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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회생 주도한다-미다스의 손] 대우건설 박세흠사장

    [기업회생 주도한다-미다스의 손] 대우건설 박세흠사장

    대우건설은 현재 매각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9일 투자의향서(LOI) 접수가 끝났고, 내년 4월이면 우선협상대상자가 결정될 전망이다. 대우건설은 인수자금으로 2조 5000억원 이상이 필요한 인수·합병(M&A)시장의 대어(大魚)이지만,5년전만 해도 워크아웃(기업회생작업)을 통한 회생이 불투명한 기업이었다. “2000년 3월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직원 500명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누군 떠나고 남고 하는 과정을 지켜본 것이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박세흠 대우건설 사장은 “떠난 직원들이 만날 때마다 ‘친정이 잘돼야 한다.’며 오히려 격려하는 모습에 ‘최고의 기업가치를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응답한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대우건설이 워크아웃을 졸업하던 2003년 12월 CEO가 됐다. 그는 “28년을 대우건설에서 일해 주요 임직원들을 속속들이 안다는 것이 그동안 회사를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결정해야 할 일이 생기면 회사 내 최고 전문가를 찾아 일을 맡겼다. 당사자들이 박 사장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거나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박 사장의 믿음만큼 일을 완성했다. 박 사장의 첫번째 경영방침은 직원들이 회사를 믿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대우건설 회생의 큰 원동력 중 하나도 워크아웃 시기에 남아준 핵심인력이다. 물론 채권단의 출자전환은 대우건설 회생의 단초를 제공했다. 건설현장에서 숙식을 같이하며 맺어진 끈끈한 동료애에 다른 회사에 비해 현장에 많이 부여되는 자율성, 다양한 공사경험과 사업기획능력 등이 직원들이 남은 이유다. 실제 대우건설은 ‘건설사관학교’로 불린다. 인재경영의 기초는 평가시스템, 직무순환시스템, 교육시스템 등 3가지다. 직무평가의 경우 평가인과 피평가인이 대화를 통해 평가를 확인하도록 했다. 건설업 특성상 현장연수(OJT)가 중요한 만큼 직원들에게 다양한 근무기회를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중이다. 다만 ‘상피제도’를 도입, 건설현장에서 함께 근무한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지 않도록 조정했다. 그래야 회사에 파벌이 없고,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융화를 이룰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두번째 경영방침은 가치경영이다. 수익성 위주의 건설수주는 해외부문에서 두드러진다. 해외부문은 국내 사업보다 리스크(위험)가 커 철저한 위험관리와 수익분석 등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올 들어서 고유가로 중동 산유국에 돈이 몰리고 나서야 나이지리아, 리비아, 카타르 등에서 공격적인 수주에 나섰다. 올해 해외건설 수주액만 1조 3000억원으로 지난해(5041억원)의 두배를 넘는다. 토목이나 건축의 직접시공보다는 투자사업을 통해 이익을 얻는 전략도 펴고 있다. 대우건설의 부채비율은 2003년말 179%에서 지난 10월말에는 139%로 낮아졌다. 취임 당시 주당 5000원에 머물던 주가는 현재 1만 3000원대다. 당기순이익은 2003년 1637억원에서 올해에는 3326억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박 사장은 세번째 경영방침으로 ‘열린 경영’을 꼽았다.1년에 2∼3차례씩 호프데이를 열어 직원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한다.14년간 해외건설현장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부대끼며 정을 쌓은 과정’의 힘은 CEO가 된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대우건설의 재무구조를 더욱 개선하는 것이 최고 당면과제라 생각한다.“대우건설은 자본금(1조 7000억원) 규모가 크고 비업무용 자산이 너무 많아 효율적 자산운용이 어려워 주식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못받고 있다.”며 내년에는 4000억원의 미수익자산을 팔아 재무구조조정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박 사장은 CEO로서는 드물게 골프를 하지 않는다.“골프를 안 하니까 주말이 온전히 내 몫”이라면서 “인생에 있어 내가 가장 잘한 결정중 하나”라고까지 평가할 정도다. 대신 주말에는 해외출장 때마다 하나둘씩 사온 관(管)악기를 연주하거나 30년 동안 살아온 집 마당의 조그마한 텃밭을 가꾼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지금은 女性진행자 시대

    지금은 女性진행자 시대

    □ YTN스타에서 자신의 이름 딴 토크쇼 진행 정지영 아나운서 “방송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단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하죠. 저도 오랫동안 토크쇼를 하고 싶었어요.”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삼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또 한 명의 여성이 나왔다. 지난해 프리를 선언하고 TV와 라디오를 오가며 맹활약하고 있는 정지영(30) 아나운서다. 그녀가 YTN스타에서 마련한 음악 이야기쇼 ‘정지영의 원 파인 데이’를 진행한다. 시청자들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음악의 향기를 곁들이며 그녀의 정감어린 ‘토크’를 들을 수 있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일산 라페스타에서 쌀쌀한 날씨 속에 첫 녹화를 기다리고 있는 정 아나운서를 만났다. 그녀는 “화려하지 않은 반면, 편안하고 따뜻하고 유쾌한, 그래서 초대 받으면 나가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좋겠네요.”라는 바람을 전했다. 사실 그녀는 라디오 진행 등을 통해 편안한 진행으로 정평이 나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셈인데, 얼마나 오래 ‘원 파인 데이’를 진행하고 싶냐는 짓궂은 질문을 던졌더니 “7년 정도”라는 답이 냉큼 돌아온다. 최근 TV에서 여성 단독 진행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까.“여성 솔로 진행에 대해 막연하게 우려하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여성 혼자라도 프로그램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거죠. 여성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정 아나운서는 이번 프로그램이 기획되던 지난 2달 동안 제작 회의에도 자주 참여하며 아이디어를 내는 등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프로그램 제목도 그녀의 아이디어가 당첨됐다는 후문. 방송 진행 7년의 공력을 가지고 초대 손님 선정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다. 혹시 여타 뮤직토크쇼의 진행자처럼 직접 무대에서 연주나 노래를 하고 싶지는 않을까 궁금했다.“사실 피아노 연주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하지만 그런 부분은 여백으로 남겨놓고 싶어요. 제가 아니라 초대 손님들을 돋보이게 해야 하니까요.” 2시간 정도 펼쳐졌던 첫 녹화의 느낌은 어땠을까. 정 아나운서는 “토크쇼로서는 흔치 않은 야외무대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조용한 진행은 불가능했지만, 되레 관객들의 호흡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는 초대손님의 속 깊은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려고 해요.”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여자=보조진행자’ 이제그만 男보란듯 당당히 ‘홀로 마이크’TV 프로그램에 여성 솔로 진행자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과거에도 이승연이나 김혜수, 심혜진, 이소라 등 연예인이 단독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봇물을 이루지는 않았다. 버라이어티쇼 같은 집단MC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 어떤 장르 프로그램이든 남녀가 투 MC로 동시에 진행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여성은 남성 진행자의 보조 역할에 치우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여성은 항상 남성 진행자 왼쪽에 꽃처럼 앉아만 있다는 비판이 나왔을까. 이제는 다르다. 지난해부터 속속 여성 진행자들이 대거 등장하더니 오히려 남성보다 여성 단독 진행이 압도적인 상황이 됐다. 여성 아나운서들이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게 주목된다. 반면 남성 솔로 진행자는 음악프로그램을 제외하곤, 중장년층 대상 일부 프로그램에서 간간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KBS만 따져봐도 ‘파워인터뷰’(이금희)‘VJ특공대’(황정민) ‘열린음악회’(김경란) 등이 있고, 최근 유학에서 복귀한 황수경 아나운서는 ‘놀라운 아시아’,‘낭독의 발견’,‘신화창조’ 등 무려 3개 프로그램을 홀로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 MBC는 지난 봄 개편 당시 보기 드물게 해외 시사프로그램 ‘W’를 최윤영 아나운서에게 단독으로 맡기며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요리보고 세계보고’(나경은),‘문화사색’,‘주말 스포츠뉴스’(이상 이정민)‘공감 특별한 세상’(박소현)도 있다. SBS는 ‘다국적군’이다. 봄 개편 때는 ‘8시뉴스’ 앵커 출신 한수진 기자에게 ‘한수진의 선데이 클릭’을 마련해줬고, 가을 개편 때 ‘자우림’의 김윤아에게 뮤직토크쇼 ‘뮤직웨이브’를 맡긴데 이어 낮방송을 실시하며 ‘김미화의 유’라는 토크쇼를 신설했다. 개그우먼 송은이도 ‘TV 영어마을’을 단독 진행한다. 방송사 관계자는 “지난해 가을부터 여성 단독 진행 프로그램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면서 “아무래도 청소년이나 20∼30대 등의 시청자를 겨냥하는 프로그램은 여성이 더욱 어필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부시 찬양시 교과서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찬양하는 시가 파키스탄 고등학교의 영어 교과서에 실린 사실이 문제가 돼 정부가 이 시를 교과서에서 빼기로 했다고 영국 BBC 인터넷판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도자’라는 제목이 붙은 이 시는 ‘PRESIDENT GEORGE W BUSH’의 알파벳 글자를 따 20행시로 꾸며졌는데 부시를 찬양하는 내용 일색이다. 예를 들어 ‘S’는 ‘그의 믿음은 강건하고(Strong in his faith)’로 표현되고 ‘U’는 ‘악행을 멈출 수 있도록 그의 권능을 이용하여(Using his power so evil will cease)’로 묘사하는 식이다.정부 관리들은 16살밖에 안 되는 11학년 학생들이 보는 교과서에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시가 게재됐는지 설명하지 못하다가 이날에야 비로소 교재 편찬자가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검정 위원회로부터 승인을 얻어 실었다고 설명했다. 현지 언론은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친미 노선을 좇아 이런 시가 게재된 것이라고 비판했으며 야당 인사들도 이는 파키스탄 정부가 단순히 미국의 노선을 지지하는 선을 넘어선 것이라고 비아냥댔다.정부는 그러나 시 게재에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고 일축했으며 교육부 대변인은 책임자에게 응분의 징계가 내려질 것이라고 밝혔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이사람] 스피커튜닝 외길 김인규씨

    [이사람] 스피커튜닝 외길 김인규씨

    좋은 소리가 갈수록 듣기 힘들어진다. 세상이 악다구니로 가득 찼으니 당연하다 싶다. 김인규(46)씨는 오디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스피커 통(通)이다. 스피커는 통(桶)이다. 통은 울림을 크고 아름답게 만든다. 서울 청계천 8가, 황학동에서 25년째 외제 빈티지(vintage, 품격있는 중고 제품) 스피커를 숙성(ageing)시켜 좋은 소리를 갈구하는 이들에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장사꾼이지만, 아는 이들은 그의 귀가 어떤 경지를 넘어섰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고보니 에이징이나 빈티지 모두 와인의 풍취와 관계된 단어다. ●청계천 8가 황학동에서 25년째 ‘音 담금질’ 그렇다고 가격만 들어도 입이 쩍 벌어지는 외제 브랜드를 내놓는 것은 아니다. 기계에 미친 이도 아니다. 사실 집안에 스피커 수십 조씩을 들여놓고 전기저항이 어떻고 늘어놓는 의사나 변호사들은 수두룩하다. 허름한 지하 공간에 10평 될까말까한 그의 가게는 그 흔한 진열장의 번쩍거림과는 한참 거리를 두고 있다. 발명가의 연구실을 연상케 한다. 김씨는 불면 날아갈 듯한 몸피에 헝클어진 머리칼, 어눌한 말투, 상대 눈길조차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는 등 기인의 특징 그대로다. 그러나 소리에 관한 그의 믿음과 직관은 깊은 산 큰 바위마냥 확고하다.“편안하고 내 마음에 드는 소리가 으뜸이지요. 좋은 소리 찾아 헤매는 모든 사람들이 종국에 이르는 결론은 편안한 소리지요.”고음을 너무 뻗어나가게 하지 않고 저음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탄탄하고 두껍게 쌓아올리는 것이 감상자를 가장 편안하게 만든다는 믿음이다. 그는 과시하는 것을 질색한다.“한국인의 주거 공간에 보스 901이나 일제 JBL과 같은 명품 스피커는 어울리지 않아요. 가족과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으면서 오랜 시간 음악을 즐길 수 있어야지요.” 해서 그는 가게를 처음 찾는 손님에게 그저 계속해서 음악만 들려준다. 기자도 첫날 5시간 가까이 음악만 들었다. 귀가 물리지 않았다.“스피커는 소리통이잖아요. 통이 굉장히 중요하고 자작나무, 미송 등 재질에 따라 맛이 엄청 달라져요. 악기 소리를 제대로 들려주는 게 통의 역할인데, 그 가운데 미송을 으뜸으로 치지요. 통의 울림이 그 맛을 살려내거든요.” 그 역시 진공관 앰프를 비롯,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가 외제 스피커의 맛도 보았다. 그러나 화려한 맛이 요릿집 만찬처럼 푸짐하지만 이내 물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날 중고 스피커로 고가 제품이 내지 못하는 소리를 만들자는 데 한 단골 손님과 의기투합, 스피커 하나를 붙들고 흡입재를 뜯어붙이고 온갖 전선과 코드를 붙였다 떼었다 씨름을 했다. 재질을 달리해 코드 단자를 100가지는 넘게 만들어봤을 거란다. ●고객과 함께 들은 음악만 5만곡 넘어 그의 스피커 ‘맛’을 처음 본 이들은 고가의 장식미에 견줘 볼품없다는 평을 내리곤 한다. 뭔가 빠진 듯 허전하다는 얘기도 듣는다. 부풀려진 중저음이나 화려한 고음에 입맛이 들린 탓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맛에 편안해진다고 했다. 변화무쌍하기로 이름 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을 제대로 소화해내는 스피커를 처음으로 만나 고맙다는 한 고객의 전화에 소년처럼 흔감해 한다. 아직까지 ‘좋은 물건 있으니 나와 보시라.’는 전화 한번 걸지 못했다고 한다. 또 덜컥 제품을 내놓지 않기로도 그는 유명하다. “미송이 제대로 마르려면 30년이 걸려요. 한국 사람 그 세월 견뎌내는 게 쉽지 않지만, 참고 기다려야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지요.” 미송으로 만든 1950년대 미국의 RCA 스피커가 국악인 이희완의 깊이를 형언하기 어려운 내지름을 가장 잘 소화한다는 역설은 그래서 차라리 아름답다. 마음 바쁜 고객은 가게를 찾아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스피커가 익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을 닮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고객과 함께 들은 음악만 컴퓨터에 저장된 게 5만곡이 넘는다. 세이클럽에 마련한 자신의 인터넷 방송에도 제법 팬들이 몰린다고 그답지 않게 자랑한다. 집안에 좋은 소리가 울려퍼지면 가정도 화목해진다. 부부간 금실도 좋아진다. 골방에 틀어박혀 듣는 음악과 오디오가 아니기에 누구보다 안주인들이 반색한다 했다. 삭풍 부는 겨울,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거칠어지거나 옆구리가 허전해 좋은 소리가 그리워질 때, 황학동에 한번 나가볼 일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김인규가 권하는 좋은 오디오 감별법 1. 내가 원하는 소리를 내는 게 좋은 오디오다. 2. 많은 음악을 들으며 내가 어떤 소리를 원하는지 정밀하게 파악한다. 3. 최고급품 매장과 애호가 등을 방문해 여러 제품의 소리를 비교하며 듣는다. 4. 소리의 10%는 앰프가,50%는 스피커가 결정한다고 믿어라. 5. 앰프와 스피커의 매칭이 20%를 차지한다. 6. 나머지 20%는 좋은 소리를 숙성시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7. 고음은 지나치게 내뻗지 않고, 저음은 흩뿌리지 않으면서 두껍게 나와야 한다. 8. 표현력이 풍부한 다음과 같은 음악을 들려주며 숙성시킨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리아의 ‘비가’ 혹은 왁스의 ‘욕하지 마요’ -로이 부캐넌의 ‘더 메시아 윌 컴 어게인’ 9. 피아노 건반이 구슬 굴러가는 소리를 내고, 가야금 명주실 뜯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면 OK 10. 전원 넣을 때 앰프 볼륨을 0에서 시작해 천천히 올리며 감상한다.
  • [기업회생 주도한다 미다스의 손] 리처드 웨커 외환은행장

    [기업회생 주도한다 미다스의 손] 리처드 웨커 외환은행장

    외환은행은 ‘뜨거운 감자’다. 이 은행이 어디로 팔리느냐에 따라 한국 금융권의 판도가 또 한차례 요동칠 게 분명하다. 더구나 대주주가 외국계 사모펀드(PEF)인 론스타여서 매각 과정에서 ‘국부 유출’ 등의 논란이 뜨겁게 전개될 전망이다.소용돌이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외환은행 최고경영자(CEO)의 심정은 어떨까. 더구나 그 CEO가 한국문화에 생소할 뿐만 아니라 은행을 경영해본 경험도 없는 외국인이라면? “누구에게 언제 팔릴지 관심도 없고, 신경쓸 겨를도 없습니다. 최고 은행으로 거듭나는 데 매진할 뿐입니다.” 1일 투명유리로 된 행장실에서 만난 리처드 웨커(43) 외환은행장의 표정은 예상과 달리 무척 여유로웠다. 영국에서 기업설명회(IR)를 마치고 막 돌아온 터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투자가들이 외환은행의 성장세를 보고 깜짝 놀라더라.”며 IR 성과를 소개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최근 외환은행과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한 축구선수 이영표와 영국에서 근사한 저녁식사를 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조직의 벽을 허물다 외환은행은 올 3·4분기까지 1조 1695억원이라는 창사 이래 최대의 순이익을 올렸다.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 비율도 처음으로 두 자릿수(12.10%)로 올라 섰다. 연체율도 지난해 1.78%에서 1.41%로 낮아졌다. 실적이 좋아진 것은 하이닉스처럼 과거 돈을 빌려줬던 부실기업들이 속속 살아났고, 카드 사업이 정상화된 데 기인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웨커 행장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 1월 부임한 이래 침체됐던 외환은행에 ‘신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직원들과의 잦은 스킨십을 통해 외국 CEO에 대한 우려감을 말끔히 씻어냈다. 웨커 행장은 “외환은행이 빛나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직원들의 노고와 고객들의 믿음 때문이었다.”면서 “나는 오직 직원들의 열정을 한 방향으로 모으는데만 열중했다.”고 말했다. 웨커 행장은 세계 최대 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GE)에서 잔뼈가 굵었다.1984년에 입사해 2004년 2월 외환은행 부행장으로 오기 전까지 잭 웰치 전 회장과 제프리 이멜트 현 회장의 총애를 받으며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벽이 없는 조직’이라는 GE의 기업문화를 외환은행에 많이 접목시켰다. 우선 임원실의 벽을 모두 유리로 바꿨다. 은행권 최초로 학력이나 학과, 나이, 어학성적 등의 제한을 철폐한 ‘열린 채용’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직원 평가도 기존의 하향평가에서 탈피, 상향평가와 동일 직급간 평가 등을 도입한 ‘360도 다면평가’로 바꿨다. 웨커 행장의 인사혁신은 시중은행 가운데 최고의 엘리트라고 자부하던 외환은행 직원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장은 벽에 거는 장식품일 뿐”이라면서 “엘리트만이 좋은 일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외국자본 거부감, 이해한다” 경영진으로 온 뒤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그는 “수석부행장으로 취임한 첫 날인 2004년 2월18일이 가장 힘들었고, 그 다음부터는 서서히 쉬워졌다.”며 웃었다. 그가 한국땅을 밟기 2시간 전 로버트 팰런 전 행장(현 이사회 의장)이 한국을 떠났고, 외환카드 노동조합은 구조조정에 반발,45일간 파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취임 의전도 받지 못한 채 부임 첫날부터 노조 및 실무자들과 머리를 맞댄 웨커 행장은 “그날의 경험이 은행 업무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서 독립한 외환은행은 한국 외환업무의 중심 은행이었다. 이런 은행이 외국자본에 넘어간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많다. 웨커 행장은 “록펠러 센터나 페블비치 골프장이 일본인에게 팔렸을 때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반일감정’이 일었다.”면서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는 외국자본에 반감을 갖는 한국인의 정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정서가 시장을 왜곡시켜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동북아금융 허브 등 개방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만큼 투기자본에 대해서는 경계하되, 전략적 투자자들과는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론스타가 언제쯤 외환은행을 팔 것으로 예상하느냐고 묻자 “아직 구체적인 매각 일정이 잡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언제 누구에게 팔리든 경쟁력 있는 은행이 되는 게 우리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4명의 자녀를 둔 그는 2명을 미국과 중국에서 입양했다. 아이들은 벌써 한국을 고향처럼 여기고 있고, 아내도 최근 한국인 단짝 친구를 사귀었다고 했다. 그는 서울역 등에 나가 노숙자들에게 밥을 퍼주곤 한다.‘밥퍼행사’라는 봉사활동의 일환이다. 이런 그의 모습이 자칫 외국자본의 토착화 전략의 일환으로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열정이 넘치는 한국인을 좋아하고, 외환은행을 경쟁력 있는 은행으로 키우겠다는 다짐은 진실돼 보였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실전 논술] 사회속에서 개인의 책임과 역할

    ●다음은 전광용의 (꺼삐딴 리)에서 발취한 글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이인국의 행적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 사회 속에서 개인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유의사항 1)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로 쓸 것. 2)이인국이 친일 행동을 했다는 점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하지 말 것. 3)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의견을 진술할 것. 4)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개인의 윤리 덕목을 제시할 것. (가)벌써 육 개월 전의 일이다. 형무소에서 병보석으로 가출옥되었다는 중환자가 업혀서 왔다. 휑뎅그런 눈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환자. 그는 간호원의 부축으로 겨우 진찰을 받았다. 청진기의 상아 꼭지를 환자의 가슴에서 등으로 옮겨 두 줄기의 고무줄에서 감득되는 숨소리를 감별하면서도, 이인국 박사의 머릿속은 최후 판정의 분기점을 방황하고 있었다. 입원시킬 것인가, 거절한 것인가……. 환자의 몰골이나 업고 온 사람의 옷매무새로 보아 경제 정도는 뻔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마음에 켕기는 것이 있었다. 일본인 간부급들이 자기 집처럼 들락날락하는 이 병원에 이런 사상범을 입원시킨다는 것은 관선 시의원이라는 체면에서도 떳떳지 못할뿐더러,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적인 황국신민(皇國新民)의 공든 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는 이런 경우의 가부 결정에 일도양단하는 자기 식으로 찰나적인 단안을 내렸다. 그는 응급 치료만 해 주고 입원실이 없다는 가장 떳떳하고도 정당한 구실로 애걸하는 환자를 돌려보냈다. 환자의 집이 병원에서 멀지 않은 건너편 골목 안에 있다는 것은 후에 간호원에게서 들었다. 그러나 그쯤은 예사로운 일이었기에 그는 그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버렸다. 그런데 며칠 전 시민 대회 끝에 있는 해방 경축 시가 행진을 자기도 흥분에 차 구경하느라고 혜숙이와 함께 대문 앞에 나갔다가, 자위대 완장을 두르고 대열에 끼인 젊은이와 눈에 마주쳤다. 이쪽을 노려보는 청년의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 같은 살기를 느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어리벙벙하던 이인국 박사는, 그것이 언젠가 입원을 거절당한 사상범 환자 춘석이라는 것을 혜숙이에게서 듣고야 슬금슬금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집으로 이거 들어왔다. 그 후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거리로 나가는 것을 피하였지마는 공교롭게도 어제 저녁에 그 벽보 앞에서 마주쳤었다. (나)나는 코 허리에 내려온 안경을 올리면서 눈을 부릅떴다. 그의 시각은 활자 속을 헤치고 머릿속에는 아들의 환상이 뒤엉켜 들어차 왔다.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시킨 것은 거지의 억지에서였던 것만 같았다. 출신 계급, 성분, 어디 하나 부합될 조건이 있었단 말인가. 고급 중학을 졸업하고 이과 대학에 입학한 바로 그 해이다. 이인국 박사는 그 때나 지금이나 자기의 처세 방법에 대하여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다. “얘, 너 그 노어 공부를 열심히 해라.” “왜요?” 이들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아버지의 말에 의아를 느끼면서 반문했다. “야 원식아, 별 수 없다. 왜정 때는 그래도 일본말이 출세를 하게 했고 이제는 노어가 또 판을 치지 않니.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바에야 그 물 속에서 살 방도를 궁리해야지. 아무튼 그 노서아 말 꾸준히 해라.”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새삼스럽게 자극을 받은 것 같진 않았다. “내 나이로도 인제 이만큼 뜨내기 화화쯤은 할 수 있는데, 새파란 너의 낫세로야 그걸 못하겠니?” “염려 마세요, 아버지…….” 아들이 대답이 그에게는 믿음직스럽게 여겨졌다. 이인국 박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디 코 큰 놈이라구 별것이겠니, 말 잘 해서 징정이 통하기만 하면 그것들두 다 그렇지…….” 이인국 박사는 끝내 스텐코프 소좌의 배경으로 요직에 있는 당 간부의 추천을 받아 아들의 소련 유학을 결정짓고야 말았다.(중략) “가만 있어요, 호랑이두 굴에 가야 잡는 법이오. 무슨 세상이 되든 할 대로 해 봅시다.” “그래도 저 어린 것을 어떻게 노서아까지 보낸단 말이오.” “아니 중학교 아이들도 가지 못해 골들을 싸매는데, 대학생이 못 가 견딜라구.” “그래도 어디 앞일을 알겠소…….” “괜한 소리, 쟤가 소련 바람을 쏘이구 와야 내게 허튼소리 하는 놈들도 찍소리를 못 할 거요. 어디 보란 듯이 다시 한 번 살아 봅시다.” 아들의 출발을 앞두고, 걱정하는 마누라를 우격다짐으로 무마시키고 그는 아들의 유학을 관철하였다. ‘흥, 혁명 유가족도 가기 힘든 구멍을 친일파 이인국의 아들이 뚫었으니 어디 두고 보자…….’ 그는 만장의 기염을 토하며 혼자 중얼거리고 희망에 찬 미소를 풍겼다. 그 다음 해에 사변이 터졌다. 잘 있노라는 서신이 계속하여 왔지만 동란 후 후퇴할 때까지 소식은 두절된 채로였다. 마누라의 죽음은 외아들을 사지로 보낸 것 같은 수심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이인국 박사는 신문 다찌끼리 속에 채워진 글자를 하나도 빼지 않고 다 훑어 내려 갔다. 그러나 아들의 이름에 연관되는 사연은 한마디도 없었다.‘이 자식은 무얼 꾸물꾸물하느라고 이런 축에도 끼지 못한담……. 사태를 판별하고 임기 응변의 선수를 쓸 줄 알아야지, 맹추같이…….’ ● 지문의 분석 이 소설은 정신적 지조 없이 시류(時流)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오로지 자신의 영달과 안일만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우리나라 지도층을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지문으로 제시한 부분은 일제 강점기하에서 모범적인 황국신민(皇國新民)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상범 춘석의 입원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장면과 소련군 장교를 배경 삼아 아들의 모스크바 유학을 결정짓는 장면이다. 왜정 때는 일본말을, 이제는 노어를 해야 버젓이 살 수 있으며,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바에야 그 물 속에서 살 방도를 궁리해야 한다는 말에서 이인국의 성격이 잘 드러나고 있다. 식민지 통치, 해방,6·25전쟁, 산업화 등등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오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사회 속에서 개인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주인공 이인국은 일제 때 의과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회중시계를 상품으로 받는다. 그는 의술이 뛰어났지만 권력층만 상대하면서 그의 자녀를 일본인 학교에 보내는 것은 물론 시의원에다가,‘국어(國語) 상용(常用)의 가’라는 칭호를 받는 등 철저한 친일파로 살아간다. 해방 후 소련군이 진주해 오고 그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앞날을 알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감방에 돌던 전염병을 퇴치하고 러시아어를 힘써 배운다. 그러던 중 소련군 장군 스텐코프의 혹 제거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 주고 그의 신임을 얻어 석방된다. 뿐만 아니라 소련군 장군의 후원에 힘입어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 보낸다.6.25 전쟁이 터지자 그는 월남하여 병원을 개업하는데, 병원은 종합 병원을 방불케 할 만큼 성공한다. 그는 이제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미국 대사관 직원과 교분을 쌓아 그의 추천으로 미국무부 초청을 받아 미국 길에 오른다. 결국 이 작품은 시류에 타협하면서 일신의 안녕만을 추구하는 인간형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출제의도 이 문제는 현대와 같은 경쟁 사회에서 개인은 사회에 대하여 어떤 책무를 지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요구한다. 이것은 장차 사회 속의 개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소양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연대감이 무너지고 개별화, 분자화되어 가는 시대적 병폐를 치유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기도 하다. ● 생각하기 먼저 이 지문에 나타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이인국이 일제 시대와 해방 직후의시기를 지내 오면서 사회 속에서 어떤 처세를 하였느냐 하는 점이다. 사상범 춘석의 입원을 거절하고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 보낸 이유가 무엇인가에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잇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특징과 개인 윤리의 개념을 생각해 본다. 현대 사회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고 그 특징이 무엇인지를 확정해야 거기에 적합한 개인 윤리를 탐색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 사회의 특징과 관련지어 개인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덕목이 무엇인지 확정한다. 희생, 봉사, 친절 등 실로 다양한 개인의 윤리적 덕목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이 왜 그런 덕목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가를 현대 사회의 특징에 비추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 어떻게 쓸까 논제에서 주어진 내용과 연관지어 주제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데, 문제를 삼고 있는 내용으로 보아 건전한 개인 윤리 함양이라는 정도로 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주제문의 방향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개방적 제도와 건전한 판단력의 윤리가 필요하다.’는 방향에서 잡을 수 있다. 글의 서론 부분에서는 논제에서 주어진 것과 관련하여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하여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물론 주인공의 행적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논의의 과제를 제시하면 훨씬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다. 본론 부분에서는 먼저 주인공 이인국의 성격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극단적인 이기주의자, 기회주의자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를 토대로 반사회적 행위로 지탄받는다는 점을 제시하면 된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현대 사회의 특징에 대한 일반적인 언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다원화와 개방화를 지향한다는 점을 언급하면 된다. 그런 다음, 현대인에게 필요한 개인 윤리가 무엇인지 중점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 가치와 더불어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생활 태도와 건전한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 이외에도 스스로 현대인에게 필요한 윤리가 무엇인지 성찰을 하여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부분에서는 앞서서 논의한 내용을 마무리하면서 건전한 개인 윤리 함양의 노력이 필요함을 제시하면 된다. 이 논제와 관련하여 ‘이인국이 시대에 따라 변신하게 된 이유를 서술하고, 현대 사회에서 건전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교육적 조치가 어떤 것인지 논술하시오. 사회 환경 속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와 같은 논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12인조 남성그룹 ‘슈퍼주니어’

    12인조 남성그룹 ‘슈퍼주니어’

    우리가 만나게 된 날을 축복하는 이 밤은 하늘엔 달이 펴있고 별들은 미소짓죠. 그대의 미소가 지워지지 않길 바래요. 언제나 행복한 날들이 계속되길 빌며…(중략). 먼 훗날 언젠가 지치고 힘이 든다 해도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추억을 기억해요. 서로의 화원에 믿음을 심고, 행복을 피워, 마음의 열쇠를 너에게 전해 줄 테니까. -‘슈퍼주니어’의 멤버 희철이 직접 작사에 참여한 노래 ‘Believe’ 중에서- ‘올 포 원, 원 포 올’(all for one,one for all) 축구팀을 만들어도 한 명이 남을 정도로 보기 드문 대그룹인 12인조 남성 그룹 ‘슈퍼주니어’를 만난 뒤 강하게 스쳐 지나갔던 느낌이다. 이특, 희철, 한경, 예성, 강인, 신동, 성민, 은혁, 동해, 시원, 려욱, 기범 등 18세에서 22세의 ‘건강 청년’들로 구성된 ‘슈퍼주니어’. 숫자가 많다는 것은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데뷔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신인치고는 무엇인가 특별한 점이 있었다. 바로 친형제와 다름없는 끈끈함이다. 공식 데뷔는 지난 달 6일 지상파 공개방송 무대였지만, 함께 생활한지는 길게는 5년에서 짧게는 2년 정도 됐다. “민감했던 시기를 함께 보낸 돈독한 사이예요. 이제는 눈빛만 봐도 통할 정도가 됐죠.”(이특) 한 명이 ‘다운’돼 있어도 다른 멤버가 ‘업’으로 이끌어 주니까 금방 풀 수 있다. 또 모두가 끼가 넘쳐나 심심할 새가 없다고 한다. 지난 달 23일 수능 시험 날에는 수험생인 려욱을 응원하러 고사장을 찾아 우애를 과시하기도 했다.“우리끼리 지내는 생활이 너무 재미있는 바람에 오히려 다른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줄어들어 걱정이에요.”(강인) 드라마와 CF 등으로 먼저 활동을 시작한 희철, 기범, 시원에게 상대적으로 팬들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시샘은 없다.“저마다 가지고 있는 팬들은 바로 ‘슈퍼주니어’ 모두의 팬 아니겠어요?”라면서 “개별 활동도 서로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죠.”라고 멤버들은 활짝 웃었다. 이동을 할 때 차량 2대를 사용하다가 최근 대형버스를 마련한 이들의 단체 생활도 궁금했다. 숙소도 2곳으로 나눠 쓰고 있다고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지만, 이들에게 해당되는 경우는 아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의견 차도 있었고, 투닥거리기도 했으나, 어느새 식성마저 비슷해질 정도로 ‘한 몸’이 됐다. 누가 나서서 ‘무엇을 하자.’는 이야기는 없고, 그냥 한 명이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주변에 나머지 멤버들이 슬금슬금 모여 같이 즐기게 된다고 한다.“우리의 소원은 언제나 ‘통일’이에요. 하하하”(신동) 오는 5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데뷔앨범 ‘슈퍼주니어 05’가 발매된다. 록 비트의 타이틀곡 ‘트윈스’를 포함해 10곡이 담겼다. 특징을 소개해달라고 하자,“우리 음악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게 장점이에요.”라면서 “메인 보컬이 따로 없어요.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다양한 음색으로 들려지게 되죠.”라고 입을 모은다. 또 멤버 한 명 한 명이 모두 노래, 춤, 연기,MC, 개그를 할 수 있는 것이 ‘슈퍼주니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절대적인 매력이다. “모두 노력파이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는 멋진 무대를 만들어 나갈거예요.”(성민)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한국에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치적 예언이 있었다. 그것은 주제에 따라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풍수설에 입각해 새 왕조가 일어난다는 내용이 있었는가 하면, 미륵불이 지상에 내려와 이상세계가 열린다는 예언도 있었다.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서로 교대할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다종다양한 예언이 역사상 한꺼번에 존재한 적은 오히려 드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씩 나타나기도 하였고, 서로 다른 종류의 예언이 혼합되기도 했다. 역사상 존재한 한국의 정치적 예언서는 실개천들에 비유된다.‘정감록’은 그 냇물들이 한데 모여들어 이뤄낸 호수라고 볼 수 있다.18세기 전반, 조선 영조 때 역사의 무대 위로 처음으로 등장한 ‘정감록’은 지난 200∼300년 동안 더욱 내용이 풍부해졌다. 이제 ‘정감록’은 민간에 유행하는 예언서를 모두 일컫는 일반명사가 되어 있다. ‘정감록’의 핵심은 정감과 이심 및 이연 등 3인의 대화다. 이를 ‘감결’이라고도 하는데 이본이 많다. 길이가 가장 짧은 한글 본은 약 2430자, 가장 긴 한문본은 6030여자나 된다.‘정감록’에는 ‘감결’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예언서가 속해 있다.‘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화악노정기(華岳路程記)’,‘구궁변수법(九宮變數法)’,‘동국역대본궁음양결(東國歷代本宮陰陽訣)’,‘무학비결(無學秘訣)’,‘도선비결(道詵秘訣)’,‘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징비기(徵秘記)’,‘토정가장비결(土亭家藏秘訣)’,‘경주이선생가장결(慶州李先生家藏訣)’,‘삼도봉시(三道峰詩)’,‘옥룡자기(玉龍子記)’ 등이 그것이다. ‘정감록’이 예언서의 집성이 되는 이유는 말 그대로 한국 역사상 등장했던 모든 예언서가 그 이름 아래 묶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진짜 이유는 여러 예언서에서 탐지되는 중요한 특징이 모두 ‘정감록’에 살아있어서다. ●삼국통일 무렵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돼 삼국시대 초기에는 예언서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 아직 하나도 없었다. 문자로 기록된 예언서가 출현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쳤다. 처음에는 성스러운 왕의 탄생을 알리는 신기한 전설이 있었을 따름이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탄생설화를 비롯해 신라의 탈해왕과 김알지, 가야의 김수로왕의 등극을 알리는 설화가 나온다. 이처럼 위인의 탄생을 예감하게 하는 자연현상이나 태몽 등은 고대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에는 물론이고, 서양 고대의 문헌에도 보인다. 이웃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대 한국인들은 이상한 동물의 출현과 예외적인 천문현상 및 자연계의 이변을 정치적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삼국사기’ 등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수백 군데나 있다. 고대 한국에는 국가의 위기를 미리 알려주는 자명고 같은 물건이 있었다고도 한다. 신라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란 신기한 피리도 있어, 불기만 하면 적군이 저절로 물러나고 질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된 것은 삼국시대 말인 7세기 후반이다.“백제는 달 바퀴와(月輪)와 같고 신라는 초승달(月新)과 같다.” 백제는 망하고 신라는 흥하리란 정치적 예언인데, 이런 내용이 거북 등에 적힌 채 백제의 왕궁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 짤막한 문장은 한국 최초의 정치적 예언서였다. 이것이 발견되고 얼마 안 돼서 이번엔 고구려의 멸망을 예고하는 ‘고려비기’가 발견되었다. 요컨대 신라의 삼국통일을 전후해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정착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구두로만 전해오던 예언이 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것은 외래문자인 한자가 통치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최초의 예언서는 길이가 극히 짧고 시적이었으며 비유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신라말 최치원이 썼다고 하는 예언서 역시 그랬다. 그는 “계림은 누런 이파리요 곡령(송악)은 푸른 소나무”라는 시구를 고려 태조에게 보냈다고 하는데, 비유법이 눈길을 끈다. 이와 같은 특징이 10세기 초 철원에서 나온 ‘고경참’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140여자로 구성된 ‘고경참’은 왕건이 궁예를 꺾고 개성에 새 나라를 세우게 된다고 했다. 고려는 12대 360년간 유지된다고 예언되었다. 이 예언서는 단군신화나 주몽설화를 연상시키는 대목도 없지 않다. 그러나 왕건 같은 ‘성인’이 결국 최종적인 승자가 되리라고 예언한 점에서 ‘정감록’의 원형이다. 고려의 국운을 처음부터 끝까지 개관한 점에서도 ‘정감록’의 선구가 된다. ●풍수지리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풍수지리설이 유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장래를 예언한 글이 많이 등장했다. 풍수설은 ‘정감록’의 경우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다. 미래의 수도를 계룡산, 가야산, 전주 및 개성으로 예언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풍수설에 기초한 것이다. 아울러 십승지설을 비롯해 전국의 길지를 따져본 것도 풍수설의 영향이다. 풍수설을 대표하는 고려의 예언서로는 도선(道詵·827∼898)의 저술로 알려진 몇 가지가 있다. 아울러 ‘신지비사(神誌秘詞)’라고 하는 것이 또 있다.‘신지비사’는 고조선의 예언가 신지가 저술했다고 하는데, 후대에 조작된 것이 틀림없다. 도선의 저술이라고 알려진 예언서들도 위작일 가능성이 결코 적지 않다. 두말할 나위 없이 도선은 풍수설의 대가였다. 다만 고려태조와 가까운 사이였음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태조와 긴밀했던 것은 그의 제자 경보(慶甫·868∼948)였고, 그로 인해 역사책에는 도선과 고려 왕실의 관계가 과장되었다. 11세기 중엽, 고려 문종 때부터 이른바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이 널리 유행했다. 땅 기운은 일정하지 않아 때로 약해지나 적절한 방법을 쓰면 다시 회복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을 토대로 수도 이전 논의가 활발했다. 처음에는 평양이 길지로 각광을 받았지만,13세기 고종 때부터 한양이 길지로 떠올랐다.14세기에는 한양천도가 기정사실로 취급될 정도였다. 결국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는 한양을 새 수도로 삼았다. 한양 천도론은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그 당시 천도론을 이끈 예언서는 도선의 저술이라 하는 ‘도선비기(道詵秘記)’,‘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등이었다. 앞서 말한 ‘신지비사’는 논쟁에서 보조기능을 담당하였다. 아직 예언서 형태로 자리매김된 것은 아니나 7세기 후반 고구려에서도 풍수설이 위력을 발휘한 적이 있다. 당나라가 파견한 도사(道士)들이 풍수설을 이용해 고구려의 국운을 연장시키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도사들은 평양에 새로 성을 쌓거나 바위를 부숨으로써 고구려의 국운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고구려에 수입된 풍수설은 점차 부동의 위치를 확립했고, 도선과 그 제자들의 손을 거쳐 고려 이후 줄곧 예언서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정감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천 후천설 고려 때는 점성술에 입각한 예언서도 유행했다. 고려 인종이 즐겨 인용한 ‘고현유훈(古賢遺訓)’을 이같은 예로 들 수 있다. 거기에는 머지않아 역사의 새 출발이 가능하다고 했다.‘정감록’에 암시된 선천과 후천의 교대설은 그 싹이 바로 ‘고현유훈’에 있었다.‘고현’이란 옛날의 현인 즉, 과거의 뛰어난 예언가다. 여기서 말하는 ‘고현’은 특히 천문과 역법에 밝았던 사람이다. 책에는 이렇게 주장돼 있다 한다.“천지가 생긴 지 수만 년이 지나면 동지(冬至)가 갑자일이 되는 때를 만나리라. 그때가 되면 해와 달 그리고 (수 화 목 금 토) 다섯별이 모두 정북(正北)에 모여들 것이다. 이를 상원(上元)으로 삼고, 이 날로 달력의 기원을 삼아야 된다. 이때 천지가 열리고 성인(聖人)의 도가 행해질 것이다.” 당시 인종은 묘청과 백수한 등 예언전문가들에게 정치를 전적으로 의지하다시피 했다. 왕은 묘청의 권유로 ‘고현유훈’을 읽어 보았음 직한데 특정한 날이 되면 역사의 무대가 새로 펼쳐져 이상정치가 가능하리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물론 터무니없는 망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천체의 운행을 인간사회의 변화에 직결시킨 점에서 동양 고대의 우주관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런 관념은 19세기말까지도 민간에 널리 통했다. ‘고현유훈’의 기초가 되는 점성술은 운수설과 결합되기도 한다. 그 결과, 한국역사에는 아홉 번에 걸쳐 새 왕조가 등장한다는 취지가 담긴 예언서도 나왔다. 조선 초기 식자층이 읽은 ‘구변진단지도(九變震檀之圖)’가 그런 식의 책이다.‘정감록’에도 역대 왕조의 운수가 밝혀져 있고, 계룡산시대 이후의 도읍지가 예언돼 있다. 그와 동시에, 머지않아 선천이 끝나고 후천 이상세계가 펼쳐지리라는 꿈이 깃들어 있다. ●미륵하생설 선천 후천설을 불교적인 입장에서 편 것이 미륵하생설(彌勒下生說)이다.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와 이상세계를 연다는 믿음이 한국에는 널리 유행했다. 스스로를 미륵의 화신으로 간주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이미 죽은 지 천년도 더 된 궁예를 일부 지방에서는 여전히 미륵불로 믿는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 포천시 구읍리 반월성터에 있는 궁예 미륵상이나 경기도 안성시의 국사봉에도 궁예 미륵은 민간의 신앙 대상이다. 고려 말에 경상도 고성 출신 이금은 스스로 미륵이라 주장했다. 그는 다가올 미륵 세상의 모습을,“내가 조화를 부리면 풀에서 파란 꽃이 피며 나무에 곡식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씨앗을 뿌려서 두 번 거두게 되리라.”고 묘사하였다. 수고를 들이지 않고서도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예언한 점에서 그의 설명은 ‘미륵하생경’의 내용과 일치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금을 따랐다 한다. 이금을 추종하는 신앙 집단은 우선 규모가 컸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부 고위관리들까지 신도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국가의 탄압을 받아 이금 일파가 송두리째 제거되었다. 그 뒤에도 자칭 미륵불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고려 우왕 때 개성에서 미륵불을 일컫는 승려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진짜 미륵불로 믿고 쌀과 베를 앞다퉈 바쳤다. 사노(私奴) 무적도 미륵불의 화신이라 주장하다 관헌에 체포되어 목숨을 잃었다. 14세기 후반 고려는 거듭된 왜구의 침입과 정치 불안정으로 인해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 때문에 말세 의식이 만연해, 어서 미륵불이 내려와 이상세계를 펼치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자칭 미륵이 속속 등장했다.17세기 후반 조선 숙종 때 승려 여환은 미륵을 자처하며 무리를 모아 조선왕조를 전복시키려 했다. 사전준비가 미흡했던 탓에 그의 무모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여환은 추종자 11명과 함께 사형을 당했다. 여환이 사라진 뒤에도 미륵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영조39년(1763) 10월2일자 ‘실록’을 보더라도,“지난번 황해도에서 미륵불이라고 일컫는 자가 있었기에 어사(御史)를 보내 법으로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19세기 말 증산교를 창립한 강일순(姜一淳·1871∼1909)은 자신을 천자 미륵이라고 일컬었다. 임종 때 그는 말하기를,“나는 미륵이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불을 보라.”고까지 했다. 자칭 미륵불들은 다들 그 나름으로 예언을 일삼았는데, 강일순은 다가올 미륵세상을 이렇게 설명하였다.“세상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고 밤과 낮이 막힘없이 환하게 통하고 100가지 곡식을 오래도록 거두어들이고 만 가지 과일이 굵고 크며 풍성한 음식이 저절로 생기고 아름다운 옷이 스스로 이른다.” 이러한 견해는 ‘미륵하생경’과 대체로 일치한다. 미륵이 세상에 내려오기를 바라고 믿는 미륵하생신앙은 고대 중국과 티베트를 비롯해 동양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한국인들은 금강산을 법기도량(法起道場)으로 믿어, 내세불인 미륵불이 반드시 한국에 출현하리라는 기대가 컸다. 예부터 예언서나 도참(圖讖) 또는 노래를 빌려 이 점이 늘 강조됐다. 자연히 ‘정감록’에도 미륵신앙이 깊이 스며들어 불법이 다시 부흥하리라는 예언을 낳았다. ●정성진인 또는 해도진인설 조선후기 예언서에서 미륵은 진인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때로 진인은 미륵세상을 맞이할 세속군주 전륜성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승려 여환 사건 때도 이미 ‘정성인(鄭聖人)’이 등장한다.18세기부터는 각종 반란이나 대규모 민란 때마다 ‘진인(眞人)’이 거의 늘 등장했다. 이지서의 괘서 사건에서도 그랬고,19세기 초 서북인의 차별에 항거해 들고 일어선 홍경래의 난 때도 진인이 언급됐다. 진인은 ‘정감록’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새 세상을 열 미래의 왕이 다름 아닌 ‘정성진인(鄭姓眞人)’이거나 ‘해도진인(海島眞人)’이었다. 그 성씨가 정이고, 그가 세상에 나오기 전 섬에 숨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정감록’을 가탁한 민중운동은 갈수록 증가했다. 심지어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여러 민란이나 그때 창궐했던 화적들은 “이재궁궁(利在弓弓·이로움이 궁궁에 있다)”을 구호삼아 외치는 형편이었다. 도적의 우두머리도 진인을 자처하였다. 진인의 시대가 열리고 보니, 그의 사주(四柱)까지 조작되었다. 진인은 기사년 무진월 기사일 무진시에 태어난다. 그의 사주는 뱀이 변하여 용(龍)이 되는 것이라 크게 길하다 했다. ●‘정감록’의 질적 변화 조선후기부터 ‘정감록’에 약속된 새 날의 도래를 믿고 많은 사람들은 고향을 등졌다. 그들은 곧 진인이 섬에서 나와 계룡산에 천도할 줄로 철석같이 믿고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정감록’ 신앙의 영향 아래 여러 신종교가 출범했다. 동학, 증산교 및 원불교가 그 대표적인 것이지만 개중에는 민중의 금전과 노동력을 갈취하려는 사교 집단도 비일비재했다. 사교 집단은 ‘정감록’을 빙자해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일부 신종교에서는 ‘정감록’ 해석에 차원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정성진인이 오기만 기다리며 계룡산에 들어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내는 ‘정감록’ 신앙을 혹독하게 비판했다.“계룡산에 정씨 왕이 난다는 것은 닭이 울면 날이 새고 바른 법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원불교의 개조(開祖) 소태산 대종사의 말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정성진인은 실상 정법(正法)일 뿐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소태산은 앞서 도적들이 되뇌던 ‘정감록’의 한 구절 “이재궁궁”에 대해서도 색다른 의견을 내놓는다.“세상에는 구구한 해석이 많이 있으나 글자 그대로 궁궁은 무극(無極) 곧 일원(一圓)이 되고 을을은 태극이 되나니 도덕의 본원을 밝힘이라. 이러한 원만한 도덕을 실천하여 남과 다투지 않고 살면 이로운 것이 많다는 뜻이다.” 한국 역사상 숱하게 많았던 예언서들이 ‘정감록’ 호수에 이르기까지 그 길은 거칠고 아득했다.‘정감록’이 도달한 종점엔 천만다행으로 살벌한 투쟁이 아닌 상생(相生)이 웃으며 우리를 기다린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데스크시각] 월드컵축구의 그늘/ 김민수 체육부 부장급

    2006년은 ‘스포츠의 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지구촌 최대의 축제인 월드컵축구를 비롯해 동계올림픽, 아시안게임,‘야구 월드컵’으로 불리는 세계베이스볼클래식(WBC) 등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스포츠 이벤트가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수와 진보로 갈려 줄곧 반목하며 평행선을 내달려온 양 진영이 모처럼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을 합창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시름에 잠겼던 서민들도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웃음꽃을 피울 것으로 여겨진다. 국민들의 관심은 단연 월드컵축구에 쏠려있다. 내년 6월 독일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축구는 이미 본선 진출 32개국을 가린 가운데 새달 10일 16강 진출의 운명을 좌우할 조 추첨을 앞둬 대회가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일찌감치 본선 진출의 꿈을 이뤘으면서도 잇단 졸전으로 질타를 받던 한국축구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사령탑에 올라 선수들의 정신과 기량을 재무장하면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는 평가다.‘태극전사’들이 한·일 월드컵 당시의 위용을 회복한 데는 카리스마 넘치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과 열정이 선수들을 깨우는 데 보다 큰 몫을 했다는 생각이다. 내년 6월이면 우리 국민의 넘치는 에너지가 다시한번 폭발해 ‘월드컵 마법’을 재현할 듯싶다. 밤잠을 마다하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다소 부족한 우리 선수들에게 충만한 ‘기(氣)’를 불어넣을 것이다.‘안방 4강’이라는 일부의 비아냥을 실력으로 떨쳐버릴 것이라는 기대다. 그런데 내년에는 월드컵만 있는 게 아니다.2월에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동계올림픽이,12월에는 카타르 도하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의외로 두 대회가 열리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다. 아쉽지만 월드컵의 그늘에 가려진 탓일 게다. 지금 태릉선수촌 등에서는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유도 레슬링 배드민턴 등 수 많은 동·하계 종목 선수들이 두 대회를 겨냥, 묵묵히 구슬땀을 쏟고 있다. 축구 선수의 ‘부와 명예’에는 비교조차 안 되지만 축구 선수처럼 국가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이른바 비인기 종목의 선수들이다. 최근 선수촌에서 만난 한 감독은 열악한 환경과 장래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훈련에 열중하는 선수들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고 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니, 축구라도 좋은 성적으로 국민들을 기쁘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가장 아쉬운 점은 국민들의 철저한 무관심이란다. 대회가 열리고 금메달이라도 따야 그제서야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그의 자조섞인 말에서 비인기의 아픔이 흠씬 묻어났다. 우리는 지난해 아테네올림픽에서 여자핸드볼팀이 보인 투혼에 모두 감동했다.‘금같은 은’이라며 치켜세웠고, 꿈나무를 발굴해 핸드볼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며 언론들은 해묵은 일과성 호들갑을 되풀이했다. 물론 국민들도 한목소리로 열을 올렸다. 당시 임영철 감독이 “지속적으로 관심만 가져달라.”던 눈물의 호소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네들은 이번만큼은 제발 ‘반짝 관심’이 아니길 갈망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게 현실이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단적으로 보인 예가 있다. 지난 3월 축구의 나라 스페인에서 대표선수가 대거 포진한 한 클럽 여자핸드볼 선수들이 스포츠전문지에 자신들의 누드사진을 전격 공개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손과 핸드볼 공으로 치부만을 가린 이들의 모습이 화제가 됐지만 옷을 벗은 사연은 눈물겹다. 축구에 가린 핸드볼이 언론과 팬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옷을 벗어던졌다는 것이다. 그래도 안 되면 누드로 경기를 치르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비인기 종목은 어느 나라에나 있게 마련이다. 또 모든 종목이 똑같은 대우와 인기를 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 역도의 장미란과 복싱의 이옥성 등은 세계를 제패해 축구 이상의 기쁨을 국민들에게 안겼다. 우리가 이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제2, 제3의 장미란과 이옥성이 보다 큰 희망과 용기로 국민에게 보답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김민수 체육부 부장급 kimms@seoul.co.kr
  • [사설] 황 교수 연구 복귀로 논란 끝내야

    MBC가 황우석 교수의 연구용 난자출처 의혹을 보도한 이후로 이 문제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 걱정스럽다. 네티즌의 들끓는 여론에 못 이겨 이 방송프로그램의 대부분 광고주들은 광고를 중단했다. 황 교수의 인터넷 팬카페 회원들을 중심으로 촛불시위가 이어졌다.MBC가 취재과정에서 위압적이었다는 소문도 들린다.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관용이 부족한 우리 사회를 우려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왜 간여하느냐.”며 핀잔을 주는 등 논란은 밑도 끝도 없이 이상한 쪽으로 가는 분위기다. 이래서는 안 된다. 진실을 밝히든 국익이 중요하든, 이런 식의 국론분열은 진실과 국익을 모두 잃을 뿐이다. 황 교수를 비롯한 연구팀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MBC는 진실 추적 여부를 떠나 취재과정에서 협박이나 무례함이 있었다면 스스로 진상을 밝히는 게 도리다. 네티즌도 취재와 보도를 맡았던 PD들의 가족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촛불시위와 광고중단 등으로 압박한다면 이 또한 성숙한 자세는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상황을 염려하면서 지적한 말에 대해서도 본질과 달리 폄훼·왜곡하는 일은 자제했으면 한다. 이런 와중에 지난 24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백의종군을 밝힌 황 교수는 며칠째 연구를 접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고 한다. 그의 부재로 연구의 진척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황 교수의 사과 당시, 우리는 윤리논쟁을 중단하고 연구에만 전념해 줄 것을 당부했었다. 이제 황 교수는 연구실로 돌아와야 한다. 국민도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것으로 믿는다. 연구팀의 전열을 정비하고 연구과제를 정리함으로써 국민에게 다시 희망과 믿음을 주는 것만이 혼란을 끝낼 수 있는 길이다.
  • [기업회생 주도한다-미다스의 손] 서울보증보험 정기홍사장

    [기업회생 주도한다-미다스의 손] 서울보증보험 정기홍사장

    지난 25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한국능률협회가 주최한 최고경영자(CEO)대상 조찬회가 열렸다. 이른 아침부터 크고 작은 기업의 CEO 350여명이 운집했다. 강연 인사는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과 정기홍 서울보증보험 사장 등 2명. 윤 위원장이 원고를 다 읽자 참석자들이 박수를 쳤다. 반면 정 사장이 원고없이 준비한 강연을 마치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도대체 경영 비결이 무엇입니까.”,“어떻게 서울보증이 짧은 기간에 큰돈 버는 회사로 회생했습니까.” ●한해 5000억원 순익 27일 정기홍 사장을 만나 경영성과 비결을 물어봤다. 그는 “CEO는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성과달성의 동기만 주면 된다.”고 싱거운 대답을 하며 웃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대한보증보험과 한국보증보험이 통합, 서울보증보험으로 출범했다. 서울보증보험은 10조 2500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한해 50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며 ‘황금알을 낳는 기업’으로 변신했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견디고,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수익사업을 과감하게 추진한 덕분이다. 지난 98년의 1조 1384억원의 적자는 2003년에 2435억원의 흑자로 반전된다.2004년 4월 정 사장이 취임한 뒤에는 연 순익이 5196억원이나 됐다. 손해율(보험료 대비 보험금의 비율)도 지난해 3월 63.2%에서 올 9월 26.0%로 낮아졌다. 건전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지난 달에는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S&P로부터 삼성전자,KT와 동급인 ‘A-(안정적)’ 등급을 받았다. 정 사장은 “세계 4번째 보증보험의 규모(보험료수입 83억달러)를 바탕으로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선 높은 신용등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임 사장이 힘들여 갈아놓은 밭에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고 있을 뿐”이라며 공(功)을 박해춘(현 LG카드 사장·서울신문 11월23일 15면 보도) 전 사장과 나눴다. ●불모지에서 블루오션 발견 정 사장은 “유럽의 퇴락한 고성(古城)에 온 느낌이었다.”면서 “부실 회사를 맡게 되자 주변에선 축하보다 위로를 많이 했다.”고 취임 당시를 회고했다. 인원은 55.6% 줄고, 임금은 45% 삭감된 뒤라 직원들은 의욕을 잃고 무표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업무파악 후 ‘단순한 보증업무 말고 새로운 사업거리가 많았고, 회사에 인재도 많으니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요즘 말로 블루오션을 발견한 셈”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감성경영’을 위해 전국 60개 지점을 돌며 직원들을 모두 만났다.‘회사 수익은 주주와 종업원, 고객이 나눈다.’는 원칙을 세웠다.‘인사청탁 대상자는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감원에 의한 비용절감보다 사기진작에 따른 이익증대 효과가 크다.’는 소신도 실천했다. 신용불량자 구제를 위해 시도한 ‘신원보증보험’은 1년 6개월만에 5만 3000여명에게 일자리를 주었다. 정 사장은 “다른 보험사들은 신불자를 외면했지만, 막상 믿음을 주니까 신불자들이 일반인보다 더 착실했다.”면서 “‘신원보증 덕분에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신불자들의 편지를 받고 내가 되레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신불자 보증보험의 손해율은 24%로 일반인(34%)보다 오히려 낮다. 지난해 8월에는 인터파크 등 우량업체가 발행하는 경품용 상품권에 지급보증을 하는 상품을 개발, 대박을 터뜨렸다.3개월만에 133억원을 벌어들였다. 신용이 낮은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보험은 그의 취임후 46.1%나 늘었다. 상품대금신용보증·성능보증·역(逆)모기지신용 등도 공익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삼성자동차 채권회수 원만히 해결 서울보증보험의 현안은 과거 삼성자동차에 물린 채권회수 소송이다. 정 사장은 “곧 삼성을 상대로 원금과 이자 2조 5000억원에 대한 소송을 내겠다.”면서 “원만하게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또 “서울보증은 국내 보증수요의 27.1%를 맡고 있어 결코 독점이 아니다.”라면서 “반대편 코트의 구석구석에 공을 밀어넣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시절 테니스 선수를 지냈다. 정 사장은 “공적자금은 차근차근 모두 갚아나갈 계획”이라며 “좋지 않은 근무 환경을 잘 참아주는 임직원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글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용감하니 뭐든 잘하겠지

    대구백화점은 25일 대구지하철 방화 미수 용의자를 현장에서 붙잡은 영남공고 학생들에게 채용증서를 전달했다. 소대영 대구백화점 부사장은 이날 영남공고에서 열린 전달식에서 김형석(19), 최고영(19), 주세별(19)군 등 3학년 학생 3명에게 본인들이 대구백화점 입사를 희망할 경우 즉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김군 등은 지난 19일 대구지하철 2호선 경대병원역 부근에서 김모(33)씨가 전동차 안에 불을 지르려는 것을 보고 격투 끝에 붙잡아 대형 화재로 이어지는 것을 막았다. 대구백화점 관계자는 “이 학생들은 아무나 하기 힘든 행동을 실천했다.”며 “무슨 일이든지 성실히 해낼 사람들이라는 믿음에서 경영진이 흔쾌히 채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대구 황경근기자kkhwang@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6) ’정감록’ 도꾼 문양해의 정신세계

    조선후기 ‘정감록’ 사건은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되었고,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불만을 표출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정감록’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도(道) 꾼들의 종교성이 드러난다.‘정감록’을 신봉했던 사람들은 특이한 종교단체에 속해 있었다. 이런 내 주장이 어쩜 생소하게 들릴는지도 모르겠다.18세기 후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불행한 젊은 도꾼 문양해(文洋海)의 경우를 한번 알아보자. ●도(道)꾼 문양해 사건이 일어났던 정조 9년(1785) 문양해는 30대의 독신 남성이었다. 그는 본래 충청도 공주의 한 평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체포 당시는 경상도 하동에 살고 있었다. 그의 “흉악한 계책과 역적 행위는 이미 다른 죄인들의 자백에서 명백히 드러났다.”고 했으니, 문양해는 조선왕조의 역적이었다. 그의 일생은 특이한 점이 많았다. 대개 아는 이야기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한국엔 독신 남성이 거의 없었다. 문양해는 승려가 아니었으면서도 쌍계사가 위치한 지리산의 깊은 골짜기에 조그만 집을 짓고 홀로 도를 닦았다. 문양해가 하동으로 옮긴 것은 계묘년(1783)이었다. 서울에 살던 그의 친척 양형이 어느 서울 양반에게서 건축자금을 넉넉히 얻어준 덕분에 문양해는 하동에 100칸이나 되는 큰 기와집을 차지하게 되었다. 충청감사와 경상감사를 역임한 홍낙순의 아들 홍복영이 바로 물주였다. 홍복영에게서 거금을 받아내기 위해 양형은 감언이설을 늘어놓은 게 틀림없다. 하동에 가면 기가 막히게 좋은 명당이 있다고 했다. 그 명당을 차지하면 “세 가지 재앙이 들지 않는다.”고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호랑이, 흉년, 그리고 전염병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하동의 명당에 집을 짓고 내려가 살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하동 집은 나중에 정감록 조직의 본거지가 됐다. 수천 냥(兩) 씩이나 되는 은자(銀子)를 하동에 보내자 홍복영의 서동생(庶同生)과 4촌은 바보짓이라며 만류했다. 홍복영을 유혹하는 데 성공한 양형의 집안에서도 아내가 이사를 극력 반대했다. 홍복영과 양형이 가족 내부의 반대에 부딪혀 이주에 애로를 겪은 것과는 달리 문양해 일가는 온 가족이 하동으로 옮겨 큰 집을 차지하고 넉넉하게 살았다. 위에 기록한 대로 문양해는 쌍계사 골짜기에서 유유자적하며 은거생활을 했고, 그의 아버지 문광겸은 하동의 지하본부를 총괄했다. 문양해의 3촌 문광덕도 하동으로 옮겨 약포(藥鋪)를 경영했다. 따지고 보면 하동의 본부 건설에 앞장선 이들도 문씨들이었다. 문씨 일가가 아직 충청도 공주에 살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청년 문양해는 길가에서 신인(神人)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들은 문양해에게 이사를 명령했다. 그래서 온 식구가 강원도 간성으로 옮겼다. 그런 지 얼마 안 되어 이 번에는 다시 경상도 하동으로 떠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한다. 신인이 존재할 리 없지마는 하여튼 그랬다. 문씨들이 간성을 출발해 동남해안을 따라 배를 타고 하동으로 들어오는 동안 동행했던 배들은 모두 파손되었다. 그러나 문씨들의 배만은 무사했다. 이것을 두고 여러 말이 많았다. 사람들은 문양해와 친한 신인이 용왕에게 부탁한 덕분이라고 했다. ●문양해는 신인(神人)들의 제자? 당연한 일이겠지만 정조 9년 ‘정감록’ 사건의 관련자들 가운데 신인을 직접 만나본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문양해만은 신인을 만났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문양해는 신인들로부터 직접 글을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사건의 주모자 이율은 문양해가 향악(香嶽), 노사(老師) 및 징담(澄潭)이라고 불리는 세 명의 신인에게서 글을 배운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 관련자들의 진술을 간추려보면 신인 향악선생은 본래 평안도에서 태어났으나 사건 당시엔 지리산 아래 살고 있었다. 향악의 속성은 김(金), 이름은 호(灝)라 했다. 나이는 63세, 머물고 있던 지리산 속의 집은 운재(雲齋)로 알려져 있었다. 어떤 이는 그 이름이 김정(金鼎)이라고도 했다. 신인 노사는 성이 이(李), 이름은 현성(玄晟)이라 했다. 나이는 250살로 인간으로선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고령이었다. 별칭은 도처결(都處決)이었다. 그의 호칭은 여럿이어서 서악(西嶽)이라고도 했고, 성거사(成居士)라고도 했다. 나이는 80∼90살가량 되었는데 특히 풍수에 밝았다. 문양해의 할머니 산소도 노사가 정해 주었다는 풍문이 있었다. 더욱 놀라운 이야기는 노사가 땅의 임금(坤帝)이란 풍설이었다. 명지관이란 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지만 그는 천제(天帝)의 배필로 간주되었다. 평소 노사는 학이란 종을 시켜 폐백(幣帛)을 짊어지고 다니게 하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신인 중의 신인이 바로 노사였다. 그는 그야말로 모르는 것이 없었다. 가령 장차 반란을 일으킨다면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를 물어보더라도 금방 대답해 주었다. 더욱이 노사는 굉장한 정의파라서 권세를 탐하는 무리를 미워했다. 자객을 보내 그들을 찔러 죽이기도 하고, 혹은 호랑이나 표범을 보내 물어 죽이기도 했다는 소문이 없지 않았다. 노사가 인간 세상에 보내온 편지를 읽어보면, 정조 9년 3월 문양해를 위해 7일간 초제(醮祭)를 지낼 예정이었다. 그만큼 문양해를 아꼈던 것이다.‘정감록’ 사건 가담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노사는 지하조직의 주요 간부들에게 거사에 필요한 정보를 여러 차례 제공했다. 노사와 향악 선생은 문양해와 마찬가지로 지리산 속 깊은 산중에 살았다. 그들 신인은 아궁이에 불을 때지 않았다. 그러나 생식(生食)만 했던 것은 아니고 가끔은 불에 익힌 음식도 먹었다. 그밖에 지리산에는 신인 징담이 또 있었다. 그의 속명은 고경명(高輕明)이라 했는데, 그 능력이나 성격에 대해선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또 다른 신인도 있었다. 문양해는 이렇게 말한다.“신인의 성은 모(茅), 별호는 일양자(一陽子)라고 하는데 그 이름을 문룡(文龍)이라고 들은 적도 있습니다.” 양형의 진술에 따르면, 이 신인은 본래 중국 사람으로 스스로를 ‘모선´(茅仙)이라 불렀으며, 나이는 40세 미만인데 틈만 나면 전국을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신인 일양자는 남달리 총명해 누구보다 암기력이 뛰어났다.‘학통(學統)’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책도 단숨에 술술 암송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지리산에 입산해 머리를 깎을 때 하늘에선 꽃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밖에 현도진인(玄都眞人)이라는 신인도 있었다. 진인은 그때 나이가 벌써 500살을 넘었다는데, 역시 지리산중에 살고 있었다. 그의 속세 이름은 백원신(白圓神)이라고 했다. 향악 선생을 비롯해 위에서 말한 여러 신인들은 지리산 선원(仙園)에 살고 있다고 이야기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현도진인을 제외한 네 명의 신인들만 지리산에 있다고 보았다. 신인들의 거주지는 지리산에 국한되지 않았다. 금강산이나 묘향산에도 신인들이 머물렀다. 신인이 명산에 상주한다는 믿음은 멀리 통일신라 때의 금강산 연기설에까지 소급된다. 고대 한국인들은 석가모니 부처가 인도에 탄생하기 전에 이미 신라에 살았다고 보았다. 특히 금강산은 일만 보살이 상주하는 불교의 성산(聖山)으로 간주되었다. 고려 때 묘청 같은 승려는 이른바 8성당(聖堂)이란 개념을 도입해 명당에 불보살과 신선이 머문다고 주장했다. 문양해와 양형 등 ‘정감록’ 사건의 주모자들은 이러한 기존의 종교적 신념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정감록’ 사건의 주모자 양형은 이들 여러 신인과 사귐으로써 장래 운수를 점치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신인을 직접 접촉한 이는 문양해 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에겐 속기(俗氣)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양해는 독신으로 지내며 여러 해째 수도생활에 전념했기 때문에 속세와 신선세계를 왕복할 수 있었다. 지하조직의 구성원들이 보기에 그는 신인들의 착실한 애제자로 장차 신인이 될 만한 잠재력이 충분했다. 사회적 신분이나 나이로 보면 문양해는 지하조직의 말단에 속해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직 내에서 초월적인 지위를 누렸다. 그는 현세의 복잡함을 초탈한, 훌륭한 도꾼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몹시 과장되었거나 심지어 완전히 조작된 것일 수가 있다. 과장됐든 조작됐든 문양해가 넘나든 신비로운 세계는 많은 ‘정감록’ 사건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단초다. 한참 뒤 일이지만 20세기 전반에 등장한 어느 신종교에서도 종교성이 탁월한 어린 소년을 발탁해 일거에 조직의 핵심 간부로 임명한 사실이 있다. ●신인들의 대리자 문양해 중인 출신의 양형은 ‘정감록’ 지하조직의 서울지부 책임자였다. 가끔 그는 서울의 조직원들에게 향악 선생과 노사의 말을 전했다. 장차 나라가 어지럽게 된다는 예언이었다. 언젠가 홍복영은 그보다 구체적인 소식을 알려왔다. 장차 나라가 셋으로 쪼개질 거라는 위험한 소식이었다. 지리산에 있는 노사가 문양해에게 한 말을 자기에게 알려왔다고 했다. 조선이 삼국으로 분열될 징조는 산천(山川)과 천문(天文)과 지리(地理)에 나타나 있었단다. 나라를 셋으로 나눠 가질 영웅들은 강원도 통천의 유(劉)씨, 전라도 영암의 김(金)씨 그리고 정(鄭)씨라 했다. 당시 정씨는 남해의 어느 섬에 숨어 있었는데 때가 되면 전국을 통일할 거라고 했다. 해도 진인 정씨가 출현할 시기가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된 적도 있었다. 임자년(1792) 2월, 정진인이 먼저 거사를 일으키면 뒤이어 유씨와 김씨도 난리를 일으킬 거라고 했다. 이 소식은 양형이 문양해를 통해 지리산의 신인들과 주고받은 것이었다. 대화의 골자는 양형을 통해 서울의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난리가 일어날 장소와 시기를 둘러싸고 약간 다르게 기억한 조직원도 있었다. 전국적으로 세 곳에서 난리가 일어나는데, 먼저 2년 뒤 전라도 영암에서 최초의 반란이 일어나고 충청도 어느 고을에서 또 사건이 터진다 했다. 그러다 무신년에는 신병(神兵·정진인의 군대)이 바다를 건너 쳐들어온다고 들었다는 것이다. 이때 신인 정씨는 이미 13살이 되었고, 영암에서 군사를 일으킬 장수는 김씨이며, 충청도에서 떨쳐 일어날 이는 유씨라 했다. 이렇게 자기의 기억을 털어놓은 조직원 역시 모든 예언의 근원지는 노사이며 자기는 그 말을 양형에게서 들었다고 진술했다. 삼국으로 갈라진다는 노사의 예언은 구전으로 전파되면서 약간 변형되거나 와전된 부분도 없지 않았다. 예컨대 어떤 이는 세 영웅을 유(劉)씨, 장(張)씨 및 김(金)씨로 인식했다. 그 또한 난국을 수습할 이는 정진인으로 보았는데, 이미 진인은 “제주의 700개 섬 가운데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진인에게는 사람을 살리거나 죽이기도 하는 절대적인 능력이 있다고 했다. 정진인은 서씨와 정씨에게 명령해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잘잘못을 기록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이 대목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최후의 심판’을 연상하게 한다. 마침 당시 한국사회에는 서학 즉, 천주교가 유행하고 있어 다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정감록’ 지하조직원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곧 해도에서 나올 정진인과 자기네 조직이 무슨 관계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 점에 대하여 양형은 정진인이 이미 세 차례나 부하를 국내에 파견해 사정을 탐지하였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향악 선생이 영암의 김씨 및 서쪽 이웃(西隣)과 더불어 역모를 꾸민다고도 했다. 서쪽 이웃이란 지하조직의 서울지역 간부 이율을 가리켰다. 왜냐하면 이율의 집이 양형의 집 서쪽에 있기 때문이었다. 간단히 말해, 이율과 양형 등 지하조직의 핵심세력들은 신인 향악 선생, 영암 김씨 등과 함께 거병할 예정이란 말이었다. 정조 9년(을사년) 3월이 거병시기로 예정돼 있다고 했다. 문양해는 “대사(大事)를 3월에 치르고자 한다는 말을 제가 직접 향약 선생에게서 들었습니다.” 라고 했다. 일을 함께 도모할 사람은 물론 앞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조직원들이었다. 문양해는 신인들이 모여서 사람을 죽일 것을 의논하기도 했고, 국가의 안위를 따지기도 했다고 증언하였다. 사실 하동에 지하조직의 근거지를 마련하자고 촉구한 이도 지리산의 신인들이었다고 한다. 장차 “임자년에 변란이 있을 것이니, 미리 피난하는 것이 좋겠다.” 라고 말했기 때문에 홍복영과 이율이 하동으로 내려갈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울의 돈 많은 홍복영이 건축비를 전담하다시피 하게 된 데는 그런 사정이 있었다. 신인들에게서 나온 예언은 모두 양형과 문양해를 통해서 조직적으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양형이 옮긴 예언과 소문도 실은 문양해에게서 나왔다. 가령 1785년 봄, 영암 김씨가 반란을 일으킨다는 소식만 해도 그랬다.“이 예언은 본래 향악 선생이 문양해에게 들려준 것인데, 제가 문양해한테서 들었습니다.” 이것이 양형의 증언이다. 현실 세계에서 신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양해를 제외한 그 누구도 신인들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해, 신인들은 문양해가 창조해낸 가상의 존재였다. 그들이 써주었다는 편지며, 예언, 사주 등도 실은 문양해가 만든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문양해는 종교적 감성이 탁월했던 만큼 자신이 직접 신인들을 만났다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이 사기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학의 교주 최제우든, 예수 그리스도든, 또는 마호메트 같은 이들도 다 신비체험을 하지 않았는가. 문양해의 영적 체험 역시 그 비슷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지상에서 신인들을 대리했고, 그가 지어낸 말이 ‘정감록’ 조직에선 진리로 수용되었다. 서울지부 총책 양형도 상당한 종교성을 가지고 있었다. 자세히 알아보면 하동의 지하본부 건설자금을 댄 양반 홍복영은 양형에게 내적으로 완전히 예속되어 있었다. 양형에게 편지를 보낼 때 홍복영은 ‘소자(小子)´를 자칭했고,‘선생님´이라며 양형을 깍듯이 받들었다. 이렇게 된 데는 또 다른 숨은 사정이 있었다. 신인 향악, 아니 문양해가 홍복영에게 보낸 편지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 편지를 보면 양형과 홍복영은 전생(前生)에 지리산 하늘에 살며 함께 비단창고를 지키다가 귀신 하나를 찔러 죽였다 한다. 그 죄로 양형은 인간 세상에 귀양 왔고, 홍복영도 20년 동안 갇혀 지내다가 비로소 이 세상에 나왔다. 이런 인연으로 둘은 현세에서도 거취를 같이하게 되었다 한다. 이것은 물론 하나의 간단한 보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문양해가 제공해준 종교적 설명에 따라 조직의 구성원들은 각기 숙세(宿世)의 인연이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로, 이 지하조직은 독특한 종교단체였다.‘정감록’ 도꾼 문양해는 이를테면 강력한 카리스마를 소유한 청년 교주였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임해리의 色色남녀] 사랑하거나 사육하거나

    얼마 전 ‘완전한 사육’이란 비디오를 보았다. 몇 년 전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주쿠 여고생 납치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43세의 독신남 이와조노는 평범한 회사 영업사원으로 소심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남자이다. 그는 어느 날 집 근처에서 조깅을 하던 17살 여고생 구니코를 납치한다. 그리고 구니코는 수갑과 밧줄에 묶인 채 오래된 다가구 주택인 이와조노의 집에 감금당하고, 퇴근과 함께 귀가하는 그와 기이한 동거를 하게 된다. 이와조노는 그녀에게 헌신적으로 먹을 것과 옷을 사다주면서 옆에 영원히 두고 싶어한다. 구니코는 두려움 속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이와조노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주변 사람들은 점차 이와조노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기 시작하지만 구니코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시한다. 이와조노가 선물한 옷을 입고 둘이는 여행을 떠났다가 구니코의 납치사건이 언론에 알려진다. 결국 이와조노는 잡히고 현장에서 구니코는 이와조노를 변호한다. 이같이 납치된 인질이 오히려 범인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을 ‘스톡홀름신드롬 stockholm syndrome‘이라고 한다. 처음에 구니코는 이와조노에게 미쳤다고 소리를 쳤었다. 그러나 자신을 해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자라고 그를 이해하면서 또 다른 감정을 갖게 된 것이다. 사랑은 늘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이 결혼과 분명한 경계를 갖고 있는 점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전생의 업(業)이 두텁거나 운세가 사나운 시절에는 ‘징한’ 인연을 만나 마음고생을 원없이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연만 골라서 만나는 남녀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에게 조금만 관심을 보여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상대에게 기대려고 한다.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녀는 결혼한 지 3년째 되는 주부로 한때는 행복하게 살았다. 남편의 사업이 잘될 때는 얼굴조차 보지 못했는데 재작년부터 회사가 어려워지자 사업을 걷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가 출판사에서 일을 받아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였는데 어느 날부터 남편의 태도가 변하였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동창들과 만나 밤 12시에 들어가도 별 말이 없던 남자가 요즘은 해만 떨어지면 집에 안 오고 뭐하냐고 전화를 해댄다고 한다. 남편은 그녀보다 9살이나 많았지만 연애할 때는 자상하게 돌봐주고 생활비도 보태주었다고 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지방에서 올라와 대학에 다니던 그녀에게 그는 물주이자 구세군이었던 셈이다. 시댁에서는 집안이 기운다고 반대하고 친정에서는 나이차가 많다고 반대하던 결혼이었다. 그러자 그 둘은 보란 듯이 ‘사고’를 쳤다. 그리고 임신했다는 통고를 양가에 하자 결혼이 고속으로 이루어졌다. 아버지를 일찍 여윈 그녀에게 남편은 든든한 보호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 말에 의하면 그의 자신감과 당당함은 부모의 넉넉한 재산에 있었던 것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시댁에서도 돈을 대주지 않으니까 남편이 ‘독’만 올라 자신만 달달 볶는다고 하소연하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남편에게 절절매며 차를 마시다가도 남편전화만 받으면 발딱 일어서곤 하였다. 총총히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녀의 사랑이 깊은 것 인지 아니면 남편에게 잘 길들여진 것인지? 성칼럼니스트 sung6023@kornet.net
  • [금융상품 백화점]

    ■우리금융 우리코리아 블루오션 주식펀드 이른바 ‘블루오션’ 기업으로 일컬을 수 있는 미래성장기업에 투자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주식형펀드다. 주식시장은 과거 20년 동안의 박스권(코스피지수 500∼1000포인트)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초강세 시장에 접어들었다. 이같은 믿음 속에 자체평가 시스템을 통해 경쟁자 없이 무한 성장할 수 있는 미래기업을 골랐다. 펀드의 60% 이상을 주식에 편입했다. 납입 방법은 적립식과 임의식 모두 가능하다. 환매수수료가 없어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을 수 있다. 최소 가입액은 10만원. 판매는 우리은행, 우리투자증권, 광주은행, 경남은행 등 우리금융의 계열사에서만 한다. ■국민은행 한국부자아빠 거꾸로 주식투자신탁 펀드를 판매하는 금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100만계좌 유치를 돌파한 기념으로 새로 출시한 적립식펀드 상품이다. 최근 펀드 수익률 1,2위를 다투고 있는 ‘한국부자아빠 거꾸로∼’와 동일한 상품 구조를 지녔다. 이 펀드는 판매 1주일만에 140억원이 팔렸다. 운용사는 ‘거꾸로 시리즈’를 탄생시킨 한국투자신탁운용에서 맡았다. 대형주와 중소형주를 혼합했기 때문에 상승장에서 조금 덜 오르기는 하지만 안정된 수익을 내고 하락장에선 우수한 방어력을 갖는다. 최소 투자액은 10만원이고, 투자기간은 60개월 이상이다. ■미래에셋생명 (무배당)행복만들기 변액유니버셜보험 그동안 높은 수익률 덕분에 인기를 끈 변액유니버셜보험과 비교해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도록 포트폴리오를 개선했다. 기존 변액유니버셜과 동일한 투자수익을 가정했을 때 가입 1년 시점에서 20%의 수익률 차이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해약환급금의 50% 안에서 중도인출이 가능하고, 인출가능 기간도 18회 납입 후에서 12회 납입 후로 앞당겼다. 가입후 18개월이 지나면 보험료 자유납입이 가능해 일시적으로 적게 낼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계약은 유지된다. ■조흥은행 CALL SAVE 체크카드 카드 이용액의 일부를 적립해 휴대전화 무료통화로 충전해주는 서비스를 지난 17일 금융계에선 처음으로 선보였다. 휴대전화 사용이 많은 이용자에게 유용한 카드다. 모든 통신사 휴대전화를 대상으로 이용금액의 0.5%를 무료통화 포인트로 적립한다.1200포인트가 쌓이면 10분 단위로 카드 회원의 휴대전화에 자동으로 충전된다. 카드 발급은 만 18세 이상의 개인고객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또 카드 회원은 월 2회씩 주요 영화관의 입장료를 1500원씩 할인받는다. 전국 유명 콘도와 호텔 20∼50% 할인등의 서비스도 제공된다. ■ING생명 무배당 종신보험 메디케어형 종신보험에 건강서비스를 추가로 강화한 종합형 상품이다. 사망·재해·입원·암치료 등을 동시에 보장한다. 오랜 경험이 있는 전문의, 간호사와 언제든 상담할 수 있다. 종합건강검진과 온라인 상담, 종합병원 예약 서비스 등의 혜택도 있다. 건강서비스는 기본·종합·VIP 등 3종으로 나뉜다. 또 보험료는 가입자의 사정에 따라 20년·55세·60세·65세·80세까지 납입기간을 선택할 수 있다. 특히 가입자가 근로소득자라면 연간 납입보험료 가운데 1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고, 주민세 등에 대한 감면 혜택도 받는다. 최저 가입액은 5000만원, 가입연령은 15∼46세다. ■교보자동차보험 UMC카드 서비스 교보자보는 국내 처음으로 전화와 인터넷만으로 가입할 수 있는 ‘다이렉트’ 영업을 시작했다. 판매비용을 절감, 보험료가 일반 자동차보험보다 최고 42% 싼 혜택을 가입자에게 돌려주고 있다. 사고를 내지 않은 가입자에게도 서비스 혜택을 주기 위해 ‘UMC 카드’를 개발했다.SK카드와 제휴한 UMC카드를 발급받으면 ‘OK캐시백포인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일반 SK카드 소지자보다 2∼4배 높은 포인트를 받는다. 또 교보자보는 손해보험사 가운데 가장 많은 전국 7개 센터,43개 보상팀(400명)을 운영해 언제 어디서든 신속하게 사고에 대응할 수 있다.
  • [20&30] 아홉수 결혼 안좋다고?

    ‘아홉수에는 결혼하면 좋지 않다?’ 아홉수에 해당되는 19,29,39세에는 가정의 대소사를 치르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 이런 생각은 결혼할 때 특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서른 넘겨 결혼하는 것보다 29세나 39세 되는 해에 결혼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믿는다. 결혼정보업체 선우의 커플매니저 최윤정 팀장은 “아직도 그런 부분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많다.”면서 “구세대라고 할 수 있는 부모님들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따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29세 되는 해에 결혼을 피하기 위해 해를 넘겨 서른살 봄으로 결혼을 미루거나 미리 앞당겨 28세 겨울에 결혼을 하는 커플들이 많다는 것이다.최 팀장은 “10명에 3∼4명 꼴로 아홉수를 따진다.”면서 “신빙성이 있든 없든 일단 나쁘다는 것은 피하고 보자는 심리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아홉수 금기’에 대한 믿음은 그 어떤 영역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앙대 민속학과 임장혁 교수는 “우리 전통 개념에서 아홉수라는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민속학에서는 홀수를 길하다고 보는데 9로 끝나는 해에 운이 안좋다고 보는 것은 이해가 안간다.”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아마도 주역이나 점술 개념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역리학에서도 아홉수는 ‘엉터리’라고 말한다. 역술가 포정씨는 “아홉수는 말 그대로 미신”이라고 말한다.그는 “아홉이라는 숫자가 단위가 바뀌기 전 숫자이기 때문에 결산하거나 마무리한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것이 결혼이나 사업에서 걸림수가 된다고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흔히 알려진 것처럼 사주역학과는 전혀 관계 없다.”고 설명했다. 역리학에서는 10년마다 운세가 바뀐다는 ‘10년 대운세’라는 개념이 있긴 하지만 그 전환점이 9로 끝나는 나이에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어떤 사람은 2세,12세,22세 식으로 운이 바뀌는 해를 맞는다.”면서 “획일적으로 모든 사람이 9로 끝나는 나이에 운이 나쁘다는 것은 그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삼재와 연결지어 3이 세번 반복되기 때문에 아홉수를 피해야 한다는 해석에 대해 “삼재라는 것은 12년마다 돌아오는 일종의 흐름”이라면서 “삼재와 아홉수를 연결시키는 것은 말도 안되는 해석”이라고 잘라 말했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은행들 사회공헌에 눈뜨나

    은행들 사회공헌에 눈뜨나

    “과거 고객들의 마음에는 ‘은행원의 계산은 정확하다.’는 믿음이 자리잡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고객들이 좀처럼 은행원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공익성보다 ‘장사’에만 매달리다 보니 이런 불신이 생긴 것이지요.” 시중은행의 한 행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고객의 신뢰를 먹고 살았던 은행이 불신받고 있다.”면서 “사회적 책임에 눈을 뜨지 못하는 한 은행의 발전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이 행장의 ‘반성’처럼 요즘 시중은행들이 사회공헌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일부 은행들은 순이익의 일정 부분을 기부금으로 내놓는 것을 고려하고 있고, 슬쩍 은행 수익으로 처리하던 휴면예금을 고객에게 돌려주려는 성의도 보이고 있다. 은행들이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세금으로 정상화된 은행들이 순익을 많이 내면서도 공익에는 무관심하다는 비난이 커졌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비자발적으로 시작된 사회공헌 활동이 과연 효과가 있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사회공헌액, 아직은 ‘쥐꼬리’ 그동안 은행들의 사회공헌 활동은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직원들을 동원해 고아원 등에서 1일 자원봉사 활동을 벌이거나, 특정 단체에 1회성 기부금을 전달하는 게 고작이었다. 실제로 올해 시중은행들의 사회공헌액을 살펴 보면 대부분 순이익의 0.5%가 채 안된다. 올 3·4분기까지 1조 8139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국민은행의 사회공헌액은 57억 6000만원으로 0.3% 남짓이다. 1조 2285억원의 순이익을 낸 우리은행도 10월까지 사회공헌 활동에 68억 7000만원을 지출했다. 외환은행 역시 1조 1695억원을 벌여들였지만 사회공헌액은 75억원에 그쳤다. 외국계인 SC제일은행은 3분기까지 535억원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사회공헌 지출액은 고작 8억 6000만원이다. ●사회공헌 제도화 발걸음 공익성 약화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은행들은 더 이상 이를 외면할 수 없게 됐다. 국민은행은 전략기획팀을 중심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기부금을 내야 할 곳과 내지 말아야 할 곳을 구분해 놓는가 하면 액수도 각급 심의위원회를 통해 정하기로 했다. 특히 내년부터는 당기순이익의 최소 1% 이상을 사회공헌 활동에 의무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은행 전략기획팀 관계자는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소액대출)를 맡고 있는 사회연대은행과 청소년 경제금융 교육을 집중 지원하는 1단계 전략적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가시화되고 있다.”면서 “공익성을 외면하고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힘들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금융권에서는 처음으로 사회책임보고서를 발간, 그동안의 사회 활동을 점검하고 반성한 신한은행은 최근 조흥은행과 함께 사회적 책임에 적극적인 기업에만 투자하는 사회책임투자 펀드를 내놓기도 했다. 외환은행은 21일 사회공헌 활동을 위한 별도의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했다. 휴면예금 찾아주기에 미적거리던 태도도 변하고 있다. 우리, 기업, 외환, 대구은행 등은 우편과 이메일로 휴면예금 내역을 알리는 동시에 해당 고객이 인터넷뱅킹에 가입해 은행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휴면예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팝업창을 띄운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외국 금융기관들은 사회공헌을 위한 별도의 재단을 설립하거나 대출의 일부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쓰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면서 “외부의 비판에 떠밀려 사회적인 책임에 눈을 뜨기 시작한 국내 은행들이 사회공헌 활동에 얼마나 적극적일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법원개혁… 국민 사랑받겠습니다 ”

    “법원개혁… 국민 사랑받겠습니다 ”

    김황식·박시환·김지형 신임 대법관이 21일 취임식을 갖고 대법관 임기를 시작했다. 김황식 대법관은 “이 땅에 정의를 실천하고 인간이 존중받고 사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제 재판의 목표로 삼고 신명과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시환 대법관은 “법원이 시대에 맞게 변화의 구체적 내용을 잘 결정해 국민의 사랑을 받고 우리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형 대법관은 “무엇보다 법원이 하루 속히 믿음을 되찾을 수 있게 균형된 시각으로 분쟁과 갈등을 막는 밝은 등불이 되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김황식 대법관은 이용우 전 대법관의 업무를 인수하며 박시환 대법관은 유지담 전 대법관, 김지형 대법관은 이달 말 퇴임하는 배기원 대법관의 담당업무를 각각 이어 맡는다. 앞서 지난달 퇴임한 윤재식 전 대법관의 업무는 법원행정처장을 마치고 재판부로 복귀한 손지열 대법관이 맡았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열린세상] ‘無道’가 길을 잃다/오세훈 변호사

    창문으로 흘러드는 늦가을 햇살이 여유롭다. 퇴근 전에 차를 한잔 하고 있자니 홀로 만끽하는 여유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참으로 바람 잘 날 없는 나라다. 오늘도 역시 과거 정보기관의 도청사실이 밝혀지면서 두 전직 국정원장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대부분의 국민이 짐작했던 바이므로 사실 새로울 것이 없는 뉴스인데, 흥미로운 것은 그 소식을 접한 두 분 전직 대통령과 청와대의 반응이다. 한분은 검찰의 구속이 ‘무도(無道)’하다 하시고, 다른 한분은 무도하다고 한 그 분이 ‘무도’하다고 하신다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게다가 청와대까지 나서서 비판적 입장을 개진했다니 무엇이 옳은 것인지 필부들로서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도리에 어긋난다’는 뜻의 무도하다는 말이 자못 길을 잃은 느낌이다. 대체 도리란 무엇인가? 세상이 다 아는 도청사실을 두 분 전직 대통령께서만 모르셨을 리 없다. 가령 백보를 양보해서 본인이 보고받은 정보보고가 도청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믿음에 이른바 ‘미필적 고의’도,‘인식 있는 과실’도 전혀 없었다고 가정하자. 그것 자체로 무능 내지는 무관심을 입증하는 바이며,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정보기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감으로 가슴을 쳐야 할 일 아닌가? 세상에 도리라고 하는 것이 있다면 대국민 사과문 발표 준비로 분주할 시점이라 할진대, 사실이 아닌 일을 억지로 만들었다 하시니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주지하다시피 구속영장 발부사유 중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이다. 혹시라도 이렇게 도리가 아닌 주장을 하시는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설득당하여 진술을 바꿀 가능성 때문에 검찰이 강정구 교수도, 두산 일가도 모두 피해간 구속을 마지못해 한 것은 아닐까? 또 이렇게 도리가 아닌 후임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보고 단지 공소시효 덕분으로 여론의 비난으로부터 피해 계신 전임 대통령께서는 어떻게 해야 도리이실까? 비록 실정법의 형량이 높지 않아 공소시효는 만료되었으되 떳떳하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일 터인데, 마치 남의 일 말씀하듯 하시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문득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하늘에 떠 있을 수많은 별들을 생각한다. 강렬한 햇빛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저 위에 별들이 얼마나 총총할 것인가. 이제 잠시 후 어둠이 내리면 별들은 필연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잠시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닐진대 인권대통령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다 하여 일단 없다 하시고, 잠시 멀리 떨어져 있다 하여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손가락질하시는 모습을 보니 헛웃음만 나온다. 개성이 뚜렷한 두 분 전직 대통령이 이끄신 10년의 기간 동안 이 나라가 겪어야 했던 많은 일들이 문득 떠오른다. 세간에는 바람직한 리더와 리더십에 관한 수많은 주장들이 범람한다. 피터 드러커는 평균 이상의 지성과 고도의 인격이 리더의 조건이라 하고, 짐 콜린스는 먼 훗날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현재의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주춧돌형 리더십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나라의 안정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바람직한 리더상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제는 이렇게 비범한 리더십을 오히려 경계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우리는 이제 평범한 필부들의 상식적 판단으로 동의할 수 있는 리더를 보고 싶다. 굴절된 역사가 투영된 평탄하지 않은 인생 역정은 그만큼 강한 개성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개성은 때때로 상식과 부딪치게 되고, 이럴 때 그 지도자의 개성은 많은 국민을 당혹스럽게 한다. 우리는 여러 유형의 개성 있는 지도자를 보아 왔다. 개성으로 말하자면 현직 대통령도 누구 못지않다. 본인들은 그 개성을 소신이라 부르며 모든 가치에 우선해서 정책에 대입하려 하지만, 국민의 눈에 비친 그 위대한 소신은 생경할 뿐더러 국리민복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는 이제 탁월한 영도력의 영웅적 리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와 다른 독특한 리더도 원치 않는다. 그저 마음을 편안히 해 주는 지도자면 좋겠다. 이제 이 해프닝도 곧 잊혀질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일상은 모든 것을 삼킨 채 제자리를 찾아 돌아갈 것이다. 편안하고 여유 있는 오후가 사치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일상을 누리고 싶다. 오세훈 변호사
  • [발언대] 물정책 근본부터 다시 세워야/염형철 환경운동연합 녹색대안국장

    정부가 지난 2001년 발표한 수자원장기종합계획의 물 수요량 전망이 터무니없이 과장되었다는 사실이 지난달 서울신문 보도를 통해 확인됐다. 정부는 뒤늦게 오류를 인정하고 물 수급정책을 수정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럼에도 상황은 그리 낙관적인 것 같지만은 않다. 건설교통부가 물 수요 예측 과장 사실에 대해 여전히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다, 그동안 여러 부처의 장관들이 ‘물관리체계 개선방안’을 두고 머리를 맞대왔지만 의미있는 개혁안은 도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물 수요의 어설픈 전망은 도상의 댐 계획 몇 개를 취소하는데 그칠 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댐과 제방 건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환경파괴의 원인이 정부에 있었다는 사실과, 수십조의 세금 낭비 등에 대한 엄중한 규명과 책임추궁이 뒤따라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건교부의 올해 예산 중 댐 건설비 약 2093억원, 광역상수도 건설비용 3798억원, 제방 건설비 1조 500억원 등은 모두 잘못된 전망에 근거하고 있다. 댐 건설이 필요없고 기존의 광역상수도가 이미 과잉시설이며 홍수피해를 줄이는데 효과가 작은 제방 건설예산(치수예산)을 조정해야 한다면, 건교부 물 예산의 95% 이상은 삭감돼야 마땅하다.“2011년엔 18억t의 물이 부족하다.”는 그릇된 신화 위에 세워진 정부의 여러 계획들은 근본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한 것이다. 있지도 않은 물부족을 주장하고, 비과학적인 논리를 동원해 ‘물부족 국가’라는 황당한 홍보를 거듭해 온 부처들의 반성도 요구된다. 특히 아직도 “수요 감소를 반영하지 못한 것은 인정하지만, 올해도 경주와 포항 등에서 물 부족이 발생했다.”며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치 않는 건교부에 대해 무거운 책임추궁이 필요하다. 그동안 환경단체들이 “물 수요 총량은 부족하지 않으며 상습적으로 물 부족의 고통을 당하는 농촌지역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할 때, 건교부는 부풀려진 물 수요 총량을 근거로 대부분 강 하류에 있는 도시지역에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초대형 댐 계획만을 강행해 왔다. 그 결과 수돗물 공급시설은 과잉 건설되어 가동률이 52%에 불과하고, 댐으로부터 물을 공급받을 수 없는 고지대의 농촌·도서·산간지역 520만 국민들은 국가가 공급하는 음용수는커녕 최소한의 수질관리조차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왔다.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서도 농촌지역의 물부족을 핑계로, 물수요 과장사실을 곧이 곧대로 인정하는 대신 여전히 댐 건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 건교부의 처사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물 수요량 과장 산정은 ‘거대한 토목공사-지역공동체 붕괴-환경파괴-자연재해 증폭-예산낭비’로 이어지는 물 정책의 실패원인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부처의 인원과 예산을 유지하려는 관료집단과 건설 과정에서 이익을 취하는 업체들 그리고 관변의 집단들이 물 정책을 독점하는 사이, 시민들의 행복과 생태계의 안녕은 도외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건설교통부는 물 정책 개선대책과 새로운 물수급 전망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결론이 어떨지 모르지만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 따라서 정부내의 논의와 별개로, 여러 집단들이 공중의 시선 앞에서 진지하고 합리적으로 논쟁하는 자리가 이번 기회에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녹색대안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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