 대표직 보유 자체가 큰 프리미엄이라는 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패거리식 세대결을 지양하고 대표직 다툼도 하루빨리 해소한 뒤 후보들간에 나라 구할 아이디어경쟁과 정책대결을 벌인다면 자유경선의 참뜻이 살아날 것이다.
  • 나토­러 기본협정 서명/16국 정상 참석

    ◎옐친 “나토겨냥 핵탄두 제거” 【파리 AFP AP 연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27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을 겨냥하고 있는 모든 핵탄두를 해체할 것이라고 전격 발표했다. 옐친 대통령은 이날 파리에서 열린 러시아­나토간 「상호관계,협력및 안보에 관한 기본협정」 조인식 도중 즉석발표를 통해 『오늘 나는 나토 회원국을 직접 겨냥하고 있는 미사일에서 모든 핵탄두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관련기사 7면〉 그는 협정 조인식에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직후 예정에 없이 5분간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뒤 이같이 발표,나토 정상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에 대해 니컬러스 번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옐친 대통령의 발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옐친 대통령과 얘기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옐친 러시아대통령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16개회원국 정상들은 이날 상오 8시30분(한국시간 하오 5시30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냉전시대 유럽을 지배했던 나토와 러시아의 적대관계를 공식 청산하고 새 평화의 시대를 열 역사적인 나토­러시아간 「기본협정」에 조인했다. 이날 조인에 따라 나토는 오는 7월8∼9일 마드리드 정상회담에서 첫 회원국을 지명하게 되는데 폴란드와 헝가리,체코공화국이 유력한 회원국 후보로 예상되고 있다.
  • 현대무용가 박일규(이세기의 인물탐구:131)

    ◎현란한 율동언어로 대중곁에/춤의 난해성 배제… 음악과의 일체화 추구/검무와 탈출 접목한 새 「무무시리즈」 준비 주어진 모든 틀을 부정하고 신선하게 춤출뿐만 아니라 그는 안무감각,음악적 감각을 겸비한 행정가이자 춤의 결재자이다.일찍이 「무용의 형이상학적 난해성을 배제하여 음악과 춤,춤의 연극성을 추구한」 박일규의 춤을 보고 시인 김영태는 「그는 적어도 언제나 10년 이상 앞장서 있었다」고 말해왔다.그의 춤의 탐험은 무의 상태에서 유의 기능을 순식간에 연결하고 때로는 아다지오,때로는 빗발치는 알레그로로 눈부시게 춤을 구사해 나간다.마치 빛을 보는 것과도 같이 그를 통해 분해된 음악이 광선처럼 춤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알수 있다.그만큼 음악의 연구에 천착해 있었고 무용과 연극을 위한 작곡자로서도 남다른 재능을 보이고 있다. 그가 음악에 손대게 된것은 춤의 언어가 관객에게 쉽고 재빠르게 전달돼야 한다는 신념에서다.음악 따로 춤 따로가 아닌,음악과 춤의 일체감을 시도한다는 자세로 87년에 발표한 「서울에 핀 여든 여덟개의 장미」는 가수 조용필이 노래한 「창밖의 여자」를 스스로 편곡한 것이다. ○27세에 발레스쿨 입학 179㎝의 헌칠한 키에 잘생긴 용모,본래는 극단 자유에 소속된 연극배우였으나 뛰어난 연기력과 순발력이 국립발레단장이던 임성남씨의 눈에 띄어 「호두까기 인형」에 출연하면서 자연스럽게 발레에 스며들었다.그는 무엇보다 자신이 갖고있는 모든 에너지를 온몸의 동작으로 쏟아부을수 있는 새로운 예술에 매력을 느꼈다.억누를 수 없이 치솟는 영감은 어느때는 스프링처럼 튀어오르고 어느때는 알바트로스처럼 넓고 힘차게 날아오를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로 만들어내는 순수한 도취의 순간을 영원히 쟁취하기 위해 그는 당장 미국으로 갔고 뒤늦은 나이인 27세에 저명한 조프리 발레스쿨에 입학했다.그러나 발레테크닉을 체험하는 동안 지나치게 인공적인 발레보다는 가장 조야한 현실에서 숭고한 추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율동언어로 춤출수 있는 현대무용에 한층 애정을 갖게 되었다.이 새로운 춤형식은 일상적인 것을 초월할 수도 있었고 의외성의 경이로움으로 역작용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었다.「나도 나만의 정의를 가지고 춤을 만들수 있다」는 희망에 들뜬채 초기에는 문학적인 수단으로 창조과정을 밟아 나갔고 다음은 음악을 분석하면서 거기에 맞는 춤의 형태를 선택해 나갔다. 뉴욕에서는 홍콩출신의 현대무용가 챙칭(Chiang ching)의 많은 영향을 받은 셈이었다.챙칭무용단에 소속되어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이었던 존론과 「스프링 브라섬」「타히티안」 등을 춤추기도 하고 공연이 끝날 때마다 춤의 감시자들로부터 예상을 뒤엎는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다.주로 세컨드 애비뉴 댄스컴패니에서 활동을 벌이면서 도약과 비상의 화려한 극점에 올랐으나 그무렵 시련의 한고비를 맞아 주춤거리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5년만인 85년에 귀국하여 그는 국내활동을 벌이면서도 국제적 페스티벌과 행사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지난 88년에는 록펠러재단의 기금을 받아 인도네시아의 사르도노와 함께 「하나둘셋넷」이란 작품으로 아메리칸 댄스페스티벌에 참가,그러나 예술가라면 누구나 기대해 마지않던 뉴욕타임스의 잭 앤더슨의 평은 그의 춤인생을 180도로 전환시키고야 말았다.그의 평은 서두에서는 「움직임과 음악성은 생동감에 빛난다」고 쓰고 있었다.그러나 말미에서는 「코리안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예술가에게 아이덴티티가 없다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와 개성이 없다는 것과 다름없었다.그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내가 해온 것은 무효다.나만의 정체성과 동일성을 추구한다」는 자세로 자신을 돌아보고 춤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해 「무악」을 가지고 다시 국제무용제에 참가했다.윤이상 작곡의 「무악」은 한국 춤사위를 닮은 특이한 손놀림에서부터 이미 관객을 압도할 수 있었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음악은 정지동작과 다이내믹스를 절제하거나 확산시킨다.그리고 그로테스크한 빛과 어둠의 교차속에서 작가는 「한국인의 정신」을 초현실주의적인 추상회화로 그려내었고 「영원불멸의 직조와 심미학적 윤곽의 구축」「아름다운 체구에 번뜩이는 창의력을 지녔다」는 최대의 찬사를받아냈다.그후 그의 창작무는 영상 구음 절규 통곡과 폭소를 함축하여 배경군무가 빗살같은 섬광으로 번뜩이고 도끼같은 날카로움이 도처에 도사렸다.「아직도 그만한 춤을 발견할 수 없다」는 원로 박용구씨의 평은 그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번뜩이는 창의력 소유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상황에서도 그는 의연하게 대처하는것 같지만 섬약한 감성과 지성감이 복합적으로 대립되어 불의와의 투쟁이 끊임없이 튀어나온다.지난 92년,주변의 원로나 대선배들의 총애때문에 「춤의 해」 기획추진실장,94년 세계무용연맹 한국지부 사무국장에 임명된 것이 선배들을 제치고 독주하는 것으로 오해되어 슬럼프와 혐오를 겪은 것이 그 한 예이다.그러나 밝고 원만한 성격으로 이를 극복할수 있었고 그의 주변은 「탁월하고도 다양한 그의 재능」이 무용계에 힘이 되고 있음을 믿어주었다.그는 그 기간동안 무대에서 춤추는 대신 자신을 재충전하는 의미에서 살풀이춤과 판소리를 배우고 대금 아쟁 사물놀이 등 우리 악기에 빠져들어 제2의 도약을위한 빈틈없는 준비기간을 거쳤다. 소설 「내가 설 땅은 어디냐」의 작가 허근욱씨의 외아들.소년시절부터 바이올린,성악을 사사하는등 그는 「예능」에 관한한 천의무봉으로 다재다능하다.그래서 그의 춤은 대중화를 시도하지만 누구보다 문학적이고 사고력과 명상력이 심오하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봄,춤작가전에서 모처럼 「햄릿」을 춤추었고 요즘은 연극원 6월공연인 김우옥 연출 「아리랑」의 음악을 맡고 있다.이제 그는 그 안의 싸움을 끝내고 검무와 탈춤을 접목한 새로운 「무무」시리즈를 가을쯤 선보일 예정이다. 조지 발란신이 그런것처럼 참으로 진정한 춤을 추기 위해서 그는 오로지 음악의 산맥을 탐험하고 있었고 음악을 이루는 악기들에 밀착해 있었으며 이제부터는 자신이 바로 악기인듯이 그의 몸속에서 그만의 춤이 흘러나오는 것을 확신하는 듯하다.주어진 틀을 하나하나 분해하고 신선한 것을 모색할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특이성과 본질을 파악한 그의 춤은 또하나의 색다른 광선으로 관객의 심장을 빗살처럼 관통하게 될 것 같다. □연보▲53년 청주 출생 ▲72년 이대부속고 졸업 ▲74년 서울연극학교 졸업 ▲78년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74­현재 극단 자유극장 단원 ▲76­80년 국립발레단 솔리스트,「골렘」「로미오와 줄리엣」 등 출연 ▲77­79년 KBS극회회원,연극 「환도와 리스」「휘가로의 이혼」 ▲80년 뉴욕 조프리발레스쿨 연수 ▲82­84년 뉴욕대 무용과 졸업,티르드론 댄스시어터 출연 ▲83년부터 챙칭무용단원 ▲84­85년 뉴욕대 예술대학원 무용과 졸업,뉴욕 라마마극장 초청 제3세계무용제 「춘궁기」안무 출연,뉴욕 세컨드 애비뉴댄스컴패니 「FOUR IN ONE」「WHERE AM I STANDING?」안무 ▲85­88년 A.D.F(아메리칸 댄스페스티벌)초청 「1985년 여름」안무,미 브루클린 댄스앙상블 단원 ▲85­현재 서울예전 교수 ▲87년 「동랑댄스 앙상블」 창단 ▲88년 88올림픽 개회식 안무 ▲89년 국제현대무용제 참가 ▲90년 홍콩국제무용제 참가 ▲91년 일본 모리오카시 축제 참가 ▲92년 「춤의 해」기획추진실장 ▲93년 대전엑스포 폐회식 안무 ▲94­95년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사무국장 ▲95­96년 성균관대 대학원 출강 ▲9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출강 〈수상〉 서울무용제 음악상(90년) 코파나스상(91년) 문화부장관공로상(93년) 코파나스상
  • 귀순 보트피플 김원형씨 등 두가족 감격의 첫나들이

    ◎“서울거리 보석상자 같아요”/남산타워·롯데백화점 등 돌아봐/“남북 격차 이정도라니…” 놀라움/쇼핑 시민들 박수갈채에 손흔들며 답례 『서울 시내가 마치 보석상자 같습니다』 지난 12일 첫 「보트피플」로 귀순한 김원형씨 등 두가족은 18일 첫 서울 나들이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와 안선국씨 두가족 14명은 휴일인 이날 남산타워,롯데백화점,남대문시장 등을 둘러보며 『진작 내려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며 북한에서 궁핍하게 지낸 생활을 되새겼다. 이들은 버스로 남산타워에 도착하기 까지 계속 창밖을 내다보며 『신의주는 산에서 조차 나무를 구경하기 어려운데 서울은 시내에도 숲(가로수)이 많아 산에 갈 필요가 없겠다』며 감탄하기도 했다.남산타워에서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던 아이들 4명은 선물을 고르라고 하자 일제히 장난감들을 다투듯 움켜쥐고 장난을 치며 즐거워했다. 이들은 남대문시장과 롯데백화점에서 『어떻게 이럴수가 있느냐,남과 북이 이 정도로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며 질린 표정을 지었고 안씨의 어머니김몽선씨(67)는 『죽기전에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돼 여한이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당국의 관계자들이 남대문시장에서 점퍼,바지,셔츠 등을 골라 입으라고 하자 즉시 갈아입고는 『옷이 날개라더니 사람이 달라 보인다』며 『저 옷들이 다 팔리느냐,미제가 아니냐』고 질문하기도 했다.또 휴일을 맞아 쇼핑나온 시민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하고 상인들이 아동용 의류들을 선물하자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이들은 명동의 한 음식점에서 등심,게,냉면등으로 점심을 하면서도 『일반사람도 이런 곳에서 마음대로 음식을 사먹을수 있느냐.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라며 달라진 생활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한편 관계당국은 이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어감에 따라 곧 기자회견을 갖게 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 변학도 비리 해학적 연출에 폭소/연극 「춘향아 춘향아」 공연

    ◎서울신문­LG전자 주최/전통­현대감각 조화… 3만관객 갈채 서울신문·스포츠서울과 LG전자가 지방의 전통축제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마련한 국립극단의 창작극 「춘향아 춘향아」가 14일 하오8시 전북 남원시 광한루원 완월정 특설무대에 올려져 3만여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제67회 춘향제를 기념하고 향토문화의 균형있는 발전을 통한 지역민의 화합과 자긍심 고취를 위해 선보인 「춘향아 춘향아」는 우리의 대표적인 고전소설 춘향전을 현대감각에 맞게 재미있는 순수창작극으로 재현해 향토문화발전을 희구하는 향토사학자와 관객들로부터 밀도 높은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날 공연에는 조찬형 국회의원(국민회의·남원) 이정규 남원시장 백종기시의회 의장 김기덕 서울신문사 감사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해 공연을 관람했다. ○…연극은 단오날 춘향과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운명적 만남을 갖는 것으로 막이 올랐다. 그러나 원작과는 달리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 봉건지배권력의 구조적인 악습과 탐관오리들의 비리로 인해 가로막히는 내용으로 전개되면서 관객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한숨을 지으며 분노를 터뜨렸다. ○…특히 변학도가 저수지 공사를 추진하는 명분으로 부당한 세금을 거두어 들이고 그 돈의 일부를 몽룡의 부친 이대감에게 올려보내는등 탐관오리들의 비리를 해학적으로 연출해내자 관객들은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폭소를 떠뜨리며 환호성을 올렸다. ○…춘향역에는 96년 미스춘향으로 선발된 곽명화씨가 출연해 열연함으로써 축제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이상호 춘향제전위원장은 『서울신문사가 지난 90년부터 남원춘향제에 변사또행렬·전라감사행렬·방자놀이·뮤지컬성춘향·시집가는날 등 수준 높은 문화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춘향제가 세계속의 제전으로 발돋움하게 됐다』고 주최측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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