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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문화 ‘천년전주 10길’ 열린다

    역사·문화 ‘천년전주 10길’ 열린다

    전북 전주시가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원을 테마별로 연결하는 ‘천년전주 10길’을 조성한다. 4일 전주시에 따르면 지역의 정체성 회복과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오목대(梧木臺)~이목대(梨木臺) 잇기, 용머리 잇기, 예수병원 주변 정비 등 3대 혈맥 잇기 사업을 추진한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전주의 혈맥을 복원해 앞으로 전주만의 정체성을 살린다는 구상이다. 이에 따라 오목대~이목대 구간은 리베라호텔에서 좁은목 약수터까지, 용머리고개는 완산공원과 다가공원을 연계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오목대 구간은 아·태무형문화유산전당과 전주생태박물관, 남부순환도로 개설사업 등과 연계해 장거리 산책로, 생태 체험로로 조성한다. 용머리고개는 동학농민군과 관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역사적 사실과 연계해 전주 혈맥잇기 사업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계획이다. 예수병원 일대는 화산공원과 다가공원을 연결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특히 전주혈맥잇기와 더불어 전주시의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을 탐방하는 ‘천년전주 10길’이 조성된다. 천년전주 10길은 ▲천년왕조 길 ▲역사문화 하룻길 ▲동학역사 하룻길 ▲근대선비 하룻길 ▲영상문화 하룻길 ▲생태체험 하룻길 ▲노송천변 하룻길 ▲개신교역사 하룻길 ▲천주교역사 하룻길 ▲전주부성성곽 하룻길 등이다. 천년왕조 길은 동고산성~이목대~오목대~경기전~풍남문~객사를 잇는 3.3㎞ 구간이다. 동학역사 길은 용머리고개~완산칠봉~초록바위~동학혁명기념관의 3㎞, 근대선비 길은 한벽당~구강재~향교~이석재의 1.3㎞ 구간이다. 이들 길은 전주의 역사와 문화를 잘 보여주고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관광객 유치 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전주시는 용역을 통해 사업의 타당성 등을 검토하고 나서 이르면 내년부터 추진할 방침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전주혈맥은 지역주민과 향토사학자 등 전문가들이 조속히 복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숙원 사업”이라면서 “천년 전주의 정체성을 찾는 차원에서 적극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꼬마 로킥’ 가해 고교생 3명 입건

    인터넷의 동영상 속 ‘꼬마 로킥’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일 어린이를 걷어차 넘어뜨리는 동영상을 3년 전 인터넷 사이트에 유포한 고교생 3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2006년 7~8월 당시 서울 모 중학교 3학년이던 A(19·고교 3년)군 등 3명은 서울 송파구 집 주변 놀이터에서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당시 유행하던 이종격투기의 발차기인 일명 ‘로킥’을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게임에서 진 A군은 피해아동(7~8세 추정)을 뒤쫓아가 왼쪽 허벅지를 오른발로 걷어 차 넘어뜨렸다. 함께 있던 B·C군이 이를 휴대전화로 촬영한 뒤 친구들 휴대전화로 이 장면을 퍼뜨렸으며, 떠돌던 동영상을 메신저로 받은 D(19·고교 3년)군이 9월4일 인터넷사이트 ‘엠군’에 최초로 올려 유포했다. 경찰은 “피해 아동을 확인하지 못했으며, 가해 학생인 A군 등과 중간 유포자인 D군이 반성하고 있어 선도차원에서 불구속 입건했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설계부터 따졌더니 예산절감 톡톡

    울산시가 올 하반기부터 예산 낭비요소를 사전에 찾아내는 ‘설계 경제성 검토제도’를 도입한 이후 예산절감 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시는 지난 9월부터 100억원 이상 대형건설사업을 대상으로 기본·실시설계 완료 단계에 앞서 ‘설계 경제성 검토제’를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2일 밝혔다. 시는 문성우 부산대 교수를 팀장으로 각 분야 전문가 16명으로 VE팀을 구성해 ‘태화강 중류(굴화~선바위) 생태하천 조성사업(사업비 220억원)’에 대한 설계 경제성 검토작업을 실시했다. VE팀은 또 17건의 개선 아이디어를 접수한 뒤 설계·사업계획의 경제성 및 타당성, 유지관리의 효율성, 설계품질 등을 검토해 최종 9건의 개선사항을 기본 및 실시설계에 반영해 3억 6000여만원의 예산을 절감했다. 시 관계자는 “설계 경제성 검토는 설계 과정에서 검토하지 못한 부분을 사업시행 전에 찾아내 개선함으로써 사후 설계 변경 등을 크게 줄이는 선진 기법”이라며 “앞으로 대형 건설사업을 대상으로 지속 실시해 사업비 절감은 물론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도시와 산] (31) 대전 식장산

    [도시와 산] (31) 대전 식장산

    백제의 한 장군이 이 산에 군량미를 쌓아 뒀다고 한다. 신라와 자주 전쟁을 치렀고, 국경을 이뤘던 곳이었으니 당연히 그럴 만했다. 백제로서는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조선 중종 때 도술가인 전우치가 3년간 먹고도 남을 만한 보물을 이 산에 묻어 놓아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식장산은 이름만큼이나 유난히 ‘밥’과 관련 있는 역사와 전설이 많다. 대전의 식장산(食藏山·해발 598m)은 이렇게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자락이 넓고 물이 좋아서 옛날부터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땅이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식이 들어간 산 이름도 이곳이 유일하다는 얘기도 있다. ●밥의 역사와 전설이 배인 풍요로운 산 이런 전설도 내려온다. 옛날옛적에 효성이 지극한 어느 부부가 이 산 밑에 살았다. 가난한 부부에게는 늙은 어머니와 아들 하나가 있었다. 철없는 아들은 할머니의 밥을 자주 빼앗아 먹었다. 부부는 고심 끝에 아들을 버리기로 했다. 산에 올라 땅을 파다 보니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먹을 것이 나오는 밥그릇이 나왔다. 이 밥그릇 덕에 풍족하게 살았다. 부부는 늙은 어머니가 숨지자 욕심을 버리고 그릇을 다시 산에 묻었다. 이 때문에 ‘식기산’이라고도 불렸으나 식장산에 묻혀 사라졌다. 식장산은 대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보문산과 계족산도 한밭벌을 빙 둘러싸고 있지만 모두 500m가 안 되는 산이다. 식장산은 험하지 않지만 넓은 숲과 뛰어난 생태계로 대전의 허파 노릇을 톡톡히 한다. 대전시는 1996년 식장산의 세천유원지 일대를 ‘자연생태보존림’으로 지정했다. 시 조사로는 이 일대에 224종의 식물과 노루, 살쾡이, 너구리, 박쥐 등 100종의 포유류가 살고 있다. 100여종의 새와 파충류, 양서류 등도 서식하고 있다. ●물 많은 음산… 평탄하고 넓은 산자락 생태계의 중심지 세천유원지 초입에 들어서면 물막이 댐이 맞이한다. 1934년 계곡을 막아 만든 것으로 폭 100m 길이 250m 크기의 저수지가 형성돼 있다. 1980년 말 대청댐을 막아 대청호 물을 수돗물로 쓰기 전까지 대전 시민의 식수원이었다. 지금은 흘러내려 온 계곡물을 가둬두고 있지만 대전시내를 가로지르는 대전천의 발원지다. 식장산을 자주 찾는다는 등산객 이상준(56·대전 둔산동)씨는 “극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산이다.”면서 “7부 능선에서도 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저수지를 따라 등산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예전에는 좁은 산길이었다. 길은 폭 2m 가까운 임도가 닦여져 있고, 통나무길이나 돌길로 꾸며져 있다. 길이 평탄하다. 산책을 나온 기분마저 든다. 길옆으로 계곡 자락이 넓게 펼쳐진다. 군량미를 충분히 숨길 정도로 품이 넓다. 평원 위에 펼쳐진 밀림 같다. 그 자락에 조그만 바위들이 쌀밥에 콩 박히듯 박혀 있다. 숲은 상수리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팽나무 등 활엽수로 가득했다. 침엽수는 거의 없다. 흔한 소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온 산이 단풍에 물든 듯했고, 길에도 낙엽이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길 따라 계곡물·바람·새 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 3㎞ 가까이 지나자 오르막이 좀 심해진다. 약간 숨이 찬다. 초입부터 이곳까지 벤치가 만들어져 쉬기에 좋다. 1㎞쯤 더 가 독수리봉에 올랐다. ‘해발 586m’라는 팻말이 서 있다. 정상과 별 차이가 없다. 서쪽에 서대산, 동남쪽에 속리산이 보인다. 권진수(58·대전 대동)씨는 “날씨가 좋으면 경북 상주에 있는 구병산까지 보인다.”면서 “숲이 우거져 햇빛 한번 안 쬐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산이다.”라고 설명한다. 등산로가 대전방향인 동쪽으로 모두 나 있다. 고향이어서 자주 찾는다는 60대 남자는 “음산이다.”고 말한다. 여자 등산객이 유난히 많다. 반대편 충북 옥천쪽 능선은 절벽이다. 절벽으로는 소나무 숲이 들어차 있다. 산불에 타 거무스레했다. ●긴 세월 거친 사찰도 여럿 그 절벽 중간에 구절사가 붙어 있다. 1393년 조선 태조 2년에 무학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대웅전은 중건돼 있었고, 칠성각과 산신각이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져 있다. 산신각에 젊은 남자가 앉아서 먼 산을 한없이 바라본다. 병을 앓아 이 절에 들어왔다는 60대 남자는 “예전에는 비구니들만 있었는데 도둑들이 (불상 등을 노리고) 자주 들어와 2005년인가 주지 스님이 비구로 바뀌었다.”고 쓸쓸히 전한다. 886년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고산사’도 있다. 마곡사의 말사로 대전시유형문화재 10호로 지정돼 있다. 대웅전 중앙과 왼쪽 불상은 토불(土佛), 오른쪽 것은 석불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웅전을 보수할 때 상량문에서 ‘법장사’라는 옛 이름이 발견되기도 했다. 식장산에는 개심사와 식장사도 있으나 고산사만큼 역사가 길지 않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밤이면 새옷입은 식장산 대전 최고의 야경 연인들은 夜~好~ 식장산은 밤에도 즐길 수 있는 산이다. 대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정상 부근 전망대다. 낮의 대전시내를 최고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연인들 사이에 ‘데이트 명소’로 소문이 나 있다. 길은 세천유원지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포장이 된 산길을 타고 차로 10분쯤 가면 이곳에 다다른다. 길이가 4㎞ 정도밖에 안 되지만 도로가 워낙 구불구불하게 나 있어 마주 오는 차를 피하다 보면 늦어진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대전시내는 발끝에서 한없이 먼 아래 누워 있다. 대전시내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보문산 전망대와 딴판이다. 연인과 함께 벤치에 앉아 시내를 감상하던 최근원(25)씨는 “대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고 특히 야경이 멋져 자주 온다.”면서 “이곳에 오면 가슴이 탁 트인다.”고 말했다. 그는 “외지인들이 이곳에 와 대전을 보고는 도시가 꼭 별처럼 생겼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식장산 전망대에서는 큰 밭(한밭·大田)이 빙 둘러친 산과 계곡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듯 보인다. 산 아래 별 모양으로 깊숙이 내려앉았다. 오른쪽에 푸른 대청호가 보이고, 계족산이 도시와 호반 사이에 둘러쳐져 있다. 왼쪽에는 보문산이 펼쳐져 있다. 먼 북쪽 산이 계룡산 자락이다. 주말이면 패러글라이딩 애호가, 타는 사람, 사진작가 등으로 붐빈다. 전망대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50대 남자는 “주말에는 차를 댈 곳이 없을 정도”라면서 “‘오래전부터 찍어온 사진을 시간대별로 펼쳐보면 대전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보인다.’고 말하는 시민도 있다.”고 전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서울 도봉서원일대 문화재지정

    서울시는 경관이 빼어나고 유적이 비교적 잘 보존된 도봉구의 도봉서원 터와 주변 계곡, 글씨가 새겨진 바위들을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30일 밝혔다. 도봉서원은 조선시대 대표 성리학자 조광조와 송시열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사액서원(왕으로부터 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이다. 이항복 등 저명한 시인들이 시문을 남긴 서울의 대표적인 서원 중 하나다.1871년(고종 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유적 대부분이 사라져 현재는 1970년 원래의 기단 위에 복원한 사당만이 남아있다. 특히 이곳은 서울 지역의 다른 서원과 달리 사당의 기단과 14개의 글이 새겨진 바위 11개가 서원 터 앞 계곡에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유적의 경계를 비교적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사망위장’ 보험금 11억 타내

    바다낚시를 하던 남편이 실종사고를 당한 것처럼 가장한 뒤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 6년여간 호화생활을 해온 부부의 행각이 공소시효를 6개월 남겨두고 들통났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백기봉)는 허위 사망신고로 보험금 11억 7400여만원을 타낸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정모(45)씨와 부인 서모(41)씨를 30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2002년 1월 경남 통영 앞바다 한 섬의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던 정씨가 실종됐다는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며칠 동안 수색했지만 정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의류만 발견했다. 서씨는 곧바로 실종신고를 했고, 남편 정씨는 사망 처리됐다. 보험설계사 출신인 서씨는 다음해 3~4월 남편이 실종 2개월 전 가입한 3개 보험사에서 사망보험금 11억 7400여만원을 받았다. 정씨 부부는 이 돈으로 서울과 부산에 아파트와 상가를 사들이고 외제차를 2대 굴리는 등 호화생활을 했다. 정씨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위조한 운전면허증과 타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갖고 대전과 부산 등을 떠돌며 도피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오이석기자 zangzak@seoul.co.kr
  • [데스크 시각] 용산참사 해결 해 넘기지 마라/최용규 사회부 차장

    [데스크 시각] 용산참사 해결 해 넘기지 마라/최용규 사회부 차장

    올해도 두 달 남았다. 정말이지 충격적인 일들이 꼬리를 문 한 해였다. 새해 벽두(1월20일)에 터진 용산참사는 개인으로 봐서나 국가로 봐서 액운이었다. 순탄치 않은 1년을 예고라도 했던 것일까. 신영철 대법관의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재판 개입 파문이 사법부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스캔들로 정치인들과 고관대작들이 줄줄이 서초동에 불려왔고,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린 시절 자주 올랐던 고향마을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통곡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몇달 뒤 이승을 떴다. 사람들을 분노케 했고, 슬프게 만든 사건의 연속이었다. 어느덧 가을냄새가 짙어졌고,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새해는 ‘희망’의 동의어나 다름없다. 희망을 얘기하려면 뒤끝이 좋아야 한다. 발목이 잡혀서야 어찌 발걸음이 가볍겠는가. 그렇기에 불행의 씨앗이었고, 액운의 단초였던 용산참사를 털어내야 한다. 내년까지 끌고 간다면 정권에 액운이 드리울 수 있다. 엊그제 용산참사 피고인들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이 내려졌다. 남일당 건물 망루에서 끝까지 농성을 벌였던 이들에게 모두 중형이 선고됐다.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희생자 가족은 “이건 재판이 아니야.”라며 울부짖었다. 피고인과 변호인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즉각 항소하겠다고 했다. 보는 입장이 다 같을 수는 없겠지만 체한 듯 가슴 답답함을 느낀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법치’를 외치는 정부가 볼 때 분명 ‘이긴’ 재판이다. “봐라, 법대로 하니까 잘되지 않느냐. 용산을 법대로 풀었기 때문에 쌍용차도 제대로 됐고…”라고 쾌재를 부를지도 모른다. 이런 부류들이 최고 권력 가까이에 꽤 있다는 말이 들린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자. ‘덕치’를 갈망하는 쪽에서 볼 때 과연 이긴 재판일까. 요즘 중국이 공자 배우기에 한창이라고 한다. 후진타오 국가 주석을 비롯해 중국 지도자들은 걸핏하면 공자 어록을 들먹인다는 보도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봉건 구질서의 원흉으로 지목했던 공자를 왜 부활시키려는 것일까. 다름아닌 공자 사상의 핵심인 인(仁)을 통해 국가경영의 화두를 삼으려는 지도부의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안다. 공자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 바로 한비다. 그의 철학 핵심은 군권(君權) 강화와 엄벌주의다. 한비자형 중국이 공자를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용산재판’은 끝(대법원)까지 갈 수도 있는 만큼 이번 판결은 시작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사법부의 일이다. 정부는 1심 판결로만 볼 때 공권력 투입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재판과는 별개로 오열하는 희생자 가족의 눈물을 닦아줄 책임 또한 정부에 있다. 재판 진행과 관계 없이 정부가 용산참사 수습에 나서야 할 이유다. 해를 넘길 문제가 결코 아니다. 법을 어기라는 얘기가 아니다. 덕치, 인치(仁治) 차원에서 해결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일은 아무래도 정치권이나 특정 시민단체보다는 종교지도자들이 전면에 나서는 게 좋을 듯싶다.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도 뒤로 물러나야 한다. 법과 투쟁이 아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해결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운찬 총리가 취임 초 유가족들을 만났다. 양쪽 모두 기대가 있는 만큼 실행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 최근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이 바뀌었다. 축하도 할 겸 대통령과 종교지도자들이 만나 용산문제를 테이블에 올리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정부와 국회도 용산참사의 원인이 된 재개발 정책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팔을 걷어야 한다. 곧 연말이다. 유가족들이 1년 가까이 입고 있는 상복을 벗고 태평로와 청계천의 연말연시 밤풍경을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용규 사회부 차장 ykchoi@seoul.co.kr
  • 문화의 향기 흐르는 안성

    문화의 향기 흐르는 안성

    속절없이 깊어만 가는 가을이다. 소슬한 바람이 불면 애써 묻어뒀던 가슴 속 애잔함이 스멀스멀 새어나온다. 더이상 멈칫거릴 수 없다. 세상은 남자의 가을을 단순히 치기어린 감상(感傷)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매일 잔소리로 들볶던 아내라면 남편을 위해, 용돈타령 일삼던 자식이라면 아버지를 위해, 장가 안 가서, 아들을 안 낳아서 늘 걱정이던 노모라면 아들을 위해,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애인이라면 자신의 남자를 위해, 뭔가 슬쩍 눈감아 줘야 하는 계절이다. 간단히 배낭 꾸리고 꼭꼭 씹어 읽을 시집 한 권 집어넣고 떠나는 나만의 여행을 가져보자. 멀리 떠나도 좋지만 가까워도 나쁘지 않다. ‘지금, 여기’의 나는 ‘그때, 거기’의 나로 인해 만들어진 모습이다. 가을은 나를 직시(直視)하는 여행의 시간이다. 이것저것 재지 말고 훌쩍 떠나라. 중요한 것은 한 걸음, 한 걸음 나를 찾아가는 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남자의 가을이다. 안성이 바로 안성맞춤이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닿는 가까운 곳에 있다. 코스는 칠장사, 또는 석남사 들러 고삼 호수 언저리가 좋다. 멀리 떠나도 금세 돌아와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리 바쁘게 돌아다니지 않아도 애써 하룻밤 머물러 볼 필요가 있는 곳이 있다. 안성이 바로 그런 곳이다. 물안개 자욱히 피어오르는 고삼 호수의 새벽 풍경은 꼭꼭 묻어둔 인생의 비의(秘意)를 다시금 되새겨보게끔 만든다. 가을 남자의 여행에 빠트릴 수 없는 절실한 것 아닌가. 늘 그렇듯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야 한다. 빛바래고 너덜너덜한 표지의 박두진 시집을 들고 아련했던 문청의 기억을 떠올려볼 수도 있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어느 숲 어귀에서, 호수 언저리에서 ‘해’ 또는 ‘호수’를 떠올리며 박두진의 시 감성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고은의 시집 또한 어떤가. 23년에 걸쳐 쓰였으며 30권 완간으로 치닫고 있는 ‘만인보’ 중 아무거나 하나 움켜쥐고 다니다가 고은의 사람들을 나의 사람으로 끄집어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되겠다. ●조병화·박두진… 시인들의 흔적을 따라서 안성은 시인의 고향이다. 어디를 가도 조병화(1921~2003), 박두진(1916~1998)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박두진은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시인이자 화가였던 조병화 역시 안성에서 태를 묻고 뼈를 묻었다. 조병화의 거의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난실리 조병화 문학관에는 그의 육필 원고, 만년필, 모자, 럭비공(그는 럭비를 무척 좋아했다.) 등 여러 유품, 생활했던 공간 등이 잘 보존돼 있다. 며느리 김용정씨가 대표로서 문학관을 관리하고 사람들을 안내한다. 늘 공개하지는 않는 집필실을 김 대표를 따라 들어가 보니 마치 글을 쓰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듯 책상 위에는 원고지와 펜이 놓여 있고, 옷걸이에는 코트와 모자가 편안하게 걸려 있다. 벽난로를 좋아했다는 시인의 취향대로 문학관 실내마다 벽난로가 만들어져 있다. 추운 겨울밤 창밖의 삭풍 몰아치는 소리 중간중간에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 섞이면 참 운치있었겠구나 하는 부러움이 슬며시 든다. 안타깝게도 박두진의 문학관은 아직 온전히 마련되지 않았다. 안성문예회관 자료실에 관련 자료들이 있고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는 정도다. 아쉬움을 달래려 금광면 오흥리 생가를 찾았지만 이곳 역시 이정표 되는 간판만 있을 뿐 외부인에게 친절한 내용을 갖고 있지는 않다. 오후 저물어가는 햇살에 반짝거리는 금광호수만이 그 어느날 시인의 발걸음을 말없이 기억해 내고 있는 듯했다. 뿐이랴. 매년 노벨문학상을 발표하는 10월 즈음이면 문학기자들이 진을 쳤다가 아쉬움에 발길 돌리던 시인 고은이 지내는 곳이 있다. 벌써 십수년 넘게 살고 있으니 아예 안성 사람이 다 됐다. ●고즈넉한 칠장사 은행나무길 걸어보셨나요 칠장사는 여러 얘깃거리를 품고 있는 아주 재미있는 절이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현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산 속에 푹 안겼으면서도 내려다보이는 넉넉한 전망까지 함께 갖고 있어 그저 휙 둘러보는 맛도 충분하다. 칠장사까지 다다르는 길은 호젓하기만 하다. 17번 국도에 올라선 뒤 차창 열고 상쾌한 공기를 10분 남짓 들이켜다 보면 칠장사 외곽 주차장과 함께, 제법 예술을 이해할 법한 근사한 일주문과 은행나무길이 나온다. 대웅전 바로 아래쪽까지 차로 갈 수 있지만 이곳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오르는 것이 칠장사를 즐기는 첫걸음이다.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알고 보니 이곳은 대구 팔공산 갓바위 못지않은 수험생들의 단골 기도 장소란다. 천안 살던 ‘과거 수험생’ 박문수가 한양 가는 길에 하룻밤 묵으며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며 기도를 올리고 잠이 들었는데 그날 밤 꿈에 시험의 시제(試題)를 보았다고 한다. 장원급제는 당연지사였다. 이른바 ‘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의 전설이다. 수능시험을 코앞에 둔 수험생들의 어미들은 혜소국사비 앞의 나한전에 모여 치성을 드리고 있다. 이 밖에 갓바치 스님의 제자였던 임꺽정이 공들여 깎았다고 전해지는 ‘꺽정불’ 이야기, 어린 궁예의 활 연습장 터, 혜소국사에게 교화돼 일곱 도적에서 일곱 나한으로 해탈한 이야기 등 천천히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석남사 역시 여름철 무성하던 물과 사람은 간데없고 고즈넉하다. 석남계곡 물줄기를 따라 만들어진 차 한 대 간신히 지나갈 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면 오밀조밀 예쁜 가람배치를 보여주는 석남사가 나타난다. 경내에서 노스님을 만나면 누군지 몰라도 일단 살갑게 인사하고 한 말씀을 구해 보라. 주지인 정무 스님의 재미있는 말씀과 맛난 차를 얻어먹을 수 있다. 이때 즈음이면 슬슬 혼자보다는 누군가 함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치민다. ■가족과 함께라면 훌쩍 떠난 것이 가족에게, 애인에게 미안했다면 아쉬워하지 말라. 미리 가족 여행 답사 다녀왔다고 씩씩하게 얘기하면 된다. 나를 찾을 수도 있는 절대적 모색의 시간을 만들 수도 있는 곳이지만 아이와 함께 즐겨도, 애인과 서로 어깨 나눠주며 다니기에도 모두 좋은 곳이지 않은가. 사실 그들 역시 당신의 짧은 일탈을 충분히 이해하고 눈감아주고 있다. 고독과 사색의 공간이었던 칠장사가 아이들과 함께라면 오랜 시간의 역사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이야기 보따리가 되고 박두진, 조병화 등 시인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은 함께 읊조려도 충분히 흥겨운 것들이다. 특히 너리굴 문화마을은 하룻밤 머물면서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천연비누 등 각종 문화예술 체험 프로그램이 많다. 사슴 목장과 산책로 등은 자연 생태계를 바로 곁에서 볼 수 있어 더욱 좋다. ‘대안미술공간 소나무’가 만든 호랑이가 우글우글하는 복거 마을도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곳이다. ●여행 Tip 매주 토요일 안성시에서 운영하는 당일치기 시티투어가 있다. 남사당 공연, 각종 볼 곳들을 둘러볼 수 있다. 또한 역시 매주 토요일 그린투어가 진행된다. 관광보다는 주로 인삼조합, 포도농원, 배농장, 한우농장 등 농촌체험이다. 시티투어는 1만 8000원(어린이 1만 5000원)이고, 그린투어는 2만원(어린이 1만 7000원)으로 오전 9시 서울남부터미널 앞에서 출발한다. 예약 (02)588-7464. 글 사진 안성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대학로에 실개천 흐른다

    대학로에 실개천 흐른다

    ‘문화와 연극의 거리’ 대학로에 실개천이 생긴다. 서울시는 다음달 1일 대학로의 혜화교차로~이화사거리 1.03㎞ 구간에 실개천을 조성한다고 28일 밝혔다. 대학로 실개천은 북악산의 남서쪽에서 흘러 내려와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홍덕동천을 되살리는 것이다. 실개천은 전체 구간 중 혜화교차로에서 마로니에공원 이전까지 약 500m는 콘크리트 등의 구조물로 된 인공형으로, 마로니에공원부터 이화사거리까지는 풀과 화초·바위 등이 있는 자연형으로 조성됐다. 이곳에는 인근 지하철4호선 혜화역에서 생기는 지하수를 여과해 살균한 1급수 수준의 물이 폭 0.5~2.0m의 수로를 통해 하루 500t씩 흐르게 된다. 실개천 곳곳에는 분수와 벽에서 물이 흐르는 벽천, 연못 등 친수공간도 만들어진다. 서울시는 ‘도심 속 실개천 만들기’ 사업에 따라 대학로에 이어 11월에는 성동구 뚝섬역 주변(길이 280m)과 성북구 국민대 주변(120m), 송파구 남부순환로(1500m), 내년 6월에는 구로구 거리공원(360m)에 실개천을 완공할 예정이다. 또 2020년까지 자치구와 함께 시내에 총 120여개의 실개천을 만들 계획이다. 실개천은 수변문화공간으로 도심의 온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도시와 산] 통영 미륵산

    [도시와 산] 통영 미륵산

    미륵산(彌勒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경남 통영시, 경북 울릉군, 전북 익산시, 강원도 원주시 등 전국에 4곳이 있다. 통영 미륵산(461m)은 통영시 육지 쪽과 2개의 다리로 연결된 산양읍 미륵도 중앙에 우뚝 솟아 있다. 높지 않은 산임에도 산림청이 선정한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당당히 이름이 올라 있다. 남해안 중앙에 있어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비경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탁월한 조망이 빼어나다. 정상에 올라보면 통영항 일대를 왜 동양의 나폴리로 부르고, 미륵산이 명산의 반열에 들게 됐는지 그 이유를 보고 느낄 수 있다. 케이블카가 설치돼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미륵산을 찾는 관광객이 사계절 줄을 잇고 있다. ●명산 조건 고루 갖춘 산 1억 2000여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기에 화산 폭발로 이뤄진 산으로 알려진 미륵산은 울창한 산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기암괴석, 오래된 절 등 명산의 요건도 고루 갖췄다. 미래의 부처인 미륵존불이 내려오는 산이라고 해서 미륵산으로 불린다. 산 북쪽에 용화사라는 오래된 절이 있어 용화산이라고도 불린다.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산으로 용화사를 비롯해 고려 태조 때 도솔선사가 창건한 도솔암, 조선 영조 때 창건된 관음암, 고승 효봉(1888~1966년)이 머물렀던 효봉 문중의 발상지인 미래사 등의 사찰이 있다. 용화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 은점 선사가 지금의 관음전 자리에 정수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623년 동안 계승되다 1260년에 산사태가 나면서 무너져 3년뒤 미륵산 제3봉 아래로 절을 옮겨 짓고 천택사라 불렀다. 천택사도 1628년 화재로 폐허가 돼 1724년 벽담 선사가 현재의 용화사 자리에 천택사의 보광전 기둥을 비롯해 남은 건물을 옮겨 새로 중창했다. 당시 벽담 선사는 천택사 중창을 앞두고 미륵산 봉우리에서 7일 동안 밤낮 기도를 올리던 중에 한 신인(神人)으로부터 “이 산은 미래세계에 미륵불이 내려와 용화회상이 될 도량이니 이곳에 절을 세워 용화사라고 부르면 만세기에 전하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용화사는 조선시대 수군막사로도 이용됐다. 미래사는 효봉 스님의 상좌였던 구산 스님이 석두·효봉 두 큰 스님의 안거를 위해 1954년 세웠다. 주변의 울창한 편백숲이 산사 주변의 호젓한 분위기를 더한다. 미륵산 정상 부근 제2봉에는 고려 말~조선 초에 설치된 것으로 전해지는 봉수대 터가 있다. 봉수대 터 주변에서는 조선시대 기왓조각과 통일신라시대 도장무늬토기 조각도 출토된다. ●날마다 수천명 등정 미륵산은 어느 산행길에서 출발하더라도 1시간 남짓이면 정상에 닿는다. 케이블카가 설치된 뒤에도 걸어서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객들은 여전하다. 미래사 쪽에서 오르는 산길이 정상까지 30여분으로 가장 빠르다. 용화사와 미래사를 잇는 산길은 통영시민들이 즐겨 이용하는 길이다. 미륵산 정상은 바위로 이뤄져 있다. 케이블카가 설치된 뒤 하루 수천명씩 몰리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미륵산 정상에 목재로 데크 시설을 하는 바람에 산 정상의 자연스런 모습이 가려졌다. 정상에 이르면 호수처럼 고요하고 평온한 한려해상 국립공원 다도해의 그림 같은 풍광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해질 무렵 낙조로 붉게 물든 서쪽 바다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의 자태가 눈길을 붙든다. 정상에서 직선거리로 90㎞쯤 떨어져 있는 대마도는 일년에 30여일, 105㎞ 떨어진 지리산 천왕봉은 일년에 절반쯤은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예술·문학 영감의 원천 정지용 시인은 한국전쟁 직전에 통영을 둘러보고 ‘통영1’에서 ‘통영6’까지 6편의 기행문을 남겼다. 그는 미륵산 정상에서 통영과 바다 풍경을 보고 쓴 기행문 ‘통영5’에서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 우리가 미륵도 미륵산 상봉에 올라 한려수도 일대를 부감할 때 특별히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는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라고 예찬했다. 통영시는 정지용 시인의 통영예찬을 기리는 문학비를 오는 12월 미륵산 정상에 세운다. 말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는 시인조차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하는 한려수도의 천연미와 천혜의 자연 전망대인 미륵산은 통영을 예향으로 만든 자양분이 됐을 것이라고 문인들은 말한다. 극작가 유치진과 시인 유치환 형제를 비롯해 시인 김춘수, 김상옥, 작곡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등 통영 출신의 걸출한 문학·예술인이 미륵산에서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굽어보며 문학·예술적 영감을 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이상은 통영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자주 찾았던 미륵산과 용화사에서 보고 들었던 숲과 바다 갈매기, 스님들의 염불소리 등이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 됐다면서 생전에 미륵산에 애착을 보였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그의 바람대로 한려수도가 내려다보이는 미륵산 양지바른 자락에서 영원히 잠들어 있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케이블카 타고 꿈의 하늘로 경남 통영 미륵산의 케이블카가 인기다. 정상까지 빠르고 편하게 이동시켜 주기 때문이다. 아래 하부역에서 정상 턱밑인 상부역까지 10여분 만에 도착한다. 특히 통영항과 한려수도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모습도 하늘에서 감상할 수 있다. 통영관광개발공사에서 운영하는 이 케이블카는 하부역에서 상부역 사이 선로길이가 1975m로 국내에서 가장 길다. 2가닥으로 된 선로가 자동으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선로에 달린 8인승 곤돌라 47대가 초속 6m 속도로 상·하부역을 오르내린다. 시간당 1000여명을 수송한다. 미륵산 케이블카 설치사업은 2002년 12월 사업비 173억원으로 착공됐으나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공사가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4월18일 개통됐다. 통영관광개발공사측은 미륵산 케이블카는 ‘그린 케이블카’에 역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환경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하부역 사이에 1개의 지주만을 설치했고 많은 사람이 지나다녀 환경 훼손 우려가 있는 구간에는 나무데크로 길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미륵산 케이블카는 누적 이용객이 지난 3일 100만명을 넘어 통영관광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지난여름 휴가철에는 평일 5000명, 휴일에는 9000여명이 몰렸다. 2~3시간씩 기다려야 탈 수 있었다. 8월1일에는 하루 이용객 최고인 1만 96명을 기록했다. 요즘에도 하루 평균 2000여명에 이른다. 통영관광개발공사는 전문기관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미륵산 케이블카 관광객 한 사람이 통영 지역에서 5만~10만원을 쓰는 것으로 계산할 때 케이블카에 따른 관광수익은 700억~8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통영시 1년 세수규모인 1100억원의 70%에 이르는 금액이다. 신경철 통영관광개발공사 사장은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미륵산 정상에서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케이블카 안전 운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허풍쟁이와 소년/구민애

    [엄마와 읽는 동화] 허풍쟁이와 소년/구민애

    허풍쟁이바람은 심심했어요. 오늘은 누구를 골려먹을까? 아이들 중에서 골라 봐? 허풍쟁이바람이 한 아파트 단지 놀이터를 휘익 둘러봤어요. 그때 나무 의자에 드러누워 하품을 하는 소년이 보였어요. 목표물 발견! 그저 그런 얼굴, 작은 키에 마른 몸, 또 부자 같지 않은 차림새. 아주 좋아. 허풍쟁이바람은 소년이 한껏 벌렸던 입을 다물기 바로 전, 소년의 입 속으로 몸을 슝 던졌어요. 소년은 곧 입을 꾹 닫고는 잠이 들었지요. 엄청 깜깜하군. 얘는 마음도 새까만가 보네. 하긴 장난치기엔 이런 녀석이 제격이지. 신이 난 허풍쟁이바람이 괜히 숨을 헐떡이며 호들갑을 떨었어요. 어이쿠, 천재 허풍쟁이 살려! 헉헉, 최고의 허풍쟁이 살리라고! 이튿날 아침이었어요. 소년이 건너편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학교에 갔어요. 물론 허풍쟁이바람도 소년을 따라 4학년 5반 교실로 들어갔지요. 소년은 공부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입을 다물고 얌전히 앉아 있었어요. 시시때때로 소년 옆을 지나가던 남자 아이들이 ‘어이, 얌전이!’ 또는 ‘국민약골, 오늘은 밥 먹었냐?’ 하며 머리를 툭툭 칠 따름이었어요. 어라, 얘는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소년의 몸속에서 시간만 보내던 허풍쟁이바람은 심심해서 짜증이 날 지경이었어요. 점심시간이 찾아왔어요. 아이들이 급식판을 들고 점심을 받아왔어요. 소년도 줄을 서서 급식을 받고 자리로 돌아왔어요. 잡곡밥에 미역국, 김치와 새우튀김, 감자조림과 불고기가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어요. 소년이 군침을 삼키며 새우튀김을 입에 넣으려 할 때였어요. “야, 국민약골! 넌 가난해서 이런 거 처음 먹어보지?” 소년 옆 모둠에 앉은 덩치 큰 아이가 젓가락으로 새우튀김을 탁 쳤어요. 새우튀김이 교실 바닥으로 톡 떨어졌어요. 순간 소년의 얼굴이 발개졌어요. “아깝지? 우리 집은 이것보다 더 큰 새우튀김 자주 먹거든. 그래서 난 이깟 것 하나도 아깝지 않은데. 히히!” 덩치 큰 아이가 그 새우튀김을 발로 밟았어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년이 입을 열었어요. 기회를 잡은 허풍쟁이바람이 끼어들어 외쳤어요. “웃기지 마! 나도 네 팔뚝만 한 새우튀김 매일 먹는다고. 너만 잘 사는 거 아냐.” 소년은 사방으로 침이 마구 튈 정도로 목청을 높였어요. “거짓말! 이제 보니 너 거짓말 엄청 잘 한다.” 덩치 큰 아이가 소년의 볼을 손가락으로 꾹꾹 찔렀어요. 사실 소년은 그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어요. ‘먹는 걸 함부로 버리면 죄 받아. 우리 엄마가 그랬어.’ 이 말을 하고 싶었는데 엉뚱한 말이 튀어나온 것이었어요. “거짓말 아냐! 너야말로 우리 집이 얼마나 부자인지 모르지? 외국에 집이랑 땅이랑 엄청 많이 사놨다고. 흥, 알지도 못하면서.” 소년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커져 있었어요. “웃긴다. 그렇게 부자면서 싸구려 옷을 입고 다니니?” “네 엄마, 아빠가 김밥 장사하는 거 다 알아. 그런데도 거짓말을 하냐? 얘들아, 앞으로 이 거짓말쟁이하고는 놀지 마라.” 덩치 큰 아이가 소년의 뒤통수를 짝 때리더니 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여기저기서 깔깔깔 웃음보가 터졌어요. ‘내가 왜 이러지? 왜 자꾸 엉뚱한 말만 하는 거야? 앞으로 아이들 얼굴을 어떻게 봐.’ 소년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어요. 공부고 뭐고 다 팽개치고 교실을 뛰쳐나오고 싶었지요. 허풍쟁이바람은 이런 상황이 아주 재미있었어요. 역시 허풍을 떠는 건 신나는 일이라니까. 허풍쟁이바람은 다음 날도 소년에게 장난을 걸었어요. “난 쌩쌩이 백 번도 넘게 해. 어제 집에서 연습했는데 백 오십 번이나 했다고. 내 솜씨 어떤가 볼래?” 소년이 체육 시간에 줄넘기를 하며 허풍을 떨었어요. “이 옷이 얼마짜린지 알아? 21세기 백화점 수입 코너에서 몇 십만 원 주고 산 거야. 어때, 멋지지? 역시 유명제품은 달라.” 쉬는 시간에도 소년의 허풍은 계속 이어졌지요. “국민약골, 아니 뻥쟁이. 이리 와 봐.” 남자 아이들이 소년을 화장실로 데려가서는 주먹을 내보이며 겁을 주었어요. “잘난 것 하나 없으면서 허풍만 떨어? 또 그러면 그 땐 정말 맞을 줄 알아!” 소년이 남자 아이들의 위협에 눈물만 뚝 떨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러나 이튿날 첫 번째 쉬는 시간에 소년은 또 허풍을 늘어놓는 게 아니겠어요. “이번 토요일이 내 생일인데 올래? 특급 호텔 뷔페식당에서 잔치할 거야. 손님이 천 명쯤 오는데, 너희는 선물 없이 빈손으로 와.” 소년의 말을 들은 여자 아이들이 복도에 있던 힘센 남자 아이들에게 그 말을 그대로 옮겼어요. “우아, 그 짜식 진짜 끝내준다. 더는 못 참아!” 청소가 끝난 뒤 소년은 남자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마구 맞았어요. ‘나도 그렇게 말하려던 게 아니었어. 미안해.’ 소년은 얻어맞으면서 이렇게 소리치려 했어요. 그런데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이들을 더 화나게 했어요. “겨우 주먹 힘이 그것밖에 안 돼? 간지러워 죽겠다. 더 힘껏 쳐보라고!” 물론 허풍쟁이바람이 소년의 원래 말을 가로챘기 때문이었지요. 오우,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는 않는군. 허풍쟁이바람은 자기의 장난에 아이들이 쉽게 장단을 맞추는 것이 신기했어요. 그래서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소년이 허풍을 떨도록 만들었지요. 소년이 사는 아파트의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어느 아침이었어요. “뭐하고 놀까? 하여간 학교 끝날 때까지 아무한테도 들키지만 않으면 돼.” 소년이 날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동네 뒷산으로 올라갔어요.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후미진 곳을 찾아 편평한 바위를 베고 드러누웠어요. 어, 이 녀석이 왜 학교를 안 가는 거야? 오늘은 아이들이 이리로 오기로 했나? 하긴 자연 속에서 노는 것도 재미나지. 허풍쟁이바람이 제 멋대로 추측을 했어요. 그러나 소년은 뜨거운 해가 하늘 한가운데 이르도록 혼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이었어요. 이 녀석이 대체 왜 이러는 거야? 학생이 학교를 빠지다니, 이건 말도 안 돼. 허풍쟁이바람은 소년의 몸속에서 혼자 부아를 내며 야단이었어요. 소년은 꿈쩍도 하지 않고 혼잣말만 할 따름이었고요. “나는 왜 몸이 약해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까? 휴우, 이젠 모두들 나를 싫어해. 그런데 그건 당연한 거지 뭐. 내가 이상한 말만 내뱉고 있잖아.” 소년은 사흘이나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결석한 첫날, 선생님 전화를 받은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지만 소년은 여전히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허풍쟁이바람만이 심심하고 지루해서 병이 날 지경이었지요. 얘, 학교 좀 가라. 제발, 응? 소년이 학교를 결석한 지 나흘째 되는 날 오후였어요. 허풍쟁이바람은 이튿날도 소년이 학교를 빠지면 소년을 떠날 생각이었어요. 며칠 즐겁게 놀았으니까 새로운 녀석을 찾아도 괜찮지 뭐. 소년이 동네 뒷산에서 빈둥거리다가 막 아파트 출입구로 들어서려 했어요. “우리가 왜 별볼 일 없는 녀석을 찾아가야 하냐, 시간 아깝게? 선생님도 웃겨.” “그러게 말이야. 그 뻥쟁이 녀석 우리 반에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데 말이야.” “그건 아니지, 국민약골은 우리 장난감인데 없으니까 심심하기도 하잖아.” 엘리베이터 앞에 같은 반 남자 아이들이 모여 떠들고 있었어요. 출입구 쪽에 얼어붙은 듯 서 있던 소년이 황급히 몸을 돌렸어요. 한낮의 햇볕만큼이나 뜨거운 물이 소년의 눈앞을 가렸어요. 소년은 동네 뒷산 편평한 바위에 엎드렸어요. 처음엔 끄억끄억 참아가며 울음을 내뱉더니 마침내는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어요. 허풍쟁이바람은 온 몸을 들썩거리며 울음을 터뜨리는 소년 때문에 덩달아 들썩들썩 했지요. 어휴, 얘가 뭘 잘못 먹었기에 이 난리인 거야. 울긴 왜 우냐고? 하긴 울 만도 하지. 공부도 별로이지 부자도 아니지, 게다가 비리비리 힘도 약하잖아. 허풍쟁이바람은 그동안 학교에서 소년이 당한 일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거렸어요. 그런데 어둠 속에서 소년을 따라 들썩거리자니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요. 허풍쟁이바람은 한동안 눈을 감고 있기로 했어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소년의 울음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어요. 허풍쟁이바람이 살그머니 눈을 떴지요. 아, 눈부신 햇살처럼 빛나는 소년의 심장! 허풍쟁이바람은 비로소 소년의 깨끗한 마음을 보았어요. 그리고 소년의 그 마음의 빛에 사로잡혀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요. 내가 지나치게 장난을 쳤어, 겉모습이 하찮은 아이라고 깔보고서 말이야. 얘가 이렇게까지 된 건 내 탓이야. 허풍쟁이바람이 잠이 든 소년의 몸에서 조용히 빠져나왔어요. 그 다음 날이었어요. 소년이 없는 4학년 5반 교실은 하루 종일 시장처럼 시끌시끌했어요. 서른다섯의 아이들 모두가 허풍을 늘어놓았기 때문이었지요. “수학 문제집 한 권을 삼십 분에 다 풀었다니까. 역시 난 아이큐 155의 천재다워.” “나 백만 원짜리 핸드폰 샀다. 촌스럽게 비싸다고 놀라기는. 내게 백만 원은 껌 값이라고.” “나 어제도 길거리에서 캐스팅됐어. 벌써 백 번째야. 다들 내가 예쁜 건 알아가지고. 아, 어느 기획사로 갈까 진짜 고민이야.” 서른다섯 아이들의 귓구멍과 콧구멍, 그리고 입에서 조그맣게 몸을 쪼갠 허풍쟁이바람이 씁쓸히 웃고 있었어요. 완전한 해결 방법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소년을 도와서 다행이야. ●작가의 말 우리는 가끔 우리보다 힘이 약하거나 공부를 못하는 친구를 깔보고 괴롭힐 때가 있어요. 그 친구의 마음이 어떤 빛깔인지 보지 못한 채, 혹은 알려고 애쓰지도 않은 채 그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마음의 눈을 조금만 더 크게 뜨고 친구들을 바라본다면, 그동안 찾아내지 못했던 그 친구의 좋은 점을 알게 될 거예요. 또 그 친구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도 생길 거예요. ●작가 약력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날아가는 항아리’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함. 2001년 ‘태양이 떠오르는 그 너머로’ 등의 작품으로 대산문화재단에서 주는 대산 창작 기금을 받은 후, 같은 작품으로 국어문화 운동본부에서 주는 ‘올해의 문장상’ 받음. 지금까지 쓴 책으로는 ‘바보 우물’, ‘그래, 넌 할 수 있어’, ‘어린이- 잘 되는 나’, ‘라마누잔’ 등이 있음.
  • “21세기형 리더십은 뒤에서 밀어주는 것”

    “21세기형 리더십은 수평적이고 병렬적인 리더십입니다. 기존의 리더십이 개인의 능력을 발휘해 다수를 앞에서 이끌 수 있도록 했다면, 새로운 리더십은 뒤에서 전체를 밀어주는 형태로 나타나야 합니다.” 안철수(왼쪽) 카이스트 교수가 한국리더십센터 주최로 24일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2009 글로벌 리더십 페스티벌’에서 “우리사회의 리더십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점 많은 리더들이 우리사회 갈등 증폭 ‘이 시대 지속 가능한 발전을 리드하라’는 주제로 주식 전문가인 시골의사 박경철(오른쪽)씨와 대담자로 나선 안 교수는 “무조건 부드러운 리더십이 수평적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감성적인 리더십과 냉정한 리더십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고 권한을 위임했다고 해서 간섭을 안 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리더와 관리자의 차이에 대해서는 “관리자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과 돈 아래 어떤 일을 이뤄나가는 목표지향적인 관점이고, 리더는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지향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다.”고 정의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우리사회가 지나치게 나쁜 관리자를 많이 만난 것 같다.”면서 “약점이 많은 리더들이 우리사회의 갈등과 위험을 증폭시킨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기득권층이 유지될 수 있는 사회구조의 개혁을 우리사회의 우선적인 과제로 꼽았다. 글로벌 시대에는 국가 내부뿐 아니라 전세계가 경쟁상대인데, 기득권을 보호하는 구조 자체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박씨 역시 ‘자기자신의 노력이 자신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정래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리더가 끊임없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더를 따라가기보단 롤모델 삼아야 두 사람은 젊은이들에게 ‘리더를 따라가기보다는 롤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 교수는 “호기심이 왕성하고 인생에 있어서 재능과 자질을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사회적 힘”이라며 “불량 청소년은 없고 이들을 잘못 이끈 불량 어른이 있을 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씨는 “앞에 바위가 있으면 그 앞에서 굶어죽는 것보다는 부딪치는 게 낫다.”면서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에게 뜻을 펼치지 못하게 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 중고등학생들이 자신의 실패에 대해 ‘더러운 세상 만났다.’고 얘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는 어른이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 安의사 저격장소 역바닥에 암호같이 세모표시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 安의사 저격장소 역바닥에 암호같이 세모표시

    │하얼빈·뤼순 박홍환특파원│지난 22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성도 하얼빈(哈爾濱)의 늦가을 밤은 겨울을 재촉하는 찬 바람이 북방에서부터 몰아치고 있었다. 100년 전인 1909년 이날 ‘대한국인’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위협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한다는 큰 뜻을 품고 열차를 이용해 이곳 하얼빈 땅을 찾았다. 사정없이 북풍이 몰아치는 하얼빈역 플랫폼을 밟으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흘 뒤인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 뤼순(旅順)에서부터 장장 40여시간의 기차여행 끝에 두꺼운 코트로 감싼 몸을 하얼빈역 플랫폼에 내려놓은 이토는 안중근이 발사한 브라우닝 권총 3발을 맞고 20분만에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그 짧은 순간 이토는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다시 찾은 역사의 현장에는 작은 ‘암호’ 2개만 그날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하얼빈역 제1플랫폼 바닥에 새겨진 세모와 네모 표시이다. 가로·세로 50㎝의 붉은 색 보도블록 안에 하얀색으로 세모와 네모를 그려넣었다. 세모는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장소이고, 그보다 5m 정도 떨어진 거리에 그려진 네모는 이토가 서 있던 곳이다. 아무런 설명도 없지만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고 역무원이 귀띔했다. ‘암호’로 시작된 하얼빈에서의 안 의사 흔적찾기는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시내 자오린(兆麟)공원 한편에는 안 의사의 상징인 붉은색 단지 인장과 안 의사 친필 유묵인 ‘청초당(靑草塘)’과 ‘연지(硯池)’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자신의 유해를 이곳에 묻었다가 국권회복 뒤 고국으로 옮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미 국권이 회복된 지 오래됐지만 유해는 뤼순 감옥 뒤편 어딘가에서 아직도 발굴조차 못하고 있다. 현지 자료는 빈약했다. 그나마 조선족 동포들의 노력으로 작은 전시관이 마련돼 있었다. 하얼빈시 안성제(安升街) 85호 조선민족예술관 2층. 하얼빈시의 재정 지원으로 2006년 개관한 이곳은 의거 장면을 재현한 미니어처 등 400여점의 관련 자료를 통해 안 의사의 넋과 얼을 전승하고 있다.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에서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는 허태열(80) 할아버지는 “안 의사의 순국정신이 민족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전해질 것”이라고 직원들을 격려하며 꼬깃꼬깃하게 접은 100위안(약 1만 7000원)짜리 지폐를 헌금함에 넣었다. 안 의사 의거 100주년에 대해 중국 측은 드러내놓고 기념하길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현지 사회과학원 주최로 열린 토론회 안내문에서도 ‘안중근’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고, 취재도 어렵게 이뤄졌다. 안 의사가 주창한,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동양평화’는 언제쯤 실현될 것인가. 이토를 사살한 안 의사는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에서 5일간 조사를 받은 뒤 이토가 거슬러 올라왔던 전장 945㎞의 ‘하얼빈~다롄(大連) 철로’를 통해 뤼순감옥으로 이송됐다. 압송되던 안 의사는 이틀동안 만주 벌판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조국의 위기를 걱정했겠지만 잠깐 잠자고 깨보니 벌써 다롄이다. 압송길은 10시간으로 단축돼 있었다. 창춘(長春), 선양(瀋陽)을 거쳐 다롄의 끝자락 뤼순에 도착한 안 의사는 국사범으로 분류돼 간수부장실 옆 독방에 감금됐다. 뤼순감옥에는 안 의사를 비롯해 신채호, 이회영 선생 등 그 곳에 투옥됐던 우리 독립열사들의 자료들을 따로 모아 국제항일열사기념관이 마련돼 있고, 안 의사가 재판받은 관동법원에도 안 의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뤼순 관동법원 유적전시관의 정춘매(38) 주임은 “하루 20~30명이 안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찾아온다.”며 “안 의사 자료를 체계적으로 발굴,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tinger@seoul.co.kr
  • 4개종교 화합의 순례길 열린다

    4개종교 화합의 순례길 열린다

    전북지역 4대 종교의 성지를 도보로 여행할 수 있는 순례길이 만들어진다. 전북도와 사단법인 한국순례문화연구원은 천주교·원불교·기독교·불교 등 4대 종교의 성지가 있는 전주∼완주∼익산을 잇는 180㎞의 ‘아름다운 순례길’을 조성키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산티아고 길’의 한국판이 생기는 셈이다. 이 길은 프랑스 남부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역의 산티아고 델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800㎞ 구간으로 예수의 제자 야곱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걸었던 곳으로 알려지면서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순례자가 몰려드는 곳이 됐다. ●전주~완주~익산…한국판 ‘산티아고 길’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은 1845년 한국인 첫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가 머문 나바위 성지(익산시 망성면)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10여명의 순교자가 묻힌 천호성지(완주군 비봉면), 불교문화의 정수인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 호남 최초로 1893년 설립된 서문교회(전주시 다가동), 신라 말기에 창건된 송광사(완주군 소양면) 등으로 이어진다. 이 순례길은 성지와 함께 지역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코스로 포장도로가 아닌 산과 논두렁, 개천길, 골목길이 대부분이며 걸어서 최장 6박7일이 걸린다. 특히 자전거나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주로 평지에 조성할 계획이다. 이들 성지에서는 신부와 목사, 스님, 교무 등 각 종단이 깨달음을 전하는 ‘종교 교류의 장’도 마련하고 산티아고 길의 저렴한 숙소인 알베르게처럼 일부에서는 숙박도 할 수 있다. ●지역 역사문화 체험 기획…31일 선포식 4대 종단은 이달까지 ‘아름다운 순례길’을 정비, 오는 31일 종단 관계자들과 신도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주 경기전 앞에서 선포식을 할 예정이다. 한국순례문화연구원 김수곤 이사장은 “종단의 유산과 함께 지역 사회의 역사와 문화 자산을 보고 느끼는 길이 될 것”이라며 “4대 종교가 순례길을 통해 통합하듯 분열과 반목의 사회가 진정으로 하나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일년에 두번뿐인 이 장면 담고 싶다면…23~28일 해남 땅끝마을로 가자

    일년에 두번뿐인 이 장면 담고 싶다면…23~28일 해남 땅끝마을로 가자

    해남 땅끝마을이 늦가을 아침 장관을 연출하는 ‘맴섬 일출’로 들썩이고 있다. 22일 전남 해남군에 따르면 송지면 땅끝마을 맴섬 일출이 23~28일 펼쳐질 예정인 가운데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땅끝 선착장 앞에 자리한 두 개의 작은 바위섬인 맴섬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맴섬 일출은 땅끝 일출의 백미로, 매년 2월과 10월 두 차례만 연출된다. 이때가 되면 황홀한 일출 광경을 앵글에 담으려는 관광객과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군과 마을 주민들은 24~25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간단한 아침식사와 요즘 앞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삼치회를 곁들인 한마당 행사를 연다. 신선한 삼치회를 비롯해 삼치찜 등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삼치요리를 땅끝마을 음식점의 요리 고수들이 직접 시연하고 관광객들과 함께 나눈다. 삼치잡이 배의 조업시간에 맞춰 관광객들에게 삼치를 현장 판매하는 난장도 열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맴섬 일출이 인터넷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외지인들의 방문이 늘고 있다.”며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해남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42) 청송 주왕산 주방계곡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42) 청송 주왕산 주방계곡

    경북 내륙의 오지인 청송이 시끌벅적할 때가 있다. 차가 뜸한 시내에 관광버스가 줄을 잇고, 청송에서 방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워진다. 주왕산이 단풍 절정기인 10월25일쯤이다. 이때는 우리나라 단풍의 흐름으로 보아 설악산은 절정이 지났고 내장산은 좀 이른 시기로 주왕산이 그 가운데를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주왕산은 예전 석병산이란 이름처럼 걸출한 암봉들과 어울린 단풍의 자태가 빼어나고 산길이 순해 인기가 좋다. ●주왕의 전설 서린 기암 천국 주왕산은 구석구석 좋은 곳이 많다. 기암괴석들이 즐비한 주방계곡과 절골, 전망 좋은 장군봉과 가메봉, 그리고 100년 묵은 왕버들이 잠겨 있는 주산지 등. 볼거리가 많다 보니 하루 산행으로 주왕산을 둘러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도 주왕산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곳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주방계곡이다. 대전사에서 내원동까지 이어진 계곡은 수려한 암봉 사이를 이리저리 휘돌아가며 단풍과 어울린 절경을 선사한다. 거리는 약 4㎞쯤 되지만 길이 순해 2시간이면 충분하다. 주차장에서 대전사로 가는 길은 난전 분위기가 물씬 난다. 인근 농가의 아낙들이 자리를 잡고 사과, 대추, 고추, 산수유 등을 내놓고 식당들은 길가에서 빈대떡을 요란하게 뒤집는다. “이따가 와요. 맛있게 해줄게.” 호객하는 아주머니 말을 못 들은 척하고 가노라면 어느덧 대전사. 보광전 뒤로 우뚝 솟은 기암은 주왕산의 상징으로 산행 초입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홀라당 빼앗는다. 생김새는 메 산(山) 자의 모양에 45m 높이의 봉우리가 살며시 홍조를 머금고 있다. 기암은 기이한 바위가 아니라 깃발을 꽂은 봉우리(旗岩)란 뜻이다. 주왕산은 특이하게도 중국에서 왔다는 주왕의 전설이 굽이굽이 서려 있다. 주왕은 중국 당나라 때 진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반역을 일으켰던 주도로 알려졌다. 거사를 실패한 주도는 신라 땅까지 쫓겨 왔고, 당나라의 요청을 받은 신라의 마장군 형제들에 의해 주왕굴에서 최후를 마쳤다. 토벌에 성공한 마장군은 주왕산에서 가장 잘 보이는 암봉에 깃발을 꽂았다고 한다. 그래서 기암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최근에 주왕이란 인물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이 나왔다. 청송의 향토사학자 김규봉씨는 주왕이 신라 헌덕왕 때 왕권의 잦은 교체로 사회가 혼란스럽던 와중에 반란을 일으킨 김헌창과 그의 아들 김범문이라고 주장한다). ●3개의 폭포와 단풍이 어우러진 주방계곡 대전사를 지나면 갈림길, 왼쪽으로 좀 가면 백련암 앞에 화사한 국화밭이 있어 그윽한 향기를 맡으며 기암을 올려다보는 맛이 기막히다. 백련암을 구경하고 다시 주방계곡을 따르면 본격적으로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아들바위를 지나 제1팔각정에서 주왕굴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올라갈 때는 계곡을 따르고 내려올 때 주왕굴을 들르는 것이 좋다. 여기서부터는 거인의 얼굴 모양의 기암(奇巖)들의 영접을 받는다. 먼저 급수대가 오른쪽에서 고개를 쳐들고, 다음은 시루봉과 학소대가 차례로 얼굴을 내민다. 급수대가 험상궂다면 시루봉은 인자한 할아버지 얼굴이다. 학소대 앞의 다리를 건너면 길은 거대한 협곡 사이로 들어가는데, 꼭 비밀의 세계로 통하는 문 같다. 쿵쿵거리는 마음을 진정하며 협곡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단풍이 병풍처럼 둘러싼 암봉을 물들이고 그 아래 1폭포가 걸려 있다. 어느 무릉도원이 이보다 화려할까. 폭포를 지나 500m쯤 가면 2폭포 갈림길. 여기서 100m쯤 떨어진 2폭포를 구경하고 다시 계곡을 따르면 3폭포에 이른다. 3폭포는 3단 폭포로 주방계곡의 폭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가을 가뭄 때문에 물줄기가 좀 약한 것이 흠이다. ●내원동 오지마을에는 쓸쓸한 억새의 물결이 3폭포를 지나면 협곡이 끝나면서 길은 평지로 이어진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이상하게 넓어진다. 세 그루 서어나무가 기품 있게 서 있는 곳에 ‘내원동’이란 팻말이 보인다. 걸음을 재촉하니 돌무더기 가득한 서낭당이 보인다. 내원동은 몇 년 전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마을로 유명해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고 한 집만 남았다. 국립공원에서 생태보전을 위해 내원동 주민들을 아랫마을로 내려 보냈기 때문이다. 성황당을 지나면 예전 집들이 드문드문 있었던 자리에 드넓은 억새밭이 펼쳐진다. 길은 계곡과 억새밭 사이를 구불구불 이어지다 산수유농장을 만난다. 내원동에 마지막 남은 집으로 등산객들에게 산수유차를 팔고 있다. 마침 할머니와 손자가 산수유를 고르고 있다. “이젠 우리 집도 내려가야 해요. 참 좋은 곳인데….” 주방계곡 산행은 여기까지다. 할머니의 쓸쓸한 말처럼 하산의 발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는다. 글ㆍ사진 mtswamp@naver.com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으로 나와 안동과 청송을 거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주왕산행 버스는 06:20, 08:40, 10:20, 11:40, 15:00, 16:30에 있으며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주왕산에서 동서울행은 08:20, 10:30, 13:00, 14:08, 15:48, 17:05에 있다. 맛집은 명일여관식당(054-873-5259)의 산채정식이 유명하고, 내원동에서 오랫동안 내원산장을 운영했던 부부가 문을 연 내원산장식당(054-873-3798)의 약수한방백숙도 괜찮다. 또한 월외리 달기약수 근처에는 백숙을 하는 집들이 몰려 있다.
  • 봉하 찾은 이희호여사 盧 전대통령 묘소 참배

    봉하 찾은 이희호여사 盧 전대통령 묘소 참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21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은 고 김 전 대통령 추모비 제막식이 끝난 뒤 첫 외부 행사였다. 이 여사는 마중나온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노 전 대통령의 묘역으로 걸어가 헌화하고 분향했다. 이 여사는 고개를 숙인 채 긴 묵상을 하다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이 여사와 권 여사는 손을 잡고 묘역 주변과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바위, 사저 쪽을 둘러보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이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에는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박지원 의원 내외를 비롯해 김대중평화센터 윤철구 사무총장, 최경환 공보실장 등이 동행했다. 박 의원은 “이 여사는 건강이 좋지 않았던 권 여사가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하고 위로를 해준 데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어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인접한 양산시 등의 재·보궐 선거를 앞둔 시기에 봉하마을을 찾은 이유에 대해 “날짜는 내가 직접 잡았고 국정감사가 없는 날을 택하다 보니 오늘로 잡힌 것”이라면서 “정치적인 의미는 전혀 없으며 두 분의 순수한 뜻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정치적인 해석을 경계했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밀양 간 이재오위원장 영남서 지방민생 탐방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21일 경남 밀양 방문을 시작으로 지방 민생 탐방에 나섰다. 권익위에서 시행하는 지역현장 고충민원 상담제도인 ‘이동신문고’의 일환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위원장이 취임한 뒤 첫번째로 방문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지는 경남 양산과 인접한 밀양인 점을 지적하며 “선거를 의식한 행보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였다. 이 위원장은 이날 밀양시청에 차려진 상담장에서 “민원을 직접 들어보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꼭 해결하고 차선책이라도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은 ‘관권 선거’라며 발끈했다. 김현 부대변인은 “하필이면 선거가 치러지는 양산의 옆동네 밀양에 갔다.”면서 “이 위원장의 행보는 관권 선거 의혹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상생의 미학 강조하는 메시지 담아

    상생의 미학 강조하는 메시지 담아

    현직 기초자치단체장이 ‘상생의 미학’을 주제로 한 소설적 에세이를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노원구는 20일 이노근 구청장이 최근 소설적 기행 에세이 ‘운주사로 날아간 새(서연 펴냄·286쪽)’를 출간했다고 밝혔다. 이 구청장은 작품에서 가공 인물인 만덕 스님, 천영수 선생, 김갑수 학형 등 답사꾼 3명을 내세워 전남 화순의 운주사를 찾아가 천불천탑 등 석탑, 대웅전, 불상, 탱화, 와불, 칠성바위 등 불물(佛物)들을 49개 테마로 나눠 이틀간 함께 돌아보게 한다. 작품 중간엔 신비의 새 두 마리, 벌, 황구렁이와 백일몽 등이 나오면서 상황이 반전되는 묘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려져 소설적인 흥미진진함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등장인물이 겪는 갈등을 통해 읽는 이에게 ‘권선징악’의 교훈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되살려내고 있다. 특히 해박한 불교 지식과 철학을 바탕으로 한 ‘선인선과 악인악과(善人善果 惡人惡果)’의 업보론적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동시에 대안까지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구청장은 “책을 쓰면서 현대인들에게 탐내고 화내는 것은 어리석으며 공존하고 공영하는 ‘상생의 미학’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공직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많은 문화유적지를 다녔는데, 남도 화순의 미스터리 사찰을 방문한 게 계기가 되어 한반도에서 유일한 천불천탑의 베일을 벗기기로 마음먹고 구전설화 등 문헌자료를 직접 찾아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평소 주말에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등 문화기행을 즐기는 이 구청장은 책 집필을 위해 전남 화순의 운주사를 4년간 10여 차례 현지답사하는 공을 들였다고 한다. 한편 이 구청장은 2005년 역사 수필인 ‘경복궁 기행열전’을 펴내기도 했으며, 1996년 한국수필과 한맥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시 문화사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여수세계박람회 주제관 설계 공모 당선작 선정

    국내 최초의 바다 위 건축물이자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주제관이 될 건물의 설계작으로 오스트리아 건축가의 작품이 선정됐다. 2012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는 오스트리아 건축가인 귄테르 베베르(40) 팀의 ‘하나의 바다(ONE OCEAN)’를 주제관 국제현상설계공모 1등 작품으로 뽑았다고 19일 밝혔다. ‘하나의 바다’는 내부의 각 전시 구간을 흐르는 물처럼 열린 공간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육지에서 볼 때 외형은 바다 생물의 모습을, 바다에서 볼 때는 연안의 바위에 촘촘히 붙은 홍합과 같은 형태로 표현돼 박람회의 주제인 ‘살아 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을 제대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해수면과 맞닿은 외형이 남해안의 멋을 잘 살려냈고, 행사 뒤 활용도 측면을 고려했을 때 쉽게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후한 점수를 줬다.”고 말했다. 뮌헨대를 졸업한 베베르는 빈에 소재한 굽 히멜블라우 사무소에서 ‘BMW 세계 프로젝트’의 입면 설계를 담당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영상센터 당선작에도 참여한 그는 1억원의 상금과 주제관 기본·실시설계권을 받게 된다. 이번 공모전에는 미국과 일본 등 31개국에서 136개팀의 작품이 출품됐다. 주제관 현상설계 당선작은 12월 전시되며, 공모전 공식 홈페이지(www.yeosuexpo.org)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오산, 내년 어린이집 20곳으로 늘려

    경기 오산시가 시민의 가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에 발벗고 나섰다.오산시는 시내 137곳의 어린이집 가운데 8% 11곳에 불과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내년까지 20곳으로 늘리고 향후 매년 2~3개씩 확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는 이를 위해 다음달까지 세교 1지구내에 꽃다리(교육인원 30명), 죽미(30명), 금바위(30명) 등 어린이집 3곳을 완공한다. 내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기부채납으로 지어지는 ‘보듬이 나눔이’ 등 5곳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건립해 430명의 아동을 받아줄 계획이다. 150명을 수용할 ‘보듬이 나눔이’ 어린이집은 연면적 1121㎡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가장산업단지내에 들어설 예정이어서 입주기업 근로자들의 보육료 부담을 크게 덜어줄 것으로 기대된다.시는 내년까지 이들 시설이 완공되면 1400여명의 아동이 보육료가 저렴한 시설을 이용하게 돼 1명에 최대 월 9만 8000원, 연 117만 6000원을 절약할 것으로 분석했다.전체적으로 연간 16억 4640만원의 보육료를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의 조출생률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시 관계자는 설명했다. 조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1년간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수치로 오산시가 전국 지자체중 2위(15.5명)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기하 오산시장은 “전국 최초로 시행한 셋째 자녀 보육료 전액 지원과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등을 통해 조출생률을 높이고 시민들의 가계부담을 덜어줄 것”이라고 밝혔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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