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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힐링캠프 이지아 “정우성, 서태지 결혼 아무렇지 않게 대해줘…고마웠다”

    힐링캠프 이지아 “정우성, 서태지 결혼 아무렇지 않게 대해줘…고마웠다”

    힐링캠프 이지아 “정우성, 서태지 결혼 아무렇지 않게 대해줘…고마웠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배우 이지아가 서태지와 결혼 당시 가족과도 연락을 끊었었다고 고백해 화제다. 이지아는 지난 11일 방송된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서태지와의 결혼, 연예계 데뷔, 정우성과의 만남과 이별 등 과거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날 방송에서 이지아는 “16세 때 LA 한인 공연에 왔었던 그분(서태지)을 처음 만났다”고 밝혔다. 이어 “(서태지의) 열혈 팬은 아니었다. 그건 와전된 것이다. 온 국민이 다 아는 연예인과 숨겨진다는 건 바위 뒤에 몸 숨기는 것과 다르더라. 힘겨웠고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선택한 사랑은 산에서 내려오는 다람쥐에게도 들켜선 안되는 거였다. 더 이상 혼자일 수 없이 혼자였다. 혼자인 게 익숙해질 정도가 되니까 이게 독이라 생각했다. 그건 너무 멀리 갔을 때였다”고 토로했다. 이에 MC들이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었냐”고 묻자 이지아는 “내가 정말 큰 불효를 저질렀다. 가족들과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지아는 “약 7년 정도 뒤에 부모님께 연락을 했다. 7년 만에 찾아뵀다. 그 당시에는 그런 상황이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삶을 살기로 선택한 것은 그 분이 그렇게 해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난 그게 제 사랑을 지키는 거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지아는 “촬영장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정우성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줬다. 첫 눈에 반한 것은 아니지만, 8개월 간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것 같다”고 전 연인 정우성과의 인연에 대해 설명했다. MC 이경규가 “궁금한 것은 그 분(정우성)은 이지아의 비밀(서태지와의 결혼)을 알았냐는 것이다”라고 묻자 이지아는 “함께 파리에 갔을 때 살면서 처음으로 거리에서 데이트를 했다. 그 때 모든 것을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지아는 “힘들게 모든 것을 얘기했다. 그런데 그분(정우성)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나도 10년 동안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어’라고 반응을 하더라. 그게 고마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네티즌들은 “힐링캠프 이지아 서태지 정우성, 참 힘들었겠다”, “힐링캠프 이지아 서태지 정우성, 참 이런 드라마 같은 일이”, “힐링캠프 이지아 서태지 정우성, 정우성 너무 멋있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0) 지명(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0) 지명(중)

    ●창지개명은 단군 이래 최악의 민족정기 말살 사건 서울의 지명은 다중(多重)적이다. 대부분 지명은 여러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모든 지명에는 그렇게 부르게 된 명명(命名) 동기가 있는 데 이를 지명의 유래라고 한다면 서울의 지명은 2000년 동안 성쇠와 풍상을 겪으면서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엄청난 생성과 소멸 과정을 거친 적자생존의 산물이다. 서울의 지명은 산이나 물, 고개, 풍수, 바위, 들, 땅 모양, 인물, 식물,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는 정겨운 토박이 이름이 주를 이뤘다. 훈민정음 창제(1446년) 이전까지 비록 우리 글이 없었지만 한자(漢字)를 빌려 이두(吏)로 적었기에 소리 체계는 살아 있었다. 더욱이 수도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역사가 깊숙이 배어 있다. 예컨대 사간동, 내수동 같은 관아 지명이나 동소문동 같은 성문 지명을 비롯하여 왕십리나 답십리 같은 전설 지명, 압구정동 같은 누정 지명과 정릉동, 효창동 같은 능원 지명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지명의 역사에는 두 가지 경천동지할 사건이 있다. 신라 경덕왕(757년) 때 모든 지명을 일률적으로 한자로 바꾸면서 가해진 변형이 첫 번째다. 그러나 두 번째 사건인 일제의 창지개명(創地改名) 앞에서는 조족지혈이다. 일제는 조선 사람 이름을 일본 이름으로 바꾸고(창씨개명), 땅이름도 제멋대로 바꿨다. 단군 이래 최악의 사건이라 할만하다. 서울의 지명에는 이 모든 영욕이 담겨 있다. 서울은 조선 개국 이후 한성부(한성)가 공식 명칭이었지만 한양 또는 서울이라는 지명이 더 널리 쓰였다. 뿐만 아니라 도성, 수선(首善), 도읍, 경조(京兆), 경도(京都), 사대문 안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불렸다. 오늘의 서울을 있게 했고,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산인 삼각산과 백악산은 북한산, 북악산이라는 이명(異名)을 갖고 있다. 남산과 청계천의 본명도 목멱산과 개천이지만 잊혀진 이름이다. 남산은 목멱산이라는 옛 이름보다 오히려 정겨운 것이 사실이다. 인위적인 지명의 전이(轉移)가 아니어서 그렇다. 역사학자 안재홍은 목멱(木覓)은 남산의 우리말인 ‘마뫼’의 이두 표기라고 풀었다. 우리말 마뫼의 ‘마’는 앞이고 ‘뫼’는 산이므로 남산의 남(南)자는 ‘남녘 남’ 자가 아니라 ‘앞 남’자이며 결국 남산은 앞산이라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남산은 주산(主山)인 백악산의 앞산이요, 왕이 사는 경복궁의 앞 산이었다. 지금은 서울이 확장되면서 강북과 강남의 가운데에 자리잡은 중앙산(中央山)이 됐지만…. 그러나 청계천 개명은 사정이 다르다. 옛 이름인 개천(開川)보다 청계천이 더 청결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역사성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청계천은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의 골짜기였다. 개천의 발원지로 ‘청풍계천’(?風溪川)이 본명인데 청계천이라고 줄여 불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개천의 상류가 청계천인 셈이다. 1916년 6월 24일자 매일신보에 청계천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했다. ‘청계천변 시찰’이라는 기사에서 “개천, 일명 청계천…”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10년이 흐른 1927년 조선총독부가 ‘조선하천령’을 제정하면서 청계천이라고 바꿔 버렸다. 조선 500년 동안 한양도성의 명당수이자 하수구였던 개천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처럼 조선 개국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이 명명한 사대문의 정식 명칭을 두고 남대문, 동대문, 북대문, 서대문이라고 즐겨 불렀다. 광희문, 혜화문, 창의문, 소덕문 등 사소문 또한 수구문(시구문), 동소문, 자하문(북소문), 서소문이라는 별칭을 주로 썼다. 인위적인 엄숙한 지명보다 방향이나 쓰임새 위주로 호칭하기를 즐겼다. 한강도 지금은 하나의 이름으로 통칭되지만 조선시대에는 동호, 경강, 노들강, 용산강, 서강, 조강 등 지역별로 세분해서 불렀다. 그중에서 3개의 강이 주를 이뤘다. 경강은 지금의 한남대교~노량진 구간, 용산강은 노량진~마포, 서강은 마포~양화진 구간을 각각 지칭했다. 학자에 따라서는 5강, 8강, 12강까지 세분했으니 우리 지명의 다중성은 일일이 예로 다 들 수 없을 정도다. ●역사는 지명에 의해 기록되지만 지명은 역사를 창조하기도 지명의 다중성은 어디에서 연유됐을까. 역사의 곡절 때문이다. 역사는 지명에 의해 기록되지만, 지명이 역사를 창조하기도 한다. 지명학(Toponymy)의 어원이 그리스어 토포스(Topos·장소)에서 비롯된 것처럼 지명은 땅의 기원과 의미, 변천사를 단순화해 보여주는 척도다. 지명이 곧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수록 역사 연구에서 지명 의존도는 높다. 지명이 복잡하다면 그만큼 역사가 고단했다고 볼 수 있다. 지명이 여럿이라고 해서 반드시 역사의 고단함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성명학(姓名學)에 빗대 보면 사물에는 하나의 이름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명(名)이 있다. 성년이 되면 자(字)를 가지며 사람에 따라 호(號)를 가진다. 죽은 뒤 시호(諡號)를 받는 사람도 있다. 왕은 사후 묘호(廟號)와 능호(號)를 가진다. 성명학에서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자나 호를 부르도록 한 것은 이름을 귀히 여기는 존명 사상 때문이다. 왕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을 국휘(國諱)라고 하고, 존속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을 피휘(避諱)라고 했다. 자와 호가 없는 일반인들도 이름이 함부로 불리는 것을 꺼렸기에 ‘안동댁’ 같은 택호(宅號)를 두어 누구나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사람의 이름이 여럿이듯 땅의 이름인 지명도 여럿일 수 있다는 것이 우리네 사고방식이었다. 사람이나 사물에 별칭이 따로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지명 왜곡은 차원이 다르다. 민족의 역사와 정기를 말살하고자 획책했다. 1914년 조선총독부는 전국의 군을 317개에서 220개로, 면은 4322개에서 2518개로 축소하는 어마어마한 행정개편을 단행했다.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을 이루던 우리의 마을 방(坊)을 폐지했다. 서울은 186개의 동(洞)-정(町)-통(通)-정목(丁目)으로 정리했다. 조선인들이 많이 살던 북촌은 동으로, 일본인이 모여 살던 남촌은 정으로 이름 붙였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번화가 본정통(충무로), 황금정(을지로), 명치정(명동)이 이때 생겼다. 뿐만 아니라 일본 황태자가 서울에 와서 머문 것을 기념한다면서 ‘황공하게도 다녀가셨다’는 의미의 어성정(御成町·남대문)이라는 지명을 붙였고, 술집과 찻집이 많던 다동을 일본식 다옥정(茶屋町·다동)이라고 개악했다. 일본군 육군대장의 이름을 따서 장곡천정(長谷川町·소공동)이라고 명명하거나, 일본 정신을 상징하는 ‘대화’를 넣어 대화정(大和町·남산)이라고 하는 등 얼토당토않은 이름을 부지기수로 붙였다. 22년간 지속된 동-정-통-정목 제도는 1936년 경기도 고양군, 시흥군, 김포군 지역이 서울(경성)로 편입되면서 모조리 정-통으로 통일됐다. 서울의 면적은 4배가 늘었고 186개의 동-정-통이 259개의 정-통이 됐다. 종로구, 중구, 용산구, 동대문구, 성동구, 서대문구, 영등포구, 마포구 등 8개 행정구가 생겼다. 원동이 원서정, 동세교리가 동교정, 아현북리가 북아현정, 홍제내리와 홍제외리가 홍제정, 한지면 신촌리가 응봉정, 수철리가 금호정, 두모리가 옥수정, 동막상리가 용강정, 동막하리가 대흥정, 여율리가 여의도정으로 각각 변경됐다. 역사와 문화가 깃든 우리 지명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의 절정이다. 무악재에서 발원해 남대문을 거쳐 원효로를 따라 한강으로 흐르는 만초천을 그들이 내세우는 ‘욱일승천기’에서 ‘해돋을 욱’(旭) 자를 따 욱천이라고 마음대로 바꿨고, 흑석동 일대에 고급 주택을 지어 분양한 일본인 업자가 붙인 주택단지 명수대를 지명화했으며, 노들섬을 중지도라고 명명했다. 조선시대 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이름이 표기된 단 두 개의 길 이름도 퇴출당했다. 육조대로(광화문광장)와 운종가(종로)라는 양대 지명의 소멸이다. 육조가는 의정부와 육조가 자리한 관청거리였고, 운종가는 사람이 구름처럼 모이던 시장거리였었다. 일제는 유서 깊은 지명을 역사와 지도에서 지워 버렸다. 개천을 청계천으로 개명하거나, 인왕산(仁王山)의 한자를 엉뚱하게 인왕산(仁旺山)이라고 고친 것도 역사 말살의 속셈이었다. 해방 후 육조대로와 운종가를 왕조의 유물로 생각해 원상 회복시키지 않은 것은 후회막급이다. 삼각산이나 백악산이라는 정기가 깃든 아름다운 이름도 되돌리지 않았다. 태평로를 닦느라 고갯마루가 사라진 세종로 네거리 황토마루(황토현)의 이름도 청사에 남겼어야 했다. 우리의 조급함이 문제였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갑자기 식어버린 ‘미스터리 천체’ 발견

    갑자기 식어버린 ‘미스터리 천체’ 발견

    한때는 태양처럼 뜨거운 별이었지만 급속히 식어 차갑게 변해버린 ‘행성 닮은’ 희안한 천체가 발견됐다. 최근 국제 천문학 공동연구팀은 남쪽 하늘 별자리인 화로자리에 위치한 새로운 ‘Y형 갈색왜성’(WISE J0304-2705)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천체는 가장 차까운 갈색왜성으로 분류된다. 지구로부터 약 33~55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이 천체가 천문학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한때 별로서 뜨거운 ‘영화’(榮華)를 누렸다가 어느날 갑자기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과거 2000만 년에 걸쳐 적어도 2,800° C 온도에 달했던 이 별은 이후 1억 년간 1,500° C, 10억 년간 1,000° C로 낮아지더니 현재에 이르러서는 불과 100°~150° C 수준으로 차가운 몸이 됐다. 결과적으로 한때 항성 같은 기운을 뿜어내다가 지금은 일반적인 행성 수준의 온도를 갖게된 셈.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천체의 극단적인 퇴화 과정을 연구하는데 있어 WISE J0304-2705이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칠레 대학교 마리아 테레사 루이즈 교수는 “나사(NASA) 광역적외선탐사망원경(WISE)의 강력한 성능 덕분에 이 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면서 “지구와 같은 바위형이라기 보다는 목성같은 가스형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어 “크기는 목성의 20~30배 수준으로 거대한 별과 일반적인 행성 사이에 있는 천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영국왕립천문학회월간보고’(Monthly Notic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 최신호에 발표됐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포토] 진안 마이산(馬耳山) 폭포 장관…장마로 10여개 폭포 생겨나

    [포토] 진안 마이산(馬耳山) 폭포 장관…장마로 10여개 폭포 생겨나

    최근 장마가 이어지면서 많은 비가 내리자 전북 진안군 마이산에 바위결 사이로 10여개의 폭포가 생겨나 눈길을 끌고 있다. 높이 30m에 이르는 이곳은 평소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기암절벽으로 마이산에 큰비가 쏟아지면 비경을 연출해 관광객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양인듯 태양아닌 행성같은 천체 발견

    태양인듯 태양아닌 행성같은 천체 발견

    한때는 태양처럼 뜨거운 별이었지만 급속히 식어 차갑게 변해버린 특이한 행성같은 천체가 발견됐다. 최근 국제 천문학 공동연구팀은 남쪽 하늘 별자리인 화로자리에 위치한 행성같은 천체인 ‘WISE J0304-2705’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지구에서 33~55광년 사이에 놓인 이 천체가 천문학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한때 별로서 뜨거운 ‘영화’(榮華)를 누렸기 때문이다. 과거 2000만 년에 걸쳐 적어도 2,800° C 온도에 달했던 이 별은 그러나 1억 년 후 1,500° C, 10억 년 후 1,000° C로 낮아지더니 현재에 이르러서는 불과 100°-150° C 수준으로 차가운 몸이 됐다. 결과적으로 과거 별같은 기운을 뿜어내다가 지금은 일반적인 행성 수준의 온도를 갖게된 셈.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천체의 극단적인 진화 과정을 연구하는데 있어 WISE J0304-2705이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칠레 대학교 마리아 테레사 루이즈 교수는 “나사(NASA) 광역적외선탐사망원경(WISE)의 강력한 성능 덕분에 이 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면서 “지구와 같은 바위형이라기 보다는 목성같은 가스형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어 “크기는 목성의 20-30배 수준으로 거대한 별과 일반적인 행성 사이 어딘가 있는 천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영국왕립천문학회월간보고’(Monthly Notic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 최신호에 발표됐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차가 너무 좋아”…공포의 애정결핍 코끼리

    “차가 너무 좋아”…공포의 애정결핍 코끼리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아프리카 코끼리가 사파리 관광객이 타고 있는 차량에 다가가 과격한 애정행위를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필라네스버그 국립공원에서 목격된 한 수컷 아프리카 코끼리의 무시무시한 애정결핍 추정 행동을 6일(현지시각) 소개했다. 한 남녀 관광객이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인근 필라네스버그 국립공원에서 광활한 아프리카 초원을 구경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조짐이 이상하다. 6~7m 크기에 몸무게는 거의 6톤에 육박하는 거대한 수컷 아프리카 코끼리가 관광객이 타고 있는 사파리 차량(폭스바겐 폴로)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던 것이다. 처음에는 어떤 상황인지 몰라 당황했던 관광객들은 조금 있다 엄청난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이 코끼리가 온 몸으로 과격하게 차량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던 것이다. 지붕, 보닛, 트렁크를 가리지 않고 큰 몸집으로 비벼대는 코끼리의 이상행동에 자동차는 처참히 훼손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코끼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리를 떠났지만 차량은 창문이 깨지고 타이어 4개가 모두 망가진 뒤였다. 다행스럽게도 차량 속 관광객들은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이 광경은 필라네스버그 국립공원 가이드 매니저인 아르망 그로블러(21)의 카메라에 모두 포착됐다. 본래 동물 행동심리학을 공부했던 그는 코끼리의 이상행동이 머스트(musth)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이는 25세 이상 수컷 코끼리가 번식 시기에 접어들면서 행동이 눈에 띄게 난폭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평상시보다 테스토스테론(스테로이드 계 호르몬)이 60배나 많이 분비되고 눈가에서 사향분비물이 대폭 증가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로블러는 한번 발정이 난 코끼리를 잘못 제지하면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섣불리 이들을 구하러 나서지 않았다. 후에 코끼리가 물러간 다음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관광객들을 진정시켰는데 그는 “남녀 관광객들은 20~30대 사이 젊은이들 이었는데 살아있다는 그 자체에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코끼리의 행동이 머스트 때문일 수도 있지만 종종 몸에 붙어있는 기생충을 제거하기 위해 바위나 나무에 몸을 부비는 행동을 할 때도 있다”며 자동차를 가려움 제거 용도로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동물 전문가들에 따르면 머스트 상태가 반드시 코끼리의 짝짓기에 대한 욕구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코끼리들은 머스트 때가 아니더라도 짝짓기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머스트는 스스로의 힘을 과시하는 목적일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사진=Top photo/Barcroft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목적지 도착 ‘로제타호’ 생생한 혜성 표면 사진 공개

    목적지 도착 ‘로제타호’ 생생한 혜성 표면 사진 공개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인류 최초로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67P/Churyumov-Gerasimenko·이하 67P) 궤도 진입에 성공한 로제타호가 근접 촬영한 혜성의 표면 사진을 지구로 보내왔다. 유럽우주기구(ESA) 측은 같은날 혜성에서 불과 130km 떨어진 곳에서 로제타호가 촬영한 67P의 정밀한 표면 모습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혜성의 생생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이 사진에는 크레이터, 둥근 바위, 가파른 절벽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로제타 프로젝트 관계자 마크 맥코그린 박사는 “마치 ‘디즈니랜드 과학관’을 보기위해 지난 10년을 자동차 안에서 기다린 기분” 이라면서 “아직 차 문을 열고 내리지는 못했지만 창문은 열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맥코그린 박사가 밝힌 대로 지난 2004년 발사된 로제타호는 무려 10년을 쉬지않고 64억㎞를 날아가 목적지인 67P 궤도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오는 11월에는 우주선에 탑재된 100㎏짜리 탐사로봇 ‘파일리’를 사상 처음으로 혜성 표면에 내려 보내 토양 등을 분석하게 된다. ESA가 우리 돈으로 2조원 가까이 들여 멀고 먼 혜성에 우주선을 보낸 이유는 약 46억년 전 태양계 형성 시 생겨난 잔해들로 이 혜성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ESA 과학자 데트레프 코츠니 박사는 “혜성의 구성 성분이 46억 년 전 태양계가 형성될 당시와 거의 일치해 지구 생명의 기원 등 많은 실마리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면서 “파일리가 착륙에 성공하면 혜성 표면에 구멍을 뚫고 소중한 탐사 자료를 지구로 전송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이것이 ‘로제타호’가 보낸 첫 생생한 혜성 표면

    이것이 ‘로제타호’가 보낸 첫 생생한 혜성 표면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인류 최초로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67P/Churyumov-Gerasimenko·이하 67P) 궤도 진입에 성공한 로제타호가 근접 촬영한 혜성의 표면 사진을 지구로 보내왔다. 유럽우주기구(ESA) 측은 같은날 혜성에서 불과 130km 떨어진 곳에서 로제타호가 촬영한 67P의 정밀한 표면 모습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혜성의 생생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이 사진에는 크레이터, 둥근 바위, 가파른 절벽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로제타 프로젝트 관계자 마크 맥코그린 박사는 “마치 ‘디즈니랜드 과학관’을 보기위해 지난 10년을 자동차 안에서 기다린 기분” 이라면서 “아직 차 문을 열고 내리지는 못했지만 창문은 열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맥코그린 박사가 밝힌 대로 지난 2004년 발사된 로제타호는 무려 10년을 쉬지않고 64억㎞를 날아가 목적지인 67P 궤도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오는 11월에는 우주선에 탑재된 100㎏짜리 탐사로봇 ‘파일리’를 사상 처음으로 혜성 표면에 내려 보내 토양 등을 분석하게 된다. ESA가 우리 돈으로 2조원 가까이 들여 멀고 먼 혜성에 우주선을 보낸 이유는 약 46억년 전 태양계 형성 시 생겨난 잔해들로 이 혜성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ESA 과학자 데트레프 코츠니 박사는 “혜성의 구성 성분이 46억 년 전 태양계가 형성될 당시와 거의 일치해 지구 생명의 기원 등 많은 실마리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면서 “파일리가 착륙에 성공하면 혜성 표면에 구멍을 뚫고 소중한 탐사 자료를 지구로 전송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40년간 화폭에 노송 담아 온 이영복 화백

    [김문이 만난사람] 40년간 화폭에 노송 담아 온 이영복 화백

    기품이 당당하다. 스스로 길지(吉地)에서 생기와 절개를 묵묵히 뿌리내린다. 천년 세월, 어떤 모진 비바람도 견딘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그랬다. 거친 우리 민족사를 도도히 지켜왔다. 조선시대에는 소나무를 ‘생명의 나무’로 여겼다. 퇴계 이황은 34세 나이에 이렇게 읊었다. ‘바위 위에 자란 천년 묵은 저 불로송/ 검푸른 비늘같이 쭈글쭈글한 껍질 마치 날아 뛰는 용의 기세로다/ 밑이 안 보이는 끝없는 절벽 위에 우뚝 자라난 소나무/ 높은 하늘 쓸어내고 험준한 산봉을 찍어 누를 듯~/ 한겨울 눈서리에도 까닭 없이 지내노라’ 소나무가 가진 장쾌한 기운이 그대로 살아있는 느낌이다. ‘추위가 온 뒤에 그 푸르름을 더한다’는 소나무는 예로부터 나무 중에 으뜸으로 여겼다. 소나무는 한자로 송(松)이다.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져 온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직후 군대를 이끌고 산길을 가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다. 진시황은 엉겁결에 주변에 있는 큰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 비가 그친 후 나무를 자세히 쳐다보니 마치 용틀임하는 자세였다. 진시황은 소낙비를 가려준 고마움으로 공(公)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그래서 나무 목(木)에 공(公)이 더해져 송(松)이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벼슬을 받은 소나무는 ‘정이품송’으로 속리산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소나무를 좋아한다. 산야 어디를 가든 만날 수 있는 것이 소나무이기도 하고 풍광이 뛰어난 곳에는 항상 소나무가 보란 듯이 의연하게 고고한 자태로 뽐을 내고 있다. 소나무를 예로부터 정절과 기개의 표상으로 삼아왔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주고받는 ‘시놀음’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디 시뿐일까. 추사 김정희 ‘세한도’에 있는 소나무는 말 그대로 지조와 의리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창원(蒼園) 이영복(76) 화백은 40년 동안 전국의 고송과 노송을 찾아다니며 현장 스케치를 하고 그 기상과 기품을 오롯이 화폭에 담아와 우리나라의 대표적 ‘소나무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호 ‘창원’은 1970년대 초 이당 김은호 화백이 부채에 잉어 그림을 그려주면서 지어준 것이다. 그는 단순히 노송을 찾는 기행이 아니라 오랜 벗이나 스승을 찾아 떠나는 순례와 같은 여정을 통해 소나무와 교감을 이루어낸다는 점에서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화풍을 일구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나무를 즐겨 그리는 화가들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철저히 사생에 의한 ‘이 화백의 소나무’라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그는 작화(作畵)에 있어서 사실적 묘사보다는 그때그때 의취(意趣)와 의경(意境)에 따라 심상의 표현에 중점을 두는 것이 그만의 독특한 화풍이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그의 그림에서 리얼리티가 높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단순히 그렸다기보다 화면에서 살아 걸어나오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렇듯 뻗고 휘어지는 필법의 묘를 스스로 취하고,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 소나무를 되살리는 구체적 실천을 일관되게 추구해왔다. 지금까지 13회 개인전, 그리고 수많은 단체전과 특별전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특히 그는 1955년 중학교 3학년 때 제4회 국전에서 ‘홍성교외’라는 작품으로 입선, 당시 ‘천재 화가’라는 말을 들으며 화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때 세운 국전 최연소 입선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작업실을 찾았다. 입구에는 부인 염지윤씨가 운영하는 작은 공방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업실로 들어서자 ‘쌍룡송’ 그림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크기가 500호(400×190㎝)나 됐으며 한 소나무에서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엉켜 포효하는 위용에 저절로 압도된다. 20년 전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소수서원 주변 노송군락지에 갔다가 쌍룡송을 발견하고 감동을 받아 그림을 그리게 됐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우둔하고 바보스러우나/ 격조 높은 운필(運筆)을/ 담대하게’라는 글귀였다. 구부러지고 휘어짐이 자유로워 마치 운필의 묘미를 창출해내는 이 화백의 ‘붓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소나무와 관련된 한시 100여편을 따로 정리를 해놓았으며 틈이 날 때마다 한 편씩 꺼내 다시 읽어 보며 되새기곤 한다. 그중 ‘오직 법도를 엄격히 지킨 뒤에라야만 초신진변(超神盡變)하는 것이니 유법(有法)의 극이 무법(無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라는 추사의 글을 좋아한다. 무법으로 돌아간다는 뜻은 이미 있어온 많은 법들을 부단히 연마하면 새로운 법이 생긴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가끔 여러 단체에서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할 때 이 같은 내용도 함께 설파한다. “저에게 소나무는 어떤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자 오랜 벗이기도 합니다. 충주 단호사에 있는 적룡송을 스승으로 여깁니다. 500여년이 된 소나무인데 노송이 갖고 있는 직선과 곡선이 잘 어우러지는 아주 훌륭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 개인전 때 ‘단호사 적룡송 서설’이라는 이름으로 첫선을 보였습니다. 1년에 한 번 꼭 스승을 만나러 단호사에 가지요.” 단호사 적룡송 같은 웅험한 노송은 그림이 커야 제대로 살아나기 때문에 작심하고 600호(420×200㎝) 크기의 대작을 그리게 됐다고 설명한다. 이는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서 소나무와 인연을 맺었을까. 그는 충남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는 같은 마을 사는 고암 이응로 화백과 절친한 친구사이로 지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마을이 월산과 용봉산 사이에 있어 자연스럽게 산을 배경으로 그림을 자주 그리게 됐다. 그러던 중학교 1학년 때 학원사가 주최하는 전국 중고미술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중3 때에는 학교 교사와 주위의 권유로 국전에 입선했고 화가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홍익대 미술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대학 1학년 때 그는 잠시 이응로 선생의 원효로 집에서 유숙을 하게 된다. “그때가 1958년인가 그래요. 고암 선생이 후암동에 살다가 원효로 집으로 이사했지요. 고암 선생은 새벽에 일어나 대청에 앉아 늘 그림을 그렸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그림을 다 찢어버리곤 했는데 그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안타깝게도 고암 선생이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더 이상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대학 재학 때 우리나라 화단의 큰 인물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고암에 이어 대학 3학년 때에는 이당 김은호와 함께 한국 동양화의 토대를 이룬 청전 이상범을 학부 담임교수로, 4학년 때에는 운보 김기창 화백을 지도교수로 모시게 된다. 졸업 후에는 이당을 좋아하는 모임인 ‘후소회’의 총무를 맡아 이당과도 자연스럽게 친분을 맺는다. 당시 ‘후소회’ 회장은 운보였다. 2001년 운보가 세상을 떠나자 운보를 사랑하는 모임인 ‘운사회’를 결성하는 일에 앞장서게 된다. 지금은 ‘운사회’의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운보 선생은 현장 수업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전통에만 얽매이지 말고 전통과 현대를 잘 조화있게 하라’고 말씀하셨지요. 제 그림에 큰 영향을 주신 분이 바로 운보 선생입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홍성 주변의 풍경, 억새 등 산수화를 주로 그렸다. 또 산수화 속에는 소나무가 들어가야 제맛이 난다는 것을 알고 산수에 소나무 그림을 그려넣었다. 어릴 적 왕솔밭에 황새가 날아오는 모습도 그렸다. 그러다가 소나무가 가지고 있는 의연함에 새삼 느낌이 꽂혀 본격적으로 소나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국의 고송과 노송이 있다는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럴듯한 노송을 찾게 되면 2~3일 민박하면서 스케치를 하곤 했다. 아침과 낮, 그리고 저녁 때 바라보는 노송의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요즘 같으면 사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화백은 철저히 현장 위주로 노송과 교감을 했다. 이 같은 사생첩은 스케치북으로 수십권이나 된다. “소나무의 기상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칫 현대적으로 치우치다 보면 고절함과 기상을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소나무는 우연히 가늠하는 신묘한 몸체의 변화에 있습니다. 저는 사생을 통한 노송과 고송의 재구성에 역점을 두고 있지요. 복잡한 것보다 사유하는 철학적 소나무, 간결함과 고고함이 있는 소나무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늙어가면서 추하게 보이지만 소나무는 그 격조가 더욱 깊어집니다.” 이 화백은 사생을 전제로 하면서 온유하고 담백함을 일관되게 표출해왔다. 결국 자기만의 소나무를 창출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대표적 소나무 작가로 꼽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화 일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나는 오늘도 선현들께서 소나무를 의인화한 까닭을 생각하며 붓을 든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빗줄기에도 노송은 오늘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있다.’ 앞으로 변함없는 붓의 여정을 말해주는 듯하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이영복 화백은 1938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홍성고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1955년 16살 때 국전에 최연소로 입선했다. 대학 때는 고암 이응로, 청전 이상범, 운보 김기창, 이당 김은호 등 당대를 풍미했던 화가들과 인연을 맺는다. 졸업 후에는 산수화를 그리다가 1974년부터 소나무 그림에만 몰두했다. 동아미술제 심사위원(1992·1998년), 서울 미술대전 추진위원(1998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한국화 분과위원장(2001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2001·2008년), 남농미술대전 심사위원(2011년) 등을 역임했다. 주요 초대전으로는 서울신문사 기획 동서양화(1986년), 한국현대미술전 국립현대미술관(1987~1992년), 한국방송공사 특별기획 KBS-TV미술관 방영작가전(1989년), 예술의전당 전관개관기념(1993년), 서울정도600주년기념 서울국제현대미술제(1994년) 등이 있으며 13회 개인전과 수십 차례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자운/음양), 영남대학교 박물관(반구대), 타이베이 화강박물관(부귀도), 서울시립박물관(알터), 크리스찬 아카데미하우스(도봉영산) LG인력개발원(환희) 등에 소장돼 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고문, 운사회 고문,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 “물이 넘실넘실” 갑자기 나타난 미스터리 ‘오아시스 ’

    “물이 넘실넘실” 갑자기 나타난 미스터리 ‘오아시스 ’

    사막 한 가운데에 거짓말처럼 오아시스가 등장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믿을 수 없는 일이 튀니지에서 일어났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의 3일자 보도에 따르면 튀니지 남부의 가프사에서 25㎞가량 떨어진 사막에서 약 3주 전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비교적 큰 규모의 이 오아시스 주변에는 황토색 바위들이 늘어져 있으며,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18m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의 지리학자들은 지진 활동의 영향으로 바위가 부서지면서 지하수가 지표면으로 올라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오아시스의 정확한 생성원인 및 수질 성분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에 이곳에서 수영을 즐긴다는 사실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3주 전 오아시스가 처음 발견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물 색깔이 맑은 옥색에서 뿌연 녹색으로 변한 것에 의문을 품고 주민들에게 수영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발암성 물질 또는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 위험이 있기 때문에 물에 가까이 가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곳을 찾는 현지인들은 시간이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더위를 쫓기 위해 몰려들고 있으며, 수질은 점점 나빠지고 있지만 현재 이곳을 통제하는 안전요원이나 경찰은 배치되지 않은 상태다. 한편 신기루처럼 나타난 오아시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SNS 등을 통해 빠르게 퍼지면서 현지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눈길도 사로잡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청도 일가족 등 7명 사망사고 “정상적인 다리만 있었어도…”

    청도 일가족 등 7명 사망사고 “정상적인 다리만 있었어도…”

    청도 일가족 등 7명 사망사고 “정상적인 다리만 있었어도…”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일대의 삼계계곡은 정상적인 다리만 있었어도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방자치단체, 업주, 나들이객의 안전불감증이 사고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계계곡은 다양한 형태의 바위, 울창한 숲, 맑은 물이 어우러져 있어 청도를 대표하는 피서지로 꼽힌다. 이 일대에서는 100여개의 펜션과 야영장이 영업하고 있다. 청도군에 따르면 지방도 69호선에서 빠져나와 신원천을 건너면 14곳의 야영장과 펜션이 있다. 그러나 신원천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없다. 폭 10여m의 보만 하나 있다. 즉 지방도 69호선에서 신원천 건너편에 있는 야영장이나 펜션에 가려면 주민이 잠수교라고 부르는 보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건너야 한다. 평소에는 승용차를 타고서 이 보를 건너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폭우가 내리기라도 하면 신원천이 순식간에 불어나 보 위로 물이 넘쳐 흐르기 때문에 건널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에 펜션과 야영장 업주는 다리를 놓아달라는 민원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는 현재까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폭우가 내리면 계곡물이 급속도로 불고 다리마저 없어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이곳에서는 1998년 8월 1일에도 밤새 내린 비로 계곡물이 불어나면서 피서객 100여명이 고립됐다가 구조됐다. 당시 피서객은 불어난 계곡물을 건너지 못해 119구조대가 계곡 양쪽에 설치한 밧줄을 타고서 길을 건너야 했다. 2010년 7월 11일에도 폭우로 계곡물이 불어나 펜션 등에 머물던 피서객 45명이 고립됐다가 119구조대에 의해 대피했다. 외부에 일일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립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고 주민은 입을 모았다. 3일 오후 3시 현재도 사고가 난 지점에선 거센 물살이 큰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어 휩쓸렸다가는 순식간에 하류로 떠내려갈 것처럼 보였다. 다리가 없으면 지방자치단체, 업주, 나들이객이 폭우가 쏟아질 때 경각심을 두고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모두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현재 이곳에 머물던 나들이객 수백명의 발이 묶인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경찰 관계자는 “업주들이 비가 오면 안전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제대로 경고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청도군 역시 스피커가 달린 차량이나 하천 주변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경고 방송을 하고 펜션 업주에게 안전에 유의하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만 보냈을 뿐 직접 대피시키지 않았다. 청도군 관계자는 “삼계계곡 하천에는 행락객 수천명이 오는데 태풍·폭우때 개별적으로 연락하기 힘들다”고 했다. 결국 지방자치단체, 업주, 피서객의 안전불감증이 사고를 부른 셈이다. 한 주민은 “제대로 된 교량이 없어 고립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면서 “뒤늦은 일이지만 폭우 때 차량이 안심하고 지나갈 수 있는 교량 설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삼계계곡, 정상적인 다리만 있었어도…7명 사망 참사

    삼계계곡, 정상적인 다리만 있었어도…7명 사망 참사

    삼계계곡, 정상적인 다리만 있었어도…7명 사망 참사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일대의 삼계계곡은 정상적인 다리만 있었어도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방자치단체, 업주, 나들이객의 안전불감증이 사고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계계곡은 다양한 형태의 바위, 울창한 숲, 맑은 물이 어우러져 있어 청도를 대표하는 피서지로 꼽힌다. 이 일대에서는 100여개의 펜션과 야영장이 영업하고 있다. 청도군에 따르면 지방도 69호선에서 빠져나와 신원천을 건너면 14곳의 야영장과 펜션이 있다. 그러나 신원천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없다. 폭 10여m의 보만 하나 있다. 즉 지방도 69호선에서 신원천 건너편에 있는 야영장이나 펜션에 가려면 주민이 잠수교라고 부르는 보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건너야 한다. 평소에는 승용차를 타고서 이 보를 건너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폭우가 내리기라도 하면 신원천이 순식간에 불어나 보 위로 물이 넘쳐 흐르기 때문에 건널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에 펜션과 야영장 업주는 다리를 놓아달라는 민원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는 현재까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폭우가 내리면 계곡물이 급속도로 불고 다리마저 없어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이곳에서는 1998년 8월 1일에도 밤새 내린 비로 계곡물이 불어나면서 피서객 100여명이 고립됐다가 구조됐다. 당시 피서객은 불어난 계곡물을 건너지 못해 119구조대가 계곡 양쪽에 설치한 밧줄을 타고서 길을 건너야 했다. 2010년 7월 11일에도 폭우로 계곡물이 불어나 펜션 등에 머물던 피서객 45명이 고립됐다가 119구조대에 의해 대피했다. 외부에 일일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립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고 주민은 입을 모았다. 3일 오후 3시 현재도 사고가 난 지점에선 거센 물살이 큰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어 휩쓸렸다가는 순식간에 하류로 떠내려갈 것처럼 보였다. 다리가 없으면 지방자치단체, 업주, 나들이객이 폭우가 쏟아질 때 경각심을 두고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모두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현재 이곳에 머물던 나들이객 수백명의 발이 묶인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경찰 관계자는 “업주들이 비가 오면 안전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제대로 경고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청도군 역시 스피커가 달린 차량이나 하천 주변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경고 방송을 하고 펜션 업주에게 안전에 유의하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만 보냈을 뿐 직접 대피시키지 않았다. 청도군 관계자는 “삼계계곡 하천에는 행락객 수천명이 오는데 태풍·폭우때 개별적으로 연락하기 힘들다”고 했다. 결국 지방자치단체, 업주, 피서객의 안전불감증이 사고를 부른 셈이다. 한 주민은 “제대로 된 교량이 없어 고립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면서 “뒤늦은 일이지만 폭우 때 차량이 안심하고 지나갈 수 있는 교량 설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푸른물 넘실” 사막에 나타난 ‘의문의 오아시스’

    “푸른물 넘실” 사막에 나타난 ‘의문의 오아시스’

    사막 한 가운데에 거짓말처럼 오아시스가 등장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믿을 수 없는 일이 튀니지에서 일어났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의 3일자 보도에 따르면 튀니지 남부의 가프사에서 25㎞가량 떨어진 사막에서 약 3주 전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비교적 큰 규모의 이 오아시스 주변에는 황토색 바위들이 늘어져 있으며,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18m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의 지리학자들은 지진 활동의 영향으로 바위가 부서지면서 지하수가 지표면으로 올라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오아시스의 정확한 생성원인 및 수질 성분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에 이곳에서 수영을 즐긴다는 사실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3주 전 오아시스가 처음 발견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물 색깔이 맑은 옥색에서 뿌연 녹색으로 변한 것에 의문을 품고 주민들에게 수영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발암성 물질 또는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 위험이 있기 때문에 물에 가까이 가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곳을 찾는 현지인들은 시간이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더위를 쫓기 위해 몰려들고 있으며, 수질은 점점 나빠지고 있지만 현재 이곳을 통제하는 안전요원이나 경찰은 배치되지 않은 상태다. 한편 신기루처럼 나타난 오아시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SNS 등을 통해 빠르게 퍼지면서 현지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눈길도 사로잡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11호 태풍 할롱 북상 경로 “소멸한 나크리보다 강력, 초속 51m” 현재 위치는 어디?

    11호 태풍 할롱 북상 경로 “소멸한 나크리보다 강력, 초속 51m” 현재 위치는 어디?

    11호 태풍 할롱 북상 경로 “소멸한 나크리보다 강력, 초속 51m” 현재 위치는 어디? 12호 태풍 나크리가 소멸한 가운데 11호 태풍 할롱 북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4일 기상청 국가태풍센터에 따르면 나크리는 소멸됐지만 태풍 할롱이 필리핀 마닐라 동쪽 약 1130km 부근 해상에서 서북서쪽으로 이동 중이다. 북상 중인 태풍 할롱은 현재 중심기압 925헥토파스칼(hPa)에 최대풍속 초속 51m, 강풍반경 430km, 강도는 매우 강한 중형급 태풍이다. 최대 풍속 초속 40m 이상의 태풍은 사람은 물론 큰 바위, 달리는 차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강력한 위력을 가져 한반도를 강타할 경우 큰 피해가 예상된다. 태풍 할롱은 4일 오후 괌 서북서쪽 약 1500km 부근 해상을, 5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남남동쪽 약 800km 부근 해상을 지나 6일 오후에는 일본 오키나와 남동쪽 약 400km 부근 해상까지 북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상청은 “태풍 할롱이 이번 주말 서귀포 남쪽 해상에 진입함에 따라 오는 8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9~10일에는 남부지방과 강원영동 지방에 비가 내릴 것”이라고 전했다. 네티즌들은 “11호 태풍 할롱 북상 경로, 태풍이 왜 이렇게 연달아 올라오지? ”, ”11호 태풍 할롱 북상 경로, 제주도 또 피해 입겠는데?”, “11호 태풍 할롱 북상 경로, 제발 일본이나 중국 쪽으로 방향 바꿨으면”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1호 태풍 할롱 북상 경로 “나크리보다 강력” 8일부터 제주 영향권

    11호 태풍 할롱 북상 경로 “나크리보다 강력” 8일부터 제주 영향권

    11호 태풍 할롱 북상 경로 “나크리보다 강력” 8일부터 제주 영향권 12호 태풍 나크리가 소멸한 가운데 11호 태풍 할롱 북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4일 기상청 국가태풍센터에 따르면 나크리는 소멸됐지만 태풍 할롱이 필리핀 마닐라 동쪽 약 1130km 부근 해상에서 서북서쪽으로 이동 중이다. 북상 중인 태풍 할롱은 현재 중심기압 925헥토파스칼(hPa)에 최대풍속 초속 51m, 강풍반경 430km, 강도는 매우 강한 중형급 태풍이다. 최대 풍속 초속 40m 이상의 태풍은 사람은 물론 큰 바위, 달리는 차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강력한 위력을 가져 한반도를 강타할 경우 큰 피해가 예상된다. 태풍 할롱은 4일 오후 괌 서북서쪽 약 1500km 부근 해상을, 5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남남동쪽 약 800km 부근 해상을 지나 6일 오후에는 일본 오키나와 남동쪽 약 400km 부근 해상까지 북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상청은 “태풍 할롱이 이번 주말 서귀포 남쪽 해상에 진입함에 따라 오는 8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9~10일에는 남부지방과 강원영동 지방에 비가 내릴 것”이라고 전했다. 네티즌들은 “11호 태풍 할롱 북상 경로, 너무 무섭다”, ”11호 태풍 할롱 북상 경로, 제발 큰 피해를 주면 안되는데”, “11호 태풍 할롱 북상 경로, 일본 쪽으로 꺾으면 좋겠는데”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기할 수 없어!’ 양동이 속 물고기 훔쳐가는 족제비

    ‘포기할 수 없어!’ 양동이 속 물고기 훔쳐가는 족제비

    어부가 잡은 양동이 속 물고기를 여러번 시도한 끝에 훔쳐가는 족제비의 모습이 화제다. 캐나다 남부 온타리오호 부두에서 찍힌 이 영상은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동이 속 물고기를 밖으로 꺼내려고 하는 족제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자신의 몸집만 한 물고기를 꺼내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잠시 밖에 나와 휴식을 취한 족제비는 다시 양동이 속으로 들어가더니 물고기를 꺼내려고 한다. 그러나 두 번째 시도도 역시 실패하자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족제비가 물고기를 절대 꺼낼 수 없을 거라 말한다. 이 말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이번에 족제비는 양동이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고 양동이 위에 올라 입으로 물고기를 낚아챈다. 물고기를 밖으로 꺼내는 것에 결국 성공한 족제비는 물고기를 입에 문 채 바위 틈으로 사라진다. 사진·영상=Kim Runnells/유튜브 김형우 인턴기자 hwkim@seoul.co.kr
  • 무려 10년 항해한 로제타호 다음주 ‘목적지’ 도착한다

    무려 10년 항해한 로제타호 다음주 ‘목적지’ 도착한다

    혜성 탐사선 로제타호가 착륙할 대상인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67P/Churyumov-Gerasimenko·이하 67P)의 근접 사진이 공개됐다. 최근 유럽우주기구(ESA) 측은 지난 29일(이하 현지시간) 로제타호가 촬영한 67P의 새 사진을 공개했다. 혜성과 불과 1950km 거리에서 촬영돼 비교적 선명한 사진 속 67P는 두개의 바위가 붙어있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같은 모습 때문에 ‘우주 오리’(Space Duck)라는 별칭이 붙은 이 혜성의 근접 사진은 그러나 많은 관계자들을 눈물나게 만든다. 이유는 로제타호가 무려 70억 km를 날아가 혜성에 불과 수천 km 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로제타호는 지난 2004년 3월 인류 최초로 혜성에 우주선을 착륙시킨다는 목표로 발사됐다. 무려 10년을 쉬지않고 날아간 로제타호는 오는 6일이면 목적지인 혜성 67P 궤도에 진입한다. 특히 로제타호는 궤도 진입에 성공하면 혜성 표면에 착륙선 파일리를 착륙시키는 인류 최초의 시도를 하게 된다. 학계가 혜성 탐사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약 46억년 전 태양계 형성시 생겨난 잔해들로 이 혜성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ESA 과학자 데트레프 코츠니 박사는 “혜성의 구성 성분이 46억 년 전 태양계가 형성될 당시와 거의 일치해 지구 생명의 기원 등 많은 실마리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면서 “파일리가 착륙에 성공하면 혜성 표면에 구멍을 뚫고 소중한 탐사 자료를 지구로 전송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모성애는 강하다” 4년 넘게 알 품는 문어 발견

    “모성애는 강하다” 4년 넘게 알 품는 문어 발견

    우리가 즐겨먹는 문어의 모성(母性)이 지구상의 모든 동물 중 가장 뜨거울지도 모르겠다. 최근 미국 로드아일랜드 대학교 연구팀이 바다 깊은 곳에 사는 특정 어미 문어의 경우 무려 4년 반이나 알을 낳고 품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해외언론이 ‘올해의 어머니상’을 줘야 한다면 호들갑을 떤 이 문어(학명 Graneledone boreopacifica)는 지구상의 모든 동물 중 가장 포란(抱卵·동물이 산란한 후 알이 부화될 때까지 자신의 몸체를 이용하여 알을 따뜻하게 하거나 보호하는 행위) 기간이 긴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 이번에 연구팀이 확인한 이 문어는 지난 2007년 5월 태평양 연안 몬터레이 해곡 수심 1400m에서 처음 발견됐다. 당시 바위에 딱 달라붙어 알을 품고있던 이 문어는 무려 4년 6개월 동안 이루어진 18차례의 조사과정에서 계속 확인됐다. 연구팀이 같은 문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리에 생긴 특별한 흉터 때문.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한번도 그 장소를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알을 품고 있었다는 것. 이 때문에 연구팀은 어미 문어가 음식물을 먹지도 않고 버텼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문어의 끔찍한 자식 사랑의 생물학적 이유는 있다. 일반적인 물고기가 수많은 알을 낳는 것과 달리 이 문어는 155개 안팎의 알을 낳아 종족 보존을 위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을 때 까지 오랜 시간을 포란하는 것.  연구를 이끈 브래드 사이벨 박사는 “지구상에서 이 문어보다 더 오래 알을 품고있는 동물은 없다” 면서 “단 한번도 자식을 버리고 이동하거나 무엇인가 먹는 것을 본적이 없다”며 놀라워 했다. 이어 “4년 여 동안 이 문어의 근육은 수축되고 몸은 작아졌으며 색깔 또한 변했다” 면서 “알이 부화해 새끼가 대략 4cm 정도의 크기가 됐을 때 마침내 어미의 일은 끝났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공공과학도서관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 30일자에 발표됐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10년 항해 로제타호, 목적지 눈 앞…혜성 사진 공개

    10년 항해 로제타호, 목적지 눈 앞…혜성 사진 공개

    혜성 탐사선 로제타호가 착륙할 대상인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67P/Churyumov-Gerasimenko·이하 67P)의 근접 사진이 공개됐다. 최근 유럽우주기구(ESA) 측은 지난 29일(이하 현지시간) 로제타호가 촬영한 67P의 새 사진을 공개했다. 혜성과 불과 1950km 거리에서 촬영돼 비교적 선명한 사진 속 67P는 두개의 바위가 붙어있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같은 모습 때문에 ‘우주 오리’(Space Duck)라는 별칭이 붙은 이 혜성의 근접 사진은 그러나 많은 관계자들을 눈물나게 만든다. 이유는 로제타호가 무려 70억 km를 날아가 혜성에 불과 수천 km 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로제타호는 지난 2004년 3월 인류 최초로 혜성에 우주선을 착륙시킨다는 목표로 발사됐다. 무려 10년을 쉬지않고 날아간 로제타호는 오는 6일이면 목적지인 혜성 67P 궤도에 진입한다. 특히 로제타호는 궤도 진입에 성공하면 혜성 표면에 착륙선 파일리를 착륙시키는 인류 최초의 시도를 하게 된다. 학계가 혜성 탐사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약 46억년 전 태양계 형성시 생겨난 잔해들로 이 혜성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ESA 과학자 데트레프 코츠니 박사는 “혜성의 구성 성분이 46억 년 전 태양계가 형성될 당시와 거의 일치해 지구 생명의 기원 등 많은 실마리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면서 “파일리가 착륙에 성공하면 혜성 표면에 구멍을 뚫고 소중한 탐사 자료를 지구로 전송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경산~대구 갓바위 셔틀버스 운행해주오”

    전국 최대 기도처로 알려진 경북 경산 팔공산 관봉석조여래좌상(일명 갓바위 부처·보물 제431호) 참배객들이 진출입 지역인 경산 갓바위 공영주차장~대구 동구 갓바위 공영주차장 간을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30일 경북도 등에 따르면 ‘정성껏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뤄 준다’는 속설로 유명한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갓바위는 연간 1300만명의 참배객들이 찾는다. 주요 코스는 경산 갓바위 공영주차장~갓바위 3㎞ 구간과 동구 진인동 갓바위 공영주차장~갓바위 2.1㎞ 구간 2곳이다. 경산에서 갓바위까지는 40분, 대구에서는 가파른 경사의 돌계단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1시간 정도 걸린다. 참배객의 70% 정도는 이들 공영주차장까지 승용차를 이용한다.하지만 참배객들의 상당수는 올라갔던 코스로 다시 내려와야 하는 불편과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우회 등산로나 대중 교통수단이 없어서다. 참배객들은 경북도와 대구시가 두 지역 공영주차장 16㎞ 구간을 오가는 셔틀버스나 이 구간을 경유하는 노선버스를 운행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박모(53·경기 과천시)씨는 “지난 주말 일행들과 대구 방면으로 갓바위까지 올랐다가 경산 쪽으로 내려가서 관광을 하려 했으나 차를 세워 둔 대구 갓바위 주차장까지 교통편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면서 “이웃한 행정기관들이 참배객들을 서로 자기 지역 쪽으로 유치하기 위한 소모적인 경쟁에만 급급하지 말고 셔틀버스 운행 등 서비스 확충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경산시 관계자는 “셔틀버스 등의 운행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했고, 동구 관계자는 “검토는 할 수 있으나 갓바위 주변 상인과 주민들이 상가 위축 등을 우려해 반대할 땐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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