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세요? 대관령 너머에서 가을이 오는 소리
푹푹 찌는 더위와 몰아치는 비가 반복되는 여름이다. 이 더위가, 이 여름이 지긋지긋할 만하다. 특히 올해 여름은 들머리에서 온 나라를 충격과 공황에 빠뜨리더니 끄트머리에서까지 다시 한 번 큰 슬픔을 던지며 마무리짓고 있다. 어쨌든 조금만 기운내자. 이제 곧 9월 아닌가. 자연의 이치나 사람 사는 이치는 매한가지다. 동트기 전 새벽녘이 가장 어두운 법이고, 절망의 밑바닥을 쳐야 희망을 향해 올라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저 다른 점이 있다면 더위는 결국 끝날 것임을 잘 알고 있지만, 절망 속에서 희망이 싹트고 있음은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쨌든 막바지에 달한 여름도 안간힘을 쓰며 땡볕을 내리쬐고 있는 것일 테니 지지 않고 씩씩하게 맞서야 한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먼저 가을을 맞이하고 싶다면 강원도 평창으로 가자. 가을을 넘어 내처 겨울의 서늘함까지 맛볼지도 모른다. 또한 어떤 역경과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희망을 꿈꾸는 집념의 사람들도 만나볼 수 있다.
평창은 여름 내내 겨울 생각으로 분주하다. 평창군 어디든 가는 곳마다 ‘2018평창’이라고 쓰인 현수막, 게시판, 선전 자료들이 눈에 띈다. 이뿐이랴. 상인, 학생, 주부, 직장인 등 평범한 사람들도 ‘2018년’을 입에 달고 산다. 대체 2018년이 뭐기에. 바로 이 곳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한 한결같은 염원이다.
●동계올림픽의 꿈… 스키점프대에 서면 나도 ‘국가대표’
영화 ‘국가대표’를 보면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일궈내는, 지치지 않는 열정을 가진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유일한 국제규격의 스키점프장이 있는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찍었다. 단순히 영화 촬영지라서만이 아니다. 동계올림픽 유치에 두 번씩이나 실패했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세 번째 도전하는 평창의 뚝심은 스키점프 불모의 나라에서 뛰는 국가대표의 모습을 딱 빼다 박았다.
알펜시아 리조트 스키점프대에 올라서 봤다. 아파트 30층 높이인 58m라 한다. 슬쩍 내려다 보니 아찔하다. 여기에서 땅바닥으로 곧바로 내리꽂힐 것 같다. 다음달 3~5일 이곳에서 세계스키연맹(FIS) 스키점프대륙간컵대회를 연다. 눈이 없더라도 활강로에 물을 뿌려서 스키가 미끄러질 수 있도록 한다. 열 세개 나라에서 260여명의 선수들이 참여하는 규모의 국제대회니 평창 입장에서는 국제스포츠계에 동계올림픽 유치의 첫 시험을 치르는 셈이다. 이 리조트는 민간이 아닌, 강원도개발공사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이밖에 551실의 콘도미니엄은 지난달 부분적으로 문을 열었고, 올겨울 스키 슬로프를 전면 개방하고 내년 5월이면 컨트리클럽, 콘도타운, 스포츠파크 등이 모두 문을 연다. 특히 스포츠파크의 18홀 골프장은 홀마다 그레그 노먼, 타이거 우즈 등 세계적인 골프선수들과 최경주, 박세리, 미셸 위 등 한국 선수들의 사연이 얽힌 홀을 하나씩 따와서 만들었다.
●명품 산책로 월정사 전나무 숲길·대관령 양떼목장 장관
가을의 느낌을 선험하기 좋은 곳이 월정사다. 차를 타고 월정사 입구인 천왕문 코앞 주차장까지 들어갈 수도 있지만, 이는 명품 산책로를 외면하는 어리석은 일. 일주문 앞에서부터 천왕문까지 1.4㎞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이 있다. 길 좌우 양쪽에 최소 100년 이상 되는 전나무들이 하늘을 뒤덮을 듯 높고도 빼곡히 늘어서 있다.
특히 전나무 숲 사이를 뚫고 석양의 햇살이 비춰드는 시간인 오후 6시 즈음 전나무 숲길을 걷게 되면 서늘하게 습기 어려 있는 나무 내음을 맡을 수 있다. 게다가 6시 20분 쯤 월정사에서 아련하게 울려드는 범종 소리가 여름내 쌓인 우울함을 씻겨준다. 길 중간에 700년 넘는 전나무가 넘어져 있는 것조차 볼거리다. 이를 보면 전나무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의 속을 비워간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또한 대관령 야트막한 둔덕마다 자리잡은 목장들에는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모여든다. 대관령 목장에서 동쪽을 쳐다보면 강릉 시내와 동해 바다가 보인다. 고원의 바람은 가을을 짐작케 하는 서늘함을 품고 있다. 양떼목장과 삼양목장, 한일목장 등 7, 8곳이 소와 양떼를 방목하면서 일반인들에게 공개한다. 삼양목장은 매표소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1140m 높이의 최정상 동해전망대까지 10~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재미있는 것은 매표소에서 라면 1개씩을 나눠준다. 라면회사에서 운영하는 목장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다음달 4일부터 14일까지 열리는 효석문화제도 있다.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의 생가터와 이효석문학관이 있고, 소설 속의 무대인 물레방앗간, 충주집 등을 꾸며놓았다. 9월 초 메밀꽃이 피면 ‘굵은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메밀밭을 만끽할 수 있다. 27~29일 박현욱(‘아내가 결혼했다’), 공지영, 백가흠 등 작가들이 독자들과 함께 이효석문학관 등을 순회하는 강원도문학캠프를 연다.
●여행수첩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방향으로 가다가 횡계 나들목으로 빠지는 길이 대관령 목장과 알펜시아 리조트, 용평 리조트 등으로 가는 데 가장 가깝다. 이효석 문학관을 찾으려면 장평 나들목에서 나가야 한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진부 나들목으로 나와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먹을 거리 1박 2일 일정이라면 이렇게 해보자. 도착한 날 저녁에는 해발 700m 고지대에서 키워진 대관령 한우를 먹어 보자. 한우라 싸지는 않지만 200g에 2만원 정도니 한 번 먹어봄 직하다. 술도 한 잔 곁들여도 좋을 것이다. 횡계나들목 나오자마자 평창영월정선축산업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대관령한우타운(033-332-0001)이 있다. 다음날 아침에는 용평스키장 입구에 있는 황태회관(033-335-5795)에서 황태국, 황태구이가 준비돼 있다. 황태로 유명한 평창에서도 가장 유명한 황태 식당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이효석문학관과 함께 메밀밭이 널찍하게 펼쳐져 있는 봉평면에 들러 메밀국수 한 그릇 시원하게 먹으면 1박 2일 평창 여행길은 음식 나들이로도 손색없는 일정이 된다. 당일치기 일정이라면 대관령한우와 황태만이라도 먹어줘야 한다.
글ㆍ사진 평창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