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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도 못 간 시리아 휴전… 더 커진 ‘피의 보복’ 공포

    제대로 대피 못한 알레포 주민들 합의 파행에 피해 더 커질 우려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6년째 진행 중인 내전의 최전선인 알레포에서 반군을 대부분 몰아냈음에도 포성은 멈추지 않았다. 시리아 정부와 반군 측은 알레포에서 반군이 철수하는 대신 휴전하기로 합의했지만 반군의 철수가 지연되면서 하루 만에 교전이 재개됐기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인 시리아인권관측소(SOHR) 관계자는 14일(현지시간) “오늘 오전 반군과 주민들이 철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반군 밀집지역에 정부군의 포탄이 떨어졌다”면서 “전선에서는 박격포탄 소리도 들렸다”고 밝혔다고 AFP가 보도했다.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반군이 휴전 합의를 깨고 적대적 행위를 다시 시작해 (정부군도) 포격을 재개했다”고 강조했다. 시리아 현지 러시아 분쟁 센터는 반군이 피난 행렬에 사격을 가하면서 시리아 정부군의 포위망을 뚫으려 시도했고 정부군은 이를 격퇴한 뒤 남은 반군 소탕 작전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리아 반군의 법률자문인 오사마 아부 자이드는 이에 대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이란의 시아파 민병대 등이 우리 지역에 먼저 포격을 재개했다”면서 “이는 러시아가 이란에 휴전 합의 준수를 이행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란에 책임을 돌렸다고 AP가 전했다. 러시아는 앞서 13일 시리아 반군이 알레포 전투를 포기하고 도시를 떠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정부군 측)와 터키(반군 측)가 양측을 대행해 반군 탈출 협상을 중재했다. 합의에 따르면 알레포의 반군과 민간인은 시리아 북부나 서부의 반군 점령지역으로 이송돼야 한다. 시리아 금융 중심지였던 알레포는 2012년 7월 시리아가 동부 전선(반군 장악)과 서부 전선(정부군 지역)으로 분리된 뒤로 정부군과 반군, 외국 지원군이 뒤엉키며 끊임없이 전투가 이어졌다. SOHR에 따르면 4년 넘게 알레포에서 벌어진 전투로 2만명 이상이 숨졌다. 그러던 올해 7월 시리아 정부군이 러시아와 이란, 레바논 헤즈볼라(시아파 무장조직)의 도움을 받아 총공세를 펼치며 전세가 정부군 쪽으로 기울었다. 시리아군은 지난달 15일 반군에 대한 최종 공격을 단행했고 한 달여 만에 알레포를 대부분 탈환했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 재개로 휴전 합의가 파행하면서 민간인 피해 우려는 한층 커졌다. SOHR은 이날 알레포 포격으로 여아 2명을 포함한 민간인 4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알레포 주민들이 무사히 빠져나가고 있다는 러시아·시리아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로는 민간인 대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주민들의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고 AP가 전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장벽 쌓고 인간 방패… ‘모술 탈환’ 장기화되나

    장벽 쌓고 인간 방패… ‘모술 탈환’ 장기화되나

    이라크 정부군 병력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거점 모술에 진입해 시가전을 벌였으나 IS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물러났다. IS는 주요 도로와 공항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며 방어하고 있어 모술 탈환전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IS는 5일(현지시간) 모술 동부에서 정부군을 상대로 자동차를 활용한 자살폭탄 공격과 기관총 공격을 퍼부은데 이어 정부군이 장악하고 있는 모술 외곽의 고그잘리에서도 대대적인 반격을 감행했다고 알자리라가 보도했다. 앞서 이라크 정부군 대테러부대(CTS)는 4일 오전 모술 동부 알카라마 지구에서 시가지로 진입한 뒤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주둔지로 복귀했다고 AFP가 전했다. IS 대원들은 시가지 진입을 시도하는 정부군에게 소총과 박격포를 동원했고 로켓탄을 발사해 정부군 전차 1대를 파괴하기도 했다. IS는 알카라마뿐 아니라 모술 외곽의 아덴, 타흐릴, 쿠즈에서도 진격을 시도하는 정부군을 향해 집중 포격을 가했다. 미국 안보 분석 전문업체 스트랫포가 지난달 31일 촬영한 위성사진에서도 IS가 모술 남부 일대에서 콘크리트 블록과 잔해를 이용해 만든 바리케이드를 모술 진입 주요 구간마다 설치한 모습이 포착됐다. 현재 모술에 진입해 전투를 벌이는 정부군 병력은 약 3만명이다. IS 대원들은 모술 내에 3000~5000명, 시 변두리 지역에 1500~2000여명이 포진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IS는 정부군의 공격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민간인들을 인간 방패로 동원하고 있다. 모술 지역 주민들은 120만여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이라크 정부군은 인구가 밀집한 모술 내부로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군 진입 시 IS의 저격이나 부비트랩을 이용한 매복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실제 정부군이 도심에서 전투를 치르기까지 수주 이상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CNN은 “이라크군이 지난달 17일 모술 탈환전을 개시한 이후 가장 힘든 전투를 치르고 있고 이는 전투가 장기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해군·해병대, 전시 北피난민 수용 첫 훈련

    해군·해병대, 전시 北피난민 수용 첫 훈련

    1만7700t 규모 갑판운반선 운용… 아프간戰 지원 미군 130여명 참여 해군과 해병대가 전쟁 발생 시 북한에서 대거 내려오는 피란민을 수용하고 의료를 지원하는 민군(民軍)작전을 처음 실시했다. 해군 등은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6일까지 실시하는 2016년 호국 합동상륙훈련에서 피란민 관리와 주민 의료지원 등 민군작전을 위한 전담부대를 최초로 편성해 운용했다”고 3일 밝혔다. 민군작전은 군사 작전시 작전 지역의 주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대민 관계 유지·확대 활동을 의미한다. 이번 훈련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난민 수용 및 지원 업무를 했던 군인 등 130여명의 미군 민군작전 전문요원들도 참가했다. 이들 부대는 작전지역 전방과 후방에서 작전지역으로 들어오는 피란민들을 보호하고 인도적 지원을 숙달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이를 위해 천막형 이동전개 의무시설을 활용해 환자 분류, 일반환자 치료, 긴급환자 응급수술 등 환자 처리 절차 등을 진행했다. 해병대 관계자는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난민 수용과 지원을 했던 미군의 경험을 공유한 실제적인 연습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이번 상륙훈련에서는 민간이 가진 시설 등을 활용하는 군사작전 체계도 점검했다. 특히 1만 7700t 규모의 장비와 물자를 실을 수 있는 갑판운반선(덱 캐리어)을 처음으로 운용했다. 덱 캐리어를 활용하면 상륙돌격장갑차와 상륙기동헬기 등을 동시에 실어 날아 빠르게 작전에 투입할 수 있다. 또 항만시설이 파괴되거나 관련 시설이 없는 해안에서도 공기부양정 등을 활용해 전차와 자주포 등을 대량으로 투입시켜 상륙군을 지원할 수 있다. 이번 훈련에는 해병대 1사단의 연대급 상륙군과 기동군수대대 등 2600여명의 병력, 상륙돌격장갑차 36대를 포함해 K55자주포, K1전차 등 300여대의 장비가 참가했다. 해군에서는 신형 상륙함 천왕봉함(LST-Ⅱ) 외에 함정 20여척이 참가했다. 미 해병대에서는 3사단 보병·포병 중대 130여명과 120㎜박격포가 참가해 연합작전능력 등을 점검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남대문 옆, ‘시장의 역사’ 품은 떠들썩함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남대문 옆, ‘시장의 역사’ 품은 떠들썩함

    “떡 장수, 메밀묵 장수, 국수 장수, 활기에 넘치고 가지가지 소리가 있는 시장, <페르시아 시장>이 아니고 전쟁이 밟고 지나간 장터에도 음악은 있다. 장난감 파는 가게에 인민군들이 서 있고 그들이 돌아갈 때 누이와 동생, 아들과 딸들에게 선물할 장난감을 고르고 있지 않은가” 박경리의 작품, ‘시장과 전장’(1964)에 묘사된 남대문 시장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한국전쟁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도 삶의 생명력을 잃지 않는 유일한 공간으로 그리고 있다. 흡사 붉은 양탄자 층층이 올린 아라비아 페르시아 시장 뒷골목에서 양탄자가 날아오르는 요술처럼, 남대문시장에서도 피난민들의 남루한 삶을 날려 줄 마법의 램프 속 도깨비가 남대문시장에는 있었을 듯하다. 주소로는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시장4길 21. 흔히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 없다는 말같이 도깨비처럼 뚝딱 소리 한 번에 모든 물건을 다 구할 수 있어 ‘박격포’까지 판다는 허명(虛名)마저 되새김질하는 시장이 바로 ‘남대문시장’이었다. 남대문시장은 지금도 명실상부 의류를 비롯해 각종 섬유 제품, 액세서리, 안경 같은 잡화, 주방용품, 공산품, 토산품, 수입 상품, 농수산물 등 1700여 종의 물품들이 거래되는 한국 제일, 최고(最古), 최대 전통시장임은 분명하다. 대지면적으로만 2만 467㎡, 건물연면적으로는 6만 4613㎡에 달하며, 점포 수는 이미 만 여곳 이상이 성업 중인, 하루 4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발도장을 찍는 서울의 대표적인 핫 플레이스이기도 하다. 또한 이 곳에는 도소매를 겸하는 전문 상가가 있어 일반 손님들도 원하는 물품이 소량이라도 편리하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서울 시민의 넉넉한 안살림을 채워주는 곳간과도 같은 곳이다. 최근에는 남대문 시장이 한류(韓流)의 중심지로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의 아메요코(アメ)시장이나 대만 최대 재래시장 디화지에(迪化街)처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단연 1순위 관람코스로 새롭게 등장하여 과거의 전성기를 누릴 심사를 남대문 시장은 품고 있다. ●옛 모습은 숭례문 밖 생선 팔던 칠패(七牌)시장 남대문시장의 역사는 이러하다. 원래 17세기 초부터 한양 도성에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이라 하여 조정으로부터 물품 독점권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시전(市廛)상인들이 종루(鐘樓) 행랑을 중심으로 모여 조선팔도 모든 물목들을 어깨 힘 잔뜩 넣은 채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도성 외부에 인구가 몰리는 17세기 후반 남대문과 서소문 밖을 중심으로 상가가 조성되기 시작한다. 바로 남대문시장의 전신인 칠패(七牌)시장이 등장한 것이다. 이와 아울러 18세기 중엽, 서울 동부의 어의동(於義洞) 근처에도 또 다른 상가가 등장하게 되는 데 이는‘동대문시장’ 전신인 ‘이현(梨峴)상가’였다. 이로 인하여 서울 도성 안팎의 상가는 종루 시전상가와 이현, 칠패 상가를 합하여 삼대시(三大市)로 나뉜다. 제각각 취급하는 물품도 다양해서 종루 시전상가는 궁궐이나 관아, 그리고 양반 사대부가에 필요한 사치품이나 중국 수입물품, 생활용품을 판매하였다. 반면 남대문시장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칠패시장은 마포나루터와 인접해 있어 새벽녘 마포(麻浦) 서강(西江)을 거쳐 들어오는 곡식이나 생선같은 상품들을 도성 안 서민들에게 대주었다. 특히, 칠패의 어물전(魚物廛) 명성은 지금의 노량진 유명세보다 훨씬 윗길이었다. 따라서, 지금도 남대문 시장의 대표 음식인 '갈치조림'의 명맥이 뜬금포처럼 등장하지 않은 연유가 바로 이러하다. 18세기 후반 한양 도성을 기록한 당시의 여러 문헌을 살펴보면 회현동, 죽전동, 주자동, 어청동, 어의동, 이현, 명문 등지에 칠패시장에서 미리 매점매석한 어물이 산처럼 쌓였다고 전해질 정도로 이 지역은 번성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 ●1914년, 우리나라 제1호 시장으로 등록 구한말에 이르러 칠패시장의 규모가 종로와 남대문로를 뒤덮을 정도로 성장하자 대동미와 대동포 출납을 관장하던 선혜청(宣惠廳)으로 시장의 중심 터전이 옮겨가게 되고 이로부터 오늘날의 남대문시장의 자리가 옛 선혜청 자리로 잡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상인들에 의해 시장 경영권이 당연히 넘어가게 된다. 1922년 일본인이 운영하는 중앙물산주식회사로 시장의 경영권이 넘어가고 조선의 유통을 장악하려던 조선총독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남대문 시장은 1936년경 등록된 상인의 수만 무려 230여 명이 될 정도로 급성장한다. 또한 1930년대 시장의 하루 거래액이 8만원에 이를 정도로 시장은 활성화되어 현재 남대문 시장의 규모가 만들어진다. 당시 주요 거래 품목은 미곡(米穀)과 과일, 채소, 생선 등 농수산물과 식료품이었으며, 이 외에도 고기류나 생활 잡화도 취급하여 명실상부한 거래액 규모에서는 조선 최대 전통시장의 면모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남대문 시장은 동대문시장과 아울러 서울의 중심시장 자리를 지켜온다. 1947년에 215개의 점포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1952년에 252개로 늘어났고, 종전 후 폐허 속에서도 여전히 150개의 점포와 500여 개의 노점들이 생업을 이끌어가는 공간으로 살아 남아 있었다. 특히 휴전 이후 남대문시장은 주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이룬다. 전후복구를 위한 미군의 구호물자와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군용품,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내려오던 적산(敵産) 사치품과 밀수품 들이 거래되면서 소위 ‘도깨비’처럼 단속을 피해 물건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이 남대문 시장 안에서는 빈번하였다. 특히 50,60년대 정부에서 유통 금지 물품으로 단속을 하던 밀수품들인 카메라, 양주, 담배, 시계, 양산 등이 남대문 시장 곳곳에 등장했다가 없어지곤 해서 당시 서울 시민들의 호기심을 가득 받기도 하였다. 또한 미군들의 군복, 담요, 시레이션(C-ration) 박스 등 접하기도 힘든 고급 군수물자들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어 항간에는 ‘박격포’도 살 수 있다는 소문도 그럴듯하게 퍼지기도 하였다. 1960, 70년대에는 빈번한 불난리를 피해 시장 건물 현대화사업에도 박차를 가한 기간이었다. 1969년 1월에는 지하1층 지상 3층짜리 건물이 완공되었고, 이후 1975년까지 667개의 점포가 추가되어 그 때의 건물들이 현재까지 이르러 지금의 시장의 틀을 만들었다. 1980년대는 바야흐로 남대문 시장 전성시대였다. 흔히 ‘남문’패션이라고 해서, 베이비붐 세대들인 1970년대 생 아동들이 학교에 입학할 즈음 전국적으로 아동복에 대한 수요가 넘쳐흘렀고 이를 남대문시장이 감당하였다. 40대 이상이라면 지금도 귀에 익숙한 ‘부르뎅’, ‘원 아동복’ 등의 아동복 브랜드가 당시 ‘국민학교’ 학생들의 ‘워너비’ 메이커가 되었다. 또한, 신발류로는 ‘프로스펙스’, ‘르까프’, ‘까발로’, ‘타이거’, ‘슈퍼카미트’, ‘프로월드컵’ 등의 브랜드가 등장하여, 남대문 시장을 중심으로 서울, 경기를 넘어 전국 각지로 어린이들의 동심을 흔들어 놓았다. 특히 어린이날 전후로는 물건을 떼러온 ‘봉고’들이 남대문 시장 입구 10Km부터 줄지어 서있는 진풍경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런 남대문시장의 호황은 1997년 IMF와 더불어 막을 내린다. 더구나 백화점과 할인마트가 등장하고 인근의 동대문 시장이 의류 특화 상권으로 성장하면서 남대문시장은 의류 중심의 상권이 대거 액세서리, 안경점, 여성 전문 패션, 그릇, 내복류 등으로 이동하여 2000년대를 맞이한다. 오늘날 남대문시장은 비록 예전의 ‘박격포’까지 팔 기세의 위세는 점점 사그라졌을지라도, 여전히 서울의 대표 전통시장으로 발을 굳건히 붙이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 일본 관광객들의 급증으로 인하여 한류상품, 인삼, 김, 가죽 제품 등과 같은 관광상품을 취급하는 상점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17세기 후반에 출현한 어물 유통의 중심지, 남대문 밖 칠패(七牌)시장으로서의 오랜 역사를 지닌 남대문 시장. 현재 인터넷, 모바일 쇼핑 등의 변화된 유통 환경에서도 그 옛날 나랏님도 어쩌지 못하던 난전(亂廛)시장 특유의 질긴 생명력을 한류(韓流)의 물살을 타고 단단히 이어가길 바란다. <남대문시장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너무나 당연하다. 남대문시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이다. 서울을 방문하는 초심자에게 남대문 시장은 경복궁, 남산 타워와 아울러 기본 탐방 코스다. 2. 누구와 함께? -나이 드신 부모님과 함께 가 보면 좋다. 추억과 더불어 시장 골목골목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3. 가는 방법은? -무조건 대중교통을 이용하길 권유한다. 지하철4호선 회현역 5번 출구로 나오는 것이 제일 낫다. 4. 감탄하는 점은? -규모다.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넓고 크다. 점포수가 만 개가 넘으니 넉넉한 시간을 두고 둘러보는 것이 낫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80년, 90년대의 부르뎅 아동복이나 원 아동복을 그리워하는 세대들에게는 그 당시만 못하더라도 여전히 전통시장 특유의 진한 삶의 내음은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많다. 6. 꼭 봐야할 상점이나 거리는? -수입상품거리나 그릇 도매점, 액세서리 상가도 볼만한 것이 많다. 특히 수입상품상가 강추! 7. 먹거리 추천? -원래 남대문시장 최고의 인기 음식은 단연 갈치조림이다. 갈치조림골목은 남창동 본동상가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회현역 5번 출구 인근의 칼국수 골목도 유명하다. 또한 안경점 골목 주변의 노천 생갈비도 먹을 만하다. 이외에도 곰탕, 닭곰탕 등등의 먹거리 투어 장소로도 손색이 없는 시장. 8. 홈페이지 주소는? -www.namdaemunmarket.co.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남대문 시장 만으로 한나절 넉넉하다. 주변이 바로 명동이어서 남산이나 경복궁, 광화문 등지로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 10. 총평 및 당부사항 -우선 남대문 시장을 방문하기 전에는 반드시 홈페이지에서 전체 지도를 꼭 보고 가야한다. 또한 전문적인 상가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구매 목적에 맞는 상가 위치를 미리 알고 가면 좋다. 그리고 주차 문제는 심각해서 반드시 주차장에 세워 두어야 견인, 과태료 부과를 피할 수 있다. 에누리 없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이스라엘은 어떻게 ‘언터처블’이 됐나?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이스라엘은 어떻게 ‘언터처블’이 됐나?

    지난달 17일 시리아 영내에서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2발의 로켓이 발사되었다. 과거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북한군이 사용했던 것과 유사한 122㎜급 사제로켓으로 추정되는 이 두 발의 로켓은 발사 직후 이스라엘 영공에 진입함과 동시에 요격됐고, 인명 피해는 전혀 없었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이번에 발사된 로켓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의도로 발사된 것이 아니라 시리아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전투 중 이스라엘 쪽으로 잘못 발사된 것으로 결론짓고 별다른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자국 영토를 향해 로켓이 발사되어 인명피해가 발생할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언론은 이번 사건을 단신 처리했고, 이스라엘 국민들 역시 별다른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만큼 이스라엘을 향한 로켓이나 미사일 공격은 이제 일상이 됐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민 그 누구도 이러한 공격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을 향해 어떤 로켓이나 미사일이 발사되더라도 100%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하늘의 강철 지붕 이스라엘은 건국 당시부터 주변 아랍국들을 상대로 힘겨운 생존 전쟁을 벌였던 나라다. 국토 면적이 경상북도보다 조금 더 큰 정도에 불과하지만, 주변의 이슬람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고, 다양한 형태로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했다. 이러한 이스라엘이 미사일 방어체계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당시 최대 적국이었던 이집트가 소련으로부터 스커드 미사일을 도입했다는 첩보가 입수되자 이스라엘은 미국에서 지원 받은 MIM-23 호크(HAWK) 미사일을 개조해 탄도 미사일 요격 능력을 부여한 AB-10 요격 미사일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러나 이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매우 짧고 명중률 역시 신뢰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 미사일이 배치된 후 벌어진 제4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 스커드 미사일 공격을 받았으나, AB-10은 사정거리 부족으로 스커드 미사일에 대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이 시작된 것이 애로우(Arrow) 시리즈였다. 1970년대 소요가 제기되어 1982년 개념 연구를 거쳐 1988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간 애로우 미사일은 실전배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기술 축적을 위한 목적이 강했다. 이스라엘은 1990년부터 시작된 애로우1 미사일 시험평가를 통해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실전 배치용 미사일인 애로우2를 개발해 1998년부터 이스라엘 공군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애로우2 미사일은 최대 140km의 사정거리와 60km 수준의 요격 고도를 가지고 있어 패트리어트와 사드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요격 시스템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도 운용하고 있는 그린파인 레이더를 이용해 표적을 탐지·추적하고 150kg에 달하는 대형 탄두를 이용해 대량의 파편으로 표적을 요격하는 방식인데, 이미 실물 스커드 미사일과 모의 표적에 대한 다수의 요격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그 명중률과 신뢰성을 입증한 바 있다. 이스라엘은 애로우2 미사일의 단계적 개량과 꾸준한 요격 테스트를 통해 애로우2의 성능과 신뢰성을 향상시켰지만, 국토 전역을 보다 완벽하게 방어하기 위해 중첩된 다층 방공망 개념을 개발하고 이를 위한 요격 무기들을 하나씩 개발해 내기 시작했다. 현재 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은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15~60km 고도에서는 애로우2 미사일이 요격을 수행하고, 여기서 저지하지 못한 미사일은 15km 고도 이내에서 패트리어트 PAC-2와 PAC-3를 이용해 요격한다. 이러한 방공망을 뚫고 들어온 탄도탄이나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된 소형 로켓, 박격포 등은 아이언 돔이 처리한다. 이러한 중첩 요격 시스템이 완성된 이후 이스라엘은 주변국의 로켓 공격으로부터 단 1명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고, 이제 이스라엘 국민들은 로켓 공격 경보가 울리면 대피호로 피하는 대신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치 불꽃놀이 같은 요격 장면을 구경하는 여유까지 갖게 되었다. 현재 이러한 미사일 방어 시스템은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설치되어 있지만, 이스라엘은 이 시스템을 더욱 개량해서 국토 전역에 대한 다층 방공망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소형 로켓이나 박격포, 단거리 미사일 등은 거리 70km, 고도 10km 범위 내에서 아이언 돔이 요격하고, 15~20km 고도 범위에서는 패트리어트 PAC-3가, 15~60km 고도 범위에서는 애로우 2 개량형이 요격을 수행하는 기본 구조는 그대로 가져가되 거리 250km, 고도 50km 범위 내에서 요격을 담당하는 최신형 요격 시스템인 데이비드 슬링(David's sling)과 최대 거리 400km, 고도 100km 이상 외기권에서 요격을 담당하는 애로우3 미사일이 기존 미사일 방어체계에 추가될 예정이다. 이스라엘은 이들 요격 자산을 하나의 네트워크에 통합해 운용한다. 그린파인 레이더와 같은 탄도 미사일 탐지·추적 레이더는 물론 패트리어트용 레이더와 아이언돔용 레이더 등 모든 탐지 자산과 모든 요격 미사일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전역에 설치된 다양한 레이더가 탐지한 모든 표적 정보가 하나의 스크린에 표시되고, 모든 요격부대들은 하나의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작전 상황을 공유하면서 실시간 협력 교전을 수행한다. 가령 A부대에서 발사한 요격 미사일이 빗나가더라도 B부대나 C부대가 곧바로 백업에 나서 2차, 3차 요격 시도에 나선다는 것이다. 아이언돔과 데이비드 슬링, 애로우 시리즈와 같은 미사일 방어체계는 1개 포대가 동시에 10~14개 안팎의 표적을 요격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 이들 미사일들은 사거리와 요격고도가 서로 중첩되도록 빽빽하게 배치되기 때문에 소형 로켓부터 중·단거리 탄도미사일까지 그 어떤 유형의 미사일이 수십 발 이상씩 날아오더라도 대부분 요격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미국의 감시·요격 자산과도 연동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작업이 완료되면 이스라엘의 MD 시스템은 지중해에 배치된 미국의 MD 위성은 물론 이지스 구축함에 탑재되는 미사일 방어 시스템, 심지어 F-35 전투기의 감시 센서(EO-DAS)와도 실시간으로 연동되어 작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기존의 2~5단계 다층 방어체계가 6~7단계까지 확장됨을 의미하며 그 어떠한 미사일도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하늘 전체를 둘러싼 강철 지붕(Iron dome)이 완성되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스라엘이 이처럼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을 둘러싼 안보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주변은 모두 적국이거나 적국이 아니더라도 우호적이지 않은 국가들뿐이다. 서쪽의 지중해를 제외한 모든 국경 지역에서 사흘에 한번 꼴로 각종 로켓과 포탄이 날아온다. 최근 5년간 이스라엘은 이러한 로켓과 포탄을 상대로 700회 이상 교전했고, 아이언돔을 이용해서만 1500여 발을 요격했을 정도다. 문제는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한 위협이 이러한 단거리 로켓이나 박격포탄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국방군(IDF·Israel Defense Forces) 총사령부 전략기획부장 님로드 셰퍼(Nimrod Sheffer) 소장은 지난 9월 18일 브리핑을 통해 “이란 핵 협상은 타결되었지만 이란은 이미 샤하브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핵탄두 개발을 마쳤을 것으로 확신하며, 이스라엘은 이러한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셰퍼 소장은 이러한 위협에 대해 이스라엘이 취하고 있는 대응 전략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물샐틈없는 다층 방어 체계를 갖추는 것이고, 둘째는 철저한 응징보복 전략을 취해 적이 감히 이스라엘을 공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 강력한 억제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응징보복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정보기관을 이용한 암살이다. 이스라엘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관으로 평가받는 모사드(MOSSAD) 산하에 일명 ‘키돈(Kidon)으로 불리는 전문 암살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수십여 명 수준으로 알려진 이들은 창설 이후 현재까지 과거 유대인 학살에 관여했던 나치 전범들에 대한 추적·암살 임무부터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암살 등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지난 2010년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를 배후 조종한 하마스 간부 알 마부(Al Mabhouh)를 백주대낮에 두바이 소재 호텔에서 암살했고, 이란이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는 첩보가 입수되자 이란의 수도 테헤란 한복판에서 이란의 핵심 핵물리학자 4명을 사고로 위장해 살해하기도 했다. 이들은 구약성경 출애굽기 때부터 신에게 받은 가르침인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에 따라 이스라엘의 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대상은 그 누구든 지구 끝까지 찾아내어 제거하며, 작전 성공률 역시 대단히 높아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테러리스트나 적성국에게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한다. 요인암살과 더불어 이스라엘 응징보복 전략의 양대 축은 과감하고도 강력한 군사작전이다. 이스라엘은 자국 또는 자국민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그럴 조짐이 보이는 대상에 대해서는 주저 없이 군사력을 사용한다. 지난 1981년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라크가 핵개발을 위해 원자로 건설을 시작하자 이스라엘은 즉각 전투기를 동원해 이 원자로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2007년에는 시리아가 북한의 도움을 받아 원자로 건설에 나서자 이 역시 전투기를 동원해 건설현장 일대를 초토화시킨 바 있다. 최근 이스라엘이 행했던 가장 처절했던 응징보복 작전은 지난 2006년의 레바논 침공 작전이었다. 레바논 남부에 거점을 둔 이슬람 무장조직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군 병사 2명을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스라엘은 즉각 군사조치에 나섰다. 전투기와 포병을 동원해 주요 거점에 맹렬한 폭격을 가했고, 대규모 기계화 부대를 투입해 헤즈볼라 거점의 건물 하나하나를 쓸어버렸다. 당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은 헤즈볼라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는데, 궁지에 몰린 헤즈볼라는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내세워 저항을 계속했고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소탕을 명분으로 민간인 거주 지역까지 공격해 대량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의 보복 작전은 핵심우방인 미국과 영국조차도 유감을 표시할 만큼 처절했지만 그만큼 효과가 있었다. 강경파였던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Sayyid Hassan Nasrallah)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결과가 있을 것을 알았다면 이스라엘 병사들을 납치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도발을 후회했는데, 그만큼 이스라엘의 응징 보복 작전은 단호하고 강력하게 이루어졌다. 이 전쟁 이후 10여 년간 헤즈볼라는 지도부의 의사와 관계없이 죽음을 각오하고 개별적으로 이탈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일부 조직원만 있었을 뿐 단 한 차례도 이스라엘을 상대로 조직적이고 규모를 갖춘 도발을 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안보전략은 적의 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완벽한 방패를 갖추고, 적이 나를 공격할 경우 처절하게 보복할 수 있는 강력한 창을 갖춤은 물론 이들 창과 방패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적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가장 효과적으로 지킬 수 있는 전략이라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북핵 위협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이스라엘의 안보 전략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이일우 군사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美연합군 시리아 오폭으로 62명 사망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17일(현지시간)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습을 진행하던 도중 시리아 육군 기지를 오폭해 최소 60여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부상당했다고 AP 등이 보도했다. 미국은 오폭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지만 시리아와 러시아 등은 강력 반발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했다. 미국 등이 주도하는 연합군이 바샤르 알아사드의 시리아 정부군에 공습을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러시아는 시리아 휴전협정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사건의 확대를 경계했다. AP는 “F16 전투기 2대와 A10 전투기 2대가 4차례에 걸쳐 폭격을 단행해 시리아 정부군 62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당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시리아군 탱크와 보병 전투차량, 박격포, 대공포 등이 파괴됐다고 덧붙였다. 미 중부군 사령부는 성명을 내고 “러시아로부터 연합군이 시리아 정부군과 차량 등을 타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받은 후 폭격을 중단했다”며 “연합군이 시리아 정부군이란 것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폭격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연합군의 오폭에 반발한 시리아와 러시아는 즉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했다. 시리아 외무부는 이번 공습을 미국의 ‘침략’이라고 표현하면서 미국에 시리아의 주권을 존중할 것을 요구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남북 완충지대 DMZ ‘무장지대’되나

    유엔군사령부가 정전협정 체결 61년 만인 2014년 9월부터 비무장지대(DMZ)에 중화기를 반입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해 시행하고 있는 사실이 10일 공식 확인됐다. 이는 북한이 DMZ 내에 중화기 반입을 금지하고 있는 정전협정 규정을 어기고 박격포와 고사총 등 중화기를 배치한데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이에 남북 간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지대인 DMZ가 무장지대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언론에 공개된 ‘유엔군사령부 규정 551-4’에 따르면, 유엔군사령관은 2014년 9월부터 개인화기를 비롯한 다종의 중화기를 DMZ에 배치하는 것을 허가했다. 개정된 규정은 2014년 9월 5일자로 발효됐다. 유엔군사령관이 DMZ에 반입을 허가한 무기는 ▲개인화기(반자동 및 자동: K1, K2, K3) ▲중(中)기관총(7.62㎜) ▲중(重)기관총(K6 50구경·K4 40㎜ 자동 유탄발사기) ▲무반동총(최대 57㎜) ▲60㎜와 80㎜ 박격포 ▲유선 조종식 클레이모어 지뢰 ▲수류탄 등이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은 DMZ에 개인화기를 제외한 중화기 반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북한군은 DMZ 내 GP(소초)에 박격포와 14.5㎜ 고사총 등을 설치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군 GP에는 박격포가 설치되지 않았다. 유엔사가 DMZ에 이들 무기를 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유엔사가 중화기를 반입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꾼 것이 정전협정을 유명무실하게 하는 부작용을 가져온다고 우려한다. 남북 간의 우발적 충돌이 국지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완충지대로서의 DMZ 설정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주장이다. 군 관계자는 “지형적으로 DMZ 내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GOP(일반전초)에는 유엔군사령관의 승인을 받아 제한적으로 박격포를 반입하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이는 정전협정에 따라 들여왔을 뿐 실제로 중화기를 DMZ에 배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지난해 전세계 폭발물 테러로 민간인 3만 3000여명 사상

    지난해 전세계 폭발물 테러로 민간인 3만 3000여명 사상

     전 세계에서 폭발물 공격으로 목숨을 잃거나 다친 민간인들이 4년 새 55%나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인권단체 ‘무장폭력에 대한 행동’(AOAV)이 내놓은 보고서를 인용해 27일(현지시간) 이같이 보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모두 2000건을 넘는 폭발물 공격으로 3만 3307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거나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2011년과 비교해 55% 증가한 수치다.  이중 목숨을 잃은 경우에 국한해 2011년과 비교해 보면 터키와 예멘이 각각 7682%, 1204% 급증했다.  이외 이집트(142%), 리비아(85%), 시리아(39%), 나이지리아(22%) 등도 폭발물 공격에 의한 민간인 사망이 크게 늘었다.  사상자수 기준으로 보면 이슬람국가(IS) 등과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8732명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예멘(6289명), 이라크(5059명), 나이지리아(2920명), 아프가니스탄(2029명), 파키스탄(1291명) 등이 1000명을 넘는 희생자를 냈다.  또 우크라이나(862명)와 터키(856명)에서도 민간인 희생자가 컸다.  특히 자살폭탄 공격에 따른 희생자들이 크게 불어난 점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자살폭탄 공격수는 253건으로 전년과 거의 같았다. 하지만 사상자수는 전년보다 68% 증가한 9205명에 달했다. 2011년과 비교하면 78% 늘어났다.  지난해 차량폭탄을 포함해 모든 급조폭발장치(IEDs)로 사상한 민간인 1만 6180명 가운데 절반을 넘는 경우가 자살폭탄 테러의 희생자들이었다.  지난해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한 국가도 이제까지 가장 많은 21개국이었다.  나이지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터키, 시리아, 예맨, 차드, 카메룬, 파키스탄, 레바논, 쿠웨이트, 프랑스, 사우디 아라비아, 소말리아, 리비아, 이집트,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말리, 튀니지 등이다.  AOAV는 지난 한해 하루 평균 민간인 30명꼴로 폭발물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면서 주거지에서 발생한 폭발물 공격으로 죽거나 다친 사람들의 90% 이상이 민간인들이었다고 지적했다.  AOAV는 공중 투하된 폭탄, 박격포, IEDs, 포탄 등에 따른 희생을 ‘폭발물 공격에 의한 사상’으로 집계했다.  AOAV는 이런 공격에서 희생당한 4만 4000명 가운데 76%가 민간인 희생자들이었다고 강조했다.  내전 등 교전 과정에서 적군을 상대로 한 폭발물 공격에서 적군보다 훨씬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것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미 육군, “2023년까지 보병용 ‘레이저 총’ 도입할 것”

    미 육군, “2023년까지 보병용 ‘레이저 총’ 도입할 것”

    미군이 보병들에게 휴대 가능한 레이저 병기를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미 육군은 미 하원 상임 군사위원회(United States House Committee on Armed Services)산하 ‘신흥 위협 및 역량 소위원회’(Subcommittee on Emerging Threats and Capabilities)와 회견을 갖고 이와 같이 발표했다. 메리 J. 밀러 미 육군 대변인에 따르면 미군은 현재 공격용 및 방어용 ‘지향성 에너지 무기’(directed-energy weapon)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향성 에너지 무기란 에너지를 집중시켜 표적을 파괴하는 형태의 무기를 말하며, 고출력마이크로파·레이저·입자빔·X선 무기 등을 아우른다. 현재 미국은 해군의 XN1-LaWS 프로그램을 포함, 몇몇 레이저 무기 시스템을 실제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전군 단위의 광범위한 레이저 무기 배치는 아직 요원한 상태다. 밀러 대변인은 “레이저 무기가 현장의 실질적 요구를 충족시켰던 전례는 아직 없다”며 “따라서 현장의 군인들이 레이저 무기에 대한 신뢰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에 따라 현재는 실제적 작전환경 하에서의 레이저 무기 시험이 시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군의 최종 목표는 10년 이내에 신뢰할만한 레이저 무기를 완성해 보급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파괴력이 비교적 약한 수준의 레이저 무기를 먼저 개발 및 보급해 병사들로 하여금 사전에 레이저무기 사용 경험을 가져볼 수 있도록 할 전망이다. 미 공군 또한 같은 회견에서 레이저 무기 사용 현황을 공개했다. 데이비드 워커 미 공군 과학·기술·공학부 부차관보는 지금도 적 미사일의 적외선 추적 기능을 무력화하는 항공기용 레이저 무기가 활발히 시험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 각 부처에서 레이저 무기가 촉망고 있는 대표적 이유는 비용의 절감이다. 레이저 무기는 주로 RAM(로켓, 대포, 박격포) 위협 대응을 위한 방어수단으로 개발되고 있는데,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여타 무기들에 비해 1회 발사 비용이 어림잡아 1달러(약 1200원) 정도로 월등히 저렴하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年 3700만명 찾는 ‘터키 관광의 중심’… 예고된 테러에 당했다

    12일(현지시간) 대형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난 터키 이스탄불의 술탄아흐메트 광장은 터키 관광의 중심지다. 터키를 찾는 연간 3700만명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빠짐없이 찾는 곳이다. 터키의 상징인 성소피아박물관과 술탄아흐메트 자미(블루 모스크) 등이 밀집한 술탄아흐메트 지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을 정도다. 동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 오스만제국 등 3개의 대제국을 거치면서 동서양 문명이 어우러진 덕분이다. 하지만 이날 술탄아흐메트 광장에 자리한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아래에는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오벨리스크는 로마제국 시절인 390년 이집트에서 가져와 설치한 유래가 깊은 건축물이다. 이 같은 이유로 AP 등 외신들은 이번 테러가 터키 관광산업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테러사건 직후 방송에 출연해 시리아 출신의 자살 폭탄 테러범이 저지른 소행이라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테러를 저지른 단체를 지목하진 않았으나 이슬람국가(IS)와 쿠르드족 무장반군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을 터키에 위협적인 존재로 언급했다. 터키는 지난해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에 IS 폭격에 필요한 비행장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PKK와는 10여년간의 휴전을 깨고 교전을 재개했다. 아흐메트 다우토을루 총리는 긴급 안보회의를 소집했으며 회의에는 국가정보국(MIT) 국장 등이 참석했다. 정부 대변인인 누만 쿠르툴무시 부총리는 자살 폭탄 테러범이 28세의 시리아인이라고 밝혔다. 터키 민영 NTV는 폭발이 술탄아흐메트 지구의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가 자리한 공원 부근에서 발생했다며 폭발로 인근 땅이 흔들릴 만큼 충격이 컸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테러로 인한 부상자 중에 독일인 6명과 노르웨이인과 페루인 각 1명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독일은 매년 54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터키를 방문해 왔다. 터키 전체 방문객의 15%를 차지하는 규모다. 독일 외무부는 사건 직후 이스탄불에 머물고 있는 독일 관광객들에게 관광 명소 등 공공장소를 피해 머물 것을 요청했다. 이번 테러는 이미 예고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달 초 러시아계 여성 무슬림이 술탄아흐메트 지구의 경찰서를 찾아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 이 여성과 터키인 경찰 등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23일에는 이스탄불 사비하괵첸 공항에서 박격포 공격으로 인한 폭발사건이 일어나 현지 저가 항공사인 페가수스항공 소속의 기내 청소원 1명이 숨졌다. 터키 관영 아나돌루 통신은 공항에서 2㎞ 정도 떨어진 숲에서 박격포 4발이 발사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난 7일 보도했다. 현재 술탄아흐메트 광장 폭발 사건 직후 자신들의 소행임을 자처하고 나선 무장 단체는 없는 상황이다. 외신들은 일단 IS의 자폭 공격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해 두 차례나 IS로 추정되는 세력이 대형 폭탄 테러를 감행한 까닭이다. 지난해 7월에는 시리아 국경 부근의 수루츠에서 자폭 공격이 일어나 3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10월에도 수도 앙카라의 기차역 앞에서 집회를 위해 모인 인파를 겨냥한 자폭 테러가 잇따라 일어나 102명이 숨졌다. 터키 검찰은 앙카라 테러의 경우 IS를 추종하는 지지 세력이 저지른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편 유럽연합(EU)은 “모든 형태의 테러에 반대하며 테러와 싸움을 벌이는 터키와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알카에다 vs 러시아… 더 꼬이는 시리아 내전

    알카에다 vs 러시아… 더 꼬이는 시리아 내전

    ‘푸틴의 전쟁’은 비극적 결말을 불러올까.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개시된 러시아의 시리아 반군 공습이 러시아 내 1600만 무슬림의 공분을 사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러시아의 공습 표적이 된 알누스라전선(알카에다 시리아 지부)은 러시아에 전면전을 선언했고, 이들과 경쟁 관계인 이슬람국가(IS)마저 성전을 독려하고 나서자 러시아 전역에 테러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13일 러시아 인구의 10%에 이르는 무슬림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대부분은 푸틴이 지원하는 시리아의 시아파 정권과 대척점에 자리한 수니파 무슬림이다. 가뜩이나 시아파인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독재에 같은 수니파 무슬림이 핍박받아 온 터라 러시아 정부의 움직임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당장 거리로 뛰쳐나오진 않겠지만 뭍밑에선 ‘종교전쟁’의 기운이 감지된다. 실제로 러시아는 무슬림 반군과 오랜 갈등의 역사를 갖고 있다. 1859년 무슬림이 대다수인 체첸을 강제 합병했고 이후로도 체첸 반군과 유혈 충돌을 빚어 왔다. 2004년 9월 러시아연방 북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의 베슬란 초등학교에서 체첸 반군이 벌인 인질 사태로 300여명이 사망하고 900여명이 부상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체첸이 자리한 러시아 남서부 캅카스 지역에는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등에서 수많은 이슬람 지하디스트들이 활동하고 있다. 알누스라전선은 이 같은 약점을 파고들었다. 알누스라전선 최고지도자인 아무 무함마드 알골라니는 전날 발표한 육성 성명에서 러시아의 시리아 군사 개입을 ‘십자군 전쟁’으로 규정하고 캅카스 지역의 지하디스트들에게 테러를 선동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시리아 국민을 죽이면 그들의 국민을 죽여라, 그들이 우리 군인을 죽이면 그들의 군인을 죽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선언은 미국과 러시아,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가 엇갈린 시리아 내전이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치닫도록 만들었다. 러시아와 달리 시리아 온건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은 이날 양측 항공기의 충돌을 막기 위한 항공안전 군사회담을 재개했다. 반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IS는 웹사이트에 “러시아를 시리아에서 곧 몰아낼 것”이라며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 같은 날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의 러시아 대사관에는 알누스라전선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박격포 포격이 이어졌다. 미 언론들은 벌써부터 ‘아프간의 교훈’을 들먹이고 있다. 1980년대에 소련이 무려 62만명의 지상군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하고도, 반군을 지원한 미국의 계략에 휘말려 체제 붕괴를 맞은 사건이다. 러시아가 지상군 파병을 결행하기에 앞서 악몽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편 터키 일간 휴리예트는 14일 터키 정부가 지난 10일 수도 앙카라에서 발생한 자살폭탄테러 용의자 2명의 신원을 유전자 분석 등으로 조사한 결과, IS 조직원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① 예루살렘 -예루살렘이란 퍼즐 또는 모자이크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① 예루살렘 -예루살렘이란 퍼즐 또는 모자이크

    사막과 사해, 만년설, 지중해, 갈릴리 그리고 텔아비브까지, 국토는 작으나 지형과 기후, 문화는 매우 다채롭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분쟁만 없다면 이스라엘은 완벽한 여행지다. 이스라엘을 3일간 여행한다면 하루는 지중해, 하루는 사해, 하루는 사막에 갈 수 있다. *샬롬은 히브리어로 평화를 의미한다. 안식일에는 노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 한 잔 주세요.” “오늘은 보통 커피밖에 없습니다. 샤밧안식일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지 않거든요.” 다른 곳도 아닌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의 일이다. 안식일이면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모든 층에 멈춘다. 안식일에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조차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는 생산적인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렇게 가까이서 하느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여기는 다름 아닌 이스라엘 텔아비브Tel Aviv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12시간 만에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했다. 막연하긴 했으나 예상보다 훨씬 멀었다. 물리적 거리만큼 심정적 거리도 멀다. 나는 더욱이 기독교 신자도, 가톨릭 신자도 아니니 이스라엘 성지순례 같은 로망도 없다. 게다가 팔레스타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금년 유엔을 인용한 <국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해 이스라엘군은 51일 동안 가자 지구를 6,000번 이상 공습, 5만번 이상 폭격했고, 민간인 희생자의 3분의 1은 어린이”였다. 물론 팔레스타인도 수천 발의 로켓과 박격포 사격으로 반격을 했다지만 과연 성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스라엘 쪽의 처지도 간단치 않다. 남쪽으론 이집트의 시나위 사막, 동쪽으론 요르단, 북쪽으론 시리아, 레바논과 국경을 마주한다. 모두 아랍 국가다. 서쪽으론 지중해 바다이니 더 이상 나아갈 곳도 없다. 겉으로 드러난 형세만 보면 이스라엘은 거대한 아랍 국가들에 포위된 작은 섬이다. 이래저래 숨이 팍팍 막힐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에는 인터넷, 신문, 컴퓨터도 없는 유대인 마을이 있다. 아무리 ‘정통’ 유대인이라 해도 인터넷을 안하는 청춘이라니?! 이들은 피임도 하지 않기에 마을에 가면 열 명씩 아이를 낳는 부부도 있다고 한다. 정통 유대인들은 14세기 복장을 하고, 미간에 성경을 붙이고 산다. 성경에서 수염 양 편을 깎지 말라고 했다고 여전히 수염을 기른다. 남들이 뭐라 하건 기도하고 순종하며 살겠다는 다짐만 보면 하느님께 더 이상 독실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까?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Jerusalem 예루살렘 예루살렘이란 퍼즐 또는 모자이크 새벽 5시, 잠에서 깼다. 시차 따위는 잊고 한시라도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어두운 올리브산 뒤편으로 붉은색 기운이 피어오른다. 예루살렘 성벽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20분쯤 걸었을까. 야파 게이트Jaffa Gate가 나온다. 드디어 3000년 고도, 예루살렘과 만났다. 미명 속의 예루살렘 구시가지 골목은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잃게 만든다. 네모난 돌을 쌓아 지은 건물들이 햇살을 받아 오렌지색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야파 게이트를 통과해 시온 게이트로 가는 길은 아르메니아인 지역이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안에 아르메니아인 살고 있다니?! 알고 보니 구시가지 성벽 안에는 유대인 지역, 아르메니아인 지역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지역, 기독교인 지역도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예수가 죽고 부활한 곳이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는 ‘십자가의 길’을 찾아오는 순례자 행렬은 일 년 내내 끝없이 이어진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친 장소 역시 황금돔 사원 자리다. 그런데 기독교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유대교에서도 신성시하는 곳이 바로 이 자리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슬람교도에게 예루살렘은 메카, 메디나와 함께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이고, 예언자 마호메트(정확한 발음은 ‘무함마드’에 가깝다)가 천국으로 승천한 곳이다. 성전산Temple Mount에 세운 황금돔 아래 동굴에서 마호메트가 말의 형상을 한 동물을 타고 천사와 함께 천장의 구멍을 통해 승천했다고 한다. 632년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슬람교도들은 유대교 성전 터에 황금돔 사원Dome of the Rock을 지었다. 황금돔 사원 안에 있는 엘 악사El Aqsa 모스크는 메카, 메디나를 잇는 세 번째 모스크로 마호메트가 승천한 바위 터에 세웠다. 이슬람 신자가 아니면 황금돔 사원에 들어갈 수 없다. 유대교인에게 예루살렘은 유대교의 발원지, 최고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기원전 996년에 다윗 왕이 유대민족을 위해 세운 도시다. 하지만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군에 의해 서쪽 벽을 제외하고 완전히 파괴된다. 결국 2000년 전 유대인 성전이었던 곳에 현재는 이슬람 황금돔이 서 있다. 유대의 성전에 갈 수 없는 유대인들이 유일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서쪽벽이다. 전 세계 유대인들이 기도를 하기 위해 모여드는 곳,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밖은 유대교, 안은 이슬람 사원인 셈이다. 예루살렘은 말 그대로 세계 3대 종교의 성지다. 황금돔은 예루살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예루살렘의 상징이지만 그 의미를 외국인이 이해하기란 정말 복잡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구시가지의 성벽을 벗어나 신시가지의 쇼핑몰 카페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이곳이 3000년 고도이기에 더욱 각별하다. 로마식 아치, 비잔틴식 해자, 십자군과 오스만투르크 시대에 쌓은 성벽과 신시가지의 이스라엘 뮤지엄, 성서의 전당 등 예루살렘은 거대하고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된 도시다. 성경을 머리에 이고 사는 사람들 예루살렘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독실한 유대인들의 모습이었다. 삶이 신앙이고 기도인 사람들. 이들은 길을 걸으며 성경을 읽는다. 이마에 성경 구절을 이고 산다. 율법 토라는 이들의 삶 자체다. 통곡의 벽에 가면 이들이 머리를 세게 흔들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처음 이 모습을 봤을 때는 기이하고 과장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들에게 머리를 흔드는 건 몸과 마음을 다해 기도한다는 의미다. 하루에 세 번씩 이렇게 전력을 다해 기도한다. 검은색 옷은 겸손한 삶에 대한 다짐이다.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느님을 잘 섬기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유대인들이 쓰는 모자인 ‘키파Kippah’는 ‘하느님의 종’이란 의미다. 하느님이 자신들 위에 계시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쓴다. 머리와 팔에 붙이는 ‘테필린Tefillin’ 안에는 성경 구절이 담겨 있다. 테필린을 팔에 감는 건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다. 꽉 조인다고 할 정도로, 얼핏 봐서는 아플 정도로 세게 감는다. 하느님에 대한 강건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는 걸까? 하지만 이렇게 독실한 유대인은 이스라엘 인구 전체에서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들과 이스라엘을 동격시 할 순 없다. 재미있는 건 테필린의 종류도 가격별로 아주 다양하단 사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이스라엘정부관광청 www.goisrael.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1953년 경찰 3명 중 2명이 20대… 박격포·야포 등 중화기 696대 보유

    1953년 경찰 3명 중 2명이 20대… 박격포·야포 등 중화기 696대 보유

    6·25 전쟁의 포성이 멈춘 1953년 우리나라 경찰은 3명 중 2명이 20대일 정도로 젊은 조직이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경찰은 소총을 사용했고, 야포 등 중화기도 보유하고 있었다. 경찰청은 오는 21일 경찰 창설 70주년을 맞아 경찰통계연보 창간호의 일부 내용을 4일 공개했다. 통계연보 창간호는 경찰의 첫 공식 통계자료로,1954년 6월 20일 발간됐다. 창간호는 1953년 기준으로 조직과 인원, 장비 등 현황을 담고 있다. 1953년 경찰 총원은 5만 731명으로 현재의 절반 수준이었다. 20대(21∼30세)가 3만 2858명으로 전체의 64.8%를 차지, 7.4%(2013년 기준)인 요즘과 대조를 보였다. 30대(31∼40세)는 1만 6629명으로 32.8%, 40대(41∼50세)는 24%였다. 50대 이상은 0.1%에 불과했다. 2013년 기준으로는 30대 28.5%, 40대 41.6%, 50대 이상 22.5%다. 당시 경찰이 젊은 조직이었던 것은 강제 구조조정 때문이다. 1949년 말 2만 8000여명이었던 경찰 정원이 전쟁 중인 1952년 6만 3000여명으로 늘었다. 휴전 뒤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자 정부는 국가·지방 공무원을 감원했다. 경사·순경은 만 40세, 경감·경위는 45세, 총경 이상은 50세를 기준으로 이보다 나이가 많으면 퇴출시켰다. 이때 40~50대 1만 3256명이 퇴직했다. 1953년 경찰이 보유한 총기는 10만 7338정이었다. M1카빈 등 미식 소총이 8만 9663정으로 가장 많았다. 기관총, 기관단총, 박격포, 야포 등 중화기도 696대 보유하고 있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여러 빔을 통합...출력 무제한 ‘괴물급 레이저 무기’ 개발

    여러 빔을 통합...출력 무제한 ‘괴물급 레이저 무기’ 개발

    4대의 발사 장치에서 동시 발사되는 레이저빔을 한 데 묶어 보다 강력한 레이저빔으로 ‘통합’시킬 수 있는 신기술이 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독일 무기 개발사 라인메탈(Rheinmetall)은 런던에서 열린 ‘2015 국제 안보장비전’(DSEI)에서 자사가 기존에 개발했던 20㎾ 출력의 HEL레이저 네 줄기를 80㎾ 출력의 한 줄기 레이저로 합칠 수 있는 합성(superimposition, 合成)기술을 탑재한 신형 레이저 무기를 공개했다. 이 무기는 여타 레이저 무기와 마찬가지로 드론, 박격포, 대포, 로켓을 격추 및 폭발시키는 것은 물론, 적 선박의 센서를 무력화시키거나 소형 선박의 선체에 구멍을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무기는 500m 밖의 드론을 격추하는 실험에 성공한 것으로 보고됐으나 실제 유효 사거리는 이보다 더 길 것으로 예상된다. 라인메탈은 과거 30㎾ 출력 레이저빔으로도 1.1㎞ 떨어진 모형 82㎜ 박격포 탄환을 공중 폭파시키는 실험에 성공한 바 있다. 라인메탈이 강조하는 이번 합성 기술의 더욱 중요한 특징은 발사 유닛을 여러 대 동원할 경우 이론상 레이저의 파괴력을 ‘무제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 라인메탈은 “빔 합성 기술을 통해 한 줄기 레이저 빔을 작은 점으로 집중시킬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여러 개의 발사기에서 나온 빔들을 하나로 묶는 것 또한 가능하다”며 “따라서 거의 무제한으로 레이저 출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라인메탈은 “정확하며 효율이 높고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고출력 레이저 발사 장치들은 미래의 군비경쟁에 있어 주요한 입지를 차지할 전망”이라며 “여러 개의 고출력 레이저빔을 하나로 통합하는 이번 아이디어를 통해 라인메탈은 유럽 군수산업계 레이저 분야의 선두를 달리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시리아 주재 러시아 대사관, 박격포 공격 ‘인명 피해는 없어’ IS와 관련?

    시리아 주재 러시아 대사관, 박격포 공격 ‘인명 피해는 없어’ IS와 관련?

    시리아 주재 러시아 대사관, 박격포 공격 ‘인명 피해는 없어’ IS와 관련? ‘피해는 없어’ 시리아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박격포 공격을 받았으나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21일(이하 현지시각) 러시아 외무부는 시리아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박격포 공격을 받았으나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발표한 언론보도문에서 “20일 오전 9시께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영토에 박격포탄이 떨어졌다. 포탄이 땅속 깊이 박혔으나 다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러시아 외교 공관에 대한 범죄적 포격을 단호하게 비난하며 국제사회가 이 테러 행위와 관련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박격포 공격이 시리아 반군 근거지인 조바르 지역으로부터 이루어졌다. 이들은 이슬람 국가(IS) 지지자들은 아니지만, 외부 지원 세력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격은 러시아가 최근 들어 반군 및 IS와 싸우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에 대한 군사지원을 늘리면서 직접 시리아 사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려 시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사진=뉴스 캡처(피해는 없어)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주 시리아 러시아 대사관 박격포 공격당해… “피해는 없어” IS와 관계 있나?

    주 시리아 러시아 대사관 박격포 공격당해… “피해는 없어” IS와 관계 있나? 피해는 없어 시리아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이 박격포 공격을 받았으나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러시아 외무부가 21일(현지시간) 밝혔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발표한 언론보도문을 통해 ”20일 오전 9시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영토에 박격포탄이 떨어졌다”면서 “포탄이 땅속 깊이 박혔으나 다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러시아 외교 공관에 대한 범죄적 포격을 단호하게 비난하며 국제사회가 이 테러 행위와 관련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외무부는 “박격포 공격이 시리아 반군 근거지인 조바르 지역으로부터 이루어졌다”면서 “이들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 이슬람 국가(IS) 지지자들은 아니지만, 외부 지원 셀력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주 시리아 러시아 대사관 박격포 공격… “피해는 없어” IS와 무슨 관계?

    주 시리아 러시아 대사관 박격포 공격… “피해는 없어” IS와 무슨 관계? 피해는 없어 시리아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이 박격포 공격을 받았으나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러시아 외무부가 21일(현지시간) 밝혔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발표한 언론보도문을 통해 ”20일 오전 9시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영토에 박격포탄이 떨어졌다”면서 “포탄이 땅속 깊이 박혔으나 다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러시아 외교 공관에 대한 범죄적 포격을 단호하게 비난하며 국제사회가 이 테러 행위와 관련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외무부는 “박격포 공격이 시리아 반군 근거지인 조바르 지역으로부터 이루어졌다”면서 “이들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 이슬람 국가(IS) 지지자들은 아니지만, 외부 지원 셀력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고사포·직사포 쏜 뒤 “대북 방송은 선전 포고” 서한 보내

    北, 고사포·직사포 쏜 뒤 “대북 방송은 선전 포고” 서한 보내

    북한군이 20일 경기 연천 서부전선에서 포탄을 발사하고 48시간 내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단하라고 요구함에 따라 확전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군이 남한 지역에 고사포탄을 발사한 것은 지난해 10월 민간단체가 날린 대북 전단을 향해 고사포를 쏜 이후 10개월 만이다. 우리 군이 군사분계선(MDL)에서 북쪽 지역으로 포탄을 발사한 것은 1973년 2월 철원에서 북한군과의 교전 도중 박격포와 105㎜ 곡사포를 발사한 이후 42년 만이다. 군 당국은 이날 오후 3시 53분쯤 14.5㎜ 고사포로 추정되는 포탄 1발이 비무장지대(DMZ)를 넘어 연천군 중면 지역의 야산에 날아들자 대포병 레이더로 탄도 궤적을 포착하고 즉각 확인 작업에 착수했다. 오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장비 오류 등으로 인해 실제 존재하지 않는 포탄의 허상이 잡힌 것일 가능성을 확인하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확인 작업이 끝나기도 전인 오후 4시 12분쯤 북한은 MDL에서 남쪽으로 700m 떨어진 DMZ 남쪽 지역으로 76.2㎜ 직사화기로 추정되는 포탄 수발을 재차 발사했다. 군은 오후 5시 4분쯤 MDL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DMZ 북측 지역에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양측이 발사한 포탄은 모두 인원과 시설이 없는 지역에 떨어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1차 포격 이후 대응사격까지 1시간 11분이 걸린 이유에 대해 “첫 번째 포탄은 야산에 떨어져 확인이 되지 않았고, 두 번째는 소리만 들렸기에 현지 부대장이 부근 병사들을 대상으로 파악을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면서 “북한도, 우리도 피해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두 차례 포탄을 발사한 도발 원점이 모두 DMZ 안쪽인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는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2011년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군 당국은 북한군이 다시 도발할 경우 현장에서 즉각 도발 원점을 타격하겠다고 천명해 이 공언이 화려한 수사에 그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인명 피해가 생겼으면 방침대로 했겠지만 이번에는 북한군이 사람이 없는 곳을 포격해 인명 피해가 없었다”면서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 김양건 노동당 비서는 이날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대북 확성기 방송은 선전포고”라면서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북한의 서한 전달은 최근 북한의 지뢰 도발에 의한 상황 악화라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원칙에 따라 강력하게 조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 관계자도 “북한은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면서 “현재로서 대북 방송은 그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미군, ‘무인기 사냥꾼’ 스마트 포탄 실험 나서

    미군, ‘무인기 사냥꾼’ 스마트 포탄 실험 나서

    미군이 무인기를 상대하는데 특화된 스마트 포탄을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군 고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EAPS ID 라고 불리는 이 무기는 미 육군 피카티니 조병창(Picatinny Arsenal)에서 실험 발사를 거치고 있다. 이 무기체계는 50㎜ 포대를 사용해 스마트 요격 탄환을 발사한 뒤 복합 레이더 시스템을 통해 발사체를 목표 방향으로 유도하는 원리로 가동된다. 먼저 지상에 있는 레이더가 적 위치를 포착하면 포대가 해당 방위를 겨냥한다. 이후 포에서 탄환이 발사되면 컴퓨터가 레이저 빔 가이드를 통해 비행 방향을 지시하고, 탄환은 공중에서 항로를 바꿔가며 목표로 날아드는 방식이다. 현재까지 개발된 시제품은 ‘오비탈 ATK’(Orbital ATK)사가 제작한 기존 무기 ‘부시마스터 III’ 50㎜ 포에서 발사되도록 고안돼있다. 프로젝트 담당관 맨프레드 루치아노는 “방어 지역의 면적이 작을수록 미사일 체계보다는 포 체계를 활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며 “또한 포는 비교적 운송이 용이하다는 이점도 있다”고 이번 무기 체계의 유용성을 설명했다. 오비탈 ATK사나 미군 모두 해당 무기의 유효 사거리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무기 개발자들은 2011년 이뤄진 개발 브리핑에서 이 체계의 ‘전투공간’(battlespace, 적을 포착해 제압할 수 있는 공간)의 범위가 1마일(1.6㎞) 내외가 될 것이라고 밝혔던 바 있다. 외신들은 드론 기술이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급격히 발달 중이고, 미국에 대한 드론 공격 가능성이 시사되고 있는 만큼 미군으로서는 이에 대항할 수단의 마련이 중요 과제로 대두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루치아노 또한 대(對) 드론 무기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성능이나 용도는 모두 다르지만 현재 거의 모든 국가가 무인기를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어느새 드론이 모두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따라서 로켓·대포·박격포 방어체계(C-RAM)를 구축하는 것만큼이나 드론에 대항할 무기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사진=ⓒ미 육군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꼭 살아서 갈게요. 어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꼭 살아서 갈게요. 어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6·25 전쟁. 우리에겐 너무나 아픈 역사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을 시작으로 낙동강 방어, 서울 수복, 평양 탈환, 다시 1.4후퇴와 서울 수복으로 이어진 공방전은 한반도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사라지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 장병 전사자만 16만명. 여전히 유해조차 발굴하지 못한 전사자가 13만명에 달합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한 전사자 유해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군 8477명, UN군 13명, 북한군과 중공군 등 적군 1189명 등 9500여명에 불과합니다. 정전협정일(7월 27일)을 맞아 저마다 아픔을 간직한 그들의 사연을 되돌아 봤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을 가면 특이한 묘비가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이름없는 묘’라고 불리는 묘비인데요. 묘비에는 ‘육군소위 김○○의 묘’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름 부분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아예 새긴 흔적조차 없습니다. ‘김 소위’의 묘라니, 무명용사의 묘비를 직접 보면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는데요. 현충원에서 유일한 이름없는 묘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애틋한 사연이 있습니다. ●14년 만에 찾은 전우 故 김수영 소위 6·25 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선의 동쪽 지역인 안강지구의 도음산(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학천리)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기세가 오른 북한군 12사단은 이 지역을 돌파해 포항을 손에 넣으려 했고, 수도사단이 주축이 된 우리 군은 병력을 정비해 맹렬하게 반격했습니다. 당시 한 부대의 소대장이었던 황규만 소위는 이 치열한 전투의 중심에 있었죠. 전투로 녹초가 되다시피한 어느 날, 다른 부대의 소대장 김모 소위가 지원 병력으로 도착했습니다. 가뭄의 단비와 같았고, 장병들의 사기는 크게 올랐습니다. 두 사람과 소대 장병들은 힘을 합쳐 싸웠지만, 27일 안타깝게도 김 소위는 적의 총탄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정식으로 매장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황 소위는 김 소위의 주검을 능선 아래쪽 소나무 밑에 가매장한 뒤 돌로 표시하고 전투를 계속했습니다. 전투가 벌어진 지 14년이 지난 시점에 황 소위는 진급을 거듭해 어느새 대령이 돼있었습니다. 1군 사령부 비서실장이었던 그는 전우의 시신을 찾기 위해 직접 도음산으로 향했습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산속을 헤맨 끝에 다행히 유해는 찾았지만 전우의 이름을 알 길이 없었죠.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육군참모총장에게 청원한 끝에 1964년 5월 29일 국립묘지 제54묘역 1659호에 이름없는 전우의 유해를 안장하게 됩니다. 황규만씨는 준장까지 오른 뒤 1976년 예편했지만, 단 한시도 이름없는 전우의 묘비를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0년 11월 드디어 가족과 이름을 찾았습니다. 고(故) 김수영 소위. 비극적인 역사와 전우애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그의 묘비는 지금도 여전히 ‘육군소위 김○○의 묘’로 남아있습니다. 6·25 전쟁에 형제가 나란히 참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례도 있습니다. 전사한 지 60년 만에 만나 현충원에 묻힌 고 이만우 하사와 이천우 이등중사, 65년 만인 올해 나란히 묻힌 고 강영만 하사와 강영안 이등상사가 그들입니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이만우, 이천우 형제는 낙동강 전투가 한창이던 1950년 8월과 9월 차례로 자원입대했습니다. 형과 동생의 나이는 각각 21세와 18세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한창 공부에 매진하거나 한껏 젊음을 누릴 나이지만, 형이 먼저 입대한 뒤 홀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남매의 막내인 동생도 기꺼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뒤를 따랐습니다. ●홀어머니 만류도 뿌리치고 형과 함께 군으로 형은 1사단, 동생은 7사단 소속으로 두 사람 모두 서울 수복에 이어 북진 선봉에 서서 평양탈환작전에 참여하는 등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51년 5월 경기 고양지구 봉일천 전투에서 형이 먼저 전사한 데 이어 9월에는 동생도 강원 양구군의 백석산 탈환을 앞두고 무명 901고지 부근 능선에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들이 1년 남짓 참전기간 동안 군화를 신고 걸었던 거리는 3400km. 서울과 부산을 4번 가까이 왕복할 수 있는 거리를 두 형제는 싸우고, 또 싸우며 걸었습니다. 형은 1960년 5월 서울현충원에 몸을 누일 수 있었지만, 동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동생은 그렇게 강산이 여섯 번 바뀔 동안 쓸쓸히 차디찬 땅에 남겨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먼저 현충원에서 안식처를 찾은 형조차도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음에도 불구하고, 신원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가족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다음해 두 사람은 현충원에 나란히 묻혔고, 가족들도 소중한 유품을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호국형제의 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난 6월에는 강영만 하사와 동생 강영안 이등상사의 합동안장식이 열렸습니다. 두 번째 형제의 묘입니다. 강 하사는 중공군 공세가 한창이던 1951년 1월 자원입대해 횡성전투, 호남지구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8월 북한군 1만여명과 일주일 동안 치열한 고지전을 벌인 2차 노전평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했죠. 동생인 강영안 2등 상사는 6·25 전쟁 발발 전인 1949년 1월에 입대해 2사단 소속으로 옹진반도 전투, 경북 상주 화령장 전투,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역전의 용사였습니다. 1952년 10월 강원 철원군 김화읍 부근에서 벌어진 저격능선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고지를 빼앗으려는 중공군의 파상공세를 저지한 저격능선전투는 백마고지전투와 함께 6·25 전쟁 2대 격전으로 불리는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동생 강 이등상사의 유해는 전투 직후 수습돼 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있었지만 형의 유해는 찾지 못해 위패만 있었죠. 형제는 65년 만인 올해 현충원에서 유골로나마 서로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박격포탄 들고 육탄으로 백마고지 탈환에 나서다 서울 용산구의 전쟁기념관에 들어가면 1952년 10월 강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육탄 3용사상’이 있습니다. 9사단 30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장인 고 강승우 소위와 부하였던 오규봉·안영권 일병은 395고지(백마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적의 기관총 진지로 접근했습니다. 오규봉 일병이 먼저 대공포판을 등에 메고 돌격했고, 안 일병과 강 소위가 엄호사격을 했습니다. 강 소위는 직접 박격포탄과 TNT를 들고 기관총 진지 7m 지점까지 접근했고, 폭발물을 던지는 순간 총상을 입었지만 안 일병이 다시 주워 진지에 던져 넣었습니다. 이후 오 일병도 진지 안에 수류탄을 던졌고, 세 사람은 현장에서 산화했습니다. 9사단은 그들의 활약에 힘입어 고지를 탈환했죠. 이후 강 소위는 중위로, 오 일병과 안 일병은 각각 하사로 추서됐습니다. 강 중위와 안 하사는 고향과 모교에서 추모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됐지만, 직계 자손이 없었던 오 하사의 상황은 좀 달랐습니다. 국가 유공자 보상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변변한 추모비조차 없었죠. 뒤늦게 유일한 혈육인 동생으로부터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9사단 관계자와 전우회 등이 2013년 1월부터 모금활동을 벌이고 고향인 천안시에서 부지를 제공해 그 해 오 하사 추모비를 건립했습니다. 정규군조차 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영웅적인 전투를 벌인 학도병의 슬픈 사연도 많습니다. 특히 1950년 8월 포항여중 전투에서 산화한 학도병들의 이야기는 2010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수도사단 김석원 준장의 명성을 듣고 온 학도병 수백명 가운데 71명은 김 준장이 3사단으로 옮기자 함께 싸우겠다며 8월 8일 포항으로 왔습니다. 이들은 변변한 무장도 하지 못한 빈몸이었습니다. 3사단은 학도병 1명당 미 해병대에서 받은 M1 소총 1정과 실탄 250발을 지급했죠. 이들은 9일부터 사단 후방지휘소가 있는 포항여중에 집결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연락장교와 소규모 지원인력만 있었을 뿐 전투병은 모두 전방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당장 지휘소로 적군이 몰려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내용은 일부 각색돼 영화 ‘포화속으로’의 소재가 되기도 했죠. 일부 학도병은 소년원에 가기 싫어 끌려온 것으로 설정돼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비록 군번은 없었지만 모두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스스로 찾아온 이들이었죠.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학도병들의 비극 비극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11일 새벽 4시 30분부터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고, 진격해오는 북한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적이 학교 앞 50m 지점까지 다가오자 학도병들의 사격이 시작됐습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20여명을 잃은 북한군은 해가 뜨자 전열을 정비해 공격했고, 학도병들의 항복을 종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복을 거부하고 실탄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무기 창고를 부순 뒤 수류탄 약간과 실탄을 다시 확보해 물러서지 않고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러자 북한군은 장갑차 5대를 동원해 전진했고, 그 중 2대가 학교 정문으로 돌입하며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실탄이 떨어진 학도병들은 적이 눈 앞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려 수류탄을 던지며 분전했지만 결국 48명이 전사했습니다. 6명은 부상당했고 4명이 실종, 13명은 포로가 됐습니다. 포로가 된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탈출했지만 2명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3사단 지휘부와 포항 시민들은 학도병들이 전투를 벌이는 사이 무사히 남쪽으로 대피했고, 14일 전열을 재정비한 1군단이 다시 포항을 탈환하게 됩니다. 전사한 서울 동성중 3학년 이우근 대원의 옷속 수첩에서는 영화에서처럼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발견됐습니다. 절절한 내용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아래는 편지 내용입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어제 내복을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왜 수의(壽衣)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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