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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일전쟁 100주년]박종효 前모스크바대 교수 본지 기고 (상)

    8일은 러일전쟁의 첫 포성이 울린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일본은 이 전쟁에서 러시아를 이겨 사실상 대한제국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했다.최근 일제 식민시대의 서막을 연 러일전쟁의 발발지가 중국 뤼순(旅順)항이 아니라 제물포 팔미도(八尾島)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박종효 전 국립모스크바대 교수가 러시아국립 해군함대 문서보관소 자료에서 확인한 것이다.박 전 교수가 서울신문에 보내온 ‘러일전쟁의 서막,러시아 바략함과 카레예츠함의 제물포해전’이라는 글을 2회에 걸쳐 요약한다. 러일전쟁으로 대한제국은 위태롭게 유지하던 독립을 일본에 약탈당하게 되었다.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남한은 패전국 일본 대신 전승국 미국이,북한은 공교롭게도 제정 러시아의 후신인 구 소련이 점령하여 각각 자기 세력권으로 편입시켰다. 일본은 1896년 야마기다 원수를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사절로 보냈다.야마기다는 러시아 외무장관 로바노프 로스토프스키에게 한반도를 38선으로 분할하여 각각 러·일의 영향권으로 설정하자는 제안을 했다.러시아는 이 제안을 거부했으나,한반도 분할문제는 이때부터 러·일 사이에 잠정적인 논의 대상이 됐다.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소련에 제의한 38선 분할안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1945년 8월13일부터 청진과 원산 등으로 상륙한 소련군의 남하를 시급히 차단해야 했다.이에 제정 러시아 시대에 이미 일본이 제안한 38선을 상기했다.우리의 비극적 근·현대사의 기원과 원인 제공은 열강의 침투와 러일전쟁에서 비롯되었다. ●러 국립 문서보관소 자료에서 확인 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문서에 따르면 러일전쟁의 첫 포성은 중국 뤼순항이라고 한국학계가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제물포 팔미도 앞바다에서 울렸다.일본 함대는 1904년 2월9일 새벽 뤼순항에 앞서 2월8일 우리 영해에서 러시아 포함 카레예츠함과 처음 교전했다.고려인이라는 뜻의 ‘카레예츠’는 마산포 개항을 기념하여 러시아 해군이 붙인 이름이다.이날 밤 제물포에 상륙한 3000여명의 일본군은 대한제국군 2만여명과 청룡1호 해군훈련함이 있었지만,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서울을 점령했다. 앞서 1903년 말 한반도에는 동학교도가 일본인을 내쫓기 위해 다시 봉기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일본군이 이를 진압하려 상륙하면 대한제국군은 동학교도들에 가담하여 폭동을 일으키고,독립을 위협하는 영일조약 당사자인 일본공사관과 영국공사관을 습격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놀란 영국은 12월 말 공사관 보호를 위해 순양함 시리어스함에 28명의 해병대원을 승선시켜 제물포로 파견하고,곧 이어 탈보트함에 도착했다.다른 열강도 제각기 함대를 급파했다.미국을 빅스버그,프랑스는 파스칼,이탈리아는 엘바,독일은 한사,일본은 지오다,러시아는 바략함을 보내 제물포는 마치 열강 해군의 집합소처럼 변모했다. 일본군은 전신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서울에 800명,원산에 400명,부산에 400명을 주둔시키고 있었다.그런데 1904년 2월 초부터는 마산포에 1만 2000명을 상륙시키고,군수품과 식량을 수송해 왔다.원산에도 민간인 복장을 한 예비군과 군인 및 군마를 비롯한 군수품과 탄약 등을 수송했다.일본은 이처럼 전쟁준비를 착착 진행하면서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일협상은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이 무렵 러시아 극동총본부는 1904년 2월2일부터 4일까지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아무르 군관구 사령부로부터 극동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귀국하고 있다는 긴급보고를 받았다.이미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일본인 귀국여객선이 대기하고 있었다.긴박감을 느낀 극동총독은 니콜라이 2세에게 총동원령과 함대 배치 칙령을 요청했으나,황제는 일본이 먼저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한반도 남쪽이나 동해안 원산 이남에 상륙할 경우 러시아가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그러나 서해안에 일본의 상륙군을 수송하는 군함이 나타나거나,38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하는 군함이 있으면 발포를 기다리지 말고 선제 공격하라고 덧붙였다.이처럼 러·일 양국은 이미 묵시적으로 각각 한반도 남북의 영향권을 인정하고 있었던 셈이다. 러시아는 제물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뤼순항의 배후 항으로 서울의 러시아 공사관과 멀지 않은 제물포에 1903년 3척의 순양함을 파견했다.1904년 1월18일 두 척의 순양함이 뤼순으로 귀항하자,제물포에는 바략함과 소형 포함 카레예츠함,여객선 순가리(송화강)호만 남았다.일본은 1903년 말에 러시아가 아직 미완성이었던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통하여 유럽지역으로부터 일부 군대를 연해주 군관구로 이동시켰다는 첩보를 받고 크게 놀랐다.대한제국 협상에서 러시아가 시간을 끄는 것도 일본에 불안감을 가중시켰다.일본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러시아에 유리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반대로 러시아는 태평양함대와 극동 주둔 육군이 일본에 열세였으므로 협상을 통하여 철도를 완성시킬 때까지 시간을 벌면서 어떻게든 대한제국 문제를 카드로 만주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러시아는 일본과의 관계악화를 원하지 않았다.대한제국에서 일본의 우월권을 인정하면서 직접적으로 국경선을 접한 만주의 이권을 보호하고 만주개방을 요구하는 일본과의 완충지대로 한반도를 고려하고 있었다.극동 현상유지 정책으로 대한제국이 독립국가로 있는 것이 러시아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여,특히 고종에게 정치적의 호의를 보이면서 독립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1904년 2월4일 청나라 주재 일본영사가 뤼순항의 러시아군함이 모종의 중대한 임무를 띠고 출항했다는 급보를 도쿄에 보냈다.그러나 28척의 러시아 태평양함대는 해상훈련을 나간 것이었다. ●日, 러 공사관·군함 통신망 봉쇄 일본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4일 밤 일왕 특별 어전회의를 열어 대 러시아전쟁을 결의했다.일본이 외교단절을 선언했지만 제물포의 러시아 함대와 서울의 러시아 공사관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일본은 한반도의 통신망을 장악하고 있으면서,전략적으로 서울 러시아 공사관이 외부와 통신연락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봉쇄했다. 5일 한 미국인이 중국의 상하이에서 제물포에 도착하면서 러·일 사이에 곧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6일 아침 일본 해군중장 도고는 사세보(佐世保)로 함장들을 소집했다.전 함대는 황해로 발진하여 제물포와 뤼순항에 정박하고 있는 러시아 함대를 습격하라고 명령했다.일본 연합함대는 6척의 전함,14척의 순양함,35척 이상의 어뢰정으로 구성됐다. 7일 제4전투함대사령관 우리우 소장은 5척의 순양함과 8척의 어뢰정,3척의 대형 상륙군 수송선으로 제물포로 향했다.제물포에 정박중이던 순양함 지오다함은 8일 새벽 출항하여 러시아 함대 동향을 보고한 뒤 일본함대에 합세했다.우리우는 러시아의 바략함과 카레예츠함은 제물포에 상륙하는 일본군을 방해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 있었던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 파블로프는 바략함장 루든예프에게 공사관의 비밀 보고문서를 카레예프함으로 직접 뤼순항으로 전달하라고 지시했다.이 긴급문서 가운데는 고종 황제가 은밀히 전한 문서도 있었다.일본 함대가 압록강 하구로 항해하고 있으며,제물포에 일본군이 상륙할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카레예츠함은 8일 오후 3시40분 제물포를 출항하여 15분 만에 멀리서 2열종대로 다가오는 일본 순양함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마침내 제물포 남방 13.5㎞ 지점에 있는 작은 섬 팔미도 근해에서 일본함대와 조우했다.카레예츠함장 벨야예프 해군중령은 러시아와 일본의 외교단절을 모르는 상태였다.일본함대가 진로를 가로막고 공격태세를 취하자 카레예츠함은 제물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4척의 일본 어뢰정 가운데 한 척이 어뢰로 첫 공격을 했을 때 벨야예프도 전투경보를 내렸다.오후 4시35분이었다.제2,제3의 어뢰정이 잇따라 어뢰를 발사했다.벨야예프도 두 번째 어뢰공격을 받자 발포명령을 내렸다. 일본측의 ‘해전기록(海戰記錄)’은 카레예츠함이 일본의 어뢰정을 보자 갑자기 오른쪽으로 피하면서 어뢰정에 포를 발사했고,수송선에 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만 되어 있다.일본함대가 응사하여 교전이 이루어졌다는 대목은 없다.그러나 대형 함대에 소형 포함 한 척이 먼저 포를 발사했다는 일본측 주장은 신뢰할 수 없다. ●러 바략함 수장, 카레예츠함 폭파 이렇게 러일전쟁은 뤼순항이 아니라 2월8일 오후 4시40분쯤 제물포 팔미도에서 일본측이 먼저 발포하여 시작됐다.그러나 통신이 두절된 제물포의 러시아군은 본국에 보고할 수 없었고,다음날 새벽 뤼순의 태평양함대가 기습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페테르부르크에 먼저 전달되면서 전쟁 발발 날짜가 2월9일로 기정사실화된 것이다.한편 제물포의 일본함대는 9일 낮 바략함 및 카레예츠함과 다시 본격적인 교전을 벌였고,전함수 14대2의 절대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러시아군은 결국 바략함을 수장시키고,카레예츠함은 폭파시켰다.러시아는 제물포해전을 패전이 아닌 러시아 해군 사상 가장 영웅적인 전투로 평가하면서,전설적인 신화처럼 한 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기념하고 있다.˝
  • 뉴스플러스/제네바대사 최혁씨·泰대사 윤지준씨

    정부는 2일 주 제네바 대사에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조정관을 지낸 최혁 주 태국 대사를 임명했다.또 주 태국 대사에 윤지준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을,2001년부터 주 제네바 대사로 일해온 정의용 대사는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에 발령냈다.
  • 한국, WIPO 아시아 의장국에

    특허청은 지난 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아시아그룹회의에서 한국이 차기 의장국에 선출됐다고 25일 밝혔다. 한국이 WIPO의 아시아그룹 의장국에 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내년 상반기 동안 WIPO의 각종 회의에서 진행되는 논의의 방향을 주도하게 됐을 뿐 아니라 지식재산분야에서 아시아 29개국을 선도하게 됐다.의장 역할은 주 제네바대표부 특허관인 박주익(朴周翼·사진) 서기관이 수행할 예정이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
  • 삼바 군단이냐, 무적 함대냐/세계청소년축구 브라질·스페인 20일 결승전

    ‘삼바군단의 개인기냐,무적함대의 조직력이냐.’ 지난달 28일 개막한 세계청소년(20세 이하)축구선수권대회의 패권은 남미와 유럽의 강호 브라질과 스페인의 한 판 대결로 가려지게 됐다. 브라질은 16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에서 벌어진 대회 준결승전에서 지난 대회 챔피언이자 통산 5번째 우승을 노린 아르헨티나를 1-0으로 누르고 8년 만에 결승에 올랐다.‘제2의 사비올라’ 페르난도 카베나기를 앞세운 아르헨티나와 일진일퇴의 속도전을 펼친 브라질은 후반 20분 다니엘 카르발요의 코너킥을 두두가 감각적인 백헤딩슛으로 골망을 흔들며 승부를 갈랐다. 이로써 브라질은 지난 83년과 85년,93년에 이어 10년 만의 대회 4번째 우승컵 도전과 함께 지난 85년 모스크바대회 결승전에서 0-1의 쓴 잔을 안긴 스페인과 18년 만의 재대결에 나서게 됐다. 스페인도 두바이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후반 41분 안드레 이니에스타의 결승 페널티킥 골로 콜롬비아를 1-0으로 따돌리고 결승에 합류,지난 99년 우승 이후 4년 만에 2번째 정상을 바라보게 됐다.지난 8월 핀란드에서 열린 17세 이하 청소년선수권대회 브라질과의 결승에서 0-1로 패한 아우팀의 설욕 기회도 잡았다. 오는 20일 새벽 1시45분 아부다비의 알 자에드스타디움에서 벌어지는 결승전은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브라질의 근소한 우세가 점쳐진다. 브라질은 무엇보다 준결승에서 ‘난적’ 아르헨티나를 넘어선 상승세가 무섭다.수비수이면서도 최전방 라인까지 넘나드는 다니엘의 자로 잰듯한 크로스,현란한 개인기를 앞세운 공격진의 돌파력,골 찬스마다 어김없이 터지는 중거리슛은 가히 위협적이다.여기에 아다일톤을 축으로 하는 철통같은 수비벽 또한 강점이다. 득점 공동선두(4골)에 올라선 두두를 비롯,다니엘과 함께 3골을 올리고 있는 닐마르 등 골고루 포진해 있는 골게터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스페인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에 1-2로 지긴 했지만 경기주도권에서는 오히려 앞서 우승 전력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적함대의 키잡이는 ‘중원의 마에스트로’ 이니에스타.지금까지 3골을 기록,득점왕과 함께 최우수선수(MVP)의 야심을 키우고 있는 이니에스타는 자로 잰 듯한 패스워크와 상대 수비의 허점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시야,그리고 전광석화와 같은 결정력을 겸비해 이번 대회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꼽히고 있다. 첫 경기 패배 이후 조별리그 2차전부터 준결승까지 4경기에 이르기까지 조직력을 앞세운 탄탄한 전력을 선보인 스페인은 작년 유럽청소년선수권대회 챔피언다운 위용을 과시해 브라질로서도 결코 쉽게 넘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최병규기자 cbk91065@
  • [씨줄날줄] 김용순 비서

    ‘용순비서’.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남측 대표들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보다 여덟살이나 위인 김용순 대남담당 비서를 스스럼없이 불렀다.이 호칭은 당시 묘한 반향을 일으켰다.‘용순비서’는 김 위원장의 부름에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김 위원장이 북한 내부에서 최고지도자의 위치를 확고하게 굳히고 있음을 대내외에 천명했다.동시에 그는 개인적으로 최고지도자와 격의없는 대화를 나눌 만큼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음을 알리는 소득을 거뒀다.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였다.때문에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식 표현으로 가장 ‘뜬’ 인사는 김 비서라는 평가도 있었다. 김 비서는 같은 해 9월 김 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제주도를 방문,1934년생 동갑인 임동원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특보와 회담을 갖고 정상회담 이후 소강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김 비서가 지난 26일 사망했다는 보도다.북한은 그가 지난 6월16일 교통사고로 장기간 입원치료중 숨졌다고 밝혔다.이에 외신이나 탈북자들은 북한 지도층의 파티 문화를 지적하면서 음주음전 사고 가능성을 주장했다.여하튼 김일성대학 국제관계학과(현 평양국제관계대학)를 나와 모스크바대학에 유학한 엘리트 출신의 김 비서는 아태평화위 위원장을 겸직하며 민간차원의 남북교류협력사업까지 도맡아 왔다.고 정주영 현대회장과 김 위원장의 면담을 성사시키고,금강산관광사업을 현실화시킨 현대의 대북경협 파트너도 그다. 김 비서는 그러나 몇차례 좌천설에 휘말리기도 했다.특히 2001년 1월1일 이후 1년 2개월간 공식 행사에 나타나지 않자 금강산관광사업의 부진 때문에,사생활에 문제가 있어서 숙청됐다고 알려졌다.1993년과 1994년에도 실각설이 나돌았는데 그때마다 남북관계가 지지부진한 데 대한 책임추궁 때문으로 분석됐다.하지만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김 위원장에 이은 제2인자로 대남정책을 총괄해 왔고,그가 활발히 움직이면 남북관계도 활기를 띠었다.그는 남북화해협력의 북한측 ‘상징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정부가 김 비서에 대한 조의 여부를 고민중이라고 한다.조문단 파견은 어렵겠지만,남북회담 대표 명의로 조전을 보내는 것은 검토해볼 만하지 않을까. 김인철 논설위원
  • 뉴스 플러스 / ‘하이닉스 상계관세’ WTO제소

    정부는 30일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상계관세 부과 결정 및 현재 시행 중인 잠정 상계관세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외교통상부는 주 제네바대사 명의의 양자협의 요청 서한을 이날 미국 쪽에 전달했다.정부는 향후 양자 협의 및 패널 절차를 통해 미 상무부 결정 중 상업적 기준에 의한 채권단의 지원조치를 정부보조금으로 간주한 것에 대한 부당성 등을 집중 제기할 계획이다.
  • ILO이사회의장 정의용씨

    20일 스위스 제네바 국제노동기구(ILO) 본부에서 열린 ILO 집행이사회에서 정의용(鄭義溶) 주 제네바대표부 대사가 임기 1년의 신임 의장으로 선출됐다.
  • [외교관 통신]협상전술도 국력이다

    제네바는 협상의 도시이다.국제연합(UN) 유럽본부를 비롯한 30여개의 정부간 국제기구뿐만 아니라 국제적십자사와 같은 비정부간 국제기구 등 무려 160여개의 국제기구가 자리하고 있다.이 기구들은 연간 1500회 이상의 국제회의를 개최하는데 회의 참석을 위해 연 15만명 이상의 각국 대표들이 제네바를 방문하고 있다. ●年 15만명 회의참석차 제네바에 한국과 관련해선,1933년 2월 이승만 박사가 국제연맹회의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참석했다가 숙소에서 프란체스카 여사를 처음 만난 곳이 제네바이며,1994년 북·미 기본합의문이 만들어진 곳도 이곳이다. 제네바에 있는 국제기구들이 다루는 협상의제는 실로 다양하다.우선,2001년 11월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출범한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농업,서비스,비농산물 시장접근,무역규범,환경,지적재산권,분쟁해결 등 광범위한 의제에 걸쳐 2005년 1월1일까지 타결을 목표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또한 세계유일의 다자군축협상기구인 제네바 군축회의(CD)에서는 다양한 군축문제가 논의되고 있고,유엔 인권위원회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 나라의 협상력을 결정하는 두 가지 변수는 국력과 협상전술이라고 한다.본질적으로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한 나라가 가진 국력이 협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한편,협상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 변수인 협상 전술은 협상의 목표와 수단,해당문제에 대한 협상 대표들의 전문지식과 외국어 구사능력 등을 포함한다.미·러·중·일 등 주변의 4대 강대국과 EU 등 강한 상대와 협상할 기회가 많은 우리로선 상대적으로 열세인 국력을 뛰어난 협상전술로 보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협상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문가의 양성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초급 외교관 시절부터 전문분야에 대한 실력을 배양토록 하고 이들이 각 전문분야에서 계속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국제 경쟁력을 갖춘 협상가를 양성하여야 한다. 또한 학연,지연 등 연고주의보다는 능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인사를 시행하고,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가가 우대받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제협상 전문가 양성해야 과거 주요 협상결과를 놓고 우리 외교관들은 여론의 질타를 많이 받아왔다.본국과 주재국간 이해관계를 서로 원만하게 조정해야 할 임무의 속성상 외교관들은 국민들의 높은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이러한 경우 비판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 영국인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등화관제가 실시되고 있던 안개 낀 밤에 영국 관청가를 걷고 있었다.그는 외무부를 찾아가는 중이었다.그는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물었다.“죄송하지만 외무부가 어느 쪽(which side)에 있는 줄 아십니까?” 퉁명스러운 답변이 이어졌다.“잘 모르겠는데요.그러나 지난번 전쟁에서 그들은 우리 쪽(our side)이었어요.다음번엔 어떻게 될는지 모르지요.” 협상을 비롯한 대외정책의 수행에 있어서는 국민의 신뢰가 필수적이다.따라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우리 외교관들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도 협상대표를선발할 때에는 신중하게 하되,일단 선발된 협상대표에게는 무한한 신뢰를 보임으로써 협상대표가 치밀한 논리와 탁월한 협상전술을 가지고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 박희권 제네바대표부 공사참사관 ●박희권(朴喜權·46) 주 제네바 대표부 공사참사관.외시 13회,법학 박사(국제법).영국 전략문제 연구소(IISS) 연구원.외교부 조약과장,국제법규과장,주 유엔대표부 참사관,외교정책실 안보심의관.
  • [Look! 아시아]1부 新장보고 루트르포 (7) 이바라키현發 경제회생

    |쓰쿠바·미토 황성기특파원|일본은 지금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재정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지방 자치단체의 재정은 만성적인 재정 적자와 함께 중국으로의 공장이전 등으로 점점 더 황폐화의 길을 걷고 있다.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위기를 회생과 부흥의 기회로 역전시키려는 노력이 한쪽에서 생겨나고 있다.이러한 지방발 ‘뉴 재팬’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바라키의 경우다.기업과 대학,지방자치단체의 ‘지(知)의 융합’을 키워드로 한 새 비즈니스 창조,그 발원지인 이바라키현 쓰쿠바 연구학원 도시의 성공사례를 집중취재했다. 지난해 4월 쓰쿠바대학은 ‘산학리에존 공동연구센터’란 특이한 조직을 만들었다.상아탑의 연구성과를 사회에 환원하고 지적 재산의 사업화를 노린 ‘인큐베이터’이다.발명이나 새 기술을 기업에 이전하고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발명을 위해 연구도 한다. “연구성과를 그대로 기업이 활용하기는 상당히 힘들어 기업의 요구를 조사,발굴해 연구하는 쪽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이 센터 기쿠모토 히토시 교수의 설명이다.그는 “설립 초기라 실적은 많지 않지만 5년 이내에 궤도에 오를 것으로 본다.”고 낙관한다. 지금까지 쓰쿠바대에서 배출한 벤처기업은 13개사.국·공립대학 가운데 도쿄대와 동률 1위를 기록할 만큼 벤처정신이 전국에서도 출중하다.‘MR 테크놀러지’는 물리공학계 교수와 대학원생이 설립한 회사다.1대에 3억엔인 의료기기 자기공명영상장치(MRI)를 10분의1 가격에 만들어냈다. 연구센터가 힘을 쏟고 있는 분야는 ‘쓰쿠바 융합시스템’이다.쓰쿠바대와 경제산업성 산하의 산업기술종합연구소,문부과학성 산하의 물질·재료연구기구 3자가 인사교류를 포함한 협정을 맺고 ‘연구 융합’에 들어갔다. 그 첫 결실이 ‘도시부 산학관 연대촉진사업’이다.“쓰쿠바시를 하나의 거대한 실험장으로 한 정보통신(IT) 도시의 실현”(기쿠모토 교수)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2004년까지 3년간 4억 2000만엔을 투입,세계적인 첨단도시,쓰쿠바시에 어울리는 도시환경을 조성한다.시각장애인의 보행을 원격지에서 휴대전화로 알려주거나 밤길에 귀가하는 자녀들의 모습을가정에서 감시한다.교차로나 역에서 수상한 움직임이나 방화등을 자동으로 발견해 경찰에 통보하는 공상과학 소설에나 등장하는 일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주식회사 ‘쓰쿠바연구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쓰쿠바대·산업기술종합연구소·자동차연구소 외에 ‘쓰쿠바 멀티미디어’‘IT 쓰쿠바개발센터’ 등 다수의 중소기업이 참여한다.기대되는 효과는 IT도시의 창조뿐이 아니다.특허출원 30여건,벤처기업 10여개사,연구성과 40여건 등 파생되는 경제효과는 투입되는 예산을 수십배 웃돌 것으로 어림된다. ‘지의 융합’이 보다 원활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업과 지자체,대학(연구소)은 물론 벤처정신을 뒷받침하는 자본의 조달도 빼놓을 수 없다.‘쓰쿠바 연락회’는 이바라키현이 바로 이런 목적에서 만들었다. 연락회는 벤처를 배양하는 밑거름이 되는 원활한 자본 조달을 위해 ‘이바라키 벤처 마켓’을 열어 벤처기업가의 새 사업과 자본을 연결하는 행사를 주관하는 등 벤처 캐피털 유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3년 안에 쓰쿠바발 벤처기업을 100개사 만들고 그중 10개사는 상장시키겠다.”고 현청에서 이 연구센터로 파견나온 다나카 게이치 과학기술연락관은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어려움도 적지 않다.대학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사업이 되는 기술보다는 기초연구 쪽을 아직도 선호한다.대기업의 경우 기업비밀을 이유로 산학관(産學官)의 ‘지의 융합’을 꺼린다.중소기업도 나름대로 고민이 있다.이바라키 산업회의의 기무라 후쿠이치 사무국장은 “대학의 첨단연구가 필요하지만 중소기업에게는 대학의 문턱이 너무 높다.”고 말한다.이같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쓰쿠바와 이바라키의 실험에 거는 기대는 많다. 기쿠모토 교수는 “쓰쿠바와 이바라키의 시도는 침체에 빠진 일본 지방경제와 일본 회생의 길잡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marry01@kdaily.com ◆쓰쿠바.도카이 지적특구 |미토 황성기특파원|‘쓰쿠바·도카이 지적 특구구상’은 ‘지(知)의 융합’과 신 산업의 효과적인 창출을 노린 이바라키현의 야심사업이다.쓰쿠바와 도카이 두 지역이 보유한 일본 제1의 연구 인력을활용해 이바라키를 게놈연구,바이오,신약,IT 등 고부가가치 연구와 벤처기업의 거점으로 키워간다는 것이 현의 구상이다.지원의 핵심은 규제완화다. 쓰쿠바에는 국가연구기관 11개(전체의 40.7%)에 직원이 5216명(49.5%)으로 쓰쿠바대를 비롯한 각 대학의 연구인력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도시 자체가 연구단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원자력발전소가 있는 도카이(東海)지역에는 2800명의 원자력 관련 연구자가 모여 있다. 특구구상에 따르면 이미 설립된 쓰쿠바 과학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지적 자원을 종횡으로 관리한다.산학관의 성과를 위해 규제도 대폭 완화한다.먼저 연구자들이 쉽게 창업하고 기술이전을 할 수 있도록 (공무원의) 겸업규제를 풀고 국가의 연구 시설이나 장비를 민간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또 기업이 연구소에 맡긴 연구성과를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고 목적에 맞는 연구활동을 늘리기 위해 연구자의 시한부 고용 확대를 늘리는 한편 연구자 고용 유동화를 통해 연구의 경쟁환경도 조성한다. 외국인에게 문턱이 높은 일본이지만 이바라키현은 그 문턱을 대폭 낮춘다.쓰쿠바시에 등록된 외국인 6500명 가운데 3500여명이 연구자일 정도로 외국인의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외국인 연구자를 적극 받아들이기 위해 연구자 본인과 가족의 체류자격을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대폭 연장하고 그들을 연구직은 물론 국·공립대학의 관리직에 임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지난 연말 국회에서 특구법안이 통과돼 구체적인 규제완화를 중앙정부와 상의해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쓰쿠바에는 ‘쓰쿠바 바이오·게놈 추진회의’도 설립한다.쓰쿠바대·식품종합연구소·농업환경기술연구소 등 관련 단체가 촘촘히 밀집한 입지조건을 100% 살린다.이바라키현의 이같은 특구 구상에는 2005년 완성될 도쿄∼쓰쿠바간 철도인 ‘쓰쿠바 익스프레스’가 원동력으로 작용한다.상공정책과의 시바 마사키 신 산업담당관은 “중앙정부에 의뢰한 44건의 규제완화 가운데 30건이 ‘가능’하다는 회답이 와서 오는 4월 특구 신청서를 제출하고 여름쯤에는 특구를 가동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토 산업기술종합연구소부문장 인터뷰 |쓰쿠바 황성기특파원|“옛날의 산학 제휴는 연구자끼리의 친목 수준 정도였으나 지금은 연구자가 제품을 만드는 기업 사람과 만나 얘기하고 연구의 방향성을 정해가는 바람직한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경제산업성 산하 산업기술종합연구소(산종연)의 고토 다카시 산학관 제휴부문장은 최근 일본에서 일고 있는 ‘지(知)의 융합’을 이렇게 설명한다.2001년 4월 16개 국립연구소의 통폐합으로 탄생한 산종연은 쓰쿠바 산학관(産學官) 연대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일본 최대 규모의 연구소다. ●‘산학관 제휴부문’이라는 조직의 특징은. 우리 연구소의 연구성과를 기업이나 다른 연구소에 보내고 기업이나 다른 연구소의 위탁을 받는 창구역할이다.연구자 출신인 산학관 코디네이터 26명이 일종의 영업을 하고 있다.이들은 기업이 원하는 연구를 발굴하고 그 연구에 맞는 연구자를 찾아 기업과의 공동연구나 위탁연구를 알선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과거에는 없던 ‘지적 재산부’라는 별도의 부서도 특징이다.연구시작 단계에서 논문을체크하고 특허 취득 단계의 사무절차를 대행해 준다.연구자의 연구외 업무부담을 크게 덜어 준 셈이다. 연구소 바깥에는 재단법인 ‘산종연 이노베이션스’를 두고 취득한 특허를 파는 영업활동도 펴고 있다.코디네이터가 사전에 연구 아이템을 발굴해 오는 영업부대라면 이노베이션스는 사후 연구결과를 기업에 파는 영업부대라는 점이 틀리다. ●연구자들의 의욕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는. 지적재산권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우는 의식 개혁과 함께 그것을 장려하는 인센티브를 크게 강화했다.과거에는 논문 중심의 평가였다면 지금은 지적재산(특허)과 논문을 동등하게 평가한다.연구자에게 돌아가는 성과급을 한해 600만엔으로 제한했으나 지금은 무한대다.또한 어떤 연구그룹이 발명을 하면 과거에는 발명자에게만 혜택이 주어졌으나 지금은 같은 그룹의 주변 연구자에게도 일정한 혜택을 주고 있다. ●민간기업의 반응은 어떤가. 적극적인 산학관 제휴 추진으로 민간 기업으로부터의 위탁연구 건수가 비약적으로 늘었다.2000년 5건에 불과하던 위탁연구가 2001년 78건,2002년에는 250건(추정)이 됐다.80% 정도가 대기업일 정도로 반응이 좋다. ●대학과는 어떤 제휴를 맺고 있나. 44개 대학과 제휴를 맺고 있다.연구자가 해당 대학원에 가서 교수로 활동한다.학생들은 산종연의 첨단설비를 이용하고 박사학위도 취득할 수 있다.연구자는 젊은 학생들로부터 진취적인 학습열기를 접하고 새로운 연구에의 자극을 받는다. ●이바라키현과의 제휴는 어떻게 진행되나. 쓰쿠바대,물질·재료연구기구와 3자협정을 맺고 교류하고 있다.기업으로는 쓰쿠바·히타치 지구의 중소기업에 연구자를 보내 기술 상담을 하고 있다.현청이 주최하고 있는 쓰쿠바 연락회의 포럼에는 우리 연구소 연구자가 상당수 참여하면서 산학관 제휴의 폭을 넓히고 있다. ◆고토 다카시는 50세.1975년 도쿄대 공학부 졸업,같은 해 통산산업성에 입성.공업기술원 연구개발관,정보처리진흥사업협회기술센터 소장 역임.과학기술청 조정과장을 거쳐 2001년부터 현직.
  • ‘흑인 파라오’ 조각상 나일강 유역서 발굴/2500년전 ‘쿠시 왕국’ 유물도

    한때 고대 이집트를 지배한 흑인 왕국의 파라오 조각상들이 발굴됐다. 20일 BBC 방송에 따르면 나일강 계곡에서 유적 발굴중인 제네바대학 고고학팀은 수단 북부에서 파괴된 사원들을 조사하던 중 기원전 713∼671년 고대 이집트를 지배한 흑인 누비아인들의 ‘쿠시 왕국’ 고대 유물과 함께 흑인 파라오들의 조각상을 발견했다. 고고학팀에 따르면 지난 2000년 동안 침묵을 지켜온 흑인 파라오 조각상들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매우 광택이 났고 또 등과 다리 부분에 왕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쿠시 왕국’은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현재의 수단 북부 부근에서 나일강을 따라 중요 무역로를 관장하며 번영한 흑인 누비아인들의 국가로 한때 북쪽의 이집트를 정복했다가 다시 이집트에 정복당했다. 연합
  • [사설]거꾸로 가는 서울시 여성정책

    서울시가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최근 시의회에 상정한 조직 개편안에서여성전담부서를 폐지하기로 한 것은 여러 측면에서 우려스럽다.서울시는 현재 1급인 여성정책관실을 폐지하고 산하의 여성정책과와 가정복지과를 복지국 내 여성과와 보육지원과로 이관하는 대신 1급 상당의 정책보좌관을 신설할 계획이라고 한다.이는 임시조직으로 여성정책보좌관과 집행부서로서 가정복지국 내에 여성복지과를 두었던 4년전 직제와 매우 유사한 것으로 시대를거꾸로 가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서울시의 여성 행정은 2차의 구조조정과 여성부 신설을 거치면서 소관 업무와 조직을 계속 확대해 왔다.사회발전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한 여성정책을전문화하고 실행구조를 강화하려는 중앙정부의 기조와 낙후된 여성복지를 강화하고 양성평등한 문화를 확립하려는 서울시의 의지가 맞아떨어지면서 업무량이 급증하였기 때문이다.이제 그 기능을 복지국으로 이관해 다른 업무와함께 처리하게 할 때 개편안이 내세우고 있는 업무효율성 강화와 생산성향상 취지를 충족시킬수 있겠는지는 극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또한 여성정책을 맡을 정책보좌관을 둔다고는 하나 여성발전기본법에 따라 모든 정책의 성관점을 통합하고 여성정책을 개발할 지원 조직이 갖춰질지도 미지수인 상태다. 무엇보다 서울시는 수도로서 전국 16개 시·도에 앞서가는 행정을 보여줘야 할 위치에 있음에도 앞장서서 여성전담부서를 폐지함으로써 나쁜 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현재 전국 지자체 중에서 여성전담부서가 없는 곳은 인구 200만 미만인 충북과 충남,최근 여성국 신설계획을 밝힌 강원도가 있을 정도다.서울시는 지금이라도 한국행정연구원이 권고한 바대로 ‘여성정책’이란 이름이 붙은 전담국체제를 만들고 미래지향적 여성정책 수립의 토대를 갖춰야할 것이다.
  • ‘러 소장 한국관련 문서 요약집’ 펴낸 박종효 교수

    “냉전시대에 우리는 일본과 미국의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과 러시아 관계를 연구했지요.그렇지만 일본이나 미국은 러시아의 적국이었습니다.적국 사료를 바탕으로 한 러시아 연구가 제대로 될 리 없겠지요.” ‘러시아 국립문서보관소 소장 한국 관련 문서 요약집’을 최근 펴낸 박종효(朴鍾涍·65)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는 22일 “러시아 사료가 왜 그렇게 중요하냐.”라는 우문(愚問)에 이렇듯 명쾌한 설명을 내놓았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지원한 ‘…요약집’은 박 교수가 1990년 러시아와의 수교 직후부터 현재까지 러시아 전역에 흩어진 20여 군데 국립문서보관소를 뒤져,번역하고 의미를 밝혀나가는 작업의 구체적인 성과다.그가 찾아낸 새로운 사실들은 지난 5∼6월 ‘제정 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비사’라는 제목으로 대한매일에 연재되면서 학계는 물론 독자들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박 교수는 “한반도를 침략 대상으로 삼은 일본의 문서는 많은 부분에서 거짓이 있지만,러시아 것은 사실에 입각한 보고서가 주류”라면서 “러시아 자료를 전적으로 수용할 이유는 없지만 빠져 있거나 잘못된 부분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러시아 시각이 한국사 연구에서 중요한 축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실제로 러시아쪽 자료를 바탕으로 한 박 교수의 저작은 일본학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모스크바대학 출판부가 펴낸 그의 ‘러·일전쟁과 한국(1904∼1905)’은 새해 일본에서도 발간될 예정이다. 박 교수의 자료수집은,러시아가 개방 후 정부기록의 비밀등급을 해제하여주요문서는 75년,보통문서는 25년이 지나면 공개하면서 가능했다.한일합방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려는 노력이 안중근 의사 이전에도 두 차례 더 있었다는 러시아국립 군역사의 1905∼1906년 보고서도 흥미로운 자료의 하나다. 보고서에는 “기차여행을 하는 이토에게 돌을 던져 얼굴에 상처를 입힌 것과,대궐에서 회의를 하는데 한 시위대 병사가 총을 발사하려고 한 것”이라면서 “모두 현장에서 체포하여 돌을 던진 이는 주정뱅이로 몇주간 감금됐으며,시위대 병사는 정신병자로 몰아 독방에 가두었으나 식음을 전폐하여 6일만에 사망했다.”고 씌어 있다. 박 교수는 “고종이 30만엔을 러시아·중국은행 블라디보스토크 지점에 예치했고,나중에 7만엔만 찾았다는 기록에 대해서도 잔고증명을 찾는 등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쌀 한 가마가 3∼5원이던 시절 23만엔이라면 엄청난 액수”라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번에 나온 것은 19세기말 20세기 초의 기록인 만큼 러시아 혁명 이후를 다룬 요약집을 두 권 더 펴낸다는 계획이지만,마무리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박 교수는 요약집이 나온 뒤 관련학자들이 “정말 필요했던 자료”라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그러나 최근 정부 차원에서 러시아 자료를 수집하면서,사료가치 판단능력이 부족한 현지인 위주로 진행해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아쉬워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실적 풍년 대기업 승진은 흉년

    “승진 잔치는 꿈도 꾸지 마!” 연말과 내년초로 예정된 주요 대기업들의 경영진 및 임원급 인사가 소폭에 그칠 전망이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이 내년 경영환경이 불투명하다는 ‘대전제’에서 보수적인 사업계획을 짜고 있는 상황이어서 대대적인 승진 및 변동인사는 고려치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통상 1∼3월 이뤄졌던 임원 및 사장단인사 시기가 LG 등 대기업에서 다소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삼성 올해 15조원대의 세전이익을 올려 사상 최대의 실적이 기대되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월 중순에 임원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관심은 인사의 폭으로 삼성전자 등 큰 실적을 올린 일부 계열사를 제외하고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변동만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李在鎔) 삼성전자 상무보가 연한이 차 자연스레 상무로 승진할지,후계구도 확립을 위해 더 높아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경영진 변동도 최소한에 그칠 전망이다.다만 이 회장이 올 7월 사장단회의에서“핵심인재 확보를 평가자료로 삼겠다.”고 한 만큼 해외 우수인력의 확보 여부가 사장단 인사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사장단 인사평가 요소는 인재확보(40%),경제적 부가가치(EVA·40%),주가(20%) 등이다. ◆LG 올 3월 정기인사를 단행했던 LG는 내년 경영진 인사 시기를 1월로 앞당길 것으로 알려졌다.계열사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대규모 승진인사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계열사의 경우,실적이 악화되면 ‘승진 동결’ 등의 조치가 내려질 수도 있다.LG는 특히 내년 지주회사 출범을 앞두고 있어 사장단 인사의 변동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구조본 관계자는 “올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지만 내년 경기가 불투명해서 인사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LG는 이달말부터 임원 및 사장단 인사대상자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작업에 들어간다. ◆SK SK도 ‘소폭 인사’로 방향을 잡았다.손길승(孫吉丞) 회장이 지난 14일 “(사장단 및 임원)인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손회장은 “제주도에서 결의한바대로 열심히 달려야 한다.”면서 “열심히 달려야 하는 말을 중간에 바꿀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오는 2005년까지 사업성과를 본 뒤 계열사의 퇴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최근 제주도 CEO세미나에서 결의한 만큼 이번에는 사장단 인사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손회장이 임원급에서는 ‘소폭’의 변동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올해 수준의 승진인사(60명)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사 시기는 지난 2월말보다는 다소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박홍환기자 stinger@
  • 국제협상 전문인력 없다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난관에 봉착한 데는 ‘국제협상 전문가’ 부재와 잦은 인사교체가 주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내년초부터 본격적으로 있을 DDA(도하개발어젠다)협상에서 이같은 우(愚)를 또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협상전문가 양성과 철저한 전략수립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FTA협상에서는 협상전문가 부재에 따른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대외경제장관회의의 주무부서인 재정경제부는 한·칠레 협상을 한달여 앞둔 지난 8월 중순 FTA협상을 총괄하는 경제협력국장에 김성진(金聖眞)국제금융심의관을 발령냈다.FTA문제를 담당하던 과(課)도 국제경제과에서 경협총괄과로 바꾸었다.국제경제과의 이성한(李成漢)과장이 남북경협문제로 바쁘다는 이유에서였다. 산업자원부도 마찬가지다.1997년 12월 칠레와 FTA 체결을 위한 첫 협상을 시작한 이후 6차례 협상이 이어지는 동안 통괄실무 과장급이 3차례 바뀌었다.6∼7개 소관 분야별로 보면 실무자가 협상 도중에 바뀌는 건 다반사였다. 산자부 통괄실무는 윤동섭(尹東燮) 국제협력과장이 99년 12월부터 9월까지,서석숭(徐錫崇) 미주협력과장이 이후 올해 2월말까지 맡았다.현재는 김창룡(金昌龍) 미주협력과장이 임무를 수행 중이다. 김재현(金在鉉) 무역투자실장은 “공무원 조직이다 보니 한 자리만 지키고 있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협상을 잘하는 사람의 경우 가능하면 현안이 끝날 때까지 인사를 보류하는 방법을 쓰거나,부득이한 경우 후임자를 전문성있는 사람을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농림부는 다자간협상과 쌍무협상을 분리·운영하고 있다.다자간협상은 국제협력과에서 다루며,WTO와 OECD 등만 전담한다. 올 1월에는 WTO농업협상대책반이 새로 출범해 DDA관련 협상을 맡고 있다.송주호(宋朱鎬) 과장은 지난해 1월 이곳에 왔으며,전임자인 배종하(裵鍾河) 과장은 3년6개월동안 근무한 뒤 국장으로 승진, 농촌경제연구원에 파견나가 있다. FTA등 쌍무협상은 국제농업국 밑의 통상협력과에서 다루고 있다.안호근(安虎根) 과장은 역시 지난 3월에 발령받은 신참이며,전임인 이창범(李昌範) 과장과 유병린(劉柄鱗) 과장은 장관비서관,주제네바대표부에 각각 근무한다. 주병철 김성수기자 bcjoo@
  • 아시안게임/ “북한선수단맞이 설레요”

    23일 도착한 북한선수단 1진을 맞는 각 경기단체와 관련 인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국내에서 치러지는 국제대회에 북한선수단이 참가하기는 처음이지만 이미 여러 국제대회에서 얼굴을 익힌 선수들과 임원들이 찾아오는 만큼 내 집에서 오랜 친구를 맞는 듯 마음도 설렌다. 경기단체 차원의 행사는 아직 계획된 것이 없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각 단체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작은 선물 등을 준비하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91년 남북한 단일팀을 이뤄 지바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탁구계에는 유난히 북측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관계자가 많다.강문수 남자대표팀 감독은 지바대회 당시 북한대표팀 연구위원이던 장태성 북한 총감독을 기다려 왔다.여러차례 국제대회에서 만나 식사도 같이 하는 등 친분도 두텁다.“이번에도 기회가 되면 식사라도 같이 하며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게 그의 뜻이다. 사격대표팀의 김관용 감독도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경호원을 지낸 북한 사격대표팀의 한동규 단장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레슬링대표팀의 김태우 감독 역시 2년여만에 북한 레슬링대표팀의 박기홍 지도원과 만난다는 기대에 차 있다.호형호제할 정도로 친분이 깊은 박 지도원과는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만나 처음에는 이념적인 차이 때문에 서로 멀리하기도 했지만 점차 정이 든 사이.지난 2000년 4월 중국 아시아선수권 때 잠시 만난 이후 얼굴을 못봐 아쉬움이 컸다. 김 감독은 박 지도원을 위해 고무장갑과 양산 등 요즘 북한에서 인기가 높은 선물을 준비해 놓았다. 북한 유도대표팀의 이성철 코치와 오랜 교분을 쌓은 김도준 여자유도 대표팀 감독도 티셔츠와 시계 등을 선물로 줄 생각이다.북한 계순희와 경기를 치른 경험이 있는 이은희 등 일부 선수들도 화장품·티셔츠·스타킹 등 작은 선물을 챙겨놓고 있다. 이번 대회에 앞서 북한에 국산 양궁세트 100개를 전달하는 등 유별나게 동포애를 발휘하고 있는 양궁도 아시안게임 로고가 새겨진 기념배지 등 기념품을 마련해 놓았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발언대] 현대車의 정경분리선언 의미 있다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기업인들이 장기 외유에 나서는 경우를 종종 본다.물론 중요한 업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선거와 관련해 곤란한 처지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다. 정치문제에 관해 입지가 매우 좁을 수밖에 없는 우리 기업인의 어려운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1992년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의 대선출마 당시 현대자동차는 선거참여로 인해 혹심한 결과를 경험한 바가 있다.그런 현대차이기에 자칫 정치적인 문제에 잘못 끼어들었다가 외국인 투자자의 외면이나 해외 신뢰도 하락 등 치명적 상처를 입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이는 세계 톱 5의 자동차 메이커를 지향하는 현대차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번 현대차의 정경분리 선언은 의도의 순수성이나 추진의지를 의심받을 수 있다. 또 우리 사회는 아직 정경유착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매우 강하다.정경유착이 과거 고속성장 과정에서 한정된 재원의 효율적 활용을 가능케 했지만 그 폐해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동안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세간의 부정적 눈초리는 사라졌다고 할 수 없다. 현대차의 이번 선언에는 이런 사회적 배경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할 수있다.그래서 이번 선언에서는 대선출마를 선언한 정몽준(鄭夢準) 의원과의 특별한 관계에서 비롯된 ‘다급한 숨결’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번 현대차의 정경분리 선언은 매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지금까지 개별기업이 선거와 관련해 중립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정치와 단절을 선언한 전례는 없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현대차의 정경분리 선언을 일단 신뢰하고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경우에 따라서는 이의 실천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현대차가 선언한 바대로 이행하는 경우에는 우리의 정경관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재황 경영자총협회 기획홍보실장
  • 500년 예술의 거리 아르바트엔-빅토르 최의 영혼 살아숨쉬고…

    [모스크바 글·사진 임창용 특파원] 9월 초,러시아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 한쪽에서는 초가을 햇빛의 눈부심을 부정이라도 하듯,음울한 분위기의 가사와 멜로디가 골목을 휘감는다. “내게 한 모금의 물을,한 모금의 자유를/거리의 제단마다 타오르는 불길/꽃 대신 타오르는 불길/목이 말라,목이 말라/내게 한 모금의 물,한 모금의 자유.” 서른을 갓 넘긴 듯한 한 사내가 흐느끼듯 부르는 이 노래는 러시아의 전설적 록스타 빅토르 최가 부른 ‘한 모금의 물’.이 무명가수 옆엔 히피풍의 러시아 남녀 젊은이들이 비스듬히 눕거나 쭈그리고 앉아 노래를 듣는다. 빅토르 최는 1990년 모스크바 올림픽스타디움에서 가진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부른 뒤 한달쯤 지나 라트비아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아르바트 거리 한쪽 골목에 자리잡은 ‘빅토르 최 추모의 벽’주변엔 이미 12년 전 떠난 한인3세 록스타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젊은이들,이른바 ‘빅토르 최의 아이들’의 발길이 끊일 날 없다.이들은 빅토르 최가 무명시절 노래를 불렀다는 이곳에서,그의노래를 부르고 들으면서 일년 내내 그를 애도한다. 노래가 끝난 뒤 한 청년에게 ‘빅토르 최의 노래를 왜 좋아하느냐?’고 묻자 “초이는 최고의 록스타이자 러시아 젊은이의 우상”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국립 모스크바대학에 유학중인 임동명(30)씨는 “빅토르 최는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신화적 존재”라며 “그가 요절한 후 광적인 팬들이 오히려 늘었다.”고 말한다. 러시아 문화예술이 숨쉬는 500년 역사의 아르바트 거리.하지만 한국인 방문객에겐 같은 피를 나눈 빅토르 최의 숨결이 느껴지기에 한결 친숙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아르바트 거리는 러시아의 대문호 푸슈킨,투르게네프,레르몬트프 등이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다.제정러시아 시대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목공 골목,대장간 골목,과자와 빵 골목,음식점 골목,식탁보 골목 등이 거리와 이어져 있다. 일년 내내 차량통행이 금지돼 보행자 천국인 이곳은 무명 가수나 악단·화가·연극배우들의 무대이자 안식처이고,히피들의 마음의 고향이다.이들은 여기서 재즈와 록을 연주하고,초상화를 그리고,브레이크댄스를 춘다.이들의 예술을 배경으로 첨단 패션의 젊은이들이 수없이 거리를 오가고,친구나 연인들끼리 노천카페에서 보드카와 차를 마신다.1998년 국내에 소개된 소설 ‘아르바트의 아이들’의 주인공이 바로 이들이다. 하지만 이곳도 90년대 이후 외국인 관광객들을 겨냥한 외국 브랜드의 상점과 기념품 가게,노점상 등이 거리를 메우면서 문화예술의 향기 가득하던 예전의 모습이 많이 퇴색했다고 한다..러시아에 부는 개방화·상업화 물결을 아르바트라고 비켜가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sdragon@ ■관광 포인트/ ‘붉은 광장' 바닥은 붉은색 아니네 기자가 모스크바에 체류한 9월 첫주는 마침 모스크바 탄생 855주년 기념주간이었다. 모스크바시 청사 앞의 베르스카야 광장을 비롯해 푸슈킨·루비안스카야 광장 등 시내 곳곳에선 러시아 전통춤과 콘서트 등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졌고,시민들은 교통이 통제된 주요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며 축제를 즐겼다. 특히 크고 작은 악단의 연주를 배경으로 다양한 복장의 무용수들이 보여준 전통춤,에로틱하면서도 깔끔한 분위기를 낸 룸바 등은 러시아 예술의 단면을 보여준 수준급 공연이었다. 모스크바는 흔히 인접한 문화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비교돼 정치·경제의 중심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855년 역사의 도시답게 볼쇼이극장,스타니슬랍스키-단첸코 모스크바 아카데미 음악극장,국립 크레믈린궁 극장 등 고품격 공연장이 많다.따라서 모스크바에 간다면 크레믈린이나 붉은 광장 등지만 둘러볼 게 아니라 꼭 공연장에 들러 러시아 발레나 오페라의 진수를 맛보아야 후회가 없다. 그렇다고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의 상징처럼 된 붉은 광장과 크레믈린을 빼놓을 수는 없다.붉은 광장(크라스나야 플로샤지)에서 ‘붉은’은 고대 러시아어 ‘아름다운’‘훌륭한’이란 뜻을 가진 단어와 어원이 같다고 한다.즉 ‘아름다운’광장이란 뜻.광장 바닥엔 붉은 색이 아닌 검은 회색 벽돌이 깔려있다. 2만5000여평의 붉은 광장은 크레믈린 북동쪽의 붉은 벽돌 성벽과 국립역사박물관,굼 백화점,바실리 성당,레닌묘 등 러시아 관광소개 책자에 단골로 실리는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밖에 모스크바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레닌 언덕(일명 참새언덕),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 사이로 모스크바 중심을 가르는 모스크바강,표트르 1세 때등 러시아 고대 건축술로 지어진 작품들과 참나무 거목들이 어우러진 칼로멘스코예 공원 등이 둘러볼만 하다. ■여행가이드/ 출입국때 현금체크 엄격, 고급호텔 선택해야 안전 ◇가는 길=인천공항에서 모스크바 세르베체보2공항까지 9∼10시간 소요.시차는 우리보다 6시간 늦는데 요즘은 서머타임 중이라 5시간 늦다.출입국시 현금(달러)체크가 엄격하다.출국시 입국신고서에 기재한 소지 현금 액수보다 많으면 그 이유를 입증해야 하는 등 문제가 복잡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숙박·음식=별 5개짜리 호텔에서부터 별이 없는 저가 호텔도 있지만 외국인은 별이 있는 호텔에만 머물 수 있다.호텔마다 경비원들이 출입자를 제한하지만 가능하면 고급호텔을 택해야 안전하다.공항에서 전화로 예약할 수 있고,호텔 프런트에서 여권을 제시하고 체크인한다. 러시아 전통음식은 대개 평민들이 즐기던 음식이다.각종 곡물로 만든 죽인카샤,러시아식 돼지고기 바비큐 샤슐릭,고기를 넣고 튀긴 빵 피로그,시베리아식 물만두 펠메니 등이 대표적이다.추운 기후 때문에 고기를 주로 쓴다. ◇여행상품 =모스크바만 여행하는 상품은 찾아보기 어렵고 모스크바-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묶거나 북유럽 국가들과 연계한 상품이 많다.스타투어(02-723-6360)가 모스크바-페테르부르크(6일)상품을 150만원대에,북유럽 3개국(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을 경유하는 11일짜리 상품을 330만원대에 판매한다.
  • [데스크 시각] 진정한 화해를 기다리며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서울의 망우리 묘지공원에 가면 아사가와 다쿠미(淺川巧)라는 한 일본인의 묘지가 정성스럽게 관리되고 있다.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간 지 반세기가 훨씬 지났어도 아직도 그의 묘지는 한국 사람들에 의해 깨끗이 관리되고 있다.그는 총독부 관리였지만 당시 한국에 건너왔던 많은 일본인들과는 달리 조선문화를 존중했고 ‘조선도자명고(朝鮮陶磁名考)’라는 저서를 남기는가 하면 한복을 입고 한국말을 썼던 이유로 1931년 그의장례식은 많은 조선인들의 애도 속에 치러졌다. 그 아사가와의 이야기를 최근 일본에서 듣게 됐다.규슈 후쿠오카현 무나오카시에 있는 후쿠오카교육대학에서 지난달 30일 열린 일본교육학회 예순한번째 학술대회에서였다.대회 주제는 ‘아시아의 공생(共生)-젊은 세대의 앞으로의 한·일(일·한)관계와 인적 교류’였다. 걸핏하면 갈등이 폭발하는 한·일관계를 생각하면서 일본 교육학계가 보는 양국 관계와 교류의 전망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돌아오는 길은 몹시 머리 속이 복잡해져있었다. 심포지엄 전반부에는 초등학교의 교류에 관한 사례발표가 있었다.충남 부여군 백제초등학교와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 니시초등학교 학생들이 해마다 오고가며 교류하는 모습이 비디오 화면과 함께 소개됐다.니시초등학교 관계자는 “진짜 형제처럼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만족감을 표하면서 젊은 세대의 교류가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중학생 시절 서로 홈스테이를 하면서 교류를 했던 학생 2명이 8년 만에 재회,당시와 현재의 생각을 말하는 차례도 있었다. 분위기가 일변한 것은 8년째 한·일교환수업을 펴온 쓰쿠바대학 다니가와 아키히데(谷川彰英) 교수의 차례가 되어서였다.그는 한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아사가와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역사수업을 해 나가는데 반응은 차가웠다고 말을 꺼냈다.한 학생이 “아사가와는 수천만명 가운데 한명일 뿐이다.사죄와 배상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서 우리더러 과거를 잊으라고 말하는 것이냐.”라고 비판을 가하더라는 것이다.김치나 만화 이야기를 하면 부드럽게 넘어가는데 역사 이야기에 이르면 대부분의 고등학생들로부터 같은 시각의 비판을 받는다면서 다니가와 교수는 교류를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한 걸음 나아가 “한국 사람 말을 이젠 입닫고 들어선 안된다.”,“독립기념관에 가보니 고문 장면이 인형으로 전시돼 있다가 이제는 움직이는 인형으로 바뀌었더라.한국인들 지나치다.”,“한국인의 마음에는 ‘동생한테 당했다.’는 식의 원한 같은 게 있다.”는 말을 ‘솔직하게’ 토해 냈다. 8년이나 한·일 교류 사업을 열심히 펴온 끝에 얻은 결론인 셈이었다.교류가 화해의 시작이 아니라 끝이 될 수도 있다거나 교류하면 할수록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고 말하면 사례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게 되겠지만,가능성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됐다. 비슷한 발언이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도 흘러 나오는 것을 들으면서 연단에 앉아 있는 재일동포 교육학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사회자인 그는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얼굴이 돼 있었다.심포지엄이 끝난 뒤 그와 함께 온천욕을 가는데 “한국과 일본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할까요.”라고 묻는다.내가 묻고 싶은 말이라며 대답을 기다리니까,먼 바다쪽만 쳐다볼 뿐 입을 열지 않는다.태풍 루사 탓이겠지만 귀로에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현해탄에는 파도가 높게 일고 있었다. 강석진 정치에디터
  • ‘화마에 무너진 꿈’ 몰도바인 독지가 도움으로 귀국길에

    “고국으로 돌아가게 돼 너무 기쁩니다.한국인들의 따뜻한 정을 잊지 못할것입니다.” 여권과 비행기표가 없어 고향에 가지 못했던 몰도바인 바실리 지리노프스키(45)와 세르게이 비쿠(35)가 18일 오전 9시30분 인천발 모스크바행 비행기편으로 꿈에 그리던 귀국길에 올랐다. 대한매일 8월8일자 31면 보도 이들의 발목을 잡았던 임시 여행증명서가 지난 9일 중국 주재 몰도바대사관에서 발급된 데 이어 비행기표도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최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이들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김제시청 직원들이 120만원을 보태는 등 독지가 20여명이 250만원을 모아 이들의 귀국을 도왔다.비행기 삯 2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돈은 이들에게 고향 정착금 명목으로 주어졌다. 지난 2000년 10월 한국을 찾은 이들은 같은 해 12월 전북 김제에 있는 공장 숙소 화재로 심한 화상을 입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한국경제 개혁하려면 관료 해외추방을””지적, 美 MIT 돈부시 교수 사망

    “한국이 경제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관료들을 모두 비행기에 태워 국외로 추방해야 한다.기득권 수호와 정책 실패를 감추는 데 급급했던 일본 관료의 해결 방식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8년 5월 한국 정부의 권위주의와 기업의 관료주의를 향해 쓰디쓴 충고를 아끼지 않은 루디거 돈부시(사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제학 교수가 25일 워싱턴 자택에서 암으로 영면(永眠)했다.향년 60세. 지난 42년 6월 독일 크레펠트에서 출생한 돈부시 교수는 66년 스위스 제네바대학교 졸업 후 71년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75년 MIT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해 78년 정교수로 취임했다.27년동안 MIT에 봉직하며 돈부시 교수는 수많은 국제 경제정책 학자와 실무자들을 길러냈다. 그의 대표적인 애제자로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그리고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등이 꼽힌다. 그가 81년 스탠리 피셔 MIT 교수(현 시티그룹 고문)와 함께 낸 ‘거시경제학’은12개국어 이상 번역됐으며 경제학도들의 ‘바이블’이 되다시피 했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지난 99년 여름 휴가를 떠나면서 그의 책 ‘세계경제 전망’을 챙겼다고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같은 ‘케임브리지 사단’에 속했던 피셔 고문이나 로렌스 서머스 미전 재무장관 등과 달리 정실 자본주의 척결이란 미명 아래 IMF가 행했던 여러 정책들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94년 멕시코 페소화가 붕괴될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했던 돈부시 교수는 특히 개도국의 외환위기에 탁월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인물로 이름높다. 그는 또 97년 ‘FDO 파트너’라는 펀드회사를 설립해 투자자문을 해왔고 지난 3월 논평과 에세이를 모은 ‘번영의 열쇠-자유시장,건실한 통화와 약간의 행운’을 출간하는 등 최근까지 연구열을 불태워왔다. 그는 지난해 대다수 전문가들이 세계경제의 밝은 앞날을 낙관할 때 이런 낙관을 경계해야 한다는 소식을 피력한 바 있다.미국,일본,유럽 등의 경제정책이 불안하다는 이유에서였다.최근의 국제경제 상황은그의 예측이 적중했음을 보여준다. 유족으로는 고향 크로펠트에 있는 형 폴 조지프 돈부시와 부인 산드라 마주르가 있을 뿐 슬하에 자녀는 없다. 임병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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