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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빈치코드’ 伊 모의법정 설전

    예수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낳은 딸이 교황으로서 적통을 이었어야 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담아 논란을 불러일으킨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의 역사적 진위를 가리는 모의재판이 이탈리아에서 열리고 있다.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향인 빈치시에서 지난 18일(현지시간) 개정된 모의법정에는 많은 예술 전문가들과 보수적인 가톨릭 성직자들이 ‘원고’로 참여했다. 이들은 독자들이 작가 댄 브라운이 꾸며낸 ‘성서의 진실’이라는 픽션과 역사적 진실을 혼동해선 안된다고 역설했다. ●‘최후의 만찬’ 막달라 후계자 인정 꽉 찬 원고석과는 달리 소설을 옹호하는 ‘피고’석에는 수백명의 독자들만이 참석했다. 브라운은 2003년 6월 소설 출간 직후 미국 NBC방송의 ‘투데이쇼’에 출연,“주인공 로버트 랭던 등 등장인물을 제외하고 예술과 건축, 밀교의식, 비밀결사에 관한 모든 내용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소설은 다빈치가 실제로는 여자 교황의 적통성에 찬동하는 비밀결사의 지도자로서 그의 작품들에 여성 교황의 적통성을 주장, 옹호하는 코드들을 교묘히 숨겨왔다는 점을 담고 있다. 예수와 12제자의 만찬을 그린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제자들 가운데 막달라를 가장 믿음직스러운 후계자로 인정했음을 드러내려고 다빈치가 의도한 것이라거나,‘모나리자’가 사실은 다빈치의 초상화로 여성의 세계 지배를 당연시하는 다빈치의 세계관이 투영된 것이라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가톨릭 지도자들이 막달라를 마녀로 낙인찍어 성배를 둘러싼 진실을 은폐하려 했으며, 교황청의 추적으로부터 예수의 후손들을 보호하기 위해 1099년부터 시온수도회가 실존해 왔다고 주장했다. ●보수 기독교계 반발… ‘유죄 평결’ 이같은 내용은 가톨릭은 물론, 보수적인 기독교단으로부터 전례없는 반발을 불러왔다. 예수를 신성한 존재에서 하루 아침에 보통 인간으로 격하시킨 신성모독이라는 항변이었다. 모의법정을 기획한 알레산드로 베초시 레오나르도 박물관장은 다빈치 초상화와 모나리자를 비교한 결과 귀와 입, 눈동자, 표정 등에서 확연한 차이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록과 회화작품 사진 120장을 공개, 소설의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잡겠다고 덧붙였다. 소설 속에서 성서의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암약하는 바티칸의 비밀결사로 묘사된 ‘오푸스 데이’(하느님의 과업) 대표도 법정에 나와 자신들을 둘러싼 오해를 독자들에게 해명한다. 모의법정의 평결은 ‘유죄’가 예정돼 있다. 소설 ‘다빈치 코드’는 세계적으로 750만부가 팔렸고 소설 속 논란만을 정리한 책이 10종이나 쏟아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6) 신도안은 대한독립의 소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6) 신도안은 대한독립의 소망

    ●신도안 사람 김씨 김철호(가명) 노인(78세)을 다시 만난 것은 금년 초였다. 옛날 신도안 사람들의 생활이 궁금해 거기 살던 이를 수소문하던 참에 그와 재회하게 된 것이다. 1988년 봄, 먼지가 풀썩거리는 시골길을 따라 소형차를 몰고 간 곳이 충남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였다. 나는 종교사회학적 입장에서 신도안을 조사할 계획이었다. 부남리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유독 김씨가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았다. 차분하면서도 다부진 말씨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집안 내력도 독특했다. 김철호씨는 3대째 신도안에 살고 있는, 이를테면 신도안 토박이였다.19세기 말 그의 조부 김병선이 평안도 정주에서 문전옥답을 다 처분하고 식구를 인솔해 들어온 곳이 바로 부남리였다. 밥술이나 먹던 김씨의 조부가 하루아침에 고향을 등진 것은 ‘정감록’의 예언을 좇아서였다.‘머지않아 난리가 난다. 조선이 망하고 새 왕조가 계룡산에 들어선다.’ 김씨의 조부는 신도안에 들어가면 난리도 피하고 새 세상에서 벼슬도 할 수 있단 말에 귀가 솔깃해 마침내 고향을 등졌다고 했다. 구한말에는 외세의 간섭이 심해지고, 각종 민란과 갑오동학농민운동 등으로 사회가 몹시 혼란했다. 그 시절에 신도안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본격화됐던 것인데 이주민 중엔 수 백 년 동안 지역차별에 희생됐던 서북 출신이 많았다. 본래 살림살이가 유족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정감록’이 처음 출현한 곳도 서북지역이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김철호씨의 조부는 전형적인 초기 이주민이었다. 신도안의 토착인구는 19세기 초까지 수십 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부터 이주민이 점증한 결과,1918년 말 총 584호에 남녀 2667명으로 불어났다. ●신도안의 여러 뜻 ‘정감록’의 신봉자들은 누구나 새 도읍지를 신도안이라 믿었다. 이 태조가 대궐 터를 닦던 곳이고 계룡산에서 가장 빼어난 명당이기 때문에 거기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 신도안이란 지명엔 흥미로운 유래가 있다. 신라 때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계룡산에 왔는데, 그는 신라 사람들이 계룡산의 정상인 천황봉 아래 있는 제자봉(帝字峰)을 제도(帝都)라 일컫는 사실을 알고 격노했다. 엄연히 중국에 황제가 있는데 신라같이 작은 나라에 제도(帝都)란 말은 당치 않으니 당장 바꾸라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제도’의 ‘제(帝)’ 자에서 양편 획(劃)을 떼 신(辛)자로 고쳐 ‘신도(辛都)’라 불렀다 한다. 신도안이란 지명을 둘러싼 해석은 제각각이다.1988년 조사 당시 내가 현지서 만난 계통불명의 어느 신종교단체 교주는, 새 세상을 가져다줄 구세주가 도읍할 곳이므로 ‘신도안(新都案)’ 즉, 신도읍 예정지라고 했다. 단군을 모신다는 어느 신종교단체의 사제는 이곳은 신정(神政)이 베풀어질 곳이라 ‘신도안(神都案)’이라 해야 옳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동학 계통의 어느 신종교인은 정감록에 예정된 정씨(鄭氏)의 도읍인 때문에 조선왕조의 도읍은 아니라는 뜻이 있어 ‘新都안’이라고 했다. 그는 ‘안’은 아니라는 부정의 뜻이라고 재삼 강조했다. 김철호 씨를 비롯한 현지 주민들은 ‘새로운 도읍지의 안쪽’ 즉, 신도내(新都內)로 이해했다. 이번에 다시 만났을 때 김씨는 21세기엔 드디어 신도안 시대가 열려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거라 했다. 그는 아직도 3대를 품어온 희망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지명에 대한 해석은 서로 달랐지만 신도안이 장차 일대변화를 불러올 중심지여야 한다는 믿음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정감록’의 신봉자들은 세상이 그냥 이대로 지속돼선 안 된다, 뭔가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확신을 가진 듯하다. 따지고 보면 이런 믿음은 기독교와 불교를 비롯한 이른바 모든 고등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정감록’ 신봉자들은 질적 변화의 진원지를 신도안이란 구체적인 장소로 못 박은 점이다. 신도안의 지리적 범위를 묻는 내 질문에 김철호씨는 이렇게 답했다.“계룡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한참 내려오면 암용추와 숫용추 두 폭포가 있어. 바로 그 아래 한 자락이 신도안이지. 충남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 석계리, 용동리, 정장리에 대덕군 진잠면 남선리를 더한 5개 마을이 신도안이란 말이여. 일제 때부텀 행정구역으론 그랬어.” 지도를 펴놓고 보니 대략 동서 6㎞, 남북 7㎞ 정도 공간이었다. ●3·1운동으로 조성된 신도안 열풍 1919년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신도안을 향한 이주 물결이 한층 거세졌다. 엄밀한 의미로 독립만세운동은 실패가 아니었다. 그 영향으로 상해임시정부가 세워졌고 식민당국도 무단통치를 이른바 ‘문화정책’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수십만 명이 일경의 체포, 구속, 구타로 시달림을 겪은 터라 후유증이 몹시 컸다. 상당수 민중은 일종의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 심리적 위안을 받는 일이 시급했다. ‘정감록’이 그 문제를 떠맡았다. 알다시피 정감록은 현재의 평안과 미래의 성공을 기약하는 길지(吉地)를 선사했다. 정감록을 믿었던 민중은 가족을 거느리고 이주대열에 섞였다. 무엇보다도 신도안이 가장 인기 있는 길지였다. 거기서 기도하면 소원성취 할 수 있다, 암수 폭포수가 흐르는 신도안 개울물에 서식하는 올챙이를 복용하면 만병통치 효과가 있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김씨가 부친 김연수에게 들은 바로,1920년쯤 3·4월이면 올챙이를 잡으러 개울가로 몰려드는 인파가 수천 명이나 됐단다. 김씨도 개구쟁이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올챙이를 꽤 많이 잡았다고 한다. 실제로 1919년 이후 4∼5년 동안 신도안의 인구는 급성장했는데 이 점은 통계로도 입증된다.1923년 말 1570호에 7008명으로 5년 전인 1918년에 비해 3배가량 늘어났다. 신도안은 이미 사람이 가득 찼기 때문에 그 주변 마을로 이주민이 몰려들 지경이었다. 그들은 대개 ‘정감록’을 신봉하는 신종교단체들에 속했다. 아예 그런 신종교단체가 수백 명의 신도들을 이끌고 이주해온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금강교가 그랬다.‘금빛 병풍 산기슭에 만 명이 살 수 있다’는 ‘정감록’의 구절을 근거로 금강교도들은 신도안에 근접한 충남 연기군 금남면 금천리에 터를 잡았다. 하루아침에 100호도 넘는 큰 마을이 들어섰다. ●신도안에서도 꺼지지 않는 대한독립의 꿈 나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점이지만, 신도안 이주는 독립에 대한 열망과 맞물려 있었다. 이미 1910년대 중반에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증산교의 일파인 음치교와 태을교 측은 다음과 같은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승리로 돌아간다. 정진인이 한국 출신 장교를 거느리고 독일편에서 싸우기 때문이다. 세계전쟁이 끝나면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나 인류가 모두 사멸하게 돼 있으나 음치교나 태을교를 믿는 신도들만은 재난을 면한다. 어쨌거나 세계전쟁을 마무리지은 정진인은 대한독립을 이룬 다음 계룡산에 도읍한다. 이때가 되면 음치교나 태을교 신도들은 신앙심과 포교성적에 따라 관직을 상으로 받는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흥미롭게도 그들 신종교단체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할 것으로 점쳤고, 그 이유를 정진인에게서 찾았다. 당시 독일은 일본과 적대관계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심정적으로나마 독일편을 들었다고 풀이된다. 음치교나 태을교도 그랬지만 신종교의 대부분은 정감록을 믿었다. 그들은 진인왕의 등극을 기다렸는데 그것은 나라의 독립을 뜻하기도 했다. 진인왕은 어떤 경우에도 일본의 꼭두각시일 수가 없었다. 여러모로 허황된 예언이었지만 신종교 단체가 퍼뜨린 유언비어에는 대체로 독립을 열망하는 민중의 마음이 얼마간 담겨 있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뒤부터 민중은 국가의 독립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일단 나라를 되찾아야 개인의 평안과 출세도 가능하다는 인식이었다. 식민지 당국은 이들 ‘위험한’ 신종교단체를 탄압했다. 일제는 그런 단체들에게 사기, 폭력, 금품 갈취, 음란행위 따위의 죄목을 씌워 마음대로 탄압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들 단체의 특징이었던 민족주의 성향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빌라도 총독이 신종교 지도자 예수를 처형할 때 파렴치범과 나란히 십자가에 매달았던 것도 그 비슷한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1920년대에도 신도안 이주를 부추기는 유언비어들이 계속해서 나돌았다.1921년쯤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에는 다음과 같은 소문이 유행했다.‘정감록’에 왜왕(倭王) 3년을 지내고 가도(假都) 3년이 되면 참된 정씨 왕이 나타나 계룡산 신도에 나라를 세운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왜왕 3년이란 총독 삼대(데라우치 마사타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사이토 마코토)요, 가도 3년은 상해임시정부 3년이다. 요컨대 1921년쯤 계룡산 신도안에 임시정부가 도읍을 세운다는 예언이었는데, 그 말이 퍼지자 신도안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1921년 한 해 동안 모두 610호에 2443명이 신도안에 정착했다. 김철호씨는 고향마을 선배 중에도 그 때 이주해온 집안이 적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경기도 교하 지방에도 조선독립에 관한 유언비어가 널리 퍼졌다. 계룡산 바위틈에서 다음과 같은 글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었다.‘음력 2월15일은 독립을 외치는 날이다.10번을 외치면 일가를 보존하게 되며,20번을 외치면 독립을 회복한다. 이 취지를 쓴 종이 두 장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자기 한 몸이 보존되고,8장을 전하면 충신 효자가 된다. 만일 이를 남에게 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고 했다. 주술적 효과를 가진 종이 쪽지가 계룡산 바위틈에서 발견됐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것은 어느덧 계룡산은 독립을 실현해 줄 희망의 등잔이요, 신도안은 그 불꽃이 타오를 심지가 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어느덧 신도안은 민족의 성지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신도안의 명물 칠성교의 ‘지푸라기 북’ 1920년대 민중의 관심사는 신도안이 과연 언제 도읍이 되는가, 달리 말해 나라가 독립될 시기를 점쳐 알아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1924년 신도안 사람들은 지푸라기 북(草鼓) 하나를 만들었다. 그 북은 김철호씨의 고향 부남리의 칠성각에 안치되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그 마을에 있던 칠성교란 신종교의 보물이었다. 부남리에 관한 일이라 나는 김씨에게 그 북을 아는지 물어보았다. 뜻밖에도 김씨의 부친과 평안도 박천에서 내려온 부친의 친구 분이 모두 칠성교를 믿었다고 한다. 김씨 역시 어린 시절 부모의 손에 이끌려 칠성교당에 다녔단다. 1928년 그 북을 쳐 만약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으면 한국 종교계의 우두머리로 삼는다는 소문이 원근에 파다했다. 이 소문을 듣고 각지에서 몰려든 구경꾼만 해도 무려 2만 5000명이었다. 당황한 식민지 경찰은 서둘러 지푸라기 북을 불태워버렸다. 그러나 민중의 아쉬움은 수그러지지 않아 2년 뒤 북을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지푸라기 북이 소리를 낼 리는 없다. 하지만 ‘정감록’ 속의 정진인이 나온다면 그 정도 기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민중의 믿음이었다. 1989년 김씨를 포함한 신도안 주민들은 신도안에서 쫓겨났다. 이른바 6·20 사업으로 신도안 일대에 군사시설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제5공화국의 시퍼런 서슬에 누구도 감히 저항하지 못했다. 알고 보면 신도안의 ‘정감록’ 신봉자들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신앙이 약화되었다. 상당수는 생계의 어려움과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로 떠나갔다. 김씨는 고집스럽게 신도안에 눌러앉았지만 그의 두 자녀만 해도 이미 오래 전에 서울로 나갔다고 한다. 지금은 지푸라기도 북도 없고,‘정감록’의 예언에 목을 매는 이들도 많지 않지만 때로 간절한 소망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다. 팔순을 바라보는 김철호 씨가 아직 신도안 시대를 꿈꾼다 해도 그 허망함을 탓하기만 해야할지 모르겠다.(푸른역사연구소장)
  • 美 성폭행신부 12~15년형

    성직자로서 어린 소년을 성폭행, 미국 사회와 가톨릭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폴 샌리(74) 전 신부가 15일(현지시간) 아동강간 혐의로 12∼1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보스턴 교외 케임브리지 법원의 스티븐 닐 판사는 이날 “믿음과 권리를 이보다 더 오용한 사례는 상상할 수 없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피해자와 다른 희생자 가족들은 수갑을 차고 법정을 빠져나가는 샌리의 등에다 욕설과 야유를 퍼부었다. 한때 불우한 어린이들과 동성애자들을 극진히 보살펴 ‘거리의 신부’로도 불렸던 샌리는 1983년 당시 6살이던 피해자를 사제관이나 고해성사실 등으로 불러 6년간이나 성폭행했다. 올해 27살인 피해자는 검사가 대신 읽은 성명에서 “나는 그가 감옥에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검사측은 종신형을 구형했으나 변호인측은 그의 나이 등을 감안하면 사형에 가까운 형량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보호관찰 10년도 포함시켜 가석방은 8년이 지난 뒤에나 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성폭행 성직자가 교도소에서 목졸려 죽은 것을 감안하면 샌리 역시 교도소에서 다른 죄수에 의해 살해될 가능성이 크다. 샌리는 2건의 아동강간 등으로 지난주 배심원들로부터 유죄 평결을 받았다. 그에게 성추행을 당한 아동은 20여명에 이른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학력·직업 속여 파혼했는데 오히려 위자료 청구소송 당해

    저는 회사에 다니고 있고 25살입니다.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남자를 만나서 1주일 정도 교제를 했습니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 친하게 됐습니다. 그 남자는 명문 고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모 시청 일반직 7급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양가의 부모님과 친지들 앞에서 약혼식을 올렸지만 알아보니, 그 남자는 그 고교를 나오지도 않았고 시청 일반직 공무원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남자에게 파혼을 통고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약혼을 파기했다면서 위자료 5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영희(가명)- 영희씨, 위자료 소송 중에 오히려 영희씨가 그 남자를 상대로 반소를 걸어서 위자료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작가미상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사랑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사업이다.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현재 당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 미래는 신의 영역에 속한다. 내 어찌 현재 만나고 있는 이 사람에게 진실로써 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시가 있습니다. 누구나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진실로 대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일생의 반려자를 선택해 혼인을 약속하는 약혼에는 더더욱 진실이 요구됩니다. 약혼에 진실이 없다면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 약혼을 했다고 해도 결혼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영희씨가 속히 결단을 내려 파혼통고를 했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판례 중에는 질문과 거의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 경우도 남자가 명문고교를 졸업하고 시청 일반직 공무원이라면서 약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고등학교 병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청 산하 문화회관에서 기능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여자가 이 사실을 알고 파혼선언을 했더니 남자가 먼저 위자료 소송을 걸었습니다. 여자측도 반소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 결과, 남자는 위자료 3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약혼할 때는 당사자의 학력, 경력, 직업 등이 평가의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이를 속인 것이 약혼 뒤에 밝혀져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깨진 경우에는 약혼을 유지하고 혼인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법원은 이 파혼은 적법하다고 했습니다. 파혼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약혼예물의 처리입니다. 약혼예물은 앞으로 혼인이 성사될 것을 전제로 건네준 선물입니다. 결혼을 할 것이 아니라면 예물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파혼을 하게 되면 반환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법률용어로는 “혼인의 불성립을 해제조건으로 하는 증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혼인이나 사실혼이 성립된 경우는 예물을 반환할 필요가 없습니다. 합의로 파혼할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의 합의로 예물의 반환문제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합의가 안되거나 어느 한쪽의 과실로 파혼된 경우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파혼에 과실이 있는 당사자는 약혼예물의 반환청구권이 없습니다. 선의·무과실의 당사자는 반환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약혼 중의 정조상실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문제입니다. 약혼을 하고 서로 성관계를 하더라도 누가 막을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관계 후에 결혼에 골인하지 못하고 파혼된 경우, 그 정조상실로 인한 위자료청구를 할 수 있을까요. 1960년대 이전의 판례는, 혼인 전에 몸을 허락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 위자료 청구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판결문을 보면 “약혼은 혼인할 합의에 그치는 것으로서 동거의무까지 허락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남녀간의 동거의무는 혼인단계(사실혼 포함)에서 비로소 발생하는 것으로 약혼단계에서의 남녀관계는 권리로서 주장하거나 의무로서 강요당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의 판례는 약혼 중의 정조상실을 이유로 한 위자료청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든간에 혼인 전에는 서로 정조를 지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살가워진 CEO

    “김정만 사장입니다. 설날을 맞아 임직원 여러분 가정에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며 연휴 잘 보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납시다.” 지난 설 연휴때 LG산전 직원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김정만 사장의 휴대전화 음성메시지를 받고 놀랐다.1999년 LG산전 부사장으로 취임한 뒤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정상으로 돌려 놓은 김 사장인지라 이처럼 ‘살가운’ 모습은 기대하지 못한 것. 스치기만 해도 찬바람이 불던 대기업 CEO들이 부드러워지고 있다.IMF이후 대규모 구조조정과 ‘위기경영’으로 조직이 어느 정도 단련됐다고 판단,‘훈풍’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다. LG산전은 김 사장 재임동안 엘리베이터, 자동판매기, 동제련 사업을 매각하고 부채비율을 1000%에서 200%대로 낮추는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인력들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김 사장은 지난해 자율 복장이던 본사 직원들에게 넥타이를 다시 매게 하는 등 무섭고 딱딱한 이미지가 강했다.LG산전 관계자는 “회사가 그동안의 구조조정으로 정상궤도에 올랐지만 분위기가 많이 팍팍해져 올해부터는 ‘믿음과 존중’을 기반으로 한 조직문화를 가꿔보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지난달 청주 혁신학교 야간행군에 불시 참가해 교육생들을 놀라게 했던 김 사장은 앞으로 직원들과의 ‘생맥주 미팅’, 등반대회, 애프터서비스 기사들과의 간담회, 주니어보드 간담회 등 ‘스킨십’ 일정을 잡아놓고 있다. 이 달부터 2900여 직원의 결혼기념일에 일일이 축하 문자메시지도 보내고 있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에서 감사팀장을 지내 한때 ‘공포의 대상’이던 삼성SDI 김순택 사장은 “CEO는 때론 자상한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직원들을 다독거리며 꿈을 심어주고 있다. 김 사장은 지난달 10일에 이어 14일에도 신입사원 특강에 나서 “나도 사장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갖고 회사를 믿고 따라와 달라.”고 당부했다. 지난해에는 성년이 된 직원들에게 축하메시지를 담은 곰인형을 선물, 주위를 놀라게 했다. 삼성전자 LCD총괄 이상완 사장도 ‘겉보기’와 달리 다정다감한 CEO로 통한다. 이 사장은 최근 ‘중국집 주방장’으로 변신, 천안사업장 인근의 장애인 재활시설 ‘죽전원’ 원생들에게 자장면 130그릇을 직접 만들어 제공하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설날 연휴에도 충남 탕정사업장으로 출근,3월 양산 준비에 여념이 없는 직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데스크시각] 리더십을 벤치마킹하라/오풍연 공공정책부장

    올해 초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005년의 이슈’로 ‘리더십’을 꼽았다. 사실 각 분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에게 리더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그들이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하느냐에 따라 국가 발전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더십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역사도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없는 대로마제국은 생각할 수 없다. 관용을 주장한 링컨의 신념과 희생이 없었다면 미국은 남북의 두 나라로 갈라져 지금처럼 번영을 구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처칠이 있었기에 히틀러의 칼날을 무찌르고 영국과 유럽을 구할 수 있었다. 이들이 지금까지 존경받는 것도 탁월한 리더십을 갖췄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보면 리더십이 더더욱 절실해진다. 경제회생, 정치개혁, 여야관계, 노사관계 역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리더십이 발휘되기는커녕 점점 무너져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요한 고비마다 그것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주고 있다. 정치권의 리더십 실종은 누차 보아왔기에 언급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리더십을 거의 도전받지 않았던 노동계도 같은 전철을 밟는 것 같아 씁쓸하다.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복귀 무산은 이수호 위원장의 리더십 부재에서 비롯됐기에 더욱 그렇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지도자들이 리더십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세계와의 경쟁에서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 않은가. 국내에서 아옹다옹할 때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리더십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석학들이 부시 대통령에게 한 고언은 노 대통령이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하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위대한 지도자들은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정치적 적수들까지 포용했다.”면서 통합적 리더십을 주문했다. 또 존 미첨 뉴스위크 편집인은 “위대한 지도자들은 신념과 실용주의간에 균형을 맞출 줄 알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성공한 지도자의 덕목으로 꼽은 ‘서생적 문제의식’ 및 ‘상인적 현실감각’과 맥을 같이한다. 그럼 성공적 리더십을 살펴보자. 흔히 리더를 말할 때 4가지 자질을 거론하고 있다. 인격, 비전, 행동, 확신이 있느냐를 놓고 리더로서의 자질론을 저울질한다. 먼저 리더는 인격의 고결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또 최고의 리더는 실천하는 사람이다. 비전을 추구하기 위해 리더 스스로가 헌신하는 모습을 솔선해 보여줌으로써 비전에 대한 공감대를 넓힐 수 있다. 그럴듯한 말재주와 분위기 조성으로 한두번 남들을 현혹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금방 탄로나는 법이다. 아울러 리더는 건강한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이는 교만이나 이기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다. 특히 지도자에겐 ‘믿음성’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목표와 인센티브를 내걸어도 믿을 수 없는 지도자에게 자신을 의탁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그 목표 자체가 의심받기 때문이다. 카리스마나 통솔력, 뛰어난 언변 등 우리가 당연시했던 리더십 덕목보다는 오히려 도덕적 품성이 훨씬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 역시 겸허한 자기 반성과 수양에서 출발한다. 무엇보다 여야 정치권이 리더십 회복에 앞장서야 한다. 참여정부 출범 후 2년간 국민과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은 채 반목과 갈등만 증폭시켜 오지 않았는가. 각자 아집에 빠져 일방통행을 해온 결과다.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리더십을 벤치마킹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길 바란다. 오풍연 공공정책부장
  • [영화속 수능잡기] 간디

    지은 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가만히 앉아서 폭력을 고스란히 감수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마하트마(위대한 혼)’라는 존칭으로 불리는 인도 건국의 아버지 ‘간디’는 예외였다. 그는 제국주의의 폭력에 무저항으로 일관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다음과 같이 결의할 수 있게 해주소서.‘나는 지상의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직 신만을 두려워할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악한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이다. 나는 누가 뭐래도 불의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진실로 거짓을 정복할 것이다. 그리고 거짓에 항거하기 위해선 어떤 고통도 견뎌낼 것이다.’라고….”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며 그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간디의 고백은 그의 비폭력 무저항 운동이 단순히 물리적 폭력을 고스란히 감수하는 패배자의 정신에서 기인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폭력을 행사하는 데도 그 폭력에 굴하지 않는 사람, 더구나 얼굴에는 평화로운 미소까지 잃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 앞에서 폭력을 가하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왜 저 자는 쓰러지지 않는가. 쓰러지기는커녕 왜 오히려 당당한가. 저 자의 얼굴에 감도는 저 평화로운 미소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대체 어떤 믿음이 저 자로 하여금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게 하는가. 힘에 있어서는 내가 저 자보다 우위에 있을지 몰라도 도덕적으로 본다면 저 자가 나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닐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내심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바로 비폭력 무저항 운동이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로부터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이 이런 불안이다. 폭력을 가하는 자는 불안하고 오히려 폭력을 감수하는 자는 평화롭다는 이 역설을 이해할 때만이 우리는 비폭력 무저항 운동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다. 영화 ‘간디’는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운동의 한 단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1928년 12월 간디는 1년 이내에 인도에 주권을 달라는 요구를 내걸고 완전 독립을 달성할 때까지 전국적인 비폭력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한다.1930년 3월에는 소금세 신설 반대 운동을 시작한다. 소금 굽는 장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지만 영국군은 인도인들을 총칼로 제지한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팔짱을 끼고 행진을 계속한다. 영국 군인들의 폭력에 부상을 당해도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행진을 계속한다. 그들을 걷게 만드는 힘은 진리는 반드시 승리하고야 만다는 믿음이었다. 진리에 대한 믿음, 옳음에 대한 확신이 그들을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폭력 앞에서도 온화한 인도인들의 표정은 폭력을 이기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사랑’임을 말해 준다. 그들에게 그 온화한 표정을 가르친 자가 다름 아닌 간디였다. 이후 간디의 사상은 독재에 항거하는 모든 평화운동의 근본이 되었다.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 벤 킹슬리, 캔디스 버겐 주연,1983년작.
  • [도덕성 시비 대기업 노조] (下) 노·사 상생의 해법은

    [도덕성 시비 대기업 노조] (下) 노·사 상생의 해법은

    ■ ’일그러진 노조’ 왜? 노동 전문가들은 기아차의 ‘취업 장사’로 불거진 노조의 도덕적 해이가 “결국 곪은 것이 터진 것뿐”이라며 “특정 대기업 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노조(약자) 편향성, 강성 노조에 대한 사측의 눈치보기, 노조의 비민주성 등이 어우러져 ‘일그러진 노조’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예컨대 정치세력인 대기업 노조를 감싸는 듯한 정부의 태도,‘당근’을 제시하며 노조 간부 회유에 나서는 사용자, 이를 통해 권력화된 노조가 우리 사회의 ‘귀족 노동자’들을 양산해 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법과 원칙에 입각한 정부의 중재와 불법파업에 대한 사측의 엄격한 노조원 징계, 노조 운영의 투명성 확보와 시스템 정착만이 건전한 노사 문화와 상생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일부 대기업 노조의 도덕성 상실을 이유로 아직도 사측의 전횡에 시달리는 비정규직과 영세 노조까지 싸잡아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정규직·영세노조와 구분돼야 노사가 상생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보완, 노사정 3자의 파트너십 정신이 요구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노조의 1차 대화 상대인 사용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노조의 권력화 이면에는 사용자의 묵인이 일정 부분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해 사용자가 끝까지 책임을 묻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28일 노동부에 따르면 불법파업에 대해 사측이 노조에 제기한 손배·가압류는 갈수록 줄고 있다.2002년 59건,2003년 33건, 지난해 17건으로 조사됐다. 연세대 연강흠 교수는 “정부나 사측이 불법파업에 대해 노조를 제대로 응징한 적이 있느냐.”면서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흐지부지 넘어간 것이 결국 ‘브레이크’없는 노조를 만들었다.”며 현행 법률의 엄격한 적용을 주문했다. 홍익대 김종석 교수는 노조의 이권 개입을 일종의 ‘프리미엄’으로 해석하고 이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인 보완을 주장했다.“대기업에서는 힘의 균형추가 노조로 넘어간 만큼 외부 견제 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자신만의 논리에 빠져 자정 기능을 상실한 노조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제2의 기아차’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노조 절대권력에 사용자 대항권 부족” 자유기업원 권혁철 박사는 “노조의 힘은 사실상 일부 간부들의 독점적인 지배구조와 조합비에서 나온다.”면서 “회계와 노조활동의 투명성을 높인다면 노조의 권력화는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불법에 대한 정부와 사측의 합당한 처벌까지 이뤄진다면 지금의 귀족 노조는 발을 붙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경영자총협회 김영완 전문위원은 “노조의 절대 권력은 사용자의 대항권이 부족해서 나타난 결과”라면서 “대체근로 허용 등 노조에 맞설 수 있는 권리를 사용자측에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연구원 이주희 박사는 “기아차와 같은 유사한 사례가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노조가 그렇다는 것은 ‘오버’”라면서 “무엇보다 사측과 노조 간부들간에 이뤄지는 음성적이고 왜곡된 거래를 차단하는 것이 개혁의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美 윤리·투명 노조운영 법으로 규정 미국은 윤리적이고 투명한 노조 운영을 위해 법(Landrum-Griffin)으로 명시해 놓고 있다. 우선 노조로부터 조합비 미납에 따른 징계를 빼고는 그 어떤 조합원도 벌금이나 정직, 제명 처분을 받지 않도록 했다. 또 재정에 대한 회계처리 사항과 노조·사용자 사이의 자금 이동 사항을 의무적으로 공개한다. 특히 신탁관리제를 도입해 노조의 자금운영에 대한 부정부패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해 무제한적인 노조의 교섭 요구 남발을 방지하고 있다. 노조의 단체교섭권은 노조 설립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교섭파트너로 인정받아야 획득할 수 있다. 영국은 파업 찬반투표 실시 7일 전에 사용자에게 일시 및 참가자 수를 통보해야 하며, 법정 투표용지 사용 의무화와 우편투표제를 실시한다. 경총 김영완 전문위원은 “국내 일부 노조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개별 조합원을 방문해 투표를 종용하고, 미리 찬반투표를 가결시켜 놓고 교섭에 임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노조의 비민주성이 이같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밖으로만 시선을 돌리는 노조의 행태는 극히 비이성적”이라고 꼬집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결별한 ‘파업동지’ …그후 10년 “사고없이 멋진 공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엑슨모빌사에 현대중공업 노조를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회사 고객인 세계 최대 정유회사 엑슨모빌사측에 지난 26일 감사 편지를 보냈다. 회사측은 노조의 감사편지가 선주사에 노사안정과 기술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게 해 앞으로 수주활동에 큰 힘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울산에 있는 또 다른 대기업으로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도약을 꾀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공장은 비정규직 문제로 요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지난 19일에는 비정규직 노조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하는 바람에 5공장 투싼 생산라인이 하루종일 멈췄다. 회사측은 이날 투싼 260대를 생산하지 못해 46억원의 손실이 났다고 했다. 현대중공업(위원장 탁학수)은 조합원 2만여명, 현대차(위원장 이상욱)는 조합원 4만 1000여명(울산 공장 2만 5000여명)으로 우리나라 노동계의 양대 축이다. 1987년 동시 창립한 두 거대 노조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에 걸쳐 우리나라 노사분규를 주도하고 흐름을 좌지우지했던 강성노조의 대표주자였다. 그러던 두 노조가 뚜렷이 비교되는 다른 길을 지금 가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실리·합리 노조로 탈바꿈했다. 고공농성의 효시로 불리는 ‘골리앗 크레인 점거 투쟁(1990년 4월)’을 했던 투쟁지향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민주노총과도 ‘정치성 투쟁에 치중한다.’며 한동안 거리를 두다 지난해 9월 결별했다. 노조는 결별을 선언하면서 “어떤 노조도 시도하지 못했던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보이겠다.”며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돼 있는 노조활동 관행을 과감하게 떨치고 개인·회사·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21세기 노동운동의 방향타가 되겠다.”고 천명했다. 현대차 노조는 여전히 투쟁하는 강성이미지로 남아 있어 정치적 성향이 강하다는 평이다. 노조 설립 뒤 94년 한 해를 빼고 해마다 파업을 거르지 않았다. 올해도 사정이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내 비정규직 문제에다 2년마다 돌아오는 단체협약 협상까지 걸려 있다. 현대중공업이 떠난 민주노총을 지탱하는 핵심사업장으로, 사업장 밖의 각종 노동관련 문제에 대해 노·정 대리전에 나서야 하는 점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차 노조 행보가 달라지게 된 원인은 두 사업장의 작업특성 때문이라는 게 노동전문가 등의 공통된 견해다. 조선업은 한두달 작업을 중단해도 나중에 몰아치기로 일을 해 공기를 맞출 수 있지만 자동차의 경우 파업은 바로 생산차질로 이어져 타격이 심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대중공업 사측은 원리원칙을 벗어나는 노조 요구에 대해서는 파업으로 압박하더라도 끝까지 수용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1988년에는 이듬해까지 128일 동안 파업을 견뎌낸 적도 있다. 이것이 해를 거듭하면서 원칙으로 자리잡아 노조측도 인식을 바꾸게 됐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장기간 파업을 견뎌내기 어려운 나머지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더러 수용하는 바람에 노조 입지와 목소리가 강해졌다는 해석이다. 현대차 노조가 단협 때마다 인사권과 경영권 관여를 주장, 일부 요구를 관철시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경우 인사·경영권은 회사 고유권한으로 인정, 논란의 소지가 있는 조항은 언급하지 않는다고 회사측은 설명한다. 한편 현대차 현장에도 1∼2년 전부터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파업투표 찬성률이 낮아지고 집행부의 무리한 투쟁을 지적하며 제동을 거는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많다. 잦은 파업에 염증을 느끼는 조합원들이 늘어나는 데다 조합원 평균 연령(현대차 41세·현대중공업 44세)이 높아지면서 성향이 경제적 안정을 중시하는 온건·합리로 점차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는 풀이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논술이 술술] 엔트로피 글쓴이/제러미 리프킨

    클라우지우스가 1865년에 열역학 법칙을 발표한 뒤,‘엔트로피’는 근대 과학의 기조와는 사뭇 다른 개념의 속성 때문에 과학 이외의 영역에서 가장 많이 주목하고 다루어진 과학 개념으로 자리잡아 왔다. 수많은 인문, 사회학적 저작들에서 ‘엔트로피’는 근대 물질 문명의 한계를 비판하기 위한 주요한 개념으로 인용돼 왔으며, 특히 현대에 와서는 생태계의 위기, 과학기술의 한계와 관련, 더욱 주목받고 있다. 열역학 법칙은 두 개의 법칙으로 구성돼 있다. 제1법칙은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해서 생성하거나 소멸될 수 없고 오직 형태만이 바뀔 뿐이라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이에 따르면 에너지는 계속 사용하더라도 고갈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예를 들어 석탄을 태우면 에너지 총량에는 변화가 없을지 모르지만 에너지는 탄산가스와 그밖의 기체로 변하여 공기 중에 흩어진다. 에너지의 손실은 없지만 태워서 일을 얻을 석탄은 다시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질 세계의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이다. 이에 따르면 에너지와 물질의 형태 변화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이뤄진다.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질서가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가 증가하는 상태로만 변할 수 있으며, 그 되돌림은 불가능하다. 이 때 사용 불가능한 형태로 바뀌어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엔트로피’라고 한다. 곧 엔트로피란 더 이상 일로 바꿀 수 없는 에너지의 양에 대한 척도이며, 엔트로피의 증가는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감소를 뜻한다. 최근 우리에게 ‘노동의 종말’이나 ‘접속의 시대’ 등의 저작으로 친숙해진 미국의 사회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은 이러한 ‘엔트로피’ 개념을 바탕으로 현대의 자원 고갈과 생태계의 위기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근대 이후 인간은 ‘발전이란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는 것이고,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의해 세계는 더욱 질서있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왔다. 그러나 오늘날 에너지 자원의 고갈과 심각한 환경 위기는 기술의 발전이나 생산 효율의 증가가 에너지의 추출이나 흐름을 더욱 빠르게 하고, 결국 이것은 에너지 분산이나 세계의 무질서를 촉진시킬 뿐임을 드러내고 있다. 리프킨은 이러한 상황에서 근대 이후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벗어날 것을 강조하며, 현재와 같은 고(高)엔트로피적 사회를 저(低)엔트로피적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이행이 불가피하다. 생태계의 조화 및 재생 능력의 한계 안에서 경제적 생산과 사회적 소비를 절제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엔트로피’법칙은 난폭한 약탈자로서의 지금까지 인간의 역할에 대한 반성과 현대 물질문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의 인류 문명이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으며, 대량 생산 및 대량 소비에 익숙해진 현재의 생활상을 유지하면서 그러한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은 없다는 사실이 날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독서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고1∼고3 -관련 교과:고등 사회, 과학, 윤리와 사상, 사회문화, 한국지리, 경제지리 -함께 읽어 볼 책과 고전:가이아(제임스 러브록·김영사), 우리 공동의 미래(세계환경발전위원회·새물결), 작은 것이 아름답다(슈마허·범우사), 인류의 위기(로마 클럽·삼성미술문화재단) -기출논제:1997·1999학년도 이화여대 자연계 모의 논술,1996학년도 연세대 정시 자연계 논술,1998학년도 경희대 정시 인문계 논술,2000학년도 한양대 정시 논술 ●생각해보기 -‘엔트로피’의 개념과 의의는? -쓰레기나 교통 문제 등을 예로 들어 ‘엔트로피’적 관점에서 그 원인과 궁극적인 해결 방안을 써보자. -석유에 기초한 현대 문명이 석유의 고갈로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 방안을 써보자.
  • [마니아] 춤 추실까요! ‘필라땅고’ 모임

    [마니아] 춤 추실까요! ‘필라땅고’ 모임

    “땅고의 바다에 빠져보세요.” 아르헨티나 탱고댄스인 필라땅고가 소리없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며 회원들은 저마다 필라땅고 예찬론을 늘어 놓는다.‘필라(phila)’는 아르헨티나 말로 ‘좋아하는, 사랑하는’이라는 형용사다. 커플댄스를 살펴보려는 참에 ‘행보칸’이라는 별칭으로 뛰고 있는 동호인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마음을 잇는 게 진짜 사교…‘사교춤’엔 사교가 없다? 지난 22일 오후 4시쯤 약속장소인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에 날씬한 몸매의 청년이 나타났다. 주인공이 바로 ‘행보칸’ 이준(35·회사원·서울 양천구 신정동)씨다. 이씨는 커플댄스 동아리에서 같은 회원으로 만난 ‘쌈바칸’ 강현주(32·여)씨와 백년가약까지 맺은 맹렬파 가운데서도 맹렬 마니아다. 이씨를 따라 길목을 5분쯤 걸어 들어가자 동교동 ‘한솔 2길’쪽 산뜻한 회색건물 지하 1층에서는 남녀 10명이 쌍쌍으로 다섯 짝을 이뤄 춤추기에 온힘을 쏟고 있었다. “한발 트위스트(Twist), 두발 트위스트…. 남자 프런트(Front), 여자 백(Back)…. 딴, 따안….” 쌈바칸의 주도로 강습이 이어졌다. 대형 스피커로 아르헨티나 음악을 틀어놓고 리듬에 따라 발을 맞춰보고, 잘못된 동작을 바로잡아주는 것이다. 이들은 필라땅고 회원 1130여명 중에서도 기량이 뛰어난 연구회 멤버들이다. 매주 토요일 이곳에 모인다. 많게는 20여명씩 되며 ‘쌈바칸 여사’가 회장을 맡고 있다. 온라인으로 소식만 주고받는 ‘고무줄 회원’을 빼면 주로 활약하는 숫자는 100여명이라고 이씨는 귀띔했다. 정보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만나 호흡을 맞춰 춤춰보지 않으면 헛방(?)이기 때문이다. “혹시 주변에서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느냐?”고 말을 건네자 회원들은 “뭐 우리만 떳떳하면 되지 않겠어요?”라고 되묻는다. “올해로 4년째 필라땅고 모임을 갖고 있다.”는 이씨는 “사교댄스 하면 흔히 남녀간에 이상한 문제로 여겨지던 세태는 문화를 잘못 받아들인 탓”이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어느 나라에나 춤이 있는 것처럼 댄스도 원래 하나의 사교문화인데, 문화를 잘못 받아들인 나머지 참된 만남의 자리로 인식하지 않아 사교라는 단어 자체가 심각하게 뒤틀렸다는 얘기다. 따라서 회원들은 사교춤이라는 단어를 꺼린다. 쌈바칸은 “다른 장르와 달리 필라땅고는 사람 인(人) 자 모양처럼 서로 기대는 형상으로 인간적인 장르라는 강점을 지녔다.”면서 “가족은 물론 이웃끼리 스킨십으로 마음을 이어주는 ‘안아주는 문화’의 하나로 이해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본동작을 6개월 정도 익히면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단다. 그러나 발걸음·손놀림 하나하나도 때마다 다르고, 음악도 애잔한 곡조에서부터 신바람나는 곡에 이르기까지 분위기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같은 춤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말도 보탰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내딛는 하나의 스텝” 서울이 아닌 다른 지방에서 매주 합류하는 회원도 더러 끼었다. 닉네임이 ‘올가’인 이진규(62·창원대 컴퓨터학과 강사)씨의 필라땅고에 대한 열정은 놀랄 정도다. 경남 마산시에서 여고 교사로 정년퇴임한 그는 퇴임식 때 제자들과 동료 선생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댄스파티를 열었다고 털어놓았다. 필라땅고에 대해 “춤 중의 춤이요, 마지막 춤이요, 춤의 황제”라고 자랑한다.‘올가’라는 별명도 이를 통해 최고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뜻에서 붙였다. 바로 오르가슴을 줄인 것이기 때문이다. 올가는 “필라땅고는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는 국가에서 많이 추는 춤”이라면서 “불 꺼진 가운데 음탕한 분위기 속에서나 몸을 흔들어대는 어두운 장르가 아니라, 서로에 대해 믿음을 주고받으며 리듬을 맞춰나가는 묘미를 맛보게 한다.”라고 소개했다. 동작이 역동적이고 화려하며 무엇보다 창작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필라땅고를 따라갈 장르가 없다고 뽐낸다. 고스톱판을 벌이거나 걸핏하면 밤을 새우는 음주문화를 대체할 수 있는 문화라며 활짝 웃었다. 그래서인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젊어보였다. 회원들에게 동료들의 나이나 직업 등 개인적인 일은 그다지 큰 관심사로 비쳐지지 않는다. 따라서 별명으로 불린다. 이 때문에 어느 정도 오래 만나온 사이여야만 서로의 일을 자세히 알게 된다.“살아온 나이가 아니라 땅고 나이가 중요하며, 오직 춤으로 말할 뿐”이라는 것도 그 때문이다. 행보칸과 쌈바칸이 결혼하기까지 얽힌 사연도 간단찮다.7년 전 먼저 입문한 행보칸이 동호회로 찾아온 쌈바칸을 지도하게 된 게 둘도 없는 인연을 맺어줬다. 쌈바칸은 집안 어른들에게 결혼 얘기를 꺼내자 “직업도 직업이지만 춤추는 사람을….”이라고 마뜩찮아 했다고 살짝 일러줬다. 부모님들이 신랑감을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다고도 했다.5년 전부터 커플댄스를 시작했는데 “말만 한 처녀가 어디 할 게 없어서 춤을 하냐.”며 혀를 차기에 모시고 와 보여준 뒤부터는 “우리 딸 내외가 커플댄스 전문가”라며 자랑하고 다닌다며 사람좋은 표정을 지었다. ●지하철에서도 “우리, 필라땅고 한번 해볼까요?” 행보칸은 젊은이들이 즐기는 힙합계통의 댄스와 비교하면 어떠냐는 질문에 “우열의 관계이기보다는 힙합 등의 장르는 개인의 끼를 발산하는 통로인 반면, 필라땅고는 부부라 하더라도 힘든 ‘정신 교통’의 통로라고 보면 맞다.”고 했다. 컴퓨터 발달 등으로 단절된 인간관계를 되돌릴 비상구라고 예까지 들어줬다. 필라땅고에 대한 자부심만큼이나 회원들의 열기도 매우 뜨겁다. 문화란 게 시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어서 아르헨티나 등 해외로 건너가 축제도 구경하고 관계자들을 만나 최신정보도 얻어내야만 한다. 쌈바칸 등 회원 3명은 지난해 3월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다. 탱고를 문화상품으로 해 외화 벌이에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아르헨티나는 해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국제 탱고경연대회(CITA)를 연다. 회원들은 1주일간 열린 경연대회를 살펴보고 돌아왔지만 쌈바칸은 각종 정보를 눈으로 익히느라 한달이나 머물렀다. 그는 “남편과 네살 난 딸아이를 내팽개치고 다녀왔다.”고 수줍어하며 자랑 아닌 자랑에 바빴다. 자신이 좋아하는 필라땅고를 적당히 즐기면서도 배운 기교를 다른 분야에까지 써먹는 알뜰파도 있다. 닉네임이 ‘프쉬케’(정신을 뜻하는 그리스어)인 안재은(35·여)씨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적어도 정모(정기적인 모임)에만은 빠지지 않고 달려온다. 운동치료사로 일하는 그는 최근 노인질환 치료에 활용한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워놓았다. 통상적인 운동으로는 무리가 가기 쉽다는 판단에서다. 회원들은 오후 6시30분쯤 되자 자리를 일단 접었다. 식사를 함께 한 뒤 일반 회원들이 모여들면 막을 올리는 필라땅고 파티 ‘밀롱가’에 다시 합류한다. 밀롱가란 아르헨티나 무곡(舞曲)의 이름을 딴 것으로, 많게는 100여명의 회원들이 음료와 포도주 몇잔을 곁들여 자유롭게 즐기는 무대다. 보통 새벽 1∼2시까지 이어진다. 발레·음악을 포함해 예술을 전공한 교사나 교수, 소방관 등 여러 직종, 특히 해외로 나갈 일이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딱히 즐길 장소가 마땅찮던 터에 인터넷 등을 통해 알고 찾아들게 된 ‘친구들의 모임’인 셈이다. 행보칸은 “언젠가 교사인 회원 한 명이 역시 교사인 부인 몰래 1년간이나 땅고를 배우다 가벼운 소동이 빚어진 적도 있다.”면서 남편의 움직임을 수상히 여긴 부인이 이곳을 찾아왔으나 지켜본 뒤에는 같은 회원으로 활약하게 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이 세계를 알고 나면 아무런 문제도 아닌데, 모르면 생각해보지도 않고 왜곡해버리기 쉬운 것 같아요.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동차를 타고 가다가도 공간만 생기면 필라땅고를 춥니다. 꺼릴 게 없다는 말이죠.” 글·사 진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희망의 전도사가 되자/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우리 사회를 절망으로 볼 것인가? 희망으로 볼 것인가는 보는 사람의 믿음과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절망으로 보는 사람이 많으면 그 사회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희망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으면 비록 절망적인 상황이 전개된다 할지라도 그 사회는 희망적으로 바뀌게 된다. 예를 들면 애급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은 애급에서 400년 동안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절망의 음식을 먹고 살아왔다. 그래서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모세라는 한 사람이 탈출(Exodus)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나아갔을 때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 발견되는 소박한 진리가 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현실과 절망적인 환경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한 민족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똑같은 사건과 환경 속에서 한 사람은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고 또 한 사람은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갈등과 격랑을 걸어왔다.4대 법안으로 시작된 끝없는 보수와 개혁의 대결과 극단으로 치닫는 이성 없는 정치와 갈수록 깊어지는 경제와 사회의 뒤틀린 구조 앞에서 우리 모두가 절망하고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여당이나 야당이나 막론하고 희망과 긍정적인 믿음과 시각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보수파 안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고 개혁파 안에서도 있었다. 청와대 안에도 있었고 길거리의 보통 사람들 사이에도 있었다. 문제는 보수냐 개혁이냐가 중요하지 않고 여당인가 야당인가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 이 민족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긍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오늘 우리 사회를 구원하고 바르게 세운다. 그들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꿈을 가진 전도사들이다. 그들은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미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점령된다. 우리 사회가 변하고 민족이 새로워질 수 있는 비결은 이러한 긍정적이고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희망은 내일을 만든다. 결코 정치권력이나 언론이나 여론이나 문화의 힘이나 지식과 돈의 힘을 목적으로 삼지 말라. 그것은 곧 시드는 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모든 힘들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2005년 들어 벽두부터 북한 핵문제로 인하여 6자회담의 논의가 뜨겁다. 경제 지표는 하나같이 절망적이고 정치는 실종되어 있고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여 불안해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과 달리 하나님께서 이 땅과 민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새로운 일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북한이 변할 것이고 남한이 새로워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걱정하지 마라, 내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지켜주고 보호하고 새롭게 할 것이다. 봄바람이 불면 산천에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듯이 고통당하는 이 민족위에 성령의 푸른 계절이 임하게 되고 분열하고 싸우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화해와 일치의 마음을 주고 민족을 새롭게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2005년에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사람들을 통하여 민족의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란다. 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 [라이스 청문회] 라이스 인용書 ‘민주주의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 이어 18일 상원 인준청문회에 나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까지 인용한 나탄 샤란스키의 책 ‘민주주의론’(The Case for Democracy)이 관심을 끌고 있다. 샤란스키는 구소련 반체제인사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영어 통역으로 일하다 9년 동안 수감됐던 인물. 석방된 그는 1986년 이스라엘로 건너가 세 차례나 각료를 지낸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 삶의 궤적이 그대로 투영된 이 책의 부제 ‘폭정과 테러를 극복하는 자유의 힘’은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함축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펴낸 이 책에서 ‘광장 시험 이론’을 제시했다. 민주주의란 공개된 장소인 광장 한가운데에서 수감이나 육체적 위해에 대한 공포 없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한다는 것.9·11테러가 발생한 21세기 지구촌을 자유사회와 공포사회로 양분한다. 자유사회는 한번도 그 안에서 서로 전쟁을 벌인 적은 없고 현대사에서 전쟁은 자유사회와 공포사회간, 또는 공포사회 안에서만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세계가 민주화 된다면 전쟁은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 부시 대통령 외교정책의 근간이라고 샤란스키는 짚었다. 구소련에서든, 중동에서든 폭정은 반드시 민주주의에 고개 숙이고 길을 비켜줄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정치는 더 이상 좌우의 문제가 아닌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샤란스키는 팔레스타인의 공포사회가 자유사회로 대체되지 않는 한 적대행위는 종식되지 않을 것이며, 이스라엘은 위험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사설] 고교성적관리 이렇게 엉망인가

    교육현장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지난 연말 터진 사상 초유의 수능부정 사건이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교사들에게 직접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일이 잇따라 드러났다. 서울의 한 고교에서는 교사가 담임 반 학생의 시험 답안지를 작성해준 사실이 밝혀졌다. 또 서울시교육청이 어제 발표한 데 따르면 서울시내 일반계 고교 다섯 가운데 하나는 30%를 넘는 학생에게 ‘수’를 주는 ‘성적 부풀리기’를 했다. 답안지를 대신 작성한 교사는 개인적 타락의 표본이요, 성적 부풀리기는 교사들의 집단적인 양심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대학 입학이 지상목표가 되다시피 한 교육 현실에서 고교가 입시교육기관처럼 변질되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그리고 이를 바로잡아 학교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 온 주체가 바로 일선 교사와 학교 당국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교사들과 학교 스스로 성적의 ‘덫’에 걸려 비교육적인 행태를 저지르고 있다. 답안을 대신 작성한 교사의 경우 그 원인을 본인의 도덕성 결여로 치부하더라도, 학교와 서울시교육청이 이 사태를 제대로 처리하려는 의지를 가졌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은폐 의혹을 받는 학교·교육청 관계자들을 조사해 엄중 문책해야 한다. 성적 부풀리기와 관련해서 서울시교육청은 허용기준과, 위반할 경우의 행정·재정적 징계조치를 발표했다. 허용기준이 다소 높아 교육청이 도리어 성적 부풀리기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오고는 있지만, 각 학교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불가피하다고 할 것이다. 학생들의 성적을 정당하게 매겨 학생·학부모 및 사회 일반의 믿음을 쌓아갈 주체는 결국 교사와 학교 당국이다. 엄정한 성적 관리로 땅에 떨어진 신뢰를 되찾기 바란다.
  • [재계 인사이드] 사명바꾼 ‘LS그룹’ 홀로서기 관심

    [재계 인사이드] 사명바꾼 ‘LS그룹’ 홀로서기 관심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한 LG전선그룹이 ‘LS’로 이름을 바꾸고 새도약을 선언,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LG의 우산에서 벗어나 홀로서기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다. 구자홍 LS그룹(옛 LG전선그룹) 회장은 19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계열 분리 이후 새 이름으로 출발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면서 “솔루션 업계의 선두주자로 성장하겠다는 뜻(leading solution)인 LS로 그룹명을 바꾸고 새롭게 출발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3월 계열사별 주주총회에서 각각 개명 승인을 받으면 100억원을 투입,LS 이름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도 “LS그룹은 중장기 사업방향과 비전 수립에 주력하겠다.”면서 “예컨대 LG의 전통인 서로에 대한 믿음과 존중을 바탕으로 투명하고 밝은 LS만의 조직 문화를 제시하고,6개 주력 계열사들이 참여하는 기술협의회를 개최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역량을 모으겠다.”고 강조했다. 장기 목표와 관련,“LS그룹은 새로운 사업을 찾기보다 기존 사업중 고수익 분야를 찾는 게 우선순위”라고 지적했다. 우선 사옥을 마련, 한 곳에서 힘을 집중시킬 예정이라는 사실도 밝혔다. 또 LG그룹과의 협력관계에 대해서는 “LG와 GS 계열사와도 협조해 느슨한 컨소시엄 형태로 프로젝트 공동 수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LS그룹내에서 또다시 계열분리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 “공동 경영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 오랫동안 함께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자홍 회장, 구자열 LG전선 부회장, 구자은 LG전선 상무는 각각 LG창업고문인 구태회·평회·두회씨의 아들들이다. 재계 서열 15위인 LS그룹의 자산 규모는 5조 1000억원으로, 전선·산전·니꼬동제련 등 6개 주요 계열사를 주축으로 17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승승장구’ 영화 말아톤의 조승우

    ‘승승장구’ 영화 말아톤의 조승우

    지난해 여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연습실에서 그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이미 여러차례 뮤지컬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였지만 워낙 까다로운 배역이라 주변의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던 때였다. “한번 연습하고 나면 온몸에 진이 빠질 정도로 힘들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적당한 긴장감과 도전의식이 불러일으킨 엔돌핀으로 가득차 있던 그의 상기된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조승우(25). 지난 하반기 뮤지컬계에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그가 이번엔 영화 ‘말아톤’(감독 정윤철,27일 개봉)으로 스크린을 장악할 태세다. 기자시사회 다음날인 18일,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선 또 하나의 도전을 끝낸 자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와 만족감이 묻어났다. ‘말아톤’에서 그는 자폐증세로 다섯살 아이의 지능수준을 가진 스무살 청년 ‘초원’으로 변신했다. 마라톤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까지 초원과 엄마(김미숙)가 겪는 힘든 여정을 그린 영화는 시사회내내 관객의 웃음과 눈물을 번갈아 이끌어냄으로써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하류인생’촬영 끝나고 보름 정도 몸이 아팠을 때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따뜻한 감동이 전해져오는 느낌이 참 좋았어요. 감독님에 대한 믿음도 컸고요.” 하지만 자폐아의 독특한 습관과 말투, 그리고 마라톤까지 모든 것이 그에겐 넘어야 할 산이었다. 자폐아 연기를 위해 실제 모델이 된 배형진씨를 수차례 만나고, 그가 다닌 자폐증 전문학교도 방문했다. 작은 몸동작 하나, 미세한 눈짓 하나까지 머리에 꼭꼭 담아두며 ‘내 모든 걸 쏟아 부으리라.’다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촬영 첫날 그는 장애 연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눈 깜빡이는 순간까지 설정해놓고 촬영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내 연기가 껍데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게 아닌데 싶었죠. 촬영을 중단하고 감독님이랑 대화를 나눴어요. 그러면서 초원이 자폐아가 아니라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호기심많은 자개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순간부터 그는 연기한다는 생각을 버렸다. 대신 즉흥연기하듯 그때그때 상황에 녹아 들어갔다. 영화찍는 3개월 동안 일상생활에서도 초원이처럼 행동하는 그에게 감독은 “너처럼 칼같이 뾰족하고 예민한 배우에게 이런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그는 “영화라는 장르가 좀더 편해지고, 한발짝 나간 듯한 자신감이 든다.”는 말로 ‘말아톤’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으로 데뷔해 ‘와니와 준하’‘후아유’‘클래식’‘하류인생’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 이력은 남다른 데가 있다. 스타이면서도 마이너 같은 느낌을 주는 톡특한 행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블록버스터 영화나 방송,CF에 출연하는 걸 나쁘게 보진 않아요. 하지만 내가 가진 걸 한꺼번에 소진하고 싶진 않아요. 맨날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다 관객이 식상해하면 얼마나 서운하겠어요?휴대폰 배터리도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일견 나약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고집스러울 정도로 자기 주관이 뚜렷한 그다. 작품 선택 기준도 명확하다. “내가 잘하는 것보다는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싶은 배역에 더 끌려요. 뭔가 부족한 부분을 느끼면 그걸 채워가는 쪽으로 변신을 꾀하는 편이죠. 내가 좋아하는 걸 관객들도 함께 좋아해주면 더 바랄 게 없고요.” ● 내사랑 혜정아 인터뷰 말미에 슬쩍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내자 눈이 먼저 웃는다.‘올드보이’의 배우 강혜정(23)과 공개적으로 데이트를 시작한 지 4개월째. 둘다 영화 촬영에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여느 또래 연인들처럼 아기자기한 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여자친구가 생긴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뭘까.“자신감이 생기고 더 당당해지는 것 같아요. 마음속에 든든한 기둥이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누군가의 존재감이 이렇게 크게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자주 웃게 됐어요.” 눈빛을 반짝이며 조근조근 이야기하던 그가 문득 쑥쓰러워졌는지 “어휴, 민망하네요. 그만 하죠.” 라며 말끝을 흐린다. 수줍은 듯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그의 얼굴에선 카리스마 넘치는 ‘지킬박사’도, 순진무구한 ‘초원’의 모습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스물다섯 청년의 꾸미지 않은 맨 얼굴만이 말갛게 떠올랐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한국경제 불안심리가 더 큰 문제” 첨리 주한美상의 신임 회장

    웨인 첨리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신임 회장은 18일 “한국경제에 대해 외국기업들은 불안해하지 않는다.”면서 “한국내의 심리적인 불안이 더욱 큰 문제”라고 밝혔다. 첨리 회장은 이날 서울 르네상스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해 외국투자자들이 한국에 쏟아부은 투자 규모를 감안할 때 외국계 자본은 한국 경제에 대해 신뢰를 갖고 있다.”면서 “올해 한국경제는 긍정적이며 지난해보다 외국인의 직접 투자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자본의 인수·합병(M&A)과 관련, “한국 기업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외국기업의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한국정부가 규제를 만드는 것은 외국자본을 자칫 한국의 경쟁국가로 유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국자본 유입에 따른 선진경영기법의 도입과 일자리 창출 등의 긍정적인 요소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첨리 회장은 또 올해가 한·미상호투자협정(BIT) 타결의 호기라고 밝혔다. 그는 “올해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은 국제적으로 한국을 홍보하기에 매우 좋은 기회”라며 “정상회담에 앞서 오는 6월 제주에서 열릴 APEC 통상장관 회담에서 양국이 BIT를 체결하면 외국 투자자들에게 한국의 개방과 자유무역 의지에 대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두기자
  • [토요일 아침에] ‘예수살이’로 살기 위하여/박기호 천주교 서울서교동 성당 주임신부

    이번 주말은 30여명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3박4일간의 ‘예수살이 배동교육’이라는 의식화 훈련을 갖는다. 필자는 예수살이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는데, 소비사회에서 어떻게 예수의 제자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의식생활 운동이다. 예수의 복음보다는 신상품과 영상의 이미지들이 더 즐겁고 행복한 ‘기쁜 소식(복음?)’ 행세를 하고 있으니 사제의 복음 강론이 무력하고 믿음생활의 경책이 되지 못하는 시대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만은 없고 해서 산상설교의 ‘참된 행복’에 기초한 복음적 인생관과 세계관 무장으로 소비시대의 거짓 복음에 맞짱을 뜨고자 시작한 것이 ‘예수살이’ 운동이다. 오늘날 기술 문명과 소비문화 현상에 대하여 예수님은 과연 무어라 말씀하실까를 듣지 못한다면 복음이란 고전의 한 목록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교회에서 만나는 신세대들은 정치 경제 사회적 고난의 역사를 겪지 않고 성장하였기 때문인지 찌들지 않은 솔직함이 사랑스럽다. 그러나 순수한 시각 때문에 상품 시장의 최대 고객층이기도 하다. 해서 부모님들은 현금 지급기 노릇에 고달프다. 이로 인해서 온 가족을 ‘알바’ 전사로 나서게 하고, 나아가 대량생산이 가져오는 자원낭비와 생태 환경 파괴의 실질적 조력자 노릇도 하게 된다. 복음서에는 병자를 치유하고 악령을 추방하는 기적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악령이란 보이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인 힘을 행사하여 의식을 지배하는 어떤 존재를 말한다. 오늘날 상품 마케팅은 소비자의 의식을 지배하는 악령이다. 편리한 것을 혼자 사용하게 만들고 프로그램과 제품의 업그레이드를 끝없이 강요한다. 소비자가 구매 필요성을 판단할 여지도 주지 않고 광고와 동시에 거실과 호주머니에 들어앉는다. 마술이다. 가장 가증스러운 악령의 마술은 이른바 ‘명품놀이’이다. 명품은 연령과 사회적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대뇌를 마비시키는 바이러스다. 최근 어느 매체 비평 제작진들이 ‘구치’ 가방을 받았느니 돌려줬느니 해서 세간의 구설수다. 영악한 접대 술책에 걸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악령의 덫에 걸린 것이다. 도대체 명품이 무엇인가? 창세기에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을 ‘보시니 좋았다.’란 표현이 거듭되어 표현된다. 하느님 보기에 좋은 것, 신이 창조한 세계를 명품이라 한다. 생명가진 모든 것은 거룩한 명품인 것이다. 하늘 땅 숲 강 바다 모든 것이 그렇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땅에 금을 그어 등급을 매기고 명품과 짝퉁을 규정하고 소유권을 만든다. 의식주의 모든 질료는 신의 창조물이고 노동자의 손으로 가공한 것이다. 그래서 고급 아파트도 변두리 판잣집도, 백화점 모피 코트도 평화시장 통치마도, 특급호텔 요리도 포장마차 물국수도…. 노동이 들어간 모든 것은 명품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엄청난 자본의 CF와 비싼 값을 매겨 놓았다 해서 명품이라 숭배하는가? 창조와 노동에 대한 모독이다. 세상 사물의 이치를 의(意)라 하고, 이치를 아는 것을 지(知)라 하며, 사물의 참됨과 허상을 구별하는 것을 식(識)이라 한다. 지식인이란 사물의 이치를 알고, 참과 거짓을 식별하는 눈을 가진 자일진대 어찌 그들조차 호사스러운 명품놀이에 홀렸을까? 안타깝다. 우리 젊은이들은 사실을 깨우쳐 주면 흔쾌히 받아들인다. 예수살이를 모색하는 그들과 이번 주말을 함께 생활하게 되었으니 그 행복함이 감사하다. 박기호 천주교 서울서교동 성당 주임신부
  • [내 인생의 등대] 원세훈 서울시 1부시장

    [내 인생의 등대] 원세훈 서울시 1부시장

    ‘자기 자신을 중히 여겨라.’ 서울시 원세훈(54) 행정1부시장은 스스로 만든 이 격언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물론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뜻은 아닐 터. 그는 임명직 강남구청장을 지낼 때의 일을 떠올리며 이 말에 얽힌 인연의 실타래를 풀어나갔다. 1995년 3월 어느 날 간부 한명이 “택시로 출근했는데 구청 앞에서 내리자니 낯부끄럽더라.”고 말하더란다. 직원 세무비리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원 부시장은 당시 부구청장으로 있다가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구청장이 경질돼 그 자리에 취임했다. 간부의 말은 일터에 대한 부끄러운 보도가 연일 매스컴을 장식, 얼굴을 들고다니기 어렵다는 아픈 심정을 털어놓은 것이다. 원 부시장은 마음 속으로 무릎을 치면서 “옳거니”했단다. 비리를 저질러 일터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 직원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결과이며, 일터를 아꼈다면 자신도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 때부터 아랫사람들에게 일터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려주게 됐다고 덧붙였다. “보통 명함으로 인사하게 되는데 이 경우 상대방에겐 다니는 직장이 어디냐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를 풀어보면 조직이나 공동체를 위해 일하다 보면 결국은 자기 스스로도 올라간다는 이야기다. 올해로 31년째 공직에서 일하는 그는 공무원에게도 일터를 잘 가꾸려고 애쓰는 노력이 필요하며, 기계적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행정의 수요자인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거나 나아가 감동으로 ‘졸도’시킬 수 있는 행정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큰 문제가 안되는 범위 안에서 틀을 깨야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인감증명 발급 민원인이 줄을 길게 늘어섰다면 그중 아주 긴급한 시민이 있을 것이고, 의례적으로 업무만 처리할 게 아니라 공무원이 나서서 그런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예를 들었다. “철밥통이라는 것도 일하다가 다치기보다는 움직이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일터에서 시민들을 위해 뛰다가 일으킨 문제들은 어루만져 줘야지요.”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WE 발행1주년 축하 퍼레이드

    WE 발행1주년 축하 퍼레이드

    1년 전 한가인의 섹시한 표정을 기억하십니까. 미끈한 몸매의 은빛 갈치, 땅끝 마을 해남에서 맛본 솔잎차가 눈앞에 아른거리지 않나요? 서울신문 주말매거진 We가 첫 돌을 맞았습니다. 국내 최초의 타블로이드판 섹션으로 시작, 최고의 ‘웰빙 교과서’로 자리잡은 We. 독자 여러분의 사랑과 질책이 없었다면 짧은 시간에 이만큼 이뤄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We의 돌잔치에 7인의 ‘열혈 독자’를 모셨습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서 We의 개성과 다양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 지금부터 We의 매력에 한번 빠져 봅시다! 아차, 우선 생일 축하는 해야겠죠? Happy birthday to We! ●참석해 주신 독자 7인:강민저(53·주부) 곽용덕(34·밀레니엄서울힐튼 대리) 김재연(31·KPR 대리) 김호영(27·서울산업대 4년) 오승희(29·유치원교사) 이수연(28·한국다우코닝) 이태우(16·충암고 2) ●진행 한준규 최여경기자 우선,WE를 즐겨 보시는 이유를 들려 주세요. -곽용덕:저는 호텔에서 근무를 하니까 라이프 스타일이나 음식 기사에 관심이 많다 보니 WE와 관심사가 같죠. 아이템 선정에서부터 전달방식까지 신경을 많이 쓰는 점이 좋아서 늘 보게 됩니다. 또 단 두줄짜리 기사도 철저하게 확인하는 기자들의 열성적인 자세를 보니까 기사에 대한 믿음도 커지더군요. -오승희:여행에 관심이 많은 저로선 버스로 몇 분, 택시비는 얼마, 어느 길이 잘 알려져 있지만 지름길은 여기라는 등 정확하고 충실한 정보를 전달하는 WE가 고맙기 때문입니다.‘WE만 있으면 처음 가는 길도 자신있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김재연:WE는 월간지에 나오는 별책부록 같아요. 대부분의 언론이 명품 위주, 고급지향적인 것이 너무 많은데 WE는 포장은 고급스럽지만 내용은 서민적이라 더 좋아요. 또 하나, 주로 언론에 소개되는 맛집은 가보면 늘 실망하게 되는데 WE만은 달라요. 솔직하죠. 허름하면 허름하다, 다른 메뉴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는 식이죠. 업무상 사람들과 식사할 때 WE에 소개된 맛집을 가면 늘 일이 잘 풀려요. -이태우:종이신문이 위축되고 있다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TV보다는 신문을 많이 봅니다. 전 여행기사를 오려 뒀다가 시험이 끝나면 부모님께 한번 가보자로 조르기도 합니다. -김호영:전 타블로이드판형인 게 특히 좋아요. 보관하거나 스크랩할 때는 물론 지하철에서 읽기도 좋죠. 참,WE가 나온 후 다른 언론에서도 타블로이드판형 섹션이 나왔죠. 앞서가는 감각이란 점에서도 WE가 좋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를 꼽는다면…. -이수연:‘5만원으로 코엑스 즐기기’라는 기사에서 독자기자로 활동했던 터라 제일 기억에 남아요. 친구와 함께 다니며 즐긴 것뿐이었는데, 어쩜 그렇게 맛깔스럽게 기사화가 됐는지…. 덕분에 저 스타됐잖아요. -김호영:저도 WE와 인연이 있어요. 휴가특집호에 ‘알찬 발리여행’을 썼는데 그 특집호의 꼼꼼한 휴가가이드는 압권이었어요. 올 여름휴가계획도 WE를 보고 짤 겁니다. -강민저:WE의 요리면 기사는 다른 매체와는 확실히 달라요. 정말 쉽게 따라할 수 있어요.‘우영희의 요리구조대’에 나온 깐풍기를 따라 만들었는데 아주 잘 됐어요.WE를 펴놓고 푸드채널의 요리프로를 보면 확실하게 배울 수 있으니까요. -오승희:‘파리의 연인’패션 따라 하기도 신선했었죠. -김재연:저도 그 기사 좋았어요. 또 홍익대 앞 옷가게나 이화여대 앞 수선집 점검기사, 휴가 떠나기 전 패션분야 종사자들이 말하는 여행에 꼭 필요한 아이템도 좋았어요. 올 여름 휴가를 스페인으로 정했는데 얼마전 개별자유여행(FIT)기사가 스페인이더라고요. 어찌나 고맙던지. -곽용덕:전 기자가 직접 경험한 갈치·개불·대게잡이 기사가 최고였어요. 레저와 음식을 접목했고, 생생한 체험부터 요리까지 다양하게 접할 수 있으니 더 좋았어요. 또 아빠 기자들이 뛴 당일치기 여행 기사도 좋았죠. 출발에서부터 시간대별로 움직임을 담아줘 마치 내가 갔다온 것 같더라니까요.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점도 좀 지적해 주세요. -오승희:늘 느끼는 것인데, 표지와 내용의 괴리감이 문제죠. 표지를 보면서 “아, 이 스타가 테마구나.”라고 생각하게 하는데 스타기사는 뒤편에 작게 있으니 정작 주제가 흐려지는 것 같아요. -김재연:맞아요. 연예판 타블로이드로 오해받을 수도 있어요. 칠레나 금강산 등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 표지가 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은데…. -곽용덕:2면의 ‘알아두면 편리해요’ 코너는 지면낭비인 것 같아요. 대표성을 가진 기관의 전화번호이긴 하지만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인데 일년 동안이나 면을 할애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수연:말장난 같은 제목도 너무 많죠. 예를 들면 대게와 과메기 기사 제목을 ‘음메 게살아, 음메 기살아’라고 했었죠.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늘 스타를 ‘★’로 표현하는 것도 식상해요. 아이디어는 좋은데 되풀이되면 너무 가벼워 보이거든요. -곽용덕:웰빙에는 먹고 노는 것뿐아니라 영혼을 살찌우는 부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마음을 쉴 수 있도록 좋은 글과 사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말에 읽을 한 편의 책 소개도 좋고요. -이태우:낯뜨거운 사진이나 제목은 삼가 주셨으면 좋겠어요. 가끔 부모님께서 WE를 못보게 하실 때가 있어요. 야한 사진이 나왔을 때예요. 늘 떳떳하게 WE를 볼 수 있게 해주세요. 그렇다면, 어떤 기사를 더 보고 싶으세요. -오승희:싱글이나 승용차가 없는 ‘뚜벅이’들도 갈 만한 곳을 다뤄 주세요. -이수연:회식할 수 있는 곳의 정보도 좋죠! 요즘 회식 분위기 달라져 재미있게, 싸게, 건전하게 회식할 수 있는 곳의 정보가 필요하거든요. -이태우:WE는 중·고등학생 독자도 많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가까운 곳에서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을 소개해 주세요. 양 많고 맛있는 음식점 소개도요. -강민저:전 건강에 관한 정보가 좋아요. 토종웰빙 시리즈처럼 전문적인 의학면이 아니라 쉽게 접할 수 있는 건강 코너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귀한 말씀을 모두 제작에 참고하겠습니다. -일동:WE 파이팅!! ■스타들도 축하해요 보아서울신문 주말섹션 WE의 첫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제가 표지를 장식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에요. 더욱 재밌고 알찬 정보 가득한 WE를 기대하겠습니다. 설경구서울신문 주말섹션 WE의 발행 첫돌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목요일 아침마다 풍부한 연예계와 영화 정보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역도산’때도 함께했듯이 ‘공공의 적2’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요. 앞으로 WE가 더 즐겁고 훈훈한 정보로 다가가길 바랍니다. 김태희서울 신문 주말 섹션 WE가 벌써 첫돌을 맞았네요. 정말 축하드려요. 정신 없이 돌아가는 촬영 현장에서 WE는 언제나 저에게 휴식 같은 친구가 되어주고 있답니다. 앞으로도 계속 연예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알찬 정보와 함께 빠르게 전달해 주세요∼. 리마리오안녕하세요.‘이태리 느끼한 혈통 마가린 버터 3세’ 리마리오(본명 이성훈·33)입니다. 서울신문 주말판 WE 창간 1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알차고 좋은 내용 변치 말고, 앞으로도 계속 즐거운 신문 만드시길 바랍니다. 본능에 충실하며, 미끄러지듯이 쭈욱∼. ■WE 셀프카메라 ○…‘WE’의 표지를 빛낸 스타 가운데 한가인을 빠트릴 수 없는데요, 대표작이자 영화 데뷔작인 ‘말죽거리 잔혹사’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풋내 폴폴 피우던 인터뷰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코멘트가 다름아닌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100% 자연산이지만, 짧은 코가 콤플렉스”라는 고백이었거든요. 근데, 요사이 인터뷰에서 그녀는 그 콤플렉스를 완전히 털었더라고요.“이젠 코가 제일 자신있다.”고 하네요. 그녀만큼 빨리, 경쾌하게 자기확신을 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네요. ○…스타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설 때 기자들의 감상도 다 다릅니다.‘뼈대있는 집안 자손이구나.’ 싶게 예의가 깍듯한 스타들은 언제 만나도 기분좋죠. 아무리 일정이 빡빡해도 사근사근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배우들이 몇 있는데, 김정은이 그 맨 앞줄에 서지 않을까 싶네요.‘인어아가씨’ 장서희도 ‘WE’를 즐겁게 빛내준 표지얼굴로 기억되네요.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날 깍쟁이같은데, 실제로는 무지무지 상냥하고 밝아서 다들 놀랐다는 거 아닙니까? 코믹영화 ‘귀신이 산다’ 개봉을 앞둔 어느 여름 오후 한때, 그녀는 편집국을 발칵 뒤집어놓고 떠났죠. ○…인기 드라마에 출연 중인 배우들과의 인터뷰에서 종종 사진 때문에 애로를 겪게 되죠.‘파리의 연인’의 이동건은 완벽한 ‘촬영모드’로 나타났지만 감정이 깨진다며 사진 찍기를 거부해 SBS 일산제작소까지 찾아간 기자를 허탈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은 때마침 쉬는 중이어서 맘놓고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죠. 그는 예상 외로 털털한 데다 꽤 달변가이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진지하게 답해 기자를 매우 흡족하게 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뒤끝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헌신적이고 반듯한 이미지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탤런트 A는 이미 세상에 다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 이야기를 썼다며 발끈, 매니저를 통해 기자에게 항의 전화를 했습니다. 문제는 그 매니저가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야심한 시각에, 게다가 술에 취해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죠. 그가 무차별적으로 퍼붓는 인신공격성 발언에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연예인들은 섭외하기가 힘들지 막상 같이 대화를 나눠보면 대부분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이더라고요. 하지만 예외인 스타들도 있어요. 소박하고 털털하게 보이던 영화배우 이범수의 경우가 특히 그랬죠.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개봉 전이었는데 하필 하루종일 인터뷰에 시달리는 날 마지막 시간에 만나서였는지 처음부터 성의가 없어보이더라고요. 뭘 물어봐도 계속 단답형으로 대답해서 나중엔 속에서 화가 치밀었어요(물론 겉으론 계속 웃었지만요). 만날 똑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게 지쳤다나 뭐라나. 저도 만날 비슷한 인터뷰를 하는 게 힘들다고 ‘인간적으로’ 토로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쉽게 풀리더군요. ○…직업적인 관점에서 연예인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요, 인터뷰 기사 쓰기 편한 연예인과 그렇지 않은 연예인이죠. 대개 취재원이 ‘인터뷰를 얼마나 많이 해봤느냐.’는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되는데요, 취재원이 능숙할수록 일목요연하게 기사가 되게끔 알아서 말을 해주니까 일하기는 편합니다. 우리끼리는 “말렸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웃음) WE 대중문화팀
  • [결혼이야기]정성욱(28·삼성물산 석유가스팀) 조윤희(28·연세대 사회교육원 강사)

    [결혼이야기]정성욱(28·삼성물산 석유가스팀) 조윤희(28·연세대 사회교육원 강사)

    #접속 1996년 8월 무더운 어느 여름 날. 대학 1학년인 저는 잠시 더위를 잊기 위해 학교 전산망에 접속해 채팅방에 들어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시커먼 도스 화면에서 글을 주고받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한 여학생과 계속 채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왠지 좋은 인연이 될 것 같은 느낌에 그녀에게 이른바 ‘번개팅’을 제의했습니다. 영화 ‘접속’이 우리가 만난 지 일년 후에 상영됐으니, 원조 ‘번개 커플’인 셈이죠. #접근 그녀에게 “학교 앞에서 피자나 한판 하자.”며 접근에 성공한 저는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약속 장소를 향했습니다. 뽀얀 피부의 그녀는 첫눈에 내 맘을 빼앗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는 작곡이 전공인 그녀에게 접근할 속셈으로 계획에도 없던 피아노 레슨을 받겠다며 생떼를 써 정기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해 겨울, 서울 대치동 한 카페에서 조그만 반지로 ‘세미 프러포즈’를 했습니다. 그녀는 눈가에 미소를 머금고 저의 제의를 받아주더군요. #교제 낭랑한 목소리와 예쁜 얼굴, 여성스러운 성격의 음대생은 저에게 과분하다는 주위의 시샘 섞인 부러움 속에서 우리는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물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조그만 일에도 눈물을 흘리곤 했던 그녀의 여린 성격때문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교환학생으로 1년간 유학을 가게 됐을 때에는 ‘눈물 바다’에 빠진 그녀를 달래느라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린 서로의 마음을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한 성인이 돼 갔습니다. 저의 군 생활과 그녀의 유학 등으로 교제 기간의 절반을 떨어져 있었지만 그럴수록 서로에 대한 믿음이 더 깊어졌습니다. #3000일의 역사와 새출발 저는 2003년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녀는 지난해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난 지 8년째 되던 지난해 12월 우린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우리가 처음 ‘접속’한 지 3000일 만의 일입니다. 주변에서는 동갑내기에 오래 사귄 커플이 결혼하면 재미없다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결혼 이후 생활이 새롭고,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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