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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명으로 여긴 조선… 베델, 기꺼이 항일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다[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운명으로 여긴 조선… 베델, 기꺼이 항일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다[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15개국 417명 안장 양화진 묘원 봄의 묘지는 아름다워서 슬프다. 물오른 푸나무들을 스치고 윤택하게 부풀어 오르는 대기를 헤치며 묘지를 산책한다. 만개한 꽃과 묘비의 빛깔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제아무리 화려한 비석도 정교한 조화도 풀꽃 한 송이의 생기를 이기지 못한다. 죽음은 어떻게든 아름다울 수 없다. 살아 있는 자들이 기억하는 만큼만 죽은 자의 삶이 아름다워질 뿐이다. 운명이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그저 인연이라고 하자. 어떤 필연적인 우연, 우연적인 필연이 인연이 돼 이방인들을 여기로 데려왔는지 모른다. 서울지하철 2·6호선 합정역 7번 출구를 나오면 절두산 성지와 양화진 묘원을 소개하는 입간판이 보인다. 당산철교를 사이에 두고 왼편이 신유박해로 순교한 가톨릭 성인들을 기념하는 절두산순교성지, 오른편이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다. 1890년 양화진에 처음 묻힌 외국인은 J W 헤론이었는데, 그는 호러스 알렌을 이은 광혜원 원장으로 전염병 환자들을 돌보다가 자신도 이질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삼복 중의 죽음이라 외국인 묘지가 있는 인천 제물포까지 시신을 옮길 수 없어 양화진에 매장한 것이 외인묘지의 유래가 됐다. 현재 15개 국적 417명이 안장돼 있는데 그중 선교사는 6개국 145명이다. 선교사들 외에는 한국에 살던 외국인과 가족들, 해방 후에는 주로 미군들이 묻혔다. ●베델 묘비엔 치열했던 항일과정 빼곡 여기 누운 이들은 시쳇말로 객사를 한 셈이다. 하나 어디에서 살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삶의 진폭은 달라질지니, 이곳의 주인들은 먼눈과 너른 보폭으로 낯선 세계에 다다른 모험가들인 게다. 쫄보인 나는 그저 묘비에 새겨진 이방인들의 이름들을 읊조리며 발소리를 눅여 걷는다. 봄의 묘지는 그들이 떠나간 세상의 평화를 모사한 듯 적막하다. 20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서울신문에서 기획 시리즈를 준비하던 중 베델을 주인공으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가 쓴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와 ‘황제의 옥새’(1914년 출간·원제 ‘The Great Cardinal Seal’)는 현재까지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단 두 편의 해외 소설이다.“그래도 지금 서울 어딘가에 있을 이 친구의 묘비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을 것 같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과 의지만으로 조선인을 위해 싸웠다’.”(‘황제 납치 프로젝트’ 중에서) 과연 묘비명은 작가의 상상대로일까? 베델의 묘소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A구역 두 번째 자리에 있다. ‘대한매일신보사장대영국인배설지묘’가 새겨진 묘비와 함께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은 독립유공자 표지가 있다. 묘비는 1910년 일제가 칼과 망치로 비문을 훼손하는 바람에 1964년에야 언론인들이 성금을 모아 새로 세웠다. 비문은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이 썼던 것을 복원했는데, 언론인의 붓은 작가의 펜과 달리 선명하고 건조하다. 베델이, 1904년부터 1909년까지, 영국에서 일본을 거쳐 조선에 와서, 신문을 만들어 일제 침략 정책에 저항하다가, 옥고를 치른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일목요연하다. 여전히 ‘왜’는 알 수가 없다.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종군기자들이 조선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체험과 모험과 커리어 확보 등 갖가지 목적을 가진 그들의 취재 포인트는 백인종과 황인종, 서양과 동양의 대결에서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는 것이었다. 삶터를 전쟁터로 내어 준 한국인들은 주인공은커녕 조연조차 못 되는 엑스트라였다. ‘독일인 부부의 한국 신혼여행 1904’라는 여행기를 남긴 저널리스트 루돌프 차벨의 눈에 한국인들은 이렇게 보였다. “생활신조는 ‘되도록 돈은 많이, 일은 적게, 말은 많게, 담배도 많이, 잠은 오래오래’였다. 때로는 거기에 주벽과 바람기가 추가되었다.” 구제불능의 게으름뱅이! 무능한 나라의 가난한 백성들은 그토록 한심해 보였다. 이보다 더 날카롭고 사나운 시선도 있다. “백인 여행자가 처음으로 한국에 체류할 경우 처음 몇 주 동안은 기분 좋은 것과는 영 거리가 멀다. 만약 그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두 가지 강력한 욕구 사이에서 씨름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나는 한국인들을 죽이고 싶은 욕구이며, 또 하나는 자살하고 싶은 욕구다. 개인적으로 나라면 첫 번째 선택을 했을 것이다.” 28세에 종군기자로서 북상하는 일본군 대열에 합류했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급진적인 사회주의자 잭 런던의 눈에 한국인은 살인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소설 자본론’이라고 평가되는 ‘강철군화’를 읽은 독자에게 런던의 글은 놀라움을 넘어 당혹스럽다. 물론 작가라는 작자들이 모두 인류애의 화신일 리 없고 반드시 인간적으로 훌륭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런던은 노동계급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 큰돈을 벌어 자신이 증오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성공을 거둔 모순에 빠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 4개월의 체험으로, 형편없는 도로와 불결한 환경이 아무리 지긋지긋했대도,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일부 한국인만을 만난 상태에서 한국인들의 유일한 장점이 ‘짐을 지는 것’이라고 단정 지은 부주의와 편견은 좀처럼 이해해 주고 싶지 않다. 한층 더 나쁜 것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작가다운 수려한 문장과 생생한 묘사다. 나쁠 때도, 혹은 나쁠수록 더욱 강렬한 ‘잘 쓴’ 글의 해악이라니!●수송공원에 대한매일신보 사옥 터 당산철교 아래로 이어진 절두산순교성지에 이르러 다리쉼을 한다. 믿음을 위해 목이 잘린 사람들과 수백 년 후까지 그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도 ‘왜’라는 물음표가 떠 있다.전날 조계사 뒤편 수송공원에서 베델의 일터였던 대한매일신보 창간사옥 터 표석을 보고, 일민미술관 5층에 있는 신문박물관에서 대한매일신보 보관물을 관람했다. 무심한 돌로 기념하는 자리, 아무리 ‘역사의 그릇’이라지만 빛바랜 종잇장으로 남은 신문 조각을 위해 베델이 목숨을 바쳤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한심하다 못해 살인 충동까지 불러일으켰던 사람들을 다르게 보기 위해서는 마음눈이 필요하다. 베델은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서울 용산에서 한 조선인이 어린아이를 업은 부인을 데리고 일본군 병영을 지나갔다. 이때 한 일본 군인이 장난삼아 이들에게 총을 쐈다. 탄환이 여인의 옆구리를 관통해 아이 엄마가 즉사했다. 아이의 한쪽 손도 산산조각이 났다. 아이 아빠가 일본군 병영에 뛰어들어가 장교에게 항의했지만 되레 길거리로 쫓겨났다.”(코리아데일리뉴스 1907년 9월 3일자 기사) 우리의 일상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다. 하대와 멸시를 넘어서 투명인간처럼 취급당하는 열외의 존재들이다. 그들은 연민과 동정을 기반으로 한 박애와 인류애, 그러니까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발견’된다. 그리고 그 사랑의 추썩임이 보상 없는 일에 기꺼이 뛰어드는 도화선이 된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서양 작가의 대답은 이러하다.“우리(베델과 가상의 소설 주인공)는 러일전쟁이 끝난 뒤부터 ‘조선의 형제’를 자처한 일본이 대한제국에 지른 불에 심하게 데었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불속으로 뛰어들 생각이다. 또 한 번 크게 다칠 테지만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우둔하지만 행복하고 유쾌한 개니까. 그 불이 너무 매혹적이어서 가만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까.”(소설 ‘황제의 옥새’ 중에서) 소설가
  • 인수위 “‘출근길 지하철 시위’ 전장연 요구 예산, 해법 찾겠다”(종합)

    인수위 “‘출근길 지하철 시위’ 전장연 요구 예산, 해법 찾겠다”(종합)

    인수위 “새 정부가 그림그리고 해법 찾을 것”전장연 지하철 시위 재개… 지하철 지연 사태전장연 “추경호, 장애인 권리예산 발표 약속하면 발표 때까지 지하철 시위 멈출 것”5월 10일 尹 취임 전까지 삭발 투쟁 계속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2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승시위’ 재개에 대해 “안타깝다. 장애인 단체 관련 분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인수위 관계자는 이날 취재진과 만나 “새 정부가 장애인 권익 보호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과제로 정리해서 작성하는 것까지가 인수위의 역할”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전장연 측이 요구하는 예산에 대해서는 새 정부가 그림을 그리고 해법을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인수위는 지난 19일 장애인이 주어진 액수 안에서 직접 원하는 복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개인 예산제’, 시내버스의 저상버스 교체 의무화,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시외버스 도입 확대 등의 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수위 브리핑은 그 이전에 20년간 양당 정권이 집권했을 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이야기에 불과했다”면서 “만약 추경호 경제부총리 내정자가 장애인 권리예산에 대한 입장 발표를 한다고 약속한다면 그 약속을 믿고 입장 발표의 날까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멈추겠다”고 밝혔다.전장연, 인수위 대책 미흡하다며출근길 지하철 시위 재개… 22일 만 이날 전장연은 인수위의 이동권 대책이 미흡하다며 이날 오전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했다. 지난달 30일 장애인 권리 예산 등에 대한 인수위의 답변을 기다리겠다며 시위를 잠정 중단한 지 22일 만이다. 박 대표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오전 8시쯤 3호선 지하철에 올라탄 뒤 휠체어에서 내려 열차 바닥을 기는 ‘오체투지’ 행진을 진행했다. 그는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예산 보장하라’ 등이 적힌 피켓 스티커를 바닥에 붙여가며 힘겹게 양팔로 몸을 끌었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등 다른 활동가들도 휠체어에서 내려 오체투지에 동참했다. 같은 시간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도 전장연 활동가들이 휠체어에서 내린 뒤 줄지어 열차 바닥에 엎드려 행진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러한 시위로 인해 경복궁역에는 상·하행선 열차가 수십분간 역을 떠나지 못했다. 출근길 열차 안의 시민들은 곳곳에서 “그만해라”, “몇 시간째냐”며 불만을 터뜨렸다.학생·직장인 지각 사태 속출…시민들 항의해산명령에 “옥내집회 집시법 대상 아냐” 경복궁역 인근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지각을 면치 못했고 직장인들도 지각 사태로 회사에 소명해야 하는 일들을 벌어졌다. 2호선 시청역에서도 활동가들이 을지로입구역 방향 내선순환 열차 탑승구에 휠체어를 멈춰 세우고 발언을 이어가면서 열차 운행이 지연됐다. 경찰은 전장연 활동가들을 향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했다며 수차례에 걸쳐 해산명령을 내렸지만, 활동가들은 “옥내집회는 집시법 대상이 아니다”, “당신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를 하고 있다”고 맞섰다. 지하철 운행은 전장연이 경복궁역 대합실에서 삭발식을 준비하기 시작한 오전 8시 50분쯤부터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활동가들이 연대사를 이어가는 가운데 일부 시민은 이들에게 침을 뱉거나 “대한민국에서 나가라”, “너희가 무슨 장애인단체냐”며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다.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로 오전 7시 40분쯤부터 지하철 2·3호선 양방향 열차 운행이 지연됐으나 3호선 운행은 8시 50분쯤, 2호선 운행은 9시 28분쯤 정상화됐다“고 설명했다. 전장연 등 장애인단체는 오전 10시 30분부터 1시간가량 통의동 인수위 인근인 고궁박물관 남측 인도로 이동해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 마무리 보고대회’를 진행했다. 대회가 준비 중이던 오전 10시 6분쯤 박경석 대표와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정부서울청사 교차로 한복판에서 철제 사다리를 어깨에 걸고 인수위에 항의하면서 10여 분간 차로 통행이 일부 제한되기도 했다. 발언에 나선 권달주 대표는 “다시 한번 정치 권력에 실망했다”면서도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또 땅바닥을 기고, 지하철을 탈 것이다. 22년 동안 싸웠던 그 동력을 다시 쏟아붓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00여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등 구호를 외치며 호응했다.보수 장애인단체, 지하철 시위 규탄“전장연, 국민 볼모로 비상식적 시위” 한편 보수 성향의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총련)와 한국교통장애인협회 회원들은 이날 국회의사당역 5번 출구 앞에서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장총련은 이날 성명에서 “서민을 볼모로 수시로 행하는 전장연의 비상식적 시위 행태는 장애인을 떠나 국민의 일원으로서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출퇴근을 볼모로 장애인들의 진정한 요구를 왜곡하는 계획된 정치행위를 즉각 그만두라”며 전장연에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전장연은 다음날 오전 8시부터 3호선 경복궁역에서 지하철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또 5월 10일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전까지 삭발투쟁도 계속할 예정이다.
  • 마라도나 ‘신의 손’ 유니폼 경매 시작…첫날 60억 원 넘었다

    마라도나 ‘신의 손’ 유니폼 경매 시작…첫날 60억 원 넘었다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고(故) 디에고 마라도나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입었던 이른바 ‘신의 손’ 유니폼 경매가 시작됐다. 20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경매 주관사인 소더비는 마라도나의 유니폼 경매를 이날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온라인 상에서 진행한다.첫 입찰은 경매 시작 몇 시간 만에 나왔다. 첫번째 입찰자는 소더비가 제시한 감정가인 400만 파운드(약 64억 원)를 그대로 써서 올렸다. 아직 다른 입찰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해당 가격에 팔려도 축구 역사상 가장 비싼 유니폼이 된다. 아직 2주의 시간이 남아 있어 최종 낙찰가는 더욱 오를 전망이다.등번호 10번의 파란색 유니폼 상의인 경매 물품은 마라도나가 ‘신의 손’ 사건으로 유명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와 8강전에서 입었다. 당시 마라도나는 손으로 공을 쳐 골을 넣었지만, 심판진이 이를 잡지 못해 골로 인정됐다.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를 꺾고 4강에 진출했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는 “내 머리와 ‘신의 손’이 함께 만들어낸 골”이라고 변명해 ‘신의 손’ 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당 유니폼은 당시 마라도나와 유니폼을 교환한 스티브 호지(잉글랜드) 소유다. 그는 유니폼을 영국 맨체스터의 국립 축구박물관에 임대해 일반 공개해 왔다. 한편 마라도나의 큰딸 달마 마라도나는 경매에 나온 유니폼에 대해 마라도나가 2골을 넣은 후반전이 아니라 득점이 없었던 전반전에 입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소더비는 유니폼은 진품이라는 외부 검증을 받았고, 당시 경기 후반전에 입었다는 것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동료들을 “마라도나가 경기 직후 선수 통로에서 스티브 호지와 유니폼을 맞바꿨다”고 입을 모았다.
  • ‘사진으로 보는 단종문화제’ 22일부터 영월 동강사진박물관에서 연다

    ‘사진으로 보는 단종문화제’ 22일부터 영월 동강사진박물관에서 연다

    ‘사진으로 보는 단종문화제’ 특별전시회가 강원 영월군 동강사진박물관에서 22일부터 5월 6일까지 열린다. 영월군은 21일 단종문화제 1회행사부터 현재까지 55년간의 역사를 회고하는 ‘사진으로 보는 단종문화제’ 특별전시회를 22일부터 오는 5월 8일까지 동강사진박물관 제3전시실에서 연다고 밝혔다. 영월군과 함께하는 단종문화제의 역사가 인물의 옷차림, 행사 내용, 영월의 모습 등에 고스란히 사진에 담겨 전시된다. 단종문화제는 조선 6대 왕 단종의 고혼과 충신의 넋을 기리는 행사로 ‘충절의 고장’ 영월을 대표하는 역사문화축제다. 문화제는 단종이 왕으로 복위된 1698년부터 해마다 장릉에서 제향을 지내던 영월주민은 1967년 4월 제향을 축제로 승화했다. 홍영기 영월부군수는 “사진으로 보는 단종문화제는 단종문화제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느끼고, 단종문화제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아련한 옛 추억까지 떠올릴 수 있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 대한민국 명장회, 정주영 회장 일화 등장 모형 거북선 기증

    대한민국 명장회, 정주영 회장 일화 등장 모형 거북선 기증

    “지난 60년간 대한민국과 울산의 산업화를 견인한 조선산업이 앞으로 50년, 100년 후에도 울산의 산업동력이 되길 희망하는 마음으로 ‘모형 거북선’을 제작했습니다.” 대한민국명장회 울산지회는 21일 오전 10시 울산시청 시장 접견실에서 울산공센터 지정 6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모형 거북선’ 2점을 기증했다. 회원들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울산 조선소 건립 일화에 등장하는 500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본떠 모형 거북선을 제작했다. 정 회장이 조선소 건립 해외 자금을 들여오기 위해 영국 A&P의 애플도어 롱바톰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이며 “우리는 16세기에 세계 최초로 거북선이라는 철로 된 함선을 만든 나라”라며 “돈을 빌려주면 조선소를 짓고 배를 팔아 갚겠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시는 모형 거북선을 5월부터 연말까지 울산박물관 명장의 전당에 전시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 “서울 박물관·미술관 콘텐츠 AR로 즐겨요”… ‘내 손안의 박물관’ AR뮤지엄 오픈

    “서울 박물관·미술관 콘텐츠 AR로 즐겨요”… ‘내 손안의 박물관’ AR뮤지엄 오픈

    서울 시내에 있는 사립 박물관과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을 언제 어디서나 모바일 기기로 편리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는 사립 박물관과 미술관 9곳의 회화·설치·조각·토기 등 주요 소장품 100여점을 증강현실(AR) 콘텐츠로 제작한 ‘AR뮤지엄’을 열었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AR 콘텐츠 제작에는 서울 사립 박물관과 미술관 102곳 중 9곳이 참여했다. 각 박물관의 요청에 따라 주요 소장품을 AR 콘텐츠로 제작했고, 3D 가상 갤러리 및 AR 키오스크 제작 등의 사업도 진행했다. 전통 민화 작품인 ‘까치호랑이’(가회민화박물관)를 비롯해 종이 문화유물인 ‘갈모’(종이나라박물관), 김소월 문집(영인문학관) 등 널리 알려진 소장품을 시민들이 원하는 곳 어디에서나 모바일 기기로 입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다고 시는 전했다. 특히 가회민화박물관, 종이나라박물관, OCI박물관, 사비나미술관 등 6곳의 전시관은 3D 가상갤러리로 제작됐다. 실내 공간을 모바일 환경 안에 구현했을 뿐만 아니라 박물관 유리장 속에 전시돼 가까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소장품을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3차원으로 자세하게 둘러볼 수 있다고 시는 설명했다. 또 가회민화박물관, OCI박물관, 환기미술관 등 9곳에서는 AR 키오스크를 만나볼 수 있다. 단순한 터치형 키오스크가 아닌 고도화된 AR 키오스크는 원거리에서도 체험할 수 있고, 작품 해설을 듣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 구글 크롬으로 서울 AR뮤지엄을 검색하면 최적화된 모바일 환경에서 다양한 AR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 AI로봇 시대...LG 클로이 가이드봇, 잠실 롯데호텔 월드 진출

    AI로봇 시대...LG 클로이 가이드봇, 잠실 롯데호텔 월드 진출

    LG전자는 서울 잠실 롯데호텔 월드에 ‘LG 클로이 가이드봇’을 공급한다고 21일 밝혔다. 가이드봇은 호텔 로비에서 호텔의 주요시설과 프로모션, 주변 관광지 정보 등을 안내하고 로비에 전시된 예술작품을 해설하는 도슨트의 역할을 한다. 가이드봇의 터치스크린에서 호텔 편의시설을 검색하면 로봇은 화면과 음성으로 위치, 경로 등을 안내해준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안내 기능도 탑재했다.LG 클로이 가이드봇은 방문객 안내, 광고, 보안, 도슨트 등이 모두 가능해 백화점, 박물관, 전망대, 지하철역, 호텔 등 다양한 공간에서 운영되고 있다. 전면과 후면에 각각 27형 디스플레이를 탑재해 맞춤형 광고판 역할을 하거나 내장된 카메라를 통해 심야시간대 출입자 감지 등 보안 업무도 수행할 수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경기 광명의 테이크 호텔에 LG 클로이 서브봇을, 올해 초에는 강원 속초에 있는 한화리조트 설악 쏘라노에 서브봇과 가이드봇을 공급했다. 최근에는 경기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 수원 호텔에 2단 서랍형 LG 클로이 서브봇을 공급하는 등 호텔 비대면 서비스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LG전자 로봇사업담당 노규찬 상무는 “LG 클로이 로봇은 1:1 고급 컨시어지 서비스에서 비대면 배송 서비스까지 호텔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갖추고 있다”며 “다양한 공간에서 LG만의 차별화된 로봇 솔루션을 앞세워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 [단독] 일제 치하 ‘조선’ 녹여낸 방정환의 보드게임 2점 추가 발굴

    [단독] 일제 치하 ‘조선’ 녹여낸 방정환의 보드게임 2점 추가 발굴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민족적 자부심을 잃지 않고 즐겁게 놀이할 수 있게 했던 말판(보드게임) 2점이 새로 발굴됐다. 올해가 어린이날 100주년이라 의미를 더한다. 20일 국립민속박물관 등에 따르면 1923~1935년 발행된 아동·청소년 잡지 ‘어린이’의 부록이었던 ‘금강껨(다이아몬드 게임) 말판’과 ‘발명 말판’의 실물이 최근 확인됐다. 월간 ‘어린이’는 소파 방정환 등 당대 대표 지식인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해 독립운동과 소년운동을 이끌었던 잡지다. ‘어린이’는 모두 열두 차례 말판을 부록으로 제공한 것으로 파악된다. 잡지에 말판 놀이 방법이 실려 있으나 실물은 확인되지 않다가 2018년 ‘조선십삼도고적탐승 말판’, 지난해 ‘어린이 대운동회 말판’ 2점이 발굴됐다. 이번에 추가 발굴된 말판은 국립민속박물관 측이 ‘어린이’ 관련 유물 목록을 살펴보다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껨 말판과 발명 말판은 각각 1929년 2월호와 1931년 1월호에 부록으로 증정됐다. 금강껨에 대해 잡지는 ‘아주 재미있는 최신식 장난감’이라고 소개하고, 찢어지지 않고 오래 가지고 놀 수 있도록 말판 종이를 나무판이나 무거운 마분지에 덧붙이라는 당부를 남겨 놓았다. 한 번에 2~3명이 빨강, 노랑, 파랑 말 15개를 정해 자기 앞에 있는 땅에서 건너편 자기 땅으로 이사하고 가장 먼저 건너편 땅에 도착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발명 말판은 전기, 전축, 라디오 등 세계 발명품을 소개한 것으로 주사위를 던져 수에 따라 말을 옮기며 마지막 칸인 라디오 칸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말이 1등이 되는 게임이다. 잡지에 소개된 놀이법에 따르면 주사위 점수대로 출발 위치가 정해진다. 1은 ‘출발’ 칸에 놓고, 2는 ‘입학’, 3은 ‘예습’에 놓게 돼 있다. 또 특정 칸에 말이 놓이면 쉬거나 한 번 더 던질 수 있는 재미 요소도 넣었다. 한국방정환재단 관계자는 “잡지 ‘어린이’는 식민지 시대임에도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재미’와 ‘유익’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며 “발명 말판이나 조선십삼도고적탐승 말판 등에서 보듯 어린이들이 지명, 유적, 발명품 등을 익히며 민족주의적인 정신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굽이마다 절경이구나… 흑산도야, 잘 있었구나

    굽이마다 절경이구나… 흑산도야, 잘 있었구나

    전남의 보물 같은 섬… 얼마 만이냐 지난 두 해 남짓, 섬에 들어가는 걸 꺼렸다. 물론 코로나19 때문이다. 옮는 것보다 옮길 것이 걱정됐다. 거리두기가 마침내 끝났다. 섬을 찾는 것에 대한 거리낌도 해소됐다. 이제 멀고 먼 섬으로 떠날 차례다. 너무 멀어 검게 보인다는 전남 신안의 흑산도, 붉은빛 감도는 기암들의 절창이 일품인 홍도를 묶어 돌아봤다. 흑산도는 육로 관광이 보편적이다. 이웃 섬 홍도가 해상 관광 위주인 것과 다소 다르다. 흑산도엔 25㎞ 남짓한 일주도로가 잘 닦여 있다. 1984년 착공해 우여곡절을 겪다 26년 만인 2010년에 완공됐다. 관광택시를 탈 경우 외부 세계와의 연결 고리인 예리항에서 진리, 사리 등 순으로 돌아보는 게 보편적이다. 물론 취향에 따라 반대 방향으로 돌 수도 있다. 다만 어느 방향으로 돌더라도 해넘이는 흑산도 최고 전망대인 상라봉에서 맞는 게 좋다.●청잣빛 바다·그림 같은 풍경 먼저 사리(沙里) 마을 쪽으로 간다. 주민들 표현으로는 모래미란 곳이다. 갯마을 풍광이 수려해 호사가들은 ‘흑산도의 소렌토’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소렌토를 가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그곳이 모래미를 닮았다면 청잣빛 바다와 기암절벽, 노송 그리고 예쁜 집들이 산수화처럼 펼쳐져 있을 게 분명하다. 사리엔 흑산도를 대표하는 명소 ‘복성재’가 있다. 다산 정약용의 형이자 조선 최고의 자연과학자 중 한 명인 손암 정약전(1758~1816)이 신유박해(1801) 때 유배 생활을 하며 ‘현산어보’(玆山魚譜, 자산어보)를 집필했던 곳이다. 꽤 오래전 생면부지의 흑산도를 가슴 깊이 각인시킨 책을 만난 적이 있다. ‘현산어보를 찾아서’라는 책이었다. 고등학교 생물 교사였던 이태원이 ‘현산어보’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2002년부터 이듬해까지 내리 다섯 권이 간행됐다. 생물도감 같은 책이지만 어패류에 대한 해박한 설명과 정교한 생물들의 그림, 흑산도에 머물며 촬영한 사진 덕에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유배지서 ‘현산어보’ 지어낸 정약전 무엇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정약전의 위대한 유산을 ‘자산어보’라 부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 대목이다. 그 이전에도 ‘현산어보’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왔지만 당시 이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玆山魚譜’의 독음이 재조명받는 계기가 됐다. 저자의 논리는 이렇다. “나는 흑산으로 유배되었는데 ‘흑산’이라는 이름이 컴컴하여 두려우니 가족들이 편지에서 번번이 ‘玆山’이라 하였다. ‘玆’ 역시 검다는 말이다.” 정약전이 ‘玆山魚譜’ 서문에 밝힌 내용이다. 여기서 ‘玆’은 ‘자’로도, ‘현’으로도 읽힌다. 한데 ‘지금’, ‘여기’ 등의 뜻일 때는 ‘자’로 읽지만 ‘검다’의 뜻일 때는 玄(검을 현)이 두 개 겹친 ‘현’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 한문학자들의 주장이다. 이태원은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 ‘유암총서’란 책에 “금년 겨울 현주(玄州)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라는 대목이 나온다. 글 말미에는 “현주서실(玄州書室)에서 글을 쓴다”며 글 쓴 장소도 밝혔다. 여기서 ‘현주’는 흑산도를 뜻한다. 책 제목에 나오는 ‘유암’은 저자 이강회의 호다. 이태원은 유암을 “다산의 제자인 이청의 친구이며, 다산과도 친밀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흑산도를 ‘玆山’이라 처음 표현한 이도 다산이고, 그의 제자 이청과도 친하게 지냈으니 유암이 흑산을 ‘현주’로 표현한 것은 다산이 흑산을 玆山이라 부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누리집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전남 강진 사람인 유암이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의 제자였다는 것이다. 이로 미뤄 본다면 유암이 스승의 발음에 따라 ‘玆山’을 ‘현산’이라 불렀을 개연성은 더 높아진다. 현재로선 ‘자산’인지, ‘현산’인지 특정하기 어렵다. 장삼이사는 그저 흑산도가 얼마나 먼 절해고도였으면 ‘검고 검다’는 표현을 썼을까 헤아려 보는 정도로 충분하지 싶다. 다만 코로나 시국에도 지난해 개봉을 감행했던 영화 ‘자산어보’는 독음을 ‘자산’으로 분명히 했다. 전문가에게 자문했다고는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상 많은 이에게 익숙한 이름을 제목으로 쓸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유배자들 흔적 남겨놓은 문화공원 사실 영화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장창대’(변요한)란 인물이다. 정약전과 더불어 ‘현산어보’의 공동 저자나 다름없는 이다. 영화 ‘자산어보’가 보여 주려 했던 수평사회, 그러니까 양반과 평민이 공존하는 평등사회는 장창대가 있어야 완성된다. 한데 그의 흔적은 흑산도 어디서도 찾을 길이 없다. 정약전(설경구)의 이름만 남았을 뿐이다. 그게 못내 아쉽다. 이제라도 정약전 동상 옆에 장창대의 동상을 함께 세워 그를 기려 보면 어떨까 싶다. 복성재 아래는 유배문화공원이다. 1148년 고려 의종 때의 정수개부터 1898년의 뇌물수수 죄인 김홍륙에 이르기까지 흑산도로 유배된 수많은 이를 기억하는 조형물들이 조성돼 있다. 사리는 돌담(등록문화재)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 앞 해변에는 봄철 산란을 앞두고 숭어들이 파리떼처럼 몰려든다. 수백년 전 정약전도 이 장면을 보며 신기해했겠지. 멀고 먼 한양의 임금에게도 진상했다는 숭어 어란은 이런 천혜의 여건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상라봉 전망대는 흑산도 최고의 조망처다. 차로 쉽게 오를 수 있다. 특히 저물녘 풍경이 빼어나다. 멀리 홍도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이 장쾌하면서도 서정적이다. 열두 굽이 ‘용고개’를 휘돌아 오르는 맛도 일품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잎이라 했던가. 상라봉 일대를 뒤덮은 늙은 동백나무 잎들이 역광 아래 보석처럼 반짝이는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상라봉 정상의 봉수대까지 오르는 것도 좋겠다. 파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한 배낭기미 해수욕장, 죄인을 감금했던 옥섬 등 사방이 툭 터진 흑산도 일대 전경과 마주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정상까지는 10분 정도 걸린다.●이미자, 46년 만에 흑산도 찾아 노래 전망대 한편엔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있다. ‘흑산도 아가씨’는 1966년 발표된 이미자의 노래다. 흑산도 예리항에 여객선이 닿을 때면 항구 전체에 이 노래가 울려 퍼질 정도로 흑산도를 대변하는 노래로 인식되고 있다. 한데 정작 섬 주민들의 가슴을 적셨던 이미자는 흑산도를 방문하지 않았다. 그러다 가까스로 2012년 그의 공연이 흑산도에서 열렸다. 노래가 발표된 지 무려 46년 만의 일이었다. 노래비 옆에 세운 이미자 핸드 프린팅은 공연 당시 조성한 것이다. 흑산도는 세계적인 ‘철새 휴게소’다. 동아시아와 대양주에 놓여진 ‘철새 고속도로’ 경로 중 한반도를 통과하는 철새들이 쉬어 가는 중간 기착지다. 국내에 기록된 560여종 가운데 400여종이 이 일대에서 관찰될 정도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정약전이 물고기가 아니라 새에 관심이 많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현산조보’를 유산으로 받았을지도 모른다. 철새 관련 시설도 들어섰다. 신안철새전시관은 진리에서 열두 굽이 도로 가기 전에 있다. 흑산도는 물론 전 세계 다양한 새의 표본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 초입에선 법정스님 사진과 동박새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난데없는 법정의 출현에 얼떨떨하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법정의 출가 이야기 듣는 철새전시관 법정은 대학생이던 1952년에 친구들과 흑산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전시된 사진은 출가 전 ‘대학생 박재철’이 흑산도 진리의 모래톱에서 친구들과 찍은 것이다. 사진 속 ‘박재철’의 손엔 동박새가 든 새장이 들려 있다. 당시 흑산도 옆 다물도에 살던 친구가 법정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그런데 사진보다 후일담이 더 의미심장하다. 당시 동행했던 친구의 말을 빌리면 법정은 목포로 돌아가자마자 새장 속의 새를 풀어 줬다고 한다. 그리고 세 해 뒤 ‘청년 박재철’도 세속을 박차고 보다 넓은 정신세계를 향해 날아올랐다.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말이다. 그가 바로 ‘무소유’로 법명을 날린 법정스님이다. 철새전시관에서 모퉁이 하나 돌면 새공예박물관이다. 야외 전시장엔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쇼나 새 조각이 전시됐다. 생경한 나라의 작품들이 이채롭긴 하지만 실제 흑산도 권역에서 발견되는 우리 철새들을 모티브로 삼았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다.전시관 위에 있는 진리당은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공간이다. 당각시 전설이 깃든 각시당(처녀당), 해변 쪽의 용왕당 등으로 이뤄졌다. 각시당에서 용왕당까지 약 150m 구간에 성황림이 우거졌다. 귀신을 부른다는 초령목, 늙은 소나무, 신우대 등이 제법 깊은 숲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흑산도에는 볼만한 팽나무가 세 그루 있다. 흑산성당 옆의 팽나무 두 그루는 연리지다. 회색빛 둥치가 매우 독특하다. 무심사지 삼층석탑을 품고 선 팽나무도 있다. 이 나무는 수형도 좋지만 뿌리 부분을 봐야 한다. 뿌리가 옛 비석들을 휘감고 자라고 있다. 비석의 위치에 따라 둥치가 기묘하게 휘었는데 그 모습이 더 특이하다. 흑산성당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1958년 세워진 등록문화재다. 외형도 독특하고, 다양한 빛깔로 실내 곳곳을 비추는 스테인드글라스도 아름답다. 아울러 우리나라 형태의 지도바위, 유배 온 면암 최익현이 남긴 지장암 글귀 등의 볼거리들도 잊지 말고 찾아보는 게 좋겠다.●흑산도 찾았으면 홍도 함께 2박 3일 홍도는 흑산도의 연관 검색어 같은 곳이다. 관광객 대부분이 흑산도와 홍도를 묶어 2박 3일에 걸쳐 돌아본다. 이웃 섬이라고는 해도 흑산도에서 홍도까지는 쾌속선으로 30분을 더 달려야 한다.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다. 흑산도의 여러 섬과 함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다. ‘천사(1004)섬’으로 알려진 신안의 섬 중에서도 늘 수위에 오를 만큼 빼어난 경치로 소문났다. 섬은 코로나가 엄습한 2년 동안 텅 비었었다. 관광객이 찾지 않아서다. 흑산도도 그랬지만 관광객 비중이 압도적인 홍도는 특히 충격이 컸다. 그와 관련한 애처로운 이야기 한 자락. 2020년 4월 초에 대구의 관광객이 홍도를 찾았다. 당시 대구는 코로나 확진자의 폭발적 증가로 정부가 선포한 ‘특별재난지역’이었다. 외지에서 대구로 가는 것도, 대구 사람들이 외지를 방문하는 것도 극도로 꺼릴 때였다. 소식을 접한 최성진(52) 홍도 1구 이장이 서둘러 여객선에 올랐다. 이들의 입도를 만류하기 위해서였다. 멀리 대구에서 온 관광객은 결국 홍도에 내리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비록 공포에 짓눌려 벌인 일이었다 해도, 자기 마을을 찾은 외지인을 돌려보낸 것에 대해 주민들의 심사가 편할 리 없었다. 사과 전화는 물론이고 미역, 멸치 등 홍도에서 나는 갯것들을 선별해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대구 관광객은 아직 홍도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 홍도 관광 하면 대개 유람선 관광을 백미로 꼽는다. 홍도 바다는 기암괴석들의 전시장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홍도 볼거리의 으뜸이라는 1경 남문바위부터 무려 33경에 이르는 기암들과 마주할 수 있다. 안내원의 해학적인 설명을 들으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보면 2시간 남짓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유람선은 남문바위와 슬픈여바위에서 잠깐 정박한다. 기념사진을 찍으라는 취지다. 슬픈여바위엔 생선회를 파는 어선이 늘 대기하고 있다. 한 접시 3만원인데 경험 삼아 맛볼 만하다.●‘1년 탈 없이’ 염원 담은 깃대봉 365m 주민들의 삶을 엿보려면 역시 땅을 밟고 다녀야 한다. 덜 알려졌을 뿐 홍도 육로 관광도 해상 관광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홍도는 남북으로 7㎞ 정도 길쭉하게 뻗은 섬이다. 섬에 도로도, 차도 없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3륜차가 전부다. 섬 가운데에 깃대봉(365m)이 높이 솟아 걷기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짧은 코스로는 1구 바로 옆 죽항당산을 다녀올 만하다. 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당산이다. 전체 코스는 1㎞ 정도다. 죽항당산엔 동백나무가 많다. 300년은 족히 살았다는 노거수들이다. 산자락 좁은 길이 늙은 동백에서 떨어진 붉은 꽃들로 낭자하다. 당산 위엔 일출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지중해의 항구 마을을 보는 듯한 이국적인 풍경과 기암절벽들이 절경을 펼쳐 낸다. 좀더 걷고 싶다면 섬 산행을 즐길 수도 있다. 홍도 1구에서 깃대봉을 넘어 홍도 2구 마을까지 이어지는 4㎞ 남짓한 산길이다. 깃대봉 능선 아래로 목재 데크 산책로도 있다. 해안 절벽 사이로 난 길은 완만하게 능선을 타고 오르다 깃대봉으로 가는 등산로와 만난다. 여기서 문제 하나. 홍도 깃대봉의 높이는 얼마일까. 정상 표지석엔 365m, 네이버 지도엔 360.5m, 다음 지도엔 367.8m로 표기돼 있다. 제각각이다. 최 이장의 말에 힌트가 있다. 그는 주민들이 1년에 한 번은 꼭 깃대봉을 오른다고 했다. 일 년 365일 동안 탈 없이 지나게 해 달라는 바람을 담아 산행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민들의 믿음을 기준으로 삼으면 365m가 정답인 셈이다. 홍도 2구는 1구보다 먼저 사람이 정착했다는 마을이다. 하지만 1구가 관광 중심지로 개발되면서 뒤처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세상 적막한 마을이 됐다. 마을 옆엔 수형이 빼어난 소나무들이 있다. 바람에 시달리며 자라느라 이리저리 굽고 휘었다. 이 모습이 독특해 소나무 작품으로 유명한 사진작가가 촬영을 위해 2구 마을에 머물기도 했단다. 조붓한 솔숲 길을 오르면 곧 홍도등대다. 1931년 처음 불을 밝힌 등대다. 섬 끝자락에 선 말간 등대의 모습이 아름답다. 등대가 굽어보고 있는 풍경도 빼어나다.●이장, 돌려보낸 관광객 찾아 대구행 홍도는 이름처럼 붉은빛 감도는 해안 절벽이 일품인 섬이다. 특히 저물녘 햇살을 받아 절벽이 붉게 물들 때가 진수다. 할 수만 있다면, 저물녘에 유람선을 타길 권한다. 홍도를 나오던 날 쾌속선에 홍도 1구 최 이장이 함께 탔다. 그가 가는 곳은 대구였다. 코로나 때 입도하지 못했던 관광객 집에 일이 생겨 위로차 찾아가는 길이란다. 그 미안해하는 마음과 애틋한 정이 보통이 아니다. 언젠가 대구 사람들이 홍도를 방문하는 날도 오겠지. 홍도 사람들은 아마 구석구석 극진하게 안내해 줄 것이다. 그때 그들이 함께 보고 나누는 풍경들은 얼마나 새롭고 아름다울까. ■ 여행수첩 -흑산도까지는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쾌속선으로 2시간, 홍도는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도초도를 경유해 가는데, 도초도 이후부터 파도가 높아지며 멀미를 하는 경우가 많다. -홍도 1구에서 2구까지는 여객선 시간에 맞춰 도선이 무료로 오간다. 하지만 2구 마을 주민이 없을 경우 운항하지 않는다. 마을 주민의 배를 이용할 경우 최소 4만원이다. 1구에서 깃대봉을 넘어 2구까지 걸어서 다녀오려면 3시간 이상은 족히 걸린다. -흑산도 SUV 관광택시는 4인 기준 6만원이다. 2시간 정도 섬 곳곳을 돈다. 일반적인 택시 기능도 한다. -두 섬 모두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이 있다. 비수기인 요즘은 여유가 있지만 성수기 때는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흑산도와 홍도는 5월이 지나야 겨울이 끝났다고 말할 정도로 일교차가 심하다. 다소 두툼한 옷을 챙겨 가는 게 좋다. -말린 홍어를 각종 양념과 버무려 내놓는 홍어무침이 별미다. 다만 양이 적어 다소 비싸다고 느낄 수도 있다. 생선회는 전부 자연산이다. 계절에 따라 종류도 바뀌는데, 수온이 찬 요즘은 우럭과 노래미를 맛볼 수 있다.
  • [단독]일제강점기 ‘어린이’ 말판(보드게임) 2점 발굴

    [단독]일제강점기 ‘어린이’ 말판(보드게임) 2점 발굴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민족적 자부심을 잃지 않고 즐겁게 놀이할 수 있게 했던 말판(보드게임) 2점이 새로 발굴됐다. 올해가 어린이날 100주년이라 의미를 더한다.20일 국립민속박물관 등에 따르면 1923~1935년 발행된 아동·청소년 잡지 ‘어린이’의 부록이었던 ‘금강껨 말판’과 ‘발명 말판’의 실물이 최근 확인됐다. 월간 ‘어린이’는 소파 방정환 등 당대 대표 지식인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해 독립운동과 소년운동을 이끌었던 잡지다.모두 열두 차례 말판을 부록으로 제공한 것으로 파악된다. 잡지에 말판 놀이 방법이 실려 있으나 실물은 확인되지 않다가 2018년 ‘조선십삼도고적탐승 말판’, 지난해 ‘어린이 대운동회 말판’ 2점이 발굴됐다. 이번에 추가 발굴된 말판은 국립민속박물관 측이 ‘어린이’ 관련 유물 목록을 살펴보다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껨 말판과 발명 말판은 각각 1929년 2월호와 1931년 1월호에 부록으로 증정됐다. 금강껨에 대해 잡지는 ‘아주 재미있는 최신식 장난감’이라고 소개하고, 찢어지지 않고 오래 가지고 놀 수 있도록 말판 종이를 나무판이나 무거운 마분지에 덧붙이라는 당부를 남겨 놓았다. 한 번에 2~3명이 빨강, 노랑, 파랑 말 15개를 정해 자기 앞에 있는 땅에서 건너편 자기 땅으로 이사하고 가장 먼저 건너편 땅에 도착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발명 말판은 전기, 전축, 라디오 등 세계 발명품을 소개한 말판으로 주사위를 던져 수에 따라 말을 옮기며 마지막 칸인 라디오 칸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말이 1등이 되는 게임이다. 잡지에 소개된 ‘노는 법’에 따르면 주사위 점수대로 출발 위치가 정해진다. 1은 ‘출발’ 칸에 놓고, 2는 ‘입학’, 3은 ‘예습’에 놓게 돼 있다. 또 특정 칸에 말이 놓이면 쉬거나 한 번 더 던질 수 있는 재미 요소도 넣었다. 한국방정환재단 관계자는 “잡지 ‘어린이’는 식민지 시대임에도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재미’와 ‘유익’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며 “발명 말판이나 조선십삼도고적탐승 말판 등에서 보듯 어린이들이 지명, 유적, 발명품 등을 익히며 민족주의적인 정신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호텔과 예술의 특별한 만남 ‘아트 셀러브레이션’

    호텔과 예술의 특별한 만남 ‘아트 셀러브레이션’

    더 트리니티 갤러리(대표 박소정)와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대표 박은주)는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의 스위트 룸에서 오는 4월 27일까지 특별 기획전 ‘ART CELEBRATION’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국내 최초로 아트 호스피탈리티 경영과 개척을 위해 업무협약(MOU)를 체결한 더 트리니티 갤러리와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이 ‘축하(Celebration)’의 의미를 다지는 특별전으로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의 최상위객실 18층 몬드리안 스위트(Mondrian Suite)에서 2주 동안 진행된다. 전시 참여 작가는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국내 아티스트 김홍식과 유의정으로, 회화와 도자작품 약 50여 점이 출품된다. ‘Flâneur’(도시산책자)라 불리는 작가 김홍식은 카메라를 들고 전 세계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포착한 순간들을 담아 프레임 속에 기록한다. 무한히 이어지고 중첩되는 시선의 모습들은 스테인리스 스틸 위에 새겨지며, 황금빛 프레임을 매개로 시공간을 연결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과 현대 도예를 잇는 매개자로 불리는 작가 유의정은 우리나라 청자, 백자 위에 화려한 패턴의 콜라주, 유명 브랜드 및 키치한 캐릭터를 삽입하거나 과감하게 흘러내리는 형형색색의 유약을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전시 중 20일에는 문화외교를 위한 글로벌 아트 리셉션과 아트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각국의 대사관, VIP 문화예술관계자, 아트컬렉터 등이 참석한다. 아트 워크샵, 아티스트 토크, 리셉션 파티, 아트 투어가 함께 진행된다. 아트 워크샵의 경우 각국의 대사부인으로 구성된 주한대사부인회 ASAS(Ambassadors Spouses Association in Seoul)가 한국의 전통 보자기 매듭을 체험한다. 갤러리 측은 “스위트룸에서의 메인 전시인 한국의 현대 미술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 K-한류 확산을 폭넓게 도모할 수 있는 문화 외교 및 문화 교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했다”며 “특히 이번 전시는 우리의 일상 속 축하(Celebration)와 기념이 이루어지는 자리 어디든 아트(Art)가 함께 하기를 소망하는 뜻을 담고 있다” 라고 말했다. 또한 “스위트 룸이라는 공간적 특별함에 아트가 가진 감각적인 힘을 더해 투숙객들에게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 라고 덧붙였다.
  • “그건 협찬 아니에요” 아이콘 택하는 럭셔리 브랜드 전략은 [명품톡+]

    “그건 협찬 아니에요” 아이콘 택하는 럭셔리 브랜드 전략은 [명품톡+]

    최근 샤넬은 영부인이 입은 제품으로 구설수에 휘말렸습니다. 프랑스 박물관에 전시된 것과 동일한 제품인지, 직접 협찬한 건지 아닌지의 여부도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럭셔리 브랜드의 협찬 목록, 그 중에서도 VIP 협찬 목록은 극비에 속합니다. 극비에 속하며 일반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럭셔리 브랜드측에서는 이러한 제품을 자신들의 홍보 자료로 사용하지도 않고요. 일반에 홍보 여부를 공개하지도 않습니다. 브랜드의 브랜딩을 위해 철저하게 VIP 협찬 목록을 극비리에 붙이는 건데요. 그러나 이들이 이례적으로 공식 명칭을 붙여 홍보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 럭셔리 브랜드 브랜딩은 럭셔리 브랜드가 아이콘을 내세우는 전략은 남들과 조금 다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이 제품을 사용했다고 해서 모두 마케팅의 일환으로 삼지 않아요. 아 그 전에 개념 정립 먼저 하나 하고 가겠습니다. 최근 SNS에서 ‘핫’해진 글인데요. 브랜딩과 마케팅의 차이를 짧게 설명하는 글입니다. 마케팅은 ‘나 돈 많아요’ 하는 것이고 브랜딩은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들고 다니는 것’이라는 비유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럭셔리 브랜드는 누군가에게 물건을 들게 해 이미지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선택되는 럭셔리 브랜드는 자신들을 어떻게 브랜딩할까요. 앰버서더·크리에이티브 디렉터·모델…. 럭셔리 브랜드는 자신들의 제품을 돋보이기 위해 뮤즈를 다양한 용어로 내세워 홍보하기도 합니다.● 아카이브화된 럭셔리 제품은 그 과정에서 이들에게 제품을 협찬하는 일은 흔한데요. 이들이 제품을 홍보할 때는 자신들의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제품과 모델을 연결짓곤 합니다. 구찌의 재키백이나 MCM 스타크 백팩 등이 대표적이에요. 이들 제품은 각 브랜드에서 공격적으로 홍보했던 것들로 이들은 브랜드의 스토리가 돼 아카이브에 누적됩니다. 전세계 수많은 셀럽들이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을 착용하거나 협찬받고 이들 중 브랜드 하우스 아카이브에 속하는 제품들은 극소수죠. 각 브랜드와 함께한 셀럽 중 브랜드가 사랑한 모델로 자리잡는 것, 셀럽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겠죠. ● 럭셔리 브랜드가 내세운 모델은 1976년 설립된 MCM은 자사 협찬 셀럽 중 뮤즈로 특정 모델을 내세우고 있는데요. 이들이 내세운 모델은 신디 크로포드입니다. 지난 1980~1990년대 들어서 럭셔리 브랜드를 오마주한 힙합 아티스트·셀럽·미국 뮤지션들이 MCM 제품을 착용하기 시작했는데요. 슈퍼모델 신디 크로포드도 이 때부터 뮤즈이자 고객으로서 MCM과 했습니다. 1990년대 MCM은 전세계 250여개 매장서 광고 캠페인을 벌였는데요. 신디 크로포드가 파격적인 자세로 MCM 가방을 든 사진은 당시로선 파격적이었습니다만 확실히 럭셔리 브랜드계에 MCM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2005년 성주인터내셔널이 MCM을 인수한 후에는 MCM의 매출이 상승했는데요. 이름을 바꾸고 아디다스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던 마이클 미켈란스키를 고용한 후에는 입지를 더 다졌어요. 또한 비욘세·리한나·저스틴 비버·레이디 가가·칸예 웨스트·크리스 브라운 등 후대의 많은 뮤지션들이 그 영향을 이어받아 MCM을 즐겨 입었는데요. 이 흐름은 국내로 번지기도 했어요.● 공항패션으로 등장한 스타크 백팩 국내 스타들이 MCM에 관심을 가졌고 비·지드래곤 등이 MCM 제품을 착용한 것은 대중에 MCM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특히 ‘공항패션’으로 유명세를 탔는데요. 일상, 공항에 MCM 스타크 백팩을 스타일링해 백팩을 MCM의 대표작으로 알리는데 한 몫 했습니다. MCM의 스테디셀러 스타크 백팩은 특유의 비세토스 패턴을 부드러운 소재, 심플한 모양에 풀어낸 캐주얼 백팩입니다.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스테디셀러로 가방 윗부분의 둥근 모양과 견고한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스터드도 눈길을 끌죠. ● 2010년대 글로벌 전략2020년대 아카이브로 살아날까 당시 MCM은 이른바 ‘글로벌 노마드’ 전략으로 고객을 모았어요. 특히 중국서 MCM 백팩은 여성보다도 남성이 더 많이 구매해 럭셔리 브랜드로서는 이례적인 고객 파이를 지녔다는 평을 받았죠. 그 때의 MCM은 독일에서 패션의 중심 이탈리아로 뻗어나가는 전략을 세웠는데요. 한국의 브랜드로 머무는 게 아닌 글로벌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럭셔리 브랜드가 되겠다는 계획으로 시장성을 키워 나갔습니다. 최근 MCM은 이러한 2010년대의 분위기를 불러오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를 필두로 최근 브랜딩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데요. 과거 인기 아이돌을 중심으로 파급력을 가졌던 스타 브랜딩을 아카이브화하고 있어요. ● 정치권 얽히는 것 지양재키백은 예외 그런가 하면 럭셔리 브랜드가 정치권과 얽히는 것은 지양되는 일이에요. 의도한 이미지를 줄 수 있어서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찌 재키백처럼 이름까지 브랜딩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재클린 케네디는 불어 실력과 패션 감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패션 아이콘이 됐어요. 재키백은 지난 1961년 이후 공적·사적 자리에서 재클린 케네디가 든 모습이 목격됐는데요. 수차례 보이자 사람들 사이에서 가방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습니다. 재키 1961 라인은 이후 ‘짝퉁’ 매대에 대거 등장할 정도로 구찌 스테디셀러가 됐는데요. 이러한 모습은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에 그려지기도 했죠.● 공식석상·사적 자리어디서나 재키백 재키는 유창한 불어 실력과 스타일링으로 제2차세계대전 후의 미국서 스타일 아이콘으로 떠올랐어요. 그는 정장으로는 샤넬을 사랑했지만 가방으로는 구찌 호보백을 즐겨 들었습니다. 재키백은 지난 1961년 가을·겨울 여성·남성 패션쇼에서 처음 공개됐습니다. 이 호보백은 지난 1961년 처음 제작된 것으로 곡선 모양·구찌 고유의 도금 잠금장치가 특징이에요. 재키는 이 가방을 공식석상과 사적 자리를 가리지 않고 자주 들었는데요. 덕분에 가방은 수십년동안 구찌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습니다. 또한 수차례 디자인 변경을 거쳐 지난해에는 재키 1961이라는 최신 버전 디자인으로 재탄생했죠. 구찌 아카이브를 확립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알렉산더 미켈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은 거죠. 어느새 구찌의 상징이 된 가방은 그동안 수차례 디자인 변경을 거쳤는데요. 미켈레는 지난해 재키 1961이라는 최신 디자인으로 새롭게 가방을 리뉴얼했습니다. 구찌측은 이 가방에 대해 알렉산더 미켈레의 애정이 드러난 아카이브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아카이브를 마련하고 그에 따라 브랜드를 브랜딩하는 럭셔리 브랜드들, 공개적으로 모델과 아이코닉한 제품을 알릴 수 있다는 건 셀럽과 브랜드 모두에게 ‘윈윈’이겠네요.
  • 경만선 서울시의원, 서울시 유니버설관광 환경조성 업무협약 체결

    경만선 서울시의원, 서울시 유니버설관광 환경조성 업무협약 체결

    서울관광재단이 서울시 유니버설 관광환경 및 박물관 관람환경 조성 등 관광약자의 여행 활성화를 위해 지난 18일 국립항공박물관과 업무 협약을 체결함에 따라 강서구 주변 관광코스 개발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번 업무 협약은 유니버설 관광환경과 박물관 관람환경 조성을 통해 서울이 누구에게나 편리한 관광도시로의 도약을 목적으로 마련됐다.  국립항공박물관 근교에 있는 서울식물원, 개화산 무장애 숲길 등 강서구의 주변 관광지를 연계한 다누림 무장애 관광코스 개발이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현장영상해설사 운영 협력 등 재단의 전문인력 육성 노하우를 국립항공박물관과 공유하여 무장애 관광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경만선 의원(더불어민주당·강서3)은 “이동약자이자 관광약자인 장애인을 위한 강서구 관광코스 개발 소식은 지역 시의원으로서도 매우 기쁜 소식”이라며 “이번 업무 협약 체결이 관광약자들의 관광 향유권 증진과 함께 강서 지역경제 활성화의 시금석이 될 것을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 [나, 장애, 공무원] “아이들이 절보고 큐레이터 꿈꿨으면”

    [나, 장애, 공무원] “아이들이 절보고 큐레이터 꿈꿨으면”

    세종특별자치시 관광문화재과의 홍경주(41) 지방학예연구사(6급 상당)는 ‘인간 비타민’이다. 전시·공연 기획 일을 말할 때 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손짓이 커졌다. 그는 2011년 중증장애인 경력경쟁채용(경채)에 합격,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던 전력도 가지고 있다. 2015년 세종으로 직장을 옮길 때는 장애인 전형이 아닌 일반 지방직공무원 경채로 입직했다. 중증 지체장애인인 홍 연구사는 어려서부터 폴란드증후군을 앓았다. 선천적 염색체 이상으로 왼쪽 가슴의 대흉근이 없어 비대칭을 이루고, 몇 차례 이식 수술을 받은 왼쪽 손가락들은 오른쪽 손가락들에 비해 짧다. 때문에 시청 문화재과에서 해야하는 건축 인허가 시 매장 문화재 여부를 살펴보는 일 등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차를 타고 움직이면서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저는 손가락 때문에 운전이 어렵거든요. 그런 건 과에서 많이 양해해주시기도 했어요.” 지금은 세종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서 무형문화재들에 대한 지원과 공연 기획 등을 맡고 있다. 목원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홍 연구사는 큐레이터이자 에듀케이터(교육자)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전시 기획과 함께, 박물관에 관한 교육을 하는 에듀케이터로서 자리잡고 싶었던 것이다. 중앙박물관에 있을 때는 어린이박물관에서 특수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오감체험 프로그램’ 등을 직접 기획하기도 했다. 시각, 청각, 지체장애 등 장애 유형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시도하는 강좌였다. “아이들이 조립하기 쉽게 금관 키트 등을 제작해 함께 만들어보는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어요. 한편으로, 아이들이 저를 보고 장애인도 큐레이터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요.” 그는 현재 충남대에서 전시디자인·교육 전공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제가 장애가 있다보니, 장애인 문화 기획자의 양성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어요.” 홍 연구사가 느끼기에 중증장애인 경력경쟁채용 합격자들 중 여성은 소수자다. 여성 장애인이 교육을 받아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기까지 기회를 얻기가 남성보다 쉽지 않은 탓이다. 특히나 학예사는 석사 학위 같은 학력과 박물관·미술관 경력을 두루 보기에 더욱 문턱이 있다. 그는 수원시립박물관에서 유물 관리를 담당하는 인턴으로 일할 당시,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손으로 정리하는 일이 많은 ‘수장고’ 업무를 자원했다. “무작정 찾아가서 시작하게 된 일이에요. 학예사로 일하려면 학력도 중요하지만 경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피나는 공부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 코로나 안녕… 국립중앙박물관 ‘봄 박물관 정원 산책’ 재개

    코로나 안녕… 국립중앙박물관 ‘봄 박물관 정원 산책’ 재개

    국립중앙박물관이 코로나19로 지난 2년 동안 중단됐던 ‘봄 박물관 정원 산책’ 해설 프로그램을 재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8일 “봄을 맞이한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정원에서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 석조물이 벌써부터 관람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소식을 알렸다. 프로그램은 오는 23일부터 매주 총 4회에 걸쳐 진행한다. 사전예약을 통해 참여할 수 있고, 참가자들에게는 소정의 기념품도 제공된다. ‘봄 박물관 정원 산책’ 프로그램에 참여한 관람객은 가족·연인·친구들과 편하게 걸으며 박물관 야외정원의 꽃과 나무, 문화재에 관해 배우며 박물관을 체험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모란과 금강송 등 우리 꽃과 나무에 대한 설명은 물론 보신각종, 염거화상탑, 남계원 칠층석탑 등의 지정문화재에 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이와 함께 다음 달 8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특별 해설 프로그램 ‘부처님 이야기’도 진행한다. 박물관 전시품을 통해 부처님의 생애와 불상의 기원, 부처님과 보살의 차이, 불탑과 사리봉안의 의미, 불탑과 승탑 등에 대해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예정이다. 
  • 훔친 中 고서 사들인 뒤 ‘보물’ 등록한 박물관 운영자 실형

    훔친 中 고서 사들인 뒤 ‘보물’ 등록한 박물관 운영자 실형

    장물업자에게 중국 명나라 때의 법전인 ‘대명률’(大明律)을 사들인 뒤 국가문화재 ‘보물’로 등록한 개인 박물관 운영자에게 실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73)씨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8일 밝혔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아들 B(50)씨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 확정됐다. 이들 부자는 2012년 장물을 취급하는 C씨에게서 장물임을 알면서도 1500만원에 대명률을 샀다. 이 대명률은 1998년 경주에서 도난당한 것이었다. 이들은 추후에 문화재로 지정되면 C씨에게 1000만원을 더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하지만 A씨 부자는 이후 약속한 돈을 주지 않았고 이 때문에 C씨와 갈등을 빚으면서 수사기관에 덜미가 잡혔다. 대명률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황제에 즉위하기 한 해 전인 1367년 편찬에 착수해 1373년 완성한 법전으로 조선도 이를 가져다 법률로 활용했다. A씨 부자가 입수한 대명률은 1389년 명나라에서 수정 편찬한 판본이었다.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1397년 반포본보다 연도가 앞선 희귀본이다. 이들은 장물을 입수한 지 몇 달 뒤 시청으로 가서 “선친으로부터 받았다”며 국가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고 실제로 이 법전은 2016년 보물 1906호로 지정됐다. 1심은 “취득 경위에 대해 거짓 주장을 하고 죄질이 상당히 나쁜데도 범행을 부인하면서 반성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고 있지 않다”며 A씨에게는 징역 5년, B씨에게는 징역 3년을 각각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장물이 심한 훼손 없이 위탁 보관돼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A씨의 형량을 징역 3년으로 낮췄다. 아들 B씨는 범행에 가담한 정도가 가볍고 부친과 달리 문화재보호법 관련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을 들어 집행유예로 감경했다. 이들은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 문제가 없다고 보고 처벌을 확정했다.
  •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과거와 현재, 그 인과를 잇는 그림/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과거와 현재, 그 인과를 잇는 그림/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온갖 화려한 색으로 피어나는 꽃들이 시선을 끌고, 눈처럼 꽃잎이 날리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연둣빛으로 새 생명을 자랑하는 나뭇잎들도 이에 질세라 저마다 사람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4월은 잔인한 달, 꽃잎만큼이나 눈물 흘릴 일도 많았다. 인간의 생로병사 모든 것이 고통이라며 한 생애 살아가면서 울고 웃는 희로애락의 집착을 끊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설파했던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온다. 인간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과연 이를 피할 길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기원전 500년에 고행의 길을 택한 사람이 석가모니다. 해답을 찾기 위해 그는 출가를 하고 고행을 했다.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설법을 하면서 불교는 시작됐다. 석가모니의 생애를 기록한 불교 경전은 꽤 많다. 5세기에 구나발타라라는 승려가 번역한 ‘과거현재인과경’도 그중 하나다. 이름부터 과거와 현재가 서로 인과관계가 있다는 뜻이니 불교의 기본 원리를 명확히 드러내는 셈이다. 경전의 주요 내용이 석가모니의 생애와 전생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니 그의 성도(成道)는 과거에 쌓은 선업의 결과인 셈이다.일본 나라국립박물관 소장의 ‘회인과경’은 ‘과거현재인과경’ 그림이다. 일본에 남아 있는 그림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 중 하나로 상당히 중요한 그림이다. 아래쪽에는 경전의 내용을 또박또박 한자로 쓰고, 윗부분에는 아래 경전의 내용에 해당하는 부분을 그렸다. 이러한 형식의 경전 그림으로 이보다 제작 시기가 올라가는 그림은 중국과 한국에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9세기경에 그려진 이와 유사한 형식의 그림이 둔황 막고굴에서 발견된 예가 있는 것을 보면 한국에도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섯 가지 본의 ‘회인과경’이 알려져 있는데, 그림을 그리는 방식과 경전을 필사한 글씨는 대체로 비슷하다. 당시 사경소(寫經所)에서 활발하게 경전을 옮겨 썼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붉은색과 노란색, 갈색을 주조로 색을 단조롭게 썼고, 인물과 배경도 아직까지 단순하게 묘사돼 중국 남북조시대 화법과의 유사성이 있다.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적합한 최소한의 배경과 인물의 움직임에서 일본 초기 회화의 발전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순진하면서 소박한 솜씨를 보여 주지만 서체는 8세기 전반의 글씨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전개되는 그림에서 이 장면은 ‘경시무운’(競試武芸)에 해당한다. 즉 싯다르타 태자의 뛰어난 궁술에 기뻐하는 아버지 숫도다나왕과 그 소문을 듣고 태자와 무예를 겨누기 위해 성 밖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묘사한 부분이다. 왕이 있는 건물과 사람들이 몰려든 성문이 비현실적으로 작게 표현됐고, 가늘게 자란 나무들 역시 마치 연극의 무대장치처럼 보인다.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최소한의 배경인 것이다. 노란 옷을 입은 왕이나 관모를 쓰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 당시 일본인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백제에서 불교가 전해진 지 200년가량 지나 불교가 이미 일본식으로 정착됐음을 시사한다. 일본인이 보는, 일본인을 위한, 일본의 불교회화인 셈이다. 어떤 옷을 입었든, 어떤 머리 모양을 했든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같지만 말이다.
  •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거는 부처님/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거는 부처님/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지난 1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오전 9시가 되기도 전인 이른 시간에 십여 명의 장정들이 전시실로 7.2m의 기다란 나무상자를 힘겹게 옮기고 있었다. 상자 무게가 200㎏이 넘지만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는 크기여서 옮기는 건 오로지 사람들의 몫이었다. 이 기다란 상자 안에는 가로 7.2m, 세로 10m의 커다란 괘불(掛佛)이 들어 있었다. 상자와 괘불의 무게를 합치면 380㎏이나 됐다. 괘불이란 ‘걸개를 마련하여 매단 부처’라는 뜻으로 많은 신도들이 모이는 특별한 법회나 의식을 할 때 쓰이던 대형 불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매년 초파일이 다가오면 불교회화실 한 벽면에 부처를 건다. 높이 12m 정도 되는 커다란 벽면은 평소에 보기 힘든 사찰 소장의 괘불을 일반인들이 친히 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예전 박물관에는 괘불을 걸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용산으로 박물관이 온 뒤에야 시작한 전시로 벌써 17번째를 맞는다. 이번 괘불은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왔다. 이날 불교회화실은 전시실 문 앞에 임시휴관임을 알렸다. 문을 닫은 전시실에서는 괘불을 걸기 전에 상태를 점검했다. 전시실 바닥에 괘불을 보호하기 위한 두꺼운 종이를 깔았다. 괘불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조금씩 펼칠 때마다 그림을 덮고 있는 커다란 한지를 한 장씩 빼내어 한쪽에 차곡차곡 쌓았다. 조심스럽게 괘불을 펼칠 때마다 담당 학예사와 학예관, 보존을 담당하는 학예사와 연구원 3명이 함께 점검하고, 옆에서 다른 직원은 유물의 상태를 빠짐없이 기록했다. 모두가 조용히 괘불에 집중하는 시간은 엄숙하기까지 했다. 점검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상태 점검을 마친 괘불은 다시 말아서 벽면 앞으로 옮긴 뒤 도르래에 매달았다. 그리고 조금씩 펼치면서 걸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수덕사 스님들이 직접 법당 밖으로 괘불과 괘불함을 옮기고 서울 나들이를 도왔다. 괘불을 건다는 것은 매우 드믄 행사여서 괘불을 소장하고도 펼쳐 보지 못하는 사찰이 많다. 예전 어느 사찰의 스님과 신도들은 십수 년 동안 걸지 못했던 괘불이 불교회화실에 걸려 있는 것을 보기 위해 지방에서 대형 버스를 타고 함께 오기도 했다. 모두의 정성이 모아져 걸린 아름다운 괘불 앞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슬쩍 소원도 빌어 보는 것은 어떤가. 특히 남을 위한 기도는 더 잘 들어 주신다고도 한다.
  • 청와대의 변신, 역사공원이냐 둘레길이냐

    청와대의 변신, 역사공원이냐 둘레길이냐

    청와대는 어떻게 돌아올까. 1000년 가까이 지배자의 공간이었던 청와대 터가 국민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을 본격화하면서 그 변신에 관심이 쏠린다. 오랜 역사를 품었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근현대 문화유산인 만큼 활용 방안을 놓고 다양한 논의가 나온다. 지난 14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가 ‘청와대, 국민 품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하면서 청와대 개방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TF는 다음달 22일까지 청와대 개방 이후 활용 방안에 대한 국민 공모를 진행한다. 박물관, 도서관, 시민 광장, 공원 등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청와대 터는 고려 숙종 때인 1104년 무렵 남경(서울의 당시 지명)의 이궁(왕이 거둥할 때 머무르던 별궁)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역사에 등장했다. 조선시대에는 자리가 좁다고 판단해 좀더 아래쪽에 경복궁을 지었고, 청와대 자리에는 경복궁 후원을 조성했다. 후원이라고 해서 임금이 독점하는 비밀의 공간이 아니라 연무장, 과거 시험장 등으로 활용돼 지금보다 열린 공간으로 쓰였다. 임진왜란 이후 270년간 방치됐던 공간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다시 살아났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미 군정을 거쳐 이승만 전 대통령이 조선총독관저(당시 경무대)에서 업무를 보면서 현재의 청와대 역할이 시작됐다. 청와대가 기존 역할을 끝낼 시간이 눈앞에 다가온 가운데 전문가 사이에서는 미국 필라델피아 독립역사공원과 보스턴의 프리덤 트레일 등이 유력한 모델로 언급된다.독립역사공원은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의 집무 공간이던 공간을 미국 독립 관련 시설·건국기념 시설 등과 연계해 만든 곳이다. 대통령 집무실을 공원으로 조성한 점을 참고할 만하다.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인 김정현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는 17일 “콘크리트로 지은 한옥이 보기에 따라 이상할 수는 있지만 당시 건축가들의 고민과 역사를 대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면서 “필라델피아는 건물을 새로 조성한 쪽에 가까워 오히려 청와대가 건물의 진정성이 높다”고 했다. 보스턴 프리덤 트레일은 독립혁명에 이르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유적지를 연결한 길이다. 약 4㎞의 길을 관광객들이 따라 걷도록 설계돼 있는데 연간 400만명 정도가 찾는 것으로 추산된다. 청와대도 조선 왕조의 유적지와 조화롭게 연결하면 많은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화재로 돌아오는 청와대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도 논의 대상이다. 경복궁 후원의 개념으로 사적지로 지정되면 청와대 인근 지역 개발에 제약이 생겨 주변 주민의 재산권 행사가 침해받을 수 있다. 문화재위원회 근대분과위원장인 윤인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근대역사문화공간을 제안했다. 근대 시기에 형성된 역사·문화 자원이 집적된 지역을 의미하는 용어로, 도시재생사업과 연계돼 문화재도 보존하고 개발도 할 수 있다. 윤 교수는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하면 융통성도 발휘할 수 있고 사회적인 합의도 잘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국가를 중심으로 한 기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여 주면서 경복궁 복원 사업과 연계해 차곡차곡 옛 모습을 찾아가면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 존스 선배 그 성배, 3D프린터로 뽑아 레이저로 깎으리

    존스 선배 그 성배, 3D프린터로 뽑아 레이저로 깎으리

    1981년 ‘레이더스’를 시작으로 2008년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까지 영화 ‘인디아나 존스’는 일반인에게 고고학자라는 이미지를 독특하게 각인시켰다. 페도라 모자를 눌러쓰고 낡은 크로스백을 멘 채 성궤, 성배, 누르하치 유골 등을 찾아 전 세계를 이 잡듯 뒤지고 다니는 고고학자의 모습으로. 인디아나 존스 같지는 않더라도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고고학자들은 현장 작업자 같은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21세기 고고학자들은 인공위성, 컴퓨터 프로그램, 각종 실험기구에 둘러싸여 첨단 기술을 자유자재로 쓰는 과학자나 공학자의 모습에 가깝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 영국 엑서터대 고고학과 공동 연구팀은 현장에서 발굴된 유물이나 뼈, 식물 같은 유기물을 인공지능(AI), 3D 프린팅 기술로 당시와 똑같이 복원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 4월 16일자에 실렸다. 인류학이나 고고학 분야에서는 유적에서 발굴된 석재, 도자기, 금속류는 물론 식물로 만든 유물과 유골을 복원해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자나 학생, 대중에게 과거를 현실로 가져와 보여 줄 뿐만 아니라 당시 문화나 기술 수준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복원 기술은 원래 모습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디지털 사진이나 3D 스캐닝 기술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3D 스캐너는 유물을 3차원 데이터로 표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공간의 디지털 영상을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설계도면이 없는 건축물을 복원하는 데 최적화된 기술이다. 실제 영국 옥스퍼드대 디지털고고학연구소는 IS가 파괴한 시리아 팔미라 개선문과 벨 신전 아치 모형을 3D 스캐너 기술로 복원해 2016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전시하기도 했다. 문제는 실제와 비슷하게 복원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제작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기존 3D 공간 정보와 3D 스캐닝 기술에 비디오 게임을 만드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 AI,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SOAP와 HRP라는 복원술을 개발했다. 두 기술을 쓰면 실제 크기는 아니지만 미세한 부분까지 정밀하게 복원할 수 있다. ‘작은 물체와 예술품 사진술’인 SOAP는 일반적인 디지털 사진 보정 기술과 유사한 것으로 유물의 디지털 복원을 위해 고고학자가 현장에서 사용하는 디지털 카메라의 초기 설정을 지원하는 기술이다. 현장에서 촬영한 유물 사진에 ‘고해상도 포토그램’ 기술인 HRP를 적용하면 유물의 모습을 디지털로 재구성한 뒤 3D 프린터를 통해 작은 모형으로 만드는 것까지 가능하다. 연구팀은 이번에 개발한 복원 기술을 관련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기술을 활용하면 온라인상으로 누구나 유물을 감상할 수 있는 3D 온라인 유물 라이브러리 개발도 가능해진다. AI 기술로 단순히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유물이 있던 장소나 시점으로 유물을 옮겨서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펠리페 로드리게스 영국 엑서터대 교수는 “고고학 같은 전통 인문학 분야에서도 과학은 상상력의 빈자리를 채워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과거의 기술이나 문화를 영화나 사진처럼 한눈에 보여 주는 3D 프린팅 기술은 현대 고고학을 정밀 과학 수준까지 끌어올려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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