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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도시로 거듭나는 안양시

    예술도시로 거듭나는 안양시

    오래전부터 수도권에 살았다면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안양유원지에 대한 추억을 하나쯤은 갖고 있을 법도 하다. 딱히 갈 곳이 없었던 시절. 안양유원지는 온 가족이 함께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여름 피서지였다. 서울서 멀지 않은 까닭에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를 끌었다. 유원지 주변에는 한때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렸던 포도밭이 즐비해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급격한 도시화로 그 빛을 잃었으나 최근 안양시의 야심작인 ‘제1회 공공예술프로젝트’가 열리면서 놀라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10만여평의 유원지 곳곳이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들로 채워지면서 한낱 휴양지에 불과했던 곳이 거대한 예술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세계적인 예술 거장들의 작품이 계곡 곳곳에 들어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나게 됐다. 안양유원지에 이어 도시 전체를 예술의 도시로 만드는 ‘아트시티’사업도 추진되고 있어 안양시의 변신이 주목을 받고 있다. “안양에 예술의 향기가 넘쳐나요.”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안양유원지가 거대한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를 흐르는 삼성천 계곡을 따라 국내·외의 수준급 건축가·조각가들의 작품들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평범했던 유원지가 국내 최초의 ‘공공예술공원’으로 변신했다. 한때 수도권 최고의 주말 휴양지로 명성이 높았던 안양유원지는 1980년 중반부터 급격한 도시화로 빛을 잃었지만 다시 그 명성을 되찾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도 크게 늘어났다. ●국내 최초 공공예술공원 먼 추억의 장소로, 단순히 쉬어가는 휴양지로 남을 뻔한 곳에 예술향기가 배어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5일 개막된 ‘제1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를 준비하면서부터이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건축·토목공사 방식으로 시공하던 공공주차장, 전시관, 전망대 등의 시설물을 예술전문가들이 참여해 기능성과 예술성을 함께 추구했다. 선진형 예술패턴이기도 하다. 안양시는 이 프로젝트의 1차연도 사업 대상을 이곳으로 정하고 10만여평의 안양유원지 전역을 예술공원화하고 있다. 기념 행사는 오는 15일까지.40일간 행사가 펼쳐진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미국, 프랑스 등 21개국에서 39명, 국내에서 23명 등 모두 62명의 작가가 참여해 유원지 일대에 건축 조각 그림, 조경, 디자인 등 97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중 61점의 작품과 건축물은 영구 설치돼 문화예술에 대한 도시민들의 갈증을 풀어주게된다. ‘역동적인 균형’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공공예술프로젝트’는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고 거기에 예술까지 결합시킨 천연 미술관을 연상시킨다. 유원지 초입 주차장 한가운데 설치된 파수막처럼 솟은 철탑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1평 면적에 15m 높이로 만든 건축물로 2002년 프랑스 문화원이 선정한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 디디에르 피우자 파우스티노(37)의 작품이다. 한국의 건축단위가 ‘평’단위인 것을 착안해 공간의 경제적 사용과 실제감을 엿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앞으로 정보센터로 활용된다. ●세계적 거장 작품 한 눈에 20세기 현대주의 건축의 마지막 거장으로 꼽히는 포르투갈 출신의 알바로 시자(72)의 설계작인 ‘광장 전시관’도 관심의 대상이다. 알바로 시자가 아시아에 세우는 첫 건축물로 막바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어느 각도에서도 똑같은 형태로 읽혀지는 기하학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네덜란드 건축가그룹 멤알디비가 유원지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전망대(높이 28.4m)와 미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비토 아콘치(65)가 구상한 수목원 정문앞 주차장 ‘나무위의 선형 건물’ 등도 앞으로 안양의 명물이 될 전망이다. 다리 위에 길죽한 금속판을 덧대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바꾼 ‘오징어정거장’(엘라스티코)이나 70년대 장마 때 산에서 개울로 굴러떨어진 커다란 낙석 위에 자리를 잡은 분수 ‘물고기의 눈물이 강으로 떨어지다’(호노레도), 산 속에 거울기둥을 세워 매트릭스 같은 공간을 연출한 ‘거울 미로’ 등은 어린이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이밖에 독일 출신 허만 아이어 노만슈타트의 ‘리볼버’, 중국 작가 왕두의 ‘신기루’, 태국 작가 나빈 라완차이쿨의 ‘안양로맨스’ 등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주변 볼거리 풍성 안양 유원지 주변은 문화재 보물창고나 다름 없다. 국내 유일의 마애종(磨崖鐘·거대한 바위에 종을 묘사한 것)으로 알려진 석수동 마애종을 비롯한 13점의 문화재들이 널려 있다. 유원지 주차장과 안양 노인요양원 사이 바위에 새겨진 마애종(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은 가로 세로 3m 크기로 스님이 범종을 치는 모습을 그렸으다.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곳에서 200m 떨어진 곳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유명 사찰로 알려진 증초사지 당간지주(국보 제4호)가 자리하고 있다. 증초사지 3층석탑과 삼막사 마애삼존불·삼층석탑·사적비, 안양사 귀부, 석수동 석실분, 만안교 등 고려와 조선시대 문화재들도 잘 보존돼 있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최근 38년만에 일반인에 개방된 서울대 관악수목원도 빼놓을 수 없다. 유원지 끝자락에 조성된 수목원은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비롯해 멸종위기에 놓인 희귀식물 등 교육적 가치가 높은 식물들을 보존하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쉼터’로 학생들에게는 ‘자연관찰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안양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신중대 안양시장의 구상 신중대 안양시장의 화두는 ‘아트시티(예술도시)프로젝트’이다. 도시화 과정에서 파괴된 자연경관과 도시미관을 가꿔 아름답고 품격있는 도시를 만들자는 게 프로젝트의 주요 골자이다. 요즘 안양유원지에서 열리고 있는 ‘제1회 공공예술프로젝트’도 ‘아트시티’ 사업 중 한 부분이다. 지난 2002년 2월, 인구 4만의 아름다운 도시인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를 방문했을 때 ‘아트시티’를 착안했다는 신 시장은 귀국하자마자 ‘아트시티 건축 자문단’을 구성했다. “교수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건축자문단은 시에 접수된 모든 건축물에 대해 설계자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도시 미관을 고려하다 보니 민원인들이 반발이 적지 않았습니다.” 자문단의 지적대로 설계를 바꿀 경우 허가 지연과 비용증가에 따른 개인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때까지 계속 추진할 방침이다. “1차 공공예술프로젝트사업이 끝나면 안양유원지의 명칭을 ‘안양예술공원’으로 바꾸고 내년에는 시가지에 대한 공공프로젝트사업이 이뤄질 것입니다.” 도심의 흉물로 인식되어온 환기구, 가판대, 교통신호제어기, 지상개폐기 등 각종 시설물을 예술작품화하는 2단계 공공예술프로젝트를 추진하고,3단계로 그 대상을 도심공원이나 광장으로 확대해 도시 전체를 아트시티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공업도시, 회색도시라는 이미지가 아직도 안양에 깊게 남아있다.”고 지적하는 신 시장은 “3차 공공예술프로젝트 사업이 마무리되면 도시 이미지는 확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시장은 “이번에 작품을 낸 네덜란드·미국·프랑스·핀란드 등 국가에서는 작품 설치 비용과 재료 등 일부를 지원했는데, 액수는 많지 않더라도 문화 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부러워했다. 그는 “앞으로 유원지 안에 새로 건립되는 민간 건축물에 대해서도 주민·건축가 등이 함께 참여해 미를 겸비한 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며 “향후 안양예술공원이 국내는 물론 세계적 명소로 부각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안양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일곱빛깔 자유, 하와이!

    일곱빛깔 자유,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과 와이키키 해변이 있는 오하우 섬만을 하와이로 생각한다면 그건 하와이에 대한 커다란 실례다. 쪽빛 바다에서 펼쳐지는 달콤한 허니문이 하와이를 상징하기는 하지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아직도 유황냄새를 풍기며 용암이 꿈틀거리는 거대한 활화산이 있고, 하얀 눈이 덮인 산위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운해를 뚫고 4000m가 넘는 산위에 올라가 하늘 가까이에서 밤하늘의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세계 3대 천체관측소가 있으며, 겨울철 출산을 위해 찾아온 고래가 뛰노는 모습을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하와이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면 135개의 하와이 군도 중 빅아일랜드로 불리는 하와이섬과 마우이 섬을 추천한다. 빅아일랜드는 하와이의 모든 섬들을 합친 크기의 2배, 제주도의 7배에 이르는 거대한 섬이다.‘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지난달 29일 비공개 결혼식을 올린 장소로도 관심을 끌고 있다. 거대한 자연이 살아 숨쉬는 ‘에코투어(친환경적 관광)’의 명소 하와이로 떠나보자. 글·사진 하와이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시간을 거슬러 열대속으로 마치 다른 세상에 떨어진 느낌이다. 하와이섬(빅아일랜드)의 코나(Kona) 국제공항에 내리자 서울에서 입고 온 긴팔 셔츠가 버겁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오후에서 다시 오전으로, 계절과 시간을 거꾸로 거슬렀다. 한국보다 시차가 무려 19시간이나 늦어 오후 8시 출발했지만 코나 도착시간은 같은날 낮 12시였다. 거의 하루라는 시간을 되돌린 셈이다. 열대 리조트를 연상케하는 아담한 공항에 내리자 ‘레이’(Lei)라고 불리는 울긋불긋한 꽃목걸이가 도착을 축하한다. 하와이 주화(州花)인 하이비스커스(붉은색 무궁화 계통의 꽃)로 만든 것이다. 공항을 나와 먼저 숙소인 ‘페어몬트 오키드 라우나 라니’ 호텔로 향했다. 코알라 코스트를 따라 가는 길은 마치 제주도를 뻥튀겨 놓은 듯한 모습이다. 검은 화산 용암이 식어 굳어진 검은 현무암 위로 도로가 나 있고, 해발 4205m의 마우나케아 산 인근에는 수많은 오름이 솟아 있다. 도로 주변의 현무암 바위에 흰돌로 예쁘게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은 모습들이 이채롭다. 페리도트(감람석)가 박힌 돌들이 길가에 널려 있다. 하와이에 도착하면 먼저 ‘알로하’(Aloha·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 손인사를 배우는 것이 우선. 주먹을 쥐고 오른손 엄지와 새끼 손가락을 펴면 그것이 ‘감사합니다’라는 수화다. 운전 중 길을 양보받거나 했을 때 요긴하게 쓰인다. 현지에서는 하와이 고유 언어가 널리 쓰이는데 모음 5개, 자음이 7개. 모음으로 끝나는 단어의 대부분은 하와이어라고 보면 된다. 언뜻 보기에는 배우기 쉬울 것처럼 보이지만 쉽지 않다.‘알로하’가 ‘안녕하세요’라는 뜻은 물론 ‘사랑한다’,‘미안하다’로 쓰이는 등 한 단어가 여러가지 뜻을 품고 있고, 물고기 이름 중 읽기도 쉽지 않은 ‘흐므흐므누쿠누쿠아쿠아’도 있다. # 구름을 뚫고 별을 쏘다 빅아일랜드의 첫 관광은 마우나케아 산의 천체 관측투어. 일몰과 별을 보기 위해 오후 3시30분 호텔을 나섰다. 마우나 케아까지는 동서관광도로인 새들(Saddle)로드를 따라 지그재그형 도로를 거슬러 2시간가량 산을 올라야 한다. 마우나 케아는 흰산이라는 의미로 12월부터 5월까지 산 정상은 흰 눈으로 뒤덮이고 이곳에서 스키를 즐긴다고 한다. 해발 2700m 지점에 이르자 차가 산 중턱에 걸린 구름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압차로 귀가 멍하다. 구름을 통과하자 활동을 멈춘 수많은 크고 작은 분화구와 드넓은 대지를 덮고 있는 풍성한 목초 등 발아래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과 진홍빛으로 물든 구름이 환상적이다. 해발 3000m 지점에 있는 오니주카(Onizuka) 센터는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리저 호 폭발 때 희생된 코나 출신의 우주 비행사 이름을 딴 안내소다. 일반 차량은 여기까지만 가능하며 정상까지는 4륜 구동차가 아니면 걸어갈 수밖에 없다. 정상에 있는 ‘WM켁 천문 관측소´는 우주 정보를 수집하는 세계 3대 천체 관측지. 해발도 높지만 주위에 불빛이 없어 별빛을 확실하게 관측할 수 있다. 산 정상은 겨울에 스키와 스노보드를 탈 수 있다.4륜 구동차가 리프트 대용으로 사용된다. 이 때문에 겨울에는 스키와 수영을 함께 즐길 수 있어 매력적이다. 산에 오를 때는 해발이 높아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두꺼운 점퍼와 장갑 등을 지참해야 추위에 떨지 않는다. # 산책길에 만난 바다거북 아침 산책길에 바다거북을 만났다. 페어몬트 오키드 라우나 라니 호텔(fairmont.com/orchid) 앞 해변을 산책하던 중 바다거북이 검은 자갈 해변을 엉금엉금 기어 올랐다. 바다속에 들어가면 더 많은 거북을 볼 수 있다. 호텔에서 스노클링 장비를 대여해 바다속으로 들어갔다. 하와이 원주민이자 와이키키 비치보이 출신인 엉클 칼라니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유리알처럼 투명한 바다속에 뛰어들었다. 해변에서 불과 10m쯤 헤엄쳤을까. 눈 앞에 바다거북과 각종 열대어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다. 호텔에는 편의시설도 많다. 하와이 특유의 개성이 가득한 호텔 외관과 벽이 없는 야외 스파가 인상적인 곳으로 2개의 고급 호텔,2개의 최고급 골프장과 백사장을 갖췄다. 골프장은 국제대회가 개최될 정도의 최고 시설로 사우스 코스의 15번 홀은 바다를 가로질러 티샷을 할 수 있다. 객실료는 가든뷰와 오션뷰에 따라 299∼2699달러까지이며, 골프장 이용료는 195달러지만 투숙객은 130달러다. # 활화산 속을 걷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침일찍 호텔을 나와 힐로(Hilo) 지역에 있는 볼케이노스(화산)국립공원에 오르자 검은땅이 갈라진 틈에서 하얀 수증기와 함께 유황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화산 국립공원의 용암지대를 차로 달려 화산섬의 생성과정을 목격하는 것은 빅아일랜드 관광의 최대 압권. 킬레우에아 화산은 1983년에도 폭발을 일으킨 적이 있으며 지난 170년 동안 30번이나 용암을 분출한 기록이 있는 활화산이다. 마치 곧 폭발을 일으킬 것처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지름 4.5㎞, 깊이 120m의 거대한 분화구와 검은 용암이 식어 이뤄진 화산지대 등을 보면 감탄이 쏟아진다. 지구의 생명력과 함께 자연의 신비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원주민들이 숭배하는 화산의 여신 ‘펠레’가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할레마우마우(Halemaumau)분화구는 세계 최대이자 가장 활발한 화산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용암이 흘러 나온다고 한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무조건 차량 1대당 10달러로 체인 오브 크레이터스(Chain of Craters)로드를 따라 분화구를 돌아보는 멋진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먼저 화산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킬라우에아 비지터 센터를 들러 그 앞에 펼쳐진 거대한 분화구를 감상한 뒤 용암터널 등을 돌아보면 좋다. 화산에서 40㎞ 남쪽에 있는 푸날루(Punaluu) 흑사해안은 화산 폭발로 흘러나온 용암이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한다. 이곳에 오면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곳이 1847년 존 파커에 의해 시작된 파커목장. 면적이 무려 2억 7500만평(여의도의 270배 정도)에 이르는 미국 최대의 개인 소유 목장으로 7만마리의 소들이 방목되고 있다. 특히 코나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커피가 생산되는 유명한 코나 커피의 산지다.198g짜리 커피 한봉에 10∼20달러 정도. # 무지개가 아름다운 마우이섬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가 마우이섬 하늘에 걸렸다. 카훌루이 공항에 내려 라하이나 해변을 따라 달리던 중 저멀리 이아오 계곡에 무지개가 반겼다. 호놀룰루 공항이나 코나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마우이섬은 해양스포츠를 즐기며 느긋하게 휴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하와이 국내선은 소형 프로펠러 항공기가 운항하며, 자리는 자유석이다. 마우이섬은 하와이에서 두번째로 큰 섬으로 섬 전체가 마치 사람의 상반신과 비슷한 형상을 지녀 ‘하와이안 슈퍼맨’으로 불린다. 라하이나 앞바다는 알래스카 등지에 있던 고래가 새끼를 낳기 위해 찾는 곳으로 전세계에서 고래를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지역이다. 올로발루 지역은 파도가 적당해서 초보자들이 서핑을 즐기기 좋아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어디에서나 쉽게 무지개를 볼 수 있다. 그래서 하와이의 별칭이 ‘레인보우 스테이트’다. 자동차 번호판도 무지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카아나팔리 해변은 아름다운 석양을 즐기는 포인트. 해안선을 따라 태양이 구름과 바다와 어우러져 붉게 타들어가는 일몰은 잊지 못할 장관을 연출한다. 그래서 해질녘이면 연인들이 석양을 감상하거나 허니무너들이 웨딩촬영을 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해변에 있는 고급하얏트 리젠시 마우이 리조트(maui.hyatt.com)는 멋진 해변의 일몰을 감상하며 하와이의 밤을 보낼 수 있는 곳. 특히 저녁마다 폴리네시안 훌라쇼와 댄스쇼가 펼쳐지는 루아우(성찬) 디너쇼는 최고의 인기 코스다. 이곳은 세계 최대 휴화산인 할레아칼라가 대표적인 관광지. 높이 3055m, 분화구의 직경이 33.8㎞에 이른다. 풀 한포기 없는 적회색의 광대한 분화구 내부는 지구가 아닌 다른 혹성에 온 듯 신비롭다. 이곳은 나사 우주비행사의 훈련지이자 각종 영화가 촬영됐다. 아침일찍 일출을 보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재수가 좋은 날에는 희귀종이자 하와이 주새인 ‘네네새’를 볼 수도 있다.‘네네’하며 운다고 해서 네네새로 불린다. 대부분 사람들은 일출을 본 뒤 자전거를 타고 산을 내려가는 하이킹을 즐긴다. # 하와이에서 아쉽게 못해본 것들 하와이에서 꼭 해보고 싶었지만 못해 본 것을 꼽는다면 로프를 타고 낭떠러지 사이를 건너는 할레아칼라 스카이라인 투어, 헬기를 타고 거대한 분화구와 화산을 둘러보는 헬기투어, 푸른 바다속에 들어가 열대어와 돌고래를 보는 잠수함 투어, 석양을 바라보며 즐기는 선셋 칵테일 크루즈, 할레아칼라 ATV(산악 오토바이), 윈드서핑, 패러세일링, 승마, 산악자전거 등이다. # 미리 알고 떠나세요 미국 대사관이 하와이로 허니문을 떠나는 신혼부부들에 대한 비자발급을 간소화했다. 한진관광, 현대드림투어, 롯데관광 등 6개 지정 여행사를 통하면 30일 이내에 인터뷰를 통해 10년 기한의 여행 비자가 발급된다. 하와이는 해양성 기후로 연평균 기온이 24도로 연중 어느때라도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대기중 습기가 적어 쾌적하다. 날짜 변경선을 통과하기 때문에 시차는 하와이가 19시간 늦지만 한국시간을 5시간 빠르게 한 전날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한국이 오전 9시이면, 하와이는 전날 오후 2시다. 전압은 110볼트이며, 하와이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 경우 ‘011+82+0을 뺀 지역번호+전화번호’를 누르면 된다. 인천공항에서 호놀룰루까지 대한항공이 주 4회 직항편을 운항한다. 매주 수, 목, 토, 일요일 오후 8시에 출발, 같은날 오전 8시30분에 도착한다. 하와이 전문 블루하와이 여행사(www.bluehawaii.co.kr·02-319-0022)는 빅아일랜드와 오하우, 오하우와 마우이섬을 돌아보는 4박 6일 상품을 262만∼299만원에 판매한다. 하와이관광청 서울사무소 (02)777-0033.
  • 관광공사가 추천하는 12월 가볼만한 곳 4선

    겨울은 겨울만의 독특한 맛과 멋을 뽐낸다. 겨울 바다의 낭만이 있고, 꽁꽁 언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아름다운 설경을 만날 수 있다. 겨울철 별미인 살이 통통 오른 생굴의 맛도 느낄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12월의 가볼 만한 곳’으로 경기도 화성과 강원도 춘천, 충청남도 보령, 북제주군 등 4곳을 선정했다. ●굴따기 즐기고, 낙조 감상은 덤(경기 화성) 경기 화성시는 바닷가에 제부도와 궁평항, 시화호라는 명소를 두고 있으며, 인근에 용주사와 융·건릉이라는 문화유적지, 화성시청 인근에는 남양 성모 성지와 홍난파선생 생가 등이 자리잡고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나 경부고속도로, 과천∼봉담간 도시고속화도로 등을 이용하면 접근하기도 어렵지 않다. 겨울바다를 사랑하는 여행객들이라면 썰물 때마다 바닷길이 열리는 제부도를 찾아가 매바위, 해수욕장, 선착장 등을 산책하거나 굴, 바지락조개 등을 캐보고 궁평항으로 이동, 저녁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를 감상한 뒤 간이횟집에서 싱싱한 활어회나 조개구이 등의 별미를 즐겨 보면 좋다. 레포츠 체험에 관심이 많다면 어섬비행장을 찾아가서 초경량항공기에 몸을 싣고 시화호 상공을 날아보는 것도 좋다. 화성시청 문화홍보과 (031) 369-1505. ●물안개 속에 녹아든 추억과 낭만을 찾아서(강원 춘천) 주말을 맞아 기분전환과 함께 산, 바람, 물의 자연과 우리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기 위한 곳을 찾는다면 춘천 외곽에 위치한 청평사만한 곳이 없다. 청평사는 경춘 국도를 통한 육로와, 소양호에 이어지는 수로로 접근할 수 있다. 특히 수로를 통해 접근할 경우 일출 무렵 소양호에 펼쳐지는 장대한 물안개와 낙조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청평사는 고려시대 명망 높은 학자였던 이자현이 조성하였다는 문수원 정원 유적과 함께 조선시대 불교 진흥의 목적으로 중창된 청평사를 둘러볼 수 있다. 소양호와 청평사 일대를 둘러보고 난 뒤 소양댐 주변에서 춘천의 별미인 막국수를 즐기고, 경춘가도를 따라 춘천시내로 들어와 인형극장과 애니메이션 박물관, 그리고 최근 설치된 소양강처녀 동상을 보고 온다면 추억에 남는 겨울철 주말 나들이가 될 수 있다. 춘천시청 시설관리공단 (033)250-3891. ●겨울바다와 만나는 생굴의 유혹(충남 보령) 겨울철의 대표적인 별미인 굴은 특히 충남 보령의 천북면 장은리의 ‘굴단지’가 유명하다. 영양 만점의 자연산 굴구이를 초장에 찍어먹고 여기에 굴국수를 곁들여 보자. 인근 오천항은 대표적인 키조개 산지로서 부드럽고 쫄깃한 양념구이, 키조개회, 간재미회무침이 유명하다. 해안을 따라 홍성군의 광천 토굴 새우젓을 맛보고 온가족이 모여 점토를 만들어보고 황토방에서 차 한잔을 즐겨 보자. 아이들이 흙과 더불어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쳐볼 수 있을 것이다. 남당항 인근은 해산물도 유명하지만 철새도래지 천수만이 가까이에 있어 서해안의 낙조와 철새의 군무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보령시청 관광과 (041)930-3542. ●마을을 지키는 당숲(북제주군) 제주도의 진정한 멋은 바로 때묻지 않은 생태기행에 있다. 바다가 만들어낸 해안 트레킹도 좋고 밥그릇을 엎어놓은 것 같은 오름 산책 역시 감동적이다. 인공미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납읍 난대림에 발을 들여놓으면 하늘 한 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이 우거져 가족 산책코스로 그만이다. 예로부터 마을사람들이 숲을 가꾸어 왔고 숲을 경원시 여겨 마을 제사를 지냈고 시문을 나누었던 장소였다. 억새를 헤치고 새별 오름 정상에 오르면 수많은 오름과 한라산, 산방산 그리고 시원스러운 바다까지 한 눈에 펼쳐져 제주 서쪽에 자리잡은 오름 중에서 가장 호방한 눈 맛을 자랑한다. 제주에서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만큼 매력적인 코스는 없다. 하귀∼애월간 해안도로는 아기자기한 카페가 즐비하여 연인들에게 인기가 높고 고산∼일과리 해안도로는 한적한 겨울해변을 만끽할 수 있다. 북제주군 관광교통과 (064)741-0544.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한국에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치적 예언이 있었다. 그것은 주제에 따라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풍수설에 입각해 새 왕조가 일어난다는 내용이 있었는가 하면, 미륵불이 지상에 내려와 이상세계가 열린다는 예언도 있었다.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서로 교대할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다종다양한 예언이 역사상 한꺼번에 존재한 적은 오히려 드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씩 나타나기도 하였고, 서로 다른 종류의 예언이 혼합되기도 했다. 역사상 존재한 한국의 정치적 예언서는 실개천들에 비유된다.‘정감록’은 그 냇물들이 한데 모여들어 이뤄낸 호수라고 볼 수 있다.18세기 전반, 조선 영조 때 역사의 무대 위로 처음으로 등장한 ‘정감록’은 지난 200∼300년 동안 더욱 내용이 풍부해졌다. 이제 ‘정감록’은 민간에 유행하는 예언서를 모두 일컫는 일반명사가 되어 있다. ‘정감록’의 핵심은 정감과 이심 및 이연 등 3인의 대화다. 이를 ‘감결’이라고도 하는데 이본이 많다. 길이가 가장 짧은 한글 본은 약 2430자, 가장 긴 한문본은 6030여자나 된다.‘정감록’에는 ‘감결’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예언서가 속해 있다.‘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화악노정기(華岳路程記)’,‘구궁변수법(九宮變數法)’,‘동국역대본궁음양결(東國歷代本宮陰陽訣)’,‘무학비결(無學秘訣)’,‘도선비결(道詵秘訣)’,‘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징비기(徵秘記)’,‘토정가장비결(土亭家藏秘訣)’,‘경주이선생가장결(慶州李先生家藏訣)’,‘삼도봉시(三道峰詩)’,‘옥룡자기(玉龍子記)’ 등이 그것이다. ‘정감록’이 예언서의 집성이 되는 이유는 말 그대로 한국 역사상 등장했던 모든 예언서가 그 이름 아래 묶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진짜 이유는 여러 예언서에서 탐지되는 중요한 특징이 모두 ‘정감록’에 살아있어서다. ●삼국통일 무렵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돼 삼국시대 초기에는 예언서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 아직 하나도 없었다. 문자로 기록된 예언서가 출현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쳤다. 처음에는 성스러운 왕의 탄생을 알리는 신기한 전설이 있었을 따름이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탄생설화를 비롯해 신라의 탈해왕과 김알지, 가야의 김수로왕의 등극을 알리는 설화가 나온다. 이처럼 위인의 탄생을 예감하게 하는 자연현상이나 태몽 등은 고대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에는 물론이고, 서양 고대의 문헌에도 보인다. 이웃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대 한국인들은 이상한 동물의 출현과 예외적인 천문현상 및 자연계의 이변을 정치적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삼국사기’ 등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수백 군데나 있다. 고대 한국에는 국가의 위기를 미리 알려주는 자명고 같은 물건이 있었다고도 한다. 신라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란 신기한 피리도 있어, 불기만 하면 적군이 저절로 물러나고 질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된 것은 삼국시대 말인 7세기 후반이다.“백제는 달 바퀴와(月輪)와 같고 신라는 초승달(月新)과 같다.” 백제는 망하고 신라는 흥하리란 정치적 예언인데, 이런 내용이 거북 등에 적힌 채 백제의 왕궁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 짤막한 문장은 한국 최초의 정치적 예언서였다. 이것이 발견되고 얼마 안 돼서 이번엔 고구려의 멸망을 예고하는 ‘고려비기’가 발견되었다. 요컨대 신라의 삼국통일을 전후해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정착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구두로만 전해오던 예언이 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것은 외래문자인 한자가 통치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최초의 예언서는 길이가 극히 짧고 시적이었으며 비유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신라말 최치원이 썼다고 하는 예언서 역시 그랬다. 그는 “계림은 누런 이파리요 곡령(송악)은 푸른 소나무”라는 시구를 고려 태조에게 보냈다고 하는데, 비유법이 눈길을 끈다. 이와 같은 특징이 10세기 초 철원에서 나온 ‘고경참’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140여자로 구성된 ‘고경참’은 왕건이 궁예를 꺾고 개성에 새 나라를 세우게 된다고 했다. 고려는 12대 360년간 유지된다고 예언되었다. 이 예언서는 단군신화나 주몽설화를 연상시키는 대목도 없지 않다. 그러나 왕건 같은 ‘성인’이 결국 최종적인 승자가 되리라고 예언한 점에서 ‘정감록’의 원형이다. 고려의 국운을 처음부터 끝까지 개관한 점에서도 ‘정감록’의 선구가 된다. ●풍수지리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풍수지리설이 유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장래를 예언한 글이 많이 등장했다. 풍수설은 ‘정감록’의 경우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다. 미래의 수도를 계룡산, 가야산, 전주 및 개성으로 예언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풍수설에 기초한 것이다. 아울러 십승지설을 비롯해 전국의 길지를 따져본 것도 풍수설의 영향이다. 풍수설을 대표하는 고려의 예언서로는 도선(道詵·827∼898)의 저술로 알려진 몇 가지가 있다. 아울러 ‘신지비사(神誌秘詞)’라고 하는 것이 또 있다.‘신지비사’는 고조선의 예언가 신지가 저술했다고 하는데, 후대에 조작된 것이 틀림없다. 도선의 저술이라고 알려진 예언서들도 위작일 가능성이 결코 적지 않다. 두말할 나위 없이 도선은 풍수설의 대가였다. 다만 고려태조와 가까운 사이였음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태조와 긴밀했던 것은 그의 제자 경보(慶甫·868∼948)였고, 그로 인해 역사책에는 도선과 고려 왕실의 관계가 과장되었다. 11세기 중엽, 고려 문종 때부터 이른바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이 널리 유행했다. 땅 기운은 일정하지 않아 때로 약해지나 적절한 방법을 쓰면 다시 회복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을 토대로 수도 이전 논의가 활발했다. 처음에는 평양이 길지로 각광을 받았지만,13세기 고종 때부터 한양이 길지로 떠올랐다.14세기에는 한양천도가 기정사실로 취급될 정도였다. 결국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는 한양을 새 수도로 삼았다. 한양 천도론은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그 당시 천도론을 이끈 예언서는 도선의 저술이라 하는 ‘도선비기(道詵秘記)’,‘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등이었다. 앞서 말한 ‘신지비사’는 논쟁에서 보조기능을 담당하였다. 아직 예언서 형태로 자리매김된 것은 아니나 7세기 후반 고구려에서도 풍수설이 위력을 발휘한 적이 있다. 당나라가 파견한 도사(道士)들이 풍수설을 이용해 고구려의 국운을 연장시키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도사들은 평양에 새로 성을 쌓거나 바위를 부숨으로써 고구려의 국운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고구려에 수입된 풍수설은 점차 부동의 위치를 확립했고, 도선과 그 제자들의 손을 거쳐 고려 이후 줄곧 예언서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정감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천 후천설 고려 때는 점성술에 입각한 예언서도 유행했다. 고려 인종이 즐겨 인용한 ‘고현유훈(古賢遺訓)’을 이같은 예로 들 수 있다. 거기에는 머지않아 역사의 새 출발이 가능하다고 했다.‘정감록’에 암시된 선천과 후천의 교대설은 그 싹이 바로 ‘고현유훈’에 있었다.‘고현’이란 옛날의 현인 즉, 과거의 뛰어난 예언가다. 여기서 말하는 ‘고현’은 특히 천문과 역법에 밝았던 사람이다. 책에는 이렇게 주장돼 있다 한다.“천지가 생긴 지 수만 년이 지나면 동지(冬至)가 갑자일이 되는 때를 만나리라. 그때가 되면 해와 달 그리고 (수 화 목 금 토) 다섯별이 모두 정북(正北)에 모여들 것이다. 이를 상원(上元)으로 삼고, 이 날로 달력의 기원을 삼아야 된다. 이때 천지가 열리고 성인(聖人)의 도가 행해질 것이다.” 당시 인종은 묘청과 백수한 등 예언전문가들에게 정치를 전적으로 의지하다시피 했다. 왕은 묘청의 권유로 ‘고현유훈’을 읽어 보았음 직한데 특정한 날이 되면 역사의 무대가 새로 펼쳐져 이상정치가 가능하리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물론 터무니없는 망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천체의 운행을 인간사회의 변화에 직결시킨 점에서 동양 고대의 우주관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런 관념은 19세기말까지도 민간에 널리 통했다. ‘고현유훈’의 기초가 되는 점성술은 운수설과 결합되기도 한다. 그 결과, 한국역사에는 아홉 번에 걸쳐 새 왕조가 등장한다는 취지가 담긴 예언서도 나왔다. 조선 초기 식자층이 읽은 ‘구변진단지도(九變震檀之圖)’가 그런 식의 책이다.‘정감록’에도 역대 왕조의 운수가 밝혀져 있고, 계룡산시대 이후의 도읍지가 예언돼 있다. 그와 동시에, 머지않아 선천이 끝나고 후천 이상세계가 펼쳐지리라는 꿈이 깃들어 있다. ●미륵하생설 선천 후천설을 불교적인 입장에서 편 것이 미륵하생설(彌勒下生說)이다.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와 이상세계를 연다는 믿음이 한국에는 널리 유행했다. 스스로를 미륵의 화신으로 간주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이미 죽은 지 천년도 더 된 궁예를 일부 지방에서는 여전히 미륵불로 믿는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 포천시 구읍리 반월성터에 있는 궁예 미륵상이나 경기도 안성시의 국사봉에도 궁예 미륵은 민간의 신앙 대상이다. 고려 말에 경상도 고성 출신 이금은 스스로 미륵이라 주장했다. 그는 다가올 미륵 세상의 모습을,“내가 조화를 부리면 풀에서 파란 꽃이 피며 나무에 곡식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씨앗을 뿌려서 두 번 거두게 되리라.”고 묘사하였다. 수고를 들이지 않고서도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예언한 점에서 그의 설명은 ‘미륵하생경’의 내용과 일치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금을 따랐다 한다. 이금을 추종하는 신앙 집단은 우선 규모가 컸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부 고위관리들까지 신도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국가의 탄압을 받아 이금 일파가 송두리째 제거되었다. 그 뒤에도 자칭 미륵불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고려 우왕 때 개성에서 미륵불을 일컫는 승려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진짜 미륵불로 믿고 쌀과 베를 앞다퉈 바쳤다. 사노(私奴) 무적도 미륵불의 화신이라 주장하다 관헌에 체포되어 목숨을 잃었다. 14세기 후반 고려는 거듭된 왜구의 침입과 정치 불안정으로 인해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 때문에 말세 의식이 만연해, 어서 미륵불이 내려와 이상세계를 펼치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자칭 미륵이 속속 등장했다.17세기 후반 조선 숙종 때 승려 여환은 미륵을 자처하며 무리를 모아 조선왕조를 전복시키려 했다. 사전준비가 미흡했던 탓에 그의 무모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여환은 추종자 11명과 함께 사형을 당했다. 여환이 사라진 뒤에도 미륵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영조39년(1763) 10월2일자 ‘실록’을 보더라도,“지난번 황해도에서 미륵불이라고 일컫는 자가 있었기에 어사(御史)를 보내 법으로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19세기 말 증산교를 창립한 강일순(姜一淳·1871∼1909)은 자신을 천자 미륵이라고 일컬었다. 임종 때 그는 말하기를,“나는 미륵이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불을 보라.”고까지 했다. 자칭 미륵불들은 다들 그 나름으로 예언을 일삼았는데, 강일순은 다가올 미륵세상을 이렇게 설명하였다.“세상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고 밤과 낮이 막힘없이 환하게 통하고 100가지 곡식을 오래도록 거두어들이고 만 가지 과일이 굵고 크며 풍성한 음식이 저절로 생기고 아름다운 옷이 스스로 이른다.” 이러한 견해는 ‘미륵하생경’과 대체로 일치한다. 미륵이 세상에 내려오기를 바라고 믿는 미륵하생신앙은 고대 중국과 티베트를 비롯해 동양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한국인들은 금강산을 법기도량(法起道場)으로 믿어, 내세불인 미륵불이 반드시 한국에 출현하리라는 기대가 컸다. 예부터 예언서나 도참(圖讖) 또는 노래를 빌려 이 점이 늘 강조됐다. 자연히 ‘정감록’에도 미륵신앙이 깊이 스며들어 불법이 다시 부흥하리라는 예언을 낳았다. ●정성진인 또는 해도진인설 조선후기 예언서에서 미륵은 진인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때로 진인은 미륵세상을 맞이할 세속군주 전륜성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승려 여환 사건 때도 이미 ‘정성인(鄭聖人)’이 등장한다.18세기부터는 각종 반란이나 대규모 민란 때마다 ‘진인(眞人)’이 거의 늘 등장했다. 이지서의 괘서 사건에서도 그랬고,19세기 초 서북인의 차별에 항거해 들고 일어선 홍경래의 난 때도 진인이 언급됐다. 진인은 ‘정감록’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새 세상을 열 미래의 왕이 다름 아닌 ‘정성진인(鄭姓眞人)’이거나 ‘해도진인(海島眞人)’이었다. 그 성씨가 정이고, 그가 세상에 나오기 전 섬에 숨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정감록’을 가탁한 민중운동은 갈수록 증가했다. 심지어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여러 민란이나 그때 창궐했던 화적들은 “이재궁궁(利在弓弓·이로움이 궁궁에 있다)”을 구호삼아 외치는 형편이었다. 도적의 우두머리도 진인을 자처하였다. 진인의 시대가 열리고 보니, 그의 사주(四柱)까지 조작되었다. 진인은 기사년 무진월 기사일 무진시에 태어난다. 그의 사주는 뱀이 변하여 용(龍)이 되는 것이라 크게 길하다 했다. ●‘정감록’의 질적 변화 조선후기부터 ‘정감록’에 약속된 새 날의 도래를 믿고 많은 사람들은 고향을 등졌다. 그들은 곧 진인이 섬에서 나와 계룡산에 천도할 줄로 철석같이 믿고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정감록’ 신앙의 영향 아래 여러 신종교가 출범했다. 동학, 증산교 및 원불교가 그 대표적인 것이지만 개중에는 민중의 금전과 노동력을 갈취하려는 사교 집단도 비일비재했다. 사교 집단은 ‘정감록’을 빙자해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일부 신종교에서는 ‘정감록’ 해석에 차원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정성진인이 오기만 기다리며 계룡산에 들어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내는 ‘정감록’ 신앙을 혹독하게 비판했다.“계룡산에 정씨 왕이 난다는 것은 닭이 울면 날이 새고 바른 법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원불교의 개조(開祖) 소태산 대종사의 말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정성진인은 실상 정법(正法)일 뿐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소태산은 앞서 도적들이 되뇌던 ‘정감록’의 한 구절 “이재궁궁”에 대해서도 색다른 의견을 내놓는다.“세상에는 구구한 해석이 많이 있으나 글자 그대로 궁궁은 무극(無極) 곧 일원(一圓)이 되고 을을은 태극이 되나니 도덕의 본원을 밝힘이라. 이러한 원만한 도덕을 실천하여 남과 다투지 않고 살면 이로운 것이 많다는 뜻이다.” 한국 역사상 숱하게 많았던 예언서들이 ‘정감록’ 호수에 이르기까지 그 길은 거칠고 아득했다.‘정감록’이 도달한 종점엔 천만다행으로 살벌한 투쟁이 아닌 상생(相生)이 웃으며 우리를 기다린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9)한국의 茶人들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9)한국의 茶人들

    섬돌을 이고 있는 뜰에는 흰 서리가 가득하게 내리고 새벽빛은 쌀쌀하다. 누군가 유천의 수곽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문을 여니 초당 평상마루에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자가 등산복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먼 산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생에 대한 번뇌가 가득했다. 오직 답답하면 남도의 땅끝 산에 댓바람 새벽부터 오르겠는가. 그 중년의 남자는 마음에 병을 가득 안고 있었다. 나는 그 중년의 남자에게 한잔의 차를 권했다. 물음이 필요없었다. 차를 마시는 자우홍련사 툇마루에는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만 낭자했다. 한잔의 차를 마신 그 중년인은 가볍게 합장을 하고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태산만한 삶의 무게가 여전히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먹다만 차가 찻잔에 남아 있었다. 그는 한잔의 차도 온전히 마실 만큼의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중년인의 모습은 한치의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왠지 마음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아련해지는 느낌이었다.‘다부’(茶賦)에서는 차의 품성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한 사발을 마시니 마른 창자가 깨끗이 씻어지고, 두 사발을 마시니 신선이 되는 듯 하고 세 사발을 마시니 병골이 깨어나고 두풍이 낫고, 네 사발을 마시니 근심과 울분이 사라지고, 다섯 사발을 마시니 색마가 놀라 달아나고 탐식하는 마음이 사그라지며, 여섯 사발을 마시니 온 세상에 해와 달이 비치고 만물이 제 모습대로 살아 있음을 알겠고, 일곱 사발을 마시니 맑은 바람이 울울이 옷깃에서 일어나며 봉래산의 울창한 숲이 아주 가까이 다다른 듯하다. ”차에 대한 여섯가지의 덕도 함께 적고 있다. 오래 살고 싶거나, 병을 멎게 하고 싶거나, 맑은 기운을 지니고 싶거나, 편안한 마음을 지니고 싶거나, 신령스러움을 몸에 지니고 싶거나, 예를 갖추려고 할때는 반드시 차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차에 대한 ‘품성론’은 마치 차가 인간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신비한 만병통치약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차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차의 품성론의 핵심은 ‘쉼’이다.‘쉼’이란 거칠게 헐떡이며 매시간과 매일을 살아가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자전거와 비교된다. 우리는 자전거가 멈추면 넘어지듯 우리의 삶이 쉬어가게 되면 경쟁력에서 탈락하는 공포를 느낀다.‘차’는 이같은 쉼 없는 흐름을 쉬어가는 정거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역사에서 대표적인 차인중 한 사람인 고운 최치원, 설잠 김시습,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은 거칠게 변화하며 탄탄하게 옥죄어오는 시대적 과제와 현실속에서 한발짝 물러나 자신을 차와 함께 가다듬었다. 차와 함께 현재의 삶을 쉬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그 쉼을 통해 자신을 보고 시대현실을 관통해냈다. 그리고 역사와 시대현실에 대한 새로운 눈을 떴다. 그런 점에서 ‘차’는 바로 쉼을 통해 마음과 몸을 정화해 새로운 생의 활력을 얻어내는 것이다. 차 도구를 준비하고 물을 준비하고 차를 우려내는 행위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행위로 끝나서는 안된다. 마음과 육신의 쉼을 통해 자신의 근원을 바라보는 내적행위로 귀착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속에 명멸한 대부분의 차인들은 바로 역사와 현실 속에서 존재하며 활발하게 자신과 세상을 바꾸는 일에 헌신했다. 그런 점에서 차는 하나의 고고한 정신문화적인 생활문화양식이 아니라 현실의 삶과 탄탄하게 연동하는 살아있는 삶으로서 우리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차인들은 알아야 한다. 역사 속의 차인 중 맨 첫 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원효 스님이다. 차인으로서의 원효 스님은 고려 때 이규보가 쓴 ‘남행월일기’라는 기록을 통해 볼 수 있다.“원효방에 원효가 와서 살자 사포가 또한 와서 모시고 있었다. 사포는 차를 달여 원효스님에게 드리려 했으나 샘물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때 바위 틈에서 갑자기 물이 솟아났는데 맛이 매우 달아 젖과 같으므로 늘 차를 달였다 한다. 원효방은 넓이가 2.4㎡쯤 되는데 한 늙은 중이 거처하고 있었다. 그는 삽살개 눈썹과 다 해어진 누비옷에 도를 닦는 모습이 고고했다. 방 한가운데를 막아 내실과 외실을 만들었는데 내실에는 불상과 원효의 초상화가 있고 외실에는 병 하나, 신 한 켤레, 찻잔과 불경을 놓은 책상만이 있을 뿐 불 때는 도구도 없고 시자도 없다.” 신라시대 차인들은 또 있다. 설총과 보천, 효명태자, 충담사, 고운 최치원이다. 설총은 ‘차와 술로서 정신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했고, 화랑도의 지도자였던 보천과 효명태자는 매일 오대산 문수보살에게 차를 달여 공양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안민가를 지었던 충담사는 왕에게 차를 달여 바쳤고, 최치원은 그의 저서 ‘계원필경´과 쌍계사진감선사비명에 “차로써 갈증을 풀 수 있고 근심을 잊게 되었다.”고 차의 가르침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문인들을 중심으로 한 차인들이 많았다. 임춘, 김극기, 이규보, 진각국사 혜심, 원감국사 충지, 이제현, 이색, 정몽주, 길재 등이 차를 마시며 내면을 가꾸었다. 고려시대 삼은으로 불리는 이색은 차를 몹시 좋아하여 깊은 산속 골짜기 벼랑에서 떨어지는 샘물가에서 부싯돌을 쳐서 차를 달여 마셨다 한다. 그는 차를 마시며 “차를 끓여 마시니 편견이 없어지고 마음이 밝고 맑아 생각에 그릇됨이 없다. 영아차의 맛은 그 자체가 참되다. 가루차를 점다하여 마시니 차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는 삿된 기운을 모두 없애준다.”고 차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때 이색은 차생활을 통해 시대적 현실 속에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정도의 길을 발견하고 다짐했다고 볼 수있다.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 차인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비록 문화적으로 많은 쇠퇴를 겪어야 했지만 임진왜란 등 각종 전란으로 조선시대 사회가 피폐해지기 전까지는 사대부들에 의해 차는 크게 애용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가장 두드러진 차인중 한사람은 바로 점필재 김종직이다. 그가 함양군수로 있을 때 백성들의 차세를 덜어주기 위해 관영 차밭을 만든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당시 차로 인해 수탈받는 민중들의 아픔을 이렇게 적고 있다.“상공할 차가 이 고을에서는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백성들에게 차세를 거두니 백성들은 돈을 가지고 전라도에 가서 차를 샀다. 대개 쌀 한 말로 차 한 홉을 얻었다. 내가 이 고을에 부임했을 때 이러한 폐단을 알고 백성들에게 요구하지 않고 관가에서 스스로 구하여 바쳤다. 삼국지를 읽다가 신라시대에 당나라로부터 차씨를 얻어다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는 것을 보았다. 아아 이 고을도 산 아래 있으니 어찌 신라 때의 유종이 없겠는가. 그리하여 노인들을 만날 때 마다 널리 물어보았더니 과연 엄천사 북쪽의 대숲 속에서 몇 그루의 차나무를 얻게 되어 나는 매우 기뻤다. 그래서 나는 그땅에 차밭을 가꾸도록 하고 그 부근의 백성땅을 사들여 관청 땅으로 보상을 하였다. 그뒤 몇해만에 제법 번식되어 차밭이 고루 퍼지게 되었으니 4∼5년만 있으면 상공할 액수를 채우게 될 것이다.” 역사에서 현실 속 차인의 태도는 어디에 있는지를 점필재 김종직은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차가 깊은 산속 정자나 도심 속 화려한 차실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우리의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하는지에 그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인 것이다. 조선시대 차인들로는 설잠 김시습, 한재 이목, 서산대사, 초의, 추사, 다산 등이 존재한다. 근현대 차인들도 존재한다. 근현대 차인들은 서양의 커피문화 속에 모든 것이 사라진 박토에서 차문화의 싹을 틔운 개척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과거에 차서들을 통해 다관을 복원하고 차밭을 찾아 차를 덖고 그리고 다법을 정립하기 위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노심초사해왔다. 그리고 그 반석 위에 오늘날 한국차의 문화가 싹터 있는 것이다. 근현대 차인들로 송광사의 다송자, 응송 스님, 효당 최범술, 명원 김미희, 석불 정기호, 홍종인, 청남 오제봉, 금당 최규용, 청사 안광석, 의재 허백련, 토우 김종희 선생들이 주역이다. 물론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차인들이 차 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힘써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문화란 근본적으로 한 사람에 의해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효당 최범술과 의재 허백련, 금당 최규용 선생의 차 사랑은 매우 남달랐다. 효당 최범술은 진주 다솔사에 주석하며 지금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많은 차인들을 양성해냈다. 효당 선생은 ‘한국의 다도´라는 책을 집필, 초의선사 이후 한국다도의 맥을 복원해내는 성과를 거뒀다. 뿐만 아니라 다소사에 차밭을 일궈 ‘반야차’를 직접 제다해 차인들에게 보급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의재 허백련도 빼놓을 수 없는 차인이다. 남종화의 맥을 이은 의재 선생은 무등산에서 직접 차를 재배해 ‘춘설’이라는 일품차를 생산해냈다. 효당과 의재는 우리나라 차인의 동서쌍벽이라 칭할 정도로 근대 차문화의 산파역을 해냈다. 차인의 삶은 근본적으로 검박하다. 그것은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나 현재 모두 우리의 삶은 그 현상만 달라졌지 그 근본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니 현재니 하는 시간적인 흐름은 현상을 바꿀 뿐이지 그 근원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인에게 차는 늘 현실이요, 역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일지암 암주 ■ 한재 이목의 ‘다부’ 얼마전 산중을 떠나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대학생 시절부터 한국전통문화와 한국전통차 문화운동을 했던 한 다인이 ‘한국발효차연구소’를 인사동에 개원했기 때문이다. ‘한국발효차연구소’가 인사동 한 모퉁이에 아담한 사무실을 마련하고 우리 민중들의 건강지킴이 역할을 했던 발효차에 대한 연구와 복원을 할 것을 다짐하는 자리는 차가운 겨울의 매운 바람을 훈훈하게 녹이는 화로 같은 것이었다. 한국차는 이렇게 선각자적이고 개척정신을 가진 차인들에 의해 오롯이 그 전통이 보존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한재 이목과 그가 남긴 ‘다부’(茶賦)가 그 주인공 중 하나다. 다부는 우리나라의 차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책이기도 하다. 육우의 ‘다경’과 노동의 차노래 ‘칠완다가’를 참고해 지은 차 노래가 바로 ‘다부’이다. 한재는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사람은 사물을 대함에 있어서 그 성미에 따라 다르나니 이태백이 달을 좋아하고 유령은 술을 좋아하듯 나는 차를 처음에는 잘 알지 못하다가 차의 성질을 알고부터는 마음속으로 좋아하게 됐다. 차는 세금을 내고 들여오니 이 일이 좋단 말인가 하고 사람들이 말했다. 이에 내가 대답하기를 이 일은 하늘이 처음부터 그렇게 한 것이 아니며 차가 그렇게 시킨 것도 아니다. 나는 겨를이 없어 이에 미치지 못하였을 뿐이라고 하였다.” 480자로 된 ‘다부’는 우리나라에 전하는 가장 오래된 다서(茶書)인 ‘다신전’(茶神傳)보다 350년 앞섰다. 저자인 한재 이목이 중국에서 직접 체험한 차 생활을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차의 심오한 경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차를 일생동안 즐겨도 싫증 나지 않는 것은 그 고유의 성품 때문이다.”로 시작된 ‘다부’에는 ‘차 이름과 산지’‘차나무의 생육환경과 예찬’‘차 달여 마시기’‘일곱 잔의 차 효능’‘차의 다섯가지 공로’‘차의 여섯가지 공로’ 등을 열거하고 있다. ‘다부’에 실린 몇가지 내용들을 살펴보자. 먼저 차의 직접적인 효과 5가지를 말하고 있다.“책을 볼 때 갈증을 없애준다. 울분을 풀어준다. 손님과 주인의 정을 화합하게 한다. 뱃속 기생충으로 인한 고통을 없앤다. 취한 술을 깨게 한다.”차를 마셔 신체와 정신에 이로운 점 6가지도 밝히고 있다.“오래 살게 한다. 병을 낫게 한다. 기운을 맑게 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신선과 같게 한다. 예의롭게 한다.”‘다신전’이나 ‘동다송’과 같은 명저인 ‘다부’는 조선을 지배하던 유학자가 쓴 유일한 창작다서다. 노장사상, 특히 양생론과 깊은 연관을 가진 이책의 특징은 행다(行茶), 조다(造茶) 등 실제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사상적인 측면을 더 강조했다는 점에서 조선 유학자들의 음다기풍과 그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노작이기도 하다.
  • [7·9급 공무원 시험 완전정복] 문학의 미적 범주

    ●청동기시대(기원전 15세기∼10세기 경) (1)경제 1)농경의 발달 (1)재배작물 (ㄱ)조, 피, 수수:신석기시대부터 재배 (ㄴ)벼, 보리, 콩:청동기시대부터 재배 벼는 일부 저습지(밭농사가 중심), 여주 흔암리, 부여 송국리 등에서 출토 (2)농기구 (ㄱ)청동제(금속제)는 없음 (ㄴ)간석기의 다양화, 기능 개선 (가)반달돌칼, 삼각형돌칼:추수용 (나)홈자귀 (다)바퀴날도끼 (ㄷ)목기 (3)토기의 제작 (ㄱ)민무늬토기 (가)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 (나)지역에 따라서 모양이 약간씩 다름(가락리식, 송국리식, 공귀리식, 팽이식 등) (다)화분형과 팽이형이 기본적인 모양 (ㄴ)미송리식토기 (가)밑이 납작한 항아리 양쪽 옆으로 손잡이가 하나씩 있음 (나)주로 청천강 이북, 요령성과 길림성 일대에 분포 (다)고인돌, 거친무늬거울, 비파형동검과 함께 고조선의 특징적인 유물로 간주 (ㄷ)붉은 간토기 (4)집단적 취락의 형성(넓은 지역에 많은 집터가 밀접) (ㄱ)배산임수의 위치 (ㄴ)야산(구릉, 산간)의 움집(직사각형)과 지상가옥에 거주 2)돼지·소·말 등 가축의 사육 증대 (2)정치 1)계급의 발생 (1)원인 (ㄱ)농경의 발달→잉여생산물의 발생, 분배 (ㄴ)빈부의 차이 발생→사유재산의 발생 (2)구분 (ㄱ)지배층:선민사상의 대두→거석문화:선돌, 고인돌(계급의 발생과 경제력의 성장을 입증) 등 (ㄴ)피지배층 (3)결과 (ㄱ)군장의 출현 (ㄴ)전문장인의 등장 (ㄷ)정복전쟁의 전개→남녀분업의 발생 2)군장국가의 등장 (3)예술 1)의의:종교(주술적) 및 정치적 요구와 밀착 2)대표적 (1)청동제품:제사장, 족장들이 사용했던 칼, 거울, 방패 등 (2)토제품:흙으로 빚은 짐승, 사람모양의 토우 (3)바위그림:울주 반구대, 고령 양전동 알터 등 ●문제 다음의 내용과 관련된 시기의 생활 모습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 이 시대의 전형적인 유물은 반달돌칼, 홈자귀 등의 석기와 비파형동검, 거친무늬거울 등의 청동제품, 그리고 미송리식 토기와 민무늬 토기 등이며, 이들 유물은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등 당시의 무덤에서 나오고 있다. (1)남자들은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여자들은 가사를 담당하였다. (2)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큰돌을 옮기고 있었다. (3)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일부 저습지에서 모내기를 하였다. (4)남의 물건을 훔치면 노비가 될 수도 있었다. ●해설 지문의 내용은 청동기시대에 대한 설명이다.(1)청동기시대에는 정복전쟁의 전개 등으로 남녀의 분업이 발생하였다.(2)청동기시대에는 거석문화와 관련된 고인돌이나 선돌을 건립하기 위하여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다.(3)청동기시대에는 일부 저습지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었으나, 모내기는 고려 말에 남부지방 일부에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4)청동기 시대에 건국된 고조선의 8조법에는 도둑질을 하면 노비가 되도록 하였다. 정답 (3)번. 심태섭 남부행정고시학원 강사
  • [열린세상] 야간 등반에서 깨달음을 줍다/ 이경자 소설가

    가을날 이른 저녁 구파발 1번 출구 분수대 근처에서 산 좋아하는 사람 넷이 모였다. 그 중에 지리산을 수백 번 등반하고 인수봉 암반 등반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은 이날 산행의 대장이었다. 셋은 이날 암벽 등산화를 새로 사서 신었다. 이 모임을 거의 억지로 만든 건 나였다. 대낮에 원효봉이나 의상봉, 노적봉에 오르면 마주 보이는 염초봉과 백운대로 오르는 바위 능선이 언제나 유혹적이었다. 위험해서 사고가 많이 나는 곳이라곤 해도 그 등줄기가 꼭 공룡 같아 보이는 염초봉으로 해서 백운대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사무쳤다. 그곳과 인수봉에만 올라가 보면 삼각산을 두루 다 다녔다고, 혼자서 생각만 해도 기뻐질 것 같았다. 염초봉 입구에서 우리는 정조대가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게 보이는 안전띠를 허리에 찼다. 안전띠는 대장에게 연결되어서 그의 지시에 따라 발을 내딛거나 멈추거나 할 것이었다. 만월을 하루 이틀 앞뒀을 둥그런 상현 달빛을 받은 염초봉의 바위 살결은 뽀얗고 부드럽고 단단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는 더 이상 아름다운 분재는 없다고 말했다. 사람이 화분에 길러 그 자태를 뽐내는 분재들도 결국은 자연을 흉내 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의 하늘은 덧나기 시작하는 상처처럼 벌갰다. 나는 상처 속에서 지지고 볶을 사람들을 잠시 슬퍼하기도 하였다. 한동안 우리 일행은 소나무 분재들과 바위와 서울 하늘과 바람과 달과 별에 사로잡혔고 그런 것들과 동화되어 아름다움 이외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오래가지 않았다. 한 사람씩 높은 벼랑을 올라야 할 때, 혹은 그런 벼랑 아래로 우물의 두레박처럼 내려서야 할 때, 언제나 대장은 길을 미리 탐색했다. 그동안 나머지 셋은 비좁은 바위 틈서리에서 삶과 죽음을 동시에 감각하곤 하였다. 기지개만 켜도 절벽에 떨어질 것이고 잠깐 허튼소리로 웃어도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삶과 죽음의 칸막이가 사라진 공간은 수도 없었다. 이런 위험은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의외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사라졌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었다. 양보하고 격려했으며 두려움에 주눅 들지 않도록 신경 썼다.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즉각적으로 느꼈고 그것을 즉각적으로 실천했다. 위험한 것은 위험한 것이었다. 위험한 것에 겁을 먹는 것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감정은 대상과 나 사이에 경계를 만들었다. 그것이 설령 사랑이라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됐다. 한 사람씩 대장의 안전띠 고리에 연결되어 앞으로 나아갔다. 대장과 단원을 잇는 끈은 생명줄이었다. 생명줄은 이를테면 등반에서의 제도(制度)였다. 그 제도는 연결된 사람 사이에 누구에게도 불편함이 없어야 했다. 누구에게도 불편함이 없을 때 가장 안전했다. 제도의 중심은 공평했다. 균형자처럼 균형추처럼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았다. 그래야 안전했다. 가장 안전해야 모두 살아남을 수 있는 제도, 대장과 단원 사이에 연결된 끈은 그랬다. 나는 이 사실을 위험한 구간을 지날 때, 앞선 동료의 등반을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울컥 울음이 북받쳤다. 제도라는 건 무릇 이래야 한다. 그래야 인간을 위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자식을 낳고 사는 결혼, 국가 권력, 민족과 민족, 사람과 자연도 이런 제도로 이어진다면, 누구도 제도로 하여금 불행하거나 열패감에 좌절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 밤, 염초봉 정상에서 혼자 속으로 울었다. 이경자 소설가
  • [알뜰살뜰 정보]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다음달 1일까지 수능 수험표를 소지한 구매 고객을 추첨, 중국 여행권, 남성정장, 화장품 세트 등을 준다. 중국 견학 여행권, 남성정장은 점별로 1명씩, 남성화장품은 점별로 5명씩, 여성화장품은 점별로 10명씩 뽑는다.●롯데마트 27일까지 ‘수능 상품전’을 진행, 수능 수험표를 가져온 수험생에게 디지털카메라,MP3, 전자사전 등을 12% 에누리 판매한다. 니콘 디지털카메라 24만 8000원, 후지 디지털카메라 38만 8000원, 샤프 전자사전 21만 9000원, 쿨키 MP3 5만 8000원.●현대홈쇼핑(www.hmall.com) 다음달 18일까지 ‘당신 누려라’행사를 진행한다. 수능번호를 행사홈페이지에 입력하면 추첨을 통해 백화점 상품권 50만원, 여행상품권 50만원, 적립금 5만원 등을 준다. 또 컴퓨터, 디지털카메라를 살 때 8%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을 증정한다.●GS이숍(www.gseshop.co.kr) ‘수능 끝, 즐거움 시작’이란 기획전을 열고 패션, 디지털기기, 여행, 부모님께 감사 등 총 4개 테마로 구분, 다양한 상품을 5∼15% 할인된 가격에 제공한다.●G마켓(www.gmarket.co.kr) 최저가 휴대전화 마련 이벤트를 벌인다. 번호를 이동하거나 새로 가입하면 큐리텔 PK-K1400을 2900원(KTF로 번호이동)에 구입할 수 있다.LG KV3600(17만 5000원), 강동원 폰으로 유명한 큐리텔 PT-K1400(9900원), 가로본능 위성 DMB폰:삼성 SCH-B250(54만 6000원) 등도 내놓았다.●인터파크(www.interpark.co.kr) 다음달 18일까지 ‘수능 해방 MP3, 디카, 휴대전화 특가전’을 열고 1000여종의 상품을 15∼10% 할인 판매한다.27일까지 1만원 이상 구입하면 10% 할인해 주는 쿠폰행사도 함께 진행한다.●디앤숍(www.dnshop.com) ‘수능탈출 축하축하 페스티벌’을 30일까지 열고,Yepp을 구매한 고객을 추첨,▲애니콜 블루블랙폰(3명)▲소니PSP(5명)▲삼성케녹스 디지털카메라(7명)▲에이원프로 전자사전(10명) 등을 나눠준다.●KT몰(www.ktmall.com) 색조화장품과 남성용 기초화장품을 할인하고 MP3 플레이어와 디지털카메라를 28일부터 특가에 한정 판매한다. 다음달 5일부터는 대학 새내기를 위한 패션의류 잡화전도 마련한다.●롯데닷컴(www.lotte.com) 다음달 25일까지 수험번호를 입력하면 이벤트에 응모할 수 있다. 친구들과 함께 동해 추암 촛대바위 일출여행을 떠날 기회나, 영플라자 매장에서 영캐주얼 의류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할인쿠폰을 얻을 수 있다.●옥션(www.auction.co.kr) 다음달 16일까지 ‘예비숙녀 멋내기 코디전’을 마련한다. 멋진 코디 사진과 수험번호를 게시판에 올리면 심사를 통해 베스트 코디 10명에게 바닐라코 화장품세트를 나눠준다.●아웃백스테이크(www.outback.co.kr) 다음달 5일까지 홈페이지에서 수험생 쿠폰을 출력, 수험표와 함께 제시하면 애피타이저 메뉴인 레인지랜드 립레츠(8600원), 쿠지베이 칼라마리(7900원), 쿠카부라 윙(8500원) 가운데 한 가지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 동유첩 東遊帖/이충구·이성민 옮김

    조선의 선비들은 과거를 보기 전에 산수를 유람하고 견문을 넓혀 자연과 세상의 이치를 먼저 깨닫고자 했다고 한다. 권력을 향해 내달리기 전에 장대한 자연의 모습을 관조하며 세상 보는 눈을 트이게 하려는 것이었으리라. 이같은 산수유람에 금강산만한 데가 있었을까? 천하절경 금강산 기행은 조선 후기 지식인 사회에서 열병처럼 번져 있었다. 금강산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나서 선비들은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풍경들을 기억하고자 했다. 여행을 떠날 때 지필묵을 준비한 것도 이런 까닭이었다. 가는 곳마다 감흥이 떠오르면 그것을 시로 읊었으며 화공에게는 그 실경을 화폭에 담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시와 그림을 곁들인 화첩을 만들어 두고 두고 산수를 즐겼다. ‘동유첩 東遊帖’(이충구·이성민 옮김, 성균관대 출판부 펴냄)은 조선후기 형조판서를 지낸 이풍익(1804∼1887)이 관직에 오르기 전 금강산을 유람하고 펴낸 화첩이다. ‘나는 산수유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온 우주를 다 유람해 보고 싶었다.’이같은 마음으로 그는 1825년(순조 25) 8월4일 스물 한 살의 나이에 금강산 기행에 나섰다. 등에 진 바랑에 든 것은 당시(唐詩) 몇 권과 지필묵뿐. 서울에서 영평·회양을 거쳐 통천까지, 그리고 고성의 삼일포, 신계사, 백운대, 표훈사, 장안사를 거쳐 다시 서울까지 돌아오는 여정에서 그는 12편의 유람기와 50여편의 시,20여편의 풍경기를 남긴다. ‘∼표훈사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더니 범패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갖가지 악기 소리가 쿵쾅거렸다. 아뿔사! 깊은 산중에 구름이 바람을 몰고 오는 소리였다. 억만그루 소나무에 스치는 성난 바람소리였다.’ 표훈사에서 잠들기 전의 밤풍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옥류동에선 다음과 같이 그 감흥을 적어 놓았다.‘∼시내엔 징검다리 자연이 만들었고/절벽에 걸린 폭포 옥구슬을 떨군다.∼나그네 마음 스님이 진작에 알아채고/징 메고 망치 들고 앞장서 걸어가네.∼비스듬 바위에 내 이름 새겼으니/성난 폭포 세찬 여울에 씻기고 깎이겠지/∼오늘부터 내꿈이 맑고 깨끗하기를.’ 북한 관광길이 열리면서 금강산에 갔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절경을 이룬 바위마다 새겨진 각종 한자 이름들. 이풍익 같은 선비들이 남긴 것이로구나. 예나 지금이나 특별한 곳에 갔을 때 이름을 남기는 ‘전통’은 매한가지였음을 짐작케 한다. 동유첩은 단발령을 넘는 것으로 끝난다. 이 고개에 오르면 금강산이 멀리 바라보이는데, 그 광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들은 머리를 깎고 금강산에 숨어 살고 싶어진다 해서 고개 이름도 ‘단발령’(斷髮嶺)이다. 이풍익은 단발령을 넘으면서 ‘명산과의 이별이라 하마 그리웁나니/저 멀리 원기(元氣)는 더욱 짙어졌구나’란 시를 남긴다. 금강산의 절경뿐만 아니라, 금강산이 머금은 천지의 기운까지도 마음속에 들어와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동유첩은 금강산의 대표적인 경관을 묘사한 실경산수 28점을 실었다. 여기에 조선미 성균관대 예술학부 교수 등이 동유첩의 의미와 조선후기 진경산수화, 조선시대 선비들의 금강산 기행에 대한 해제를 붙였다. 동유첩의 그림들은 170여년이나 된 것들로 그 구도와 완벽함과 채색의 정교함이 돋보인다고 조선미 교수는 평가한다. 이 그림들은 지금까지 이풍익이 직접 그린 것으로 전해왔다. 하지만 이를 입증하는 기록이 없고, 그 솜씨나 그림의 구도, 그림 속의 인물 수와 모양 등이 단원 김홍도의 ‘금강산군첩’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당시 이풍익이 전문 화공에게 이를 베껴 그리게 했을 것이라고 조 교수는 추정했다.2만 9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지역플러스] 동해 ‘촛대바위’ 일대 조각공원으로

    강원도 동해시 추암 ‘촛대바위’ 일대에 대규모 조각공원이 조성된다. 시는 촛대바위 일대 3만 7750㎡의 부지에 35억 8000여만원을 들여 조성한 조각공원 기반조성공사가 완료됨에 따라 연내에 조각작품 30점을 설치할 예정이다. 내년에도 국·도비 10억원을 들여 일출 전망대 등 기반시설을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조각작품이 들어서면 해오름의 고장 동해의 대표 문화관광 휴양지로서의 기능과 전국 최고의 해돋이 명소로서 추암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 팔리지 않는 소금·사라져가는 염전 이중고에 한숨 영종도 염전 르포

    팔리지 않는 소금·사라져가는 염전 이중고에 한숨 영종도 염전 르포

    연간 소비량의 절반 가량이 김장철에 팔린다는 소금. 계절적으로 염부(鹽夫)들은 신명이 날만도 하련만 축 처진 어깨가 좀처럼 펴지지 않는다. 지난 2001년 소금시장 완전개방 이후 값싼 수입산 소금에 밀리더니 급기야 생산한 소금을 창고에 고스란히 쌓아둘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 영종도는 한때 ‘잘 나가는’ 소금 생산지였다. 지난 70∼80년대 이곳 염전은 300정보(1정보=3000평)에 달했다. 하지만 공항 활주로와 신도시, 골프장에 자리를 내주면서 지금은 절반을 밑도는 150정보도 되지 않는다. 소금이 팔리지 않는 데다, 사라져 가는 염전 때문에 ‘이중고(二重苦)’를 겪으며 시름에 젖어 있는 영종도 염부들을 만나봤다. ●8000가마 생산 6000가마 창고에 박병기(76) 금단염전 염부장(염전 관리자)은 “올 한해 동안 30㎏짜리 소금 8000가마를 생산했지만 6000가마가 창고에 쌓여 있다.”면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11월 중순이면 창고가 텅 비었는데, 창고에 소금이 남아 있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털어놨다. 영종도는 일제시대 당시 금광이 많아 이북을 비롯한 외지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광산이 폐광되자 정부는 지난 1954년 ‘피란민 정착사업’의 일환으로 영종도에 제방을 쌓아 염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영종도 토박이인 박 염부장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51년째 염전으로 출퇴근하는 ‘영종도산 소금’의 산증인이다. 다른 염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50정보로 영종도 염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금홍염전의 경우 올해 생산한 소금 5만가마 중 3만가마가 창고에 남아 있다. 소금 가격도 예년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 2003년까지 1가마당 1만 2000∼1만 3000원을 유지했으나 지난해에는 8000원대, 올해는 7000원대까지 떨어졌다. 강종진(59) 금홍염전 소장은 “12가구 가족들이 매달리다시피 해서 생산한 소금을 다 팔아봐야 떨어지는 돈은 가구당 3000만원 정도”라면서 “이마저도 소작료, 기름값, 마대값 등을 빼고 나면 절반밖에 남지 않는데 팔리지를 않으니 소작료조차 못 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주연(66) 금홍염전 염부장도 “서울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서 사가는 게 고작”이라면서 “쌀 추곡수매하듯이 정부가 비축염을 사들이기도 했는데 올해는 이런 것도 없어 도통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해 했다. 염부들에게는 팔리지 않는 소금 외에 더 큰 걱정이 있다. 염전이 폐쇄돼 일거리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벌써부터 내년에는 ‘어느어느 염전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박 염부장은 “땅도 논도 없고, 다른 곳에 가봤자 나이가 많다고 써주지도 않는다.”면서 “외국에서 수입하는 소금을 팔지 못하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국산으로 속여 파는 행위만이라도 철저히 단속해 줬으면 좋겠다.”며 한숨지었다. ●“배운 도둑질이 이 것뿐인데…” 그나마 ‘옛날 얘기’가 염부들의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을 걷어냈다. 황해도 웅진이 고향인 김 염부장은 “1951년 ‘1·4 후퇴’ 때 이곳으로 건너왔어.”라면서 “1958년에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밀가루, 강냉이 먹어가며 염전을 만들었는데 벌써 48년이나 지났네.”라고 회상했다. 이곳 염부들은 70∼80년대만 해도 남부럽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소금을 만드는 순서는 바닷물을 저수지에 가둔 뒤 난치·늦태지역에서 바닷물을 증발시켜 염도를 높이고, 염판에서 결정이 만들어지면 창고에 저장한다. 당시만 해도 반장(염도 측정 및 감독)과 부반장(염판 관리),‘대빠또’라는 은어로 더 잘 불린다는 난치반장(바닷물을 염판까지 내려주는 역할), 경험에 따라 구분되는 상염부 및 하염부(고무래로 염판에 쌓인 퇴적물 제거) 등 5명이 한 조를 이뤄 이같은 작업을 담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소작 형태로 바뀌었다. 부족한 일손은 소작 염부들의 가족이 메웠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1정보당 소금 생산량은 70∼80년대 연간 10t에서 3∼4t으로 줄었다. 강 소장은 “우리야 배운 도둑질이 이것밖에 없지만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없어.”라면서 “남아 있는 염부들은 50∼60대가 대부분이고, 영종도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염부도 43살이야.”라고 말했다. 이렇게 힘든 염전 일을 그만 둘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박 염부장의 답변은 단호했다.“잠만 따로 자지 평생을 같이 한 게 이 사람들이야. 염전에 둘러앉아 소주 한 잔 걸치는 게 유일한 낙인데, 그걸 버리라고?” 헤어질 무렵, 점심 때를 놓친 터라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기자의 말에 염부들은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손사래를 치며 황급히 돌아섰다. 염전 일은 3월초에 시작돼 10월말이면 끝난다. 농부로 치면 지금은 농한기다.3시간 남짓 얘기를 나누는 사이 꾸깃꾸깃해진 염부들의 담뱃갑이 자꾸 눈에 밟혔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국산천일염 ‘미네랄 덩어리’ 국내 소금산업이 외국산 저가 소금에 밀려 ‘고사’ 위기에 처했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산업자원부와 대한염업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소금 소비량은 320만t으로 추정된다. 비누와 폴리염화비닐(PVC) 등을 생산하는 화학공업용이 260만t, 식용이 60만t 정도다. 그러나 국내에서 생산되는 천일염과 기계염은 각각 35만t,15만t에 불과해 소비량의 85% 이상을 중국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다. 소금은 지난 60∼70년대까지만해도 자급자족했다. 그러나 지난 2001년 소금시장 완전개방으로 국산 소금의 30∼50% 수준인 외국산 소금이 국내 소금시장을 점령했다. 이 때문에 국내 염전도 80년대 1만 2000정보(1정보=3000평)에서 지금은 4000정보로 대폭 감소했다. 소금은 바닷물을 증발시킨 천일염, 바위처럼 딱딱한 암염, 바닷물을 전기분해한 기계염, 소금을 재처리·가공한 제재염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국산 천일염은 농도가 80% 안팎이며 미네랄이 풍부해 김치, 젓갈, 장류 등을 담그는 데 적합하다. 반면 수입산은 국산보다 농도가 10% 이상 높아 김치의 경우 쉽게 물러질 수 있다. 이처럼 국산 천일염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식품’이지만 지난 63년 제정된 염관리법에 따라 ‘광물’로 규정돼 있다. 바닷물 증발 과정에서 불순물이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금을 다루는 정부 부처로 보건복지부가 아닌 산업자원부가 지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소금은 수입자유화 조치 이후 시장기능에 맡기고 있다.”면서 “현재는 염전 폐쇄와 종사자 전직 등만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부는 지난 2003년 소금이 과잉생산돼 가격이 떨어질 경우 사들인 뒤 가격이 올랐을 때 되파는 ‘수매비축제도’를 폐지, 국내 소금업계를 지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마저 사라졌다. 염업조합이 이와 유사한 ‘자가비축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염업조합은 지난해 고품질 고가격의 ‘하얀금’ 브랜드 사업을 추진했으나 가격경쟁에 밀려 110억원어치,3만t의 소금이 그대로 쌓여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염부들의 ‘족집게’ 일기예측 좋은 소금을 만들기 위한 염부들의 노력은 날씨를 예견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드는 데는 꼬박 2∼3주가 걸리는데 도중에 비를 맞으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일기예보가 정확하지만, 과거에는 어떻게 족집게처럼 날씨를 알아낼 수 있었을까. 40∼50년 경력의 염부들은 우선 일몰 무렵, 구름의 위치와 모양을 살피는 것을 중요한 일과로 꼽는다. 해가 넘어갈 때 구름이 해 주변에 끼어 있으면 2∼3일 뒤 비가 온다는 것이다. 염부들은 이를 ‘해가 집 짓고 들어간다.’고 표현한다. 또 동남풍이나 남서풍이 불면 하루나 이틀 후 비가 내리기 때문에 염판에서 소금을 걷어냈다고 한다. 아울러 개미가 줄을 지어 이동하고, 굳은 땅에서 지렁이가 올라오고, 밀물의 양이 많아지는 ‘물이 산 날’에는 틀림없이 비가 내린다고 강조했다. 박병기(76) 영종도 금단염전 염부장은 “날이 궂으면 온몸에 신경통이 도진다는 사실은 기본”이라면서 “일기예보를 몰라도 70∼80% 정도는 날씨를 맞힐 수 있다.”며 웃음지었다. 흔한 게 소금이지만, 로마시대에는 군인들에게 급여를 소금으로 지급해 샐러리(salary)의 어원이 될 만큼 귀한 존재였다. 지금도 좋은 소금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좋은 소금은 맛부터 다르다고 한다. 좋은 소금은 부드럽고 단맛이 나며 뒷맛도 깨끗한 반면 나쁜 소금은 쓴맛이 난다. 또 국내산과 수입산 소금을 구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입자의 크기와 경도를 살펴 보는 것이다. 국내산 천일염은 입자가 고르고 뚜렷하나 외국산 소금은 여러 유통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마모도가 심하고 입자도 고르지 않다. 특히 국내산은 수분 함유량이 많아 손바닥에 잘 들어붙고 손으로 비비면 잘 부스러진다. 반면 외국산은 경도가 높아 손바닥에 잘 붙지 않고 비벼도 덩어리가 남게 된다. 김주연(66) 금홍염전 염부장은 “소금은 바닷물의 청정도, 일조량, 바람의 세기 등에 따라 차이가 나게 마련”이라면서 “소금 하나만 잘 먹어도 웬만한 성인병은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지역플러스] 속초 영랑호 정자 ‘영랑정’으로

    강원도 속초시가 영랑호 주변 범바위에 복원한 정자 이름을 ‘영랑정’으로 결정했다. 영랑정은 9000여만원을 들여 복원한 6각형 정자로 이름은 시민공모를 통해 결정했다. 정자 이름 공모에는 모두 49건이 응모했으며 시정조정위원회 심의 결과, 영랑호 일대에 신라시대 화랑 ‘영랑’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정자라는 의미를 살려 ‘영랑정’으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는 영랑정이라는 이름으로 응모한 시민 5명을 다음 달 초 시상할 예정이다.
  • [녹색공간] 아메리카 원주민의 지혜와 통찰/이현주 목사

    오늘은 어쭙잖은 내 생각을 펼쳐놓기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지혜와 통찰이 담겨 있는 글 몇 대목 소개하기로 한다. 아래는 오논다가 훼잇키퍼(신앙을 지키는 사람)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오렌 리용스의 글이다. “개인 차원에서든 정부 차원에서든 무엇을 결정할 때마다 우리는 뒤에 올 일곱 세대를 염두에 둔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우리 뒤에 올 사람들에게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은, 바라건대 지금보다 더 좋아진, 땅을 물려주는 것은 우리의 성스러운 임무다. 어머니 땅(Mother Earth) 위를 걸을 때마다 우리는 매우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놓는다. 앞으로 올 세대 사람들이 땅거죽 아래에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는 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그들을 잊지 않는다.” 다음은 아베나카이족 울프 송(늑대 울음)의 글.“진정한 영예와 존경은,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살아 있는 땅과 물과 식물과 동물을 우리와 똑같은 권리를 지닌 존재로 여기고 그렇게 대하는 것이다. 사람은 진화의 꼭대기점에 서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저마다 제자리에서 자기 목적을 충족시켜가는 나무, 바위, 코요테, 독수리, 물고기 그리고 두꺼비들과 함께 신성한 생명의 고리를 이루고 있는 가족일 따름이다. 저들이 신성한 생명의 고리 안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감당해 나가듯이 우리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수우족 추장, 루터 스탠딩 베어(서 있는 곰)의 말. 여기 나오는 ‘와칸 탕카’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면서 모든 존재로 자신을 표출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하느님’(God)이다.“우리는 예배하기를 좋아했네. 태어나서 죽기까지,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들을 존중했어. 우리는 저마다 부드럽고 따스한 어머니 땅 무릎에서 태어났고 그래서 어디에도 천박한 곳이 없었지. 우리와 저 큰 거룩(the Big Holy) 사이에는 아무것도 끼어들지를 못했네. 우리들 사이는 참으로 은밀했고,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처럼 와칸 탕카의 축복이 머리 위로 흘러내렸지.” 다음은 1967년, 아흔여섯 살 나이로 죽은 워킹 버팔로(걷는 들소)가 죽기 전에 남긴 말.“당신들도 알다시피, 석조건물보다는 언덕이 언제나 더 아름답다. 도시에서 사는 삶은 인조(人造)인생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기 발 밑에 있는 진짜 흙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 말고는 아는 식물이 없고, 가로등 너머 반짝이는 별들로 찬란한 밤하늘을 올려다 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와칸 탕카가 빚어놓은 아름다운 정경들을 저렇게 멀리하고 살아가니, 사람들이 그의 법을 망각하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다.” 다른 자리에서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오, 그래. 나도 백인들 학교에 다녔네. 거기서 교과서와 신문과 성경 읽는 법을 배웠지. 그러나 머잖아 그것들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어. 문명인들은 사람이 만든 인쇄물에 너무 많이 의존하더군. 나는 곧 와칸 탕카의 저서인 자연세계로 돌아갔네. 자네도 자연을 공부하면 그분 저서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을 걸세. 자네가 가지고 있는 책을 모두 꺼내다가 햇빛과 눈과 비와 벌레들한테 잠시 맡겨두면 이내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라는 것쯤 자네도 알겠지. 그러나 와칸 탕카는 숲과 강물과 산맥과, 인간을 포함한 온갖 동물들로 이루어진 자연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자네와 나에게 언제나 마련해주신다네.” 마지막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바치는 오지브웨이 기도문.“할아버님, 일그러지고 깨어진 우리를 굽어살펴 주세요. 유독 인간만이 성스러운 길에서 벗어났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다가 서로 갈라졌지만 다시 하나로 돌아가, 저 성스러운 길을 함께 걸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할아버님, 거룩하신 할아버님, 우리에게 사랑과 자비와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을 가르쳐주세요. 그래서 땅과 함께 우리 서로를 치료할 수 있도록.” 비록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백인들에게 밀려 자기네 땅에서 소외되었지만, 덕분에 인류가 그들의 지혜와 통찰의 소중한 가치를 배우게 되었다. 고마운 일 아닌가? 이현주 목사
  • 27일만에 극적 구조

    지난달 8일 발생한 파키스탄 대지진 당시 무너진 집에 매몰됐던 청년이 27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영국 더 타임스가 18일 보도했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젤룸계곡 내 파흘 마을에 사는 칼리드 후세인(20)은 지진 발생 당시 집에서 어머니 및 4명의 형제와 함께 가축을 돌보고 있었다. 지진과 함께 발생한 산사태로 바위와 흙더미가 집을 덮치면서 이들은 모두 매몰되고 말았다. 다른 동네에 있어 화를 피할 수 있었던 아버지와 세 명의 아들은 사고 뒤 집으로 돌아왔다. 마땅한 구조장비도 없이 이들은 잔해를 파헤쳤다.12일 만에 다른 가족들의 시신은 찾았지만 칼리드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아버지 무자파르는 “칼리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가족들의 장례식을 치렀다.”고 말했다.하지만 기적은 일어났다. 지난 5일 나머지 잔해를 치우던 아들 자히드(18)가 “형의 손이 보인다.”고 소리쳤다. 무자파르는 “당연히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칼리드가 숨을 쉬고 있었다.”며 “나무기둥과 돌더미 속에 갇혀있던 칼리드의 주변에는 겨우 손을 움직일 만큼의 공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칼리드는 오른쪽 다리가 골절되기는 했지만 큰 부상없이 구출됐다. 인근 도시로 옮길 차량이 없어 5일이 지난 지난 10일에야 겨우 무자파라바드로 이송, 입원했다. 칼리드에게는 외상보다 심각한 정신적 상처가 남았다. 초점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쳐다보며 손으로 계속 땅을 파는 시늉을 하는 칼리드의 모습에서 갇혀있는 동안 얼마나 큰 공포에 시달렸는지 알 수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칼리드의 담당 의사는 “27일 동안 물과 음식없이 버틴 것은 기적”이라며 “다리 치료와 함께 정신과 의사들이 진료하고 있다.”고 말했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비움으로 채워지는 삶의 원리/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차가운 바람이 겨울을 재촉한다. 마음이 시리다.‘이제 나이를 먹는구나!’ 물밀듯 밀려오는 아쉬움이다.‘보이지 않던 세상이 열리는구나!’ 불현듯 깨닫는 새로움이다. 아쉬움과 새로움 앞에 그동안 가까이하지 못했던 내면의 세계를 돌아본다. 마음의 그 깊은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상념에 젖는다. 계절이 가져다 준 축복의 시간이다. “100번 정도는 배낭을 꾸려야 산꾼의 도가 트인다.”산을 좋아하는 친구가 내뱉은 말이다. 신앙생활이든 일상생활이든 ‘채움’보다 중요한 것이 ‘비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까운 산을 오르기 위해 배낭을 꾸리면서도 돌아와 짐을 내려놓으면 요긴하게 쓰지 않는 물건이 쏟아져 나온다. 아직은 ‘비움’보다 ‘채움’에 연연한 모습을 발견하며 깜짝 놀란다. 영원한 것과 구별되는 덧없음, 그 덧없음에 집착하는 모습에 놀라는 것이다. 산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바로 그 자리에 묵묵히 솟아있다. 초겨울 산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맑은 호수였다.11월의 산은 골이 깊었다. 졸졸졸 흐르던 시냇물도 마르고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도 이미 낙엽이 되어 이곳저곳에 둔덕을 이뤘다. 산마루에 올라서자 옆에 있는 키 작은 나무는 멀쩡한데 10m는 족히 될 커다란 나무가 뿌리를 드러낸 채 나자빠져 있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들 잘 자라난 나무인데 폭우를 동반한 폭풍이 닥치자 어떤 나무는 살아남고 어떤 나무는 쓰러져 있다. 무엇이든 근본이 문제다. 산에 오르면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바람소리, 새소리, 벌레소리, 냇물소리, 별똥소리, 운무 걷히는 소리…. 소음이 난무하는 도시에서 막혔던 귀가 뚫린다. 기기묘묘한 능선을 타고 골짜기를 더듬으며 산머리에 오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부어 주신 생명이 보인다. 개미, 거미, 까치, 오리나무, 잣나무, 밤나무, 떡갈나무, 산딸나무…. 한참이나 취한 듯 자연을 마시고 초겨울의 산을 몸에 담는다. 사람들이 떼지어 오가는 거리에서 흐렸던 눈이 맑아진다. 그래서 산은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이 땅 위에 만들어진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다. 산을 오르면 첫 30분이 제일 힘들다. 문명의 이기에 익숙한 몸과 마음이 홀로 일어서 걷기에 더욱 그렇다. 그동안 1등과 양적 성장만이 최선인 줄 알고 달려왔던 그 중독증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 손으로 바위를 짚고 헉헉거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쉬면서, 숨을 고르면서 산봉우리에 올라서면 구슬땀이 흐르고 온몸이 허우적댄다. 정상을 향해 힘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믿었던 오만과 모든 역할이 떨어져 나간다. 모든 것이 비워지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태초의 모습이 가장 잘 남아있는 산을 담을 공간이 주어진다. 비로소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하늘과 해와 바람과 낙엽과 바람과 다람쥐와 나를 만난다. 속고 속이는 세상이다. 서로들 할퀴고 할퀸다. 그러고는 서로 잘못되었다고 삿대질한다. 목청껏 외치는 사람이 이기는 법이라며 계속 버틴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 교만한 사람이 득세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저 이기면 그만이다. 이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천국복음을 전파하며 각색 병으로 고통 받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와 모든 약한 것을 고쳤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무리를 보신 예수님은 이들이 보내는 환호에 응답하지 않으셨다. 이들을 뒤로 하고 묵묵히 산을 오르셨다. ‘비움’보다는 ‘채움’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치열한 삶의 세계에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기에 예수님은 그 귀한 생명의 말씀인 ‘산상수훈’을 무리를 피해 산에서 가르치셨다. 비움으로 채워지는 삶의 원리를 깨닫게 한다. 정말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이 복되게 살기 위해 삶의 목표로 삼아야 할 귀한 가르침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마5:3-10). 아멘. 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 [20일 TV 하이라이트]

    ●특선 다큐멘터리(EBS 오후 9시) 다섯 대륙을 넘나들며 오늘날의 인류문명을 일군 예술의 힘을 살펴본다. 각 에피소드는 역사와 정치, 과학, 고고학, 종교 등 인류가 낳은 문화 전반을 다룸으로써 인류문명 초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정신이 예술 작품들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를 과학적 시각으로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인사이드 월드-브라질의 야생동물 불법 거래(YTN 오전 10시25분) 브라질의 야생동물 불법 거래 규모는 연간 200억 달러에 달하고있다. 동물 불법 거래시장은 매일 3000여 곳에서 열리며 다양한 새와 파충류, 거북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의 수익성은 2000%를 넘고, 희귀종일수록 그 가격은 더 높아진다고 한다. ●결혼합시다(MBC 오후 7시45분) 재원 엄마는 나영네 부모와의 상견례 자리에 입고 나갈 옷이 마땅치 않아 걱정이다. 재원은 나영의 엄마에게 선물했던 것과 똑같은 가방을 사서 엄마에게 내밀고, 엄마는 마음에 들어하며 상견례 때 들고 나가겠다고 한다. 한껏 멋을 내고 나가는 양가 어머니들. 같은 가방을 들고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놀란다. ●한수진의 선데이 클릭(SBS 오전 7시40분) 상품 제작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디지털시대. 전 세계 산업디자인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 삼성 애니콜 휴대폰, 아모레 라네즈 화장품 등 공전의 ‘히트 상품’을 탄생시킨 이노디자인 김영세 대표의 성공스토리와 인생이야기를 들어본다.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해와 산, 물, 바위, 소나무, 학, 사슴 등이 그려진 십장생 병풍이 진품명품에 의뢰되었다. 다양한 소재들이 담고 있는 의미를 살펴본다. 반듯하게 써내려 간 8폭의 글씨. 올곧은 선비의 정신이 그대로 느껴진다. 조선 후기 문인인 기원 유한지의 글씨로 추정되는 이 의뢰품은 과연 어떤 뜻을 담고 있을까? ●싱싱 일요일(KBS2 오전 8시) 경남 밀양에서 감농사를 짓는 임윤철·우경숙씨 부부. 퇴근 후 새까맣게 변한 와이셔츠를 보며 전원에서 살겠노라 다짐했다는 부부는 지난 94년 연고도 없는 밀양의 한 산골에 터를 잡고 감나무를 심었다. 농사는 자연이 하는 일이고, 땅은 정직하다고 굳게 믿는 부부의 따뜻한 농촌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자.
  • [박완서 살아가는 이야기] 벌과 멧돼지

    [박완서 살아가는 이야기] 벌과 멧돼지

    엊그저께는 마당에 있는 돌확의 물이 살얼음 져 있는 걸 보았다. 올겨울 들어 첫얼음이었다. 영하의 날씨 중에도 올해의 마지막 꽃인 노란 국화는 아직은 제철인 양 씩씩하게 피어있다. 그러나 벌은 날아오지 않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마당에서 잉잉대던 그 많던 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까지도 날지 못하는 벌들이 양지쪽에서 빌빌 기어 다녔었는데. 한번은 손녀딸이 데리고 온 강아지가 별안간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뒤집어진 적이 있다. 낯선 사람을 봐도 짖지도 않던 순한 강아지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그렇게 죽는 소리를 치는지, 뒤집어져 떨고 있는 발끝을 살펴보았더니 벌이 붙어있었다. 날지 못하고 비실비실 기어 다녀도 벌은 벌이었다. 벌에 쏘여 죽은 사람도 있단 소리를 들은지라 동물병원엘 데리고 가야 하나, 약을 발라줘야 하나,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강아지는 뒤집어진 채 벌에 쏘인 자리를 핥기 시작했다. 어찌나 열심히 그리고 맹렬히 핥는지 우리는 그냥 바라볼 수밖에는 달리 손을 쓸 엄두를 못 냈다. 이윽고 강아지는 언제 그랬더냐 싶게 멀쩡해져서 사람을 앞질러 뛰기 시작했다. 낳자마자 아파트 속에 갇혀 인공사료 먹고, 텔레비전 보고, 문화생활(?)만 하던 강아지가 어디서 그런 신통한 응급조치법을 전수받은 걸까, 생각할수록 신기해하던 내가 같은 일을 당했다. 이번엔 마당이 아니라 실내에서였다. 어쩌다 실내까지 기어든 벌을 밟은 것이다. 양말위로 물렸는데도 악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 만큼 지독한 아픔이었다. 나에게 밟힌 게 먼저인지, 나를 쏜 게 먼저인지, 아마 동시겠지만 벌은 이미 죽은 것 같은데도 나는 그놈을 휴지로 누르고 또 눌러 잔인하게 복수를 한 다음 행동은 나도 모르게 강아지 흉내였다. 나는 내 입으로 벌에 물린 엄지발가락을 핥으려 했지만 입이 닿지 않았다. 강아지처럼 뒤집어져서 애를 써보았으나 역시 닿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요가라도 배워볼 걸, 굳어버린 몸이 한심스러웠다. 그래도 나는 강아지한테 배운 응급조치법을 단념하지 않고, 약 대신 손가락으로 내 입의 침을 묻혀다가 물린 자리의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여러 번 발라주었다. 그 후 발등이 좀 부어오르고 그 자리가 가렵다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침을 안 발랐어도 그 정도로 치유됐을 것이나 나는 아직도 강아지한테 배운 자연 치료법을 신기해하고 있다. 첫얼음을 보고 나서 앞산을 바라보니 곱게 물들었던 나무들이 그 새 많이 헐벗었다. 우리 동네를 안아주고 있는 산은 요새 멧돼지가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다고 해서 유명해진 아차산이다. 인가나 아파트 주차장까지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친지나 자식들로부터 염려해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지방에 사는 딸은 전화 걸 때마다 엄마 대문 잘 잠그란 소리를 잊지 않는다. 현관문은 잘 잠그지만 대문 단속은 허술한 편이어서 한번은 취한 사람이 마당으로 들어와 한동안 법석을 떤 일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취한(醉漢)은 골칫거리였지만 멧돼지가 쓱 대문을 밀고 들어올 생각을 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길가다 마주치면 지레 까무러칠지도 모르는 주제에 말이다. 만일 멧돼지를 만났을 때에는 우산을 펴들라는 대처법을 신문에서 읽은 것 같다. 시력이 나쁘니 바위로 착각할 거라나. 멧돼지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아나. 착각할 거라는 생각이야말로 인간의 착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멧돼지한테 공격당할 확률은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이나 사나운 동네 개한테 물릴 확률에 비해 거의 제로에 가까우련만 사람들의 호들갑은 사뭇 요란하다. 이렇게 인간에게 집단 거주지가 들켰으니 종족을 보존하려면 멧돼지들 쪽에서 시급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그 집단에도 원로(元老) 멧돼지가 있을 것이다. 서둘러 젊은 것들, 어린 것들을 소집해서 빨리 인간이 얼마나 모진 동물인지, 총이나 마취 총으로도 부족해서 만일 멧돼지 요리법을 개발한다든지, 쓸개나 신에서 신효한 정력제가 들어있다고 떠벌이는 인간이라도 나타난다면 씨도 안 남아 날 테니, 제발 대가 안 끊기도록 자중자애하고 먹이를 이 산중에서 자급자족하자고 눈물로써 호소하길 바란다.
  • [즐겨요 New 스포츠] (5) 음악줄넘기

    [즐겨요 New 스포츠] (5) 음악줄넘기

    “우린 줄 하나만 있으면 끝∼.” 회사원 전현석(30)씨는 줄넘기로 한달여 만에 몸무게 3㎏을 줄였다. 날마다 출근 전 500개, 퇴근 뒤 500개씩 줄넘기를 한 ‘소득’이다. 줄넘기는 아주 인간다운(?) 종목이다. 뉴스포츠라고 부르기가 뭣할 수도 있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익혀 누구나 낯설지 않다. 특별한 기술이나 재주가 없어도 그만이다. 여기에다 최근 들어서는 음악을 틀어놓고 하는 음악 줄넘기가 보급돼, 너무 지루해 오래 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운동이라는 단점을 보완했다. 두 발을 모아 뛰기만 하는 이른바 ‘바운스 스텝’(Bounce-step)은 따분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음악 줄넘기는 줄넘기 강도를 개인의 숙련도나 체력에 맞춰 조절할 수 있고, 오래 뛰기나 이동 뛰기에 적합한 다양한 스텝이 있어서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활체육 원칙에 맞다. 대표적인 3대 유산소 운동으로는 만보 걷기, 조깅, 줄넘기가 손꼽힌다. 다리와 심장을 튼튼하게 해주는게 공통점이다. 그러나 걷기는 자동차 보급과 시간적 제한 때문에, 조깅은 코스의 제한, 줄넘기는 앞서 얘기한 지루함과 다른 놀거리의 확산 때문에 밀려났다. 음악 줄넘기는 사라져가는 줄넘기의 ‘새마을운동’ 격으로 탄생한 셈이다. 겉보기와 달리 줄넘기는 아주 강도가 높은 유산소 운동이다.10분만 뛰면 1500m를 전력으로 질주한 것과 맞먹는다는 게 체육계 이론이다. 스트레스 해소는 기본이다. 각선미, 근력 강화에 도움을 준다. 신진대사를 촉진, 미용효과와 변비 등 질환치료 효과도 따른다. 특히 생장점을 자극해 키가 자라지 않는다고 골머리를 앓는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딱’이다.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두발 모아 뛰기, 뒤로 돌리기, 가위바위보 뛰기, 옆으로 흔들어 뛰기, 넓적다리 들고 뛰기 등 응용동작이 수두룩하다. 민속 고무줄 놀이도 가능하며 단체로 하는 쌍줄 두 사람 시간뛰기, 맞서서 함께 뛰기, 매스게임 등도 나왔다. 음악 줄넘기 경기는 12개 종목으로 나뉜다. 짧은 줄 1분간 빨리 넘기,2중 뛰기,2중 뛰기 단체전, 뒤로 2중 뛰기, 쌍줄 두사람 시간뛰기, 엇걸어 2중 뛰기, 엇걸었다 풀어 2중 뛰기, 개인 자유연기 등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줄넘기 최고기록은 무려 1만 9783개로,1분에 100개를 뛰었다고 쳐도 3시간 이상이 걸렸다는 얘기가 된다. 음악 줄넘기 창시자이자 한국음악줄넘기 회장인 이왈규(86)옹은 “단순히 살을 빼는 게 아니라 평생건강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다이어트와는 뚜렷하게 다르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마니아] 용산구청 산행동호회 ‘마루금’ 백두대간 종주

    [마니아] 용산구청 산행동호회 ‘마루금’ 백두대간 종주

    “주말을 이용해 23회에 걸쳐 백두대간을 오르내리며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백두대간으로부터 배운 것을 용산구 발전을 위해 풀어내야죠.” 산을 좋아하는 서울 용산구청 직원 5명이 지난해 3월부터 2년에 걸쳐 백두대간 남한 쪽 전구간 734.65km를 밟았다. 지리산 성삼재에서부터 진부령까지다. 이들은 아마추어들이지만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전문 산악인처럼 바뀌었다. 용산구의 대표 ‘산(山)사람’이 된 이들은 “통일이 되면 진정한 백두대간 종주를 반드시 마무리짓겠다.”고 입을 모았다. ●산맥과 산맥,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마루금’ 용산구청 주민자치과 박승일(41)씨를 대장으로 김명선(40·원효로 제1동)·서오성(37·총무과)·신성철(34·총무과)·윤일영(52·재난안전관리과)씨 등 5명의 초보 산악인들은 백두대간 종주를 하기 위한 팀 이름을 ‘마루금’이라고 정했다.‘마루금’은 산맥과 산맥,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선이라는 순우리말이다. 평소 산을 좋아하는 박승일씨가 2003년 용산구 직원 전체가 참여한 가을산행 뒤풀이 자리에서 몇몇 친한 사람에게 백두대간 종주를 제의한 것이 ‘마루금’탄생의 시작이다. 백두대간 종주가 얼마나 어려운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식과 정보는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단지 ‘한 번 해보자.’는 강한 의지만 있을 뿐이었다. 박승일 대장은 “농담처럼 던진 말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면서 “2년 가까이 종주를 하면서 위험한 순간이나 중단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동료의식으로 잘 견뎠다.”고 말했다. ●첫 등반때 과태료 물기도 ‘마루금’의 첫 등반은 지난해 3월12일 지리산에서 시작됐다.‘소구간 종주법’(구간을 작게 나눠 종주하는 방법)을 이용해 종주노선은 ‘시남종북형’(始南終北形·남쪽 지리산에서 시작해 북쪽 진부령에서 마치는 유형)을 택했다. 첫 등반부터 ‘마루금’은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당시 지리산은 산불방지 출입통제 기간이었기 때문에 산행할 수 없었지만,‘마루금’은 아무것도 모르고 산행을 감행했다. 결국 공무원이 또 다른 공무원인 지리산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적발돼 과태료 10만원씩을 부과받은 것이다. 김명선씨는 “서울 용산구청 공무원이라는 사실이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다.”면서 “공무원은 어딜 가도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루금’은 지리산 천왕봉을 시작으로 설악산 진부령까지 백두대간 굽이굽이 총 734.65km 구간을 23회 산행, 총 42일간의 일정으로 종주에 성공했다. 그동안 오른 산이 지리산·덕유산·속리산·소백산·태백산·오대산·점봉산·설악산 등 이다. 산을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용산구청 직원들의 응원은 계속 늘어갔다. 박승일 대장은 “중간에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자꾸 늘어만 가는 구청직원들의 응원과 관심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면서 “이번 백두대간 종주는 결국 용산구청 전체의 힘”이라고 말했다. ‘마루금’의 또 다른 대원인 서오성씨는 “마지막 등반일이었던 10월22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새벽 미시령에서 맞은 하얀 첫눈과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설경은 백두대간 종주 완성을 축하하는 하늘의 선물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마루금’은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벌써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나간 우리나라 13정맥(남한 9정맥·북한에 4정맥)을 모조리 오르는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의 기쁨을 원동력으로 이르면 내년부터 남한쪽 9정맥을 등반할 계획이다. 또 통일이 되면 나머지 대간과 북한 지역의 4정맥도 올라 반드시 백두대간 13정맥을 넘겠다는 야무진 포부도 밝혔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마루금’ 백두대간 종주일지 (1)성삼재∼만복대∼정령치∼여원재 ▲2004년 3월12일(금)∼3월13(토) ▲백두대간 첫 번째 산행. 산불방지 출입통제 기간에 산행을 했기 때문에 적발돼 과태료 10만원씩 부과받음. (2)여원재∼고남산∼치재∼봉화산∼중재 ▲2004년 4월9일(금)∼4월11일(일) (3)중재∼백운산∼영취산∼육십령 ▲2004년 5월7일(금)∼5월8일(토) (4)중산리∼지리산∼성삼재 ▲2004년 5월23일(일)∼5월25일(화) (5)육십령∼덕유산∼빼재∼삼봉산∼소사고개∼대덕산∼덕산재 ▲2004년 6월10일(목)∼6월13일(일) ▲산장에서 식수도 제대로 구하지 못해 고생. 야박한 식당 주인 때문에 편히 쉬지도 못한 곳. (6)덕산재∼부항령∼삼도봉∼밀목재∼화주봉∼우두령 ▲2004년 7월16일(금)∼7월18일(일) ▲폭우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산행을 감행.(7)우두령∼황학산∼궤방령∼가성산∼눌의산∼추풍령∼금산∼작점고개 ▲2004년 7월23일(금)∼7월25일(일) (8)작점고개∼용문산∼큰재∼백학산∼지기재∼신의터재 ▲2004년 8월13일(금)∼8월15일(일) (9)신의터재∼화령재∼봉황산∼비재∼형제봉∼속리산∼밤티재 ▲2004년 9월10일(금)∼9월12일(일) (10)밤티재∼청화산∼조항산∼대야산∼버리미기재 ▲2004년 10월8일(금)∼10월10일(일) (11)버리미기재∼희양산∼이화령∼조령산∼조령3관문 ▲2004년 10월22일(금)∼10월25일(월) ▲고도차가 심한 곳이어서 산행이 힘들었지만 가을 단풍의 전경이 힘든 것을 모두 보상해 줬다. (12)조령3관문∼포암산∼대미산∼차갓재 ▲2004년 11월12일(금)∼11월14일(월) (13)차갓재∼황장산∼벌재∼저수재∼도솔봉∼죽령 ▲2004년 12월11일(토)∼12월12일(일) (14)죽령∼소백산∼고치령∼마구령∼갈곶산∼늦은목이 ▲2005년 1월 22일(토)∼1월23일(일) ▲소백산 칼바람을 맞으며 산행했지만 설경의 아름다움은 잊을 수 없는 곳. (15)늦은목이∼선달산∼구룡산∼태백산∼화방재 ▲2005년 3월25일(금)∼3월27일(일) 16화방재∼함백산∼매봉산∼피재∼건의령∼덕항산∼황장산∼댓재 ▲4월15일(금)∼4월17일(일) 17댓재∼두타산∼청옥산∼백봉령 ▲2005년 5월27일(금)∼5월29일(일) 18백봉령∼석병산∼삽당령∼닭목재∼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 ▲2005년 6월10일(금)∼6월12일(일) 19대관령∼선자령∼소황병산∼노인봉∼진고개 ▲2005년 7월15일(금)∼7월16일(토) ▲대관령 드넓은 목초지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 백두대간의 보너스 구간이란 말이 실감난다. 20진고개∼동대산∼두로봉∼약수산∼구룡령 ▲2005년 8월13일(토)∼8월15일(월) 21한계령∼점봉산∼단목령∼조침령∼쇠나드리∼갈전곡봉∼구룡령 ▲2005년 9월23일(금)∼9월25일(일) 22미시령∼공룡능선∼희운각∼대청봉∼한계령 ▲2005년 10월13일(목)∼10월15일(토) 23미시령∼상봉∼신선봉∼병풍바위∼마산∼진부령 ▲2005년 10월21일(금)∼10월23일(일)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조용섭의 산으路] 경기 가평 명지산(1276m)

    [조용섭의 산으路] 경기 가평 명지산(1276m)

    경기도 북단, 한북정맥에서 남으로 가지친 2개의 산줄기(오뚜기고개→귀목봉, 도마치고개→화악산)는 한북정맥과 더불어 조종천과 가평천이라는 큰 물길을 만들어 북한강으로 흘려보낸다. 이 거대한 산군(山群)의 중심에 우뚝 서서 ‘밝은 지혜(明智)’라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으로 가평 땅을 굽어보는 곳이 바로 명지산(1276m)이다. 산길은 경기 가평군 북면 익근리 주차장을 출발, 오른쪽의 능선으로 붙어 683.8m봉∼사향봉(1013m)∼제 4봉(1079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다시 4봉 갈림길로 되돌아와 익근리계곡으로 내려서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로 잡았다. 이번 코스의 주요 경유지인 사향봉 오름길은 주차장에서 물레방아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오른쪽 산사면 연두색 철망 시설이 있는 곳의 전방 10여m 지점을 들머리로 삼았다. 식수 구할 곳이 마땅치 않으므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리본을 따라 숲으로 들어서면 이내 오른쪽으로 길이 꺾이고 무덤이 나온다. 여기서는 길 찾기가 조금 혼란스러우나 당황할 필요는 없다. 무덤 왼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사면을 잠시 치고 오르면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능선을 만나게 된다. 이후의 산길은 뚜렷하다. 낙엽송 숲, 잎이 말라버린 생강나무 군락, 서걱거리는 낙엽으로 호젓한 산길은 낭만이라는 생각을 미처 떠올리기도 전에 된비탈로 바뀌며 숨을 가쁘게 한다. 이제 고도를 무려 1000m 가까이 올려야 하는 오름길의 시작이니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약 1시간10분 힘들게 진행하면 삼각점이 있는 683.8m봉이 나오고,40분 정도 올라서면 거대한 바위지대를 만나게 된다. 왼쪽 급사면 산자락을 우회하며 길이 이어진다. 사향봉 옆 휴식하기 좋은 너럭바위까지는 30여분 더 땀을 흘려야 한다. 사향봉은 봉우리 표시가 없어 애매하나 너럭바위 옆의 전망 막힌 봉우리를 일컫는 듯하다. 고도 1000m를 넘어선 산길은 비로소 수월하게 이어지며 고사목 등이 어우러진 숲은 적요하다. 바위지대를 우회하여 4봉(1079m)에 닿으면 길림길이 나오는데, 이정표의 익근리 방향은 나중에 하산할 길이다. 약 30분 가파른 길을 올라서면 정상에 닿는다. 사방으로 트인 이 곳의 조망은 막힘이 없다. 동북방향의 화악산이 가깝고, 서북방향으로는 한북정맥의 연봉들도 늠름하다. 하산은 4봉∼익근리계곡 길 외에,1250봉(2봉)으로 이동한 뒤 백둔봉∼익근리로 내려서거나, 정상에서 2봉쪽으로 100여m 진행하다가 왼쪽 급경사 길 계곡으로 곧장 내려서는 길도 있다. 또 2봉에서 귀목고개나 아재비고개를 거쳐, 하면 상판리로 넘어가는 잘 알려진 횡단코스도 있다.4봉으로 되돌아가 급경사 내리막길로 익근리계곡 갈림길에 닿은 후 계곡 옆 길을 따라 승천사를 지나 주차장에 이르며 산행을 마친다. 하산시간 약 2시간20분. ■ 교통 자가용:서울 46번 국도(서울∼춘천) 이용, 청평을 지나 가평에서 75번 국도(김화, 화천 방면)로 바꾸어 타고 접근. 대중교통:서울 동서울터미널(일 75회 운행), 상봉터미널(52회)에서 춘천 혹은 화천 행 직행버스 이용해 가평 하차. 기차:청량리∼가평(경춘선 무궁화호 일 19회). 가평∼익근리:가평터미널에서 적목리 용수목 행 군내버스(5회) 이용(터미널 031-582-2308). ■ 숙박 익근리 주차장 인근에 식당과 매점을 겸한 민박집이 많다. 아래촌민박(582-0506)등 ■ 참고 늦가을 산자락은 어둠이 빨리 온다. 식사와 휴식시간 등을 감안해 적어도 오전 5시까지는 하산하는 것이 좋다. 야간산행의 경우에 대비해 랜턴을 반드시 준비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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