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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업비상구 해외구직 성공열쇠

    본격적인 취업시즌에 접어들었지만 취업 관문은 여전히 ‘바늘구멍’만큼 좁다. 이에 많은 청년실업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해외취업 또한 전문성에다가 어학능력을 겸비하지 못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2년간의 통계를 바탕으로 젊은 층에서 크게 관심을 끌고 있는 해외취업의 실태와 문제점, 취업 희망자들이 준비해야 할 점 등을 짚어본다. 취업 재수생인 이준만(28)씨는 지난 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해외취업 박람회장을 찾았다. 해외취업에 필요한 최신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난해 대기업에 지원했다 실패한 후 해외취업으로 눈을 돌려 전문기관의 연수프로그램을 이수하는 등 꾸준히 준비해왔다. 어학(일본어)뿐 아니라 관심 분야인 정보기술(IT) 관련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여왔다. 올해 안에 일본에 있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 이씨의 목표다. ●한해 2만명 이상 해외취업으로 눈돌려 해외취업 희망자가 늘어나면서 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말고도 서울시와 부산시 등 지방자치단체도 나서서 취업을 알선해 주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취업자의 80∼90%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을 통해서 해외직장을 소개받는다. 올해 이 공단의 해외취업지원센터에 취업을 신청한 인원만 1만 7486명. 지자체와 사설알선업체를 통해 취업하려는 사람들까지 더하면 한해에 줄잡아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해외취업을 시도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산업인력공단 신청자들을 분야별로 보면 사무·서비스 1만 1848명,IT 1821명, 기계·금속 1090명, 의료 524명, 전기·전자 435명, 건설·토목 477명, 기타 1291명 등이다. 이들은 국내 취업난이 쉽사리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해외로 눈을 돌려 직업을 구하려는 사람들이다. 또 눈높이를 높여 좀더 조건이 나은 해외 직장을 선호하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평균 100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국내취업과 마찬가지로 해외취업도 철저한 준비만이 성공을 보장한다. 해외취업 성공률은 10%를 넘지 못한다. 올초 일본의 ㈜TRYN 소프트웨어 취업에 성공한 권중현씨. 그는 “철저히 준비하고 죽을 각오로 노력했다.”고 말한다. 권씨는 열달 동안 일본의 호서 전문학교에서 취업연수를 했다. 국내에서 익힌 어학실력을 바탕으로 현장 실무를 거친 점이 취업에 큰 도움이 됐다. ●해외취업 성공율 10% 넘지못해 최근 2년간 해외취업에 성공한 2676명 가운데 남자는 1296명, 여자는 1380명. 여성이 조금 더 많은 것은 항공사 여승무원, 간호사, 사무직 등 여성이 취업할 수 있는 직종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해외취업을 위한 전문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수 프로그램에는 해외기업체에서 전문 분야의 실무경험을 축적하고 인턴을 마친 뒤 현지 취업하는 해외인턴십 과정과 국내 연수기관의 해외취업연수 과정 등이 있다. 직종에 따라 3∼12개월 정도 소요된다. 해외취업을 준비하는 구직자는 그보다 앞서 해당국의 언어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다. 그런 다음 전문성을 스스로 키우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무모한 도전은 실패로 이어진다.”면서 “확고한 목표를 두고 대학 때부터 2∼3년간 체계적이고 꾸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바늘구멍’ 중등교원 공채 경기18.9대1·인천22.6대1

    10일 교육청별로 2007학년도 중등교사 임용시험 원서접수를 마감한 결과 대체로 지난해보다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경북도의 경우 234명 모집에 5043명이 지원해 지난해 경쟁률 15.6대1보다 높아진 21.6대1을 기록했다. 광주시는 175명(공립 166명, 사립 9명) 모집에 2623명(공립 2456명, 사립 167명)이 몰려 15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난해는 11대1이었다. 전라남도는 136명(공립 135명, 사립 1명) 모집에 2446명(공립 2420명, 사립 26명)이 지원해 지난해 11.9대1보다 높은 18대1을 기록했다. 경기도는 29개 과목 1511명 모집에 2만 8563명이 몰려 지난해 15.3대1보다 다소 높은 18.9대1이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78명을 선발하는 장애인 교원에는 237명이 지원,3대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인천시는 317명 모집에 7168명이 몰려 22.6대1로 지난해 17.7대1보다 높아졌으며, 경상남도는 22.3대1이다. 또 울산시는 152명 모집에 3180명이 지원해 20.9대1이었으며, 충북도는 공립 23.1대1 등 평균 16.9대1이다. 반면 강원도는 125명 모집에 1342명이 지원,10.7대1로 지난해 15.1대1보다 다소 낮은 경쟁률을 기록했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길섶에서] 아내의 꿈/ 우득정 논설위원

    저녁식사가 끝나자마자 아내가 목소리를 낮춰 부른다. 오늘 새벽 이상한 꿈을 꾸었단다. 버스를 타고가다 막 내리려는 순간 발 밑의 땅이 온통 불타버린 듯 시커멓고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지옥의 공동묘지에 발을 내딛는 것처럼 섬뜩한 기분이 들면서 머리카락 끝이 주뼛 치솟더란다. 그런데 발을 땅에 딛는 순간 검게 타들어간 숲에서 일제히 백화가 눈부시게 만발하더라나. 아내는 아주 좋은 꿈임에 틀림없다면서 수능시험을 1주일 앞둔 아들의 방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들은 오늘따라 유난히 공부가 되지 않아 일찍 왔다며 초저녁부터 잠을 청하러 들어간 지 오래다. 나도 아내도 그 꿈이 무엇을 의미했으면 좋을지 뻔히 안다. 그러면서도 행여 하는 마음에 ‘로또라도 살걸 그랬나.’하고 엉뚱한 말을 한다. 결혼 20년 동안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 있을 때나 아내는 항상 꿈을 통해 예고하곤 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아내가 꿈 얘기를 하면 귀가 쫑긋해진다.11월 들어 바늘 끝보다 신경이 더 날카로워진 아들을 향한 꿈이었으면.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발언대] 농지훼손,예서 멈춰야 한다/백남태 농협중앙교육원 교수

    국가경제에 있어 농업의 역할은 단지 식량공급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환경보전, 국토균형발전, 고용증진, 전통문화 계승발전 등 다양한 기능을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 농업의 환경보전 기능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24조원에 이른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들은 농업의 다원적 기능 유지를 위해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농지면적은 55억 1757만평으로 2001년 56억 7517만평보다 1억 5760만평 감소했다. 어느 정도 경제성장을 이룬 지금도 난개발은 그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신도시 개발 등으로 농경지의 용도전환이 꾸준히 이루어져 농지감소 추세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농지감소와 더불어 현재 농가인구도 343만명 정도로 15년 전보다 절반 이상이 줄었다. 한마디로 편하게 살겠다는 인간의 욕심에 의해 농촌파괴 행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농업의 역할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농업을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될 때가 됐다. 농업을 버리고는 어떤 나라도 올바로 설 수 없다. 개방시대에 농촌지역 혁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농촌지역 정비사업과 관련된 사업지침, 법률, 조례의 검토와 보완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작년부터 농림부가 시행하고 있는 경관보전직불제나 일부 지자체가 시행 중인 경관조례 등이 환경보존과 농외소득 증대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조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에 지나지 않지만,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농촌 환경보전을 근간으로 한, 지속가능한 농촌지역개발이 추진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농촌의 지역정비가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이를 위해 농지환경을 우선시하고, 농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중요시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농지훼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늘’이며, 발밑만 보는 한계성 사고이다. 이제는 장기적이고 대국적인 안목에서 농업을 살릴 전략을 짤 때다. 백남태 농협중앙교육원 교수
  • 儒林(730)-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1)

    儒林(730)-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1)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11) 퇴계의 운명을 점쳐보는 괘상으로 ‘겸괘(謙卦)’가 나왔다는 사실에 많은 제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너무나 정확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덕홍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시종일관 겸손의 도를 지키는 군자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유종의 미. 시종일관 겸손의 도를 지켜나간 군자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결국 이 말은 결국 스승 퇴계가 ‘군자유종(君子有終)’의 최후를 맞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점괘가 아닐 것인가. 그러므로 주역은 퇴계가 겸손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두고 운명할 것임을 분명하게 점지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 제자들은 모골이 송연하였다. 이덕홍은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효사(爻辭) 중 대상(大象)을 풀이하여 읽어 내려갔다. “높은 산이 낮은 땅 아래에 있다. 이것이 겸(謙)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많은 것을 덜어서 적은 것에 보탬으로써 사물의 균형을 살피고 시책을 공평하게 한다.” ‘지산겸’괘의 두 번째 초음(初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겸손하며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수양을 쌓으니, 참으로 군자로구나. 대하를 건너는 것과 같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수행하여도 길하리라.” ‘지산겸’괘의 이음(二陰)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명성이 이미 세상에 울리고 있건만 스스로 몸을 낮추고 겸손하다. 자신의 마음에 자신을 가졌기 때문에 남에게 잘난 체해 보이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를 한결같이 가지면 길하리라.” ‘지산겸’괘의 효사 중 삼양(三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하를 위하여 헌신한 공로가 있건만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니 진정 군자로구나. 만민이 심복한다. 유종의 미를 이루어 길하리라.” ‘지산겸’괘의 사음(四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니 모든 일이 도리에 어긋남이 없다. 만사 순조롭지 않은 것이 있을 수 없다.” ‘지산겸’괘의 효사 중 오음(五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귀한 분이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유화한 태도로 남에게 겸손하니 많은 사람들이 심복하여 주변에 모인다. 불복하는 자가 있으면 정벌(征伐)함이 좋다. 순조롭지 않은 것이 없으리라.” ‘지산겸’괘의 효사 중 마지막 부분인 상음(上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미 군주의 지위는 물려주고 난 위치에 있으나 아직 명성은 세상에 울리고 있다. 그러나 겸손하다. 군사를 동원하면 작은 읍국(邑國)을 정복하는 일쯤은 능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지산겸’ 괘의 총 해설이었다. 일찍이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자가 되어서 교만 없기가 가난하여서 원망 없기보다도 어렵다.” 공자의 이 말은 예수가 말하였던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연상시키는데, 이렇듯 퇴계의 운명을 암시하는 ‘겸’괘는 퇴계야말로 ‘어진 이를 존경하고 선비에게 몸을 낮춰야 한다.’는 ‘존현하사(尊賢下士)’의 도를 완성한 ‘겸손의 군자’임을 드러내는 괘상이었던 것이다.
  • 침구…내추럴 & 꽃무늬

    침구…내추럴 & 꽃무늬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도는가 싶더니 살갗에 닿는 이부자리의 촉감이 한결 포근해졌다. 요즘은 웰빙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의 확산으로 고품질 자연소재 침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최상품으로 여겨지는 거위털 침구가 주목을 받는가 하면 실용적이고 저렴한 극세사 침구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오리털과 양모 제품도 대중적인 제품으로 여전히 인기다. 소재가 다양화, 고급화되면서 침구 관리의 중요성도 커졌다. 침구 전문업체인 이브자리 고현주 팀장의 도움으로 소재별 침구의 특성과 관리법을 알아본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거위털, 오리털 침구 통칭 우모(羽毛)로 분류되는 거위털과 오리털은 수년간 꾸준히 보급이 늘어난 양털에 밀려 공급량이 많지 않다가 최근 다양한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고급 침구에서 저렴한 침구까지 다양한 가격대가 특징. 국내에서 드물게 선보이고 있는 아이더덕(Eider Duck) 제품은 1000만원이 넘는 초고가품. 북유럽 연안에 사는 대형 바다오리의 암컷 가슴의 부드러운 솜털로 만들었다. 거위솜털 이불도 모두 같은 것은 아니고 기계로 뽑은 털과 손으로 뽑은 털에 차이가 있다. 추운 지방에서 사는 살아 있는 거위에서 손으로 뽑아 일일이 선별한 것이 최상의 품질이다. 비싼 것이 단점이나 보온, 흡습, 발산력이 뛰어나고 바삭거리지 않는 천은 통기성이 좋아 잘 때 포근하고 쾌적한 조건을 만들어 준다. 유럽, 일본 등은 거위 솜털 이불의 보급이 이미 80%를 넘어섰다고 한다. 물에서 사는 오리털은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바깥 공기의 변화에 맞춰 자연적으로 수축·흡습·발산·발수 작용을 하는 특징이 있다. 우모의 경우, 산지와 사육기간, 품종, 부위별로도 기능과 품질의 차이가 크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거위털, 오리털 침구를 구입할 때는 봉제상태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잔털이 새나오지 않도록 심리스 퀼팅(무봉제 퀼팅) 방법을 사용한 것이 좋다. 솜털의 산지와 다운(가슴 솜털)의 혼용률도 따져봐야 한다. 추운 지방 산지일수록, 다운의 혼용률이 높을수록 품질이 좋다. 솜털 침구는 통상 2∼3년에 한번씩 세탁한다. 때문에 위생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외피를 싼 커버 외에 쉽게 벗겨서 세탁하기 좋은 면직 커버를 씌워 자주 세탁하는 것이 좋다. 보관시에는 반드시 방충제를 넣어주고, 가볍게 개켜서 통풍이 될 수 있도록 구멍이 뚫린 커다란 상자에 넣어 보관한다. # 양모 침구 양모는 보온성뿐만 아니라 땀을 잘 흡수하고 발산시켜 쾌적한 상태를 유지한다. 또한 곰팡이나 미세한 먼지 진드기 등을 튕겨내고 정전기의 발생을 막아준다. 물이나 오염 먼지가 내부까지 스며들지 않는, 먼지와 오염에 강한 청결 소재로 특히 어린이나 노인, 장시간 누워지내는 환자에게 가장 이상적인 침구소재다. 반면 가격이 다소 비싸고 솜을 틀어서 다시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물에 약한 양모의 특성상 세탁의 어려움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물세탁이 가능한 워셔블 제품이 선보이고 있다. 양모 침구는 사용된 원료의 품종과 함량 등에 따라 큰 차이가 있으므로 울마크가 붙어 있는지, 다른 섬유가 얼마나 혼합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저가의 제품 중에는 다른 섬유를 섞어 놓은 것이 많다. 또 현지에서 세정 가공을 할 때는 특유의 냄새를 없애는 공정이 있지만 제대로 된 제품이 아닐 경우 펼쳤을 때 누린내가 심하게 나니 고를 때 주의해야 한다. 두들겨서 하얀 먼지가 나지 않는가도 살핀다. 세탁은 워셔블 기능이 있는 제품을 제외하고는 물세탁은 수축의 원인이 되므로 될 수 있으면 피한다. 평소에 그늘에서 말리고 가끔 햇빛에 널어 소독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양모는 동물성 단백질이기 때문에 이불장에 넣어두면 주변의 습기를 흡수해 악취가 날 수 있으므로 자주 꺼내 건조시킨다. # 극세사 극세사로 만든 침구는 벌크성과 보온성이 좋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과 추운 겨울에 월동 준비로 구비할 만한 아이템이다. 극세사는 머리카락의 100분의1 이하의 미세한 굵기로 수축 가공한 첨단기술 소재다. 직물의 구조가 매우 치밀한 만큼 표면적이 넓어 공기 함유층도 많고 피부 촉감이 좋다. 특히 침구의 봉제선과 바늘 크기를 최소화하는 기술을 통해 집먼지 진드기의 침투를 막을 수 있어 알레르기 예방에도 뛰어나다. 극세사 침구는 만져보았을 때 부드럽고 복원력이 우수한 것을 고른다. 세탁은 극세사 커버의 경우 뒤집어서 세탁하면 되고 세탁기로 빨 때는 울코스로 세탁한다. 고형 세제를 묻혀 가볍게 문지르거나 가루 세제를 푼 물에 담갔다가 세탁해도 오염이 잘 지워져 실용적이다. 약하게 짠 다음 그늘에서 말리면 된다. 삶거나 섬유 유연제를 사용하면 기능이 감소할 수 있으니 구입할 때 반드시 관리법을 확인한다. ■ 올 겨울 트렌드는 이번 겨울을 겨냥해 나오는 침구제품은 지난해보다 한층 더 감각적인 컬러 매치와 다양한 패턴이 두드러진다.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인테리어에 대한 분명한 컨셉트를 세우고 연출할 필요가 있다. 소재의 경우 네오내추럴리즘의 트렌드를 반영한 천연소재와 신소재들이 등장했다. 천연소재인 면과 새틴이라는 첨단기술이 결합해 나온 신소재인 친환경 섬유 ‘리오셀(Lyocell)’과 인체에 무해한 기능성 섬유 ‘시셀(Seacell)’은 은나노를 이용한 후가공 소재, 천연염색·천연워싱과 같은 기법을 사용한 새로운 소재의 천이 사용된다. 침구에 포인트를 주기 위한 소재로는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실크나 비스코스 같은 광택소재가 선보이고 있다. 자가드 소재도 꾸준히 겨울 침구 소재로 인기를 얻고 있다. 컬러의 경우 공간에 포인트 역할을 할 수 있는 화려한 컬러가 트렌드. 핑크, 보라 등 레드 계열이 주류를 이루며 브라운 컬러도 선보이고 있다. 고급스러운 금색과 가을·겨울 트렌디 컬러인 갈색의 매치는 올 겨울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 검정의 유행으로 몇몇 침구에 블랙 컬러가 등장하는데 갈색이나 흰색 등과 어울려 모던한 스타일을 만들어 낸다. 검정 계통 체크나 스트라이프 패턴의 침구, 베개, 쿠션은 침실에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침구 패턴은 꽃무늬 패턴이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다. 내추럴한 나무, 꽃 등의 자연물 패턴이 사실적이고 회화적인 표현보다 입체적이고 세련된 형태로 변형되어 페이즐리, 모던플라워, 컨트리풍 플라워로 나타난다. 잔잔한 꽃무늬 보다는 큰 꽃무늬 패턴이 침실을 훨씬 화사하고 생기있어 보이게 하고 내추럴 컬러나 조금 무거운 컬러가 더욱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마스크 문양과 같은 앤틱 스타일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돼 절제되고 화려한 패턴으로 나타난다. 변색돼 보이게 하는 번아웃(burn out) 기법을 사용한 침구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한승원 토굴살이] 멀리 데려다 줘!

    [한승원 토굴살이] 멀리 데려다 줘!

    어제 해저물녘에는 갯벌 밭 모래등으로 나가서 파도와 놀았다. 썰물로 인해 드러난 갯벌 밭을 한 뼘씩 두 뼘씩 삼키면서 올라오는 밀물과 더불어 우쭐우쭐 달려와 철썩거리는 파도가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그 울렁거림을 주체하지 못한 채 불그죽죽해진 나문재(海洪菜)와 푹신푹신한 갯잔디를 밟으며 걸어 다녔다. 먹황새와 검은댕기두루미가 밀물 따라 올라오는 자잘한 고기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토굴 앞 잔디밭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늙은 감나무의 회갈색 낙엽들하고 놀았다. 그것들 밟히는 소리에 가슴 속의 한 쪽 벽이 저릿저릿하게 긁혔다. 파도 소리 낙엽 밟히는 소리는 시(詩)읊는 소리나 음악으로 들리기도 한다. 소리로 말미암아 가슴 저려지는 감각은 아직 덜 늙은 모양이다. 바야흐로 한 후배로부터 걸려온 축하전화를 어색해하며 받고 나서 밖으로 나온 참이다. 전화들은 늘 물 흐르듯 하는 생각의 가락을 싹뚝 잘라먹어버리곤 한다. 밟히는 회갈색 낙엽이 한 친구를 생각나게 했다. 직장 퇴임 후 낙향하여 운전 못하는 나의 기사 노릇을 자청하고 열심히 운행해주곤 하던 그 친구는 읍내 병원에서 폐암 뇌암 말기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혼한 다음 슬하의 남매를 부산과 미국에 둔 채 적막강산에서 살던 그 친구는 3000만원 들어 있는 통장을 나에게 주면서 자기 삶의 뒤처리를 부탁했다. 그의 차를 타고 부산의 한 대학으로 강연을 하러 가서,‘살아 있는 한 글을 쓸 것이고 글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단상에서 내려온 그날 밤 술자리에서 그는 ‘아니, 이 사람, 아까 그 마지막으로 한 말,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면 자네 스스로 죽어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여, 뭐여?’하고 추궁을 했고, 나는 ‘그래 나 그렇게 살고 있어.’하고 대답했었다. 하늘은 높푸르다. 바다에는 잿빛 갯벌 밭이 질펀하게 드러나 있다. 갯벌 밭처럼 가슴이 텅 빈다. 뒤란 언덕 위로 간다. 거기에는 40㎝쯤의 두 살배기 차나무들이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내 손자들 다음으로 예쁜 차나무들이다. 명년 봄부터는 이놈들이 나에게 차를 몇 통쯤 제공해줄 것이다. 이놈들을 위하여 지난여름 내내 나는 예초기를 짊어지고 잡초들과 싸웠다.‘그 차 몇 년이나 따 먹고살려고 그렇게 땀을 흘리시오?’하는 아내의 추궁을 들으면서. 차나무들을 쓰다듬다가 마당으로 내려오는데 무엇인가가 정강이와 발목을 아프게 쑤셔댔다. 무엇이 이럴까 하고 내려다보니 까만 도깨비바늘과 표창 모양의 푸른 우슬(쇠무릎지기) 열매들이 양쪽 바짓가랑이와 양말에 박혀 있었다. 발을 굴러대기도 하고 한 손으로 옷자락을 털기도 했는데, 그놈들은 오히려 더 깊이 머리를 처넣으면서 내 살갗을 아프게 했다. 마당의 평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이런 고연 놈들, 하고 투덜거리며 하나씩 떼어냈다. 떨어져 나가는 그놈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멀리 데려다줘요!’ 픽 웃으며 ‘이만큼 왔으면 멀리 온 것이잖아!’하고 빈정거리는데 평생 동안 매화 그리기에 미친 화가 조희룡이 생각났다. 추사의 문하를 들락거린 조희룡은 늘그막에 들면서부터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괴석을 수집했고, 그것을 화폭에 그렸다. 창백하고 작고 빼빼 마른 허약한 체구 때문에, 한 처녀의 집안으로부터 결혼을 거절당한 바 있었던 조선 토종의 화가 조희룡은 평생 묵향(墨香) 어린 매화의 향기만 맡으며 산 까닭인지 다른 건강한 친구들보다 오히려 더 오래 살았다 한다. 중국의 고대 화가 황대치와 미우인은 안개와 구름만 먹고 산 까닭으로 늙어서도 홍안이었다고 한다. 도깨비바늘 우슬 열매 다 떨어내고 일어선 나의 발아래 낙엽이 밟힌다. 그 친구는 나에게 3000만원 들어 있는 통장을 건네주면서 ‘멀리 데려다 줘.’하고 말했는데, 나는 지금 미욱하게도 내가 쓰는 소설 한 대목 한 대목을 향해 ‘멀리 데려다 줘.’하고 말하며 살고 있다.
  • 은행=‘꿈의 직장’

    은행=‘꿈의 직장’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이모(30)씨는 지난 4월 취업재수 끝에 시중은행 입사에 성공했다. 그가 꿈에 그리던 은행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요즘 은행들이 이공계 출신들에게도 문을 활짝 열어 놓은 덕분이다. 그러나 서울 영등포지점에서 6개월째 근무중인 이씨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은행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직을 고려하는 것도 아니다. 무턱대고 나갔다가 바늘구멍보다 좁은 취업의 관문을 다시 뚫을 자신이 없다. 무엇보다 4000만원 가까이 되는 현재의 연봉을 포기하기가 아깝다. ●적성 안맞아도 ‘본전생각´에 눌러앉아 은행들의 퇴사율이 ‘0%’대에 근접했다. 입사 경쟁률은 ‘100대 1’을 넘어 섰다. 국책은행 시중은행 가릴 것 없이 모든 은행이 ‘꿈의 직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입사 경쟁률이 높은 것은 다른 기업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인 신분 보장과 높은 연봉 때문이다. 퇴사율이 낮은 것은 은행이 맞춤형 인재를 선발한 측면도 있지만 이씨처럼 적성에 맞지 않지만 “어떻게 들어온 은행인데….”라는 ‘본전 생각’으로 미처 그만두지 못하는 신입사원들도 많기 때문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10개 국책·특수·주요 시중은행 가운데 6개 은행이 최근 선발한 신입사원의 퇴사율이 0%이다. 국민, 우리, 기업, 수출입은행의 경우 지난 상반기에 채용했던 신입사원들 중 아무도 퇴사하지 않았다. 우리은행과 국민은행은 각각 무려 185명과 168명을 뽑았는데 퇴사율이 0%이다. 상반기 채용이 없었던 한국은행은 지난해 말에 뽑은 50명이 그대로 근무하고 있다. 역시 지난해 말에 채용된 외환은행의 신입사원도 ‘낙오자’가 없다. 신한은행의 퇴사율이 161명 중 9명(5.6%)으로 그나마 높은 편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강한 인재’만을 고집해온 신한은행의 혹독한 업무훈련 방식과 뽑은 지 이미 1년이 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퇴사율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 은행 입사 경쟁률은 100대 1을 넘기가 일쑤다. 외환은행의 경우 올 하반기에 70명을 뽑는데 무려 1만 1451명이 응시,164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응시자 중 공인회계사 세무사 변호사 등 전문자격증을 보유한 사람도 2059명이나 됐다. 100명을 뽑는 하나은행에도 1만 5000명이 몰려 150대 1을 기록했다. 기업은행도 150명 모집에 1만 4438명이 지원했다. 은행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가장 큰 이유는 연봉이다.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의 초임 연봉은 3800만원 수준이다. 여기에 각종 수당 및 교육비 등을 합치면 1년에 4000만원 이상은 건지는 셈이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86개 대기업의 초임 연봉은 평균 3088만원이다. 은행이 700만원 이상 많다. 올해 재정경제부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전국 19개 은행의 부장급 이하 일반직원 8만 8760명 중 억대 연봉자는 4.6%인 4078명이다. 산업은행은 억대 연봉자가 전체 직원의 13.3%나 됐다. 부장급 이하 일반 은행원의 평균 급여도 6400만원으로 일반 근로자 평균 급여 2800만원의 2.3배 수준이다. ●인사담당자 “도전정신 포기한 채 쏠림현상 반갑지 않아”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이미지도 인기 상승에 큰 몫을 차지한다. 국책은행은 물론 시중은행도 노조의 힘이 막강해 일반 기업보다는 고용보장이 훨씬 잘 된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신입구직자 56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장 일하고 싶은 업종은 1위가 공기업(20.4%)이고 3위가 금융업(12.3%)이었다. 결국 금융공기업이 최고의 직장인 셈이다. 시중은행의 인사담당자는 “은행업의 호황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고, 고임금이 은행 성장을 결정적으로 가로막을 시기가 조만간 올 것”이라면서 “취업 준비생들이 적성을 무시하고, 도전정신을 포기한 채 과도하게 은행권으로만 쏠리는 현상은 은행으로서도 그리 반가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뚝심 아홉, 재능 하나 아나운서 김성주

    뚝심 아홉, 재능 하나 아나운서 김성주

    취재, 글 신주영 기자 ┃ 사진 한영희 아나운서 김성주(35세)는 요즘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사치”일 정도로 바쁘다. 많은 곳에서 그를 찾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말하면 왠지 믿음이 가’, 그것이 아나운서 김성주를 찾는 이유다. 고정으로 맡고 있는 TV 프로그램만 세 개, 매일 오전 진행하는 라디오 생방송에, 각종 특집방송의 사회, 여기에 피해갈 수 없는 휴일 당직까지. 어디 그뿐인가. “퇴근 후에는 아무리 피곤해도 두 살배기 아들 민국이와 놀아주려고 해요. 바쁜 남편을 대신해 집안 살림 도맡아 해주는 아내에겐 늘 고맙고 미안하지요”라고 말하는 이 남자는 대한민국의 보통 삼십대 가장이기도 하다. 인생에 몇 번의 변곡점이 있다면, 김성주에게는 월드컵이 그 지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입사 6년차의 젊은 아나운서가 세계적인 행사의 대표 캐스터로 선택된 것은 대한민국 방송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반신반의하며 중책을 맡긴 회사는 나중에 특별공로상을 수여했고, 독일에서 귀국할 때 이미 그는 MBC의 간판 아나운서로 급부상해 있었다. 그런데 이 변곡점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3년 동안 중계방송만 1천여 회.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공중파 아나운서 시험에 그는 무려 5년을 연거푸 낙방했다. “번번이 최종 관문에서 떨어지니까 참 답답한 상황이었죠. 학벌이 부족해서 그런가, ‘빽’이 없어서 그런가, 별생각이 다 들었어요. 그러다 케이블 TV 스포츠채널에 들어갔는데 1년 만에 회사가 망했어요. 아, 나처럼 안 풀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래도 어떻게든 회사를 살리자고 몇몇이 남아서 악착같이 방송을 돌렸어요. 그렇게 3년 동안 중계방송만 1천 경기를 했어요. 스포츠 중계는 시작할 때 한 1분 정도 얼굴이 나오고 나머지는 다 목소리만 나오니까, 아나운서라고는 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돈도 못 벌고, 몸은 몸대로 지치고, 빛도 안 나고. 패기만 가지고 한 거죠. 그때 쌓은 경험이 지금 방송생활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어요. 그게 감사해요.” 그 시기를 거치면서 의지대로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과 노력은 언젠가 꼭 보답을 받는다는 것을 배웠다. 고진감래라고, 나이 제한 때문에 이듬해엔 더 이상 시험조차 볼 수 없는 마지막 시험에서 그는 결국 MBC에 합격했다. 뚝심의 승리였다. “누구에게나 숨겨진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자기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환경이 열악해도 3년 동안 미친 듯이 파고들면 반드시 성취가 있다는 거죠. 저는 그 과정을 요행히 견뎠고 그것을 꽃피울 수 있는 기회를 지금 만난 겁니다.” 방송은 공기다. 그리고 아나운서는 그 공기를 통해 대중과 교감하는 최전선에 있다. 그래서 더욱 김성주는 사람들의 평범한 이웃이 되고 싶다. “거리에서 할머니들이 마지막 떨이로 고사리나 대추 좀 사달라고 할 때의 애처로운 눈빛을 본 적 있으세요? 가령 누군가 그런 할머니에 대한 사연을 보냈을 때 ‘길에서 그런 것도 팔아?’하는 아나운서는 되고 싶지 않아요. 저 사람이 나하고 비슷한 생각, 비슷한 생활을 하는, 한동네에서 같이 숨을 쉬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마음의 문은 열리니까요.” 목회자 아버지가 싫었던 아들. 그러나 그에게 아나운서 일이 인생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저는 목회자인 아버지가 참 싫었어요. 아버지가 목사인데 넌 왜 그러냐는 소리를 들을까 봐 늘 조심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피는 못 속이는 걸까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아버지가 이해되는 거예요. 자라면서 보고 들었던 것들, 배운 것들을 펼쳐보고 싶은 생각이 커져요. 어렵게 아나운서가 되었지만 이 모든 것이 더 의미 있는 길을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알려진 사람이 참여할 때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따라와줄 일. 그걸 가지고 더 많은 사람이 나눌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제가 참여하고 싶어요. 그게 목회가 될 수도 있고 봉사가 될 수도 있고 사회사업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아직은 한참 더 여물어야 해요.” 사실 바르고 곧은 이미지는 그를 구성하고 있는 한 면일 뿐, 그는 다재다능한 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제 적성을 테스트해보고 여러 가지 그릇에 담아보고 싶어요. 제일 잘 어울리는 그릇을 찾기 위해 꾸준히 실험할 겁니다. 저에게 가장 맞는 그릇은 몇 년 후 시청자들이 판단해주시겠지요(웃음).” 밤 10시, 인터뷰 도중 잠시 뉴스를 진행하러 간 그를 기다리다 라디오를 켰다. 주파수를 맞추자 뉴스 앵커 김성주의 침착한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과연 그는 나중에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게 될까, 시청자로서 그의 실험을 지켜보는 것이 꽤나 즐거울 것 같다.   월간<샘터>2006.11
  • 박인환 : 어린 딸에게

    박인환 : 어린 딸에게

    글 유종호 문학평론가, 시인 기총(機銃)과 포성의 요란함을 받아가면서 너는 세상에 태어났다 주검의 세계로 그리하여 너는 잘 울지도 못하고 힘없이 자란다. 엄마는 너를 껴안고 삼 개월 간에 일곱 번이나 이사를 했다. 서울에 피의 비와 눈 바람이 섞여 추위가 닥쳐오던 날 너는 입은 옷도 없이 벌거숭이로 화차(貨車) 위 별을 헤아리면서 남으로 왔다. 나의 어린 딸이여 고통스러워도 애소(哀訴)도 없이 그대로 젖만 먹고 웃으며 자라는 너는 무엇을 그리 우느냐. 너의 호수처럼 푸른 눈 지금 멀리 적을 격멸(擊滅)하러 바늘처럼 가느다란 기계는 간다. 그러나 그림자는 없다. 엄마는 전쟁이 끝나면 너를 호강시킨다 하나 언제 전쟁이 끝날 것이며 나의 어린 딸이여 너는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인가. 전쟁이 끝나면 너는 더욱 자라고 우리들이 서울에 남은 집에 돌아갈 적에 너는 네가 어데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그런 계집애. 나의 어린 딸이여 너의 고향과 너의 나라가 어데 있느냐 그때가지 너에게 알려 줄 사람이 살아 있을 것인가. 작고한 시인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의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목마와 숙녀>의 화려하면서 감상(感傷)적인 모더니즘, <세월이 가면>에 보이는 샹송 흐름의 가볍고 유창한 애상은 박인환 시편 곳곳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해방 직후 박인환은 동인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수록된 시편을 선보이면서 주목을 받았다. 거기 수록된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같은 작품은 해방 직후의 정치적 격정과 노도질풍의 시기에 발표된 정치시편 가운데 가장 우수한, 유려하고 활력 있는 것의 하나였다. 지배권을 회복하려는 모략을 부셔라 이제는 식민지의 고아가 되면 못 쓴다 전 인민은 일치 단결하여 스콜처럼 부서져라 국가방위와 인민전선을 위해 피를 뿌려라 3백년 동안 받아온 눈물겨운 박해의 반응으로 너의 조상이 남겨놓은 야자나무의 노래를 부르며 홀랜드군(軍)의 기관총 진지에 뛰어들어라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중에서 언뜻 임화의 격문시(檄文詩)를 연상케 하는 바 있지만 상상력의 규모나 세목에서 임화를 능가하는 박력을 가지고 있다. 그 후에도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지만 어느덧 도시인의 영탄으로 흐르면서 대중적 상상력 속에서는 <목마와 숙녀>의 시인으로 굳어져 있다. 그에게는 김수영이 경멸해 마지않았던 어떤 경박함이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른 살의 이른 나이에 요절했다는 그의 불행한 개인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박인환은 50년대 전후해서 등장한 많은 모더니스트 시인 가운데서 읽을 만한 시편을 남긴 몇 안 되는 시인이기도 하다. 가령 <행복>같은 작품은 널리 알려진 시편보다 한결 격조 있는 성숙 시편이기도 하다. 위에 적은 <어린 딸에게>는 각별히 뛰어나거나 박인환의 시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은 아니다. 활달하고 잘 읽히는 쉬운 시편으로서 박인환에게 이런 시편도 있나 하는 소회를 갖게 되는 독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3년 간 계속된 전쟁 중에 많은 사람들이 피란 생활을 강요당했으나 그런 특이 체험을 다룬 시편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런 가운데 위의 시편은 당대의 숨김없는 소회가 담긴 소박하나 진실한 시편이다. 전쟁 중에 태어난 어린 딸을 데리고 부모는 수없이 이사를 다녔다. 심란하기 짝이 없는 생활이었을 것이다. 너의 호수처럼 푸른 눈 지금 멀리 적을 격멸(擊滅)하러 바늘처럼 가느다란 기계는 간다. 그러나 그림자는 없다.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주춤할 것이다. ‘적을 격멸하러 가는 가느다란 기계’는 무엇일까. 당대를 살아보지 않은 독자들에게 이 대목은 수수께끼로 비칠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전쟁 당시에 하늘을 자주 날던 제트기(機)를 가리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음속보다 빠른 제트전투기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에서다. 처음 제트기를 접했을 때 폭음은 나지만 비행기는 보이지 않아 적지 아니 당황했다. 나중에 보니 소리나는 곳보다 훨씬 전방에 쏜살같이 달리는 비행기가 보였다. 제트기는 특유의 비행운(飛行雲)을 달고 다녔는데 그것을 통틀어 ‘바늘처럼 가는 기계’라 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림자가 없다’는 것도 그 보충설명이라 보면 될 것이다. ‘호수처럼 푸른 눈’이란 서술 다음에 비행기가 나오는 것은 마침 아기의 눈이 비행기 쪽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엄마는 전쟁이 끝나면 너를 호강시킨다 하나 언제 전쟁이 끝날 것이며 나의 어린 딸이여 너는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인가. 사실 전쟁 중에는 전쟁이 언제 끝날지 대중을 잡을 수 없었다. 전쟁 중에 태어나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한 처지이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면 호강을 시켜준다고 부모는 다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다. 과연 전쟁은 끝날 것이며 딸의 행복은 기약할 수 있는 것인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생소한 소회일 것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부모들이 과연 무사하게 평화를 맞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도 기약할 수 없다. 담담하면서도 절박한 느낌이 다음 대목에 보인다. 너의 고향과 너의 나라가 어데 있느냐 그때가지 너에게 알려 줄 사람이 살아 있을 것인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전쟁과 그로부터 파생한 고통스러운 기억은 대체로 망각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전혀 모르는 세대들이 인구의 다수파를 이루고 있다. 그러한 시점에 박인환의 <어린 딸에게>를 읽는다는 것은 각별한 소회를 안겨준다. 젊은 독자들은 거침없이 활달하기는 하나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이런 시편의 장점과 미덕이 어디에 있는지 혼란을 겪을지도 모른다. 20세기의 한국은 역동적인 격변의 시대였다. 취향의 변화도 막심하였다. 그러한 풍화의 세월 속에서 이만한 생명력을 가진 시편도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50년대에 씌어진 다른 시편과 견주어보아야 실감이 될 터이다. ”나는 불모의 문명, 자본과 사상의 불균형한 싸움 속에서 시민정신에 이반(離反)된 언어작용만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자본의 군대가 진주한 시가지는 지금은 증오와 안개 낀 현실이 있을 뿐-더욱 멀리 지난날 노래하였던 식민지의 애가이며 토속의 노래는 이러한 지구(地區)에 가라 앉아 간다.“ 시인으로 출발하면서 박인환은 이러한 시적 포부를 밝혔다. 시민정신에 충실하련다는 그의 시적 선언은 그의 요절로 충분히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시편 곳곳에 박혀 있는 그의 신선한 언어는 아쉬운 잠재가능성의 기호로서 우리에게 안타까운 호소를 계속할 것이다. 피로한 인생은 지나(支那)의 벽처럼 우수수 무너진다. -<종말> 중에서 나는 들었다 나는 보았다 모든 비애와 환희를. -<어느 날> 중에서 유종호 ·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를 나와 뉴욕 주립대(버펄로) 대학원에서 수학. 현재 연세대 문과대학 특임교수. 1957년부터 비평 활동을 해왔으며 저서로 《유종호 전집》(전 5권) 이외에 《시란 무엇인가》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 《다시 읽는 한국시인》 《내 마음의 망명지》 《나의 해방 전후》 《시 읽기의 방법》 등이 있다.       월간 <삶과꿈> 2006.10 구독문의:02-319-3791
  • [종교·문화재플러스] 노리개 150점 특별전시회

    보나장신구박물관은 25일부터 11월8일까지 조선시대 여인들의 대표적인 장신구인 노리개 150점을 전시하는 특별전 ‘조선 여인의 노리개’를 개최한다.‘은파란 호랑이 발톱 노리개’‘바늘집 노리개’ 등 다양한 노리개를 볼 수 있다.(02)732-6621.
  • 가족과 떠난 가을섬 승봉도

    가족과 떠난 가을섬 승봉도

    아침저녁으로 부는 쌀쌀한 바람에 단풍잎이 뒹구는 10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는 하나 ‘산’이외에는 마땅히 갈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이들을 위해 가을 섬을 추천한다. 철 지난 가을 섬은 한적해 사색의 계절을 느끼기에 그만이다. 또 날씨도 좋고, 먹을 거리도 풍부해 가을 여행지로 좋다. 특히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그저 세상 시름을 잠시 접어두고 하루를 편안하게 쉬다 오기에 ‘딱’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로 1시간 남짓 걸리는 승봉도에 다녀왔다. 아무도 살지 않는 사승봉도, 저녁노을이 곱게 지는 이일레 해수욕장, 낚싯바늘을 던지기만 하면 딸려오는 물고기 등 그저 1박2일 동안 가족들과 즐기기에 좋은 섬이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혹시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서 문명의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과 벗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꾸어보신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승봉도에서 배로 10분 거리인 사승봉도에 한번 가보세요. 진정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 은빛 모래밭의 무인도, 사승봉도 승봉도에서 조그만 통통배로 5분정도 시원스레 달리자 눈앞에 광활한 은빛 모래밭이 펼쳐진다. 바로 여기가 무인도인 사승봉도이다.‘모래의 섬’ 사도(沙島)로도 불리는 이곳은 썰물 때면 동북쪽으로 길이 2㎞, 서북쪽으로 길이 2.5㎞의 드넓은 백사장이 가을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실 지경이다. 배가 제대로 접안할 부두 시설도 없어 사다리를 이용해서 바다와 백사장이 맞닿는 곳에 내린다. 물론 깊이가 무릎 정도라 안전하다. 바지를 걷고 바다를 걸어 사승봉도의 넓은 모래사장에 발을 디뎠다. 썰물 때만 드러나 바닷물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드넓은 모래밭에서 한가롭게 먹이를 찾던 갈매기들이 낯선 인기척에 놀란 듯 하나둘씩 자리를 내어준다. 백사장 뒷산에는 곰솔(해송)과 참나무, 오리나무, 칡덩굴 등이 무성하게 숲을 이룬다. 단풍이 들만도 한데 소나무가 많아서일까 아직도 푸른 기운이 넘쳐난다. 한낮이라도 가을인데 의외로 맨발로 걷는 바닷물과 모래밭은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다. 모래밭 발자국 소리에 놀라 제 집으로 찾아들어간 게와 그 녀석들이 가지고 놀던 조그만 모래 공(?)이 여기저기 빼곡하다. “바다 생태계의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골뱅이가 많아요. 원래는 바다에서 잡히던 것인데 지난해부터는 이곳 백사장으로 올라와요. 저기요 저렇게 조금 솟아오른 작은 구멍 보이죠. 저런 곳에 골뱅이가 있어요.”라고 민경용(38)선장이 일러준다. ‘에이 무슨 골뱅이야’ 반신반의하며 손으로 파보았다. 아니 파는 것이 아니라 살짝 모래를 걷어내자 진짜 골뱅이가 나온다. 참 신기하다. 갯벌에서 여러 가지를 잡아 보았어도 갓난쟁이 주먹만한 골뱅이는 처음이다. 넓은 모래밭에는 ‘물 반 골뱅이 반’이다. 그냥 땅위에 나와 있는 녀석들만 주워도 비닐봉지 하나가 너끈히 채워진다. 경기도 평촌에서 온 아줌마들은 난리다.“어머 자연산 골뱅이야. 오늘 저녁에 안주하면 되겠네.”라며 사승봉도의 아름다움보다 골뱅이 잡는 매력에 ‘푹’빠져버렸다. 서북쪽 모래밭 끝 갯바위 틈을 들척이자 갯고둥과 소라가 잔뜩 들러붙어있고 놀란 달랑게와 방게가 몸을 감춘다. 역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서 그런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두 시간을 돌아다니다 바위 그늘에 앉아 잠시 쉬었다. 파도 소리와 파란 하늘, 적막함이 감도는 섬의 모습에 마치 원시인이 된 기분이다. 사승봉도에는 두 군데 우물이 있어 간단하게 몸을 씻을 수 있다. 정기적으로 배가 다니지 않았는데 올해부터 왕복 1만원을 내면 사승봉도까지 태워주는 통통배가 생겼다. 피서철에는 섬 관리비로 1인당 3000원을 내야 하는데 요즘은 받지 않는다. 만약 텐트를 가지고 무인도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도 있다. # 매력 덩어리 승봉도 승봉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에 속한 4개의 유인도 중 하나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뱃길로 1시간20분,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선 50분 걸린다. 승봉도는 ‘봉황이 나는 모습’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 승봉도에는 80가구 160여명이 선착장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자그마한 섬이다. 느린 걸음으로 2∼3시간이면 섬 한 바퀴를 돌 수 있지만 섬이 갖춰야 할 최적의 조건은 다 갖췄다. 기암괴석과 바다낚시, 해수욕장뿐 아니라 소라따기, 낙지잡기, 바지락 캐기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체험거리가 가득하다. 섬에는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이 없다. 민박집에서 제공하는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데 걸어 다니며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정겨운 인심, 호젓한 마을풍경을 직접 체험하는 맛도 쏠쏠하다. 섬 남쪽 이일레해수욕장은 승봉도의 대표 해변. 폭 40m, 길이 1.3㎞의 아담한 백사장은 경사가 완만하고 썰물 때도 갯벌이 드러나지 않는다. 물이 빠지면 바로 옆 장골해수욕장과 이어져 해안선 산책코스로 제격이고, 해변에서 바라보는 낙조 또한 장관이며 해수욕장 뒤편 해송 숲은 걸으며 사색에 잠기기에 아주 좋다. 선착장에서 5분 거리인 동양콘도 뒤편 모래해변은 바다학습장이다. 물 빠진 갯벌에서 조개를 캐거나 낙지를 잡을 수 있어 도시 아이들에게 ‘딱’이다. 남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부두치는 모래와 자갈, 조개껍데기가 그림처럼 어우러진 곳이며 삼각형 모양의 독특한 목섬은 썰물 때 모래톱으로 연결돼 걸어서 들어가는 체험도 재미나다. 이밖에 구멍으로 연인 사이가 통과하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깃든 남대문 혹은 코끼리바위도 볼 만하다. # 물 반 고기 반인 승봉도 앞바다 승봉도는 바다낚시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곳이다. 이맘때면 씨알 굵은 우럭, 놀래미, 광어 등이 낚싯바늘을 집어넣으면 바로 물고 올라온다.1인당 3만 5000원만 내면 바다에서 4시간 정도 낚시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해준다. 배로 20여분 나가서 금도, 공경도, 사승봉도 앞에서 낚시를 하는데 배에서 회로 먹고 저녁에도 안주를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잡는다. 물론 자연산으로 말이다. 아이들과 재미 삼아 즐기면 손맛도 입맛도 즐길 수 있어 1석2조가 따로 없다. ■ 인천 연안부두~승봉도 쾌속정 70~100분 소요 # 여행정보 승봉도 선창휴게소(032-831-3983,www.isunchang.com)는 사승봉도와 낚시투어를 주인이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깨끗한 민박뿐 아니라 직접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로 끓여주는 매운탕과 회도 일품이다. 또 승봉도에서 인심 좋기로 소문난 일도네민박(032-831-8942,user.chol.com/~jkp1119/)도 추천한다. 좀 나은 숙소를 원한다면 승봉도 선착장 부근에 150실 규모의 동양콘도미니엄(www.dycondo.com,02-2604-6060)을 권한다. 방에서 내려다보는 서해 바다의 풍경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섬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콘도로 동남아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승봉도로 가는 배는 우리고속페리(www.wk.co.kr,032-887-2891~5) 소속 쾌속정 파라다이스(1일 2회)로 1시간10분, 대부해운(www.daebuhw.com,032-887-6669)과 진도운수(www.jindotr.co.kr,032-888-9600) 소속 카페리호(1일 1회)로 1시간40분 걸린다.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도 대부해운(032-886-7813) 소속 카페리호(1일 1회)로 1시간20분쯤 걸린다.
  • B·C형 간염 잘못된 편견

    아직도 B형 간염 등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여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간학회가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간염환자와 함께 일하거나 식사하는데 거부감을 느낀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49.4%,B·C형 간염환자와 함께 식사를 하거나 술잔을 돌리면 간염이 전염된다고 믿는 응답자는 45%나 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응답자의 67.1%는 B·C형 간염환자의 식기는 따로 끓여서 소독해야 한다고 답하는 등 일반인들의 상당수가 간염과 간염환자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 B·C형 간염은 비경구적인 경로, 즉 혈액이나 기타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다. 성관계나 비위생적인 치과기구 사용, 오염된 주사바늘과 침, 면도기, 칫솔의 무분별한 사용으로도 물론 감염될 수 있다. 그러나 함께 식사를 하거나 술잔을 돌리는 등 혈액의 전이가 없는 일상적인 생활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따라서 식기를 따로 끓여서 소독할 필요도 없다. 이밖에도 B·C형 간염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았다. 간염 환자는 모유 수유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자가 전체 응답자의 60.2%나 됐으며, 만성 간염이 간경변이나 간암의 원인이라는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는 응답자는 72.4%나 됐지만 만성 간염의 주 원인인 B형 간염에 대한 예방접종자는 응답자의 57.9%에 불과했다. 조사를 한 대한간학회 이효석 이사장은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환자의 경우 사회의 잘못된 편견으로 차별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고 간염의 예방과 적극적인 치료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이 한권의 책] 내 표정 속에 또다른 내가 있다

    행복한 부부는 퇴근길에 다시 만나 웃음을 주고 받을 때 눈둘레근을 움직이지만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는 이 근육을 쓰지 않는다. 또 우리는 상사의 썰렁한 농담에 예의상 웃어줄 수는 있지만 진짜 웃음은 지을 수 없다. 큰광대근은 의지에 복종하지만 눈둘레근은 그렇지 않기 때문. 그러므로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는 표정이 되는 것이다. ‘얼굴의 심리학’(폴 에크먼 지음, 이민아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은 이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의 표정을 통해 표정 이면의 인간을 들여다보는 인간 읽기 안내서다. 저자는 심리학자이면서 40여년간 표정에 초점을 맞춘 감정을 연구해온 비언어 소통 분야 전문가다. 얼굴의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묘사한 최초의 얼굴지도를 그린 것으로 유명한 그는 세계 각국의 정신과 환자들, 정상인, 성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과민반응, 둔한 반응, 적절한 반응을 보일 때, 진실을 말할 때 등 다양한 상황을 실험하고 있다. FBI,CIA 등 심리와 표정 관련 조언이 필요한 곳에서 자문가로 활동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얼굴은 2개의 근육만으로 300가지 표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3개 근육으로는 4000가지,5개 근육을 달리 조합하면 1만개 이상의 표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저자는 각각의 표정을 만들어내는 근육을 알아내기 위해 자신의 얼굴에 바늘을 꽂고 전기자극을 주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 결과 ‘얼굴 움직임 해독법’이 만들어졌고, 이는 얼굴 움직임을 연구하는 전 세계 수많은 학자들이 이용하고 있을 만큼 독보적인 시스템으로 인정받고 있다. 저자는 표정의 진화론을 주장한 선구자적 인물로 꼽힌다. 표정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며, 나라나 인종에 관계없이 보편적이라는 점을 수많은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고갯짓이나 손짓 등 상징적 몸짓은 문화권별로 다르지만, 표정은 인류초기에 형성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진화는 인간이 표정을 통해 무언가 얻고자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누군가에겐 직접 그의 입을 통해 기분상태를 듣지 않더라도 조심하게 되며, 멀리 맹수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공포 표정을 지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불러올 수 있다. 즉 표정이 훌륭한 의사소통 기구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슬픔, 괴로움, 놀라움, 두려움, 역겨움, 업신여김, 기분 좋은 감정 등 여덟가지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보편적인 감정이자 표정이다. 저자는 이들 각각의 감정에 대해 언제, 왜 일어나는지 설명하고, 표정을 통해 감정들을 읽어내는 법을 소개한다. 책은 또 우리의 감정생활을 보다 향상시키기 위해 감정에 대한 자각능력을 키우라고 권한다. 어떤 감정이 일어났을 때 몸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함으로써 그 변화를 자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감정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행위’라고 표현한다. 어떻게 타인과 우리 자신의 감정을 읽어내 감정생활을 더 윤택하게 할 수 있는지, 우리 자신에 대한 비밀의 열쇠를 엿보는 듯한 느낌이 진지하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오는 책이다.1만 38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60~70년대 ‘국민가수’로 명성 오기택 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60~70년대 ‘국민가수’로 명성 오기택 씨

    아빠가 있다. 늘 곁에서 든든하게 지켜준다. 하지만 어느새 멀어지기 시작했다.1997년 외환위기(IMF)때였다. 고개 숙인 아빠들이 늘어났다. 며칠동안 방황하다 힘없이 돌아오는 아빠들이 많았다. 이무렵 생겨난 동요가 새삼 생각난다. ‘딩동댕 초인종 소리에 얼른 문을 열었더니/그토록 기다리던 아빠가 문 앞에 서 계셨죠/너무나 반가워 웃으며 아빠 하고 불렀는데∼/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시계바늘을 40년 전으로 돌린다.6·25전쟁의 후유증, 배고픔과 가난으로 아빠들은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만큼은 가난을, 무지를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꾹꾹 참고 견뎠다. 한(恨)도 그리 많아 두다리 쭉 펴고 잠을 제대로 자본 날이 얼마였을까. 그런 1966년에, 노래 하나가 툭 튀어 나왔다. ‘이 세상의 부모마음 다같은 마음/아들 딸이 잘 되라고 행복 하라고/마음으로 빌어주는 박영감인데/노랭이라 비웃으며 욕하지 마라/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부라보 부라보 아빠의 인생’ 이 노래는 당시 아빠의 심정을 대변이라도 하듯 전국적으로 급속히 퍼졌다. 이른바 국민가요로 애창됐다. 이심전심, 세월이 지난 IMF때에도 자주 불렸다. 지금도 회갑잔치나 40대 이상의 남성들이 거나하게 술한잔 마시면 단골로 나오는 노래 메뉴 중 하나다. ●해남서 내년부터 ‘오기택 가요제´ 개최 특유의 저음 가수 오기택(64). 분명 한 시대를 풍미했다. 지난 63년이었다. 밤깊은 서울 마포에서 바라본 영등포는 불빛만 아련했다. 은방울자매가 부른 ‘마포종점’의 가사 중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처럼 영등포는 먼 곳이었다. 또 있다. 오죽하면 ‘진등포’였을까. 사람마다 장화를 신고 다녀야 할 정도로 늘 땅이 젖어 있었다. 이럴 때 스무살의 젊은 청년 오씨가 불현듯 나타나 ‘영등포의 밤’을 구성지게 불렀다.‘궂은 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영등포의 밤/내가슴에 안겨오는 사랑의 물결∼/아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한자락 쫙 깔린 바리톤 목소리로 가슴을 후벼 팠다. 당시 영등포 사람들은 거의 ‘애국가’처럼 불렀다. 고단한 민초의 삶을 토해냈고 미래의 꿈과 사랑을 위한 이중주였으니….3년 뒤에는 남궁원·엄앵란 주연으로 같은 제목의 영화가 나왔고 노래를 부른 오씨까지 출연하면서 ‘영등포의 밤’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뿐만 아니다. 오씨는 66년도에만 ‘아빠의 청춘’에 이어 ‘고향무정’‘충청도 아줌마’‘마도로스 박’을 연이어 불러 히트치면서 단숨에 국민가수로 떠올랐다.‘구름도 울고 넘는 저 산아래∼’로 시작되는 ‘고향무정’은 타향살이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진한 향수의 리얼리즘으로 다가갔다. 지금도 명절때 가족끼리 만나면 즐겨 부른다. 또 명사들을 만나 18번이 뭐냐고 물으면 ‘고향무정’을 꼽는 사람이 많다. ‘충청도 아줌마’ 역시 지금의 40대 이상에겐 한두 소절의 가사를 중얼거릴 정도로 친숙해져 있다.‘와도 그만 가도 그만 방랑의 길은 먼데 충청도 아줌마가 한사코 길을 막네∼’ 두번에 걸쳐 10대가수상을 받은 오씨는 그렇게 60∼70년대를 풍미했다. 일본까지 원정갈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가 녹음한 노래만 무려 1000곡이 넘는다. 지금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모든 부와 영예, 인기를 뒤로 하고 외롭게 혼자 재활치료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 노래말처럼 ‘아련한 불빛’과 ‘쓸쓸한 여의도 비행장’을 생각하며 회한에 빠져 있다. 이런 그에게 최근 반가운 소식 두가지가 날아들었다. 첫번째는 전남 해남군에서 내년 10월부터 ‘오기택 가요제’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충청도 아줌마’의 노래비가 곧 세워진다는 것. ●바다낚시 갔다 뇌출혈로 죽을 고비 오씨를 만나기 위해 아파트 문을 노크했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한손으로 벽을 기대며 애써 맞이한다. 오씨는 10년전 6시간의 뇌수술을 받고 깨어나 언어장애와 왼쪽 팔·다리 마비증상이라는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러니까 1996년 12월30일이었다. 낚시광인 그는 제주 추자도로 혼자 낚시를 떠났다.10일간 낚시할 수 있는 야영 준비물을 챙기고 도착한 곳은 상(上)추자의 ‘염섬’이라는 무인도. 이날 오후 50㎝ 크기의 감성돔 3마리를 기분좋게 낚고 상추자 주민들과 새해 첫날을 맞이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내일은 폭풍주의보라는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왔다. 철수 준비를 서둘렀다. 하지만 오기로 돼 있던 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난 31일에도, 그 이튿날에도 배는 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없어 연락할 방법조차 없었다. 1월2일 아침. 폭풍주의보가 해제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배가 곧 오겠지 하며 다시 짐을 꾸렸다. 이때였다. 갑자기 어지러움 증세와 함께 왼쪽 팔·다리의 힘이 쭉 빠지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운이 없게도 바다쪽으로 경사진 낭떠러지 바로 앞이었다. 게다가 솔잎이 바닥에 널려 있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미끄러져 바다에 떨어질 판이었다. 겨우 오른손을 뻗어 옆에 있는 소나무 가지를 잡았다. 설상가상, 팔에 힘이 점점 빠졌다. 바지의 허리띠를 겨우 풀어 오른손을 소나무에다 칭칭 감았다. 캄캄한 밤이 됐다. 배가 고프면 솔잎으로 허기를 채웠다. 입술이 덜덜 떨릴 정도로 진눈깨비의 추위까지 엄습했다. 아무 노래나 마구 불러댔다. 부처님과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몸 전체가 꽁꽁 얼었다. 낚싯배가 온 것은 1월3일 오전 10시였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극적으로 구출된 오씨는 제주경찰청 헬기로 긴급 후송돼 제주 한라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았다.4일 오후에는 대한항공편으로 서울 성모병원으로 옮겨져 뇌수술을 받았다. “뇌출혈이지요. 평소 혈압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했습니다. 해병대에서 고된 훈련을 받았기에 24시간을 버텼다고 생각합니다.” 오씨는 손목의 흉터를 보여준다. 당시 소나무에 감겨진 자국이다. 침이란 침은 다 맞아보고 약이란 약은 다 써봤다고 했다. 독자로 태어나 세살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마저 일찍 작고해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년동안 재활치료하느라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혼을 안 한 후회도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향인 해남에서 먹을 것을 조금씩 보내주는 훈훈한 인정이있었다. 치료비는 잘나가던 시절 벌어놓은 것으로 충당했다. ●날마다 헬스클럽서 걷는 연습 평소 운동으로 단련된 체력과 강한 의지로 언어장애는 약간 극복했지만 노래 부를 정도는 아니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하루에 한번 동네 헬스클럽에 가서 힘겹게 걷는 연습을 하며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 매년 그랬듯이 올겨울에도 쑤셔오는 몸 때문에 태국에 가서 요양할 예정이다. “그때 ‘영등포의 밤’을 불러 영등포 지역의 땅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노래요? 어릴 때부터 잘한다고 했지요. 고복수 선생님이 운영하는 동아예술학원에 들어가면서 가수가 됐습니다.” 오씨에겐 두가지 이력서가 있다. 가수와 골프.80년부터 시작한 골프실력은 88년 제5회 광주CC 챔피언 등 각종 아마추어대회에서 10여차례나 우승을 거머쥐었다. 뭐든지 열심히 해야 한다는 특유의 성미 덕분이다. 나이가 비록 60대 중반이지만 가수로서의 재기의욕도 그만큼 강하다. 노래가 좋아 결혼도 못했다는 그는 잠시 창너머 한강쪽을 바라본다.“정말 아까운 노래들이 많아요. 생전에 팬들에게 보답하는 기회가 꼭 한번 왔으면 좋겠네요.” ■ 오기택이 걸어 온 길 ▲1943년 해남 출생 ▲59년 서울 성동공고 졸업 ▲62년 동아예술학원 2년 수료 ▲61년 제 1회 KBS 주최 직장인 콩쿠르대회 1등입상 ▲63년 ‘영등포의 밤’‘가버린 영아’로 데뷔 ▲65년 해병대 만기제대 ▲67년 제2회 부산문화방송 10대 가수상 수상 ▲75년 한국연예인협회 이사 ▲79년 동협회 가수분과위원장 ▲86∼91년 일간스포츠 초청 연예인 자선골프대회 연속 우승 ▲90년 싱가포르 렉스오픈 아마추어 1위 ▲97년 1월 추자도 인근 무인도에서 낚시 도중 뇌출혈로 쓰러짐 ▲2006년 반야월 가수예술공로상 수상 # 주요 히트곡 ‘아빠의 청춘’‘영등포의 밤’‘고향무정’‘충청도 아줌마’‘찾아온 고향’‘비내리는 판문점’ 등. 현재까지 1000여곡 발표 km@seoul.co.kr
  • 뜨개질 일기

    뜨개질 일기

    글 이해인 / 그림 김점선 자투리 헝겊으로 컵 받침을 만들고 모서리에는 살짝 단추를 달아 멋을 내는 등 손바늘질을 잘하는 후배수녀를 부러워하던 나는 일단 뜨개질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뜨개질이라곤 단순한 모양의 목도리 하나 짤 수 있는 솜씨밖엔 안 되지만 요즘은 아크릴 털실로 일명 ‘친환경 행주’를 날마다 여러 개씩 짜면서 새삼 뜨개질이 주는 기쁨 속에 빠져 지냅니다. 단순한 모양을 짜는 데도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어 그대로 안 하면 제대로 된 모양이 나오질 않아 속상하고 가르쳐준 동료들에게 부끄럽기도 하였지요. 어느 날은 혼자서 하도 애를 쓰다 보니 엄지손가락이 발갛게 부어 있었습니다. “시간도 없는데 시나 열심히 쓰시지요. 뜨개질은 우리가 할 테니…” 하고 옆의 수녀님들이 말리지만 색색의 털실을 감고 풀고 뜨고 하는 동안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워져서 이 일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습니다. 어중간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기도 좋아 가방 속에 넣고 다니며 언제라도 뜨개질을 하고 때로는 기차 안에서 하기도 합니다. 아직은 멋진 기술자가 못 되니 사각형과 원형으로 세 가지 정도의 모양밖엔 뜨질 못하지만 차츰 응용도 해볼 생각입니다. 다른 수녀님들의 것은 자신 있게 바자회 상품으로도 내놓지만 나의 작품은 당분간 팔지 않고 개인 선물용으로만 사용할 거라고 마음먹으니 부담이 적어 좋습니다. 자연스럽게 즐기면서 더 잘할 때까진 아직 시간이 좀 걸릴 테지만 그래도 내가 쓰는 뜨개바늘이 어느새 길이 들어 익숙하고 정겨운 것을 혼자만의 느낌으로 알게 됩니다. 어쩌다 한 코를 빠트리거나 엉뚱한 곳에 넣으면 처음부터 풀어서 다시 짜는 게 좋지 그냥 적당히 넘어가면 반드시 실패작이 되곤 합니다. 우리네 하루하루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뭐, 이 정도쯤이야 괜찮겠지’ 하고 그냥 지나가면 안 될 것입니다. 뜨개질을 할 때 무심코 빠트린 한 코로 전체의 균형이 망가지듯이 우리의 불성실한 행동 하나, 함부로 내뱉는 말 한마디가 삶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망가뜨리기 때문이지요. 뜨개질을 하는 동안 ‘깨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다시 배운 기쁨을 나는 이렇게 노래해봅니다. 처음 배운 솜씨로 / 손이 부르트도록 열심히 아주 열심히 / 뜨개질 하네 정해진 법칙따라 / 깨어서 움직이면 원하는 모양 나오는 게 / 재미있고 신기해 긴 하루가 모자라네 털실을 감는 손에 / 함께 감기는 기쁨으로 웃고 또 웃으면 / 실들도 나를 따라 웃네 잠시 딴생각 하다 / 어긋나면 / 풀어야만 해결됐지 아까워도 처음부터 / 다시 시작해야 했지 나는 이제 / 오늘이란 실을 감아 / 행복을 짜네 빠진 코 찾아 / 다시 시작하듯 잘못한 말 한마디 / 잘못 쓴 시간 한 점 고쳐 짜는 지혜도 배우면서 / 열심히 기도를 짜네 고운 무늬 가득한 시를 짜네 _ 나의 시 ‘뜨개질 일기’에서 월간<샘터>2006.10
  • [김석의 갯바위 통신] 꽝 없는 조과… 밤을 노려라

    [김석의 갯바위 통신] 꽝 없는 조과… 밤을 노려라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바다의 은빛 신사 감성돔도 겨울나기를 준비하느라 통통하게 살을 찌우고 있다. 손맛은 물론, 입맛도 달아지기 시작할 때다. 토실하게 살이 올라가는 감성돔과의 파이팅을 상상만 해도 조사들은 몸이 달아오른다. 문제는 어디로 출조지를 잡아야 귀한 감성돔을 낚아낼 수 있느냐는 것. 당연 조황정보 소식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이 시기 감성돔 낚시는 주로 남해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감성돔은 봄∼여름에 걸쳐 산란을 마치고 가을철인 이 시기에 산란 후유증(?)을 회복하기 위해 왕성한 먹이활동을 하게 된다. 당연 조류가 빠르고 깊은 먼바다보다는 내만 근처에서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눈여겨 봐야 할 곳이 바로 방파제인 것. 방파제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적정수심의 은신처, 적당한 조류흐름, 작은 게와 같은 소형갑각류 등이 감성돔을 불러 들이고, 또 머물게 할 수 있는 요인이 되어서다. 방파제에서는 갯바위 낚시와는 틀리게 채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채비 캐스팅을 멀리 하지도 말아야 한다. 따라서 채비도 간단해야 한다. 방파제 주변 수심은 그리 깊지 않기 때문에 채비 착수소음도 줄이고, 얕은 수심에서 민감한 입질도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찌낚시 채비를 할 경우에는 어신찌가 3B∼0.5호 내외가 무난하다. 원투보다는 입질 예민성에 중점을 둬야 하기 때문에 항아리형의 투박한 것보다는 슬림형을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민물낚시를 했던 낚시인들은 민물찌를 사용해서 좀 더 예민한 입질을 파악할 수도 있다. 방파제에서의 예민한 감성돔의 입질은 때론 어신찌를 약간 흔들어 놓을 정도의 깐죽(?)거리는 입질형태도 있지만, 어신찌를 옆으로 끌고 나가는 형태의 입질도 나오기 때문이다. 이럴 땐 길쭉한 형태의 민물찌가 바다전용 어신찌보다 용이하게 입질을 파악할 수 있다. 감성돔방파제낚시는 주간보다는 야간이 훨씬 나은 조과를 보여준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자. 특히나 주간에 어선들이 많이 들락날락하는 방파제일수록 야간에 높은 조과를 보여준다. 주간에 작업에서 돌아온 어선들에서 나온 작업 부산물을 먹기 위해 주변의 감성돔이 모여 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어선의 작업 부산물이 밑밥이 되어 주는 것이라 해석하면 된다. 방파제 낚시에서 찌낚시 채비로는 원줄 3호내외, 목줄1.5∼2호 정도에 바늘은 감성돔 전용바늘 3∼4호 정도면 무난하다. 미끼는 주간에는 참갯지렁이, 야간에는 참갯지렁이와 크릴을 병행해서 사용하면 된다. 최근 남해안 방파제 곳곳에서 감성돔 사냥(?)소식이 들어오고 있다. 거제도권과 남해 미조권, 그리고 여수권 등지의 방파제에서는 약 30㎝ 전후의 감성돔들이 꽝없는 조과를 보여 주고 있다.
  • 36.5℃의 사랑, 400㎖의 기적

    36.5℃의 사랑, 400㎖의 기적

    ”생명의 나눔, 헌혈” 간호사 김혜란 씨(22세)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교통사고, 화상 등의 사고로 출혈이 심한 환자가 수시로 발생하는 중환자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피가 모자라면 속수무책으로 기다려야 한다. “헌혈은 보험이에요. 언제, 어디서 저에게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잖아요. 제가 헌혈한 피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있다고 믿어요. 또 저도 언젠가 도움을 받을 수 있고요.” 이것이 그가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는 이유다.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하죠… 헌혈 “가족이 수혈을 받는다 생각하시고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환자의 입장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혈액을 받는 거니까요. 최근에 병을 앓았거나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으세요?” 회기 헌혈의 집에서 근무하는 정미옥 씨(39세)는 건강한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문진問診을 한다. 오전 내내 한적하던 ‘회기 헌혈의 집’엔 오후가 되어서야 헌혈자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헌혈등록카드를 작성하고 문진을 마친 헌혈자들 사이에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선글라스와 콧수염, 범상치 않은 용모의 이정완 씨(29세). 록밴드 ‘링크’에서 베이스를 치는 뮤지션이란다. 스튜디오에서 연습을 하다가 달력을 보고 헌혈할 때가 지난 것 같아 이곳을 찾았다. “예전엔 이유 없이 나 자신을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어요.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헌혈을 시작한 거죠. 지금은 습관이 돼서 안 하면 오히려 답답해요.” 대학생 이현웅 씨(25세)는 오늘이 50번째 헌혈을 하는 날이다. 만 16세 생일이 지나자마자 헌혈의 집을 찾았다가 현재까지 등록헌혈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 헌혈은 일석삼조의 일이다. 채혈을 통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며, 여가를 활용한다. 요즘엔 헌혈의 집의 시설이 개선되어 헌혈을 하면서 만화책도 보고 음료수를 마시며 쾌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처음에 왔을 땐 주사 바늘도 두꺼워 보이고, 이거 뭐 호스를 꼽나, 하는 생각에 덜컥 겁도 났어요. 근데 지금은 아주 편해서 놀러 오듯 헌혈하러 와요. 이래서 헌혈은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믿고 맡겨주시면 좋겠어요… 검사, 제제, 공급 회기 헌혈의 집에서 채혈된 피는 혈액 박스에 보관되어 8시간 안에 동부혈액원으로 옮겨진다. 오후 무렵 동부혈액원 검사실은 혈액 샘플 검사가 한창이다. 혈액형 검사, 매독, 에이즈, B형 간염 등 다양한 검사가 이뤄지는데, 혈액의 수명을 고려할 때 늦어도 다음날엔 결과가 나와야 한다. 몇 해 전 수혈사고가 터진 후로는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에, 검사실의 최경진 씨(37세)는 마음고생이 많았다. “잘못한 경우에 처벌을 받기는 하지만 모든 혈액이 그런 것은 아니에요. 잠복기 혈액 검사를 보완하기 위해 핵산증폭검사NAT를 새로 도입했는데, 현행 제도에서는 가장 선진화된 방법이죠. 저희도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믿고 맡겨주시면 좋겠어요.” 혈액 검사와 동시에 오후 4시 반부터 수혈을 위한 적혈구, 백혈병 치료를 위한 혈소판, 혈우병 환자를 위한 신선동결혈장 등으로 혈액을 분리하는 제제製劑 작업이 시작된다. 원심분리기를 통해 분리된 혈액은 공급실 냉장고에서 보관되었다가 다음날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판명되면 병원으로 나간다. 신청한 순서대로 공급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도 있다. 공급실의 송창면 씨(35세)는 먼저 신청한 병원에 양해를 구해 위급한 환자가 발생한 병원에 먼저 보내기도 했다. “혈액이 부족할 땐 참 곤란해요. 한번은 환자의 보호자가 여기까지 찾아와 울며불며 부탁을 하시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혈액을 구해드려야 했어요. 그때 내가 하는 일이 사람의 생명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죠.” 이것이 생명의 온기구나… 수혈 “큰 교통사고가 나서 응급 수술을 할 경우엔 많게는 20~30개(1개 400㎖) 혈액을 써요. 그땐 보호자들이 헌혈자를 찾느라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죠.”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의 한 관계자는 혈액원으로부터 필요한 혈액의 70% 정도만 제공받는 수준이라 항상 혈액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특히 혈액암 환자의 경우 조혈모세포이식을 하더라도 수술 후 2~3일에 한 번씩 혈소판을 맞아야 하는데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다. 힘겨운 투병 과정, 엄청난 치료비와 더불어 혈소판을 구하는 일은 그들이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이다. 김지숙 씨(39세, 가명)는 얼마 전 골수이식을 받은 초등학생 아들의 병실을 지키고 있다. 아이의 생명줄인 혈액을 구하는 고생은 여전하다. “친구들도 두 번은 못 부르겠더라고. 한번은 아픈 아이가 자기 입으로 혈소판 구해달라고 얘기하는데 어찌나 안타깝던지….” 2개월 전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딸을 둔 이미숙 씨(43세)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소용없어요. 피는 공장에서 만들 수 있는 공산품이 아니잖아요. 사람이 움직여 나눌 수밖에 없어요.” 그들은 보호자 대기실에서 시름으로 누워 있다가도 낯선 사람이 찾아오거나 혈소판 얘기만 나오면 벌떡 일어나 애간장을 태운다. 이런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초조한 마음을 이성원 씨(37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골수이식 수술을 받아 이제는 거의 완치된 상태지만 투병 기간의 고통을 떠올리며 백혈병 환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골수를 받아 새 생명을 얻은 그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누구보다 진해졌다. “다른 사람의 피가 몸속으로 들어올 때의 기분은 뭐라고 표현할까요…. 몸이 화해져요. 생명이 들어오고 있구나, 느낄 때면 몸이 찌릿찌릿 놀라 움직이죠. 이것이 생명의 온기구나. 내가 다시 살아나고 있구나!” 우리나라 헌혈자 수는 최근 3년간 2003년 253만 명에서 2005년 227만 명으로 약 10.3%가 줄어들었다. 2005년 기준으로 19만 명의 등록헌혈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나 3만 1천여 명만이 4회 이상 헌혈에 참여했다. 2006년 8월 6일 하루, 전국 2,332명이 헌혈에 참여했다. 적혈구 농축액의 적정 재고량은 약 3만 3천여 개인데, 현재 1만 4천여 개의 재고량을 유지하고 있다. 적십자에서는 전국 16개의 혈액원과 99곳의 헌혈의 집, 107대의 헌혈 차량을 운영하며 헌혈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혈액관리본부 02-3705-3705 서울 중구 남산동 3가 32 | 서울 중앙혈액원 02-6711-0114 서울 강서구 염창동 280-17 | 남부혈액원 02-570-0600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7 | 동부혈액원 02-952-0322~8 서울 노원구 상계6동 764 | 서부혈액원 02-2600-5400 서울 양천구 신월2동 472-1 | 부산혈액원 051-810-9000 부산 부산진구 전포3동 362-5 | 대구 경북혈액원 053-605-5610~18 대구 중구 달성동 147-2 | 인천혈액원 032-815-0631~4 인천 연수구 연수3동 581 | 울산혈액원 052-245-2982~4 울산 중구 성안동 872-5 | 경기혈액원 031-220-8500~7 경기 수원시 권선구 권선1동 1015-6 | 강원혈액원 033-269-1000 강원 춘천시 퇴계동 862-3 | 충북혈액원 043-253-2654~5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15 | 대전 충남혈액원 042-623-2166~8 대전 대덕구 송촌동 294-6 | 전북혈액원 063-270-5800 전북 전주시 완산구 태평동 209-18 | 광주 전남혈액원 062-600-0600 광주 남구 송하동 127-4 | 경남혈액원 055-262-5161~4 경남 창원시 용호동 4-4 | 제주혈액원 064-758-3504~5 제주도 제주시 용담1동 266-1 수혈에 관한 오해와 진실 1. 혈소판, 혈장만 뽑아서 채혈할 수 있다? Yes. ‘헌혈’하면 일반적으로 일정량의 피를 뽑아내는 ‘전혈全血’만 생각하기 쉬운데 그 외에도 ‘성분채혈’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혈장 또는 혈소판 성분을 채혈하는 헌혈을 말한다. 회복이 늦은 적혈구를 되돌려받으므로, 남성에 비해 철분 보유량이 적은 여성도 부담이 없다. 전혈보다 회복이 빨라 2주에 1번 정도 참여할 수 있다. 2. 혈액도 수입한다? Yes. 수혈용 혈액은 국내에서 헌혈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 수입하는 혈액은 의약품 제조용으로 쓰이는 ‘분획分劃용 혈장’이다. 이는 미국, 중국, 스페인 등지에서 수입하며, 화상이나 환자 회복에 사용되는 알부민, B형 감염, 혈우병 치료 등의 의약품 원료로 쓰인다. 3. 헌혈증으로 수혈 비용을 보상받을 수 있다? Yes. 병원에서 수혈받은 환자가 진료비를 계산할 때 헌혈증을 제출하면 일정한 한도 내에서 진료비를 공제받을 수 있다. 전혈 400㎖를 수혈받아 51,891원(수혈 수수료:주사료 외 3개 검사료 포함)을 내야 할 경우, 헌혈증 1매에 대한 보상 한도는 건강보험 적용을 제외한 본인 부담금 20%이므로 10,378원이 된다. 4. 수혈 1순위는 사고로 인한 대량 출혈이다? No. 헌혈 혈액제제 사용량 상위 10개의 질병을 알아보면, ‘급성 백혈병’이 42%로 전체 사용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이어 림프 및 비非급성 백혈병 15%, 각종 암 13.5%, 간 질환 9.5%, 외과 수술 7.5%, 적혈구 질환 6.9%, 기타 질병 3.6%, 위장관 출혈 2% 순이다. 내가 헌혈 부적격자라고? 누구나 한 번쯤 헌혈을 하러 갔다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허탕치고 돌아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쉬움이 채 가시기 전에 드는 당황스러움. ‘내가 헌혈 부적격이라니. 이렇게 건강한데?’ 헌혈을 할 수 없는 몇 가지 사례를 뽑아보았다. 1. 한약을 복용 중인데 이것도 헌혈할 때는 제약사항입니다. 치료를 목적으로 복용한다면 치료 중인 질환이 완치되어야 헌혈이 가능하고요, 단순히 보약 목적이라면 복용 중단 후 1주일 정도 지나 헌혈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윤주 _ 대전 유성구 신성동 2. 치과 치료 중에는 헌혈을 못 한대요. 발치, 스케일링, 치주염, 신경치료 등 구강 내 출혈이 있는 경우 병원균이 피를 타고 들어가 몸의 다른 부위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군요. 진료 후 3일 이상 지나거나 완치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정인숙 _ 서울 관악구 봉천동 3. 대학생이 되고 기분이 좋아 귀를 뚫었거든요. 착한 일까지 하고 싶어 태어나 처음으로 헌혈의 집을 찾았는데 한 달간 헌혈 보류래요. 혈액으로 인한 감염 예방을 위해서라는데. 얼른 상처가 아물었으면 좋겠어요. 장원미 _ 경기 여주시 여주읍 4. 올 1월에 한 달간 인도로 배낭여행을 다녀왔거든요. 전혈 헌혈은 1년 후에야 할 수 있대요. 인도가 말라리아 감염 지역이라는 우려 때문이죠. 만약 감염 예상지에서 한 달 이상 숙박했다면 귀국 후 3년이 지나야 헌혈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이종환 _ 서울 강북구 수유동 믿음의 헌혈, 편리한 수혈 1. 안전성 확보 - 믿음을 줘야 헌혈하러 가지! 우리나라의 헌혈과 수혈 체계는 질적인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여전히 미흡한 편이다. 일부 부적격 혈액의 출고로 인한 감염사고 반복으로 혈액사업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안감은 계속되고 있다. 수혈 사고로 인해 헌혈 참여자까지 줄어들어 자발적인 개인 헌혈보다는 군인, 학생 등의 단체 헌혈이 많은 후진적인 채혈 관행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5년엔 헌혈자 227만 명 중 절반이 넘는 120만 명이 단체 헌혈자였는데, 단체 헌혈의 경우 문진이 형식화되어 감염 위험자의 사전배제가 어렵다. 현재 적십자에서는 등록 헌혈제를 권장하고 헌혈의 집 시설을 개선하며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잠복기 혈액의 유입을 사전 방지하는 철저하고 체계적인 문진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질병관리본부와 적십자사가 함께 혈액유보군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다. 2. 혈소판 논쟁 - 환자가 직접 피를 구하라고요? 지난 7월 26일, 국회에서는 ‘혈소판 성분제제 공급부족 해소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백혈병 환자의 치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혈소판 수혈을 위해 환자 및 보호자가 직접 헌혈자를 구하는 어려움이 반복되고 있기 대문이다. 혈소판이 부족한 것은 근본적으로 헌혈자가 부족하다는 문제 외에도 적십자사와 병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적십자사는 혈액수가가 낮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혈소판 공급을 꺼리고 있다. 병원도 적십자사의 공급이 부족하고, 보존기간이 짧아 미리 확보해놓기 어렵다며 환자에게 직접 혈소판을 구해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사무국장은 “피값을 내는 환자와 보호자가 직접 피까지 구해야 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일이다”라며 환자와 보호자가 투병과 간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적십자사와 병원이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월간<샘터>2006.09
  • [낚시사랑과 함께 월척 樂漁] 충남 공주 명곡지

    [낚시사랑과 함께 월척 樂漁] 충남 공주 명곡지

    멀리 산허리를 휘감은 운해. 그리 넓지 않은 수면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 사이로 아침햇살이 드리워지며 물가의 모습은 한폭의 수채화로 그려져 있었다. 39번 국도를 따라 아산 송악지를 지나 6㎞정도 더 가면 금계령 정상을 넘게 되는데, 이곳부터 공주시 유구읍이다.50여개의 보를 거느리며 철따라 돌붕어의 당찬 손맛을 느낄 수 있어 낚시인들에게 꽤나 알려진 유구천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금계령을 넘어 유구땅에 자리한 명곡리엔 1만평 남짓한 명곡지가 있다. 첩첩산중에 있어 반딧불이의 향연을 보며 낚시를 즐길 수 있다. 그다지 화려하진 않지만, 옛날 어디선가 본듯한 아름다운 곳이다. 지난해부터 이곳을 관리하고 있는 김범태(44)씨는 “토종붕어를 비롯한 향어와 잉어, 백연어 등 대형급 어종이 많다.”며 “20여년전 담수를 시작하면서 방류한 향어와 토종붕어가 찬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로 접어들면서 활발하게 입질하고 있다.”고 전했다. 요즘은 낮기온이 높지 않아 낮 낚시에도 대물을 볼 수 있다. 산속이라 밤낚시 기온이 많이 내려가 방한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필자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여러 곳에서 대물과 파이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붕어 12호 바늘이 견디지 못하고 펴지는 모습도 목격했다. 서울 도봉구 상계동에서 유구천을 찾아왔다가 이야기를 듣고 이른 아침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문성인(50)씨는 “3칸대와 3.2칸 두대의 낚싯대를 펼치고 어분류 떡밥을 사용, 수심 2m권을 공략해 수차례 입질을 보았다.”며 싱글벙글이다. 가을이 되면 명곡지는 송어낚시 시즌을 맞게 된다. 루어·플라이 낚시 마니아들이 자주들러 송어의 손맛에 빠져들곤 하는데, 얼음이 끼는 초겨울까지 발길이 잦아진다. 얼음이 꽁꽁 얼어붙으면 빙어와 송어 그리고 붕어 얼음낚시를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추석을 전후해 연중최고의 조황을 보인다. 주변에 마곡사와 유구천이 있어 가을을 찾아 나서는 낚시여행길을 더욱 즐겁게 한다. 입어료는 2만원(루어·플라이는 1만원). 닭도리탕과 메기매운탕 3만원, 백반은 5000원을 받는다.(016)9555-1209. # 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 서평택나들목→아산→금계령→명곡리이정표 우회전→약 3㎞직진→명곡지 글 사진 덕산 김원기 낚시사랑 편집부장(studozoom@naver.com)
  • [길섶에서] 그리운 금강산/우득정 논설위원

    ‘누구에 주제런∼가 맑고 고운∼산’ 잠결에 목이 말라 눈을 뜬 순간 창 너머로 ‘그리운 금강산’ 노래가 들린다. 머리맡 시계바늘은 새벽 2시30분을 가리킨다. 한잔 걸친 듯 노래가락은 중간중간 이어졌다 끊어진다. 다음날 출근길에 아파트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건너편 동에 홀로 사는 50대 중반 아저씨란다. 낮에는 누구와 마주치기만 해도 먼저 눈길을 피할 정도로 수줍음을 타는데 술만 한잔 들어갔다 하면 아파트 단지 입구부터 집에 다다를 때까지 그리운 금강산을 불러제친다고 했다. 그것도 가을부터 겨울까지. 어느 공휴일 그 아저씨가 산다는 동 앞에 자리를 잡고 감시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 간밤의 숙취가 채 가시지 않은 꾀죄죄한 모습의 50대 남자가 현관 입구에서 나온다. 직감적으로 그 주인공임이 느껴졌다. 거리를 두고 어슬렁거리며 따라가니 놀이터의 그네에 엉덩이를 걸친다. 그러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곤 하늘을 향해 긴 한숨과 함께 연기를 내뿜는다. 슬그머니 다가가자 이유를 안다는 듯 먼저 내뱉는다.“내 집사람이 생전에 무척 좋아했던 노래라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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