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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나볼까-횡성의 겨울

    강원도 횡성은 사계절중 겨울 나들이가 특히 잘 어울리는 곳.눈이 풍부하고,스키장,휴양림 등이 많아 한 겨울에도 나들이객들이 항상 붐빈다.험하디 험한 치악산 정상에 올라 온통 하얗게 변한 세상의 가운데 선 듯한 희열을 느껴보자.청태산 자연휴양림을 찾아 스릴 넘치는 산악스키에 도전해도 좋다.뽀얗게 연기를 피우며 숯을 굽는 참숯가마들을 찾아가 건강에 그만이라는 숯가마찜과 참숯 삼결살 구이 맛을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겨울의 한복판,강원도 횡성을 찾았다. ●첫번째 이야기…청태산 휴양림 “산악스키의 매력은 ‘자연의 맛’이죠.긴 시간의 줄서기,리프트,잘 다져진 슬로프 등으로 대변되는 인공 스키장에선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것이죠.” 강원도 횡성군 청태산 자연휴양림.서울서 산악스키를 타러 왔다는 김명주(31)씨의 산악스키 예찬은 끝이 없다.리프트가 아닌,두 다리의 힘으로 헉헉 숨소리를 내며 자연설 쌓인 임도를 오르는 김씨와 그의 친구들의 모습에서 야성이 엿보인다.청태산 자연휴양림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산악스키학교가 상설 운영되는 곳.대한산악스키협회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난달 15일부터 2월 말까지 운영중이다. 스키는 5㎞의 순환 임도(林道)에서 즐긴다.휴양림 주변으로 이어져 있는 임도는 경사가 가파르지 않고,오르막 내리막이 적절히 반복돼 일반인들이 스키를 즐기기에 적당하다. 올해는 적설량이 지난해보다 적지만 스키를 타기엔 별로 불편함이 없다.스키 경험자들은 처음엔 스키장의 다져진 눈에 익숙해 약간 어색하다.그러나 수북하게 쌓인 자연설을 헤쳐나가다 보면 이내 산악스키에 익숙해진다.눈보라를 일으키며 소나무숲 사이의 임도를 달려 내려오는 기분은 표현하기 어려을 만큼 상쾌하면서 짜릿하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법.스키를 신은 채 끌듯이 올라가기도 하고,V자 걸음을 걷기도 한다.뒤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산악스키엔 일반 알파인 스키와 다른 전문 바인딩을 쓴다.발 뒤꿈치가 바닥에서 떨어져 쉽게 올라갈 수 있다.또 스키 바닥엔 인조가죽에 털을 붙인 ‘씰’을 부착한다.뒤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해준다. 스키학교에선 강태용(36) 학교장을을 비롯한 10여명의 강사들이 스키강습을 실시한다.강씨는 대학교 때까지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활약했다. “체력이 좋은 10대,20대가 많이 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30대에서 가장 많이 즐깁니다.여성도 꽤 많아요.” 스키학교엔 스키 숙련자 및 초보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숙련자는 업 다운 요령 등에 대한 간단한 설명만 들으면 별도의 강습 없이 곧바로 임도에서 스키를 탈 수 있다.초보자는 평지에서 걷기 및 산악에서 타기 등에 대해 2∼4시간 교육을 받아야 한다. 렌털료는 2만원.스키와 바인딩,부츠,폴,씰 등 장비 일체가 준비돼 있다.강습료는 단체일 경우 1인 3만원,가족 또는 개인별로 받으면 1인 8만원.문의 대한산악스키협회(02-573-9048). 대한산악연맹도 3박4일 일정의 산악스키캠프를 19∼22일,3월4∼7일 두차례 연다.참가비는 장비 일체와 숙박,식사,보험료,강습 등을 모두 포함해 34만원.장비 지참시 32만원.강습과 투어는 용평리조트 및 대관령,소황병산 일대에서 진행된다.문의 대한산악연맹(02-414-2750,016-9591-1531). ■산악 스노보드도 색다른 맛 청태산 자연휴양림에 갔다가 우연히 별난 젊은이를 보고 참 놀랐다.스노보드를 타고 좁은 등산로를 따라 유유히 내려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북부지방산림관리청이 관할하는 청태산 휴양림 직원 최종수(28)씨.보드 마니아인 그는 틈만 나면 청태산에서 보드를 탄다고 했다. “올핸 눈이 적게 와 타는 맛이 작년보다 덜해요.좁은 등산로를 따라 쏜살같이 내려오다 보면 스릴감이 끝내줍니다.” 너무 위험하지 않으냐,다져지지 않은 자연설에 보드가 빠지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제 개인 생각일 수 있지만 사람에 부닥치기 일쑤인 스키장 슬로프보다 오히려 덜 위험하게 느껴져요.청태산 자체가 워낙 완만하기도 하고요.”라고 답한다. 보드는 원래 다져진 눈이 아닌 자연상태의 눈에서 즐기기 위해 개발됐다고 그는 설명했다.폭이 좁은 스키는 자연설에 빠지기 쉽지만,보드는 웬만해선 빠지는 경우가 없다고. 최씨를 옆에서 지켜본 휴양림 소장 남해인씨도 최근 보드를 탄다.등산로엔 아직 못 올라가지만 휴양림내 완만한 경사지에서 기술을 익히며 ‘등산’ 을 준비하고 있는 것.남씨는 “일단 슬로프가 아닌 곳에선 스키든,보드든 그 맛이 너무 색다르다.”며 어서 최씨처럼 보드를 메고 산에 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번째 이야기…치악산 구룡사 ‘계속 올라갈까,그냥 포기하고 돌아 내려갈까?’ 치악산에 처음 오르는 이들은 십중팔구 이같은 고민에 빠진다.눈이 쌓여 등산로가 미끄러운 요즘 같은 겨울엔 이같은 고민이 더욱 커지게 마련.치악산은 그만큼 험하다. 하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굽이를 돌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치악의 산세는 반복되는 고민속에서도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거친 여정 후의 상쾌함을 맛보고 싶다면 치악산이 제격이 아닐까. 험하지만 정상까지 가장 거리가 짧은 구룡사∼비로봉(1288m) 코스를 택했다.영동고속도로 새말IC에서 구룡사 아래 주차장까지 걸린 시간은 차로 10분 정도.여기서 다시 10분 이상 걸어야 구룡사 원통문에 닿는다. 원통문 너머 사찰까지는 금강송 군락지.아득하게 높이 자란 수백년 수령의 금강송들이 절 입구까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이곳 금강송은 조선시대 궁궐의 황장목으로 쓰여 일반인의 벌목을 금지하는 황장금표(강원도 지방기념물 제30호)가 표지로 남아 있다.하얀 눈옷까지 입고 늘어선 금강송들은 구룡사 겨울풍경의 백미다. 구룡사에 얽힌 전설이 재미있다.신라 문무왕때 지금의 대웅전 터에 연못이 있었고 그 안에 용 9마리가 살았다.의상대사는 터가 좋은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고 용들과 도술시합을 했다.용들이 먼저 솟구쳐오르자 뇌성벽력과 함께 산들이 모두 잠겼으나,의상은 비로봉과 천지봉에 줄을 걸어 배를 매놓고 그 안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이어 의상이 부적 한 장을 그려 연못에 넣자 물이 부글부글 끓어올랐고,용들은 뜨거워 날뛰며 달아났다. 사천왕문을 지나 돌층계를 오르니 보광루다.그런데 누각 아래를 지나 마당 너머 보여야 할 대웅전이 보이지 않는다.지난해 9월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해 전소됐다고 한다.빗살문과 정자(井字)문,그리고 내부의 겹층 닫집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는데…. 구룡사 위로 이어진 구룡계곡과 큰골을 따라 세렴폭포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는 넒고 평탄하다.중간중간 구룡소,선녀탕,세렴폭포 등 명소들이 자리잡고 있다.계곡은 꽁꽁 얼어붙었다.얼음속으로 이따금씩 희미하게 물소리가 새어나올 뿐,계곡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본격적인 산행은 세렴폭포를 지나서부터.사라리병창길을 지나 비로봉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다.수백개의 계단과 바위 길이 상당히 가파르다.가끔씩 나무에 매어놓은 밧줄이나 잡목 뿌리를 잡고 산에 오르길 30여분.등줄기에 후줄근히 땀이 흐른다. 해발 800m 이상 올라가니 발목까지 올라오는 눈 때문에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발이 미끄러진다.아이젠을 착용했어도 상당히 조심스럽다. 8부 능선에 이르면 비로소 처음으로 시원하게 아래를 조망할 수 있는 지점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천지봉과 태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왼쪽으론 투구봉,토끼봉이 한눈에 들어온다.정면엔 사다리병창 아래로 구룡사가 손마닥만하게 자리잡고 있다.정상에 올라가기가 힘에 부친다면 여기까지만이라도 올라와야 치악의 산세를 반쯤은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에서 정상까지 30분 남짓 강행군한 끝에 비로봉 정상에 올랐다.칼바람이 부는 정상 위엔 돌탑 3개가 나란히 쌓여 있다.그 와중에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 라면을 끓여 소주를 마시는 이들이 눈에 띈다. 비로봉 정상에서 보는 조망은 치악산 산행의 압권.비로봉은 북쪽의 삼봉∼투구봉∼토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남쪽의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북동쪽의 천지봉,태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즉 3개의 능선이 모이는 곳.사방을 둘러보아도 더 높은 산은 보이지 않고,멀리 눈 덮인 산자락들이 새파란 하늘과 맞닿아 파노라마처럼 돌아간다. 주차장∼구룡사∼사다리병창∼비로봉 코스는 왕복 7시간 정도 필요하다.내려올 때 걸리는 시간을 감안해 세렴폭포 부근 통제소에서 오후 1시 이후엔 입산을 통제한다. 글 치악산(원주) 임창용기자 sdragon@ ●세번째이야기…숯가마와 삼겹살 치악산 인근 횡성과 원주 일대엔 참숯을 구워내는 숯가마들이 많다.산행이나 스키를 즐긴 후 숯가마를 찾으면 참숯 굽기 구경은 물론 숯가마 찜질과 참숯 삼겹살 구이를 맛볼 수 있다. 구룡사 입구에서 나와 횡성군 우천면 방향으로 20여분쯤 가면 6번 도로 왼쪽으로 ‘강원둔내참숯마을’이 나온다.온통 눈으로 덮인 산자락 한 편에 자리잡은 숯가마 굴뚝에서 하얗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양이 참 아름답다. 숯을 굽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벽돌과 흙으로 만든 숯가마 안에 토막낸 참나무를 가득 채운 뒤 4∼5시간 불쏘시개로 불을 붙인다.이후 참나무는 4일 동안 스스로 탄다.5일째 되는 날 온통 새빨갛게 변한 불덩이들을 기다란 부삽으로 퍼내 흙구덩이에 파묻는다.이틀 정도 흙속에서 잠을 재운 뒤 꺼내면 가볍고 단단한 참숯이 나온다. 숯을 꺼낸 숯가마는 찜질방으로 최고 인기.가마속 온도가 70도 정도 되면 들어갈 수 있다.서울 고덕동에서 왔다는 50대 남성은 “숯가마 찜질이 주는 상쾌함은 도시의 첨단 찜질방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다.”며 시간만 나면 숯가마를 찾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들어가 보니 따끈함이 느껴지면서도 전혀 끈적거림이 없는 게 일반 찜질방과 차이가 느껴진다. 숯가마 밖은 영하 10도 내외.숯가마 입구에 매단 거적을 밀치고 나오면 산골의 찬바람이 몰려들지만,한기보다는 시원함이 느껴진다.마치 온탕과 냉탕을 오가듯 숯가마를 서너번 들락거리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요금은 5000원.가운은 빌려준다.샤워실이 따로 없어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거나 바람에 말려야 한다. 이곳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참숯 삼겹살 구이.숯을 꺼낼 때 쓰는 부삽에 삼겹살을 깔고,시뻘건 숯이 가득 든 가마에 3초 동안 넣었다 뺀다.일명 ‘삼초구이’로 불리는 삼겹살 구이법.하지만 실제로는 서너번 넣었다 빼야 먹기 좋게 적당히 익는다. 고소한 삼겹살 맛도 맛이려니와 먹을 때 콧속에 스며드는 참숯향이 향기롭다.이같은 삼초구이는 손님이 적거나 특별한 경우에만 가능하고,보통은 참숯을 피운 화덕에 석쇠를 놓고 삼겹살을 구워먹는다.1근(500g)에 1만원.주인이 내주는 신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다.(033)342-0949.다양한 용도의 참숯과 목초액도 구입할 수 있다.(033)342-0949. ‘강원참숯’도 숯가마찜질로 유명한 곳.강원둔내 참숯마을에서 6번 도로를 타고 횡성 방향으로 가다가 정금리에서 우회전해 13번 도로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나온다.(033)342-4508.이밖에 우천면 오원리의 ‘경원참숯’(033-342-0413),서원면 유현리의 ‘서원참숯’(033-344-5508)에서도 숯가마찜질을 할 수 있다. 글 횡성 임창용기자 sdragon@ ■구룡사 가는 길 ●교통 영동고속도로 새말나들목에서 빠져 우회전해 42번 국도(원주 방면)를 탄다.2㎞쯤 가면 학곡리 3거리가 나온다.여기서 개울을 따라 좌회전해 4.5㎞쯤 가면 구룡사 입구에 닿는다.원주역,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구룡사 입구까지 시내버스가 있다.동신운수(761-3135). ●숙박 치악산장(731-8539),옥스포드산장(731-5678),피닉스산장(343-1555),코레스코(343-8978) 등 치악산 주변으로 여관과 산장이 많다.비둘기민박(731-3934),구룡민박(732-5667) 등 구룡사 입구의 80여가구가 민박도 친다. ■ 청태산 가는 길 ●교통 영동고속도로 둔내IC에서 빠져 6번도로를 타고 둔내면 방향으로 가다 보면 시내 못 미쳐 오른쪽으로 청태산휴양림 가는 길(17번도로)이 나온다.휴양림까지 이정표가 잘 표기돼 있다.둔내IC에서 휴양림까지 20분 정도 소요. ●숙박 숙박은 휴양림내 ‘숲속의집’이 쾌적하고 편하다.숙박료는 평형에 따라 1만 5000원(4평형),4만 4000원(7평형),5만 5000원(9평형),7만원(17평형).겨울에도 1개월 전 인터넷(www.huyang.go.kr)을 통해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따라서 주말은 숙박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그러나 평일엔 빈 방이 있기 때문에 예약을 못 했더라도 숙박할 수 있다.휴양림 숙박이 여의치 않으면 성우리조트 인근의 여관이나 민박을 이용하면 된다.(033)343-9707. ■겨울산행 주의할 점 겨울산엔 눈이 많이 쌓여 있고 기온이 매우 낮으므로 세심한 준비와 주의가 필요하다.아이젠,방한복과 방한모,방수 등산화 및 장갑은 기본.옷이 젖을 경우에 대비해 여벌의 옷도 하나쯤 챙기자.등산화 속으로 눈이 스며들지 않도록 행전(스패츠)도 필요하다.비상식량과 물도 준비하자. 눈이나 비 등 해당지역의 기상특보 여부도 확인하자.기상청 홈페이지(www.kma.go.kr)를 참조하면 된다. ■ 산악스키대회 열려요 오는 15일 청태산 자연휴양림내 순환 임도에서 ‘제3회 산림청장배 산악스키대회’가 열린다.출발점에서 30초 간격으로 개별 출발해,최단 시간에 거리별 코스를 완주해 도착한 시간기록으로 순위를 결정한다. 남·여별로 주니어부,청년부,장년부,단체부로 나뉘어 진행되며,부문별 시상도 한다.산악스키 장비는 렌털이 가능하다. 참가신청은 대한산악스키협회 홈페이지(www.mountski.org)에서 신청서를 다운로드해 이메일(mounski@monutski.org),또는 팩스(02-573-9058)로 해야 한다. ˝
  • 티베트 16회 탐험… 야생화 500종 찾아내/팔순의 현역 산악인 박철암 씨

    ‘쇠바위(철암 鐵岩)’.히말라야에 첫 도전장을 냈던 대한민국 산악 역사의 산증인이자 팔순의 현역 탐험가에 딱맞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에서 풍기는 강한 이미지는 첫인상에서도 그대로 묻어났다.그가 살아온 햇수를 나타내는 ‘80’이란 숫자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청년의 기운이 흘렀다.투박하고 거무튀튀한 손은 티베트의 모래 바람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지난해 10월 16번째 티베트 고원을 탐험하고 돌아온 박철암 옹은 만나자마자 대뜸 “산을 아느냐.”고 물었다.“잘 모른다.”고 하자 “그럼 인생은 아느냐.”고 물었다.역시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이 별로 없다.”며 먼저 자리를 뜨려는 깐깐한 할아버지를 간신히 붙잡았다.무협지처럼 흥미진진한 탐험담과 인생 이야기 보따리가 풀리기에는 한참의 침묵이 필요했다. ●무인구(無人區)의 꽃을 찾아 박 옹이 처음 티베트에 발을 디딘 것은 지난 1990년 6월20일.적막한 고원에 앉아 휴식을 취할 때 은은한 풀피리 소리가 들렸다.멀리서 양떼를 몰고 오는 목동들의 손에는저마다 잉카르빌리아라는 꽃을 이용해 만든 풀피리가 들려 있었다. 박 옹은 이때부터 잉카르빌리아와 목동,그리고 피리 소리에 이끌려 티베트 고원을 계속 찾았다. 16차례의 티베트 탐험은 전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하며 그가 걸은 길을 모두 합치면 9만 5000㎞나 된다.500여 종류의 야생화를 찾아내 ‘티베트의 꽃’이란 책으로 집대성했으며,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구를 탐험한 기록은 ‘지도의 공백지대를 가다’라는 책으로 엮었다. 특히 3년을 헤맨 끝에 92년 메코노프시스를 찾았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그대로다.히말라야와 티베트의 접경 지역인 좌촐라파스산 4900m 지점에서 발견한 메코노프시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꼽힌다. 그는 “손이 떨려 사진기 셔터를 누를 수조차 없었다.”면서 “꽃을 바라보며 ‘하느님’만 외쳤다.”고 말했다. 타클라마칸사막 밑으로 흐르는 물이 타림분지의 끝자락에 고여 이루어진 로프노르 호수는 며칠 사이에 형상이 변하는 신비한 자태로 박 옹을 매료시켰으며,실크로드 중간에 자리잡은 허탠 근처에서는 옥이지천에 널린 강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사막에서 천지를 집어 삼킬 듯한 돌개바람을 만났으며,야루창푸강을 건널 때는 급류에 휘말려 100여m를 떠내려 갔다. “말커차카 호수를 처음 발견하고 기뻐 날뛰다 길을 잃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했지.항상 죽음을 각오하고 길을 떠나지만 막상 죽음이 엄습해오면 당황스럽더라고…”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 원정 지난 62년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원정에 나선 박 옹은 한국 산악계의 거목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다.변변한 지도조차 없이 나선 첫 히말라야 등정은 다울라기리봉 7751m 지점에서 그쳤지만 그의 도전은 언제나 한국 등반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경희대 중문과 교수를 지낸 박 옹은 “당시 원정대를 꾸려 히말라야에 가겠다고 하자 문교부장관까지 나서서 말렸다.”면서 “누군가가 가야 할 히말라야라면 내가 첫 발을 내딛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 65년 겨울에는 타이완 옥산을 등반했으며,67년에는 일본 북알프스 등반대장을 맡았다.71년에는 최초의 로체샬 원정에서 한국인 최초로 해발 8000m 선을 넘었다.84년에는 홀연히 히말라야 쿰부지역을 탐사하더니 90년부터 티베트의 대자연을 찾아 나섰다. 그는 타고난 탐험가다.평남 영원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2000m가 넘는 험준한 동백산과 낭림산을 동네 뒷산 오르듯 했다.고산지대에 지천으로 널린 마타리꽃은 소년의 가장 친근한 벗이었다. 박 옹은 “동백산과 낭림산 어느 골짜기에 난파한 배의 파편과 조개 화석이 있다는 어른들의 말이 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면서 “죽기 전에 통일이 된다면 어렸을 때 올랐던 그 산들을 탐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은 인내’ 평생 고원과 산악을 탐험한 박 옹은 무엇을 얻었을까? “참는 것을 배웠지.인생은 인내야.” 박 옹은 “사람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 참지 못할 일이 없다.”면서 “한순간만 참으면 곧바로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참을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이란 멀고 험한 탐험을 즐길 수 있다고 믿는 박 옹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할 말이 많다.불혹을 넘기면서부터 자신의 나이를 세보지 않았다는박옹은 “젊은이들의 이상이 점점 낮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스스로 젊다고 생각한다면 에베레스트 정상에 눈을 맞추고,사하라사막을 품을 만한 넉넉한 가슴을 가져야지.” 지난 97년 명예교수직마저 내놓은 박 옹은 1년에 3∼4개월은 티베트를 탐험하고,나머지는 대부분 설악산 용대리 농가에서 꽃을 가꾸며 지낸다.“티베트가 나를 부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찾아 가겠다.”고 말하는 박 옹의 눈은 어느새 티베트 고원을 향하고 있었다. 곽영완기자 kwyoung@ ▲1924년 평남 영원군 출생 ▲1949년 경희대 산악부 창립 ▲1961∼97년 경희대 중문과 교수 ▲1962년 국내 최초 히말라야 원정 ▲1963∼72년 대한산악연맹 이사 1965년 타이완 옥산 등반 ▲1967년 일본 북알프스 등반 ▲1971년 로체샬 원정 ▲1990년 티베트 탐험 시작 ▲2003년 16번째 티베트 탐험
  • 우이동 솔밭공원 오늘 개장식

    서울도심 인근에 위치한 1만여평 규모의 소나무 군락지가 시민들의 문화휴식공간으로 활용된다. 강북구(구청장 김현풍·사진)는 우이동 소나무 군락지 3만 4955㎡(1만 573평)에 솔밭공원을 조성,28일 개장식을 갖는다.솔밭공원은 국내 유일의 도심속 소나무 군락지로 100년 이상된 소나무 10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는 곳이다. 서울시와 강북구는 사유지인 솔밭을 160억원에 사들여 2002년말 공원 조성공사에 들어가 최근 완공했다.공원에는 생태연못·산책로·잔디광장 등 조경시설과,배드민턴장·건강지압보도·게이트볼장 등 운동시설,장기바둑쉼터·어린이놀이터·야외무대·놀이마당·조형물 등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다.‘가노라 삼각산아’ ‘바위고개’ ‘반달’ 등 시비(詩碑)와 3개의 정자도 세워 주민들이 사철내내 숲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김현풍 구청장은 “솔밭공원은 도심의 일상에 지친 시민들이 자연과 더불어 사색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서 서울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
  • 儒林(유림) 속 한자이야기

    유림 (8)에 나오는 말로 破天荒(파천황)이 있다. 破(깨뜨릴 파)자는 石(돌 석)자와 皮(가죽 피)로 구성되어 있는데 硏(갈 연),碁(바둑 기),碑(비석 비),磐(너럭바위 반) 등과 같이 石자가 들어간 한자의 대부분은 돌과 관계된 뜻을 지니며,나머지 부분이 음이 된다.재미있는 것은 乭(돌 돌)자는 石자와 乙(새 을)이 합하여져 만들어진 우리나라 한자이다. 그리고 皮자가 들어간 경우는 彼(저 피),疲(피곤할 피),被(덮을 피),波(물결 파),婆(할머니 파) 등과 같이 거의 대부분이 ‘피’ 또는 ‘파’로 발음되며 나머지 부분은 뜻이 된다. 파(破)자가 들어가는 말 중에는 요즘 안타깝게도 자주 듣는 파경(破鏡)이 있다.이 말은 송나라 때의 설화집인 太平廣記(태평광기) 중 다음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진(陳)나라 궁중 관리였던 ‘서덕언’은 수(隋)나라가 쳐들어오자 자기 나라가 패할 것이고,그렇게 되면 자기의 아내는 수나라 귀족의 노예가 될 것임을 알았다.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거울을 두 쪽으로 깨뜨려 한 쪽을 그의 아내에게 주면서 “우리나라가 패하면 당신은 노예로 잡혀갈 것이오.그러니 우리가 부부라는 증표로 이것을 나눠 가집시다.그리고 당신은 내년 정월 대보름날 장안의 거리에서 (누구에게 시켜서라도)이 반쪽 거울을 팔도록 하오.”라고 말했다.과연 그의 말대로 진나라는 패하고 그의 아내는 수나라 귀족 ‘양소’의 노예가 되었다. 다음해 정월 대보름날 서덕언은 장안 길거리에 나가 보았는데,거기서 한 노파가 팔려고 내놓은 깨진 거울을 발견하였다.이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깨진 거울과 맞춰 보니 딱 맞는 것이었다.그래서 그는 노파에게 사연을 말하고 그 깨진 거울의 뒷부분에다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시로 적어 보냈다. 거울을 전해 받은 아내는 食飮(食 먹을 식,飮 마실 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함에,그 주인인 ‘양소’가 사연을 알게 되어 매우 감동하고는 같이 살게 하였다.이처럼 파경(破鏡)이란 원래 부부를 뜻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오늘날은 글자 그대로 깨어진 거울,즉 부부간의 이별,파탄(破綻)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파탄 또한 중국 삼국시대 적벽대전 직전에 있었던 다음일화에서 나온 말이다.오(吳)나라의 ‘주유’는 ‘조맹덕(조조)’의 백만대군(百萬大軍)과 맞서 싸우게 되었는데,불리할 것 같아 詐降計(詐 거짓 사,降 항복할 항,計 꾀 계)를 사용하기로 하고는,‘함택’을 시켜 詐降書(거짓 항복 문서)를 바치게 하였다. 그랬더니 조조가 그 사항서를 읽고 버럭 화를 내며 “네놈들은 지금 꾀를 부리고 있구나.내 네놈들의 綻露(綻 터질 탄,露 드러낼 로:허점)를 알려 주노니,왜 항복시간을 명시하지 않았느냐?”하는 것이었다.이에 함택이 “主人(조조를 뜻함)을 배반하는데 어찌 시간을 정하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그러자 조조는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그 사이에 주유는 군사 배치를 끝냈고 조조는 결국 주유에게 크게 敗(패할 패)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실로 未曾有(미증유)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속임수 중의 하나였다.未曾有란 ‘일찍이 없었다.’는 말인데,이와 같은 뜻으로 ‘前代未聞(전대미문:예전에 미처 들어보지 못함)’ 또는 다음 일화에서 나온 ‘파천황(破天荒)’ 등이 있다. 당나라때 형주(荊州)라는 지방은 文人이 많은 고장임에도 불구하고 500년 동안이나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없었기에 天荒(천황:옛날부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황무지를 뜻하는 말이기에 유명한 인물이 나오지 못한 편벽한 땅을 지칭함)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던 중 선종4년(850년)에 ‘유세’라는 사람이 과거에 급제함에 따라 天荒을 깼다 하여 마침내 破天荒이라 불리게 되었다.그래서 파천황은 ‘전례(前例)가 없는 일을 처음으로 하다.’ 또는 ‘최초’ 등을 뜻한다. 박교선 교육부 연구사
  • 설특집 We/온천-스트레스 확 풀자

    온천의 계절이다.설 연휴는 가족들과 함께 맘먹고 온천나들이를 하기 좋은 기회.귀향,또는 귀경길에,아니면 집 근처의 특색있는 온천을 찾아보자.가족들중 피부질환이나 관절염 등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좋다.최근 각광받는 테마 온천탕,온천욕과 물놀이를 겸할 수 있는 워터파크형 온천,수도권 인근의 온천 등을 소개한다. ■ 테마온천탕 ●강화도 마라칼슘탕 하점면 창후리에 있다.고행이나 수행처럼 심신을 깨끗이 한다는 뜻에서 탕 이름에 히브리어인 ‘마라’를 붙였다고.칼슘과 천연미네랄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각종 피부질환이나 신경통,관절염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특이하게 40여개의 가족탕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대중탕은 없다.강화도 창후리 선착장 옆에 위치하고 있다.이용료는 4인가족 기준 1만 5000원.마라칼슘(www.marah.co.kr),(032)933-4622. ●함평 해수찜 해수찜은 세종실록의 도자기 가마를 이용한 한증법으로 유황 성분이 많은 돌,삼못초 같은 약초에 해수를 넣고 소나무 장작으로 데운 후 찜질하는 것이다.해수와 돌에 포함된 광물질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신경통과 산후통에 효과가 있다.전남 함평 손불면 궁산리 해안가에 해수찜마을이 형성돼 있는데 서해안고속도로 함평인터체인지로 나가면 된다.가족실 방 1개에 2만 5000원.함평주포해수찜(061)322-9489. ●경기도 김포 약암온천 약암온천은 ‘홍염천탕’으로 유명하다.홍염천(紅鹽泉)이란 지하 400m 암반에서 솟아나는 순수한 광염천수가 공기와 만나면 물속에 포함된 철분과 각종 무기질이 산화를 일으켜 붉은색으로 변한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아토피 등 각종 피부질환과 관절염에 효과가 뛰어나 전국 각지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수질에 비해 시설이 떨어지는 것이 흠이다.서울에서 강화방면으로 가다가 대명포구 이정표를 따라가면 찾을 수 있다.요금은 평일 성인 5000원,소인 4000원.주말에는 1000원 더 받는다.약암홍염천관광호텔(www.yakam.co.kr),(031)989-7000. ●안면도 노천 유황해수탕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안면도 꽃지바다를 한눈에 바라보며 노천욕을 할 수 있는 곳.오션캐슬의 유황해수는 수심 420m 천연 암반속에 있는 유황온천수로 유황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신경통,류머티즘,당뇨병,동맥경화 등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서해안속도로 홍성IC에서 빠지면 쉽게 찾을 수 있다.사우나와 노천해수탕을 함께 이용하는데 성인 1만원,소인 7000원이다.롯데오션캐슬(www.oceancastle.co.kr),(041)617-7000. ●영종도 해수피아탕 지하 800m 천연암반에서 나오는 해양암반 심층수로,칼슘,칼륨,마그네슘,나트륨 등 다양한 필수 미네랄이 많이 함유돼 있다.염도 차이를 이용한 삼투압 작용으로 인하여 노폐물은 쉽게 배출되고 필요한 광물질은 효과적으로 흡수되어 신진대사,혈액순환을 돕는다.서울에서 영종대교를 건너 신불인터체인지로 나오면 된다.성인 6000원.소인 4000원이다.해수피아(www.haesoopia.co.kr),(032)752-6000. ■ 수도권 여기가 좋아 ●포천 일동용암유황천 유황천을 데우거나 식히지 않고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일동유황온천은 만성피부병,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불한증막,노천탕 등을 갖추고 있으며 어린이를 위한 미니 온천수영장이 있어 가족나들이객에게 적합하다.성인 6000원,소인 3000원.이동 방향으로 10여분만 가면 유명한 이동갈비도 맛볼 수 있다.(031)536-4600. ●화성 율암온천 현대적인 시설과 신비의 돌 ‘옥’이 조화를 이룬 온천이다.부드러운 약알칼리성 온천수 또한 유명하다.대욕탕 천장은 피라미드 형태의 유리로 만들어졌고 바닥에는 천연옥이 깔려있어 하늘과 옥의 기운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고 한다.서해안고속도로 발안IC에서 빠져 화성시 팔탄면으로 가면된다.성인 6000원,소인 4000원.(031)354-7400. ●파주 ‘금강산랜드’ ‘먹는 산소’ 또는 ‘생명의 원소’라고 불리는 게르마늄이 다량 함유된 물을 쓴다.대욕탕 이외에 머드소금탕,노천탕과 불로한증막 등이 있다.또한 정문 앞에서 게르마늄 샘물을 무료로 나누어준다.통일로 월롱역 옆에 있다.성인 6000원,소인 4000원.(031)945-2500. ●강화 불한증막 경주 첨성대 모양의 독특한 외양을 갖춰 생김새부터 범상치 않다.우리 재래식 한증막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아 황토와 소금,온돌용 돌 등을 이용해 지었다.서구식 사우나와 달리 전통불한증막에 들어가면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강화군 양도면 인천가톨릭대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성인 7000원,소인 3000원 (032)937-9901. ■ 워터파크형 온천 ●아산 스파비스 ‘3세대 가족중심 온천’을 내세우는 테마온천.온천욕을 이용한 입욕치료,건강체크,건강식단 등을 코스로 묶어 운영한다.실내 바데풀과 건강나눔한의원,건강 전문식당,실외 온천풀,남녀 대욕장,23개의 이벤트탕과 노천탕 등이 있다.야외에선 눈썰매장,온천수는 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수로서 게르마늄 등 20여종의 광물질을 함유하고 신경통,혈액순환 등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서해안고속도로 당진IC로 나와 아산온천 관광단지를 찾으면 된다.성인 1만 5000원,소인 9000원.아산스파비스(www.spavis.co.kr),(041)539-2000. ●천안 상록리조트 아쿠아피아 초대형 물놀이 실내 테마공원.워터슬라이더,유수풀,실내외 수영장 등을 이국적인 분위로 꾸며 놓아 남태평양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또한 유수풀,파도풀뿐 아니라 가족탕을 포함한 다양한 스파시설이 갖춰져 있다.‘마스터 블라스터’(길이 143m,폭 1.5m), ‘플로 라이더’ 등 짜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워터슬러이더와 튜브슬라이더 등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경부고속도로 목천IC에서 10분 거리에 있다.성인 1만 6000원,청소년 1만 4000원,어린이 1만 2000원 아쿠아피아(www.sangnokresort.co.kr),(041)560-9061. ●거제 해수온천 한려해상국립공원과 외도해상농원 등 천혜의 절경 거제도에 위치한 해수온천은 지하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국내 유일의 염천수(암반해수) 온천이다.약알칼리성 약염천으로 아토피성피부염,피부미용 등 피부질환에 특히 좋다고 소문나 있다.3월31일까지 철도청에서 온천욕과 관광을 함께 할 수 있는 열차를 운행한다.거제대교를 지나 고현방면에 위치하고 있다.성인 9500원,소인 7500원. 거제도해수온천(www.seaspa.co.kr),(055)638-3000,철도고객센터(1544-7788). ●이천 스파플러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온천테마파크.5000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대온천탕을 비롯해 족탕,목초탕,한약탕 등 30여 가지의 기능형 온천탕과,유수풀,파도풀 등을 갖추고 있다.할인이 되는 신용카드가 많으니 미리 홈페이지를 참고.대인 2만 2000원,소인 1만 5000원.영동고속도로 이천IC를 빠져나와 미란다호텔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스파플러스(www.mirandahotel.com),(031)633-2001 ●설악워터피아 온천욕과 첨단 물놀이 시설을 갖춘 온천 테마파크이다.설악산과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노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49도의 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 온천수를 가열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연인탕,바위탕,폭포탕 등 7개 테마탕과 유수풀,파도풀,아쿠아 포켓 등이 있다.영하 15도 날씨에 따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눈 덮인 설악의 비경을 감상하는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장료는 성인 3만원,소인 2만 2500원으로 좀 비싼 편.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신용카드가 많으니 미리 홈페이지에서 확인을 하고 가면 비용을 아낄 수 있다.속초 한화콘도 내에 위치하고 있다.설악워터피아(www.hanwharesort.co.kr),(033)635-7711. 한준규기자 hihi@
  • [나의 건강보감] 국민소리꾼 신영희 씨

    “득음은 먼놈에 득음이라우?죽을 때꺼정 득음,득음 허다가 말겄제.”우렁우렁한 우조와 애절한 계면조,12박 중모리에서 4박 휘모리까지,그리고 동·서편제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의 소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지만 환갑을 넘긴 그는 지금도 제 목으로 내는 ‘소리’가 성에 안찬다.그래서 나이 들수록 ‘명창’이라는 찬사가 부끄럽고,‘국민소리꾼’이라는 말이라도 들을라치면 ‘오메,저거이 먼 소리랑가.’싶어 턱,하고 오금이 꺾인다.“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내가 소리꾼 아부지헌티 받은 것은 이것이 전부라 따른 일 생각한 적도 고,그래서 이것 아니믄 내가 어치케 험한 세상 살겄냐 싶어 젊어서는 20년 30년을 미친년겉이 소리 소리 토했어도 득음은 숭내도 못내봤소.” ●소리꾼 아버지 반대 무릅쓰고 시작 명창 신영희(63).그는 소리꾼이다.그것도 ‘내가 난데…’하고 수염만 훑는 ‘방안풍수’가 아니라 전국 팔도 소리가 있어야할 곳이라면 불원천리 뛰어가는 소리의 전령이다.“세상이 그란다는디 말해 뭣하겄소만 사람이 지 뿌리럴 모르고으게 사람노릇 허겄소.요새 젊은 사람덜 신식노래 좋아허는 거 탓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뭣이 우리 껏인지는 알어야 안쓰겄소.” 영화 ‘서편제’와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는 박동진 명창의 CF,그리고 그가 TV에서 개그맨 김미화씨 등과 함께 엮은 ‘개그 소리’를 묶어 ‘소리 중흥의 3대 사건’이라고 일컫는다.이렇듯 그는 소리의 대중화에 젊은 시절을 한 허리 뚝 떼어내 바쳤다. “소리,소리 말도 마쑈.나야 내가 좋아서 했제마는,참말로 피눈물 나는 세월 안살믄 소리 못허요.암만 웃음서 해도 소리는 한(恨)이 내는 것 아니요.”열한 살 나던 해,아버지한테 소리를 배우던 젊은 소리꾼이 한 대목 고비를 못넘기고 꺽꺽거리자 그는 대뜸 방문을 열고 들어가 ‘들은 풍월’로 흥부 매품팔러 가는 대목을 뽑아 넘겼다.“그때 울아부지가 내 소리럴 듣고넌 후∼,허고 한숨을 쉬시면서 고개럴 푹 꺾습디다.그때만 해도 여자소리꾼은 기생 취급하던 시절인디,어느 부모가 지 새끼 소리를 시킬라고 했겄소.”그런 아버지를 어머니가 설득했다.“기생이든,말든 명창되믄 안되겄소?”해서 겨우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 소리꾼의 삶을 시작했다.그의 아버지 신치선씨는 진도 어름에 소문이 짜한 소리꾼이었다.그는 소리꾼의 끼를 타고났다.아버지는 그의 손을 끌고 수백리길을 걸어 소리품을 팔러 다녔으며,가는 곳마다 “그놈,한 소리 허겄다.”는 말을 들었다.이듬해,‘소리 한번 원없이 해보겠다.’고 작정한 가족은 목포로 거처를 옮겼으나 신식 바람에 살랑거리는 도회는 소리꾼에게 결코 녹록한 삶터가 아니었다. “유달산 아래 죽교동에서 살었는디,새벽 4시 통금 사이렝만 울리믄 털고 일어나 후적후적 유달산을 타고 올라갔어요.거그 유선각 아래 쬐끄만 바위굴에 들어앉아 바위등을 두들기며 6∼7년 소리연습을 했더니 목이 자리를 잡습디다.” 오빠들 틈바구니에서 선머슴처럼 자라 몸 하나는 실한 그였지만 허튼 공력으로 명창이 될 수는 없었다.열 여섯에 아버지를 여의고 잔칫집,소리판을 전전해 심봉사 젖동냥 하듯 큰오빠 대학까지 공부시키면서도 김상룡 강도근 장월중선 최일환 박봉술 김준섭씨 등 당대의소리꾼은 모두 찾아다니며 내공을 쌓았다.서른 한살나던 73년에는 춘향가 세종제를 완창하더니 마침내 그 이듬해 명창 김소희씨를 만나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그가 요새 선보이는 창법은 바로 김소희씨의 만정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장시간 연습하다 보면 목에 통증… 똥물 접해 “천하는 사람도 앉아서는 득도 못허요.소리꾼 치고 골병 안든 사람 봤소?나도 한창 클 때 주린 속에 하루 열 대여섯시간씩 소리연습을 허고 나면 목울대며 배가 띵띵 붓고 아퍼 내 살인디도 내가 만지덜 못허겄습디다.그때 말로만 듣던 똥물 첨 묵어봤소.”아무리 몸에 좋다 해도 남의 똥은 엄두가 안나 자신의 똥을 우려 마셨다.소리꾼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옹구그럭에 물붓고 그걸 푼 뒤 하루밤쯤 가라앉혀 우러난 물을 마시는디,소리로 골병든 어혈 푸는데는 그만입디다.” 소리는 단전에 기를 모아 내뱉기 때문에 기력이 달리면 절대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그가 지금도 반신욕으로 항상 단전을 따뜻하게 지키고 뜀뛰기로 기력을 키워가는 이유다.“사람마다 목욕법이 다르겄지만,나는 반신욕과 욕탕 뜀뛰기가 좋습디다.”더운 물에 하반신을 담그고 20∼30분쯤 지나 몸이 덥혀지면 간단한 맨손체조로 몸을 유연하게 한 뒤 곧장 냉탕에 들어가 제자리뛰기를 하는데,뛰는 횟수가 한번에 3000번 가량 된다.뜀뛰기를 하다보면 금세 더워져 몸이 오그라 붙는 찬물 속에서도 차갑다는 느낌을 못받는다.“그 운동이 장(腸)을 정리하는 데는 그만이요.소리가 배에서 나는디,장이 시끌벅적허믄 좋은 소리가 나올 턱이 지요.” ●‘똥물 마셔 목 틔우기' 소리꾼 통과의례 소리꾼은 물론 방송일을 같이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아는 식도락도 그가 세상을 ‘재미나게’ 사는 방법.“식도락인지는 몰라도 음식은 꼭 가려서 묵지요.조미료로 맛내는 집은 두번 걸음을 안허요.나도 손끝이 매워 음식은 제법 맹근다는 말 듣고 살었지요.”이런저런 밑반찬에 농어·민어매운탕과 게장 등 그의 손맛은 소문이 나 전통음식책까지 펴냈을 정도다.또 사철 집에 홍어가 끊이지 않아 부군인 서석주씨도 “집사람음식 아니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고 할 정도. 지난 81년,그는 월정사로 탄허스님을 찾아가 심청가 중 심청이 유언하는 대목으로 ‘소리공양’을 했다.그의 절창에 노스님은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더니 그에게 무현(無絃)이라는 아호를 내렸다.그후,탄허스님이 입적하기 직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생전 처음 병실을 찾아 소리를 하기도 했다.이렇듯 ‘소리밭’에 한 줌 거름으로 생애를 묻고 살지만 그는 아름다운 가인(歌人)이다.그래도 ‘소리’와 ‘웃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는.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강성남기자 snk@ ■소리꾼과 똥물이야기 사실,목을 틔우고 전신의 어혈을 풀어내기 위해 똥물을 마시는 일은 예전 소리꾼에게 통과의례 같은 일이었다.설령 똥물을 안마신 사람도 엄두가 안났을 뿐 몰라서 안마신 경우는 없었다.“소리허다 보믄 목이 띵띵 붓고 잠겨 피를 토하기도 하고,뱃거죽이 붓고 땡겨 ‘이러다가 죽는 것 아닐까.’싶을 때가 있습디다.그때 나도 똥물을 마셨지요.” 지금이야 의사 많고 약이좋아 이런 체험을 하는 사람이 없지만 예전에는 ‘매맞아 생긴 장독(杖毒) 푸는데는 똥물이 최고’라고 했다.일종의 민간요법이다.그는 “그래도 남의 똥은 생각도 못했고 내 걸 썼으니 좀 낫지요.그냥 물에 풀어 말갛게 가라앉은 웃국을 마셨는데,전신에 후끈 열이 돌고 땀이 배어 이불 뒤집어쓰고 한숨 자고 나믄 소리로 골병든 삭신이 정말로 말짱해집디다.” 민간에서는 대나무 마디를 통째로 잘라 돌을 매단 뒤 잘 삭은 똥통 속에 담가 뒀다가 며칠 뒤 꺼내 속에 고인 노란 물을 마셨다.더러는 소줏병 주둥이를 솔잎으로 틀어막아 거르거나,묵은 똥통을 작대기로 휘저어 곰삭은 아래쪽 똥물을 퍼올린 뒤 고운 무명베로 걸러 마시기도 했다. 판소리 연구가인 군산대 최동현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주로 인분을 사용했으나 더러는 개똥을 사용하기도 했으며,이런 방식이 목을 다치기 십상인 소리꾼에게 약이 됐던 게 사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심재억기자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6)백제인의 사랑 질표율사(하)

    삼국시대 후반 백제는 신라와의 지루한 전쟁으로 몹시 불우한 시대를 이어갔다. 신라는 백제를 넘어서 당나라와의 보다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국력을 키우고 싶어했고,그러자면 백제는 신라에 가장 골치 아픈 장애물이 되었다.두 나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였다.신라의 집요한 침략전쟁 속에서 백제는 좌절하지 않기 위해 미륵신앙을 껴안았다.단순한 전쟁 회피나 불안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서가 아니라 신라의 군사 공격을 꺾어 응징하는 힘과 근원적으로 죽고 죽이는 살상전이 없는 세계에 태어나 살고 싶다는 구원을 향한 절절한 신앙이었다. 미륵신앙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백제인들은 백제 땅이 미륵부처가 강림하실 약속의 땅으로 선택되기를 희망하면서 미륵사를 크게 짓고 미륵부처가 오시기를 기다렸다.미륵사가 삼국시대를 통하여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은 백제인들의 그같은 소망이 투영된 백제인의 마음으로 이룩한 신앙의 결정체였다. 미륵신앙은 100년이 넘도록 뜨겁게 달아올랐다.온 나라가 미륵신앙의 성지였다. 이같은백제의 미륵신앙을 유심히 살펴보던 신라가 뒤늦게야 슬며시 미륵사상을 배워가더니 백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미륵신앙을 현실화시키기 시작했다. ●신라에 정복 뒤 좌절빠진 백제 유민 화랑도와 미륵사상을 연결시켜 현실적인 국력으로 바꿔낸 것이다.미륵신앙을 표방하는 사찰을 짓기도 했지만 미륵사상이 현실화된 화랑도를 통하여 군사력을 극대화시킨 신라는 그 힘을 바탕으로 삼아 백제를 정복해버렸다. 어이없게도 신라의 지배 아래로 떨어진 백제는 그들의 염원으로 이룩한 미륵성지들과 함께 소망의 땅에서 절망의 땅으로 쫓겨난 셈이 되고 말았다. 좌절감은 크고 깊었다.이제 백제인들은 백제 유민이란 말로 바뀌는 가혹한 운명에 놓였다.그 때부터 처절한 저항의 날들이 시작되고,원한 또한 깊어졌지만 한번 뒤바뀐 운명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신라는 아주 천천히 백제 땅과 사람을 신라의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갔다.먼저 백제의 역사를 신라기년(新羅紀年)으로 고쳐 신라기(新羅紀)에 삽입시켰다.백제를 정복한 지 100년이 가까워진 757년(경덕왕 16) 진표가 태어나 자란 고향의 땅 이름을 원래 지명인 두내산현에서 만경(萬頃)으로 바꾸었다.이는 정복지 백제에 대한 신라의 완전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진표는 이제 만경들판에서도 그치지 않는 백제유민들의 원한과 저주의 나날들이 미륵신앙의 힘으로 해원되어 신라와의 상생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이같은 격변속에서 진표는 아버지와 진지한 의논 끝에 금산사(金山寺)의 숭제(崇濟)법사를 의지하여 출가하기로 결심했다. ●유민들 고난 해결위해 ‘망신참회법’ 수행 숭제법사 또한 백제 유민으로서 일찍 당나라 정토종을 이끌던 선도(善導·613∼681)화상 법맥을 이어온 스님이었다.이제 진표는 스님이 되어 숭제법사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숭제법사는 진표스님께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을 주면서 각별한 수행을 권했다.점찰경이라고 부르는 이 경전은 말법시대(末法時代)가 되면 불교를 신앙하는 이들이 많은 어려움과 장애에 부닥쳐 수행에 곤경을 겪게 되고,산란한 마음때문에 갈피를 잡지못할 경우가 많게 된다고 했다.이때 숙세의 선악업보가 현재의 고락길흉을 점찰하여 참회하고 반성하면서 마음의 안락을 얻도록 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숭제법사는 진표스님에게 계법(戒法)을 지니고 미륵과 지장보살에게 참회하여 직접계법을 받아 세상에 널리 전할 것을 당부했다. 진표스님은 백제 유민들이 100년 가까이 겪고 있는 그 고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과 능력을 구하기 위해 17년 간의 긴 고행에 돌입했다.육신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수행법의 하나인 망신참회법(亡身懺悔法)을 선택했다.육신을 버리지 않고는 깨달아지지 않는 수행법이었다.백제 유민들이 한 세기토록 겪은 육신의 고통을 자신의 한 몸으로 다 받아내겠다는 각오였다. 참회의 참(懺)은 산스크리트 Ksama의 음역으로 용서를 비는 것,뉘우치는 것을 뜻한다.내가 범한 죄를 부처 앞에서 고백하는 것,회개한다는 것인데,원시불교에서 비구는 자기가 범한 죄를 석가세존 또는 장로비구에게 고백하여 심판받도록 되어 있었다.비구는 보름마다 모여서 우포자타(uposatha·포살·布薩)라는 의식을 행하고,계율의 조목을 읽힐 때 마다 죄가 있을 때는 스스로 말하고 일어서야 했다.이렇듯 대승불교에서는 자기의 죄를 인정한 자는 모든 부처 앞에 참회하고,온몸을 던져 진리에 귀의하는 맹세를 하며,부처의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의 잘못을 거두어주는 은혜를 입음으로써 죄의 공포에서 해방된다고 했다. 이같은 의식의 궁극 목표는 죄의식이 전혀없어진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라 하였다. 진표스님이 이같은 망신참회법을 선택한 것은 직접 자신이 진리를 체험하여 확신하기 위해서였다.그런 뒤 백제 유민들에게 참회의 필요성을 말하고,참회를 통하여 진정한 해방을 누리고 자유를 숨쉬고 사는 삶을 권하려는 것이었다.육신의 고통을 극복하는 참회법은 일찍이 석가모니 시대부터 있어왔다.하루에 한 끼,이틀에 한 끼,사흘에 한 끼를 먹거나,나무 열매나 꽃으로 요기를 하거나,한 다리를 들고서 있거나,진흙 먼지 속에 누워있거나,가시덤불 위에 누워있거나,물과 불 위에 누워있거나,어깨쭉지의 살에 구멍을 뚫고 그 속으로 끈을 밀어 넣어 나무가지에다 묶어놓고 피를 흘리며 매달려 있는등의 육신을 고통속으로 몰아 넣어 그 고통을 잊어버림으로써 위대한 정신을 깨달으려는 수행법이었다. 진표스님의 망신참회법은 이들 전통적 수행법보다 훨씬 더 처절했다. 760년(경덕왕 19) 쌀 20말을 쪄서 말린 것을 가지고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면서 백제 유민의 고통을 구원할 수 있는 깨달음을 구하지 않고는 살아서 그 방문을 걸어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미륵부처 앞에서 부지런히 계법을 구했다.대부분의 출가승려들이 해온 전통적 수행법에 따른 정진이었다.그러나 3년이 넘도록 미륵불은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았다.그때 진표스님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경전에 쓰여있는 수행법에 따라 참회하는 것만으로 백제 유민들의 그 오래고 참혹한 고난이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신라가 백제를 정복한 것은 땅 위에 백제 한 나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국가가 서로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인정할 때는 피할 수 없는 약육강식의 세상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우주 모든 것의 상관성 깨달아 진표스님이 망신참회법 수행을 결심한 것은 신라의 백제 침공을 꾸짖고 회개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그보다는 백제인들이 한 세기가 넘도록 미륵신앙을 지니고 혼신껏 기도했지만 그에 대한 회답이 신라의 지배 아래서 굴욕적인 삶을 살도록 한 것이라면,왜 그래야 했는지를 알고 싶었으며,장차 백제유민들은 어떻게 살아야 원한과 저주의 불길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그 해답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진표스님은 자신의 고통이 모든 백제유민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으며,그 끈은 모든 신라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주에서 홀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은 없고,태어나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있다는 깨달음이 진표스님의 확신으로 차올랐다.백제인들의 고통이 소멸되지 않고는 자신이 결코 안락할 수 없는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이다.이제 남은 문제는 백제인들의 고통을 없애줄 방법을 터득하는 일이었다.그 방법은 수행자 자신의 죄의식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참회법으로는 불가능한 차원에 닿아야만 깨달을 수 있음을 알고는 육신을 버리기로 했다.온 우주는 마음의 문제이지 육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장한 결심으로 21일 동안 육신을 던져넣는 참회수행을 단행했다.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진표스님을 안아 바위 위에 올려 놓고 사라졌다.다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수행을 강행했다.3일째 되자 팔과 다리가 부러져 일어서 걸을 수도,물건을 쥐기도 어려웠다.이제는 온몸을 굴려 언덕 아래로 떨어지는 참회수행을 계속했다.오직 마음으로 미륵을 불러 대답을 원했다.차츰 고통을 잊는 상태로 몰입했다.이제 온전한 것은 머리 뿐이었다.머리 마저 깨뜨려버림으로써 살고죽는 불편함마저 초월하고 싶었다.7일째 되던 날 밤 지장보살이 나타나 팔과 다리를 고쳐주고,가사와 발우를 전했다.수기(授記)가 내려진 것이다.그때부터 새로운 수행을 시작했다.21일을 다 채웠을 때 그토록 갈망했던 고통을 치유시키는 지혜가 터득되었다.금산사로 다시 돌아온 것은 29세 때였다.금산사에다 청동으로 빚은 미륵장육상을 모시고 그 아래서 외치기 시작했다.사자후(獅子吼)를 토한 것이다. ●신라 지도자들에도 참회 설파 만경들에서 농사짓던 이들이 미륵불을 기다렸지만 미륵불이 오지 않는 까닭을 말하면서 진정한 미륵을 만날 수 있는 비법을 설파했다.백제인의 마음속에는 신라를 향한 증오와 저주로 꽉 차있기 때문에 미륵의 소식이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이미 미륵은 와 있는데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고 했다.증오와 원한과 저주로 피흘리고 죽이는 일이 그치지 않는 한 미륵은 영원히 만날 수 없다고 설득했다.신라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백제인들뿐이며,백제인의 용서를 통해서만 신라가 나라다울 수 있고,신라가 나라다워야만 백제인의 마음에서 증오와 저주가 사라질 수 있으며,그래야만 공존과 상생을 이룰 수 있다고 절규했다. 신라의 지도자들을 향해서도 외쳤다.백제인을 능멸하고,빼앗고,죽이는 통치법으로는 신라도 끝없는 고난속으로 빠져들 뿐이며,오만과 편견과 무력으로 이룬 한 때의 번영이 더 큰 재앙으로 변하는 것을 막으려면 참회하는 길뿐임을 설파했다. 신라인의 참회가 있어야만 백제인과 공존할 수 있음을 타일렀다.마침내 신라의 왕과 귀족,지도자들이 진표스님의 법문에 무릎을 꿇었다.진정한 통일신라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진표스님의 온 몸을 던진 백제 사랑은 한 시대의 고난과 불행을 극복해 내는 위대한 지도자의 참모습이었다.
  • 주말매거진 We/실미도&무의도

    영화 ‘실미도’가 난리다.400만이니,500만이니,연일 관객수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북파 공작을 목적으로 구성됐던 684부대원들의 난동사건을 다룬 영화 실미도.쉴 틈 없이 몰아치는 스펙터클한 영상 속에선 장마때의 파란 하늘처럼 살짝살짝 비치는 촬영 세트장의 주변 경관이 관객들에게 잠시 한숨을 돌리게 한다. 실미도는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 옆의 무의도에 거의 붙어있는 작은 무인도.684부대는 실제로 무의도에서 대부분의 훈련을 받았고,실미도에선 부분적인 훈련만 받았다고 한다.춤추는 무희의 옷처럼 아름답다는 무의도,투명하고 평화로운 해변이 인상적인 실미도를 찾았다. 실미도는 무의도 실미해수욕장과 마주하고 있다.썰물 때 해수욕장과 실미도 사이에 거대한 갯벌과 모래톱이 드러나 2시간가량 길을 내준다. 갯벌은 굴 천지다.크고 작은 돌엔 굴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모래사장은 거의 굴껍데기가 쌓여 층을 이루고 있다.갯바위를 밟아 비트니 껍데기가 깨지며 엄지 손톱만한 굴 알갱이가 드러난다.뽀얗게 살이 오른 굴 맛이 참 신선하다. 뾰족한 돌멩이를 집어 본격적으로 굴을 까먹으려고 했으나,너무 힘들어 포기했다.인근 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이 굴을 채취하고 있다.갈고리로 굴을 깨서 담는 솜씨가 순간 부럽게 느껴진다. 무의도와 이어진 실미도 해변을 걷다 보니 야트막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 있다.영화 ‘실미도’ 촬영 세트장이 있던 곳으로 이어지는 길이다.하지만 아무런 표지판도 없기 때문에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볼품없는 소나무들과 잡목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올라 정상에 서니 반대편으로 아담한 해변이 펼쳐져 있다. 하얀 모래사장과 양 옆의 갯바위들,투명한 바다가 어우러져 제법 아름답다.갯벌 때문에 혼탁한 대부분의 서해안 해수욕장과는 딴판.갯바위엔 역시 굴껍데기가 빈틈없이 붙어 있다.이곳이 영화 ‘실미도’ 촬영세트장이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모두 철거되고,지금은 막사가 들어섰던 터,굴러다니는 모래주머니,나무계단 등이 촬영의 흔적을 보여줄 뿐이다.서둘러 길을 되짚어 무의도로 향했다.시간을 지체하면 자칫 혼자 섬에갇혀서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행선지는 무의도 하나개해수욕장.오전에 배를 타기 전 매표소 직원이 “요즘 뜨고 있는 드라마 ‘천국의 계단’ 세트장이 있다.”며 꼭 가보라고 했던 곳이다.무의도 큰무리 선착장에서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가면 먼저 오른쪽으로 실미해수욕장 가는 길이 나오고,그대로 지나쳐 5분 정도 더 가면 우측으로 하나개해수욕장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선착장에서 10분 정도 소요. 해수욕장 앞에 널찍한 주차장이 있고 입구 주변에 횟집들이 많은 것을 보니 한여름엔 제법 피서객이 많이 몰리는 듯하다.하지만 겨울 한가운데 선 지금은 주차장 한 편에 대여섯대의 승용차가 서 있을 뿐이다.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여주인공 ‘정서’(최지우)가 어렸을 적 살았던 집으로 나오는 세트장은 해수욕장 남쪽 끄트머리 언덕 위에 서 있다.꼭 동화속 장난감처럼 만들어진 별장이 시원하게 펼쳐진 해변과 잘 어울린다.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던 것과는 달리 막상 별장 안마당에 서서 보는 해변 풍광은 그저 평범할 뿐이다.세트장 방문객은 대부분 20대 초반의 데이트족들.드라마 인기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저마다 세트장을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서 갖은 포즈를 취한다. 세트장에서 좀더 아래로 내려가면 무의도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일명 ‘환상의 길’로 불리는 곳.파도와 바람에 깎이고 닳아 생긴 기암괴석과 수직절벽 사이로 자연분재 서식지라고 이름 붙여진 소나무 군락지,사자바위,총석정 등 자연의 아름다운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해수욕장에서 왕복 1시간 남짓 걸린다. 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호룡곡산(244m) 산행에도 나서보자.나지막하지만 경사의 완급이 적당하고 곳곳에 조망대와 쉼터가 갖춰져 있어 아기자기한 섬 산행을 즐길 수 있다. 하나개해수욕장 입구 오른쪽에 세워진 ‘호룡곡산 산림욕장’이란 큰 푯말을 따라 들어가니 소나무 숲을 지나 등산로가 시작된다.졸참나무,신갈나무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이따금 꿩이 푸드덕거리며 날아올라 깜짝 놀라게 한다. 호랑바위,신선약수를 거쳐 정상에 올랐다.끝없이 펼쳐진 서해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해풍이 등줄기의 땀을 식혀준다.동쪽으로는 서해의 관문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이 한눈에 들어온다.하산길은 마당바위∼부처바위∼환상의길∼하나개해수욕장 코스로 잡았다.총 2시간 정도 걸렸다. 실미도(인천) 글·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 핵심주역 3인도 역사의 뒤안길로… 실미도 특수 부대의 핵심 주역은 김형욱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부장,이철희 중앙정보부 제1국장,이후락 후임 부장 등 3인.김 부장은 1968년 1·21 사태 직후 창설을 지시했고 이 국장은 세부 프로젝트를 입안한 뒤 부대 운영과 훈련 지원 등을 전담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부장은 1971년 8월 실미도 사건이 터진 뒤 해체를 지시했다. 특수 부대원 31명에 대한 훈련은 대북 첩보 부대인 공군 2325 전대 209 파견대에서 3년4개월간 극비리에 시행됐다.작전명은 ‘684’. 옥만호 전 공군참모총장은 “실미도 사건이 터졌을 때야 부대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말할 만큼 실미도 부대운영은 중앙정보부 주도로 극비리에 이뤄졌다. 세 사람 가운데 김형욱씨는 법원으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았고 이후락씨와 이철희씨가 생존해 있으나 역사적 요구에도 좀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이후락씨는 1년전 서울 반포에서 경기 하남시 감이동 동서울골프장 입구의 별장으로 이사를 했다. 지난 11일 동네주민 K씨는 “얼마전 중풍을 맞아 거동이 불편하지만 지팡이를 짚고 집주변을 산책하는 모습이 가끔 눈에 띈다.”면서 “처음 이사올 때는 마을 행사에 기부금도 내놓고 했는데 요즘에는 윷놀이 행사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의 별장은 대지 500평에 건평 250평 규모로 울타리를 정원수가 죽 둘러싸고 있었다.주변 야트막한 야산까지 포함하면 별장 지대가 족히 2000평은 돼 보였다.드나드는 사람은 부동산을 봐주는 O씨나 바둑동무를 해주는 예비역 장성 Y씨 외에는 거의 없다.요즘 서울 모병원에서 안과 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다음달 23일 파란과 곡절의 만80살 생일을 맞게 된다. 김문 기자 km@ ●가는 길 올림픽대로 또는 강변북로를 타고 김포공항 방면으로 가다가 인천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빠진다.영종대교를 지나 계속 직진하면 용유·무의도 이정표가 나온다.이정표를 보고 오른쪽으로 빠져서 10여분 정도 달리면 왼쪽으로 잠진도선착장 가는 길이 나오고,이 길을 따라 5분 정도 가면 선착장이다.선착장에선 무의도행 배가 아침 7시3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있다.물때에 따라 하루 2∼3시간씩 결항되므로 미리 결항시간을 알아보는 게 좋다. 뱃삯은 승용차를 가져갈 경우 운전자 포함 2만원.동승자는 1인당 2000원.무의도내에 실미해수욕장,하나개해수욕장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있으나 운행시간이 일정치 않아 이용하기 불편하다.실미도는 무의도 실미해수욕장 앞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 들어가야 한다.문의 무의도해운(032-751-3354). ●숙박 하나개해수욕장,실미해수욕장 주변에 민박집이 많다.대부분의 식당에서도 민박을 겸한다.요즘은 성수기가 아니라서 2만∼3만원이면 언제라도 방을 구할 수 있다.문의 하나개해수욕장(032-751-8866). ●무의도 낚시 실미해수욕장에선 인근 갯바위에 앉아 바다낚시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우럭,망둥어,광어,전어,숭어 등이 잘 올라온다.배낚시(1인당 5만원)도 가능하다.문의 실미해수욕장 번영회(032-752-4466). ■싱싱한 굴밥 꼭 맛보세요 무의도와 실미도 해안에선 전혀 과장됨 없이 발에 차이는 게 굴이다.요즘은 굴이 가장 맛있는 계절.또 겨울엔 쉽게 변질되지 않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무의도에 들어서면 선착장 주변은 물론 실미,하나개해수욕장 인근 대부분의 식당이 굴요리를 낸다. 식사로 싱싱한 자연산 굴을 맛볼 수 있는 대표 메뉴는 굴밥정식.승선권 매표소 직원이 추천해준 하나개해수욕장내의 ‘번영회식당’을 찾았다. 주문한 지 20분쯤 지나 나온 것은 뚝배기에 지은 굴밥과 굴국,굴회,굴전,굴무침.이렇게 다양한 굴요리만으로 밥을 먹기도 처음이다. 이곳 굴밥은 우선 그 화려함이 눈길을 끈다.뚝배기에 지은 밥 위엔 뽀얗게 익은 굴과 함께 대추,무,당근,호박씨,해바라기씨,검은깨,콩나물이 어울려 입맛을 다시게 한다. 잘 섞은 밥을 작은 대접에 덜어 양념간장을 쳐 비볐다.향긋한 굴냄새와 고소한 견과류 맛이 어울린다.굵게 썬 무채와 굴을 넣고 끓인 국도 제법 시원하다. 생굴을 몇가지 야채와 양념으로 버무린 무침은 매콤달콤한 맛이 별미.두툼하게 지진 굴전은 술안주로 잘 어울릴 것 같다. ‘굴밥정식’은 1만원.생굴과 굴전,굴무침을 빼고 굴밥과 몇가지 기본 반찬만 차린 상은 8000원.(032)752-7250. 임창용기자
  • 화성에 ‘물’ 있는듯/스피릿, 광물질 발견

    |템피(미 애리조나주)·패서디나(미 캘리포니아주) 연합|화성 탐사 로봇 스피릿이 화성에서 물의 존재를 입증할 가능성이 있는 광물질을 발견했다고 과학전문지 뉴 사이언티스트가 12일 보도했다. 이 잡지에 따르면 스피릿에는 토양과 바위 성분을 분석하는 열감지 분광계(TES)가 장착돼 있다.이 TES가 지금까지 포착한 신호들에는 규산염과 탄산염,그리고 “어쩌면 진흙 성분일지도 모르는” 몇가지 종류의 수화 광물질이 포함돼 있다고 TES를 설계한 애리조나 주립대 필 그리스텐이 밝혔다.탄산염은 보통 오랜 시간 동안 고여 있던 물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 우주항공국(NASA) 과학자들은 탄산염 먼지는 화성 대기에 들어 있던 미세한 수증기의 상호작용으로 생성된 것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한편 스피릿이 보내온 TES 영상들은 이미 화성에 다양한 암석이 존재하며 토양에도 독특한 성분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책/고대로부터의 통신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기본자료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고려시대에 전승자료를 모아 편찬한 것이다.반면 글씨나 그림을 쓰거나 새긴 금석문(金石文)은 뒷사람의 손길이 타지않은 생생한 자료다.문헌에서는 찾을 수 없는 사실을 전해주고,잘못도 바로잡아준다. ‘고대로부터의 통신’(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 지음,푸른역사 펴냄)은 ‘금석문으로 한국 고대사 읽기’라는 부제처럼 금석문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여 한국 고대사를 복원해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역사가 소설과는 또 다른,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머리에 실린 ‘신라왕족의 로맨스’부터가 그렇다.각석(刻石)이란 글씨나 그림이 새겨진 돌이다.울산 울주의 천전리 각석에는 청동기시대 이후 갖가지 명문과 그림이 새겨져 있다.바위 중간 아래쪽에는 상당한 길이의 명문이 있다.먼저 새겨진 원명(原銘)과 나중에 덧붙여진 추명(追銘)을 재구성하면 신라사의 상당부분이 규명되고,더하여 한 편의 사랑이야기가 탄생한다.원명을 정리하면 ‘을사년 어느 날 신라 사훼부(沙喙部)에 소속된 갈문왕이 골짜기에 놀러왔다 갔으며,함께 온 누이는 어사추였다.’는 내용이다.을사년은 법흥왕 12년(525년)이다.갈문왕은 왕에 버금가는 최상급 신분으로,법흥왕대의 갈문왕은 왕의 친동생인 사부지(徙夫知)였다. 어사추는 ‘갈문왕의 우매(友妹)’라고 했다.손아래 누이라면 매(妹)만으로 족하지만,우매라고 한 것은 신라 왕실에서 근친혼이 성행한 것과 관련이 있다.혼인을 하기 이전의 예비 커플이 서로 ‘벗으로 사귀는 오라비(友兄)’나,‘벗으로 사귀는 누이(友妹)’로 부르며 가까이 지내는 것은 지극히 흔한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추명은 두 사람이 천전리 계곡을 찾은지 14년이 지난 기미년(539년)에 사부지의 부인 지몰시혜비가 다시 이 곳을 찾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불행하게도 사부지와 어사추는 세상을 떠난 뒤다.삼국유사에 따르면 지몰시혜는 법흥왕의 딸이자 진흥왕의 어머니로 알려진 지소부인(只召夫人)이다.사부지가 법흥왕의 아우이니 사부지와 지몰시혜는 삼촌과 친조카사이이다. 연인 사이이던 사부지와 어사추가 결혼에 이르렀는지는 알 수 없다.사부지가 지몰시혜와 결혼한 것도 어사추가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인지,사이가 멀어졌기 때문인지도 알 수 없다.그러나 어사추가 사랑하던 사람과 인연을 지속하지 못한 비운의 여인이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고대로부터…’은 금석문이 과거를 밝히는 열쇠라는 사실을 일러주지만,일본 나라(奈良)현 텐리(天理)시 아소노카미(石上)신궁에 있는 칠지도(七支刀)처럼 왜곡된 역사를 증거하는 수단으로 잘못쓰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1892년 발견된 뒤 현재까지 칠지도에 대한 일본사학계의 해석은 임나일본부설의 전개상황에 맞추어 뒤바꾸는 불합리한 욕망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소장파 고대사학자가 대거 참여하여 집필한 ‘고대…’은 이밖에 ▲동수묘지 ▲광개토대왕릉비 ▲모두루묘지석 ▲중원고구려비 ▲무령왕릉 지석 ▲영일 냉수리비와 울진 봉평비 ▲진흥왕순수비 ▲계유명아미타삼존불비상 ▲사택지적비 등 금석문 18가지를 다루고 있다.1만4000원.서동철기자 dcsuh@
  • “스피릿 착륙은 골프의 홀인원”

    4일(이하 한국시간) 화성 표면에 착륙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탐사 로봇 ‘스피릿(Spirit)’이 5일부터 생생한 영상을 본격적으로 전송하기 시작했다. NASA에 따르면 스피릿은 4일 오후 1시35분 화성 표면에 착륙한 뒤 3시간이 지나 흑백 영상을 전송하기 시작했으며,1차로 80개 정도를 보냈다.영상을 보낸 후 활동에 필요한 태양 에너지를 모을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시스템의 전원이 꺼진 채 휴면 상태로 보냈다. NASA의 과학자들은 그 사이 자체 카메라 장비에 의해 가려진 막대사탕 모양의 안테나를 재위치시키려 하고 있다.이 안테나는 지구와의 직접 교신을 위해 필요한 장치다. 스피릿은 5일부터 활동을 개시,이틀에 걸쳐 몸체를 펴고 앞다리를 전면으로 뻗게 된다.바퀴가 6개 장착된 스피릿이 착륙 기기를 완전히 편 채 화성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하기까지는 9∼10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화성 탐사 프로젝트 담당자인 존 칼라스는 “스피릿이 보내온 영상은 환상적”이라면서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NASA 관계자들은 스피릿이 당초 목표지점에서 불과 9.6㎞ 떨어진 곳에 착륙했을 정도로 계측이 정확했다며 “로스앤젤레스에서 쳐올린 골프공이 뉴욕으로 한번에 빨려들어간 ‘홀인원’과 같다.”고 비유했다. 스피릿이 보내온 첫 영상은 강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바위가 산재한 평야를 보여주고 있다.화성 표면의 영상이 지구로 전송되기는 지난 97년 NASA의 화성탐사 로봇 ‘마스 패스파인더’가 보내온 뒤 6년여 만에 처음이다.NASA의 인터넷 운영자인 브라이언 던바는 “지난 3일 스피릿 착륙 전후 24시간 동안 NASA의 관련 홈페이지 접속 횟수가 1억 900만 건에 달했다.”며 “인터넷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전세계에 1300대의 서버로 스피릿 탐사 내용을 담은 웹 페이지를 운영중”이라고 말했다. NASA의 쌍둥이 화성탐사 로봇 중 두번째인 ‘오퍼튜니티(Opportunity)’도 24일 화성 표면에 착륙,스피릿과 함께 과거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는가를 탐색한다. 이도운기자·외신 dawn@
  • 하이 서울, 예스 서울신문/창간정신 그대로...국민 속으로

    ■100년 역사와 발자취 서울신문이 세상에 태어난 지 올해로 꼭 100년을 맞았다. 1904년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후 서울신문,대한매일을 거쳐 다시 서울신문으로 돌아온 길은 잠깐의 영광에 이은 오랜 질곡의 역사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한매일신보는 자유언론의 표상이었다.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고,의병운동을 적극적으로 알려 항일투쟁의식을 고취시켰다.외세의 경제적 침투를 반대하고 자주적 산업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신교육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인 것도 대한매일신보였다.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계승하여 1945년 11월22일 다시 태어났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지조있는 선비 위창 오세창을 사장으로 주필 이관구,편집국장 홍기문으로 진용을 짰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애당 권동진과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는 고문으로 추대됐다. 서울신문은 중립지(中立紙)를 표방했지만,언론매체들이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공(人共)’을 국호로 하자는 몽양 여운형이 인사말을 싣고,홍벽초 고문과아들 홍기문 국장이 모두 월북한 데서 알 수 있듯 좌파적 색채를 지녔다. 정부에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던 서울신문이 반공지(反共紙)로 노선을 바꾼 것은 1949년 5월3일 공보처의 발행정지처분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당시 공보처장은 “서울신문이 반정부적이고 이적행위를 하는 신문이라는 비난사례가 허다했다.”고 강변했다.그는 “서울신문은 대통령 지방순시 등 정부발표기사를 타지보다 소홀하게 취급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정부는 이후 좌익계열의 간부진을 퇴진시키고 우익인사들로 하여금 서울신문을 속간케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주식 48.8%가 일본인으로부터 이전된 정부소유의 귀속재산이어서 가능했다. 작가인 월탄 박종화 선생이 새로운 사장으로 선임된 것은 이런 작업의 결과였다.이헌구 유치진 김동리 등 우익문화예술단체 문총(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의 멤버들이 대거 참여했다.이후 주주총회 및 간부인사에서 정부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신문은 그러나 정부의 통제가 미치기 시작한 이후에도 일부 정치적 보도를 제외하고는 비판적인 논조를 버리지 않았다. 1952년 경남 거창군내 6개 마을에서 공비내통혐의자뿐 아니라 양민 500여명까지 무고하게 집단학살하고,또 이를 덮으려 한 이른바 거창양민학살사건 때도 그랬다. 서울신문은 당시 사설에서 “우리는 국민방위군사건의 비극이 생겼을 때 울었지만,거창사건을 말살하려던 웃지 못할 희극을 보고는 또 한번 울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후 미묘한 정치적 상황에서는 정부를 옹호하면서,사회적 문제에는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유지한 서울신문의 불행한 전통은 2002년 사원이 대주주인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종수 기자 vielee@ ■지령 어떻게 되나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의 지령을 이어간다.1904년 7월18일 창간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는 일제의 침략에 맞서 구국의 필봉을 휘두르며 독립정신과 민족정기를 고취하다 한일병합으로 폐간되기까지 6년동안 1651호를 발행했다.그러나 대한매일이 그랬듯이,한일병합 이후 1945년 미군정청에 의해 정간될 때까지 발행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지령은 계승하지 않는다.시대와 역사와 발행 주체가 다른 총독부 기관지의 지령을 합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재창간된 서울신문 지령은 1904년에 창간돼 한일병합 때 폐간된 대한매일신보의 지령,광복이후인 1945년 11월22일 창간돼 1998년 11월10일자로 종간한 서울신문의 지령,그 다음날자로 창간돼 2003년 12월31일자로 종간한 대한매일의 지령을 합한 것이다.2004년 1월1일자 서울신문의 지령은 20095호이다. 독자의 눈과 귀 역할 충실히 대한매일신보가 항일의 기치를 드높였던 전설적인 독립언론인 데 비해 대한매일은 권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미완의 언론이었다.1904년 영국인 배설(裵說)과 양기탁(梁起鐸)선생 등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박은식(朴殷植) 신채호(申采浩) 장도빈(張道斌) 등 애국지사 논객들이 총집결해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침략과 관료의 무능에 맞선 자유언론의 표상이었다.그러나 1998년 11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발행된 대한매일은 같은 이름의 대한매일신보사가 만든 신문이지만 권력의 그림자를 벗지 못했다. 서울신문 임직원들은 1945년 11월22일 서울신문이 창간된 뒤 여당지 또는 관제언론이라는 오명과 질곡의 역사를 겪으면서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정부가 대주주인 신문이 권력의 고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지난(至難)한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1998년 2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다.관제언론의 피해자라고 믿고있던 DJ정권은 서울신문을 정론지로 탈바꿈한다는 명분으로 그해 11월11일자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다. 하지만 독자와 임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가 아니라 새 권력의 일방통행식 결정이었다. 임직원들은 대한매일로 제호가 바뀐 뒤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이어받고 정론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그러나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한 진정한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는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고,1999년 중반부터 민영화를 다시 추진하여 2002년 1월 결실을 맺었다.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회복해야 한다는 얘기는 2002년 후반기부터 나오기 시작했다.민영화로 터진 물꼬는 막을수 없었다. 최대 주주인 우리사주조합은 지난해 11월18일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회복하는 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72.71%,반대 26.05%로 통과시켰다.12월3일 열린 주주 총회도 전폭적으로 사주조합의 제호 회복안을 받아들였다. 황수정기자 sjh@
  • 100세를 사는 사람들/“채식·소식이 장수 비결이제”

    삶을 좀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는 없을까.누구나 바라는 소망이지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그렇다면 우리나라 장수벨트인 전북 순창,전남 담양·곡성·구례군에서 100세를 넘긴 초장수인들의 삶은 어떤가.“100살은 살아야제.”라는 우스개 말처럼,1세기를 살고도 치매는 커녕 총총한 기력을 과시하는 이들의 남다른 모습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지난달 15일 전북 순창군 팔덕면 창덕리 동고마을을 찾았다.마을 앞 표지석에 장수마을이라는 글씨가 반긴다.설양님(102) 할머니는 막내 딸 이금옥(68)씨와 외손자 부부 등 3대가 함께 살고있다.이미 고손자를 봤다.딸은 “어머니가 3년 전부터 눈이 안보이신다.하지만 하루 세끼도 양은 적지만 꼬박꼬박 챙겨 드신다.”고 했다.“일평생 뭘 많이 드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딸의 말에,할머니는 “괴기(고기)보다는 두릅이나 취 같은 산나물을 뜯어다 섞어서 많이 묵었제라.”라며 거들었다.할머니는 거동만 불편할 뿐 귀도 밝고 듬성듬성하나마 이도 남아 있고 혈색도 좋아 잔병치레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지금껏 술·담배와는 남이다.할머니는 친정 동기간 6남매 중 80살이 넘은 막내와 둘만 남았다. ●푸성귀 반찬에도 세끼 밥은 꼭 먹어 전남 곡성군 입면 금산 4구 택촌마을 이숙영(103) 할머니는 기자가 방안에 들어서 사진 좀 찍겠다고 하자,며느리 양정순(82)씨 한테 “사진 찍을라먼 빗 가져오니라.쉐타(스웨터)도 좋은 놈으로 가져오고”라며 언성을 높였다.16살에 시집 온 며느리는 웃으면서 “엄니하고 고부간에 좋게 지냈어요.바깥양반 살아 있을 때도 한방에서 둘이 자곤 했는디”라며 빗을 찾았다.할머니의 유일한 낙은 담배다.요즘도 1갑을 해 치운다.가끔 술도 한잔씩 한다.“가슴애피(답답증)가 올라오먼 담배라도 피워야 내려간다.”고 며느리가 해명했다.보고 듣고 말하는 데 불편함이 별로 없었다.푸성귀 반찬에 세끼를 거르지 않고 집앞 텃밭도 가꿀 만큼 정정하다. 구례군 구례읍 원방리 이복덕(100) 할머니가 사는 양옥의 현관 초인종을 몇번 누르자 증손자인 박승연(4)군이 쪼르르 달려 나왔다.할머니를 찾자 “할무니병원 갔는디”라고 맞받았다.되돌아 서려는 데 방안에서 할머니가 나왔다.손자는 “아아 우리 상할머니”라며 웃었다. 할머니는 큰 소리로 가까이서 말해야 알아듣는 것 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맵시있고 고왔다.식사도 잘하고 치아도 거의 완벽했고 얼굴색도 갓 60을 넘었을 정도로 보일만큼 밝았다.“따뜻하먼 밭도 메고 힘 안들고 하는 가벼운 일은 하제”라고 힘줘 말했다.먹는 것 입는 것 탓하지 않고 “그러려니.”하고 살았다고 한다.반대로 며느리(68)는 요즘 위가 안좋아 병원 출입이 잦다.“어머니는 뭐든 잘 드시지만 돼지고기는 중풍에 좋지 않다며 젊어서부터 안드셨다.요새도 양말을 신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시다.”고 자랑했다.할머니 동기간도 수를 누리는 장수집안이었다.4남 1녀 중 남은 남동생(97)과 여동생(80)도 건강하단다. 대대로 장수마을인 담양군 대전면 태목리에 사는 이도음(103) 할머니는 취재한 100세인들 가운데 단연코 으뜸이었다.6남매 자식들과 떨어져 홀로 살면서 손수 연탄 갈고 전기밥솥에 밥도 지었다.가난의 굴레가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아 건강을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살며 밥 짓고 밭일도 ‘척척' 마당 한쪽 20여평에 기른 마늘이 한뼘 이상 올라와 싱싱했다.허리가 구부정할 뿐 눈·귀가 밝고 군수가 준 지팡이도 걸어두고 쓰지 않았다.할머니는 “그때는 먹을 것이 없었어라.젊어서도 괴기만 묵으면 몸뗑이에 두드러기가 났응께.태어나 처음으로 작년에 병원이란 데를 가봤당께”라며 또박또박 설명했다.허리 한번 맘놓고 펼 시간없이 힘든 일평생이었다.일할 때 텁텁한 막걸리는 허기도 채워주고 힘도 나게 했다.먹고 자고 입는 것 등 어느 하나 변변한 게 없었다.친정 동기간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먼저 갔다고 한다. 이곳에서 30리 떨어진 봉산면 기곡리 연산마을 양덕술(103) 할머니는 청력을 완전히 잃었으나 꼿꼿한 자세만큼은 여전했다.전주이씨 종갓집 6대 종부이니 오죽했겠는가.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었다.지금도 스스로 화장실 가고 거동할 수 있다.며느리 최미순(73)씨는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아무리 아파도 절대 죽을 드시지 않고 적게 드시더라도 꼭 밥을 달라고 하셨다.”고 건강비결을 들었다. 이처럼 100세인들은 보통사람들의 삶과 사뭇 다르지 않았다.허리춤이 시릴 정도로 배고프고 춥던 시절을 몸으로 부대끼며 살았다.입에 풀칠하느라 자식들 교육시키느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길쌈질에 논·밭일에 시달렸다.잠도 충분치 못했다.하지만 한결같이 소찬에 꽁보리밥이었지만 가리지 않고 맛있게 이웃들과 나눠가며 먹었다.오늘날 장수법의 공식으로 여겨지는 소식(小食)처럼 적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또 이들은 맘이 넉넉하고 성질이 유순했다.장수벨트에 사는 100세인 28명 가운데 할아버지는 단 한명도 없었다.대대로 장수하는 이복덕 할머니를 빼고는 가족중에 특별한 장수인도 없었다. 전남 곡성·구례·담양,전북 순창 남기창기자 kcnam@ ■담양 오계1리 주민들의 ‘건강한 삶' 장수마을인 전남 담양군 담양읍 오계 1리는 39가구에 주민 106명으로 65세 이상이 27명이고 80세 이상이 11명이다. 65세 이상부터 80세 이상 비율이 40.7%나 돼 군 전체(19.4%)보다 두배 이상 높다. 오계 1리는인동 장(張)씨 집성촌이다.이웃간에 성님(형님) 동생하며 정답게 산다. 담양읍이지만 더 이상 못가는 막장이어서 지형상 ‘소쿠리 속 같다.’는 마을이다.때문에 한국동란 때 피란민들이 들끓었다고 한다.농토가 풍족지 않아 농한기에는 대바구니와 베짜기로 생계를 꾸려온 전형적인 농촌이다. 80세 이상자 가운데 남자는 장문열(90)씨 등 2명뿐이다.겨울에는 마을회관에 모두 모여서 고구마를 쪄 먹으며 하루를 보낸다. 마을 내력을 소상히 알고 있는 노인회 장규환(71) 총무는 “우리 마을은 대대로 장수마을인데 소나무 우거진 산으로 둘러쳐진 형상이 옥녀가 가야금을 타는 ‘옥녀탄금(玉女彈琴)’ ”이라며 명당자리임을 강조했다.이어 “마을이 삿갓봉 아래에 자리해 배수가 잘되는 배산임수형”이며 “장수하는 데 따로 방법이 있는 게 아니고 자연에 맡기고 살아야 수를 누린다.”고 진단했다. 며칠 전 마을회관에 모인 70세 이상 노인 14명은 입을 맞춘 듯 장수비결로 마을 앞 공동샘을 들었다.바가지나 두레박으로 퍼올리는 샘이 아니고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이 사시사철 넘쳐나는 샘이다.어려서부터 마시기 시작했는 데 지금도 그 물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장금례(89) 할머니는 도움없이 걸어다니고 식사도 곧잘 한다.진정임(88) 할머니는 “시집 올 적부터 물맛이 꿀맛 같았제.”라고 회고했다.김묘례(81) 할머니는 “피부가 새색시처럼 뽀얗다라는 말을 듣는 디 물 때문이 아닌가 싶구만요.”라고도 했다. 김봉이(85)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닐 때 뒤뚱거릴 뿐 다른 데는 별달리 아픈데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14명 가운데 흡연자는 5명이었다.하루 1갑을 피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10개피 이내였다.일할 때 이외에는 막걸리도 입에 대지 않았다.이들 가운데 속이 아프거나 지병 등으로 식사를 못하는 노인은 한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유달리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것도 아니었다.그저 나물과 야채 등 소찬에다 꽁보리밥에도 감사했다고 한다.평생 동안 논·밭일, 집안일에 매달렸다. 연세가 높은 이들이었지만 느닷없는 낯선이의 방문에도 회관 방바닥을 걸레질하며 자리를 비켜줬고 몸둘 바를 몰라 할 정도로 순수한 맘을 간직하고 있었다. 1시간 넘게 취재하는 동안 담배 한모금은 커녕 다리 한번 뻗질 못하고 눈치만 보는 겸손의 미덕을 간직하고 있었다. 담양 남기창기자
  • ‘꾀돌이’ 반돌이/포획팀 40일째 번번이 골탕

    지난달 17일 보호시설을 탈출한 지리산 방사곰 반돌이와 수색팀간의 숨바꼭질이 26일로 40일째 계속되고 있다. 특히 야생에 적응한 생후 35개월,몸무게 114㎏,수컷 곰 반돌이의 영악함에 수색팀들이 번번이 ‘골탕’을 먹고 있다. 지난 2일 피아골 대피소에 곰이 나타났다는 신고를 접한 수색팀은 긴급 출동,잠복에 들어갔다.반돌이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2∼4일까지 사흘 연속으로 대피소 움막 속의 쌀통에서 유유히 쌀을 훔쳤다. 이를 지켜본 수색팀은 다음날인 5일 밤 생포작전에 돌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수색팀원 수를 19명으로 늘리고 길목 요소요소에 ‘생포 덫’ 10개를 설치했다.이날도 쌀통을 노릴 것으로 보고 쌀통 옆에 움막비닐을 열어 접근이 용이하게 배려까지 해 놓았다.하지만 이날 반돌이는 예상과 달리 열려 있는 통로를 이용하지 않고 텐트 귀퉁이 천막을 뜯고 쌀통을 훔치려고 시도했다. 허를 찔린 대원들이 마취총을 발사하기 위해 랜턴을 비추는 사이 반돌이는 잽싸게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이후 20일이 지나도록 흔적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한상훈 반달가슴곰관리팀장은 “반돌이는 자기를 잡으려 한다는 것을 미리 눈치채고 있다.”면서 “반돌이의 잔꾀에 완전히 농락당한 기분”이라고 허탈해했다. 지난 5월 나무 위로 도망갔다가 마취총에 맞아 잡힌 이후 아무리 다급해도 나무 위로는 올라가지 않고 바위·나무 등을 딛고 다니면서 발자국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용의주도하다. 수색팀은 “반돌이는 5∼6세 정도 유아의 지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억지로 포획하려는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유진상기자 jsr@
  • 오가는 한해 축제판서 놀아볼까

    정치·사회적 격변과 경기 침체로 궂은 날이 많았던 2003년.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전진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다사다난했던 계미년을 보내고 희망의 갑신년을 축제 분위기 속에서 맞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갖는다.‘해맞이’에 치중했던 예년과는 달리 다채로운 부대행사를 마련,연말과 정초에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신년 일출 서울서 즐긴다 서울에서도 새해 해맞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마포구 상암동 종합운동장 옆 하늘공원과 전통적인 일출 명소인 강북구 삼각산의 시단봉,광진구 아차산의 팔각정,양천구 용왕산,도봉산 등지에서 새해 1일 오전 7시 전후로 해맞이 행사가 다채롭게 열린다. 목2동 용왕산에서 열리는 ‘2004 해맞이’ 행사에서는 해돋이 전에 주민들과 함께 양천구와 가정의 행복을 비는 ‘새해 해오름 맞이 풍물놀이’와 ‘개천대고(開天大鼓) 타고’가 펼쳐진다.해가 뜨는 순간 축포가 터지면서 주민들이 소망을 적어 띄우는 ‘소망기원문 날리기’ 행사도 마련된다. 도봉구는 1일 도봉산마당바위에서 지역주민,공무원 등 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해맞이’ 행사를 갖는다.축시낭송,구의 발전을 기원하는 만세삼창,트럼펫 연주,덕담 순으로 진행되며 커피,꿀차 등이 제공된다.새해 첫날 해돋이 시각이 7시47분으로 예상되고 마당바위까지 오르는 데 1시간1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참가를 희망하는 주민들은 새벽 5시40분까지 도봉산 제1휴식처로 나와야 한다. ●2004인분 대형 떡국·해돋이속 결혼식 포항시는 오는 31일 자정부터 다음날까지 호미곶광장에서 ‘한민족 해맞이축전’을 연다.국내 최대 규모로 제작된 가마솥(지름 3.3m,깊이 1.5m,둘레 10.3m)을 이용,관광객 ‘2004명’에게 두 차례 떡국을 제공한다.떡국을 끓이는 데 가래떡 500㎏,육수·물 각 1000ℓ,달걀 1200개,쇠고기 50㎏이 들어가는 ‘대사(大事)’다. 또 예비신랑·신부 두 쌍이 동틀무렵 관광객들의 축하 속에 결혼식을 올려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호반도로 알몸달리기·사진촬영대회 강릉시는 경포호수변 호반도로에서 ‘알몸달리기’를 갖는다.1일 오전 7시 호수변 옛자동차극장에서 출발,호수를 한 바퀴(4㎞) 돌아 경포해수욕장 중앙무대에서 해돋이와 함께 끝난다.복장은 남자는 반바지에 위는 알몸으로,여자는 반팔 러닝과 반바지 차림으로 참석할 수 있다. 울산시 울주군은 해뜨는 시간이 우리나라 바닷가 가운데 가장 빠른 서생면 대송리 간절곶을 전국에 널리 알리려고 올해 처음으로 ‘간절곶 해맞이 사진촬영대회’를 연다.31일부터 1월1일 사이에 간절곶 해돋이 장면을 비롯해 각종 행사를 소재로 찍은 사진을 1월2∼15일 접수하면 심사를 통해 시상한다. ●내장산 눈꽃축제 설경 만끽 배의 고장인 나주시는 내년 1월1일을 ‘배의 날’로 정하고 아침 7시20분 금성산 꼭대기 노적봉에서 ‘여명의 소리’ 북소리에 맞춰 소망을 빈다.솟아오르는 태양 아래서 배를 한입 베어 먹으면서 ‘새해에 소망은 배(倍)로 이뤄지고,배처럼 시원하게 일년을 보내자.’는 의미를 되새긴다.참석자 1200여명에게 배 두개씩을 나눠 준다. 내장산국립공원에서는 1월3일부터 4일까지 ‘눈꽃축제’가 열린다.눈길걷기대회,겨울산행대회,겨울동요 경연,야생동물 먹이주기 등 본행사 외에 밤 구워먹기,토끼몰이 등 아련한 추억을 되살리는 체험행사도 풍성하다.가을단풍 못잖은 설경을 즐길 수 있어 새해 가족나들이로 권할 만하다. ●선상 해맞이·모래조각展 등 이벤트 통영시는 한려수도 매물도와 가왕도 사이에서 떠오르는 해를 선상에서 즐기는 해맞이가 유명하다.1일 오전 6시10분 출항하는 유람선에 올라 한려수도를 관광한 뒤,7시쯤 매물도 부근에 도착할 때면 해가 수평선을 벌겋게 달구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서귀포시는 1월4일 중문해수욕장에서 제5회 ‘겨울바다 펭귄수영대회’를 개최한다.겨울바다를 관광상품화하기 위해 열고 있는 이 대회에는 해마다 1000여명의 내·외국인들이 몰려 성황을 이룬다.본행사를 전후해 모래조각 전시,모래성 쌓기,감귤 즙 마사지 등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전국
  • 수묵화 동호인 모임 ‘초연회’/스르르 먹물 번지듯 잡념도 사라지죠

    수묵화(水墨畵).다른 색깔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먹으로만 진함과 묽음,비움과 채움이라는 단순한 대조 속에 얼마나 많은 인간 상념을 담아낼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영(靈)과 육(肉)의 존재인 인간이 육의 속박을 벗어나 영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하는데,바로 그 경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할 만큼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오묘한 먹빛에 마음의 평정 찾아 지난 23일 세종문화회관 뒤 서울 종로구 당주동 세종아파트 306호.30여평의 아파트는 수묵화를 그리는 사람들의 모임인 ‘초연회(草緣會)’ 회원 9명이 한데 모여 팔중(八中) 김문식 화백의 지도로 자신들이 완성한 작품을 내놓고 품평회를 열고 있었다. 이들은 그동안 온 정열을 쏟아 빚어낸 작품인 만큼 평가자들의 코멘트 한마디 한마디를 주의깊게 가슴에 새기며 마치 초등학교 사생대회의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어린이들처럼 맑고 영롱한 ‘동심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육체적 고통,마음의 걱정과 우울함을 다스릴 때는 수묵화를 그리며 잊어버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어요.문득 옛것이 그리워질 때나 나도 모르게 마음의 일탈(逸脫)을 꿈꿀 때 수묵화를 그리는 일로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초등학교 때 조금 배운 뒤 잊고 지내다가 지난 3월 문득 옛날이 그리워 다시 수묵화를 그리게 된 장현순(32·여·고려대 강사)씨는 “수묵화를 그리는 동안 잡념을 떨치고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며 “특히 검은색 한가지로 농도가 진하고 옅어짐의 정도에 따라 6가지 색깔을 내는 오묘함도 맛볼 수 있다.”고 자랑한다. 옆에 있던 박창구(49·화물공제조합 과장)씨는 “보통 때는 무심하게 지나치던 사물도 수묵화로 그릴 때면 또다른 느낌을 받기 때문에 다른 일반 취미보다 싫증이 덜 난다.”며 “차근차근 변화하는 사물을 천착하다 보면 인내심을 키우게 되므로 현대인의 인격수양에 큰 도움이 된다.”고 거들었다. ●스케치 여행 다니며 건강도 좋아지고 현재 수묵화 그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5만명 안팎으로 추산된다.이들은 동호회·대학교 동아리·인터넷 동호회 등을 통해 주로 활동하고있다.대표적인 동호회 중 하나가 초연회.지난 1990년 결성된 초연회의 회원은 200여명.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많았거나 그림 그리기를 통해 마음의 평정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수묵화도 창작 작업입니다.창작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지방으로 스케치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 지방의 맑은 공기를 쐬는 기회가 많은 덕택에 나이든 분들에게는 건강증진 효과도 있죠.” 수묵화라는 취미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음주나 잡기에 빠졌을 것이라는 허철균(57·한성인쇄소 대표)씨는 “수묵화가 정신을 다잡아줄 뿐 아니라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해주죠,돈마저 적게 드니 일석삼조”라고 강조한다. 그림에 관심이 많아 1987년 수묵화에 입문한 안혜민(47·금융업)씨는 “수묵화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짧은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기보다 수묵화를 그리거나 서울 인사동의 전시회를 가는 등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게 됐다.”며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자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데다,여러 방면에 관심을 가져 교양이 풍부해지는 부수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수묵화를 즐기는 이유는 정신건강 및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는 점 외에도 전통문화를 살리거나 복잡한 현대생활 속에서 자연을 ‘완상(玩賞)’할 수 있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먹고 사는 데 바빠 늦깎이로 시작했지만 수묵화를 그리는 동안에는 세상사를 잊고 몰입한다는 이춘택(54·서울지하철공사 부역장)씨는 “개인적으로는 전통문화를 계승한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이 수묵화는 물론 전통문화를 경시하는 점이 너무 안타깝다.”고 지적한다. ●제대로 그리려면 3~5년 배워야 미술을 너무 좋아해 교대를 졸업한 뒤 다시 미술교육과로 편입·졸업한 ‘수묵화 마니아’ 김현순(56·서울 도봉구 창일초등학교 교사)씨는 “수묵화는 집안이나 도심 속에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며 “특히 나이가 든 분들에게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하고,공허한 마음을 채워준다.”고 털어놓는다. “묘사 위주인 서양화에 비해 수묵화는 사실 좀 어려운 편입니다.제대로 된 작품을 창작해 내려면 3∼5년 정도 배워야 하거든요.” 고등학교 때부터 틈틈이 수묵화를 익혔다는 윤민진(22·여·경희대대학원)씨는 “수묵화를 그리는 수준이 높아진다는 느낌이 들 때 가장 즐겁다.”며 “너무 빠르게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평정을 찾아주는 취미로서는 수묵화가 단연 최고”라고 내세웠다. 글 김규환기자 khkim@ 사진 안주영기자 jya@ ■수묵화 배우고 싶다면 예부터 문인과 선비들이 즐겨 그린 수묵화는 채색을 쓰지 않고 먹만으로 그리는 동양화 고유의 회화 양식 중 하나.현란한 채색을 피하고 먹의 명암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정신성(精神性)을 구현,문인화의 대종(大宗)을 차지하고 있다. 수묵화의 기법은 발묵(潑墨)·파묵(破墨)·농묵(濃墨)·담묵(淡墨) 등으로 나눠진다.발묵은 종이 위에 먹이 번져 퍼지는 효과를 얻고,파묵은 담묵으로 윤곽을 1차적으로 칠하고 그 뒤에 조금씩 농묵으로 덮어씌운 듯이 그려나가는 기법이다. 농묵은 먹을 진하게 갈아서 그리는 것이고,담묵은 물기와 먹이 번져 어울리게 하는 효과를 극대화해 얻을수 있는 기법.따라서 농묵과 담묵은 물기를 따라 삼투압 현상을 일으켜 번져가는 변화를 이용하는 셈이다.먹을 농·담으로 순차적으로 쌓아가듯이 그리는 적묵법(積墨法)도 있다. 수묵화를 배우는 과정은 선을 그리는 연습을 시작으로 사군자 그리기→화조(새 그리기)→석법(바위 그리기)→수지법(나무 그리기) 등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기초과정이다.걸리는 기간은 사람에 따라 6개월에서 1년 정도면 된다.기초를 익힌 다음 사생(스케치) 연습→기초 수묵화 그리기→계절별 수묵화 그리기 과정을 마치면 근사한 수묵화를 그려낼 수 있다.그 기간은 3∼5년이 소요된다. 수묵화를 배우려면 시·도·구 문화센터나 백화점 문화센터 등을 찾거나 개인 교습을 받아야 한다.강의료는 시·도·구 문화센터(3개월)가 5만원 이하로 가장 저렴하다.백화점 문화센터는 8만∼10만원이며,개인교습(1개월)은 10만∼20만원을 받는다. 김규환기자
  • 정동주가 말하는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민중의 恨·魂 다시 보듬을 것”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은 한국인의 삶을 뒤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앞만 보고 달리는 삶을 두고 우리는 뭔가에 쫓기듯 사는 삶,뒤돌아볼 겨를이 없는 삶,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곰곰 되씹어 볼 생각을 하고 있는 삶을 산다고들 한다.정신 없이 바쁘게 산다는 말로 압축시켜 볼 수 있겠다.바쁘다는 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웬만한 잘못쯤은 면책시켜주거나 아예 문제삼지 않으려는 집단면죄부와 같은 능력을 지닌 것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바쁘다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려니와 냉혹하게 말하자면 죄악에 속할 것이다.큰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말이다.한국인은 뭐든 잘 잊어버린다고 한다.망각증이라고도 하는 이 심리는 분명 한국인 특유의 자기중심주의 사고 방식이 낳고 기른 질병이다. ●허탈·부끄러움의 역사 참회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금방 잊어버리지만 유리한 것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 특이한 질병이다.지배계급일수록,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자일수록,권력이 있고 이른바 한국을 망해먹는 3연(緣) 즉 지연,혈연,학연이 치밀하게얽힐수록 망각증이 심하다.이 따위 엉터리 삶을 부끄럽지만 뒤돌아보고 참회하려는 것이다. 한국인의 삶 모두가 역사 안으로 들어와서 역사를 기록하는 닥나무로 만든 책갈피에 안겨 있는 것은 아니다.역사를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로 나누어 말할 때 앞의 것은 대개 지배자 중심이다.후자에 속하는 많은 것들은 역사의 책갈피가 아닌 강물이나 바람소리,풀잎이나 나무,물과 불,흙과 바위의 체온 속에 숨거나 기대어 한국인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그들의 삶을 불러내어 역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기 위한 시도가 ‘달빛의 역사’다. 그들의 삶 어떤 것은 귀신이나 도깨비가 되고,어떤 것은 전설이나 노래가 되어 한사코 한국인의 삶과 죽음 언저리를 기웃거리기도 한다.이것들은 절대적으로 신화가 될 수 없다.신화라는 이양물(異洋物)로 덮어 싸서 헐값으로 치워버리려는 서구적 태도는 그 저의가 아무래도 수상쩍어 보인다.알고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로 둔갑시키려 하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한국인은 잘못이 없는가? 중국 역사에 함몰된 중화사대주의자나 서구우월주의자 모두 ‘달빛의 역사’로 볼 때는 지배계급들이며 정사의 편에서 살다 죽고 싶은 이들이다.죽어서도 그렇게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역사 바깥에서 서성거리거나 웅크리고 있다가 잊혀져버리기도 하는 것이 달빛의 역사다.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달빛의 역사는 햇빛의 역사와 관계 있다.이것을 부정하는 것이 관제사학이다.한국 관제사학의 근원에는 중화사대주의와 친일사관이 숨어 있다.한국역사이면서도 한국사에서 추방당해야 하거나 폄하되고 무시되어온 것이 달빛의 역사다. 달빛의 역사는 이 땅에 발 딛고 하늘 이고 살아온 사람들의,다만 자연에 순응하고 노래해온 인간과 자연의 생생한 허밍 코러스다.그래서 아직 따뜻한 체온과 숨결이 남아 있다.눈물의 고뇌와 웃음의 향기가 살아 있다. 일년 동안 만나게 될 주제는 모두 90여 개이다.그중 몇 개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될 것이다. 맨 먼저 풀고 싶은 과제는 이른바 천불천탑의 성지로 불리는 운주사 석탑에 새겨져 있는 낯선 문양들의 의미다.어쩌면 이 문양들의 비밀이 풀려짐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지녀온 여러 생각들이 허탈과 부끄러움으로 결론지워지게 될지도 모른다. ●잠들지 못하는 편견·박해의 희생물 대원군의 편견과 오만이 빚은 천주교도의 대학살,영원을 꿈꾸는 자의 시간이 시작되는 미륵의 세계,보기 드문 인문적 감동의 명소이면서도 숨겨져 있는 역사와 문화의 남평문씨 마을,새뮤얼 무어 목사가 심어준 한국 천민들의 인권해방을 향한 기도,전쟁과 증오의 폐허에서 꽃 피운 화엄사상의 전설,한국 찻그릇의 미학을 빚은 젊은 사기장들,차별 없는 삶을 꿈꾼 스승들,조선의 사랑을 온몸으로 노래하며 떠나간 논개와 그 후예들,김시습이 일본 차문화에 끼친 불멸의 정신사,목 없는 불상들이 전하는 조선 유학생들의 이념과 시위문화,임술년 진주농민항쟁과 오늘의 한국농민들,편견과 증오의 상처를 통해서 읽는 파괴와 자기 부정의 역사인 양주 회암사지의 교훈,외로움과 절약으로 산 여성운동사의 한 증거,이도차완의 비밀과 미륵사상,초의가 침묵으로 외친 조선은 중국보다 못하지 않다는 교훈,서포 김만중의 유배지 파도소리로 다시 읽은 구운몽,남한산성에 숨겨진 종교 박해사,한국은 일본 차 문화와 중국 차 문화의 식민지 등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일궈왔으면서도 지배계층의 이념이나 편견에 매몰된 채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애절하고 그리운 옛일이면서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참회하게 하는 부끄러움들을 만나보고 싶다. 대부분 한국인 역사의식의 수면 아래서 잠행하고 있는 이 대단한 비밀 아닌 편견과 박해의 희생물들은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 잠들지 못하고 있다.더는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전쟁과 이별,기구한 삶과 죽음의 기록 혹은 그림들은 숨길 수 없는 한국인의 자화상이면서 그리운 것들로 쌓여온 역사의 원천이자 문화의 양식이다. 살아서 먼 길을 걸어 죽음 너머의 시간에 닿기 위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있다면,그 노래 듣기를 원한다면,먼저 차별의식을 극복해야 한다.성,신분,지역,소유에서 차별의식이 남아 있는 한 그대는 영원히 인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무어 목사의절규 앞에서 과연 우리는 떳떳한가? 인간의 아름다움을 본 이는 그 자리에서 천국을 볼 것이라는 그의 말이 오늘날 한국인에게 어떤 교훈으로 다가올 것인가.햇빛으로서의 지배자가 아닌 달빛에 물들 뿐인 피지배자의 낮은 삶과 고요한 죽음이 때로는 우리를 지나온 길로 뒤돌아보게 한다. ●지나온 길 되돌아 가는것도 여행 지금 한국인은 너무 바쁘다.바쁘기만 한 삶에서는 그윽한 향기를 만들기 어렵다.향기 없는 삶은 거칠고 단조롭다.자신은 물론 남에게도 역겨울 수 있고 귀찮은 존재이기 쉽다.그것은 인생을 다만 분주하게 살 뿐이다.시끄럽고 무의미하다.그래서 새로움을 느끼게 하고 나를 그 위에 싣고서 더욱 새로워져 모두에게 새로움을 주는 문화가 필요하다.그것의 절반은 내가 스쳐 지나온 길 위에 놓여 있다.잠깐만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자.지나온 길로 돌아가는 것도 여행이고 나그네 길이다.잘만 돌아가면 그것만큼 진보하기도 어렵다.그리고 새벽을 기다리자.깨어 있어야 새벽을 본다.집이 아닌 들길이나 산길에서 밤을 맞으면 달빛은 더 아름답다.집이어야만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오래도록 눈비 맞고 자란 슬픔을 만나려면 눈비 내리는 들길에 서야 옳다.슬픔을 지나야 문화가 보인다. 슬픔은 인간의 조건이니까.달빛을 쪼이고 슬픔을 캐는 여행이 될 것 같다.
  • 특별한 새해맞이 2선/선상에서 사찰에서 새해 소망 빌어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계절.어디 특별한 분위기 속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데가 없을까.이른 새벽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남보다 한발짝 먼저 해를 맞는 선상일출은 어떨까.소복소복 눈이 쌓인 산사에서 하룻밤 묵으며 차분하게 새해를 설계해도 좋을 것이다.새해맞이 선상일출 및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선상 새해맞이 ●거문도,백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중에서도 제주도와 가장 가까운 섬.31일 송년의 밤과 새해 1일 아침을 맞이하는 1박2일 선상프로그램이 진행된다.31일 오후 여수항 출발,거문도에서 유람선으로 갈아타고 거문도 등대 및 낙조 감상,거문도 숙박,백도 앞바다 선상에서 일출제 행사 참여,거문도 육로관광 등이 포함돼 있다.2인1실 기준 11만 5000원.거문도관광여행사 (061)665-4477. ●정동진 골드코스트 유람선을 타고 정동진 앞바다에서 일출을 감상한다.강릉 금진항을 출발,아름다운 어촌마을인 심곡마을,모래시계공원 등 정동진 앞바다를 유람한다.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유람선을 따라 날아드는 갈매기를 벗삼아 관람하는 일출이 감흥을 자아낸다.일출 후엔 셔틀버스를 타고 정동진역,해돋이공원 등 인근 관광명소를 둘러본다.어른 1만 5000원,어린이 1만원.(033)644-5480. ●한려수도 유람선을 타고 한려수도의 빼어난 해안경치와 함께 일출을 감상한다.새해 1일 선상 해돋이를 위해 16척의 유람선이 모두 함께 바다로 나가는 대규모 행사를 연다.일출 조망후 연륙교,상족암,코끼리바위,동백섬 등을 유람하고 돌아온다.2시간 30분 정도 소요.어른 1만 5000원,어린이 8000원.삼천포유람선(055-835-0172·3). ●울산 간절곶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뜬다는 간절곶 앞바다에 쾌속 여객선 돌핀호를 타고 나가 일출을 감상한다.현대호텔 숙박,돌핀호 해돋이 감상,떡국 조식 등을 포함해 2인 기준 15만원.현대호텔울산(052)251-2233. ●보길도 뱃길 1일 새벽 완도에서 출발해 남해바다에서 일출 감상,보길도 윤선도 유적지 답사로 일정이 짜여져 있다.선상에서 새해맞이 떡국 먹기,소원성취 풍선날리기 등도 진행된다.어른 2만원,어린이 1만5000원.소안농협(061)553-8188.◆새해맞이 템플스테이 서울 조계사,공주 마곡사,순천 송광사,양양 낙산사 등 전국 12개 사찰이 31일부터 새해 첫 날까지 템플스테이 행사 및 다채로운 새해맞이 행사를 진행한다. 마곡사는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시간으로 자정 이전엔 한해의 반성을,이후엔 새해계획을 세우는 시간과 자신 및 가족,이웃에게 보내는 자비명상시간을 갖는다. 양양 낙산사에선 저녁 예불과 함께 새해 범종 타종 체험,발우공양,탑돌이,참선,다도 체험,촛불 행사 등이 이어지며,새벽엔 의상대에서 동해 일출 관람 시간을 갖는다. 경주 골굴사에선 동해안 문무대왕릉 앞 해맞이,선무도 기공 수련 등이 포함돼 있으며,서산 부석사에선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세상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사찰별 프로그램은 표 참조).조계종 템플스테이 담당(02)732-9925,720-7060∼4. 임창용기자 sdragon@
  • 양천구 약수터 12곳중 11곳 ‘적합’

    양천구(구청장 추재엽)는 우름바위약수터 등 관내 약수터 12곳의 수질검사를 실시한 결과,11곳이 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23일 밝혔다. 적합 판정을 받은 약수터는 계남근린공원의 우름바위·다락골·신정산 약수터와 용왕산의 용왕약수터,지양산의 매봉·항아리·지양산·백년·휘문·연희·석산정 약수터 등이다.대장균과 분원성대장균 등이 검출된 용왕산의 달거리약수터는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달거리약수터의 안내판엔 부적합 판정 내역이 공개됐다. 양천구는 보건소를 통해 석달에 한 차례씩 약수터의 수질검사를 실시,미생물 등 15개 항목을 검사한 뒤 수질검사서를 약수터 안내판에 붙여 공개하고 있다.무더운 날씨로 인해 수질오염의 가능성이 높은 7·8·9월에도 매달 한 차례씩 실시해 1년에 수질검사 횟수가 모두 7회에 이른다. 양천구 오현섭 녹지팀장은 “약수터 이용시엔 각 약수터 안내판에 부착된 수질검사 내역을 참고,부적합 판정을 받은 약수터의 물은 반드시 끓여 마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황장석기자 surono@
  • [나의 건강보감]‘15년 밥퍼사역’ 최일도 목사

    아직도 ‘밥’이 위안이고,희망이고,또 눈물인 세상,그 세상의 낮은 곳 한 구석에 그가 있다.사람들은 그를 ‘밥퍼 목사’라고 불렀다.바쁜 김에 “어이,밥퍼”하거나 아예 ‘밥’이라고도 부른다.서울 청량리 속칭 ‘588’에서 밥퍼의 기적을 일군 최일도(48) 목사.똑 불거진 이마,거무튀튀 그을린 얼굴 어디에도 고상한 성직자의 모습은 없다.그러나 그에게는 이 땅의 목회자들이 잃어버린 성결(聖潔)이 있다.낮아서 눅눅한 곳,그 시린 어둠을 한사코 찾아드는 ‘인간적인,너무나 인간적인’ 그의 연민. ●많이 먹지 마세요… 탐식은 죄악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경기도 가평의 다일영성생활수련원에서 수련 중인 그를 만났으나 건강은 어떠냐는 인사 이상의 물음을 던지기가 왠지 면구스러웠다.지난 88년 이래 15년 동안 그는 청량리 매음굴에서 부랑자,행려자,무의탁 노인들의 ‘밥’으로 살아왔으며,지금도 주리고 외로운 이들의 ‘밥’이 아닌가.“너무 일이 많아 그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는 그는 자신의 건강을 살필 짬이 없이 사는 사람이다. 굳이 건강을 챙긴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짬짬이 맨손체조를 하고 가끔 등산을 하는 게 전부이다.“건강하게 살아야지.그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어.”하는 마음으로 본격적으로 운동을 한 적은 없다.그는 하루 두 끼만 먹는다.다른 사람보다 소식이다.그가 적게 먹는 이유는 주변에 굶주린 사람이 너무 많아 세 끼 다 찾아 먹기 미안해서다.결과적으로는 그게 그의 건강에 좋은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 “곧 성탄절이 다가옵니다.너무 많이 먹지 마십시오.북한 동포와 베트남,캄보디아,미얀마,방글라데시의 어린이들이 굶주림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이런 세상에 탐식은 죄악입니다.성탄절이 나눔의 계기가 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의 ‘말씀’은 조용하지만 단호했다.“연간 10조원이 음식쓰레기로 버려지는 나라,그런데도 여전히 음식으로 건강을 지켜보려는 탐욕이 넘쳐나는 세태가 슬픕니다.조금 아깝더라도 주저없이 나누십시오.아까운 것을 나누는 것이 바로 베풂입니다.”그러면서 그는 배부르게 먹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분수와 절제가 모든 이들의몸에 배었으면 한다고 했다. “지난해 세브란스병원 인요한 박사의 권고로 지리산엘 두번이나 다녀왔어요.그 분이 지리산과는 인연이 깊지 않습니까.사실은 그 분과 천사병원 최영아 의사께서 ‘국민목사를 지켜야 한다.’며 걸핏하면 잡아다가 링거도 꽂고 그래요.그렇게 지리산과 만났는데,그게 좋아서 내년엔 네번쯤 오를 계획입니다.”사역에 지쳤을 법도 한 그가 산길을 걸으며 더러는 영성의 명상에 젖거나 후들거리는 걸음에서 건강한 삶의 가치를 배운다는 얘기가 반가웠다.인 박사와의 인연은 그가 펴낸 밀리언셀러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의 인세 1억 5000만원을 북한동포돕기 성금으로 기탁하면서 시작됐다. “가끔 수련원 뒤 유명산도 오릅니다.짬짬이 맨손체조도 하고요.그러나 제게 진정 필요한 것은 몸보다 마음의 힘입니다.”그는 매달 한차례씩 이곳 수련원에서 갖는 4박5일의 영성 수련을 “피정으로 안식을 찾는 기회”라고 했다.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어찌 시험이 없을까.청량리에서 밥퍼 사역을 시작한지 6년째 되는 해.그는 고통스러운시련과 맞닥뜨려야 했다.큰 교회의 목회자가 되기를 바랐던 어머니가 허구한 날을 거렁뱅이,노숙자,무의탁자들에 에워싸여 지내는 모습에 낙담해 모자의 정을 끊자며 등을 돌린 데다 큰 의지처였던 아내마저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며 헤어지자고 나선 것.“그들의 고통을 저는 압니다.그러나 제가 밥주걱을 들지 않으면 200명의 밥식구들이 고스란히 굶는데 어쩝니까? 그날 일 마치고 수유리의 지하 셋집으로 돌아오며 하염없이 울었어요.” ●수련원뒤 유명산 오르고 짬짬이 맨손체조 이런 일도 있었다.한 5년쯤 밥퍼 사역을 해오던 어느 날,옥상 가건물을 예배당으로 쓰는 4층 건물 곳곳에 똥오줌을 갈겨대던 부랑자들이 서로 텃세한답시고 예배당 안에서 십자가까지 부러뜨리는 패싸움을 벌였다.그는 너무 참담하고 힘들어 ‘이제 그만두자.’고 다짐하며 정처없이 길을 떠나 다다른 곳이 용문산 계곡이었다.“계곡 너럭바위에 누워 사흘 밤낮을 울었어요.그러다 문득 밥냄새를 맡았는데,살펴보니 약초캐는 노인네가 홀로 밥을 짓고 계세요.너무 허기지고 지쳐 생각없이 다가가 밥 좀 달라고 했더니 이 분이 대뜸 호통을 치시는 거예요.‘이놈아,다 늙은 나도 이렇게 밥을 지어먹는데 젊은 놈 입에서 그렇게 쉽게 밥달라는 소리가 나와.’너무 부끄러워 휘청거리며 발길을 돌리자 그 분이 다시 절 불러 밥을 덜어주며 이래요.‘이 밥 먹고 딴데 가지 말고 서울 청량리로 가.거기 가면 최일도란 사람이 너같은 놈들한테 밥 거저 준대.’그 말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그 분은 하나님이 제게 보내신 천사였어요.”그 후 다시 청량리를 찾아 10년이 넘도록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그 일에 신명을 바치고 있다. ●하루 세끼 먹으면 죄짓는 기분 듭니다 그때부터 그는 끼니를 하루 두 끼로 줄였다.‘굶주린 사람들 두고 어찌 배가 가득 차도록 음식을 넘길 수 있겠는가.’하는 아픈 자성 때문이었다.“‘함석헌 선생께서는 1일1식을 하셨는데,그렇겐 못해도 1일2식은 해보자.’이렇게 시작했는데,이젠 하루 세 끼를 먹으면 죄짓는 기분입니다.” 기독(基督)이 골고다를 오르듯 그렇게 외롭고 먼 길을 왔지만 그는 지금 외롭지 않다.이 땅에 남은 사랑과 희망의 편린이 낱낱이 모여 빛나는 밥알의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많은 분들이 저의 사역에 힘을 보태고 계신데,그 중에서도 최낙정 전 해양수산부장관 얘기를 하고 싶어요.3년쯤 전에 그 분이 우리 교회를 찾아 오셨어요.다른 삶을 살고 싶으시다면서요.그래서 물었죠.‘평생 누군가를 위해 한번이라도 밥상을 차려본 적이 있느냐고요.’그랬더니 그 분께서 절 붙잡고 엉엉 우시는 거예요.28년 동안 공직에 계셨던 분이 지금은 청량리에서 밥퍼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그는 바쁘다.일을 하고자 해서 더욱 바쁘다.다일교회의 담임목사인가 하면 우리나라 개신교 최초의 무료진료소인 청량리 천사병원을 운영하는 다일복지재단 이사장에 밥퍼나눔운동본부의 다일공동체 대표이기도 하다.자신의 몸을 헐어 바닥 모를 나눔을 실천하는 일로 묵묵히 성결의 탑을 쌓는 그는 오늘도 살풍경한 지상의 빈 그릇에 더운 밥을 퍼담으며 이렇게 기도할 것이다.“이 땅에 밥으로 오셔서/우리의 밥이 되어 우리를 살리신/예수 그리스도를본받아/우리도 이 밥 먹고/밥이 되어/다양성 안에서/일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심재억기자 jeshim@ ■최일도목사의 소식 건강법 “나를 위해 뭘 더 먹을까를 고민하지 말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한번만이라도 밥상을 차려보라.”는 최일도 목사의 말은 청량리에서의 밥퍼 사역과 함께 시작됐다.다르다면 여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소식을 하지만 그는 ‘포만’에 대한 혐오와 금욕적 신념에서 소식을 시작했다는 것. 키 175㎝,몸무게 72㎏의 체구에 술과 담배를 모르고 살아온 그는 오랫동안 한 끼를 밥 한 공기로 때워 어쩌다 밥을 조금이라도 더 먹을라 치면 주변에서 더 놀라 무안해할 정도다.보통 아침은 오전 11시를 전후해서 ‘아점’삼아 들며,저녁은 오후 8∼9시쯤 든다.1일2식이라서 식사간 시간을 최대한 벌리되 대신 짬짬이 녹차와 생강차,계피차 등 전통차를 마셔 청정한 심신을 유지한다. 그의 섭생법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된밥으로도 부족할 것 같은 하루 두번의 끼니를 누룽지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는 것.“누룽지와 숭늉은 끼니마다먹습니다.담백하고 고소해 제 입맛에도 맞고 또 그렇게 담백하게 먹고 나면 속이 편해서 좋습니다.” 말이 누룽지이지 알고 보면 식은 밥의 재활용이다.“식솔이 늘어나면서 더러 밥이 남을 때가 있는데,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잖아요.그걸로 누룽지를 만들어 먹곤 합니다.확실히 운동량은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그 틈새를 포식하지 않는 것으로 메우는 셈이지요.” 그는 “그러나 어떤 건강법도 사랑을 넘어설 수는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는 구심점이 필요합니다.함께 울고 웃으며,서로 나누고 섬기는 정신이야말로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더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나눠야 하며,못 가진 사람은 이걸 가슴으로 받아야 합니다.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모든 집단과 개인을 건강하게 하는 지고지선의 건강법 아니겠습니까?” 심재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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