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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고] 물은 미래다

    서울신문은 K-water와 물 사랑 공익캠페인 ‘물은 미래다’를 전개합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이 캠페인은 국민들에게 물에 대한 중요성을 다각도로 알려 그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유엔은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물 낭비와 오염이 지속되면 우리 모두의 목마름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서울신문과 K-water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국민들이 올바른 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물은 생명’이라는 믿음을 지속적으로 심어주고 이런 믿음이 결실로 나타날 때까지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주 최 : 서울신문, K-water
  • [메디칼럼]징크스에 대해서

    [메디칼럼]징크스에 대해서

    [메디칼럼]월드컵 경기 중에서 골대 맞추는 팀이 승리하지 못한다는 골대 징크스가 있다. 우리나라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닌 듯 2010년 월드컵 18강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전에서 나이지리아가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골대를 맞추고 골인되지 못하고 우리가 승리했으니 골대 징크스에 웃고 울어버린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징크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마술에서 사용됐던 딱따구리 일종인 개미잡이(wryneck/Jynx torquilla)라는 새 이름에서 유래한다. 불길한 징후를 뜻하며 일반적으로 불길한 대상이 되는 사물 또는 현상이나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들을 의미한다. 사람들과 사이에서 불길한 징후가 있을 때 결과가 나쁘게 나온다는 인과 관계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없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보여줬듯이 무엇인가 골대 맞고 골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간발의 차이로 골인되지 않았으므로 골대를 맞춘 선수나 그 팀을 응원하는 사람에게는 기분 나쁜 일임은 분명하다. 이런 현상이 각인되고 반복되면 좋지 않은 결과가 있게 된다는 일정한 패턴을 형성하게 되며 이에 따른 규칙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 됨으로써 어떤 현상에 대한 징크스란 것이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징크스에 공식이 들어가게 되면 이를 당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징크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불필요하게 힘이 들어가게 되고 동작이 커지게 되면서 주변에 대한 경계심이 보다 더 커지게 되면서 예민해진다. 주변에 대해 예민해지면 불필요하게 주변 상황에 민감해져 일에 대한 집중력이 분산되어 경기나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몰입을 떨어뜨린다. 이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융통성 있게 민첩하게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다보면 다시 결과는 나쁘게 되고 역시 징크스 때문에 되지 않아 하면서 징크스는 되풀이 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불길하다는 잘못된 믿음이 보다 더 강화될 수 있다. 징크스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다 더 많이 준비하고 노력해야 하는 수고가 들어간다. 그러나 징크스는 깨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처럼 질 것으로 예상되었던 승부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포기하던 일에 대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 따라서 징크스를 깬다는 것은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불안감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극복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징크스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나 경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감이 결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번 월드컵에서 16강전에서 패배한 것은 골대 징크스 이외에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월드컵 덕분에 보름동안 행복했고 4년 뒤 브라질 대회도 있다. 이때에도 우리나라가 월드컵 대회 본선에 나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길 바란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불길한 징조가 있어 실패하더라도 징크스 탓으로 돌리기 전 이를 개의치 않고 최선을 다하면 보다 더 좋은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것이 반복된다면 불길한 징조가 아닌 좋은 징조로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징크스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닌 자신 내부에 있는 불안감일 뿐이다. 사랑샘터 소아정신과 원장 김태훈
  • 한국축구 매력 포인트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첫 원정 대회 16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이후 황금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8년 사이에 체격이 그리스보다 커지지 않았다. 나이지리아를 두렵게 만들 현란한 개인기도 없었다. 그런데 세계 축구팬들은 한국의 경기에 매료됐다.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고, 세계 축구팬들을 놀라게 한 한국 축구의 매력포인트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체력이다. 태극전사들이 인터뷰에서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게 바로 “상대보다 한 발짝 더 뛰겠다.”는 것. 2002년 이후 기술이 뛰어나 유럽에 진출했던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박주영(모나코), 이청용(볼턴), 기성용(셀틱) 등의 선수들이 체력적으로도 완벽한 모습을 갖추면서 한국은 세계무대에서 ‘쉽게 이기기 어려운 팀’으로 성장했다. 강한 체력은 활동거리로 나타났다. 그리스와 조별리그 1차전에서 대표팀은 5명이 10㎞를 넘는 거리를 뛰었다. 선수당 평균 7.774㎞로 그리스(7.544㎞)보다 230m를 더 뛰었다. 가장 많은 활동량을 보여준 것은 우루과이와의 16강전. 이청용이 11.090㎞를 뛴 것을 포함해 6명이 10㎞ 이상을 내달렸다. 선수별 평균 8.336㎞에 이른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역전을 위해 뛰고, 결국 경기를 뒤집는 것은 스포츠 자체의 매력이다. 막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끝까지 그라운드를 누볐던 태극전사들은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스릴과 쾌감을 선사했다. 뛰어난 스피드도 무기였다. ‘캡틴’ 박지성은 나이지리아와 조별리그 3차전에서 시속 30.02㎞를 돌파했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가 한국과 조별리그 2차전에서 선보였던 28.72㎞를 넘어선다. 이청용도 나이지리아전에서 29㎞로 질주, 16강 진출에 힘을 보탰다. 또 다른 매력은 조직력이다. 한국은 이번 월드컵 4경기에서 6골을 넣고 8골을 내줬다. 그리스전(2-0 승)은 물론, 나이지리아전(2-2 무)과 우루과이전(1-2 패)은 경기 내용 면에서도 우수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특히 세트피스의 결정력에서 빛을 발했다. 6골 가운데 3골이 세트피스 상황이다. 세트피스는 기술에다 선수들 간의 끈끈한 유대와 소통이 밑받침돼야 나올 수 있는 중요한 공격 전술이다. ‘저기로 공을 띄워 보내면, 동료가 마무리지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정교한 연계 플레이는 나올 수 없다. 세계 최강이라던 그리스의 수비를 단숨에 무너뜨린 한국의 세트피스 공격은 축구팬들에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희열을 안겼다. 포트엘리자베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그들의 월드컵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월드컵 끝나지 않았다

    이젠 이별을 고할 순간이다. 축제는 화려했지만 막은 내려갔다. 한국 월드컵축구대표팀의 ‘캡틴’을 맡아 23명 태극전사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산소탱크’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27일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 소리에 아쉬움과 허무함이 교차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을 끝냈다. 내리는 비가 온몸을 적셨다. 그는 “패한 경기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우리의 경기력을 보면서 세계 강호와 격차가 줄었다는 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해산을 앞두고 주장 완장을 놓게 된 소감에 대해선 “아직 대표팀 자체를 은퇴한 것은 아닌 만큼 나의 뒤를 이어 누군가 주장을 맡게 될 것”이라면서 “홀가분한 기분은 없다. 그냥 나의 월드컵이 끝났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고 후회도 된다.”고 말했다. “주장이 아니었을 때는 내가 보여줄 것만 보여주면 됐는데 주장을 맡으면서 다른 선수들이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 왔다.”면서 “주장으로서 던진 나의 말에 모두 수긍해 준 동료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반면 안정환(34·다롄 스더)과 이운재(37·수원)는 이번 대회가 마지막 월드컵이었다. 후배들과의 주전 경쟁을 뚫지 못하고 벤치만을 달군 채 쓸쓸하게 월드컵과의 인연을 마감했다. 최종엔트리에 든 건 행운이었지만 ‘조연’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반지의 제왕’ 안정환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미국과의 동점골, 이탈리아와의 연장 골든골로 ‘4강 신화’ 창조에 앞장서는 등 월드컵 사나이였지만 이번 대회 단 1분도 부름을 받지 못했다. ‘월드컵 악연’이란 꼬리표를 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비운의 스타’ 이동국은 12년 만의 월드컵 꿈을 이뤘지만 역시 허탈한 몸과 마음으로 아듀를 고했다. 이승렬(FC서울)과 박주영(AS모나코) 등 후배들의 틈을 비집고 나설 정도로 허정무 감독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마침내 출장 기회를 잡았지만 화끈한 한방을 끝내 터뜨리지 못했다. 통산 네 번째 본선 무대를 밟은 ‘백전노장 수문장’ 이운재(수원) 역시 세월의 무게를 실감했다. 안정환과 함께 한·일월드컵 4강 진출을 이끌었지만 주전 자리를 내주면서 이번 대회 모두 결장했다. ‘진공 청소기’ 김남일(33·톰 톰스크)과 ‘초롱이’ 이영표(33·알 힐랄)도 적지않은 나이에 후배들과 호흡을 맞췄지만 월드컵에서 퇴장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들이 남긴 뜨거운 열정과 진한 땀냄새는 후배들이 쓸 또 다른 월드컵 역사에 첫 줄로 쓰일 것이 확실하다. 이들의 월드컵이 아직은 끝나지 않은 이유다. 포트엘리자베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열린세상]북한·소련·중국 남침협의 진상과 의미/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열린세상]북한·소련·중국 남침협의 진상과 의미/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1949년 3월 김일성이 소련을 방문한 주목적은 스탈린으로부터 남침승인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스탈린은 김일성의 제안을 거부한다. 북한군대가 남한군대를 압도할 정도로 우세하지 않다. 남한엔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미국과 합의한 38도선 파기를 소련이 주도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해 6월 주한미군이 완전히 물러가고,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된다. 김일성은 소련의 군사지원으로 전력을 강화하면서 중국 공산군에 편입된 이른바 한인 3개사단을 1950년 1월까지 중국으로부터 돌려받는다고 보장받는다. 김일성은 무력에 의한 한반도 통일 가능성을 북한 주재 소련대사에게 제기한다. “남한에서 미군 철수는 38선을 지킬 명분과 능력을 미국 스스로 없애고 있다.” “왜 우리가 38선에 얽매여야 하는가.” 1950년 1월12일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의 한반도와 타이완을 제외한 극동방위선 발언은 김일성과 스탈린에게는 미국 불개입에 대한 믿음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1950년 1월 말 스탈린은 북한대사 슈티코프에게 비밀전문을 보내 “김일성 동지의 불쾌감을 이해하고 있으며”, 대남행동에 대해 “언제고 만나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알렸다. 이 전문이 스탈린이 북한의 남침을 간접적으로 승인한 최초의 문건이다. 김일성은 1950년 3월30일부터 4월25일까지 모스크바에 체류하면서 남침조건, 전쟁지원을 논의했다. 스탈린은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미군개입의 철저한 평가, 중국의 남침승인, 소련의 직접 참전에 대한 기대 포기 및 철저한 전쟁준비이다. 5월 중순 김일성은 마오쩌둥을 만나 스탈린의 남침승인을 알리면서 마오의 승인을 얻는다. 미군 개입시 중국은 군대를 보내고 소련은 무기를 보내 북한을 돕는다는 데 합의한다. 놀랍게도 마오쩌둥은 북한과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동맹조약을 체결하고 북한이 한반도 통일을 완수할 시 조약을 발효시킬 것에 대해 스탈린의 동의를 얻는다. 스탈린은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싸우게 되면 중국은 소련에 더욱 의존할 것이며 미국은 국력의 손실로 세계적 세력균형이 소련에 유리하게 이동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 1950년 1월과 7월사이 유엔 안보리에 소련의 불참은 계획된 것이었다. 미국이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보다 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하기 위한 스탈린의 의도는 1950년 8월 체코 대통령 고트아트에 보낸 비밀전문에 보인다. 스탈린은 한국전쟁에 참여하는 부대 명칭을 중국인민 “지원군”으로 제시하고 중국인민지원군에 대한 항공지원도 한·만 국경지역에 한정하는 등 중·소동맹조약의 의무가 발동돼 미군과 군사분쟁에 들 수있는 상황을 최대한 회피했다. 김일성은 소련 군사고문단이 만든 “선제타격작전계획”에 따르지만 개전시기를 소련 군사고문단이 주장한 7월서 6월로 앞당긴다. 개전계획도 옹진반도의 진격에 의한 단계적 확전에서 비밀누설 위험 때문에 전 전선 공세계획으로 바꾼다. 중국은 10월2일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한 직후 스탈린과 김일성의 간곡한 파병요청을 받으면서 참전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대다수 정치국원의 반대와 소련 공군력 지원이 불분명해지자 그 결정을 스탈린에 알리지 않고 저우언라이를 협상사절로 모스크바에 파견한다.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중국이 파병을 재차 거부함을 알리면서 동북지역으로 조속히 퇴각할 것을 지시한다. 10월8일 미군이 북진하고 유엔이 한국통일부흥위원단 설립을 결정하자 마오쩌둥은 서둘러 파병명령을 내리지만 10월19일 평양이 유엔군에 장악될 때 중국인민지원군은 한·만 국경을 넘는다. 그리고 중국군은 사실상 한국과 유엔의 한반도 통일노력을 저지시켰다. 6·25전쟁은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공산블록의 세력확장 기도에 적절한 억제책을 적용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다. 6·25는 억제의 실패가 아니라 억제의 부재 때문에 발발했다. 휴전이후 한·미동맹과 주한 미군의 역할, 남북한 군사력 균형 및 중국, 소련과의 관계를 계속 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억제의 취약점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 억제를 넘어 한반도에 안정된 평화체제를 만드는 일, 평화통일은 한국전쟁이 남긴 중요한 교훈임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 [글로벌 시대]단합하는 경쟁력을 키워라/최정아 새로움닷컴 대표

    [글로벌 시대]단합하는 경쟁력을 키워라/최정아 새로움닷컴 대표

    예전 고객사에 추천한 인재 중에 경력과 이미지가 완벽에 가까운 후보자가 있었다. 경영 컨설팅 회사 출신으로 여러 경력이 고객사에서 원하는 인재의 조건과 합치된다고 생각했고 일차로 후보자를 만난 고객사도 매우 만족해했다. 그러나 최종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문제는 평판조회 (Reference Check) 결과 때문이었다. 그는 혼자 일할 때는 기획력과 추진력 등 능력이 뛰어나 좋은 성과를 내지만 팀과 함께 일할 때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고, 심지어 나쁜 평판을 하는 예전 동료도 있었다. 그는 능력있는 인재이긴 하지만 팀과 단합하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결국 최고 리더의 자리엔 오르지 못했다. 요즘은 조직 내 팀워크가 중요해지고 업무를 진행할 때도 영업, 마케팅, 인사, 기획, 재무, 생산 부서 등이 모두 팀을 이뤄 프로젝트 형태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져 다른 부서 업무나 입장을 이해해 가면서 일을 추진하려면 의사소통 능력이나 팀과 단합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아무리 다른 능력이 뛰어난 인재라도 단합하는 경쟁력이 없다면 조직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요즘 월드컵을 보면 요즘 인재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박지성 선수를 보면 그가 많은 능력 있는 선수들이 적응 못하고 돌아온 유럽에서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늘 다른 선수들보다 많이 뛰고 실력도 탁월하지만 팀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거의 팀의 이야기를 한다. 팀과 조직이 성공해야 자신이 성장한다는 마인드가 투철한 그의 모습이 자신의 몸값과 능력을 강조하려는 유럽 선수들과 비교되어 언론의 찬사와 감독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러면 단합하는 경쟁력을 키우려면 어떤 능력을 배양해야 하는가? 첫째는 의사소통 능력이다. 의사소통을 잘하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을 잘 이해시키는 능력이다. 때로는 잘 듣고 조금 말하는 게 필요할 때도 있고 적극적으로 반복해서 설명해야 할 필요도 있고 혹은 협상을 하거나 하기 어려운 말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피하지 않고 잘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관리자라면 열린 질문을 포함한 코칭식 대화를 통해 직원들의 생각과 창의성을 이끌어 내고 직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방이 반대되는 의견을 내더라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즉각 부정적 피드백을 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생각해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아닌 것은 설득해 나가면서 일을 추진해 가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둘째는 겸손해지는 능력이다. 단합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자신이 능력이 있는 것과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되, 팀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려는 태도를 함께 가질 필요가 있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기보다는 이해시키려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받아들이려는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각자의 개성이 존중되고 지식이 공유되고 창의력과 전문성이 중시되는 요즘 직장환경에서는 단합하는 인재의 존재감이 훨씬 커지고 있다. 사실 단합하는 능력의 기본은 상대방의 심리와 원하는 바를 읽어내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평소에 너무 자신에게만 집중하기보단 주변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잘 관찰하고 관심을 가져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나이에 빨리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아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늘 모든 일이 잘 풀려 탄탄대로를 걷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생각과 능력에 대한 믿음이 과해져 다른 사람의 말을 우습게 생각하거나 자신의 승리를 당연시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과신과 자만 때문에 결국 실패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지속적인 성장을 원한다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고 단합하는 경쟁력을 키우려고 늘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조은지기자의 월드컵 토크] 코엘류 사단서 코치활동 최강희감독

    [조은지기자의 월드컵 토크] 코엘류 사단서 코치활동 최강희감독

    허정무(55) 감독은 새 역사를 썼다. 한국인 감독 최초로 월드컵 1승을 거뒀고, 원정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도 한국인 감독으로서 해냈다. 일본의 오카다 다케시(54) 감독도 조별리그를 가뿐하게 통과했다. 한·일 ‘토종 감독’이 편견과 싸워가며 일군 결과라 더욱 값지다. 토종 감독의 마음은 어떨까. 이번 토크의 주인공은 ‘강희대제’ 최강희(51) 감독이다. 최 감독은 한·일월드컵 뒤 2004년까지 움베르토 코엘류(포르투갈) 감독 밑에서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지난해엔 전북의 K-리그 통합우승을 이끌며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조은지기자(이하 조)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16강에 진출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빼면, 아시아 두 팀이 16강에 오른 건 처음인데요. 토종 감독이 16강까지 견인했다는 것도 흥미롭고요. 우리가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을 못 잊는 것처럼, 일본도 필립 트루시에(프랑스) 감독에 대한 향수가 진한데 말이죠. “농부로 살겠다.”던 오카다 감독이 이렇게 극적인 반전을 일굴 줄이야. ●최강희 감독(이하 최) 맞아요. 히딩크 감독이 훌륭한 일을 했지만, 이젠 그 그늘을 벗어날 때가 됐어요. 허정무 감독께서 ‘한국 감독은 안 된다’던 축구계의 편견을 깼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조 허 감독님이 사령탑을 맡으신 뒤에 얼굴을 붉히는 걸 딱 한 번 봤어요. 지난해 6월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자리였는데, 어떤 기자가 “본선에서는 외국인 감독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죠. 인자하던 허 감독님이 정색했어요. “좋은 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감독을 맡을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이 무조건 좋다는 식은 곤란하다.”면서 목소리가 떨렸죠. 토종 감독에 대한 사명감이 있는 듯했어요. ●최 이제 와 말이지만, 외국인 감독에 대한 믿음이 너무(!) 굳건했죠. 코엘류 감독 밑에서 코치도 해 봤지만, 사실 한국인 감독이 유리한 부분도 많거든요. 선수와 감독 사이에 굳이 말이 없더라도 통할 수 있는 부분, 그런 게 외국 감독하고는 부족할 수밖에 없어요. 선수들하고 아주 세심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중요한데. ●조 그렇군요. 한국축구가 외국인 감독에게 배울 수 있는 부분은 충분히 체득한 것 같아요. 특히 선수선발은 항상 잡음이 많았는데, 외국인 감독은 그걸 투명하게 했죠. 학연·지연은 당연히 없고, 이름값에도 연연하지 않았고요. 허 감독은 ‘토종 감독도 공정하게 뽑는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요. ●최 내가 국가대표팀 코치를 할 때는 분위기가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일종의 ‘월드컵 후유증’이라고 할까요. 선수들이 성취감에 너무 젖어 있었어요. 차라리 카리스마 있는 한국 감독이 맡았으면 어땠을까 싶을 만큼. 당시 코엘류 감독은, 생긴 그대로, 카리스마는 장롱 속에 넣어둔 분이었어요. 한 번은 이을용 선수가 경기 중에 화를 못 참고 상대 선수를 때려눕힌 적이 있었어요. ●조 아, 2003년 동아시아축구대회 때 중국 선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렸던 일요? ‘을용타’로 네티즌들한테 굉장한 인기를 끌었잖아요. 그 준엄한 표정이란. 그때 이을용 선수가 퇴장당하고 흐름이 바뀌지 않았나요. ●최 맞아요. 결국 이기긴 했지만, 나머지 10명이 참 어렵게 싸웠죠. 경기 중 화가 날 수도 있지만, 팀 전체를 생각하면 그런 행동은 안 되죠. 잔소리해야 할 것 같았어요. 코엘류 감독한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코엘류 감독이 “그건 당신 감독할 때 하시죠.”하더라고. ●조 그런 걸 보면 외국인 감독이 책임감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떠나면 그만이니까. 히딩크 감독부터 코엘류-조 본프레레-딕 아드보카트-핌 베어벡까지 7년 동안 외인감독 시대였어요. 성적은 별로 못 냈지만. ●최 그래서 허정무 감독이 더 대단하죠. ‘숙원’이었던 원정 16강 진출을 일궜으니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죠. 남은 경기는 보너스로 유쾌하게 도전해도 될 만큼 잘했습니다. 가는 김에 4강까지 한 번 더 가죠, 뭐. 모든 토종감독을 대표해서, 허정무 감독님 파이팅! zone4@seoul.co.kr
  • [한국전쟁 60주년] “개항 이후 조선전쟁의 연장” “마오·스탈린은 휴전 꺼렸다”

    [한국전쟁 60주년] “개항 이후 조선전쟁의 연장” “마오·스탈린은 휴전 꺼렸다”

    한국전쟁 60주년의 의미를 짚어보는 국제학술대회가 23일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주최로 이 대학 연세·삼성학술정보관에서 열렸다. 무엇보다 박명림(연세대), 와다 하루키(일본 도쿄대), 브루스 커밍스(미국 시카고대), 션즈화(중국 화동사범대), 안드레이 란코프(국민대) 등 한국전쟁 연구 권위자들이 참가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한·일·미·중·러 5개국 입장에서 한국전의 의미를 되짚었다. 첫 발제자 하루키 교수는 한국전쟁을 개항 이후 오래된 ‘조선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령 청일전쟁 같은 것도 조선전쟁의 하나라는 것이다. 하루키 교수는 “개항 이후 발발한 전쟁은 그 목적이 조선이었다는 점에서 조선전쟁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하면 피해자인 조선의 입장도 명확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션 교수는 중국의 참전 결정은 합리적이었으나 1951년 UN의 휴전 제안을 거부한 것은 오류라고 주장했다. 미군을 나약한 군대로 잘못 판단, 휴전을 거부하면서 불필요한 희생만 늘었다는 것이다. 러시아 출신 란코프 교수는 이에 대해 스탈린의 국제전략 문제를 지적했다. 미국이 마셜플랜으로 유럽을 장악하자 미국을 동아시아에 붙잡아두기 위해 한국전쟁을 승인했고, 개전 뒤에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휴전협상 진전 방해해 중국의 국력 소모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전쟁의 역설적인 측면에 주목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북한에 이로웠지만 장기적으로 남한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개항 이래 한국문제는 계속 불안정했으나 한국전쟁 이후 한·미동맹의 틀에 편입되면서 어쨌거나 안정화됐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에 대한 지나친 종속이라는 문제점도 낳았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가장 큰 문제로 북한을 소련이나 중국의 꼭두각시로만 여기는 미국 정책결정자들의 오해를 꼽았다. 자신의 수정주의는 미국정부의 오판을 비판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었다는 얘기다. 지금도 똑같다. 커밍스 교수는 “일본 오키나와 주둔 미군은 유사시 북한에서 핵물질을 찾아 처리하는 훈련을 한다.”면서 “이런 정신나간 짓을 하는 이유는 꼭두각시 북한은 곧 붕괴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라는 측면에서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박지성 “역사를 만들었다” 이영표 “수십년 원했던 날”

    박지성 “역사를 만들었다” 이영표 “수십년 원했던 날”

    월드컵 출전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일궈낸 태극전사들은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경기가 끝난 뒤 샤워를 끝내고 나오는 그들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났다. 더러는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모습이었고, 더러는 차분하게 16강의 소감을 전했다. ●박지성 우리는 지금 역사를 만들었다. 2002년 때는 막내였고 선배들이 잘 이끌어줬다. 그러나 지금에야 월드컵이 큰 대회이고, 16강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됐다. 패널티킥때 지옥다녀온 듯 ●김남일(페널티킥을 내줬을 때는)울고 싶더라. 지금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다. 지옥에 다녀온 기분이다. 2002년 첫 승과 16강, 8강, 4강 진출도 기뻤지만 지금이 더 기쁜 것 같다. ●이영표 기쁘다. 너무 기뻐서 울었다. 2002년 이후 내 세대가 할 일이 있었다. 그게 오늘 우리가 일궈낸 일이다. 수십년 동안 원했던 날이다. 오늘만큼은 우리에 대한 어떤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겠다. 감독님 믿음에 보답 ●기성용 200여개 나라 중 16위 안에 우리가 들었다는 게 자랑스럽다. 이번 대회 어시스트를 많이 했는데 팀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감독님이 믿어준 데 대해 보답하고 싶었다. 동료애에 눈물 흘릴뻔 ●박주영 선수들에게 가려서 공이 보이지 않았는데, 골망이 흔들리는 걸 보고 골인 줄 알았다. 팀에 도움이 돼 기쁘다. 아르헨티나전 실수를 동료들이 만회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걸 보고 눈물이 날 뻔했다. 저승사자 보고 온 기분 ●차두리 저승사자를 보고 돌아온 기분이다. 첫 번째 실점에서 실수했는데 (오)범석이와 아버지가 생각나더라. 사실 그동안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경기에 집중하고 팀에 보탬이 되려고 애썼다. 아기 보고싶지만 참겠다 ●정성룡 월드컵 기간 중 아기가 태어난 건 큰 복인 것 같다. 정수형 첫 골 뒤 동료들이 ‘아기 어르기’ 세리머니를 하는 걸 보고 큰 감동 먹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다. 아기를 보고 싶지만 지금은 참겠다. 모든 선수들의 활약 덕 ●염기훈 우리는 해냈다. 모든 선수들의 열정과 활약이 우리를 다음 라운드로 인도한 것이다. 아시아 팀들이 더 많이 16강에 진출하길 바란다.일본까지 16강에 오른다면 굉장할 것이다. 일병 진급으로 겹경사 ●김정우 체력이 떨어져서 죽는 줄 알았다. 경기가 끝난 뒤엔 너무 기분이 좋아 막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날아갈 듯하다. 며칠 전 일병으로 진급했다. 이만하면 겹경사 아니냐. 가장 까다로웠던 경기 ●조용형 조별리그 세 경기 중 가장 까다로웠던 경기가 오늘이었다. 상대 선수들의 스피드가 좋고 체격조건도 뛰어나 막기가 쉽지 않았다. 우루과이 선수들의 특성과 전술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겠다. 8강까지 가고 싶은 욕심 ●이청용 나는 군면제를 받아 좀 더 일찍 큰 무대에 도전할 수 있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1년간 볼턴에서 뛰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다른 동료들도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더반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등번호 ‘10번’…펠레가 달면서 축구선수 ‘로망’이 되다

    등번호 ‘10번’…펠레가 달면서 축구선수 ‘로망’이 되다

    박주영·이영표·최용수·고정운·이상윤의 공통점은 뭘까. 너무 어렵다고? 그렇다면 카카(브라질)·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웨인 루니(잉글랜드)·루카스 포돌스키(독일)·세스크 파브레가스(스페인)의 공통점은 어떤가. 그렇다. 이들은 모두 월드컵에서 등번호 10번을 달았거나 달고 있는 선수들이다. 루니는 2007년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10번 유니폼을 입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뤼트 판 니스텔루이가 레알 마드리드로 옮기면서 8번이던 루니가 10번을 달게 된 것. 루니는 “위대한 전설들은 10번을 달았다.”며 감격했다. 10번은 그 정도로 축구선수에게 ‘로망’이다. 10번은 각 팀의 ‘에이스’에게만 허락되는 번호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축구황제’ 펠레가 ‘10번=슈퍼스타’의 공식을 만들었다. 펠레는 1958년 스웨덴월드컵부터 1970년 멕시코대회까지 브라질의 세 차례 우승을 이끌었다. 통산 개인득점이 1281골에 이르는 전설적인 활약이 10번의 권위를 창조했다. 펠레의 은퇴 뒤 10번은 에이스의 대명사가 됐다. 지코, 히바우두, 호나우지뉴, 카카가 차례로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의 10번을 물려받았다.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 로타어 마테우스(독일), 지네딘 지단(프랑스), 델 피에로(이탈리아) 등 ‘전설’들도 10번의 영광을 입었다. 10번은 팀원들의 무한 신뢰를 받는 존재다. 우리가 뒤지고 있더라도 해결해 줄 거라는 굳은 믿음을 짊어진 자리다. 빛나는 카리스마와 뛰어난 경기력, 정확한 골 결정력, 인기까지 골고루 갖춰야 달 수 있는 번호다. 그라운드 내의 사령탑이며 득점원인 셈. 한국에선 박주영(AS모나코)이 10번의 주인공이다. 2005년 본프레레호에서 처음 10번을 달더니, AS모나코로 이적할 때도 10번을 받아서 화제가 됐었다. A매치 43경기에서 14골. 박주영은 4년 전 독일월드컵에서도 10번을 달았다. 그러나 쓰라린 기억뿐이다. 골맛을 보지 못하고 벤치만 달궜다. 스위스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 유일하게 출전했지만 자신의 파울로 내준 프리킥이 결승골로 연결되며 가슴을 쳤다. 애타게 남아공월드컵을 기다려 온 이유다. 2002년 월드컵 때 10번을 달았던 이영표(알 힐랄)는 2004년 월드컵 지역예선부터 12번으로 변신했다. 1998년 월드컵 땐 최용수, 94년엔 고정운, 90년엔 이상윤이 10번의 영광을 입었다. 86년 멕시코월드컵 때는 한국의 월드컵 첫 골을 쏜 박창선이 10번의 주인공이었다. 1954년엔 성낙운이 달았다. 남아공에 모인 32명의 꿈 많은 10번들. 이번엔 누가 ‘최고의 No.10’으로 기억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김형준 정치비평] 세대교체론의 정략적 접근을 경계하며

    [김형준 정치비평] 세대교체론의 정략적 접근을 경계하며

    6·2 지방선거 후 한나라당 내에서 세대교체론이 부상하고 있다. 소장파가 중심이 된 여권의 세대교체론은 한나라당에 대한 20~30대 젊은 층의 민심 이반이 직접적 원인이다. 민주당 ‘486 정치인’의 부상도 자극제가 되었다. 선거 직후 방송3사가 실시한 출구조사 결과,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소속 야당후보들은 젊은 층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을 압도했다. 20대 연령층에서 야당 후보들의 평균 득표율은 62.7%인 반면, 한나라당 후보들의 평균 득표율은 33.0%였다. 30대 연령층에서는 야당 후보 대 한나라당 후보 평균 득표율은 67.7% 대 28.6%였다. 2007년 대선 직후 한국선거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20대에서 44.0%, 30대에서 51.5%를 득표했다. 민주당 정동영 후보는 20대와 30대에서 각각 21.3%와 21.2%를 득표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2년6개월 만에 발생한 충격적인 민심 이반 결과를 접한 한나라당이 생존을 위해 세대교체론을 제기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MB)의 “여당도 젊고 활력있는 정당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는 라디오 연설 발언은 세대교체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MB의 이런 발언은 분명 향후 국정운영과 정권 재창출 전략과도 일정 부분 맞아떨어진다.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피해자인 동시에 수혜자는 MB일 수도 있다. 여당의 지방선거 참패로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 함께 경제 살리기를 기치로 정국 주도권을 잡고 집권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고 했던 MB의 구상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는 점에서 피해자이다. 그런데, 야당의 지방선거 압승으로 MB가 대선 과정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수혜자라 할 수 있다. MB와 박근혜 전 대표는 지방선거 전까지 독자적으로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런 믿음 때문에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은 끊임없이 싸우면서 파국적 균형상태가 고착화되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 민심은 변화했고, 야당의 득표력은 입증되었다. 누구를 당선시키게 할 수는 없지만 누가 당선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을 갖고 있는 현직 대통령이 결정적인 순간에 야당 후보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면 최대 피해자는 여당후보가 될 수밖에 없다. 1997년 대선에서 집권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김영삼 대통령과 대립하면서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었던 김대중 후보에게 패배했던 전례가 있다. YS가 DJ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현직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순간 다양한 대선후보군을 만들고 싶어하는 욕구가 생긴다. 이것이 세대교체론으로 연결될 수 있지만, 잘못되면 여당 비극의 씨앗으로 잉태될 수도 있다. 일부 친박계 인사들이 “세대교체론은 박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대교체론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한국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정략적인 의도로 세대교체론에 접근해선 안 된다. 세대교체는 권력자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차세대 정치인 스스로가 실력을 입증하면서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세대교체는 결과가 되어야지 누군가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세대교체론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참회와 반성이 우선돼야 한다. 평소 권력에 기웃거리며 계파 정치에 안주한 사람, 교묘하게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색깔론에 매몰되었던 사람들은 세대교체론을 들먹이기 전에 반성하고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셋째, 세대교체는 단순한 연령의 교체가 아니라 사고의 교체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젊어도 사고가 경직되고 배타적이며 투쟁지향적이면 교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사고가 유연하고 포용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면 융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세대교체론을 접하고 있는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단순한 연령 교체가 아니라 퇴보를 넘어 저질화하고 있는 한국 정치를 정상화시키는 것임을 정치권은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명지대 정치학 교수
  •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내 이름은 야 인마… 툭하면 맞아도 꿈☆ 포기 못해”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내 이름은 야 인마… 툭하면 맞아도 꿈☆ 포기 못해”

    미얀마에서 온 마웅저(41)가 한국에서 얻은 첫 직장은 인천의 한 도색 공장. 하루 12시간 일하고 한 달에 50만원을 받았다. 한국인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야 인마.” 이게 공장에서 마웅저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결코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함께 일했던 미얀마 친구는 걸핏하면 사장에게 얻어맞았다. 7개월을 일했는데, 월급은 5개월치밖에 못 받았다. 이듬해 경기 부천의 구두 형틀 만드는 공장으로 옮겼지만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한번은 TV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동료가 채널을 돌렸다. “너 같은 건 우리나라 여자 쳐다볼 자격이 없어.” ●힘겨운 난민의 삶 2000년에는 정식으로 난민 신청을 했다. 법무부로부터 신문과 비슷한 인터뷰를 받았지만, 돌아온 것은 ‘불허한다’는 통지. 그것도 신청한 지 5년이 지나서였다. 법원은 다행히 마웅저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법무부는 계속 상소를 하며 ‘발목’을 잡았다. 결국 2008년 대법원에서 승소하면서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하늘의 별을 땄다.” 난민으로 인정된 직후 어떤 기분이 들었느냐고 묻자 마웅저는 이렇게 말했다. 방글라데시 소수민족 ‘줌머족’ 로넨(42)의 삶도 ‘코리안 드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택시를 탔다. 외국인인 걸 눈치챈 기사. “어디 가냐?” “5000원이다. 내놔.” 서른을 훌쩍 넘긴 로넨이었지만, 초등학생 대하듯 했다. 난민 인정에 인색한 정부 탓에 처음 몇 년간은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공장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지리아 선교사 빅토르(가명·46)는 우리나라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입국과 동시에 난민신청을 했지만 불허됐고, 1심 재판에서도 졌기 때문이다. 위협을 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이나 무슬림으로 추정되지만 입증할 방법이 없다. 8월 2심 재판이 열리지만, 결과가 바뀐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내 이름은 (나이지리아) TV에도 많이 나왔기 때문에 돌아가면 바로 들킨다. 한국 정부는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미얀마 출신 코와인(42)은 원래 변호사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공장 행을 면할 수 없었다. 사실 그는 일을 해서는 안 됐다. 난민 신청 기간 중에는 취업이 금지돼 있기 때문. 하지만 난민 신청을 한 지 4년이 지나도록 결과를 받지 못했다. “I need too much money for living expenses, so should I work.(생활비 때문에 일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코와인이 눈물을 흘리며 털어놓은 하소연이었다. ●‘꿈’을 안고 대한민국으로 왔지만 1988년 8월8일. 세계사에 ‘8888 버마민중항쟁’으로 기록된 날이다. 수도 양곤의 고등학생이었던 마웅저. ‘군부 독재 정권 물러나라’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대학생 형, 스님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목 터져라 “민주주의”를 외쳤다. 항쟁은 서슬 퍼런 군부의 총부리에 밀려 실패했지만, 마웅저의 투쟁은 계속됐다. ‘버마전국학생연합(ABSFU)’에 가입해 ‘지하운동’을 했다. 탄압이 시작됐다. 생사를 함께하기로 결의했던 동료들은 하나 둘 경찰에 잡혀갔다. 이름을 바꾼 채 공사판을 전전해야 했다. 어머니와 다름없던 누나가 마웅저를 부른 것은 1992년. “망명해라.” “여권도 비자도 없는데….” “브로커를 쓰자. 돈은 내가 댈게.” 누나는 푼푼이 모았던 21만차트(Kyat·미얀마 화폐단위)를 내놓았다.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350만원쯤 된다. 큰돈이다. 마웅저는 대한민국을 골랐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 8888항쟁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마음이 끌렸다. 2년 뒤 마웅저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이 미얀마 민주화를 도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줌머족’ 로넨은 ‘인종 청소’를 하는 정부에 맞서 무장단체에서 활동했다. 산악지대인 치타공에서 종족의 생존을 걸고 싸우다 체포됐다. 3년간 옥살이를 하고 마을로 돌아왔지만, 탄압은 더 심해졌다. 마을에는 1㎞마다 하나씩 검문소가 들어섰다. 대원들은 지나가던 사람들을 ‘심심하면’ 때렸다. 1999년에는 대규모 약탈과 방화가 있었고, 여성들이 집단으로 성폭행당하기도 했다. 로넨은 이듬해 고향을 떠났다. 한 살배기 아들을 품에 안은 채 한국으로 왔다. 한국인이 같은 몽골계고, 불교신자가 많다는 점에 끌렸다. 경제·사회적으로 발전한 중견국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전사(戰士)’가 아닌 ‘시민(市民)’으로 살 수 있다는 꿈이 가슴을 매웠다. 빅토르는 나이지리아 ‘오순절협회(PEN)라는 곳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강연에 나가 나이지리아의 부패한 경찰을 강하게 비난했다. 낯선 남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하고 있는 일 그만둬라.” “누구냐?”고 물으면 끊었다. 험악한 인상을 한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와 가족을 위협했다. 운전기사가 괴한에게 폭행당하고 차를 빼앗기기도 했다. 그는 2005년 한국에 왔다. 처음에는 미국을 생각했지만, 총이 없는 한국을 선택했다. 기독교도가 많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가족들도 불러 ‘제2의 삶’을 꾸릴 계획이었다. ●여전히 꿈 키우는 난민들 그러나 난민들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먹고살려는 게 아닌 신념과 양심, 존엄을 지키기 위해 온 것인 만큼, 다양한 활동을 하며 꿈을 키워가고 있다. 마웅저는 1998년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끌고 있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를 만들었다. 미얀마 대사관 앞으로 가 시위를 하고, 틈 날 때마다 길거리로 나가 우리나라 사람에게 미얀마의 실상을 알리고 있다. 2004년부터는 우리나라 시민단체에서 활동했고, 다음달에는 자신이 직접 단체를 만들 예정이다. 단체명은 ‘버마민주화를 돕는 단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한국인 동료 100여명이 함께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코와인은 2003년 인천에 작은 미얀마 불교 사찰을 세웠고, NLD 회원들과 민주화운동에 쓸 자금을 모으고 있다. 국내 이주노동자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매주 화요일에는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주한미얀마 소수민족 연합회’ 회장이기도 하다. 한때 대사관이 그를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했다는 트집을 잡아 검찰에 고발했지만,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카카나(27·여)는 얼마 전부터 일요일에는 출근하지 않는다. 공장에서 나오라고 해도 “절대 안 된다.”며 버틴다. 일요일만큼은 ‘재한줌머인연대’ 사무실에 나가 한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말을 어느 정도 익히면 미용기술을 배울 계획이다. 빅토르는 한남동의 한 교회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강제 송환을 당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할 것이다. 동생이 정치 운동을 하는 바람에 연좌제에 걸려 2005년 한국에 온 쇼네(가명·40·토고)는 8월 둘째를 낳는다. 병원비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최근 난민에게도 의료 혜택을 확대하는 정책을 발표해 시름을 놓았다. 새로 태어날 아이는 한국을 보고 느끼며 자랄 것이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1) ‘국제인권의 잣대’ 난민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1) ‘국제인권의 잣대’ 난민

    ‘다문화 사회’가 유행어처럼 번지지만 다문화인이 꿈꾸는 대한민국은 아득해 보인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다문화 사회를 설계하기 때문이다. 실천 없는 구호처럼 다문화 정책이 헛도는 이유다. 서울신문은 다문화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싣는다. 1회는 ‘국제인권의 잣대’ 난민이다. 국제사회가 다문화 사회에 주목한 것은 전 세계가 난민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부터다. 우리나라도 한국 전쟁으로 유민 사태를 겪었다.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김대중 전 대통령….’ 그들도 한때 난민이었다.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박해를 당해 조국을 탈출해 낯선 땅으로 망명했다. 자유를 향해 떠나온 순례자를 낯선 땅은 따뜻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일부는 ‘제2의 조국’에 공헌하며 여생을 보냈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우리나라에도, 희망을 품고 찾아온 난민들이 있다. 20일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대한민국에서 난민으로 산다는 것’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난민 신청을 하거나 인정을 받은 마웅저(미얀마) 로넨(방글라데시) 빅토르(가명·나이지리아) 카카나(방글라데시) 코와인(미얀마) 쇼네(가명·토고) 등 6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일부는 안전상 이유로 가명을 요청했다. →조국을 왜 떠났나. 전사(戰士)가 아니라 시민(市民)으로 살고 싶었다. ‘인종 청소’를 하는 방글라데시 정부에 맞서 생존을 위해 피 흘리며 싸웠다. 약탈과 방화, 성폭행이 일상인 나라에서 한 살배기 아들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왜 한국을 선택했나. 민주주의를 이뤄낸 나라가 아닌가. 군부 독재를 시민이 무너뜨렸고,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8888 버마민중항쟁’과 비슷해 민주화 과정을 배우고 싶었다. 경제·사회적으로 발전한 국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라는 믿음도 있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대중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라면 국제인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민이 됐나.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걸 우리는 “하늘의 별을 딴다.”고 부른다. 대한민국의 난민 인정률은 8.7%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유엔 난민협약 가입국 가운데 최하위다. 법무부에서 불인정 처분을 받고 행정소송을 냈다. 법원이 승소 판결했는데 법무부가 대법원까지 상소했다. 8년 만에 별을 땄다. →심사가 까다로운가. 무성의하고 무관심하다. 전문 통역인도 없고 난민 국가의 상황도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의 불법 체류를 단속하는 법무부 직원들이 면담을 하니까 당연하다. 다른 나라는 외교부가 난민을 인정한다. 직원은 ‘한국에서 일하고 싶으면 그냥 일하다가 잡히면 되는 거지, 왜 난민 신청을 하느냐.’ 이렇게 묻는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박해받을 조국으로 내쫓기지 않으니 내 목숨을, 가족의 삶을 구한 거다. 그게 고맙다. 외국인 차별은 심각하다. 취업지원이나 쉼터 제공이 없어 힘들다. 아인슈타인도 대한민국으로 망명했다면 공장에서 일했을 것이다. 그래도 내 아이는 박해에서 벗어나 평화 속에서 자랄 수 있다. →무엇을 꿈꾸는가. 미얀마 군부 독재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싶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버마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를 만들었다. 작은 불교 사찰을 세워서 민주화 운동에 쓸 자금을 모으고, 국내 이주노동자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강제송환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다. 정은주·임주형기자 ejung@seoul.co.kr [용어 클릭] ●난민 인종, 종교, 국적, 극심한 빈곤, 정치적 의견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고, 그로 인해 조국을 떠난 사람들을 말한다.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1967년 ‘난민 지위에 관한 의정서’ 등 국제법으로 국제사회는 난민을 보호한다. 우리 정부는 1992년에 가입했다.
  • [국내 학자가 본 한국전쟁] “분단과 전쟁 사이에 필연성 없다”

    [국내 학자가 본 한국전쟁] “분단과 전쟁 사이에 필연성 없다”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는 세계적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전쟁 권위자 중 한 사람이다. 박 교수는 17일 “한국전쟁은 우리 역사가 질주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 1950년은 한국 근대화 혁명의 시기”라고 밝혔다. 또 전후 한국의 발전상에 대해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생산적·창조적으로 활용한 대표적 성공 케이스”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의 연구는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자리매김해온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주의를 뛰어넘는 보편적 분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이 ‘48년 질서’에서 시작됐다고 했는데. -내가 정의하는 ‘48년 질서’란 통일과 분단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유동적 체제다. 이는 종전 후 남북간 적대가 강화되고 통일 가능성이 사라진 ‘53년 체제’와 명확히 구분된다. ‘48년 질서’는 한국인들의 주체적인 선택에 따라 분단의 고정으로 갈 수도, 통일의 성취로 갈 수도 있는 역사적 가능의 공간이었다. 그동안 한국전쟁을 설명하던 두개의 지배적 패러다임, 즉 김일성의 남침행위를 강조하는 전통주의와 식민시대부터 쌓여온 사회모순의 폭발로 보는 수정주의를 모두 극복하고 싶었다. →분단의 원인과 전쟁의 원인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 -분단과 전쟁 사이에 필연성은 없다. 많은 나라에서 분단이 일어났지만 반드시 전쟁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 분단이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은 목적과 수단이 분리돼 정치행위의 이성적 측면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수단을 택함으로써 통일이라는 선한 목적이 무(無)화됐다. 남북한 모두 마찬가지였다. 또 다른 원인은 한국문제의 국제성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사 이래 한반도의 갈등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승만을 제거하면 통일할 수 있다는 김일성의 믿음과 달리 한반도의 분단에는 미국·소련 등이 깊숙이 연관돼 있었다. 전쟁은 민족 차원에서만 통일을 꿈꿨던 전략적 오류의 결과였다. →한국전쟁이 가진 의미는 무엇인가. -국제적·지역적·민족적 차원 3층 수준의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국제적 차원에서 한국전쟁은 사실상 세계 3차 대전을 대체하는 냉전시대 가장 큰 전쟁이었다. 미국·일본, 소련·중국 등 세계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한반도에서 벌인 전면전이었다. 지역차원의 의미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부상하고 일본이 복귀한 것이다. 북한의 든든한 후원자로 미국에 맞섰던 중국은 이후 동아시아 냉전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로 발돋움했고 일본은 미·일동맹을 통해 전범국가에서 국제사회 일원으로 당당히 복귀했다. 마지막으로 민족적 차원에서는 분단이 항구화·세계화됐다. 남북한이 스스로 통일할 수 없는 ‘53년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한국전쟁이 한국민들에게 미친 영향은. -한국전쟁은 역설적으로 ‘평화의 절대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다. 겉으로는 상대를 증오하지만 속으로는 상호상멸, 즉 전쟁을 일으키면 양쪽 모두 멸망한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한국전쟁은 적대와 증오도 낳았지만 분단상태의 평화질서를 가능케 했다. 또 한국전쟁은 삶에 대한 한국민들의 의지를 강화시켰다. 전쟁이 끝난 후 무수히 많은 교회·학교가 설립되고, 신문 발행부수도 급격히 늘어났다. 강력한 생존의지와 경쟁의지를 심어준 것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반도 긴장상태가 고조되고 있다. 60년 전 상황과 비교한다면. -우발적·국지적 충돌의 우려는 있지만 전면전쟁의 위험은 사라졌다. 박정희 정권 때의 1·21사태, 노태우 정권의 KAL기 폭파사건 등 한국전쟁 종전 이후에도 남북간 긴장과 갈등은 계속해서 있었다. 그러나 보복과 맞대응을 하지 않고 분단을 평화적으로 관리해 옴으로써 북한은 남북 경쟁에서 나가떨어졌다. 남북간 경쟁은 이미 끝났다. 앞으로는 ‘비판적 포용’의 자세로 어떻게 통일로 갈 것인지를 연구해야 한다. →한국전쟁 발발 60년을 정리한다면. -60년 후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돌아보기’보다 중요한 것은 ‘내다보기’다. 지난 역사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비전과 각오를 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60년을 잘 성찰해서 전쟁을 막고, 평화·자유·민주주의 등 정신적 가치를 물질적 가치 못지않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에이트 “노래 잘 하는 가수? 이미지 없다는 말”(인터뷰)

    에이트 “노래 잘 하는 가수? 이미지 없다는 말”(인터뷰)

    아이돌그룹 일색인 가요계에서 비(非)아이돌로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에이트’ 하면 일단 안심부터 하게 된다. 그건 ‘혼성그룹의 자존심’이라는 팬들의 굳건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에이트 역시 그러한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현 백찬 주희로 구성된 에이트는 지난해 3집 앨범 수록곡 ‘심장이 없어’를 메가 히트시키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어 싱글곡 ‘잘가요 내사랑’과 ‘울고 싶어 우는 사람이 있겠어 (Feat. 다이나믹 듀오)’까지 인기차트를 점령한데 힘입어 이제 에이트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소속사 사장님이자 히트 작곡가인 방시혁과 오랜 호흡을 맞춰온 끝에 에이트는 자신들만의 색깔을 가진 감성발라드로 팬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최근 발매한 미니앨범 ‘더 브릿지’(The Bridge)도 마찬가지다. 에이트는 아이돌가수들의 이름으로 빼곡히 채워진 각종 차트에서 타이틀곡 ‘이별이 온다’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 뿐만 아니라 에이트는 독특한 무대 퍼포먼스로 팬들의 시선까지 사로잡았다. ‘로맨티즘’을 표방한 앨범답게 엇갈린 인연의 고리를 무대에서 표현한 것. ‘홍일점’ 주희는 이현을 바라보며 무대를 시작하지만 그의 손은 백찬의 손을 맞잡고 있다. 감정이 고조되면서 주희는 백찬의 품에 안겨 있다. “감정을 극렬하게 드러내는 것도 무대를 보는 즐거움일 것 같았어요. 노래를 이야기로 표현한 거죠. 무대는 청각을 시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팬들이 무대를 보고 가상의 이야기를 짜서 보내주시기도 해요. 매 무대마다 다른 이야기를 가진 퍼포먼스로 꾸며 볼 생각이에요.” 데뷔 후 3년간 음악에만 매진해온 덕에 에이트에는 ‘노래 잘 하는 가수’란 타이틀을 얻었다. 이만하면 최고의 찬사지만 정작 본인들은 “가수가 노래 잘 하는 건 기본이다. ‘노래 잘 하는 가수’라는 건 결국 이미지가 없단 소리”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이에 이현 백찬 주희 등 에이트 멤버들은 자신들을 알리기 위해 그간 감춰왔던 끼를 서서히 공개할 참이다. 이처럼 에이트는 “늘 고민한다.”는 그들의 말처럼 노래는 물론 퍼포먼스와 자신들의 매력을 알리기까지 팬들에게 ‘최고’를 선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이는 에이트가 “우리가 만든 앨범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면서도 “이제 시작일 뿐. 또 뛰어넘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또 “고정된 이미지보다 생각지 못했던 것들도 하면서 재미있게 음악을 하고 또 듣는 분들도 에이트 하면 즐겁게 기대할 수 있는 그런 그룹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에이트의 포부만큼이나 그들의 음악을 즐겨볼 가치는 충분하다.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농촌을 사랑하는 사람들] 경주 세심마을 이우근대표

    [농촌을 사랑하는 사람들] 경주 세심마을 이우근대표

    “농촌이라고 농사만 지어야 한다는 법이 있나요? 농외(農外) 소득에 주목한 게 마을 성공의 비결이죠.” 이우근(50·경북 경주시 안강읍) 세심마을 대표는 서른한 살이던 1991년 귀향했다. 대학 진학 때문에 고향을 떠난 지 10년 만이었다. 졸업 뒤 대기업에서 플랜트 설계사로 일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으나 번잡함이 싫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은 이 대표의 추억 속 모습이 아니었다. 마을주민 중 80%는 65세가 넘은 노인이었고 농지 14㏊에서 벼농사 등을 지어 생계를 이어 가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청년들도 새 소득원을 찾지 못하면 고향을 등지고 있었다. 이 대표는 농외 소득에 주목했다. 마침 고향은 ‘신라 속 조선’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세심마을은 신라 고도(古都) 경주 안에 있으나 옥산서원 등 조선 유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국보 40호인 정혜사지 13층 석탑 등 문화재도 널려 있다. 1997년 이장을 맡으며 ‘전통문화체험 마을’ 조성을 꿈꾼 그는 마을기금을 털어 주차장을 만드는 등 노력했다. 집성촌이라 개발방향에 대한 의견을 모으기 쉬웠고 그만큼 추진력도 발휘할 수 있었다. 정부의 전통 테마마을, 농촌마을종합개발계획 대상지역 등으로 잇달아 지정되자 이 대표는 교육에 눈을 돌렸다. 교육이 사람을 바꾸고 사람이 지속적인 마을발전을 이끌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대표 스스로 2006년 농촌사랑지도자연수원 등 농협의 농외사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연수원에서 다른 참가자들과 개발과정의 갈등 해소방안, 우수개발마을의 사례 등을 공유하며 노하우를 익혔다. 교육 효과에 대한 확신으로 이 대표는 해마다 마을주민 2명씩 농촌사랑지도자연수원 프로그램을 수료할 수 있도록 도왔다. 세심마을은 농협의 도움으로 15개 기업과 자매결연을 맺어 활발한 도·농 교류를 벌이고 있다. 이 대표는 “해마다 외국인 등 관광객 8000여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지만 아직 부족하다.”면서 “가족단위 체험객이 자연스러운 생활체험을 하고 갈 수 있는 공간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사설] 새 軍수뇌부 ‘천안함 교훈’ 뼛속 깊이 새겨야

    천안암 폭침사건에 대한 감사원의 직무감찰이 마무리된 데 이어 군 수뇌부에 대한 인사가 그제 단행됐다. 신임 합참의장 내정자를 비롯해 육군참모총장, 연합사 부사령관, 1군 사령관은 군내에서 신망 받고 검증된 인물들로 알려져 일단 마음이 놓인다. 군을 안정적으로 지휘해서 천안함 사건으로 흐트러진 기강을 조속히 바로잡고 장병들의 사기진작에 전력을 다해 주길 기대한다. 이번에 드러난 경계 소홀과 허술한 보고·지휘체계도 완벽하게 재확립해서 국토방위에 한치의 빈틈도 없게 하고, 국민에게 믿음직한 군대로 거듭 태어나야 할 것이다. 새 수뇌부는 천안함 사태의 뼈저린 실책을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북한에 일격을 당함으로써 국론분열과 국정혼란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군인들의 희생이 컸고, 시신 수습과 북한의 어뢰 잔해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국력의 소모가 적지 않았다. 그뿐인가. 국민은 불안에 떨어야 했고 경제의 충격도 만만치 않았다. 국제 외교문제로 비화해 중국·러시아 등과 소모적인 외교갈등을 야기했으며 유엔 안보리까지 넘어가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군의 경계 실패로 국가의 안보를 위태롭게 한 사태를 자초하고도 감사원 감찰의 시시콜콜한 문제로 낯을 붉힌 수뇌부가 있었다는 점은 매우 유감이다. 북한의 도발과 위협은 앞으로도 때와 곳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남북 경제협력으로 호전적인 북한의 군사공격을 가벼이 예단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국토방위와 국민의 생명·재산을 지키는 1차적 책무는 국군과 그 지휘관들에게 있다. 공격을 허용하고 뒤늦게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봤자 국제여론을 일시적으로 환기시킬 뿐이다. 군은 이런 냉엄한 현실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며 뼈를 깎는 자성에서 새 출발을 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북한의 도발을 사전에 철저히 봉쇄하거나 돌발적 피격상황에서 즉각 응징하는 순발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신임 수뇌부는 소임과 중책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국가와 국민만을 생각하며 강군으로 거듭나도록 분골쇄신하길 당부한다.
  • 현대차 광고 美서 큰 파문…무슨 사연?

    현대차 광고 美서 큰 파문…무슨 사연?

    축구열기를 종교와 결부시킨 현대의 미국 내 월드컵 광고가 카톨릭 신자들의 뭇매를 맞고 결국 방송과 모든 동영상 사이트에서 내려지며 논란이 일고있다. 월드컵 시작과 함께 미국 방송에 공개된 현대의 월드컵 광고는 미국의 월드컵 첫 경기인 잉글랜드와의 경기가 중계되는 동안에 정점을 이뤘다. ’웨딩’(Wedding)이란 이 현대의 이미지 광고는 라틴음악이 나오고 남미의 한 성당을 배경으로 한다. 성당에는 예수대신에 축구공이 면류관을 쓰며, 신자들은 성체를 받는 대신 무릎을 꿇고 피자를 받아든다. 흰색 유니폼을 입은 축구 신도들은 축구공이 그려진 스테인 글라스를 향해 성스러운 의식을 진행한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내레이션 “팬들은 모든 방식으로 그들의 충성도를 보여준다, 우리들은 단지 현대차를 사는 것이다”(Fans show their loyalty in all kinds of ways; ours just buy another Hyundai) 남미의 축구열기를 종교와 결부시킨 이 광고가 방송된 후 카톨릭 신자들을 중심으로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각종 카톨릭관련 포럼에는 ‘안티카톨릭 현대 광고’란 이름으로 동영상과 관련 글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로드아일랜드 교구 사제는 “현대의 광고는 예수의 신성을 모독하고 우리들의 종교적 믿음을 조롱하는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카톨릭 신자들은 미국 현대에 광고를 중단할 것을 종용하는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14일 오후(현지시간) 부터 현대 모터스 아메리카로부터 일제히 정중한 사과 이메일이 발송됐다. 이메일에는 “ 현대 광고에 대한 피드백을 보내 주어 고맙다. 축구의 열기를 종교의 열정과 연결시킨 잘못을 인정하며 광고로 인한 불편을 드려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적었다. 또한 메일에는 “모든 방송에서의 광고와 현대 커뮤니티에서의 노출을 중단할 것”을 약속했다. 현재 해당 광고는 미국 현대사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사라진 상태이며, 동영상 공유사이트에서도 저작권을 이유로 내려진 상태다. 카톨릭 관련 포럼에는 “현대의 신속한 대응이 인상적이다” 란 반응이 올라오고 있지만 비카톨릭 시청자들에서는 “카톨릭의 지나친 반응”이라는 의견도 올라오고 있다. 사진=해당 광고 캡쳐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형태 tvbodaga@hanma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TN포토] 고두심, 믿음직한 우리 남편~

    [NTN포토] 고두심, 믿음직한 우리 남편~

    [서울신문NTN 이대선 기자] 15일 오후 서울 대치동 컨벤션 마벨러스에서 진행된 KBS 주말드라마 ‘결혼해주세요’(연출 박만영, 극본 정유경)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고두심, 백일섭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종혁, 김지영, 오윤아 등이 출연하는 ‘결혼해주세요’는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네 커플의 각기 다른 결혼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사랑, 결혼, 이혼 등을 유쾌하고 담백하게 그린 드라마다. 이대선 기자 daesunle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종가 자존심 회복 VS 어게인 1950

    1950년 6월29일 브라질 인디펜덴시아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잉글랜드 선수들은 주저앉았다. 반면 미국 선수들은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월드컵 이변사로 기록된 미국의 1-0 승리. ‘축구종가’ 잉글랜드(FIFA 랭킹 8위)와 ‘북미의 새 맹주’ 미국(14위)이 13일 오전 3시30분 60년 만에 월드컵에서 만난다. 미국은 50년 전의 이변을 또 한 번 꿈꾼다. 1966년 이후 44년 만에 정상 탈환을 노리는 잉글랜드는 겉으로는 느긋한 척하고 있다. 통산전적 7승2패. 가장 최근에 가진 2008년 5월 경기에서 2-0으로 완승을 거뒀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잉글랜드의 우위를 점친다. 유로2008 예선 탈락으로 자존심을 구겼던 잉글랜드는 ‘우승청부사’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부임한 뒤로 체질을 확 바꿨다. 유럽예선에서 9승1패(34골 6실점)로 가볍게 티켓을 손에 넣었다. 출전국 중 가장 많은 골(경기당 평균 3.4골)을 터뜨렸고 실점은 경기당 0.6점으로 막았다. 공격 라인과 허리는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미국을 띄엄띄엄 봐서는 곤란하다. 미국의 최대 장점은 탄탄한 조직력과 날카로운 역습이다. 북중미 예선을 1위(6승2무2패)로 통과하며 6회 연속 본선에 나섰다. 조지 알티도어(헐시티)와 클린트 뎀프시(풀럼) 등 빅리그에서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 즐비하다. 이번 시즌 애버턴으로 단기임대된 간판스타 랜던 도너번(LA갤럭시)도 여전히 위협적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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