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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8)낯선 땅에서

    *'옹심이 수제비'맛보았던 가슴아린 강릉길. 이미 청소년기에 집을 나가 한 해 가까이 남도 곳곳을 싸돌아 다녔고, 장성해서도 남한의 이 구석 저 구석을 헤집고 다녔으니 비록 먹는 이야기라 하여도 한정된 지면에 모두 기억하여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음식이나 풍속과 말씨에 오래 전부터 동한 서한의 구분이 있어 강원 경상도와 충청 전라도가 한데 묶인다.같은 생선탕도 서해의 조기매운탕과 동해의생태매운탕은 그 맛이 전혀 다르다. 내가 강원도 출입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일학년부터였는데 첫 학기에 등산반에 들어갔던 탓이었다.당시의 고등학교 등산반은 그냥 산에만 오르고 내리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선배들이 암벽타기 훈련부터 시켰다. 기초는 대개 인왕산에서 슬로프 코스와 침니를 익히고 북한산으로 가서 인수봉의 두코오스를 마치고 틈틈이 오봉과 우이암에서 세밀한 기술을 익힌다.그래서 바위에 자신이 붙으면 도봉산의 선인봉 남측 측면 십자로와 전면을 타고 주봉의 그 유명한 티자 침니를 기어 오른다.그리고는 여름방학이면 벌써설악산으로 가던 것이다.겨울에는 다시 빙벽 훈련을 하러 내설악을 찾아가고 지경을 넓혀 오대산까지 찾아갔다.고등학교 때에 알고 지내던 어린 록크라이머들은 조난으로 죽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중에 유명한 산악인이나 등산지도자로 성장했다. 내가 고교를 자퇴하고 집을 나가서 방랑했던 얘기는 뒤에 하겠지만,하여튼산에 다니면서 나는 당시 일제에서 해방 되었어도 전체주의 교육의 잔재였던규율과 획일화라는 학교감옥에서 놓여나는 기분이 들었다.감수성이 예민하던시절에 벌써 나는 학교와 집과 동네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체험을 원격지 등반을 통하여 익혔던 셈이다. 훨씬 뒤에 아직은 이십대 초반이었지만 아직도 수염이 뻣뻣하지는 못했을 적인데 나는 러시아 문학을 전공 한다는 어느 친구와 함께 강원도를 돌아다녔다.나도 가난했지만 그 친구도 겨우 남의 가정교사로 용돈벌이를 하던 중이었다.그에게는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건만 심중을 털어 놓지는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의 집이 왕십리에 있었는데 우리는 막걸리 한 주전자를 놓고 어느 선술집에앉아 있었다.그는 술이 거나하게 오르자 점점 우울해지는 얼굴로 변해 갔다.이해가 되는 것이 그는 영장을 받아 놓고 있던 터였다.연기를 할 수도 있었건만 집안 형편도 좋지 않으니 얼른 나가서 때우고 와야 할텐데 그네가 마음에 걸린다는 얘기였다.그는 도스또에프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꼴리니꼬프처럼 창백하고 마른 인상은 아니었지만 러시아 소설에나 나옴직한 깃넓고 치렁치렁한 검게 물들인 군용 오버코트를 겨우내 걸치고 다녔다. 때는 마침 늦은 봄이라 불행하게도 분위기 있던 외투를 벗어버리고 역시 검게 물들인 미군 쫄쫄이 작업복 차림이어서 볼품은 없었다.그가 갑자기 강릉엘 가자는 것이었다.거리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봄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청량리 역은 선술집에 앉아서도 기적 소리가 들려올 만큼가까운 거리에 있었다.우리는 비를 맞으면서 역까지 걸었다.거의 통금시간이다 되어 출발하는 강릉 가는 완행열차가 있었다.처음에는 소주에 마른 오징어를 씹다가 서로 기대어 자다가 날이 밝으면서 영주 태백을 지나서삼척에당도하면 거기서부터 철도는 바닷가를 향해 달린다. 바로 철로 아래 흰 포말이 이는 파도와 짧은 백사장이 보이고 저 근사한 해변묘지가 천천히 지나간다.해송이 구부리고 섰는 숲 위로 백로 떼가 날아 앉는다.벌써 상큼한 바다 비린내가 풍겨 온다. 우리는 항구에 도착했다.정박해 있는 배는 마치 잠시 후에는 모든 것을 훌훌털고 먼 바다로 떠나버릴 자유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했다.그가 전화를 건다. 그네는 주문진에서 소학교 선생님으로 있다고 한다. 사범학교를 나와 부임했다니 겨우 우리네와 동갑내기이거나 아래일 것이 분명했다.소녀였지만 그네는 하여튼 선생님인 것이다. 퇴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니까 우리는 강릉으로 되돌아 나가서 하루 종일서성거렸다.그때에는 해수욕장이라곤 경포대 정도 밖에 없었고 요즈음처럼시도 때도 없이 바다를 보러오는 사람도 드물어서 봄철의 바닷가는 거의 인적이 없었다. 그가 주문진으로 그네를 만나러 가기 전에 우리는 선창가 언저리를 돌아다니다가 뱃사람들이나 가끔씩 들를 것같은 구석진 모퉁이의 작은선술집을 발견하고 들어가 앉았다. 거기서 술국과 끼니 대신 먹어본 것이 ‘옹심이 수제비’였다.팟죽에 넣는찹쌀경단이나 조랑떡국의 동그랗게 뭉친 떡 보다는 약간 크고 투박하게 뭉친알심이 들어 있었다.감자 전 지질 때처럼 감자를 강판에 갈아 녹말을 내려서건더기와 함께 반죽하여 수제비 끓일 때처럼 멸치 다시에 호박이며 양파며 풋고추 등속을 넣고 그저 설설 끓여낸 것인데 시원하고 얼큰하고 든든하다. 그때 처음 본 오징어 순대도 신기했지만 나중에는 흔한 음식이 되어 버렸다. 그냥 시장 모퉁이 아무데서나 해장으로 끓여 주는‘곰치국’은 충청도 서해안 지방의‘물텀벵이탕’과 비슷했다.해안가에서 사는 메기 비슷하게 생긴놈인데 살과 뼈가 흐물거리고 무를 함께 넣고 오래 우려낸 국물 맛이 비리거나 기름지지 않고 맑았다. 나는 선창이 멀리 내다보이는 일본식 이층의 여인숙에 방을 정하고 주문진에그네를 만나러 간 친구를 기다렸다. 그는 통금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더니한 시가 넘어서야 술이 만취해서 방문을 벌컥 열었다.그는 아무 말없이 그무렵에 젊은 여자들 사이에 대유행이던 흰색 하이힐을 비좁은 방 가운데로 던졌다.나는 이불 위에 떨어진 여자 구두를 내려다 보았다.잠이 번쩍 깨는 느낌이었다. 엽기적인 생각과 함께 그가 성공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부러움이 동시에 지나갔던 것이다.그렇지만 그는 사건의 전말을 절대로 얘기하지 않고 취해서 시뻘건 눈으로 자기 청춘의 시대가 이것으로 막을 내렸노라고 중얼거렸다.그는한 달 뒤에 군대에 나갔고 몇 년 후에야 제대한 그에게서 그날 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여선생을 만나서 다방에 앉아 청혼을 했다고,그네는 어리둥절하고 놀라서 말을 못하더라는 것,마침 휘영청 달이 밝은데 그가 여선생을 하숙집까지바래다 주겠다고 했고,걷다가 이제는 마지막이니 표적이라도 남기겠다며 그가 입을 맞추려고 덤볐다는 것,바로 길 옆에는 바람에 휘청대는 보리밭이 있었고,장소는 맞춤했지만 술 취한 그 보다 그네가 힘이 더 세었다고,그쪽에서떠미는 바람에 넘어지고, 넘어져서도 두 다리를 잡았다는 것,그래서 그네는콩쥐처럼 신만 남겼다고 한다. 어쩌다가 동해안에 가게 되면 음식들은 모두 관광 일색이 되어 온통 생선회천지가 되었지만 ‘옹심이 수제비’나 ‘곰치 해장국’을 찾으려면 선창을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헤매다녀야 한다. 황석영
  • “정상회담 성공” 전국서 행사

    13일 열리는 첫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과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행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잇따르고 있다. 이북5도민 경북도연합회 회원 100여명은 12일 오전 구미 시민복지회관에서결의대회를 열고 회담의 성공적 개최,800만 이산가족의 재회와 고향 방문,남북 주민간 갈등해소 등을 기원했다. 이북5도민 광주시연합회도 이날 광주 중외공원에서 ‘우리의 다짐’이란 결의문을 채택했으며,목포 유달경기장에서는 새마을운동 목포시지회 주관으로자전거타기 대회가 열렸다. 전남도내 관공서와 주요 거리 등 524곳과 광주시내 200여곳에는 회담 성공을 기원하는 대형 플래카드가 나붙었으며,광주역과 목포·순천역 등의 전광판 7곳에도 축하메시지가 떴다. 서울 은평구,경기도 고양시 등 휴전선과 가까운 서울·수도권지역의 자치단체들은 거리 곳곳에 회담 성공을 기원하는 플래카드를 내걸어 역사적인 정상회담 개최를 축하했다. 전남 순천시의회는 성명에서 “이번 회담이 민족 공동의 이익과 발전,번영,통일의 시금석이 될 것을 확신한다”면서 “이산가족들의 상봉과 자유로운왕래,호혜 원칙에 입각한 경제협력,체육·문화교류 등 실현 가능성이 높은의제부터 풀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7∼9일 한국불교 태고종 본산인 순천 선암사에서는 성공기원 대법회가 열렸으며,제주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등 제주도의 시민단체들은 지난 8일 430개의 풍선을 날리며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과평화통일을 기원했다. 전남 장성군은 이날 여수∼신의주를 잇는 국도 1호선 통과지점인 북이면 원덕리 갈재에 오는 9월초 성금 등을 모아 ‘통일기원비’를 세울 계획이라고밝혔다.해발 220m에 세워질 통일기원비는 높이 7m,넓이 3m,두께 1m,무게 46t규모의 검은 대리석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강원도 춘천시 시민대표 50명은첫 정상회담이 열리는 13일 낮 12부터 30분간 삼천동 종각에서 ‘남북평화통일 기원 타종식’을 가질 예정이다.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연합청년회 회원 7명은 이날 독도에서 민족통일의염원을 담은 넙치 치어 1만1,111마리를 방류한다. 김일호 청년회장은 “국도의 동쪽 끝에 방류한 넙치가 남과 북의 바다를 자유로이 오가듯 납북간 인적·물적 교류가 확대되기를 기원하고,또 독도가 영원한 우리의 땅임을 확인하기 위해 행사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전국종합
  • [자랑스런 공무원]공원관리 내장산지소 정장훈과장

    환경친화적 공원관리 모델 제시 지역 문화자원과 연계해 환경 친화적인 기법으로 공원 관리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공무원이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내장산 남부지소 관리과장 정장훈(鄭長勳·42·3급·사진)씨가 그 주인공.그는 96년부터 3년6개월 동안 전남 완도에 있는 국립공원다도해해상관리사무소에서 일하면서 ‘바람’을 일으켰다. 먼저 공원구역인 완도읍 정도리 구계등(九階登) 일대(730,000㎡)에 산재한갯돌과 식물 군락지를 활용,탐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곳은 수려한 바다 경관과 갯돌,온·난대 수종이 섞여 있는 특이한 식생군락지로 국가 지정 명승지 3호로 지정된 곳.특히 반질반질하고 새까만 갯돌 수천개가 경사지를 따라 아홉 계단으로 형성된 구계등(길이 800m·폭 50m)은 이색적이다. 그 동안 관리 소홀로 갯돌 밀반출,수목 고사 등으로 훼손 정도가 심각했다. 그러나 정 과장은 “해양과 산림 생태로 나눠 관광객이 피부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띠라 구계등 등의 생성 연대와 유래 등을해설판 10여개에 적어 곳곳에 세웠다. 뒤편에 자리한 수목은 희귀 상록수림(233종)의 보고.그래서 수령 400년 된방풍림 사이사이로 자연학습 관찰로(2.5㎞)를 조성했다.상록과 낙엽 활엽수100여그루에 이름표도 달았다. 또한 지금껏 단체 관람객 3,000여명을 직접 안내하며 구경하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지난해에는 ‘테마가 있는 숲,정도리 이야기 프로그램’을 개발해 학생들에게 생태학습을 지도했다.덕분에 그는 완도군 교육청이 위촉한 현장 명예교사다. 특히 지난해 3월 인근에 종묘 배양장과 민속 어촌전시관을 연계 프로그램으로 개발,볼거리를 늘렸다.여기서는 광어와 농어 등 어류생태와 김과 어패류,어구 등을 관찰할 수 있다. 또 두달 가량 발품을 팔며 군청과 경찰서 등을 설득,지난해 7월1일부터 정도리 탐방객들로부터 입장료를 받고 있다.7∼8월 두달 동안 3만1,094명이 입장,2,867만7,200원의 수입을 올렸다. 이곳을 다녀가는 탐방객은 일년이면 줄잡아 10만여명.어른(1,000원) 기준으로 입장료만 연간 7,000여만원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정과장은 89년 5급으로 출발,지리산과 전북 남원,충남 태안 해안관리사무소 등을 거치면서 식생 분포와 수목 관리 등에서 남다른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구계등 일대는 2010년 세계 박람회 순례단의 방문지로 확정됐다”며“‘갯돌 되가져 오기’ 등 정도리 복원운동에 다같이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성 남기창기자 kcnam@
  • ‘인터넷 사업 진출’ 추가공시 러시

    최근 인터넷과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이들 업종을 사업목적으로 추가한다는 공시가 크게 늘고 있다. 25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총 50건이었던 ‘인터넷,정보통신,전자상거래 등의 사업목적 추가’ 공시가 올들어 이달 24일까지 불과 2개월도 되기 전에 벌써 54건을 기록했다.올해 전체 사업목적추가 공시건수 83건의 65.1%에 달한다. 첨단산업 진출 공시는 지난달(3건)보다는 이달(51건)에 급속히 늘고 있는추세다.첨단산업의 방향타 구실을 하는 코스닥이 이달들어 급등세로 돌아서면서 여타 기업에 확신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특히 상장사들이 다음달 잇따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사업목적 변경사실을 정관에 넣기 위해 공시를 서두르면서 이번주부터 크게 늘고 있다.24일에는 하루동안 무려 14건이나공시됐다. 첨단산업을 사업목적으로 추가하는 기업들의 업종은 천차만별이다.건설 화학 제지 타이어 도시가스업 등 인터넷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업종들까지 망라하고 있다.그야말로 첨단산업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위기의식에 너도나도 ‘인터넷의 바다’에 뛰어들고 있는 모습이다.첨단산업의 경우 투자자금이 2억∼3억원 정도만 있으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도 ‘변신’을 쉽게 결정토록 하는 요인이다. □주가에 영향 미치나 현재로서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있다.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첨단산업을 사업목적으로 추가한 50개 법인의 공시 한달후 평균 주가등락률은 7.3%로 종합주가지수 등락률 9%보다 오히려 낮았다. 올해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이달 2일 인터넷 벤처사업 진출을 공시한율촌화학의 경우 4,060원이던 주가가 공시직후 이틀간 4,200원으로 소폭 올랐으나,24일에는 4,010원으로 공시 당일보다 오히려 떨어진 상태다.지난 18일 전자상거래업 진출을 선언한 금호산업은 2,390원이던 주가가 공시직후 이틀동안 2,200원대로 떨어졌다가 24일에는 2,400원을 기록,공시일보다 불과 10원이 올랐다. □효과 왜 없나 무엇보다 거래소시장 자체의 침체를 이유로 들 수 있다.안그래도 기술력과 성장성은 코스닥 업체와 거의 똑같은수준인데도 단지 거래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낮은 종목이 수두룩한 게 현실이다.더욱이 코스닥에 전문 인터넷 정보통신업체들이 넘쳐나는데 굳이 거래소의 변형된 ‘굴뚝산업’으로 눈을 돌릴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이와 함께 첨단산업의 성공확률이 매우 낮다는 점도 사업목적추가 공시 자체만으로는 투자자를 끌어모으지 못하는 원인이다. 그렇지만 무조건 무시할 일도 아니다.한빛증권 유성원(柳性源) 주식운용팀장은 “이들 기업에서 성과가 가시화되거나 거래소시장이 회복될 경우 테마를 형성할 가능성도 있으므로,주가 움직임을 꾸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지구촌의 밀레니엄 공관장 현지 리포트]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외형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데 역점을 두고 차분히 국가발전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기존의 정책을 다져 나가면서 새천년 꿈의 실현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우리에게 흔히 꽃과 풍차의 나라,육지의 4분의 1이 바다보다 낮은 나라로만 알려져 있다.하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너무 많은,‘벤치마킹’이 활발한 나라다.새천년에도 네덜란드가 우리의 벤치마킹이 될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해서 몇가지 점을 소개한다. 첫째,노·사·정간의 양보와 협조 정신이 투철하다.오래전부터 노·사·정이 총의를 모아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전통을 갖고 있다.특히 80년대 이후에는 노·사·정의 유기적 협조 아래 노동자들은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기업가들은 고용을 늘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정부는 세제협력 등을 통해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돕고 있다.이런 노·사·정 ‘삼위일체’의 노력이큰 성과를 거둬 유럽연합(EU) 내에서도 실업률이 가장 낮고 경제 기반이 튼튼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새천년에도 노·사·정 협력을 국가발전의초석으로 삼고있다. 우리가 98년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정위원회를 출범시켜 많은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네덜란드의 모델을 좀더 잘 소화해 정착시켜 나가길 기대한다. 둘째는 검소하고 실질을 존중하는 국민성이다.강한 생활력이 바탕이 되고있다.국토의 4분의 1이 간척지인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네덜란드 국민은 아주 강한 민족이다.고급품이나 호화제품보다는 중가(中價) 제품을 훨씬 더 선호한다.우리의 경제위기는 물질적·정신적 거품이 큰 원인이 됐다는 점에서 배울 만한 대목이다.한마디로 허장성세를 배격하는 생활이 국민 개개인의 몸에 배어있다. 세번째는 국민들의 외국어 구사 능력이다.작은 나라로서 일찍부터 세계를상대로 무역을 하고 주변의 큰 나라들과 잘 지내기 위해 외국어 교육을 매우 중요시해왔다.통계를 보면 국민의 75%가 2개국어 이상,44%가 3개국어 이상,12%가 4개국어 이상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나라의 물류시설과 제도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심에 있기는 하지만 잘 구축된 물류시설 및제도를 통해 유럽 물류의 중심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또한 EU의 통합진전에 따라 유럽 물류 중심기지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많은 외국투자회사들도 유럽의 거점으로 네덜란드를 활용하고 있다. 욕심을 부려 한가지 더 언급하면 네덜란드는 외교에도 큰 역점을 두고 있다.독일 프랑스 영국 등 큰 나라에 둘러싸여있고 일찍부터 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해왔기 때문에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와 비슷한 점이 많다.99년 기준으로네덜란드 외교부 예산은 약 55억달러로 우리의 10배가 넘는다.외교부 인원도 4,616명으로 우리의 2배가 훨씬 넘는다. 우리도 외형보다 내실을 다지며 새천년을 착실하게 준비해나가는 교훈을 네덜란드에서 배워야 할 것 같다. 송영식 駐네덜란드 대사
  • [21세기 내고장 역점사업](51) 전남 곡성군

    ‘칙칙폭폭…,섬진강 기차마을’ 증기기관차는 배 고프던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던 사람들에게 신발을들고 기적소리를 뒤쫓아 마냥 달리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이 점에 착안해 전남 곡성군이 전국 최초로 기차를 주제로 한 테마공원을만든다.증기기관차에 섬진강변의 들꽃과 바람을 접목시켜 관광상품화하겠다는 것이다.침체된 관광산업을 되살리기 위한 승부수다. 곡성군은 전라선(이리∼여수) 직선화 사업으로 쓸모 없게 된 섬진강변 철로 17.9㎞와 부지 20만1,861㎡을 활용,기차마을과 강변 인근 관광명소,호국 유적지 등을 연계할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기차마을은 2001년 5월 5일 어린이 날에 개장되고 2002년 상반기안에 증기 기관차가 달린다. ?재원 2002년까지 3년동안 민간자본 등 200억여원을 투입한다.내년 예산에확보한 국비 4억원 등 8억2,000만원으로 옛 곡성역사와 주변 부지 등을 정비한다.내년 1월 실시설계와 2월 민간자본 유치 설명회 등으로 60억여원을 모을 계획이다. 2002년에는 민자 30억여원 등 120억여원으로 레저·스포츠 유원지 등을 만든다.2006년까지 투자한 원금을 회수하고 이듬해부터 연간 20억여원의 이익을 낼 것이란 용역결과에 고무돼 있다. ?구간별 개발계획 옛 곡성역∼압록역(13.2㎞) 구간에는 증기 기관차가 다닌다. 옛 곡성역사는 생활사 박물관으로 꾸며 세계 각국의 축소모형 기차와 국내기차 발달사 자료,어려웠던 시절의 농촌 생활상 관련 물품을 전시한다. 또 철로 주변 곳곳에 초가집을 지어 ‘기찻길 옆 오막살이’를 연출한다.집 안팎으로 코스모스·목화·철쭉 등을 심어 60∼70년대 농촌의 정경을 담아낸다. 또 강변에 가족단위 놀이공간 21만여㎡,녹색 생태공원 1만5,000여㎡,먹거리 기차마트 1만여㎡ 등을 조성한다. 특히 철길아래 시퍼런 강물을 이용해 자연형 레저·스포츠 유원지를 비롯,전망 좋은 곳에 계절별 특색을 살린 건강마을을 만든다. 한편 섬진강 2교∼옛 곡성역(4.7㎞) 구간의 철로는 걷어낸다.휴식과 운동장소로,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만들고 길 옆으로 넝쿨 장미를 심어 꽃 터널을꾸민다. ?관광산업 연계 산촌의 전원생활을 만끽하고자 하는관광객을 겨냥해 석곡면 염곡리 노치마을을 녹색 관광마을로 지정해 전략적으로 개발했다. 또 기차마을 인근에 산재한 볼거리를 테마별로 묶어 순환형 관광코스(7개권역 53곳)를 개발중이다. 성륜사·심청공원 등 옥과권과 녹색관광마을의 석곡권,동악산∼형제봉 등산행코스,태안사∼연화사∼도림사∼관음사를 잇는 사찰과 섬진강변을 따라산재한 호국역사 유적지 순례코스 등이다. ?철도청과 협의 군수와 관계 공무원이 철도청을 여러차례 방문해 긍정적인답변을 받아 놓은 상태다.철도청도 경영수익사업으로 폐선로와 부지를 재활용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곡성군의 제안을 반긴다. 철도청은 폐선로와 관련 부지 등을 현물로 출자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다만 기관차는 빌려주되 증기 기관차가 국내에 없기 때문에 기술적인 자문을 통해 곡성군의 증기기관차 특수제작을 도울 계획이다. 곡성 남기창기자 kcnam@ **高玄錫 곡성군수 인터뷰“2002년 기적소리 울릴것”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살려 ‘다시 찾고 싶은 곡성’을 만들어 가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고현석(高玄錫) 곡성군수는 ‘섬진강이 흐르는 젊은 곡성 비전 21’을 기치로 내걸고 관광산업 육성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밝혔다. ?곡성은 옛부터 지리산 관광권의 길목으로 섬진강 등 관광자원이 풍부한데도 인근 남원 춘향골과 지리산권 등 유명 관광지에 묻혀 인지도가 낮은 게사실이다. 전라선 개량공사로 남은 폐선로가 섬진강 협곡을 끼고 국도 17호선과 나란히 달린다.경관이 수려한 이 철로 주변에 기차마을과 놀이공간 등을 조성할 경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특색있는 관광지로 발돋움 할 것으로 본다. ?열악한 재정형편상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텐데. 총 사업비 200억원중 2000년에 우선 국비 34억원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여기에 군비 4억원을 보태 38억원을 마련,20억원으로 철로 주변 땅(5만평)을 사고 10억원으로 특수기관차를 제작하며 8억원으로 옛 곡성역사를 정비할계획이다.다만 민자를 얼만큼 끌어 모아 기반시설 조성에 쏟아부을 수 있느냐가 사업 성공의 관건이라고 본다.마지막으로 민자 유치가 쉽지 않을 경우민·관 합작형태인 제3섹터 방식도 고려중이다. ?열차 임대는 어떤가. 철도청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철로와 인근 부지,건물 등을 출자할 것으로 본다. 앞으로 곡성군과 철도청이 협의체를 구성해 세부적인 사항을 논의해야 하지만 별다른 걸림돌이 없을 것으로 본다. ?기차 운행 시기는. 내년에 어떻게든 증기기관차를 특별 제작하려고 한다. 국내에는 증기기관차가 없기 때문에 증기기관차 모형의 특수 기관차를 제작해 늦어도 2002년 초에는 열차가 기적을 내뿜으며 달릴 수 있다. 곡성 남기창기자 **전남 곡성군 '효의 대명사' 효녀 심청공원 ‘효녀 심청공원’ 곡성군은 ‘효(孝)의 대명사’로 통하는 ‘심청이’를 통해 무너져 가는 도덕성을 회복하고 효 사상을 다져감으로써 곡성이 ‘효의 본산’임을 알리기위해 이 공원을 만들었다. 지난 3월 문을 연 심청공원은 백제 고찰인 오산면 선세리 관음사 앞 300여평에 조성됐다.우선 효행비 1기와 심청전에 나오는 인물 23명을 장승으로 형상화해 23개를 세웠다. 앞으로 국내 200대 성씨의 문중에서 효행자를추천받아 위패와 영정·족보등을 전시하는 ‘효 박물관’을 이곳에 세울 계획이다. 또 길목인 호남고속도로 옥과 인터체인지에서 심청공원(7.5㎞)까지 흰불두화·흰만리향화·흰진달래 등 3백화(白花)를 심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이어 심청공원에서 관음사(4.7㎞)에는 장승 100기를 세워 장승거리로 조성할 방침이다. ‘심청전’의 원형 작품은 관음사의 창건을 알려주는 연기설화.서기 300년쯤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설화의 주인공인 원홍장을 모델로 해 심청전이 생겨났을 것으로 여겨진다. 대학기관의 고증 결과 중국 진(晉)나라 제후 심공이 동방에서 온 원홍장을부인으로 맞았고 원홍장은 관습에 따라 남편에 맞춰 성을 심씨로 바꿨다는것.당시 흔적과 심청전과의 관계를 확인해 주듯 중국 저장성(浙江省) 보타구에는 안개가 많이 끼어 연꽃처럼 보인다는 연화(蓮花)바다와 심씨촌이 있다.
  • [외언내언] 심청은 곡성출신?

    고대소설 ‘심청전’의 주인공이 1,700여년 전 전남 곡성군에서 태어난 실존인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소장 宋復교수)의 연구결과다.심청의 본래 이름은 ‘온홍장’이며 아버지는 ‘온양’이고 당시 심청은 이곳을 드나들며 철광석을 수입해 가던 중국 난징(南京) 상인에게 팔려 갔다는 것이다.심청은 나중 저장성(浙江省) 성주인 선궈궁(沈國公)의 부인이 되었다 한다. 연구팀은 이 주장의 근거로 심청전의 원형인 ‘관음사연기설화’와 중국 사서인 ‘진서(晋書)’에 똑같은 기록이 실려 있다면서 중국 저장성 푸퇴다오(普陀島)에 ‘심씨항구’ ‘심씨마을’등이 존재하며 그곳 사람들은 뱃길을‘심수로’,주변해역을 ‘연화바다’로 부른다고 밝혔다.또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을 받고 몸을 던진 인당수는 전북 부안군 위도면 임수도 부근 해역으로 추정했다.흥미로운 연구결과다. 그러나 ‘심청전’의 무대가 황해도와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일대라는 주장이 이미 나와있는 터다.옹진군은 지난 10월 백령도에29억원을 들여 100여평 규모의 심청각을 지어 개관했다.3.6m 높이의 심청 동상도 세웠다.심청각에는 심청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모형물과 심청전 관련 고서 및 윤이상(尹伊桑)의 오페라 ‘심청’악보와 나운규(羅雲奎) 영화 대본등이 진열돼 있다.심청전 판소리와 마당극을 비디오 감상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옹진군은 백령도 두무진에서 북쪽으로 12㎞ 떨어진 황해도 장연 앞바다가바로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라고 믿고 있다.또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는심청이 용궁에서 연꽃을 타고 인간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전설을 가진연꽃바위가 있다고 밝힌다.심청각 건립에 앞서 옹진군은 한국교원대 최운식박사 등 12명으로 구성된 조사 연구팀의 고증을 받았다. 곡성군과 용역계약을 맺은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옹진군의 고증의뢰를받은 연구팀 가운데 어느쪽이 맞는지 아직 판단할 수는 없다.다만 효녀 심청이가 단순히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존인물일 가능성은 높다고 본다.호머의 ‘일리아드’도 오랫동안 전설로 알려졌지만 여덟살때 그 이야기를 역사적사실로 믿은 고고학의 선구자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전설의 무대 트로이유적이 발굴됐다.우리 ‘홍길동전’도 그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고 홍길동이 실존인물이라는 주장이 한 국문학자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문제는 연고권 다툼이다.지난해 강원도 강릉과 전남 장성이 서로 ‘홍길동’의 고장임을 내세웠듯이 곡성군과 옹진군이 또 신경전을 벌이지 않을까 염려된다.각 지자체들이 역사나 전설적 인물과 관련된 관광사업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치밀한 고증을 통해 중복투자와 시설 난립은 피해야 할 것이다. 임영숙 논설위원
  • 對北포용·강력 안보 균형 주문

    7일 국회 국방위에서는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효화 선포’문제가 집중 논의됐다. 확고한 군사적 대응과 서해 어민대책을 주문하는 데에는 여야가 비슷했다. 그러나 야당측은 ‘햇볕정책 무용론(無用論)’에 초점을 맞췄다.여당측은 대북 포용정책과 강력한 안보정책의 균형을 주문했다. 한나라당 허대범(許大梵)의원은 “북한이 서해바다까지 내놓으라고 하는 상황에서 햇볕정책의 효용성이 있느냐”면서 금강산관광 중단을 건의할 용의를 물었다.같은당 박세환(朴世煥)의원은 “북한은 우리 영해를 군사통제수역으로 선포하는 것으로 햇볕정책에 대해 화답했다”고 은근히 비꼬았다. 역시 한나라당 하경근(河璟根)의원은 “NLL 월선(越線)은 정전협정 위반이아니라는 게 유엔사의 공식 입장이라는데 대책은 뭐냐”고 추궁했다.하순봉(河舜鳳)의원은 “북한 노동당 창건기념일(9월9일)에 맞춰 컬러TV 10만대를보낼 계획을 백지화하라”고 촉구했다. 국민회의 장을병(張乙炳)의원은 “오늘 보고한 대책이 지난번 서해교전 대응책과 차이가 없는데 승리에도취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같은 당 소속안동선(安東善)의원도 “북한의 무효선언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무시한 것으로 서해안 교전과 같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장영달(張永達)의원은 “북한이 지난 1일 제11차 판문점 장성급회담에서 NLL 조정문제에강경 입장을 견지하면서 군사적 대응을 시사한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자민련 이동복(李東馥)의원은 “최근 국방장관이 중국·러시아 등 주변 국가와의 쌍무외교를 수행해 안보정세 안정에 기여했다”고 칭찬했다. 박대출기자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4)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 고·수(高隋)전쟁에서 승리한 고구려는 입지가 강화되었으며,통일중국의 패자는 당나라로 교체되었다.그러나 동아시아의 주도권과 교역권을 확보하기위해 당 역시 고구려와 운명을 건 대결을 할 수 밖에 없었다.두나라는 초기에는 탐색전을 겸하면서 소강상태를 유지했다.당은 산업을 발전시키고,대운하와 수도망 등을 활용,남북경제권을 통합하였고,남방무역을 활성화하여 경제력을 강화시켰다.그리고 통일중국을 패배시킨 고구려를 붕괴시켜 동아시아의 패자가 되고자 하였다. 당나라는 수나라가 패한 원인을 분석한 후 다른 전략을 구사했다.우선 고구려를 고립시키기 위해 외곽 포위전선을 구축하였다.동돌궐과 힘겨운 싸움(630년)을 벌여 지배권을 확실히 하였다.토번(吐蕃:티베트)을 정벌(638년)하였고,서역 상도(商道:실크로드)를 보호하기 위하여 고창국(高昌國)을 멸망시켰다(640년).뿐 만 아니라 백제와 신라로 하여금 고구려를 배후에서 압박하게하는 외교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당에 우호적이던 백제는 고구려에 기울어졌다.신라는 당을 향해 출발하는 당항성(黨項城)이 고구려와 백제에 의해 공격을 받는 등 한반도 내에서 고립이 심해지자 친당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심지어는 사신을 보내 고구려와 백제를 쳐줄 것을 부탁하였다.양국간에 이루어진 비밀 해양외교는 고구려가 황해중부 해상권을 잃어버린 후에 허용한 결과이다. 두 나라는 전쟁준비를 하면서도 시간을 벌기 위한 유화정책을 구사하였다. 당은 고구려에게 수나라의 포로들을 소환시키고,전승기념물인 경관(京觀)을해체할 것을 요구했다.이에 고구려는 당 사신의 방문을 허용하고,포로 1만명을 귀환시키는 등 요구를 들어주는 한편 전력을 강화하고 천리장성을 쌓으면서 전쟁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642년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정권을 잡으면서 양국 간에는 일촉즉발의 긴장상태가 되었다.마침내 645년 4월,당군은 요하를 건넜고,당태종이이끄는 친정군과 고구려간에 대전쟁이 일어났다.개모성(蓋牟城:현재 요동성심양 근처)이 점령당하고,수나라와의 전투에서 승리했던 요동성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다 화공을 이용한 당의 공격에 함락당한채 1만명이 전사하고,4만명이 포로가 되었다.이어 백암성이 항복하고 안시성마저 포위되어 외롭게 당군을 맞아 분투했다.연개소문은 15만의 구원군을 보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두 나라의 대결은 3개월동안 치열했다. 이 전쟁은 해양질서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기본적으로 동아지중해의 패권과 교역권을 둘러싼 국제대전이란 점이다.고구려와 백제,왜 사이의 외교교섭은 물론이고 당과 신라,백제,왜 간의 교섭 또한 모두 해양을 매개로 이루어졌다.특히 당과 신라가 적극적 교섭을 한 것은 신라가 경기만을 장악했고,고구려의 수군이 황해 중부 해상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실제 전투에서도 해양전은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당태종은 처음부터 해양전의 유효성을 인식하고 있었다.신라사신이 고구려와 백제를 쳐줄 것을 요구하자 당 태종은 수백척의 군선으로 바다를 건너 백제를 기습할수 있다고 대답하였다.고구려와 전쟁을 준비하면서 400여척의 전선을 건조해 곡식을 해로로 운반하도록 하였다.또 수군을 전투에 동원,수륙양면작전을 실시했다. 평양성으로 직공할 목적으로 장량(張亮)은 500여척의 군함과 수군 4만명을거느리고 3월중순 동래항을 떠났다.점점히 이어진 묘도군도를 따라 항해하다가 4월말 요동반도 남단의 비사성에 닿았다.비사성은 요동반도 남단에서 금주만과 대련만을 관리하는 해양방어체제이며 산동반도와 한반도의 서해안을연결하던 연근해 항로의 해상관문이자 요동반도의 내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이다. 그러나 사방이 절벽인 난공불락의 비사성도 5월초 함락당했다.이어 구효충(丘孝忠)의 수군함대는 요동반도의 해안을 따라 오고성 석성 등 고구려 해양방어군과 공방전을 벌이며 압록강 하구로 항진했다.본격적인 수군작전이 전개되면서 전선이 확대되고 평양성이 배후를 기습당할 위험성이 커졌다. 그러나 안시성 공방전에서는 개전초와는 달리 당이 패배,9월18일 당태종이위급한 상황을 벗어나 본국으로 도주하면서 첫번째 고·당 전쟁은 고구려의승리로 막을 내렸다.645년의 국제대전은 또 한번 고구려의 승리로 끝이 난것이다.그후 당태종은 다시 군대를 파견하였는데,본격적인 수륙양면작전을계획했고,이를 위해 수많은 전선을 건조했다.647년 우진달(牛進達)이 이끄는 수군(水軍)이 요동반도 남부 해안에서 100여차례 전투를 벌였으며,해안방어의 중심 성이던 석성 등을 공격하였다.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인 연개수영이 지휘했다는 아름답고 견고한 석성은 7월에 함락당하고 말았다.648년 설만철(薛萬徹)이 3만명의 병력과 누선 전함 등의 함대를 거느리고 출발해 박작성(泊灼城)을 공격하였다.압록강 하구에 있는 박작성은 주변에는 구련성 대행성 서안평성이 있으며,부수도인 오골성(烏骨城)과 국내성으로 접근하는 입구였다.이해 전투에서 고구려군은 고신감(古神感)이 이끄는 당군 전함을 공격했다.당의 선박은 길이가 100척(약 30m),넓이가 반 정도 되는 큰배도 다수 있었다. 고구려의 선박은 규모를 알 수 없으나 일본서기에는 656년 고구려가 왜에 81명의 외교사절을 파견했다고 하였다.그렇다면 배 1척에 40∼50명이 탔음을알 수 있다.이 후에도 당은 대규모 해양전을 염두에 둔듯 대규모의 선박 건조사업을 추진했다.당고종은 고구려를 간헐적으로 공격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660년에 이르러 백제를 공격,동아지중해 3차전쟁인 삼국통일전쟁이 발발했다. 고·당(高唐)전쟁은 정치외교에서 해양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고,군수물자의 운반은 물론 함선을 이용한 원거리이동과 후방 상륙작전을 실시하여 전선의 범위를 확대하였다.바야흐로 동아지중해의 역사발전은 본격적 해양전의단계로 돌입한 것이었다. *고분서 나온 원통형 토기 학계의 새로운 '흥미거리’ 최근 전남 나주의 신촌리 9호분에서 원통(圓筒)형 토기가 다량 발굴되었다. 지난 5월부터 이 9호분을 발굴조사해 오던 문화재청의 국립문화재연구소는18일 무덤 꼭대기 가장자리와 무덤 옆비탈 성토층에서 32개체의 원통형 토기를 수습했다고 밝혔다.흔한 항아리 형이 아닌 난초분같은 원통형 토기는 이번 발굴이 처음은 아니다.나아가 이 9호분에서도 이미 원통형 토기가 수습된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신촌리 9호분의 원통형 토기 발굴을 많은 학자들은 아주 의미있게 여긴다.토기가 무덤에 ‘묻혀 있는’형식이 매우 유다르기 때문이다. 신촌리 9호분은 나주 반남(潘南)고분군에 속해 있는 옹관(甕棺·독)고분이다.반남고분군에는 영산강 유역의 독특한 옹관고분 30여기가 속해 있으며 9호분은 여기에서 두번째로 큰 무덤이다.네모반듯한 밑자락이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방대형(方臺型)인 9호분(사적77호)은 일제시대인 1917∼1918년 일본인에 의해 첫 발굴되었는데 이때 금동관,금동신발,환두대도 등이 출토되었다.파편 상태로나마 원통형을 짐작할 수 있는 토기 7개체도 발굴됐다. 이같은 원통형 토기는 독에 시신을 넣는 옹관 형식을 버리고 석실을 도입한 광주,함평 등 이 지역의 새 묘제에서 보다 세련된 형태로 꾸준히 나타난다. 따라서 이번에 9호분에서 원통형 토기가 원형 그대로 발견된 것은 이곳의 토기가 마한,백제 지역인 영산강 유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입증해 준다. 하지만 이번 발굴에서 새롭게 확인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토기가 한국묘제 최초로 ‘묘 장식용’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이제까지 우리 고대 묘에서 발굴되는 토기는 제사용으로 쓰여졌다가 그냥 방치된 것으로 무덤 주위 이곳저곳에 ‘무질서하게’흩어진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그러나 이번 재발굴 조사에서 32개체의 원통형 토기들은 무덤의 북,동쪽 옆비탈 가운데를 빙 둘러가며 일렬로 묻혀 있는 형식이었다.이는 대형 무덤을 장식하기 위한 매장자들의 ‘의도’가 확실히 드러나 보이는 배열이다. 9호분의 토기를 포함한 영산강 유역의 원통형 토기는 기본 형태 측면에서일본 고분시대의 원통 하니와(埴輪) 토기와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일찍부터 제기돼 왔다.하니와는 일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묘제에서장식용으로 사용돼 왔다.따라서 이번 신촌리 9호분 발굴은 형태와 기능 측면에서 두 토기의 유사성을 더욱 강력히 제시함으로써 이같은 주장에 무게를더해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신중한 자세다.좀 더 자세히 살피면 서로 다른 점이 더 많이 눈에 띤다고 강조한다.현재는 신촌리 9호분의 원통형 토기가 최초로 묘 장식용으로 쓰였다는 절대적 사실 하나만이 확실하고 그것만으로도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그 이상의 섣부른 유추는 금물이라고 입을 모으고있다. 김재영기자 kjykjy@
  • 「남북한 서해 대치」’화해 국면’ 뒤편서 항상 도발

    남북한간 화해국면의 뒤편에는 항상 북한의 대남도발이 있었다는 합동참모본부의 분석이 나왔다. 96년 9월16일 북한이 강릉 앞바다에 상어급 잠수함 1척을 침투시켰다.침투 사흘 전인 13일부터 15일까지 남북한과 일본 중국 몽골 등이 공동개최한 ‘나진·선봉 투자설명회’가 열렸으며,두달 전인 7월부터는 북한이 ‘미·북장성급회담’을 제의해 논의가 한창이었다. 속초 앞바다에 노동당 소속 유고급 잠수정 1척을 침투시킨 지난해 6월22일도 사정은 비슷했다.침투 2주 전인 6월8일에는 ‘미·북장성급회담’에 합의,화해의 분위기였다.특히 이날은 판문점을 통해 소떼를 몰고 방북했던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명예회장이 돌아오기 하루 전이었다. 이후 6월23일 처음으로 열린 미·북장성급회담은 ‘잠수정 침투사건’을 놓고 설전만 벌이다 끝났다. 북한은 ‘속초 잠수정 침투사건’ 20일만에 또 동해 앞바다에 수중용 추진기를 침투시켰다.미·북장성급회담을 통해 잠수정 침투사건에 대해 북한이비공식적으로 사과의 뜻을 표명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98년 11월20일 서해의 강화도 김곶에 미확인 선박이 출현했다.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의 첫 유람선이 출항한지 이틀만이었다.이보다 앞선 10월27일에는정회장의 2차 소떼 방북이 있었다. 98년 12월18일 여수 앞바다에 북한 반잠수정 1척이 침투했다가 격침당한사건도 3일 전인 12월15일부터 정회장이 북한을 방문하고 있는 가운데 터졌다. 이번 서해 침범도발도 예외는 아니다.지난 7일에는 북한에 비료를 무상으로 보냈으며 오는 21일 베이징에서 ‘남북차관회담’이 열릴 예정이었다. 주병철기자 bcjoo@
  • [‘완벽대비’ 韓-日 어업협상](上)일본보다 더 어려운 상대

    오는 8일부터 지난해 11월11일 가서명된 한·중 어업협정의 비준발효를 위한 실무협의가 시작된다.한·일 어업협정 협상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 한·중 협상에서 새로운 국제 해양질서에 적응하고 우리 어민들을 보호하기 위한특집을 연재한다. 한·중 어업협정 협상도 졸속이 우려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한·중 어협실무협의를 앞두고 대일 협상 때와는 달리 협상을 이끌어가기가 훨씬 수월할것으로 안다.어업문제에 관한 한 주변국에 대해 중국은 일종의 ‘가해자’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사실상 일본보다 더 어려운 협상상대라는 것이 전문가들의분석이다.해양수산개발원 수산경제실장 朴星快박사는 “협정 자체만을 놓고볼 때 한·일 간에는 독도 문제를 빼고는 큰 사안이 없었지만 한·중 실무협상에서 다뤄지는 수역이 한·일 어협 때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고 말했다. 한·중 어업협정의 기본틀은 한·일 어업협정과 마찬가지로 연안국이 어업에 대한 주권적 원리를 행사하는 유엔해양법상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두 나라간 EEZ 경계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따라서 연안국의 어업자원에 대한 관할권이 인정되는 배타적 경제수역 외에 양국이 어업자원을 공동 관리하는 잠정조치수역과 과도수역을 설치,이들 수역에서는 EEZ 제도 적용을 일정기간 유보하도록 했다. 잠정조치수역은 자국 어선에 대해서만 국내법 적용 및 관할권을 행사(旗國主義)할 수 있으며,배타적 어업수역과 잠정수역의 중간적 성격을 갖는 과도수역은 4년 뒤 연안국의 배타적 어업수역으로 귀속된다. 한·중 두 나라는 협상을 조기에 타결하는 것이 양국관계 및 어업 발전에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이같이 합의했지만 두 나라의 입장은 각 분야에서 상치된다.현재 두 나라는 배타적 경제수역의 폭을 협의하고 있다.우리는 중국어선의 침범조업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배타적 어업수역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입장인 반면 중국은 기존 중국 어민들의 우리 수역내 조업을보장받기 위해 배타적 어업수역을 최소화하려 한다. 중국은 비교적 큰 대형기선저인망 어선 1,800여척이 어장성이 비교적 좋은서해남부와 제주도 서남부 해역에서 조업해 왔다.해경 통계에 따르면 이 가운데 우리 영해 어업자원 보호수역을 침범,불법조업을 한 횟수가 95∼97년 3년간 1만4,500여건에 이른다. 이들은 어구·어기·어장 등의 규정을 지키지 않음은 물론 연안에 설치된양식시설을 고의 또는 과실로 파손하기도 하는 등 우리 어민들에게 막대한경제적 손실을 입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우리 항구로 피항한 어선도 1만6,000여척에 이르러 이들이 무단투기하는 오염물질에 의한 바다오염도 심각한 지경이다. 그러나 우리 해양부가 한·중 어협에 대비,전남 여수와 전북 군산 등 서남해안 시·군을 통해 실시한 어업 실태조사마저 부실하게 이뤄져 한·일 어협 때와 마찬가지로 ‘엉터리 협상’의 재판이 우려된다.충분한 조사시간이 모자랐고 현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 결여됐다는 지적이다.또 지난1년간 어종별 어획량 구성비율과 최근조업수역 등은 조사가 힘들어 ‘주먹구구’식으로 작성됐다는 것이 실무자들의 고백이다. 한국해양연구소 權文相 책임연구원(해양법)은 “우리의 어족자원 보호와 해양환경 보호뿐 아니라 한·중 어업협상에서 압력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지금이라도 철저한 어업실태 조사가 필요하다”면서 “우리 영해 및 특정 금지수역에 대한 중국 침범어선에 우리 EEZ 법을 적용,단속을 강화하고 긴급피난어선의 오염물질 투기행위에 대해 집중단속을 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해양엑스포 개최 후보지…여수시 최종 선정

    정부는 4일 국토공간의 균형발전 및 효율적 활용을 위해 오는 2010년 전라남도 지역에서 개최키로 한 해양엑스포 후보지로 여수시를 선정했다. 해양수산부는 전라남도의 건의와 해양부 정책자문위원회의 자문을 토대로해양수산개발원이 수행한 해양엑스포 개최지 용역결과 자연 환경과 시장성,수익성이 좋은 여수시 소라면을 최종 후보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해양부는지난 97년 ‘바다의 날’ 행사에서 전라남도에서 해양엑스포를 개최하겠다고 공식발표했으며 목포,여수,완도권이 그동안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여왔다. 해양부는 여수시 유치가 확정될 경우 범정부적 차원의 인적,물적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2010년 해양엑스포 지원 특별법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 北에 강력 경고… 장성급 대화 요구/국가안전보장회의

    정부는 18일 북한 반잠수정의 여수 앞바다 침투사건과 관련, 이날 하오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를 열고 북측에 침투도발에 대한 사과 및 재발방지를 촉구하기 위해 주한유엔군 사령부에 유엔사와 북한군간 장성급 회담을 열도록 요청하기로 했다. 국방부도 성명을 발표, “북한의 연이은 침투 도발에 분노와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북측에 납득할만한 해명을 하고 무모한 침투도발행위를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우리 군은 북한의 어떠한 도발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할것”이라고 경고했다.
  • 안중근 이토 총살(秘錄 南柯夢:27)

    ◎탕! 하얼빈 1번플랫폼 충성… 일제원흉 즉사/이토 러시아 가던길서 사망/명치천황으로선 두손 잃은셈/“삼천리강토 원수 갚았을뿐” 安의사 죽음앞서도 당당/여순감옥서 순국땐 구슬비마저 기차 30분 넘도록 안화 낙심하며 돌아서는데 그때 도착하는 모습이 그래서 막 뛰어가…(安의사 회고中) 1909년 10월26일 오전 10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이 나라의 외교권과 내정권을 강탈한 이토는 특별열차로 중국 만주의 하얼빈역에 도착하였다. 그때 원수 이토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안중근의사는 뒷날 회고하기를 “이토 그놈을 가딱하면 놓칠뻔 했네. 그놈의 기차가 아침 9시 도착인데 9시30분이 되어도 오지 않아서 그만 걸어서 돌아서는데 다리있는데 오니까 아! 그때 기차가 오는 것 아닌가. 그래서 막 뛰어가 그놈을 쏘아 죽였네 그려” 안중근 의사는 이렇게 해서 일제침략의 거물 이토를 하얼빈역 1번 플랫홈에서 쏘아 죽였다. 이것을 우리는 안의사의 이토 총살이라 부르고 있다. 전 통감 이토(伊藤)는 저희 나라의 일로 러시아에 가게 되었다. 하얼빈역에 잠시 내렸는데 갑자기 총성이 울리더니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아! 동양의 패권을 쥐었다는 자가 끝난 것이라. 이토가 끝났다.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끝났다는 이야기이다. 이토는 한국민에 대해 원수일뿐 아니라 일본인에 대해서도 원수인 것이다. 금년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 79주년이 되는 해인데 안의사가 외쳤던 ‘동양평화’는 과연 이루어졌는지 의심스럽다. 안중근은 이토를 죽인뒤 조용히 잡혀가면서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으니 충의는 당당하고 의리는 빛났으며 위엄있는 풍도는 늠늠하니 뉘 감히 그를 꺾을 사람이 있겠는가. 안중군 의사는 당년 32세의 젊고 젊은 나이에 의거를 결심했는데 그의 참뜻은 아직도 후손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지은 ‘장부처세가(丈夫處世歌)’는 이렇게 외친다. 동포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만세 만세 대한독립이로다. 안중근,그는 누구인가. 아무도 그 당시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얼빈에서 총을 쏜 소년은 뉘 집의 아들이었던가. 칼을 집고 바다를 건너갔다고 하는데 그의 선대는 알지못하겠으나 성은 안씨요 이름은 중근(重根)이라 하였다. 아이시절부터 칼 쓰기와 공차기를 좋아 했고 장성해서는 비분강개하고 활협(闊狹)의 의지가 강하여 남을 잘 도왔다. 또 나라일을 걱정하고 그 지략이 커서 사소한 일은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 이토가 러시아땅에 들어가는 기회가 있음을 미리 알고 그 길목에 숨어 있다가 이토의 얼굴이며 신장의 처수까지 알아두기 위해 이토의 사진 한장을 얻어 오래 익힌 뒤 즉시 단총(육혈포)으로 방포(放砲)해 그자의 가슴을 바로 맞추어 즉사케 하였으니 아! 위대하고 장하도다 안중근 의사의 공판투쟁은 참으로 용감하고 씩씩하고 눈물겨운 것이었다. 그러나 저들의 법률에 따라 조선사령부에 호송되어 며칠동안 심문을 받았다. 안중근은 청천백일과 같아서 한결같이 정정당당했고 끝내 굴하지 않고 말하기를 “대장부 사내가 되어 한번 죽음은 당연한 것이거늘 어찌 이처럼 고달프게 문초하는가. 원래 조선에서는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해서는 죽음으로 갚게 되어있다. 어찌 한치라도 사심이 있겠는가” 하였다.심문관이 또 묻기를 “너와 같이 공모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하였다. 안중근이 대답하기를 “조선의 이천만 동포가 모두 같이 공모자다”고 했다. 또 묻기를 “누가 너에게 이런 불법적인 일을 가르쳤는가” 하자 “하늘이 가르쳤다. 누가 가르쳤겠는가.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법대로 하라. 이토로 말하면 우리 삼천리 강토를 늑탈하고 오백년 종사(宗社)를 멸망케 하였으니 내가 그 원수를 갚은 것이다. 나는 귀국의 원로를 죽여 조선의 수치를 씻었다. 그러나 귀국은 나를 살인죄로 죽이려 들 것이니 구차스럽게 문답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조용히 죽음에 임했다. 이토는 일본 근대사에 있어서 제일가는 위인으로 추앙되고 있다. 그래서 얼마전까지만 해도 일만엔짜리 일본 지폐에 그 얼굴이 찍혀 나왔다. 이토의 이력에 대해선 벌써 온 세계 역사책에 기록이 돼있으니 더 논하지 않는다. 그러나 열방(列邦)과 교섭하는데 있어 이토같은 거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같은 인물이 죽었으니 명치천황으로서는 두 손을 모두 잃은 것 같았다. 이토의 지략은 독일의 비스마르크나 미국의 워싱톤 보다 못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명치 천황의 혁명이 아니었다면 어찌 동서양 패권을 잡을 수 있었겠는가. 옛날 제나라때 관중(管仲)과 안자(晏子)는 제후에게 패도(覇道)를 써 임금에게 신임을 받았으나 이토의 경우는 달랐다. 예로부터 영웅은 시대를 잘만나 공을 이루는 법인데 이토는 명치천황의 악정(惡政)을 혼자 자기 사업으로 전용(專用)한 것이다. 그러니 어찌 그 공로가 많다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역사에 안의사와 같은 이가 또 있으니 바로 창해역사(滄海力士)다. 그는 조선인이었는데 박랑사중(博郞沙中)에서 철퇴를 던져 진시황을 저격했으나 다음 수레를 잘못 맞춰 온누리의 영웅으로 불려왔으며 진(秦)나라가 마침내 망하고 말았다. 지금 안중근도 한번 단총을 쏘아 패권을 쥐고 있던 주인공을 꺼꾸러져 죽게 했다.그러나 일본은 점점 강해지고 조선은 반대로 멸망하니 이것이야 말로 일은 사람이 꾸미고 성패는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안의사는 죽음에 임하여 태연히 웃으면서 말하기를 “동양의 평화를 유지하려면 먼저 일본이 정략을 고쳐야 한다. 시간이 지나서 기회를 잃으면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欲保東洋 先改政略 時過失機 追悔何及)”고 했으니 이 얼마나 앞 날을 꿰뚫어본 탁견인가. 안중근의사는 마침내 1910년 3월26일 10시 구슬비가 나리는 가운데 만주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이날 푸른 하늘은 답답한 듯 하고 백일(白日)이 침침하며 숙숙(肅肅)한 기운이 육대주에 충만하였으니 두공부(杜工部 즉,杜甫)가 지은 시에 “영웅의 가슴에 눈물이 가득하다”고 한 것은 안중근이 나오는 것을 미리 알고 지은 시가 아니었던가. 그 친척들이 시체를 거두어 고향산천에 반장하였으나 그 뒤에는 적적하여 아무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이토는 안의사를 만나 잘 죽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명성 또한 빛을 잃었을 것이다. 이토의 만장(挽章) 영웅을 쏘아 죽이자 만국이 놀랐다/하늘이 그로 하여금 계획을 이루지 못하게 함일세/이로써 열강의 교섭은 끝나고/명치는 울어서 눈물이 쏟아지겠지 그러나 안의사의 죽음만큼귀중한 일은 없었다. 안중근의 만장 하얼빈의 총소리가 오대주를 진동하였으니/안중근의 기개가 천추에 관통하였네/지난해에 충의를 다한 자 누가 있었던가/자기 한몸 죽여가며 나라근심 보답했네.
  • 여름방학 이런 책 읽히세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나무인형 피노키오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이름이다.하지만 피오키오를 책으로 읽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디즈니 만화영화를 통해 전세계 어린이의 친구가 된 피노키오는 사실은 이탈리아 동화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쓴 ‘삐노끼오의 모험’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영상문화의 홍수 속에 ‘비디오 키드’만 양산되고 있는 이 시대,‘학교교육이 책읽기를 방해한다’는 역설이 통하는 요즘,청소년 특히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독서습관을 내면화하는 것이다.방학은 그 좋은 기회다. 어린이독서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여러 단체에서는 방학철이 되면 으레 권장도서목록을 발표한다.어린이도서연구회,한우리 독서문화운동본부,간행물윤리위원회,그리고 대형서점과 어린이도서총판 등이 그런 곳이다.이들 단체들이 권하는 도서목록을 참고로 어린이들에게 집중력과 사고의 자율성을 키워 줄만한 책들을 골라 소개한다. ▲유아=그림책 꽃밭을 찾아서(유애로 글·그림/보림 펴냄) 심심해서 그랬어(윤구병 글,이태수 그림/보리) 고사리손 요리책(배영희 글,정유정 그림/길벗어린이) 물(앙드리엔 수테르 글,에리엔 느드레세르 그림/보림) 우리는 바다로 간다(애니타 개너리 글,재키우드 그림/혜인) 꼬까신(최운식 글,최영주 그림/보림) ▲초등학교 1∼2학년=삐노끼오의 모험1·2(카를로 콜로디 글,김유대 그림/창작과비평사) 오소리네 집 꽃밭(권정생 글,정승각 그림/길벗어린이) 닭장에 갇힌 주머니쥐(도오튼 버어지스 글/길벗어린이) 세상이 생겨난 이야기(김장성 글,노기동 그림/사계절) 할미꽃은 왜 꼬부라졌을까?(보물섬 엮음/푸른나무) 견우직녀(유애로 글,그림/보림) 물방울의 추억(에텐느 드랄라 글/서광사) ▲초등학교 3∼4학년=아기 개미와 꽃씨(조장희 글/오늘어린이) 신나는 교실 (윤태규 글/산하) 숲은 누가 만들었나(윌리엄 제스퍼슨 글/다산기획) 아씨방 일곱 동무(이영경 글·그림/비룡소) 흙꼭두 장군(김병규 글/서강) 여울각시 (이중현 글/우리교육) ▲초등학교 5∼6학년=비밀의 동굴(채영주 글/국민서관)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조은수 글/창작과비평사) 라스므스와방랑자(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비룡소) 별난 박물관 별난 이야기(허완·김제호 글/산하) 고향 솔잎(신현득 글/미리내) ▲전학년=엄마 아빠와 함께 떠나는 이색 박물관 여행(백년이웃 편집실 엮음/두산동아) 쉽게 찾는 우리 꽃(여름)(김태정 글·사진/현암사) 개구쟁이 산복이(이문구 글/창작과비평사)
  • 北 잠수함사건 96년·98년 대응의 차이

    ◎남북한 “화해무드 깨지말자” 일치 지난 22일 속초 앞바다를 침범한 북한 잠수정을 둘러싼 남북 당국의 대응방안이 96년 9월 북한 잠수함의 강릉 침투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金大中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이례적일 정도로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林東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나 朴智元 대변인은 “金대통령의 햇볕 정책은 이번 사건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공언(公言)할 정도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면서 더 많은 교류와 접촉·대화를 통해 북한을 변화 시키겠다는 ‘햇볕 정책’은 유지하겠다는 얘기다. 국방부는 23일 “명백한 도발행위”라는 내용으로 북한을 비난하는 성명을 준비했지만 발표는 뒤로 미뤘다. 96년에는 사건 하루 뒤 성명을 내고 한 달 뒤 權五琦 통일원장관이 “대북(對北)지원을 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반응도 종전과 달리 빠르다. 사건 보도 이후 하루가 되기도 전인 23일 하오 3시,북한 평양방송은 “동해 고성 앞바다에서 훈련하던 소형 잠수정이 항해 감시기계와 유압계통 등이 정상적인 동작을 하지 않는다는 전문을 보내왔다”면서 “잠수정은 기동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해류와 바람에 밀려 항로를 잃고 조난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정부가 비난성명도 미루면서 사태를 관망하는 것과 맞물린 발빠른 조치로 풀이된다. 침투나 정찰 목적이 아닌 단순히 훈련중 표류했다는 얘기다.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남북관계도 냉각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희망섞인 첫 공식 메시지다. 북한은 96년에는 사건 발생 닷새가 지나서야 조난방송을 하면서 잠수함과 선원을 송환해 줄 것을 요구했었다. 사건이 터지기 전의 남북 상황이 달랐던 점도 남북 당국이 이번 사건에 접근하는 모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96년에는 쌀을 북한에 지원하고 냉기류가 형성됐을 때지만,지금은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 관광에 합의하는 등 ‘화해’분위기다. 남북 당국 모두 잠수정 사건으로 모처럼 일고있는 화해와 협력분위기가 깨뜨려지는 것은 원하지 않아 상대방을 자극하는 언행을 자제하지만,정부의 대응에 비판적인 보수층도 적지 않다. □잠수함(잠수정) 사건 상황 비교 ▲96년 9월18일 강릉 잠수함침투 ·한국측 대응:9월19일­국방부대변인 “잠수함 침투사건은 명백한 대남도발 행위이며 중대한 정전협정 위반” 10월18일­權五琦 통일장관“대남정책 변화전 대북지원 불가” 10월21일­金永三 대통령 “무장공비 시인사과 및 재발방지 촉구” ·북한측 대응:9월23일­인민무력부 담화 “정상훈련중 기관고장으로 표류” 12월27일­중앙통신 “백배천배 보복” 12월29일­외교부대변인 사과성명 발표 ·유엔 및 미국측 반응:9월20일­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9월20일­미국 국무부 ‘중대한 도발 행위’로 규정 9월24일­클린턴 미국대통령 “잠수함사건은 북한의 도발행위” 9월24일­국무부대변인 “팀스피리트 재개 용의” ·남북관계 상황:95년 6∼10월 북한에 쌀 15만t 지원한뒤 냉각 ·대통령의 입장:金永三 대통령 무력도발로 복 즉각 대응 ▲98년 6월22일 속초 잠수정 영해침범 ·한국측 대응:6월23일­국방부 대북 비난성명 발표하려다 유보 6월23일­林東源 외교안보수석 “북한을 개방시키려는 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과는 무관” 6월23일­朴智元 청와대대변인 “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흔들릴 것으로 보는 것은 성급한 비판 ·북한측 반응:6월23일­평양방송 “기관고장으로 조난” ·유엔 및 미국측 반응:6월23일­미국 국무부 “남북한이 여전히 존재하는 심각한 긴장상태를 상기시켜줬지만 단순실수로 영해를 넘었을수도 있으니 진상조사를 철저히 해야” ·남북관계 상황: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 방북, 금강산관광합의, 유엔사와 북한군 장성급 7년만에 회담 ·대통령의 입장:金大中 대통령 차분하고 신중한 대응
  • 잠수정사건과 남북관계(사설)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이 일어난지 1년9개월만에 북한 잠수정이 또 동해에 들어와 충격을 주고 있다. 때마침 鄭周永 현대그룹명예회장이 500마리의 소떼를 몰고 북한에 갔다가 금강산관광 교류계약체결등의 선물을 안고 돌아왔고 판문점에서는 7년만에 유엔사와 북한군 장성급 대화가 열렸다. 모처럼 대화와 교류의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가 이 사건으로 또 다시 경색되지 않을까 크게 우려된다.‘두 얼굴의 북한’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북한이 남북관계에서 태도를 돌변하는 이중성(二重性)을 보여온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남쪽 불바다’발언은 물론 최근에만 하더라도 鄭회장의 방북은 떠들썩하게 환영하면서도 소떼와 함께 온 사실은 북한주민들에게 끝내 알리지 않았다. 판문점에서의 8·15통일대축전을 제의할 때 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폐지 등 정치적 요구를 일체 하지 않다가 우리 정부가 제의를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날 바로 방송을 통해 이 문제를 거론하는 등의 이중성을 보였다. 북한의 이번 잠수정침투가 앞으로의 남북관계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이 어렵게 조성되기 시작한 남북화해분위기를 고의로 깨뜨리려 했겠느냐는 점에는 의문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현재 조성되고 있는 교류와 협력분위기는 북한 스스로도 원하고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지금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한국과 미국의 협력을 쉽게 거부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다. 상당기간은 싫든 좋든 남한과 국제사회로부터 식량을 비롯한 비료 등의 물자지원을 받지않으면 안될 어려운 형편이다. 에너지 확보를 위해 경수로 건설을 지원받아야 하며 중유지원도 끊겨서는 안될 입장이다.이 판에 북한 스스로 협력과 지원분위기를 깨려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북한 내부에서는 개방과 교류확대문제를 두고 온건파와 강경파가 심한 대립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북한 내부사정이 바깥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일들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번 잠수정침투사건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하는 분석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에는 과거와 달리 보다 신중하게 대처하기를 바란다. 잠수정 침투에 따른 군사적 대응은 신속하고도 철저하게 하는 것은 물론 침투목적과 의도를 정확히 가려 적절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화해와 협력분위기는 계속 조성해가되 항상 경계의 태세는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물에 걸리지 않은 더 많은 잠수정이 있다고 봐야 한다.
  • 北 잠수정 침투­왜 내려왔나

    ◎북의 두 얼굴… ‘대화’ 뒤의 ‘도발’ 재확인/무장간첩 침투·군사훈련 목적 추정/군당국 조사 끝나야 의도 드러날듯 22일 속초 앞바다에서 발견된 북한 잠수정은 끊임 없는 북한의 무력도발 의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아직까지는 북한의 유고급 잠수정이라는 사실만 알려졌고,무장공비가 타고 있었는지,어떤 의도로 침투했는지는 군 당국이 조사 중이어서 확실한 북한의 목적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합참의 고위관계자는 “23일 판문점 군사정전위에서 장성급 회담이 재개되는 등 남북화해 분위기가 다소간 조성된 상황에서 무장 침투용으로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다”면서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정확한 의도를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의 잠수정이 우리 영해에서 발견되었고 또 걸린 그물을 찢고 달아나려 했다는 점에서 군사적 목적의 침투임이 분명해 보인다.북한은 96년 9월 26명의 무장공비가 탄 상어급 잠수함이 강릉 앞바다에 침투했고 상륙한 무장공비들이 두달이 넘도록 총격전을 벌이며 저항했다.당시 잠수함의 임무는 공작조를해안에 상륙시키는 것이었다.이번 침투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날 발견된 잠수정은 레이더 탐지가 어렵고 잠수 및 발진속도가 빨라 북한이 정찰 및 침투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유고급 잠수정이다.따라서 북한은이 잠수정을 이용해 우리 해안 지역을 정찰하거나 무장간첩 또는 고정간첩을 침투시키려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하지만 공작조를 태우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한 훈련 목적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인 당시 잠수정에는 3명 정도가 탄 것으로 알려졌다.유고급 잠수정에는 2∼4명의 승무원과 8∼10명의 공작조를 태울 수 있는 점으로 미루어 공작조를 침투시킨 뒤 돌아가는 길에 발견됐을 가능성도 있다.군과 경찰은 강원도해안 일대와 산악 지역에 대적태세를 갖추고 비상경계근무에 돌입했다. 결국 북한의 잠수정 발견은 북한이 대외적으로는 대화 제스처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전쟁준비에 몰두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도 대북 경수로건설사업 등 남북간의 경제협력은계속되던 상황이었다. 북한은 53년 이후 휴전선에서의 도발,무장공비 침투 등을 통해 남한을 교란시켰고 70년 이후에만도 309차례,90년 이후에만도 15차례나 해상과 육상을 통해 무장간첩을 침투시켰다.
  • 사사키 다케시 도쿄대 교수 도쿄신문 칼럼 요지(해외논단)

    ◎일 여당 개혁보다 정권유지 우선 일본의 정치인들은 개혁을 서둘러야함에도 불구하고 위기관리라는 명분을 앞세워 개혁보다는 정권과 권력유지를 우선하고 있으며 이에따라‘위기의 일상화’가 우려된다고 사사키 다케시(좌좌목의)도쿄대 교수가 지적했다.최근 도쿄신문에 보도된 ‘위기를 인질로 잡은 정치’라는 제목의 그의 칼럼을 요약한다. ○권력 남용 제어못할 가능성 일본 정치의 주제가 반년전까지 ‘개혁’이었다고 한다면 현재의 주제는잘 말해 봐야 ‘위기 관리’,더 심하게 말하면 ‘위기를 인질로 잡은 정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개혁의 모습은 거의 사라져 대부분 과거사가 됐다.하시모토 총리의 6대 개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금융 빅뱅의 충격이 모든 개혁을 날려 버린 것이다. 지난해 가을 금융 시스템의 동요와 경제 비상사태(유사)의 발생은 확실하게 위기관리 문제를 발생시켰다.이에 대해 정치가 상당한 각오로 노력한 것은 많은 국민이 아는 바다.그리하여 대장성의 구래의 행정패턴이 개선됐다.그러나 유착과 접대,낙하산 인사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정치는 위기관리를 깃발로 관료제를 뛰어 넘었다고 하지만 이는 정치로서 ‘금단의 열매’를 맛봤다고 하는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로 위기관리는 어디까지나 유사시 대책일 터이나 이것이 독자적으로 굴러가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유사시는 평상시의 룰을 일시적으로 보류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권력자로서는 대단히 유혹이 크다.알기 쉽게 말하자면 권력남용과 공금남용에 제어가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위기 회피를 위해 무엇이든 한다”고 하는 가지야마 세이로쿠 의원(전 관방장관)의 발언은 이 유혹의 매력을 정치인이 자백하고 있는 말처럼 들린다. 일본정계에는 우편저축으로 주식을 직접 매입해 주가를 지지한다고 하는 발언에서 보이듯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화제가 속출한다.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로서는 박수갈채 감이지만 도대체 3월말의 주가 수준을 1만8천엔으로 한다는 것과위기관리가 어떻게 관계되는 지 의문이다. ○경제위기 정치적으로 이용 정부가 일정한 주가수준에 책임을 갖는 듯한 발상 그 자체가 위기감 비대증후군(위기감 비대증후군)의 전형은 아닌가.게다가 안전보장상의 위기관리 이상으로 경제적인 위기관리는 한계가 확실하지 않으며 경제활동을 일상적으로 왜곡시킬 우려가 높다.실제 지나침에 의해 새로운 모럴 해저드(윤리 결여)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 둘째로 위기를 정권이나 권력자의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타락형태가 나오게 될 우려가 있다.그리고 선거라도 되면 경제위기의 정치적 이용가치는 점점 더 높아지게 된다.야당의 현상태를 보면 이러한 위기 관리의 병리를 체크할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그러나 최대의 문제는 ‘위기의 일상화’에 따라 평상시로 돌아오는 것이 곤란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점이다.일련의 개혁이 산적해 있는 지금 주가대책 이상으로 개혁이 정치의 중대한 과제가 되고 있다.
  • 일본인과 자살/이세기 사빈 논설위원(외언내언)

    일본의 대표적 작가 미시마 유키오(삼도유기부)의 단편 ‘우국’은 육군장교들의 반란사건과 관련하여 한 중위 부부가 자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할복한 남편이 내뿜은 검붉은 피가 부인의 백색 기모노를 적시고 피바다를 이룬 다다미 바닥을 새하얀 버선발로 밟고 다니는 이단적인 형식미가 눈부시다.이른바 ‘하리키리(복체)’란 헤이안(평안)시대 이후 투철한 무사도 정신을 강조하는 자살방법이다.작가는 그의 소설처럼 자위대의 각성과 궐기를 촉구하면서 지난 70년 자위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할복자살했다.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그의 제자인 미시마가 자결한 뒤 가스자살했고 그 이전에 ‘나생문’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다사이 오사무도 자살했다. 일본인의 죽음에 대한 집착은 일본을 소개하는 서적에서 ‘죽음의 문화’가 민족적 특성으로 등장한다.또한 매주 집계되는 금주의 베스트 셀러 중에는 죽음과 관련된 ‘유서’‘임사체험’‘투명한 유서’ 등이 두세권씩 끼어 있고 ‘인간답게 죽는법’이란 책이 서점의 중앙에 장기 진열되기도 한다.그들의 죽음에 대한 관심은 그것이 반드시 치명적인 미학의 결정체이어야 한다는 것이며 책임에 대한 전력투구일 뿐이다.이번 일본 대장성 수뢰 스캔들도 마찬가지다.전현직 간부들의 잇단 체포,장차관의 인책경질에 이어 대장성 은행국 오쓰키 요이치(대월양일) 금융거래관리관이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76년 록히드 사건이나 89년 리크루트 사건때도 측근인 운전사와 자금담당 비서가 책임을 지고 자결했다.그들의 정신은 자신이 겪은 수치를 ‘깨끗이’ 자살로서 사죄하고 전력을 다해 책임을 지려는 최후의 수단이다.일본도를 사용하진 않았으나 현대적인 ‘셉부쿠(체복)’인 셈이다. 자살이 아름답다거나 장하다는 것은 아니다.문화가 다른만큼 모든 것이 우리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그러나 만약 비슷한 사건때문이라면 아마도 우리는 책임을 회피하면서 ‘시간이 약’이라고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모든 사건을 잊어버리기나 바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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