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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S오픈] 황제 우즈 훨훨…매킬로이 쩔쩔

    타이거 우즈(37·미국)가 개인통산 15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우즈는 15일 샌프란시스코 올림픽 클럽 레이크 코스(파70·7170야드)에서 개막한 미프로골프(PGA)투어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US오픈 1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2개를 묶어 1언더파 69타를 쳤다. 메이저대회 14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린 우즈는 마이클 톰슨(미국·4언더파 66타)에 3타 뒤진 공동 2위로 첫날을 마쳤다. 깜짝 선두로 나선 톰슨은 세계랭킹 107위로 2008년을 포함해 올해가 두 번째 US오픈 출전이다. 올 시즌 2승을 거둬 상승세를 탄 우즈가 이번 대회 정상에 오르면 메이저대회 최다승 기록(18승)을 보유한 잭 니클라우스(미국)와의 격차를 3승으로 좁힐 수 있다. 전반에 보기 1개와 버디 1개를 맞바꿔 타수를 줄이지 못한 우즈는 4번홀(파4)에서 4m짜리 버디 퍼트를 홀에 집어넣었다. 이어 5번홀(파4)에서는 13m 거리에서 버디 퍼트에 성공해 갤러리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우즈는 6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그린 옆 벙커에 빠뜨리고 파퍼트를 넣지 못해 1타를 잃었고 그 뒤 더 이상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우즈는 “언더파 스코어로 1라운드를 마친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신인왕을 차지한 박재범(30)은 이글 1개와 버디 2개, 보기 4개를 묶어 이븐파 70타로 공동 7위에 오르는 선전을 펼쳤다. 박재범은 아마추어 시절 기대주였지만 2000년 프로로 데뷔한 뒤 우승하지 못하다가 군 복무를 마치고 2006년 투어에 복귀했다. 박재범은 1년 전 JGTO 투어 챔피언십에서 프로 데뷔 후 첫 우승컵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동반 플레이를 펼친 최경주(42·SK텔레콤), 양용은(40·KB금융그룹), 김경태(26·신한금융그룹)는 중위권에 머물렀다. 최경주는 3오버파 73타, 양용은과 김경태는 나란히 4오버파 74타를 적어냈다. 지난해 대회 우승자이자 세계랭킹 2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7오버파 77타, 세계 1위 루크 도널드(잉글랜드)는 9오버파 79타를 치는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경북 상주·서울 구로 ‘여성 예비군 훈련장’을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경북 상주·서울 구로 ‘여성 예비군 훈련장’을 가다

    때 이른 초여름의 날씨로 신록이 제 빛깔을 온전히 드러낸 5월 초순. 경북 상주시 육군 50사단 상주대대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군복을 입은 한 무리 아주머니들의 구호 소리가 요란하다. “충성! 신고합니다. 강영숙 외 00명은 훈련 입소를 명 받았습니다!” ●아줌마 특유의 억척스러움·진지함… 현역 장병들도 박수 갈채 여성예비군 소대 훈련 입소식이다. 구호와 대열은 엉성해 보여도 표정만은 여느 장병들 못지않게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다. 훈련은 안보교육, 응급 처치술, 화생방, 모의전투 순으로 빡빡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진지함으로 ‘아줌마 부대’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특히 서바이벌 장비를 활용한 모의전투에서는 평균 나이 50대 중반의 전업 주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 현역 장병들도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연령은 4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지만 훈련에 대한 열정과 봉사정신은 한결같이 뜨거워 농번기인데도 전원이 입소했다. 군에 입대한 아들을 둔 강영숙(51) 상주여성예비군 소대장은 “군복을 입어 보니 오히려 아들에 대한 걱정이 줄어든다.”며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예비군 활동에 적극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원들 중 ‘고참병’ 격인 김삼순(63)씨는 “총을 든 순간 여자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군인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기력이 닿는 대로 향토 방위에 힘을 보탤 생각”이라며 의욕을 내보였다. 서울 구로구 여성예비군은 창설된 지 4년째인 도시 여성예비군이다. 평시 급식 지원 활동을 하는 날, 남자예비군들에게 줄 간식을 챙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농촌 지역에 비해 연령대가 낮아서인지 군복을 입었지만 꽃핀을 꽂은 파마머리에 귀고리를 착용한 모습 등이 사뭇 이채롭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하니 모두 작업을 멈춘 채 거울 보고 화장을 고치기에 바쁘다. 여성의 부드러움과 섬세함 속에는 ‘금녀(禁女)의 벽’을 허물고 남자들의 아성에 도전한 ‘맹렬 여성’의 패기가 배어 있다. 처녀 시절 여군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신혜숙(39)씨는 “총을 들고 직접 싸우지는 않아도 여성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하는 것 같아 보람 있다.”며 “군복 입은 모습이 잘 어울려요?”라며 수줍어했다. 여성예비군은 향토예비군설치법(1961년 제정, 1968년 전면 개정)에 따른 ‘지원 예비군’으로서 각 지역 군부대가 지자체에 협조하여 소대 1개씩을 편성하고 있다. 1989년 인천 백령도에 첫선을 보인 후 5월 10일 현재 전국적으로 139개 소대에 5382명이 활동 중이다. 국방부 예비전력과 조병철 과장은 “평시에는 향방작계훈련 참여는 물론 재난 재해 구호 활동과 각종 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민·군의 가교 역할을 하고 전시에는 동원 및 향방작전 간 급식 지원, 응급 구호, 후송 지원, 선무 활동 등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1989년 인천 백령도에 첫선… 전국 139개 소대 ‘가동’ 노인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나오는 구로구 여성예비군 김옥휘(46)씨는 “각 가정의 버팀목인 여성들이 국가 안보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예비군 활동에 많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바람처럼 여성예비군이 여성 국방 안보 참여의 모범적인 모델로 정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 남성의 여성멸시·여성의 자기혐오

    오페라 ‘나비 부인’이 그려낸 ‘마담 버터 플라이’에 대해 동양 남자들의 시각은 호의적일 수 없다. 일본 주재 미 해군 남성과 일본인 ‘현지처’ 간의 이야기를 근간으로, 철저히 서양 남자의 시각에서 본 오리엔탈리즘-혹은 동양 여성관(觀)-에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얼개는 단순하다. 인사명령을 받고 일본을 떠난 미군이 미국 여성과 다시 결혼하고, 보기 좋게 차인 ‘나비 부인’은 스스로 세상을 뜬다. 백인 남성 입장에서는 쾌재를 부를 만하겠다. 스스로 몸을 내어준 뒤, 자신이 떠난 뒤에도 원한은커녕 연모의 정을 갖는 존재. ‘자신이 버린 여자’에 대한 죄책감마저 그녀가 보여준 사랑의 크기에 의해 정화되지 않는가! 어떤가. 동양의 남자로서 발끈하지 않는가. 여성연구에 관한 한 일본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우에노 지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나일등 옮김, 은행나무 펴냄) 또한 “이런 (서양 남성을 위한)포르노를 보면서 박수갈채를 보내는 동양인 청중의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배알이 뒤틀려 앉아 있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그런데 눈을 돌려 보자. 이 땅에서 여성을 보는 남성의 시각은 어떤지. 백인 남성의 시각보다 한결 호의적인가. 책은 일상의 여러 단면 속에 숨겨진 여성 혐오적인 부분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예술 작품 속에서의 여성 혐오적 장치들을 들춰낸다. 저자는 여성 혐오를 가리켜 여자를 성적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여성 멸시’라고 지적한다. 이 ‘여성 멸시’가 성별 이원제 젠더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원리라는 것이다. 저자는 아들의 유무에 따라 서열이 달라지는 일본 왕실문화,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시각에서 이름붙여진 태평양전쟁의 ‘위안부’ 등 일본 사회 도처에서 여성 혐오적 요소들을 끄집어낸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 자신도 ‘여성 혐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은 보통 여자와 다르다며 무의식중에 ‘다수의 보통 여성들’을 깎아내리는 여성의 언행은 곧 ‘자기혐오’에 빠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처럼 책은 온통 기분 나쁜 내용들로 가득하다. 저자 스스로도 불편함을 느끼며 책을 썼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아무리 불편해도 눈을 돌려선 안 된다.”고 외친다. 그래선 안 되는 현실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인식, 공론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는 단 한 번의 생각, 이런 작은 것들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1만 4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이준기 새 싱글 ‘듀서’ 日 오리콘 차트 1위

    이준기 새 싱글 ‘듀서’ 日 오리콘 차트 1위

    배우 이준기가 새 싱글 발매와 동시에 일본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다.16일 일본의 권위 있는 음반 판매 조사 사이트인 오리콘 차트에 따르면 이준기는 지난 15일 발표한 새 싱글 ‘듀서’로 오리콘 데일리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타이틀곡 ‘투게더’는 관객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모던록 계열의 업템포 노래다. 소속사 측에 의하면 팬미팅 ‘커밍 백’에 출연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 중인 이준기는 이 기쁜 소식에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기쁨과 감사의 말을 팬미팅 현장에서 전했고, 박수갈채를 받으며 팬들과 기쁨을 나눴다. 이준기는 지난 16일 나고야 공연을 시작으로 요코하마(3월 18일), 오사카(3월 19일) 도시 투어에 나섰다. 이번 공연을 통해 이준기는 약 2만여명의 팬들과 직접 만난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신부 입장 중 드레스 ‘훌렁’…잔혹한 결혼식?

    신부 입장 중 드레스 ‘훌렁’…잔혹한 결혼식?

    이보다 더 황당하고 ‘잔혹한’ 결혼식은 없다?! 황당하다 못해 누군가에게는 잔혹하기까지 한 결혼식 동영상이 네티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4일 보도했다. 동영상의 주인공은 결혼식의 꽃이라 불리는 신부.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신부는 많은 하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신랑의 손을 잡고 입장했다. 하지만 몇 초 후, 신부에게 예상치 못한 반전 사고가 발생했다. 웨딩드레스의 앞단을 밟고 앞으로 고꾸라진 것. 뒤이어 다시 일어나는 순간 또 드레스 앞단을 밟아 결국 치마가 벗겨지고 말았다. 당황한 신부는 치마를 올리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벗어던지고, 속옷만 입은 채 치마를 끌어안고 황급히 입장했던 길을 되돌아 도망쳐야 했다. 수 시간을 공들인 신부에게는 그야말로 ‘잔혹한’ 사고가 아닐 수 없다. 하객들은 모두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못했고, 신랑만이 그녀의 뒤를 쫓아 급하게 자리를 떴다. 러시아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측되는 황당한 결혼식 사고는 당일 식장에 설치된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인터넷에 공개됐다. 데일리메일은 “이 결혼식과 신부의 아찔한 사고는 몇 년 내내 주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전했고, 네티즌들은 “당황한 신부와 신랑의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 “황당하고 웃기지만 신부에게는 끔찍한 순간이었을 듯” 등의 반응을 보이며 관심을 나타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산간마을에 퍼진 ‘우정의 하모니’… 대안교육 답을 찾다

    산간마을에 퍼진 ‘우정의 하모니’… 대안교육 답을 찾다

    시골 산간마을의 학생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통해 바른 정서를 키우며 주민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최근 잇따르는 학생 폭력의 대안교육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남 하동군은 28일 옥종 초등·중등·고등 3개교 학생 47명으로 구성된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창단 9개월여 만인 지난 22일 학교 강당에서 첫 연주회를 가졌다고 밝혔다. 첫 연주회에 참석한 박선하 하동군 교육장과 옥종고의 유수용 교장, 옥종중의 김은숙 교장, 옥종초의 신대생 교장, 각급학교 교사, 주민 등 200여명은 연주회 내내 박수갈채를 보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학생들은 오랜 시간의 힘든 연습을 통해 무엇인가 해냈다는 자신감 속에 관람석을 향해 활짝 웃었다. 3명의 교장과 교사들은 클래식을 접하기 어려운 시골 학생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오케스트라 창단을 착안, 마침 ‘삼성꿈장학재단’의 배움터 지원사업에 응모했다. 취지를 공감한 재단의 당선 지원금 5000만원으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플루트, 클라리넷, 피아노 등 악기를 구입하고 지난 3월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연장자인 신 교장이 단장을, 나머지 두 교장은 부단장을 맡아 오케스트라 운영에 발벗고 나섰다. 초등학생 30명, 중학생 10명, 고등학생 7명으로 단원을 꾸렸다. 대부분이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에 악기라고는 처음 만져 본다. 진주에서 음악학원을 운영하는 김상헌 상임지휘자와 파트별 전문 음악강사 7명을 일주일에 두 차례씩 산간마을로 불러 지도를 받았다. 이때부터 주민들도 온통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했단다. 옥종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프란츠 레하르의 ‘금과 은의 왈츠’, 제바스티안 바흐의 ‘미뉴에트 1·2·3번’, 팝송 ‘문 리버’와 ‘마이웨이’, 트로트 ‘어머나’와 ‘무조건’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박 교육장은 “9개월 만의 성과라고 보기에는 학생들의 연주 실력이 뛰어나서 그동안 애를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아주 고맙고 기쁜일”이라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학생들은 30일 하동군청 종무식에 참석해 연주를 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후배 단원도 뽑고 정기연주회도 열기로 했다. 또 벌써부터 진주 개천예술제, 하동 야생차 문화축제 등에서 초청 연주를 부탁받았다. 하동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최동호 새벽을 열며] 동부민요 경창대회와 알리

    [최동호 새벽을 열며] 동부민요 경창대회와 알리

    가을비가 가늘게 내리는 경주 함월산 기슭에서 지난 6일 동부민요 경창대회가 열렸다. 하루 종일 비가 흩뿌리는데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참가자들은 진지하고 열띤 모습으로 경연에 열중했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들 핏속에 녹아 있던 음률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동부민요란 태백산 동쪽에서 불려지던 노래로 ‘정선 아리랑’이나 ‘상주 함창가’ 등을 지칭하는 것이다. 경기민요나 서도소리 그리고 판소리와는 다른 창법을 가지고 있는 노래다. 탁한 소리가 일단 막사발 같은 서민적 특징을 드러내 주며,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소리는 산간지방에 살던 서민들의 한 많은 애환을 구성지게 들려준다. 공연 프로그램에서 피아니스트 임동창은 참가자들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풍류가인으로서 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열띤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어서 경기민요를 부른 김옥숙은 무르녹은 맑은 소리로 깊고 그윽한 가창력을 발휘하였고, 계현선의 살풀이춤은 한국무용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특히 가을비로 인해 물이 흥건히 고인 바닥에 멍석을 깔고 시작된 그의 춤은 가는 선을 휘날리면서 진흙 바닥을 버선발로 거리낌 없이 내디뎌 관중을 숨죽이게 하는 묘미를 연출했다. 그동안 승무는 많이 보았지만 살풀이춤의 진수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흐르다가 휘어지는 선과 날렵한 몸동작이 하나가 되어 마음속에 응어리진 한을 풀어내는 그의 살풀이춤이 빚어내는 감명은 강력했다. 경창대회가 끝나고 마지막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박수관 명창과 함께 ‘강원도 아리랑’과 ‘쾌지나 칭칭나네’를 부를 때 어둠이 깊어진 계곡을 일깨우는 노랫소리는 한국인의 예술적 기질이 잠드는 산의 영혼을 울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민중가요에 우리 소리의 고유성과 창조성의 뿌리가 있으며 앞으로 현대 가요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세계적 보편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오니 ‘불후의 명곡’ 프로에서 세 번 우승한 알리 조용진의 노래가 청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의 노래는 서구적 취향의 팝송이나 이의 아류적인 모방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는 판소리 창법에서 다진 목소리로 높낮이를 자유로이 조절하면서 맑고 경쾌하게 노래했다. 정확한 가사 전달력을 바탕으로 부드럽고 달콤하기까지 한 그의 목소리는 이제 새로운 카리스마의 탄생을 알리는 게 아닌가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송골매가 처음 부른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를 부른 그의 목소리는 마야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록의 방식으로 부르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었다. 배경음으로 사용된 해금의 소리 또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기여했다. 조용필이 불렀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탱고의 가락에 얹어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이제 쥐어짜는 목소리로 청중에게 호소하는 게 아니라 경쾌하고 분명하며 때로는 느리지만 강렬하게 청중을 압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알리의 가요가 앞으로 한국 민중가요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응용할 뿐 아니라 이를 한 차원 승화시킨다면 세계적 가요의 한 정상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지난여름 K팝이 파리에서 열광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한국인의 가요를 사랑하는 서구인들이 점증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세계 중요 음악 콩쿠르에서 한국인 음악가들이 정상을 휩쓸고 있다는 소식과 더불어 벨기에의 한 텔레비전 방송사에서는 한국을 방문해 ‘코리아 미스터리’라는 프로를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무섭게 성장하는 한국의 음악 교육 특징을 알아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어둡고 슬프고 한 맺힌 사연을 떨쳐버리고 세계 가요계에서 대성할 무수한 꿈나무들을 상상해 본다. 동부민요 경창대회에 참가한 앳된 초등학생의 얼굴에서 미래의 주인공을 떠올려 본다는 것은 전에 가져보지 못한 커다란 기쁨이었다.
  • [김문이 만난사람] 노숙인들과 발레 ‘호두까기 인형’ 무대 올리는 제임스 전

    [김문이 만난사람] 노숙인들과 발레 ‘호두까기 인형’ 무대 올리는 제임스 전

    노숙인A:발레가 뭐죠? 노숙인B: (질문같지 않다는 듯이)백조의 호수처럼 아름답게 춤추는 것. 노숙인A:(잠시 고민하다가)그랑 플리에(Grand Plie)는? 노숙인B:무릎과 발이 아웃턴. 노숙인A:그러면 그랑 주테(Grand Jete)는? 노숙인B: 공중으로 날아올라 두 다리를 일자로 벌리는 것. 노숙인A:앙바(En Bas)는? 노숙인B:어깨를 내린 후 두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린다. 노숙인A:(더 질문할 것이 없다는 표정으로)에이, 얼른 신발 신고 호두까기나 합시다. 차이콥스키가 작곡했다. 소녀 클라라가 크리스마스에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로 받는다. 그 인형이 꿈 속에서 쥐의 대군을 퇴치하고 아름다운 왕자로 변한다. 그리고 클라라를 과자의 나라로 데리고 간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서울발레단에 의해 초연됐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그렇게 우리들 가슴속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새달 29~31일 고양 어울림누리극장서 선보여 그 진행형 속에 노숙인들이 등장한다. 진짜? 그렇게 물어볼 사람들이 많겠다. 맞다. 노숙인들이 직접 출연하는 발레무대가 오는 12월 29~31일 경기 고양 어울림누리극장에서 펼쳐진다. 여기에는 다리를 절뚝거리는 노숙인도 출연한다. 파티에 참석하는 첫 장면이기에 어색함이 전혀 없다. 이들은 요즘 매주 일요일 과천에 있는 서울발레시어터(단장 김인희) 연습실에서 ‘호두까기 인형’ 춤을 추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웬만한 발레용어도 익숙해졌다. 기존의 단원들과 호흡도 척척 맞는다. ‘호두까기 인형’뿐만 아니다. 지난 10월 발레 ‘솔리스트’(Soloist)에도 등장해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렇듯 직접 출연은 물론이고 올해만 발레공연을 10여 차례 관람하면서 예술적 감각, 새로운 삶에 대한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다. 이들은 지난 4월부터 열심히 발레 교육을 받고 있다. 주로 노숙인 자활잡지 ‘빅이슈 코리아’를 파는 이른바 ‘빅판’ 10여명이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길거리에서 잡지를 팔고 일요일에는 발레 연습실에서 만나 서로의 아픔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는 동안 두 명은 연세대 병원 등에서 새로운 직장을 찾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됐을까. 노숙인들을 지도하는 사람은 서울발레시어터의 상임 안무가인 제임스 전(52)이다. 그는 노숙인들과 만나 진솔한 대화를 하다가 영감을 얻어 지난 10월 ‘솔리스트’안무를 하게 됐다. 좋은 업을 쌓아서 그런지 최근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선정되는 복도 받았다. 지난 8일 서울발레시어터 연습실에서 제임스 전을 만났다. 김인희 단장과 먼저 인사를 했더니 옆에 있는 제임스 전을 향해 ‘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제임스 전은 부끄러운 듯 웃는다. 나이 50이 넘었지만 웃음이 천진했다. 어떻게 살아가는지 짐작이 갔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노숙인 자활잡지 ‘빅판’ 파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직접 길거리에 나서기도 한다. 이날도 제임스 전은 그러기에 앞서 잠시 시간을 냈다. 먼저 연말 공연, 그러니까 ‘호두까기 인형’ 버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호두까기 인형은 모던과 클래식이 있는데 이번 공연은 클래식 스타일입니다. 2007년에 안무했던 적이 있지요. 그때와 다른 것은 노숙인들이 무대에 올라선다는 것입니다.” 정식 발레단원이 아닌데 노숙인을 출연시킨다고 하니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그래서 혹시 작품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물었다. “맨 앞부분, 그러니까 제1막 1장에 등장합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브의 분위기죠.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로 들떠 있습니다. 한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바쁘게 걷는 어린아이들과 부모들이 행복으로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파티장으로 들어옵니다. 그때 노숙인들이 등장하는 것이지요.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파티에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잖아요.” 발레 무대에 오르는 노숙인 김모씨는 관절이 좋지 않아 똑바로 서기가 쉽지 않다. 불편한 몸이지만 균형 감각을 찾기 위해 발레를 시작했단다. 파티 장소에서 술에 취한 귀족역할을 맡았다. 조금은 휘청거리고 바닥에 쓰러지기도 하는 역할이라 별 무리가 없다. 김씨는 1년째 연세대 앞에서 잡지 ‘빅판’을 팔고 있다. 한때 번듯한 PC방 주인이었다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처자식과 이별한 뒤 노숙인이 됐다. 또 다른 노숙인 구모씨는 종각역에서 ‘빅판’을 팔고 있지만 올 연말 ‘호두까기 인형’에 출연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들은 지난 10월 발레 솔리스트에 출연했을 때 난생 처음 박수를 받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제임스 전은 이들을 만날 때마다 친구처럼 대한다. 발레를 배우는 노숙인들은 30대에서 50대 남성들이다. 이들 중 열의를 갖고 고정적으로 발레를 배우러 오는 사람은 8명이다. 많을 땐 12명까지 오기도 했다. 제임스 전은 이들에게 오든 안 오든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이번 주 일요일부터 연말 공연을 위해 이들과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해 발레 10번 관람… 이들이 ‘1% 엘리트’” “(노숙인들은)나이도 있고 몸도 굳어 있어 유연성을 집중적으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발레용어를 알 만큼 많이 익숙해 있지요. 세상 사는 이야기도 서로 거리낌없이 주고받을 정도로 처음보다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 또한 그분들과 친해져 같이 잡지도 팔고 삶의 공감을 서로 나누고 있습니다. 행복합니다.” 제임스 전은 12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뉴욕에 있을 때 노숙인들과 자주 만났다. 당시를 잠시 회고한다. “아주 돈 많은 여성이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남편과 자식을 잃고 노숙인이 됐습니다. 그때 저도 생각이 난 것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일이란 한치 앞을 모르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도 없고, 저 또한 노숙인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가정불화나 알코올, 마약, 우울증 등 여러 가지 사연을 안고 있는 것을 보고 한순간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났습니다.” 그가 한국에서 노숙인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 국내 한 대기업의 홍보영상 ‘나눔’ 제작에 참여할 때였다. 아이템은 ‘노숙인과의 발레’였다. 현역 발레단원들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후 노숙인들은 발레연습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발레 공연을 관람하는 등 ‘발레리노’로 거듭나기 위한 자세로 변해갔다. “잡지 빅판을 통해 선발했지요. 그들은 발레 공연만 10번을 봤습니다. 우리 국민 중 1년에 발레 10번 보는 사람은 아마 1%도 안 될 겁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1% 선택된 엘리트입니다’라고 매주 일요일에 만나 3시간 동안 발레연습을 하고 나서 다과회를 합니다. 이때 책 팔린 얘기, 살아온 얘기 등을 진솔하게 나누지요.” 여기에 참여하는 노숙인들은 웬만한 발레용어도 알지만 처음보다 몸이 상당히 달라졌다고 제임스 전은 말했다. 스텝이나 마임, 걸어가는 자세, 여자와 손잡고 회전하는 동작 등이 그러하다. 노숙인들도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제임스 전은 이에 용기를 내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문화재단 등이 후원하는 ‘지역사회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지원사업’에 신청, 약간의 지원금을 따내 본격적으로 발레 수업을 하게 되면서 탄력을 얻었다. 발레를 통해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겠다는 의욕도 더욱 커졌다. “저도 발레를 하면서 많은 자신감을 얻었거든요. 노숙인들도 몸의 균형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감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분들도 정말 신이 나서 열심히 따라하고 있고요. 발레의 기본적인 움직임을 배우고 몸을 단련시키면서 잡지를 판매하기 위한 체력도 기르고 파트너와 협동심도 배우고 말입니다.” 같이 발레를 하면서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때는 예술을 왜 하는지를 느낀다고 했다. 고통을 이겨나가면서 그 과정을 얘기하는 진지한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고. “예술단체란 좋은 작품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이 예술이지요. 그러면서 마음을 변화시키고 같이 호흡을 하고, 소외계층을 배려하고 그들의 환경을 이해하는 것도 예술의 한 작업입니다. 기존의 우리 단원들도 노숙인들과 자연스럽게 같이 발레를 하면서 교감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발레에 참여하는 노숙인들이 오늘은 어디에서 잡지를 팔고 있는지 목록을 들여다본다. ‘아, 강남 신사동에 가야겠네.’ 편집위원 km@seoul.co.kr [제임스 전은…] 서울에서 태어나 12살 때 미국으로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갔다. 1977년 스티브 잡스의 모교인 홈스테디 고등학교를 나온 뒤 캘리포니아 멘로파크 댄스 아카데미(Menlo Park Dance Academy)에서 발레를 배운 그는 1982년 줄리어드 예술대학에 입학했다. 1984년 유럽의 20세기 센추리-오리스 베자르(20th Century Ballet-Maurice Bejart)에서 춤을 추었다. 플로리다 발레단의 잭슨빌과 함께 일했으며, 1987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초대돼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 그는 유니버설발레단과 국립발레단에서 주역 무용수와 안무가로 활동했다. 1995년 서울발레시어터 창단과 함께 상임 안무가로 16년 동안 70여개가 넘는 작품을 안무했다. 주요작품은 ‘현존 I, II, II’, ‘사계’, ‘위험한 균형’, ‘창고’, ‘이너무브’, ‘백설공주’, ‘결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2를 위한 변주’, ‘호두까기 인형’, ‘작은 기다림’, ‘봄, 시냇물’, ‘슬픈 천사의 춤’ 등이 있다. 2001년 한국 최초로 ‘Line of Life’를 미국 네바다발레시어터에 로열티를 받고 수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 후 2002년에는 ‘이너무브’를 네바다발레시어터에 소개했으며 ‘12를 위한 변주’도 미국에서 공연해 호평을 받았다. 1998년 ‘현존 I, II, III’으로 무용예술사선정 올해의 안무가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백설공주’로 제11회 무용예술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2005년 ‘봄, 시냇물’로 ‘올해의 예술상’ 무용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2003년부터 한국체육대학에서 생활무용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베이징선 ‘멋진 코리아’ …5일까지 한복패션쇼·K팝 경연

    중국 베이징 시내에 화려한 색깔의 우리 전통 처용의상이 선보이고, 걸그룹 소녀시대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주중 한국문화원은 4~5일 이틀간 베이징에서 한복패션쇼와 K팝 콘테스트 등을 잇따라 열어 중국 내 한류 붐을 재점화한다. 4일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하이항 메리어트호텔에서 시작된 ‘멋진 코리아’(Fabulous Korea)는 한복패션쇼와 국악 공연이 어우러진 말 그대로 ‘한국 한마당’ 행사다. 베이징과 톈진(天津) 지역의 11개 메리어트호텔 체인과 공동주최한 이 행사에서는 이리자한복전시관이 신라시대의 처용복, 조선시대의 양반복과 기녀복, 현대 한복, 약혼 및 결혼식에 착용하는예식 한복 등 모두 50벌의 한복을 선보여 첫날부터 중국인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5일 오후에는 베이징의 대표적 문화거리인 ‘751’에 위치한 대형 실내공연장 D파크에서 K팝 콘테스트가 펼쳐진다. 두 차례의 예선에 참여한 100여개팀 가운데 본선출전 자격을 얻은 15개팀이 자신들의 K팝 실력을 뽐낼 예정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삼성 사장단, 경쟁사 LG 트윈스 이택근 선수에 박수 갈채 왜?

    삼성 사장단, 경쟁사 LG 트윈스 이택근 선수에 박수 갈채 왜?

    삼성그룹 사장단이 LG트윈스 선수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경쟁사의 선수지만 팀을 위해 헌신하는 그의 자세를 높이 산 것이다. 2일 삼성에 따르면 야구해설위원으로 유명한 하일성 스카이엔터테인먼트 회장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프로야구 600만 관중의 성공비결’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를 예로 들며 헌신과 희생, 협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었던 하 회장은 김경문 야구국가대표팀 감독과 선수 선발 기준을 놓고 격한 언쟁을 벌였다. 김 감독이 “(능력보다는) 팀에 헌신하고 희생하고 협력할 줄 아는 선수를 뽑겠다.”고 밝히자 하 회장이 “올림픽이 무슨 인간성 테스트하는 곳이냐.”고 맞섰던 것. 6시간이 넘는 싸움 끝에 하 회장은 올림픽 메달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김 감독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야구 대표팀은 미국과의 1차전을 시작으로 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특히 하 회장은 당시 무명이던 이택근(현 LG트윈스) 선수에 대한 일화를 강조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이 선수는 잠도 안 자고 새벽마다 다른 선수들의 호텔방을 돌며 에어컨을 끄는 일을 했다. 그는 “자랑스러운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후보여서 팀에 기여하는 게 없다.”면서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다 선배들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뛸 수 있도록 돕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하 회장은 “김 감독이 헌신, 협력, 희생을 할 줄 아는 선수를 뽑겠다는 게 이해되면서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삼성 역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지시에 ‘S급 인재’ 찾기에 열중하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회사를 ‘1등 기업’으로 발전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은 조직을 위해 기꺼이 융합하고 헌신할 줄 아는 인력이라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헌신, 협력, 희생’의 원칙은 앞으로 신입사원 선발 등 삼성의 다양한 인재 양성 과정에 폭넓게 적용될 전망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삼성 사장단이 LG 야구선수에 박수갈채 보낸 이유는?

    삼성 사장단이 LG 야구선수에 박수갈채 보낸 이유는?

     삼성그룹 사장단이 LG트윈스 선수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경쟁사의 선수지만 팀을 위해 헌신하는 그의 자세를 높이 산 것이다.  2일 삼성에 따르면 야구해설위원으로 유명한 하일성 스카이엔터테인먼트 회장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프로야구 600만 관중의 성공비결’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를 예로 들며 헌신과 희생, 협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었던 하 회장은 김경문 야구국가대표팀 감독과 선수 선발 기준을 놓고 격한 언쟁을 벌였다. 김 감독이 “(능력보다는) 팀에 헌신하고 희생하고 협력할 줄 아는 선수를 뽑겠다.”고 밝히자 하 회장이 “올림픽이 무슨 인간성 테스트하는 곳이냐.”고 맞섰던 것.  6시간이 넘는 싸움 끝에 하 회장은 올림픽 메달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김 감독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야구 대표팀은 미국과의 1차전을 시작으로 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특히 하 회장은 당시 무명이던 이택근(현 LG트윈스) 선수에 대한 일화를 강조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이 선수는 잠도 안 자고 새벽마다 다른 선수들의 호텔방을 돌며 에어컨을 끄는 일을 했다. 하 회장은 당시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할 선수가 잠도 안 자고 뭐하는 짓이냐.”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그는 “자랑스런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후보 선수여서 팀에 기여하는 게 없다.”면서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다 선배들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뛸 수 있도록 돕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베이징의 여름 날씨가 후덥지근해 에어컨 없이는 잠들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밤새 에어컨을 켜놓고 자면 몸이 무거워져 경기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걱정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도맡아 한 것이다.  하 회장은 “김 감독이 헌신, 협력, 희생을 할 줄 아는 선수를 뽑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되면서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삼성 역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지시에 ‘S급 인재’ 찾기에 열중하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회사를 ‘1등 기업’으로 발전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은 조직을 위해 기꺼이 융합하고 헌신할 줄 아는 인력이라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헌신, 협력, 희생’의 원칙은 앞으로 신입사원 선발 등 삼성의 다양한 인재 양성 과정에 폭넓게 적용될 전망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한국戰 참전 의원 일일이 부르며 감사… 기립박수

    한국戰 참전 의원 일일이 부르며 감사… 기립박수

    45분간 45차례…. 1분에 한 번꼴로 박수가 터졌다. 이 가운데 다섯 번은 기립박수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미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미 의원들로부터 열렬한 환영과 박수갈채를 받았다. 연설은 당초 30분으로 예정됐었다. 그러나 한두 마디 할 때마다 박수가 나왔고, 결국 연설은 45분으로 길어졌다. 45차례의 박수는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한 외국 정상 가운데 최다 기록이다. 오바마 정부에서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 외국 정상은 이 대통령까지 모두 6명이다. 이전 최다 기록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세운 26차례였다. 박수 인심이 후한 미 의회로서도 이례적일 정도로 박수가 많이 나온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대한민국 국가원수로는 13년 만에 이뤄지는 연설인 데다 진솔한 내용을 많이 담았고, 전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법안이 통과되면서 고무된 분위기 등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분석했다. 검은색 정장에 붉은색 넥타이를 맨 이 대통령이 미 하원 본회의장에 입장하자 의원들은 열렬한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부인 김윤옥 여사는 차녀 승연씨와 귀빈석에서 이 대통령의 연설 모습을 지켜봤다. 이 대통령은 연단에 오르면서 의원들과 반갑게 악수를 했고, 연단에 오른 뒤에도 기립박수가 계속되자 손을 흔들며 영어로 ‘생큐’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소개를 받은 뒤 연설을 시작했고 미 의회가 한·미 FTA를 신속히 비준한 것을 높이 평가하자 첫 번째 갈채가 터졌다. 이어 의원들과 미국 국민을 향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신의를 지켜 나가고 있는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고 한 대목에서 두 번째 기립박수가 나왔다. 이 대통령이 한국전에 참전했던 의원 4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감사의 뜻을 밝히자 상·하원 의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존 코니어스 의원, 찰스 랭글 의원, 샘 존슨 의원, 하워드 코블 의원께 각별한 사의를 표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전 참전 의원들에게 영어로 “여전히 젊어 보인다. 소년 같다.”(You are still young. You look a young boy.)는 덕담도 건넸다. 미 의원들은 이 대통령이 북한의 핵 포기를 촉구한 대목과 퇴장 전 연설 말미에 영어로 “신의 가호가 있기를”(God bless you, God bless America)이라고 덕담한 대목에서도 역시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연설이 끝나자 상·하원 의원들은 앞다퉈 이 대통령에게 몰려와 사인을 받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연설을 마친 뒤 이 대통령은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국빈 만찬을 가졌다. 두 정상은 이 자리에서 한국적 정서로 상징되는 ‘정’(情)을 주제로 주로 환담을 나눴다. 오바마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한·미 동맹의 핵심은 아주 한국적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쉽게 번역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 개념은 깊은 애정과 쉽게 끊어지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건 바로 ‘정’”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때 ‘정’을 한국어로 발음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론 하와이에서 정을 경험했다. 다문화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서 “이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도 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매우 존경하고, 아주 좋아하고 친구와 같은 관계에서 특별한 느낌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보면서 동양적 좋은 정을 함께 갖고 있다.”고 화답했다. 만찬 헤드테이블에는 한국계 배우 존 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내외,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이 앉았다. 앞서 이 대통령 내외는 낮에는 국무부 벤저민 프랭클린룸에서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내외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주최 국빈 오찬에도 참석했다. 바이든 부통령이 건배사를 통해 “이 대통령이 예전에 불도저 개선 방법을 찾기 위해 완전히 해체했다가 재조립해 별명이 ‘불도저’”라고 하자 이 대통령은 “그 불도저가 미국 캐터필터사 제품”이라면서 “실은 써 보지도 않은 새것을 해체했다가 재조립했다.”고 말해 웃음을 이끌어 냈다. 워싱턴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메탈리카도 울고 갈’ 평균 9세 어린이 밴드 화제

    ‘메탈리카도 울고 갈’ 평균 9세 어린이 밴드 화제

    평균 9세 어린이들로 구성된 한 밴드가 수준급 연주 실력을 자랑하며 유튜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최근 영국 버클버리맥주축제에서 공연을 펼친 주인공들은 키어런 펠(8), 조 톰슨(8), 해리슨 리드(8), 찰리 에몬스(10), 아치(10) 등 5명으로 이뤄진 그룹 ‘미니 밴드’(Mini Band). 평균 9세의 그룹이 수많은 어른 앞에서 선보인 곡은 세계적인 록그룹 메탈리카의 ‘엔터 샌드맨’(Enter Sandman)이다. 이 곡은 메탈리카 곡 중에서도 명곡으로 꼽히며 전 세계 수많은 팬들의 마음을 울린 인기 곡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기타와 드럼을 잡은 이들의 연주 실력은 놀라울 정도. 안정된 박자감과 수준급의 기타·베이스 솜씨를 선보이며 곡을 시작했다. 보컬인 찰리 에몬스는 어리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엔터 샌드맨’을 열창했고, 여기에 리드 기타를 맡은 조 톰슨의 하모니가 곁들여 지면서 멋진 무대가 이어지자 폭발적인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미니 밴드’는 메탈리카의 곡 뿐만 아니라 뮤즈(Muse),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 등 유명 뮤지션들의 곡을 주로 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니 밴드’의 연주를 담은 동영상은 현재(10일 오후) 160만 클릭수를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외국인 최초 가야금 독주회 여는 조세린 배재대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외국인 최초 가야금 독주회 여는 조세린 배재대 교수

    ‘다스름’이라 한다. 판소리에서 목을 푸는 것이다. 가야금 연주에서의 첫 시작도 그렇다. 무대는 전통 한옥이다. 처마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서서히 잦아든다. 앞뜰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도 잠시 멈춰진다. 사람들의 숨소리 또한 그렇다. 여인의 열 손가락이 가야금 열두 줄을 타기 시작한다. 느린 진양조장단에서 시작된 가야금 소리는 중모리에서 중중모리, 자진모리에서 휘모리로 잘도 넘어간다. 줄을 희롱하듯 농현(絃)한 지경에 다다른다. 이윽고 많은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국악으로 하버드대서 박사학위 받아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았다가 우연히 이런 광경에 매료돼 국악을 배우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외국인이 직접 무대에 올라 국악기로 연주 발표회를 갖는 경우는 거의 없을 듯싶다. 우선 한글을 배우기가 어렵고, 가야금 등의 전통 국악기 또한 배우기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오는 15일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당에서 보기 드문 국악 행사가 열린다. 미국인 여성 조세린(41) 배재대 교수가 가야금 독주회를 처음 갖는 것. 그의 본명은 조셀린 클라크(Jocelyn Clark)로, 알래스카에서 태어나 22살 때 한국에서 가야금을 처음 접했다.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우다 매료돼 가야금 전도사로 나섰고 하버드대에서 가야금 병창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런 그가 이번에 국내 최초로 가야금 산조 독주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히 그는 성금연(1983년 작고)류의 긴 산조(45분 분량의 풀버전)를 선보일 예정이다. 외국인이 짧은 산조는 물론이고 긴 산조의 가야금 연주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있는 일이라는 게 국악계의 평가다. 지난달 말 대전 배재대 연구실에서 조 교수를 만났다. 그는 3년 전부터 이 대학의 국제학부 학생들에게 ‘종교와 사회’ ‘비교미학’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고 있다. 그의 연구실에 들어서자 한쪽 편에 가야금과 북이 맨 먼저 보였다. 또 벽에는 각종 국악 공연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평소의 국악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막 강의를 마치고 나온 시간이어서 그런지 “잠시 목을 축여야 해요.”라고 하면서 활짝 웃는다. 이어 녹차와 찻잔을 꺼내 오더니 차 한잔을 권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얘기를 시작했다. 그의 명함에 새겨진 ‘조세린’이라는 큰 글씨가 눈에 띄었다. 누가 이름을 지어 주었을까. ●하숙집 오빠들이 지어준 이름 조세린 “하숙집에 있을 때였지요. 같이 있는 사람들이 미국 이름(조셀린)을 얘기하면서 한국말 ‘조세린’과 비슷하니 그렇게 하자고 해서 조세린이 됐습니다. 그때 하숙집에는 오빠들도 있었는데 경상도 말을 썼어요.” 녹차를 무척 좋아하나 보다. 차를 몇 잔 더 마시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는 한국말을 잘하는 편이었다. 다만 외국인 특유의 축약과 생략이 있는 어투였다. 중간중간 영어를 섞기도 했다. “어제 전주에 계신 선생님한테 가야금 배우러 갔다가 오늘 아침에 왔어요. 공연을 앞두고 이것저것 최종적으로 (점검을) 받고 있는데 참 어려워요(웃음).” 그는 여러 스승을 모셨지만 현재는 성금연 선생의 딸인 지성자(전북 무형문화재)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야금이 어렵기는 하지만 리듬을 심오하게 타고 있으면 생각의 깊이를 많이 느끼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가야금 독주 얘기가 나왔다. “저 스스로 많이 힘들었어요. 어떻게 공연할지도 궁금하고요. (가야금 연주를 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 같아요. 아마 외국인으로는 처음일 것 같은데 맞죠(웃음)? 이번 독주회는 긴 산조라서 더 어려워요. 산조는 20년 전 처음 배웠다가 잠시 중단하고 (가야금) 병창을 공부했지요. (산조를) 다시 본격적으로 한 것은 올 3월이었는데 20분 분량을 소화했어요. 그 후 25분 분량을 더 늘리는 데 많이 힘들었어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소탈하면서도 솔직한 성격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국인으로서는 처음 독주회를 갖는 소감 또한 남다를 터. “알래스카에 계신 부모님도 오세요. 딸 공연을 보러 오시는 것이지요. 가야금 공부라는 것이 매번 산에 오르는 것 같아요. 왜 그렇잖아요. 산에 오를 때, 다 왔나 생각하면 또 산이 있고 오르고 또 오르고, 가야금 하는 것이 그런 것 같아요. 이번 독주회도 큰 산에 오르는 첫 단계이겠죠.” 가야금은 누구에게 배웠을까. 국립국악원에서는 서울대 이지영 교수와 지애리·강정숙 선생에게 배웠다고 했다. 또 나중에 지성자 선생에게는 가야금 산조를, 강은경 선생한테는 가야금 병창을 배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황병기 선생에게도 잠깐 배운 적이 있다고 했다. 가장 궁금했던 하버드대 논문에 대해 물었다. 오죽 국악을 좋아했으면 한국에 있다가 일부러 미국으로 건너가 국악을 주제로 박사학위까지 받았을까. “2005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지요. 판소리 흥부가에 제비소리가 있거든요. 그 대목을 논문 제목(지지지지 주지주지)으로 했습니다. 논문을 쓸 때도 가야금을 들고 미국과 한국을 몇 번 왔다 갔다 했지요.” 그러면서도 틈틈이 외국에서 가야금 연주를 했단다. 하버드대에서도 했고, 2002년에는 베를린과 시카고, 알래스카에서도 연주를 했다. 이뿐만 아니다. 유럽에 갈 일이 있을 때에도 가야금을 들고 가 프랑스 그르노블, 독일 쾰른 등에서 연주했다. 그가 가야금 전도사라는 말을 듣는 이유다. 외국에서 연주할 때 ‘미국 사람이 왜 한국 음악을 하느냐.’는 질문은 혹시 받지 않았을까. 그는 “한국에서는 (그런 질문을) 받지만 외국에 가서는 거의 없어요. 좋아서 하고 있는데 왜 그런 질문을 받아야 하죠?” 하고 오히려 반문한다. 괜한 질문을 했나 보다. ●“14페이지 악보 달달 외는 가야금 힘들죠” 내친김에 또 한 가지 우문을 던졌다. 가야금을 배우면서 정말 후회하지는 않았느냐고 했다. “그런 적은 없어요. 물론 힘들어요. 특히 (가야금의) 긴 산조는 시간이 많이 걸려요. 14페이지에 달하는 악보를 다 외워야 했어요. 가야금을 배우면서 잠시 한눈을 팔면 골목길로 빠지고 조금이라도 신경을 덜 쓰면 딴 곳으로 가는 것 같아요. 마음은 빨리 터득하고 싶은데 그렇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가사를 외워야 하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먹고 싶은 당근을 바라보는 말의 심정인 것 같아요. 아무튼 가야금을 잘하면 멋있어요.” 미국인 입장에서 한국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참 매력 있어요.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그 매력을 잘 살리지 않는 것 같아요. (잠시 생각하더니) 한국인들은 음악의 뿌리를 다른 나라에 심고 있어요. 학교에 와서 라디오를 켜면 서양 음악이 나와요.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보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어요. 아이들은 서양 음악을 배우고, 스승과 제자 사이의 예의를 생각하면 화가 날 때도 있어요. 젊은이들이 한국 문화에 재미를 많이 느끼지 못하고 있죠. 가야금 산조도 마찬가지예요. 선생님들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제가 가끔 시골에 가서 소리하는 선생님들을 만나면 참 훌륭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소리 듣고 자연 속에서 빚은 막걸리 한잔 하고 얼마나 좋아요(웃음). 한국인은 한국 밥을 먹어야 하잖아요. 지금이라도 (서양 음악에 심취하지 않도록) 잘 잡아야 해요.” ●국악은 희로애락 표현하는 삶 같은 음악 그는 이어 국악은 말 그대로 삶을 표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고 덩실덩실 흥을 돋우는가 싶으면 한풀이를 하는, 그런 음악이 좋다고 했다.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더라도 산에 오르는 것처럼 한국 음악과 함께 걸어갈 것이라며 웃었다. 조 교수는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 클라리넷을 배웠고 고등학교 때 오보에를 배울 만큼 음악을 좋아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공군 정보장교 출신으로 2차세계대전 직후 일본에서 근무했다. 외할아버지는 진주만 공습 때 해군대위였다. 아버지는 일본에 잠시 살다가 베트남전에도 참전한 경험이 있어 조 교수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동아시아에 대해 친근함을 갖게 됐다. 17살 때에는 일본, 20살에는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했다. 그래서 일본의 전통 악기 고토를 배웠고, 중국에서는 쟁과 서예를 배웠다. 그러던 중 한국의 가야금에 대한 얘기를 여러 차례 들으면서 한국행을 결심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거문고 연주자를 통해 국립국악원을 소개받았던 것이다. 가야금 병창을 배울 때에는 한글을 못 읽어 무조건 외우면서 시작했다. 특히 다스름이니, 진양조니 하는 것을 배울 때에는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아팠지만 언젠가는 좋아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꾹 참고 견뎠다. “가야금이 저의 삶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그 진정한 의미를 찾을 때까지 계속할 겁니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조세린 교수는… 1970년 미국 알래스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조셀린 클라크(Jocelyn Clark)이며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군인 출신이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현재 그의 아버지는 알래스카에서 변호사로, 어머니는 요리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17살 때 일본에 살면서 전통 악기 고토를 배웠고 20살에는 중국에서 쟁과 서예를 익혔다. 민속음악으로 유명한 미국 웨슬리언대를 나왔으며 중국 난징대에 잠시 다니기도 했다. 그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 1992년 22살 때였다. 미국에서 거문고를 하는 한국 사람에게 소개받아 국립 국악원에서 가야금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하버드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학위 논문의 주제는 모두 국악이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가야금 연주도 여러 번 했다. 그는 한국에서 이지영 서울대 교수, 지애리·강정숙 선생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지성자 선생에게는 가야금 산조를, 강은경 선생한테는 가야금 병창을 배웠다.
  • [씨줄날줄] 푸틴과 재벌/최광숙 논설위원

    “당장 그 보좌관을 청와대에서 내보내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뒤늦게 재벌가 패밀리가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으로 일하는 것을 알고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재벌가 일원이 경제 정책을 비롯한 국정 전반에 대해 모든 보고를 받는 비서실장의 측근으로 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 전 대통령의 뜻이었다는 게 당시 비서실장을 지낸 인사의 회고다. 최고 권력자와 재벌의 관계는 변화무쌍한 것 같다. 가까워 특혜를 보기도 하고, 눈 밖에 나면 끝장나기도 한다. 전두환 정권 때 ‘왕자표 고무신’으로 출발했던 국제그룹이 공중분해된 것도 사실 ‘괘씸죄’에 걸린 것이라는 게 재계의 정설인 것을 보면 그렇다. 당시 재계에서는 “영부인이 하는 일에 소홀했다.” “대통령 주최 만찬에 양정모 회장이 폭설로 늦게 참석했다가 밉보였다.”는 등 소문이 떠돌았다. 정권에 밉보여 재벌이 해체된 경우라면 러시아를 빼놓을 수 없다. 푸틴 대통령은 당선 이후 ‘올리가리히’로 불리던 신흥재벌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기업·재산을 빼앗긴 신흥재벌 베레조프스키와 구진스키 등은 영국 등으로 아예 도망을 가야 했다. 한때 ‘세계 최대 갑부’로 통하던 석유회사 유코스의 호도르코프스키 전 회장은 워낙 푸틴에게 찍혀 회사도 날리고, 횡령 등의 혐의로 13년의 징역형을 받고 현재 시베리아 감옥에 있다. 그들은 옐친 시절 정경유착으로 국영기업이던 원유·가스·광물 등 국가 기간산업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인물들이다. 그들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된 푸틴이지만 그는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을 눈 감아주지 않았다. 서방국가에서는 그런 그를 정적을 과감히 제거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잔인한 권위주의 폭군으로 여겼지만 러시아 국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옛 소련 붕괴 후 정치적·경제적 혼란에 빠진 러시아를 ‘강한 러시아’로 키웠던 푸틴의 반재벌 행보는 총리 시절에도 이어져 국민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던 것이다. 2009년 6월 푸틴 총리는 금융위기로 3개월째 조업을 중단하고 임금을 체불한 공장을 찾아가 공장 소유주인 러시아 최고 부호 데리파스카에게 “(공장 재가동을 위한) 합의서에 서명하라.”고 소리치며 합의문과 펜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푸틴 앞에서 벌벌 떨며 서명하던 재벌의 모습은 TV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자본주의 국가의 지도자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약자의 편에 선 것으로 비춰지는 그 모습에서 신선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K팝 심장이 뛴다”… 100일간의 한류축제 열광

    “K팝 심장이 뛴다”… 100일간의 한류축제 열광

    서울신문사와 한국방문의해위원회가 한국 방문의 해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2011 K팝 커버댄스 페스티벌’ 결선 경연에서 러시아의 남성 5인조 그룹인 ‘페브리스 에로티카’가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2위와 3위는 일본의 ‘고토립’과 태국의 ‘넥스트 스쿨’이 각각 차지했다.3일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3시간 동안 경북 경주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된 결선 무대에는 세계 64개국에서 총 1700여명이 참가한 온라인 예선(6월 중순 시작)과 7개 지역의 본선을 거친 16개팀 66명의 참가자들이 올라 불꽃 튀는 대결을 펼쳤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준비한 한국 아이돌 가수의 노래와 춤 실력을 뽐냈고, 이른 아침부터 행사장을 찾은 1000여명의 국내외 관람객은 참가팀의 이름을 연호하며 열광했다. 특히 우승한 러시아 ‘페브리스 에로티카’는 아이돌 가수 비스트의 ‘쇼크’ 군무를 완벽히 재연해 관람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은 것은 물론 심사위원들로부터 “대단하다.”는 평가를 이끌어 냈다. 경연의 첫 테이프는 브라질 팀이 끊었다. 남성 3명, 여성 5명의 브라질 혼성 댄스그룹이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반주에 맞춰 춤을 추자 관람석은 순식간에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당초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태국의 ‘넥스트 스쿨’은 완벽한 호흡으로 청중을 압도했으나 동상에 만족해야 했다. 심사는 소녀시대와 비스트, 엠블랙과 티아라 등 인기 아이돌 그룹이 맡았고, 행사는 윤도현과 정형돈, 소녀시대의 유리와 티파니가 진행했다. 이들은 심사뿐 아니라 직접 무대에서 화려한 공연도 펼쳐 관객들을 매혹시켰다. 공연에는 일본과 필리핀 등 해외 10여개국의 취재진이 몰렸다. 우승한 러시아팀은 오후 6시 경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린 ‘한류드림 콘서트’ 무대에서 꿈에서도 그리던 K팝 아이돌 가수들과의 공연을 함께했다. 러시아 팀원들은 “너무 감동적이어서 심장이 뛰고 흥분을 감출 수 없다. 한국과 대회를 준비해 준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우승 소감을 말했다. 이동화 서울신문 사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K팝이 한류의 핵심으로 급부상한 것을 확인했다.”면서 “앞으로 매년 K팝 커버댄스 페스티벌을 개최해 K팝을 사랑하는 세계 각국 젊은이들의 축제로 승화시키겠다.”고 말했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용어클릭] ●K팝 커버댄스(K-POP COVER DANCE)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가수들의 노래와 춤, 스타일까지 그대로 따라 하는 것으로 세계 한류 팬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등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남미 지역까지 확산되고 있다. 태국에서는 K팝 커버댄스 그룹이 성행할 정도다. 외국의 커버댄스 마니아들은 K팝 가사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있다.
  •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25주년 ‘트로트 여제’ 가수 문희옥

    [김문이 만난사람] 데뷔 25주년 ‘트로트 여제’ 가수 문희옥

    트로트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자리 잡고 있을까. 원래 트로트(trot)라 함은 사전적으로 ‘빨리 걷다’ ‘속보’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트로트 시대의 개막을 알린 음악은 1934년에 발표된 고복수의 ‘타향살이’와 이듬해 발표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다. 이어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과 백년설의 ‘번지 없는 주막’ ‘나그네 설움’ 등으로 연결된다. 이후 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귀국선’, 6·25의 참상을 생생하게 고발한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가요는 트로트 리듬을 타고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며 국민과 함께해 왔다. 1980년대 초반에는 ‘트로트 메들리 붐’이 생겨났다. 노래를 1절씩만 엮어 만든 빠른 템포의 댄스곡으로 편곡돼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소위 ‘뽕짝’이라는 유행어까지 나왔다. 김연자의 ‘노래의 꽃다발’에 이어 주현미의 ‘쌍쌍파티’가 당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주현미는 또 ‘비 내리는 영동교’ ‘신사동 그사람’ 등을 발표하면서 대표적인 트로트 가수로 성장했다. #여고생 문희옥은… 이럴 무렵인 1986년 봄, 당시 서울 은광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문희옥은 학교 소풍 때 노래자랑에서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구성지게 불렀다. 그러자 선생은 물론 학생들까지 기립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여고 2년생이 성인가요를 부른 것도 대단했지만 트로트 특유의 ‘꺾기 창법’을 기가 막히게 소화해내 다들 ‘은광 출신’의 가수탄생을 기대했다. 아니나 다를까. 1년 뒤 문희옥은 교장의 특별 배려로 학교강당에서 파격적인 트로트 음악 발표회를 가졌다. ‘워째 그라요, 워째 그라요 시방 날 울려놓고~’를 시작으로 하는 ‘팔도 디스코 메들리’를 맛깔스럽게 불렀다. 이때 발표한 메들리 앨범은 발매 1주일 만에 360만장이나 팔렸을 정도로 크게 히트쳤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던 운전자들이 휴게소에 잠시 들르면 저절로 눈길을 끌게 만들 만큼 ‘하이웨이 트로트’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지금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여전히 인기순위 톱에 있다고 하니 적어도 1000만장 이상 팔려 나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음악적 고집쟁이, 문희옥 가수 문희옥(42)은 올해로 데뷔 25년째를 맞는다. 그는 이미자·주현미의 뒤를 잇는 ‘정통 트로트의 계승자’라는 자부심으로 줄곧 트로트의 길을 걸어 왔다. 그러면서 무대에 설 때면 특유의 은근한 미소로 사투리 메들리를 비롯해 ‘성은 김이요’ ‘강남 멋쟁이’ ‘사랑의 거리’ 등의 노래로 많은 팬들을 확보해 왔다. 문희옥은 현재 활약하는 가수 가운데 주현미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정통 트로트 가수’로 인정받고 있다. 문희옥 스스로도 지난 세월 ‘정통 트로트’라는 경계선을 벗어난 적이 없이 올곧게 그 길을 고집해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고민이 무척 많아졌다. 트로트의 위기를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K팝(K-POP)이 대세인 상황에다 장윤정, 박현빈 등 ‘세미 트로트’ ‘댄스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후배 가수들이 많아졌고 또 일부 동료 트로트 가수들도 정통 트로트의 틀을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요 평론가 박성서씨는 정통 트로트에 대해 “4분의 4박자를 기본으로 하면서 강약의 박자를 넣고 독특한 꺾기 창법을 구사하는 독자적인 가요 형식”이라며 “네오 트로트와 댄스 트로트 등으로 변화하는 요즘 시대에서는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기가 쉽지 않으며 따라서 시장에서도 승부가 안 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문희옥은 지난 추석 때인 12일 MBC ‘나는 가수다’의 스페셜 편 한가위 특집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 김수희, 남진, 박현빈, 설운도, 장윤정, 태진아 등 대한민국 최고의 트로트 가수 6인과 함께 경쟁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특히 문희옥은 이날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부르며 파격댄스를 선보여 방청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를 지켜본 남진은 “대단하다. 문희옥이 춤은 안 출 줄 알았다.”고 감탄했고 네티즌들은 “문희옥 대박!”, “너무 귀여웠어요.”, “추석 특집에서만 볼 수 있는 건가요?” “문바디라 불러다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에 앞서 문희옥은 케이블채널 tvN 프로그램 ‘오페라 스타’에 트로트 가수로는 유일하게 도전해 ‘나비부인’과 레퀴엠 중 ‘자비로운 예수님’ 등을 열창했다. 처음 예상과 달리 4번째 무대까지 오르면서 ‘트로트의 힘’ ‘아줌마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해 많은 찬사를 받았다. 트로트 외길을 걸어온 문희옥의 이러한 변신은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며 절정의 음악적 끼로 무한한 능력을 어디까지 보여줄지 팬들은 기대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기획사 사무실에서 문희옥을 만났다. #문희옥의 외도? 먼저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의 댄스 얘기부터 시작했다. 그는 “막춤은 좀 추지만 무대 위에서 댄스를 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박진영 안무팀한테 두 시간 반 정도 익혔는데 주위에서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다.”며 웃는다. 후배 가수들의 노래를 잘 듣느냐는 질문에 “주얼리, 동방신기 등 리듬감각을 익히기 위해 자주 듣는 편이다. 퓨전음악이라는 시대의 흐름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그러더니 긴 한숨을 내쉰다. “정통 트로트 가요는 이제 죽었습니다. 좋아하는 팬들도 앞으로 10년 정도나 버틸까요. 무서운 시장경쟁에서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을 가수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나는 트로트 가수니까’ 하면서 안주할 수도 없고요. ‘도전 1000곡’이나 최근의 ‘오페라 스타’와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 출연할 때에도 그래서 열심히 했습니다. ‘쟤는 트로트 가수밖에 안 돼’라는 말을 안 듣기 위해서였지요. 정통 트로트 가수가 변신하기란 쉽지 않거든요. 앞으로도 그런 기회가 오면 저의 끼가 어느정도인지 스스로 검증받고 싶기도 합니다.” 문희옥은 트로트에 대한 애정과 절망의 심경을 동시에 털어놨다. 20~30대 후배 가수들이 현대 트로트와 댄스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노래를 부르지만 결국 정통 트로트만큼은 못하다고 했다. “정통과 대체되는 새로운 트로트, 즉 샐러드식 음악이 많이 나오고 있지요. 하지만 샐러드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간장이나 된장, 김치 같은 정통 트로트 음악이 과연 계속 인기를 끌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그는 ‘위기의 트로트’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앞으로 어느 방향에 서 있어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정통이냐, 세미 트로트냐 하는 것 또한 숙제라고 했다. 신곡 음반을 7년째 못 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그동안 걸어온 ‘문희옥의 길’을 되돌아보니 선뜻 음반을 내기가 겁이 난다는 것이다. “제가 지향하는 길과 안 맞더라도 ‘서둘지 말자’, ‘지금의 페이스에서 카리스마가 있는 선배, 노력하는 선배로 보여주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가수 중에 신곡을 7년째 안 내는 사람은 저밖에 없을 겁니다. 요즘 신곡을 내면 일단 뜹니다. 하지만 가수는 빛을 못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대중들은 인물의 됨됨이까지 봅니다. 가수가 노래만 잘하면 된다는 정석은 이미 깨졌지요. 노래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다 잘할 수 있는 만능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조심 조심 지나치지 않게 가자는 것이 제 인생의 화두가 됐습니다.” 그에게 ‘트로트가 죽었다’는 부문에 대해 다른 가수와 공감대를 형성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주현미 언니랑 만날 때 그런 걱정을 털어놓곤 합니다. 제가 아는 트로트 가수 중에 주현미 언니는 비교적 관리를 잘하는 편입니다. 유일한 트로트 프로그램인 ‘가요 무대’에도 함부로 나가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얘기도 해요. ‘가요 무대’는 말 그대로 정통 가요를 사랑하는 가수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인데 검증되지 않은 가수들이 자주 등장해서 그런가 봐요. 그러면서 언니는 ‘우리라도 트로트를 잘 지키자’고 얘기하지요.” #아내이자 엄마, 문희옥 그는 요즘 들어 지나 온 세월을 자주 돌아본다고 했다. 올해는 ‘오페라 가수’ 와 ‘트로트의 여제’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더욱 자신을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가요보다 2~3 정도 키가 높다는 오페라 발성을 직접 해보이면서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는 자세로 정통 트로트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다. 그러던 중 소풍 가서 우연히 노래 한 곡을 불렀고 당시 교감 선생님한테 ‘희옥이는 가수 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가수의 꿈을 앞당겼다. 얼마 후 작곡가 안치행씨를 만나면서 1년 동안 비밀리에 트레이닝을 받아 ‘팔도 사투리 메들리’로 데뷔했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방언으로 부른 노래를 담은 앨범은 당시 밤을 새워서 찍어내야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렸던 것. 그때 돈을 좀 벌었느냐고 하자 “저는 노래만 불렀고 문희옥이란 이름을 알렸잖아요. 아마 안 선생님은 많이 벌었을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동안 낸 곡 중 가장 아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시간이 지나 지금 생각해 보니 ‘성은 김이요’가 좋은 것 같다.”며 웃는다. 1995년 일반 회사원과 결혼한 문희옥은 2004년 아들을 얻었고 이제 학부모가 됐다. 매주 일요일에는 어김없이 교회에 가서 가족의 행복을 기도한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신곡 앨범이 언제 나오느냐고 하자 옆에 있던 기획사 대표가 “서정적인 가사로 11월 중 팬들에게 다가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문희옥은 누구 1969년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황해도 출신으로 6·25때 월남했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곧잘 부른다는 칭찬을 들으며 자란 그는 은광여고 3학년 재학 당시 ‘팔도 사투리 메들리’로 데뷔했다. 앨범 발매 1주일 만에 360만장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가요계에 혜성같이 나타났다. 이후 서울예술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면서 본격적인 정통 트로트의 길을 걸었다. 대표곡으로 ‘성은 김이요’ ‘사랑의 거리’ ‘강남 멋쟁이’ 등을 발표하면서 연이어 히트를 쳤다. 1995년 일반 회사원과 결혼한 그는 8살 된 아들을 두고 있다. 2003년 제5회 한국예술실연자대상 특별공로상 등을 수상했으며 최근 ‘오페라 스타’ ‘나는 트로트 가수다’ 등에 출연해 새로운 끼를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올 11월쯤에는 서정적인 풍의 신곡을 낼 예정이다.
  • “후원한 아이들 미래 韓·몽골교류 주역 되길”

    “후원한 아이들 미래 韓·몽골교류 주역 되길”

    20일 용산구에는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오랜 지원 사업으로 깊은 인연을 맺은 툭스자르갈 간디 몽골 사회복지노동부 장관이다. 간디 장관은 성장현 구청장에게 몽골 정부의 감사의 마음을 담아 몽골 항가이대학교 명예박사 학위를 전달하기 위해 이날 방한했다. 용산구와 몽골의 인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새마을운동 용산구지회가 ‘함께 잘사는 지구촌 만들기’의 일환으로 몽골 지원 사업을 펼치면서 첫발을 떼 지금까지 몽골 어린이 1대1 양육 지원, 어린이집 건립, 우물 파기 지원 활동 등을 이어오고 있다. 구도 용산전자상가와 몽골 정보기술(IT)타운 간 업무협약을 이끄는 등 양국 간 교류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성 구청장이 취임 후 첫 외국 방문지도 몽골이다. 장관 환영행사장에서 만난 성 구청장은 “몽골은 우리와 정서적·역사적으로도 좋게 얽힌 나라”라고 평가했다. 사실상 해외 교류는 구의 ‘생활 정치’와는 다소 멀지만 성 구청장은 이를 ‘지역경제활동’의 일환으로 이해해 지금껏 새마을운동지회 활동을 후원하고 있다. 그는 “현재 몽골에서는 새롭게 새마을 운동 붐이 일고 있다.”며 “해외 교류를 통해 새마을운동의 존재 의의와 활동 동기를 부여하면 다시 우리 지역을 돌아보는 데 큰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교는 정부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용산 관내에는 몽골인 135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사관도 자리해 있다. 성 구청장은 환영행사에서 “후원을 받은 아이들이 몽골사회 주역으로 자라 한·몽 간 징검다리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간디 장관은 “올해로 수교 20주년인 두 나라가 항상 발전하고 잘살 수 있도록 협조해 나가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행사에는 구의회 의원들과 구청 각 국장, 새마을용산지회 임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평양 출신 전쟁 고아로 몽골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삼당 채랭한드(63) 할머니도 특별 초대됐다. 할머니는 새마을용산지회가 6년간의 수소문 끝에 찾아내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박사 학위 수여식은 환영행사에 이어 열렸다. 성 구청장은 몽골 전통풍의 학위수여식 의상과 박사모를 쓰고 나와 직원들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는 “전 중국 성씨인데 몽골 옷이 잘 어울리는 걸 보니 가까운 핏줄인 모양”이라며 “이 박사 학위를 진작 받았으면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안 떨어지지 않았겠느냐.”고 의미심장한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성 구청장은 이미 행정학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글 사진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공연리뷰] 브로드웨이서 직접 본 화제작 ‘워 호스’

    [공연리뷰] 브로드웨이서 직접 본 화제작 ‘워 호스’

    요즘 미국 브로드웨이에선 웬만한 배우들도 말(馬)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말과 인간의 우정을 그린 영국 연극 ‘워 호스’(War Horse·군마) 때문이다. ‘워 호스’는 2007년 영국에서 초연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여세를 몰아 올 4월 브로드웨이에 상륙했다. 공연 두 달 만에 작품상 등 올해 토니상 5개 부문을 석권했다. 명성에 걸맞게 표 구하는 일이 녹록지 않았다. 두세 달 전에 예매하지 않으면 최소 40달러 이상의 웃돈을 얹어줘야 한다고 했다. 운 좋게 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말과 인간의 우정 감동적으로… 영국서 초연 ‘워 호스’는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소년 앨버트와 그의 애마인 조이에 관한 이야기다. 앨버트의 아버지는 대출받은 돈으로 술김에 좋은 망아지 한 마리를 사온다. 앨버트는 말에게 ‘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정성껏 보살핀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전쟁으로 모든 것이 변하고 만다. 조이가 군마로 기병대에 팔려간 것. 조이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고향에 있는 앨버트를 그리워하며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17살의 앨버트 또한 조이를 찾기 위해 나이를 속여가며 군대에 지원한다. 그 사이 조이는 프랑스군과 독일군 양쪽 진영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참혹함을 경험한다. 마침내 둘은 천신만고 끝에 재회하게 되는데…. ‘워 호스’의 성공 요인은 소문대로 ▲감동적인 스토리 ▲말이 무대 위에 있는 듯한 사실주의적 말 모형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에 있었다. 극 중 조이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세 명의 배우들이다. 이들은 뼈대 골격과 최소한의 피부로 이뤄진 ‘모형말’의 머리, 가슴과 앞발, 뒷발에 들어가 일일이 뼈대와 관절을 움직인다. 특히 가죽으로 만들어진 조이의 귀가 배우들에 의해 움찔할 때마다 관객들은 조이가 실제 말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휩싸인다. 한 마리의 말이 무대 위에 완벽하게 탄생한 셈. ●국내 수입 추진중… 스필버그가 영화로도 제작 배우들의 이러한 ‘아날로그적’ 노력은 관객으로 하여금 말이 느끼는 기쁨과 고통, 조이와 앨버트의 눈물 나는 우정을 ‘실제 현실’로 받아들이게 한다. 커튼콜 때 앨버트보다 조이의 모형 배우 세 명에게 더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진 것은 그래서다.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이 작품이 아직 소개되지 않았다. CJ엔터테인먼트가 수입을 추진 중이라고 하니 기대를 걸어볼 만도 하다. 공연이 무산되더라도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워 호스’를 본 뒤 감동을 받아 영화 제작을 진행 중이니 너무 낙담할 일은 아니다. 뉴욕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씨줄날줄] 인왕산 시위/임태순 논설위원

    1968년 청와대를 기습 타깃으로 삼았던 1·21 무장공비사건으로 인왕산이 폐쇄됐다가 시민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25년 만인 1993년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선물로 인왕산 등산로와 함께 청와대 앞길을 활짝 열어 시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아직 웰빙 바람이 불기 전이었건만 인왕산과 청와대 앞길 개방은 여론조사에서 가장 잘한 정책 중의 하나로 사랑을 받았다. 이에 앞서 김 전 대통령은 5공 신군부가 정치활동에 족쇄를 채우자 ‘등산’으로 탈출구를 찾았다. 1981년 6월 발족한 민주산악회다. 뜻을 같이하는 민주화운동 인사들과 산에 올라 울분을 토로하면서 동지애를 다지고 건강도 다졌으니 절묘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산악회의 산행이 간간이 언론에 비쳤으니 간접적으로 정치활동도 한 것이고, 민주산악회에는 또 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자들도 적극 참여해 민주화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희망버스’가 엊그제 인왕산에서 시위를 벌이려다 경찰의 강력한 저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부가 새벽에 등산객으로 가장, 홍제동 기차바위 능선을 타고 인왕산에 올라 ‘비정규직 정리해고 철회’ 플래카드를 펼쳐 깜짝 시위를 벌인 정도였다고 한다. 희망버스는 여러가지 복선을 깔고 인왕산을 시위장소로 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산은 정상에서 청와대가 내려다 보일 만큼 지근거리에 있어 상징성이 크다. 경찰로서는 등산로 전체를 통제하면서 시위를 막기란 쉽지 않다. 27개 중대 2200여명을 배치하고도 허(?)를 찔린 것이 이를 말해 준다. 인왕산은 또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과 연결된다. 인왕산 방어망이 뚫린다면 제2의 1·21사태가 일어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청와대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로서는 악몽과도 같은 시나리오다. 시위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동물보호론자들은 모피를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자신의 뜻을 펼쳐보인다. 중국에선 공안당국의 감시가 워낙 심하자 자연스럽게 산책하듯이 특정장소에 나와 거닐고 미소를 짓는 것으로 집회를 대신하는 스마트 시위가 제안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우병사태 당시 촛불시위가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골리앗 시위, 1인시위, 삼보일배 등도 우리나라가 지적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시위다. 인왕산 시위는 앞으로 북악산으로도 번질 가능성이 높다. 이래저래 경찰로선 골머리를 앓게 됐다. 북악산에 이르기 전에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을 텐데….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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