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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생 배경 비슷한 작품들의 ‘연결고리’

    “책과 문학의 세계에 입문하고서 상당히 많은 문학 작품들이 다른 작품의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게 놀랍고도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작가들은 흔히 ‘1인 공화국’으로 불리거니와, 그들이 창작한 문학 작품 역시 독자적인 의미와 가치를 지닌 독립적 실체라 보아야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품들은 또한 순전히 독립적이기만 한 존재는 아니어서, 다른 작품들과 다채로운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거울 나라의 작가들’(최재봉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은 문학 담당 기자가 ‘거울 관계’에 있는 문학 작품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거울 관계란 어떤 작품이 다른 작품을 드러내거나 암시해서 서로 거울처럼 비추는 경우를 말한다. 모든 로맨스 소설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류이며, 모든 추리 소설은 애드거 앨런 포의 표절이란 말도 있지만 ‘거울’은 요즘 민감한 주제인 표절이나 패러디를 다룬 것은 아니다. 저자가 위의 ‘나오는 말’에서도 밝혔듯 누구나 문학을 포함한 예술 작품을 만날 때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을 경험할 때가 있다. 저자는 작가와 작품,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탄생 배경이 비슷한 문학작품을 소개한다. 신경숙의 단편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와 남진우 시 ‘겨울 저녁의 방문객’을 통해 저자는 부부 사이인 두 문인이 함께 겪은 신비한 체험을 소설과 시라는 각자의 장르로 소화하는 것을 발견한다. 어느 겨울 밤 실체를 알 수 없는 피조물이자 창조주의 방문을 신경숙은 ‘2년 전 잃은 아기의 옹알이’로, 남진우는 ‘환영’ 또는 ‘창백한 머리카락 한 점’으로 표현한다. 안정효의 중편 ‘낭만파 남편의 편지’와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은 놀랍도록 같은 이야기다. 권태기에 빠진 부부가 있다. 남편은 아내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긴 유혹의 편지를 보내고 그 편지에 아내가 응하면서 부부는 파국에 이른다. 서로 다른 문학 작품들 사이에서 거울 관계를 찾아내는 이 책은 문학 작품을 찾아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서울광장] 망각이라는 이름의 혼돈/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망각이라는 이름의 혼돈/김성호 논설위원

    얼마 전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의 대표 유적인 ‘검투사의 집’이 무너졌다는 외신보도가 있었다. ‘검투사의 집’이라면 고대 로마시대 검투사들이 집단 거주한 2000년 역사의 유적이다. 검투사들이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에서 싸우기에 앞서 집결해 훈련한 프레스코양식의 세계유산.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화산재에 파묻힌 고대도시 폼페이를 상기시켜 한 해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희귀유적이다.이탈리아 대통령까지 나서 ‘국가적 불명예’라며 개탄한 걸 보면 상실의 후유증이 엄청나 보인다. ‘검투사의 집’ 붕괴가 인재(人災) 논란에 휩싸였다. 폭우 탓이라는 발뺌이 안이함에의 책임추궁에 묻힌 듯하다. 5년전 폼페이유적의 70%가 붕괴될 것이란 경고대로 올 초 콜로세움 처마가 떨어져 내린 바 있다. “책임지고 사퇴하라.”는 요구에 이탈리아 문화부장관은 “업무를 잘 수행했다.”며 맞섰단다. 인권위원회 파행과 관련해 “잘 운영되고 있다.”며 사퇴압박을 일축한 우리 인권위원장 발언과 닮았다. 유적 참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장관이나 인권의 가치를 지키라는 몸짓들을 외면한 위원장에게서 본질 망각의 혼돈을 본다. ‘검투사의 집’ 붕괴에 광화문 현판 균열 논란을 한번 얹어 보자. 복원 석달 만에 갈라진 현판에 날씨 탓이라는 발뺌과 무리한 공기단축의 인재란 질타가 팽팽하다. “금강송은 날씨가 추워지면 갈라지기 일쑤”라는 문화재청은 아교·톱밥 땜질과 재단청이란 희한한 복구처방을 내놓았다. 갈라진 현판을 그저 덧칠해 가리겠다는 문화재청은 경복궁 복원사업의 주체가 아닌가. 경복궁·광화문 복원은 일제에 훼손된 조선정궁을 되살려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것이란 본질을 잊었단 말인가. 경술국치 100년의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연초 곳곳에서 무성했던 과거사에 대한 옹골찬 직시며 공과를 제대로 따져 보자는 거센 목소리들도 시간의 흐름에 묻혀가는 듯하다. 동족상잔 6·25전쟁 60주년의 해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국권 침탈의 마지막 단계인 강제병합 100년째 되는 해. 그리고 남북분단의 단초인 전쟁 발발 60년째. 국치와 분열의 아픔 치유며 잔재 청산을 위해 무슨 노력을 했고 얼마나 이루었는지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크다. 조선총독부를 통해 일본에 반출된 도서 1205책이 국내에 돌아온다. 1965년 한일협정 조약체결 무렵 우리문화재 1432점 반환 이후 45년 만의 반환이란 사실에 들뜬 기색이 역력하다. 알쏭달쏭한 총리담화에 얹힌 약탈문화재의 반환 아닌 ‘인도’ 양식을 놓고도 말이 많다. 조선총독부를 통해 한반도에서 유래한 도서에 한정한다는 원칙이라면 이번 인도로 6만점에서 많게는 30만점까지 있다는 일본 내 우리 약탈문화재의 반환 길이 막히게 될지도 모른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흔히 문화재는 역사의 거울이라고 한다. 민족혼이 담긴 결정체라고 할 때 문화재며 문화유산은 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결정인 것이다. 광화문 현판 복원이나 일제 약탈도서의 반환이 그저 형상의 되돌림이나 빼앗긴 문화재의 원위치 찾기에 머무는 것일까. 조선정궁을 허울만 되살리고 빼앗긴 선인들의 책자 몇 권쯤 돌려받는 복원과 반환이라면 역사의 거울 차원에선 한참 먼 것이다. G20 서울정상회의에 앞서 최근 중국을 방문한 영국 총리가 정상회담 때 양복에 단 양귀비꽃 배지를 놓고 마찰이 있었다. 양귀비는 1차대전 당시 희생된 전몰장병의 혼을 달래기 위해 정한 영국 현충일의 상징이다. 영국 입장에서야 추모와 현충의 상징이겠지만 중국은 영국에 패한 아편전쟁을 떠올리는 치욕의 상징일 터. 한편에선 잊지 말자는 기억의 회생이고 다른 쪽에선 아픔의 망각이 강하니 괜한 마찰이 아니다. 잊어선 안 될 것들을 두고 서로 달리하는 집착이라고 할까. 체코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라고 썼다. 망각의 늪과 혼돈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kimus@seoul.co.kr
  • [글로벌 시대] 글로벌 코리안의 정체성/박현정 크레디트 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글로벌 시대] 글로벌 코리안의 정체성/박현정 크레디트 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이탈리아 피렌체 토박이인 알렉산드로는 관광객들로 득실대는 피렌체 시내 골목 구석구석을 일행을 앞장서 여유롭게 걸었다. 손가락으로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현재 자신의 삶의 터전에 공존하는 과거의 유산을 진정 자랑스러워했다. 사업상 세계 여러 곳을 다니지만 그는 이탈리아의 모든 것?말, 음식,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여인-을 진심으로 이 세상 최고라고 생각했고 사랑했다. 뼛속까지 이탈리아인인 그의 영혼은 모국의 토양에 탄탄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에게서는 단단한 정체성을 가진 이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자기안정감과 자긍심이 느껴졌다. 알렉산드로를 보며 강한 국가브랜드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자산은 바로 그 나라 국민이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행복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 브랜드 평가기관인 안홀트-지엠아이는 국민, 정부, 수출, 관광, 문화, 투자 등 다양한 분야별 대외 이미지를 분석해 2005년부터 국가브랜드지수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관광, 문화, 국민 매력도에서 국가브랜드 상위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실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국민 개개인의 건강한 정체성이 국가 브랜드라는 경제적 효용가치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글로벌시대에 필요한 소양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희석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우리말보다 영어를 잘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거나, 우리나라를 제대로 아는 것보다 국제적 안목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며, 유럽여행에선 잘 보존된 과거의 아름다움에 경탄을 보내면서도 우리는 강박적으로 서울에 존재하는 모든 과거의 흔적을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식으로 말이다. 요즘 글로벌 기업에서는 글로벌 감각으로 무장한 비서구권 출신의 고급인력들을 예전보다 훨씬 많이 볼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의 생태계도 시대에 걸맞게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을 보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나 문제 해결 능력처럼 글로벌 인재들의 공통분모는 여전하지만 문화적 정체성은 예전보다 다양해지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강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질 때 이들은 오히려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는 편이다. 모국어 억양이 묻어나는 좋은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 자기 나라에 대한 문제의식과 자부심이 조화를 이룬 사람, 문화적 뿌리가 견고하면서도 타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처럼 말이다. 나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역사, 문학, 문화를 더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을 많이 느낀다. 돌처럼 단단한 나의 정체성이야말로 결국 글로벌 무대에서 내가 내밀 수 있는 경쟁력의 밑천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정체성은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의 말과 공기와 문화적 코드를 바탕으로 키워진다.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인간에게 운명적으로, 하지만 공평하게 주어지는 생의 기초를 이루는 자양분이다. 정체성이란 결코 국제적 감각이나 다문화적 소양과 대치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를 풍성하게 키우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기초체력과 같은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그의 소설 어딘가에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기를 열망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모국을 떠나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을 지구 위의 빈 공간을 걷는 사람이라고도 표현했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유치원에서부터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모국어보다는 영어의 우월적 효용성을 주입받으며, 조기유학을 통해 일찍부터 ‘지구 위의 빈 공간을 걷는’ 정신적 이방인이 된다. 건강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꾸기에 쉽지 않은 환경이 아닐 수 없다. 20~30대 자살률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마음 무거운 소식이나 ‘코리아디스카운트’에 대한 문제도 결국 이 모든 우리네 풍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박현정 크레디트 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 “밀란 쿤데라 대학시절 공산당 끄나풀이었다”

    “밀란 쿤데라 대학시절 공산당 끄나풀이었다”

    |파리 이종수특파원|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79)가 대학 시절 ‘공산당 끄나풀’이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일간 르 피가로 등 프랑스 언론은 14일(현지 시간) 체코 주간지의 보도를 인용해 “쿤데라가 대학생이던 1950년 한 대학생을 공산당에 고발해서 22년형을 언도받게 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내막은 이렇다. 체코 주간지에 따르면 전체주의 연구소는 13일 쿤데라의 진술에 따라 공산당이 1950년 작성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해 3월14일 작성된 것으로 날짜가 적힌 이 보고서는 “오후 4시쯤 1929년 4월1일 브륀 태생인 대학생 쿤데라가 같은 기숙사에 사는 여대생 이바 밀리트카의 남자 친구가 미로슬라프 드보라체크를 만났다고 보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지역 공산당 치안국 책임자의 서명이 적힌 이 보고서에 따르면 비행기 조종사인 드보라체크는 2년 전 체코가 공산당에 장악되자 독일로 탈출했다가 서방 스파이로 포섭됐다. 이후 그는 쿤데라의밀고로 체포돼 22년형을 선고받고 우라늄 광산에서 14년 동안 노역한 뒤 풀려났다. 주간지는 이어 드보라체크의 부인 마르케다 드보라체크의 말을 인용해 “남편은 자신이 쿤데라에 의해 고발당했음을 알고 있었다.”면서 “쿤데라가 좋은 작가인지는 몰라도 그가 인도주의적이라는 환상은 절대 갖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쿤데라가 첫 소설 ‘농담’으로 공산당의 전체주의성을 비판한 뒤 당국의 탄압을 받다가 1975년 이후 프랑스로 망명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으로 공산주의의 획일성을 비판해온 작품활동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서 파문이 예상된다. 논란이 이어지자 쿤데라는 체코 CTK 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근거 없는 사실”이라면서 “예기치 않게 내가 전혀 모르는 사실에 갑자기 휘말렸다.”고 강력 부인했다. vielee@seoul.co.kr
  • 세상앞에 드리운 커튼 찢어버리는 것이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유명한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79)의 소설에 대한 소회를 엿볼 수 있는 에세이집 ‘커튼’(박성창 옮김, 민음사 펴냄)이 나왔다. 소설은 무엇인가, 소설의 기능과 소설속 희극적 요소, 미학과 삶 등 다양한 사유의 세계를 펼친 이 에세이집은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 등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 텍스트로 삼았다. 쿤데라는 소설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까. 그는 “세상 앞에 드리운 커튼을 찢어 버리는 것이 바로 소설”이라고 정의한다. 세상은 가면을 쓴 상태인 만큼 이를 찢어내 삶의 진실한 모습을 보게 만드는 역할을 소설이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이 역사적 설명이나 사회의 묘사, 이데올로기 옹호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소설은 무엇보다 인간의 실존을 파헤치는 데 복무해야 한다는 게 쿤데라의 생각. 그는 오에 겐자부로의 단편 ‘인간의 양’을 끌어들여 이를 설명한다. 일본인 버스 승객들이 술 취한 외국 병사에게 희롱당한 사건을 다룬 이 작품에서 끝까지 외국 병사가 미국 출신이라는 점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이 됐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인간의 양’은 단순한 정치적 텍스트로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사회운동, 전쟁 등 역사 그 자체는 소설가의 관심거리가 아니다. 소설가는 역사의 하인이 아닌 만큼 인간 실존의 주위를 돌며 빛을 비추는 탐조등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소설가’에 대한 단상도 담겨 있다. 쿤데라에 따르면 소설가는 자신의 영광이 영원하다는 야심을 품은 사람들이다. 소설가란 요컨대 사후에도 살아 있도록 영원한 가치를 지닌 소설을 쓰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이러한 야망 없이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파렴치한 일”이라고 단정한다. 판에 박힌 진부한 소설을 쓰는 작가는 경멸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그의 주장이 사뭇 설득력이 있게 다가온다.1만 3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기고] 21일 ‘부부의 날’ 편지를 쓰자/정경원 우정사업본부 본부장

    [기고] 21일 ‘부부의 날’ 편지를 쓰자/정경원 우정사업본부 본부장

    부부란 무엇일까? 헝가리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한 침대에서 밤에 같이 잠이 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코 고는 소리, 이불을 내젓는 습성, 이 가는 소리, 단내 나는 입 등을 이해하는 것 이외에도, 그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말한다. 부부란 이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도 사랑스럽게 볼 수 있는 사이를 말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부부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기혼 남성과 여성 1000명당 이혼자가 남녀 모두 약 10명에 이른다. 특히 만 15∼24세에 결혼한 ‘조기 결혼 부부’의 이혼율이 전체 이혼율의 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50세 이상 황혼이혼을 포함해 하루 평균 342쌍의 부부가 갈라서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는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이며, 부부해체로 인한 가족해체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부부치료 전문가 최성애 박사는 자신이 쓴 ‘부부사이에도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라는 책에서 부부가 불화를 겪는 것은 ‘라이프 통장’이 고갈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라이프 통장이란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물, 공기, 영양분 등의 핵심 자원이 필요하듯 부부도 이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재정, 건강, 정서, 도우미 등 네 가지 요소가 필수적인데, 이 요소들이 통장에 풍부할 때는 원만하지만 고갈되면 불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중 우리나라 부부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정서, 즉 대화 부족으로 인한 정서의 불안정인 것 같다. 우리나라 부부의 하루 평균 대화 시간은 30분∼1시간이 33%로 가장 많다고 한다. 화성인과 금성인으로 비유될 정도로 사실 남성과 여성의 의사소통은 쉽지 않다. 생물학적 성차와 사회화의 차이가 상호작용해 대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위에서 부부가 다정스럽게 대화를 하면 ‘부부지간에 뭔 할 말이 저렇게 많을까.’라며 냉소적인 눈길을 보내기가 일쑤다. 이럴 때 편지를 쓰는 것은 어떨까? 글은 말보다 진솔하고 마음을 훨씬 더 잘 전달해준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지만 글은 쓰다가 틀리면 다시 쓰면 된다. 또 말은 듣는 순간 날아가지만 편지는 몇 번이고 곱씹을 수 있어 좋다. 5월21일은 부부의 날이다. 가정의 달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 날을 뜻하는 부부의 날에 올해에는 선물도 좋지만 꼭 한번 편지를 보내자. 컴퓨터 모니터로 보는 e메일보다는 손으로 들고 읽을 수 있는 진짜 편지를 쓰는 것이 깊은 감동을 준다.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솔직하게 담아 한 자 한 자 적으면 사랑꽃이 글자들 사이로 피어날 것이다. 특히 우정사업본부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무료로 배달해주고 있다. 우체국쇼핑 홈페이지(mall.epost.kr)에서 ‘사랑의 편지보내기 이벤트’를 클릭한 후 편지를 쓴 파일을 올리기만 하면, 예쁜 편지지에 인쇄해 집배원이 가정과 직장으로 무료로 배달해주고 있다. 탈무드에 보면 ‘부부가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으면 칼날 폭만큼의 침대에서도 잠잘 수 있지만, 서로 반목하기 시작하면 십미터나 폭이 넓은 침대로도 너무 좁아진다.’는 말이 있다. 반목은 사소한 갈등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데는 진실을 담은 편지만 한 게 없다. 지금 당장 아내에게, 남편에게 마음을 실어 편지를 쓰자. 부부의 날도 앞뒀으니, 남세스럽지 않고 핑계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정경원 우정사업본부 본부장
  • 두 번째 장편 ‘쿨하게 한걸음’ 출간 서유미

    두 번째 장편 ‘쿨하게 한걸음’ 출간 서유미

    지난해 창비장편소설상과 문학수첩작가상을 연거푸 수상하며 ‘문단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서유미(33)씨. 그가 ‘판타스틱 개미지옥’에 이어 두 번째 장편 ‘쿨하게 한걸음’(창비 펴냄)을 내놓았다.30대 초반 여성들의 휘청거리는 삶을 다룬 성장소설이다. “성장이라고 하면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하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성장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해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 내면을 성찰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소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구조조정 칼바람에 휩싸인 회사를 그만두는 주인공 연수의 이야기다. 서른셋이라는 나이에 새삼 사춘기를 맞은 연수 주위에는 문제적 인간들뿐. 그의 아버지는 은퇴 후에도 일자리를 찾아 나서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갱년기를 맞은 연수의 어머니는 대학에 가지 못한 한을 품고 살아간다. 연수의 친구들도 제각기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30대는 어쩐지 무겁고 책임질 일도 많은데, 그렇다고 어른이라고 하기엔 아직 뭔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져 굉장히 애매한 연령대입니다. 젊으니까, 젊기 때문에 실패도 할 수 있고 가난할 수도 있고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 사회나 가족들이 이런 삼십대의 방황과 성장통을 이해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죠.” 그래서 내게 절실한 얘기를 써보자는 생각을 하게 돼 주인공을 내 또래로 정하고 고민할 법한 문제를 짚어 봤다는 것이다. “등단하기 전 학원 강사, 홍보회사 직원 등 다양한 일을 경험해 봤습니다. 그러다가 작가가 되기 위해 직장을 때려치우고 원주에 내려가 2년간 습작을 했죠.” 하지만 이번 소설이 꼭 작가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다. “세계 명작을 많이 읽었습니다. 도리스 레싱과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특히 좋아하죠.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인물이나 상황을 전개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들끓고 있는 인간의 심리와 부조리를 예리하게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자연 재해의 공포에 휩싸인 개인의 심리적 변화 양상을 다룬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근황을 소개했다.98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박중서 옮김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박중서 옮김

    젊고 아름다운 아내 데스데모나와 갓 결혼한 오셀로. 그의 수하인 이아고는 부관의 자리를 뺏긴 데 앙심을 품고 오셀로로 하여금 데스데모나가 새로 온 부관 카시오와 바람을 피운다고 믿게 만든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죽이는데, 모든 진실이 드러나자 슬픔에 스스로의 목숨도 끊고 만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의 이같은 스토리는 우리에게 단순히 흥밋거리로만 다가오지 않는다.5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오셀로’가 고전으로 남게 된 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감수성과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 그래서인지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들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인간의 욕망에 대한 함축과 시사점을 한아름씩 안겨준다.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바래시와 생물·문학 전공자인 그의 딸 나넬 바래시는 문학작품의 이런 기능에 주목했다. 이들 부녀의 저작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박중서 옮김, 사이언스 북스 펴냄)에는 셰익스피어에서부터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플로베르, 헬렌 필딩에 이르기까지 숱한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난 남녀의 본성과 심리에 대한 분석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는 개별적인 작품을 접해 보지 않은 이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 남녀관계에서 한번쯤 ‘이 감정은 뭘까?’‘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의문을 품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잘 알려진 작품을 다루는 데다 줄거리와 의미 등을 함께 소개하고 있어 눈에 쏙쏙 들어온다. 한 예로 책은 동일한 남자 주인공이 매번 상대를 달리하며 등장하는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를 통해 다수의 성적 상대를 바라는 남성의 욕망을 읽어낸다. 해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전수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생물학적 관점의 분석 작업도 병행한다. 소설 속 특정한 설정에 대한 언급도 빠트리지 않는다. 예컨대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 유혹의 기제를 묘파해 내는 대목을 들 수 있다. 여주인공 타미나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젊은이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과정에 대해 쿤데라는 ‘타미나의 호기심을 자아낸 것은 그의 질문이었다. 그 질문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기에게 질문을 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바래시 부녀는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유혹적인 까닭은, 뭔가를 질문하는 행위 자체야말로 질문을 받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책은 이밖에 제인 오스틴의 소설 ‘엠마’에서 자신의 경쟁 상대가 나타나자 비로소 사랑을 깨닫게 되는 엠마에게서 여성의 특유한 심리를 간파해내고,‘테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남성 인물들을 통해 하룻밤 상대와 평생 배우자를 별개로 받아들이는 남성의 ‘성녀·창녀 콤플렉스’를 짚어낸다. 진화심리학과 생물학의 관점에 입각한 이들의 해석은 수수께끼 같았던 남녀의 심리를 낱낱이 해부하고 있어 시종 흥미롭다.1만 80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길섶에서] 외도의 두 갈래/우득정 논설위원

    토마스와 프란츠 사이를 줄다리기 하던 사비나는 어느 날 남몰래 떠난 파리에서 회상에 잠긴다. 그리고 외도하는 남성에게는 두가지 부류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자신에게 탐닉했던 프란츠는 ‘이상형’ 추구형이다.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신기루를 찾아 헤매지만 끝내 갈증은 채워지지 않는다. 종말은 이국 땅에서의 비명횡사다. 자신이 탐닉했던 토마스는 매일 상대가 바뀐다. 그는 어쩌면 똑같을 수밖에 없는 상대방에게서 100만분의1의 차이를 확인하려 한다. 탄탈로스와도 같은 토마스의 갈증 역시 체코의 시골 밤길 산산조각난 트럭에서 마침표를 찍는다.(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오십이 넘어서도 K는 우리의 우상이다. 술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자리를 파할 때까지 화려한 여성편력사(그의 표현은 인생역정사)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한때 놀았다던 친구들도 입을 떡 벌린 채 ‘형님’을 연발한다.K의 결론은 항상 이렇다.“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플라토닉 로맨티스트인 것 같아.”입술에 침조차 바르지 않은 그의 표정은 항상 진지하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씨줄날줄] 신정아를 위한 변명/우득정 논설위원

    이혼 후 독신주의 고수를 선언했던 토마스는 어느날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테레사에게 빠져든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칠수록 점점 더 테레사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소련군 탱크가 프라하 광장을 에워싼 1968년 가을 토마스는 테레사와 함께 취리히로 거처를 옮긴다. 하지만 6개월 후 테레사는 편지 한 통만 남겨둔 채 프라하로 돌아가버린다. 마침내 테레사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며 환호성을 올렸던 토마스는 1주일도 못가 테레사를 찾아 프라하로 간다. 토마스는 테레사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필연’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테레사는 ‘그날’ ‘그 자리’에서 토마스를 만나지 않았다면 토마스의 친구인 Z가 자신의 연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토마스는 끊임없이 자기최면을 걸었던 ‘필연’이 사실은 ‘우연’이었음을 깨닫는다(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신정아 사건으로 온나라가 난리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떠받들다가 한순간 돌팔매질하기에 바쁘다. 한마디로 집단 히스테리다. 예일대 박사출신의 젊은 여성 큐레이터와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눴노라며 떠벌렸던 인사들은 새벽 닭이 울기도 전에 부인하기에 정신이 없다. 시샘과 부러움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신씨를 바라봤던 또 한 부류의 인간들은 신씨의 출세가도가 필연이 아니라 허위학력에 ‘성 상납’까지 가세한 저급 사기극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어쩌면 학위위조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이같이 단정했는지도 모른다. 비로소 사회정의가 바로 섰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하지만 아직도 큐레이터로서의 능력과 열정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남들이 10시간 일하는 동안 20시간 이상 일했다.”는 신씨의 항변은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만남 등 수많은 우연을 필연으로 엮어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을 것으로 상상된다. 그래서 마침내 ‘먹물’들의 속물 근성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씨 사건의 가해자는 신씨가 아니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우쭐대는 우리 사회의 위선적인 풍토가 유죄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6월 한달 체코영화 ‘체크’

    6월 한달 체코영화 ‘체크’

    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루마니아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는 등 동유럽권 작품들이 주요 부문을 수상하자 공산주의 몰락 이후 침체된 동유럽권 영화계가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EBS ‘세계의 명화’가 6월 한 달간 체코의 영화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해 의미를 더하고 있다.EBS는 2일 밤 11시 유라이 헤르츠의 ‘화장터 인부’를 시작으로 30일까지 모두 5편을 방영한다는 계획이다. 세계영화사에서 1960년대는 뉴웨이브 영화가 자리를 잡은 시기. 체코 역시 1963년 이후 프라하영화학교(FAMU) 출신의 밀로스 포먼, 이리 멘젤, 베라 히틸로바, 야로밀 이레스, 얀 네메치, 유라이 헤르츠 같은 이들이 스탈린 독재에 짓밟힌 조국의 현실을 풍자하는 영화를 만들며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다. 이들은 폴란드의 로만 폴란스키, 헝가리의 이스트반 자보 등과 함께 거론되곤 하지만 실제로 세계 영화계에 대한 영향력은 훨씬 크다. 특히 1968년 체코의 민주 자유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이 소련의 침공으로 짓밟히자 이들은 미학적으로 특출하면서도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탁월한 영화를 만들었다. 2일 밤 처음으로 찾아오는 유라이 헤르츠의 ‘화장터 인부(1968)’는 평범한 중산계급 가장이 나치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밀고와 살인조차 서슴지 않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라디슬라프 푹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인간이 부조리한 시대상황에 얼마나 쉽게 조작당하는가를 보여주는 희비극 영화다. 교차편집과 클로즈업 등 이미지의 효과를 이용해 기괴하고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9일과 16일에는 베라 히틸로바 감독의 ‘데이지(1966)’‘목신의 매우 늦은 오후(1983)’가 차례로 방영된다.‘데이지’는 ‘마리’라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두 소녀가 세상이 썩었다고 생각하면서 일탈적인 행위를 즐기다 다른 길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권위적이고 고루한 남성 사회에 일침을 놓는 페미니즘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목신의 매우 늦은 오후’는 드비시의 ‘목신의 오후’를 재해석한 드라마로 ‘돈 주앙 콤플렉스’에 빠진 독신남을 등장시켜 늙음, 에로티시즘, 시간이란 세 가지 테마를 유쾌하게 요리한다. 이어 23일에는 밀로스 포먼 감독의 ‘금발 소녀의 사랑’이 안방극장을 찾는다.1960년대 ‘프라하의 봄’ 당시 정치적 상황을 우회적으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은 중소도시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는 젊은 여성 안둘라가 프라하에서 온 피아니스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픔을 겪는 에피소드들을 다룬다. 전반부가 무도장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희극적으로 그렸다면, 후반부는 안둘라가 피아니스트를 찾아간 프라하에서 소외당하는 모습을 통해 무정한 사회를 비판한다. 밀로스 포먼은 이 영화에서 프랑스 누벨바그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그리고 시네마 베리테의 특징을 결합한 것처럼 보이는 양식을 통해 삶의 밑바닥을 지배하는 잔인한 풍경들을 잘 포착했다. 마지막으로 야로밀 이레즈의 ‘밀란 쿤데라의 농담(1969)’이 30일 방송된다. 이 영화는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1965년작 ‘농담’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으로, 암울한 시대에 잘못 던진 농담 한 마디가 운명을 비극적으로 이끌어 가는 웃지 못할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남녀의 사랑, 정치적 비판, 미학적 가치 등을 동시에 추구하는 원작의 풍모를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유럽 체제의 스탈린주의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프랑스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밀란 쿤데라의 작가적 여정까지 암시한다는 점에서 한층 눈길이 가는 영화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헨리 필딩 소설 ‘톰 존스’ 첫 완역

    “소설가에게는 세가지 가능성이 있다. 헨리 필딩처럼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귀스타브 플로베르처럼 이야기를 ‘묘사’하거나, 로베르트 무질처럼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이다.”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의 말이다. 그의 지적대로 18세기 영국 작가 헨리 필딩은 종종 자기 분신이라 할 작중 화자를 통해 등장인물의 행동과 사건전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소설 ‘톰 존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근대소설의 형식을 확립한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 소설이 국내에서 처음 완역돼 나왔다. 류경희 옮김, 삼우반 펴냄. ‘톰 존스’는 총 18권 208장으로 이뤄진 방대한 작품이지만 줄거리 자체는 간단하다. 갓 태어난 업둥이 톰이 포대기에 싸인 채 올워디라는 시골 대지주의 집에서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톰은 올워디의 배려로 그의 조카 블리필과 함께 자라게 되고, 이웃에 사는 지주 웨스턴의 딸 소피아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톰은 블리필의 시기와 음모로 집에서 쫓겨나 타지로 떠난다. 그 뒤를 소피아가 따른다. 마침내 블리필의 계략이 드러나고 톰의 출생 비밀이 밝혀진다. 톰은 소피아와 결혼한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각 권의 서론에 해당하는 제1장에 자신의 소설관 등을 담은 비평적 에세이가 실려 있다. 여기서 필딩은 자신의 작품이 기존의 산문 픽션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허구소설 장르임을 당당히 밝힌다. 당시 작가들이 허구의 흔적을 애써 감추고자 했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톰 존스’는 영국 소설사에 또 하나의 전통을 세웠다. 수많은 유형적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이야기 구성을 우선시하고 인물묘사를 단순화하는 영국 남성소설의 원조로 꼽힌다. 1964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톰 존스의 화려한 모험’의 원작. 전 2권. 각권 2만원.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미개봉 외국영화 보러갈까?

    국내 개봉기간이 짧았거나 쉽게 접하지 못한 영화를 만날 기회가 줄줄이 이어진다. 롯데시네마는 오는 27일부터 12월6일까지 서울·부산·대전·전주 등을 순회하는 ‘제3회 삼색아트영화제’를 연다. 상대적으로 다양한 영화를 볼 기회가 적은 지방 영화팬들을 위해 마련한 예술영화제이다. ‘3가지 색으로 인생을 말한다.’를 주제로 순수한 노랑(황), 차가우면서 암울한 파랑(청), 열정과 욕망의 빨강(홍)의 세가지 색깔로 나누어 총 10편의 예술영화를 상영한다. 이윤기 감독의 ‘아주 특별한 손님’을 개막작으로 짐 자무시 감독의 단편모음작 ‘커피와 담배’, 일본배우 오다기리 죠가 주연한 ‘유레루’ ‘메종 드 히미코’, 제56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이사벨라’,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말년을 다룬 ‘클림트’, 르완다 내전을 그린 ‘호텔 르완다’ 등을 만날 수 있다. 오는 26∼28일에는 서울 동숭아트센터 하이퍼텍나다에서 ‘제1회 스웨덴영화제’가 열린다. 한국외국어대 스웨덴영화학회 ‘헤임달’이 주최하는 영화제에는 ‘성장’을 주제로 영화상영, 명사특강, 세미나 등이 이어진다. ‘생애 최고의 여름’(Den Basta Sommaren) ‘악마’(Ondskan) ‘얄라 얄라’(Jalla Jalla) 등 3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오는 12월6일부터 13일까지 서울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제1회 체코영화제’를 진행한다. 정치적 격동의 시기를 겪으며 미학적으로 성숙한 영화를 배출했던 1960년대 체코의 영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회다.이와 함께 체코 애니메이션의 대명사로 불리는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대표작 ‘파우스트’와 페트르 니콜라예프의 2005년작 ‘천국의 한자락’ 등도 선보인다.‘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래리 플랜트’의 밀러스 포먼 감독이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에 만든 ‘금발 소녀의 사랑’(1965년), 체코 뉴웨이브를 주도했던 베라 히틸로바 감독의 ‘데이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영화화한 야로밀 이레스 감독의 ‘밀란 쿤데라의 농담’ 등 체코의 주옥 같은 작품이 많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느림, 그러나 빠른 깨달음

    느림, 그러나 빠른 깨달음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은,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 버렸는가?” -밀란 쿤데라 『느림』중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숨가쁘게 돌아가는 우리네 삶. 가끔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허무함이 가슴을 메이게 한다.‘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피곤에 찌들린 일상에서 벗어나 그동안 살아온 생활을 돌아보고 재충전할 기회를 갖고 싶다면 ‘명상’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반박자만 느리게 살면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명상으로 잠시 느림의 미학에 빠져보자. 만물이 생동하는 봄, 자신을 찾고 마음에 평안을 얻고 싶은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가까운 명상 센터를 찾아보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봄햇살이 따사로운 주말. 충북 진천에 있는 수선대를 찾았다. 여기는 수선재(043-536-0013,www.soosunjae.org)에서 운영하는 야외 명상 수련원이다. 지난 1999년 폐교인 진천 두촌분교를 개조해 만들었다. 숙소와 식당 등도 있어 편하게 자연과 벗하며 명상에 빠져들 수 있다. 어슴푸레 대지를 밝히려는 새벽,50여명이 손을 모으고 앉아 있다. “지금 막 태양이 빛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태양의 가운데 있다고 명상하세요. 그 찬란한 빛이 온몸을 감싸고 태양의 기운을 가득 받은 여러분 몸과 마음 어디에도 그늘진 곳은 없습니다.” 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이고(수선대 원장)씨가 명상의 세계로 사람들을 이끈다. 30분이 지났다. 다리가 아플만 하지만 어느 누구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는 적막감이 커다란 교실을 꽉 채운다.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5시부터 시작된 수련은 아침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오전 8시쯤 끝났다. # 자신을 찾아가는 길 수련을 마친 사람들의 표정은 맑고 깨끗했다.“힘들지 않았어요.”라는 질문에 한결같이 웃음으로 답하는 그들은 과연 ‘득도’를 한 것일까. 수련한 지 3개월 됐다는 민정화(28·그린티샵 매니저)씨는 “오늘 수련은 특히 너무 좋았다.”며 “마음의 평안 그 자체인 것 같다.”고 말했다. 녹차 전문점을 운영하는 그녀는 사람들에게 받는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그래서 명상에 입문을 하게 됐다.“항상 내 자신의 가슴, 즉 내면을 들여다보며 반성하고 씻어내니 그저 마음도 몸도 편해진다.”고 말한다. 민씨의 권유로 명상을 시작한 언니 여경(35·대학원)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다니다가 지난해 그만두고 대학원에 입학했다.“이젠 생활의 중심이 잡히는 것 같아요.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남들에게 휩쓸려 다니는 일이 많았는데 이젠 스스로 돌아보고 결정하며 행동하는 모습에 제 자신도 놀라지요. 사람들을 만날 때 당당해지고 내면의 소리를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성격으로 변했어요.” # 거대한 자연 속의 자신을 만나다 아침밥을 먹고 그들은 무변대란 곳으로 간다. 수선대에서 걸어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무변대’는 제2의 수련원을 지을 곳이란다. “무변대는 볼텍스(Vor-tex)가 있는 곳으로 명상을 하기에 정말 좋은 장소.”라고 이고 원장은 설명한다. 볼텍스란 소용돌이, 와동이라는 뜻으로 지구 표면에서 발생하는 전자기장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올라가거나 또는 지구 표면으로 빨려드는 현상으로 쉽게 말하면 ‘에너지 마당’이다. 우주에서 에너지가 내려와 좋은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 10여분을 걷자 이 원장은 “자 이제 왼손 바닥은 하늘로 향해 하늘의 기운을 받고 오른손 바닥은 땅을 향해 받은 기운을 쏟아내고 땅의 기운을 받아들입니다. 천천히 머릿속을 비우며 걸으며 자신에게 집중해 보세요.”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마치 무엇엔가 홀린 사람들처럼 나란히 서서 걷는다. 어디까지 가는지,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아무도 묻는 사람들도 없이 산길을 따라 간다.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나뭇잎을 밟으며 사각사각 걷는다. 고행을 떠나는 성자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문득 따사로운 햇살과 지저귀는 새소리에 그저 마음이 편안해지며 잡념이 사그라짐을 느낀다.1시간 정도를 그렇게 걷더니 김재은 사범의 말에 따라 모두 모여 간단한 체조를 한다. 서서 호흡을 고르던 그들은 이제 황금빛 잡풀들이 누워 있는 땅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그리고는 다시 명상에 들어간다. 눈을 감았다. 몸을 스치는 바람, 새소리, 온몸에 공명이 되어 울린다.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제 바람이 몸을 통과해 지나갑니다. 가슴 깊이 있던 응어리와 분노들이 보이십니까. 바람에 날려보내세요.” 미움, 시기, 증오 등 우리를 옥죄고 있는 나쁜 마음들과 이별을 하고 따사로운 햇살을 가득 가슴에 품고는 일어선다. 이종민(38·에코샵 홀씨 대표)씨는 “이렇게 자연을 걸어 보고, 들어 보고, 함께 하다 보면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풀 한 포기, 꿈틀대는 벌레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자신 또한 인생의 주인임을 느끼게 하지요.”라고 수련소감을 말한다. 또한 이하정(25·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씨는 “이렇게 앉아 자연의 힘을 느끼고 돌아가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항상 웃으며 일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됩니다.”라고 했다.5살 아들을 둔 박정인(35·주부)씨도 “이렇게 명상을 하면 급하다며 안달복달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여유가 생깁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비우려 하니 편해지고 다시 채워질 여유가 생겨서일까 다들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 도심에서 명상 즐겨볼까 # 명상 백화점 웰빙 열풍을 타고 도심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명상을 할 수 있는 수련장이 생겨났다. 서울 종로경찰서 바로 뒤 인사동에 위치한 명상 아루이 선(02-722-6653)은 대표적인 명상카페. 아담한 한옥집을 개조해 만든 공간으로 차를 마실 뿐 아니라 다양한 명상 체험이 가능하다. 홍옥·청옥·자수정·맥반석 등 오색영롱한 광물들의 기운을 맨발로 느끼는 ‘걷기명상’을 비롯해 돌명상, 그림명상, 감촉(곡물)명상, 음악명상 등 10여 가지의 명상 체험을 할 수 있다. 헤드셋에서 나오는 내레이션을 듣거나 명상 지도사가 체험을 도와준다. 또한 귀한 차를 마실 수 있다. 산에서 직접 채취한 약재들로 끓여 기운을 북돋아주는 아루이선(仙)차, 호두·대추·밤을 넣어 두뇌 활동에 도움을 주는 고향 하늘차, 백련차 등 각종 선차가 송화다식, 녹차다식과 함께 나온다. 가격 1만원. # 차와 함께 명상을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 초의차명상원은 차를 마시며 명상을 하는 곳이다. 미얀마에서 명상과 선차 수행을 하고 돌아온 지장스님이 누구나 쉽고 편하게 명상을 할 수 있도록 하게 하자는 뜻에서 만든 공간이다. 명상에 쉽게 빠져들기 위한 매개로 차를 이용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명상을 자연스럽게 유도해 인기가 많다. 스님과 함께 찻잔에 차를 따르고, 향·빛깔 등을 음미하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방법으로 수련을 한다. 또한 녹차, 보이차, 타이차 등 여러 종류의 차를 마시는 즐거움도 있다.(02)732-7209. # 깨달음을 통한 명상 서울 가회동에 있는 안국선원은 ‘간화선’이란 독특한 방법으로 명상을 유도한다. 선원장인 수불스님이 던진 선문답을 고민하며 답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간화선은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정신적인 깨달음을 주는 것으로 참선을 통해 스스로 번뇌를 깨치고 삶의 근원적인 답을 구하며 마음의 평안함을 되찾게 만든다. 종교와 상관없이 수행을 할 수 있다.(02)732-0772,www.ahnkookzen.org로 신청하면 된다.
  • [논술이 술술] 게으름에 대한 찬양/글쓴이 : 버트런드 러셀

    ‘시간은 돈’임을 강조하며, 무조건적인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미덕으로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제목은 무척 도발적이다.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에 전면으로 맞서는 불온함마저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 도발과 불온함은 기존의 사회적 통념과 가치를 되짚어보면서,‘독단에 언제든 의문을 제기하는 마음가짐과 모든 다양한 관점들에 공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을 맛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버트런드 러셀은 다양한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현대 수학의 중요한 경향 중의 하나인 논리주의의 구상을 체계화한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이며, 현대철학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동시에 노벨문학상(1950년)을 수상한 문학가이기도 하며, 평생 반전·평화운동을 일관되게 펼친 사회사상가이자 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몇 차례의 투옥을 감수하면서 교육과 여성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참여해 왔다. 특히 1955년에 아인슈타인과 함께 발표한 ‘러셀·아인슈타인 성명’은 핵전쟁의 위험을 감시하고 경고하며, 과학기술의 평화적 이용을 모색하는 ‘퍼그워시회의’가 창립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 책은 이처럼 다방면에서 활동한 러셀이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쓴 철학적 수필집이다.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적 독단에 반대하는 그의 정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글도 있고, 문화에 대한 비판적 단상을 서술하고 있는 글도 있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끌고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현대 서구 문명을 비판하는 글들이다. 그는 이 글들을 통해 실용적 지식과 가치만을 강조하며, 인간을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현대 문명의 본질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모든 도덕적 자질 가운데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선한 본성이다. 그러나 이것은 힘들게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온다. 하루 네 시간 정도 필요한 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은 스스로 알아서 적절한 곳에 사용할 때 문명은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대 기술 문명이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지만,‘근로가 미덕’이라는 고정 관념 때문에 과잉 생산을 거듭하며, 노동자들을 일자리에서 쫓아내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게으름에 대해 느끼는 원초적인 가책을 용감하게 떨쳐버려야 사회와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용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색하면서 ‘무용한’ 지식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창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무용한’ 지식이야말로 인생을 진지하게 만들고, 자신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사람은 게으를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지고 스스로가 선택한 창조적인 활동에 몰두할 수 있으므로,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주체성을 위해서는 누구든지 게으를 권리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셀의 이러한 지적은 6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눈부신 기술의 발달로 오늘날 인류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눈부신 생산력의 발달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의 발달이 오히려 ‘노동의 종말’이라고 할 만큼의 심각한 실업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고,‘과로사’라는 말이 낯설지 않도록 노동 강도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러셀의 말처럼 과연 우리는 제 정신을 갖고 살고 있는 것일까. 혹시 집단적 광기에 휩쓸려 파멸을 향해 경쟁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가치는 이처럼 우리의 현실을 진지하게 되돌아 보도록 이끌고 있다는 데 있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중1∼고3 -관련 교과: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사회문화 -함께 읽어 볼 책:모모(미카엘 엔데), 느림(밀란 쿤데라), 월든(소로),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조지 리처), 조화로운 삶(헬렌 니어링·스코트 니어링),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피에르 상소), 무소유(법정) -기출논제:연세대 2003학년도 자연계 정시 논술, 고려대 2002학년도 정시 논술, 인하대 2002학년도 수시1·2학기 논술 ■ 생각해보기-실용적 지식만을 강조하는 요즘 세태가 지니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인문학이 지니는 의의와 가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보자. -기술의 발달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써보자. -기술 발달의 혜택이 사회에 골고루 분배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 ‘신세대 대표작가’ 배수아·김경욱 신작 발표

    1990년대 등단한 이른바 ‘신세대 작가군’의 대표 주자 배수아(40)·김경욱(34)이 나란히 신작을 냈다.93년 같은해 문단에 나온 두사람은 독특한 주제의식과 개성적인 글쓰기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온 작가들. 독일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중인 배수아는 전통적 서사구조를 벗어난 탈장르적 장편소설 ‘당나귀들’을,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김경욱은 인터넷·영화·TV 등 대중문화적 요소에 천착해온 전작들과 맥을 같이하는 소설집 ‘장국영이 죽었다고?’를 발표했다. ■ 배수아 ‘당나귀들’ 지난해 펴낸 ‘에세이스트의 책상’‘독학자’에서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에 선 ‘낯설고, 불편한’ 글쓰기를 선보였던 작가는 이번에도 일관된 줄거리없이 작중 작가인 ‘나’의 사색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독특한 구조를 고집한다. 제목 ‘당나귀들’을 “굶주리고 소심하게 살다가 천박한 권리를 얻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한 작가는 “그 말에는 나를 포함해 동시대 사람들에 대한 경멸과 조롱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이성의 시대’인 르네상스에서 유럽의 ‘계몽시대’를 거치지 못하고 곧장 ‘천박의 시대’에 들어선 사람들에 대한 신랄함이 담겨 있다. 책은 ‘존 쿳시의 (동물의 생)으로 시작되는 리스트’(1장)‘무거움의 기법을 연주함-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함께, 혹은 그 책의 독후감’(7장) 등 예사롭지 않은 제목을 단 8개의 독립된 장으로 구성돼 있다.1장에서 작가인 ‘나’는 주인공의 강연과 질의응답만으로 구성된 존 쿳시의 글쓰기에 매력을 느끼며 ‘어떻게 쓸 것인가.’하는 문제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독일에 체류하며 제3세계 언어로 문학을 하는 작가의 고민은 2장에서 본격적으로 사색된다.‘부코우스키와 알테 뮤직, 쿠프랭과 프랑스령 콩고, 그리고 콘래드가 놓인 저녁식탁의 쇼팽과 잠들기 전 여유가 있다면 슈바이처의 ‘를 마저 읽을 것’이라는 긴 제목의 글에서 작가는 모국과 모국어의 문제, 작가 스스로 ‘나의 최대의 연인’이라고 부른 음악에 관한 생각들을 적었다. 더불어 시각장애인 친구의 내면적 독백을 다룬 ‘야니네의 교회’, 채식주의자에 관한 기록인 ‘내 출처는 어디인가’, 우울증에 걸린 화자의 시선으로 옛사랑을 회고하는 ‘내 어깨위의 검은 개’ 등은 문학, 음악, 언어, 사랑에 관한 작가의 지적인 분석과 사색, 관념의 밀도를 엿보게 한다.9700원. ■ 김경욱 ‘장국영이 죽었다고?’ 2003년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자살한 홍콩 스타 장국영. 그는 1970년대생 영상세대가 공유하는 상징적인 문화아이콘이다.71년에 태어난 작가는 “영화 ‘아비정전’ 등에서 소외와 침묵을 보여준 장국영은 우리 세대와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표제작 ‘장국영이 죽었다고?’는 어떤 의미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그 세대 젊은이들의 삶의 모습을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을 매개로 풀어낸 단편이다. 신용불량자이며 이혼남인 남자는 인터넷 채팅에서 한 이혼녀를 만난다. 두 남녀는 같은 날 장국영의 영화를 봤고, 같은 날 결혼을 했고, 같은 장소로 신혼여행을 갔다. 현실에서 극도로 타인과의 접촉을 경계하는 남자는 인터넷상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자와 장국영이 주연한 영화 ‘아비정전’의 대사를 주고받으며 은밀한 소통을 즐긴다. 하지만 이 소통은 현실에 나오는 순간 맥없이 길을 잃는다.“싸이월드와 채팅은 소통 단절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함으로써 소통의 환상을 유포하지만 이를 통해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작가의 문제의식은 소설 결말 부분 장국영 추모 플래시몹에 참여한 사람들간의 소통 부재에서 또렷이 드러난다. 소통에의 절박한 소망은 ‘당신의 수상한 근황’에도 담겨 있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차가 뒤집히는 사고를 당한 주인공은 거꾸로 매달린 상황에서 휴대전화로 계속 통화를 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페르난도 서커스단의 라라양’에서도 주인공은 운전연수를 가르치는 남자와의 불필요한 대화를 부담스러워한다. 소설집에는 이밖에 ‘낭만적 서사와 그 적들’‘타인의 취향’등 총 9편이 실려 있다.“세상은 끊임없이 읽고 풀어내야 하는 거대한 텍스트이고, 대중문화는 이를 해석하는 유용한 수단”이라는 작가의 문학적 근원은 이 소설집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1만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논술이 술술] 모모/미하엘 엔데

    시간을 절약하고 합리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근대 이후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어 왔다. 더 빨리 보고, 듣고,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뚜렷한 목적이 없이도 그 자체로 윤리적인 의무로 여겨졌고, 나아가 시간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시계가 문명의 중요한 발명품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변화를 우리는 자연스러운 것, 곧 인간과 자연의 본성에 기초한 보편적 상황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시계가 나타내는 시간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의 시간을 정밀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고, 인간이 본성적으로 갖고 있는 이기적 욕망에 의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윤리적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시계가 나타내는 시간은 자연의 시간 자체가 아니고, 시간을 아끼며 살아야 한다는 것도 인간의 보편적 본성과는 관계없는 근대적 세계관의 산물일 뿐이다. 근대의 세계관은 인간의 과학·기술과 기계에 의한 무한한 물질적 발전을 궁극의 가치로 여기며 발전해 왔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시간을 표준화하고 정확히 측정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게 나타난다. 단위 생산물의 생산 속도로 정의되는 생산성의 개념에서처럼 주어진 시간에 일을 빨리 하는 것이 발전이자 진보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물질적 세계로부터 독립되어 직선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객관적 실재로서 시간을 파악하게 되었으며, 시계를 통해 동질적인 ‘24시간’ 체제로 인간의 삶을 표준화시켰다. 그러나 시계를 통한 근대적 시간의 지배는 자연적 시간에서 인간의 삶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인간은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먹는 것, 쉬는 것, 잠자는 것까지 신체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계에 의해 지배받게 되었다. 또한 시간의 지배는 근대 사회에서 인간의 행동과 언어, 사고를 제약하여 삶의 양상을 극도로 표준화시켰을 뿐 아니라, 기술의 변동에 그것을 직접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독일의 미카엘 엔데라는 작가가 쓴 ‘모모’는 이러한 근대적 시간관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드러내면서 근대 문명의 물질주의와 획일주의를 비판한다. 그리고 이를 시간 도둑인 회색 인간들과 싸우는 모모라는 거지 소녀의 활약이라는 동화적 상상으로 재미있게 그린다. 이 책은 1970년대 후반에 우리 나라에 처음 소개된 뒤 큰 반향을 일으키며 널리 읽혔다. 하지만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빨라진 세상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이 책의 의미는 더욱 진지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시간을 재는 모든 단위는 무가치한 것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시간은 바로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생활은 진실로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작가의 말은 ‘속도’와 ‘경쟁’의 현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할 것, 그리고 자신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주체적으로 회복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 생각해보기 -밀란 쿤데라는 ‘느림’이라는 소설에서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경우에 비유해 현대인들은 속도에 집착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주변을 돌아보지 않으며 자신 안에 갇히게 된다고 현대문명의 속도를 비판한다. 이밖에도 시간과 관련, 현대 문명이 갖는 문제점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근대 사회에서 나타난 객관화되고 절대화된 표준시의 관념이 가져온 장점과 단점은. -흔히 동양사상의 전통이 현대 문명의 대안으로서 강조되기도 한다. 동양사상의 전통 가운데 어떤 것이 현대 문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과연 현대 물질 문명의 문제를 극복할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시간은 바로 생활, 그리고 생활이란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의 의미는. ■ 독서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중1∼고3 -관련 교과: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사회문화 -함께 읽어 볼 책:느림(밀란 쿤데라), 월든(소로우),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조지 리처), 조화로운 삶(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피에르 상소), 무소유(법정),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기출논제:연세대 2003학년도 자연계 정시 논술, 고려대 2002학년도 정시 논술, 인하대 2002학년도 수시1학기 논술, 수시2학기 자연계 논술
  • [문화마당] 원작과 영화의 거리/정은숙 도서출판‘마음산책’대표·시인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대표작 ‘피아노 치는 여자’는 영화 ‘피아니스트’의 원작이다. 이 영화는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남녀주연상 등 3개 부문 영예를 안은 문제작이다. 나는 이 영화와 원작 소설을 보고 읽었으므로 원작과 영화작품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낀다. 간혹 어떤 소설을 읽고 나면 영화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어떤 영화를 보면 소설로 재구성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도 직업병일까. 그런데 여기에는 어떤 인과관계가 작용한다. 원작을 먼저 읽었을 때와 영화를 먼저 보았을 때가 각각 다르게 작용한다. 그리고 원작을 감동적으로 읽은 경우에는 웬만해서 영화를 좋게 보기가 어렵다. 가령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경우, 원작을 먼저 읽고 난 결과 영화를 보는 도중에 나오고 싶은 느낌이 들었었다. 작가 자신도 자신의 소설을 포르노로 만들었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밀란 쿤데라는 그 이후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을 일절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유형의 작가로는 가브리엘 마르케스도 있다. 무수히 많은 감독이 그에게 ‘백년동안의 고독’의 영화화 판권을 팔라고 종용했지만 작가는 요지부동이라고 한다. 과연 누가 그 소설을 영화화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에 반해 영화와 소설을 별개의 장르로 간주하여 원작을 어떻게 만들든 괘념치 않는 작가도 있다고 들었다. ‘거미여인의 키스’의 작가 마누엘 푸익은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문제나 영화제작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 감명깊게 본 영화 ‘아이리스’는 영국의 유명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존 베일리가 자신의 부인인 유명 작가 아이리스 머독의 일생을 쓴 ‘아이리스’를 원작으로 한 것이다.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본 경우였는데 큰 감동을 받았다. 분명 원작을 잘 살린 수작 필름이라는 확신까지 생겼다. 그렇다면 ‘피아노 치는 여자’와 ‘피아니스트’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열연을 펼친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원작의 여러 가지 것들을 잘 살려내지 못한 경우라고 해야 하겠다. 특히 원작의 다면적인 이야기 층위 가운데 성(性)과 관련된 부분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원작의 가치를 많이 훼손했다고 보았다. 물론 옐리네크는 성의 문제와 페미니즘을 자신의 많은 담론들 가운데 중심에 놓고 있는 작가로 알려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성의 문제든, 페미니즘이든 그것 자체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먹고 사는 문제나, 구원의 문제, 존재의 문제 등등을 떠나 그것 자체만을 보여준다고 할 때 단순화는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해볼 중요한 사실이 파생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소 역겨운 묘사와 지나친 세부묘사에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적도 많았다. 지금도 이 소설을 읽던 순간을 생각하면 왠지 숨이 찬다. 그런 소설을 두 시간짜리 영상으로 만들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느낌도 든다. 책은 내가 시간을 투자한 만큼 더 많은 것을 보답해주니까.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을 둘러싸고도 작품성에 대해 논란이 많은 모양이다. 하물며 뛰어난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영화를 만들 때 감독들이 얼마나 어려울지 안 봐도 알 것 같다. 정은숙 도서출판‘마음산책’대표·시인
  • 책꽂이

    ●이상 평전(고은 지음,향연 펴냄) “이상(李箱)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이었다.” 시대를 앞섰던 ‘모던 보이’ 시인 이상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실험으로 가득찬 그의 삶과 문학의 모든 것을 시인의 감성으로 빚었다.1974년 출간된 뒤 저자의 전집에 수록된 것을 단행본으로 재출간.1만 3000원. ●바베트의 만찬(이자크 디네센 지음,추미옥 옮김,문학동네 펴냄)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여주인공의 실제 모델이자 원작자인 작가의 네번째 소설집.프랑스 제일의 요리사가 혁명을 피해 북구에 간 뒤 마련한 만찬에 초대된 사람들의 이야기 형식으로 다양한 경험을 들려준다.9000원.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안도현 지음,태동출판사 펴냄) 달콤한 감성의 시인이 밀란 쿤데라,백석 등 국내외 유명작가 등 100명에 얽힌 사랑과 관련한 빛나는 표현을 골랐다.원문에다 시인 특유의 해석을 덧붙여 아늑한 메시지를 던진다.8000원. ●가랑비 속의 외침(위화 지음,최용만 옮김,푸른숲 펴냄) ‘살아간다는 것’‘허삼관 매혈기’ 등 영화나 연극의 원작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중국 3세대 작가’의 세번째 장편.민중들의 힘든 일상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모습이 희극적이다.1만원. ●자거라 네 슬픔아(신경숙 글,구본창 사진,현대문학 펴냄) ‘외딴 방’의 작가가 추억을 더듬어 자유롭게 쓴 에세이와,그에 어울린 다양한 사진이 만났다.어머니에 대한 단상,잊지 못할 영화 등을 소재로 신문에 연재한 것을 모아 펴냈다.1만원. ●광기의 다이아몬드(김록 지음,열림원 펴냄) 98년 등단한 시인의 첫 작품집.제목처럼 신예시인의 ‘광기의 상상력’이 곳곳에 번뜩인다.약간은 난해한 듯하지만 발문을 쓴 시인 성귀수의 안내를 따라가면 그 세계가 ‘광란’을 극단까지 밀고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6000원. ●오 헨리 단편선(김욱동 옮김,이레 펴냄) ‘마지막 잎새’ 등으로 단편 소설의 대명사로 통하는 작가의 작품집.‘크리스마스 선물’‘20년 뒤’등 삶의 애환을 다룬 주옥 같은 작품 속에서 작가의 휴머니즘을 만날 수 있다.1만 2000원.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강홍규 지음,나들목 펴냄) 6·25전쟁 이후 혼란스럽던시절 문인들의 기행과 일화등을 세세하게 들려준다.‘관철동 이야기’로 출간된 것을 재출간했다.9000원.
  • 분단 3세대의 시선/언론인 작가 양헌석의 ‘오랑캐꽃’

    지난 82년 등단한 언론인 작가 양헌석(47)이 절필 13년 만에 장편 ‘오랑캐꽃’(실천문학사 펴냄)을 냈다.양헌석은 88년 소설집 ‘태양은 묘지 위에 타오르고’를 발표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으나 90년 ‘아가베의 꽃’을 쓰면서 “이젠 내 얘기를 써야겠다.”며 절필했던 작가.이번 소설은 절필 선언 이후 13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작품답게 그의 내면풍경이 잘 녹아 있다. 14일 만난 그는 “오랑캐꽃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쪼개지고 상처투성이지만 해마다 맨 먼저 봄을 알린다.”며 “이 검질긴 속성에 이땅의 험한 현실에 맞서 싸우고 사랑하며 살아온 지식인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싶었다.”고 작의를 밝혔다. 그가 남한의 지식인으로 묘사하는 인물에는 자신의 경험 특히,‘사회주의자 아버지’로 인해 겪었던 어두움이 곳곳에 묻어있다.아버지 이야기를 묻자 “남로당원으로 5년간 옥살이를 한 뒤 전향하지 않은 탓에 12년을 더 옥고를 치러야 했다.”면서도 “이 소설을 아버지의 이야기와 직결시키지 말고 소설로 읽어달라.”고 당부했다. 굳이 그의 설명이아니더라도 ‘오랑캐꽃’은 자전적 이야기지만 ‘자전’에 갇혀 있지 않다.소설질료의 대부분이 성장 체험에서 나왔지만 탄탄한 서사구조와 생생한 문체로 새로 태어났다. 소설은 잡혀간 아버지가 남긴 상처와,그에 대응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윤기립·지원 남매의 세상살이에 비춘다.두 남매가 그들의 가슴에 각인된 ‘주홍글씨’에 맞서는 방법은 사뭇 다르다.기립이 사회의 억압에 주저하고 눌리다 막판에 도박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반면 여동생 지원은 기자로서,작가로서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한다.그 과정에서 일그러진 한국현대사의 한 모퉁이가 코믹하고 낭만적으로 그려진다.기립·지원 캐릭터가 작가 내면의 양가적 성격을 반영한 게 아니냐는 물음에 “두 남매는 연좌제와 관련한 내 안의 두 모습을 뽑아낸 것”이라며 말했다. 1장과 3장에서는 기립과 지원의 시선을 빌려 1인칭으로,2장에서는 3인칭 시점으로 사건을 진행해,자칫 단순해질 수 있는 줄거리에 힘과 스피드를 더해준다. 작가는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덫이 되어버린 세계 속에서의인간의 삶이 무엇이냐를 탐구하는 것”이라는 밀란 쿤데라의 말에 기대 소설관을 밝힌다.‘오랑캐꽃’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아무도 풀지 못한 의문이 새삼스럽게 몰려들었다.”(86쪽)는 기립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작가 조정래는 “분단 3세대의 시선으로 무거운 주제를 유려한 테크닉과 생동감 있는 문체에 실어 새로운 형식을 창출했다.”고 평했다. 이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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