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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플러스]

    ●현대음악앙상블 ‘CMEK’가 14일 오후 7시30분 금호아트홀에서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을 갖는다.가야금 연주자 이지영을 비롯해 김정승(대금),김우재(기타),김웅식(국악 타악기),박정민(첼로),박치완(피리),이규봉(서양 타악기),이향희(생황),임명진(클라리넷) 등 9명으로 구성됐다.옛 악보인 ‘대악후보’ 중 ‘희문’을 바탕으로 김대성이 편곡한 ‘희문’,살풀이를 표현한 정일련의 ‘시나위 Ⅲ’,가곡 ‘우조 이수대엽’의 운에서 따온 스테파노 벨론의 ‘원 스레드’ 등을 연주한다.1만원.(02)6242-0298. ●첼리스트 양성원이 22일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 M 시어터에서 크리스마스 연주회를 갖는다.‘징글벨’,‘고요한밤 거룩한밤’ 같은 캐럴과 바흐,모리코네,피아졸라를 선사한다.클라리네티스트 로망 귀요와 피아니스트 야마구치 히로아키도 나온다.2만~4만원.(02)2187-6221.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한국어 공연(2010년 8월 LG아트센터)에 출연할 주인공 빌리를 찾는다.기획사 매지스텔라와 신시뮤지컬컴퍼니는 8일부터 내년 1월22일까지 오디션 서류를 받아 1~2차 오디션에서 10명으로 압축한다.지원 자격은 9~12세의 키 150㎝ 이하 소년이다.(02)3446-9630. ●서울예술단은 19일 오후 7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리는 가족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롤’의 최종 리허설에 중증 장애인들을 초대한다.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각색한 이 작품은 매년 장애인 등이 출연해 소외계층과 함께 해왔다.관람을 희망하는 장애인이나 관련 단체는 사회복지포털(www.bokji.net)에서 신청할 수 있다.(02)2077-3982.
  • 조영창 교수와 11명의 제자들 ‘12첼리스트 콘서트’

    조영창 교수와 11명의 제자들 ‘12첼리스트 콘서트’

    지난 26일 연세대 음대의 연습실.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첼로 음율이 묵직하면서도 경쾌하다.11명의 젊은 첼리스트 사이에서 날렵하게 활을 움직이는 은발의 연주자가 우리나라 최고의 첼리스트로 평가받는 조영창(50)이다. 연습실 풍경은 더없이 자유롭다. 연습하는 내내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여기는 피아노로 돼 있는데 메조피아노로 가는 건 어떨까요.” “아,그렇게도 할 수 있겠네.” 조영창은 독일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 교수이고 젊은이들은 그의 제자들. 함께 음악을 하는 동지적 유대감이 강하게 풍겨온다.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과 3년만에 공연을 하게 된 때문일까. 조영창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오케스트라 협연, 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등 줄줄이 이어진 연주회에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와 연세대 강의 등 일정이 빼곡한데도 지친 기색이 없다.오히려 활기가 넘친다고나 할까.  그는 “국내에서는 처음 제자들과 함께하는 공연인 데다,공연 자체의 의미도 깊어 힘이 솟는다.”고 운을 뗐다.  “올림픽,월드컵 같은 스포츠 행사와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이지만 음악의 울림은 그것보다 더 크다.”는 그는 “늘 음악으로써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해왔는데,이런 좋은 기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세계 에이즈의 날(12월1일)을 즈음해 에이즈 예방을 위한 후원 콘서트로 마련한 ‘12 첼리스트 콘서트’에 대한 설명이다. 공연은 29일 대전 우송예술회관, 새달 1일 고양 아람누리,2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으로 이어진다.  이 콘서트를 위해 핀란드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인 토마스 일리넨,독일 국립청소년오케스트라의 세바스찬 헤네만,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예술학교 교수 드라간 조르데비치 등 쟁쟁한 그의 제자들이 연주회 일정을 취소하고 날아왔다.연세대에 출강하는 최정은,함부르크 레조난즈앙상블 수석첼리스트 박새롬,도르켄 스티프퉁 장학생 심준호 등 한국인 제자 3명도 합류했다.  공연에서는 베르디의 ‘아베마리아’,피아졸라의 ‘천사 연작’,지미 핸드릭스의 ‘블루 헤이즈’,카이저 린데만의 ‘보사노바의 12명’ 등을 선사한다.조영창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12 첼리스트는 특화된 앙상블이라면,우리에게는 함께 가르치고 배웠다는 공통분모와 자유로움이 있다.”며 크게 웃어 보이고는 “귀에 익숙하고 편안한 멜로디로 편곡해 청중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꾸몄다.”고 소개했다.  조영창을 얘기할 때 그의 누나인 피아니스트 조영방,바이올리니스트 조영미로 구성된 ‘조트리오’를 빼놓을 수 없다.“늘 만나면 함께 공연을 하자고 하는데 워낙 바빠서 한 데 모이가 쉽지 않아요.우선은 베토벤 음악으로 구성한 트리오 음반을 생각하고 있죠.”  그는 공연이 끝난 다음날인 새달 3일 안익태 기념 연주회에서 협연하는 데 이어 바흐 앨범 녹음 작업에도 들어갈 계획을 세우는 등 끊임없는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오바마의 미국-지구촌 반응] 동구권 “유대 강화”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은 버락 오바마 당선인의 백악관 입성을 한껏 축하했다. 차기 미 정부와의 우호 관계 증진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6일(이하 현지시간) 이타르타스 통신에 따르면 옛 소련 독립국가들은 대부분 이날까지 오바마 당선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세계 안정 확보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라르바예프 대통령은 “카자흐가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직후 양국은 핵무기 철폐 및 핵 비확산 부문에서 협력하기 시작했다.”면서 “양국 관계는 새로운 전략적 동반관계로 발전했고, 중앙아시아 지역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유럽연합(EU)으로부터 금융제재를 받고 있는 벨로루시도 축하 대열에 동참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은 오바마 당선인에게 축하 전문을 보냈다. 안드레이 포포프 외무장관은 “우리가 미국민의 선택을 존중한 것처럼 미국 역시 벨로루시 선거 결과를 존중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도 미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 탄생을 축하했다. 키르기스스탄측은 오바마 정권이 세계가 직면한 위협과 도전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타지키스탄의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은 축하 전문에서 미국과 능동적 관계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보로닌 몰도바 대통령도 “오바마의 승리는 개혁과 진보, 복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양국간의 민족 갈등지인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에서 미국이 기여해 달라고 강조했다. 그루지야는 부시 대통령의 ‘충견’으로 불려온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 대신 그레고리 바라미드제 부총리가 인사를 대신했다. 그는 “오바마 당선인이 그루지야 영토 통합에 지지를 표명한 데 대해 감사한다.”고 밝혔다. 반면 러시아는 미국의 미사일방어기지(MD) 계속 추진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바마 당선 직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오바마가 미국의 동유럽 MD 계획을 지속하면 우리는 폴란드 근처에 단거리 미사일 기지를 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메드베데프 정부는 지난 8월 그루지야 전쟁 이후 미국과의 신냉전 체제 탐색전에 들어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200억원 넘는 희귀 블루 다이아몬드 경매

    다이아몬드 중 희귀한 컬러로 높은 가치를 띄는 블루 다이아몬드가 경매에 나올 예정이어서 수집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상의 다이아몬드로 여겨지는 이 블루 다이아몬드는 스페인의 왕 필립 4세(Philip IV)가 열세 살 난 자신의 딸 마가리타의 혼수용품으로 선물했던 것이다. 마가리타 공주가 21세의 어린나이에 요절한 뒤 이 다이아몬드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결국 독일 바이에른 비텔스바흐(Wittelsbach)가문의 소유가 됐다. 전문가들은 총 35.56캐럿에 달하는 이 블루 다이아몬드가 최소 1000만 파운드(약 207억 4900만원)이상에 팔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예술품 경매 전문업체인 크리스티즈(Christies)의 한 관계자는 “이와 비교할 만한 다이아몬드는 없다.”며 “블루 다이아몬드는 매우 희귀한 보석이다. 이 다이아몬드의 품질과 사이즈, 모양 면에서도 다른 보석과는 월등히 다른 매력과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 5월 비텔스바흐 가문의 13.39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경매에 나와 550만 파운드에 팔렸다.”며 이를 보아 이번에는 최소 1000만 파운드가 넘는 가격에 팔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매는 오는 12월 10일 런던에서 열리며 경매가 완료된 후에는 일반 관객을 위한 전시도 예정돼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새달 2일 유니세프 희망 콘서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와 호암아트홀, 크레디아가 공동개최하는 ‘2008 유니세프 희망콘서트’가 새달 2일 오후 5시 호암아트홀에서 열린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실내악단 ‘씨엘로스 앙상블’ 등이 출연해 바흐의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등을 연주한다. 수익금은 아프리카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사업지원비로 쓰인다.(02)751-9607
  • 손 따뜻하면 ‘첫인상 호감도’ 올라간다

    손 따뜻하면 ‘첫인상 호감도’ 올라간다

    처음만난 자리에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선 상대에게 차가운 커피 보다는 따뜻한 커피를 권하는 편이 더 좋을 듯하다. 미국 예일대학교 연구진들은 최근 ‘사이언스’ 최신호에 “첫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사람의 신체 컨디션”이라며 “특히 손 온도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면 좋은 인상을, 차갑게 만들면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고 발표했다. 연구를 주도한 존 바흐 예일대 교수는 “똑같은 사람을 두고 한 팀에게는 따뜻한 커피를 손에 들게 하고, 또 다른 팀에게는 차가운 커피를 들게 한 후 첫인상을 평가하게 하는 총 41가지의 실험을 했다.”고 밝혔다. 놀랍게도 따뜻한 커피로 손을 데운 사람들은 똑같은 사람을 향해 “성실해 보이고 관대해 보인다.”고 답변한 반면 차가운 커피를 들어 손이 차가웠던 사람들은 대체로 “이기적이고 예민해 보인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연구진들은 이어진 실험에서 실험 대상을 각각 반으로 나눠 각각 치료용 핫 패드와 아이스 패드를 손에 들게 한 후 친구에 대한 배려를 알아봤다. 그 결과 핫 패드를 들었던 쪽은 자신 보다 친구에게 양보한 반면 아이스 패드로 손이 차갑게 식은 사람들은 자신을 선택하는 이기심을 드러냈다. 사진=ABC뉴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탄생 100주년 ‘메시앙’ 재탄생

    탄생 100주년 ‘메시앙’ 재탄생

    “나는 메시앙의 작품이 지닌 간결함과 자연미에 반했다. 기술적으로 복잡하고 어렵지만 이 모든 것들은 단 한가지의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그것은 가슴 속으로부터 우러난 가장 진실한 메시지인 사랑과 헌신, 그리고 신앙이다.” 지휘자 정명훈은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의 음악을 이렇게 정의했다. 진은숙(47)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작곡가가 탄생 100주년을 맞은 메시앙의 음악세계를 되살린다. 그가 기획한 ‘메시앙 탄생 100주년 기념 콘서트’가 25일(세종체임버홀)과 30일(고양아람누리 음악당) 각각 관현악과 실내악 연주회로 달리 선보인다. 공연 40분 전에는 공연에 대한 해설 강연도 진행된다. 프랑스 출신 메시앙은 ‘성자‘라 불릴 정도로 바흐 이후 신앙을 음악에 가장 깊숙하게 찔러 넣은 작곡가. 그런 만큼 그의 음악에는 종교적 신비주의와 관념적 사유가 흘러 넘친다. 진은숙은 이번 연주회에서 메시앙의 작품을 중심으로 그와 음악적 행보를 같이 한 선후배격 음악인들의 곡도 함께 진열한다. 모리스 라벨, 알렉산드르 스크라빈을 비롯해 그의 제자인 피에르 불레즈,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죄르지 쿠르탁 등의 음악세계가 펼쳐진다. 메시앙의 음악적 후계자인 베른트 알로이스 침머만과 크리스토프 베르트랑, 한국 작곡가 홍성지의 곡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중 메시앙의 ‘독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7개의 하이카이’는 한국에서 초연되는 작품. 홍성지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프리즈마틱’은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관현악 연주회는 프랑스 지휘자 파스칼 로페가, 실내악 연주회는 독일의 현대음악 전문지휘자인 롤란트 클루티히가 지휘한다.25일~29일 세종문화회관 야외공원에서는 프랑스 디지털 아티스트인 위고 베를랭드의 설치미술과 메시앙의 음악이 어우러진다. 1만~5만원.(02)3700-6300.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돌아온 건반위의 음유시인 페라이어, 30일 내한 공연

    돌아온 건반위의 음유시인 페라이어, 30일 내한 공연

    18년 전이다.40대 중반,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피아니스트는 악보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베였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상처는 덧나 염증으로 번졌다. 염증은 손가락뼈에 변형을 일으켰다. 하지만 1991년,2006년 두 번의 대수술을 거친 피아니스트는 천둥 같은 힘과 스피드로 재기에 성공했다. ‘건반 위의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미국의 피아니스트 머리 페라이어(61)의 인생 드라마다.2004년 내한공연이 예정됐지만 손가락 염증 재발로 오지 못했던 그가 30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페라이어는 이번 리사이틀에서 긴 치료기간 큰 위안을 받았던 바흐의 파르티타 1번을 통해 더 깊어진 음색을 선보인다. 또 모차르트 소나타 K.332, 베토벤의 소나타 23번 열정, 쇼팽의 발라드 3·4번과 12 에튀드 등 바로크에서 낭만주의에 이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연주할 예정이다. 현재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의 상임 객원 지휘자로 활동 중인 페라이어는 최근 독일의 권위있는 악보출판사인 ‘헨레’ 원전 악보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편집하는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다. 4만∼12만원.(02)318-4301.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씨줄날줄] 브런치 콘서트/노주석 논설위원

    도쿄에서 신간선을 타면 1시간30분 거리인 일본 동북지역 최대 도시 센다이 근교에 세계 최고수준의 음향시설을 갖춘 전문 콘서트홀이 있다. 바흐홀이다.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대개 서너차례 놀란다고 한다. 유명 오케스트라가 녹음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세계적인 홀이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평범한 외관속에 최고의 음향시설이 갖춰진 것을 보고 또 놀란다. 주민들의 문화적 자부심은 ‘감동 그 자체’라고 입을 모은다. 세계 각국에서 마니아들이 찾아오지만 이 홀을 꽉꽉 채우는 청중 대부분은 지역주민이기 때문이다. 센다이 바흐홀은 지역고유문화를 창조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한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서울 강남구가 클래식이 흐르는 여유로운 도시로 거듭나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국내 최초의 구립 교향악단이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연주력을 자부하는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십분 활용, 매월 첫째주 목요일 하루 구민들을 위한 ‘브런치콘서트’를 열고 있다.‘음악이 구민의 영혼을 살찌울 것’이라고 믿는 맹정주 구청장의 열렬한 음악사랑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청중의 90% 이상이 전업주부들이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한국주부의 특성을 고려해 오전으로 시간을 앞당겼다고 한다. 오전시간대에 열리는 클래식 음악회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제5회 브런치콘서트’가 열린 2일 강남구 신사동 장천아트홀은 480여명의 구민들이 객석을 메웠다. 콘서트의 주제는 가을이었다. 비발디의 사계중 가을 1,3악장과 드보르자크의 슬라브무곡 제8번, 쇼스타코비치의 재즈모음곡 제2번 중 왈츠,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베토벤 심포니 6번 전원교향곡 등이 연주됐다. 피아니스트 박은희씨가 마치 그림을 그리듯 핵심만 콕콕 찍는 해설을 들려줬다. 이 콘서트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어렵기만 한 클래식을 전문가가 쉽게 설명해주는 ‘해설이 있는 콘서트’라는 점이 주효한 것 같다. 입장료 1만원을 내고 일찍 가면 로열석에 앉을 수 있고,1층 카페에서 2000원짜리 토스트와 1000원짜리 아메리카노 커피를 즐기는 것은 본인의 선택사양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광주비엔날레 성공 예감

    개막 20일을 맞은 ‘2008광주비엔날레’에 국내·외 주요 인사와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25일 광주비엔날레에 따르면 현재 외국인 2000여명을 비롯, 모두 6만 7000여명이 행사장을 찾아 ‘현대미술의 흐름’을 만끽했다. 광주비엔날레의 축적된 ‘노하우’를 배우고 연구하기 위해 행사장을 찾는 해외 유명 인사들도 몰려 들면서 높아진 위상도 실감케 하고 있다. 최근 일본 고베비엔날레 요시다 히로미 조직위원장 일행,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조세 테이 매니저, 배리 모왓 밴쿠버비엔날레 이사장 등이 비엔날레를 방문했다. 또 영국 케임브리지대 크리스천 모그너 등 연구진과 독일 쿤스트 아트 포럼,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클라우스 비센바흐 수석 큐레이터 등 해외 미술계와 언론계 인사들도 잇따라 행사장을 찾았다. 전국 중등미술교사 300여명은 최근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워크숍을 갖고 전시관을 둘러 보는 등 단체관람객도 줄을 잇고 있다. 홍지영 홍보부장은 “다음 달 예약이 확정된 단체 관람객은 7만여명에 이른다.”며 “광주비엔날레의 열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내·외 미술학도들의 교육의 장인 2008 광주비엔날레 글로벌 인스티튜트 세션2가 24∼27일 전남대학교 예술대 2호관에서 열리고 있다. 세계미술계의 담론을 생산하는 글로벌 인스티튜트에는 오쿠이 엔위저 예술총감독 등 15명의 패널과 전남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국 왕립미술학교,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인스티튜트, 이스라엘대학 등 48명의 대학생이 참여한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할리우드 스타들은 무슨 차를 탈까?

    할리우드 스타들은 무슨 차를 탈까?

    자동차는 자신의 부와 경제적, 사회적 위치를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다. 한해 수백억원을 벌어들이며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는 할리우드의 톱스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자동차 수집광’이 아니라고 해도 몇 대씩의 자동차를 보유하기도 하고. 넓은 주차장에 자신이 보유한 ‘애마’를 진열하고 끊임없이 보살피며 애착과 애정을 과시한다. 할리우드의 수많은 별들. 그들은 어떤 ‘슈퍼카’를 자신의 ‘애마’로 보유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꿈의 슈퍼카를 보유한 스타들 영화 ‘미션 임파서블 3’ 시사회에 멋진 슈퍼카를 타고 등장한 톰 크루즈가 운전석 옆 좌석에 앉은 아내 케이티 홈즈를 차에서 내리게 하기 위해 자동차의 문을 열려고 시도했지만 문을 열지 못해 끙끙 대는 장면이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공개되며 화제가 됐었다. ‘톰 크루즈의 굴욕’이라는 부제가 붙기도 했던 이 동영상에서 톰 크루즈가 몰았던 슈퍼카가 바로 130만달러(약13억원)를 훌쩍 넘는 초고가 스포츠카인 부가티 베이론이다. 도로에서 합법적으로 주행할 수 있는 자동차 중 가장 강력하고 고가인 차로 꼽히는 부가티 베이론은 최고시속 407㎞까지 달릴 수 있는 ‘드림카’로 알려져 있다. 차를 좋아하는 할리우드 스타들 중에서도 소문난 ‘자동차광’으로 꼽히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슈퍼카는 엔초 페라리다. 스포츠카 마니아인 그는 페라리 360 모데나. 550 마라넬로 등을 탔는데 페라리 창업주인 앤초에게 헌정하기 위해 399대 한정판으로 만들어진 앤초 페라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한다. 최고시속 350㎞에 차량가격은 미국판매가로 64만달러(약 6억 40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용성이 최고 멋진 스포츠카나 슈퍼카는 아닐지라도 할리우드 스타들로부터 유독 사랑받는 차가 있다. 차량의 크기와 파워면에서는 최고점을 받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더가 그 주인공이다. 탄탄한 차체와 육중한 체구를 자랑해 보안과 안정성을 중시하는 ‘실용파’ 스타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벤츠 SLR 멕라렌. 람보르기니 등 많은 스포츠카를 보유하고 있는 패리스 힐턴이 음주와 난폭운전을 한 혐의로 철창신세를 질 때 교도소에 타고 갔던 차량이 바로 이 차다. 힐턴 외에 톱스타 저스틴 팀버레이크. 아널드 슈워제네거. 파멜라 앤더슨 등의 애마로 알려져 있다. 배우들 중에서도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애마’는 일본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승용차 프리우스다. 하이브리드차라는 컨셉트에 걸맞게 할리우드 친환경주의자들의 애마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코미디 영화 ‘굿 럭 척’에서 제시카 알바가 타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이 차를 소유한 스타는 줄리아 로버츠. 브래드피트. 카메론 디아즈 등이다. ◆뭐니해도 럭셔리카 전통적인 럭셔리카를 선호하는 스타들도 있다. 럭셔리함을 추구하는 여성스타들의 선호도가 높다. ‘슈퍼스타’ 마돈나는 국내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과 ‘욘사마’ 배용준의 차로 유명한 마이바흐를 탄다. 섹시스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제니퍼 로페즈는 영국의 대표적 명차 롤스로이스 팬텀을 ‘애마’로 소유하고 있다. 전설적인 슈퍼모델 신디 크로포드는 대표적인 명차브랜드 벤틀리의 콘티넨탈 GT모델을 탄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 김상호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축구외교’ 화해의 씨앗으로] ‘100년 반목’ 터키-아르메니아 해빙무드

    100년 가까이 해묵은 터키와 아르메니아의 갈등이 축구 외교로 해빙무드를 타고 있다. 세르즈 사르키샨 아르메니아 대통령은 6일 예레반에서 열리는 두 나라의 2010년 월드컵 예선전에 압둘라 귈 터키 대통령을 초청했다. 귈 대통령이 수락하면서 외교관계 재개 움직임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고 AFP통신이 4일 전했다. 터키 대통령실은 웹사이트에서 “귈 대통령의 방문이 새로운 우호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면서 “이번 축구 경기는 공동의 역사를 지닌 두 민족을 가로막아온 장애물을 제거하고 새로운 역사적 기초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귈 대통령은 아르메니아를 방문하는 터키의 첫 국가 원수가 된다. 두 나라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의 전신인 오토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로 갈등을 겪어 왔다. 터키는 1991년 아르메니아가 옛소련에서 독립한 뒤에도 외교관계 수립을 거부했다. 아르메니아는 1993년 터키의 이슬람 동맹국인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점령하면서 두 나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두 나라는 지난 7월 스위스 베른에서 외교관계 재개를 위한 비밀협상을 벌이면서 화해 분위기가 감지됐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두려움 없는 시민만이 민주주의 실현”

    “윤이상씨가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게 했던 일은 없어야 했습니다.” 세계헌법재판소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유타 림바흐(74·여) 독일 전 연방 헌재소장은 2일 기자회견에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시민만이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며 국가보안법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윤이상씨 같은 경우 더이상 없어야”림바흐 전 소장은 한국 사회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분단 경험을 갖고 있는 독일도 (국가보안법과 비슷한)국가안전법이 있었다.”고 소개하면서 “국가 보호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지만 민주주의가 충분히 안정돼 있다면 이를 제한하는 법률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작곡가 고(故) 윤이상씨를 예로 들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척도는 결국 민주주의의 성숙도인데 한국의 민주주의도 안정됐다고 본다. 윤씨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던 일이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9·11 사태 이후 독일에서 테러방지 명목으로 도입된 데이터보호법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이 법은 도청·감청을 가능하게 하고 일정 기간 통화기록을 보관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림바흐 전 소장은 “감청을 통해 국민들의 통화 내용을 정부가 알게 되면 민주주의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서 “집단 안전과 기본권 문제가 충돌했는데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고 설명했다.●“폭력 없다면 집회의 자유 보장해야”촛불집회와 법질서 준수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림바흐 전 소장은 “독일은 1968년 학생운동을 거치며 시위문화가 많이 정착됐다. 최근에는 과거 시절의 잘못을 부정하는 신나치주의자들의 시위를 허용하지 말자는 의견이 나오는 등 논란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연방 헌재는 폭력이 없다면 신나치주의 집회도 보장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답했다. 통독 당시 베를린주 법무부장관이었던 그는 “통일 비용이나 적용가능한 법, 통화 등 예측가능한 문제에 대해 충분히 대비해야 할 것”이라며 통일에 대한 조언도 곁들였다. 림바흐 전 소장은 헌재의 독립성도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이 임명한다면 자신의 이익을 지지할 사람을 뽑아서는 안 되며 공정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뽑느냐보다는 어떻게 독립적인 법관을 만들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와 법원은 독립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방 헌재가 베를린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소도시에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교수 출신으로 1994년 여성 최초로 독일 연방헌재소장을 맡았던 림바흐 전 소장은 이번이 네 번째 방한일 정도로 한국과 인연이 깊다.2002년 정년 퇴임한 뒤 독일문화원 회장으로 일했던 그는 1989년 강연을 위해 한국을 처음 찾았고,1998년 헌재창립 10주년 기념으로,2004년 독일문화원 회장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같은해 6월에는 평양을 방문해 독일문화원을 설립하기도 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정치적 독립·중립성 더욱 굳건히”

    “정치적 독립·중립성 더욱 굳건히”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더욱 굳건히 지켜나가겠다.” 헌법재판소(소장 이강국)가 1일 창립 20주년을 맞아 서울 재동 청사 대강당에서 기념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김형오 국회의장, 이용훈 대법원장, 김경한 법무부장관, 이진강 대한변호사협회장, 임채진 검찰총장 등 입법·사법·행정부 및 법조계 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소장은 기념사에서 “20년 전 헌재 창립은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면서 “하지만 이제 헌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명실상부한 헌법 수호자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 대립과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문제들이 헌재로 집중되고 있어 사명과 책임이 더욱 무거워졌다.”면서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더욱 굳건히 지켜나가는 한편, 선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활짝 꽃피우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축사에서 “헌재는 헌법의 올바른 해석을 통해 갈등과 균열을 대통합과 화합의 물줄기로 돌려놓아야 한다.”면서 “헌법정신을 중심으로 우리 모두가 국민적 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소임을 다해 달라.”고 주문했다. 헌재는 이날부터 4일까지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세계헌법재판소장회의를 연다. 세계 30개국 헌법재판소장 등 헌법 권위자 100여명이 참석한다. 유타 림바흐 독일 전 헌재소장과 니컬러스 필립스 영국 대법원장 내정자, 마리아 에밀리아 스페인 헌재소장, 이소 이마이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관, 다이엔 우드 미국 연방항소법원 판사 등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하편)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하편)

    ■몽골에서 우리의 옛 모습을 보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오고바흐타의 진단은 몽골에 체류하는 동안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몽골 입성 4일째 되는 날,의료봉사를 마친 일행은 초원으로 야유를 나섰다.말이 야유지 그것은 또다른 고행의 체험이었다.워낙 햇볕이 따가워 일행들은 함부로 초원에 나서기를 꺼려했다.그냥 차안에서 너른 초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투였다.그래도 몽골이라는 나라가 그리 쉽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필자는 작심하고 시원한 차량을 나섰다.더운 바람이 턱 하고 숨길을 막았고,발바닥에 밟히는 초원의 감촉은 뜨겁고 푹신했다.뜨거움은 태양에 달궈진 대지의 체온이고,푹신한 것은 빠삭하게 마른 모래흙이 밟히는 감촉이었다.걸음을 뗄 때마다 풀풀 먼지가 일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몽골과 역사·문화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흔적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어워’였다.초원을 가로 질러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이어진 길(나중에 지도를 보고 그 길이 러시아령 바이칼 호수 쪽으로 이어지는 간선 국도임을 알았다.)을 따라가자니 길가에 익숙한 돌무더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바로 어워였다.우리 식으로 보자면 성황당이다.모양도 성황당과 너무 닮았다.몽골인들은 길을 오가다 어워를 만나면 돌을 세개 쌓거나 주위를 세번 돈 뒤 기원을 하고 지나간다.의례까지도 우리의 성황당 의식과 너무 비슷해 놀랐다.요즘엔 차량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예전처럼 돌이 많이 쌓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몽골에는 토템이나 샤먼적 요소가 우리보다 훨씬 많이 남아 있다.예컨대 차량 운전자도 아워 앞을 지나칠 때면 경적을 세번 울리거나 아예 차로 아워 주변을 세번 돌고 지나가는 식이다.우리에게 익숙한 ‘삼세번 문화’와 흡사한 의식의 발현이다. 우리와 다른 점도 있었다.종교든 생활 관습이든 주어진 환경 조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의 원형 이탈은 불가피한 것이다.우리의 경우 큰 나무에 영성(靈性)이 깃들었다고 보고 그걸 성황당으로 삼는 데 비해 그들은 그냥 평지에 돌무더기를 쌓아 어워로 삼았다.삼림지대가 아닌 망망대해 같은 초원지대에는 나무가 거의 없어 우리처럼 노거수를 토템의 대상으로 삼기가 쉽지 않은 탓일 것이다.이 때문에 우리는 나무 등걸에 색색의 천을 걸거나 금줄과 유사한 기능의 새끼줄을 걸쳐 공간의 신성성을 표시하는데 몽골에서는 돌무더기 가운데 통나무를 박아 장소성을 나타냈다.그들은 이 나무에 예외없이 파란 천을 친친 두른다.물론 다른 색의 천도 걸려있지만 주종은 파란색 천이다. 파란 색 천은 옛적부터 몽골인들이 외경의 대상으로 삼았던 하늘을 뜻한다.그러고 보니 우리가 탄 버스의 운전석 위에도 씨름 샅바처럼 만 파란 천이 가로로 걸쳐져 있다.이런 습속은 일반인의 생활에도 깊숙히 자리잡아 게르나 현대식 주택엘 들어서도 거의 예외없이 출입문 위에 가로로 걸쳐 놓은 파란 천을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이 하늘을 외경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충분히 이해됐다.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태양이 터를 잡은 곳이 하늘이고,철궁으로도 뚫지 못하고,천마를 달려도 다다를 수 없으니 어찌 그들이 하늘을 경외하지 않았겠는가.비록 지상에서는 동과 서,남과 북 천하에 대적할 사람이 없는 대제국을 일궜을지라도 하늘 만큼은 그들의 발아래 꿇릴 수 없었을테니…. 그들이 하늘을 외경의 대상으로 삼은 흔적은 까마귀를 신성시하는 것에서도 확인됐다.그들도 우리처럼 까마귀를 ‘태양의 사자’라고 믿는다.그래서 사냥에 나설 때도 까마귀는 건드리지 않는다.만약 누군가가 까마귀를 해쳤다면 전쟁터로 가는 길이든,결혼식장으로 가는 길이든 모두 포기하고 돌아온다고 한다.까마귀의 영성을 대하는 이들의 시각은 이 정도다. 이런 의식은 우리와도 닮았다.지금이야 까치는 길조이고,까마귀를 그냥 기분 나쁜 새로 여기지만 이는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 이입된 서구적 의식의 영향 탓일 뿐 예전 우리 조상들은 까마귀를 영물(靈物)로 여겼다.몽골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도 까마귀를 ‘하늘의 사자’라고 여겼으며,이는 우리 신화 속에 깃든 삼족오(三足烏)의 전설이 입증해 준다.혹 어렸을 적에 할머니로부터 이런 얘기 들을 기억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아,글씨 이 망할 구미호(여우)가 어찌나 신통방통한 둔갑술을 가졌는지 도저히 어찌 해볼 요량이 없는게야.그래 그 사람이 이젠 죽었구나 하고 아예 땅바닥에 다릴 풀고 퍼질러 앉았지.그러고는 조상께 하직인사를 올렸지 뭐야.‘인자 죽게 돼 조상님들께 제사도 못 올리게 되었다고….’그랬더니 눈앞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게야.‘이 눔아,게서 죽으면 못써.얼렁 내가 일러준 주문을 외워봐.그러면 삼족오허고 삼족구가 와서 널 구해줄게다.’ 그래 정신이 퍼뜩 든 이 사람이 그대로 주문을 외았드니 금시 삼족오허고 삼족구가 와서 그 구미홀 쫓아내는거야.” 여기서 삼족오는 다리가 셋인 바로 그 까마귀이고,삼족구는 다리가 셋인 개를 말한다.이처럼 우리 의식 속에서는 둘 다 잡귀를 물리치고 주인을 지켜주는 신성한 영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삼족오를 일본이 잽싸게 건져내 자국의 축구 국가대표팀 문장으로 만들었다.사실 우리 축구대표팀의 문장에 넣은 호랑이는 애당초 우리 의식 속에 늘 있었던 것이어서 놀랄 일이 아니었으나 일본이 삼족오를 내미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 때 내 속으로는 “저들이 언제 우리 할머니 이바구까지 훔쳐 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아까웠었다.생각은 그렇더라도 까마귀에 대한 이런 의식이 동양문화의 중추를 관통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이로써 대륙의 문명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음을 확인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다른 문화의 유사성은 씨름에도 있었다.아워도 그렇지만 씨름도 우리 민족이 중국의 한족과 전혀 다른 문화적 혈통을 가졌음을 확인시키는 결정적 근거가 아닐까.씨름의 민속 벨트가 몽골-러시아 극동지역-한국-일본으로 이어져 중국이 배제되고 있다.인류문화사적으로도 중국은 우리와 전혀 다른 언어 및 인종적 경로를 갖고 있다. 몽골에서 ‘부흐’라고 부르는 씨름은 샅바를 이용하는 우리의 것과 형식적으로는 약간 차이가 있다.그러나 두 사내가 서로 맞붙어 힘과 기술을 겨룬다는 점에서는 똑같다.승패를 가르는 방식,즉 넘어뜨리면 이기는 승패 규칙도 매우 흡사하다.해마다 7월 11∼13일에 몽골 최대의 나담축제가 열리는데,이 축제의 3대 행사가 바로 부흐와 말타기,마상 활쏘기이다.여기에서 그들에게 부흐가 생활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몽골 역사상 올림픽 첫 금메달리스트가 된 유도의 투브신바야르 나이단도 원래는 부흐 선수였다.현지에서 듣기로는,그가 부흐를 배우다가 ‘세상이 바뀌어 이제는 부흐로 먹고 살기 어려우니 유도를 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유도선수가 되었단다.하기야 유도나 씨름이나 근본적인 역동의 원리는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는다. 몽골 체류 중 일행은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가장 큰 곳 중 하나라는 재래시장을 찾았다.소액(50토그르기)이지만 입장료도 내야 했다.뙤약볕 아래 제법 널찍하게 펼쳐진 재래시장은 예의 인파로 북적였다.갖가지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보도를 점령한 것도 우리에겐 익숙한 광경이었다.특히 냉차를 파는 노점은 옛날의 우리 모습을 다시 보는 듯 했다.온갖 잡화가 진열된 그곳은 생각과 달리 잘 정리되어 있었고,풍성했고,사람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이 시장은 울란바토르에서도 중산층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또다른 익숙한 광경도 눈에 띄었다.식료품 가게에는 감자와 마늘,양파가 즐비했다.현지 안내원에게 물으니 몽골인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식품들이라고 했다.우리와 다른 점은 어물전이 없다는 거였다.하기야 고비사막을 깔고 앉은 내륙도시 울란바토르에 신선한 생선이 있을리 만무했다.일행중 누군가가 우스개소릴 던졌다.“어디 가서 싱싱한 회나 한 접시 했으면 좋겠구만.” 이 시장이 매력적인 것은 몽골인들의 삶을 가감없이 드러낸다는 점이었다.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거리의 악사’가 눈길을 끌었다.초로의 여인이 짙은 화장을 하고 뙤약볕 아래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아들인 듯 싶은 젊은이는 반주가 담긴 카세트를 켜들고 그 뒤에 물끄러니 서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옛날들이 스쳐 지나갔다.일제에 의해 전통적인 우리의 권번이 해체되면서 수많은 기생들이 거리로 내몰렸다.이를테면 그 이전의 관기(官妓)가 중심이었던 ‘공창 시스템’을 자본주의식 ‘사창 시스템’으로 전환시킨 조치였다.하루 아침에 일자리에서 내몰린 기생들이,그것도 ‘애기기생’들을 모두 떠나보내야 하는 늙수그레한 노털 기생들은 천상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전국을 떠돌며 잔치집을 전전하거나 노상에서 술과 웃음을 파는 들병이로 전락했다.이 몽골 여인의 삶의 내력을 알 수는 없었으나 길거리에서 기예를 파는 처지가 딱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양 한마리를 해치우는데 고작 20여분. 몽골을 떠나기 이틀 전,몽골 현지 ACC 책임자가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몽골의 자연형 국립공원인 테일지 초원의 게르로 나가 양고기 오찬을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다.정중한 초청이었기에 거절할 수는 없었지만 일행 대부분은 이미 여러번의 현지식에서 양고기의 누린 맛에 적잖이 질린 터라 서로 마주보고 눈만 꿈벅거렸다.그때 일행중 한 명이 나섰다.“너무 양고기에 기죽은 표정들 하지 맙시다.이미 초청을 받았는데 안 간다는 것도 결례이고 하니 그냥 가볍게 초원으로 산책 나간다는 생각으로 갔다 옵시다.” 그렇게 해서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1시간 쯤을 달려 테일지 자연공원에 도착했다.그곳은 아름드리 삼림이 있고 바이칼호수에서 발원했다는 맑은 강물이 흐르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산의 능선을 타고 펼쳐진 바위가 마치 금강산의 풍광 한 폭을 뚝 떼어다 옮겨놓은 듯 아름다웠다.안타까운 것은 거기에도 개발 바람이 불어 그 울창한 원시의 수림대가 차차 망가지고 훼손된다는 사실이었다.테일지로 가는 길목 곳곳에 베어넘긴 거목의 시체들이 즐비했다.그곳에서 말등에 올라타고 두개의 야트막한 하천을 건너 한참을 가니 광활한 초원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상상해 보라.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원시의 초원을 눈앞에 두고 선 나그네의 가슴 울렁거리는 희열을. 말인 즉 인공이 가해지지 않았다고 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그곳에는 양과 말,야크떼를 거느린 유목민들이 살고 있었다.양털과 젖이 그들의 주수입원이었지만 가끔 게르에서 하루,이틀 묵으며 초원을 체험하려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제법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그곳 유목민들은 땟국에 절은 입성 말고는 어떤 문명의 티도 내지 않았다.예약된 게르에 들어서자 주인 사내가 딱딱하게 말린 양젖 버터를 권했다.마치 고구마 절편처럼 딱딱했다.맛을 보려고 입으로 가져가니 예의 누린내가 확 끼쳐 슬그머니 내려놓고 말았다. 게르 뒷편에서는 젊은 유목민 사내가 때맞춰 능숙한 솜씨로 양을 잡고 있었다.그걸 지켜보자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살아있는 양의 네 다리를 잡고 땅바닥에 누인 뒤 고작 연필만 한 주머니칼을 꺼내 명치 부위에 10㎝ 가량의 칼집을 냈다.그때까지 양은 멀쩡하게 살아 맴맴거리고 있었다.이윽고 사내는 칼집으로 손을 쑥 집어넣더니 검지를 대동맥에 걸어 뚝 하고 잡아뗐다.그걸로 끝이었다.양은 이내 목을 축 늘어뜨렸다.양의 숨이 끊어지자 사내는 손바닥을 밀어 익숙하게 가죽과 몸통을 분리했다.칼은 발목과 목을 분리할 때만 썼다.다음은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는 일.가슴을 갈라 내장을 들어내고,흉곽에 그득한 피를 준비한 그릇에 담아 선지 순대를 만들었다.그의 아내인 듯 보이는 여성이 들어낸 내장을 익은 솜씨로 손봐냈다.순대와 내장,적당한 크기로 나뉜 몸통은 그대로 통속으로 들어가 삶겼다.양 한마리를 잡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여분 정도,그러는 동안 땅바닥엔 피 한방울이 흐르지 않았다.일을 마친 사내는 풀섶에 쓱쓱 문대 손의 피를 닦았다.양 한마리를 그렇게 잡도리했다. 일행이 담소하는 동안 삶은 양고기가 가득 든 통을 든 사내가 게르로 들어섰다.건장한 사내는 순박하게 웃어보이며 통 속에서 막 삶긴 뜨거운 양고기를 꺼내 칼질을 시작했다.익숙한 솜씨였다.통속에는 양고기와 함께 돌과 감자도 들어있었다.게르에 차려진 간이 식탁위에는 금세 맛있게(?) 삶긴 양고기가 그득했다.다릿살이며 내장에 양의 선지를 채운 양순대가 모락모락 김을 피워올리고 있었다.술도 나왔다.말젖을 발효시킨 마유주였다.맛을 보니 시금털털해 아무래도 비위가 얇고 술에도 약한 필자가 감당하기엔 무리였다.일행 중 한 명이 “내 이럴 줄 알고 준비했지.”라며 술 한병을 꺼내 식탁에 올려놨다.몽골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칭키즈칸 보드카였다.독한 술이 돌자 처음엔 양고기 누린내에 고개를 모로 꺾던 사람들이 하나,둘 달려들어 안주 삼아 양고기를 맛보기 시작했다.더러는 “생각보다 먹을만 한데….”라는 후평을 내놓기도 했으나 준비해 간 고추장 맛으로 몇 점 먹어본 것이 고작이었다.30여명이 먹은 양고기가 너댓근에 불과해 보였다.남은 고기가 먹은 것보다 훨씬 많았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맞았다.벌써 며칠째 밥 다운 밥 꼴을 못 본 필자는 그걸로라도 면허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고기덩이 속에서 삶은 감자를 골라냈다.그러나 양고기와 같이 삶긴 터라 감자든 고기든 누리기는 매 한가지였다.양고기와 양순대,간 등이 있었지만 누린내 때문에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그런 필자의 옆구릴 쿡,찌르며 귀엣말을 건넸다.“아직 배가 덜 고팠구만….” ■애들아,말 달리자.저 땅 끝까지. 오찬을 마친 일행은 초원으로 나섰다.초원에서 몽골 말을 타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말을 타려니 연전 터키의 한 시골에서 말을 타다가 엉덩이 꼬리뼈 부위가 벗겨져 곪는 바람에 며칠 혼쭐이 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말안장에 쓸린 상처 부위가 덧나 나중에는 차를 타건 비행기를 타건 한시도 의자에 바로 앉지 못했던 그 끔찍한 여행의 기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그걸 아는 필자로서는 말등에 올라서도 말이 제 멋대로 달리게 할 수가 없었다.말은 과천 경마장에서 내달리는 유럽형 경주마처럼 크지 않았다.키가 작달막해 보였는데 그래도 가까이 다가가니 등이 어른 키높이만 했다.바로 이 말이 옛날 몽골 전사들이 타고 세계를 아우른 그 말이라고 했다.순식간에 내달리는 속도는 유럽산 경주마에 뒤지지만 지구력이 좋아 오래 달린다고 했다.또 먹성도 까탈스럽지 않고 병에도 잘 견딘다니 전쟁터에 타고 나갈 기마용으로는 그만인 듯 했다.그러니 유난히 말을 사랑했다는 당태종이 이곳에서 명마를 골라 준마도,백마도(百馬圖)를 그리고 그 유명한 당삼채로 완성해내지 않았을까. 그렇든 말았든 꼬리뼈의 추억 때문에 고삐를 바짝 당겨쥐어 말이 뛰지 못하게 한 뒤 게르 주변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끝냈다.그렇게 조심했는데도 나중에 보니 엉덩이 가운데 꼬리뼈 끝이 빨갛게 쓸려 있었지만 예전처럼 곪지는 않았다. 농사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에게 말을 타는 일이 썩 어울려 보이지는 않았다.거북하고 어색한 몸짓이 우스꽝스러웠는지 그곳 아이들이 바라보며 키득거렸다.태어나 걸음을 떼면서부터 말등을 떠나지 않은 그곳 아이들 아닌가.아닌게 아니라 고작 예닐곱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잽싸게 말등으로 뛰어오르더니 ”츄∼츄∼”하는 입소리를 내며 가죽 고삐로 뱃골을 치자 말은 순식간에 초원 저편으로 질풍처럼 내달려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때 누군가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저 꼬마녀석들에게 뭔가 선물을 줘야 할텐데 그냥 주기도 뭐하니 말타는 모습을 좀 보여달라면 어떨까?” 그런 뜻을 게르 주인에게 전했더니 주인 사내는 한 술 더 떴다.“이 마을(마을이라야 게르 서넛이 멀찍이 자리잡은 것에 불과했다.)에 저 또래 아이들이 모두 여섯인데 그들에게 목표를 정해 말타기 경주를 시켜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모두가 동의했다.하는 김에 5달러씩 걸어 이긴 사람이 본전을 제하고 나머지를 애들 시상금으로 주자고 제안했다.주인이 제안한 터라 딱히 그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여길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자고 동의하자 주인이 초원을 향해 높은 톤으로 소릴 질렀다.멀리 있는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였다.잠시 후 여기저기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그들 뿐이 아니었다.아낙들,젖먹이들도 모두 눈을 반짝이며 게르 앞으로 모여 들었다.꼬마들은 제각각 아끼는 말을 골라타고는 고삐를 바투잡고 나란히들 섰다.그들은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듯 했다.우리야 한번 말등에 오르내리려면 기를 써야했지만 걔들은 가볍게 말등을 오르락거렸다.말에 올라탄 꼬마들은 뭐라고 주문을 외며 우리가 든 게르 주변을 천천히 열바퀴 돌았다.몽골의 전통적인 출정의식이라고 했다.이윽고 목표가 정해지고 모두 출발선에 섰다.목측으로 2000m쯤 되는 거리였다.사내가 신호를 하자 고삐를 꼬나쥔 꼬마들이 초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옛날의 몽골 전사들이 저렇게 내달려 도버해협과 북해의 거친 해안까지 다다랐던 것은 아닐까.그들의 모습에서 영화로웠던 칭키즈칸과 그의 아들 오고타이,손자인 쿠빌라이칸의 시대를 보는 것 같았다.그 모습은 시공을 초월해 그들이 말(馬)을 매개로 엮어진 불가분의 의식공동체임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애들이 말을 몰아 목표를 돌아오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얼굴이 발그레 상기된 아이들은 사내의 지시에 따라 마상에서 뭐라고 몇 번 고함을 지른뒤 훌쩍,훌쩍 뛰어내렸다.그들이 마상에서 내지른 소리 역시 무사히 말을 타게 해 줘 감사하다는 일종의 주문이라고 했다.논의 결과 아무리 애들이 수고는 했지만 직접 돈을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여겨 사내에게 모은 돈을 한꺼번에 건넸다.그렇게 모은 돈이 한 40 달러쯤 됐다.사내는 한 켠으로 아이들을 불러모은 뒤 뭐라고 얘기를 나눴다.아이들이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잠깐 말 타는 것을 보여줬을 뿐인데 돈은 무슨 돈이냐는 투였다.거기까진 우리가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황무지 제국에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구름 한점 없는 하늘 한 켠이 마치 불길이라도 이는 듯 선홍빛으로 타들었다.대륙의 장엄한 노을이었다.타드는 것이 하늘 뿐만은 아니었다.하늘과 맞닿은 대지도 붉게 달아올랐다.그 노을 속으로 누군가가 말등에 지친 몸을 싣고는 하염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그의 뒤를 키 작은 양떼들이 따랐다.유목의 사내일 것이다.그 모습에서 문득 몽골의 전사들을 이끌고 천하를 휘저을 때 남긴 칭키즈칸의 말이 떠올랐다.“성벽을 쌓는 자는 망하고 이동하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랬다.비록 그 말이 옛적 유목의 부정형 삶을 두둔하고 옹호하는 의미였을지라도 우리는 지금 그 의미를 결코 백안시할 수도,도외시할 수 없다.오늘날에도 그 교조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몽골의 거친 황무지,그 황무지와 하늘을 가장 단순하게 구획하는 일획의 지평선 위로 비장하게 물드는 노을.뜨겁게 달아 올랐다가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스러져 가는 그 노을에서 장대했던 몽골의 옛 제국을 보았다.참으로 비장했던 제국의 영화와 끝.그 노을을 응시하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문을 닫았다.자연이 연출한 그 무위의 파노라마 앞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전율 말고 무슨 영탄이 필요할 것인가.몇몇은 풀섶에 가만히 주저앉아 술병을 땄다.보드카였다.독한 술이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 순식간에 흉금을 적셨다.노을에 함뿍 적신 얼굴 위로 서서히 술기운이 돌았다.노을과 사람이 함께 익어드는 것 같았다. 이윽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한 노래가 거친 풀섶으로 나즈막히 흘렀다.“천등사안 바악딸째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노래는 다시 이어졌다.“아아∼∼ 신라의 바아암이이이여 불국사의 종소리가 들리어온다 지∼나가는 나아그네에에여어 거∼얼음을 머어엄추어라 고오오요오하안 다아알빛아래….” 그 노래가 그 시각,그 자리에서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따지지 않았고,또 생각하지도 않았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장대한 자연의 섭리를 앞에 두고 터져나온 노래야말로 가장 진솔한 정서의 토로 아니었겠는가. 이윽고 맞은 저녁.몽골의 밤하늘은 별들의 천국이었다.장관이었다.요요한 풀섶에서 쳐다보는 밤하늘에는 별들이 촘촘하게 박혀 형용할 수 없는 자태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휘∼ 손을 내저으면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았다.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았던 그 광경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그 모습이 고스란히 몽골의 초원에서 재현되고 있었다.아주 오랫동안 뒤로 고개를 꺾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가슴이 울렁거렸다.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이 주는 설레임 때문이었다. 그 싱싱하고 영롱한 별들이 어느 새 술병 속에 떨어져 잠겼는지 몇 잔을 마신 보드카가 이내 목에 턱턱 걸렸다.그렇게 술과 함께 삼킨 초원의 별들이 훗날 내 속에서 어떻게 되살아날까. 봉사단원들은 모처럼 가진 초원에서의 휴식에 모두 흡족해 했다.ACC 김종구 총재가 일행과 함께 하며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꽃향기는 황홀해 보여도 산 하나를 넘지 못하지만 남에게 베푸는 봉사의 향기는 국경도 넘는다.” 사실 일상에 쫓기며 살아야 하는 갑남을녀가 ‘봉사’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그러나 김 총재의 말마따나 “봉사는 마약”인지도 모를 일이다.그렇지 않고서야 선뜻 사재를 털어 빈민에게 새 게르를 지어주기는 쉬울 것이며,자신의 직장일을 뒤로 하고 1년에 몇 차례씩 해외 봉사활동을 나서기는 또 쉬울 것인가.봉사활동 말미에 가진 한·몽 ACC 자평모임에서 김 총재는 이런 말을 했다.“재산이 많아 하는 봉사는 자선일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의 봉사는 아니다.봉사는 자신의 여건을 초월해 나서는 것이다.세상에 아무 것도 잃지 않고서 할 수 있는 봉사란 없다.” 일행을 이끈 아시아 사랑나눔의 배용민씨는 현지에서 정을 나눈 안내원들과 따로 어울리며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눴다.그가 대뜸 이런 말을 꺼냈다.“고생할 때는 두번 다시 몽골엔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초원에서 밤을 맞으니 그 생각이 틀린 것 같습니다.이걸 보고 몽골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그랬다.사실 몽골에서의 체험은 매우 특이했다.그러나 누린 먹을거리에 곤죽이 되고,태양에 주눅이 들었어도 그것이 잘 사는 나라에서 항용 겪는 무관심이나 비하와 모욕의 체험은 아니었다.사람들은 순박했고,지혜로웠다.손님을 대하는 태도도 정성스러웠다.그런 정성이 양고기의 역겨운 노린내를 지우고도 남았다. 애당초 봉사하자고 나선 길에 무슨 호의호식을 바라겠는가.그런 생각이 봉사의 취지를 훼손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지며 더 많은 땀을 쏟지 못한 아쉬움이 가슴으로 잔잔하게 배어들었다.밤이 지나면 다시 저 망망한 대지 위로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그리고 그 태양의 순환처럼 이 황무지에도 연대와 공유의 찬란한 세상이 다시 열릴 것이다.그렇게 기원했다. 글·사진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 “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유목민들의 환호… 들뜨는 초원 현지에 도착해 사흘째 되는 날 늦은 오후,갑자기 울란바타르 시내가 들썩거렸다.도심 곳곳에서는 차량이 경적을 울려대며 질주하고 있었고,그 차창 밖으로 벗은 몸통을 드러낸 청년들은 뜻을 알 수 없는 환호성을 토해냈다.저녁이 되자 시내 중심지에 있는 정부 청사 앞 수흐바토르 광장에 끝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몽골 혁명의 아버지 수흐바토르가 1921년 울란바토르에 몽골 인민정부를 수립한 것을 기념해 조성한 광장이다.울란바토르의 중심부에 있는 이곳에는 지금도 황톳빛 나는 수흐바토르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는 울란바토르와 몽골의 중심 광장이다. 그들은 손에 손에 몽골 국기를 들고 있었다.베이징 올림픽에서 몽골 전통 씨름선수 출신인 투브신바야르 나이단(24)이 유도 남자 100㎏급 결승에서 카자흐스탄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딴 것이다.몽골 공화국이 탄생한 이래 최초의 일이라고 했다.그 분위기가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을 때의 서울 풍경과 흡사했다.방송은 종일 그 소식을 전했다.방송체계가 열악해 금메달을 따는 순간의 경기 비디오는 나중에야 국민들에게 전해졌으나 시민들 반응은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특별 프로그램으로 방송하며 자국민들의 신명을 긁어댔다. 환호작약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유분방한 유목정신과 버무려진 근대의 국가주의 냄새가 물씬 풍겨났다.국가주의의 한 모습은 심야에 대통령이 각료를 불러모아 광장의 연단에 오른 것에서도 확인됐다.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광장의 축하 집회에서는 ‘몽골 만세’라는 구호가 밤새 울려퍼졌다.도심의 건물 곳곳에 대형 몽골 국기가 내걸리고,사람들은 취한 듯 이런 분위기에 젖어 그날도,다음날도,그 다음날도 금메달 얘기를 되내이고 곱씹었다.한 시민은 금메달을 딴 몽골선수에게 족히 5억 토그르기는 주어질 것이라며 부러워했다.일종의 포상금이고 격려금인 셈이다. 하기야 엥흐바야르 대통령이 선거부정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소요로 곤욕을 치르는 가운데 이들의 관심을 일거에 잠재울 금맥이 터졌으니 그 선수가 얼마나 고맙고 기특했을 것인가.아직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탓인지 그들은 금새 그런 국가적 과제를 잊고 금메달의 환호에 매몰되어 가고 있었다.우리에게도 전두환 집권 초기에 ‘3S(Sports,Sex,Screen) 정책’의 아픈 기억이 있었다.그 묵은 관성은 지금도 때만 되면 되살아나 국민들의 정신을 갉아댄다.일종의 심리적 마약 같은 것이다.이번 올림픽도 마찬가지다.애쓴 선수들의 노고와는 별도로 그런 마약 같은 정치적 의도가 많은 국민들의 정서에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필자만 가진 것은 아니리라. 초원의 나라를 들뜨게 하는 것은 그 뿐이 아니었다.얼핏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황무지도 가만 들여다 보면 온갖 생명의 약동이 있듯 더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듯 보이는 왕년의 제국 몽골이 긴 잠을 털어내고 약동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그들은 칭기스칸과 그의 후예들이 일군 제국의 꿈을 다시 이루는 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이런 바람은 그들의 유전자가 된 정복욕의 현대적 발현일지도 몰랐다. 이번 여행길에 만난 몽골의 엥크볼드 총리는 이런 말을 했다.“지금 몽골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오로지 말 안장에 몸을 얹은 칭기즈칸이 극동에서부터 멀리 아랍권과 서·동유럽 일대를 아우르고 위대한 승자가 되었듯 우리 몽골도 반드시 국부를 일궈 그 옛날의 영화를 재현하려 한다.” 지금도 몽골 초원에는 양과 말,야크 무리가 끊임없이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으며,사내들은 말을 타고 거침없이 초원을 질주한다.그러나 그런 노마드의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런지는 알 수 없다.옛적 몽골의 용맹스런 기마부대가 마각(馬脚)을 앞세우고 지축을 흔들며 질주해 간 길을 지금은 차량과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다. 생각해 보면,말과 오토바이가 갖는 기능의 유사함은 놀랄 만큼 닮았다.말이 달릴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오토바이로 달릴 수 있다.몽골 젊은이들이 구닥다리라도 오토바이를 즐기는 것은 이런 말의 문화에 대한 향수를 담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그들의 핏속에는 말등에 생애를 얹고 거친 초원을 끝에서 끝으로 달리며 살아온 강인하고 웅혼한 기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울란바토르 시내에서는 검게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에 눈매가 날카로운 안짱다리 사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그들은 바깥으로 휜 안짱다리로 어기적거리며 불안하게 걷는다.다 까닭이 있다.유목민인 그들은 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자라고 살아왔다.그런 그들이 말을 버리고 도시로 들어와 살아도 기마의 흔적까지 청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안짱다리는 그들이 말을 몰아 초원을 내달리며 살아왔음의 지울 수 없는 유흔이다.그렇게 말과 함께 살아온 그들이 생계를 위해 다리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가 퇴행성 관절염이다.말을 버렸으니 말이 겪어야 할 다리의 노역을 고스란히 사람이 감당해야 하고,그러자니 관절염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이를테면 문명이 그들에게 편의만 준 게 아니라 관절염의 고통까지 가져다준 셈이다. 사실 지금의 지리멸렬한 몽골을 보면서 옛 영화의 재현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으나 엥크볼드 총리의 말마따나 강한 희구가 또한 강한 동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 혹은 희망이 읽히는 것도 사실이었다.구체적인 삶의 일이야 짧은 기간 머물다 이내 떠나야 하는 나그네가 관여할 일도 아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원나라 멸망 이후 일패도지해 세계 곳곳에 흩어진 혈족들을 다시 불러모아 당장 뭔가를 도모할 여력을 갖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그들이 가진 무한한 자연자원과 광물 등 지하지원,그리고 옛 영화에의 향수가 언젠가는 무한한 에너지로 발산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곳 ‘젊은 전사’들의 눈빛에서 읽힌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사실 몽골에서 마주친 젊은이들은 비록 입성이 초라하고,용모가 꾀지지하다 해도 눈빛 만큼은 여전히 도발적이고 진취적이었다.노마드의 기질을 타고난 그들은 바깥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도 적극적이었다.그들은 소득 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자유로운 섹스를 즐긴다고 했다.이것 역시 유목의 한 관습이다.하기야 과거 칭키즈칸의 정복 시절,수만리 원정길에 나선 그 ‘전사’들이 무슨 재주로 제 나라 여자만을 품었겠는가.그렇게 생각하면 답은 간단한 것이었다.그로부터 자유로운 섹스의 관행이 또한 하나의 습속으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울란바토르 시가지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휴대폰으로 통화하고,MP3를 즐겨들으며,더러는 콜라를 곁들인 햄버거를 먹기도 했다.그들 중 한 젊은이와 대화를 나눴다.올해 스물 두살인 그의 이름은 오고바흐타였다. -학생인가. ▲울란바토르 국립대에서 생명공학을 공부하고 있다. -여자친구는 있는가. ▲있었는데,두달 전쯤 헤어졌다.나는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그 쪽 부모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사실 우리집은 양을 키우는 가난한 집인데 그 쪽은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어서 매우 유족한 편이다. -그런 일로 헤어져 안타깝지 않나. ▲처음엔 무척 속이 상했지만 어쩌겠나,받아들여야지.사실,날 좋아하는 여자들도 꽤 많다. -최근 몽골에서도 부정선거로 인한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런 일이 있었지만 외국인에게 국내 일을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그는 자국의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한사코 발언을 꺼렸다.) -사실,옛 영화를 돌이켜 보면 지금의 몽골 모습은 좀 실망스럽다.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얻기는 어렵다.경제적 어려움은 몽골의 현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중국의 집요한 방해가 크게 작용한 측면도 있다.중국은 네이멍구 자치주의 독립 요구를 의식해 철저하게 우리를 견제하고 있고,그래서 경제적 어려움이 더 심하다.사람들은 몰라도 네이멍구는 당연히 우리 땅이다.언젠가는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몽골은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뉘는데 이 중 생활 여건이 좀 나은 내몽골은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돼 있다.) 또 정치인들이 더 정직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지금 몽골의 많은 실력자들은 부패해 있고,그래서 신뢰를 못 받고 있다. -혹시 밖으로 나가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당연히 기회가 되면 나가고 싶다.나 뿐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이 그걸 바란다.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만약 갈 수 있다면 한국에 가고 싶다. -그럴 이유라도 있나. ▲몽골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있으며,나도 마찬가지다.생김이 비슷한 것도 좋고…,한 혈통이라서 그런 것 아니겠나.사실,2년 전 형이 한국 평택에서 돈벌이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 몽골에 들어와 있다.형을 통해서도 한국 얘기 많이 들었다. 오고바흐타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생각보다 깊고 강했다.그들은 중국을 몽골을 토막낸 분열의 조종자로 인식하고 있었다.그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도 있었다.근대 이전에 한족과 몽골족(흉노족·선비족)은 서로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투를 끊임없이 되풀이했다.중국은 틈만 나면 군대를 동원해 흉노족을 토벌했다.칭기즈칸 이전만 해도 흉노족은 통일된 세력을 이루지 못해 항상 중국의 한족 토벌군에게 쫓기며 살아야 했다.한족 토벌군이 한번 들이닥치면 그들의 생업은 한순간에 초토화되기 일쑤였다.그럴 때면 이들은 또다시 기약없는 유랑길에 오르곤 했다.부족 단위로 연맹체를 이뤄 살았던 이들이 막강한 한족 토벌대에 맞설 결속력을 갖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이런 몽골인들의 한은 이들이 남긴 노래에도 흔적이 남아있다.‘해가 지면 저 먼 동쪽에서 낯선 말울음 들리고 갑옷 입은 적들이 초원의 단잠을 해치러 온다….’ 지금도 몽골의 유목민들은 게르를 지을 때 항상 출입구를 동쪽에 둔다.언제 한족 토벌군이 들이닥칠지 몰라 항상 동쪽을 경계하면서 살라는 의미였다.그것이 오랜 세월 되풀이되면서 전통이 되어버린 것이다.그만큼 그들은 한족의 중국을 두려워하며 살았다.그런 두려움은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해 대제국을 건설할 때까지 계속됐다.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이런 뿌리 깊은 적대감은 중국 본토를 정복해 원제국을 건설한 과정에서 여과없이 투영됐다. 칭기즈칸은 동서양 어느 나라를 정복해도 결코 무리한 동화를 요구하지 않았다.‘너희 식으로 살라.종교든 전통이든 다 예전처럼 향유하도록 허락한다.단,나를 배반하는 것만은 용서하지 않겠다.복종하지 않으면 죽음 뿐이다.’이것이 정복자 칭기즈칸의 지배방식이었다.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철저한 복속을 요구했다.몽골인들이 갖지 못한 문자 말고는 모든 것을 몽골 식으로 바꿨다.그 과정에서 수많은 살륙이 있었으나 개의치 않았다.몽골족은 중국 정복 이후 이전의 앙심을 철저하게 되갚았다.몽골이 우리나라를 대한 것과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광경이다. 그와의 대화는 계속됐다. -젊은이들의 사교는 자유롭나. ▲그렇다.대학생쯤 되면 대부분 연인을 갖는다. -혼전 관계는 어떤가. ▲자유롭다.요새 젊은이들은 노인들과 다르다.부모 세대와는 그런 점에서 이해를 공유하기 어렵지만 유목민족이어서 그런지 어른들도 그런 점에서는 보기보다 개방적이다.그런 점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의 영향이 크다.이곳에서는 한국 텔레비전도 볼 수 있다.(실제로 그곳에서는 아리랑 TV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혼전에 동거하는 경우도 많지 않겠나. ▲당연하다.내 친구 중에도 결혼을 약속하고 같이 사는 애들이 많다.개중에는 아이를 둔 친구도 있다.사실 몽골에서는 유목 특성상 결혼식이라는 의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물론 전통적으로야 그렇지 않지만….요새는 젊은이들이 그런 습속에 얽매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들 얘길 들으면 아직 몽골 대학에는 첨단 기술을 배우는 학과가 부족한 것 같다.한국이나 중국은 같은 기술이라도 세분화해서 가르치는데 몽골에서는 기술 분야의 경우 엔지니어링이라는 큰 틀에서 공부를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분야를 정해 공부를 한다.그런 점 말고는 별로 큰 차이는 없지 않을까. ■“역사를 자부하되 거기에 갇히지는 말자.” 그 전에 투브 아이마그라는 지방 소도시에서 만난 바이갈마 국립병원장은 자신이 옛 소련에서 의학을 공부했다고 얘기했다.이처럼 기성세대의 주류는 대부분 소련 유학파들이다.당연히 대학 교육의 주류도 소련 유학파들이었다.구미지역으로 나가 공부를 하는 부류는 대부분 나이가 젊은 신세대들이다.그들에게서 몽골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제국의 몰락 이후 한없이 추락하는 지리멸렬한 몽골이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뜻밖에 그들은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당찬 모습을 보였고,구닥다리 전통에 발목이 잡힌 답답한 국수주의자나 국가주의자도 아니었다.담담하게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이 결코 몽골의 모든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어했고,과거보다 다가올 미래를 말하고 싶어했다. 오고바흐타와는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그는 제법 기품있고 당당한 젊은이였다.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별로 주저함이 없었다.그는 몽골이 지금 앓고 있는 병을 ‘전통과 현대의 갈등’이라고 정리했다.현대적인 것도 좋지만 그것이 전통과 잘 어우러져야 하며 특히 현대문명이 몽골의 가족주의를 해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지금 몽골의 젊은이들은 거침없이 초원을 누비던 예전의 ‘전사’가 아니었고 그걸 바라지도 않았다.오히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열린 세상에서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시민’이었다.오고바흐타가 그런 몽골의 바람을 내게 보여주었다. 하기야 울타리가 없는 초원에서 살던 그들이 문명의 규격화된 틀 속에 갇혀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몽골은 우리나라와 달리 컴퓨터로 대변되는 디지털의 수혜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마치 전통 매듭을 엮어 늘어뜨린 것 같은 그들의 문자 ‘외가르징’을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아서다.이런 까닭에 그들은 지금도 몽골말로 의사 소통을 하면서도 글은 러시아 문자를 쓴다.예전에 한자를 들여와 우리 식으로 음을 부여한 것과 흡사한 방식이다.몽골 구레대학에 재학 중인 아마르자르갈(20)이라는 여학생은 “이런 방식이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다.그래도 사람들이 몽골말을 잊은 건 아니다.”고 말한다.그는 “정부가 지금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데 한 3년쯤 후면 우리 문자로 컴퓨터를 하게 될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았다.그들의 얼굴에서 몽골의 내일을 볼 수 있었다. 몽골 제국의 전성기는 10∼12세기였다.이 때 몽골을 이끌었던 칭키즈칸과 그의 아들 우고데이,손자 쿠빌라이칸 등은 몽골은 물론 세계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정복사업을 완성했다.지금 몽골인들이 갖는 자부심은 여기에서 기원한다.물론 그런 자부심이 그들에게 더 이상 ‘빵’이 될 수 없으며 ‘칼’도 될 수 없음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겪어보면 알겠지만 세계 어디를 가봐도 몽골인들처럼 순박한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비록 경제적으로는 곤궁하지만 받은 것은 반드시 되돌려 주는 것도 특성이라고 할만 합니다.그것이 모욕이든 은혜든….이런 몽골 사람들을 상대로 일부 한국인들은 구차하다,못 산다,지저분하다며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몸짓과 표정을 드러내 보였는데 그런 한국인들을 보고 이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저것들이 이제와 우릴 얕잡아 본다.예전엔 우리 발밑을 기던 것들이….’라고 합니다.가난하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요.”ACC 김종구 회장의 말이다.그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몽골통이다.울란바토르에만도 그와 형님,동생 하는 현지인들이 즐비하다.몽골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뒤 이런저런 인연으로 현 총리와 울란바토르 시장 등 정부 고위 관료들과도 격의없이 지내 이젠 그들과 사적인 인연도 무척 깊다고 말한다.그는 몽골인들의 기질이 사내다운 면모를 좋아하지만 의외로 정에 약하다고 정리했다. 다시 그의 말을 듣자.“사실 많은 사람들이 몽골의 실상을 보고 실망하지만 이 나라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자원이 있습니다.그래서 구미 열강들이 벌써 그걸 노리고 엄청난 공세를 펴고 있기도 합니다.일본만 해도 벌써 몽골의 지하자원 지도를 만들었답니다.우리가 오불관언할 처지가 아닙니다.지금 하지 않으면 늦습니다.알짜배기를 다른 나라가 다 가져간 뒤에 겉만 핥아대는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되지요.우리도 몽골을 장기적인 국가전략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울란바토르에서 만난 또 다른 청년 오르디흐(‘오르디흐’는 산을 오르다는 뜻의 몽골어이다.그는 우리나라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한국에서 일하고 있으며,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중퇴한 뒤 몽골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는 이런 말을 했다.“잘은 모르지만 유럽 국가들이 우리 지하자원을 불법적으로 채굴(무단 채굴이 아니라 당초의 협정을 위반한 채굴이라는 뜻)해 가고 있으며,이걸 우리 지도자들도 알고 있다고 들었다.그러나 그 후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는 모른다.국민들은 이런 점에서 지도자들이 좀 더 투명한 국정운영을 바라고 있다.”(사실 오르디흐의 말을 듣기 전에도 몽골 권력자들이 지하자원 채굴권을 외국에 넘기면서 막대한 사익을 챙기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대지를 달구던 해가 설핏 기울자 울란바토르 거리에는 다시 사람들로 넘쳐난다.낮에는 없던 과일 노점도 서둘러 좌판을 펴고,재래시장도 아연 활기를 띤다.오가는 차량도 낮보다는 훨씬 많아진 듯 하다.시내의 한 음식점 창밖으로 내다본 울란바토르 시가지는 확실히 낮과 밤이 달랐다.더위 탓이리라.밤이면 활기를 띠는 곳이지만 중국의 도시들처럼 환락적이라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그런 곳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지만….)도시 분위기는 그냥 수더분하고 소박했다.어둠이 내리자 나방이 다시 가로등을 에워쌌다.도심의 경직된 스카이라인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위는 노을이 조용히 잔광을 거두고 있었다.음식점 점원에게 동쪽을 물었다.그 어디에 서울이 있을 것이다.‘오랑캐 말은 북풍에 귀를 열고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튼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 운운했던 무명씨의 싯귀가 떠오른다.‘바람의 땅,태양의 나라’에서 맞은 하루가 또 그렇게 저물었다.(하편에 계속)
  • [21일 TV 하이라이트]

    ●대한민국 변호사(MBC 오후 10시30분) 옥상 평상에서 잠이 깬 민국은 옥탑방에 이경이 없자 당황해, 급히 회사로 향하지만 이경의 사무실도 텅 비어 있다. 이경은 민국에게 애리를 만나서 진심으로 터놓고 이야기해 보라고 말한다. 한편, 변혁은 이경과 함께 술을 마시며 자신이 떠난 이유를 말하려 하지만 이경은 먼저 취해 쓰러지고 만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한창 진행중인 베이징올림픽은 ‘문화 올림픽’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걸맞게 베이징 시내에서는 600여개의 크고 작은 문화 행사가 펼쳐지고 있는데, 한국이 거둔 성과도 적지 않다. 문화 특구에서 신명나는 사물놀이 공연이 펼쳐지고 우리 전통 먹을거리들이 행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세계테마기행(EBS 오후 8시50분) 이란에서 유목 생활을 하고 있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바흐티아리 부족을 찾아 나선다. 그들은 대부분 흑염소 털로 만든 텐트 같은 곳에서 임시로 머문다. 이스파한에서 5시간을 달려 드디어 그들을 만나고, 함께 페르시아 카펫을 짜기도 하고 그들이 직접 기르는 양의 젖으로 요거트를 만들기도 한다.   ●미스터리 특공대(SBS 오후 11시30분) “엄마를 자꾸 때리라고 해.”“내가 죽어야 한대.”“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등 이상한 말만 되풀이하며 내면의 또 다른 자아로 힘들어 하는 청년의 이야기. 대원들을 깜짝 놀라게 한 100% 실제상황을 함께 본다. 과연 청년에게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다중인격’의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수목드라마 전설의 고향(오구도령)(KBS2 오후 9시55분) 귀신을 보는 능력과 그들을 천도할 능력을 가진 퇴마사.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그녀의 영혼을 찾아 떠도는 퇴마사 기주는 산 자와 죽은 자가 뒤섞여 광기에 휩싸인 마을에 도착한다. 죽은 자들을 천도하고 마을을 정화하기 위해 마을을 덮은 죽음의 비밀을 하나씩 밝혀내는데….   ●사미인곡(KBS1 오후 7시30분) 우즈베키스탄 ‘20만 고려인의 패티 김’이라 불리는 고려인 4세 신갈리나씨. 그녀는 한국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초등학교 때부터 독학으로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 노래가 금지된 무대에서 한국 노래를 불러 며칠동안 감금 처벌을 받기도 했다. 고려인의 설움을 달래주며 무대에 서는 신갈리나씨를 만나 본다.
  • 평상복 입은 토슈즈의 향연

    평상복 입은 토슈즈의 향연

    뉴욕시티발레와 함께 미국 모던발레의 흐름을 주도해온 보스턴발레단이 28일,30·31일 고양과 서울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1963년 창단한 보스턴발레단은 클래식부터 모던까지 다양한 작품을 구축하고 있는 전문 레퍼토리 발레단. 우아하고 환상적인 클래식 발레의 틀을 과감히 깬 채 역동적이고 파격적인 모던발레를 펼친다. 무용수들이 토슈즈에 흰색 튀튀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고전발레의 움직임들을 보여주기보다는 거의 평상복 차림으로 리듬에 맞춰 구르거나 밀어내는 동작들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예술감독 미코 니시넌이 이끄는 보스턴발레단이 ‘세기의 명작발레’라는 주제로 갖는 이번 내한공연에서 선보일 레퍼토리는 조지 발란신의 ‘콘체르토 바로코’, 크리스토퍼 휠든의 ‘폴리포니아’, 트와일라 타프의 ‘다락방에서’ 등 3편. 가장 미국적인 모던발레로 평가받는 작품들로, 국내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유명 현대 안무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이다. 이 가운데 러시아에서 태어나 아메리칸발레시어터와 뉴욕시티발레단의 상임 안무가로 활동하며 400편 이상의 작품을 남겨 ‘발레의 모차르트’로 불리는 발란신의 ‘콘체르토 바로코’는 바흐의 ‘D단조의 두 개의 바이올린 콘체르토’에 맞춰 1940년 초연한 작품.‘보이는 음악’이라 불릴 만큼 음악을 시각화하는 재주가 뛰어났던 발란신의 안무 영역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백야’의 안무가로 알려진 트와일라 타프의 ‘다락방에서’는 폭발적이고 격렬한 무대. 운동화 ‘스톰퍼’를 신은 3쌍의 커플과 토슈즈를 신은 두 여성의 앙상블이 40분 동안 연출하는 역동적이고 정열적인 움직임이 관객을 압도한다. 뉴욕시티발레단의 최연소 상임 안무가인 크리스토퍼 휠든의 ‘폴리포니아’는 열 개의 전자 피아노 악곡을 사용한 작품. 발란신의 신고전주의를 몽환적인 왈츠에 과감하게 결합한 유머러스한 레퍼토리이다.28일 오후 8시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30일 오후 3시·7시30분,31일 오후 4시 유니버설아트센터.(02)3471-8956.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바흐·다산, 주민들 만나다

    ‘인문학이 내게로 왔다.’ 올 여름 바흐와 다산(茶山)을 만나러 서교동 주민자치센터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예술과 인문학에 목마른 20·30대 구민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마포구가 문화단체 ‘풀로엮은집’과 함께 ‘마포열린강좌’를 마련했다. 요리·부동산·재테크 등 취미·실용강의 일색이던 지자체 주민강좌의 낡은 틀을 깨고 역사·클래식·철학을 접목한 간(間)학문적 교양강좌를 개설한 것이다. 첫 강의는 음악·스포츠평론으로 이름을 알린 문화연구가 정윤수씨와 한국철학사상연구회장을 역임한 김교빈 호서대 교수가 맡았다. 정씨는 바흐와 베토벤, 차이콥스키 같은 거장들의 음악을 동시대 유럽사의 틀 안에 녹여낸 ‘예술의 사회사’란 관점에서 소개하게 된다. 김 교수는 원효(元曉)에서 발원하는 한국의 전통철학이 무속·도교·불교라는 민중종교와 어떻게 호흡하며 성숙했는지, 또 다산과 성호(星湖)의 실학사상에는 어떤 사상적 영향을 미쳤는지를 ‘대중의 언어’로 쉽게 풀어낼 계획이다. 마포구 관계자는 “일단 서교동에서 강좌를 시범운영한 뒤 10월부터 모든 동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강의는 오는 20일부터 다음달 22일까지 매주 수·금요일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며, 수강료는 2만원이다. 참가 희망자는 14일까지 인터넷 홈페이지(www.mapo.go.kr)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이메일이나 팩스, 전화로 접수하면 된다. 교육지원과 3140-4787.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서울음악대상에 나영수·유전식씨

    서울음악대상에 나영수·유전식씨

    한국음악평론가협회(회장 김영식)가 제정한 ‘서울음악대상’의 제24회 수상자로 나영수(70) 국립합창단 예술감독과 트롬보니스트 유전식(57) 한양대 음대 교수가 15일 선정됐다. 나 감독은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비롯해 여러 합창곡을 번역·초연해 합창음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고, 유 교수는 활발한 연주활동으로 관악 발전에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시상식은 29일 오후 5시 서울 마포 이원아트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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