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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독립공」 추진/민진당/한­중수교 계기 가속화

    【대북 로이터 연합】 한국이 중국과 수교함에 따라 대만 야당인 민진당은 대만을 중국본토로부터 독립시켜 별도의 공화국으로 선포하는 운동을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27일 밝혔다. 민진당의 국민대회대표들은 금년말 또는 내년초에 열릴 국민대회때 대만의 공식명칭을 현 「중화민국」에서 「대만공화국」 으로 개칭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진당은 『한중수교로 인해 대만은 국제적으로 더욱 고립됐다』며 『정부의 하나의 중국 정책은 현실성이 없으며 대만독립을 선포함으로써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중국식 계산/한·중 우호시대에 부쳐/전락희(특별기고)

    그간 한중양국은 적어도 수교문제에 있어서만은 정해진 시간표를 갖고 있지않았다.특히 중국의 입장에 있어서 그러했다.다만 몇가지 중요한 조건들이 고려되고 성숙되기만 하면 돌연 성사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그래서 서두르는 듯한 한국측에 「물이 흐르면 도랑이 생기게 마련」이란 말로 중국을 달래곤 했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과 중국은 국제무대에서는 서로 적대시 하는 이웃이었다.중국이 한국전에 참전해 우리와 싸운데다가 휴전후에도 계속 북한을 일방적으로 지원하고 옹호하는 대표적인 국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70년대말부터 한중양국은 간접교역을 통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협조하기 시작했다.특히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에 참가한 중국은 기대이상의 성적을 올렸을 뿐만아니라,북경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 한국은 사상 최대규모의 선수단과 응원단을 참가시켰고,우리의 기업들도 기술과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이처럼 물은 흘러 도랑은 날이 가면 갈수록 깊어만 갔다. 그간 중국은 기본적으로 한중수교를 세계질서 속에서 보려는 것 같았다.80년대말 탈냉전체제에서 중국은 미국중심의 일극체제를 현실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어떠한 패권주의의 등장도 용인하지 않으려는 전통적인 태도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었다.특히 주변지역에 있어서 그러했다.그러나 비틀거리는 미국의 일극체제에 대해 중국은 안심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발빠른 국제무대에서의 행보에 대해서는 불안하기만 했을 것이다.특히 동남아 지역에서의 일본의 눈부신 진출은 역사적인 기억들을 되살리기에 충분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아래서 미·북 그리고 일·북간의 관계개선을 기다리면서 한중수교를 모색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따라서 한중수교를 선결시킴으로써 미일로 하여금 북한과의 수교를 서두르게 하려 했을 것이다.그간 「의이와 정」을 내세워 북한을 안심시켰던 중국이 국제사회에 북한을 끌어냄으로써 개방과 고립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중국식 계산을 했을 것이다. 또한 최근 강력한 경제력을 수단으로 한 대만의 실질외교가 괄목할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데 대해서도 중국은 수수방관할 수 없었을 것이다.더욱 중국이 대만의 중요한 수출시장으로 변모해가고 있는 작금의 상황으로 보아 상대방의 조작 가능성이나 대만에 대한 대륙인민의 선호에 대해서도 일말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던게 분명하다.때문에 대만과 가장 중요한 정치적인 위치에 있는 한국과의 수교를 조기에 성사시킴으로써 대만외교에 타격을 가하고 동시에 한국의 대륙진출을 가속화시키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판단했을 것이다.더욱 한국과 대만과의 단교가 대만의 반정부(민진당)세력을 강화시킴으로써 대만정부의 정치력을 약화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지난 24일의 한중수교는 한국이 그간 추진하여 온 북방외교의 마지막 목표인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개가였다.그러나 우리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앞세운 듯한 아쉬움을 남겼지만 중국은 이 두가지를 동시에 고려하는 노련함을 보였다.과거 한국외교가 사대교린하면서 「명분」의 문제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한 것은 「실리」를 유지하고 추구하기 위한 지정학적 한계를 고려한지혜라는 점에 우리는 지금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실로 길게는 지난 80년간 그리고 짧게는 40여년간 침묵과 암흑의 바다였던 서해는 멀지않아 왕래와 창조의 바다로 변할 것이다. 금년 1백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한중간의 교역량도 해가 바뀌면 바뀔수록 증대될 것이 분명하다.그것은 한중간의 보완적인 경제환경을 고려할때 더욱 그렇다.적어도 중국은 2∼3년내에 일본을 제치고 우리의 제2교역국이 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그러나 노동집약적인 중국의 상품이 우리의 시장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서구의 문물과 사회주의권 특히 중국의 그것이 한국에서 만남으로써 균형잡힌 문화적인 감각은 물론 새로운 문화의 창조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한중수교가 한반도의 안정과 통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다만 이러한 전망은 남북의 권력집단이 체제 이익보다는 민족이익을 앞세울 때만 가능한 것이다.적어도 중국은 남북간의 대립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적인입장을 취하겠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대륙과 해양세력 사이에서 한국이 균형자의 역할을 다하려면 민족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따라서 한민족의 통일은 최대의 관심사인 동시에 과제일 수밖에 없다. ◇한국외국어대 중어과줄·국립대만대 정치학박사·중국정치사상전공.
  • 대만 반한의 겉과 속/유세진 국제부기자(오늘의 눈)

    한중수교에 대한 대만의 반응은 배신감과 그에 따른 분노의 표현이었다.이는 충분히 예상됐던 것이고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수 있다.『신의를 저버리고 국제정의를 짓밟았다』는 대만측 비난에 한국은 할말이 궁하다.태극기를 짓밟거나 불태운 행위를 놓고 「지나친 행동」이며 대만정부가 이를 방관한 것은 잘못이라는 소리도 있지만 그래도 대만에서의 분노표시를 이해하고싶다. 한·대만관계에 완전한 단절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양측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한국은 『단교가 되더라도 최고수준의 민간관계는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고 대만도 『상호이익을 바탕으로 민간경제및 무역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얼마간의 냉각기간이야 피할수 없겠지만 앞으로 새로운 한·대만관계를 도모하기 위해선 대만국민들의 분노가 해소돼야 하고 대만정부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한다. 대만정부의 강경자세는 분노하는 국민들이나 중국에 대한 주권포기와 독립국으로서의 유엔가입을 주장하는 민진당을 겨냥한 국내용 정치제스처라는 분석이 따르기도 한다.외교문제가 감정적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음을 잘아는 대만정부가 겉으로는 국제도의를 내세운 것도 이같은 측면에서라고 여겨진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앞으로 한·대만관계를 가능한한 과거에 가깝게 유지하는 것이다.이를 위해 대만내의 반한감정을 무마시키는 한편 그간 양국이 맺었던 정부차원의 협정들을 민간차원의 협정으로 전환하고 한국에 남아 있는 화교들의 법적 지위문제등을 논의할 협상을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동북아 경제의 주요세력으로서 대만의 비중은 결코 무시할수 없다.게다가 공산주의의 퇴조라는 세계적 추세,중국의 개혁·개방정책,실용외교를 내건 대만의 외교정책 등으로 중국·대만간에 협조관계가 형성될 날도 언젠가는 올 것이다.때문에 중국관계와 병행하는 대만관계의 유지는 한국으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중국과의 수교는 남북한 교차승인의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한반도통일이란 궁극적 목표에 한걸음 다가서게 했다.이같은 목표와 「동북아의 안정」이란 대명제아래 한국의 대중국관계와 대대만관계를 재정립하는게 지금 한국에주어진 과제다.대만도 역시 겉으로 표현되는 분노는 감출 수 없을지언정 이같은 현실들을 냉철하게 직시해야할 것이다.
  • 대만,야 불참속 개헌 강행/국민대회권한 오히려 강화

    ◎재야·학자들 반발… 정국불안 우려 【대북 AFP UPI 연합】 대만의 국민대회는 27일 야당인 민진당 대표들이 불참한 가운데 8개항의 헌법개정안을 통과시켰으나 야당과 학생들이 그간 폐지를 촉구해온 국민 대회의 권한을 오히려 강화하고 헌법개정을 통해 뚜렷한 민주개혁안을 제시하지 못해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따라 야당등 비판세력들은 물론 국민당내 일부 인사들마저 이번 개헌안이 피상적 개혁이며 앞으로 더 많은 문제와 정치불안을 야기할 것이라고 비판하는 등 헌법개정후 정국이 다소 불안정한 국면으로 접어들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국민대회가 통과시킨 헌법개정안은 국민대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토록 돼 있는 총통과 국민대회 대표들의 임기를 6년에서 4년으로 줄이고 대만성장과 대만 2대 도시인 대북과 고웅시장을 94년부터 직선으로 선출토록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총통선출을 위해 6년마다 한 차례씩 또는 필요한 경우에만 특별대회를 열었던 국민대회가 앞으로 매년 대회를 열수 있도록 했으며 총통이 대회에 출석해 국정을 보고토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개정안은 또 국민대회가 감찰원·고시원 등의 관리들에 대한 총통의 임명을 승인하는 권한을 부여해 권한이 강화됐다.감찰원은 이날 헌법개정으로 선거로 선출되는 기구에서 총통이 임명하고 국민대회가 승인하는 기구로 바뀌었다. 헌법개정안이 통과된 후 민진당과 대만독립주의자들은 성명을 발표,『앞으로 정치적 동요가 예상된다.국민대회내 국민당 대표들이 권력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국민당이 용인한 일개 당 주도의 헌법개정이었다』고 비판했다.
  • 대만 「대중 교류확대법안」통과/새달 입법원 전체회의서 승인될듯

    ◎“본토 공산당원 대만방문 허용” 【대북 로이터 연합】 중국 공산당 당원의 대만방문 및 해협양안간의 항공,해상직교역 허용 등 본토·대만간 획기적 교류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역사적 법안이 대만입법원 산하 3개 위원회를 통과함으로써 내달 입법원 전체회의에서 승인될 전망이 밝아졌다고 입법원의 한 대변인이 24일 밝혔다. 입법원내 내무,법사 등 3개 위원회가 거의 2년간에 걸친 논쟁끝에 지난 23일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이 법안은 ▲본토 공산당원의 대만방문 허용 ▲비공식 상주대표부의 상호 설치 ▲항공·해상·통신상의 직접 교류 허용 ▲대만인의 본토 최장 체류기간 확대 등 해협양안간 획기적인 교류확대를 허용하는 조항들로 이루어져 있다. 학백촌 행정원장은 이와 관련,이날 입법원 연설을 통해 이 법안의 제반조항들은 본토 당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을 배제하고 대만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할 경우에 한해 점진적으로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만 집권 국민당의 왕친핑 원내총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법안이내릴 입법원 전체회의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법안의 관게위원회 통과는 그동안 개방의 범위에 관한 국민당 내부에서의 이견과 대만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민진당의 반대로 지연돼 왔는데,민진당 소속 의원들이 지난 23일 이 법안을 승인하는 조건으로 해외 대만 독립운동가들의 귀국을 허용하겠다는 국민당측의 약속을 받아낸 후 극적인 타결을 보게된 것이다.
  • 대만 국민은 「점진개혁」을 택했다/제2기 국민대회 대표선거 결산

    국민당 예상밖 압승… 개혁파 입지 흔들/내년 3월 개헌 착수… 새 정부 형태 확정 대만 국민당이 지난 21일 실시된 제2기 국민대회 대표선거(총선)에서 개헌정족수(75%)를 훨씬 넘는 절대안정의석(4백3석중 3백18석)을 확보함에 따라 대만은 이제 점진적 개혁의 길을 마련했다. 한때 기대를 모았던 제1야당인 민진당은 2년전 입법위원선거때 28%의 지지율을 확보,이번에는 30∼40%까지 장담했으나 24%의 지지를 받아 41석을 확보하는데 그쳐 예상밖의 저조를 보였다.특히 대만독립조항 당헌강령을 기초한 임탁수가 낙선하고 당내대만독립파와 신조류계열등 진보세력이 대거 탈락한것은 이들의 대만독립주장이 필연적으로 중국을 자극,양안관계에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시킬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주민들이 크게 우려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민당은 이같은 민진당의 자충수에 반사이익을 본데다 조직력이나 김력,인재확보면에서 훨씬 우세를 보였으며 특히 점진적인 개혁의지가 크게 먹혀들었던 것으로 보인다.여기에다 부시미대통령이 국민당의 통일정책을 지지하고 중국이 민간형태의 해협양안교류협회를 발족시켜 교류와 협력태세를 갖춘것도 국민당지지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도움이 됐을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실 이번의 국민대회 총선자체가 이등휘총통을 중심으로 한 국민당 개혁파의 과감한 민주화개혁 일정속에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총선결과에 관계없이 헌정개혁 프로그램은 예정대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 국민당정부의 헌정개혁 일정에 따르면 우선 제2기 국민대회는 92년 1월에 공식적으로 출범,오는 3월부터 헌법 개정작업에 착수하는데 여기서 새로운 정부의 형태와 제도,총통의 선출방식,고시원과 감찰원의 존폐문제,대만의 대중국 통일문제 등이 핵심적인 현안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당은 손문과 장개석등 중화민국건국의 초석을 마련한 선인들의 근본이념과 원칙을 고수하는 범위내에서 헌정개혁을 단행할 예정이어서 엄격한 3권분립의 민주제도를 위해 고시원과 감찰원을 폐지하는 등 정치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일부여론은 당분간 수용할 수 없을 것같다. 따라서 향후 대만의 권력구조는 현재와 같은 국민대회를 최고권력기구로 하고 그밑에 행정권·입법원·사법원·고시원·감찰원등 5개의 원이 상호견제하는 독특하고 다소 불합리해 보이는 권력형태의 틀을 벗어나기가 어렵게 됐다.다만 총통의 선출방식에 관해서는 국민당내에서도 최근 「국민직선제」요구가 강력히 대두되고있어 현행 국민대회에서의 선출방식이 직선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 대만 총선 국민당 압승/득표율 71%… 개헌의석 확보

    【대북 AP 연합】 대만 최고입법기구인 국민대회를 44년만에 전면개선하는 21일의 제2대 국민대회(국대) 대표총선에서 본토회복을 주장해온 집권 국민당이 본토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해온 제1야당 민진당을 누르고 대승을 거두었다. 만국영 TV는 총1천3백만 유권자중 68%가 참가한 이날 직접선거에서 국민당은 71%의 지지율을 얻어 총 2백54개 의석을 확보한 반면 민진당은 24%의 지지율을 획득,65석을 차지했으며 나머지 6개 의석은 사민당등 군소정당및 무소속이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국민당의 경우 국민들의 직접선거에서 1백79석을 차지하고 비례대표제에 따라 75석을 배분받아 총 2백54석을 확보했으며 민진당은 직접선거에서 40석을 포함,모두 65석을 획득했다고 덧붙였다. 국민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대회 총 의석의 78%를 확보함으로써 헌법개정을 주도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됐는데 대만헌법에 따르면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국민대회에서 75%의 지지를 얻어야만 한다. 한편 지난 89년 실시된 입법원 선거에서 58%의 지지율을 얻은 국민당에 뒤이어 민진당은 38%의 지지율을 얻었었다.
  • 대만,오늘 총선…민주개혁시험대에/민선의원 2백여명 44년만에 선출

    ◎개헌선 확보 관심속 17개 정당 각축/시내마다 “깃발물결”… 「리오」축제 방불 대만역사상 최초의 자유총선은 마치 리오의 카니발만큼이나 풍성하고 떠들썩했다. 마치 한국의 50∼60년대 선거를 연상케 하는 10일간의 선거운동을 마치고 이제 1천3백만 대만 유권자들은 21일 그들 장래를 판가름할 투표를 하게 된다. 이번 선거에서는 헌법개정권과 총통선출권을 갖고 있는 최고권력기구인 「국민대회」대표들을 뽑는다. 지금까지는 6년에 한번씩 결원이 생긴 대표숫자만큼만 새로 선출하는 보궐선거뿐이었다. 최초의 국민대회선거는 47년 11월 대륙에서 실시되 장개석을 초대 총통으로 선출했었다. 그후 49년 공산당에 패배,대만으로 패주해온 이후에는 대륙의 선거구역을 공산당이 불법점검해 더이상 선거를 치르지 않았다. 따라서 초대대표들을 사실상의 종신직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80년대 후반에 등장한 민진당이 개혁바람을 일으켰다. 국민당도 시대의 조류에 더이상 거역할 수 없어 4백72명의 종신대표들을 지난 16일까지 모두 은퇴시켰다.이번 선거에서는 2백25명의 지역구 대표와 1백명의 비례대표등 3백25명을 뽑는다. 여기에다 지난 86년 보선때 당선된 80명은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내년 1월 출범하는 제2대 국민대회 정원은 4백5명이 된다. 지역구 선거에는 17개 정당 4백68명이 출마,약 2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이번 선거의 최대이슈는 ▲대만독립이냐,통일이냐 ▲총통직선제냐,간선제냐 ▲개헌이냐,제헌이냐 등 3가지를 꼽을 수 있으며 이밖에 국민대회 존폐문제도 쟁점중 하나로 등장했다. 집권국민당은 너무 급진적인 변화는 사회혼란만을 가져온다며 기존 통일정책을 고수하고 헌법을 일부개정하며 총통은 미국식 간선제를 선호하는 반면 민진당은 삼권분립하의 권력구조를 목표로 헌법을 새로 제정하며 총통을 주민직선으로 뽑고 「대만공화국」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사민당등 군소정당들은 국민당과 유사한 점진개혁을 내세웠다. 개헌정족수는 전체의석의 75%. 민진당이 국민당의 개헌을 막자면 이번에 28%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 잔존 80의석중 겨우 9석만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주민들의 최대관심사는 국민당이 단독 개헌할 수 있는 70% 이상의 의석확보가 가능하겠느냐는 점이다. 국민당측은 75%를 장담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60∼70%로 보고 있다. 민진당도 개헌저지에 필요한 28%를 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어쨌든 이번 선거는 장개석 전 총통이 마련한 권위주의적 철권통치구조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화시대를 개막하는 계기가 될게 분명하다. 일부 보수세력들은 유세과정에서 나타난 매표행위와 과열타락현상을 한탄하고 후보 1인당 한화 3억∼9억원씩 뿌리는데 대해 충격을 받기까지 했다. 한 종신대표는 『우리는 선거운동이 이렇게 요란할 줄은 상당도 못했다』고 개탄했다. 그는 이같은 과정이 민주화의 필요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 대만 야당 독립강령/행정원서 삭제 명령

    【대북 AP 연합】 대만 행정원의 정당자격심사위원회는 제1야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채택한 대만 분리독립조항을 10일내 당강령에서 삭제할 것을 최종 통보했다고 한 관리가 2일 밝혔다. 이 위원회는 1일 회의를 갖고 민진당이 지난달 13일 대만의 분리독립을 당강령으로 채택한 것은 반소요법에 저촉된다고 경고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 유엔 재가입등 촉구/10만 동원 시위계획/대만 야당

    【대북 AFP 연합】 대만의 야당세력들은 24일 늦게 남부의 항구도시 고웅시에서 시작되는 2일간 일정의 반정부 시위에 약 10만명의 지지자들을 동원할 계획으로 있다. 이에 따라 대만섬이 50년간에 걸친 일본지배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25일의 경축일 동안 폭력사태 방지와 질서유지를 위해 최소한 1만5천명의 보안요원과 경찰이 이미 고웅시에 배치돼 있다. 야당인 민진당의 한 대변인은 『시위자들이 정부에 대해 반체제 인사의 탄압중지와 함께 유엔재가입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집권 국민당으로부터의 적대적 반응을 피하기 위해 유엔재가입에 관한 국민투표실시 주장을 담은 슬로건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대만,중국과 「당대당협상」 추진/국민·민진·공산당 3자회담

    ◎「독립」문제 해결 겨냥… 반대입장 번복/학 행정원장 의회연설서 밝혀 【대북 로이터 연합 특약】 대만의 집권 국민당은 대만의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야당인 민진당및 중국 공산당과의 3자회담 개최를 추진할 것이라고 학백촌행정원장이 22일 밝혔다. 학행정원장은 이날 의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3자회담의 개최는 대만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며 「하나의 중국」원칙하에서라면 어떠한 회담도 가질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대만 국민당의 이같은 제의는 처음있는 일로서 대만은 그동안 중국의 당대당 회담 개최제의를 민주주의원칙에 위배된다며 거부해왔다. 대만에서는 지난 13일 야당인 민진당이 중국과의 통일정책을 포기하고 독립국가임을 선포할 것을 주장하고나서부터 정치위기가 고조돼왔다. 그동안 국민당정부는 민진당이 대만독립입장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당해체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강경자세를 보여왔는데 학행정원장의 이날 3자회담제의는 민진당의 입장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 대만독립 국민투표 요구 확산/국민당 일부 의원 야당에 동조

    ◎이등휘총통/“「하나의 중국」 정책 고수” 【대북 로이터 연합】 대만 집권 국민당내 자유주의 성향의 의원들은 정부노선을 이탈해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16일 요구했다. 입법원 내에서 가장 강력한 정파인 신국민동맹의 이같은 요구로 독립문제를 둘러싸고 증폭되고 있는 정치적 위기가 가열되었으며 이로 인해 증권시장은 팔자는 주문이 급증하고 있다. 이같은 위기는 지난 13일 제1야당인 민주진보당이 대만과 중국 정부의 제재 위협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주장함으로써 비롯되었다. 이날 집권 국민당은 민주진보당의 독립 요구를 『무책임하며 국가와 국민을 재난으로 몰고가는 짓』이라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대북 AP 연합】 대만의 이등휘총통은 15일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최대 야당인 민진당(DPP)을 비난하고 이 당을 불법화시킬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총통은 이날밤 발표된 성명에서 『하나의 중국이 있을 뿐이며 우리는 이를 쟁취하기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집중시켜 왔다』고 밝히면서 이같이 말했다. 주로 대만인들을 당원으로 5년전에 창당된 민진당은 지난 13일 중국으로부터 대만의 독립과 대만 공화국 창설 여부를 심판받기 위한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당강령을 통과시켰었다. 대만 관리들은 민진당이 대만의 반독립법을 위반했는지,그리고 민진당을 해체하거나 기소해야 할지를 결정하기 위한 사법 당국의 조사가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총통은 또 대만을 고립화시키고 대만의 무력합병포기를 거부하는 중국정부의 태도가 대만 국민들의 반중국 감정을 불러 일으켜왔다고 주장하고 중국정부에 대만의 국민당 정부를 멀리하거나 대만의 국제단체 가입을 봉쇄하는 행위를 중단해 줄 것을 촉구했다. 그는 대만과 중국은 국민들의 의지를 존중하는 평화적인 태도로 평등의 원칙하에 우호적이며 진솔한 교류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외언내언

    경상남북도를 합친것만한 넓이다.79개의 군소섬들을 거느리고 있다.중국 최대의 섬이다.3세기 무렵 중국사람들이 발견했다.본격적인 개척은 중세이후이며 근대중국의 역사만큼이나 기구한 운명에 시달렸다.첫 식민지를 객척한것은 1624년 네덜란드인들.그들이 붙인 이름으로 서양에 알려진것이 포모사(Formosa)다.보물섬이란 뜻.◆그후 명나라 유신 정성공이 네덜란드인들을 항복시키고 「항청복명」의 피난처로 삼았다가 청나라에 망한후 1885년 대만성으로 복귀.그러나 기구한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청­일전쟁후 일제식민지 51년을 겪고 49년 국공내전에 패한 국민당정부의 피난처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대만의 약력이다.중국대륙의 3백분의1도 안되는 이곳에 살고있는 사람은 모두 2천여만.선주민족인 말레이·폴리네시아계의 고산주 25만을 제외하면 98%가 한주이다.그러나 이 한주의 84%는 남쪽해안의 복건·광동성에서 이주해 오래전부터 살아온 이른바 본성인이며 16%는 49년 국민당정부와 함께 피난온 북중국계의 외성인들.◆그동안 대만을 정치적으로 지배해온것은 이 국민당정부와 외성인들이었다.이때문에 본성인들은 불만이 많았으며 심한 정치적탄압을 받기도했다.그러나 85년이후의 세계적인 민주화바람은 대만에도 정치적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본성인들의 정치참여가 확대되었다.◆본성인출신이 국민당정부의 총통이 되고 「대만의 운명은 대만주민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어야한다」는 「자결강령」의 야당도 출현.민주진보당으로 89년 총선에서 30%의 지지를 획득했다.13일 대만정부는 물론 중국정부의 요란한 경고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당강령에 대만을 「독립된 주권공화국」으로 규정한 조항을 삽입키로 한것도 바로 그 민진당.2개의 중국정부가 모처럼 일치된 반대를 하고있다.독립 「대만공화국」은 탄생할 수 있을까.기구한 운명의 또한차례 향방이 주목된다.
  • 대만/독립관련 정국 긴장 고조/제1야당,「주권공화국」 천명

    ◎정부선 당 해산·내란혐의 기소 검토 【대북 AFP 연합】 대만의 제1야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은 13일 대만정부의 강력한 경고를 무시한 채 대만을 독립주권을 가진 공화국으로 규정한 조항을 당강령에 삽입하기로 결정했다. 제5차 민진당 당대회에 참가한 3백50여명의 대의원들은 표결을 통해 이같이 결정하는 한편 중국에 대한 명칭을 「중국공산주의자」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된 「중화인민공화국(PRC)」으로 변경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의결했다. 중국본토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있는 대만정부는 지난주 민진당이 대만을 독립주권을 가진 공화국으로 명시한 조항을 당강령으로 채택할 경우 민진당을 해산하고 당지도자들을 내란교사혐의로 기소할 것이라고 위협한 바 있다.
  • 중국­대만/독립문제로 「3각 파고」

    ◎야당주도 「대만공화국」 추진… 정부와 마찰/북경선 소수민족 동요 우려,“좌시 않겠다” 쌍십절(10월10일)80주년을 맞으면서 중국대륙과 대만의 양안에 긴장의 파고가 전에없이 높아지고 있다. 대만에서는 야당인 민진당이 9월초부터 갑자기 독립을 부르짖기 시작,쌍십절 전야에는 10만군중을 동원한 독립시위를 벌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가운데 중국측에서는 독립움직임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계속 내보내고 있으며,이에 자극받은 국민당정부는 근년들어 시작된 양안간의 경제·인적교류등 주요 접촉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진당을 주축으로 한 대만 진보세력들의 독립에 대한 목청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소련공산당 붕괴직후 발트해 3국이 독립을 쟁취한 데 자극받은 때문이다. 이같은 진보세력들의 움직임에 국민당 정부 일각에서는 느닷없이 「대만」이란 국호로 유엔에 가입하자고 주장하고 이에 맞장구치 듯 학백촌행정원장은 『중화민국은 아직도 유엔헌장에 유엔창설멤버의 하나로 기록돼 있다』면서 북경당국이 대만의유엔의석을 약탈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등휘총통은 독립추구세력을 강력히 제압하기보다는 설득하려들고 있어서 북경지도자들로부터 이들을 부추기지 않나 하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이총통은 야당인사들을 모아놓고 『우리나라는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된 주권을 가진 나라』라고 강조했다.이미 독립된 국가가 무슨 독립을 주장하느냐는 얘기다. 그는 『우리는 통일도 원치 않는다.합법적인 독립도 원치 않는다.현상유지가 최고다』라고 말했다.이는 국제사회에서 인정되는 「합법적인」독립보다는 현재와 같은 「사실상의」독립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이총통의 주장은 합법적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보다는 보수적입장이지만 오는 95년까지 통일을 이룩하겠다는 북경지도층으로서는 실망스런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북경지도층은 대만의 독립움직임에 민감한,때로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오고 있다.이붕 중국총리는 『어떠한 이유로도 이른바 「대만독립」을 추구하는 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고 밝히는등 많은 최고위지도자들이 기회있을 때마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경고를 해오고 있다.때로는 무력사용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도 흘리고 있다. 북경당국자들이 대만의 독립에 이같이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은 중국내 56개 소수민족정책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그렇지 않아도 과거부터 독립문제로 말썽을 부려온 신섭위구르와 티베트등 일부 소수민족들이 소련사태에 영향을 받지않을까 바짝 긴장해온 터에 느닷없이 대만에서 독립투쟁이 벌어진 것이다. 대만독립 문제는 홍콩문제해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중국은 이미 중영협정에 따라 오는 97년 홍콩을 접수,이곳에 자본주의체제를 지속시켜 「일국양제」를 확립시키면서 이 모델을 대만에도 적용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만은 일국양제를 거부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그들은 소수였던 중국공산당이 국민당을 무너뜨렸듯 좀더 기다리면 소수인 대만이 다시 다수인 대육을 제압할 때가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대륙과의 긴장을 완화하고 경제·인적교류등을 통해 실리를 추구하면서 때를기다려보자는 국민당의 생각은 민진당을 비롯한 재야세력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민진당은 심지어 오는 12일부터 열리는 5차전당대회에서 대만의 국호를 「대만공화국」으로 규정,당헌에 명시하겠다는등 앞으로도 계속 독립투쟁을 벌여나갈 생각이어서 대만과 대륙간 양안의 긴장이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전망이다.
  • 유엔 재가입 요구/대만,2만명 시위

    【대북 AFP AP 연합】 2만여명의 대만 시위대들은 7일에 이어 8일에도 대만이 유엔에 재가입 신청을 낼 것을 요구하면서 대북시내에서 시가 행진을 벌였다. 대부분이 야당인 민진당 당원으로 이루어진 시위대는 이날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대만 독립,유엔 복귀」라고 쓰여진 머리띠를 두른채 당국의 경고를 무시,한 축구 경기장에서부터 총통 관저를 향해 거리 행진을 벌였다.
  • 유엔 재가입 권고안 승인/대만 입법원

    【대북 AFP 연합】 대만 입법원은 18일 대만정부가 20년 전 축출된 유엔에 재가입하기 위한 『적절한 시기』를 모색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승인했다. 입법원은 이날 의원 86명이 앞서 대만의 유엔 「즉시」 가입을 촉구한 강경한 내용의 동의안을 대체하기 위해 제출한 이 권고안을 표결에 부쳐 집권 국민당과 야당인 민진당 소속 의원들을 포함,재석의원 74명의 3분의2가 넘는 51명의 찬성으로 승인했다. 행정원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는 이 권고안은 당국에 대만의 외교무대를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적절한 시기에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로 유엔에 재가입신청을 내도록 촉구하고 있다. 앞서 국민당 소속의 황추웬 의원이 작성한 동의안은 대만이 유엔에 「즉시」가입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으나 지난 1주일 동안 국민당 당국 및 동의안 서명자들간의 열띤 논쟁을 거쳐 이날 승인된 권고안으로 대체됐다. 학백촌 행정원장은 지난주 유엔에 즉시 재가입하려 하는 것은 대륙과 대만간의 관계에 불안정을 초래하고 통일 및 독립문제에 관한대중의 논쟁을 더욱 확산시킬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황추웬 의원의 동의안 내용에 반대했다.
  • 「전시법」 폐기 이후의 경제구도(대만 새 진로:하)

    ◎외환보유고 세계 제1…「통일지렛대」 활용/“번영해야 살아남는다” 노사 모두 공감/개발계획기간도 홍콩의 대륙귀속 맞춰 연장 대만은 아시아의 4소룡 가운데 가장 알차게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다. 국제수지 흑자가 80년대 초반 이후 해마다 계속 1백억달러를 웃돌고 있으며 외환보유고는 세계 제1위로 지난 4월 현재 7백60억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경제도 정치민주화의 열풍에 휩싸여 적지 않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87년 계엄령해제 이후 계속돼온 정국불안과 치안문제 발생 등으로 기업인들의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됐고 자본의 해외 유출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민주화에 편승,범죄발생 건수도 급격히 늘어났으며 기업인에 대한 범죄단체의 협박·폭행사건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대만정국이 바람 잘날 없을 정도로 시끄러워지자 경제에도 위험신호가 뚜렷해졌다. 지난해 대만에선 연초부터 제1야당인 민진당과 대학생들이 국민당의 40여 년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 집권 국민당 내부에서도정·부 총통 후보선출 문제를 놓고 심한 내분현상을 보였고 군부 실력자 학백촌 국방부장이 행정원장(총리)으로 중용되자 야당측은 민주화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항의시위를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하는 등 대만정국에 풍파가 그칠질 않았다. 게다가 대만출신 야당인사들의 대만 분리독립 주장에 대해 중국이 『좌시할 수 없다』는 강경자세를 보임에 따라 양안해협의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가 잘 풀릴 까닭이 없어 90년도 대만의 성장률은 5.2%로 지난 8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물가도 80년대 중반 이후 연2% 미만의 오름세를 보이던 것이 4.4% 상승했다. 물론 지난해엔 세계경기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대만은 정치불안이란 대내적 요인에 의해 경제가 보다 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내적인 불안요인이 별로 없었던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대만이 보여준 5.2% 성장률 등의 지표는 그다지 나쁜 편이 아니었다. 그만큼 대만의 경제기반이 외부충격에 강하게 버틸 수 있게끔 실속있고 탄탄하다는얘기다. 이에 대해 2천만 주민들은 너나할것없이 대만의 살길은 오직 경제에 달려 있다는 인식을 깊게 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활동을 마비시키는 노사분규 등이 발생치 않은 점도 대만정제가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던 요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경제활동을 위한 모든 여건이 다른 때보다 상대적으로 나빴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대만의 무역수지는 1백28억달러 흑자를 보임으로써 역시 정치·경제적 혼란을 겪으면서 47억달러의 적자를 낸 한국과 좋은 대조를 이뤘다. 더구나 대만경제는 지난해 4·4분기부터 회복세를 보여 올 들어서는 정상궤도를 달리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대만정부는 과거 4년 기간으로 추진했던 개발계획을 올해엔 6개년의 국가건설계획(90년 7월∼97년 6월)으로 바꿔 경제발전의 새로운 도약을 꾀하고 있다. 이 계획은 기간산업은 물론 공공부지 시설에 대한 투자확대를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기간중 연평균 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은 올해 8천7백달러에서 97년에는 1만5천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짜여 있다. 건설계획의 마지막 시점을 97년 6월말로 잡은 것은 홍콩의 중국 귀속시기와 맞추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홍콩이 97년 7월1일 중국에 흡수되는 데 대한 불안심리를 극복하고 대외적으로 경제적 번영을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와 같이 시점을 정했다는 것이다. 대만은 또 이번 계획에 미국·프랑스 등 서방국가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이들 국가가 비록 중국의 압력 등으로 대만과는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끊었지만 개발계획추진에 따른 대형 프로젝트의 국제입찰에 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등 실리적인 측면에서 유대강화에 힘쓰고 있다. 다시 말해 세계 제1의 외환 보유고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상태를 탈피하겠다는 얘기다. 대만은 또 중국대륙과의 경세교류에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대만정부는 1백56개 대륙산 농·공업원료의 직수입을 허용하는 등 직접교역을 확대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과거에는 투자·무역 등 모든 경제교류가 제3국을 통한 간접방식으로 이뤄졌었다. 경제교류의 확대로 중국대륙에 대만의 발전상을 널리 전파시켜 통일논의 과정에서 자신에 유리하게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겠다는 것이 대만당국의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 「전시법」 폐기 이후의 정국풍향(대만 새 진로:상)

    ◎국민당 독재 종지부… 민주화 발진/종신직 3부원로 연내 퇴진 약속/내년 1월 총선통해 국민대회 새로 구성/총통도 직선제로… 여당내부 반발이 변수 중화민국 대만이 격심한 전환기의 진통을 겪고 있다. 이등휘 총통이 30일 그 동안 북경정권을 반란단체로 규정했던 「동원감란시기 임시조관」 폐기를 선언하고 헌정개혁 내용을 밝힘으로써 대만의 장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임시조관 폐기 등의 이번 조치는 국민당의 대만통치 40여 년 만의 획기적인 것이며 앞으로 대만정국 재편과 민주화는 물론 지금까지 예민한 대치상태에 있던 중국과의 통일문제 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지적된다. 중국대륙에서 공산당과의 내전이 한창이던 1948년 4월18일 국민당 장개석의 중화민국 정부는 「동원감란시기 임시조관」을 선포했다. 그 내용은 중화민국만이 유일한 중국대륙의 합법정부이며 공산당정권은 반란단체이므로 총동원령으로 반란을 진압한다는 것이다. 또 공산당정권이 존재하는 한 반란시기가 끝난 게 아니므로 항상 교전의 상태로 대치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내용은 총통·부총통의 종신제를 가능케 하고 총통에게 주요 국가정책 결정기구 설치 및 의회대표 선정과 증원 등의 권한을 준 것이었다. 이 임시조관은 중화민국 대만헌법의 부칙 11조로 돼 있으나 헌법에 우선하는 특별임시조치법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 이 임시조관을 법적 근거로 해서 장개석·장경국 총통은 사망할 때까지 그 직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 대만의 모든 법령은 이 조관의 정신을 기초로 하여 제정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사실상 국민당의 일당독재를 가능케 하는 제도적 장치역할을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 대륙과의 무력대치 상태가 계속됨을 강조하면서 내치안정을 위한 독재의 수단으로 써온 것이 동원감란 조관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만은 국제정세의 변화와 주민들의 민주화 욕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 지난 87년 계엄령을 해제,정치민주화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국민당 정권이 지난 49년 대만으로 건너온 뒤 계속 실시됐던 계엄령의 해제 이후 제1야당인 민진당의 등장과 대만분리독립 및 대륙 출신 종신직의원 퇴진요구,총통직선 등 재야인사들의 급격한 민주개혁 주장 등으로 지금까지 대만정국은 바람 잘 날이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집권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 했던 국민당은 지난해 5월20일 이등휘 총통의 취임을 통해 민주화를 위한 헌정개혁을 약속했으며 1년후인 91년 4월30일 임시조관 폐기·헌법개정 등의 선언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임시조관이 없어짐에 따라 우선 대만은 중국대륙과 공식적으로 평화통일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또 북경정권의 합법성을 인정함으로써 중국의 무력통일 의도를 희석시키는 효과를 얻게 된 것 같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발등에 떨어진 민주화 진통의 불씨를 일단 끄고 단계적인 민주개혁과 헌정개선의 기초를 확고히 했다는 사실이다. 이 총통은 이날 국민대회(국대)·입법원·감찰원 등 3개 민의 대표기관에 재직중인 대륙 출신 국민당 종신직 원로들을 모두 올 연말까지 퇴진시키기로 약속했다. 이들 종신직 대표는 총통선출 및 헌법개정을 맡는 국대에 5백30명,일반 법률을 다루는 입법원 90명,국정감사 기능을 갖는 감찰원 17명 등 모두 6백37명. 절대다수의 이들 종신직 의원들에 의해 국민당은 지금까지 대만정국을 마음대로 이끌어 올 수 있었고 민진당 등 야당은 종신직 제도가 민주화의 최대암적 존재임을 강조해왔던 터였다. 종신직 의원 퇴진에 따라 3개로 구성된 대만 고유의 의회기구 가운데 국대는 오는 92년 1월 총선을 통해 선출직 의원들로 새로이 구성,출범하게 되며 입법원과 감찰원은 93년 2월 선거를 실시하되 그 이전에는 기존의 선출직 위원만으로 운영하게 된다. 이 총통은 종신직 폐지에 이은 제2단계 헌정개혁 조치로 92년초에 총통을 비롯,대만성장과 대북·고웅 시장 직선 등 기타 주요사항에 관한 헌법개정안을 다룰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정치민주화 스케줄에 관해 대만 주민들은 대체로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과거 40여 년의 국민당 독재체제가 정치의 민주개혁을 뒷전으로 밀어낸 잘못도 있지만 안정을 바탕으로 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데 대해 매우 높이평가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과거 국민당독재가 「국가와 국민이 잘되기 위한 선의의 독재」였음을 부인치 않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92·93년의 총선에서도 국민당 득표율이 60% 이상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민진당 등 야당은 지난 22일 있은 국대 임시회의의 헌법개정은 국민당 독주에 의한 것이라며 반발하는 등 가두시위를 통한 대정부 투쟁을 강화하고 있으며 국민당 내부에서도 원로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대만의 정국은 상당기간 혼란상태를 보일 것 같다.
  • 비상조치법 철폐 이후 대만 민주화 어찌될까

    ◎야당서 종신의원 퇴진등 요구… 잇단 시위/보수파선 급진개혁 반대,대립 날로 가속 43년 동안의 국민당 집권을 뒷받침해 왔던 「동원감란임시법」을 폐지키로 하는 등의 민주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최근 대만이 정치민주화의 진통을 심하게 겪고 있다. 국민당에 의한 40여 년 동안의 1당통치에 반대,제1야당인 민진당과 대학생·시민 등 2만여 명이 지난 17일보다 급진적인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가두시위를 벌인 것을 비롯,진통은 계속되고 있다. 이 시위는 국민당이 중국대륙에서 대만으로 쫓겨온 지난 49년 공포했던 계엄령을 해제한 87년 이후 가장 큰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정정불안에 대처해서 이등휘 총통은 국민당 통치에 유리하게 돼 있는 헌법을 개정,다당제의 기틀을 확립하고 종신직 대륙원로들의 단계적인 퇴진을 약속하고 있다. 또 오는 30일에는 이번 국민대회에서 의결한 「동원감란임시법」의 폐기를 공식 발표,대륙과의 평화적인 통일협상을 본격적으로 벌여 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지난 8일 국민당이 국민대회 임시회의를 소집,개헌작업에 착수하자 야당인 민진당은 민의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국민대회의 개헌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가두로 뛰쳐나가 장외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대부분 대만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민진당의 주장은 국민대회에서의 개헌을 포기하고 국민직선에 의한 헌정개선위원회를 구성할 것,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의 원로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국민대회와 입법원을 폐지하고 단일의회를 새로 출범시킬 것 등이다. 이밖에도 총통제직선,대만의 분리독립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국민대회는 총통선출과 개헌기능을 가진 대만특유의 의회형태로 7백52명의 대표 가운데 80%를 차지하는 6백여 명이 지난 49년 장개석 총통과 함께 대륙에서 건너온 종신직 원로들이다. 또 나머지 직선에 의한 대표들 중 민진당은 겨우 11명뿐이다. 입법원의 경우도 2백82명의 의원 중 1백63명이 종신직 대륙원로들이며 나머지 직선의원들도 국민당 소속이고 민진당은 21명밖에 안된다. 따라서 대만의 정치권력은 구조적으로 국민당에 의해 조종될 수밖에 없게끔 돼 있는 것이다.물론 민진당은 국민대회에서의 폭력사태와 4·17시위로 국내외의 시선을 끌고 민주화 열의를 보여주는 데 일단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지만 대만 주민들의 대부분은 7백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유지케 할 정도로 경제성장을 이뤄놓은 국민당의 그 동안 업적을 단시일내에 외면하고 야당의 목소리만을 경청할 것으론 보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그러나 민진당측은 4·17시위의 결과에 비교적 만족스럽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면서 연내 국민대회 해산과 대륙출신 종신직 원로 퇴진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국민당측에 경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당은 불법적인 폭력과 시위에 강경대응하고 민주화는 대만 현실에 맞춰 점진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대만의 정정 혼란상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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