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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신뢰 사라진 입시/송태섭 사회1부기자(오늘의 눈)

    해마다 12월중순에는 수십만명의 학생들이 대학의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평가받아오고 있다. 그러나 올해의 수험생들은 예전 선배들과는 달리 「특이한 경험」을 해야 할 것 같다. 연초부터 봇물 터지듯 터져나온 입시부정의 회오리로 엄청난 홍역을 치렀던 대학들이 서슬퍼런(?) 부정방지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동안 가장 탈이 많았던 예체능계대학의 입시부정을 막기 위해 각 대학들은 복수채점제의 도입과 함께 실기고사장에 커튼을 설치하고 녹음기와 녹화기(VTR)까지 동원할 모양이다. 또 「입시위원회」등을 구성,원서접수부터 합격자발표 및 사후관리를 전담케 하는 한편 그동안 형식적인 절차에 그쳤던 감사반의 기능과 권한도 대폭 강화했다고 한다. 특히 일부 대학에서는 이를 위해 별도의 예산까지 책정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오명을 씻기 위한 대학들의 이같은 노력에 수긍을 하면서도 왠지 서글픈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가려진 커튼뒤에서 노래를 부르고 바이올린을켜는 수험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되고 또 그 반대편에 앉아 채점을 하는 교수들의 심정은 어떨까. 이들 사이에 드리워진 시커먼 커튼이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불신풍조를 그대로 투영하는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스승과 제자로 만나게 될 이들이 어쩌다 이런 참담한 모양으로 「상견례」를 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입시부정은 있어서도 안되고 부정을 막기위한 노력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됨은 두말할 나위없다. 하지만 정말 이런 황량한 방법밖에 없는 것인가. 입시부정의 원인이 가까이는 비좁은 대학문과 지나친 교육열,멀리는 금전만능주의 풍조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뚤어진 세태에 있다고 보면 솔직히 얼마만큼의 실효를 거둘는지 의문도 생긴다. 이 웃지못할 「희극」을 보면서 대학이나 교육당국 아니 우리 모두가 대학의 건강성,나아가 사회의 도덕성을 되찾는 뼈아픈 자성의 기회를 가져야 하는건 아닌지…. 입시부정을 막기위한 대학들의 안타까운 몸부림은 바로 믿음과 부끄러움이 사라져버린 우리 사회의 한단면이라 할수 있다. 정말 우울한 겨울이다.
  • 새롭게 일어서는 우리농촌/우루과이라운드를 이겨낸다:15

    ◎고추 비닐터널 재배로 30% 증산/음성 6천여 농가/멀칭농법 발상지… 향기·당도 최고수준/김치의 국제식품화 맞춰 수출길 모색 「고추의 품질은 국내 최고가 곧 세계 제일이다」 충북 음성군내 고추재배 농가들은 이같은 믿음 때문에 농산물 수입개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특히 올해는 고추값이 6백g에 3천5백∼4천원으로 지난 10여년을 통해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는데 힘입어 농민들은 더욱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올해 음성군에선 전체농가 1만8백여가구 가운데 65%인 6천6백75농가가 1천2백72㏊에 고추를 재배,2천6백20t을 생산한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이같은 재배면적과 생산량은 충북도 전체 재배면적 9천4백77㏊의 14.6%,전국의 2% 수준에 불과하지만 고추의 품질과 재배기술에서는 음성고추가 단연 전국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원래 음성에서 재배된 고추는 열매가 작은 「붕어초」가 주종을 이뤘으나 현재는 개량된 큰 품종이 7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야산지대가 대부분이고 배수가 좋은 지역인 음성군에서 재배되는 고추는 껍질이 두꺼워가루가 많이 나온다. 또 매운맛이 독특한데다 향기가 강하며 당도 또한 높은 것이 특징이다. 재배농가들은 그동안 농촌지도기관의 자문을 받아가며 선진농법을 시도,수확량을 늘리고 품질을 높이는데 앞장서 왔다. 연작피해를 줄이기 위해 석회질비료 투입법을 도입한데 이어 지난 73년에는 당시 음성읍 신천리에 살던 김영석씨(55·현재 청주거주)가 담배재배용으로 보급된 멀칭용 비닐을 사용,고추멀칭재배를 전국 최초로 시도해 성공했다. 이 재배법은 고추가 자라는 초기에 땅의 온도를 높여 성장을 돕고 습기의 누출을 방지하는 효과와 함께 잡초가 자라는 것을 예방하는 신기술로 이후 전국 고추농가에 보급됐다. 또 지난해부터는 비닐터널을 설치,고추를 재배하는 방법을 개발,읍면당 한 농가씩 선정해 실험한 결과 수확량이 20∼30% 늘었다. 이 재배법으로 올해 고추를 재배한 원남면 보천3리 반영옥씨(40)의 경우 3천평에서 2천7백㎏을 생산,1천8백여만원의 순수익이 예상되고 있다. 고교졸업후 20년동안 고추농사를 지은 반씨는 『비록 여러차례의 고추파동을 겪긴 했지만 고추만큼 확실한 고소득 작목은 없다』면서 재배법을 더욱 발전시켜 부농의 꿈을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반씨는 고추작황이 평년작을 밑돌때면 으레 등장하는 고추수입 주장에 대해 『외국산 고추가 맛에서 워낙 차이가 나 우리 시장에서 발붙이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국내 생산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 크게 우려할 것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반씨는 또 김치가 국제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는 여건을 감안,국산고추를 수출하는 방안을 마련해 농산물 수입개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최고령 문시영씨(제35회 행시 화제의 합격자들)

    ◎4전5기끝에 3차관문 통과 『35세의 만학도로 유종의 미를 거두어 무척 홀가분합니다』 일반행정직에 응시,최고령 합격자가 된 문시영씨(서울 노원구 월계동 13 미륭아파트 23동 1407)는 환하게 웃으며 합격소감을 밝혔다. 이난 86년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에서 도시관리를 전공한 뒤 89년부터 행정고시에 응시,4차례나 2차시험까지 합격했으나 마지막 관문인 3차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평소 사상서적을 즐겨읽였는데 에머슨의 수상록에 나오는 「신의 숨은 뜻은 우리들의 노력속에 있다」는 구절을 어려울때마다 좌우명삼아 되새겼다』면서 『아마도 이런 믿음이 좁은 고시실에서 매일 9시간 이상 땀을 흘리게한 원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문씨는 합격의 공을 끝까지 격려해주며 뒷바라지해준 여동생 미혜씨(34)와 동생 장영씨(32)에게 돌리면서 『앞으로 전공을 살려 과학적인 도시계획의 수립과 관리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 물가안정에 믿음을 갖자(사설)

    10월 한달동안의 물가동향은 우울한 경제상황에서 하나의 낭보가 아닐 수 없다. 지난 8월까지만해도 그동안 쌓아왔던 물가안정이 무너지는 것같은 우려가 쏟아져 나왔고 올해 한자리수 물가를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처럼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소비자물가를 기준으로 해서 10월중의 상승률 0.1%는 월간상승률로서는 올들어 최저일뿐 아니라 평소 물가안정기의 월간상승수준보다도 낮은 실적이다. 불과 1개월간의 물가수준을 놓고 전체 물가흐름이나 올해 물가수준에 만족해서는 물론 안된다.그러나 정부의 정책의지가 강하고 모든 경제주체가 걱정을 하고 합심해서 노력한다면 어떠한 경제적 어려움도 극복될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10월중의 물가동향에서 읽었다. 지난 1개월간 물가안정을 이룰수 있었던 것은 계절적 영향으로 대부분의 농산물값이 하락했고 여기에 물가안정을 기하겠다는 정책의지가 크게 반영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0월중의 물가가 비록 안정은 됐다해도 올들어 10월까지 소비자물가상승률은 9%에 이르고 있다.정부는 앞으로 연말까지 2개월동안에도 안정화노력을 기울여 한자리수 이내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9%라는 수준은 결코 낮은 물가상승률이 아니며 겨우 두자리수를 넘기지 않았다해서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물가란 언제 어떤 복병을 만날지 모르는 특성이 있고 특히 지금까지 이 수준이나마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었던 이유의 하나가 물가를 이월시킨데 있기 때문이다. 우선 유가가 그렇고 각종 공공요금과 서비스요금이 인상의 줄서기를 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란이 누누이 지적했지만 어느 특정기간의 물가안정은 결코 안정이라고 할 수 없다. 올해만 안정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년에도,또 그 다음해도 계속적인 안정이 있어야 진정한 물가안정이라고 할 수 있고 그래야만이 국가경제는 물론이고 기업경영,가계의 장기적인설계를 도모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특히 지금 모든 국민이 우려하고 있는 바와같이 내년의 경제·물가가 더 문제시되고 있다.네차례의 선거와 그로인해 해이해질 소비심리가 내년물가에 얼마나 악역을 담당할지 심히 걱정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물가당국은 10월중 보여줬던 물가랑보에 만심하지 말아야 한다.연말까지 안정노력을 계속 다져 올해 남은기간까지의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은 물론 내년의 여러가지 상황과 변수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물가만큼은 흔들리지 않도록 지금부터 대처하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오른다면 오르는 것이 물가다.그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내린다면 내릴 수 있고 안정된다면 안정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국민 스스로도 물가안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는 것이 물가안정의 요체임을 다시한번 인식해줄 것을 기대한다.
  • “월급 타면 무조건 70% 떼냈죠”

    ◎저축의 날 훈장·표창 받은 「모범사례」/40년간 써온 가계부가 절약생활 길잡이/74년 내집마련… 이젠 3층 건물주인으로/국민훈장 동백장 서남성씨 『눈물과 손때로 얼룩진 가계부가 저에게 끊임없는 절약의 지혜를 불어넣어준 지난 40년동안에 저축생활의 길잡이가 됐습니다』 불우한 어린시절의 궁핍을 딛고 풍요로운 삶을 가꾼 초로의 가정주부 서남성씨(54)는 절약의 비결을 가계부에서 찾았다. 경남 진주중앙시장 입구에 3층짜리 자기건물을 갖고 1층에서 찻집을 직접 경영하는 서씨는 지난 68년 14살의 어린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서점 점원으로 취직해 불구인 모친과 3남매의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녀가장이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네식구의 살림을 꾸려가자니 가난의 설움이 복받친 때도 많았습니다』 서씨는 그러나 가난이 사무칠수록 『저축만이 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아무리 적은 월급이라도 쪼개고 쪼개어 한푼 두푼 저축하면 언젠가는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어린 소년가장에게 가계부를 쓰게 했다. 서점 점원생활을 청산하고 진주도립병원 간호원으로 직장을 옮기고 부터는 월급이 조금 늘었지만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역부족이었다. 『가난에 굴복당할 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월급을 받으면 무조건 70%를 떼어서 저축했습니다.나머지 30%로는 생활을 감당하기가 힘들었지만 매일매일 가계부를 쓰는 즐거움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서씨는 남편과 함께 찻집을 경영하며 부유한 가정을 가꾼 지금까지도 월소득의 70%를 저축하는 습관을 지속해오고 있다. 이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어 결혼생활 17년만인 지난 74년 꿈에 그리던 방3칸짜리 내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서씨는 이때부터 자신의 저축생활 경험을 주위의 다른 가정에도 전파하는데 앞장섰다.77년부터 마을 부녀회원들을 설득해 저축서클을 조직,폐품수집과 절미를 통한 저축운동을 전개했다.그 결과로 현재 마을 1천9백가구에 2천9백60구좌의 통장이 개설돼 있으며 4억9천1백여만원의 저축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다리 장애 버텨준 통장 30여개/대통령표창 이계섭씨/홍수로 집 잃은후 비장한 저축 실천/완구공장 설립… 종업원에 적금권장 경기도 양평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8세때 상경했다. 어릴때 다친 다리때문에 일자리를 번번이 거절당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홀대가 미웠다. 그러나 조그만 금형공장에 가까스로 취업,세끼를 라면으로 때우고 밤새워가며 세공기술을 익혔다. 71년 직장생활 13년만에 번 돈으로 이문동에 내집을 마련,결혼생활을 시작했으나 73년 뜻하지 않은 홍수로 보금자리를 송두리째 날렸다. 이후 저축의 필요성을 절감,저축예금과 정기적금통장을 개설한뒤 장난감을 만들어 판돈을 꼬박꼬박 통장에 넣었다. 적금이 끝나면 정기예금으로,정기예금의 이자는 또 다시 적금으로 계속 저축,5년만에 1천만원 목돈을 쥐게됐다. 이돈을 밑천으로,천막집에서 아내와 함께 어린이 장난감을 만든지 11년만인 84년 3층짜리 주택및 조그만 공장을 지을 수 있게됐다. 17년간 한은행과 거래하면서 쌓인 30여개의 적금통장을 소중히 간직해 자녀들에게 물려줘 근검·절약정신을 계승토록하고 있다. 또 종업원 7명에게도 「티끌모아 태산」이란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주기 위해 매달월급의 10%를 꼬박꼬박 적금통장에 넣고 나머지를 월급으로 주고있다.
  • 외언내언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법.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기독교계에서는 이세상이 언제쯤 끝날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고 지구의 종말을 날짜까지 예언한 선지자들(?)이 계속 출현했다.이른바 시한부 종말론.2세기중반 초대교회때의 몬티누스가 시한부종말론의 선두주자이고 12세기의 요아힘피오레,16세기의 재세례파,19세기의 윌리엄 밀러,20세기의 찰스 다이어등이 그뒤를 이었다.◆시한부종말론은 초대교회때의 기독교박해,십자군원정,세계대전등 당시의 긴박하고 어려웠던 시대상황을 대변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1920년,1950년,1975년등 몇차례에 걸쳐 소동을 일으켰다.그러나 모두 불발로 끝났다.◆「종말론」은 성서에 근원을 두고 있지만 그시기를 밝히지 않고 있다.예수 그리스도는 종말의 시기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그날과 그때는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마태복음 24장36절).따라서 종말의 시기는 하나님의 권능에 속한다.그런데도 인간이 종말의 시기를 예언한다는 것은 반성서적이다.◆종말론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의 하나이지만 시한부 종말론은 교리의 범위를 벗어난 이단의 사설이란것이 성서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또 종말론은 하나님의 심판 보다는 「항상 깨어있는 믿음」을 강조하는데 보다 큰뜻을 두고있다.성서의 가르침은 거의가 비유로 되어 있는데 종말론도 비유를 통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그런데 최근 우리사회에 또다시 시한부 종말론이 극성을 떨고있다.『92년10월28일 예수가 재림하시고 이때 휴거(휴거·공중에 들리어 올라감)의 영광을 입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인을 받으라』고 외치는 일부 선교회 회원들.사람이 많이 모이는 역주변이나 도심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다.참으로 민망스러운 세태의 한단면.신앙의 자유도 좋지만 이런일은 반사회적인 행위로 규제되어야 한다.
  • 91년 가을의 평양/장수근특파원 총리회담 취재기:중

    ◎김일성 칭송 기념비·동상 3만4천여개/모든 가정에 초상화­가슴에는 배지/생일 6개월 지나도 “만수무강” 표어 그대로/“인류역사상 최고” 언론에서도 신격화 요란 고위급회담 제1차 공개회의(23일)가 끝나고 남측 대표단이 만수대예술극장으로 가는 도중 차안에서의 일이었다. 버스가 조선혁명박물관 부근을 지날 무렵 차창밖으로 거대한 선전탑이 한눈 가득히 들어왔다. 3층 아파트 높이의 빌보드엔 장대한 김일성주석이 한가운데 자리잡고 그보다 훨씬 키가 작게 묘사된 「인민」들이 그 주위에 둘러서 있는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이를 본 C일보의 P기자가 무심코 한마딜 했다. 『북한엔 김주석보다 키 큰 사람은 없나보지…』 그순간 차내가 발칵 뒤집혔다. 『뭐야.기자라고 아무 얘기나 지껄이면 되는 줄 알아』 『뭐 어드래… 엇따대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야』 『정말 안되갔어.뜨거운 맛좀 보간?』 동행하던 안내원들이 악다구니처럼 일제히 터뜨린 욕지거리였다.금방이라도 주먹이 오갈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버스가 콩콩 튀었다. P기자는 무심코 그야말로 지나가는 소리로 한 것 뿐인데 북측 안내원들에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령모독」으로 들렸던 모양이었다. 가까스로 충돌위기를 넘기긴 했으나 목젖까지 차오른 분을 삭이느라 버스안은 한동안 씨근덕거리는 숨소리로 요란했다. 김일성주석. 그는 북한의 유일신이다.그리고 밤하늘의 번개와 같은 존재다.그는 또 전지전능한 북한의 수호자에서,어느 것도 지도자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그의 지혜와 통찰력 그리고 끝없는 문화적 사상은 『인류역사상 최고』라고 북한언론들은 치켜올리고 있다. 김영남외교부장은 지난 88년 4월 한 기념사에서 김주석이 누구인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 일이 있다. 『김주석은 두 차례의 전쟁과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자이며 전조선혁명의 화신이며 세계혁명을 위한 주체사상의 창시자요,북조선 사회 자연및 인간의 개조자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그로부터 나오게 돼있다.북한에선. 북한 전역엔 김주석을 칭송하는 3만4천개의 기념비와 동상 기념물탑이 있다고 한다.그뿐이 아니다.북한의 모든 가정에는 김일성부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김주석 이상으로 뛰어난 인물을 북한에서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또 찾아서도 안된다. 그는 발전소의 건설위치로부터 벼농사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지난 24일 남측대표단이 둘러본 평양제1백화점 지배인도 『위대한 수령께서 82년 4월6일 친히 방문,각 층의 매장을 현지지도해 주셨다』는 말로 정원식총리를 맞았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백민소장도 정총리에게 『김일성주석께서 이곳을 방문,무려 18회나 현지지도를 해주셨다』며 황공한 표정을 지었다. 김주석의 생일은 4월15일.그러나 그의 생일이 지난지 6개월이 넘는 요즘에도 평양시내 이곳 저곳엔 『김일성원수님의 만수무강을 충심으로 기원합니다』란 글발(표어)이 붙어 있었다. 안내원의 설명은 이러했다. 『우리 공화국에선 항상 지극한 마음으로 그 글발을 늘 붙여놓습네다』 김일성종합대학엘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만세』『위대한 수령 만수무강하십시오』란 표어다.학생들 역시 공부보다는 김주석에 대한 일념을 지고의 선으로 여긴다. 『김일성수령은 영원하다』는 북한주민들의 믿음은 철석같다. 기자의 안내원은 『그럼 김주석은 죽지도 않고 백년 만년 산단 말이오』란 물음에 정색을 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네까』 그는 김주석이 영생하지는 못할지라도 그의 혼과 말씀이 피를 타고 조선 백성 가슴속에 전달될 것이기 때문에 『불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변했다. 거리나 지하철 공연장에서 만난 북한 주민들은 예외없이 「낙원의 상징」인 김주석의 초상배지를 달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 24시간 1년 3백65일 맨가슴으로 다니는 법이 없다고 했다.따라서 김주석은 늘 인민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셈이다. 북한에선 행복도 권리가 아닌 의무다.김주석이 북한을 「행복의 시범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주석 신격화는 최근들어 「하늘님」「구세주」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스탈린이 권좌에 앉혀준 마지막 집권자,김일성주석. 그가 언제까지 「낙원」의 주인공 자리를 지킬지는의문이다.하지만 지금까지 「인민」들에게 해온 말들이 거짓으로 밝혀질때 어차피 그의 자리도 흔들릴 수 밖에 없을 터이다. 1991년 10월.그러나 평양거리는 여전히 김주석에 대한 숭배의 열기로 뒤덮여 있었다.
  • 정치인의 의연스러움/김명서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느닷없이 공개된 한장의 사진을 놓고 정치권은 물론 일반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11일자 일부 신문에는 노태우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부시미국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과 함께 찍은 사진이 게재되었다.대략 보름정도 지각보도한 셈이다. 김대표측에서 희망 언론사에 한해 전달하는 형식으로 배포한 사진은 두커트였다.양국 대통령과 김대표가 나란히 서서 찍은 장면과 김대표와 부시대통령이 악수하는 순간을 담은 컬러사진이었다. 바로 당일 공개됐더라면 훌륭한 보도사진이었을 것이다.굳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정상회담자리에 여당의 2인자가 이례적으로 참석,소개됐다는 사실은 관심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김대표가 부시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장면은 국내사진기자들이 포착하지 못했었다.미국기자들이 먼저 사진을 찍은 뒤 외국기자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는 백악관의 관례때문이었다. 김대표측은 이점을 무척 아쉽게(?)생각한 것 같다.사진 한장이 전해주는 함축적 분위기는 기사 몇줄에 비해 훨씬 강렬할 수 있기 때문이다.김대표는 지난해 소련을 방문했을 때도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면담장면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점을 못내 섭섭하게 여겨 왔다고 한다. 김대표가 외국정상들과의 만남에서 기대하는 효과는 「입지강화」라는데 대해 이론은 없을 것 같다.이른바 「대세론」의 증폭효과일 것이다. 김대중 민주당공동대표도 지난번 소련·유엔·폴란드·독일을 순방하면서 방문국 정상을 만나려고 애를 쓴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볼수 있다.고르바초프·옐친·바웬사대통령과의 면담이 잇따라 무산되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은 점에서도 외국정상과의 만남에 어느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쉽게 집작할 수 있다.외국정상과의 만남이 정치적 비중을 높여 줄 것이라는 믿음,그리고 이는 국내정치에서 지지세력의 확산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민자당의 김대표와 부시대통령의 만남에 대해 갖가지 해석이 나돌았었다.김대표의 강력한 희망에 의해 성사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거부반응도 상당했다. 문제는 여야 정치지도자들의 이같은 의도가 지극히 작위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대권을 겨냥하는 이들이 외국정상들과 만나는 모습만으로 정치적 역량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발상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두 정치지도자가 우리나라의 민주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고 공적을 남겼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국민들은 대선을 앞두고 과연 어떤 정치지도자가 국가의 장래를 맡을 만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사진배포」나 「외국원수면담」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의연한 자세로 국가민족의 장래를 위한 자신의 비전만 제시하면 알아줄 사람은 다 알아준다.물론 이번 행위가 자신들의 뜻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목적의식」에 집착한 휘하의 추종자들에 의해 연출된 것인지도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씁쓸한 일이다. 「대도무문」의 길을 걷는 큰 정치인의 모습을 국민들은 간절히 원하고 있다.
  • 교육 부정의 수요와 공급(사설)

    명문대 무용과 교수의 억대 불정입학사건과 교사의 기부금채용사건이 동시에 물의를 빚고 있다.불정으로 입학한 학생을,부정으로 채용된 교사가 가르치는 관계속에 드디어 우리사회가 빠져버린 것을 상징하는 듯한 사건이다. 예능과목교수들의 입시부정은 이제 새로울 것도 없을 만큼 거의 모든 대학들이 저질러온 부도덕행위인 것 같다.그러나 그래도 이화같은 자존심 강한 명문여자대학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줄 알았는데 그런 믿음도 이번 일로 무너졌다. 의외의 돌발사고가 아니었으면 당분간 이런 일은 감춰졌을 것이고 그리고 계속되었을지도 모른다.그러고 보면 언제 어디서 잠복균들이 기어나와 어떤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킬지 알 수 없어 전전긍긍한 느낌이다.일대 정화작업을 벌여 청소해내고 새로 정비하는 결의가 대학의 자율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무용교수사건」을 통해 우리는 소름끼치도록 황폐한 세태를 학부모의 태도에서 더욱 확인했다.다 키워놓은 소중한 딸을 머나먼 이국땅에까지 가서 잃어버리고,차디찬 시신으로 돌려받은 슬픔이 이성을잃게 했으리라는 짐작은 가지만,이성의 상실과 『돈준것 돌려내라』는 요구는 좀 다른 차원의 것이다.학생을 부정입학이나 시키는 학교이므로 시정의 막거래하는 장사꾼이나 사기꾼과 진배없이 다뤄도 괜찮다는 의식구조가 세상의 학부모에게는 이미 정착해 있다고 풀이할 수 밖에 없다. 학교와 교수가 학교로서의 체통을 지키지 못하면 이 보다 더 흉칙한 대접도 받는다.개인주머니에 부정입학의 돈을 챙긴 몇 교수들 때문에 대학 전체가 감당할수 없는 구정물을 뒤집어쓰게 되어버렸다.돈으로 자녀의 입학을 사기 위해 학교와 교수를 공범으로 끌어들인 허물이 학부모들에게도 있고,도의적으로는 그 죄질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그렇더라도 마침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학교이고 교수이다.대학교육을 돌이킬 수 없는 봉욕속에 빠뜨린 「부정입학」의 화로부터 빨리 벗어나야 할 이유의 하나가 거기에 있다. 교사의 기부금 채용도 의외로 너무 만연된 부정이어서 심각한 교육부조리가 되고 있다.교육당국이 철저한 결의를 가지고 바로 잡아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다만 이번에 드러난 경포여고 사건을 통해 우리가 갖는 의문이 있다.「부정채용」이 이뤄지려면,부정으로라도 채용되기를 바라는 선생이 있어야 한다.그것은 모든 경제활동의 기본인 수요와 공급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채용자와 피채용자는 공범자다.그러므로 부정채용된 교사들은 그 이유만으로,스스로 교단을 떠나야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양심선언」이라는 이름으로 세탁과정을 겪는 진풍경이 있는 것같다.스스로 희생을 각오하고 부정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고자질하고 살아남는」방식의 이런 교사도 없어야 한다.당국은 부정한 재단과 부정한 교사를 다 찾아내서 정리하고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 노 대통령 귀국인사/전문

    유엔총회에 참석한뒤 멕시코 공식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여 국민여러분께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 민족의 운명을 남이 결정하는 타율의 시대는 끝났습니다.세계와 호흡을 함께 하며 하루하루의 생활을 영위하는 오늘의 국제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국외자로 국제무대의 바깥에 서 있어야 했던 비합리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유엔의 회원국으로서 우리 민족의 문제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복리를 위해 당당히 발언하고 이에 기여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저는 유엔총회에서 국제사회의 완전한 성원이 된 우리나라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이 세계의 화합과 번영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다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가져다 주었고 우리의 앞길을 가로 막아온 냉전체제는 국제사회로부터 무너졌습니다. 저는 그동안 추진해 온 북방정책이 3년의 짧은 기간에 이처럼 큰 결실을 이룬데 대해 국민여러분과 함께 보람을 나눕니다.우리는 북방정책을 통해 소련과 동중부유럽의 모든 나라와 우호협력하는 관계를이루어 이제 온 세계를 우리 국민의 활동무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남북한의 유엔가입을 실현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점에 섰습니다.남북은 다함께 유엔의 헌장을 준수함으로써 공존공영의 관계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그것은 7천만 겨레가 통일의 시대를 여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자유와 평화의 구현은 유엔헌장이 규정하고 있는 모든 회원국의 책무이며,사람과 물자,정보의 자유로운 교류는 이 개방된 세계에서 나라간에 통용되는 보편적 질서입니다. 남북은 이러한 바탕위에서 정치 군사문제를 포함한 대결의 요인을 자주적으로 해소해 가야합니다. 저는 아직 북한이 경직된 폐쇄체제에 매어 있으나 개방으로 전환할 날이 멀지 않다는 믿음을 새로이 하였습니다. 세계는 그 질서자체를 바꾸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소련과 동유럽의 모든 나라도 자유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전혀 새로운 나라가 되었습니다.세계는 서로를 갈라온 장벽을 허물어 하나의 공동체가 되고 있습니다.한반도는 이 지상에서 냉전으로 분단된 유일한 땅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며,이 세기안에 분단상황은 종식될 것입니다. 저와 부시 미국대통령의 회담은 이러한 나의 신념을 더욱 굳건히 해 주었습니다.미국은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려는 우리의 노력과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회담을 통해 저는 우리나라가 미국의 중요한 동반자이며 한미관계는 그 어느때보다 긴밀함을 재확인했습니다. 케야르사무총장과 유엔의 각국대표,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와 볼저 뉴질랜드총리등 각국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도 저는 한국의 더 높아진 위상과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높은 기대를 확인하였습니다. 저는 멕시코를 공식방문하여 미국 캐나다와 함께 자유무역지역을 형성하고 있는 이 나라가 우리의 남북 미주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관계증진의 기틀을 다졌습니다.살리나스대통령과 멕시코 조야는 우리 일행에게 극진한 환대를 베풀어 주었으며,태평양시대의 동반자로서 우리나라와 우호협력관계를 더욱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킬결의와 열의에 차 있었습니다. 이 세기에 들어 세계는 우리 겨레에게 남보다 더 큰 고난과 시련을 주었습니다. 세계는 우리의 활동무대로 바뀌고 우리 겨례의 앞날에 축복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없는 자리에서 남이 우리나라를 분단하는 역사는 더이상 없을 것입니다.동포형제가 총부리를 맞대고 수 많은 부모들이 젊은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극도 없어야 합니다.우리는 이 땅에 평화의 시대를 주도적으로 열어 나갈 것입니다. 부시 미국대통령은 해외에 배치한 모든 핵무기를 철수할 것을 발표하면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공약은 『비윗돌과 같이 공고하다』고 굳게 다짐하였습니다.미국의 해외 핵철수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안보 상황에도 큰 변화를 가져 올 것입니다.우리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함께 다른 모든 핵보유국들도 핵무기를 감축,폐기토록하여 한반도를 포함한 이 지역에 핵의 위협이 없는 평화를 구축해야 합니다. 북한의 핵무기개발 저지는 우리뿐만 아니라 온 국제사회의 긴급한 당면과제가 되고 있습니다.북한은 핵무기개발을 무조건 포기하고 국제사찰에 응해야 합니다.우리와 함께 북한은 이제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성원으로서,또한 같은 민족으로서 한반도에 군사적 대결을 해소하고 평화를 구축시킬 구체적인 조치에 합의하고 이를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우리 앞에 열린 통일의 길을 넓고 탄탄한 대로로 닦아가야 합니다.이를 위해 우리는 자유와 번영의 힘을 한껏 키워야 합니다.통일의 기회가 언제 오더라도 온 국민과 각계가 단합하여 이를 맞을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우리가 하기에 따라 통일의 날은 앞당겨 질 수도… 미루어 질 수도 있습니다.우리는 자유와 번영을 향한 인간의 열망이 냉전체제의 높고 굳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동서독일의 통일을 이루게 한 것을 감동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세계를 바꾸고 있는 역사의 물결은 한반도에도 밀려와 오랜 교착상태를 깨고 남북한의 유엔 가입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물결을 능동적으로 이끌어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통일의 그 영광된 날을 향하여,더 넓은 세계를 향하여… 7천만 겨레 모두의 밝은 내일을 향하여 모두가 자신과 신념을 갖고 힘차게 전진할 것을 다짐합니다. 미주의 동포들도 유엔가입을 기쁨으로 맞으며 더 큰 희망에 넘쳐 있었습니다.국민여러분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조계종,왜 이러는가(사설)

    조계종은 신도 9백12만여명,스님 1만3천여명,사찰 1천7백여개를 거느린 한국불교의 으뜸종단이다.해방후 새로지은 사찰과 암자를 제외하면 전국에 산재해있는 고찰의 거의 전부가 이 종단의 소속이다.법맥계승의 정통성이나 교세에서 「한국불교=조계종」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그런데 이 거대한 종단이 요즈음 분종위기에 직면해 있다. 서의현 총무원장체제에 반기를 든 중흥회가 지난 26일 통도사에서 「전국승려및 불교도대회」를 열고 서총무원장의 해임을 결의하는 한편 새총무원장에 채벽암스님을 선출함으로써 사실상 분종상태에 돌입한 것이다.서총무원장 진영은 이에대해 『중흥회측이 분종을 획책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맞서고 있다.조계종이 분종위기에 직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78년 종정과 종회의 대립으로 조계사와 개운사에서 딴살림을 차린적이 있고 88년에는 봉은사의 주지해임을 둘러싸고 폭력분규가 빚어진뒤 조계사와 봉은사에 각각 총무원간판을 내걸었던 일이 있다.그러나 이번의 분종위기는 상태가 좀 심각하다.표면적으로는 종정추대를 둘러싼 견해대립으로 되어있지만 그밑바닥에는 종단의 양대문중 범어문중과 덕숭문중의 뿌리깊은 파벌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중흥회측은 조계사에 있는 현총무원을 접수하지 못할 경우 수원의 용주사에 총무원간판을 내걸 것이라고 하는데 불국사·법주사·신흥사·직지사등 종단의 유력한 교구본사들이 중흥회측에 가세할 것으로 보여 파국은 면치 못할 것같다.종단주변에서는 78년과 88년의 분규때처럼 이번에도 항구적분종이 아니라 일시적분종으로 끝날 것이란 낙관적인 견해도 없지 않지만 이번사태는 그때와는 달리 교구본사들이 들먹거리고 서의현총무원장의 도덕성문제까지 제기되고 있어 자칫하면 법정싸움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그렇게 되면 조계종은 둘로 쪼개질 수 밖에 없고 한국불교는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된다. 따라서 분종은 막아야 한다.지금은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질때가 아니다.우리는 우선 범어·덕숭문중을 대표하는 이성철스님과 최월산스님이 손을 잡고 위기를 수습해야하며 종단의 큰스님들도 파벌의식을 버리고 여기에 가세,화해와 자비의 큰뜻을 펴나가야 한다고 믿는다.이름이야 어떻든 분규수습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 대안을 제시해야하며 종단의 제도개혁을 위한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한다. 조계종의 분규는 총무원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진데에도 원인이 있는만큼 차제에 종단행정체제를 총무원장중심제에서 본사중심제로 바꾸는 문제를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며 스님들의 자질향상을 위한 교육제도의 개혁도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파사현정의 기개와 수도의 기품이 진작되지않는한 분규는 계속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불교에서의 믿음의 대상은 불·법·승 삼보이다.거룩한 부처님,거룩한 가르침,거룩한 스님이 그것이다. 이제라도 스님들은 다툼을 끝내고 「무소유」,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화해와 자비의 부처님 뜻을 구현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김일성 새달 4일 방중/WP지 보도

    ◎대소 냉각따른 경제지원 모색 【워싱턴 연합】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오는 10월4일 중국을 방문,소련붕괴 후의 중국­북한 양국의 협력관계를 비롯한 현안문제를 협의할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25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 중국소식통의 말을 인용,김일성이 10월4일 북경에 도착할 예정이며 과거 김의 중국 방문때와는 달리 이번 여행은 공개적으로 이뤄질 것이며 이번주 북경에서 공식 발표가 있을 것같다고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김일성은 중국방문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강경한 공산주의국가인 두 나라간의 협력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하고 소련에서 공산주의가 붕괴되기 전에도 소련이 지난해 한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룬후 소­북한 양국간의 관계가 냉각되어왔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한이 소련 공산당 붕괴로 더욱 고립화되었으며 북경으로부터 정신적·경제적 지원을 추구할지 모른다고 분석가들의 말을 전했다. 한 서방외교소식통은 김이 북경에 오는 것은 소련에서 발생한 사태로 인해 중국인들이 『우리는우리의 믿음을 계속 유지할 것이고 당신네들도 그렇게 하기를 희망한다』고 북한에 다짐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시의적절하다고 말했다.이 신문은 쿠바나 베트남과 같은 다른 공산주의국가들이 중국이 앞장서서 국제공산주의의 깃발을 높이 쳐들기를 희망하고 있는 때에 김의 중국방문이 이뤄진다고 말하고 최근 중국공산당 대표단이 쿠바를 1주일간 방문해 카스트로 쿠바대통령과 회담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 노 대통령 출국인사 전문

    ◎유엔가입은 통일 앞당기는 현실적 선택/민족의 운명 우리가 결정하는 시대 열려 저는 유엔회원국의 국가원수로서 제46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멕시코합중국을 국빈자격으로 방문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려 합니다. 우리나라는 그저께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완전한 성원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교역량으로 세계 열세번째,총생산으로 세계 열다섯번째로 번영하는 나라,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장 훌륭한 올림픽을 치른 나라로 발전했으나 국제사회의 중심무대인 유엔의 바깥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냉전체제 때문이었습니다. 지난날 우리와 대결해온 진영의 강대국들이 우리의 가입을 막아왔던 것입니다. 우리의 유엔가입은 우리 겨레에게 분단과 전쟁의 엄청난 비극을 가져다 준 냉전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제 한반도는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시대로 가는 역사의 전환점에 섰습니다. 남북한이 한 나라가 아니라 두 의석으로 유엔에 들어가는 것은 가슴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은 통일을위해 반드시 거쳐야할 잠정적인 단계이며,또한 이러한 과정이 통일의 날을 앞당기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믿음으로 이를 추구해 왔습니다. 우리는 작년 독일의 통일과 함께 동서독으로 나뉜 유엔의 두 의석이 17년만에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엔의 남북한 의석도 멀지않아 하나가 될 것이며 그것은 이제부터 우리의 지상과제가 될 것입니다. 세계의 질서자체를 바꾸는 이 큰 변혁속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시간의 문제일 뿐 필연적인 역사의 순리입니다. 그 날을 얼마나 앞당길 수 있는지는 오직 우리 겨레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북한이 이제까지의 완강한 거부태도를 전환하여 우리와 함께 유엔에 가입한 것을 충심으로 환영합니다. 남북한은 이제 무력의 사용을 포기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공헌할 것을 규정한 유엔헌장을 다함께 준수해야 합니다. 이와함께 남북한은 교류협력하고 서로가 서로를 돕는 관계를 이루어 국제사회의 성원으로 그 책무를 다해야 합니다. 이것은 남북간에 대결을 종식하고 공존공영하는 관계를 이루는 바탕이 될 것입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남에게 외교권을 빼앗긴 이래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가진 당당한 나라가 되는 것은 겨레의 오랜소망이었습니다. 을사보호조약 이후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회복하기 위해 헤이그 만국평화회담에 밀사를 보냈습니다. 이준·이상설·이위종은 회의장의 문밖에서 약소민족의 한에 통분해야 했습니다. 나라를 잃은 그 캄캄한 시대 우리는 많은 국제회의장 밖에서 독립을 탄원하고 호소하였습니다. 해방후 나라의 분단도 우리가 없는 곳에서 남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유엔에 처음 가입을 신청한 때로부터도 42년의 긴세월이 흘렀습니다. 온 겨레가 걸어온 고난의 역정을 새기며 회원국의 대통령으로 세계평화의 전당에 서게 된 것은 감회깊은 일입니다. 이제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하는 자주의 시대가 열렸을 뿐 아니라 우리는 세계와 인류의 공영을 위해 발언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시대를 맞았습니다. 저는 유엔총회에서 오늘과 내일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 우리 겨레가 나아갈 방향을 세계에 밝힐 것입니다. 유엔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으며 건국과 한국전쟁,전후 부흥과 경제발전의 과정을 통하여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우리의 자리가 그곳에 없었을 때 우리를 돕고 우리를 대변해준 모든 나라,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제 우리나라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더 큰 역할을 하는 나라가 될 것임을 밝힐 것입니다. 저는 뉴욕에서 부시 미국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등 세계 여러나라와 유엔의 지도자들도 만날 것입니다. 인구 8천만에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는 멕시코는 중요한 태평양국가일 뿐만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권의 지도적 국가입니다. 우리나라와 멕시코간에는 최근 통상과 경제협력이 크게 증대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멕시코는 미국 캐나다와 함께 자유무역지역을 형성함으로써 투자등 경제면에서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우리의 협력 대상국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이 나라를 방문하여 양국관계발전은 물론 중남미지역과 우리나라간의 관계를 가일층 강화하는 전기를 마련하려 합니다. 이번 유엔·멕시코방문은 열흘간의 일정이나 저는 그 어느때보다 큰 기대와 희망을 안고 떠납니다. 북방세계의 굳게 닫힌 문을 열어 세계의 모든 나라와 우호협력하는 관계를 이루고,온 세계를 우리 국민의 활동무대로 만든 것처럼 우리는 우리 힘으로 통일의 길을 열 것입니다. 저의 이번 여행이 그 길을 개척하는 힘찬 발걸음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보람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돌아오겠습니다.
  • 특별기고/유엔가입 이후의 남북한/개스턴 시거

    ◎“북한의 진실한 태도 변화만이 한반도의 평화·진보 보장한다” 한국과 북한이 드디어 동시에,그리고 각기 다른 나라로 유엔에 가입했다. 두나라가 궁극적인 목표로 추구하고 있는 것은 통일이다.그러나 남북한의 이번 유엔 동시가입은 오랫동안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에 인식되어 왔듯이 서울과 평양에 두개의 합법적인 정부가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을 유엔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한국측의 주장을 북한이 마침내 받아들인 것이다. 북한은 이제 유엔의 투표권을 가진 회원국이 됐다.따라서 평양측이 이를 국제공동체의 일원으로 보다 실질적이고 책임있는 역할을 맡게된 최초의 계기로 삼아줄 것을 전세계는 바라고 기대할수 있게 됐다.북한이 최근 세계를 감싸고 있는 평화의 기류속에서 국익의 호기를 잡기 위해서는 먼저 많은 자세의 변화를 보여야 할 것이다.나는 한국이나 미국,그밖에 다른 민주국가들이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여는 아마도 북한이 세계가족의 일원으로 책임있는 역할을 하는데 대한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절망적 상태에 있는 북한의 경제는 무역증진및 외부로부터의 원조와 투자제공으로만이 소생시킬수 있다.만일 북한이 기꺼이 외부세계에 문호를 개방하고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간에 선진개발국들­이중 가장 중요한것은 한국­과의 접촉과 교류증진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다면 우선 북한경제의 하부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아울러 북한에 대한 무역확대와 원조및 투자제공 등의 소생방안들이 취해져야 한다. 우리는 한국의 김진현과기처장관이 지난 6일 한미관계 한 모임에서 『최근들어 북한이 유엔에의 남북동시가입이 이뤄진 후에는 그 경제체제를 국익에 기초한 체제로 전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행한 연설에서 다소 희망을 가질수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한반도의 통일은 서울이나 평양이나 양측 정부의 최고의 정책목표가 돼있다.이제 그같은 목표달성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양측이 신뢰의 분위기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그 한예로 남북한 사람들이 남쪽과 북쪽에서 함께 일하든지또는 운동 등을 통해 양측정부가 안팎으로 갖고 있는 불신감을 줄이는 노력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이는 남북간 광범위한 분야의 협력을 위한 혁신적 계획의 수립과 실행을 뜻한다. 한편 이들 국가들이 유엔에 들어옴으로써 그들이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새롭고 특별한 생각이나 제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희망도 갖게된다. 과거의 여러 기회를 잘활용했던 것같이 노태우대통령이 이번 유엔가입을 계기로 한반도의 평화분위기 조성을 위한 적극적이고 고무적인 제안들을 내놓을 것을 기대할 수 있다.나는 이와 동시에 북한도 국제문제에 있어서 완전하게 또 책임감 있게 참여할 것과 그렇게 함으로써 참여에 따른 모든 이익들을 얻을 수 있도록 자신들의 의도를 명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할 기회를 가질 것을 희망한다. 물론 말로만의 표현은 충분치 않고 행동이 취해져야 한다.이같은 행동중의 하나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정협정에 서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이에는 핵무기 생산의 잠재력이 있는 북한의 모든 시설들에대한 전체적이고 완벽한 국제사찰이 수반돼야 한다.국제사찰팀으로부터 은폐가 전혀 불가능한 이라크의 예와같이 북한은 아무것도 감추고 있지 않으며 또 제한없는 사찰을 허락할 용의가 있음을 밝힐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한반도에 관한 상황은 가변성과 불확실성을 갖고 있고 또 남북한간의 관계에 있어서 변화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간의 동맹구조는 굳게 남아있어야 하고 미국의 한국에 대한 방어의지 역시 굳건하고 단호하게 보여져야 한다는 것은 절박한 현실이다. 이와 동등하게 중요한 것은 미국·한국·일본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에서 공통된 입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들 세나라가 북한에 대해 위협이 되지 않음을 표현하고 거짓없는 일정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이들 모두는 또한 솔직하게 그들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원하고 있음을 밝혀야한다. 무엇보다 중요하것은 이들 국가들과 관계개선을 하려면 평화와 안정과 진보의 원칙을 신봉한다는 믿음성있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하며 진실된 태도변화의 결과로서만이 가능할 것임이 틀림없다. ▷개스턴 시거◁ 미 조지 워싱턴대 명예교수 67세.미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백악관 특별보좌관,조지 워싱턴대 국제정치학교수및 중소문제연구소장 역임.
  • “통일의 날 멀지 않다”/노 대통령,한민족체전 개막인사

    노태우대통령은 12일 제2회 세계한민족체전 개막에 즈음한 인사말을 통해 『우리 민족을 남북으로 갈라 맞서게 해온 세계의 대결구조는 와해되었다』고 말하고 『이 세기적 변혁속에 이루어지는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한반도가 평화와 통일로 가는 큰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체전종합안내책자에 수록된 이 인사말에서 『우리는 드높아진 자주 역량을 결집하여 7천만 겨레가 한울타리 속에 평화롭게 살아갈 통일의 날을 앞당길 것』이라고 다짐하고 『세계의 우리 민족이 이처럼 한마당에 모이는 것은 통일의 날이 멀지 않다는 믿음을 굳게 해준다』고 말했다.
  • 「공동대표제」 정착여부 최대 관심/통합 「민주당」 어떻게 운영되나

    ◎당론 결정·당직 임명 합의제로/두 총재,당 공식회의 교대로 주재 통합야당인 「민주당」은 앞으로 어떤 형태로 운영될 것인가. 산고끝에 우리정당사상 유례가 없었던 공동대표제를 채택한 민주당의 진로는 이 제도를 어떻게 정착시키느냐의 여부에 따라 성패가 판가름날 것이 분명하다. 우선 신민·민주당이 선택한 공동대표제는 당을 두사람이 공동으로 대표하고 모든 당무는 공동대표가 합의로 운영하게 되어 있다.또 이같은 합의운영의 제도적 안정장치로 양당 동수의 최고위원회의체가 구성되어 있다.법적으로는 공동대표중 연장자인 김대중총재가 중앙선관위에 대표로 등록토록 되어 있지만 당론결정·당직임명·조직책선정등에 대해서는 두 지도부의 합의가 없으면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도록 되어 있다.현재까지 양측의 논의내용으로 미루어 볼때 당공식회의 주재는 교대로 하되 여야영수회담참석등 대외적인 대표권은 법적등록대표인 김총재가 맡는 것으로 절충되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지도체제와 더불어 당의 면모를 짐작케 하는 것은 당직 배분및 지구당조직책 안배이다.당직은 6대 4로 배분키로 합의함에 따라 민주당은 사무총장·원내총무·정책위의장등 당3역중 1석,당9역중 적어도 3명을 할애받게 된다. 이같은 빈익빈 부익부현상 때문에 신민당측은 현최고위원을 당고문으로 추대하고 소장층을 최고위원급으로 승격시켜 민주당과 격을 비슷하게 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구당조직책선정문제에 있어서 양측은 서울등 중부권을 제외한 영호남지역에 있어서는 마찰의 소지가 없는것으로 보여진다.합의내용중 굳이 서울지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지분과 관계없이 인물본위로 선정한다는 대목을 넣은 것이 상대적으로 지역적 기득권을 인정하는 증거이다.그러나 서울지역의 조직책선정과정에서의 마찰은 불가피할것으로 예상된다.양측 지도부는 지역구 선택문제를 놓고 현역의원(신민14,민주2명)을 제외한 양측의 원외지구당위원장들은 지구당획득을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일것이 분명하며 이과정에서 집단반발및 탈당사태도 벌써부터 예견되고 있다.3개월 이내 지구당개편대회를 완료해야되는 점으로 미루어 볼때 통합민주당은 14대총선에 임박해서 한차례 진통을 겪을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결국 통합민주당 순항여부에 대한 열쇠는 양자간의 「약속」과 「믿음」이라고 하겠다. ○신민­민주 합의내용 1.당명:통합당의 당명은 「민주당」으로 한다. 2.지도체제:지도체제는 최고위원 집단지도체제로 하되 양당의 현 총재는 공동대표로 한다. 공동대표는 당무를 통할하고 최고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쳐 양인의 합의로 당무를 처리하며 정무회의의 의장이 된다. 3.조직책의 선정 ⑴당대당 통합정신을 바탕으로 인물본위로 다음 기준에 의해 선정. ①민주화의 신념과 활동경력 ②정치적 도덕성 ③정치적 역량 ④직능및 분야별 전문성 ⑵조직강화특위는 양당 동수로 구성한다. 4.통합 관련 모든인사들의 동참 원칙 당내 민주주의와 통합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제시와 행동을 표출하였던 인사들을 모두 동참시켜 통합정신을 고양하고 당내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킨다. 5.주요 일정에 관한 사항 ⑴1991년9월10일 9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양당 총재의 통합선언을 위한 합동기자회견 ⑵9월11일까지 양당소속위원 교섭단체 구성 ⑶9월13일:이기택대표 국회정당대표연설 ⑷9월14일:양당통합을 위한 수임기관 합동회의 ⑸9월16일:중앙선관위 등록
  • 통합 야당의 성패(사설)

    신민당과 민주당이 통합원칙에 합의함으로써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야당통합문제가 급진전을 이루고 있다.정치가 우리의 경제 사회와 모든 생활에 영향을 주는 현실에서 정치판도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수 있는 「야통」에 국민의 관심이 크지 않을 수 없다.이같은 국민의 눈초리를 어떻게 느끼느냐에 「원칙합의」에서 「완전합의」로 가느냐 못가느냐가 판가름날 것이다. 양당의 구성원,특히 지구당위원장급의 이해가 민감하게 걸려있는 지분문제가 아직 남아있고 또 반발세력의 크기와 강도가 밝혀지지 않아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지도부가 공생의 의지를 확실히 한다면 문제는 풀릴 것이다. 곧 닥칠 총선에서 김대중대표를 내세운 야당을 탐탐치 않게 생각하는 비호남권인사를 어떻게 설득하고 많이 포용하느냐가 지도부에 맡겨진 당면 과제라 하겠다. 지금까지 합의된 원칙에 따라 통합야당이 이루어진다면 몇가지 상황을 예상할수 있다.우선 거여인 민자당과 이에 맞서 김대중씨를 얼굴로 한 가칭 민주당의 양당제정착과 총선 대통령선거를 앞둔 여야대결구도를 가져올 개연성이 크다.그러나 이같은 구도는 정치의 불안과 퇴보를 가져올수도 있다.극한대립과 흑백론이의 재현가능성도 점칠수 있다. 이는 국민의 바라는 바가 아니다.따라서 새통합야당의 성패는 국민이 바라는 바를 제대로 읽고 새로운 각오로 구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느냐에 달렸다.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수권능력을 키우는 능동적 노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가시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다방면의 훌륭한 인재를 많이 영입하는 것이다.지금까지 야당의 인적구성이 집권대체세력으로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에는 매우 미흡했다는 사실을 야당지도부는 인식해야 한다.아직도 지분협상이 가장 난항을 겪고있고 확보된 지분도 자당세력을 무마하고 포용하는데 쓸수밖에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인재영입과 물갈이는 가장 필요한 요소로 볼수 있다. 여기에 또한가지 고려할 사항은 호남색을 보다 약화시키는 문제이다.이번 야통의 의미도 그렇지만 전국적인 기반을 마련하려면 호남색을 뚜렷이 탈색시키는 고역을 감수해야 할것이다.재야지분에서도 인재영입과 지방색타파를 고려 할 일이다.이미 야당에는 평민련 신민주련 민련등 과거 재야세력이 다수 포진해 있다.이제는 투쟁성보다는 국민의 믿음을 살수 있는 인물의 발굴이 필요한 때이다. 야당이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얻기 위해 해야 할 다른 하나는 합리성을 바탕으로한 정책정당의 모습을 갖추는 일이다.반대만 하면 되었던 과거 야당의 방식으로는 이제 설자리가 없다.또 특정인의 대권욕심에만 매달려서도 국민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격변하는 국내외정세를 읽고 대안을 제시하며 사회각계각층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조정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일이야말로 수권정당이 해야 할 일이다. 당내민주화에는 관심없이 한두 지도자의 독선이 판치고 쓸데없는 선명성경쟁으로 국력을 낭비하는 일은 반드시 고쳐나가야 한다.
  • 수산청 흑산도 어촌 지도사 이군승씨(이런 공무원)

    ◎외딴섬에 「기르는 어업」 뿌리 내리기 10년/24세때 모두가 외면하는 곳 자원… 선진어업 가르쳐/김·우렁쉥이 양식 성공… 어민들 “도사” 별명/주민들과 동고동락… 자녀교육 상담까지 서남해의 외딴섬 흑산도.이름 그대로 하늘과 바다가 온통 푸르다못해 검게 보이는 이곳엔 예상과는 달리 회색 빛깔의 인공어초가 즐비하게 쌓여있고 가두리 양식장의 주황빛 부표들이 점점이 떠있다.한때는 고기잡이배들이 수천척씩 몰려 파시를 이루었던 곳이었지만 어선들은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고 대신 그 자리에 길러서 잡는 어구와 시설물들로 메워지고 있는 것이다.흑산도를 양식 어업의 중심지로 바꾸어 놓은 주역은 어촌지도사 이군승씨(33)이다. 해풍에 검게탄 얼굴,젊고 자신감 넘치는 그의 표정이 믿음직스럽다.이곳 어민들은 그를 「도사」라고 부른다고 했다. ○목포서 뱃길로 7시간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수산직 기술공무원인 어촌지도사를 부르기 쉽게 줄여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 것.그러나 사실은 그가 외딴섬 어민들에게 새로운양식기술 등을 보급하고 최신 어업경영기법 등을 가르쳐 주면서 고기에 관한한 진짜 「도사」라는데서 붙여진 애칭이라고 한다. 『전에는 이 섬에 부임하면 다음날 부터 도시로 되돌아 가려고 했답니다.제가 10년 가까이 붙박이처럼 이곳에 남아서 어촌지도를 꾸준히 했다고 분에 넘치는 별호를 붙여준 것 같습니다』 이씨는 이 곳에 근무한지 1년만에 승급의 우선권이 주어지자마자 이곳을 떠날 수도 있었지만 「잡는 어업을 기르는 어업」으로 힘겹게 돌려놓았기에 그 열매를 직접 보고싶어 지금까지 남아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가 흑산도로 부임한 것은 82년말.그때만해도 이곳엔 전기는 물론 직통전화조차 없었고 먹는 물사정도 나빴다.또한 목포에서 뱃길로 6∼7시간이 걸려야 닿을수 있는 오지였기 때문에 아무도 이곳 근무를 희망하지 않았다. 수산청 어촌지도소에서는 궁여지책으로 1년이상 근무하면 승진시키고 다른 어촌지도사들의 봉급이나 출장비에서 10%정도를 떼내어 지원해주는 방안까지 제시했다.이같은 특전으로 이씨의 전임자가 부임했었으나그는 1년만에 승진되자마자 곧 철수했고 그뒤로 후임자가 또 없었다. 이같은 사실을 알게된 이씨는 당시 24세의 젊은 나이인데다 근무하고 있던 해남은 이미 선진어법이 보급돼 더이상 자신이 할 일이 없다고 판단,이곳 외딴섬의 근무를 자원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현지에 와보니 넘어야할 어려움과 고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는 불편한 생활여건 보다도 외딴섬의 특성상 옛 씨족사회의 관습이나 의식이 그대로 남아있고 외지인에 부리는 텃세가 심해 더 안주하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제가 찾은 주민들은 저를 외면했습니다』 특히 주민들은 넓고 주인없는 바다에서 그물만 던지면 고기를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데 무슨 선진어법이 필요하냐면서 그의 지도에 시선조차 주지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주민들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추구했다.그 방법은 선진어법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확실한 지름길임을 실제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83년 도목리 어촌계에서 김양식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연 소득 1천2백만원 여름에 육지에서 조개껍질에 김의 씨를 뿌려 키운뒤 가을철이 되면 바다속의 시설에 옮겨심어 재배하고 이를 기계로 말리는 방법으로 다음해 1㏊에서 4천만원의 소득을 올려 시설비등을 제외하고 1천만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이렇게되자 그토록 두껍던 주민들과의 벽이 차츰 얇아졌다.이씨의 성공사례를 눈으로 지켜본 35가구가 그해 김양식사업에 뛰어들었다.7년이 지난 현재 주민들은 김양식으로만 연간 30억원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지난 86년엔 남해·동해안에서만 양식이 가능한 우렁쉥이양식을 이 섬에서도 시도해 보기로 결심,어민후계자인 장현수씨(32)에게 한번 길러보도록 권유했다. 이씨의 지도로 장씨는 50만원을 투자해 2년만에 1백40만원의 순수익을 올리게 됐다. 『혹시 잘못해서 실패라도 하는 날이면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탑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제 일같이 일했습니다』이씨는 주민들이 잠자는 밤에도 몇차례씩 양식장을 둘러보곤 했다.그의 이같은 열정에 감복하지 않는 주민이 없었다.그는 어업지도 이외에도 자녀교육이라든가 가족간의 갈등에 관한 상담에도 나섰다.그는 처음엔 몰랐으나 점차 자신을 의지해오는 주민들에게 가르쳐줄 것이 거의 바닥이 나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그래서 어업기술은 물론 철학 심리학 교육학 등에 관한 1천여권의 책들을 사들여 틈틈이 읽고 스스로 터득한 기술과 학문을 주민들에게 나눠졌다.그의 이같은 인간적인 행동으로 주민들은 이제 그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말한다. 1천1백여가구의 어민들은 이제 기르는 어업으로 연간 가구당 평균 1천2백만원의 소득을 올려 풍요롭고 경쟁력 있는 어촌으로 탈바꿈했다. 『처음엔 어민들중에 물고기나 김의 질병관리를 소홀히 했다가 예상보다 소득을 못올리고는 지도사인 저를 무조건 탓하기도 했습니다.그럴때는 당장 짐을싸 뭍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한두번 마음먹은 것이 아닙니다』 그럴때마다 그는 성공한 어민들을 예로 들면서 실패원인을 같이 정밀분석해 다음해에 높은 소득을 올리도록 도왔다. ○“제2의 고향 지킬터”그는 지금도 소흑산도 홍도를 포함한 11개 유인도와 89개 무인도를 자신의 유일한 발인 90㏄ 오토바이를 타거나 소형어선을 몰고 다니며 밤낮으로 어업지도를 하고 있다.『아마 제가 다닌거리는 지구를 두바퀴이상 돈셈은 될겁니다』 지금은 직급도 6급대우인데다 한달 봉급으로 75만원을 받고 있어 일하는 보람도 그만큼 크다고 말한다.중매결혼한 부인 김영심씨(32)와 국민학교 5학년인 딸,2학년인 아들등 세가족과 함께 그동안 줄곧 셋집에 살다가 지난해말 비로소 융자받은 5백만원을 포함해 1천만원으로 흑산면 예리에 25평 규모의 내집을 장만했다. 취재를 끝내고 흑산도를 떠나는 기자를 배웅하는 이씨는 거센 해풍과 파도에도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는 홍도의 풍란처럼 기르는 어업이 자생력을 갖출 때가지 흑산도를 제2의 고향으로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 미 CIA,쿠데타 사전 탐지

    ◎“고르바초프 집권 며칠 안남았다” 경고/부시,“그럴리 없다” 거들떠보지 않아 세계최대의 정보망을 가진 미CIA(중앙정보국)는 소련에서 은밀히 진행된 강경파 쿠데타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최신호에서 CIA가 소련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기 이틀전인 지난 17일 부시행정부에 고르바초프의 집권이 며칠 남지않았다는 내용의 강력한 경고를 했다고 밝혀 CIA가 사전에 소련 쿠데타를 감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했다.그러나 CIA의 이 경고에도 불구하고 부시대통령을 비롯,정부고위층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밝혔다. 뉴스위크지에 따르면 미정부 고위관리들에게 배포되는 CIA의 「국가정책 일일보고서」에서 크렘린의 보수파들이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대항하기 위한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탱크가 모스크바의 거리를 누빌 때까지도 백악관과 국무부는 고르바초프가 보수파의 어떤 도전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또 미정보부소식통들도 부시대통령이고르바초프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이 강했기 때문에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적신호를 무시하게 됐다고 전했다.미정보부의 소련에 대한 정보수집능력은 이미 냉전시대부터 형성됐다.소련의 개방정책으로 CIA는 소련정보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 소련 공산당 몰락을 지켜보며/복거일 (특별기고)

    ◎고르비의 역사적 역할은 끝났다/온건개혁으론 「민주혁명시대」 못 이끌어 자신을 몰아내려 했던 정변이 실패한 뒤,고르바초프가 사회주의 이념과 공산당에 대한 믿음을 밝힌 대목은 여러 모로 흥미롭다. 1985년 집권했을 때,고르바초프는 도전받지 않는 공산당의 지도 아래 생기를 되찾은 사회주의 이념을 따라서 정치적으로 강력하고,경제적으로 효율적이며,정신적으로 자신감을 가진 소련을 만들 수 있다고 공언했었다.공산당도 사회주의 이념도 파산한 지금,그가 그런 믿음을 아직 지녔다는 사실은 그의 됨됨이와 그가 주도한 개혁의 성격에 대해 말해주는 바가 많다.생각해보면,그런 믿음이 그를 소련의 정치적 지도자로 만들었고,그를 몰락시켰다. 혁명은 거의 언제나 체제에 대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그것을 지키려는 시도로 시작된다.그들은 온건한 개혁 조치들이 빨리 이루어질 수 있다면 혁명을 막을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온건한 개혁 조치들은 숨겨진 사회적 힘들을 풀어놓게 마련이다.그래서 한번 시도되면 개혁은 빠르게 혁명으로 바뀐다.그리고 그런 혁명의 불길을 타고 나갈 마음도 능력도 없는 온건 개혁파들은 뒤에 「잊혀진 사람들」로 남게된다. 프랑스 혁명 때의 라파예트가 대표적 예다.혁명 초기 개혁을 주도한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지만,그는 끝까지 입헌군주제를 지키려고 애썼다.그러나 그런 개혁은 이내 혁명을 요구하는 세력들을 불러냈고 그를 중심으로 한 온건 개혁파들은 밀려났다. 고르바초프는 라파예트가 걸은 길과 아주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정치와 경제를 온건한 방식으로 개혁하려는 그의 노력은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바라는 세력을 불러냈다.그것이 역사의 무대에서 그가 맡은 배역이었다.이제 그 배역은 끝났고,그는 곧 무대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다. 물론 명령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꾸는 일은 아주 힘들고 급진파들의 혁명적 시도가 실패하여 반동의 움직임이 나올 가능성은 크다.그러나 그런 반동이 나오더라도,고르바초프가 할 역할은 클 수 없다.큰 혼란이 반동을 부르면,그런 부름에 응하는 것은 군부 정권일 것이다.라파예트가 다시 나서는 것이 아니라,보나파르트가 나타나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극적 몰락은 소련 제국의 특수한 사정에서 작지 않은 부분이 나왔다.공산주의 체제를 허무는 일은 소련 제국을 그것을 구성한 공화국들로 나누는 과정과 맞물려 있고,되도록 소련 제국을 지키려는 온건파가 각 공화국들을 대표하는 급진파들에게 점점 세력을 앗기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그런 요소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의 정치적 역할은 빠르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지금 고르바초프가 맞은 어려운 사정은 1790년대 초의 라파예트가 맞은 어려운 사정과 아주 비슷하다.라파예트는 왕당파로부터는 혁명운동가로 비난받았고 급진파로부터는 체제 옹호자로 비난받았다. 파리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난 뒤,의회가 왕의 권한을 정지시키자 불란서 군대를 이끌던 라파예트는 거의 홀로 군주제를 지키려고 애썼다. 그런 노력이 실패한 뒤,그의 군대가 그를 버리고 의회가 그를 범죄자로 규정하자 그는 미국으로 망명하려고 국경을 넘었다.지금 고르바초프는 공산주의 체제를 지키려는 세력과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세력으로부터 협공받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몰락이 그의 은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파예트는 보나파르트의 등장과 몰락 뒤에도 꾸준히 활약했다.그러나 옐친으로 대표되는 급진파가 세력을 얻은 뒤에 고르바초프가 할 일들은 역사적으로 별다른 뜻을 지닐 수 없을 것이다.1792년 뒤의 라파예트의 활동이 역사적으로는 후일담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라파예트나 고르바초프처럼 온건한 개혁을 통해 체제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대개 합리적이고 정직하고 인정이 많으며 흔히 그 사회가 낳은 사람들 가운데 인간적으로 가장 매력있는 사람들이다.그런 사람들이 몰락하여 역사의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서글프다. 돌이켜보면,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꼭 서글픈 것만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누구도 동시에 라파예트와 당통이 될 수 없다.그래서 옐친에게 수모당하는 고르바초프의 모습은 그가 자신에게 맡겨진 역사적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것을,그리고 그의 이름이 역사에 크게 남으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정말로 서글픈 것은그런 역할을 맡았으면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다.그들은 곧 잊혀진다.아니 두고두고 비난받는다.소련보다 개혁이 훨씬 쉬웠던 중국을 이끈 등소평의 경우다. 고르바초프 대신 등소평을 정치적 지도자로 가졌다는 사실은 중국의 불행이다.물론 더욱 서글픈 것은 북한이 아직 등소평과 같은 사람도 낳지 못했다는 사실이다.언제 북한에 등소평이 나타날 것인가,고르바초프는 그만두고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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