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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n조이(YTN 오전 8시30분) 서울 근교에 위치해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 여주에서는 요즘 도자기 축제가 한창이다. 지난 9일은 비디오아트의 거장 백남준이 타계한지 100일째 되던 날. 백남준 만의 독특한 작품과 생애, 그리고 생전 작업했던 작업실을 완벽하게 재현한 전시품까지 만날 수 있는 현장을 찾아가본다.   ●스페이스-공감(EBS 오후 10시) 허트리오는 솔로이스트로도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허승연(피아노), 허희정(바이올린), 허윤정(첼로)으로 구성된 자매 트리오이다. 화려한 앙상블과 성숙한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는 허트리오는 이번 무대에서 피아노 트리오곡과 탱고 등을 연주해 달콤한 낭만이 있는 즐거운 연주회를 선사하게 된다.   ●하늘이시여(SBS 오후 8시45분) 왕모와 영선은 이야기를 나누다 자경이 건강한 아이만 낳았으면 좋겠다며 즐거워한다. 자경은 왕모에게 무심결에 혹시 영선이 전생의 자기어머니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자 왕모는 엄마라고 부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는데, 자경은 그러고 싶지만 슬아의 눈치가 보인다고 말한다.   ●TV 완전정복(MBC 오전 8시50분) ‘TV 특종 놀라운 세상’에 출연한 어린이 천하장사와 ‘쇼!음악중심’의 새 MC인 브라이언의 신고식 현장을 찾아가 본다. 그리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화제만발,‘검색대왕’의 제작현장을 소개한다. 또 MBC주말특별기획 ‘불꽃놀이’의 여주인공, 한채영을 직접 만나 솔직 담백한 이야기도 들어본다.   ●소문난 칠공주(KBS2 오후 7시55분) 덕칠과 송국의 외도 현장을 목격한 수한은 술을 마시며 울분을 삼킨다. 한편, 외국에 다녀온다는 갑작스러운 통보 전화만 한 채 자취를 감춘 미칠 때문에 괴로운 일한. 미칠의 소식을 알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고, 미칠의 본 모습에 대한 믿음마저 흔들리기 시작한다.   ●파워 인터뷰(KBS1 오후 11시) 20살 때 꿈을 좇아 영화에 뛰어들어 쌓아온 자신의 필모그라피 속에서 ‘액션’이라는 한 가지 장르만을 고집해온 감독 류승완.‘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연기를 시작해 개성 있는 색깔로 한국영화에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온 배우 류승범. 류 브러더스의 명쾌하고 도발적인 영화인생이야기를 들어본다.
  • [이사람] ‘직업이 단장’…7번째로 대구FC 맡은 최종준 단장

    [이사람] ‘직업이 단장’…7번째로 대구FC 맡은 최종준 단장

    “날마다 피말리는 승부를 치러야 하는 프로 세계의 프런트는 어떤 직업보다도 힘듭니다. 프런트의 부장(部長)은 부장(腐腸)이어서 장이 썩을 지경이고, 단장(團長)은 단장(斷腸)으로 장이 이미 끊어졌고, 사장(社長)은 결국 장이 사장(死腸)됐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프로축구 대구FC 최종준(55) 단장은 자신의 장이 이미 여섯번이나 끊어졌다고 소개한다. 지난 16년간 야구·축구·씨름·배구팀의 단장을 거치며 승부에 새까맣게 타버린 가슴을 안아야 했던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한다. ●프로스포츠 단장만 7번째 그는 1990년 LG그룹이 프로야구 LG 트윈스를 만들 때 창단 준비팀장을 맡으면서 스포츠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95∼1999년 프로야구 LG단장을 역임하면서 배구 단장을 겸임했다. 1999년 프로축구 안양 LG 단장으로 옮기면서 2000년까지 씨름 단장도 함께 맡았다. 그리고 2001년 LG 야구 단장으로 컴백하고,2003년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단장을 거쳐 지난달 말 프로축구 대구FC 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으로 스포츠단 단장만 7번째인 셈이다. 최 단장은 스포츠 전문경영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을 숙명으로 여긴다.1977년 LG 상사에 입사한 그는 1982년부터 5년 동안 미국 뉴욕 지사에 근무하면서 스포츠 세계에 눈을 떴다. “미국에서 본 스포츠 마케팅 시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고 회상한 최 단장은 “사람들이 1년 내내 야구, 미식축구, 농구, 아이스하키를 즐기며 인생=스포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스포츠에 흠씬 매료됐다.”고 했다. 귀국하자마자 일본 스포츠 시장을 경험하는 기회도 갖게 된다.1988년 LG상사 등 종합상사들이 공동으로 ‘종합상사 실태조사’를 위해 일본으로 직원들을 파견하게 됐다. 그 때 사내 관리자 중 토익 점수가 최고였던 최 단장이 회사 대표로 뽑혔다. 그는 3개월 동안 일본에 체류하면서 회사에서 부여한 임무는 물론 일본 프로야구에 빠져 지내며 국내에도 스포츠 마케팅을 도입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1989년 12월 때마침 LG그룹은 MBC 청룡을 인수해 야구단을 창단한다. 당시 구본무 회장이 직접 ㈜LG스포츠에 근무할 직원들을 인터뷰를 통해 선발했다. 외국경험, 국제교류, 스포츠에 대한 식견 등이 선발 기준인 인터뷰에서 최 단장은 구 회장의 ‘낙점’을 받아 스포츠 관리자의 길에 들어섰다.“처음에는 스포츠가 제 평생 직업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그는 “돌이켜 보면 스포츠와의 인연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프런트가 강해야 명문구단 최 단장은 ‘강한 프런트론’을 신봉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프런트가 강하다.’라는 표현은 프런트와 현장 간에 불화가 있거나,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문제가 많은 부정적인 조직으로 널리 인식돼 있다.”면서 “그러나 프로구단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프런트가 힘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철학을 토대로 야구 응원문화를 바꾸고, 선진구단 기법을 도입해 LG트윈스를 명문 구단으로 키우는 데 주역을 담당했다는 자체 평가를 받았다.90년과 94년 LG 트윈스를 우승으로 이끌고,1995년 지금도 깨지지 않는 한 시즌 최다관중(126만 4762명)을 동원하는 신기원을 열었다.2000년 프로축구 안양 LG 치타스 단장을 맡아 1·2군 정규리그, 플레이오프 통합우승도 일궈냈다.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에서는 지난해 70승50패6무를 기록, 최고승률(.583)과 최다관중(45만명)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최 단장은 구단의 권한과 책임의 분리 원칙을 선박회사의 경영에 곧잘 비유한다. 선장인 감독은 어디까지나 한시적일 수밖에 없는 자리다. 하지만 선박회사는 수명이 영원한 조직체이기 때문에 프런트가 책임있는 자세로 경영에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프런트가 강한 팀은 쉽게 지지 않을 것이지만 프런트가 약하면 쉽게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시민구단은 또다른 도전 LG,SK 등 대기업의 단장을 떠난 최 단장은 “시민 구단은 이번이 처음이라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면서 “제대로만 운영하면 기업에서 운영하는 구단보다 훨씬 팬들과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의 최고 목표는 선수단과 프런트가 조화를 이뤄 대구 시민에게 사랑받는 구단을 만드는 것. 그는 “시민구단을 스포츠단의 경영 모델로 삼아 일단 마케팅 쪽에 비중을 많이 둘 것”이라며 “프로스포츠 단장은 결국 강팀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믿음을 다시 내비쳤다. 최 단장은 이미 국내 프로축구 활성화에 착수한 상태다.“야구와 달리 축구는 월드컵 등 국가대항전이 많아 팬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 수 있다.”며 “월드컵의 열기를 프로리그로 가져올 방안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야구단에 몸 담으면서 구단 운영 뒷이야기 등을 3권의 책으로 엮어낸 그는 현재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체육학 석사 과정도 밟고 있다. 단순한 스포츠단 경영뿐만 아니라 전력분석 테크닉, 부상방지 트레이닝, 재활 프로토콜을 꿰뚫겠다는 각오다. 그는 스포츠경영의 3대 요소로 매니지먼트·마케팅·메디신을 꼽으며 각 분야에서 모두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최 단장이 걸어온 길 ●출생 1951년 경북 경산시 하양읍 ●학력 배재고-성균관대 무역학과 ●경력 LG상사 입사(1977년)-프로야구 LG트윈스 창단 준비팀장(1990년)-LG트윈스 단장·LG화재 배구단장(1995년)-프로축구 안양LG치타스 단장·LG씨름단장(1999년)-LG트윈스 단장(2001년)-씨름연맹 사무총장(2002년)-프로야구 SK와이번스 단장(2003년)-프로축구 대구FC 단장-(2006년) ●가족관계 부인 김경은(51)씨와 2남 ●취미 테니스, 악기연주(색소폰, 기타) ●좌우명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자 글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 @seoul.co.kr
  • [데스크시각] 월드컵 이젠 즐길 때 됐다/김민수 체육부장

    손꼽아온 독일월드컵 본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은 또다시 ‘월드컵 마법’에 휩싸일 것이다. 든든히 야식을 챙겨둔 국민들은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와 탄식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또 한·일월드컵 당시와 달리 G조 토고·프랑스·스위스전이 밤 10시와 새벽 4시인 탓에 직장마다 지각과 졸음 사태로 웃지 못할 진풍경이 예상된다. 휴식시간 동료들이 저마다 토해내는 분석과 해설도 이때는 솔깃하다. 여기에 길거리 응원의 메카인 서울 광화문과 시청 앞 등 전국에서는 밤을 잊은 열성팬들이 일찌감치 터를 잡고 ‘대∼한민국’을 외쳐 후유증도 상당할 듯하다. 그러면 독일에서도 4년전처럼 온통 기쁨과 희망이 가득한 승전보가 이어질까. 유감스럽게도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소 부정적이다. 최근 300여명의 일선 지도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00여명이 1승1무1패를 꼽았다. 또 80여명이 1승2패를 점쳐 절반 이상이 16강 진출을 어둡게 내다봤다. 전문가의 냉철한 판단으로 믿어진다. 해외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외 언론도 한국의 기량이 만만치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4년전 ‘안방’이 아니라 ‘적지’임을 강조한다. 기량과 경험은 향상됐지만 그 외의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반면 이 설문에서 우리 국민의 89%는 16강은 물론 그 이상의 성적을 낼 것으로 낙관했다. 다분히 기대감이 포함된 수치라 생각된다. 문제는 한국 축구가 기대를 저버리고 예선리그에서 허망하게 탈락했을 때다. 기대치를 감안하면 그 허탈감 또한 엄청날 것이다. 그 충격에 국민들은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한국 축구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식의 해묵은 패배의식의 부활도 우려된다. 이같은 상황에 대비해 처방을 내놓은 이가 바로 거스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이 아닌가 싶다. 그는 꼭 4년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으면서도 선수들에게 “축구를 즐겨라.”라고 주문했다. 이는 선수뿐 아니라 팬들을 향한 메시지로도 여겨진다. 다만 히딩크는 숨막히는 승부의 세계에서 어떻게 축구를 즐길 수 있는지, 구체적인 답을 주지는 않았다. 어떻게 축구를 즐기라는 것일까. 미국의 한 저명한 야구칼럼니스트는 미국과 일본, 즉 서양과 동양의 야구를 비교해 글을 썼다. 그는 미국 야구는 ‘생활’이고 일본 야구는 ‘종교’라고 단적으로 표현했다. 미국인들은 야구를 일상 생활의 일부로 가까이서 즐기는 반면 일본인들은 승리를 위해 기도까지 올려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미국인들도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기원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박진감과 짜릿함을 만끽하는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는 않는 것 같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과정도 중시한다는 얘기도 된다. 어차피 스포츠는 항상 이길 수만은 없다는 원론적 생각에서 나온 여유로움일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잇단 감독 경질과 평가전 등 한국대표팀의 독일행 과정을 지켜봤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면 결과가 어떻든 박수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최선 여부의 판단은 전적으로 국민들의 몫일 게다. 그렇다면 한국의 16강 진출은 비관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2002년 당시 한국의 4강을 예상한 전문가가 어디 있었던가. 당시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한국은 4강 후보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16강 진출의 해법은 이미 4년전 확인됐다. 우리 선수들의 다소 부족한 부분을 수천만 국민들이 뜨거운 함성과 열정으로 메워준 것이다. 4강 신화의 주역인 홍명보 대표팀 코치는 최근 한 월드컵 응원사이트를 통해 “쉴 새 없이 경기를 뛰며 저에게 들리는 소리는 감독도, 선수의 소리도 아니며 바로 여러분의 목소리였습니다. 여러분의 힘찬 응원이라면 독일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우리 국민의 뜨거운 성원이 있는 한 한국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리란 믿음이 든다. 이젠 월드컵을 즐길 때가 됐다. 김민수 체육부장
  • 독일 교복부활 논쟁 뜨겁다

    독일 교복부활 논쟁 뜨겁다

    “종교·사회적 위화감을 없애는 데는 교복만 한 게 없다.” “히틀러 소년단이 판치던 나치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냐.” 제3제국의 전체주의 유산과 단절하자는 취지로 전후(戰後) 모든 학교에서 제복(制服) 착용이 엄격히 금지돼 온 독일에서 교복 부활 논쟁이 한창이다. 최근 이슬람 여성의 전통 의상인 ‘부르카’를 입고 등교했던 무슬림 여학생 2명이 학교 당국으로부터 정학 처분을 받은 것이 발단이 됐다. 브리기테 치프리스 법무장관이 “학생들에게 제복을 입히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며 불씨를 일으켰다. 아네테 샤반 교육장관도 “종교적 차이로 인한 갈등과 빈부차에 따른 위화감을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해법은 교복을 입히는 것뿐”이라고 거들었다. 그러나 역풍이 거셌다. 독일 교원조합은 “교복이 모든 문제를 일시에 해결해줄 것이란 기대는 비현실적”이라면서 “전체주의의 어두운 과거를 지닌 독일에서 교복의 부활은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최근 무슬림의 사회통합 문제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 나라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공립학교의 이슬람 복장 금지 조치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로 홍역을 치른 영국의 관심이 남다르다.BBC방송은 아예 ‘교복이 대체 뭐길래’라는 특집 기사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미국의 교복 문화를 조명하고 나섰다. BBC가 주목한 나라는 일본과 미국. 일본은 세계에서 교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가장 강한 나라다. 봄이면 각급 학교들이 새 교복 디자인을 자랑하기 위해 퍼레이드까지 펼친다. 만화 주인공들도 종종 ‘가쿠란’이라 불리는 교복을 입고 등장한다. 미국에서는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청소년 갱문제’를 종식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교복 도입을 승인하면서 보편화됐다.10년새 초등학생의 25%, 중학생의 12%가 교복을 입게 됐다. 교복이 위화감을 완화하고 조직에의 소속감을 높임으로써 일탈을 제어하는 효과가 있다는 믿음 덕이었다. 하지만 방송은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브룬스마 교수의 말을 인용,“지난 10년의 연구는 교복이 의무화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점을 증명한다.”며 독일 등의 정책 집행자들이 눈여겨 볼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검은 대륙은 슬프다

    “그런데 이 땅도 한때는 이 지구의 어두운 구석 중의 하나였겠지.”(조셉 콘래드 ‘암흑의 핵심’)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기억하시는지?영화에선 캄보디아 정글로 묘사됐지만,사실 원작이라 할 수 있는 폴란드 출신의 영국 작가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무대는 아프리카입니다.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콩고 강이었지요. 아프리카 연수 중 우연히 후배가 권해 이 책을 펼친 순간,제가 느끼고 있던 바를 제대로 짚은 책이란 생각이 들더군요.사실 시에라리온에서 자꾸 이 영화의 몇몇 장면들이 겹쳐 보여 몸서리를 치던 뒤끝이었습니다. 해서 이 책을 줄거리로 이번 연수 중에 느꼈던 여러가지 소회를 나누려 합니다. “정복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포악한 힘뿐인데,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 해서 자랑할 것은 못 되지.왜냐하면 누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해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약하다고 하는 사실에서 생기게 된 우연한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지.그것은 암흑 세계를 다루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적당한 행위이지.이 세계의 정복이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우리들과는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보다 코가 약간 낮은 사람들을 상대로 자행하는 약탈 행위가 아닌가.그러므로 그 행위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것이 못 된다구.이 불미스러운 행위를 대속해주는 것은 이념밖에 없지.그 행위 이면에 숨은 이념이지,감상적인 구실이 아니라 이념이라야 해.그리고 그 이념에 대한 사심 없는 믿음이 있어야지.이 이념이야말로 우리가 설정해놓고 그 앞에서 절을 하며 제물을 바칠 수 있는 무엇이거든.”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저는 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했더랬습니다.분명히 가슴 아픈 여행이 될거야 라고 속으로 확인시키곤 했지요.아니나 다를까,가나 수도 아크라에 도착하자마자 확인이 됐습니다.길거리에는 한참 일할 나이의 젊은이들이 나와 사과 봉다리 같은 걸 들고 운전자들에게 사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지금도 엄청난 숫자인데 1년 전만 해도 차량이 운행되지 못할 정도로 수가 많았지만 그나마 줄어든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걸 이 나라 말로 ‘카이에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인신매매된 아이들의 가족 재결합 행사를 지켜보고 난민 캠프를 둘러보러 오가는 길 창밖으로 비치는 장면들은 하나같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는 속된 말로 양반이었습니다.시에라리온의 둥기 공항에 내려 헬리콥터를 갈아타는 과정에서 ‘아,내전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지요.포터들이 앞다퉈 여행객들의 가방을 서로 옮겨주겠다고 나서는데 정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일자리가 부족하고 일이 없어 저렇게까지 사람들이 극단적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만을 건너 수도 프리타운에 내려 호텔로 이동할 때가 밤 8시가 가까웠을 때입니다.밤 풍경으로도 이 나라가 심각한 에너지난,경제난에 허덕인다는 사실이 증명됐지요.사람들은 집안의 열기를 못 견뎌 밖에 나가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호텔 밖으로 잠깐 나가려다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호텔 앞인데도 위쪽 산동네에서 흘러온 하수가 길거리에 넘치고 있었던 것이지요.거리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정부 관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일행이 어느 빈민가 근처에서 내린다고 채비하는데도 저는 가만히 차안에 앉아 있었습니다.제 감정선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은 5분도 못돼 올라왔습니다.비참한 상황을 목도한 듯 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누군가 “어휴,저렇게 어떻게 사나”라고 혼잣말을 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저는 시에라리온에 있을 때 나중에 기사 쓰면서 한가지 표현은 계속 써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카메라를 들이댈 수가 없다.” 그렇습니다.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는 상황이 연일 이어졌습니다.저희 한국 기자들은 이번 연수 12일 가운데 딱 두번 술을 많이 마신 날이 있었는데,우연의 일치인지 이날은 모두 기억에 남겨두기 싫은 장면들을 보았던 날들인 것 같았습니다.무의식에서나마 기억을 떨쳐버리고 잠이라도 편히 자기 위해 통음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돌아와 바를 연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가는 길에 저희 일행은 정말 못 사는 동네에 발을 들여놓게 됐습니다.지나는 저희를 보며 “차이니즈” 하면서 시비를 붙이려 하는데 사실 겁 나더군요.비좁은 골목길 누군가 지나던 아주머니를 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운전자를 욕하는데 운전자는 한마디로 벌벌 떨더군요. 이슬람이 주류 종교인 탓도 있고 해서 이곳에서 사진 찍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렌즈를 돌리면 마구 화를 내며 손사래를 치거나 고함을 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누군가 기다렸다가 불씨만 당겨주면 무슨 일인가 터질 것 같은,똑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저만큼 우리 앞에 전개되는 해안은 미소를 짓는가 하면 상을 찌푸리기도 했고 매혹적이고 장려한가 하면 야비하고 무미하구나.일반적이기도 했는데,늘 이리 와서 알아내보라고 속삭이는 듯한 모습만 보이면서 침묵하고 있었다네.” 식민주의자들은 이런 식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해안선이 알아내 보라고 손짓한다고 거기 이끌려왔다고 설명하는 탐험가,목사,선교사들은 밀림으로 들어가 상아는 물론,노예까지 신대륙으로 빼내 데려갔고 해방도 그들의 이름으로 시켰지요.프리타운은 17세기 말 자메이카 등에서 해방시킨 노예들을 풀어놓고 영국이 다시 이들을 환금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으로 키워내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지요. 그 많던 광물이며 천연 자원들은 이제 고갈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 됐지만 오늘 아프리카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만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사실 아프리카로서도 책임을 떠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지요.중국이 지금 저렇게 아프리카를 파고들 수 있는 것도 수십년동안 아프리카 지도자와 엘리트들에게 속은 사실을 깨달은 유럽 각국이 발을 뺏기 때문에 가능해졌다는 설명을 국제이주기구(IOM)의 김철효 씨는 했습니다. 당당하면서도 절박한 엘리트들의 호소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지만 얼마 뒤 그 친인척들이 세운 회사가 고스란히 그 돈만을 떼먹는 사례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던 것이지요.그런 일을 수십년 겪다보니 이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인이 하는 얘기를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다고 김씨는 덧붙였어요. 거기 비하면 우리 근대화 세력은 그나마 도덕적이며 근대적이었던 것이지요.갑자기 우리나라가 부쩍 커진 것처럼 느껴지더군요.돌아와 딸에게 건넨 첫마디가 “너,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라” 였습니다.딸 아이는 언제쯤 이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어느 정신 나간 보수주의자가 이 두나라에 운동권 출신들을 모두 보내 정신교육 단단히 시켜볼만 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미치더군요. 사실 아프리카인들에겐 이해되지 않는 대목들이 많았습니다.첫째가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도 전혀 꿇리지 않는다는 점이었지요.가나 부두부람 캠프에서 라이베리아 난민들은 제게 “너희들이 급수 문제를 해결재줄 수 있느냐.약속을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사람들의 전술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덕적 의무감을 긁어 약속을 받아내는 데 노련하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또 그렇게 난민 중에 기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또 놀랐습니다.어느 여성은 저희 일행에게 너네 신문사에서 우리를 기자로 재교육시킨 다음 고용해줄 수 있느냐고 공개적으로 물었습니다.후배 하나가 제게 그러더군요.“형,권력이 좋은 게 그런 때인가 봐요.그런 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약속을 해줄 수 있지 않아요?”라고요.딴은 옳은 지적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그건 매력있는 일이겠지요. 둘째는 정말 이 사람들 아무 데서나 잘 잔다는 것이지요.그냥 의자에서 자는 게 습관화된 것 같더라고요.날이 더워 그런지 몰라도 호텔 직원들도 거의 의자에 앉아 자더군요.아크라 호텔 옆 공사장 인부들도 그냥 아무 데서나 자리깔면 바로 잠들어 버리더군요. 셋째,마시는 물에 대해 정말 둔감하더군요.도로 변에 물을 봉지에 담아 파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 물 뜨는 장면을 본 우리 일행들이 기겁을 하더군요.그냥 아무 데나 물웅덩이 같은 데서 물을 담아 팔더라는 거지요.근데 그걸 뻔히 알 어른들은 돈 주고 그 물을 사먹고 가나와 시에라리온 두 나라의 출산 때 기대 수명이 각각 40대 후반과 중반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위엄있는 선의(善意)를 가지고서 그 거대한 이국적 세계를 통치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었어.우리는 단순히 의지로 해나가기만 해도 실제로 무한한 이익을 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위엄있는 선의의 모든 것이 로마에 있었습니다.하필 이번 연수를 주관한 한국언론재단은 이번 연수의 마지막 경유지를 로마로 잡아놓고 있었지요.처음에는 아무런 생각없이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브뤼셀을 거쳐 로마로 들어가는 비행기에서 마침 창 쪽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번 여행의 마침표가 로마인 것은 우연이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쭉쭉 뻗은 영지와 동그랗게 모여든 사람들의 마을,포도밭과 유채꽃밭의 어울림 등 이탈리아의 모습은 아프리카의 그것과 너무도 달랐습니다. 6시간 정도의 짧은 트랜짓을 틈타 돌아본 로마 시내의 콜로세움과 성당,로마 광장 등은 식민지 수탈의 땀방울을 고스란히 담아 그 알갱이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있었지요.아프리카인들은 계속된 수탈과 침탈,내부 분열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고요. 세계화 체제라는 숭고한 이념,대속될 수 있는 이념 아래 이제는 멀리 중국까지 아프리카의 자원을 노려 해안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지요.우리 역시 사해 동포주의가 아니라 자원이 욕심 나 최근 부쩍 아프리카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다녀온 저는 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지원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지만,정말 조건없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면 저들을 그냥 내버려두자는 것이었습니다.국제기구들이 얼마나 위선적으로 움직이는지도 어느 정도 파악했습니다.프리타운 산 정상에선 엄청난 규모의 미국 대사관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그들만의 성을 쌓고 있었습니다. 그냥 놔둡시다.조건없이 도와줍시다.자원 같은 것 노려 그들을 지원한다면 식민주의자와 우리가 무어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커츠 대령은 죽음을 자청하기 전 “모든 야만인을 말살하라.”고 내뱉습니다. 사실 콘래드가 식민주의를 찬양하거나 숭상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으면서도 제국주의자라는 평단의 오해는 존재해왔습니다.그의 갈팡질팡하는 문체가 이런 오해를 증폭시킨 것도 물론이고요.하지만 그의 글은 두세번 읽어보면 아,이 친구가 비아냥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 하여튼 제가 기사에도 썼듯이 이 두 나라,특히 시에라리온은 외부 원조 없이는 하루도 견뎌낼 수 없는 나라입니다.도덕적 죄책감을 긁어 원조를 얻어내려는 아프리카인의 의도는 뻔히 알지만,그럼에도 그 물이 흘러 넘치다 보면 저 밑에까지 돌아가지 않겠는가 생각해봅니다. 주위를 돌아보시면 이들 나라의 각종 프로그램,예를 들어 아동 인신매매 퇴치나 난민 돕기 등 도울 수 있는 창구들은 많이 있더군요. 저도 이번에 알았는데 기부금의 사용처를 명확히 요구하고 이를 나중에 모니터할 수 있도록 기부 문화가 진보돼 있더군요.월드비전 같은 곳에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빈곤층 아이들에게 월 2만원씩 기부하고 매달 어린이의 진척 상황을 이메일 등으로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있더군요. 제가 많이 언급한 국제이주기구(IOM)도 이런 프로그램을 갖고 있더군요.우리 연수단 일행도 이런 프로그램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어요.도덕적 의무를 충족시키고 너네들 나름대로 인생 즐기려는 거지,그게 무슨 소용있겠어 라고 핀잔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위선적인 기부금이 그들에겐 도움이 되니까요. 에이 모르겠어요.그렇다고 제가 이 복잡한 세계 체제를 뜯어고칠 혁명가 체 게바라가 나타나길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세계 체제도 아니니까요.
  • 노대통령 “北에 많은 양보할 것”

    노대통령 “北에 많은 양보할 것”

    노무현 대통령은 9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나면 북한도 융통성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싶어 상당히 기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북한측에) 많은 양보를 하려고 한다.”고 말해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포함한 남북 정상회담 성사에 상당한 기대감을 갖고 있음을 내비쳤다. 몽골을 국빈 방문하고 있는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울란바토르 의 한 음식점에서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남북 관계 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은 “한국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백지화하고,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양보할 수 없다.”고 전제,“하지만 본질적 정당성의 문제에 대해서 양보하는 것이 아닌, 다른 제도적·물질적 지원은 조건없이 하려고 한다.”고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북한에 대해 완전히 열어놓고 있다. 언제 어디서 무슨 내용을 얘기해도 좋으니 만나서 얘기해보자.”면서 남북정상회담 제안의 유효성을 재확인했다. 이어 “다음달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다.”면서 “미국과 주변국가들의 여러 가지 관계가 있어 정부가 선뜻 할 수 없는 일도 있는데 김 전 대통령이 길을 잘 열어주면 저도 슬그머니 (정상회담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아직까지 우리가 한·미연합 훈련을 하고 있는데 훈련 내용이 북한에서 보기에 불안한가 보다.”면서 “(북한이)개성공단을 열었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남침로를 완전 포기한 것이고, 금강산도 싸움하면 대단히 중요한 통로인데 그런 것을 열어서 한 것을 보면, 우리도 조금 믿음을 내보일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희망-절망의 갈림길 아프리카] (상) 내전종식 5년째 시에라리온

    [희망-절망의 갈림길 아프리카] (상) 내전종식 5년째 시에라리온

    내전과 대량 난민 발생, 절대 빈곤의 악순환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에 희망은 있는가.5년 전에야 총성이 멈춰진 시에라리온과 난민 유입, 아동 인신매매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나를 둘러 보았다. 지난달 24일부터 6일까지 한국언론재단이 주관한 해외 인권 연수에 참가, 내전 극복에 한몫을 하는 난민 귀환 프로젝트와 아동 매매 근절 노력 등을 살펴 보았다.2회로 나눠 시에라리온과 가나의 얘기를 정리한다. 인터넷 서울신문(seoul.co.kr)을 통해 못 다한 얘기도 풀어 놓는다. |프리타운(시에라리온) 임병선특파원|국민의 3분의 1이 내전에 스러진 나라, 시에라리온의 참극은 계속되고 있다. 천혜의 항구로 서부 아프리카 제1의 중계무역항으로 손꼽혔던 수도 프리타운은 11년 내전의 상처로 여전히 신음하고 있었다.150만명이 사는 도시 곳곳엔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하수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길바닥에 그대로 흘러 넘치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한낮에도 하릴없이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었고 공허하다고 느껴지는 이들의 시선에선 일순간 적의(敵意)가 번득이기도 했다. 조그만 교통사고에도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운전자를 위협하는데 그 적대감이 대단했다. 밤에는 전기 공급이 제대로 되지도 않은데다 적도 근처 기니만 연안의 후텁지근한 기후 탓에 집안에 머무를 수 없어 사람들은 캄캄한 밤거리를 배회했다. 현지 경찰은 밤에는 외출을 자제하고 택시를 이용할 때도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극한의 생활 조건이었고 누군가 불씨만 던져 주면 폭동과 소요가 터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분위기, 그것이 18세기 말 북미 대륙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정착했다 하여 이름 붙여진 프리타운의 2006년 5월 표정이었다. ●국제사회의 원조도 별무 효과 안타깝게도 수년째 이어진 국제사회의 원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에라리온의 오늘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800달러에 불과한 1인당 국민소득 등 굳이 통계를 들이대지 않아도 최악의 경제 사정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의 경제개발 전략에 따라 자영업을 권장한 결과, 많은 이들이 농어촌에서 올라와 프리타운에서 좌판을 깔고 앉아 있지만 흥정하는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경제개발부의 데스몬드 코로마 개발계획 담당관도 그 점을 인정했다. 빈곤감소전략보고서(PRSP)에 따라 해외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한편, 소비를 촉진해 투자를 활성화하는 정책 수단을 강구하고 있지만 솔직히 경제성장률을 5% 이하로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정부의 최우선 목표라고 털어놓았다. 대서양 연안의 석유 채굴에 한가닥 희망을 걸면서 해외로 빠져나간 고급 인력들이 돌아와 조국 재건에 함께 해줄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2002년 평화적으로 치러진 선거를 통해 지난 1997년 쿠데타로 축출당한 경험이 있는 아마드 테잔 카바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 정치적 안정을 어느 정도 이뤘다는 점이다. 1999년 7월 1차 평화협정에 이어 2002년 완전한 내전 종식이 선언됐다. 유엔 평화유지군도 지난해 말 모두 철수했다. 그러나 내년에 다시 선거가 예정돼 있어 불안 요인은 상존한다. ●도화선 될지 모르는 테일러 재판 내전 극복을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도화선은 또 하나 있다. 프리타운 시내 한 복판, 이중 담으로 둘러쳐진 유엔전범 특별재판소에 수감된 라이베리아의 전 대통령 찰스 테일러 때문이다. 지난달 4일 첫 심리가 진행돼 테일러는 11가지나 되는 전범 혐의를 부인하고 “나는 결코 시에라리온 국민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 없다.”고 항변했다. 심리가 재개된 지난 3일 전범재판소 주변에는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재판소 안마당에는 무장 장갑차가 여러 대 눈에 띄었다. 담벼락에는 ‘여기 서있지 말라.’는 경고문이 나붙었다. 그러나 이 재판소에서 계속 재판이 진행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네덜란드의 국제형사재판소(ICTY)에서 이 재판을 헤이그 법정으로 옮겨야 하는지를 놓고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범재판소의 모든 행정적 절차를 책임지는 레지스트라(행정관)인 러브모어 먼로는 “언제 ICTY의 결정이 내려질지 모른다.”며 “우리는 이곳에서 재판이 진행돼 테일러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소요없이 이 나라 국민들이 판결을 납득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에라리온 기자협회(SLAJ) 회장인 이브라힘 벤 카르보 역시 “재판 진행 장소가 여기여야 하는지, 헤이그여야 하는지에 대해선 현지 여론은 반반”이라고 전한 뒤 “어떤 식으로 결정이 내려져도 과거와 같은 소요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엔평화유지군 대신 치안을 담당하는 유엔통합사무소(UNOISL)도 별다른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닷새동안 프리타운에 머물며 돌아본 결과 이 나라의 미래는 국제사회의 도움 없이는 보장될 수 없는 상태인 것으로 판단됐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찾기 어렵지만,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데 시에라리온의 딜레마가 있었다. 이 나라를 돕고 싶은 독자들은 국제이주기구(IOM) 서울사무소(02-6245-7647)로 연락하면 된다. bsnim@seoul.co.kr ■ 내전극복의 동력 ‘귀환 프로젝트’ |프리타운(시에라리온) 임병선특파원|혹독한 내전을 경험한 시에라리온 같은 나라에선 경제를 재건하는 데 이주가 각별한 중요성을 갖게 된다. 내전으로 조국을 등지거나 고향을 떠나 유랑한 이만 250만명이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족한 자원과 기술, 노동력을 빠른 시간에 메우는 방법으로 자발적 귀환이 절실해졌다. 이같은 인식에 따라 이들의 조기 귀환과 정착을 돕는 여러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특히 영국과 스위스로 빠져나간 고급 기술인력의 귀국을 돕는 데 초점을 맞춘 MIDA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해외에 이미 생활 기반을 마련한 의사, 변호사, 교사 등이 6개월간 고국에 돌아와 자신의 기술과 경험을 나눠주는 동안 조국에서의 새 출발을 결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영국과 스위스에서 개인별로 3000파운드의 정착금을 지원해 어느 정도 성과를 봤다고 판단, 다른 유럽 국가로 확대하고 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국민이 돌아올 경우에도 간정부(間政府) 조직인 국제이주기구(IOM) 사무소에서 기술 교육과 창업 지원을 해주고 있다.1994년 영국으로 탈출한 압둘 카림 코로마(45)는 지난 3월 프리타운에 돌아와 조그만 바를 차렸다. 물론 IOM의 도움을 받아서였다. 하지만 그는 워낙 나쁜 경제 탓에 손님이 없다고 울상이다.“영국을 직접 찾아와 ‘돌아와도 좋다.’고 한 카바 대통령의 말을 믿은 것이 후회스럽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빈곤한 이들의 무료 변론을 돕는 30대 변호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려운 동포들을 돕겠다는 마음에서 귀국했지만 다시 내전이 터진다면 “일단 탈출했다가 안정되면 돌아와 일하겠다.“고 서슴없이 밝혔다. 정부와 IOM 등 국제기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발적 귀환 프로그램은 아직 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내전 종식 5년 만에 성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성급한 일인지 모른다. IOM 프리타운 사무소의 앤드루 초가(53) 대표는 “국제사회의 지원은 어디까지나 지원일 뿐”이라고 전제하고 “적절한 준비와 직업 훈련이 동반된 이주를 통해 내전을 극복하려는 이 나라 국민의 의지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bsnim@seoul.co.kr ■ 시에라리온은 순결과 약속의 상징인 다이아몬드의 세계 최대 산지로 알려진 시에라리온은 바로 그 다이아몬드 때문에 참혹한 내전을 경험해야 했다. 이웃 나라 라이베리아 대통령 찰스 테일러는 다이아몬드 공급권을 넘겨받는 대가로 시에라리온의 반군 조직 통일혁명전선(RUF)에 무기를 공급했다. 권력에 눈이 먼 RUF는 소년병은 물론, 소녀병까지 모집해 마약으로 잔학 행위를 부추겼고 아이들은 최소한 배고픔은 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총을 들었다. 반군은 1995년 수도 프리타운 주변 30㎞까지 포위했고 단지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무고한 이들의 손발을 자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때 손발이 잘린 사람만 8000명으로 추산된다. 내전이 11년이나 계속될 수 있었던 것도 다이아몬드 공급권을 둘러싼 권력 다툼이었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시에라리온에서는 1000명이 태어날 경우 남아는 162명이, 여아는 127명이 죽는다. 태어나는 순간 남성의 기대 수명은 40.2세, 여성의 기대 수명은 45.2세에 불과하다. 또 인구의 3분의 1이 희생된 내전의 영향 탓인지 14세 이하가 전체 인구의 44.8%나 된다.65세 이상은 3.2%에 그쳐 아프리카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특이한’ 인구 구성을 갖고 있다.
  • 버핏, 이스라엘 IMC 인수

    투자의 귀재이자 빌 게이츠 다음가는 세계 2위의 부호 워런 버핏(75)이 해외 기업 인수에 나섰다. 버핏은 6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하마시에서 열린 버크셔 헤서웨이 주주총회에 모인 2만 4000명의 주주들에게 이스라엘의 가족 경영 기업 IMC의 지분 80%를 40억달러(약 4조원)에 인수했다고 밝혔다. 금속 절삭 및 가공 기계를 생산하는 IMC는 1998년 한국의 중소기업인 대구텍(옛 대한중석)을 인수했다. 대구텍의 지난해 매출액은 2500억원. 버핏은 2004년부터 20여개의 한국기업에 1억달러를 투자했다고 밝혔었다. 대구텍은 그가 인수한 첫 한국기업이 된 셈이다.IMC는 버핏이 인수한 최초의 해외기업이다. 버핏이 해외 기업 인수에 나선 것은 ‘달러화의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에 따라 현금 비중을 줄이기 위한 투자전략 때문으로 보인다. 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 헤서웨이의 현금보유액은 428억 6000만달러다. 그는 달러화 약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이를 100억달러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다. 앞으로 3년 안에 300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달러 약세가 계속돼 버핏은 해외 기업과 채권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8일 보도했다.버핏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중국 등 다른 나라와의 무역 불균형이 달러 가치의 고통스러운 수정과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버핏의 해외 투자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는 투자하기에 확신이 없다.”면서 “브라질과 같이 부상하는 시장은 확실한 투자처”라고 보도했다. 버핏은 “주요국들에서 인수대상 기업을 찾을 것”이라며 “약 25개국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버핏은 투자한 회사에 별다른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방식을 고수해 왔다. 이스라엘의 IMC 역시 이러한 투자 방식이 유지돼 기존 경영진과 본사가 그대로 유지된다.IMC 경영진은 대구텍 임직원들에게 “(버핏의 인수는) 대구텍이 절삭공구 산업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것”이라는 편지를 보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2006 독일월드컵] “이젠 대~한민국”

    “지성과 영표가 있어 든든하다.” 한국축구대표팀을 이끄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난달 17일 영국 런던의 화이트하트레인경기장에서 벌어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 홋스퍼의 프리미어 경기를 관전한 뒤, 둘에 대한 굳은 신뢰를 나타냈다.“프리미어리그 진출 전부터 국제적으로 검증된 선수들”이라며 극찬도 아끼지 않았다. 아드보카트호의 ‘동량’격인 박지성(맨체스터)과 이영표(토트넘)가 8일 정규시즌을 마치고 감독의 ‘콜’을 기다리게 됐다. 둘은 이전까진 적이었지만 앞으로는 ‘4강 신화 재현’을 위한 동지로 뛴다. 최종 엔트리 발표는 사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둘의 독일행은 ‘불문가지’다. 어느 누구보다 감독의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영표는 이날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 왼쪽 윙백으로 선발 출장, 후반 33분 교체아웃될 때까지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31경기째 출전을 훌륭하게 마무리했다. 박지성은 발목 부상으로 찰튼전에 결장했다.“지난 경기에서 삐긋한 것일 뿐 대표팀 합류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에이전트의 말대로라면 큰 걱정거리는 아니다. 입국 예정은 소집 다음날인 오는 15일. 유난히 미드필더의 역할을 강조하고, 포백을 고집하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둘에 대한 신뢰는 기복없이 꾸준했던 이들의 시즌 경기 내용에서 비롯됐다. 박지성은 힘들 것이란 예상을 보란 듯이 따돌리고 성공적인 프리미어리그 첫 해를 보냈다. 당초 “15경기 정도만 뛰어도 성공”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나왔지만 33경기에 출전,1골·6도움을 기록했다. 컵대회까지 합치면 기록은 2골로 늘어난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지성은 팀에 환상적인 존재”라며 만족감을 표시하고 나섰다. 한 발 늦게 뛰어든 이영표도 덩치는 프리미어 선수들에 견줘 작았지만 강했다.31경기 출장에 1도움. 특히 시즌 최종전인 이날 웨스트햄전이 끝난 뒤 영국의 ‘스카이스포츠’는 ‘팀의 공격력을 폭발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평점 8을 매겼다. 팀내 최고 점수다. 박지성보다 앞선 9일 입국, 휴식을 취한 뒤 대표팀에 합류할 예정. 세계에서 가장 큰 축구무대에서 한 해를 갈고 닦은 둘의 기량, 여기에 이들에게 보내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굳은 신뢰는 독일월드컵 4강을 위한 기폭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임영숙칼럼] 초록도시 만들기

    [임영숙칼럼] 초록도시 만들기

    얼마전 ‘섬진강 시인’의 꿈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오늘은 회색도시에서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도시설계가 김기호 서울대교수와 기업인이자 시민운동가인 문국현 유한킴벌리사장의 꿈입니다. 이들의 꿈은 그린웨이로 서울을 숨쉬게 하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연결하는 생명네트워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린웨이란 초록길입니다. 야생 동물의 생태통로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도시계획학에서는 녹지공간이나 강가의 산책로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공연 공간이나 유적지도 그린웨이에 포함됩니다. 생태통로의 이용자가 숲에서는 야생동물이지만 도시에서는 시민들인 것입니다. 그린웨이가 남북으로는 한강과 용산공원, 남산, 청계천을 잇고 동서로 청계천과 중랑천, 서울숲을 거쳐 다시 한강과 이어진다면 서울시민들은 자동차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고도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두사람의 생각입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첫단계 사업으로 김 교수는 이촌동프로젝트를 제안합니다. 이촌동의 재건축 추진 아파트 단지들에서 공공 공간을 확보하고 강변북로의 일부를 지하차도로 만들어 시민들이 걸어서 한강에 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촌동 프로젝트를 둘러싼 재건축 조합원들의 우려나 일반의 특혜시비 등은 공공부문과 개발업자, 전문가, 시민들이 참여하는 도시환경설계센터 설립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말합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가 참여했던 미국 뉴욕의 리버사이드 사우스 프로젝트는 이같은 방식으로 해서 개발지역의 50%를 대규모 공원 등 공공 공간으로 내놓고 이로 인해 개발의 부가가치는 더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두사람은 그린웨이 십계명도 만들었습니다. 서울의 1인당 공원면적 늘리기, 재개발 재건축 사업을 통한 공공 공간 비율 늘리기, 집에서 250m 이내에 그린웨이 만들기, 도시 설계 과정에 시민 참여하기 등입니다. 이 꿈을 지난 2월 처음 접했을 때는 그냥 아름다운 꿈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비록 문 사장이 국내 최초의 기업환경 캠페인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를 22년간 꾸준히 키워왔고 ‘생명의 숲 국민운동’과 서울숲 조성을 제안해 성공했으며 북한 산림 황폐지 복구활동, 동북아 숲 보호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 꿈의 실현가능성을 저도 요즘 믿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시장 예비 후보자들이 앞다투어 한강 공약을 내 놓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강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면 자연의 상품화, 환경의 상품화 위험성이 높아집니다. 제 믿음은 이 꿈이 두 사람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서 시작됐습니다. 시민단체와 연구기관 학회가 참여한 연구네트워크 새국토연구협의회가 다음주 초 ‘살고 싶은 국토’란 주제로 워크숍을 갖습니다. 살고 싶은 국토 만들기는 무엇이며 주민 참여 방안은 어떤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개발에 앞장서 온 한국토지공사도 생태 환경 복원과 도시환경 개선, 즉 초록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공헌 활동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린웨이는 살고 싶은 국토, 초록사회와 이어집니다. 그 결과는 미국의 클린턴 정부가 실시한 ‘살기 좋은 공동체’정책, 영국의 어번 빌리지 운동, 일본의 주민 참가 자생적 마을가꾸기 마치즈쿠리와 같은 결과를 이끌어 낼 것입니다. 한 사람이 꾸는 꿈은 꿈으로 그치기 쉽지만 여러사람이 같은 꿈을 꾼다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논설고문 ysi@seoul.co.kr
  • [이경형칼럼] ‘비너스’의 메시지

    [이경형칼럼] ‘비너스’의 메시지

    ‘살아있는 비너스’ 앨리슨 래퍼는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한국을 떠났다.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 영어마을 파주 캠프에서 열린 ‘제1회 아·태 영 챌린저 포럼’에서 있은 그녀의 강연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이어 인근 예술마을 헤이리에서 개막된 자신의 사진작품 전시회에서 가진 대화 역시 벅찬 감동을 자아냈다. 장내 조명이 꺼지고 무대만 밝힌 가운데, 그녀는 그 짧은 발로 컴퓨터 키보드를 조작, 스크린에 자신의 지나 온 모습들을 비춰가면서 연설을 이어 나갔다. 온몸에 무게가 느껴지는 의족, 의수를 착용한 어린 시절의 사진에서부터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졌던 하이 틴 시절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녀는 “장애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시대에 미혼모 자식으로 태어나,6주 만에 거리에 버려져 19년간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면서 ‘정상인들의 사회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며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보호시설에서 나와 홀로 살면서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두렵긴 했지만,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어 기뻤다.” “내 삶을 통틀어 늘 도전해야 했고 많은 경우에 좌절했던 걸 기억한다.”고 실토했다. 연설을 들으면서 코가 시큰하기도 했고, 강연장을 빠져나오면서는 과연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강인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것을 ‘자기 존중’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길 때, 자부심이 생기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솟아나온다고 믿는다. 그녀가 강연 후 ‘리앤박’갤러리에서 스스로 피사체가 되어 연출한 사진 작품들을 설명하는 가운데서도 이러한 믿음은 더욱 굳어졌다. 팔이 없는 그리스 시대 조각, 밀로의 비너스처럼 연출한 ‘비너스’라는 제목의 작품에 투영된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남들은 나를 그로테스크하다고 하지만, 내 몸에도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작품의 오브제를 자신의 벗은 몸으로, 그래서 그녀의 고유한 신체를 더 부각시킴으로써 아름다움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깰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자기 존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남과 다른 내 몸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한 말이 결코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수사(修辭)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자기 존중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자살 사이트에서 만나 어처구니없이 생을 마감한다. 이처럼 극한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자기 존중은커녕 자기 비하가 너무 많다.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이나 회사나 나라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업신여기고, 제 얼굴에 침 뱉는 말을 함부로 한다. 크고 작은 권력이 교체되는 선거철이 되면 이러한 풍토병은 더욱 도진다. 한 조직체의 헤게모니를 쟁탈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편을 나눠 조직을 끝없이 폄훼하고 자해한다면, 결국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그 조직의 파멸로 돌아오는 법이다. 구성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강고하게 나갈 때, 비로소 비전이 생기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이 배가되는 것이다. 래퍼의 감동적인 삶의 이야기는 좌절 속에서 방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만 있으면 무슨 도전이든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그 꿈과 용기는 스스로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한테서만 나온다는 더 근본적인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해 주었다. 본사고문 khlee@seoul.co.kr
  • 놀이공원 숨은 손길들

    놀이공원 숨은 손길들

    가족나들이가 많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 테마공원이 비상이다. 시민들에게 언제나 최고의 즐거움을 제공하고 100%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는 사람들이 긴장의 끈을 더욱 바짝 조인다. 그들의 하루를 들여다본다. 글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새벽 5시 탱, 탱, 탱, 둔탁한 쇳소리가 적막감이 흐르는 새벽 허공을 가른다.40m 높이의 에버랜드 롤러코스터 꼭대기에 스패너 하나로 안전점검을 하는 정영철씨가 까마득히 보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일이다. 소리만 듣고도 어느 곳에 문제가 있는지 바로 짚어내는 베테랑이다. 정씨의 거친 손에서 100% 무사고에 대한 믿음이 간다. 아침 9시 첨벙. 첨벙. 서울대공원 돌고래쇼장에서는 새롭게 선보일 쇼 연습이 한창이다. 돌고래들의 먹이로 쓰일 냉동고등어를 녹이고 손질하는 조련사들의 눈은 상태가 좋지 않은 고등어를 찾느라 바삐 돌아가고 슈트복 차림을 한 조련사들이 돌고래와 눈을 마주치며 물 속에서 지느러미를 잡은 채 물살을 가르며 공중 점프연습을 한다. 입 속으로 들어간 짠 바닷물을 연신 뱉어내면서도 연습은 강행된다. 강행군을 마친 조련사들은 힘든 기색이 역력한데도 돌고래와 입을 맞추며 돌고래 상태를 살피는 것이 자신보다 우선이다. 손님들이 북적이는 오후 캐릭터와 무대의상을 디자인하는 롯데월드 의상디자인실 문을 열어봤다. 사무실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스케치 그림들이 어지럽다. 디자이너 강미정씨는 시즌별로 100여벌 이상의 의상을 준비하기 위해 때론 밤샘작업도 불사한다고 말한다. 수십만 개의 전구가 어지러운 퍼레이드 차량의 전구를 교체하는 기술자, 무대 위의 공연단 움직임을 돋보이게 해주는 핀조명을 위해 높은 조정탑에 올라가 있는 조명기술자, 먼 타향에 대한 향수도 잊은 채 공연준비에 열심인 외국 무용수들 등 테마공원은 그 화려함만큼 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또한 많았다. 이들에게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나?”라고 물었다. 이들 모두 당연한 듯 같은 대답을 했다. “그건 테마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즐거워할 때죠” 오늘도 공원 한쪽에서 시민들의 미소만으로 배불러하며 묵묵히 또 다른 즐거움을 만들고 있을 이들에게 다섯박자 박수로 응원을 해본다. 짝짝 짝짝짝!!!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00살 바라보는 ‘영원한 어린이’ 수필가 피천득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00살 바라보는 ‘영원한 어린이’ 수필가 피천득

    온아우미(溫雅優美), 조촐하지만 향기가 아련하다. 마음과 영혼이 정갈해진다. 젊음과 봄을 찬미한다. 고매한 서정이 가득하다. 어여쁜 아이의 미소가 항상 넘쳐난다.‘영원한 어린이’이자 이 시대의 ‘참 스승’으로 여겨진다. ‘나같이 범속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띠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내 나이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금아(琴兒) 피천득(97) 선생. 늘 이맘때면 고향의 ‘인연’처럼 생각난다. 그래서 신록이 우거진 5월의 거울 앞에서 우리 자신을 살핀다. 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어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채식 위주로 건강 유지 선생은 지금도 애지중지하는 인형 ‘난영’이와 함께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는다. 잠 잘 때에는 즐거운 꿈의 세계를 함께 걷는 길동무가 된다. 깨어 있을 땐 어린 아이처럼 순박한 미소로 서로를 느끼며 의지한다. 선생은 평생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삼았기에 칠순이 넘은 제자들이 자주 찾아와 허물없이 얘기를 나눈다. 어버이로서, 스승으로서 존경받아 선생은 5월의 상징적 인물이다. 햇볕이 따사로운 지난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선생의 자택을 찾았다. 미리 전화로 시간약속을 했던 터여서 선생은 응접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이 맑아보였다. 넙죽 인사를 드렸다.“어서 와요.” 하면서 특유의 해맑은 미소로 다정하게 손을 잡는다. 따뜻했다. 선생은 “건강? 한달에 한번 병원에 가요, 등쪽에 뭐가 좀 있는데 아직 괜찮아요.”라고 요즘의 건강상태를 미리 귀띔해준다. “선생님, 언제나 동안(童顔)입니다. 여전히 채식을 하시죠?” “아, 그럼….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주까. 영국의 버나드 쇼(1950년 95세로 사망)가 채식주의자였어요. 나이 들어 죽었는데 이때 ‘런던 타임스’ 사설에 뭐라고 그랬는가 하면 ‘버나드 쇼의 장례 행렬에는 염소와 소, 양떼들이 울면서 뒤를 따랐다.’라고 했지. 평생동안 육식을 안 하니깐 그놈들이 얼마나 고마워했겠는가 말야. 어쨌든 사설에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해….” 선생의 얼굴엔 함박 웃음이 가득했다. 아름다운 기억을 한순간에 들춰낸 희열이었다. 삶의 조크가 봄날의 화사한 꽃처럼 향기롭게 다가온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문득 응접실 벽에 걸린 족자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족자는 한문으로 깨알같이 썼으되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글씨였다. 선생은 눈치도 빨랐다.“저 (글)내용은 다 내 책에 있는 거야. 얼굴 사진은 아마 2년 전인가 그래요. 전문가가 찍었대….”라고 얼른 설명해준다. 아파트 창너머 화단쪽에는 연분홍 치마를 입은 진달래가 요염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화제를 돌렸다. “선생님, 이제야 봄이 온 것 같습니다. 꽃도 많이 피었고요.” “아, 그래. 제대로 오긴 왔나요.” “선생님,‘오월’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59년에 발표한 작품이시죠?” “아마, 그럴 거요.” “봄도 완연하고,5월에는 생각할 여러 날도 많습니다.” 선생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상념에 잠긴다. 기억을 되살릴 때마다 선생은 잠깐씩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 책을 가져와봐요.”하면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부른다. 아주머니는 치매로 고생하는 선생 부인의 수족처럼 늘 함께 지낸다. 이어 ‘피천득 수필집’(범우사 간행)과 번역시집 ‘내가 사랑하는 시’(샘터사 간행) 두 권을 가져왔다. 수필집은 ‘인연’‘그날’‘비원’ 등 그동안 발표된, 금쪽같은 것만 추려 모았다. 시집은 셰익스피어, 워즈워스, 예이츠, 도연명, 두보, 타고르 등 평소 좋아했던 세계 명시를 모아 작년에 직접 선생이 번역했다. “이봐요, 번역을 하다 보니 요새 느낀 게 있어. 영어로 Cover the Wagon을 직역했더니 포장마차가 되더라고. 그런데 지금 포장마차라고 하면 뭐가 돼요? 안주 먹고 술도 마시는 곳이지요. 원래는 인근에 산책 나갈 때 이용하는 덮개 씌워진 마차를 말하거든요. 이렇게 세대가 바뀌면 딴 게 돼버려요. 그래서 번역이 힘들어요.” ●시는 영혼의 가장 좋은 양식 선생은 또 눈을 감는다. 기억을 해내는 데 방해가 될까봐 질문을 멈추고 잠자코 기다렸다. 다시 말을 이었다. “거 참, 좋은 시들 많아.‘겨울이 짙었으니 봄이 그다지 멀겠는가.’ 영국 시인이 말했는데 괜찮다고 생각해요. 음, 이것도 있어요.‘봄비니까 맞고 가자, 젖어서 가자’ 이건 일본 사람이 한 얘기야. 요즘같은 황사니 뭐니 하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생각할수록 아주 운치가 있어. 그래, 봄비인데 옷좀 젖으면 어떠냐고 말야.” 이어 우리나라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다는 것은 큰 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봄과 가을이 좀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피력했다. “나는 수필과 시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높은 차원의 시는 동서를 막론하고 엇비슷해요. 모두가 순수한 동심과 맑은 서정을 가지고 있으니까. 요즘에는 과거에 비해 시를 많이 읽지 않는 것 같아요. 경쟁이 치열하고 남을 누르고 이겨야 살 수 있는 세계에서 시는 사실 잘 읽히지 않아요. 하지만 이럴수록 오히려 시를 가까이 두고 읽어야 해요.” 시는 영혼의 가장 좋은 양식이고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시를 읽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영혼이 정갈해지며 이것은 곧 ‘마른 나무에서 꽃이 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순수한 동심만이 세상에 희망의 빛을 선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선생은 열다섯 살 때부터 유럽과 일본의 시들을 읽고 심취했다. 이어 스승의 날을 생각했던지 “우리나라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대접이 부족해요. 아이가 선생한테 뭘 갖다줄까봐 스승의 날 휴교하는 세상이 어디 있어요.”라고 질타한다. 또한 “아이들이 선생을 존경해야 하는데 아직 너무 부족해.”라고 안타까워했다. 아이들이 선생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나라도 사랑하고 또 나중에 커서 봉사하는 정신으로 삶을 살게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나라 장래는 아주 낙관적” “우리나라 아이들은 두뇌가 기가 막혀요.‘나는 훌륭한 나라의 백성이다.’는 자존심을 가져야지. 원래 우리 민족은 두뇌가 좋아. 우리나라처럼 부지런하고 극성인 나라도 없어. 운동이니, 음악이니 다 두각을 나타내잖아요. 자연도 아름답고, 자존심을 상실할 이유가 없어요…. 우리나라 장래는 아주 낙관적이야.” 선생은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많다. 월드컵야구클래식(WBC)에서 조편성만 불리하지 않았으면 우리나라가 우승도 할 수 있었지 않으냐는 예를 들었다. 또 미 여자프로골프협회(LPGA)에서 한국 여자들이 연이어 우승하는 것도 다 민족의 우수성에서 얻어진 결과라고 덧붙였다. 선생은 100살을 바라보는 지금에도 분명 젊은 봄처럼, 신록의 5월처럼 살고 있었다. 고매한 서정성과 순수한 동심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선생은 하루에도 몇번씩 인형과 함께 잔다. 딸 서영의 동생이라는 뜻에서 이름을 ‘난영’으로 지었다. 목욕도 시켜주고 예쁜 핀으로 머리를 묶어준다. 선물을 받은 곰인형 세마리도 함께 자는데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어 선생이 직접 안대를 씌워 재운다. 엄마 노릇을 하고 싶어서다. 오는 29일, 선생은 아흔일곱번째 생일을 맞는다. 선생의 원래 이름은 천득(天得)이었는데 호적계의 과실로 ‘天’이 ‘千’으로 바뀌었다. 획수가 하나 적어지는 바람에 가난하게 산다는 얘기를 듣는다. 다시 오월을 노래한다.‘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10년 서울 출생 ▲26년 서울 제일고보 4년 재학시 중국 상하이로 유학 ▲29년 상하이 호강대학교 예과에서 수학. 도산 안창호 선생을 사사함 ▲34년 귀국후 춘원 이광수 선생댁에 유숙, 금강산 체류 ▲37년 호강대학교 영문과 졸업 ▲45년 경성대학 예과 교수 ▲51년 서울대 사범대 교수 ▲54∼55년 하버드대학에서 연구 ▲59년 금아시선문선 출간 ▲63∼69년 서울대학원 영문과 주임교수 ▲74년 서울대 교수 퇴직(슬하에 2남1녀를 둠. 장남은 캐나다에서 치과 기공소 운영, 차남은 서울아산병원 의사, 장녀는 미국에서 물리학자로 활동 중.) # 주요 작품집 서정소곡(1930년), 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33년), 서정시집(47년), 소네트시집(76년), 수필(76년), 금아문선·금아시선(80년), 인연(96년), 미수기념 금아 피천득 문학전집(97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2005년) 등
  • [나길회기자의 세상속으로] 억대연봉 화장품 아줌마의 비밀

    [나길회기자의 세상속으로] 억대연봉 화장품 아줌마의 비밀

    어린 시절, 화장대에서 노는 것이 시시해질 때면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화장품 아줌마’였다. 가방 가득 신기한 화장품을 갖고 찾아오는 날이면 괜스레 들떴다. 지금 여염집 아낙들도 해외 브랜드를 쓴다. 유통 비용을 줄여 값을 낮춘 화장품 판매장들이 길거리에 즐비하다. 홈쇼핑 쇼호스트는 각종 미용제품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피부를 소중히 생각하는 여성들의 화장품 고르는 눈도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래서 요즘 같은 세상에서 화장품 방문 판매로 한해에 억대의 돈을 버는 사람은 더욱 특별해 보인다. 매월 천만원 이상 번다는 ㈜태평양의 ‘아모레 카운슬러’ 김경희(오른쪽 두번째·49)씨와 이틀간 동행하며 ‘영업 비밀’을 들여다봤다. ●‘투자가 먼저’라는 정석을 지켜라 “천만원, 결코 적은 돈이 아니죠. 하지만 그만큼 고객들에게 쓰고 있습니다.”‘아모레 카운슬러’란 고객을 직접 방문해 태평양이 생산하는 화장품을 판매하고 마사지나 메이크업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개인사업자다. 전국에 약 3만 2000여명이 등록돼 있고 월 평균 소득은 120만원 정도라고 한다. 이 가운데 평균의 10배 이상 버는 사람의 생활은 호사스러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버는 만큼 투자한다. 그에 앞서 먼저 투자해야 벌 수 있다.’라는 정석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김씨를 처음 만난 곳은 뜻밖에 인천 영흥도였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는 수요일마다 영흥도를 찾고 있다. 다리가 놓여 배를 타지 않아도 되지만 서울에서 2시간 반이나 걸리는 곳이다. 한 음식점 주인을 첫 고객으로 시작으로 고객이 15명으로 불어났다지만 전체 고객이 300명이 넘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주일에 하루를 영흥도에서 보내는 것은 ‘과한 투자’아닌가 싶었다. 지난달 26일 이 섬의 한 펜션. 오후 2시가 되자 김씨에게 마사지를 받으려는 고객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김씨가 꺼내든 화장품은 샘플이 아닌 개당 10만원 안팎의 정품. 개인 돈으로 구입한 것임에도 아낌없이 쓴다. 많은 시간에 비싼 제품까지, 고객관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묻자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했다. 인구 3000여명가량의 영흥도 주민 모두가 잠정적인 고객이라는 생각이었다. 영흥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마사지를 마친 시간은 밤 9시50분. 돌아가는 길에 지난주에 들러 샘플을 건넸던 시장 상인들을 만났고 2명에게 40만원어치에 가까운 화장품을 팔았다. 영흥도의 고객이 17명으로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영원한 고객은 없다 세일즈로 성공한 사람들은 기존 고객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다. 한번 고객이 재구매를 하고 다른 고객을 연결시켜주기도 한다. 하지만 김씨의 사정은 달랐다.“오늘 제가 파는 화장품을 쓰던 사람이 내일이면 면세점에서 사온 화장품을 쓸 수 있거든요.”그래서 끊임없이 새 고객을 찾는단다. 매년 서울에서 판매 1위를 고수하고 전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비결이란 중단없는 고객확보였다. 다른 날에는 서울과 수도권의 고객 집을 방문한다. 매일 10∼12곳에 들러 주문한 물건을 갖다주거나 수금을 하고 신제품을 소개한다. 고객과의 약속은 ‘칼같이’ 지킨다. 차를 몰고 다니지만 하루가 짧다. 그러면서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고객 경조사. 얼마전 8년된 고객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한달음에 달려가 부조금을 건넸다. 물론 문전박대를 각오하고 ‘맨땅에 헤딩’식으로 생판 모르는 아파트의 문도 두드린다. 요즘 느끼는 것은 처음 일을 시작한 18년 전보다 인심이 더 야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런 방법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정과 신뢰의 조화 김씨는 자신의 영업 비밀을 굳이 말한다면 ‘정(情) 마케팅’이라고 했다. 사람 사이의 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다른 회사 화장품을 쓰더라도 기분 나빠하지 않아요. 그냥 같은 여자로서 언니처럼, 동생처럼 친구처럼 대하면 제 진심을 알아준다고 생각합니다.”마치 수십년간 알아온 사이처럼 고객들을 대한다.18년간 만나온 고객도 있지만 단 몇개월만에 속 얘기를 털어놓을 만큼 금방 가까워진 사람도 있다. 훌륭한 영업 사례로서 다른 판매원들에게는 ‘우상’처럼 여겨지지만 자신은 영업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화장품을 한번 팔면 그만이라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약속을 지키더라고요.‘믿고 물건을 살 수 있겠다.’싶었습니다.”고객 얘기다. 믿었던 고객에게서 수백만원의 화장품 대금을 못 받고 낙담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김씨는 더욱 믿음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정과 신뢰, 이 두 가지가 번지르르한 달변가도 아닌 그를 억대 연봉자로 만든 비밀이었다. kkirina@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인천이 원조](3)사이다

    [인천이 원조](3)사이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컵이 없으면 못 마셔요.” 이미 고인이 된 코메디언 서영춘씨가 1960년대에 크게 유행시킨 ‘사이다송’이다. 콜라와 더불어 청량음료의 쌍두마차인 사이다. 지난날 학생들이 소풍을 갈 때면 어머니가 은밀한 손길로 배낭에 넣어주던 품목이다. 김밥과 함께 ‘환상의 콤비’를 이뤄 소풍의 의미를 배가시켰고, 지금도 촌 노인들은 “사이다는 소화제”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 사이다가 왜 하필 인천 앞바다에 떴을까?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답은 간단하다. 사이다는 인천에서 탄생돼 앞 바다에 병이 둥둥 떠다닐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모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이다는 미국에서 들여와 지금까지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는 콜라와는 달리 ‘신토불이형’음료수다. ‘인천부사(仁川府史)’에 따르면 1905년 히라야마 마쓰타로라는 일본인이 인천시 중구 신흥동 해광사 부근에 ‘인천탄산제조소’라는 사이다 공장을 세웠다. 이 회사는 미국식 제조기와 5마력짜리 발동기를 이용해 ‘별표(星印) 사이다’를 생산해냈다. 식혜와 수정과 정도가 음료로 여겨졌던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야릇한 이름과 함께 어색하게 다가섰지만 사이다를 한번 맛본 이들은 금세 톡 쏘는 맛에 매료됐다. 시원한 음료가 없던 시절인 데다 가격까지 싸 사이다는 서민들 사이에서도 “사이다에 인이 박혀서…”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향토사학자인 고 신태범 박사는 ‘개항 후 인천풍경’이라는 저서에서 “일본인이 싸구려 음료수를 만드는 공장을 세워 빙수밖에 없던 여름철에 시원한 마실거리를 선보였다. 병은 그대로 내놓고 3전이었다.”고 회고했다.‘병은 그대로 내놓고’는 사이다는 마시고 병은 반품했다는 뜻이다. 1916년 9월 미국에서 발행된 월간지 ‘월드 아웃록’에는 경인선 기차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객차 전면에 ‘별표 사이다’ 광고가 보인다. 당시 첨단시설인 기차에 광고를 할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는 얘기다. 사이다는 전국으로 전파돼 회사측은 상당한 돈을 벌었다.1929년 당시 하루 생산량은 4500상자에 달했다. 사이다는 처음에 사과즙에 브랜디와 설탕을 넣어 발효시켜 알코올 성분이 1∼6%가량 들어 있었는데, 어느 시기에 오늘날과 같이 구연산과 감미료, 탄산가스 등을 원료로 하는 음료로 바뀌었다. 해방 후에는 인천탄산제조소의 후신인 (주)경인합동음료를 불하받은 손욱래씨가 ‘스타 사이다’를 만들어 인기를 이어갔다. 이 무렵 전국에는 12개의 사이다 제조업체가 있었으나 인천의 ‘스타 사이다’와 평양의 ‘금강 사이다’가 시장을 주도했다. 그러다 1950년 5월 서울에서 ‘칠성 사이다’가 출시되는 바람에 판도가 바뀌었다. 경인합동음료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1960년대 초까지 당시 인천의 일간지 ‘인천신보’에 ‘순당, 고급음료, 뉴 스타 사이다’라는 광고를 꾸준히 내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사이다가 ‘별표’로 시작해 ‘스타(star)’를 거쳐 ‘칠성(七星)’에 이르기까지 모두 ‘별자 돌림’이라는 점이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가 사이다를 컵에 따르면 기포가 톡톡 튀는 모습이 별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아니면 말고’식의 해석으로 보인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생존경쟁 은행들 복장파괴 몸부림

    생존경쟁 은행들 복장파괴 몸부림

    ‘넥타이를 풀어라.´ 남성들은 검은색 계통의 정장을, 여성들은 말끔한 유니폼을 갖춰 입었던 은행원들의 옷 매무새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운동화를 신고 출근하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은행은 단체로 티셔츠를 입고 고객을 맞이하기도 한다. 최근 은행들이 시도하고 있는 ‘복장 파괴´에는 ‘투쟁전략´,‘마케팅전략´ 등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다. 조만간 국민은행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지만 여전히 독자생존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는 외환은행 직원들은 26일 모두 푸른색 티셔츠와 조끼를 입고 출근했다. 론스타의 헐값매입 진상규명과 재매각을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노동조합이 제공한 ‘투쟁복´이었다. 쟁의행위가 금지된 일부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노조의 지침을 따랐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투쟁자금으로 30억원을 모을 정도로 직원들은 독자생존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면서 “고객들에게 혐오스럽지 않게 보이기 위해 노조도 투쟁복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단체복 착용은 수요일마다 무기한 계속된다. 하나은행 전직원은 금요일에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고객을 맞이한다. 은행권 유일의 축구국가대표팀 후원사로 월드컵 마케팅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외국계 은행이 된 SC제일은행은 지난해 9월부터 금요일을 ‘캐주얼 데이´로 정하고 복장 자율화를 실시하고 있다. 고객을 직접 대하지 않는 본점 직원들은 운동화를 신고 나오기도 한다.‘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외국인 경영진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역시 외국계인 한국씨티은행 직원들도 금요일에는 자율 복장으로 출근한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청일전쟁 ‘다시보기’

    청일전쟁 ‘다시보기’

    청일전쟁(1894∼1895).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을 두고 맞붙은 전쟁이다. 동학혁명에 당황한 조선정부가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일본도 덩달아 군대를 보내 청나라를 도발한 끝에 벌인 전쟁이다. 대개 이 전쟁에 대한 1차적 평가는 ‘일본이 드디어 마각을 드러냈다.’는 것이고, 한걸음 더 나아가면 ‘제 나라 분란 막자고 남의 나라 군대까지 불러들인 조선 지도층의 한심함’ 정도다. 그런데 이런 평가에는 한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바로 동학혁명에 대한 믿음이다. 동학혁명이 청나라·일본 두 외세의 방해가 없이 성공적으로 완수됐다면, 그래서 조선땅에 새로운 정치체제가 들어섰다면, 조선은 망국의 설움을 겪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는 것. 역사에 가정은 없다는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정말 그랬을까라고 되묻는다면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용과 사무라이의 결투’(리북 펴냄)는 그런 점에서 주목되는 청일전쟁 연구서다. 강성학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그가 소장으로 있는 평화연구소 소속 연구교수 등 10여명이 참가했다. 이는 (비록 형식뿐일지라도) 독립적이고 동등한 행동단위로서의 국가를 설정한 뒤 이들간 현실적인 힘의 관계를 다루는 ‘국제정치적인 관점’에서의 접근을 의미한다. 당연히 우리의 입장에서, 침략의 피해자임을 부각하는 ‘국사’의 접근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편저자인 강성학 교수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되묻는다.“동학혁명이 성공했다 한들, 근대 정치의식과 체험이 부족했고, 강대한 외국들과 교섭할 수 있는 근대적 외교기술도 부족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뒷받침할 물리적 힘이 너무도 부족하지 않았던가.” 이는 제국주의란 것이 무슨 대단한 ‘악마적인 계획’이라기보다, 영토보전과 세력균형을 추구하는 국가들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하나의 결과일 뿐이고, 그렇다면 역사에서 흔히 보아오던 국가의 흥망성쇠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최근 서구 학계의 해석과 비슷하다. 그렇다해서 단순히 ‘먹힐만 하니까 먹혔다.’는 뜻은 아니다.‘그러지 않았다면 이랬을 텐데’는 식으로 실패한 동학혁명의 환상에만 매달려 있을게 아니라, 냉철한 분석이 더 필요하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그렇기에 청일전쟁의 해석은 더 중요해진다.‘조선에 대한 일본의 침략야욕’,‘조선의 한심한 대응’으로만 보면 ‘믿지 말자 일본’,‘핫바지론’ 밖에 안 나온다. 대신 청일전쟁은 세계사적으로 의미있는 동아시아 패권전쟁으로 해석돼야 한다. 일본이 수행한 50년전쟁(1894∼1945)의 시작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뒤흔든 일대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지금 더욱 필요하다. 왜냐면 한국·중국·일본이라는 국가가 있고, 미국·러시아 등 강대한 해외세력들이 끊임없이 개입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현재 상황은, 기본적으로 청일전쟁 당시의 상황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이 독도와 댜오위타이와 북방4개섬을 놓고 주변국과 다투고, 이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중국도 중화의 영광을 되살린다는 야망을 숨기지 않게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MLB] 박찬호 살아나나

    [MLB] 박찬호 살아나나

    지난 2001년 8월25일.LA 다저스 소속인 박찬호는 미국프로야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통산 9번째 완투승(완봉 2차례 포함)을 일궈냈다. 이후 꼬박 4년8개월만인 2006년 4월25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홈경기에 선발출장한 박찬호는 눈부신 호투 속에 9회 마운드에 올라 완투를 눈앞에 뒀다. 9회 등판은 2002년 9월8일 탬파베이전이 마지막.1-3으로 뒤져 시즌 첫 패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지만 아직 선발로 입지를 굳히지 못한 박찬호로서는 이날 9회 등판 자체가 의미 있었다. 박찬호가 부활의 청신호를 밝힌 것. 그러나 아웃 카운트 하나를 남겨둔 2사1루에서 완투의 꿈이 무너졌다. 애리조나의 데이몬 이즐리가 친 공이 평범한 유격수 앞 땅볼이 될 상황이었지만 1루심 빌 웰크가 세이프를 선언해 2사 1·3루의 위기를 맞았다. 이즐리의 발보다 공이 1루수 안드리안 곤살레스의 글러브에 먼저 들어갔지만 1루심은 ‘오심’을 번복하지 않았다. 아쉬움에 땅을 친 박찬호는 이어 투수 웹에게 3루 실책성 안타로 한 점을 더 내주고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다. 박찬호는 이날 8과 3분의2이닝 동안 삼진 4개를 곁들이며 9안타 4실점으로 역투했지만 팀타선의 침묵으로 결국 1-4로 져 패전의 멍에를 썼다. 박찬호는 1승1패를 기록했고 방어율은 4.86에서 4.62로 좋아졌다. 이날 박찬호의 투구수는 119개였고 스트라이크는 79개였다. 특히 고질병이었던 볼넷은 단 1개뿐이었다. 지난 20일 콜로라도를 상대로 7이닝 4실점(3자책)하며 시즌 첫 승을 올린 박찬호는 2경기 연속 호투로 브루스 보치 감독에게 강한 믿음을 주었다. 경기 뒤 박찬호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아쉽지만 지난 몇년 동안 잊고 있었던 능력을 확인했고, 미래에 대한 더욱 강한 확신과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저녁식사 자리에서 잘했다고 계속 칭찬해주는 아내가 고맙게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5·31 지방선거-유권자가 희망이다] (4) CEO후보 붐 허실

    #1.“기존 정치인은 ‘그 밥에 그 나물’ 아니냐. 새로운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31세 대학원생 홍모씨),“정치만 했던 사람이나, 공무원으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보다는 경영 전문가가 지방 살림을 맡는 게 낫다. 살림도 해본 사람이 안다.”(42세 주부 황모씨) #2.“CEO로서의 경험와 능력을 펼쳐 ○○도를 첨단 지역으로 이끌겠습니다.”(광역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A씨),“CEO △△구청장이 되겠습니다.”(기초단체장 예비후보자 B씨) 유권자는 자기 고장을 이끌 사람으로 갈수록 전문 정치인보다는 ‘최고경영자(CEO)’를 선호한다. 날마다 말싸움이나 벌이고 선거에 이길 궁리만 하는 ‘정치꾼’보다는 기업에서 생산적인 활동을 지휘하면서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낸 CEO에게 믿음이 간다는 것이다. 5·31 지방선거에서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도 이같은 유권자의 기류 변화를 읽고 있다. 때문에 화려한 정치경력, 행정 경험보다는 단 1∼2년이라도 좋으니 ‘대표이사’나 ‘사장’으로 일한 경험을 앞세우기 일쑤다.‘CEO 경력=능력’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깔려 있다. ●당마다 영입공언… 결과는 신통찮아 선거 전문가들은 성공한 CEO를 원하는 유권자나 기존 정치권의 심리가 어느 정도는 ‘이명박 성공 신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1일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 수십조원을 예산으로 쓰는 지자체의 장이 되려면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리더십과 통찰력, 결단력이 필요한데 CEO 출신은 이미 기업에서부터 막대한 금액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를 진행,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지자체장으로서도 역할을 잘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별로 인재영입 활동이 활발했던 1,2월까지만 해도 후보 1순위는 단연 CEO 출신이었다. 내로라하는 기업의 CEO 이름이 거론됐다. 하지만 영입활동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순수하게 ‘외부’ 영입된 케이스는 한나라당 제주지사 후보인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이다. 경기지사 후보인 열린우리당 진대제 전 장관은 ‘범 여권’ 출신으로 분류되고, 현대 캐피털 CEO 출신으로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한 열린우리당 이계안 의원은 지난 2004년 17대 총선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유권자도, 기존 정치권도 CEO를 원하지만, 막상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CEO 바람이 기대보다 약한 이유로 한 정치권 인사는 정치공학과의 괴리를 꼽았다. 아무리 성공한 CEO 출신이라 해도 정치권에 들어오면 ‘초짜’ 취급을 받기 때문에 당내 경선을 통과할 가능성도 낮다는 분석이다. ●성공한 CEO도 ‘초짜´ 취급 분위기탓 유권자의 시각도 비교적 엄격하다. 회사원 최모(38)씨는 “어떤 기업에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도 중요하므로 구멍가게 사장에게도 CEO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이계안 의원은 “밑바닥 사원에서 출발해 최고경영자에 올랐던 사람이 진정한 CEO지 어느 회사에서 사장을 했다고 무조건 CEO라고 할 수는 없다.”며 ‘CEO 남발 현상’을 꼬집기도 했다. 국민대 김형준 교수는 “유권자 마인드가, 순수한 정치인보다는 풍부한 국정경험과 행정력, 기업 경영능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고건 전 총리처럼 행정 경험이 풍부한 관료적 CEO나 이명박 시장처럼 기업가적 CEO가 가능한데, 두 사람 모두 대중성이 높아 ‘CEO 리더십’으로 불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구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80m 상공서 노래한 ‘침착한 시민들’

    80m 상공에 매달린 케이블카에 몇 시간째 갇힌 승객에게서 노래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면. 구조될 수 있다는 믿음과 질서를 유지하는 시민의식이 없다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런 일이 미국 뉴욕에서 18일(현지시간) 일어났다. 맨해튼과 루스벨트섬을 오가는 케이블카 두 대가 이날 오후 5시15분(한국시간 19일 오전 6시15분) 전기 공급이 중단돼 승객 125명이 갇혔다가 11시간만인 19일 새벽 4시15분(한국시간 오후 5시15분)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고 WNBC-TV가 보도했다. 두 대의 케이블카 안에는 퇴근길 직장인과 관광객, 젖먹이 어린이 등이 타고 있었다. 케이블카가 멈춰선 곳은 맨해튼 동쪽을 흐르는 이스트 리버 바로 위였다. 뉴욕시는 신고를 받고 곧바로 구조에 들어가 두 명이 디젤 엔진 곤돌라를 타고 케이블카에 접근,60㎝ 벌어진 틈으로 한 사람씩 끌어올려 상대편에서 잡아주는 식으로 아슬아슬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곤돌라에는 10명밖에 탈 수 없었고 아주 천천히 구조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구조 요원들은 음식과 물, 기저귀를 계속 전달하면서 사정을 설명하고 침착하게 기다려줄 것을 당부했다. 구조대원 손에 의해 먼저 케이블카에서 빠져나온 닥스 마이어(12)는 “구조되는 내내 아래를 쳐다보지 말자고 되뇌었다.”며 “케이블카 안의 분위기가 거의 흥겨운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일부 승객은 노래를 부르고 농담까지 했다는 것이다. 닥스는 “뉴욕 사람들, 참 대단하지요.”라고 말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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