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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화예금자들 “그래도 달러”

    외화예금자들 “그래도 달러”

    달러 약세가 계속되면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아성이 다소 흔들리는 듯하지만 한국의 외화예금자들은 여전히 달러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 27일 은행권에 따르면 각 은행들은 최근 달러 환율의 하락으로 외화예금 가입자에게 달러화 비중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유로화 등으로 대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갈아 타는’ 고객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특히 체계적인 환 관리를 하고 있는 수출 주력기업이나 대기업 등을 제외하면 개인 예금자들의 이동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은행에서 달러 예금을 주로 담당하는 프라이빗뱅킹(PB) 관계자들은 “유로화나 프랑화 등에 관심을 보이는 고객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달러가 가장 믿음직스럽다는 신념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이 월 2차례 발표하는 거주자외화예금 잔액 추이는 지난 3월 말 154억 7000만달러에서 지난 15일 현재 150억달러로 약간 줄었다. 그러나 이는 정유회사의 원유·LNG수입대금 결제와 일부기업의 외화차입금 상환 등으로 예금인출이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거주자외화예금 중 개인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월 말 31억 4000만달러에서 지난 15일 31억 3000만달러로 큰 변동이 없다. 달러화가 80% 이상을 차지하는 시중은행의 외화예금도 큰 변동이 없다. 외환은행의 외화예금은 지난 3월 말 49억 8700만달러에서 지난 25일 현재 51억 600만달러로 오히려 늘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달러 약세의 장기화로 각 은행들은 달러화 예금 고객들의 갑작스러운 ‘갈아타기 현상’을 우려했지만 아직 그런 조짐은 없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PB상품팀 장정은 차장은 “외화예금 자체가 주식처럼 수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데다 다른 화폐도 늘 ‘환 리스크’를 안고 있기 때문에 개인 고객들로서는 섣불리 달러를 처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美발주사 감동 100억원 보너스

    현대중공업이 주문받은 선박을 노사가 힘을 모아 완벽하게 건조해 외국 발주회사로부터 100억원의 두둑한 보너스를 받아 화제다. 현대중공업은 27일 미국 엑슨모빌사로부터 지난 2002년 12월 약 8억 달러에 주문받아 건조한 FPSO(부유식 원유생산저장설비)를 인도하면서 1000만달러의 사례금을 받았다고 밝혔다. 엑슨모빌사는 길이 285m, 폭 63m, 높이 32m, 총 무게 8만 8000t에 이르는 초대형 설비를 현대중공업에 맡기면서 세 가지 까다로운 주문을 했다. 34개월의 공기를 지키고 완벽한 품질을 보장해야 하며 공사기간중 재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건을 모두 지키면 1000만 달러의 사례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현대중공업은 발주회사가 세워 놓은 10월 앙골라에서의 첫 시추작업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한 결과 공기를 2개월 반 앞당긴 지난 2월 배를 인도했다. 또 공사기간 670만 시간(연인원 작업시간) 동안 단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완벽한 안전작업으로 발주회사를 감동시켰다. 과음한 사원은 음주측정을 해 수치가 높으면 집으로 돌려보낼 정도로 품질에 만전을 기했다. 탁학수 노조위원장이 발주회사측에 보낸 감사 편지도 한 몫을 했다. 탁 위원장은 설비인도를 앞두고 지난 1월 말 엑슨모빌 경영자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 발주사에 믿음을 심어주었다. “현대중공업을 믿고 공사를 맡겨준 데 대해 감사하며 발주처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높은 품질과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어떠한 공사를 주문하더라도 노조가 책임지고 최고 품질과 납기를 지키겠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엑슨모빌 측은 “현대중공업 덕분에 생산활동을 예정보다 2개월 반 앞당길 수 있게 됐다.”며 “많은 이익을 안겨준 현대중공업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약속한 사례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한편 사례금은 계약에 의해 회사수입으로 잡혀 있다. 그러나 사내에서는 사원처우개선 등으로 사용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MLB] ‘코리안 호투’… 뉴요커 넋 잃다

    ‘코리안 빅리거’ 박찬호(32·텍사스 레인저스)와 서재응(28·뉴욕 메츠)이 각각 올시즌 최고의 피칭을 선보이며 야구에 죽고 사는 뉴요커들의 혼을 빼놓았다.24일 열린 미국프로야구경기에서 박찬호는 ‘악의 제국’ 뉴욕 양키스의 안방 양키스타디움에서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위풍당당한 피칭으로 시즌 2승째를 낚아내며 양키팬들의 야유를 잠재웠다. 특히 양키스의 4번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를 3타수 무안타로 꽁꽁 틀어막아 한-일 자존심 대결에서도 완승을 거뒀다. 올시즌 빅리그에 첫 선을 보인 서재응은 ‘돌풍의 팀’ 워싱턴 내셔널스를 홈구장 셰이스타디움으로 불러들여 6이닝을 틀어막아 뉴욕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3이닝 4자책점으로 강판된 워싱턴의 일본인 투수 오카 도모카즈(4자책점)에게도 KO승을 거둔 셈.‘막내’인 최희섭(26·LA 다저스)도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서 3경기 연속안타 행진을 이어갔다. ●박찬호-텍사스 입단 최고 구위 텍사스 레인저스와 뉴욕 양키스의 시즌 2차전이 벌어진 양키스타디움. 알렉스 로드리게스-제이슨 지암비-호르헤 포사다를 2-3 풀카운트 끝에 3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운 박찬호(텍사스)는 오른손을 불끈 쥐었다.2002년 텍사스 입단뒤 최고의 구위를 뽐낸 박찬호가 ‘올스타 군단’ 양키스의 강타선을 상대로 투심패스트볼과 올시즌 최고 구속인 153㎞의 강속구(포심패스트볼)를 곁들여 시즌 2승을 낚아내 누구도 ‘코리안특급’의 부활에 토를 달지 못하게 만들었다. 박찬호는 24일 양키스와의 원정경기에서 7회 2사까지 단 3안타만을 허용하면서 3안타 1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묶었다. 볼넷 5개를 내줬지만 고비마다 6개의 탈삼진을 뽑아내 위기를 넘겼다. 시즌 최다인 122개의 공을 던졌고 66개의 스트라이크를 기록했다. 시즌 2승1패로 방어율도 5.40에서 4.24로 뚝 떨어졌다. 6-1로 앞선 6회말. 투아웃을 손쉽게 잡은 박찬호는 로드리게스와 지암비에게 연속안타를 내줘 1·2루의 위기에 몰렸다. 만루를 허용한다면 퀄리티 스타트는 물론 승리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영원한 사부’ 오렐 허사이져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뛰어올라갔다. 교체도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돌아온 에이스에 대한 벤치의 믿음은 요지부동. 후속 호르헤 포사다 타석에서 포수 샌디 알로마 주니어가 공을 놓쳐 1,3루의 위기까지 몰렸지만 박찬호는 2-3 풀카운트에서 허를 찌르는 132㎞의 낙차 큰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내 이닝을 끝냈다. 경기를 마친 뒤 벅 쇼월터 감독은 “아주 날카로운 피칭이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타선도 초반부터 불방망이를 뿜어 박찬호의 짐을 덜어줬다. 케빈 멘치와 데이비드 델루치, 마크 테세이라의 홈런포를 포함 장단 19안타를 작렬시켜 10-2로 대승을 거뒀다. ●서재응-마이너 퇴출 한 분풀이 코칭스태프와의 불화와 시범경기 부진으로 마이너리그로 쫓겨가 절치부심하던 서재응은 올시즌 빅리그 첫 등판에서 ‘컨트롤 마법사’다운 완벽한 제구로 첫 승을 신고하며 붙박이 선발의 청신호를 켰다. 전날 이시이 가즈히사의 부상으로 메이저리그로 전격 승격한 서재응은 셰이스타디움에서 열린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해 6이닝동안 6안타 무사사구 1실점으로 상대타선을 봉쇄했다. 투구수 79개 가운데 스트라이크가 54개일 만큼 흠 잡을 데 없는 피칭으로 1승무패에 방어율 1.50을 기록했다. 3회까지는 일본인 투수 오카 도모카즈(워싱턴)와 서재응의 팽팽한 투수전. 오카는 4회말 무사만루에서 적시타를 두들겨 맞고 강판됐지만 구석구석을 찌르는 서재응의 제구력은 이닝을 거듭할수록 위력을 발휘했다.1회 호세 비드로에게 내야안타를 허용한 뒤 4회까지 무안타의 퍼펙트 피칭을 했고,6회 2사 1,2루에서 카를로스 바에르가에게 우전 적시타로 실점을 했지만, 후속 브라이언 슈나이더를 삼진으로 솎아냈다. 서재응은 6-0으로 앞선 5회초 무사 2,3루에서는 구원투수 조 호건을 상대로 2타점짜리 적시타를 터뜨려 본인의 첫 승을 자축했다. 이날 경기에선 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투수끼리 임무 교대를 하는 진기한 장면도 연출됐다.6회까지 79개 밖에 던지지 않았지만 10-1로 벌어져 승리가 굳어졌고 나흘 만의 등판임을 감안, 메츠 벤치에선 투수를 구대성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구대성은 1이닝 동안 3실점으로 무너져 무자책점 행진을 마감했다. 시즌 방어율 5.40. 메츠는 10-5로 승리를 거둬 내셔널리그 공동2위(10승8패)에 올랐다. ●최희섭-3게임 연속 안타 ‘빅초이’ 최희섭은 3경기 연속안타를 터트리며 타격감을 조율했다. 쿠어스필드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원정경기에 1루수 겸 2번타자로 선발출장해 3타수 1안타 1볼넷 2득점으로 찬스를 만드는 ‘테이블세터’로서 100% 제 몫을 해낸 것. 시즌 타율도 .211에서 220으로 끌어올렸다. 최희섭은 1회 콜로라도의 선발 숀 차콘에게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지만,0-7로 뒤진 3회초 1사 1루에서 깔끔한 우전안타로 추격의 발판을 만들었고, 밀튼 브래들리의 안타때 득점에 성공했다. 선두타자로 나선 5회에는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한 뒤 리키 라데의 적시타로 또 한번 홈을 밟았다. 다저스는 뒤늦게 맹추격을 펼쳤지만 6-8로 무릎을 꿇었고, 김병현(26·콜로라도 로키스)은 출격하지 않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믿음의 사회 만들자/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서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서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데 있다. 일종의 거부감이 가득한 사회요, 의심하는 관계이다. 생각해 보라. 서로가 신뢰하지 못할 때 생기는 사회적인 손실이 얼마나 큰 것인가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도대체 이러한 불신과 거부감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그것은 과거의 가난과 거절과 상처로 비롯된 결과이다. 우리의 과거는 인정보다는 거절 받는 데 익숙했고 이해보다는 비판을 받아오는 것이 습관이 되어 왔고 자유보다는 속박 속에서 살아왔다. 이러한 결과가 오늘의 현실을 만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정부가 한참 논의하는 ‘과거사 정리’보다 ‘과거사 치유’가 더 급하고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치유가 전제되지 않는 ‘과거사 정리’란 또 하나의 치명적인 상처를 낳게 될 것이다. 어떤 시인이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라고 말했듯이 “지금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할 때입니다.”라고 외쳐야 할 것이다. 우리의 모습을 보라. 서로 주먹을 불끈 쥐고 얼굴을 붉히고 고함을 지르고 있지 않은가? 서로 정죄하고 서로 고발하고 서로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서 어떤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의 운명을 걱정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존경하고 신뢰하고 믿어주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가져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첫째로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믿음에서 믿음이 나온다. 의심이란 토양에서는 믿음이라는 나무는 결코 자라지 않는다. 불신과 의심을 이겨내는 비결은 속더라도 믿어주고 손해 보더라도 또 믿어주는 작은 실천과 노력이 필요하다. 최소한 생각과 방법은 다를지라도 그 사람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 보자. 둘째는 믿음은 언제나 기적을 만든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성경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이다.’라고 했다. 믿음이 있으면 모든 의심과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잠재울 수 있다. 믿음은 찬란한 미래를 만든다. 예수님께서도 “네가 만일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셨고 “네 믿음대로 된다.”고 하셨다. 믿음이란 막연한 기대감이나 운명적인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약속의 성취이다. 믿으면 영광을 본다는 약속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믿음보다는 이성에 더 매력을 느낀다. 이성적인 사람이나 지적인 사람으로 이해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성과 합리성을 뛰어넘는 것이 믿음의 세계라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화를 믿고 창조는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진화는 이성으로 이해되지만 창조는 믿음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육적인 것은 이성으로 이해되지만 영적인 것은 믿음으로만 이해된다. 땅은 이성으로 이해되지만 하늘은 믿음으로 이해된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우리사회를 변화시키는 열쇠는 믿음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셋째로 내 자신부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결단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자. 가족으로부터 시작하여 친구와 동료에게 이르기까지 실천 무대는 얼마든지 있다. 다른 사람이 신실하고 믿음이 있기를 기다리지 말자. 내가 먼저 신실한 마음과 믿음으로 그 사람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손해를 각오하고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하자. 믿어주고 또 믿어주고 또 믿어주자. 이성의 세계를 넘어서서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자. 거기서 당신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 모두가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온순하라.”는 예수님의 경고이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미 뱀처럼 지혜로운 영적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다. 믿음을 가질수록 더욱 더 지혜롭고 총명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이미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종교인들의 겸허한 태도이다. 그들이 잘못된 믿음을 참된 믿음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을 계속 보여 준다면 모든 사람들은 실망하고 돌아서게 될 것이다. 성직자부터 참되고 겸손한 믿음을 보여주어야 하며 교회부터 진실하고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작은 말도 믿고 큰 말도 믿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통령의 말도 믿고 국회의원 말도 믿고, 사장님 말도 믿고 말단직원 말도 믿고, 선생님 말도 믿고 학생 말도 믿고, 아버지 말도 믿고 자녀의 말도 믿는 그런 사회 말이다. 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 [儒林 속 한자이야기] (68)夫婦有別(부부유별)

    夫婦有別(부부유별) 儒林 (318)에는 ‘夫婦有別’(지아비 부/지어미 부/있을 유/나눌 별)이 나오는데,‘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分別(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分別은 調和(조화)를 前提(전제)한 區分(구분)이기 때문에 差別(차별)과는 의미가 다르다. 남편과 아내가 각기 역할에 충실한 가정은 和睦(화목)하다. 반면 남편과 아내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愛情(애정) 전선에도 이상이 온다. 따라서 夫婦有別을 男性(남성) 優位(우위)를 강조하는 前近代的(전근대적) 遺産(유산)으로 보는 것은 短見(단견)에 불과하다. ‘夫’자의 본 뜻은 ‘성인 남자’인데,‘지아비,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 다스리다, 돕다.’의 뜻으로도 쓰였다. ‘婦’자는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婦女子(부녀자)의 모습을 나타낸 會意字(회의자)에 속한다.用例(용례)에는 ‘婦德(부덕:부녀자의 아름다운 덕행),婦人(부인:결혼한 여자),婦人之仁(부인지인:여자가 지니는 좁은 소견의 인정)’ 등이 있다. ‘有’는 ‘고기 덩이를 손으로 잡고 있는 모양’을 뜻한다.‘有口無行(유구무행:입에 발린 말만 있고 실행하는 바가 없음),未曾有(미증유:지금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 등에 쓰인다. ‘別’자는 ‘月’(고기 육의 변형)이 없는 ‘骨’(뼈 골)과 ‘刀’(칼 도)를 합하여 ‘분해하다.’는 뜻을 나타내었고, 다시 ‘다르다, 나누다, 떠나다, 구별하다.’ 등의 뜻이 派生(파생)되었다.用例에는 ‘別故(별고:특별한 사고),別種(별종:다른 종류),判別(판별: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여 구별함)’ 등이 있다. 栗谷(율곡) 李珥(이이)는 學問(학문)이란 일상생활의 實踐(실천)을 통해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孝道(효도)하며, 신하는 忠誠(충성)하고, 부부는 分別(분별)이 있고, 형제는 友愛(우애)하고, 젊은이는 어른을 恭敬(공경)하고, 붕우는 信義(신의)가 있도록 하는 것’, 즉 五倫(오륜)을 體得(체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五倫(오륜)의 첫째는 父子有親(부자유친)으로 ‘아버지와 자식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부자간은 가장 가까우면서 사랑으로 맺어진 인륜의 출발점이다. 시작을 다지기 위해서는 慈愛(자애)와 孝誠(효성)을 돈독히 해야 한다. 둘째,君臣有義(군신유의)는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義’란 자기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인간으로서 행해야 할 道理(도리)를 실천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에는 君臣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君을 國家(국가)로,臣을 國民(국민)으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셋째,夫婦有別(부부유별)은 冒頭(모두)의 설명과 같다. 넷째,長幼有序(장유유서)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序란 순서와 질서를 말한다. 연장자는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젊은이는 연장자를 인생의 先輩(선배)로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다섯째,朋友有信(붕우유신)은 ‘벗과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친구 사이에는 信用(신용)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친구 사이에 신용을 잃으면 그 사람은 설자리가 없다. 신용은 값으로 換算(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財産(재산)이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길섶에서] 야윈 십자가/심재억 문화부 차장

    제가 일하는 사무실 창가에 서면 너른 세종로가 시야를 상하로 가르고, 그 길을 따라 고층빌딩이 즐비합니다. 도시 생활이라는 게 규모에 대해서도 면역력을 키우는지, 어지간한 건물은 시시해 보이고, 좀 크다는 건물도 감동은 아닙니다. 그런 빌딩숲 사이, 덕수궁 바로 옆에 황토색 벽돌로 지은 성공회 교회가 있습니다. 보란 듯 늘어선 빌딩의 위세에서 한 걸음 물러선 이 건물이 매번 제 눈길을 끄는 건 지붕 꼭대기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지나는 길에 그 십자가 꼭 한번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직 그처럼 겸손한 십자가를 만난 기억이 없습니다. 그 십자가는 기독의 늑골처럼 야윈 골격으로 만들어져 있지요. 거기에는 밤마다 발광(發光)하는 네온사인도 없고, 크기로 세를 가늠하는 제국주의성도 없습니다. 참 얌전하고, 조신합니다. 한사코 자신을 내세우는 허장성세의 세상 일에 질려서일까요. 그 십자가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그 곳으로 찾아들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저 곳이라면 낮은 곳에도 사랑을 나눌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 과잉의 세상에서 저는 오늘도 그 작고 야윈 십자가를 보며 위로와 평온을 구합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성령에 귀 기울일 따름” 추기경들 침묵의 맹세

    265대 교황을 뽑는 ‘비밀스러운 여정’이 18일 오후(현지시간) 드디어 시작됐다. 콘클라베에서 언제,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떤 교황이 뽑혔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날 벌써 5000여 순례자와 관광객들이 굴뚝을 바라볼 수 있는 성베드로 광장에 모여들었고 교황이 선출될 것으로 점쳐지는 20일을 전후해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유력한 차기 교황으로 거론되는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이날 오전 성베드로 성당에서 콘클라베에 앞서 마지막으로 개최된 특별미사를 집전하며 가톨릭에 닥친 위협에 대해 경고했다. 보기에 따라선 다소 위험한 발언이다. 라칭거 추기경은 “‘절대 진리는 없다.’는 상대주의의 전횡이 자행되고 있다.”며 “오늘날 근본주의라는 모략을 당하는 교회의 신조에 기초해 명확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신앙에 대한 위험으로 간주한 것은 분파주의,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 자유주의, 무신론, 불가지론과 상대주의였다.AP는 라칭거 추기경이 콘클라베에 들어가기 직전 다른 114명의 추기경과 주교들, 일반 신도들에게 경고성 발언을 날린 배경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미사를 마친 추기경들은 콘클라베 개최 장소인 시스타니 성당으로 이동, 오후 4시30분(한국 시간 오후 11시30분) 침묵의 맹세를 하고 투표권이 없는 원로 추기경으로부터 신성한 의무에 관한 강론을 들었다. 그후 라틴어로 “에스트라 옴네스(모두 나가달라.)”라고 외치는 소리가 울려퍼짐으로써 콘클라베가 시작됐다. 첫날 추기경들이 투표에 곧바로 들어갔는지는 분명치 않다. 추기경들이 다음날로 연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기경들은 전날 숙소로 쓰이는 산타 마르타 호텔에 들어서면서 기도책과 숙소에서 먹을 스낵 외에 CDP와 헤드폰까지 지참한 경우가 있었다고 일간 라 스탐파가 보도했다. 이들 품목은 긴장 해소용으로 반입이 허용됐다. 추기경들은 일절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17일 오전 일요미사를 드렸던 몇몇 추기경은 취재진에 콘클라베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내비쳤다. 플로렌스 대주교인 엔니오 안토넬리 추기경은 “새 교황은 이미 하느님에 의해 선택됐다. 우리는 다만 누구인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브라질 언론은 LA타임스를 인용해 콘클라베에서 힘을 합치는 유럽의 추기경들과 달리 중남미 출신 추기경들은 분열된 양상을 보이며 유럽 추기경들의 편에 서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영화속 수능잡기] 어느날 그녀에게 생긴 일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찾아온다. 촌부나 황제나 죽음 앞에서는 예외가 없다. 금전과 명예와 권력이 죽음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요 착각이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했다. 빈손으로 왔다가 결국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간이다. 권력과 명예란 우리가 잠시 거처하는 임시방편의 장소일 뿐, 오직 죽음만이 우리의 영원한 회귀처일 뿐이다. 죽음이 먼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순진한 착각이다.“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밖이 저승이라.”는 민요의 한 구절이 오히려 죽음에 대한 진실을 우리에게 더 가깝게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며 등교한 아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 돌아온다든지 하는 사연을 주위에서 듣곤 한다. 죽음은 이렇게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그러나 죽음은 나로부터 먼곳에 있다는 착각 속에서 우리는 하루를 살아간다. 우리의 삶은 때로는 죽음으로 해서 더욱 풍부해진다. 내가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우리는 좀더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할지도 모른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어쩌면 내가 살아 있는 이 하루가 내 삶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는 더욱더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눈에는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봄이 그 어떤 낙원보다 아름답게 비칠지도 모른다. 평소에 아옹다옹 지내던 가족들이 누구보다 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비칠지도 모른다. 죽음은 이렇게 삶에 긍정적인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매일매일 죽음에 붙들려 전전긍긍 살아갈 수는 없다.“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속담도 있다. 내세의 행복을 기원하는 믿음에 이끌려 우리에게 한번 주어진 현세에서의 삶을 송두리째 희생시키는 것도 어쩌면 어리석은 행위인지도 모른다. 영화 ‘어느 날 그녀에게 생긴 일’의 주인공은 시애틀 방송국의 잘 나가는 리포터 레이니. 화려한 금발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늘씬한 몸매, 그리고 시애틀의 영웅인 최고의 야구스타 남자친구를 약혼자로 둔 그녀는 길거리의 예언자를 인터뷰하다가 자신이 일주일 안에 죽을 거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레이니는 무심코 흘려듣지만 바로 그날 저녁부터 예언자의 예언이 하나씩 맞아 들어가자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죽음 앞에서 대체 성공이란 무엇인가. 잘 나가는 약혼자와의 결혼이 부(富)를 약속한다 할지라도 정작 그와 나의 영혼이 소통하지 못한다면 대체 부의 의미는 무엇인가. 대화가 통하지 않는 가족은 죽음 앞에서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레이미는 자신의 삶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죽음을 망각한다. 그러나 죽음을 망각한다는 것은 삶의 본질을 망각하는 것과 다름없다. 죽음을 의식하는 삶이란 죽음의 공포에 전전긍긍하는 삶이 아니라, 삶을 보다 충만하고 건강하게 꾸려나가는 삶이리라. 스티븐 헤렉 감독, 안젤리나 졸리·에드워드 번스 주연,2002년작. 김보일 서울배문고 교사 uri444@empal.com
  • [토요일 아침에] 다시 낙산사를 생각하며/원철스님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아! 성지가 저렇게 없어지는 것이구나. 복원능력이 없다면 그대로 폐사지가 되겠구나.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예전에는 없어지는 줄도 모르고 없어졌겠구나. 그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칼바람이 미친 듯이 부는 날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면서 넋두리처럼 내뱉은 말들이다. 공양간에서 ‘밥맛을 모르겠다.’는 노스님의 한마디는 그날 아픔의 또 다른 표현이다. 꽃을 피워야 할 봄바람이 소나무를 쓰러지게 하는 광풍이 되었고 낙가산은 산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는 개골산이 되어버렸다. 십여년 전에 스승을 모시고 도반들과 중국의 보타낙가산 불긍거 관음원을 참배한 적이 있다. 영파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이었다. 그 바닷가는 우리의 낙산사 그리고 홍련암과 너무도 닮아 있어 남의 나라 땅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익숙하게만 느껴졌다. 관음진신이 출현하였다는 글씨가 기록된 그 바위 근처에서 일부러 한참을 서성거리면서 바다 너머로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했다. 동쪽 끝에 있는 우리의 낙산관음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낯선 땅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낯섦을 지금 정말 느끼고 있다. 그건 현재 남아있는 낙산사가 나를 참으로 낯설게 했기 때문이다. 처음의 황망함은 시간이 지나가니 이제 좀 냉정해지고 모든 걸 차분히 돌아보게 된다. 정말 그 낙산사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하지만 사실 달라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도드라지게 드러난 성지로 모습을 바꾸었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오히려 지금 그 화려한 화장을 다 지워버린 맨 얼굴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이제 마음의 눈으로 성지를 바라볼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제 육안(肉眼)으로만 성지를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심안(心眼)으로 바라보고 싶다. 물론 지혜로운 이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하고 심안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성지라고 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성지와 마음으로 보는 성지가 항상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항상 육안으로 보는 것에만 너무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걸 너무 당연히 여긴 나머지 그게 집착인 줄조차 몰랐다. 이제 저 타버린 까만 솔밭 속에서도 심안으로 성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또 다른 나의 눈이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날 인근 산과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집과 논밭과 살림살이와 모든 것들이 타고 있었다.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했을 뿐이다. 이제 그들이 원래대로 몸과 마음과 생활기반이 복구되고 그들의 고통이 끝나면 우리의 고통도 자연스럽게 끝날 것이다. 수행자로서 신심이 바닥을 향해 달리고 또 공부길이 막힐 때면 늘 터만 남은 폐사지를 찾곤 했다. 그 자리에서 무상(無常)을 체험하고 또 발심(發心)의 계기를 통해 다시금 마음을 새롭게 하곤 했다. 그 옛날 저 큰 절터들의 탑과 당간지주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그 황량함 속에서 ‘모든 것은 변해가는 것이니 절대로 방일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곤 했다. 빈 마음은 모든 걸 원점에서, 다시금 순수함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우리는 잘나갈 때에도 항상 어려운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삶의 화려함 속에서도 소박한 본래 모습은 잃지 말아야 한다. 넘쳐나는 물질의 풍부함 속에서도 모자랄 때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삶의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잊고서 살기가 쉽다. 반대로 타버림의 절망 속에서도 미래의 희망들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낙담 속에서도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퇴굴심 속에서도 부단없는 용맹심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이제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성지를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육안으로도 볼 수 있도록 힘을 모아 가꾸어 내는 일만 남았다. 그동안 혹 군살이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과감하게 털어내야 한다. 그리고 성지가 가져야 하는 단순·절제의 미를 한껏 드러내는 그런 기회를 제대로 살려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또 다른 문화적 전환점 위에 서있다고 하겠다. 원철스님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 [여담여담] 봄날은 간다/황수정 문화부 기자

    봄 나무에 성글게 꽃이 오르더니 어느새 천지에 난분분이다. 대기를 팔랑팔랑 휘젓는 꽃가루에 ‘감염’돼서일까. 미망(迷妄)같은 이야기가 물색없이 고개를 들이미는 까닭은. 근 두달째 주말이면 동네의 작은 절에 불교기초교리를 들으러 다닌다. 요가나 명상이 부럽지 않은, 내겐 도심에서 찾아낸 마음수양의 한 방편이다. 한밤에 법문을 듣고 나설 때의 청량함은 말로 다 못한다. 한주일간 지쳐 눅진했던 마음자리가 풀먹여 갓 다려낸 광목처럼 가슬가슬 소리를 낸다. 밤하늘엔 별이 있다는 사실을 정말이지 몇년만에 확인한 것도 한밤중 절마당에서였다. 믿음의 힘이란 그렇게 다 한가지 모양일 터. 그런데 법문을 챙겨들은 이후로 부쩍 자주 생각하는 게 있다.‘인연’이고 ‘시간’이다. 분별없는 아이를 악쓰며 다그칠 일이 생겨도 나도 몰래 꾸욱 눌러참을 때가 많아졌다.‘이 아이는 어떤 인연으로, 얼마나 긴 시간을 건너 내게 왔을까.’ 싶으면 시간의 무거움에 더럭 겁이 난다. 초보 불자의 강박은 시도 때도 없다. 회사 사무실로 퀵서비스 아저씨가 휙 물건을 던져놓고 가도 속으로 ‘이것도 인연?’ 물음표를 찍다 그만 실없이 웃고 말 때도 있다. 어쨌거나 부처님 말씀에 기대자면, 항하(恒河)의 모래만큼 많은 시간을 지나 닿는 인연들이 우리 일상 속에 꽉 찼다. 이 하루만 해도 수십 아니 수백명이 아닐런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인격, 무심히 버려도 좋을 관계란 세상에 없단 얘기다. 이는 신앙의 대상이 다르다고 달라질 진리는 분명 아닐 것이고. 이 봄이 더 짧아졌다고 해서일까. 우리를 밀고 가는 힘은 ‘유한(有限)한 시간’이란 생각이 든다. 기왕에 정해진 시간들을 태깔나게 채우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몸짓이 삶이라면 말이다. 몇달전 크게 공감해 밑줄 쳐두었던 보르헤스의 말을 옮긴다.“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인연의 천을 짜는 ‘나’의 본질이 다름아닌 ‘시간’”이라고 그는 썼다. 본질을 함부로 흘려보내는 일이 얼마나 큰 어리석음일지! 광화문 교보문고 벽면에 봄맞이 대형 걸개글씨가 걸렸다.“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돌아보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황수정 문화부 기자 sjh@seoul.co.kr
  • 여야 사령탑 文·朴 손가락 걸며 “신뢰정치”

    여야 사령탑 文·朴 손가락 걸며 “신뢰정치”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15일 새끼손가락을 걸고 ‘신뢰 정치’를 다짐했다. 문 의장이 신임 인사차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로 찾아간 자리에서였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와 국방위 등에서 함께 활동했던 두 사람은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인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인간적인 정치를 해보자.”고 거듭 다짐했다. 여야 사령탑의 대좌는 사소한 ‘인연’을 언급하며 시작됐다. 문 의장은 “상임위도 같이 했고, 의원회관에서도 (사무실이)앞에 있었고 하니 인연이 많다.”면서 “박 대표는 상당히 합리적인 분이라, 전에 칭찬 릴레이를 할 때도 제가 박 대표를 선택했다.”고 인사를 건넸다. 박 대표는 활짝 웃으며 “정치 경륜도 높고, 실용주의를 여러 번 주창했으니 (정치권의)문제 해결에 기대가 된다.”면서 “전에 상임위를 함께 하면서 문 의장의 인간적인 면을 많이 발견해 기뻤다.”고 화답했다. 회담장 분위기는 한나라당 김무성 사무총장이 “두 분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다.”면서 “조금 더 가까이 앉으시라.”고 권하면서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문 의장은 “더 가까이?”라고 어색해하면서도 박 대표쪽으로 의자를 옮기며 “정 들라고? 전 얼마든지 좋다.”며 웃었다. 이어 “통일·외교·안보·국방·민생 문제는 여야가 따로 없고, 힘을 합쳐야 한다.”면서 “독도·교과서 문제에 (앞장서줘)한나라당에 고마웠고, 앞으로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이번엔 박 대표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박 대표는 “나라를 위해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의견이 맞지 않아서 토론과 논쟁을 벌여야 할 일은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정치가 되는지 힘을 모으자.”며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불쑥 내밀었다. 문 의장도 흔쾌히 손을 걸어 “맞습니다.”,“그렇습니다.”라고 추임새를 곁들였다. 박 대표는 “이거 안 지키면 큰일 난다.”고 너스레도 떨었다. 문 의장은 특히 “해장국 정치를 하려고 현장에 나가 보니 그동안 박 대표가 왜 (민생행보를)했는지 알 수 있다.”며 박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인 ‘민생 행보’를 강조했고, 이밖에도 “어쩌면 그렇게 늘 고우냐.”,“프랑스에 가면 불어로, 스페인에 가면 스페니시로, 영어권 국가에 가면 영어를 하던데 어떻게 외국어도 잘 하느냐.”고 박 대표를 한껏 추켜세웠다. 두 사람은 신뢰를 강조하며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문 의장은 ‘논어’에 나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인용,“믿음이 없으면 나라와 공동체가 있을 수 없고, 신뢰 이상 가는 정치가 없다.”고 말했다. 박 대표도 “의리와 신뢰를 바탕으로 해서 국민을 기쁘게 하는 정치를 펴보자.”고 제안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LPGA 투어 다케후지클래식] ‘땅콩’ 슈퍼샷

    ‘코리아 군단’이 드디어 첫 승을 올릴 기회를 맞았다.15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골프장(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다케후지클래식 1라운드에서 김미현(28·KTF)과 아마추어 박인비(17)가 공동3위에 나서는 등 한국선수들이 무더기로 선두권에 포진했다. 시즌 초반 동반부진에 빠졌던 한국 선수들은 이로써 첫 우승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특히 올들어 3개 대회에 출전해 모두 우승한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승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나비스코챔피언십에서 공동5위에 올라 그나마 체면을 지켰던 ‘슈퍼땅콩’ 김미현의 출발이 좋은 것도 믿음직스럽다. 김미현은 이날 보기 없이 이글 1개와 버디 4개를 골라내는 깔끔한 플레이를 펼쳐 6언더파 66타를 쳤다.7언더파 65타로 공동선두에 나선 캐리 웹(호주)과 웬디 워드(미국)에 1타차. 2002년 US여자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 챔피언 박인비의 선전도 돋보였다. 특별초청선수로 출전한 박인비는 버디 7개, 보기 1개를 묶어 6언더파 66타를 뿜어내며 김미현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2년차 징크스에 시달리던 송아리(19·하이마트)도 2주간 휴식이 보약이 된 듯 평균 281야드의 장타에 퍼트 감각이 살아나면서 5언더파 67타를 쳐 공동8위에 올랐다.1년여만에 스폰서를 찾은 정일미(33·기가골프)와 나비스코챔피언십 최종일 데일리베스트를 치며 슬럼프 탈출을 알린 안시현(21·엘로드)도 4언더파 68타로 공동11위를 달렸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무려 7개홀에 걸친 연장 승부 끝에 아쉽게 우승컵을 놓친 전설안(24)과 김주미(21·이상 하이마트), 김영(24·신세계) 등은 2언더파 70타로 선두권 진입의 발판을 마련했고, 시즌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는 한희원(27·휠라코리아)도 1언더파 71타를 기록해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동북아 균형자론 그 이상과 현실은

    동북아 균형자론 그 이상과 현실은

    지난달 22일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자임한 이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한 마디로 ‘강대국들끼리의 힘 겨루기를 수수방관하다가는 옛날처럼 고스란히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우리가 능동적으로 평화 조정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정의해도 무리가 없다. 이를 놓고 정치권과 학계 등에서는 “항구적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옹호에서부터 “국가안보를 담보로 한 과대망상적 모험”이라는 비판까지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를 감안한 듯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이 14일 열린우리당의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당정간 조율에 나서기도 했다. 동북아 균형자론을 둘러싼 양측 주장의 허실을 비교·분석해 본다. ■ 해법과 반론 동북아 균형자론을 취재하면서 기자는 얼마간 약소국의 비애를 체감해야 했다. 균형자론을 둘러싼 격렬한 찬반 논쟁은,‘세계 초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하면 절멸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고 하는 명제가 여전히 미완의 과제임을 웅변한다. 무섭게 국력을 키워가는 중국,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세계 초강국 미국, 여기에 핵 보유를 선언한 북한까지, 지금 동북아의 긴장지수는 상승 일로에 있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이처럼 위태로운 지정학적 현황에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지론이 화학결합을 하면서 돌출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동북아 균형자론은 99% 노 대통령의 구상으로서 대통령후보 시절부터의 지론”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발상과 현실성은 별개 문제다. 낙관과 우려를 면밀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평화애호도 국력… 힘이 전부 아니다” 비판이 제일 먼저 쏠리는 부분은 과연 한국이 세력 균형자 역할을 할 힘이 있느냐는 것이다. 예컨대 미·일 군사축이 중·러 축과 갈등을 빚을 때 가운데서 조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과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비롯한 정부측 인사들은 ‘세력 균형자’가 아니라 ‘인식과 가치의 균형자’ 역할을 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한다.19세기의 영국처럼 국방력에 의존한 균형자가 아니라, 경제력과 문화수준, 그리고 역사상 주변국을 침략하지 않은 평화 애호국이라는 명분 등 신개념의 연성국력(soft power)으로 균형자 역을 하겠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비판자들은 다시 “가치와 인식의 균형자라는 말은 비현실적인 허언”이라고 공박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럼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 등의 충돌 가능성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기존 구도에만 안주하자는 것이냐. 대안이 무엇이냐.”는 반론에는 딱히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한미일 협력 훼손땐 국제적 고립 우려” 논쟁은 균형자론이 한·미 동맹을 훼손할 것인지 여부로 이어진다. 비판자들은 “균형자론은 결국 한·미·일 3각 안보협력 체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의미하며, 결정적인 안보 위기상황에서 자칫 어느 쪽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이에 정부측은 “균형자론은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CSCE(유럽안보협력회의)와 같은 다자간 안보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다자간 안보체계를 지향한다면서 한·미 동맹의 강도는 불변할 것이란 주장은 궤변이란 비판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균형자론의 측면에서는, 한·미 동맹이 전보다 느슨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인정했다. 논쟁은 균형자론이 결국 국익에 해가 될 것인지 여부로 귀착된다. 정부측은 “국가간 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현실에서 이런 문제로 미국이 한국에 불이익을 줄 것처럼 지적하는 것은 과민반응”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미군이 절대 안떠날 것”이라는 냉전시대식 낙관은 국가적 재난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북핵 교착땐 장기표류 가능성 균형자론은 궁극적으로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연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에는 동북아 각국 정상이 직접 만나 회담하는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단기적 상황은 열악하다. 무엇보다 북핵 문제가 1년 가까이 교착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핵 문제 때문에 균형자론이 한발짝도 못나가고 있다.”며 “북한이 안 나오니 중국도 머뭇거리고, 러시아도 소극적”이라고 했다. 게다가 최근엔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까지 겹쳐 상황이 악화일로다. 때문에 균형자론이 결국 노 대통령 임기 중에 별다른 실효를 내지 못하고 장기 표류하는 최악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문정인 동북아위원장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은 14일 열린우리당 정책간담회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해 “동북아 지역의 협력과 통합을 위한 촉진자”라고 규정했다. 궁극적 목표는 주변국과의 신뢰를 통해 동북아지역의 ‘다자간 안보체제 구축’을 모색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문 위원장은 “한국의 균형자 역할이란 19세기 세력균형을 통해 유럽의 패권을 추구했던 전통적 의미의 균형자론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오히려 ‘평화를 위한’ 균형자론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한국이 당시 영국과 같이 동북아 세력균형을 위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국력도 없고 세력균형을 주도하거나 우위를 점하려는 목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힘의 균형’이 아니라 정책의 목표를 ‘평화’에 둔 외교”라는 것이 문 위원장의 부연설명이다. 문 위원장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동북아 균형자론’이 진화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즉 ▲한·미동맹과 안보협력 강화를 통한 ‘동북아 세력 균형자’에서,▲동북아의 갈등이 재현되지 않도록 ‘협력과 평화를 만드는 균형자’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선도적’인 역할이 강조되는 한편 동북아 국가들과의 ‘사전 협력관계’가 중요해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구상의 배경에는 ‘중국 부상론’을 중심으로 대립과 반목이 강해지는 동북아 질서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는 것이 문 위원장의 판단이다. 문 위원장은 “현재 중국의 팽창을 세력전의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제,“패권국가의 신장속도가 원만해지고 도전국가가 패권국가의 꼬리를 밟는 접점에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동북아 지역의 전략적 불안정 구조를 우려했다. 다음은 일본과 중국의 불안한 관계를 지목했다.“일본이 미국의 힘에 편승하면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미국도 전향적으로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을 지원하는 등 구조적인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다.”고 걱정했다. 때문에 동북아 지역의 불안정 구조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 이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동북아 균형자론’은 불가피하다고 거듭 역설했다. 구혜영 김준석기자 koohy@seoul.co.kr ■ 한·미군사동맹 이상기류 없나 한·미 군사동맹의 ‘이상 기류’로 비춰칠 만한 민감한 문제들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주한미군의 한국인 군무원 감축, 한·중 군사외교 강화, 전시예비물자(WR SA) 프로그램 폐지, 자이툰 부대원 감축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정부는 한·미동맹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며 펄쩍 뛴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제2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국방부 안광찬 정책실장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의 한·미간 군사현안들은 각각의 문제일 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이툰부대원 270명 감축 문제의 경우 우리가 이라크주둔 미군측에 통보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한반도 배치 WRSA 프로그램 폐지도 2000년부터 논의돼 온 사안이다. 국방부가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 협상력 제고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 안에는 일부 언론이 한·미 관계를 의도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국방부 신현돈 공보관은 최근 WRSA 관련 내용을 정부가 은폐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이례적으로 ‘안보 상업주의’라는 다소 자극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입장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사안들이 양국간 알력의 산물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실제 정부 안에도 균형자론을 다소 불안하게 보는 이들도 없지 않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최근 군 수뇌부 이·취임식 연설에서 “한국이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는 데 군이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지만, 이번에 군문을 떠난 한 수뇌부는 “글쎄, 큰 실수는 없어야 할텐데…걱정이 된다.”며 균형자론에 대해 우려를 보였다. 국가 안보의 최후 보루인 군의 경우 아직도 균형자론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셈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대마도=한국땅 명시요구

    |워싱턴 연합|한국은 지난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초안 작성 과정에서 이 조약에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대마도의 영유권을 돌려받는다는 문구를 포함시킬 것을 미국측에 공식 요구했던 것으로 9일 밝혀졌다. 미국 국립 문서기록관리청(NARA)에 소장돼 있는 미 국무부의 외교문서에 따르면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이 일본과의 평화조약 초안을 작성하고 있던 지난 1951년 4월 27일 미 국무부에 보낸 문서에서 대마도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초안의 ‘영토’ 부분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국은 정의가 영구적 평화의 유일한 기반이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대마도의 영토적 지위에 대한 완전한 검토를 할 것을 요청한다.”면서 “역사적으로 이 섬은 한국 영토였으나 일본에 의해 강제적·불법적으로 점령당했다.”고 말했다.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직장다니면서 돈 안 갚는 친구

    저는 믿음과 신뢰라는 두 글자를 믿어 왔는데 지금 가슴이 아픕니다. 친구가 급전으로 500만원을 부탁해 2002년 6월 카드회사에서 현금서비스를 받아 친구에게 빌려 주었습니다. 친구는 한 달 후에 원금과 이자를 갚았지만 며칠 뒤에 다시 돈을 꾸어 달라고 부탁을 해 와서 다시 같은 방법으로 빌려 주었습니다. 그러다 몇 달 이자가 밀려 제가 카드대금을 막았고,2004년부터는 700만원의 서비스 한도가 다 되어 개인 돈으로 이자를 내고 있습니다. 친구는 얼마 안 되는 급여에서 50만원씩 서너번에 나눠 저한테 입금을 시켜주더니 2004년 12월부터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갚지 않고 전화도 안 받습니다. 우정을 깨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받고 싶습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신희택(31)- 희택씨와 같은 분을 위해 법원은 간편한 법적 절차를 제공합니다. 바로 소액사건제도입니다. 가까운 법원(시·군법원 포함)에 가서 소정 양식에 당사자, 청구금액, 빌려준 날을 적어 넣고 약간의 인지와 송달료를 납부함으로써 소액재판을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즉시 재판기일이 지정되고 간편하게 승소판결을 합니다. 이것으로 채무자의 재산에 강제집행을 합니다. 다만, 막상 재산이 없는 자에게는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빚을 갚을 때까지 노역을 시킬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계산과 예측을 잘못해 빚을 못 갚는 채무자에게는 파산제도가 채무자의 면책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친구 사이에 흔히 돈 거래가 이뤄집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이라는 점을 악용해 이득을 얻으려는 나쁜 자들도 있는가 하면 상환노력을 했으나 세상 일이라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기에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이론상 형사처벌이 가능하고 면책받을 수도 없지만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경우 어쩔 수 없이 못 갚았다고 할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결과적으로 친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돈 빌려 준 사람의 분노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런데 친구에게 돈을 빌려 주면 친구와 돈 둘 다 잃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랜 경험이 녹아 있는 지혜로운 속담입니다. 돈 거래는 전문적인 금융기관이 맡고 있는데 그곳에서조차 돈을 빌려주지 않는 어려운 사람이라면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을 받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친구와 돈 거래는 권하지 않습니다. (파산·개인회생 전문 변호사)
  • 해양수산부 어업정책과 ‘고래전문가’ 윤분도 사무관

    해양수산부 어업정책과 ‘고래전문가’ 윤분도 사무관

    “고래를 과학적으로 보존·이용함으로써 후대에 고래를 자랑스러운 해양유산으로 남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해양수산부 어업정책과 윤분도(39) 사무관은 고래 관련 정책을 담당해온 고래 전문가다. 윤 사무관은 5월 말부터 한 달간 울산에서 열리는 세계포경(捕鯨)위원회(IWC) 연례총회 준비를 위해 설치된 정부종합대책반에 참여,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윤 사무관이 고래를 접하게 된 것은 해양부 전신인 수산청에 들어가면서부터. 국립수산과학원 파견 시절 고래연구 최고봉인 김장근 박사를 만나 고래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이후 해양부 자원관리과로 옮겨 본격적으로 고래 관련 정책을 맡았다. “지난 1986년부터 IWC 결의에 따라 상업포경이 금지돼 포경제도가 없어지는 등 고래 관련 정책이 우여곡절을 겪었지요. 그래도 언젠가 포경이 재개될 수 있다는 믿음에 고래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고래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윤 사무관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는 “우리나라 바다를 찾아오는 고래류는 밍크고래 등 대형 9종과 상괭이 등 소형 26종 등 30여종으로 추정되지만 이 중 몇 종은 거의 관찰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19∼20세기 우리나라 바다를 누볐던 긴수염고래·귀신고래 등은 희귀종이 됐다. 서구 및 일본 포경선이 싹쓸이해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이후 IWC가 대형고래의 포획은 물론 우리나라 자체적으로 소형고래에 대한 포경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지금은 혼획(混獲·그물에 걸려 죽는 것) 또는 좌초(坐礁·죽어서 떠내려옴)된 고래만 식용된다. 윤 사무관은 “밍크고래의 경우 최근 3년간 평균 70마리 정도 혼획·좌초됐고, 소형고래는 연평균 200마리 정도이나 신고되지 않는 것까지 합치면 3∼4배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잡힌 대형 밍크고래는 경매가가 1억 9500만원까지 치솟는 등 혼획된 대형고래는 거의 ‘로또’와 맞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달 울산 IWC총회를 앞두고 상업포경 허용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59개 회원국 중 상업포경에 찬성하는 나라가 절반 정도 되지만 찬·반 갈등이 워낙 심한 데다가 허용 결정은 4분의3 이상 찬성해야 되기 때문에 매년 총회에서 부결됐고 올해도 논란 끝에 같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과학적이고 합리적 방식을 통한 상업포경 허용을 지지하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윤 사무관은 “IWC 규정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포경 허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자원량 및 생태계 조사 등을 벌이고 있다.”면서 “IWC도 고래를 합리적이고 지속적으로 관리해 이용하자는 데 목적을 둔 만큼 언젠가는 허용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사무관은 “고래를 잡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과학적으로 보존·관리해 문화적·사회적인 방법으로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울산 고래축제 등과 같이 고래쇼와 고래관광, 레포츠를 활성화해 일반인들의 관심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임해리의 色色남녀] 오~ 풀잎에 누워

    봄바람은 여자를 춤추게 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T.S 엘리엇 ‘황무지’중에서) 1차 대전(1914∼1918) 직후 현대문명의 정신적 불모를 시인은 이렇게 절규하였다. 그리고 백년이 가까워진 지금도 많은 이들이 애송하는 것은 황무지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믿음이 부재하고 사랑이 희석되고 생명력을 잃은 섹스 속에서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은 잔인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수유와 진달래는 봄바람 속에서 흐드러지게 피고 여자의 몸과 마음은 꽃잎 벌어지듯 열려만 간다. 그래서 옛말에 봄에는 여자의 샘물이 바위를 녹인다고 했을까. 내가 아는 부부는 십년 째 매년 이맘때면 주중에 하루는 꼭 북한산 진달래 능선을 넘는다고 자랑을 하고 친구들은 부부동반으로 등산하는 것을 부러워하곤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부부가 평소에 산행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어쩌다 여자 몇몇이 모이면 단골화제 중 하나는 남편 흉보기와 팔자타령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늘 그녀는 자기 남편이 사업에 망하고 고생을 시키는 데도 ‘살 맛’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얼굴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고 피부도 고운 편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래 경제점수는 F학점이지만 야간학습은 A학점이라는 거지!’라고만 생각했다. 그녀의 남편은 평소에는 뚝배기 깨지는 듯해도 진달래꽃 피는 계절이 오면 부들부들해진다고 했다. 며칠 전에 만난 그녀는 열여덟 처녀처럼 달뜬 표정으로 다음날 북한산에 등산 간다고 거품을 물며 자랑하였다. 나는 여우의 신포도처럼 은근히 속이 부글거렸다.‘아니 산에 가는 게 저리도 좋은가? 하이고 봄만 되면 몸살을 하는구나! 진달래 구경을 가는지 산삼을 캐러 가는지 아무튼 누구는 좋겠다.’ 그런데 어제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윤기가 쫘악 흘렀다. 나는 볼멘 목소리로 산에 가서 진달래 꽃 따가지고 얼굴과 혀에 팩이라도 했냐고 포문을 열었다. 그녀는 호호거리며 아직도 눈치를 못 챘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자기가 봄만 되면 콧구멍이 벌렁거리고 진달래 꽃 필 때면 목소리가 낭랑해지는 이유를 털어놓았다. 자기네 부부는 10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은 외박을 하면서 부부의 성에 대해 이론과 실천을 익히면서 서로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남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따랐는데 세월이 지나다보니 자신도 그런 경험이 즐겁고 생활에 활력소가 되어 지금은 일상의 프로그램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봄이 되면 등산도 하고 ‘야외학습(?)’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자연 속에서 훌라당 벗고 숲에 누워 햇살을 맞으며 하늘을 보는 그 느낌이 그렇게 편안하고 좋을 수가 없다는 그녀의 목소리에 떨림이 전해졌다. 나는 사랑과 섹스의 불모지가 되어 가는 이 땅에서 그들 부부의 건강함에 진심으로 축복을 빌었다. ●임해리는 15년 독신의 경험을 토대로 ‘혼자 잘 살면 결혼해도 잘 산다’와 ‘SQ를 높여야 연애에 성공한다’를 출간한 자타가 인정하는 ‘연애학박사’.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3)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上)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3)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上)

    기왕 변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조선 영조 때 태진(太眞) 스님에 관한 이야기를 여기서 빠뜨릴 수가 없다. 그는 남원에서 발생한 불온 벽보 사건에 연루됐었고 그 사건은 조선왕조의 정사(正史) ‘왕조실록’에 비교적 자세히 나온다. 이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반역죄인을 취조한 기록을 엮은 ‘추안급국안’이란 책자에도 상세하다. 태진은 반역에 관한 혐의로 엄중한 조사를 받았던 것인데,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월명암은 월출암의 다른 이름? ‘실록’ 등엔 태진이 부안 변산에 있던 월출암(月出菴)의 승려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찾아본 부안 지방의 고문헌에는 월출암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절의 스님이 역모사건에 관련됐던 관계로 폐찰(廢刹)이 되고 만 게 아닐까 짐작되기도 하지만, 꼭 옳은 짐작일지는 모르겠다. 그런 식이었다면 역사상 큰 절치고 문 닫지 않고 배겨날 절이 하나도 없을 것 같다. 달리 생각해 보면, 절의 이름이 잘못 적혔을 가능성도 없지 않고, 또 그런 불미스러운 사건을 계기로 절 이름이 다소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 대역부도 사건 등이 발생한 다음엔 고을의 명칭이 바뀐 사례가 많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참조된다. 그런 점에서 일단 혐의를 둘 만한 암자가 하나 있는데 월명암(月明菴)이 바로 그 경우다.‘달이 뜬다.’는 뜻을 가진 월출(月出)이나 ‘달이 밝다.’는 월명(月明)은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변산의 제2봉인 쌍선봉(498m) 중턱에 자리한 월명암은 경관이 수려하다. 월명암 뜰에 서면 변산의 수많은 봉우리를 발아래 깔고 있는 듯이 느껴지고, 암자 뒤 낙조대(落照臺)에 올라 서쪽을 바라보면 점점이 늘어선 고군산군도의 뭍섬들이 아름답다. 이 절의 이름이 하필 월명(月明)인 것도 잘 생각해 보면 그 일대에서 목격되는 달 뜨는 정경 또한 기막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월명암은 월출암의 다른 이름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월명암은 본래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호남의 명승(名僧) 진묵대사(震默大師·1562∼1633)가 중건하였다. 그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암자에선 허다한 고승들이 배출됐다. 선가(禪家)에선 대둔산 태고암, 백양산 운문암과 함께 도인을 많이 키워낸 3대 성지로 손꼽힌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태진 역시 당대의 ‘명승(名僧)’으로 존경받던 스님이었다. 여느 스님들과는 달리 그는 양반가 출신이었는데 참선수행을 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 정치현실에 대해서도 예리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화근이 돼 태진은 결국 조정으로부터 엄벌을 받았다. 어쩌면 그가 몸담았던 불교계조차 그를 영구히 추방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정말 있었다 해도 나는 태진을 비난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 오히려 거꾸로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태진은 부조리한 18세기 조선의 현실을 변혁시킬 꿈을 꿨다. 그런 점에서 그는 뒷날 같은 목적을 가지고 월명암을 찾았던 강증산, 소태산, 백학명 등 근대 종교계의 큰 별들과 일맥상통했고, 그가 연루됐던 사건은 우리의 주목을 끈다. ●영조가 직접 심문 나선 ‘괘서’ 사건 때는 영조9년(1733) 음력 7월 말이었다. 한여름 불볕더위가 조금씩 수그러들고 아침저녁으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와 구중궁궐에 계신 영조임금부터 강원도 두메산골 김첨지네 복슬강아지에 이르기까지 다들 살맛을 되찾아 가고 있던 차에 불길한 사건이 터졌다. 그것도 서울에서 700리나 떨어진 전라도 남원에 괴문서 한 장이 나붙은 거였다. 먼 시골 도시 성벽에 밤새 어떤 사람이 종이 한 장을 붙였기로 그게 무슨 큰 야단이라고들 호들갑인가, 현대를 사는 우리로선 납득이 잘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괘서’(요즘말로는 벽보) 사건은 조정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문제의 벽보는 우선 그 내용이 ‘매우 흉악했다.’ 지엄하신 상감마마와 동궁을 저주할 뿐만 아니라 이제 세상이 곧 뒤집어진다는 믿기 어려운 소리가 가득했다. 역모의 혐의가 명백하게 느껴지는 ‘불충한’ 글이었다. 더구나 이 괘서의 상당부분은 이미 4년 전에 진압된 ‘무신란(戊申亂·경종의 독살설을 주장하며 소론과 남인들이 일으킨 반란)’의 주동세력이 각지에 퍼뜨린 소문이나 선동적인 구호와 일치했다. 영조로선 두 번 다시 생각하기도 끔찍한 ‘무신 잔당’의 부활을 입증하는 증거로 의심해볼 만했다. 영조는 몹시 긴장했으며, 그를 보좌해 국정을 이끌던 조정대신들 역시 마음이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시급히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역모사건을 전담하는 의금부며, 사건발생지역의 수장인 전라감사, 그리고 조정에서 현지로 파견된 관리인 남원부사 등이 열흘 이상 이 사건에만 매달리다시피 했다. 피의자에 대한 고문과 취조가 날마다 계속되었고 그동안 영조는 몸소 수사를 진두지휘하다시피 했으며, 직접 신문에 나서기도 했다. 일반에는 문예부흥기로 알려져 있지만 영조와 정조 때는 실상 이런 역모 사건들이 그 어느 때보다 빈번하게 발생해 조정을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월출암 승려 태진이 소장했던 ‘남사고 비결’ 이 사건의 발단이 된 예언서는 ‘남사고 비결(南師古秘訣)’이었다. 태진이 가지고 있었던 그 책은 갑자년을 기점으로 해마다 일어날 사건들이 예언돼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편년체 예언서였다. 이 책엔 역모사건으로 정국이 뒤숭숭했던 무신년에 대해서 “또한 좋지 않다.”든가 “피가 흘러 내를 이루고 길이 막히며 민호에 연기가 끊긴다.”는 예언이 적혀 있었다. 실제 영조4년(1728) 무신년엔 하3도(충청, 전라, 경상)에서 반역사건이 있었으나 곧 진압됐었다. 그러므로 ‘남사고’의 예언은 그런대로 잘 들어맞은 셈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남사고’도 역시 편년체로 돼 있다. 그러나 예언서의 시작은 갑자년이 아니라 경인년으로 돼 있어 태진이 소장했던 ‘남사고’와는 분명히 다르다. 위에서 예로 든 무신년에 대해서도 “제갈량(諸葛亮)이 이미 죽었으니 어떤 성 한쪽에 금성(錦城)이 피폐하구나. 경시(更始)는 자리를 긁고 범증(范增)은 등창이 나는구나.”라고 했다. 자구상 표현은 전혀 다르지만 그 해의 운이 무척 나쁘다고 본 점에선 우연히 일치한다. 그밖에도 태진이 소장한 ‘남사고’엔 백저 안답(白猪按答), 봉목 장군(蜂目將軍), 승입병도(僧入丙都), 노색연절(路塞煙絶), 만가여일(萬家如一) 등의 표현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글귀는 현재의 ‘남사고’엔 전혀 없다. 책의 이름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지만 그 내용은 똑같지 않은 줄을 미루어 짐작하겠다. 평소 태진이 소지했던 ‘남사고’에는 무신년 이후로도 여러 해 동안 나쁜 일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돼 있었다. 오늘날 남아 있는 ‘남사고’도 역시 그런 내용이다. 예컨대, 무신년으로부터 4∼5년이 지나면 “세상일이 이미 끝이로다.”라고 했다. 그 참상은 “백 가호에 소가 한 마리요, 열 계집에 한 남편이로다.”라는 구절에 가장 잘 압축돼 있다. 요컨대, 세상은 최후를 맞이하고야 만다는 것인데, 햇수를 따져보면 영조9년이 바로 그 말세운이었다. 영조를 비롯한 조정 대신들로선 이런 ‘남사고’의 예언을 그저 웃으며 지나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조정의 금지명령을 비웃기라도 하듯 ‘남사고’를 비롯한 ‘정감록’의 대중적 인기는 갈수록 높아져 조정은 속수무책일 뿐이었다. 태진이 ‘남사고’를 손에 넣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전국의 명산을 두루 유람했는데, 충남 보령의 오서산(烏棲山·791m)에 들른 적도 있었다. 거기서 그는 도승(道僧) 자명(自明)을 만났다고 했다. 태진은 그것이 기유년(1729)의 일이라고 회상했는데 그 기억이 정확한지는 확인할 수 없다. 어쨌거나 태진은 오서산에 이틀 동안 머물렀고 그 때 자명이 가진 ‘남사고’를 처음으로 구경했단다. 태진이 이 책에 큰 관심을 보이자 자명은 필사해 주었다. 태진은 평소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어딜 가나 늘 ‘남사고’를 휴대했다. ‘남사고’의 예언은 현실로 입증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이 태진의 변함없는 믿음이었다. 어서 빨리 세상이 바뀌어 현세가 미륵세상으로 바뀌기를 그는 열렬히 바랐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변화를 알리는 예언서를 무척 좋아했다. 더욱이 변산은 한국 미륵신앙의 출발점이었고, 태진은 그런 사상적 전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는 자기가 믿을 만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에게 ‘남사고’의 내용을 들려주었고, 그 예언을 시세에 맞게 적절히 풀이해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다시피 했다. 그러다 보니 태진의 주위에는 ‘남사고’를 베껴 나눠 갖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태진, 남원 양반 최봉희를 사귀다 태진은 기회가 되는 대로 속세의 여러 사람들과 사귀었다. 때론 산사를 찾아온 양반들과도 자연스레 친교를 맺었다. 그는 그런 사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유년(1729) 10월, 전북 진안의 팔공암(八公菴)에 있을 때야. 그 암자가 경치 좋고 한가한 곳이란 소문이 있어 찾았던 게지. 내가 그곳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지. 젊잖아 뵈는 세 양반이 그 절간엘 들렀어. 무슨 약초를 캐러 왔던 모양 같아. 한 분은 이름을 최봉희라 했는데 남원서 온 가난한 양반이었고, 또 한 분은 윤징상이라고 했지 아마. 그리고 또 정원덕이라는 분이었을 거야. 이 양반들은 서로 친구사이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팔공암의 노스님을 모신 승방에 들어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참 진지하게도 나누었지. 부처님의 법이 공자의 가르침과 과연 다른 것인가, 사람이 죽으면 무엇이 되는가, 부모에게 효를 다한다는 것은 결국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등등 얼핏 철학적으로 들리지만 실은 매우 현실적인 주제를 폭넓게 다루었어. 승방 한담이란 게 흔히 그러하듯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화제가 자연 정치 문제에 미쳤지. 무신년(영조4년 1728)에 있었던 난리에 대해 또 한참을 이야기하게 됐어.‘그때 참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많다.’는 게 중론이었어. 난 빙그레 웃기만 하고 별 말을 안 했지. 그래도 영 암말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기는 좀이 쑤셔, 내가 소장하고 있던 ‘남사고’에 관해 몇 마디만 들려주었어. 그 이튿날 세 양반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분이 글쎄 날더러 ‘남사고’를 보여 달라는 거야. 암자에 계시던 노스님도 한 번 보여주라고 자꾸 권하셔서 나중엔 바랑에서 그 책자를 꺼냈어.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더군. 이 왕조의 끝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눈치 챘던 모양이야.” 그날 오전 최봉희가 일행을 대표해 태진에게 이렇게 물었다.“선사(禪師)께선 양반 자제로 불가(佛家)에 입문하셨고 덕이 높아 평소 많은 불자들이 대사(大師)라 부른다 들었습니다. 옛날 강원도에 머무실 때는 여러 지방관들이 선사께 서찰(書札)을 보내 시문(詩文)을 구하느라 야단법석이었다고도 하더군요. 시사(時事)가 장차 어찌 될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남사고’의 예언을 가지고 계신단 말씀을 잠깐 들었습니다만, 저희는 시골의 무식한 선비라 아직 그런 책을 한 번 읽어보지도 못했습니다. 혹시 선사께서 아시는 대로 설명을 좀 해 주실 수가 없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극진한 예의를 갖춰 간청해 마지않는 세 양반들의 겸손한 태도에 태진은 거의 감격했다. 그는 평소 가슴에 조용히 담아둔 몇 마디 말을 꺼냈다.“이런 말세(末世)를 당해서 백성이 보존될 수 있는 곳은 산림(山林)뿐인데, 선비님들께선 야지(野地)를 버리고 산협으로 들어오셨으니 진실로 살 길을 얻으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윤징상이 ‘백성이 보존될 수 있는 곳이란 산림이다.’라는 말씀은 어느 책에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자 태진은 마치 그 말이 있기를 기다렸단 듯 ‘남사고’에 그런 말이 나온다며 한참 동안 설명했다. 태진의 말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양반은 최봉희였다. 최는 가문은 매우 훌륭했으나 이미 가세가 기울 대로 기울어 가엾은 시골의 한사(寒士)에 불과한 처지였다. 서글픔 속에서 끼니 걱정을 하고 지내는 최봉희인지라 세상에 대해 유난히 불평불만이 많아 보였다. 마침내 최는 젊은 정원덕의 도움을 받아 ‘남사고’ 한 벌을 베낄 수 있었다. ●김원팔, 최봉희의 ‘남사고’를 베끼다 남원으로 돌아온 최봉희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남사고’ 자랑을 한껏 늘어놓았다. 김원팔과 김원하 형제, 김태기, 김중기 등 7명이 필묵계(筆墨契)를 맺어 서로 절친하게 지냈는데, 김원팔 등은 최봉희의 이야기를 듣자 ‘남사고’를 구경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들은 ‘남사고’를 ‘무신년 난서(亂書)’라고도 불렀다. 무신란에 대한 예언이 기막히게 잘 들어맞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러 계원들 중에서도 최봉희와 특히 친했던 사람은 김원팔 형제였다. 원팔의 아우 김원하는 마침 논밭이 최의 집 근처라 매일 같이 만나는 형편이었고, 김원팔은 당시 전주(全州)에 살고 있어 평소 여행을 좋아하는 최봉희의 입장에선 우정을 핑계대어 출입이 잦은 편이었다. 최는 사방을 돌아다니며 수상쩍은 소문을 수집해다 친구들에게 퍼뜨렸다. 김원팔은 그 점을 예를 들어가며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영조8년) 10월 최봉하가 내 아우 김원하(金元河)를 찾아가서 중국 서쪽의 양만족들이 전쟁을 일으켜 청나라 측이 조선에 청병(請兵)했다고 말했고, 물가가 급등한다는 등 쉽게 믿을 수 없는 말을 많이 했다. 심지어는 북부 지방에선 소가 기린(麒麟)을 낳았으므로 이제 성인(聖人)이 나올 차례라고도 했다. 하여간 남원 제일의 소식통은 최봉희다.” 남원의 선비들 가운데는 최봉희를 통해 세상사를 알아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가 들려주는 황당한 이야기에 왠지 가장 솔깃해하는 사람은 김원팔과 그 아버지 김영건이었다. 원팔은 최봉희를 줄기차게 졸라 가지고 ‘남사고’를 모두 필사했다. 그런데 그 당시엔 좀 신기하다 싶은 남의 글이나 책자를 베끼는 일은 보통이었다. 아들로부터 책을 전해 받은 김영건은 한문을 제대로 읽을 만한 실력이 없어 그 책을 그저 무신란의 실상을 묘사한 것으로 짐작하는 정도였다. 김원팔이 아버지에게 바친 책자엔 ‘남사고’ 외에도 ‘요람(要覽)’이란 예언서가 포함돼 있었다.‘요람’의 주인 역시 최봉희였는데, 김원팔은 양반의 서얼인 이서방(李書房)에게 위촉해 책의 대부분을 필사하게 했다. 그러나 그 책의 마지막 대목만은 원팔이 자필로 베꼈다. 이쯤에서 나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에 봉착한다. 김원팔 부자는 태진 등이 소장했던 예언서를 구해다 도대체 무엇에 이용할 생각이었을까? 그들은 과연 역모를 계획하고 있었던 걸까? 또는 누군가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예언서를 필요로 한 것일까? 태진 사건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드는데 자세한 것은 다음호를 기약한다.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제3세계 출신 교황’ 기대 솔솔

    “차기 교황은 유럽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나올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톨릭계에 남미 등 제3세계 영향력이 커진 데다 이슬람과의 공존, 교세 확장 등 현안 해결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신도 숫자뿐만 아니라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 비밀회의인 콘클라베에서의 제3세계 영향력 증가도 이같은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개도국 출신 추기경은 40%가량으로 늘어난 상태다. 11억 가톨릭 신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중남미나 교세 확장 중인 아프리카, 아시아에서도 “변화를 반영하는 교황” 선출을 희망하고 있다. 전임 교황의 즉위로 455년만에 이탈리아 출신이 교황을 맡아온 선례가 무너지고 대상이 전세계로 넓혀진 것도 호조건이다. 남아공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데스먼드 투투 영국 국교회 대주교도 4일 “추기경들이 최초로 아프리카 출신 교황을 뽑기를 희망한다.”며 제3세계 출신 교황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비유럽 출신이 나온다면 가장 유력한 지역은 남미다. 클라우디오 우메스 상파울루 대주교 등은 당장 교황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대내외적인 신망을 얻고 있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3일 ‘급진적인 브라질인 추기경, 교황 후계 경쟁에서 앞서다.’는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이같은 목소리에 가톨릭 지도자들은 출신지의 배려가 아니라 후보자의 믿음과 지도력에 입각해 차기 교황을 결정할 것이란 원칙론을 강조하고 있다. 우메스 대주교도 “교황이 어느 지역, 어느 대륙 출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추기경들이 바로 이 순간의 적임자를 뽑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교황 선출권이 있는 추기경 중 남미 출신은 21명이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은 각각 11명. 반면 유럽은 58명에 달한다. 또 유럽에 우호적인 미국이 11명, 오세아니아와 캐나다가 각각 2명씩이나 되는 등 유럽이 여전히 우세를 점하고 있다. 뉴스위크 인터넷판은 3일 “교황 선출은 토론이나 정책발표 없이 비밀회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세속 정치와는 다르다.”면서 “콘클라베에 참석할 117명의 추기경조차도 누가 다음 교황이 될지 모를 것”이라고 예측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이날 타임지 인터넷판도 “이탈리아 출신 선거인단의 비중이 17%로 줄었지만 20명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숫자로 이탈리아 출신이 다시 새 교황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여전히 오리무중의 차기 교황 선거 분위기를 전했다. 교황 선거는 교회법에 따라 늦어도 22일 이전에 시작해야 한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④-현대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④-현대그룹

    “믿겨지지 않았다.” 2003년 8월 4일 새벽. 그룹 비서실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아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훗날 지인에게 “처음엔 얘 아빠(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제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시숙(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에게서 그룹을 지켜야 했다. 경영 전면에 나섰다. 스물한살에 현대가로 시집와 30년 가까이 살림만 했는데 세상에 나오는 것이, 그것도 시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가 평생을 일군 그룹을 덜컥 떠맡는 게 두렵지 않았을까. 지인의 얘기다.“나도 그 점이 궁금해 언젠가 한번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그 때는 (경영권 분쟁으로) 상황이 너무 다급해 두려워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하더라.” 그렇게 현대가의 ‘조용한’ 며느리에서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때가 2003년 10월 21일. 그로부터 1년여.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관리종목’의 악몽에서 벗어나 지난해 사상 최대 순익(4279억원)을 올렸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주도하는 현대아산 역시 소폭이나마 첫 흑자(8억원)를 기록했다. 현대엘리베이터(839억원), 현대증권(580억원 추정치), 현대택배(74억원), 현대경제연구원(3억원)도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거나 흑자를 지켰다. 그룹 경영을 맡은 지 불과 1년 만에 6개 계열사 모두를 흑자로 돌려놓은 것이다.2010년까지 그룹 매출을 20조원(지난해 말 6조 6400억원)으로 끌어올려 재계 10위권(현재 19위)에 입성하겠다는 현 회장의 ‘2010 프로젝트’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운’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왕회장(정주영 명예회장) 시절부터 현대에 몸담아온 한 임원의 해석은 다르다.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현 회장 취임후) 해운 경기가 살아나면서 그룹의 주축인 현대상선이 살아났으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 전에 비해 그룹의 방향이 매우 뚜렷해졌다. 현 회장은 한번 결정을 내리면 단호하다. 흔들리지 않는다. 배포와 결단력은 오히려 몽헌 회장(MH)을 능가한다는 게 임원들의 공통된 평가다.” 이와 관련해 또다른 임원의 말이 재미있다.“현 회장을 보고 있으면 사업가 유전자라는게 따로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업가 집안의 둘째딸 현 회장은 1955년 딸만 넷을 둔 사업가 집안의 둘째로 태어났다. 훗날 현대상선에 흡수된 당시 신한해운의 현영원(78) 회장이 아버지다. 일제때 ‘호남의 거부(巨富)’로 이름을 날렸던 현준호씨의 후손이다. 어머니는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주의 외동딸인 김문희(77) 현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김창성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현 회장에게는 외삼촌들이다. 현대가의 며느리 가운데 손아래 동서 김영명(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부인·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딸)씨와 더불어 친정이 가장 화려한 편이다. 현 회장은 그룹 홈페이지에 올린 ‘나의 삶 현대의 길’에서 “기업가 집안의 엄격한 가정교육 속에서 세상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시각을 조금씩 키워나갔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임원의 해석처럼 ‘유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업가 집안의 가풍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현 회장의 자매들 이름이다. 언니가 일선씨, 여동생이 지선씨다. 현 회장의 시조카들과 이름이 똑같다.“정씨 집안과의 혼사는 숙명”이라는 우스갯말이 나올 만도 하다. 언니 일선씨는 수입 침장(沈臧) ‘쉐르단’으로 유명한 홈텍스타일코리아 유승지 회장과 결혼했다. 유 회장은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의 친동생이자 유유산업 창업주인 고 유특한씨의 아들. 현 유유산업 유승필 회장의 친동생이다. 동서지간인 유 회장과 생전의 MH는 나이가 같아 유난히 친했다고 한다.MH가 죽기 직전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도 유 회장이 함께 했었다. ●‘군인’ MH와의 첫 만남 대학(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때인 1975년 1월 어느날. 현 회장은 아버지를 따라 울산의 현대중공업 선박 명명식에 갔다. 당시 아버지는 사업관계로 잘 알고 지내던 홍콩 행정 장관(C.Y. 퉁)이 방한하자 때마침 열린 선박 명명식에 ‘모시고’ 갔다. 애초 맏딸만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둘째딸의 성화에 딸 둘을 대동하고 나섰다. 몇달 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쪽에서 넌지시 연락이 왔다.“군대간 아들이 마침 휴가 나왔는데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선박 명명식에서 ‘참한 인상의 늘씬한 재원’을 처음 본 정 회장이 단박에 며느릿감으로 점지한 것이다. 이 때가 75년 5,6월께. 현 회장과 MH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언젠가 현 회장이 사석에서 털어놓았다는 MH의 첫인상이다.“요샛말로 필이 꽂히거나 그렇진 않았다. 군인이라 머리도 짧았고…그래도 듬직해 보였다.” 첫 데이트 장소는 ‘군인 커플’답게 서울 태릉사격장. 이듬해 7월 두사람은 결혼했다. ●“나도 내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 현 회장은 결혼 후 첫딸을 낳고도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라 페어리 디킨슨 대학원에서 인간개발론을 전공했다. 귀국해서 얘들 키우고 살림하는 동안에도 짬짬이 걸스카우트연맹(이사)·대한적십자사(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 등에서 ‘표 안나게’ 사회활동을 했지만 사업가로 나서게 되리라고는 그 자신 상상도 못했다. 현 회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임원의 얘기다.“그룹 경영을 맡은 지 1년여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확실한 것은 배포가 여간 아니라는 점이다. 경영 참여를 결심한 것도,8개월에 걸친 경영권 분쟁을 버텨낸 것도 이같은 배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겉으로 보면 전형적인 현대가의 조용한 며느리인데 어디에 그런 배포가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다. 본인 스스로도 ‘내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며 웃더라.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경영권 분쟁때의)그 지독했던 마음 고생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의지력도 대단하다. 더러 확신이 서기까지 결단을 늦추는 경향이 있어 답답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일단 확신이 서면 무섭게 밀어붙인다. 번복하는 일도 없다.”결단을 내려놓고도 마음이 여려 ‘가신’들의 주장에 흔들리곤 했던 MH와는 대조되는 면모다. 현 회장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일화 한가지. 지난해 8월 그룹 비전을 선포할 때의 일이다. 당시는 경영권 분쟁을 매듭짓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던 때라 사내외에 선언할 ‘비전’이 매우 중요했다. 현 회장은 ‘용기와 자부심의 현대’라고 직접 쓴 쪽지를 내밀었다. 임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살림만 하던 사람이 기업 경영과 직원 심리를 얼마나 알겠느냐.”는 냉소도 은근히 깔려 있었다. 그러나 현 회장은 지금이야말로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용기와 ‘재계 1위 현대’에 대한 자부심이 절실한 때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선언문에는 이 문구가 그대로 들어갔다. 시간을 지체해 물건너갔다고 생각했던 가신그룹(김재수 당시 경영전략팀 사장 등)에 대한 인사도 그 해말 전격 단행해 임직원들을 다시한번 놀래켰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 숙부의 난 현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다른 사람도 아닌 시삼촌과 길고 지루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2003년 8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들이면서 본격화된 경영권 분쟁은 이듬해 3월 30일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에서 현 회장이 승리할 때까지 8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현 회장은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집안의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비즈니스가 얽혀있어 개입할 수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중립이 현 회장을 도왔다. 현 회장측은 분쟁의 단초가 된 금호생명 대출 200억원에 대한 정상영 회장의 보증과 관련,“정 명예회장은 조카(MH)에 대한 의리라고 주장하지만 처음부터 경영권을 뺏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행보였다.”고 주장한다. 한 측근은 MH가 정상영 명예회장을 인간적으로 따랐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정상영 회장이 MH의 자금줄을 교묘하게 막았다.”면서 “이 때문에 MH가 ‘그룹을 위해 (내가) 이렇게 희생했는데 상영 삼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언젠가 몹시 화를 낸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KCC측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여전히 팔지 않고 있어 경영권 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경영수업 받는 큰딸…‘코디’ 둘째딸… 사격 좋아하는 외아들 시어머니(변중석)가 아이 잘 낳는 보약을 하루가 멀다하고 들이미는 바람에 얼떨결에 일찍 가졌다는 큰딸. 딸을 낳자 시댁보다 딸만 넷인 친정의 실망이 더 컸다고 한다. 그 딸이 지금은 현 회장의 든든한 친구이자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지이(28)씨다. 서울대 고고미술학과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을 나온 그는 외국계 광고회사에 다니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지난해 1월 3일 현대상선 재정부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올 1월 1일 대리로 승진했다. 회사 흐름을 가장 빨리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재정부에 배치한 것을 보면, 제대로 경영수업을 받게 하려는 현 회장의 의지가 읽혀진다. 경영권 분쟁때도 현 회장은 정상영 명예회장 등 시댁 어른들과의 대면 자리에 반드시 지이씨를 데리고 나갔다. 맏이답게 찬찬하고 침착해 현 회장에게는 큰 의지가 된다고 한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평이 매우 좋다. 지난해 10월 그룹 해체후 처음 가진 신입사원 수련회때는 다른 ‘신참’들과 똑같이 텐트에서 잠을 자고 장기자랑도 마다하지 않아 주위의 경계심을 녹였다.‘싼타페’를 직접 몰고 출퇴근한다. 아직 사귀는 사람은 없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터울이 크면 아들일 확률이 높다.”는 집안 어른들의 압력에 6년 7개월만에 가졌다는 둘째딸 영이(21)씨는 서울 상명여고 1학년때 혼자서 미국 유학을 떠났을 만큼 당차다. 보스턴에서 한시간 거리인 사립 고등학교 ‘쿠싱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현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부에 재학중이다. 언니와 달리 성격이 매우 활달하다. 방학을 맞아 귀국하면 엄마의 의상을 열심히 조언해준다. 막내 외아들인 영선(20)씨는 모 대학 경영학과를 다니다 지금은 휴학한 상태다. 군대를 먼저 다녀온 뒤 미국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아버지 장례식때 고3(경복고) 수험생이었는데도 어찌나 많은 친구들이 빈소로 몰려왔던지 조문객들 사이에 화제가 됐었다. 아버지를 닮아 총쏘는 것을 좋아한다. ●옛 영광 재현 꿈꾸는 핵심 브레인들 경영전략팀이 그룹의 ‘싱크 탱크’다. 다른 그룹으로 치면 구조조정본부에 해당한다. 현 회장 사람들로 전부 세대교체가 이뤄진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최용묵(57) 사장을 사령탑으로 이기승(55) 전무-하명호(47) 상무로 수직 연결된다. 현대엘리베이터 사장도 맡고 있는 최 사장은 경영권 방어전략을 촘촘히 짜 현 회장의 리더십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진적 개선파로, 조직 안정이 최우선 과제인 현 회장 체제에서는 적임이라는 평을 듣는다.76년 현대건설 평사원으로 입사,84년 현대엘리베이터 창립과 함께 관리부장을 맡으면서 조직관리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임직원들과 회사 앞마당에서 족구를 하고 삼겹살 소주 뒤풀이를 즐긴다. 이 전무는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금융전문가의 보완을 절실하게 느낀 현 회장이 지난해 6월 외환은행에서 영입해온 이다.KS(경기고-서울대 법대) 출신답게 머리회전이 빠르면서도 친화력이 뛰어나 핵심인맥의 자리를 굳혔다. 미국 디킨스대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하 상무도 재무 전문가다. 현대석유화학에서 지난해 말 그룹 심장부로 옮겨왔다. 그룹의 정신적 뿌리인 대북사업은 ‘서울대 트리오’가 이끌고 있다.“대북사업에 인생을 걸었다.”는 김윤규(61) 현대아산 부회장이 단연 첫 손에 꼽힌다. 왕 회장때부터 ‘소떼 방북’ 등을 성사시키며 현대와 동고동락해 온 김 부회장은 MH가 그 앞으로 남긴 별도 유서를 통해 “자주 윙크하는 버릇 고치라.”고 농담을 던졌을 만큼 2대에 걸쳐 각별한 신임을 얻었다. 얼마전 부회장으로 승진해 대북 라인 접촉 등 대외 업무에만 힘을 쏟고 있다. 대내 업무를 떼준 것은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이자 ‘거리 두기’라는 해석도 있다. 대내 업무는 윤만준(60) 현대아산 사장의 몫이다. 고문으로 물러나 있다가 김 부회장의 승진과 함께 대표이사 사장으로 발탁된 그는 남북경제협력사업에 초창기부터 관여해 실무에 밝다. 서울법대를 나와 74년 현대중공업에 입사,MH와 함께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일궜다. 김 부회장의 서울대 공대 직속 후배인 심재원(58) 현대아산 부사장은 개성공단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업무처리가 치밀하다. 그룹의 ‘캐시 카우’(돈버는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노정익(52) 사장이 이끌고 있다. 유동성 위기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던 2002년 9월 사장에 취임해 1000원대이던 주가를 2만원 가까이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자동차 운반선 매각 등 뚝심으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여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때 들어온 1조원대의 현금이 없었다면 뒤이어 터진 대북송금·분식회계 등의 악재를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취임하자마자 승선 체험을 자청, 선원들과 거센 파도와 싸우며 하나가 된 덕분에 ‘캡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안살림을 꼼꼼하게 챙기는 안홍환(55·부사장) 지원본부장, 회사 매출의 70%를 책임지고 있는 이재현(54·전무) 컨테이너본부장, 일반화물 영업을 이끄는 이동렬(56·전무) 벌크선영업본부장, 해양대 항해학과를 나와 선장으로도 근무한 ‘마도로스’ 신용호(56·전무) 해사본부장 등도 상선의 중추 세력이다. 2003년 6월 부국증권에서 스카우트돼 온 김지완(59) 현대증권 사장은 ‘현투(현대투자신탁증권) 책임분담금’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지어 그룹의 고민을 덜어주었다.‘숙부의 난’때는 오랜 증권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권 방어 전략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어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하마평에 자주 오르기도 한다. 김 사장을 떠받치고 있는 노치용(53·전무) 도매영업본부장은 그룹 홍보도 겸하고 있어 여의도와 광화문을 오가며 ‘셔틀 업무’를 보고 있다. 경영권 분쟁때 설득력있는 논리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숙부의 난 당시 격전지(경영전략팀) 한복판에 있었던 현기춘(51) 현 현대엘리베이터 전무도 눈에 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또다른 한 축인 한승준(51) 전무와는 춘천고 같은반 친구이다. 기획·관리 전문가로 ‘선 굵은 CEO’로 불리는 김병훈(55) 현대택배 사장, 경제연구원 최초로 수익모델 창출에 도전한 재무관료 출신의 김중웅(64) 현대경제연구원 회장,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주현(53) 현대경제연구원장 등도 그룹의 핵심 브레인들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경영권 분쟁이 오히려 약이 됐다. 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흔들리던 임직원들이 경영권이 위협받자 현 회장을 중심으로 차돌처럼 뭉쳤다. 이번 기회에 전열을 확실하게 정비해 그룹의 모태로서 옛 현대의 영광을 반드시 재현하겠다.” hyun@seoul.co.kr ■ ‘비운의 황태자’ 정몽헌 현대가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는 한 현대맨은 “90년대 들어 언론에서 빅3(MK,MH, MJ) 운운했지만 그 때는 이미 왕회장이 MH를 후계자로 형제들에게 선언한 뒤였다.”면서 “좀체 칭찬을 하지 않는 왕회장이었지만 MH에 대해서는 심지가 깊은 아이라며 믿음을 내보였다.”고 전했다. 보성고와 연세대를 나와 미국 페어리 디킨슨 대학에서 MBA(경영학 석사학위)를 딴 MH는 귀국후 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세워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급기야 2000년에는 그룹 단독 회장에 취임했다. ‘왕자의 난’의 상처를 털고 MH시대를 여는 듯했다. 하지만 2003년 8월 4일 계동사옥 12층 집무실에서 몸을 던지고 만다.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저 유서를 통해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만 했을 따름이다. 대북송금 특검 등에 따른 중압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한 측근은 당시 “극심한 중압감 때문이었다면 가족들이 낌새를 알아챘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일축했었다. 투신하기 직전, 가족과 식사한 것을 두고 미리 자살을 준비했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이 역시 MH가 일요일에는 가족들과의 외식을 즐겼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MH는 바깥일을 집에 와 자상하게 털어놓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가급적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등 가정적인 편이었다. 한 측근의 얘기다.“(대북송금·비자금 수사 등이 진행되자) 나 혼자 책임지겠다는 말씀을 여러번 하셨다. 그때는 혼자 감옥가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살을 염두에 뒀던 것 같다. 그렇더라도 투신하기 두달 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오자 부인(현 회장)에게 매일 순두부를 끓이라고 했던 점으로 미뤄보아 투신 결심은 순간적으로 이뤄졌던 것 같다.” 소탈하면서도 합리적이고 머리도 좋아 따르는 이가 많았던 MH. 그는 그러나 끝내 아버지의 꿈(대북사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삶을 접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55살때였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며느리들 현대가의 며느리들은 4월을 ‘제사의 달’이라고 부른다. 시아버지(정주영 회장)가 생전에 워낙 제사를 중시한 데다 온갖 제사가 몰려있어 4월에는 아예 청운동 시댁 부엌에서 살다시피 했다. 시아버지의 독특한 ‘밥상머리 교육’ 때문에 새벽마다 시댁으로 가 아침식사도 직접 준비해야 했다. 한 며느리는 “새벽 3시반에 갔다는 항간의 얘기는 다소 과장이고 이를 때는 4시반, 보통때는 5시나 5시반쯤 갔다. 시아버님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새벽마다 수행원들 몫까지 김밥을 엄청나게 쌌던 기억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언젠가 한번은 아들들이 꾀가 나 아침식사 회동에 몇번 빠졌다. 대로한 왕회장이 “모두 들어와 살라.”고 불호령을 내려 1년간 청운동 시댁 주변에 모두 모여산 적도 있다고 한다. 여자들이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왕회장이지만 말년에는 겸상 식사도 허용했다고 한다. 맏며느리 이양자씨는 수도여대를 나와 한때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이씨가 91년 암으로 세상을 뜨면서 실질적 맏며느리 역할을 해온 둘째며느리 이정화(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부인)씨는 당시 명문으로 꼽히던 숙명여고를 나왔다. 빼어난 미모로 유명했던 넷째며느리 이행자씨는 한양대 출신으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숙명여대를 졸업했다. 유난히 여대 출신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여자는 여대를 가야 한다.”는 왕회장의 보수성 때문이었다. 이화여대에 수석 입학해 화제가 됐던 손녀 유희씨(고 몽필씨 딸)도 원래는 연세대 원서를 다 써놓은 상태에서 할아버지에게 ‘보고’했다가 된통 혼이 난 뒤 여대로 틀었다고 한다. 며느리든 딸이든 해외유학까지 다녀오고도 회사 경영이나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것도 유교적 가풍 탓이다. 왕회장은 “살림에만 신경쓰라.”며 며느리들에게 골프도 치지 못하게 했다. 현정은 회장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골프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이 훨씬 흐르고서야 뒤늦게 골프를 배웠지만 영 재미가 붙지 않아 골프장에 딱 세번 나가본 뒤 관뒀다고. 오는 10월 ‘금강산 골프장’ 개관에 맞춰 상징 티샷을 날리라는 임원들의 압력이 많아 여간 고민이 아니라고 한다. 한때 기체조를 배웠으며 ‘걷기’ 가 취미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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