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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즈카페 여아 사망사고는 ‘예견된 참사’

    키즈카페 여아 사망사고는 ‘예견된 참사’

    지난 24일 전북 전주의 한 키즈카페에서 놀던 8살 여자 어린이가 숨진 사고는 ‘부처 간 칸막이’로 예견된 참사였다는 지적이 높다. 키즈카페는 2006년쯤 식당과 실내 놀이시설을 합쳐서 생겨난 신생 업종으로, 당국의 방치로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키즈카페에서 아이들이 노는 미끄럼틀, 그네와 같은 놀이기구는 안전행정부, 미니 열차, 바이킹과 같이 동력으로 움직이는 유기기구는 문화체육관광부, 음식물은 보건복지부에서 관련 법으로 관리하고 있다. 키즈카페는 일반 음식점으로 등록된다. 첫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영·유아부터 초등학생이 주로 이용하는 키즈카페에서는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작게는 손, 발가락이 긁히거나 찢어지는 부상부터 얼굴이나 머리를 부딪쳐 수십 바늘을 꿰매는 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정부는 지난해 9~10월 25곳의 키즈카페를 현장점검하고, 사단법인 한국생활안전연합에 키즈카페 안전관리 강화 방안 연구용역을 맡기는 등 키즈카페가 ‘안전 사각지대’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안행부가 문체부, 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연 회의 결과는 여전히 “협의 중”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키즈카페는 현행법 체계에서 복잡하게 나눠 관리하고 있는 것이 맞지만 법 체계를 무시하고 통합적 관리 규정을 마련하다가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있다”며 “놀이시설은 안행부, 유기기구는 문체부, 음식판매는 복지부가 관리하는 것이 전문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정부의 키즈카페 현장점검 결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은 유기기구였다. 키즈카페에 설치되는 유기기구의 인증 절차와 설치 검사의 체계가 없어 이를 강화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사고가 일어난 전주의 키즈카페에서도 아이들이 멈춰 있는 미니 기차를 움직이며 놀다가 여자 어린이가 머리를 기차 천장 모서리에 부딪치면서 과다 출혈로 사망에 이르렀다. 이 어린이가 탄 기차 모서리에는 고무나 실리콘으로 된 보호대가 없었다. 안행부 관계자는 “문체부의 유기기구를 관리하는 법이 40년 이상 내려온 법으로 알고 있다”며 “유기기구는 정부의 인허가가 들어가야 하는 데다 키즈카페는 대부분 자영업자들이 하는데 경영난 등과 겹쳐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려워 문체부도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실내에서 뛰놀지 못하는 어린이를 위한 키즈카페는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가장 큰 키즈카페 프랜차이즈는 가맹점이 55곳이며, 전국에 1000여개의 키즈카페가 성업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환경부가 지난해 실시한 키즈카페 환경안전진단 결과 서울·경기 키즈카페 9곳 가운데 5곳의 도료 및 바닥재에서 납·카드뮴·수은 등의 중금속이 환경안전관리기준을 초과해 검출됐다. 환경부가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키즈카페에 대한 환경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 주영순(새누리당) 의원은 “키즈카페는 ‘부처 간 칸막이’로 나뉜 법에 따라 인허가가 구분되면서 어느 부처에도 정확한 현황 자료가 없다”며 “2009년 환경보건법이 시행되기 전에 개업한 키즈카페는 2018년까지 환경안전관리기준 적용이 유예됐다”고 지적했다. 키즈카페는 아파트 안에서 제대로 뛰놀지 못하는 어린이들과 육아 스트레스에 힘들어하는 부모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8살 여자 어린이를 잃은 유가족은 “애들 노는 데가 그렇게밖에 안 되고 어디 맡길 데도 없어 딸을 보냈는데, 다칠 장소가 아닌 곳에서 숨졌다”며 흐느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키즈카페 첫 사망사고… ‘부처 칸막이’로 예견된 참사였다

    지난 24일 전북 전주의 한 키즈카페에서 놀던 8살 여자 어린이가 숨진 사고는 ‘부처 간 칸막이’로 인해 예견된 참사였다는 지적이 높다. 키즈카페는 2006년쯤 식당과 실내 놀이시설을 합쳐서 생겨난 신생 업종으로, 당국의 방치로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키즈카페에서 아이들이 노는 미끄럼틀, 그네와 같은 놀이기구는 안전행정부, 미니 열차, 바이킹과 같이 동력으로 움직이는 유기기구는 문화체육관광부, 음식물은 보건복지부에서 관련 법으로 관리하고 있다. 키즈카페는 일반 음식점으로 등록된다. 첫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영·유아부터 초등학생이 주로 이용하는 키즈카페에서는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작게는 손, 발가락이 긁히거나 찢어지는 부상부터 얼굴이나 머리를 부딪쳐 수십 바늘을 꿰매는 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정부는 지난해 9~10월 25곳의 키즈카페를 현장점검하고, 사단법인 한국생활안전연합에 키즈카페 안전관리 강화 방안 연구용역을 맡기는 등 키즈카페가 ‘안전 사각지대’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안행부가 문체부, 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연 회의 결과는 여전히 “협의 중”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키즈카페는 현행법 체계에서 복잡하게 나눠 관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법 체계를 무시하고 통합적 관리 규정을 마련하다가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있다”며 “놀이시설은 안행부, 유기기구는 문체부, 음식판매는 복지부가 관리하는 것이 전문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정부의 키즈카페 현장점검 결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은 유기기구였다. 키즈카페에 설치되는 유기기구의 인증 절차와 설치 검사의 체계가 없어 이를 강화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사고가 일어난 전주의 키즈카페에서도 아이들이 멈춰 있는 미니 기차를 움직이며 놀다가 여자 어린이가 머리를 기차 천장 모서리에 부딪치면서 과다 출혈로 사망에 이르렀다. 이 어린이가 탄 기차 모서리에는 고무나 실리콘으로 된 보호대가 없었다. 안행부 관계자는 “문체부의 유기기구를 관리하는 법이 40년 이상 내려온 법으로 알고 있다”며 “유기기구는 정부의 인허가가 들어가야 하는 데다 키즈카페는 대부분 자영업자들이 하는데 경영난 등과 겹쳐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려워 문체부도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실내에서 뛰놀지 못하는 어린이를 위한 키즈카페는 2006년부터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가장 큰 키즈카페 프랜차이즈는 가맹점이 55곳이며, 전국에 1000여개의 키즈카페가 성업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환경부가 지난해 실시한 키즈카페 환경안전진단 결과 서울·경기 키즈카페 9곳 가운데 5곳의 도료 및 바닥재에서 납·카드뮴·수은 등의 중금속이 환경안전관리기준을 초과해 검출됐다. 환경부가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키즈카페에 대한 환경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 주영순(새누리당) 의원은 “키즈카페는 ‘부처 간 칸막이’로 나뉜 법에 따라 인허가가 구분되면서 어느 부처에도 정확한 현황 자료가 없다”며 “2009년 환경보건법이 시행되기 전에 개업한 키즈카페는 2018년까지 환경안전관리기준 적용이 유예됐다”고 지적했다. 키즈카페는 아파트 안에서 제대로 뛰놀지 못하는 어린이들과 육아 스트레스에 힘들어하는 부모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8살 여자 어린이를 잃은 유가족은 “애들 노는 데가 그렇게밖에 안 되고 어디 맡길 데도 없어 딸을 보냈는데, 다칠 장소가 아닌 곳에서 숨졌다”며 흐느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300m 외줄 사투 ‘인도네시아 상어잡이’

    300m 외줄 사투 ‘인도네시아 상어잡이’

    24~25일 오후 10시 45분 방영되는 EBS 극한직업은 ‘인도네시아 상어잡이’편을 방영한다. 상어는 날카로운 이빨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먹잇감을 덮치는 바다의 최강자이자 공포의 대명사. 이런 상어를 낚시줄 하나로 낚아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인도네이사 롬복의 탄중루아르 항구. 롬복은 신혼 여행지로 익숙한 발리에서 35㎞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 발리에 이어 최근 들어 신혼 여행지로 슬금슬금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곳이다. 이 항구에는 배들이 엄청 많은데 거의 대부분 상어잡이 배다. 오랜 세월 명맥을 이어올 때야 생계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진귀한 볼거리라는 이름까지 겹쳐져 항구의 유명세가 날이 갈수록 넓게 퍼지고 있다. 거친 바다와 싸워가며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맨손으로 300m 외줄을 이용해 상어와 맞서 싸워야 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다. 롬복에서 제작진이 만난 이들은 대를 이어 상어잡이에 나선 사람들. 롬복에 당도하자 상어잡이 항구라는 냄새가 여기저기서 물씬 풍긴다. 이른 아침부터 항구에는 40~50㎏에 이르는 상어들을 옮기는 인부들의 손놀림, 발걸음이 분주하다. 이들 틈에 섞여 준비를 갖춘 뒤 드디어 바다로 나서는 상어잡이 부자. 이들은 장장 5시간의 항해 끝에 상어를 잡을 수 있는 바다로 나서건만 그 흔한 지도나 나침반 하나 없다. 35년의 상어잡이 경력, 그리고 그 세월 동안 낚시바늘이 온 몸에다 남긴 이런저런 상처들은 지도나 나침반을 무색게 한다. 바다에 나올 때마다 필사적으로 낚으러 들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기껏 다 잡았다 싶은데 낚시줄이 휘어지면서 상어가 도망가버리기 일쑤다. 보는 사람들에겐 스릴 넘치는 재미지만, 하는 사람들에게 어엿한 생계의 문제. 상어를 잡지 못하면 분위기가 어두워질 수 밖에 없다. 다시 상어 낚시는 시작되고, 마침내 상어가 한 마리 한 마리씩 배에 실리기 시작한다. 마침내 표정이 환해지기 시작한다. 더 먼 바다를 향해 나가는 그들의 뒤를 좇아갔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변호사 예비시험 논란] “서민 마지막 사다리” vs “사교육 과열만 불러”

    [변호사 예비시험 논란] “서민 마지막 사다리” vs “사교육 과열만 불러”

    정치권을 중심으로 변호사 예비시험 제도의 큰 골격이 그려지면서 관련 법안 발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서울지방변호사회 등 변호사 단체도 변호사 예비시험 제도와 관련해 세부 운영 방안을 짜고 있다. 법무부가 입장표명에 신중한 가운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생들은 ‘결사 저지’ 태세를 보이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학계도 로스쿨을 운영하는 한국법학교수회와 로스쿨이 없는 법대를 중심으로 한 대안교수법학회가 충돌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변호사 예비시험 제도는 로스쿨(3년 과정)을 졸업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예비시험 합격 시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이다. 로스쿨 졸업생과 똑같은 자격을 부여한다는 의미다. 변호사 예비시험 법안 발의를 서두르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맞춰 변호사 단체도 시험 문제 내용이나 난이도, 예비시험 통과자 중 변호사 선발 인원 등 구체적인 운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위철환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예비시험 합격자 중 변호사 선발 인원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면서도 문제가 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위 회장은 “기존 로스쿨 정원 2000명 중 일부 정원을 줄이고 그 인원만큼 예비시험 통과자들로 채울지 2000명 외에 별도 선발할지 등이 논의되고 있다”면서 “현재 변호사가 공급 과잉이어서 2000명 중 일부를 줄이고 그만큼을 예비시험 합격자로 선발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예비시험 도입과 관련해 법조계 안팎에서는 ▲사회취약계층 배려 여부 ▲사교육 조장 여부 ▲또 다른 서열화 고착 여부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사회취약계층 배려 여부는 가장 첨예하게 의견이 나뉘고 있다. 로스쿨이 사회고위층이나 부유층 자녀들의 신분고착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 때문이다. 강남의 한 입시학원 강사는 “강남의 소위 부잣집 자녀들은 부모들이 로스쿨을 가라고 해서 대학은 전공 고민 없이 오로지 서울대·고대·연대 등 로스쿨이 있는 서울 주요 대학에 들어가려 한다”면서 “로스쿨이 부유층 자녀들의 사회 진입을 수월하게 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은 “로스쿨은 학비가 연간 평균 2000만원이나 든다”면서 “로스쿨에 가지 못하는 사회취약계층 자녀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변호사 예비시험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 의원은 “미국은 주마다 다르긴 해도 변호사 예비시험 제도가 있다”면서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긴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현윤(연세대 로스쿨 원장) 로스쿨협회 이사장은 “변호사 예비시험 도입 취지는 사회적 약자에게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기회를 마련해 주자는 건데 로스쿨은 이미 특별전형을 통해 매년 입학정원의 5~10%를 사회·경제·신체적 약자로 뽑는 등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면서 “변호사 예비시험은 사회적 약자보다는 강남의 서울대·고대·연대 출신들이 로스쿨을 통하지 않고 바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는 제도로 변질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교육 조장 여부도 뜨거운 감자다. 로스쿨 측은 예비시험이 도입되면 교육을 통한 전문 법조인 양성이 아닌 시험을 통한 법조인 선발로 변질되는 데다 이 시험을 위한 사교육이 과열돼 결국 저소득층의 법률시장 진입 기회는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로스쿨 재학생들은 예비시험이 도입되더라도 예비시험 출신 변호사는 법률시장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서울의 한 로스쿨 재학생은 “1기 로스쿨생들이 배출된 뒤 이미 로펌과 검찰 등에서는 기존 사법시험 출신과 로스쿨 출신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여기에 예비시험까지 도입되면 그들은 법률시장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나승철 서울변회 회장은 “사교육은 현재 로스쿨생들도 받고 있고 예비시험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만은 아니다”라면서 “법조인 서열화에 대한 우려도 결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의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른 문제이지 법률시장에서 출신에 따른 차별은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북학파는 더 지독한 중화주의자?

    북학파는 더 지독한 중화주의자?

    ‘중체서용’(中體西用), ‘동도서기’(東道西器), ‘화혼양재’(和魂洋才)란 일종의 비명이다. 용, 기, 재의 변화에 따라 체, 도, 혼이 따라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동도서기를 실천하기 위해 시속 150㎞ 강속구를 꽂아넣는 류현진을 불러다 그렇게 야구가 좋으면 애써 공 던지는 건 하인이나 시키고 야구의 도를 밝히는 데 정진하라고 충고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중체중용, 동도동기, 화혼화재하자니 버틸 힘이 없고, 서체서용, 서도서기, 양혼양재하자니 자존심이 구겨진다. 중국, 한국, 일본 지식인들의 저 구호가 비명처럼 들리는 이유다. 세월이 흘러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이 예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지금은 거꾸로 작동한다. 과학을 잘하면 잘하는 대로 ‘동도’가 있으니 그 정도 하는 건 식은 죽 먹기고, 과학을 못하면 못하는 대로 자멸적인 기계문명의 대안인 ‘동도’가 있으니 걱정없다. ‘동아시아 과학의 차이’(김영식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는 이 묘한 자기 합리화를 깨뜨린다. 과학이 잘되는 건 한국에도 고유한 과학적 전통 덕분이다. 이를 위해 우리만의 것을 찾아내는 연구가 각광받는다. 하다 못해 남에게 받은 것이라도 한국만의 독창적인 그 무엇으로 재탄생했음을 강조한다. 장기적 제도, 시스템 같은 문제보다 금속활자, 측우기처럼 딱 눈에 띄는 기물 중심의 연구가 이뤄지고, 이 기물들의 제작연대를 명확히 밝히고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는 연구가 박수받는다. 저자는 이를 조선시대 이래 내려온 과학자들의 ‘중인의식’으로 풀어내는데 따끔따끔하다. 동도가 서구 근대 문명의 대안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저자가 딱 한마디로 잘라 버린다. “아무도 역사에서 자신이 보기에 흡족한 몇몇 측면만 선택하거나 그 과정이 일어나기 전에 존재한 초기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수십, 수백년간 쌓여온 문명과 역사라는 것은 ‘아, 이게 잘못됐네’ 깨닫는 순간 Ctrl+Alt+Delete 키를 누르고 재부팅한 뒤 다시 한번 ‘도전!’을 외칠 수 있는 프로그램 오류 같은 게 아니다. 그러니까 전통이 현대를 해결해 주리라 믿는 것은 “매우 순진하고 몰역사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저런 비판지점들을 눈여겨보면 결국 저자의 관심은 한민족의 우수성과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법. 주고받는 과정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거부하고 조절하는가라는 문제다. 그래서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서학중원론’이다. 저자는 서울대 화공과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화학으로, 프린스턴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래서 귀국 뒤에도 서울대 화학과 교수를 하다 동양사학과 교수를 지낸, 그리고 서울대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을 설립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맡은 한국 과학사 1세대다. 이번 책은 정년 퇴임을 앞두고 그간 국제학술지에 영어로 발표한 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해 묶어낸 것이다. 중국과학사 연구자답게 조지프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기본으로 깔고 12세기 중국 성리학과 유럽 스콜라 철학을 비교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예상과 달리 동양사상 자체가 서구식 과학에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주희가 제시한 성리학의 공부 방법론은 격물(格物)이다. 격물은 대상에 대한 집요한 탐구로, 서양 자연과학의 관찰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러니 천문, 역학 등 과학적 관찰에 관련된 부분들은 주저 없이 흡수할 수 있었다. 서용, 서기, 양재 같은 표현이 나올 수 있는 근거다. 그 정도야 가져다 쓰면 된다. 저자는 여기서 흥미로운 아이러니 하나를 지적한다. 유학은 불교와 도교의 무(無), 공(空) 같은 관념을 배격하고 실(實)을 추구했다. 손에도 안 잡히는 추상적 이야기 말고 현실을 똑똑히 보라는 것이다. 반면 서구는 오히려 기독교의 교리 문제 때문에 바늘 끝에서 몇명의 천사가 존재할 수 있느냐 같은 허황된 논의를 벌였다. 그런데 그 때문에 서구에서는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과학이 발달한다. 동양에서는 격물 때문에 서양과학에 적대적이지 않았지만, 동시에 격물 때문에 서양과학 같은 것이 나올 수 없었다는 얘기다. 서학중원론은 이 아이러니에 기댄다. 서학이라는 것이 예전 중화문명 황금기에 잃어버린 것이라는 얘기다. 그게 서양 오랑캐에게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온게 서학이다. 심지어는 공자가 오랑캐에게도 배웠다는 좌전의 기록까지 끌어대 서양 오랑캐에게 배운다는 것을 정당화한다. 유학자들이란, 전거를 찾아 논리를 전개하는 데 천재적인 인물들 아니던가. 청나라의 강희제는 아예 서학중원론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고대 중국이 잃어버린 과학을 청 황제가 되찾아 왔으니 만주족 청 황실이 고대 중국 성인들의 후계자라는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 북학파에 대한 재평가 문제로 이어진다. 우리 입장에서야 실학, 그것도 북학파라면 만주 오랑캐와 서양 오랑캐라도 배울 것은 배우자는, 굉장히 개방적이고 실용적이고 개혁적이며 근대지향적인 운동으로 생각하려 든다. 그런데 저자의 입장에서는 결국 북학파도 서학중원론의 한 지류에 ‘불과’한 것이 된다. ‘열하일기’를 질주와 탈주의 프랑스 철학 버전으로 해석한 것이 인기 끌면서 연암 박지원은 재기발랄한 개혁적 선비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지독하게 보수적인 노론 중화주의자에 불과했고, 서얼 출신이라 신분제에 대해 굉장히 개혁적이었던 초정 박제가 역시 기본적으로 당괴(唐魁·중국 풍습에 미친 사람)였다는, 아주 박한 평가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또 한명은 담헌 홍대용인데 이 부분은 박희병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쓴 ‘범애와 평등’(돌베개 펴냄)과 서로 맞춰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김영식 교수는 과학사의 입장에서 담헌 역시 중국을 통해 서학을 수용한 여러 학자 가운데 한명으로 간주한다. 연암이나 초정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쪽이다. 이에 대해 박희병 교수는 담헌이 서학뿐 아니라 정통 성리학, 양명학에다 장자, 묵자까지 광범위하게 수용해 만년의 ‘의산문답’에서는 거의 독자적인 사상을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한다. 박 교수는 이 과정에서 담헌에 대한 오독이 심하고, 특히 김영식 같은 과학사 연구자들이 담헌을 너무 낮춰본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양쪽을 함께 읽어볼 만한 이유다. 1만 7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리모컨 누르면 행복감 충만… 뇌과학 신기원 열리나

    리모컨 누르면 행복감 충만… 뇌과학 신기원 열리나

    영국 소설가인 올더스 헉슬리의 1932년 책 ‘멋진 신세계’에는 먹으면 행복해지는 약 ‘소마’가 보편화된 2540년의 미래가 그려진다. 소마는 1988년 화이자의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이 등장하면서 예상보다 훨씬 빨리 현실화됐다. 프로작의 기본 원리는 우울증 환자의 뇌 속에서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 물질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뇌에 전자칩을 심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 ‘도파민’을 비롯한 신경물질들을 자유자재로 분비하도록 원격 조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우울증이나 알츠하이머, 간질 등 각종 뇌질환 치료는 물론 뇌과학 분야에서도 획기적인 계기로 평가된다. 김태일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와 미 워싱턴대, 일리노이대 공동연구팀은 “쥐의 뇌에 5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1m) 크기의 전자칩을 심은 뒤 원격 자극을 가해 도파민을 분비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11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세계적 과학저널 ‘사이언스’ 12일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가로, 세로 길이가 바늘구멍보다 작은 전자칩을 개발, 그 안에 온도센서, LED 광센서, 뇌파센서 등을 탑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칩은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반응을 칩과 연결된 센서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자극도 가할 수 있다. 휘어지는 성질을 가져 장기나 조직에 손상을 주지 않으며 이식도 가능하다. 연구팀은 쥐의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는 곳을 찾아 이 전자칩을 이식했다. 이어 전자칩에 무선으로 신호를 보내자 빛이 발생하면서 뇌에 자극이 가해져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을 확인했다. 주변 환경이 아니라 외부의 조종에 따라 쥐가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연구팀이 쥐를 용기에 넣고 도파민이 분비되도록 조종하자 쥐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일정한 장소에만 머물렀다. 김 교수는 “분비된 도파민이 쥐에게 행복감을 주기 때문에 그 자리에 계속 있으려는 것”이라며 “전자칩을 이식한 쥐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뿐 아니라 이식으로 인한 행동 이상이나 정신불안 증세 등 어떤 부작용도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이언스는 이 연구가 뇌과학 연구 및 뇌질환 치료에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 전자칩을 사람에게 이식하면 복잡한 기계나 뇌전도 기구 없이도 뇌파를 측정하고, 뇌질환을 진단하는 것은 물론 자극을 통해 뇌질환까지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 교수는 “인체 내의 신호를 인공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뇌뿐 아니라 모든 인체장기와 신진대사, 로봇 등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신약 시험 내몰린 청년 백수

    이우람(29·가명)씨의 팔에는 주삿바늘이 꽂혀 있다. 간호사는 매 시간 채혈을 해 갔다. 멍하니 병상에 누워 있던 30명의 남자들은 그때마다 익숙한 듯 팔을 내밀었다. 지난달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병원에서 있었던 생물학적 동등성(생동성) 시험 현장이다. 생동성 시험은 제약회사들이 흔히 ‘제네릭’이라 불리는 복제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받기 전에 실시하는 일종의 생체 실험이다. 이씨는 무릎 담요를 덮고 귀마개를 꽂은 채 토익 책을 폈다. 주위 몇몇도 대기업 직무적성검사 문제집을 꺼내 들었다. 이씨는 서글픔과 안도감이 뒤섞인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2004년 최고 명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이씨의 집안은 부유했다. 행정고시를 준비한다고 분주하게 오가는 사이 2년이 흘렀다. 거듭된 낙방에 그는 취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사람을 구하는 회사는 드물었다. 그나마도 낮은 학점과 영어 점수 탓인지 서류전형에서부터 막혔다. 점점 조급해졌다. 가정도 삐걱거렸다. 아버지는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했다. 4살 터울 여동생도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면서부터는 집안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한명도 없게 됐다. 생동성 시험 아르바이트에 대해 들은 건 그즈음이었다. 편하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시판 중인 오리지널 약과 동일한 성분으로 만든 제네릭을 투약해 두 제제가 몸에서 흡수되는 속도와 양(생체 이용률)이 같은지를 확인하는 시험이었다. 약을 먹고 피를 몇 번 뽑는다고 했다. 몸으로 돈을 벌겠다고 결심한 건 지난해 10월이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생동성’을 치자 수십개의 일자리가 쏟아졌다. 30만~100만원으로 수당도 많았다. 몸이 상할까 봐 찜찜해했던 감정도 잠시였다. 비슷한 또래의 남자 30명이 병원에 모여 함께 고혈압 치료제를 먹고 시간마다 피를 뽑았다. 스마트폰을 붙잡고 시간을 보내거나 자기소개서를 쓰고 토익 공부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씨는 이틀 동안 10차례 피를 뽑고 35만원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달 두 번째로 또 약을 먹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생동성 시험 기관은 전국적으로 40곳이 있다. 약의 부작용 등을 알아보려는 제약회사나 의료기관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생동성 시험 승인 건수는 201건이다. 생동성 시험 한 건당 24~50명이 피험자로 참여하는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에만 5000~1만명 정도가 참여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신체 건강하고 3개월간 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사람만 지원할 수 있어 피험자는 대부분 20대 남자다. 취업 전쟁에 지친 이씨는 희미하게 웃었다. “나이 서른 먹고 부모님한테 손 벌릴 수는 없잖아요. 몸에 별로 나쁘지 않대요. 어디 가서 하루에 35만원을 벌겠어요. 먹고 자고 피만 뽑으면 되는 건데…. 사람들이 말하는 ‘마루타’ 그런 거 아니에요. 규정상 3개월에 딱 한 번밖에 못 해서 오히려 아쉬운걸요.”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400개 낚싯바늘로 잡는 흑산도 홍어

    400개 낚싯바늘로 잡는 흑산도 홍어

    대한민국 최대 홍어 어장 흑산도. EBS 극한직업은 흑산도에서 벌어지는 홍어잡이 사투 현장을 3~4일 오후 10시 45분 생생하게 전달한다. 목포항에서 92.7㎞ 떨어진 흑산도에서는 모두 7척의 배가 홍어잡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흑산도 홍어가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다. 흑산도 인근 해역은 수심 80m 이상으로 깊고 뻘이 많아 홍어 서식과 산란으로는 최적지로 꼽힌다. 어획량이 확 줄어들고 있는 추세였으나 최근 중국 불법어선 집중 단속으로 어획량이 다시 늘고 있는 추세다. 거기다 흑산도 어부들은 홍어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미끼를 쓰지 않고 오로지 낚싯바늘로만 잡는 주낙 방법을 쓴다. 바퀴당 400개나 되는 날카로운 바늘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주낙을 끌어올리는 작업은 조금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다. 제작진은 홍어잡이 배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인 선원으로만 구성된 영진호를 따라나섰다. 30년차 베테랑 선장에서부터 4개월 된 초보 선원까지, 모두 5명의 선원은 매번 같은 마음으로 조업을 준비한다. 만선의 꿈을 안고 영진호가 5시간을 달려나간 끝에 첫 조업을 시작한다. 투망 작업 뒤엔 이전 조업 때 내려놓은 위치에 놓이도록 양망 작업을 시작한다. 쉴 새 없는 강행군에 선원들은 지쳐 가는데, 그 와중에 어망이 잘리는 돌발사태가 벌어진다. 설상가상으로 바다가 거세지기 시작하는데…. 거기다 고생 끝에 끌어올린 주낙에는 홍어가 보이질 않는다. 주로 끌려 올라온 것은 이런저런 쓰레기들. 선원들로서는 힘이 쭉 빠질 만한 일이다. 30년차 베테랑 선장마저도 얼굴에서 웃음기가 슬슬 사라지기 시작한다. 제대로 건진 게 없으니 작업은 또 이어진다. 2시간 쪽잠을 잔 뒤 이어지는 작업들. 점점 무거워지는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것은 역시 바늘에 걸려 줄줄 올라오는 홍어들. 마침내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신약 실험 내몰린 청년 백수

    이우람(가명·29)씨의 팔에는 주삿바늘이 꽂혀 있다. 간호사는 매 시간 채혈을 해 갔다. 멍하니 병상에 누워 있던 30명의 남자들은 그때마다 익숙한 듯 팔을 내밀었다. 지난달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병원에서 있었던 생물학적 동등성(생동성) 시험 현장이다. 생동성 시험은 제약회사들이 흔히 ‘제네릭’이라 불리는 복제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받기 전에 실시하는 일종의 생체 실험이다. 이씨는 무릎 담요를 덮고 귀마개를 꽂은 채 토익 책을 폈다. 주위 몇몇도 대기업 직무적성검사 문제집을 꺼내 들었다. 이씨는 서글픔과 안도감이 뒤섞인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2004년 최고 명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이씨의 집안은 부유했다. 행정고시를 준비한다고 분주하게 오가는 사이 2년이 흘렀다. 거듭된 낙방에 그는 취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사람을 구하는 회사는 드물었다. 그나마도 낮은 학점과 영어 점수 탓인지 서류전형에서부터 막혔다. 점점 조급해졌다. 가정도 삐걱거렸다. 아버지는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했다. 4살 터울 여동생도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면서부터는 집안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한명도 없게 됐다. 생동성 시험 아르바이트를 들은 건 그즈음이었다. 편하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시판 중인 오리지널 약과 동일한 성분으로 만든 제네릭을 투약해 두 제제가 몸에서 흡수되는 속도와 양(생체 이용률)이 같은지를 확인하는 시험이었다. 약을 먹고 피를 몇 번 뽑는다고 했다. 몸으로 돈을 벌겠다고 결심한 건 지난해 10월이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생동성’을 치자 수십개의 일자리가 쏟아졌다. 30만~100만원으로 수당도 많았다. 몸이 상할까 봐 찜찜해했던 감정도 잠시였다. 비슷한 또래의 남자 30명이 병원에 모여 함께 고혈압 치료제를 먹고 시간마다 피를 뽑았다. 스마트폰을 붙잡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 중엔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토익 공부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씨는 이틀 동안 10차례 피를 뽑고 35만원을 챙겼다. 그리고 지난달 두 번째로 또 약을 먹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생동성 시험 기관은 전국적으로 40곳이 있다. 약의 부작용 등을 알아보려는 제약회사나 의료기관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생동성 시험 승인 건수는 201건이다. 생동성 시험 한 건당 24~50명이 피험자로 참여하는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에만 5000~1만명 정도가 참여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신체 건강하고 3개월간 약물을 복용하지 않은 사람만 지원할 수 있어 피험자는 대부분 20대 남자다. 취업 전쟁에 지친 이씨는 희미하게 웃었다. “나이 서른 먹고 부모님한테 손 벌릴 수는 없잖아요. 몸에 별로 나쁘지 않대요. 어디 가서 하루에 35만원을 벌겠어요. 먹고 자고 피만 뽑으면 되는 건데…. 사람들이 말하는 ‘마루타’ 그런 거 아니에요. 규정상 3개월에 딱 한 번밖에 못 해서 오히려 아쉬운걸요.”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좁아진 검사장 門… 연수원 19기 ‘특수통’ 격돌

    ‘검찰의 꽃’으로 통하는 검사장 승진을 앞두고 사법연수원 19기들의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19기는 역대 어느 기수보다 쟁쟁한 실력파 검사들이 많아 ‘별들의 전쟁’에 비유되고 있다. 더구나 19기는 박근혜 대통령의 ‘검사장(차관급) 감축’ 공약의 직격탄을 맞은 기수다. 15기들의 용퇴로 검사장 승진 물꼬는 상대적으로 일찍 트였지만 바늘구멍을 뚫으려는 물밑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15기인 최교일(51) 서울중앙지검장, 김홍일(57) 부산고검장, 이창세(51)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송해은(54) 사법연수원 부원장에 이어 동기인 한명관(54) 서울동부지검장 직무대리, 주철현(54) 대검 강력부장도 2일 사의를 밝혔다. 이로써 15기에는 고검장급인 길태기(55) 전 법무부 차관, 소병철(55) 대구고검장만 남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향후 용퇴할 간부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여 검사장 자리는 13개 정도가 날 것”이라면서 “박 대통령 공약에 따라 지방 차장검사(검사장급) 자리 4개를 줄여도 9명은 검사장으로 승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검찰 안팎에서는 19기에서 6명, 20기에서 2~3명이 검사장으로 승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9기에서는 김강욱(55)·김수창(51)·우병우(46)·조은석(48)·지익상(49)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윤갑근(49) 성남지청장, 정상환(49) 부천지청장 등 ‘특수통’들이 대거 승진 후보의 물망에 올라 있다. ‘국제·기획통’인 황철규(49) 안산지청장과 ‘기획통’인 봉욱(48) 법무부 인권국장, 검찰의 주요 보직 인사에서 줄곧 ‘여성 1호’ 기록을 세워 온 조희진(51) 서울고검 검사도 유력한 후보다. 20기에서는 서울중앙지검 이금로(48) 2차장검사와 전현준(48) 3차장검사, 이명만(49)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 등 ‘특수·공안통’들이 후보군을 형성하고 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스타 드라마 작가, 다시 ‘흥행 보증수표’

    스타 드라마 작가, 다시 ‘흥행 보증수표’

    최근 종영한 종합편성채널 JTBC의 드라마 ‘무자식상팔자’가 흥행몰이에 성공하면서 스타 드라마 작가들의 몸값이 다시 치솟고 있다. ‘김수현 사단’이란 조어까지 만들어낸 김수현 작가가 회당 1억원 가까운 원고료를 챙긴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일부 스타 작가에 한정된 얘기라고 하지만, 인기 작가는 흥행의 확실한 보증수표가 되기 때문에 이들을 잡기 위한 원고료 상승도 불가피하다. 방송사들은 외주제작사가 만든 드라마의 편성 여부를 결정할 때 스타 작가의 집필 여부를 가장 중요하게 꼽는다. 열세에 놓인 종편의 드라마가 성공하면서, ‘스타 PD는 어려워도 스타 작가는 통한다’는 속설까지 만들어냈다. 영화는 감독의 작품이지만, TV드라마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게 방송계의 정설이다. 방송계에 따르면 드라마 작가의 수입은 단막극, 미니시리즈, 주말극 등 드라마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여기에 작가의 지명도가 영향을 끼친다. 회당 70만원부터 1억원까지 다양하다는 얘기다. 통상 작가들의 원고료는 한국방송작가협회와 KBS 등 지상파 방송 3사가 협의해 만든 ‘지급 기준표’가 최저 수준을 결정한다. 지난해 방송작가협회가 공개한 지급 기준표에선 10분당 일일극이 24만 8950원, 주간극 30만 5080원, 단막극 42만 2820원, 코미디극 48만 3470원 등으로 나타났다. 일일극을 집필하는 작가가 한 달 평균 받는 원고료는 1740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일반 샐러리맨에 비해선 고소득으로 비쳐진다. 한 드라마 작가는 “연간 방영되는 드라마 편수가 제한된 데다, 작가는 공백기도 길다”고 반박했다. 게다가 지상파 방송에 얼굴을 내밀려면 최소 10년 이상 무명 생활을 거쳐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방송작가 수는 2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400여명에 불과하다. 작가들이 지급기준표에 따라 원고료를 지급받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강제성이 없어서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작가가 이를 기준으로 논의해 결정한다. 물론 스타 작가들은 지급기준표를 완전히 무시한 원고료를 받는다. 회당 1억원이라는 김수현을 비롯해 임성한, 김은숙, 최완규, 문영남, 송지나 작가 역시 원고료가 회당 3000만~5000만원 선으로 알려졌다. 반면 방송작가 10명 중 3명꼴로 1년에 1000만원 벌기가 힘들다. 절반가량은 2000만원 미만의 연봉을 받는다. 막내 작가로 시작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드라마를 집필하는 것도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방송작가협회 관계자는 “드라마 집필은 고혈을 짜내는 작업과 다를 바 없지만 작가의 현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녹록지 않다”고 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②喜 소금꽃이 핀 호수에서 수영을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②喜 소금꽃이 핀 호수에서 수영을

    ●喜 소금꽃이 핀 호수에서 수영을 Dead Sea 사해 바다는 죽어 소금을 남긴다. 일종의 유언장이다. 소금의 탄생기는 언제 들어도 신비로웠다. 대개 바다의 품을 떠난 물은 저수지, 증발지, 함수창고를 유랑하며 한 줌의 소금이 된다. 그러나 사해Dead Sea 소금은 강한 햇볕과 바람만으로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사실 사해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인데, 염도는 일반 해수보다 7~10배가량 더 높다. 어디 염도만 높을까. 피부에 좋은 미네랄도 일반 해수보다 수십배나 많다. 사해 물질로 만든 화장품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하바AHAVA’는 국내에서도 시판 중인 화장품 브랜드 로 이스라엘에선 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사해의 명성을 일찍이 들은 유럽인은 이곳에서 몇 날 며칠을 ‘잘 먹고 잘 쉬다 간다’고 했다. 이스라엘 접경지대인 이웃 나라 요르단에서도 사해가 펼쳐진다. 이스라엘에서 사해를 즐기려면 휴양단지인 엔보켁En Boqeq이 좋다. 이곳엔 르 메르디앙, 로열 리모님, 레오나르도, 크라운 플라자 등 이름난 숙소가 사해를 굽어보고 있다. 동남아 풀 빌라 못지않은 사해 리조트에 들어서자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었다. 특히 르 메르디앙은 사해의 물을 이용한 스파를 운영 중이다. 굳이 리조트 밖으로 사해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실내에서 사해를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이 멀리까지 와서 진짜배기 사해를 놓칠 수 있나.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후 가운 하나 걸치고 리조트에서 10분 거리인 사해까지 나왔다. 모래가 펼쳐진 틈 사이사이로 소금 꽃이 만발했다. 조심스레 만져 보니 까끌까끌하면서도 끈적끈적하다. 본격적으로 물에 들어가면 몸이 공중부양 하는 것처럼 부웅 떠오른다. 무중력의 우주공간과 다를 바가 없다. 몸이 따끔따끔하다면 상처를 비집고 사해의 성분이 침투했다는 증거다. 잠시 몸을 담그고 나왔을 뿐인데 전신 마사지를 한 것처럼 몸이 매끈해졌다. 그러나 사해와는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너무 오래 물속에 들어가 있으면 오히려 피부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제아무리 ‘수영 황제’ 펠프스가 울고 갈 만한 수영 실력을 뽐낸다고 한들, 헤엄을 쳐서도 안 된다. 사해는 성분도 성분이지만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유명하다. 해발 -417m. 사해는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그냥 놔 주지 않았다. 고도차 때문에 귀가 멍해졌으며 소금 꽃의 향기는 오래도록 코끝을 맴돌았다. 1 생물체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염도가 높은 사해에선 몸이 둥둥 뜬다. 물 위에 떠서 신문을 펼친 여행자의 표정이 즐겁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사해 즐기기 당일 관광 프로그램, 숙소 등 사해를 야무지게 즐길 수 있는 고급 정보를 현지 홈페이지에서 찾아보자. 사해 주변에선 산악 바이크 대회Festival of Mountain Bikes Race, 엔게디 국제 세미 마라톤 대회The Ein Gedi International Semi-marathon Race 등 다양한 스포츠 축제도 열리니 참고할 것. www.deadsea.co.il 네게브 사막은 이스라엘 국토의 50~60%를 차지한다. 러시아에서 왔다는 어느 배낭 여행객은 바이크로 사막을 누비는 중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척박한 땅에서 받은 후한 대접 Desert사막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 우물이 숨어 있어서 그래.” 황량한 그곳엔 어린왕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이스라엘 국토의 50~60%가 바로 사막이다. 사막을 떠올리면 목이 칼칼해지고 머리가 띵해진다. 이 척박한 토양에도 꽃은 핀다. 이스라엘 민족은 선인장을 닮았다. 강한 조상을 둔 까닭인지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는 네팔이나 남미다. 남자도 여자도 군대를 제대하면 무전여행을 하며 세상을 배운단다. 유대인은 사막을 일궈 정착하는 삶을 택했지만 유목민인 베두인은 한곳에 뿌리내리는 것을 불명예로 여긴다. 이스라엘, 요르단 등 중동의 사막을 떠돌며 사는 그들을 꼭 만나고 싶었다. ‘베두’란 말 자체도 아랍어로 직역하면 ‘사막’이다. 일단 베두인의 무대인 사막을 지프차를 타고 달렸다. 황토 빛깔 바람을 일으키며 사륜구동 자동차가 앞으로 나가자, 아웃도어 광고의 한 장면 같은 절경이 펼쳐졌다. 너른 사막의 한가운데는 난데없이 작은 폭포가 보였다. 휴가 나온 군인들이 그곳에서 아담과 이브처럼 부끄러움도 잊고 첨벙첨벙 물놀이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기다란 뿔이 매력적인 아이벡스도 예고 없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네게브 지프 투어는 아프리카 탐방만큼이나 이색적이다. 지프 투어의 막바지, 베두인 숙소를 찾아갔다. 베두인의 손님맞이는 극진하기로 유명하다. 차와 양고기 요리 등을 넘치도록 준비해 손님이 두 손을 들 때까지 대접한다는 얘기를 익히 들었다. 접시를 비우면 금방 또 음식을 내어 오기 때문에 소량의 음식을 일부러 남기는 게 좋다. 없는 살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방인을 거두는 그들은 ‘자신이 누군가를 거두면 언젠가 자신도 남에게 도움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단다. 베두인의 공동체 의식은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현대인이 배워야 할 미덕으로 보였다. 2 사막을 이리저리 떠도는 베두인을 만나면 낙타를 탈 수 있다 2 지프 투어 중 불쑥 나타난 아이벡스. 뿔이 매력적이다 3 경상남북도 크기의 이스라엘이 거대한 사막을 품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지프 투어 & 베두인 체험 네게브 사막 일대를 지프차로 달리고 싶다면 현지 여행사를 통해 미리 예약해야 한다. 비용은 인원수, 코스,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5~6인이 2~3시간을 탑승할 때를 기준으로 보면, 1인당 약 39달러가량 든다. 지프투어를 예약하면서 베두인 식사 체험을 동시에 예약할 수도 있으니 참조할 것. 지프 투어 예약 www.negevjeeptours.com, www.negevjeep.com/english 베두인 체험 예약 www.hanokdim.com 예술가의 마을에서 타박타박 Mediterranean Sea지중해 경상남북도 크기의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다. 몸집은 작지만 오밀조밀 없는 게 없다. 사해와 사막만 봐도 그랬다. 자그마한 몸으로 어찌 저리 위대한 것을 끌어안고 사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지중해를 마주쳤을 땐, 사해나 사막을 만났을 때보다 몇 배는 충격이 더 컸다. 대형 쇼핑센터, 유명 호텔, 화려한 레스토랑과 카페 등…. 이스라엘을 향해 던졌던 선입견이 티 없이 맑고 푸른 지중해에 부딪혀 흩어졌다. 이렇게 따뜻해도 이렇게 다정해도 좋을까 싶을 정도로 지중해변과 맞닿은 이스라엘은 ‘평화’ 그 자체였다. 지중해의 물살은 봄의 언덕으로 불리는 텔아비브Tel Aviv, 로마 시대의 원형 극장이 보존된 카이사레아Caesarea, 무역의 중심지 하이파Haifa, 십자군 시대를 재현하는 아코Akko 등을 타고서 분주히 흘렀다. 압권은 벤구리온 국제공항에서 20여 분이면 당도하는 텔아비브다. 텔아비브는 항구도시라는 신분을 과시했다. 정통성을 지키는 데 급급했던 여타의 도시와 달리 텔아비브는 외지인이 몰고 오는 낯선 기운을 흡수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이 임시수도 역할을 한 것처럼 텔아비브도 잦은 싸움에 지친 예루살렘을 대신해 제2의 도시로 성장했다. 디아스포라를 겪은 유대인이 하나둘씩 텔아비브로 밀려왔으며 1948년, 마침내 이곳에서 초대 수상 벤 구리온이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국가를 팔레스타인에 세울 것을 선언한다”고 낭독하기에 이른다. 정신없이 돌아가던 텔아비브의 시곗바늘이 네베쩨덱Neve Tzedek에선 느릿느릿 움직였다. 유럽의 아기자기한 소도시를 닮은 네베쩨덱은 빛과 색을 중시한 인상파 미술작품과 같다. 세계 각지를 떠돌다 돌아온 유대인의 영혼이 깃든 그곳엔 파스텔톤의 집, 히피족이 장난친 것만 같은 거리 벽화가 알록달록하게 펼쳐졌다. 네브쩨덱만큼이나 예술가의 기운이 충만한 곳은 ‘욥바’다. 욥바의 애칭은 올드 자파Old Jaffa. 텔아비브 해안가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욥바의 갤러리들은 하나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따랐다. 그중에서도 욥바의 랜드마크인 베드로의 교회를 따라 내려가다 마주친 일리아나 구어 박물관Ilana Goor Museum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박물관 옥상에 서면 욥바 일대가 한 장의 파노라마 사진이 되어 돌아온다. 박물관을 채우고 있던 다소 난해한 미술작품들은 알면 알수록 더 알쏭달쏭해지는 이스라엘과 통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포토 갤러리] 숨가쁜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파는 노점

    [포토 갤러리] 숨가쁜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파는 노점

    길거리 카세트테이프 판매대 앞에만 서면 최신 가요의 판도를 알 수 있는 때가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길보드 차트’라고 불렀다. 앞면에 이어 뒷면을 자동 재생하는 ‘오토리버스’ 기능에 환호하고, 데크가 2개인 ‘더블 데크’ 플레이어에 감탄하던 때도 있었다. 이젠 MP3와 같은 디지털 음원에 밀려 집안 어디선가 먼지만 쌓여 가는 카세트테이프. 세상에 나온 지 50년이 된 카세트테이프는 그렇게 잊히고 있다. 15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카세트테이프 노점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봤다. 아주 잠시였지만 기자의 시곗바늘은 20년 전으로 돌아갔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길이 115cm…세계서 가장 큰 농어 잡았다

    길이 115cm…세계서 가장 큰 농어 잡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줄무늬 농어가 잡혀 화제다.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앨라배마주(州)에 있는 블랙워리어강에서 무게 70파운드(약 31.75kg)짜리 줄무늬 농어가 잡혔다고 지역매체 에이엘(AL)닷컴이 1일 보도했다. 이 물고기를 잡은 주인공은 현지 도라(Dora)에 거주하고 있는 제임스 브램레트(65). 그는 당시 아내의 권유로 낚시를 나갔다가 이 같은 행운을 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낚시 명당으로 알려진 고거스 화력발전소 부근에서 낚시했으며 이 물고기가 바늘에 걸린 다음에는 약 20분간 씨름한 끝에야 낚아올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앨라배마주 천연자원보전부 관계자들과 어류생물학자의 검사 결과, 그 물고기는 길이 45.5인치(약 115.57cm), 둘레 37.75인치(약 95.88cm)며, 무게 69파운드 9.8온스(약 31.57kg)인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이는 국제낚시협회(IGFA)가 인증한 기존 세계 기록인 67파운드 8온스(약 30.61kg)를 근소한 차이로 깬 것이다. 줄농어로 불리는 줄무늬 농어는 초기 아메리카 정착민 사이에서 즐겨 먹던 음식 재료로 오늘날에도 즐겨 찾는 진미(珍味)로 널리 알려졌다. 한편 줄무늬 농어는 영국의 음식 연구가이자 칼럼니스트인 프랜시스 케이스가 지난 2009년 출판한 저서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세계 음식 재료 1001’에도 선정된 바 있다. 사진=에이엘닷컴 영상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그림도 보고 나들이 하고… 3색 봄맞이 미술전

    그림도 보고 나들이 하고… 3색 봄맞이 미술전

    파란 하늘이 시리다기보다 시원하다 싶으니 봄은 봄이다. 봄나들이 삼아 나서기 좋은 전시 3곳을 꼽았다. 전시 자체도 나들이에 걸맞거니와 전시장 밖 풍경도 그렇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공원을, 서울미술관은 석파정을, 코엑스는 강남을 끼고 있으니 말이다. 뻔한 미술관? 달달한 영화가… 서울미술관 ‘러브 액추얼리’展 등 6월 16일까지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보라는 영상작품은 안 보고 어두운 김에 뽀뽀해대는 연인들 때문에 골치 아프단 소리는 들어봤어도, 뽀뽀를 권장하기 위해 키스 존을 마련해 놓고 바람잡아 주려고 영화 속 뽀뽀 장면만 편집해 반복적으로 틀어주는 미술관은 처음이다. 여기에 두 사람의 뽀뽀 장면을 찍어 휴대전화 등에 바로바로 보내주기까지 한다. 전시작은 유명한 사랑 영화에서 맞춰 골랐고, 작품 옆에 영화 속 대사를 함께 보여준다. 전시는 6개 섹션의 28개 작품으로 구성됐는데, 작품을 분류한 기준은 영화와 대중가요다. 의외로 산뜻하다. 가령 ‘유혹의 소나타’ 공간에는 장지아·손정은처럼 작품의 성적 코드가 강렬한 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페티시즘과 관음증을 다루는 이호련의 작품이 나와 있다. 보기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는 작품들을 이안 감독의 ‘색계’, 사라 제시카 파커의 ‘섹스 앤 더 시티’, 박범신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은교’ 속의 대사와 함께 보여주니 그럴 법도 하다 싶다. 하나 더 있다. 세계문화유산급을 넘보는 고전 회화의 명작들을 한데 그러모아 선보이는, 블록버스터급 전시도 있다. 그런데 아트 프린트 전시다. 기념품점에서 파는 걸 액자에 담아 걸어뒀다. 블록버스터 전시라지만, 솔직히 알찬 전시를 만나긴 쉽지 않다. 미끼 작품에 낚였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차라리 아트 프린트라 할지라도 정말 중요한 그림을 제대로 보자는 제안이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샬롯 섬의 여인’, 로렌스 앨머 태디마의 ‘나에게 더 이상 묻지 말아요’ 등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 가장 화려했던 그림 23점이다. ‘러브 액추얼리’(Love Actually)전과 ‘빅토리안 로맨스’(Victorian Romance)전이 열리는, 지난해 8월 첫 개관전을 열었던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 이야기다. 이주헌 관장은 “보통 미술관 하면 정통 미술사의 관점에서 연구·수집·전시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미술관은 이미 너무나 많다”면서 “미술관이라는 말에 부담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영화관 가듯, 미술사 책 도판 보듯 즐길 수 있는 전시를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고, 이번 전시는 그런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는 첫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6월 16일까지. 1만원 (02)395-0100.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뻔한 작가들? 신선함이 물씬 화랑미술제 17일까지 코엑스서… 전국 80개 화랑 참여 “그간 우리가 미술계의 열매만 따먹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는 차원입니다. 작가 풀을 넓게 재구성해서 작가도, 화랑도 함께 커가는 기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표미선 한국화랑협회장의 비장한 선언이다. 협회 주최로 17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전국 80여개 화랑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리는 제31회 화랑미술제의 올해 화두는 ‘변신’이다. 흔히 아트페어라 불리는 미술시장은 얼추 비슷비슷한 풍경이다. 부스비를 내고 참가하는 상업적 행사인 만큼 아무래도 지명도가 어느 정도 있거나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가들의 작품 중심으로 전시가 꾸려지기 마련이다. 이런저런 아트페어가 열리지만 나오는 작가들이나 거래되는 작품들이 대개 비슷한 이유다. 그래서 이번에는 각 화랑들이 내세울 수 있는 작가 3명의 작품을, 그것도 되도록이면 중복되지 않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이우환, 김종학처럼 ‘척하면 척’ 통할 만한 블루칩 작가들의 이름은 찾기 어렵게 됐다. 겹치기 출연도 거의 없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표 회장은 “비슷비슷한 작가들만 반복적으로 공개되다 보니 대중들의 관심이 한정되고 몇번 반복하다 보니 아트페어들이 모두 비슷해져 버렸다”면서 “이것 자체가 미술시장을 좁히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화랑이 발굴하거나 함께 커 나갈 수 있는 젊은 작가, 중견 작가 중심으로 꾸려졌다. 갤러리현대는 김창열·강익중·권기수, 국제갤러리는 노충현·문성식, 가나아트갤러리는 데이비드 걸스타인·하태임, 학고재는 강요배·송현숙·이세현 등이다. 표 회장은 “불황일 때 투자하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요즘처럼 미술 시장이 어려울 때 차라리 가능성 있는 작가를 발굴해서 시장에 내보이고, 또 가능성 있는 작가들과 화랑 사이에 신뢰관계를 구축해 장기적인 인프라를 쌓아 나가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대행사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초대 화랑협회장인 고(故) 김문호 명동화랑 사장과 권진규 작가 간의 관계를 아카이브로 재구성했다. 특별좌담회도 가나갤러리와 사진작가 배병우, 샘터화랑과 고(故) 손상기 작가 관계를 재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230여 작가, 3000여점의 작품이 나온다. 1만원. (02)766-3702.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뻔한 상상력? 상상 그 이상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13’展 6월 23일까지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어릴 적 봤던 만화경 같은 풍경이다. 어째 문양들이 크게 낯설지는 않다 싶은데, 작가는 그게 몬드리안의 그림이라 했다. 몬드리안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평면 공간을 수직, 수평으로 분할했다는 것. “모두들 그 몬드리안 그림의 수직, 수평선이 왜곡되지 않도록 정면에 서서 다 사진을 찍었지요. 그걸 지켜보느라 옆에 서 있다 보니까 그 선들이 모두 틀어져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위치에서 사진을 찍은 뒤 몇 번 합치고 펼쳐 보였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풍경이다. 반대쪽에는 영상이 사람 손에 쥐어진 회중시계를 비춰준다.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적 그림에 나오는 시계 느낌이다. 그 시계를 쥔 사람들에게 작가는 자신이 흘렀다고 느낀 시간만큼 시곗바늘을 움직이라 요청했다. 저마다 제 나름의 간격과 감각으로 시곗바늘을 옮기지만, 그게 비슷하진 않다. 박제성(32) 작가의 ‘의식 027-좌표’, ‘의식 102-인위’다. 미술관 바깥에는 동상이 하나 서 있다. 보통 동상이라면 조금 극적이게 마련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동상이란 무언가 기념하고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보니 역동적이거나 하다못해 덩치감이라도 있다. 이 동상을 어떻게 썼을까. 작가는 이걸 안테나, 라디오 수신용 안테나로 썼다. 감사하게도 이 작품은 김만술(1911~1996)의 역사(力士). 힘찬 기운을 뽑아 내느라 쭉쭉 내지른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보니 전파 잡기엔 그만이다. 라디오에서는 채널 선택 부분을 부서뜨렸다. 동상 그 자체가, 하나의 온전히 살아 있는 도체로서 날씨·지역·시간·위치 등에 맞춰 변하는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다양한 전파를 잡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기념비적이지만 그 기념을 홀로 온몸으로 받쳐 들고 서 있는 동상들이 너무 외로워 보여 벌인 작업이라 했다. 백정기(32) 작가의 ‘역사적 안테나’(Historical Antenna)다. 6월 23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열리는 ‘젊은 모색 2013’전에 나오는 작품들이다. 독특하고 대담한 표현 방법을 모색하는 젊은 작가를 찾아내기 위한 작업이다. 미술관 학예사들이 1차적으로 97명의 후보군을 뽑은 뒤 7차례에 걸친 합평회를 통해 9명의 작가를 추려냈다. 3000원. (02)2188-6000.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교황 선출 ‘콘클라베’의 모든 것

    [주말 인사이드] 교황 선출 ‘콘클라베’의 모든 것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했다. 그레고리 12세 이후 598년 만에 살아 있는 교황이 자진 퇴임하면서 가톨릭은 ‘사도좌 공석’(교황직이 비어 있는 상태)이 됐다. 전 세계 12억명 가톨릭 신자들을 이끌 정신적 지도자인 새 교황이 누가 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 비밀투표회의’(콘클라베)가 주목받는 이유다. Q 콘클라베는 어디에서 열리나 콘클라베는 ‘문을 잠근 방’이라는 뜻으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외부와 차단된 채로 열린다. 현재와 같은 방식의 콘클라베는 1274년 시작됐다. 3년의 교황 공석 사태에 화가 난 로마 시민들이 추기경단을 성당 안에 가둔 것이 유래다. 콘클라베가 소집되면 각국에서 모인 추기경들은 ‘성녀 마르타의 집’에 유폐된다. 텔레비전과 신문 등 모든 통신수단이 차단되며, 트위터도 금지된다. 추기경들은 아침이 되면 성베드로 성당을 가로질러 시스티나 성당까지 걸어서 이동한다. 성당 천장에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그려져 있고, 양쪽 벽에는 예수의 생애를 그린 12장면의 프레스코(벽화)가 있다. 투표함이 있는 제단 뒷벽에는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 Q 누가 참여하나 콘클라베 참석자는 교황 선종일 기준으로 만 80세 미만이 대상이다. 전 세계 추기경 209명 가운데 117명이 해당된다. 올해 82세인 정진석 추기경은 참석할 수 없다. 성추문으로 물러난 키스 오브라이언 추기경 등 2명은 불참했다. 대륙별로는 유럽이 61명으로 가장 많고, 라틴아메리카 19명, 북아메리카 14명, 아프리카 11명, 아시아 9명 등이다. 7일 마지막 115번째 추기경이 바티칸에 도착하면서 이르면 주말 콘클라베가 열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가톨릭 내부적으로는 폴란드와 독일 출신 성직자가 잇따라 교황에 올라 이번에는 이탈리아 출신 교황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황청 내 권력다툼 등 일련의 잡음을 없애기 위해 남미나 아프리카계 교황을 기대하는 여론도 있지만 콘클라베 인적 구성상 비유럽계 교황은 시기상조라는 회의론도 만만찮다. Q 투표 진행 절차는 콘클라베에서 교황 후보는 없다. 추기경들은 각자 생각하는 교황을 적어 투표함에 넣는다. 투표는 재적 3분의2 이상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첫날 투표에서 결정이 안 되면, 이튿날부터는 오전·오후 두 차례씩 사흘간 재투표가 이어진다. 나흘이 지나도 합의가 안 되면 하루 동안 기도 시간을 가진 뒤 다시 나흘간의 투표가 반복된다. 총 33번의 투표에서도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최종투표에서의 최다 득표자 2인을 뽑아 결선투표를 한다. 앞서 베네딕토 16세는 2일간 총 4번의 투표로 교황에 선출됐다. 추기경들이 서열 순으로 투표를 마치면 교황 궁무처장이 투표지에 적힌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득표 사항을 알린다. 계표가 끝난 투표지는 실과 바늘로 꿴 다음 성당 화로에서 태운다. 투표지를 태운 연기는 성당 굴뚝으로 나가는데 바티칸 시민들은 이때 나오는 연기로 교황 선출 여부를 알 수 있다. 교황 선출이 실패하면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고, 교황이 탄생하면 투표지 등에 화학약품을 묻혀 태워 흰 연기가 나게 한다. Q 콘클라베가 끝나면 교황 선출이 이뤄지면 궁무처장이 당사자에게 교황직을 수락할지 동의를 구한다. 수락한 교황은 곧바로 평생 사용할 이름을 정해 알려줘야 한다. 요한, 베네딕토 등의 이름이 이때 결정된다. 새 교황은 성당에 마련된 전용 의복 가운데 몸에 맞는 것을 골라 입는다. 선거에 참여한 모든 추기경들은 새 교황에게 경의와 순종을 약속한다. 이어 부수석 추기경이 바티칸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성베드로 성당 중앙 난간에 나와 ‘하베무스 파팜’(새로운 교황이 탄생했다)이라고 외치면 콘클라베가 끝난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교황이란 ‘교황’은 이탈리아 로마의 주교이자 가톨릭교회의 영적인 지도자이며, 바티칸시국의 국가원수다. 초대 교황인 성 베드로에서부터 베네딕토 16세까지 2000년 역사 동안 265명의 교황이 있었다. 평균 재위 기간은 8년. 교황 베드로가 34년으로 가장 길고, 말라리아에 걸려 선종한 교황 우르바누스 7세는 12일에 불과했다. 교황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름은 사도 요한으로 모두 23차례 선택됐고, 그레고리우스와 베네딕토가 각각 16차례, 클레멘스 14차례, 이노센트 13차례 등이다. 단 베드로는 초대 교황에만 허용된다.
  • [영화 프리뷰] 2011 베니스 화제작 ‘킬러 조’

    [영화 프리뷰] 2011 베니스 화제작 ‘킬러 조’

    크리스는 도박빚을 갚지 못해 사채업자들에게 쫓긴다. 아버지와 이혼한 엄마가 5만 달러짜리 생명보험을 들어 놓았다는 얘기를 듣고선 음모를 꾸민다. 무능한 아버지와 이참에 한몫을 챙기려는 새엄마, 백치미가 넘치는 여동생 도티까지 크리스의 계획에 선뜻 동의(혹은 방관)한다. 현직 경찰이지만 살인청부업자로 ‘투잡’을 뛰는 킬러 조는 크리스에게 선금을 요구한다. 땡전 한 푼 없는 크리스는 여동생을 바라보는 킬러 조의 뜨거운 눈빛을 눈치채고 담보로 내건다. 킬러 조는 약속대로 엄마를 제거한다. 하지만 웬걸. 생명보험 수혜자가 도티가 아닌 엄마의 애인이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이 꼬인다. ‘킬러 조’는 2011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경쟁부문에 오른 화제작이다. 이탈리아 온라인매체 기자들의 투표로 뽑는 골든마우스상도 받았다. 지금껏 전설로 남은 걸작 ‘프렌치커넥션’(1971), ‘엑소시스트’(1973)를 연출했지만, 그 후 30년간 졸작을 쏟아내 온 특이한 이력의 노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이 오랜만에 내놓은 논쟁적인 작품이다. 질퍽한 폭력 묘사는 물론 주노 템플과 지나 거손, 매커너히 등 쟁쟁한 배우들이 전라로 나오고 음식을 이용한 성적 행위 묘사까지 곁들여진 탓에 북미에서는 NC17(17세 미만은 보호자를 동반해야 관람 가능) 등급을 받았다. 폭력과 성적 표현의 수위가 절정으로 치닫는 건 킬러 조가 크리스 집안을 지배하는 새로운 가장으로 대체되는 후반부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크리스와 새엄마를 조는 무참하게 뭉개 버린다. 서사의 흐름상 불가피한 건 맞다. 하지만 비위가 약한 관객이라면 고개를 돌릴 만큼 농도가 짙고 시간도 지나치게 길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한동안 치킨을 먹고 싶은 생각이 뚝 떨어질지도 모른다. ‘혹시나’ 했던 프리드킨 감독에 대한 기대는 ‘역시나’로 끝났다. 캐릭터는 하나같이 비현실적이고, 인물들의 관계는 지나치게 생략됐다. 그럼에도 스크린 앞에 관객을 붙잡아 두는 힘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청부 살인자 역할을 맡아 광기를 뿜어낸 매커너히다. 금발 근육질 몸매, 지적인 눈빛까지 겸비한 그는 젊은 시절 로맨틱 코미디로 재능을 허비했지만,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2011), ‘매직마이크’(2012)에 이어 ‘킬러 조’에서도 캐릭터와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인다. ‘어톤먼트’(2007),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 등으로 이름을 알린 신예 템플 또한 텅 빈 눈빛과 몽롱한 말투를 지닌 도티 역에 딱 맞는 캐스팅이었다. ‘킬러 조’로 영국 아카데미 라이징스타상을 받았다. 북미에서는 지난해 7월 소규모로 개봉했다. 3개 스크린에서 출발해 75개 스크린까지 늘어났지만, 누적 수익은 198만 달러(약 21억원)에 그쳤다. 전 세계 수익은 366만 달러(약 39억원). 7일 개봉.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몸 바쳐’ 돈 벌어오던 형이, 엄마를 죽였다

    ‘몸 바쳐’ 돈 벌어오던 형이, 엄마를 죽였다

    살인 사건이었다. 13평 아파트에 사는 중년의 변계숙이 살해됐다. 범인은 볼링공으로 내려쳤다. 범인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주변을 돌아다닌 터라 7명이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하고 15분 만에 잡혔다. 현장검증에서 범인은 거침없이 자신의 범행을 재연했다. “더 이상은 못 하겠어요”라는 말을 살해 직전 변계숙에게 건넸다고 했다. 신문 1면 헤드라인은 ‘후안무치한 살인범 춤추듯 현장으로’로 채워졌고, 2면과 3면 사진은 ‘태연자약하게 범행 재연 반성의 기미 전혀 없어’가 됐다. 현장검증이 끝나 사진기자들과 형사들이 사라진 살해 현장, 아파트에는 락스와 향균스프레이, 수세미를 든 조인호가 서 있다. 조인호는 변계숙의 아들이다. 또한 범인은 조인호의 형이다. 여기까지 읽고서 존속살해를 당한 피해자이자 범인의 가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조인호의 굴곡진 인생이 등장하려니 했다. 그러나 안보윤(32)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 ‘모르는 척’(문예중앙 펴냄)의 주인공은 조인호의 네 살 위 형, 어머니를 살해한 조인근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신문 사회면에 있을 법한 보험 사기라는 것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그러니 이야기의 대강과 결말도 윤곽이 잡히는 듯했지만 예단은 어긋났다.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형제의 심리적 갈등과 편애가 낳게 되는 병리적인 감정, 착한 자식이자 가장으로 길러지는 맏이의 운명, 제대로 살고 싶은 가난한 사람들의 욕망 등이 ‘자본주의적 폭력’과 뒤얽혀 굴러가기 때문이었다. 어느 집이나, 어느 집단이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너 아니면 안 돼’라는 마법 같은 주문에 휘둘린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사람들은 산다. 그런데 헌신적인 사람들은 어느덧 그 주문에 휘말려 자기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 하나 고생하면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며 각오를 다진다. 그런데 그들의 헌신은 고작 ‘제가 좋아서 그러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이해된다. 전업주부였던 변계숙의 가족은 가장인 아버지가 돌연사한 탓에 가난한 P시로 흘러왔고, 무능한 엄마 대신 12살의 맏아들이 가장 역할을 떠맡았다. 머리를 벽에 짖이기고, 망치로 발가락뼈를 부러뜨리며, 높은 계단에서 뛰어내려 206개의 뼈가 모두 조각조각 났는데도 인근은 말한다.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 그의 범죄의 기원은, 근친살해의 기원은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까. 부모가 동반자살해 절집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었던 석문정은 이런 잔혹하고 매정한 상황을 적시한다. “제일 나쁜 건 있지, 기대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거야.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당장 나한테 이득이 생기면 마음이 흔들려. 못 이기는 척, 모르는 척 받아들이게 돼. 그게 좀 더 지나면 당연해져 버리는 거야.”(201쪽) 가난하고 남루한 P시 청소년의 대화도 암담하다. 가난은 뿌리가 깊다. “아빠가 시멘트 개고 엄마가 벽지 바르고 내가 벽돌 나르면 알콩달콩 신도 나겠다, 씨발. 노가다가 가업이라니 끔찍하잖아.”(207쪽) 왜 제목이 ‘모르는 척’인가. 사실 우리는 헌신적인 사람들의 고통을 모르는 척하고 영악하게 부려 먹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32살의 젊은 작가가 묻고 있다. 우리는 또 무엇을 모르는 척 회피하고 있는지 큰 바늘로 쑤시는 듯하다. 같은 사실을 처한 상황과 인지 수준에 맞게 이해하는 인근과 인호의 엇갈리는 서술은 영화 ‘오! 수정’이나 소설 ‘산체스의 아이들’을 떠올린다. 작가는 2005년 문학동네 작가상으로 등단해 2009년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을 받았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열린세상] 생명의 시대 미래창조과학부의 역할/강대희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 학장

    [열린세상] 생명의 시대 미래창조과학부의 역할/강대희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 학장

    2주 남짓이면 박근혜 정부의 개막과 함께 초대형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탄생한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아픔을 딛고 지난 60년간 농경, 산업, 정보, 지식사회를 거쳐 미래 생명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생명의 시대가 될 대한민국의 ‘미래’를 ‘창조’하는 ‘과학’ 부처의 출범은 실로 반갑다. 그러나 미래창조과학부가 과연 생명의 시대를 준비하는 데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어떤 얼굴인가? 고용 없는 성장 단계에 진입한 지 수년째, 청년실업의 문제와 조기퇴직에 따른 경력 실업자들의 재취업은 바늘구멍이다. 경제 양극화는 건강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유례 없이 빠른 속도로 늙어 가는데 노령화 시대에 대비한 사회적 합의와 노력은 더디기만 하다. 2011년 건강보험에서 지급한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는 전체 진료비의 33%인 15조 3000억원이다. 이는 지난 7년 새 3배나 증가한 수치다. 2026년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건강수명 100세 시대에 ‘미래창조과학’부는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인가. 미래는 생명의 시대이다. 생명의 시대에는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이 최대한 구현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건강 민주화의 실현이 필수적이다. 건강 민주화의 전제 조건은 기초과학과 임상의학의 접목을 통한 ‘생명의학’이 국가 연구개발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정보통신(IT)을 기반으로 하는 융합의료연구를 발전시켜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구현해 나가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과 서비스산업의 총체인 의료산업을 국가차원에서 집중 육성하고 해외로 우리의 높은 의료기술을 수출한다면 경제적 이익은 물론 글로벌 한류의학(K-메디신)의 실현을 통한 국격 제고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학 분야에 대한 충분한 투자와 지원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성공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가늠할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실패한 경험은 되새기고 지속가능한 장점들은 살려나가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기존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수행했던 연구개발 예산의 배정 및 조정 권한까지 갖게 되는 것은 타 부처 사업 예산을 검토하고 조율할 수 있다는 의미와 함께, 경우에 따라서는 정작 필요한 국가 단위의 중요 연구개발 사업이 소외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부처별 예산 나누어 먹기 식의 분배는 없어져야 하며, 미래 유망 산업에 대한 보다 과감하면서도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연구비 지원이 필수적이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부서로서 장기적 관점에서 과학기술의 방향도 재설정해야 한다. 가시적, 단기적 성과 도출이 가능한 분야에만 예산이 집중 배치됨으로써 장기간 인내심을 갖고 투자해야 하는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소외와 차별이 없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과학기술 전문 인력의 양성과 더불어 이들을 국가 핵심인재로 대접하는 일에도 힘을 써야 한다. 우수 인재들이 불안한 미래 때문에 과학도의 길을 포기하는 사례가 없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기술 인재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보장하고,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일이다. 최근 미래형 융합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개인 맞춤형 예방연구’가 대두되고 있다. 개인의 유전적, 환경적 특성에 따라 개별 맞춤형 질병 예방정책을 수립한다는 개념이다. 국가의 운영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다양해지는 사회적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민첩하고 유연한 구조를 가진 부처를 구성해야 한다. 부처별 전문성에 기반한 맞춤형 정책도 구현해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공룡과 같은 거대 부처가 아니라 민첩하고 유연한 맞춤형 정부 부처로 거듭나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에 대한 컨트롤 타워 역할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성장 엔진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2050년 세계를 이끌어 갈 창조적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 ‘최강 포식자’ 코모도왕도마뱀, 사람 공격해…

    ‘최강 포식자’ 코모도왕도마뱀, 사람 공격해…

    최상의 포식자 중 하나인 ‘도마뱀의 왕’ 코모도왕도마뱀(Komodo dragon)이 사람을 공격해 중상을 입힌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동부에 위치한 코모도 국립공원에서 이곳에 근무 중인 관리인 2명이 코모도왕도마뱀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었다. 현지 국립공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2m 크기의 코모도왕도마뱀 한마리가 사무실에 몰래 기어 들어와 한 관리인을 먼저 공격한 후 비명을 듣고 달려온 다른 관리인을 연달아 공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직후 관리인들은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으며 40바늘 이상을 꿰메는 중상을 당했으나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파충류 전문가는 “코모도왕도마뱀은 조용히 있다가 빠르고 강하게 기습공격을 한다.” 면서 “침 속에 맹독성 박테리아가 있어 물린 경우 치료받지 못하면 몇시간 안에 죽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코모도왕도마뱀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마뱀으로 사슴, 멧돼지를 잡아먹는 최상위 포식자지만 개체수가 매우 적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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