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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수 60여명 IMF극복의지 노래 ‘하나되어’ 선보여

    ‘뜻하지 않은 아픔을 겪었어/너무 앞만 보고 달렸던 거야/이제 그 누구도탓하지 말고/나의 부족함을 다시 생각해/우리에겐 아직 희망은 있어/어려울수록 강해지는 믿음…’ HOT,젝스키스부터 신승훈,김건모까지 인기가수 60여명이 지난 3월 IMF를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함께 불러 화제를 모은 ‘하나되어’가 정규음반으로 나왔다.타이틀은 ‘나우 앤 뉴(지금 다시 하나되어)’.합창곡 ‘하나되어’외에 참여 가수 23팀의 히트곡 하나씩을 담아 두장짜리 CD로 출반했다.한국연예제작자협회는 지난달 홍보용으로 비매품 싱글CD를 만들어 정부부처와 사회단체 등에 배포했으나 음반을 구하고 싶다는 일반인들의 요청이 쇄도하자 급히 판매용 음반을 기획했다.수익금은 모두 실업기금으로 사용한다. 수록곡은 ‘커플’(젝스키스)‘루비’(핑클)‘슬픈기대’(조성모)‘천사’(박지윤)‘진달래꽃’(임창정)‘버려진 아이’(클론)‘숨은 그림찾기’(엄정화)‘연’(김현정)등.첫 앨범 마지막 트랙에는 스타들의 녹음 모습을 담은뮤직 비디오를 수록해 컴퓨터 동영상으로 볼수 있게 했다. 이순녀기자
  • [특별기고] 자유를 위한 변명

    - 한 종교집단의 MBC난입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난 12일 밤 MBC PD수첩 ‘이단파문! 이재록 목사! 목자님,우리 목자님’을 시청했으리라 생각된다.바로 이 프로그램 때문에 전날밤 MBC는 한 종교집단 신도들에 의해 방송중이던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았기에….필자도 이프로그램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프로를 본 사람들의 느낌이 다 같을 수는 없겠지만,필자의 소감은 “한국 종교계의 ‘이단’ 논쟁이 더 이상 종교계만의 문제일 수는 없다”라는것이었다. 일찍이 영국의 존 밀턴은 17세기에 이미 ‘아레오 파지티카’라는 책에서“만일 그가 다른 근거 없이,단지 그의 목사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믿는다고 한다면,비록 그런 믿음이 사실이라 할지라도,그가 믿고 있는 진리 그것은 단지 이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라고 지적했다.맹목적 믿음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이 맹목적 믿음의 위험성에 대해,또 광신적 종교가 자칫 ‘하느님’ 또는‘신(神)’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사제(司祭)를 신처럼 받드는 위험성에 대해 ‘PD수첩’은 고발하고 있었다. 이러한 맹목적 믿음은 왜 위험한가? 멀리서 구할 것도 없이 이번 MBC 난입사건을 일으킨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이 그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즉 그들은 이미 그들 신도들의 ‘신’이 되어버린 ‘목자’에 대한 여하한 비난도 용납할 수 없게 되었다.그 비판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게되었다.법도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가 던져주는 의문은 여러 가지이다.그중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정부당국,특히 경찰과 검찰이 사태 초기에 왜 그렇게 미온적이고 안이했느냐 하는 점이다.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은 과연 집회신고를 했었는가? 또 야간에 1,000여명이넘는 사람들이,그것도 방송국 앞에 몰려들어 아우성치고 있는데도 초기에 20여명의 경찰관만 보낸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검찰이나 경찰에게조차 종교집단은 ‘언터처블’의 ‘성역’이 돼 버린 것은 아닌가? 그러나 이번 사태가 지금 우리 시대에 진실로 던지고 있는 명제는 자유와자율과책임의 상호관계라 할 것이다.MBC PD수첩이 국민의 알 권리에 의거해서 만민중앙교회의 ‘이단파문’을 취재보도할 언론자유를 가지고 있다면,상대방 신도들이 집회나 시위를 통해 이의를 제기할 자유 또한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그들이 아무리 ‘이단’ 혐의를 받고 있다 할지라도 그들에게서 항의와 항변의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으니까.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이 설사 집회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MBC 앞에서 항의시위만 했다면 그들의 ‘말할 자유’는 가능한 한 보장되어 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MBC가 ‘말할 자유’를 폭력으로 짓밟았다.그리고 그 순간 그들은 ‘말할 자유’를 향유한 것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파괴한 것이다.한국사회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많이피를 흘린 이 5월에 일어난 MBC사태는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우리가 그 자유를 어떻게 가꾸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도전적 질문을 던지고있다.‘자유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물리적으로 짓밟을 권리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정치권력이나 정부당국,또는 우리의 언론이 이 사태를 계기로 하여 합법적이고도 평화적이며,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집회나 시위조차 집단이기주의나 사회혼란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유를 위한 변명’,이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것이다. 成 裕 普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 “깨끗한 법관” 국민여망 부응해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2일 “깨끗하고 공정하고 전문적이며 유능한 법관에 대한 요구 등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강조하고 “법의 공정한 집행에 큰 책임을 느끼고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사법부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낮 지익표(池益杓)변호사 등 법의 날 수상자 등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 하고 법치주의 확립에 재조 및 재야 법조계가 협력해줄 것을 당부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고 박선숙(朴仙淑) 청와대부대변인이 전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한상범(韓相範) 한국법학교수회장이 ‘권위있는 리더십 발휘’를 건의하자 “나를 핍박하고 목숨을 빼앗으려 했던 사람들도 다 용서했으나 법과 원칙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면서 “우리 사회를 망친 여러 나쁜관행과 부패,인권유린 행위에 대해선 확고한 원칙을 갖고 대응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기득권 세력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압력을 가하면서 갖가지 요구를 해오고 있으나 이때 흔들리면 국내외의 신뢰를 받을 수 없으므로 정부와 대통령은 중심을 유지하고 흔들림없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 [외언내언]인터넷 뒷골목/임영숙 논설위원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인터넷의 자유로운 정보 유통을 제한할 것인가,아니면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를 필요악(必要惡)으로 묵인할 것인가.정보화시대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이 문제는 전세계적인 화두(話頭)가 됐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 신앙에 가까운 믿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경우 지금까지는 언론자유 쪽이 승리해 왔다.지난 97년 연방대법원은 클린턴 행정부가통과시킨 인터넷 음란물 규제법 ‘연방통신품위법’이 언론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이어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세력이 연방통신품위법을 보완해 마련한 ‘어린이 온라인 보호법’ 또한 지난2월 위헌 판정을 받았다.다시 2개월 후 E메일을 통한 음란물 유포 규제는 합헌이라는 판결이 나오긴 했으나 언론자유에 대한 미국의 신념은 확고하다. 그런 미국에서 지금 청소년의 인터넷 폭력·음란물 접근 제한 방안이 적극논의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앨 고어 부통령이 이번주 초 백악관에서 인터넷 회사 및 오락·연예사업 관련자들과 만나 대중문화의 폭력성 차단을 위한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고 야후,넷스케이프 등 인터넷 검색의 95%를 차지하는 15개 회사가 음란물 차단 소프트웨어를 단 한번의 클릭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나선다는 것이다.지난달 15명의 사망자를 낸 컬럼바인 고교 총기난사사건이 인터넷 폭력물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인터넷 규제론이 힘을 얻은 셈이다.물론 위헌 논란을 비켜갈 수 있는 자율규제이긴 하지만. 국경 없이 전세계를 묶고 있는 인터넷은 핵전쟁에 대비해 개발된 기술의 산물이다.즉 핵전쟁이 발발했을때 수많은 기지가 파괴되더라도 단 하나의 기지만 살아남아 있으면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도록 개발한 아르파넷이 바로 인터넷의 원조다.따라서 인터넷에서 특정정보를 차단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앨 고어 부통령도 말했듯이 청소년들이 들어가면 안되는 사이버세계의 윤락가와 뒷골목을 방치할 수는 없다는 것이 어른들의 고민이다.언론자유가 지켜져야 하지만 청소년도 보호되어야 한다.그러나 한국의 컴맹 부모들은 아직 그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실정이다.우리도 민간차원의 음란·폭력 사이트 차단 소프트웨어 적극 개발과 함께 부모세대의 컴맹 탈출이 시급하다.전세계의 음란사이트가 10여만개로 추정되는데 비해 국내에서 개발된차단 소프트웨어는 그중 5분의 1정도만 막을 수 있는 수준이다.
  • [제2공화국과 張勉](21)對日외교 전략

    장면(張勉)정부가 넘겨받은 해묵은 숙제 가운데 하나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이다.앞서 집권한 이승만(李承晩)은 국시인 ‘반공’ 못잖게 ‘배일(排日)’을 강조했고 국민감정도 일본에는 아직 적대적이었다. 이승만정권 때 한·일회담은 모두 4차례 열렸다.1951년 10월20일 도쿄에서1차회담을 가진 것을 비롯해 53년 4월과 10월 2·3차 회담이 이어졌다.그러나 3차회담에서 일본대표 구보타(久保田)가 “일본의 지배는 한국측에도 유익했다”는 망언을 해 결렬된다.이후 4년여 동안 중단됐다가 58년 4월 4차회담에 들어가지만 일본이 59년 2월 재일교포 북송을 시작하는 바람에 다시 흐지부지된다. 이같은 상태에서 장면정부는 한·일 국교정상화에 적극적으로 임했다.장 총리는 민의원 첫 시정연설에서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양국 회담을재개하고 ▲재일교포에의 경제적 지원,교육지도를 강화하며 ▲교포 자본을국내에 도입하는 길을 열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이어 정일형(鄭一亨)외무장관은 “외교관계 정상화에 필요하다면 총리 또는 외무장관 회담을열 수 있다”고 공표했다. 일본도 즉시 반응을 보였다.장면내각이 출범한 지 열흘 남짓한 60년 9월6일 고사카(小坂)외무장관 일행을 친선사절단으로 파견했다.일본 고위 관리가정식으로 한국땅을 밟기는 일제가 쫓겨간 뒤 처음이었다. 고사카가 방한한 날 오후 양국 외무장관은 회담을 가져 하루빨리 한·일회담을 열기로 합의한다.고사카 일행은 불과 22시간 머물고 돌아갔지만 양국정부가 ‘선린우호’ 방침을 서로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이 시기에 한·일회담이 주요 이슈로 떠오른 까닭은 한국·일본 그리고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당시 국제정세를 보면 일본은 55∼56년역사상 최고의 고도성장을 이룩한 뒤 상품 및 자본의 해외진출을 노릴 때였다. 미국도 60년 1월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일본에 동북아 반공망 구축에 한몫을 맡기려 했으므로 한·일 국교정상화를 줄곧 유도했다.이승만정권 때인60년 3월 허터 미 국무장관은 양유찬(梁裕燦)주미대사를 만나 한·일관계에우려를 표명하는 등 직접 관계개선을 촉구할 정도였다. 장면정부도양국 국교정상화가 꼭 필요했다.‘경제 제일주의’를 추진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일본과 국교를 맺어 식민통치에 따른 청구권을 해결하고 국교 수립 이후로 미룬 민간자본 유치도 실현해야 했다.남북이 대치한 상태에서 등 뒤에 있는 일본을 자유우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었다. 양국은 외무장관 회담에서 결정한 5차 회의의 예비회담을 60년 10월25일 도쿄에서 시작했다.한국측 수석대표는 1차회담에도 참석한 유진오(兪鎭午)전고려대총장이 맡았고 엄요섭(嚴堯燮)주일공사,유창순(劉彰順)한국은행부총재 등이 대표단에 동참했다. 한국은 청구권문제에 초점을 맞춰 ‘청구권 8개 항목’을 내놓았다.하지만일본은 장면정부를 애태우려는 듯 개막 다음날 ‘교포 북송’문제를 핑계로북한과 별도의 회담을 시작했다.12월19일에는 이케다(池田)총리가 “한국에정부가 둘 있다는 인식 아래 한·일회담에 임한다”고 국회에서 공표했다. 일본이 ‘북한카드’를 갖고 지연작전을 쓴 탓에 회담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한편 일본은 ‘장면정부는 아직안정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회담진행을 의도적으로 늦춘 면도 있다. 61년 초 일본이 경제사절단을 보내겠다고 통보하자 장면정부는 환영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한다.그러나 이는 엄청난 반발을 불러온다.정부·여당 연석회의가 ‘국교정상화가 되기 전에라도 일본의 민간차관과 재일교포 재산의 반입을 허용한다’고 결정한 1월22일 밖에서는 ‘반일투쟁위원회’(위원장 劉錫鉉)가 결성된다. 김병로(金炳魯) 변영태(卞榮泰) 등 60여명이 참여한 이 위원회는 “국교수립 전에 경제교류를 하는 것과 일본 경제사절단의 내한을 반대한다”면서 실력저지를 선언한다.신민당(민주당 구파)도 다음날 “장면정부의 대일 외교에 반대하는 범국민운동도 불사하겠다”고 성명을 발표한다.환영위원회는 취소되고 일본 경제사절단의 내한도 무산됐다. 4월26일 정일형 외무장관이 위싱턴에서 러스크 미 국무장관과 회담하고 “한·일 국교정상화는 양국에 이익일 뿐아니라 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도모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공동성명을 발표한다.이어 5월6일 일본에서 노다(野田)를 단장으로 하고 외무부 아시아국장이 수행한 일본 의원단이 방한한다. 사절단이 일본으로 돌아가 정계·사회에 “장면정부는 매우 안정돼 있다”고 보고하고 다닐 무렵 ‘5·16쿠데타’가 발생한다. 박정희(朴正熙)정권은 4년 후인 65년 6월22일 한·일기본조약을 조인한다. 주 관심사인 청구권 금액은 ‘무상 3억,정부차관 2억,민간차관 3억달러’로결정났다.64년의 ‘6·3사태’라는 치열한 국민 저항을 억누르고 얻은 결과였다.박정권의 논리 또한 ‘경제건설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려면 국교정상화가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장면정부에서 일한 인사들 누구나가 아쉬워하는 대목이 청구권문제다.장면정부는 한·일회담 성공을 눈앞에 두었고 그때 타결됐더라면 최소한 청구권금액만큼은 훨씬 늘어났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박정희의 한·일회담 강행을 반대해 의원직을 사퇴한 정일형의 회고록 중 한 부분이다. “외무장관 당시 우리가 12억달러를 요구하고 일본이 8억달러를 주장해 타결을 못보았는데,이제 3억달러에 낙착됐다.이 하나만으로도 박정권이 얼마나 한·일회담을 졸속·저자세로 진행했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장면정부는 한·일 국교를 이뤄 청구권을 해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개발5개년계획,국토건설사업을 완수하려고 했다.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그들의 주장대로 민주화와 경제개발을 동시에 이루었을지도 모른다.이러한 가정을무시하더라도 장면정부가 최소한 ‘6·3사태’와 같은 폭압을 국민에게 저지르지 않았음은 평가받아야 마땅하다./이용원 기자
  • [외국의 공무원들은] 일본/그래도 믿을만한 관료들

    최근 일본 공무원의 위세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사건이 있었다.일본 정부가 행정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관청 중의 관청이라고 일컬어져 온 대장성(大藏省) 명칭을 대장성 전·현직 관료들의 격렬한반대에도 불구하고 재무성(財務省)으로 바꾸기로 결정한 것이다. 대장성 관료들은 관료 중의 관료,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일컬어져 왔다.그들의 반대 속에 자존심의 상징인 부처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해도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일본 정부는 현재 22개 성(省)·청(廳)을 2001년 1월1일부로 13개로 줄이고 공무원 수를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25% 줄이는 야심찬 행정개혁을 추진하고 있다.행정개혁은 이제까지의 관료 주도의 국정운영에 대한 깊은 반성과함께 국가의 주요 정책에 관해 정치권이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관료조직이 일본의 번영을 가져오는 데 일등공신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일본 공무원은 청렴하다고 인식돼 왔으며 사회적 존경과 국민적 믿음을 받아왔다.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유례 없는 장기간의 불황을겪으면서 급속히 바뀌고 있다.급변하는 국내외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관료조직의 경직성과 조직의 비대화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다. 청렴하다고만 생각돼 왔던 일본 공무원사회도 지난 96년 후생성 사무차관이 뇌물수수로 구속된 사건과 대장성·통상산업성 관료가 업자들로부터 접대를 받았다는 것이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고자존심도 상처를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공무원들의 사기가 예전만 못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관청의 힘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그러나 일본의 공무원사회는 이러한 어려움을 능히 극복해 나아갈 저력을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관청의 어디를 가든지 늘 상냥하고 친절한 공무원을 만날 수 있다.대다수 공무원은 자기가 맡은 직무를 묵묵히 헌신적으로수행하고 있으며,가스미가세키(관청가)는 지금도 늘 밤 늦도록 불이 켜져 있다.아직도 일본 국민은 언제든 관청에 가면 최선의 행정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일본의 공무원들은 아직도 국민으로부터 ‘그래도 믿을 것은 관료’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행정개혁이 일시적으로 일본 공무원사회를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관료시스템 전체의 체질을 강화시키게 될 것이다.일본의 젊은 공무원들은 행정개혁이 일본의 관료사회가 환골탈태,국민의 사랑을 받을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 충무공 묘소 훼손 무속인 楊씨 수사결과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장군 묘소 훼손사건을 수사중인 충남 아산경찰서는 30일 용의자 양순자(楊順子·48·여·무속인)씨가 지난 95년 5월 경남 김해시 서상동 김수로왕릉을 비롯,지금까지 13차례에 걸쳐 48기의 묘소에 식칼 158개,쇠말뚝 125개 등을 꽂았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또 양씨 진술 등을 통해 경기도 파주시 이율곡의 묘소 등에도 식칼51개와 쇠말뚝 45개를 꽂은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날 사건 수사발표를 통해 양씨는 유명한 산의 정기나 선현·위인들의 기운을 받으면 그 기(氣)가 자신과 자녀들에게 돌아와 가정이 화목하고 자신의 쇠약한 몸이 건강해 지리라는 믿음에서 이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 [朴康文코너] 제 자식만 귀한가

    군대 가는 것 돈 받고 빼 주는 비리가 여전하다는 것이 또 확인되었다.“군대는 힘 없고 돈 없는 집 아들이 간다”는 믿고 싶지 않은 말을 “이래도 못 믿어”하고 다그치는 양 가끔 불쑥 터진다.징모 업무 부정이 오랫동안 국방부의 원용수 준위와 박노항 원사에게 돈을 퍼부어 준 화수분이었음이 밝혀진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열 달 전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한 참이다.이번에는구청과 병무청 직원,군의관들이 걸렸다. 병무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군대 가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과 돈을 주고라도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는 부모가 있기 때문이다.군대 가면 손해보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고,부모가 안심하고 아들을 군대에 보낼 수있게 해야만,이 고질병이 근본적으로 고쳐질 수 있다. 이번에 당국이 조사해 발표한 것을 보면,청탁자들이 거의 모두 어머니들이다.우리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은 유난한 데가 있다.홀로 된 어머니가 삯바느질이나 행상을 해서 자식을 대학 공부까지 시킨 이야기를 드물지 않게 듣는다.이런 강한 어머니들이 나라를 떠받치는 기둥들을 길러냈다.나라의 발전이 이 어머니들에게 힘입은 바 실로 크다.그러나,법을 어기는 모성애,이기심가득한 모성애는 기릴 바가 못된다. 남의 아들 다 가는 군대를 제 아들만 가게 하지 않으려고 저지르는 불법행위는 이기적인 행위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 위화감을 주는 행위며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다.1,000만원이나 5,000만원을 뇌물로 쓰고 아들의 병역 의무를 면제받게 하는 어머니가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어머니는 못난 어머니인가. 군 복무하는 병사들 가운데 일부라도 “나는 힘 없고 돈 없어서 입대했다”고 생각한다면,군의 사기는 떨어지고 전력은 약해진다.이기적인 모성애의 발휘가 이렇게 결과적으로 이적행위에까지 이르게 된다. 뇌물을 건넨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아이도 남편도 모르게 한 일”이라고말한다.아마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그러나,모든 아들과 남편이 모르고만 있었을까.수천만원의 돈을 남편 몰래 쓸 수 있는 집안의 재력은 많은 사람이부러워할 만하다.심신이 멀쩡한데도 징병검사에서 자신이 떨어진 것을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아들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사후에 알려지더라도 가족의암묵적인 동의는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실천되었을 수 있다. 가족의 암묵적인 동의를 기대할 수 있는 바탕은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무관하지 않을 것이다.군대 빠지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이 사회 분위기로서확고하게 자리잡혀 있다면,어느 모성애가 자식 앞길 막는 일에 나설 것인가. 그런 분위기가 자리잡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군대 빠지면 예비군도 빠지는 등,손해는커녕 이득이 많은 불합리를 바로잡아야 한다.물론,군대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 선량한 젊은이가 억울하게 되지는 않도록 할 일이다. 아들들은 입대할 때 어머니 눈에 글썽이는 눈물을 본다.어머니 마음은 다같다.병영내 가학행위를 근절하고 안전 사고 예방에 힘써 생때같은 젊은이가 뜻밖의 변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지난날의 군내 의문사 사건을 당국은 약속대로 분명하게 규명하고 그런 일이 앞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이러면,어머니들의 근심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네 검이 짧으면 그만큼 앞으로 나서라”이런 강한 어머니들이 스파르타를 강국으로 만들었다.스파르타 같은 군사국가 시절도 아니고 스파르타 어머니들처럼 굳센 마음까지 필요한 것도 아니다.다만,어머니들이 아들 걱정을 너무 하지 않도록은 해 주어야 한다. 이번에는 돈으로 해결한 경우만 적발했다지만,힘으로 해결한 경우마저 철저히 적발해서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지난해 드러난 사건의 관련자에 대한처벌이 너무 가벼웠다는 여론이 있었다.돈을 받은 이와 준 이는 예외 없이따끔하게 벌을 주고,불법적인 면제 혜택을 받은 젊은이는 사회 생활 내내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공소 시효를 늘려 불법 면탈이 10년 뒤에 밝혀지더라도 즉각 입영시키든가 중벌해야 한다.그들이 끼치는 해악은 참으로 크다.
  • [대한광장] 민중의 소리도 들어야 한다 / 도진순 창원대 교수

    이규보의 ‘동명왕편’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당시 고려에서는 배운 것 없는 비천한 남녀들까지도 고구려의 ‘동명설화’를 즐겨 이야기하곤 했다.그러나 많이 배운 이규보는 그 얘기를 듣고“공자님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씀하시지 않았는데,동명설화는 참으로 황당무계하다”며 간단히 무시해버렸다.그런데 그 뒤 이규보는 ‘구삼국사기’의 동명왕 본기를 여러 번 읽고 난 뒤“이는 황당한 것(幻)이 아니요 성스러운 것(聖)”이라 찬탄하게 된다. 동명설화에 대한 이규보의 이러한 변절(?)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고 무슨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규보의 원래 이름은 인저(仁^^)였다.그런데 그가 과거(科擧)시험을 보려고 할 때 ‘규성(奎星)’이라는 별의 신이 노인으로 나타나‘네가 장원을 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이후 그는 ‘별로부터 보고받은 사람’,즉 규보(奎報)로 이름을 바꿔 쓴다.과거시험에 대한 집착과 함께 하늘로부터 점지받았다는 대단한 자부를 느낄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이규보는 무신정권기라는 불우한 시절을 만나 과거급제 이후에도 9년 동안이나 실업자생활을 하게 된다.이때 그는 이규보라는 이름 대신 백운거사(白雲居士)를 자처하며 방랑과 방황을 하면서 민중세계와 접하게 된다. 그가 ‘동명왕편’을 쓰게 된 시기는 실업자생활을 시작한지 3∼4년 정도 되던 때였다. 과거공부를 하던 이규보가 접했던 책은 ‘사기’ ‘한서’ ‘후한서’ 등주로 중국 책들이었다.여기에는 중화세계는 있었지만 고려의 현실은 없었다. 반면에 실업자 백운거사가 접한 것은 중국 사서보다 세련되지 못한 신화·설화였지만 그 속에는 나라와 민중의 역사가 숨쉬고 있었다.그리하여 그는 이러한 신화·설화적인 형태를 역사의 장으로 끌어 올리는 데는 시가 적격이라 하여 ‘동명왕편’을 지었던 것이다. 임진왜란을 겪고 난 후 조선에서 당쟁이 더욱 심화된 것은 아마도 명(明)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국가의 안보가 명에 의해 보장된다는 사대의그릇된 믿음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돼 청나라로부터 문물을 배우자고 한 북학파의 박지원에게도 남아 있었다. 박지원이 연행길에 올랐던 1780년은 청의 최전성기인 건륭(乾隆) 45년으로명나라의 숭정(崇禎)황제가 죽은 지 136년이나 지난 뒤였다.그럼에도 그는‘건륭 45년’을 굳이 피하고‘숭정 153년’이라는 명의 연호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청나라에서 명나라의 연호를 사용할 수 없음으로 그는 부득이 ‘숭정 기원(崇禎 紀元)’을 생략한 채 ‘후삼경자(後三庚子·숭정 기원의 해는 경자년으로 세 번째 맞는 경자년이라는 뜻)’라는 연호를 궁여지책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민중들은 비록 세련되지는 못한 설화의 형태였지만 임진란 당시 이미 명나라에 대한 자주적 시각을 표출하고 있었다.그들은 명나라 군대가 구국에 도움준 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지만,대국 군대가 이국에서 행한 방자한 토색을 직접 맛보아야 했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당시 민중의 설화는 이미 이여송과 명군의 횡포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민중의 이야기는 공식적인 역사로 쓰여지진 않았지만 식자들보다 앞서는 현장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사대가 공식적으로 폐기되는 근대 이후정당한 것으로 역사에 등록되었다. 오늘날 세계화시대를 맞이하여 세상의 원리를 꿰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많다.그런 사람일수록 현장의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정리해고와 노동·실업의 현장,한·일어업협정과 어민들의 현장,농협과 농민의 현장 등등.비록 문법에는 맞지 않는 신화적·설화적인 수준일지라도 민중이야기는 늘 진실의 보고이다. ‘세계화’를 모르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세계어로 말하는 식자층일 수 있다.구체적 귀결인 현장의 소리를 외면함으로써./한국사
  • 동양화가 임효 개인전

    “서양사람들은 수묵화를 에스키스(esquisse,초벌그림) 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수묵 특유의 미학과 멋을 모르기 때문이죠.수묵이 지닌 조형적장점을 개발한다면 그것은 세계적인 재료가 될 수 있어요” 30일부터 새달9일까지 서울 선화랑에서 제13회 선미술상 수상 기념전을 여는 동양화가 임효.그는 요즘 ‘수묵의 창조적 사용’이란 화두와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다. 수묵에 기대지 않고는 한국적 미감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소신.하지만 지필묵을 사용하는 전통적 방식의 수묵화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믿음 또한 갖고 있다.그래서 그가 고안해낸 방식이 바로 종이죽 작업이다.콩을 쪄서 메주를 만든 뒤 발효시켜 장을 만들 듯 그는 종이죽을 쑤어 형태를 만들고 먹을 우려내 작품을 완성한다.“닥종이로 바탕을 만든 다음 그 위에 먹을 칠하고 먹이 마르기 전에 닥원료인 종이죽을 얹어 먹이 배어나오도록 하는 방식입니다.단순히 칠을 해 그린 그림과 이처럼 먹을 우려내는 과정을 반복해 만든 그림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죠.한결 깊고 그윽한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저는 그것을 우리의 ‘장맛 수묵’이라고 부릅니다” 한국의 선구적 미술사가인 우현 고유섭은 한국미의 특징을 ‘구수한 큰맛’,‘무계획의 계획’ 혹은 ‘무기교의 기교’라고 했다.또 한국미의 본질을‘자연에의 순응심리’에서 찾았다.그런 점에서 볼 때 임효의 이러한 독특한 그림작업이야말로 한국미의 근원적인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수묵미학의 새로운 가능성에 눈뜨기까지는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지난 86년 두번째 개인전까지만 해도 그의 작업은 전통적인 필묵법에 의한산수화 세계에 기초한 것이었다.그러나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조형적 열망은 그로 하여금 다양한 실험작업을 벌이게 했다.93년부터 몇년동안 그는 도자기로 도판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돋을새김을 하는 이른바 도부조(陶浮彫)작업에 매달렸다.아크릴,석채,모래 등 온갖 재료도 섭렵했다. “지난 몇년 동안 다양한 서양의 재료들을 사용해 보았습니다.그것들은 그림을 그리기에 편리하다는 점에서 퍽 합리적이죠.그러나 서양 재료의 경우물과 물감,혹은 기름과 안료가 분리되지 않습니다.서양의 안료로는 수묵처럼 우려낼 수 없어요.‘우림 효과’는 수묵으로만 가능합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이제는 새로운 수묵화의 진경에 빠져 있는 올해 45세의 화가.그는 자신을 ‘돌아온 탕자’에 비유한다.대학(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서양화의 세계를 기웃거렸던 일,3년간의 금란여고 미술교사 생활 등은 모두 외도 아닌 외도였던 셈이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투박한 종이의 육질 위에 수묵담채의 자유로운 화면을펼쳐나갈 작정이다.우리 고유의 정서와 미감을 순수한 우리 재료를 활용해담아내는 임효의 작업은 그대로 한국미의 원형을 찾는 작업이다.우리 전통을 살린 가장 한국적인 그림으로 두꺼운 전통의 유럽시장에 진출해보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 대한광장-도둑과 야당·언론 그리고 거짓말

    도둑도 큰 도둑일수록,사기를 쳐도 크게 칠수록,허풍도 상상을 초월한 뻥튀기일수록 대접받는 세상인 것 같다.세인의 눈을 끌 수 있고,따라서 굵직한사건에 목말라하는 언론에 의해 일일뉴스의 인물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야당의 변호사와 국회의원 나리들이 줄줄이 방문하여 대변인 노릇까지 해주지 않는가.이런 인물들일수록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거나 최소한의 형벌로 그쳤던 역사를 우리는 적지 않게 보아왔다.그래서 김강룡 같은파렴치한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사실 도둑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야당과 언론이다.앞뒤 가리지 않고 정치공세의 호기로 여기거나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경박함으로 인하여 파렴치한 범법자를 며칠동안 영웅으로 만들었으며,애매한 사람을 오히려 범법자로 취급했다. 우리는 언론을 ‘냄비’라 부른다.쉽게 끓고 쉽게 식어버리기 때문이다.지난 15일부터 달아오르기 시작한 이 ‘냄비’는 다음날부터 펄펄 끓기 시작했고 20일부터는 급격히 냉각되기 시작했다.언제 그렇게 끓었던 적이 있었느냐는 듯이 망각의 늪으로 내던져버리고 이내 차분해졌다.도둑의 거짓말이 들통나는 상황의 반전이 찬물을 끼얹은 격인데 이 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해명도 없다.우리는 이것을 냄비근성이라고 부른다. ‘은폐의혹’,‘미스터리’,‘들뜬 야 낭패 여’,‘야 쾌재 여 곤혹’….이런 식으로 편파적인 용어를 남발하면 여론의 향배는 뻔하다.야당과 언론은도둑의 말을 거의 그대로 믿고 기정사실화했다. 이런 믿음은 어디서 온것일까? 어차피 권력의 치부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마음껏 부풀려 정치공세를 펼치고 장사나 잘 하자는 속셈은 아닐까?국민은 안중에도 없다.검찰은 반드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주기 바란다. 어떤 한 신문은 ‘집 털린 김 농림 국회출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위공직자 절도사건 피해자의 한 사람인 김성훈 농림부장관이 16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 출석했다”고 보도했다. 다른 신문은 총천연색 그림까지 그려가며 용인서장 집에서부터 김성훈 장관 집을 거쳐 도둑이 검거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었다.이 신문은 무용담이곁들인 도둑의 범행수법을 소상히 소개해주었다.고관들은 이 기사를 꼭 보아야 할 것 같다. 히로뽕 중독자 김강룡의 거짓말은 들통이 나고 있다.형량을 흥정하는 도둑의 거짓말과 마약중독자의 횡설수설에 놀아난 꼴이다.야당은 국회에서 진실을 밝히라고 공세를 계속하고 언론은 발뺌을 한다. ‘고관집 도둑’ 사건을 아주 적극적으로 보도했던 한 신문의 기자는,도둑의 말을 쉽게 믿은 여론의 치우침을 탓했다.언론의 잘못이 아니라 시민들의고정관념이 잘못이라는 것이다.책임회피가 아닐 수 없다. 도둑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야당과 언론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단순히 도덕적인 책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야당이 민원을 접수하여 조사하는 것 자체는 당연히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공개하여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법적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한나라당은 지금까지 민원인의 호소를 모두 진실로 믿고 공개해왔는가? 언론도 마찬가지다.수사당국의 공식적인 발표가 아닌,야당의 입을 빌린 피의자의 진술을 기정사실화하여,그것도 과장하여 보도한 부분은 법적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법적인 책임을 따지기 전에 언론은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잘못을 시인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사과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金東敏 한일장신대 교수·언론학]
  • 부대끼는 삶의 모습 섬세하게 형상화…구본주 조각전

    “내게 조각은 자연스런 생활의 연속일 뿐입니다.삶의 본능 또는 존재이유 같은 것이죠.나무를 깎고 쇠를 두드릴 때 가장 큰 자유를 느낍니다” 한국 조각계의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구본주(32).특유의 뚝심과 장인 기질로 주목받는 그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원서갤러리와 갤러리 사비나에는 ‘기(氣)’가 넘쳐난다.하지만 그가 내놓은 작품들을 보면 이 시대 ‘존재의 위기’에 부대끼는 가장(家長),샐러리맨,노숙자 등을 형상화한 것들이 대부분이다.그런 그의 조각품에서 참된 기운이 솟구치는 것은 왜일까.“IMF 탓이겠지만 모두들 어렵다고만 합니다.그럴수록 희망의 실마리를 찾는 일이 중요하죠.현실의 절벽을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구원을 얻자는 것입니다.전시의 주제를 가족으로 잡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입니다” 터프 가이형의 외모와는 달리 구본주는 무척이나 섬세한 스타일리스트로 통한다.‘나무와 철,동(銅)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조각가’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다양한 재료구사와 공간을 장악하면서 뻗어나가는 구성도 눈길을 줄만하다.이번 작업에서 그는 주조방식보다는 ‘방짜기법’등 잔손이 많이 가는 쪽을 택했다.꽹과리나 놋그릇을 만들 때처럼 주물을 뜨지 않고 두드려 만드는 조형법이 바로 방짜기법이다.“내 작품은 90% 이상이 복제할 수 없는것들입니다.‘원작주의’ 혹은 ‘진품주의’라고나 할까요.조각의 정체성과진정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2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크기가 3∼8m에 이르는 대작에서 30∼40㎝정도의 소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색의 작품 23점이 나와 있다.천정높이나 관람동선 등 전시공간의 구조적 특성을 한껏 살린 것도 이 전시의 특징.특히 원서갤러리는 전시 공간을 현관과 거실 등 우리의 주거환경과 비슷하게배치해 일상의 현실을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한다. 구본주가 조각가로서 평생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은 어떻게 참된 리얼리즘의조각을 보여주느냐 하는 것.“지금까지 리얼리즘 논의는 참으로 무성했습니다.그러나 그동안의 경직된 논의구조 속에서 생산된작품은 천편일률적인 경향을 보였어요.당면한 현실을 열린 사고로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그것이바로 리얼리즘이 아닐까요” 구본주는 80년대적 진보성을 경험한 이른바 ‘386세대’다.그런 만큼 자신과 또래들의 청신한 감각이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갈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92년부터 경기도 포천에 축사를 개조해 만든 작업장에서 조각작품과 씨름해 오고 있다.
  • 金대통령 119구조대원 200명 초청격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4일 119 구조·구급대원 200명을 청와대로 초청,점심을 냈다.생선 등 전채요리와 우거지국이었다. 우리 사회의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한 초청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김대통령은 처음부터 흐뭇한 표정으로 “여러분들의 활약상을 보면 국민들이 세금을 아무리내도 아깝지않다는 생각일 것”이라고 치하했다.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친근하고 믿음직한 이웃”이라는 극찬도 아끼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도 “미안하다”고 말했다.헌신적으로 일하는데,정부의 지원이 적어 안타깝다는 이유에서다.그래서 “장비개선 등 가능한 모든 지원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끝으로 지식과 기술을 연마해 국민의 사랑을 더욱 받을 수 있는 ‘21세기 신지식 소방관’이 되어달라고 당부했다.어린이들 앞에서 시범을보이면서 안전교육을 시키는 것,그것도 ‘신지식 소방관’이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양승현기자
  • 金대통령, 해병대 50돌 축하메시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 10일 해병대사령부에서 열린 해병대 창설 50주년 기념식에 축하메시지를 보내 “국민의 사랑과 존경 속에서 성장해야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부여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믿음직한 해병이 돼달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우리 해병이 한국전쟁과 월남전,그리고 대간첩작전을 통해 쌓아올린 혁혁한 전공은 국민의 방패다운 자랑스러운 것”이라며 “그 고귀한희생에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양승현기자
  • 韓·日 섬유작가 송번수·후쿠모토 염직전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섬유작가 2인의 합동전이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한국의 태피스트리 작가 송번수교수(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장)와일본의 염색작가 후쿠모토 시게키(福本繁樹)가 30일까지 마련하는 ‘바다를건너:송번수·후쿠모토 시게키 염직(染織)2인전’.특히 이번 전시는 두 나라 현대 섬유미술의 예술성과 조형적 특징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자리란 점에서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송씨가 판화작품을 제외하고 태피스트리작품 만으로 개인전을 열기는 85년과 94년에 이어 세번째.그의 태피스트리 작업은 단순한 장식적 기법을 보여주기보다는 자신의 조형적 사색을 펼쳐보이는데 역점을 둬 왔다.그 작업은가시와 꽃잎을 모티프로 한 자연주의적 성향의 작품을 선보인 88년 이전과반(反)자연적인 경향이 강한 90년대로 나눠볼 수 있다.이번 작품전을 통해송씨는 80년대 ‘가시의 시대’로 돌아갔다.그는 가시의 자연상태를 별다른꾸밈없이 묘사한다.‘분노의 자아’‘경험적인 진실’‘믿음과 운명의 고통스러운 만남’‘내 인생에서 가져보지 못한 순수성’등 이번에 소개된 작품들은 모두 차갑고 앙상한 가시의 속성을 다룬 것들이다.이를 위해 그는 섬세한 그림자 표현기법을 활용했고 아크릴사(絲) 대신 모사(毛絲)를 썼다.모사는 자체 광택이 거의 없고 조명에도 둔감한 만큼 가시의 그림자를 극대화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씨실과 날실이 엮어내는 추상언어의 세계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고하는 것일까.미술평론가 김복영교수(홍익대)는 “그가 최근 태피스트리작업을 통해 소화해내고 있는 가시는 부조리한 세기말의 현실과 진부한 것들을전복시키고 해체함으로써 그것들을 허구로 대치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고풀이한다.가시의 존재론적 상황을 통해 현실을 이야기하려는 일종의 허구적담론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염색한 실로 무늬를 짜는 기법을 ‘사키조메’,백색천 위에 직접 무늬를 염색하는 기법을 ‘아토조메’라고 부른다.후쿠모토는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다.하지만 염색,특히 납염(蠟染)에 관한한 타협을 할 줄 모른다. 그것은 일본 염색계에서 염료와 안료의 구별이 애매한 것에 대한 작가의 불만과 무관하지 않다.한 예로 오키나와에서 나는 염색천인 ‘빙가타(紅型)’의 색채는 바탕색을 빼고는 전부 안료다.비단 등에 꽃이나 새 등을 화려하게 염색하는 ‘유젠조메’에도 부분적으로 안료가 쓰인다.많은 염색작가들이실제로 안료를 사용함으로써 표현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후쿠모토의 염색작품 역시 호분(胡粉)을 칠해 흰색을 냈다든가 스크린 프린트 기법이라는 등의 오해를 받는다.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후쿠모토는 독자적인 예술표현을 위해 전통 기법을 해체하고 새로운 기법을 추구한다. 납염(蠟染)에 형지(型紙)를 사용,‘형염(型染)은 호염(糊染)’이라는 선입관을 깨뜨린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일본 오사카(5월28일∼ 6월 9일)와 교토(6월 23∼27일)에서도 순회,전시된다.
  • 金令培 총재대행 지명자

    국민회의 金令培총재권한대행지명자는 金大中대통령이 어려울 때마다 옆에서 보좌한 ‘DJ맨’으로 신중한 업무처리와 대인관계가 부드럽다는 평가.짙은 눈썹,눈빛에서 풍겨나오는 강인한 인상 때문에 붙여진 ‘사무라이’라는별명처럼 ‘소신’있고,‘의리’를 중시한다.여기에 빠른 판단력과 추진력을 겸비,金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 당내에서 손꼽히는 개혁론자이며 합당론자다.당 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을맡아 정치개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통합하는 것이 국민의 정부 개혁작업을 완성하는 길이라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을 갖고 있다. 총재대행내정 일성으로 “개혁과 국민회의·자민련의 합당은 필요하다.그리고 해내고 말 것이다”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소신이 밑바탕이 되고 있다. 金대행지명자는 87년 신민당 내분사태때 당기위원장을 자청,대통령직선제이던 당론에 반해 내각제를 주창하던 李哲承씨를 제명하는 뚝심을 보였다.金대통령은 15대 국회 전반기 부의장을 맡겨 신임을 확인했다.67세로 충남 논산출신이다.영등포공고를 나와63년 영등포지구당 간부로 정계에 입문했다.10대부터 서울에서만 5선을 기록하고 있다.부인 朴昌禮씨와 사이에 1남1녀.
  • 金대통령 부활절 메시지“갈라진 이웃과 화해를”

    金大中대통령은 4일 오후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부활절 연합예배’에 즈음해 “예수님의 부활보다 더 큰 위로와 희망을 주는 것은 없다”며 “부활의 믿음이 오늘의 한국교회와 크리스천에게 사랑과 화합의 실천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金대통령은 또 “사랑과 화합의 실천은 먼 곳에 있지 않다”면서 “내 이웃과 동료,특히 실직의 고통을 당한 형제자매를 돕고,오로지 지역 때문에 갈라진 내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 화해하는 것이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방법”이라고 강조했다.
  • [부활절 특집]“예수의 부활생명 나눠 민족위기 극복”

    4일은 부활절이다.부활절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을 축하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가 가장 중히 여기는 축일이다.부활절을 맞아 국제대학생선교회(C.C.C) 원로 디렉터인 김준곤(金俊坤·75)목사로 부터 부활절의 의미와 부활절을 맞는자세 등을 들어보았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인데 요즘 일반인에게는 물론 일부기독교인조차도 이를 관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없지 않은 것같습니다.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공적이면서도 증인과 증거를 내세울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믿는 자들은 결코 그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4가지 진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4가지 증명이란? 먼저 진리가 거짓에 승리한 것을 증명합니다.그리고 선이 악에 승리한 것을 입증하고 있고,사랑이 증오를 극복하고 승리한 것을 입증합니다.마지막으로 생명이 죽음에 승리한 것을증거하고 있습니다.때문에 부활을 단순히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특히 IMF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이 부활생명이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역사할 때 우리 민족이 처한 총체적위기는 극복될 것입니다. ▒부활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부활은 더 이상 기독교인들에게만 의미있는 일이 아닙니다.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께서 다시 부활하신 것은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뜻이었습니다.사랑과 화해,희생,봉사,나눔,섬김의 메시지이지요.그리고 절망에서 소망을 볼수 있도록 해줬습니다.오늘날 세계가 봉착한 인종문제나 종교갈등,도덕적 타락은 물론 우리의 남북문제나 지역감정,노사,빈부,세대간,계층간 갈등문제 등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문제들은 이같은 예수님의 부활의 메시지속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가난하고 고통받는,소외된 자들이 부활의 축복을 받을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굶주리는 북녘동포들을 도와주고 우리사회에 만연된 문제를 풀기 위해 특히 믿는 자들이 불씨가 돼 이웃과 고통을 나누는 운동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또 살벌한 사회분위기를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분위기로 바꿔가야 할 것입니다.이를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자기 자신과의 관계,타인과의 관계,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그렇게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처한 신앙문제나 도덕적 타락,자연환경의 파괴문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아서 특별히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는 현재 남북통일의 강가,21세기의 강가에 서 있습니다.우리는 새로운천년을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맞이해서는 안됩니다.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믿는 자들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십자가의 신앙과 부활의 능력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21세기를후손들에게 존경받는 유산으로 남겨주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죠.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의 부활 메시지를 사랑과 화해와 도덕의 부활로 맞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김목사는 올해 초 3일동안 여의도에서 금식기도회를 개최,여기서 모아진 1억원의 헌금을 결식아동돕기에 쓰는 등 몸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사우스웨스턴 침례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80년 복음화성회 대회장,84년 세계교회기도성회 준비위원장을 맡은 바 있으며 현재 기독교21세기운동 한국대표,한국대학생선교회 총재를 맡고 있다.저서로 ‘예수칼럼’ ‘영원한 생명언어’ ‘김준곤 문설집’(전6권)등이 있다. 朴燦 - 부활절 교리와 풍습 ‘부활’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지 3일째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며 그리스도가 이렇게 죽음을 정복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죄와 죽음·악마’를 물리친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활절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그리스도교회의주요축일이다.영어이름 ‘Easter’의 기원은 정확히 알수 없으나 8세기 앵글로색슨족의 사제인 비드는 앵글로색슨족이 숭배하는 봄의 여신 ‘에오스터(Eostre)’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했다. 매년 날짜가 바뀌는 절기가 실린 교회력 전체가 부활절 날짜에 따르고 있어 한 해 예배를 위한 전례력도 부활절을 중심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부활절은그리스도교에서 1년중 가장 중심이 되는 절기이다. ▒부활절의 날짜 서방 그리스도인들은 춘분(3월21일경) 무렵이나 춘분 다음만월(滿月 부활절 달)이 지난 후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그러나 만월이 일요일인 경우 다음 일요일이 부활절이 된다.따라서 부활절은 대개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가 된다. 부활절 날짜를 산출하는 방법은 8세기까지 기독교 여러 분파에서 많은 논쟁을 거친 끝에 결정됐다.그러나 동방정교회에서는 다른 계산법을 따라 서방교회와 일치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1주나 4주,5주 후에 해당된다. ▒종교의식 부활절 전야예배는 2세기경 기독교 예배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할무렵 주일성찬에 앞서 성서를 읽고 ‘시편’을 노래하는 주말 전야예배에서비롯됐다.예배순서는 ‘새로운 불의 강복’ ‘부활절 촛불점화’ ‘성구봉독’ ‘세례반 강복’ ‘세례’ ‘부활절 미사’ 등으로 이루어진다. 새벽예배는 주로 개신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부활절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부활의 영광’을 보여준다는 믿음에서 시작됐다.미국 펜실베이니아베들레헴에서 시작된 새벽예배는 이제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 초교파적으로열리는데 TV와 라디오로 중계될 정도로 관심이 높다. ▒부활절의 관습 유럽인들의 고대의식과 상징 표현에서 전래된 것이 많지만그중에서도 새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계란나누기’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관습이다.‘계란나누기’는 십자군전쟁에서 유래했다.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부대로 출정한 남편을 가진 한 여인이 고향을 떠나 방황하던중 자신을 정착하게 해준 마을 이웃들의 따뜻한 정에 대한 감사표시로 계란을 삶아 줬는데 바로 그 날이 부활절 날이었다.그녀는 그 계란으로 전쟁에서 돌아와 자신을 찾아 헤매던 남편을 만나게 됐는데이후 매년 부활절이면 부부는 계란에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를 써서 사람들에게 선물했고이것이 부활절에 계란을 나누는 유래가 됐다고 한다. 朴燦- 부활절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1885년 부활절 아침,외국선교사들이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한국 개신교회는 일제하에서도 교파별,지역별 연합예배를 갖고 ‘민족의 부활’을위해 기도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부활절 연합예배는 1947년 조선기독교연합회가 서울남산에서 1만5,000명의 기독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것이 처음이다. 한국전쟁 중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고통받는 민중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역할을 했으나 4.19 혁명을 거치면서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1962년부터 10년동안은 정치적 상황과 연합예배에 대한 개신교내 교파간 입장 차이로 분열된 가운데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기도 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가맹교단과 비가맹교단이 각각 남산과 덕수궁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렸던 것. 70년대 유신체체하에서도 분열과 갈등을 겪었다.그러나 75년부터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보수와 진보교단이 연합하여 예배를 갖다 96년부터는 장충체육관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고 있다. 한편 지난 90년부터는 남북교회간에도 부활절 축하 메시지를 나누어 오고 있다. 朴燦- 개신교 오늘 138개지역 연합예배 4일은 기독교 최대의 경축일인 부활절이다.이날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난 날.20세기의마지막 부활절을 맞아 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등 기독교계 교단은 부활절 연합예배,예수부활 대축일 미사 등을 통해 부활의 기쁨과 함께 그리스도의 부활에 담긴 참뜻을 새겼다. 개신교는 오전 5시30분 서울 장충체육관을 비롯한 전국 138개 지역에서 예년과 같이 연합예배를 올렸다.부활절 연합예배는 수많은 교파와 교단으로 나뉘어 있는 개신교계가 이를 초월해 함께 하는 유일한 행사.올해는 예장통합과 합동,감리교 등을 비롯한 30여개 주요 교단들이 참여했다. 장충체육관에서는 이날 0시부터 철야기도회에 이어 오전 4시30분 목회자와신학생들을 중심으로 신앙간증과 찬양,기도회로 시작,5시30분부터 1만여명의 신자들이 함께 한 가운데연합예배가 거행됐다. 길자연(예장합동 총회장·왕성교회 당회장)부활절 연합예배 대회장의 사회로 시작된 연합예배는 강만원 기장 총회장의 기도와 김삼환 명성교회 담임목사의 설교,이경운 예장대신 총회장,김재룡 예성 총회장의 축도 순으로 이어졌다. 연합예배위원회는 이에 앞서 지난 3월27일부터 일주일동안 ‘남산 걷기대회’‘찬양 대축제’‘민족화합을 위한 한국교회 지도자 회개기도회’‘십자가 대행진’등 갖가지 축하행사를 펼쳐 부활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가톨릭도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각 교구별로 4일 정오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예수부활 대축일 미사’를 올린다.가톨릭은 부활절 일주일전부터 시작되는 성주간(Holy Week)의 전례에 따라 성(聖)목요일 성유축성 미사,성금요일주님 수난예식에 이어 토요일 오후 8시부터 9시30분까지 성토요일 부활 성야미사를 드렸다. 성공회도 4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의 대한성공회 대성당을 비롯한 전국의 150개 성당에서 ‘부활 대미사’를 올린다.성공회는 고난주간(성주간)동안 매일 예식을 올렸다.월화 수요일은 미사와 함께 기도,신앙강화에 힘쓰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성금요일에는 수난예식,토요일 오후 7시 중심예식인 부활밤 예절을 드렸다. 한편 기독교 신자들은 사순절에서 부활절까지 40여일동안 매일 정해진 시간 성경을 읽으며 자기근신의 시간,기도,묵상의 시간을 가졌다.기간중 특별금식과 단식을 하면서 이를 통해 모아진 헌금은 불우이웃을 위해 쓴다.성공회도 사순절 기간동안 금식을 권장하면서 신자들에게 미리 주어진 극기헌금함에 모인 동전등 헌금을 불우이웃과 북한동포돕기에 쓸 계획인데 지난해는 동전으로만 4,000여만원을 모았다고 밝혔다. 朴燦
  • 특별 인터뷰-대신그룹 梁在奉회장

    ‘한국 증권업계의 산 역사’‘금융업계의 전설적인 인물’-.대신그룹 梁在奉회장(74)에게는 항상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1944년 조선은행(현재한국은행)에 입행한 이래 55년동안 줄곧 금융외길을 걸어온 ‘골수’금융인이자 국내유일의 금융전문 그룹을 일군 자수성가형 창업오너이기 때문이다. 대신그룹은 재벌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에 익숙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깬다.대신그룹의 계열사는 모두 대신증권,대신생명,대신경제연구소 등 9개의탄탄한 금융관련 회사다.梁회장은 ‘금융업계 순위와 매출액에 얽매이지 않는 정도(正道)경영’을 강조한다. “다시 태어나도 금융업에 종사하겠다”는 것이 그의 금융산업에 대한 애착과 신념이다.최근에는 대졸 인턴사원 1,000명 채용계획을 발표,재계를 놀라게 했다.대한매일 鄭鍾錫 경제과학팀장이 1일 서울 여의도 대신그룹 사옥 3층 회장실에서 梁회장을 만났다. ●대규모 인턴사원 채용소식에 재계가 놀라고 있습니다.금융기관으로는 첫시도인 인턴채용 구상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실업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정부가 실업대책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100만개 일자리 만들기운동’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시책입니다.그래서 우리도4월중으로 300명을 뽑은 뒤 단계적으로 모두 1,000여명을 채용해 각 계열사에 내려보낼 예정입니다.1년뒤 하자가 없으면 모두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예정입니다. ●대신그룹의 업종전문화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업구조조정의 모범 사례인 것 같습니다.경영철학을 소개해 주시죠-지난 55년동안 한우물만 팠습니다.다시 태어나도 금융인을 선택할 것입니다. 단 한번도 다른 업종진출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대신그룹의 상호인 ‘큰 대(大) 믿을 신(信)’에는 저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직원들에게 불특정 다수의 재산을 관리하는 금융기관은 고객이 안심하고 돈을 맡길 수 있도록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가가 600선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올해 시황을 어떻게 보십니까-좋은 닭이 양질의 달걀을 낳듯 기업과 기업을 둘러싼 기업환경과 산업구조가 좋아져야 주가의 질도 좋아집니다.일시적인 시황은 그리 중요치 않습니다. 주가와 금리를 제대로 전망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력사인 대신증권은 80년대 업계 1위를 달리다 요즘은 4위까지 밀려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보다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구사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많습니다만-정치에 의해 경제가 좌지우지되는 시대는 마감돼야 합니다.대신그룹은 업계순위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정도를 지켜나갈 것입니다. 올해 1,544억원의 순익을 올린 점이 이를 반증합니다.우수한 인재와 업계최고의 전산시스템이 대신그룹의 미래를 보장합니다. 무엇보다 주력사인 대신증권은 주식약정 점유율에서는 4위이지만 선물옵션시장과 사이버거래 부문에서는 단연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특히 자산채무비율(주식평가손을 반영한 실질재산)이 국내증권사가운데 가장 높아 탄탄한 재무구조를 자랑합니다. ●대신송촌문화재단을 세워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사회적 책임을실천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출생지인 나주시 송촌리에서 송촌(松村)이라는 아호를 따 재단을 세웠습니다.90년 7월쯤 재단을 설립,지난 해까지 1,795명의 학생들에게 12억원을 장학금과 학술지원금으로 지원했습니다.가정이 어려워 수술을 받지 못한 언청이 환자 210명에게 5억원을 지원,수술을 받게한 것도 보람있는 일이었습니다. 梁회장은 요즘도 매일 아침 7시전에 어김없이 출근,업무를 챙긴다.그는 50년이 지난 손때묻은 주판을 아직도 사용하는 근검절약 정신이 몸에 배 있다. 또 핸디 16의 골프광이면서 겨울철에는 주말마다 스키를 즐기는 노익장.지방 순시 때는 젊은 사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탈(脫)권위주의자’이다. 대담 鄭鍾錫 경제과학팀장정리 魯柱碩
  • 창립 40주년 맞아 美에이다市 본사 탐방기

    암웨이는 국제적 기업이다.세계 70개 국가 및 지역에 지사를 두고 있다.500여가지 제품을 생산 또는 판매한다. 제품은 광범위하다.▒비타민 스낵 음료 등 건강제품 ▒정수기 경비시스템등 첨단제품 ▒세탁 세정 주방기구 등 가정용품 ▒향수 목욕용품 구강청결제 로션 등 엄청나다.매출액도 그러하다.97년도 직접판매 매출액만 808억9,600만달러에 이른다.전 세계에 깔린 3,100만명 이상의 판매원이 올린 실적이다. 이 회사가 자랑하는 것이 몇가지 있다.▒연구개발 ▒환경보호 ▒국제후원▒재활용 프로그램 ▒직접 판매 등이 그것이다.환경보호와 관련,암웨이는 UN과 미 정부로부터 공로상 녹색지구상 등을 받았다.국제후원은 다양하다.각국별 특성에 맞게 후원사업을 펼친다.한국에서는 청소년의 집 건립,장애인 교통캠페인,사랑의 음악회,2002월드컵 콘서트,상자 재활용,글짓기대회,한강 살리기운동을 펼쳤다. 그 가운데서도 직접판매는 암웨이가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것이다.디스트리뷰터(배달·판매자 의미)1명이 아래 디스트리뷰터 6명을 확보하고,이들이 또 다른 디스트리뷰터를 확보해가며 판매한다.디스트리뷰터에 갖는 암웨이 본사의 믿음은 확고하다.디스트리뷰터는 단순한 판매원이 아니라 독립된기업가라는 것이다.직업·교육·문화적 배경에 상관없이 부업 또는 전업으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고 강조한다. 올해 창립40주년을 맞는 이 회사의 역사를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창업자인리치 디보스와 제이 앤델은 친구이다.미국 미시간주 에이다라는 소도시에서같은 고교를 졸업한 이들은 비타민을 직접 팔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이것이 암웨이의 전통이며 자랑거리가 되었다.현재는 세계 직판협회까지 있으며,워싱턴 정가를 겨냥한 로비스트들의 활동도 지원한다. 암웨이 초청으로 미국을 다녀왔다.‘암웨이의 고향’에이다에 도착하기에앞서 워싱턴D.C.의사당앞 ‘캐피털 그릴’에서 직판협회 로비스트를 만났다. 신문기자와 에콰도르 대사 경력이 있는 리처드 홀윌은 판매에 대한 한국의법규제가 “참으로 엄격하다”고 말했다.짧은 한마디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있다.실제로도 한국 국회는 관련법을 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에이다 본사의 연구개발을 비롯한 각종시설들은 모두 첨단과학의 힘을 빌렸다.과학의 총 응용이다.피부 잔주름을 분석하기 위해 NASA(미 항공우주국)가 사용하는 달표면 측정기까지 확보하고 있다.상품 및 배달처 분류까지도 컴퓨터가 신속히 처리한다.인터넷 판매전략도 수년전부터 대비해왔다. 덕 디보스 수석부사장은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모든 나라에서 환경친화적인 기업으로서,이익은 환원시키고 나눈다는 암웨이의 신념은 창업 이래 변하지않고 있습니다.” 그는 대화를 나누는동안 일관되게 강조했다.“저희 두집안의 철학은 분명합니다.그것은 이익보다는 명예를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암웨이는 미국내에서도 수많은 기증과 봉사를 하고 있다.미시간주그랜래피즈시 문화회관이나 도서관·호텔 들은 암웨이가 지역에 환원시킨 재산들이다. 창업자인 리치와 제이는 자녀도 똑같이 4남매씩을 뒀는데 2세들도 일선간부로서 사업을 확장시켜나가고 있다.우정이 대를 잇고 있는 것이다.암웨이를방문한 지난 3월16일에는 영상이사회가 있었다.카리브해에서 휴양중이던 두창업자는 중요부분에 대해 본사이사들과 논의를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회의를 빨리 끝내자.우리 둘은 지금부터 맥주를 마셔야한다.” 암웨이는 미국내에서도 하나의 성공사례로 꼽힌다.우정과 명예를 바탕으로편안하게 21세기를 기다리는 그들을 보고,기자는 위축되는 심경을 숨길 수없었다.미국은 항상 그랬다. 로마제국시대 로마를 다녀온 시칠리안처럼-.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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