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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 유신 40년] 대학에 부대 주둔… 언로 막히고 국회는 거수기 전락

    [10월 유신 40년] 대학에 부대 주둔… 언로 막히고 국회는 거수기 전락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존의 헌법을 폐기시키고 유신헌법을 발표한 이후 한국사회는 시인 양성우의 표현대로 ‘겨울공화국’의 가위에 눌려 지냈다. 대통령이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제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서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주의 이념은 실종되고 ‘군주주권(君主主權)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시각이다. 유신시절 내내 박 전 대통령은 긴급조치를 발표해 항시적 계엄상태를 유지했고 대학에는 부대가 주둔했으며 언로가 막히고 국회는 거수기로 전락했다. 유신헌법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권력의 공격을 받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반유신민주화운동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준 시기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정치권과 재야인사들이 반유신 운동을 벌였던 것은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이 10월 17일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대학에 휴교조치를 내리고 저항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구속에 나서면서 이들은 한동안 숨을 죽이고 있었다. 대대적인 저항의 계기가 된 것은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서울대학생 300여명이 10월 2일 일제히 반정부 시위에 나섰고 이를 필두로 전국 각 대학에서 반유신 학생시위가 꼬리를 물었다. 종교계와 언론계도 유신반대운동에 동참했다. 유신은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인민혁명당 사건, 1979년 부마민주화항쟁을 거치며 정치·사회·노동·학계·종교계 등 각계의 대대적인 저항을 불러왔다. 민청학련 사건은 단일 사건으로는 해방 이후 사상 최고의 검거 기록을 남겼는데, 당시 검거돼 조사받은 인사만 1200여명이다. 재야세력의 강한 결속은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유신체제가 막을 내린 뒤에도 민주화 운동을 이끄는 동력이 됐다. 유신에 대한 평가는 보수·진보 진영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민주진보진영은 사회양극화, 지역감정,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유신 시절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고속 성장을 위해 재벌 기업에 각종 특혜를 주는 과정에서 정경 유착과 부정부패가 고착화됐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됐으며 통치의 수단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면서 지금의 지역갈등을 낳았다는 것이다. 반면 유신 지지자들은 소모적 정쟁을 피하고 국력을 집중해 중화학공업을 국책사업으로 육성시켜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민주, 과거 진실규명 결의안 당론 채택

    민주통합당이 27일 국회에서 ‘인민혁명당 사건의 역사적 재조명과 명예회복 대책’을 주제로 의원총회를 열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맹공했다. 과거사 관련 사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박 후보의 행보를 옥죄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해찬 대표는 “인혁당 사건을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로 넘어가는, 유신을 정리할 수 있는 대선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박 후보가 오전에 5·16, 유신, 인혁당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오후에는 (부산시당 당사에서 청년당원들과) 말춤을 췄다.”며 “오전에 사과했다면 그 유족들이나 역사 앞에 오후만이라도 근신하며 진정 어린 눈물을 흘려야 했다.”고 비판했다.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유인태 의원은 “박 후보는 1974년 육영수 여사 사망 이후 퍼스트레이디로 전국을 다니며 유신을 설파하고 다녔던 유신의 장본인”이라며 “2005년 인혁당·민청학련이 조작이라는 국정원 과거사조사위원회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한마디로 가치가 없고 모함’이라고 잘라 말했다.”고 지적했다. 윤관석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은 박 후보의 인혁당 관련 사과를 ‘진정성이 실종된 사과’로 규정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의총에서 장준하 선생 의문사, 인혁당 사건, 긴급조치 인권유린,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과거 사건들의 재조사를 촉구하는 ‘국가권력의 위법·부당한 행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 및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진실규명 조사활동 재개 촉구 결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고(故) 김근태 상임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결의안은 정부가 국가 권력이 행한 범죄 행위를 인정하고, 유족과 국민 앞에 사과하는 한편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을 재개토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일자리 정치’ 송호근, 朴캠프 공동선대위원장 유력

    ‘일자리 정치’ 송호근, 朴캠프 공동선대위원장 유력

    27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공동 선대위원장에 송호근(56) 서울대 교수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으로는 김지하 시인, 국가인권위원장 출신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거론되고 있다. 송 교수는 중도우파 성향의 대표적 지식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송 교수는 최근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라는 책에서 보수와 진보 사이의 접점은 ‘일자리 정치’라면서 이것이 “복지의 생산성과 지속 가능성을 증진하는 뇌관”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박 후보의 ‘국민행복론’과 비슷한 부분이다. 송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나는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온 사람이지만 선대위 참여 요청이 오면 고려하는 게 예의”라고 말했다. 김 시인과 안 교수는 박 후보의 국민대통합 의지를 드러낼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된다. 1970년 박정희 정권을 풍자한 시 ‘오적’(五賊)으로 필화를 겪었던 김 시인은 유신 시절인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돼 사형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안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인권위원장에 임명됐지만 2009년 7월 임기를 4개월가량 남기고 이명박 정부 인권 정책을 비판하며 사퇴했다. 김효섭·이재연기자 newworld@seoul.co.kr
  • 이해찬, 옥중체험담 들어가며 朴 비판

    “1974년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서울 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내 앞 방에 학교에서 수업을 하던 도중 붙잡혀 온 김용원이라는 생물과목 교사가 있었다. 그는 왜 잡혀왔는지 몰랐고, 조사도 받지 않았고, 고문을 당하지도 않았는데, 사형당한 이수병 선생과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했다. 인혁당 사건은 이런 사건이었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당시 자신의 옥중 체험담으로 인혁당 사건의 실상을 고발하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비판했다. 이 대표는 1974년 4월 민청학련 중심으로 반독재, 반유신 운동을 하다 붙잡혀 10년 형을 선고받고, 11개월을 복역한 뒤 풀려났다. 이 대표는 “(인혁당 사건은)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처형한 사건이기 때문에 도저히 용납받을 수 없는 사안”이라면서 “박 후보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선 경선 후보도 트위터에 “인혁당 사건 대법원 판결 후 20시간도 되기 전에 사형이 집행된 바로 다음 날, 저는 그 울분 속에서 유신반대에 시위하다 구속됐다. 그런데 다른 판결이 있었으니 역사에 맡기자니 과연 유신세력답다.”는 글을 올렸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朴, 헌정질서 무시한 역사관”… 대선 쟁점 떠오른 인혁당

    “朴, 헌정질서 무시한 역사관”… 대선 쟁점 떠오른 인혁당

    제네바 국제법학자협회가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18대 대선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라는 발언으로 재점화된 인혁당 사건 논란은 11일 야당의 집중 포화 속에 더욱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민주통합당 지도부와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선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일제히 박 후보의 발언과 역사인식을 성토했다. 당시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았던 유인태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박 후보가 하는 짓을 보면 ‘위안부의 강제동원 흔적이 없다. 고노 담화를 취소하겠다’는 그 작자들(일본 극우파)보다 더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특히 유 의원은 당시 사형집행을 당한 고(故) 여정남씨의 일화를 소개하며 “대법 판결 전 이미 권력은 (판결) 다음 날 (피의자들을) 죽이기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우리 당이 끝까지 박 후보의 이런 발언에 대해 묵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사건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던 이해찬 대표는 “박 후보의 왜곡된 역사 인식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면서 “박 후보는 역사의 판단을 말하기 전에 국민과 인혁당 피해 유족 앞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박영선 의원도 “헌정 질서를 무시하는 초사법적인 발언”이라면서 “박 후보의 역사관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으며, 대선 후보로서 심각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정성호 당 대변인은 “박 후보가 ‘두 가지 판결’이니, ‘상반된 판결’이니 하는데 이는 재심 판결을 부정하고 사법부를 무시하는 발언”이라면서 “특히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당시의 대법원 판결을 긍정하고 아버지 박정희에 의한 사법 살인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김황식 총리는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박 후보가 “대법원 판결은 두 가지였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판결이 재심에서 취소가 되면 마지막 재심 판결이 최종 판결”이라면서 “법적인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 원로인 이만섭 전 국회의장도 “인혁당 사건은 억울한 사건”이라고 전제한 뒤 “재심 청구에서 최종 무죄 판결이 났으면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정치인의 올바른 태도”라고 지적했다. 김경두·황비웅기자 golders@seoul.co.kr
  • 유신·인혁당 사건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역사 인식을 가늠하는 데에는 유신체제에 대한 평가가 기준이 된다. 유신체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단행된 초헌법적 비상조치를 말한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박 전 대통령은 ‘3선 개헌’까지 거쳐 대통령직을 유지했다. 그러나 1972년 국내외 정세로 정권 유지에 어려움을 겪자 박 전 대통령은 1972년 10월 17일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국회가 해산되고 정당 및 정치활동 중지 등 헌법 일부조항의 효력이 정지됐다. 유신체제에서 제정된 유신헌법은 대통령의 1인 장기집권체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됐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 국회 해산권을 가지며 임기 6년에 연임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 선출제도도 직선제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제로 바뀌면서 입법·사법·행정의 3권이 모두 대통령에게 집중되도록 했다. 당시 각계에서 유신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전개됐고 박 전 대통령은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해 시위에 연관된 사람들을 구속했다. 대표적 사건으로 ‘인혁당재건위 사건’이 꼽힌다. ‘2차 인혁당 사건’으로도 알려진 이 사건은 1974년 당시 중앙정보부가 유신반대 투쟁을 벌였던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배후 세력으로 인혁당재건위를 지목하고 이를 북한의 지령을 받은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한 사건이다. 중앙정보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3명을 구속기소했고 법원은 이 가운데 8명에게 사형을, 15명에게는 무기징역 및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사형이 선고된 8명은 대법원 상고가 기각된 지 20여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그러나 혐의에 대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고 조사 과정 중 고문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민주화운동 탄압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2005년 법원은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을 받아들였고 2007년 피고인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도 법원은 시국사건 중 최대 액수인 637억여원을 국가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법원 “민청학련 제정구 前의원 유족에 8억 배상”

    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고(故) 제정구 전 의원의 유족에게 국가가 8억원을 배상하라고 법원이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 한규현)는 제 전 의원의 부인 등 유족 8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수사관들이 제 전 의원을 체포·구속하면서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수사과정에서도 폭행이나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이 반국가단체를 구성했다는 허위사실을 언론에 공표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오히려 가해자가 돼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므로 국가배상법에 따라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민청학련 사건 조사 결과가 발표된 2005년으로부터 소멸시효 3년이 지났다는 피고 측 주장에 대해서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허위진술’ 진실게임

    ‘허위진술’ 진실게임

    검찰 조사에서 지인이 허위 진술을 강요받았다는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의 주장과 관련, 이 대표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박형선(59) 해동건설 회장을 변호했던 구본민·오해균 변호사가 “부산저축은행과 관련해 당시 수사 내용을 알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고 12일 밝혔다. 검찰은 이날 이 대표의 사과를 요구하는 공식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이 대표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조사 대부분 검사·박회장 간 이뤄져” 구 변호사는 “조사 과정을 전부 지켜본 것도 아니고 실제 조사에 참관한 적도 거의 없다.”면서 “조사 대부분이 검사와 박 회장 간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또 “검찰이 다른 사람에게 로비를 했는지 물어본 것 같기는 하지만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고도 했다. 오 변호사도 “검찰 조사 과정에 입회한 사실 자체가 없고 이 대표에 대해 들은 얘기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이 대표에 대해서도 전직 총리라는 점만 알 뿐이지,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와 검찰 간 진실 공방과 관련해 두 변호사 모두 사건 당사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檢에 사과요구’ 이대표 대응 주목 검찰은 전날 “검찰이 저축은행 비리 등 부정부패 수사에 매진하고 있는데 근거 없이 음해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이 대표에게 “실체와 근거를 밝히라.”고 공식 요구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대표 측은 지인이 누구인지, 변호사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 없고 입장도 전날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박 회장은 지난해 부산저축은행 관련 로비 혐의로 기소돼 징역 6년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도 참여한 인연 등으로 이 대표를 비롯한 참여정부 인사들과 막역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석·이민영기자 ccto@seoul.co.kr
  • [4·11 총선 이후] 당선자 평균재산 20억… 10명중 2명이 병역미필

    [4·11 총선 이후] 당선자 평균재산 20억… 10명중 2명이 병역미필

    ■재산-우리나라 가구당 평균자산의 7배…무소속 김한표 ‘-1184만원’ 최하 19대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 당선자 300명의 평균 재산은 정몽준(서울 동작을) 새누리당 당선자 등 1000억원대 자산가 3명을 제외하고 평균 20억 4863만원이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자산인 2억 9765만원의 6.9배였다. 이는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정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당선자들의 재산 평균인 26억 4375만원보다 6억원가량 낮아졌다. 8년 전인 2004년 17대 총선 당선자(299명)의 평균 재산(21억 6000만원)과 비교해도 5% 넘게 줄었다. ●선진 55억·새누리 27억·민주 12억·통합진보 2억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정몽준 후보는 18대 총선 후보 등록 때의 3조 6043억보다 1조 5000억원가량 줄었다. 그가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의 주식 가액이 하락한 데다 지난해 2000억원을 기부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재산 상위 2위는 고희선(경기 화성갑) 새누리당 당선자로 1462억여원이었다. 이어 김세연(부산 금정) 당선자 986억여원, 박덕흠(충북 보은·옥천·영동) 당선자 541억여원, 윤상현(인천 남을) 당선자 224억여원 등이었다. 재산 상위 10명은 새누리당 9명, 자유선진당 1명이었다. 모두 신고액이 100억원이 넘는 ‘슈퍼리치’들이었다. 19대 국회의원 재산 평균인 20억원 이상을 보유한 당선자는 모두 84명이었다. 민주통합당 의원 가운데는 장병완(광주 남) 당선자가 79억 305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김한표(경남 거제) 무소속 당선자는 -1184만원을 신고해 19대 국회의원 가운데 가장 가난한 후보였다. 이어 윤금순(비례) 통합진보당 당선자 -810만원, 김상민(비례) 새누리당 당선자 -351만원, 이상규(서울 관악을) 통합진보당 당선자 700만원, 전정희(전북 익산을) 민주통합당 당선자 2252만원의 순이었다.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자산인 3억원 이하를 보유한 당선자는 35명이었고 이 가운데 재산이 한 푼도 없거나 부채가 있는 사람도 3명이었다. 정당별로는 당선자가 5명인 자유선진당이 55억 3745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새누리당 27억 6466만원(정몽준 등 3명 제외), 민주통합당 12억 6947만원, 통합진보당 2억 4361만원 순이었다. ●비례대표 평균 18억… 18대보다 12억 줄어 비례대표 당선자(54명)들의 평균재산은 18억 1274만원으로 지난 18대 당시 비례대표 당선자 평균(30억 7604만원)보다 10억원 이상 줄었다. 19대 지역구 당선자 평균인 20억 6716만원보다도 적다. 비례대표 가운데는 현영희(새누리당) 당선자가 181억여원으로 재산이 가장 많았다. 한편 로펌 ‘김앤장’에서 2년 반 근무하며 재산이 45억원 늘어 논란이 됐던 김회선(서울 서초갑) 새누리당 당선자는 72억 700만원을, 스타 앵커 출신 신경민(서울 영등포을) 민주통합당 당선자는 38억 9300만원을 신고했다. 귀화여성으로 국회의원이 된 이자스민(비례) 새누리당 당선자는 1억 8840만원을, 1989년 북한에 다녀 온 임수경(비례) 민주통합당 당선자는 9억 6590만원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합진보당에서는 노회찬(서울 노원병) 당선자와 심상정(고양 덕양) 당선자가 각각 8억 4720만원과 1억 8904만원을 신고했다. 최고령인 강길부(69·울산 울주) 새누리당 당선자는 31억여원을, 최연소인 김광진(30·비례) 민주통합당 당선자는 2억 1740만원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납세-78명 연평균 납세액, 국민평균 501만원보다 적어 19대 총선 당선자 300명의 소득세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를 합한 납세액을 분석한 결과 당선자들은 지난 5년간 평균 3억 2475만원의 세금을 냈다. 1년에 6483만원씩 납부한 셈으로, 지난해 국민 1인당 평균 납세액인 501만원의 13배에 달한다. 하지만 당선자 가운데 78명의 연평균 납세액은 국민 1인당 평균 납세액을 밑돌았다. 연평균 100만원도 내지 못한 후보도 29명에 달했고, 김미희(성남 중원) 통합진보당 당선자는 같은 기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지난 5년간 가장 많은 세금을 낸 당선자는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서울 동작을) 새누리당 당선자로 모두 391억여원을 냈다. 이어 박덕흠(충북 보은·옥천·영동) 새누리당 당선자 48억여원, 현영희(비례) 새누리당 당선자 40억여원, 경남기업 회장인 성완종(충남 서산·태안) 자유선진당 당선자 36억여원, 김세연(부산 금정) 새누리당 당선자 29억여원 순으로 납부액이 많았다. 보유 재산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한 후보도 있었다. 8억 8000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김을동(서울 송파병) 새누리당 당선자는 지난 5년간 12억원이 넘는 세금을 냈고, 7억 9399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김관영(전북 군산) 민주통합당 당선자도 9억 8577만원을 납부했다. 지난 5년간 한 차례 이상 세금을 체납한 적이 있는 후보는 31명(10.3%)으로 김한길(서울 광진갑) 민주통합당 당선자가 8870만원을 체납해 1위를 기록했다. 세금을 체납한 상위 10명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당선자가 5명씩이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병역-미필자 민주 25명·새누리 18명·선진 2명 19대 총선 당선자 300명의 병역 미필 비율을 분석한 결과 여성 등 병역 의무가 없는 사람을 뺀 253명 중 18.2%인 46명이 군 복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8대 국회의 16.0%보다 2.2% 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후보자 등록 당시 17.4%보다도 약간 높다. 정당별로 군 복무를 하지 않은 당선자는 민주통합당이 25명으로 전체 미필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새누리당은 18명, 자유선진당과 통합진보당은 각각 2명과 1명이다. 무소속 당선자 3명은 모두 병역 의무를 마쳤다. 민주당은 여성을 제외한 당선자 가운데 4명 중 1명꼴인 24.3%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새누리당(13.3%)과 통합진보당(12.5%)은 미필자 비율이 비슷하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포함해 5석을 배출하는 데 그친 자유선진당은 병역의무가 있는 4명 중 2명이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과거 민주화운동 등을 하다 수형생활을 하는 바람에 면제를 받은 당선자가 많다. 유인태(서울 도봉을)·유기홍(서울 관악갑)·정청래(서울 마포을) 당선자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감옥살이를 했다. 이해찬 세종시 당선자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돼 군 면제를 받았다. 반면 새누리당은 질병으로 인한 미필이 많다. 김재경(경남 진주을) 당선자는 ‘우슬관절 운동장애’, 조해진(경남 밀양) 당선자는 ‘수핵탈출증’이 면제 사유다. 이한구(대구 수성갑)·이종진(대구 달성)·윤진식(충북 충주) 당선자 등은 몇 차례 입대 연기를 하다가 ‘장기대기’로 소집 면제를 받았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민청학련 무죄’ 유인태 보상금 2억 9000만원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유인태(64) 민주통합당 전 의원이 형사보상금 3억여원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1부(수석부장 임종헌)는 유 전 의원이 국가를 상대로 낸 형사보상금 신청 사건에서 “2억 8908만원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11일 밝혔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부마항쟁 피해자에 국가배상 첫 판결

    1979년 부마항쟁 당시 공권력으로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처음 나왔다. 창원지법 민사합의6부(부장 문혜정)는 4일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정성기(53) 회장과 창원여성인권상담소 최갑순(54) 소장 등 부마항쟁 피해자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이들에게 1000만~3000만원씩 배상하라.”고 일부 원고 승소 판결했다. 국가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고 측 소송 대리인인 박미혜 변호사는 “보도연맹이나 민청학련 사건 등 그동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진실 규명이 결정난 사건들은 사건이 발생한 때부터가 아니라 진실 규명이 결정난 날로부터 소멸시효를 적용해야 한다는 판례가 이번에도 적용된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민청학련’ 피해자 151명에 300억 국가배상 확정 판결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1974년 일어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장영달(64) 전 민주당 의원 등 피해자 및 가족 15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모두 300억원대 위자료와 함께 1·2심 변론종결일부터 계산한 이자를 배상하도록 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일 밝혔다. 장 전 의원에게는 7억 2000만여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액수는 국민소득수준이나 통화가치 등을 반영하고, 그 배상이 불법행위 이후 장기간 지연된 사정을 참작해 위자료 원금을 적절히 증액 산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민청학련 사건은 1974년 유신반대 운동에 나선 학생들에게 반국가단체 결성 혐의 등을 적용한 조작사건이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선택 2012 총선 D-18 후보 분석] 軍미필자 146명… 민주 46명 최다

    [선택 2012 총선 D-18 후보 분석] 軍미필자 146명… 민주 46명 최다

    19대 총선 후보자의 병역 미필 비율을 분석한 결과 여성 등 병역 의무가 없는 사람을 뺀 후보 중 17.4%인 146명이 군 복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8대는 17.9%, 17대는 19.0%였다. 정당별로 군 복무를 하지 않은 후보는 민주통합당이 46명으로 가장 많았고, 새누리당(21명), 통합진보당(13명), 자유선진당(7명) 등의 순이었다. 무소속은 43명이었다. 민주당은 여성을 제외한 후보 등록자 가운데 4명 중 1명꼴인 24.3%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통합진보당(27.7%)과 진보신당(21.6%)도 평균보다 높은 편이었으며 자유선진당(14.3%)과 새누리당(9.8%) 등은 상대적으로 비율이 낮았다. 민주당 후보의 병역 미필자 비율은 18대 22.8%에 비해 더 올랐다. 일반 국민(1940~1989년생)의 병역 면제율 25.6%와 비슷한 수준이다. 과거 민주화운동 등을 하다 수형생활을 하는 바람에 면제를 받은 후보가 많았다. 백원우(경기 시흥갑)·최재성(경기 남양주갑)·유인태(서울 도봉을)·유기홍(서울 관악갑)·정청래(서울 마포을) 후보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감옥살이를 했다. 유신 시절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던 이해찬 세종시 후보도 군 면제를 받았다. 문성근(부산 북·강서을) 후보는 ‘좌측 주관절 굴곡 변형’으로 면제를 받았다. 새누리당 후보의 병역 미필자 비율은 18대 14.3%(당시 한나라당)에 비해 4% 포인트 이상 줄어든 것이다. 사유는 민주당과 달리 질병이 많았다. 김재경(경남 진주을) 후보는 ‘우슬관절 운동장애’, 조해진(경남 밀양) 후보는 ‘수핵탈출증’이 면제 사유였다. 임주형기자 @seoul.co.kr
  • “제정구 유족에 5000만원 배상”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복역했으나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제정구 전 의원 유족에게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형사보상 결정이 나왔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최규홍)는 “제 전 의원의 부인 신씨에게 1760만원을, 딸들에게 각 117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구금기간 중 얻은 재산상 손실, 정신적 고통, 수사기관의 과오 정도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민청학련’ 유인태 前 의원 38년만에 재심서 무죄 판결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사형이 선고됐던 민주통합당 유인태(64) 전 의원이 38년 만의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1973년 11월 반국가단체인 민청학련을 조직해 1974년 4월까지 대학 내 집회·시위를 선동한 혐의(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기소돼 사형이 선고된 유 전 의원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재판부는 “긴급조치는 유신헌법에 따르더라도 발령 요건을 갖추지 못해 위헌이다.”라면서 “현행 헌법에 비춰봐도 표현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해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민영기자 min@seoul.co.kr
  • 이용훈 대법원장 24일 퇴임…사법부 개혁·과거사 청산

    이용훈 대법원장 24일 퇴임…사법부 개혁·과거사 청산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를 내걸었던 제14대 이용훈(70) 대법원장이 24일 6년 임기를 마친다. 이 대법원장은 무엇보다 사법부의 족쇄로 작용했던 과거사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으려 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는다. 이 대법원장은 2005년 인사청문회에서 “재심 사건이 하급심에서 끝나는데 대법원에 올라와 사법부의 과거에 대해 한마디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사법부 60주년’ 기념식에서 이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으로서 과거 우리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사법부 수장이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잘못된 재판을 바로잡는 가장 원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재심’을 강조했고, 이는 과거사 청산으로 이어졌다. 인혁당과 민청학련 사건, 죽산 조봉암 선생 무죄 판결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유신시대 악법인 대통령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피의자에 대한 ‘불구속수사 원칙’이 처음 명문화되고 영장실질심사가 필수로 확대되면서 수사상의 인권문제를 크게 개선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사자가 법정에서 주장을 펼칠 수 있도록 구술심리를 강화했고, 공개된 법정에서 공방과 증거를 바탕으로 한 공판중심주의를 정착시켰다. 배심제와 참심제를 혼합한 형태의 국민참여재판을 처음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형사사법제도 개혁 과정에서 영장이 수차례 기각되면서 검찰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또한 일부 판사들의 ‘튀는 판결’로 인해 좌편향 논란도 일었다. 한편 이 대법원장은 퇴임하면 변호사로 개업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이 대법원장은 “청문회 때 어떤 의원이 퇴임 후 변호사 하지 말라고 해서 영리활동을 하는 변호사는 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사무실을 열려면 비용이 들기 때문에 결국 변호사 사무실은 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민청학련’ 최권행 교수 ‘무죄’

    지난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실형이 확정됐던 최권행(57)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와 백영서(58) 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재심을 통해 37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 강형주)는 1974년 서울대 재학 중 민청학련 사건으로 내란 음모와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실형을 받았던 최 교수와 백 교수 등 4명에 대한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최 교수 등이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킬 것을 모의했다고 단정할 만한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생명운동’ 장일순의 삶 오롯이

    오월이 가기 전에 푸른 명언 하나 되새겨 보자.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기 위해 껍질을 안에서 쪼는 것을 줄(啐)이라 하고, 어미 닭이 새끼가 알에서 나오는 걸 돕기 위해 바깥에서 쪼는 것을 탁(啄)이라고 하거든. 그 둘이 맞아야 된다 이 말이야. 어린 아이가 신이 나서 하게 해야지, 부모가 억지로 당긴다고 되나? 안 되지”  무위당 장일순이 생전에 강조했던 교육관이다. 고(故) 리영희 선생은 평소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 얘기할 때 가장 먼저 “우리 사회에서 그런 분 같은 사람은 또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무위당을 꼽았다.  무위당은 1928년 강원 원주에서 태어나 평생 고향을 지키며 힘 없는 사람들의 벗으로 살았고 민주화 투쟁과 생명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교육 운동, 민주화 운동, 생명 운동에 헌신해 고향 원주를 그 중심지로 만들었다. 당대 지식인들은 스승으로 모셨지만 무위당은 자기 자신을 ‘좁쌀 한 알, 일속자(一粟子)’라고 하며 스스로 경계를 삼았다.  무위당은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그만 둔 뒤 스물여섯 나이에 원주에서 성육고등공민학교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교육 운동을 시작한다. 교육이 죽으면 미래가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인간다운 삶을 함께 배우고 느끼는 의식의 상호 작용이야말로 교육 운동의 본질이라고 여겼다. 그러던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이틀 뒤 체포된다. 그가 평소에 주장하던 ‘중립화 평화통일론’이 빌미가 됐다. 무위당은 8년 형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와 춘천 형무소에서 3년동안 복역했다. 출소 뒤인 1965년 대성고등학교 학생들이 고등학생으로는 전국 최초로 한·일회담 반대집회를 열었고 군사정부는 이 일을 이유로 무위당을 대성학원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이 즈음 무위당은 평생 뜻을 같이한 지학순 주교를 만나면서 재해대책사업과 가톨릭 농민회 운동, 신용협동조합 설립 등에 힘을 모은다. 자연스럽게 ‘원주 캠프’가 싹트게 됐고 ‘5·16장학회 부정부패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을 거치며 ‘80년대의 광주’처럼 ‘70년대의 원주’라고 할 만큼 민주화 운동의 진원지로 자리 잡은 그 중심에 무위당이 있었다.  지난 22일은 무위당이 세상을 떠난 지 17주기를 맞은 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무위당 장일순:생명사상의 큰 스승’(이용포 지음, 작은 씨앗 펴냄)이라는 책이 나왔다. ‘농민신문’에서 중편소설 ‘성자 가로등’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한 저자는 머리말에서 “무위당 선생의 삶을 다룬 책은 여러 권 나와 있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책을 쓰게 됐다.”고 출간 동기를 밝혔다. 1만2000원   김문기자 km@seoul.co.kr
  • [차 한잔 하실까요] 고재득 성동구청장

    [차 한잔 하실까요] 고재득 성동구청장

    “무상급식은 국민 식생활 개선, 비만 대책 등과 맞물려 실시해야 할 국가적 사업입니다. 급식은 농산물의 유통과 검사, 보관 등 체계적인 시스템과 연계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단체장이나 교육감이 의욕을 갖고 한다고 될 사업이 아닙니다. 국가가 할 사업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다 보니 갈등을 빚게 됐죠. 용어도 무상급식이 아니라 ‘의무급식’으로 하는 게 맞습니다.” 전국에서 유일한 4선 민선 기초단체장은 11일 서울시와 시의회 간의 무상급식 갈등에 대한 해법을 묻자 이렇게 잘라 말했다. 고재득(65) 성동구청장 얘기다. 1995년 초대 때 당선된 뒤 2006년까지 12년 동안 구청장을 지냈다. 3선 출마 제한 때문에 4년을 쉬었지만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다시 구청장에 올랐다. 현재 서울시 구청장협의회장을 맡아 초선 구청장들의 ‘멘토’(mentor·조언자) 역할을 한다. “초대 때보다 살림이 더 어려워졌어요. 정말이지 지방자치제가 고사 위기에 놓였습니다. 고령화 사회로 진행되면서 복지 수요는 크게 늘어나는데 자주(自主) 재원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25개 구청을 아울러야 할 그는 지난달 열린 ‘지방재정 위기 극복 토론회’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자치구 재정 규모는 초대 때보다 커졌지만 구청장이 재량권을 가지고 운영할 수 있는 예산은 점차 줄어 현재 전체의 5%도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와 자치구 간의 불편한 관계도 털어놨다. “서울시 전체 예산은 30조원에 가까운데 자치구 지원금은 25곳을 다 합쳐도 6억~7억원뿐입니다. ‘시민만 있고 구민은 없는’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는 셈이지요. 무조건 사업만 자치구에 떠넘길 게 아니라 예산까지 따라와야 지방자치가 정착될 수 있죠.” 구청장이라는 직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른 것은 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구는 직원만 1200명이 넘는 거대한 조직이라 직원들이 힘을 모으면 못 할 게 없다.”면서 “상당히 우수한 인력들이라 재정적인 여유만 있다면 훨씬 더 많은 정책을 펼 수 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뉴타운 사업에 대해서도 “살고 있는 사람이 더 잘 살도록 해야지 쫓아내는 개발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동시다발적인 재개발로 34만 명이던 구 인구가 30만 명으로 줄었다.”며 순환 개발을 주장했다. “동네별 소규모 재개발을 추진해 잠시 옆 동네에서 전세를 살다 다시 돌아와 정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또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위주의 재개발이 아니라 단독주택을 유지하는 개발도 필요합니다.” 시내 25곳 중 18곳이 초선 구청장이다 보니 고 구청장은 이들의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당선이 발표된 직후 초선 구청장들을 국회 귀빈식당으로 불러 모았다. 그는 “구청장 10년을 해도 모르는 것이 적잖다.”며 “일과 주민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덤벼야 한다.”고 말했다. “조금 안다고 마음을 놓거나 자만심을 가지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8~9급 공무원들에게도 물어봐야 합니다. 아는 체만 해서는 발전이 없습니다.” 취임 1년을 앞둔 초선 구청장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냐고 묻자 그는 “의욕이 넘치고 진취적이다. 아이디어도 저보다 훨씬 많다. 지금은 오히려 그분들의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 그에게도 멘토가 있었다. 특히 김성순 전 송파구청장과 정영섭 전 중랑구청장, 김동일 전 중구청장, 조남호 전 서초구청장 등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함께 구청장을 시작했던 그분들은 전에 관선 구청장 등 행정 경험을 쌓았던 터여서 수시로 전화해 물어봤습니다.” 그와 성동구의 인연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수배를 받았을 때 한양대에 다니며 행당동 철길 인근에 살던 친구 집에서 숨어 지냈다. 그 뒤 1급인 국회 정책연구위원으로 있다가 조세형(1931~2009) 전 국민회의 의원의 권유로 구청장에 나서게 됐다. 그는 지역을 인정이 넘치는 동네로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시골 마을처럼 빈대떡을 부쳐 이웃과 나눠 먹는 도시 속의 시골, 그런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아이들도 그렇게 커야 지역에 애정이 생깁니다.” 그는 주민들에게 동마다 수영장과 도서관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도 했다. “도서관 바닥에 장판을 깔아 그 위에서 아이들이 책을 보며 뒹굴고 잠도 자고 하는 편안한 도서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책과 더 친숙해질 수 있습니다.” 고 구청장은 “‘위정자는 많고 적음이 아니라 고르지 못함을 탓한다’는 말처럼 주민들이 고르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목민관이 되겠다.”며 말을 맺었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민청학련’ 故 제정구의원 재심 무죄

    1970년대 전국민주청년총학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고(故) 제정구 전 의원이 36년 만에 무죄선고를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 강형주)는 25일 반국가단체인 민청학련을 구성해 내란을 기도한 혐의로 기소된 제 전 의원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위헌·무효인 대통령긴급조치 1·4호가 적용돼 공소가 제기된 이 사건은 무죄다.”면서 “또한 국가를 변란하려는 목적으로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고 폭동을 모의·준비한 것으로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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