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바닷길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해설위원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세제지원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가디언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사법행정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22
  • 기고 / 자크 로게 IOC위원장께

    세계 평화와 인류 공존을 추구하는 지구촌 축제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일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인류문명사를 돌이켜볼 때 동서 문화의 교류는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다양한 축제 문화를 통해서 동서 문명의 삼각주를 이루어 왔습니다.동양의 문화는 실크로드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졌으며,서양의 문화는 바닷길을 통해 동양으로 전해졌습니다.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는 오리엔트 문명은 서구의 휴머니즘 사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고,서양의 과학적 사고 방식은 동양의 현대 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고대 올림픽 정신은 근대 올림픽으로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IOC의 위업은 세계 평화와 안녕을 갈구하는 인류의 염원 속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에 대한 지구촌 가족의 이목이 고조되어 가고 있는 이 때,4500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인류 평화를 지향하는 ‘Peace for All’의 실현과 인류 공존을 염원하는 올림픽 유치를 위해 청정 도시 강원도 평창에서 대화합의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님! 대한민국 국민은 지난 50년 전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상처받은 폐허의 땅을 일구어 세계사에 기여하는 민주국가로 발전시켜 왔습니다.우리나라가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와 평화의 수호 국가 벨기에를 비롯한 자유 우방국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한 평화 통일을 달성하지 못한 채 남북으로 분단되어 비운의 땅 DMZ를 국토 중앙에 두르고 살아야만 했습니다.우리 강원도 평창이 2010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자 하는 주된 목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의 핵 무장을 경계함으로써 동양 평화와 나아가 세계 평화를 구현하는 신념을 올림픽 정신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것입니다.대한민국은 이미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을 개최함으로써 강대국들의 이념 대립을 평화 공존의 장으로 승화하는 데 성공한 바 있으며,2002 한·일 월드컵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전 세계인에게 평화와 감동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습니다.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인의 잔치가 아닌,전 인류의 잔치가 되어 동서양 문명 교류의 교두보가 되었으며,평화의 중요성과 인류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축제였습니다.대한민국은 이런 저력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대통령의 의지와 범 국가적 지원,그리고 온 국민의 지지를 인프라로 삼아 유치 성공을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2010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는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 조국의 DMZ에 평화의 새를 날게 할 것입니다.또한 남북으로 이어지는 철로는 아시아의 등불이 되어 유라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통하는 최첨단 IT과학문명의 새로운 실크로드를 만들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인의 평화 애호 정신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전해져 동서양이 하나가 되는 최상의 인간 정신으로 구현될 것입니다. 전 세계인들은 대한민국 5000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문화의 향기 속에서 다른 대륙에서 누릴 수 없는 정신적 풍요와 경천애인 사상의 진수를 맛볼 것입니다.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전 세계인을 환영할 것이며,친구와 이웃처럼 여러분을 맞이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찬란하게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습니다.우리는 이제 동방의 밝은 빛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올림피즘을 더욱 빛내기 위해 또 하나의 등불을 밝히려고 합니다.그리하여 온 지구촌 가족이 하나가 되는 ‘우리 모두를 위한 평화’ (Peace for all)의 공간을 만들 것입니다.남북 화해를 바라는 우리의 소망은 이미 천명된 북한 지도부와 체육계의 지지 속에서 2010년의 대장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염원은 이미 체코 프라하의 IOC 총회에 집결되어 있습니다.자크 로게 IOC 위원장님을 비롯한 위원님들의 현명한 판단이 21세기 지구촌 평화의 수호신이 되어 오대양 육대주를 평화의 땅으로 영원히 번창하게 해 주소서. 한장수 강원도 교육감
  • [녹색공간] 멀지만 가야할 길

    봄비 내리는 밤,밤새 요란하도록 처마 끝의 풍경소리가 왱그렁거린다.진달래꽃들 저 비바람에 하마 다 져 내리는 것 아닐까.햇살이 환하다.머위나물 잎들과 참취 잎을 뜯어 개울가에서 씻는다. 따르르르르 따르르르르 저만큼 오동나무가지에 앉은 오색딱따구리의 나무 쪼아대는 소리가 바쁜 목탁을 치듯 골짜기 가득 울리고 개울건너 호랑지빠귀 두 마리 화답을 하듯 휘 휘 거린다. 진달래 붉은 꽃 그늘 아래 청띠 신선나비,배추흰나비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늘거린다. 주룩주룩 봄비도 오고 했으니 고사리 순들이 좀 올라 왔으려니 하고 뒷산에 오르는데 군데군데 흙이 푹푹 파헤쳐져 있고 길가 여기저기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는 것들,다가가 보니 춘란뿌리들이 허옇게 뿌리를 뒤집고 뒹굴고 있다. 누군가 마구잡이로 캐어 가다가 무겁고 귀찮아서 골라내고 휙 던지고 갔을 춘란들,정말이지 못된 사람들,그런 인간들이 그래도 밖에 나가서는 난을 키웁네 뭐네 하며 제법 고상한 취미를 가졌노라고 거드름을 피우겠지. 이건 얼마짜리 난이다.이건 더 비싼 얼마짜리다.모든 것들을 돈의 중심으로 가치를 재는 것이 세상의 실정이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누굴 탓하겠는가.너 뿌리내렸던 곳 그립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잘 살아보려무나.난 뿌리들 주워 소나무 숲 그늘아래 심어두고 내려온다. 어찌 춘란뿐이겠는가.나 사는 골짜기뿐이겠는가.며칠전 새만금간척사업중단과 전쟁반대 등 세상의 평화와 생명존중을 위하여 부안 해창바다에서부터 서울 광화문까지 삼보일배의 행진을 하는 자리에 갔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나이든 할머니까지 절을 하며 걸어가는 한마음의 자리에서 시를 한편 읽었다. 나 아주 어려 벌거숭이의 몸을 내맡겼었다/ 뻘밭 가득 뛰어놀던 짱뚱이 같은 아이들과/ 게걸음치며 달려가던 농게 같은 아이들과/ 온몸에 갯뻘을 바르며 뻘 싸움을 하고/미끄럼틀을 만들어 놀이터가 되어주었던/ 푸른 것들이 찬란한 것들이 치솟고 일렁이던/뻘밭의 바다//내게 만약 끔찍한 저주가 있다면/ 그 뻘밭을 막아 없애려는 무리에게 쏟아내야겠네/ 내게 만약 죽음보다 더 지독한 증오가 있다면/ 그 뻘밭을팔아 배 부르려는 무리에게 퍼부어야겠네//싱싱한 것들로 온통 번쩍이는 생명으로 꿈틀거리는/ 소중한 선물의 뻘밭/ 살아서 아름답게 흘러온 것들 흐르는 대로 두어야 하듯/ 밀물과 썰물로 들고나는 뻘밭의 바닷길을 막아서는 아니 되네/ 이 땅에 내린 축복의 뻘밭 우리 아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하네/ 그 뻘밭의 바다에 순결한 입맞추며/ 엎어지고 자빠지며 내달리게 해야 하네// 이제 우리 해창바다에서 광화문까지 삼보일배로 나아가네/ 사랑으로 나아가네 뉘우침으로 참회로 간절함으로 나아가네/ 그 길 한걸음 한걸음에 전쟁반대와 평화기원의 마음으로/ 그 길 무릎꿇고 엎드린 자리 자리마다에/ 새만금의 갯벌에 생명과 평화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해창바다에서 광화문까지 삼보일배로 나아가네 임중도원(任重道遠),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그러나 무거운 짐 우리가 서로 나누어지지 않는다면,멀고 먼 그 길에 한걸음의 걸음 보태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 박 남 준 시인
  • 고려청자는 내 神이요 종교외다/ 전남 강진군 고려청자사업소 이용희씨

    고려청자를 상징하는 상감운학문 매병(국보 68호·간송미술관 소장).누군가는 이렇게 적었다.‘(여인의)풍만한 어깨에서 유연하게 흘러내려오다 굽에서 약간 밖으로 벌어지는 곡선,당당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세련미의 극치,흑·백 두겹의 원을 엇갈리게 배치해 가을하늘 구름을 벗삼아 비상하고 곤두박질치는 학들의 군무….’ “고려청자는 내 신이요 종교”라고 말하는 도공 이용희(65)씨.27살에 도공의 길로 들어서 지문이 닳도록 흙을 만져온 그는 41살 때인 78년 2월,600여년동안 맥이 끊겼던 고려청자를 재현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고려청자의 산실이 바로 전남 강진군이 운영하는 고려청자사업소다.행정기관에서 운영하는 마지막 남은 관요(官窯·가마)로도 유명하다.그는 분신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3년 전부터 계약직 연구개발실장으로 청자연구를 계속하고 있다.청자사업소 김한성(50) 서무계장은 “청자사업소는 이용희씨가 있기에 존재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24개의 공정을 거쳐서 70일만에 가마에서 나오는 청자는 굽는 과정이 피를 말리는 인내력 시험과정이나 마찬가지다.고려청자는 이씨에게 어쩌면 숙명이었던 셈이다.64년 3월,집 뒤뜰에서 밭일을 하다 삽날에 뭔가가 걸렸다.파내려 가니 문헌에서나 존재한다던 청자기와가 500여점이나 쏟아졌다.고려 의종11년 개성에 세운 양이정(전각)에 이 기와를 덮었다는 기록이 처음 확인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이 집에서 살았던 먼 조상도 고려청자를 빚던 도공이었을 것이고 내 몸속에도 그 피가 흐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자 신내림하듯 정신이 혼미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지금도 그는 이 집을 지키며 산다.68년에는 갈라진 논바닥에 물을 대다 가마터를 발견했다.청자자료박물관이 들어선 곳이다. 청자사업소가 자리한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고려시대 청자문화를 꽃피운 중심무대였다.9세기에 시작된 청자는 14세기에 국운쇠퇴와 함께 맥이 끊긴다.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가 청자를 대신한다.이 일대는 63년 사적지(68호)로 지정됐고 가마터 188기가 확인됐다.바닷길인 강진만을 통해 송나라의 선진 도자기 기술이 들어온 것으로 짐작된다.대구면 일대는 도요지 요건인 흙과 땔감·인력·기후·운송수단 등을 두루 갖췄다.12세기 중엽에 생산된 국보급 청자들이 강진산인 연유를 여기서 찾는다.전문가들은 “기법과 문양으로 미뤄 국보 10개 가운데 9개는 강진산”이라고 말한다.이씨는 “고려청자는 외형적인 아름다움에서가 아니라 청자를 빚으려고 일생을 걸었던 장인 정신이 있기에 아름답다.”고 말했다. 흔히 우리는 고려청자를 ‘비색’이라 부른다.중국인들은 딱히 표현할 수 없는 감춰진 색이란 뜻으로,우리 조상들은 비취 옥돌과 같다 해서 이렇게 표현했다.실제로는 고려청자는 회색·녹색·감청색·청녹색·담청색 등 5가지다.초벌구이한 뒤 바르는 유약은 모두 똑같지만 가마속 온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나온다.사업소 직원들은 “이씨는 얼마 전까지도 가마에 불을 붙일 때는 혼자 들어가 문을 걸고 꼬박 이틀동안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유약에 특별한 비밀이 있는 게 아니라 1300도 고열을 유지하는 도공의 땀방울에 비례해 비색이 창조되는 셈이다.이씨는 “가마에 빨려들어가는 공기량과 땔감의 재질,계절별 습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고 귀띔했다. 이씨는 자신이 만든 유약 재료를 공개했지만 정작 중요한 배합 비율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말로 해서는 안 되고 도공 스스로 체득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유약개발에 미쳐 있을 때는 꿈에서도 현몽하더라.”며 웃었다.2년 전 전남대와 공동 학술연구에서 고려청자와 재현된 강진청자를 정밀 분석한 결과 재현한 청자의 재질과 강도,푸른색을 발하는 색도 등이 고려청자와 완벽하게 일치했다.하지만 그는 “역시 고려청자가 안정감이 있더라.”며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소 안팎에서는 이씨를 두고,“고려청자를 위해 하늘이 보내준 사람”이라고 치켜세운다.청자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것도,관심도 없다.담배도 못하고 술도 가마를 식힐 때 기껏해야 한두잔이다.작업하던 옷차림으로 툭툭 털고 외출하지만 훤칠한 키에 빚은 듯한 이목구비는 ‘옷이 날개’라는 말을 뒤엎는다.학력이라야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역사를 일목요연하게 꿰는 조리있는 말솜씨에서 그의 성실함이 묻어난다. 그는 요즘 생활도자기 제작에 바쁘다.해마다 주문받은 찻잔세트와 주전자 등 생활용기 1만여점을 만드는 데 다시 찾아낸 고려청자의 재료인 태토(흙)와 유약에서 찾아낸 신소재(세라믹)를 활용한다.10월쯤 있을 강진 고려청자 서울 전시회에 출품할 60여점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피는 못속이는지 얼마 전부터 이씨의 두 아들(34·32살)도 자청해서 사업소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일평생 고려청자를 재현했지만 그 흔한 무형문화재 간판조차 없다.“죽기전에 제대로 된 작품하나 남기고 싶다.”이씨의 소망이다. 강진 남기창기자kcnam@
  • 고양·안면도 ‘꽃 전쟁’ 작년이어 새달 박람회·축제 동시개최

    경기 고양시와 충남도가 ‘중복투자’ 논란속에 지난해에 이어 ‘꽃 전쟁’ 2라운드에 들어간다. 화훼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매머드 꽃 축제에서 얻는 농가의 실익이 겉모습만큼 크지 않은 상황에서 농림부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행사기간마저 겹치고 있다. 고양시는 다음 달 24일∼5월8일 일산 호수공원에서 ‘2003 세계 꽃 박람회’를 연다.충남도도 비슷한 기간인 다음 달 26일∼5월11일 안면도 꽃지해안공원에서 ‘2003 안면도 꽃 축제’를 갖는다. 고양 꽃박람회는 원래 지난해 열릴 예정이었으나 충남도가 ‘안면도 국제 꽃 박람회’의 첫 개최를 선언하자 ‘김빼기’라며 크게 반발하면서도 농림부가 충남 안면도 박람회의 손을 들어줘 올해로 연기됐다. 화훼생산량이 전국의 30%를 차지하는 ‘화훼고장’ 고양시는 박람회를 포기했지만 매년 열어온 꽃 전시회를 강행했다.그러나 입장객은 안면도 박람회 영향으로 전년도인 2001년의 16만명보다 준 12만명에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 올해는 반대로 안면도 관람객이 지난해 164만명에서 30만명으로줄어들 전망이다. 지난 91년 이후 매년 꽃 전시회,97년 이후 격년으로 꽃 박람회를 열어온 고양시의 꽃박람회 조직위 관계자는 “지난해 행사를 양보한 데다 안면도에 10여년을 쌓아온 꽃 축제 노하우를 전수해줘 올해 단독 개최를 기대했으나 충남도가 ‘박람회 성공개최 1주년 기념’ 타이틀을 내걸고 같은 기간에 꽃 축제를 열기로 했다.”며 배신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고양시는 고양 박람회가 전세계 35개국에서 참가하는 국제 행사이고 안면도는 국내행사라며 겉으론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하지만 안면도는 올해도 관람인원 30만명의 대형 꽃 축제를 목표로 9억여원을 쏟아부어 꽃지해안공원 9만여평에 초화원 등 야외전시장과 실내전시장을 갖추고 바닷길을 이용한 관람객 수송계획과 각종 이벤트를 준비중이어서 두 단체간에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충남도는 지난해 안면도 박람회가 164만명의 관람객을 동원,큰 성공을 거뒀다고 자평했지만 고양시와의 갈등 외에도 준비과정에서 천혜의 안면도 해안 사구(沙丘)가 크게 훼손돼 환경단체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고양자생식물협회 강일창(52)회장은 “꽃 축제가 자주 열리는 것은 화훼인으로 바람직하다고 본다.”면서도 “자치단체의 선전과 수익이 주목적일 뿐 막대한 홍보예산을 쓰면서 농가꽃 구입 예산은 보잘 것 없는 꽃 축제는 속빈강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 한만교·태안 이천열 기자 mghann@
  • [실크로드를 가다] ①서역 가는 관문 ‘둔황’

    중국 시안(西安)에서 로마까지.일찍이 수많은 여행자들이 목숨을 걸고 다녔던 기나긴 이 길을 후세 사람들은 ‘실크로드’라고 부른다.이 길을 통해 교류된 문명의 씨앗은 동서에서 튼실한 열매를 맺었다.바닷길 발달 이후 쇠락했지만,당시의 눈부신 흔적은 지금도 전세계 여행자들을 끊임없이 유혹한다.동서 문명 교류의 중심축인 실크로드를 ‘둔황’ ‘투루판·우루무치’ ‘카스’ 등 거점 도시들을 중심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둔황(중국) 글·사진 임창용 특파원|‘성대하게 번성한다.’란 뜻을 지닌 둔황(敦煌)은 동서문화가 최초로 교류한 장소.시안을 출발해 현재의 신장웨이우얼 자치구를 의미하는 서역(西域)으로 넘어가는 관문이었다. 둔황에 들어서니 도심 한복판 네거리에 서 있는 톈뉘상(天女像)이 불교예술의 도시임을 새삼 일깨워준다.둔황은 수·당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다.이 때 동서의 승려들이 모여 화려한 불교예술을 꽃피웠다. 둔황에 온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500여개의 굴이 뚫려 있는 모가오쿠(莫高窟)·룽먼(龍門)·윈강(雲崗) 석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로 꼽히며,중국 불교미술의 보고(寶庫)다.예전엔 굴 앞에 설치한 목조계단을 통해 굴을 드나들었다고 하는데,지금은 송대에 만든 것만 남아 있고 대부분 나중에 만든 콘크리트 계단이다. 모가오쿠는 지정된 가이드를 따라 허가된 곳만 구경할 수 있고 사진·비디오 촬영은 할 수 없다.개방된 굴은 모두 192개.그 중 시기별로 몇 개씩 돌아가며 관람을 허용한다. 한국의 기자를 맞이 한 자오쥔화(趙俊華·45) 둔황시장은 “불상과 벽화 훼손을 막기 위해 보다 엄격한 관람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각 굴엔 통풍과 온도 조절장치까지 설치돼 있다.”고 말한다. 한국역사를 연구한다는 중국인 가이드 리신(李新·35)씨를 따라 나섰다.먼저 들어간 곳은 당나라 말기 만들어진 제17호 장징쿠(藏經窟).모가오쿠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1900년 장경굴 내 벽에 숨겨져 있던 또하나의 굴(16호)에서 수많은 문서가 발견되고부터다.불교경전은 물론 천문·지리·문화·의학 등 다방면에 걸친 문서가 발굴됐으며,신라 때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도 여기서 발견됐다. 한 두개도 아니고,수백개의 굴 모두에 이토록 다양한 불상과 벽화가 있다니!.입이 딱 벌어질 따름이다.이곳 석굴들은 20세기 들어 서양의 도굴꾼들에 의해 상당부분 훼손됐음에도 그 규모와 다양함,뛰어난 예술성 등으로 관람객들을 압도한다.입장료는 86위안.일부 굴은 별도의 요금을 내야 한다. 모가오쿠를 나와 서북쪽으로 20분쯤 가니 모래산이 끝없이 펼쳐진 밍사산(鳴沙山)이다.바람이 불면 모래가 춤추며 우는 듯한 소리를 낸다고 해서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밍사산 입구에서 10분쯤 걸어서 들어가면 3000년 동안 마른 적이 없다는 샘 웨야취안(月牙泉)이 나온다.크기가 동서 약 220m,폭은 40m에 이른다.‘사르르 사르르’ 나는 모래 소리가 투명한 호수에 비친 누각과 어우러져 신비감을 자아낸다. 부드러운 촉감을 만끽하기 위해 맨발로 산에 오르려니 얼마 못가 숨이 턱턱 막히고,푹푹 빠지는 통에 더이상 오르기 어렵다.임시로 설치돼 있는 나무 계단으로 정상에 올랐는가 싶었는데,앞에 더 높은 산이 가로막는다.밍사산은 이렇게 모래산 봉우리가 끝없이 이어진다.그 길이와 폭은 각각 40㎞,20㎞. 계단을 통해 산을 내려가니,20위안을 내라고 한다.나무 계단을 이용했기 때문이란다.장삿속이 얄밉지만 어쩔 수 없는 일.밍사산에선 낙타 타는 재미를 빠뜨릴 수 없다.보통 몇 개의 모래산을 에둘러 돌아오는데,요금은 코스에 따라 20∼50위안이다.여행자를 태우고 길게 줄지어 가는 낙타들은 모래산과 어쩜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예전 캐러밴들이 사막을 가로지르던 모습도 아마 이랬을 것이다. 시간이 허용한다면 둔황구청(敦煌古城)과 위먼관(玉門關)도 둘러볼 만하다.둔황구청은 송나라 때의 고성.둔황 시내에서 서쪽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황량한 대지 위로 성벽이 보이기 시작하는데,바로 둔황구청이다.1987년 중·일 합작영화를 찍기 위해 고성과 거리를 실물 그대로 재현했다. 위먼관은 흉노족으로부터 서역을 지키기 위해 한무제의 명령으로 지어진 둔황 서북쪽 관문.동서 길이 24m,남북 길이 26m,높이 9.7m의 흙벽 건축물이다.2000년 이상이흘렀음에도 흙벽에선 견고함이 느껴진다. sdargon@ ◆실크로드는... 기원전 2세기 한무제때 뚫려 실크로드는 기원전 2세기 한무제 때의 장군 장건(張騫)에서 유래를 찾는다.흉노족 정벌을 위해 다른 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하며 지나간 루트가 이후 실크로드로 발전한 것으로 본다. 당시 장건은 시안을 출발해 둔황,투루판,우루무치,톈산(天山)산맥을 지나 인도방면으로 넘어갔다가 카스,쿤룬산맥,둔황을 거쳐 돌아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길을 따라 중국에선 비단을 유럽으로,유럽에선 향신료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를 중국에 전해주었다.특히 불교는 인도에서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에 전해진 뒤 한국·일본까지 전래됐다.루트를 따라 흩어져 있던 소수민족들은 문화융합에 큰 역할을 다해왔다.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실크로드엔 크고 작은 길이 무수히 많지만,주요 루트는 3개다.먼저 톈산산맥을 경계로 북과 남으로 나뉜다.북쪽길인 톈산북로(天山北路)는 둔황∼하미∼투루판∼우루무치∼카자흐스탄∼로마,남쪽길인 톈산남로는 투루판∼쿠처∼아커쑤∼카스∼파미르고원∼로마 코스다.나머지 하나는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의 시위남로(西域南路)로 둔황∼러우란∼허톈∼카스를 거쳐 톈산남로로 합류한다. ◆가이드 ●항공편 현재 실크로드 가는 길은 멀고 불편하다.베이징이나 상하이 등을 거쳐 우루무치나 둔황으로 가야 하기 때문.대기시간까지 합치면 오고 가는 데 이틀을 온전히 보내야 한다.그러나 중국 신장항공사가 오는 5월1일부터 인천∼우루무치 직항로에 주1회(목) 비행기를 띄워 실크로드 길이 한나절권으로 짧아진다.비행시간은 5시간 정도.직항노선은 10월 말까지 운영된다. 우루무치에서 둔황까지는 항공편(1시간30분)이 빠르나,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오아시스의 도시 투루판 등을 거치는 방법도 권할 만하다.투루판엔 가오창구청과 훠옌산 등 세계적 유적들이 즐비하다.물론 투루판이나 하미에서 1박해야 한다.둔황 시내엔 철도역이 없고 2시간 떨어진 류위안에 둔황역이 있다.역에서 둔황까지 가는 미니버스가 자주 출발한다.시내는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다. ●먹거리 말로만 듣던낙타발 요리를 둔황에서 맛보자.모양은 도가니 수육 비슷한데 고소하면서도 입에서 살살 녹는다.3성급 호텔 둔황빈관에서 코스요리 ‘둔황연’을 시키면 낙타발 요리를 비롯한 17가지 고급요리가 순서대로 나온다.값은 300위안(4만 5000원).상당히 비싸지만 한번쯤 호사를 부려볼 만하다. 모가오빈관의 쓰촨요리점에선 매운 닭고기 냄비(35위안)를 맛볼 수 있고,둔황 시내 사저우 바자르(시장)의 노점식당에서 양고기 꼬치구이나 만두,군고구마,조린 달걀 등을 사먹는 재미도 쏠쏠하다.10위안이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둔황,투루판,카스 등 신장자치구 지역은 양고기 음식 일색.양고기 특유의 냄새 때문에 고역을 치르기 쉽다.감수할 자신이 없다면 김치,고추장 등 밑반찬을 준비해가자. ●시차 및 환율,물가 한국보다 1시간 늦다.환율은 100위안에 1만 5500원.물가는 상당히 싸다.시장에서 실크 스카프 30위안,수공 동(銅)화병 20위안 정도.물건을 살 때 일단 3분의1 가격으로 후려쳐 깎은 가격으로 흥정을 시작해야 후회가 없다. ●숙박 및 여행상품 3성급 이하호텔만 있다.둔황빈관 ,둔황다주뎬이 비교적 고급스럽다.380위안부터.배낭여행자가 이용할 만한 호텔로는 페이톈빈관이 좋다.숙박료는 280위안.공동침실을 쓰면 침대 하나당 20∼30위안으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 우림여행사가 5월1일부터 인천∼우루무치 직항편을 이용해 기존의 200만원대가 넘던 실크로드 상품가격을 50만원 정도 줄인 상품을 선보인다. 우루무치∼둔황∼하미∼투루판(6박8일) 129만원,우루무치∼이닝∼둔황∼하미∼투루판 149만원.실크로드상 중국 마지막 도시인 카스를 넣은 우루무치∼이닝∼카스 상품은 159만원이다.(02)771-8366.
  • ‘마라톤 수영의 철녀’ 매러니 은퇴 ,쌍둥이 오빠 추락사 슬픔 못이겨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지난 99년 8월23일 쿠바 서편 끝자락의 카보 산 안토니오의 해안.수천명의 환호를 받으며 핑크색 수영복을 입은 한 선수가 뭍에 올랐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동쪽 끝 이스라 무제레스를 출발한 지 38시간33분.해파리와 상어,성난 파도,고독과의 처절한 사투를 벌이며 197㎞의 유카탄 해협을 건너온 그녀의 몸은 탈진 상태였고 혀와 입술은 염분 때문에 퉁퉁 부어 올랐다. 세계 장거리 바다 수영 신기록을 혼자 갈아치운 ‘마라톤 수영의 철녀’ 수지 매러니(사진·28·호주)가 지난 20일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회견에서 매러니는 “8개월 전 쌍둥이 오빠 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슬픔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가장 절친한 수영 파트너였던 오빠가 없는 상황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털어 놓았다. 천식을 고치기 위해 3살 때 수영을 시작한 매러니가 세운 장거리 기록은 화려하기만 하다.15살 때인 90년 도버 해협을 횡단한 최연소 호주 선수로 이름을 올렸고,이듬해에는 46㎞에 달하는 미국 뉴욕의 맨해튼 섬 일주를 7시간7분 만에 마쳤다. 이후 매러니는 97년 미국 플로리다의 남쪽 끝 키 웨스트에서 쿠바까지 172㎞의 바닷길을 24시간여 만에 주파했다. 한때 매러니는 천식 악화와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와중에서도 기네스북과 ‘국제 수영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지난해 7월 쌍둥이 오빠 숀이 하와이의 한 빌딩에서 의문의 추락사를 한 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결국 이겨내지 못했다.매러니는 23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를 출발,맨리항까지의 20㎞ 구간 수영을 마지막으로 절친한 친구이자 적인 바다와 작별한다. 최병규기자 cbk91065@
  • [시론] “고성군은 통일 이뤘습니다”

    금강산 육로시범관광객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날,나의 눈 앞에는 53년 전 6·25의 참담하였던 전쟁과 이전에 방문하였던 서부전선,중부전선의 삼엄한 경계와 대치 풍경,그리고 눈물 바다를 이루었던 이산가족들의 상봉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하늘길,바닷길에 이어 땅길이 열리고 그 열린 땅길로 그간 금기의 땅이었던 북한을 처음 찾는 길이라니 당연히 기쁨과 감격의 방문임에 틀림없는 일이었지만 한편 착잡한 감정 또한 금할 수 없었다.이런저런 생각으로 출발 전날밤인 13일 밤은 그냥 새우고 말았다. 14일 새벽,5시2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하여 4시50분 현대 계동사옥 앞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10여대가 넘는 버스들이 대기하고 있었으며,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있거나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각계각층의 남녀 인사들,현대직원들과 가족들,외국 사절들,내외신 기자들 등 400여 명이 넘는 시범관광객들은 각기 배정받은 버스를 탔는데 나 또한 관광공사와 현대아산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7호차를 타게 되었다. 관광 일정은 두 가지였는데 1박2일을 하는 노정과 2박3일의 노정이었으며 나는 2박3일의 그룹에 속하였다.서울에서 4시간여를 달린 끝에 도착한 금강산콘도에서 관광증을 발급받고 통일전망대로 옮겨 육로관광기념식을 가졌다.이어 남측 출입국연락관리사무소(CIQ)에서 통행검사를 마친 후 축포가 터지는 가운데 오색 풍선을 날리며 꽃다발을 건 22대의 버스에 조별로 탑승하였다. 드디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CIQ로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시간 남짓,4시간여를 달려온 시간의 몇분지일이면 올 수 있었던 땅,이곳을 50여년의 세월과,이중삼중의 철조망과,적대감과,총칼이 가로 막았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황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북한 땅에 들어서자 내 마음 깊숙이에서는 “아아,내 조국의 산하여!”라는 말이 저절로 읊조려졌다.그곳은 그간 방문했던 외국과는 전혀 다른 땅이었다.그대로 이어진 산,그대로 이어진 강이 흐르고,같은 얼굴,같은 말씨,비슷한 마을 풍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온정각의 문화회관에서 가진 도착 기념식에서 남북의 대표적 인사들,현대아산의 대표들이 단상에 올랐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남북의 고성군수들이 자리를 함께한 장면이었다.사회를 맡은 임백천씨가 두 사람의 군수를 소개하면서 “고성군은 이제 통일을 이루었습니다.”라고 재치있는,그러면서 의미깊은 언급을 하였을 때 장내의 박수 소리는 한층 드높았다.천하 명산이요,경승지인 금강산에 둘러싸인 고성항은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였다.멀리 눈에 덮인 비로봉을 비롯하여 첩첩 어우러진 기암의 외금강은 그대로 한 폭 그림이었다. 해금강 호텔에 머물며 온정각과 온천장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가까운 마을의 북한 주민들이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길을 자전거를 끌며,혹은 머리에 짐을 이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이쪽에서 손을 흔들면 아무 반응없이 옆도 안 보고 자기 길만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갑게 손을 흔들어 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밥짓는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은 관광도로 양 옆에 친 철조망만 없다면 그대로 달려가고 싶은 고향마을의 풍경이었다.다음 날,또 그 다음 날,눈이 백설기처럼 층층으로 1m씩 쌓인 구룡연을 오르며,아름다운 삼일포를 조망하며 한결같이 느낀 것은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그 말이 그대로 증명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감이었다.땅길이 열리었으니 이제 마음 길만 열리면 7000만의 여망인 통일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허 영 자
  • 윤선도 ‘어부사시사’ 무대 ‘보 길 도’

    해남 땅끝마을에서 보길도로 이어지는 뱃길.선창을 넘어 코 끝을 스치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보길도에선 벌써 ‘봄의 반란’이라도 시작되었나? 한겨울을 나며 맵디매운 북풍에 길들여졌던 서울 나들이객의 코에,남녘 봄바람은 갓 추수한 햇벼를 찧어 지어낸 밥 맛처럼 달콤하기만 하다. 땅끝 선착장을 출발,넙도에 잠시 들른 배가 1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보길도 청별항.보길도를 처음 찾는 사람들은 섬의 아름다움에 취하기에 앞서 고산 윤선도에 대한 부러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출사와 유배를 거듭했던 고산에게 보길도는 ‘은둔의 섬’이었다.그러나 그는 초가삼간에서 짚신을 삼기보다는 연못과 정자를 멋스럽게 꾸며놓고 사시사철 시를 읊던 풍류객이었다. 그는 스스로 ‘은인’(隱人)라고 하면서도,숨어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풍류적 삶을 즐겼다.보길도는 한국 시조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고산의 ‘어부사시사’(魚夫四時詞)의 무대다. 고산의 체취는 보길도 구석구석에서 느낄 수 있는데,그중 대표적인 곳이 ‘세연정’(洗然亭)이다. 연못에 비친정자의 선명함만큼이나 세연정엔 벌써 봄빛이 완연하다.정자를 세우며 심었다는 동백은 앞다퉈 꽃망울을 터뜨리고,연못가에선 파란 생명들이 담수를 자양분 삼아 고개를 내밀어 방문객을 반긴다. 세연정은 주인의 풍류를 그대로 드러낸다.고산은 계류(溪流)에 보를 막아 계담(溪潭)인 세연지(洗然池)를 만들고,그 옆에 인공연못인 ‘회수담’을 조성해 물이 흘러 들게 한 다음 세연지와 회수담 사이에 정자를 세웠다.그 정자가 바로 세연정이다. 고산이 ‘수석경’(水石景)이라고 이름붙였던 일곱 바위들과 고즈넉이 자리잡은 정자,동백나무 숲이 어우러진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절묘하다. 고산은 이곳에서 어부사시사를 지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와 춤을 추게 하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지금의 정자는 나중에 새로 복원한 것이지만,계류를 막은 보와 물가에 쌓은 석축은 상당 부분 당시의 것이 그대로 남아 있다.정자 옆의 노송도 그 굵기와 크기로 미루어 고산이 아끼던 친구였음이 분명하다. 고산의 ‘끼’는 부용리 뒷산인 안산 중턱에 지은 한 칸 정자 ‘동천석실’(洞天石室)에서도 드러난다.솔향 그윽한 산길을 15분 쯤 오르면 바위와 소나무숲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게 있는데,바로 동천석실이다. 고산은 여름철이면 이곳에 올라 마을을 굽어보며 글을 읽고 시를 읊었다.재미있는 것은 그가 마을의 집 마당에서 동천석실까지 밧줄을 매 필요한 것들을 올려보내게 했다는 사실.산 위에서 색깔이 있는 수기를 들어 색깔별로 미리 정해진 물건이나 주안상 등을 줄을 통해 올리게 했다고 한다. 발길을 돌려 보길도에서 가장 높은 격자봉(格紫峯·430m)에 올랐다.고산이 섬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섬의 형국과 혈맥을 파악하기 위해 올랐다는 산이다. 아침해가 떠오를 때 산의 전면이 붉은색으로 변한다고 해 적자봉(赤紫峯)이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산엔 동백과 소사,회양목,황칠,야생란,가시나무 등 난대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기암괴석들과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한다.정상에 서면 바로 앞에 점처럼 떠 있는 복생도와 임금왕(王) 자 모양의 자지리섬이 한눈에 들어온다.복생도는 풍란향(風蘭香)으로 유명하다.자지리섬은 바로 그 옆의 복생도 때문에 구슬옥(玉)이 되어 대대로 큰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보길도에선 꼭 여름이 아니라도 예송리 해수욕장에 한번 들러볼 만하다.길이 1㎞,폭 150m의 해변은 가무잡잡하면서도 동글동글한 자갈,이곳 주민들이 ‘깻돌’로 부르는 청와석(靑瓦石)으로 뒤덮여 있다. ‘차르르 차르르’,파도에 밀려 오르내리며 내는 소리에 누구든지 홀딱 빠져들기 마련인데,이 매혹적인 소리 때문에 ‘흑명석’(黑鳴石)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해안엔 소나무,동백나무,후박나무,잣밤나무,생달나무,광나무 등 수백년 전 섬 주민들이 방풍림으로 심은 상록수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곳 상록수림은 한여름이면 피서객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사해 준다. 보길도 글·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kdaily.com ★여행가이드 ●가는길 해남 땅끝 선착장이나 완도 화흥포항에서 보길도행 배를 타야 한다.1시간 정도 소요.출항시간이 자주 바뀌므로 땅끝(061-533-4269)이나 완도(061-555-1010) 선착장에 미리 확인해야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또 출발할 때는 멀쩡하던 날씨가 변덕을 부려 배가 묶이기 십상이므로 완도 기상대(061-552-0131)에 날씨 상황을 미리 알아보아야 낭패가 없다.배삯은 6700원.1만 5000원을 내면 승용차를 싣고 갈 수 있는데,운전자는 배삯을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 서해안고속도로 목포나들목를 빠져나와 2번 국도와 13번 국도를 차례로 갈아타면 해남에 당도한다.해남에서 13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하면 완도,813번 지방도로 갈아타면 땅끝마을로 갈 수 있다.섬에선 총 3대가 운영중인 버스(061-553-7077)나 택시(061-553-6353)를 이용하면 된다. ●숙박·먹거리 보길도엔 대부분의 집들이 민박을 겸한다.요즘같은 비수기엔 예약 없이도 2만원에 방을 구할 수 있다.그러나 피서철엔 예약이 필요한데,세연정 인근에서 찻집을 겸해 운영중인 ‘동천다려’(061-554-0868)가 추천할 만하다. 먹거리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게 없다.대부분의 식당이 민박과 겸하면서 음식을 내는데,5000∼7000원 정도면 생선구이와 찌개,몇 가지 반찬을 올려준다. ●가볼 만한 곳 고산의 유적과 예송리 해수욕장 이외에도 목섬과 남은사,솔섬 등이 가 볼 만하다.안산 7부 능선쯤에 자리잡은 남은사는 100여년 된 작은 암자.암자 자체보다는 그곳까지 가는 길의 갈대밭과 나무터널이 아름답다. 통리 해수욕장에 가면 하루 두차례 썰물 때마다 목섬까지 바닷길이 갈라진다.길을 따라 섬에 들어가면 부안의 채석강을 닮은 기암절벽을 감상할 수 있다.정동리 앞에 있는 솔섬은 수백년 수령의 노송 수십그루가 심어져 있는 미니섬.이곳에서 보는 일몰은 고즈넉하고 한가로운 느낌을 준다.
  • [우리 고장이 원조] 심청

    우리나라 고전문학작품의 대표격인 ‘심청전’에 등장하는 심청과 심봉사는 과연 실존인물인가.권선징악을 주제로 하는 설화가 대개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점 등으로 미뤄 그동안은 아무래도 허구쪽에 무게가 실렸었다.그러나 최근들어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전문가들의 고증을 토대로 소설 전개과정에는 다소 과장이 있을지 몰라도 심청이 실존인물임이 확실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부모와 자녀,세대 간의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는 시기를 맞아 ‘효’의 상징인 ‘심청’이 서로 자기 고장에 살았다며 ‘원조론’을 펼치고 있는 전남 곡성군과 인천 옹진군의 입장을 짚어본다. ★전남 곡성군 우리나라 고전문학작품의 대표격인 ‘심청전’에 등장하는 심청과 심봉사는 과연 실존인물인가.권선징악을 주제로 하는 설화가 대개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점 등으로 미뤄 그동안은 아무래도 허구쪽에 무게가 실렸었다.그러나 최근들어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전문가들의 고증을 토대로 소설 전개과정에는 다소 과장이 있을지 몰라도 심청이 실존인물임이 확실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부모와 자녀,세대 간의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는 시기를 맞아 ‘효’의 상징인 ‘심청’이 서로 자기 고장에 살았다며 ‘원조론’을 펼치고 있는 전남 곡성군과 인천 옹진군의 입장을 짚어본다. 전남 곡성군이 심청 테마마을로 만들고 있는 곳은 오곡면 송정리 쇠정(쇠쟁이)마을이다.1700여년 전,백제 때 곡성은 철의 주산지로 알려져 있다.지난해 ‘섬진강을 타고 중국과 일본으로 오가는 무역선 출입이 잦았을 것’이란 내용으로 KBS 역사스페셜에서 ‘심청의 바닷길’을 방영해 화제를 모았다. 심청전은 조선 영조 5년에 순천 송광사에서 찍어낸 ‘관음사 사적기’란 창건 설화에서 출발한다.이 목판본은 송광사에 소장돼 있으며 관음사를 세우게 된 이모저모를 담고 있다.지금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에 가면 관음사라는 절이 그대로 있다. 목판본에는 “대흥(현 곡성군 겸면 대흥리로 관음사 아랫마을) 고을에 살던 장님 원량이 아내를 잃고 원홍장이라는 딸과 살았다.어느 날 공덕을 쌓으면 눈을 뜰 수 있다는홍법사 스님의 말에 따라 외동딸을 절에 시주했다.홍장이 스님을 따라가다 소랑포에서 쉬고 있을때 중국 진(晋)나라 황제의 사신을 만났다.때마침 황제는 황후가 죽은 뒤 외로움에 젖어있다가 꿈을 꾸고 현몽대로 신하들을 동국으로 보냈고 금은 보화를 주고 소랑포에서 홍장을 데리고 중국으로 돌아갔다.홍장은 새 황후가 되었으나 부친을 잊지 못해 관음불상을 만들어 고향으로 보냈다.옥과현(현재 옥과면)에 살던 성덕처녀가 이 불상을 성덕산에 안치하고 관음사를 창건했다.그 후 원량은 부처에 대한 시주 공덕으로 눈을 뜨게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 줄거리로 보자면 심청이가 물에 빠져 죽는 인당수가 없지만 나머지는 심청전과 거의 같다.학술용역 조사에서 관음사 창건 설화를 심청전의 원전으로 보는 것도 ‘내용이 너무나 흡사하다.’는 데 있다.곡성군이 2000년 11월 연세대에 의뢰한 학술연구용역에서 심청전의 원홍장이 심청이며,원홍장이 실존인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결론지었다.1930년 나온 김태준의 ‘조선 소설사’에서도 관음사 창건설화가 심청전의 원형 설화로 보고 있다. 일례로 춘향전의 실존인물인 성이성 이야기도 성춘향을 내세워 춘향가로 변모한 것과 같은 이치다.곡성군 심청사업단 이왕근(48·6급) 담당은 “관음사 사적기가 심청전 원형 설화라는 통설에는 국내 학계에서 이론이 없다.”고 강조했다. 곡성 남기창기자 kcnam@kdaily.com ◆김학근 향토사연구협회장 국내 국문학자들 사이에서 심청전의 근원 설화로 관음사 사적기를 통설로 인정하고 있다. 관음사 사적기에 중국에서 황후가 된 홍장이 고향에 관음불상을 보내면서 12정자를 거쳤다는 기록이 있다.낙안포(현 보성 벌교읍)에서 시작해 곡성 겸면의 현정·삽정리와 하늘재를 지났다고 적혀 있다.이 지명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또 관음상을 안치한 오산면 성덕산도 지금도 그때처럼 불리고 있고 산 아랫마을인 성덕리와 성덕초등학교도 있다. 또 일본서기에서 ‘백제왕이 일본왕에 하사한 칼인 칠지도가 곡나(곡성)의 섬진강에서 나왔다.’거나 대동여지도에서 ‘끌배가 섬진강을 통해 전북 남원까지 다녔다.’는 기록이 관음사 사적기의 기록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인천 옹진군이 백령도 앞바다를 인당수로 보고 심청이의 고장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문헌 기록상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인천 옹진군 인천 옹진군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전인 ‘심청전’의 배경무대에 대해 인천시 옹진군의 입장은 단호하다.최북단 섬인 백령도에 있는 지명과 구전설화 등으로 미뤄볼 때 백령도가 소설의 진원지임이 확실하다며 다른 지자체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우선 심청전과 관련된 지명이 섬내에 산재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심청이 자랐다는 곳으로 심청전 원전에 있는 ‘중화동’이 지금도 연화1리에 있고 뺑덕어멈이 살았다는 ‘장촌’도 이웃 동네에 있다. 또 심청이 공양미 300석을 구하기 위해 중국상인들에게 팔려가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또는 임당수)는 바로 백령도 두무진 앞바다라는 것이다. 이곳은 난류와 한류가 합쳐져 풍랑이 거센 곳이어서 예부터 뱃사람들이 이곳을 지날 때면 제사를 지냈다는 사실이 삼국유사 ‘진성여왕 거타지’편에 실려 있다고 한다.당시 상인들의 중국교역 루트가 황해도 장산곶에서 백령도 근해를 거쳐 중국 산둥반도∼난징∼상하이 등으로 이어졌다는 역사적 사실도 근거로 들고 있다. 물에 빠진 심청의 시신이 연꽃에 실려 연화1리 앞바다를 거쳐 섬 남서쪽 2㎞ 지점에 있는 연봉바위에 머무르자 사람들이 연꽃을 건져 궁궐로 옮겼다는 설화는 이곳 사람들에 의해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연화리라는 지명은 심청이 부활한 연꽃이 바다에서 이곳으로 밀려와 번식한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지금도 이 지역에 가면 연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한편 이 섬에 사는 심모(50)씨는 “직계 조상의 친척중에 심봉사와 이름이 같은 ‘심학규’가 있었다는 얘기가 집안 대대로 내려오고 있다.”고 밝혔다. 옹진군은 백령도가 말로만 떠돌던 심청전 발상지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지난 95년 한국민속학회에 의뢰해 배경지라는 고증을 받아냈다. 이후 효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99년 12월 29억원을 들여 백령면 진촌리 산 146의 10에 연면적 109평 2층 규모의 ‘심청각’을 건립했다. 인당수가 바라다보이는 이곳에는 심청전 고서를 비롯해 심청전 음반,영화대본,모형 등이 전시돼 있는 데다 망원경으로 북한 장산곶도 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옹진 김학준기자 kimhj@kdaily.com ◆백원배 향토사학자 지난 95년 한국민속학회 회원으로서 교수들과 함께 심청전 고증에 참가한 결과 ‘심청전’이 단순한 허구적 설정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봉사가 공양미를 바친 절이 있었다는 절터가 지금도 백령도 중화동 뒤편 산에 있다.이곳 사람들에게 ‘절골’로 알려진 이곳은 현재 댐공사가 진행돼 본래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현지답사와 노인들의 증언 등을 통해 심청전의 배경지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이밖에 연화리,연꽃바위 등 심청전과 관련된 지명이 백령도에 얼마든지 있다. 고증에 참석한 황패강 교수도 삼국유사 거타지편에 나오는 꽃으로 변하는 용녀는 심청전에서 연꽃으로 변하는 심청과 흡사하다고 밝힌 바 있다.거타지 이야기는 백령도의 옛 지명인 곡도(鵠島)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지명과 구전설화,옛 상인들의 이동경로 등을종합해볼 때 백령도가 심청전의 발상지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평화협정 체결’ 당위론 급부상/정전협정 50주년… 平和해법 찾기

    올해로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을 맞았다.한편에서는 북핵개발 파문으로 북·미간 대립 국면은 점점 더 치열해지며 지난 93,94년에 못지않은 전쟁 위기론이 거론되고 있다.하지만 남측 등 또 다른 한편에서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를 비롯해 평화를 지향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쉼없이 나오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양심적 지식인,언론 등에서도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003년은 현 정전협정을 남북한이 당사자로 참여하는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해가 돼야 한다는 당위론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인 2003년에도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전쟁상황을 방불케 하는 긴장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50년을 거슬러 올라가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널문리-나중에 판문점(板門店)으로 불린다.-넓은 콩밭에 임시로 만들어진 대형 천막에는 3년여를 끌던 한국전쟁을 중단하기 위해 국제연합(UN)을 대표하는 미군 4명과 북한군 4명이 탁자를 사이에 놓고 마주앉았다. 100여명이 넘는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의례적인 악수도,대화도,눈빛 교환도 없었다.그저 무거운 표정으로 묵묵히 펜만 놀리며 문서에 서명할 뿐이었다. 한국어,중국어,영어로 된 문서는 각각 3통씩 9통.UN측과 북측 수석대표는 문서를 교환해가며 18번에 걸쳐 서명했다. ‘종전(終戰)’도 ‘평화(平和)’도 아닌 ‘정전(停戰) 협정’은 그렇게 불과 12분 만에 끝났으며,의례적인 악수마저 사치인 듯 양측 대표들은 초여름 날씨가 무색하게 찬바람을 일으키며 등을 돌렸다.그들이 떠난 이후에도 그들 등 뒤로 포탄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한국전쟁은 ‘일시 중단’됐고 분단은 ‘박제화’됐다. 중단된 이 전쟁으로 우리 국토는 남북에 걸쳐 산업시설,학교,공공기관,도로 등을 모두 잃어 초토화됐고 남북을 합쳐 정규군만 공식집계로 150여만명이 사망했다.민간인은 수백만 사망,수천만 부상자를 헤아릴 정도였다. 물론 남북이 50년의 분단과 대립을 딛고서 최근 이뤄낸 교류·협력의 성과는 참으로 눈부시다. 지난 97년 이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꾸준하게 추진했던대북 포용정책은 2000년 평양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6·15남북공동선언’을 세계에 타전함으로써 소중한 싹이 움텄다. 이후 정치·경제·군사·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간 교류 협력이 활발하게 진행됐다.5차례에 걸친 남북 이산가족들의 대규모 상봉과 비무장지대(DMZ) 지뢰 제거,남쪽 사람 50여만명의 금강산 관광,남북의 바닷길·땅길·하늘길 개통이 시작됐다. 이뿐 아니다.개성에,금강산에,신의주에 남쪽과 북쪽이 힘을 모아 경제 발전을 이루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이 모든 성과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여전히 전쟁중이다. 최근 10년 사이에만 93∼94년 핵위기,98년 금창리 핵위기,그리고 지난해 말부터 고조되고 있는 핵전쟁 위기 등 한반도 상공을 감도는 전운(戰雲)은 떠날 기색조차 없었다. 전문가들은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갈등과 대립의 ‘주범’의 하나로 정전협정을 지적한다.국제법적으로 전쟁상태에 있는 한반도는 문제를 근원부터 해결하지 않는 한,즉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지 않는 한,언제든지 이런 문제에닥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반도 문제 연구자들은 입을 모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등 근본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올해 위기를 넘기더라도 또 다른 전쟁 위기는 앞으로도 그치지 않고 계속될 수밖에 없다.”면서 “올해에도 적당히 타협한 채 덮어둔다면 한반도는 향후 ‘제3,제4의 핵위기’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근식(金根植)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가 보장되는 국제적 협정을 맺지 않는다면 전쟁 위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물밑에 잠복해 있다가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다시 고개를 들이밀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에게 남겨진 과제는 간명하다.공약한 대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면 된다. 물론 가는 길이 쉽지는 않다.우선 정전협정의 법적 당사자와 체결 당사자,법준수(이해관계) 당사자가 다르다는 법리논쟁도 극복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북측의 ‘북·미 상호불가침조약 체결’ 주장을 따라간다는 국내외적인 시선도 부담스러울 것이며,미국의 견제와 압력도 견디기 힘들 만큼 전면적으로 밀려올 것이다. 이장희(李長熙) 한국외국어대 법대 학장은 “여야의 당파적 이익을 넘어 초당적으로 평화협정 전환을 준비하며 재계·사회·문화계 등 각계각층의 국력을 총집결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노 당선자에게 당부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kdaily.com ◆뚫리는 DMZ.MDL 지난해 9월 남북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비무장지대(DMZ)내 관리구역에서 지뢰 제거작업에 착수했다.남북을 잇는 철도·도로작업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에 따른 조치였다. 공사 초기만 해도 연말쯤이면 경의·동해선 임시도로 건설은 물론 이 도로를 통한 남북간 왕래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됐었다. 하지만 군사분계선(MDL) 월선 절차를 둘러싼 북한군과 유엔사간의 이견에다 북한핵 문제로 불거진 국제적인 긴장 국면까지 더해져 일단 남북간 육로 통행 문제는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됐다. ●정전협정의 상징,DMZ와 MDL 국방부는 지난해 말 경기도 파주시의 서부전선 DMZ내 MDL 부근의 경의선 철도·도로 건설현장을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서울에서 현장까지 걸린 시간은 버스로 불과 한 시간 남짓. 도라산역 북쪽에 인접한 남방한계선 제2 통문을 거쳐 DMZ로 들어선 뒤 임시도로를 따라 버스로 1.8㎞가량을 이동,현장에 도착했다.그 곳에는 도로 노반공사와 철도 부설작업이 한창 진행중이었다.특히 양측이 MDL을 중심으로 불과 200m 떨어진 ‘지척’에서도 쌍방간 아무 마찰없이 작업하는 모습은 민간의 여느 공사 현장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공사가 완료된 임시도로 북단 뒤편에 설치된 간이 철조망과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소총을 든 채 경계 근무중인 병사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일말의 긴장감이 최근 북한핵 사태로 잔뜩 흐려진 한반도 기상도를 단적으로 반영하는 듯했다.또 남북을 횡으로 가르며 군데군데 꽂혀 있는 붉은 색의 깃발은 MDL을 표시하는 것으로,이곳이 여느 평범한 공사장이 아니라 전쟁이 일시 중지된 정전(停戰) 상태의 땅이란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남북은 그동안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MDL을 기준으로 양쪽 200m 구간에한 해 하루씩 바꿔가며 작업을 해왔다.취재진이 방문한 날은 마침 남측이 MDL 가까이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남측의 작업현장에는 건설교통부 관계자 수십여명이 철도 배수로 공사와 철로 부설을 위해 침목을 설치하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현장에서 만난 건교부 관계자는 “앞으로 200m만 더 철로를 깔면 북한과 연결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면서 “역사적 공사라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북쪽으로 불과 200m 앞에서 펼쳐지는 북측 작업현장에서는 북한군 20여명이 우리가 제공했다는 덤프트럭과 굴착기 등으로 본도로 노반공사를 벌이고 있었다.하지만 작업속도가 더딘 탓인지 MDL 부근에서 남측의 철도와 이을 북측의 철도 궤도는 아직 눈에 띄지 않았다. 임시도로는 철도보다 공사 진척이 다소 빠른 편이었다,폭 8m인 경의선 임시도로는 남북 양측이 모두 완공했고,MDL 통과 절차 합의만 기다리고 있었다. 또 본도로의 경우 경의선은 5월까지,동해선은 9월까지 모두 완공될 예정이라고 공사 관계자는 전했다. ●올해는 오갈 수 있을까 MDL을 통한 남북간 육로통행 문제는 사실 순수하게 ‘공사’ 측면에서만 본다면 지난해 말까지 모두 해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의 해법이 그리 간단치 않다.문제는 정전협정을 둘러싼 남북한과 유엔사간의 입장차,구체적으로는 북한군과 유엔사간의 갈등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올해 남북이 과연 MDL을 통해 육로로 오갈 수 있을지를 전망하기란 쉽지 않다.게다가 북핵사태 등도 남북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특히 북한측은 MDL 통과문제를 군사보장합의서에 언급된 대로 남북한 당사자의 합의만 있으면 된다고 보는 반면,유엔사측은 북한측의 주장이 자신들의 존립 근거이기도 한 ‘정전협정’을 무력화하기 위한 기도라며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 자세이다. 특히 이와 관련,리언 J 라포트 유엔사령관이 정전협정에 관한 한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사태 해결이 결코 쉽지 않음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지난 연말 발생한 북측의 DMZ내 기관총 반입사건과 관련,6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북측이 DMZ안에서 정전협정을 준수하지 않는 바람에 대한민국 안보에 심각한 우려를 초래하고 있다.”며 북측을 압박했다. 하지만 현 상황을 풀기 위한 당국의 노력도 다각적으로 진행중이다.정부는 기본적으로 경의선 연결로 대표되는 남북교류 사업을 현재의 ‘북핵사태’와 분리 대처하는 ‘병행전략’을 추진중이다. 특히 임성준(任晟準)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최근 라포트 유엔사령관을 만나,교착상태에 빠진 남북 당국간 군사실무회담의 해법을 모색했다. 결국 북한과 유엔사의 갈등 양상이 어떻게 조정돼 나가느냐,그리고 북한이 이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MDL을 통한 남북간 육로통행 여부 및 시기 등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아시아는 지금 소리없는 물류전쟁

    ★현대상선 포천호 3박4일 동승 르포 5대양의 바닷길 확보를 위한 소리없는 물류확보 전쟁이 시작됐다.세계 1위의 해운 물류항 홍콩의 중국 반환과 중국 경제의 괄목할 만한 신장세로 상하이 등 대체 물류 항구가 급부상했다.해운 물류시장의 지각변동은 세계 주요 항만들간의 치열한 화물확보 경쟁으로 이어진다.지난해 세밑 부산에서 출발,거친 파도와 싸우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왕복 항해한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포천호에 동승,우리의 수출·입 물동량 확보의 현 주소를 진단했다. “가오슝(高雄)항도 예전만 못해요.기항을 해도 큰 이득은 없습니다.기존 고객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들르는 것뿐입니다.” 지난해 말 부산항에서 수출 화물을 선적,유럽을 향해 세밑 출발을 한 현대상선 포천호 황종현(黃宗鉉) 선장은 타이완의 가오슝항에 배를 대면서 이같이 말했다. 굉음을 내며 작업 중인 크레인들과 즐비한 화물선 등 선상에서 본 가오슝항의 활기찬 모습과는 달리 황 선장의 말은 의외였다.그러나 잠깐 동안의 의문은 가오슝항 터미널에서 김인룡(金仁龍) 현대상선 지사장을 만나면서 풀렸다.아시아를 강타한 금융위기의 상처가 치유되기도 전에 해운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상하이(上海)나 옌톈(鹽田)항에 화물을 빼앗겼기 때문이란다. 포천호는 떠들썩한 연말 분위기를 뒤로 한 채 지난해 말 심야 작업끝에 부산항을 떠났다.포천호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5500여개를 실을 수 있는 6만 5000여t 규모.평소보다 파도가 거친 남중국해의 파도를 헤치며 시속 45㎞로 쉼없이 달리기를 3일여.한해가 저무는 날 해질녘에 대만 제1의 수출항인 가오슝항에 도착했다. 포천호에는 선장을 비롯,승선 경력 30년의 베테랑 통신장에서부터 해양대학을 갓 졸업한 신참 3등 항해사에 이르기까지 22명의 승무원이 탑승했다.이 가운데 4명의 조선족을 포함,모두가 같은 한민족이다. 포천호는 수출 물량을 선적,56일에 걸쳐 아시아∼유럽 항로 3만 657㎞를 왕복한다.중간에 홍콩(1위),싱가포르(2위),부산항(3위),가오슝(4위) 등 세계 4대 컨테이너항을 포함,20여개 항구에 들러 화물을 싣고 내린다. 컨테이너선에 몸을 싣고 세계를 누비는 이들은 긴 여정으로 통계나 수치보다는 오래도록 체감한 감(感)만으로 항만별·국가별 기상도를 정확히 그려낸다. 이같은 예감으로 봐야 할까.선원들은 중국의 경제 신장으로 인한 가오슝의 위태로움이 남의 일이 아니라며 우려했다.금융위기 직후인 지난 2000년 가오슝에 빼앗겼던 3위 자리를 되찾은 부산항도 중국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바닷길에도 벌써 ‘황사(黃砂)’가 드리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800여만TEU를 처리,가오슝항을 추월할 것으로 보이는 상하이항은 부산항의 잠재 경쟁자이다.부산항은 900만TEU 규모로 예상되지만 격차는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승무원들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한 데다가 부산항과 광양항을 동북아의 허브 항구로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에게 기대를 표시했다. 배가 흔들릴 때마다 침대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면서 배멀미에 익숙해질 즈음 부산항을 떠난 지 4일만에 홍콩항에 도착했다.스스로가 ‘감자바우’라는 강원도 원주 출신의 선장,부산 사투리가 억센 기관장,명퇴신청을 하고 마지막 항해라는 정읍 출신의 통신장,선장에의 꿈 때문에 배를 탄다는 완도가 고향이라는 1등항해사 등 이제 겨우 낯이 익은 승무원들을 뒤로 하고 홍콩 부두에 내렸다. 1년동안 1800만TEU의 컨테이너가 처리되고,매주 440척의 배가 드나들어 물동량 세계 1위를 고수하는 홍콩이지만 이곳 역시 화물확보를 위한 치열한 전쟁은 진행중이었다.싱가포르 등 경쟁항만들이 시설투자를 늘리며 화물을 끌어들이고 있는데다가 불과 25㎞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선전(深)의 옌톈이 급성장했기 때문이다.중국에서 생산된 화물은 홍콩을 거치지 않고 옌톈이나 상하이항을 통해 운송되고 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홍콩은 1위 항만의 위치를 지켜내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물론 홍콩당국은 이를 강력히 부인한다.홍콩에 자리를 잡은 세계 1위의 항만 터미널사인 허치슨사의 에릭 입(47) 사장은 “홍콩은 컨테이너를 받아 배에 싣는 항구이고 옌톈 등은 트럭으로 화물을 운반,이를 컨테이너에 넣어 배에 싣는 만큼 두 지역은 경쟁관계가 아니다.”고 애써 부인했다.해운사들도 물류경쟁의 주역 가운데 하나이다.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 국내의 선사들이 외국의 에버그린이나 머스크 등과 세계 각국의 항구를 누비면서 경쟁을 하는 중이다. 해운업의 수입 구성은 국내 화물 운임수입 15%,외국화물 수입 85%로 이뤄진다.이만한 외화 가득률을 올리는 업종은 해운산업밖에 없다는 게 포천호 선원들의 얘기였다. 포천호는 싱가포르를 떠나 3만 657㎞ 대장정 중에 있다.선상에서 새해를 맞은 22명의 승무원들은 오늘도 망망대해에서 물류한국의 주역으로 소리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김성곤기자 sunggone@kdaily.com ★컨테이너 화물 보면 경제수준 알수있다 ‘컨테이너를 보면 경제가 보인다.’한동안 컨테이너 하면 수출과 거의 동일시되던 적이 있었다.수출품의 대부분이 컨테이너를 통해 운반됐던 1970∼80년대의 얘기이다. 최근 들어 산업의 고도화로 수출품의 상당수가 경박단소(輕薄短小)화 돼 반도체 등 일부 제품은 비행기로 운송되고 자동차도 전용선이 생겼지만 아직도 많은 수출품이컨테이너에 의존한다. ●컨테이너는? 컨테이너는 20피트(6m)와 40피트짜리가 대부분이다.배의 용량을 나타낼 때 쓰이는 TEU는 바로 이 20피트 컨테이너 1개를 말한다.이 컨테이너를 싣는 컨테이너선은 초기 2400TEU가 주종이었지만 지금은 8000TEU급의 초대형 컨테이너선도 나온다.현대상선 포천호처럼 5500TEU급은 길이가 63빌딩보다 29m가 높은 285m나 된다. ●신발에서 전자제품으로 텔레비전,봉제품,완구,OEM(주문자 상표부착) 방식의 신발과 청바지….지금부터 15년전인 88년 부산항을 통해 유럽으로 가던 현대상선 컨테이너선에 실린 화물 목록이다. 그러나 이들 상품 가운데 요즘 컨테이너선에 실리는 것은 거의 없다.신발 등 많은 제품이 이미 동남아시아와 중국 제품에 밀려 도태됐기 때문이다.대신 최근에 컨테이너를 채우는 품목은 고급 냉장고와 텔레비전,에어컨,타이어,특수 섬유제품,화학제품 등으로 바뀌었다. 산업의 발전으로 컨테이너 한개에 들어있는 수출품의 가격도 달라졌다.15년전에는 신발 2500켤레로 컨테이너 한개를 가득 채워봐야 1만달러안팎이었다.그러나 요즘은 컬러TV로 채워진 컨테이너(120대)는 무려 7만 2000여달러나 된다.우리의 산업이 발전하면서 나타난 격세지감이다. 우리만 컨테이너에 싣는 내용물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한동안 섬유류가 주류를 이루던 중국도 이제는 전자제품으로 품목이 바뀌고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컨테이너에 실리는 화물을 보면 그 나라의 경제수준을 알 수 있다.”면서 “최근에는 중국에서 실리는 제품이 전자제품 쪽으로 바뀌고 있어 우리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홍콩행정부 경제발전국 정 시우 만 총비서장 “홍콩은 다른 항만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홍콩특별행정부의 정 시우 만(鍾少文·44) 경제발전국 총비서장은 세계 1위의 물동량을 자랑하는 홍콩항의 위상이 중국의 부상으로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정색을 하며 이같이 말했다. 정 총비서장은 “지난 2001년 컨테이너 처리량이 23년만에 처음으로 전년 대비 1.1% 감소한 것은 아시아 금융위기 여파”라면서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물동량이 다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화물 처리량이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아시아시장에서 홍콩항의 화물 처리 비중은 점차 줄어 홍콩 당국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중국의 옌톈항 등 다른 항구들이 물동량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 당국은 이에 따라 현재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전산화를 통해 물류처리 흐름을 빠르게 하는 한편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항만에 컨테이너 화물을 쌓아두는 기간도 다른 항구보다 긴 7일로 늘렸다. 또 시설능력을 늘리기 위해 기업이 원하는 대로 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터미널이 부족하다고 하면 입지만 정해주고 행정적으로는 간여하지 않는다. 또 술과 화약,마약 등을 제외한 물품은 사후 신고제를 적용하고 있다.자유무역항인 홍콩이 갖는 경쟁력 가운데 하나이다. 정 총비서장은 “홍콩은 자유무역항으로서의 오랜 경험을 쌓아 자체경쟁력을 가졌다.”면서 “질 높은 행정서비스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의 위상은 앞으로 오늘과 같지는 않겠지만 홍콩정청의 이같은 노력을 감안하면 중국이 급성장을 하더라도 급격한 위상추락은 없을 것이라고 홍콩현지에 진출한 국내 선사 주재원들은 분석했다. 김성곤기자
  • “땅과 바다와 하늘길 여신 선각자여”조중훈회장 영전에 부쳐

    정석 조중훈 회장님! 인명은 재천이며 인수는 유한하다 하오나 그토록 위풍이 당당하셨던 모습을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니 비감한 마음 그지없을 따름입니다. 회장님은 황무지와 같던 이 강토를 일구어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도록 길을 놓으신 선각자이자 경제계의 큰 별이셨습니다. 회장님은 땅과 바다와 하늘길을 열어 세계의 변방에 있던 우리나라를 크고 넓은 바깥 세상으로 이끄셨으며,우리 민족이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을 넓히고 나아갈 바를 정하는 데 크나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일찍이 물류의 선진화가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임을 깨닫고 운송사업에 평생을 바치셨습니다.트럭 한대로 시작한 회장님의 땀과 노력의 결실은 이제 세계무대에 빛나는 종합운송산업으로 현시됐습니다.저 빙설의 땅 알래스카에서 열대의 적도에 이르기까지 회장님께서 정열로 일구어 놓으신 뭍길과 바닷길,하늘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회장님은 우리나라 기업인으로서 민간 경제외교에 누구보다도 커다란 족적을 남기셨습니다.구소련 영공통과 합의를 눈앞에 두고도 KAL기 격추에 대한 사과를 받기 전에는 서명할 수 없다며 구소련의 사과를 받으신 회장님의 강직함은 아직도 많은 기업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세상의 근심일랑 다 잊으시고 좋은 세상에서 편히 쉬시옵소서. 우리 경제인들은 재계 거목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딛고 회장님의 경영철학을 받들어 국가경제를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는 일에 매진할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김각중 전경련 회장
  • 전시 리뷰/ ‘고려·조선의 대외교류’ 전, 유물로 보는 선인들 해외교류

    “수녕옹주(1281∼1335)는 3남1녀를 두었다.왕씨의 딸을 찾아 바치라는 원황제의 명령이 있어 옹주의 외동딸도 뽑혀가게 되었다.옹주는 이를 애달파하다가 돌아갔다.” 최해(崔瀣)가 지은 수녕옹주(壽寧翁主)묘지석에 새겨져 있는 내용이다.원나라 요구에 따른 공녀(貢女)의 징발에는 왕실 고위층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02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를 기념하여 마련한 ‘고려·조선의 대외교류’특별전에서는 이같은 선인들의 교류 양상을,350여점의 유물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는 송·원·거란·여진과의 교류,조선시대는 명·청·일본과의 교류와 서학의 도입을 작은 주제로 삼았다.전시실 분위기는 흐릿한 조명까지 더해 무거운 편이다. 설명을 자세히 읽어 보는 인내가 없으면,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그러나 20∼30분만 확실히 투자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볼거리는 숨어 있다. 송광사가 소장한 티베트문 법지(法旨)도 그 가운데 하나다.원나라 불교계의 최고 권위자인 제사(帝師)가 고려의 진감국사 충지(忠志)에게 보낸 관 문서라고 한다. 조선 인조2년(1624년) 명나라에 사은 겸 주청사로 파견된 이덕형·오숙·홍익한 일행의 사행길을 25점의 그림으로 묘사한 항해조천도(航海朝天圖·중앙박물관 소장)는 명·청 교체기 여정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전까지 사행로는 서울에서 의주를 거쳐 압록강을 건넌 뒤 요양을 지나 산해관·북경으로 가는 육로였다. 그러나 1621년 청이 요동을 점령한 뒤 대명외교가 단절되는 1637년까지는 바닷길로 바뀌었다.평안도 곽산 선사포를 출발하여 가도,요동반도 연안 대록도,발해해협의 묘도열도를 거친 뒤 산동반도의 등주항에 상륙했다. 조선시대 외국어 교재들도 눈길을 끈다.역과(譯科)시험은 중국어·몽골어·여진어·일본어 등 4과가 건국 초기부터 있었다.방효언이 1790년 편찬한 몽어유해(蒙語類解·서울대 규장각)와 최학령이 1791년 편찬한 일본어 교재 첩해신어(捷解新語·국립중앙도서관),신계암이 1703년 편찬한 만주어 학습서 팔세아(八歲兒·서울대 규장각) 등이 전시되어 있다. 표해록(漂海錄·국립제주박물관)은제주 출신 장한철이 1770년 유구열도와 호산도 등지를 표류한 경험을 쓴 것.과거시험을 보려고 일행 29명과 배를 타고 조천관을 출발하여 한양으로 가다가 표류했다.극한 상황에 처한 개인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여 문학적 가치도 크다고 한다. 특별전을 모두 돌아본 뒤의 느낌은 그러나 산뜻하지 않다.고려·조선시대 대외교류의 종합적 양상을 본 것이 아니라,대외교류가 너무도 제한적이었다는 역사적 증거를 본 것 같다. 최근 고려시대에 서역과의 교류양상 등이 상당 부분 밝혀지고 있음에도,이대목이 너무나 빈약하다는 것도 이런 생각을 갖게 하는 이유의 하나가 될 것이다.보여줄 ‘유물’이 거의 없다는 것은 이해하지만,전시기법이 갈수록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뜻만 있었다면 다른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특별전은 10월13일까지 계속된다. 서동철기자 dcsuh@
  • 화성에 가면 火星을 본다, 17~18일 제부도서 별빛축제

    “화성(華城)에 오면 화성(火星)을 볼 수 있습니다.” 8월의 밤하늘에 펼쳐지는 우주의 광활함과 신비로움을 즐길 수 있는 ‘화성 별빛축제’가 오는 17,18일 ‘모세의 기적’으로 유명한 화성시 서신면 제부도에서 열린다. 화성시관광진흥협의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청소년에게 밤하늘의 달과 별의 신비로움을 체험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과 과학탐구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제부도 매바위 부근에서 열리는 별빛축제에서는 천체망원경 5대를 이용,청소년은 물론 관광객들이 서해안을 배경으로 밤하늘에 펼쳐지는 별자리를 직접 보며 재미있고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다. 또 천문우주 사진전,천문우주 영상교육,로켓발사,천문우주과학캠프,폭죽쇼등 다양한 이벤트와 먹을거리 장터,농산물 판매소 등도 운영,자연이 살아 숨쉬는 관광도시 화성의 이미지를 높일 계획이다. 한편 제부도와 서신면 송교리 사이 2.3㎞ 구간은 하루에 두 번씩 썰물때면 어김없이 바닷길이 드러나는 이른바 ‘모세의 기적’현상을 볼 수 있다.해안선 길이 12㎞의 작은 섬이지만 서울에서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데다 수심이 완만한 해수욕장이 있고,기암괴석군락인 매바위 등 볼거리와 조개구이,산낙지 등 각종 해산물이 즐비해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화성 김병철기자
  • 김천 찍고 경주 돌아 진도로

    ■26~27일 김천 황악산 산채축제 산좋고 물좋아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으로 알려진 경북 김천의 직지사 앞에서 향긋한 봄나물 축제가 열린다. 26,27일 천년고찰 직지사의 사하촌 주차장에서 열리는 제3회 황악산 산채음식축제에서 산채나물의 별미를 맛볼 수있다. 경상·충청·전라 3도의 기운이 서린 황악산에는 요즘 봄기운이 오른 산나물이 지천이다.예부터 학이 자주 찾아 황학산으로 불리웠다.산세가 완만하지만 울창한 숲 사이로산나물이 가득하다. 산채축제에 선보이는 나물은 취나물·묵나물·더덕·도토리묵·두릅 등이다.이름만 들어도 정겹다.또 산나물과 버섯류·촌두부 등으로 만든 전·떡·튀김·냉국·뽁음·국·생즙·졸임·쌈 등도 나온다. 또 산채쌈밥·무두릅말이·산채양장피·산채탕수육·두릅산채피자·두릅초밥·두릅산채말이 등 퓨전요리 7종류와함께 산채 비빔밥·산채 한정식 등도 맛볼 수 있다. 26일 시민노래자랑과 연예인 초청공연의 전야제로 축제가 시작돼 오후 9시부터 10분간 불꽃놀이로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북돋운다.27일에는 황악산 일대 음식점 37곳에서 출품한 산채음식이 전시되고 시식회도 갖는다. 김천은 황악산·금오산·대덕산과 함께 감천·직지천을아울러 삼산이수의 고장으로 불린다.(054)436-6023,420-6171. 김천 한찬규기자 cghan@ ■맛과 향의 제전 경주버섯축제 “버섯의 독특한 향과 쫄깃쫄깃한 맛을 한 자리에서 즐겨보세요.” ‘제5회 경주버섯축제’가 27일 경북 경주시 황성동 경주실내체육관에서 펼쳐진다.축제는 경주건천청년회의소가 지역 특산품 버섯을 널리 알리고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특히 지역의 80여 버섯 재배농가가 출품한 양송이·느타리·표고·영지·상황 등 20여종의 버섯을 관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버섯 전문가들의 품평과 함께 버섯과 관련된 궁금증도 말끔히 풀어준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버섯요리 시식회. 버섯을 재료로 한 양념초무침과 모듬냉채,탕수육,튀김,모듬전,전골 등 감미로운 버섯요리 10여점이 선뵌다. 행사장 옆 직거래장터에서 버섯과 농산물이 시중가보다 20∼30% 정도 싸게 판매된다.문의는 경주건천청년회의소(054)751-7211. 경주 김상화기자 shkim@ ■27~29일 진도 영등제 바닷길이 신비하게도 열리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을올해는 전남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에서 27∼29일 하루에 한 차례씩 잇따라 체험할 수 있다. 치등(바닷길)이 열리는 것을 기념하는 제25회 진도 영등제는 26∼29일 열린다. 밀물과 썰물의 차로 고군면 회동리에서 의신면 모도리까지 2.8㎞에 걸쳐 너비 40∼60m의 바닷길이 나타난다.해마다 두세차례 물길이 갈라지지만 이맘 때의 치등이 장관이다. 물이 갈라지는 시각은 27일 오후 5시∼6시,28일 오후 5시45분∼6시45분,29일 오후 6시20분∼7시20분이다.이 때 관광객들은 바닷길에서 바지락과 미역 등 해산물을 잡을 수있다. 26일 전야제로 오전 10시부터 진도읍 청용마을에서 어업인 노래자랑과 개매기(갯벌에 말둑을 박고 그물을 쳐 고기를 잡는 방식) 체험이 있고 회동리 뽕할머니 사당에서 제사를 지낸다.옛 경찰서 터에서 군립 민속예술단 공연과 노래자랑이 이어진다.27일 회동 공연장에서 개막제·강강술래·초청 국악인 공연·고전무용·남도 들노래·진도 아리랑·영등살놀이 등으로 흥을 돋운다. 다음날 인근 임회면 죽림어촌계 주관으로 오전 10시∼오후 6시 조개잡이 체험이 관심을 끈다.회동 공연장에서 관광객 열창무대·청소년 놀이마당·국악 공연·베틀노래·북춤이 진행된다. 29일에는 토속민요공연·하회 별신굿 탈놀이·강강술래·진도 북놀이 등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부대행사로 바닷길 불꽃축제·진도 닻배노래·동양화 작품 초대전·수석 및 분재 전시회·월드컵 16강 기원 연 날리기·진도개 묘기자랑·진도 홍주 시음회·뽕 할머니 축원제 등이 열린다.회동리까지는 서울에서 480㎞,부산에서366㎞다.서해안고속도로를 탈 경우 버스로 서울에서 오면5시간 걸린다. 군 관계자는 “올해는 외국인 1만명을 포함해 40만명이기적의 현장을 찾을 것으로 보고 여관과 민박 등 224곳에서 1만 3510명이 쉴 수 있는 준비를 끝냈다.”고 말했다.(061)544-0151,540-3133. 진도 남기창기자 kcnam@ ■바닷길이 열리게된 사연 진도에서 ‘영등살'로 불리는 바닷길에는 슬픈 이야기가바래고 있다.조선 초기에 호동(지금의 회동) 마을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단다.어느해 마을 사람들이 호환을 피해뗏목을 타고 마을앞 모도라는 섬으로 피신하면서 뽕할머니만 마을에 남게 되었다.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었던 뽕할머니는 매일 용왕님께 간절히 기도하던 어느날,용왕님은뽕할머니에게 “바다 위에 무지개를 내릴테니 타고 건너가라.”고 현몽했다.마침내 다음날 무지개처럼 치등(바닷길)이 열리자 모도로 피신갔던 사람들이 징과 꽹과리를 치며할머니를 찾아 호동에 도착해보니 기진맥진한 뽕할머니는“나의 기도로 바닷길이 열려 너희들을 만났다.”는 말을남기고 숨을 거뒀다.이에 할머니의 소망이 치등으로 변해동네로 다시 돌아왔다하여 동네를 회동이라 고쳐 부르고마을 사람들은 소원성취와 풍어를 기원하는 영등제(靈登祭)를 지내오고 있다.
  • 올 추석 구름사이로 보름달

    올 한가위에는 구름 사이로 보름달을 볼 수 있겠다.강원영동과 남부지방에는 비 소식이 있어 고향 가는 길에 조심스러운 운전이 요망된다. 기상청은 25일 발표한 ‘추석 연휴 기상전망’을 통해 “추석 전에는 구름이 많이 끼고 30일에는 강원 영동과 남부지방에 비가 예상된다”면서 “추석인 10월1일부터 전국이차차 맑아지겠다”고 예보했다. 본격적인 귀성이 시작되는 29일에는 서울·경기와 강원영서지방은 구름이 많이 끼고,영·호남 지방은 차차 흐려지겠다. 30일에는 전국이 흐린 가운데 강원 영동과 영·호남,제주도에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추석인 10월1일에는 전국이 흐린 뒤 차차 맑아져 구름 사이로 보름달을 볼 수 있을 것 같다.2일에는 전국이 대체로맑고,3일에는 전국적으로 구름이 많이 끼지만 비는 내리지않을 전망이다. 추석 연휴기간의 최저기온은 6∼18도,최고기온은 17∼25도 분포로 예년과 비슷하겠다. 기상청은 “연휴기간에는 바다의 물결이 2∼3m로 다소 높게 이는 날이 많아 바닷길을 이용하는 귀성·귀경객들은발걸음을 서둘러야한다”면서 “매일 발표되는 최신 기상정보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전영우기자 anselmus@
  • 집중취재/ 중국쌀이 몰려온다

    ●추가개방 앞두고 본 실태. '중국쌀이 몰려온다' 오는 2005년에 쌀시장이 추가개방되면 중국쌀이 국내 쌀산업에 최대의 위협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중국은 최근 5년간 쌀수출을 크게 늘려 세계 3위의 수출국에 올라섰다.지난 3년간 수출량이 평균 300만t으로 세계 전체 수출량인 2,400만t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결과에 따라 국내 쌀시장이 부분개방된 이후 지난 95∼2000년까지 수입된 쌀중 76.1%가 중국쌀이다.태국이 11.4%,인도 10.5%,베트남 2%선이다. ◆중국쌀의 가공할 위력. 중국쌀의 국내 수입가격은 지난 95년 t당 442달러였으나 98년 366달러,지난해에는 266달러로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있다.t당 432달러(2000년 기준)인 미국쌀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쌀의 국내 수입가격이 매년 낮아지는 것은 중국이 지난 97년부터 수매가(국내가)를 계속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수매가는 t당 130달러.중국국내가격에 비해 국산쌀이 14배 가량 비싼 셈이다. 이같은 가격경쟁력을 토대로 중국은 최근들어 2모작·3모작의저품질 쌀 대신 한국인의 입맛에도 맞는 고품질의 자포니카쌀 생산을 늘려 한국과 일본 쌀시장을 노리고 있다. 최근 중국 현지조사를 마친 농림부 조사단에 따르면 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랴오닝(遼寧)성 등 중국 동북3성에서는 한국쌀과 비슷한 품질의 쌀이 국내 쌀가격의 6분의1수준인 3만원(80㎏)에 거래되고 있다.생산량도 연간 국내쌀생산량(529만1,000t)의 2.4배나 된다.바닷길로 1∼2일이면 국내에 도착할 수 있다.때문에 쌀시장이 추가로 개방되면 중국쌀은 국내 쌀농가에 가공할 위협요소가 될 것이 확실하다. ◆거꾸로 가는 수매가 정책. 반면 국산쌀의 수매가는 지난해 t당 1,800달러 수준.중국쌀의 7배,미국쌀의 4배에 이른다.쌀시장 완전개방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정부는 수매가를 매년 올려 국내외 가격차가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쌀의 국내외 가격차가 커질수록 개방충격이 커지기 때문에 수매가정책이 잘못 운용돼온셈이다. ◆정부 대응은 소극적. 중국쌀이 가진 이같은 폭발적인 위력 때문에 쌀시장이 완전개방되면 국내 쌀농가는 또한번 홍역을 치러야 한다.그러나 당국은 이렇다할만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국내쌀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영농규모를 키워 생산비를 낮추고,고품질쌀 개발을 통해 중국쌀과의 차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최세균(崔世均)국제농업연구실장은 “중국은 이미 90년대 들어 한국·일본 시장을 노리고 고급미 생산 위주로 정책을 바꾸고 있다”면서 “중국쌀은 향후한국 쌀산업의 존립에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용어풀이. ◆관세화=수입물량의 제한을 완전히 철폐하고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다.‘전면적인 시장개방’으로 볼 수 있다. 쌀이 관세화가 되면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에 따라 관세율이 매년 2.5%씩 낮아져 국내 쌀시장을 크게 위협하게 된다. ◆최소시장접근(MMA)=Minimum Market Access.관세화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부분적인 개방’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UR협상에서 이 방식에 따라 95∼2004년까지 10년간 국내 쌀 소비량의 1∼4%를의무적으로 수입하기로 했다. 김성수기자 sskim@. ●쌀협상 어떻게되나. 쌀시장 추가개방 협상은 2004년 1월부터 12월 사이에 하도록 돼있다.우루과이라운드(UR)협정에 따라서다. 협상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우선 현재 진행중인 세계무역기구(WTO)의 농업협상이 2003년말까지 완료된다고 가정하면 쌀협상은 2004년부터 농업협상과는 별개로 진행된다. 그러나 WTO농업협상이 2003년까지 끝나지 않으면 쌀협상과 함께 맞물려 돌아간다.이 경우 쌀협상과 농업협상이 서로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쌀협상에서 나올수 있는 결론은 크게 세 가지다.먼저 우리측 요구대로 쌀을 관세화(전면개방) 유예품목으로 계속 연장하는 것이다.현재로서는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다.관세화 유예 연장을 따내더라도 우리측으로서는 쌀수출국들에게그에 상당하는 보상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부담도 크다.쌀대신 다른 품목의 개방폭을 대폭 넓히거나 2004년까지 적용됐던 국내 소비량의 1∼4%선을 훨씬 넘는 쪽으로 쌀 의무수입 물량을 확대하는 방안 등이 예상된다.두번째는 사실상 쌀시장 전면개방으로 볼 수 있는 관세화로 바뀌는 경우이다.이때는 관세율을 몇 %로 할지 등에 대한 치열한 공방전이 불가피하다.우리 정부는 쌀의 관세화품목 전환을 가정한 대비책도 이미 내부적으로는 검토하고 있다.그러나 국내쌀의 경쟁력이 낮은 상태에서 갑자기 ‘바람막이’를 없앨 수 없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마지막으로 협상시한인 2004년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협상이 결렬될 수도 있다.이때는 자동적으로 관세화로 가게돼있다.현재 쌀은 관세화의 ‘예외품목’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결론을 못내리면 쌀도 예외조항을 적용받지 못해 관세화 조치를 따라야 한다.우리 정부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야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관세화 유예조치는 ‘동전의 양면’과같아서 이번에는 UR때와 달리 적지 않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게 고민”이라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 北·러 정상회담 / 모스크바 선언 주요내용

    ■‘鐵의 실크로드’ 본궤도 진입.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연계키로 하는 등 경제협력 분야에서도 의미있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철도연결=TKR와 TSR가 연계될 경우 남북한과 러시아가 얻게 될 경제적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우리가 서유럽과 교류하는 물동량은 연간 80만 TEU(1TEU는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부산에서 독일 함부르크항까지 바닷길로는 컨테이너 1개당 1,200∼1,400달러의 운임이 든다. 그러나 TSR를 이용하면 해상운송의 절반 수준인 600달러로줄일 수 있다. 러시아는 TKR와 연계되면 TSR의 연간 컨테이너 화물수송량을 50만TEU로 늘리면서 통과료로 연간 4억달러의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북한도 연간 1억달러 이상의 통과료 수입이 전망된다. 경의선 복원사업이 재개돼 내년초쯤 마무리되고 북한과 러시아의 철도연계에 대한 실무협의가 이뤄진다면 TSR를 통한유럽행 국내 화물의 수송이 이르면 2003년부터 가능해질 전망이다.지난해 남북합의로 경의선복원 및 도로 연결공사가시작됐으나 북한측이 작업을 중단,연내 개통이 사실상 무산됐다.우리는 남측 구간에 대한 선로 복구와 도로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현재 공정률은 73%다. ●전력지원=전력 문제는 북한의 경제회생을 위한 최우선의과제다.북한이 발전소 현대화를 위한 러시아의 지원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도 전력난 해결이 그만큼 시급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선언에 따라 과거 소련의 지원으로 건설된 북한의 기초설비 가운데 발전소 설비 현대화 작업은 곧 현실화될가능성이 높다.동평화력발전소를 비롯한 화력발전소 4곳과김책제철소의 부품 및 설비교체가 러시아측의 지원으로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남한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는 것보다는러시아로부터 설비 현대화를 위한 지원을 받는 것이 빠르다는 판단에서 러시아 측에 전력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남북전력협력 방안은 이와는 별도로 추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함혜리 이도운기자 dawn@. ■“美MD구상 반대” 한목소리. 4일 발표된 ‘북·러 모스크바선언’의 제2항은 미국의 ‘북한 미사일 위협론’과 미사일방어(MD)체제에 대한 북·러간 공동 대응방침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는 이번 모스크바 선언이 상당 부분 미국의 한반도 및 동북아정책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북·러 양국 정상은 제2항에서 ‘북한 미사일은 평화적 성격’이라고 명기함으로써 부시 미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과 MD체제 구상이 명분을 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또 72년 체결된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이 역내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 된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부시 행정부의 MD체제 계획에 대한 강력한 거부감을 피력했다. 특히 공동선언에 포함되지 않았지만,김정일(金正日) 북한국방위원장이 단독 정상회담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2003년까지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지킬 것”이라고 언급한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북한을 비롯한 일부 ‘불량국가’의미사일 위협을 MD체제 구상의 명분으로 내세웠다.게다가 경색국면에 빠진 북·미대화 재개의 3대의제 가운데 하나로 북한 미사일 문제를 꼽아 왔다. 이번 ‘모스크바 선언’ 2항이나 김 위원장의 ‘미사일 발사유예 재확인’ 발언은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군사·안보정책에 제동을 걸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여기에는 미 공화당내 ‘현실주의자’들이 ‘있지도 않은 (북한의)미사일 위협’을 빌미 삼아 동북아에서 ‘힘의 우위’를 행사하려 한다는 북한의 우려도 담겨 있다. 때문에 ‘모스크바 선언’의 미사일 조항은 향후 북·미대화 재개 과정에서 양국간 이견조율이나 주도권 싸움의 지렛대로 작용할 전망이다. 박찬구기자 ckpark@. ■주한미군 문제 쟁점 급부상. 북한과 러시아가 공동선언문에 ‘주한미군 철수’를 명시한 것은 앞으로 이 문제가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기류를 좌지우지할 ‘폭풍의 핵’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생존차원의 철수’(북한)와 ‘점진적 철수’(러시아)로 일정한 ‘거리’를 보이던 두 나라가 갑자기 의견일치를 보게된 속내는 무엇일까. 정부 관계자는 5일 “주한미군 문제는 북측의 강력한 요청으로 명시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제하면서도 “대북 강경기조를 유지하고,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미국에 대한 ‘연합전선’을 형성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북측은 미국의 대북 강경기조에 대한 불쾌감과 더불어 주한미군 문제라는 ‘골칫거리’를,러측은 짧게는 미국의 MD반대와 멀게는 한반도 문제 개입 의사를 미측에 각각 전달했다는 설명이다. 양국의 이같은 의견일치는 향후 한반도문제를 풀어나가는데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그동안 한반도 안보문제에 있어 목소리를 자제해 왔던 러시아가 ‘할 말은 하겠다’는 태도로 돌아섰기 때문이다.주한미군 관계자는 “미군철수는 분단이후 북한의 일관된 주장으로 특별히 새로운 것은아니다”면서도 “러시아를 끌어들여 이를 공론화한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러시아의 공개적인 지지에 힘입어 향후남북 및 북미회담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정식 의제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북한은 특히 북한의 재래식 군비축소 문제와 주한미군의 일부 철수나 지위변경 문제를 당장 연계하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 노주석기자 joo@
  • [씨줄날줄] 시베리아 횡단철도

    시베리아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인가.러시아 문학에 등장하는 그 곳은 죄수들이 유배를 당한 천형의 땅이었다.스탈린시대에는 극동 러시아에 있던 우리 동포들이 중앙아시아로강제이주를 당하면서 거쳐간 눈물의 땅이었다.영화팬들은‘닥터 지바고’의 배경인 눈덮인 시베리아의 광활한 자작나무숲을 떠올린다.최근 소개된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에서도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만난 남녀가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구 둘레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9,200여㎞를 가로지르는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한반도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TSR는 아시아의 동쪽 끝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바이칼호수를 지나 우랄산맥을 넘어 모스크바에 이른다.남북한과 러시아는 이 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전문가들은 이 철도가 연결되면 물류비용이 절반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한다.부산에서 독일 함부르크항까지 1만9,200㎞를 바닷길로 가면 평균 26일이 걸린다.그런데 TSR를 이용하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208㎞,모스크바에서 파리까지 4,358㎞를 합쳐 1만3,500여㎞가 된다.러시아 철도대표부는 TSR를 이용하면 부산에서 함부르크항까지 거리가 단축되고 운송기간은 8일가량,운임도절반수준까지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추산한다.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더라도 물류비용이 엄청나게 줄어들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갖게되는 것은 경제적인 이익도 이익이지만 두 철도의 연결이 가져다 줄 한반도의 상황 변화이다.우선 한반도가 TSR와 연결되려면 끊어졌던 경원선이복원되어야 한다.남과 북이 화해하는 상징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되며 남북교류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또 한반도가동북아시아 물류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것이다.시베리아횡단철도는 바로 현대판 ‘철의 실크로드’다. 그 ‘철의 실크로드’ 위를 지금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달리고 있다.김 위원장과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가질 북·러정상회담의 의제 가운데 하나도 TSR와 TKR 연결문제다.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가 냉랭해지자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힘을 쏟았다.시베리아를 달리고 있는 김 위원장의 생각이 부산에서 모스크바를 지나 멀리 유럽의 파리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
  • 새달 개막 보령 머드축제

    지난 98년 처음 열려 이색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한 보령머드축제가 새달 14일부터 20일까지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에서 열린다. 여름 휴가철에 맞춰 개성있는 흙체험을 할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가 주어진다.흙을 통해 몸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축제 성격이 휴가족들의 심성을 잡아 끌것으로 점쳐진다.주변 갯벌에서 채취한 양질의 바다진흙은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원적외선을 다량 방출하는데다 게르마늄,벤토나이트 등의 광물질 함유량이 높아 피부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됐다. 축제의 대부분은 ‘진흙밭에서 뒹구는것’.머드 마사지,머드 게임,머드 보디페인팅,머드 인간마네킹 외에 올해는관광객들이 직접 머드를 바르고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는무료 머드체험랜드를 설치해 변화를 줬다.출입구를 통과하면 머드 캐릭터와 사진을 찍어볼 수 있는 포토존,머드를바를 수 있는 머드탕,머드놀이터,머드체조장 등을 거치게된다. 대천해수욕장에서의 해수욕은 물론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무창포 바닷길,크고 작은 78개의 섬,‘환상의 섬’으로불리는 외연도 여행,한여름에도 오싹한 냉풍욕장,석탄박물관과 오서산 명대계곡,성주산 자연휴양림 등이 더위를씻어준다. 문의 보령머드축제추진위원회 (041)930-3541문호영기자 alibaba@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