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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다 LPGA타일랜드] 청야니 독주 누가 막으랴

    한국 여자 골프군단도 세계랭킹 1위 청야니(22·타이완)의 상승세를 꺾지 못했다. 청야니는 20일 태국 촌부리의 시암 골프장(파72·6477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개막전 혼다 LPGA타일랜드에서 최종합계 15언더파 273타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2개 대회를 포함해 LPGA 투어 개막전까지 우승하면서 청야니는 올 시즌 여자골프의 최강자로 급부상했다. 2008년 데뷔 뒤 통산 6승을 거둔 청야니는 상금 21만 7500달러를 가져가며 세계랭킹 1위 자리도 굳건히 지켰다. 2위는 5타 뒤진 미셸 위(22·나이키골프)가 차지했다. 청야니와 챔피언조에서 동반플레이를 펼치며 견제했지만 퍼트가 마음먹은 대로 홀에 떨어지지 않아 10언더파 278타에 머물렀다. 1라운드 단독 선두였던 김인경(23·하나금융)은 16번홀까지 2타 차로 따라붙으며 청야니의 독주를 저지하려 했지만 17번홀(파4)에서 어이없는 어프로치샷 실수로 한꺼번에 5타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카리 웹(호주)과 함께 공동 3위(9언더파 279타)로 내려앉았다.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되찾기 위해 별렀던 신지애(23·미래에셋)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박세리, 한희원과 함께 공동 35위(5오버파 293타)에 머물렀다. 지난해 LPGA 상금왕 최나연(24·SK텔레콤)은 공동 15위(이븐파 288타)에 그쳤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산발적 지원보다 스타 디자이너 키워야”

    “산발적 지원보다 스타 디자이너 키워야”

    “미국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 재학생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잠재력이 큰 한국 디자이너가 많은데 아직 세계적인 디자이너 브랜드가 없다는 게 속상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8일 서울 수송동 제일모직 본사에서 ‘한국 패션의 새로운 방향 모색’을 주제로 연 정책간담회에서 이서현(38) 제일모직 부사장은 정부의 지원이 산발적이라고 지적했다.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한 이서현 부사장은 지난해 초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 이사가 됐으며, ‘콘셉트 코리아’ 첫 행사부터 빠짐 없이 참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2월 ‘콘셉트 코리아Ⅰ’ 개최와 함께 론칭한 제일모직의 디자이너 브랜드 ‘구호’(KUHO)는 뉴욕에서 패션쇼를 열고, 뉴욕 패션위크에서 이름을 알렸다. 제일모직 정구호 전무가 디자인하는 ‘헥사 바이 구호’는 이번 뉴욕 패션위크에서 ‘빙의’를 주제로 새로운 개념의 패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 부사장을 비롯해 백덕현 Fnc 코오롱 사장, 박성경 이랜드 대표, 민복기 EXR코리아 대표, 패션 디자이너 이영희·안윤정·이상봉·박춘무·장광효씨 등 한국 패션을 대표하는 얼굴들이 대거 참석했다. 주제 발표에 나선 이윤경 문화관광연구원 박사는 “패션 분야에서도 김연아나 박세리처럼 세계적 스타가 나와야 한국의 패션과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다.”고 제안했다. 문화부는 국내 디자이너의 해외 진출을 늘리기 위해 오는 15일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현지에서 열리는 한국 패션쇼 ‘콘셉트 코리아Ⅲ’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뉴욕 패션위크의 ‘콘셉트 코리아Ⅲ’에는 도호, 이상봉, 스티브 J & 요니 P, 최범석 등 4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해 한국 전통 청자의 색감인 쪽빛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이광재 강원지사 대법 판결전 본지 격정토로 “면직 슬픈게 아니라 현실이 눈물난다”

    이광재 강원지사 대법 판결전 본지 격정토로 “면직 슬픈게 아니라 현실이 눈물난다”

    <원고지 89장 분량 인터뷰 전문 수록> 이광재 강원도지사는 대법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확정 판결로 지사직을 잃은 27일 강원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판 절차와 결과에 실망스럽다.”면서 “지사직을 잃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현실이 가슴 아프고, 도민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판결 바로 전날인 26일 서울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이 지사는 인터뷰에서 대법원 판결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 정치 현안, 2012년 대통령 선거 등에 대해 견해를 밝혔다. 이 지사는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자제해 왔으며, 지난해 6월 강원도지사에 당선된 뒤에도 도정과 관련한 인터뷰만 해 왔다. 정치 현안 전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견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인터뷰는 서교동에 자리잡은 강원도 서울사무소 5층 회의실에서 이도운 정치부장과의 대담으로 오전 11시부터 1시간 40분동안 이어졌다. ●대법 상고심 결과 →대법원 판결이 이 지사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한다고 보나. -지금까지도 백척간두 위에서 한 걸음 더 내딛는 심정으로 살아왔다. 다 잘될 거라 본다. 불교 경전에 나오듯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이 상황을 더 잘 극복할 거라 생각한다. →‘정치적 탄압’이라고 말하고 싶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상처내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한 세상 살다 가면서 선한 생각만 가져도 세상을 구제하지 못하는데 남을 해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됐을 때 수많은 제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이런 저런 정보들이 많았지만 사람을 해할 수 있는 건 하지 말자고 했다.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갖지 못하게 된다. 정치인 이광재의 미래는 어떻게 되나. -항상 새로운 미래에 도전했고 시련도 많았지만 좋은 일도 많았다. 내 운명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항상 웃는 그런 나를 보고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라고 얘기하는데, 나중엔 내 말이 맞았다. →이번 판결을 맡은 박시환·신영철·안대희 대법관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나. -없다. →박시환 대법관을 만난 적이 있나. -없다. 기본적으로 의회·행정·사법 등 삼권이 분리돼 있고 내 처지로 볼 때 공정하게 가는 게 맞다고 본다. →엄기영 전 MBC 사장이 강원도지사 직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 사장이 당선될 것으로 보나. -내가 알 수가 있나. 어쨌든 엄 사장한테 내가 인간적으로, 정치적으로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가야 될 것 같다. 그런데 그 분이 나에게는 정치를 안 한다고 했는데. 언론인의 길을 가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다.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는 성공했다고 보나 실패했다고 보나. -절반의 성공이 있었고, 절반의 실패가 있었다. →성공했다고 보는 것은 어떤 부분인가. -깨끗한 정치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또 서민 대통령이었고, 권위주의를 타파했고, 지역균형발전도 이뤘다.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자기 지지자와 싸울 수 있는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다. 지지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대추리 문제를 극복하고, 수십년간 적체됐던 방폐장과 천성산 터널 문제도 해결했다. →실패한 절반은 무엇인가. -당시 우리가 갖고 있던 세력에 비해 너무 큰 어젠다를 가졌고, 그러다 보니 너무 큰 상처가 났다. 예를 들어 행정중심복합도시만 해도 세번의 선거 동안 내건 공약이었는데도 헌법재판소까지 갔다가 뒤집혀 다시 국회로 왔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실제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작다. 국가의 5% 정도밖에는 바꿀 수 없다고 본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적통을 잇는 정치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아… 그런 사람이 또 있을까. 노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고, 또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이다. 제3의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은 진화해야 한다고 본다. →참여정부의 정부 조직시스템을 현 정부가 많이 바꿨다. 무엇이 잘됐고, 무엇이 잘못됐나. -현 정권 들어 항상 인사 문제가 불거지고, 위기관리에서도 허점을 드러냈다. 그러다 홍보수석, 인사수석, 위기관리 시스템도 다 복구했다. 기존 것을 인정하고 잘할 수 있는 것에 매달려서 임기를 마치는 게 올바른 태도라고 본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가장 큰 이유가 뭘까. -내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와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인간의 얼굴을 한 대통령, 봉사하는 태도,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그게 가장 좋았다.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잘 이해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기 원고를 스스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그런 사람이었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투쟁’하는 정치인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싸움은 무엇이었다고 보나. -언론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참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언론과 부인과 성직자와는 싸우지 말라고…,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어려워지니 열린우리당 사람들도 다 돌아섰다. 그때 심정이 어땠나. -노 대통령은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했다. 변호사로 기득권층에 진입했지만 사건을 맡기 어려워 직접 찾아가는 인권변호사가 됐고, 호남 가면 영남 사람, 영남 가면 배신자라고 했다. 항상 빈 들에 서 있는 노무현을 봤다. (믿었던 사람들이 돌아선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노 대통령을 비판하다가 서거하고 나서 국민적인 열기가 있으니까 또다시… 정치가 좀 담백했으면 좋겠다. →참여정부에 많은 386세대들이 참여했다. 그 당시 386들은 국가를 경영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보나. -노 대통령 정부가 아마추어 정권이라 폄하하기 위해 그런 말들을 만들어낸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도 50대 중반이었고 386이라 해 봐야 전체 수석비서관 중에 나와 천호선 둘 정도였다. 1958년 개띠가 12명이나 됐다. 그렇게 따지면 김종필 총재도 30대에 정권의 2인자가 아니었나. 미국 대통령 나이가 평균 53.1세다. 미국 역사의 전환기 당시 대통령은 루스벨트, 케네디, 클린턴이 있었는데 모두 40대 초반이었다. 내적 역량이 강한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것이다. →386 정치인들에게 여전히 공통된 지향점이 남아 있나. -세대의 에너지라는 것이 있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주창한 40대 기수론이 먹혔던 이유가 뭔가. 그 세대들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때 8·15와 6·25를 겪었다. 그러니 생명력이 얼마나 강하겠나. 386세대도 마찬가지다. 데모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 80년대에 광주가 얼마나 가슴 아팠나. 척박한 현실에서 몸으로 앞서 나가고 마음으로 동조한 세대가 386이다. 목숨을 걸고 한 시대를 타개하려 했던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안희정, 유시민, 김두관, 문재인 →김두관 경남지사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지분 가운데 60%는 노 대통령이, 나머지 40%는 안희정·이광재 지사가 반반씩 갖고 있다고 했다. 동의하나. -과분한 말이다. 나는 오히려 빚을 많이 갚아야 할 처지에 있는데 지분이 어디 있겠나. →참여정부의 부채를 떠맡기 싫어서 지분을 안 가지려는 건 아닌가. -의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사랑했기에 대통령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386세대에 미안한 것은 나를 많이 사랑했던 분들에게 내가 모자란 점이 많다는 것이다. 갚아야 한다. →이 지사와 안 지사, 김 지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문재인 전 비서실장 중에서 노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제일 좋아했던 사람은 누구였나. -문재인 실장이다. 그러니까 민정수석도 시키고, 비서실장도 시켰지.(웃음) →문 실장이 언젠가 정치를 할 거라고 보나. -(30초 넘게 고심을 하다가) 잘 모르겠지만, 문재인 실장이 손학규 대표와 대통령 후보 경선을 했으면 좋겠다. 물론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도 함께했으면 좋겠지.(웃음) →유시민 전 장관은 참여정부의 지분이 없나. -그렇지 않다. 노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분이다. 다만 지금은 민주당이 아니니까. →다섯분 가운데 정치 지도자로서의 재능이나 역량은 누가 가장 낫나고 보나. -여태까지는 노 대통령의 그늘 속에 있었고, 이제 처음으로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시험대 위에 오른 거다. 중요한 건 본인의 비전과 경영능력이다. 지금은 평가를 하기에는 이른 시기다. →안희정 지사와는 협력 관계인가, 경쟁 관계인가. -안 지사나 김 지사나 나나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모든 걸 다 걸고 전력투구해야 할 시기 아닌가. ●정치현안과 2012년 대선 →개헌 얘기가 계속 나온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개헌은 해야 하지만, 시점을 놓쳐 버렸다. 이미 권력 후반기가 아닌가. 어떤 개헌이 필요한 가는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 →개헌 이슈가 한동안 갈 것으로 보나. -한나라당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 60년대생 정치인, 시·도 지사들과 여야를 떠나 대한민국의 문제에 천착하는 모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 내년은 세계사적으로, 특히 동북아 지역의 명운을 가르는 해다. 남북 정세 변화와 에너지·자원 문제를 둘러싼 극동의 관리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향후 10~20년을 좌우할 것이다. 이 문제에 정치권 전체가 몰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지금 개헌 문제로 지지고 볶아서야 되겠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를 웃돈다. 이 지사는 몇점을 주겠나. -이미 대통령인데, 지지율이 70%면 어떻고 30%면 어떤가.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또 서민경제가 어렵다. 이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까지 이 두 가지 문제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이 지사 본인에게는 몇점을 주고 싶나. -나는 지사 업무 수행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한 50점쯤 주겠다. 강원도에서 나의 지지율도 그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 중에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 -포용과 통합이다. 국민통합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고 생존의 전략이다. →2012년 대선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무엇일까. -일자리, 교육, 복지라고 본다. 또 동북아 평화와 물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박근혜 대세론’이 강하다. 야당이 박 전 대표를 넘기 어렵다고 보나. -박 전 대표는 지난 2007년 경선 패배를 깨끗하게 승복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순간 이미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앞으로 대통령의 비즈니스 역할이 커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영국에서 공부도 했고, 도지사·장관도 했고, 비교적 안정감 있고 예측가능한 후보라 생각한다. 박 전 대표와 손 대표가, 문재인 실장도 경선에 나설지 모르겠지만, 멋진 승부를 벌이지 않을까 싶다. →박 전 대표는 무리 없이 한나라당 후보가 될 거라 보나. -한나라당에서는 박 전 대표가 되는 게 순리가 아닐까 싶다. 예측가능한 정치를 해야 한다. →현재 박 전 대표와 1대1로 붙을 때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는 누구라고 보나. -그걸 말할 수 있나. 나도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지지율 23%포인트까지 뒤졌다가 13%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결국 말을 많이 듣는 사람, 애정을 가진 사람이 승리자가 된다고 본다. ●정치인 이광재 →이념적으로 진보인가, 보수인가. -나는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고 진화를 선택했다. 오류를 빨리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는 게 진정한 진화다. →정치권이 좌파와 우파로 나뉘었는데, 이데올로기가 없으면 정치 기반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경제만 봐도 신자유주의부터 소련체제, 복지국가 모델이 정부 발전을 이끌고 왔는데 어떻게 어느 하나가 옳을 수 있나. 공존하려는 통합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정치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황당한 얘기다.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할 때 각 부처 최고의 엘리트들과 일한 경험이 있다. 공무원들은 유능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있다. 그런데 처음에 무슨 얘기하면 안 된다고 한다. 다시 한번 취지를 잘 설명하면 반드시 답을 찾아온다. →불교신자다. 본인의 종교가 정치 활동에 영향을 미치나. -로마의 멸망 원인 중 하나가 종교 탄압이다. 인도와 무굴제국이 가장 왕성한 때는 종교를 모두 허용했을 때다. →참여정부 때 실세여서 강원도에 예산을 많이 주도록 했다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많이 따려고 노력했다. 다만 나는 예산 딸 때 사무관, 과장부터 일일이 다 설득한다. 정치적으로 결정하면 그때뿐이다. 정권이 바뀌면 가위표가 된다. 생명력과 일관성 있게 정책을 유지하려면 주무 사무관과 과장의 확신을 얻어내야 한다. →강원도분들이 보수적인데 왜 작년에 민주당 후보인 이 지사를 선택했다고 보나. -첫째, 강원도를 위해 일을 잘할 것 같다는 것. 둘째,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해봐서 국가도 좀 알고, 국회의원도 두번 해서 국회도 안다는 점. 셋째, 그래서 도지사 시켜 일하게 한 다음 강원도를 대표하는 인물로 키워야겠다는 거 아니겠나. →강원도지사 선거 때 공언한 대로 10년 후 대통령 선거에 나올 건가. -난 정말 강원도민에게 큰 신세를 졌다. 강원도지사로 최선을 다해서 성과를 내고 싶다.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성공해서 나중에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에 나와 멋있게 경쟁하고, 멋있게 후보 단일화하고, 그것도 멋진 일이다. 대담 이도운 정치부장 정리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이광재 격정토로 인터뷰 전문 (200자 원고지 89장) 이광재 강원지사가 27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지사직을 잃었다. 2년만에 막을 내린 박연차 게이트의 종착역에서 끝내 내리지 못한 채 “선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도민들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 인터뷰는 선고 전날 진행됐다. 이 지사는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우여곡절 많았던 취임 이후의 소회와 정치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 2012년 대선 등 정치 전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인터뷰는 이도운 정치부장과 대담 형식으로 서울 서교동 강원도민회관 4층 회의실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강원지사 강원지사가 중앙 정치권에서 크게 주목받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 지사가 당선되고 나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가. -강원도는 대륙 국가로 가는 전진기지다. 올해 23개국을 다룬 ‘세계 흥망사’라는 책을 내려고 한다. 2025년이 되면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결국 한반도 평화체제와 남북을 관통하는 철도 문제, 중국·러시아의 자원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때 신성장 동력이 나온다. 서울 중심의 서쪽으로 기울어진 배가 동쪽으로 균형을 잡는 극동아시아 시대가 온다. 지금은 강원도의 역사가 부상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국가 및 강원도의 발전 전략이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서 흔한 말로 ‘호남은 푸대접, 강원도는 무대접’이라고 한다. 현 정권의 내각과 청와대 수석에 강원도 출신 없다. 도민들이 지역 차별을 느끼나.  -있는 것 같다. 참여정부만 해도 강원도 출신 장·차관들이 많았는데 현 정권에는 아무도 없어 안타까움이 많은 것 같다. 1년에 9000만여명이 강원도에 온다. 우리가 더 잘하면 그 분들이 강원도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대법원 상고심 27일 대법원 판결이 이 지사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한다고 보나.  -잘 될거라 본다. 기본적으로 불교 경전에 나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이 상황을 더 잘 극복할 거라 생각한다. 증거가 없고 , 궁박한 처지에 있는 한 사람 말에 따라 유·무죄 결정이 났는데 이미 그중에서도 절반 정도가 무죄가 난 상황이다. 여당 의원들은 무죄가 났고, 나는 절반의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났다. 더 결정적으로는 재판정에 박연차 씨가 나와 진술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재판장이 불러주지 않은 것도 문제다. 더군다나 한 차례가 아니고, 대여섯 차례에 걸쳐 돈을 10억원 넘게 거절한 건 내가 유일한 사람이다. 잘 될 거라 본다.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수용할 건가.  -백척간두 위에서 항상 진일보하는 인생을 살아왔고 잘 될 거라 본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털고 지사직에 전념할 건가, 아니면 ‘정치적 탄압’이라는 부분을 짚고 넘어갈 건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불리한 상황이 극복되기를 희망한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상처내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한 세상 살다가는 건데 내가 선한 생각만 갖고 살아도 세상을 구제 못하는데 남을 해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됐을 때 수많은 제보가 쏟아졌다. 이런 저런 정보들이 많았지만 사람을 해할 수 있는 건 하지 말자고 했다. 유죄가 확정되면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갖지 못한다. 정치인 이광재의 미래는.  -정치인 이광재까지는 모르겠지만 잘 풀릴 거라 본다. 항상 새로운 미래에 도전했고 항상 시련도 많았지만 좋은 일도 많았다. 내 운명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항상 웃는 그런 날 보고 근거없는 낙관주의자라고 얘기하는데, 나중엔 내 말이 맞았다. (유죄 파기환송될 경우) 시한부 임기인데 도정의 안정성을 해치는 건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무죄를 확신한다. 취임 이후 직무가 정지되는 어려운 와중에서도 짧은 기간 동안 빠른 속도로 도정이 안정됐고 변화됐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도정 업무는 훨씬 더 강화되고 추진 속도가 붙을 거라고 본다. 언론에서 박시환 대법관과 이 지사의 관계를 부각시키는데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나.  -모르겠다. 박시환·신영철·안대희 대법관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 박시환 대법관과 만난 적은.  -없다. 기본적으로 의회·행정·사법 등 삼권이 분리돼 있고 내 처지로 볼 때 공정하게 가는 게 맞다고 본다.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열심히 지역을 돌고 있다는데 어떤가. 엄 사장이 당선가능성 있나.  -내가 알 수가 있나. 어쨌든 엄 사장한테 내가 인간적으로, 정치적으로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가야될 것 같다. 그런데 그 분이 나에게는 정치를 안 한다고 했는데. 언론인의 길을 가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구제역 판결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영향을 주게 되나. 아니면 동계올림픽 유치가 판결에 영향을 줄까.  -그건 모르겠다. 오는 7월 6일에 평창 동계올림픽이 유치돼야 한다. 연평도 사건도 그렇고 서민들의 생계도 어려워 국민들이 힘 빠져 있다. IMF 구제금융 당시 박세리 선수가 우승해 희망을 줬는데 이번에 평창이 희망을 줄 필요가 있다. 강원도는 이미 두 번이나 울었다. 이번에는 강원도 ‘감자바우’들이 하는 일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써야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지 않을까. 꼭 될 거라고 본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유치활동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줬나.  -IOC위원회에서 워낙 평이 좋으시고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IOC내 존경받는 분이고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구제역 발생으로 고심이 많은데 강원도 민심은 어떤가.  -구제역 현장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건 이제 우리나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야 할 단계에 왔다는 거다. 첫째, 앞으로 질병이 위기관리 시스템 차원에서 관리될 필요가 있다. 둘째, 아직 구제역 연구소조차 없다. 미국은 케네디대통령이 1961년에 만들었는데 우리는 백신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영국에 연락해서 공급받고 백신 자체도 모자란다. 구제역 연구소를 국가 차원에서 만들 필요가 있고 전반적인 정비를 해야 한다. 셋째, 가축을 키울 때 근본적인 전환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오스트리아에 가보니 동물을 일정 기간 이상 가둬서 키우지 않았다. 초지에서 방목하고, 불가피하게 가둬놓고 키우면 철저히 관리한다.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구제역을 막는 것과 시장을 활성화 시켜 농민에게 도움을 주는 건 다른 문제다. 강원도는 빨리 출하할 수 있도록 조치를 했다. 다들 재래시장에 못 나와 물건을 못 파니까 어렵다. 어차피 제수 상품을 사야 하니까 도청 공무원 월급의 일정액을 떼서 대대적인 상품권 구매운동을 벌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직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다. 새끼가 젖을 물면 1분 이내에 쓰러지는데 오랫동안 버티다 쓰러지는 소를 보며 또 한번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했다. 이제는 한 단계 도약할 때가 왔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 사건이었다. ●참여정부와 고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는 성공했다고 보나 실패했다고 보나.  -절반의 성공이 있었고, 절반의 실패가 있었다. 절반의 성공은.  -깨끗한 정치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서민 대통령이었고 권위주의 타파했고, 지역균형발전도 이뤘다.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자기 지지자와 싸울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문제에 대한 대응을 아주 높게 평가한다. 용산 미군기지를 이전시키면서 대추리 문제를 극복하고 수십년간 적체됐던 방폐장 문제도 박수 받고 해결했다. 천성산 터널 문제도 해결됐다. 모든 것은 자기 지지자들과 했던 싸움이다. 자기 지지자와 싸우지 않고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나. 진보라고 진보의 정책을 다 쓸 수 없고, 보수라고 보수의 정책을 다 쓸 수 없다. 대통령은 중간을 가게 돼 있다. 내가 청와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방폐장 문제 다음 정권에 넘기자, 약체 정권인데 지지자들과 싸워서 별로 얻을 게 없다’라고 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이 ‘그럴 바에 왜 대통령을 하나. 내가 있을 때 어려운 문제를 하나씩 돌파해야 나라가 진전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기 지지자와 싸우는 것, 이것이 가장 의미있다고 본다. 절반의 실패는 무엇인가.  -우리가 갖고 있던 세력에 비해 너무 큰 어젠다를 가졌고, 또 너무 상처가 났다. 행정중심 복합도시만 해도 세번의 선거 동안 내건 공약이었는데도 헌법재판소까지 갔다가 뒤집혀 다시 이번 국회로 오게 됐다. 노 대통령은 정치가보다 사상가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자신의 힘에 비해 너무 거대한 어젠다를 세웠다.하지만 행복도시를 통해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거대한 화두의 일부를 내보였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평가는 반반이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적통을 잇는 정치인은.  -아, 그런 사람 또 있을까. 노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고, 또 다른 사람은 또다른 사람이다. 노 대통령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적통이라기 보다 제 3의 무엇이 있지 않을까. 결국 진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참여정부가 만들었던 청와대와 정부 조직시스템을 현 정부가 많이 바꿨다. 잘했거나, 잘못했다고 생각한 부분은.  -참여정부가 했던 시스템을 현 정부가 다 반대하다가 다시 돌아갔다. 홍보수석 폐지했다가 다시 만들고, 인사수석·위기관리 시스템도 다 복구했다. 존재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 존재한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다. 노 대통령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공직자와 수많은 논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그렇기에 그런 시스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권 들어 항상 인사 문제가 불거지고, 위기관리 체제에서도 허점을 드러냈다. 그런 문제 볼 때마다 아쉬움이 있다.  나도 전임 도지사를 절대 비판하지 않고 다 안고 있다. 차차 점진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인사는 보수적으로 하고 일은 혁신적으로 한다. 책을 쓰면서 23개국을 연구해 보니 몇 가지 공통점은 제조업이 강하고 기술이 강해야 나라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과 정보통신부가 없어지는 걸 보며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결국 다시 되돌아가고 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나라는 무한하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앨빈 토플러가 ‘미국 대통령 되면 미국을 얼마나 변화시킬까. 5% 정도다’라고 말했다. 실제 많은 걸 못 바꾼다. 오히려 기존 것을 인정하고 내가 아주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에 매달려서 임기를 마치는 게 올바른 태도다. 노 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어떤 이유라고 보나.  -요즘 주말이면 봉하마을에 1만명이 온다고 한다. 놀랍다.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얼굴을 한 대통령,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 서민 대통령. 내가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그 때 노 대통령은 어쨌든 법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법을 배워야 한다, 리걸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면서 아침 7시에 불러 헌법 공부를 시켰다. 집이 인천이라 국회 근처에 방을 잡고 밤새며 일을 했다. 청문회에서 대단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노 대통령의 연설이나 글은 굉장히 쉽다. 어디서 이렇게 보통 사람이 살아가는 언어를 배웠냐고 물었다. 노 대통령은 ‘변호사들이 판·검사를 접대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걸 하지 말자고 했다. 그 뒤 사건이 안 들어와서 직접 상담을 했다’고 말했다. 상담을 하다 보니 ‘인생이 말야, 남녀가 모든 걸 버리며 사랑하다가도 막상 헤어지고 나면 1만원짜리 하나 갖고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 듣고 확 와닿는 느낌이 있었다. 처음 대정부 질의 원고가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자기 원고를 스스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들으면서 이 사람은 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면 대통령을 만들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 갖고 있다가 1992년 김대중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하면서 호남 사람들 이 의원회관실로 울며 전화하더니 애를 더 낳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내가 영남 사람이지만 이렇게 나라가 분열되면 안 된다’고 했다. 내가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걸 말씀드렸고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 나가자고 하니 나가도 되겠냐고 되물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을 치르면서 최고위원 선거 준비했고 대선 나간다고 계획 세웠다. 1993년 12월 결혼하고 신혼여행 가서 완전히 생각을 굳혔다. 갔다 와서 안희정 씨를 만나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총선에서 낙선한 처지라 현역 국회의원 대상으로 계보 만들기가 어려우니 지방자치 실무연구소를 만들고 싱크탱크를 만들자고 했다.  노 대통령에게 가장 감동을 받은 건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인이고 권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봉사하는 태도,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그게 가장 좋았다. 노 대통령은 계속 투쟁하는 정치인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싸움은.  -아마 언론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참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런 농담이 있다. 언론과 부인과 성직자와는 싸우지 말라는. 양면성이 있다. 분노는 사랑에서 나온다. 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노동자와 서민을 변호하는 활동을 많이 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노동자와 서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냐고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랬더니 노 대통령이 ‘나도 대한민국 사법고시에서 50명 뽑을 때 된 사람이다. 판사도 됐고 기득권 세력이다. 그러나 국회라는 게 뭐냐, 나같은 사람이 나서서 노동자들의 편을 들어줘야 균형을 잡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뭐 쉬운 길을 가냐. 나는 뭐 좋냐. 내가 무슨 바보냐’고 했다. 항상 유대인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처음에 공산주의자 나치가 공산주의자 선언할 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가만 있었다, 그러나 나치가 나를 체포하러 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는 말을 강연에서 많이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정세분석 하지 말라고 했다. 참모들은 참아야 기회가 온다고 조언하는데 ‘내가 왜 도구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 하냐’고 따졌다. 이러면 참모들은 힘들다. 1995년 부산시장 선거, 15대 총선 종로에서 떨어지고 정말 막막했다. 두 번 떨어지고 나서 내가 노 대통령에게 종로로 가자고 말했다. 여론조사를 해보니 이명박·이종찬 후보에게 다 지는 걸로 나왔다. 그러나 이기고 지는 게 전부는 아니지 않나, 대한민국 정치 1번지에서 의미있는 전사를 해도 정치인은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랬다. 천신만고 끝에 현역이 됐다. 그 뒤에 부산에 가겠다는 거다. 왜 거기로 가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사람은 무엇이 되는 걸 생각하는데 도구가 된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사람을 사랑한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 분이 계속 어려우니까 떠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좋을 때 떠나지, 어려울 때 못 떠난다. 계속 같이 있다 보니 내가 세속적인 출세를 한 거다. 내가 큰 역량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터뷰하러 오면서 택시 기사가 하는 말이 ‘노 대통령이 어려워지니 사람들이 다 돌아서더라. 열린우리당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 때 심정이 어땠나.  -노 대통령은 스스로 ‘경계인’이라고 했다. 변호사로서 대한민국 기득권에 진입했지만 인권변호사가 됐고, 경상도 사람으로 민주당에 소속돼 호남 가면 영남 사람, 영남 가면 배신자라고 했다. 이런 얘기할 때 가슴 아팠다. 항상 빈 들에 서 있는 노무현을 봤다. 제일 중요한 게 의리라고 생각한다. (믿었던 사람들이 돌아서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그렇게 노 대통령을 비판하다 서거하고 나서 국민적인 열기가 있으니까. 좀 정치가 담백했으면 좋겠다. ●386과 486 참여정부에 많은 386세대들이 정권에 참여했다. 국가를 장악할 준비가 돼 있었나.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 정부가 아마추어 정권이라 폄하하기 위해 그런 말을 만들어낸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도 50대 중반이었고 386이라 해봐야 전체 비서관 중에 나와 천호선 비서관 둘 빼면 58년 개띠가 12명이나 됐다. 이 사람들이 주력 부대였다. 수석이 대체로 50대 중반, 노 대통령과 같거나 조금 많거나 적었다.  또 김종필 총재가 30대에 공화당 의장하지 않았나. 미국 대통령 나이가 평균 53.1세다. 미국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세 번 오는데 공황기, 동서 냉전기, 신자유주의 물결이 들어서기 직전이다. 한번은 루즈벨트, 한번은 케네디, 한번은 클린턴이 있었는데 모두 40대 초반의 대통령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준비가 돼 있느냐, 내적 역량이 강한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정리하자면 너무 과하게 폄하하려 하는 의도 속에서 본질에 맞지 않는 비난이 있었고, 나이만으로 모든 걸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 신구 조화가 필요하다. 당시 나쁜 배합 아니었다. 386 정치인들은 현재 공통된 지향점이 있나.  -세대 에너지가 있다고 본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주창한 40대 기수론이 먹혔던 것은 그 당시 세대들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때 8·15와 6·25 전쟁을 치렀다. 석회석과 다이아몬드는 성분이 똑같다. 그런데 어떤 압축과 고열과정 겪느냐에 따라 석회석이 되기도 하고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 6·25 전쟁과 8·15 해방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하겠나. 그 에너지가 있었기에 40대 기수론이 가능했고 살아가는 힘이 있었기에 전쟁의 잿더미에서 살아보자는 열망이 가능했다. 박정희라는 지도자도 있었지만 그 때문에 경제 발전도 가능했다.  데모를 하고 안하고를 떠나 80년대 광주가 얼마나 가슴 아팠나. 데모를 하든 안 하든 척박한 현실에 몸으로 앞서 나간 사람, 마음으로 동조한 세대가 386이다. 수백만이다. 학생운동 한 사람은 극히 소수다. 386으로 폄하될 일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한 시대를 타개해 나가려 했던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중에 학생 운동 한 사람들은 소수였다. 당시 70만명씩 대학갈 때다. 80년대 학번부터 87년까지 보면 490만명의 대졸자를 갖고 있다. 취직을 많이 못해서 문화운동을 이끈 사람들도 이 주류들이다. 강한 386에너지가 있다. 운동만 한 386이 아니고, 80년대라는 군사독재 시절을 살아간 강력한 에너지가 존재한다. 이제 486이라고 하는데 용어는 어떤가. 386 상징성 때문에 쓰는 게 낫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본다. 세대 에너지를 좀더 얘기하자면 68년도에 유럽의 학생운동을 이끈 6·8세대들이 다 유럽의 대통령이 됐다. 그만큼 세대 에너지가 강하다고 본다. 존중될 필요가 있다. 다만 나처럼 못난 사람이 정치하게 되면서 정치권에 대해 조금 안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는데 부채 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386 세대는 충분히 의미있는 세대다. 40대가 우리 경제의 주류 아닌가. 회사의 과장, 부장으로 일하면서 사회와 경제를 끌고 가는 강력한 세대다. 내가 그 세대가 갖고 있는 에너지 만큼 못한 게 미안하다. 올해 70세 넘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영화제위원장을 강원도 문화예술제전 이사장으로 모셨다. 김 위원장은 1년 반을 해외에 있었다. 20대 청년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세대간 벽을 두기보다 신구 조화를 강력히 꾀해야 할 때다. 중국이란 나라의 역동적 힘은 젊은 사람을 키워주고 권력자들은 전 정권 권력자들과 협력하고 타협하는 데서 나온다. 난 이것이 오늘날 중국의 강력한 동력이라 본다. ●친노세력 김두관 경남지사가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지분 60%은 노 대통령에게, 나머지 40%는 안희정·이광재 지사가 반반 가지고 있다고 했다. 동의하나.  -과분하다. 내가 노 대통령과 가장 오래 있었고, 노 대통령의 가족과 영원히 함께 해야 하는 게 내 숙제다. 참여정부에 빚을 많이 지고 있다. 빚을 많이 갚아야 할 처지에 있는데 지분이 어디 있겠나. 부채를 떠맡기 싫어서 지분을 안 가지려는 건 아닌가.  -사람이 사는데 의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사랑했기에 대통령을 만들어겠다고 생각했고 또 그건 변함없다. 386세대에 미안한 것은 나를 많이 사랑했던 분들에게 내가 모자란 점이 많다는 것이다. 갚아야 한다. 이 지사, 안희정 지사, 김두관 지사, 유시민 전 장관, 문재인 비서실장 중에서노 대통령은 누구를 인간적으로 제일 좋아했나.  -문재인 실장이다. 그러니까 민정수석도 시키고, 비서실장도 시키지(웃음) 문 실장은 언젠가 정치를 할 거라고 보나.  -(한참을 생각하다)잘 모르겠지만 손학규 대표와 문재인 변호사가 잘 경선했으면 좋겠다.(웃음)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도 함께 경선했으면 좋겠다. 김두관 지사 말을 들어보면 유시민 전 장관은 참여정부의 지분 없나.  -그렇지는 않다. 노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특별한 애정 가졌던 분이다. 지금 민주당은 아니니까. 지사 제외하고 나머지 분 중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재능이나 역량은 누가 낫나.  -여태까지는 노 대통령의 그늘 속에 있었고 이제 처음으로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시험대 위에 오른 거다. 중요한 건 본인의 비전과 경영능력에서 시작되는 거다. 지금은 평가를 하기에는 이른 시기라고 본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 5명 가운데 누가 대표 주자로 출마하면 좋을까. 문재인 실장인가.  -손 대표, 문 실장, 정동영 최고위원도 하겠지. 안희정 지사와는 경쟁 관계인가.  -둘다 의미있는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일자리, 교육, 복지 세 가지 영역에 지사직을 걸었다. 안 지사나 김 지사나 나나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를 내야 한다. 정치가는 희망을 파는 상인인데 국민들은 너무 위대하고 똑똑하다.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모든 걸 다 걸고 전력투구해야 할 시기 아닌가. 그래야 정치를 얘기할 수 있다. 난 분명히 그렇게 할 거다. ●정치 현안 개헌 얘기가 계속 나온다. 이 지사의 생각은.  -도 지사가 그런 얘기도 해야 하나(웃음). 개헌은 해야 하지만 노 대통령이 개헌하자고 했을 때 해야 했는데 그게 아쉽다. 노 대통령이 하자고 했던 시기에 했으면 전체 대통령의 임기나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을텐데 시점을 놓쳐버렸다. 이미 권력 후반기다. 국회의원 임기도 얼마 안 남았다. 어떤 개헌 방향이 필요한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준비해야 한다. 지금은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런데도 여당에서 개헌을 계속 추진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다. 개헌 이슈가 한동안 갈 것 같나.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전 보면서 거대한 힘이 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한나라당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 60년대생 시도 지사들과 여야를 떠나 진짜 대한민국 문제에 천착하는 모임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지금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내년은 세계사적으로 명운을 가르는 해다. 북한은 권력 교체기고 우리는 대통령 선거다. 중국 지도자가 바뀐다. 러시아와 미국의 대통령 선거 있다. 아시아 전반에도 남북 문제를 둘러싼 큰 틀의 변화가 오는 시기다. 남북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가 대한민국 명운을 끌고 갈 거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장길도 계획이라는게, 나진선봉으로 바다로 나오는 것이다. 내년 10월되면 푸틴 대통령이 만든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가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다. 얼마 전에는 몽골의 석탄을 한·중·러가 철도를 놔주는 조건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몽골 자원이 동해안으로 나오게 된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캄차카 반도 위로 북극 항로가 100~120일 열린다. 남북 정세 변화와 에너지 자원 문제를 둘러싼 극동의 관리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한국 10~20년을 좌우할 것이다. 이 문제에 정치권 전체가 천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동계올림픽 유치에 전력 투구하고 여야를 떠나 내년 10월 APEC 의제는 단연코 남북의 정세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관리할 거냐, 북한을 경유하는 철도는 어떻게 될 거냐, 몽골·북한의 엄청난 광물 자원 어떻게 가져갈 거냐, 북한 물류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낼 거냐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극동아시아의 변화에 여야를 떠나 모든 정파가 외교에 진력해야 한다. 130년 전 구한말 상황이 온 것이다. 강원도가 여기에 한 축이 있다. 지사직을 걸었다.  무상복지 논란을 얘기를 많이 하는데 복지 하면 무상이다. 그런데 성장 없는 복지가 어디 있고, 복지를 생각하지 않는 성장이 어디 있나. 지금처럼 주택 문제,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2020년 저출산 고령화 상황에서 성장률이 떨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 동안 성장동력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서민들을 어떻게 할 건가를 놓고 머리 맞댈 일이지 지금 개헌으로 지지고 볶아서야 되겠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50%를 웃돈다. 100점 만점에 몇점 정도 주겠나.  -글쎄. 난 통일보단 평화를 원한다.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서민경제 부분에 집중해줬으면 한다. 지금 서민들이 살기 너무 어렵다. 고용없는 성장과 거대한 눈부신 지표는 존재하는데 서민 삶은 거기에 없다. 임기 마지막에 두 가지를 집중해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70%면 어떻고 30%면 어떤가. 어차피 대통령인데. 물론 국민 원성 사면 안 되지만 너무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를 역사와 승부하면서 자기 지지자와 싸우는 게 중요하다.. 평화보다 통일 원하는 거 맞나.  -그럼, 당장의 통일보다는 평화가 중요하다. 자신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지지율 조사하면 어느 정도.  -한 50% 나올 거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 중에 가장 잘못하는 것 하나를 꼽는다면.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이야기에 로마의 번성 요인에 관한 글이 있는데 하나는 포용이다. 로마가 일어났던 건 이민족에 대한 포용, 로마인이 아닌데도 시민권을 주고 외부 사람도 황제가 될 수 있게 했다. 두번째 통합이다. 국민통합이란 건 정치적인 수사가 아니고 생존의 전략이다. 그래야 이 나라가 잘 되고 서민경제가 잘 된다. 내년 10월 APEC 정상회담을 반드시 국가의 전 역량을 모아야 한다. 틀의 변화는 임기 후반기에 있다. ●민주당 전적으로 공감한다. 민주당의 3대 무상 정책에 찬성하나.  -일자리, 교육 문제를 통해 건강한 중산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게 국가 전체적으로 복지다. 이를 어떻게 끌고 갈 거냐의 문제와 또 하나는 진짜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주는가의 문제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  강원도는 이렇게 정했다.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투자, 들어오는 기업에 특혜를 확실히 주겠다는 게 내 주장이다. 상장 회사 3개를 유치했다. 일자리 만드는 부분을 해 나가는 거다. 교육 분야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영어와 중국어를, 강릉 영동지역은 영어와 러시아를 시범학교를 정해 집중할 생각이다. 연세대학교 초·중·고를 원주에 만든다든지 해서 교육 부분을 굉장히 강화하려 한다. 복지 예산은 늘었는데 많은 걸 못한다. 시범사업을 해보는 거다. 시범사업을 해서 내 가설이 맞으면 확대하고 국가 전체적으로도 확대할 수 있다. 2018년 돼야 연금시대 열린다. 2018년에 연금 받을 정도로 연세드신 분은 노후 준비가 안돼 있다. 경로당에 집중하자. 복지의 인프라라고 생각하면 경로당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  소 한마리에 200만원, 키우면 한 달에 1만 5000원을 준다. 100마리를 키우면 150만원인데 이걸 경로당 짓는데 쓰자. 소가 새끼 낳으면 소 한마리 800만~1000만원 하는데 그 돈으로 경로당을 도와줄 수 있다. 3년 지나면 소를 팔고 송아지 한 마리가 생긴다. 증식의 모델을 만드는 거다. 농촌형 복지다. 이걸 시범사업으로 해서 사회적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  부모가 있으면 세액공제를 받는다. 그러지 말고 효도통장을 만들어 부모님에게 일정액을 자식 월급에서 10만원 떼 주자.  노인들 쓰레기 줍는거 말고 유럽처럼 꽃을 가꾸게 하고, 도시형 같은 경우 할아버지들이 도시의 쓰레기, 명함 등을 수거해오면 계산해서 주고 경로당 운영비를 주고 그렇게 해보면 어떨까.  논쟁할 때 서로 존중할 필요있다. 인간이 제도로 만들어낸 게 투표(정치)와 화폐(경제)다. 성장과 불평등은 쌍둥이 자식이다. 경제에서 성장은 미덕이다. 그러나 결과는 불평등이 존재한다. 그걸 해소하려는 게 평등이고, 그게 정치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기에 서로 닮으려고 한다. 이기적, 이타적 유전자가 큰 논란을 일으키는데 성장과 복지라는게 그런 측면이 있다. 지혜를 모아야 한다. 철학적인 답변이다. 손학규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리더십에 만족하나.  -내가 그것까지 얘기할 건 아닌 것 같은데.(웃음) 가급적 일에 몰두하는 편이고 강원도 일에 성과를 내는 게 도리인 것 같다. 여의도와 정치판을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정보도 없다. ●2012년 대선 2012년 대선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도정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일자리, 교육, 복지라고 본다.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동북아의 평화 정세와 물류 문제에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극동아시아가 천연가스 50%를 갖고 있다. 북한도 그렇다. 철길, 뱃길로 어떻게 연결해서 해나갈 건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신성장 동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대선 후보 선호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대세론이 강한데 야당이 박 전 대표를 넘기 어렵다고 보나.  -박 전 대표는 좋은 분이다. 지난 번 경선에서 졌을 때 깨끗하게 승복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할 때 이미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국민 마음 속에 섰다. 앞으로 점점 더 비즈니스 대통령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국민들은 예측가능한 미래와 예측가능한 대통령을 원하고 세계 속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대통령을 원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손학규 대표는 영국에서 공부도 했고 도지사도 했고, 장관도 했고, 비교적 안정감 있고 예측가능한 미래의 좋은 후보라 생각한다. 박 전 대표와 손 대표(문재인 실장도 경선에 나설지 안 나설지 모르겠지만) 두 분의 멋진 승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박 전 대표는 무리없이한나라당 후보가 될 거라 보나.  -박 전 대표가 되는 게 순리가 아닐까 싶다. 박 전 대표와 일 대 일로 붙어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는.  -그걸 말할 수 있나. 하지만 이런 것 같다. 내가 지지도 마이너스 23%였다가 플러스 13%로 이겼다. 박연차 게이트로 찜찜한 게 있으면 국회의원 안 나갔다. 내가 감옥갔을 때 강원도민들이 사랑으로 모든 걸 거는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은 말을 많이 듣는 사람, 애정을 갖고 있는사람이 승리자가 된다고 본다. 거기서 에너지가 나온다. 선거를 예단할 수 없다. 내가 이길 거라고 누가 봤겠나. 노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이 다음 대선에서 공통된 표심을 가질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분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누가 됐든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사람은 이젠 예측가능한 미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 이광재 이념적으로 진보인가, 보수인가.  -나는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고 진화를 선택했다. 난 항상 오류가 있다. 오류를 빨리 극복할 수있는 시스템을 갖는 게 진정한 진화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치판이 온통 좌파 우파니 하는데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으면 정치 기반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경제 발전만 봐도 갈라놓고 싸우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1950년대 소위 소련 체제가 경제발전을 획기적으로 이뤘다. 미국이 과학자 양성을 위해 수월성 학교교육으로 완전히 바꿨다. 70년대 들어 유럽형 복지모델이 얼마나 강력한 성장모델 됐나. 제 3세계 아시아의 용들은 독재국가라는 비판받으면서도 얼마나 성장했나. 미국 경제도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융성했나. 그러나 이제는 서서히 어려움을 겪지 않나. 경제 발전만 봐도 이렇듯 신자유주의부터 소련체제, 복지국가 모델이 경제발전을 이끌고 왔는데 어떻게 이것이 옳다고 하나. 역사가 말하지만 진보 보수 관점이 중요한 게 아니고 공존하려는 통합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경제사 이론을 보더라도 국가의 시장 개입이 진보였는데 한때는 개입하지 않는 게 진보였다가 지금은 또 개입하려고 하지 않나. 위대한 사상가들은 모르겠지만 정치로 얘기하면 진보 보수, 좌파 우파는 황당한 얘기다. 개인적으로 아주 공감한다. 언론관은 노 대통령과 같나.  -극도로 언론 노출을 피해왔다. 내가 노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이었는데 모시는 사람은 자기 일이 없는 거다. 노 대통령 모실 때 문고리 잡고 인의 장막을 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을 소개했지만 내 스스로 인터뷰한 적이 없었다. 청와대에서도 근무했는데 공무원과 사이는 어땠나.  -잘 지내는 편이다. 국정상황실장 할 때 부처 고시 성적 최고였던 분들과 일했다. 공무원들은 유능하고 문제해결 능력이 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처음에 무슨 얘기하면 안 된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취지를 잘 설명하면 반드시 답을 찾아온다. 유능하다. 인사는 보수적으로, 일은 혁신적으로 하는데 사람을 너무 자주 바꾸는 건 옳지 않다. 에너지를 어떻게 끌어 올리느냐가 중요하다. 아침 운동을 과장이랑 걷고, 국장이랑 밥을 먹고, 한 사람씩 알아가고 있다. 조직은 마음으로 일하는 거지 명령으로 일하는 게 아니다. 공무원들에게 나한테 충성하지 말고 강원도민에게 충성하라고 한다. 종교가 불교다. 정치에 영향을 미치나.  -잘 모르겠다. 로마의 멸망 원인 중 하나가 종교 탄압이다. 인도와 무굴제국이 가장 왕성한 때는 다른 종교를 모두 허용했을 때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프란체스카 수도사가 한 말이 너무 와닿는다. 5세기 때 쓴 책인가. ‘수도원의 역사’란 책에서 넌 왜 풀이나 바위와 나무에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왜 인간만 영혼이 있다고 보냐. 나무에도 산에도 생명이 있다는 말이 있다. 칭기스칸 아들은 신이 10가지 손가락을 준 이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다른 종교를 핍박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다. 참여정부 실세라 강원도 예산이 많이 늘었다고 하는데 동의하나.  -그렇다. 많이 따려고 노력했다. 국회 와서 처음한 게 내가 담당하는 산하기관을 전부 돈 것이다. 예산 딸 때 사무관, 과장부터 일일이 다 설득한다. 그래서 예산을 따는 거다. 물론 힘이 든다. 담당 사무관이 제일 중요하다. 수백대 일의 경쟁력을 뚫은 공직자를 설득해야 생명력을 갖고 일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결정하면 정권이 바뀌면 가위표가 된다. 생명력 있게 일관성 갖고 정책을 유지하려면 주무 사무관과 과장의 확신을 얻어내야 한다. 강원도가 보수적인데 왜 이 지사를 유권자들이 선택했다고 보나.  -강원도를 위해 일을 잘할 것 같다는 것과 또 하나는 청와대의 국정상황실장을 해봐서 국가도 좀 알고 국회의원도 두번 해서 국회도 알고 그래서 도지사 시켜 강원도를 위해 일 시킨 다음에 강원도를 대표하는 인물을 키워야겠다는 거 아니겠나. 내가 선거 때 마지막 연설에서 ‘청와대 국정경험, 국회의원 경험 살려서 10년이 지나면 대통령에 나가겠다’고 한 연설이 시청률 20%까지 올라갔다. 10분짜리 연설인데 나도 놀랐다. 인구는 적은데 적이 없는 데가 강원도다. 이광재를 키워 대통령까지 가보자는 열망이 컸던 거 같다. 10년 후 대통령 나올 건가.  -도 지사를 잘해야 한다. 난 정말 강원도민에게 큰 신세를 졌다. 강원도지사로 최선을 다해서 성과를 내고 싶다. 그것 외에는 뭐. 대통령을 옆에서 많이 봤고 그 자리가 얼마나 외로운 자리인지 안다. 자리를 탐할 일은 아니다. 지금은 강원도 일에 욕심을 내겠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도지사 선거 때 이광재 지사가 정말 연설을 잘하더라고 하더라. 얼마 전에도 차기 대선에서 이광재는 왜 안 되고 김두관은 왜 안되겠느냐고 하더라. 10년 약속이 5년으로 당겨질 수도 있나.  -나는 산에서 잘 잔다. 산에서 자면 바람소리가 들린다. 바람도 다 자기 가는 길이 있다. 큰 배가 가는 바다에도 길이 있다. 넓은 창공 같지만 두루미도 가는 길이 있다. 너무 삶에 애달복달 말고 주어진 일에 하루하루 살면서 그 길을 가는 거다. 내가 너무 노 대통령과 어렸을 적부터 큰 일을 하다보니 세상 사는 게 담담해졌다고나 할까. 만약 이 지사가 대통령이 되면 노 대통령 같은 사람 될까.  -왜 그러나. 강원도를 위해 일해야 한다.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성공해서 나중에 대통령 선거 나와서 멋있게 경쟁하고, 멋있게 후보 단일화하고, 그것도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지사 일을 잘해야 한다.  정리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이광재 격정토로 인터뷰

    이광재 격정토로 인터뷰

    이광재 강원지사가 27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지사직을 잃었다. 2년만에 막을 내린 박연차 게이트의 종착역에서 끝내 내리지 못한 채 “선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도민들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 인터뷰는 선고 전날 진행됐다. 이 지사는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우여곡절 많았던 취임 이후의 소회와 정치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 2012년 대선 등 정치 전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인터뷰는 이도운 정치부장과 대담 형식으로 서울 서교동 강원도민회관 4층 회의실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강원지사 강원지사가 중앙 정치권에서 크게 주목받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 지사가 당선되고 나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가.  -강원도는 대륙 국가로 가는 전진기지다. 올해 23개국을 다룬 ‘세계 흥망사’라는 책을 내려고 한다. 2025년이 되면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결국 한반도 평화체제와 남북을 관통하는 철도 문제, 중국·러시아의 자원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때 신성장 동력이 나온다. 서울 중심의 서쪽으로 기울어진 배가 동쪽으로 균형을 잡는 극동아시아 시대가 온다. 지금은 강원도의 역사가 부상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국가 및 강원도의 발전 전략이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서 흔한 말로 ‘호남은 푸대접, 강원도는 무대접’이라고 한다. 현 정권의 내각과 청와대 수석에 강원도 출신 없다. 도민들이 지역 차별을 느끼나.  -있는 것 같다. 참여정부만 해도 강원도 출신 장·차관들이 많았는데 현 정권에는 아무도 없어 안타까움이 많은 것 같다. 1년에 9000만여명이 강원도에 온다. 우리가 더 잘하면 그 분들이 강원도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대법원 상고심 27일 대법원 판결이 이 지사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한다고 보나.  -잘 될거라 본다. 기본적으로 불교 경전에 나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이 상황을 더 잘 극복할 거라 생각한다. 증거가 없고 , 궁박한 처지에 있는 한 사람 말에 따라 유·무죄 결정이 났는데 이미 그중에서도 절반 정도가 무죄가 난 상황이다. 여당 의원들은 무죄가 났고, 나는 절반의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났다. 더 결정적으로는 재판정에 박연차 씨가 나와 진술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재판장이 불러주지 않은 것도 문제다. 더군다나 한 차례가 아니고, 대여섯 차례에 걸쳐 돈을 10억원 넘게 거절한 건 내가 유일한 사람이다. 잘 될 거라 본다.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수용할 건가.  -백척간두 위에서 항상 진일보하는 인생을 살아왔고 잘 될 거라 본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털고 지사직에 전념할 건가, 아니면 ‘정치적 탄압’이라는 부분을 짚고 넘어갈 건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불리한 상황이 극복되기를 희망한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상처내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한 세상 살다가는 건데 내가 선한 생각만 갖고 살아도 세상을 구제 못하는데 남을 해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됐을 때 수많은 제보가 쏟아졌다. 이런 저런 정보들이 많았지만 사람을 해할 수 있는 건 하지 말자고 했다. 유죄가 확정되면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갖지 못한다. 정치인 이광재의 미래는.  -정치인 이광재까지는 모르겠지만 잘 풀릴 거라 본다. 항상 새로운 미래에 도전했고 항상 시련도 많았지만 좋은 일도 많았다. 내 운명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항상 웃는 그런 날 보고 근거없는 낙관주의자라고 얘기하는데, 나중엔 내 말이 맞았다. (유죄 파기환송될 경우) 시한부 임기인데 도정의 안정성을 해치는 건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무죄를 확신한다. 취임 이후 직무가 정지되는 어려운 와중에서도 짧은 기간 동안 빠른 속도로 도정이 안정됐고 변화됐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도정 업무는 훨씬 더 강화되고 추진 속도가 붙을 거라고 본다. 언론에서 박시환 대법관과 이 지사의 관계를 부각시키는데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나.  -모르겠다. 박시환·신영철·안대희 대법관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 박시환 대법관과 만난 적은.  -없다. 기본적으로 의회·행정·사법 등 삼권이 분리돼 있고 내 처지로 볼 때 공정하게 가는 게 맞다고 본다.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열심히 지역을 돌고 있다는데 어떤가. 엄 사장이 당선가능성 있나.  -내가 알 수가 있나. 어쨌든 엄 사장한테 내가 인간적으로, 정치적으로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가야될 것 같다. 그런데 그 분이 나에게는 정치를 안 한다고 했는데. 언론인의 길을 가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구제역 판결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영향을 주게 되나. 아니면 동계올림픽 유치가 판결에 영향을 줄까.  -그건 모르겠다. 오는 7월 6일에 평창 동계올림픽이 유치돼야 한다. 연평도 사건도 그렇고 서민들의 생계도 어려워 국민들이 힘 빠져 있다. IMF 구제금융 당시 박세리 선수가 우승해 희망을 줬는데 이번에 평창이 희망을 줄 필요가 있다. 강원도는 이미 두 번이나 울었다. 이번에는 강원도 ‘감자바우’들이 하는 일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써야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지 않을까. 꼭 될 거라고 본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유치활동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줬나.  -IOC위원회에서 워낙 평이 좋으시고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IOC내 존경받는 분이고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구제역 발생으로 고심이 많은데 강원도 민심은 어떤가.  -구제역 현장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건 이제 우리나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야 할 단계에 왔다는 거다. 첫째, 앞으로 질병이 위기관리 시스템 차원에서 관리될 필요가 있다. 둘째, 아직 구제역 연구소조차 없다. 미국은 케네디대통령이 1961년에 만들었는데 우리는 백신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영국에 연락해서 공급받고 백신 자체도 모자란다. 구제역 연구소를 국가 차원에서 만들 필요가 있고 전반적인 정비를 해야 한다. 셋째, 가축을 키울 때 근본적인 전환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오스트리아에 가보니 동물을 일정 기간 이상 가둬서 키우지 않았다. 초지에서 방목하고, 불가피하게 가둬놓고 키우면 철저히 관리한다.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구제역을 막는 것과 시장을 활성화 시켜 농민에게 도움을 주는 건 다른 문제다. 강원도는 빨리 출하할 수 있도록 조치를 했다. 다들 재래시장에 못 나와 물건을 못 파니까 어렵다. 어차피 제수 상품을 사야 하니까 도청 공무원 월급의 일정액을 떼서 대대적인 상품권 구매운동을 벌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직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다. 새끼가 젖을 물면 1분 이내에 쓰러지는데 오랫동안 버티다 쓰러지는 소를 보며 또 한번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했다. 이제는 한 단계 도약할 때가 왔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 사건이었다. ●참여정부와 고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는 성공했다고 보나 실패했다고 보나.  -절반의 성공이 있었고, 절반의 실패가 있었다. 절반의 성공은.  -깨끗한 정치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서민 대통령이었고 권위주의 타파했고, 지역균형발전도 이뤘다.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자기 지지자와 싸울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문제에 대한 대응을 아주 높게 평가한다. 용산 미군기지를 이전시키면서 대추리 문제를 극복하고 수십년간 적체됐던 방폐장 문제도 박수 받고 해결했다. 천성산 터널 문제도 해결됐다. 모든 것은 자기 지지자들과 했던 싸움이다. 자기 지지자와 싸우지 않고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나. 진보라고 진보의 정책을 다 쓸 수 없고, 보수라고 보수의 정책을 다 쓸 수 없다. 대통령은 중간을 가게 돼 있다. 내가 청와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방폐장 문제 다음 정권에 넘기자, 약체 정권인데 지지자들과 싸워서 별로 얻을 게 없다’라고 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이 ‘그럴 바에 왜 대통령을 하나. 내가 있을 때 어려운 문제를 하나씩 돌파해야 나라가 진전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기 지지자와 싸우는 것, 이것이 가장 의미있다고 본다. 절반의 실패는 무엇인가.  -우리가 갖고 있던 세력에 비해 너무 큰 어젠다를 가졌고, 또 너무 상처가 났다. 행정중심 복합도시만 해도 세번의 선거 동안 내건 공약이었는데도 헌법재판소까지 갔다가 뒤집혀 다시 이번 국회로 오게 됐다. 노 대통령은 정치가보다 사상가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자신의 힘에 비해 너무 거대한 어젠다를 세웠다.하지만 행복도시를 통해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거대한 화두의 일부를 내보였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평가는 반반이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적통을 잇는 정치인은.  -아, 그런 사람 또 있을까. 노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고, 또 다른 사람은 또다른 사람이다. 노 대통령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적통이라기 보다 제 3의 무엇이 있지 않을까. 결국 진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참여정부가 만들었던 청와대와 정부 조직시스템을 현 정부가 많이 바꿨다. 잘했거나, 잘못했다고 생각한 부분은.  -참여정부가 했던 시스템을 현 정부가 다 반대하다가 다시 돌아갔다. 홍보수석 폐지했다가 다시 만들고, 인사수석·위기관리 시스템도 다 복구했다. 존재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 존재한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다. 노 대통령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공직자와 수많은 논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그렇기에 그런 시스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권 들어 항상 인사 문제가 불거지고, 위기관리 체제에서도 허점을 드러냈다. 그런 문제 볼 때마다 아쉬움이 있다.  나도 전임 도지사를 절대 비판하지 않고 다 안고 있다. 차차 점진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인사는 보수적으로 하고 일은 혁신적으로 한다. 책을 쓰면서 23개국을 연구해 보니 몇 가지 공통점은 제조업이 강하고 기술이 강해야 나라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과 정보통신부가 없어지는 걸 보며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결국 다시 되돌아가고 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나라는 무한하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앨빈 토플러가 ‘미국 대통령 되면 미국을 얼마나 변화시킬까. 5% 정도다’라고 말했다. 실제 많은 걸 못 바꾼다. 오히려 기존 것을 인정하고 내가 아주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에 매달려서 임기를 마치는 게 올바른 태도다. 노 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어떤 이유라고 보나.  -요즘 주말이면 봉하마을에 1만명이 온다고 한다. 놀랍다.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얼굴을 한 대통령,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 서민 대통령. 내가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그 때 노 대통령은 어쨌든 법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법을 배워야 한다, 리걸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면서 아침 7시에 불러 헌법 공부를 시켰다. 집이 인천이라 국회 근처에 방을 잡고 밤새며 일을 했다. 청문회에서 대단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노 대통령의 연설이나 글은 굉장히 쉽다. 어디서 이렇게 보통 사람이 살아가는 언어를 배웠냐고 물었다. 노 대통령은 ‘변호사들이 판·검사를 접대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걸 하지 말자고 했다. 그 뒤 사건이 안 들어와서 직접 상담을 했다’고 말했다. 상담을 하다 보니 ‘인생이 말야, 남녀가 모든 걸 버리며 사랑하다가도 막상 헤어지고 나면 1만원짜리 하나 갖고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 듣고 확 와닿는 느낌이 있었다. 처음 대정부 질의 원고가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자기 원고를 스스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들으면서 이 사람은 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면 대통령을 만들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 갖고 있다가 1992년 김대중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하면서 호남 사람들 이 의원회관실로 울며 전화하더니 애를 더 낳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내가 영남 사람이지만 이렇게 나라가 분열되면 안 된다’고 했다. 내가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걸 말씀드렸고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 나가자고 하니 나가도 되겠냐고 되물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을 치르면서 최고위원 선거 준비했고 대선 나간다고 계획 세웠다. 1993년 12월 결혼하고 신혼여행 가서 완전히 생각을 굳혔다. 갔다 와서 안희정 씨를 만나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총선에서 낙선한 처지라 현역 국회의원 대상으로 계보 만들기가 어려우니 지방자치 실무연구소를 만들고 싱크탱크를 만들자고 했다.  노 대통령에게 가장 감동을 받은 건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인이고 권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봉사하는 태도,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그게 가장 좋았다. 노 대통령은 계속 투쟁하는 정치인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싸움은.  -아마 언론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참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런 농담이 있다. 언론과 부인과 성직자와는 싸우지 말라는. 양면성이 있다. 분노는 사랑에서 나온다. 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노동자와 서민을 변호하는 활동을 많이 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노동자와 서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냐고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랬더니 노 대통령이 ‘나도 대한민국 사법고시에서 50명 뽑을 때 된 사람이다. 판사도 됐고 기득권 세력이다. 그러나 국회라는 게 뭐냐, 나같은 사람이 나서서 노동자들의 편을 들어줘야 균형을 잡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뭐 쉬운 길을 가냐. 나는 뭐 좋냐. 내가 무슨 바보냐’고 했다. 항상 유대인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처음에 공산주의자 나치가 공산주의자 선언할 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가만 있었다, 그러나 나치가 나를 체포하러 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는 말을 강연에서 많이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정세분석 하지 말라고 했다. 참모들은 참아야 기회가 온다고 조언하는데 ‘내가 왜 도구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 하냐’고 따졌다. 이러면 참모들은 힘들다. 1995년 부산시장 선거, 15대 총선 종로에서 떨어지고 정말 막막했다. 두 번 떨어지고 나서 내가 노 대통령에게 종로로 가자고 말했다. 여론조사를 해보니 이명박·이종찬 후보에게 다 지는 걸로 나왔다. 그러나 이기고 지는 게 전부는 아니지 않나, 대한민국 정치 1번지에서 의미있는 전사를 해도 정치인은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랬다. 천신만고 끝에 현역이 됐다. 그 뒤에 부산에 가겠다는 거다. 왜 거기로 가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사람은 무엇이 되는 걸 생각하는데 도구가 된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사람을 사랑한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 분이 계속 어려우니까 떠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좋을 때 떠나지, 어려울 때 못 떠난다. 계속 같이 있다 보니 내가 세속적인 출세를 한 거다. 내가 큰 역량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터뷰하러 오면서 택시 기사가 하는 말이 ‘노 대통령이 어려워지니 사람들이 다 돌아서더라. 열린우리당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 때 심정이 어땠나.  -노 대통령은 스스로 ‘경계인’이라고 했다. 변호사로서 대한민국 기득권에 진입했지만 인권변호사가 됐고, 경상도 사람으로 민주당에 소속돼 호남 가면 영남 사람, 영남 가면 배신자라고 했다. 이런 얘기할 때 가슴 아팠다. 항상 빈 들에 서 있는 노무현을 봤다. 제일 중요한 게 의리라고 생각한다. (믿었던 사람들이 돌아서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그렇게 노 대통령을 비판하다 서거하고 나서 국민적인 열기가 있으니까. 좀 정치가 담백했으면 좋겠다. ●386과 486 참여정부에 많은 386세대들이 정권에 참여했다. 국가를 장악할 준비가 돼 있었나.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 정부가 아마추어 정권이라 폄하하기 위해 그런 말을 만들어낸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도 50대 중반이었고 386이라 해봐야 전체 비서관 중에 나와 천호선 비서관 둘 빼면 58년 개띠가 12명이나 됐다. 이 사람들이 주력 부대였다. 수석이 대체로 50대 중반, 노 대통령과 같거나 조금 많거나 적었다.  또 김종필 총재가 30대에 공화당 의장하지 않았나. 미국 대통령 나이가 평균 53.1세다. 미국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세 번 오는데 공황기, 동서 냉전기, 신자유주의 물결이 들어서기 직전이다. 한번은 루즈벨트, 한번은 케네디, 한번은 클린턴이 있었는데 모두 40대 초반의 대통령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준비가 돼 있느냐, 내적 역량이 강한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정리하자면 너무 과하게 폄하하려 하는 의도 속에서 본질에 맞지 않는 비난이 있었고, 나이만으로 모든 걸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 신구 조화가 필요하다. 당시 나쁜 배합 아니었다. 386 정치인들은 현재 공통된 지향점이 있나.  -세대 에너지가 있다고 본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주창한 40대 기수론이 먹혔던 것은 그 당시 세대들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때 8·15와 6·25 전쟁을 치렀다. 석회석과 다이아몬드는 성분이 똑같다. 그런데 어떤 압축과 고열과정 겪느냐에 따라 석회석이 되기도 하고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 6·25 전쟁과 8·15 해방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하겠나. 그 에너지가 있었기에 40대 기수론이 가능했고 살아가는 힘이 있었기에 전쟁의 잿더미에서 살아보자는 열망이 가능했다. 박정희라는 지도자도 있었지만 그 때문에 경제 발전도 가능했다.  데모를 하고 안하고를 떠나 80년대 광주가 얼마나 가슴 아팠나. 데모를 하든 안 하든 척박한 현실에 몸으로 앞서 나간 사람, 마음으로 동조한 세대가 386이다. 수백만이다. 학생운동 한 사람은 극히 소수다. 386으로 폄하될 일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한 시대를 타개해 나가려 했던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중에 학생 운동 한 사람들은 소수였다. 당시 70만명씩 대학갈 때다. 80년대 학번부터 87년까지 보면 490만명의 대졸자를 갖고 있다. 취직을 많이 못해서 문화운동을 이끈 사람들도 이 주류들이다. 강한 386에너지가 있다. 운동만 한 386이 아니고, 80년대라는 군사독재 시절을 살아간 강력한 에너지가 존재한다. 이제 486이라고 하는데 용어는 어떤가. 386 상징성 때문에 쓰는 게 낫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본다. 세대 에너지를 좀더 얘기하자면 68년도에 유럽의 학생운동을 이끈 6·8세대들이 다 유럽의 대통령이 됐다. 그만큼 세대 에너지가 강하다고 본다. 존중될 필요가 있다. 다만 나처럼 못난 사람이 정치하게 되면서 정치권에 대해 조금 안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는데 부채 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386 세대는 충분히 의미있는 세대다. 40대가 우리 경제의 주류 아닌가. 회사의 과장, 부장으로 일하면서 사회와 경제를 끌고 가는 강력한 세대다. 내가 그 세대가 갖고 있는 에너지 만큼 못한 게 미안하다. 올해 70세 넘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영화제위원장을 강원도 문화예술제전 이사장으로 모셨다. 김 위원장은 1년 반을 해외에 있었다. 20대 청년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세대간 벽을 두기보다 신구 조화를 강력히 꾀해야 할 때다. 중국이란 나라의 역동적 힘은 젊은 사람을 키워주고 권력자들은 전 정권 권력자들과 협력하고 타협하는 데서 나온다. 난 이것이 오늘날 중국의 강력한 동력이라 본다. ●친노세력 김두관 경남지사가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지분 60%은 노 대통령에게, 나머지 40%는 안희정·이광재 지사가 반반 가지고 있다고 했다. 동의하나.  -과분하다. 내가 노 대통령과 가장 오래 있었고, 노 대통령의 가족과 영원히 함께 해야 하는 게 내 숙제다. 참여정부에 빚을 많이 지고 있다. 빚을 많이 갚아야 할 처지에 있는데 지분이 어디 있겠나. 부채를 떠맡기 싫어서 지분을 안 가지려는 건 아닌가.  -사람이 사는데 의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사랑했기에 대통령을 만들어겠다고 생각했고 또 그건 변함없다. 386세대에 미안한 것은 나를 많이 사랑했던 분들에게 내가 모자란 점이 많다는 것이다. 갚아야 한다. 이 지사, 안희정 지사, 김두관 지사, 유시민 전 장관, 문재인 비서실장 중에서노 대통령은 누구를 인간적으로 제일 좋아했나.  -문재인 실장이다. 그러니까 민정수석도 시키고, 비서실장도 시키지(웃음) 문 실장은 언젠가 정치를 할 거라고 보나.  -(한참을 생각하다)잘 모르겠지만 손학규 대표와 문재인 변호사가 잘 경선했으면 좋겠다.(웃음)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도 함께 경선했으면 좋겠다. 김두관 지사 말을 들어보면 유시민 전 장관은 참여정부의 지분 없나.  -그렇지는 않다. 노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특별한 애정 가졌던 분이다. 지금 민주당은 아니니까. 지사 제외하고 나머지 분 중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재능이나 역량은 누가 낫나.  -여태까지는 노 대통령의 그늘 속에 있었고 이제 처음으로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시험대 위에 오른 거다. 중요한 건 본인의 비전과 경영능력에서 시작되는 거다. 지금은 평가를 하기에는 이른 시기라고 본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 5명 가운데 누가 대표 주자로 출마하면 좋을까. 문재인 실장인가.  -손 대표, 문 실장, 정동영 최고위원도 하겠지. 안희정 지사와는 경쟁 관계인가.  -둘다 의미있는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일자리, 교육, 복지 세 가지 영역에 지사직을 걸었다. 안 지사나 김 지사나 나나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를 내야 한다. 정치가는 희망을 파는 상인인데 국민들은 너무 위대하고 똑똑하다.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모든 걸 다 걸고 전력투구해야 할 시기 아닌가. 그래야 정치를 얘기할 수 있다. 난 분명히 그렇게 할 거다. ●정치 현안 개헌 얘기가 계속 나온다. 이 지사의 생각은.  -도 지사가 그런 얘기도 해야 하나(웃음). 개헌은 해야 하지만 노 대통령이 개헌하자고 했을 때 해야 했는데 그게 아쉽다. 노 대통령이 하자고 했던 시기에 했으면 전체 대통령의 임기나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을텐데 시점을 놓쳐버렸다. 이미 권력 후반기다. 국회의원 임기도 얼마 안 남았다. 어떤 개헌 방향이 필요한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준비해야 한다. 지금은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런데도 여당에서 개헌을 계속 추진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다. 개헌 이슈가 한동안 갈 것 같나.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전 보면서 거대한 힘이 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한나라당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 60년대생 시도 지사들과 여야를 떠나 진짜 대한민국 문제에 천착하는 모임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지금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내년은 세계사적으로 명운을 가르는 해다. 북한은 권력 교체기고 우리는 대통령 선거다. 중국 지도자가 바뀐다. 러시아와 미국의 대통령 선거 있다. 아시아 전반에도 남북 문제를 둘러싼 큰 틀의 변화가 오는 시기다. 남북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가 대한민국 명운을 끌고 갈 거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장길도 계획이라는게, 나진선봉으로 바다로 나오는 것이다. 내년 10월되면 푸틴 대통령이 만든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가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다. 얼마 전에는 몽골의 석탄을 한·중·러가 철도를 놔주는 조건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몽골 자원이 동해안으로 나오게 된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캄차카 반도 위로 북극 항로가 100~120일 열린다. 남북 정세 변화와 에너지 자원 문제를 둘러싼 극동의 관리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한국 10~20년을 좌우할 것이다. 이 문제에 정치권 전체가 천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동계올림픽 유치에 전력 투구하고 여야를 떠나 내년 10월 APEC 의제는 단연코 남북의 정세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관리할 거냐, 북한을 경유하는 철도는 어떻게 될 거냐, 몽골·북한의 엄청난 광물 자원 어떻게 가져갈 거냐, 북한 물류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낼 거냐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극동아시아의 변화에 여야를 떠나 모든 정파가 외교에 진력해야 한다. 130년 전 구한말 상황이 온 것이다. 강원도가 여기에 한 축이 있다. 지사직을 걸었다.  무상복지 논란을 얘기를 많이 하는데 복지 하면 무상이다. 그런데 성장 없는 복지가 어디 있고, 복지를 생각하지 않는 성장이 어디 있나. 지금처럼 주택 문제,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2020년 저출산 고령화 상황에서 성장률이 떨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 동안 성장동력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서민들을 어떻게 할 건가를 놓고 머리 맞댈 일이지 지금 개헌으로 지지고 볶아서야 되겠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50%를 웃돈다. 100점 만점에 몇점 정도 주겠나.  -글쎄. 난 통일보단 평화를 원한다.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서민경제 부분에 집중해줬으면 한다. 지금 서민들이 살기 너무 어렵다. 고용없는 성장과 거대한 눈부신 지표는 존재하는데 서민 삶은 거기에 없다. 임기 마지막에 두 가지를 집중해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70%면 어떻고 30%면 어떤가. 어차피 대통령인데. 물론 국민 원성 사면 안 되지만 너무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를 역사와 승부하면서 자기 지지자와 싸우는 게 중요하다.. 평화보다 통일 원하는 거 맞나.  -그럼, 당장의 통일보다는 평화가 중요하다. 자신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지지율 조사하면 어느 정도.  -한 50% 나올 거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 중에 가장 잘못하는 것 하나를 꼽는다면.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이야기에 로마의 번성 요인에 관한 글이 있는데 하나는 포용이다. 로마가 일어났던 건 이민족에 대한 포용, 로마인이 아닌데도 시민권을 주고 외부 사람도 황제가 될 수 있게 했다. 두번째 통합이다. 국민통합이란 건 정치적인 수사가 아니고 생존의 전략이다. 그래야 이 나라가 잘 되고 서민경제가 잘 된다. 내년 10월 APEC 정상회담을 반드시 국가의 전 역량을 모아야 한다. 틀의 변화는 임기 후반기에 있다. ●민주당 전적으로 공감한다. 민주당의 3대 무상 정책에 찬성하나.  -일자리, 교육 문제를 통해 건강한 중산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게 국가 전체적으로 복지다. 이를 어떻게 끌고 갈 거냐의 문제와 또 하나는 진짜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주는가의 문제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  강원도는 이렇게 정했다.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투자, 들어오는 기업에 특혜를 확실히 주겠다는 게 내 주장이다. 상장 회사 3개를 유치했다. 일자리 만드는 부분을 해 나가는 거다. 교육 분야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영어와 중국어를, 강릉 영동지역은 영어와 러시아를 시범학교를 정해 집중할 생각이다. 연세대학교 초·중·고를 원주에 만든다든지 해서 교육 부분을 굉장히 강화하려 한다. 복지 예산은 늘었는데 많은 걸 못한다. 시범사업을 해보는 거다. 시범사업을 해서 내 가설이 맞으면 확대하고 국가 전체적으로도 확대할 수 있다. 2018년 돼야 연금시대 열린다. 2018년에 연금 받을 정도로 연세드신 분은 노후 준비가 안돼 있다. 경로당에 집중하자. 복지의 인프라라고 생각하면 경로당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  소 한마리에 200만원, 키우면 한 달에 1만 5000원을 준다. 100마리를 키우면 150만원인데 이걸 경로당 짓는데 쓰자. 소가 새끼 낳으면 소 한마리 800만~1000만원 하는데 그 돈으로 경로당을 도와줄 수 있다. 3년 지나면 소를 팔고 송아지 한 마리가 생긴다. 증식의 모델을 만드는 거다. 농촌형 복지다. 이걸 시범사업으로 해서 사회적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  부모가 있으면 세액공제를 받는다. 그러지 말고 효도통장을 만들어 부모님에게 일정액을 자식 월급에서 10만원 떼 주자.  노인들 쓰레기 줍는거 말고 유럽처럼 꽃을 가꾸게 하고, 도시형 같은 경우 할아버지들이 도시의 쓰레기, 명함 등을 수거해오면 계산해서 주고 경로당 운영비를 주고 그렇게 해보면 어떨까.  논쟁할 때 서로 존중할 필요있다. 인간이 제도로 만들어낸 게 투표(정치)와 화폐(경제)다. 성장과 불평등은 쌍둥이 자식이다. 경제에서 성장은 미덕이다. 그러나 결과는 불평등이 존재한다. 그걸 해소하려는 게 평등이고, 그게 정치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기에 서로 닮으려고 한다. 이기적, 이타적 유전자가 큰 논란을 일으키는데 성장과 복지라는게 그런 측면이 있다. 지혜를 모아야 한다. 철학적인 답변이다. 손학규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리더십에 만족하나.  -내가 그것까지 얘기할 건 아닌 것 같은데.(웃음) 가급적 일에 몰두하는 편이고 강원도 일에 성과를 내는 게 도리인 것 같다. 여의도와 정치판을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정보도 없다. ●2012년 대선 2012년 대선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도정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일자리, 교육, 복지라고 본다.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동북아의 평화 정세와 물류 문제에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극동아시아가 천연가스 50%를 갖고 있다. 북한도 그렇다. 철길, 뱃길로 어떻게 연결해서 해나갈 건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신성장 동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대선 후보 선호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대세론이 강한데 야당이 박 전 대표를 넘기 어렵다고 보나.  -박 전 대표는 좋은 분이다. 지난 번 경선에서 졌을 때 깨끗하게 승복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할 때 이미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국민 마음 속에 섰다. 앞으로 점점 더 비즈니스 대통령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국민들은 예측가능한 미래와 예측가능한 대통령을 원하고 세계 속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대통령을 원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손학규 대표는 영국에서 공부도 했고 도지사도 했고, 장관도 했고, 비교적 안정감 있고 예측가능한 미래의 좋은 후보라 생각한다. 박 전 대표와 손 대표(문재인 실장도 경선에 나설지 안 나설지 모르겠지만) 두 분의 멋진 승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박 전 대표는 무리없이한나라당 후보가 될 거라 보나.  -박 전 대표가 되는 게 순리가 아닐까 싶다. 박 전 대표와 일 대 일로 붙어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는.  -그걸 말할 수 있나. 하지만 이런 것 같다. 내가 지지도 마이너스 23%였다가 플러스 13%로 이겼다. 박연차 게이트로 찜찜한 게 있으면 국회의원 안 나갔다. 내가 감옥갔을 때 강원도민들이 사랑으로 모든 걸 거는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은 말을 많이 듣는 사람, 애정을 갖고 있는사람이 승리자가 된다고 본다. 거기서 에너지가 나온다. 선거를 예단할 수 없다. 내가 이길 거라고 누가 봤겠나. 노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이 다음 대선에서 공통된 표심을 가질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분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누가 됐든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사람은 이젠 예측가능한 미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 이광재 이념적으로 진보인가, 보수인가.  -나는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고 진화를 선택했다. 난 항상 오류가 있다. 오류를 빨리 극복할 수있는 시스템을 갖는 게 진정한 진화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치판이 온통 좌파 우파니 하는데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으면 정치 기반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경제 발전만 봐도 갈라놓고 싸우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1950년대 소위 소련 체제가 경제발전을 획기적으로 이뤘다. 미국이 과학자 양성을 위해 수월성 학교교육으로 완전히 바꿨다. 70년대 들어 유럽형 복지모델이 얼마나 강력한 성장모델 됐나. 제 3세계 아시아의 용들은 독재국가라는 비판받으면서도 얼마나 성장했나. 미국 경제도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융성했나. 그러나 이제는 서서히 어려움을 겪지 않나. 경제 발전만 봐도 이렇듯 신자유주의부터 소련체제, 복지국가 모델이 경제발전을 이끌고 왔는데 어떻게 이것이 옳다고 하나. 역사가 말하지만 진보 보수 관점이 중요한 게 아니고 공존하려는 통합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경제사 이론을 보더라도 국가의 시장 개입이 진보였는데 한때는 개입하지 않는 게 진보였다가 지금은 또 개입하려고 하지 않나. 위대한 사상가들은 모르겠지만 정치로 얘기하면 진보 보수, 좌파 우파는 황당한 얘기다. 개인적으로 아주 공감한다. 언론관은 노 대통령과 같나.  -극도로 언론 노출을 피해왔다. 내가 노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이었는데 모시는 사람은 자기 일이 없는 거다. 노 대통령 모실 때 문고리 잡고 인의 장막을 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을 소개했지만 내 스스로 인터뷰한 적이 없었다. 청와대에서도 근무했는데 공무원과 사이는 어땠나.  -잘 지내는 편이다. 국정상황실장 할 때 부처 고시 성적 최고였던 분들과 일했다. 공무원들은 유능하고 문제해결 능력이 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처음에 무슨 얘기하면 안 된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취지를 잘 설명하면 반드시 답을 찾아온다. 유능하다. 인사는 보수적으로, 일은 혁신적으로 하는데 사람을 너무 자주 바꾸는 건 옳지 않다. 에너지를 어떻게 끌어 올리느냐가 중요하다. 아침 운동을 과장이랑 걷고, 국장이랑 밥을 먹고, 한 사람씩 알아가고 있다. 조직은 마음으로 일하는 거지 명령으로 일하는 게 아니다. 공무원들에게 나한테 충성하지 말고 강원도민에게 충성하라고 한다. 종교가 불교다. 정치에 영향을 미치나.  -잘 모르겠다. 로마의 멸망 원인 중 하나가 종교 탄압이다. 인도와 무굴제국이 가장 왕성한 때는 다른 종교를 모두 허용했을 때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프란체스카 수도사가 한 말이 너무 와닿는다. 5세기 때 쓴 책인가. ‘수도원의 역사’란 책에서 넌 왜 풀이나 바위와 나무에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왜 인간만 영혼이 있다고 보냐. 나무에도 산에도 생명이 있다는 말이 있다. 칭기스칸 아들은 신이 10가지 손가락을 준 이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다른 종교를 핍박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다. 참여정부 실세라 강원도 예산이 많이 늘었다고 하는데 동의하나.  -그렇다. 많이 따려고 노력했다. 국회 와서 처음한 게 내가 담당하는 산하기관을 전부 돈 것이다. 예산 딸 때 사무관, 과장부터 일일이 다 설득한다. 그래서 예산을 따는 거다. 물론 힘이 든다. 담당 사무관이 제일 중요하다. 수백대 일의 경쟁력을 뚫은 공직자를 설득해야 생명력을 갖고 일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결정하면 정권이 바뀌면 가위표가 된다. 생명력 있게 일관성 갖고 정책을 유지하려면 주무 사무관과 과장의 확신을 얻어내야 한다. 강원도가 보수적인데 왜 이 지사를 유권자들이 선택했다고 보나.  -강원도를 위해 일을 잘할 것 같다는 것과 또 하나는 청와대의 국정상황실장을 해봐서 국가도 좀 알고 국회의원도 두번 해서 국회도 알고 그래서 도지사 시켜 강원도를 위해 일 시킨 다음에 강원도를 대표하는 인물을 키워야겠다는 거 아니겠나. 내가 선거 때 마지막 연설에서 ‘청와대 국정경험, 국회의원 경험 살려서 10년이 지나면 대통령에 나가겠다’고 한 연설이 시청률 20%까지 올라갔다. 10분짜리 연설인데 나도 놀랐다. 인구는 적은데 적이 없는 데가 강원도다. 이광재를 키워 대통령까지 가보자는 열망이 컸던 거 같다. 10년 후 대통령 나올 건가.  -도 지사를 잘해야 한다. 난 정말 강원도민에게 큰 신세를 졌다. 강원도지사로 최선을 다해서 성과를 내고 싶다. 그것 외에는 뭐. 대통령을 옆에서 많이 봤고 그 자리가 얼마나 외로운 자리인지 안다. 자리를 탐할 일은 아니다. 지금은 강원도 일에 욕심을 내겠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도지사 선거 때 이광재 지사가 정말 연설을 잘하더라고 하더라. 얼마 전에도 차기 대선에서 이광재는 왜 안 되고 김두관은 왜 안되겠느냐고 하더라. 10년 약속이 5년으로 당겨질 수도 있나.  -나는 산에서 잘 잔다. 산에서 자면 바람소리가 들린다. 바람도 다 자기 가는 길이 있다. 큰 배가 가는 바다에도 길이 있다. 넓은 창공 같지만 두루미도 가는 길이 있다. 너무 삶에 애달복달 말고 주어진 일에 하루하루 살면서 그 길을 가는 거다. 내가 너무 노 대통령과 어렸을 적부터 큰 일을 하다보니 세상 사는 게 담담해졌다고나 할까. 만약 이 지사가 대통령이 되면 노 대통령 같은 사람 될까.  -왜 그러나. 강원도를 위해 일해야 한다.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성공해서 나중에 대통령 선거 나와서 멋있게 경쟁하고, 멋있게 후보 단일화하고, 그것도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지사 일을 잘해야 한다.  정리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2010년을 빛낸 스포츠 스타]LPGA 상금왕·최저타상 최나연

    [2010년을 빛낸 스포츠 스타]LPGA 상금왕·최저타상 최나연

    “내년엔 메이저대회 우승컵에 도전해 봐야죠.” 최나연(23·SK텔레콤)만큼 올해가 새롭게 느껴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올 시즌 미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승에다 준우승만 세 차례. 그는 상금왕 등극에 이어 최저타수상인 베어트로피도 안았다. 한국인으로는 박세리, 박지은에 이어 세 번째다. LPGA 투어에 뛰어든 뒤 3년 만이다. 이젠 ‘라이벌’이 된 ‘절친’ 신지애(22·미래에셋)가 펄펄 나는 동안 그는 ‘지존의 그늘’에 머물러야만 했다. 2%가 부족했다. 출발은 좋았지만 꼭 마지막 4라운드에서 ‘일’을 망가뜨리는 징크스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모두 털어버렸다. 이제 그는 누가 뭐래도 승부사다. ●중학교 때 태극마크 단 느림보 승부사 중학교 때부터 태극마크를 단 최나연은 아마추어 시절 최강이었다. 박인비(SK텔레콤), 오지영(마벨러스·이상 22) 등과 함께 ‘트로이카 시대’를 구가했다. 그러나 동갑내기 신지애의 그늘이 너무 컸다. 신지애보다 1년 먼저 LPGA 무대에 뛰어들었지만 느렸다. 신지애에 견줘서다. 국내 투어 때부터 그랬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데뷔 이후 매년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최고의 자리를 노렸지만 번번이 신지애의 ‘다승 공세’에 밀렸다. 느림보의 승부사 기질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 9월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데뷔 첫 승을 차지한 그는 두달 뒤 하나은행-코오롱 챔피언십에서 2승째를 거뒀다. 봇물이 한번 터지니 그다음부턴 쉬웠다. 올해 24개 대회에 출전, 데뷔 이후 가장 풍성한 한해를 보냈다. 그는 “올 시즌은 신이 들린 것 같은 한해였다. 실력이 좋아진 것보다는 심리적으로 자신감과 여유를 찾은 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면서 “데뷔 당시 목표였던 두 상을 한꺼번에 받았으니 누구도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내년 시즌 준비 27일 출국 이제 그는 새로운 목표를 잡았다. 메이저대회 우승. 프로골퍼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청야니(21·타이완)는 올 시즌 나비스코 챔피언십과 브리티시여자오픈 등 단 2개의 메이저 우승만으로 올해의 선수에 올랐다. 최나연은 지금 강원 평창의 한 스키장에서 휴식 중이다. 지난 7일 돌아와 온갖 행사에 끌려다니면서도 벼르고 별렀던 꿀맛 같은 시간이다. 오는 27일 심리스쿨이 예약된 미국 애리조나를 거쳐 올랜도의 집으로 돌아가면 벌집처럼 촘촘한 스케줄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결점 없는 골퍼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서 “내년 메이저대회에서 그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LPGA] 최나연 2관왕 달성…상금왕 이어 최저타수상 영광

    미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상금왕 최나연(23·SK텔레콤)이 마침내 ‘베어 트로피’까지 품었다. 최나연은 6일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그랜드 사이프레스 골프장(파72·6518야드)에서 막을 내린 시즌 최종전 LPGA 투어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3개를 묶어 2언더파 70타를 쳤다. 최종 합계 1언더파 287타로 대회를 마친 최나연은 로라 디아스(미국)와 함께 공동 5위에 올랐다. 시즌 상금 187만 1166달러를 쌓아 전날 확정된 상금왕을 다시 확인한 최나연은 평균 타수에서도 이번 시즌 69.87타를 기록, 69.95타를 기록한 크리스티 커(미국)를 불과 0.08타 차로 제치고 시즌 최저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베어 트로피를 받았다. 한국 선수가 베어 트로피를 받은 건 2003년 박세리, 04년 박지은에 이어 세 번째. 최나연은 “사실 이번 시즌 가장 받고 싶은 상이 최저타수상이었다. 올해의 선수상보다 더 갖고 싶었다.”면서 “최저타수상만 받으면 다른 상도 따라 온다고 생각했다. 뜻을 이뤘다. 정말 아쉬움이 하나도 남지 않는 시즌을 보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최나연은 7일 귀국한다. “12월 말까지 골프를 잊고 휴식을 취하겠다. 그 다음에 미국으로 건너가 1월 1일부터 새 시즌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최나연과 격차를 3타 차 이상 벌려야 최저타수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경쟁자 커는 최종 합계 2언더파로 공동 3위에 올랐다. 청야니는 21위(5오버파)에 그쳤지만 타이완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해의 선수에 올랐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투어챔피언십] ‘얼짱’ 최나연 상금짱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상금 랭킹 1위를 달린 최나연(23·SK텔레콤)이 마침내 상금왕에 올랐다. 최나연은 5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그랜드 사이프레스 골프장(파72·6518야드)에서 열린 투어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1타를 잃어 1오버파 217타를 쳐 공동 9위에 머물렀지만 경쟁자 신지애(22·미래에셋)가 12오버파로 컷 탈락, 상금 1위를 확정했다. 대회 전까지 최나연은 181만 달러로 신지애(177만 달러)보다 약간 앞섰다. 3위 청야니(타이완)는 이 대회에서 우승해도 178만 달러에 그친다. 최나연은 공식 인터뷰에서 “어느 부문에서든 1위가 된다는 것은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아직 하루가 더 남았다. 또 다른 목표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목표’는 평균 타수 1위에게 주는 베어 트로피(최저타수상). 최나연은 3라운드까지 69.87타를 쳐 69.90타의 크리스티 커(미국)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4라운드에서 커보다 3타 이상 많지 않으면 평균 타수 1위에 오른다. 최나연은 “골프는 끝날 때까지 모른다. 마지막 순간까지 베어 트로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까지 이 상을 받은 한국 선수는 박세리(2003년), 박지은(2004년) 둘 뿐이었다. 한편 양희영은 1타를 잃고도 중간합계 6언더파 210타로 단독선두를 지켜 투어 첫승을 눈앞에 뒀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브랜드’ 관리도 못하는 국가브랜드委

    ‘브랜드’ 관리도 못하는 국가브랜드委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영문판 홈페이지 관리가 엉망인 것으로 확인됐다. 위원회 영문판 홈페이지의 핵심인 한국 소개 코너는 지난 2월 이후 10개월여 단 한 차례도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국제적 상식에는 맞지 않게 해외국적의 교포를 특별한 설명없이 한국인처럼 소개하는 사례도 드러났다. 때문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 있는 것일까.”라는 비판도 만만찮다. ‘한국의 유명선수 소개’가 들어 있는 영문 홈페이지의 ‘한국&한국인 소개’ 코너는 지난 2월 한꺼번에 대부분의 게시글이 올라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업데이트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김연아 선수의 경우,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때의 경기 사진만 게재했을 뿐 금메달 획득 사실조차 알리지 않고 있다. 박세리 선수에 대해서는 지난 2007년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명예의 전당에 가입된 사실조차 기록하지 않고 있다. 특히 김연아, 박세리 이외에 박태환, 양용은, 추신수,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 등과 함께 미국 국적인 미셸 위도 들어 있다. 미셸 위의 소개글은 “미국인 프로골퍼로 LPGA에서 활동하며 가장 어린 나이에 프로가 됐다.”면서 “2006년 미국 역대 최연소 아마추어 챔피언이 됐고, 타임 매거진에도 소개됐다.”고 적고 있다. 미셸 위가 한국계라는 대목은 전혀 찾을 수 없다. 브랜드위원회의 허술한 ‘브랜드’ 관리에 네티즌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한 대형포털에는 지난 3일 ‘2010 최고의 문화자산 김연아 제대로 활용되고 있나.’라는 글이 올라왔다. 수도권 대학의 한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김연아의 동계올림픽 사진만 업데이트된 것과 관련, “한번 쓰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애정을 갖지 않는 것이 공무원 사회”라고 꼬집었다. 한 네티즌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브랜드위원회가 필요한가.”라면서 “한국의 이미지를 결정할 수도 있는 소개글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강심장 금메달리스트의 비밀

    지난달 25일 양궁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1만명이 넘는 야구팬이 모인 서울 잠실 야구장 한복판에서 활시위를 당겼다. 야유도, 욕설도, 호루라기 소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호흡을 가다듬고 과녁을 겨냥할 뿐이었다. 11월 12일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대비하기 위한 특별 심리훈련이었다. 2년 전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팬들의 극성 응원에 흔들리며 아쉽게 금메달을 놓친 기억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통산 25승의 박세리가 공동묘지를 거닐며 담력을 길렀던 것도, 1984년 LA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였던 하형주(동아대 스포츠심리학 교수)가 선수 시절 버스를 타고 다니며 승객들에게 1차 기술을 걸어보고 먹히지 않으면 2차, 3차…5차까지 연속 기술을 연결하는 상상 훈련을 했던 것도, 피겨요정 김연아가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따던 당시 라이벌 아사다 마오의 깔끔한 연기 직후 은반 위에 나서면서도 ‘그냥 시합일 뿐이다.’라고 자신을 다잡으며 금메달도, 올림픽 마크도 모두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또다른 자신과의 승부에서 이기고자 하는 의지였다. ‘국가대표 심리학’(김병현 지음, 다음생각 펴냄)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절체절명 승부의 순간 수십만, 수백만 인파에 둘러싸인 채 홀로 자기와 승부를 벌이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들이 어떻게 자신 안에 쌓인 모든 기술과 역량을 흔들림없이 담대하게 풀어낼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 어떤 심리 훈련을 하고 있는지, 과거 우리가 환호했던 아시안게임, 올림픽 시합의 뒤편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지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시합이 주는 불안감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능력, 시합 당일 자신이 그동안 노력한 최대치를 끌어낼 수 있는 능력,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노하우 등이 담겨져 있다. 저자는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수석연구원이다.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베이징 올림픽까지 양궁, 탁구, 역도, 사격 등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력 극대화를 위한 심리치료 지원을 도맡다시피 하고 있는 응용스포츠심리학의 권위자다. 자신과 가깝게 지냈던 장미란·이배영(이상 역도), 김택수·유남규(이상 탁구), 하형주·이원희(이상 유도) 등 숱한 스포츠 스타의 땀냄새와 고독, 불안까지 맡아지는 듯하다. 채 20일도 남지 않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TV를 보며 국가대표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뒤쫓아가며 때로는 탄성을, 때로는 환호성을 내뱉어야 할 우리들도 한번 읽어볼 만하다.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며 평안을 유지하는 선수들에 앞서 구경하는 사람이 지레 숨넘어가서는 안 될 테니 말이다. 책이 가르쳐주듯 경기의 불안 자체를 즐기고 긍정적 암시를 되뇌어 보자. 1만 3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박세리 체육훈장 청룡장 수상

    박세리 체육훈장 청룡장 수상

    한국 여자 골프의 ‘맏언니’ 박세리(33)가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는다. 박세리의 매니지먼트사인 세마스포츠마케팅은 12일 “체육훈장 가운데 최고 등급인 청룡장은 체육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훈장이며 체육 발전에 공을 세워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영예로운 상”이라고 밝혔다. 박세리는 LPGA 투어 데뷔 첫해인 1998년 메이저대회에서 2승을 거두고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고, 이후에도 LPGA 투어에서 25승을 거둬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등 세계적인 선수로 명성을 쌓아왔다. 박세리는 “명예로운 상을 주셔서 감사하고 초심을 잃지 않고 더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나비스타 클래식] 뒷심부족 최나연 공동 3위

    최나연(23·SK텔레콤)이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나비스타 클래식에서 우승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아쉽게 공동 3위에 그쳤다. 최나연은 11일 미국 앨라배마주 프래트빌의 RTJ골프트레일(파72·6460야드)에서 끝난 대회 4라운드에서 보기는 1개에 그치고 버디 4개를 뽑아내 3타를 줄이는 선전을 펼쳐 최종 합계 17언더파 271타를 적어 냈다. 선두에 3타 뒤진 공동 2위로 출발한 최나연은 한때 단독 선두에 오르기도 했지만 이날 하루 5타를 줄인 캐서린 헐(호주·19언더파 169타)에게 2타 뒤진 공동 3위로 아쉽게 대회를 마무리했다. 최나연은 전반에 보기 없이 버디 3개를 잡아내며 우승을 예감했지만 12번홀(파4)에서 1타를 잃으면서 주춤했다. 18번홀(파4)에서는 두 번째 샷을 그린 위에 올리지 못한 뒤 멋진 어프로치샷으로 버디를 성공시켰지만 헐과는 이미 2타 차로 벌어져 있었다. 마지막까지 헐과 우승 경쟁을 벌인 건 크리스티 커(미국). 17번홀을 마쳤을 때 커에게 1타 앞서 있던 헐은 18번홀 티샷을 왼쪽 러프로 보내고 두 번째 샷도 홀에서 멀찌감치 떨어뜨렸지만 두 차례 퍼트로 경기를 마무리, 2008년 8월 캐나디언여자오픈 이후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7언더파 65타의 맹타를 휘두른 브리타니 린시컴(미국)이 합계 18언더파 270타로 준우승을 차지한 가운데 ‘맏언니’ 박세리(33)도 3타를 줄이는 선전 끝에 합계 16언더파 272타를 쳐 양희영(21) 등과 함께 공동 5위에 올랐다. 박희영(23·하나금융)은 15언더파 273타를 쳐 공동 8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씨줄날줄] ‘코리아조네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Frailty, thy name is woman.)” 희곡 햄릿 속의 명대사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도 세계 스포츠 제전에서 한국 낭자군의 활약상을 봤다면 이 대사를 거둬들였을 법하다. 그제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여자월드컵(U-17) 결승전. 한국 소녀들의 파워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FIFA 주관 세계대회에서 한국이 첫 우승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준 까닭이다. 남자 축구 대표팀도 2002년 월드컵서 4강 신화를 일궈냈고 올해도 첫 원정 16강에 올랐다. 그러나 투자 효율성 면에서 여자 U-17대표팀에 비할 바 아니다. 여자 U-17대표팀을 위해 올해 편성된 예산은 6억 3000여만원에 불과했다. 남자 대표팀 예산은 17.5배 많은 111억 8000여만원이었다. 사실 총 등록선수 1450명, 고교생은 345명에 불과한 게 한국 여자축구의 현주소다. 여자 U-20월드컵 준결승에서 우리를 꺾은 독일은 등록선수만 105만명이 넘는다니 비교조차 무의미하다. 그런데도 하루 원정 간식비로 5000원이 책정된 한국이 덜컥 우승하자 외신들도 기적이라고 타전했다. 물론 한국 여자 선수들의 위업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장미란이 베이징올림픽 역도에서 금메달을 들어올린 게 엊그제 같은데 올해 밴쿠버에서 김연아가 피겨 사상 첫 금메달을 따냈다. 그뿐인가. 남자 골퍼 양용은이 지난해 PGA챔피언십에서 첫 메이저 대회 우승기록을 남긴 것도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박세리가 LPGA 3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지 오래다. 이쯤 되면 우리의 딸들을 ‘코리아조네스(코리안+아마조네스)’라 불러도 무리가 아닐 성싶다. 아마조네스는 1500년경 스페인탐험대가 남미 아마존 강에서 만난 여전사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본래 그리스 신화 속의 여성무사족이다. 그러나 ‘코리안 우먼’들은 핏속에 남다른 성공 DNA가 흐르고 있음을 신화 아닌, 각 분야의 현실에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어디 스포츠뿐이랴. 반도체 등 섬세한 손재주를 요하는 산업에서도 한국 여성들의 기여도가 크다는 분석도 있다. 어쩌면 IT강국 한국의 오늘도 이름 모를 코리아조네스의 공이라면 논리의 비약일까. 여성들이 사회 각 분야에 많이 진출했다고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시대적 과제인 선진국 진입을 위해선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유리천장’을 없애는 데 남성들이 오히려 앞장서야 할 듯싶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 [KLPGA챔피언십] 신지애, 명예의 전당 최연소 입성

    [KLPGA챔피언십] 신지애, 명예의 전당 최연소 입성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명예의 전당. 1951년 만들어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명예의 전당 못지않게 까다롭다. 한국에서는 2004년 만들어졌지만 단 2명만 이름을 올린 것으로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2012년 입회하는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를 포함해 34명이다. 한국은 입회 포인트가 100점이나 되지만 미국은 27점이다. 더욱이 국내 선수들의 기량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고만고만해진 요즘 “미국보다 한국 명예의 전당 들어가기가 더 어렵다.”는 아우성도 들린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다. 신지애(22·미래에셋)다. 2005년 프로에 데뷔해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19승을 거뒀다. 브리티시여자오픈(2008년)을 포함해 LPGA 투어에서 7개,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3개의 우승컵을 수집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점 하나를 19일 마침내 ‘꽝’ 하고 찍었다. 신지애가 19일 경기 용인 88골프장 서코스(파72·6540야드)에서 막을 내린 메트라이프-한국경제 KLPGA챔피언십(총상금 7억원)에서 4라운드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로 우승했다. 상금 1억 4000만원. 2년 만에 KLPGA 투어 통산 20승째를 올린 신지애는 입회 포인트 5점(우승 4점·대회 참가 1점)을 보탠 100점을 채워 구옥희(54), 박세리(33)에 이어 세 번째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까지 30개의 국내외 우승컵을 끌어모은 건 물론 그로 인한 각종 시상으로 받은 ‘보너스’ 덕분이었다. 신지애는 만 22세 4개월22일째로 명예의 전당 최연소 헌액자가 됐다. 데뷔 이후 최단 기간에 입회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단, 이름을 명판에 새기는 건 입회 기간 10년째가 되는 2015년. 박세리가 2007년 30세의 나이였으니, 신지애는 5년 뒤 그보다 3살 어린 27세의 나이로 입회하게 된다. 신지애는 KLPGA 영구시드까지 받았다. 이 역시 구옥희, 박세리에 이어 세 번째다. 신지애의 우승은 이웃집 마실 다녀오듯 어렵지 않게 달성됐다. 2라운드 공동선두를 허용했을 뿐 4라운드 내내 선두를 지킨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10언더파로 4라운드를 출발, 챔피언조에서 동반 플레이를 펼친 경쟁자들이 자멸하는 사이 독불장군처럼 자신의 타수를 지켜낸 완벽한 우승이었다. ●우승상금 1억4000만원 기부 특히 신지애는 우승 상금 전액을 소아난치병과 저소득 장애인단체 등에 기부하기로 해 훈훈한 한가위를 실감케 했다. 그는 “오랜만의 국내 투어 우승이라 더 기쁘다. 후반 비 때문에 힘들었는데 마지막까지 파로 잘 막아서 좋다.”면서 ”(우승 상금 가운데) 일부만 (기부)하자는 아빠(신제섭씨)를 설득했다. 지금 필요한 건 우승 트로피다. 필요한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KLPGA 챔피언십]진정한 여왕은 누구

    [KLPGA 챔피언십]진정한 여왕은 누구

    진정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의 여왕’은 누가 될까. 해외파와 국내파가 한자리에 모여 전쟁을 벌인다. 16일부터 나흘간 경기 용인 88골프장(파72·6540야드)에서 벌어지는 KLPGA 투어 메트라이프-한국경제 KLPGA챔피언십이 대결무대다. 올해로 32회째인 메이저 대회다. 총상금 7억원, 우승상금만 1억 4000만원에 달하는, 올 시즌 23개 대회 가운데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돈잔치’다. 해외파의 ‘투톱’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신지애(22·미래에셋)와 최나연(왼쪽·23·SK텔레콤)이 출전해 오랜만에 국내 골프팬들 앞에 선다. 둘은 지난 13일 막을 내린 LPGA 투어 P&G NW 아칸소챔피언십에서 각각 4위와 5위를 차지한 뒤 서둘러 짐을 꾸렸다. 둘에겐 이번 대회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최나연은 2007년에, 신지애는 이듬해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LPGA에 매달리느라 출전하지 못했다. 2승 욕심이 남다르다. 특히 신지애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면 KLPGA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점수 100점을 채워 구옥희(54), 박세리(33)에 이어 세 번째로 명예의 전당 헌액자가 된다. 그러나 10년 이상의 투어 경력이 있어야 해 신지애는 2015년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KLPGA 상금랭킹 1·2위를 달리는 안신애(오른쪽·20·비씨카드), 이보미(22·하이마트)를 비롯한 국내파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이보미는 지난 12일 끝난 대우증권클래식의 초대 챔피언 자리에 올라 시즌 2승째를 신고, 안신애를 제치고 대상 포인트 부문 1위에 복귀했다. 3승째를 거둘 경우 단숨에 상금랭킹 1위마저 빼앗을 수 있다. 결국 해외파의 견제 속에 다승왕을 향한 이보미와의 싸움이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현대건설 서울경제 여자오픈] 눈 앞에서 우승컵 놓친 장수연

    15년 만에 나올 뻔한 아마추어 2주 연속 우승 기록이 스코어 텐트 앞에서 산산조각났다. 5일 경기 화성시 리베라골프장(파72·6500야드)에서 막을 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마지막날 3라운드. 아마추어 초청 선수로 출전한 국가대표 상비군 장수연(16·함평골프고)은 버디 4개와 보기 1개로 3타를 줄인 최종합계 9언더파 207타로 경기를 마쳐 우승하는 듯했다. 지난주 경기 포천의 일동레이크골프장에서 끝난 LIG클래식 챔피언 배희경(18·남성여고)에 이어 2주 연속으로 프로대회에 초청된 ‘아마추어들의 반란’이 실현되는 듯했다. 아마추어 2주 연속 우승은 1995년 6월 당시 박세리가 미도파여자오픈(15~17일)과 크리스찬디올오픈(22~24일)에서 단 한 차례 일궈낸 적이 있다. 장수연은 의기양양하게 경기를 마무리하고 카드를 제출하기 위해 스코어 텐트로 걸어갔지만 ‘날벼락’을 맞았다. 기다리고 있었던 건 2벌타. 사정은 이랬다. 파로 세이브한 15번홀(파4)이 화근이었다. 두 번째 샷이 그린을 놓친 장수연은 어프로치샷을 날렸지만 플레이 선상 2m 앞에 놓인 캐디백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도 모르는 채 플레이는 계속돼 ‘사건’은 넘어간 듯했지만 이를 본 한 갤러리가 경기위원에게 알렸다. 결국 장수연은 비디오 판독을 통해 규칙 8조2항 위반이 결정됐다. 2벌타를 얹은 장수연은 이정은(22·호반건설)과 동타(7언더파 209타)가 돼 연장전에 끌려 들어갔지만 첫 홀(18번홀·파5)에서 버디를 얻어맞아 결국 준우승에 그쳤다. 이 조항은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플레이 선상 또는 그 홀을 향한 연장선 위에 어떤 장비도 세워두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행운의 우승을 차지한 이정은은 시즌 처음이자 통산 세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상금 600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장수연은 KLPGA 정회원 자격을 얻을 기회도 놓쳤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캐나디언여자오픈] Wie풍당당…女그린 신바람

    [캐나디언여자오픈] Wie풍당당…女그린 신바람

    290야드를 넘나드는 드라이버샷과 그린을 놓치는 법이 없는 정확한 아이언샷, 신들린 듯 툭툭 컵에 떨어지는 퍼트까지. 어느덧 20세를 넘어서 이젠 숙녀가 된 ‘천재 소녀’ 미셸 위(21·나이키골프)가 9개월 만에 통산 2승째를 올리며 부족한 ‘흥행카드’에 입과 목이 바짝 타들어 가는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중심에 다시 섰다. ●‘와이어 투 와이어’로 2승째 미셸 위는 30일 캐나다 매니토바주 위니펙의 세인트찰스골프장(파72·6572야드)에서 막을 내린 CN캐나디언여자오픈 4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때려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로 우승했다. 전날 3라운드에서 신지애(22·미래에셋)에게 공동선두를 허용했지만 나흘 내내 리더보드 맨 윗줄을 지킨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지난해 11월 멕시코에서 열린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우승 이후 LPGA 투어 두 번째 우승컵이다. 상금은 33만 7500달러. 미셸 위와 함께 챔피언조에서 나흘째 동반 플레이를 펼친 신지애는 1타를 잃어 합계 9언더파 279타로 이지영(25),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 크리스티 맥퍼슨(미국)과 함께 공동 2위에 그쳤다. 지난해 11월 멕시코대회 이후 몇 차례의 우승 기회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 탓에 이름이 번번이 리더보드에 묻혀 버렸던 터. 남자 못지않은 폭발적인 장타를 날리면서도 정교함이 부족하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선 약점을 찾기 어려웠다. 드라이버샷 평균 비거리는 290.38야드에 이르렀다. 나흘 동안 드라이버를 50여차례 꺼내 들어 공을 페어웨이에 안착시킨 건 24번에 불과했지만 웬만하면 그린을 놓치지 않는, 정확한 아이언샷으로 이를 커버했다. 특히 홀당 평균 퍼트 수가 1.597개에 불과했던 건 주목할 만하다. 자신의 지난 14개 대회의 평균 퍼트 수(1.850개)보다 적었다. ●공동 2위 신지애 다시 상금 1위 미셸 위가 안정된 경기력을 선보이자 되레 우승 경험이 풍부한 신지애(22·미래에셋)가 무너졌다. 미셸 위는 사실상 우승이 확정된 17번홀의 보기를 제외하곤 4번, 12번홀에서 보기를 범한 뒤 곧바로 버디로 타수를 만회했다. 반면 신지애는 8번홀에서 결정적인 보기를 범한 뒤 미셸 위에게 내내 끌려다녔다. 신지애는 그러나 상금 14만 2000달러를 받아 미야자토 아이(일본·134만 1000달러)를 제치고 상금 랭킹 1위(140만달러)로 다시 올라섰다. 미야자토는 공동 15위(4언더파 284타)에 머물렀지만 세계 랭킹 1위는 지켜냈다. 박세리(33)는 4타를 줄인 공동 8위(6언더파 282타)의 타수를 적어내며 오랜만에 ‘톱10’ 성적을 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피플 인 스포츠] U-17 여자축구대표 여민지 “우리 실력 제대로 보여드릴게요”

    [피플 인 스포츠] U-17 여자축구대표 여민지 “우리 실력 제대로 보여드릴게요”

    영락없는 ‘선머슴’이었다. 그을린 피부에 길지 않은 머리. 벌어진 어깨와 튼실한 허벅지에 건들거리는 걸음걸이. ‘태극소녀’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사실 어색했다. 처음엔 몰라봤다. 혹시 그럴까봐 사진을 몇 번이나 보고 갔는데, 역시 그냥 지나쳤다. 17세 이하(U-17) 여자축구대표팀의 ‘부동의 스트라이커’ 여민지(17·함안 대산고)를 몰라봤다. 그는 지난해 1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17 챔피언십에 대표팀 공격수로 출전, 5경기에서 무려 11골을 몰아 치며 우승을 이끌었다. 경기마다 꾸준히 골을 넣었다. 20세 이하 대표팀의 지소연(19·한양여대)과 똑같다. 플레이 스타일도 똑같다. ‘공을 발에 붙인’ 드리블에 골결정력까지 갖췄다. 바가지형 헤어스타일과 여자축구에 대한 애정까지 닮았다. 새달 9일부터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17일 파주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여민지를 만났다. 평범한 여고 2학년이라고 하기에는 말수가 적었다. 툭툭 내던지는 듯한 경상도 사투리의 단문형 말투였다. “여자애들이랑 노는 것보다 한 살 많은 오빠나 남자애들이랑 공 차는게 더 재미가 있었어요. 골을 넣었을 때 그 기분 때문에 축구를 계속하다 보니 선수가 됐죠.” 부모님도 딸이 운동을 할 거라고 예상은 했단다. “‘아기일 때 안아보면 허벅지가 다른 여자애들과는 남달랐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때는 박세리 선수가 유명해서 집에서는 골프를 하길 원했죠. 그런데 제가 워낙 축구를 좋아하니까 부모님도 반대는 않으셨어요.” 초등학교 4학년때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여민지는 그전까지 세상에 축구하는 여자는 자기 혼자밖에 없는 줄 알았단다. 그런데 알고 보니 축구를 하는 여자애들이 많았다. 대부분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신화’의 영향으로 공을 차기 시작했던 친구들. ‘여자’ 축구선수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축구를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더 열심히 뛰었다. 여자축구부가 있는 중학교를 거쳐 현재의 대산고에 진학했다. 여민지가 거쳤던 학교의 축구부들은 모두 전국에서 알아주는 명문이 됐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여자축구를 위해 뛴다. 다른 친구들처럼 놀러 다니지 못하는 것이 아쉽단다. 부모님 몰래 분칠도 하고, 립스틱도 바를 나이다. “아직까지 멋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대학교 가면 머리도 기르고 싶고, 꾸며 보고 싶겠죠?” 남자에도 아직 관심 없단다. 어릴 때부터 남자애들과 많이 어울려 놀다보니 신비감이 없다. 공부는 초등학교 때 곧잘 했지만, 공부에 흥미를 느끼기 전에 축구에 빠져버렸다. 훈련과 대회 때문에 수업은 많이 빼먹지만 수행평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은 잘 나오는 편이라고 했다. 서로 민망할까봐 몇 등인지는 굳이 묻지도 답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질문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논리정연하게 대답을 잘해서 똑똑한 것 같다고 칭찬했다. 그랬더니 “축구는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상대보다 먼저 판단하고 움직여야 골을 넣을 수 있거든요.”라고 했다. 최덕주 감독은 상대의 예상보다 반 박자나 한 박자 빠른 슈팅이 여민지의 장점이라고 했다. 그는 “언니들이 잘해서 기대가 높아졌어요. 여자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 내야죠.”라면서 “아마 우승할 것 같아요. 우리 실력 좋아요. 이 기회에 우리가 누군지 제대로 보여드릴께요.”라고 각오를 밝혔다. 무뚝뚝하게 ‘우승’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그에게 왠지 믿음이 갔다. 글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9세 골프신동 3개홀 연속 ‘이글쇼’

    9세 골프신동 3개홀 연속 ‘이글쇼’

    9세 한국인 소녀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여자 주니어골프대회에서 3개 홀 연속 이글을 잡아내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요하네스버그에 사는 손우주양은 15일(현지시간) 랜드파크 골프장에서 남아공 리틀키즈재단이 주최한 주니어 오픈대회에서 11·12·13번홀 연속 이글쇼를 펼쳤다. 12세 이하 어린이가 참가 대상인 이 대회에서 손양은 11번홀(파4, 230m)에서 티샷을 그린에 바로 올린 뒤 10m 이글 퍼팅에 성공했다. 손양은 12번홀(파5, 360m)에서도 내리막 페어웨이를 이용한 240m 티샷에 이어 5번 아이언으로 그린 에지까지 공을 보낸 뒤 퍼터를 잡고 8m짜리 이글을 뽑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또 13번(파4, 218m)홀에서는 티샷을 홀 3m 거리에 붙이며 성인 대회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대기록을 달성했다. 손양은 4언더파를 기록해 우승했으며 2위와는 6타차가 났다. 교민 손춘권(43·수입상)씨의 외동딸인 손양은 2년 전부터 남아공은 물론 해외 어린이 골프대회를 석권하는 등 일찌감치 골프 신동의 자질을 보여왔다. 손양은 지난 6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유러피언 세계 챔피언십대회에서 2오버파로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달 초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는 1오버파로 4위에 오르기도 했다. 손양은 5세 때 부모를 따라 골프장에 다니며 골프채로 장난을 치다 본격적으로 골프에 입문했다. 경기 중 고비의 순간에도 시원스레 샷을 날리는 등 어린 나이의 소녀로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담력이 센 것이 강점이다. 레슨프로 이상영씨는 “부모가 손양을 골프 선수로 키우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레슨을 받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서 “외부의 후원이 있으면 분명히 박세리를 능가하는 골프 선수로 대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하네스버그 연합뉴스
  • 앙드레김, “우아하고 판타스틱했던” 75년간의 패션쇼

    앙드레김, “우아하고 판타스틱했던” 75년간의 패션쇼

    ‘한국 패션계의 거장’ 앙드레김(본명 김봉남)이 12일 오후 7시 30분께 향년 75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패션을 넘어 문화 아이콘으로 시대를 향유했던 앙드레김의 타계 소식에 패션계는 물론, 대중문화계와 사회문화계 전반이 슬픔과 조의를 표하고 있다. 1935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난 앙드레김은 국제복장학원 1기로 졸업해 인터내셔널 디자이닝 인스티튜드를 수료했다. 1962년 첫 패션쇼와 ‘살롱 앙드레’를 연 앙드레김은 한국의 ‘남자 디자이너 1호’ 출발해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패션디자이너로서 ‘우아하고 판타스틱한’ 생을 마감했다. ◆ 런웨이에 선 톱스타들…패션+문화예술 앙드레김의 패션쇼는 국내 톱스타들을 메인 모델로 내세워 화제를 모았다. 1963년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최은희가 앙드레김의 패션쇼에 선 것을 시작으로 ‘여배우 트로이카’ 윤정희, 장미희, 이영애, 김희선, 최지우, 송혜교, 김태희 등 미모와 스타성을 동시에 갖춘 여배우들이 런웨이를 걸었다. 남자배우들 역시 여배우와 함께 앙드레김의 드라마틱한 런웨이의 주인공이었다. 장동건과 배용준, 이병헌, 원빈, 송승헌, 소지섭 등 톱스타들의 워킹 역시 앙드레김의 패션쇼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이처럼 패션쇼를 단순한 패션의 장에서 탈피, 문화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했던 앙드레김은 자신의 모델을 단지 배우들에 국한하지 않았다. 박세리, 추성훈 등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들을 기용하기도 했고, 개그우먼 조혜련 역시 앙드레김의 모델로 나선 바 있다. ◆ 과장의 미학…컬러·패턴·실루엣 앙드레김의 패션쇼에서 만날 수 있는 의상들은 대부분 과장의 미학에 기초했다. 서양 드레스의 화려한 실루엣에 한국적(혹은 동양적) 색감과 패턴을 가미한 앙드레김의 디자인은 한국은 물론, 세계 패션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극단적인 화려함과 우아한 고풍스러움, 과도한 과장법으로 요약되는 앙드레김의 디자인에 대해 일각에서는 트렌드 제시능력을 상실한 나르시시스트의 작품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동양의 신비와 화려한 색채들을 보여준다는 의도 아래, 앙드레김은 매 쇼마다 칠겹 궁중드레스, 용무늬를 수놓은 거대한 패딩코트 등을 선보여 왔다. 하지만 지난 2002년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앙드레김 패션판타지아’ 패션쇼에서(당시 배용준과 최지우가 메인 모델로 호흡을 맞췄다.) 앙드레김은 “로코코 스타일의 클래식함만을 강조하던 시대는 지났으며 더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세계로 나가겠다”고 디자인 혁명을 선언하기도 했다. ◆ 문화적 아이콘…화법·스타일·브랜드 앙드레김은 영어를 섞은 화법과 기이한 화장법, 독특한 패션 스타일로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됐다. 연예계와 문화계에서는 이를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해 코미디나 드라마 캐릭터, CF 등에 차용하기도 했고, 일각에서는 앙드레김을 디자이너보다는 사교계 인사 혹은 엔터테이너로 불려야한다는 의견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앙드레김 본인은 이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앙드레김은 패션계 인사들보다는 대중문화계나 예술계 인사들과 더 친분이 두터웠다. 이 같은 성향은 앙드레김의 브랜드 전략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디자인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앙드레김’의 이름이 붙은 침구용품, 냉장고, 에어컨, 아파트, 신용카드 등이 출시됐고, 그의 이름 자체가 패션 이상의 브랜드로 승화됐다. ◆ 세계로, 세계로…한국 패션 선구자 앙드레김은 한국 패션을 세계에 알린 선구자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66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에서 패션쇼를 연 앙드레김은 1997년 패션 디자이너 최초로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했고 200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훈장을 받기도 했다. 또 1996년에는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2006년에는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사원에서 세계 최초로 패션쇼를 개최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외에도 호주,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앙드레김의 디자인은 민간외교사절로서 전 세계를 누볐다. 가장 최근에는 올해 3월 중국 베이징의 ‘뉴 차이나 국제전시센터’에서 ‘앙드레김 아트 콜렉션’을 개최했다. 당시 앙드레김은 “언젠가는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패션쇼를 열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지만, 이를 이루지 못한 채 우리 곁에 떠나고 말았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김연아 인터뷰 오바마보다 어려웠다”

    “김연아 인터뷰 오바마보다 어려웠다”

    한국 스포츠의 힘을 다룬 다큐멘터리 ‘한국 스포츠의 탁월함(South Korea:Focused on Excellence)’가 이달부터 다음달까지 두 달 동안 미국 전역의 공중파에서 방송될 예정이다. 한국 스포츠만을 주제로 삼은 프로그램이 NBC, ABC, CBS 등 대표적인 공중파를 통해 미국 120개 도시에서 방송되기는 처음이다. 다큐는 지난 1936년 일제 강점기 때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마라토너 손기정을 시작으로 올해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금메달을 목에 건 피겨여왕 김연아로 끝을 맺는다. 물론 축구의 박지성과 이청용, 골프의 박세리·양용은·신지애, 빙상의 이승훈, 야구의 박찬호·추신수·김현수 등 국내외에서 내로라하는 10여명의 스타들도 등장한다. 제작사인 JPI 측은 다큐 제작을 위해 지난 5월부터 두달 이상 한국과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직접 선수들을 만나 시련과 좌절, 영광, 미래의 꿈을 인터뷰했다. 또 서울시청 앞뿐만 아니라 쇼트트랙 경기장, 잠실 야구장, 골프연습장 등지에서 한국의 꿈나무들을 취재했다. JPI 부사장 겸 감독을 맡은 제이 잘버트는 3일 “미국 뉴저지주 크기만한 한국에서 축구·골프·야구 등 각 분야의 스포츠 천재들이 나오는 이유가 궁금했다.”며 제작의 배경을 설명했다. 제작에는 스포츠 다큐 부문 에미상 수상자들인 작가 마이클 쉔저, 촬영 감독 빌 에번스 등이 참여했다. 다큐의 하이라이트는 김연아에 맞춰졌다. 제작팀은 김 선수, 브라이언 오서 코치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얼마나 힘든 역경을 딛고 정상에 올라섰는지를 극적으로 꾸몄다. 그러면서 “가수도 배우도 아닌 체육인 김연아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잘버트는 “김연아를 인터뷰하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보다 더 어려웠다.”면서 “하지만 인터뷰 과정에서 매우 우아했고, 즐거워했다.”고 말했다. 또 “정말 특별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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