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바위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030
  • 토플 ‘야바위 접수’

    국내 토플시험 응시생들이 두 번 울었다. 인터넷 토플(IBT·Internet-based TOEFL) 출제기관인 미국 교육평가원(ETS)의 ‘거짓말’ 때문이다. ETS는 지난 12일 홈페이지(www.ets.org)에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지역에서 7월 접수 창구를 개방한다.”고 공지했다. 당초 7월 시험 접수 시작일로 알려진 지난 10일 이후 3일째 접수가 되지 않아 수험생들의 불만이 일자 표시한 공식 입장이었다. 그러나 ETS는 공지와는 달리 13일 오전 제한적으로 시험을 접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ETS의 공지만 철석같이 믿고 접수를 시도하지 않았던 수험생들은 “또 속았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ETS는 이날 오전 11시10분쯤부터 1시간 정도 접수 창구를 ‘깜짝 개방’했다. 전화로 등록을 받는 톰슨 프로메트릭 콜센터 한 관계자는 “오전 11시 조금 넘어서부터 서울 한양대와 충남 천안 나사렛대 등 2곳에서 인터넷과 전화를 통해 등록을 받았고,1시간 만에 마감됐다.”고 밝혔다. 시험장 한 곳이 수용할 수 있는 응시자 인원이 평균 100명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오는 7월7·14·28일 세 차례 시험에 접수한 수험생은 고작 몇 백명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수험생들은 이날 깜짝 접수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어이가 없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분노했다. 서울대 대학원생인 김모(28)씨는 “며칠 밤을 꼬박 새워 접수를 시도했지만 로그인 자체가 안 됐는데, 공지도 안 하고 접수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토플 관련 사이트도 ETS에 대한 불만으로 하루 종일 뜨겁게 달아올랐다. 토플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한 유명 사이트에는 ETS를 질타하는 1000여건의 글이 올랐다. 한 네티즌은 “미국에서는 한국에 물어보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주관하니까 모른다고 하더라. 도대체 누가 책임을 지는 것이냐.”며 화를 참지 못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재수 없이 자리를 비웠다가 등록을 못했다. 지쳐서 포기하겠다.”고 글을 올렸다. 그러나 한미교육위원단 측은 “시험 장소를 4곳에서 25개대로 늘렸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면서 “공급보다 수요가 너무 많아서 이렇게 됐다. 지금은 등록할 자리가 없으니까 신청이 적게 되는 거지 아예 접수가 안 되는 상황이 아니다.”는 어설픈 해명만 되풀이했다. 이렇듯 토플 대란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되풀이되자 일부에서는 “더 이상 토플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서서히 나오고 있다. 국내 영어학원의 한 관계자는 “무조건 토플이나 토익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텝스나 토셀 등 국내에서 개발한 새로운 공신력 있는 토종 시험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토플의 당초 취지와는 달리 국내 중·특수목적고와 대학 진학을 위해 중·고등학생들이 대거 응시하는 국내 제도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창덕궁 ‘속살’

    창덕궁 ‘속살’

    창덕궁에는 비밀정원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창덕궁의 백미, 바로 후원이다. 흔히 ‘비원’으로 알려진 후원은 25년 동안 굳게 잠겨 있다가 2004년 5월 ‘특별관람’이란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도 목요일에만 자유관람이 가능하다. 덕분에 조선왕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 찾아낸 천연 오아시스인 셈이다. ●입구엔 500년 묵은 느티나무 창덕궁 후원은 10만평 규모로 제법 크다. 그러나 그 입구는 소박하기 그지없다.500년 된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흙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후원에 닿아 있다. 권혁주 해설가는 “우리나라 전통정원은 자연과 어우러져 조성했다.”면서 “자연을 그대로 살린 채 정자와 연못, 나무만 더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정원이 자연이고, 자연이 정원이 된다. 후원에서 처음 만나는 연못은 드라마 ‘대장금’촬영지 부용지다.‘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담아 네모난 연못에 둥근 섬을 만들었다. 정조가 신하들과 낚시를 즐겼다는 부용정, 규장각이 있던 주합루, 왕족의 휴식공간이던 영화당이 연못을 둘러싸고 있다. 귀룽나무는 푸른 나뭇가지를 펄럭이며 역사를 속삭인다. 이곳을 사랑한 정조와 영조는 주합루와 영화당의 현판을 직접 썼다. ●연꽃을 아끼던 숙종의 손길 애련지는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애련정은 연꽃을 아끼던 숙종이 1692년에 조성했다.6월이면 하얀 연꽃이 장관을 이룬다. 장마철 굵은 비가 연꽃잎에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보자.‘자연이 인간을 위로한다.’는 말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관람지로 가는 길목에서는 진달래꽃이 반기고, 겨울을 이겨낸 풀꽃들이 수줍게 고개를 든다.7∼8월에는 주황색 원추리 꽃이 이곳에 만발한다. 관람지 모양은 한반도와 비슷하다. 그래서 한때 ‘반도지’라고 불렀는데 일제 초기에 연못 모양이 변형됐다고 알려지면서 이름을 바꿨다. 관람지는 정자 관람정에서 따온 말이다. 관람은 배를 띄워 구경한다는 뜻. 부채꼴 모양의 정자를 배에 비유했다. 왕세자가 독서하던 폄우사, 정조의 통치글이 새겨진 존덕정에서 관람지를 내려다보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후원의 끝자락엔 옥류천 흘러 후원의 끝, 옥류천에 도달하기 전에 취규정을 만난다. 창덕궁에서 가장 높은 정자라 후원이 한눈에 들어온다.5월이면 야생화와 나비가 가득하고 울창한 숲 속을 작은 동물들이 뛰어다닌다. 수백년간 내려온 ‘생태학습장’이다. 창덕궁 북쪽 깊숙한 곳에서 옥류천이 흐른다. 이곳에서 임금과 신하가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다. 인조 14년(1636년) 커다란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둥근 홈을 만들어 맑은 물이 바위를 돌아 폭포처럼 떨어지게 만들었다. 오늘날에도 이 물이 흘러넘친다. 소요암에는 숙종이 1690년 옥류천을 두고 지은 오언절구시가 새겨져 있다. 飛流三百尺(비류삼백척·폭포수 물길이 300척에 이르고)/遙落九天來(요락구천래·아득히 먼 하늘에서 떨어진다)/看是白虹起(간시백홍기·이를 보니 흰 무지개가 일고)/飜成萬壑雷(번성만학뢰·골짜기에 우레가 가득하다.) 과장법임에 틀림없지만 조선의 임금들이 창덕궁 후원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다. ● 관람 노하우 - 전화 02)762-0648 - 교통 1·3·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 - 언어 한국어 -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1시·2시 (목요일 자유관람) - 요금 5000원 - 홈페이지 www.cdg.go.kr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산이 좋아 산으로] 강원 강릉 괘방산

    [산이 좋아 산으로] 강원 강릉 괘방산

    괘방산(掛膀山)은 강원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와 임곡리·모전리·안인진리 사이에 있는 높이 339m의 산으로 화비령 북쪽 줄기에 있다. 옛날 과거에 급제하면 이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이곳에 커다란 두루마기에 급제한 아들과 아버지의 이름을 나란히 써놓은 방을 붙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임금에게 합격증서인 홍패(紅牌)와 백패(白牌)를 받으면 그 집안의 하인이나 방꾼들이 집으로 희소식을 알리고 괘방산에 방을 걸었다고 한다. 괘방산에는 ‘안보체험 등산로’라는 산길이 나 있다. 안보체험 등산로는 안인진과 정동진을 잇는 능선에 있다. 1996년 9월 잠수함으로 침투했던 북한 무장간첩이 도주했던 길로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강릉시청 산악회 등에서 등산로로 개발해 당시 무장간첩의 도주로를 따라 청학산과 칠성산(953m)까지 개설됐다. 청학산에서 능선을 따라 계속 가면 망기봉(784m), 만덕봉(1035m), 석병산(1055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등줄기와 만나게 된다. 괘방산 등산로는 해안선에서 시작해 표고차 400m를 오르내리는 능선종주다. 푸른 동해바다와 백두대간의 준령이 한눈에 들어오며 거리에 비해 힘들지 않고 산행시간도 짧다. 산행 들머리는 무장간첩 침투로인 함정전시관과 안인진2리 삼거리로 정할 수 있다. 코스는 삼우봉∼괘방산∼괘일재∼당집∼화비령∼청학산∼밤나무정으로 이어지는 약 8㎞의 거리로 2시간40분이 걸린다. 역방향인 정동진을 들머리로 할 수도 있으나 주차에 부담이 없고 일출을 마주보고 산행할 수 있는 안인항 앞 들머리가 낫다. 안인항 오른쪽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주차장 뒤편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동해바다와 아담하고 정겨운 안인항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짙은 솔내음과 바다냄새를 맡으며 10여분 오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 길은 능선으로 바로 올라서는 길이고 곧바로 가면 사선으로 능선에 붙는다. 첫 능선을 지나는 오솔길 좌우로는 진달래가 에스코트를 하듯 도열해 있다. 바다와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보면서 걷다 보면 작은 나무그늘과 넓은 공터가 있는 패러글라이더 활공장이 나온다. 발 아래로는 안보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용기와 바다, 안인항이 내려다 보이며 눈앞에는 삼우봉과 괘방산 정상이 건너다 보인다. 다시 내리막길을 따르면 길 끝에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임해 자연휴양림과 안보전시관으로 가는 길이다. 임도를 버리고 앞쪽에 보이는 오솔길로 접어들어 오르면 돌조각이 깔린 길이 나오며 꽤나 큰 돌무더기를 만나게 된다. 괘방산 성터다. 괘방산 성터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멋진 바위가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데, 이곳이 삼우봉 정상이다. 삼우봉은 키 큰 잡목으로 시야가 좋지 않으며 여기에서도 안보전시관과 함정전시관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평탄한 오솔길을 700m 정도 가면 TV중계탑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괘방산 정상이 있다. 중계탑을 왼쪽으로 돌아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게 되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 고려산성과 ‘등명락가사’가 나온다. 오대산 월정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절이다. 건너편 오솔길을 따라 200m 정도 내려오면 괘일재다. 이곳에는 6·25 전쟁 사적비로 갈림길이 나 있다. 괘일재를 지나 능선으로 400m 정도 오르면 시원한 나무그늘에 나무의자가 있고 산 아래로 바다와 ‘하슬라 아트월드’가 보인다. 예약이 되어 있다면 이 길로 하산해 멋진 예술공원을 관람하는 것도 좋다. 다시 500m를 가면 당집사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우측 능선은 화비령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는 우측 사선으로 오솔길이 나 있는데 100m 정도 내려가면 안보체험 등산로의 유일한 샘터가 있다. 갈림길에서 진행 방향대로 정동진을 향하면 삼거리 임도가 나온다. 여기에서도 곧장 가면 된다. 오리나무 숲을 지나고 키 작은 소나무 숲을 지나 183고지에 도착하면 조각공원과 참소리박물관이 있는 큰 배가 산 위에 보인다. 어느 순간 잊었던 자동차 소리가 들리면 정동진에 도착한다. 이때에서야 진달래 길도 끝이 난다. 이영준 월간 MOUNTAIN 기자 # 여행정보 정동진이 널리 알려지면서 정동진이나 안인리 일대에는 깨끗하고 좋은 숙박업소가 많다. 먹거리는 산행 들머리에 있는 (구)일미횟집(033-644-6139)의 시원한 물회(1만원)와 회덮밥(8000원)이 유명하다. 옛 영동고속도로에서 정동진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옛날가마솥보리밥집(033-644-5868)도 맛있고, 정동진역 앞에 있는 관제탑해물(033-644-5668)은 해물탕이, 금진리 헌화로 입구에 있는 쉼터(033-644-5138)는 감자옹심이와 감자떡으로 유명하다.
  • 제니 “나랑 같이 에버랜드서 놀아요”

    경기 용인시의 에버랜드가 12일 19개월간 정성스럽게 준비한 유인원(類人猿)류 전용 테마공간 ‘프렌들리 몽키밸리(Friendly Monkey Valley)’의 문을 연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친환경적 테마 동물원이다. 실내외 3000평 공간에 오랑우탄, 침팬지, 흰손긴팔원숭이 등 유인원 3종 18마리와 일본원숭이, 망토원숭이, 여우원숭이 등 10종 127마리의 원류(猿類) 원숭이가 전시돼 있다. 대부분 이곳에서 나고 자라 에버랜드가 고향인 원숭이들이다. 테마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큰 틀은 ‘인간과 원숭이의 교감’이다. 쇠창살을 없애고 그 자리를 통유리와 연못·바위 등 자연 조형물로 대체했다. 동물들의 특성에 맞는 환경을 꾸며줌으로써 활발한 행동을 유도하고 상호교감할 수 있는 행동전시 기법을 도입해 관람객과 동물들간의 벽을 허문 것이다. 몽키밸리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전시기법은 오랑우탄 타워, 일명 ‘오-타워(O-Tower)’다. 오르내리기를 좋아하는 오랑우탄의 습성을 고려해 높이 14∼21m에 이르는 수직타워 3개를 ‘스카이 워크’라 불리는 굵은 로프로 연결해 놓았다. 총 길이는 38m. 사다리를 타고 타워에 오른 다음, 스카이 워크를 따라 아슬아슬하게 돌아다니는 오랑우탄들의 묘기가 볼 만하다.‘침팬지 버블’도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침팬지 버블은 침팬지 서식지 바닥에서 우주선 모양으로 튀어나온 지름 1m짜리 투명 반구. 침팬지의 숨소리가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다. 비행기 조종석에 사용되는 특수 강화유리라 깨질 염려는 없지만, 자기 구역에 침범한 이방인을 보고 흥분한 침팬지가 유리를 두드리면 은근히 겁도 난다. 노약자나 임산부 등은 주의해야 할 듯. 5∼6세 아이의 지능을 가졌다는 침팬지 루디는 이곳의 자랑거리다. 그림을 그리는 침팬지로 온라인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던 루디는 사람의 행동을 눈여겨 봐두었다가 비슷하게 흉내를 내 감탄사를 자아낸다. 이밖에도 40도 뜨거운 물로 채워진 ‘몽키 스파’에 몸을 담근 일본원숭이, 길이 100m 로프에서 줄타기 재주를 뽐내는 흰손긴팔원숭이 등도 볼거리이다. 어린이를 위한 ‘몽키댄스’와 침팬지 언어를 배우는 시간도 따로 마련했다. 에버랜드 입장객이면 별도 관람료 없이 둘러볼 수 있다.(www.everland.com,031-320-5000)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9) 충남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9) 충남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

    전북 무주와 충북 영동, 충남 금산 3도의 끝에 방울처럼 매달려 있는 강(江)마을 방우리. 행정구역은 충남 금산군 부리면이지만 금산에서는 이 마을로 들어갈 수 없다. 최근에 다리가 놓인 ‘육지 속의 섬’ 무주읍 내도리 앞섬마을을 지나 좁고 꼬불꼬불한 강변 길로 3㎞쯤 산속 깊이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다. 방우 마을 어귀에 이르면 10여 m 높이로 우뚝 솟은 절벽 바위가 길손을 마중한다.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을 전경은 잔잔한 강 수면에 반사되어 절묘한 대칭을 이룬다. 마을은 동네 어귀에서 둘로 갈려 본 마을인 큰방우리와 재 너머 ‘농원’으로 불리는 작은방우리로 나뉜다. 큰방우리 13가구, 작은방우리 11가구, 모두 합쳐 40여명의 주민들이 고추를 기르고 삼밭을 갈며 살아간다. 두 마을 사이에는 산 밑으로 터널을 파 끌어들인 강물을 낙하시켜 전기를 얻는 발전시설이 있다. 봄 기운이 완연한 4월. 주산물인 인삼밭에는 새 버팀대를 설치하고 그늘막을 덮는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해 가을 파종했다는 설재진(54)씨.“인삼농사는 최소 4년이 넘게 걸리고 품도 많이 들어간다.”며 바쁘게 손을 놀린다.4년생을 출하하면 2평에 15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주민들은 고추와 포도 농사도 짓는다. 인삼 농사를 한번 지으면 한동안 땅을 쉬게 한 뒤 지력을 회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숙원은 마을 진입로가 시원하게 뚫리는 것이다. 좁고 얄팍한 시멘트 임시도로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꼬불꼬불한 길에서 차라도 마주치면 꼼짝을 못한다. 험준한 악산(嶽山)에 둘러싸여 해빙기나 장마철에는 낙석도 걱정거리다. 한명 밖에 없는 초등학생도 자전거를 타고 무주까지 나가서 교육청 통학버스를 타야 한다. 꽃다운 열여덟에 무주에서 시집왔다는 이순임(75) 할머니.“행정구역만 충남이지 생활은 무주랑께. 장도 무주 5일장 가고 핵교도 다 무주서 댕김시롱…. 무주로 보내 달라 캐도 안 보내 주잖여.” 마을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황삼례(92) 할머니도 “기자 양반, 쓸디 없는 것 묻지 말고 핸드폰이나 잘 되게 안테나나 세워주쇼.”라고 말한다. 떠서 그냥 마셔도 될 것 같은 맑은 강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노을이 진다. 잡목 사이의 자줏빛 진달래와 해질 녘 햇살을 받아 노랗게 변색한 갈대가 강바람에 흔들린다. 사진 글 이호정기자hojeong@seoul.co.kr
  • [Seoul In] 생태교실·역사탐방강좌 운영

    종로구(구청장 김충용) 오는 11월까지 삼청공원 생태교실과 역사탐방 강좌를 운영한다. 삼청공원의 산책로와 야생화원, 생태연못 등에서 환경과 서울성곽의 역사 등을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탐방 코스는 삼청공원 산책로∼말바위∼팥배나무 숲∼소나무 숲∼서울성곽 등이다. 계절에 따라 야생화, 공원의 새, 천연 염색 등에 대한 특별강의도 한다. 생태교실은 4·6·8·10월 넷째주 토요일 오전 10시∼낮 12시, 역사탐방은 7·9·11월 같은 시간이다. 매회 40∼60명을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공원녹지과 731-1459.
  • 봄은 벌써 쏙…쑥 나온 여름

    ●반달곰 5∼12일 일찍 겨울잠 깨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올 겨울 날씨가 기상관측 이래 가장 포근해 지리산 반달곰이 예년보다 일찍 겨울잠에서 깨어났다. 이달 중순쯤에는 일시적으로 기온이 치솟을 전망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8일 “지리산 반달가슴곰 13마리 가운데 6마리가 겨울잠을 끝내고 예년보다 5∼12일 이른 지난달 27일부터 활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겨울잠에 들어간 지리산 반달가슴곰들은 지난달 27일 북한산 3년생 수컷 ‘송원9’가 전남 구례 노루목 바위굴 잠자리에서 나온 것을 시작으로 4일까지 북한산 3마리와 연해주산 3마리 등 6마리가 활동을 시작했다. 공단은 나머지 7마리도 10일을 전후해 모두 동면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내다봤다. 공단은 올 봄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졌고 지난달 말 지리산 지역의 낮 최고 기온이 20도 안팎까지 오른 바람에 예년보다 일찍 깬 것으로 분석했다. ●이달 중순 일시적 기온 상승 기상청은 이달 중순에는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맑고 건조한 날이 많은 가운데 남서류의 영향을 받아 일시적으로 평년기온(6∼14도)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기상청 김승배 통보관은 “이달 중순쯤 한반도에 남서류의 따뜻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일시적으로 기온이 치솟을 것”이라면서 “이는 겨우내 북쪽에서 밀려온 찬 공기의 영향을 받다가 남쪽 공기가 들어오면서 나타나는 계절적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민간연구소인 삼성지구환경연구소도 지난겨울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포근했고,76개 기상관측 지점에서의 일 최고기온이 지속적으로 경신되고 있다며 올해 때이른 무더위를 예고했다. 류찬희 임일영기자 chani@seoul.co.kr
  • 북악산 40년만에 ‘시민 등산길’로

    북악산 40년만에 ‘시민 등산길’로

    서울 북악산 등산로의 전 구간이 개방됐다. 흔히 자하문으로 불리는 창의문에서 서울 성곽의 북대문인 숙정문을 거쳐 성북동 뒷산의 와룡공원까지 4.3㎞를 양방향에서 가로지를 수 있다. 문화재청은 1968년 1·21 사태 이후 39년 동안 출입이 통제됐던 북악산 횡단 등산로를 식목일인 5일 일반에 개방했다. 이날 숙정문에서 열린 개방 행사에서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북악산 개방과 함께 서울의 녹지비율이 5.6%에서 일약 26%로 뛰었다.”면서 “세계 대도시 중 녹지비율로는 캐나다의 밴쿠버 다음”이라고 말했다. 이날 개방된 길은 창의문에서 백악나루, 성곽의 담장이 휘어진 곡장, 숙정문을 거쳐 와룡공원·홍련사에 이르는 북악산의 서울 성곽 전 구간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4월1일에는 성북동 홍련사에서 숙정문을 거쳐 촛대바위에 이르는 1.1㎞를 1차로 공개했다. 문화재청은 그러나 당분간은 전면 자유개방하지는 않고 관람인원과 시간에 제한을 두었다가 점차 개방 폭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휴무일인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단체관람 형식으로 탐방을 실시한다. 1회 탐방인원은 숙정문, 와룡공원, 창의문의 3개 지역에서 양방향으로 100명 안팎이다. 북악산 개방에 따른 운영은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맡는다. 신청은 문화재청 인터넷 홈페이지(www.opc.go.kr)와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홈페이지(www.fpcp.or.kr)에서 할 수 있다. 창의문 쉼터(02-730-9924∼5)와 홍련사 쉼터(02-747-2152∼3), 말바위 쉼터(02-730-2152∼3)에서 전화예약도 받는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외신발/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달마 그림 한 점이 있다. 어느 미술대학 교수의 작품이다. 형형한 눈빛이 감동을 준다. 구도자의 바위 같은 결기를 느끼게 한다.‘척이달마지심’(隻履達磨之心). 화제(畵題)다. 한 쪽 신발을 메고 가는 달마의 마음이다. 극단의 고행이다. 척(隻)은 짝이 있는 물건의 한 쪽 즉 홑, 외의 의미다. 고흐는 아홉 점의 구두 그림을 남겼다. 고단한 삶이 밴 낡은 구두들이다. 원래 제목이 없었다. 나중 사람들이 분류하면서 ‘세 켤레의 구두’‘끈이 달린 낡은 구두’등으로 불렀다. 제작 50년 뒤 하이데커가 자신의 예술철학을 논증하기 위해 신발 그림을 인용하면서 유명해졌다.(빈센트의 구두, 박정자 지음) 윤흥길의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나이’에서 구두는 자존심의 상징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는 궁핍한 가운데서도 굳게 지키려는 자존이었다. 며칠전 패션모델 나오미 캠벨이 작업용 구두를 어깨에 메고 가는 사진이 보도됐다.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가정부 폭행 혐의란다. 구겨진 자존심인 구두를 패션 코드로 활용하겠다고 나서지 않을지 모르겠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4) 서예가 마성린의 일생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4) 서예가 마성린의 일생

    임준원과 홍세태, 유찬홍 등의 낙사(洛社) 동인들 이후에도 인왕산과 필운대는 여전히 중인문화의 중심지였다. 위항시인들이 대개 한양성의 서쪽 인왕산에 많이 모여 서사(西社)라는 이름을 썼지만,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막연한 지칭이다. 최윤창이 ‘이른 봄 서사에서 두보 시에 차운하여(早春西社次杜詩韻)’라는 시에서 “백사에 한가한 사람들이 있어/술을 가지고 와서 안부를 묻네.”라고 한 것처럼 백사(白社)라는 이름을 즐겨 썼다. 최윤창이 지은 시 ‘서사에서 주인 엄숙일에게 지어주다(西社贈主人嚴叔一)’라는 시를 보면, 명필 엄한붕의 아들인 엄계흥의 집에서 한동안 서사가 모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 그 집터는 없어지고, 필운대 옆의 누상동 활터에 엄한붕이 ‘백호정(白虎亭)´이라고 쓴 글씨만 바위에 새겨져 있다. ●중인의 일대기 평생우락총록(平生憂樂總錄) 백사의 동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자 모임의 장소가 자연히 김성달의 함취원(涵翠園)으로 바뀌면서 구로회(九老會)로 발전하였다. 마성린(馬聖麟·1727∼1798)과 최윤창·김순간을 중심으로 한 이 모임도 주로 인왕산에서 모였다. 마성린은 대대로 호조와 내수사의 아전을 해오던 집안에 태어나, 넉넉한 살림으로 위항시인들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의 문집인 ‘안화당사집(安和堂私集)’ 뒷부분에는 그 자신이 엮은 연보 ‘평생우락총록(平生憂樂總錄)’이 실려 있어 보기 드물게 위항시인의 생장지와 교육, 교유관계, 모임터를 찾아볼 수 있다. 마성린은 1727년 3월28일 서울 황화방 대정동(大貞洞·지금의 중구 정동) 외가에서 태어나, 외가와 두석동 본가 및 다방동 외종가를 다니면서 자랐다.11세에 동네 친구인 김순간·정택주 등과 함께 인왕산 누각동 김첨지 집에서 글을 배웠다.12세에는 김팽령·원덕홍과 함께 두석동 고동지 집에서 글을 읽었다. 이즈음 문덕겸·최윤벽·최윤창·김순간·김봉현 등의 중인 자제들과 더불어 글을 지으며 놀았다. 이들은 평생 글친구가 되었으며, 나중에 백사와 구로회의 동인이 되었다. 15세에는 첨지 한성만의 여섯째 딸과 혼인한 뒤에 육조동 어귀에 있는 친구 김봉현의 집에서 함께 글을 읽었다.16세에는 유세통 형제와 더불어 유괴정사(柳槐精舍)에서 글씨 공부를 했다. 유괴정사는 필운대 아래 적취대(積翠臺) 동쪽, 첨지 박영이 살던 곳이다. 위항의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활동을 하던 곳으로 마성린은 어린 나이에 선배들과 함께 어울리던 기억을 이렇게 기록했다. 매번 꽃이 피고 꾀꼴새가 우는 날이거나 국화가 피는 중양절이면 이 일대의 시인·묵객·금우(琴友)·가옹(歌翁)들이 이곳에 모여 거문고를 뜯고 피리를 불거나, 시를 짓고 글씨를 썼다. 그중에서도 여러 노장들 즉 동지 엄한붕, 사알 나석중, 선생 임성원, 별장 이성봉, 동지 문기중, 동지 송규징, 첨정 김성진, 동지 홍우택, 첨지 김우규, 주부 문한규, 첨지 이덕만, 동지 고시걸·홍우필·오만진·김효갑 등이 매번 시회(詩會) 때마다 나에게 시초(詩草)를 쓰게 하였다. ●겸재 정선에 산수화 배워 선배들이 흥겹게 시를 읊으면, 나이 어린 마성린은 옆에서 받아 썼다. 십여년 글씨공부 끝에 마성린은 명필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중인 예술가들은 꽃이 피거나 꾀꼴새가 울거나 국화가 피면 그 핑계로 모여 시를 지었다. 수십명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제목으로 시를 짓다 보니 아름다운 자연과 즐거운 인생을 노래하는 시들이 수백편씩 쏟아지게 되었다. 필운대풍월이라는 말이 천편일률적인 유흥시라는 뜻으로 전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직을 통해 안정된 수입을 얻은 데다 더 이상 승진할 수 없는 신분적 제한 때문에 유흥에 빠지기 쉬웠던 것이다. 그는 18세에는 필운동으로 이사했으며, 인왕산 언저리에 살던 겸재 정선의 문하에 드나들며 산수화를 배웠다.19세에는 한의학 서적을 보면서 몸조리를 하는 틈틈이 필운동 어귀에 있는 처갓집 노조헌(老棗軒)에서 글과 글씨로 나날을 보냈다. 이때 유세통 형제와 김순간·최윤창·최윤벽 등 여러 친구들이 날마다 이 집에 모여서 시를 지으며 노닐었는데 이 모임이 7∼8년 계속되었다. 24세에는 봄과 여름 동안 여러 친구들과 더불어 인왕산의 명승지인 곡성(曲城)·갓바위·필운대·적취대 등을 찾아다니며 시를 짓고 노래를 불렀다.43세에는 필운대 아래 북동으로 이사하였다. 집안에 정원이 있었으며, 정원 아래에는 초가 삼간이 있었다. 안화당(安和堂)이라고 이름 지은 이 초당에는 시인·가객(歌客)·화사(畵師)·서동(書童)들이 날마다 모여들었다. 48세에는 인왕산의 청풍계·도화동·무계동에서 노닐었으며,49세에는 누각동에 있는 직장 권군겸의 집인 만향각이나 옥류동에서 모였다. 51세에는 신윤복의 아버지인 신한평이나 김홍도 같은 화가들과 함께 중부동에 살던 강희언의 집에 모여 그림을 그리거나 화제(畵題)를 써주었다. ●시·노래·글씨·그림의 유산 ‘청유첩’ 그는 52세 되는 1778년 9월14일에 이효원·최윤창과 함께 김순간의 집인 시한재(是閑齋)에 모여 국화꽃을 구경하며 시를 지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거문고를 타는 이휘선과 가객 김시경, 화원 윤도행이 약속도 없이 찾아오자 밤새도록 촛불을 밝혀 놓고 시와 노래, 글씨와 그림을 즐겼다. 이날의 모임을 기록한 시첩이 바로 ‘청유첩(淸遊帖)’이다. 마성린은 그 모임을 이렇게 그렸다. 주인옹(김순간)은 왼쪽에 그림, 오른쪽에 글씨를 걸고 중당에 앉았는데, 맛있는 안주와 술을 차리고 손님들에게 권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마루에 올라 안부 인사를 마친 뒤에 술잔을 잡고 좌우를 살펴보니, 대나무 침상 부들자리 위에 두 사람이 앉아서 바둑을 두는데, 바둑돌을 놓는 소리가 똑똑 들렸다. 왼쪽에 용모가 단정한 사람은 이효원이고, 오른쪽에 점잖게 차려입은 사람은 최윤창이다. 술동이 앞에 한 사람이 있는데, 떠돌아 다니는 분위기로 걱정스럽게 앉아서 춤추는 듯한 손으로 거문고를 탔다. 거문고 소리가 고요하고도 맑았는데, 은연 중에 높은 하늘 신선들의 패옥소리가 들렸다. 이 사람이 바로 세상에 이름난 금객(琴客) 이휘선이다. 그 곁에 한 소년이 또한 거문고를 껴안고 마주 앉아, 그 곡조와 어울리게 함께 연주하였다. 소리소리 가락가락이 손 가는 대로 서로 어울렸다. 길고 짧고 높고 낮은 가락이 마치 둘로 쪼갠 대쪽이 하나로 합치듯 하였으니, 묘한 솜씨가 아니라면 어찌 이같이 할 수 있으랴. 이 사람이 바로 전 사알(司謁) 지대원이다. ●늘그막에 소장품 팔아 위항시인 후원 두 거문고 사이에 한 사람이 의젓하게 앉아서 신나게 무릎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노랫소리가 어울려서 그 소리가 구름 끝까지 꿰뚫었으니,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손발이 춤추게 하였다. 노래를 부르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당시에 노래를 가장 잘 부르던 김시경이다. 창가에서는 한 사람이 호탕하고 노숙한 자세로 술에 몹시 취해 상에 기대어 앉았는데, 거문고 가락과 가곡을 평론하던 이 사람은 전회(典會) 유천수였다. 책상 위에 붓과 벼루를 마련하고 그 곁에다 한 폭의 커다란 종이를 펼친 채, 하얀 얼굴의 소년이 베옷에 가죽띠 차림으로 붓을 쥐었다. 이 자리의 모습을 그리는 이 사람은 윤숙관이다. 사알은 액정서의 정6품 잡직인데, 왕의 명령을 전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회는 내수사의 종7품 관직으로 수입이 많은 경아전이다. 중인 신분의 시인·음악가·미술가·서예가들의 이 모임은 그뒤에도 봄가을마다 시한재에서 자주 모였다. 이듬해인 1779년 3월에는 필운대 아래에 있는 오씨의 화원에서 모였다. 이날의 모임도 역시 청유첩으로 엮어졌다.(필운대 화원 이야기는 9회에 소개) 마성린은 58세에 다시 승문원 서리로 들어갔다. 늘그막에는 집안 살림이 어려워져서 집안에 전해 내려오던 명필들의 작품을 재상 집안에 팔아넘겼다. 가난한 위항시인들의 후원자 노릇을 하기가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옥류동에 사는 천수경이 1791년에 위항시인 70∼80명을 불러 왕희지의 난정고사(蘭亭故事)를 본받아 풍류 모임을 열자, 마성린도 초청을 받고 나아가 시축에 시를 써주었다. 이때부터 최윤창·김순간 등 서사(백사) 동인들도 자주 옥류동 송석원으로 찾아가 후배들과 어울리면서 위항시사의 주축이 서사에서 옥계사 쪽으로 넘어갔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다음 주에는 대원군시대 가객으로 필운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박효관 이야기를 소개한다.
  • [씨줄날줄] 삶의 방정식/우득정 논설위원

    이청준은 그의 소설 ‘날개의 집’에서 화가 세민의 도제과정을 통해 그가 추구했던 삶의 방정식을 제시한다. 먼저 붓놀림을 익히기 전에 그 대상인 흙과 바위, 나무, 구름, 바람이 가슴에 자리잡을 때까지 온몸을 던진다.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이다. 그리고 가슴에서 솟구치는 사랑을 화폭에 담는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남이 제시한 방정식을 베끼는 단계에 불과하다. 그 사랑에 숨겨진 아픔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살갗이 찢어지는 아픔까지도 모두 보듬을 수 있어야 비로소 평화와 기쁨이 화폭에서 살아 움직인다. 그가 ‘당신들의 천국’ 이래로 줄기차게 고뇌했던 실존적 물음에 대한 해답이다. 김영현은 중국 사막길에서 마주친 화두를 풀기 위해 소설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온몸에 생채기가 나도록 삶의 바닥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소설에서는 절망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 있다.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시선이 밤 하늘의 별을 향하기 시작했다. 뭔가 잡힐 듯한 모양이다. 어떤 해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오리아나 팔라치는 종군기자로 전장을 누비면서 삶의 방정식을 찾으려 했다. 그는 마침내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 아말, 자살특공대, 신의 아들이 지배하는 땅 베이루트를 다룬 ‘인샬라’에서 평생 갈구했던 해답을 내놓는다. 베이루트 파병근무를 자원한 수학도 안젤로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으로도 풀지 못했던 답을 그의 연인 니네트가 죽기 전에 남긴 메모에서 확인한다. 니네트는 절망적이었던 생의 마지막 순간을 담담하게 기술하면서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면서 체험해야 할 신비이다.”라고 단언한다. 올초 고위 공직에 계신 분이 책 한권을 선물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이빨꾼들이 쏟아낸 ‘설(說)’들을 한데 모은 책이라고 했다.‘인생의 해답은 이것이다’‘이렇게 살아라’‘요렇게 하면 망한다’…. 그럴 듯한 비유와 더불어 현란한 수식어가 난무한다. 하지만 책을 덮자마자 남는 것이 전혀 없다. 가슴과 영혼이 빠진 ‘혀 끝’의 말이기 때문이리라. 올 연말 대선 고지를 향해 내닫는 주자들에게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온통 덧셈, 뺄셈뿐이다. 이런 방정식으론 감흥을 일으키지 못한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비폭력 평화정신’ 함석헌 사상가 반열에

    ‘한국의 간디’ 함석헌(1901∼1989)의 철학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집 ‘씨알 생명 평화(씨알사상연구회 지음, 한길사 펴냄)’가 발간됐다. 이 책을 통해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인 함석헌의 철학이 다산 정약용에 이은 20세기의 한국철학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함석헌은 1901년 평안북도 용천의 독실한 개신교 장로교회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16살에 평양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 3·1운동에 가담한 연유로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오산학교로 편입한다. 함석헌이 평생동안 진리의 화두로 삼았던 ‘씨알(원래 알의 ㅏ는 아래아 ㆍ다)’사상은 이때 오산학교에서 싹텄다.일본의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독창적인 민족사관을 형성하고, 이후 오산학교에서 10년간 역사 교사생활을 하게 된다.1938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탄압이 노골화되면서 학교에서 추방당한 함석헌은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했다는 죄목 등으로 일제시대에 모두 4번 감옥을 가게 된다. 47년 공산주의자들의 회유 정책을 피해 가족을 뒤로 하고 월남한 함석헌은 이후 수염을 깎지 않았다. 전쟁 중에도 성서 공부 모임을 계속했던 그는 56년 진보 월간지 ‘사상계’에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등을 발표하면서 큰 호응을 얻는다.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적극 참여해 70년 일흔살의 나이로 ‘씨알의 소리’를 창간한다. 진보적 기독교 지식인과 재야운동을 펼친 그는 76년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85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다.87년 암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하던 중 89년 일흔여덟의 나이로 소천했다. 함석헌은 신앙과 교육을 비롯해 농사를 생의 지표로 삼았다. 씨알사상은 그가 농사꾼의 한 사람으로서 터득한 지혜 및 경험과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김명수 경성대 신학대학장은 판단했다. 스스로 ‘한국의 간디’라 불리는 것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던 함석헌은 24∼25년 로망 롤랭의 간디전을 읽은 이후 평생 간디가 간 길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가 간디를 사랑하고 존경한 이유는 “조직적인 악에는 조직적인 사랑으로 대항할 것과 그렇게 하면 반드시 이기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간디를 씨알 중의 씨알로 삼았던 함석헌은 ‘씨알의 소리’ 겉장에 “씨알은 자기 교육의 기구이자 어떤 종교, 어떤 정치 세력과도 관계가 없다.”며 “스스로 역사의 주체인 것을 믿고, 그 자람과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악과 싸우는 것을 제 사명으로 안다.”고 천명했다. 종교는 정치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함석헌은 이를 평생 화두로 삼았다. 종교인이면서도 정치악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치는 나에게는 성가신 일입니다. 내가 정치를 털어버릴 수 있다면 기뻐 춤출 것입니다.”라고 간디봉사회 앞에서 연설했다. 일부 기독교는 ‘거대한 이기주의 집단’으로 비쳐지고 있는 한국의 종교 현실에서 함석헌의 겸손하고 진실을 추구했던 사상은 ‘큰 모순의 바위에 큰 쇠망치를 내린 것’과 같을 것이다.656쪽.2만원.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대화-삶의 여백에 담은 깊은 울림

    방혜자| 저도 도불전渡佛展을 열어 항공 요금을 마련해서 파리로 떠났는데, 처음 3년간은 부모님의 도움과 적은 장학금을 받아서 생활했습니다. 그 후에는 나라의 형편이 어려울 때였고 부모님께도 죄송해서 그림이 세 점 팔리는 것을 계기로 그 반액을 부모님께 보내 드리고 독립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한때는 다락방에 살면서 애들도 돌봐 주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겨우 빵 한 쪽에 계란 한 알, 채소죽 같은 걸로 요기를 하며 생활했어요. 캔버스가 없으면 치마를 찢어서 사용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소품이라도 하나 팔리면 당장 먹을 거보단 물감과 캔버스 같은 재료를 잔뜩 사들이곤 했어요. 물감이 떨어지는 것은 더 견디기 힘들었으니까요. 이인호| 네, 선생님 말씀처럼 당시는 유학길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모험이었지요. 우리나라는 몹시 가난하고 힘이 약했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 문화적 차이도 컸어요. 제 경우는 첫해 웰슬리 대학의 기숙사비와 등록금이 합해서 1,900불이었는데, 당시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갖고 나갈 수 있는 돈이 50불이었어요. 그리고 한 달에 송금할 수 있는 한도가 140불이었고요. 국민당 연간 소득이 100불이 못 되는 시점이었으니 딸의 유학을 위해 집에서 돈을 송금한다는 것은 어차피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어요. 당시 편도 비행기 값이 600불이었으니 지금 집 한 채 값 정도 되었을 거예요. 제트기도 아니고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일본, 하와이, LA, 시카고를 거쳐 뉴욕으로 가는 먼 길을 통해 보스턴으로 갔지요. 며칠을 날아가도 구름만 보일 뿐 끝이 없을 듯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어머니께서 어린 딸을 보내셨을까, 참 큰 용기가 필요하셨겠다 생각을 합니다. 방혜자| 저도 대학을 나오자마자 1961년 봄에 비행기를 타고 사흘 동안이나 걸려서 동경, 홍콩, 싱가포르, 뉴델리, 이스탄불, 로마 등을 경유하여 파리에 도착했어요. 아버지께서는 교육열이 남달리 대단하셨습니다. 제가 유학을 가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쾌히 승낙을 하시고 우리나라의 심오한 자연을 보고 가야 된다고 하시면서 저를 설악산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일주일 동안 그렇게도 아름다운 산, 바위, 돌, 폭포를 보여 주시고 “이제 비행기를 타도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친구 분들이 저렇게 몸이 약한 애를 어떻게 외국유학을 보내느냐고 하실 때마다 “얘 속에는 영감 셋이 들어 앉아 있어서 걱정이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웃음) <대화-삶의 여백에 담은 깊은 울림>
  • [산이 좋아 산으로] 경북 청송 주왕산

    [산이 좋아 산으로] 경북 청송 주왕산

    반도의 끝 다대포 몰운대에서 시작한 봄은 낙동정맥의 산줄기를 따라 북상하다 푸른 소나무의 고장 청송에 닿아 긴 숨을 고른다. 청송의 산림은 강원도 산골짜기의 빽빽한 원시림보다는 덜하지만 공기의 신선함은 전국에서 제일이라고 한다.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 있는 주왕산(720.6m)은 1976년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국립공원지정 이전에도 주왕산은 경북지역의 주요한 명승지로 사랑받아온 청송의 모산이었다. 주왕산 산길은 대전사 앞 상의주차장과 달기약수 쪽 월외통제소 그리고 절골통제소에서 오를 수 있다. 먼저 상의주차장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주왕산의 가장 일반적인 산행코스이다. 주방계곡을 끼고 시작해 주왕산의 대표적인 명승지인 1·2·3폭포를 둘러본 후 내원마을까지 산책로가 연결된다. 거리 11.4㎞의 왕복소요시간은 약 4시간20분. 상의주차장에서의 또 다른 코스는 주왕산 주봉을 거치는 원점회귀코스이다. 대전사에서 시작하여 두 개의 폭포를 지나 후리메기로 들어서서 칼등고개를 오른 다음 주왕산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대전사로 내려서는 길이다. 소요시간은 4시간30분 정도이다. 월외통제소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달기폭포를 지나 너구마을∼금은광이삼거리∼장군봉을 거쳐 상의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거리는 13.2㎞로 약 5시간이 소요된다. 절골통제소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대문다리를 거쳐 가메봉에 오른 다음 1·2·3폭포를 거쳐 상의주차장으로 하산할 수 있다. 약 6시간20분이 소요되는 코스로 가메봉까지 오르는 데만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단 하산코스는 후리메기에서 칼등고개로 꺾어 정상을 오른 뒤 대전사로 내려서도 무방하다. 양쪽코스 모두 하산 시간은 3시간 정도이다. 이 중 내원마을을 거쳐 가메봉∼절골∼주산지 코스를 소개한다. 지금은 모두 민가가 철거당한 내원마을을 지나 완만한 비탈을 1시간 올라가면 가메봉이 보이는 안부에 닿는다. 가메봉은 바위봉우리지만 정상에 오르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다. 안부에서 능선의 반대편으로 내려서는 길이 내주왕 계곡으로 가는 길이다.1시간 정도 완만한 비탈을 내려서게 되는데 중간에 무덤이 2기 있다. 대문다리라고 하는 너른 웅덩이는 갈전골과 절골이 만나는 합수점이다. 이곳부터 절골 매표소까지 내려가는 길은 별다른 안전시설물이나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뚜렷한 길이 없기에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되는데 물을 여러 번 건너야 하고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는 곳도 있어 비가 많이 올 경우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시의 계곡과 같은 내주왕산 절골은 계곡산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절골 매표소를 지나 상이전 마을까지 500m를 내려오면 주산지 가는 길과 만난다. 이곳에서 주산지까지는 도보로 약 25분이 걸린다. 산행을 마치고 청송까지 나오는 교통편이 불편하므로 미리 콜택시 연락처를 알아두고 가는 것이 좋다(개인택시 청송군지부 054-873-1188). 새벽 주산지를 보려면 부동면 민박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주산지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는 주산지민박(054-873-4093)이다. # 여행정보 주산지는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으로 알려진 인공 저수지로, 조선 숙종 때인 1720년에 쌓기 시작해 경종 때인 1721년에 완공되었다. 길이 100m, 너비 50m 정도의 조그만 호수로,150년이 넘은 왕버들이 물속에 잠겨 있어 신비감을 더한다. 이맘때면 한창 신록이 피어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 곳이다. 별도 입장료는 없다. 글 사진 이영준(월간 Mountain기자)
  • 효창공원 야생화 품은 습지생태공원으로

    효창공원 야생화 품은 습지생태공원으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거대한 습지가 탄생한다. 바위 밑에서 샘이 솟아 생명이 움트더니, 용산구가 지난해 말 연못 19개를 조성하면서 습지 3000㎡(약 907평)가 생겨났다. ●연못 19개 만들어 효창공원은 원래 사적지다. 백범 김구 선생과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 등 애국지사들의 묘역이 있다. 게다가 조선조 제22대 정조의 큰아들로 5세 때 죽은 문효세자의 무덤(효창원)도 이곳에 있었다. 일제가 1945년 3월 무덤을 서삼릉(고양시)으로 강제로 옮기고 공원을 조성해 ‘비운의 사적지’로도 불린다. 문효세자 무덤을 이곳에 조성한 이유는 맑은 물이 솟아났기 때문이다. 문효세자묘소도감의궤에 따르면 숲이 울창하고, 강물 같은 물이 솟아 연못을 채우고 한강으로 흘러갔다고 전해진다. 200년이 흐른 지금도 물은 바위 틈에서 쏟아진다. 생명의 씨앗이 흘러넘치자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고, 나무와 풀, 꽃, 곤충이 어우러져 작은 습지가 형성됐다. 습지는 수많은 생물의 보금자리여서 개구리, 두꺼비, 잠자리, 소금쟁이, 여치, 거위벌레, 벼메뚜기, 사마귀, 실베짱이 등이 더불어 산다. 용산구는 지난해 11∼12월 3억원을 들여 습지를 넓혔다. 비탈진 공터에 생태연못 19개를 조성, 수생식물 18종 6390본을 심고 달팽이와 우렁이, 두꺼비, 다람쥐 등을 풀어 놓았다. 자연수가 넘쳐 연못을 가득 채웠다. 날이 따뜻해지면 경남 창녕군 우포늪에서 작은 생명체를 얻어올 계획이다. 김문철 공원녹지과장은 “도심에 습지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에 감격했다.”면서 “많은 시민들이 생명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름드리나무, 야생화 가득 26일 봄맞이 준비가 한창인 효창공원을 찾았다. 흐린 날씨에도 방문객이 북적였다.24시간 무료 개방이라 동네 주민들이 산책하러, 운동하러 공원을 즐겨 찾는다. 묘역을 지나자 오른 편에 거대한 자연이 펼쳐진다. 참나무·소나무·오리나무·측백나무 등 30∼40년 된 아름드리 나무가 가득하다. 그 사이에는 작은 연못과 습지가 층층이 자리한다. 이름 모를 야생화는 금방이라도 꽃봉오리를 터뜨릴 듯 생명을 품고 있다. 까치도 도심 속 자연을 구경하려는 듯 이곳저곳을 날아다닌다. 한 아주머니는 “나무 숲과 연못을 보니까 답답하던 숨통이 탁 트인다.”고 즐거워했다. 김 과장은 “4,5월에 꽃이 피어나고 곤충, 동물이 뛰어다니면 도심 속에서 자연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5월부터는 아이들을 위한 습지관찰 프로그램을 한 달에 두 차례씩 운영할 계획이다. 교육은 녹색소비자연대가 맡는다. 박화영 생태여가팀장은 “도심에서 역사와 자연을 함께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면서 “생명이 되살아나는 곳이라 자연, 습지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02)3273-7117.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그의 삶 그의 꿈] ‘토마스 기차’가 달리는 가야공원

    [그의 삶 그의 꿈] ‘토마스 기차’가 달리는 가야공원

    글 최준 시인, 사진 한찬호 사진작가 올해는 정해년. 황금돼지 해를 맞아 맨주먹으로 1000억 땅을 일궈낸 《저질러야 성공한다》의 저자 가야공원 이옥진 회장의 삶과 꿈 그리고 부자가 되는 이야기를 들어 본다. 미사리의 명소 ’미사리’를 입안에서 공글리다 보면 ‘미나리’와 ‘국수’가 동시에 떠오른다. ‘미사리’를 찾아 올림픽 도로를 달리면서 ‘미사리’라는 지명과 언제부터 친숙해졌을까, 생각해 본다. ‘미사리’는 아무래도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처음으로 다가든 이름인 것 같다. 그랬다. ‘미사리’는 돛 없이 노 젓는 배,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만 앞으로 나아가는 조정경기가 열린 장소였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는가. 올림픽이 끝나고, 세계에서 몰려들었던 선수들이 노를 싸들고 돌아간 뒤 ‘미사리’는 잊혀졌는가. 아니었다. 정작 더 친숙해진 건 올림픽 이후. 미사리 조정경기장 주변에 라이브 카페촌이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유명가수들의 라이브 공연을 보러 몰려드는 사람들로 거리가 불야성을 이룬 것이다. 조정경기장은 올림픽 후에 말 경주 장소인 경마장이나 자전거 경주 장소인 경륜장과 같이 조정 경주 장소인 경정장으로 바뀌었다. 그럼 ‘미사리’는 단지 라이브 카페촌과 경정장으로 우리들에게 친숙하고 유명한가. 아니다. 여기에 반드시 추가해야 할 하나가 더 있다. 바로 ‘가야공원’이다. ‘가야공원’은 200만의 방문객이 다녀 간 미사리의 명소다. ’가야공원’의 역사 올림픽도로를 타고 가다 미사리 경정장 부근에 이르면 눈에 확 뜨이는 간판이 있다. ‘가야공원’ 안내 간판인데, 이 간판은 올림픽도로에 세워진 최초이자 최후의 개인 간판이다. 간판엔 환하게 웃고 있는 한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그 얼굴이 바로 ‘가야공원’을 만든 이옥진 회장이다. ’가야공원’은 그가 자신의 사유지에 조성한 개인 공원이다. 여러 개의 음식점이 있고 과수원이 있고 기차카페가 있다. 이러면 흔히들 장삿속이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공원의 내력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가볍게 치부해 버릴 노릇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이 공원은 이옥진 회장의 10년 간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다. 이옥진 회장은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에 이 땅을 샀다. 1만 평이 훨씬 넘는 넓은 땅이었다. 뒤엔 한강이 흐르고 앞엔 올림픽 조정경기장 호수가 있었으며 잠실에서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야말로 천혜의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땅이었다. 하지만 값이 너무 쌌다. 서둘러 사고 나서야 왜 그렇게 헐값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자신이 산 땅은 주인마저 마음대로 손댈 수 없는 땅이었다. 그린벨트로 개발을 할 수 없었고 군사보호구역에다 하천부지로 묶여 있었다. 후회했지만 늦었다. 이때부터 그는 국가를 상대로 10년 전쟁을 시작한다. 두 번 옥살이를 했고 벌금은 대체 얼마를 냈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언론을 등에 업은 막강한 국가 권력과 나약한 한 개인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 10년 세월을 회상하며 그는 악법의 칼자루를 쥔 국가와 맨주먹으로 전쟁을 벌이게 된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하다고 한다. 긴 싸움의 와중에 부동산법과 그린벨트법 등 토지 관련법들에 도통했다. 10년에 걸친 악전고투 끝에 그는 그린벨트, 국사보호구역, 하천부지로 묶여 있던 자신의 땅을 온전히 되찾았다. 자신의 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10년이 걸린 것이다. 그는 이 땅에 자신의 꿈을 심는다. 그 결과물이 바로 ‘가야공원’이다. 그의 저서 《저질러야 성공한다》는 자신의 인생 역정을 담고 있는 자서전인 동시에 500만 국민이 관련되어 있는 그린벨트법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제시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토마스 기차’와 과수원 토마스 기차는 이 공원의 명물.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타던 전용열차의 식당칸을 샀다. 기관차도 구입했다. 그는 공원 방문객들을 태우고 실제로 이 기차를 운행했다. 그린벨트로 묶여 있던 때였으니 위법이었다. 당연히 제재가 따랐다. 운행할 수 없었다. ‘토마스 기차’는 비록 달릴 수는 없지만 지금도 ‘가야공원’의 상징으로 공원을 찾는 방문객들을 반기는 꿈의 열차로 서 있다. ’토마스 기차’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스스로 길을 내며 달리는 기차. 철로가 끊기면 철로를 놓고, 고장나면 고치면서 쉼 없이 달리는 기차는 그의 인생 역정을 빼닮았다. 오직 희망 하나로 무작정 상경했던 16살 가출소년이 이룬 꿈이 고스란히 실려 있는 ‘토마스 기차’는 그의 분신이다. 공원 방문객들을 위해 그는 공원 안에 과수원을 만들었다. 자두와 살구, 복숭아, 사과 등 봄부터 가을까지 철마다 열리는 무공해 과일들을 방문객들은 맛볼 수 있다. 입구에 서 있는 아기 코끼리는 과수원과 참 잘 어울린다. 코끼리는 순한 동물이다. 느림의 미학을 생을 통해 보여준다. 모두들 앞만 보고 내달리는 바쁘기만 한 세상에서 코끼리는 그런 것만이 삶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한 소식 가르쳐 준다. 그리고 코끼리 옆에서 코끼리를 바라보고 서 있는 캥거루는 넓이뛰기의 명수다. 코끼리의 ‘느림’과 캥거루의 ‘도약’. 그게 바로 우리 생인지 모른다. 그의 꿈 나라를 상대로 10년을 싸운 끝에 문을 연 ‘가야공원’을 그는 자연을 잊고 사는 도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만들었다. 현실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쉴 수 있는 더 편안한 장소로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이제야 자신의 꿈을 겨우 절반쯤은 이룬 것 같다고 한다. 그의 말이 겸손과 겸양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늘 실천하는 그의 꿈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영원한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월간 <삶과꿈> 2007.02 구독문의:02-319-3791
  • ‘中 동북공정’ 허구 입증 나선다

    ‘中 동북공정’ 허구 입증 나선다

    올 여름 고구려 연구자들이 몽골을 찾는다. 이번 발굴과 답사는 한민족의 ‘원형질’을 확인하는 작업의 마무리이자 시작이라고 한다. 몽골에 무엇이 있기에 고구려 연구자들의 발길을 재촉하는 것일까. ●동북공정 깰 ‘열쇠’ 고구려연구회는 6월 초부터 한 달 보름동안 러시아·몽골 연구자들과 함께 러·몽 서부접경 지역, 이른바 ‘몽골 알타이’에서 돌궐시대의 제사터와 무덤 등을 발굴할 예정이다. 러시아측에서는 학술아카데미 시베리아지부 고고학인류연구소, 몽골측은 몽골과학원 고고연구소가 참여한다. 발굴이 마무리될 즈음인 7월7일부터 열흘간 일반인을 포함한 답사단이 현지를 방문, 발굴성과 등을 돌아보게 된다. 한·러·몽 3국의 연구자들이 돌궐에 주목하는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과 무관치 않다. 무분별하게 북방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중화문화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음모에 3국 학자들이 공동 대응한다는 차원이다. 돌궐은 6세기부터 2세기 동안 중국의 서북방을 다스렸던 국가다. 당시 중국은 수와 당이 지배했고, 요동과 한반도 북방에는 고구려가 있었다. 고구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들 3국은 힘의 균형을 유지했으며 그 균형이 깨졌을 때 전쟁이 벌어졌다. 수와 당은 돌궐의 세력이 강했을 때는 고구려를 침략하지 못했다. 고구려가 요동을 지배할 때 중국은 돌궐의 융기를 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 이전도 마찬가지다. 고조선 시기에는 흉노가 있었다. 북방의 흉노, 중원의 중국, 동방의 고조선 사이에는 힘이 정립돼 있었다.108년 한이 고조선을 점령하고, 한4군을 세웠으나 흉노가 중국을 침략하자 한4군은 흔들렸다. 이번 발굴을 주도하고 있는 서길수 서경대 교수는 “동북아 정세는 항상 세 세력의 관계가 좌우했다.”면서 “러시아, 몽골과 함께 최초로 돌궐을 발굴하는 것을 시작으로 중앙아시아와의 공동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한국어가 알타이어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동안 우리는 몽골을 소홀히 했다.”고 덧붙였다. ●알타이~요서~한반도 ‘문화벨트’ 확인 발굴팀이 단순히 돌궐에만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몽골 알타이’에서 중국 요서지역, 그리고 한반도로 이어지는 석기·철기문화의 공통점을 확인한다는 계획도 있다. 중국이 자국 문화로 편입시키려는 ‘홍산문화’의 집산지인 요서지역의 경우,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동검·다뉴세문경 등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는데다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적석총 고분군도 수십개 산재해 있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기원전 2333년 무렵의 유물들도 많이 발굴됐다. 고구려연구회는 이미 2000∼2001년 두 차례에 걸쳐 요서지역을 답사했고,2003년과 2005년에는 실크로드와 ‘러시아 알타이’ 지역을 집중연구한 바 있다. 여기서 중국의 원류인 중원문화와는 상관이 없는 유목민족의 ‘뿌리’를 확인했다. 실제 고구려 유적에서 발견되는 ‘활쏘는 무사 벽화’와 비슷한, 말 타고 활을 쏘는 ‘바위그림’이 여럿 발견됐다. 서 교수는 이번 발굴 및 답사의 의미를 세 가지 차원에서 설명했다. 바로 러시아, 몽골, 한국 연구자들이 학술교류를 시작한다는 점과 아시아 균형론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한편 북방민족의 특징들을 확인한다는 사실이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백두대간 ‘국가등산로 계획’ 논란 가중

    백두대간 ‘국가등산로 계획’ 논란 가중

    산림청의 ‘국가 등산로’계획을 놓고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산림청·산악단체는 등산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데다 양질의 등산 서비스가 부족해 주요 산맥을 체계적으로 보전하고 이용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환경단체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국가 등산로 지정 자체가 산림 훼손을 부추길 것이라며 반박했다. 최소한 백두대간과 9개 정맥은 생태계의 보고이므로 절대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대중화된 등반 문화로 정착 등산은 이미 대중화된 생활체육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성인 5명 중 1명은 연간 1회 이상 등산을 한다. 모집 산악회를 통해 전문적으로 산에 오르는 인구만도 연간 1500만명에 이른다. 주5일제 실시, 웰빙 확산 등으로 등산 인구는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테마 등산이 늘고 코스도 다양하다. 특히 전문 산악인 등반길로만 알려진 백두대간 마루금(정상 산줄기)을 넘나드는 산행에 일반 등산객들까지 몰리고 있다. 직장·학교 등반대는 물론 아파트 부녀회에서도 백두대간을 등반할 정도다. 당연히 백두대간이 훼손되면서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린다. 한반도 남쪽의 백두대간은 설악산∼지리산을 잇는 684㎞. 여기서 뻗어나온 9개 정맥 산줄기는 2080㎞에 이른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구간은 국립공원의 백두대간 237㎞뿐이다. 이중 142㎞는 자연공원법에 따라 탐방로 등으로 개방돼 등반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관리는 엄격하다. 생태계 보전이 필요한 곳과 등반하기 위험한 구간 95㎞는 아예 개방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등산로는 1만 7531㎞. 이중 28%에 해당하는 4894㎞는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흙이 깎여나가는 등 크게 훼손됐다.1만 5825㎞에 이르는 산림길(임도) 역시 관리가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백두대간도 관리가 엉망이다. 국립공원에 있는 등산로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그래서 산림청이 내놓은 정책이 ‘국가 등산로’계획이다. 백두대간을 비롯한 주요 산의 등산로를 더 이상 훼손되지 않게 보전하고 정비하자는 취지다.2017년까지 239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등산로 조성·휴양시설 확충 등 시설정비 사업에 주로 들어간다. 논란은 생태계 보전 가치가 큰 백두대간의 복원 및 이용이 나란히 설 수 있느냐다. ●국가 등산로 지정…생태계 파괴 부추겨 환경단체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국가 등산로로 지정하면 백두대간 종주 등반객이 크게 늘어나 생태계 파괴를 불러올 것이 뻔하다.”며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백두대간은 자연환경보전계획에 따라 이용·관리보다는 보전해야 하고 훼손된 구간도 최소한 자연 상태로 되돌리는 복원사업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백두대간보전단체협의회는 성명서를 냈다.“백두대간은 한반도 핵심 생태축으로 절대적 보호ㆍ관리가 필요한 지역이다. 백두대간 보호ㆍ관리 책임을 지고 있는 산림청이 백두대간을 휴양공간 내지는 레저공간으로 인식해 각종 이용계획을 세운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박정운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은 “백두대간 마루금 중심의 등산로 지정은 백두대간 종주산행을 유인하고 결과적으로 생태계를 훼손하는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종주 개념의 등반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립공원처럼 백두대간에서는 산악자전거, 산악승마 등 산악레포츠는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국립공원 안에 있는 백두대간은 현재 체계대로 보호·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김성수 홍보실장은 “전국 마루금 등산로를 연결하려면 국립공원이 관리하는 길을 지나야 하는데 자칫 국립공원 훼손으로 이어질 우려가 짙다.”며 “특히 미개방 구간 95㎞는 절대 손댈 수 없는 구간”이라고 말했다. ●체계적인 관리…복원·보전 수준 업그레이드 반면 산림청은 새로 백두대간에 등산길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미 나있는 길, 그나마 토양 유실이 심하고 위험에 노출된 길을 찾아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말한다. 박은식 등산지원팀장은 “백두대간 국가 등산길을 지정하지 않는다고 등산객의 발길이 끊기는 것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막는다고 등산객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미 훼손된 길을 국립공원 탐방로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등산객이 급증하고, 백두대간 종주 등반이 늘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미 나있는 길이 더이상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국립공원 미개방 구간도 노선선정위원회를 만들어 새로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설물 설치도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눈에 거슬리는 시설물이 아니라 자연·생태 친화적인 재료·공법으로 시공하면 등산객 안전과 자연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악단체들은 산림청 계획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김주연 등산연합중앙회 사무국장은 “아직 길이 나지 않았다면 시민단체의 말이 백번 옳다. 그러나 백두대간 등산로는 오래전부터 신작로처럼 나있다. 더 방치하면 오히려 훼손이 심각해진다.”며 체계적인 관리를 주장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손볼 곳은 손을 보는 것이 훼손을 줄이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김 국장은 대신 “백두대간 등반은 공인 기관에 신고하고, 소양교육을 받은 산악회장·등반대장 등의 인솔 아래 허용해야 훼손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백두대간 종주등산로 훼손 상암 월드컵경기장의 10배 백두대간이 신음하고 있다. 종주 등산객 증가로 등산로와 주변 생태계 훼손이 늘어나고 있다. 녹색연합이 백두대간 등산로 훼손실태를 조사한 결과, 백두대간 등산로의 65%는 맨땅이 1m 이상 드러난 것으로 나타났다. 등산로 넓이가 1m 이하, 침식 깊이 5cm 이하이면서 부유물질(낙엽 등)이 남아있는 양호한 등산로는 35%에 불과하다. 식물이 죽고 맨땅이 드러난 면적이 54만 772㎡로 상암 월드컵 경기장(5만 9777㎡)의 약 10배 넓이다. 등산로 흙이 그대로 드러나는 등 침식과 토사 유실, 나무 뿌리 노출, 암석노출, 측면 붕괴 등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어른 키를 넘는 움푹한 골이 파이기도 했다. 등산로의 맨땅이 드러나고 흙이 사라진 양이 10만 4636㎥로 10t 트럭 1만 3000대 분량이다. 백두대간 등산로는 마루금을 따라 진행돼 경사도도 크고, 바람도 강하다. 기온 변화도 심해 그렇잖아도 식물 발육이 활발하지 못하다. 쉽게 훼손되고 복원이 쉽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정기적으로 산림생태계 복원·복구가 이뤄지는 구간은 15%(98.9km)에 그치고 있다. 특히 백두대간 산꼭대기 훼손지를 복원하는 것이 시급하다. 설악산 대청봉, 지리산 천왕봉의 꼭대기는 식물들이 죽어 바위가 드러났고 바위가 깎여 나가고 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5·6월 국립공원서 산나물 캐지 마세요” 국립공원 안에서 일어나는 불법행위를 뿌리뽑기 위해 집중단속이 실시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공원 안에서 흡연·취사 및 불법주차, 산나물 채취 등 자연자원을 훼손하는 무질서 행위를 막기 위해 연중 ‘사전예고 집중단속제’를 실시키로 했다고 25일 밝혔다. 사전예고 집중단속제는 국립공원에서 주로 발생하는 불법 무질서 행위를 시기별(월별)로 기간을 정해 단속대상을 미리 알리고 강력하게 단속하는 제도. 공원내 불법 무질서 행위를 근절시켜 자연자원 훼손을 최소화하고, 쾌적한 공원환경을 조성하자는 취지다. 단속 대상은 고지대 야생식물(산나물) 채취 및 도·남벌, 백두대간 샛길 출입, 흡연·취사행위 등이다. 147곳의 거점지역(고지대 62곳, 중간지대 35곳, 저지대 50곳)에 직원 293명을 투입, 단속할 계획이다. 4월에는 산불이 날 우려가 커 흡연과 취사행위를 집중 단속 대상으로 정했다. 이임희 자연관리팀장은 “건전한 탐방문화 조성과 자연생태계 보호를 위한 조치”라며 탐방객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월별 집중 단속 대상은 다음과 같다. ▲5월=야생 식물채취, 도·남벌▲6월=산나물채취▲7월=잡상행위, 호객행위▲8·9월=계곡 목욕, 취사, 불법주차▲10월=가을철 잡상행위, 호객행위▲11월=산불 방지 흡연행위, 샛길 출입▲12월=샛길 출입, 취사행위.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스포츠 돋보기]7000만원이 250억 이길 수 있나?

    |도쿄 최병규특파원| 우리나라에 피겨스케이팅이 첫선을 보인 건 1894년 겨울로 전해진다. 당시 조선 주재 외국인들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지켜보는 가운데 얼어붙은 경복궁 향원정에서 ‘얼음 위를 나는 기술’을 선보였다. 이후 ‘빙족회(氷足會)’라는 이름의 피겨팀이 등장했다. 한국피겨는 100년을 웃도는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김연아가 지난 24일 일본 도쿄에서 처음 참가한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피겨 사상 첫 메달을 따냈다. 그동안 한국의 성적은 2001년 박빛나가 세운 23위가 최고였다. 김연아는 분명 한국피겨의 역사를 또 새로 썼다. 그러나 씁쓸하다. 메달 뒤에 숨겨진 우리 피겨의 현실 때문이다. 이 대회 ‘톱5’ 가운데 3명이 순위를 쓸어담은 일본과 한국의 토양은 분명 다르다. 도쿄체육관 밖에서 표를 구하려는 피켓을 든 수십명의 일본팬 모습은 분명 충격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속이 쓰렸던 건 ‘김연아팀’의 ‘악전고투’였다. 혹자는 이번의 쾌거를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린 것”이라고도 말한다. 김연아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에게 쏟아붓는 돈은 스폰서 및 공식·비공식을 합쳐 연간 25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김연아가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공식적으로 받는 지원금은 연간 7000만원이 전부다. 한 차례의 광고 출연으로 번 돈은 거의 바닥이 났다. 아사다가 대형버스를 대절해 혼자 타고 다닌 반면 김연아는 어렵게 마련한 6인승 승합차에 단출한 팀원들과 구겨지듯 끼어서 다녔다. 지난해 우리 체육계는 김연아를 위한 ‘2010밴쿠버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그러나 실제 효과는 아직 느낄 수 없다. 단 1명뿐인 연맹의 피겨 실무자가 이번 대회는 물론 그동안 단 한 차례도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5일 이시카와현에서 발생한 지진의 여파가 고층건물에서도 현기증을 느낄 만큼 도쿄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입상자들의 ‘갈라쇼’가 펼쳐진 도쿄체육관은 되레 인파로 넘쳐났다. cbk91065@seoul.co.kr
  • 참을 수 없는 봄 정취의 유혹

    참을 수 없는 봄 정취의 유혹

    완연한 봄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과 몸을 훌훌 털고, 가까운 곳을 찾아 봄기운을 마셔보자. 서울시는 23일 남산, 청계천, 서울 숲, 한강시민공원 등 ‘동네 봄나들이’ 명소 25곳을 소개했다. 봄꽃 향기에 취하고 싶다면 남산 서울타워 전망대를 비롯해 팔각정, 놀이터, 식물원 등을 둘러보자. 남산은 자연 탐구와 운동, 휴식으로 생활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도심 속의 정원이다. 특히 개나리, 진달래, 벚꽃과 색색이 피어난 야생화는 봄을 느끼기에 좋다. 남산골 한옥마을의 전통가옥도 거닐 만하다. 광진구 아차산 생태공원에는 24시간 개방에 생태전문가가 늘 있어 체험학습에 안성맞춤이다. 또 주말생태교실, 봄 농작물 모종심기, 모내기 행사 등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자생식물관, 나비정원, 황톳길, 소나무숲, 습지원 등 22개의 테마공원도 가볼 만하다. 서초구의 청계산, 시민의 숲, 우면산 생태공원도 삼림욕과 함께 봄의 향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청계산은 각종 봄꽃과, 바위가 많지 않아 가족 단위의 등산객에게 잘 어울린다. 우면산 생태공원은 자연 야산의 생태를 복원한 국내 최초의 산림형 생태공원. 주말 하루쯤 도심을 벗어난 듯 가벼운 산행 삼아 찾아도 좋다. 서울의 명산 ‘도봉산’도 등산 마니아를 유혹한다. 자운봉을 비롯해 만장봉 등이 주말에 나들이 하기에 적격이다. 특히 도봉구를 가로지르는 중랑천변 산책로가 단장을 끝내고 손님을 맞는다. 벚꽃이 만개하면 최고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을 듯싶다. 가족과 함께 봄을 만끽할 수 있는 나들이 코스로는 강북구의 ‘국립 4·19묘지→강북청소년수련관 난나→진달래능선→대동문(100분 코스)’이 안성맞춤이다. 또 북한산 진달래능선도 진달래에 취하며 30여분 정도면 오를 수 있어 추천할 만하다. 이밖에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가족공원, 암사동 선사주거지, 석촌호수, 오금공원, 용마폭포공원 등도 봄나들이 명소들이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