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박사
    2026-06-26
    검색기록 지우기
  • 18세
    2026-06-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4,493
  • 130억 년 전 ‘별의 노래’를 들어보자

    130억 년 전 ‘별의 노래’를 들어보자

    우리 은하에서 가장 오래된 ‘별의 노래’를 영국 천문학자들이 포착해냈다. 버밍엄대 물리천문대학원 연구팀은 130억 년 전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구상성단 ‘M4’를 구성하는 별들의 진동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K2 임무’로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별진동학(성진학·Asteroseismology)에 근거한 연구를 진행했다. 별진동학은 별 밝기의 미묘한 변화로 이어지는 ‘진동’을 분석해 별빛이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맥동변광성의 내부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대개 이런 진동은 별 내부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원인이다. 즉 ‘별의 소리’를 측정함으로써 개별 별의 질량과 나이 등을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말했다. 빌 채플린 교수는 “고고학자들이 흙을 파내 과거를 공개하는 것처럼 우리는 별의 내부의 소리를 통해 ‘은하 고고학’을 연구하는 것”이라면서 “초기 우주의 별들이 남긴 노래를 들을 수 있어 감격했다”고 말했다. 연구를 이끈 안드레아 밀리오 박사는 “우리가 조사한 별은 실제로 우리 은하가 형성한 시대부터 살아남은 화석 같은 것”이라면서 “앞으로 우리 은하와 같은 나선은하가 어떻게 형성하고 성장하는지 그 수수께끼를 밝혀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성과는 ‘영국 왕립천문학회 월간보고’(Monthly Notic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버밍엄대 별의 노래 듣기 링크(http://bison.ph.bham.ac.uk/~miglioa/M4PR/M4_beta0.html)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전국 조폭들 1000억대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하다 적발

    1000억원대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운영한 전국 21개 파 조직폭력배 등이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혔다. 울산지방경찰청은 회원을 모집해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에서 도박하도록 한 강모(31·전북 익산 폭력조직 행동대원)씨와 대표통장 유통책 김모(31)씨, 사이트 운영자 이모(44)씨 등 8명을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나머지 9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9일 밝혔다. 또 이 사이트 개설·운영을 총괄하고 해외로 도주한 울산 재건신역전파 부두목 박모(33)씨를 수배하고 인터폴에 공조를 요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도주한 박씨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중국, 베트남 등에 서버를 두고 해외 축구, 농구경기를 중계하는 도박 사이트를 개설해 강씨에게 회원 모집 총책을 맡겼다. 강씨는 자신이 알고 지내던 다른 조폭들을 하부 모집책으로 영입했고 조폭들은 또 다른 조폭을 영입하는 식으로 울산, 익산, 대전, 수원, 전주, 경산, 포항 등 전국 21개 파 42명이 강씨의 범행에 가담했다. 강씨는 대가로 회원들이 건 돈의 3∼5%를 받았고, 하부 모집책들은 회원들이 잃은 금액의 30%를 운영자들로부터 받아 챙겼다. 강씨는 또 31개 사이트의 관리권을 운영자들로부터 넘겨받아 도박자들에게 제공해 1억 6000만원의 이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대포통장 유통책 김씨 등 조폭 2명은 지인 명의로 유령 법인을 세우도록 하고 대포통장 40여개를 만들어 운영진에게 공급했다. 경찰 관계자는 “우선 4개 도박사이트를 확인했는데 한 사이트에서는 1만 명의 회원이 도박했고 하루에 2억원의 판돈이 오가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며 “1년 6개월 사이에 전체 사이트에서 1000억원의 판돈이 오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키 큰 사람, 작은 사람보다 노동 생산성 높다 (연구)

    키 큰 사람, 작은 사람보다 노동 생산성 높다 (연구)

    키가 큰 사람이 작은 사람보다 일의 생산성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듀크대학과 미국경제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NBER)가 지난 7년간 인도네시아 남성 5304명을 대상으로 추적조사를 실시한 결과, 키가 큰 남성은 작은 남성에 비해 시간당 수입이 더욱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개된 데이터에 따르면 키가 170㎝인 남성은 키가 155㎝인 남성에 비해 시간당 1000인도네시아 루피아, 한화로 약 87.6원을 더 버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키가 큰 남성은 노동 시장에서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건강과 가정환경, 육체적 노동과 사무직 등의 요소를 배제하고 오로지 신장이 끼치는 영향만이 반영되도록 분석했ㅇ다. 예컨대 가정환경과 건강상태, 노동의 형태 등은 유사하지만 신장만 다른 사람들의 생산성과 수입 등을 비교한 것이다. 그 결과 키가 큰 남성이 작은 남성에 비해 같은 시간 노동에도 생산성이 높고 이것이 수입으로 연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듀크대학교 경제학과의 던칸 토마스 박사는 블룸버그와 한 인터뷰에서 “신장이 단순히 인지능력이나 건강을 의미하는 지표일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는 키가 크고 작은 것이 생산성 및 이와 관련한 보상과 연관이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키카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동시에 쌀을 팔아도 키가 큰 사람이 쌀을 더 많이 파는 경향이 관찰됐는데, 이는 사람들이 일부러 키가 큰 사람의 쌀을 산 것이 아니라, 키가 크기 때문에 (일을 더 잘 해서) 쌀을 더 많이 판매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덧붙였다.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 사이에 생산성과 수입뿐만 아니라 건강상태 역시 다를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 독일당뇨병연구센터(DZD)와 튀빙겐의대, 하버드의대 공동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키가 큰 사람들일 수록 심혈관질환, 2형 당뇨병의 위험은 낮지만 암이 걸릴 위험성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키가 작은 사람은 관상동맥이나 뇌혈관의 크기도 작기 때문에 혈관이 잘 막히기 쉬워서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높은 반면, 키가 큰 사람들은 어렸을 때 영양분을 과도하게 섭취하거나 세포수가 더 많아서 암세포가 생겨날 확률이 높다는 추측 등을 내놓기도 했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운전 중 핸즈프리 통화도 사고위험 높인다” (英 연구)

    “운전 중 핸즈프리 통화도 사고위험 높인다” (英 연구)

    운전 중 안전하다고 인식하는 '핸즈프리'(hands-free) 통화도 사실은 사고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영국 서식스 대학 연구팀은 운전 중 핸즈프리 통화가 직접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사용하는 것 만큼이나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핸즈프리 통화가 안전하다는 기존 인식과 정반대 결과여서 주목된다. 연구팀의 실험방법은 시뮬레이션 운전을 통해 이루어졌다. 남성 20명, 여성 40명 등 총 60명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각각 세 가지 방식의 운전을 실시했다. 먼저 A그룹은 아무런 방해없이 운전을, B그룹은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는 질문을 연구팀과 주고 받으며 운전을, C그룹은 이미지 연상이 필요없는 간단한 질문을 주고받으며 운전을 하게했다. 그 결과 예상대로 아무런 방해없이 운전을 한 A그룹이 가장 위험을 야기하는 돌발상황(갑자기 보행자 등장, 역방향 차량 등장 등)을 잘 발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반해 B그룹은 돌발상황을 발견하는 수치가 A그룹의 절반에 불과해 세 그룹 중 최악의 운전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왜 운전 중 핸즈프리 통화가 위험한 것일까? 연구를 이끈 그래엄 홀 박사는 "대화는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각처리 능력이 요구된다"면서 "대화에 필요한 시각처리와 안전운전에 필요한 시각처리 능력이 우리 뇌 안에서 경쟁을 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운전 중 핸즈프리 통화(대화)는 어떤 특정 이미지를 연상케 할 수 있어 정신을 산만하게 만든다"면서 "가장 안전한 운전은 그냥 휴대전화를 끄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호빗’보다 더 작은 70만년 된 초기인류 화석 발견

    ‘호빗’보다 더 작은 70만년 된 초기인류 화석 발견

    현생인류와 달리 몸집이 작아 일명 '호빗'으로 불렸던 호미닌(Homonin·초기인류)의 조상뻘 화석이 발견됐다. 지난 8일(현지시간) 호주 울런공 대학과 일본 국립 과학 박물관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서 약 70만 년 된 호미닌 화석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견이 의미있는 것은 그간 인류학계의 큰 논쟁을 가져온 호빗의 '족보'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플로레스 섬의 리앙 부아 동굴에서 호미닌(Homonin·초기인류) 화석이 발견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키 106cm, 몸무게 25kg, 뇌 용량은 현생인류의 3분의 1만한 이 화석은 발견된 지역의 이름을 따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로 명명됐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은 ‘호빗’(hobbit)이다. 우리에게는 영화 속 존재로 더 익숙한 호빗은 1937년 발표된 J R R 톨킨의 소설에 등장하며 ‘반지의 제왕’에서는 난쟁이족으로 묘사됐다. 호빗은 그간 학계는 물론 관련 과학자들에게 큰 논란을 안겼다. 가장 큰 논쟁은 과연 호빗이 왜소증이나 장애를 가진 현생인류인지 아니면 멸종한 별개의 종인지 여부였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들이 몸집과 두뇌가 쪼그라드는 유전질환인 소두병을 앓은 호모 사피엔스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호빗의 육체적 특징을 들어 현생인류와 다른 새로운 종이라는 이론이 지금은 가장 큰 힘을 받고있다. 이번 발견은 이같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만하다. 먼저 이번에 발굴된 호미닌 화석은 성인과 어린이의 턱뼈 조각과 이빨들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발견된 리앙 부아 동굴에서 약 43마일 떨어진 강바닥에서 발견됐다. 더욱 놀라운 점은 화석으로 추정되는 호미닌의 크기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보다 더 작다는 사실이다. 연구에 참여한 요우스케 카이후 박사는 "처음 화석을 발견했을 때 사이즈가 작아 모두 어린이의 것으로 추정했다"면서 "CT 스캔 등을 통해 분석한 결과 일부는 성인의 것으로 70만년 전 살았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시기를 대략 5만 년 전으로 본다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이와 상관없이 그 이전부터 고립된 섬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셈이다. 이에 연구팀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멸종한 호모 에렉투스에 뿌리를 둔 초기 인류로 추정하고 있다. 카이후 박사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초기 아시안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에서 기원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약 100만 년 전 부터 인도네시아 섬 등지에 살았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고립된 지역에 살면서 30만 년 간 왜소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곧 '난쟁이 호모 에렉투스'"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1년 넘게 심장 없이 생활한 청년…인공심장의 진화

    1년 넘게 심장 없이 생활한 청년…인공심장의 진화

    심장은 절대 대체가 불가능한 장기입니다. 간처럼 일부를 잘라내도 기능이 유지되거나 콩팥처럼 하나만 있어도 살 수 있지 않아서 이식 심장을 구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인공 심장 개발에 많은 과학자가 뛰어들었습니다. 심장은 상대적으로 다른 중요 장기보다 기능이 간단하지만, 인간의 심장처럼 오랜 시간 문제없이 작동하는 심장을 개발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인간 심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인공 심장은 아직은 미래의 일이지만, 이제 임상에서 실제 인공 심장이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26세의 청년인 스탠 라킨(Stan Larkin)은 사진에서 보기엔 건장한 흑인 청년이지만, 사실은 심각한 선천성 심근질환으로 인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습니다. 2014년 병세가 나빠져 미시간 대학 병원에 입원했을 때 환자와 의료진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에게 맞는 이식 심장을 구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아마도 그는 그때까지 생존이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따라서 그 대안으로 신카디아 인공 심장 (SynCardia Temporary Total Artificial Heart)을 이식했습니다. 이 인공 심장은 지난 수십 년간의 기술이 결집한 것으로 13.5파운드 (약 6kg)의 외부 배터리와 보조 장치를 지닌 인공 심장입니다. 환자는 이 외부 장치를 백팩 형태의 가방 안에 넣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은 물론 가벼운 운동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직은 그 기능이 진짜 심장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심장을 이식받고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이 인공 심장은 심장 이식 이외에 희망이 없는 말기 심질환 환자의 유일한 희망이 되었습니다. 2015년 1월, 인공 심장을 이식받은 스탠은 1년 이상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고대하던 심장 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심장 이식 수술 후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스탠은 인공 심장과 함께했던 1년간 병원에만 누워있던 것이 아니라 집에서 일상생활을 했으며 심지어 농구를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집도의인 미시간 대학 병원의 조너선 하프트 (Jonathan Haft) 박사는 본래 이 인공 심장이 농구를 할 수 있는 수준의 심장 기능을 목표로 제작되지는 않았지만, 스탠이 이 기계의 성능을 한계까지 사용했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1년이 좀 넘는 한정된 기간이지만, 인공 심장의 가능성을 더 높인 것입니다. 다만 아직 인공 심장은 매우 비쌀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기술이 더 진보해서 인공 심장으로 5년, 10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언제 그것이 가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심각한 심장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획기적인 인공 심장이 등장하기를 기다려봅니다. 사진=미시건대 헬스시스템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서울시의회 성중기의원 “한강 보행-자전거 전용다리 새 명소 기대”

    서울시의회 성중기의원 “한강 보행-자전거 전용다리 새 명소 기대”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성중기 의원(새누리당, 강남1)은 6월 10일(금), 오후 1시 30분부터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강남북 연결 한강 보행 및 자전거전용 다리 건설을 위한 토론회’를 서울시의회 별관 2층 대회의실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금번 토론회는 연세대학교 김형진 교수의 “한강 빛 공원 대교 개발계획(보행 및 자전거전용 한강 교량 개발계획)”이라는 주제발표와 함께 서경대학교 김준영 교수, 한국항공대학교 류재영 교수, 연세대학교 김장호 교수, ANU디자인그룹 건축사사무소 최홍남 대표, 국토연구원 김명수 박사를 포함하여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김용학 과장이 토론자로 참석하여 한강상 보행 및 자전거전용 다리 건설의 타당성 및 효과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번 토론회는 성중기 의원이 2015년 8월 4일 제262회 임시회 5분 발언을 통해서 수도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에 보행과 자전거 통행을 위한 전용 다리를 건설하자는 아이디어를 박원순 시장에게 제안한 이후 관련 전문가들과 보다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개최되었다. 성중기 의원(새누리당, 강남1)은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강남 한전이전 부지 개발, 영동대로 지하 통합개발 등 서울시의 굵직굵직한 개발 계획은 강남에 치중되고 있어 강남북 이질감 극복 및 균형발전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에서 오늘 토론회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특히, 영국 런던과 뉴캐슬의 밀레니엄 다리, 독일 프랑크프루트와스페인 마드리드의 보행전용다리 사례를 살펴볼 때 강을 보유한 유럽 주요 도시들은 강을 가로지르는 보행전용 공간을 만듦으로써 도시 이미지 개선과 함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에도 20여개의 교량이 있지만 대부분 자동차 위주의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어 서울시가 한강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개선의 목소리가 높다고 지적했다. 성중기 의원은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오늘 토론회를 통해서 강남북 이질감과 불균형 해소 기여, 한강의 새로운 랜드마크 조성과 관광자원으로 까지 활용될 수 있는 새로운 한강명소화 사업의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박승 前 한은 총재 ‘인생경제학’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박승 前 한은 총재 ‘인생경제학’

    나이를 무색하게 했던 10년 전의 ‘혈기방장’은 아직도 그대로일까. 팔순에 접어든 그가 어떤 모습으로 손님을 맞을지 그려보며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빌라의 초인종을 눌렀다. “아유, 많이 덥지? 어서 와, 어서 와.” 문을 여는 그의 말투와 표정. 10년 전의 그가 다시 보였다. 한국은행 총재 시절(2002~2006년) 어떤 전임자들보다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했던 박승(80) 전 총재는 여전히 세상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이봐 학생, 기껏 어려운 시험 봐서 합격해 놓고 왜 포기하려는 거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54년 2월 어느 날, 해군 제복을 입은 군인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하고도 입교 절차를 밟지 않자 ‘등록을 서두르라’는 독촉장이 날아오더니 이마저도 반응이 없자 저 멀리 경남 진해에서 전북 김제의 깡촌까지 직접 사람이 달려온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대학에 가고 싶어요.” 이리공고 수석 졸업 예정자를 반드시 데려와 입교시키라는 해사 교장의 ‘특명’을 받은 그 군인은 나의 고집에 아주 난처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가 끝내 임무 완수를 못 하고 돌아간 그날은 나의 힘겨운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시작된 날이기도 했다. -내가 태어난 1936년, 호남 벽촌 마을에서 어느 집이라고 여유가 있었겠냐마는 우리 집은 특히 더 어려웠다. 아버지는 원래 한의사였는데 그건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고, 나를 보셨던 44세 때의 아버지는 가족의 기초 생계도 감당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가장일 뿐이었다. 치료하던 환자가 급사한 뒤 의술의 길을 포기했던 아버지는 그 후 평생을 한글 초서체 연구에 바치셨다. -1948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7㎞ 떨어진 이리공업중·고에 진학했는데, 결석을 밥 먹듯이 했다. 어떤 때는 모심고 김매느라고, 어떤 때는 산에서 땔감을 구해야 해서 학교에 못 갔다. 어머니 혼자 새벽엔 보리방아 찧고 낮에는 논일하고 저녁엔 길쌈해서 생계를 꾸리시다 보니 중·고교 6년 동안 수업료 때문에 가슴 졸이지 않은 때가 없었다. 당시에는 교문 앞에서 선생님이 불시에 수업료 납부 영수증 검사를 해서 영수증이 없으면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잦았는데, 그런 일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돈을 못 내서 공부를 못 한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그렇게 터덜터덜 집에 와 보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방 안에 틀어박혀 한글 서체와 씨름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깨, 콩, 닭, 토끼를 이고 지고 5㎞ 떨어진 읍내에 가서 고생을 하시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중3 때 6·25전쟁이 났다. 전쟁이 터지고 얼마 후 인민군이 우리 마을에 들어왔다. 인민군들은 학생단체를 만들어 고등학생들을 강제로 가입시켰다. 김일성 찬양 노래를 부르게 하고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켰다. 학생들 중 6명은 나와 같이 아침마다 기차로 통학하던 고2, 고3 형들이었다. 얼마 후 유엔군이 들어와 인민군이 퇴각했는데, 그 형들은 천생 ‘빨갱이 부역자’로 몰려 처형당할 판이었다. 결국 다들 산으로 도망쳤는데, 나중에 빨치산이 돼서 경찰서를 습격했다가 결국엔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내가 몇 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이렇게 개죽음을 했겠구나.’ 좌우 이념 대결의 허망하고 참혹한 결과를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이 집 아들 빨리 결혼해서 부모님 모시고 농사지어야 되겠네.” 동네 아낙이 무심결에 던진 말이지만 고3 졸업반인 내가 피해 갈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나 아니면 예순 넘긴 부모님과 여동생을 부양할 사람이 없었다. 우리 2남 4녀 중 형은 일찍 돌아가셨고 누나 3명은 출가한 상태였다. 하지만 농사꾼으로 남을 수는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게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군 사관학교였고 나는 그 중에서도 해사에 시험을 쳤다. -해사 입교를 포기하고 농사에 전념했던 그해, 가을 수확을 하니 먹고살 것 빼고 딱 쌀 다섯 가마가 남았다. ‘이 정도면 일단 대학에 등록할 수준의 돈은 되겠다.’ 이듬해 초 서울대 경제학과 입학시험을 봤다. 어머니가 싸 주신 찐 고구마 5개를 손에 들고 난생처음 서울행 기차를 탔다.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서울역과 남대문 주변의 살풍경은 60년이 지난 현재도 머리에 또렷하다. 곰탕집 간판을 보고는 ‘곰고기를 파는 곳’, 복덕방 간판을 보고는 ‘떡 파는 곳’으로 오해했던 건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다. -55학번으로 서울대 합격을 했는데, 입학 때의 감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그래서 고등교육받는 게 가당치도 않은 시골 출신의 고학생일 뿐이었다. 서울에서 가정교사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러자니 고향집의 농사가 문제였다. 수시로 서울과 김제를 농사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이 이어졌고, 중·고교 6년 동안 그랬듯 학비와의 전쟁이 대학 졸업 때까지 이어졌다. -대학 졸업이 다가올수록 입학 때 가졌던 경제학 교수에 대한 바람은 더 절실해져 갔다. 그러려면 대학원에 진학해야 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나의 선택은 돈을 벌면서도 배움을 이어 갈 수 있는 한국은행 조사부 근무였다. -1961년 한국은행 배지를 달았다. 만 25세였다. 양복 한 벌을 18개월 할부로 사 입으니 세상이 마치 내 것 같았다. 얼마 후 5·16 정변이 났다. 정권을 잡은 군부는 동국대 옆에 중앙공무원교육원을 만들고 여기에서 사무관 이상 공무원과 교사, 교수, 기업인들에게 소정의 교육을 받도록 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입행 첫해의 내가 여기에 강사로 위촉됐다. 매주 3~5시간씩 강의를 했는데, 모교의 교장 선생님과 대학 총장, 학장도 나의 강의를 듣는 상황이 됐다. 대학 은사 박희범 교수님께서 나를 추천했기 때문이란 건 강의를 시작하고 얼마가 지난 후에야 알았다. 경제기획론과 경제발전론을 가르치셨던 박 교수님은 비교적 진보적인 색채의 학자이셨는데, 혁명정부에서 새로운 경제의 틀을 짜는 역할을 맡으셨다. 교수님은 나중에 교육부 차관과 충남대 총장을 지내셨다. -운명을 바꾼 미국 유학은 뜻하지 않은 기회에 찾아왔다. 1968년 나는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몇 날 며칠을 심하게 취조당했다. 일인즉슨 이랬다. 당시 우리나라는 무역적자가 대단히 심했는데 한국은행은 환율을 올려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서 폈다. 그러나 정부는 환율이 오르면 물가도 같이 뛴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서봉균 재무장관을 초청해 환율 인상 정책을 펴도록 설득시키기 위한 브리핑을 진행했다. 원고 작성과 발표를 대리급 조사역에 불과했던 내가 담당했다. 그런데 다음날 조간신문 1면 톱에 당장이라도 정부가 환율을 대폭 올리는 듯한 기사가 났다. 국민과 기업들 사이에 혼란이 왔다. 얼마 후 중앙정보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행원부터 부총재보까지 담당자들을 모조리 연행해 갔다. 중앙정보부 분실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누가 멋대로 신문사에 원고를 넘겨줬느냐”는 추궁이 이어졌는데, 작성자인 내가 우선적으로 용의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후배 행원이 신문기자 친구에게 발설한 사실이 드러나 나의 혐의점은 벗겨졌지만, 어쨌든 나는 후배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으로 감봉 징계를 받았다. 이게 한국은행 간부들에게 마음의 빚을 안겼다. “자네 혼자 책임을 지게 해서 미안해. 다음에 확실히 보상해 줄게.” -보상을 받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71년 한국은행 최초로 국외에 유학생 2명을 파견하게 됐다. 전체 행원을 대상으로 시험을 봤는데 나는 통계학에서 과락이 나와 탈락했다. 그런데 재시험 공고가 떴다. “어떻게든 박승 대리는 합격시키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이었다. -1972년 1월 미국 뉴욕주립대(올버니캠퍼스)로 유학을 떠났고 2년여가 흐른 1974년 4월 석사와 박사 학위를 동시에 받아 왔다. 유학을 마친 뒤 은행에 복귀하고 나서 얼마 지나 두 군데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나중에 한국은행 총재를 하게 되는 이경식 당시 경제수석이 청와대에 들어와 함께 일을 하자고 했다. 이 수석은 한국은행 재직 때 나의 직속상관이었다. 또 하나는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김재익 경제기획국장을 통해 타진해 온 ‘사우디아라비아 경제자문단’의 단장 역할이었다. 당시 사우디는 ‘1차 오일쇼크’로 막대한 달러를 벌게 됐지만 경제 개발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우디 국왕은 경제 개발을 도와줄 자문단 파견을 한국에 요청했다. 나의 선택은 사우디였다. -사우디에서 1년 만에 돌아와 1976년 9월 한국은행에 사표를 내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로 갔다. 교수 부임 직후에 쓴 ‘경제발전론’은 지금도 일부 대학에서 교재로 쓰고 있다. 교수가 되고 이듬해인 1977년부터 3년 동안은 서울신문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경제 관련 사설을 썼다. 한 편 작성에 30분 정도밖에 안 걸렸는데 이게 소문이 나면서 다른 언론사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기도 했다. 나와 함께 김학준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 관련 사설을 서울신문에 썼다. 교수로서 경력을 쌓아가며 학교 안에서는 정경대학장과 대학원장을, 학교 밖에서는 국제경제학회장과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냈는데 1988년 뜻하지 않은 인생의 전기가 찾아왔다. -“박 교수, 나랑 같이 한번 일해 봅시다.” 노태우 대통령이 그해 2월 취임을 앞두고 경제수석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만 52세였다. 노 대통령과는 이전에 일면식도 없었지만 다양한 언론 기고와 강연 활동 등으로 몇몇 경제단체에서 나를 천거했던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내가 맡았던 첫 번째 과제는 ‘200만호 주택 건설’ 공약의 실현이었다. 말이 200만호이지 엄청난 물량이었는데 막상 아파트를 지으려고 보니 서울 시내에는 땅이 없었고, 서울시 외곽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린벨트 밖으로 나가자.” 지도를 펴놓고 서울 세종로 사거리의 측량원표를 중심으로 반경 25㎞를 컴퍼스로 동그랗게 돌려 봤다. 25㎞ 이내로 한 것은 ‘지하철 1시간 이내’의 원칙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온 지역이 경기 분당, 산본, 평촌, 인천 중동 등 4곳이었다. 4대 신도시 추진이 확정되자 1988년 12월 노 대통령이 다시 나를 불렀다. “박 수석, 이제는 건설부 장관으로 고생 좀 해야겠습니다. 계획을 세웠으니 실행까지 맡아 주셔야지요.” -건설부 장관이 되고 나서 이듬해 서울 북쪽의 일산이 추가돼 5대 신도시 계획이 확정됐다. 그러나 그해 여름이 되면서 나는 청와대 경제수석실과 심각한 마찰에 부딪치게 됐다. 당시 아파트 분양가가 평당 평균 130만원대였는데 건축비는 170만원, 시장 가격은 250만~300만원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분양 당첨만 받으면 막대한 이익이 남는 구조였고, 건설회사는 낮은 분양가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날림 공사를 했다. 나는 대통령에게 분양가를 올려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경제수석실의 반대가 심했다. 분양가를 올리면 집값이 더 뛴다고 했다. 대통령을 만나 건의했지만 “그 얘기는 이미 경제수석한테 들었다”고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구나.” 사표를 냈다. 다음날 사실상 경질 통보를 받았다. 그게 1989년 7월이었고 이듬해 3월 신학기부터 다시 강단으로 돌아갔다. -2001년 3월 정년퇴임을 하고 이듬해 초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은행 총재로 임명했다. 숱한 공직을 거쳤지만 2006년 3월 퇴임할 때까지의 한국은행 총재 4년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성취를 이룬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한국은행을 가장 사랑한 총재,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위상을 높인 총재, 경제와 민생을 위해 고뇌한 총재’의 3가지 이미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5남매를 결혼시키면서 4명을 청첩장 없이 보냈다. 첫째와 둘째 아이의 결혼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치렀더니 친구들이 “축의금 낼 기회를 좀 달라”고 해서 셋째 때는 200장을 찍었다. 그런데 역시 나의 생각과 맞지 않았다. 다시 넷째, 다섯째의 결혼은 순수 가족 행사로 치렀다. -내가 모은 재산은 언젠가는 전부 사회에 내놓고 갈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한국은행 총재 재임 시절부터 월급의 20%를 가난한 사람이나 소외된 사람을 위해 써 왔다. 모교인 백석초등학교에 도서관도 만들었다. 오래전에 장기 기증 서약도 마친 상태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된 데는 개인의 이익만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의 이익을 중시하는 자세가 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박승 前 총재 중앙은행(한국은행)과 정부(청와대·건설부·공공기관)에서, 또 대학 강단(중앙대 경제학과)에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굽이굽이마다 굵직한 족적을 남겨 온 경제계의 원로다. 한국은행 총재 때 소신 있고 선제적인 통화정책을 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과의 ‘소통’을 중시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1936년 전북 김제 출생 ▲김제 백석초, 이리공업중·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뉴욕주립대(올버니) 경제학 석사·박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신문 논설위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청와대 경제수석, 건설부 장관, 주택공사·교통개발연구원 이사장, 공적자금관리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회고록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 한 달간, 축구는 예술이 된다

    한 달간, 축구는 예술이 된다

    ‘전차군단이냐, 무적함대냐, 아니면 아트사커의 부활이냐.’ 4년마다 펼쳐지는 유럽의 ’축구전쟁’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국가의 명예를 걸고 유럽 최고의 축구팀을 가리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다. 대회는 11일 오전 4시(한국시간) 프랑스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개최국 프랑스와 루마니아의 조별리그 A조 1차전을 시작으로 7월 11일 프랑스 리옹에서 열리는 결승전까지 한 달 동안 이어진다. 올해부터 2개조 8개팀이 늘어 모두 24개팀이 조별리그와 16강 이후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컵을 겨루는 가운데 나란히 3차례 우승컵을 가져간 ‘전차군단’ 독일(1972·1980·1996년)과 ‘무적함대’ 스페인(1964·2008·2012년)이 최다 우승컵에 도전한다. 특히 독일은 준우승도 3번이나 차지해 통산 6회 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마지막 우승이 무려 20년 전이었던 데 견줘 스페인은 최근 2개 대회를 거푸 휩쓸며 사상 첫 2연패를 달성했고, 이번 대회까지 우승하면 전무후무한 대회 3연패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된다. 하지만 큰 그림을 그려 보면 스페인이 최고 정점을 찍었다면 독일은 바닥을 치고 오르는 상승세다. 199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다 스페인에 ‘대권’을 넘겨준 독일은 2년 전 브라질월드컵 우승을 계기로 재부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스페인은 유로 2012 우승 이후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스페인은 독일이 우승한 브라질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으로 16강에도 들지 못했다. C조의 독일과 D조의 스페인은 각각 조 선두로 16강에 오르면 결승에서 만나지만 순위가 1, 2위로 엇갈리면 8강에서 격돌한다. 2개조가 늘면서 독일과 스페인을 비롯해 잉글랜드, 포르투갈, 스웨덴 등이 각 조로 고루 분산돼 이른바 ‘죽음의 조’ 논란이 다소 숨을 죽인 가운데 개최국인 프랑스도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1984년 첫 우승 이후 2000년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던 프랑스는 공교롭게도 또 16년 만에 ‘아트사커’의 부활을 외치며 세 번째 우승컵을 노린다. 유럽 도박사들은 지난해 말 우승 후보로 독일을 꼽았지만 최근에는 홈그라운드의 프랑스로 돌아섰다. 유로 2016은 국가대항전이지만 유럽 최고의 플레이어를 가리는 ‘별들의 전쟁’이기도 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해리 케인(잉글랜드),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왕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폴란드), 프랑스 리그앙 득점왕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스웨덴) 등 특급 스타들이 총출동하지만 역시 눈길은 레알 마드리드의 간판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의 발끝에 쏠린다. 호날두는 2010~11시즌 통산 53골을 시작으로 60골, 55골, 51골, 61골을 차례로 넣었고 이번 시즌도 50경기에 출전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골과 리그 35골 등 총 51골을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호날두는 8일 UEFA가 발표한 ‘유로 올타임 베스트11’에서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공격수 마르코 반 바스텐, 프랑스의 티에리 앙리와 함께 유로대회 최고의 공격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원로 민속학자 장주근 박사 별세

    원로 민속학자 장주근 박사 별세

    우리나라 민속학의 기틀을 세운 민속학자 장주근 박사가 8일 별세했다. 91세.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6년부터 1975년까지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신인 한국민속관 관장을 지냈다. 이후엔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경기대 박물관장과 문화재위원을 역임했다. ‘한국의 신화’, ‘한국의 향토신앙’ 등 민속 관련 서적 20여 권을 집필했다. 유족으론 장동훈 삼성디자인학교 학장이 있다. 빈소는 건국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201호, 발인은 10일. (02)2030-7900.
  • 철강기술상에 초고강도 車강판 서석종 포스코 수석연구원 수상 기능상엔 이종근 현대제철 기장

    철강기술상에 초고강도 車강판 서석종 포스코 수석연구원 수상 기능상엔 이종근 현대제철 기장

    한국철강협회는 8일 ‘제33회 철강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국내 최고의 철강 기술인에게 주어지는 철강기술상은 서석종(왼쪽) 포스코 수석연구원이 수상했다. 철강기능상은 이종근(오른쪽) 현대제철 기장이, 철강기술장려상은 박사윤 동부제철 부장, 철강기능장려상은 이성재 포스코 파트장이 받았다. 철강기술상을 받은 서 수석연구원은 자동차용 초고강도 강판을 개발해 자동차 소재용 시장에서 연간 4만t 이상의 수요를 만들어 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철강기능상을 받은 이 기장은 제강공장에서 연속 주조 시 쇳물의 공급을 원활하게 하는 장치를 개선해 8억원의 원가를 절감하고 가동률을 향상시켰다. 철강기술상, 철강기능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함께 각각 1000만원과 5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철강상은 철강기술인 및 기능인들의 연구·개발 의욕 진작과 철강산업 발전을 위해 1982년 제정됐다. 시상식은 9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아트홀 서관 4층에서 개최되는 ‘제17회 철의 날’ 기념행사에서 진행된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화력발전소 밀집 충남 서부 아황산가스 농도 서울의 2배

    당진·태안 등 2차 미세먼지 많아 미세먼지 농도는 서울이 더 높아 화력발전소가 밀집한 충남 당진·태안·보령·서천 지역이 서울보다 아황산가스 등 2차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차 미세먼지는 석탄이나 유류를 태우면서 발생하는 대기오염 물질로 공기 중에서 미세먼지와 결합해 생성하는 추가적인 물질이다. 8일 국내에서 대기질 공동조사를 진행 중인 미국 항공우주국(나사)과 국립환경과학원 등에 따르면 지난 5일 오전 11시부터 30분간 당진·태안·보령·서천 지역의 아황산가스 농도를 측정한 결과 0.004~0.011으로 조사됐다. 같은 날 오전 9시 서울 상공에서 측정한 아황산가스 수치(0.005)보다 최대 2배 높았다. 다만 같은 시간 서울과 충남의 미세먼지 수치는 각각 65㎍/㎥과 57~63㎍/㎥으로 서울이 높게 측정됐다. 이와 관련해 미 콜로라도주립대 앨런 프라이드 박사는 “서울만 벗어나도 대기 오염 농도가 낮아진다”면서 “항공 데이터를 취합한다면 서울에서 대기 오염 농도가 유난히 높은 이유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형 한국외대 환경학과 교수는 “정유 시설이나 화력발전소 부근에 미세먼지가 많이 분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국내 대기질과 관련된 문제를 석탄 화력발전소에 국한할 순 없지만 연구가 끝나면 미세먼지가 어떤 식으로 발생하는지에 대한 원인 규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나사는 한반도의 대기질 공동조사를 당초보다 4회 늘린 20회 하기로 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靑 수석비서관 3명 경질 인사] 김재원 수석, 2007년 경선부터 보좌한 박 대통령 ‘최측근’

    [靑 수석비서관 3명 경질 인사] 김재원 수석, 2007년 경선부터 보좌한 박 대통령 ‘최측근’

    김재원(52) 청와대 정무수석은 새누리당 내 대표적인 전략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자 친박근혜계의 핵심이다. 박 대통령이 처음 대선에 도전했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캠프 기획단장·대변인을 역임했고 현 정부 들어서는 대통령 정무특보로도 중용됐다. 경북 의성 출신으로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행정고시로 행정부에 입부해 총리실 등에서 근무하다 1994년 사법고시에 합격해 특수부 검사로 활동했으며 17대에 국회에 입성했다. 18대에는 이른바 ‘친박계 학살’에 휘말려 공천에서 탈락했다가 19대 때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가 조정되면서 통합 지역구인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경선에서 동료인 김종태 의원에게 밀려 공천에 탈락했다. 김 수석은 중국통이기도 하다. 18대 국회 진입에 실패했을 때 중국 베이징대 국제대학원에서 객원교수로 한중·북중 관계를 연구했었다. 이번에도 중국 외교부 산하 중국외교학원의 방문학자로 초청받아 지난달 출국했다가 임명받았다. 당시부터 조선시대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행로(3950㎞)를 7년간 총 20차례나 되짚으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을 담은 ‘막북에서 다시 쓴 열하일기’를 펴내기도 했다. 현대원(왼쪽·52) 미래전략수석은 제주제일고 출신으로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 언론학 박사, 서강대 교수 등을 지낸 뉴미디어 및 디지털콘텐츠 분야 전문가다. 2000년 모교 교수로 부임한 이후 정부와 관련 업계에서도 조언자로 활동하며 외연을 넓혔다. 2003년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전문위원, 정보통신부 신성장동력디지털콘텐츠부문장을 지냈다. 지난 대선 때는 박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미디어와 창조경제 분야를 담당했다. 2013년에는 대통령자문 국민경제자문회의 창조경제분과 자문위원을 맡았고 지난해까지 미래창조과학부 규제심사위원장으로 일했다. 미래부 디지털콘텐츠산업포럼 의장에, KT 사외이사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가상현실(VR) 산업협회를 설립하고 협회장을 맡고 있다. 김용승(오른쪽·61) 교육문화수석은 경제학자로, 교육행정과 대학 교육 분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교육 전문가다. 1990년부터 가톨릭대 교수로 일하면서 교무부처장, 학부교육선진화사업단장을 지냈고, 2011년부터는 교학부총장을 맡으며 전국대학교부총장협의회 회장도 지냈다. 1997년 내무부 지방재정발전기획단 연구위원을 시작으로 행정자치부 지방재정위기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지난해부터는 교육부 교육개혁추진협의회 공동의장 겸 총괄위원장으로 교육행정에도 전문성을 쌓았다. 학계에서도 인망이 두터워 한국재정정책학회 이사를 거쳐 2010~2011년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을 지냈다. 대구 출신으로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포유류는 공룡 멸종 전부터 번성했다”…기존 이론 뒤집어

    “포유류는 공룡 멸종 전부터 번성했다”…기존 이론 뒤집어

    지구 상에 포유류가 번성하게 된 시기는 6600만 년 전쯤 소행성 충돌로 공룡이 멸종한 뒤부터라고 생각하는 기존의 이론은 잘못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왕립학회보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최신호에 게재된 이 연구논문에 따르면, 포유류는 티라노사우루스 등 파충류 공룡이 지구 위를 활보했던 시기에 수백만 년 동안이나 함께 번성하고 확산해 있었다. 또한 소행성 충돌로 수백만t의 분진이 태양을 가려 단기간에 지구가 냉각되고 식물이 자생하지 못하는 환경이 돼 초식 공룡과 육식 공룡이 차례로 소멸했을 때 포유류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 참여한 미국 시카고 대학의 엘리스 뉴엄 박사과정 연구원은 “기존 이론에서는 포유류가 공룡 시대에 억제돼 있었지만, 우리 연구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중생대의 마지막 시기인 ‘백악기’와 신생대의 첫 시기인 ‘제3기’ 사이에 일어난 대량 멸종 시기인 ‘K-Pg 경계’부터 2000만 년 이전까지 존재했던 포유류의 어금니 수백 개를 분석했다. 그 결과, 포유류의 치아는 매우 다양한 형태를 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종(種)은 물론 식이 습관도 다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연구팀은 소행성 충돌로 포유류 수가 격감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기존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크게 놀랐다. 특화된 먹이만을 섭취하는 어금니를 가진 포유류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이빨 포유류보다 열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를 이끈 시카고 대학의 데이비드 그로스니클 연구원은 “세계는 지금 기후 변화를 요인으로 지구 역사상 여섯 번째 대량 멸종을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6600만 년 전 살아남은 종은 다양한 먹이를 먹은 생물들로, 이는 앞으로 수백에서 수천 년 뒤에 어떤 종이 살아남을지 아는 지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6600만 년 전 초기 포유류 퍼가토리어스 우니오(Nobu Tamura CC BY 3.0)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서울시의회 이순자의원 “자생력 갖춘 사회복지박물관 건립 필요”

    서울시의회 이순자의원 “자생력 갖춘 사회복지박물관 건립 필요”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순자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은평구 제1선거구)은 6월 8일 전국은행연합회 국제회의실에서 개최된 ‘서울시사회복지박물관 건립 필요성 및 타당성 연구용역 공청회(서울시립대학교 산학협력단 주최)’에 참여하여 사회복지박물관 건립을 위한 다각도의 검토와 연구 진행을 격려했다. 이순자 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사회복지박물관은 사회복지분야 측면에서 볼 때, 사회복지영역에 대한 역사적 자료와 배경을 발굴·연구하고 이를 체계적·지속적으로 연계하여 중점 관리할 수 있는 시설로써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라고 밝혔다. 또한 산재되어 있는 사회복지 관련 사료 및 기록을 통합적으로 관리하여 사회복지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인프라로써 기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사회복지박물관은 교육적 측면에서도 전시·교육·체험 기능을 갖는 사회복지 실습장의 역할과 함께 서울시민의 다양한 여가 수요를 사회복지 체험장으로써 수용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이순자 위원장은 사회복지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이 인정되다고 하더라도 투입예산과 사업효과를 비교하여 무리한 건립계획이 세워져서는 안되며, 콘텐츠 확보를 통한 수요 창출 방안, 독립채산제를 적용할 수 있는 독자적 운영 방안, 방문객 지속적 확보 방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여 실질적인 사회복지박물관 방안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번 공청회에는 서울시립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이준영 박사가 연구계획을 발표하고,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우창윤 의원과 서울시노인종합복지관협회 구자훈 회장, 서울교육박물관 황동진 학예실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특히 서울시의회 우창윤 의원은 서울시의회의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 및 전시 시설 제작 설치 사업」을 사례로 들면서 “서울시의회 의사당 건물의 로비와 복도의 벽면 등을 일부 활용하여 의회 역사를 알릴 수 있는 대표적 사진과 의미 있는 소장품을 전시하는 사업과 별도의 의회역사박물관을 따로 만들지 않고도, 의회에 방문한 시민과 공무원들에게 의회의 변천사를 자연스럽게 홍보하는 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구)한국산업인력공단 별관동을 50+캠퍼스와 복지타운으로 리모델링한다고 발표하였으므로, 복지타운공간의 짜투리 공간(벽면, 로비, 바닥 등)을 전시 공간 등으로 활용함으로써 사회복지박물관의 효과를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거둘 수 있고, 복지타운 방문자와 직원을 통해 상당한 홍보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여 공청회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알쏭달쏭+] 큰 술잔에 술 마시면 음주량도 늘어날까?

    [알쏭달쏭+] 큰 술잔에 술 마시면 음주량도 늘어날까?

    우리도 즐겨마시는 와인의 경우 큰 잔에 마실수록 음주량도 늘어난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팀은 와인잔 크기와 음주량이 비례한다는 연구결과를 'BMC 공중보건저널'(BMC Public Health)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한 때 국내에서 유행했던 건전음주 캠페인을 상기시킨다. 과거 몇몇 기관들은 술마시는 양을 줄이기 위해 기존 소주잔보다 작은 크기의 잔을 보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구결과 큰 와인잔은 음주량을 늘린 반면, 작은 와인잔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곧 소주와 와인이 주종은 다르지만 작은 잔에 마신다고 해도 그 양이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추론이 가능한 셈. 연구팀은 조사방법은 실증적이다. 연구팀은 먼저 레스토랑를 섭외해 16주간 실험을 실시했다. 각각 250ml(작은 잔), 300ml(표준잔), 370ml(큰 잔) 짜리의 잔을 격주로 바꿔가면서 손님에게 와인을 제공해 그 음주량을 측정한 것. 그 결과 표준 잔과 비교해 큰 잔에 와인을 담았을 때 판매량이 평균 9.4%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작은 잔에 와인을 담아 서빙했더라도 표준 잔과 비교해 판매량의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왜 술잔이 커지면 음주량도 늘어나는 것일까? 연구에 참여한 레이첼 페치 박사는 "잔이 커질 때 음주량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사실 명확히 설명하기 힘들다"며 논문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러나 박사는 "술 잔이 크면 그 안에 담긴 와인 양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착각하게 만들어) 더 빨리 더 많이 마시게 하는 이유일 수 있다"면서 "확실한 것은 와인을 덜 마시기 위해서는 큰 잔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한편 맥주잔의 모양과 맥주 마시는 속도가 관계가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도 있다. 지난해 5월 영국 브리스톨 대학 안젤라 애트우드 박사 연구팀은 곡선형 잔으로 술을 마시면 맥주를 빨리 마신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연구팀은 알코올 병력이 없는 피실험자 160명(남녀 각각 8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이들에게 직선형 잔과 곡선형 잔에 담긴 맥주 1파인트(0.57ℓ)를 마시게 했다. 그 결과 직선형 잔 그룹이 곡선형 잔 그룹보다 평균 60% 정도 마시는 속도가 느렸다. 연구를 이끈 애트우드 박사는 “술을 빨리 마시는 것이 빨리 취하는 것과 관계가 깊다는 것을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안다”면서 “곡선 잔의 경우 직선 잔에 비해 남은 양을 가늠하기 쉽지 않아 이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세계가 식량위기에 대처하는 자세

    [송혜민의 월드why] 세계가 식량위기에 대처하는 자세

    무분별한 식습관으로 인한 비만이 감기만큼이나 흔한 질환으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먹거리가 부족해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미래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다. 하지만 이미 수 년 전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 지구에 식량부족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식량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엔 산하의 인도적 식량 원조 기구인 세계 식량 기구(WFP)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세계 인구의 6분의 1에 이르는 1억 2000만 명이 심각한 굶주림에 시달렸으며 이 숫자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작물의 생산성을 높이는 다양한 기술개발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먹거리가 부족하게 된 상황에는 다양한 원인이 작용하는데, 그중 하나는 심각한 이상기후 현상이 꼽힌다. 특히 올해 사상 최악의 슈퍼 엘니뇨 현상(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발생하는 기후 현상)이 지구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인도를 포함한 동남아는 물 부족난뿐만 아니라 쌀과 옥수수 등의 농작물 생산이 감소해 식량부족현상이 심각해졌다. 해수면 온도의 비정상적인 상승은 태풍이나 폭우 혹은 극심한 가뭄을 야기하고, 이러한 이상기후가 작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동남아를 포함해 이미 세계 곡물시장에도 엘니뇨 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이다. 지구 반대편인 아르헨티나에서는 홍수로 대두 수확량이 줄었고, 옥수수 최대 산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옥수수 생산량이 급감해 12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으로부터 옥수수를 수입하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엘니뇨 직격탄 공습을 피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도 전에 전문가들은 올 여름 라니냐의 공습을 예보하고 나섰다. 라니냐는 엘니뇨와 달리 뜨거워졌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낮아지는 현상을 뜻하며, 마찬가지로 세계 농수산물 작황에 영향을 미치면서 국제 농산물 가격이 출렁일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식량부족사태의 원인을 인류의 지나친 육류소비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일반적으로 쇠고기 1㎏을 얻기 위해서는 소에게 옥수수 10㎏을 먹여야 한다. 돼지와 닭 역시 해당 고기를 얻는 대가로 그만큼의 곡물을 소비해야 한다. 세계 식량 기구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서 먹거리를 위해 기르는 닭과 돼지, 소 등 가축의 수는 500억 마리를 웃도는데, 이는 UN이 정한 ‘지구에서 기를 수 있는 가축 수’ 기준치의 2배가 넘는다. 일각에서는 개발도상국에서 굶주리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식량을 부자들의 식탁에 오를 가축들이 먹어치운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인류의 ‘고기 사랑’이 곡물생산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식량부족사태를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무분별한 삼림 개발 및 환경오염으로 인해 곤충 개체수가 급감하는 현상 역시 식량부족사태와 연관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교의 마크 윈스턴 박사는 자신의 저서인 ‘사라진 벌들의 경고’에서 “꽃가루를 옮겨 수정을 돕는 벌의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면서 “독성물질이 함유된 농약이 벌의 생태환경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 2006년 미국 양봉장에서 벌의 25∼40%가 자취를 감추는 ‘군집 붕괴’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양봉의 규모가 커지고 기계화되면서 더 많은 농약을 사용한 결과로 보여진다”면서 “식량자원의 3분의 1은 곤충에 의해 수정이 이뤄지는데, 그중에서도 80~90%는 꿀벌이 담당하고 있다. 때문의 벌의 급감은 곧 작물 생산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식량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식량부족사태를 대비하는 방법 식량부족사태가 소행성 충돌이나 기후 변화, 핵전쟁 등과 함께 지구의 미래를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되는 가운데, 인류는 이러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중 하나는 특정한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씨앗을 보관한 ‘스발바르 씨앗 저장소’다. 노르웨이의 북극권 스발바르 제도 스피츠베르겐 섬에 있는 스발바르 씨앗 저장소는 일종의 씨앗 금고다. 2004년 UN은 급변하는 세계 위기에서 후손과 자연을 위해 다양한 곡물 종자를 보존하기 위해 세계곡물다양성재단(GCDT)을 설립하고 씨앗 저장소를 운영해 왔다. 일명 ‘최후의 날 저장고’(doomsday vault)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총 120개국 이상이 이용 중이며, 식물 종자 총 42만종, 82만 5000개의 씨앗 샘플이 빼곡하게 저장돼 있다. 두께 1m의 콘크리트로 축조돼 있고 영하 18℃의 일정한 기온으로 유지되며 모든 알루미늄 상자는 방수 기능이 있어 씨앗을 보호한다. GCDT의 전문가인 메리 하가는 “다양한 종의 종자를 보존하는 것은 곡물의 생산 및 발전에도 도움이 되며 특히 극심한 기후변화로 인한 멸종 및 생산 중단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면서 “전 세계의 공통적인 이슈 중 하나는 식량 부족으로 인한 굶주림이다. 만약 이대로 계속 간다면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식량 생산 감소 빛 식량 가격 상승으로 전 세계가 기아에 신음하는 사태에 접어들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과학기술을 이용해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움직임도 있다. 2011년 영국의 한 연구소는 인류의 4대 주식 작물 중 하나인 감자의 게놈(한 생물이 가지는 모든 유전 정보를 말하며 유전체라고도 한다)지도를 완전히 해독하는데 성공했으며, 최근에는 미국 연구진 역시 당근의 게놈 해독에도 성공하면서 인류가 직면할 수 있는 먹거리 과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 나오지 않는 이상, 모든 인류는 연령과 성별, 국적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식량을 공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일부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조건인 식량이 충족되지 않아 목숨을 잃고 있으며, 이러한 사태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미래의 후손뿐만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위해서라도 식량위기사태를 막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딸, 몇 ㎏?” 몸매 신경 써주는 부모, 딸 가슴에 상처만 준다

    “딸, 몇 ㎏?” 몸매 신경 써주는 부모, 딸 가슴에 상처만 준다

    만일 당신에게 딸이 있다면, 몸무게나 몸매를 언급하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할 듯하다. 자기 체중을 부모가 언급한 것을 기억하는 10대 소녀는 어른이 되고 나서 더 살이 찔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런 경험을 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 치수에도 덜 만족한다는 것도 밝혀졌다. 미국 코넬대 식품·브랜드연구소는 20~35세 여성 501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신체에 관한 의식’(신체상)은 물론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체형에 대해서 얼마나 자주 언급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부모가 자신의 체형을 언급했던 것을 기억하는 표준 체중 여성과 과체중 여성 모두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자기 체중에 덜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런 언급이 어린 소녀에게 심리적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건강한 체질량지수(BMI)를 가진 여성은 과체중으로 여겨지는 여성들보다 부모의 언급을 기억할 가능성은 27% 더 낮다는 것도 이번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이에 대해 연구를 이끈 브라이언 완싱크 교수는 “여성의 몸무게를 언급하는 것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다”면서 “심지어 그들이 어린 소녀였을 때라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식이 및 중량 장애(Eating & Weight Disorders) 최신호에 실렸다. 사실, 이전 연구에서도 아이들에게 체중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연구는 어떤 사람이 아이에게 과체중이라고 말하면 아이는 더 먹게 돼 계속 살이 찌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의 체형이 나쁘다는 것을 인식해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자신이 과체중이라고 믿는 것은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비만 전염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의사들에게 한 가지 문제를 강조한다. 이들은 자신이 과체중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영국 리버풀대의 에릭 로빈슨 박사는 “당신이 과체중임을 깨닫게 되면 그 자체로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며, 살면서 건강한 선택을 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면서 “이는 공중보건 개입을 위한 노력에 있어 까다로운 결과”라고 말했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생명을 구하고, 농구까지 즐기게 도와준 인공 심장

    생명을 구하고, 농구까지 즐기게 도와준 인공 심장

    심장은 절대 대체가 불가능한 장기입니다. 간처럼 일부를 잘라내도 기능이 유지되거나 콩팥처럼 하나만 있어도 살 수 있지 않아서 이식 심장을 구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인공 심장 개발에 많은 과학자가 뛰어들었습니다. 심장은 상대적으로 다른 중요 장기보다 기능이 간단하지만, 인간의 심장처럼 오랜 시간 문제없이 작동하는 심장을 개발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인간 심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인공 심장은 아직은 미래의 일이지만, 이제 임상에서 실제 인공 심장이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26세의 청년인 스탠 라킨(Stan Larkin)은 사진에서 보기엔 건장한 흑인 청년이지만, 사실은 심각한 선천성 심근질환으로 인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습니다. 2014년 병세가 나빠져 미시간 대학 병원에 입원했을 때 환자와 의료진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에게 맞는 이식 심장을 구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아마도 그는 그때까지 생존이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따라서 그 대안으로 신카디아 인공 심장 (SynCardia Temporary Total Artificial Heart)을 이식했습니다. 이 인공 심장은 지난 수십 년간의 기술이 결집한 것으로 13.5파운드 (약 6kg)의 외부 배터리와 보조 장치를 지닌 인공 심장입니다. 환자는 이 외부 장치를 백팩 형태의 가방 안에 넣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은 물론 가벼운 운동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직은 그 기능이 진짜 심장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심장을 이식받고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이 인공 심장은 심장 이식 이외에 희망이 없는 말기 심질환 환자의 유일한 희망이 되었습니다. 2015년 1월, 인공 심장을 이식받은 스탠은 1년 이상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고대하던 심장 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심장 이식 수술 후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스탠은 인공 심장과 함께했던 1년간 병원에만 누워있던 것이 아니라 집에서 일상생활을 했으며 심지어 농구를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집도의인 미시간 대학 병원의 조너선 하프트 (Jonathan Haft) 박사는 본래 이 인공 심장이 농구를 할 수 있는 수준의 심장 기능을 목표로 제작되지는 않았지만, 스탠이 이 기계의 성능을 한계까지 사용했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1년이 좀 넘는 한정된 기간이지만, 인공 심장의 가능성을 더 높인 것입니다. 다만 아직 인공 심장은 매우 비쌀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기술이 더 진보해서 인공 심장으로 5년, 10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언제 그것이 가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심각한 심장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획기적인 인공 심장이 등장하기를 기다려봅니다. 사진=미시건대 헬스시스템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경상대 총장에 이상경 교수

    경상대 총장에 이상경 교수

    경남 진주 경상대(GNU) 제10대 총장에 이상경(60) 자연과학대학 화학과 교수가 7일 임명됐다. 이 총장은 경상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이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상대 학생처장,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기초과학연구소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맡았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