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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新부자들

    일본의 新부자들

    |도쿄 이춘규특파원|‘현찰만 1억엔(약 8억원)이 넘는 87만명(노무라종합연구소 추정)의 신(新)부유층을 잡아라.’ 일본의 억만장자인 신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소비나 마케팅 전략이 각 기업들의 뜨거운 관심사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1945년 이전에 태어났고, 부모 등으로부터 상속재산이 많은 과거의 부유층과 대비된다. 경제주간 전문 다이아몬드는 10일 발행된 최신호 표지이야기를 통해 벤처기업 등을 창업하거나 외국계 금융회사의 투자분석가 등으로 활약, 스스로 자산을 획득한 30∼40대 신부유층을 집중분석, 옛부유층과 대비시켰다. 신부유층은 검소하고, 자기를 잘 드러내지 않았던 옛 부유층과 대비됐다. 골프와 보석 수집에 열중이고,1주일에 8000만엔(약 6억 5000만원)인 제트기를 빌려 여행도 한다.1병에 50만엔인 위스키 200병을 발매 당일 매진시키는 소비력도 보여줬다. 다이아몬드 분석에 따르면 신부유층은 투자의욕이 왕성하고 소비의욕도 높다. 이세탄, 다카시마야, 미쓰코시 등 고급백화점에서 카르티에, 롤렉스, 루이뷔통, 페라가모 등의 명품을 소비한다. 한 끼에 10만엔 이상의 외식도 즐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도 안 쓴다. 벤츠, 포르셰,BMW, 아우디 등 외제 고급승용차를 선호하며 도쿄시내의 롯폰기힐스나 미나토구 아자부주방 등지의 초고층 호화맨션에 집단을 이뤄 거주한다. 밤에는 맨션이나 나가노현 가루이자와 등지의 별장에서 홈파티를 열어 새로운 ‘인맥 구축’에 열성을 보인다. 특히 연간 1억원 안팎의 호화자녀교육도 주저하지 않는다. 영국, 스위스, 미국 등의 나라를 위주로 유치원에서 고교까지 고급 사립학교에 유학을 보내 연간 1000만엔 정도는 보통이다. 초명문교는 연간 1500만엔(약 1억 2000만원)이나 든다. 자산운용도 공격적이다. 옛부유층은 장기국채 등 보수적인 자산운용이 주류였지만, 신부유층은 ‘고 위험-고 수익’의 해외 주식·펀드는 물론 하와이 등지의 부동산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금요일 밤 고급 외제승용차를 타고 교외의 별장으로 가 홈파티를 즐긴다. 별장소유욕으로 인해 가루이자와 일부 별장지역은 땅값이 7년 전의 3배까지 폭등했다. 물론 신부유층 가운데도 질박한 생활을 하는 부류도 적지 않다. 이런 신부유층은 개인성향이 강해 양극화 문제의 상징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동시에 고급와인, 자동차, 요트, 보석 등 고급품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어 ‘신부유층 사업’도 성업 중이다. 그렇긴 하지만 “신부유층은 스스로 돈을 벌었다. 대대손손 물려받은 옛부유층과 달리 자신의 노력으로 재산을 만들었다. 그들은 구두쇠도, 바보도 아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 다이아몬드의 결론이다. taein@seoul.co.kr
  • “하늘도 감동받을 이런 사랑 본 적 있습니까”

    “하늘도 감동받을 이런 사랑 본 적 있습니까”

    “보통 사람으로는 실천하기 어려운 게 바로 이런 정도의 부부애가 아닐까요?” 대소변 가리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제대로 씹지를 못해 끼니마다 입으로 꼭꼭 씹어 입에 흘려 주어야만 하는 식물인간 남편을 무려 7년째 병구완하고 있는 부부애.이런 눈물겹고 애달픈 사랑을 당신은 본 적이 있습니까. 중국 동북부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에 살고 있는 한 40대 부부는 일반 사람들은 물론 하늘도 감동받을 만큼 애절한 부부애를 보여주고 있다고 신문화보(新文化報)가 21일 보도했다. ‘도저히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화제의 주인공은 리펑룽(李鳳榮·44)·류즈푸(劉志夫)씨 부부.7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들 부부는 11살짜리 딸과 5개월된 아들을 둔,가난하지만 웃음 꽃이 넘치는 화목한 가정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 1999년 여름 어느날 저녁,불행의 그림자가 리씨의 집안을 덮쳤다.미장공으로 일하던 남편 류씨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술 취한 사람으로부터 깡통으로 머리를 맞았다.그는 그 자리에서 넘어지며 깡통으로 얻어맞은 머리가 또 다치는 바람에 그만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리씨 가족의 운명은 일시에 급변한 것이다. 남편 류씨가 머리 수술을 받은 뒤 28일만에 퇴원,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은 것은 류씨로서는 거액인 4만 위안(약 480만원)이라는 빚 뿐이었다.하지만 류씨는 모아놓은 돈도 없고,제대로 씹을 수 없어 오직 유동식 밖에 먹을 수 없을 정도 건강도 좋지 않고…….재앙은 여러번 겹쳐 온다는 고사성어 ‘화불단행(禍不單行)’ 그 자체였다. 이때부터 부인 리씨는 끼니마다 자신이 꼭꼭 씹은 밥 등을 남편의 입으로 흘려내리면 남편은 그냥 꿀꺽 삼켰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남편에게 밥을 먹이려면 적어도 1시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같은 정성스런 리씨의 보살핌 덕분에 얼굴의 혈색이 좋은 등 남편 류씨의 상태는 점점 호전됐다.9개월이 지난 어느날 리씨가 남편에게 “제발 눈 좀 떠봐요.”라고 말하자,천천히 눈도 뜨고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 ‘기적’같은 일도 생겼다. ‘기적 같은 일’이 생겨도 그녀의 어깨는 무겁기만 했다.끼니마다 여전히 꼭꼭 씹어 남편에게 먹여야 하고,대소변도 받아내야 하는 등 보살펴야 하며,적수공권에 가족 4명을 벌어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마저도 져야 하는 탓이다. 이 때문에 이웃 주민들은 “당신은 정말 바보같은 사람”이라며 개가할 것을 권유했다.그러나 그녀는 초롱초롱한 아이들과 병든 남편이 눈에 밟혀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 리씨는 복통과 두통에 시달리고,혈액순환 부족 등으로 배가 점점 커지고 있다.배가 불러 제대로 앉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하지만 돈이 없는 제대로 검사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마을 전체에 건강검진이 있었는데,그때 의사는 리씨에게 “당신은 지금 자궁근종을 앓고 있다.”며 “하루 빨리 수술을 받지 않으면 목숨마저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지만 수술을 받을 수 없다.물론 돈이 없기 때문이다.리씨는 집으로 돌아오다 길거리에 서서 소리없이 통곡을 했다.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 마을 주민이 2000위안(약 24만원)이라는 큰 돈을 주면서 “몸이 워낙 위중하니 수술비에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보태 쓰라.”고 해 그녀는 고맙게 받았다. 그 돈으로 다시 병원으로 가 진찰을 받았다.하지만 리씨에게는 또 걱정거리가 있다.그녀가 수술을 받는 동안 누가 끼니마다 밥을 꼭꼭 씹어 남편에게 밥을 먹여 주겠냐?는 것이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내 탓이오! /손희송 신부·가톨릭대 교무처장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사람답게 되어간다. 그런데 사람이 서로 어울려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각자 독특한 개성과 목적이 있기에 조화보다는 갈등과 다툼의 상황이 자주 빚어진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보통은 자기 탓은 접어두고 남의 탓부터 지적한다. 일이 어그러지면 대개는 나의 탓도 있고 남의 탓도 있게 마련인데 서로 남의 탓만, 남의 원망만 하니까 원만한 수습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이렇게 공방전이 오가면 둘 사이의 어긋난 관계가 풀리기는커녕 더 꼬이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예수님은 ‘남의 눈에서 티를 빼 내기 전에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마태 7,5)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따라 남의 허물을 탓하기에 앞서 자기의 탓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내 탓이오.’ 한다면, 일의 해결이 훨씬 더 수월해질 것이다. 어떤 젊은 부부는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부부싸움을 시작하더니만 툭하면 말다툼을 해서 며칠씩 말도 안 하고 냉전을 계속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의 옆집에는 중년의 내외 가정이 있었는데 여덟 식구가 비좁게 사는 데에도 항상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이들은 새 살림 차린 젊은 부부를 자기 자식처럼 생각해서 매일 복도도 쓸어주고는 하였다. 어느 날 그 신혼부부는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에서 이웃집 아저씨를 모셔다가 술대접을 했다. 술이 몇 잔 돌아간 다음 젊은 남편이 물었다.“아저씨,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저희는 결혼한 지 겨우 3개월밖에 안 됐는데 사흘이 멀다 하고 부부싸움을 하게 됩니다. 벌써 이러니 어떻게 평생을 살아갈지 걱정입니다. 아저씨가 참 부럽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대가족을 거느리고 항상 화목하게 지내십니까?” 그 아저씨는 빙긋이 웃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다.“이보게, 싸움을 한다는 것은 서로가 너무 잘나서 그런 거야. 나는 항상 잘했고 다른 사람은 잘못했다는 생각이 없어지는 날, 그 가정은 화목할 수 있어. 예를 들어서 방 한가운데에 물그릇이 있었는데 누가 엎질렀다고 해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엎지른 사람이 부주의해서 그렇다고 야단치겠지. 그러면 엎지른 사람은 누가 물그릇을 여기에 놨느냐고 대들 거야. 그러나 서로 잘못했다고 해보게나. 물을 엎지른 사람은 ‘아, 내가 조심을 하지 않아서 그래요. 죄송합니다.’ 물을 떠온 사람은 ‘아니에요. 하필이면 내가 왜 물그릇을 방 가운데 두었을까? 내 잘못이에요.’ 또 옆에 있던 사람은 ‘아니야, 물그릇이 방바닥에 있는 것을 보고도 치우지 않은 내가 잘못이지. 미안해.’” 그 아저씨의 말을 들은 젊은 부부는 그날부터 생각과 말을 바꾸었다.“너 때문이야.”에서 “내 탓이야, 미안해.”로. 물론 치열한 생존경쟁의 사회에서 자기 탓을 인정하면 손해 보고 바보가 되기 쉽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보스러운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해서 세상은 조금씩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된다. 이런 바보스러움과 우직함이 가정에서부터 실천됐으면 좋겠다. 사실 연인사이, 부부사이에 자신이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 ‘지는 것이다.’,‘자존심 상하는 것이다.’고 여기면서 끝까지 싸우거나, 어느 한쪽이 토라져 몇 주씩 말을 안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부모들도 자기 자식이 일방적으로 손해볼까봐 노심초사한다.“그래 네가 잘 졌다. 때로는 지는 게 이기는 거란다. 부부관계가 순탄하려면 마음을 넓게 가져야 한다.”고 타이르는 부모는 적고,“네가 무슨 죄졌니? 아니면 병신이냐? 초장에 버릇 잡지 못하면 평생 고생이니 알아서 해라.”라고 펄펄 뛰는 부모가 많다. 부모 스스로 팽팽하고 긴장된 관계를 늦추기 위해 자존심을 접고 자신의 탓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일 때 자녀들도 자연히 그것을 보고 배우게 될 것이다. 이런 가정이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남 탓만 하면서 다툼이 그칠 줄 모르는 우리 사회도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손희송 신부·가톨릭대 교무처장
  • [깔깔깔]

    ●금상첨화 `왕비 병´이 심각한 엄마가 음식을 해놓고 아들과 함께 식탁에 앉았다. “아들아 엄마는 얼굴도 예쁜데 요리도 잘해 그치?이걸 사자성어로 하면 뭐지?” 엄마가 기대한 대답은 ‘금상첨화’ 아들이 대답하길 “자화자찬” “아니 그거말고 다른 거” “과대망상요?” “아니 ‘금’자로 시작하는 건데” 아들의 답 “금시초문”●그 아버지에 그 아들 아들 삼형제와 아버지가 달력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막내:월 화 수 목 ‘김’ 토 일 둘째:이런 바보, 김이 아니라 금이야. 월 화 수 목 금 ‘사’ 일. 첫째:아니, 이런 멍청이. 그건 사가 아니라 토야. 자, 봐. 월 화 수 목 금 토 ‘왈’. 이걸 보고 있던 아버지가 “니네들 한문 실력이 왜 그 모양이냐?얘, 막내야. 아빠가 가르쳐 줄 테니 ‘왕’편 좀 갖고 와라.”
  • 자녀에게 해서는 안 될 10가지 말

    자녀에게 해서는 안 될 10가지 말

    흔히 ‘산 너머 산’라고 하지요. 힘든 일을 간신히 넘기고 이젠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고 좋아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암초에 다시 부딪혔을 때 쓰는 푸념의 말. 요즘 제 아내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입니다. 큰아들이 작년 고3 때 억세게 애를 먹이더니 이젠 고1인 둘째놈이 바통을 넘겨받았습니다. 틈만 나면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고, 밤늦게까지 TV 보는 게 낙인 듯싶습니다. 저나 제 엄마가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더 기세등등해집니다. 보다 못한 제가 그놈 뺨을 철써덕 때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거의 6개월간 집안 분위기는 ‘북극’이었습니다. 제가 ‘그건 사랑의 매였다. 모두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아니겠니?’라고 사과 편지를 써서 간신히 화해(?)는 했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속으로 ‘참아야 하느니라’를 기도문처럼 외웁니다. 그런데 잘 참았다 싶으면 이제는 아내가 “왜 당신은 가만히 있기만 해요? 애는 나 혼자 키우나요?” 하며 제게 ‘불화살’을 돌리기 일쑤지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자식들을 꾸짖다가도 결국 모범模範을 보이지 못한 우리 부부의 잘못이 제일 크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마침 얼마 전에 ‘자녀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열 가지 말’이란 책의 기획서를 받아 보았습니다. 전 그걸 복사해서 한동안 상의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지요. 자식들에게 이런 무심하고 독한 말로 상처를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말은 매보다 백배, 천배 큰 고통을 줄 수도 있습니다.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믿음과 사랑을 쏟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포기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①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②시끄러워! 너는 왜 만날 말을 안 듣니? ③내가 분명히 안 된다고 했지? ④더 이상 상관하지 않을 테니 네 마음대로 해! ⑤100점만 맞아봐. 네가 원하는 것 다 사줄게. ⑥그렇지…. 네가 그럴 줄 알았어! ⑦너 또 틀렸어. 바보같이! ⑧보아 하니 큰 인물 되긴 아예 글렀구나! ⑨너는 왜 남들처럼 못 하니? ⑩그렇게 놀기만 하고 언제 공부할래? 발행인 김성구 월간<샘터>2006.09
  • 내 꿈은 그대를 꿈꾸게 하는 것

    내 꿈은 그대를 꿈꾸게 하는 것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에요. 우연한 기회에 교회에서 추수감사절 기념 연극을 하게 됐지요. 친구들 왈, 형이 연극을 하니 이 중 네가 제일 낫다, 한 번 앞장서 봐라, 하는 거예요. 그렇게 ‘돌아온 탕아’를 연출했지요. 그 때 그 교회의 분위기와 정서가 아직도 내게 남아 있어요. 생각해봐요, 전구에 마분지를 말아서 조명을 대신했던 그 소박한 풍경들을. 한젬마 어떤 아이였나요, 어렸을 때에는. 유인촌 숫기 없고 얌전하고 소풍가서 나서지도 않았고.... 평범했지요. 한젬마 그 아이가 자라서 이런 멋진 배우가 되었네요. 유인촌 무언가가 잠재되어 있었겠지요. 안으로 정열을 숨겨 놓는 ‘배우’가 그래서 내게 맞는 거 같아요. ‘배우’ 얘기가 나온 김에 잔소리 좀 합시다. 내가 95년 이후 방송 안 하고 연극만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그 이유가 이런 겁니다. 닫힌 화면 속과 열린 무대 위의 연기는 달라요. 앞사람은 표정으로 말하지만, 뒷사람은 온몸으로 제 속의 것을 토해내는 겁니다. TV는 현실의 자연스러움을 구하지만, 연극은 자연스러움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필요로 해요. 안으로 힘이 쌓여서 밖으로 우러나오는 또 다른 이미지를 요구하는 거지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요즘 등장하는 많은 연기자들은 그저 자기가 가진 재주를 소진해버리고는 온다 간다 말없이 사라져버리잖아요. §이룰 수 없는 꿈을 꾼다고 해도. 한젬마 가슴에 묻어 두었던 응어리를 토해내시는 군요. (웃음) 대표님의 현재의 꿈도 알고 싶어요. 사람은 늙을 때까지 꿈을 꾸잖아요. 유인촌 내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언제부턴가 ‘돈키호테’를 좋아하게 되었지요.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이룰 수 없는 꿈을 꾼다고 해도, 물리칠 수 없는 적과 싸워야 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참아야 해도....” 겉으로 읽어서는 이 구절을 찾을 수 없어요. 구석구석 숨어 있던 것을 내가 찾아낸 거지요. 그게 벌써 2, 30년 전의 일이고, 돈키호테가 나한테 준 이런 삶의 태도와 자세를, 현실에서 실행하기 어렵다면 무대에서라도 한번 이뤄보자 한 것이 내 평생의 숙제가 되었지요. 아, 참 현재의 꿈이 무엇이냐는 게 질문이었지. 그런데 말이에요. 꿈을 낮에 꿀 수는 없고 잠 든 밤에 꾸는 것 아닙니까. 또 꿈은 현재의 삶을 되비추는 것인데 현실이 어두울 때 내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잠 속에서 어떤 꿈을 꾸게 될까, 솔직히 나는 조금 두려워요.... 한젬마 얘기가 조금 다른 곳으로 흘러가네요. (웃음) 유인촌 잘 생각하면 다른 얘기가 아닐 겁니다. 꿈을 잡을 수 없는 불확실한 실체라고 할 때 우리 예술가들의 역할은 바로 이 부분, 사람들을 꿈꾸게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배우가 뭐고 작가가 뭡니까. 무당 곧 영매(靈媒) 아닌가요? 결국 몸을 태워서 자신을 팔아서 중생을 살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요즘 누가 예술가를 그렇게 보겠어요. 이건 이른바 우리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계층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말로는 예술이 사회를 정화시킨다 하지만, 막상 속내를 들여다보면 예술을 너무 가볍게 봐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지요. 결국은 예술가들이 그들을 각성시켜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그 역할을 못하고 오락을 제공하는 광대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한젬마 문화의 최전방에서 몸으로 부딪쳐 일하시기 때문에 더욱 절절하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유인촌 내가 돈키호테 구절을 여러 사람들한테 들려주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자, 이길 수 없는 대상과 싸워 이기자.... 이것, 바보 같은 짓이지요. 요즘 세태에 어울리지 않으니까. 질 게 뻔한데 누가 도망가지 않고 싸우겠어요. 간단히 정리해서, 괴롭고 마주 대하기 싫은 것들을 자꾸 얘기해서 일깨우는 게 우리 배우들의 꿈이라고 해둡시다. 한젬마 사람들을 꿈꾸게 만드는 게 나의 꿈이다, 멋진 말이네요. 그럼, 꿈꾸기 싫어하는 사람들과 싸웠을 때 그 결과는 어땠나요. 유인촌 피바다가 되지. (웃음) 그러거나 말거나, 성패에 관계없이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인간이 할 일이고, 인간은 또 그렇게 살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인생은 비극! 한젬마 어느 사이에 꿈을 정리해 주셨네요. 그래도 아직 대표님께서 지금 가슴에 품고 있는 꿈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시진 않으셨어요. 유인촌 야, 참 질기다. 요즘에 누가 이런 얘기해요. 누가 꿈 얘기하면서 현실을 다그쳐요? 오히려 사람들은 내게 이런 얘길 합디다. 유별나게 굴지 말고 편하게 살라고. 뭐 대단한 일 한다고 방송 접고 극단 만들고 극장 짓느냐고. 사서 고생하고, 돈 들어가는 일이니까 틀리지 않은 말이지요. 물론 지금이라도 당장 사는 방식을 바꿀 수 있지요.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요? 결핍되었기 때문이지요.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뭔가가 날 자꾸 긁는 거지요. 한젬마 그 결핍을 표현할 때 가장 가까운 단어는 무엇일까요. 어떤 것에 대한 결핍일까요. 유인촌 그건 알아서 판단하세요. (웃음) §물리칠 수 없는 적과 싸워야 해도, 한젬마 이런 얘기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우리에게 제일 큰 적은 역시 내면에 존재해요. 누구나 다 약점이 있고 콤플렉스가 있을 텐데.... 유인촌 내 콤플렉스요? 재미없고, 개성 없고, 무미하고.... 자질이, 재료가 뛰어나지 못하다는 생각을 늘 해요. 하지만 그런 평범함 덕분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겠지요. 너무 두드러지거나 개성이 강하면 쓰임새가 한정되니까. 문화재단 일만해도 그래요. 내가 대표직을 맡는다니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저 인간이 어떻게 규칙적인 일에 적응 할 수 있을까, 하고. 하긴 나도 조금 낯설기는 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젬마 그렇담, 가장 두렵고 힘든 일은 무엇인가요. 유인촌 우선 내부적으로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역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라고 해야겠지요. “예술가는 말이야,” 난 이런 원론적이고 재미없는 표현을 자주 써요. 되게 보수적이죠. 나는 선배들한테 조건 없는 희생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나 역시 후배들한테 내리사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이렇게 구닥다리 인생을 살아왔으니 사람들에게 “왜 예술가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는 거요?”라는 듣기 싫은 소리를 자꾸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또 마음에 맞는 동지를 찾기가 쉽지 않은 거지요. 한젬마 외로우신 거군요. 유인촌 강한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약해요. 고집 센 것 같지만 내 생각을 끝까지 강요하지도 않아요. 완성도를 요구하는 연극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그 외의 일에는 너무 약해요. 한젬마 외부적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거창하게 말해서 사회의 공공 권력에 맞섰던 고민과 갈등은 없었나요. 유인촌 사실 나는 성향으로는 시민운동을 할 사람이죠. 소외되고 핍박 받는 사람 쪽에 마음이 가 있으니 이마에 띠 두르고 목소리 높이는 일이 딱 어울릴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내 나름의 방법을 연극에서 찾았습니다. 그 부당성을,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고발하는 데 연극만큼 적절한 도구도 없을 겁니다. 내가 특별히 애착을 갖고 있는 게 ‘홀스또메르 말馬을 의인화해서 인간사의 모순을 풍자하는 내용의 작품’라는 톨스토이 원작의 연극입니다. 흥행도 안 되고 교훈적이기만 한 따분한 작품이라고, 사람들이 아무리 찧고 빻아도 난 그걸 합니다. 그 연극 본 사람들은 막이 내려오고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 해요. 야, 이거 어떻게 살라는 거야, 내가 영 잘못 살고 있는 거야? 마음이 무거워서 서로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극 중에서 ‘말’이 ‘인간’을 이렇게 평합니다. ... 인간은 늘 뭔가를 소유하려고 해. 하지만 인간은 자기 늘 자기 땅이라고 얘기하면서도 한 번도 밟아보지 않아. 인간은 늘 “넌 내 여자야!”라고 말하면서도 그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와 살아.... 말년의 톨스토이는 동양사상에 심취했답니다. 누릴 수 있는 부귀와 명예를 다 누린 사람인데, 어느 날 문득 자다가 뛰어나와서 기차 타고 모스크바 외곽 어딘가의 외양간에서 얼어 죽었답니다.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한젬마 아까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말씀하셨는데 사실 예술이라는 것은 고통을 빼놓고 할 수 없잖아요. 가장 컸던 고통의 순간을 기억하실 수 있나요. 연극에서는 고통을 쉽게 얘기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말 작은 고통이 엄청난 좌절과 상처를 주잖아요. 유인촌 어차피 내 삶이란 게 연극을 떠나서는 별 의미가 없으니 세상살이에서 겪었던 어려움들은 논외로 합시다. 이걸 고통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난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실 때 두 번 다 임종臨終을 못 했어요. 두 번 다 공연 중이었어요. 어머니 때는 그래도 공연을 마치고 장사라도 치를 수 있었는데, 아버지 때는 독일 본에서 공연 중이라 그조차 할 수 없었지요. 자유 극단이 유럽 현지에서 햄릿을 올렸는데, 막이 오르면 햄릿이 독살된 아버지의 유령과 만나는 첫 장면이 나옵니다. 햄릿이 계속 아버지를 부르고 쫓아다니는데, 그때 같이 출연했던 동료들이 내가 무대에서 아버지 유령을 좇는 모습을 보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지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참아야 해도, 한젬마 배우의 숙명처럼 들리네요. 분위기를 조금 바꿔서, 제가 오늘 대화를 갖기 전에 몇몇 분들에게 평소의 유 대표님은 어떤 사람이냐, 물어봤는데 한결같은 대답이 진솔하고 씩씩하고 남자답다는 거예요. 어떠세요, 이 사람들의 평가가 맞는 건가요?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실제 자기 모습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는 거예요. 남들 봐주는 모습과 다르잖아요. 그런 거 분명히 느끼시지요? 실제의 자기 자신과 남들이 보는 혹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의 적지 않은 틈을 어떻게 메우시나요. 그런 것들 때문에 혼란스러운 적은 없었나요. 유인촌 잘못하면 정신병원 가는 거지.(웃음) 역할에 빠졌다가 제 때에 나오지 못해서 망가지는(?) 연기자들 많아요. 조폭의 두목 역을 맡았던 사람은 극이 끝난 후에도 어깨에 힘주고 다니고, 신분 높은 인물을 연기했던 사람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으로부터 늘 대접받아야 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어떤 연기자든 현실과 극 사이의 혼란스러운 거리감 때문에 고생을 하게 되는데 나도 아주 예외는 아니겠지요. 그런데 나는 어떻게 보면 무척 감성적인 사람이에요. 그 감성이 내면의 균형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을 비교적 잘 참고 이겨내기도 했고. 의외이겠지만, 우선 나라는 사람이 남 앞에 나서고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요. 한젬마 아니, 유인촌이라면 대한민국에 모르는 사람들이 없는데도요? 유인촌 허, 참. 그런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예를 하나 들까요. 배우들은 연극 포스터에 민감해요. 내가 누구 이름보다 앞에 있다, 뒤에 있다 이런 것들에 신경을 곤두세우는데, 나는 늘 뒤쪽에 내 이름을 넣으라고 해요. 한젬마 그건 어떤 여유 같은 것 아닌가요. 유인촌 일일이 설명하자면 끝이 없고... 아니, 내 이름이 마지막에 들어간다고 햄릿이 단역 되겠어요? 물론 조금 삐딱하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게 겉으로 꾸미는 거라면 사람들이 금방 알 거 아니에요. 저 인간 ‘쇼’ 한다고.... 흔한 말로 잠깐 속일 수 있어도 끝내 속일 수는 없잖아요. 그런 눈에 보이는 거짓말 안 되거든요. 균형 감각을 갖고 진정성으로 만나야지. 그리고 보세요. 실제로 내가 이것저것 안 하고 연기 하나만 하지 않았습니까. 돈 벌수 있는 데 밤무대도 안 나갔고. 가끔 광고는 찍었지만.... 한젬마 그럼 딴 일 하신 거잖아요. (웃음) 유인촌 이거 진땀나네. 변명 한 번 더 합시다. 아마 연극을 안 했으면 광고도 안 했을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연극 하려면 돈이 들어가요. TV 출연료로는 도저히 안 돼요. 그런데 연극에서 적자를 내면, 이번에 2억쯤 엎어졌다(?) 하면 다행히 그 순간 광고가 들어와요. 이렇게 지난 10년을 끌고 왔다 이겁니다. 쑥스럽지만 서울시문화재단 대표직을 수행하는 기간 중에도 사실은 광고를 두어 번 찍었어요. 그 돈이 2억7천만 원쯤 되는데, 내가 안 갖고 재단에 기부했어요. ‘조건부 기부금’이라고 기부자가 쓰임새를 정해서 재단에 위임하는 제도가 있어요. 나는 예술 분야의 전문이론서를 쓰는 사람에게 주라고 한정 지어서 기증했어요. 그런 책은 내봐야 팔리지 않으니까. 그 결과물이 무대미술에 관련된 책도 있고 봉산탈춤의 악보를 정리한 것도 있어요. 얘기 하다 보니 자기자랑이 됐네, 음. 한젬마 그런 자랑은 괜찮아요. (웃음) 그런데 서울시문화재단의 대표로서 업무를 수행하시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아무래도 행정가는 현장예술가와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져야 하잖아요. 유인촌 예술을 대한 이해가 다른 사람들과 일한다는 건 사실 힘들지요. 왜 적자냐, 독립경영을 해라, 시 관계자들이 늘 하는 얘기가 이런 거였는데, 그때마다 내 대답은 명쾌했어요. 예술 하는 사람이 무슨 돈을 벌어! 문화재단의 예산 3분의 1은 벌어서 쓰라는데 여기가 돈 버는 데는 아니지요. 건물 세 주고 임대료 받아서 예산 줄인다고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요. 들어오면서 보셨겠지만, 이 문화재단 건물을 3층까지 비워놓았어요. 문화생활의 공간으로 시민들이 마음껏 활용하시라는 뜻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의 본연의 업무는 서울시민들이 질 높은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립, 시립 이런 이름 붙은 곳에서는 민간이 못하는 걸 해야지요. 문화적 주체성, 도덕성을 고양하는, 큰 규모의 대작을 담당해야지요. 어떻게 영세한 민간 극단이 20명, 30명 나오는 연극을 합니까. 한젬마 듣다보니 서울시민을 위한 문화예술 분야의 예산 규모가 궁금하네요. 유인촌 현재 외형으로는 3천5백억 원인데 그 중 1천억 원은 오페라 극장 건립을 위해 적립 중이고, 나머지 2천5백억 원이 실제 가용금액입니다. 서울문화재단의 연간 예산은 1백5십억인데 여기에서 경상비 33억 빼면 1백2십억 원이 남지요. 이 돈 가지고 1천만 명이 넘어가는 대도시에서 ‘문화’를 한다는 건데.... 글쎄요. 많고 적음에 관한 판단은 시민들이 알아서 하시겠지요. 한젬마 이제 대담을 마무리하지요.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향후 계획은.... 유인촌 특별한 것은 없어요. 강원도의 ‘봉평예술극장’을 좀더 친환경적인 예술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고.... 참, 강남에 있는 ‘유씨어터’는 그간 연극만을 위한 공연장이었는데 앞으로는 예술계 전반의 ‘사람’을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시켜나가려 해요. 결국 사람이 중요한 건데, 지금은 문화예술계가 지나치게 분화되어서 발전적인 교통이 잘 안 되는 감이 있어요. 예전에는 모두가 함께 어울렸어요. 문득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그때 명동 엘리자베스 다방에 가면 문학, 영화, 미술, 사진 하는 분들이 모여서 설전을 벌였어요. 말이 되든 안 되는, 대화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았던 거지요. 문학이 미술에서 한수 배우고, 미술이 연극에서 영감을 얻는 거죠. 그렇게 내면적으로 상향조정되는 공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사람들을 모을 수 환경과 공간을 갖고 싶어요. 모여서 의논도 하고 작품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의 작품을 봐주기도 하고....그런 것들을 준비하고 싶어요. 전시 한 번 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역량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공간도 내주고... 그게 선배된 사람들의 의무인 동시에 내 작은 꿈이기도 하겠지요. 한젬마 대담을 마치려하니 마치 짧은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관객을 꿈꾸게 하는 진짜 배우로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아주세요. 월간<샘터>2006.08
  • 英 19세 법대생 치안판사

    번쩍거리는 구두나 가방 수집이 취미이고 로맨틱 코미디 영화 ‘프리티 우먼’을 가장 좋아한다는 19세 여자 법대생이 영국에서 경범죄나 가족 내 사소한 쟁송들을 심판하는 치안판사(magistrate)로 일하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리즈대학 법대에 다니는 루시 테이트. 영국 역사상 최연소 치안판사인 그녀는 이미 웨스트요크셔 폰터프랙트의 법정에서 다른 2명의 치안판사와 함께 일하기 시작, 피고들을 수감할지 여부를 판결하고 있다고 데일리 메일이 최근 전했다. 치안판사는 보수는 따로 없지만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좋은 품성과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판단력 등을 따져 임용된다. 그녀가 임명될 수 있었던 것은 2년 전 정부가 연령 하한을 27세에서 18세로 대폭 낮춘 덕분이었다. 법무부는 젊은이나 소수민족 출신에 대해 편견 없는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법원 관계자는 테이트가 엄격한 인터뷰를 통과했다고 밝히고 “위원들은 그녀의 성숙함과 판단력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한 경찰 관계자도 “나이가 어리고 판사직 수행에 경험이 꼭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치안판사는 전체 연령 분포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지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동료 치안판사 가운데 한 명은 “19세에 무슨 인생 경험이 있겠느냐.”며 “그녀에게 그런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한 것은 완전히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했다. 또 일부 언론은 그녀가 구두 쇼핑을 문제삼으며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구두 사진을 공개하는 등 자격 논란에 불을 댕기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녀는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밝힌 적이 있지만 치안판사로 일하기 시작한 뒤에는 사생활 대목들을 웹사이트 소개란에서 지워버렸다고 신문은 전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서울광장] ‘바보 노무현’을 다시 생각한다/황진선 논설위원

    [서울광장] ‘바보 노무현’을 다시 생각한다/황진선 논설위원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을 키운 것은 ‘바보 노무현’이다. 잠시 거슬러 올라가보자. 노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해 김영삼(YS) 당시 민자당 대표와 결별한 뒤 YS의 텃밭인 부산에서 92년 총선,95년 시장 선거,2000년 총선에 출마해 거푸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 2000년의 낙선은 그를 전국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그는 1998년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2000년엔 종로를 포기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다시 부산에서 출마하는 ‘무모한’ 도전을 했다가 낙마했다. 당시 그의 홈페이지에는 울분의 글들이 쏟아졌다.“스스로 바보이기를 자청한 의원님의 용기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지고도 이긴 전쟁이 있음을 보여주신 의원님에겐 그 이상의 축복이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바보 노무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 때 그의 도전을 지켜본 사람들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을 결성해 열성적인 선거 운동으로 그를 16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말 그대로 ‘그 이상의 축복’을 안겨준 것이다. 이처럼 ‘바보 노무현’은 정치 풍향에 따라 약삭빠르게 이리저리 철새처럼 왔다갔다 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기의 길을 간 데 대한 찬사였다. 또한 ‘바보 노무현’은 바보 온달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하여 바보 온달이 평강 공주와 결혼해 성공했듯이 ‘바보 노무현’도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요즘 노 대통령의 이미지는 ‘바보 노무현’과는 거리가 멀다. 춘추전국 시대의 말솜씨 좋은 유세객(遊說客) 같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사행성 오락게임 ‘바다이야기’ 사태와 관련해 “도둑 맞으려니까 개도 안 짖는다고…”라고 했다. 진의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독특한 비유 어법 때문에 야당에 꼬투리를 제공했다. 지난달 5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는 “국내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많이 들리거든 대통령이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생각하시고… 계속 시끄러운 소리 많이 들려드리겠다.”며 또다시 특유의 화법을 구사했다. 최근 보수인사들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빌미로 공세를 펴고 있는 것도 설화(舌禍)의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은 작통권 환수 등을 둘러싸고 (한·미)동맹균열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과 관련해 “한국 대통령이 미국 하자는 대로 ‘예, 예’하길 한국 국민이 바라느냐.”고 직설화법으로 반문했다. 물론 노 대통령으로서는 각종 국정 현안이 갑갑하고 답답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외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시비를 빚을 언급은 자제해야 한다. 지난 4월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不戰而屈·부전이굴)”이라는 내용이 담긴 손자병법을 전달해 ‘뼈있는 선물’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노 대통령의 임기는 1년5개월이나 남았다. 하지만 벌써 레임덕 현상이 심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제 노 대통령은 국정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반대세력을 자극해서는 안된다. 때로는 침묵이 약이다. 성역을 없앤 대통령은 괜찮지만, 대통령이 권위를 잃으면 국민이 불행해진다. 예전에 ‘바보 노무현’으로 지고도 이긴 적이 있음을 되새겨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만을 바라보며 국정을 운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책꽂이]

    ●한국현대문학 100년 대표소설 100선 연구(김종회·현대문학연구회 지음, 문학수첩 펴냄)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인 이인직의 ‘혈의 누’가 1906년 ‘만세보’에 발표된 지 100년. 이 책에는 한국현대문학 100년의 성과 가운데 작품의 미학적 완결성과 동시대적 의미를 고려해 뽑은 100편의 대표 소설이 실렸다. 우리 소설사의 넓이와 깊이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시대의 고민을 끌어안은 작가들의 내면풍경도 엿볼 수 있다. 조명희·이기영·한설야·김남천·이태준 등 납·월북 작가도 포함됐다. 전 3권 각권 1만 5000원.●이야기를 걷다(조갑상 지음, 산지니 펴냄) 부산이라는 도시가 소설공간 속에 어떻게 구현돼 있는가를 살핀 에세이. 부산이 낳은 민족문학의 거봉 요산 김정한이 양산 농민저항사건에 연루돼 학업을 중단하게 된 양산 메깃들과 물금·화제,1910년대 낙관적 계몽주의의 시선이 집약된 소설 ‘무정’의 무대 삼랑진역,‘만세전’의 주인공 이인화가 관부연락선에서 내려 부산에 잠시 머물던 행적 등을 좇는다. 지역학(부산학) 연구에 문학이 담당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를 일러주는 책.1만 3500원.●빨간 머리 피오(마르탱 파주 지음, 한정주 옮김, 문이당 펴냄)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완벽한 하루’에 이른 저자의 세 번째 소설. 스물 두 살의 고아 소녀 피오가 유명 미술비평가의 눈에 띄어 갑자기 천재 화가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진실이 사라진 예술은 사기에 불과할 뿐임을 역설한다. 원제는 ‘여덟 살 때의 잠자리’.9800원.
  • [서울광장] 임대주택 ‘빈집 정책’ 안되려면/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임대주택 ‘빈집 정책’ 안되려면/육철수 논설위원

    오일머니를 주체 못하는 중동 산유국에선 우리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가끔 일어난다. 몇해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집 없이 떠도는 집시들을 위해 현대식 아파트 한 채씩을 공짜로 지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입주 다음 날부터 집시들이 짐을 싸들고 나와 예전처럼 길거리에서 생활하더라는 것이다. 까닭을 물었더니 글쎄,“불편해서 못살겠다.”고 했다던가. 전기 잘 들어오고, 수돗물 좔좔 나오지, 화장실 깨끗한데, 세상에! 그게 풍찬노숙만 못하더란 얘기였다. 하기야 자연에 익숙한 집시들이 ‘으리으리한’ 새 집에서 기가 질려 용변도 제대로 못 봤다니 꽤나 불편했을 것이다. 부동산 투기로 말썽을 부리기는커녕 나라에 돈이 많아 집을 거저 나눠줘도 마다하니 어찌 보면 기특한 국민이다. 인식의 깊이와 삶의 질을 놓고 우리를 감히 산유국 집시에게 견준다는 게 상당한 무리가 있음을 잘 안다. 그러나 집 걱정으로 적어도 반평생은 고생해야 하는 우리의 처지를 떠올리면 무욕의 집시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집이나 땅에 대한 소유욕이 한국처럼 별난 나라도 드물다. 아직도 월급쟁이가 집 한 채 장만하는데 10년이 걸리네,20년이 걸리네 하고 있으니 그로 인한 기회비용도 엄청나다. 그 돈으로 삶의 질을 높이거나, 생산적인 곳에 썼다면 벌써 선진국이 됐겠다. 마침 정부가 주택을 ‘소유’에서 ‘거주’로 개념을 바꿔보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2012년까지 임대주택 116만가구를 지으면서 중산층을 위한 중대형 전·월세 임대주택 8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한다. 늦었지만 시도해 볼 만하고 방향도 좋다. 잘만 시행된다면 우리 아들 딸들은 집 장만하느라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어질 테고. ‘거주’ 개념이 뿌리내리려면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식과 집값 안정이 따라주느냐다. 지금처럼 특정지역의 집값이 폭등하고 주택이 부(富)의 핵심 증식수단이라면 소유욕은 더할 것이며, 공공재(公共財) 인식의 확산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좋은 터에 내집을 갖고 있으면 앉아서 떼돈을 버는데, 한가하게 임대주택에 들어가 ‘거주’에 만족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주택·고가주택 소유자에게 중과세한다 해도 세금이 집값 오름세에 비하면 조족지혈인 현실에서는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소유하는 게 당연히 ‘정답’이다. 임대주택에 대한 편견도 씻어내야 한다. 아파트 단지의 임대주택 유무에 따라 동일평형의 일반 아파트 값이 크게는 1억원 이상 오락가락하고, 임대주택 비율이 분양률에 큰 영향을 주는 분위기에서 정책의 성공은 쉽지 않다. 따라서 중산층용 임대주택을 통해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만 사는 집이 아니란 걸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임대주택의 질적 주거 향상과 주택평면의 다양화, 주변 환경과의 조화 등에 신경쓰겠다는 약속을 꼭 지켜서 부정적 이미지부터 털어내야 할 것이다. 중산층을 임대주택으로 유도하려면 재정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 6년동안 임대주택 건설에 88조원을 들이겠다고 밝혔다. 재원 확보도 쉽지 않겠지만 이 돈으로 116만가구를 짓겠다면 가구당 8000만원꼴인데, 싸구려 집을 남발해서 수요자의 주거욕구를 얼마나 충족시킬지도 의문이다. 이래가지고는 아파트만 잔뜩 지어놓고 빈 집을 양산할 공산이 크다. 양보다는 질로 승부를 걸어 임대주택도 살 만하고, 경제적으로 손해보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게 급선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씨줄날줄] 대통령과 IQ/이목희 논설위원

    폴 오닐 전 미국 재무장관이 부시 대통령을 비난해 파문이 일었던 적이 있다. 오닐은 부시를 처음 만난 때를 이렇게 묘사했다.“논의 내용을 잔뜩 준비해 갔으나 대통령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거의 독백이었다.” 각료회의 중의 주의산만을 ‘귀머거리 가운데 있는 장님’이라고 꼬집었다. 오닐의 비판에 즈음해 부시의 말실수가 잇따랐다. 공식행사에서 남의 나라 국가원수, 수도 이름을 아무렇게나 불러 망신을 샀다.TV토크쇼에서 ‘바보 부시’가 심심찮게 화제에 올랐다. 부시의 지능지수(IQ)가 두자리 숫자라는 출처 불명의 자료가 떠돌기도 했다. 급기야 UPI통신 등 미 유력 언론들은 부시의 IQ를 과학적 토대에서 분석한 기사를 내보냈다. 대학수학능력시험(SAT) 성적과 공군장교 시험성적이 준거틀이 되었다. 당시의 추정 IQ는 125였다. 총인구의 상위 5%에 속한다고 하니 명예회복은 된 셈이다.2000년 대선에서 그와 대결했던 고어보다는 낮았으나 2004년 대선 경합자 케리보다는 다소 높은 수준이었다. 부시를 불쾌하게 만드는 주장이 또 나왔다. 부시가 20세기 이후 미 대통령 가운데 두번째로 IQ가 나쁘다는 심리학자 사이먼튼의 연구결과가 엊그제 공개됐다. 그는 부시의 IQ를 111.1에서 138.5 사이로 추정했다. 부시의 불행은 두가지. 첫째는 전임자의 IQ가 너무 좋아 대비가 되었다. 클린턴은 추정치가 135.6∼159로 부시보다 20포인트나 높았다. 둘째는 ‘경험 개방성’이 최악이라는 지적을 받은 점이다. 사이먼튼이 분석한 ‘개방성’은 소통지수(CQ)·감성지수(EQ)와 비슷했다. 그는 부시가 머리는 괜찮은 편이나 다양한 시각과 통합능력이 극단적으로 낮다고 혹평했다. 역대 미 대통령의 리더십을 분석한 리처드 뉴스타트는 민주사회의 권력은 ‘설득력’에서 나온다는 결론을 내렸다.“그의 시간 대부분을 상대방을 설득하고 동참토록 이끄는데 보내는 대통령이 성공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도자의 덕목으로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못 빌린다.”고 말했다. 이제는 이렇게 고쳐야 할 듯싶다.“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소통과 설득, 통합 능력은 빌리기 어렵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씨줄날줄] 김웅용의 보통 인생/육철수 논설위원

    예나 지금이나 천재가 보통사람들과 어울리기란 쉽지 않다. 때로는 천재성이 뛰어난 ‘죄’로 바보 취급을 받거나, 실컷 이용당하고 용도폐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평범한 인생에 둘러싸인 천재는 남모르는 외로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1960년대 천재소년으로 이름을 날린 김웅용(43·충북개발공사 보상팀장)씨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때 ‘실패한 천재’로 잘못 알려졌던 그가 최근 미국인명연구소의 ‘21세기 위대한 지성’에 선정된 것이다. 이에 앞서 올들어 미국 마퀴스 세계인명사전과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 선정 ‘21세기 우수과학자’에 잇따라 이름을 올려 세계 3대 인명사전을 휩쓸었다. 지금까지 치수와 수리학 분야에서 9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에 발표해 지난해에도 마퀴스 사전에 등재된 바 있다. 신동이 세계의 지성 반열에 오르기까지 걸어온 길은 눈물겹다.‘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라더니, 김씨는 바로 그런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섰다고나 할까. 지능지수(IQ) 210으로 1980년판 기네스북에 올랐던 그는 5세때 4개 국어를 구사했다.6세 때는 일본 TV에 출연해 미적분을 술술 풀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4∼7세때 한양대에서 청강생으로 물리학을 공부했고,8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우주항공국(NASA)에서 근무하면서 석·박사과정 수료와 함께 선임연구원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NASA에서 주는 과제만 수행하는 게 지겹고, 무엇보다 친구 없이 생활하는 게 외로워 1978년 귀국길에 오른다. 중고교 학력이 없던 그가 ‘보통인생’이 그리워서 검정고시를 거쳐 1981년 충북대에 입학하자 일부에선 “거 봐라, 천재는 무슨….”이라며 비아냥거렸다. 마음의 상처가 컸지만 묵묵히 연구에 몰두해서 이번에 노력하는 천재의 진면목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그는 지난해 9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실패 소리 듣는 것보다 더 아픈 것은 10대 시절을 이국땅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보낸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보통사람처럼 살아가기를 갈망하는,‘박제가 된 천재’이기를 거부하는 그에게서 이제 세인이 특별한 시선을 거두어 들일 때가 됐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데스크시각] 집값 안정 ‘립서비스’는 이제 그만/류찬희 산업부 차장

    정부는 연일 집값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부처 장차관·차관보·실무 본부장(국장)은 하루가 멀게 방송을 탄다. 그런데 그 얘기가 그 얘기다. 한결같이 집값을 안정시킬 테니 걱정 말라고 한다. 올해 안으로 집값을 2003년 ‘10·29대책’ 이전 수준으로 안정시키겠다며 집값 안정의 구체적인 시기와 목표를 자신 있게 제시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각종 부동산 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도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내비친다. 집값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들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주기 위해서라면 조금은 과장되고 되풀이되는 말이라도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의 발표를 보노라면 왠지 기분이 씁쓸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정부는 집값이 잡혔다고 주장하는데 시장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 입안자들이라면 10·29대책 발표 당시 어떤 발언이 나왔는지 한번 검색해볼 필요가 있다. 당국자들은 대책을 발표하면서 곧바로 집값이 잡힌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서 당장 집값이 잡히는 줄 알았다. 내집 마련을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집값은 그뒤 30∼40% 올랐다. 어떤 지역은 50% 가까이 상승했다. 순진하게 정부 말만 믿고 따른 서민들은 바보가 된 셈이다. 지난해 ‘8·31대책’이 나왔을 때도 국민들은 정부를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시장은 정부 발표와 달리 한참 빗나갔다. 무주택자들의 내집 마련 꿈은 일장춘몽이 돼버렸고,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아무리 솔깃한 정책을 내놓아도 이제 국민들은 양치기 소년을 떠올릴 뿐이다. 둘째는 행정가들이 마치 정치인을 따라 하는 것 같아 개운치 않다. 실적이나 결과로 나타나는 시장 흐름을 무시한 채 무조건 집값이 내렸다고 자위하는 것이 꼭 입에 발린 말만 하는 정치인을 보는 것 같다. 이 정부 임기만 넘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실책을 모면하려는 립서비스인 것 같아 더욱 안쓰럽다. 기자는 10·29대책,8·31대책에 앞서 정부 당국자와 부동산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수차례 간담회를 가졌다. 짧은 소견으로 집값 폭등을 막기 위해 부동산 거래 투명성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주장했다. 구체적인 대안으로 검인계약서 폐지와 실거래가 확보 시스템 구축을 들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히 두 가지 모두 받아들여졌고 입법 과정을 통해 자리를 잡아가는 듯해서 여간 뿌듯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실거래가 통계 발표를 보고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반적인 집값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통계라기보다는 단순 샘플 조사에 불과했고, 시장 집값과는 괴리가 너무 컸다. 통계를 왜곡하지 않았다는 강변에도 불구하고 이런 통계가 뭐 필요하겠냐는 생각마저 들었다. 개인 실거래 가격이 등기부등본에 올라가고 누구나 이를 확인할 수 있게 공개된 마당에 굳이 두루뭉수리한 방법의 실거래가 통계는 무의미하다. 모든 아파트 시세를 공개하되 동(棟)·층을 모두 밝혀 살아 있는 통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고분양가에 따른 주변 아파트값 상승을 막을 수 있는 대책도 내놓아야 한다. 임대주택 공급을 늘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발표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대형 임대 아파트를 늘린다고 하는데 중산층 이상의 주택문제는 정부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서민들이 목돈 들이지 않고 안정된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할 때다. 주택정책은 무엇보다 수혜 타깃이 정확해야 한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식의 립서비스는 이제 끝내야 할 때다. 류찬희 산업부 차장 chani@seoul.co.kr
  • 美도 고액과외 성행

    미국에서 백인 상류층을 중심으로 시간당 500달러가 넘는 고액과외가 성행하면서 소득별 학력격차도 갈수록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SAT)을 주관하는 ‘칼리지 보드’가 최근 공개한 ‘2006학년 SAT 성적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이 높은 가구일수록 자녀의 SAT 성적도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연소득 10만달러 이상인 가구의 수험생은 영어와 수학 평균점수가 각각 549점과 564점. 반면 연소득 1만달러 미만 가구 수험생의 평균 점수는 영어 429점, 수학 457점에 그쳤다. 소득이 1만달러씩 오를 때마다 영어는 평균 13.3점, 수학은 11.8점이 오른 셈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고소득 가정일수록 부모의 학력이 높은데다 자녀에 대한 교육열도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최근 불고 있는 사교육 열풍도 소득별 학력격차를 더 벌리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일간 뉴욕 선은 30일자 기사에서 맨해튼의 백인 상류층들이 자녀를 하버드대나 프린스턴대 등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수업료가 3만달러가 넘는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도 모자라 고액과외를 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카고의 투자은행원의 딸인 케시 라비츠(18)는 지난 8년간 한 시간에 100달러 하는 과외를 매주 받았다. 맨해튼의 시간당 과외비는 100달러선부터 시작되지만 어려운 과목이거나 소문난 유능한 교사일 경우에는 시간당 500달러를 넘어서기도 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뉴욕의 사립 고교 졸업생 중 대략 75%가 과외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사립학교의 실태’ 편집장 센디 베스는 밝혔다. 최근 수년간 월가 금융기관들이 기록적인 보너스를 직원들에게 풀면서 맨해튼에 돈이 넘치고 있는데다 명문대 입시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사립학교의 수업 내용이 대학 수준으로 높아진 것도 이유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뉴욕 공립학교에서 29년간 교사생활을 한 에디스 스피겔은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과외를 받는 친구들을 바보로 생각했다.”면서 ‘격세지감’을 토로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강북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강북구(구청장 김현풍)는 삼각산문예회관에서 오는 9월9일 극단 간다의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를 선보인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를 각색한 이번 작품은 무대장치나 음향효과 없이 배우들의 목소리와 몸짓만으로 표현되는 아카펠라 뮤지컬이다. 예매는 오는 28일부터 강북구청 공연예매시스템(ticket.gangbuk.go.kr)에서 할 수 있다. 문의 (02)901-6324.
  • [일요영화]

    ●쉬핑뉴스(SBS 밤1시5분) 마음이건 몸이건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서려 할 때 도움이 될만한 영화다. 모든 조건이 ‘빵빵’한 영화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작자로 유명한 애니 프루의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작이 원작이다. 연출은 ‘개 같은 내 인생’으로 알려진 스웨덴 출신 라세 할스트롬 감독이 맡았다. 여기다 주연은 정통 연기파 배우 케빈 스페이시와 줄리안 무어. 조연도 뒤지지 않는다.‘007’과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차갑고도 강단있는 정보부장과 엘리자베스 여왕을 연기해냈던 영국의 명배우 주디 덴치,‘반지의 제왕’에서 숲의 여왕 갈라드리엘로 얼굴을 알렸던 케이트 블란쳇이 나섰다. 누구나 한가지씩은 품고 있을 법한 내면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 다룬다. 물론 배우들의 면면에서 짐작할 수 있듯 떠들썩하거나 호들갑스럽지 않은, 잔잔한 영화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소극적인 쿼일. 어디 하나 칭찬할 만한 구석을 찾기 어렵다. 무능력한 데다 뚱뚱하고 말까지 더듬는다. 그러니 인생까지도 이리저리 꼬인다. 얼떨결에 만나 결혼한 여자는 바람이나 실컷 피더니, 그것도 모자라 딸을 팔고 외간남자와 도망가다 그만 죽어버린다. 경찰의 도움으로 딸을 겨우 찾았지만, 충격은 크다. 때마침 잘 알지도 못하던 고모 아그니스가 그를 찾아와 어릴적 강압적으로 자신을 키웠던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주면서 함께 고향 뉴펀들랜드로 되돌아가자고 제안한다. 처참한 마음으로 고향에 되돌아온 쿼일은 우연찮은 행운을 거머쥐게 된다. 신문사 기자로 취직한 것. 내키지 않았지만 기사가 호평받으면서 일에 재미를 붙여간다. 배에 대해 취재하면서 점차 이 지역의 비밀도 알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 평화로운 마을 사람의 조상이 사실 약탈과 살인을 일삼던 해적이었다는 것. 여기다 이 피를 이어받은 쿼일의 아버지는 어릴 적 자신의 여동생이자 쿼일의 고모 아그니스를 강간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다 알게 된 쿼일과 아그니스, 이들은 서로를 어떻게 다독여줄까. 아그니스는 과거로 돌아가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꿈꾸자고 제안하고 쿼일은 서서히 일어선다.2001년작,111분. ●기사 윌리엄(KBS1 밤12시30분) 가난한 평민의 아들이 신분을 속이고 귀족들만의 잔치인 마상시합에 참가하면서 겪는 고난을 그린 영화. 스토리 자체는 보통 영화와 다를 바 없지만 마상시합 장면들을 시원시원하게 연출해낸데다, 퀸의 ‘We will rock you’ 등 귀에 익은 록음악들이 재치있게 배열되어 있어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브로크백 마운틴’으로 한층 더 유명해진 히스 레저가 주연이다.2001년작,131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00주년 맞는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장 김영호 前산자부장관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00주년 맞는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장 김영호 前산자부장관

    ‘적의 공격 없어도 나라 자연 소멸되면, 아아, 우리 백성들 어디 가서 사나. 이 나라 강토 없게 되면 가옥, 전토는 뉘 것인고. 국채 다 갚는 날 오면 기쁘고 즐겁지 않을손가∼’ 100년 전 우리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을 때, 국채를 일본에 상환하고 나라의 독립과 주권을 지키고자 이심전심으로 불렀던 ‘국채보상가’ 중 일부이다. 당시 국채 1300만원은 국가의 존망을 흔들었다. 애국인사들은 2000만 동포가 석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 모은다면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대한매일신보가 애국의 불길 지펴 이에 고종황제는 ‘불가흡연’을 외치며 요원지화(燎原之火)를 지폈고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는 국운을 내걸고 전국적으로 ‘국채보상운동’을 확대시켜나갔다. 임금에서 백정의 신분에 이르기까지 불길처럼 타올랐다. 특히 두산그룹 창업주로 당시 ‘박승직 상점’을 운영했던 박승직씨는 100원이라는 거액을 쾌척(1907년 2월23일자 대한매일신보)해 불길을 드높였다. 결국 이 운동은 일제의 온갖 탄압으로 1년여만에 막을 내렸지만 망국으로 실의와 좌절에 빠진 민족의 가슴에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애국의 불꽃을 심어주었다. 이로부터 90년이 지난 1997년 11월, 임창렬 경제부총리는 비통한 표정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선언했다. 말 그대로 국가가 부도위기에 처했던 것. 그러자 국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금모으기운동’에 적극 나섰다. 돌반지며 장롱 속의 금비녀 등을 손에손에 들고 은행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를 본 외국 매스컴은 위기 극복을 위한 우리의 애국심과 단결력에 경탄했다.90년만에 ‘국채보상운동’이 재현된 셈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저력과 5000년 역사에 최초의 국민운동으로 자리매김되는 ‘국채보상운동’이 100주년을 맞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새삼 의미를 되새기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김영호(66) 전 산업자원부 장관. 경제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97년 일본 경제학자가 뽑은 ‘애덤 스미스 이래 100대 세계경제학자’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그가 ‘사단법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장’이자 100주년기념사업 공동대표를 맡아 그 정신과 취지를 알리는 데 적극 앞장서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일까. 외환위기 직전인 96년 말이었다. 김 전장관은 일본 도쿄대 교수로 재직하다 귀국, 경북대에 복직했다. 오랜만에 모교에 돌아온 그는 대구지역 경제·상공인들과 자주 만나면서 하나의 큰 깨달음에 이른다. 즉, 대구에서 발상된 국채보상운동이 90년이 됐건만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 것, 세계사에서 유례 없었던 민족운동이 왜 역사 속에 묻혀야 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평소 알고 지내던 문희갑 대구시장에게 찾아가 “이제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야 할 시점이며 90주년기념을 반드시 이슈화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설득했다. 아울러 대구지역 언론사 등을 찾아 동참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97년 2월 드디어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대구에서 최초로 ‘국채보상 90주년’기념 행사가 열렸다. 그해 10월에는 ‘90주년 국제심포지엄’까지 개최되면서 고귀한 민족정신을 여러 나라에 알렸다. 이때 김 전장관은 IMF의 스탠리 피셔 부총재에게 초청장을 보내면서 우리나라의 빚이 1300억달러나 된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며칠후 피셔는 참석하지 못한다는 답장과 함께 “한국 정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1300억달러의 규모를 어떻게 아느냐.”라며 놀라워했다. 이 서신의 내용은 국내 경제·금융계에 급속히 퍼져나가면서 화제가 됐다. 역설적으로 당시 한국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얼마만큼 안일하게 대처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후 99년 10월 외채탕감을 위한 ‘대구라운드 세계대회’를 개최, 그나마 한국의 체면을 세운다. 그해 12월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이 완공됐으며, 현재 대구 일대의 중심공원으로 자리잡았다.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건립 추진 광복 61주년을 맞아 서울 시내 모호텔 커피숍에서 김 전장관을 만났다.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겸 IMF사태 10주년을 맞아 제2차 대구라운드 개최와 기념관 건립 추진 등을 준비하느라 바쁜 틈에 잠시 시간을 냈다. 앉자마자 국채보상운동의 중요성과 역사적인 의미에 목소리를 높인다. “강만길 교수는 최초의 시민운동이라고 했고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한국 기부문화의 효시라고 했습니다. 또 최열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최초의 NGO가 중심이 된 국민적 사건으로, 박용옥 성신여대 교수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여성운동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저는 국민적 경제주권 회복운동이라는 걸 강조합니다.” 이어 “당시 정부가 빌린 돈 1300만원을 못갚게 되자 국민들이 술 안 마시고 담배를 끊어가며 갚겠다는 눈물겨운 운동이 아니냐.”면서 전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역사적 사건이라고 의미 부여를 했다. 대구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는 이준 열사의 부인이, 평양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부인 등도 참여할 만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고 역설했다. 특히 채권국의 모럴 해저드, 즉 ‘부추김과 꼬심’을 고발하고 비판한 전국민의 외자경계 운동이기도 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신국채보상운동’이라는 IMF사태 때에는 그렇지 못해 우리들에게 숙제를 남겼다고 지적한다. 즉, 우리 서민들은 숨겨놓은 돌반지까지 털어가며 외채갚는 데 앞장섰지만 정부나 금융관계자들은 채권국의 모럴 해저드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 “우리나라가 IMF의 빚을 다 갚고 난 직후의 일입니다. 당시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현 컬럼비아대) 교수는 ‘채무자가 채권자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을 했더라면 적어도 200억∼300억달러는 건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중요한 말을 했어요. 돈이 오고가는 데 있어서 채무자뿐만 아니라 채권자의 책임도 마땅히 있다는 뜻이지요.” 그러면서 이같은 책임문제를 따지기 위한,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외채탕감운동을 예로 든다. 대표적으로 주빌리(Jubillee)운동과 아탁(ATTAC, 시민지원 금융투기거래 과세운동연합) 등이다. 김 전장관은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거래되는 돈의 규모는 하루 1조 8000억달러인 데 반해 물동량은 200억달러도 채 안된다.”고 전제한 뒤,“물건뿐만 아니라 돈거래에 대한 세금도 매기고 규제하자는 것이 아탁운동.”이라면서 돈 거래액에 0.25%의 세금만 물어도 1년에 1500억 내지 2000억달러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 돈으로 빈국의 부채탕감을 도와주고 문맹퇴치와 지구온난화 방지 등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한국 자산 팔아 IMF 빚 갚은 건 잘못” “내년은 국채보상운동의 100주년이자 IMF체제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는 정말 반성할 때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캉드시 전 IMF총재가 임기를 마치고 주빌리운동 자문관으로 간 것을 보십시오. 이는 채권자의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난센스죠. 이것만 보더라도 한국이 얼마나 바보같이 빚을 갚았는지 알 수 있지요.” IMF 빚은 한국의 자산을 외국에 팔아서 갚았으며 이는 결국 우리 주요 기업들의 외국자본율만 높아지는 꼴이 되고 말았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경우 국가 기간산업, 에너지 등과 관련된 회사는 절대 안 내주는 데 반해 우리의 경우는 포철까지 일부 외국에 내다팔았다는 것. 그러기 때문에 “IMF는 분명 한국에 빚이 있다. 그 빚을 갚아야 진정으로 IMF 위기가 끝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금융기술이 부족해 그같은 일이 발생한 만큼 IMF는 도덕적 책임을 갖고 한국에 ‘국제금융기술센터’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세계가 공감하는 일이며 우리 정부도 IT(정보기술),BT(바이오기술)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FT(금융기술)에도 관심을 두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IMF에 당당히 요구할 권리 또한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나라는 외국자본 비율이 너무 높습니다. 외환은행 사태를 보십시오. 개방을 하되 적어도 안방과 기둥뿌리는 지켜야 하지요. 이젠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으로 경제적인 주권회복에 국가나 국민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지요.” 김 전장관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일찍부터 ‘기술경제학’에 관심을 가졌다.85년 오사카시립대학 교수와 92∼94년 도쿄대 교수로 재임하면서 많은 경제서적을 남겼다. 특히 ‘기술경제론’은 일본 100개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3년 전 유한대학을 국제적인 종합대학으로 만들어달라는 학교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현재 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40년 합천 출생 ▲대구상고 졸업 ▲62년 경북대 경제학과 졸업 ▲65년 공군사관학교 경제학 교관 ▲71년 하버드대·일본 아세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73∼88년 경북대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 ▲85년 오사카시립대 경제학 박사 ▲85∼88년 오사카시립대교수 ▲92∼94 도쿄대 교수 ▲97년 경북대 경상대학장 겸 경영대학원장, 일본 경제학자 설문조사 ‘애덤 스미스 이래 100대 세계 경제학자’ 선정 ▲2000년 산업자원부장관 ▲01년∼현재 중국 옌볜대 석좌교수 ▲03년∼현재 유한대학장 ●상훈 다산경제학상(92년)●주요 저서 한국경제의 분석, 동아시아공업화와 세계자본주의(일어), 한·일간 기술경제질서론(공저) 등 다수 km@seoul.co.kr
  • “한미 FTA·뉴딜은 엇갈림 정책”

    “한미 FTA·뉴딜은 엇갈림 정책”

    요즘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뉴딜’을 내걸고 있다.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잡겠다는 목적은 같은데,FTA는 외부의 충격을 강조하고 뉴딜은 내부의 타협을 더 중요시 하는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엇갈림에 대해 이국영 성균관대 교수의 의견을 들었다. 이 교수는 독일에서 제3세계 발전이론을 전공한 정치학자다. 평등과 분배를 중시하는 복지국가야말로 자본주의 성장의 원동력이었다는 ‘자본주의의 역설’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종속 vs 쇄국’, 생산적 FTA 논의를 막는다 “한·미FTA 하면 싼 제품이 들어오니까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올라간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는 뒤집어 말해 비싸게 생산해오던 기존 일자리는 줄어든다는 얘기입니다. 이 플러스 마이너스를 실제 비교해봤는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한·미FTA 논란에서 가장 위험한 논리는 ‘안 하면 바보된다.’,‘하면 종속된다.’는 식의 극단적 주장이다. “유럽연합(EU)으로 상징되는 유럽경제통합과정을 보면 경제통합으로 인한 수혜자가 누구냐, 피해자는 누구냐, 그렇다면 수혜자의 이득을 어떻게 피해자들에게 나눠주느냐가 논쟁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정치인들은 정책을 내놨고 국민투표를 통해 승인받았습니다. 이런 생산적 논쟁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극단적인 반대론도 문제지만, 밀어붙이기식으로 FTA를 추진하면서 ‘그러면 쇄국하자는 것이냐.’는 식으로 이들을 몰아세운 정부와 시장주의자들의 책임이 더 큽니다.” 이 교수는 ‘안 하면 바보된다.’는 논리에도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정부에서는 중국·일본·한국·타이완 빼고는 다 FTA를 했다 하는데, 거꾸로 말하면 이들 나라는 성공적인 수출드라이브 때문에 굳이 FTA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외려 이들 국가에 밀리거나 밀릴 것 같으니까 미국이나 유럽은 NAFTA나 EU 방식의 경제통합이라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는 설명도 가능합니다.” ●진정한 ‘뉴딜’이나 고심하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요즘 들고나온 ‘뉴딜’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강하게 비판했다. 대공황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식의 ‘족보있는 정책’인 줄 알았는데 내용을 보니 재계와 노동계의 타협안에 불과하더라는 것. 그런 수준의 뉴딜이라면 “그걸 하겠다고 나선 기존의 노사정위원회가 왜 실패했는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 교수는 진정한 뉴딜 정책을 하고 싶다면,‘작은 정부’·‘균형재정’의 신화에서 벗어나라고 주문했다. 복지비용을 ‘낭비’가 아닌 ‘투자’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수라는 것.“대기업 노조 얘기가 나오면 흔히 안정적인 고임금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독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그 월급으로 집 사고, 애들 키우고, 가르치려면 빠듯하다고 합니다. 잘리면 갈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주택비·양육비·교육비에다 실업대책까지 모두 개인 부담이라 그렇습니다. 국가가 탁아소나 양로원을 확대하고, 장기임대주택을 늘리고 실업대책도 세운다면 이런 사회적 비용 부담이 줄게 되고, 그러면 임금을 조정할 수 있는 여지도 더 커집니다.” 또 모두가 그토록 애타게 부르짖는 ‘일자리 창출’도 사회복지 부문에서 대대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런 개념이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예산 비중이 최소 15∼17%(미국·일본)에서 최대 25∼30%(유럽)에 이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이 1980년에 이미 19%였는데 한국은 고작 6∼7% 수준이다. 그렇게 목매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장 못미치는 분야가 바로 복지부문이라는 것. 대안으로서 이 교수는 비례대표제 확대를 제안했다.“어차피 1년반 임기내 사회경제적 개혁을 못하겠다면 그 기반이 될 수 있는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 본고사와 대학 경쟁력의 함수관계/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내신 중심의 대입제도에 부담을 느낀 고등학생들이 지난해에는 촛불시위를 열더니, 올해에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란 동영상을 통해 2008 대입제도에 항거하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새 대입제도가 학생들을 내신과 수능, 논술의 삼중고로 몰아넣고 있다는 주장이 퍼지면서 그냥 본고사로 뽑자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엊그제 만난 선배 교수도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본고사 부활을 주장하였다. 외고를 그만두고 의대에 가려는 딸을 직접 가르쳤다는 그는, 요즘 학교가 아이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면서 그 원인을 쉬운 수능에서 찾았다.60만명을 상대하는 수능의 속성상 어려운 문제는 내기 힘들고, 학교도 학생도 수능수준에 맞춰 공부하다 보니 아이들 수준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대학 본고사가 고등학교 교육 수준을 끌어올리는 손쉬운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몇몇 명문고가 서울대 신입생을 주로 공급하던 때를 기준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을 바라보면 곤란하다. 일류고 몇 개가 대한민국 고등학교를 대표하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서울대반, 연고대반으로 나누어 본고사 지도를 할 수 있었지만, 그때조차 나머지 학교의 학생들은 본고사 준비를 위해 서울의 학원에 유학왔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본고사에 대한 요구는 흔히 대학 자율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우수학생을 마음대로 뽑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본고사는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본고사는커녕, 자체 면접도 거의 없는 미국 대학들의 경쟁력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미국의 명문대학이 간편한 본고사 대신 복잡한 다면평가를 하고 있음은 익히 알려져 있으며, 그런 노력은 그들이 추구하는 우수 인재상과 무관하지 않다. 전통적 의미의 우수학생은 주요 교과의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었다. 그러나 지식과 문화의 변화주기가 짧아지고, 무한 경쟁이 일상화되면서 대학이 주목해야 할 인재는 창의성과 뛰어난 상황주도력을 가진 학생이 됐다. 그런데 본고사라는 제한된 시험으로 이처럼 역동적이고 다방면에 뛰어난 인재를 가릴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도 우수인재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으며, 그 변화를 거부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본고사가 인재 선발의 도구가 되기 힘들다면 대학은 무엇을 가지고 학생을 뽑아야 할까? 비록 현재의 학교 교육이 불만족스러워도 대학이 원하는 우수자원은 고등학교에서 찾아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고등학교의 내신기록은 가장 중요한 전형자료가 되어야 하며, 여기에는 시험점수뿐 아니라 교과 안팎의 학습과정과 체험활동이 포함되어야 한다. 내신이 핵심 전형요소가 될 때 대학은 무엇으로 자율권을 행사해야 하는가? 대학은 내신기록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골라내고 적극적으로 가공함으로써 자기 대학, 전공영역에 맞는 학생을 찾아내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대학관계자들은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에 정통해야 하며, 개별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실제와 학교특성을 파악하는 데 힘써야 한다. 나아가 모집단위별 선수과목과 수능 탐구영역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고등학교가 진로지도를 체계적으로 하도록 이끄는 한편, 전공공부를 위한 준비와 충성심이 강한 학생들을 뽑는 데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 또한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고등학교 교육에 대한 조롱과 질타라는 점을 깨닫고 진학지도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내신은 강한데 수능은 약하다.”는 말이 무색하도록 수업과 평가의 질을 끌어올려야 하며, 수업과 수행평가 등에서 논리적 사고를 훈련시켜 ‘내신 따로 논술 따로’라는 핑계가 통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평가 중심의 9등급제 내신표기가 시정되어야 한다. 공정한 내신관리를 전제로, 절대평가의 원칙을 회복하여 학생구성의 차이에 따른 평가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고, 고등학교 나름의 색다른 교육과정이 제대로 기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 [토요일 아침에] 단돈 50원에 담긴 행복/손희송 신부·가톨릭대 교수

    꽤 오래전에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시청한 토크쇼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에 큰 인기를 누리던 작가가 출연해서 중년의 어느 부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토크쇼였다. 이야기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그 부부는 1960년대 초에 연애결혼을 하였는데, 두 사람은 양쪽 집안이 무척이나 가난했기에 한푼이라도 더 아껴서 결혼 자금에 보태려고 애를 쓰면서 연애 시절을 보냈다. 데이트할 때 남들 다 가는 다방에도 가지 않았다. 그들은 돈이 안 드는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주로 고궁 돌담길이나 한적한 길가를 거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들이 누리는 유일한 금전적 호사는 가끔씩 그 당시에 가장 싼 100원짜리 아이스 바를 하나 사서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이 전부였다.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빠듯한 살림살이였지만 그래도 낭만 한 자락은 살아있었다. 남편은 직장에서 퇴근하면서 가끔씩 100원짜리 아이스 바를 사와서 부인과 나누어 먹으면서 연애시절의 분위기를 되살리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평소처럼 100원짜리가 아니라 150원짜리 아이스 바를 사왔다. 부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었다.“오늘은 어쩐 일로 150원짜리를 사 왔어요?” 남편은 빙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이 바보야,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 이 말을 듣고 부인은 많이 행복했다고 한다. 남편의 작은 관심이 힘들게 사느라 결혼기념일조차 잊었던 부인에게 가슴 찡한 감동을 주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작가는 “사람은 이렇게 단돈 50원에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맞는 말이다. 아주 작고 평범한 것이라도 거기에 따뜻한 관심과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다면 작지 않은 행복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게 되면서 비싸고 화려한 것만을 좋아하게 되고, 그러면서 작은 것에 마음을 담아 행복을 주고받던 삶의 방식은 급속히 사라져 버렸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던 시절에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그 시절에는 떡 몇 조각, 부침개 몇 개를 담아서 이웃집에 가져다 주더라도 아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서 맛있게 먹었다. 물질적 풍요와 행복의 지수는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수십년간 애써 일구어온 경제적 성장을 폄하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작은 것에 정성을 담아 주고받는 삶의 태도를 되찾았으면 좋겠다는 것일 뿐이다. 그런 삶을 다시 찾는다면 적게 갖고도 행복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적게 갖고도 행복한 삶, 그래서 ‘이 정도면 됐다.’면서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는 삶에 인류의 미래가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서로 더 많이 가지려고 으르렁대다가는 싸움이 그칠 날이 없고 결국에는 파국이 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스위스의 사회윤리학자 아르투어 리히의 말은 귀담아 들을 가치가 가 있다.“우리는 ‘항상 더 많이’의 경제에서 ‘이제 충분하다’의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물론 ‘이제 충분하다’의 경제로 돌아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탐욕을 제어해야 하는 극도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데에 마음을 담아 큰 행복을 주는 삶의 방식을 다시 배우게 된다면 탐욕을 다스릴 수 있는 길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 일찍이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마태복음 5장 3절)고 말씀하셨다. 마음에 가득 찬 탐욕을 버릴 때 비로소 행복의 길이 열린다는 뜻의 말씀이다. 작은 것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큰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탐욕으로 무거워진 마음의 무게를 줄여나갔으면 좋겠다. 몸무게를 줄이면 육체적인 건강과 아름다움을 얻지만, 마음의 무게를 줄이려는 노력은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고 인류의 미래를 밝게 할 것이다.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덧셈보다는 뺄셈을 잘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기원해 본다. 손희송 신부·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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