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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기업 ‘반환특수’ 노려 잰걸음

    ◎향후 경제정책 낙관… “중화권 교두보 확보”/중국계 기업과 합작 대륙진출 호기 활용 일본 경제계가 홍콩 반환을 호기로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일본 기업들은 홍콩 자체가 큰 시장일 뿐 아니라,동남아시아와 중국대륙으로 진출하는데 도약대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 제조업체나 금융계 등에서 홍콩반환을 호기로 여기는데는 중국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일본 경제계를 대표해 홍콩 반환식에 참석한 도요타 쇼이치로(풍전장일랑) 게이단렌(경단련) 회장은 “홍콩경제의 향방에 대해 나는 아무런 걱정도 없다고 생각한다.홍콩 경제인들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고 말해 이같은 믿음을 강력히 피력했다. 유통업체인 미쓰이물산 미쓰비시상사 스미토모상사등은 화교와 공동으로 출자해 홍콩에 설립한 항공 해상화물 운송회사를 창구로,중국 전체를 대상으로 한 트럭 수송망을 구성해 가고 있다.이를 위해 이들은 올해 광주와 청도에 물류회사를 설립했다.또 미쓰비시상사와 미쓰비시창고는 상해에 대규모 물류센터를 건설중이다.이러한 움직임은 세계와 중국을 연결하는 홍콩의 출입구 역할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증권회사들도 호기가 온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중국계 기업이 홍콩시장에서 신규 주식공모나 기채로 자금조달을 하려할 때 이에 관여하는 것이 증권회사가 노리는 비지니스.노무라증권은 중국 총대표를 홍콩현지법인의 부회장으로 겸임토록 해 홍콩 비지니스를 강화했다.니코증권도 ‘중국계 기업들의 자금수요는 왕성하며 반환을 계기로 수요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하에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은행들은 북경정부는 상해를 금융중심지로 키우려 하지만 상당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일본은행들은 일본계 기업뿐만 아니라 중국계 기업,홍콩계 기업으로 융자를 확대하는 한편 주택 론등 개인을 상대로 한 융자까지 영업을 넓히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기업들은 반환된 홍콩에 불안한 시선을 던지기 보다는 새로운 찬스를 잡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 해외사설로 본 홍콩반환(해외사설)

    ◎굴욕사 156년 종지부이자 ‘새 출발’ 7월1일은 중국공산당이 성립한지 76주년째 되는 날이다.또 홍콩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는 ‘100여년의 치욕을 씻는 기쁜날’이며 ‘100년간의 꿈’이 실현되는 날이기도 하다.홍콩 귀속은 지난 100여년간 애국적 인사들의 투쟁과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다.건국 이래 ‘약하면 짓밟힌다’는 침통한 역사적 교훈을 가슴에 새기면서 당은 중국인민의 자력갱생과 국가건설의 찬란한 성취를 이뤄냈다.11기3중 전당대회 이래 당은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매진해왔다.개혁·개방을 추진했으며 사회적 생산력 확대에 최선을 다해왔다.국력과 개개인의 생활이 나아졌으며 국가적 지위와 명망도 높아졌다. 조국통일을 위해 1대 영도자인 모택동과 주은래 등은 홍콩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제2대 영도세력의 핵심인 등소평은 ‘일국양제(한나라에서 실행하는 두가지 사회제도)’의 구상을 제기,조국의 평화통일 대업에 공헌했다.홍콩반환은 100여년 굴욕의 역사를 끝맺는 것이자 동시에 새로운 구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일국양제와항인항치(홍콩 현지인에 의한 홍콩통치),고도자치 방침을 지켜나가는 것은 우리의 공통된 과제이다.홍콩의 번영·안정과 기본법의 실현도 우리의 어깨에 있다.중국공산당은 조국통일과 민족중흥을 추진할 핵심 세력이다.위대한 당의 건설은 조국통일 및 민족중흥의 기본 바탕이다. 등소평의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기치는 민족중흥과 현실에 맞는 마르크스주의로서 중국 사회주의건설의 현실적 대응방안이다.정치사상 건설 이후 관건은 간부들의 소질이다.도덕적이고 청렴한 간부들,사상적으로 무장된 간부들은 당 건설의 핵심이다.특히 사회주의 시장경제 아래 청렴한 풍토를 이룩해가는 것은 하나의 과제며 도전이다.부패와의 투쟁은 당의 생사 존망과 일반대중들의 당에 대한 위신·믿음과 직결돼 있다.우리는 이같은 의미에서 부패와의 투쟁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올가을 당15차 전당대회가 열린다.21세기의 통일을 향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역사적인 회의가 될 것이다. ◎사회­자본주의 상호보완 ‘실험대’ 150여년의 영국 통치에서 벗어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다.홍콩반환의 역사적 의의는 식민지시대에 거의 종언을 고했다는 것이다.유혈의 투쟁도 없이 식민지가 반환되는 것은 기쁜 일이다.99년에 포르투갈령 마카오가 반환되면 중국으로부터 식민지가 사라진다. 영국측으로부터 침략과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말은 없다.홍콩의 패튼 총독은 “19세기의 행위에 대해 이제 도덕적 책임을 묻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확실히 영국은 근대적 체제와 사회간접자본을 홍콩에 건설했다.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영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일본군은 태평양전쟁시 영국을 몰아내고 3년8개월 동안 홍콩을 점령,‘인구소개’ 정책을 실시해 55만명의 주민이 홍콩으로부터 강제적으로 내몰렸다.아직도 홍콩에 강한 반일감정이 남아 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이번 일에 세계가 주목하는 최대의 이유는 사회주의국가 가운데 자본주의가 계속 살아남아 상호보완해 나갈 것인가라는 장대한 실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중국의 커다란 우산 아래 홍콩의 자본주의가 발전한다면 중국과대만 티베트 등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서 장래 연방제에의 길이 열릴 가능성도 숨겨져 있다. 홍콩의 번영과 안정은 중국의 발전에 불가결하다.조국의 통일을 대목표로 하는 중국공산당의 다음 목표는 대만의 복귀이다.대만에 대해서 중국측은 홍콩에 대한 것보다도 훨씬 느슨한 조건으로 복귀를 호소해 왔다. 단기적으로는 홍콩의 중국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는 것은 피할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의 홍콩화도 진행될 것이다.내년 실시되는 홍콩 입법회(의회)선거 등이 중국 국내의 민주화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홍콩의 인권과 자유에 대한 사고가 대륙에 조용히 침투할지도 모른다. ‘1국2제도’가 잘 기능해서 중국과 홍콩이 함께 비약하게 되면 아시아의 정치·경제 지도는 크게 변화해 나갈 것이다.
  • 홍콩 주권회복 역사적 순간을 맞으며(지구촌 칼럼)

    ◎식민통치 종식… 일국양제 새 장 열다/하도생 중국 외교학회 부회장/고도의 자치권부여로 번영·안정 계속될것 중화인민공화국이 내일 자정이면 홍콩의 주권을 회복한다.「백여년간의 국치를 씻고 홍콩 귀환을 축하한다」는 것이 온 중국인민들의 마음이다.1840년 추악한 아편무역으로 발발한 아편전쟁과 뒤이은 남경조약으로 중국은 홍콩을 빼앗겼다.이후 중국은 열강의 침략으로 반식민지 상태로 떨어졌고 식민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한 중국인들의 그치지 않는 투쟁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자본·사회주의 공존 우리는 지난 역사의 굴욕에 대해 침통한 마음 잊을길 없지만 그렇다고 편협한 민족의식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홍콩반환을 맞아 중국인민들의 애국 열정이 높아가지만 맹목적이지 않은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불평등조약을 없애고 평등한 지위를 갖는 것,이것이 지난 한세기동안 중국인들의 일관된 투쟁 목표였다.이제 식민주의는 20세기와 함께 영원히 역사의 무덤속에 파묻어야 한다.식민통치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했던 한국인들도 중국인들의 이런 마음을 절실하게 공감할 것이다. 7월1일 홍콩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는 그날 세계는 한나라 안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평화스럽게 공존하는 창조적 전환의 역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일국양제」(한나라안에서 실시되는 두가지 사회체제)는 대만,홍콩,마카오 등 역사가 지워준 분단의 짐을 해결하기 위해 현실서 출발한 등소평의 제안이었다.홍콩문제의 해결을 통해 평화통일을 힘있게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환된 이상 홍콩은 중앙정부의 관할을 받는다.그러나 홍콩이 「내지」의 사회주의제도를 따르지 않고 제도와 생활방식 등 홍콩 나름의 길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야 말로 일국양제의 본뜻이다. 일국양제의 실현을 위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크게 두갈래의 정책과 방침을 정했다.그 하나는 국방,외교에 대한 중앙정부 관할 외에 홍콩특별행정구가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는 것이다.홍콩특구는 영국 식민지시대에 누리지 못했던 최종심의 처리권을 갖는다.재정독립권도 있고 단 한푼도 중앙정부가 가져가지 않는다.또다른 하나는 현지인들이 홍콩을 다스리고 운영해 나간다는 원칙이다.중앙정부는 홍콩특구정부에 어떤 관리도 내려보내지 않을 것이다.파견된 군대도 특구정부의 업무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특구와 중앙정부의 여타 부서는 평등한 관계며 예속관계가 아니다.이는 중국정부의 약속이며 이같은 약속은 지켜질 것이다. ○평등 약속 지켜질것 홍콩은 국제금융과 무역의 중심지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있다.경제 번영과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홍콩문제를 풀어나가는 중국정부의 기본 출발점이다.중국에 대한 홍콩경제의 중요성 만큼 홍콩 번영에 대한 중국경제의 기여도 크다.중국은 홍콩의 제1의 수출입지역이며 홍콩기업인들은 중국 내지에 16만개의 기업을 설립했고 9백93억달러를 실제로 투자했다.두 지역은 더욱 밀접해질 것이고 경제발전 조건도 나아질 것이다.국제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치도 계속 보전될 것이다.외국의 홍콩에 대한 경제이익도 법률적인 보호를 받을 것이다.이는 중국정부의 기본 정책이다.중·영 공동성명과 홍콩특구 기본법에 이를 규정하고 있다.한국기업인 등 외국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홍콩에 투자를 계속해도 좋을 것이다. 홍콩반환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믿음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몇년전 홍콩을 등지는 사람들이 줄을 이은 적이 있었다.그러나 이제는 되돌아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국제통화기금은 올 홍콩의 경제상황이 지난해보다 좋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경제성장도 5∼5.5% 정도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역사의 발전항로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홍콩이란 배가 좌초하면 세계각국의 이익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반환으로 홍콩의 자유,민주,인권이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강변하는 서방의 일부 여론이 있다.서방국가들이 중국에 압력을 가하고 제재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한다.과연 그럴까.우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한다.홍콩주민의 기본권리와 의무는 기본법에 따라 규정돼 있고 중국정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같은 약속을 지킬 것이다. 그러나 7월1일부터 홍콩은 중국의 일부분이며 홍콩관련 사항은 중국 내정사항이란 것을 지적하고 싶다.냉전은 끝났지만냉전적 사고와 식민주의적 생각을 가진 세력이 없어지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때문에 중국으로서는 반중국 세력이 홍콩을 구실로 펴는 여론 조작을 경계할 수 밖에 없다. ○사고변화 시간 필요 홍콩의 마지막총독은 중국과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홍콩내 변화를 가져오는 결정들을 내렸다.이에 대해 P.크래독 전중국주재 영국대사도 영국이 마지막 저지른 최대과오라고 지적하고 있다.앞으로 6백30만 홍콩인들과 12억 중국인들은 더나은 미래를 향해 일국양제의 궤도를 따라 달려나갈 것이다. 이같은 역사 발전방향은 어떤 힘도 막지 못할 것이다.우리는 중국인민이 이뤄낸 평화적인 조국통일 사업의 진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한반도의 남북 양측 국민들이 자신들의 실제상황에 근거해 적절한 과정을 통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실현할 수 있기를 마음속 간절히 기원하고 염원하는 바이다. ◎홍콩의 자유보장은 대륙성장 촉매/리처드 하스 미 브루킹스연구소 외교정책실장/대만의 통일두려움 해소에도 큰몫할듯 천안문 광장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광경이 있다.초까지 카운트다운하고 있는 거대한 디지탈시계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까지 남은 시간을 매초매초 줄여가는 모습이다. 미 국무부의 많은 관리들과 수백명의 저널리스트들을 포함한,상당히 많은 미국인들이 천안문광장의 시계가 제로(영)를 가르킬 바로 그 순간 홍콩에 있을 것이다.또 홍콩에는 가지 못했더라도 수많은 미국인들이 TV 등을 통해 그 광경을 지켜볼 것이다. 홍콩의 중국에의 반환은 미·중 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점에 이뤄진다.지금 미국에선 미국의 중국정책이 올바로 시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민주당과 공화당의 많은 유력인사들을 포함한 막강한 정치세력들이 미국의 대중정책을 제재와 봉쇄로 국한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그들의 중국에 대한 적대감은 중국의 점증해가는 군사력,혹은 중국의 정치적·종교적 자유에 대한 제한때문에,아니면 그 둘다에 기인하는 것이다. ○미·중 관계 중대시점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같은 조치가 중국을 더욱 사악하게 만들고 고립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올 뿐이라는주장을 펴며 저항한다.이들은 정치적·경제적인 불개입 전략이 중국을 국내적으로 보다 자유롭게 만들고 대외적으로는 보다 책임감을 가져오게 하는 방향으로 이끈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홍콩에 대해 어떤 정책을 취하느냐,억압적 행동을 취하느냐 아니면 1984년 중·영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대로 해나가느냐가 이 논쟁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또 많은 미국인들에게 중국의 인상이 어떻게 심어지느냐를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중국이 최혜국(MFN)대우 지위를 계속 즐길수 있느냐 혹은 워싱턴이 중국의 국제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지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고 보다 근본적인데 있다. ○본토주민 자극 우려 중국으로서는 홍콩의 권력 이양을 순조롭게 해야할 수 밖에 없는 많은 유인들을 안고 있다.홍콩은 중국대륙과 외부세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경제적 관문으로 자리잡고 있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중국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이해도 걸려 있다.홍콩은 재통합의 과정에서 이제까지와는 또다른 단계를 거칠수 밖에 없을 것이다.북경으로서는 홍콩을 귀속시키는 것이 대만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에 저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이번 홍콩반환이 대만사람들에게 「1국가 2체제」는 가능한 형태이며 또 그들이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신호를 보내게 되기를 북경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중국은 또한 세계와의 우호관계 수립을 더많이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레 행동할 것이다.중국은 경제성장에 중점을 계속 두기 위해 상당기간 안정을 필요로 한다.세계은행과 IMF는 올 가을 그들의 연례회의를 홍콩에서 개최한다.중국은 이 때를 이용,홍콩반환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과시하는 기회로 삼기 원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곧 중국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홍콩에 활기를 불어넣는 태도를 취하게 할 것이라는 얘기가 아니다.그들은 이미 정치적 자유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강택민 주석과 주변인물들은 홍콩에 너무 많은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본토의 국민들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도록 걱정해왔다. ○MFN 폐기 말아야 이것이 현실적으로 뜻하는 것은 바로 중국이 마지막 영국총독인 크리스 패튼에 의해 실행된 개혁들을 후퇴시킬수 있다는 것이다.홍콩의 주민들에게 있어 반환에 따른 변화란 어느 정도의 정치적 자유를 잃는다는 것을 뜻한다.그럼에도 불구,그들은 여전히 중국의 12억 인구 가운데 가장 많은 독립을 즐기게 될 것이다. 홍콩의 정치적 자유를 축소시키는 어떤 행동도 미국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1984년 영국과 체결했던 공동성명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중국으로서는 필수적이다.그 성명은 향후 50년 동안 홍콩은 외교나 국방문제를 제외하고는 최상의 자치를 누릴 것을 보장하고 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또한 홍콩의 운명에 미국의 이익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1992년 통과된 미·홍콩정책법안은 미 국무장관이 매년 의회에 홍콩정세에 대한 평가를 보고토록 규정하고 있다.동시에 미국으로서는 주권반환후 홍콩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시위나 저항에 중국이 과잉반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장받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중국에 대한 MFN지위를 폐기해서는 안된다.그렇게 하는 것은 단지 홍콩주민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고,세계 최대의 인구국인 중국이 보다 개방된 시장경제 세력으로 부상하는 것을 늦추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그런 점에서 중국에 대한 MFN 지위가 1년 연장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한편 미국으로서는 홍콩주민이나 지도자들과의 대화를 거부해서는 안된다.단지 반체제 세력에만 촛점을 두는 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이다.미국은 동건화 초대행정장관을 비롯한 공무원,지방 입법의원 등 홍콩의 실제 세력들과 접촉을 꾸준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그들이 100% 독립적이지 못하다 하더라도 그들과의 접촉을 거부한다면 홍콩의 특수성과 우월성이 사라지게 되어 결국 미국 스스로의 정책까지 위태롭게 할 것이다.
  • 김 대통령 한국협회 만찬사

    오늘 나를 위해 이렇게 화기 넘치는 자리를 마련해주신 그레그 회장과 한국협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나는 한국을 이해하고 아껴 주시는 미국의 정치 경제 언론계 지도인사들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한국인이라면 한시도 잊을수 없는 6월25일입니다.1950년 북한군이 북위38도선을 넘어 전면남침을 감행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무참히 유린한 바로 그날입니다. 한국과 미국은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 피를 흘렸습니다.한국전쟁은 민주주의의 승리와 공산주의의 몰락을 예고한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지난 반세기에 걸친 세계사의 진전이 증명해주고 있습니다.당시 지구상의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이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습니다. 유엔안보리와 경제사회이사회의 이사국으로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여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와 같은 한국의 성공은 자유와 평화의 번영이라는 한미 두나라 국민의 이상이 거둔 값진 열매라고 믿습니다.이런 점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번영을 위한 미국의 도움,그리고 이를 위해 헌신해온 미군 병사와 그 가족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시대가 왔음에도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첨예한 군사적 대결이 지속되고 있습니다.북녘의 동포들이 심각한 식량난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데도 군사력을 앞세운 북한의 대남 적화노선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나는 이와같은 상황을 타개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클린턴대통령과 함께 4자회담을 제의했던 것입니다.그것은 「평화는 번영의 열쇠」라는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남북이 평화의 토대 위에서 함께 번영하고 궁극적으로 통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우리의 이러한 노력에 대해 여려분의 계속적인 관심과 협력을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최근 미국경제는 금세기 들어 가장 호황이라고 할만큼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습니다.세계 각국은 미국경제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회복하며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데 대해 경탄하고 있습니다.나는 미국의 이러한 발전이 미국정부와 기업인,그리고 미국 국민이 힘을 한데 모아 성취한 결과라고 믿습니다. 한국경제는 기업경쟁력의 약화에 따른 수출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그러나 우리는 이를 계기로 경제의 구조조정과 금융부문을 비롯한 경제전반에 걸친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모든 산업분야에서 경쟁원리와 시장의 자율성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다행히 최근들어 수출이 회복되는 등 우리 경제가 호전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으며 개혁의 성과가 가시화될 경우 한국 경제의 미래는 매우 밝은 것으로 전망됩니다. 나는 한국과 미국의 기업인들이 공정한 경쟁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서로를 발전시켜 나가며 나아가 두 나라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한 차원 드높이는데 기여해 주기를 바랍니다.자유와 평화를 위해 피로 맺은 한미관계는 이제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성숙한 동반자의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나는 희망의 21세기를 바라보면서 한미 양국이 굳건한 동맹의 기초위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를 바랍니다.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미 두 나라 국민의 상호이해가 더욱 깊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뜻에서 한국과 미국을 이어주는 한국협회와 여러분의 역할에 큰 기대를 보내는 바입니다. 오늘 이 귀한 자리를 만들어 주신 한국협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우리들의 영원한 우정과 한미 두나라의 무궁한 발전,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의 건승을 위해 건배를 제의합니다.감사합니다.
  • 고속철도건설공단 유상렬 신임 이사장

    ◎“고속철 공기 정직하게 재조정”/신뢰회복 급선무… 인력·조직도 보강 『한마디로 어깨가 무겁습니다.지금까지 드러난 여러가지 문제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서툴렀던 점은 시인하겠습니다.다시 한번 용기를 갖고 빠른 시일내에 사업을 정상화시켜 국민의 신뢰를 되찾겠습니다.』 24일 취임한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유상렬 이사장(57)은 백지화론까지 거론되고 있는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인 경부고속철도 공사를 마무리하는데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속철공단의 현재 상태를 수술후 회복 단계에 있는 환자에 비유한 유이사장은 『지금으로선 국민의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하고 『이를 위해 외국기술에서 배울 것은 배우고,필요하다면 기술인력과 조직을 보강하거나 재정비해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김한종 전 이사장이 지나치게 품질을 강조해 공기가 지연됐다는 일부의 평가에 대해 『김전이사장이 용기있게 부실실태를 공개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품질 확보와 공기 추진은 동전의 양면과같이 합치돼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을 과학적·경제적으로 산정해 정직하게 재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 임마누엘 칸트/오트프리트 회페(화제의 책)

    ◎「무엇을 알수 있나」 등 3가지 물음 탐구 독일의 관념주의 철학자 칸트의 사상체계를 소개.기존의 칸트 입문서들과는 달리 분석철학과 영미권 학자들의 칸트연구 성과에도 주목,지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이 책은 칸트가 제시한 철학적 물음들,즉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세가지 물음을 화두로 삼아 칸트의 사상에 접근한다.하나의 예로 이 책은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물음 아래 「순수이성비판」을 다룬다.그 물음의 핵심은 「어떻게 선험적 종합판단이 가능한가」하는 것이다.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존재자,즉 객관적 대상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이론은 존재자에 대한 인식론으로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칸트는 정신사적으로 유럽 계몽주의 시대에 속한다.그의 입장은 많은 점에서 깨지기 쉬웠다.모든 사물은 지배될 수 있다는 생각이나 영속적인 진보에 대한 믿음 등 칸트의 이성낙관주의는 한마디로 유지되기 어려운 것이었다.하지만회페는 『칸트의 철학은 유럽 계몽주의 시대의 지성적 정점』이라고 단정짓는다. 문예출판사,이상헌 옮김,1만2천원.
  • 공룡 신드롬­유럽을 위한 제언(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이브 티보 드 실귀/급변의 21세기 「불안한 유럽」 경고/「경제전쟁」시대 경쟁력 강화 노하우개발 필요 최근 유럽 출판계에서는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몇년 전만해도 철학이나 역사관련 서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미래관련 서적들의 발간이 크게 늘어나고있는 가운데 이브­티보 드 실귀(Yves-Thibault De Silguy) 유럽위원회 위원이 쓴 책이 단연 눈에 띈다. 제목은 「공룡신드롬­유럽을 위한 제언(Le Syndrome Du Diplodocus­Un nouveau souffle pour l’Europe)」.이 책은 통계수치 등을 이용한 실증적인 방법으로 논리를 전개,다른 책과는 접근방식이 다른 점이 이채롭다. ○자유무역질서 정착 그는 이 책에서 21세기에 대해 「지구화 됐지만 불안한 세계」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결론을 도출해 나가는 전개과정이 어떤 이론이나 학설을 근거로 하기보다는 현재의 급변하는 세계상황을 토대로 조목조목 짚어 나가고 있어 보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그러나 「공룡신드롬­유럽을 위한 제언」이라는 제목처럼 유럽을 중심으로다루고 있다는 점이 또다른 특징이다. 그는 이책에서 현시대의 유럽을 한 시대에 가장 강했던 동물이었지만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공룡에 비유하면서 서술해나가고 있다.저자는 책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21세기가 시작되고 있다.그런데 우리는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실제로 모든 것은 다 변한다.그동안 지속 되어온 동서 대립은 그 주역들이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지면서 경제는 세계화돼 간다.새로운 힘의 균형이 태동하고 있고 새로운 강대국들이 모습을 드러내고있다.그리고 예기치 않은 위험이 준비되고 있거나 이미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급변할 앞으로의 세계상황중 특히 경제와 국제관계의 상황이 보다 무섭게 변할것으로 내다봤다.경제는 자유무역주의와 이에 따른 지역주의의 발호를 예견하고 있다.무한 경제전쟁의 시대를 의미한다.국제관계에서는 냉전체제의 붕괴로 힘의 공백기가 이어질 것이며 이는 곧 새로운 전쟁가능성의 내재라는 논리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생산비용 감축 절실 우선 경제적으로 21세기는 왼전한자유경제와 자유무역의 시대가 될 것임을 확언하고 있다.하나의 세계가 된다는 의미다.모든 국가들이 시장의 문을 활짝 열게 될 것이며 이럴 경우 경제 성장은 교역의 경쟁력 여하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고 있다.그는 특히 한국 일본등 극동 아시아를 예로 들었다.이들 국가는 활발한 교역에서 연 8∼10%의 성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유럽은 연3∼4%의 성장마저도 힘든 상황으로 이 추세라면 위험수위라고 진단하고 무역경쟁력강화가 21세기 경제적 성패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대안으로 생산비를 낮출수 있는 노하우의 개발을 강조했다.특히 이 대목에서 저자는 한국을 좋은 예로 들었다.한국은 자신들의 상품생산과 관련,여건이 열악해지고 있는 임금 등의 부분에 대해 이미 방어망을 구축해놓고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가 전망하는 국제관계는 상당히 비관적이다.그는 냉전체제의 붕괴로 「이제는 전쟁의 위험이 없다」는 믿음을 신봉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이 책에 담고 있다.과거에는 한반도 베트남 중동지역이 전쟁발발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지만앞으로는 유럽대륙도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펴고있다는 점이 이채롭다.그 이유를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공산주의가 사실상 사라진 사실에서 찾고 있다.겉으로는 이제 모든 전쟁이 끝났다고 보이나 사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 대목에서 그의 주장은 논리적인 유희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논리적 근거가 탄탄해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역사적으로 고찰해보면 그의 주장과 일치하는 대목이 상당부분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큰 전쟁은 대제국이나 연합이 붕괴됐을때에 나타났다.그는 문화나 경제 언어 등이 다양해졌을때도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동서간 분열 가속화 지금이 소련의 붕괴로 인한 힘의 공백시기라는 점을 감안할때 설득력이 있는 설명이다.현재 동서간의 긴장완화는 동유럽 일부국가의 NATO 가입추진등으로 이미 동의 분열을 야기시키고 있는 셈이다.이러한 사실이 유럽 대륙의 또 하나의 위험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같은 「공룡신드롬」이 특히 유럽지역에서 더욱 확산되어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유럽은 아직도 연방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서 분열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이책의 뒷 표지면에 쓰인 선전문구를 보면 이렇게 쓰여있다.『그는 전통적인 유럽주의자는 결코 아니다.외교 정치 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그는 유럽인들에게 21세기로 가는 여권 대신 이 책을 주었다』 저자 자신도 유럽위원회 위원이라는 사실이 부담이 된 듯하다.유럽연합을 의식하고 이 책을 쓴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있다.충분한 근거와 충실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느낌을 완전히 지울수 없는 뒷맛이 다소 아쉽다고 할까. 알뱅 미셸(Albin Michel)출판사 발행.251쪽.93.50프랑.
  • 서양 중세철학의 백미 아퀴나스 명저/신학대전 번역본 본격 출간

    ◎정의채 신부 14년만에 30권중 4권째 내놔/신의 존재와 본질·인간의 덕목 등 두루 다뤄 서양의 중세사상을 완성한 인물로 꼽히는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년)의 「신학대전」.전30권을 목표로 번역에 착수한 이 방대한 저술이 4권째 간행되었다.그의 이름과 「신학대전」은 우리 종교계와 학계에도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을 대한 사람들은 흔치 않다.원전이 라틴어라는 언어문제와 독특한 내용 때문에 쉽사리 소개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저술의 번역은 원로 철학자이자 가톨릭의 사제인 정의채 신부(72)손에 이루어졌다.가톨릭대 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서강대 석좌교수로 봉직중인 그가 「신학대전」 번역에 손을 댄 것은 지난 1983년.두 해 뒤인 1985년 9월 제1권을 내놓고 나서 이번에 제4권을 출간하기까지 꼬박 12년이 걸렸다.제5권은 현재 담당 출판사인 바오로딸이 인쇄에 들어갔다.그리고 제6권은 우리말로 절반쯤 옮겨놓았다. 「신학대전」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1272부터 2년에 걸쳐쓴 대표적 저술로 원전은 3부로 되어있다.제1부에서는 신의 존재와본질·창조·천사·인간을 다루었다.제2부는 1,2편으로 나누어 인간의 목적과 행위·죄와 법을 골자로 한 도덕의 근본문제와 더불어 신앙과 사랑·정의와 용기·절제 따위의 덕에 관한 문제를 말했다.제3부는 그리스도론을 비롯한 신학문제를 들추어 냈다. 그러니까 신학 뿐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과 목적을 밝혀주면서 인간의 실재를 다룬 「신학대전」은 고전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이 저술에 담긴 사상은 오늘날 유럽문화의 원천이 되었거니와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 평가받는다.더구나 「신학대전」속에는 당시 유럽과 접촉한 그리스­로마와 아랍사상까지도 융화되었다.그의 사상에 세계성을 부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 이번에 나온 번역본 제4권은 원전 제2부 1편에 해당한다.믿음을 비롯,희망·사랑·지혜와 정의의 덕,불의 등 8항목이 들어있다.각 항목의 테마에 반론과 본문을 제시하고,반론에 응답을 주는 형식으로 꾸몄다.믿음을 다룬 항목 한 절에서는 「홀로 또는 오직이라는 배타사가 하느님안에서 적합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그러나대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니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의 궤변론에 따르면 홀로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같이 있지 않는 사람이다.그런데 하느님은 천사들과 거룩한 영혼들과 함께 하는 터라,홀로라 할 수 없다」.이 대목에서 보는 것처럼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되풀이만 한 것은 아니다.그리스도교 철학을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흔적이 「신학대전」곳곳에 나타났다.「신학대전」번역과 완간을 필생의 과제로 삼은 정의채신부는 『서구사상이 여러 손을 거쳐 전수되어서는 학문을 제대로 연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그래서 원전에 충실하면서 이번 제4권은 라틴어와 우리말 대역본으로 내놓았다.중세철학연구로 유명한 로마 우르바노대와 그레고리안대 대학원에서 철학을 연구한 그는 우르바노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폭력시위­치안부재(대선주자 국정비전을 듣는다:8)

    ◎“시위주동자 색출… 선량 학생과 격리를” 여야 대선예비주자 10명은 4일 서울신문사 국정 테마별 지상토론의 여덟번째 주제로 긴급 선정한 「한총련 폭력시위」와 「민생치안의 부재현상」에 대한 설문에서 한결같이 최근 한총련 시위의 과격성과 폭력성을 지적하고 소수 시위주도 핵심세력의 발본색원을 촉구했다. 신한국당 이수성 고문과 최병렬 의원 등 일부주자들은 건전한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법을 고쳐서라도 소수 핵심세력을 건전한 학생들로 부터 격리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이홍구 고문은 학생들에게 분단상황을 진지하게 고려,폭력행동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민생치안과 관련,여야 주자들은 시국치안 수요의 민생치안으로의 전환,장비개선 및 사기진작을 위한 치안예산 확충,경찰서와 파출소 증설 등을 방안으로 제시했다.신한국당 이홍구·박찬종 고문과 김덕룡 의원 등은 임기말 공직기강 확립을 강조했다. ◎이홍구 대표/당략 넘어 국회차원 대책 나서자 먼저 운명을 달리한 고 유지웅상경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폭력시위를 근절하기 위해 정부는 한총련의 실체를 정확히 밝히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순리다.과격시위 배후에 불순한 세력이 연계되어 있다면 철저히 가려내 사회와 완전히 격리시켜야 한다.정치권도 정략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여야가 협력해 6월 임시국회에서 국회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요즘같은 정권교체기에는 공권력 기강이 해이해지기 쉽다.공권력 기강이 무너지면 치안부재 상태로 연결되므로 기강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조직폭력배는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서 자라는 독버섯이므로 완전한 근절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공권력 기강이 바로 잡히고 대응전략을 잘 세우면 폐해를 현저히 줄일수 있다.조직폭력에 대해서는 두목급을 가차없이 응징하는 등 한시적이 아닌 무한 전쟁의 자세로 나가야 한다. ◎이홍구 고문/「희망의 정치」 되면 사회기강 선다 대학은 사회의 양심과 지성의 상징으로 합리적이고,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절차와 방법으로 견해를 표시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사회에서의 학생운동이 순수성과 합리성을 상실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게 사실이다.전경과 학생들의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희생의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생들도 우리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직시하고 폭력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분단상황에 대한 진지한 고려도 있어야 한다.폭력이 수반되는 행동양식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하고 안심시키는 것으로 특히 치안확보가 중요하다.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흐트러진 사회기강을 바로 잡아야 한다.또 정치가 국민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고,시민단체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중요하다.민생치안 분야의 예산을 증액,치안분야 경찰관의 사기진작도 필요하다. ◎이수성 고문/예산 쪼들려도 경찰력­장비 증강 먼저 젊은이의 죽음 앞에 애도를 표한다.지금의 학생운동이 과거 독재치하의 순수한 운동과는 명백히 다르고 우리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이념과 폭력으로 사회를 유린하고 있어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본다.지금이야말로 치밀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한총련 핵심세력과 단순가담자를 분리해내고 범법의 경중에 따라 엄중한 사법적 응징과 선도를 병행,학생운영의 방향이 올바르게 정립되도록 해야한다.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게 정치의 제1 책임이다.우리의 치안역량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예산상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경찰인력을 대폭 늘려야 하고 현대적인 방법,수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경찰공무원의 노고에 걸맞는 사회적 대우를 해줌으로써 사기를 진작시키고 동시에 전문성과 자질향상을 꾀해야 한다.또한 우리사회의 도덕풍토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시민운동의 육성,지원도 필요하다. ◎이한동 고문/“정권말인데…” 공복 복지부동” 경계 학생들이 아직도 이념적 미망에 빠져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한총련 핵심간부와 소극적 시위참가자를 분리시키고 대학 당국에도 시위문화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최근 연세대의 휴업령 검토나 교수들의 자발적 반대움직임은 긍정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이제 한총련 문제는 근본적으로 대학교수나 교직원,그리고 선량한 일반학생들이 앞장서서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이며,학생들의 불법폭력시위를 방치하는 것은 법질서와 상식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한다. 치안부재의 근본 원인은 공권력의 복지부동에 있다.특히 정권말기에 무사안일하게 하루하루를 넘기자는 공무원들의 자세가 문제다.공무원들의 근무자세를 잡는데는 대통령의 확고한 리더십이 중요하다.장기적으로는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일하도록 공무원사회에도 성과급 등의 경쟁원리를 도입해야 한다. ◎박찬종 고문/반체제 목청엔 분명한 선 그어야 일반적으로 민주사회에서 시민의 시위권은 헌법적 권리이지만 중요한 전제요건은 공공의 안녕·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뤄져야 하며 수반된 사회적 책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과거 시위가 직·간접적으로 국민의사의 배출구 역할을 해온 배경 때문에 아직 상당수의 국민들은 시위에 대해 정서적 호의를 갖고 있다.하지만 폭력으로 법질서를 유린하고 체제의 안정을 부정하려는 시위에 대해서는 용인의 자세보다는 분명한 대응이 있어야 한다. 공권력의권위는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의 회복과 직결된 문제이고 국가와 정부의 영이 엄정하게 정립되는데서 국가공권력의 권위가 출발하는 것이다.현실적으로 장비지원,처우개선 등 민생경찰력의 질적인 증강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며 경찰의 주요 업무비중을 민생치안 분야로 이동하여 치안경찰관들에 대한 진급과 지원을 확대,사기를 진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병렬 의원/공권력 실감 나도록 강력히 대처 학생시위의 와중에서 불상사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시위의 과격성과 폭력성에 있다.따라서 시위와 진압과정에서 젊은이들의 희생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시위의 과격성과 폭력성을 없애는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지난해 연세대 사태에서도 그 실상이 드러났듯이 한총련 시위 핵심세력의 행동양태는 도시게릴라 수준이다.이들에게 평화적 시위나 선진국의 시위문화를 강조해봐야 소용없다.발본색원을 위해서는 법이 미비하면 보완해서라도 이들 소수 핵심세력을 선량한 학생들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 경찰력을 국가의 기본 책무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에 집중시켜 범죄와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폭력시위를 진압하는 일에 힘을 소모해서는 안된다.특히 조직범죄는 공권력의 힘으로 철저히 분쇄하여 공권력의 두려움을 실감하게 하는 방법으로 막아야 할 것이다. ◎김덕룡 의원/운동권 이슈 안되게 여야 성실을 지난날 우리 학생운동이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시대정신을 반영해 왔기 때문이다.그런데 얼마전부터 학생운동이 위험한 주장과 극렬한 시위로 치닫고 있어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치고 있다.폭력화한 학생운동과 이에 대한 경찰의 강경진압의 대결 속에서 아까운 젊은이가 희생되었다.악순환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평화적인 시위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그리고 학생운동도 이제는 방향을 환경운동,소비자운동 등 사회발전적인 분야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물론 정치가 학생운동의 소재가 되지 않도록 여야합의를 이루어가는 것도 선결과제다. 치안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시민정신이 절실하다.구체적인 대책으로는 첫째,범죄유발환경요인을지속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둘째,경찰의 모든행정을 민생치안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셋째,지·파출소를 증설하고 인력 및 예산을 보강해야 한다. ◎이인제 지사/“집시법 등 타당한가” 정비 서둘때 학생시위문화는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정치적 저항운동의 성격이 강했고,따라서 과격한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이제 시대적 상황은 많이 변했다.학생운동의 방법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오늘의 폭력적인 학생운동을 대다수 국민들은 외면하고 있다.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학생운동은 생명력이 없는 만큼 폭력적인 학생시위는 점차 사라지리라 본다.건전한 학생시위문화 형성을 위해서는 민주시민 교육이 강화되어야 하고 동시에 시위관계법의 현실성과 타당성을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국민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울타리 역할을 해주는 것이 국가의 제일 큰 의무다.오늘의 공권력 부재현상은 사회위기의 총체성을 대변하는 것이다.이럴 때일수록 민생치안의 확보가 시급하다.경찰뿐만 아니라 각층 공익 근무요원도 민생치안과 연결시켜 활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민생치안 확보를 위한 시민의 자체적 운동도 전개되어야 한다. ◎김대중 총재/제도의 장 모여들게 청년포럼 등 더 마련 남북청년교류 지원,「국회­청년방문의 날」 제정,청년정치포럼 개최 등 대학생 등 청년이 정치에 제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집단적 시위를 통한 의사표현을 줄여나가야 한다.또 폭력시위를 자제하는 등 선진적인 시위문화 정착에 힘을 쏟아야 한다.반면 경찰은 우선 평화시위를 보장해야 한다.전투경찰대설치법상 시위진압에 동원할 수 없는 작전전투경찰을 동원하고,경찰장구가 아닌 진압용구를 사용하는 등 공격 중심의 강경진압 형태 역시 개선해야 한다. 정권말기 사회기강 해이 등에 편승하여 성폭력·조직폭력·학교폭력 등이 급증하고 있는데,우선 경찰수사의 독자성을 확보해야 한다.또한 시국치안 중심의 경찰행정을 개선해야 한다.따라서 시국치안 인력 및 예산을 민생치안으로 전환하고,전문수사인력 및 수사장비를 확대해야 한다.경찰서와 파출소도 늘려야 한다. ◎김종필 총재/극렬세력 확산 빌미 안보불감증 큰 문제 한총련의 실체는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에 입각,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면서 북한의 연방제 통일이념을 신봉하고 있다.극렬세력의 확산은 우리 사회에 만연된 안보불감증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국민들이 다시 한번 굳건한 대북,대공 안보태세를 가다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장기적으로는 중등교육에서의 건전한 통일 및 시민교육을 정립해야 한다. 치안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생침해 범죄를 근원적으로 줄여나가는 방안들이 강구돼야 한다.이를 위해 경찰의 현장과 방범위주의 수사가 필수적이며,경찰의 인력과 장비를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전문화 및 과학적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조직폭력 등 강력사범에 대해서는 영상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해 수시로 검색 및 조회가 가능하도록 하는 「강력사범 영상정보 시스템」을 활성화해야 한다.
  • 프랑스/몽생 미셸(세계 문화유산 순례:32)

    ◎천년세월이 만든 「섬아닌 섬」 바다 한가운데 고고히/바위위 축조된 성당 주변숲 침식당해 섬으로/불 혁명뒤 형무소로도… 영욕의 역사 간직 희한한 섬이 다 있다.멀리서 바라 보면 분명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인데도 다가서면 섬이 아니다.배를 타고 가지 않고 승용차나 관광버스로,아니면 걸어서라도 섬까지 갈수 있다.부드러운 카망베레 치즈로 유명한 프랑스의 동북부 노르망디의 동쪽끝 몽셍 미셀(Mont saint Michel)은 그런 곳이다. 파리를 떠나 프랑스 대륙의 동쪽끝 대서양에 가까워지면 삼각형의 몽셍 미셀이 아스라한 자태를 드러냈다.대서양의 바다 안개에 휩싸여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몽셍 미셀로 향하면 차에서 내려 기념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모습이 분명해질수록 몽셍 미셀은 우리의 시각과 함께 청각,후각을 골고루 자극했다.짠 바다 내음새와 몽셍 미셀 꼭대기에서 바다와 육지를 향해 울려 퍼지는 성당의 종소리때문인 것이다. 섬이면서도 섬이라고 부를수 없는 이유는 심한 조수 간만의 차이 탓이었다.최고 15m 간만의 차이는세계에서 간만의 차이가 가장 심한 곳중의 하나다.매분마다 62m의 속도로 드나 드는 바닷물은 바다와 뭍의 경계를 18㎞까지 바꾸었다.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몽셍 미셀은 대서양의 바닷물에 완전히 잠겨 섬이 됐다. 몽셍 미셀에 다가서면서 되새기는 역사와 전설은 신비감을 더해준다.커다란 바위덩어리 몽셍 미셀은 옛날만 해도 시시(Scissy)라는 울창한 숲의 한가운데 있는 완전한 육지에 속했다.조용하고 외딴 지역이라 수도승들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수도에 정진하기에는 적격이었다는 것이다.대서양 건너 아일랜드의 수도승들이 조용하고 풍요로운 이곳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몽셍 미셀의 역사는 서기 7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몽셍 미셀의 부근 아브랑슈에 살던 오베르 대주교가 이 일대를 다스리고 있었다.그는 어느날 꿈속에서 대천사 미카엘을 만난다.미카엘 대천사는 커다란 돌이 있는 곳에 예배당을 세우라고 말한다.오베르주교는 바위에 예배당을 세우라는 미카엘 대천사의 말을 반신반의해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화가난 미카엘 대천사는 세번째 꿈에 나타나서는 손가락으로 오베르주교의 머리에 강한 빛을 쏘았다.믿음을 주기 위해서였다.전설같은 이야기이지만 오브랑슈의 박물관에 구멍난 오베르주교의 해골이 전시돼 있는 것을 보면 전설만은 아닌 듯했다.또 이웃 마을에서 잃어버린 소가 몽셍 미셀 바위 위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사건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드디어 미카엘의 계시를 받아들이게 됐다.그리고 바위를 깍아 토대를 만들고 이탈리아의 몽테 가르가노에서 화강암을 가져와 미카엘을 기리기 위한 성당을 지었다.미카엘의 프랑스식 이름이 미셀.몽셍 미셀은 우리 말로 「성 미카엘 언덕」정도로 바꿀수 있다. 몽셍 미셀은 처음에는 예배당만 세웠으나 수도승들의 숙소를 추가로 짓는등 18세기까지 1천년동안 증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드러냈다.시시 숲은 천년동안 바닷물에 침식당해 없어지고 말았다.그래서 검붉은 색깔의 몽셍 미셀만 1천년의 연륜을 자랑하면서 고고히 바다 한가운데 서있다.입구에 들어서 성당으로 올라가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기념품 판매가게나 식당들이 즐비했다.옛날에는 수도승들의 숙소와 250여명의 수도승이 포도주를 마시던 술집,잡화가게들이 들어 앉았던 자리다.언덕길의 돌바닥은 신비스러운 건축물과 희한한 섬 모습에 반한 중세시대 순례자들의 무수한 발길에 닳아 반들거렸다. 꼭대기의 성당 서쪽 테라스에서는 대서양과 노르망디지방의 육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몽셍 미셀은 AD966년 노르망디를 지배하던 리차드 1세 공작이 베네딕트 교단의 수도원으로 지정됐다.그뒤 6세기동안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영적,지적,예술의 중심역할을 다 해냈다.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육각형형의 프랑스 영토를 휩쓸고 간뒤에는 형무소로도 쓰여 영욕의 역사가 함께 배어있다.사방을 둘러봐도 바다물과 진흙 모래만 보이는 몽셍 미셀은 이내 빠삐용이 연상됐다.하지만 이제는 대서양의 바닷바람에 쓸려 간듯 형무소의 자취는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몽셍 미셀의 성당은 얼핏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때문에 화려하고 웅장한 유럽 성당을 이미 본 사람이면 몽셍 미셀에서 약간은 실망할 것이다.80m 바위위에 솟아 있는 성당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157m.아래서 올려다보면 육안으로는 성당의 첨탑 꼭대기에 금빛 동상을 찾기가 어려웠다.성당 구경을 마치고 내려와 다시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서 산 사진엽서에서 비로소 셍 미셀 동상 모습을 만났다. 오른 손에는 칼을 들고,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는 성 미카엘,다시말하면 셍 미셀 동상의 유래도 흥미롭다.멀리 영국땅에 거대한 용이 나타나 마을 주민들을 잡아먹는 일이 일어나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민심은 흉흉해졌다.왕이 용을 죽이기 위해 군대를 보냈지만 군인들이 도착했을때는 용은 이미 죽어있었다.용의 시체 주변에는 칼과 방패가 발견됐는데 사람들은 미카엘천사가 용을 죽였다고 믿었다.그런 전설을 반영하고 있고 동상의 발아래 부분에는 죽어 나자빠진 용이 놓여있다. □여행가이드 몽셍 미셀에 가는 길은 쉽지 않다.파리에서 동쪽으로 4백㎞정도 떨어진 몽셍 미셀까지는 승용차나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열차는 몇번씩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프랑스에는 시외버스가 발달돼 있지 않으므로 주의를기울여야 한다.숙박시설이 많이 있으나 연휴기간에는 적어도 1주일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 구하기가 어렵다. 몽셍 미셀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야경.은은한 간접조명은 신비함을 더해주고 바다물에 비친 야경은 환상적이다.여름철인 5월부터 8월사이가 관광의 최적기이며 5월에는 민속춤을 볼수 있다.7,8월말 금요일밤부터 토요일밤 사이의 주말에는 각종 콘서트가 열린다.
  • 서예가 구당 여원구(이세기의 인물탐구:132)

    ◎옥돌과 한지에 아로새긴 선비정신/점·획의 일분서서 현판 글씨까지 멋과 기품/40대에 서법탐구 나서… 천변만화 경지에 서울 신문로 파출소 뒤편에 위치한 구당서실.당호는 글씨와 전각을 뜻하는 현묵헌 또는 단석실로 내걸고 있다.서실에 들어서면 싱그러운 묵향이전에 고서적과 서예관련 자료에 둘러싸여 몸집이 작은 구당은 온통 책속에 매몰된 분위기다.그는 전각을 할 수 있는 공간과 글씨를 쓸수있는 서탁을 따로 마련해서 전각이 되는 날은 하루종일 옥돌을 쪼고 글씨가 되는 날은 먹을 갈아 성자에 몰두한다.글씨도 점과 획으로된 일분서에서 현판 등 대형글씨에 이르기까지 그의 예술은 한창 멋과 기품이 무르익는 경지다. ○실용성보다 정도 고집 그에게 서법의 길을 권하여 직접 서예와 전각을 가르친 여초 김응현은 「구당은 외화를 즐기지 아니하고 진솔을 추구하는 서가로 법도에의 구속을 면치 못하는 고집이 있다」고 말한다. 지난번 구당이 서예계에서는 처음으로 「반야심경」전각이 실린 「구당인존」을 발간했을때 「실용성이 없는 이런 대작을 시도하는 것은 참으로 예술하는 자세이며 구도자의 정신이 아니고는 해낼수 없는 원숙과 저력」임을 격려해 마지 않았다.그의 전각은 「전법 장법 도법을 치밀하게 궁리하고 계산한 호매괴려의 세계」로 알려져 있다.주옥같은 중국의 명필들이 집대성된 서법법첩으로 한금문에서 갑골문,백서와 죽목간을 교습하여 그는 언제부턴가 구당의 서미로 믿음의 신표인 전각을 성립해 낸것이다. 전각뿐만 아니라 그는 글씨에서도 조선일보가 초대한 「구당서전」과 「일분서전」으로 서단의 비상한 존재가 되었다.일분서전이란 문자그대로 작은 글씨전이다.그러나 단순한 선조가 아닌 소자에서 방촌에 이르는 모든 서체를 구사하는 것은 다른 대작과 마찬가지다.다만 필심을 세우고 가장 가는 붓으로 붓끝이 얼마나 지면에 닿아 혈과 육을 형성하느냐에 따라 그 품격이 점쳐지게 된다.점과 획이 뚜렷한 뼈대를 이루면서도 여기에 기운생동하는 정백이 통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파리의 머리만큼 작은 글자인 승두소자나 가는 터럭에 비견되는 호발과 같은 세서를 위한 행필에서도 그는 팔을 굽히고 펴는 모든 수법을 섭렵하게 되었고 그의 자재로운 용필은 여초의 지적에 의하면 「신채를 감지할수 있게된」 경지다.그중에서도 금박가루를 아교에 갠 금니로 쓴 금강경은 예서 해서로 5천400자를 이루고 그 길이는 폭 45㎝에 길이가 5m나 된다.한문성경중 잠언도 1천300자를 써서 10곡 병풍으로 만들고 있다. 구당 여원구는 청장년기를 보내다가 교단과 직장에 있다가 40대에 서법탐구의 길로 용감히 전환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경기도 양평에서 지주이자 한학자이던 여운필씨의 5형제중 장남,양근 향교 전교이던 부친으로부터 6살때부터 한문과 붓글씨를 배웠으나 서예가가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치 못한채 고교졸업후 고향에서 교편생활을 했었다.그후 다시 서울에 올라와 제일약품에서 경리일을 하다가 함양 여씨 종친회의 족보간행에 끼어든 것이 서예의 길에 들어선 동기다. ○전각으로 국전 첫 대상 때마침 인사동에서 표구사를 하던 집안의 어른이 「저렇게 잘쓰는 글씨를 경리일이나 하면서 썩히게 할수없다」면서 동방연서회의 여초에게 데려간 것이다.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퇴근후엔 동방연서회로 나와 글씨,그러나 붓잡는 방법조차 달라서 그는 세로획에서의 뾰족한 침을 매달아놓은듯한,이슬방울이 맺힌듯한 현침수로를 익히기 위해 창신동 단칸방에서 식구들이 줄줄이 누워 자는동안 글씨연습으로 밤을 새웠다. 그러나 스승은 딱부러지게 가르치는 대신 『전서를 많이 써라』『책을 많이 보라』고만 했고 세월이 지나자 비로소 「붓을 송곳처럼 세우고」쓰는 현완직필에 녹아들수 있었다.70년이후 동방연서회가 주관하는 행사와 교류전에 작품을 출품하기 시작했고 76년부터 국전 6회 연속입선,다음해 특선과 국전서예부문 대상은 전각으로서는 서예계에서도 최초의 경사였다. 그때 충북 괴산에서 활동하던 청화백자의 권위자인 황규동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괴산에 내려와 함께 일하자고 권유해왔고 만 6개월간 괴산에 내려가 도자기에다 쓴 글씨로 79년 서울 관훈미술관에서 첫전시인 도서전을 열었다.이때 문화재위원장인 임창순씨는 「글씨는 쓰는 사람의 내면의성숙과 외율의 조화이기 때문에 천질만으로는 부족하고 노력만으로도 미치지 못하나 그는 노력과 천질로 청자위에 글씨의 강과 유를 성취했다」고 호평했다. 구당은 성품이 깨끗하고 상냥해서 좀체로 화를 내는 법이 없는 무골호인이다.언제봐도 웃는 얼굴에 다정다감하지만 들끓는 불화가 그치지 않는 서예계에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옳은 말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명료하게 타진시킨다.그대신 도무지 융통성이 없고 막무가내로 비사교적이며 멋적고 쑥스러운 일은 해본적이 없는 천성 선비타입이다.여주 사람인 부인 경석분여사와의 사이엔 3남1녀. 그는 그날 글씨가 되지않으면 처음부터 쓰지 않는다.안되는 날은 하루종일 씨름해봤자 한자도 써지지 않기 때문이다.글씨를 쓰다보면 첫획에서부터 「오늘은 글씨가 된다」「안된다」는 것이 점쳐진다.그러나 일분서를 하기 위해 한번 책상앞에 앉으면 그는 몇날 몇밤을 그곳에 매달린다.그만큼 집념과 오기가 강하다. ○화를 모르는 무골호인 또 연륜이나 나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지금도 글씨에 필요한것은열심히 배우고 연구한다.동양화가 홍석창에게 사군자를 배우고 당의 이양빙의 전서에 꿰뚫을듯이 파고든다.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된것을 「스스로 대견하고 행복하게」 여긴다. 이제는 자신의 서법예술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으나 자신이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고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다.「천변만화의 계경에 이르렀다」는 스승의 칭찬도 극구 사양한다.다만 유창탁발을 앞세우기보다 「기하거나 험하거나 삽한 기미가 없이 정직하고 온자한 향기를 지닌 글씨」를 이루기에 전심전력할 뿐이다. 요즘은 천자문 전각을 완성하고 이를 책으로 출간,눈부신 옥돌에 심선을 새기고 청결한 백지에 묵향을 뿌리면서 자신만의 서법언어로 낭랑한 지음을 울리고 있다. □연보 ▲1932년 경기도 양평 출생 ▲51년 서울농고 졸업 ▲73∼91년 동방연서회전(서울) ▲76∼81년 국전연속 6회입선 ▲79년 동아미술제 미술상수상,도서전(서울 관훈미술관) ▲78∼86년 국제서도연맹전(도쿄),한국서예가협회전(서울) ▲80∼92년 한국전각학회 이사 ▲81∼86년 한중서법전(서울·대북),한일서예교류전(서울·도쿄) ▲82년 국전 특선 ▲83년 국전서예부문 대상수상 ▲83∼88년 국제서도연맹이사 ▲84년 개인전(롯데미술관) ▲84∼91년 국립현대미술관초대전 ▲86년 한불수교 1백주년기념전 ▲87년 동아미술제 심사위원 ▲88년 국전심사위원,한국서예 백년전(예술의 전당) ▲88∼92년 동방연서회및 국제서법예술연합이사 ▲89∼91년 한국미협 이사 ▲91년 단국대 교육대학원졸업,전국대학미술대전 심사위원장,대한민국 서예대전 운영위원장,서울서예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장 ▲92년 개인전(조선일보미술관) ▲93년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국제전각대전 평심위원(북경) ▲94년 동아미술제 운영위원 ▲96년 구당일분서전(덕원미술관) 〈현재〉 한국미협 및 한국전각학회부이사장, 국제서법예술연합 및 동방연서회 이사 〈저서〉 「구당인존(상·하)」 「반야심경인보」 전각 「천자문」외
  • 승객위주 편의시설(선진 지하철은…:하)

    ◎「거미줄공간」에 완벽한 길 안내 표지판/전동차 칸마다 접을수 있는 좌석·뉴스 속보판/휠체어 장애니 승·하차 도울 역무원 항상 대기 일본 도쿄 지하철을 이용한 외국인은 최소한 3번 놀란다. 하루 평균 7백30만명의 엄청난 승객이 거대한 「사람의 물결」을 이루며 목적지까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12개의 노선이 거미줄처럼 뻗친 지하공간속에서 길을 잃거나 행선지를 찾지 못하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갖춰진 안내표지판은 또 한번 놀라게 한다. 호주인 리얼 맥씨(32)는 『지하철을 처음 탔을때 역안이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져 있어 제대로 목적지까지 찾아갈 수 있을지 걱정했다』면서 『그러나 사통팔달로 뚫린 미로속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헷갈릴 때마다 어김없이 표지판이 나타나 길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전동차안의 각종 편의시설도 첨단이다.뉴스속보를 전해주는 문자뉴스 속보판이 칸마다 몇개씩 달려있어 승객들의 무료함을 잊게해 준다.출·퇴근시간대 등 전철이 혼잡할 때는 좌석을 모두 접어올릴수 있다.출입구 위에는 행선지가 자동으로 표시된다. 특히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체계는 본받을만 하다.역무원들의 철저한 프로정신에 의해 빈틈없이 서비스가 제공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나타나 도움을 청하면 즉시 2명이상의 직원이 달려나와 승강장까지 안전하게 모신다.목적지를 몰어본 뒤 전동차의 좌석까지 안내한다.서비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목적지 역에 몇번째 칸 몇번 좌석에 장애인이 앉아있다는 무전연락을 취한다.장애인이 목적지역에 도착하면 휠체어를 들어 역밖까지 모실 직원 4명이 나와 대기한다. 5개의 노선이 교차,하루 60만명이 이용하는 도쿄 최대의 혼잡역 이케부쿠로역은 출근시간대인 상오 7시30분부터 9시까지 폴랫폼에 아르바이트생 등 25명이 투입돼 질서와 안전을 유지한다. 다나카 신이치 역장(55)는 『전동차가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고 출발할 수 있도록 승객들을 안내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승객들도 다음 전동차가 정시에 도착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때문에 한 전동차에 승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 교정대상 받는 수원교도소 이홍원 교사

    ◎“재소자 새삶 구축” 외길 18년/직업훈련에 열성… 1,350명 기능인으로/“재범막게 출소자 취업문 넓어졌으면” 『단 한명의 재소자라도 저로 인해 자활의 새 삶을 키워간다면 그 보다 더 행복하고 보람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올해의 교정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수원교도소 이홍원 교사(45)는 재소자들에겐 다정한 어버이이자 믿음직한 맏형으로 다가선다.이들이 한때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새 인생을 혼자 열어 가도록 불을 밝히는 등대역을 18년째 고집하고 있다.78년 8월 교도관으로 첫발을 내디뎠다.절망에 빠진 재소자들이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그들의 직업훈련과 기능자격 취득 및 취업알선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범죄격리자들을 꺼려하는 그릇된 시각이 결국 그들의 사회 적응을 어렵게 만들지요.다시 죄를 짓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81년 재소자들의 직업훈련을 처음 맡았다.자격증을 따거나 취업한 재소자들의 재범율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크게 낮은 현실을 강조하며 기술을 배울 것을 적극 독려했다.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국제기능경기대회 메달 보유자들을 찾아 재소자를 위한 특강과 지도를 청했다.자신도 이용사자격증과 자동차정비자격증,운전면허자격증을 취득해 재소자들 훈련에 앞장섰다. 이교사의 노력은 불과 1년만에 결실을 맺었다.재소자들은 82년부터 지금까지 전국 기능올림픽대회 등에서 금 10개,은 11개 등 모두 43개의 값진 메달을 따내는 개가를 올렸다.총 1천350명에게 직업훈련을 시켜 1급기능사 2명,2급 기능사 200명,기능사보 420명을 배출했다.366명은 이용·운전 등 각종 면허증을 따 상당수는 새 삶을 찾았다. 이교사는 법무부에 건의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재소자들이 일반 기업체에 출퇴근하며 기술을 배우는 「외부출장 직업훈련」을 도입했다.이 제도는 지금 전국 교도소에서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스승의 날이었어요.13년전 살인죄로 복역하다 저를 만나 미용기술을 배운 한 여인이 카네에션을 들고 왔습니다.지금은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고 했습니다』생활설계사인 부인 박화순(41)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있는 이교사는 그 여인과의 13년만의 만남을 보람있게 생각하는듯 했다.
  • 이회창 대표 화났다/“당의 단합 저해하는 언행 자제해야”

    ◎일부 주자 돌출발언에 경고 메시지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그에게 쏟아지는 전방위 공격에 「경고장」을 보냈다.7일 당무회의서 이대표는 『정국을 안정시키고 주도하는 과정에서 당의 안정과 단합이 중요하다』며 『민주정당으로서 (당원들이) 개별적으로 여러 의견들을 제시하고 활동을 할 수 있지만 당의 일체성과 단합을 흐트러뜨리는 언행은 자제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 경고는 우선 「시민대토론회」 등을 통해 이대표를 견제하고 공격하는 다른 주자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인제 경기도지사는 이날 시민토론회에서 『정치란 민심의 바다를 헤쳐나가는 것』이라면서 『바다(민심)를 잘 모르는 사람은 목적지까지 배를 잘 이끌고 가리라는 믿음을 주기 어렵다』고 주장했다.정치경험이 일천한 이대표와 이홍구,이수성 고문 등 이른바 영입파를 염두에 둔 평가다.김덕룡 의원(서울 서초을)도 지난 6일 『정치는 많은 경험과 경륜이 필요로 하는 것이며 정치란 육법전서 이상이다』고 대법관 출신의 이대표를 직접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더욱이 이대표는 『김현철씨를 이용한 인사 가운데 여권의 대선 주자도 있다』는 김의원의 폭로성 주장이 김의원의 인기전략에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신한국당의 대선전략에는 흠집을 낸다고 본듯 하다.「경고」 대상중에는 총리출신의 영입파 3명을 틈틈히 깎아내리는 박찬종 이한동 고문 등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이대표 발언은 이날 여의도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첫 회의를 가진 민주계의 「심상찮은」 행보에 대해서도 미리 쐐기를 박겠다는 뜻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민주계의 한 중진은 『우리는 건전한 모임이며 이대표의 발언은 일부 건전치 못한 인사와 모임에 대한 경고로 본다』고 되받아쳤다.
  • “대선주자 민심을 잘 읽어야”/이인제 지사 시민토론회 발언

    ◎“김 대통령 하야·당총재직 사퇴 옳지 않다” 『민심의 바다에서 경험을 쌓지 못한 분들이 나라를 잘 이끌고 갈지 깊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여권의 대선주자중 홀로 당 밖에서 고독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는 이인제 경기지사가 7일 신한국당의 영입파 대선주자들에게 화살을 겨눴다.이회창 대표를 비롯,이홍구 이수성 박찬종 고문이 표적이 됐다. 이지사는 이날 상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민대토론회에서 민심을 바다에,정치를 배에 비유해 이들을 깎아 내렸다.『민심의 바다는 평온할 때도,태풍이 불 때도 있다』며 『바다(민심)를 잘 모르는 사람은 목적지까지 배를 잘 이끌고 가리라는 믿음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박고문을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이 한번도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지사는 반면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서는 끝없이 끌어안으려 했다.정치권 일각의 김대통령 하야 및 총재사퇴 논의에 대해 『남은 임기동안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것이 옳다』고 강력히 반대했다.김대통령의 개혁작업에 대해서도 『파괴적인 면이 있었지만 개혁의 방향과 대의는 옳았다』고 감싸 안았다.독선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김대통령의 통치스타일 역시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하려다 빚어진 측면이 있다』고 옹호했다. 이날 토론회는 그러나 도정공백에 따른 부정적 시각을 경선내내 등짐으로 지고 갈 수 밖에 없는 그의 처지를 여과없이 드러냈다.『경기도내 시민단체들이 도청에 예산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사실을 아느냐』는 등의 도정과 관계된 상당수의 질문에 당혹스런 표정으로 『보고받지 못했다』고 토로해야 했다.
  • 시위학생 부상 경찰만 매도 말라/김광식(공직자의 소리)

    일부 기업인과 정치인이 저지른 비리로 인해 우리 국민의 눈과 귀가 연일 계속되는 한보청문회에 쏠려있는 사이 반도의 북쪽에서는 전대미문의 기근으로 북한동포들이 굶주리다 못해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인민군부의 눈초리가 더욱 매서워져 있다는 소문이다. 지각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우리의 앞날을 무척이나 염려스러워 하고 있으나 믿음직스러운 우리의 국군들이 전방의 휴전선과 바다와 하늘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고,경찰 또한 한치의 흔들림없이 묵묵히 민생치안 확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봄이 되자 올해도 연례행사처럼 대학가에서는 시위가 시작되었다.시위가 있으면 경찰뿐만 아니라 부상경찰관을 치료하는 경찰병원에 먼저 비상이 걸린다. 대학가에서 격렬한 시위가 있는날 경찰병원에 입원한 일반 환자나 그 가족들은 보았을 것이다.부상경찰관 및 전·의경들이 응급실과 병원복도를 메우도록 밀려들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이리뛰고 저리뛰는 모습은 가히 전쟁터의 야전병원을 상상하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최근 시위를 벌이던 전남대와서울대생 등 2명이 시위도중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경찰에서는 이들 부상 학생들이 최루탄 유탄에라도 맞았는지를 철저히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전경이 던진 돌에 맞아 부상했는지 여부를 조사중이라고 보도했다.시위현장에는 시위학생,구경하는 일반인,시위자보다 진압경찰에 초점을 맞추어 취재에 열을 올리는 기자들이 눈을 번뜩이고 있는데 전경이 돌을 던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경찰에서는 시위진압부대원들에게 평시에는 물론 시위진압에 앞서 안전수칙을 지키도록 사전 철저한 교육을 시키고 있다. 시위현장에서 학생들만 부상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더많은 진압 경찰관및 전경·의경들이 중·경상을 당하여 오늘도 병상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 “중국의 규제완화에 놀랐다”/장수영 포항공대 총장(시론)

    작년 9월 김영삼 대통령이 남미를 순방하여 경제협력을 약속할때까지만 해도 우리 경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작년말 노동법파동과 금년초 한보부도사태로 인하여 경제가 급속히 악화되고 신문들은 총체적위기라고 대서특필하고 있다.불과 2년전만해도 해외여행자들의 환전한도를 5천달러에서 1만달러로 올리면서 소비를 부채질하던 정부가 불과 몇개월후를 못내다보았다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 작년에 무역적자가 2백억달러가 넘고 외채가 1천억달러를 돌파했다는 것은 간단히 넘어갈 이야기는 아니다.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우리 언론들이 지나치게 위기의식을 강조함으로써 국민들의 의지를 꺾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언론 지나치게 위기강조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미국과 비교를 해보자.미국정부의 예산은 1965년에 1천1백80억달러이던 것이 1995년에는 1조5천1백40억달러로 늘어나서 12.8배의 성장을 하였다.그러나 우리나라는 1965년에 예산 9백46억원이 30년후에 54조8천4백50억원으로 580배가 늘어났다.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7조2천4백50억달러로서 세계최고이지만 금년예산 1조6천3백84억달러중에서 재정적자가 1천4백32억달러나 되어 연간예산의 8.7%나 된다.정부의 채무는 무려 5조2천1백73억달러로서 GDP의 72%나 된다. 채무에 대한 이자만도 일년에 2천3백20억달러(연간예산의 15%)를 지불하고 있다.무역적자도 금년에 1천5백29억달러를 예상하고 있다.정부의 채무를 미국민 1인당으로 나누면 무려 1만9천680달러나 된다.한편 우리의 외채 1천억달러를 국민 1인당으로 보면 2천200달러 수준이 되지만 우리의 대외자산을 감한 순수외채는 1인당 880달러가 된다. 또 우리나라는 지난 수년간 재정적자가 있는 대신 세계잉여금이 수조원씩 생겼던 나라이다.그렇다고 오늘의 경제적 난관을 무시하자는 뜻이 아니다.우리는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시기도 극복해낸 저력이 있는 민족이다.정부도 자신을 가지고 이 난관을 헤쳐나갈 비전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언론도 지나치게 비관적인 보도를 하지말고 희망적인 보도를 많이 해야할 것이다. 어느 기업이 부도가 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실제로 그 기업이 어렵게 되는 것처럼 지나친 비관론은 외국인투자가들조차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최근 보도에 의하면 아시아개발은행에서도 우리나라의 금년도 성장률을 6.3%로 잡고 있고 내년에는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하였다. 지난 1년동안 실업자의 수도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국가들은 10% 또는 그 이상의 실업률을 가지고 있다.우리는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사람을 구하고 있는 형편이다.김영삼정부는 이제 임기가 10개월밖에 남지 않았다.지금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 각종 규제를 최대한 철폐해서 시장경제가 활력을 찾도록 해야 한다. ○시장경제 활력찾게 해야 3월말에 중국 상하이를 가보고 그들의 발전속도를 보고 놀랐다.1년전보다 눈에 띄게 발전하였는데 관료적인 공산주의사회가 과감하게 규제완화를 했음을 알 수 있었다.상하이의 건설붐은 일찍이 어느 나라에도 없던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전반적으로 사회에 활기가 있고 시민들도 자신에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우리기업이 국내에서는 못짓는 90층 건물을 상하이에건설할 예정이라 한다. 지나친 비관대신 한국경제에 믿음을 갖고 활로를 개척하자.
  • 은행단,진로 자금지원 계속/제2금융권 협조 전제

    ◎장 회장 5천억 추가대출 요청 상업은행과 서울은행 등 채권은행단은 자금난을 겪는 진로그룹에 대해 제2금융권의 협조를 전제로 자금지원을 계속하기로 했다.그러나 제2금융권이 협조에 소극적일 경우 진로그룹의 자금지원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은행의 고위관계자는 16일 『채권은행들은 진로그룹의 자구계획이 현실성이 있다고 보고 진로그룹을 살리는 쪽으로 갈 방침이나 종합금융사를 비롯한 제2금융권에서 계속 지원할 것인지가 관건』이라며 『자구노력이 믿음이 가고 확실하면 지원하는게 좋다』고 말했다.그는 『70여년의 역사를 가진 진로그룹이 그동안 다소 무리한 경영을 했을지 모르나 현재로는 진로그룹을 살리는게 좋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장진호 진로그룹 회장은 그룹과 (주)진로의 주거래은행인 상업은행과 진로건설 및 진로종합유통에 대출이 많은 서울은행의 행장을 방문,5천억원대의 추가대출을 요청했다.장회장은 제2금융권에서 빌린 자금을 갚기 위해 상업은행에서 2천7백억원,서울은행에서 2천3백억원의 자금지원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며 우선 1천억원의 긴급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은행측은 『제2금융권이 만기로 돌아온 어음을 연장하면 자금지원을 계속하겠으며 현재 추진중인 부도방지협약이 다음주에 발효되면 채권금융기관협의회를 구성,자금지원 여부를 결정짓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스,할부금융사 등 신용대출을 많이 한 2금융권은 진로가 발행한 어음을 매일 수백억원씩 은행에 지급제시,부채를 은행권에 떠넘기려 하고 있으나 진로그룹 거래은행들이 제2금융권의 어음결제 요구를 거부해 제2금융권이 어음을 연장하면서 대체로 부도를 막아나가고 있다. 한편 진로그룹은 아크리스백화점도 매각할 것을 검토중이며 청주백화점 진로베스토아 진로하이리빙 등 유통 4사의 매각 또는 통폐합을 통해 현재 24개인 계열사를 12개사로 줄일 계획이다.진로는 우선 계열사를 17개로 줄이기로 하고 독립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금비 계열의 4개사와 삼원판지와 영진특수기기도 조만간 계열에서 해제해 계열사를 줄일 방침이다.
  • 나의 신혼여행/양준호·이수경 부부

    ◎미혼때 쓰던 중고차 타고 동해안·경주·부산·지리산 등 집안어른 찾아뵈며 국내일주/5박6일에 총비용 68만원 들어 일주일 남짓의 넉넉잖은 결혼휴가일정.유행따라 해외 신혼여행이라도 다녀오면 가까운 일가붙이에게 인사드릴 시간조차 내기 어렵다. 새내기부부 양준호(29)·이수경씨(26)는 2년전 결혼하면서 이처럼 「겉만 번드르르하고 철모르는」 신혼여행만은 가지말자고 의견을 모았다.관광학과를 졸업한 아내 이씨는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겸한 국내 일주여행을 제안했다.예산은 친구들이 부조한 1백40만원과 남편 양씨가 몰던 중고 프라이드 한대가 전부.하지만 이들에겐 젊음과 체력이란 더 큰 밑천이 있었다. 속초로부터 여행을 시작한 이들은 동해안을 따라 국도를 달렸다.설악동,낙산사를 거쳐 오대산에 들른뒤 경포대에선 회 한접시를 곁들였다.신혼부부들의 「고전적」 명소 경주도 거쳤다.양씨의 부산 외갓댁에선 손주 결혼식에 못오신 서운함을 삭이고 있던 시외조부가 자신을 찾아준,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장손자 내외를 두밤이나 붙들며 환대했다. 지리산을 거쳐 논산 이씨 조모댁에 인사를 드린 뒤 서울로 돌아온 5박6일의 일정.여기 든 비용은 숙박비 24만원,식대 20만원,주유·주차료 10만원,도와주신 분들께 선물비용 4만원 해서 모두 68만여원.주머니에 남은 72만원은 이들의 사업비용으로 보탰다.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서 청첩장 할인매장 「청첩장 하우스」(313­5115)를 열고있는 이씨는 『알뜰하면서도 격식차리지 않는 우리만의 여행이 가능했던 건 양가 부모님의 너그러운 이해와 믿음덕이 뭣보다 컸다』면서 『신혼여행에 필요한 건 체면도 허식도 아니고 둘의 사랑과 이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날로 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 이집트 피라미드:상(세계 문화유산 순례:29)

    ◎영생을 기다리는 파라오의 안식처/50층 건물 맞먹는 거대한 돌무덤/5천년 풍상에도 초기모습 그대로/죽음은 탄생을 향한 또다른 출발점/미이라옆에 영원으로 타고갈 목선이… 카이로 서쪽 기자에 있는 3기의 피라미드는 5천년 고대 이집트 문명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거대한 상징물들이다.이 피라미드들과 피라미드를 지키는 반인반수의 장대한 스핑크스상은 바로 고대 이집트인들이 삶과 죽음에 대한 그들의 믿음,즉 그들의 생사관을 표현한 건축물이다. 그러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도 첫번째로 꼽히는 이 피라미드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불가사의한 의문과 의미는 다른 문명의 유물들과는 분명히 특별한 데가 있다.카이로 시내에서 서쪽으로 25㎞에 위치한 기자고원 사막의 돌언덕 위에 이 거대 돌유물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기원전(BC) 2680년이라는게 다수설이다.지금으로부터 4천6백여년 전이고 우리나라의 단군 건국이 있기 수백년 전의 일이다.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웅장함과 정교함,치밀함을 보노라면 사막의 정적속을 지나온 5천여년의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 기자언덕에서 남으로 멤피스를 거쳐 다흐슈르까지 이르는 30여㎞에 걸친 나일강 서안을 따라 모두 90여기의 크고작은 피라미드가 서있다.이중에서도 이 기자의 3대 피라미드가 가장 규모도 크고 완벽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나지막한 돌언덕을 오르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대피라미드로 불리는 쿠프왕의 피라미드이다.가장 크고 대표적인 것이다. 여행객들은 먼저 피라미드의 규모에 압도당한다.정확히 정사각뿔 모양을 한 이 석조 건축물은 정사각형 밑변의 한변 길이가 230m,높이는 146m에 달한다.원래 50층 건물에 맞먹는 높이였으나 꼭대기 일부가 풍화돼 현재의 높이로 줄어든 것이다.4개의 삼각형 옆면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는데 이 방향이 현재의 방위각과 0.1도의 오차도 없다고 한다.4밑변의 길이도 서로 한뼘의 오차도 없다.6면체로 다듬은 석조 블록들을 하나하나 쌓아 올렸는데 대피라미드 하나를 만드는데 자그마치 2천3백만개의 블록이 들어갔다.사람 키 높이의 이 돌 블록들은 큰 것은 1개무게가 30t에 달하는 것도 있고 전체 t수가 6백30여만t에 이른다고 한다.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보다도,밀라노의 성플로렌스 대성당보다도 더 큰 건축물인 셈이다.뒤편으로 서있는 케프론왕과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는 규모는 쿠푸왕의 것보다 다소 작지만 하나같이 정교하고 웅장한 석조건축물들이다. 케프론왕의 피라미드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보다 3m가량 낮지만 약간 높은 지면에 서있어서 더 높아 보인다.가장 작은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는 앞의 두 피라미드의 10분의 1크기에 불과하고 사용된 돌도 덜 다듬어져 졸속으로 완성한 흔적을 엿보게 한다.불가사의한 의문의 핵심은 왜,어떻게 5천여년 전에 이런 거대 석조물들을 만들었을까 하는 것이다.하나의 해답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가졌던 태양신에 대한 숭배에서 얻을수 있다.그래서 피라미드가 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태양광선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파라오(왕)들은 태양과 동일시됐고 바로 태양의 아들이었다.그들은 죽은뒤 태양과 다시 합쳐지는 살아있는 신들이었다. 해가 동에서 떠서 서로지면 이튿날 어김없이 다시 뜨듯이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은 죽으면 반드시 다시 살아난다고 믿었다.동쪽은 탄생의 장소였고 서쪽은 죽음의 장소였다.그래서 무덤은 반드시 나일강의 서안에다 만들었다. 그러나 이 죽음은 죽음으로서 끝나는게 아니라 탄생을 향한 또다른 출발점이었다.그래서 신과 같은 파라오의 무덤을 힘닿는데로 크고 웅장하게 지었던 것이고 피라미드는 무덤이 아니라 요람이었던 셈이다.죽은 파라오는 목관에 넣어져 피라미드 아래편 돌언덕을 파고 세운 신전에서 장례의식을 치렀다.그 장례의식은 다름 아닌 「영원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출발 채비였고 거대한 목선이 준비됐다.대피라미드 남쪽면 바위굴 속에서 발굴된 이 목선은 길이 43m,폭 6m를 한 전형적인 나일강의 목선이었다.일명 「태양의 배」로 불리는 이 목선을 타고 파라오의 죽은 몸은 암흑을 뚫고 영원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몸체 없이 혼자서 이 긴 여행을 감당할수 없다고 믿었다.그래서 미이라를 만들었다.제일 먼저 내장을 들어내고 다음 머리의 골을 빼냈다.가장 중요한 것은 심장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미이라에 남겨두었다.시신은 마른 소금에 담가 절여서 탈수를 계속한 뒤 시원한 바람을 쐬며 계속 말렸다.그리고 수지같은 방부제를 피하에 채워넣고는 성형수술을 하듯 얼굴 밑에 패드를 집어넣었다.그위에 다시 수지를 입힌 린넨천을 감싸서 외기와 차단했다. 미이라 작업이 끝나면 그것을 사람 모양의 금관 혹은 나무관에 넣어서 다시 석관에 넣고 그것을 다시 여러 겹의 나무상자로 쌌다. 그 다음 이들은 태양의 아들이 영원으로의 여행을 하도록 영원히 지탱할수있는 무덤을 지을 궁리를 했다.고대 이집트인들은 일찍이 4각뿔이 가장 안정된 구조라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여기다 천혜의 조건들이 피라미드들이 수천년을 견딜수있게 도왔다.카이로 일대는 지진 안전지대이다.수천년 동안 한번도 큰지진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사철 내내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기후도 도움이 됐다.바위에 스민 수분이 얼어 동파가 되풀이됐다면 이렇게 온전히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대피라미드의 석재를 공급하기 위해 고대 이집트인들은 3곳의 채석장에서 돌을 날랐다.본바닥인 기자지역에서 나는 사막의 거친 사암은 몸체 재료로 삼았고 외벽장식으로 쌓은 매끄러운 석회암은 카이로 남쪽 650㎞에 위치한 투라의 채석장에서 운반해왔다.그리고 내부의 특별히 힘을 받는 부분과 회랑,묘실,내부장식용으로 사용된 화강암은 남쪽 1천㎞ 떨어진 아스완의 암벽에서 운반해 왔다고 한다.평균 중량이 2.5t,더러는 30t까지 나가는 거대한 돌덩이들을 운반하는 작업은 나일강이 범람하던 시기에 맞춰 거대한 거룻배를 이용해 날랐다.바퀴와 도르래가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이들은 날라온 돌을 쌓기 위해 자갈로 보도를 만들고 그위에 굴림대를 깐 다음 돌덩이들을 실은 나무썰매를 그위로 굴려서 옮겼을 것이라는게 정설이다.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만드는데는 연인원 10만여명이 동원돼 20여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파라오들은 재위하면 곧바로 자신의 피라미드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음이 분명하다.그것은 절체절명의 가장 힘겨운 과제,즉 「죽음을 정복하기 위한 싸움」의 준비였다.그들이 이루고자했던 것은 바로 인간의 불멸에 대한 꿈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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