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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의 窓] ‘웬수’를 사랑하려면/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강사

    [생명의 窓] ‘웬수’를 사랑하려면/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강사

    예수 가라사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했건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내 어머니는 고작(?) 아버지조차 품지 못했다. 낯선 사람을 향해서도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공궤하던 천사표 어머니가 아버지 앞에서만 마녀 모드로 돌변하는 게 미스터리였는데, 이 나이가 되고 나니 저절로 알겠다. 원수를 사랑할 수는 있어도, ‘웬수’를 사랑하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 맞다. 가족이 웬수다. 오죽하면 석가모니가 서른 살에 출가(出家)를 결심하고 순례의 길을 나설 무렵, 하필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에 ‘라훌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을까. 산스크리트어로 라훌라는 걸림 내지 장애를 뜻한다. 구도의 길을 가는 데 가족이 애물단지임을 에둘러 표현하는 말이겠다. 그랬던 라훌라가 7년 만에 붓다로 돌아온 아버지를 만나자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제자가 되었단다. 그러고 보면 혼인 여부나 자식의 유무는 득도와 필연적인 연관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전기를 담고 있는 복음서가 예수의 사생활을 시시콜콜 다루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중요한 건 깨달음에 이르려는 강고한 뜻일 터이다. 그렇다면 출가란 단순히 집을 나간다는 가출(家出)의 의미보다는 기존의 가족관계에 변화가 생기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성싶다. 부부 또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화학작용이 일어나 함께 깨달음을 추구해 나가는 길벗으로 변화된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질기고 독한 가족의 인연이 이리 풀린다면 그 밖의 인연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예수 역시 서른 살에 출가했다. 공생애에 들어선 예수는 사회에서 억눌리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더불어 길벗 공동체를 세워 나갔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마가복음 3:35) 이러한 예수의 대안적 가족관은 지독하게 혈통에 연연하던 유대 사회에서 파격적인 스캔들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자신의 가족사를 훈장처럼 내세우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자기가 아무개의 몇 대 손이라는 식으로 혈통을 자랑한다. 혼사를 치를 때도 ‘근본 있는 집안’끼리 해야 한다며 뿌리를 따지기 일쑤다. 그런 사람 앞에서는, 아무리 족보를 들춰봐도 내세울 이름 하나 없이 초라한 집안의 후손들이 괜스레 작아지기 마련이다. 여기에 한부모가정이나 재혼가정 또는 조손가정처럼 소위 ‘비정상적인’ 가족사가 더해지면 족보 콤플렉스는 가히 만병의 근원이 될 정도다. 한데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에는 놀랍게도 비정상적이거나 부끄러운 가족사가 고스란히 폭로되어 있다. 시아버지의 씨를 받아 임신에 성공한 여성, 전직 성매매 여성, 최고 권력자에 의해 강간당한 여성 등이 모두 예수의 조상이란다. 부끄러운 과거는 가급적 숨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련만, 성서 저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다. 왜냐하면 예수 족보의 시작과 끝은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득도는 자신의 존재의 뿌리가 세속의 혈연을 초월하여 하느님께 잇닿아 있다는 자각이었다. 더욱이 이 기별이 예수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복음’의 알짬이고 보면, 오로지 혈연을 기준으로만 가족을 규정하는 세속의 가치관은 얼마나 천박한가. 나아가 인간만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것이 신의 손길로 지어진 것이라면, 가족의 범위는 무한 확장되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아시시의 프란시스코가 만물을 형제자매로 대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에게는 태양도 형제요, 강물도 자매였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를 적에는 그분이 만드신 모든 것을 존경과 사랑으로 대하는 마음가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그의 믿음이었다. 해마다 5월이면 고질병처럼 찾아오는 가족 강박이 버겁다. ‘가정의 달’이라는 구호 아래 시름시름 앓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가. 5월은 무엇보다도 온 천하가 푸른 생명의 향연을 펼치는 계절. 천지만물을 가족으로 초대하는 출가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허락되기를!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익어간 시간/가람 사랑이 시간 속에 익으면 정이란 이름으로 포근해지더라 더러는 매정하게 돌아서기도 하지만 그건 사랑이라고 부르지 말자 한겹 두겹 허물을 벗어서 그대에게 입혀주고 더 이상 벗을 허물이 없을 때 당신의 허물은 내 허물이 되더라 앞으로 뒤로 모로 보아도 무덤덤한 믿음만 남는 내가 못나서 익어버린 정이 좋더라 사랑에 찌들어 삭은 향기가 좋더라
  • 담담한 강남… “DTI·취득세 빠져 아쉽다”

    담담한 강남… “DTI·취득세 빠져 아쉽다”

    “저번에 개포주공 1단지 50㎡를 8억 2000만원에 내놓았는데 혹시 연락 온데 없나요.” 정부의 ‘5·10 주택거래 정상화 방안’이 발표된 10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개포동 믿음공인에 걸려온 전화 내용이다. 이날 이 중개업소에 걸려온 전화는 전·월세 문의가 4건, 대책 발표 이후 동향을 묻는 전화는 3건이 전부였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가 투기지역에서 해제됐지만 정작 개포 주공과 시영아파트 등이 몰려 있는 개포동 일대 중개업소는 평상시보다 더 한가했다. 오일심 믿음공인 대표는 “대부분의 대책이 이미 알려진 데다 1대1 재건축 완화 역시 개포동에는 해당되는 아파트가 거의 없어 반응이 덤덤하다.”면서 “다만, ‘집값 하락세가 멈추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개포주공 1단지 50㎡는 총선 전까지만해도 7억 3000만~7억 4000만원쯤 했으나 총선 뒤부터 뛰기 시작해 8억 2000만원까지 호가가 올랐다. 인근 스타공인 송보경 대표도 “이미 대책 발표 전에 거래가 다 이뤄져 이제는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단지가 많은 경기 과천의 주택시장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과천시 별양동의 보석부동산 유순배 대표는 “실수요자들이 2년 미만 주택 보유자에 적용되는 양도세 중과세율 완화가 현행 세율과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면서 “지난해 12·7대책 발표 때는 하루 10여통의 문의전화가 왔지만 오늘은 아예 없다.”고 말했다. 또 “4명의 고객이 계약금을 들고도 재건축은 1000만원, 일반 아파트는 2000만원가량 가격 차이가 나 계약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유씨에 따르면 현재 과천시에서 영업 중인 110여곳의 중개업소 가운데 지난달까지 단 1건의 거래도 성사시키지 못한 곳이 55%에 이른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거래활성화를 위해서는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와 취득세 감면이 필요한데 이게 빠져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았다. 비록 DTI와 취득세 감면 부활이 무산됐지만 이번 대책에 의외로 강도 높은 내용이 많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DTI에 묻혀 강남 3구 투기지역 해제와 양도소득세 중과세율 완화, 분양권 전매 제한 완화 등의 대책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이들 대책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부동산 114 조사에 따르면 양도세 비과세 수혜가 예상되는 아파트만 해도 무려 13만 1200가구(2010년 이후 입주)에 달한다. 한 대형 주택업체 관계자는 “강남 3구가 주택거래신고제에서 풀려 거래 때 자금 조달 계획서 등을 내지 않게 되면 기존 주택은 물론 오피스텔 등의 거래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입주를 시작, 전매제한 완화의 헤택이 기대되는 경기도 수원시 광교신도시의 경우 전매제한 완화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권병세 광교부동산 대표는 “아직은 반응이 없지만 호재인 만큼 2~3일 지나면 반응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성곤·오상도기자 sunggone@seoul.co.kr
  • “못난 짓으로 물의 일으킨 인사들 대신 참회”

    “못난 짓으로 물의 일으킨 인사들 대신 참회”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만이 욕심에 휘둘리지 않고 깨달아 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승가(僧家)와 절집에도 염의를 입고 시주밥을 먹고 살지만 발심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못난 짓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사들을 대신해 참회하겠습니다. 일단 총무원에서 잘 관리해 지도할 것입니다.” 불기 2556년 부처님오신날(28일)을 앞두고 10일 대구 동화사 동별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조계종 종정 진제스님. 도박 행각으로 입초시에 오른 스님들을 의식한 듯 대중 참회의 속뜻을 감추지 않았다. “‘참 나’를 찾지 못한 중생의 고통은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지게 마련입니다. 승속을 떠나 밝은 지혜를 갖춰 행복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마음 속 ‘참 나’ 찾아야 온 세상이 하나” 지난 3월 28일 종정 취임 후 처음으로 기자들과 만난 진제 스님은 우선 “종정의 소임을 맡다보니 밝은 지혜로 만 가지 어려움을 헤쳐나가도록 한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을 만 중생에 전해야 한다는 신념을 더 확고히 갖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수행풍토를 지켜오고 있는 한국불교의 간화선을 이제는 생활 속에서 다질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부모가 있기 전 나의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심을 끊임없이 하다 보면 ‘참 나’를 찾아내게 됩니다. 모든 일을 하면서 그 의심을 하게 되면 진정한 한 생각이 시동을 걸게 되고 결국 불평 불만이 소멸하게 되지요.” 마음 속의 ‘참 나’를 발견할 때 온 세상이 하나이고 시비 갈등이 소멸하게 됨을 알게 된다는 간화선 참선 수행. 올해 초 미국 뉴욕 종교인세미나에서 한 이런 간화선 설법에 쏠린 큰 반응에 간화선 세계화와 대중화의 원력을 다지게 됐고, 매일 아침 법당에서 그 원을 다시 새긴 뒤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고 한다. ●‘인성 5계’는 사회를 바로 세우는 근본 “무기를 갖곤 세계평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았던 진리를 증득해 갈등 없는 평등사회를 이루어야지요. 물질이 아무리 풍요로워도 인간 내면세계가 깜깜한 무명인 탓에 고뇌에 빠지는 예가 숱합니다.” 6년 설산고행 끝에 깨달은 진리를 49년간 설법했어도 100분의1도 드러내지 못했다는 석가모니 부처님. 공자는 그 석가모니 부처님을 향해 ‘다스리지 않아도 만 중생을 다스린다.’며 높이 샀다고 한다. 진제 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에 빠져사는 삼독을 해소해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함”이라고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전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연신 불거지는 부정부패와 관련해 ‘인성 5계’를 생각했다는 진제 스님.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부모에 효도하고 이웃을 공경하며, 친구를 사귐에 믿음과 사랑, 공경으로 대하고 맡은 일에 성실과 정성을 다하며 몸 마음을 청정히 한 채 다른 생명을 존중하라는 인성 5계야말로 우리 사회를 바로 세우는 근본입니다. 이 오계를 늘상 새기고 다지면 봄바람에 눈 녹듯이 모든 삿됨과 일탈이 해소됩니다. 물론 간화선 수행은 그 근본을 세우는 큰 방편이 될 수 있지요.” ●“마음 마음 마음이요, 가히 찾기 어렵도다” “행복의 행복(글)자도 없습니다.” ‘종정 스님은 진정 행복하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거침없이 돌려준 일갈. 말 없는 가운데 마음의 갈등이 없어지는 참선, 그중에서도 생활선에 눈떠 체화해야 한다는 진제 스님은 인터뷰 말미에 법어처럼 큰소리를 남겼다. “마음 마음 마음이요, 가히 찾기가 어렵도다. 찾으려 하면 천리 만리 밖에 앉았으니, 모든 대중이시여 ‘참 나’를 바라보고 계시라.” 대구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누구나 출생의 비밀은 있다. 이름을 빛낸 위인의 경우에는 더욱 관심이 쏠린다. 그 비밀의 문으로 잠시 들어가보자. 다산 정약용은 1762년(영조 38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250년 전인 음력 6월 16일, 아버지 하석 정재원(荷石 丁載遠)과 어머니 해남 윤씨(海南 尹氏) 사이에서 출생했다. 태어난 곳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아버지는 대과에 급제하지 않았지만 영조 임금의 특별한 지시로 연천현감, 화순현감, 예천군수 등 고을 수령을 지냈다. 조정에 들어와서는 호조좌랑과 한성서윤을 지내고, 다시 수령으로 나가 울산부사를 거쳐 진주 목사까지 지냈다. 어머니는 고산(孤山) 윤선도의 후손이요,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손녀였다. 윤선도의 증손자인 윤두서는 한국 회화사에 유명한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세 부인 사이에 모두 5남 5녀, 그러니까 10남매가 있었다. 첫 부인은 24세로 요절한 의령 남씨. 소생으로 큰아들 약현(若鉉)이 있다. 둘째 부인 해남 윤씨와 사이에 약전(若銓), 약종(若鍾), 약용(若鏞) 3형제와 딸을 두었다. 딸은 나중에 조선 최초의 영세교인인 만천(蔓川) 이승훈에게 시집간다. 다산 정약용의 나이 9세 때 어머니 해남 윤씨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12살 때 서울에서 20세의 김씨(1754~1813)를 데려왔다. 어린 다산을 친자식처럼 돌봐준 그가 바로 서모(庶母) 김씨다. 서모 김씨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김의택(金宜澤)의 딸로 슬하에 3녀 1남(약횡)을 두었다. 다산의 작은형 약종은 형제보다 뒤늦게 천주교를 접했지만 그 믿음이 독실하여 신유사옥 때(1801) 희생됐다. 전도에 힘쓰다가 책롱사건(册籠事件)으로 마흔 둘의 젊은 나이에 순교했다. 형 약전과 막내(다산)가 믿음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형제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했다. 엄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은 약종의 아들 철상(哲祥), 하상(夏祥), 딸 정혜(貞惠) 역시 천주교로 인해 요절했다. 형 약전은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다. 다산과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의 인연뿐만 아니라 다산의 학문을 알아주는 지기(知己)이기도 했다. 1801년 11월 하순 함께 귀양길에 올라 나주 율정점(栗亭店)에서 눈물로 헤어진 후 16년 동안 서로 한번도 보지 못했다. 약전은 그의 나이 59세인 1816년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떴다.(다산연구소 자료 참조) 올해 정약용 탄생 250주년을 맞아 다산의 생애와 학문, 사상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풍성하게 열린다. 국립박물관과 실학박물관의 전시회, 음악제, 국제학술대회 등이 잇따른다. 지난 3월부터 올 12월까지 계속된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다산의 일대기가 처음으로 판소리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다산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이 행사는 오는 9월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정해석 명창에 의해 1시간 20분동안 진행된다. 창본은 김세종씨. 특히 영문판 CD까지 제작, 세계 각국에 보급할 예정이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다산을 기리는 판소리 무대는 있었지만 75년 생애를 오롯이 담기는 처음이다. 이 밖에 다산이 직접 쓴 글씨와 그림을 전시하는 ‘한국 서예사 특별전-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전’이 다음 달 9일부터 7월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또 다산 기념 음악회가 8월 24일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린다. 다산연구소의 박석무(69) 이사장. 그는 요즘 이 같은 행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는 올해로 다산 연구에 몰두한 지 40년째가 된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순화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 이사장은 연구소 설립 이후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편지를 지금까지 700여회 쓰고 있다. 자리에 앉으면서 최근에 쓴 편지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다. ‘대군(大君)이다, 멘토다, 실세 중의 실세다라는 사람들의 감옥행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보기에도 딱하고 국가 체면도 구겨질 대로 구겨져 버렸습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큰소리치면서, 그들을 그런 직위에 임명했던 임명권자의 입장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중략)화려했던 권력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부와 권세를 놓치고 감옥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분들, 그런 기회에 목민심서라도 읽으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감옥행을 보면서 다산의 시선으로 글을 썼다. 또 있다. ‘정약전·약용 형제는 세상에 없는 지기지우인 동포 형제였습니다. 두 분이 주고 받은 편지나 학문적 토론의 글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는 사이였습니다.(중략)오늘의 세상에야 사촌이 남이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고 친형제조차도 재산 싸움에 남보다 더 원수지간이 되고 있음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재벌가의 왕자난이나 쟁송(爭訟)의 보도를 읽다보면 다산 형제의 우애가 세상을 바로잡을 청량제로 여겨집니다. 오늘에도 그런 형제애를 복원할 수는 없을까요.’ 이런 편지의 내용은 전국 35만 4000여명에게 이메일로 보내진다. 일주일에 주말을 제외한 4~5차례 꼬박꼬박 쓴다. 어리석은 질문 하나, 박 이사장은 목민심서를 몇 번이나 읽었을까. “몇 번 읽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회 현상을 보면서 문득문득 목민심서나 논어를 다산적으로 해석한 글들을 생각날 때마다 다시 뒤적이고 그 뜻을 가슴에 담지요. 수시로 읽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편지 쓸 때에도 다산의 눈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대학이나 단체 등에 강의 나갈 때도 다시 목민심서를 읽고 가지요. 성균관대에서 ‘다산과 21세기’라는 교양과목 강의를 하고 있는데 아주 명품강좌로 소문났다지요(웃음).” 지금도 틈 날 때마다 다산을 연구한다는 그는 대학 시절부터 ‘반계수록’ 등 실학에 관심을 두었으며 1971년 대학원 때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석사 학위논문을 쓴 것을 계기로 다산 연구와 인연을 맺었다. 1973년 유신에 항거하다 투옥됐을 때에 다산의 책을 여러 차례 읽었고 이후 8개월 수배 생활 동안에도 다산을 공부했다. 1982년 3월 복권됐을 때 비로소 7년 동안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쓰기 시작해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편역,발간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50여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끄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다산은 학문의 깊이가 끝이 없는 최고의 학자이자 사상가입니다. 다산은 52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통해 정치, 행정, 법학, 경제, 지리, 의학, 공학 등을 아우르면서 인간존중 사상, 개혁정신, 실사구시의 철학 등을 펼쳐 시대정신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학자로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안목과 방대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지요. 특히 유배지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의 인간성과 철학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산이야말로 칠흑같이 어두운 봉건시대에 실낱같은 한 줄기의 민중적 의지로 75년동안 치열하게 살다 간 역사적 인물이지요.” 가난에 찌들어 굶어 죽어가는 이웃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 공동 경작에 의해 공동분배하도록 하자고 혁명적인 전론(田論)을 주장하기도 했고 부정부패와 착취를 일삼는 관리들을 어떻게 해야 올바른 생각으로 돌아서게 할 수 있을까 해서, 관리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를 저술한 것, 그리고 시를 통해서 백성들을 일깨워 보고자 했던 그의 생애는 2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따르고 연구하려는 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산은 22세때 진사과에 합격했는데 정조임금이 답안지를 직접 읽고 휼륭한 인재임을 알고는 근처에 있도록 하면서 자주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시문행사때마다 항상 1등을 차지하는 다산을 늘 아꼈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정조는 다산을 통해서 사실상 정치를 바로 할 수 있었고 그런 다산은 정책 보고서를 임금에게 직접 올리게 됩니다.” 박 이사장은 가정의 달을 맞아 “요즘처럼 가족윤리가 무너지고 사제 간의 의리도 깡그리 파괴된 때, 우리는 다산의 사상과 철학을 통해 가족의 중요함과 사제간의 정다운 의리를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다산의 효제(孝悌)사상을 새삼 강조했다. 다산의 탄신일과 관련해서는 “1762년 6월 16일에 태어났는데 그날이 양력으로 8월 5일이어서 생일 기념은 매년 8월 5일에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그날에 회혼례, 산신제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석무 이사장은 1942년 전남 무안에서 4대째 한학을 공부해온 집안에서 자랐다. 전남대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구속되는 등 민주화 운동에 투신, 4차례 옥고를 치렀다. 1971년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다산 연구에 집중했다. 1973년 유신반대 유인물인 전남대학교 ‘함성’지 사건에 연루돼 1년 동안 복역하면서 감방 안에서 본격적으로 다산 저술에 대한 연구의 시간을 가졌다. 출옥후에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발간했다. 지금까지 50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읽히고 있는 명저가 됐다. 1980년 광주항쟁 때는 관련 주모자로 몰려 오랜 수배생활 끝에 붙잡혀 1년 3개월여를 또다시 복역했다. 1988년 13대 국회에 진출한 후 14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국회다산사상연구회를 조직, 간사를 맡아 활동을 펼쳤다.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과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 초빙교수, 전남대학교 초빙교수와 단국대학교 이사장,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석좌초빙교수이자 (사)다산연구소의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다산기행’, ‘우리 교육을 살리자’,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1,2’,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가 있으며, 편역서로는 ‘흠흠신서’, ‘애절양’, ‘다산산문선’, ‘나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 및 ‘다산 논설선집’, ‘다산 문학선집’(공편역) 등이 있다.
  • 분데스리가 5골 구자철 “독일서 100점 만점…오늘 다시 0점 시작”

    분데스리가 5골 구자철 “독일서 100점 만점…오늘 다시 0점 시작”

    ‘어린왕자’ 구자철(23)이 금의환향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에 임대된 뒤 15경기에서 팀 내 최다인 5골1도움을 기록,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냈다. 8일 새벽 귀국해 오후 서울 서초동 아디다스쇼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시즌을 마친 소감은. -볼프스부르크 벤치에 있는 시간을 통해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시즌을 끝내고 웃으면서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다짐으로 버텼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기회를 살릴 수 있어 감사하다. →100점 만점에 점수를 매기면. -5일 경기가 끝난 뒤 스스로 100점을 줬다. 독일에 있으면서 ‘한 골도 못 넣고 한국에 가는 건 아닐까.’ 두려웠는데 그걸 깨고 적응을 마쳤기 때문이다. 오늘 0점으로 돌아와 처음부터 시작하겠다. →새 시즌엔 어떤 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올 시즌 분데스리가에 구자철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렸다. 그 자신감은 엄청난 힘이다. 이제 막 시즌이 끝나 아직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더 큰 꿈과 목표를 갖고 있는 건 확실하다. K리그에서의 공격포인트(2010시즌 5골12도움, 통산 8골19도움)를 분데스리가에서도 올리겠다는 것이다. 발판은 마련했다. 실수하더라도 발전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다. →두 팀 사이에 임대와 복귀 얘기가 있었나. -아우크스부르크에선 임대 연장이나 완전 이적을 원한다. 볼프스부르크는 새 시즌에 같이 가자는 입장이다.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다른 팀의 영입 제의도 있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런던올림픽을 앞둔 각오는. -중학교 3학년 때 유소년대표팀에 뽑혔는데 다른 선수보다 특별한 게 없다고 느껴 위축됐다. 그때 꿈꿨던 게 청소년대표였고, 2009년 이집트 U-20월드컵을 치렀다. 그 다음 목표가 올림픽인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꿈과 정신을 쏟아붓고 싶다. 펠릭스 마가트(볼프스부르크) 감독이 (올림픽 차출에) 반대하는 건 사실이지만, 내가 얼마나 올림픽을 원하는지 전했으니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올림픽에서 멕시코, 스위스, 가봉과 한 조가 됐다. -생중계로 조추첨을 봤다. U-20월드컵 때 그랬듯 여러 팀들과 겨뤄 8강에 올랐을 때의 기분을 또 느끼고 싶다. 큰 무대에서 여러 선수와 경쟁하다 보니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떤 경기든 내 기량을 완전히 보일 수 있다. 모든 선수가 그렇게 준비한다면 (역대 최고인) 8강 이상도 가능하다. →국가대표팀도 병행할 텐데 각오는. -A매치를 20경기 이상 뛰면서 나름대로 성숙해졌다. (박)지성이형, (이)영표형이 은퇴하며 책임감을 물려받았다. 난 원래 어시스트를 하는 선수였는데 2011아시안컵을 통해 득점이 많아졌다. 어느 순간 어시스트만큼 골 욕심도 커졌다. 30일 스페인 평가전이나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당연히 골을 넣고 싶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미주통신] 오바마의 진짜 적은 누구일까?

    올해 11월 펼쳐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두 번째 임기에 도전하는 버락 오바마 현 미국 대통령의 진짜 적은 누구일까?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 아니면 알카에다? 아니면 이란이나 북한? 정답은 바로 ‘경제’(economy)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6일(이하 한국시각) 보도했다. 오바마는 6일 미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열린 그의 대선 캠페인 첫 공식 출정식 연설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미 공화당 대선 확정주자인 ‘미트 롬니’를 비판했다. 세금, 의료보건, 교육, 금융규제, 에너지, 기후변화, 여성인권, 아프간 종전 등 많은 의제들에 있어서 공화당과의 정책 차별성을 강조했지만 결국 그가 상대해야 할 가장 큰 적은 바로 미국의 경제(회복)라는 것. 연설 바로 전날 발표된 미국의 실업률도 전달의 8.2%에서 8.1%로 떨어지긴 했으나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이 피부로 경제회복을 느끼기에는 역부족한 수치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오바마의 대선 패배를 우려할 정도로 비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승리를 낙관할 수도 없는 수치인 것이다. CNN이 발표한 최근의 여론조사(오하이오주)에서도 오바마와 롬니가 44%-42%로 오차범위 내의 박빙의 승부를 보이고 있는 등 올해 미 대선 결과를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앞으로의 4년을 후퇴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지지를 호소하였으나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경제를 앞으로 가게 하여 유권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아무리 오바마가 국가 경영의 지도력과 비전이 있고 미트 롬니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더라도 그의 주장은 장밋빛 미래만 강조한 것으로 간주되어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즉 오바마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실제로 회복되는 경제에 대한 믿음과 이것을 달성할 의제와 리더십이 오바마에게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롬니 측도 이러한 점을 강조하고자 “지난 4년간이 오바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지는 모르나 미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지난 2008년에는 다소 못 미치는 오바마 재선 캠페인의 열기를 지적하면서 오바마를 비판하고 나섰다. 오바마, 롬니 두 미국 대통령 후보는 앞으로 남은 6개월 동안 치열한 경선 싸움을 벌이겠지만, 매달 발표될 실업률 통계와 일자리 창출 수 등 미국의 경제지표에 두 후보 모두 일희일비의 인질로 잡혀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신문은 전했다. 다니엘김 미국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천광청 한국 언론 첫 전화 인터뷰 “美유학 뒤 돌아올 것… 中 재입국 허가 안할 이유 없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쉰 다음에는 중국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중국이 나의 재입국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중국은 내 고국이다.” 지난 1주일간 미국과 중국 간의 최대 인권 외교 분쟁의 중심에 서 있었던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은 6일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심경을 밝혔다. ‘미국 유학=미국 망명’이라는 일부의 예상에 대해 반드시 중국으로 돌아올 것임을 강조했다. 천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자신을 산둥성 집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중국 내 동료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이들은 모든 방면에서 나보다 강하다. 그들이 뛴다면 더 잘 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조카”라면서 “언론들이 그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에 가서도 중국 지방 정부의 잘못은 계속해서 비판할 것이라며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다음은 천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건강한가. -아주 좋다. 다리 골절이 세 군데 있어 석고붕대를 하고 있다. 좀 오래 걸린다. 혈변이 문제다. 빠르면 8~10일 이후에 퇴원도 가능할 것 같다. →유학가려면 여권이 필요한데 수속은. -중국법에 따르면 여권 수속은 호적이 있는 출생지에서 발급받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거동이 불편해 갈 수 없다. 나를 면회오는 중앙 관원들에게 대신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가타부타 확답은 받지 못했으나 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장애인을 도와줘야 하지 않는가.(웃음) →무서워서 가기 싫은 게 아닌가. -솔직히 가고 싶지 않기도 하다. →목소리가 밝은데 무섭지 않은가. -항상 두려움에 떨며 살아왔다. 습관이 되어서 괜찮다. (웃음) →중앙에서 누가 나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나. -국가신방국(?家信訪局) 인민내방초대부(人民?防招待部)의 부사장(副司長) 궈(郭)다. 중앙의 권한을 위임받아 왔다고 했다. 요구했던 내로 나와 우리 가족을 가두고 구타한 지방 관리들을 찾아 엄중하게 조사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관리들이 모두 숨어 있다고 한다. 숨어 있다고 하지만 결국 모두 촌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빨리 찾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주변에 공안들이 지키고 있는데 통화는 가능한가. -통화할 수 있다. 전화기가 한 대 있다. 베이징의 친구가 준 전화다.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쉰 다음에 중국으로 돌아온다고 했는데, 중국이 재입국을 허가해 줄 것으로 보나.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중국은 내 고국이다. →이른바 ‘천광청 사건’이 중국에 남아서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 당신을 도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들은 모든 방면에서 나보다 강하다. 그들이 뛴다면 나보다 더 잘 뛸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 가서도 당신이 당한 일과 그 같은 일을 한 지방 정부를 비판할 것인가. -그건 미국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중국에서도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가. →당신에게 못된 짓을 한 관리들이 처벌 받을 것으로 보는가. -그렇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지금은 중국이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중앙은 나에게 문제를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옛날에 그런 약속은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약속을 했다. 아직 행동이 뒤따르지 않았다고 작게 볼 일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신호다. 중국이 변하고 있다는 신호다. →중국인들 가운데 당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너무 황당한 경우에는 오히려 믿기질 않는 법이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어떻게 혼자 탈출이 가능한가. 시각장애인인데. -할 수 있다. →지금 가장 걱정되는 것은. -나의 조카 천커구이(陳剋貴)다. 그는 정당방위한 것이다. 언론들이 그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0)김상헌과 최명길

    [선택! 역사를 갈랐다] (10)김상헌과 최명길

    1637년 1월 18일 청군에게 포위되어 있던 남한산성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산성으로 쫓겨 들어온 지 한 달이 훨씬 지났지만,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연일 이어지는 매서운 추위에 병사들은 얼어 죽거나 동상에 걸려 쓰러지고, 얼마 남지 않은 군량은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구원병이 끊겨 버린 점이었다. 시간은 자신들 편이라고 확신했던 청군 지휘부는 연일 출성과 항복을 독촉했다. 벼랑 끝으로 몰린 조선 조정은 결국 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조판서 최명길(1586~1647)이 청군 진영에 보낼 문서의 초를 잡았다. 문서는 ‘조선국왕은 절하고 대청국 관온인성 황제께 글을 올립니다.’라는 구절로 시작되었다. 조선이 처음으로 ‘오랑캐’ 청을 황제국으로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예조판서 김상헌(1570~1652)은 글을 보고 통곡했다. 그는 항복 문서를 빼앗아 찢어버린다. 그러자 최명길은 흩어진 종이 쪽을 주워 모아 풀로 붙인다. 처참하고도 희극적인 장면이었다. 왜 한 사람은 찢어버리고, 다른 한 사람은 도로 붙인 것일까? ●원칙을 위협했던 현실 17세기 초반, 조선을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는 심하게 요동쳤다. 15세기 이래 패권국으로 군림했던 명의 몰락이 뚜렷해지고, 만주에서 급속히 떠오른 후금이 명에 도전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두 나라 사이에 낀 조선의 처지는 괴로웠다. 임진왜란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대륙 패권의 변동이라는 격변 속으로 휘말렸기 때문이다. 명은 조선을 끌어들여 후금과 싸움을 붙이려 했고, 후금은 후금대로 조선에 중립을 지키라고 압박했다. 명과 후금에 치여 ‘샌드위치’가 된 처지에서 1627년 조선은 정묘호란을 겪는다. 명과의 결전을 앞두고 조선을 묶어 두려 했던 후금의 침략을 받았던 것이다. 후금군 철기(鐵騎)의 돌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조선은 후금과 형제(兄弟) 관계에 입각한 화약을 맺는다. 조선 지식인들은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지닌 세계관으로 보자면 만주족 후금은 분명히 ‘오랑캐’이자 ‘금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금을 형으로 섬기는 것은 도무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엄혹해졌다. 조선이 ‘임금’이자 ‘부모’로 섬기던 명은 후금에 계속 밀리기만 했다. 정묘호란 이후 후금은 명과의 싸움에서 연전연승하면서 기세가 높아졌다. 급기야 1636년 후금의 홍타이지 칸(汗)은 황제가 되기로 하고 ‘아우’ 조선에 그 사실을 통고한다. 칭제 사실을 알리려 후금 사신 용골대 일행이 입국하자 조선 조야는 정신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진다. ‘중화국 명의 천자(天子)만이 천지간에 군림하는 유일한 황제’라는 조선 지식인들의 믿음과 원칙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선 조정은 격앙되었다. ●주화냐? 척화냐?의 선택 대다수 신료는 “명은 부모의 나라이고 후금은 부모의 원수인 데다, 명은 왜란 때 조선을 도왔으므로 절대로 배신할 수 없다.”며 용골대 일행의 상경을 막으라고 촉구했다. “용골대 일행의 목을 베어 명으로 보내고 전쟁을 불사하자.”는 초강경론을 펼치는 사람도 있었다. 김상헌은 그 같은 주장을 폈던 척화파(斥和派)의 맏형 격인 인물이었다. 천자국 명을 섬겨온 예의와 명분을 수호하기 위해서도 후금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결전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명을 위해서라면 종사가 망하는 것도 감수할 수 있다.’는 주장이기도 했다. 소수파였던 주화파(主和派)의 의견은 달랐다. 주화파의 대표자 최명길 또한 ‘오랑캐와 척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론이자 원칙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문제는 당시 현실에서 ‘원칙’을 관철하려 할 경우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최명길은 ‘임금의 의리는 필부의 그것과 다르다.’며 ‘조선의 임금이 명을 위해 종사를 망하게 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묘년에 맺은 후금과의 형제관계를 유지하도록 끝까지 노력하되, 후금의 칭제에 대해 호오(好惡)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자고 강조했다. 최명길은 ‘오랑캐가 칭제했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하여 기존의 관계를 무조건 파기하자고 했던 척화파들을 비판했던 것이다. 인조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는 결국 다수파인 척화파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후금과 맺은 형제관계를 파기하고 절교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절교 ‘이후’에 대한 군사적 대책은 미흡했다. 청이 침략할 경우 서울을 떠나 강화도로 들어가 맞선다는 것이 주된 방책이었다. 1636년 12월 9일 압록강이 얼어붙자 청군 철기는 서울을 향해 내달렸다. 12월 14일 청군 선봉은 지금의 녹번동 부근까지 도달했다. 청군은 의주에서 서울로 이르는 대로 주변의 산성에 들어가 청야작전(淸野作戰·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농작물이나 건물 등 지상에 있는 것들을 말끔히 없애는 작전)을 폈던 조선군을 무시하고 돌격을 감행했다. 허를 찔린 조선 조정은 강화도로 피난할 시간적 여유를 상실했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남한산성에는 1만 4000여 명의 병력과 그들이 45일 정도를 버틸 수 있는 군량밖에는 없었다. ‘춥고 배고픈’ 산성은 청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고 남·북방의 구원병들은 산성으로 접근하는 족족 청군에게 궤멸하였다. 청은 처음에는 왕세자를 내보내야 항복을 받아 주겠다고 했다. 이어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고, 나중에는 척화신들을 묶어 보내야 한다고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포위된 산성에서도 ‘선택’을 둘러싼 논쟁은 지속되었다. 김상헌 등은 인조에게 “오랑캐의 신하가 되느니 최후의 결전을 벌여 깨끗이 망하자.”는 주장을 폈고 최명길 등은 “종사와 백성을 생각해야 할 임금은 은인자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성을 지키던 병사들도 동요했다. 추위와 굶주림, 공포에 지친 병사들 가운데는 항복하자고 시위를 벌이는 자들도 나타났다. 막다른 상황에 몰리자 인조는 결국 최명길 등의 건의를 받아들인다. ●‘선택’의 역사적 의의 인조는 1637년 1월 30일 삼전포(三田浦)로 내려와 항복했다. ‘오랑캐 추장’ 홍타이지에게 세 번 큰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적인 항복이었다. 인조가 겪은 치욕보다 더 처참한 것은 수십만의 백성이 청군에게 포로가 되었던 사실이다. 조선 포로들은 심양으로 끌려가 노비로 사역되었다. 많은 포로가 탈출을 시도하다가 죽는가 하면 도로 붙잡힌 포로들은 발뒤꿈치를 잘리는 혹형을 받았다. 포로가 된 많은 여인이 끌려가는 도중 청군의 첩으로 전락했고, 심양에 도착해서는 질투심에 눈이 먼 만주족 본처로부터 끓는 물 세례를 받은 여인도 있었다. 어렵사리 종사와 국체를 보전했지만, 전란 때문에 백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처절함 그 자체였다. 조선은 과연 이 처참한 국난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일까? 조야를 막론하고 당시 조선 지식인들 대다수가 “명은 중화이고 청은 오랑캐”라는 것을 원칙으로 견지하는 한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칙’과 ‘현실’이 부딪칠 때 무엇을 가장 우선적이고 소중한 목표로 삼을 것인지를 고려하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남한산성의 함락이 임박했을 때, 김상헌 등이 제기한 주장은 “조선의 신료는 물론 임금도 명을 위해 ‘옥쇄’(玉碎·명예나 충절을 위하여 깨끗이 죽는다는 의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최명길 등은 “조선 임금은 명보다는 조선 백성의 운명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전자가 ‘무차별적 원칙론’이라면 후자는 ‘선택적 원칙론’이었다. 병자호란의 발생부터 종결까지 인조는 양자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병자호란 무렵의 국제질서 변동 과정에서 조선은 ‘독립변수’가 아니었다. 명과 청 사이에 낀 조선은 두 나라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전화에 휘말리고 말았다. 양국과의 관계를 모두 원만히 유지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명과 청이 계속 싸우는 상황에서 ‘종속변수’ 조선은 선택의 기로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이 처한 이 같은 엄혹한 조건을 잘 알고 있었던 최명길은 병자호란 직전 인조에게 ‘결단’을 촉구한 바 있다. 그는 청과의 화친을 강조하면서도 “척화파들의 주장처럼 청과 맞서 싸우려는 것이 ‘진심’이라면 강화도를 포기하고 압록강까지 전진해서 싸우자.”고 촉구했다. 인조가 거부하여 무산되었지만, 이 주장이 갖는 의미는 만만치 않다. 국경에서 결전을 벌이면 승패 또한 그곳에서 조기에 결판날 것이고, 청군이 깊숙이 남하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그렇게 많은 포로가 청군에게 사로잡히는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최명길의 주장이야말로 ‘종속변수’ 조선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명청 교체의 격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이 아니었을까. 17세기 초반 조선이 명청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로 내몰렸던 사실은 미국과 중국이 맞선 오늘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존의 패권국이 쇠퇴하고 새로운 강국이 떠올라 그에 도전하는 사태가 빚어질 때 한반도는 예외 없이 위기를 맞았다. 명청 교체를 비롯하여 14세기 후반의 원명 교체, 16세기 후반의 일본 굴기, 19세기 후반의 청일전쟁이 한반도로 몰고 왔던 결과들이 그 생생한 실례다. 다가오는 미·중 대결의 시대, 이른바 G2시대를 맞아 우리는 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아가 ‘선택의 기로’로 내몰리는 것을 피하고자 우리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한명기(명지대 사학과 교수)
  • [CEO 칼럼] 신의는 미래성장의 열쇠이다/김창범 한화L&C 대표

    [CEO 칼럼] 신의는 미래성장의 열쇠이다/김창범 한화L&C 대표

    알프스 아래 스위스의 평화로운 호수도시 루체른. 옛 시가지 빙하공원 안에는 사자가 고통스럽게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의 라이언기념비(빈사의 사자상)가 자리하고 있다. 사자는 1792년 프랑스 혁명 당시 튈르리 궁전(현재 루브르 미술관)을 지키던 786명의 스위스 용병을 상징한다. 이들은 혁명군에 맞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항복하면 스위스와 국민의 신의(信義)가 떨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중국 춘추시대 5패(五覇)의 한 사람이었던 진(晉) 문공(文公)은 왕위에 오르기 전 갖은 고초를 겪었다. 그의 충신 개자추(介子推)는 문공이 아사(餓死) 지경에 놓이자 자신의 넓적다리를 베어 먹일(割股啖君) 정도로 헌신적으로 그를 보필했다. 개자추는 이후 문공이 왕위에 오른 뒤에는 자신의 주군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 논공행상을 마다하고 노모와 함께 면산(綿山) 깊숙이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이를 알게 된 문공은 개자추를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으나 통하지 않자 결국 면산에 불까지 질렀으나 그는 끝내 나오지 않고 불에 타 죽었다. 스위스 용병들과 개자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와 군주를 위해 헌신한, 신의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스위스의 신뢰는 은행업과 시계산업 발달로 이어졌으며, 교황청이 지금까지 500년 이상 스위스 용병을 근위병으로 쓰고 있는 배경이 됐다. 또한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한식(寒食)에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것으로 군주를 향한 개자추의 신의를 애도하고 있다. ‘믿음과 의리’, 신의의 사전적인 의미다. 신의는 다른 이와의 관계, 곧 사회적 관계의 기초 덕목이다. 신의가 없이는 건강한 사회적 관계 형성이 불가능하다. 신의는 기업 경영에서도 필수 조건이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창출이며, 기업이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소비자들로부터 제품과 서비스 등을 선택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기업들이 제품에 조그만 문제라도 발생하면 리콜(회수) 조치를 취한다. 그러지 않는 기업들이 이미지 하락과 매출 급락에 직면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업 역시 사회 구성원의 하나라는 점에서 신의는 일종의 의무이기도 하다. 혼자 빨리 가기보다 함께 간다는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한 노사 간 화합의 믿음과 협력업체와의 상생의 믿음이 없다면 시너지가 창출되기는커녕 제대로 된 제품 하나 생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회 안에서의 신의의 가치는 그 어떤 덕목보다 크다. 신의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각종 이념과 더불어 우리 사회가 끝까지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다. 하지만 신의는 종종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성과주의와 미래를 읽지 못하는 현실 안주로 외면당한다. 일본 최대 식품회사였던 유키지루시(U) 유업은 2000년 대규모 집단식중독 사고에 대해 거짓말과 발뺌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신뢰가 무너져 75년 역사의 명문 기업이 몰락하는 데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는 기업의 영속성에서 고객과의 신의보다 더 중요한 원칙은 없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사회와 기업이 효율적이고 바람직하게 운영되는 원리는 현학적 이론이나 미사여구에 있지 않다. 최고경영자(CEO)는 주주와 고객의 가치를 위해, 정치가는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며 신의를 지킬 때 기업과 사회는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하고 사회가 세분화되고 다양화될수록 신의의 가치는 상승하고 있다. 스위스 용병들과 개자추가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덕목은 수백년이 지난 현재에도 우리 사회가 갈등이 아닌 공존이, 미움이 아닌 사랑이, 외면이 아닌 돌봄이, 폭력이 아닌 평화가 넘쳐나는 곳으로 성장하기 위한 열쇠가 될 것이다.
  • 교황청 부처님오신날 봉축메시지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의장 장 루이 토랑 추기경)가 부처님오신날(28일)을 앞두고 봉축 메시지를 불자들에게 보내왔다고 조계종 충무원(총무원장 자승스님)이 4일 밝혔다. 토랑 추기경은 ‘친애하는 벗들인 불자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메시지를 통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전 세계 불자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과 평온이 깃들기를 빈다.”고 전했다. 그는 “오늘날 점점 더 세계 도처에서 다른 종교와 믿음을 지닌 학생들이 한 교실에 나란히 앉아 함께 서로에게 배우고 있다.”면서 “이러한 다양성은 우리에게 도전을 제기하며 젊은이들에게 다른 종교를 존중하도록 가르칠 필요성을 깊이 성찰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도인과 불자는 종교 간 대화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정의와 평화를 가르칠 공동 책임이 있다.”면서 “친애하는 벗들인 불자 여러분과 마음을 모아 젊은이들이 정의와 평화의 도구가 되도록 함께 이끌어 나가자.”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어버이날 특집 꿈의 웨딩(KBS1 일요일 밤 10시 30분)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아온 서른 쌍 부부를 위한 가슴 찡한 결혼식이 펼쳐진다. 생애 꼭 한 번 입고 싶었던 순백의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입장하는 서른 쌍의 부부. 40여년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잔잔한 떨림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눈물의 결혼식 현장을 함께한다. ●어린이날 기획 아침마당(KBS1 토요일 오전 8시 20분) 제90회 어린이날을 맞아 ‘아침마당-가족이 부른다’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끼 많고 재주 많기로 소문난 어린이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노래로 하나 되는 화목한 가족 팀부터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요들송을 부르는 합창단 팀까지. 노래 뒤에 얽힌 사연까지 함께 들어본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윤희는 자신이 임신했을 거라 철썩같이 믿고 있는 청애와 막례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재용의 레스토랑에 온 규현은 이숙이 첫사랑이었다며 고백하고, 이숙은 짝사랑 고백에 눈물을 흘린다. 한편 말숙은 윤희의 옷과 신발을 빌린 뒤 제때 돌려주지 않아 청애와 막례에게 혼이난다. ●신들의 만찬(MBC 토요일 밤 9시 50분) 도윤은 백설을 데리고 간 수목장에서 지윤을 죽게 만든 건 백설이라고 못 박고, 도희에 대한 기사를 내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한편 모두가 알아버렸다고 직감한 인주는 절망한다. 준영이 친딸이라는 사실을 안 도희는 인주와 준영 모두 안타까워 가슴 아파하고, 백설은 보류했던 기사를 뿌려 기자들을 아리랑으로 불러 모은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 40분) 첫 번째 이야기, 세계 영화계를 대표하는 미국 할리우드의 한 장소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으로 극심한 공포감에 기절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두 번째 이야기, 1971년 뉴욕에서 한 남자가 빼돌린 비밀문서가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데…. ●런닝맨(SBS 일요일 오후 6시 10분) 10시간의 논스톱 액션 서바이벌 게임 추격전으로 ‘런닝맨’ 역사상 가장 터프한 레이스가 펼쳐진다. ‘탈락시키고 싶은 런닝맨에게 투표하라.’ 하지만 생각 없이 적었던 투표 결과를 각자 책임져야만 한다. 한편 정체불명의 걸 그룹 멤버들의 등장과 함께 음모와 배신의 결정판, 그리고 흔들리는 믿음과 우정의 모습이 펼쳐진다. ●차인태의 명불허전(OBS 일요일 밤 10시 25분) 음악인 김광한은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음악이라는 작은 파문으로 대한민국의 감성을 사로잡았다. 그는 결식아동을 위한 자선공연은 물론, 팝을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음악인생 46년이 흘러, 명실상부 DJ계의 전설이 된 그의 인생 이야기를 함께한다.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믹막:티르라리고 사람들’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믹막:티르라리고 사람들’

    바질의 아버지는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에서 지뢰를 제거하다 목숨을 잃었다. 30년 후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는 바질은 갱단의 충돌이 빚은 사고로 총에 맞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총알을 머릿속에 지닌 채 거리를 떠돌던 그에게 운명처럼 ‘티르라리고’의 거주자들이 나타난다. 고철 더미 사이에 있는 티르라리고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은밀하고 괴상한 아지트의 이름. 그곳 사람들과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던 중 바질은 무기 제조사 두 곳과 만나게 된다. 두 회사가 제조한 지뢰와 총알이 아버지와 자신의 비극을 가져왔음을 알아차린 바질은 복수를 결심하고 티르라리고 사람들도 계획에 동참한다.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바질은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보는 재미로 지냈다. 그중 할리우드 영화는 그를 힘겨운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해 주었다. 사고를 당한 그날 밤도 그는 하워드 호크스의 ‘빅 슬립’(1946)을 보고 있었다. 프랑스어 더빙판을 외우다시피 하는 그는 누아르 영화의 어둡고 혼란스러운 세계를 현실의 대용품 정도로 받아들인다. ‘믹막: 티르라리고 사람들’(10일 개봉)은 진짜 현실에서 벌어진 총격전을 빌려 바질을 영화에서보다 더 야만적인 세계로 초대한다. ‘빅 슬립’의 두 주인공이 마침내 멀쩡해진 영화 속 현실로 복귀하는 것과 반대로 바질은 또다시 동정 없는 세상의 버거운 땅 위로 돌아와 선다. ‘아멜리에’(2001)를 기억한다면 장 피에르 주네의 신작이 곧 밝은 방향으로 전개될 거라고 믿을 것이다. 그리고 주네는 옛 영화들을 패러디하면서 영화가 그 믿음대로 나아갈 것임을 밝힌다. 빈민을 위한 음식을 제공하는 장면과 공항에서 외국인들이 헤매는 장면에서 주네는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1931)와 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1967)을 불러낸다. 노란색을 유달리 강조하는 주네의 영화는 그렇게 해서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며 인간적인 지점에 안착한다. 예전부터 장르를 비틀어 생경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능했던 주네는 무기 제조업자와 벌이는 복수극을 스릴러가 아닌 블랙코미디로 완성한다. 주네의 초기작을 좋아하는 관객은 그가 파트너였던 마르코 카로와 결별하고서 만든 작품들이 다소 밋밋하다고 불평하곤 한다.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1995)의 리뷰마다 사용되던 말인 ‘그로테스크한 기운’이 확실히 줄어들기는 했다. 주네가 초기 영화의 아름다움을 잊은 건 아니다. ‘델리카트슨 사람들’의 가장 인상적인 공간인 지붕을 재현해 ‘믹막: 티르라리고 사람들’의 주요 배경 중 하나로 삼은 것이 한 예다. 다만 데뷔 이후 등장한 온갖 현란한 영화들 앞에서 초기 스타일을 반복하면 치기 어린 시도로 폄하되리란 것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믹막: 티르라리고 사람들’은 순진한 목소리다. 현실의 무기 제조 회사가 영화에서처럼 무력할 리 없고 악당들이 한 번의 타격으로 사라질 리 만무하다. 그러나 순진하다고 외면하는 자세는 현실의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패배 의식을 낳는다. 어떤 영화는 그러한 자세를 거부하도록 이끈다. ‘믹막: 티르라리고 사람들’은 빈곤한 자들이 왜 강해야 하는지 일깨우는 작품이다. 빈곤한 자의 진짜 적은 연대를 방해하는 이들이다. 뭉쳤을 때 당신은 나약하지 않다. 영화평론가
  • [사설] 북은 고립과 피폐 자초할 핵실험 포기하라

    북한의 3차 핵실험 징후가 전해지면서 국제사회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유엔 산하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가 24시간 감시체제 돌입 사실을 밝힌 가운데 미국·중국이 연이어 대북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은 자제는커녕 엇나가고만 있다. 한반도 상공 민항기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 전파의 발신 주체로 의심을 받으면서 성동격서 식 도발을 자행하고 있는 꼴이다. 우리는 북한의 이런 태도야말로 근본적인 전략적 오판이라고 본다.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보가 체제 유지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믿음 자체가 미망(迷妄)이라는 뜻이다. 구소련이 미사일이나 핵탄두 수가 모자라 무너진 게 아니지 않은가. 북한은 지난달 ‘광명성 3호’라는 이름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올렸다. 발사 1분 만에 산산조각이 났지만, 설령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한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있는 주민들 중 누가 이를 ‘강성대국’ 진입의 징표로 믿겠는가. 북한은 지난 20년간 플루토늄과 우라늄, 그리고 미사일이라는 카드를 번갈아 흔드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해 왔다. 즉, 핵 폐기가 아닌 동결을 미끼로 미국으로부터 반대급부를 얻어내면서 뒤로는 핵개발 능력을 축적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전술의 약발이 다한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오바마 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과 미국의 보상이 반복되는 패턴은 무너졌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더욱이 북한의 과거 혈맹 격인 중국조차 3차 핵실험에 강력한 반대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엊그제 방한한 칭화대 추수룽 교수의 입을 통해 전해진 추정이다. 원유 공급 중단이나 원조를 끊는다는 중국의 강경 방침이 사실이라면 3차 핵실험을 감행하는 순간 북한은 ‘국제적 왕따’가 되는 사태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런 판국에 GPS 교란으로 인천공항을 오가는 세계 각국 민항기의 안전을 위협해 뭘 얻자는 것인지 궁금하다. 북한은 그동안 핵개발을 위해 7조원 이상을 쏟아부은 것으로 추정된다. 허기진 주민들을 8년간 먹일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이 아닌가. 북한 지도부는 무모한 도발을 저지르면 세습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고립을 자초해 굶주린 주민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뿐임을 깨닫기 바란다.
  • 美, 빈라덴 은신처 문건 1년만에 공개 “통제력 약화되자 오바마 암살 계획”

    1년 전 사살된 알카에다 최고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은 이라크와 예멘 등의 신생 테러 그룹에 대한 통제력 약화로 실수가 늘어나면서 조직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우려했으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요인 암살을 의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육군사관학교 대테러센터는 지난해 5월 2일 빈라덴 사살 작전 때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서 입수한 문건의 일부를 3일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문건은 17건으로 빈라덴이 직접 쓴 일기와 2006년 9월부터 2011년 4월까지 다른 알카에다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포함돼 있다고 CNN 등이 보도했다. 문건에 따르면 빈라덴은 무슬림이 지하드(성전)의 이념 때문에 불신을 사고 있는 현상을 염려했다. 그는 이슬람 세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공격에 반대하면서 미국에 초점을 맞추라고 요구했다. 빈라덴은 2011년 4월에 쓴 편지에서 ‘아랍의 봄’ 현상에 대해 이슬람 역사에서 “가공할 만한 사건”이라고 평했다. 테러 전문가 피터 베르겐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 문건들에서 드러난 빈라덴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챙기는 꼼꼼한 성격의 인물인 동시에 그의 조직이 이슬람 국가에 대한 미국의 외교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닌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분석했다. 한편 빈라덴의 은신처에서 수거한 문건은 총 600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일 작전에서 입수한 테러리스트 관련 자료로는 최대 규모다. 5개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이들 문건은 수십개의 하드 드라이브와 100여개의 이동 저장장치에 분산돼있었으며 오디오와 비디오파일, 인쇄물 등 다양한 형태로 보관돼 있었다고 당국은 밝혔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사령 카페는 사이비 종교… 배신자 극단적 응징”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학생 살해 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온라인의 폭력성이 오프라인에서 그대로 재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마트폰 메신저 채팅에서 비롯된 갈등을 현실로 그대로 옮겨와 벌인 10대들의 잔혹극이라는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스마트폰 메신저, 인터넷 카페 등에서 시작된 갈등을 마치 자신들에게 부여된 과업처럼 여기고 현실로 연결지은 상황”이라면서 “인터넷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진단했다. 특히 사리분별 능력이 부족한 미성년자라는 점이 화를 키웠다고도 했다.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또 “온라인 인간관계에 빠져 현실 감각을 잃고 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사이버상 대화를 현실로 착각, 중독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가해 학생들의 성장 배경에 학교 부적응, 가족 해체 등으로 인한 인간관계 결핍 문제가 깔려 있을 것이라는 공통된 의견을 내놓았다. 송원영 건양대 심리상담치료학과 교수는 “온라인 활동에 열중하는 학생일수록 뿌리 깊은 외로움으로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도 기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16세 때 범행을 저질렀다 해도 문제의 요인은 이미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쌓여 왔다고 봐야 한다.”면서 “어린 나이에 친구 없이 인터넷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들의 범행이 “사이비 종교적 성격이 짙다.”는 분석도 나왔다. 사건 당사자들이 죽은 영혼에 대해 정보를 나누는 ‘사령(死靈)카페’에 가입했고 평소 영혼·주술 등과 관련한 대화에 심취했던 까닭에서다. 스마트폰 대화방에서 피해자 김모(20)씨가 독선적으로 행동하자 ‘강제탈퇴’ 방식으로 왕따를 시킨 뒤 살인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응징’을 가한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의자인 10대들이 그들의 공동체인 사령카페가 김씨에 의해 공격당하자 복수의 의미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주장이다. 마치 가정이나 국가, 종교 등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해치려는 사람에 대해 방어적 공격을 가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자신들의 믿음에 대해 무조건적인 결속력을 보이고 인정하지 않으면 강한 반감을 갖는 것이 놀랄 만큼 사이비 종교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엄한 처벌이 뒤따를 것임을 알면서도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도 사이비 종교적 행태와 유사해 보인다. 표 교수는 “강한 집단심리가 형성돼 있어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면서 “냉정하게 현실을 깨달은 뒤에야 자책감을 느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당신에게 키스를…” 천광청, 힐러리 축하 전화에 감사 표시

    “당신에게 키스를…” 천광청, 힐러리 축하 전화에 감사 표시

    중국 시각장애인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은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하루 앞둔 2일 중국 정부로부터 신변 안전과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고 6일간 머물던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나왔다. 중국의 유명 인권운동가가 보호를 요청하며 미국 대사관에 들어갔다가 망명이 아니라 중국에 남기로 결정한 것은, 그것도 중국 당국의 신변 안전 약속을 담보로 한 것은 전례가 없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한국계 美국무부 차관보 협상 맡아 천이 미 대사관에서 나와 신병 치료와 가족과의 재회를 위해 베이징 차오양 병원으로 향한 것은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전략대화 참석차 베이징에 도착한 지 6시간 뒤였다. 처음부터 미국행을 요구하지 않았던 천의 쉽지 않은 안전보장 협상은 미국에서 급파된 한국계로 국무부 법률 자문인 해럴드 고 차관보와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가 직접 맡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중국 정부로부터 ‘OK’라는 답변을 이끌어 내기까지 막판까지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고 이 신문은 복수의 미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자세히 전했다. 천은 6일 전 미 정부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베이징 미 대사관으로 들어갔다고 뉴욕타임스는 클리턴 장관을 수행 중인 미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우리는 그를 도왔고 한시적이라는 전제 아래 대사관에 머물도록 했다.”고 말했다. 천은 미 대사관에 머물면서 단 한 차례도 미국에 망명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미 정부 관계자들은 확인했다. 그는 중국에서 자유롭게 가족과 ‘보통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中 “美내정간섭 사과 요구” 체면치레 항의 천의 운명이 결정된 것은 2일 오후 3시쯤. 클린턴 장관이 이날 오전 9시쯤 베이징에 도착한 지 6시간 뒤였다. 중국 정부로부터 그의 안전보장에 대한 확답을 들은 뒤 게리 로크 주중 미국대사는 천에게 미 대사관을 떠날 준비가 됐느냐고 물었다. 영어가 서툰 천은 중국어로 짧지만 단호하게 “갑시다.”라며 미 대사관 문을 나섰다. 중국이 미국과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 하나에 의지해 대사관을 나선 천은 로크 대사와 함께 차오양 병원으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클린턴 장관으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았다. 한 차례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아는 두 사람은 감정에 복받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고 차에 함께 있었던 미 관계자들이 전했다. 전화를 끊기 직전 천은 클린턴 장관에게 “당신에게 키스를 하고 싶다.”며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고 한다. 미 대사관에서는 6일간 미국과 중국 정부, 천 변호사 등 3자 간 협상이 진행됐다. 천은 종종 협상장에 들어가 해럴드 고 차관보와 캠벨 차관보의 손을 꼭 잡고 협상을 지켜봤다고 한다. 앞으로 천은 차오양 병원에서 중국인과 미국인 의사의 치료를 함께 받게 된다. 한편 클린턴 장관이 이번에 직접 중국 정부와의 협상에 관여했는지는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중 정부와 천 사이에 합의된 내용은 먼저 천이 가족과 함께 고향인 산둥성에서 떨어진 안전한 곳에서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천은 대학에서 법을 공부할 수 있게 된다. 또 중국 정부는 향후 천에 대해 어떤 조치들을 취했는지 미국에 알려주기로 약속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미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천의 안전 보장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CNN은 이 밖에 천의 요구대로 중국 당국이 천과 부인에 대한 폭행 사건을 조사하기로 약속했다고 전했다. ●6일간 中·美·천 변호사 3자 협상 미국 언론들은 천에 대한 결정이 가능했던 것은 중국이 이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와 달리 유연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라며 이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 정부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이 로크 대사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경비가 삼엄한 미 대사관 문을 나서기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정부는 미 대사관이 천을 보호하고 있는 것은 “내정간섭이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중국 공민을 대사관으로 데리고 들어간 것에 대해 워싱턴이 사과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타협에 앞서 체면치레를 위한 제스처였다는 분석도 일부에서는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두 명의 미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의 사과 요구를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언급하기를 거절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천이 풀려나기는 했지만 자유롭게 중국의 인권 운동을 위해 일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중국 내 다른 인권운동가들처럼 여전히 감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대체적이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사설] 새누리당 갈등보다 침묵을 더 경계하라

    지도체제 개편을 앞둔 새누리당이 맥빠진 기류다. 원내대표 임기가 끝나가고 5·15 전당대회는 다가오는데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 간간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독주에 대해 구시렁대는 소리는 들리지만 전반적 분위기는 침묵의 소용돌이 속으로 잦아들고 있다. 연말 대선에 활력을 불어넣는 흥행 효과는커녕 전대가 제대로 치러질지를 걱정하는 형국이다. 엊그제 4·11 총선 당선자 대회에서 그런 이상 기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12월 대선 승리를 위해 견마지로를 하겠다.”는 등 충성 맹세는 넘쳐났다. 하지만 전당대회 후보등록 마감을 사흘 앞두고도 당 대표와 최고위원에 나서겠다는 출사표를 던지는 당선자는 아무도 없었다. 박 비대위원장 1인체제가 굳어지고 있는 가운데 당내 중진들조차 눈치만 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당 지도부 경선에 나서는 일조차 1인자의 수신호에 따라야 할 정도라면 공당으로선 자격미달이다. 새누리당은 총선 이후 활력을 잃고 있는 느낌이다. 미국산 소고기 검역 중단 등 이슈마다 치열한 토론도 없이 오로지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목소리만 부각되고 있지 않은가. 당선자 대회에서 박 비대위원장은 “우리끼리 갈등하고 정쟁해서 국민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이런 언급의 진의가 우선은 당직이나 국회직 등을 놓고 계파 간 이해다툼을 경계한 데 있다고 본다. 즉, 연말 대선을 겨냥한 건전한 당내 경쟁까지 차단하려는 게 본뜻이 아니라는 믿음이다. 정당정치가 오로지 권력 각축전만 판치는 세렝게티 평원처럼 되어서도 안 되지만, 쥐죽은 듯 조용한 공동묘지인 양 비쳐서도 안 될 말이다.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도 생산적 토론조차 없는 ‘무덤 위의 평화’가 이어지면서 활력을 잃고 쇠락해 가지 않았던가. 새누리당과 박 비대위원장은 당내 주자 간 치열한 정책 경쟁을 통해 상승 효과를 추구하는 다이내미즘을 얻지 못하면 진짜 위기가 찾아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의의 경쟁으로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해야 박 비대위원장의 본선 경쟁력도 높아지지 않겠는가. 다른 주자들도 경선 룰만 탓하며 콘텐츠를 키우는 데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이다. 어차피 진선진미의 묘방도 아닌 완전 국민경선제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차별성 있는 정책으로 승부를 가릴 채비를 하란 뜻이다.
  • 성공회大서 첫 명예 신학박사 학위 받은 박형규 목사

    성공회大서 첫 명예 신학박사 학위 받은 박형규 목사

    지난달 30일 성공회대학교가 문을 연 지 98년 만에 처음으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신학과 창립 30주년을 겸해 이 대학이 기획한 명예 신학박사 학위의 수여자는 다름 아닌 박형규(89·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목사. 그는 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민주화운동에 몸담아 영혼을 살랐던 ‘길 위의 신학자’요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통한다. 현대사는 물론 한국 개신교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목회자. 지난해 부인과 사별한 뒤 거처를 옮겨 살고 있는 경기 용인의 자택을 1일 오전 찾아 그간의 소회를 들었다. “내가 성공회 시설과 공간을 남달리 많이 활용했기 때문이겠지요.” 전날 학위를 받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웃음 섞어 돌려준 대답. 덤덤한 반응과는 다르게 박 목사와 대한성공회의 관계는 골이 깊다. 그 유명한 서울 중구 오장동 서울제일교회 담임목사 시절, 학생이며 노동자들과 밤을 세워 민주화를 놓고 토론했던 곳이 성공회 수양관이고, 독재 권력의 손을 들게 한 1987년 6월항쟁기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차린 곳이 성공회 주교좌성당이다. 그래서 성공회대는 그에게 학위를 준 배경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불의와 폭력을 이겨낸 참 신앙인’ ●길위의 신학자, 실천하는 신앙인 “사실 처음부터 목사가 되려는 생각이 없었고 몸도 약할 뿐만 아니라 성정도 온순해 그 험한 목회를 감당할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박 목사가 가시밭 같은 ‘목회의 길’을 택한 건 4·19혁명 때였다.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근처 궁정동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학생들을 보고 결심한 게 바로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 결심과 다짐답게 박 목사는 문민정부가 탄생할 때까지 군사정권 시절 무려 6차례나 감옥에 끌려가는 고초를 겪었다. ●교회라면 구원의 말씀 가르쳐야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그의 회고록 제목은 남달랐던 ‘목회의 길’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실천하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요즘 신학생들은 어떻게 보일까. “신학생이라면 세상과 사회의 여러 문제를 신학적인 입장에서 판단하고 때로는 저항도 할 수 있어야지요. 하나님의 축복만 받고 편안하게 살 생각을 할 게 아니라 가난하고 약한 자의 편에 서는 게 당연합니다.” 예수님과 예언자들이 그랬듯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불의에 무관심하지 않는다는 박 목사. 그래서 교회가 대형화되면 될수록 타락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고 ‘제 복’만을 찾아 교회를 드나드는 일그러진 신앙은 예수를 배반하는 으뜸의 지름길이란다. “근본적으로 구원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됐다고 자각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깨달은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지요. 교회라면 응당 사람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하나님 말씀을 통해 가르쳐야 할 텐데….” 1950년대 서울 공덕교회 담임 시절 교인이 불어나자 “내 뜻대로 목회를 하지 못하겠다.”며 가족에게 거처도 알리지 않은 채 불쑥 속리산으로 떠났던 그다. 결국 4·19혁명 때 꽃다운 청춘들의 아까운 희생을 보고 돌아와 뼈에 새긴 ‘교회다운 교회’. 그는 1992년 은퇴할 때까지 그 원칙에서 조금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도시산업선교회며 사회선교협의회를 설립해 약하고 가난한 자의 편에 늘상 섰던 ‘개혁과 실천의 목자’다. 그래서일까 함석헌 선생은 그에게 이런 별명을 붙여줬고 박 목사는 그 별명을 아주 좋아했단다. ‘하나님의 발길에 차인 사람’ ●하나님의 종 노릇 제대로 한 것인지… “글쎄요 돌이켜보면 원치 않았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도 결국 하나님이 정해 밀었던 까닭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종 노릇을 제대로 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자신과 함께했던 모든 양심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험한 목회활동에 반발해 울면서 살다가 나중엔 자신보다 더한 투사가 됐던 아내에게 감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헛된 목회의 삶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새 시즌 프로농구 판 뒤흔들 ‘귀화 빅3’ 영입경쟁 가열

    새 시즌 프로농구 판 뒤흔들 ‘귀화 빅3’ 영입경쟁 가열

    새 시즌 농구 판도를 흔들 ‘에이스’들의 이동이 시작된다. 2009년 귀화 혼혈 드래프트로 한국 땅을 밟은 뒤 3년 계약이 끝난 문태영(LG), 이승준(삼성), 전태풍(KCC)이 시장에 나왔다. 혼혈 선수를 한 번도 보유한 적이 없는 동부, 모비스, 오리온스, SK가 우선적으로 이들 셋의 영입에 뛰어들 수 있다. 영입에 실패한 한 팀은 내년에 3년을 꽉 채우는 문태종(전자랜드)을 차지할 수 있지만, 일단 새 시즌부터 즉시 전력감인 세 명에게 뜨거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선수는 단연 포워드 문태영이다. 오리온스를 뺀 나머지 세 팀이 모두 문태영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 KBL에 입성한 2009~10시즌 득점왕을 차지하며 공격력을 인정받았다. 최근 세 시즌 평균 20.6점 7.7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꾸준하고 안정적이다. 다른 선수가 웬만큼만 받쳐 주면 제 몫을 해내는 믿음직한 플레이어다. 윤호영을 군대에 보낸 동부나 시즌마다 ‘빅맨’ 때문에 가슴앓이하던 SK에 탐나는 카드다. 톱가드 양동근이 버티고 있는 모비스도 신인 1순위로 가드 김시래를 뽑아 포워드 보강이 절실하다. 문제는 경쟁률이다. 각 팀은 영입 희망순위와 제시 연봉을 적어 낸다. 1순위 상한선은 샐러리캡(21억원)의 25%인 5억 2500만원이고 2순위는 22.5%, 3순위는 20%가 최고액이다. 영입 순위와 연봉까지 같을 경우 7일 오전 추첨으로 행선지가 결정된다. 각 구단이 혼혈선수 영입에 팔을 걷어 붙인 이상 모두 1순위로 최고금액을 베팅할 것으로 보인다. 세 팀이 문태영에 올인하기보다는 이승준이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는 눈치싸움도 치열하다. 수비가 약하고 플레이에 기복이 있지만 충분히 매력적이다. 골밑 플레이와 외곽포를 겸비했고, 화려한 몸놀림으로 인기도 많다. 세 시즌 평균 16점 8.2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전태풍의 행선지는 오리온스로 굳혀진 모양새다. 지난 시즌 김승현을 삼성으로 보낸 뒤 가드가 없어 내내 고생했다. 계약 문제가 남았지만 최진수·이동준·김동욱 등에 ‘야전사령관’ 전태풍이 있으면 만년 하위권에서 벗어나 단숨에 우승 후보로 뛰어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 세 시즌 평균 14점 4.8리바운드에 챔피언결정전도 두 차례나 경험했다. 네 팀은 3일까지 영입의향서를 KBL에 제출해야 한다. ‘빅3’의 이동에 농구판이 벌써 술렁이고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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