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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일의 어린이 책] 새잎 돋는 나무처럼… 치유의 힘은 내 안에

    [이주일의 어린이 책] 새잎 돋는 나무처럼… 치유의 힘은 내 안에

    상민이는 스스로가 고양이나 바퀴벌레보다 못난 것만 같다. 할아버지가 하루에 145㎏의 폐지를 모아도 집안은 더 가난해진다. 학교에서는 영어를 모른다고, 아이들을 건드린다고 늘 혼쭐만 난다. ‘나도 살아 있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걸까.’ 상민이의 머릿속에 고생대 캄브리아기에서 살아남은 보잘것없는 생명체 피카이아가 떠오른다. 척추동물의 조상으로 인간 진화의 뿌리가 된 5억 7000만년 전 미물이 고단한 삶에 부딪힌 여섯 아이의 사연과 겹치며 낯설면서도 경이로운 그림책으로 만들어졌다. 아동문학가 권윤덕이 3년 만에 내놓은 ‘피카이아’다. 친구들과 성적으로 경쟁하는 게 싫은 미정은 인간은 서로 도우며 살도록 진화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주변의 무관심에 위축되고 자신의 몸에만 관심 있는 ‘끈적이 오빠’에게 학대당하는 윤이는 가지가 잘려도 새잎을 돋우는 나무처럼 치유의 힘은 자신 안에 있다는 믿음을 품는다. 피카이아는 결국 살아남고 견뎌내는 것만으로 모든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증명해 낸 ‘역사’인 셈이다. 중국 공필화 산수화와 불화까지 섭렵한 작가의 그림은 때론 불편함으로 독자를 내몬다. 인체를 연상케 하는 생닭과 돼지의 적나라한 살덩이, 수억년 진화해 온 시간의 기록물처럼 정교한 배주름이 잡힌 바퀴벌레, 덜 짜여진 뜨개질처럼 조각난 아이들의 몸, 돼지 피를 들이켜고 생간을 씹어먹는 부모 등이다. 작가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아주 낯설게 표현해 인간의 폭력성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어른까지 곱씹어볼 철학이 깃들어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사설] 검찰, 경찰의 별장 성접대 부실수사 답습말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별장 성 접대 사건의 경찰 수사가 마무리됐다. 4개월 동안 144명의 관련자를 소환하며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대형 이슈였다. 그럼에도 수사 결과는 건설업자 윤중천씨 등 2명을 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성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의 중심에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경우 대가성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채 성폭행 혐의만 적용해 불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한다. 사건의 본질은 처음부터 정부 고위층을 상대로 한 건설업자의 성 상납 로비였다. 하지만 경찰 수사를 거치며 업자와 공무원이 어울려 저지른 단순 성범죄로 퇴색해 버린 것이다. 태산이 떠나갈 듯 요란했는데도 뛰쳐나온 것은 생쥐 한 마리뿐이라더니 허탈감을 감추기 어렵다. 경찰은 이 사건의 부실 수사가 수사권 독립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뼈아프게 자성해야 한다. 경찰은 그동안 수사권 독립 문제와 관련해 검찰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도 두 기관은 드러내 놓고 불협화음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경찰이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인 전직 법무부 차관이 연루된 사건에 역량을 총동원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사건의 수사 과정을 지켜보면서 적지 않은 국민들이 경찰의 수사 능력에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 전 차관의 성폭행 혐의가 사실상 유일한 수사 성과라지만, 이마저도 혐의 입증에 필요한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만큼 유죄 판결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공은 이제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부실수사를 떨치고 사건의 진상을 드러내 달라는 국민의 목소리에 검찰은 어느 때보다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 사건에 관한 한 검찰이 철저하고 공정하게 수사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는 그다지 높지 않다고 본다. 경찰이 신청한 김 전 차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과정에서 한 차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럴수록 검찰은 분발해 사건의 실체를 낱낱이 국민 앞에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검찰은 법질서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다해 믿음을 되찾는 기회로 삼기 바란다.
  • ‘홍의 남자’ 내가 된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은 두 얼굴의 사나이다. 열정적인 ‘홍 반장’이지만 얼음장처럼 차가운 면도 있다. 2013 동아시아연맹(EAFF) 축구선수권대회(동아시안컵)에 출전하기 위해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 모인 23명의 선수들. 첫 ‘베스트 11’도 이 냉정함 속에서 결정될 게 뻔하다. 홍명보의 사람, 누가 가장 절실할까. 한때 홍명보의 ‘복심’으로 통했으면서도 정작 런던올림픽 본선 최종 명단에서는 제외된 홍정호(24·제주 유나이티드). 대표팀 주장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할 정도로 입지가 탄탄했다. 그러나 본선행을 3개월 앞둔 지난해 4월 K리그 경남FC전에서 십자인대 부상을 입고 탈락, 올림픽축구 ‘동메달 신화’를 눈으로만 봐야 했다. 지난달 29일 성남 원정전에 4경기 연속 출장, 헤딩 선제골로 부활을 알렸지만 종료 10분을 남기고 페널티킥을 내주는 등 본업인 수비에서 불안함을 노출했다. 가장 최근인 16일 울산전에서는 김신욱(울산)에게만 2골을 내주는 등 총 4실점했다. 그러나 홍정호는 18일 NFC 훈련이 끝난 뒤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면서 “동료들은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로 왔지만 난 도전자로 여기에 왔다.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이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2010아시안게임과 역시 올림픽 본선행 직전 탈락한 김동섭(24·성남 일화)도 ‘홍 반장’의 눈길에 목마르다. 그는 “A대표가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 왔다”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뛰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왼발의 달인’ 염기훈(30·경찰청)도 에이스 자리를 되찾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앞두고 있다. 쓰라린 기억을 안고 있는 ‘홍명보의 아이들’. 사상 최약체로 평가되는 대표팀의 불안감만큼이나 이들의 절박함도 최고조에 올라 있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하나된 드레스 코드 하나된 승리 코드…홍명보호 첫 소집

    하나된 드레스 코드 하나된 승리 코드…홍명보호 첫 소집

    축구대표팀이 확 달라졌다. 2013동아시안컵을 앞두고 17일 소집된 태극전사들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출발했다.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각을 잡았고, 파주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 정문부터 숙소동까지 걸으며 국가대표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졌다. 원한다고 아무나 걸을 수 없는 길을 밟으며 태극마크와 투혼을 심장에 꾹꾹 새겼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과 10분간의 미팅을 통해 “대표선수의 사명감을 가져 달라”는 짧고 굵은 메시지를 던졌다. 동아시안컵은 대회 자체의 중량감은 떨어지지만 ‘홍명보호’의 첫 출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끈끈한 팀워크와 희생·헌신을 기본으로 하는 홍 감독의 축구철학을 엿볼 수 있는 데뷔전이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의 졸전, 기성용(스완지시티)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파문 등으로 흐트러진 대표팀 분위기를 추스르는 것과 동시에 1년도 남지 않은 브라질월드컵 멤버를 검증하는 의미도 있다. 올해로 5회째인 동아시안컵은 한국·중국·일본·호주가 풀리그로 우승국을 가리는 대회다. 두 차례(2003년·08년) 정상에 섰던 한국은 오는 20일 오후 7시 호주와의 1차전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과 차례로 격돌한다. 홍 감독은 “훈련도 중요하지만 사령탑으로서 남은 기간을 어떻게 준비할까에 초점을 맞추겠다”면서 “팀정신과 경기력은 물론 브라질에서의 활약 가능성까지 전체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월드컵까지 시간이 촉박한 만큼 몇몇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 수밖에 없다. 치열한 생존경쟁이 시작된 만큼 선수들의 각오도 남달랐다. 홍 감독 품에서 공을 찼지만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낙마한 김동섭(성남)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눈을 빛냈고 고무열(포항)도 “절실함을 보여 주는 게 우선”이라고 털어놨다. ‘제2의 홍명보’로 불렸지만 부상으로 꿈이 좌절된 홍정호(제주)는 “올림픽을 다녀온 선수들에게 도전하는 입장인데 감독님께 믿음을 심어주겠다”고 말했다. ‘팀 스피릿’이 돋보이는 첫날 풍경이었다. 이날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홍 감독. 소집 시간보다 두 시간 앞선 오전 10시에 NFC 정문으로 들어선 그는 취재진을 향해 “올림픽대표팀을 맡았을 때부터 항상 제일 먼저 왔다”고 멋쩍게 웃었다. 홍 감독은 “내가 처음 대표팀에 뽑혔을 때는 진해선수촌까지 버스로 5~6시간을 가면서도 긴장해서 잠도 못 잤다”고 회상하며 “짧지만 선수들이 정문부터 숙소까지 걸으면서 국가대표로서의 자신을 돌아봤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태극전사들은 홍 감독이 앞서 공지한 ‘드레스코드’에 맞춰 정장 차림으로 모였다.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단정하게 넥타이를 맸다. 서동현(제주)이 오전 10시 30분 첫 테이프를 끊었고 염기훈과 김신욱이 차례로 들어왔다. 과거 스포츠브랜드의 광고행사장, 혹은 외제차 쇼케이스장 같던 모습과 180도 달랐다. 직접 차를 몰고 NFC 숙소동 앞에서 내렸던 선수들은 이날 정문에 내려 직접 트렁크를 끌고 350m를 걸었다. 모처럼 구두를 신은 선수들은 약속이나 한 듯 대표선수로서의 책임감을 말했다. 새 캡틴으로 낙점된 하대성(서울)은 “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자세로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면서 “경쟁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목표를 갖고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월드컵 최종예선 레바논전 때 나눠 준 양복을 입은 박종우(부산)는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남다르더라”고 전했고 김동섭은 “성남 백화점에서 3일 전에 양복을 사며 의지를 다졌다”고 얼굴을 붉혔다. 고무열은 “넥타이 매는 법을 몰라 호텔 직원이 도와줬다”고 수줍게 웃었고 이명주(포항)는 지난해 K리그 시상식 때 큰맘 먹고 구입했다는 겨울 양복을 입고 땀을 쏟았다. 가장 늦은 오전 11시 40분에 들어온 김영권(광저우)은 ‘꼴찌’라는 귀띔에 당황하며 “아직 20분 전인데 내가 마지막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대표팀은 한 시간 동안 미드필드 압박 위치와 수비 조직력을 꼼꼼히 맞춰보며 담금질을 시작했다. 이날 경기가 있는 김창수(가시와), 황석호(히로시마) 등 J리거 7명은 훈련 이틀째인 18일부터 합류한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안이한 정부… 불안한 시장

    안이한 정부… 불안한 시장

    성장, 재정, 물가, 부채 등 우리 경제에 도사린 위험 요인에 대해 곳곳에서 경고음이 나오지만 정작 박근혜 정부 경제팀은 “별일 아니다”란 식으로 일관하며 그 자체로 새로운 불안 요인을 낳고 있다. 정부가 먼저 나서 위기의식을 조장해서도 안 되지만 시장과 소통하지 못하는 지나친 낙관론은 잘못된 정책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경제주체에 그릇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기획재정부는 올 상반기 10조원가량의 국세수입 감소(전년 대비) 등 세수 결손이 예상보다 심각할 것이란 내용의 자료를 내면서 “올해 전체 세수 결손은 많아 봐야 5조원 이내일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그러나 기재부는 세목별로 왜 그런 계산이 가능한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예측처럼 사정이 급격히 나아지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8개월 연속 전년 대비 1%대의 낮은 물가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데 대해 시장이 제기한 디플레이션 우려와 관련해 기재부는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2.5~3.5%)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상당수 전문가들이 “자산가치 하락과 소비 부진의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과 상반된 접근이다. 지난 3일 국회 가계부채 청문회에서도 정부는 “전반적으로 가계부채의 위험성이 크지 않다”고 시장의 우려와 반대되는 보고를 했다. 한국은행도 지난 11일 올해와 내년의 경제성장률을 0.2% 포인트씩 올렸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한국은행의 전망이 너무 낙관적이어서 시장에 오히려 믿음을 주지 못했고, 그 이튿날의 주식과 원화가치 등 금융지표는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신광식 한국개발연구원(KDI) 초빙연구원은 “수출로 간신히 버티는 현재 상태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면서 “경기 활성화가 안 되면 가계부채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세수 부족도 커지는 데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 공약도 지키기 힘들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행이 금리 변화 등 경기 대응을 안 하고 있는데, 오히려 기재부가 동조하는 꼴”이라면서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부처 간 정책 조율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박근혜 정부의 장기적인 경제정책 비전을 빠르게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南 “신변 안전” 北 “조속 재가동”… 7시간 기싸움

    南 “신변 안전” 北 “조속 재가동”… 7시간 기싸움

    개성공단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당국 간 3차 실무회담이 15일 열렸지만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문제를 둘러싼 입장 차를 확인한 채 합의문 채택 없이 끝났다. 남북은 17일 개성공단에서 4차 실무회담을 갖기로 했다. 이날까지 세 차례에 걸친 실무회담에도 불구하고 양측이 입장 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해 앞으로의 협상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지금까지 북측이 보인 태도를 감안할 때 우리 정부가 납득할 만한 해법이 바로 도출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경우 협상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리 측은 이날 오전 개성공단 내 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전체회의 기조발언을 통해 “개성공단 우리 측 인원의 신변 안전과 기업들의 투자자산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들을 완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가동중단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촉구하고, 개성공단에 입주하는 우리 기업과 외국 기업들에 대해 국제적 수준의 기업 활동을 보장, 국제적 공단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북한은 재발방지책 등과 관련한 구체적 방안 제시 없이 개성공단의 조속한 재가동을 촉구하는 등 기존 입장만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2차 회담 당시 우리 측에 제시한 합의문 초안을 수정해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회담에서 남북은 시종 냉랭했다. 우리 측 수석대표인 김기웅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과 북측 수석대표인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은 전체회의에 앞서 악수도 하지 않는 등 초반부터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회담을 시작한 양측은 집중호우와 관련돼 뼈있는 말을 주고받으며 입씨름을 벌였다. 박 수석대표는 “공업지구 회담 결과가 큰 기여를 한다면 비가 미래의 축복이 될 수 있고, 아니면 한철장(한철 장사)이 될 수 있다”고 우리 측을 압박했다. 이에 김 수석대표는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다. 개성공단이 발전적으로 정상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남북 대표들이 분발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를 해 본다”고 북측의 태도 전환을 촉구했다. 양측 수석대표가 서로를 ‘회담 전문가’라고 치켜세웠던 1차 실무회담 때의 화기애애한 덕담은 오가지 않았다. 우리 측은 지난 12일 수석대표를 김 단장으로 교체했고, 북측은 회담 직전 대표단 3명 가운데 허영호 평양법률사무소장을 남북경협 전문가인 황충성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참사로 교체하는 등 양측 모두 대표단 진용을 정비했다. 북한의 대남 협력사업을 총괄하는 민경협 소속인 황 참사는 2009년 개성공단 관련 남북 당국 간 1~3차 실무회담에 북측 대표로 나오는 등 개성공단 실무에 밝은 인물로 알려졌다. 한편 통일부는 개성공단 물자 반출 사흘째인 이날 섬유·봉제업종 입주기업 48곳이 원부자재와 완제품 등 516t을 개성공단에서 반출했다고 밝혔다. 개성 공동취재단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공무원이 알려주는 성공 비결은…

    공무원이 알려주는 성공 비결은…

    한 공무원이 성공학 책을 써 눈길을 끈다. 경남 거창군의회 의회사무과에서 전문위원으로 근무하는 김성윤(44·6급)씨는 최근 ‘시간 속에 숨겨진 시대의 비밀’이라는 자기 계발서를 펴냈다. 김씨는 14일 “평소 책을 좋아해 시간 날 때마다 여러 분야의 책을 보면서 나름대로 생각하고 정리한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 생활에 도움을 주려고 이 책을 펴내게 됐다”고 발간 동기를 밝혔다. ‘성공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인생의 항법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모두 255쪽 분량이다. 성공하는 인생을 위해 필요한 기본 요인들인 가치관, 믿음, 원칙, 신념 등을 제시하고 인생을 초기·성장·완성·수면단계로 나눠 단계별로 위험요소와 성공하기 위한 대응책 등을 담고 있다. 김씨는 책에서 “세상의 흐름에는 각 단계가 있고 이 흐름에 따라 발생하는 각 단계는 정치·경제·사회·문화·행정·사업·상업·농업 등 모든 분야에서 발생한다”면서 “이 같은 흐름을 알아야 시대에 따라 알맞은 대응을 할 수 있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책에서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는 원리와 방법을 알려 주고 우리나라의 시대 흐름도 제시해 놓았다. 김씨는 “기존 자기 계발서들은 단편적인 분야를 다루고 있다. 성공의 전체적인 줄기를 알고 인생 시기별로 성공을 위한 대응전략을 세워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책을 썼다”고 말했다. 김씨는 업무 이외의 시간을 활용해 6개월 동안 원고를 집필했다. 김씨는 22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기획·경리 등 여러 부서를 거쳤다. 거창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한국 천주교회 창립 주역들 ‘성인’ 된다

    한국 천주교회 창립 주역들 ‘성인’ 된다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에 대한 시복이 거의 확정된 가운데 한국 교회 창립 주역 214위에 대한 교황청의 시복시성 추진 승인이 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교황청이 한국 평신도 순교자들에 대해 이례적으로 관심을 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만큼 천주교계가 한껏 고무돼 있다. 10일 천주교 주교회의에 따르면 교황청 시성성이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에 대한 시복 안건 등 2개 안건에 대해 지난 4월 26일 추진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한국천주교회에서 현재 추진 중인 시복 안건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를 포함해 모두 3건이며, 시복 추진 대상자는 총 339위로 늘었다. 이번 교황청 시성성이 승인한 시복시성 대상자는 조선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와 근·현대 신앙의 증인 81위.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이른바 ‘믿음의 초석’이 된 한국 천주교회 창설 주역들이 시복 대상에 포함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벽과 이승훈, 김범우, 권철신·일신 형제, 이존창 등이 명단에 들어 있다. ‘백서’ 사건으로 유명한 황사영과 그 ‘백서’ 발신자로 서명한 황심도 눈에 띈다. 대상자들은 한국교회 초기부터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100여년에 걸친 박해로 순교했지만 지난 1차 시복에서 빠진 이들이다. 여기에 해방 이후 공산 치하와 6·25전쟁 중 피랍과 행방불명 등의 이유로 순교 입증이 어려웠던 성직자와 수도자, 신학생, 평신도들도 시복 추진이 가능하게 됐다. 공산 치하에서 순교한 이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죽음을 은폐하고 유해도 유기한 정황이 인정됨에 따라 죽음이 최종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순교했다는 ‘윤리적 확신’이 있을 경우 시복을 추진할 수 있다는 교황청 시성성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이 같은 시복 추진 대상자 명단을 지난 5월 23일자 시성성 공문으로 통지받았으며 현재 이들에 대한 약전(짧은 전기) 작성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주교회의는 약전 작성을 마친 뒤 교황청에 보낼 계획이다. 교황청에서 이들 약전에 대해 ‘장애 없음’ 판결을 내리면 한국 천주교회 차원의 예비심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지난 3월 교황청 시성성 역사위원회 심사를 통과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에 대한 시복은 10월 신학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신학위원회를 통과하면 시성성 추기경들과 주교들로 구성된 전체회의를 거쳐 교황의 최종 승인을 받게 된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이르면 내년 가을 시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국내에서 시복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순교자 124위와 함께 시복 청원한 증거자 최양업 신부의 경우 포지시오(심문장) 작성이 마무리 단계에 있지만 시복까지 최소한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주교회의는 이와 관련, “교황청이 이례적으로 한국 순교자들을 배려해 기쁘다”면서도 “시복 추진의 진정한 의미는 복음을 더 잘 전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하) 참전 군인들 인터뷰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하) 참전 군인들 인터뷰

    ■윌리엄 웨버 ‘한국전 미군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 “참전 증인들 사라져가 안타까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생존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한국전쟁에 대해 가장 직접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우리가 모두 사라져 버리면 한국전쟁이 미국인의 의식에서 완전히 실종될 것만 같아 걱정입니다.” 인생 거의 전부가 ‘한국전쟁의 역사’인 노병(老兵)은 자신의 사후(死後)에 한국전쟁의 역사가 겪게 될 운명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이 만난 윌리엄 웨버(87·예비역 대령) ‘한국전 미군 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전 참전용사다. 해마다 6월 25일이 다가오면 그는 언론들의 1순위 인터뷰 대상이 된다.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한쪽 팔과 다리를 잃은 그의 외모 때문만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일에 대한 열성이 그를 특별하게 하고 있다. 그는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옆에 서 있는 19명의 미군 병사 조각상 가운데 하나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지난 5월에는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웨버 회장은 1943년 17살의 나이에 직업 군인으로 미 육군에 입대해 2차대전에 참전했다. 이어 1950년 8월 육군 187 공수 낙하산부대 소속 대위로 인천 상륙작전과 함께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서울 수복 후 그는 평양 등 북한 내 요충지 곳곳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여해 승전보를 울렸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중부전선까지 밀린 그는 1951년 1월 격전지 강원도 원주에서 북한군의 수류탄에 오른쪽 팔꿈치 아래와 오른쪽 무릎 아래를 잃고 말았다. 이 부상으로 그는 전선과 이별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북핵 문제 관련 세미나에 의족에 의지한 몸을 이끌고 나타난 그에게 ‘20대 젊은 나이에 소중한 팔다리를 잃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유감스럽지 않다. 한국전에서 정규군으로 복무한 것은 내게 무한한 영광”이라며 마치 젊은 현역 군인처럼 우렁차게 답했다. 정전 60주년을 맞는 소회를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 60년간 또 다른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전용사들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앞으로 15년 뒤에는 정전 75주년 기념식이 열린 텐데 그때는 극소수의 참전용사만 살아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우리 참전용사들끼리 하곤 한다. 왜냐면 지금 가장 어린 참전용사가 80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전쟁은 ‘알려지지 않은 전쟁’에서 ‘잊혀진 전쟁’이 돼 가고 있는데 앞으로 완전히 미국 역사에서 실종될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2차대전에 참전해 일본군과 싸울 때만 해도 한국과 중국, 일본 사람은 모두 똑같은 줄 알았지만 1950년 한국 땅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인은 일본인과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그런 한국인들을 위해 싸운 것은 더없이 가치 있는 일이자 영광, 특권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 정부가 참전용사들에게 충분히 보답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건 말할 필요도 없다. 진심을 다해 끊임없이 미국에 감사를 표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다시 한국전이 일어난다면 참전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당연히 참전할 것이다. 그건 물어볼 필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다 할 것이다. 바로 1950년에 나는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웨버 회장에게 한국전은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그는 미국에서 ‘한국전 알리기’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에 있는 한국전 기념비 옆에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들의 이름을 모두 새긴 ‘한국전 추모벽’ 건립을 위해 백방으로 뛰는 중이다. 2002년 참전 이후 5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이후 올해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한국행을 계획하고 있는 웨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원주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글 사진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중국인민지원군 출신 자빙수 전 中인민공안대 교수 “美의 침략 언론보도 믿고 참전” “한국전은 중국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다)로 표현한다. 이 말과 같이 한국전은 중국이 미국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북한을 도와 목숨 바쳐 싸운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남북이 분단됐는데 한국전쟁 정전일인 7월 27일이면 항미원조 승리 운운하며 자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국 인민지원군 출신의 자빙수(査秉樞·81) 전 중국인민공안대 교수는 매년 7월 27일을 ‘한반도정전기념일’로 고쳐 불러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일 베이징 무시디(木?地) 자택에서 만난 그는 “세월이 지나면서 언론 등을 통해 한국전쟁은 북침이 아닌 남침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하지만 중국 인민지원군은 미군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탓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자 전 교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49년 신중국 건국과 함께 자원 입대했다. 타이완을 수복해 통일을 이루려는 국가정책에 따라 인민해방군 25군 75사 소속으로 푸젠(福建)성 최전방에 배치됐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미군이 단둥(丹東) 변경을 폭격했다는 등 미군의 침략에 초점이 맞춰진 언론 보도로 미국이 타이완 국민당 정부를 도와 중국을 칠 것이란 위기감이 고조됐다. 부대 전환 배치를 신청해 한국전에 참여한 데는 이 같은 국내 분위기가 작용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로는 1952년 7월 13일부터 14일 동안 강원도 상감령 동북쪽 남대천에서 벌어진 ‘금성(城) 반격전’을 꼽았다. 중국 입장에서는 원래 북의 땅에 침입한 미군을 물리쳤다는 의미에서 이 전투를 반격전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 전투만 버텨 내면 미국과 정전협정을 체결해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고 회고했다. 미군을 상대로 중국 인민지원군 25만여명이 참가한 이 전투에서 그는 오른쪽 다리와 허리를 다쳤다. 그는 정전 이후에도 북한 재건 사업에 투입되며 1953년 10월부터 황해남도로 배치돼 1년간 고 유옥례씨 집에서 지냈다. 당시 14세이던 유씨의 딸 김영희로부터 조선인민군진군가, 조선국가, 아리랑, 봄노래, 샘물터의 노래, 푸른 하늘의 노래 등 27개의 북한 노래를 배웠다. 한국 노랫말을 중국어로 표기해 적어 둔 노래 연습장과 유씨 가족의 사진을 보며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한다. 영희씨와 주고받은 100여통의 편지도 간직하고 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은 탓에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두 나라 언어로 적어 가며 수십년간 소통의 끈을 이어 갔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오라버니’라는 문구 등 편지 내용 곳곳에 깊은 우의가 배어 있다. 문화대혁명 등의 시기를 제외하고 영희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줄곧 연락을 주고받았다. 의료품, 식료품, 의류 등을 북에 보내 주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참전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만약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남북은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외세의 개입 없이 남북이 자체적으로 통일하도록 돕는 것이 중국이 (한국에) 진 빚을 갚는 일”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 부회장 김완기씨 “조국의 전쟁 소식에 태극기 혈서 쓰고 참전” 1950년 6월 25일. 22살의 청년은 아침을 먹으며 라디오를 듣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소식을 접한다. 현해탄 건너 조국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들이대게 됐나”라는 참담한 심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청년은 개전 3일 만에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전을 결심한다. 그후 63년이 속절없이 흘렀고, 청년의 얼굴엔 주름살이 내려 앉았다. 재일학도의용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김완기(85)씨를 지난 3일 만났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12살 때인 1940년 공부를 하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큰아버지가 있는 구마모토현으로 갔다. 대학에 진학해 엘리트가 되라는 부모님의 바람과 달리 광복 이후 진학을 포기하고 민단 소속으로 조직 활동에 앞장섰다. 전쟁이 터지자 김씨를 포함한 642명의 재일학도의용군은 태극기에 혈서로 참전 의사를 밝히고 조국으로 향했다. 미군 부대에 배치돼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김씨는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고막이 터져 육군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함께 배를 타고 참전한 친구들을 그곳에서 만났는데 동상 때문에 손발이 잘린 전우들이 수두룩했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미군의 순환배치 방침에 따라 1·4 후퇴 즈음인 1951년 1월 일본으로 복귀한 김씨는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다”며 다시 입대를 자원했다. 100여명이 지원해 58명이 국군에 재입대하게 됐고, 김씨는 1952년 6월까지 전선에 머물렀다. 이후 김씨는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일본 정부가 “허락 없이 참전했고 일본 거주도 불확실하다”며 입국을 막았다. 결국 부산 소림사에서 재일학도의용대(현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의 전신)를 만든 뒤 정전 후인 1953년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탑골공원 뒤편에 사무실을 꾸렸다. 그곳을 본적으로 등록하고 1961년까지는 수용대기소에서 생활했다. 국내 안착도 일본 귀환도 아닌 애매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 사이 일본에 있던 김씨의 가족은 전쟁통에 모두 유명을 달리했고, 공주에 남아 있는 가족들도 정전 이후에야 겨우 연락이 닿았다. 현재 동지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씨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국민들이 학도의용군의 존재를 모르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부는 종전 후 10년 뒤인 1963년에야 일본에 안치돼 있던 전사자 53명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고, 1968년 재일학도의용군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글 사진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길섶에서] 운칠복삼(運七福三)/정기홍 논설위원

    시골마을을 지나다 보면 더러 대문가에 서 있는 음나무를 보게 된다. 가시가 삐죽삐죽한 이 나무를 왜 굳이 이웃이 드나드는 대문 옆에 심었을까 싶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음나무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과 잡귀를 막아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옛날엔 가지를 잘라 대문에 걸어놓기도 했다. 삼재(三災)란 것도 있다. 사람에게 액운(厄運)이 들어와 3년간 머문다는 뜻인데, ‘삼재막이’라 하여 정초에 머리 셋 달린 매나 호랑이를 그려 문 위에 붙이고 매사 조심했다. 복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이다. 우리 조상들은 복과 운을 사람의 힘을 초월한 천운(天運)에 달린 것으로 여겼다. 이 같은 기복신앙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져 우리네 삶의 한 모퉁이를 채워가고 있다. 출근길에 기어이 ‘오늘의 운수’를 봐야 직성이 풀리고, 퇴근길에 산 복권이 ‘한낮의 꿈’이 아니길 바라며 지내는 식이다. 그제 미국에서 발생한 여객기 사고에서 기사회생한 탑승객들을 보며 운칠복삼(運七福三)이란 시중의 우스개 말을 떠올려 본다. 이들은 정녕 운과 복이 있는 것일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영화 리뷰] ‘마스터’

    [영화 리뷰] ‘마스터’

    바다에 포말이 부서진다. 군함이 지나간 흔적. ‘마스터’(The Master·11일 개봉)의 첫 장면은 이 영화가 바다 위를 떠돌 듯 삶에서 표류하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불안하고 공허한, 그래서 무엇이든 붙잡고 싶은 현대인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프레디(호아킨 피닉스)는 제2차 세계대전 뒤 정신적 외상을 입고 방황하는 남자다. 백화점의 사진사로 취직하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고객과 싸우고 쫓겨나듯 일을 그만둔다. 애인으로 보이는 여자와의 관계는 텅 비어 있다. 그런 그를 구원하는 것은 심리 연구단체 ‘코즈’의 랭카스터(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다. 스스로를 “작가이자 의사이고 핵물리학자이자 이론 철학자”라고 소개하는 랭카스터는 코즈의 ‘마스터’라 불리는 지도자다. 갈 곳 잃은 프레디는 우연히 진리(Aletheia)라는 이름을 가진 랭카스터의 고급 유람선에 흘러든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묘하게 서로에게 끌린다. 프레디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랭카스터에게 조금씩 마음을 의지하고, 랭카스터 역시 자신의 이론을 연구하기 위해 프레디를 가까이 둔다. ‘마스터’는 1954년 창시된 신흥종교 ‘사이언톨로지’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다. 사이언톨로지의 창시자 론 허버드는 랭카스터의 모델이 됐다. 그러나 “사이언톨로지라는 단어 하나로 이 영화의 모든 걸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감독의 말처럼 사이언톨로지는 영화를 이해하는 작은 실마리에 불과하다. 보다 본질적인 것은 삶의 의미를 묻는 인간이 믿음을 찾고, 다시 잃고, 방황하는 과정이다. “스승과 제자는 폴 토머스 앤더슨에게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다”(이용철 영화평론가)는 말처럼 이 과정을 조각하는 것은 데칼코마니 같은 프레디와 랭카스터다. ‘마스터’ 역시 불완전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프레디를 랭카스터는 다시 바다로 밀어낸다. “가 보게. 발 붙일 곳 하나 없는 망망대해로. 그 어떤 마스터도 섬기지 않고 사는 방법을 발견한다면 알려 주겠나. 아마도 자네가 최초의 인물일 테니까.” ‘매그놀리아’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펀치 드렁크 러브’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폴 토머스 앤더슨은 미국의 젊은 거장으로 꼽힌다. 인간의 황폐한 영혼과 불안한 믿음을 완벽하게 재현한 두 배우는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시론] 뮤지컬보다 재미있는 창극을 위하여/안호상 국립극장장

    [시론] 뮤지컬보다 재미있는 창극을 위하여/안호상 국립극장장

    새 정부가 문화융성을 4대 국정기조로 선포하면서 현재 약 5조원인 문화재정(국가재정의 1.47%)을 2017년까지 7조 8000억원, 즉 국가재정의 2%로 늘리겠다고 한다. 문화계 종사자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소망하던 일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유례 없는 세계적 호황을 누리며 문화의 파급효과에 대한 체감지수를 높이고 있으니 ‘문화융성’에 방점을 찍은 것은 무척 적절해 보인다. 반가운 소식에 대한 흥분과 기쁨은 잠시 접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얼마 전 유럽 출장길에서 만난 한 여성을 잊을 수가 없다. 독일에서 폴란드로 넘어가는 완행기차 안. 금발의 한 젊은 여성이 옆자리에 앉는데, 손목에 ‘믿음’이라는 한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폴란드에 오래 거주한 한국문화원 여직원의 말로는 요새 K팝의 인기 덕분에 그쪽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글 문신이 소위 ‘쿨’한 것으로 여겨져 유행이라고 한다. 우리도 서양문화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 가수 엘튼 존, 문워크의 마이클 잭슨, 지금도 화제의 중심인 마돈나, 섹시 디바 머라이어 캐리 등은 1970~1990년대 한국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그들의 음반은 구입 목록 1위였고, 운 좋게 공연 비디오라도 구하는 날에는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감상할 정도였다. 서양 대중문화에 대한 이러한 뜨거운 관심은 이후 발레나 오페라, 혹은 뮤지컬 등 소위 고급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확대되었다. 튀튀를 입은 발레리나가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오페라를 감상하는 게 교양인의 필수코스처럼 여겨졌다. 그 나라에서는 상업적인 장르에 속하는 뮤지컬이 우리나라에서 고급 예술로 간주되는 분위기도 분명 존재했다. 나는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지금의 열광이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 고급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지난 6월 14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런던 공연은 이를 확인시켜 주었다. 국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인 국립국악관현악단이 해외문화홍보원이 주최하는 런던한국음악축제의 개막공연을 맡아 런던의 자부심인 바비칸센터 무대에 올랐다. 백발의 유럽인 약 1500명이 공연장을 찾았는데, 마지막 연주가 끝나자 객석은 정말 뜨겁게 달아올랐다. 두 팔을 어깨 위로 들며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가 하면, 기립한 관객도 많았다. 덕분에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두 번이나 앙코르를 해야 했다. 한국에 대한 일종의 ‘동경’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K팝과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등 한국의 대중문화는 이미 쉽게 무너지지 않을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었다. 이제 그 다음을 원하는 세계인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영국은 뮤지컬, 중국은 경극, 일본은 가부키의 나라다. 우리도 한국 하면 떠오르는 창극·판소리를 육성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마이크 없이 공연할 수 있는 국악, 창극 전용공연장도 하나 없다. 이런 인프라 구축은 기본이고 예술가 양성, 관객 저변 확대 등 우리 문화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본부터 다시 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먼저 우리의 고급문화를 알고 즐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음악 시간에 서양음악만 접해온 기성세대가 국악을 사랑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지 모른다. 이런 문화적 비극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전통예술을 접하게 해야 한다. 전문가를 양성해 교과과정 중 어떻게 하면 전통예술을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나 연구해야 한다. 요즘 초등학교에서 단소나 장구 등을 가르친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단순한 연주를 넘어서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통예술에 대한 시각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ARF, 北주장 빠진 의장성명 채택

    ARF, 北주장 빠진 의장성명 채택

    2일 막을 내린 아시아·태평양 27개국 안보 회의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초안에 제기됐던 북한의 주장이 삭제되는 의장성명이 채택됐다. 북한은 기자회견과 의장성명 초안 등에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와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 등을 주장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올해 ARF 의장국인 브루나이가 이날 밤 최종 채택한 의장성명은 북핵에 대해 “대부분의 장관들은 (북한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의무와 2005년 9·19 공동성명의 합의 사항을 완전히 준수할 것을 독려했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장관들은 한반도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지지함을 재차 표명했다”면서 “대부분의 장관들은 모든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의 완전한 이행 의지도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장관들은 관련 당사국들 사이에 믿음과 신뢰의 환경 조성으로 이어질 평화적 대화에 참여하는 모든 가능성을 모색해 나갈 것을 독려했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이와함께 성명은 최근 불거진 탈북자 강제 북송 사태를 겨냥해 “국제사회의 (북한 내) 인도적 우려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는 표현도 들어갔다. 북한은 당초 의장성명 초안에서 “(미국의) 적대정책이 핵 문제와 한반도 지역의 긴장을 악화시키는 근원으로 즉시 이를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던 지난해 캄보디아 ARF에서도 북한 입장이 의장성명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북한은 2년 연속 ARF에서 고립감을 맛보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ARF에서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 및 9·19 성명 준수 등을 촉구했고,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은 북한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박의춘 북한 외무상은 북 대표단 대변인인 최명남 외무성 부국장이 대신한 기자회견을 통해 전제 조건없는 북·미고위급 회담 수용을 촉구했다. 박 외무상은 “조선반도 정세가 악화되고 있는 근저에는 미국의 뿌리 깊은 대조선 적대정책이 깔려 있다”고 맹비난했다. 반다르스리브가완(브루나이)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經熱政’의 양국관계 ‘經熱政熱’로…미래 협력의 기틀 마련

    ‘經熱政’의 양국관계 ‘經熱政熱’로…미래 협력의 기틀 마련

    박근혜 대통령의 3박 4일간의 중국 국빈 방문은 기존 한·중 관계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은 박근혜 정부 5년을 넘어 새로운 20년을 향한 양국 간 중장기 협력의 틀을 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대통령이 이번 방중 슬로건을 ‘마음과 믿음을 쌓아가는 여정’이라는 뜻의 ‘심신지려’(心信之旅)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국적 차원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내실화’라는 목표에 한층 다가서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수사적 선언에 그쳤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의 세부 이행계획(액션플랜)이 담긴 부속서까지 채택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간 대화 체제를 신설하는 등 고위급 안보대화 정례화에 합의한 것도 큰 성과다. 그동안 중국이 이처럼 최고위급 외교·안보 대화채널을 구축한 나라는 사실상 미국이 유일했다. 그만큼 한국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다. 국제적 책임을 강조하는 중국의 신형 대국외교와 일방적으로 북한을 감싸지 않겠다는 대북정책 변화 등이 한·중 간 안보협력 확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경제 분야의 교류는 활발했지만 정치·안보 분야는 냉랭했던 ‘경열정랭’(經熱政)의 한·중 관계가 ‘경열정열’(經熱政熱)로 전환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등 박 대통령의 핵심 대북 정책 기조가 국제적 공인을 받았다는 것도 의미가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을 비롯해 리커창(李克强) 총리,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까지 중국의 정치서열 1∼3위인 핵심 인사를 모두 만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확보했다. 미국에 이어 중국의 지지를 확보한 것은 향후 박 대통령이 자신감을 갖고 대북정책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측면이 강하다. 다만 공동선언에 애초 우리 정부의 목표였던 ‘북핵 불용’이란 표현 대신 중국 측이 강조한 ‘한반도 비핵화’를 수용했다. 북한을 코너에 몰지 않겠다는 중국의 대북 정책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중 간의 온도 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 간의 신뢰 강화도 주목할 만하다. 한·중 관계 업그레이드의 초석이 될 전망이다. 실제 시 주석은 박 대통령을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로 지칭하며 국빈만찬은 물론 이례적인 특별오찬까지 마련하는 등 박 대통령과 7시간 30분가량 자리를 함께하는 ‘파격적 예우’를 아끼지 않았다. 관행과 달리 일본보다 중국을 먼저 방문하는 등 ‘중국 중시’ 외교에 나선 박 대통령에 대한 화답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진전 노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나 통상, 금융 등 경제 분야에서 구체적 협력 방안을 마련한 것도 성과로 꼽힌다. 특히 양국은 한·중 인문교류 공동위원회를 신설하고 중국 어선의 서해상 불법 조업 및 동북공정 문제 해결을 위한 ‘틀’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베이징·시안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15년 동안 다섯 번 연임 신화 쓴 박종원 코리안리 부회장의 경영 철학

    [주말 인사이드] 15년 동안 다섯 번 연임 신화 쓴 박종원 코리안리 부회장의 경영 철학

    “내 애인(코리안리)은 앞으로도 잘될 거야.” 코리안리의 사장으로 ‘15년 5연임’의 신화를 쓰고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 박종원(69) 부회장은 회사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박 부회장은 코리안리를 ‘야생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정원’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에 15년간 모든 열정과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막상 물러나고 보니 그것은 큰 짐이었다. 28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사무실에서 만난 박 부회장은 홀가분해 보였다. 박 부회장은 이른바 ‘성공한 낙하산’으로 불린다. 관료 출신으로 이곳에 와 무너지기 직전의 회사를 아시아 1위, 세계 10위의 재보험사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대규모 공공기관장 물갈이를 앞두고 불거진 관치 논란에 대해 박 부회장은 과거와 달리 시장이 민간 주도형으로 바뀌어서 관(官)이 개입할 여지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공직을 떠났거나 떠날 후배들에게는 을(乙)의 입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도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타협할 대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은 큰 틀에서 정책을 끈질기게 추진하는 훈련이 돼 있으므로 겸허한 자세로 임할 경우 낙하산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을 만큼 훌륭하게 경영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1998년 7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공보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 당시 대한재보험 사장이 됐다. 박 부회장이 사무관 시절 보험을 담당했던 것이 인연이 됐다. 외환 위기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대한재보험은 1963년 정부 소유의 공사로 설립됐고 1978년 민영화됐다. 외환 위기 당시에도 최대 주주는 지금과 같이 원혁희(87) 회장 일가로 10.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사장 제안을 받기 전 원 회장과 박 부회장 간의 개인적 인연은 없었다. 1998년 7월 취임 당시 대한재보험은 파산 직전이었다. 첫해 2800억원대의 당기 순손실을 볼 판이었다. 회계연도 결산을 앞두고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8개월뿐이었다. 혹독한 구조조정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는 취임사에서 “작금의 위기를 헤쳐 나갈 주체는 바로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자신”이라면서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고 앞으로 전진할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서 있다가 최후를 맞이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닥쳐올 전쟁과 같은 고통과 시련에 대응해 전의에 불타는 야전 사령관과 같은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고도 했다. 이른바 ‘야성(野性) 경영’의 시작이었다. 취임 두 달 만에 282명이었던 임직원의 3분의1(87명)이 회사를 떠났다. 박 부회장은 “사람이 암에 걸리면 암 덩어리를 찾아내 떼어내야 살 수 있듯이 회사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지금도 가슴 아픈 경험이었다. 박 부회장은 구조조정 규모가 워낙 커 조직 내 동요가 컸지만 중심을 잡아준 노조위원장이 있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이호성 부장은 조직과 회사를 살려야 한다며 구조조정안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1999년 3월 끝난 1998년 회계연도의 당기 순손실은 20억원으로, 예상치의 140분의1로 줄어들었다. 외환 위기 전 많은 기업이 그랬듯이 코리안리도 방만 경영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구조조정 이전 코리안리의 매출은 1조 1700억원에 세후 당기순익이 37억원으로 1인당 매출 41억 5000만원, 1인당 순익 1000만원이었다. 지금은 1인당 매출 223억 1000만원에 1인당 순익 5억 3000만원이다. 1인당 매출은 5.4배, 1인당 순익은 53배로 늘어났다. 구조조정 이후 조직 효율화와 인력 양성에 모든 것을 쏟은 결과다. 물론 순항만 한 것은 아니다. 회사가 안착하기 시작하자 무사안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살아났다는 안도감에 “이제는 쉬어 가자”는 목소리가 조직 내에서 확산됐다. 2003년 일본의 재보험사를 제치고 처음으로 아시아 1위로 등극하자 자신감은 점차 자만심으로 변해 갔다. 국내 금융사 가운데 아시아 1위에 오른 회사가 없다는 점에서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기도 했지만 시장은 이를 허용할 상황이 아니었다. 박 부회장은 “미끄럼틀을 타고 올라가다가 중간에 쉬면 아래로 내려온다”며 전과 같은 업무 강도를 주문했다. 그리고 직원들의 야성을 깨우쳐야겠다는 생각에 고민하다 2004년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다. 임직원이 3개 팀으로 나뉘어 그해 지리산을 시작으로 2005년 덕유산, 2006년 소백산 등을 거쳐 2012년 태백산까지 올랐다. 박 부회장은 늘 첫 번째 팀에 속했다. 리더는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2박 3일간 40㎞를 행진하는 것은 그로서도 쉽지 않았다. 박 부회장에게 사람들은 왜 산에 가느냐고 묻는다. 그는 대답한다. “원래 산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해 산에 올랐을 뿐이지요.” 그의 야성을 더욱 일깨운 사건도 있었다. 대한재보험에서 2002년 코리안리로 사명을 바꾼 뒤 박 부회장은 해외 매출 비중을 늘리려 했다. 베트남 등 외국 각지를 다녔지만 문전 박대만 당했다. 코리안리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로부터 받은 신용등급이 BBB-라 거래 적격업체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박 부회장은 보험중개회사인 에이온의 제프리 브롬리 부회장에게 이 고민을 털어놨다. 돌아온 답은 “S&P를 찾아가 봤느냐”였다. 박 부회장은 머리에 뭔가를 맞은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2006년 9월 미국 뉴욕 S&P 본사를 찾아갔다. S&P는 “코리안리가 성장성은 있지만 담보력이 부족해 신용등급을 올릴 수 없다”고 답했다. 박 부회장은 같이 간 리스크 담당 팀장과 함께 담보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담보력에 맞춰 어떻게 위험 관리를 하는지가 중요하다며 조목조목 따졌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코리안리 신용등급은 A-로 상향됐다. 그는 ‘15년 임기 중 가장 기쁜 날’이라고 했다. 신용등급 상향은 코리안리가 세계적인 보험사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3800만 달러였던 해외 매출은 현재 12억 달러로 코리안리 전체 매출액의 22%를 차지한다. 국내 금융사 중 가장 높은 해외 매출 비중이다. 이를 2020년까지 50%로 높이겠다는 것이 회사의 목표다. 박 부회장의 성공에는 원 회장의 완벽한 믿음도 큰 도움이 됐다. 박 부회장은 “인사, 조직 관리, 영업 등 모든 분야에 있어 전권을 줬기 때문에 한 번도 부딪쳐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원 회장은 박 부회장의 경영 실적을 보면서 자사주를 꾸준히 매입해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20.21% 지분을 가지고 있다. 15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박 부회장은 당분간 푹 쉬고 난 뒤 무료 경영컨설팅에 나설 계획이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뒤 겪는 애로와 관련해 집중적으로 상담해 줄 예정이다. “CEO는 올라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조직 내에 숨어 있는 사람이 없도록 모든 사람에게 역할을 주고 조직이 느슨해지면 긴장도 줘야 합니다. 좋은 말만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책임진 회사에 목숨을 걸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CEO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박종원 부회장 프로필 1944년 경기 화성 출생 1963년 숭실고 졸업 1971년 연세대 법학과 졸업 1973년 제14회 행정고시 합격 1989년 재무부 결산관리과장 1994년 재정경제원 총무과장 1997년 12월 재정경제원 공보관 1998년 7월 대한재보험 사장 2002년 6월 코리안리 사장(사명 변경) 2013년 6월 코리안리 부회장
  • [서울광장] 그래서 무엇을 얻었나/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그래서 무엇을 얻었나/손성진 수석논설위원

    남북 정상 간 회의록이 느닷없이 공개된 지 며칠이 흘렀다. 그 사이 여야, 좌우는 원수처럼 갈라져서 피 터지게 싸웠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 꼬리 자른 생선을 온마리라고 우겼고 누구는 콩을 콩이라 하지 않고 팥이라며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툭하면 나타나는 꼴사나운 모습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래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협상이란 각자의 목적을 가진 당사자들이 의사소통을 통해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다. 하나라도 유리한 것을 얻어내기 위해 다양한 책략들이 동원된다. 그래서 특히 정치외교적 협상에서는 민감한 내용이 있기 마련이어서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다. 과정의 공개는 상호 신뢰를 깨어 다음 협상 테이블을 치워버린다. 협상 과정을 공개하는 행태는 세계에 전례가 거의 없다. 있다면 북한뿐이다. 실례를 우리는 불과 보름 전 남북당국회담에서 봤다. 북한은 회담 수석대표의 격을 놓고 옥신각신했던 협상 내용을 공개해 버렸다. 북한은 2011년 6월에도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관련해 남북의 비밀접촉을 폭로한 적이 있다. “양보 좀 해 달라고 애걸했다”, “돈 봉투를 거리낌 없이 내놓고 유혹하려 꾀하다가 망신을 당했다”고 까발리지 않았던가. 그랬던 북한이 이번 일을 보고는 예상대로 ‘최고 존엄’의 대화를 공개했다고 맹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종북을 내들고 문제시하려 든다면 역대 괴뢰 당국자치고 그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협박 같은 말을 했다. 북한의 김정일, 김정은이 아니라 어느 나라 정상이라도 회담 내용이 여과 없이 공개되는 것을 좋게 받아들일 리 없다. 비밀을 지켜 줄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렸다고 보는 까닭이다. 당시의 남북 정상이 다 사망했지만, 그것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용이 어떻다고 하기에 앞서 공개한 것 자체는 잘못이다. 한마디로 득이 없다. 남북 관계는 더욱 경색될 것이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회의록에 담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 다수가 보기에 부적절한 면이 있다. “북방한계선(NLL)이라는 것이 무슨 괴물처럼 생겨가지고…”라든가 “나는 북측의 대변인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라는 말은, 누구라도 곱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북한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발언 또한 남북의 상황을 고려할 때 잘한 것이 아니다. 김정일에게 저자세를 보인 것에 대해서도 국민은 실망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미국을 제국주의로 보는 시각도 사람에 따라서는 달리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목적이 왠지 ‘고자세’를 보이는 김정일에게서 뭔가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는 데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심정으로 김정일의 비위를 맞추려고 국민이 알면 큰 욕을 먹을 표현을 해가면서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이나 김정일이나 이 회의록이 이렇게 일찍 공개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공개를 염두에 두었더라면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회담의 성과물도 나오지 않았을 듯싶다. 한쪽은 이것이 NLL 포기 발언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다른 쪽은 “(NLL이)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뒷부분만을 내세워 결코 NLL을 포기한다고 하지 않았다고 되받아친다. 모두가 외눈박이 같다. 한눈만 뜨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물 위에 흔적은 남지 않아도’ NLL은 여전히 존재한다. 북한도 자주 도발은 했지만 지난 60년 동안 그런대로 지켜 왔다.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아는 것이다. 이 마당에 사망한 전(前) 대통령이 왜 그랬냐고 따져 봐야 실익이 없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국정원의 난데없는 도발임을 상식 있는 국민은 안다. 그것을 당리당략에 이용하려 드는 것은 더 나쁘다. 그러면서 통합을 외쳐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sonsj@seoul.co.kr
  • “남자는 낯선女에, 여자는 익숙한男에 매력 느껴”

    “남자는 낯선女에, 여자는 익숙한男에 매력 느껴”

    애인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한 눈’ 파는 것은 ‘본능’인 것 같다. 남자는 익숙한 여자보다 낯선 여자에 매력을 느끼고 여자는 반대로 익숙한 남자에 매력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영국 스털링 대학 심리학과 안소니 리틀 박사 연구팀은 상대 성(性)에게 매력을 느끼는 남녀 차이를 담은 논문을 학술지 ‘성적 행동의 연구 기록’(the journal Archives of Sexual Behaviour)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의 이같은 결과는 피실험자를 상대로 남녀의 사진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선호하는 얼굴을 선택한 후 그 비율을 조사해 얻어졌다. 남자의 경우 새로운 여자 얼굴 사진이 등장할 때 마다 선호도의 비율이 올라간 반면 여자는 그 반대로 나타났기 때문 . 연구팀은 이같은 남녀 차이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풀었다. 곧 남자는 유전적으로 야생의 동물처럼 최대한 많은 여성과 관계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반대로 여성은 자식을 부양해 줄 믿음직한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것. 따라서 남성은 본능적으로 새로운 여성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여성은 믿음직한 남자만 바라본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리틀 박사는 “피실험자 중 남자들은 한번 본 여자 사진을 다시 보여주면 선호도가 떨어졌다” 면서 “일종의 ‘쿨리지 효과’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쿨리지 효과’(Coolidge effect)는 수컷이 동일한 암컷과 계속 교미를 하면 결국은 지치게 되지만 다른 암컷을 만나면 곧바로 힘을 내서 교미를 할 수 있게 되는 효과를 의미한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박대통령 訪中 슬로건은 ‘심신지려’… 中서열 1~3위 권력핵심 모두 만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국빈 방문 중 최고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을 비롯해 제2인자인 리커창(李克强) 총리, 공산당 서열 3위인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 등 중국 권력 핵심 3인과 연쇄 회동한다. 박 대통령은 오는 27일 베이징에서 시 주석과 정상회담 및 국빈 만찬을 갖고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등을 주제로 회담한 뒤 양국 관계의 미래 비전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또 방중 둘째날인 28일에는 리 총리와의 회담 및 만찬, 장 상무위원장과의 회담 등을 통해 양국 간 실질협력 관계의 발전 방안과 주요 현안 및 상호 관심사, 교류 증진 방안 등을 논의한다. 청와대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25일 춘추관에서 박 대통령 방중 세부일정을 발표했다. 주 수석은 “수교 이후 지난 20년간 이룩한 양국 관계의 비약적인 발전의 기초 위에서 향후 20년 이상 한·중 관계의 새로운 미래 비전을 설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박 대통령 방중 의미를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박 대통령의 방중 슬로건은 마음과 믿음을 쌓아가는 여정이라는 뜻의 ‘심신지려’(心信之旅)로 정해졌다. 이번 방중을 통해 수교 21년을 맞은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욱 내실있게 발전시키는 동시에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미다. 주 수석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문제 해결 등 대북정책에 관한 공조를 강화해 우리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및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추진에 있어 양국 간 이해와 협력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29일에는 ‘새로운 20년을 향한 한·중 양국의 신뢰의 여정’을 주제로 베이징의 한 대학에서 연설한 뒤 중국 서부 산시(陝西)성의 천년고도 시안(西安)을 찾아 현지 우리 기업 및 문화유적을 시찰하는 등의 일정을 소화하고 30일 귀국한다. 박 대통령의 방중 공식 수행원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권영세 주중대사,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이정현 홍보수석, 조원동 경제수석, 조태용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김형진 외교비서관, 최종현 외교부 의전장, 박준용 외교부 동북아국장 등 10명으로 확정됐다. 한편 청와대는 방미 때의 ‘불상사’ 재발을 막기 위해 철저한 수행단 단속에 나섰다. 이날 방중 수행단 50여명은 민정수석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주관한 사전 교육을 받았다. 이날 교육은 중국 현지에서의 품위 유지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기간 발생한 ‘윤창중 사건’ 여파로 보인다. 청와대는 사전 교육과는 별도로 음주금지는 물론 발마사지 등 풍속업소 출입금지 등의 내용이 담긴 방중 지침서도 배포했다.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를 수행단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韓·中 정부 교류·안보 대화체제 논의 기대

    韓·中 정부 교류·안보 대화체제 논의 기대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은 중·한 양국 지도자 간 전략적 소통과 공조를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긴밀한 양자관계 구축은 물론 동북아 정세의 안정을 넘어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 외교부 산하 중국인민외교학회 양원창(楊文昌) 회장은 23일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은 박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중국인민외교학회는 1949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가 건국 수립과 함께 창설한 중국 최초 민간 외교 기구이며 양 회장은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 출신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박 대통령 방중에 대한 중국의 기대는. -중·한 지도자 모두 취임 초기에 만나는 것은 양국 간 우호 관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양국 지도자 간 전략적 소통이 강화되면 동북아 정세를 안정시킬 수 있다. 중국은 박 대통령 재임 기간 중·한 관계를 한층 발전시키길 바란다. →한·중 정상회담의 예상 논의 내용은. -이번 방중을 계기로 두 나라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가 전면적으로 심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양국 지도자 간 전략적 소통 강화는 물론 외교 경제 금융 안전 등 정부 각 부문의 고위급 상시 교류 창구와 지역 및 국제 안보 문제 해결을 위한 상시 대화 체제 설립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두 지도자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표명하고 이와 관련된 공동성명과 액션플랜 강령도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위한 구체적 논의와 인문 분야 교류 강화도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에 대한 중국 내 평가는. -박 대통령은 중국의 라오펑여우(朋友·오랜 친구)다. 중국엔 박 대통령의 팬이 많다. 박 대통령이 남북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하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주창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중국은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작한 새마을운동이 중국의 농촌 건설에 귀감이 될 것으로 보고 깊은 관심을 가져 왔다. 개인적으로도 성남에 있는 새마을운동 기념관을 참관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중국이 보는 북핵 해결 로드맵은. -북한이 단박에 핵포기를 선언하기는 어렵다. 북한이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중지하고, 이어 핵시설을 국제사회에 공개한 뒤 나아가 핵을 완전히 포기하는 점진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대화를 통해 달성되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 없이도 국가의 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관련국들이 협력하는 게 관건이다. →한·미·일은 대화에 앞서 비핵화 선행 조치를 요구했는데. -우리는 미국이 북한에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되 동시에 대화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화가 시작되어야 비핵화 조치가 이뤄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만큼 비핵화 선행 조치보다 대화가 먼저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발길 닿지 않은 中 메이리설산의 비경

    발길 닿지 않은 中 메이리설산의 비경

    중국 윈난성(雲南省)의 최고봉, 메이리(梅裏)설산. 히말라야산맥의 한 자락인 해발 6740m의 메이리설산은 티베트 불교 성산(聖山) 가운데 하나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간에 의해 정복된 적이 없는 험준한 설산이다. 이 경이로운 산을 오는 23일 오전 7시 40분 KBS 2TV ‘영상앨범 산’에서 굽어볼 수 있다. 산악회원 출연자들이 순백의 만년설과 신비로운 빛깔의 빙하 호수, 울창한 원시림의 싱그러움 등 다채로운 매력으로 가득한 메이리설산 트레킹에 나선다. 일행의 산행은 메이리설산 산자락에 자리한 작은 시골 마을 상위벙(上雨崩)에서 시작된다. 산 바로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이 마을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평화로움과 설산의 풍경이 어우러져 ‘세외도원’(世外桃源)이라고도 불린다. 메이리설산 트레킹의 관문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빙후(?湖)로 향하는 길에는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이 있다. 비가 내려 운무와 안개로 가득한 길은 산이 아닌 하늘 속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신비롭다. 베이스캠프인 샤오눙다번잉(笑農大本營)에서 한 시간 정도를 걸어 닿은 빙후. 갈라진 얼음 계곡 사이로 만년설의 신비로움이 가득한 이 호수를 두고 사람들은 메이리설산의 주봉인 카와거보(喀瓦格博) 신의 생명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만큼이나 찬란한 풍경이 일행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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