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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복동 할머니 별세]“60대에 시작한 투쟁…삶 자체가 위안부 고발의 역사”

    [김복동 할머니 별세]“60대에 시작한 투쟁…삶 자체가 위안부 고발의 역사”

    윤미향 이사장, “마지막 순간에도 ‘위안부 해결’ 유언 남겨”김 할머니, 동일본 대지진 땐 일본인 피해자 도와“김복동 할머니는 버팀목이자 바위 같은 분이셨습니다. 가시는 길까지 위안부 문제 해결을 부르짖으셨고 전 세계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저희에게 ‘끝까지 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 없는 현장이 어떤 곳일지 아직 상상도 안 가요.”(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암 투병 끝에 28일 눈을 감은 김복동(94)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면서 인권 운동가였다. 그의 삶은 위안부 피해자의 투쟁사 그 자체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일본 정부를 향해 진심 어린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했고, 돈 한 푼도 자신보다 또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쓰이길 바랐다.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차려진 장례식장에서 윤 이사장은 “김 할머니는 기력이 쇠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마지막 순간에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힘 써달라’고 하며 떠나셨다”면서 “평화로운 세상에서 할머니가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실 수 있도록 남은 우리들이 뜻을 이어받겠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의 삶은 굴곡의 연속이었지만, 의지로 딛고 일어섰다. 할머니는 1925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열다섯 되던 해인 1940년 위안부로 연행됐고,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 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 피해를 겪었다. 광복 후인 1948년 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결혼과 출산도 포기하고 1992년 3월 위안부 피해자임을 공개하며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할머니는 이듬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엔(UN)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하면서 국제사회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2000년에는 일본군성노예전법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피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른 재난 피해자들에게도 공감과 연대의 몸짓을 보였다.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 대지진 당시 피해자들을 돕는 모금활동에 참여했고, 2012년 3월에는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기금’을 설립했다.2012년부터 2016년까지는 유엔인권이사회와 미국,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일본 등 각국으로 해외 캠페인을 다니며 전시 성폭력 반대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2015년 7월 미국 워싱턴 방문 당시 “죽을래야 억울해서 죽지 못한다”면서 “아베 일본 총리는 법적으로 사죄하고 우리 명예를 회복시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5년 5월 국경없는기자회는 김 할머니는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했다. 전날 할머니의 임종을 곁에서 지킨 윤 이사장은 이날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보통 사람들이 은퇴하는 나이인 60대에 할머니는 투쟁을 시작하고 94살이 되도록 치열하게 싸워 왔다”면서 “말년에 대장암, 복막암 등을 앓으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와중에도 일본 정부에 항의하고 지난 2015년 한일 합의를 맺은 한국 정부에도 책임을 다하라고 외쳤다”고 말했다. 이어 “할머니는 당신 통장에는 마지막에 160만원만 남겨두면서 총 2억원이 넘는 돈을 포항 지진 피해자, 콩고와 우간다 성폭력 피해자,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탐방 플러스] 동해안의 파라다이스… 풍경·운치 좋아 ‘추억 만들기’ 최적

    [탐방 플러스] 동해안의 파라다이스… 풍경·운치 좋아 ‘추억 만들기’ 최적

    동해안을 대표하는 깨끗하고 풍경 좋은 운치 있는 휴게소가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휴게소 뒤의 풍경은 동해안 일대에서 보기 드믄 명소로 바다와 바로 맞닿은 망양휴게소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여, 동이 트면서 발하는 해돋이 명소로 소원을 빌기 위해 찾는 손님들은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게 된다. 바다와 절벽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이 일품이고, 이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꼼꼼하게 손질한 시설도 훌륭하다. 바다 쪽으로 전망대가 갖춰져 있고, 바닷바람을 쐴 수 있는 스카이워크도 있다. 깨끗하게 지어진 지상 3층 규모의 건물도 국도 옆 휴게소에 대한 아쉬운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하다.이 망양휴게소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휴게소의 위치와 이름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정했다는 사실이다. 이호영 망양휴게소 대표의 회고에 따르면 1966년 7번 국도 준공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을 들었는데, 현재 망양휴게소 자리의 경치를 보고 “여기에 휴게소를 지으면 좋겠다.”라고 지시했다. 또 군수에게 이곳이 어디냐고 물은 뒤, 예부터 부르던 ‘망양’이라는 지명을 따서 “망양휴게소라고 하나 짓자”고 이름을 정했다. 현재 망양휴게소는 행정구역상 망양리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다. 박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기 전부터 이호영 대표는 이 자리에 휴게소를 짓고자 준비하고 있었다. 오히려 당시 이호영 대표가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지인에게 대통령 방문이 가능한지 문의하기도 했다. 산을 타고 지나는 국도 옆에 휴게소를 지으려면 대통령이나 산림청장의 허가가 있어야 했다고 이 대표는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로 그의 요청에 의해 대통령이 방문했는지는 알 수 없다. 동해안을 따라 주요 지역을 잇는 7번 국도였기에 대통령이 준공일에 돌아보는 것은 납득할 만한 일이다. 배경은 알 수 없으나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망양휴게소는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게 됐다. 감성돔 낚시 포인트에 펜션까지 망양휴게소는 1981년에 지어져서 1982년부터 운영됐다. 이호영 대표는 군 장교 생활을 마치고 나와 휴게소 운영을 해왔다. 당시 건물은 지하 2층에 지상 1층으로 작은 규모였으나 3년 전 새롭게 지어 현재의 건물을 완성했다. 새로운 건물에는 지상 3층 규모의 운전자 휴게시설과 함께 절벽 밖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지하 공간을 이용해 펜션이 생겼다. 바다낚시는 망양휴게소가 알려진 또 다른 이유다. 망양휴게소 앞 갯바위가 유명한 감성돔 낚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휴게소인 만큼 먹을거리와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고기도 잘 올라오니 이만한 낚시 명소가 없다. 편히 쉴 수 있는 펜션까지 있으니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태기 객원기자 jtk3355@seoul.co.kr
  • 농촌 빈곤 목도한 늦깎이 목민관, ‘토지 공개념’ 제시하다

    농촌 빈곤 목도한 늦깎이 목민관, ‘토지 공개념’ 제시하다

    우리 형님 얼굴과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我兄顔髮曾誰似)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날 때마다 우리 형님 쳐다봤지.(每憶先君看我兄)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드메서 본단 말고(今日思兄何處見) 두건 쓰고 도포 입고 가서 냇물에 비친 나를 보아야겠네.(自將巾袂映溪行) 연암 박지원은 1787년(정조 11년)에 많은 사람을 잃었다. 새해가 되자마자 아내와 사별하고, 7월에 형님상을 당하고, 얼마 뒤에는 며느리까지 떠났다. 이별 가운데 가족과의 이별은 더욱 아프다. 떠나보내고서도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슬픔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아내 잃은 박지원은 죽을 때까지 17년 동안 ‘홀아비’로 살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시대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런 박지원은 아버지를 여의고서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형님의 얼굴을 봤다. 이제, 형도 죽고 없다. 형이 보고 싶을 때면? 시냇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그려볼 수밖에. 언제나 의관을 정제하고 지내던 형님의 생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버지에서 형으로, 형에서 아우로 이어지는 혈육의 애잔함과 함께 단아하던 형님의 인품까지 단 스물여덟 자로 그려 내는 솜씨가 놀랍다. 조선 최고 문호로 불리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그런 박지원은 1737년(영조 1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반남’으로 부친 박사유의 2남 2녀 중 둘째였다. 그리고 열여섯에 농암 김창협의 학통을 계승한 이보천의 딸과 결혼했다. 명문가의 후예로서 당대 최고의 지성과 학맥을 댄 노론계 일원이었으니 그의 미래는 보장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세 차례의 운명적 만남을 계기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삶은 굽이쳐 갔다. #첫 번째 만남, 미더운 벗들과의 학문적 우의 박지원도 여느 선비들처럼 한때 과거 공부에 몰두했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벼슬길로 나아갈 것인지, 학문세계에서 자유롭게 노닐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북한산 암자에서 독서할 즈음 스물여섯의 박지원은 사도세자가 죽는 참극을 목도했다. 숙종·경종·영조로 이어지며 벌어지던 숱한 정치적 부침의 결정판이기도 했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박지원은 마침내 젊은 시절 꿈과 결별한다. 대신 뜻을 같이하는 벗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금강산을 비롯하여 송도 평양 천마산 속리산 가야산 단양 등을 함께 유람했다. 그러던 중 개성 부근의 ‘제비바위골’(燕巖)을 발견하고, 뒷날 은거를 다짐하며 자신의 호로 삼았다. 박지원이 현실 정치 진출을 포기한 데는 평생 벼슬하지 않고 포의로 지낸 부친과 장인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장인은 사위가 과거장에서 시험 답안도 제출하지 않고 나왔건만 내심 기뻐했다고 한다. 박지원 자신도 아들에게 “모름지기 수양을 잘해 마음이 넓고 뜻이 원대한 사람이 돼야지 과거 공부에 매달리는 쩨쩨한 선비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편지를 보냈을 정도였다. 모두가 간절하게 소망하던 과거를 하찮게 치부했던 그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학문과 그 길을 함께하는 벗들이 벼슬보다 더욱 미더운 삶의 동반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리라. 옛날에 벗(朋友)을 말하는 사람들은 벗을 ‘제2의 나’(第二吾)라거나 ‘주선인’(周旋人)이라 일컬었다. 이런 까닭에 한자를 만든 사람이 ‘날개 우’(羽) 자를 빌려 ‘벗 붕’(朋) 자를 만들었고, ‘손 수’(手) 자와 ‘또 우’(又) 자를 합쳐서 ‘벗 우’(友) 자를 만들었다. 벗이란 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에게 두 손이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박지원, ‘회성원집(繪聲園集)’ 발문 시서화에 뛰어났던 청나라 문인 곽집환의 문집에 써준 서문의 첫 대목이다. 홍대용이 1776년 북경에서 그의 문집을 가지고 왔는데, 박지원이 읽고 서문을 지어줬다. 미지의 중국인에게 건넨 첫 번째 인사가 ‘벗이란 어떤 존재인가’였다. ‘제2의 나’라는 표현이 적실하게 와서 꽂힌다. 박지원만 그리 생각한 게 아니다. 이덕무도 “함께 살지 않는 아내요, 핏줄을 같이하지 않은 형제”라고 했고, 박제가도 “사람에게 하루라도 벗이 없으면 좌우 두 손 잃은 것 같다”고 했다. 그들에게 벗은 타인이 아니라 아내이자 형제와 같았다. 일찍이 마테오 리치가 ‘교우론’에서 갈파한 것처럼 “나의 벗은 타인이 아니라 나의 반쪽이요, 바로 제2의 나”(吾友非他, 卽我之半, 乃第二我也)였던 것이다. 실제로 담론과 음악을 함께 즐겼던 홍대용이 죽자 박지원은 그 이후 음악을 듣지 않고, 갖고 있던 악기들도 모두 남에게 줘버렸다고 한다. ‘지음’(知音)이란 이렇게 절절한 또 다른 자기였던 것이다.#두 번째 만남, 중국으로의 가슴 벅찬 여행 박지원은 많은 벗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많기도 했지만, 출신과 개성도 다양했다. 홍대용 유언호처럼 명문가문의 후예,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처럼 서자 출신, 정철조와 같은 과학과 그림의 달인, 백동수와 같은 창검술의 고수 등.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잘 깨우쳐 준다면 비록 돼지 기르는 종이라도 나의 어진 벗이요, 의로운 일을 보고 충고해 준다면 비록 나무하는 아이라도 나의 좋은 벗”(홍대용에게 보내는 편지 중)이라던 박지원의 우정관은 빈말이 아니었다. 박지원과 그의 벗들은 주로 종로 탑골공원 안의 원각사탑 근처에서 모임을 가져 일명 ‘백탑파’로 불렸다. 그곳에서 “비 뿌리고 눈 날리는 날에도 연구하고, 술이 거나하고 등잔불이 꺼질 때까지 토론”(‘북학의’ 서문)하며 떠들썩한 우정의 향연을 벌였던 것이다. 담론의 주제는 조선을 넘어 드넓은 중국으로 향해 있기 일쑤였다. 1766년(영조 42년) 중국에 다녀온 홍대용은 자신의 견문을 연행록에 담아 과시했고, 1778년(정조 2년) 이덕무와 함께 중국을 보고 온 박제가도 ‘북학의’라는 저작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지적 호기심이 남달랐던 박지원은 무한 부러웠을 터.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홍국영을 피해 연암에 은거하고 있다가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는 사절단을 따라가게 된 것이다. 1780년(정조 4년)의 일이다. 압록강을 건너 말로만 듣던 중국 땅으로 들어섰다. 열흘을 걸어도 산이 보이지 않는 요동벌판을 바라보며 “참으로 좋은 울음 터로다. 크게 한번 울어볼 만하다”(‘호곡장론’)라고 했던 감격 어린 발길은 마침내 만리장성 너머로까지 이어졌다. 나는 무령산을 돌아 광형하를 건너 밤중에 고북구(古北口)를 빠져나가는데, 때는 삼경이었다. 관문을 나와 말을 장성 아래 세우고 높이를 헤아려 보니 10여길이나 되었다. 붓과 먹을 끄집어내어 술을 부어 먹을 갈고 성벽을 어루만지면서 “건륭 45년 경자 8월 7일 밤 삼경, 조선의 박지원이 이곳을 지나다”라고 썼다. 그리고는 곧 크게 웃으며 “나는 서생으로서 머리가 희어서야 한 번 장성 밖을 나가는구나” 했다. -박지원 ‘밤에 고북구를 나서며’(夜出古北口記) 조선의 사신은 청나라 북경까지 다녀오는 것이 관례였는데, 마침 건륭제가 황제의 별궁이 있는 열하에 머물고 있어 거기까지 가야 했다. 허탈하고 고달프지만,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북경에서 열하로 가기 위해 만리장성의 북쪽 관문인 고북구를 지나가는 경이로운 체험. 조선인으로서는 최초의 발걸음이었던 만큼 감회가 남달랐다. 여느 연행록과 달리 ‘열하일기’라고 명명한 까닭이다. 그 순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물 대신 술로 먹을 갈아 자신의 자취를 장성에 써내려가는 문사의 풍류가 멋들어지게 보이지만, 이내 씁쓸한 헛웃음을 터뜨린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이제껏 좁은 조선 땅에 갇혀 살았다는 회한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던 탓이다. 그때 박지원의 나이 마흔넷이었다. #세 번째 만남, 궁핍해져 가는 농촌 현실 대면 박지원은 중국에서의 견문을 기록해 둔 여행 메모를 고치고 다듬어 1783년(정조 7년) ‘열하일기’를 탈고했다. 그의 문명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하지만 문체가 정통 고문에서 벗어났다거나 오랑캐인 청나라 연호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호된 비난을 함께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정조의 질책과 함께 원고 전체가 불태워질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 시비가 분분하던 즈음 박지원은 젊은 날 포기했던 벼슬길에 쉰 살이 되어 나서게 된다. 너무 궁핍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평생의 지기 유언호의 천거로 1878년(정조 10년)부터 관직생활을 시작했지만, 별로 두드러진 업적은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1792년(정조 16년) 안의현감을 시작으로 면천군수, 양양부사 등 지방관으로 있은 10여년은 박지원의 삶을 재조명하게 하는 각별한 시기였다. 수차, 베틀, 물레방아 등을 제작해 농민의 수고를 덜어주는 한편 왕성한 창작력으로 많은 작품을 짓기도 했다. 특히 1799년(정조 23년)에 지어 올린 ‘과농소초’(課農小抄)의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는 주목할 만하다. 토지 소유 상한선을 정해 부호들이 토지를 무한정 늘려 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일종의 토지공개념인 셈이다. 주나라의 정전제나 한나라 동중서의 논의를 이어받은 것이긴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심해지는 농촌 현실을 목도한 목민관으로서 제기한 혁신적 방안임이 분명했다. 그 책을 읽고 감탄한 정조도 ‘농서대전’의 편찬을 맡겨야겠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그의 꿈은 빛을 보지 못했다. 1805년(순조 5년) 69세로 생을 마치고 말았다. 정출헌 한국고전번역원 밀양분원장·부산대 교수 ■ 문학·여행·농업 등 망라한 연암집 필사본으로 전승되다 20세기 들어서야 공간됐다. 김택영이 선집 형태로 1900년 6권 2책 ‘연암집’, 1901년 3권 1책 ‘연암속집’, 1917년 7권 3책 ‘중편 연암집’을 간행하고, 박영철이 1932년 17권 6책 ‘연암집 전집’을 간행했다. 제1~10권은 일반 시문, 제11~15권은 열하일기, 제16·17권은 과농소초이다. 연암집 번역본은 우전 신호열 선생과 김명호 교수가 공역으로 2007년 출간했다. 열하일기 번역본은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연민 이가원 선생이 1968년 최초 완역하고서 김혈조 교수가 2017년 개정 신판을 출간했다.
  • 부산 원도심에 롯데타워 조성.. 330m 랜드마크,복합문화관광벨트 앵커시설로 활용

    부산 원도심에 롯데타워 조성.. 330m 랜드마크,복합문화관광벨트 앵커시설로 활용

    부산 원도심인 중구 광복동에 복합 관광벨트 앵커 역할을 할 롯데타워가 들어선다. 부산시는 중구 광복동 옛 시청사 터에 텅에 부산의 부산 롯데타워를 건립 한다고 28일 밝혔다. 부산시는 최근 롯데그룹에 북항재개발지역에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 랜드마크 건립을 요청했으며, 롯데그룹은 주거 시설 등 과거 사업계획을 백지화하고 ‘도심 속 수직공원’ 으로 타워를 지어 바다와 숲이 만나는 열린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내놓았다.롯데그룹은 애초 중구 옛 시청 터와 매립지 등 4만여 ㎡ 용지에 107층짜리 초고층 건물(약 510m)을 포함한 부산롯데타워를 건립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2009년 사업성을 이유로 초고층 건물에 주거 시설을 넣을 것을 요구하며 지금까지 공사를 미뤄왔다.이에 오거돈 부산시장은 취임 이후 줄곧 롯데그룹과 협의를 벌인 끝에 이번 합의안을 도출했다.롯데그룹은 부산롯데타워를 주거 시설을 완전히 뺀 복합문화관광벨트 앵커 시설로 짓기로 했다. 부산롯데타워는 총높이 380m에 건물면적 8만6054㎡로 모두 450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타워 300m 높이에 전망대를 설치하고, 건물 고층부에는 세계 최초의 공중 수목원을 만든다. 공중 수목원은 섬을 이루는 바위 숲 풀 바람 물 등으로 구성된 ‘치유의 숲 정원’과 부산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관람할 수 있는 ‘도시의 기억 정원’ 등 모두 6개의 테마 정원이 조성된다.건물 중층부에는 국내 최초 고층 스카이 워크와 암벽등반 시설 등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만든다.조저층부에는 시 홍보관과 창업지원센터,키즈 테마파크를 포함한 문화·체험 시설이 들어선다.롯데그룹은 오는 10월 착공에 들어가 2022년 완공할 예정이다.생산 유발 효과는 9000억 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29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공사기간인 4년동안 2만명 이상 고용 효과도 예상된다. 시는 부산롯데타워를 중심으로 원도심(롯데타워)과 북항 문화벨트, 오시리아 관광단지를 연결하는 복합문화관광벨트 구축을 추진한다. 롯데그룹은 타워에 최첨단 조명을 설치해 중국 상하이 동방명주, 일본 도쿄 스카이트리와 같은 야경 명소를 만들기로 했다. 오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의 중심상권이며 도심 관광지인 지역 여건을 고려할 때 층수에 얽매이는 ‘형식적 최고’보다는 지역에 이익을 줄 수 있고 도시 품격과 시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앵커시설로 전환할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1박2일’ 데프콘-김종민-정준영, 포토그래퍼 변신 ‘새해 첫 사진은?’

    ‘1박2일’ 데프콘-김종민-정준영, 포토그래퍼 변신 ‘새해 첫 사진은?’

    ‘1박 2일’ 데프콘-김종민-정준영이 포스 넘치는 포토그래퍼로 변신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오늘(27일) 방송되는 KBS 2TV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3’(연출 김성/이하 1박 2일)에서는 김준호-차태현-데프콘-김종민-윤동구-정준영의 ‘강원도 국수로드’ 두 번째 이야기가 펼쳐진다. 앞서 데프콘-김종민-정준영의 ‘냉면로드’ 팀과 김준호-차태현-윤동구의 ‘온면로드’ 팀이 봉평 메밀국수에서 정선 콧등치기까지 강원도 반백 년 전통 맛집을 탈탈 터는 활약으로 시청자들의 침샘과 배꼽을 저격한 바 있다. 그런 가운데 강원도 소돌아들바위공원을 누비며 사진 촬영에 몰입하고 있는 데프콘-김종민-정준영의 모습이 포착돼 시선을 강탈한다. 공개된 사진 속 세 멤버들은 전문 포토그래퍼 못지 않은 포스를 물씬 풍기고 있는 모습. 진지함이 한 가득 묻어나는 표정으로 공원 이곳 저곳을 누비는 데프콘-김종민-정준영의 모습이 이목을 절로 사로잡는다. 자신이 원하는 최고의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열정을 뿜어냈다고 전해져 이들의 사진에 기대감을 자아낸다. 이 날 데프콘-김종민-정준영은 ‘새해 희망 사진 콘테스트’ 미션에 도전한다. “사진은 임팩트죠”라는 말과 함께 세 멤버들은 본인이 직접 모델 섭외는 물론 보는 이들의 뇌리에 콕 박히는 연출력을 뽐냈다는 후문. 특히 이들이 찍은 사진이 공개되자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사진 대상과 퀄리티에 다른 멤버들도 깜짝 놀랐다고 전해져 이들이 찍은 사진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과연 데프콘-김종민-정준영은 새해 첫 사진으로 무엇을 찍었을지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가운데 대망의 새해 첫 사진은 오늘(27일) 방송되는 ‘1박 2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KBS2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3’은 매회 새롭고 설레는 여행 에피소드 속에서 꾸밈 없는 웃음을 선사하며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를 잡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이따금 풍경 소리만… 그리고 고요

    이따금 풍경 소리만… 그리고 고요

    경남 산청군 대성산 절벽에 절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산허리를 도는 길을 자동차로 20분쯤 오르면 모습을 드러내는 절, 정취암입니다. 누군가는 정취암을 ‘절벽 위에 핀 연꽃’이라 칭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거친 절벽의 끝에 어찌 이리 다소곳한 암자를 세웠을까요. 절은 속세의 시끄러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습니다. 소란스러움은 이곳에서 사치입니다. 셋보다 둘이, 둘보다 혼자가 어울리는 절이지요. 한겨울인지라 자연은 색을 잃었고, 깊은 산중인지라 절은 소리를 잃었습니다. 이따금 풍경 소리가 꿈결인 양 아스라하게 들려올 뿐입니다. 색과 소리를 내려놓은 절에서 마음이 고요로 차오릅니다.정취암의 역사는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신라 신문왕 6년(686) 동해에서 부처가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발하니 한 줄기는 금강산을, 다른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 이때 의상대사가 두 줄기 서광을 쫓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대성산에는 정취사(지금의 정취암)를 세웠다고 한다. 고려 말에는 공민왕을 위시하는 개혁세력의 거점이었고 현대에 들어서는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고암 대종사나 성철 대종사가 머물며 정진했다. 정취암이 이름난 것은 절이 품은 풍경 때문이다. 자그마한 절이지만 산중 높은 곳에 자리해 산청의 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깊은 산속, 자연을 벗하며 혼자만의 적요를 즐기기에 이보다 좋은 절이 어디 있을까. 옛날에 정취암에 가려면 산길을 오르며 고생깨나 했겠지만, 2010년 도로가 닦이며 지금은 입구까지 자동차로 편히 갈 수 있다.●기암절벽에 매달려 산청을 굽어보는 절, 정취암 절 옆은 까마득한 절벽이다. 겨울바람에 댕그랑 울려 퍼지는 풍경이 이곳의 유일한 소리다. 정취암 입구에 서자 전각과 그 뒤의 바위 봉우리가 회화적인 구도를 이룬다. 절은 전각이 올망졸망 모여 아담하다. 사람을 긴장하게 하는 웅장함 대신 시골집 앞마당 같은 포근함이 맴돈다. 입구를 지나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은 정취암의 주전인 원통보전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정취관음보살을 본존불로 모신다. 오늘날 원통보전에 자리한 산청 정취암 목조관음보살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3호)은 조선 효종 3년(1652) 때 화마로 소실되었던 것을 2년 뒤 새로 만든 것이다. 50cm 정도 크기의 인상이 부드러운 관음보살이다. 네모진 얼굴에 가느다란 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하다. 원통보전 뒤의 돌계단을 오르면 왼쪽에 응진전, 오른쪽에 삼성각이 있다. 삼성각에서 볼 것은 석조 산신상 뒤에 봉안된 산청정취암산신탱화(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3호)다. 일반 탱화에는 산신이 호랑이 옆에 앉아 있는데 비해 이 그림은 호랑이에 올라탄 산신을 협시동자가 보좌하고 있다. 우리나라 토속신앙인 산신과 불교의 융합을 보여주는 예다.관음보살좌상과 산신탱화를 봤다면 절이 품은 더 큰 보물을 만나러 갈 차례다. 응진전 옆에 난 등산로를 10여 분 올라 절 뒤의 너럭바위로 향한다. 등산로 곳곳에 먼저 다녀간 이들이 쌓은 돌탑이 이정표가 되어준다. 편평한 너럭바위에 서자 위로는 하늘이요, 아래로는 산청의 산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수화는 정취암이 간직한 더 큰 보물이다. 첩첩이 밀려오는 산 능선, 색을 벗은 산청의 들녘, 산허리를 휘감은 도로가 펼쳐진다. 장관이다. 바위 아래에는 정취암 전각의 지붕이 정답게 이웃한다. 하계를 내려다보는 신선이 된 양 풍경 놀음을 즐기느라 겨울바람의 매서움도 잊는다. 일행과 함께 왔더라도 너럭바위에서만큼은 잠시 혼자일 것을 권한다. 이토록 고요한 순간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절 처마에 매달린 풍경 소리가 이따금 적막을 깰 뿐 고요 뒤의 또 다른 고요가 한없이 이어진다. 너럭바위에서 보이는 풍경의 또 다른 매력은 ‘시선의 교차’에 있다. 도로에서 정취암이 보이고 바위에서 지나온 도로가 보인다. 목적지를 올려다보거나 온 길을 돌아보게 되는 여행지는 많지만 시선이 양방향으로 오가는 곳은 드물다. 앞으로 가야 할 자리와 지나온 길을 확인할 수 있는 곳, 그렇게 여행의 궤적이 선명해지는 곳.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실존적 감각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라면 정취암은 분명 근사한 여행지다. ●따뜻한 꽃 목화가 뿌리내린 땅, 목면시배유지 ‘붓 대롱 속에 숨긴 목화 종자가 조선으로 들어온다. 목화 씨앗 10여 개가 산청에 뿌려진다. 그로부터 3년 뒤 목화가 전국적으로 재배된다. 한겨울에도 삼베옷을 입고 추위에 떨던 조선 백성들은 포근한 솜옷을 입게 된다.’ 문익점의 목화 이야기가 목면시배유지에서는 사뭇 새롭다. 고려 말, 문익점과 장인 정천익이 목화 재배에 성공한 곳이기 때문이다. 목면시배유지는 전시관, 면화시배사적비, 삼우당 유허비, 부민각, 효자비각으로 이뤄진다. 목면시배유지 전시관은 올해부터 무료로 개방해 발 디디기가 더 쉬워졌다. 규모가 아담해 30분이면 충분히 둘러본다. 전시관은 우리나라 의복 발전사, 목화 재배·성장 과정, 목화솜이 무명베가 되기까지의 과정 등을 소개한다. 무명베 만드는 과정이 특히 실감 난다. 목화에서 씨앗을 거르고, 솜을 부풀리고, 물레질로 실을 뽑아내고, 베 짜기를 위해 실 가닥을 모으는 등 일련의 과정을 모형으로 보여준다. 목면시배유지를 둘러싸고 330㎡(100평) 남짓한 목화밭이 있다. 목화는 4월에 씨를 뿌려 9, 10월에 꽃이 핀다. 목화가 거두어졌을 계절이지만 관광객을 위해 일부는 따지 않고 남겨두었단다. 눈송이가 내려앉은 듯한 풍경에 마음도 덩달아 포근하다.●옛 담이 아름다운 마을, 남사예담촌 옛 담이 아름다워 ‘예담촌’이다. 남사예담촌은 어른 키만 한 돌담과 18~20세기 초에 지은 한옥 40여 채가 조화를 이루는 마을이다. 그 풍경이 볼만해 한 민간단체에서 마을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지정하기도 했다. 마을에는 전통 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다. ‘경북에는 안동, 경남에는 산청 남사’라고 할 정도다. 이씨 고가, 최씨 고가, 사양정사 등 고색창연한 집들이 모여 있는데, 마을의 진정한 멋은 고가를 에두르는 옛 담장에 있다. 담장은 마을을 휘감아 도는 남사천의 강돌을 주민들이 손수 날라 쌓은 것이다. 큰 막돌을 2~3층으로 덤벙덤벙 쌓고 위에 더 작은 돌과 진흙을 올렸다. 그렇게 쌓은 돌담 길이가 3.2㎞다. 마을을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발길 닿는 대로 돌담길을 타박타박 걸어보는 것. 돌담에 어룽지는 겨울 햇살, 집 안에서 넘어오는 맵싸한 연기, 옛집만큼 나이 들었을 고목이 호젓한 정취를 자아낸다. 이씨 고가 입구에는 남사예담촌의 상징인 X자 회화나무 한 쌍이 있다. 줄기가 구부러져 서로 어깨를 다독이는 듯한 모양새다. 다정한 자세 때문인지 나무에는 ‘부부 나무’라는 별칭이 붙었다. 부부가 나무 아래를 지나면 백년해로한다는 말도 전해진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300살 먹은 노거수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근사하다.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마을안내소를 마주했을 때를 기준으로 마을 왼쪽을 둘러보는 편이 낫다. 이씨 고가 앞 회화나무를 본 뒤 남성천 물소리에 발걸음을 맞추며 돌담길을 산책할 수 있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사진 장명확(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 서울에서 자동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통영대전고속도로, 정곡척지로를 지난다. 한남IC에서 부산 방면 우회전 후 경부고속도로를 2시간가량 달린다. 통영대전고속도로 비룡분기점을 지나 산청 방면 좌회전한 뒤 덕계로에서 ‘진주, 사천’ 방면우회전한다. 정곡척지로에서 ‘외송, 정취암’ 방면 우회전 후 둔철산로를 따라가면 정취암이다. →맛집 : 산청한방테마파크 주차장 옆에 자리한 약초와 버섯골 식당(973-4479)은 ‘약초와 버섯 샤부샤부’가 대표메뉴다. 보통의 샤부샤부와 달리 약재 우린 물을 육수, 약초를 채소로 쓴다. 동의약선관(972-7730)은 약선한정식을 코스로 낸다. 지리산에서 채취한 송이를 넣은 신선로, 전복구이, 갈비찜 등 한 상 차림이 푸짐하다. →잘 곳 : 남사예담촌에 있는 월강고택(973-2454)은 남부 지방의 전통적인 사대부 한옥이다. 경남 문화재자료 제117호에 지정된 한옥 내부는 화장실, TV, 에어컨, 인터넷 등 현대적 시설을 갖췄다. 너와나펜션(973-3322)은 야외 테라스, 바비큐장, 수영장이 딸린 펜션이다. 바로 옆에 단성묵곡생태숲이 있어 산청의 수려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 그랜드캐년 추락 영상 공개…“정부가 도와야”vs“개인 잘못”

    그랜드캐년 추락 영상 공개…“정부가 도와야”vs“개인 잘못”

    미국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니언에서 20대 한국인이 추락한 사고 영상이 23일 인터넷에 빠르게 퍼지며 논란이 되고 있다. 10억원이 넘는 현지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자 가족은 환자 국내 이송 등 정부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위험한 곳에서 개인 행동을 하다 생긴 사고이기에 정부가 개입할 일은 아니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캐나다 유학생인 박모(25)씨는 지난해 12월 30일 유학을 마치고 관광차 미국 그랜드캐니언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그랜드캐니언 사우스림 야바파이 포인트와 마더 포인트 근처에서 발을 헛디뎌 수십 m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늑골 골절상과 뇌출혈 등 중상을 입은 박씨는 근처 플래그스태프 메디컬센터로 옮겨져 치료 중이다. 박씨의 여동생이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 따르면 박씨는 뇌손상이 심각해 의식불명 상태로 전해졌다. 박씨의 여동생은 단체관광 여행사 가이드가 안전펜스도 없는 곳에 관광객들을 인솔했다며 여행사의 책임을 주장했다. 반면 여행사 측은 박씨가 위험한 곳에서 혼자 사진을 찍다 바위에 부딪혀 추락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가족은 박씨 성격상 단체관광 중 혼자 위험한 곳에 가서 개인행동을 했을 리 없다고 반박했다.이날 유튜브 등에 퍼진 사고 영상을 보면 박씨는 관광객 일행과 다소 떨어진 곳에서 바위 아래로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 박씨 가족은 박씨가 현지 병원에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치료비가 10억원에 이르고 환자를 국내로 이송할 경우 2억원이 든다며 정부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 박씨 가족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이제 25살된 이 청년의 잘잘못을 떠나서 타국에서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다”며 “개인이 감당하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단 1명의 국민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면 국민의 일원인 박군이 고국에 돌아올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개인의 잘못을 국가 세금으로 돕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지난 17일 등록된 국민청원에는 23일 현재 1만 5000명 이상 참여했으나 “동의하지 않는다”, “개인이 해결할 문제”라는 등 부정적인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지역특화사업으로 함께 사는 길 찾아 ‘평생 어부바 신협’ 될 것”

    “지역특화사업으로 함께 사는 길 찾아 ‘평생 어부바 신협’ 될 것”

    “신용협동조합(신협)은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겁니다. 한마디로 ‘상생’이죠.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전주 전통한지를 중심으로 한 지역특화사업도 지역과 신협이 함께 살기 위해서 진행하는 겁니다.” 김윤식(63) 신협중앙회장은 2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역과 금융협동조합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취임한 김 회장은 10개월간 ‘지역특화사업’과 ‘다자녀주거안정지원대출’ 등 이윤보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업에 집중했다. 최근에는 ‘평생 어부바 신협’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서민·중산층, 금융소외 계층을 모두 포용하는 금융상품과 프로그램을 내놓을 준비도 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요즘 젊은층에게 신협이 익숙하지 않다. -신협은 이윤을 쫓는 금융사가 아닌 함께 살기 위한 금융협동조합이다. 1849년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돕기 위해 독일에서 처음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됐다. 현재 109개국에 6만 8000여개 조합이 있다. 자산만 총 2132조원으로 세계 최대 금융협동조합이다. 우리나라에는 1960년 미국인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가 신협을 들여왔다.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에 889개 조합이 1649개 점포를 운영 중이고 직원은 6107명이다. 자산은 총 89조 6646억원으로 아시아 1위, 세계 4위다. 시중은행은 60~70%가 외국자본이라 이익이 나면 그만큼의 이익이 외국으로 나가지만 신협은 이익 전부를 조합원과 서민들을 위해 쓴다. →‘평생 어부바 신협’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왜 어부바인가? -서민, 재래시장, 소상공인 등 그런 분들을 돕겠다는 뜻을 한마디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어부바’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취약계층을 돕고, 어려워지는 지역 경제를 지원하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전주의 한지 지역특화사업은 뭔가. -신협은 지역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금융기관이다. 때문에 지역 경제가 죽으면 신협도 살 수가 없다. 지역특화사업은 지역과 신협이 함께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전주의 경우 여러 방법을 고민하다가 전주에서 생산되는 전통한지가 우리 문화를 잘 보여줌과 동시에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상품이고, 또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로마 교황청이 한지를 쓰고 있고,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복원하는 데도 사용된다. 현재 전주시와 한지업체가 모여 있는 흑석골에 13.2만㎡ 규모의 땅에 한지 특화단지를 만들려고 한다. 신협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지의 세계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앞으로 대구 ‘팔공산 갓바위’, 춘천 ‘춘천옥’ 등 지역 명물을 스토리텔링을 통해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계획이다. →다자녀 주거안정 지원대출에 대한 관심이 많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니 우리도 무엇인가 해보자고 내놓은 상품이다. 세 자녀 이상 무주택자에게 연 2.4% 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해준다. 집 걱정이 줄어들면 아무래도 아이를 좀 더 낳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만들었다. 앞으로 고령화 시대를 대비해서 어르신들을 돌봐주는 프로그램과 연계한 금융 상품도 내놓을 계획이다. 단순히 이윤을 위한 상품이 아니라 사회적 기여를 하는 상품을 많이 개발할 계획이다. →지난해 말에 목표기금제가 도입됐다고 들었다. -우리 신협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다. 금융기관은 파산에 대비해 예금액 일부를 예금자보호기금으로 쌓아야 한다. 신협의 기금적립액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1조 3049억원으로, 적립률로는 1.63%다. 이는 농협이나 새마을금고보다 높은 수준이다. 농협이나 새마을금고가 신협보다 기금 적립을 덜 할 수 있는 것은 금융위기 등으로 예금을 돌려주지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정부로부터 돈을 빌려 예금을 지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신협은 이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신협법 개정으로 신협도 위기 시 정부 차입으로 예금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고, 이에 따라 현재 다른 상호금융권보다 4배 이상 높은 기금적립액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외환위기 때 고객을 많이 잃었다. -2000개였던 신협이 1000개까지 줄었다. 당시 정부로부터 2600억원의 공적자금을 무이자로 받고 업무협약(MOU)을 맺었는데, 아직 유지되고 있다. 현재는 경영이 정상화돼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4293억원이고, 자산은 90조 8000억원이다. MOU로 인해 운영 관련 규제를 받고 있는데 금융당국과 의논해 하나씩 차근차근 완화하려고 노력 중이다. →외환위기 당시 기억 때문인지 아직 신협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다. -대출금 중 제대로 이자를 받지 못하는 부실채권(NPL) 비율이 2.3% 정도다. 신용등급 6등급 이하 대출자들이 많은 것에 비해선 양호하다고 자평한다. 저신용자가 많아도 연체율이 2.3%라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지역형 금융, 관계형 금융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담보와 신용평가만 보고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빌려주기 때문에 오히려 연체율이 낮다. →앞으로 어떤 활동에 집중할 것인지. -지역 단위로 영업 범위가 제한되다 보니 한계가 있다. 고객 입장에서 거주지나 직장 근처에 신협이 없으면 신협에 가입할 수 없다. 외환위기 당시 신협이 사라진 곳이 해당된다. 광역단위는 아니더라도 인근 지역까지는 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애니멀 픽!] 탈모부터 엉킴까지…헤어 관리가 필요한 동물들

    [애니멀 픽!] 탈모부터 엉킴까지…헤어 관리가 필요한 동물들

    헤어스타일이 한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현대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헤어스타일뿐만 아니라 탈모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진다. 동물의 입장은 들을 수 없어 확인하기 어렵지만, 사람의 관점에서 봤을 때 다소 관리가 필요할 것 같은 동물들의 이미지가 공개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소개한 동물 중 하나는 영국 잉글랜드 남동부 켄트에 서식하는 수사자다. 담장에 기댄 채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사자는 푸석푸석하고 심하게 엉켜있는데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은 털로 눈길을 사로잡았다.또 다른 동물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원숭이다. 대다수의 포유류는 몸에 다량의 털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는 다른 동물의 공격을 방어하거나 강한 햇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사진 속 아기 원숭이는 마치 노인의 머리카락처럼 숱이 없고 두피가 훤히 드러나 독특한 느낌을 준다.독특한 ‘헤어스타일’을 자랑하는 말도 있다. 몽골의 초원에서 포착된 이 말은 어울리지 않는 가발을 연상케 하는 갈기를 가지고 있다. 몸 색깔과 크게 대비되는 밝은 컬러의 털이 귀와 얼굴 주위를 가득 덮고 있다.영국 축구스타 베컴이 한때 전 세계 남성들 사이에 유행시킨 헤어스타일인 ‘모히칸 스타일’을 한 사자는 누가 다듬어 준 듯 짧은 옆머리에 비해 길게 위로 솟은 윗머리가 인상적이다.이밖에도 콩고 비룽가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새끼 원숭이는 털실로 만든 득한 풍성하고 곱슬거리는 헤어스타일로 눈길을 사로잡았고, 남부바위뛰기펭귄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펭귄은 트럼프의 눈썹을 닮은 긴 눈썹털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체육계 미투] “같이 선수 생활하고도 눈치 못채 죄책감… 넌 얼마나 힘들었을까”

    [체육계 미투] “같이 선수 생활하고도 눈치 못채 죄책감… 넌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1 때부터 유도부 코치 A씨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며 폭로한 신유용(24)씨와 한 살 터울 오빠인 재용씨는 어릴 때부터 유도를 했다. 2012년에는 둘 다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힐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누구보다 오붓했던 남매였기에 동생의 고발은 오빠에게 큰 충격이었다. 재용씨는 곁에서 동생의 외로운 싸움을 지켜봐온 심정과 앞으로의 다짐을 담아 17일 서울신문에 ‘유용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편지에서 “같이 선수 생활을 하고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얼마나 내가 둔감한 놈인가 한심해서 죄책감이 몰려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4남매를 힘들게 키우다가 장학금을 준다는 중·고등학교에 유용씨와 재용씨를 맡겼다. 어머니가 “돈이 없어서 유용이를 사지로 내몰았다”고 자책한 이유다. 유용씨는 지난 1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괜찮지만,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가족들도 많은 고통을 겪는다. 때문에 가족의 지지는 큰 힘이 된다. 이 점을 알기에 오빠 재용씨는 본인의 이름으로 동생에게 공개 편지를 썼다. 재용씨는 “유용이 네가 힘들지 않게 앞으로도 이 일이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옆에서 잘 보필할게.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라며 편지를 마무리했다. 아래는 편지 전문.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사랑하는 유용이에게.  유용아. 오빠다. 갑자기 편지라니 놀랐지? 내가 군대에서 너에게 편지를 보내고 나서 한 통도 쓴 적이 없다가 3년 만이니 갑자기 이 오빠가 뭘 잘못 먹었나 싶기도 할 것 같아. 하지만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겪었을 유용이 너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고 싶어서 이렇게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낸다.  작년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 끔찍한 일을 처음 들었을 때, 그냥 주저앉아 버렸어. 중·고등학교 6년의 시간 동안, 그리고 졸업을 한 이후에도 몇 년의 시간 동안 인간의 탈을 쓴 악마에게 당하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같이 선수 생활을 하고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얼마나 내가 둔감한 놈인가 한심해서 죄책감이 몰려왔어.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뭐라도 도우려고 했는데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현실을 마주했을 때 너무 슬퍼지더라. 너의 힘든 나날을 알고 있는 동료에게 증언을 부탁했다가 연락이 끊기는 것을 보면서 절망감이 들었고, 돈으로 너를 회유하려는 그 사람의 메시지를 보며 빼도 박도 못하는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서 내가 아는 상식들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어. 나도 밥이 넘어가지 않을 만큼 힘들었는데, 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작년 11월 유용이 네가 끔찍한 사실을 알렸잖아. 방송까지 나갔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서 더욱 많은 좌절감이 들었어. 그 무렵의 나는 사건 진행이 정체되어 있는 것을 보며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던 것 같아. 총학생회를 하는 중이라고, 직계 가족의 일을 다루면 괜히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 못한 나에게 정말 많이 화가 났어.  그러던 중에 심석희 선수의 용기 있는 제보를 시작으로 부당함으로 가득 차 있던 체육계에 한 줄기의 희망이 찾아오게 되었고, 유용이 너 또한 용기 있는 결정으로 사회 전체에 큰 메시지를 주게 되었잖아. 뒤이어 나오는 용기 있는 제보들도 세상이 바뀌어 가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유용이 너를 포함해 부당한 일을 당했던 선수들이 상처를 받은 이유 중의 하나는 부도덕한 코치나 선배의 개인적인 일탈이라고 생각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폐쇄성이 짙은 것에서 오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해. 체육계가 폐쇄적이고 좁은 만큼 위계적인 질서가 형성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힘이 센 사람의 눈 밖에 나게 되면 생계까지 타격을 받게 되는 일들이 생기니 용기 있게 말을 하려 해도 하지 못했던 것 같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라는 말이 정석으로 통했고 그저 조용히 있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던 것 같아.  너와 선수들의 희생과 용기가 헛되지 않게 이번 일을 계기로 체육계를 포함해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갔으면 좋겠어. 비일비재한 폭력과 성폭력, 그리고 옳은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폐쇄적인 구조와 인식까지 송두리째 바뀌었으면 좋겠어. 메달을 따는 것도,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운동을 하는 개개인이 행복해지는 사회가 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일인 거 같아. 모두의 작은 소망들이 모여서 거대한 흐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요즘 유용이 너를 지켜보면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얼마나 힘들까란 생각이 많이 들어. 유용이 네가 힘들지 않게 앞으로도 이 일이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옆에서 잘 보필할게.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오빠가. ※서울신문은 학교 운동부나 성인 체육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폭행, 언어폭력 등 인권 침해 실태를 집중 취재하고 있습니다. 또 문화·예술계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실태 등도 후속 보도할 예정입니다. 관련 사례를 경험하셨거나 목격하셨다면 제보(dynamic@seoul.co.kr) 부탁드립니다. 제보는 철저한 비밀에 부쳐지며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나혼자산다’ 헨리·마리오, 민속촌 도깨비와 대결 ‘승자는 누구?’

    ‘나혼자산다’ 헨리·마리오, 민속촌 도깨비와 대결 ‘승자는 누구?’

    ‘나혼자산다’ 헨리와 마리오가 타짜 도깨비와 한 치 양보 없는 팽팽한 대결을 예고했다. 오는 18일 방송되는 MBC ‘나혼자산다’에서는 지난주에 이어 캐나다에서 온 마리오와 한국 문화 체험에 나선 헨리의 유쾌한 에피소드가 공개된다. 특히 민속촌을 둘러보던 헨리와 마리오는 눈길을 사로잡은 ‘야바위’에 겁 없이 도전, 만만치 않아 보이는 상대인 도깨비와 예측불가 한 승부를 펼치며 눈을 뗄 수 없게 할 예정이다. 두 사람은 세 개의 호두껍데기를 섞는 도깨비의 현란한 손기술이 발동하자 그 어느 때 보다 집중하며 완두콩 찾기에 심혈을 기울인다. 헨리는 마리오와 회의 중 도깨비의 손장난을 경계하는가 하면 결과 공개를 앞두고 고도의 심리전에 갈등하는 모습으로 ‘야바위’ 대결을 한층 쫄깃하게 한다. 이어 헨리는 마리오에게 잡채, 순대, 설렁탕, 인절미, 식혜 등 한식을 대접하며 음식을 소개, 설렁탕을 맛있게 먹는 비법(?)까지 전수한다고. 식사 자리에서도 계속되는 헨리의 한국어 과외에 맛깔 나는 리액션 지도까지 유쾌한 시간을 선물할 전망이다. 한편, MBC ‘나혼자산다’는 오는 18일 오후 11시 15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팟츠 43득점 전자랜드 홈 11연승, DB 3점슛 둘 넣었으면

    팟츠 43득점 전자랜드 홈 11연승, DB 3점슛 둘 넣었으면

    전자랜드가 종료 1분을 남기고 두 차례나 3점슛을 얻어맞을 수 있는 기회를 모면하며 힘겹게 이겼다. 전자랜드는 1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으로 불러들인 DB와의 SKT 5GX 프로농구 4라운드 대결을 79-76으로 이겼다. 전자랜드는 4연승, 홈 11연승을 달려 선두 현대모비스와의 격차를 3.5경기로 줄였다. 기디 팟츠가 3점슛 여덟 방 등 43득점 12리바운드 4스틸로 앞장섰다. 특히 3쿼터에만 20점을 몰아넣은 집중력을 발휘했다. 찰스 로드는 11득점 11리바운드 더블더블로 거들었다. DB는 마커스 포스터가 33득점 10리바운드로 분전했을 뿐 리온 윌리엄스(9득점 8리바운드)와 유성호(9득점 4리바운드)를 제외하고는 지원 사격이 부족했다. 팟츠는 1쿼터에만 3점슛 둘 등 8득점으로 전자랜드를 이끌자 2쿼터 포스터도 3점슛 두 방 등 7득점으로 맞불을 놓았다. 특히 2쿼터 종료 27.2초를 남기고 팟츠 머리 위로 성공시킨 3점이 백미였다. DB가 38-35로 전반을 앞선 채 마쳤다. 3쿼터 다시 팟츠의 원맨쇼가 펼쳐졌다. 3점슛 세 방 등 20점을 쓸어 담아 DB가 이 쿼터에 올린 19점보다 많았다. 4쿼터 DB는 7개의 실책을 저지르며 추격의 동력을 꺼버렸다. 르며쿼터 시작 2분 30초 만에 팟츠의 골밑슛과 차바위의 3점 플레이로 70-64로 앞섰다. 종료 4분 34초 전엔 팟츠의 자유투 2득점으로 77-67, 두 자릿수 격차를 만들었지만 막판 3점 차까지 따라붙었다. 그러나 전자랜드의 두 차례 공격이 무위에 그쳐 기회가 넘어왔지만 끝내 살리지 못했다. LG는 고양 원정에서 5연승에 도전하는 오리온을 97-81로 따돌리며 DB를 밀어내고 6위(17승18패)로 올라섰다. 오리온은 8위(16승19패)로 밀렸다. 전반을 50-40으로 앞선 LG는 3쿼터에만 제임스 메이스와 조쉬 그레이가 25점을 합작하며 20점 차로 벌려 승기를 잡았다. 메이스가 30득점 15리바운드, 그레이가 19득점 3어시스트, 조성민이 3점슛 세 방 등 13득점, 김종규가 12득점 6리바운드로 힘을 보탰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국내 유일 판다 커플 임신?

    국내 유일 판다 커플 임신?

    국내에서 유일하게 희귀동물 판다를 만날 수 있는 에버랜드 판다월드가 15일 개관 1000일을 맞았다.이런 가운데, 지난 2016년 4월 중국에서 온 판다 커플 아이바오(암컷, 2013년생)와 러바오(수컷, 2012년생)가 새끼를 임신한 것으로 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에버랜드 측은 “지난 해 말 부터 혈액 분변 등 검사에서 호르몬 수치에 의미있는 변화가 생겨 예의 주시 중”이라고 밝혔다. 강철원 사육사는 “더욱 신선한 대나무와 영양식을 제공하고 적절한 운동을 유도해 판다들의 근력을 키우는 등 2세 준비 가능성을 열어 두고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년 여 동안 판다월드에는 하루 평균 7000명씩, 모두 700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갈 만큼 에버랜드 대표 명소가 됐다. 그동안 암컷 아이바오의 몸무게는 86㎏에서 118㎏으로 32kg, 러바오는 94㎏에서 123㎏로 29kg 늘어나며, 어른으로 성장했다. 판다 한 마리가 먹은 대나무는 약 10톤, 대변의 양은 9톤에 달해 실제 먹은 양의 10% 정도만 체내에 흡수된 것으로 전해진다. 수면 시간은 평균 1만 2000시간으로 1000일 중 절반을 잔 셈이다. 대나무 당근 등 먹이를 집거나 나무 오르는 습성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아이바오는 왼손, 러바오는 오른손잡이로 확인됐다. 기분이 좋을 때 둘의 반응은 엇갈리는데 아이바오는 인공 얼음바위에 배를 대고 눕고, 러바오는 나무에 턱을 괴고 명상에 빠질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에버랜드는 판다월드 개관 1000일을 맞아 다양한 온·오프라인 이벤트를 진행한다. 판다들과 함께 한 스토리와 성장기를 담은 기념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 페이스북 등 SNS에 공개했다. 공식 페이스북(@witheverland) 영상에 축하 댓글을 단 회원 중 10명을 선정해 에버랜드 이용권(인당 2매)을 선물할 예정이다. 판다월드에서도 여러 행사를 한다. 그동안의 주요 성장 모습을 모아 이달 27일까지 특별 사진전을 연다. 엉뚱하지만 귀여운 모습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왕이 된 남자’ 대도서관 깜짝 출연 “드라마 출연은 처음..밤새워 연습”

    ‘왕이 된 남자’ 대도서관 깜짝 출연 “드라마 출연은 처음..밤새워 연습”

    ‘왕이 된 남자’ 대도서관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14일 tvN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 측은 카메오로 출연한 크리에이터 대도서관의 모습이 담긴 스틸을 공개했다. 대도서관은 ‘왕이 된 남자’에서 야바위꾼 역을 맡게 됐다. 공개된 스틸 속 대도서관은 야바위꾼과 찰떡 같은 비주얼로 시선을 잡아 끈다. 특히 대도서관은 내기 판에서 벌어진 뜻밖의 광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익살스러운 표정이 웃음보를 자극한다. 반면 여진구(하선 역)의 위풍당당한 표정도 눈길을 끈다. 잔뜩 움츠러든 대도서관과 자신감에 차 있는 여진구의 상반된 표정이 대비되며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 것. 본 방송을 통해 공개될 이들의 호흡에 궁금증이 증폭된다. 대도서관은 “드라마 출연은 처음”이라고 떨리는 마음을 전하며 “밤을 새워서 연습했다. 대사도 20가지 버전으로 준비했다”고 밝혀 주변의 기대를 높였다. 이윽고 촬영이 시작되자 대도서관은 준비한 대사를 열정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김희원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주변에서 일제히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는 후문. 이에 촬영장에 웃음 활력소를 선사한 대도서관의 감초 활약에 기대감이 높아진다. ‘왕이 된 남자’ 제작진 측은 “카메오 출연 제안에 흔쾌히 수락해주시고, 애써 주신 대도서관에게 감사드린다”며 “대도서관의 활약으로 한층 더 위트 있는 장면이 탄생했다. 특히 여진구와의 뜻밖의 케미를 발산하기도 했다. 오늘 밤 방송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니 많은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한편, tvN ‘왕이 된 남자’는 14일 오후 9시 3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세계문화유산 불국사가 품은 불교 이야기

    세계문화유산 불국사가 품은 불교 이야기

    2018년에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7사찰에 앞서 24년 전에 이미 등재된 불국사와 석굴암을 먼저 찾았다. 신라의 불교는 호국불교로 진흥왕 때부터 대형 사찰들이 건립된다. 진흥왕 때 황룡사가 건립되고 선덕여왕 때 황룡사 9층 목탑과 분황사가 건립 되었다. 무열왕이 통일의 기반을 다지고 문무왕이 통일을 완성할 무렵 신라에는 원효와 의상이라는 걸출한 승려가 있었고 이중 의상은 당에서 화엄경을 공부하고 돌아와 통일 신라에 화엄경을 설파하고 제자들을 길러냈으며 이후 그의 제자들이 신라의 불교를 더 융성하게 한다.불국사는 그 선상에서 지어진 사찰이다.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을 기리며 감은사를 짓고 만파식적을 얻었다. 이후 문무왕의 증손인 경덕왕 때 불국사와 석굴암이 지어졌고 석굴암의 방향이 문무 왕릉을 향해 감은사와 같이 문무왕을 기리고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다는 문무대왕의 유지대로 외세를 억누르기 위한 기원의 의미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불국사에는 두 가지 설화가 전한다. 그 하나는 김대성에 대한 설화고 또 하나는 아사달과 아사녀에 관한 설화다. 김대성에 대한 전설은 불국사의 창건에 대한 이야기고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은 무영탑이라 부르는 석가탑에 대한 이야기다. 2대의 왕을 위해 왕명을 받들어 김대성이 지은 것이 효자로 이름난 재상 김대성이 지은 것으로 잘못 전해지고 있는 듯하다.불국사는 이름 그대로 불국을 재현한 절이다. 현세의 부처인 석가모니와 과거의 부처이며 극락세계의 영주인 아미타불,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모셨고 중생을 구원하는 관음보살 역시 따로 모셨다. 네 개의 영역은 크기는 물론 마당의 높이가 다른 완전히 독립된 영역이다.석가탑 앞에 다보여래를 상징하는 다보탑을 모셨으니 부처님만 네 분을 모신 절이다. 이중 그 중심은 현세의 부처를 모신 대웅전 영역이다. 도솔천의 33천을 상징하는 청운교 백운교 33계단을 올라 자하문을 지나면 여기부터는 불국이다. 계단의 수에 대해서는 34단이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첫 단을 지반과 같은 높이였다고 보면 33단이 된다. 다른 사찰의 경우라면 자하문은 불이문이 되었을 것이다. 계단을 교(橋)라 한 것은 부처의 나라로 들어가는 다리역할을 한다 해서 그렇게 부른다. 또 범영루 우측의 수구에서는 물이 떨어져 밑의 연못에 떨어졌을 것이며 청운교 아치밑에는 이 물이 흐르거나 고여 있었다면 다리교를 쓰는 것이 맞을 것이다.복원을 위해 발굴조사를 한 기록을 보면 지금의 불국사 앞 마당에도 연지의 터가 발견되었고 여기서 기와등이 발견되었다. 자하는 자색 안개를 뜻 하는데 수구에서 물이 떨어지며 물안개가 피어났는데 그 안개가 자색이었다고도 한다. 또 자하는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자주 빛 금색 안개를 말한다. 자하문의 안쪽에 해와 달이 함께 그려진 것은 자하문 안의 불국이 해와 달을 위의 하늘에 있다는 의미로 불국임을 다시 알려준다. 자하문에 평주와 고주를 연결하는 계량 또는 소 꼬리같이 생겨 우미량이라고 하는 부재를 하나는 위로 휘고 하나는 아래로 휜 부재를 사용한 것은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시간이 다르니 해가 뜨면 달이 지고 달이 뜨면 해가 지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어 해와 달이 다 있는 불국을 표현하였다.백제의 석공 아사달을 청하여 석가탑을 비롯한 석조물을 건조 하였는데 몇 해가 가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 아사녀가 불국사로 찾아간다. 아녀자가 불사를 조성하는 곳에 들어가면 아니 된다 하여 그녀를 들이지 않고 무영지에서 가서 지성으로 기도를 하며 기다리라한다. 탑이 완성되면 그 그림자가 무영지에 비칠 것이니 그때가 되면 아사달을 만날 것이라 하였다. 지성으로 기도를 하며 기다렸으나 끝내 그림자는 비추지 아니하였다. 기다림에 지친 아사녀는 무영지에 몸을 던졌다 한다. 석가탑은 그림자가 없는 무영탑이다.해와 달 위에 떠있는 불국이니 어찌 그림자가 있을 수 있겠나? 불국사의 경내가 불국임을 이야기 하는 또 하나의 설화다.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분별이 없다는 것이다. 분별은 실체와 상관없이 개념으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선과 악, 깨끗하고 더러운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 같은 구별은 원래 하나인 세상을 인간이 둘로 나누는 것이다. 부처가 되면 이런 분별이 없어지고 비로써 하나의 세상에 있게 된다. 그림자가 없다는 이야기는 석가모니는 현세의 부처이기 때문에 분별을 하지 않고 분별이 없는 것을 상징적으로 그림자가 없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석가탑은 애초에 그림자가 없는 탑이었다. 아사녀는 결국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탑의 그림자가 생기길 기다린 것이다. 아름다운 전설이지만 자비의 부처님 전설에 희생된 아사녀의 이야기는 어쩌면 종교가 가진 한계를 보여주는 서글픈 이야기다.석가탑과 다보탑은 두 부처님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아미타불이 과거의 부처이며 서방 극락세계의 교주라면 다보여래는 동방보정세계의 교주다. 몸 전체가 진신사리가 되어 보석처럼 빛나는 화려한 탑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스스로 어느 곳이든 법화경을 설하는 곳에 나의 보탑이 솟아나와 그 설법을 증명 하리라 하였다. 석가모니 부처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할 때 역시 보탑이 솟아 나왔다 하여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석가탑과 다보여래를 상징하는 다보탑을 함께 조성한 것이다. 석가탑은 2단의 기단 아래 자연석의 기반이 있다. 석가모니가 앉아있던 바위를 상장한다. 남산 용장사지의 석탑이 바위 위에 앉은 모습이 연상된다. 석가탑의 해체 복원 시 사리함과 함께 무구정광 다라니경 목판 인쇄본이 나왔다. 이 목판 인쇄본은 최초의 목판 인쇄기록을 바꾸는 중요한 문화재로 천년이 넘은 한지의 우수성도 함께 입증되었다. 다보탑의 다섯 기둥으로 이루어진 기단부의 안쪽에 있었을 것이라 예상한 사리장엄구와 이불 병좌상이 없는 것은 일제 때 해체 복원되며 사라진 것이라 추측한다. 이불 병좌상은 다보여래가 자신의 보탑 안에 자리의 반을 내어주어 석가모니 부처와 다보여래가 함께 나란히 앉은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해체복원이 원래의 상태대로 복원해야 하는 것이나 불국사나 석굴암을 비롯한 여러 문화재가 그렇지 못하였다. 불국사의 석축을 보면 원형의 석축과 복원된 석축이 확연히 다른 것이 보인다. 원래의 석축은 크고 넓은 자연석위에 그랭이질 된 장대석을 얹어 자연과 인고의 조화를 보여주는 한편 그랭이 공법으로 잘 맞춰진 석축은 지진을 버텨낼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여러 전란에도 불구하고 불국사의 석축 등이 버틸 수 있던 것도 이러한 우리만의 독특한 기술 때문이었다.불국사의 대웅전의 영역은 기하학적으로도 거의 완벽하다. 청운교 백운교 자하문 대웅전 무설전은 정확히 중심이 일치하는 직선상에 놓여 있으며 석가탑과 다보탑, 영역을 구획하는 회랑은 그 중심축에서 완전히 대칭이다. 또 석가탑과 다보탑의 중심거리의 반을 기준 척으로 계산하면 대웅전 영역의 가로는 기준척의 네 배고 길이는 다섯 배가 된다. 또 석가탑과 다보탑의 하부 기단너비는 같으며 대웅전의 폭은 이 기단 너비의 세배가 된다. 또 대웅전 영역의 전면 두 꼭지 점과 대웅전 뒷벽의 중심을 연결하면 정삼각형이 된다. 기준척도를 가지고 그 비율로 만들어낸 정확한 규칙이 보인다. 이 완벽한 대칭은 다보탑과 석가탑의 형태에서 깨진다. 백제 미륵사의 경우 같은 쌍탑 이지만 두 탑의 모양이 같다. 이에 비해 불국사는 그 대칭의 경직성이 두 탑에서 깨진다. 그 깨진 대칭은 영역 전면의 양 끝에 범영루와 자경루에서 회복된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간결한 석가탑의 연장선에 있는 범영루는 누각을 받이는 석조의 화려한 주초부터 건물까지 화려함을 자랑하고 화려한 다보탑의 연장선에 있는 자경루는 꾸밈없이 간결하다. 양쪽이 간결함과 화려함을 나눠서 그 무게감을 맞추어 대칭속의 비대칭, 비대칭 합의 대칭을 완벽하게 구현 하였다.아미타 부처가 있는 영역은 그 지반의 높이와 계단의 단수가 낮다. 극락왕생을 빌어준다는 그 극락이 이곳이니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계단을 오르내렸을까? 연화교와 칠보교를 통해 들어가는데 이는 극락정토가 연화와 칠보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이를 의미한다. 서방 극락정토의 부처님을 만나러 올라가는 연화교의 계단석 바닥에는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다. 한 장의 꽃잎으로 볼 수도 있고 한 송이의 꽃으로 볼 수도 있다. 꽃잎이라 보면 꽃잎을 즈려밟고 오르는 것이고 꽃송이라면 피지 않은 봉우리를 보며 올라가서 부처님을 만나고 내려올 땐 부처의 법력으로 활짝 핀 연꽃을 보며 내려오는 형상이 된다. 나는 후자에 무게를 두고 싶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청운교와 백운교의 축소판이고 조금 간결해진다. 안양은 극락의 다른 이름이다. 아미타불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의 이름은 안양문 이고 아미타불을 모신 불전은 극락전이다. 아미타불은 화엄종에서 본존불로 모시는 극락정토의 부처이며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부처님으로 우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부처님이다. 불국사는 경덕왕 때 지어졌다고 하나 무설전은 문무왕 때 지어졌고 대규모 사찰이 아닌 작은 사찰로는 경덕왕 이전에 존재 했으며 경덕왕 때 대규모로 중수되어 큰 사찰이 완성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80여종 2000여 칸의 건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경덕왕은 불국사 외에 석굴암을 조성하였고 불교유적의 보고인 남산과 월성의 남쪽 끝을 연결하는 월정교를 축조하는 등 신라의 대표적 유적들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불심과 효심이 깊고 예술적 감각도 뛰어난 성군이 아니었을까 싶다. 임진왜란 때 석조물과 일부 건물만 남기고 전소 되었고 중수와 방치를 거쳐 박정희 전 대통령 때 문화공보부 시절 지금의 모습으로 보수 복원 되었다.복원된 현재의 불국사가 원형에 비해 미흡하다는 지적들이 많음에도 지금의 모습으로도 우리의 대표적 유적중 하나로 손색이 없다. 불국사 앞의 마당과 연못을 비롯 원형이 복원된 모습을 상상해본다. 경주에 가면 작년 가을에 복원된 월정교도 꼭 들러보시길 권한다.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가 생각나는, 누각으로 덮인 누교로는 유일한 다리다. 원효대사가 요석궁에 머무를 시간을 벌기위해 일부러 물에 빠져서 옷을 젖게 하여 요석공주와 설총을 만들었다는 낭만적인 설화가 깃든 곳이니 사랑하는 이와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글 사진: 최세일 한건축 대표
  • 안양시 가장 큰 관광자산 ‘예술공원’ 활성화 나선다.

    안양시 가장 큰 관광자산 ‘예술공원’ 활성화 나선다.

    경기도 안양시의 가장 큰 관광자산은 만안구 석수동에 있는 ‘안양예술공원’으로 나타났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9월 기준 안양시 주요 관광지점 4곳 중 안양예술공원 관광객이 45만 269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김중업박물관(3만 7316명), 안양천 생태이야기관(3만 3785명), 병목안 캠핑장(1만 9916명) 순이었다. 2017년 기준 인근 광명시 광명동굴은 한 해 동안 관광객 119만 2262명이 찾았다. 13일 시에 따르면 지역 명소이자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주 무대인 안양예술공원 활성화와 관광상품 개발을 역점사업으로 100만 관광객 유치에 나선다. 이를 위해 시는 관광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4대 전략을 세웠다. 관광진흥 기반을 마련하고 관광정보 안내시스템을 새로 구축한다. 글로벌 관광마케팅에 힘을 쏟고, 관광상품 개발·콘텐츠도 확충할 방침이다.주요 세부계획으로 시는 용역을 의뢰해 안양예술공원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만안각 부지 활용과 교통문제 해결 방안도 포함하며, 9월 용역 최종보고회를 연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하는 관광분야 공모에도 적극 나선다, 5월부터는 관광호텔과 여행업 관계자, 관광지 상인 등이 참여하는 간담회를 정기적으로 열어 의견 수렴에 나설 계획이다. 여행사를 대상으로 여행상품 기획공모전을 연다. 온라인 홍보를 강화하는 등 관광정보 안내시스템도 새로 만든다. 인근 관악역에서 예술공원까지 재미있고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유도안내판을 11월까지 설치할 예정이다. 안양 8경과 문화재 안내 이정표를 정비하거나 새로 만들고, 주변 볼거리를 소개하는 리플릿을 상반기 중 제작할 예정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관광기자단을 늘려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한 홍보도 강화할 계획이다. 객관적 관광통계자료 확보를 위해 현재 3개소인 주요관광지 입장객 통계지점을 7곳으로 확대한다. 주요관광지점으로 등록하려면 객관적 데이터로 인정받을 수 있는 3D 출입통계시스템을 설치해야 가능하다.관광도시의 안양의 얼굴 홈페이지도 새롭게 꾸민다. 7월부터 운영 예정인 홈페이지는 가상현실(VR) 체험과 다양한 문화관광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방문객과 공급자 간에 쌍방향 소통채널이 가능하며, 글로벌 트렌드에도 맞췄다. 예술공원과 병목안, 범계∼평촌, 안양1번가 등 지역 명소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해 전문가를 초청 팸투어를 실시한다. 또 국내에서 하나뿐인 석종으로 문화적 가치가 높은 ‘석수동 마애종’을 국보 및 보물 승격을 위한 연구용역을 추진한다. 신라말 고려초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마애종은 바위에 새겨진 조각기법이 사실적이고 섬세해 범종 연구에 중요한 사료다. 바위면 전체를 종각으로 삼고 종을 치는 스님을 동자승으로 묘사한 것이 특징적이고 이채롭다. 관양동 청동유적지 정비계획도 올해 수립할 예정이다. 수도권 남부에 위치한 안양시는 도시기반이 잘 마련된 사통팔달 교통 요지로 관광도시 조건을 두루 갖췄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안양천을 비롯 진산인 관악산과 삼성산, 수리산이 있어 자연환경도 수려하다. 하지만 ‘경기도 명소 100선’엔 안양예술공원 단 한 곳만이 시의 지역명소로 올랐다. 글·사진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우주를 보다] 가장 아름다운 남반구 하늘 -아타카마 사막 ‘은하수 폭포’

    [우주를 보다] 가장 아름다운 남반구 하늘 -아타카마 사막 ‘은하수 폭포’

    가장 아름다운 남반구의 밤하늘을 보고 싶다면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이 으뜸일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하고 빛공해가 없어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들과 은하, 성운들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밤하늘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천체사진 작가가 폭포를 발견하여 더욱 환상적인 밤하늘 풍경을 연출한 것이 12일 미 항공우주국(NASA)이 운영하는 '오늘의 천문사진(APOD)'에 올라 우주 마니아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작가는 이 사막의 한 지역에서 바위 위를 타고 내리는 폭포를 발견하여, 폭포의 물과 밤하늘 풍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시간을 계산한 후, 은하수가 상승하고 폭포의 수량이 많을 때를 골라 이 작품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어떤 사진이 나왔을까? 우선 파노라마같이 아름답게 펼쳐진 사진의 풍경 속에는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가 폭포 위로 흘러내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폭포 꼭대기에는 일등성 센타우루스자리 베타 별이 밝게 빛나고 있다. 또 그 위로 보이는 밝은 별들은 남십자자리다. 센타우루스자리나 남십자자리는 다 같이 일등성을 두 개씩 가진 별자리니까, 이 좁은 영역 안에 일등성이 4개나 모여 있는 셈이다. ​그리고 남십자자리주위에 거뭇하게 보이는 부분은 암흑성운인 석탄자루(Coalsack) 성운이고, 눈길을 왼쪽으로 돌리면 그 유명한 대-소마젤란 은하가 바로 눈에 띈다. 둘 다 우리은하의 위성은하로, 탐험가 마젤란이 1519년 남태평양을 지날 때 발견했다 하여 마젤란 구름(Magellanic Cloud)이란 이름을 얻었다. 당시에는 은하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천문학자들의 새로운 연구에 의해 대마젤란은하(LMC)가 우리은하를 향해 충돌 코스로 돌진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충돌 시기는 약 20억 년 후로, 이는 과학자들이 80억 년 내로 예상한 이웃 은하 안드로메다와의 충돌보다도 훨씬 빨리 이뤄지는 것이다. ​만약 충돌이 일어나면 시뮬레이션 상에는 지구가 속한 태양계는 성간 우주로 날아가버릴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인간이 20억 년 후의 일을 걱정하는 것은 하루살이가 겨울나기를 걱정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일이니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닌 듯하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아하! 우주] 누구있나요?…6광년 거리 슈퍼지구에 생명체 가능성

    [아하! 우주] 누구있나요?…6광년 거리 슈퍼지구에 생명체 가능성

    지구에서 불과 6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른바 '슈퍼지구'에 외계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주요언론은 외계행성 ‘바나드-b’ 표면 아래에 원시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처음 발견된 바나드-b는 뱀주인자리의 어두운 별인 바나드(Barnard)의 주위를 도는 외계행성이다. 지구와 같은 바위형 행성이지만 표면온도가 -130℃도 넘는 차가운 얼음왕국인 바나드-b는 항성을 233일 만에 공전한다. 항성과의 거리로만 보면 태양과 수성 사이 정도지만 바나드가 태양과 비교하면 약 0.4%의 빛을 방출해 표면에 액체상태의 물은 없고 얼음만 가득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가혹한 조건 때문에 당초 전문가들은 외계생명체의 존재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나 최근 연구결과는 다르다. 지난 10일 빌라노바 대학 연구팀이 시애틀에서 열린 미 천문학회 연례회의에서 바나드-b 내 생명체 존재가능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것.연구를 이끈 에드워드 귀난 박사는 "바나드-b의 표면에서는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없지만 그 아래는 다르다"면서 "바나드-b는 그 코어에 뜨거운 액체상태의 철과 니켈을 가지고 있을 수 있어 지열난방을 통해 원시적인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같은 지열난방은 남극대륙에서 발견되는 지하호수의 조건과 마찬가지"라면서 "표면 아래에 바다가 숨겨져있을 것으로 보이는 목성의 달 유로파와도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바나드-b는 지난해 11월 미국의 카네기 연구소, 스페인 우주과학 연구소 등 국제공동연구팀이 지난 20년 간 이루어진 관측 데이터를 재분석한 끝에 발견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유력한 외계행성 후보로, 보다 확실한 데이터는 차세대 우주망원경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이 배치돼야 알 수 있으나 2021년 이후로 발사가 연기된 상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바나드 별은 90억 년 정도의 나이로 우리 태양보다 2배는 더 많다. 이 때문에 주위 행성 역시 지구보다 훨씬 오래 전 생성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중 바나드-b는 역대 발견된 것 중 2번째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외계행성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계는 3개의 별이 모인 삼성계인 알파 센타우리로 지구에서 약 4.3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수원시 10일 새벽 버스파업시 대체버스 투입

    수원시는 경기지역자동차노동조합 산하 8개 버스회사 노조가 10일 오전 4시부터 전면파업 돌입을 예고한 가운데 버스노선운행 중단 시 전세버스와 관용버스를 투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기지역 파업참가 예상 노조는 수원과 화성의 경진여객운수·삼경운수,안양 보영운수·삼영운수,안산 경원여객·태화상운,부천 소신여객,시흥 시흥교통 등으로 이들 회사는 157개 노선에 1925대 버스를 운행 중이다. 수원시는9일 염태영 시장 주재로 버스 파업 긴급점검 회의를 열고 경진여객·삼경운수가 파업에 돌입해 해당 노선 운행이 중단되면 10일 오전 출근시간대에 전세버스 27대(58회 운행)와 관용버스 5대(5회 운행)를 투입해 시민 불편을 최소화 하기로 했다. 경진여객은 수원역과 서울 사당역·강남역, 서울역을 오가는 광역버스3000·7770·7780·7790·7800·7900번을, 삼경운수는 수원 고색동과 성남시를 오가는 광역버스 2007번과 수원을 경유하는 좌석버스 300번을 운행하고 있어 파업으로 운행이 중단되면 서울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의 불편이 불가피하다. 버스파업에 대비해 수원시는 10일 오전 5시부터 8시 30분까지 수원역과 선바위역(지하철4호선·과천)을 오가는 전세버스를 운행한다. 국도1호선 지지대고개에서 병점역(화성시)에 이르는 구간(300번 운행 노선)에는 관용버스 5대를 투입한다. 대체버스 투입과 함께 개인·법인택시 4707대는 버스파업이 끝날 때까지 부제를 일시 해제한다. 염 시장은 “파업으로 버스운행이 중단되면 시민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많은 불편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므로 전철 등 대체 교통수단을 미리 확인해 이용해 달라”라고 당부하면서 “버스업체와 운수종사자들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서로 한발씩 양보해 시민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해 달라”라고 말했다. 또 10일 새벽부터 수원시 공무원을 주요 버스정류장에 배치해 시민들에게 운행 중단 사실을 알리고 대체 교통수단을 안내할 예정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여주박물관 11일 부터 ‘매듭, 전통을 잇다’ 전시회

    여주박물관 11일 부터 ‘매듭, 전통을 잇다’ 전시회

    여주시 여주박물관은 11일부터 2월 17일까지 ‘매듭, 전통을 잇다’라는 전시회를 연다고 9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여주박물관 전통문화교육 ‘재미있는 우리 매듭’의 수강생들이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이수자인 박양자 선생의 지도아래 바쁜 일상 속에서도 전통의 맥을 계승하는 작업에 자부심을 가지며 그동안 갈고 닦았던 기량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노리개와 주머니, 예단보, 조바위 등 40여점의 공예 작품을 통해 전통매듭에 대한 이해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여주박물관에서는 시민들에게 전통문화 체험의 기회와 전문 문화예술인으로의 양성을 위해 매년 닥종이 인형, 전통매듭, 전통서예, 민화, 봉산탈춤 등의 강좌를 운영하고 있으며 수강생들의 작품을 전시하거나 공연을 개최하여 시민이 중심이 되어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지켜나가는데 앞장서고 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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