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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광구 시추선 굴착기사 박하엽씨(월요 초대석)

    ◎「산유국 부푼꿈」안고 망망대해서 뛴다/첨단 기기 사용 「검은금」탐사 총지휘/돌고래층 가스발견때 가슴뭉클… 외로움이 큰고통 산유국의 꿈을 캐는 사람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아 빛나는 동해바다의 한쪽끝,대륙붕 6광구 돌고래 6구조에서는 오늘도 석유와 가스를 찾아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다 밑의 지층을 훑는 사람들이 있다. 절해의 고도인양 바다 한가운데 외로이 떠있는 시추선 두성호­이곳에서 실낱같은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바닷속 수천m 땅밑을 파헤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박하엽씨(35)도 산유국에의 부푼 기대를 안고 탐사작업에 매달려 구슬땀을 흘리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박씨가 일하는 곳은 드릴러 하우스. 두성호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한 이곳은 수많은 작업장 중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굴착작업의 모든 사항을 지시하는 조종실이기 때문이다. 먼저 바다밑 지하를 파들어 가기 위한 파이프 연결작업이 이곳의 지시로 행해진다. 기술자들은 박씨가 조종실에서 분석한 정밀 자료에 따라 크레인으로 파이프를운반한 다음 로봇을 이용,이를 지하로 이어진 파이프에 연결한다. 그러면서 굴착은 시작된다. 이때 박씨가 하는 일은 파이프의 연결 시점ㆍ길이ㆍ두께ㆍ작업요령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굴착작업은 탐사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일로 꼽힌다. 자칫하면 급회전하는 파이프에 옷이나 몸이 감겨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작업도중 실수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더러 있으며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사고도 가끔 발생한다. 굴착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박씨는 좀처럼 쉴 겨를이 없다. 조종실안의 각종 모니터를 통해 굴진속도,시추공 안의 압력,시추공 내에 흘려넣는 니수상태등을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추송곳이 단단한 암석층을 만날 경우 회전속도가 지층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부러지게 된다. 탐사작업이 상당기간 지연됨은 물론 잘못하면 지난 8월6일 발생한 가스분출 사고와 같은 대형사고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용도 군도와 같이 보고픈 사람을 일정기간 만날수 없다는 고독감이 가장 견디기 힘듭니다』박씨의 말이다. 게다가 여가시간도 없고 여가시설조차 마땅하게 없다. 갖춰져 있는 거라곤 고작 바둑판 뿐이다. 두성호안에서는 또 술이 금기사항으로 되어 있다. 만일 발각되는 날이면 그날로 헬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처럼 어찌보면 감옥생활 비슷한 두성호와 박씨가 인연을 맺은 것은 두성호가 건조된 지난 84년. 서울에 있는 모대학 공대를 졸업한 뒤 곧바로 산유국의 꿈을 품고 동해안 대륙붕을 누빈셈이다. 박씨는 『돌고래 3,5구조에서 가스가 발견돼 시뻘건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아 오를 때 가슴이 뭉클하며 큰 보람을 느꼈다』며 돌고래 6구조에서도 대규모 가스층을 발견,가스생산국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2∼4주만에 만나는 아내와 두아이에게도 커다란 선물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 추석 3명중 1명 고향간다

    ◎놀이로는 고스톱이 27%로 으뜸/교통수단은 버스ㆍ승용차ㆍ열차순/갤럽서 여론 조사 5일동안의 황금연휴가 될 이번 추석에는 국민 세사람 가운데 한명꼴로 고향을 찾고 열사람에 세사람은 고스톱놀이를 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연구소가 지난 8일부터 16일까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만20세이상 남녀 1천5백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32.7%가 이번 추석에 고향에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해 추석에 가족이나 친척ㆍ친구와 즐긴 놀이로는 고스톱이 27.8%로 가장 많았고 윷놀이 20.8%,바둑 5.9%,장기 5.2%의 순이었다. 고향방문때 이용할 교통수단은 지난해의 극심한 교통체증에도 불구하고 승합차를 포함한 자가용을 이용하겠다는 사람이 지난해 19.5%에서 28.7%로 크게 늘어난데 비해 열차는 27.4%에서 17.5%로 줄어들어 철도회원제 실시로 회원이 아닌 사람의 기차표사기가 어려워진것을 반영,올해 추석연휴의 고속도로 사정은 지난해보다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 이창호 4단 준우승/다케미야에 불계패/TV바둑 아주대회

    천재소년기사 이창호4단(15ㆍ충암중3년)이 1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2회 TV바둑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일본의 다케미야무궁정수)9단에게 불계로 져 준우승에 그쳤다.
  • 이창호4단 결승진출/TV바둑 아시아선수권대회/다케미야9단과 대결

    천재소년기사 이창호4단(15ㆍ충암중 3년)이 일본 도쿄에서 열리고 있는 제2회 TV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승리를 거듭,15일 열리는 결승전에서 일본의 다케미야(무궁정수)9단과 맞붙게 됐다. 이4단은 한국ㆍ중국ㆍ일본 등 3국의 공영TV 우승자 및 준우승자 바둑대결인 이 대회 제1국에서 일본의 고바야시 사토루(소림각)9단(31)을 물리친데 이어 13일 열린 제2국에서도 중국 국영CCTV우승자 전우평9단(24)을 집백으로 2백66수만에 불계로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했다.
  • 한국,일 대표팀 눌러/한ㆍ일대학생 바둑교류전/서울신문사 주최

    【도쿄=강수웅특파원】 서울신문사ㆍ스포츠서울이 주최하는 제8회 한일 대학생바둑교류전에서 한국대표팀이 종합전적 6대4로 승리,역대전적 5승2무1패로 우세를 지켰다. 9일 상오9시30분부터 도쿄 일본 기원3층 대회장에서 거행된 이번 대회는 한일대학생대표 5명씩이 출전,두번씩 대국했는데 오전 대국에서 이재균(영남대) 이혁(연세대) 임진영선수(건국대)가 승리를 거둔 반면 박태순(연세대) 박장우선수(홍익대)가 패배,3대2로 일본대표팀을 눌렀다.
  • 소년기사 이창호 「스승의 기록」 넘었다

    ◎조훈현9단의 「31연승」 깨고 「32연승」 신기록/서봉수9단등 연파… 명인전 도전권 획득/기성ㆍ왕위전등서 연말께 「사제대결」 벌일듯 괴력의 천재소년기사 이창호4단(충암중 3년)이 스승인 조훈현9단의 기록을 또하나 갈아치웠다. 이4단은 6일 제21기 명인전에서 1승을 추가,32연승을 거두고 조9단이 12년동안 보유해온 연승기록을 깨뜨리며 무적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4단의 이번 쾌거는 지난 2월말부터 이어온 연승행진 개인기록을 한국기록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특히 세계챔피언인 스승의 기록을 깼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종전기록은 조9단이 지난78년 세운것이며 일본의 기록은 77년 임해봉9단이 세운 24연승이다. 더욱이 32번째의 승리는 제21기 명인전 도전자 결정전 3번기 제2국에서의 승리로 이것을 계기로 명인전의 도전자로 나서 스승과 또 한번의 타이틀전을 치르게 돼 의미가 깊다. 이4단은 도전자 결정전에서 황원준6단과 대결,백을 쥐고 2백56수만에 6집반을 이겨 가볍게 2승을 따내고 조명인과 맞붙게 됐다. 이4단의 32연승 가운데옥의 티라면 스승 조9단으로부터 얻어낸 승점이 없다는 점과 얼마전 후지쓰배에서 일본의 최강자 고바야시(소림광일)9단에게 아깝게 반집차로 패한 것이 연승기간중에 들어간다는 점. 그러나 이4단은 지난 10여년동안 조9단과 함께 한국바둑계를 양분해온 순국산파 승부사 서봉수9단에게 3번이나 이겼고 전 대왕 유창택3단에게 1승,제1회 동양증권배 국제기전 타이틀보유자 양재호6단에게 1승,떠오르는 별 정현산3단에게 4승을 거두어 한국최고의 기록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분석이다. 이4단은 이같은 연전연승으로 국내 각 기전에서 발군의 성적을 내고 있다. 이번의 명인전에서 도전자로 선발된 것을 비롯,제2기 동양증권배에서도 서9단과 타이틀전을 곧 벌이게 되며 기성전,왕위전,기왕전,대왕전,국수전 등에서도 무패의 기록으로 도전권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바둑계는 올 연말쯤 이4단과 조9단이 6∼9개 기전에서 타이틀을 걸고 세계바둑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사제간의 대결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이4단은 최고위,신왕위,KBS바둑왕등 3관왕에 올라 있다.
  • “헌정사의 산 증인” 이재형 전 국회의장(안녕하십니까)

    ◎“통일,「바람잡는 식」으론 안돼요”/국민의 합의도출 꾸준히 추진해야/헌법 “고무줄 해석” 곤란… 총선은 무리/“힘센 사람이 좌지우지할 땐 지나… 참정 확대엔 내각제가 바람직” 【대담:권기진정치부장】 남북한관계가 급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안으로는 여야대치 정국이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는 때에 우리 헌정사의 산 증인이랄 수 있는 운경 이재형 전국회의장을 서울 사직동 그의 자택에서 만나보았다. 고풍이 감도는 한옥 자택을 들어서는 순간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에서 운경의 정갈하고 깐깐한 성품이 물씬 느껴졌다. 제헌의원으로 출발,7선의 경력을 쌓으면서 상공장관·정당대표·국회의장 등 여야를 오가며 당정의 요직을 두루 거친 이 전의장. 고희를 훨씬 넘긴 나이(76세)임에도 얼굴에 홍조를 띤 건강한 모습이었으며 『바둑에 있어서도 훈수꾼이 8수를 더 본다는데…』라고 말했으나 『훈수 잘 한다고 그 사람을 직접 대국에 세우면 잘못하는 경우가 많아요』라면서 대답 하나하나에 신중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건강해 보이십니다. 근황은 어떠십니까. 『오래 살아야지. 올해 백내장 수술을 했어요. 안경을 쓰고 신문을 봐야되는 데 피로가 쉬 와서 주로 라디오를 많이 들어요. 듣는 것이 보는 것보다 진도가 빨라 좋더구먼』(이 전의장은 남북 접촉관계를 비롯,시사성 있는 뉴스를 시간대별로 알고 있어 88년 국회의장을 마지막으로 정계를 은퇴한 뒤에도 시국에 대한 관심이 대단함을 보여줬다) ○우리 자신이 주체돼야 ­최근 남북한 관계에 대한 국민 일반의 관심이 대단한 듯 합니다. 특히 실향민들의 관심이 지대한 것 같습니다. 남북한 관계의 전망을 어찌 보십니까. 『기대를 가지는 것이 어찌 실향민뿐이겠습니까. 모두가 잘 됐으면 하고 바라고 있지요. 되풀이되는 경험으로 보아 아무 것도 안될거라고 예단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될 거라고 미리부터 기대에 부풀 것도 없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속초 오색약수터나 이탈리아 로마의 분수 등에 동전을 집어 던져 넣으면 아들낳는다,재수좋다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무얼 소망하는 사람들은 하염없이 그걸 시도하게 되는 것이지요』 ­일각에서는 마치 통일이 다 된 듯이 얘기들을 하기도 하고 너도 나도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통일을 진정 이룩하려면 들떠서 바람을 일으켜선 안됩니다. 항상 변치않는 집념과 의지를 갖고 언동을 절제해야 합니다. 우리의 분단역사를 볼 때 우리 의사와 요만큼도 관계없이 분단이 이루어졌어요. 지난 60년대 당시 아데나워 서독수상이 유엔에 갔을 때 유엔이 독일의 분단을 애처롭게 생각해서 동서독 통합을 논의하는 것을 독일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역정을 낸 적이 있지요. 분단은 너희들이 다 만들어 놓은 건데 거기서 무슨 통합을 운위하느냐는 얘기지요. 통일의 그날이 오도록 자나깨나 노력하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괜히 마음만 싱숭생숭하지 말고 우리가 반드시 한다는 의지를 다져야 해요. 그런데 우리가 이제까지 할 일을 다해오지 못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정치 단일민족으로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의지를 실현하고 민주적 정치제도로의 점진적 성숙을 이뤄나가야 합니다. 남북한을 통틀어 경제적빈곤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런 것들은 독일수준에 안가더라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예멘이 통일된 예도 있지 않습니까』 ­정부가 요즘 혁신적이랄 수 있는 대북조치들을 잇따라 발표했습니다. 정부의 이런 조치가 남북관계에 얼마나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일단 현행법은 지켜야 『모든 문제가 그렇지만 남북문제는 특히 상대가 안받을 경우에 대해서도 완벽한 대비가 있었으면 해요. 노태우대통령이 남북 대교류에 대한 담화를 발표할 때 이미 북한측이 안 받으리란 예상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일각에서는 김일성이 거절할 것을 뻔히 알면서 이런 조치들을 발표했다는 얘기도 나와서 참 서운했습니다. 가령 판문점에 세관설치를 제의했다 저쪽이 안 받으면 또 어떻게 하겠다는 식으로 문제를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남북관계가 아무리 변화되더라도 일단 현행법은 지키겠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북 교류특별법도 제정됐고 대통령은 내우외환죄 이외에는 처벌을 안받게 되어 있긴 하지만 기존법이 엄연히 있는 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처벌 유무가 판정되어선 곤란하다고 봅니다. 국회도 문제입니다. 김일성을 만나고 돌아온 서경원의원 처리를 법원에 맡기고 자기들의 손에는 피를 안 묻히려드니 한심합니다. 분노를 느꼈으면 그에 따른 응분의 처리를 해야될 것 아닙니까. 3당이 합당해서 원내에서 3분의2 이상이란 숫자는 뭐하라고 만들었습니까. 능력을 구비했으면 할 것은 하고 하지않을 것은 하지 말아야지요』(이 전의장은 이 대목에서 최근 여야정치인의 행태에 대한 분노까지 새삼 일어나는 듯 「너절한」 「내시 상투치레」 등의 용어를 쓰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12대때 의장으로 계시면서도 국회운영과 관련해 어려움을 많이 겪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야당측이 지난 임시국회에서 소위 날치기 통과를 이유로 들어 의원직사퇴서를 제출하는등 정국이 경색일변도로 흐르고 있습니다. 밖에서 이를 지켜보신 소회가 어떠신지요. 『광섬유가 발명되어 머리카락만한 전선으로 세계 어디하고나 다량의 통화가 가능하다는 데 이번 임시국회에서의 법안처리 속도도 그에 못지 않았어요. 놀라운 능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재광부의장이 역할을 했던 모양인데 마음이 아플거요. 60년대 한일 회담반대당시 야당이 통합해 만든 민중당의원중 7∼8명이 탈당했는데 초선의 소장의원으로 김재광의원이 끼였어요. 그때는 무소속제도가 없어 정당을 탈당하면 자동적으로 국회의원의 자격이 상실됐어요. 이처럼 상당히 직언도 잘하고 목소리도 큰 사람이었는데 안됐어요』 ­민자당이 합당후 아무것도 이뤄낸 게 없다는 비난여론에 초조해진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이 김재광부의장에게 통사정을 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야당측이 제출한 사퇴서는 어떻게 처리될 것으로 보십니까. 『사퇴서야 수리되지 않겠지. 구 공화당정권 시절 김영삼대표가 제명됐을 때인가 공화당이 주도하는 국회에서 야당의원이 제출했던 의원직사퇴서를 선별 처리하려 한 적이 있었어요. 김대표는 그때 당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엔 이런 경우가 생겼으니 세월이 성능 나쁜 자동차처럼 한없이 느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세월이 느린 것같아 ­제헌이래 정치인들의 행태가 조금도 안달라졌다는 얘기도 많습니다. 『제헌선거가 훨씬 도덕률이 잘 지켜졌고 그때 사람들이 국가를 생각하는 근본신념에 있어 지금보다 나았어요. 초대 제헌의원이 모두 2백6명인데 지난 17일 제헌절행사에 가보니 생존자가 20명이예요. 그중 3명은 병석에 누워있어 행사에도 불참했어요』 ­야당측은 현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자고 주장하고 있고 여당은 이를 일축하고 있는데 이에대한 견해는 어떠십니까. 『여야가 얘기하는 것이 모두 정확하게 보도되고 있지 않는 것 같아요. 12대때는 개헌특위를 만들어 헌법을 개정함으로써 의원임기를 근1년 단축시켰어요. 마찬가지로 헌법을 고치지 않으면 총선을 앞당겨서 할 수 없는 것이지요. 헌법을 고치려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므로 국민의 동의까지 얻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야당은 헌법을 고치는데 여당이 동의해달라 하고,여당은 그것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 양측 입장을 올바르게 표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야당은 헌법 개정없이도 모든 의원이 사퇴하면 전국적 보궐선거가 실시돼 실질적으로 총선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당사람들이야 자기들을 또 뽑아준다는 보장이 없는 한 사표를 내겠어요. 형법같은 것은 그 시행에 있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그래도 해석은 협의로 하는 것이 기본원칙입니다. 그렇지만 헌법은 글자 그대로 해석해야지 늘리고 줄여선 안됩니다. 여당까지 전부 사표냈다고 해도 개헌이란 절차를 밟지 않으면 결국 보궐선거밖에 안되고 1년8개월후 14대 총선은 다시 치러야돼요. 14대 총선은 하든지 말든지 이번에 총선을 하자는 것은 당당한 설명을 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봅니다. 정치가지고 갈비뼈다귀에 침칠하듯 하는 행위는 이제 그만하라 그래요』 ­야권은 지자제실시등과 함께 내각제 포기를 여권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각제에 대한 소신은 어떠하신지요. 『한마디로 내각제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4천2백만 국민이 모두 참여해 국가를 경영해야지 힘센 사람 혼자 좌지우지해선 안됩니다. 그 구체적 방법이 의원내각제라고 보며 지방자치제도 해야겠지요. 세종같은 성군이 나타난다면 왕도정치도 좋고 대통령중심제도 좋으나 정치는 평균적 가능성에 입각한 제도에 의한 것이라 볼 때 내각제가 바람직하며 대통령중심제는 지나간 제도라고 생각됩니다. 일부에서 내각제를 정권연장 음모라고 주장하는 데 그렇게 해선 얘기가 진전되지 않습니다』 ○정치는,평균적 가능성 ­여야관계가 결국 정상화되리라고 보십니까. 『장내로 들어와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그것이 빠르건 늦건 제 궤도로 가는 길입니다』 ­평민·민주당 등 야권도 통합작업을 활발히 진행시키고 있습니다.우리 정치에서 양당제도의 확립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국민의 기대가 양당정치를 지향한다면 모르되 법률적으로 양당에만 우선권을 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무소속을 출마할 때 돈도 더 내고 자유강연도 못하게 한다면 기본민권에 대한 차별이 생길 수도 있으며 너무 편의주의로 흐른다는 비난을 받을 우려도 있습니다』 이 전의장은 끝으로 의원폭력사태등 최근의 정치세태에 대한 질문에 『그사람들이 제발로 걸어 의사당에 왔나. 밀어줘서 온 것 아니냐』면서 『다음 선거에서는 국민들이 입을 꽉 다물고 정신차려 찍으라고 말좀 해주시오』라고 재삼 당부하며 말을 맺었다.〈정리=이목희기자〉
  • 조훈현9단 분패/후지쓰배 세계바둑

    조훈현9단이 제3회 후지쓰배세계바둑대회 준결승에서 중국의 섭위평9단에 패해 3ㆍ4위전으로 밀려났다. 조9단은 7일 일본 오사카(대탄)에서 4강전에서 조9단에게 백을 쥐고 2백61수만에 1집반을 패했다. 또 하나의 준결승전인 일본의 소림광일 9단과 대만의 임해봉9단의 대결에서는 임9단이 승리를 거두고 결승에서 섭9단과 맞붙게 됐다. 결승전 및 3ㆍ4위전은 오는 8월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다.
  • 분단 45년… 북한의 생활상 어떻게 이질화됐나

    ◎다른 길로 달린 「남과 북」… “한핏줄의 이방인”/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한핏줄의 남북한은 하나의 역사,하나의 언어,그리고 공통된 생활관습 등을 지켜왔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분단의 길로 들어선 남과 북은 6ㆍ25전쟁이라는 민족최대의 비극을 겪으면서 분단이 고착화됐고 이 결과 전쟁후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삶의 모든면에서 이질화가 심화되어 왔다. 최근 동서독이 통독의 길로 나아가는등 세계의 냉전구조가 타파되면서 세계유일의 분단국이 되고만 한반도에도 냉전의 장벽을 허물어 뜨릴 수 있는 변혁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분단 45년,전쟁발발 40년이 지난 오늘 제각기 달려온 남과 북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됐고 이질화됐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언젠가는 맞이할 통일에 대비해 서로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삼고자 한다. ◎문화ㆍ예술/인간개조의 도구화… 순수예술 명맥 끊겨 지난해 우리는 두개의 서로 다른 경험을 했다. 그 하나는 비록 결렬되고 말았지만 북경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한 남북단일팀 구성논의에서 「아리랑」을 단가로 하자는데 양측이 비교적 손쉽게 합의,문화적 민족정서의 공유가능성을 확인한 일이다. 또 하나는 남북이산가족의 재회를 무산시킨 이른바 북한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와 「피바다」 공연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실감했던 남과 북의 현저한 문화ㆍ예술관의 차이다. 이렇듯 남과 북의 문화ㆍ예술은 공감대를 같이하는 한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분단이후 45년간 서로다른 이념과 사회체제 속에서 이질화의 과정을 밟아옴으로써 오늘의 남과 북사이에는 엄청난 높이의 문화적 장벽이 가로놓이게 됐다. 한국의 문화정책이 이어령 문화부장관의 구상처럼 『후기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에 따른 세대간ㆍ계층간ㆍ지역간ㆍ성별간의 이질화와 갈등현상을 문화의 힘으로 치유』하는데 놓여져 있다면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주체사상과 3대혁명에 입각한 공산주의적 정치사회화의 수단적 목적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의 문화예술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기초하에 체제보위 및 최고통치자에 대한 우상화 및 공산주의적 인간개조를 위한철저한 도구로 기능함으로써 전통적 순수예술의 성격은 물론 대중예술과도 거리가 먼 주체예술ㆍ혁명예술ㆍ이데올로기예술로 변모돼 있다. 가령 북한가요 45년사에서 3대명곡으로 꼽히고 있는 「조선의 별」,「김일성장군의 노래」「동지애의 노래」 등이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시작 「묘향산의 가을날에」,80년대 최고의 미술작품이라는 「강선의 저녁노을」 등은 모두가 김일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북한의 문화ㆍ예술의 성격을 대변해 주고 있다. ▲사상성이 좋고 ▲가사가 좋으며 ▲선율이 부드럽고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불후의 「혁명송가」라는 「조선의 별」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투쟁을 할때 그의 추종자들이 김일성을 흠모해 지었다는 노래이며,「동지애의 노래」는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촉구한 노래이다. 「강선의 저녁노을」은 남포시 강선제강소를 소재로 김일성을 찬양한 조선화이며 주체예술의 상징인 5대혁명가극의 하나인 「피바다」는 항일혁명투쟁을 주제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앞세운 목적극이다. 특히 6ㆍ25전쟁 전까지 순수예술과 목적예술간의 대립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지 못한채 주로 소련에 의존해왔던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전쟁중 전쟁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의 전쟁영웅 형상화에 몰두,목적예술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전후복구와 「주체」의 슬로건 등장등 상황적 요청에 따라 문예정책은 사회주의 건설에 역점을 두는 새로운 전형을 형상화하는 한편 소련식 문화활동에서 탈피,김일성체제를 뒷받침하는 혁명전통확립과 주민들에 대한 공산주의 교양을 주제로 한 창작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또한 자연만을 노래하거나 예술지상주의 태도는 반혁명적이고 형식주의적인 문화예술이라는 인식하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당성ㆍ계급성ㆍ인민성의 구현이 모든 창작활동중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으로 대두됐다. 현재 북한에서는 이러한 문화예술의 원칙과 과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작가 미술가 영화인 연극인 무용가 사진가 등 모든 예술인들을 망라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란 조직이 결성돼 있으며 당은 이 조직을 통해 각 분야 종사자들에게 창작 및 공연활동계획서의 제출을 강요,▲혁명전통(30%) ▲전쟁(30%) ▲사회주의건설(20%) ▲조국통일(20%) 등 4개 주제별로 창작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의식구조/어휘마다 정치색… 전투ㆍ파괴적 성격 강조 『서울말은 남존여비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주아적 생활이 지배하는 말로서 오늘 남조선방송에서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떠는데 쓰이는 코맹맹이 소리를 그대로 쓰고 있으며,그것마저 고유한 우리말은 얼마 없고 영어 일본말 한자어가 반절이나 섞인 잡탕말이다. 우리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말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오늘 평양말은 서울말보다 비할 바 없이 우월하다』 김일성이 1969년 평양말을 「문화어」로 삼은 이유를 설명한 교시의 내용으로 북한의 언어정책을 잘 보여준다. 김일성은 또 「표준말」이란 용어 대신 「문화어」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도 서울말을 표준하는 것으로 그릇되게 이해될 수 있으므로 그대로 쓸 필요가 없다. 「문화어」란 말도 그리 좋은 것은 못되지만그래도 그렇게 고쳐쓰는 것이 낫다』 특히 북한은 「언어를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힘있는 무기」로 보는 언어관을 토대로 일찍부터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언어정책을 펴옴으로써 분단 45년이 지난 현재 남북한간에 벌어지고 있는 언어의 이질화는 단순한 언어 자체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간의 사고와 행동양식 및 의식구조의 이질화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실제 북한에서는 언어를 씩씩하고 힘있는 무기로 다듬는다는 명분하에 『미제의 각을 뜨자』『돌탕을 쳐 죽이자』는 등의 살벌하고 소름끼치는 말들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성격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않음을 감안할때,북한의 이같은 극단적인 언어관과 언어정책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는 북한주민자신을 공격적이고 전투적이며 파괴적인 성격으로 만드는 잠재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남북한간의 언어이질화에서 빚어지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언어정책은 1949년에 단행된 한자폐지와 이에 따른 한글전용정책에서 시작된다. 문맹퇴치와 인민대중의 조속한 사상교육을 목표로 추진된 한자폐지는 결과적으로 한글전용화로 이어졌고 이결과 북한의 각급학교 교과서 문예작품 신문 및 대중매체에서 한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한자교육은 통일후 남한문헌을 읽기 위해 또한 고전연구를 위해 하나의 외국어처럼 전공과목으로서만 남게됐다. 한글전용에 이어 가로쓰기도 시행되었으나 한자어의 어원을 가진 낱말을 한글로만 표기,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말다듬기운동」이 새로 일어났다. 이에 따라 1954년 일제하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한 「조선어철자법」이 생겨났고 1966년에는 「조선말규범집」과 함께 「문화어」라는 새로운 개념의 어휘까지 등장했다. 문화어의 등장은 남북한간 언어이질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고 말았는데 그 성격은 서울말을 배격하고 평양말을 토대로 다듬은 그들의 공용어를 표준어로 삼는 데 있다. 한편 한자폐지와 한글전용,말다듬기운동의 결과 새로운 사전의 편찬이 불가피하게 됐는데 1968년 나온 「현대 조선말사전」의 경우 18만어휘가 수록됐던 「조선말사전」(61년)에 비해 어휘가 5만으로 크게 줄었다. 그 이유는 한자가 하나도 없고 옛말 사투리 고유명사 및 이른바 「퇴폐적 사상표현」등을 완전히 제외했기 때문. 또 어휘마다 정치성이 담겨져 있어 김일성의 인용구는 굵은 활자에 별표까지 달아놓았다. 현재 남북한의 언어는 발음의 차이,리듬의 차이,억양의 차이 등과 같은 음성학적인 차이를 비롯해 어휘ㆍ문법ㆍ의미ㆍ문체 및 맞춤범 등 언어전반에 걸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가장 심각한 차이는 어휘부문에서 나타난다. 예를들면 산책길→유보도 채소→남새 화장실→위생실 고기잡이→추어전 개고기→단고기 도시락→곽밥 레코드→소리판 대중가요→군중가요 투피스→동강옷 커튼→창문보 그룹→그루빠 소년단→삐오네르 주제→쩨마 등이다. ◎경제생활/「남농북공」무너져 GNP 남한의 12%/생필품 부족… 암시장 쌀값 배급의 18배 8ㆍ15해방 당시 남북한의 산업배치는 「남농북공」으로 일컬을 만큼 지역적 보완관계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남북분단으로 이같은 보완관계는 무너졌으며 설상가상으로 6ㆍ25가 남과 북 모두의 각종 산업시설을 파괴,경제활동의 토대조차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후 남과 북은 40여년간 천연자원 및 산업구조의 불균형이라는 악조건속에서 통합적 발전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분리적인 발전을 계속해왔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로 굳어진 한국과 북한은 각기 다른 경제질서를 형성ㆍ유지하면서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여왔고 이 결과 88년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액(GNP)의 차이는 한국이 북한에 비해 8배나 앞서는 비교우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착수한 이래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듭,개발도상국에서 일약 중진국의 일원으로 도약했다. 1960년 1백달러 미만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89년말 현재 5천달러에 육박해 있다. 반면 6ㆍ25로 인해 공업생산 수준이 1949년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출발했던 북한경제는 전후복구 3개년계획(1954∼56년)과 뒤이은 5개년계획(1957∼61년)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성장을 기록했으나 그후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70년대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비해 부분적인 비교우위내지는 형평을 유지해 왔으나 이후부터는 전분야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체제가 다른 북한의 국민총생산액등 각종 경제지표의 개념은 우리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국토통일원이 북한의 각종 선전자료를 검토ㆍ분석해 추정한 수치는 다음과 같다. 국민총생산액은 88년을 기준으로 2백6억달러로 우리의 1천6백92억달러에 비해 8분의 1 수준이며 1인당 GNP는 9백80달러(한국 4천40달러),자동차 생산능력은 연간 2만대(한국 1백70만대),TV보유율은 10%(한국 1백%),전화는 7%(한국 67%),냉장고는 6.5%(한국 79%) 등이다. 한편 북한주민의 의ㆍ식ㆍ주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평등한 방식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직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임금과 그 임금에 따른 불균형한 소비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임금은 당간부 및 고위직 군인의 급료가 상대적으로 높으며 사무직보다는 기술직이 높다. 또 경노동 보다중노동이,중노동 가운데도 위해노동종사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으며 85년부터는 「사회주의적 노동보수제」가 도입돼 동일직종이라도 숙련도나 생산성 등 노동의 질에 따라 급수를 달리하는 「차등임금제」가 실시되고 있다. 북한은 이같은 화폐소득의 차이를 완화하기 위해 보건ㆍ교육분야를 국가예산으로 충당하는 한편 대중소비물자의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사치품의 가격을 높게 매기고 있다. 이에 따라 쌀ㆍ채소ㆍ옷감ㆍ비누ㆍ치약 등 생필품의 경우 아주 싼값으로 공급되는데 가족수와 연령,직업에 따라 품목과 수량,종류가 정해진 구입카드에 의해 국영상점에서 구입한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먹는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듯이 국가에서 싼 값으로 공급하는 생필품의 배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주민들은 부족분을 구하기 위해 1㎏당 8전에 불과한 쌀을 「장마당」이라고 부르는 암시장에서 이 가격의 18배가 넘는 1㎏당 15원에 구입하려해도 어려운 실정이다. 주택은 협동적 소유로 행정당국에 의해 직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배분되며 그 보급율은 70% 안팎. 북한은 주택건축률이 경제발전을 대변하는 전시적 기능이 크고 남북한 사회비교의 중요한 징표가 된다는 점에서 70년대 이후 평양ㆍ남포ㆍ원산ㆍ함흥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신축하는 한편 농촌의 문화주택을 2층 3가구용,3층 5가구용으로 다양화하고 문화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등 주거양식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한은 지난 40년간 중공업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친 결과 주민들의 소비생활이 크게 압박을 받아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를 「경공업의 해」로 지정하는 등 최근 경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활풍습/“봉건잔재 없앤다” 관혼상제도 통제ㆍ규격화 북한은 우리민족의 전통적 예의범절에 대해 『봉건지배계급이 착취하는데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규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 고유의 예절이나 유교적 도덕관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와 당의 이익에 맞도록 변형되어 있다. 또 관혼상제를 포함한 전통적인 민속과 세시풍속 등도사회주의적 내용으로 변질됐다. 북한에서의 결혼은 『철저히 동지적이고 혁명적인 관계에 의해 이뤄지며 일생을 동지로서 당과 수령께 충성할 수 있는 정신적 풍모가 조건이 된다』고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결혼연령도 노동과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남자 29세 여자 26세로 제한해 놓고 있으나 불만이 많아 80년대 이후에는 조혼추세가 묵인되고 있다. 배우자선택은 중매(60%)와 연애(40%)가 병행되고 있으나 최근 북한의 남녀대학생들은 서로 손을 잡기도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등 연애결혼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계층의 남녀가 만나는 채널은 연애보다는 부모 친척 등을 통한 중매가 지배적이다. 신랑감으로는 직업에 관계없이 평양거주총각이 최고의 배우자로 꼽히고 있으며 길흉을 가리는 결혼의 택일 풍습은 사라져 대개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치러진다. 회갑이나 생일,돌잔치는 50년대에는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와 식량절약이라는 명분으로 일체 금지되었으나 60년대 후반기부터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60청춘 90회갑」이라는 구호아래 공식적인 회갑잔치는 거의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고위간부의 경우에만 김일성이 하사하는 일정한 규격의 회갑상을 받는다. 장지는 지정된 공동묘지만을 쓰도록 돼있다. 상복은 따로 만들어 입는 것이 없고 머리에 건을 쓰고 팔에는 검은 천을 두른다. 장례식과 매장은 도시의 경우 녹화사업소,편의협동조합 등이 맡아서 처리해 주며 직계존속이 사망했을 경우 상주에게는 3일간의 공식휴가와 장례보조금 10원,쌀 1말이 배급된다. 제사도 다른 풍습과 같이 6ㆍ25전까지는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았으나 휴전후부터 단속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기부터 추석에 성묘하는 것과 직계존속에 대한 탈상까지의 제사는 묵인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60년대 중반까지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 교시에 따라 추석등 고유의 세시풍속을 공식명절에서 제외하고 김일성의 생일,김정일 생일,북한정권 창건일,노동당 창건일,사회주의 헌법제정일 등을 「사회주의 명절」로 지정,공휴일로 해왔으나 지난 88년부터 추석 음력설 단오 한식 등을명절로 부활시켰다. 또한 70년대까지만 해도 인민복,검은 통치마 차림이었던 주민들의 옷차림이 두드러지게 바뀌기 시작해 8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남자는 양복이나 잠바,여자는 양장이나 짧은 치마차림이 보편화됐으며 머리모양이 다양해지고 화장을 한 여자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초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이던 주민들의 부분적 여행자유화 조치가 전면 보류됨으로써 일반 주민들의 북한내 여행 및 휴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강산ㆍ묘향산 등 유명관광지의 이용자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며 주민들의 경우 공장ㆍ직장별 단체관광 정도일 뿐 가족단위의 여행은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의 주요한 오락수단은 TV와 라디오이다. 또 최근 바둑협회가 새로 결성되고 실내 골프장이 생기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있으나 대중이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주민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놀이는 주패놀이로 불리는 서양식 카드놀이와 장기이다. 가정생활은 지난 80년 『셋은 양심이 없습니다. 둘은 많습니다. 하나가 좋습니다』라는 김정일의 지시이후 가족계획이 보편화되기 시작해 점차 대가족에서 핵가족 형태로 옮아가고 있다.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는 등 남녀평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으나 실제로는 가부장적 사회가 유지되고 있으며 여자들이 가정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남편들이 봉급을 타서 여자들에게 넘겨 주기는 우리와 마찬가지다. ◎언론ㆍ교육/비판기능은 무시… 선전ㆍ선동의 매체로 활용 최근 북한은 소련언론들의 잇따른 대북한 비난보도에 대응,소련의 평양주재 기자들에 대한 취재봉쇄조치를 취한데 이어 타스통신기자 1명을 추방함으로써 내외의 관심을 끌었었다. 특히 북한은 『우리 혁명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라,그러면 당신들의 요청이 충족될 것』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소련언론들은 북한언론들의 보도태도와 관련,「목적지향성」보도에만 집착할뿐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비난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북한과 소련의 언론관이 상이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현재 북한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노동당기관지인 「로동신문」과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을 비롯해 도단위 일간지 등 모두 30여종. 방송은 TV의 경우 「조선중앙TV」(평양TV)「만수대TV」「개성TV」 등 3개가 있고 라디오는 「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구국의 소리방송」「평양인민 FM방송」 등이 있다. 북한에 있어 언론이란 「김일성의 교시와 당의 정책을 해설ㆍ선전하며 그것을 철저히 비호ㆍ관철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일층 강화하여 인민들을 수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는데 복무해야 한다」는 정치사전(73년도판)의 규정처럼 정치선전도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또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사가 아닌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써 사람들을 교양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교시(1960년 11월)에 따라 우리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되는 범죄나 비행ㆍ사고 등의 기사는 신문ㆍ방송 등 언론매체에 일체 실리지 않는다. 우리의 언론들이 사회의 비리ㆍ부조리 등을 파헤침으로써 비판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긍정적ㆍ모범적인 기사를 통해 사회를 계도하겠다는 언론관을 고집하고 있다. 또 북한의 언론은 자본주의언론이 중시하는 속보성보다는 매스미디어의 이념적 이용,즉 당의 정책적 선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정론성」과 「당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정론성이란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ㆍ선동ㆍ조직ㆍ교육ㆍ동원에 필요한 요소들을 가미하여 「사실」을 각색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북한의 방송은 정무원직속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지도아래 운영되고 있는데 이 기구는 조직ㆍ편제상 정무원에 속해 있지만 당중앙위 선전선동부의 지시와 통제를 받고 있어 사실상 2원화 되어 있다. 북한의 새 학기는 우리와 달리 9월에 시작된다. 북한은 지난 75년부터 유치원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과정으로 된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국민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의 취학연령은 만6세. 그러나 만4세부터 시작되는 2년과정의 유치원교육중 「높은반」부터 의무교육기간에 포함되므로 실질적인 의무교육은 만5세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11년제 의무교육기간에는 수업료는 물론 면제이며 교과서ㆍ교복ㆍ학용품이 무상 또는 일부 부담으로 지급된다. 16세부터 시작되는 고등교육단계로는 2∼3년 과정의 고등전문학교와 교원대학(3년),종합ㆍ단과ㆍ사범ㆍ공장대학(4∼6년) 등이 있다. 현재 북한에는 인민학교 5천여개,고등중학교 4천2백여개,전문학교 5백여개,대학 2백7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한은 80년중반부터 낙후된 과학기술을 진흥하기 위해 각 시도별로 「제1고등중학교」를 세우는 한편 기술계 대학의 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 학생들은 또 「한가지 이상의 기술과 기능을 소유해야 한다」는 당의 방침에 따라 예능 또는 실업 등의 실기과목을 배우고 있으며 소년단이나 사로청 등의 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단체활동을 한다. 특히 의무노동이 중시돼 인민학교는 연간 2∼4주,고등중학교는 4∼8주,대학교는 12주정도씩 생산현장노동에 참여한다. 한편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것을 주체적,창조적으로 적용했다는 「주체사상」을 교육이념으로 삼고있다. 또 계급투쟁을 위해서는 「공산주의적 인간」이,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생산기술적 인간」이,전쟁승리를 위해서는 「체력이 튼튼한 인간」이 바람직하다는 「이상주의적인 인간상」때문에 정치사상교양 및 과학기술교육,그리고 국방체육이 북한교육내용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 신영국 철도청장(차관급등 10인의 새 얼굴)

    ◎테니스 즐기는 「철도」 전문인 지난 60년 교통부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70년이후 줄곧 철도청에서 일해온 전문철도공무원이다. 테니스 골프 바둑을 즐기며 부인 한승연여사(51)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두고있다. ▲서울(54) ▲서울대법대ㆍ행정대학원졸 ▲교통부사무관ㆍ기획예산담당관 ▲순천지방철도청장ㆍ철도청차장
  • 전 전대통령의 요즈음

    백담사에 은둔중인 전두환 전대통령 부부의 최근 사진이 15일 측근들에 의해 공개됐다. 경호원들이 5월부터 지금까지 찍은 이 사진들은 『전 전대통령이 지난해 증언이후 매우 편안한 마음으로 산사생활을 하고 있다』는 측근들의 설명처럼 밝은 표정들을 보여준다. 장남 재국씨가 미국서 귀국한 이후 전 전대통령부부는 장남가족과 지내는 것이 큰 즐거움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남과 숙소앞 평상에서 바둑을 즐기고(사진 위) 손자ㆍ손녀를 자전거의 앞뒤에 태우고 경내를 달리기도 한다(사진 아래). 지난 5월말 숙소인 요사채의 천장이 새 떨어진 빗물을 이순자여사가 닦아내는 동안 전 전대통령은 비 새는 곳을 쳐다보고 있다(사진 왼쪽).
  • 이창호 분패ㆍ조훈현 승리/후지쓰배 세계바둑

    2일 서울에서 열린 제3회 후지쓰배 세계바둑대회 8강전에서 천재소년기사 이창호 4단(15ㆍ충암중)이 일본 최강 고바야시(소림광일) 9단과 대결,분전했으나 2백30수만에 반집 차로 분패했다. 그러나 조훈현 9단은 일본의 야마시로(산성굉) 9단에게 흑을 쥐고 1백85수만에 불계승을 거두었다. 한편 미국대표로 출전,기대를 모았던 재미교포 차민수 4단(39)은 중국의 최고수 섭위평 9단에게 백을 쥐고 분전했으나 2백69수만에 2집반 패했다.
  • 처음 공개된 마쓰시로 「제2대본영」

    ◎한인원혼 떠도는 「일제」발악의 현장/지하호 13㎞… 「본토결전」위해 극비공사/한인노무자 7천명 강제동원… 천여명 사망/맨발ㆍ맨손으로 발파작업… 하루3∼5명 희생당해 【마쓰시로 연합】 일본이 패망 직전 일왕의 임시 거처와 전시최고사령부(대본영) 구축을 위해 한국인 노무자들을 강제 동원,극비리에 건설하던 「마쓰시로 대본영」 내부가 22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본군의 「제2대본영」으로 불리는 마쓰시로 대본영은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 11월11일 상오 11시 대규모 발파작업을 시발로 도쿄 북서쪽 6백㎞지점의 나가노(장야)현 나가노시 마쓰시로읍 일대 3개 야산의 땅밑에 구축하던 지하호로 당시 현지 경찰과 헌병들조차도 공사사실을 모를만큼 철저히 은폐돼 왔던 곳이다. ○3개 야산에 구축 태평양전쟁말기 사이판섬 함락(44년 7월) 등으로 일본 본토에 대한 공습이 본격화되면서 일본군 수뇌부가 도쿄 대본영을 폐쇄,이른바 「본토결전」태세를 갖추기 위한 배수진으로 마련됐던 이 대본영에는 최소한 한국인 노무자 7천여명이 지하갱도굴착,발파작업 등에 강제 동원돼 1천여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이 패망하기 하루전인 45년 8월 14일까지 9개월동안 계속된 대본영 건설공사에는 당시 돈으로 2억엔이라는 엄청난 예산과 연인원 3백만명이 투입돼 패전으로 공사가 중단될 때까지 총연장 13㎞의 지하호가 완성(공정률75%)됐으며 발파등 가장 위험하고 힘든 막장작업에는 강제징용된 한국인들이 동원돼 하루 3∼5명씩 목숨을 잃은 것으로 생존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요미우리(독매),아사히(조일)등 일본 취재진 50여명과 함께 이날 처음으로 한국탐사팀과 취재진에 공개된 대본영지하갱도 안에는 당시 한국인 노무자들의 참혹했던 상황을 짐작케 하는 낙서,유류품 등이 곳곳에서 발견됐으며 지상에 세운 소위 일왕침실은 완공된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 무학산,상산 등 해발 1백∼2백50m 높이의 3개 야산 지하에 파들어가던 대본영에는 왕궁,참모본부,왕족학습원,군사령부,정부행정기관 및 언론사가 들어설 수 있도록 돼 있다. ○곳곳에 한인 유류품 총연장 13km의 지하호는높이 3m,폭 3m의 통로가 바둑판처럼 뚫려 있었으며 지질이 단단한 암반이어서 어떠한 공습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 이곳을 공개한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현재 대본영의 지상건물과 갱도 일부는 지진관측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완공된 상태의 일왕 침실은 10평 크기의 일본 고유 다다미방으로 공습위험이 있을 경우 대피하도록 별도의 지하궁전이 마련돼 있었으나 이곳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본영 부근 시노노이 아시히 고교 지하호 연구회가 펴낸 조사서와 와다 노보루(화전등)의 저서 「송대 대본영」에 따르면 한국인 노무자들은 무학산지하호 부근에 78동,상산 지하호 부근에 1백29동등 모두 2백40여개동의 급조막사(반장)에 20∼30명씩 나뉘어 기거하면서 거의 유폐된 상태에서 기계ㆍ노예처럼 혹사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당시의 증언자나 자료가 거의 없어 사망자 숫자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노예처럼 혹사당해 다만 하루 3∼5명씩의 한국인 노무자들이 발파사고,갱붕괴사고 등으로 실려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으며 일왕침실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은 특정공사가 끝나면 20∼30명씩 집단으로 한밤중에 끌려나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극소수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최소한 1천여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일본신주대 학생들이 최근 작성한 보고서 등 마쓰시로 대본영에 관한 조사서들은 『특히 일왕의 임시거처에 동원된 한국인의 경우 등 뒤로 수갑이 채워져 어딘가로 끌려갔으며 이들이 산중에서 총살돼 매장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건설현장에 동원됐다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본영 부근에 살고있는 유일한 한국인 생존자인 최태소씨(68ㆍ본적 경남 합천군 가야면 이천리)는 이날 현지 취재에 동행,자신이 직접 굴착했던 곳을 일일이 기억해내며 참담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최씨는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침목이 깔려있던 흔적과 천장,벽에 무수히 뚫려 있는 다이너마이트 발파용구멍 등을 가리키며 45년전의 공사현장을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해냈다. ○사담땐 죽도로 구타 최씨가 규수지방에서 거주하다 건설현장에 끌려온 것은 24살 때인 1944년 10월말쯤. 지금은 논ㆍ밭으로 변해버린 상산지하터널앞 광장에는 수백채의 조선인 숙소가 빽빽히 들어찼고 그때부터 최씨는 줄곧 인근 마을에서 건설공사 현장 잡역부로 일하면서 거주해왔다고 회상했다. 최씨등 한국인 노무자들이 주로 맡았던 일은 하루 12시간씩 맨발 맨손으로 낙반 가능성이 있는 곳이나 막장 등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 『한창 나이였던 덕분에 죽을 고비를 겪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최씨는 『50∼60대 한국인 노무자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중노동이나 사고로 숨졌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일본인 작업반장들은 1개조 4명으로 점조직처럼 구성된 작업반원들이 다른 조 사람들과는 물론 반원들끼리도 사담하는 것을 일체 금지시키고 이를 어겼을 경우 몽둥이 죽도 등으로 무참히 구타했다』며 『지금 징용자수나 사망자 수가 유곽도 잡히지 않는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인력 더 많을듯 지난 87년 8ㆍ15해방 42주년을기념해 한국인 강제징용 사실을 다룬 「머나먼 여행」이라는 책을 발간했던 하루카 나루타비씨(50ㆍ여)는 마쓰시로 대본영 건설현장에 동원됐던 한국인 징용자수와 사망자수을 좀더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이날 현지취재에 동행했던 하루카씨는 『4살때인 1944년 10월초 부모를 따라 마쓰시로로 이사했다』며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로는 하루 평균 한국인 노무자 5∼6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하루카씨는 『현재 알려진 7천∼1만명의 한국인노무자 투입은 실제보다 훨씬 축소된 것』이라며 암반 굴착작업이 하루에 1∼5m씩 진행된 것으로 미루어 볼때 9개월동안 동원된 인력은 이보다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루카씨는 『현재 일본정부는 강제연행자에 대한 공식적인 문서가 다 소각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어디엔가 명부가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일본정부의 정확한 기록을 찾아내는 것이 마쓰시로 대본영 건설의 진상을 파헤치는 요체』라고 강조했다.
  • 외언내언

    우리 소년기사 이창호4단이 일본의 강자 다케미야(무궁정수)9단을 꺾었다. 일본기원서 열린 제3회 후지쓰(부사통)배 바둑 2차전에서. 국내 바둑 애호가들의 기가 되살아난다. ◆다케미야 기사,그가 누구인가. 「세계 정상」을 판가름한다는 지난달 하순의 「효성­에바라」배 3번기에서 조훈현9단을 2대0으로 물리친 「일본의 자존심」. 더구나 바둑의 내용이 우리 애기가들의 기를 죽였다. 제1국의 불계패가 더욱 그랬던 것. 그보다 조금 전에 치러진 속기전의 패배까지 치면 조9단은 한달 사이에 내리 세 판을 그에게 진 셈이었다. 그 다케미야 9단을 이4단이 무릎 꿇렸다. 바로 조9단의 제자 이4단이. ◆승패는 「기가지상사」. 그러니 한때의 승패에 너무 기가 죽거나 우쭐해 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해도 다케미야쇼크에 우리 애기가들의 마음이 잠시 편치 못했던 것만은 사실. 그 기분을 풀어준 것이 이번의 승리이다. 하지만 이4단에게는 3회전에서 강적이 기다린다. 상대는 현재 기성ㆍ명인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고바야시(소림광일)9단. 어쨌건 이4단은 일본기단에도 「무서운 10대」로 비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을 듯하다. ◆KBS 바둑왕에 이어 최고위전 타이틀까지 따낸 욱일승천 기세의 15세 기사. 중학교 3학년생에게 「애늙은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의 기풍에 대해선 특징지어 말하기 어렵다는게 중평. 그것은 기사로서의 조건을 모조리 갖추고 있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기도. 무서운 완숙기를 멀리 앞에 두고 있는 대기라는 뜻일 수도 있다. 바둑판 앞에 앉은 모습은 여드름쟁이가 아닌 태산. 반상의 변화에 심상을 면상으로 안비칠 만큼 의연한 「노인 소년」이다. ◆3회전에는 조훈현9단도 올라왔고 재미동포 차민수4단도 올라왔다. 서봉수9단과 양재호6단은 아깝게 탈락했고. 오타케(대죽영웅) 9단을 물리친 조9단의 3회전(8강전) 상대는 야마시로(산성굉) 9단이다. 8월 4일의 결승전이 조­이 사제대결로 된다면….
  • 이창호,통쾌한 “바둑보은”

    ◎한·일대결서 다케미야 꺾어 「조훈현빚」 갚아/일 후지쓰배서 5집반승… 8강진출 천재소년기사 이창호 4단(충암중3년)이 지난달 세계바둑 왕중왕대결에서 자신의 스승 조훈현 9단에게 2패의 치욕을 안겨주었던 일본의 다케미야(무궁정수) 9단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고 제3회 후지쓰(부사통)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8강에 올랐다. 이4단은 9일 일본 도쿄일본기원 특별대국실에서 속개된 대회16강전에서 지난대회 챔피언 다케미야 9단에 백을 쥐고 2백48수만에 5집반승을 거두었다. 이 4단은 7일 열렸던 32강전에서 대만의 팽경화6품을 불계승으로 꺾고 16강전에 올랐으며 다케미야 9단은 지난대회 챔피언의 자격으로 곧바로 16강전에 진출했다. 다케미야9단은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통합타이틀전 3번기에서 이 4단의 스승인 조 9단이 2연승을 거둔바 있다. 그때 조 9단은 제1회응창기배 세계바둑대회(우승상금 40만달러)우승자로서,다케미야 9단은 후지쓰배(우승상금 1천5백만엔)를 2연패한 챔피언으로서 진정한 세계챔피언을 가리자는 바둑팬들의 희망에 따라마주 앉았었다. 이날 대국에서 다케미야 9단은 자신의 독특한 세력바둑인 「우주류」에 따라 첫5점중 4점을 화점에 두었으며 이에대해 이 4단은 3귀를 차지하는 견실한 실리바둑으로 반면을 짜나갔다. 다케미야 9단은 지난해 IBM속기대회에서 한국의 유창혁 3단에게 패한데이어 이번에는 새파란 이 4단에게 무릎을 꿇어 한국신진정예들에 특히 약한 일면을 보였다. 한편 이와함께 벌어진 다른 16강전에서는 조훈현 9단이 오다케(대죽영웅)에게 흑을 쥐고 2백25수만에 불계승,8강에 진출했으나 서봉수 9단은 야마시로(산성굉) 9단에게 집흑으로 2백54수만에 3집반패했으며 양재호 6단은 임해봉 9단에게 집백으로 1백91수만에 불계패,탈락했다. 차4단은 16강전에서 조치훈 9단을 물리쳤다.
  • 서익원 마산지검장/새 검찰간부(얼굴)

    ◎워싱턴대서 법학석사 받은 학구파 원만하고 여유있는 성격이어서 「진국」이라는 평을 듣고 있으며 특히 영어 실력은 손꼽힐 정도이다. 서울법대를 나와 68년 광주지검 목포지청검사로 시작,사법연수원교수,마산지검차장검사,서울지검2차장,서울고검차장검사를 지냈다. 지난 79년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법학석사학위를 받은 학구파이기도 하다. 취미는 바둑. 경기 화성 출신으로 고시16회. 부인 김수자씨(46)와 2남1녀.
  • 조훈현 9단 2국도 참패/효성ㆍ에바라배 바둑

    세계정상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효성ㆍ에바라배 세계정상바둑대결」3번기에서 조훈현9단이 일본의 다케미야(무궁정수)9단에 종합전적 2패로 무릎을 꿇었다. 22일 상오10시 롯데호텔에서 속개된 제2국에서 조9단은 백을 쥐고 2백71수만에 3집반 차로 패했다. 다케미야9단은 이날 우승 상금으로 1천5백만엔을 받았으며 패한 조9단에게는 5백만엔이 돌아갔다.
  • 조훈현,1국 불계패/일 다케미야에 1백80수만에/바둑 최정상대결

    세계바둑정상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효성 에바라배 세계 바둑정상대결」 3번기 제1국에서 일본의 다케미야(무궁정수) 9단이 조훈현9단을 물리쳤다. 20일 상오10시 롯데호텔 아테네룸에서 열린 대국에서 다케미야9단은 백을 쥐고 1백80수만에 조9단에 불계승을 거두었다. 이날 두 대국자는 초반 4착점을 화점에 두어 싸움바둑을 예상케 했으며 다케미야9단이 결국 종반 중앙 전투에서 흑대마를 잡고 승리했다. 조9단은 흑대마를 살릴 기회가 있었으나 집부족을 느낀 나머지 끝까지 초강수로 일관하다 돌을 던졌다. 이번 대회 우승자에게는 1천5백만엔,준우승자에겐 5백만엔의 상금이 주어진다. 제한시간 각 3시간. 제2국은 22일 상오10시 롯데호텔에서 재개된다.
  • 윤기병 정무2보좌관(차관급 후속인사 새 얼굴 11명)

    ◎분석력 뛰어난 기자 출신 매사에 차분하고 분석력이 뛰어나다. 각종 정보수집에 기민하며 대인관계도 원만해 주변에서 아끼는 사람이 많다. 고대 정치학과를 졸업,언론계에 몸담아 동아ㆍ중앙일보에서 10년간 정치부기자 생활을 했다. 취미는 바둑ㆍ독서. 부인 이영자씨(48)와의 사이에 2남1녀. ▲경기 양평출신ㆍ51 ▲고대졸 ▲대통령공보ㆍ민정비서관
  • 강보성 농림수산(새 장관ㆍ청와대 비서진의 얼굴)

    ◎한때 학계에 몸담은 농정통 재선의 의정생활동안 농수산위를 떠나지 않은 농정통. 55년 단국대 학생회장시절 고 신익희씨의 비서관을 지냈으며 한때 학계에 입문,제주대 교수를 지내기도. 7대때부터 제주에서 출마를 계속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1대때 무소속으로 처음 당선,13대 민주당으로 재선된후 농림 수산위에서 줄곧 농산물수입개방대책 마련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강금희여사(54)와 사이에 3남1녀. 취미는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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