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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뢰받는 군을 위하여] 진퇴양난 한국형전투기사업

    [신뢰받는 군을 위하여] 진퇴양난 한국형전투기사업

    “한국형전투기(KFX) 사업과 관련해 (미국이 이전을 거부한) 4개 핵심 기술 말고 나머지 21개 기술은 당연히 이전받는다고 알았잖아요.”(새정치민주연합 백군기 의원) “제가 단언적으로 말씀드린 점은 잘못했습니다. 미국 측에서 한국이 요구한 것이 광범위하니 디테일하게 협의해서 결정하자고 해 저도 당황했습니다.”(장명진 방위사업청장) “그러면 미측에서 기술 이전해 주겠다고 했으면서 수출 승인 안 해 준다는 건 계약 위반 아닌가요?”(백 의원) “아직 계약이 돼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사청과 록히드마틴이 21개 항목에 대해 합의각서(MOA)를 체결했고, 이에 따라 21개 항목에 대한 기술지원협정서(TAA)를 미국 정부에 제출한 뒤 수출 승인을 받게 돼 있습니다. MOA에는 21개 기술에 대해 ‘미 정부의 기술 이전 정책이나 관련 법률에 따라서 승인하에 제공한다’고 돼 있습니다. 다만 4개 핵심 기술은 애초에 미 정부 정책상 제공이 어렵다고 해서 기술 이전 안 해 줘도 페널티(벌금)를 물릴 수 없다는 점이 21개 기술과 다른 점입니다.”(방사청 실무자) “그러면 미국에서 21개 기술 가운데 일부 세부 항목에 대해 시비를 걸어 페널티만 물고 기술 이전 안 할 수도 있겠네요?”(백 의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한 기술을 최대한 받도록 협의해 나가겠다는 겁니다.”(장 청장) 지난달 25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의 한 장면은 미국의 기술 이전 무산 가능성이 대두되자 진퇴양난에 빠진 KFX 사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방사청은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미국 정부가 다기능위상배열(AESA)레이더 체계 통합 등 KFX 개발에 필요한 4개 핵심 기술 이전을 거부한 사실이 드러나자 미국의 수출 승인을 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머지 21가지 기술은 11월까지 이전받을 수 있다고 호도했지만 결국 거짓으로 드러났다. 개발비가 8조 5000억원, 양산 비용이 9조 6000억원 넘게 들어가는 KFX 사업이 실패하면 2025년 이후 노후화된 F4, F5 전투기를 대체할 국산 전투기 120대를 개발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에서 전력 공백이 우려된다. 하지만 위기는 군 당국이 차기전투기(FX)를 구매하고 반대급부인 절충교역을 통해 KFX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연계 전략을 세웠을 때부터 예고됐다. 전문성이 떨어지면서도 과욕만 부린 군의 무능이 빚은 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KFX 기술 이전을 둘러싼 논란은 2013년 FX 사업 기종 결정 당시로 돌아간다.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주축이 된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가장 싼 가격을 제시한 보잉의 F15SE 60대 대신 스텔스 기능이 우수한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 전투기 40대를 도입하기로 한다. 여기에는 ‘가장 좋은 무기를 사 달라’는 전임 공군참모총장들의 집단적 요구도 영향을 미쳤다. 방사청은 이에 따라 지난해 7조 3418억원을 들여 F35 40대를 들여오기로 하고 대신 록히드마틴으로부터 필요한 기술 21개 항목을 이전받아 KFX 개발을 달성하겠다고 천명했다. 방사청은 나머지 4개 핵심 기술도 협상을 통해 이전받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KFX를 고려하지 않은 순수 군사 전략적 측면에서만 보면 북한 미사일 기지를 타격할 FX 기종으로 F35를 도입하기로 한 결정은 타당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F35는 미국 정부가 거래의 주체가 되는 대외군사판매(FMS) 제도에 묶여 있어 기술을 이전받기 위해서는 미 정부가 이를 승인할 것인지가 중요했다. 하지만 방사청은 F35 구매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기술 이전을 통한 KFX 개발이 가능하다고만 선전했다. 이미 국내 항공업계나 국방과학연구소(ADD), 방사청에 있어 개발과 양산에 18조원이 넘는 KFX 사업은 자리와 사업비를 제공해 주는 소중한 ‘젖줄’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F35 40대를 7조 3418억원이나 들여 샀으니 미국이 한·미 동맹을 고려해 당연히 핵심 기술을 이전할 것이라는 믿음은 막연한 환상이었음이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결국 지난 4월 AESA레이더, 적외선탐색추적장비(IRST) 등 4개 기술 이전에 대해 거부 입장을 밝혔고 남은 21개 기술에 대해서도 쌍발엔진 체계 통합 등 일부 항목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일본의 경우 23조 8000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F35 42대를 들여오기로 했지만 이 가운데 38대를 국내에서 면허 생산하고 일본산 부품을 채택하기로 했다. 미국이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개발한 핵심 기술을 이전할 리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대신 공동 생산을 통해 우회적으로 기술을 축적하고, 장기적으로 아시아의 F35 정비 사업을 독점하기 위한 포석을 쌓은 것이다. 전영훈 골든이글공학연구소장은 6일 “일본으로서는 비용이 더 들어도 면허 생산을 통해 자주 국방을 이루고자 한 것”이라며 “한국은 미국이 기술 이전 의지가 없고 우리 기술 수준도 부족한 상황에서 신뢰하기 어려운 절충교역을 통해 한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과욕을 부리다 사달이 났다”고 평가했다. 군 당국은 사업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개발의 목표치만 높여 놨다. 우리 기술 수준을 감안하면 KFX는 F35와 같은 ‘하이급’이 아닌 KF16과 같은 ‘미디엄급’ 전투기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개발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군 당국은 단발엔진을 장착한 F35보다 추력이 높은 쌍발 엔진을 장착하고 스텔스 기술의 일종인 레이더탐지면적(RCS) 저감 기술 등을 적용한 전투기를 목표로 제시했다. 이는 잠재적으로 세계 전투기 시장에서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미국 측에 준 셈이다. 정부는 미국에 대해 F35 구매를 철회하겠다는 극단적인 카드를 쓰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현재까지 록히드마틴에 지불한 금액이 4억 9800만 달러(약 5760억원)이고 계약을 취소하면 이미 투입한 금액을 못 돌려받는 것은 물론 미국에서 자체적으로 들인 비용까지 물어줘야 해 12억 달러(약 1조 3800억원) 정도 지불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7조 3400억원 가운데 1조원 이상은 건지지 못하고 미국의 신뢰만 잃게 된다는 뜻이다. 안영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KFX의 근본 문제는 정부가 막연하게 미국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방위산업정책의 부재”라고 꼬집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알쏭달쏭+] “산타는 없어!”…동심 사라지는 평균 연령은?

    [알쏭달쏭+] “산타는 없어!”…동심 사라지는 평균 연령은?

    연말이 되면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거론하는 부모가 많아진다. 아이가 떼를 쓰거나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주신다”는 말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한다. 이때 아이로부터 “산타는 없다”는 반박을 듣게 되면 당혹한 표정을 감추기 어렵다. 공공연한 비밀인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지나치게 일찌감치 폭로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인터넷이다. 인터넷 검열 반대 단체인 하이드마이애스닷컴(HideMyAss.com)이 미국 부모 2036명과 그들의 0~15세 자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모 8명 중 1명은 아이들이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된 것이 인터넷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이 산타클로스를 부정하게 된 연령도 점차 낮아졌다. 하이드마이애스닷컴의 조사 결과 세계 최대 검색서비스인 구글이 런칭된 1997년부터 사회적네트워크시스템(SNS)인 페이스북이 런칭된 2005년까지, 불과 8년새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게 된 아이들의 평균 나이는 8.05세에서 7.71세로 낮아졌다. 또 3~10세 아이를 둔 부모가 어린 시절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게 된 평균 나이는 8.7세인 반면, 현재의 아이들은 불과 7.25세에 산타클로스의 실체를 알게 됐다. 아이들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산타’(Santa)를 검색한 뒤 산타클로스와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 등을 담은 설명을 접하거나, 혹은 우연히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권하는 인터넷 광고를 접하면서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부모 중 61%는 인터넷을 통해 자녀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검색한 뒤 검색 기록을 삭제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아이 중 8%는 부모의 이러한 흔적을 직접 발견한 뒤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게 됐다고 답했다. 이에 조사를 이끈 하이드마이애스닷컴 측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산타클로스를 믿게 하자는 캠페인(Keep Believing in Santa)를 시작했다. 부모가 이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무료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아이들이 산타클로스와 관련한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 자동으로 관련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 하이드마이애스닷컴 관계자는 “인터넷이 산타에 대한 아이들의 믿음을 깨는 중요한 도구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서 “이번 캠페인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및 산타클로스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조금 더 연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트라우마 이후의 삶(맹정현 지음, 책담 펴냄) 트라우마는 각자가 갖고 있는 통념과 믿음이 해체되는 순간에 출현하는 일종의 균열이다. 많은 이들은 크고 작은 트라우마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다. 저자는 이 균열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조언한다. 트라우마를 입으면 어떤 증상이 발생하는지, 왜 그 고통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준다. 트라우마 이후의 삶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란 단순한 생존이나 고통의 해소가 아니라 삶에 최대한의 가능성을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국가시스템의 결핍을 각인시켜 준 세월호 참사를 계기 삼아 정신분석학적 성찰을 꾀했다. 표지에 가득한 물방울은 책 자체가 갖는 치유와 위로의 성격을 보여 준다. 156쪽. 1만 2000원. 녹색고전 시리즈 1~3(김욱동 지음, 비채 펴냄) “왜 인간이 만든 것을 파괴하면 반달리즘이라고 부르고, 자연이 창조한 것을 파괴하면 진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이는 미국의 배우이자 환경운동가인 에드 베글리 주니어가 남긴 명언이다. 생태문학자인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가 십수년에 걸친 자신의 활동과 사상을 고전 소개의 형식을 빌려 정리했다. ‘삼국유사’, ‘호질’ 등 한국의 고전 58편과 ‘논어’, ‘도덕경’ 등 생태의 가치를 담은 동양 고전 42편, ‘구약성서’, ‘탈무드’, ‘침묵의 봄’ 등 서양 고전 47편 등을 총망라했다. 단순한 책 소개를 뛰어넘어 생태학과 문학을 아우르는 김 명예교수의 융합적 지식, 지혜, 성찰이 돋보인다. 절대적 위기에 놓인 지구 환경에 대한 실천적 성찰, 자연친화적 삶의 방식을 친절히 설명해 준다. 각권 350쪽. 각권 1만 3000원.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조경란 지음, 책세상 펴냄) 공자와 맹자로 상징되는 전통철학에 가려 중국의 현대사상은 상대적으로 부각이 덜 돼 있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을 구성하고 있는 봉건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요소들이 치열하게 쟁투를 벌이는 과정을 근현대 중국 지성의 라이벌 구도로 정리했다.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량치차오와 삼민주의를 역설한 공화주의자, 중국의 국부 쑨원을 비교하며 둘의 쟁점과 지향점을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마오쩌둥과 실천적 유학자로 그에 맞섰던 량수밍,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서 시대의 격랑에 중심을 잡아 준 저우언라이와 자본주의적 방법을 도입한 덩샤오핑 등을 맞세웠다. 전통과 근대, 현대로 넘어가는 중국 사상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392쪽. 1만 8000원.
  • 대한변협 측 “국민 여망 반영” 로스쿨 측 “떼법의 수호자”

    사법시험을 4년 더 유지하자는 3일 법무부의 입장 발표에 대해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변호사 단체들은 일제히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반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측은 ‘믿음의 법치’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등 완전히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국민적 여망을 반영해 사시를 존치하기로 한 정부 입장을 환영한다”며 “법무부는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법과대학교수회는 이번 기회에 상설 사법 개혁 논의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전국 25개 로스쿨 원장으로 이뤄진 로스쿨협의회는 “법무부는 지난 7년 동안 법률을 신뢰한 로스쿨 진학자 1만 4000명의 신뢰를 무시하고 ‘떼법의 수호자’가 됐다”고 주장했다.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의 모임인 한국법조인협회도 “법무부의 여론조사는 매우 왜곡돼 있다”며 “법무부는 경솔한 입장 표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도 여당은 ‘적극 환영’, 야당은 ‘입장 표명 유보’로 엇갈렸다. 사시 존치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지난 4·29재보선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오신환(관악을) 의원은 “법무부가 사시 폐지 유예와 로스쿨 대안 마련 등의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의미 있는 결정”이라면서 “두 제도가 병행 존치된다면 전문성 있는 법조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물론 대국민 법률 서비스 역시 제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이해 당사자 간에 첨예한 이견이 있고 당내 법사위원들의 의견도 다양하게 존재하는 실정”이라면서 “일방적으로 뒤늦게 입장을 발표한 법무부가 오히려 당사자의 갈등과 혼란을 키운 것은 아쉽다”고 밝혔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의정 포커스] “구로의 발전 토대는 교육 작은도서관 확대 등 최선”

    [의정 포커스] “구로의 발전 토대는 교육 작은도서관 확대 등 최선”

    3일 구로구의회에서 만난 김명조(50) 구로구의장에게서는 한숨이 가시지 않았다. 자신을 ‘동네 보안관’이라 부르는 김 의장은 낮에는 의장으로, 저녁엔 주민들을 만나느라 늘 바쁘다. “요즘은 더 힘이 빠진다”며 한숨짓는 건 내년 예산 운용도 수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 예산 규모는 올해보다 6.53% 증가한 4573억원입니다. 이 중 기초연금, 보육료 등 사회복지 분야 예산이 54%(2476억원)이고 재정자립도는 25% 정도예요. 새로운 사업은 꿈도 못 꾸죠. 이러니 예산 심의를 하려면 힘이 빠져요.” 이렇게 구 살림을 따지다 보면 한 가지 믿음이 더 확실해진다. ‘사람을 향한 투자’다. 그는 “신규 사업을 펼칠 공간도, 비용도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결국은 사람’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면서 “구로의 발전은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다양한 교육 사업을 제시했다. 유대인식 ‘하브루타 교육’이 대표적이다. 질문, 대화, 토론을 중심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창의력, 사고력,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키운다. 학부모와 자녀들의 교감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 학부모 200여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문의가 줄을 잇는다. 작은도서관 확대에도 적극적이다. “작은도서관은 그저 책을 읽는 곳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적극적인 부모들이 모여 지역 봉사를 논의하고, 어르신 식사 대접이나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추진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단한 파급력이죠.” 내년에는 학교폭력, 따돌림 등 사회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청소년 뮤지컬 제작을 제안하려 한다. 무거운 주제를 즐겁고 의미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에서다. “일 잘하라고 뽑았으니 신뢰를 얻어야죠. 우리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구의회가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알차게 움직이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누구나 시인… 살면서 뭔가 남기려는 사람들 담아”

    “누구나 시인… 살면서 뭔가 남기려는 사람들 담아”

    시인 함명춘(49)이 확 달라졌다. 등단 초기의 관념적인 시 세계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삶과 이야기를 담은 시집을 내놨다. 첫 시집 이후 17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무명시인’(문학동네)이다. 내면의 생각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생동감 있게 그려 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더 따뜻해졌다. 시인도 “이번 시집엔 삶에 대한 애착, 잊히고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시인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1998년 첫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를 냈다. “첫 시집을 낼 때 자연을 배경으로 상상을 넓혀 가는 시를 썼으면 좋았을 텐데 언어에 대한 탐구 관점에서 시를 써 언어의 부정적 측면에 매몰되고 말았어요. 언어가 무서워졌고 부정적 언어로 시를 쓰는 게 죄악처럼 느껴져 ‘문학적 실어증’에 빠졌습니다. 1993년 호구지책으로 출판업에 뛰어들었는데 그 무렵 먹고사는 문제도 심각해져 시와 멀어지게 됐죠.” 2005년 고 최인호 작가와의 만남으로 시를 쓸 동력을 얻게 됐다. “최 선생님의 책을 내기 위해 찾아뵌 게 인연의 시작이었어요. 이후 선생님께서 몸이 안 좋아지시면서 제게 같이 일을 하자고 하셔서 선생님 출판사로 옮겼어요. 아픈데도 쉬지 않고 글쓰기에 매진하시는 모습이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글은 행동하는 것, 상황에 관계없이 쓰는 행위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사람들에게 희망과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는, 언어의 긍정적인 면도 깨달았다. 2010년 조금씩 상상력이 열리면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했던 세월을 견뎌 낸 안타까움은 표제작 ‘무명시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갔다 눈도 추운 듯 호호 손을 불며 내리는 어느 겨울,/가진 것이라곤 푸른 노트와 몇 자루의 연필밖에 없었던/난 그가 연필을 내려놓는 것을 본 적이 없다/(중략) 난 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기야/나무와 새와 바람과 별 들이 그의 유일한 독자였으니/세상을 위해 쓴 게 아니라 세상을 버리기 위해 쓴 시처럼/난 그가 집 밖을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잠자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먹는 것도 본 적이 없다/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자꾸 적어 넣었다’(무명시인) “사실상 저의 자화상이에요. 2011년에 두 시간 만에 쓴 걸로 기억돼요. 글을 놓았어도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글을 쓰고자 하는 행위를 많이 했어요. 단 한 편의 시도 완성하지 못했지만 쓰기 위해 고심을 많이 했죠. 저의 자화상이지만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면을 건드리지 않았나 싶어요. 누구나 무명시인이에요. 작품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살면서 무언가를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자연의 힘을 노래한 시들이 돋보인다. 건조하고 힘든 도시의 삶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살고 싶은 직장인들의 절실한 마음을 담은 ‘분천역에서’, 인간의 힘든 상황을 정화해 주기 위해 좋은 공기와 환경을 만들어 내는 숲과 자연을 노래한 ‘자작나무숲에서’ 등이 대표적이다. 시인은 시집 들머리 시인의 말을 최 작가와의 대화로 갈음했다. ‘작가 최인호가 물었다. “명춘아, 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 줄 아니?” 내가 말했다. “음, 사랑이요 아니 믿음이요.” 작가 최인호가 말했다. “아니다 죽는 거다.” 우린 말없이 걸었다.’ “시인의 말은 당초 ‘최인호’라는 제목으로 쓴 시였어요. 본문에 시를 넣으려다 시인의 말로 쓰는 게 더 좋을 듯했어요. 최 선생님의 말씀은 ‘열심히 살아라. 삶을 직시하라. 에돌아 생각하지 말고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라’는 화두처럼 들렸어요. 제 가슴속에 깊이 새겨 놓은 말입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함명춘 시인 17년만에 두 번째 시집 ‘무명시인’ 출간

    함명춘 시인 17년만에 두 번째 시집 ‘무명시인’ 출간

    시인 함명춘(49)이 확 달라졌다. 등단 초기의 관념적인 시 세계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삶과 이야기를 담은 시집을 내놨다. 첫 시집 이후 17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무명시인’(문학동네)이다. 내면의 생각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생동감 있게 그려 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더 따뜻해졌다. 시인도 “이번 시집엔 삶에 대한 애착, 잊히고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시인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1998년 첫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를 냈다. “첫 시집을 낼 때 자연을 배경으로 상상을 넓혀 가는 시를 썼으면 좋았을 텐데 언어에 대한 탐구 관점에서 시를 써 언어의 부정적 측면에 매몰되고 말았어요. 언어가 무서워졌고 부정적 언어로 시를 쓰는 게 죄악처럼 느껴져 ‘문학적 실어증’에 빠졌습니다. 1993년 호구지책으로 출판업에 뛰어들었는데 그 무렵 먹고사는 문제도 심각해져 시와 멀어지게 됐죠.”  2005년 고 최인호 작가와의 만남으로 시를 쓸 동력을 얻게 됐다. “최 선생님의 책을 내기 위해 찾아뵌 게 인연의 시작이었어요. 이후 선생님께서 몸이 안 좋아지시면서 제게 같이 일을 하자고 하셔서 선생님 출판사로 옮겼어요. 아픈데도 쉬지 않고 글쓰기에 매진하시는 모습이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글은 행동하는 것, 상황에 관계없이 쓰는 행위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사람들에게 희망과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는, 언어의 긍정적인 면도 깨달았다. 2010년 조금씩 상상력이 열리면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했던 세월을 견뎌 낸 안타까움은 표제작 ‘무명시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갔다 눈도 추운 듯 호호 손을 불며 내리는 어느 겨울,/가진 것이라곤 푸른 노트와 몇 자루의 연필밖에 없었던/난 그가 연필을 내려놓는 것을 본 적이 없다/(중략) 난 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기야/나무와 새와 바람과 별 들이 그의 유일한 독자였으니/세상을 위해 쓴 게 아니라 세상을 버리기 위해 쓴 시처럼/난 그가 집 밖을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잠자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먹는 것도 본 적이 없다/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자꾸 적어 넣었다’(무명시인)  “사실상 저의 자화상이에요. 2011년에 두 시간 만에 쓴 걸로 기억돼요. 글을 놓았어도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글을 쓰고자 하는 행위를 많이 했어요. 단 한 편의 시도 완성하지 못했지만 쓰기 위해 고심을 많이 했죠. 저의 자화상이지만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면을 건드리지 않았나 싶어요. 누구나 무명시인이에요. 작품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살면서 무언가를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자연의 힘을 노래한 시들이 돋보인다. 건조하고 힘든 도시의 삶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살고 싶은 직장인들의 절실한 마음을 담은 ‘분천역에서’, 인간의 힘든 상황을 정화해 주기 위해 좋은 공기와 환경을 만들어 내는 숲과 자연을 노래한 ‘자작나무숲에서’ 등이 대표적이다. 시인은 시집 들머리 시인의 말을 최 작가와의 대화로 갈음했다. ‘작가 최인호가 물었다. “명춘아, 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 줄 아니?” 내가 말했다. “음, 사랑이요 아니 믿음이요.” 작가 최인호가 말했다. “아니다 죽는 거다.” 우린 말없이 걸었다.’  “시인의 말은 당초 ‘최인호’라는 제목으로 쓴 시였어요. 본문에 시를 넣으려다 시인의 말로 쓰는 게 더 좋을 듯했어요. 최 선생님의 말씀은 ‘열심히 살아라. 삶을 직시하라. 에돌아 생각하지 말고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라’는 화두처럼 들렸어요. 제 가슴속에 깊이 새겨 놓은 말입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당신의 심장을 뜨겁게 적실 두 편의 영화, ‘리틀 보이’ vs ‘히말라야’

    당신의 심장을 뜨겁게 적실 두 편의 영화, ‘리틀 보이’ vs ‘히말라야’

    다음달 극장가로 관객들의 심장을 뜨겁게 적실 두 편의 영화가 찾아간다. 전쟁에 나간 아빠를 돌아오게 하기 위한 99cm 소년의 위대한 도전을 그린 영화 ‘리틀 보이’,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목숨 건 여정을 떠나는 휴먼 원정대의 도전을 담은 영화 ‘히말라야’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 ‘리틀 보이’는 99cm 작은 키 때문에 놀림 받던 소년이 우연히 발견한 특별한 능력으로 전쟁터에 나간 아버지를 되찾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다. 극 중 8살 소년 ‘페퍼’는 또래에 비해 작은 체구로 항상 친구들의 괴롭힘과 놀림의 대상이 된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파트너가 돼준 것은 바로 아빠였다. 외톨이 신세인 ‘페퍼’에게 아빠는 언제나 “파트너, 할 수 있다고 믿어”라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 하지만 아빠가 전쟁에 징병되자 ‘페퍼’는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한 기회로 오른 마술쇼의 무대에서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발견하게 되고, 이 능력으로 전쟁을 끝내고 아빠도 돌아오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가족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런 ‘페퍼’의 노력을 그저 어린아이의 놀이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페퍼’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도 좌절하지 않고 아빠를 되찾겠다는 굳은 의지로 고군분투를 이어간다. 비록 작고 어린 소년이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믿음과 신념으로 이뤄진 ‘페퍼’의 위대한 도전은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할 예정이다. 과연 ‘페퍼’가 이 도전을 성공하고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에 대한 관객들의 궁금증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영화 ‘히말라야’는 히말라야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는 목숨 건 여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황정민)을 필두로 한 휴먼원정대의 도전을 그린다. 해발 8750미터의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신의 영역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데드존에 묻힌 동료를 찾기 위한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오로지 동료를 찾겠다는 목표만으로 특별한 도전을 시도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높은 몰입도로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전할 예정이다. 99cm 소년의 위대한 도전을 담은 영화 ‘리틀 보이’는 다음달 10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4] 까치밥, 똘레랑스 그리고 정신건강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4] 까치밥, 똘레랑스 그리고 정신건강

    한 때 우리 사회에서 ‘똘레랑스(Tolerance)’라는 말이 회자됐었지요. 프랑스 사람들이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이 아닌 타자, 자기 것이 아닌 다른 문화과 관습을 능동적으로 포용한다는 것인데, 저는 오래 전 홍세화씨의 책에서 이 말을 실감나게 접했습니다. 이 말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은 이타적인 삶, 타자를 위한 배려가 부럽기도 했고, 그렇게 너그러운 그들의 삶에 자꾸 낯설게만 투영되는 ‘나’와 ‘내 주변’의 옹색한 현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의 이런 생각이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유럽의 강대국들이 전세계에 이식시킨 패권적 이념에 길들여진 식민적 속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국을 ‘신사의 나라’로 여기지도 않고, 프랑스 문화가 재밌을지언정 우월하다고 믿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국부(國富)나 인종적 특성이 부러운 게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열린 자세가 부럽고, 그로부터 발원한 그들의 치열하면서도 자유분방하고, 발랄하면서도 격조가 있는 삶의 자세를 부러워합니다. 아마 그런 그들의 삶이 상당 부분 똘레랑스와 결부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가지지 못한 자의 아름다운 나눔 언제부턴가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매몰되어 살아 왔습니다. 그 정도가 지나쳐 톨레랑스의 가치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문명 밖의 문명’처럼 낯설거나 이질적으로 비치기도 할 것입니다. ‘나만 좋으면 된다’거나 ‘항상 내가 우선’이라는 이 몰염치한 습속은 일제 암흑기와 한국전쟁 등 독하지 않으면 살아 남기 어려운 핍진한 환경을 헤쳐나오면서 체득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바둑의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먼저 내 말을 살린 뒤 상대방의 말을 공격하라)’라는 격언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명도생부터 해야 했으니, 그 참담한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에서 보듯, 항상 궁핍하고 불안정한 일상 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챙겨야 했고, 그렇게 아등바등 뺏고, 감추며 살았지만 쌀독은 항상 비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들 했으니, 그런 터수에 언감생심 무언가를 베풀면서 사는 여유를 갖는다는 게 호사이고 꿈일 뿐이었지요. 그렇다고 우리네 삶이 똘레랑스와 전혀 무관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니, 우리 조상들은 유럽의 똘레랑스보다 훨씬 본원적인 베풂을 알았고, 그런 가치를 존중했습니다. 가진 자의 시혜보다 가지지 못한 자의 배려가 더 아름다운 것은 먹고 쓰고 남은 것을 덜어 주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허기와 필요를 덜어야 하는 일이고, 최소한의 자기 몫을 쪼개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고, 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이는 개국 이래 단 한번도 국통이 끊이지 않았던 장구한 역사가 증언하는 사실입니다. 시골집 뒤란의 늙은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까치밥’은 또 어떻습니까.  ●‘오로지 주고자 했던’ 까치밥의 철학 ‘초록이 지쳐 단풍 들더니’ 가을이 깊어져 갑니다. 이슬이 서리로 변하면서 이내 살풍경한 겨울이 되어 온 산야를 흰눈이 뒤덮을 무렵이면 텅 비어 삭막한 풍경 가운데에다 마치 누군가 작심하고 붉은 물감으로 방점이라도 찍어놓은 듯 선연한 붉음이 눈길을 끌곤 했지요. 바로 까치밥입니다. 가을걷이의 마지막은 감을 따 갈무리하는 것인데, 개량되기 전의 예전 감은 겉이 붉어보여도 속살을 베어물면 여간 떫지 않았습니다. 그걸 따모아 항아리나 석작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달디 단 홍시가 되면 하나씩 꺼내 먹곤 했던, 요긴한 겨울 군입거리였지요. 요즘의 개량종 단감과 달리 예전의 토종 감나무는 집안의 조왕신 같은 것이어서 크게 키워 비바람을 막고, 시원한 그늘도 드리우며, 먼 동구밖에서 봐도 한 눈에 우리 집임을 아는 장소성까지 부여했으니 감나무가 바로 산이고, 정자이며, 스카이라인이고, 랜드마크였지요. 스무 척, 서른 척 키를 키운 탓에 감을 딸 때면 큰 가지를 타고 올라가 간짓대로 투덕거리곤 했는데, 해거리를 하지 않을 때는 워낙 많이 열려 그걸 따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따다 보면 어느 새 가지가 텅 비고, 꼭대기 가지 끝에 잔챙이 감이 서른 개, 마흔 개씩 남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그건 까치밥하자. 그만 내려와라”시며 일을 매조졌지요. 아닌 게 아니라 날이 추워 먹거리가 마땅찮으면 까치가 가지 끝에 내려앉아 남은 감을 쪼곤 했는데, 그래서 까치밥이라고 불렀겠지요. 찬서리에 익어서 더 붉어진 까치밥이 얼음 들어 푸르딩딩한 하늘을 배경으로 매달린 모습을 보노라면 문득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그런 느꺼운 마음이 미물에게라도 뭔가를 베풀 수 있다는 은전의 여유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까치를 위해 가지 끝에 감을 남겨두는 일은 어떤 강제나 규율도 없이 온전히 스스로 결정하는 있이었는데, 지금보다 훨씬 궁핍하게 살았던 예전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표도 나지 않게 그런 덕성을 실천함으로써 스스로의 체온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 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빈 콩밭에 ‘참새 몫’으로 수수목을 남겨두거나, 대보름날 정성껏 무친 나무새를 이것 저것 바가지에 덜어 소에게 먹일 턱이 없지요. 까치든, 소든 사람에 견주면 하찮은 미물이고 축생인데도 말이지요. 우리의 핏속에는 미물일지라도 곁에 머무는 것이면 무엇이든 챙기고 걱정해주는 미덕이 있었습니다. 제 목구멍으로 무엇을 넘겼는지도 모를 궁핍 속에서 살면서 그런 짓이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한다면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더 찬찬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들이 넉넉하지 못한 것도 맞고, 그래서 짜디 짠 자반 한입 못 먹어보고 해를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걸 그다지 아쉽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살림이 요족해 육고기를 줄창 먹고 살았다면 간사한 입맛이 남아 ‘땡기기라도’ 했겠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원래의 삶이 안빈(安貧)에 길들여진 탓에 배만 채울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했지요. ‘사흘 고기맛을 못 보면 소증 난다’는 말은 덜 떨어진 권문세가의 논다니들 말이지, 하냥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살았던 사람들의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까치 같은 미물까지 챙기며 살았으니 그걸 먼 유럽의 똘레랑스와 견준다는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유럽의 똘레랑스가 관습과 제도의 결과라면, 우리의 나눔은 태생적인 끌림의 결과이니까요. 예전에 흔했던 보시(布施)는 어떻습니까. 불교의 수행법으로, 베푸는 모든 행위를 이르는 보시는 불가에서 이타정신(利他精神)의 정점으로 이해합니다. 더러는 보시를 복을 받기 위해 하는 ‘이기적인 이타’라고도 보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설령 보시를 하면서 되받을 일을 생각했더라도, 그 복이라는 게 실체도 없고, 아무도 담보할 수 없는 불확실한 대가여서 거기에 기대 자기 것을 나눌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보다는 자기 것을 나누면서 스스로 위로받기 위해 ‘복’을 생각했다는 게 현실적이지요. 마찬가지로 까치밥 역시 ‘오로지 주고자 했던’ 아가페적인 나눔의 실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서구의 똘레랑스 정신을 ‘우리는 갖지 못한 포용이자 관용’이라고 부러워만 할 일은 아니지요.  ●정신 건강 혹은 영혼의 안식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프랑스의 똘레랑스는 1789년의 대혁명 이후에 사회적 통합을 위해 주창한 근대화의 기제 속에서 체화된 개념인데, 우리의 그것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작용하지 않은 자연발생적 정서였고, 또 모르긴 해도 자연의 모든 것에 정령이 깃든다는 원시 토테미즘과도 무관하지 않을 터이니 비록 우리의 정서가 반듯하게 각이 잡혀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단들 제도적 산물인 똘레랑스와 같은 선에서 견준다는 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까치밥을 보면서 궁핍하지만 영혼이 건강하게 사는 지혜를 배웁니다. 지혜라고 했지만, 대단한 사유나 거창한 논리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물이 흐르듯, 아니면 밥 먹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마음의 부름에 따르면 되는 일이고, 거기에 대단한 결심이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지요. 필자가 어렸을 때의 경험입니다. 유월 더운 날, 온가족이 나서 산비탈 보리밭에서 보리를 베고 있었지요. 거진 다 베어갈 무렵, 갑자기 까투리 한 마리가 요란하게 꿩꿩 거리며 나대는 게 아니겠습니까. 시골에 흔한 게 꿩이라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는데, 그 때 할머니가 허리를 펴시더니 “오늘은 여기서 손 털자”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직 베지 못한 보리가 예닐곱 평이나 남았는데 마치자는 말에 다들 의아해 하자 할머니는 “저 쪽에 새끼를 쳐놨길래 꿩이 저 난리지”라며 “한 이레면 새끼 데불고 나갈테니 그 때 와서 마저 베면 된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으시더군요. 집안 어른 말씀에 가타부타할 수도 없어 그렇게 일을 마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보리밭에 다녀 오신 아버지가 “꿩이 산으로 갔는지 둥지가 비었더라. 내일 가서 남은 보리 정리하면 되겠다”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돌이켜 생각하면, 할머니는 그 일을 통해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르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하찮은 꿩이라도 새끼를 거느릴 때는 해코지해서는 안 된다는 공생의 철학이 하나이고, 보리밭 어름에서 꿩이 우짖는 걸 보고 사연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둘입니다. 보리야 며칠 뒤에 베어도 축날 일이 없으니 흔쾌히 그리 한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나 아닌 남을 생각하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할머니와 어머니는 김장김치나 간장·된장 등을 넉넉하게 준비해 이웃들과 나누기도 했는데, 그렇게 나눈 뒤에는 항상 “전답이 넉넉치 않아 가을이라고 거둔 것도 없을텐데, 겅개라도 좀 나누니 맘 편하다”며 기꺼워들 하셨지요. 그래선지 할머니는 그 시절의 여건을 생각하면 무병장수하셨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집안 일을 하시는 등 강건하셨습니다. 그게 어디 제 할머니만의 일이겠습니까. 살림이나 품성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확실히 예전에는 다들 그렇게 나누고, 살피며 살았습니다. 그런 삶은 확실히 건강했습니다. 필자가 낳고 자란 마을이 100여호 쯤 됐는데, 치매를 겪은 노인은 딱 두 사람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더러는 ‘노망’이니 ‘망령’이니 수근대기도 했지만, 삼이웃이 너나 없이 돈독했고, 우애가 깊었지요. 그러니 온 마을이 떵떵거릴 만큼 크게 잘 사는 집은 없었어도 굶주릴 일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오고가다 마주치면 살갑게들 인사를 나눴고, 철부지들이라도 위, 아래를 알았습니다. 쌀독이 비면 아무 집에나 찾아가 손을 벌렸고, 장날이 되어 뭐든 돈을 바꾸면 식량을 곧 되갚았습니다. 농투산이들 사이에 흔한 물꼬싸움을 해도 악다구니가 없었습니다. 늙수그레한 노친네들이 다툴 일 없도록 거중조정을 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러는 앓거나 다치기도 했지만,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한 누구를 빼고는 흉변이랄 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 시절엔 다들 가난을 팔자라고 여겼으니 유리걸식하는 처지만 아니라면 그걸 딱히 불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차고 넘치지는 않았지만, 욕심이 없으니 많든 적든 자기 처지가 요족하다고 여기며 살았고, 그런 중에 서로 보듬고 나누었으니 심화를 끓이거나 안달복달할 일도 없었지요. ●“당신은 건강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지금이야 ‘칠십 청춘’이라고들 하지만, 예전에는 태어나 육십갑자를 다 채우고 맞는 환갑이 흔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환갑잔치는 놀이판이기도 했지만 혈족들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평생 농삿일로 허리가 굽은 채 환갑을 맞은 마을 어르신이 말합니다. “내가 육십평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한눈 안 팔고 살아 전답도 장만했고, 자식 대학도 보냈는데, 그러느라 허리는 휘고 낯바닥은 감탕이 되었지만 못 살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헤프지도 않았지만, 필요할 땐 인심도 쓰면서 산 덕분에 죽어서 연옥은 면할 듯도 하고…”. 그 어르신은 술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어갑니다. “나야 배우지 못해 세상의 이치를 알 턱이 없지만, 사는 게 별것 아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란 없으니 형제끼리는 우애로, 이웃끼리는 정으로 살믄 될 일이다. 죽고 사는 것이야 인력으로 어쩔 수 없으니 그건 걱정할 것 없고, ‘나 하나 잘하믄 세상이 다 좋은 것이다’고 믿고 살았는데, 진짜로 내가 그렇게 살았는지는 나보다 식솔들과 이웃 지기들이 더 잘 알 일이다.” 건강하게 사는 많은 조건들 중에서 당신은 무엇을 첫 손에 꼽겠습니까.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 주관적인 판단이 있을 뿐이지요. 무섭다는 암도 피하고 싶고, 암 아니라도 안 아프고 살기를 바라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죽을 때까지 자기 몸 자기가 건사하기를 바랄 것이고, 또 어떤 부류는 돈 좀 많이 모아 쭈글거리지 않은 노후를 보내고 싶어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옳고, 부러운 바람이지만 저는 여기에 한 가지만 보태고 싶습니다. 스스로 가진 능력 이상을 거머쥐려는 욕심은 좀 덜고, 가진 것 조금이라도 떼어서 베풀며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그것입니다. 물론 의무감으로 할 일은 아니고, 떼돈 들여 큰 일을 벌이자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어버이가 그러셨듯이 감나무 가지 끝에 까치밥 몇 알 남겨두거나 꿩의 처지를 살펴 보리 베는 일 며칠 늦춰주는 그런 일을 하며 살자는 뜻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자기 배만 채우려 하지 않고 욕심을 덜어내는 일이며, 자기 주장만 하지 않고 이기의 벽을 허무는 일이며, 좀 번거롭더라도 남의 처지나 형편에도 한번쯤 따뜻한 눈길을 주는 배려입니다. 빨갛게 언 발가락을 털어가며 겨울을 나야 하는 까치 등속의 미물에 대해 갖는 측은지심이 어디 불가(佛家)만의 가르침이겠습니까. 그 사소하다 못해 하찮기까지 한 까치밥에서 서구의 똘레랑스에는 없는 ‘우리다운 나눔과 배려’의 원천을 봅니다. 그럴 수 있다면 조금씩 베풀면서 남들의 따뜻한 시선 속에 머무는 것, 그리고 편안한 자기 위안을 얻는 것, 그런 삶이 건강한 삶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정신세계가 강퍅하지 않고 풍요로워서 갈수록 환자가 늘어난다는 우울증이나 착란, 도착 그리고 치매까지도 사회적 유병률이 훨씬 낮아질 것이고, 그런 변화가 우리들 개개인의 건강으로 확인되지 않겠습니까. 병이야 의사가 고치는 것이지만, 병문(病門)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니까요. 베풀며 산다고, 여유롭게 산다고 모든 병마를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신의 세계만큼은 훨씬 정갈하고 넉넉해질 것이며, 그렇게 살다보면 흔히 말하는 세상의 번뇌와도 조금은 멀어지게 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병마도 피할 수 있어 우리의 삶이 더 따뜻하고 안온할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마음의 병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양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jeshim@seoul.co.kr
  • [정현용 기자의 밀리터리 인사이드] 외상전문의 없는 군병원… 그들이 민간병원 찾은 이유

    [정현용 기자의 밀리터리 인사이드] 외상전문의 없는 군병원… 그들이 민간병원 찾은 이유

    지난해 6월 비무장지대(DMZ)에서 수색 작전을 하던 중 지뢰를 밟아 부상한 곽모(28) 중사와 지난 9월 수류탄 폭발 사고로 손목을 잃는 중상을 당한 손모(19) 훈련병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국방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곽 중사 치료비는 총 1950만원인데 건강보험 부담금 1200만원을 제외한 750만원을 자비로 부담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불모지 단체보험’ 급여 330만원을 이미 지급했고, 공무상 요양비와 맞춤형 복지 단체보험 보험금 신청도 가능하다는 입장인데요. 부대원과 지휘관 격려비로 1100만원을 전달했기 때문에 치료비 자비 부담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을 내놨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부대원 격려비’는 국가가 내주는 돈이 아니라는 겁니다. 곽 중사의 어머니에 따르면 처음에는 부대 중대장이 급히 적금을 깨서 치료비 68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곽 중사의 어머니는 이후 자비로 그 돈을 갚았고 최종적으로 750만원을 쓰게 됐다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지난 10월 29일 개정된 ‘군인연금법 시행령’이었습니다.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정부는 공무상 요양비 지급 기간을 기존 최대 30일에서 2년으로 대폭 늘리고 1년 단위로 연장 가능하게 했습니다. 곽 중사 가족은 군이 아군 ‘M14 대인지뢰’를 밟았다는 이유로 공무상 부상자인 ‘공상자’로 처리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군이 규정을 들어 적과의 교전 과정에서 부상한 ‘전상자’ 처리를 해 주지 않자 가족은 일단 군인연금법 시행령 개정 결과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시행령에 소급규정이 없어 곽 중사는 예전과 같이 30일밖에 지원받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이 소급 내용을 포함한 군인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기 때문에 앞으로 개정안 통과 여부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 손 훈련병의 의수 제작에 2000만원이 넘는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됐지만 지원금은 800만원에 불과해 또 비난 여론이 일었습니다. 엄지와 중지, 검지 세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의수도 제작비용이 2100만원인데 턱없이 적은 금액을 지원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정부와 군은 뒤늦게 의수 제작비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연말까지 부상 장병 지원 대책을 논의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환자 가족, 군병원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많은 분이 곽 중사와 손 훈련병의 진료비 지원 문제에 관심을 보였는데요. 여기서 또 하나,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민낯을 드러낸 부실한 군 의료체계 문제입니다. 군은 지속적으로 군병원 진료를 권유했습니다. 그런데 손 훈련병 가족이 거부했습니다. 손 훈련병은 현재 대구 북구 학정동의 칠곡경북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요. 군은 “본인이 원해서 민간병원을 갔으니 건강보험 부담금 외의 진료비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국군수도병원에 재활 기능이 갖춰져 있는데 왜 민간병원을 가느냐”는 타박으로 들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손 훈련병과 가족이 민간병원에서 계속 치료받고 싶다고 주장한 데는 주변에서 충분히 수긍할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손 훈련병은 최초 대구 경북대병원에서 9시간가량 파편 제거 및 손목 수술을 받았습니다. 한 달 정도 치료를 받다가 “국군대구병원에서 심리치료와 부서진 치아 임플란트가 가능하다”는 군 관계자의 말을 듣고 대구병원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병원 분위기에 크게 실망했다고 합니다. 손 훈련병 어머니의 설명에 따르면 정신과 진료 결과 우울증 지수가 너무 높아 심리치료가 불가능하고 임플란트도 안 되니 수도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군병원에 대한 믿음이 깨졌습니다. 현실적으로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데 멀리 있는 군병원으로 가라는 얘기가 달갑게 들릴 리 없습니다. 실제로 손 훈련병의 어머니는 군의 권유에도 “대구병원과 다르다고 하지만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대구에서 경기도로 가면 혼자 남을 고1 딸은 어떻게 하느냐”고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칠곡경북대병원으로 갔습니다. 곽 중사도 상황은 좀 달랐지만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곽 중사는 지난해 6월 사고 당시 급히 민간병원으로 갔다가 다시 국군춘천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지뢰 사고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져 강원대병원으로 다시 이송됐습니다. 골절 치료, 피부 이식 등 5차례에 걸친 수술을 받았고, 현재는 부대에 복귀한 상태지만 앞으로도 추가 수술이나 재활치료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외상 수술도 하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한 이에게 군병원에 대한 신뢰가 생길 리 없습니다. 지난 8월 북한군 목함지뢰에 양쪽 다리를 잃은 하재헌 하사도 수도통합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특수외상 수술이 가능한 전문의가 부족해 분당서울대병원으로 다시 옮겨져 치료를 받은 바 있습니다. 군의 부실한 외상 환자 치료 체계는 심각한 인력 부족에서 비롯됐습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전문계약직 의사 채용제를 통해 민간 전문의 180명을 모집하려 했지만 제도 시행 7년이 지난 현재까지 실제로 채용한 인원은 42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지원자가 모자라 예산을 불용처리할 수밖에 없게 되자 정원을 줄이는 고육책까지 썼습니다. 현재는 정원이 56명이지만 이것마저 채우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심각한 외과 전문의 부족 현상… 왜 현재 수도병원에서 일하는 전문계약직 외과 전문의 연봉은 1억 1500만원입니다. 같은 경력의 의사가 수도권 사립대병원으로 옮기면 연봉이 1억 9000만원으로 올라가고 수술 시 인센티브까지 제공합니다. 국립대병원에서도 1억 5000만원의 연봉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군 전문계약직으로 채용한 전문의 42명 가운데 38명이 군 최상위 의료기관인 수도병원에 근무하고 있어 지역 거점 군병원은 외상 환자를 받을 여력조차 없습니다. 수도병원에서 근무하는 외상 전문의 가운데 총상이나 지뢰 사고 등 특수외상 수술이 가능한 외과 전문의는 1명, 흉부외과·정형외과·신경외과 전문의도 각각 1명에 불과합니다. 외상 복원성형을 할 수 있는 성형외과 전문의는 없습니다. 민간병원도 외과 전문의가 부족해 아우성인데 처우도 낮은 군 의료기관에 인력이 몰릴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2011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간한 ‘수도병원 발전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간호인력도 서울시립보라매병원,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등 벤치마킹 모델로 삼은 병원과 비교해 28.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군 의료체계 돌아보고 철저히 점검해야 국방부는 1000억원을 들여 수도병원 내부에 분당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국군외상센터(가칭)를 설치한다는 계획입니다.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10명을 파견하고 100병상 규모를 갖춘다고 합니다. 2018년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예산 문제로 정부 내부에서도 마찰이 일었습니다. 당장은 센터 건립에 목매야 할 상황이어서 수술 기능도 갖추지 못한 지역 거점 군병원은 기능을 강화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원칙적으로 사고나 전투로 부상을 입은 장병은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환자와 가족들이 군병원을 거부하는 이유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무료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으니 군병원으로 오라”고 독촉하기 전에 국민들의 싸늘한 민심을 돌아봐야 합니다. 군병원에 예산을 투입하기 어려워 환자를 민간병원으로 보내고, 규정이 미비해 진료비 전액을 부담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junghy77@seoul.co.kr
  • [시론] 안전처, 소통과 전문성으로 현장 대응력 키워야/윤명오 서울시립대 재난과학과 교수

    [시론] 안전처, 소통과 전문성으로 현장 대응력 키워야/윤명오 서울시립대 재난과학과 교수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여전히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설립 취지와 기능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요구와 실제 업무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 때문에 막대한 예산만 낭비하는 조직으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조직은 이런 일을 하는 곳이다’라는 뚜렷한 조직 목표가 없으면 완고한 방어적 행정으로 치닫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근거도 없는 ‘안전불감증’ 탓으로 돌리는 행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 정부를 거대한 국립병원에 빗댄다면 안전처는 일종의 응급실이라 할 수 있다. 응급실은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곳이다. 질병이나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고 그 책임을 응급실에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응급 의사에게 예방주사와 보건의학, 암 치료까지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국 병원 시스템을 모르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재난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은 각 부처의 고유 기능이다. 식품 안전은 안전처가 아니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책임지고 맡아야 한다. 건물이나 시설물 안전은 국토교통부, 에너지와 산업시설은 산업자원통상부, 문화재는 문화재청, 산불은 산림청, 학교 안전은 교육부, 핵발전소 안전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업무다. 그리고 지역 차원에서 일상적인 재난 대비는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다. 안전처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인명을 구조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한 현장 대응이다. 이는 소방, 해양경찰 등 적절한 훈련을 받은 전문 조직의 몫이다. 개별 지자체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특수 재난이나 사실상 해양 국경을 맡은 해양경찰 업무는 국가가 대비하고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안전처가 맡는 게 옳다. 경계가 모호하거나 복합적인 업무는 해당 부처의 전문성과 기능을 위축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현대 사회의 재난은 대규모 기술 실패에서 발생하며, 복합적이고 예측하기 어렵다는 특성을 지닌다. 이런 복합재난은 교통사고나 태풍, 생활안전 사고와는 발생 과정이나 수습 방법이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그동안 정부는 안전 관련 기구의 통합 또는 일원화를 내세운 전시행정으로 국민으로부터 쏟아지는 비판을 모면하기에 급급한 측면이 있다. 그러는 와중에도 정부 정책은 대부분 생활안전과 자연재해가 중심이었고 대응 업무는 뒷전이었다. 이제는 진단과 처방을 명확히 해야 한다. 먼저 안전처는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거나 할 필요가 없는 일은 과감히 업무에서 배제해야 한다. 가령 ‘안전신문고’ 같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거나 안전 캠페인을 벌이는 역할은 지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전처는 오히려 언제라도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국민들도 정책 소비자로서 좀 더 현명해져야 한다. 응급실 조직에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으로 그 조직의 기여도를 평가할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 봐야 한다. 사고만 발생하면 ‘통합관리’니 ‘컨트롤타워’니 하며 안전처에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안전처가 제자리를 찾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자칫 안전처가 무한 책임주의의 희생양이 되거나, 단명하는 조직으로 기록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대형 재난에 마음 아프고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멀쩡한 백화점이 무너지고 배가 침몰한 것이 어디 그날 백화점을 찾아가고 배를 탔던 국민들의 안전불감증 탓이겠는가. 선박과 건물의 인허가를 책임지고 유사시에는 대응까지 하는 만병통치약 같은 정부 부처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여론이 무섭다고 실용보다 포장만 우선하며 그럴듯한 말 몇 마디로 넘어가려는 것은 과욕이다. 안전과 위기 관리는 그렇게 단순한 일도 아니며 무슨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온갖 위험을 한꺼번에 책임지는 조직은 불가능하다. 먼저 현대사회 재난의 복잡한 속성부터 간파할 일이다. 재난안전의 중심체는 우리 대신에 분풀이와 질책을 도맡는 조직이어서는 안 된다. 함께 걱정하고 함께 아파하며 소통을 통해 위기의 순간에 전문성과 사명감을 보여 줄 수 있는 믿음직한 존재여야 한다.
  • “좌절한 젊은이에게 믿음 주는 친구된 것이 샤오미 성공비결”

    “좌절한 젊은이에게 믿음 주는 친구된 것이 샤오미 성공비결”

    중국의 스마트폰 기업 샤오미(小米)는 매년 4월 팬들과 함께하는 축제인 ‘미펀제’(米粉節)를 연다. 샤오미를 응원하는 팬들이 보내온 사진들은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된다. 팬들에게 본사 사무실과 물류센터 등을 보여 주는 ‘오픈데이’에는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10년 작은 스타트업(창업기업)으로 시작한 샤오미는 ‘중국의 애플’이라고 불리며 세계 5위권의 스마트폰 기업으로 성장했다. 뛰어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미펀’(米粉)으로 불리는 팬덤 문화가 성공 비결로 꼽힌다. 하지만 류더(劉德) 샤오미 공동창업자 겸 부총재는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신뢰’를 가장 중요한 성공 비결로 꼽는다. “인민대회당에서 표를 던지거나 대기업에 취업하는 등의 기회가 줄어 중국 젊은이들의 좌절이 큽니다. 샤오미의 철학은 그런 젊은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을 주는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류 부총재는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5 창조경제박람회 개막식에서 ‘온 더 로드-샤오미 창업 스토리’를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섰다. 류 부총재는 “5년 전만 해도 인터넷으로 휴대전화를 구매한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라면서 “소비자들이 인터넷에서 적지 않은 금액을 결제하고 스마트폰을 사게 만드는 힘은 바로 신뢰에 있다”고 말했다. 샤오미에 대한 팬들의 신뢰는 끊임없는 소통에서 나온다. 그는 “스마트폰을 만들기 전에 운영체제(OS) ‘MIUI’를 먼저 만들었는데, 처음부터 완성된 소프트웨어를 내놓지 않고 이용자들의 의견을 받아 완성해 갔다”고 말했다. “자신의 의견이 소프트웨어에 반영되는 걸 본 이용자들이 우리의 팬이 됐고 그들이 우리의 제품을 구매했습니다.” 특히 이 같은 전략은 소수의 스마트폰 마니아를 초점에 둔 것으로, 이들이 샤오미 제품의 홍보 지원군이 된다고도 덧붙였다. “팬들을 통해 제품이 알려지면서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샤오미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TV, 정수기, 전동스쿠터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며 ‘샤오미 생태계’를 넓혀 나가고 있다. 류 부총재는 “샤오미의 슬로건은 ‘젊음, 젊음, 젊음’(年輕, 年輕, 年輕)”이라면서 “전 세계 젊은이들이 가성비 높은 제품을 통해 과학기술이 가져다 주는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류더 샤오미 부총재 “샤오미의 성공 비결은 신뢰”

     중국의 스마트폰 기업 샤오미(小米)는 매년 4월 팬들과 함께하는 축제인 ‘미펀제’(米粉節)를 연다. 샤오미를 응원하는 팬들이 보내온 사진들은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된다. 팬들에게 본사 사무실과 물류센터 등을 보여 주는 ‘오픈데이’에는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10년 작은 스타트업(창업기업)으로 시작한 샤오미는 ‘중국의 애플’이라고 불리며 세계 5위권의 스마트폰 기업으로 성장했다. 뛰어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미펀’(米粉)으로 불리는 팬덤 문화가 성공 비결로 꼽힌다. 하지만 류더(劉德) 샤오미 공동창업자 겸 부총재는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신뢰’를 가장 중요한 성공 비결로 꼽는다. “인민대회당에서 표를 던지거나 대기업에 취업하는 등의 기회가 줄어 중국 젊은이들의 좌절이 큽니다. 샤오미의 철학은 그런 젊은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을 주는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류 부총재는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5 창조경제박람회 개막식에서 ‘온 더 로드-샤오미 창업 스토리’를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섰다. 류 부총재는 “5년 전만 해도 인터넷으로 휴대전화를 구매한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라면서 “소비자들이 인터넷에서 적지 않은 금액을 결제하고 스마트폰을 사게 만드는 힘은 바로 신뢰에 있다”고 말했다.  샤오미에 대한 팬들의 신뢰는 끊임없는 소통에서 나온다. 그는 “스마트폰을 만들기 전에 운영체제(OS) ‘MIUI’를 먼저 만들었는데, 처음부터 완성된 소프트웨어를 내놓지 않고 이용자들의 의견을 받아 완성해 갔다”고 말했다. “자신의 의견이 소프트웨어에 반영되는 걸 본 이용자들이 우리의 팬이 됐고 그들이 우리의 제품을 구매했습니다.” 특히 이 같은 전략은 소수의 스마트폰 마니아를 초점에 둔 것으로, 이들이 샤오미 제품의 홍보 지원군이 된다고도 덧붙였다. “팬들을 통해 제품이 알려지면서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샤오미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TV, 정수기, 전동스쿠터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며 ‘샤오미 생태계’를 넓혀 나가고 있다. 류 부총재는 “샤오미의 슬로건은 ‘젊음, 젊음, 젊음’(年輕, 年輕, 年輕)”이라면서 “전 세계 젊은이들이 가성비 높은 제품을 통해 과학기술이 가져다 주는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뮤지컬 ‘오케피’ 연습실 공개, 황정민 “주인공들만 모여서 합창이 어려워요”

    뮤지컬 ‘오케피’ 연습실 공개, 황정민 “주인공들만 모여서 합창이 어려워요”

    화려한 뮤지컬 무대의 아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25일 오후 5시 서울 남산창작센터에서 뮤지컬 ‘오케피’ 연습실 공개 행사가 열렸다. 뮤지컬 ‘오케피’는 한번쯤은 궁금했지만 한 번도 본적 없는 무대 아래 공간인 ‘오케피’(오케스트라 피트의 줄임말)를 무대화한 작품. 일본 스타작가인 미타니 코우키의 뮤지컬 데뷔작으로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에피소드와 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연출 겸 배우 황정민은 2009년 연극 ‘웃음의 대학’ 공연 중 ‘오케피’라는 작품을 처음 알고 매료됐다. 당시 일본작가 미타니 코우키의 작품에 빠지게 됐고 뮤지컬 DVD를 찾아 봤다. 황정민은 “DVD를 본 순간 이 작품은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오케피’를 연출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황정민은 “당시 뮤지컬은 화려하고 쇼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뮤지컬이 아니라 이런 연극적이고 감동이 있는 뮤지컬이 있다는 것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오케피’에는 황정민과 더블 캐스팅으로 컨덕트 역을 맡은 오만석을 비롯해 하프 윤공주, 린아, 바이올린 박혜나, 피아노 송영창, 트럼펫 최재웅 김재범, 오보에 서범석, 섹소폰 정상훈, 비올라 김원해 등 국내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황정민은 “이분들이 다른 작품에서는 다 주인공 하시는 분들이라 캐스팅이 힘들었다”며 “솔로만 하신 분들이라 합창이 잘 안 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이분들은 모두 그 역할에 체화된 사람들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공연을 보러 다니며 레고 퍼즐처럼 캐스팅을 조합했다. 사랑스러운 분들”이라고 배우들에 애정을 드러냈다. 황정민과 함께 ‘웃음의 대학’ 공연 당시 일찌감치 캐스팅에 낙점됐던 서건창은 “연출로서는 별로 믿기지 않았는데 계속 해도 될 것 같다”며 “굉장히 섬세하고 배우를 했던 사람이라 배우의 감성을 잘 알아서 그런 부분을 이해해줘서 좋았다. 배우들이 게으른 면이 있는데 매일 가장 먼저 나와 혼자 연습을 하고 있다. 이렇게 성실한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고 연출로서의 황정민을 인정했다. 뮤지컬 무대 밑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오케피’는 오는 12월 18일부터 2016년 2월 2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제21회 서울광고대상-우수상] KB금융그룹 - ‘국민든든’편

    [제21회 서울광고대상-우수상] KB금융그룹 - ‘국민든든’편

    이번 KB금융그룹의 PR 광고는 국민의 평생 동안, 인생의 다양한 순간을 KB가 함께 하고자 하는 그룹의 의지를 진실하게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시대와 환경이 변하더라도 금융회사가 지향하는 것은 믿음과 신뢰라는 본질적 가치이기에 신뢰받는 기업이미지를 표출하고, 새로운 그룹 브랜드 슬로건인 ‘국민의 평생 금융파트너’의 메시지와 연계하여 ‘누구든’ ‘언제든’ ‘무엇이든’ KB가 국민의 ‘든든한’ 동반자로서 함께 하겠다는 약속과 의지를 담았습니다. 앞으로도 KB금융그룹은 12개 계열사가 한 개의 회사(One-Firm)처럼 함께하여 3000만 명이 넘는 KB 고객에게 최적의 금융솔루션을 제공하는 국민의 평생 금융 파트너가 될 것입니다. 더불어 따뜻하고 신뢰를 주는 광고를 통해 고객에게 먼저 다가서고, 국민에게 더욱 사랑받는 KB가 되겠습니다. 좋은 상을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최인석 부장 광고대행사 - 엘베스트
  • 중동 전문가 2인이 보는 IS와 전쟁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프랑스 파리 테러를 계기로 중동 특히 시리아 사태와 수니파 극단적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국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테러 가능성에 대해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 21일 명지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인 ‘IS 파리 테러 긴급진단’에서 나온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급박한 정세 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해 본다. ■박현도 명지대 연구교수 전망…“IS, 美 워싱턴DC 테러 포기 안할 것”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동영상으로 예고한, 미국 워싱턴DC를 겨냥한 테러를 결코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 연구교수는 ‘파리 테러 관련 긴급 진단’ 발제문에서 “IS가 극도의 공포를 자아내 상대를 굴복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는 만큼 산발적 기습 테러의 수위를 점차 높여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테러 교과서로 활용하는 ‘야만의 경영’(2004년)이란 책을 인용해 IS가 ‘지속적으로 테러의 강도를 높이라’는 문구를 철저히 따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통해 상대방에게 공포감을 극대화시켜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일상의 공포가 최대 무기가 된 셈이다. 그는 IS에게 테러는 이슬람 극단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한 중요한 도구이기에 테러를 멈출 이유가 없다고도 주장했다. 지속적 공격으로 서방 세계의 분노를 자아내고, 이를 통해 선량한 무슬림이 핍박받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다. 예컨대 ‘11·13 파리 테러’ 이후 프랑스에서 무슬림이 적대시되며 공격받는 사례가 그렇다. 이는 갈등과 반목을 부추겨 악순환의 고리를 강화시킨다. 그는 이슬람 경전인 ‘하디스’와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하디스와 샤리아는 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신봉하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하디스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후 그의 발언을 담은 것이다. 샤리아는 이슬람 율법이자 규범이다. 박 교수는 “종교적 광신에 이성을 잃은 ‘테러리스트 무슬림’이란 이미지가 이미 우리 머릿속에 한층 더 두텁게 각인되고 있다”며 “비무슬림이 전 세계 모든 무슬림을 과격분자로 오해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다수 무슬림 지식인은 오히려 IS가 비이슬람적이라고 비판한다며 지난해 9월 전 세계 무슬림 학자들이 IS의 지도자 알 바그다디에게 보낸 공개 서한을 예로 들었다. 서한에선 IS가 이슬람의 전통적 법 체계를 무시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슬람에서 금지한 강제 개종, 고문과 시체 훼손이 수시로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정상률 명지대 교수 주장…“美, 천연가스 이해 얽혀 IS 격퇴 머뭇”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통제권을 둘러싼 IS 대 미국의 싸움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자원의 저주로서의 석유, 가스 및 파이프라인’이란 주제의 발제문에서 “미국이 이란·이라크·시리아·유럽연합(EU)으로 연결되는 에너지 파이프라인을 통제하기 위해 IS를 격퇴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다른 분쟁과 마찬가지로 IS와의 전쟁도 종파와 종교, 석유와 가스 파이프라인, 중동의 국가들과 미국·EU의 관계 등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다고 분석했다. 수니파 무장단체인 IS가 수니파의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 또 다른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알카에다 등과 수니파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IS가 지난해 6월 이라크 키르쿠크, 모술 등 석유 지대를 장악하면서 분쟁의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라크와 시리아 일부 영토를 장악하면서 미국과 중동 연맹국이 꺼리고 있는 이란·이라크·시리아·EU로 이어지는 에너지 파이프라인을 저지하는 결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IS는 유전 지대와 석유 시설을 장악한 후 석유를 싸게 밀매해 통치자금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시리아와 이란, 이라크는 2011년 7월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 합의하며 시아파 주축을 형성한다. 100억 달러를 들여 3년 내에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유럽 시장을 선점하기로 한 것이다.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회사 가스프롬이 시리아 가스 개발의 주요 투자자로 참여하게 됐다. 문제는 시아파 주축에 맞서는 사우디와 카타르도 유럽 시장을 원한다는 것이다. 사우디 등을 지원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이라크 유전 지대와 시리아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설치 예정 지역을 점령한 IS를 적극적으로 격퇴할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다. 정 교수는 “미국은 국가 이익 측면에서 자국군이 희생하고 재정을 투자하면서까지 IS를 격퇴할 이유가 없다”면서 “IS가 이란·이라크·시리아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 건설을 저지하면서 중동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이익을 보호해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문학의 힘·책의 마력·독서의 의미를 ‘읽다’

    문학의 힘·책의 마력·독서의 의미를 ‘읽다’

    소설가 김영하(47)가 문학이라는 ‘제2의 자연’을 탐험한 산문집을 냈다. ‘보다’, ‘말하다’에 이은 산문 삼부작 완결편인 ‘읽다’(문학동네)다. ‘읽다’에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 문학 작품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문학 탐사 여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오래전에 읽은 책들은 다시 읽고, 어린이용 축약본으로 읽었던 책들은 완역본으로 새로 읽었다. 읽었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읽지 않은 책들도 일일이 찾아 읽었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위대한 작품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특질은 무엇인지 등 책과 독서에 관한 치열하고도 매혹적인 사유로 가득하다. 작가는 “이 책은 그동안 읽어온 책들, 특히 나를 작가로 만든 문학 작품에 바치는 사랑 고백”이라고 소개했다. “모든 사랑 고백이 그렇듯 꽤 오랜 준비와 노력, 망설임이 필요했다. 아직 읽어야 할 책이 많은데 벌써 이런 책을 내도 될까 싶기도 했지만 이쯤에서 한번 서사 문학이라는 것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디로 흘러왔고, 독자이자 작가인 내가 어떤 지점에 서 있는가를 살펴보자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돈키호테는 흔히 환상이나 비현실적인 것을 좇아 무모하게 도발하는 인물이나 성격의 대명사로 통한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처음부터 ‘책에 미친 자’였다. 기사소설이라는 기사소설은 죄다 섭렵한 뒤 그것을 현실로 착각하기에 이르렀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 에마 보바리도 로맨스 소설에 푹 빠져 소설처럼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인 연애를 꿈꾸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에마 보바리도 이야기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 작가는 이처럼 이야기가 실제 삶에 미치는 영향을 탐색한 뒤 책은 온순한 사물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사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인간을 감염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며 이성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책에는 주술적인 힘이 서려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책은 곳곳에서 금지당하고, 불태워지고, 비난당했습니다.”(57쪽) 독서 행위의 의미를 짚은 대목도 눈에 띈다.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과의 투쟁일 겁니다. 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됩니다.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29~31쪽)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사설] ‘아너소사이어티’가 보여준 기부 문화의 희망

    국내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들의 누적 기부액이 1000억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2007년 12월 아너소사이어티가 출범한 지 8년 만이다. 1억원 이상을 한 번에 기부하거나 5년 안에 완납하기로 약정하면 가입할 수 있는데 벌써 회원 930명에 이들의 누적 기부액이 1013억원에 이른다니 놀랍기만 하다. 1억원이 적은 돈인가. 이미 많은 돈을 갖고 있어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라고 선뜻 내놓기가 쉽지 않은 거액이다. 첫 출발 당시 이 같은 거액 기부자 모임이 기부에 인색한 우리 사회에서 과연 정착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너소사이어티는 시나브로 우리 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 직업별로는 기업인이 절반 가까운 47%에 이르지만 전문직 종사자, 자영업자, 법인이나 단체 임원, 공무원, 스포츠·방송·연예인 등 다양한 직업과 계층의 인사들이 동참하고 있다. 모임을 출범시킨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중에는 익명의 기부자가 13%에 이르고, 이들 중 상당수가 평범한 일반인이라고 한다. 기부를 통해 이웃을 돕고, 나눔을 실천하면서 더 큰 기쁨을 얻는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최근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가 차츰 확산돼 가는 추세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하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부나 나눔을 ‘다른 사람의 일’로 여기곤 한다. 평생 모은 전 재산을 배움에 목말라하는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에게 써 달라며 아낌없이 기부하는 노부부의 결단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정작 자신의 기부 행위에는 인색하기만 하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기부나 나눔에 대한 인식이다. 함께 나눔으로써 공동체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런 점에서도 아너소사이어티의 성공적 정착은 우리 기부 문화의 미래에 큰 희망을 안겨 준다. 이들의 기부 행위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 확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 등 세계적 기부가들과 이들이 주도하는 기부 문화의 확산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기부와 나눔은 일종의 ‘행복 바이러스’가 될 수 있다. 돈도 좋고, 재능도 상관없다. 우리 사회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함께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 수 없다. 그런 믿음과 희망이 다져지길 바란다.
  • 여성근로자 농성 감시 경찰 따귀 때려… 2층 서재로 부르더니 “겨레 위해 기도”

    여성근로자 농성 감시 경찰 따귀 때려… 2층 서재로 부르더니 “겨레 위해 기도”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참으로 기(氣)가 센 야당 투사였다. 유신 말기인 1979년 8월 가발 업체인 YH무역의 여성 근로자들이 서울 마포 신민당사를 찾아와 농성을 벌였다. 경찰들이 밀착 감시하며 당사 주변을 에워싸다시피 하자 당시 YS는 경찰의 따귀를 올려붙이기도 했다. YS는 YH 사건 이후 공안통치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었지만 “박정희 정권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최후 발악이다”라는 말을 수시로 내뱉었다. 9월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미국은 한국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고, 한국 정부에 민주화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라”고 주장했다. 공화당과 유정회의 여당은 벌떼같이 일어났다. ‘국헌을 위배하고 반국가적 언동을 했다’며 국회의원 제명 동의안을 제출했고 무술경관들로 방호벽을 쌓아 야당 의원들의 접근을 차단한 가운데 본회의장이 아닌 여당 의원총회장인 146호실에서 제명안을 통과시켰다. YS는 제명된 후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밤이 깊으면 동이 튼다” 등의 유명한 말을 남겼다. 10·4 YS 제명 후 한 달 보름도 안 돼 그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 마산을 중심으로 10월 16~19일 이른바 ‘부마사태’가 일어났고 10·20 위수령 발동 6일 뒤 10·26사건으로 유신정권은 종말을 맞았다. YS는 유신 말기, 신민당 출입기자들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수시로 “지방 가 봐라, 다 끝났다. 서울에서는 잘 모른데이”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기독교도인 YS는 믿음이 깊었다. 1970년대 중반, 신민당 내 당권 경쟁이 심화되던 어느 날 이른 아침, 상도동 자택에 갔다. 몇몇 기자들이 비서진과 전당대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비서가 “총재께서 부르신다”며 2층 서재로 올라가 보라고 했다. 혹시 ‘특종’이라도 주나 하는 기대감(?)을 갖고 올라갔다. 평소와 달리 미소 띤 얼굴로 손을 잡으며 앉자마자 “이 동지, 기도합시다”라고 말했다. 엉겁결에 눈을 감았다.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해 기도합니다.…이 땅에 민주주의가 넘치고….” 왜 그렇게 손을 꽉 잡는지, 왜 그렇게 기도가 긴지 지금도 생생하다. 기도가 끝나자 “이 동지, 민주화를 위해 우리 함께 나갑시다”라며 다시 악수를 청했다. 취재기자가 갑자기 당원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1970년 ‘40대 기수론’ 이후 YS는 야권의 영원한 맞수, 김대중(DJ) 전 대통령과는 참모들을 다루는 방식이 참 달랐다. DJ는 오랜 정치적 핍박을 받아서인지 비서들에게 수직적으로 1대1 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YS는 비서들에게 수평적으로 1대 다수로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격은 개방적이면서도 직설적이고 웬만한 의사 결정은 타고난 직관적 판단력으로 해결했다. 그는 총론에 강하고 각론은 아랫사람들에게 위임하는 리더였다. khlee@seoul.co.kr
  • ‘휠체어 조문’ JP “YS는 신뢰의 분”

    ‘휠체어 조문’ JP “YS는 신뢰의 분”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보였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오전 8시 50분 휠체어를 타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를 이끌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국화 한 송이를 들고 10초 정도 눈을 감은 뒤 양손의 깍지를 끼고 묵념을 올렸다.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데 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3김 중 김 전 총리만 홀로 남게 됐다. 조문을 마친 김 전 총리는 내빈실에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상도동계였던 김수한 전 국회의장,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등과 김 전 대통령을 추억했다. 김 전 총리는 “아침도 마음대로 못했다”면서도 현철씨에게 수차례 “자당(慈堂)을 잘 챙겨 달라”는 당부를 반복하며 부인 손명순 여사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러면서 “나도 이제 여생이 얼마 안 남았는데… 회자정리라는 말이 떠오른다”며 생각에 잠겼다. 김 전 총리는 김 전 대통령을 회상하며 “하여간 신뢰의 (상징인) 분이다. 다른 사람이 못 하는 일을 하신 분”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그래도 병원에 계시는 동안에는 ‘계시니까’ 하는 믿음이 있었는데 허탈함이 있다”면서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공개석상에서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 편인 김 전 총리는 “끝까지 아버지를 모시던 충신은 어디 갔느냐”고 퇴임 후 줄곧 김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김기수 전 비서관을 찾은 뒤 그에게 “잘 모셨다. 긴 세월 일편단심 잘 모셨다”고 말하며 눈물을 터뜨렸다. 김 전 총리는 현철씨에게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중에 잊히지 않는 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였다”면서 “보통 사람은 생각하지 못하는 얘기다.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이라고 밝혔다. 또 김 전 대통령이 정치인들에게 보내 줬던 ‘민주 멸치’를 언급하며 “여야가 나뉘어 있는데, 멸치를 매년 보내 주셔서 잘 먹었다”면서 “정치적인 찬반을 제쳐 놓고 멸치가 한창 잡힐 때니 먹어 보라”라고 권하기도 했다. 1926년생인 김 전 총리는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최근 회복됐지만 여전히 건강이 좋지 못하다고 한다. 김 전 총리는 주변에서 건강을 묻자 “(김 전 대통령이) 단식을 여러 번 하셨다. 밥 못 먹으면 국민은 불행이고, 그게 걱정이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는데…”라며 희미하게 웃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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