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바이트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전문가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시민사회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첨단 산업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컨설팅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180
  • ‘슈퍼스타K6’ 임도혁, 체중 170kg에서 43kg 감량..전후 비교하니 ‘충격’

    ‘슈퍼스타K6’ 임도혁, 체중 170kg에서 43kg 감량..전후 비교하니 ‘충격’

    ‘슈퍼스타K6’에서 폭발적인 성량으로 많은 사람의 귀를 사로잡은 가수 ‘임도혁’이 43kg 감량에 성공했다고 7일 밝혔다. 임도혁은 170kg의 초고도비만 몸에서 43kg 감량해 ㅊ의 통통한 몸매로 변신했다. 그의 상징인 배가 유독 볼록 나온 비대한 몸매가 이제는 통통한 성인 남성 몸매가 된 것. 임도혁은 다이어트 전 자신의 몸매에 대해 “거울 속 모습이 꼭 터지기 전 풍선과 같았다.”고 표현했다. 특히 배가 부풀어 올라 살짝만 찔러도 터질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이어트 후엔 46인치에서 39인치로 앞자리 숫자가 변할 정도로 뱃살이 빠졌다. 평생 자신은 뚱뚱한 모습 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임도혁이지만, 그간 다이어트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약물, 쉐이크, PT, 1일 1식의 식이요법 등 가진 노력은 다 해봤지만 요요가 왔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생 때 20kg까지 감량을 해봤지만 2~3달 만에 요요가 와 더 살이 불어났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슈퍼스타k6 출연 당시만 해도 몸매를 지속 관리해 135kg 정도이었지만, 방송 종영 후 35kg이 늘어 170kg이 됐다고 밝혔다. 남보다 뚱뚱한 몸 때문에 사회에서도 배제된 기분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20살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아무도 써주지 않았다.”며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아르바이트의 경우엔 맞는 옷이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덧붙여 “살부터 빼야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다는 독설을 자주 들어 마음의 상처도 깊어졌다.”고 토로했다. 다양한 감량 실패를 경험했지만 다시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유는 가수 선배인 김범수의 말을 꼽았다. 김범수는 “너는 만날 때마다 살이 더 찌는 것 같다.”며 “곧 뱃살이 터져 앞으로는 노래 못하고 산다.”고 독설로 다이어트를 독려했다. 다이어트 방법을 찾던 중 가수 노유민이 동일한 방법을 추천해줬다고 전했다. 노유민은 “우선 몸을 건강하게 돌려놓으면, 자연스럽게 살이 빠진다.”고 조언했다. 감량 후 생활에 관해선 자신감이라 말했다. 그는 살이 쪘을 때 거리를 걷게 되면 사람들의 “살 봐”, “살이 너무 찐 거 아니야”란 말을 자주 듣곤 했다. 현재는 “어깨를 펴고 당당히 거리를 걷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처음 알게 됐다.”며 “이제는 사람들이 다이어트 응원도 자주 해준다.”며 기뻐했다. 다이어트 후 가장 좋은 점에 대해선 “슈퍼스타K 출연 당시에도 맞는 옷을 찾을 수 없어 사이즈가 큰 아저씨 스타일의 옷만 입었다.”며 “특수 제작 옷인 5XL 사이즈 만 입을 수 있었다”고 혀를 찼다. 다이어트 후에는 “과거 입던 반팔 라운드 옷이 원피스가 될 정도로 커졌다.”며 “다른 사람들처럼 백화점에 가서 옷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기쁘다.”고 웃음을 보였다. 추후 다이어트 계획에 관해선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 성공 연예인으로 노유민, 김태우를 떠올린다.”며 “앞으로는 다이어트 성공 대표 연예인으로 임도혁을 떠올릴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임도혁은 43kg 감량에 이어 57kg을 더 감량할 계획이다. 총 100kg 감량에 성공해 키에 맞는 적정 몸무게 달성이 목표라 밝혔다. 사진=빅포 엔터테인먼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사진작가 김중만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사진작가 김중만

    김중만(62)과의 만남은 금요일인 지난 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예정돼 있었다. 그 주 수요일부터 수영 박태환을 리우올림픽에 내보내자는 1인 시위를 국회 정문 앞에서 벌여 온 그가 일단은 그곳에서 보자고 제안해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후에 쏟아진 폭우로 그는 철수를 해야 했고 결국 청담동 스튜디오로 장소가 변경됐다. 폐렴 증세가 있는데 비까지 흠뻑 맞은 그는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좀 있으니 그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법원에서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 자격을 인정했다는 뉴스였다. 그의 표정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그럼 이제 정말 사자도 보고 침팬지도 보고 하마랑 코뿔소도 보고 그러는 거예요?” 1970년 여름 어느 날 저녁 나는 만세를 불렀다. 끓어오르는 희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홍대부고 1학년에 다닐 때였다. 아버지는 충남 한산에서 외과의원을 운영하셨는데, 가족들을 불러 앉혀 놓고 상상도 못했던 말씀을 하셨다. “정부에서 아프리카 봉사활동 파견 의사들을 모집하는데, 거기에 지원했다. 거기 가면 여기에서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다.” 나와 동생은 기뻐 날뛰기만 했지, 아버지의 입가에 흐르는 씁쓸한 미소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대접받는 의사의 자리를 버리고,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안 되는 나라로 떠나갈 결심을 한다는 게 얼마나 깊은 번민의 산물이었을지는 나중에 좀더 철이 든 뒤에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6·25 참전 군의관이셨다. 내가 휴전 이듬해 강원도 철원에서 2남1녀의 맏이로 태어난 건 그래서였다. 아버지는 군인들이 이 땅을 계속 통치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요즘 ‘헬조선’이라며 이민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46년 전에 그걸 몸소 실천에 옮기셨던 것이다. 그것도 가난과 모래폭풍이 지배하는 아프리카 오지에 가는 걸로 말이다. -아버지는 전역 후 당신 아버지의 고향인 전북 군산 대신에 어머니의 고향인 한산에 정착해 의원을 차리셨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즈음만 해도 우리 집이 양계장을 하는 줄 알았다. 아픈 사람들이 돈이 없으면 닭을 가져왔고 아버지는 늘 그걸 웃으며 받아주셨다. 매일 닭 요리가 밥상 위에 올라왔는데, 그때 물리게 먹어서 지금도 닭을 안 좋아한다. -내가 아프리카행에 그토록 환호했던 것은 탐험 소설가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대니얼 디포의 고전 ‘로빈슨 크루소’를 주셨는데, 난생처음 밤을 새워 읽은 책이었다. 이후 내 머릿속에는 무인도나 정글 생활 같은 것들이 꽉 들어찼고, 중학생이 돼 서울로 올라와서는 틈만 나면 청계천 8가 헌책방 거리로 달려갔다. -아버지의 중대 발표가 있고 보름 후 부모님과 우리 형제, 이렇게 네 식구가 탄 비행기가 서아프리카 오트볼타 상공에 도착했다. 오트볼타는 지금은 부르키나파소로 개명된 옛 프랑스 식민지였다. 하지만, 비행기가 랜딩 기어를 내릴 즈음 나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창밖의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그림이 전혀 아니었다. 밀림이나 사자는커녕 아래로 온통 시뻘건 모래사막뿐이었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사하라 남쪽에 위치한 오트볼타는 거대한 사막의 끝자락이었다. ‘아프리카면 다 똑같은 줄 알았더니….’ 게다가 우리가 살 곳은 수도인 와가두구에서 버스로 20시간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였다. 철판으로 벽을 세운 묘한 형태의 집에 방 두 칸과 나무침대가 전부였다. 옆에서 흐뭇하게 웃고 계시는 아버지가 야속했고, 할머니와 함께 서울에 남은 여동생이 부러웠다. -아버지는 그 길로 평생을 아프리카 사람으로 사셨다. 오트볼타에서 의료 활동을 마친 후에는 더 남쪽에 있는 보츠와나로 옮기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계셨다. “내 통장에 2000풀라(보츠와나의 화폐 단위)가 있는데, 그 정도면 괜찮겠냐.” 1999년의 어느 날 생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직감한 아버지가 미국에서 돌아와 병 수발을 들고 있는 나에게 물으셨다. 그게 장남인 나에게 남겨 주시는 전 재산이란 얘기였다. 아버지의 표정은 대단했다. 2000풀라면 우리 돈으로 200만원 정도인데, 거의 200억원을 물려주시는 듯한 그 당당함이란. 얼마 후 돌아가셨을 때 당신이 남긴 거라곤 정말로 그 2000풀라와 양복 2벌, 청진기 3개, 모자 3개, 모터 달린 자전거 1대 그리고 ‘김정’이란 이름 두 글자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위대한 유산이 그리고 이만큼 멋진 분이 또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나는 동생보다도 아프리카 생활을 못 견뎌했다. 일단 마을에 학교가 없어 답답했다. 불어를 익히는 것 말고는 나를 채워 줄 것이 없었다. 신물 나게 양배추 김치만 먹어야 하는 것도 싫었고, 독거미에 물려 사경을 헤맸던 일도 끔찍했다. 1971년 나는 아버지가 수소문한 끝에 프랑스 서부의 작은 도시 숄레로 보내져 고1부터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인생의 황금기가 열렸다. 사방이 포도밭이었는데, 모두가 와인을 만들어 먹고살았다. 학교건 기숙사건 와인이 넘쳐났다. 그리고 1500명 학생 중에 유일한 동양인인 나에 대한 남녀 학생들의 관심과 배려는 한이 없었다. 꿈결 같은 3년을 보냈다. -원래 꿈대로라면 문학을 전공해야 했는데, 그러기엔 수학 실력이 너무 달렸다. 수학 시험을 안 보고 갈 수 있는 대학 전공은 미술밖에 없었는데, 그건 자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으로 숱하게 상을 받은 나였다. 1974년 니스에 있는 국립응용미술대 서양화과에 입학해 1년을 보내고 난 어느 날, 기숙사에서 사진을 취미로 하는 법대생 친구가 인화 작업을 도와 달라고 했다. 사진 한 장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 처음으로 보게 됐다. 3~5분 만에 인화지에 그림이 새겨지는 건 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내 그림은 석 달이 걸려도 완성이 될까 말까인데. “맞다 저거야. 내 성격엔 저게 딱이야.” 친구에게 카메라를 빌렸다. 잠자고 씻을 때를 빼고는 카메라를 품고 살았다. 풍경, 얼굴, 동물 등을 닥치는 대로 찍었다. 아르바이트해서 몇 푼 손에 들어오면 무조건 필름 가게로 달려갔다. 늘 필름에 목이 말랐다. 주변에 있는 여자들의 누드도 찍었는데, 이는 내가 작가로서 초기에 명성을 얻게 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데뷔 시절 나의 주제가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1975년 대학 2학년 때 일찌감치 아들을 보았다. 아이의 엄마는 특수교육을 전공하던 한 살 어린 프랑스인 여자친구였다. 가장이 됐으니 생활비가 필요했고 필름값도 벌어야 했다. 돈을 아끼려고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아이를 몰래 돌보다 쫓겨난 적도 있었다. 주말이건 심야건 닥치는 대로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디스코텍에서 DJ도 했다. 점심때 식당 주방에 설거지를 하러 가면 늘 4~5m 높이 분량의 접시들이 쌓여 있었다. 당시 아버지가 아프리카 의료 활동으로 받는 돈은 고작 석 달에 500달러였다. 멀리 프랑스에 있는 아들에게 전혀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사진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얼마 안 돼서 나는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전공을 살려 사진에 과감하게 미술적인 프레임을 접목한 게 먹혀들었다. 주어진 것을 찍는다는 생각보다는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장소를 정하고 모델을 세웠다. “니스에 동양인이 한 명 있는데 사진을 잘 찍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를 찾는 곳이 늘어갔다. ‘프랑스 오늘의 사진 80인’ 등 몇몇 중요한 상을 거머쥐고 나는 파리로 진출했다. 자연히 니스에서의 학업은 더이상 이어갈 수가 없었다. 파리에서는 유명작가들 밑에서 패션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당시는 세계적인 대가일수록 동양인 어시스턴트를 두는 게 유행이었다. 이게 나에게는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어떠한 다른 동양인 사진작가도 나만큼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는 못했다. -1977년 서울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23세 때였다. 칸 미술제 참석을 위해 프랑스에 온 우리나라 화가들이 우리 집에 왔다가 내 사진을 보더니 “한국에는 이런 사진이 없다”며 전시회를 열어 보라고 했다. 전시회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 인연으로 한국에 계속 머물게 됐다. 이듬해 배우 오수미(1950~1992)를 만났다. 남편인 신상옥 감독이 납북되고 혼자 살고 있던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아름다움에 현기증을 느꼈다. 얼마 후 한국에 같이 머물고 있던 첫 번째 아내에게 “새로운 운명을 만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용서를 구했다. 아내는 별말 없이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떠났다. 그녀는 지금도 니스에서 전공을 살려 정신지체아들을 돌보고 있다. 지금도 아내와 아들과는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그녀는 가히 천사다. 방학이면 해마다 인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 나는 테레사 수녀님을 따서 그녀를 ‘마더 테레사’라고 부른다. 지금도 우리들은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아들은 나와 같은 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나는 이 땅에서 두 번의 추방을 당했다. 1985년에는 프랑스 국적의 외국인이면서 당국에 신고도 하지 않고 전시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1986년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정보당국에 붙들려가 일본과 미국행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 보내졌다. 두 번째 추방은 신상옥 감독이 북한을 탈출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그걸 계기로 오수미와는 자연스레 결별을 하게 됐다. -1988년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한국인이 됐다. 당시 나는 프랑스에서도 톱클래스에 있었다. 그런데 오기가 생겼다. 두 번이나 나를 추방한 이 나라에 뭔가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해 당시 톱 모델이던 이인혜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1995년 5월에는 서울시립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됐다. 검찰이 일부 마약사범의 진술에 의존해 나에게 대마초 흡연 혐의를 씌웠는데, 나는 이미 2년 전에 같은 혐의로 구속돼 55일 동안 구치소 생활을 했고, 이후로는 완전히 절연한 상태였다. 검찰은 소변 검사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자 13일간 나를 정신병원에 가뒀고, 이는 인권탄압 사례로 신문 등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어쨌거나 이 일로 나는 국립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강사에서 잘리고 아내에게 이혼까지 당했다.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갔다. 1년을 아이와 둘이 살고 있으니 아내가 다시 찾아왔다. LA에서 3년 동안 패션사진, 상품 카탈로그 등을 찍으며 세 식구가 괜찮게 먹고살았다. 그런데 1997년 말 한국 외환위기의 파고가 멀리 LA까지 밀려왔다. 주된 고객이던 한국 기업들이 도산을 하거나 경영난에 빠지면서 일감이 뚝 끊겼다. 결국 월세 3000~4000달러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빈민들이 사는 300달러짜리 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꼬박 1년을 살면서 전당포를 세 번을 갔다. 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다. 500달러에 카메라를 잡히면 그날은 LA갈비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거기에서 얻은 건 가족애였다. 극심한 가난 속에 우리 셋은 정말로 하나가 됐다. 너무도 소중한 가치였다. -“형, 처자식 고생 그만 시킬래.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형이 사진전 좀 열 수 있도록 주선해 줘.” 1999년 LA라디오 사장이던 가수 이장희에게 귀국을 고했다. 떠나기 전에 라디오코리아에서 내 작품들의 전시회를 열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였다. 사람들에 신세진 것들 좀 갚고 남은 돈으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부모님 계신 보츠와나를 거쳐 서울로 오는 티켓이었다. 그런데 카메라 장비며 책이며 옷가지 등 해서 짐이 250kg이나 됐다. 추가 화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수중에 남은 돈이 고작 400달러 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사진 5장을 별도의 휴대용 박스에 넣고 우리가 예매한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카운터를 찾아갔다. 책임자를 보자고 했다. 후덕해 보이는 여성이 나왔다. “저는 사진을 하는 예술가입니다. 짐이 좀 많은데, 추가 비용을 낼 형편은 안됩니다. 저의 작품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게 힘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녀는 내 사진을 한 장, 두 장 보더니 곧바로 ‘오케이’ 사인을 냈다. 이에 더해 우리 가족의 티켓을 이코노미석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 주었다. 내가 절실할 때, 진실할 때 정성이 통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진의 힘이란 걸 새삼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보츠와나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그의 30년 아프리카 여정을 기리는 뜻에서 카메라 장비를 챙겨 초원으로 나갔다. 요하네스버그, 세렝게티, 타랑기레 등의 동물들을 담아 2001년 8월 15일 광복절에 한국에 돌아왔다. -막상 귀국을 하니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내 한 몸은 고사하고 아내와 아들이 머물 수 있는 집 한 칸이 없었다. 상업사진을 시작했다. 명함을 만들고 압구정동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패션, 영화포스터, 음반표지 등 닥치는 대로 작업을 했다. 3년을 일하니까 서울 전농동에 아파트 한 채를 살 돈이 모였다. 3년을 더 하니까 한 해에 15억원 정도가 손에 들어왔다. -‘이게 내가 추구하던 삶인가? 맹목적으로 일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먹고 살 만 해지니까 또 다른 생각에 발동이 걸렸다. 2006년 고비 사막으로 여행을 갔다. 보름 동안 50대, 60대의 김중만은 어때야 할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돌아와서 아내에게 말했다. “나 상업사진 그만할게. 그래도 괜찮겠지?” 6년 동안 상업사진을 찍으면서 50억원 이상을 벌었는데 남은 건 거의 없었다. 빌딩 한 채 사 두라는 주위의 말들 무시한 채 어려운 나라에 학교 지어 주고, 카메라 장비 사고, 스튜디오 운영하고, 먹고 놀고 했더니 남은 게 없었다. -2008년 관광공사의 외주를 받은 것을 계기로 한국의 풍경을 집중적으로 앵글에 담기 시작했다. 한국의 이미지는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되어 주었다. 그동안 나는 우리나라의 이미지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어느날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에 갔다. ‘600년 된 학교인데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고, 옆에는 숲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600년 전에 이런 학교를 지었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우리나라를 너무 피상적으로만 보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이미지 촬영은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됐다. 무엇보다도 해외에서 호평이 이어졌다. ‘극단적으로 동양적인 본질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극단적으로 서양적인 표현력을 갖고 있다’, ‘동양과 서양을 겸비한 이중성을 갖고 있는 유일한 작가’ 등 평가들이 나왔다. -예술사진으로 다시 돌아와 시간이 흐르니 내 작품 가격이 2500만원, 5000만원, 7500만원 등으로 해가 다르게 뛰었다. 대부분 외국에서 구매하는데 3개월 전에 처음으로 작품 하나를 파리에서 1억원에 계약했다. 작품의 가격은 작가의 자존심이다. 5억원까지는 올려보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건 나의 철칙은 지키려 한다. 작품의 영역에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순결해지자는 것이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사진작가 김중만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다. 10대 중반 아프리카를 거쳐 프랑스에 유학해 21세 때인 1975년 니스에서 개인전을 열고 데뷔했다. 1977년 ‘프랑스 오늘의 사진’에 역대 최연소 작가로 선정되면서 주목받았다. 인물, 동물, 꽃, 풍경, 패션 등 다양한 주제에서 틀에 짜인 관습과 앵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을 창조해 왔다. 현재 스튜디오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운영하고 있다. 2006년부터 상업 활동을 중단하고 예술 사진에 집중하고 있다. 아프리카 어린이 지원과 캄보디아, 베트남 학교 건립 등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다. ▲1954년 강원 철원 출생 ▲한산초, 홍익중, 프랑스 숄레 고등학교, 니스 국립응용미술대 서양화과 중퇴 ▲프랑스 아를 국제 사진페스티벌 젊은 작가상(1977), 올해의 패션사진가상(2000),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2010), 한국패션 100년 어워즈(2011) ▲ 작품집 ‘불새’, ‘인스턴트 커피’, ‘동물왕국’, ‘아프리카 여정’, ‘애프터 레인’, ‘네이키드 소울’, ‘오키드’ 등
  • 서울시의회 김생환의원 교육위원장에 선출

    서울시의회 김생환의원 교육위원장에 선출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김생환 의원(더불어민주당, 노원4)은 지난 6월 29일 제269회 임시회 기간 중 상임위원장 선거를 통해 제9대 서울시의회 후반기 교육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김생환 교육위원장은 지방의원 5선 의원으로, 제8대 의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위원과 예산결산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제9대 의회에서는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서울시의회 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하는 등 교육과 복지, 특히 인권문제 전문가로 정평이 나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행정학을 강의하며 연구와 후학양성에도 힘써온 김생환 교육위원장은 교육과 행정에 대한 다양한 정책연구와 ▲‘학업중단예방 및 교육지원에 관한 조례’ 발의 ▲‘숭실고 정상화를 위한 민·학·관 공동대책 위원회’ 위원장 역임 ▲‘유아교육 발전방안을 위한 정책토론회’ 개최 ▲‘학부모회 구성 및 운영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 개최 ▲‘학교폭력, 집단따돌림에 대한 예방과 회복전략 토론회’ 및 ▲‘서울시 아르바이트 권리 보호와 인권증진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주최하여 좌장으로 나서는 등 교육 현안에 대한 냉철한 문제의식과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김 교육위원장은 당선 소감을 통해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의미의 ‘수적천석(水滴穿石)’ 이라는 말처럼, ‘겸양지덕(謙讓之德)’의 낮은 자세로 서울시의원과 서울시민 한 분 한 분의 뜻을 모아 서울교육의 혁신과 변화를 꼭 이루어내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특히 9대 의회에서 전국적 이슈로 만들었던 누리과정 예산문제를 임기 내에 반드시 종지부를 찍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 교육위원장은 “교육정책과 방향의 변화로 우리 아이들의 행복지수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제대로 된 교육행정을 펼치고 감동을 주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시교육청과 학교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 고 포부를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OECD 3위 세비, ‘눈먼’ 특수활동비 다 줄여야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그제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회의원 세비(歲費·월급)를 절반으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20대 국회 초반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의원 특권 내려놓기의 일환이었다. 우리는 현실성 여부를 떠나 다수 국민이 그의 제안에 공감할 것으로 본다. 노 원내대표의 지적처럼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의원 세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중 3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의원들이 당리당략을 떠나 오로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헌신해 국민의 마음속에 희망의 싹을 틔웠다면 세비가 논란거리가 됐겠나. 국민이 세비 유지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의원들이 민생을 외면하고 특권 유지에 연연했던 업보일 것이다. 그제 노 원내대표가 본회의장에서 ‘반값 세비’나 특수활동비 폐지 등을 거론했을 때 여야 의원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노 의원 본인도 내심 자신의 제안이 전폭 수용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의 제안을 때만 되면 나오는 인기영합성 발언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20대 의원의 세비가 연 1억 4000만원으로, OECD 회원국 중 1인당 국민소득에 견줘 미국·일본 다음이라는 통계를 보라. 임기 중 겸직 금지를 고려하더라도 항공기와 KTX 무료 이용에다 연 2회 이상 해외 시찰, 그리고 정책개발비 지원 등 온갖 혜택을 고려하면 미·일에 비해서도 결코 낮지 않다. 굳이 “세비를 반으로 줄여도 근로자 평균임금의 세 배”라는 노 의원의 지적을 들먹일 필요도 없을 정도다. 이처럼 우리나라 세비는 의원 1명을 유지하는 데 드는 전체 국고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그런데도 국민은 ‘반값 국회’도 아닌, ‘반값 세비’가 현실화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까닭이 뭐겠나. 진영 논리에 갇혀 무한 대치를 일삼는 여야가 세비 인상 등 의원 기득권 지키기에는 늘 한통속이었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야당 의원이 지난달 13일 개원한 20대 국회에서 첫달치 세비 880만원을 받고 너무 적다고 푸념하는 판이 아닌가. 혹여 ‘반값 세비’에 냉소적인 의원들이 있다면 얼마 전 외신을 통해 전해진 미국 메인주 지사 부인의 사례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가계를 돌보면서 불과 연봉 7만 달러(약 7900만원)를 받는 주지사 남편을 내조한다니 말이다. 박봉에도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는 선진국 의회에 비춰 우리 국회의 자화상은 노 의원의 말처럼 부끄럽다 못해 처절하다. 그런 측면에서 세비의 다과보다 더 큰 문제가 의원들이 국고를 불투명하게 축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19대 국회에서 특수활동비를 유용해 물의를 빚은 사례가 어디 한둘이었나. 한 여당 상임위원장은 부인 생활비로, 다른 야당 위원장은 자식 해외 유학비로 특수활동비를 탕진한 게 한국적 특수성이 아닌가. 그러고도 문제점을 고친다더니 그때뿐이었다. 여야는 차제에 세비나 특수활동비를 다만 얼마라도 줄이고 투명하게 사용함으로써 20대 국회에서는 떳떳한 의정 활동을 하기 위한 자계(自戒)의 징표로 삼기 바란다.
  • 한철우, 전무후무 개인기 ‘그릇 디제잉’으로 ‘라디오스타’ 초토화

    한철우, 전무후무 개인기 ‘그릇 디제잉’으로 ‘라디오스타’ 초토화

    ‘라디오스타’에서 배우 한철우가 전무후무 ‘그릇 디제잉’의 신으로 등극할 예정이다. 그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개인기를 선보여 4MC를 폭소케 만들었다고 전해져 궁금증과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다. 오는 6일 방송될 고품격 토크쇼 MBC ‘라디오스타’(기획 조희진, 연출 황교진)는 이경규-이윤석-윤형빈-유재환-한철우가 출연하는 ‘킹경규와 네 제자들’ 두 번째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난 주 배우 한철우는 데뷔 22년만에 ‘라디오스타’에서 차분하면서도 센스 있는 토크와 리액션을 통해 22년치 포텐을 한번에 폭발시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그는 이번 주도 이어서 토크면 토크, 개인기면 개인기 모두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에 이경규가 “얘 안 데리고 나왔음 어떡할 뻔 했어”라며 극찬했다고 전해져 한철우의 ‘킹경규 제자’다운 면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한철우는 개인기로 ‘그릇 디제잉’을 선보이며 막걸리 잔으로 수줍은 소녀 같은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맥주컵을 이용해 ‘아이언맨’으로 변신하는 등 그의 팔색조 같은 매력을 한껏 과시했다. 그가 선보인 깜찍하면서도 유쾌한 개인기에 모두가 함박웃음을 터트렸다는 후문이어서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철우는 자신의 배우인생을 걱정해주는 이경규의 황당(?)한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저게 앞으로 니가 맡을 닭집이야”라며 이경규의 치킨집 아르바이트생 자리를 제안했다고 밝혔고, 이에 이경규는 더불어 살려는 것이라며 재치 있는 대답을 해 4MC를 웃음짓게 했다. 뿐만 아니라 한철우는 힘들었던 시절 이경규의 무심한 듯 힘이 되는 한마디에 눈물을 글썽인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한철우가 울먹였던 것을 몰랐던 이경규는 한철우의 고백에 깜짝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어서 버럭의 대명사인 이경규가 어떤 따뜻한 말을 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처럼 한철우의 전무후무 ‘그릇 디제잉’ 개인기 시범과 웃음이 숨겨져 있는 이경규와의 가슴 따뜻한 에피소드는 오는 6일 수요일 밤 11시 10분 ‘라디오스타-킹경규와 네 제자들 특집’ 두 번째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라디오스타’는 김국진-윤종신-김구라-규현 4MC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촌철살인의 입담으로 게스트들을 무장해제 시켜 진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독보적 토크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 MBC ‘라디오스타’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계층 절벽 심화···‘금수저’일수록 대기업 취업 확률 높은 현실

    계층 절벽 심화···‘금수저’일수록 대기업 취업 확률 높은 현실

    부모의 소득이 높은 대학생이 대기업 취업에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부모로부터 학비 지원을 받은 학생들은 자기계발을 위한 경험을 쌓고 취업 준비에 집중할 수 있어 대기업 취업률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에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학생들은 취업 후 임금 수준이나 만족도 등이 모두 낮았다. 부모의 재산에 따라 자식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 더욱 공고해지는 양상이다. 이는 29일 한국고용정보원이 내놓은 ‘재학 중 근로경험 유형에 따른 근로자 특성 및 노동시장 성과 차이’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보고서는 재학 중 일자리 경험이 있는 학생 2695명을 ‘자기계발형 일자리’ 경험자(1313명)와 ‘생계형 일자리’ 경험자(1382명)로 나눴다. ‘자기계발형 일자리’ 경험자는 부모나 친지에게서 학비를 조달받고 인턴, 실습 등 전공과 잘 맞는 근로를 한 학생을 말한다. ‘생계형 일자리’ 경험자는 본인 스스로 혹은 학자금 융자로 학비를 조달해야 해 전공과 잘 맞지 않는 아르바이트 등을 한 학생이다. 두 집단은 부모 소득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났다. 자기계발형 일자리 경험자는 부모의 월 소득이 ‘300만원 이상∼500만원 미만’인 비율이 42.7%에 달했다. ‘500만원 이상∼1000만원 미만’은 25.4%, ‘1000만원 이상’은 4.4%에 이르렀다. 반면 생계형 일자리 경험자의 59.0%는 부모의 월 소득이 300만원에도 못 미쳤다. 중·상류층 자녀가 주를 이루는 자기계발형 일자리 경험자는 졸업 후 종업원 500인 이상 대기업에 취업하는 비율이 17.8%였다. 하지만 서민층 자녀가 절반 이상인 생계형 일자리 경험자는 대기업 취업 비율이 14.4%에 그쳐 그 격차가 3.4%포인트에 달했다. 종업원 500인 미만 기업에서는 두 집단의 취업 비율 차이가 거의 없어 그 격차가 1%포인트 안팎에 불과했다. 두 집단은 시간당 임금, 일자리 만족도, 일자리 유지 여부 등 취업 후 근로 조건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나타냈다. 자기계발형 일자리 경험자의 시간당 임금은 1만 1100원이었지만, 생계형 일자리 경험자는 9700원에 그쳤다. 일자리 만족도도 각각 43.02점과 40.74점으로 자기계발형 일자리 경험자의 만족도가 더 높았다. 취업 2년 후 일자리 유지 비율도 자기계발형 일자리 경험자는 45.93%에 달했지만, 생계형 일자리 경험자는 40.67%에 그쳤다. 생계형 일자리 경험자가 ‘비정규직’에 더 많이 취업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한나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부모 소득과 재학 중 일자리 경험, 대기업 취업 확률 및 근로조건에서 뚜렷한 상관관계가 드러난다”며 “부모로부터 학비 지원을 받은 학생들은 자기계발을 위한 경험을 쌓고 취업 준비에 집중할 수 있어 아무래도 좋은 일자리를 얻기에 유리하다. 대학 등 교육기관은 생계형 일자리 경험자의 졸업 후 경쟁력이 뒤처지지 않도록 이들의 진로 지도와 취업률 제고에 더 힘쓸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양천 민선 6기 2년… 현장 가는 김수영

    양천 민선 6기 2년… 현장 가는 김수영

    김수영 서울 양천구청장이 민선 6기 출범 2주년을 맞아 주민과 함께 호흡하는 현장 소통행정을 펼친다. 김 구청장은 오는 30일과 다음달 1일 ‘학교 안전살피미’, ‘타운홀미팅’, ‘양성평등 주간행사’,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등 지역 주민들을 차례로 만나며 교육·복지·안전 문제를 돌아본다고 양천구가 28일 밝혔다. 이 행사는 민선 6기 2년간의 성과와 미래의 비전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30일에는 안양천변을 찾아 여름철 현장점검을 벌인다. 구민의 휴식을 책임지는 안양천변에서 운동기구 추가 설치, 해마루축구장과 별마루야구장의 통신망(WiFi) 설치 등을 살펴본다. 이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안양천을 연결하는 신정교 앞 보도육교의 깔판 교체 여부, 인근 지역의 보안등 추가 설치와 거주자우선주차 구획 신설 등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예정이다. 이튿날인 1일에는 이웃과 인사하기 캠페인, 우리학교 안전살피미 순찰활동, 대학생 아르바이트생과의 타운홀 미팅, 양성평등주간 기념식,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홀몸어르신 방문 등 온종일 일정을 이어간다. 오전에는 목동역에서 출근길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신목초등학교에선 학교 주변 위험요소 순찰에 나선다. 청춘에 묻고 답하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과의 타운홀미팅에선 청년의 시각에서 느낀 구정의 문제점에 귀를 기울일 예정이다. 양천구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법이나 제도적으로 해법을 찾기 어려운 현장의 민원에 대해 구청장이 직접 방문해 주민의 요구를 듣고,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종일반 안 하면 바보” 전업맘 가짜취업 기승

    “종일반 안 하면 바보” 전업맘 가짜취업 기승

    “어린이집 종일반 자격을 갖추려고 위장 취업한 엄마들 주위에 많아요. 맞춤반으로 신청한 저만 바보 됐어요.” 한 살 아이를 둔 주부 A(32)씨는 지난 24일 종료된 ‘맞춤형 보육 집중 신청기간’(연중 신청도 가능) 동안 고민을 거듭했다.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라 종일반(오전 7시 30분~오후 7시 30분) 신청 대상은 아니지만 주위의 다른 전업주부들이 직업능력개발 훈련과정을 신청해 구직활동자로 등록하거나 지인의 가게에 종업원으로 가짜 취업을 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종일반에 등록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맞춤반(오전 9시~오후 3시) 보육료는 종일반의 80% 정도니까 어린이집에서 좋아하지 않더라구요. 우리 애를 제대로 보살펴 주지 않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구요.” ●“보조금 더 받자” 어린이집도 부추겨 전업주부의 아이는 어린이집 종일반을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맞춤형 보육’ 시행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전업주부들이 아이를 종일반에 넣기 위해 가짜 취업·구직활동을 하는 불법 행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부보조금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 어린이집이 전업주부들에게 불법적으로 종일반 신청을 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가 다음달 1일부터 추진키로 한 어린이집 맞춤형 보육 제도는 시행 초기부터 파행이 불가피해 보인다. 주부 B(33)씨는 일주일에 3~4일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 살 아이를 키운다. 4대 보험도 없고 소득 증명도 어려워 종일반 신청이 불가능하지만 지난달 지인의 권유로 그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종업원으로 등록했다. B씨는 “맞춤반을 신청하면 오후 3시에 아이를 데리고 올 사람도, 맡길 곳도 없어 막막하다”며 “서류상으로만 종업원으로 등록했기 때문에 들킬까 봐 떨린다”고 말했다. 정부가 새로 도입한 맞춤형 보육제도는 종일반 등록 기준을 부모가 주 15시간 또는 월 60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일 경우로 제한했다. 정부지원 직업능력개발 훈련과정 수강자나 장애인이 있는 가구, 생계·의료급여 수급 가구, 다문화 가정, 조손가정, 한부모 가구 등도 종일반 이용이 가능하다. 정부지원금은 종일반이 월 82만 5000원(0세 기준), 맞춤반은 66만원이다. 허위로 종일반 등록 자격을 갖추는 방법은 다양하다. 네 살 아이를 기르며 대구에 사는 주부 C씨는 “다단계 업체에서 물건을 사고 회원으로 가입해 근로자 증빙을 신청하거나 아는 사람의 가게에 가짜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규정을 지키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먼 친척의 사업자등록증명원에 이름을 넣는 방법도 있다. ●‘알바’ 주부 “3시 이후 애 맡길곳 없어” 일부 어린이집은 불법적으로 종일반 신청을 권유한다. 주부 D(30)씨는 “오후 3시면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지난달에 어린이집 원장이 맞춤반이 되면 보조금이 삭감되니 방법이 있으면 종일반으로 등록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면서 “하지만 맞춤반 아이들이 차별당하거나 정부 보조금이 깎여 간식의 질이 떨어질까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취업 여부를 파악해 허위 신고를 가려낼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허위 서류로 종일반을 이용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고 학부모의 주의를 당부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지금 최저임금 너무 많다”는 경영계···누리꾼들 ‘공분’

    “지금 최저임금 너무 많다”는 경영계···누리꾼들 ‘공분’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의 확연한 입장차로 법정시한인 28일 안에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이 결정되는 일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런 가운데 최저임금위원회 안에서 경영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용자 위원들이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하는 이유를 놓고 누리꾼들이 공분을 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 심의, 의결을 위한 제7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이날 사용자 위원들은 서면을 통해 내년에 적용할 적정 최저임금을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6030원)으로 동결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했다. 사용자 위원 측은 “노동생산성 측면에서 접근할 경우 현 최저임금은 매우 과도한 수준”이라면서 “당분간 최저임금 안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저임금 단신근로자 보호라는 최저임금제의 정책적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고 평가하면서 “유사근로자 임금수준, 생계비 측면에서 최저임금 인상요인이 없다”고 덧붙였다. 사용자 위원 측은 또 “영세·중소기업 생존, 근로자 고용안정 도모”를 위해 “최저임금 동결 필요”를 주장했다. 누리꾼들은 사용자 위원들의 이런 주장에 반발하는 모양새다. 한 누리꾼은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원으로 인상되면 주간 9시간 근무, 주 5일 기준으로 세전 180만원이다. 이건 ‘알바’(아르바이트 종사자) 기준이고, 민간기업에선 최저임금의 1.5~2배는 줘야 사람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월 270만~360만원(세전)을 받는다는 뜻”이라면서 “인간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최저임금을 받는 것인데 세후 250만원은 받아야 먹고 살고 가정도 꾸리고 미래계획이 나온다. 근로자는 자원봉사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다른 누리꾼은 “국회도 최저시급으로 받아라. 국민의 고통 분담으로 몸소 실천을”이라는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경영계는 뱃속만 채울 생각하지 말고 돈을 좀 풀어라. 돈을 풀면 그만큼 위축되어있던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은 누리꾼도 있었다. “담뱃값, 소주값 등 서민 기호품 가격은 맘대로 다 올려놓고 서민들 밥줄인 최저임금은 안 올려주면 어떻하냐”는 불만을 토로하는 누리꾼도 있었다. 현재 근로자 위원들은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급 1만원으로 인상하고 월 환산액을 209만원으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법안이 제출되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최저임금을 전체 근로자 평균 정액급여의 60% 이상이 되도록 해 2019년에는 최저임금이 1만원이 넘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최고임금법’이라는 새로운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민간 대기업 임직원은 최저임금의 30배, 공공기관 임직원은 10배,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는 5배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성공 위한 유망프랜차이즈 창업아이템 키포인트? 제품의 경쟁력!

    성공 위한 유망프랜차이즈 창업아이템 키포인트? 제품의 경쟁력!

    소비자들이 커피를 즐기고 하나의 문화로 받아드리게 되면서, 카페를 창업하고자 희망하는 창업자 수는 물론 커피전문점의 수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커피’라는 아이템은 현재 흔한 아이템으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되면서 그 경쟁력이 비교적 낮아진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페창업시장에 뛰어드는 잠재창업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창업자들은 폐업하기 쉬운 카페창업을 왜 그토록 고집하는 걸까? 카페창업은 소비자의 접근성이 뛰어나다. 현대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카페를 찾는다. 만남, 공부 등을 카페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만큼 마케팅을 잘만 하면 소비자의 유입을 활발하게 해 성공창업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유망 프랜차이즈 창업아이템이다. 또한 특별한 기술력을 요하지 않는 창업아이템 중 하나다. 창업자들이 카페창업을 희망하는 이유 중 하나로 운영의 편리함을 꼽는다. 바리스타 자격증 있는 매니저를 뽑으면 되고, 식재료는 업체로부터 납품 받으면 된다. 관리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기면 되며 점주는 전체적으로 매장과 매출 관리만 하면 된다. 하지만 카페 성공창업을 이루고자 하는 창업자라면, 유망프랜차이즈 창업아이템 중 반드시 따져 봐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제품의 경쟁력이다. 창업 전문가들은 커피가 흔해진 이 시점서 커피가 아닌 디저트나 과일 음료 등의 다른 메뉴에서 비롯된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용량 생과일 주스 브랜드 ‘A사’의 경우 흔한 커피전문점 사이에서 생과일을 갈아 만든 주스라는 특색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대표 메뉴로는 수박쥬스, 딸기바나나 쥬스, 초코바나나 쥬스 등이 있다. A사는 생과일 주스라는 제품 경쟁력도 돋보이지만, 철저하고 투명한 유통과정으로 인해 창업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필리핀, 미국 등 현지에서 재배한 A급 과일을 엄선해 수입한 뒤, 과일 신선도를 위한 체계적인 물류시스템을 거쳐 매장에 각각의 과일을 배송하고 있다. A사는 제품의 특색,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가맹점과 함께 동반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합리적인 가격과 과일의 신선함으로 소비자에게 사랑 받는 프랜차이즈 창업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프랜차이즈 대표 컨설팅협회에서 투표한 결과 유망프랜차이즈 창업 아이템 1위로 뽑힌 바 있는 DESSERT39의 경우 세계 각지의 유명 디저트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단기간 높은 성공창업 가능성은 보인 소자본 창업 브랜드다. 이 브랜드는 대한민국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해외 디저트라는 특색을 경쟁력 삼아 소비자들의 유입을 이끌어내고 있다. 대표 메뉴로는 일본에서 대유행을 이끌면 현지인과 관광객을 매료시킨 오리지널 도쿄롤, 초코크로, 크로칸슈 등이 있다. 또한 본사가 구축한 탄탄한 인프라가 제품의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어 창업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 인프라는 바로 디저트 자체 생산 시스템이다. 본사 제과센터에서 직접 디저트를 연구하고 개발,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디저트의 퀄리티는 물론, 타 업체의 모방이 어려워 경쟁브랜드가 없는 것이 이 브랜드의 가장 큰 특장점이다. DESSERT39는 가맹사업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250여 개의 가맹계약이 이뤄졌으며, 가맹점 수익을 위한 상권보호와 서비스 질을 위해서 한 달에 10개 매장만 오픈하는 정책을 두고 있다. 이는 본사와 가맹점이 동등한 관계에서 상생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서울시의회 청년발전특위, 올 서울시 청년정책 보고받아

    서울시의회 청년발전특위, 올 서울시 청년정책 보고받아

    서울시의회 청년발전특별위원회(위원장 : 서윤기·더불어민주당, 관악구 제2선거구)는 제268회 정례회 청년발전특별위원회 제1차 회의(2016년 6월 27일)에서 서울시의 청년정책에 관한 업무보고를 받았다. 서울시의 청년정책 4대 전략과 분야별 추진계획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고, 청년정책 전반에 대한 질의응답을 통해 청년정책이 ‘청년의 현실문제(청년문화, 주거, 일자리, 사회참여 등)’에 집중한 실효성 있는 청년정책이 되도록 촉구했다. 청년정책을 주관하고 있는 전효관 서울혁신기획관은 청년정책의 주요사업을 4개 분야(설자리 4개 사업, 일자리 9개 사업, 살자리 4개 사업, 놀자리 3개 사업) 20개 사업에 2016년 말까지 1,299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서울시는 사업과 예산은 일자리와 살자리에 집중되어 있지만, 실효적인 청년정책을 위해 청년들의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소통력을 강화하여 청년정책 실행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청년발전특별위원회 위원들은 서울시의 청년정책의 일자리, 주거, 사회진출, 청년네트워크의 실효성과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김용석 의원(더불어민주당, 도봉구 제1선거구)은 청년활동지원수당이 보건복지부에서 ‘수용’에서 ‘재검토’ 다시 ‘불수용’으로 번복된 것과 관련하여 청년수당은 청년의 취업활동을 촉진하는 것으로 외압으로 인하여 중단되지 않을 것을 당부하고 아르바이트 이면계약서 해결방안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김창원 의원(더불어민주당, 도봉구 제3선거구)은 ‘역세권 2030 청년주택 공급사업’이 민간 뿐만 아닌 공공시설을 활용하여 확대하는 방법과 ‘청년 뉴딜일자리 확대’ 사업을 포함한 청년정책의 적극적인 홍보를 주문했다. 이윤희 의원(더불어민주당, 성북구 제1선거구)은 ‘낡은 고시원, 여관·모텔 리모델링 청년주거공간 제공’ 사업이 ‘사회적 경제주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만큼 사업시행자의 자격조건에 대한 꼼꼼한 점검이 필요하며, 법률마다 청년들의 연령을 다르게 정하고 있어 정확한 대상을 선정 후 연구·조사를 통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준희 의원(더불어민주당, 관악구 제1선거구)은 청년정책은 사회 구조적 문제임과 실효성 문제를 지적하면서, 서울시의 담당부서들의 협의 및 협력을 통한 통합청년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강조하였으며, 청년주택 공급을 위한 과도한 인센티브(용적률 상향)가 서울도시계획의 일관성을 침해하고 있다며, 서울시의 주요 정책과 상호 유기적인 청년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집행부의 노력을 요구했다. 김영한 의원(더불어민주당, 송파구 제5선거구)은 ‘청년이 희망’임을 강조하면서 단순한 일자리 숫자보다는 ‘신진 예술가 지원’사업과 같은 인적자원개발의 측면의 접근방식을 강조하였고, ‘청년활동 공간 설치·운영’ 사업이 축소된 사유는 잘못된 사업계획에 의한 것이라며, 서울시의 다양한 서비스를 연계하여 제공될 수 있는 방안을 주문했다. 김진철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은 ‘역세권 2030청년주택 공급 지원’사업의 대상지가 역세권이어서 발생하는 ‘안정성과 지속성 저하’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청년들의 현황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공무원들의 수고로움이 필요하며, 비단 청년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촘촘한 사회망을 강조했다. 이신혜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은 총체적 난관에 처해 있는 청년들의 문제는 개인의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며, 현장에서는 취업을 위한 교통비 월 10만 원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보건복지부와의 갈등속에 있는 청년활동수당지원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을 주문하였다. 또한, 청년정책은 무엇보다도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되어야 할 것이며, 특별히 일자리와 관련하여서는 서울시 공공기관 내 일자리의 고용 안정성과 지속성을 강조했다. 조상호 의원(더불어민주당, 서대문구 제4선거구)은 청년문제의 핵심을 ‘일자리가 확장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하면서, 연령대별 학업기, 졸업예정기, 취업기 등 세부적으로 대상을 나누어 조사와 연구 후 정책의 정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사회 전체 문제를 해결할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혜련 의원(더불어민주당, 동작구 제2선거구)은 배달앱과 배달아르바이트의 인권보호를 강조하였고, 학업에서 사회참여로 이동하는 청년들이 안정된 사회진입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공공에서 확보해야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의회 청년발전특별위원회는 보다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청년정책 실행을 위해 살자리 소위원회, 일자리 소위원회, 청년문화사회참여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별 담당분야에 대해 심도있는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서윤기 위원장은 청년들의 현실에 같은 공감하면서 “서울시의 청년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는지 면밀한 점검을 위해 업무보고를 받았다.”면서, “각 사업 추진 부서와 청년발전특별위원회 위원, 현장 청년 활동가들과의 긴밀한 소통·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해 나가자.”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데스크 시각]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으로 버거운 조선의 ‘빅데이터’/안동환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으로 버거운 조선의 ‘빅데이터’/안동환 문화부 차장

    작가 한강이 출간한 지 9년이나 된 작품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첫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번역의 힘’이 컸다. 지난해까지 작가에게만 상을 주던 맨부커 수상위원회가 올해부터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에게도 공동으로 상을 준 것은 번역을 ‘또 다른 창작’으로 인정하기 때문일 게다. 작가와 번역자는 ‘문명의 장벽을 허무는 동반자’다. 어느 시대고 한 문명의 발전은 저절로 오지 않았다. 8세기에서 12세기까지 세계 최고의 문명을 자랑했던 이슬람은 830년 바그다드에 세운 번역원 ‘바이트 알히크마’(지혜의 전당)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어 서적을 아랍어로 번역한 게 출발점이었다. 이들의 정확하고 빠른 번역 덕분에 당시 카이로 중앙도서관은 100만권이 넘는 책을 소장할 수 있었다. ‘유럽의 과학 르네상스’로 불리는 12세기 문명의 발흥도 그리스어에서 아랍어로 옮겨진 고전들을 다시 라틴어로 재번역한 덕분이다. 서양 고전 번역보다 유독 홀대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게 우리 고전(古典)의 우리말 번역이다. 조선시대 임금의 비서실인 승정원이 288년간(인조 원년~순종 4년) 국왕의 일상을 마치 다큐멘터리 찍듯 정밀하게 기록한 ‘승정원일기’(2억 2600만자)는 1994년 시작된 후 22년이 지나도록 번역률이 19.1%에 그치고 있다. 직역과 오역으로 2011년 재번역에 착수한 ‘조선왕조실록’(4800만자)이 10.6%, 임금이 쓴 국정일기인 ‘일성록’(4800만자)이 겨우 절반 가까운 40%에 도달했다. 셋 다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받은 ‘빅데이터’인데도 이 정도다. 디지털 작업을 하면 뭐하는가. 정작 제 나라 국민은 읽을 수도 없는 ‘까막눈 기록’들인데….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승정원일기는 완역까지 앞으로 45년, 일성록은 2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구한말 망국 이후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전후 복구로 먹고살기도 힘들었다고 해도 1945년 나라를 되찾은 후 70년이 흘러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우리말로 옮기지 못한 고전이 무더기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우리 기록문화유산의 수준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정부가 지원하는 한 해 번역 예산은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에 불과하다. 올해 승정원일기 번역 예산이 12억 9000만원, 조선왕조실록 재번역 예산은 6억 6800만원, 일성록 4억 5000만원이다. 이 돈으로 번역자들에게 장당 1만 6000원의 원고료를 준다. 번역자 1명당 1년간 평균 1800장을 번역하니 연봉으로 치면 2880만원. 처우조차 나빠 고전 번역을 꿈꾸던 이들 10명 중 2명은 중도 포기한다. 번역 인재 양성 시스템도 비효율적인 ‘이중고’를 안긴다. 한학의 맥이 끊긴 국내에서 고전 역자 1명을 키우는 데 드는 세월은 현 시스템으로는 ‘10년’.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한 후 고전번역교육원에서 5~7년(연수과정 3년, 전문과정 1·2 각 2년)간 별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 번역 과정을 마쳐도 학위를 주지 않아 일반대학원에 진학해 학위를 다시 따야 한다. 국내 고전 학술 번역자로 진입하는 연령이 ‘평균 40세’인 이유다. 오래전부터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을 대학원대학교로 바꾸자고 거론됐지만 예산 타령을 넘지 못하고 수수방관돼 왔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우리 고전을 정확하고 속도감 있게 모국어로 옮기는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할 때다. ipsofacto@seoul.co.kr
  • “작년에 일부러 지원했는데 벌써 문 닫는다니요…”

    “작년에 일부러 지원했는데 벌써 문 닫는다니요…”

    검찰 수사로 재승인 여부 불투명 마지막 날에도 中 관광객들 북적 “원래 워커힐면세점에서 일했어요. 롯데월드점이 새롭게 이전, 오픈한다고 해서 지난해에 일부러 지원해 왔는데…. 1년 만에 폐업한다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26일 서울 송파구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한 명품 시계 매장. 판촉직원 A(30)씨는 “이렇게 빨리 문을 닫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이날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했다. 그래도 올 연말 관세청에서 서울 시내에 4곳의 면세점 신규 특허를 추가로 내주게 되면 다시 문을 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최근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 수사가 이뤄지면서 재승인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영업 종료일인 이날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무거운 얼굴로 마지막으로 손님을 맞는 직원들과 영업 종료와는 무관하게 쇼핑을 즐기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밝은 표정이 서로 얽히며 묘한 대비를 이뤘다. 오전 10시, 이른 시간임에도 화장품 코너를 비롯해 명품 브랜드의 매장들은 평소처럼 중국인들을 비롯해 면세품을 찾는 다양한 관광객들로 붐볐다. 중국 선양에서 관광을 왔다는 리우 샤우칭(30)은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영업일이)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은 가이드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면서 “그래도 시내 면세점에서 사지 못했던 물건들을 오늘 많이 구입할 수 있어 좋았다”고 즐거워했다. 그는 “다음에 또 이곳에 면세점이 생긴다고 하면 다시 올 것”이라면서 영업 종료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이미 경력이 오래된 인력들은 다른 면세점으로 많이 옮겨 갔고 현재는 단기 아르바이트생이 주로 판촉일을 하고 있다”면서 “안내 데스크나 일부 식품 매장 직원 등 남아 있는 150여명의 정규직 직원들은 타 지점으로의 발령을 기다리고 있거나 3개월 순환 유급 휴직을 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 조치해 놓았다”고 말했다. 롯데면세점 측은 제품 이관을 모두 마치는 30일 이후에는 월드타워점 내부 매장 일부를 브랜드 및 중소기업 제품 홍보관 등으로 꾸며 사용할 예정이다. 롯데면세점의 지난해 매출은 6112억원으로 롯데면세점 소공점과 장충동 신라호텔에 위치한 신라면세점에 이어 서울 시내 3위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1989년 문을 연 롯데월드 잠실점의 영업 기간까지 포함하면 27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롯데면세점은 월드타워점 폐점 이후 매장 관리 비용으로만 월 3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구직활동 전업맘도 ‘종일반’ 여성 경제활동 더 늘어날까

    어린이집 이용 시간을 ‘종일형’(12시간)과 ‘맞춤형’(7시간)으로 나누는 보육제도가 다음달 1일부터 실시된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일하는 엄마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취지의 제도라는 점에서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양질의 일자리가 늘지 않으면 공연히 여성 실업률만 올리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는 어린이집 대부분이 전업주부 자녀의 평균 귀가시간인 오후 3~4시에 보육 활동을 끝내다 보니 저녁 6~7시에 퇴근하는 여성은 조부모에게 손을 벌리거나 육아 돌보미를 추가로 고용해야 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2일 “일하는 여성이 눈치 보지 않고 늦게까지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게 되면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경력단절 여성이 감소하는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구직을 시작하는 여성들도 늘어날 전망이다. 전업주부이더라도 취업을 위해 학원에 다니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면 종일반에 자녀를 맡길 수 있다. 구직 시장에 새로 나오는 여성들을 수용할 일자리가 늘지 않으면 실업률이 되레 올라갈 수 있다. 25~29세 여성의 지난달 실업률은 7.4%로, 5월 실업률로는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구직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30대 전업맘이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노동이 즐거워야 삶이 행복하다”… 전방위 노동교육 나선 용산

    “노동이 즐거워야 삶이 행복하다”… 전방위 노동교육 나선 용산

    집보다 오래 머무는 곳이 일터고 가족보다 자주 보는 이들이 직장 동료다. 이처럼 노동은 삶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끼치지만 노동자들은 스스로 누릴 수 있는 권리나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를 잘 몰라 일터에서 임금체불이나 각종 차별 등을 겪곤 한다. 서울 용산구가 즐거운 노동을 돕기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1일 용산구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자활사업 참여자와 아르바이트생 등을 대상으로 근로기준법과 기간제보호법, 노동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구제 제도 등을 잘 이해해 억울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다. 또 지난 1일에는 지역의 공인중개업소 종사자 1188명에게 ‘건전한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노동교육’을 벌였고 지난 14~17일에는 일반음식점 대표 등 2200명을 대상으로 ‘외식업체 사업자를 위한 생산적 노무관리’ 교육을 진행했다. 22일과 오는 30일에는 용산구와 산하기관 전 직원에게 ‘노동인지행정’ 교육도 벌인다. 구 소속 공무원들은 이 교육을 통해 공공부문 노사관계의 특징, 노사분규 주요 사례 등에 대해 배우게 된다. 아르바이트를 주로 하는 청소년에게도 맞춤형 노동 교육을 벌일 예정이다. 마을공동체 복원을 위한 모임인 알바상담소는 구의 ‘우리 마을 지원사업’ 대상으로 뽑혀 다음달부터 지역 학교를 찾아다니며 노동교육과 아르바이트생 권리 캠페인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구와 마을공동체가 나서 적극적인 노동 교육을 해 건전한 노사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노동자와 고용주가 화합하는 ‘노동특별구’ 용산이 될 수 있도록 많은 구민들이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서울광장] 바보들아 본질은 무기야!/박홍환 논설위원

    [서울광장] 바보들아 본질은 무기야!/박홍환 논설위원

    1976년 6월 26일 일본 도쿄 부도칸 체육관. 프로복싱의 일인자 무하마드 알리와 프로레슬링을 주름잡던 안토니오 이노키가 사각의 링에 들어서자 전 세계 시청자들의 숨이 멎었다. 3분씩 15라운드로 진행된 세기의 대결은 허무하게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유리턱’ 이노키는 알리의 강펀치를 맞지 않으려고 경기 내내 링 바닥에 누워 발 공격만 해 댔고, 알리는 정강이를 걷어차이지 않으려 엉덩이를 뒤로 죽 빼고 주먹만 휘둘렀다. 한 사람은 허공만, 한 사람은 바닥만 노린 ‘따로국밥’ 같은 지루한 싸움이었을 뿐이다. ‘세기의 사기극’이라는 혹평을 얻은 40년 전의 특급 이벤트가 갑자기 떠오른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혹세무민 행태와 어떤 연유에선지 닮았다는 느낌 때문이다. 전직 검사장 출신의 전관 변호사가 검찰 후배인 차장 검사에게 20여 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어 집요하게 의뢰인의 구명 로비를 벌였는데도 엄정하게 사건을 처리했다고 검찰은 자신 있게 얘기하고 있다. 대법원은 전관 비리 근절책으로 판사실에 걸려오는 변호사들의 전화를 녹음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본질과는 거리가 먼 미봉책이고,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사건 처리에 불과하다. 지난 한 달 우리 사회는 어느 힘없고 가련한 젊은이의 죽음에 슬퍼했다. 백지장 같은 생사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보수하다 사고를 당한 19살 김군 이야기다. 어느 언론은 그가 작업 수칙을 어기고 휴대전화 통화를 하다 사고를 당했다고 성의 없이 책임을 김군에게 돌렸다. 서울시는 비슷한 사고 예방을 위해 ‘메피아’를 근절하고, 외주로 돌렸던 서울메트로의 험한 일을 직영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역시 사안의 본질을 읽지 못한 해석이고, 피하기에 급급한 미봉책일 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오늘도 어느 프랜차이즈 대리점 사장은 본사의 ‘갑질’에 일언반구도 못 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애꿎은 대차대조표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힘이 없으니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 설 때까진 “꽥” 하고 소리도 못내 볼 판이다. 연쇄적으로 그 화(禍)는 먹이사슬의 맨 아래에 있는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에게 고스란히 쏟아질지도 모르겠다. 약육강식,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야만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기회균등이라든가,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명제는 현실에 발을 딛는 순간 물과 융화되지 못한 비누거품처럼 허공을 떠돌다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을 똑똑히 목도하게 된다. 헌법상의 원칙과 현실의 괴리, 그게 우리의 본질적 문제다. “루저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가?” 영화 또는 드라마에서나 나옴 직한 대사가 횡행하기도 한다. 슬픈 현실이다. 형사소송법상의 대원칙 중에 ‘무기(武器) 평등의 원칙’이 있다. 법률적 소양과 지식, 공권력 등으로 무장한 검사에 비해 약자일 수밖에 없는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체급과 주특기가 다른 이노키 대 알리의 우스꽝스러운 이벤트처럼 불신을 자초하지 말고, 격을 맞춰 신뢰를 담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당사자 대등주의’라고도 한다. 최근 사석에서 한 중견 법조인이 전관예우·법조비리 해결책으로 꺼내 든 방안 중 하나도 이와 비슷하다. 미국 법정 드라마에서 흔하게 본 이 ‘무기 평등의 원칙’만 제대로 이행해도 전관예우라든가, 법조 비리는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사나 재판 단계에서 검·판사가 변호사만 일대일로 만나지 말고, 공익적 감시인을 동석시킨다면 되는 것 아니냐는 논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이미 만나서 뭘 요청하는 단계는 지났다. 최유정 변호사는 수시로 전화 변론했고, 홍만표 변호사도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에게 20차례나 청탁 전화를 걸었다는 것 아닌가. 그 엄청난 ‘화력’에 무릎 꿇지 않을 판·검사가 도대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사지로 내몰린 김군이나, 프랜차이즈 박 사장은 또 어떤가. 대등한 무기를 갖추지 못한 그들이 무슨 항변이나 할 수 있겠는가. ‘무기 평등의 원칙’, 선언적 명제가 아닌 현실화된 규칙이 필요하다. 문제의 본질은 무기에 있기 때문이다. stinger@seoul.co.kr
  • “강의 대신 들어가 대리출석 해드려요”...中, 티커 아르바이트 성행

    “강의 대신 들어가 대리출석 해드려요”...中, 티커 아르바이트 성행

     중국 대학에서 수업에 갈 수 없는 친구들을 대신해 출석하고 청강하는 이른바 ‘티커(替課) 아르바이트’가 성행하고 있다고 중국 CCTV가 20일 전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대출(대리출석) 알바’ 정도가 될 티커 아르바이트는 강의에서 교수가 출석을 부를 때 의뢰인을 대신해 대답해 주고 1~2시간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다. 가격은 수업 시간에 따라 최소 35위안(약 6100원)에서 60위안(1만 500원) 정도라고. 실제로 모바일 메신저 ‘위챗’ 등에 들어가면 ‘티커’ 관련 채팅방이 수없이 올라온다. 티커 아르바이트를 부업으로 삼는 ‘티커족’들은 “고객이 교수에게 대리출석을 들키지 않고 학기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보장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교수가 당신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할 리 없다”며 의뢰인에게 마음 놓고 수업 시간에 다른 일을 해도 된다고 유혹한다고.  중국 대학가에서 티커는 더 이상 특이한 현상이 아니란다. 중국 대학교매체연맹이 무작위로 대학생 503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52.09%의 대학생이 주변에서 티커하는 현상을 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외지에 있는 고향에 다녀와야 해 방학 기간 동안 수업을 100% 참석하기 어려울 경우 티커를 부탁하는 게 일반화돼 있다고 CCTV는 전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사설] 추경 서두르되 두루뭉술한 편성·집행 안 된다

    추가경정예산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조선·해운 업계의 구조조정이 임박해 대량 실직의 조짐이 보이면서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엊그제 연구기관장 간담회에서 “추경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4월 기자 간담회에서 “추경이 필요하다고 속단할 수 없다”고 한 데서 추경 편성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도 그제 “추경 편성에 한 발짝 다가갔다”며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했다. 지난달 “추경 요건에 맞지 않는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인 것과 대비된다. 최근 경제 상황을 보면 추경 편성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선 지난해 소폭 개선됐던 고용 여건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기준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만여명 증가한 2645만명이다. 지난 2월과 4월에도 취업자 증가가 20만명대에 머물러 지난해 평균 34만명에서 크게 떨어졌다. 고용과 직결되는 수출과 소비도 부진하다. 올 1분기 수출액은 1156억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3% 이상 감소했다. 같은 분기 민간 소비도 전기 대비 0.2% 줄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일자리의 근간인 수출과 내수 모두 좋지 않은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년 실업률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해운·조선 업계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올 하반기 재난적 수준의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경제계에선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올해 경제성장률 3.1% 달성을 위해선 20조원대 추경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8조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다행히 지난 4월까지 국세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조원 넘게 더 걷히는 등 추경 재원 조달 여건은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추경은 내용 못지않게 시기가 중요하다. 경기 활성화와 실업 대책으로서 효과를 내려면 늦어도 8~9월에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7월 초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돼야 한다. 지금까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추경이 편성되면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에 주로 투입됐다. 고용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SOC 분야 사업은 고용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청년 인턴 같은 청년 일자리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책은 일시적인 고용 수치 개선엔 도움이 되지만 지속성이 떨어진다. 유 부총리도 얼마 전 올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과 관련해 “구조 개혁에 박차를 가해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추경 편성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이다. 따라서 추경이 편성된다면 단순히 일자리 개수만 늘리는 데 쓰여선 안 될 것이다. 수치적인 성과가 낮아도 경제 활력을 높이거나 지속적인 노동이 가능한 부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신성장 동력이 될 사업에 쓰일 양질의 일자리 창출, 보육이나 노인 돌보기 같은 안정적 일자리를 보장하는 복지 서비스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그만큼 정교하고 치밀한 추경 편성과 집행이 필요하다. 아르바이트나 일용직 등 비정규직 일자리는 아무리 늘어나도 경제 활력만 떨어뜨린다. 정부가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 이탈리아 요리에 숨은 얘기들

    이탈리아 요리에 숨은 얘기들

    맛의 천재/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윤병언 옮김/책세상/576쪽/2만 3000원 점심부터 3~4개의 요리에 와인, 커피까지 곁들여 제대로 식사를 하는 이탈리아인들은 세계적인 탐식가(貪食家)로 꼽힌다. 미국인들은 소득의 8%를 먹는 데 쓰지만 이탈리아인들은 28%를 쓸 정도다. 오늘날 피자, 스파게티, 마카로니, 모차렐라, 발사믹 식초, 카르파초, 티라미수 등 이름만 들어도 군침 돋는 요리들 자체가 이탈리아인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맛의 천재’는 이탈리아 언론인인 저자가 수많은 문헌을 꼼꼼하게 뒤지고 방대한 취재를 통해 중세부터 현대까지 이탈리아 음식들의 탄생 비화와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미시적으로 풀어낸 ‘식탁 위의 인문학’이다. 요리에 관한 생생한 묘사는 당장 이탈리아 식당으로 뛰어가고 싶을 정도로 식욕을 자극한다.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식인 피자를 보자. 화덕에서 굽는 오늘날의 나폴리식 피자는 1570년 교황 피우스 5세의 요리사 바르톨로메오 스카피가 출간한 요리책을 통해 역사의 무대에 처음 등장한다. 이 요리책에는 ‘여러 가지 식재료를 사용해서 만드는 둥근 빵, 즉 나폴리 사람들이 피자라고 부르는 것을 요리하기 위해서는’이라는 문장이 있다. 사실 스카피가 말한 피자도 오늘날 피자집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음식은 아니었다. 책에 나온 피자는 반죽에 각종 과일과 견과류를 집어넣었고 도의 두께도 두꺼워 케이크에 더 가까운 모양이었다. 저자가 전하는 이탈리아 음식 변천사는 그 역사만큼이나 변덕스럽다. 국수인 스파게티의 초창기 이름은 ‘베르미첼리’, 우리말로 ‘지렁이’라는, 혐오감이 드는 표현을 붙였다. 18세기 3시간이나 됐던 스파게티 면 삶는 시간은 미국 남북전쟁 시기에 1시간 30분으로 줄었다가 1940년대에 이르러 20분으로 단축된다.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이 탄생하게 된 배경 설명도 재미있다. 빵에 발라 먹는 초콜릿 잼인 누텔라는 덩어리 형태로 판매하던 헤이즐넛 초콜릿이 무더위에 녹아 버린 것이 시초가 됐다. 이탈리아인들이 날것으로 즐겨 먹던 샐러드에 대해 중세 유럽인들은 “가축들의 주식을 빼앗는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이 책에는 수백 년 전의 샐러드 레시피도 나온다. 수많은 이탈리아 탐식가 가운데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다. 1981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예르미타시박물관에서 노트 한 권이 발견됐다. 작성자는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예술가 다빈치. 노트는 요리 레시피와 식사 예절, 주방 도구 관련 그림이 그려진 126쪽짜리 요리책이었다. 젊었을 때 다빈치는 ‘세 마리 달팽이’라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조 요리사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어느 날 그 식당에서 독살 사건이 벌어져 주방의 모든 요리사들이 사망한다. 보조에서 주방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다빈치는 파격적인 요리를 선보이다 손님들의 항의에 해고된다. 다빈치의 요리 열정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훗날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친구 산드로 보티첼리를 꼬드겨 ‘산드로와 레오나르도의 세 마리 두꺼비’라는 긴 이름의 식당을 연다. 비너스의 발 밑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조개를 그린 보티첼리가 메뉴판을 디자인하고 간판에 직접 그림도 그렸지만 식당은 쫄딱 망하고 만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공부한 박찬일 셰프는 추천 글에서 “송중기와 강동원이 같이 라면가게를 연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요리에 관한 역사책이지만, 그래서 요리에 죽고 사는 이탈리아인을 이해하는 책으로 읽힐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금감원 명의 현금보관서´ 주고... 20대 여성 울린 보이스피싱

    ´금감원 명의 현금보관서´ 주고... 20대 여성 울린 보이스피싱

    서울 관악경찰서는 검찰 수사관을 사칭해 보이스피싱으로 20대 여성 4명에게 1억 5000만원을 가로챈 김모(25)씨 등 7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박모(20)씨 등 수금책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6일 밝혔다. 수금책 3명은 지난달 23∼27일 ‘당신 명의로 개설된 대포통장이 범행에 사용됐으니 모두 찾아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맡기라’고 피해자를 속이는 방식으로 범행을 했다. 중국에 있는 총책이 보이스피싱을 통해 피해자를 찾으면 국내의 수금책이 직접 피해자를 만나 금융감독원장 명의가 위조된 현금보관 확인서를 나눠준 다음 돈을 받고 중국에 송금했다. 김씨는 페이스북에 ‘돈 많이 벌어갈 사람 구한다’, ‘일당 100만원을 준다’는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를 내 수금책을 모집했다. 김씨는 일부 수금책에게 그만두면 조선족이 와서 가만두지 않는다며 협박해 이탈하지 못하게 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