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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사복재판/박홍기 논설위원

    구속되면 구치소로 간다. 그리고 수의(囚衣), 죄수복을 입는다. 재판에 나오는 피고인은 죄가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의 신분이다. 죄를 지은 것으로 의심을 받는 사람이다.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 아래 미결수의 죄수복 착용은 적절치 않다. 일제강점시대의 잔재이기도 하다. 현재 미결수들은 재판이나 검사조사 때문에 교정시설 밖으로 나갈 경우, 사복을 입을 수 있다.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이다. 미결수의 사복 착용은 지난 1999년 7월 3개월간의 시범운영을 거쳐 전국적으로 확대돼 지금에 이르렀다. 벌써 만 7년이 넘었다. 헌법재판소도 1999년 5월27일 미결수에게 죄수복을 강제로 입히는 조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모욕감·수치심 등 심리적 위축으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우려가 큰 데다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는 게 결정 이유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남은 당연하다. 제도의 시행 초기 누런 수의를 벗고 말쑥한 사복차림으로 재판을 받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더 사라지고 있다. 미결수들은 재판에 나올 때 사복 차림을 아예 꺼린단다. 미결수의 사복 착용률은 시행 이래 10%대에 머문다. 이유인즉 미결수들의 ‘부적’같은 믿음 때문이다. 사복으로 법정에 섰다가 자칫 개전의 정이 없는 것으로 비쳐 형량에 불리하게 작용할까 우려해서란다. 재판관에게 불쌍하게 보여 동정심을 유발해야 하는데 말이다. 잡범뿐 아니라 ‘범털’들도 마찬가지다. 재판날에는 세수도 않은 채 법정에 나서는 미결수도 있을 정도다. 판사나 검사들은 “매일 보다시피 하는 미결수들의 복장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사복 차림의 피고인이 유무죄를 다투는 미국의 법정 광경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여긴다. 분명 피고인은 검찰과 대등한 소송 당사자로 법정에 선다. 그러나 미결수의 죄수복은 죄의 인정으로 비쳐진다. 따라서 사복 착용은 선택의 문제이지만 형사재판에서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사안임에는 틀림없다. 오는 2007년 배심제가 도입될 예정이다. 미국처럼 배심원들이 피고인의 유무죄를 따진다. 그때에도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설 피고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못 궁금해진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영업이익을 높여라”

    “영업이익을 높여라”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금융감독 당국의 잇단 제재 조치로 은행들은 요즘 중소기업대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렇다고 부실 위험이 높은 기업에까지 ‘퍼주기식’ 대출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를 더욱 강화해 믿음직한 중소기업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부실 징후가 엿보이는 기업의 대출은 재빨리 회수한다는 게 은행들의 기본 전략이다. 최근 우리은행에는 매출액이 20억원 정도인 두 중소기업이 나란히 대출을 신청해 왔다. 세금을 내기 이전의 이익(세전이익)도 비슷했고, 이자비용도 거의 같았다. 그러나 심사 결과 한 기업에만 대출이 승인됐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유는 영업이익에 있었다. 대출에 성공한 기업의 영업이익은 3억원이었지만 실패한 기업은 1억원에 불과해 부동산 처분으로 얻은 영업외수익 2억 2000만원보다 작았다. ●영업이익에 승부 걸어라 대출에 성공한 기업은 매출액 가운데 매출원가와 직원 급여, 판매관리비 등을 제외한 정상적인 영업이익이 3억원으로, 은행 이자 1억 2000만원을 지급하고도 1억 8000만원이 남아 차입금을 상환할 여력이 있었다. 반면 실패한 기업의 영업이익 1억원으로는 이자비용 1억 4000만원도 감당할 수 없었다. 부동산 처분 수익이 없었다면 오히려 손실이 났을 회사라는 게 은행의 판단이었다. 이처럼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을 결정할 때 영업이익을 먼저 본다. 매출액이나 당기 순이익이 비슷하더라도 영업 활동을 통해 대출원금과 이자를 갚아 나갈 수 있는 기업을 선호한다. 우리은행 우상용 선임심사역은 “환차익이나 투자이익 등 비업무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기업의 연속성을 평가하는 잣대로는 부족하다.”면서 “은행들은 영업이익이 차곡차곡 쌓이는 기업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경영자 의지도 중요 잣대 중소기업 대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부문은 경영자 개인의 신뢰도이다. 오너 중심으로 운영되는 중소기업의 특성상 경영의지와 같은 재무 이외의 요소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신한은행 현기주 심사역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무분별한 업종 변경이나 확장에 나설 경우 경영자의 신뢰도는 급격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한 우물을 꾸준히 파다 보면 동종업계에 소문이 나게 마련이고, 이런 평판은 반드시 은행에까지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조흥은행 장인섭 심사역도 “많은 중소기업들이 외부감사를 받지 않기 때문에 은행들은 어설픈 재무제표보다는 경영진의 신용도를 먼저 본다.”면서 “경영의지와 종업원과의 관계가 중요한 잣대”라고 조언했다. 하나은행 유승엽 심사역은 “기술력이 중요한 정보기술(IT) 업종의 경우 경영층의 교체, 경영권 분쟁 등은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에 대주주 및 과점주주의 경영권 침해 등을 특히 주목한다.”고 말했다. ●분식회계는 ‘대출의 적’ 외부감사를 받지 않는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절세 차원에서 분식회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부실한 재무제표는 신용도를 갉아먹는다. 특히 금융감독원이 지난달부터 은행들에 분식회계가 발견된 기업의 신용도를 낮추라고 지도하고 있는 데다 기업의 신용등급을 모든 은행들이 공유하고 있어 분식회계를 한 중소기업은 대출받기가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우상용 선임심사역은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많은 중소기업들이 차입금 규모를 실제보다 줄이고 있지만 은행 전산망을 통하면 훤히 드러난다.”면서 “100만원을 아끼려다 1억원의 대출을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과금이나 의료보험료, 적금 등을 제때 내는 것도 신용도를 높이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심사역들은 지적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담보만으로 대출받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상환능력을 최우선시하는 은행으로서는 기업의 현금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사소한 것까지 신용평가 항목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1) 경주이선생 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1) 경주이선생 가장결

    “지난 60년은 그만두고 양류목운(楊柳木運)의 해에는 갑자기 군대가 소요를 일으켜 여(女)군주가 도망을 칠 것이다. 만일 동남쪽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나그네가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하게 되리라. 나라의 태공은 푸른 바다에 외로운 그림자가 되어 신세가 처량해질 것이나 아무도 찾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백성들은 달아나 숨기 바쁘니, 삼강오륜이 끊어지도다. 하늘 재앙 혹독해 벌레의 독을 무어라 형언하랴. 부자가 먼저 죽나니 후회해도 소용없도다.”(경주이선생 가장결) ‘정감록’의 일부로 돼 있는 ‘경주이선생’의 첫 대목이다. 정치적 격변을 알리는 끔찍한 예언이 쏟아져 나온다. 그 내용을 일일이 살피기에 앞서 우선 거기에 보이는 연도 표기방식이 특이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양류목운’이라고 했다. 음양오행설에 입각해 임오년과 계미년의 운세를 말한 것이다.‘경주이선생’은 조선 후기에 정착된 편년체 예언이 분명한데, 특히나 음양오행설로 육십갑자를 푼 셈이다. ●한국의 운세를 나무에 빗대는 이유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이란 나라의 운세는 나무 운세(木運)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이다.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그랬다. 다들 우리나라를 나무(木)로 상정했다. 그 기원은 지금부터 약 650년 전인 고려 공민왕 6년(1357)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음양오행에 달통해 사천소감 벼슬에 있던 우천흥이란 일관(日官)이 있었다. 그는 공민왕에게 올린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도선국사가 지은 ‘옥룡기’(玉龍記)란 예언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지맥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끝난다고 했습니다. 그 지세가 물(북쪽)은 뿌리요, 나무(남쪽)는 줄기가 됩니다.” 우천흥은 도선이 한 말이라며 자신의 견해에 권위를 부여하려 애쓴다. 과연 이 주장이 도선에게서 비롯됐는지는 증명할 길이 없지만,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는 백두산을 뿌리로 삼아 지리산까지 줄기가 뻗친 한 그루의 나무로 이해된 사실만은 틀림없다. 역사 기록을 좀 더 살펴보면 그보다 200년쯤 앞서 고려 인종 때도 비슷한 인식이 존재했음이 증명된다. 알다시피 묘청은 도읍을 서경으로 옮기자고 주장했는데, 그 역시 고려란 나라를 한 그루 나무로 보았다. 묘청이 서경에 새 궁궐터로 잡은 곳이 ‘대화세’(大華勢), 즉 큰 꽃봉오리 형상의 명당이었다. 그는 나라 전체를 커다란 나무로 인식했고, 그 중에서 지세가 강한 여러 명당을 꽃으로 간주했다. 대화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꽃 즉, 최고의 길지를 뜻했다. 한국이 음양오행으로 보면 나무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고대 중국에서 비롯된 듯하다. 한반도는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동쪽에 위치하는데, 나무가 바로 동쪽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먼 옛날부터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동국(東國)’ 또는 ‘진단(震檀)’이라 불렀다. 동쪽 나라를 뜻하는 ‘동국’이야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진단’의 진(震) 역시 팔괘의 하나로 동쪽을 가리킨다. 단(檀)은 우리나라의 시조가 단군이라서 덧붙여진 것이다. 우리나라를 동쪽 나라라 하고 그래서 나무 운세로 보는 것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표현된 것이다. 지구가 둥근데 하필 우리나라를 동쪽으로 볼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정약용이나 홍대용과 같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마침내 지구가 둥글다든가 자전하는 줄을 알게 돼 중국적 세계관에 본격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나라를 동쪽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인습의 뿌리는 정말 끈질기다. 빠뜨릴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야기가 역시 ‘고려사’에 실려 전한다. 한국 고대 풍수지리의 아버지라 할 도선국사가 고려 태조 왕건이 태어날 집터를 정할 때의 전설이다. 그 때도 나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선은 왕건의 아버지 왕륭과 함께 곡령 고갯 마루에 올라 지맥을 두루 살폈다. 위로 천문을 보고 아래로는 시수(時數)를 살핀 다음 그는 이렇게 말했다.“이곳 지맥은 임방(壬方:북쪽)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물을 어머니(水母)로 삼은 나무(동쪽)가 줄기인데, 말머리 명당에 이르러 멈춰선 형세입니다. 공 역시 물의 운명이오니 마땅히 물의 대수(大數·물의 수는 1과 6으로 6이 대수다)에 따라 집을 지어야 합니다. 대수인 6에 6을 곱하면 36구가 되는데 이것이 천지의 대수에 부응합니다. 제 말대로 하시면 내년에는 반드시 성스러운 아들(미래의 임금)을 낳게 될 것이오니 이름을 부디 왕건이라 하십시오.”(고려사 세계 7) 도선은 태조 왕건의 운세를 나무로 보고, 그 아버지는 나무를 살리는 물이라 여겼다. 마찬가지로 송악 명당이 있게 한 뿌리는 백두산인데 북쪽의 임방에 위치하므로, 오행으로 풀이해 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비해 송악 명당을 낳은 금강산과 태백산 등 백두대간은 송악에서 바라보면 동쪽에 위치해 나무로 간주됐다. 따지고 보면 송악 역시 그 나무의 꽃 또는 열매에 해당해 근본적으로는 나무로 파악됐다. 도선의 머릿속에서 송악과 고려 태조 왕건은 나무로 동일시되었다. 나무인 왕건이 태어나서 자랄 집은 당연히 물이라야 하므로 대수 36구가 길하다는 결론이 나왔으며, 송악에는 푸른 소나무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 도선의 처방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의 운세는 늘 나무로 파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壬午와 癸未가 楊柳木이 되는 이유 오행상생설로 보면 나무를 살리는 것은 다름 아닌 물(水), 죽이는 것은 불(火)이다. 따라서 나무인 한국에게 물의 해는 길하고 불의 해는 흉하다는 식의 운세 풀이가 나오게 된다. 흉한 해 즉, 불(火)로 정의되는 해는 말(午)의 해요, 그 뒤를 이은 양(未)의 해도 좋지 않은 것으로 점쳐진다. 그런데 한국의 운세는 말과 양 등 십이간지(十二干支)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육십갑자를 구성하는 열 개의 천간(天干)이 또 있어서다. 나무에 해로운 불은 병정(丙丁) 둘이며, 이로운 물이 또 두 가지이다. 임(壬)과 계(癸)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임과 계년이라면 나라 운세가 보통은 아주 좋다. 하지만 십이간지인 말과 양의 해가 나무와 상극인 관계로 임오년과 갑신년의 운세는 상생과 상극이 맞부딪쳐 어정쩡해진다. 비유하자면 어린 나무(柔木)다. 역술가들은 임오년과 계미년의 국운을 흔히 양류목(버드나무) 운세라 부른다.‘경주이선생’도 예외가 아니어서 버드나무 운세라는 말로 두 해의 운세풀이를 시작한다. 하고 많은 나무 가운데서 버드나무란 또 무엇일까? 옛 사람들은 버드나무라면 으레 생명력이 끈질기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명유(名儒) 하서 김인후는 귀양 가는 친구에게 뜰 앞의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주기도 했는데, 버드나무가 정든 임을 상징하기도 했지만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버드나무는 가늘고 긴 가지가 특별하다. 축 늘어진 모양은 마치 미인이 긴 머리를 풀어헤친 듯도 하려니와 하늘하늘한 여인의 허리를 연상케 한다. 낙락장송의 꼿꼿한 기개는 아닐지라도 유려함과 생명의 활기가 느껴지는 나무다. 버드나무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물이 올라 푸르름을 선사하기도 한다. 부드러움 속에 강인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양류목’ 운세는 다소 불리한 가운데도 끝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날 가능성을 가진다. 말과 양의 해라면 나무가 죽을 수이고, 특히 큰나무가 해를 많이 입을 운이다. 다행히 임과 계년이라서 다 죽지는 않는다. 산불 때 그렇듯 큰 나무는 힘없이 쓰러지되 작은 나무는 도리어 살아남을 운세다. ●임오군란과 양류목운 다시 맨 앞에서 인용한 ‘경주이선생’의 첫 대목을 상기해보자. 고종19년(1882) 임오년의 정세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참 많다. 첫째, 군대의 소요가 일어난다는 예언이 있는데 그 해에는 실제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당시 정국은 대원군을 중심으로 한 수구파가 개화파와 대립하는 형세였다. 개화파는 사실상 국왕 고종과 명성황후가 손수 이끌다시피 했다. 왕이 개화를 지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개화파 관료가 점차 조정에 많이 임용되었다. 고종18년(1881)에는 신식군대인 별기군까지 창설되었는데, 소외감을 느낀 구식 군인들은 그것을 왜별기(倭別技)라 부르며 분통을 터뜨렸다. 과거 대원군이 집권하던 시절만 해도 구식 군인들에 대한 대우는 좋았다. 하지만 개화정책이 추진되면서 사정이 많이 달라져 그들은 봉급이 13개월치나 밀리는 등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다. 재정을 담당하는 선혜청 당상이자 병조판서였던 민겸호야말로 이런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 구식 군인들의 믿음이었다. 마침 그해 6월, 전라도에서 올라온 세미(稅米)가 서울에 도착하자 구식 군인들에게도 1개월분의 급료가 지불되었다. 그런데 선혜청 담당 관리들의 농간으로 겨와 모래가 섞인 쌀이 지급되자 구식 군인들은 분노를 참지 못해 무장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평소 불신하던 민겸호의 집에 난입했고, 장차 민씨 일파의 보복이 있을까 염려한 나머지 반대파인 대원군에게 의지했다. 대원군은 몰래 심복을 보내 구식 군인들을 통솔했고 이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자신의 재집권을 꾀했다. 그 바람에 구식 군인들의 폭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군인들은 무기고를 털어 무장을 강화한 뒤 명성황후의 측근들과 개화파 주요 관리들의 집을 차례로 습격했다. 대원군의 밀명에 의해 그들은 친왕적이고 개화정책에 우호적이던 대신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다.“부자가 먼저 목숨을 잃는다.”는 ‘경주이선생’의 예언처럼 부와 권세를 부리던 사람들이 상해를 입었다. 개화파의 군사적 기반인 별기군 병영도 무사하지 못했다. 구식 군인들은 일본인 교관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를 살해했고, 일본 대사관에도 침입해 13명의 일본인 목숨을 빼앗았다. 둘째, 예언서 ‘경주이선생’에는 여 군주가 도망친다고 돼 있는데, 실제로 실권을 행사하던 명성황후가 충주로 도피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구식 군인들은 돈화문을 통해 창덕궁 궐내로 난입했다. 그들은 개화파의 우두머리라며 명성황후를 제거할 계획이었다.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수구파의 우두머리인 대원군의 조종을 받은 것이었다. 목숨이 위급해진 왕후는 무예별감 홍재희의 도움을 얻어 충주 장호원에 있던 친척집으로 피신했다. 셋째, 국태공이 납치된다는 예언도 적중해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었다. 국왕인 고종은 임오군란으로 벌어진 정치적 난맥상을 진정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해 일단 대원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시 정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대원군은 왕의 의지에 상반된 조치를 연달아 취했다. 대원군은 그동안 실시돼온 개화정책을 거의 모두 파기했다. 별기군을 혁파하고 구식 군대인 5군영을 복구하였으며, 신식 정부기관인 통리기무아문을 없애고 3군부를 설치했다. 대원군은 최대의 정적인 명성황후의 실종을 서둘러 사망으로 단정하고 국상을 치렀다. 개화파로서는 큰 타격이었다. 그러자 개화파는 톈진(天津)에 주재하던 영선사 김윤식을 통해 청나라에 군사적 후원을 부탁했다. 청나라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에 대규모 군대를 파견했다. 오장경(吳長慶)이 이끈 청나라 군대 4500명이 서울로 급파됐다. 그는 군대를 앞세워 한국의 내정에 직·간접으로 간섭하였고, 자신을 찾아온 대원군을 불법 체포해 톈진으로 압송했다. 한국 내에서 청나라의 입지를 강화시킬 방안에서였다. 이로써 나는 새도 떨어뜨릴 듯하던 ‘호랑이’ 대원군은 권좌에서 영원히 축출되었다. 예언대로 되고 만 것이다. 이밖에도 ‘양류목운’의 예언은 적중했다.“손님이 주인행세를 할 것”이라 했는데 과연 오장경이 지휘하는 청나라 군대가 멋대로 주인행세를 한 것이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임오년은 ‘경주이선생’이 말하듯 숱한 사건이 터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나라가 아주 망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충주로 피난한 명성황후도 무사했고, 불시에 청나라로 붙잡혀간 대원군도 다시 귀환할 수 있게 된다. ●갑신정변까지 ‘경주이선생’에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경주이선생’에는 고종21년(1884)에 일어난 갑신정변도 정확히 예측돼 있다.“정중수운(井中水運)은 자미(북두성) 자리에 저녁 무지개가 뜬 형국이다. 그러다 다시 동쪽으로 달아나리라. 나라에 변고가 일어나 죽음이 참혹하구나. 남북 군사들이 부딪쳐 화가 점차 심한 불길처럼 번져나갈 것이다.”자미성이라면 천자 또는 임금을 가리킨다. 그 자리에 무지개가 뜨는 것은 무척 흉하다. 무지개는 하늘에 보이는 벌레로 해석되기 때문에 변란이 일어난다는 예언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고 한 것도 불길하며, 변란의 주체가 동쪽으로 달아난다고 한 것도 심상치 않다. 더구나 이 사건을 계기로 남과 북의 세력이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대립한다고도 했으므로 후환이 두렵다. 이 예언대로 한 해가 흘러갔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김옥균과 박영효를 비롯한 개화파 청년 인사들이 그 해 10월17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그들의 정변은 일단 성공했으나 지지기반이 미약했던 탓에 정권이 오래 가지 못했다. 겨우 사흘밖에 집권하지 못해 ‘삼일천하’란 다소 비웃는 듯한 표현까지 등장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신정변의 역사적 의의는 크다. 한국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위로부터의 근대적인 개혁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김옥균 등 정변의 주체세력은 그들 스스로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양반 출신이었지만, 오랜 사회적 악습으로 남아 있던 문벌 타파를 실천하고자 했다. 개화당 인사들은 능력 본위로 인재를 등용하자며 평등권을 부르짖었다. 아쉽게도 정변은 실패로 돌아갔고 후유증도 심각했다. 서울에 와 있던 청나라 장수 위안스카이의 무력 공세에 밀린 김옥균과 박영효 등은 후일을 기약하며 일본으로 망명했다. 이 사건 이후 한국은 일본과 청나라의 세력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불쌍한 처지에 놓인다. 청·일 양국은 그 이듬해인 1885년 4월 18일, 톈진조약을 체결해 장차 한국에서 중대 사건이 발생할 경우 두 나라가 동시에 군대를 파견하기로 약속하기에 이른다. 과연 갑신정변이 일어 난지 정확히 10년 뒤인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청·일 두 나라는 톈진조약에 의거해 한국에 동시 출병했고, 마침내 한국을 독점하기 위해 청·일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로써 일본은 장차 한국을 병합할 기초를 다진다. 불행의 씨앗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더 이상 안 맞는 ‘경주이선생’ 갑신정변을 분기점으로 잘 맞아 들어가던 ‘경주이선생’도 틀리기 시작해, 고종 23년(1886) 이후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유는 무척 간단하다. 맞고 틀리고는 ‘경주이선생’이 저술된 시기와 직접 관계가 있다. 나는 이 예언서가 1884년 갑신정변이 끝나자마자 쓰였다고 본다. 이미 다 알고 쓴 것이라서 1880년대 초반의 일은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정도로 딱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듣지도 보지도 못한 1886년 이후를 무슨 수로 맞히겠는가? 맞는 예언서는 이미 예언서가 아니다. 그것은 술사를 비롯한 민중의 역사적 인식이 기록된 일종의 역사서일 뿐이다. 그 때 있었던 모든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민중의 주된 관심사만을 한데 주워 담은 역사 말이다. 예언은 사실 미래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뜻밖에도 거기에 민중의 역사적 기억이 집적돼 있다.‘경주이선생’에는 특히 민중이 바라본 정치와 경제 이야기가 많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도 우리는 밥상머리에서 권력과 돈의 향방을 따진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UEFA 챔피언스리그] 박지성 ‘빛난 10분’

    ‘캡틴 박지성,10분 활약에 최고 평점.´ ‘신형엔진´ 박지성(24·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05∼06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10분 동안만 뛰고도 팀내 최고 평점을 얻는 맹활약을 펼쳤다. 박지성은 19일 새벽 맨체스터 올드트래퍼드 홈구장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D조 조별리그 3차전 LSOC릴(프랑스)과의 경기에서 후반 37분 라이언 긱스와 교체 투입돼 팀의 막판 공세를 이끌었다. 맨체스터는 폴 스콜스가 퇴장당하는 수적 열세 속에 릴과 득점 없이 비겨 1승2무(승점5)에 그쳤지만 같은 조의 벤피카(포르투갈)와 비야레알(스페인)도 1-1로 비겨 조 선두를 지켰다. 지난 12일과 16일 대표팀 이란전과 소속팀 정규리그 경기에 연속 풀타임 출장하며 강철체력을 과시한 박지성은 당초 이번 경기에선 체력 조절 차원에서 벤치를 지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유럽클럽대항전 100경기 출장을 기념해 주장 로이 킨 대신 완장을 차고 출장한 긱스가 상대 선수와 충돌, 광대뼈를 다치면서 입단 석달째에 불과한 박지성에게 완장을 물려주고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팀원들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 박지성은 기대대로 단숨에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릴의 거친 수비에 밀려 잔뜩 위축돼 있던 팀 공격을 주도하며 투입되자마자 하프라인에서 수비수 2명을 뚫고 중앙을 빠르게 침투하는 등 10분 동안 2개의 프리킥을 유도해내는 뛰어난 돌파를 선보였다. 후반 17분 스콜스의 퇴장으로 자칫 넘어갈 뻔했던 팀 분위기를 되돌려놓은 질주였다. 잉글랜드 스포츠전문 스카이스포츠는 박지성에게 맨체스터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평점 7점을 매겼다. 긱스와 루드 반 니스텔루이,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는 각각 6점을 받았고 미드필더 대런 플레처와 앨런 스미스, 스콜스는 각각 5점에 그쳐 군계일학의 맹활약으로 평가했다. 한편 박지성은 경기가 끝난 뒤 오는 22일로 예정된 전 소속팀 PSV에인트호벤의 ‘태극듀오’ 이영표(28·토트넘 홋스퍼)와의 맞대결에 대해 “나도 영표형처럼 맞대결을 기대하고 있지만 게임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강한 승부욕을 드러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국제유가 당분간 40弗이하 어렵다”

    “당분간 국제유가는 배럴당 40달러 이하로 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아드난 엘딘 OPEC 사무총장은 19일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수요 증가 등을 감안하면 적어도 40달러 이상은 돼야 투자하는데 유리할 것”이라며 이같이 전망했다. 그는 “현재 국제유가는 60∼70달러 수준”이라면서 “단기적으로는 난방유 등에 대한 수요 증가가 예상돼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게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OPEC의 500만배럴 증산 계획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는데.-의심할 여지 없이 실행될 것이다. 파이프라인 건설 등 증산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이같은 계산에서 이라크는 제외됐다. 만약 이라크가 증산 계획을 추가로 발표하면 OPEC 전체 증산량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증산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데는 인프라 증설 비용을 포함, 총 500억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OPEC이 갈수록 유가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가격이 아닌 정책을 통해 시장에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해 왔다. 지난 몇 년간 OPEC의 잉여생산능력이 없었다면 유가가 어떤 수준에 있을지 상상해보라. 게다가 증산 계획이 완료되면 OPEC의 잉여생산능력은 400만∼500만배럴로 확대될 것이다. 이같은 생산능력 확대는 시장 안정을 위해 OPEC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다.▶유가안정을 위해 소비국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단기적으로는 정제시설 확충 등 투자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춰야 할 것이다. 석유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도 필요하다. 공급 안보는 수요 안보와 직결되는 것이며, 이 두가지 요소는 에너지 안보와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경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부르주아 전(傳)/고유경 옮김

    귀족과 서민의 중간에 위치한 ‘자본가 계급’ 또는 ‘유산 계급’으로 다양성을 추구한 부르주아 계급(bourgeoisie). 우리에게 19세기 부르주아의 이미지는 양분된다. 진취적으로 정치의 민주화를 이루고 경제적ㆍ문화적으로도 진보와 혁신의 세기를 선도한 ‘선한’ 부르주아와,‘피도 눈물도 없이’ 노동계급을 착취하면서 양심보다 이윤을 선택한 자본가들로 대변되는 ‘악한’ 부르주아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상반된 평가에도 불구하고 두 이미지가 갖는 공통점은 부르주아 계급을 한 가지 색깔로만 칠하고 있다는 것. 역사학의 ‘프로이트’로 불리는 피터 게이 예일대 명예교수가 쓴 ‘부르주아 전(傳)’(고유경 옮김, 서해문집 펴냄)은 이같은 부르주아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부정하는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일기를 비롯,19세기 부르주아의 일기, 편지, 소설, 그림, 신문광고 등 다양한 사료를 동원한다. 저자는 특히 에로스, 불안, 공격욕 같은 부르주아의 내면 중에서도 가장 은밀한 영역에 눈길을 돌린다. 또 야만적인 폭력성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고 여겨지는 19세기에도 여전히 자녀에 대한 비이성적인 체벌과 광포한 대량학살이 존재했고, 그것은 그 시대에 치명적으로 증가했던 집단적 ‘신경증’을 반영한다고 증언한다.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를 하나의 계급으로 묶는 증거들이 있다. 노동의 복음에 대한 숭배와 사생활의 불가침성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다.1만 49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92)符信(부신)

    儒林 (442)에는 ‘符信’(부절 부/믿을 신)이 나온다. 이것은 ‘나뭇조각이나 두꺼운 종이에 글자를 기록하고 證印(증인)을 찍은 뒤, 두 조각으로 쪼개어 한 조각은 상대자에게 주고 다른 한 조각은 자기가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서로 맞추어서 證據(증거)로 삼던 물건’을 말한다. ‘符’자는 옛날 행정 사무의 證據나 信標(신표)로 삼기 위한 대나무 쪽을 가리킨다. 후에 ‘도장’‘맞다’ 등의 뜻이 派生(파생)하였다.活用(활용) 예로는 符合(부합:符信이 꼭 들어맞듯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符號(부호:일정한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따로 정하여 쓰는 기호) 등이 있다. ‘信’자는 본디 ‘성실하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考案(고안)되었다.‘人’과 ‘言’(말씀 언)을 組合(조합)하여 사람의 말과 성실성은 不可分(불가분)의 關係(관계)에 있음을 暗示(암시)한다.‘信念(신념:굳게 믿는 마음),信賞必罰(신상필벌:상과 벌을 공정하고 엄중하게 하는 일을 이르는 말),信實(신실:믿음직하고 착실함)’ 등에 쓰인다. 交通手段(교통수단)과 情報(정보) 媒體(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符信이 신분확인을 위한 요긴한 수단이었다. 용도와 종류에 따라 發兵符(발병부)·通符(통부)·宣傳標信(선전표신)·木馬牌(목마패)·大將牌(대장패) 등 다양하였다. 符節(부절)도 일종의 符信으로 볼 수 있는데,符信과의 차이점은 글자와 證印이 없다는 것이다.三國史記(삼국사기)에는 高句麗(고구려) 建國始祖(건국시조) 高朱蒙(고주몽)이 短刀(단도)를 符節로 삼아 親子(친자)를 確認(확인)한 崎嶇(기구)한 事緣이 전한다. 주몽은 큰 뜻의 실현을 위해 姙娠(임신)한 예씨 부인과 작별하면서,“아들을 낳거든 일곱 고개, 일곱 골짜기의 돌 위 소나무 밑에 간직되어 있는 물건을 찾아 가지고 오라.”는 말을 남겼다. 예씨 부인은 出産(출산)한 아이의 이름을 琉璃(유리)라고 하였다.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뒤 유리는 일곱 모난 주춧돌 아래서 발견한 칼 한 쪽을 들고 주몽을 찾아갔다. 주몽은 지니고 있던 조각난 칼을 꺼내 맞추어 보고 자신의 아들임을 確認(확인)한다. 三國史記에는 新羅(신라) 眞平王(진평왕)때의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경주에 사는 설씨(薛氏)는 늙은 홀아비로 오직 딸 하나만 데리고 살았으나, 변방지역의 警備(경비)에 나아가라는 通報(통보)를 받는다. 그때 沙梁部(사량부)에 사는 嘉實(가실)이라는 청년이 兵役(병역)을 대신하겠다고 나선다.感泣(감읍)한 父女(부녀)는 가실과의 婚姻(혼인)을 約條(약조)하고 거울을 반으로 갈라 信標(신표)로 나누어 가진다.6년 만에 다시 설씨 부녀 앞에 나타난 가실의 行色(행색)은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초라하였다.破鏡(파경)을 꺼내 맞추어 보고서야 가실임을 確認할 수 있었다. 漢(한)나라 高祖(고조) 劉邦(유방)은 諸侯(제후)를 分封(분봉)하면서 丹書鐵券(단서철권)을 나누어 주었다. 약칭 鐵券(철권)이라 하는 이 물건은 오늘날의 任命狀(임명장)에 해당한다. 쪼갠 칼이나 거울, 세트로 만들어진 鐵券이 모두 符節에 속한다. 여기서 ‘節’은 마디라는 뜻이니 끼워 맞춘다는 의미를 含蓄(함축)하고 있으며,‘符’란 符合(부합)한다는 뜻이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파키스탄 지진 참사 유영규 특파원 르포] “라마단에 죽어 천국 갈것”

    [파키스탄 지진 참사 유영규 특파원 르포] “라마단에 죽어 천국 갈것”

    |가리하비불라 유영규특파원|12일 오전 11시(현지시각)국내 민간구호단체 굿네이버스 구호팀과 기자는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떠나 175㎞ 떨어진 북서국경자치구(NWFP) 인근 가리하비불라로 향했다. 가리하비불라는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행정 수도 무자파라바드와 함께 강진의 피해가 매우 큰 곳 가운데 하나. 하지만 워낙 외부와 단절돼 구호의 손길이 못 미치는 곳이다. ●목숨 건 9시간의 175㎞ 산악 여정 NWFP 지역으로 가는 너비 6m의 산악도로에는 소총과 대포를 지닌 무장강도들이 들끓어 평소에도 삼엄한 경비가 없으면 접근이 어렵다. 하물며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원조물자가 가득 실린 구호차량은 어떻게 보이겠는가. 이미 각국 구호팀이 피습당했다는 얘기가 속속 전해지고 있던 터. 출발 전 주파키스탄 한국대사관측은 구호·취재팀에게 이 지역 접근을 극구 말렸다. 버스 안에는 차가운 긴장이 흘렀다. 창문을 모두 내리고 절대로 바깥을 내다보지 말라는 현지 안내인의 신신당부가 있었다. 산길을 9시간 달려 저녁 8시에 도착한 초겨울의 가리하비불라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밤서리를 피해 몸을 의지할 곳은 허름한 텐트가 전부. 텐트조차 없는 사람들은 덤불 속에 들어가 추위를 피했다. 구호차가 접근하자 순식간에 200명이 넘는 이재민들이 나와 손을 벌렸다. 13일 새벽녘이 되면서 참혹한 잔해가 어스름 여명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려는 사람들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전교생 250명이 그대로 생매장된 카란벨리 여학교,180여명이 깔려 숨진 고멘트 여고 등 폐허가 된 대부분의 학교들은 맨손으로 흙을 파내며 울부짖는 부모들로 가득 찼다. 희생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었다. 누구는 전체 주민 3만명 중 5000명이 죽고 1만명이 다쳤다고 했고, 어떤 이는 사망 5000명, 부상 5000명이라고 했다. 병원장의 부인 하룬은 “마을 인구가 원래 얼마였는지를 알 수 없어 희생자 집계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여학생 250명 생매장 부모들 울부짖어 마을 인구의 최소 3분의1이 죽거나 다치는 대재앙을 만났지만 그들은 ‘신의 뜻대로’라는 의미의 인사말 ‘인샬라’를 잊지 않았다. 슬픔을 종교가 보듬고 믿음이 어루만져 주는 게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부인과 두 아들, 손자를 모두 잃은 60대 노인 아웨스는 “우리의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는 언제나 알라(신)의 뜻이 숨어 있지만 인간에게는 이를 알 수 있는 능력도, 권리도 없다.”면서 “그저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며 눈물을 훔쳤다. 어느 누구도 드러내 놓고 신을 원망하는 일은 없다. 알 수 없는 신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수천년간 찢어지는 가난도 카스트제도의 불평등도 신의 뜻이라며 견뎌온 이들이다. 두 아이를 잃은 아리포 야샤(35)는 “아이들이 라마단(금식월) 기간에 죽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이들은 성스러운 라마단 기간에 죽을 경우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희망일 뿐.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라마단 중 성전(聖戰)에 참가해 죽어야만 천국에 가는 권리를 얻는다. 이슬람력 9월인 라마단 기간 중에 이슬람교도들의 테러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때로는 이슬람 율법이 구속 때론 율법이 속박이 된다. 라마단 기간중 낮에는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실 수 없다. 구호품으로 받은 차파티(밀 전병의 일종)를 아이에게 먹이던 40대 여인은 “알라도 며칠 동안 굶은 우리를 이해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가까운 친척 외에는 시신을 만져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이웃의 피해를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는 주민들은 알라에게 용서를 구하며 주검을 카베라(공동묘지)로 옮겼다. 마을에 남아 있는 병원이라곤 기독교 계열의 쿤하르 크리스천병원 단 한 곳뿐이지만 많은 주민들은 이곳에 가는 것을 꺼리고 있다. 기독교인은 천하고 더러우며 타락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시키유(32) 목사는 “기독교 병원을 찾으면 개종을 시키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우리 병원에서 사람이 죽으면 기독교 계열 병원이어서 그렇다는 야유와 불만도 자주 접한다.”고 말했다. ●굿네이버스 후원 농협 069-01-272544 예금주:(사)굿네이버스 인터내셔날 (02)338-1124. whoami@seoul.co.kr
  • 사막에서 길을 묻다

    사막에서 길을 묻다

    우리는 달렸다. 타클라마칸, 그 죽음의 사막을 향해. 자갈길을 가로지르고 강을 건너 5000여 ㎞를 내달렸다.‘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살고 싶지 않은 자와 미친 자가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는 그 사막을 향해. 그러나 15박16일을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달려 간 그 사막 입구에는 ‘황량한 사막은 있어도 황량한 인생은 없다’, 그렇게 씌어 있었다. 붉은 글씨로. 아, 아 그렇지! 황, 량, 한 인생, 은 없지…. 마치 달려오던 가속도를 어쩌지 못해서인 듯, 온 몸이 앞으로 울컥 쏠렸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섰다. 등골에서 짜르르 전류가 흐르는 듯하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가 홀린 듯 이 먼 길을 내달아 온 것은 이런 글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막을 꿈꿔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삶의 고비마다 언뜻언뜻 떠오르는 낯익은 영상이었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운 햇살이 온 몸에 쏟아진다. 마른 먼지가 콧속을 파고들며 숨을 막고, 입안에선 으적으적 모래가 씹힌다. 갈증은 이미 오래전에 통증으로 바뀌었고, 모래밭은 펄보다 더 힘겹다.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나름대로 비장하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에서 한껏 더 상상력을 부풀려 본다. 마침내는 햇살에 바래고 모래먼지에 찌든 내 신발 코 끝에, 죽은 자의 늑골이 아른아른 겹쳐 보일 때까지. 그런 극한점에 맞서보고 싶었다. 이 여행에 대한 제의를 받은 건 7월 초였다.8박9일 일정의 실크로드 패키지 여행을 준비하던 내게, 여행자들이 한국에서 가져간 지프를 직접 몰아 중국 대륙을 횡단한다는 프로그램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사막에서의 야영이라니! 앞뒤 생각 없이 큰소리로 “네!”해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처음부터 28일 전 일정을 참가해야 한다고 했다면 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사나흘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니고, 열흘도 아니고. 난 그렇게 오랫동안 내가 없는 우리 집을, 학교를, 나를 둘러 싼 크고 작은 일상들을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전 일정은 한 달쯤 되나 봐요. 하지만 그걸 다 따라 다닐 수 있으시겠어요. 앞 뒤 자르고 한 8박9일 정도면 어떠세요?” 그렇게 시작했지만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일정은 길어졌다. “근데 한 보름은 되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으시겠어요?” “보름이나 이십일이나…. 근데 이런 여행 쉽지 않거든요.” “따로 돌아오실 비행기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네요.” “29일 날 도착한다고 각오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 난 이미 말라리아와 장티푸스 주사를 맞았고, 짧은 반바지에서 겨울 점퍼까지를 꾸려 짐을 싸둔 다음이었다. 가슴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었다. 심호흡을 한 뒤 대답했다. “좋아요.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내가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엄살기 가득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여행은 톈진항에서 배를 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현장법사가 불전을 구하기 위해 간 길, 바리데기 공주가 죽은 자를 살릴 샘물을 구하기 위해 지나간 길, 고선지 장군이 서역 정벌을 위해 나선 길, 실크로드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건,‘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가 지나간 길, 실크를 비롯한 동서양의 온갖 것들이 교류한 이 길…. 이 길을 다섯 대의 지프가 달린다는 것이다. 오프로드를 포함해서 하루 몇백㎞를 달리고 또 달리다가,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서, 바다만큼 큰 호수를 만나면 호숫가에서 야영을 한다는 것이다. 멋지다. 하룻밤을 배에서 자면서 톈진에 도착한 다음, 베이징, 타이위안, 시안, 란저우, 우웨이, 금창, 바단지린 사막, 가우대, 청수, 주취안, 둔황, 하미, 투르판, 우루무치, 쿠얼러를 빠르게 지나쳐 마침내 타클라마칸 사막에 닿았다. 인천항을 떠난 지 열엿새 만이었다. 그러나 타클라마칸은 예전의 타클라마칸이 아니었다. 사막 한가운데로 잘 닦인 아스팔트가 서늘할 만큼 시원스레 뚫려 있고, 몇㎞ 간격으로 물탱크를 포함한 대피소가 줄지어 있었다. 그 옛날, 나는 새도 통과하지 못한다는 그 타클라마칸은 이미 아니었다. 그러나 여전히 녹록지 않은 타클라마칸은 카라부란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 옛날 죽음의 모래바람이라 불리던 카라부란이다. 타클라마칸에 진입했다는 흥분을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사막 깊숙이 자리를 잡고 서둘러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모래 바람이 일었다. 처음엔 코펠이 뚜르르 굴렀다. 뒤이어 텐트가 뿌리 뽑힌 풀단처럼 힘없이 날아가 버렸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흙탕물에 빠진 것처럼 시야가 흐려졌다. 서둘러 지프에 달려 올라가 문을 닫았다. 설마 지프는 안 날아가겠지.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나는 눈을 감았다. 솩, 쉬르르 차창에 부딪치는 모래바람의 소리가 여전했다. 대개 중국쪽 실크로드의 시작을 서안이라고 본다.1000여년 동안 중국의 수도였던 도시. 장안이라는 옛 이름을 가진 이 도시는, 농사짓는 것보다 농사짓다 발견한 유물을 내다 파는 것이 더 낫다는 고도이다. 서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죽은 진시왕의 잔영이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왕.13세의 어린 나이에 진왕에 즉위하였으며 39세에 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통일 국가를 세운 사람.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스스로를 ‘태황의 황과 오제 제’를 따서 황제라고 칭하고, 자신을 시황제라 부르게 명 한 사람. 그는 선남선녀를 골라 불로장생할 선약을 구해오라는 전대미문의 특명을 내리고, 또 한편으로는 즉위하자마자 죽을 때까지, 자신의 묘가 될 지하궁전을 팠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이 무덤은 ‘관은 동으로 주조했고 무덤 내부에는 각종 보석으로 궁전과 누각의 모형을 세웠다. 수은으로 바다와 강을 흐르게 했고 천장에는 진주를 아로 새긴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들어 달았다.’고 전해진다.30만명이 석 달 동안 왕릉에 보물을 실어 날랐다 한다. 그는 또 죽은 다음에 자신을 지킬 군사들을 만들어 도열시켰다. 보병, 전차대, 포대로 이루어진 신장 180m안팎의 실물크기 흙 인형 수천명으로 지하군단을 만들어 자신의 능에서 1.5㎞ 떨어진 거리에 배치해 두었다.1호 갱에 약 6000명,2호 갱에 약2000면 3호 갱에 68명의 테라코타 병사가 사열해 있다. 결국 그는 여러 형태의 ‘영생’을 준비한 것이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그 넓은 대륙을 통일한 젊은 왕에게 아쉽고 그리운 것이 그 영화를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영생뿐, 더 무엇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것들을 만든 진시황의 백성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나라는 3대 15년 만에(항우에게)멸망하였다. 문자, 도량형, 화폐를 통일하고, 그 시절에 전국적인 도로망을 거미줄처럼 짜고, 운하를 파고 만리장성을 쌓고 아방궁을 짓는 등 어마어마한 일을 해낸 이 황제와 관련된 유적은 그러나 아직 다 발굴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가이드는 그때와 공기가 달라 유물이 상할 염려가 있고, 무덤 안에 함정이 많고 엄청난 양의 수은이 있어 위험하며, 후손들이 먹고 살 관광 자원을 남겨주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고, 한쪽으로는 기술이 부족해서 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에 관한 미확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예전에, 중국을 방문한 일본 총리가 그 유적 발굴을 제안했다 한다. 일본의 기술력을 제공할 테니 발굴한 보물의 3분의1을 달라고. 주석이 껄껄 웃으며 ‘이 안에 든 보물이면 네 나라 전부를 살 수도 있을 거다.’고 대답했단다. 그 조상에 그 후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벌컥, 차문이 열리면서 남대장이 소리쳤다. “바람 없어졌어요. 나오세요!” 어느새 눈앞에는 사막의 밤이 펼쳐져 있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별이 튕겨져 나올 듯 반짝였다. ‘돌아올 수 없는 곳’이 어디 타클라마칸뿐일까. 때때로 살고 싶지 않고 미칠 듯한 기분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사막에 발을 내디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량한 인생은 없다.’는 믿음으로. 죽음의 카라부란은 멈췄고, 모래는 아직 따뜻했다. 그리고 사막의 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비로웠다. ●글쓴이 이윤희 교수는 동화작가, 문학박사,‘아침햇살’발행인. 인천재능대 아동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작품집으로는 ‘네가 하늘이다’‘꿈꾸는 호랑이 우화’를 비롯한 철학동화시리즈 18권 등이 있다. ■ 무선통신, 날아오다 2004년8월2일 11시, 인천항 실크로드 오버랜드 원정대는 8월2일 오전 11시에 인천항 제2부두에 집결했다. 출발 인원은 총 12명, 한국인 10명과 터키인 2명이었으며, 중국에서 터키인 1명과 중국인 5명이 합류할 예정이다. 거추장스럽고 부피스러운 짐은 이미 지프에 실어 앞서 보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배에 올랐다. 순조로운 출항이다. 8월3일 13시. 천톈항 서둘러 천톈항 출구에 섰다. 까마득한 멀리에는 인천을, 가까이에는 25시간 동안 우리를 싣고 온 여객선 진천 페리를 등 뒤에 둔 채다. “와!” 거기, 중화인민공화국 천진항 광장에, 먼저 도착한 차들이 늠름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5대였다.4+4 SILKROAD EXPEDITION.TRANS TACLAMAKAN.ROK 스티커 글씨가 도드라졌다. 눈이 부셨다. 그리고 비로소 가슴이 뛰었다. ‘아아, 드디어 시작이다! 이동거리 1만㎞를 훌쩍 넘는 28일간의 여행. 우리차로 실크로드를 달린다! 중국을 횡단한다!’ 나는 사뭇 뛰었다. 지프를 향해. ★중국의 4대미인은 누구?(답? 곳곳에 숨어있어요^^) 8월3일 15시, 베이징을 향해 우리차가 달린다. 중국 고속도로를 시속 100㎞로. 창문을 모두 열어 젖혔다. 나,58년 개띠. 오프로드 여행 경험 전혀 없음. 대학교수. 유부녀…. 그러나 그 순간 이 모든 것을 잊었다.‘우리는 간다, 하늘도 부른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살은 유리처럼 투명했고, 살짝 따가웠다. 승차 배치도 진행차:다이장(중국측 여행사 사장), 도용(현지 가이드). 살인미소(중국인 정비사). 여성스태프 1호차: 남대장(38·오버랜드 대표), 나(유니), 비니(34·스태프, 통역). 진피디(29·스태프, 영상담당)·2호차:한·최 안젤라 부부(47,45·사업가)·3호차:최 노익장(67·독일 국적의 CEO), 김원장(50·복지시설 운영)·4호차:임 흑기사 부자(51,29·사업가, 대학생)·5호차:하칸(29·터키인 사업가)등 터키인 일행 ●답(1) 그녀의 자태에 꽃이 부끄러워 스스로 잎을 말아 올렸다는 양귀비(수화·羞花) 8월4일 14시, 베이징 베이징에서 합류하기로 한 터키인 일행 하나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그를 기다리는 사이, 캔맥주가 돌았다. 남대장:수도자가 고행을 하는 마음으로 이런 여행을 합니다. 일종의 종교 의식이지요. 한·최 안젤라 부부:모험이잖아요. 꿈꾸는 듯한. 임 흑기사 부자: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최 노익장:중국을 횡단이라, 정말 멋지잖습니까? 더구나 내 차로 직접 운전을 하는데! 김원장:새로운 패턴의 여행이라서요. 하칸:어린 시절부터 실크로드를 꿈꿔 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그 꿈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가슴이 뜁니다. 그들의 얼굴이 발그레해진 것이 캔 맥주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맥주를 홀짝거리며 서유기를 생각했다. 불전을 구하러, 혹은 죽은 자를 살릴 생명수를 구하러 이 길을 지났을 삼장법사와 바리데기 공주를 생각했다. 그리고 수많은 상인과 기술자와 병사와 예술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빌었다. 그들의 꿈과 사랑이 먼먼 후손인 내게도 자지러지도록 생생하게 전해지기를. 그리하여 그로인해 내 삶이 얼마간 풍요롭고 따스해지기를. 브라보! 우리는 다시한번 맥주 캔을 맞부딪쳤다. ●답(2) 그녀가 강변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니 그 아름다움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속에 가라앉았다는 서시(침어·沈魚) 8월5일 14시, 시안 가는 길 그러나 정말 쉽지 않았다. 온갖 것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느닷없이 나타나는 ‘공사중’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사실 이것은 그렇다 칠 일이 아니다.‘공사중’이 너무 많았다. 아니 중국 전역이 ‘공사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곳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더구나 그들은 지나는 차량에 대해서는 아무 배려가 없었다. 아무런 안내나 대안 제시도 없이 길 전체를 막아버린 곳도 몇 군데 있었다.‘우리는 지금 공사를 하고 있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가라’는 식이었다.)곳곳에서 만나는 비포장도로도 또 그렇다 치자.(왜냐하면 땅이 너무 넓어서 포장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데 할 말이 별로 없으니까.)그러나 포장도로도 비포장 못지않게 차를 널뛰기하게 만든다는 것은 좀 그랬다. 자세히 보니 아스팔트가 바퀴 자국을 따라 깊게 패었다. 과적 차량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과적을 하지 않은 트럭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정말 어마어마한 물동량이 움직이고 있었다!(하긴 우리 팀도 과적을 했다. 우리는 짐에 치여 쪼그리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28일간의 긴 여행’,‘사막에서의 야영’이라는 점에 모두들 긴장한 탓이었다.) 먼지와 매연도 문제였다. 그리고 따끔거릴 만큼 지독한 햇살과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높은 온도, 장거리 주행 등이 엔진을 과열시켰다. 우리는 심통 난 아이 달래듯 차를 달래가며 몰았다. 그래도 어떤 차는 가끔씩 푸쿠쿡, 키다닥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속력을 떨어뜨렸다. 아슬아슬했다. 8월6일 15시, 화청지 마침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온갖 사치를 즐기며 장안과 화청지를 오가며 세월을 보내곤 했다는 설명을 듣고 있는데, 터키인 일행의 사고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 이틀 다른 곳을 들렀다가 합류하기로 한 사람들이다. 교통사고. 정비 불량과 과속으로 인한 전복 사고란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지만 일행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제 막 본격적인 시작인데…. 게다가 그중에는 터키의 ‘정주영’이 섞여 있단다. 선박회사를 17개인가 갖고 있고, 보험회사를 또 몇 개 갖고 있고 그리고…. 그런 사람이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려다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믿기 어려웠다. 터키엔 여행사가 없나?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중국 서쪽, 우리가 흔히 ‘서역’이라고 부르는 그곳이 터키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와 연변 조선족과의 관계와 비슷한. 그래서 터키인들은 그쪽 지방을 여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터키인들이 그들, 소수민족을 부추겨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예를 들자면 독립운동 같은, 중국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동의할 수 없는)을 할까봐 여행을 허가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한국인들 틈에 슬쩍 끼어서 그곳을 가려 했는데 그만 사고가 난 것이었다. 첫 번째 대형 사고였다. 8월7일 10시 40분, 란저우 가는 길 막히는 길을 가까스로 통과해 주유소에 도착했다.“날씨까지 꾀죄죄하네요.”기름을 넣고 있는 차들 뒤에서 고개 돌리기를 하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데, 아들 흑기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랬다. 하늘빛은 칙칙하고 우리는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이심전심일까?안젤라의 남편 한씨가 장난기를 발동시켰다. 기름을 넣고 있는 자기 차 보닛에 검은 색 보드마커로 ‘갑시다, 실크로드!’라고 휘갈겨 썼다. 그러고는 부인 안젤라에게 펜대를 넘겼다. 안젤라는 ‘타클라마칸을 향해서!’ 썼다. 모두 신났다. 최 노익장은 당신 차 이마에 해골표시를 그려 넣었다. 남대장은 인천에서 출발하여, 다시 인천까지 오는 전 일정을 차에 뺑뺑 돌아가며 써 넣었다. 나는 자꾸만 꾸르륵거리는 차 콧잔등에 ‘잘 달려라, 착하지. 말썽피지 말고!’라고 썼다. 그리고 슬그머니 쓰다듬어 주었다. 8월9일 12시, 무위 ●답(3) 그녀가 비파를 연주하니 기러기가 그 용모를 보느라 날갯짓하는 것도 잊고 땅에 떨어져 버렸다는 왕소군(낙안·落雁) 8월9일 12시, 무위 그러나 차는 여전히 불안 불안했다. 한 팀은 차를 정비하고, 나머지 한 팀은 장을 본 후 점심을 먹었다. 양갈비찜이 나왔다. 찌그러진 넓적한 양은그릇에 큼지막한 살덩이가 붙은 양 갈비 한 개가 담겨있는 것이, 꼭 개밥 같았다. 저녁에 있을 사막에서의 야영을 위해 준비한 음식들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8월10일 12시30분, 바단지린 사막 야영을 잘 끝내고 사막을 빠져나오려는데, 갑자기 2호차 꽁무니에서 검은 연기가 쿨룩쿨룩 쏟아졌다. 또 다른 대형 사고였다. 엔진은 정지했고,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고장난 차는 1호차가 견인해서 정비소로 가고, 나머지는 사막에서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늘 한점 없는 땡볕아래 햇살은 점점 강해지고, 끼니때가 되었는데도 식당은 멀디 멀었다. 우리는 임시 휴게소를 만들었다. 남은 차 둘을 나란히 대고 , 그 위에 텐트를 덮어 그늘을 만들어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라면을 끓이고 커피를 탔다. “죽인다, 커피향!” 우리는 애써 큰소리로 웃어댔다. ●답(4) 그녀의 미모가 너무 아름다워 달도 구름 뒤에 숨었다는 초선(폐월·閉月) 8월11일 20시, 가욕관에서 둔황으로 결국 그들 차 두 대는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는 차 3대에 짐을 포개고 또 포갠 뒤, 그 사이에 끼어 앉았다. 그리고 일정을 그대로 진행했다.2m앞이 안 보이는 먼지 길 양옆에 아스라한 낭떠러지가 이어져도, 문을 꼭 닫은 차안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기침이 컥컥 나올 만큼 독한 ‘원조황사’가 길을 막아도, 그대로 뚫고 달렸다. 생명 보험을 하나 더 들어놓고 올걸! 나는 콩 튀듯 탕탕 거리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해를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나아가는 길, 해는 지지도 못하고 저녁 8시가 넘는 시각에도 낮처럼 환하다. 8월12일 17시, 명사산 아름답다. 달밤이면 모래가 우는 소리를 낸다는 산. 해질녘, 그 산을 낙타를 타고 오른다. 출렁출렁, 낙타의 발걸음에 따라 내 몸이 흔들린다. 방울소리도 흔들린다. 8월13일 18시, 하미 주위에 있는 산들이 온통 시커멓다. 철성분이 많아 그렇단다. 그 산 사이에 난 협곡을 달리고 달려 신장 자치주에 닿았다. 무섭게 바람이 불었다. 이 근처는 사철 그렇게 바람이 많은 곳이라고.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투르판은 ‘불의 땅’ 외에도 ‘바람의 창고’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20시에 하미과로 유명한 하미에 도착해 저녁 대신 과일로 허기를 채웠다. 배가 봉긋해졌다. 8월14일 18시, 투르판 위구르족 민속쇼를 관람했다. 남대장이 모종의 작업을 한 덕분에 나도 위구르족 아가씨로 분장하고 공연에 잠깐 끼어들었다. 위구르의 전통 악기 소리는 맑고 탱글탱글했다. 우거진 포도 넝쿨 아래서, 붉은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면서, 나는 잠시 먼 이국의 여인이 되는 꿈을 꾸었다. 한여름, 축제의 밤은 열기를 더해갔다. 8월15일 11시, 우루무치 포도 농원에 갔다. 위구르 말로 ‘아름다운 목장’ 이라는 뜻을 가진 우루무치는 커다란 오아시스 도시다. 야자수가 두어 그루 있는, 우리가 오아시스라고 하면 흔히 머리에 떠올리는 그런 고즈넉한 풍경이 아니라 포도나무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20∼30종은 넘어 보이는 건포도가 신기했다. 노랑색, 황금색 외에도 송이째 말린 건포도, 씨가 씹히는 건포도, 달콤한 것, 약간 시큼한 것…. 나는 번개처럼 건포도를 한 짐 싸서 챙겼다.‘아줌마’라 흉을 봐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독하게 맘을 먹었다. 맛보여주고 싶은 고국의 ‘동포’들이 목에 걸리고 눈에 밟혀 어쩔 수 없었다. ■ 지프로 오지를 달리고 싶다면 챌린지 전문탐험 기획사인 ㈜오버랜드 엔터테이먼트(www.overland.co.kr)는 자신의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실크로드 등 세계 오지를 탐험하는 이색적인 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오버랜드를 운영하는 남기환(38)대표는 1999년 런던∼서울 단독횡단과 2002년 유라시아 횡단팀을 이끈 오지탐험 전문가. 그는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지프를 타고 황량한 들판과 거친 사막, 별이 쏟아지는 초원에서 야영을 즐기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 개척하고 있다. 주요 상품은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까지 이어지는 ‘트랜스 타클라마칸’,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끼고 도는 ‘트랜스 히말라야’, 중국 성도에서 티벳까지 찝차을 이용 ‘천장공로 하늘여행’ 등 다양한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오지 캠핑 상품도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국내 산간벽지를 찾아 다니며 캠핑과 야영을 즐기는 1박 2일,2박 3일 오지여행도 정기적으로 진행된다. 비용은 일정에 따라 다른 만큼 오버랜드(02-522-0228)에 직접 문의하면 된다.
  • [임해리의 色色남녀] X맨의 숨은 1인치 힘

    ‘바람의 전설’로 사는 X맨의 비결 흔히 남녀에 대한 평가를 할 때 가장 객관적인 기준은 같은 동성에게 얼마나 점수를 얻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남자는 남자가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녀간의 작업(?)능력에 관해서는 대중의 예상을 뒤집고 ‘바람의 전설’처럼 살아가는 X맨을 볼 수 있다. 내 친구 말에 의하면 이렇다.“그 놈은 머니(money)도 매니(many)하지 않고 대학 졸업장도 학사 학위 하나 달랑 들고 간신히 취직하여 대한민국 평균인의 수준으로 사는 처지인데 이상하게 여자들이 잘 붙는단 말이야! 얼굴은 옥동자형에 들창코 위에 안경까지 썼는데, 참 알 수 없다니까!” 예전에 동창들이 모여 비즈니스 클럽에 가면 여자들이 그 X맨에게 유독 술잔을 돌리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후일담을 들어보면 여러 여자들이 그와 ‘원더풀 투나이트’를 보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의 여복(女福)은 외간여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몇 년에 한번씩 아내에게 들통이 나도 먹구름에 천둥치듯 잠시 시끄럽다가 다시 찹쌀에 본드 붙은 듯 잘산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다니던 제약회사가 요즘 빵빵하게 잘된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다들 한마디씩 했단다.“아니 누구는 도라지 먹고 힘쓰는데 어느 복 터진 인간은 산삼에 약까지 치면서 살아요!” 나는 X맨이 다니는 회사의 효도제품이 비아그라였다는 말을 듣고서야 남자들이 입에 거품까지 뿜은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도대체 남자 눈에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X맨의 숨은 1인치 파워는 어디에 있는 걸까?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는 이렇다.(1) 여자 대하기를 ‘고객감동’ 모드(mode)로 하여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태도로 대할 때 여자는 보너스 점수를 주면서 시작한다.(2) 뭔가 완벽해 보이는 남자는 여자를 긴장시키지만 틈을 보여주는 남자는 편안함과 함께 그 빈 곳을 채워주고 싶게 만든다고 한다.(3) 모임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남자보다는 그 옆에서 가끔씩 영양가 있는 몇 마디를 던지는 남자에게 여자들은 시선을 보낸다.(4) 말솜씨도 어눌한 남자가 노래방에만 가면 멜랑콜리한 노래를 분위기 잡으며 부를 때 가슴이 촉촉해지는 여자가 1명은 있다.(5)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남자에게 여자는 오히려 믿음이 가기도 한다. 그래서 서로의 친밀도를 높이는 것이다.(6) 때로는 ‘인디애나 존스’처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여자가 많다.(7) 새로운 화제로 지식인의 냄새도 풍기고 호기심도 유발시키는 남자에게 여자는 흥미를 느끼고 가산점을 주기도 한다.(8) 여자가 얘기할 때면 토를 달아 초치거나 깔아뭉개지 않고 잘 들어주면서 적당히 맞장구를 쳐준다. 그러면 그 남자의 인격이 확 올라가는 것이다.(9) 서로에 대한 탐색기간이 끝나는 시점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정확히 포착하고 탱크처럼 돌진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무방비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X맨은 슈퍼맨도 빅맨(Big man)도 아니지만 자신의 조그만 장점을 강화하여 파워를 키운 남자라고 생각한다.
  • [프로야구 2005 포스트시즌]삼성·두산 KS ‘배터리 대결’

    [프로야구 2005 포스트시즌]삼성·두산 KS ‘배터리 대결’

    오는 15일부터 열리는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에서 격돌하는 삼성의 선동열(42) 감독과 두산의 김경문(47) 감독이 화제다. 두 감독은 고려대 선후배 사이는 물론 한 방을 사용했던 ‘룸 메이트’인 데다 ‘부부’와도 비유되는 투수-포수의 배터리를 이룬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어서다.81학번 새내기 투수였던 선 감독은 4학년이던 김 감독과 여드름 탓에 고민과 치료를 함께하는 등 속내를 감추지 않았던 막역한 사이다. 두 감독의 인연은 프로에서도 이어졌다. 선 감독은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위원 시절인 2003년 말 당시 두산의 김인식 감독 후임으로 내정됐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두산행이 불발됐다. 그러자 롯데 코치로 자리를 옮기려던 김경문 감독이 전격 사령탑에 앉게 된 것. 결코 선 감독 덕분(?)은 아니지만 자칫 감독직과 인연을 맺지 못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삼성-두산의 KS는 2001년 이후 4년만의 ‘리턴매치’지만 두 감독은 지난해 플레이오프에 이은 두번째 자존심 대결. 그러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선 감독은 당시 수석 코치로 활약했지만 올해는 감독직을 건 ‘승부사’로 나선다. 또 김 감독은 2년차지만 선 감독은 새내기여서 우승을 일궈내야 하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게다가 당시는 KS 진출을 위한 전초전이었지만 이번에는 올시즌 챔피언을 결정짓는 KS 맞대결이라는 점에서 승부욕을 더한다. ‘1점차 승부’에 유독 강한 둘은 “우정은 우정이고 승부는 승부”라며 서로의 우승을 장담한다.‘지키는 야구’의 선 감독은 “두산이 올라올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두산이 집중력이 좋은 팀이지만 충분히 대비했다.”고 말했다. ‘믿음 야구’의 김 감독은 “삼성은 한화와 전혀 다른 팀”이라며 긴장하면서도 “오랜 시간을 쉬어 실전 감각이 떨어졌기 때문에 1차전에서 기선을 제압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한국시리즈 전문가 전망] ●허구연 MBC 해설위원 예측이 힘들다. 선발은 두산이 약간 우세하고 삼성은 불펜의 도움에 의지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이 우승하려면 5·6차전에서 끝내야 하고 두산은 투수진이 좋아 오래끌수록 유리하다. 두산의 이혜천 금민철, 삼성의 전병호 오상민 등 좌완의 역할이 변수다. 삼성 타선에선 양준혁과 진갑용이, 두산에선 김동주와 최경환의 활약이 필요하다.1·2차전에서 두산이 1승1패하면 유리하고 삼성은 다 잡아야 한다. ●하일성 KBS 해설위원 7차전까지 갈 것 같다. 선발은 두산이, 불펜은 삼성이 앞서 마운드 전력은 비슷해 한 쪽이 일방적으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배영수가 정상이라면 삼성에 한 표 던지고 싶다. 심정수의 포스트시즌 경험도 듬직하다. 두산 박명환은 전시효과일 것 같고, 삼성에 강한 이혜천이 제2선발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선동열 감독은 첫해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시리즈 경험이 많아 벤치 싸움도 백중세다. 대구 1·2차전이 관건이다.
  • [장애인의 性과 결혼] 절망·포기 금물…적극적 사회생활·재활 중요

    [장애인의 性과 결혼] 절망·포기 금물…적극적 사회생활·재활 중요

    결혼한 장애인은 미혼자에 비해 일단 성 문제에 관한 한 1차 장애물은 넘은 셈이다. 하지만 배우자를 찾기까지 과정이 너무나도 험난하다. 장애인의 성 문제를 연구해 온 국립재활원 이범석 척수손상재활과장은 “장애에 절망해 포기하지 말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섞이려는 노력과 자신감이 중요하다.”면서 “최근 들어 장애인과 장애인, 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만나 결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척수 손상으로 하지가 마비되었더라고 완전히 성기능을 잃는 것은 아니다. 척수마비 장애인의 경우 4분의1 정도는 성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 4분의2 정도는 의학적인 도움을 받으면 성생활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나도 결혼할 수 있다” 자신감 가져야 1994년 교통사고로 어깨 이하 전신이 마비된 강준기(38)씨는 비장애인 최미숙(31)씨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사고 후 집에서 힙겹게 팔을 움직이며 혼자서 홈페이지 제작을 익혔다.7년 전 PC통신 장애인 동호회 활동을 하던 중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던 최씨를 만났다. 사고 뒤 전신에 감각이 없고 성기능도 마비됐다고 생각한 강씨는 사실 결혼도 완전히 포기했었다. 그러나 최씨를 만나 사랑을 느끼면서 꺼졌던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예상대로 최씨 가족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강씨 스스로도 “내 몸이 이런데 결혼까지는 힘들겠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불편한 몸으로도 6개 회사의 홈페이지 관리를 맡는 등 강씨의 믿음직한 모습이 주위를 움직여 2000년 결혼에 성공했다. 그러나 역시 성생활은 쉽지 않았다. 감각이 없고 발기가 지속되지 않아 자연 임신이 불가능했다. 결국 3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2002년 아들 인권이를 낳았다. 강씨는 “결혼도 성생활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지와 자신감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면서 “성 재활치료를 받아 둘째는 반드시 자연임신으로 낳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즐거운 성생활이 재활치료에도 큰 효과 기혼 장애인이라도 전신이나 하지 마비의 경우 성 문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의학적 처방이나 상담 등 성 재활치료가 필요하다. 교통사고로 둘다 하반신이 마비된 신성훈(27)·김은주(33)씨 부부는 2002년 사고 직후 재활원에서 만나 동거하다 올 5월 결혼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때 성문제 때문에 헤어질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둘다 감각이 없는 상태로 굳이 성생활을 해야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우울했다는 김씨는 “배우자나 애인이 있는 장애인에게도 성문제는 여전히 커다란 숙제”라고 말한다. 부부 사이에 약간의 위기가 찾아올 만큼 심각했지만 국립재활원에서 상담을 받은 뒤 조금씩 달라졌다. 발기에는 원래 문제가 없었지만 체위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게 되면서 자신감이 커져 갔다. 이후 성생활이 원만해지면서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 김씨는 “남편이 ‘나도 비장애인처럼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관계를 갖고 난 뒤에는 단순한 성적 쾌감 이상의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면서 “성생활을 하면서 마비도 많이 풀리는 등 재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인·복지사들부터 성의 중요성 깨달아야 장애인의 성재활(Sexual Rehabilitation)은 장애인에게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 알맞은 성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국립재활원이 96년부터 성 재활 상담, 발기부전 클리닉, 부부가 함께 성 재활 실습을 하는 ‘사랑의 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정효선 성재활상담실장은 “의학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나도 성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정보와 자신감만 주어도 문제 없이 성생활을 잘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포기하지 않는 자세와 성교만이 성생활의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범석 과장은 “장애인의 성생활은 쾌락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권리의 문제”라면서 “의료인이나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 집단부터 그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효용 나길회기자 utility@seoul.co.kr
  • [혁신 공기업탐방] (26) 이중재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혁신 공기업탐방] (26) 이중재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이중재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원자력발전소가 없었을 경우를 가정해 원전의 중요성과 경제성을 강조했다. 이 사장은 10일 “원전은 전력 1를 생산하는 데 39원이 들지만 석유는 80원,LNG는 154원이 든다.”면서 “지난 1985년 1당 68원하던 전기요금이 지난해에는 75원에 그친 것도 원전의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평균 전력단가를 낮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소비자물가는 1985년에 비해 무려 156%나 올라 원전이 없었다면 전력 요금이 2배 이상 상승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성에서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는 없고 안전성도 충분히 검증됐다는 것이 이 사장의 신념이다.“공기업의 진정한 혁신은 이익을 키워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이 사장을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이 만나 봤다. ▶원전 이용률이 5년 연속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갖나. -원전 이용률은 발전설비 운영의 효율성과 활용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원전 이용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고장이나 사고 없이 안전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뜻이다.1978년 고리 1호기가 운전을 시작한 이후 운영기술이 갈수록 높아져 2000년 이후 5년 연속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이용률은 91.4%다. 세계평균 이용률(78.9%)보다 12% 이상 높다. 국내 원전 운영기술이 선진국보다 우수함을 말해 준다. 원전 직원들의 업무능력도 수준급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국제신용평가 기관으로부터 최고수준의 신용등급을 받았다고 들었다. -지난 5월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사는 한수원의 신용등급을 A3에서 A2로 상향조정했다.A2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보다 한 단계 높은 등급이다. 국내 기업으로는 한국전력공사와 포스코 등 우량기업들이 A2 등급을 받았다. 건실한 재무구조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운영능력이 반영된 결과다. ▶현재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BEST KHNP 운동을 추진중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인가. -혁신은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며, 효과적인 시스템이 뒷받침될 때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올 초부터 BEST KHNP 운동을 전사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고라는 뜻의 BEST와 Excellent Company(훌륭한 회사),Strong Company(강한 회사) 및 Techno-Company(기술이 있는 회사)의 첫 자를 딴 합성어다.KHNP는 한수원의 영어 약칭이다. 결국 BEST KHNP는 최고의 한수원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BEST KHNP 운동의 실례를 말해 달라. -BEST KHNP 운동에 따라 행동대원격인 178명의 혁신 선도요원을 선발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혁신학습을 진행하고, 혁신실천팀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워크아웃 프로세스를 도입해 불필요한 일을 없애고, 업무를 개선하는 참여혁신형 실천프로세스를 추진하고 있다. 문제해결형 회의인 타운미팅을 통해 도출된 80여개 혁신과제를 실천하는 등 회사 혁신의 중심축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공기업 최초로 도입한 지적자본 경영체제는 무엇인가. -지적자본이란 미래에 조직이 성과를 창출할 수 있게 하는 가치를 지닌 잠재적 지식이다. 재무제표상에 나타나지 않는 모든 프로세스와 자산을 말한다. 한수원이 도입한 지적자본 경영체제는 인적자본(구성원들의 역량과 태도, 만족), 구조자본(구조 및 시스템, 프로세스, 조직문화), 관계자본(브랜드가치, 이해관계자 만족도)을 효율적으로 평가해 경영개선에 활용함으로써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경영활동이다. 한수원은 지적자본 경영으로 ‘국민에게 신뢰받는 최우수 전력회사 창조’라는 기업이념을 이룰 계획이다. ▶한수원은 지난해 초 경영혁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신성장 동력을 발굴해 추진중인데 어떤 효과가 예상되나.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달성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회사경영과 연계해 고부가가치 및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도록 7대 신성장동력 로드맵을 완성했다.7대 신성장동력은 신형경수로 건설·운영기술 정착화,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및 사업추진, 원전 해외사업 활성화 등이다. 이들 과제에 2015년까지 3조 9000억원을 투자해 1조 2000억원의 연간 매출액과 4600억원의 순이익을 볼 예정이다. 또한 연간 1만 4000명의 일자리 창출효과가 기대된다. ▶인사부문에 멘토링 제도를 도입했는데. -멘토링은 멘토(선배)와 멘티(후배)가 합의한 목표 하에 상호인격을 존중하면서 일정기간 멘티의 잠재능력을 개발해 핵심인재로 육성하는 활동을 말한다. 우선적으로 올해 신입직원 180명을 대상으로 조직에 신속하게 적응하고 업무능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선배직원과 1대1로 업무를 지도하도록 했다. 멘토링 결과를 인사에 적극 반영하는 한편 향후 멘토링 제도를 확대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원자력 사업 외에 추진하고 있는 신ㆍ재생에너지 사업은 어디까지 와 있나. -한수원은 풍력·태양광·해양 중심의 기술개발 전략에 따라 2015년까지 190만㎾(수력포함)의 설비를 확보할 예정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신·재생 에너지 사업추진을 위한 전담부서를 올초 신설했다. 한수원은 이미 수력발전소 27기(총 535㎿)를 보유하고 있으며, 춘천수력 외 5곳의 노후 설비를 개선해 7.9㎿, 청평수력 4호기를 증설해 50㎿의 설비를 추가 확대할 계획이다. 또 2007년 5월 준공을 목표로 고리원자력본부내 유휴부지에 설비용량 1.5㎿급 1기의 풍력발전 설비를 설치할 예정이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선정이 관심인데. -방폐장 유치 신청서를 낸 곳은 경주·포항·영덕·군산 등 4곳이다. 이들 지역에서 오는 11월2일 주민투표가 실시된다. 지역주민의 3분의1 이상이 투표하고,50% 이상의 찬성을 얻은 지역 가운데 가장 많은 찬성률을 보인 곳이 최종 선정된다. 한수원은 주민투표 결과에 따를 뿐이다. ▶한수원은 발전소 주변 지역주민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지난해 4월 한 차원 높은 지역사회 발전과 공존공영을 위해 ‘지역공동체 경영’을 회사 역점사업으로 정했다. 이를 위해 지역공동체 담당 조직을 신설했고 지난해 6월 ‘지역사회 봉사단’을 창단한 이후, 전직원의 93%가 자발적으로 봉사기금을 후원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고리원전 주변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원어민 영어교실을 운영하고, 영광원전 주변에서 홀로 사는 노인 81명을 대상으로 사랑의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정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원자력발전 현황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자력 발전은 국내 전체 발전량의 38.2%를 차지한다. 석탄(37.2%)·석유(6.5%)·수력(1.7%) 등 에너지원별 발전량 가운데 비중이 제일 높다. 국내에 원전이 도입된 것은 1978년 고리 1호기 때부터다.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에너지를 다변화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돼 원전을 도입하게 됐다. 당시는 원전 기술력이 전혀 없어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로부터 모두 전수받았다. 하지만 1995년 영광3호기부터는 한국표준형원자로를 자체 개발해 건설했다. 현재는 모두 20기의 원자로(전체 설비용량 1772만㎾)가 가동중이며 세계에서 6번째인 원전대국으로 발전했다. 한수원은 한국표준형원자로보다 경제성과 운전·보수성을 향상시킨 개선형 한국표준원전(100만㎾급)을 개발,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를 건설하고 있다. 또 개선형 한국표준원전보다 안전성과 경제성을 대폭 향상시킨 차세대원자로(신형경수로1400)도 개발해 신고리 3·4호기를 짓고 있다. 제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준공일정대로 신규원전 건설사업이 진행된다면 오는 2015년에는 원자력 28기에 전체 설비용량 2732만㎾로 성장하게 된다. 원전은 우리나라 에너지원의 97%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는 실정임을 감안할 때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다.2002년 원자력 발전량(1191억)을 LNG와 석탄화력 발전원으로 대체한다고 가정하면 석탄연료의 추가수입으로 9억달러,LNG의 추가수입으로 80억달러 등 모두 89억달러의 외화가 더 지불돼야 한다.89억달러는 2002년 에너지 총 수입액의 27%에 해당하는 액수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이중재 이사장은 이중재 사장은 원자력발전과 관련된 웬만한 직책을 모두 거친 원자력 전문가다. 한국전력공사에서 근무할 때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처장과 원자력건설처장을 지냈고, 현재는 한국핵융합협의회 부회장, 한국원자력산업회의 부회장, 미국원자력학회 한국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원자력시설 유치를 위한 국민수용기반 증대방안 연구라는 석사논문을 쓸 만큼 이론과 실무를 모두 갖췄다. 이 사장은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사내 마라톤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뛴다. 이 사장이 건강을 지키려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결재 때문이다. 이 사장은 결재하는 것을 임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말한다. 제때 결재를 해줘야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고 임직원들이 불편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때 결재를 하려면 무엇보다 사장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 이 사장은 직원들의 자기계발을 유난히 강조한다. 이에 대한 비용은 회사가 지원하고 있다.1인 1동아리 활동도 장려한다. 회사를 밝게 하고 발전시키는 주체가 바로 직원이라는 믿음에서다. ▲광주(60) ▲광주제일고·서울대 원자력공학과 ▲한전 KEDO 사업처장·원자력건설처장·대외사업단장 ▲한국수력원자력 사업본부장 강충식기자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뉴욕 지하철 테러 경계령

    미국 뉴욕시가 며칠 안에 지하철에 폭탄테러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믿을 만한’ 정보에 따라 6일(현지시간) 지하철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뉴욕 시당국은 지하철 승객들의 가방과 유모차, 수하물 등을 일일이 검색하고 주변에 경찰관을 증강 배치하는 등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토안보부는 이 정보가 구체적이기는 하지만 그리 믿음이 가는 정보는 아니라고 밝혀 테러 정보의 신빙성을 둘러싼 혼선이 이어졌다. 뉴욕시의 테러경보는 9·11 이후 ‘오렌지’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번 위협으로 테러경보가 상향조정되지는 않았다.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은 이날 뉴욕경찰청에서 레이먼드 켈리 청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뉴욕 지하철을 지목해 이번처럼 구체적인 위협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며 “파리 지하철 테러 협박사건 용의자 검거 후 열흘쯤 지나 이같은 정보를 입수했으며 이에 따라 지하철 구내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 시장은 테러 정보가 해외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 외에 위협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켈리 청장은 시민들에게 의심스러운 인물이나 행동을 목격하면 곧바로 신고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 따라 평일 하루 470만명이 이용하는 뉴욕 지하철의 468개 역에는 이미 경관들이 배치되고 정·사복 경찰들이 지하 터널을 순찰하고 있다. 지하철뿐 아니라 버스, 유람선, 항만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조치가 취해졌고 마약 탐지견들이 동원됐다.7일 오전에는 맨해튼의 펜실베이니아역 일부를 폐쇄하고 무장한 경찰이 수색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사법당국 관리에 따르면 이 정보는 이라크에서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의 작전 결과 얻어진 것으로,‘20명에 가까운 공작원들이 서류가방에 폭발물을 숨긴 채 뉴욕 지하철에 잠입하기로 했으며 이달 중순까지는 공격이 실행된다.’는 것이 골자라고 뉴욕 타임스가 7일 보도했다. 한 관리는 “세 사람이 뉴욕에 잠입한 공작원들과 만날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정보가 지난주 한 정보통으로부터 전달됐다.”며 “뉴욕에 대한 테러위협과 관련해 이라크에서 두 명을 구금했고 한 명은 추적 중”이라고 신문은 덧붙였다. CNN은 군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 이번에 입수된 테러 정보를 바탕으로 바그다드 남부지역에서 알 카에다 조직원 검거 작전이 실시됐다고 밝혔다. 또 뉴욕 경찰과 연방 수사당국은 미국에 잠입한 이라크 조직원을 검거하기 위한 비밀 작전을 펼쳤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프로야구 2005] 김인식-김경문 ‘사제 충돌’

    [프로야구 2005] 김인식-김경문 ‘사제 충돌’

    ‘스승의 관록이냐, 제자의 패기냐.’ 느긋하게 플레이오프(PO) 진출팀을 기다려온 두산과 힘겹게 준PO를 통과한 한화가 8일부터 시작되는 플레이오프(5전3선승제)에서 한국시리즈(7전4선승제)행 티켓을 놓고 격돌한다. 이번 PO의 최대 관심사는 6년간 감독-코치로 한솥밥을 먹은 한화 김인식 감독과 두산 김경문 감독의 사제 대결. 김인식 감독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두산의 사령탑이었다. 그는 특유의 ‘믿음 야구’로 무너졌던 두산을 추슬러 95년과 2001년 두 차례나 한국시리즈 패권을 잡았다. 김경문 감독은 98년부터 배터리 코치로 김인식 감독을 보좌하다 지난해부터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김인식 감독은 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김경문 감독은 투수 운용이 뛰어나다. 함께 일할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라고 띄웠고, 김경문 감독은 “김인식 감독은 선수들에게 맡기는 선 굵은 야구를 펼친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승리에 대한 자신감은 모두에게서 묻어났다. 양 팀은 올시즌 정규리그에서 9승9패의 절대 호각세. 상대 타율도 .268로 똑같은 데다 방어율도 두산이 3.44, 한화가 3.48로 차이가 없다. 다만 ‘대포군단’ 한화는 홈런 22개로 ‘소총부대’ 두산(10개)을 압도했고, 두산은 빠른 발로 도루 14개를 기록, 한화(8개) 내야를 흔들었다. 일단 일주일간 한껏 충전된 선발진을 보유한 두산이 객관적으로 우세하다. 그러나 한화는 준PO 통과의 상승세를 타 결국 양팀의 승부는 안개속인 셈이다. 두산은 다니엘 리오스, 한화는 김해님을 1차전 선발로 예고했다. 올시즌 기아에서 이적한 리오스는 15승12패, 방어율 3.51에다 탈삼진 공동 1위(147개)에 오른 에이스. 리오스는 두산 유니폼을 입고 한화전 1경기,6과3분의1이닝 무실점으로 승리를 챙겼다. 김해님은 준PO에서 선발진을 모두 소진한 한화의 고육책. 정규시즌 6승8패,4.28의 평범한 성적을 냈지만 두산전 6경기에서 1승1패,2.86으로 호투, 기대를 모은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두산 김경문 감독 마운드 운용에 초점을 두겠다. 확실한 1·2선발(리오스와 랜들)이 있는 만큼 이들을 중용하되 나머지 경기에서는 당일 컨디션에 따라 선발을 정하겠다. 잠실은 넓고 대전은 상대적으로 좁아 변수다. 될 수 있으면 빨리 끝내고 싶다. ●한화 김인식 감독 선발이 한정돼 있다보니 김해님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태균의 컨디션이 좋지 않지만,4번으로 계속 기용할 생각이다. 현재로서는 몇 차전까지 갈지 전혀 점칠 수 없다. 두산을 적이라는 생각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상대하겠다.
  • [백승종 정감록 산책] (39)민족적, 유교적 천문예언과 오윤부

    [백승종 정감록 산책] (39)민족적, 유교적 천문예언과 오윤부

    구한말 대표적인 애국계몽 운동가요, 항일운동가인 단재 신채호는 우리역사를 깊이 연구했다.‘조선 상고사’처럼 널리 알려진 연구서가 있는가 하면,‘꿈하늘(夢天)’ 같이 소설 형식을 취한 것도 있다.‘꿈하늘’은 일종의 팬터지 문학으로 항일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작가 신채호는 천상에 올라 ‘임’을 좌우에 모신 여러 영웅호걸을 만난다. 이순신과 세종대왕이 있고 철학자 화담 서경덕도 보인다. 도술의 달인 전우치도 함께 자리한다. 예상 밖인 것은 오윤부(伍允孚)라는 생소한 인물이다. 그는 성력(星曆)의 대가라 했다. 우선 성씨부터 낯선 오윤부. 좀 더 알고 보면 그는 ‘고려사’ 열전에 소개될 정도로 완전히 무명은 아니었다. 천문예언 전문가라고 했다. 섣부른 짐작과는 달리 고려시대에는 천문예언이 무척 중시됐다. 이름난 유학자 박상충의 전기에도 “성명(星命)에 밝아 사람들의 길흉을 점치면 많이 맞혔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다. 중국에서는 13세기 이후 사주명리학이 예언이나 점의 핵심이었다. 고려는 경우가 달랐다. 풍수지리와 더불어 천문예언이 늘 예언의 중심축이었다. 인간 만사가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 그리고 산줄기를 타고 흐르는 땅의 기운과 직결된다는 믿음이 고려인들의 정서에 부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문은 조선후기에 출현한 ‘정감록’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정조9년(1785) 정감록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다.“이른바 하늘이 낸 사람이라는 것은, 그 성씨가 김가이고, 이름은 자세히 모릅니다만, 금년에 군사를 일으킨다고 들었습니다. 유가는 정미년에 군사를 일으키고, 정가는 무신년에 군사를 일으켜, 세 집안사람들이 장차 백 년 동안 서로 싸웁니다. 그 증거로, 객성(客星)이 남방에서 이미 서울로 들어왔습니다.”(실록, 정조 9년3월1일 경술) 조선은 장차 3국으로 분할돼 오랜 세월 다투게 된다는 예언이다. 객성이 남쪽에서 출현해 서울 쪽으로 들어왔다는 천문현상이 증거로 제시됐다. 나라의 운명은 별이 결정한다는 민중의 믿음이 읽힌다. ●대대로 별점을 본 오윤부 고려 충렬왕 때 일관(日官)으로 활동한 오윤부야말로 별점의 대명사였다. 그의 본관은 황해도 배천(白川), 한 때 부흥(復興)으로 불리기도 한 곳이다. 일제시대의 성씨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엔 배천 오(伍)씨가 없다. 오윤부는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는 이야기만 전해 내려온다. 그 조상은 대물림을 해가며 고려의 수도 개성에 살았다. 배천오씨들은 자자손손 별점을 보며 태사국(太史局)을 지켰다.(오윤부의 전기는 ‘고려사’, 권 122를 참조) 고려는 귀족사회였고, 모든 신분이 세습되었다. 심지어 군졸 노릇만 하는 집안, 아전과 서리를 배출하는 집안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일관 오윤부 일가는 귀족은 아니었으나, 일반 농민이나 상인보다는 훨씬 지위가 높았다. 오윤부는 용모가 초라했고 말수가 적었다. 여간해서는 좀체 웃지도 않았다. 그는 첫눈에 호감을 살 만큼 붙임성 있고 구변 좋은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천문을 익혔다. 장성해서는 일관에 임용되어 여러 관직을 거친 뒤 판관후서사(判觀候署事)라는 고위직에 올랐다. 말년에는 천문도(天文圖)를 그려 왕에게 바쳤다. 후배 일관들이 그 천문도를 모범으로 삼았다니 그의 실력을 짐작할 만하다. 오윤부의 특기는 뭐니 뭐니 해도 별점이었다. 타고난 재주도 재주였지만 그는 무척 부지런했다. 밤을 새워가며 하늘을 수놓은 수 백 개의 별들을 샅샅이 살폈다. 날씨가 제아무리 춥거나 덥더라도 그는 늘 성실했다. 오윤부의 먼 후배 격인 조선시대 일관들은 5개 팀으로 나뉘어 하루 24시간 내내 하늘을 관측했다. 그들은 관측 대상을 23종으로 나눠 정상적인 현상과 비정상적인 것으로 구별했다. 해, 달, 흰무리, 지진, 혜성, 새별(新星) 그리고 28수로 요약되는 주요 별자리를 모두 점검했다. 일관들은 특히 새별과 흰무리 등의 모양, 정도, 자리, 바뀌는 모습을 낱낱이 기록해 ‘성변측후단자’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서운관지’) 이 보고서에 천체 약도가 첨부돼 날마다 임금님에게 제출됐다. 조선시대 일관들이 남긴 일지는 당시로선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천문 보고서였다. 그 일부가 아직도 남아 천문 강국의 역사를 입증한다. 고려시대의 일관들은 그와 비슷한 활동을 했고 그것이 ‘고려사’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특히 오윤부는 이상한 천문 현상을 해석하는 데 뛰어났다. 어떤 별이 천준(天樽)을 범하자 “이번에 올 중국사신은 술꾼이다.” 고 예언했다. 천(天)은 중국, 준(樽)은 술통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또 어떤 별이 여림(女林)을 범하자, 중국 사신이 와서 소녀들(童女)을 데려갈 것이라며 걱정했다.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이런 식의 해석이 현대인의 눈엔 너무 단순해 보일 수 있다. 하늘이 꼭 중국이어야 될 이유가 없다.‘여림’을 두고 공녀(貢女)하라는 것으로 해석할 까닭도 없다. 그러나 그 때는 원나라의 횡포가 가장 큰 문제였다. 오윤부는 그런 현실을 감안해 모든 천문현상을 풀이했다. 그의 별점은 잘 들어맞았고 소문이 원나라 황제의 귀에까지 들렸다. ●원형 민족주의자 오윤부 고려 후기에는 원의 수시력과 같은 중국역법이 수입되기도 했다. 오윤부는 그 방면에도 상당한 전문가였다. 그는 달력을 고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고려의 제일(祭日)을 중국과 비교했다. 고려에서는 봄가을의 가운데 달인 음력 2월과 8월의 마지막 무일(遠戊日)에 제사를 지내고 있었으나, 중국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첫째 무일(近戊日)을 제삿날로 삼았음이 확인됐다. 오윤부는 조정에 건의해 중국의 예를 따르게 했다. 그러나 그가 항상 중국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긴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의미로 그는 고려인이었다. 충렬왕은 즉위 직후 선왕인 원종의 신위를 종묘에 모셨다. 새 위패를 선대왕들의 신위와 합설하기 위해 원종의 시책(諡冊 시호를 아뢸 때 쓴 글)을 올릴 차례가 되었다. 충렬왕후는 원나라 공주였는데, 왕비로서 그 행사에 참여하기로 돼 있었다. 마침 오윤부가 이 행사를 주관했다. 그는 난색을 표하며 공주의 참여를 가로막았다. 선대왕들의 신령이 계신 곳에 원나라 공주가 술잔을 올리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원나라는 과거 수십 년간 고려를 침략했기 때문에, 고려인들은 원을 미워했다. 오윤부는 이런 반원의식이 강했다. 원나라 공주는 종묘 제사에서 제외됐다. 많은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통쾌해 했다. 알려진 대로 원종 이후로 고려에 대한 원나라의 간섭이 더욱 노골화됐다. 고려국왕은 대대로 원나라 황실의 사위가 되었다. 왕은 죽어서도 원나라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시호에 표기해 “충○왕”이 되었다. 고려왕실에 시집온 원나라 공주의 위세는 때로 왕권을 능가하는 경우가 있었고, 오윤부는 이 점을 못마땅해 했다. 그는 천문 현상을 빙자해 공주를 압박했다.“천문을 살펴 보니 괴이한 현상이 자주 나타납니다. 요즘은 심한 가뭄까지 닥쳤습니다. 청컨대 궁궐을 짓거나 고치는 공사를 중지하고 덕을 닦으십시오. 그래야 재변이 멈춥니다.” 원나라 공주는 오윤부의 제지를 받자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 원나라 공주에 대한 오윤부의 공격은 계속됐다. 공주는 고려에 시집온 뒤에도 여러 차례 본국을 오갔다. 그 때마다 막대한 비용이 국고에서 지출되었음은 물론이다. 그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판인데 공주는 원나라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자기가 없는 동안 궁궐을 대대적으로 수리하라고 지시했다. 언젠가 한 번은 재상들을 불러 모아 놓고 좋은 날을 택해 아예 새 궁궐을 지어 놓으라고 졸랐다. 다들 불평은 있었지만 드러내놓고 반대는 못했다. 이 때도 오윤부가 발 벗고 나섰다.“금년에 토목공사를 일으키면 임금님께 불리하므로, 신하인 저는 절대 택일을 못하겠습니다.” 원나라 공주는 분노에 치를 떨며 오윤부의 벼슬을 빼앗았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 매로 때리려 했으나 마침 그 장면을 목격한 어느 재상이 애써 말리는 바람에 매 맞는 것만은 간신히 피했다. 그 일로 분이 안 풀린 공주는 오윤부를 왕에게 고자질했다. 왕은 공주의 청을 어기지 못해 오윤부를 매질하게 했다. 그는 매를 맞으며 이렇게 변명하였다.“날을 가리는 것은 흉(凶)을 피하고 길(吉)을 맞으려는 것입니다. 신하를 협박하여 억지로 가리게 한다면 차라리 가리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신은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임금님의 뜻에 아첨할 수가 없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궁궐을 짓는 공사가 겨우 시작됐는데, 화성이 달을 삼키는 변이가 일어났다. 왕은 반승(飯僧 스님들에게 밥을 공양함)을 실시해 이 문제를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다. 반승은 사소한 재앙이 예측될 때마다 되풀이된 고식적인 해결책이었다. 오윤부는 동료인 문창유와 함께 왕에게 간언을 바쳤다. 화성이 달을 삼키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스님들에게 밥을 주고 부처님을 공양한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런 값싼 보시를 그만 둬야 한다. 진정한 길은 불필요한 토목공사를 중지하는 것이다. 사실 그 말이 맞는 말이었다. 왕은 반대여론을 의식해 궁궐 짓는 일을 그만뒀다. ‘고려사’에 실린 전기 기록을 검토해 보면 오윤부의 간언은 전문분야인 천문에 구애되지 않았다. 시사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한 번은 오윤부가 전법총랑(典法摠郞 법률의 집행을 담당) 박인주에게 전법사의 사무가 자꾸 지연되는 까닭을 물었다. 원나라 공주의 명령과 임금님의 명령이 한없이 쏟아져,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왕과 공주는 각기 소송 사건에 비공식적으로 개입해 일처리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오윤부는 이런 일이 자기 소관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에게 따졌다. 이런 식으로 일관 오윤부는 가끔씩 왕과 의견충돌을 보였다. 그러나 원나라 공주에 대해 대들거나 비판하는 경우는 더욱 많았다. 그는 공주 보기를 마치 원나라 침략군을 대하듯 했던 것 같다. 오윤부는 일종의 원형(proto) 민족주의자였다. ●백성을 대변한 오윤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전혀 안 그럴 것 같지만 천문에는 변이가 많다. 그럴 때마다 오윤부는 이를 정밀하게 살펴 고려왕실의 미래 운명과 관련지었다. 그는 특히 고려백성의 편에서 국왕 내외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천문현상을 활용했다는 혐의가 있다. 천문에 이상이 있을 경우 과거의 일관들은 기도를 권하거나 굿을 하라는 권고를 주로 했다. 다분히 미신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오윤부는 달랐다. 그가 제시한 해결방법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정치적이었다.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백성의 원망이 없다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 두 곳에 파견한 왕지별감(王旨別監 왕의 특사)을 소환하고, 여러 곳에 설치된 공주식읍(公主食邑 원나라 공주에게 준 토지와 백성)을 폐지하면 되겠습니다.” 이런 권고를 듣자 왕은 한동안 망설였지만 마침내는 공주에게 줬던 식읍을 폐지하였다. 거기서 거둔 세금을 나라의 창고에 배속시켜 백관의 봉록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사실 원나라 공주는 왕을 졸라 각처에 농장을 마련해 호사가 극에 이르렀다. 그 뒷바라지를 하느라 수만 명의 백성들은 한숨을 짓고 있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오윤부는 백성들의 의사를 대변해 식읍의 혁파를 주장했다. 하늘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변동도 오윤부는 마찬가지로 이용했다. 언젠가 한번은 궁궐 연못에 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산소부족이었든지 아니면 약물에 의한 중독이었을 것이다. 허옇게 배를 드러낸 채 물위로 떠오른 고기떼를 두고 오윤부는 충렬왕을 몰아쳤다.“갑술년(충렬왕 즉위년 1274)에 대궐 동편 못에서 이런 괴변이 일어났고 선왕이신 원종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청컨대 임금님께서는 덕을 닦으시고 스스로를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궁궐의 물고기가 죽든 살든 그것이 왕의 목숨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러나 일관 오윤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칫하면 국왕이나 원나라 공주의 진노를 사게 될 거였지만 개의하지 않았다. 예언가 오윤부의 성공비결은 고려사회에 만연했던 반원적인 정서를 잘 이용했다는 점이다. 조정 대신들 가운데도 원나라의 정치노선에 반대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 어찌 보면 충렬왕 역시 친원과 반원의 두 노선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했다. 그 틈을 비집고 오윤부는 한결 같이 자주노선을 지켰다. 그런 점에서 그는 묘청과 백수한의 후예였다. 그러나 오윤부는 묘청 등을 뛰어넘었다. 그는 일관으로서 하늘의 뜻을 왕에게 정확히 인식시켜야 될 임무가 있다고 확신했다. 만일에 왕이 자기의 ‘충언’을 듣지 않으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끝까지 졸라댈 정도였다. 오윤부의 해석은 유교의 재이론(災異論)에 가까웠다. 묘청 등이 불교적이고 무속적인 세계에 기울어 있었다면, 오윤부는 다가올 성리학 시대의 천문해석에 근접해 있었다는 말이다. 유교적인 천문예언가 오윤부의 고집불통에 충렬왕은 때로 두통을 일으켰다. ●충렬왕이 졌다! 왕은 오윤부를 골탕 먹일 생각까지도 했다. 원 나라 세조가 요동을 정벌하게 되었을 때다. 왕은 상국의 명령으로 마지못해 군사를 거느리고 평양까지 나가게 됐다. 우선 유청신을 황제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그 때 오윤부가 별점을 쳤다.“아무 날 유청신이 반드시 돌아옵니다. 임금님께서는 요동까지 가실 필요 없이 말머리를 서울로 돌리게 되십니다.” 그러나 그 날이 됐는데도 유청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왕은 오윤부를 체포했다. 점괘가 틀렸으니 벌을 받으라 했다. 하지만 오윤부는 해가 아직 저물지 않았다며, 좀더 기다리자고 했다. 과연 얼마 안 있어 먼데서 먼지를 휘날리면서 달려오는 말 한 필이 있었다. 유청신이 타고 있었다. 예언이며 점이 설마 그렇게까지 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문현상은 그저 자연계의 변화를 알릴 뿐이다. 그것이 인간 세상에 복을 불러들일 리 만무하고 화를 초래할 수도 없다. 오윤부의 사고방식은 이런 현대적 인식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시대적 한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윤부는 늘 나라와 백성을 위해 천문을 살폈고, 그 때문에 민중은 그를 사랑했다. 신채호가 그를 가장 뛰어난 천문예언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그 때문이다. 다시 조선 정조 때 일어난 ‘정감록’ 사건으로 돌아간다. 이 사건의 공범인 평민 지식인 주형채도 오윤부처럼 별점을 보았다. 주형채는 말했다.“작년 섣달 초7일, 초8일, 초9일에 위성(危星), 실성(室星), 벽성(壁星) 앞에 20여 개의 별이 벽을 쌓고 늘어섰습니다. 그 속에 붉은 기운이 있었습니다. 장군성과 태백성이 서로 싸운 지 3일 만에 서로 1도(度) 거리로 떨어졌으며, 태백성이 어깨로 장군성을 떠밀어 여러 번 물러가고 나아가기도 하였습니다.” (정조,9년3월22일 신미) 주형채는 국가의 녹을 먹는 일관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윤부처럼 밤하늘의 별자리를 많이 알고 있었고 밤새워 별을 보았다. 별자리의 이동을 1도 2도로 따질 만큼 전문적인 지식을 갖췄다. 고려시대에는 오윤부 같은 특수 계층만 그런 지식을 독점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평민지식인들도 서적을 통해 공유하게 됐고, 그래서 주형채와 같은 평민도 직접 별을 바라보며 민중의 희망을 찾아 나섰다. 자유로운 지식은 곧 우리들의 희망이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찬호 “희망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박찬호(32·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일단 생애 첫 포스트시즌 등판엔 실패했지만, 실낱같은 가능성은 남겨 관심이다. 박찬호는 5일 샌디에이고-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미국프로야구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5전3선승제) 1차전에 앞서 발표된 샌디에이고의 디비전시리즈 엔트리 25명 중 투수 10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LA 다저스 시절이던 199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디비전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고도 다저스가 3연패로 탈락하는 바람에 등판하지 못했던 박찬호는 또다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하는 아픔을 맛봤다. 박찬호는 정규시즌 마지막 선발 등판이었던 지난 2일 다저스전에서 6과3분의1이닝 동안 6안타 2실점으로 호투해 기대를 모았지만, 브루스 보치 감독의 믿음을 사기에는 부족했다. 샌디에이고는 1차전 선발 제이크 피비와 2차전 선발 페드로 아스타시오,3차전 선발 우디 윌리엄스 등으로 투수진을 발표했다. 그러나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에이스 피비가 부상을 당해 선발진 운용에 비상이 걸렸다. 샌디에이고는 피비가 경기 후 오른쪽 옆구리 통증을 호소해 검진한 결과 갈비뼈에 금이 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피비는 치료와 회복에 4∼6주가 소요돼 나머지 포스트시즌 등판이 불가능하게 됐다. 박찬호를 엔트리에서 제외시킨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 샌디에이고가 승부처인 1차전에서 패해 실현이 희박하지만,7전4선승제의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한다면 박찬호의 엔트리 포함 가능성이 커질 전망이다.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 [프로야구2005] SK vs 한화 “양보는 없다”

    [프로야구2005] SK vs 한화 “양보는 없다”

    프로야구 준 플레이오프(PO) 1차전을 하루 앞둔 30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미디어 데이’ 행사에서 SK 조범현 감독과 한화 김인식 감독은 “반드시 1차전을 잡겠다.”며 나란히 ‘필승 출사표’를 던졌다. ■ 조범현 “정신력으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승부를 가를 것으로 봅니다. 이 부분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겠습니다.” 시즌 마지막에 PO 직행 티켓을 날린 SK의 ‘지장’ 조 감독은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선수들의 정신력을 거듭 강조한 것. 조 감독이 빼든 1차전 필승 카드는 두둑한 배짱의 채병용. 올시즌 성적은 8승8패, 방어율 4.24로 평범하지만 한화전 6경기에서 3승1패, 방어율 2.34의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조 감독은 “큰 경기일수록 1차전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면서 “경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불펜을 운용할 것이며 마무리진도 뭉쳐서 가야할 것 같다.”며 ‘벌떼 투수전’도 마다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특히 그는 “김기태는 선발 출장하지 않더라도 선수단의 응집력을 이끌어낼 선수”라면서 “대타 찬스가 오면 과감히 기용할 생각”이라며 그의 역할에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 김인식 “평소대로”“승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선수들 마음속에 이미 자리한 만큼 특별한 주문 없이 평소 하던 대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화의 ‘덕장’ 김 감독은 늘 그렇듯이 선수들에 대한 믿음을 보였다. 김 감독은 “SK는 조직력이 뛰어난 팀이고 올시즌 열세를 겪었다.”고 엄살을 떤 뒤 “첫 경기를 따내는 것이 중요한 만큼 총력을 펼칠 것이며 열세를 만회할 방법도 찾았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 감독은 문동환을 1차전 선발로 내세운다. 올시즌 SK전에서 3패의 좋지 않은 성적을 냈지만 그의 방어율이 3.06으로 빼어나서다. 준PO에서 한화의 달라질 부분은 번트.8개 구단 중 최소 번트작전을 폈던 김 감독은 “단기전인 만큼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번트를 대겠다.”고 공언했다. 김 감독이 내심 기대하는 카드는 ‘풍운아’ 조성민. 김 감독은 “공 30개 정도를 매일 던질 수 있다면 매일 기용하겠다.”며 기대했다. 인천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MBC ‘신돈’ 작가 정하연

    MBC ‘신돈’ 작가 정하연

    한 명은 노비 출신 승려, 다른 한 명은 왕. 도저히 마주할 일이 없을 법한 이들이 서로 우정을 나누고, 함께 세상을 바꿔보려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MBC 대하사극 ‘신돈’은 여기에서 출발한다.700년 전 고려 말을 살다간 신돈과 공민왕, 두 남자 이야기다. 사료에는 신돈이 노비로 태어난 순간부터 공민왕을 만나기까지 25∼30년에 이르는 세월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한다. 백지로 내버려진 그 시간이 정하연(61) 작가의 붓끝에서 오롯이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26일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정 작가는 “큰 뜻을 품고 신념을 지키다 죽어간 인물은 현대극에서도 나무랄 데 없는 소재로 10여 년 전부터 꼭 쓰고 싶었다.”면서 “생애 마지막 작품을 쓴다는 각오로 덤벼들고 있다.”고 말했다. 하필이면 왜 실패한 개혁을 그리고 싶었을까. 이 질문에 그는 오히려 반문했다. 정 작가는 “신돈과 공민왕의 꿈이 좌절된 게 맞지만,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연산군, 광해군, 조광조 등 조선시대에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모색은 이어졌고, 우리가 지금 지니고 있는 균형 감각도 역사의 맥이 흘러왔던 결과”라고 역설한다. ‘장녹수’‘조광조’‘왕과 비’‘명성황후’ 등 그동안 굵직한 획을 그었던 사극들이 그를 거쳐갔다. 현대극 ‘아내’와 한국 대중문화사를 정리했던 EBS의 ‘명동백작’‘지금도 마로니에는’이 최근 작품. 그 목록을 살펴 보면 예견할 수 있듯 ‘신돈’은 요즘 거센 물줄기를 이루고 있는 퓨전 사극보다는 정통 사극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공민왕 등과 나누는 진지한 대사 위주로 신돈의 마지막 모습을 담아내며 출발한 첫 주 방영을 두고 어렵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시청률이 10%에 조금 못미쳤다. 그러나 정 작가는 “쉽게 쓸 수도 있었겠지만, 사건이 아니라 사상을 다루고 싶었다.”면서 “어차피 60부작 대하극인 만큼 초반 1∼2회로 승부가 결정나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이번 작품이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옛 것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쾌함이 스며들어 있다. 주인공 신돈은 높은 무예 실력을 갖추고 있고, 중국 티베트로 고행을 떠나면서부터는 도술도 익히게 된다. 정 작가를 알고 있는 시청자라면 어색할 수도 있겠다. 그는 이런 팬터지적인 요소에 대해 “계급사회에서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난 신돈이 뛰어난 능력이 없었다면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요승의 이미지로만 남아 있는 신돈에게 멋과 친근함을 주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또 “나이를 먹으니 젊어지고 싶고,(퓨전 사극에) 거부감도 없다.”면서 “오락으로서의 사극도 필요하겠지만, 한 시대의 사상을 전달할 수 있는 진지한 사극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타이틀 롤을 맡은 손창민의 연기에 비판이 일고 있지만, 정 작가는 손사래를 쳤다. 유동근과 최수종처럼, 손창민도 조만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기만의 사극 스타일을 만들어낼 것이란다.“‘불량주부’의 히트로 (연기 생활을)쉽게 갈 수도 있었다. 어려운 길을 선택해줘 너무 고맙다.”고 손창민에 대한 굳은 믿음을 드러냈다. 후배 작가들에게 전하는 쓴 소리도 잊지 않았다. 정 작가는 “경력 37년인 나도 ‘신돈’의 저조한 초반 시청률에 신경이 쓰였다.”면서 “그러나 시청률만 노래하면 장사꾼이 돼버린다. 후배들에게 쓰는 재미로 살아가는, 인생을 그리는 작가가 되라고 권하고 싶다.”고 진한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문민·국민·참여정부 ‘정책브레인’ 토론회

    지금 한국사회의 문제를 꼽으라면 ‘양극화’가 1순위다. 양극화는 사회불안의 원인이자 성장동력을 갉아먹을 수 있는 요인이다. 그런데 한국의 양극화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바로 논리적으로 억압적 군부독재보다 민(民)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는 민간정부에서 양극화가 더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두고 박세일·최장집·이정우 3인이 만난다.29일 서울 올림피아호텔에서 대화문화아카데미가 창립 4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민주화, 세계화 시대의 양극화’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다. ●3人 3色 이들 3인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핵심 브레인이자 학문적으로도 ‘일가’를 이룬 이론가다. 그러나 강조점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들의 논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먼저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시장을 옹호하는 미국식 자유주의 주류 경제학에 가깝다.YS정부에서 정책기획수석·사회복지수석 등을 역임하면서 세계화에 개입했고 지금의 노동·교육·사법개혁 등의 단초를 마련했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은 구호에 그칠 뿐, 내용은 신자유주의라는 비판을 떠올려보면 된다. 이에 반해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시장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최 교수는 대표적인 시카고학파 정치학자로 국가의 전면적인 개입을 적극 옹호한다.DJ정부 초기 ‘민주적 코포라티즘(조합주의)’ 개념으로 ‘민주적 시장경제’와 ‘노사정위원회’의 근거를 제공했다. 이 교수는 정당한 노동 없이 불로소득을 얻는 행위(지대추구행위·rent-seeking)를 정부가 없애야 한다는 데 강조점을 둔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최 교수와 이 교수 간에도 차이는 있다. 최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제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반면, 이 교수는 부족하더라도 주요 정책들이 하나둘씩 마련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토론회에 앞서 배포된 자료에서 이들의 개성은 도드라졌다. ●박세일 “교육·복지·노동 연계 필요” 박 교수는 시장주의자답게 양극화의 원인에서 세계화는 제외한다. 이는 자유무역에 대한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이론적으로 볼 때 자유무역 그 자체는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경향이 더 크다.”고 말한다. 해결책도 시장주의적이다. 교육·복지·노동이 연계된 사회안전망의 중요성을 언급하지만 방점은 ▲높은 성장률 ▲개방경제 ▲세계최고의 대학·연구소에다 찍는다. 한마디로 경쟁체제의 도입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것. 그럼에도 관건은 국가의 대응이라 한다. 박 교수가 여기서 비관적으로 변한다.“새로운 비전과 발상을 가지고 동시에 효과적인 정책추진력을 가진 새 역사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최장집 “노조는 더 강화돼야 한다” 민주적 코포라티즘은 노사정이 세금·임금·고용 등에 대해 정치적 대타결을 통해 사회적 협약을 체결한다는 의미다. 이는 참가자들의 힘이 균등할 때 성립한다. 힘이 비슷해야 타협할 공간이 생기고 이 공간에서 정치력은 작동한다. 그래서 최 교수는 ‘귀족노조’라는 말에 강하게 반발한다. 대기업 노조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노동자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약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래서 노조가 ‘대표성’을 가질 수 있도록 북돋워줘야 한다는 것. 최 교수는 되묻는다.“노조 없이 누가 노동자·노동운동을 대표하고, 대표 없이 사회협약, 또는 산업 내, 부문간 코포라티즘적 협약이 가능한가?” ●이정우 “성장과 분배는 동행해야 한다” 이 교수는 ‘성장과 분배의 동행’이라는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자세히 설명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에 대한 토로도 일부 옅보인다.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소득 재분배 정책을 언급하면서 “2005년 2월 보건사회연구원 설문조사를 보면 복지증가와 추가적 세부담에 대한 동의는 18.9%에 그치고 있다. 미국의 59.9%, 영국의 72.6%, 스웨덴의 44%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고 밝힌 것이 한 단면이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최 교수의 민주적 코포라티즘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1920∼30년대 일부 유럽에서 이미 성공했는데 한국의 노사관계나 대화의 문화가 80년전 유럽에도 못 미친다는 것은 지나친 자기비하가 아닐까.”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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