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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00도 용광로처럼… 방짜 유기공들의 뜨거운 삶

    1300도 용광로처럼… 방짜 유기공들의 뜨거운 삶

    용암처럼 펄펄 끓어오르는 1300도의 용광로. 사시사철 그 앞에서 뜨거운 불과 맞서며 전통 유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방짜 유기공’이다. 식중독균과 대장균을 죽이는 멸균 효과 때문에 ‘신비의 그릇’으로도 불리는 방짜 유기. 만드는 공정 역시 까다롭고 복잡하다. 새벽 4시부터 용해 작업을 시작해 쇳물을 녹이는 시간만 12시간에 달하는 대규모의 공정이다. 31일 밤 10시 45분에 방송되는 EBS ‘극한 직업’에서는 500년 고유의 전통 빛을 이어가기 위해 오늘도 불 앞에 서는 방짜 유기공의 삶을 들여다 본다. 경상북도 문경의 방짜 유기 공장. 구리와 주석의 합금인 놋쇠를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합금 비율은 78대22. 이 비율을 어기면 최고의 방짜 유기가 될 수 없다. 오늘 하루 작업할 쇠의 양은 2000kg으로 쇠를 옮기고, 녹이고, 붓는 작업만 수십 번 반복된다. 삽시간에 작업 현장은 수증기와 열기로 가득 찬다. 작업자들의 얼굴은 쇳물처럼 빨갛게 상기돼 있다. 그러나 방짜 유기를 만드는 공정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양질의 물건을 제작하기 위해 메질 작업이 필요하다.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데 필요한 메질 수는 1500~2000차례나 된다. 850도 가마 앞에서 쇠를 달구고 메질하는 작업이 끝도 없이 반복된다. 그런데 그때 돌연 작업이 중단되고 일하던 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유독 굉음에 휩싸인 작업장이 있다. 회전축을 중심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기계의 힘을 빌려 납작한 바둑을 그릇 모양으로 세우는 곳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쇳가루와 전속력으로 돌아가는 기계. 자칫 잘못하면 아찔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공정이지만, 방짜 유기공의 몸은 기계와 밀착돼 있다. 이런 노력 끝에 모양이 갖춰진 쇠는 담금질을 거치게 된다. 소금물 중에서도 염도가 가장 높다는 간수에 쇠를 일정시간 동안 담그는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망치로 내리쳐도 깨지지 않는 강도 높은 방짜가 완성된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새벽 4시, 한여름 더위를 피해 이른 시간에 용해 작업이 시작됐다. 뜨거운 열기와 화염에 휩싸인 공장 안. 펄펄 끓는 1300도의 용광로 앞에서 또다시 12시간의 길고 긴 사투가 벌어진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전직 국회의원 1111명 모인 ‘대한민국 헌정회’ 무슨 일 하나

    [주말 인사이드] 전직 국회의원 1111명 모인 ‘대한민국 헌정회’ 무슨 일 하나

    대한민국 헌정회(憲政會). 전직 국회의원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사단법인체다. 헌정회는 국민들로부터 ‘원금도 내지 않고 고액의 연금을 받는 특권 집단’이라는 원성을 자주 들어 온 것이 현실이다. 헌정회원들은 안타까워하고, 억울하다고 하지만 어쩌랴. 헌정회는 국가의 주요 현안이 있을 때 최종적으로 목소리를 내 사회 통합을 위해 힘을 보태거나 정책 개발 활동 등도 다양하게 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헌정회는 1968년 창립된 국회의원동우회가 1979년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뒤 1989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991년에 제정 공포된 대한민국헌정회육성법에 따라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지급받는다. 그런데 지난 2일 법률이 개정되면서 연금 수혜 대상자가 대폭 축소됐다. 또 한 차례 연금 수혜 파동을 겪은 것이다. 일부 회원이 반발했지만 수위는 낮아 차분히 정리될 듯하다. 헌정회는 연금 문제로만 주목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고흥길 헌정회 대변인은 26일 “헌정회는 국가의 큰 현안이나 외교적인 일이 있을 때 원로로서 목소리를 내고 정책도 개발하고 있다”면서 “연금 문제만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은 잘못됐다. 나도 밖에 있을 땐 곱지않게 본 적이 있었지만 연금은 생활이 어려운 회원들에게는 단비이고, 부유한 회원들에게는 나라가 주는 훈장 같은 삶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실제 헌정회는 사회의 주요 현안이나 외교 문제가 있을 때 집단 목소리를 내 국익에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일본이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과거사 지우기가 한창이던 지난 4월 헌정회는 일본 측의 과거사 왜곡 규탄 성명을 채택했다. 회원들은 “일본 정치인들의 침략전쟁 부인과 역사적 과오 은폐는 일본국민들의 돌이킬 수 없는 수치”라고 일갈했다. 헌정회는 또 올해 들어서만 10차례 가까운 포럼과 세미나, 강연회를 개최하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5월 14일에는 헌정회 회관에서 세종대왕 616돌 탄신기념 학술강연회를 개최했고, 7월 9일에는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정책포럼을 열어 ‘7·27 휴전협정 60년 남북한과 중국의 어제·오늘’에 대해 조명했다. 출판사업으로 월간 ‘헌정’(憲政·7월 통권 373호)을 발행한다. 동호회 활동도 활발하다. 헌정회에는 서화회, 기우회, 골프회, 조우회, 산악회, 걷기모임과 종교모임 등의 동호회가 있다. 동호회 가운데 헌정회관으로 출근하는 회원들이 쉽게 할 수 있고, 바둑실까지 갖추어져 있어 기우회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주로 월, 수, 금요일에 바둑을 둔다. 걷기모임도 활발해 주로 토요일에 한강변 등을 골라 걷는다. 헌정회 총 회원수는 26일 현재 2781명이지만 이 중에서 6·25납북자나 숨진 회원이 1370명이고, 현재 회원수는 현역 국회의원 300명을 포함해 1411명이다. 현역의원은 특별회원이다. 전직 의원들로 구성된 정회원은 1111명이다. 목요상 회장은 “우리 회원들은 의정경험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문제들이 제기될 때마다 정파를 떠나 우국충정의 목소리와 정책대안을 제시해 왔다”고 강조하고 있다. 임원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회장은 4선 의원 출신 목요상 전 의원이다. 회장 선출 경쟁은 여느 선거 못지않게 치열하다. 부회장은 김동욱(4선)·김종기(4선)·송현섭(3선)·신경식(4선)·이윤수(3선)·주양자(재선)·유용태(재선) 전 의원이다. 감사는 박희부·구종태 전 의원이다. 정책연구위원회 의장 류경현·홍보편찬위원회 의장 이민섭·복지위원회 위원장 왕상은·여성위원회 위원장 양경자·사무총장 권해옥·연로회원진료비지원심사위원장 박성태·법및정관개정특별위원장 함석재·헌정회발전특별위원장 정문화 전 의원이다. 원로회의도 있어 의장은 7선 의원을 지낸 이철승 전 의원이다. 부의장은 정재호(재선)·김봉호(5선) 전 의원이 맡고 있다. 올해 91세인 이 의장은 지난 4월 의장에 재선출됐으며 현재도 정력적으로 활동 중이다. 이 의장은 신민당 총재를 지냈고, 제18대 대한체육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다. 헌정회는 젊은 층에게 다가가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젊은 사이버 세대들의 동참을 쉽게 하기 위해 각종 활동상과 정책 대안을 홈페이지에 수록해 운영하고 있다. 목요상 회장은 “선대들이 세우고 키워 온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더욱 발전시켜 남북통일을 앞당기고 세계 속에 우뚝 선 선진조국 건설을 위해 대한민국 헌정회가 그 중심에 설 것임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지난 2일 대한민국헌정회육성법 일부 개정 법률안 대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현재 국회의원인 19대 의원들부터는 앞으로 월 120만원인 연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다만 내년 1월 1일 현재 만 65세 이상인 전직 국회의원들은 이 연금을 계속 받을 수 있다. 전직 의원이라도 단 하루라도 65세에서 미달되면 연금 수혜를 할 수 없다. 65세 기준에 따라 연금수혜를 못하게 된 전직 의원만 모두 267명이라고 헌정회 측이 밝혔다. 한 회원은 1개월 반이 모자라 수혜 대상에서 빠지자 허탈해 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젊은 헌정회원들은 연금절벽이다. 헌정회 이규담 사무차장은 “아쉬워하는 분들이 적지않다”고 전했다. 또 국회의원 재직기간이 1년 미만이거나, 유죄 판결로 의원직을 잃었을 경우에도 연금지급이 중단된다. 2인 가족 기준으로 월소득이 294만원을 넘어도 연금지급이 끊긴다. 부동산 등 자산이 많아도 연금 자격이 없어진다. 구체적 기준은 헌정회 측이 자체적으로 만들지만 다수 국민들로부터 눈총을 받아온 국회의원 연금 수혜 대상자는 절반 정도로 확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연금 수혜 회원들도 최종 수령액이 내년부터 조금 줄어들게 된다. 헌정회 측에 따르면 현재 연금을 받는 65세 이상 회원은 연간 20만원의 회비를 강제로 내고 있다. 이것이 내년에는 개인당 매월 3만원으로 인상된다. 현역의원 300명은 매월 2만원씩 회비를 낸다. 65세 이하로 연금을 받지 못하는 회원들은 연간 5만원을 내도록 되어 있지만 내는 회원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 경내 한쪽에 있는 헌정회에는 하루 수십명의 회원들이 출근한다.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하는 회원들도 있지만 다수는 요금이 들지 않는 지하철 국회의사당입구역을 통해 회관에 나온다. 바둑을 두거나 정보를 교환하고, 식사도 함께 한다. 헌정회에서 식권을 주면 국회 주변 지정식당 5곳에서 주로 한가한 시간을 골라 식사한다. 하루 35~40명 정도가 7000원짜리 식권을 이용한다. 식권을 둘러싼 일화도 있다. 헌정회관이 현재 위치로 이동해 오기 전 서울시청 을지로별관 시절 한 회원은 극심한 생활고 속에 부인과 함께 살면서 식비가 모자라자 식권을 모았다가 부인과 함께 지정식당에 가 식사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이것이 “생활고에 시달린 일부 회원은 식권을 모아 현금으로 바꿔 생활비로 활용하기도 했다”는 소문으로까지 비화됐다고 알려졌다. 헌정회 측이 헌정회원들의 생활수준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해 놓은 것은 없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회원들의 정보를 입소문으로 수집하는 정도다. 통상 야당출신 회원이 가난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회원은 “나도 셋방 생활을 하지만 많은 헌정회원들이 셋방을 전전하고, 심지어 회원 다수가 컨테이너 집에서 살고 있다. 소재 파악이 안 되는 회원도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지난해 숨진 한 전직 국회의원은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입원비를 해결하지 못한 채 시신을 기증하는 것으로 대신했다고도 한다. 이 의원은 생전에는 국회의원으로서 맹활약했으나 자녀들이 사업을 하다 재산을 날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유사한 사례가 더 있다고 한다. 자신이 보증을 잘못 섰거나, 밝히기 힘든 사연으로 재산을 빼앗기다시피 한 회원도 있다. 전직 국회의원 중에는 다선 의원을 지냈다가 마지막에 두세 차례 선거에 떨어지면서 자신과 가족은 물론 친척들에게까지 거액의 부채를 떠안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화려한 의정생활과 달리 노년이 힘들게 되는 원인이다. 지금은 선거 있는 해에 상한 3억원까지 후원금을 모을 수 있고, 법정선거비용은 선거관리위원회가 보전해주는 선거공영제가 확대되면서 ‘선거 폐인’은 줄어들고 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사설] 경제팀 ‘재신임’ 의미 새기고 신발끈 조여야

    박근혜 대통령이 엊그제 국무회의에서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향해 “하반기에는 국민이 성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컨트롤 타워 역할을 더욱 열심히 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치권 일각의 교체 주문에 확실하게 ‘노’(No)라고 답한 셈이다. 바꿀 의사가 없는 이상 대통령이 재빨리 교통정리에 나서 ‘흔들기’를 차단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제 공은 경제팀으로 넘어왔다. 이번 신임을 ‘좀체 사람을 바꾸지 않는’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로만 해석하면 오산이다. ‘윤창중 스캔들’이 터졌을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교체 지시를 내린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경제팀에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것뿐이다. 경제팀은 그 뜻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신발끈을 다시 조여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는 내가 책임진다는 각오를 새롭게 할 것을 주문한다. 그동안 현오석 경제팀이 보여준 모습은 ‘대통령바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경제민주화 입법, 취득세 인하, 금융소비자보호원 독립 등 주요 이슈마다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가 지시가 떨어지면 그제서야 움직였다. 지금부터라도 각자 위상에 걸맞은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현 부총리는 경제정책 방향을 분명히 하고 성장동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늘 발표될 2분기 성장률이 1분기(전기 대비 0.8%)보다 높은 것은 확실한 모양이지만 회복세를 언급하기에는 이르다. 그런 만큼 하반기 정책중심을 경제 살리기에 놓되 경제민주화 포기로 비쳐져 혼선을 야기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정책방향에 맞춰 관계부처와 이해집단도 힘 있게 끌고 가야 한다. 당장 취득세만 하더라도 ‘9억원 이하 주택 50% 인하’에 무게를 두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달리 안전행정부는 ‘3억원 이하’를 들고 나와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다. 다툼이 길어지면 부동산시장은 거래 절벽이 아니라 아예 고사할지도 모른다. 심상찮은 전세 품귀 대책, 시늉만 내다 만 서비스업 대책 등 후속조치도 시급하다. 참의원 선거 승리로 날개를 단 아베노믹스의 엔저 공세와 미국의 양적 완화 출구전략 등에 대한 준비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현 부총리는 “개인기가 화려하고 전략이 뛰어나도 골을 못 넣으면 축구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착안대국 착수소국(着眼大局 着手小局)이라는 바둑 격언도 언급했다. 그의 말대로 그림은 크게 그리되 실행은 디테일하게 해 가시적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 대통령도 이왕 기회를 준 이상 확실하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관료·학자 중심의 현 경제팀이 정권에 ‘지분’이 없어 소신 있게 제 색깔을 내지 못한다느니, 대통령의 경제참모 그룹이 따로 있다느니 하는 말이 나돌아서는 경기를 뛰는 선수도, 지켜보는 관객도 경기에 집중할 수 없다.
  • [케이블 하이라이트]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2(CGV 밤 10시) 범죄 예측 시스템이 평범해 보이는 한 소년을 지목한다. 핀치는 그를 구하려고 학교로 잠입한다. 그는 평범한 줄 알았던 소년이 천재 해커이며, 그가 형의 자살과 관련 있는 사람을 찾으려고 마약판매상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카터는 FBI와 함께 리스를 포함한 네 명의 용의자를 심문하게 되는데…. ■붕어학교 303 시즌 2-폭우가 지나간 자리(FTV 밤 10시 25분) 전국적으로 기록적인 폭우가 지나가고 물고기가 새로 들어오는 때를 맞았다. 상류의 차가운 새 물의 유입으로 물 온도가 낮아지면서 세숫대야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이번 시간에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준계곡형 저수지를 선택한다. 그에 따른 포인트와 채비의 공략 포인트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제15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바둑TV 오후 4시 30분) 총 6번의 토너먼트를 통과해야 태극마크를 달 수 있다. 농심신라면배 대표 선발전은 프로기사 사이에 가장 힘들고 험난한 대회로 이름이 높다. 그렇게 어렵게 단 태극마크인 만큼 한국은 유독 이 대회에서 우승이 많았다. 과연 올해는 어떤 선수가 선발되어 스타덤에 오를지 바둑팬들의 눈과 귀가 쏠린다. ■2013 KPGA 먼싱웨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J 골프 밤 11시) 32강전 진출을 위해 KPGA 대표 골퍼 강경남과 김응진이 만났다. 올 시즌 KPGA투어 ‘제1회 해피니스 광주은행 오픈’ 우승과 ‘군산 CC 오픈’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현재 KPGA 코리안투어 대상 포인트 1위와 상금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는 강경남. 하지만 그에 맞서는 상대의 승부가 예사롭지 않다. ■썬즈 오브 아나키 2(FX 밤 11시) 차량 폭발 사고로 치명상을 입은 치브스를 보고 화가 난 샘크로는 이구동성으로 복수를 다짐하지만 잭스는 머뭇거리고, 헤일과 몰래 계획을 꾸며 에단을 넘기기로 한다. 그러나 이미 클레이는 에단을 처단하기 위해 찾아나선 상태다. 한편 기독교 센터 내에 울린 총성으로 샘크로는 모두 연행될 위기에 처한다. ■빅토리어스(니켈로디언 밤 9시) 음반업계의 대부 메이슨은 공개 오디션을 통해 플래티늄 뮤직 어워즈에서 오프닝 공연을 하게 될 예비 스타를 선발한다. 토리가 뛰어난 실력으로 뽑히게 되지만 메이슨은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며 괴상한 옷차림과 화장을 강제로 시킨다. 게다가 토리에게 고급 레스토랑에서 행패를 부리면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 인기 웹툰 ‘미생’이 드라마로

    인기 웹툰 ‘미생’이 드라마로 제작된다. CJ E&M은 16일 “미생의 판권 계약이 완료됐으며 드라마로 제작해 내년에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직장인의 바이블’ ‘국민 웹툰’으로 불리며 높은 인기를 누리는 ‘미생’은 ‘이끼’의 윤태호 작가 작품이다. 바둑이 인생의 전부였던 주인공 장그래가 프로 입단에 실패한 뒤 일반 기업에 들어가 겪는 이야기를 그린다. ‘몬스타’ ‘성균관 스캔들’ 등 인기작을 선보인 김원석 PD가 연출을 맡는다. 김 PD는 “매일 전쟁터로 나가는 사람들과 그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가족들에게 모두 사랑받는 드라마가 되면 좋겠다. 원작의 쾌감을 해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 [케이블 하이라이트]

    ■화이트 채플 2(AXN 밤 8시) 술집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살인범으로 지미 크레이를 지목하고, 챈들러 반장은 그의 집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지미와 조니 크레이 쌍둥이의 어머니가 자신이 로니 크레이의 아이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증거가 없어 지미를 풀어 주게 된 챈들러가 크레이 형제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챈들러 반장의 팀원들에게 폭력배의 협박이 시작된다. ■제9회 한국물가정보배 프로기전 결선 토너먼트(바둑TV 밤 7시) 결선 토너먼트 진출자 8명이 우승을 위해 출격한다. 본선까지는 더블일리미네이션 방식이어서 패배한 뒤에도 기회가 있었지만 결선부터는 한 번의 패배는 곧 탈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선에 오른 8명의 기사 중 이영구, 이창호, 안성준, 김형우는 한 번 패배한 기록을 안고 힘겹게 싸운 끝에 가까스로 부활에 성공한다. ■어럽쇼!(QTV 밤 9시 50분) ‘구멍 병사’로 허당 매력만 보여주던 샘 해밍턴이 달라졌다. 샘 해밍턴은 녹화 중 소품으로 준비된 수박 한 통을 보고 칼로 잘라 먹으려고 기다리는 다른 MC들과 달리 그대로 수박을 향해 돌진해 주먹으로 내리친다. 한편 터프한 그의 모습에 정형돈은 ‘호주 효도르’라는 별명을 붙여주지만 이내 샘 해밍턴은 말 못할 고통을 호소한다.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 2(CGV 밤 10시) 쿠바에서 망명해 미 프로야구와 계약했던 페르민 오르도녜스는 팔 부상으로 조기에 은퇴하고 택시 기사로 생활하고 있다. 한편 오르도녜스는 나머지 가족을 망명시키려고 택시를 운전하며 열심히 돈을 모으지만 가족과의 재회는 멀기만 하고 손님이 두고 내린 노트북을 팔았다가 목숨을 위협받는 처지에 놓인다. ■환상거탑(tvN 밤 11시 10분) 기존 드라마의 소재와 형식의 틀을 과감히 깨고 만화적인 상상력과 미스터리, 스릴러 등의 소재를 거침없이 담아낸 판타지 옴니버스 드라마가 시작된다. 요즘 인기가 급상승 중인 배우 조달환의 주인공 변신을 비롯해 연기파 배우 강성진, 남성진, 사희가 등장해 여름 밤을 시원하게 장식한다. 연기파 배우는 물론 아이돌의 다채로운 캐릭터를 만나본다. ■빅토리어스(니켈로디언 밤 9시) 화장실에서 울고 있던 포니와 친구가 된 토리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포니를 소개해 주려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포니는 사라지고, 토리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한편 포니는 아무도 모르게 토리의 사물함을 바꿔 놓은 뒤 배달원으로 변장해 토리에게 음식을 쏟는 등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 나타나 토리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 권상우 ‘최고의 복근’으로 뽑혀…“바둑판 모양의 예쁜 사각형…명품 식스팩”

    권상우 ‘최고의 복근’으로 뽑혀…“바둑판 모양의 예쁜 사각형…명품 식스팩”

    권상우가 스타 트레이너들이 뽑은 ‘최고의 복근’의 영예를 얻었다. 10일 방송되는 국내 유일 남성 피트니스 프로그램 XTM ‘절대남자’에서는 2주 만에 몸짱 되는 속성 운동법이 소개될 예정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김승현, 김선우, 구자곤, 이선미, 임종민 등 유명 연예인들의 몸매 관리를 맡고 있는 스타 트레이너들이 출연해 단시간에 근육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전한다. 이날 녹화 현장에서 MC 오상진이 “대한민국 최고의 복근을 뽑아달라”고 질문하자 4명 중 3명이 이구동성으로 권상우를 뽑았다. 구자곤 트레이너는 “복근이 있는 사람은 많지만 권상우처럼 바둑판 모양으로 예쁘게 균형 잡힌 식스팩은 보기 힘들다”면서 “식스팩뿐만 아니라 하복부 라인도 권상우가 으뜸”이라고 칭찬했다. 이선미 트레이너도 “권상우의 식스팩 모양이 가장 가지런하고 예쁜 사각형 모양”이라고 말했다. 김승현 트레이너 역시 “몸짱 스타들이 많지만 복근으로만 따진다면 단연 권상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김선우 트레이너는 “도끼로 맞은 것처럼 잘 갈라진 소위 ‘도끼복근’의 소유자 이정재씨가 가장 예쁜 몸”이라고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가벼운 인지장애’ 단계가 치매 발병 분기점

    치매 직전 단계인 ‘가벼운(경도) 인지장애’ 단계가 치매로 발전하는가, 아니면 정상으로 회복되는가의 분기점이라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경도 인지장애는 아직 치매는 아니지만, 인지기능 검사에서 같은 나이와 교육수준, 같은 성별의 정상인보다 인지기능이 떨어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분당서울대병원 뇌신경센터 치매·경도인지장애센터 김기웅·한지원(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65세 이상 노인 1000명을 18개월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경도 인지장애 환자 중 9%만 치매로 악화됐고, 18%는 정상으로 회복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최근 밝혔다. 나머지 73%는 악화와 회복을 반복했지만, 추적 기간에는 경도 인지장애 상태에 머물렀다. 이처럼 같은 경도 인지장애 환자라도 예후가 다른 것은 기억력과 언어·시공간·실행능력과 주의집중력 등 다양한 평가 영역들이 얼마나 복합적으로 작용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예컨대 기억력만 떨어져 있다면 치매로 악화되기가 어렵지만, 기억력과 언어능력이 함께 떨어졌다면 치매로 악화될 가능성이 3배나 높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특히 같은 경도 인지장애 단계라도 일상생활 능력이 완전한 사람보다 경미한 수준 이상의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치매로 진행될 확률이 8배 이상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덧붙였다. 일상생활에서의 경미한 불편함이란 ▲세금 납부나 은행업무 등의 처리 실수 ▲체스나 바둑 등 게임이나 취미활동 능력 저하 ▲최근의 일에 대한 인지도 저하 ▲TV 프로그램이나 책, 잡지 등에 대한 이해도와 집중력 저하 등이 꼽힌다. 김기웅 교수는 “본인 스스로 기억력 감퇴를 느낀다면 조기에 치매 검진을 받아 보는 게 좋다”면서 “경도 인지장애이면서 일상생활 능력이 감퇴한 경우라면 반드시 정밀진단을 받아 적기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케이블 하이라이트]

    ■꽃보다 할배(tvN 밤 8시 40분) 평균 연령 76세의 배우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이 배낭여행의 메카 유럽으로 9박 10일간 배낭여행을 떠난다. 젊은 사람들은 쉽게 떠나는 여행이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할아버지 ‘할배 포’(H4)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다행히 나영석 피디가 공항에서 소개해 준 젊은 짐꾼, 배우 이서진이 이들을 맞이하는데…. ■마스터셰프코리아 2(올리브 밤 10시) 지난주 미션 1등부터 꼴찌까지의 각 도전자에게 주어진 최고급 재료들로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다루기가 결코 만만치 않은 재료의 등장에 도전자들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어려운 재료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가운데 도전자와 심사위원 간의 갈등으로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 과연 이번 주는 누가 탈락할까. ■피에타(스크린 밤 11시) 끔찍한 방법으로 채무자들의 돈을 뜯어내며 살아가는 남자 강도. 피붙이 하나 없이 자라 온 그에게 어느 날 ‘엄마’라는 여자가 불쑥 찾아온다. 여자의 정체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혼란을 겪는 강도는 태어나 처음 자신을 찾아온 그녀에게 무섭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사라지고, 곧이어 그와 그녀 사이의 잔인한 비밀이 드러난다. ■2013 인천 실내&무도 아시아 경기대회(바둑TV 오후 4시 30분) 바둑 종목 남녀 단체전 결승이 생중계된다. 한국에서는 강승민, 나현, 변상일, 이동훈이 남자 대표선수로 출전한다. 여자 대표선수는 오정아, 김채영, 최정, 오유진 등이다. 한국 등 총 10개국이 3판 2승제로 승부를 가리는 남녀단체전은 스위스리그 4회전으로 상위 4개 팀을 가리고 크로스토너먼트로 순위를 결정한다. ■디자인 매거진 룸 2(홈스토리 밤 11시 탤런트 강성연과 함께하는 첫 번째 시간. 20년 넘은 아파트 1층의 주거 공간이 새롭게 변신한다. 그리고 쇳조각으로 작품을 만드는 조각가 김병진을 찾아가 작품을 살펴본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와 함께하는 리얼 데코 편에서는 바캉스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여름 인테리어를 소개한다. ■난감스쿨(투니버스 밤 8시) 납량 특집 시즌을 맞아 그룹 엠블랙의 대표 ‘예능돌’ 미르가 찾아왔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무서운 이야기와 신나는 게임으로 더위를 한 방에 날린다. 오늘 수업은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버릴 공포 체험으로, 귀신 분장을 하고 눈을 가린 채 친구에게 자장면을 더 깨끗하게 먹여주는 팀이 승리한다.
  • ‘당구 여신’ 차유람, “미모 여전하네”

    ‘당구 여신’ 차유람, “미모 여전하네”

    당구선수 차유람의 성화 봉송 인증샷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29일 차유람은 자신의 트위터에 “2013 인천 실내무도 아시아경기대회 성화 봉송하러 와서. 이봉주선수와 함께” 라는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올렸다. 공개된 사진 속 차유람은 전 마라톤 국가대표 이봉주 선수와 함께 성화봉을 들고 나란히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특히 단발머리로 변신해 청순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당구여신’ 차유람 선수의 미모가 눈길을 끌고 있다. 한편 지난달 29일 개막해 오는 6일까지 열리는 ‘2013 인천 실내무도 아시아경기대회’는 인천과 주변 도시에서 당구, 볼링, 체스, 바둑, e스포츠, 댄스스포츠, 실내카바디, 킥복싱, 무에이, 크라쉬, 풋살, 25m 쇼트코스 수영 등 총 12개 종목의 경기가 펼쳐진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천 실내 & 무도 아시안게임 29일 개막

    인천 실내 & 무도 아시안게임 29일 개막

    내년 인천아시안게임의 리허설이라 할 수 있는 제4회 인천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가 29일 개막해 다음 달 6일까지 8일간의 열전에 돌입한다. 아시아 44개국 4400여명(선수단 2400여명)이 인천 일대를 찾아 당구, 볼링, 체스, 바둑, e스포츠, 댄스스포츠, 풋살, 실내카바디, 킥복싱, 무에이, 크라쉬, 25m 쇼트코스 수영 등 12개 종목에서 100개의 금메달을 놓고 기량을 겨룬다. 2005년 태국 방콕에서 처음 시작된 대회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포함되지 않은 종목을 대상으로 한 이색적인 스포츠 이벤트다. 실내 대회와 무도 대회가 따로 개최됐으나 이번부터 통합됐다. 2009년 베트남 하노이 대회에서 16개의 금메달로 종합 6위를 차지한 한국은 이번에 172명의 선수단을 내보내 3위 이상의 성적을 목표로 잡았다. 생소한 종목이 많지만 알고 보면 흥미롭다. 실내카바디는 술래잡기와 피구, 격투기가 혼합된 변형 투기 종목이다. 피구장처럼 생긴 경기장에서 공격수가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 “카바디”라고 외치며 수비수를 터치한 뒤 되돌아오면 점수를 얻는다. “카바디” 소리가 끊기거나 공격수가 상대 수비에게 붙잡히면 실점한다. 400여년 전 인도에서 유래했으며 ‘카바디’는 ‘숨을 참는다’는 뜻의 힌두어다. 우즈베키스탄 고유 무술인 크라쉬는 유도와 비슷하지만 상대 하반신을 손으로 잡을 수 없고 그라운드 기술이 허용되지 않는다. 풋살은 실내에서 열리는 미니 축구로 골키퍼까지 5명이 한 팀을 이룬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e스포츠는 스타크래프트2와 FIFA13, 니드 포 스피드, 리그 오브 레전드, 스페셜 포스, 철권태그토너먼트2 등 개인전과 단체전을 합쳐 6개 세부 종목으로 진행된다. 무에이는 무에타이로 잘 알려진 태국 전통 무술이다. 대회 개회식은 29일 오후 6시 30분부터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꿈꾸는 이를 비추는 빛’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성화는 이날 오전 10시 강화 마니산에서 채화돼 120명의 주자가 50.8㎞를 나눠 달리며 봉송한다. 대회 기간 국립예술단과 인천시립예술단이 공연을 하는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함께 열리고 자원봉사자 2500여명이 대회 운영을 돕는다. 다음 달 6일 열릴 폐회식은 ‘우리의 빛이 모여 아시아를 비추다’라는 주제로 1시간 20분 동안 펼쳐지며 내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주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1, 2부(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견습 수녀인 마리아는 미사도 잊을 정도로 노래를 좋아하며 기도시간에 늦는 등 수녀로서의 자질을 의심받는다. 하지만 항상 쾌활한 성격으로 원장 수녀의 귀여움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아의 장래를 생각한 원장 수녀는 명문 트랩가의 가정교사로 그녀를 추천한다. 퇴역 해군 대령으로 7명의 자녀를 둔 홀아비 트랩은 엄격한 군대식 교육을 해 아이들은 아빠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아름답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게 함으로써 밝은 분위기를 찾도록 노력한다. 한편 마리아는 언제부터인가 트랩 대령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그에게는 이미 약혼녀 백작 부인이 있는 상황이다. 트랩 대령이 백작부인을 맞으러 빈으로 떠나자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게 해준다. ■독립영화관-미운오리새끼(KBS1 토요일 밤 1시 5분) 1987년 전직 사진기자 출신에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줄을 놓아버린 아버지와 그 바람에 미국으로 떠나버린 어머니 때문에 멀쩡한 23살 낙만은 오후 6시 정시에 퇴근하는 6개월 방위로 입대한다. 낙만은 이발병으로 입대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고작 사진 찍기, 바둑 두기, 헌병 대신 영창 근무 서기 등 일당 백의 잡병으로 취급당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무시당하던 낙만은 얼른 이 생활을 마무리하고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 와중에 별별 희한한 감방 수감자들을 만나고, 자신을 눈엣가시라 생각하는 중대장의 딴죽과 시시콜콜 군대의 온갖 잡일을 시키는 선임병들의 횡포에 시시각각 낙만의 군생활은 위협을 받는다. ■베스트셀러(OBS 일요일 밤 10시 15분) 희수는 10여년간 대한민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군림해 왔다. 하지만 발표한 신작 소설이 한 공모전의 심사를 맡을 당시 작품을 표절했다는 혐의를 받게 돼 하루아침에 사회적 명성을 잃고 결혼생활마저 순탄하지 못하게 된다. 그 후 2년 동안 창작생활이 어려워진 희수는 오랜 친구인 출판사 편집장의 권유로 화려한 재기를 꿈꾸며 딸 연희와 함께 시골의 외딴 별장으로 내려간다. 그들이 찾아간 별장은 굳게 잠긴 2층 구석방, 간헐적으로 집안 전체에 울려퍼지는 기괴한 진공 소리, 작업실 천장에 점차 번져가는 검은 곰팡이 등 왠지 모를 섬뜩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한편 희수의 딸 연희는 ‘언니’라고 불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 은빛 속살에 다 털렸네, 봄도 입맛도

    은빛 속살에 다 털렸네, 봄도 입맛도

    우리는 늘 달의 한쪽 면만 본답니다. 그 탓에 달의 저편은 언제나 가려져 있지요. 눈과 귀에 익숙한 곳들만 좇았다면, 필경 부산을 보는 당신의 시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부산은 ‘늘 보던’ 명소 몇 곳으로만 한정될 수 없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곳이지요. 예컨대 기장 지역이 그렇습니다. 해운대 끝자락, 그러니까 달맞이 고개를 넘어서면 대도시 부산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아름답고 넉넉한 기장의 항·포구와 마을들이 주르륵 펼쳐지지요. 갯가 마을마다 독특한 형태의 등대도 서 있습니다. 이게 제법 볼 만합니다. 등대 따라 풍경과 맛집이 동행하는 곳, 여기는 기장입니다. 요즘 기장에서 가장 물오른 해산물을 꼽으라면 단연 멸치다. 어획량도, 맛도 최고다. 그 중심지가 대변항이다. 기장 멸치는 대부분 몸집이 큰 대멸이다. 큰 녀석은 길이가 10㎝를 훌쩍 넘는다. 이만 하면 ‘생선급’이다. 구워 먹고, 무쳐 먹고, 끓여 먹는다. 다른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한 보조 재료가 아닌 당당한 요리의 주재료다. 기장 멸치는 사철 나지만, 이맘 때를 제철로 친다. 대변항 인근의 한 여성 상인은 이 시기를 “아카시아 꽃 필 때”라고 했다. 예부터 기장의 봄철 멸치잡이는 음력 삼월 삼짇날 시작해 5월 단오 무렵 절정을 이뤘다. 이처럼 물오른 멸치가 절정의 맛을 선사하는 시기가 아카시아꽃 필 무렵과 겹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기장일까. 기장 앞바다는 동해와 남해의 경계수역이다. 한류와 난류의 교차수역이기도 하다. 이런 곳은 거개가 물살이 세고 생태계 환경이 우수하다. 먹잇감이 많은 곳에서 물살 헤치며 살아온 녀석들이니 당연히 살이 탄탄하고 맛도 좋을 터다. 멸치는 식탁에 오르기 전 사람들에게 눈요깃거리를 안겨준다. 멸치 털이다. 대변항 선착장에 늘어선 배 앞에서 선원들이 그물에 걸린 멸치들을 떨궈 내는데, 사람과 그물, 그리고 멸치가 어우러져 볼거리를 펼쳐낸다. 멸치 털이 장면을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을 땐 먼저 바닷물에 잠긴 배의 면적부터 헤아릴 일이다. 풍어를 이룬 배는 그러지 못한 배에 견줘 멸치 무게만큼 선체가 바닷물에 깊이 잠겨 있다. 이런 배를 골라야 한다. 하필 바다 위로 가붓하게 솟아오른 배를 골라 카메라를 들이댔다간, 선원들에게 욕깨나 얻어먹는다. 멸치 털이 과정이 필요한 건 그물 때문이다. 기장 쪽 어선들은 유자망(流刺網)을 이용해 멸치를 잡는다. 유자망은 조류를 따라 그물을 흘려 멸치가 그물코에 꽂히게 해 잡는 어구다. 멸치를 그물째 감아 온 어선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분리 작업을 벌이는데, 그게 바로 멸치 털이다. 선원들 눈치 살피며 엿본 멸치 털이는 역동적이었다. 멸치가 튀고, 땀이 튀고, 그리고 돈이 튄다. 멸치 털이는 8명의 선원이 4명씩 짝을 맞춰 펼쳐진다. 그물을 올리고 털 때마다 후리 소리 장단이 들어간다. 후리 소리는 배마다 제각각이다. 장단에 따라 위로 솟구치던 그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수많은 멸치들이 허공에 잠시 머문 뒤 수거 망으로 쏟아져 내린다. 격렬한 털이 과정에서 60% 정도의 멸치만 온전한 모습으로 남고 나머지는 형편없는 몰골로 변하고 만다. 올해는 지난해에 견줘 멸치가 한결 많이 잡히고 있다. 편차는 있지만, 어선마다 대략 400상자 안팎의 수확을 올린다. 경매가가 한 상자당 4만원 정도에 형성되고 있으니 한 번 출어에 160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선원들 뒤편엔 예외 없이 아낙네 두어 명이 비닐 봉투를 들고 어슬렁거린다. 수거망 밖으로 떨어진 멸치를 주으려는 인근 주민들이다. 예전엔 선원들 발치에 수북이 쌓인 멸치를 한 움큼씩 집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 어획량이 줄어든 요즘엔 수거 망 바깥쪽으로 경계가 그어졌다. 구경꾼의 시선에선 역동적이지만, 선원들로서는 죽을 맛이다. 한 선원에게 듣자니 “그물을 깔고 걷는 건 둘째고, 멸치 털이가 가장 고역”이란다. 예닐곱 시간은 보통이고, 많이 잡혔을 때는 밤늦도록 작업이 이어진다. 기장 해안가엔 빼어난 형태의 바위들이 많다. 일광면 일대에 수없이 많은 수석 판매장이 늘어선 것도 이런 이유다. 예전엔 ‘기장의 바둑돌’이란 말도 있었다. 기장군에 남은 ‘기포’(碁浦)란 지명은 그 역사의 흔적이다. 그 멋들어진 풍경 위에 죽성리 성당이 서 있다. 한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세트장이었던 곳으로, 청잣빛 바다와 어우러진 이국적인 자태가 인상적이다. 실제 미사는 열리지 않지만 5분이 멀다 하고 관광객들이 찾아 든다. 부산관광공사가 기장 지역을 돌아볼 수 있는 걷기코스도 마련해 뒀다. 기장등대길과 기장포구길이다. 등대길은 해동용궁사에서 오랑대, 서암마을을 지나 대변항까지 이어진다. 등대길의 묘미는 오가며 만나는 독특한 형태의 등대들이다. 서암마을엔 5개의 조형등대가 있다. 특히 젖병등대가 이채롭다. 5.6m 높이의 등(램프) 위에 도자기로 구운 젖꼭지 모양의 지붕을 얹었다. 등대 외벽에는 어린이와 아기 144명의 손과 발 도장이 찍힌 타일을 붙였다. 출산 장려의 뜻이 담겼다. 닭벼슬등대도 있다.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닭벼슬처럼 보인다 해서다. 원래는 차전놀이등대다. 일(一)자 방파제엔 장승등대를 세웠다. 일본 만화영화의 주인공 이름을 따 마징가 등대로도 불린다. 기장포구길은 일광면 학리마을을 출발, 수작업으로 배를 정비하는 기장조선소와 삼성대 등을 지나 이천마을까지 이어진다. 기장의 제철 먹거리는 역시 멸치다. 멸치회는 주로 새콤달콤한 양념에 무쳐서 먹는다. 구워서도 먹는다. 다만 값에 견줘 양은 다소 적다. 그 ‘험한’ 멸치 털이에서 온전하게 몸을 보전한 녀석들만 구이용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찌개는 일반적으로 방아잎을 넣어 끓인다. 방아잎은 산초와 비슷한 독특한 향 때문에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린다. 방아잎 향이 싫다면 주문 전 밝혀두는 게 좋겠다. 대변항 일대 어디서든 멸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가격은 요리 종류를 불문하고 대부분 2만~4만원 선이다. 대변항은 큰길을 기준으로 노점과 일반 식당으로 양분돼 있다. 노점에선 멸치 등의 생물만 판다. 멸치 40~50마리에 1만원쯤 받는다. 단 구이 등 조리는 일반 식당에서만 판다. 일종의 묵계인 셈이다. 기장의 또 다른 명물은 짚불 곰장어다. 곰장어를 짚불에 초벌구이한 뒤 이를 식탁에서 구워 먹는다. 월전리와 죽성리 인근에 장어마을이 조성돼 있다. 대변항까지는 경부고속도로 원동 나들목으로 나와 벡스코 사거리에서 송정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송정터널을 거쳐 가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글 사진 부산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CEO칼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방한홍 한화케미칼 사장

    [CEO칼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방한홍 한화케미칼 사장

    미국 하버드대에는 ‘실패 101’이라는 강의가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세 가지 프로젝트를 시작해 실패를 의무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과정이다. 실패한 이유를 분석해 이를 성공의 발판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기르게 하려는 취지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립자 빌 게이츠는 일부러 실패한 기업에 몸담은 경력을 가진 직원들을 회사에 채용하곤 했다. 실패 경험이야말로 사람이 어려움에 처할 때 극복해낼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실패를 줄이려면 역설적으로 많은 실패를 통해 성공의 노하우를 쌓아야 한다. 바둑에서의 복기(復碁)나 시험 뒤 오답노트를 정리하는 것 역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실패의 이면에는 성공으로 가는 지혜가 담겨 있어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가 두려워 도전조차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프러포즈했다 거절당하면 최소한 자신의 속마음을 상대에게 털어놓은 만큼 후일을 기약할 수 있지만, 프러포즈조차 하지 않으면 영원히 짝사랑으로 머물고 만다. 실패를 감수할 용기를 가진 자만이 사랑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가 홈런왕인 동시에 삼진왕이기도 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현역시절 통산 열두 번 홈런왕에 올랐지만, 동시에 다섯 번의 삼진왕도 차지했다. 연평균 삼진 수는 홈런의 두 배였다. 삼진을 두려워하는 스윙으로는 홈런도 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도전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규정해 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 몸은 항상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습성이 있다. 역기를 열 번 들면 몸은 딱 그 수준에 맞는 근육만 만들어낸다. 도저히 못 들 것 같이 힘들어도 열 번을 넘겨 열한 번째를 들게 되면 몸은 그제서야 새 근육을 생산한다. 역기를 열 번 드는 건 열한 번째를 들기 위해서다. 마지막 한 번을 더 들지 않으면 그전의 열 번은 아무 의미가 없다. 도전하지 않는 것은 역기를 열 번만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은 신념을 만들고 그 신념은 성공을 이끈다. 북미 인디언 라코타족은 기우제를 지내면 100% 비가 오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해 더욱 간절하게 하늘에 제를 올렸다. 성공의 사례를 알려주는 ‘성공학개론’은 도처에 널려 있다. 하지만 진짜 성공의 비결은 실패사례에 있을 가능성이 많다. 성공하기까지 수없이 많은 실패가 있었겠지만 성공에 가려 있을 뿐이다. 때로는 실패에서 경험하는 반면교사가 가장 좋은 스승이다. 도전하지 않는 기업 역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특히 기업의 미래가 달린 연구·개발(R&D) 분야는 실패를 감수해야만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을 수 있다. 지속적인 R&D를 통해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현재 상황에서는 더더욱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전구를 만들기 위해 700번의 실패를 한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은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700가지 방법이 효과가 없음을 입증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언도 그의 절절한 경험에서 나왔다. 필자도 어린 시절 수많은 실패를 겪었다.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을까’라는 생각에 괴로워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입학시험에서만 몇 번의 고배를 마셨다. 지금은 편하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 주위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던 그 시간을 견뎌내기가 죽기보다 힘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실패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강한 인내심과 도전정신을 얻게 됐다. 역전의 기쁨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활력소가 아닐까?
  • “토깽아” 부르면 달려와 품에 안겼던 할아버지와 단짝 토끼 10년 이야기… 작가 가족의 실제 모습 예쁘게 담아

    “토깽아” 부르면 달려와 품에 안겼던 할아버지와 단짝 토끼 10년 이야기… 작가 가족의 실제 모습 예쁘게 담아

    목련 꽃이 활짝 핀 어느 봄날, 조용하고 소소한 일상을 보내던 할아버지에게 낯선 토끼 한 마리가 찾아온다. 주택가에서 아파트로 이사 가는 할아버지의 친구가 하얀 토끼 한 마리를 선물로 주고 간 것이다. 낯선 토끼와의 동거는 할아버지에게 달가운 일은 아니다. 한 번도 토끼를 길러 본 적 없는 할아버지는 난감하기만 하다. 토끼도 사정은 마찬가지. 할아버지는 거실 한편에 토끼장을 설치하고, 상추를 건넨다. 토끼는 상추를 먹기는커녕 토끼장 구석에 웅크리고 눈치만 본다. 할아버지의 친구가 토끼를 건네며 “약으로 달여 먹으라”던 말을 알아들었던 것일까. 할아버지는 토끼에게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토끼를 위해 뚝딱뚝딱 멋진 집도 만들어주고, 달달한 당근도 챙겨 준다. 매일매일 새로운 일을 하나씩 꾸민다. 어느 날 문득 토끼 이름을 지어주기로 한다. 눈을 끔뻑이는 토끼에게 이렇게 ‘토깽이’란 이름이 붙는다. 어느새 한 식구가 된 것이다. ‘최고 멋진 날’(고정순 지음, 해그림 펴냄)은 할아버지와 ‘토깽이’의 ‘최고 멋진 날’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며 함께하는 모든 시간들이라고 속삭인다. “토깽아”하고 할아버지가 부르면, 토끼는 귀를 쫑긋, 코를 벌름거리며 뒷발을 힘차게 굴러 할아버지 품에 와락 안긴다. 할아버지는 더욱 바빠졌다. 옥상에는 토끼를 위한 예쁜 텃밭이 들어서고 상추, 가지와 호박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피어난다. 할아버지는 때론 ‘토깽이’와 바둑을 두고 강아지처럼 함께 산책한다. 동네 사람들도 다 아는 단짝 친구다. 그렇게 아홉 해가 훌쩍 흘렀다. ‘토깽이’도 하나둘 이가 빠지고 힘껏 뛰어오르지 못한다. 기운 없이 온종일 잠만 자는 날이 늘어간다. 어느 날 ‘토깽이’는 할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도 일어나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토깽이’와의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 책은 어린이들에게 관계 맺기의 소중함과 함께 이별의 아픔을 가르쳐 준다.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고정순 작가는 따뜻한 글에 스스로 삽화를 입혔다. 작가는 “30여년 전 유치원에 다닐 무렵, 친할아버지의 실제 모습을 담은 그림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10년 가까이 애완견처럼 할아버지를 따르던 토끼가 늙어 죽자 할아버지도 5년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면서 “어릴 적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기 위해 2년여간 작업했다”고 말했다. 1만원.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 펴낸 前국가인권위원장 안경환

    [저자와의 차 한잔]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 펴낸 前국가인권위원장 안경환

    여기 문제적 인간이 있다. 족적만 살펴보자. 대구사범학교를 다니다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독서회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뒤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중국에 끌려간다. 광복군의 일원으로 해방 조국에 돌아와 교육에 매진하다 부산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이 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을 용기있게 보도해 4·19 혁명에 불을 당긴다.   대구사범 동기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나 조국의 암울한 현실에 공분, 5·16 쿠데타와 이후 조국 근대화의 밑그림을 그린다. 미국의 반대 따위는 없을 것이라며 박정희를 부추긴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방송사 사장에까지 오른다. 곧바로 주체세력의 암투에 휘말려 나락을 경험한다. 1964년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한 상호 체제 인정” 등을 월간 ‘세대’에 실었다가 구속된다. 이후 40여년의 삶은 ‘함께 혁명했던’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추모에 오롯이 바쳐진다.  황용주(1918-2001년) 전 문화방송 사장. 그가 평생 남긴 40여권의 일기를 유족에게서 건네받은 안경환(65) 서울대 법대 교수가 여러 인사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쓴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까치 펴냄)를 냈다. 진보진영에 속하며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안 교수이기에 의외로 비칠 여지도 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책을 내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10년도 전에 일기를 입수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산 지식인이 그렇게 무덤도 없이 간 것에 대해 아련한 마음이 있었죠. 우리 문화나 정체성이 4·19 이후에야 시작됐다고 보며 일제시대는 우리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게 대세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윗세대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나 일제 말기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학병 세대들을 전체적으로 엮어서 시대사를 써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려니까 벅차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어요. 그런데 (황용주씨) 부인(이창희 여사·프랑스 거주) 나이가 90이 넘었으니 기왕 하는 거 10주기에 맞춰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제 평가를 배제하고 그 사람 목소리를, 그 분 입장에서 재현해봐야겠다 그렇게 된 거고요. 그래서 ‘인물전기’라고, ‘평(評)’ 자를 넣지 않은 것입니다. 개인의 기록들을 보니까 다행히 그 시대 분위기를 공부해야 하고, 특히 일본 관련 책들을 많이 봤죠.   일제 말기 사람들의 지적 역량이나 스케일, 능력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높더라. 일본 제국의 지적 수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정하기 싫어하거든요. 그러니 잘못됐다고 생각해버립니다. 후세대들은 내가 모르는 옛날 건 중요하지 않은 거고, 나쁜 거다, 은연 중에 생각하게 됐어요. 후속 세대는 더하더라고요.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도 그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운동가나 정치가는 그럴 수 있겠지만 지식인들이 정보나 지식을 선택적으로 취해 경박하게 판단하는 것을 보고 전 많이 불편했습니다. 요새 말로 좌든 우든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사람들이 공부를 덜하는구나, 균형 감각이 덜하구나, 우리는 완전히 체화되기 전에 들어오면 말로 다 풀어버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그렇듯 이 작업에만 매달린 건 아니고 다른 책도 준비하면서 조금씩 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해쯤 낼 수 있었는데 박정희 문제가 걸려 있기에 선거전에 이슈가 되는 건 원치 않아 이번에 내게 된 것입니다.  →황용주와의 첫 만남은?  -1987년에 처음 교수가 된 뒤 찾아 뵜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느라 비었던 공백을 채우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있을 것 아닙니까. 학생들이 왜 저런 구호를 내걸까 궁금증이 있었고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랄까, 그런 차원에서 이문열도 그때쯤 다시 만났고요.  당시 이미 황 선생은 형편이 어려워 제가 ‘문예춘추’ 몇개월치 모아서 드리기도 하고 프랑스 문학 얘기도 나누며 일년에 서너 번, 명절 뒤 인사도 드리고 바둑도 두고 했습니다.  →두 분이 (경남 밀양 출신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정치 얘기는 많이 나누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분이 학생 때도 문학을 공부했고, 부산일보 시절 영화제도 만들고 칼럼니스트로 일하면서 제가 공유한 취향을 한 세대 앞서 가지신 분입니다. 난 내 얘기하고, 응 그러냐 그런 거죠. 황용주 하면 떠오르는 게 박정희니까,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식인으로나 교양인으로서의 제 이미지와 제가 만나본 많은 원로 가운데 가장 잘 맞는 분이었어요.   →역시 자료 수집하고 증언 채취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10년 동안 꾸준히 조금씩 하신 것이네요.  -사람들 만날 때마다 묻기도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기도 했습니다. ‘세대’지 관련해서는 많이 증언을 들었습니다. 가능하면 증언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으려 노력했고 정 안될 때는 그냥 증언만 실었지만.  인권위원장 그만 둔 뒤인 2010년, 사모님(이창희 여사) 증언 받으러 프랑스를 며칠씩 두 차례 다녀왔죠. 딸(황용주는 프랑스를 동경해 이름을 ‘란서’라 지었다)에게는 단편적으로 한 게 아니라 너 써라, 무조건 써달라고 해서 대학노트 한 권을 받았습니다.  그 양반에게는 단순한 딸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이상의 표현이자 상징이었잖아요. 그런 딸이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데도 프랑스에서 이공계를 전공하도록 한 것도 조국 근대화에 기여하라는 뜻이었을 정도였다.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 ‘정희야, 란서야’라고 외친 것도 상징성이 크다.  →10년을 매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시대 사람들의 고민과 열정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는 거겠지요.  -네, 크게 보면 김윤식 교수가 해온 일과 비슷합니다. 제가 진보진영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황용주는 나쁜 인간으로 평가돼 있습니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그렇지만 그 사람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만약 법률가로서 누구의 변호를 맡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의 다른 얘기를, 판사의 판단을 받기 위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책을 쓰면서 100% 공감이 안 가서 힘든 구석은 없었는지.  -예를 들어 5.16은 어쨌든 헌법학자 입장에서는 쿠데타입니다. 헌법이 그렇게 정리가 되고. 그걸 혁명이란 이름으로 내세워서, 군인이 권력을 잡아 출세를 하겠다, 사심을 채우겠다고 달려든 사람도 있었겠지만, 황용주는 적어도 지식인으로서 가지고 있던, 한 국가를 전체적으로 개발하는 로드맵으로서 높게 생각하고 정당화시키는데 헌법학자로선, 쿠데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쿠데타의 결과로서 산업화에 기여한 역사는 현 시점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또 10월 유신(등에 눈 감거나 박정희가 죽은 뒤에) 추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두환을 찬양하고 나아가 노태우까지 그러는 건 동의할 수 없었죠.  →다투거나 한 건 아니시죠.  -그러진 않았고요. (웃음) 일제시대의 훌륭한 군인들 얘기 많이 하잖습니까? 그 때 장군들의 스케일과 지적 역량, 신화같은 얘기들.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박정희의 유업을 이어가려면 군인이 더 집권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전혀 용납할 수 없죠. 서로 시대가 다른 사람 얘기하는 거니깐.  그 때마다 바둑이나 두고, 뭐 이렇게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웃음) 저도 대학생 때 1급이었는데 나이 차도 있으니까 제가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안 그렇더라고요.  →프랑스를 동경해 딸 이름을 지을 정도로 일반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던 분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얘기한 것은 극히 모순되는데.  -그건 이해가 가는 것이 한국이란 사회가 식민 지배 이후 아무것도 없었지 않습니까.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누가 먼저 썼는지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군대가 집권해서 공업화를 서두르고 남북한이 유엔 동시가입한 뒤 통일로 간다, 이런 로드맵을 만든 것은 완전히 황용주의 머릿속에서 나온 겁니다. 사회 변혁을 이끌 지식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룹은 군대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신생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고, 그렇게 그 사람은 본 거지요. 4·19 다음에 대한 기대가 많았겠죠. 당당히 4·19의 연장이란 주장을 하게 되고 당시 그런 생각에 호응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요.    황용주는 평생 ‘국민’이나 ‘시민’이라 하지 않고 ‘한반도 주민’이라 불리길 열망했다. 그렇게 평소에 증오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즈음에 그가 흥분했던 모습을 안 교수는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책을 읽으면서 1947년 마크 게인(281쪽)과 1979년 황용주(459쪽)의 경고는 지금 정확히 들어맞는데요.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면.  -전 역사를 길게 보고 낙관하는 쪽이에요. 연초에 이문열씨와 한 케이블 채널에 출연해 대담하면서 느낀 건데 결국은 진보와 보수 모두 역사의 완결성을 믿지 않잖습니까. 우리 역사가 이만큼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성공한 양상과 속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더 괜찮은 나라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게 무엇이냐?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옆으로 챙기고 같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전 박근혜 시대에 반감 같은 건 없어요. 개인적으로 박정희 체제에 당했느냐와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연좌제 피해를 받은 사람이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니까 안된다’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건 정치적 연좌제인 거죠. 반대로 박근혜씨는 아버지의 영광만 누리려 하지 말고 ‘그늘’도 같이 받아라고 칼럼에 적었던 것이지요.  →이병주(1921~92년) 평전을 내겠다고 했는데 마음의 빚이라도 있나.  -앞에 학병시대를 얘기한 것처럼 그를 작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평론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고 며칠 잠을 못 잘 정도로 큰 감명을 받았는데 지금 보면 문단에 그의 자리는 없다. 중학교 다닐 때 주필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당시 국제신문 주필이 이병주였다. 부산일보 사설과 비교하며 읽고 친구들에게 떠들곤 한 기억이 있다.  대학 때 건방지게 문단에서 대들고 한적도 있는데 다 받아주고 했다. 그런데 5·16 이후 문단이 완전 진보 쪽으로 정리돼 경상도 출신 작가는 모두 전두환과 도매금이 됐다. 또 이병주씨는 문단이나 대학에서 패거리를 이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뚝 서 있던 거인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를 정리하는 건 좌와 우가 함께 한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가장 맞춤하다는 데 공감대가 맞춰져 있고 은근히 압력도 가해지곤 한다.    오는 8월 정년퇴임하는 그는 “아무 것도 안하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느라 무척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거리라면 그동안 읽은 책들을 처분하는 문제, 저자 서명이 담긴 수천 권의 책을 어떻게 처분하느냐 고민하고 있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황용주의 진지한 믿음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황용주의 진지한 믿음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여기 문제적 인간이 있다. 족적만 살펴보자. 대구사범학교를 다니다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독서회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뒤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중국에 끌려간다. 광복군의 일원으로 해방 조국에 돌아와 교육에 매진하다 부산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이 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을 용기있게 보도해 4·19 혁명에 불을 당긴다.   대구사범 동기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나 조국의 암울한 현실에 공분, 5·16 쿠데타와 이후 조국 근대화의 밑그림을 그린다. 미국의 반대 따위는 없을 것이라며 박정희를 부추긴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방송사 사장에까지 오른다. 곧바로 주체세력의 암투에 휘말려 나락을 경험한다. 1964년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한 상호 체제 인정” 등을 월간 ‘세대’에 실었다가 구속된다. 이후 40여년의 삶은 ‘함께 혁명했던’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추모에 오롯이 바쳐진다.  황용주(1918-2001년) 전 문화방송 사장. 그가 평생 남긴 40여권의 일기를 유족에게서 건네받은 안경환(65) 서울대 법대 교수가 여러 인사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쓴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까치 펴냄)를 냈다. 진보진영에 속하며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안 교수이기에 의외로 비칠 여지도 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책을 내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10년도 전에 일기를 입수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산 지식인이 그렇게 무덤도 없이 간 것에 대해 아련한 마음이 있었죠. 우리 문화나 정체성이 4·19 이후에야 시작됐다고 보며 일제시대는 우리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게 대세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윗세대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나 일제 말기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학병 세대들을 전체적으로 엮어서 시대사를 써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려니까 벅차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어요. 그런데 (황용주씨) 부인(이창희 여사·프랑스 거주) 나이가 90이 넘었으니 기왕 하는 거 10주기에 맞춰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제 평가를 배제하고 그 사람 목소리를, 그 분 입장에서 재현해봐야겠다 그렇게 된 거고요. 그래서 ‘인물전기’라고, ‘평(評)’ 자를 넣지 않은 것입니다. 개인의 기록들을 보니까 다행히 그 시대 분위기를 공부해야 하고, 특히 일본 관련 책들을 많이 봤죠.   일제 말기 사람들의 지적 역량이나 스케일, 능력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높더라. 일본 제국의 지적 수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정하기 싫어하거든요. 그러니 잘못됐다고 생각해버립니다. 후세대들은 내가 모르는 옛날 건 중요하지 않은 거고, 나쁜 거다, 은연 중에 생각하게 됐어요. 후속 세대는 더하더라고요.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도 그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운동가나 정치가는 그럴 수 있겠지만 지식인들이 정보나 지식을 선택적으로 취해 경박하게 판단하는 것을 보고 전 많이 불편했습니다. 요새 말로 좌든 우든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사람들이 공부를 덜하는구나, 균형 감각이 덜하구나, 우리는 완전히 체화되기 전에 들어오면 말로 다 풀어버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그렇듯 이 작업에만 매달린 건 아니고 다른 책도 준비하면서 조금씩 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해쯤 낼 수 있었는데 박정희 문제가 걸려 있기에 선거전에 이슈가 되는 건 원치 않아 이번에 내게 된 것입니다.  →황용주와의 첫 만남은?  -1987년에 처음 교수가 된 뒤 찾아 뵜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느라 비었던 공백을 채우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있을 것 아닙니까. 학생들이 왜 저런 구호를 내걸까 궁금증이 있었고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랄까, 그런 차원에서 이문열도 그때쯤 다시 만났고요.  당시 이미 황 선생은 형편이 어려워 제가 ‘문예춘추’ 몇개월치 모아서 드리기도 하고 프랑스 문학 얘기도 나누며 일년에 서너 번, 명절 뒤 인사도 드리고 바둑도 두고 했습니다.  →두 분이 (경남 밀양 출신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정치 얘기는 많이 나누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분이 학생 때도 문학을 공부했고, 부산일보 시절 영화제도 만들고 칼럼니스트로 일하면서 제가 공유한 취향을 한 세대 앞서 가지신 분입니다. 난 내 얘기하고, 응 그러냐 그런 거죠. 황용주 하면 떠오르는 게 박정희니까,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식인으로나 교양인으로서의 제 이미지와 제가 만나본 많은 원로 가운데 가장 잘 맞는 분이었어요.   →역시 자료 수집하고 증언 채취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10년 동안 꾸준히 조금씩 하신 것이네요.  -사람들 만날 때마다 묻기도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기도 했습니다. ‘세대’지 관련해서는 많이 증언을 들었습니다. 가능하면 증언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으려 노력했고 정 안될 때는 그냥 증언만 실었지만.  인권위원장 그만 둔 뒤인 2010년, 사모님(이창희 여사) 증언 받으러 프랑스를 며칠씩 두 차례 다녀왔죠. 딸(황용주는 프랑스를 동경해 이름을 ‘란서’라 지었다)에게는 단편적으로 한 게 아니라 너 써라, 무조건 써달라고 해서 대학노트 한 권을 받았습니다.  그 양반에게는 단순한 딸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이상의 표현이자 상징이었잖아요. 그런 딸이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데도 프랑스에서 이공계를 전공하도록 한 것도 조국 근대화에 기여하라는 뜻이었을 정도였다.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 ‘정희야, 란서야’라고 외친 것도 상징성이 크다.  →10년을 매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시대 사람들의 고민과 열정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는 거겠지요.  -네, 크게 보면 김윤식 교수가 해온 일과 비슷합니다. 제가 진보진영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황용주는 나쁜 인간으로 평가돼 있습니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그렇지만 그 사람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만약 법률가로서 누구의 변호를 맡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의 다른 얘기를, 판사의 판단을 받기 위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책을 쓰면서 100% 공감이 안 가서 힘든 구석은 없었는지.  -예를 들어 5.16은 어쨌든 헌법학자 입장에서는 쿠데타입니다. 헌법이 그렇게 정리가 되고. 그걸 혁명이란 이름으로 내세워서, 군인이 권력을 잡아 출세를 하겠다, 사심을 채우겠다고 달려든 사람도 있었겠지만, 황용주는 적어도 지식인으로서 가지고 있던, 한 국가를 전체적으로 개발하는 로드맵으로서 높게 생각하고 정당화시키는데 헌법학자로선, 쿠데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쿠데타의 결과로서 산업화에 기여한 역사는 현 시점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또 10월 유신(등에 눈 감거나 박정희가 죽은 뒤에) 추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두환을 찬양하고 나아가 노태우까지 그러는 건 동의할 수 없었죠.  →다투거나 한 건 아니시죠.  -그러진 않았고요. (웃음) 일제시대의 훌륭한 군인들 얘기 많이 하잖습니까? 그 때 장군들의 스케일과 지적 역량, 신화같은 얘기들.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박정희의 유업을 이어가려면 군인이 더 집권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전혀 용납할 수 없죠. 서로 시대가 다른 사람 얘기하는 거니깐.  그 때마다 바둑이나 두고, 뭐 이렇게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웃음) 저도 대학생 때 1급이었는데 나이 차도 있으니까 제가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안 그렇더라고요.  →프랑스를 동경해 딸 이름을 지을 정도로 일반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던 분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얘기한 것은 극히 모순되는데.  -그건 이해가 가는 것이 한국이란 사회가 식민 지배 이후 아무것도 없었지 않습니까.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누가 먼저 썼는지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군대가 집권해서 공업화를 서두르고 남북한이 유엔 동시가입한 뒤 통일로 간다, 이런 로드맵을 만든 것은 완전히 황용주의 머릿속에서 나온 겁니다. 사회 변혁을 이끌 지식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룹은 군대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신생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고, 그렇게 그 사람은 본 거지요. 4·19 다음에 대한 기대가 많았겠죠. 당당히 4·19의 연장이란 주장을 하게 되고 당시 그런 생각에 호응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요.    황용주는 평생 ‘국민’이나 ‘시민’이라 하지 않고 ‘한반도 주민’이라 불리길 열망했다. 그렇게 평소에 증오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즈음에 그가 흥분했던 모습을 안 교수는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책을 읽으면서 1947년 마크 게인(281쪽)과 1979년 황용주(459쪽)의 경고는 지금 정확히 들어맞는데요.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면.  -전 역사를 길게 보고 낙관하는 쪽이에요. 연초에 이문열씨와 한 케이블 채널에 출연해 대담하면서 느낀 건데 결국은 진보와 보수 모두 역사의 완결성을 믿지 않잖습니까. 우리 역사가 이만큼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성공한 양상과 속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더 괜찮은 나라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게 무엇이냐?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옆으로 챙기고 같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전 박근혜 시대에 반감 같은 건 없어요. 개인적으로 박정희 체제에 당했느냐와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연좌제 피해를 받은 사람이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니까 안된다’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건 정치적 연좌제인 거죠. 반대로 박근혜씨는 아버지의 영광만 누리려 하지 말고 ‘그늘’도 같이 받아라고 칼럼에 적었던 것이지요.  →이병주(1921~92년) 평전을 내겠다고 했는데 마음의 빚이라도 있나.  -앞에 학병시대를 얘기한 것처럼 그를 작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평론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고 며칠 잠을 못 잘 정도로 큰 감명을 받았는데 지금 보면 문단에 그의 자리는 없다. 중학교 다닐 때 주필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당시 국제신문 주필이 이병주였다. 부산일보 사설과 비교하며 읽고 친구들에게 떠들곤 한 기억이 있다.  대학 때 건방지게 문단에서 대들고 한적도 있는데 다 받아주고 했다. 그런데 5·16 이후 문단이 완전 진보 쪽으로 정리돼 경상도 출신 작가는 모두 전두환과 도매금이 됐다. 또 이병주씨는 문단이나 대학에서 패거리를 이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뚝 서 있던 거인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를 정리하는 건 좌와 우가 함께 한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가장 맞춤하다는 데 공감대가 맞춰져 있고 은근히 압력도 가해지곤 한다.    오는 8월 정년퇴임하는 그는 “아무 것도 안하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느라 무척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거리라면 그동안 읽은 책들을 처분하는 문제, 저자 서명이 담긴 수천 권의 책을 어떻게 처분하느냐 고민하고 있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소인기(小忍飢)하라/임창용 정책뉴스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소인기(小忍飢)하라/임창용 정책뉴스부 전문기자

    조선 광해군의 난정(政) 때 한 선비가 집에서 친구들과 바둑을 두며 놀았다. 그 부인이 친구들을 위해 수제비라도 끓이려고 했다. 그런데 땔나무가 없어 궤짝을 쪼갠다는 것이 그만 칼로 가슴을 찍고 말았다. 비명에 나갔던 선비는 들어오면서 ‘가난이 죄’라고 탄식했다. 이를 두고 한 친구는 가난이 원수인 줄 이제 알았느냐면서 나간 뒤 다시는 그 집에 오지 않았다. 몇 해 뒤 그 선비는 뜻을 바꿔 벼슬길에 나갔고, 반정 때 역적으로 몰려 죽게 되었다.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가는데 숲 속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 잠시 멈추게 했다. 이어 닭 한 마리와 술병을 내놓고 함께 나누었다. 그 친구의 말이 자네가 새삼스레 가난을 탄식할 때 나는 자네 마음이 변한 줄 알고 발을 끊었다고 했다. 죄인은 수레에 다시 올라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탄식하였다. ‘소인기(小忍飢), 소인기하라’고. 위 고사는 시인 조지훈의 수필 ‘지조론’에 나오는 이야기다. 생뚱맞게 옛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새 정부의 공직 후보자들이 한 사람씩 낙마할 때마다 이 고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사퇴했다. 벌써 공직 후보자로서 일곱 번째 낙마다. 김학의 법무부 차관은 듣기에도 민망한 성 접대 동영상 의혹으로 공직을 마감했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무기중개상을 위해 일한 죄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무분별한 처신과 재산 축적 의혹으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는 아들 병역면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뜻을 접었다. 낙마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분명해 보이는 것은 살아오면서 작은 욕망과 유혹을 참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욕망이고 유혹이다. 조금만 사려깊다면 피할 수도 있었다. 재산을 해외에 남모르게 보관하고 싶은 유혹, 무기중개상이 주는 고문료를 받는 짭짤함, 특정업무경비를 개인 계좌로 받아 마음대로 쓰고픈 달콤한 유혹, 귀한 아들을 험한 군대에 보내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 등등. 이런 욕망과 유혹에 넘어가는 게 떳떳하지 못함을 후보자들이 몰랐을 리 없다. 더구나 이들은 선비처럼 궁색하지도, 처지가 곤란하지도 않았다. 이미 남부럽지 않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 정도의 유혹을 물리치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이들은 수많은 의혹 제기에도 계속 버티다가 여당마저 외면하면 그제서야 손을 들었다. 그만두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반성보다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내심 ‘조금만 더 참았으면, 조금만 더 사려깊었으면’ 하는 마음이 어찌 없을까. 가난을, 배고픔을 조금만 더 참았으면(小忍飢) 하고 선비가 후회했듯이 말이다. 이런 사태가 반복되는 이유는 결국 엘리트들의 자기관리 소홀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고위 공직 후보군에 들 만한 부류는 그리 많지 않다. 관료, 정치인, 법조인, 기업인, 학자, 언론인 등이 고작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큰 뜻을 품고 있다면, 항상 되뇌면 좋겠다. 소인기, 소인기하라고. sdragon@seoul.co.kr
  • [데스크 시각] 대처와 메르켈 그리고 박근혜/오일만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대처와 메르켈 그리고 박근혜/오일만 정치부 차장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이 대작을 연주해야만 비로소 피아니스트로 인정받는 척도가 되는 곡이다. 150년 전 초연 당시 러시아의 피아노 거장 루빈시테인도 처음 이 곡을 받고 기술적으로 너무 어려워 연주를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피아노 연주가라면 조금만 연습하면 연주가 가능한 곡이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수의 전문가가 모여 기술적인 연주법에 대해 계속 토의했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연주법에 대한 진보가 이뤄진 것이다. 소통을 통한 집단지성의 힘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일본 바둑의 몰락이다. 한·중·일 3국 가운데 바둑 선진국이었던 일본은 기타니 도장 등 바둑가문 위주로 운영되는 전통적인 폐쇄성과 속기 바둑의 경시 등 시대흐름을 좇지 못했다. 철녀(鐵女)로 불리는 루이 9단이 1990년 중국 기원과의 불화로 조국을 떠나 낭인의 신세로 전락했을 때다. 그녀는 당시 최강의 일본기원에서 활동하고 싶어했지만 일본 여류기단이 쑥대밭이 될 것을 두려워한 일본은 그녀의 입성을 거절했다. 반면 한국 기원은 과감하게 그녀를 받아 줬고 바둑 중흥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소통과 개방의 힘은 민주주의 본질과도 맥이 닿는다. 가급적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에너지를 끌어내서 국가운영에 참여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이 정치분야에 적용되면 통합의 정치가 꽃을 피우는 것이고, 경제분야에 접목되면 경제민주화가 되는 이치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보름을 맞으면서 불과 3개월 전 박 대통령에게 보냈던 우렁찬 박수소리가 점차 잦아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과 박근혜 정부 출범 2주간을 지켜보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국민들도 많아진 듯하다. 박 대통령의 철학과 집권 비전에 동의해 표를 던졌다는 한 지인의 경우 내각과 청와대 인사 과정에서 ‘준비된 대통령’이란 믿음에 의구심을 가졌다고 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지켜보면서는 박 대통령이 주장해 온 대통합, ‘100% 대한민국’이 구호로 끝날 것 같다는 불안감을 토로했다. 이런 민심의 흐름은 최근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물론 박 대통령 측근들이나 청와대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정부출범조차 못하게 막는 야당의 발목잡기를 더 부각시키고 싶을 테고 이명박 정부와 달리 측근들의 전횡을 막은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도 평가받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갖는 불안의 밑바닥을 살펴보면 ‘정치인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달라진 잣대가 자리잡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국민의 신망이 높고 인기가 하늘을 찌르더라도 막상 대통령직에 오르면 국민들의 평가는 더욱 엄격해진다. 언론의 평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의 원칙과 소신의 정치에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갈등 조정 능력이 더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대통합 정치와 경제민주화 공약이 국민들의 환영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영의 논리에 갇혀 있는 한국의 정치는 강한 압박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오바마 대통령의 설득정치가 빛을 발하는 이유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국민들은 확고한 원칙의 정치를 펼친 영국의 대처 전 총리와 메르켈 독일 총리의 포용의 정치가 합쳐진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보고 싶어 한다. oilman@seoul.co.kr
  • 한국, 농심배 세계바둑 우승

    한국, 농심배 세계바둑 우승

    한국이 통산 11번째 농심신라면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박정환(20) 9단은 1일 중국 상하이 그랜드센트럴호텔에서 벌어진 국가대항전 제14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최종 14국에서 중국의 장웨이제(22) 9단을 217수 만에 흑 불계승으로 눌렀다. 이로써 한국은 지난해 김지석 8단과 원성진·이창호 9단이 중국의 셰허 9단에게 줄줄이 패한 아픔을 말끔히 씻어내며 대회 통산 11번째 우승(상금 2억원)의 기쁨을 누렸다. 와일드카드로 이 대회에 첫 출전한 박정환은 전날 ‘한국 킬러’ 셰허를 꺾은 데 이어 이날 장웨이제마저 격파해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한편 박정환은 승리의 여세를 몰아 4일부터 치러지는 중국의 판팅위 3단과의 응씨배 결승 3~5국에서도 기대를 부풀렸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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