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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부패 수사진 대폭 증원/전국 법원·검찰 간부 등 3백명 차출

    【홍콩 연합】 중국 공산당지도부는 전국에 걸쳐 대형부패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하고 이를 위해 전국각지의 검찰·법원 등 정법(정법)계통으로부터 3백명이상의 수사간부를 보강하라고 명령했다고 홍콩연합보가 8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이 지시에 따라 현재 전국각지의 검찰·법원·기율검사·감사·회계감사 등의 정법계통 간부 3백명이상이 속속 차출되고 있다고 이 신문은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전했다. 이들 수사간부는 앞으로 부패수사 통합조정기구인 당중앙정법위원회 지시에 따라 전국에 파견돼 지금까지 수사성역이던 부문은 물론 지역과 업종을 일체 가리지 않고 광범위한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현재까지 드러난 3대부패사건은 강소성 무석시에서 발생한 「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사상 최대의 금융사기사건인 인민폐 33억위안(한화 약 3천3백억원) 불법모집사건과 수도강철총공사 페루광산 구매사건 및 왕보삼·진희동사건이라고 이 신문은 말했다.
  • 중 피랍 선원8명 27일 귀국/제85 우성호

    지난달 27일 불법조업 혐의로 중국에 나포됐던 제85 우성호의 김수원 선장을 포함한 선원 8명이 23일 풀려나 오는 27일 귀국할 예정이라고 외무부가 24일 밝혔다. 중국은 85우성호에 중국 인민폐 32만원(한화 약3천2백만원)의 벌금을 부과했으며,어로장 김창근씨와 기관장 김정길씨등 2명은 선주가 벌금을 납부한 뒤 선박과 함께 귀환할 예정이다.
  • 중 심천시 부패관리 70명체포/홍콩지/대형세금사기관련 당서기 수감

    【홍콩 연합】 중국 중앙에서 파견된 1백명이상으로 구성된 광동성 심천경제특구 부패조사조가 부패와 관련하여 70명이상의 심천시 당·정관리들을 체포했다고 홍콩의 성도일보가 시관리 등을 인용,19일 보도했다. 심천시 정부내 소식통들은 국무원 나간비서장이 이끈 방대한 부패조사조가 중국의 첫 경제특구 심천시의 과장급과 처장급만도 수십명이나 체포했으며 이중 사구개발구 당위서기 고승리는 이미 투옥됐다고 말했다. 조사받은 최대부패사건은 특대형 세금사기로 관련금액이 인민폐로 1백억원위안이상(약1조원)이어서 사안이 심각해 국무원 공안부 부부장 2명도 나간과 함께 와서 이 사건을 집중조사했다고 성도일보는 말했다. 중점 조사대상부문은 심천세관을 비롯,공상및 세무부문과 심천주재 중앙의 일부 국유기업이었으며 특히 심천세관에서 관리들이 대거 체포됐고 조사과정에 성공안청 부청장외 일반 광동성관리들의 참여는 배제됐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 보따리장사/북한에 싸구려 물건팔아 짭짤한 재미(두만강7백리:10)

    ◎북한에 싸구려 물건팔아 짭짤한 재미/세관검사 허술한 고성리엔 장사꾼 득실/“저질품 거래해 동포간 불신 조장” 우려도/김일성 사후 단속… 거래 주춤 두만강이 발원하는 상류지역 화룡시 숭선진 진소재지 고성리촌은 크고 작은 2척의 군함형국을 한 산 아래 자리잡은 오붓한 마을이다.옛날에는 두만강물이 그 군함산 밑을 지나갔다고 한다.그러고 보면 군함이 물살을 가르고 떠가는 모습을 했을 것이다. 이 마을의 노인들은 큰 군함산은 남쪽을 향하고 작은 군함산은 뱃머리를 북쪽에 두었다고 생각한다.그런데 묘하게도 그 형국이 요새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남으로 향한 큰 군함산이 조선(북한)으로 들어가는 대신 작은 군함산은 조선에서 소량의 짐을 싣고 북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다시 말하면 오늘날 북한에서 연변 땅으로 들여올 물건이 없다는 것인데 중국의 조선족 장사꾼들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두만강유역 답사길에서 실제 군함산 아래 고성리촌에 몰려든 조선족 장사꾼 무리들을 만났다.고성리촌에 장사꾼들이 모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그것은 바로 해관(세관)보다 휴대물품 제한 수량이 느슨한 변방검사잠(국경검사소)이 고성리촌에 있기 때문이다.두만강유역에 자리한 연변의 4개 지역에 해관이 있지만 휴대품 검사가 아주 까다로워 변방검사잠에 장사꾼들이 몰리게 마련인 것이다. ○양강도 거래통로 폐쇄 연변에서 두만강을 건너려면 4개의 해관이나 2개의 검사잠을 거쳐야 한다.화룡시 숭선진 고성리촌 검사잠 말고도 화룡시 덕화진에도 검사잠이 있으나 강건너 북한 땅 수산에서 김일성 사망 이후 시장을 닫아버려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요즘 한창 흥청대는 고성리촌 변방검사잠은 북한 양강도 대홍단군 삼장리로 건너는 통로다.그래서 숭선진 행정부 각부서에 근무하는 인구까지 통틀어 3백명도 안되는 고성리촌의 국유여관과 개체(개인)여관은 늘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고성리촌에서 만난 김철석(51)씨는 화룡시내에 사는 사람인데 화가 머리털 끝가지 치민 말투로 투덜거렸다.두만강 국경을 넘어갈 조선족들이 하도 많아 출국걸음이 늦어지자 옛 시절을 들추어내면서 불평을쏟아놓았다. 『도대체 국경이 뭐란 말입네까.예전에 여권이래 없이도 마음대로 왔다갔다 했시요.고성리와 강건너 삼장사람들 한데 모여 이 군함산 아래서 운동회도 했댔수다.노동자가 몇 백원씩 타서 목돈 쥐어보려고 만여원어치 물건을 사 놓았는데 이 꼴이 뭡네까.되돌아갈 처지도 안되니끼리 이렇게 기다립네다.이거 원,하는 이틀도 아니고…』 중국연변의 남평·백금·도문·훈춘 등과 조선의 삼장·무산·회령·종성·경원 등은 예전부터 두나라 사람들이 상품을 거래하던 시장이었다.광복초기까지도 중국의 쌀이 아니면 두만강연안 조선 사람들이 굶는다고 했고 조선의 소금과 옷감이 없다면 중국 사람들은 염분 결핍으로 털 난 벌거숭이가 된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그만큼 두만강 양안의 경제거래는 밀접했다.용정시 개산툰진 선구에서는 계란을 팔아도 종성 장거리로 갔다고 한다.오늘도 마찬가지이다.중국의 경공업품과 양식이 나가고 대신 명태,낙지 따위 해산물들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연변 사람들의 식탁에 물고기 반찬이 푼푼이 오르지 못할 것이다.북한땅을 찾아 재미를 본 조선족들은 한국바람이 불어도 좀처럼 뜸해지지 않는다.작은 밑천 가지고 돈맛을 보기가 쉽고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고도 왕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마음먹은대로 제때 국경을 못 넘는 것이 불평이라면 큰 불평이다.여관에서 수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빽만 있으면 풀린다』는 소리도 서슴없이 해댔다.그러면서도 기다리는 사람들의 속 사정 뒤에는 모두가 목돈을 움켜 쥐겠다는 욕심이 깔려있다. 내가 숭선향에서 3일동안을 묵는 사이에 어느 한 사람은 배갈과 맥주만 1백 상자를 싣고 건너갔다.한번 장사비용이 제일 많은 사람이 17만원,제일적은 사람이 1만원이었다.보통 두세집 물건을 실으면 트럭 한대 적재함이 넘쳤다.그들이 가진 물건은 대개 연변의 싸구려였다. 옷가지들은 20원좌우의 도매품이고 담배는 「장백」「박쥐」표는 고급이고 보통 한갑에 60전씩 하는 「해란강」과 「길성」이 많다.배갈도 화룡의 「대고량」이고 고급스럽다는 것이 연변 사람들이 좋아하는 「BC」표 맥주였다.북한으로 가는 짐은 한때 천인호를 타고 한국에 갔다가 천진항에 내리는 보따리 장사꾼들의 짐만큼이나 컸다. ○북한산물품 크게 줄어 『보통 열다섯배,잘 받으면 스무배가 더 떨어지디요.길성표 담배 한갑이 조선돈 15원,입쌀 1㎏이 40원(중국에서 입쌀 1㎏이 2원)입네다.중국돈 1만원만 갖고 가도 조선돈 20만원을 만들디요.변방잠에 찔러주고 길에 널고 하는 돈까지 떼고도 남는 떼돈벌인데 누가 안하겠습네까.올 때면 해산물을 구입하는데,1㎏ 명태값이 4백원이니까 중국돈 20원입네다.중국에서 도매로 35원 이상이디요.중국에서 4백원씩 하는 생복같은 것은 조선돈으로 4천원 좌우에 살수 있습네다.해삼은 3천원인데 중국에서는 도매가격이 인민폐로 3백50원에서 일전도 곯지 않고 팔디요.2월부터 4월까지는 명태,4∼5월은 해삼,8월은 낙지철로 칩네다』 장사꾼들의 말을 들어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북한을 상대로한 한 장사는 손쉽게 돈을 버는 지름길이기도 하다.지금 중국 조선족 장사꾼들은 큰 군함산에 싸구려를 무겁게 만재해 싣고 갔다가 작은 군함산에 값진 해산물을 살짝 얹어 싣고돌아오나 예전에는 이와 반대였다.용정시 삼합진 북흥촌의 김창균(60·조선 함북도 유선군 성북리 태생)씨의 50년대 장사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내가 회령에 가서 학교를 다닐때 일입네다.토요일이면 두만강을 건너 집에 와서 주말을 보냈디요.한번은 용정에 갔다가 한감에 12원씩하는 샤떼천 두감을 끊었댔습네다.월요일 새벽에 강을 건너가서 하숙집 아주머니한테 맡겼는데,아주머니가 청진에 가 팔아서 돈을 줍데다.그 돈으로 한달 숙비를 내고도 헝가리 신발 열켤레와 손목시계까지 사 찼지 않았갔시요.그때 헝가리 신발 한켤레가 중국에서 12원씩인가 기랬어요』 ○손쉽게 돈버는 지름길 장사꾼들이 북한으로 갖고 가는 물건은 중국의 싸구려 폐품이다.양말따위는 한두번 신고나면 실밥이 나고 몇번 빨고 나면 판나서 버려야 한다. 옷도 매 한가지다.지금은 좀 품질이 좋은 것으로 휴대한다고는 하나 별 차이가 없다.그러한 저질품을 고가로 팔아 목돈을 쥐고 어깨를 잔뜩 살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음이 언짢다.한두마리 지렁이가온 늪의 물을 흐린다고 돈에 눈이 어두운 얼간이들의 놀음은 동포간의 불신을 심어주고 있다.가슴 아픈 일이다.
  • 국산담배 중국 진출/88골드­라이트 새달 정식판매

    【북경 연합】 세계 최대의 담배시장인 중국에서 오는 5월부터 우리나라 담배가 정식 판매된다. 한국담배인삼공사로부터 우리나라 담배의 대 중국수출을 위탁받은 해림통상(대표 허해철)은 17일 북경에서 중국연초진출구총공사와 한국산 담배의 수입 및 중국내 판매를 내용으로 한 계약을 정식 체결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담배중 중국인들의 기호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알려진 「88골드」와 「88라이트」등 두종류의 담배가 5월부터 중국시장에 공급되며 이들 담배의 중국내 소비자가격은 인민폐 8원(한화 약 8백원) 정도로 국내 소비자가격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 가고 온 사람들(두만강 7백리:5)

    ◎광복­6·25이후­문혁때 귀향 줄이어/60년대말까지 쉽게 도강… 65% 다시 연변에/“지금은 갈수 없는 땅”강 건너 바라보며 눈물 ○보따리 이고 강 건너 끼룩 끼룩 끼루룩…. 한떼의 기러기가 일찍 얼음이 녹은 강 한구석을 박차고 북한땅을 멀리 돌아 날아간다.걸음을 멈추고 강 건너 마을을 바라보았다.한낱 짐승들도 자유로이 넘나드는 강.그렇지 못한 우리에게 두만강은 늘 한을 던져준다. 「기러기 갈 때마다 일러야 보내며/꿈길에 그대와는 늘 같이 다녀도/이 몸이 건느면 월강죄란다」 옛날 선조들이 불렀다는 「월강곡」을 되뇌어 보았다.나라의 독립을 위해 개척민에 뽑혀 산길을 찾아 나선 선조들은 밀물처럼 강을 건너왔다.그리고 또 광복 후 이주 당사자들과 후손들은 고국이 그리워 피땀으로 일군 삶의 터전을 버리고 다시 강을 되건너 썰물같이 대거 고국으로 돌아갔다. 첫번째 귀향은 광복 당시였다.일제의 말발굽에 짓밟혔던 나라가 독립을 맞자 조선족들은 보따리를 싸지고 두만강을 건넜다.당시 귀향민들은 두가지 부류다.대부분의 사람들은조상들이 묻힌 땅을 찾아 귀향했다.어떤 사람들은 북한의 고향을 찾았지만 살수가 없어 이남으로 곧장 월남했다.광복이 되자 연변과 북한의 공산당 정부는 일제주구 청산부터 시작했다.훈춘의 대지주이고 대동아전쟁때 비행기를 헌납하고 동경에 가서 천황의 접견을 받은 한희삼은 물론 다른 지주와 친일파들은 처단 당했다.항일부대 토벌에 공로가 있는 용정의 박도끼는 북한으로 도망가서 숨어 있다가 청진에서 잡혀 총살당했다고 한다. 화룡현 신선대 대장 김일로는 일제가 연길공원에 동상까지 만들어 세웠던 김동환 다음으로 가는 주구였다.1940년 3월25일 일본인 산림경찰대장과 함께 자기의 병졸들을 휘몰아 독립군을 추격하다가 홍기하에서 매복습격을 받아 1백20여명의 졸개를 잃었다.김일로도 졸개들을 호령하다가 벌린 입으로 탄알이 꿰뚫고 지나갔지만 요행히 목숨은 건졌다.이남으로 건너간 그는 여생을 편히 보내다가 수원에서 일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번째 대 귀향은 1956년부터 1962년까지였다.한국전쟁(6·25)이후의 일인데 전후복구 지원을 위해 많은 조선족들이 북한으로 들어갔던 것이다.화룡시 용화향 상화촌에서만도 49호가 나갔다.그리고 인민공사가 시작되면서 굶어 죽게 되자 다시 살길을 찾아 북으로 건너갔다.용정시 삼합진 북흥촌의 최태경 일가는 19 62년에 함경북도 연사군으로 이사했다.최씨의 막내 딸 최해옥은 연사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중 5학년 때 평양으로 뽑혀갔는데 현재 유명한 영화배우로서 「꽃파는 처녀」에서 주인공 꽃분이 역을 맡고 있다고 한다. 인재들이 많이 갔다.중국에서의 반우파투쟁이 지식인들을 잡는 운동이나 다름이 없고 민족심을 가진 사람들은 반동적 민족주의자로 되는 판국이라 떠나들 갔다.유명한 시인 주선우,작곡가 정진옥,소설가 김동구,아동문학가 채택룡 등 문학예술계 인사들도 떠나갔다.용정시 삼합향 승적 신재룡은 길림성 공업학원 학생이고 축구를 잘 했다.지금 그는 조선체육대 교수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너왔다 도로 가고 용정시 삼합향 북흥촌 이기희(54)는 연변대학을 다니다가 2학년 때인 1961년 7월 북한에 들어가 만 6년을 살고 다시 돌아왔다.그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에 살다가 다시 연변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다. 『당시 회령의 사탕공장건설은 연변에서 건너간 귀향민이 대부분이였댔습니다.나는 대학을 다니던 사람이라 공무직장에 배치 받았디요.직장장의 이름을 딴 김희진작업반에 배치합데다.그때 국가 철도상이자 함북도 건설사업소 소장으로 파견나왔던 김주봉이 하루는 우리 공장에 와서 연설을 하면서 「중국에서 하루에 백오십명씩 건너오고 또 매일 백여명씩 되넘어갑니다.조국에 왔으면 참답게 살아야지 이것이 뭡니까」라고 비판을 했디.어떤 날 출근하면 많은 사람이 없어집데다.알아보면 중국으로 돌아간거디요.67년 7월에 나도 가정을 데리고 도강을 했으니 아마 이튿날 내 자리가 비어 야단이었을 것이 뻔합데다.이북으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중국에서는 호구를 붙여주지 않다가 67년 9월 정부에서 한꺼번에 복적시켰댔시요』 세번째 귀향은 문화대혁명시기이다.용정시 대소과수농장만 해도 항일에 참가했던 사람들 70여명 모두가 귀순 분자로 투쟁을 맞았으니 2백50호 중에 70호가 적이된 셈이었다.그중 10여호가 북한으로 도망갔다.용정시 백금향 백금촌 차덕균은 일제시기 동경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었다.일본에서 공부한 사실이 간첩조건이 되어 투쟁을 맞았다.모진 매를 견디다 못해 온 가족이 북한으로 갔는데 떠나던 날 큰 딸이 친척 집에 가고 없어서 두고 간것이 생이별이 되었다. 용정시 개산툰진 선구촌 사이섬에서 총 사격을 받고 수백명이 종성으로 집체도주 한 일이 대표적 사건이다.선구촌 문영기(54)씨도 그 사건에 끼었던 한사람이다.캉다(강대)요 홍색이요 하는 조직간에 말로하던 시비질이 주먹질,돌팔매질,몽둥이 싸움으로 번졌다. ○“북에 남아라”만류도 1967년7월29일 연길 캉다에서 개산툰에 와 개산툰 캉다와 합세하여 홍색을 쳤다.싸움은 공장울안에서 일어났는데 쌍방은 돌멩이를 던지고 창으로 찔렀다.홍색에서는 열세에 몰리자 해관의 총을 내다 불질을 해댔다.캉다패들은 결국 선구 대안 두만강 복판 사이섬으로 쫓겨나고 말았다.8월2일 홍색은 사이섬을 포위하고 투항하라고 공포를 놓았는데 총소리를 들은 북한땅 종성 사람들이 강변으로 나와 어서 건너오라고 소리를 쳤다.3백여명이 모조리 강을 건너갔으나 여자 하나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북한에서는 대우를 제법 해주었다.그러면서 돌아가면 잘못 된다고 북한에 남으라는 선전을 했지만 몇사람 이외에 모두가 두달 후 되돌아왔다.주모자들은 감옥에 들어가 1년씩 구류를 사는 것으로 그쳤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면서 당시의 일들이 억울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그때 북한으로 건너가 거주하는 사람들이 중국에 와서 손해배상을 받아갔다.용정시 삼합진 승지촌 김광진은 지방 자위단에 있었다는 죄로 투쟁을 당하다 죽었다.그래서 온 가정이 야간 도주하여 회령으로 건너갔다가 지난 92년에 아들 김상연이 와서 용정시 민정국에 상소,3만원(인민폐)을 보상받았다고 한다. 현재 화룡시 덕화진 남평촌의 내 숙부(유인상·77)는 낮이면 두만강가에 나가 건너 쪽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지으시기 일쑤다.내 고모가 60년도에 조선 청진으로 간 이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다.조카들은 60년대 초에 다녀갔고 몇해전까지는 편지라도 오갔는데 벌써 5년째 소식조차 모르고 있다.앞길이 멀지 않은 숙부는 생전에 단 한번이라도 만나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다.부친(유민상·84년 별세)께서도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을 말끝마다 외우시다가 한많은 세상을 뜨셨다.
  • 중 첫 민영은 연내 개업/민생은행/자본금 3천억원 승인

    【홍콩 연합】 중국의 첫 민영은행인 「중국민생은행」이 중국정부의 승인을 받았으며 올해안으로 정식 영업활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이 은행 창립을 주도해온 중화전국공상업(공상업)연합회 경숙평 주석이 밝혔다고 홍콩의 중국계 신문 문회보등이 14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경주석은 민간기업들의 급속한 발전으로 자금수요가 많을 것에 대비해 「중국민생은행」의 등록자본금이 당초 계획된 인민폐 20억원(한화 약2천억원)에서 인민폐 30억원으로 증액됐다고 밝혔다.
  • 「등소평 라인」 기업가 주북방/3천억원 사기 연루

    【홍콩 연합】 중국 최고 지도자 등소평의 차남인 등질방의 친구이자 수도강철총공사의 홍콩대표였던 주북방은 대륙에서 인민폐 33억원(한화 약3천억원이상)의 사기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홍콩의 영자지 스탠더드가 22일 1면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이 사기사건에 대한 수사는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됐으며 현 북경시장인 이기염의 전비서 리 민도 관련돼있다고 스탠더드지는 말했다.이시장은 진희동에 이어 지난 93년 2월5일 취임했다. 주의 친구 리 민도 체포된 것으로 보이며 수사가 확대되고있는 가운데 북경과 상해의 주요 인물들이 추가로 체포될 것으로 보인다고 스탠더드지는 말했다.
  • 중 국방비 25%증액/79년이래 최대규모

    【홍콩연합】 중국의 국방예산이 군부에 대한 영향력을 축적하려는 강택민 당총서기겸 당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요구에 따라 지난해 인민폐 5백20억위안에서 올해 6백50억위안(약 6조원 이상)으로 25%나 증가할 것이라고 홍콩의 영자지 이스턴 익스프레스가 16일 보도했다. 이같은 국방예산 증가는 지난 「79년 등소평이 군대를 감축해 더 많은 재원을 경제에 투입하겠다고 약속한 이후 최대의 증가폭이라고 익스프레스는 말했다. 인민해방군 소식통들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책임자인 강택민이 재정부의 반대를뒤집고 군부가 요구한 예산을 거의 수정없이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 중/2천년까지 “완전 태환”/3단계 걸쳐… 구체 시기는 안밝혀

    【상해 로이터 연합】 중국은 오는 2000년도까지 3단계에 걸쳐 현행 화폐를 완전태환화할 계획이라고 상해증권보가 11일 보도했다.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의 수 빙 부행장은 이 신문과의 회견에서 『이계획은 점진적 변화과정』이라고 말하고 『중국은 아직 외환결제 규제를 철회할 상황이 못된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해 3월 가트(관세무역일반협정) 재가입 노력의 일환으로 인민폐를 금세기말까지 완전 태환화할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수부행장은 태환화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우선 1단계로 모든 외화소득을 지정 은행에서 매입하도록 하는 엄격한 결제체계를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기간중에도 국제무역 결제상의 규제는 완화돼 각 기관들이 대금 지불용경화를 지정은행에서 매입할 수 있게 된다. 중앙은행은 비업무용 외환매입과 개인의 외화지출 한도는 계속 규제해나갈 방침이다.또한 외국에 대한 투자와 외국자금 차입,내국인 투자기업 수익의 국외 송금등 자본의 유출을 초래할 소지가 있는 거래도 계속 규제를 받게 된다.
  • 캉자스먼쯔의 신산(서역 문화기행:6)

    ◎붉은 암벽에 모계사회 생식숭배 그림/기원전 2∼3세기 카자크족 원주민들이 새겨/무도회·인구번식회에 인물 2백명… 여성이 대부분 우고,그들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생식의 필요는 절실하다. 수렵과 유목을 위해서는 심산유곡과 만경초원이 안성맞춤이다.우랄·알타이산맥 남쪽으로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을 등지고,팔카스호 동쪽으로 아라호·아이피호·이리강·카스강·마나스강등을 낀 신강의 서북지대가 바로 최적의 지대로 꼽힌다. 그 지대를 기원전 7세기부터 누빈 것은 오손(오손)·강거(강거)·엄채등 돌궐어족인데,그들은 모두 오늘날 하사크족의 원조민족이었다.지금도 중국 서역에는 백만명을 헤아리는 카자크족이 신강의 서북지역을 물 따라 풀 쫓아 유목하고 있다. 그 유목하는 곳엔 카자크족이 살고 카자크족이 사는 곳,그러니까 팔카스호 동쪽의 초원에는 암화(암화)가 많았다. 지금 독립연합국의 하나인 카자흐스탄을 비롯,신강의 이리강과 초하유역인 쿨자파스산상에는 기원전 6세기에서 3세기로 추정되는 동물암화가 많다.다시 동쪽으로이동하면서 비록 연대는 기원전 3세기 이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리강유역의 훠청(휘성)현 베이간(북간)계곡을 비롯,니러커(이근극)현의 훙광목장등 하미(합밀)의 남산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50여군데에서 발견되었다. ○초원에 천마 노닐어 그중에 위민(유민)현 팔타쿨(파이달고이)과 후투비(호도벽)의 캉자스먼쯔(강가석문자)의 암화도 포함되었지만 여느 암화와 다른 모계사회의 생식숭배를 보였다 한다.특히 최근에 발견된 캉자쯔먼즈의 그것이 보다 사실적인 데다 화면이 또렷하다는 신강사범대학 중문과의 황천(황천)주임의 권고와 안내로 그곳으로 머리를 돌렸다. 우루무치에서 캉자쯔먼즈까지 1백50㎞.위구르말로「도깨비 고을」이라는 후투비까지 70㎞는 시원한 아스팔트길이었지만,후투비에서 그 이름도 시골스런 추이얼거우(최예구)향에 있는 현장까지는 험한 산허리를 뚫고 천산산맥 서쪽의 어디쯤을 덜컹거릴 수 밖에 없었다. 깔딱 어느 고개를 넘어설 때,황주임은 별안간 차를 멈추게했다.일행이 내려서 멀리 산맥을 굽어 보았다.시뻘건 바위산맥이 서남쪽으로 꿈틀거리며 이어져 있는데 그 기상은 수십척의 함대가 파도를 가르며 행진하는 모습이었다.그 산맥은 적어도 20∼30㎞를 쪽빛 하늘밑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 한복판에 활짝 열린 대문을 방불케 웅장한 바위가 보였다.그것이 바로 생식 숭배의 암화 현장이라했다.결코 소풍하는 산등성이가 아니라 출렁이는 산맥,어디를 보아도 기운이 넘치는 그러한 암맥들이었다. 후투비에서 거의 80㎞를 달려서 이윽고 골짜기의 초원에 도달했다.초원에는 낙타와 천마들이 떼를 지어 풀을 뜯고 있었다.신산의 어귀에 갔을 때,동그랗고 커다란 눈에 텁수룩한 수염을 기른 청년이 길을 막았다.입장하는 표를 사라했다.아직은 알려지지 않아서 관객은 물론 관리자도 없을 줄 알았는데.그들의 재빠른 상혼이 놀랄만 했다. 문제의 암화가 있는 바위는 깎아 세운듯한 암벽이었다.그 암화는 비록 동서 14m,상하 9m의 크기,화면면적이 1백20㎡쯤되어 보이는 분사암에 그려졌지만,그 암화의 모체는 동서 1백50m쯤에 상하 50여m의 엄청난 바위였다. 필자는 마치 방을 보는 수험생처럼 고개를 들고,마치 숨은 그림을 찾듯 훑었다.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족히 2백명은 넘었다.보이는 대부분이 여성으로 이곳이 모계중심의 사회였음을 알게 했다.높은 모자를 눌러 쓰고 모자위에는 두개의 깃털을 꽂은 여성이었다.풍만한 가슴에다 둥실한 엉덩이,갸름한 얼굴에 높은 코,커다란 눈에 작은 입술,가느다란 목에 끊어질 듯한 허리,긴 다리에 섬섬옥수.첫눈에 모던한 서구의 처녀들을 연상케했다. 그 화면은 무질서하게 많은 군상이 여기저기 불거져 나왔는데 가만히 살피면 몇가지 화폭으로 분별할 수 있었다.약간 좌측엔 아홉명의 여인이 한결같이 오른팔은 올리고 왼팔을 내리면서 춤의 동작을 보였는데,어찌보면 벌거숭이요,어찌보면 오늘의 발레복처럼 성감적인 복장이었다. ○남자는 까까중머리 윗 그림을 「누드의 무도회」라 한다면 그 좌측으로 「혼무도(혼무도)」에 상당한 그림이 있었다.남녀 각각 10여명씩 춤을 추는데 여성은 위에서와 마찬가지지만 두팔을 모두 내렸고 남성은 모자도 깃털도 없이 까까중머리에다 홀쭉한 배에 뾰족한 그것을 기운 차게 달고 있었다.여기 저기 동체가 달아난 얼굴이 몇개 있는데 가필한 그림이거나 다른 상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보다 특기할 일은 남성의 가슴과 여성의 가슴에 각각 한 사람의 이성을 품고 있는가 하면 그러한 혼무의 마당을 향해 호랑이 두마리가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선명한 주제의 그림이 우측 가장자리에 보였다.한 사내가 발기된 길고 둔탁한 그것을 한손으로 들면서 계집의 하체에 조준하고 그 아래로 성숙한 여인 하나와 50명의 꼬마가 상하단으로 나뉘어 마치 기차놀이하듯이 이열 횡대로 서 있는 그림이었다.인구의 번식을 노골적으로 기구하는 강렬한 포스터같았다. 암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대체로 갸름한 얼굴에 깊은 눈,높은 코,가는 목,긴 다리,그리고 높은 모자에 깃털,남자는 높은 코에 기다란 생식기,가냘픈 하체에 긴 다리,두건식의 모자에 동그란 얼굴이 인상적이었다.이러한 외모와 복식으로 미루어 한(한)족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카자크의 체모에 가장 근사할 뿐 아니라 그러한 암화가 아직도 카자크족의 집거 부락에서 발견되고 있었다. ○금속도구 이용 음각 마지막 궁금한 것은 연대였다. 현지의 문화국이나 박물관에선 아직 뚜렷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게 없다지만 카자흐스탄 팔카스호 동쪽에서 발견되고 있는 카자크족의 암화,그 대부분이 기원전 6세기에서 3세기 사이,더구나 동점(동참)하였다는 사실 외에도 캉자스먼쯔의 암화가 금속도구에 의한 음각이란 방법으로 미루어볼 때 신석기시대의 말기에 시작해서 청동 및 철기시대였음을 단정할 수 있겠다.그렇다면 기원전 2,3세기의 작품으로 추정하는데 무리가 가지 않는다. 이러한 암화를 작품시하는 데도 그 나름의 의의가 있다.첫째는 그 구성이 부호나 도안처럼 단순하지만 감성적이고 질박하다는 것이요,둘째는 그 표현이 비록 과장적이지만 주장이 선명하다는 것이요,셋째는 그 내용이 조잡하지만 당시의 생활을 생생하게 반영한 역사의 단편들이란 점이다. 필자는 돌아오는 길,캉자스먼쯔 바위에 생식 숭배를 그림으로 새긴 그 후손들을 만나고 싶은 충동이 있었다.조금전 들어갈 때,인민폐 몇푼을 쥐어 준 그 청년을찾기 위해 돌아오는데 난데없이 「시집 가는 날」을 만났다.말 세필에 영감과 할멈이 혼수를 실은 행렬.어쩌면 선발대격인듯,영감은 앞에서 말을 끌고 할멈은 말을 타고 깡마른 언덕을 넘고 있었다. 그 청년은 서른여덟살의 마이무라치라고.형제가 다섯인데 모두 분가해서 한마을을 형성했다 한다.조심스럽게 재산정도를 묻자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염소 1백50마리에 낙타·말·황소를 합해서 50마리』라고. 그리고 염소 한마리의 값은 큰 것은 2백위안(한화 2만원상담). 짓궂게 통혼사정을 묻자 그 대답은 자못 단호했다. 위구르족이나 회족,시부족과 통혼할지언정 한족과의 통혼은 싫다고 했다.왜냐면 한족은 이슬람교를 믿지 않기 때문이란다. 주인은 우리 일행을 그들의 흙집에 안내했다.사방이 흙벽,마루나 침대가 따로 없다.물론 안방과 건넌방의 구별도 없이 밋밋한 헛간 비슷한 구조였다.
  • “서울­북경 동북아 교통요지 됐다”/직항로 첫 취항 북경표정

    ◎승객들 “5시간거리가 2시간으로”/황대사·양사사장 등 손님맞이 눈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서울·북경 직항로가 22일 상오 개통됐다. 이날 상오 북경일대에는 짙은 안개가 끼고 일부지역에는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나쁜 날씨였으나 아시아나항공은 예정시간 15분늦은 이날 상오10시5분에,대한항공은 예정대로 11시40분에 각각 안착,직항로시대를 개막했다. 이날 대한항공편으로 북경공항에 도착한 승객 김승환씨(40·무역업)씨는 『사업관계로 1년에 4∼6회씩 천진을 통해 북경을 오가느라 불편이 심했었다』며 『천진∼북경간 육로 2시간을 포함한 5시간거리가 이제 2시간으로 좁혀졌다』고 활짝 웃는 모습. ○…대한항공의 이두훈기장(57)은 북경공항에 안개가 잔뜩 끼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대체로 수월한 비행이었으며 첫 직항로를 조종한다는 점에서 들뜬 기분이었다고 밝히고 승객들도 첫 직항로 손님이라는 생각으로 즐거워들 하는 모습이었다고 전언. ○…이날 첫 직항로의 승객들이 비행기에서 들어오는 입국장 게이트에는 황병태주중대사,박성용금호그룹회장,조량호대한항공사장등 우리측 관계자들과 장축평중국 민항총국 부국장등 중국측 관계자들이 직접 승객들을 맞이해서 눈길을 끌었다.그런가 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스마일 퀸」등 사내의 미녀들까지 동원,손님맞이 경쟁을 벌이기도.공항구내로 들어오는 승객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들 스튜어디스들이 건네주는 꽃다발을 받고 즐거워하는 모습들. 황대사는 직항로의 개통은 두나라의 관계발전을 상징할뿐아니라 인적,물적방면의 교류를 더욱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직항로의 의미를 부여. ○…한편 북경에 도착한 항공기를 타고 다시 서울로 들어가려는 손님들도 이날 아침 일찍부터 공항 2층 출국심사대에 나와 설레는 모습이었는데,항공사측은 첫 출국자들의 수속을 위한 영업소설치에 분주해 하는 모습. 대한항공과 중국민항등 3개 항공사의 서울∼북경직항로의 좌석은 이미 연말까지는 완전 매진된 상태.그러나 일부 승객들은 북경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요금이 신문보도(2백97달러)와는 달리 3백19달러나 받자 이의를 제기하며실랑이를 벌이기도.이에대해 항공사측에선 북경∼서울노선은 중국의 인민폐를 기본으로 계산하다 보니 환율변동등의 이유로 승객들이 원래 발표와는 달리 더 부담을 지게 됐다고 해명. ○…대한항공의 이태원부사장은 이날 『서울서 북경을 거쳐 유럽으로 오고가는 항로개설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며 『빠르면 내년중으로 이와관련한 협정등이 체결될 수 있을것』이라고 전망.중국민항의 한 관계자는 『러시아의 아에로플로트도 모스크바∼북경∼서울노선의 개설을 중국민항과 협의중에 있으며 빠르면 내년초쯤 모스크바∼북경∼서울항로와 미국∼서울∼북경항로가 동시에 개설될 수도 있을것』이라며 『서울∼북경이 동북아시아의 항공교통의 요충지로 부상했다』고 한마디.
  • 남궁억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

    ◎황성신문 창간… 독립협회 활동 도와/일 침략야욕 비난기사로 3차례 필화/고향에 사립학교 세워 독립의식 고취 한서 남궁억선생(1863년12월27일∼1939년4월5일)은 언론과 교육활동을 통해 국민의 독립의식고취에 평생을 기울인 언론인이자 교육자다. 소년기 때 한학을 배운 선생은 21세때인 1883년 고향인 서울 정동에 세워진 영어교육학교 동문학에 입학,신문물을 처음 접했다. 이곳은 청나라 이홍장의 막객인 묄렌도르프가 통역관 양성을 위해 세운 교육기관이었다. 이곳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선생은 묄렌도르프의 추천으로 세관에서 업무보조원으로 일을 시작했으며 24세 때 고종의 어전통역으로 공직에 발을 내디뎠다. 선생은 그러나 1895년 일본 낭인들에게 명성황후가 살해되는 민비시해사건이 터지자 국민의 독립의식고취가 시급하다고 보고 관직을 사임,서재필이 간행하는 「독립신문」영문판 편집일을 맡았다. 독립신문은 주 3회 간행된 순한글의 국내 첫신문으로 1,2면엔 논설과 뉴스를,3면엔 광고를 실었으며 4면은 영문판이었다. 선생은 이어 1896년 서재필·이상재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창립,국민계몽활동을 활발하게 펼쳤으며 독립협회 기관지 「대조선독립협회회보」편집일을 했다. 선생은 다음해 동지들과 힘을 모아 황성신문을 창간,측면에서 독립협회의 활동을 지원했다. 이때는 독립협회가 만민공동회를 개최,외세의 침략간섭정책을 배격해 러시아의 세력을 요동반도로 후퇴토록 하는 큰 성과를 올린 시기였다. 또 국내적으로는 중추원을 서구식 의회로 개편하자는 운동이 힘을 얻고 있었다. 선생은 독립협회가 주도하는 의회설립운동에 적극 참여하다 전제군주제를 폐기하려는 음모라는 반대파의 주장에 휘말려 동료들과 함께 투옥됐다가 시민의 탄원으로 곧 석방되기도 했다. 그러나 독립협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끝내 강제해산되고 말았다. 이후 선생은 러시아와 일본의 한국침략야욕을 비난하는 폭로성기사와 노·일협정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사설을 썼다가 세차례에 걸쳐 투옥되는 필화를 겪었다. 선생은 그뒤 고종의 요청으로 잠시 양양군수등 관직을 맡았으나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의 여파로 정미7조약이 강제체결돼 차관정치가 실시되자 관직을 사임,장지연·오세창등 동료와 함께 대한협회를 창설하고 애국계몽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대한자강회의 후신으로 설립된 대한협회는 교육의 보급,산업개발,생명재산보호,행정제도개선,관민폐습의 교정,근면저축의 실행등을 주요강령을 삼고 있었으며 기관지로 대한협회월보와 대한민보를 두고 있었다. 이 기관지의 편집을 맡은 선생은 논설을 통해 국민의식계몽활동을 전개했다. 선생은 좀더 쉽게 국민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을 찾던중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불우한 청년을 대상으로 통신교육을 실시키로 하고 「교육월보」라는 통신강의록을 만들었다. 순한글의 교육월보는 조선과 세계의 역사·지리·산술·가정학·한문등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었으며 나중에는 농업에 대한 내용도 실었다. 이 무렵 송병준·이용구 중심의 일진회가 날뛰면서 한일합방성명서를 공표하자 선생은 황성신문을 통해 일진회의 주장을 규탄하기도 했다. 1910년 마침내 한일합방이 되자 선생은 박은식·노백린·양기탁등과 함께 국채보상운동으로 마련된 자금으로 민립대학설립운동을 전개했다. 일제는 이들의 요구를 거절,민간대학설립의 뜻은 좌절됐다. 선생은 독립회복을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배화학당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영어·역사등을 가르쳤으며 밤에는 상동교회에서 청년들에게 애국가사와 한글보급에 힘을 쏟았다. 선생은 1918년 건강이 악화돼 학교를 사임하고 강원도 홍천군으로 낙향,이곳에서 보통학교 수준의 사립 모국학교를 세워 농촌청년을 가르쳤다. 「조국광복기원제단」을 쌓고 일제 몰래 조국광복을 염원하는 기도를 올리곤 했던 선생은 70세가 되던 1933년 일제에 의해 이른바 「십자가당」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돼 체포됐다. 선생은 일찍이 학생에게 가르친 「무궁화동산」이라는 노래 때문에 체포된 것이다. 일제는 「우리의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또다시 소생하는 이천만」이라는 내용의 이 노래를 「불온」하다고 판정하고 선생을 투옥했다. 선생은 고령의 나이에 1년여 수형생활을 겪는 바람에 건강이 극도로 악화,출옥한 지 얼마 안돼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중 3,300억 횡령사건 적발/건국이래 최대규모

    【홍콩 연합】 중국은 인민폐 33억위안(약 3천3백억원)에 이르는 건국후 최대액수의 금융사건을 최근 적발하고 고위층의 직접 명령에 따라 북경시 인민정부의 국장급관리 이민을 구속했다고 홍콩의 성도일보가 북경소식통을 인용,11일 보도했다. 이 「이민 33억위안」 사건은 지난 4월 주범 심태복이 사형되고 국무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부주임 이효시가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에 처해진 인민폐 10억위안(약 1천억원) 규모의 「장성」사건 재판 후 발생했고 사건금액이 건국후 최대여서 충격을 주고 있다고 성도일보는 말했다. 이 금융사건은 「장성안」과 마찬가지로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일어났으며 수사요원들은 이민을 구속한 후 수사끝에 그로부터 현금및 저축통장에서 인민폐 7천만위안(약 70억원)을 압수했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 중에 승용차 부품공장 건설/한­중합작

    ◎총1조 규모… 96년부터 생산 【홍콩 연합】 중국 국무원은 한국의 대우그룹과 중국의 제일기차집단,산동성및 연대시가 약 1백억원(한화 약1조원)을 합작투자해 연대시에 세울 대형 대우자동차 부품공장의 건설을 정식승인했다고 홍콩의 중국계신문 문회보가 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의 반관영통신 중국신문사(CNS)의 연대발 보도를 인용,연대시 경제기술개발구 관이위원회 손립당 부주임이 이같은 사실을 밝혔다고 말했다. 손부주임은 이 대형 승용차부품공장은 연대시 경제기술개발구내에 96년7월 완공되며 주로 대우그룹이 같은 시기에 준공할 한국 서해의 군산차량기지에 매년 약30만대분의 승용차부품을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합작공장은 앞으로 매년 인민폐 약3백억원(한화 3조원)어치의 승용차부품을 생산한다.
  • 중,국영기업 36개 파산 결정/이달말

    ◎「파산법」 첫적용… 35만명 실직예상/홍콩지 보도 【홍콩 연합】 중국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근간인 국영기업을 본격적으로 파산시키기로 하고 우선 이달말 전국 18개시에서 최소 36개의 대중형 국영기업을 파산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홍콩의 중국계신문 문회보가 18일 북경발로 크게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앙 고위층이 이달말부터 우선 18개 시에서 각각 2∼3개씩의 대중형국영기업을 선택해 파산을 실시키로 결정했다고 북경의 권위있는 소식통이 밝혔다』고 말했다.중국이 전국적으로 대중형 국영기업의 파산을 실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회보는 계획경제 노선의 수정을 의미하는 이같이 중대한 조치가 취해지는 이유는 지난 「80대 후반 제정됐으나 사회불안과 노동자들의 소요를 우려해 그간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파산법」을 이제부터 전국에 걸쳐 시행하기 위해서라고 말해 앞으로 더 많은 국영기업들이 계속 파산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 신문은 적자를 만회할 수 없고 자본이 부채에 못 미치는 국영기업에 대해 파산을 실시하는 것은 시장경제 개혁에 따라 현대적 기업제도를 확립하는데 있어서 관건이라고 중앙 고위층이 보고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북경당국은 파산하는 국영기업들의 노동자들에게 보상해주기 위해 인민폐 70억원(한화 약7천억원)을 할당,한 사람당 평균 2만원(약2백만원) 정도를 지급할 것이라고 말해 이번 조치로 약35만명의 국영기업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산된다. 문회보는 중국의 국영기업이 지난해 40개 전업종에 걸쳐 적자가 발생했고 특히 ▲석탄 ▲석유와 천연가스 ▲방직 ▲전력 ▲화학 ▲기계 ▲식품제조업 등 7개 업종의 적자가 가장 심각했다고 말했다.
  • 제1회 「중·대만·홍콩 영화제」 개막

    ◎중국 공산화 45년만에 첫 합동영화제/영화인·가수 등 5천명 참가… “문화교류의 새장” 중국이 1949년 공산화된 이후 45년만에 창설된 「제1회중국·대만·홍콩영화제」가 15일 홍콩에서 약 1시간 거리인 광동성경제특구 주해시에서 개막됐다. 19일까지 5일간 열리는 이 영화제에는 중국을 비롯,대만·홍콩·마카오의 영화인들과 가수들 9백89명을 포함해 약5천명이 참석해 이지역 문화교류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중화경제권의 문화적 저력도 보여주는 이 영화제는 19일밤 시상식이 중국·대만·홍콩·마카오에 위성으로 동시에 생중계 된다.영화제 심사위원회는 중국·대만·홍콩 3개 지역의 평론가,감독,배우13명으로 구성됐으며 심사위원장은 중국 국무원 광파전영전시부 부부장을 지낸 저명 영화감독 정교가 맡았다. 앞으로 2년마다 열리게 될 이 영화제에는 중국·대만·홍콩 3개 지역에서 모두 45편의 영화가 참가신청을 했으며 이중 중국의 「봉황금」등 5편,대만의 「희몽인생」등 3편,홍콩의 「방세옥」등 5편을 포함해 모두 13편이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 진출작은 대부분 중국문화의 향기를 물씬 풍기고 있는데 개막 첫날부터 주해시의 5개 영화관에서 일제히 상영되기 시작했다. 이 영화제는 대륙에서 상금도 가장 많아 최우수작품상에 인민폐 10만원(약1천만원)이 지급되는 등 9개 부문에 걸쳐 모두 50만원(약5천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 북­중­러 상품취급/흔춘에 국제시장

    【홍콩 연합】 중국은 북한 러시아에 인접한 국경도시 길림성 혼춘시에 북한 러시아 중국 등을 비롯한 여러나라의 물자와 상품들을 취급할 대규모 국제시장 건설에 착수했다고 홍콩 연합보가 6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혼춘국제자유무역시장발전공사가 이미 설립됐다고 전하고 이 회사는 혼춘시변경경제합작구내 대지 4만㎡위에 인민폐 2억원(한화 약1백90억원)을 투입하여 연건평 13만㎡의 혼춘국제자유무역시장 건설에 곧 착공해 내년에 전면 개관한다고 말했다.
  • 태·중 등 환업무 개시/외환은행

    외환은행은 1일부터 태국의 바트화,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인도의 루피화,필리핀의 페소,중국의 인민폐,대만의 달러 등 6개국 통화의 외국환업무를 취급한다.
  • 러총리 곧 방중/경협 중점 논의/연내 러­중 정상회담도 추진

    【홍콩 연합】 러시아의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구소련 붕괴후 처음으로 곧 북경을 공식 방문해 이붕 총리와 회담할 것이라고 홍콩 연합보가 31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체르노미르딘 총리의 이번 방문이 중국과 러시아간 군사·외교·경제협력이 갈수록 밀접해지고있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어서 주목된다고 말했다.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이번 방문기간중 양국간에 급증하고있는 경제·무역분야와 모스크바에만도 10만명으로 추산되는 러시아내 중국인 불법입국자 등에 대해 중국과 협의할 것이라고 홍콩 연합보는 말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양국이 국제적으로 민감한 군사협력문제를 총리회담의 의제로 넣을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있다고 말했다.중국과 러시아 양국은 모두 이번 체르노미르딘 총리의 방문을 크게 중시하고 있다고 홍콩 연합보는 말했다. 한편 체르노미르딘 총리의 중국 방문에 이어 강택민 중국공산당 총서기도 하반기중 모스크바를 공식 방문해 옐친과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홍콩 연합보는 전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해 교역액이 미화 70억달러로 급증했으나 루블화와 인민폐의 은행을 통한 결제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있으며 늘어나는 국경무역 물자를 수송할 교통수단도 크게 부족해 양국 총리회담의 주요의제로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이와 관련,러시아의 한 고위외교관은 『군사협력은 중국과 러시아관계의 중요부분』이라고 강조하고 『러시아 국방공업은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있어 국제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홍콩 연합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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