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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록삼의 시시콜콜] 인구절벽 시대…역발상이 필요한 때

    [박록삼의 시시콜콜] 인구절벽 시대…역발상이 필요한 때

    출산율 감소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크다. 정부 관료도, 언론도, 산업도, 학자는 물론, 평범한 일반인들까지 모두 한 목소리로 저출산 문제를 얘기하고 고령사회를 걱정한다. 우려와 불안을 뛰어넘은 ‘집단 공포’ 수준이다. 근거는 충분하다. 보건복지부의 2018년 집계기준 32만 6900명 신생아가 태어났다. 합계출산율은 0.98이다. 전년도 합계출산율 1.05명보다 0.08명(-7.1%) 감소한 수치다. 합계출산율은 한 명의 여성이 일생 동안 낳는 아이 수의 평균이다. 절대 인구 감소는 필연이다. 특히 올해 초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특별추계’는 공포 스릴러물, 그 자체다. 중위 추계, 즉 출산율과 기대 수명 등을 중간수준으로 잡고 예상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인구는 2017년 5136만 명에서 2067년 3929만 명으로 줄어든다. 또 1967년 18세이던 중위 연령은 2017년 42세로 훌쩍 뛰고, 2067년이면 62.2세까지 늘어나게 된다. 전국민을 나이순으로 늘여 세울 때 한가운데 있는 나이가 중위연령이다. 20167년에는 환갑이 넘어도 ‘평범한 젊은 것’ 취급을 받을 ‘웃픈 사회’로 바뀌어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더 먼 미래, 예컨대 2117년 쯤에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지다시피 되는 걸까. 과거 삼성경제연구소에서 2500년 기준 한국 인구가 33만 명이 될 거라 예측했던 것처럼 말이다. 고령화 사회, 혹은 인구절벽 시대의 진짜 우려가 날아가 꽂히는 지점은 따로 있다. 이 통계에서는 15~64세 생산연령인구 비중 감소(73.2%→45.4%),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 증가(13.8%→46.5%)를 전망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핵심적 문제가 생산성 증대 여부에 맞춰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경제학자들은 정부 관료와 머리를 맞대고 인구의 증가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값싼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인력 풀(pool)로서 인구, 그리고 시장의 생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로서 인구라는 두 측면에 대한 우려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즉, 잠재성장률을 지탱하기 위해 ‘머리 숫자’를 핵심 조건으로 삼고 있다. 세수 감소, 미래세대의 고령층 부양 부담 증가 등은 오히려 부수적 우려에 불과하다. 최근 13년 동안 정부는 143조원이 넘는 재정을 들여 저출산 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시했다. 출산 장려금 지원, 난임 부부 지원, 다자녀 혜택 등 출산 장려 정책에 맞춰졌다. 하지만 개선은커녕 더 가파른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정책의 기술적 실패인지, 아니면 패러다임 자체에 문제가 있는 지 따져볼 때가 됐음을 뜻한다. 한 개인이 태어나서 자라고 숨을 거두는 시간까지인 생애 주기를 살펴보자. 출산 의료비부터 시작해서 기저귀, 분유 등 양육비, 유아·유치원 보육비는 허덕거리면서라도 메울 수 있다. 중고등학교의 숨막히는 입시 경쟁을 거쳐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취업이라는 또다른 좁은 관문이 버티고 있다. 막대한 경쟁의 터널을 지나 취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대학 때 졌던 학자금 등 부채(평균 1인당 2580만원. 2017년 조사)를 갚느라 막대한 돈이 드는 결혼은 쉬 꿈꾸기 어렵다. 어찌어찌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살인적 집값 폭등에 따른 주거비 부담은 내집 마련을 요원한 계획으로만 남겨둘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사교육비 등 자녀 양육비 증가까지 더해지니 젊은 부부들이 출산조차 기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디스토피아적인 악순환이다. 몇 십만원, 몇 백만원 정부 지원금 받는 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한국 사회의 저출산 현상은 우리 사회, 그리고 구성원들이 스스로 지속하기 위해 나타내는 자연스러운 ‘네거티브 피드백’(한 쪽이 비대해지면 그것을 억제하는 현상)임을 인식해야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1㎢당 인구 밀도를 따지면 방글라데시, 대만에 이어 세계 3위다. 노동력 감소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노동시장 내 높아진 경쟁으로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음은 걱정하지 않고 있다. 부족한 주거 공간으로 부동산 문제를 얘기하면서도 정작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강화 등 규제에는 자본주의 원리를 앞세워 반대하고 있다. 연금, 보험 등 복지제도 유지 재정의 취약해짐을 우려하지만, 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인구가 필요하다는 것은 본말이 뒤바뀐 논리다. 14세기 중세 유럽이 겪은 2500만~3000만 명이 죽은 뒤 오히려 노동자 임금이 2배 오르고, 집값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종교개혁, 르네상스 등 또다른 유럽의 부흥을 불렀던 ‘흑사병의 역설’은 우연이 빚어낸 결과일지 모른다. 하지만 2019년을 사는 우리는 구체적인 정책의 대전환을 위한 차분하면서도 면밀한 연구를 이제부터라도 진행해야 한다. 21세기 한국사회는 우연이 아닌 노력과 의지의 결과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록삼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소방관의 정당방위/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소방관의 정당방위/박록삼 논설위원

    총 5만 2245명. 대한민국 소방관이다. 소방관 1명이 국민 1004명을 담당한다. 올 상반기 119종합상황실에 접수된 신고는 517만 5251건이었다. 하루 평균 2만 8435건, 3초에 1번꼴이다. 하지만 화재 진압과 긴급 구조 등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주는 대가는 가혹했다. 소방관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31.2명으로 일반인(25.6명)의 1.21배 수준이다. 최근 소방관 대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위험군’이 5.6%, 우울증 위험군은 2203명(4.6%), 자살 위험군은 2453명(4.9%)이다. 끔찍한 사고 현장을 가장 먼저 목격하며 죽음과 삶이 갈리는 순간에 일상이 고스란히 노출된 탓이다. 지난 24일 전주지방법원의 판결이 논란이 되고 있다. 취객에 대응하다가 전치 6주 상해를 입힌 소방관에게 200만원 벌금형이 선고됐다. A(당시 50세)씨는 사건 당일인 지난해 9월 19일 오후 7시 40분쯤 심장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A씨 어머니가 119구조대에 신고했다. 당시 A씨는 만취 상태였다. 급히 출동한 정읍소방서 소속 B(34) 소방교는 동료 소방대원과 함께 심전도 검사, 혈압·맥박 검사 등에 나섰다. 측정 결과 A씨에게 특별한 이상이 없자 “(요청한 전북대병원이 아닌) 가까운 병원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A씨가 욕설을 퍼부으며 위협했고, B소방교는 A씨를 밀치며 제압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발목 골절상을 입었고, A씨의 어머니는 B소방교를 상해 혐의로 고발했다. A씨는 당뇨 합병증 등 지병으로 지난 10월 숨졌다. 이틀에 걸쳐 15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은 팽팽히 맞섰다. 특히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단 7명 중 5명이 유죄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소방관의 보디캠 영상에 담긴 내용을 포함한 여러 정황 등을 종합해 보면 B소방교가 정당방위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섬뻑 논란이 일었다. A씨가 10차례나 만취 상태로 119에 이송된 전력이 있다는 점, A씨의 발목 골절과 제압과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변호인 측 주장이 채택되지 않은 점 등이다. ‘그럼 소방관은 맞고만 있어야 하느냐’라는 근본적 문제까지 나왔다. 최근 5년간 폭행을 당한 소방관 수는 1051명이다. 소방공무원에 대한 폭언·폭행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절반 가까운 436건은 벌금형(46.5%)이었고 구속까지 이른 경우는 5.5%에 불과했다. B소방교의 항소가 불가피하다. ‘소방관의 정당방위’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 또한 쉬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youngtan@seoul.co.kr
  • [박록삼의 시시콜콜] 한국당이 ‘괴뢰(傀儡) 정당’ 만들면 의석수 늘까?

    [박록삼의 시시콜콜] 한국당이 ‘괴뢰(傀儡) 정당’ 만들면 의석수 늘까?

    지난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 연단에 선 심재철 원내대표의 표정은 결연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과 좌파연합세력이 연동형선거제를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비례한국당을 만들 수밖에 없음을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한국당으로서는 일종의 협박이었다. ‘형식상으로는 독립적이나 실질적으로는 다른 단체에 종속되어 그의 말을 따르는 단체나 정권’인 ‘괴뢰(傀儡) 정당’을 만들 테니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하지 말란 경고이기도 했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취지를 무력화하거나 민주주의를 조롱하려는 저열한 꼼수에 더욱 가깝지만 말이다. 모든 민생법안에까지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며, 소수의견을 알리기 위한 의회민주주의의 수단을 기괴하게 사용했던 전력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꼼수의 백미’다. 지난해 12월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합의했음에도 이후 일관되게 합의 정신을 부정해왔던 한국당이다. 오히려 비례대표제 폐지, 국회의원 축소 등 정치개혁, 선거제 개혁에 역행하는 안으로 여야 협상 자체를 거부해왔다. 국회법에 따라 선거법 개정안의 패스트트랙 처리는 불가피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 의원들은 폭력과 기물 파손, 동료의원 감금 등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하며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위법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진지한 선거제 개혁 논의를 어렵게 만든 데에는 한국당의 책임이 가장 크다. 재미있는 점은 민주당 일부 의원이 즉각 ‘화답’했다는 사실이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례한국당을 만들겠다고 대놓고 협박한다”고 우려를 표하면서도 “역대 자유한국당 정당득표율은 어떤 상황하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다. 심지어 2004년 노무현 탄핵 국면에서도 여론조사에서는 형편없이 나왔지만 결과는 36%를 얻었다”라고 적었다. 그래서 “그렇게라도 한국당이 반칙을 하겠다면 그에 맞서겠지만 결국은 한국당이 얻을 것이 없다”라며 “마찬가지로 4+1에 들어와있는 야당들도 위성정당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연동형의 캡을 절반 이하로 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씁쓸하다. 이미 민주당과 정의당, 민주평화당 등 각 정당의 이해관계 셈법에 따라 ‘누더기 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 후퇴하자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는 셈이다. 그런데 심 원내대표 공언처럼 ‘비례한국당’을 만들면 진짜 한국당이 비례대표를 확 늘릴 수 있을까. 민 의원은 “일각에서는 비례 50석 중 30석을 (한국당이) 가져갈 거라는 시뮬레이션을 내놓는다”고 전했다. 이게 진짜 가능할까. 일단 ‘비례한국당’이 별도로 선관위에 정당으로 등록돼있다. 한국당은 별도의 이름으로 괴뢰(傀儡) 정당, 혹은 위성 정당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는 다른 정당을 위한 선거운동이 금지돼있다. “후보 투표는 한국당에 하고, 정당 투표는 우리 찍지 말고 우리의 괴뢰 정당에 투표하라”는 발언은 선거법 위반이 된다. 또한 다른 정당 경선에 개입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돈 없는 정당을 운영할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가능성까지 높아진다. 이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한국당이 자신들의 괴뢰정당을 만들어도 ‘250석(지역)+50석(비례)’, 그리고 연동형캡 30석 한도 내에서 움직인다면 그 괴뢰정당이 얼마나 많은 정당득표를 얻으며 선전할 지는 미지수다. 만약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5% 정도 표를 보내준다면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방식으로 1~2석에, 기존 비례대표 배분 방식으로 최소 1석 정도를 합쳐 2~3석이 가능하다. 만약 10% 정당득표를 얻으면 5석이 된다. 한국당의 정당득표를 갉아먹고, 또다른 ‘형제 정당’인 우리공화당에 대해 ‘팀킬’이 될 부분은 빼고 말이다. 민주주의를 퇴행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꼼수의 결과물치고는, 또 현행 선거법, 정치자금법의 늪을 빠져나온 대가치고는 너무 아쉬운 결과물이 될 것 같다. 현실성도, 정치적 이익도 없는 안을 가지고 선거제 개혁 움직임을 훼방하려는 의도는 고스란히 한국당에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국민과 의회를 우롱하는 정치는 이제 그만하길 바랄 따름이다. 박록삼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아시아의 인어/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아시아의 인어/박록삼 논설위원

    한국 수영에는 박태환(30) 이전에 그가 있었다. 고작 열다섯 살 나이에 벼락처럼 등장해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배영 200m, 배영 100m, 혼영 200m 세 종목에서 모두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아시안게임 수영 3관왕은 처음이었다. ‘아시아의 인어’로 통했다. 최윤희(52)다. 가슴 속 울화가 쌓여만 가던 시절, 전두환 독재정권은 스포츠로 국민의 눈을 가리고자 했고, 국민은 또 다른 이유로 스포츠에서 위안을 얻었다. 1980년대 막 대중화가 시작한 컬러TV는 ‘최윤희’라는 스타 탄생의 중요한 매개체였다. 수영 금메달리스트이자 연예인 못지않은 빼어난 미모까지 겸비했기에 단숨에 ‘국민 여동생’이자 ‘국민 영웅’으로 등극했다. 그는 4년 뒤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 2개를 더 따냈다. 옛 기억을 도두보려는 습성을 감안한다 쳐도 요즘의 김연아(29), 손연재(25) 같은 스포츠 스타도 그 시절 그의 인기 앞에서는 한 수 접어야 할 만큼이었다. 그는 수영선수로 은퇴하자마자 섬뻑 TV 광고모델, 방송 리포터, 패션쇼 모델 등으로 활약하다 1991년 록그룹 ‘백두산’의 리더 유현상(65)과 비밀리에 깜짝 결혼했다. 당시에는 극히 드물었던 열세 살 차이의 이들 부부는 결혼 직후 온갖 악소문에 시달려야 했고, 모든 루머를 씻어낸 뒤에도 오랫동안 유현상은 ‘국민 도둑남’ 취급을 받았다. 그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됐다. 국가대표 체육인 출신 문체부 차관으로는 박근혜 정부 때 박종길 전 차관에 이어 두 번째다. 일각에서는 깜냥이 되지 않음에도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에 참가한 것에 대한 ‘보은 인사’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최 신임 차관으로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다. 2007년 꿈나무 발굴을 위한 ‘최윤희스포츠재단’을 창립, 운영했고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으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를 위해서도 노력했으며, 대한체육회 이사이자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7월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출자회사인 한국체육산업개발 대표이사로 선임돼 국민생활체육 저변 확대에 힘썼다. 즉 오랜 시간 스포츠 행정인으로서 이력을 다져 왔다.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늘 좋은 성과를 내놓는 것이다. 문체부 2차관의 주된 업무는 최 차관이 익숙한 체육 분야뿐만이 아니다. 관광 산업의 진흥 과제가 있고, 정부와 국민의 소통 가교 역할 또한 해야 한다. 체육 분야에도 엘리트 체육을 축소하고 생활체육을 확대하며 체육계 내부의 폭력과 성폭력 근절, 체육인들의 인권보호 등의 과제가 있다. 삐딱한 세간의 시선을 훌훌 털고 ‘아시아의 인어’처럼 우아하게 능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youngtan@seoul.co.kr
  • [길섶에서] 공짜 캐럴/박록삼 논설위원

    예수의 탄생을 믿건 아니건 성탄절을 앞두곤 늘 설?다. 별일도 없건만 여드름투성이 더벅머리들은 어울려 들뜬 채로 거리를 쏘다니며 왜장치곤 했다. 영화관, 상점, 노점상 등 가는 곳마다 크리스마스캐럴이 나오고 뭔가 신나는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물론 녀석들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2월 26일 아침이 되면 그 달뜸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허탈함만 한가득이었다. 같은 경험이 매년 거듭됐다. 그 젊은 것들은 지치지도 않고 매년 같은 감정의 기복을 즐겼다. 나이를 먹고 언제부터인지 설렘은 사라졌다. 성탄 대목에 사람 북적이는 곳은 오히려 피해 다녔다. ‘크리스마스 특별 메뉴판’ 같은 바가지 상술도 한몫했다. 2008년부터는 아예 거리에서 캐럴이 울리지않다시피 했다. 저작권 문제 탓이었다. 백화점, 대형마트, 50㎡ 이상 카페 등에서도 저작권료를 내야 했다. 분위기도 자연스레 차분해졌을 테다. 정부가 얼마 전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무료 캐럴 14곡을 배포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사이트 공유마당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캐럴이 울려 퍼지는 거리가 경기 활성화에 도움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담겨 있다. 캐럴과 흥청거림이 있건 없건 10~20대들에게야 여전히 성탄의 들뜸과 허탈이 갈마들겠지만 말이다.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총리의 나이/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총리의 나이/박록삼 논설위원

    지난해 세상을 떠난 김종필(1926~2018)은 5·16 군사 쿠데타의 주역 중 하나로서 중앙정보부장, 공화당 부총재 등을 거친 뒤 1971년 만 45세에 국무총리에 올랐다. 60대 총리를 당연시하는 요즘 기준으로는 매우 젊었다. 그래도 최연소 총리는 아니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직전인 1953년 4월 백두진 전 총리가 만 44세로 총리에 취임했다. 제1공화국 초대 이범석 전 총리는 47세, 제3공화국 9대 정일권 전 총리는 46세, 노무현 정부 때 이해찬 전 총리는 52세였으니 돌이켜 보면 놀랄 만큼 젊은 나이도 아니었다. 일국의 내각을 거느리는 일에 굳이 지긋한 나이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특히 기존의 가치와 관행, 제도가 모두 전복될 수밖에 없었던 해방 이후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더더욱 젊은 세대의 약진이 필요하기도 했을 테다. 핀란드의 신임 총리가 국제적 화제다. 산나 마린(34) 총리다. 핀란드의 세 번째 여성 총리다. 마린 총리는 20대 초반부터 정당정치 활동을 시작, 2012년 27세 나이에 시의원으로 선출됐고 2015년부터 사민당 의원으로 활동한 재선의원으로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마린 총리는 19개 부처 중 재무장관 및 부총리, 내무장관, 교육장관 등 절반이 넘는 12개의 장관직에 여성을 임명하는 파격적 내각을 구성했다. 이 중 30대 장관이 4명인데 모두 여성이다. 내각의 평균연령은 47세다. 2017년 뉴질랜드에서도 저신다 아던이 37세로 여성 총리가 됐고, 총리로서 출산휴가까지 다녀왔다. 오스트리아의 쿠르츠 전 총리는 2017년 31세에 총리가 됐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2017년 취임 당시 39세였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역시 2015년 44세에 총리 자리에 올랐고, 좀더 거슬러 가면 1997년 영국에서도 토니 블레어가 44세에 총리가 됐다. 안팎의 여러 사례에서 보듯 변화와 혁신, 도전이 필요한 시간과 공간에는 젊음의 가치가 득세했고 그들이 뜻을 펼쳤다. 현실에 안주하고자 한다면 도전의 과제, 혁신의 목표를 설정할 이유가 없으며 젊은 세대의 젊은 가치를 탐할 필요도 없었을 테다. 40대 대기업 임원이 수두룩한 세상이다. 혁신하지 않고서는 급변하는 세상을 따라잡기 힘든 탓이다. 민간의 영역이 이럴진대 우리의 정부 영역은 여전히 모르겠다. 새 세대를 대변할 30대 정치인, 30·40대 장관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낙연(67) 국무총리의 후임으로 누가 임명될지 알 수 없다. 이 총리가 유임될 수도 있다. 또 김진표(72) 의원, 정세균(69) 전 국회의장 등이 입길에 오르내린다. 최종적인 결과가 어찌되든 연륜, 안정감 등의 가치가 강조되는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은 패기, 혁신의 상징을 기대하는데 말이다.
  • [서울광장] 진짜 문제는 언론의 ‘선택적 받아쓰기’/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진짜 문제는 언론의 ‘선택적 받아쓰기’/박록삼 논설위원

    뜨거웠던 여름의 끝자락인 지난 8월 하순부터 시작된 이른바 ‘조국 사태’는 한국 사회에 굵직한 과제를 던져 줬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안이지만 많은 이들의 주된 관심사에서는 뒤로 밀려났다.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살고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 과정 속에서 ‘검찰개혁’ 혹은 ‘조국 사퇴’를 둘러싸고 한국 사회는 두 쪽으로 갈라졌다. 타협과 양보가 없는 사회의 민낯은 대립과 갈등할 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치유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선택적 정의’는 충분히 지탄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언론은 어땠을까. 언론 또한 심각하게 고민하고 반성해야 할 책임의 지점이 있었다.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 그들의 의도와 입맛에 따라 흘려 주는 내용을 언론은 ‘취재’라는 이름으로 받아쓰는 것이 상당수였다. 그 지점을 ‘언론의 선택적 받아쓰기’라 명명하고 싶다. 언론인에게 너무 자조적인 말이다. 또 구조적 한계와 묵은 관행 속에서 노력하는 기자들로서는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 어찌 보면 받아쓰는 것은 기자의 숙명이기도 하다. 세상에 없는 내용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과 소식을 독자에게, 시민에게 전하는 것이 기자라는 직업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받아쓰기 자체가 아니다. 누구로부터 받아쓰느냐, 무엇을 받아쓰느냐, 어떻게 받아쓰느냐는 것이다. 그에 따라 언론의 보수성·진보성, 혹은 편향성·중립성, 아니면 야당지·여당지 등 다양한 이미지와 역할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내부 성찰은 채 무르익지 못했다. 외부의 비판을 추스르기도 전에 언론은 또 다른 사회적 의제로 넘어갔고 기존 보도 관행으로 돌아갔다. 그 고질적 악습은 ‘조국 사태´ 이전에도 있었고, ‘조국 사태’ 이후에도 변함없이 반복됐다. 먼저 지난 7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때를 돌이켜 보자. ‘일본 보복카드 100개, 이제 겨우 한 개 나와’라는 보수언론의 1면 톱기사는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일본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한 교수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그러나 이후 몇 달 양국관계 상황을 보면 그저 실소할 따름이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측이 50억 달러(약 5조 9260억원)라는 턱없는 인상안을 들고 나와 절대다수 국민들을 기함하게 한 협상이 이어지던 지난달 21일, 한 보수언론은 1면에 ‘미, 주한미군 1개 여단 철수 검토’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워싱턴 한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했다. 한국 사회의 해묵은 안보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는 즉각 성명서를 내고 특정 언론사를 거명하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기사를 즉각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일련의 언론 보도에는 공통점이 있다. 받아쓰기다. 그것도 선택적 받아쓰기. 그 기저의 핵심에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만이 오롯이 자리잡고 있다. 오직 일본 정부의 입장만 담겼을지라도 문 정부 비판에 유효하면 보수언론은 그대로 받아쓰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외교안보와 같은 예민한 국익의 사안도 문 정부를 비판하기에 적절하면 미국 정부의 기사 삭제 요구 등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결기까지 보인다. ‘선택적 받아쓰기’의 폐해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최근 검찰수사관 A씨의 불행한 소식 직후인 지난 2일 한 언론은 제목에 ‘단독’을 달아 A씨가 ‘윤석열 총장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고 ‘누군가’의 말을 받아썼다. 사실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는, 각자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숱한 추측과 해석이 가능할 만한 기사였다.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날 A씨의 유서를 확인한 다른 언론에서 윤 총장 앞으로 세 문장의 메모를 남겼다며 “윤석열 총장께 면목이 없지만, 우리 가족에 대한 배려를 바랍니다”라는 문장을 직접 인용했다. 여전히 사실관계는 오리무중이다. 언론은 세상의 모든 일을 다 드러낼 수 없다. 그렇다고 특정한 사안에 대해서도 언론은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에 대해서 고루 말하지 않는다. 언론의 객관성과 중립성이 허상에 불과함은 이제 상식이 됐다. 하나 이는 결코 나쁜 게 아니다. 개별 언론이 각자 지향하는 가치와 세계에 대해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립성의 가면을 쓴 채 ‘선택적 받아쓰기’를 일삼으며 사실을 왜곡해 여론을 호도하고 기만하는 게 진짜 나쁜 일이다. 언론개혁이 필요하다. youngtan@seoul.co.kr
  • [길섶에서] 1937년 중국 겨울/박록삼 논설위원

    중국 난징(南京)은 육조고도(六朝古都)다. 즉, 역사 속 여섯 왕조의 도읍이었다. 뭍에서, 바다에서 물산 풍부한 강남 지역은 정도(定都)에 꽤 좋은 조건을 갖췄다. 다만 국민당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점이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 꽤 긴 역사를 품고 있음에도 1949년 건국 이후 중국에서 난징이 대도시로 발전하지 않게 된 이유다. 현대사 속 태평천국, 중화민국까지 난징을 수도로 한 나라가 모두 단명(短命)했다는 점은 마오쩌둥으로서 찜찜했을 테다. 어떤 인연이 있는지 이제껏 난징만 7~8차례 찾았다. 몇 년 전에는 아예 1년 동안 지내기도 했다. 난징을 가면 늘 난징대학살기념관을 들른다.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이 난징에 침략해 35만명이 넘는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총으로 쏴 죽였고, 칼로 베어 죽였고, 그 추웠을 겨울 호수에 밀어 넣어 얼려 죽였다. 갈 때마다 80년 전 한파 속 비명이 귓전을 맴도는 듯해 옷깃을 여미게 된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질척거리는 흙길을 지나야 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주변이 우리네 뉴타운처럼 개발돼 아파트가 빼곡하다. 기념관 시설과 주변 환경은 날로 좋아지지만 역사 속 기억은 형해화하지 않을까 슬몃 걱정이 든다.
  • [박록삼의 시시콜콜] 만화가 된 26년 전 ‘무궁화꽃이…’, 현실 속 한반도

    [박록삼의 시시콜콜] 만화가 된 26년 전 ‘무궁화꽃이…’, 현실 속 한반도

    김진명(61)은 누군가에게는 꽤 불온한, 문제적 작가다.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어떤 논리로 이뤄졌는지 보여준 ‘몽유도원’, 혁명 혹은 사태였던 1979년 궁정동 얘기 ‘1026’, 대하역사소설 ‘고구려’, 그리고 최근 ‘직지’에 이르기까지 내놓는 책마다 화제를 일으켰고, 누군가는 늘상 불편해 했다. 더욱이 정식 등단 절차도 밟지 않은 이단아였기에 한국의 주류 문단과 평단은 외면했지만, 거의 모든 책이 100만 부 이상 팔릴 정도로 독자들은 열광하는 기이한 형태의 작품 활동의 연속이었다. 그 시작은 1993년 한 문제작으로부터였다. 한국에서 사는 30대 중반 이상이라면 모를 수 없는 장편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일본이 독도를 공격하고, 한국은 핵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한다. 일본이 독도를 먼저 침공하자 핵무기로 일본을 공격해서 항복을 받아낸다는 발상은 당시 좌우 진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당시는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를 골자로 하며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잉크도 마르기 전이었다. 핵을 개발해서 누군가를 공격한다는 것은 결코 환영받기 쉬운 논리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군국주의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역 군국주의를 조장한다, 대중의 얄팍한 국수주의적 정서에 기댄다는 혹평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역사 속에서도, 현실 속에서 여전히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지냈던 약한 나라 국민의 답답함을 갖고 있던 대중은 ‘무궁화꽃…’을 통해 속이 뻥 뚫리는 듯한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지금까지 무려 700만부 이상이 팔린 전무후무한 베스트셀러였으니 김진명의 문제성은 이렇게 또다른 팬덤과 맞닿아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잊혀져가던 그의 장편소설이 26년이 흐른 2019년 만화의 형식으로 몸을 비틀어 다시 나타났다. 제목도 또다른 시의를 반영한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그림 백철/ 새움). 여러 의미를 곱씹게 한다. 지난 8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담긴 핵심 표현이다. 강제징용, 위안부 등 일제 강점기의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며 겪는 진통 속에서 흔히 ‘기묘왜란’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일본과 갈등과 대립이 최고조로 치닫는 시기다. 일본의 초계기 위협 비행 사건, 대한 수출 규제 등 경제적 침략으로 인한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선언 등 강대 강 대결 국면은 누군가에게는 위태로워 보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자존심의 영역이었을 테다. 또한 미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안에 굴욕감을 느끼며 ‘자발적 반미’ 움직임까지 나타내는 점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뉴욕, LA 등 미국 한인 사회에서 이 책을 통해 부는 ‘애국 독서 열풍’ 또한 최근 한국이 겪고 있는 냉엄한 현실과 밀접히 맞닿아 있다.소설이건, 만화건 내용은 너무도 극적이고 갈등의 지점 및 해법 또한 너무 단순한 귀결이지만, 함의하는 부분은 극단적 애국주의만으로 치부하기엔 복잡하거나 대단히 본질적이다. 바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세계 최강대국 사이에 끼인 한반도가 취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다. 군사안보, 경제, 에너지 등 고려해야 할 지점들은 많다. 다만 26년만에 다시 조명되는 이 책을 통해 다자외교, 동북아 균형자론, 중립화통일방안 등 여러 과제에 대해 남녀노소를 떠나 깊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 나아가 사회적 논의로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록삼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길섶에서] 송년 그리고 우리/박록삼 논설위원

    “일곱 개 끝냈어. 이제 서너 개만 더 하면 돼.” 엊그제 만난 친구는 지친 얼굴 속에서도 내심 뿌듯함을 담아 말했다. 친구 몇몇의 술자리건만 다시 힘차게 네 번째 초록병을 비틀었다. 송년회의 계절이다. 언제부턴가 이 연례행사가 마지막 달이 아닌, 11월로 확 당겨졌다. 연일 이어지는 술자리는 고역이다. 힘겨워도 사회생활하는 이에겐 일종의 의무 방어전인지라 그냥 넘어갈 수도 없다. 또 한 해의 끝을 핑계로 한참 못 봤던 친구, 선후배의 얼굴을 보는 반가움 또한 적지 않다. 그야말로 필요악이다. 주취와 해장, 왁자지껄함과 몽롱함의 무한 반복에서 잠시 빠져나와 가만히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때다. 자신이 얼마나 욕망에서 허우적대며 지냈는지, 고마운 사람에게 혹은 미안한 사람에게 그 마음을 제대로 표하지 못했는지, 가까운 이의 아픔에 무심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똑같은 시간의 흐름이지만 해가 있고, 월이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시간표가 있기에 삶의 번잡함과 고단함, 관계의 미안함과 소중함 등을 하나씩 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해 볼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송년(送年)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여야 한다. 설령 한 해 저물 때마다 매번 반복되는 일일지라도.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기후 비상’/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기후 비상’/박록삼 논설위원

    ‘기후 변화’(Climate change)라는 말이 쓰인 지는 수십 년이 넘었다. 1988년 국제연합환경계획(UNEP)과 세계기상기구(WMO)가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IPCC)를 만들며 본격화됐다. 오존층이 파괴되고, 몰디브·투발루가 물에 잠기고, 북극의 빙하가 녹는다는 등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현상에 대한 경고가 난무했다.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처음으로 기후변화협약을 채택, 50개 나라 이상이 가입했다. 흔히 ‘리우 선언’이라고 하는 이 기후변화협약에 한국은 1993년 12월 47번째로 가입했다. 핵심은 온실가스 배출 억제였다. 가입국은 온실가스의 배출량과 제거량을 조사해 이를 보고해야 하며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국가계획도 작성해야 했다. 하지만 별 부담이 없었다. 말의 성찬과 선언적 의무만 있을 뿐 아무런 구속력이 없었다. 1997년 일본 교토에서 다시 모여 탄소배출권 거래제 등을 골자로 하는 강제조항을 뒀지만 온실가스 배출 세계 2위 미국은 비준을 거부했다. 여기에 배출량 세계 1위 중국과 3위 인도는 아예 의무 대상조차 아니었다. 교토의정서를 채택했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 리 만무했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2015년 다시 파리에서 모여 195개국의 합의로 기후변화 협약을 체결했다.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당시 참여했던 미국은 대통령이 바뀌자 공공연히 탈퇴를 거론하더니 결국 이달 초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공식 탈퇴했다. 지구 온난화의 위기에서 출발한 ‘기후 변화’는 오히려 위기 의식을 무디게 했다. 시민사회 운동가들이나 책임질 일 없는 국제기구 사람들이 쓰는 말쯤으로 치부되면서 오히려 일반인의 기후변화에 대한 이해를 멀리하게 만든 측면까지 있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지난 25일 ‘기후 비상’(Climate emergency)이라는 단어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것은 안온한 인식을 뛰어넘은 절박함 속에 구체적 행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 행동의 주체는 남녀노소를 포함한 개개인은 물론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 지구 생활을 하는 모든 구성원을 망라한다. 물론 말이란 것은 근본적으로 허망하기 십상이다. 스쳐가는 상황에서도 심장에 새기는 말이 있는가 하면, 눈앞에서 다짐에 다짐을 하더라도 구체적 실천과 진정성이 없는 말이라면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도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에너지이용합리화법 등 그럴싸한 법안이 있지만 정부도, 산업계도 제대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비상이라는 인식과 함께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한 시기다. 내일이면 늦다.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김환기의 ‘우주’/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김환기의 ‘우주’/박록삼 논설위원

    신안 섬소년에게 밤하늘은 절대 적막의 공간이었을 게다. 금세라도 우수수 쏟아질 듯한 별들로 가득 찬 하늘과 교감했던 소년은 별자리의 기호를 애써 익히지 않더라도 무수한 별들이 그려 내는 질서와 조화에 가슴 벅찬, 파천황적 경험을 했으리라. 훗날 소년에게 예술적 원형(原型)이 된 우주는 별과 별 사이의 촘촘한 거리를 드러내고 있지만, 그조차 우주의 광대무변(廣大無邊)함을 드러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세계적인 추상미술 화가 중 하나인 김환기(1913~1974)의 1971년 작 ‘우주 05-IV-71 #200’(이하 ‘우주’)은 디스크에 이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기 전 뉴욕에 머물며 남긴 대표 작품이었다. 254×254㎝ 크기로 김환기의 작품 중 유일한 두 폭 대작이었던 ‘우주’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가 갖고 있는 세계관과 미학적 지향, 삶의 서사 등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흔히 ‘전면점화’라고 표현되는 김환기의 후기 그림은 과거 자신의 추상 경향과 달리 선도, 면도, 형상도 아예 없다. 오직 수없이 많은 점으로 그 깊이를 더해 갔다. ‘우주’는 그 절정에 있다. 우주는 1969년 인간의 달착륙을 직접 목도한 이후 그가 천착한 주제이자 소재였다. 작품 속 빼곡한 별들은 그 하나하나가 웅대한 우주이며, 그 우주들은 각각의 질서를 통해 어딘가를 향해 끝없이 흘러간다. 자연스레 형성됐을 커다란 중심이 양쪽에 보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숱한 우주 자체가, 혹은 우주끼리 모여 만든 크고 작은 중심들이 있다. 그 중심들 또한 자세히 보면 그저 무(無)를 나타낼 뿐이다. 없음, 그 자체가 광대무변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인간에 대한, 세계에 대한, 인류사회에 대한 김환기의 회화적 메타포이자 예술적 서사였음을 알 수 있다. ‘우주’는 지난 23일 홍콩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8800만 홍콩달러(약 132억원)에 낙찰됐다. 크리스티 홍콩 측이 ‘신원 미상의 낙찰자’라고만 밝힌 이는 수수료까지 포함하면 153억원을 들여 ‘우주’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로써 경매 최고가 국내 작품 목록 1~10위에 9위(이중섭의 ‘소’)를 제외하고 모두 그의 작품으로 늘어서게 만들었다. 천석꾼의 아들이면서 예술을 위해 기꺼이 부를 멀리했던 김환기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서울대 교수, 홍익대 교수라는 안온한 자리도 내팽개치고 파리로 뉴욕으로 떠나 경계인이자 예술인의 삶을 택했다. 정지용, 김광섭 등 당대의 문인들과 교류하고, 이상의 전 부인과 기꺼이 재혼을 택했던 그는 일찌감치 우주 속 한 점 별이 됐다. 자신에 대해 점점 높아지는 발밑 세상의 평가 앞에 기꺼이 껄껄거리고 있을까.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도쿄, 광주, 베이징, 홍콩/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도쿄, 광주, 베이징, 홍콩/박록삼 논설위원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도 ‘드르륵’ 총소리가 들렸다. 헬기에서는 전단을 살포했다. ‘폭도들이 무장한 채 폭동을 벌이고 있다. 계엄군은 자위권을 갖고 있다’ 등속의 내용을 담았다. 그 시간 광주 도청 앞 상무관 바닥에는 형체도, 신원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피칠갑 된 시신들이 즐비했다. 또 11공수여단은 송암동에서 민간인을 무차별 사살한 뒤 인근 산에 암매장했다. 죽음의 공포가 지배하던 1980년 5월의 광주는 바깥으로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었다.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나라 미국이 신군부의 학살극을 멈춰 주길 바랐지만, 미국은 침묵하고 방관했을 뿐이었다. 40년 전 광주는 한국 안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철저히 고립됐다. 꼬박 50년 전 일본 도쿄도 그랬다. 1968년 ‘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줄여서 ‘전공투’라고 부르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수만명이 매일같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출발은 니혼대학의 재단 비리였다. 학생시위는 과격해졌고, 일왕의 참수를 공공연히 얘기하고, 반제국주의·반정부를 주장하는 사회주의 혁명의 움직임으로 확산됐다. 쇠파이프, 화염병에 사제폭탄까지 나왔다. 도쿄대를 점거한 학생들은 1969년 1월 8500명의 기동대가 진압작전을 개시해 72시간에 걸친 공방 끝에 모두 진압됐다. 전공투는 과격성과 폭력성으로 인해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1989년 6월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앞은 어땠는가. 중국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에 중국 정부는 계엄령을 내렸고, 군과 탱크를 동원했다. 공식 발표로는 민간인 사망자 875명, 부상자 1만 4550명이었고 군인은 56명이 사망, 7525명이 부상당했다. 비공식 집계로는 1만명이 넘게 사망했다는 주장들도 있다. 그 유명한 사진을 떠올리며 탱크 앞에 홀로 섰던 그 시위자는 그 후로 어떻게 됐을까를 상상한다. 2019년 11월 홍콩 이공대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나흘째 전기와 물도 끊긴 채 경찰에 봉쇄된 이공대 안에는 지난 17~18일 이틀 동안 600명을 체포했지만, 아직도 200명 가까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진압에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있었던 희생보다 더 끔찍한 살상이 벌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하수구를 통해 탈출을 시도하려던 이들도 있었다. 화염병, 화살 등으로 저항하고 있다지만, 미성년인 10대 청소년도 다수 포함된 시위대가 느낄 고립무원의 공포와 시시각각 조여 오는 불안감은 짐작만 할 뿐이다. 홍콩은 제2의 광주도, 제2의 도쿄도, 제2의 베이징도 돼선 안 된다. 피의 역사로 배울 교훈은 이미 충분하다. 철저히 인도주의적인 국제사회의 연대가 절실하다. youngtan@seoul.co.kr
  • “가야사 사업, 靑·총리급 강력한 컨트롤타워 필요”

    “가야사 사업, 靑·총리급 강력한 컨트롤타워 필요”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가야문화권 포럼 종합토론에서 학계와 연구원, 언론 관계자들은 가야문화권 3개도(경북·경남·전북) 공동발전 방안 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서철현 대구대 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유진상 창원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가야사 복원 및 정비, 가야문화콘텐츠화 관련 총사업비는 약 3조~4조원 규모에 달한다”면서 “가야사 사업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가 부재해 국무총리 또는 청와대가 관장하는 가칭 ‘가야문화정책위원회’ 형식의 강력한 기구 설립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대중 정부 당시 ‘가야사복원정책위원회’가 가동됐으나 위상이 낮고 총괄 기능이 약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호남 가야유적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의 한국 유치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진영 경남대 교수는 “가야사 복원사업이 단순히 국제과제를 달성하려는 지표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면서 “실효를 거두려면 국민에게 가야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채미옥 대구대 초빙교수는 “많은 도시에서 특별법을 들고 나와 가야특별법 제정이 늦어지고 있다. 역량을 결집해야 하지만 우선 지붕 모양, 간판 크기 등 실천 가능한 것부터 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고, 김태영 경남연구원 연구기획조정실장은 “가야의 독특한 문화인 순장 문화를 스토리텔링해서 경남의 춤, 전남의 소리 등을 합쳐 공연을 만들고 발전시키면 영호남 화합의 의미 있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장세길 전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정부가 끝나도 가야가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고 그 중심은 영호남 가야문화권지역발전시장군수협의회이다”면서 “협의회가 힘을 모으고 사업의 중심이 된다면 다음 정부에서도 가야가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박록삼 서울신문 논설위원은 “가야사 복원이 국정과제이기 때문에 정책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측면보다는 국민과 함께하며,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긴 호흡으로 전개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2000년 전 가야는 서로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면서 ‘같음’을 추구했다. 오늘날 가야문화권도 화합하고 경쟁하면서 가야 르네상스 시대를 함께 열어 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우리 곁에 다가온 가야문화” 가야문화권 주민·시민 ‘한마당’ 대성황

    “우리 곁에 다가온 가야문화” 가야문화권 주민·시민 ‘한마당’ 대성황

    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광장에선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 서울신문과 국립중앙박물관이 공동 주관한 ‘영호남 가야문화권 한마당’이다. 전북·경북·경남 3개 도와 ‘가야문화권지역발전시장군수협의회’가 공동 주최하고 문화재청이 후원했다. 오는 17일까지 3일간 열리는 이번 행사는 가야문화권 발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영호남 가야화권의 화합과 상생, 지역균형발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 첫날 어린이부터 중장년층까지 시민 10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박물관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함께 했다. 가야문화권은 영·호남 5개 광역시(대구시, 경상북도,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가야문화권지역발전시장군수협의회 소속 26개 시·군(경북 고령·성주·상주 3개 시·군, 대구 달성군, 경남 거창·고성·김해·산청·의령·창녕·하동·함양·함안·합천·창원·진주 12개 시·군, 전북 남원·완주·무주·진안·장수 5개 시·군)을 말한다. 특히 가야문화권 가운데 고령·김해·함안·남원·합천·창녕·고성 등 7개 시군은 오는 2022년 지역 가야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해 주목받고 있다. 이번 영호남 가야문화권 한마당 행사는 ▲가야 문화 체험 및 전시 프로그램인 ‘가야로 통하다’ ▲가야문화권 문화행사인 ‘가야로 흥하라’ ▲가야문화권 발전포럼인 ‘함께 가야 할 길’ ▲가야문화권 지역 홍보 프로그램 ‘가야의 위대한 여정’ 등 4개 프로그램으로 나눠 진행된다.행사의 백미는 ‘가야문화체험’이다. 첫날 가야문화권 소속 가야 전문 박물관(7개관)과 전북 장수군, 국립중앙박물관이 참여해 1600년 전 가야의 모습을 체험할 기회를 선사했다. 박물관별 체험 프로그램은 ▲김해시 대성동 고분박물관=대성동 출토 유물을 소개한 엽서보내기 ▲고령군 대가야박물관·우륵박물관=대가야 왕관 만들기 및 가야금 연주 체험 ▲함안군 함안박물관=가야 토기 조각맞추기 ▲합천군 합천박물관=옥전고분군 유물 저금통·연필꽂이 만들기 ▲고성군 고성박물관=가야토기만들기 및 가야옷 입기 체험 ▲창녕군 창녕박물관=송현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송현이(순장 소녀)’ 캐릭터 포토존 등이 마련했다. 김영환(65·강남구 일원동)씨는 “종종 박물관을 찾아 역사 공부를 하지만 지금까지 가야사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고 있었다”면서 “오늘 행사를 보고 가야사가 우리 고대사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처음 알았으며, 정부와 지자체들이 가야사 복원을 위해 애쓴다는 것이 반가웠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가야문화영상관을 비롯해 가야문화를 홀로그램으로 보여주는 유물관, 가야지역 체험관, 전북도·경북도·경남도 3개 홍보관, 가야시군협의회 홍보관 등도 마련돼 다양한 볼거리·즐길거리를 제공했다. 가야고분군세계유산등재추진단에서도 3개 도에 소재한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관한 내용 등을 홍보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립전주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과 함께 가야본성 콘텐츠를 활용한 체험 부스를 운영했다. 방문객들을 위한 다양한 볼거리·즐길거리로 다양한 공연도 펼쳐져 박수갈채를 받았다. 고령 군립가야금연주단, 고성 오광대 놀이팀,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공연이 이어졌다. 또 싱어송라이터 이훈주, 신민아 가야금 연주팀, 대금연주자 조성광 등 버스킹 7개 팀이 신나는 공연을 펼쳤다. 이날 오후 2시에 열린 개막식에는 이철우 경상북도지사, 김경수 경상남도지사, 송하진 전라북도지사,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곽용환(고령군수) 가야문화권지역발전시장·군수협의회 의장, 허성곤 김해시장, 이환주 남원시장, 장영수 장수군수, 조근제 함안군수, 조근제 함안군수, 문준희 합천군수, 조성희 상주시장 권한대행 등이 참석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화환을 보내 축하했다. 개막식은 가야 홍보영상 상영을 시작으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박지민 MBC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았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개회사에서 “오늘 우리는 가야의 이름으로 3개도, 26개 시군이 한자리에 모여 가야발전을 도모하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앞으로 가야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야특별법 제정, 영호남 상생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함께 추진해 나가자”고 말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가야를 매개로 동서가 화합하고 상생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면서 “경남도와 전북도, 경북도가 힘을 합쳐 가야문화를 살려 내고 세계로 뻗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이제 가야문화가 영호남 화합의 상징으로 떠올랐다”면서 “조선을 능가하는 600년 역사의 대단한 저력을 지닌 가야사에 대한 연구·복원은 물론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는 일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고광헌 서울신문 사장은 축사에서 “이번 행사를 계기로 서울신문은 가야문화특별법 제정과 가야 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기여하고 의의와 의미, 국민들에게 가야를 널리 알리는 일에 적극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3시부터 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는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및 영호남 화합을 모색하는 포럼’이 열렸다. 곽용환 가야문화권협의회 의장을 비롯해 채미옥 대구대 초빙교수, 김태영 경남연구원 연구기획조정실장,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등이 참가해 가야문화권 상생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유진상 창원대 교수, 양진연 경남대 교수. 박록삼 서울신문 논설위원 등이 가야문화권의 공동발전 방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펼쳤다. 서철현 대구대 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서울신문은 다음달 13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호남 가야문화권 2차 포럼을 개최해 가야사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로 했다.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길섶에서] 99세 외할머니/박록삼 논설위원

    햇살이 기울어지는 오후, 병실에 들어서자 누워 있던 대여섯 명의 시선이 꽂혔다. 대부분 잠시 쳐다보다 이내 눈을 감았다. 혹시 아는 사람인가 확인하고팠는지 두어 명은 일어나려 애쓰기도 했다. 창가에 누워 있던 외할머니는 반쯤 눈을 떴다가 감더니 다시 눈을 떴다. 일흔 중반에 접어든 딸이 침대 곁으로 가 손을 잡으니 눈빛과 몸짓으로 애절함과 반가움을 표했다. 대신 그리도 예뻐하던 외손주에게는 애써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딸을 쳐다보며 “누구? 자네 아들인가?”라고 묻더니 호기심 섞인 표정을 지었다. 외손주는 이제 그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 존재였다. 잠깐의 묵언 뒤 지독한 남도 방언으로 연신 뭔가를 묻고 방긋거렸다. 기억의 심연에 여전히 있는 걸까. 너무 외로운 탓에 본능적인 반가움을 표시했을까. 요양병원의 99세 외할머니는 그렇게 안으로 잦아들어간다. 노화는 필연이다. 여러 질병이 육체의 불편함은 물론 고통 또한 커지게 한다. 물론 기억의 실종보다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그리 긴 시간 동안 많은 이들과 부대끼며 겪었던 자잘한 즐거움과 기쁨, 행복의 기억이 사라져가는 것은 노화의 가장 큰 슬픔이다. 물론 곁에서 지켜보는 이의 참담함 또한 적지 않다. 부디 딸·아들 자식만큼은 잊지 않으시길.
  • [씨줄날줄] 논란 재점화된 증도가자/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논란 재점화된 증도가자/박록삼 논설위원

    ‘직지심체요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만든 책이다.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는 긴 이름이지만, 간단히 ‘직지’로 부른다. 1377년 만들어져 독일 구텐베르크의 42행 성경보다 78년 앞서 우리 전통 문화의 세계적 선진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사례로 꼽힌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다만 인쇄본은 있지만 금속활자 실물이 없다는 점, 그 인쇄본마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가 있다는 점이 많은 한국인들의 가슴 한 구석을 뻥 뚫린 듯 만들었다. 2010년 9월 놀라운 발표가 있었다. 직지보다 138년 앞서는 금속활자 실물 109점이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고려시대 ‘증도가’(證道歌) 인쇄에 사용한 금속활자 실물, ‘증도가자’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세계사적 사건으로 꼽힐 수 있었다. 소장자인 다보성미술관에서 먼저 신청한 것이 아니라 당시 문화재청 정책국장이 소장자를 찾아가 국가문화재 지정을 신청하라고 요구해서 국가문화재 지정이 추진됐다. 하지만 문화재위원회는 7년에 걸친 심의 끝에 증도가자의 국가문화재 인정을 부결했다.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등 결과를 보면 고려 금속활자의 가능성은 있으나 증도가를 인쇄한 활자로 단정할 수 없으며, 출처와 소장 경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문화재의 출처와 소장 경위를 문제 삼지 않는 것은 일반적 관행이었으며, 출처를 제시하도록 한 시행규칙 개정을 소급 적용하는 등 절차의 위법성도 있어 반발을 샀다. 그리고 이후 심의 과정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증도가자는 가짜’라는 식의 언론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어쨌든 일단락된 듯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세균 의원, 이동섭 의원, 안민석 의원 등은 정재숙 문화재청장에게 증도가자 심의와 관련한 질의를 했고, 정 청장은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29일 2020~2022년까지 5억 5000만원을 들여 ‘고려금속활자 가치 규명 조사연구’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에서 논박을 거듭하는 와중에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산하기관이 서지학, 금속학, 인쇄출판 등의 전문가들이 등장한 학술보고서에서 “증도가자는 중국 금속활자”라고 주장하며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진위를 명확히 가리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시간만 지체시킨 채 이해관계 다툼의 모양새로만 비쳐지는 건 곤란하다. 중국이 고구려와 그 역사를 빼앗아 가려고 했듯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실물까지 넘겨주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펭수’의 진화/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펭수’의 진화/박록삼 논설위원

    1980년대 TV 프로그램 ‘뽀뽀뽀’ 속 ‘뽀미 언니’의 말은 절대진리였다. 뽀미 언니는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면 안 되고 약속을 잘 지켜야 하며, 만나고 헤어질 때 반갑게 인사해야 하며, 친구들과 싸우더라도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일상의 도덕률을 충실히 가르쳤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뽀미 언니와 자연스럽게 헤어졌겠지만, 어른이 된 뒤에도 많은 이가 여전히 그 가르침의 자장 안에서 지내고 있다. 어린이들의 절대 캐릭터는 이후로 쉼없이 바뀌어 왔다. 1990년대 뚝딱이가 잠시 인기를 얻었고, 2000년대 들어 방귀대장 뿡뿡이와 짜잔형이 왔다 갔고, 번개맨이 정의와 도덕의 수호자로 나타났다. 2003년 뽀로로가 아이들 사회를 평정하기 전까지 유년기 사회화 교육을 담당했던 이들이다. 이상한 캐릭터가 등장했다. ‘펭수’다. ‘우주 대스타’가 되려고 남극에서 왔다는 10살 펭귄. 교육방송(EBS)에 나타난 캐릭터임에도 별로 교육적이지 않다. 방탄소년단(BTS)만큼 유명해지고 싶다는 펭수의 말과 행동에는 교훈적 내용 따위는 없다. 혹자는 그를 가리켜 ‘무례하게 생겼다’고도 말하지만 생긴 게 무례할 리 없다. 그저 내숭 없이 속내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며, 하는 짓이 좀 엉뚱하고 내뱉는 말이 상식을 파괴하는 정도일 뿐이다. 그런 덕분인지 애초 아이들을 겨냥한 캐릭터였지만, 아이들보다 20~30대가 더 열광한다. 등장한 지 7개월 만에 ‘2030 뽀로로’라는 별칭을 얻었다. 펭수는 종횡무진 활동한다. 그가 출연하는 ‘자이언트 펭TV’는 당초 EBS의 한 코너였지만, 인기가 급격히 높아지며 별도 프로그램으로 독립됐다. EBS 소속임에도 MBC ‘마이리틀텔레비전V2’에 전격 출연하는가 하면, SBS ‘정글의법칙’ 내레이션을 맡고, SBS와 MBC의 라디오 생방송에도 직접 출연하는 등 방송사 경계를 뛰어넘었다. 또 최승호, 김명중이라는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불러 대며 밥을 사 달라, 참치회를 사 달라고 얘기한다. 두 사람은 각각 MBC와 EBS 사장이니 위계가 지엄한 직장인들로서는 어려운 성역 같은 존재들인데 펭수가 이들에게도 돌직구 발언을 날려 대니 그 거침없는 엉뚱발랄함에 끌릴 수밖에 없다. 6일 오전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펭수를 특별히 초청해 한ㆍ아세안 정상회의 홍보를 부탁하기도 했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도 42만명을 훌쩍 넘겼다. 단순히 ‘약 빤 콘셉트’의 B급 문화 전파자일까. 젊은 세대는 세상의 ‘꼰대’들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얘기를 펭수는 면전에서 거침없이 던져 대고 부족함과 결핍까지 당당히 드러내는 모습,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 등에 공감하는 것이다. 펭수를 응원한다.
  • [서울광장] 검사의 원칙, 판사의 양심/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검사의 원칙, 판사의 양심/박록삼 논설위원

    뉴스를 보다 보면 늘상 나오는 말이 있다. “○○○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했다.”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을 뿐….” 이런 표현들이다. 사법부인 법원은 물론 준사법기관을 자처하는 검찰 역시 행위의 준거로서 ‘법’을 빼놓지 않음은 당연하다. 논란의 근거는 따로 있다. ‘법’ 뒤에 붙는 ‘양심’, 혹은 ‘원칙’이다. 판사의 양심, 검사의 원칙이 뭐길래 숱한 사안마다 이리도 논란을 일으킬까. 이해관계 또는 가치관이 충돌하는 사안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양심(良心)은 얼핏 보면 ‘선량한 마음’쯤으로 해석된다. 양심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8월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문에서 양심에 대해 ‘어떠한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규정했다. 표현은 약간 달라도 쓰임은 마찬가지다. 판사나 검사 아닌 평범한 개인에게도 양심은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다. 흔히 “양심에 찔린다”고 자책하거나 “이런 양심 없는 놈”이라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양심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정신적 가치인지를 일깨워 준다. 또한 양심이 ‘지금, 여기’ 다수의 절대가치와 충돌할 수 없음 또한 충분히 짐작된다. 문제는 여기에서 나온다. 사회의 다수가 갈라진 이상 ‘양심의 목소리’조차 갈라지게 돼 있다. 양심은 개인의 몫으로 맡겨졌기에 자의적 판단이 가능하다. 지난달 23일 열린 조국 전 법무장관의 부인 정경심씨의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관심이 쏠렸던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영장판사를 명모 판사 혹은 송모 판사가 맡을지, 그 유불리에 대한 갑론을박이 치열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정감사에서 명 판사가 영장실질심사를 맡을 경우 담당 판사를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영장실질심사는 송 판사가 맡았고 정씨의 구속영장은 발부됐다. 그 직후 송 판사에 대한 신상털기, 인신공격 등은 공공연했다. 물론 알 수 없다. 명 판사가 맡아도 영장이 발부됐을 수 있다. 반대의 사례 또한 있다. 코카인보다 환각성이 강한 마약 LSD를 밀반입해도 구속되지 않을 수 있고, 음주운전에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해도 구속되지 않을 수 있다. 구속영장 발부에서 법과 양심의 기준이 이처럼 들쭉날쭉 하다 보니 불신이 싹트게 된다. 논란이 커질 뿐이다. 법에 대한 신뢰성, 안정성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기에 놓여 있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로 충분하다. 검찰이 법과 함께 곧잘 내세우는 ‘원칙’ 또한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흔들린다면 더이상 원칙이라 부를 수 없다. 하지만 ‘조국 정국’을 통해 민낯을 드러냈듯 검찰의 자의적인 수사 대상 선별 및 검찰권 남용은 이미 원칙이 없음을 스스로 자인한 꼴이 됐다. 고소·고발이 들어오자마자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하는 사건이 있는가 하면, 고소·고발 이후에도 느긋하게 세월을 즐기는 사건이 있다. 물론 수사 자체를 아예 외면하는 사건 또한 있다. 법과 원칙에 따른 판단일 리는 만무하다. 2년 전 광화문광장의 천만 촛불이 계엄군의 총칼과 맞닥뜨렸을 생각을 하면 절로 몸서리쳐진다. 신문사 편집국, 논설위원실에 군인들이 들이닥쳐 컴퓨터를 뒤져 보거나 기사를 검열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1960년 5·16은 책으로 접했을 뿐이지만, 1980년 5월 광주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기에 그 섬뜩함은 형언조차 쉽지 않다.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명백한 국가와 체제 전복의 쿠데타였다. 국군기무사령부가 2017년 2월 만들었다는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 및 참고자료는 온갖 ‘변종 문건’들이 돌고 있다. 진위 여부, 최종본 여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검찰만이 알고 있다. 분명한 것은 문건 작성 전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네 차례에 걸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했으며 기무사는 계엄 준비 단계부터 NSC를 중심으로 행정자치부, 경찰, 검찰, 국정원 등 유관 정부 부처의 협조를 당연한 것으로 기술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누군가의 대학 표창장 위조, 경제적인 이익을 탐하는 일보다 가벼울 수 없다. 검찰에 헌법 질서 수호의 원칙이 있다면 황 전 권한대행 공조 여부를 포함, 총력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일이다. 사법개혁의 절박함을 재촉하는 근거들이 반복되고 있다. 법의 신뢰성을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사법개혁, 검찰개혁은 절실하다. youngtan@seoul.co.kr
  • [박록삼의 시시콜콜] 스페셜올림픽이 국가대표를 추첨으로 뽑는 이유

    [박록삼의 시시콜콜] 스페셜올림픽이 국가대표를 추첨으로 뽑는 이유

    엄연한 올림픽 대회다. 4년마다 세계 190개 나라 운동 선수들이 참가하는 거대한 지구촌 축제다. 올해 하계 올림픽은 지난 4월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열렸다. 동계, 하계별로 4년마다 열린다. 그런데 각 종목별 국가대표선수는 추첨으로 뽑는다. 경쟁을 통해 금-은-동메달을 가리지만, 모든 참가자에게 메달 못지 않은 영광의 리본을 준다. 국가 순위도 발표하지 않는다. 권투, 레슬링 등 거친 격투 종목은 없다. 바로 ‘스페셜 올림픽’이다. 말 그대로 아주 특별한 이들이 모여 서로 화합하며 경쟁하고, 도전과 노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낸 것으로도 충분히 기뻐하고 환호한다. 지적 발달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특별한 올림픽이다. 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의 여동생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에 의해 1968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올림픽, 패럴림픽과 함께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인정하는 3대 올림픽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1991년 제8회 미국 미네소타 대회에 처음 출전해 금 10개, 은 6개, 동 8개를 땄다. 그리고 2013년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을 개최해서 뜻깊은 지구촌 행사의 한 몫을 단단히 했다. 특히 의미있는 것은 국가대표선수 선발 방식이다. 대표선수는 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 전국대회 각 종목 조별 1위 입상자 중 현장 추첨을 통해 결정된다. 단순한 성적,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발달장애인에게 다양한 국제 대회 출전 기회를 주기 위한 스페셜올림픽국제본부(SOI)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공정하고 더욱 의미가 깊다. 그것이 스페셜올림픽을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가치이자 정신이다. 실력지상주의, 경쟁의 효용성, 성적우선주의에 갇혀 허우적대는 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스페셜올림픽이다. 하지만 스페셜올림픽의 숭고한 가치와 정신를 훼손하며 여기에조차 특정인이 일그러진 욕망을 담아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씁쓸하게 만들었다. 발달장애인 딸을 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011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스페셜올림픽코리아 회장을 지냈다. 2013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스페셜올림픽 세계동계대회의 준비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나 원내대표의 딸 김모씨는 별도의 공모 절차 없이 스페셜올림픽 ‘글로벌 메신저’ 단독후보로 선정됐고, 2016년 7월 스페셜올림픽코리아 당연직 이사로 선임됐다. 2009년 동계스페셜올림픽 세계청소년대표회의에서 동아시아지역 대표로 참가했고, 2011년 아테네스페셜올림픽 폐막식에도 글로벌 유스 리더 자격으로 축사를 했다. 2013년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땐 세계청소년대표회의 공동의장직을 수행했다. 뿐만 아니다. 김씨는 SOK에서 주최하거나 준비한 문화예술공연·무대에도 등장한다. 그는 2013년 열린 ‘평창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에서도 밴드 ‘부활’과 협연했다. 그 다음해인 2014년 뉴욕에서 열린 유엔 세계장애인의날 기념공연에도 참가했다. 나 원내대표의 딸 김씨가 설령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가능한 많은 이들이 함께하고 누려야할 참가와 도전의 기회를 사실상 독점하다시피했다. 결과적으로 스페셜올림픽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는 지난 9월 16일 나 원내대표를 뇌물수수와 사후부정수뢰, 업무방해, 직권남용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그 이후 시민단체들은 나 원내대표에 대해 4차 고발까지 진행했고, 검찰은 이 고발 건을 형사1부에 배당했지만 세 달째 접어들도록 아직까지 고발인 조사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와 별도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오는 11일부터 스페셜올림픽코리아를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든 특권과 반칙이 뿌리 뽑히는 또다른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박록삼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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