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바위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소폭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열차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사실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노래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027
  • 광역鐵 추락·투신사고 96%가 스크린도어 없는 역

    광역鐵 추락·투신사고 96%가 스크린도어 없는 역

    최근 5년간 광역철도 역에서 발생한 추락·투신 등 190건의 사고 중 96.3%는 스크린도어(안전문)가 설치되지 않은 역에서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2일 광역철 구간인 서울 노량진역에서 20대 남성이 화물열차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가 감전돼 숨진 사고 역시 스크린도어만 설치돼 있었어도 막을 수 있었다. 광역철 역사의 스크린도어 확대 설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10일 박수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입수한 코레일의 ‘스크린도어 설치 및 역사 내 사고 현황’에 따르면 2010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광역철 역사에서 발생한 190건의 사고 중 183건(96.3%)이 스크린도어 미설치 구간에서 발생했다. 중앙선(청량리~덕소), 분당선(오리~수원) 등 코레일이 대도시권에서 운행하는 광역철 역사 223곳 중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역은 69곳으로 설치율은 31%에 불과하다. 2009년 전 구간 스크린도어 설치를 완료한 서울시 지하철은 2010년 이후 연평균 사고건수가 1건이 채 안 되는 반면 광역철은 2010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무려 190건의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서울시는 앞서 2006~2009년 4년에 걸쳐 지하철 1~9호선 운영 주체인 서울메트로(1~4호선),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 서울시메트로(9호선)에 예산을 지원해 스크린도어 설치작업을 완료했다. 그 결과 해마다 약 50건에 이르던 추락·투신 등 사고가 사실상 사라졌다. 광역철 역 가운데 현재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69개 역사의 인명사고 건수를 서울신문 취재진이 분석한 결과 스크린도어 설치 전 1년 동안은 41건이었던 반면 설치 후 1년 동안은 8건에 그쳤다. 스크린도어 설치만으로 인명사고가 80%가량 줄어든 셈이다. 국토교통부는 2009년부터 해마다 역사당 25억~40억원에 이르는 스크린도어 설치 예산을 코레일에 지원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고 발생 빈도, 역별 혼잡도 등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매겨 해마다 8~9개 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한다”며 “올해 선바위역 등 9개 역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량진역은 국토부의 스크린도어 설치 우선순위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위험도가 높지만 코레일이 2002년 추진한 민자역사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는 이유로 스크린도어 설치가 수년째 방치되고 있다. 코레일 관계자는 “노량진역 민자역사사업을 맡았던 업체가 2010년 파산신청을 하는 바람에 지연되고 있다”면서 “스크린도어를 먼저 설치하면 (훗날 민자역사로 개발될 때 사라지는) 매몰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국토부 예산으로)스크린도어를 설치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성동역, 안산역, 창동역, 천안역 등 4개 광역철 역사 역시 우선순위 평가에서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노량진역과 같은 이유로 국토부의 스크린도어 설치 대상에서 배제돼 안전사고 예방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김희리 기자 heeree916@seoul.co.kr
  • “허준 숨결 느끼며 건강도 챙겨요”

    “허준 숨결 느끼며 건강도 챙겨요”

    서울 강서구가 의성 허준(1539~1615)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 눈길을 끈다. 구는 11일 허준의 출생지인 가양동 허준박물관 일대에 만든 ‘허준 테마거리’를 주민들에게 공개한다고 10일 밝혔다. 앞서 구는 가양동 홈플러스~허준박물관 구간 1473.6㎡(연장 307m, 폭 4.8m)에 허준과 동의보감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하고 한약재 가로수를 심는 등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명품 테마 거리를 만들었다. 허준의 출생지이자 동의보감 집필지로서 강서구만이 가지는 문화·역사 전통 등을 지역 관광 인프라로 전환한 것이다. 3개 구간마다 역사와 문화가 함께 살아 숨쉬는 거리로 변모시켰다. 거리 입구인 A존(홈플러스~공진초등학교)에는 어른 키의 두 배 높이 정도로 동의보감 책자 모형 안내판을 설치, 테마거리의 구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중심부인 B존(공진초등학교~공진중학교)에선 허준의 일대기를 감상할 수 있다. 허준의 내의원 시절부터 광해군 천연두 치료 등을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한 조형물이 자리를 잡았다. 한쪽에는 허준 동상도 있다. 동의보감 집필과정을 삽화 형식으로 연출한 이미지 조형물까지 구석구석 볼거리를 꾸몄다. 마지막 C존은 동양의학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의 우수성과 가치를 강조한 상징물로 이뤄졌다. 전 구간에는 한약재 원료로 쓰이는 이팝나무와 복자기 나무를 심어 자연스레 한의약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또 주민들이 걷거나 자전거로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재포장했으며 곳곳에 벤치를 마련하는 등 아늑한 보행환경을 조성했다. 특히 매실과 대추, 자두 등 열매 모양의 의자에는 동의보감에서 소개하는 각 열매의 건강효능까지 일일이 새겨놓아 잠깐 머물면서도 건강을 챙겨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구는 허준 테마거리가 인근 허준박물관과 구암공원, 허가바위와도 연결돼 한의학 테마 관광 명소로 떠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강서구만의 차별화된 역사·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한 허준 테마거리는 서울의 대표적인 한방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면서 “이 일대를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잉카제국 마추픽추 ‘잃어버렸던 도로’ 발굴 화제

    잉카제국 마추픽추 ‘잃어버렸던 도로’ 발굴 화제

    ’잃어버린 공중의 도시’로 불리는 페루 마추픽추에서 새로운 잉카도로가 발견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발견된 도로는 마추픽추 뒤쪽 와이라크탐보 지역으로 연결돼 있다. 길이는 약 1.5km로 추정되지만 나무와 풀로 덮힌 구간이 많아 아직 완전히 발굴되지 않았다. 폭은 구간에 따라 1.2~1.5m 정도다. 길에선 길이 5m 정도의 터널도 발견됐다. 길이 꺼지면서 잉카제국이 바위를 뚫어 터널을 놨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마추픽추 공원의 고고학자 페르난도 아스테테는 “메인으로 사용하던 길이 꺼지면서 터널을 놓은 게 확인됐다.”면서 “500년 전에 만든 터널이 건재하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새로운 길은 마추픽추 뒤편으로 연결돼 새로운 마추픽추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지 언론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마추픽추를 보면 새로운 모습이 보인다.”고 보도했다. 마추픽추 공원은 길을 완전히 발굴해 복원할 계획이다. 관계자는 “발견된 길이 발굴을 마치고 복원되면 마추픽추로 향하는 루트도 다양해져 관광객의 편의가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자료사진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바닷새 무려 50만 마리가…스코틀랜드의 여름

    바닷새 무려 50만 마리가…스코틀랜드의 여름

    무려 50만 마리 바닷새가 가득 메운 스코틀랜드의 한 야생조류 서식지의 장엄한 풍경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스코틀랜드 퍼스 협만 인근에 위치한 배스록 섬을 가득매운 수십만 바닷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8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당 섬에는 짝짓기 계절을 맞은 바다오리, 세가락갈매기, 가위제비갈매기, 풀머갈매기, 제비갈매기 그리고 북양가마우지 등 바다 조류들의 대규모로 모여들고 있다. 거의 50만 마리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조류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15만 마리에 육박하는 북양가마우지 떼인데 전 세계 북양가마우지의 10%가 이곳에 서식하고 있다. 북양가마우지는 영국에서 가장 큰 바닷새로 날개폭이 1.8m에 육박하며 시속 100km라는 빠른 속도로 물고기를 사냥한다. 평균 수명이 30년이 넘는 이 조류는 지난 19세기 조류학자들이 가장 먼저 생태연구를 시작한 새이기도 하다. 배스록은 3억 2,000만년 전 화산 침전물이 모여들어 형성된 섬으로 삼면이 가파른 절벽이며 깊이 105m에 달하는 터널이 바위를 관통하고 있다. 섬의 상징인 등대는 1903년에 처음 세워져 근처를 항해하는 선박의 눈이 되어 줬지만 지난 1988년 마지막 등대지기가 섬을 떠난 후로 이곳은 야생 조류들만의 천국이 되었다. 사진=데일리메일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한·일 고대 뱃길 통나무배로 고증 나섰다

    한·일 고대 뱃길 통나무배로 고증 나섰다

    한국과 일본 민간인들이 한·일 간 고대 뱃길 고증을 위해 통나무 배를 타고 6일 경남 거제에서 대마도를 향해 출항했다. 일본 시마네현 교사들이 주축이 된 민간역사연구 모임인 가라무시회(대표 모리 유타카)는 이날 오전 3시쯤 거제 지세포항에서 출발해 대한해협 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뱃길 탐사에 나선 통나무배 ‘가라무시 4세호’는 길이 9.7m, 너비 60㎝, 무게 600㎏ 규모다. 고대인들이 탔을 것으로 추정하는 선박을 고증해 만들었다. 시마네현에서 수령이 250년 된 전나무를 어렵게 구해 도끼로 속을 파내는 등 전통 방식으로 제작했다. 탑승 인원은 7명이며 시속은 4.7㎞다. 가라무시회 모임은 35년 전에 설립됐으며 회원은 50여명이다. 이 모임은 ‘대한해협 횡단 프로젝트’를 통해 고대에 대한해협을 오갔던 통나무배의 이동경로와 소요 시간 등을 고증한다. 통나무배로 대한해협을 건널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신라시대(157년)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재현하는 의미도 있다. 이 설화는 연오랑이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됐고 부인 세오녀도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건너가 철기문화와 베 짜는 기술 등을 전해줬다는 얘기다. 부산외대 명예교수인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은 “고대 문헌에 기록된 사실들을 일본인들이 직접 고증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이번 탐사 프로젝트에는 모임 소속 일본인 6명 외에 한국인 지원인력 등 모두 21명이 참여했다. 요트 2척과 고무보트 1척이 지원 선박으로 동행한다. 통나무배 항해는 일본인 6명과 한국인 5명 등 11명이 맡는다. 15년 전부터 가라무시회 모임과 인연을 이어온 유현웅(52)씨는 “역사를 제대로 알리려는 일본인들을 도와주고 싶었다”면서 “탐사단이 무사히 도착해 한·일 우호 증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정대로라면 가라무시 4세호는 7일 오후 7시쯤 대마도 인근 해상에 도착한다. 모리 대표는 “준비과정이 쉽지 않았던 만큼 꼭 성공해 고대인들의 뱃길 발자취를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거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창끝처럼 매운 봉우리 달빛인 듯 사뿐 오르리

    창끝처럼 매운 봉우리 달빛인 듯 사뿐 오르리

    오래전 일이다. 전남 영암 땅을 스쳐 지나던 길이었다. 꾸벅대며 조느라 반쯤 감겼던 여행자의 눈이 감전된 듯 번쩍 떠졌다. 빗줄기 흐르는 차창 너머로 펼쳐진 월출산의 자태 때문이었다. 영암의 들녘 한가운데를 찢고 융기한 월출산은 웅장하고 당당했다. 그날 이후 월출산은 가슴 한편에 똬리를 틀었다. 이른바 버킷리스트에 올랐던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등반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일 터. 그게 언제여야 하는가. 봉우리마다 산철쭉이 곱게 피고 공룡 등줄기 같은 능선을 녹음이 점령하는 바로 이맘때다. 전남 나주에서 영암으로 드는 길. 멀리 들녘 위로 공룡의 등뼈를 닮은 산이 삐죽 솟았다. 월출산이다. 그 위세가 자못 당당하고 고압적이다. 외지인들에게 이 일대 풍경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라는 걸 은근히 주장하는 듯하다. 하긴 사방 백리 안에 월출산과 크기를 견줄 만한 산이 없으니 그럴 법도 하다. 먼저 월출산국립공원사무소 김승희 소장의 이야기를 듣자. 월출산은 영암과 강진에 걸쳐 있다. 1988년 국내 20번째로 국립공원이 됐다. 최고봉은 천황봉으로 809m다. 암릉이 많은 데다 급경사를 이룬 계곡은 수량마저 적어 생태계가 풍부하게 유지되기 어려운 구조다. 그런데도 그 안에 세계에서 가장 작은 꼬마잠자리 등 약 800종의 동물과 약 700종의 식물이 살아간다. 생태계의 보고다. 월출산이 가진 기록 몇 가지. 우리나라 최남단의 국립공원이다. 그리고 국립공원 가운데 크기가 가장 작다. 그렇다고 오르기 쉬울 거란 생각은 말길. 작지만 맵다. 사자봉과 매봉을 잇는 구름다리도 명물이다. 국내 현수교 가운데 지상고가 120m로 가장 높다. 오르는 길에 눈여겨볼 건 남근석과 베틀굴이다. 대개의 산에 남근석은 하나씩 있게 마련이지만 월출산 남근석은 독특하다. 흙 한 톨 없는 바위 끄트머리에서 산철쭉이 자라기 때문이다. 해마다 연분홍꽃을 피웠던 산철쭉은 그러나 몇해 전 고사하고 말았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당장 등산객들 사이에서 ‘풀 죽은’ 남근에 대해 안타까운 목소리가 오갔다. 월출산국립공원 측은 고심 끝에 인근 산철쭉을 채취해 복원하기로 했다. 이른바 ‘새집공법’으로 이식된 산철쭉은 올해 처음으로 꽃을 피워 냈다. 베틀굴도 상황은 비슷하다. 월출산의 여근석 노릇을 하는 동굴이다. 동굴 초입엔 뜻밖에 억새가 자라고 있었다. 한데 이 역시 고사했다. 등산객의 답압 탓이다. 쉽게 말해 발 아래 깔려 죽었다는 뜻이다. 이걸 복원했다. 아직 크기는 작지만 가을쯤이면 실하게 영근 억새꽃을 선보일 것이다. 달 뜨는 산이란 뜻의 이름은 어떻게 갖게 됐을까.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서 오르더라”는 매월당 김시습의 표현처럼 주로 선인들의 월출산 예찬에서 연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한데 김 소장의 해석도 이채롭다. 구림마을 등 영암 북서쪽에서 보면 초저녁에 월출산 위로 뜬 달이 밤늦도록 월출산의 봉우리를 타고 흐르다 새벽녘에 자취를 감춘다고 한다. 그래서 월출산이라 부르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달이 흐르는 산’ 충북 영동의 월류봉과 비슷한 경우다. 월출산의 가장 큰 매력은 기암절벽이다. 수없이 갈라진 능선과 골짜기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암벽들은 조각가가 정교한 솜씨로 다듬어 놓은 듯하다. 한데 이는 월출산이 오르기 쉽지 않은 산이라는 뜻도 된다. 줄곧 경사 심한 산자락을 오르내려야 한다. 체구는 경량급인데 펀치력은 헤비급인 셈이다. 사자봉, 매봉 등 창끝같이 날카로운 봉우리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지날 때는 특히 더하다. 등산 코스는 여럿이다. 그 가운데 수도권 등의 당일치기 산행객들은 천황사 주차장을 들머리 삼아 구름다리~천황봉~바람폭포를 돌아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순환 코스를 선호한다. 거리는 6.7㎞. 4~5시간은 족히 걸린다. 종주 코스는 천황사 주차장~구름다리~천황봉~구정봉~억새밭~도갑사다. 9.4㎞로 최소 6시간 이상 걸린다. 강진 쪽 경포대에서 오르는 6.6㎞ 코스도 있지만 천황봉까지 차고 오르는 길이 험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하산 코스로 잡길 권한다. 이번 산행에선 천황사 주차장을 들머리 삼아 바람폭포~육형제바위~천황봉~바람재~구정봉 순으로 오른 뒤 다시 바람재를 거쳐 경포대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구름다리를 직접 걷지 못하는 게 아쉽긴 했지만 ‘수석 전시장’ 광암터 인근에서 구름다리 걸친 사자봉의 모습을 조망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바람폭포와 육형제바위까지는 줄곧 숲이다. 광암터 어름까지는 가야 비로소 하늘이 뻥 뚫린다. 기암들이 파노라마처럼 흐르는 월출산의 진경도 예서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월출산국립공원사무소의 조영준씨는 “화강암은 장석, 흑운모, 석영 등으로 구성되는데 월출산엔 장석이 많이 섞였다”고 했다. 그래서 암벽의 빛깔이 붉다는 것이다. 저물녘이나 비 오는 날엔 한결 더 붉은빛을 띤다고 한다.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은 널찍한 암반지대다. 바람에 땀 말리며 다리쉼하기 좋다. 사방에 치솟은 암봉들도 볼 만하다. 저마다 그럴듯한 사연 하나쯤은 품고 있는 모양새다. 이를 보며 숱한 시인 묵객들이 펜으로, 붓으로 읊고 그려 냈을 터다. 천황봉에서 남근석을 지나 바람재까지는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경사가 급한 계단도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바람재에서 구정봉까지는 완경사 오르막이다. 이 일대 조망도 뛰어나다. 바람재에서 보는 구정봉은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그래서 이름도 장군바위다. 구정봉 옆엔 베틀굴이 뚫려 있다. 임진왜란 때 아녀자들이 이 굴에 숨어 베를 짰다고 한다. 구정봉(711m)은 베틀굴 옆으로 올라야 한다. 완경사이긴 하나 결코 수월하지는 않다. 암벽 위를 로프에 매달려 올라야 하는데 천황봉 등정에 힘을 쏙 빼고 온 터라 여느 때보다 곱절은 더 힘이 든다. 구정봉 정상엔 십여개의 나마(gnamma)가 있다. 암석 위의 조그만 구멍이 바람과 모래 등의 풍화작용을 받아 작은 웅덩이 형태로 커진 걸 말한다. 이를 풍화혈(風化穴)이라고도 한다. 예전엔 나마가 아홉개여서 봉우리 이름도 구정봉이었다. 한데 최근엔 숫자가 12개까지 늘었다. 가장 큰 나마는 일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 나마에는 생명체도 산다. 가장 큰 개체는 무당개구리다. 조씨는 해마다 한두쌍의 무당개구리가 이 나마까지 올라와 산란한 뒤 늦가을에 내려간다고 했다. 대체 무당개구리는 이곳에 나마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 짧은 다리로 사람도 오르기 힘든 바위를 어떻게 뛰어올랐는지도 신비롭다. 하산길은 강진 쪽의 경포대 계곡으로 잡는다. 강원 강릉의 경포대와 발음은 같지만 뜻은 다르다. 경포대 계곡엔 연중 계곡물이 흐른다. 대개의 월출산 내 계곡들이 건천인 것과 대비된다. 경포대 초입에 야영장이 조성돼 있다. 천황사 야영장이 차로 오를 수 있는 반면 경포대 야영장은 걸어 올라야 한다. 입구에서 수백m 걸어 올라야 하는 게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한적하게 캠핑을 즐길 수 있다. 글 사진 영암·강진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로 갈 경우 서해안고속도로→목포 나들목→2번 국도→영암, 또는 호남고속도로→서광주 나들목→산월IC→13번 국도(나주·영암 방향)→영암 순으로 간다. 월출산국립공원사무소 473-5210. →맛집 한석봉의 어머니가 떡을 팔던 곳이라는 독천시장 내에 수십곳의 낙지식당이 몰려 있다. 갈낙탕, 낙지구이 등을 맛볼 수 있다. 청하식당(473-6993), 독천식당(472-4222) 등이 이름났다. →잘 곳 천황사탐방지원센터 인근에 월출산바우펜션(471-9930)이 있다. 한옥형 펜션으로 최근에 문을 열어 깔끔하다. 6만원부터. 군서면의 월출산온천관광호텔(473-6311)에선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산행 뒤 몸을 풀기에 맞춤하다. 입욕료는 어른 6000원.
  • 국내여행 | 제주를 걷는 새로운 방법③자연 따라 걷기-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국내여행 | 제주를 걷는 새로운 방법③자연 따라 걷기-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자연 따라 걷기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해안가를 둘러싸고 겹겹이 쌓인 지층은 세월의 흔적이었고, 밭을 매며 흥얼거리는 아지매들의 노랫소리는 현재에 충실한 삶의 모습이었다. 바다를 옆에 두고 마을 한 바퀴걷기 좋은 계절이다. 이럴 때는 시끌벅적한 도시보다는 꽃향기가 배어 있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자연의 길을 걷는 것이 좋다. 푸른 하늘과 닿을 듯 말 듯한 산에 오르는 것도 좋고 청량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해안가를 걷는 것도 좋다. 좁은 골목길을 걸을 때는 담벼락 밑에 민들레 꽃 한 송이도 있어 주면 참 좋겠다. 사실 이 낭만적인 풍경은 상상 속의 그림이 아니다. 2011년 제주 고산리 수월봉 일대 지질트레일 코스가 생긴 지 3년 만에 탄생한 산방산·용머리 해안 지질트레일 코스의 모습이다. 산과 바다를 아우르는 것은 물론 사계리·덕수리·화순리의 아름다운 돌담길, 80만년의 역사를 품은 지질명소는 덤이다.사계리와 덕수리를 경유하는 A코스를 걸었다. 용머리해안 주차장에서부터 시작하는데 마을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짭쪼름한 바닷가 바람이 불어온다. 설쿰바당. 눈 속에 생긴 구멍이라는 의미의 단어 ‘설혈’이 ‘설쿰’으로 변형된 것에 바다를 뜻하는 ‘바당’이 합쳐서 생긴 해안 이름이다. 눈이 쌓여도 바람 때문에 구멍이 생겨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졌고, 이렇게 설쿰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설쿰 동네라고 부른다고. 설쿰바당을 지나 사계포구에 접어들었다. 저 멀리 빨간 등대와 형제섬이 보이고 십여 대 남짓의 고깃배가 포구에 정박해 있었다. 포구를 지나 눈에 띄는 것은 다른 해안가에서 볼 수 없었던 붉은색의 퇴적암층이다. 이는 약 3,500년경 송악산에서 분출한 화산재가 파도에 깎여 나가 해안가 주변에 쌓인 것으로 ‘하모리층’이라고 말한다. 울긋불긋하고 울퉁불퉁한 지층 위에는 고운 모래가 쌓여 언덕을 이뤘다. 그렇게 걷다 보면 더 이상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 구간이 나온다. 송악산의 용암이 분출된 후 화산재가 쌓이고 그 위를 걸어 다닌 사람들의 발자국 화석뿐만 아니라 사슴·새 등 동식물의 흔적도 함께 또렷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를 보존하기 위함이다. 퇴적물이 쌓이고 쌓인 지층이 오랜 시간 동안 감추어 두다가 이제야 슬며시 꺼내 보인 옛 시간의 흔적이니 반드시 지켜 줘야만 할 것 같다.바다를 옆에 두고 걷는 길이 끝나면 A코스의 4분의 1은 걸은 셈이다. 그 후로 만나게 되는 사계리 마을은 정겨운 시골길. 한적할 것만 같은 이 길에 사실은 대형트럭이나 승용차들의 통행이 잦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기 때문에 다소 조심해야 하는 구간. 그런데 아까부터 코끝을 찌르는 냄새가 마을 전체에 진동했다. 시선을 바삐 움직여 그 근원지를 찾았더니 달달하지만 진한 향기는 마늘밭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을 전체에 끝없이 펼쳐진 마늘밭 지나는 길은 바람에 너울너울 춤을 추는 유채꽃과 할망과 할아방들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함께해 걷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걷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시골의 모습이었다. 단산, 강인한 남자의 모습 누군가 말했다. 때로는 힘든 길보다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그러나 여행에서만큼은 고생스럽다 할지언정 한 군데라도 더 가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가 어렵다. 사계리 마늘밭을 지나 대정향교 앞에 서면 이렇게 선택의 순간과 마주한다. 왼쪽은 ‘단산’으로 올라가는 길, 오른쪽은 걷기 쉬운 돌담길이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많은 이들이 단산에 오르는 수고로움을 선택하는 이유는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다.잠시 숨을 고르고 산 중턱에 있는 단산 진지동굴도 들어가 보자. 한낮에도 휴대폰의 조명을 켜지 않고는 너무나 어두워 ‘이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깊은 동굴이다. 서남부 해안으로 연합군이 상륙할 것을 대비해 일제가 구축해 놓은 군사시설로 단단한 암반을 약 70m를 뚫고 병사가 쉴 수 있는 공간과 능선을 관통한 통로를 만들었다. 스산한 분위기와 차가운 기운이 맴도는 동굴에 들어갔다 나오면 어느덧 이마에 맺혀 있던 땀방울은 사라지고 없다. 단산은 여느 산과는 달리 흙길보다 바위길이 더 많다. 때로는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해 둔 밧줄을 잡고 올라서야 할 정도로 수직에 가까운 벼랑도 있다. 특히 동쪽의 암봉이 험한데, 칼날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칼날바위’ 혹은 ‘칼코쟁이’라고 부르며 산악인들의 암벽훈련 장소로도 입소문이 난 곳이다. 그러나 그 정상에 올라서면 산방산을 비롯해, 날이 좋으면 형제섬까지도 선명하게 내려다볼 수 있다. 무, 양파, 마늘 등 다양한 채소를 일군 시골의 모습은 그림과 같다. 제주의 오름이 대부분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솟아 있는 반면 단산의 모습은 거세고 단단한 것이 남성스럽다.가파른 단산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면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오른쪽 길로 가면 단축 코스로 약 1시간가량 일찍 도착점에 다다를 수 있지만 아기자기한 제주 돌담길을 포기할 순 없었다. 산방산 탄산온천을 지나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니 어느 순간부터 제주도 특유의 구멍이 송송 뚫린 돌을 쌓아 올린 돌담길이 계속된다. 집집마다 심어 놓은 감귤나무 혹은 천혜향, 한라봉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로 먹음직스럽다. 담벼락 위로 고개를 내민 빨간 동백꽃까지. 영락없는 제주의 모습이었다.길 옆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면 도착지점이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해안로 끝에는 용머리 해안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산재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용머리해안의 지층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바다를 향해 뛰어드는 용의 머리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답게 그 규모와 기상은 이름 그대로였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싶다면 산책로를 걸어 보는 것도 좋다. 예전에는 산책로가 바닷물에 잠기는 일이 거의 없었으나 최근에는 바닷물에 잠기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하니 탐방 전 바다의 허락을 먼저 받는 것이 중요하겠다.글·사진 손고은 기자 취재협조 제주관광공사 www.ijto.or.kr▶지질트레일 코스A코스 총 14.5km 소요시간 약 4시간 30분~5시간용머리해안 주차장→설쿰바당→사계포구→형제해안로 전망대→해안사구와 하모리층→사계리 해안체육공원→사람발자국 화석→대정향교→세미물→단산→단축코스 분기점→산방산탄산온천→불미마당→베리돌아진밧→조면암돌담→산방산 주차장→용머리해안 주차장 A단축코스 총 10.7km 소요시간 약 3시간 30분 B코스 총 14.4km 소요시간 약 4시간 30분~5시간용머리해안 주차장→기후변화 홍보관→하멜표류비→항만대→소금막-병악 현무암지대→사근다리동산/방사탑/유반석과 무반석→하강물/엉덕물→화순금모래해변→화순리 선사유적지→황개천/명알목소→개끄리민소→수로/퍼물→곤물/곤물동→화순곶자왈→방사탑→홈밭동네 전망대→군물→베리돌아진밧→조면암 돌담→산방산 주차장→산방연대→용머리해안 주차장▶지오 푸드Geo Food, 용머리해안 지층 카스테라지오 푸드란 각 지역에서 수확한 식재료를 활용한 로컬푸드를 말한다. ‘용머리해안 지층 카스테라’는 제주 지질명소 용머리해안 지층의 특성과 문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녹차, 백년초, 감귤 파우더 등을 반죽에 섞어 구워낸 부드러운 카스테라는 음식 공모전에서 당선된 레시피로 만들어졌다. 화순리 일대의 빵집에서 먼저 선보이고 있으며 점차적으로 전 지역에 레시피를 공유할 예정이다.▶TRAVEL INFO호텔 섬오름 앞 섬과 뒷 오름 그래서 섬오름 호텔 앞에는 섬, 뒤에는 오름. 지난 3월22일에 문을 연 어느 호텔에서 바라보이는 전망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고스란히 호텔의 이름이 됐다. 섬오름 호텔. 자신의 장점을 가장 알고 있는 이 호텔은 전 객실을 바닷가 전망으로 설계했다. 바다를 향해 반원으로 세워진 2개의 호텔동 앞으로는 야외 수영장과 유아풀, 자쿠지가 있고, 그 앞으로 레스토랑을 세워 외부에서는 수영장이 보이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호텔 앞바다의 섬은 큰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의 범섬이다. 범섬은 고려 말 ‘목호牧胡의 난’ 때 최영 장군의 마지막 승전지다. 호텔 뒤편으로 보이는 오름은 고근산이다. 맑은 날 정상에 서면 저 멀리 마라도부터 자귀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는 바로 그곳이다.자리를 잘 잡았다고 호텔이 저절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내추럴 모던스타일을 추구했다는 섬오름 호텔은 가족이나 연인이 조용히 머물다 가기에 좋다. 1층에 위치한 13개의 패밀리 객실은 전용발코니를 통해 수영장으로 바로 나가게 되어 있다. 가장 특색있는 객실은 복층형인 스위트룸이고, 취사시설이 갖춰진 파노라마 스위트 객실도 있다. 이 밖에도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과 아침부터 밤까지 운영하는 카페&레스토랑이 있어서 웨딩이나 파티를 하기에도 좋다. 서귀포시와 중문관광단지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어느 쪽으로 이동해도 거리가 멀지 않고 호텔 바로 앞 도로는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올레 제7코스다.섬오름 호텔은 시설뿐 아니라 서비스에서도 호텔을 잘 아는 프로들의 흔적이 느껴진다. 알고 보니 운영을 맡고 있는 디에스디엘(주) 덕이다. 서울의 프레이저 플레이스 센트럴과 프레이저 남대문 뿐 아니라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힐튼 호텔까지, 총 783개 객실의 호텔 34개를 운영해 온 노하우가 제주까지 내려온 것. 특급 호텔 수준의 어매니티뿐 아니라 에스프레소 머신이 각 방마다 비치되어 있어서 신선한 원두커피를 방 안에서 즐길 수 있다. 현재 섬오름 호텔의 객실수는 53개로 소규모지만 2년 후 바로 옆 부지에 60실 규모의 호텔이 추가 신축되면 호텔 규모는 2배로 커지게 된다. 상반기 중에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호텔 섬오름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 1513 요금 딜럭스 오션 뷰 27만5,000원, 패밀리룸 33만원 문의 064-800-7200 www.sumorum.com● 서귀포 주요 미술관기당미술관┃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성중로 153번길 15 관람료 성인 400원개관시간 오전 9시~오후 6시(7,8,9월에는 20:00까지 연장) 문의 (064)733-1586 gidang.seogwipo.go.kr 이중섭 미술관┃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이중섭거리 87 관람료 성인 1,000원 개관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입장 마감 오후 5시30분) 문의 064-733-3555 jslee.seogwipo.go.kr 소암기념관┃주소 제수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소암로 15 관람료 무료 개관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입장 마감 5시30분) 문의 064-760-3511 soam.seogwipo.go.kr 왈종미술관┃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칠십리로 214번길 30 (동홍동) 개관시간 오전 9시30분~오후 6시(입장 마감 오후 5시) 관람료 성인 5,000원, 청소년·어린이 3,000원 문의 064-763-3600▶TRAVEL INFO제주에코 스위츠 휴양펜션파란 눈을 가진 부부의 특별한 숙소 제주에코 스위츠 휴양펜션숙소를 예약하기 전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객실 컨디션이다. 보통의 숙소들은 사진에 환상을 품고 실체에 실망하지만 제주에코 스위츠 휴양펜션은 다르다. 사진은 평타 수준, 진짜 모습은 기대 그 이상이다. 사장님도 인정한 ‘사진빨’ 제대로 안 받는 곳이라니. 객실은 두 가지 타입. 주방과 거실, 욕실, 독립된 침실, 발코니가 있는 딜럭스 스위트룸과 같은 구성에 야외 자쿠지가 설치된 스파 스위트룸이 있다. 모든 객실에는 무선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며 밥솥, 전기포트, 전열 스토브 등 조리기구가 준비되어 있다. 기준 인원은 2명이지만 보통의 펜션과는 달리 추가인원이 발생할 경우에도 따로 금액을 받지 않는다. 야외 바비큐 그릴과 조식까지 무료로 제공해 준다. 겨울철에는 펜션 앞 정원에서 감귤 따기 체험도 공짜로 가능하다고 하니 정이 넘치는 곳이다. 이렇게 ‘퍼주기 식’은 왠지 나이 지긋한 시골 할머니의 인심 같지만 사실은 러시아에서 온 빅토르 랴센세브Victor Ryashentsev 대표의 운영 방식이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그는 한국에서 어학연수 시절 제주도 여행에 푹 빠졌다. 러시아 모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쳤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연세대 어학당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쳤다. 그러다 결국 2002년 아내와 함께 제주도에 정착해 여행사를 차렸다. 약 10년을 여행사를 운영하며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제주를 알리고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오던 부부는 지난 2012년 서귀포 중문동에 제주에코 스위츠 휴양펜션을 오픈했다. 도시보다 오지를 좋아한다는 그는 펜션의 위치를 산속에 계획했다. 총 10개의 객실을 가진 펜션은 화가인 아내 나타샤Natasha가 설계를 도왔다. 자연을 사랑하는 부부의 마음이 느껴지는 펜션은 모던하지만 친환경 소재로 디자인됐다. 이중 유리창 시스템과 바닥 단열장치는 냉난방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최대한 줄이고 소형 형광 램프를 사용해 전기를 절약한다. 또한 객실 테라스에서는 그가 정성껏 가꾼 정원을 바라보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아무런 계획 없이 가도 좋다. 제주살이 13년차 부부가 취향에 딱 맞는 여행지를 추천해 줄 테니.제주에코 스위츠 휴양펜션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상로 207-13 가격 딜럭스 스위트룸 주중 17만원, 주말 20만원, 스파 스위트룸 주중 19만원, 주말 22만원 문의 064-738-9975 www.jejueco.com ● 지질트레일 주변 체험사계 어촌 체험마을 해녀체험┃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형제해안로 13-1 가격 1인 2만5,000원 문의 064-792-3090 sagye.seantour.com산방산 탄산온천┃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북로41번길 192 가격 성인 1만2,000원, 청소년 9,000원, 소인 6,000원, 유아 4,000원 문의 064-792-8300 www.tansanhot.com 산바다 ATV체험장┃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로 141 가격 1인용 기준, 산코스 2만5,000원, 기본코스 3만원, 산바다코스 4만원, 한라산 투어코스 10만원 문의 064-794-0117 www.sanbada.jeju.kr 산방산 사랑의 유람선┃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해안로 106번길 16 가격 성인 1만6,000원, 청소년 1만900원, 어린이 9,200원 문의 1599-1567 www.jejuyuram.co.kr☞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1100만년 된 희귀 신종 ‘지렁이도마뱀’ 화석 발견

    1100만년 된 희귀 신종 ‘지렁이도마뱀’ 화석 발견

    다리가 퇴화돼 겉보기에는 뱀이나 지렁이를 연상시키지만 실제론 도마뱀의 일종인, ‘지렁이도마뱀’의 최초 조상격인 화석이 발견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과학전문매체 라이브 사이언스닷컴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카탈로니아 고생물학 연구소 (Institut Català de Paleontologia Miquel Crusafont in Barcelona) 연구진이 약 1100만년 전 실존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고대 지렁이도마뱀의 화석을 발견했다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카탈로니아 분지 지역의 퇴적층에서 발견된 이 화석은 길이 11.2㎜에 불과한 작은 골격이지만 신체 대부분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전에도 지렁이도마뱀 화석이 발견된 적은 여러 번 있지만 이번만큼 완전한 뼈 형태가 출토된 경우는 없었기에 이번 발견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연구진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화석 골격은 바위 표면내부까지 광범위하게 박혀져있는데 무리하게 바위를 부술 경우 두개골 부분이 손상될 수 있어 컴퓨터 단층 촬영을 통해 화석을 가상으로 재건했다. 이 모델은 3차원 영상으로 구현됐는데 이빨은 약 20개 정도였고 골격 형태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은 신종인 것으로 확인됐다. 180종이 넘는 지렁이도마뱀 종류 중 가장 오래된 조상 격으로 보이는 이 신종 화석에 연구진이 붙여준 학명은 ‘Blanus mendezi’다. 현재 지구상에 살아있는 지렁이도마뱀은 보통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며, 평균 몸길이는 15cm 정도다. 눈이 퇴화되어있고 육식성이며 생각보다 턱 힘이 강해 자신보다 몸집이 큰 먹잇감도 사냥이 가능하다. 연구를 주도한 카탈로니아 고생물학 연구소 아르나우 볼렛 연구원(박사과정 학생)은 “해당 화석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현대 지렁이도마뱀의 진화 가계도를 정밀히 구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 연구결과는 미국 공공과학도서관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4일(현지시간) 발표됐다. 사진=PLoS ONE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나이 80에 문인화로 ‘힐링아트’ 시작한 국민주치의 이시형 박사

    [김문이 만난사람] 나이 80에 문인화로 ‘힐링아트’ 시작한 국민주치의 이시형 박사

    ‘치유’라는 단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떠오른 요즘이다. 세로토닌은 몸에 행복감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어느 날 한 정신과 의사는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 사회에 대해 “이제 세로토닌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세로토닌 문화원’을 설립해 그저 바쁘게만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정신적 폐단을 지적하고 ‘이젠 다르게 살아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화두로 던졌다. 현재는 ‘병원이 필요 없는 사람’을 만드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에 ‘힐링아트’라는 또 하나의 단어를 꺼내들었다. 바로 ‘문인화’다. 문인화를 통해 생명과 사물의 본질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마음의 깨끗한 기운과 여백을 찾아 스스로 치유하자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세로토닌 문화원에서 이 시대의 대표적 정신과 의사로 통하는 이시형(80) 박사를 만났다. 문화원 앞마당에서 인사를 나눴다. 아담한 잔디밭 가장자리에는 푸름이 짙은 나무들이 빙둘러 서 있었다. “지금 꽃은 다 졌지만 때가 되면 이곳에는 목련도 피고, 튤립도 있고, 작약도 있어요. 밤에는 별들도 볼 수 있지요. 주택들이 밀집돼 있지만 아주 조용해요. 회원들도 오고 변호사, 화가 등 여러 지인들이 자주 찾아와 자연과 밤하늘을 함께 노래하기도 하지요.” 친숙하게 오랫동안 사귄 벗을 소개하는 듯했다. 그는 4일부터 일주일 동안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첫 문인화 전시회를 연다. ‘치유적 예술로서의 문인화’라는 제목으로 강연 시간도 가진다. 나이 80인 정신과 의사가 문인화 50여점을 내걸었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는 전시에 앞서 직접 그리고 쓴 그림과 글을 모아 ‘나이 여든 소년 산이 되다’라는 문인화첩을 냈다. 삶에 대한 깊은 사색, 진정한 치유와 행복을 담고 있다. 책을 펴냄과 거의 동시에 전시회를 갖는 셈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들이 이어졌을까. “사태(책을 내고 전시하는 일)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으로 빠지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어떤 치기에서 시작됐지요. 작년 말쯤 나이 80이 된다고 생각하고 보니 그동안 해 왔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모든 것들이 쉽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다 이루어졌지요. 그러면서 이제 가장 못하는 일을 한번 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교실 뒤편 게시판에 제 그림이 한번도 걸려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는 즉시 주변 사람들을 꼬드겼다. ‘초등학교 때 교실 뒷벽에 한번도 그림이 걸려보지 못한 사람 모여라’고 했더니 20명쯤 됐다. 평소 존경하는 김양수 화백을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그림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허락을 받아낸 그는 일주일에 한번 지인들과 함께 김 화백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나무, 매화 등 사군자부터 시작했다. 배울수록 그림이 어려워졌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대로 잘 그려나가는데 자신은 영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공부를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실컷 바람을 잡아놓고 도중하차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시 붓을 들었다. 이번에는 사군자가 아닌 산과 나무, 바위를 그렸다. 초가집과 산골, 홍천의 선마을 풍경을 생각나는 대로 그렸다. 조금은 쉬어졌다. 또 생각날 때마다 글귀를 써 넣었다. 차츰 문인화의 구상에 빠졌고 마음이 편해지면서 잡념이 사라졌다. 저절로 치유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힐링아트’라는 말도 떠올랐다. 그림을 시작한 지 5개월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김 화백이 같이 그림을 배운 동료들을 모아놓고 “문인화는 담백하고 순수해야 하는데 이 박사의 그림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으뜸이다. 잘 그린 그림도 있고 좋은 그림도 있다”면서 “세로토닌 문화 후원회원을 상대로 경매에 내놓기로 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또한 화첩을 만들고 개인전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며칠 뒤 김 화백과 인사동 갤러리 골목에 갔더니 갤러리 주인들이 다들 서로 전시하겠다고 나섰다. 아니 이게 웬일이람? 뿐만 아니다. 출판사와 갤러리 전시 계약까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이 계속 벌어졌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이희수 교수가 책 제목을 ‘여든, 산이 되다’라고 정했다. 이를 본 서울대 김병종 교수가 ‘여든 소년의 작품’이라는 말과 함께 ‘소년’을 추가하게 되면서 ‘여든 소년 산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출간과 전시를 하게 됐던 것. 그림 여백에 그가 직접 쓴 글귀를 잠시 들여다본다.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흘러오는 세월도 넘칩니다’ ‘맨손의 새는 자유로이 난다’ ‘네가 오는 길 달 지고 마중 나가마’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그런 밤입니다’ ‘사랑은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이 그립다’ ‘한겨울의 파란 이끼를 피워내는 늙은 바위의 힘’ 등이다. 선시(禪詩) 같은 느낌이 든다고 그에게 말했다. “문인화 수업은 제게 참으로 많은 걸 깨우치게 했습니다. 저는 시인도, 화가도 아닙니다. 그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던 생각과 작업의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창조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연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무뚝뚝하던 바위에 그렇게 따뜻한 마음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물의 본질을 보면서 80년 동안 살아온 내공이 자연발생적으로 부려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인화는 치유의 예술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 같이 문인화를 배운 동료 중에 성질이 급하고 격한 사람이 있는데 최근 그 성질이 다 없어졌다. 앞으로 일반인들에게 힐링아트를 보급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요즘 탈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추세인 만큼 기업 CEO들도 감성과 부드러움으로 경영하는 ‘세로토닌 기업문화’로 눈을 돌릴 때가 됐다고 강조한다. 화제를 세월호 얘기로 잠시 돌렸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은 처음일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애도가 아니라 분노입니다. 누구 하나 원칙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선현의 말씀 중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지요. 선현이 교훈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설마’가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예방에 대한 개념이 없어졌어요.” 세월호로 생긴 집단 우울증을 어떻게 치유하는 것이 좋으냐고 물었다. “사고가 단발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한 달 이상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충격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정서에는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슬플 때는 슬퍼하고 아플 때는 충분히 아파해야 합니다. 그것을 막으면 안 되지요.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유가족들도 기운을 내야 합니다.” 그러면서 세로토닌을 얘기한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후 슬프고 힘든 뉴스를 접하면서 세로토닌 균형이 깨지게 됐으며, 자연과 함께 움직이면서 힐링을 하게 되면 세로토닌 분비가 다시 되살아난다고 말한다. 우울증 등을 치료하는 좋은 약도 많지만 세로토닌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에 태양을 보면서 30분 동안 걷는 것이 가장 좋다고 귀띔한다. 그는 성장하는 중학생들에게 세로토닌 분비와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지금까지 160여개의 북을 제작해 각 학교에 보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원래는 고등학교에는 보내주지 않았는데 단원고만큼은 예외로 하고 그들을 위한 북 제작을 이미 마쳤다. 학교 측이 북을 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대로 보낼 예정이다. 힘든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기 위해서다. 건강관리에 대해 물었더니 “아들이나 딸, 손주뻘 되는 사람들과 늘 기분좋게 만난다. 주말에는 강원도 홍천 선마을에 가서 산에도 가보고 사물도 천천히 관찰하고 그러니 병이 생길 일이 없다”면서 겨울부터 본격적인 문인화 교실을 열어 또 하나의 힐링아트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면 더욱 건강해지지 않겠느냐며 웃는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인생이 더 길고 복잡해졌지요. 따라서 후반전을 위해서는 전반전에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나이 들면 모든 것이 나약해지거든요. 베이비붐 세대들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300년을 해 온 일들을 우리나라는 40년 만에 이루어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입니다. 후반전을 위해 개인의 노력도 우선 중요하겠지만 기업과 정부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릴 적 꿈에 대해서는 “중학교 때 주로 유럽 쪽을 무대로 한 세계문학전집을 읽었는데 나중에 커서 혼자 유럽의 낯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을 상상했다. 나이 70이 거의 다 돼 혼자 유럽 그 상상의 무대에서 직접 꿈을 펼쳐봤다”며 웃는다. 나이 80에 새로운 것, 더구나 제일 못하는 그림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의 인생사에도 새로운 용기를 주지 않을까. 선임기자 km@seoul.co.kr ■이시형 박사는 193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정신과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스턴 주립병원 청소년 과장, 경북대·서울대 외래, 성균관 의대 교수, 강북삼성병원장,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HWA-BYUNG)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로 대한민국에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또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세로토닌하라!’ ‘배짱으로 삽시다’ ‘우뇌가 희망이다’ ‘이젠 다르게 살아야 한다’ 등 76권의 책을 펴냈다. 2007년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 2009년에는 세로토닌 문화원을 건립했다. 현재 세로토닌 문화원 이사장,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 서울사이버대 석좌교수, ㈔한국산림치유포럼 회장,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사장, 한국청소년희망재단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 지구무게 17배…바위로 이뤄진 ‘고질라 행성’ 발견

    지구무게 17배…바위로 이뤄진 ‘고질라 행성’ 발견

    1954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괴수 영화 주인공 ‘고질라’(Godzilla)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바위 행성이 발견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또한 해당 행성에 외계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함께 제기돼 천문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하버드 스미소니언 천체물리센터(Harvard-Smithsonian Centre for Astrophysics)는 새로운 지구형 행성 ‘케플러-10C’(Kepler-10c)가 발견됐다고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케플러-10C’는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가진 외계행성을 찾기 위해 우주로 발사된 케플러 망원경에 포착됐다. 이 행성은 지구로부터 약 560광년 떨어진 용자리(Draco constellatio)-고양이 눈 성운(Cat‘s Eye Nebula, NGC 6543) 근처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행성은 지구무게의 17배, 크기는 약 2배에 달하며 구성성분 대부분이 암석, 즉 바위인 것으로 추정됐다. 해당 크기 정도의 행성이라면 일반적으로 목성처럼 액체와 가스로 구성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이 행성은 기존 인식을 뒤집는 형태이기에 천문학자들은 큰 관심을 표하고 있다. 표면이 암석이라면 다른 가스 행성과 달리 생명체가 땅에 발을 딛고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 어느 때보다 외계생명의 존재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견이 갈리고 있는데, 이 행성의 공전궤도가 항성과 지나치게 가까워 표면이 뜨겁기에 생명체 존재는 힘들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인근 궤도에서 발견된 케플러-10b 행성은 표면 기온이 1300도로 생명체 존재 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의견이 모인 바 있다. 이 행성의 형성 시기는 110억년 전으로 추정돼 45억년에 불과한 지구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스미소니언 연구센터 라스 부치브 박사는 “이 행성이 오랜 시간을 지나오며 기존 가스성분을 암석화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유사 지구행성이 발견 될 것으로 기대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케플러 계획(Kepler Mission)은 NASA 케플러 우주 망원경을 통해 태양계 이외의 지구형 행성을 찾는 우주 프로젝트다. 이 계획은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자료사진=wikipedia/NASA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한양도성(상)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한양도성(상)

    ●조선시대 도성 축조에 얽힌 두 가지 설화 1392년 조선 건국과 함께 도읍을 송악(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긴 태조 이성계는 “종묘는 조종(祖宗)을 봉안하여 효성과 공경을 높이는 것이요, 궁궐은 국가의 존엄성을 보이고 정령(政令)을 내는 것이며, 성곽은 안팎을 엄하게 하고 나라를 굳게 지키는 것으로, 이 세 가지는 모두 나라를 가진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다”라면서 종묘와 경복궁, 도성(都城)의 축조를 독려했다. 종묘·사직과 경복궁이 완성되자 한양의 얼개인 도성을 짓는 축조도감을 1395년 설치했다. 삼봉 정도전이 성 쌓을 자리를 정했는데 태조가 직접 둘러보았다. 여기에서 두 가지 흥미로운 스토리가 등장한다. 첫 번째는 서울이라는 지명의 유래이고, 두 번째는 성리학과 풍수학의 정면 대결이다. 서울이라는 지명의 탄생과 관련된 속설을 조선 후기 방랑 실학자 청화산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소개하고 있다. “성을 쌓으려고 했으나 둘레의 원근을 결정하지 못하던 중 어느 날 밤 큰 눈이 내렸다. 그런데 바깥쪽은 눈이 쌓이는데 안쪽은 곧 눈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태조가 이상하게 여겨 눈을 따라 성터를 정하도록 명했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성 모양이다”라는 기록이다. 나중에 눈이 녹은 지역이 도성 안이 됐다. 눈(雪)이 쌓여 생긴 울(울타리)이라고 하여 도성 안쪽을 ‘설울’이라고 불렀으며 그것이 ‘서울’로 전이됐다는 얘기다. 수도(首都)를 나타내는 유일한 순우리말 지명인 서울의 유래는 처용가의 첫 구절 ‘새벌’이 서라벌을 거쳐 서울로 변했다는 양주동의 풀이가 정설로 돼 있다. 새벌이 서울의 옛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우용은 삼한시대의 성스러운 곳 소도(蘇塗)의 ‘소’가 새벌의 ‘새’와 같으므로 서울은 ‘솟벌’이나 ‘솟울’에서 온 것으로 보았다. ‘솟은 벌’이나 ‘솟은 울’이 ‘신의 땅’이나 ‘신의 울’이며 한자로 번역하면 신시(神市)라는 주장이다. 김정호가 그린 서울 지도 ‘수선전도’에서 보듯 서울을 ‘으뜸가는 선’인 수선(首善)으로 표기한 것과 같은 이치라는 풀이다. 입으로만 전해진 서울이란 지명은 1896년 4월 7일 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 독립신문 창간호에서 처음 공식 표기됐다. 독립신문 한글판의 제호 아래 ‘조선 서울’이라고 표기하고 있고, 영문판에서는 ‘SEOUL KOREA’라고 발행지를 인쇄했다. 서울이 ‘서울특별시’가 된 유래는 희극적이다. 해방 후에도 서울은 여전히 경기도 경성부였다. 미 군정청은 1946년 ‘서울은 경기도 관할에서 독립, 자유독립시가 된다’라고 발표했다. 영어 원문에는 ‘Seoul established Independent City’(서울독립시의 설치)라고 기록됐다. 하지만 법령 번역을 맡은 군정청 한국인 직원이 서울독립시는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고민 끝에 ‘서울특별시’라고 고쳐 표기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또 한 가지는 정도전과 무학대사로 대표되는 유교와 불교의 한판 대결이다. 두 사람은 경복궁 명당이 앉을 자리를 정해 줄 주산(主山)을 백악(북악)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인왕산으로 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차천로는 ‘오산설림’에서 “무학은 ‘인왕산을 진산(주산)으로 삼고, 백악과 목멱산(남산)을 청룡과 백호로 삼으시오’라고 하였으나 정도전이 수용하지 않자 ‘내 말을 듣지 않으면 200년이 지나서 내 말을 생각할 것’이라 하였다”는 설화를 전했다. 무학의 예언은 맞아떨어졌다. 200년 후라는 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뜻한다. 태조가 정도전의 손을 들어 주면서 주산은 백악으로 결정됐다. 무학은 굴하지 않고 도성을 쌓을 때 인왕산 선바위를 도성 안에 포함할 것을 제안했다. 선바위를 왕성 안에 집어넣어 불교의 중흥을 꾀하려는 몸부림이었으나 또다시 삼봉에 의해 바깥으로 밀려났다. 2전 2패를 당한 무학은 “불교가 망할 것”이라고 개탄했다. 얄궂은 운명인지 스님의 형상을 닮은 선바위 옆에는 일제강점기 남산에 조선 신궁을 짓느라 쫓겨난 국사당이 자리했다. 불교와 무속신앙이 500년이 지나고 나서 한자리에서 해후한 셈이다. 조선 개국의 설계자 정도전이 한양도성 건설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종묘와 사직 그리고 궁궐은 물론 관아와 시장의 터를 잡았고 도성 성곽의 윤곽도 결정했다. 서울을 5부(동·서·남·북·중부), 52개 방으로 나누고 경복궁을 비롯해 궁궐 전각의 명칭을 정하는 일도 모두 그의 생각대로 였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은 서울을 건설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유교 국가의 출범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신라 천 년과 고려 오백 년을 풍미한 불교와 풍수도참설은 시대의 도도한 흐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양도성’ 명명 4년… 안내판에 ‘서울성곽’ 한양도성이란 무엇인가. 한양도성은 조선시대 한성부, 한성, 한양, 서울을 나타내는 표상이었다. 한양도성이 곧 조선이었다. 더불어 수도, 수선, 도읍, 도성, 왕성, 황성, 궁성, 경조(京兆), 경도, 장안, 사대문 안의 통칭이기도 하다. 서울을 나타내는 모든 용어 중 가장 대표적이고 권위 있는 명칭이었다. 한양은 세계에서 가장 큰 수도 중 하나였다. 17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가 10만명, 영국 런던이 15만명이었을 때 한양 인구는 20만명에 육박했다. 규모로 보아도 현존하는 세계 수도의 성곽 중 서울을 둘러싼 성곽이 가장 크다. 그런데 현실은 딴판이다. 우리는 ‘한양도성=서울을 에워싼 18.672㎞의 성곽’이라고 범위를 좁혀 해석하고 있다. 내용물은 다 빼고 도성을 둘러싼 성곽만 내세우는 축소지향의 우를 범하고 있다. 한양도성은 조선 500년 내내 성곽으로 둘러싸인 한성부 전체를 지칭하는 당당한 국가권력의 표상이었다. 도성 밖 10리를 나타내는 성저십리(城底十里)와 구별하려는 의도에서 쓰인 사대문 안과 같은 권역을 나타내지만, 의미는 훨씬 공식적이고 권위적이었다. 성곽은 유일무이의 대도시인 한양도성 안을 관리, 운영할 목적에서 세워진 상징 벽이었다. 8개의 크고 작은 문인 흥인지문~광희문~숭례문~소의문(서소문)~돈의문~창의문(자하문)~숙정문~혜화문은 한양도성의 관문이었다. 상경(上京)과 낙향(落鄕)이 구분되는 시대의 경계선이었다. 궁궐을 에워싼 백악~낙타산(낙산)~목멱산~인왕산 등 내사산(內四山)을 잇는 도성은 외적 방어용이 아니라 왕권과 통치의 상징이었다. 외적의 침입과 방비, 농성을 위해 북한산성과 남한산성, 탕춘대성 등 산성을 따로 외곽에 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양도성과 서울성곽은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서울성곽이라는 용어를 쓰려면 ‘서울성곽=조선시대의 옛 서울인 한양도성을 둘러싼 성곽’이라고 분명하게 정의해야 한다. 개발연대 몰지각한 권력자와 도시행정가들이 한양도성에서 성곽만 따로 떼 ‘서울성곽’이라고 멋대로 이름 붙인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도성 안 문화재와 유물은 마구잡이로 깔아뭉개면서 일제가 조선 정체성 지우기의 하나로 헐어버린 성곽은 잇는다는 앞뒤 맞지 않은 복원계획이 화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구자춘 서울시장이 1975년 ‘서울성곽 중장기 종합정비계획’을 세웠고, ‘서울성곽복원위원회’가 구성되면서 한양도성이라는 당당한 이름이 복권되지 못하고 서울성곽이라는 중성적 이름으로 둔갑한 것이다. 천박한 역사인식과 자가당착이 빚은 비극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문화재위원회가 2011년 사적 제10호 서울성곽의 명칭을 ‘서울 한양도성’으로 바꿨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눈이 어두워 서울성곽을 ‘서울 한양도성 성곽’이라고 분명히 밝히지 않고 서울 한양도성이라고 어정쩡하게 명명하는 과욕을 부려 또 다른 오해와 시비를 불러들였다. 차라리 서울성곽이라고 놔두는 편이 나았다. 우리는 도성을 둘러싼 성곽과 8개의 대·소문이 한 몸이란 사실을 가끔 잊곤 한다. 숭례문과 흥인지문이 국보 1호, 보물 1호인 줄은 알고 있지만, 이들 문이 한양도성의 출입문이라는 점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성곽을 상실한 숭례문과 흥인지문을 너무 오랫동안 보아 왔고, 출입이 통제된 숙정문과 차량통행에 방해된다며 철거해 버린 돈의문을 아예 보지 못한 탓이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한양도성은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됐고 정식 등재는 시간문제라고 한다. 송인호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장은 ‘한양도성의 유산가치와 진정성’이라는 논문에서 “서울성곽의 영어표기가 ‘Seoul Fortress’인데 반해 한양도성은 문화유산 등재 때 ‘Seoul City Wall’이라고 표기됐다”면서 “Fortress가 방어 요새로서의 역할만을 제한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City Wall은 역사도시의 도시성곽으로서 의미를 포괄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용어의 정의부터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한양도성을 둘러싼 전반적인 용어와 개념 정리를 주장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보다 더 시급한 일일 수도 있다. 서울성곽을 한양도성이라고 명칭을 바꾼 지 4년째를 맞지만 성곽 앞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여전히 서울성곽이라고 표기돼 있다. 한 번 머릿속에 박힌 용어나 명칭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식민시기 서울의 조상 산인 삼각산을 북한산이라고 엉뚱하게 이름 붙임으로써 정체성이 훼손된 것처럼 용어의 변질은 의미의 변질을 수반하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한양도성과 서울성곽을 헛갈리고 있다. 묵은 역사인식을 바꾸려면 안내판부터 제때 바꿨어야 했다. 정책을 수립하는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한양도성이라고 하는데 이를 운영하는 자치구는 서울성곽이라고 우기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삼척 임원항 ‘수로부인 조각상’

    [명인·명물을 찾아서] 삼척 임원항 ‘수로부인 조각상’

    동해안 바닷가에서 울릉도를 조망할 수 있는 강원 삼척시 임원항 인근 언덕에 세계 최대 규모인 ‘수로부인 조각상’이 세워졌다. 바다를 낀 도로변 절벽 언덕 헌화공원에 세워진 수로부인상은 높이 10.6m, 길이 25m에 이르는 초대형 대리석 조각으로 동해안 최대 명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조각상 규모도 웅장하지만 용을 타고 앉은 수로부인상의 각 부분이 각각 다른 색깔을 띠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용의 여의주와 수로부인상의 머리, 얼굴, 치마 등이 모두 붉은색이나 청색, 검은색 등의 오색 대리석으로 조각됐다. 워낙 규모가 큰 조각상을 만들다 보니 대리석 자체를 중국에서 조각해 부분별로 배로 싣고 와 조립했다. 6월 말쯤 일반인 개방을 앞두고 조립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지금도 헌화공원을 찾으면 수로부인상을 볼 수 있다. 수로부인 조각상은 이 지역에 전해져 오는 신라시대 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신라 성덕왕 때 강릉 태수로 부임하던 순정공을 따라 아내인 수로부인(水路夫人)이 이곳을 지나갔는데 동해안 바닷가 경치에 반해 잠시 쉬다 벼랑에 핀 철쭉꽃을 보고 갖고 싶어 하자 때마침 소를 몰고 지나가던 노인이 꽃을 꺾어 주며 ‘헌화가’를 지어 바쳤다는 설화에서 유래한다. 헌화가는 ‘딛배 바회 자온손 암쇼 노시고/나 안디 붓리샤/곶 것가 받오리이다’(붉은 바위 끝에 암소 잡은 (나의) 손을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로 삼국유사 기록에 남아 있다. 수로부인의 설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로부인이 임해정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용이 나타나 부인을 바닷속으로 끌고 갔다. 그때 또 한 노인이 순정공에게 “근처의 백성을 모아 노래를 부르게 하고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 부인이 나올 것”이라고 해 그 말대로 했더니 수로부인이 나왔다고 한다. 수로부인은 절세미인이어서 산과 바다를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들에게 붙들려 갔다고도 전한다. 삼척 원덕읍 임원리 남화산의 ‘수로부인 현화공원’은 이같이 전해 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조성됐고 공원에 세계 최대의 돌조각상인 수로부인상도 건립됐다. 수로부인상은 높이가 아파트 4층 높이인 10.6m에 이르고 무게도 500t에 달한다.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길이 25m, 높이 5.5m의 거대한 용의 등을 타고 동해의 푸른 바다에서 나오는 수로부인의 모습을 조각했다. 조각상의 기단은 거북이를 상징하기 위해 6각형으로 만들고 헌화가의 철쭉꽃 형상 문양을 더했다. 기단 중앙은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는 반구 형태로 만들었다. 특히 수로부인이 타고 있는 용은 실제로 살아 있는 듯한 역동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조각상으로는 미국 뉴욕 자유의 여신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 싱가포르의 머라이언 조각상이 있다. 이들 조각상은 모두 가운데에 철근콘크리트가 들어가 있다. 하지만 수로부인상은 대리석을 직접 조각해 조립한 것으로 세계 최대의 순수 조각상으로 꼽을 만하다. 수로부인상이 세워진 곳은 수로부인 설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삼척해변 지역 중에서도 동해를 향해 가장 돌출된 곳으로 동해의 아름다운 일출을 감상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공원에는 헌화가의 이야기를 재현하기 위해 계절별로 다양한 꽃들을 심고 포토존을 조성하는 등 가족 단위 관광객과 연인들을 위한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수로부인 설화와 관련된 얘기가 전해지는 삼국유사의 ‘해가사’ 내용에 대해서는 수로부인상 주변에 디오라마 기법으로 미니어처를 만들어 놓았다. 다양한 미니어처 조각상들은 1000년 동안 이어져 온 설화의 역사 이야기를 재현했다. 공원 주변에는 산책로와 데크 로드, 전망대, 쉼터 등의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으며 공원 규모만 2만 6870㎡에 이르는 등 대표적인 해맞이 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임원항에서 공원 진입로까지 한번에 20명까지 이동이 가능한 높이 51.6m의 승강기 2대를 설치하고 40.3m의 구름다리를 공원으로 연결해 관광객들이 수로부인 헌화공원으로 쉽게 올라 수로부인상과 아름다운 바다 등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남화산 수로부인 헌화공원은 설화 속에 등장할 만큼 천혜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다. 삼척시는 이곳을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 2006년부터 공원 조성에 나섰다. 앞으로도 수로부인 공원에 수로부인의 남편인 순정공 동상을 설치하고 울릉도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등의 편의시설과 체험시설을 더 만들어 동해안 최대 명물, 명소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수로부인 헌화공원’은 이번에 세워지는 수로부인상과 더불어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를 고루 갖춘 삼척 관광의 랜드마크와 명소로 자리 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홍금화 삼척시 공보계장은 “삼국유사에 전해져 오는 ‘해가’와 ‘헌화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현해 세계 최대의 수로부인상을 건립했다”면서 “수로부인 조형물과 아울러 주변에 조성한 헌화공원은 삼척의 브랜드 가치를 한층 더 높이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과 지역 주민들에게 삼척만의 특색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척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꿈속의 짝 찾아 바다 건넌 소녀 평생해로 부부 역사가 된 사랑

    꿈속의 짝 찾아 바다 건넌 소녀 평생해로 부부 역사가 된 사랑

    얼추 2000년 전쯤이다. 인도 아유타국(아요디아)의 공주가 극동의 작은 나라 가락국을 찾아 긴 항해를 시작한다. 하늘이 정해준 피앙세, 김수로왕을 찾아 나선 길이다. 공주의 이름은 허황옥. 16세(추정) 가녀린 소녀가 벌인 대항해의 여정은 삼국유사 ‘가락국기’편을 통해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다.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 소녀의 여정이 이제 테마길로 태어날 예정이다.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알알이 맺힌 ‘허황옥 신행길’이다. 부산과 경남 창원(옛 진해)을 거쳐 김해에 닿은 소녀의 여정을 따라가 봤다.  옛 가락국의 수도, 김해에 들면 물고기 조각상이 종종 눈에 띈다. 이른바 신어(神魚) 신앙을 상징하는 조각들이다. 수로왕릉 정문의 문설주에도 두 마리 신어가 조각돼 있다. 물고기는 인도 드라비다어로 ‘가야’, ‘가라’ 등으로 불린다고 한다. 500년 동안이나 실재했으나 역사 속에선 완벽하게 사라진 나라 가야의 국호 또한 이 단어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 신어 신앙의 중심에 허황옥이 있다. 우리나라 첫 국제결혼·연상연하 커플  허황옥의 고향은 인도 갠지스강 중류의 아유타국이란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아유타에선 쌍어문장(雙魚紋章)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경찰 계급장, 택시 번호판 등에도 쌍어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 이 신어 사상이 허황옥을 통해 가락국에 전파됐다는 것이다.  먼저 김수로와 허황옥 사랑이야기의 얼개를 살피자.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결혼’이니 이야깃거리도 많을 터. 그 내용이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허황옥의 아버지, 그러니까 인도 아유타국의 왕이 꿈을 꾼다. 천제가 나타나 배를 타고 동쪽 끝까지 올라가 닿는 나라에 딸의 배필이 있다고 알려준다. 왕은 곧바로 허황옥을 배에 태워 보낸다. 서기 48년께 일이다. 이때 동행하는 인물이 오라버니 장유화상이다. 현 김해 장유신도시 명칭도 장유화상 이름에서 따왔다.  이때부터 16세 소녀의 대항해가 시작된다. 허황옥은 ‘돌배’ 위에 파도를 잠재운다는 ‘파사석’을 싣고 가락국으로 향한다. 같은 시기, 가락국의 왕 김수로도 비슷한 꿈을 꾼다. 수로왕은 꿈에서 자신의 배필이 멀리서 배를 타고 올 것이라는 천제의 가르침을 듣는다. 수로왕은 신하 유천간을 망산도로 보내 피앙세를 맞는 한편, 자신은 명월사 인근에 행궁을 차리고 허황옥 일행을 기다린다. 그 명월사가 있던 곳이 현 명월산 자락의 흥국사(명월사 터가 따로 있다는 주장도 있다)다. 그리고 마침내, 둘은 이곳에서 첫날밤을 보낸다. 이때 수로왕의 나이 6세. 무려 2000년 가까이 앞서 요즘 ‘대세’라는 연상녀 연하남 커플이 탄생한 셈이다.  수로왕과 허황옥은 10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낳는다. 이 가운데 첫째 아들은 2대 거등왕에 오르고, 둘째와 셋째는 허왕후의 요청에 따라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된다. 여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가 결혼을 하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나머지 7명의 아들은 장유화상을 따라 승려가 된다. 그곳이 바로 경남 하동의 지리산 자락에 있는 칠불사다. 두 딸 중 첫째는 신라 석씨 왕의 시조가 되고, 둘째 딸은 일본국 초대 천황의 모후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둘의 러브 스토리는 여기서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난다.  이제 그들의 실제 흔적을 좇을 차례다. 들머리는 망산도다. 허황옥 일행이 첫발을 디뎠다는 섬이다. 망산도는 경남 창원과 부산의 경계에 걸쳐 있다. 현재 대부분의 검색 사이트에서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는 부산 강서구 송정동에 속한다. 그러니까 망산도를 둘러싼 땅은 창원, 망산도와 주변 바다는 부산으로 보면 틀림없겠다.  망산도는 작은 섬이다. 주변 땅이 간척되기 훨씬 이전, 그러니까 신화의 시대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외로운 섬이었을 게다. 망산도는 흘낏 봐선 진면목을 알 수 없다. 섬 안에 들어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특히 바다 쪽에서 보는 망산도의 바위들은 정말 독특하다. 하나같이 거북의 등껍질처럼 쫙쫙 갈라졌다. 필경 풍화작용이 진행 중일 터. 돌로 태어나 2000년 전 신화 시대의 아득한 이야기를 후세에 전한 뒤, 먼지가 되어 홀연히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유주암, 유주비각 등 설화와 관련된 유적들도 망산도 주변에 산재해 있다.  망산도 앞의 정자 유주정에 앉아 있자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곧잘 눈에 띈다. 결혼 이민으로 꾸려진 다문화 가정 또한 부산 서쪽과 김해 일대에 펵 많다고 한다. 이 지역은 2000년 전에도 ‘국제적 항구’였으니 허황후 이야기는 결국 ‘오래된 미래’에 대한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허황옥이 실제 인도 아유타에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유주비각에 새겨진 ‘보주태후(普州太后) 허황옥’이란 문구는 이 같은 의구심을 부채질했다. 이와 관련해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의 해석이 명쾌하다. 김 교수는 저서 ‘허황옥 루트’를 통해 허황옥이 몰락한 아유타 왕국의 후손이고, 그들이 정착한 곳이 중국 보주, 현 쓰촨성 안웨현(安岳縣)이란 견해를 편다. 보주는 신어신앙을 가진 소수민족이 살던 곳으로 전해진다. 당시 허황옥의 선조들이 다스렸던 아유타 왕국이 정정불안으로 붕괴됐고, 유민으로 전락한 지배층이 보주 지역으로 흘러들었다는 것이다. 이 해석이라면 허황옥의 인도 공주설과 중국 출신설 등 상충되는 두 난제가 자연스레 해소된다. 첫날밤 보낸 명월사의 후신 흥국사  긴 항해 끝에 뭍에 닿은 소녀는 하늘이 점지한 피앙세를 만나기 위해 길을 재촉한다. 산 넘고 물 건넌 허황옥은 이윽고 부산 지사동의 명월산에 닿는다. 허황옥은 자신의 옛것을 버린다는 뜻에서 입고 있던 바지를 벗고 산신령께 폐백을 올린 뒤 수로왕과 첫날밤을 보낸다. 수로왕은 허황옥의 빼어난 자태를 달에 비유해 산 이름을 명월산이라 짓고, 첫날밤을 보낸 자리에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명월사도 짓는다. 그 명월사의 후신으로 추정되는 곳이 바로 흥국사다.  흥국사 극락전엔 명월사 석탑에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기단 면석이 남아 있다. 부산박물관에서 펴낸 ‘명월사지(현 흥국사) 현장조사 보고서’는 “석탑 기단 면석에 조각된 보살상 옆으로 천의(天衣)자락이 위로 날고 있는 모습으로 미뤄볼 때 9세기대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고 있다. 기단 면석이 허황옥의 인도 도래설을 뒷받침하는 인도 남부의 사왕석(蛇王石) 문화라는 일부의 주장을 부정하는 결과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명월사가 실재했다는 근거로도 인식된다. 가락국 태평성대 이룬 봉황대  이튿날, 수로왕과 허황옥은 현 김해 응달동 태정마을을 거쳐 가락국의 수도 김해로 환궁한다. 현재의 봉황대로 추정되는 곳에 정착한 이들은 평생 해로하며 가락국을 태평성대로 이끈다. 수로왕과 허왕후가 근거지로 삼은 곳이었던 만큼, 김해엔 강력한 철기문화를 꽃피웠던 ‘글로벌 국가 가야’의 위상을 새길 만한 유적지가 많다. 수로왕릉(사적 제73호)과 수로왕비릉(사적 제74호)이 첫손 꼽힌다. 특히 수로왕비릉이 인상적이다. 수로왕릉에 견줘 규모는 작지만 무게감에선 결코 뒤지지 않는다. 허왕후가 인도에서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도 허왕후릉 바로 앞에 전시돼 있다.  수로왕비릉 옆은 구지봉이다. 6개의 알에서 태어난 가야의 왕들 가운데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김수로왕의 건국신화 시작점이 바로 이곳이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라는 고대가요 ‘구지가’가 불리워진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 ‘달마야 놀자’의 주무대였던 은하사도 볼만하다. 장유화상이 세웠다는 절집으로, 대웅전 수미단에 쌍어문양이 남아 있다. 아울러 가락국 외부를 둘러쳤던 분산성과 성벽 안쪽의 해은사, 가락국 2대 거등왕이 신선을 초대해 국정을 논했다는 초선대, 가락국 왕자들의 탯줄을 묻었다는 태정마을 등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명소들이다. 글 사진 부산·창원·김해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남해고속도로 서김해으로 나와 금관대로, 분성로를 따라 가면 김해 민속박물관이다. 박물관 주변에 구지봉과 수로왕비릉 등이 몰려 있다. 김수로왕릉과 봉황대 등은 예서 각각 한 블록씩 떨어져 있다. 경전철로 한 정거장 거리다. 망산도를 먼저 보려면 남해고속도로 가락 나들목으로 나와야 한다. 부산 신항 방면으로 가다 창원의 용원버스정류장을 찾아가면 된다. 서울에서 하루 세 차례 고속버스도 오간다. 흥국사는 망산도에서 12㎞ 정도 떨어져 있다. 산속에 있어 걷거나 승용차로 가야 한다. 맛집: 김해 구산동 쪽에 보리밥집 골목이 있다. 김해 문화의 전당 옆 내외동 먹자골목에선 돼지뒷고기를 맛볼 수 있다. 동상동 전통시장 음식단지엔 칼국수로 이름을 날리는 집들이 여럿 늘어서 있다. 수로왕릉 옆 김해 한옥체험관에서 맛보는 한정식도 좋다.
  • 무려 7000년 전 인류가 그린 사냥 벽화 발견

    무려 7000년 전 인류가 그린 사냥 벽화 발견

    스페인 까스떼욘 지역의 한 동굴에서 무려 7000년 전 인류가 그린 벽화가 발견돼 관심을 끌고있다. 최근 바르셀로나 대학 등 공동연구팀은 탐사 과정 중 한 작은 동굴에서 발견한 벽화의 모습을 공개했다. 약 6m 크기의 이 벽화는 당시의 사냥 모습을 그린 것으로 화살을 들고있는 인간과 안콜소로 불리는 들소와 염소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있다.가장 놀라운 점은 무려 7000년 전 벽화지만 보존상태가 극히 양호해 선사시대 인류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그간 지중해 연안에서 발견된 고대 바위그림들이 주로 사슴, 염소 등을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것과 달리 소가 대상이 돼 극히 희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구를 이끈 바르셀로나 대학 이네스 도밍고 산츠 교수는 “그간 먼지 등에 덮여 보이지 않던 벽화가 날씨의 영향으로 드러난 것” 이라면서 “컴퓨터 작업으로 숨겨진 총 10개 그림을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사냥 모습이 잘 표현돼 있으며 활 모양 등 과거 벽화와 다른 점 등이 발견된다” 면서 “벽화의 보존을 위해 정확한 위치는 공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남산 팔각정 광장에서 열린 ‘볼더링 대회’

    남산 팔각정 광장에서 열린 ‘볼더링 대회’

    25일 서울 용산구 남산 N서울타워 팔각정 광장에서 열린 ‘2014 아디다스 락스타 서울 볼더링 대회’에서 세계적인 클라이머 샤샤 디줄리안(오른쪽)과 국내 남자 랭킹 1위 민현빈(왼쪽) 선수가 볼더링 시범을 보이고 있다. 볼더링이란 6∼7m가량의 돌출된 바위를 전문적인 장비 없이 오르는 것을 말한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히말라야 석청 진짜 ‘기적의 약’?…성분분석 해보니 ‘충격 결과’

    히말라야 석청 진짜 ‘기적의 약’?…성분분석 해보니 ‘충격 결과’

    히말라야 석청 진짜 ‘기적의 약’?…성분분석 해보니 ‘충격 결과’ 일각에서 ‘암을 이기는 기적의 약’이라고 불리는 히말라야 석청의 충격적인 실체가 공개됐다. 석청은 석벌이 깊은 산의 절벽이나 바위틈에 모아 둔 꿀을 말한다. MBC ‘리얼스토리 눈’은 22일 한국에서도 일부 사람들이 즐겨 찾는 히말라야 석청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히말라야 석청’이라고 불리는 네팔산 석청은 일각에서 ‘암을 이기는 신의 마지막 선물’, ‘신비의 명약’ 등으로 불리고 있지만 이를 복용하다 피해를 입은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지난 1999년 전남 곡성, 2008년 경남 거제 등에서 히말라야 석청을 먹은 이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지난 3월에도 석청을 먹은 52세 남성이 사경을 헤메다 열흘만에 사망하기도 했다. 경북 영주에서도 동네 주민 5명이 석청을 나눠먹고 난 뒤 구토와 설사, 어지럼증을 느끼고 병원으로 후송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진주에서도 역시 동일한 피해 상황이 보고되고 있다. 리얼스토리 눈 제작진은 영주와 진주의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보고 히말라야 석청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당시 피해 상황을 전했다. 제작진은 또 직접 공수한 석청을 가지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찾았다. 그들은 히말라야 석청, 국내산 석청, 아카시아 꿀을 가져가 분석 검사를 했다. 연구 결과, 히말라야 석청에서 그레이아톡신이 발견됐다. 이 물질은 중추신경계를 작용하는 강한 독성물질로, 심하면 사망까지 이르게 한다고 알려졌다. 이 물질은 철쭉 계열의 랄리구라스 꽃에서 꿀을 채취한 벌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네팔산 히말라야 네팔산 석청은 저혈압, 구토, 타액 과다분비, 무력감, 시각장애, 의식소실 등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그레이아노톡신(Grayanotoxin)’이 함유돼 있다. 히말라야 석청은 네팔 현지에서도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업체가 2곳 뿐이다. 하지만 허가를 받지 않은 곳에서도 자체적으로 석청을 판매를 한다고 한다. 또 한인 식당이나 민박집에서도 쉽게 히말라야 석청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때문에 많은 네팔 여행객들이 석청을 구매해 한국으로 가져가고 있다고 제작진은 지적했다. 유독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히말라야 석청이 인기가 좋아 무분별하게 국내로 반입되고 있는게 현실이라고 제작진은 전했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청은 2008년부터 히말라야 석청의 수입 및 유통이 금지해왔다. 식약청은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불법 판매되고 있는 네팔산 또는 히말라야산 석청을 구입하지 말고 네팔 지역을 여행객들도 석청을 구입·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화성서 새로 생긴 거대 ‘크레이터’ 발견 (NASA)

    화성서 새로 생긴 거대 ‘크레이터’ 발견 (NASA)

    최근 화성에 새로 생긴 거대한 크기의 크레이터(crater)가 발견돼 관심을 끌고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는 소행성 혹은 혜성에서 떨어져 나온 바위와 충돌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새 크레이터를 공개했다. 풋볼 경기장 절반 크기인 이 크레이터는 화성 적도부근에 위치해 있으며 지난 2012년 3월 28일 우주에서 날아온 자동차 만한 천체와 충돌해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사실은 두달 전 사진을 검토하던 과정에서 우연히 밝혀졌다.나사의 화성 정찰위성 MRO(Mars Reconnaissance Orbiter)가 촬영한 이미지들을 분석해 리포트를 작성하는 MSSS 연구원 브루스 캔터가 그 속에서 낯선 검은 점을 발견한 것. 곧바로 조사에 들어간 연구원은 해당 지역의 전과 후 사진을 비교해 발생 시점을 확인했다. 캔터 연구원은 “내 업무는 이미지를 분석해 화성 날씨를 모니터 하는 것인데 우연히 이같은 사실을 알게됐다” 면서 “천체와의 충돌 여파가 주위 8km 까지 퍼져있으며 12개 이상의 작은 곰보자국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천체와의 충돌로 생긴 화성의 크레이터 중 가장 큰 축에 속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매년 화성은 작은 우주 바위와 200차례 이상 충돌하지만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않아 이같은 크기의 크레이터는 매우 이례적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노란 리본’이 피었습니다…먹먹하게도

    ‘노란 리본’이 피었습니다…먹먹하게도

    전북 무주에 걷기 좋은 강변길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가는 길이었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조붓한 강변길들은 나무랄 데 없이 서정적이었다. 한데 정작 마음을 빼앗아 간 건 적상산의 피나물 군락지였다. 줄기를 자르면 피처럼 선홍빛 액체가 흐른다는 들풀. 해마다 이른 봄이면 피나물은 노란 꽃을 피운다. 키 낮은 들풀인 까닭에 주변의 커다란 수목들이 나뭇잎을 내기 전 서둘러 꽃을 피우고 자손을 퍼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적상산의 그늘진 북사면은 온통 노란빛 일색이다. 응달을 좋아하는 피나물은 이른 아침 꽃술을 접었다가 사위가 밝아지면 연다. 새벽녘, 푸른 기운 사이로 노란 꽃들이 무리 지어 선 모습, 노란 리본을 보는 듯 가슴이 먹먹해지는 풍경이다. ●적상산 자락에 피나물 군락지… 노란 꽃 줄기 자르면 붉은 액체가 예부터 무주는 전북에서도 외진 곳에 속했다. 무주와 진안, 장수 등 외진 지역들의 머리글자를 합쳐 ‘무진장’이라 부르기도 했다. 물론 요즘은 달라졌다. 잘 뚫린 도로 덕이다. 그런데도 여태 도시로부터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풍경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금강을 따라가는 강변길이 그렇다. 무주는 금강이 휘돌아 가는 고을이다. 강변을 따라 조붓한 길들이 많다. 예컨대 ‘벼룻길’이 그렇다. ‘벼루’는 ‘벼랑’을 이르는 현지 사투리다. 그러니 벼룻길은 강가의 가파른 비탈 사이로 난 길이라고 보면 틀림없겠다. 지금은 길로서의 기능을 잃은, 그러나 오래전엔 무수히 많은 이들이 분주히 오갔을 그 길들을 이어 붙인 게 ‘예향천리 금강변 마실길’이다. 부남면에서 서면마을까지 총 19㎞ 거리다. 그 가운데 잠두마을 옛길과 학교길을 걸었다. ●‘반딧불이의 마을’ 잠두 숲길 걷노라면… 산새소리·맑은 공기에 취해 잠두길은 잠두마을 강 건너에 뚫린 숲길이다. 잠두마을 앞 잠두1교에서 출발해 잠두2교 나그네가든까지 얼추 2㎞쯤 된다. 자박자박 걸어도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잠두(蠶頭)는 산 위에서 바라본 지세가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해마다 반딧불이 축제가 열릴 만큼 무주에서도 청정 지역으로 꼽힌다. 트레킹 들머리는 잠두1교다. 시멘트로 얼기설기 만든 옛 잠두교 뒤로 잠두1교가, 더 뒤로는 통영대전고속도로의 550m짜리 거대한 잠두교가 놓여 있다. 수십 년 세월이 포개진 풍광이다. 잠두1교를 떠받치는 교각 위엔 파랑새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필경 짝짓기를 앞두고 있는 게다. 두 파랑새 암수의 희롱하는 소리가 산골에 울릴 만큼 낭자하다. 잠두길은 금강을 끼고 갈선산(480m) 허리를 에둘러 간다. 금강의 원형이 살아 있는 물길을 따라 이어진 길은 20여년 전만 해도 무주와 충남 금산을 잇는 비포장 국도였다. 완행버스가 탈탈거리며 달릴 때마다 뿌연 흙먼지가 폴폴 날리던 그런 길 말이다. 이른 봄, 벚꽃이 화사했을 그 길엔 이제 녹음이 내려앉았다. 공기는 맑고 산새 소리는 청아하다. 시인 김소월이 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했는지 능히 짐작할 만한 풍경이다. ●강과 산에 막혀 ‘섬 아닌 섬’ 주민들이 바위 쪼아 만든 ‘학교길’ ‘학교길’은 말 그대로 ‘학교 가는 길’이다. 무주를 휘휘 돌아가던 금강은 무주 끝자락에서 급하게 휘돌아 가며 앞섬, 뒷섬마을을 만들었다. 강줄기와 산으로 막힌 두 마을은 배를 타지 않으면 무주읍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그야말로 ‘섬 아닌 섬’이었던 셈이다. 특히 뒷섬마을의 경우 배를 두 번이나 타야 했다. 사정이 이런데 아이들 등굣길이라고 수월했을 리 없다. 해서 뒷섬마을 주민들은 아이들 학교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벼룻길 중간의 질마바위를 정으로 쪼아 길을 냈다. 이게 ‘학교길’이다. 길은 1971년 5월 20일에 완성됐다. 질마바위 아래 표지석의 ‘1971년 5월 20일’이란 글자는 당시 주민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새겨 놓은 것이다. 질마바위 아래 개울은 물총새의 사냥터다. 다리쉼할 겸 10여분 정도 바위 그늘에 앉아 있자니 퐁당퐁당 돌 던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물총새가 사냥을 마친 뒤 물 위로 솟구치는 소리다. 대개의 경우 물총새 입엔 작은 물고기가 물려 있기 마련이다. 꼭 TV의 생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길은 무주읍 내도리 뒷섬마을에 놓인 후도교를 들머리 삼아 향로봉(420m)을 넘어간다. 향로봉에서 굽어보는 내도리 일대 풍경도 일품이다. 경북 예천 회룡포에 견줄 만한 물돌이동 풍경이 펼쳐진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적상산의 피나물 군락지였다. 이른 봄, 노란 피나물꽃들이 하늘대는 풍경이 빼어나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으나 발걸음하기는 처음이다. 듣던 대로 적상산의 북사면은 온통 노란빛 일색이었다. 능선 중턱부터 눈길이 닿는 산 하단부까지 죄다 피나물꽃 일색이었다. 간간이 보랏빛 벌깨덩굴 등의 들꽃들도 눈에 띄었지만 노란꽃의 기세는 그야말로 산자락을 압도하고 있었다. 여느때라면 필경 그 자태에 취했을 터.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아이들을 속수무책으로 잃은 비통함에 국민들이 속죄와 애도의 뜻을 담아 선택한 빛깔이 노란색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붉은(赤) 치마(裳)를 두른 듯하다는 적상산은 무주 사람들이 어머니의 품처럼 생각한다는 산 아니던가. 그 정경은 그러니까, 어머니의 주름진 치마를 부여잡은 채 재롱을 떨고 조르며 재잘대는 수많은 아이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안국사 돌담에 앉아 산골 마을 바라보면… 내가 인간인지 부처인지 피나물 군락지는 안국사 뒤편 산자락 능선에 있다. 걸어서 10분 남짓이면 닿는다. 들머리인 안국사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적상산 사고’를 지키던 절집이다. 임진왜란 등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엔 승병들의 거처로 쓰였던 호국 사찰이기도 하다. 절집 아래엔 옛 적상산성도 복원돼 있다. 돌담 위에 앉아 골 깊은 무주의 산골마을들을 둘러보는 맛이 각별하다. 기왕 적상산에 올랐다면 안렴대와 적상산 전망대도 둘러보길 권한다. 둘 모두 빼어난 풍경 전망대다. 이른 아침에 방문하면 무주 일대의 산군들이 펼쳐내는 장관과 마주할 수 있다. 무주에 새 명소가 생겼다. 태권도를 세계적인 관광 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조성한 태권도원(www.tkdwon.kr)이다. 국기인 태권도를 상징할 변변한 공간 하나 없었던 터라 태권도원의 개원이 더욱 반갑다. 태권도원이 실제로 문을 연 건 지난 4월 말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적 애도 분위기를 따르느라 제대로 개원식도 치르지 못한 채 손님을 맞고 있다. 태권도원은 박물관과 체험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연면적은 231만 4000㎡(70만여평)에 이른다. 내부는 체험과 교육·수련, 깨달음 등 세 구역으로 나뉜다. 체험지구에는 태권도 역사와 관련 자료 등을 모아 놓은 태권도박물관, 자신의 체력과 태권도 실력 등을 평가할 수 있는 체험관 등이 들어서 있다. 체험관에서는 전자 인식 태그를 이용해 자신의 발차기 실력이나 주먹의 파괴력 등을 측정해 볼 수 있다. 와이어에 매달려 날아차기에도 도전할 수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는 전망대에서는 덕유산과 적상산 일대 전망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 밖에 숙박을 겸한 패키지 프로그램 등 모두 45가지의 단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글 사진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통영대전고속도로 무주나들목으로 나와 19번 국도를 타고 가옥교차로에서 좌회전해 무금로를 따라 직진하면 잠두마을이다. 학교길은 19번 국도를 타고 무주읍으로 들어 무주1교를 건넌 뒤 내도 방면으로 고갯길을 넘어가면 된다. 앞섬다리 건너 내도에 들어선 후 직진해 후도교를 넘자마자 오른편으로 학교길이 시작된다. 태권도원은 충북 영동과 경계를 이루는 설천면 끝자락에 있다. 입장료는 4000원. 320-0114. →맛집 무주읍내 금강식당(322-0979)과 내도리로 건너가는 앞섬다리 부근의 앞섬마을(322-2799), 뒷섬마을의 큰손식당(322-3605) 등은 어죽으로 이름난 집들이다.
  • [김준의 바다 맛 기행] 멸치도 생선!… 부산 기장 ‘대멸’

    [김준의 바다 맛 기행] 멸치도 생선!… 부산 기장 ‘대멸’

    생선은 ‘말리거나 절이지 않은, 잡은 그대로 성한 물고기’로 회, 구이, 탕 등의 식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멸치는 생선인가. 볶음, 조림, 국물을 우려내는 데 사용하는데 생선이라 하기도 뭐하고 아니라고 하기도 어색하다. 그렇다면 부산의 대변항이나 경남 남해의 미조항에서 멸치회, 멸치찌개, 멸치구이를 먹어보시라. 먹고 나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그 주인공은 멸치 중에서도 크기가 10~15㎝에 달하는 ‘대멸’이다. 살이 부드럽고 통통해 지는 오뉴월이 제철이다. ●볶음·무침·국물용 등 쓰임새마다 크기 달라 멸치는 세멸, 자멸, 소멸, 중멸, 대멸 등 크기가 다양하다. 쓰임새도 볶음용, 무침용, 국물용, 젓갈용 등으로 다르다. 멸치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지리, 가이리, 고바, 주바, 오바 등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들 멸치가 모두 한 종류라는 것이다. 다만 태어나고 자라는 시기가 다를 뿐이다. 멸치는 봄과 여름에 산란한다. 멸치 한 마리가 4000~5000개의 알을 낳는다고 하면 믿겠는가. 하긴 그 정도 낳지 않으면 상위 포식자는 물론 인간마저 불을 켜고 잡겠다고 달려드는 등쌀에 진즉 씨가 말랐을 것이다. 멸치는 산란 후 하루 이틀이면 부화를 한다. 그리고 이른 봄에 태어난 멸치의 경우 봄이 가기 전 어민들에게 기쁨을 줄 만큼 빠르게 자란다. 그만큼 생식주기가 짧다. 보통 물고기의 나이는 비늘을 보고 알아 내지만 비늘이 없는 멸치는 이석, 즉 귓속에 들어 있는 돌로 태어난 시기를 알아낸다고 한다. ●멸·메르치·멸따구·밀… 쓰임만큼 이름도 다양 멸치는 먹이를 따라, 산란할 장소를 찾아, 월동을 위해, 동해부터 서해까지 여러 해역을 회유한다. 그래서 부르는 이름도 멸, 메르치, 멸따구, 밀, 행어 등 다양하다. 겨울에는 제주도까지 내려갔다가 봄과 여름에 연안으로 접근해 산란하고 서해와 동해로 북상한다. 그리고 가을철에는 남해를 거쳐 남해 외해와 제주도로 내려온다. 이때 멸치를 먹고사는 갈치와 고등어, 돔, 농어 등이 뒤를 따른다. 심지어 상괭이나 돌고래도 자주 출몰한다. 결국 멸치가 있는 곳에 어장이 형성된다. 바다가 인간들의 식량창고가 아니듯이 멸치는 인간만이 즐기는 생선이 아니다. 그것이 해양생태계다. “에야나 차이야, 에야나 차이야.” 대변항과 미조항 끝자락에서 멸치를 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십년 멸치잡이 배를 탔던 대변항의 한 어부는 이 소리를 ‘아이고 죽겠네’라는 소리라며 웃었다. 이곳에서는 유자망을 이용해 멸치를 잡는다. 유자망은 폭은 10m에 불과하지만 길이는 무려 2㎞에 이르는 그물이다. 무게만 해도 1t에 달한다. 여기에 멸치가 주렁주렁 매달렸다고 상상을 해보자. 게다가 바닷물을 잔뜩 먹은 그물이다. 그 그물을 털어 멸치를 빼내는 일은 멸치잡이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그래서 힘이 아니라 요령과 ‘깡다구’로 하는 것이다. ●멸치잡이는 ‘깡다구’… 2㎞짜리 유자망으로 잡아 이때 손이 맞아야 한다. 소리에 따라 왼손과 오른손이 번갈아가며 장단을 맞춰야 서로 힘이 덜 들고 멸치도 잘 떨어진다. 멸치잡이 배는 10여명 선원이 작업을 한다. 어부들은 30, 40년은 기본이요, 50년 동안 배를 탄 사람도 있다. 새벽에 나가서 멸치 어군이 확인되면 투망을 하고, 한 시간 후 그물을 건져 항구로 돌아온다. 얼마나 빨리 어군을 확인하고 그물을 바다에 넣어서 멸치를 잡느냐가 선장의 능력이다. 단 한 번 그물질에 만선을 할 수도 있지만 빈 그물을 올릴 때도 있다. 어획량이 너무 작으면 배에서 그물을 턴 후 다시 투망을 하기도 한다. 이런 날은 멸치털이 작업이 새벽 2, 3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다음 날 새벽에 출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배 안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글 사진 전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joonkim@jeri.re.kr ■어떻게 먹을까 오뉴월 15㎝ ‘대멸’ 대세… 기장 미역에 싸먹거나 천일염에 버무려 젓갈로 ‘기장’ 하면 양식 미역은 물론이고 ‘미역짬’이라 부르는 갯바위에서 뜯는 자연산 돌미역까지 유명한 미역의 고장이다. 하지만 오뉴월이면 미역보다 젓갈용 ‘대멸’이 대세다. 오뉴월이면 멸치젓을 사려는 사람은 물론 멸치요리를 찾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기장에서 멸치요리로 가장 오래된 할매식당을 찾았다. 빈자리가 없어 기다려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이미 미조항에서 멸치무침을 먹어 봤던 터라 멸치구이와 멸치찌개를 주문했다. 양이 좀 많을 듯했지만 미조항에 비해서 값이 싸서 부담은 덜했다. 멸치요리를 먹기 위해 들어온 손님들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멸치회무침이다. 식사보다 먼저 소주 한 잔 하려는 생각 때문이다. 미리 뼈를 발라낸 멸치에 미나리, 양파, 상추 등 각종 채소와 함께 초무침을 하는 것이 멸치회다. 상추에 싸 먹어도 좋지만, 기장미역에 싸 먹으면 더욱 좋다. 대변항에서는 판매하는 횟감용 멸치를 구입해 직접 만든 초장에 각종 야채를 넣어서 무쳐 먹어도 좋다. 비린내를 없애려면 매실과 함께 청주나 소주를 약간 넣어 초장을 만들면 좋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멸치구이부터 주문한다. 연탄불에 구워서 주는 곳도 있다.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 그리고 따뜻하고 물컹한 멸치 살이 입안에 가득하다. 멸치찌개는 먼저 우거지나 시래기를 된장에 잘 버무린 다음 생멸치를 넣고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버섯 등을 넣고 끓인다. 이때 중요한 것은 육수가 반쯤 줄어들고 나서 먹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간도 맞고 멸치에서 나온 육수와 된장이 서로 어우러진다. 대변항에서는 생멸치를 고르면 그 자리에서 천일염과 버무려 포장해 준다. 그대로 집에 두고 숙성되기를 기다렸다 김장할 때 사용하면 좋다.
  • 국내 최대 규모 해상낚시공원 경북 울진에 조성

    국내 최대 규모의 해상낚시공원이 경북 울진에 조성됐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은 울진군 평해읍 거일리 앞바다에 ‘시범바다목장 해상낚시공원’을 조성, 개방에 들어갔다고 20일 밝혔다. 울진대게 원조마을인 거일리 근해에는 수중 자연암반과 자연석 투석으로 수산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낚시공원을 인근 후포항과 연계해 관광·스포츠 기능 등도 가능토록 했다. 낚시공원은 잔교, 해상 산책로, 포토존, 휴게시설 등을 포함해 총 연장 470m로 구성됐다. 특히 낚시터의 경우 해상에서 평균 높이 5m 내외로, 200명 동시 입장이 가능하다. 입장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수산자원관리 차원에서 어획 마리수는 1인당 5마리로 제한한다. 낚시꾼의 안전을 위해 기상특보 또는 관리자의 요청이 있을 땐 입장을 제한한다. 낚시공원에서는 어선을 이용한 다양한 바다낚시와 미역 채취 체험(갯바위 체험)이 가능하다. 해상낚시공원 관계자는 “낚시공원의 홍보 효과가 일정 수준으로 오를 때까지 무료로 개방한다. 관광 명물로 어촌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경북도는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장길리 항구에 복합낚시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올해까지 국비 60억원 등 총 120억원을 들여 해상데크 등을 설치, 해상낚시터를 만든다. 해상낚시터 외에 해중림(海中林), 생태체험장, 전망대 등도 들어설 예정이다. 울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