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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이 중동의 아라비아반도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것은 중동유일의 친소 사회주의국가인 남예멘에 탈소 민주화개혁의 모래바람을 불러일으켰으며 마침내는 동ㆍ서독의 경우에서 보는 것과 같은 남ㆍ북예멘의 통일을 만들어내는 신통력을 과시하고 있다. ◆아라비아반도 동남단 홍해와 아라비아해에 면한 오늘의 남ㆍ북예멘 땅은 먼옛날 「아라비아 훼릭스」(행복의 아라비아)로 불리던 땅이며 기원전 10세기경에는 영화로도 소개된 「시바 여왕의 나라」로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부족국가들의 상태에서 오스만 터키제국의 3백년 식민지 통치를 받았으며 1918년 북부예멘만이 절반의 독립을 했고 나머지가 또 하나의 해양식민제국주의로 등장한 영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67년에야 별도로 독립하면서 중동 유일의 사회주의 국가로 출발한 것이 남예멘이다. ◆사막과 불모의 땅이 많은 지역이면서 열강의 식민지 수난을 거듭한 것은 아시아와 유럽ㆍ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남예멘이 아랍의 이슬람세계에어울리지 않게 사회주의 국가로 출발한 것도 수에즈운하의 관문이라는 점등 지정학적 매력에 눈독을 들인 소 공산제국주의의 마수가 작용한 결과였다. ◆소련의 사회주의 실패와 민주화개혁은 결국 남예멘의 사회주의 고수를 무의미하게 하는 것. 독립이후 사회주의 경제 20년의 노력과 종주국 소련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개인 국민소득 4백30달러라는 아랍세계 최빈국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실정. 종주국도 버린 「사회주의 고수」란 결국 「빈곤의 고수」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시바여왕시절의 영화를 되살릴 길은 「통일 예멘공화국」을 건설하는 길 뿐. 우여곡절끝에 통일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동구개혁풍이 휘몰아치던 작년 11월30일의 남ㆍ북예멘 정상회담때. 이때의 양국 정상선언이 인상적이다. 『통일의 달성을 위해서라면 현직에서 기꺼이 물러나겠다』­기득권 포기 선언이었다. 북한은 소련도 버린 김일성일가만 위한 공산주의를 언제까지 고수하며 민주화통일을 외면하려는가.
  • 「사과」할 생각이 없는 일본/송정숙 논설위원

    ◎「일왕사죄 파문」 현지에서 일본 국비장학금을 받으며 유학중인 한국인 연구생 오양은 그의 일본 여성 동료에게서 「천황의 사과」문제에 대해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그의 부모,특히 아버지가 『…너의 한국친구에게 우리 이름으로라도 사과를 해라,잘못한 게 분명한데 천황의 사과쯤 그 잘못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핑계 저핑계로 사과하기를 피하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알고 있는 한국인 모두에게 대단히 미안한 일이라고 꼬박꼬박 전하고 대신 사과하여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오양은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일왕의 사과문제로 여론이 분분한 시기의 일본에서 이런 위로라도 받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각성한 시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도 생각했다. 노대통령의 방일을 열흘쯤 앞두고 일본에 조성된 「천황말씀 파동」을 현지에서 1주일쯤 목격할 기회가 있었다. 그 일정의 마지막 순간에 만난 오양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지난 며칠동안 만났던 많은 일본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그중에는 외교실무를 맡은 관사도 있었고 퇴역관리도 있었으며 「지한」을 자처하는 학자ㆍ언론인들도 두루 있었다. 개인개인이 피력하는 그들의 말과 행동은 오양이 말하는 「각성한 시민」의 수준에 거의 다 이르고 있었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당했던 다른 나라와는 다르다는 것을,그 이전에 완벽한 독립국인 상태로 식민지가 된 유일한 나라이므로 응분의 대접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저 개인으로서는 누누이 말해 왔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여러분 아시다시피 학교에서도 일본에 있어서 세계란 무엇인가만 가르치지 세계의 시각에서 일본을 보는 역사는 가르치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게 문제라고 본인은 개인적으로 누누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낮춰가며 공손하고도 자상한 어투로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는 전대사. 말끝마다 「노대통령각하」를 꼬박꼬박 받치며 『개인적으로 충분히 한국정부와 한국국민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강조하는 전총리,원로에서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겉보기에 우리를 거스르는 논리는 조금도 펴지 않는다.그런무렵 자민당의 지도급 인사가 신경질적으로 『…너무한다.우릴보고 무릎을 끊으란 말이냐』라는 발언이 튀어 나왔다. 이 발언을 계기로,접촉하는 인사들의 말의 흐름은 조금씩 어느방향으로 모아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한 신문사의 논설위원이 『…천황을 일왕이라고만 발언하는 한국신문에 우리는 충격을 받았지만,어쨌든 한국의 주장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황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서 전쟁이라는 불행한 사태를 겪었던 일본 국민은,천황이 다시금 어떤 정치적 발언을 하게 하는 것을 대단히 경계한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라는 방향의 말을 하자,그로부터 사람들의 말은 어순도 비슷하게 그런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관사는 『개인적인 의견을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신문논조도 그렇듯이 「천황」의 입장은 개인의 입장이 아니다. 사과에는 헌법상의 문제가 있다. 연두 기자회견조차 내각에서 심사 결정한다…. 「천황」의 정치적 행동을 국민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는 논리를 펼쳤다.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고,전혀 딴 자리에서 토론을 했지만 지내놓고 보면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한 줄기의 논란만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을 오래지 않아서 알 수 있었다. 이런 일사불란함은 큰 일에서나 작은 일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잡아둔 일정이 너무 그들 본위인 것 같아서 몇번인가 바꿔보려는 시도를 했다가 한번도 성공하지 못한 경험도 따지고 보면 같은 맥락의 일이다. 이쪽에서 「바꾸고싶다」고 말했을때 그들은 한번도 「안된다」고는 하지 않았다. 담당자들이 땀을 뻘뻘흘리며 이리닫고 저리닫고,전화통에 매달리고 한동안 소동을 피웠다. 그러는 모습만 보고 있으면 「요청」이 받아들여져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매양 한가지,처음과 변한 것은 없다. 마침내 이쪽이 감탄한 것은 「변화시킬 수 없는 사실」인줄 뻔히 알면서 담당자가 진땀이 나도록 노력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비록 미리 그러기로 짜놓은 「연극」인 한이 있어도 보는 마음에는 흡족감과 미안한 마음이 들게 했다. 그들은 그렇게 그들의 사회를 이뤄온 것이라고짐작하게 한다. 정할때 깊이 생각하고 정해진 것은 쉽사리 무너뜨리지 않는 것은 이상적인 정책수행이다. 그것은 어느 국민이든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될때 안되더라도 땀을 뻘뻘흘리며 성의를 다하는 태도를 부가가치로 얹은 사회는 일본만한 나라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늘 당하는 것은 바로 이런 무기에 의해서가 아닌가 하는 심증이 든다. 그들은 언필칭 『한일관계도 그동안 많이 발전해 왔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사이의 「발전」은 두나라 사이의 외교적 교섭에 의해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힘이 어느 수준인가에 비해서 그들은 한일관계의 수준을 조절하고 있을 뿐이다. 「천황의 말씀」이라는 것을 가지고 온갖 논리를 총동원하는 그들의 일사불란함을 보며 마침내 우리 귀에 남는 잔성은 이런 것이었다. 『억울하면 훌륭하게 되렴!』 그러므로 방일하는 대통령을 통해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은 만만치 않은 나라다!』라는 것 뿐이다.
  • “외교는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종합”/한영구 외교안보연 교수

    ◎한일관계의 마찰음을 듣고… 5월24일에서 26일까지로 예정되어 있는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은 일왕의 사과발언문제를 둘러싼 찬반양론의 여론속에서 그 필요성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지 25년이 경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일 양국은 65년 국교정상화 당시로 되돌아간 인상을 짙게 하고 있다. 65년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4개의 협정(청구권 및 경제협력협정 ㆍ문화재반환협정ㆍ어업협정ㆍ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한일병합에 이르는 모든 조약 및 협정은 무효임을 선언하고 양국간 국교를 정상화 했으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이라는 의미에서 청구권 자금이 설정되고 문화재 반환에 합의했다. 그리고 당시 한일간의 현안이었던 어업문제,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문제 등에 있어 정부간 협의에 의한 해결방식이 도입되었으며 양국간 경제협력관계가 공식화되었다. 이러한 기본적 틀의 설정하에 한일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이 일본의 안전에도 긴요하다는 기본인식하에서 우호,협력 관계를 추구하여 왔으며 무역역조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긴밀한 경제 협력관계를 모색하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간에 있어서 상호이해와 신뢰관계가 의문시되고 있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관계로 인한 국민감정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25년간의 한일협력관계가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그 우호관계의 긴밀성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일관계에 있어서는 과거의 역사적 관계에 근거를 두는 대일 불신의 태도가 뿌리깊게 작용하는 관계로 실제의 협력관계 조차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크다. 이러한 대일 불신의 태도는 일본측의 사과발언이 어떤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는가 하는 문제보다 그동안 일본정부가 과거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의식을 명백히 구체화하지 못한 측면이 강했던 점에 보다 근본적인 유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측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4협정의 체결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은 일단 끝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적인 측면에서 65년의 조약과 협정의 체결로 한일간 과거의 역사적 관계가 해결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나,한일간의 관계는 법적인 것 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특수한 상황하에 있다. 그런 점에서 법적인 측면에서의 기본관계의 설정은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제반후속조치가 동반될 것이 요청된다. 일본측은 이러한 후속조치를 취함에 있어서 (결국은 그 후속조치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색한 태도를 보여 왔으며 게다가 일본정부 각료 또는 고위관료에 의한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 정당화발언이 심심찮게 나옴으로써 일본의 의도가 의문시되어 왔으며 이러한 점들이 한국민의 대일 불신태도를 증폭시켜 왔다고 볼 수 있다. 국가간의 관계는 과거의 역사적 문제만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관계를 명백히 규정하지 않고 현실을 뛰어넘을 수도 없다. 현재 과거의 역사적 관계로 파생된 문제로서 아직도 미해결상태로 남아 있는 문제도 많다. 재일한국인의 거주권문제ㆍ사할린교포 귀환문제ㆍ원폭피해자에 대한 치료 및 보상문제 등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일왕의 사과발언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왕은 일본의 상징적 존재로서 일왕의 발언은 상징적 의미를 띠는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겠으나 이와함께 실질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점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 동시에 실질적인 사죄의 방법으로서 앞의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현실적 방안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또한 한일간의 미래지향적 협조관계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협력문제ㆍ과학기술이전문제 등 현안의 해결도 시급하며 21세기 아시아ㆍ태평양시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공동의 번영과 계속적인 발전을 위한 동반자관계의 구축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외교는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금번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이 명분 또는 실리 그 어느 것에만 중점을 두는 것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명분없는 실리는 굴욕적이 될 가능성이 크며 실리없는 명분은 공허한 것이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1984년 전두환 전대통령의 방일시 일왕은 양국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 발언은 분명히 미흡한 것이었으나 이번에 그 이상의 발언을 하느냐 안하느냐는 일본측이 결정할 문제이며 국제국가를 지향하는 일본정부의 양식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오히려 과거의 침략행위를 시인하고 역사의 책임을 통감하는 일본국회의 결의를 촉구하고 일본정부로 하여금 과거의 역사적 관계로 인하여 발생한 미해결의 문제를 개선하도록 요구하는 현실적 방안에 대한 고려를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함께 21세기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도래에 대비하는 한일간의 진정한 선린우호관계의 정립에 대해서도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점에서 노대통령의 방일이 명분이나 실리 어느 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포괄적 차원에서 한일관계를 주시하는 냉정한 시각이 형성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일왕 사죄논란 일본서 풀어야”/마이니치 사설

    【도쿄 연합】 과거역사에 대한 일본 국왕의 사과에 헌법상의 제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정부는 국회결의의 토대위에 한국국민의 감정을 충분히 고려한 이성적 합의점이 찾아지도록 외교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마이니치(매일)신문이 16일 촉구했다. 마이니치는 이 날자 사설에서 한일합방이래 오랜기간에 걸친 식민지 지배는 일왕의 이름으로 이루어졌으며 철저한 복종과 수많은 희생이 강요됐다고 상기시키고 따라서 일본의 과거에 대한 한국국민의 감정이 헌법상의 제약을 내세운 논리적 설명만으로 풀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그같이 말했다. 사설은 문제의 근원은 일본이 과거역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면에서 분명한 태도를 표명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하고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사죄의 뜻은 표시해 왔지만 말로만 사죄하는 데 그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반성론…명분론…두얼굴의 일본 “대변”/「대한사죄」…일본인의 목소리

    ◎분명한 역사적 죄과 책임인정을 찬/정치적 발언은 국사행위 아니다 반 한일관계를 냉각시키고 있는 일왕의 사죄문제는 지금까지 나타났던 그 어느 현안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것은 「과거청산」의 시발점이며 진정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한 「대전제」이다. 한일협정의 체결,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보장과 처우개선,교과서 왜곡사건,사할린간류 한국인 귀환문제와 원폭피해자문제등 전후처리문제,무역불균형 시정과 기술이전문제등 한일간에는 많은 현안이 부침했으며 현재도 걸려있으나 일왕의 사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은 한일간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전제라고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견해는 도쿄(동경)주재 외교관계자들과 재일 한국인들은 물론 일부 정치인과 관료층을 제외한 많은 일본인들도 갖고 있다. 16일자 아사히(조일)신문 3면에 게재된 각계인사들의 코멘트는 이같은 사실을 대변한다. JR윤락죠(유락정)역 근처에서 만난 여행사 직원 난부 사치요(남부상대ㆍ31)씨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적으로 볼때 확실히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일차 분명하게 사죄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신뢰관계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유감」이라는 말은 관료적이며 모호하다. 분명한 사죄를 하더라도 지금의 일본으로서 잃을 것은 없지 않은가』라며 사죄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자민당수뇌의 『무릎 꿇고 빌라는 말인가』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 멸시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한국측은 「무릎을 꿇라」고 말한 일이 없지 않은가』라고 비판적이었다. 기계 메이커 차장인 가와바타 요시히코(천단의언ㆍ49)씨는 『머리를 얻어 맞은 쪽은,때린 쪽에서는 옛날에 잊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법이다. 그러나 한일 새시대라는 말도 생겨났으며 전후 새로운 우호의 기초도 다져진 마당에 옛일을 다시 문제삼을 것은 없지 않은가. 자민당 일부에서 말하듯 「경제협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는 청산됐다」는 것은 이상하지만 한국측이 언제까지나 「사죄」에 계속 구애되고 있는 것은 대인답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헌법학계의 대세는 보다 더 부정적이다. 학습원대 아시베노부요시(노부신희ㆍ66)교수는 『헌법이념은 일왕을 정치의 세계로부터 격리시키려 하는 것이다. 정치적 의미를 갖는 발언은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치적 발언인가의 여부는 발언할 때의 상황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이번처럼 발언내용이 외교적인 문제가 되어 있을 경우에는 발언이 정치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한일관계의 역사적 연혁은 이해할 수 있으나 예외를 인정하면 그것이 선례가 된다. 역시 일본전체의 대표로서 총리가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자들 사이에도 견해의 차이는 많다. 일본ㆍ아시아관계론을 전공하는 우쓰미 아이코(내해애자ㆍ48)조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재한피폭자 및 일본군에 징용된 사람에 대한 보상등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초래했던 문제가 남아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져야만 할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같은 문제의 실태를 정확히 조사,보상해야 할 것은 보상하고 사죄해야만 할 것은 사죄한다는제도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방위대교장이며 평화ㆍ안전보장연구소회장인 이노키 마사미치(저목정도ㆍ75)씨의 견해는 더욱 분명하다. 그는 『(소화일왕의 발언은) 어느쪽이 가해자이며 피해자인지 알 수 없다. 일본은 말로 할 수 없을만큼 나쁜 짓을 한국에 저질렀다. 일본은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화일왕의 발언에 「일본의 책임에 의해」라는 문언을 삽입했더라면 좋았겠다』고 말했다. 이노키회장은 특히 일왕이 말할 내용에 관해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치성을 띠게 된다』고 지적하고 『일본인은 역사에 대한 반성이 불충분하다. 현대사의 무지로부터 오는 것이다. 자민당수뇌의 발언은 역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나타내고 있으며 대정당의 간부로서 한심스럽다』고 통박했다. 나아가 이노키회장은 「상징일왕」은 국가원수라는 해석에 입각,『일왕이 외국원수에 사죄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결의로는 서푼의 가치도 없다』며 도이다카코(토정다하자) 사회당위원장이 제창한 「국회결의」안을 일축했다. 반면 국제대 다카노 유이치(고야웅일ㆍ73),사상사 전공인 다케다시미코(무전청자ㆍ72) 교수 등은 『일왕이 국민을 대표해 사죄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 일왕은 헌법상의 상징이라는 입장을 넘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안된다』고 반론을 편다. 문제는 일왕의 헌법상의 제약과 그의 발언이 과연 정치적이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일본헌법상 일왕은 헌법에 규정된 국사행위만을 행한다. 국사행위란 정치적 기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헌법개정ㆍ법률ㆍ명령의 공포,국회의원 총선거의 시행공포,외국사절의 접견등 형식적ㆍ의례적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일왕의 국사행위 중에는 총리와 최고재판소장관의 임명과 중의원해산과 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도 포함되고 있다. 따라서 국사행위의 성격해석을 둘러싸고 학설이 대립되어 있는 실정이다. 나아가 일본국왕은 일본국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일왕이 행하는 국사행위에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이 필요하며 일왕의 국사행위에 관하여내각은 책임을 진다. 이렇게 볼때 일본의 경우 행정권만을 관장하는 총리를 국가원수로 보기는 힘들며 「국민의 대표」라는 입장은 역시 일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또 일왕의 발언이 「정치적」이냐의 해석도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없을만큼 미묘하다. 이원경 주일대사가 15일 하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전대장상과의 면담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의 발언의 정치성여부를 떠나 자신의 심경만을 피력하면 족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소화일왕은 헌법에 근거하여 전쟁을 수행하는가. 시대와 인물은 바뀌었더라도 일왕의 이름아래 수행된 전쟁은 일왕의 이름으로 사죄되어야 한다. 상징일왕이라면 그 상징에 맞는 내용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결자해지의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다. 헌법의 제약은 구실이며 역사인식은 초법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도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일왕 대한사과 발언안 마련/일지 보도

    【도쿄=강수웅특파원】 일본정부는 현재 한일간에 현안이 되고 있는 36년간에 걸친 일본의 식민지통치에 대한 일왕의 언급내용을 『금세기의 한때 불행한 과거가 존재했다는 것에 대해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라는 방향으로 굳혔다고 16일 아사히(조일)신문이 보도했다. 일본측은 이 내용이 지난 84년 전두환 전대통령의 방일때 쇼와(소화)일왕에 의한 『대단히 유감』이라는 발언과 비교할 때 일왕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분을 보다 솔직히 표현한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상징일왕으로서의 발언의 한계」를 중시하는 정부의 입장을 고려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한ㆍ일 정상회담때 과거 사죄”/가이후총리 밝혀

    【도쿄=강수웅특파원】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는 15일 상오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한일 양국간의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는 「과거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문제」에 대해 『한국은 인국이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로서,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일 양국은 안정된 관계를 구축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전제하고 『과거 역사의 올바른 인식에 입각하여 일본이 저지른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솔직히 반성하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수뇌회담때 사죄하겠다』고 말했다.
  • 「당위」와 「호도」와… 현해탄에 “사죄파고”/서울의 시각

    ◎“주체분명히… 일왕이 직접 솔직하게/과거청산 없인 진정한 동반자관계 기대난” 오는 24일로 예정된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앞두고 한일 양국이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한 사과문제로 인해 또 한차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노대통령의 방일시 아키히토(명인)일왕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수준을 놓고 양국정부가 현격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방일까지 불과 열흘도 남지않은 시점에서 이 문제가 원만하게 처리되지 못할 경우 양국간에는 자칫 불편한 관계마저도 초래될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초 노대통령이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3개국 순방을 연기하면서도 일본방문만은 예정대로 실현시키겠다고 한 것은 다름 아닌 「다가오는 21세기를 맞아 아태시대를 함께 이끌어갈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협력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이제는 첨단과학기술,산업기술협력,통상 등 보다 경제적 실익이 있는 분야로 양국협력의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는 정부방침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방된지 45년이지났건만 과거에 대한 협상은 아직 완전하게 처리되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난달 30일 한일외무장관회담을 통해 재일한국인차별의 상징이면서 역시 과거청산문제의 일환인 지문날인제,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의무 등 이른바 4대악 제도의 개선에 양국간합의를 이끌어낼 때만해도 일왕의 명백한 사과표명문제는 그다지 표면화되지 않은 다분히 「잠복성 이슈」였다. 이 문제는 노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가진 주한일본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일본이 한일 양국간의 과거사에 대해 사과의 주체임을 명확히 해야하며 사과발언도 아키히토일왕에 의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양국간 최대현안으로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 일본에서는 집권 자민당의 4역(간사장ㆍ정조회장ㆍ총무회장 참의원의원회장)이 회동,『한국에 대한 유감표명은 84년 고 히로히토(유인)일왕이 전두환 전대통령에게 했던 수준 이상을 벗어날 수 없고 특히 이번에는 일왕 대신 가이후(해부)총리가 해야만 한다』고 결론짓고 이같은 의견을 일행정부에 전달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양국간의 국민감정까지 겹쳐 사태는 점차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게 현재의 상황이다. 일왕의 사과수준에 대한 양국간의 입장차이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우리측은 이번 방일에서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사과표명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일본의 상징인 아키히토 일왕이 직접 한국민을 상대로 이를 밝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즉 84년 당시 일왕이 밝힌 『금세기의 한시기에 있어서 양국민의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 되어서느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표현은 사과가 아닌 유감인데다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는 측의 주체가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명백한 사과와 함께 사과의 주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무부의 고위당국자는 이와관련,일본이 지난 72년 대중국국교 정상화때 발표한 양국 공동성명에서 『일본은 전쟁을 통해 과거 중국인민들에게 끼친 큰 손실에 대해 깊이 책임을 느끼고 깊이 자책한다』고 밝혔다시피 이번에도 일측으로부터 이정도 수준의 사과는 받아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깊은 자책은 분명한 사과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84년 당시의 「유감표명」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또 사과표명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이번 기회에 일왕의 사과는 물론 가이후총리의 직접적인 사과표명,그리고 일본의회의 불행한 과거사에 대한 사과결의까지 얻어낸다는 강도높은 전략을 짜놓고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원경 주일대사와 방일에 따른 최종실무협의차 도일한 김정기외무부아주국장에게 이같은 지침을 시달,일정부측에 전달하도록 해 『과거청산및 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일왕의 구체적인 사과가 있어야 할 것』임을 강력 촉구할 방침이다. 만약 이번에도 일측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사과표명을 얻어내지 못할 경우 내년초로 예상되는 일왕의 방한을 심각하게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노대통령은 이번 방일로 인해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고있으며 방일성과에 대한 국내 평가와 관련,자칫 잘못되면 「통치력의 위기국면」까지 초래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정부 일각에서는 지난번 노대통령의 3개국 순방연기 발표때 일본도 연기했어야만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측의 이러한 강경한 방침에 비해 일측은 『천황은 「국민의 상징」이며 헌법상으로도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갖지 않는」 존재일 뿐이므로 그의 발언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나아가 가이후총리가 「국민의대표」인 만큼 그가 직접 나서 유감표명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이에 대해 『엄청난 경제력 상승에 힘입어 일본도 이제는 타국에 의해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자존심 외교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양국간의 이같은 입장차이에도 불구,방일을 전면 취소하는 최악의 카드를 쓰지 않고 방일직전까지 절충을 계속해 나갈 방침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양국간 협상이 어떻게 결말지어질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도 일측이 과거청산과 관련,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어물쩡 넘기려 한다면 한일 양국간의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고 양국민간의 앙금은 더이상 치유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 문제는 해결의 열쇠가 일측에 있기 때문에 전후처리과정에서 유태인 및 이스라엘정부에 대한 완벽한 보상을 한 서독과 같이 일측이 대승적 차원에서 능동적으로 나설 때만 말 그대로 「양국간의 밝은 미래」로 나아갈 것으로 보여진다. ◎동경의 입장/자민당선 84년 유인발언 수준 고수 압력/죄과 반성않고 경협구실,우회 속셈 오는 24일부터의 노태우대통령 일본공식방문을 불과 1주일 남짓 앞두고 한일 양국간에는 일왕의 「사죄의 말」을 둘러싸고 새로운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핵심은 반성의 표현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군국주의 일본에 강점당해 36년간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한국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다 진지하고 명확한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대동아전쟁을 일으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제국을 전쟁의 참화속에 몰아 넣었던 일본은 과거의 죄과를 반성하기는 커녕 여러가지 이유를 둘러대며 사죄를 거부한다. 강한자 앞에서는 비굴하며 약해 보이는 존재 앞에서는 무차별 짓밟으려 드는 일본인 특유의 교활한 근성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민족적 자존에 직결되는 감정의 문제로 치달을 가능성마저 안고 있다. 한국측의 요구는 물질적 보상에 있지 않다. 『잘못했다』라는 한마디 사과의 말을 정신적 위자로 바라고 있는 것이다. 노태우대통령도 14일 상오 청와대 정원에서 열린 일본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이같은 뜻을 밝혔다. 노대통령은 임진왜란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예로들며 지난 84년 전두환 전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때 쇼와(조화)일왕이 표명한 「유감의 뜻」은 『사죄인가 아닌가가 확실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말하고 아키히토(명인)일왕이 말할 내용은 쇼와일왕보다 더욱 진전된 사죄표현이 되도록 기대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노대통령은 특히 『짧은 기간이었지만 불행한 역사가 있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잘못되었습니다.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사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강한 쪽이 넓은 마음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도 「괜찮습니다. 이제부터는 잘해 나갑시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하고 한국국민이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측의 사죄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같은 한국측의 기대와는 달리 일본측은 짜증과 불쾌감까지 나타내며 인색한 반응을 보인다. 자민당의 한 수뇌는 14일 밤 이문제에 관해 『더 깊은 내용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며 애당초 우리들이 이런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이 수뇌는 식민지 지배와 더불어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에 의한 임진왜란까지 예를 들며 『히데요시까지 끌어내는 것은 (일본측이)땅에 꿇어 앉아 빌어도 부족하다는 말인가』라는 망언에 가까운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보다 앞서 이날 상오 오자와이치로(소택일랑) 간사장을 비롯한 자민당4역은 모임을 갖고 아키히토 일왕이 말할 내용에 관해 『쇼와일왕이 말한 내용보다 더 진전되어서는 안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이를 정부측에 전달했다. 일본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역사」에 관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반성의 빛을 보인다. 그러나 그 반성은 솔직ㆍ명확한 것이 아니라 『반성하고 있기 때문에(경제적인)협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자민당수뇌의 표현대로 오만한 자세의 그것이다. 올바른 역사인식하의 반성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일본의 「천황」과 총리는 침략행위를 저질렀던 국가에 대해,원수나 수뇌가 방일하거나 자신의 상대국을 방문했을때 「과거의 역사」를 반성한다는 말을 해왔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나 「유감의 뜻」 표명에 머물고 있다. 이것은 같은 침략국이었던 서독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몇번이나 반복했던 명확한 「사죄」와는 다르다. 85년 5월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독일패전 40주년을 기념하는 연방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전쟁과 폭력지배 아래서 억울하게 숨진 많은 사람들을 애도합니다. 독일의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앗긴 6백만 유태인,전쟁에 시달렸던 모든 민족,그중에서도 소련ㆍ폴란드의 무수한 사자,레지스탕스의 희생자를 생각하며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일본의 경우는 달랐다. 지난 68년 3월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방일했을때 쇼와일왕은 『귀국과 일본은 함께 아시아의 일원으로서,또 예부터 깊은 관계를 가진 사이로서 우호적인 접촉을 계속해 왔습니다. 지난번의 대단히 불행한 전쟁후에도 이 전통적인 관계는 급속히 회복되었습니다』라며 얼버무렸다. 74년 포드미 대통령의 방일때에도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상접하는 양국은 2세기에 걸치는 연대를 통해 여러가지 기복은 있었으나…』라고 전제하고 『한때 참으로 불행한 시대를 가졌던 것은 유감이었습니다』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또 78년 10월 등소평 중국부총리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에도 『양국의 오랜 역사 사이에는 한때 불행한 일도 있었습니다만 과거의 것으로 끝나고…』라고 말했다. 일본의 가장 큰 피해국이었던 한국에 대해서도 애매모호한 말로 사죄아닌 사죄를 대신했다. 84년 전두환 전대통령을 맞은 쇼와일왕은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 양국사이에 불행한 과거가 존재했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것이 전부였다. 일본측이 자신의 죄과에 대한 사죄에 인색하고 있는 것은 이제 세계 초일류의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자만때문이라고 외교가에서는 보고 있다. 헌법상 규정의 「상징 천황」 여부를 떠나 일본국민의 정신적 구심체 역할을 맡고 있는 「천황」은 「천황의 이름으로」 저지른 전쟁책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반성의 빛을 보여야만 한다는 것이 도쿄 외교가의 시각이다.
  • 영수회담,방일이후에/비업무용 땅,주택조합에 장부가 매각

    ◎노대통령ㆍ민자최고위원 회동 민자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대표최고위원,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 등 당수뇌부는 15일 저녁 청와대에서 회동을 갖고 노대통령의 방일문제,정부의 사정활동,대기업부동산처리문제,여야총재회담문제 등 당면국정현안을 폭넓게 논의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일간의 새 불씨로 되고 있는 일왕의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문제등 현안과 관련,대일현안문제는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협상을 벌일 것이라고 말해 일왕의 사과가 지난 84년의 수준보다 진전될 수 있도록 모든 외교역량을 집중시킬 것임을 비췄다. 노대통령은 10대 대기업의 부동산처리문제에 대해 『사원용 주택건설등 근로자복지문제를 위한 사용토지는 사원주택조합에 대해 장부가격으로 우선 매각토록 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주택건설,공공목적이용에 필요한 토지는 토지개발공사가 먼저 매입하고 6개월내 처분되지 않는 땅도 토개공이 매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또 김대표가 『시국이 어려운 때 야당총재와 만나 정국현안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건의하자 오는 24일부터 2박3일간에 걸친 방일 일정이 끝난 뒤 적절한 시기에 여야총재회담을 가질 것임을 밝혔다.
  • “일왕의 진전된 사죄 기대”/노대통령,일 기자회견

    ◎84년의 「유감」은 불확실 【도쿄=강수웅특파원】 오는 24일부터 일본을 공식 방문하는 노태우대통령은 14일 상오 청와대에서 서울주재 일본특파원단과 간담회 형식의 회견을 갖고 『한일 양국이 공동보조를 취해 21세기에 대처하는 것이 아시아 나아가 세계에 공헌하는 길』이라고 지적,이번 방일을 계기로 한일의 「동반자 관계」(파트너십)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일본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노대통령은 일본의 한국식민지지배 등 양국의 역사적인 문제,특히 지난 84년 전두환 전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쇼와(소화) 일왕이 표명한 「유감의 뜻」은 『「사죄」인가 아닌가가 확실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말하고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말하는 내용이 쇼와일왕보다 더욱 진전된 사죄표현이 되도록 기대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날 상오10시30분부터 1시간 남짓 청와대 정원에서 행해진 이 회견에는 25명의 일본인특파원이 참석했다. 노대통령은 『양국은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자신의 방일이 그 계기가될 것을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일왕의 방한초청은 『양국이 마음으로 이어지는 관계가 된다면 천황의 방한도 순조롭게 해결될 것』이라고 밝혀 구체적인 초청문제는 자신의 방일이후에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을 나타냈다. 이날 노대통령은 동북아시아 안전보장체제에서의 일본의 역할에 대해 『일본이 아시아에 있어서 미국의 군사력에 대신해 부담한다는 것은 아시아에 있어서 미국의 군사력에 대신해 부담한다는 것은 아시아 각국이 긍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일본은 경제력을 중심으로 간접적으로 집단안보에 공헌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소련ㆍ중국과의 국교수립은 『무리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국교가 트이는 것은 역사의 흐름』이라고 자신을 나타내고 북한과 교류확대에 관해서는 『김일성주석에게 수뇌회담에 응할 것을 강력히 제안할 예정이지만 나의 임기중에 회담이 실현될 것인가 아닌가는 지금은 확답할 수 없다』며 남북대화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노대통령은 이날 저녁 NHK­TV가 1시간에 걸쳐 일본전역에 방영한 특별인터뷰를 통해 자신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회담가능성에 대해 『가까운 장래라고는 장담을 못하나 시대와 역사의 흐름을 볼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 “과거사죄 국회결의를”/일 사회당위장,총리에 요청계획

    【도쿄=강수웅특파원】 도이 다카코(토정□□자)일본 사회당위원장은 13일 『과거 식민지 지배의 청산과 침략전쟁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해야한다』고 전제,15일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와의 회담에서 「과거청산」의 국회결의 실현을 위해 공동보조를 취할 것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신문편집인협회(IPI) 총회에서의 강연 등을 위해 서독ㆍ프랑스를 방문중인 도이위원장은 14일 귀국을 앞두고 이날 도쿄,아사히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 마다가스카르에 불발쿠데타/한때 방송국점거/3시간만에 진압된듯

    【안타나나리브(마다가스카르) 외신 종합】 아프리카 동남단 인도양상에 위치한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 일단의 반란군들이 13일 라디오 방송국을 점거하고 정부 전복을 선포했으나 3시간만에 진압됐다. 이날 낮12시30분쯤(한국시각)마다가스카르 라디오방송을 통해 발표된 성명은 『마다가스카르 민주공화국이 마다가스카르 공화국으로 대체됐다』고 밝히고 『모든 국가기관도 해체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지 소식통들은 현재 수도 일원에서 아무런 군사활동도 관측되고 있지 않으며 1시간 가량 중단됐던 방송도 정상화 됐다고 전했다. 한편 현지 미국 소식통은 『현재 방송국 주위에는 5천여명의 군중들이 운집해 있으나 이들은 단순한 구경꾼들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나라인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 식민지로 있다가 1960년 독립했으며 지난 3월 75년부터 실시돼 온 정당활동금지 조치를 철폐,다당제를 공식허용했다.
  • 일왕의 사죄(사설)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을 계기로한 일제의 한반도침탈과 식민지통치 등 과거역사에 관한 일본의 대한사죄를 일본국왕은 형식적인 선에서 적당히 하고 대신 총리가 구체적이고도 명확하게 행하기로 일본정부의 방침이 정해졌다고 한다. 일본국왕은 상징적인 존재이며 정치적발언을 할 경우 헌법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표면상의 이유다.그리고 실제로는 현 일왕은 부왕의 경우와는 달리 한반도 침탈의 역사를 경험하지 않았고 또 한국에 구체적인 사죄를 할 경우 중국 등 아시아각국이 동일한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운 일본 우익세력들의 반발여론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일본의 움직임을 보면서 우리는 일본인들의 생각과 자세의 옹졸성과 한일관계에 대한 그릇된 기본인식에 새삼 놀라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일왕의 사죄불가의 이유라는 것이 우리가 보기엔 사죄필요의 이유로 인식된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죄란 상징적 의미가 큰 것이며 현재의 일왕은 오늘의 일본 뿐아니라 과거의 일본도 대표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 뿐 아니라 중국 그리고 피해를 입힌 아시아각국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분명한 사죄를 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죄란 원래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쳐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사죄다. 때문에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의미가 있고 행동으로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이나 아시아 각국이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먼저 사죄를 했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순전히 일본의 문제이지 한국이나 기타 아시아 각국이 요구할 문제가 아닌 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본국왕의 명확한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일본이 스스로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구해서 받는 사죄 그것도 하기 싫어서 궁색한 이유와 핑계 끝에 마지못해 하는 사죄는 그 본래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지금 일본이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 노대통령의 방일시 일본이 하게될 사죄란 것이 그런 사죄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지않을 수 없다. 그런 사죄라면 할 필요는 물론,받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죄는 성의와 자세의 문제이며 새로운 시작의 약속이다. 일본국왕의 솔직하고 구체적인 사죄는 일본을 위해서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로 하여금 일본을 경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역사적인 질서 재편의 전환기에 있다. 구미에선 이미 일본을 소련보다 더 경계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은 아시아로 눈을 돌려야 할 시대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일본도 그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총리의 동남아,서남아 순방이 빈번해지고 있고 노대통령의 방일도 성공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본을 보는 아시아의 눈길은 차갑다. 그것은 일본의 지난날의 만행과 그 이후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여준 행동이 자초한 결과다. 국왕이냐 총리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행동의 사죄를 우리는 바란다. 그런 사죄가 어떤 것인지는 일본이 더 잘 알 것이다.
  • 일,영친왕유품 대한 기증 검토/마이니치신문 보도

    ◎방자여사 혼례복 등 150여점/노대통령 방일 맞춰 방침 밝힐듯 일본 정부는 한국이 반환을 강력히 요구해온 영친왕 이은공과 방자여사의 혼례의복 및 장신구 등 왕실유품 1백50여점을 한국정부에 기증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마이니치(매일)신문이 11일 일본 정부소식통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소식통은 일본 정부 내에서 이들 유품을 문화재가 아닌 「왕실유물」로 취급,기증 형식으로 한국에 돌려주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하고 유족 등 관계자들의 양해를 받은 후 빠르면 노태우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맞춰 가이후(해부)총리가 그같은 일본 정부의 방침을 밝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그러나 지난 65년 국교정상화 당시에 체결된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정신에 따라 약탈문화재의 「반환」을 요구해온 한국 정부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반환」이 아닌 「기증」 형식을 취함으로써 다른 문화재 반환에는 응하지 않으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때부터 한국 문화재를 빼가기시작한 이래 1910년 한일합방을 거치면서 약탈을 본격화,수많은 문화재를 일본으로 빼내가 약탈문화재는 국보급만도 약 5천여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한국은 일본내에 있는 문화재중 박물관 등 정부기관이 보유중인 영친왕과 방자여사의 혼례의복 등 왕실유품을 비롯,발굴품 등 1천4백여점에 달하는 오쿠라(소창)컬렉션 등의 반환을 일본정부에 요구해 왔다. 일본정부가 기증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진 왕실유품은 식민지 회유책의 일환으로 1920년 도쿄에서 거행된 조선왕조 최후의 황태자 이은공과 일본왕족의 일원인 방자여사의 결혼식에 사용된 의복으로 이은공이 입었던 옷 18점과 왕비옷 36점,비녀 등 머리장식 18점 등 1백50여점에 달한다. 이들 복식중 일부는 일본산 원료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제작은 조선왕조에서 특별히 파견된 솜씨 좋고 경험 많은 궁녀들에 의해 이뤄졌으며 보존상태가 좋은 것은 물론 혼례 복식일체가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왕실복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일 총리,“국민대표해 침략사죄”/노대통령 방문때

    ◎일왕사과 국내반발 우려 【도쿄=강수웅특파원】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는 오는 24일부터의 노태우대통령 일본 공식방문때 일본국민을 대표해 한국국민들에 대한 사죄의 뜻을 밝히겠다고 9일 말했다. 가이후총리는 이날 개최된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국측이 노대통령의 방일때 아키히토(유인) 일왕의 담화내용에 전전 일본의 식민지정책에 대해 「사죄」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본인은 극히 겸허하게 과거 역사의 경위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나 자신의 책임으로 한일 수뇌회담석상에서 솔직히 말하겠다』며 총리 자신이 명확히 사죄의 뜻을 표명하겠다고 밝혔다. 이와관련 일본외무성 간부는 이날 『한국측에서 기대하고 있으나,천황은 국민통합의 상징이라는 입장을 넘지 않는 선에서 말히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상징천황」이라는 헌법상의 제약이 있는 이상 반드시 한국측의 기대에 충분히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이같은 일본측의 자세는 「상징천황」이 정치적 발언을 한다는 것은 헌법상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으며,쇼와(소화)천황에 이어 새삼스럽게 일본천황에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데 대한 일본국내의 반발이 있을 것을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인 3세 법적지위 1ㆍ2세에도 부여/일 법상 “곧 검토”

    【도쿄 연합】 하세가와 신(장곡천신)일본 법상은 8일 재일한국인 1ㆍ2세의 법적지위도 3세와 동등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세가와 법상은 이날 각의가 끝난 뒤 일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3세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할 때 『역사적 경위나 정주성이 같은 사람들의 존재도 염두에 두겠다』고 말함으로써 지난달 한일 외무장관회담시 협의대상에서 제외되었던 협정1ㆍ2세는 물론 북한적과 구식민지인 대만 출신들에 대해서도 3세와 동등하게 대우하는 방향으로 법을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체적인 방안에 관해 일체 언급하지 않고 다만 빠른 시기에 이를 검토하겠다고만 말해 그 시기가 협정 3세문제를 다루는 때가 될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분명치 않다.
  • 재일한인 지위개선에 새전기/한ㆍ일 외무회담의 성과

    ◎노대통령 방일의 장애물 제거/「과거사과」도 “명확한 표명”접근 30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외무장관회담은 5월하순경으로 예정된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양국간 최대현안으로 떠올랐던 재일한국인후손의 법적지위개선문제와 관련,양국정부간 실무교섭차원의 절충과정을 토대로 하나의 접점을 찾았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은 21세기를 맞이하는 양국관계가 미래지향적이면서 보다 성숙한 동반자관계로 발전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일단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양국 장관은 이날 상ㆍ하오에 걸친 회담을 통해 재일한국인차별의 상징인 이른바 4대악제도개선에 관해 폭넓은 의견교환을 거쳐 원칙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먼저 협정3세이하 후손에게 간소한 절차로 협정영주권을 부여하기로 합의했고 대표적인 차별제도인 지문날인에 관해서는 『3세이하 후손부터는 적용을 배제한다』는 선에서 매듭짓고 지문날인제의 사실상 철폐를 명문화했다. 물론 이러한 원칙합의는 협정1,2세 등 재일한국인에 대한근본적인 차별제도를 완전폐지한다는 대원칙에서 볼때 당사자인 재일한국인들의 기대치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적용대상자인 협정3세도 현재 4명뿐인데다 이들의 나이가 만 한살에 불과,이번 양국간 합의가 15년후인 2005년에나 적용가능한 실정이다. 바로 이 점은 대부분의 재일한국인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양국정부간에 새로운 협상을 시작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한다. 사실 노대통령 방일과 재일한국인문제를 연계시킨다는 방침을 우리측이 지난 2월 천명한 이후,양국간에는 정계거물들의 상호방문을 통해 이 문제타결을 위한 정치적인 의사타진이 있어왔다. 또 우리정부는 이들 핵심현안에 대한 타결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자 이원경주일대사를 본국소환,일 정부측에 정치적ㆍ외교적인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결국 노대통령 방일이라는 「비상카드」를 사용한 덕분에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상당한 정도로 완화했다고 외무부측은 설명하고 있다. 이번 회담의 또하나 성과는 양국외무장관간에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한 해명수준을놓고 충분한 교감을 나눴다는 사실이다. 이와관련,나카야마(중산)일 외무가 회담에서 자신의 국회답변을 상기시키며 『양국간 역사중에서 식민지통치로 인해 한국민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힌 데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힌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회담을 통해 노대통령 방일에 따른 양국 정부간의 정지작업은 매듭지어졌다고 판단된다. 문제는 양국간의 어려운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발전의 차원에서 모든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첨단과학기술교류 협력문제,무역 역조시정,아ㆍ태협력강화방안 등이 심도있게 논의됐다는 사실은 오히려 과거사 보다는 비중이 더 주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한일외무장관 합의문◁ ⓛ간소화된 절차로 기속적으로 영주를 인정한다. ②강제퇴거사유는 내란ㆍ외환의 죄,국교ㆍ외교상의 이익에 관련되는 죄 및 이에 준하는 중대한 범죄에 한정한다. ③재입국허가에 관해서는 출국기간을 최대한 5년으로 한다. ④지문날인제도는 3세이하 후손의 입장을 배려하여 이를 행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지문날인에 대체하는 적절한 수단을 조기에 강구한다. ⑤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제도에 대해서는 3세이하 자손의 입장을 배려한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낸다. ⑥기타 교육문제,지방자치제,공무원 및 교사의 채용문제,지방자치단체 선거권문제 등에 관해서는 금후에도 협의를 계속해나가기로 한다.
  • 요시다ㆍ구보타ㆍ후지오…/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사명대사에게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가 여쭈되 『조선에 보물이 있습니까』하니 스님이 『보물은 일본에 있을 뿐 조선에는 없다』고 대답했다. 다시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고 묻자 『지금 조선에서는 당신의 목을 베기만 하면 천금의 상을 받게 되므로 당신의 머리가 곧 보물인 것이다』라는 호통이 나왔다. 가토는 간담이 서늘했다. 조선 선조 27년(1594년)4월에 사명스님이 울산 서생포에서 왜장가토를 만났을 때 얘기다. 허균이 지은 자통홍제존자사명송운대사 석장비명으로 전해 온다. 이승만은 생래적으로 반일주의자였다. 1952년말 한일회담이 교착상태에 들자 도쿄의 미군당국은 중재를 해줄양으로 이승만을 도쿄에 초대했다. 당시 일본총리는 노회하기로 소문난 요시다 시게루(길전무)였다. 먼저 미국대사 머피가 마련한 오찬에 요시다가 불참하는 결례를 저질렀다. 이어 다음날 미군사령관 클라크가 초대한 만찬에서 두 노인은 냉랭한 표정으로 만난다. 요시다가 묻고 노대통령은 대답했다. 『듣건대 산자수명한 한국엔 아직도 호랑이가 많다던데요』,『한국엔 이제 호랑이가 없소』『그럴리가…. 예로부터 백두산 호랑이가 유명하지 않습니까』『당신들 일본사람이 마구 잡아 가죽까지 벗겨간 터에 이제 호랑이는 씨가 말랐소』 한일간에 가로놓인 넓은 강과 깊게 드리운 그늘의 연원이 역사적으로 대개 이러하다. 요시다가 이어 한일간 지난날에 언급,『우리의 군국주의자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고 하자 드디어 이승만의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다. 『귀하는 군국주의자들에 책임을 돌리지만 그런말은 아직도 한국을 지배하려는 일본의 야망과 그 시도를 의심하는 한국인들에게 확신을 줄지 모른다』고 쏘아붙인 것이다. 요시다는 대답대신 묘한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한일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차 있다. 증오와 불신감 또한 뿌리깊다. 양쪽의 여론조사는 언제나 서로를 「가장 싫어하는 국가군」속의 첫째로 꼽고 있다. 최근에도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첫 인상은 「간사하다」로 나타났고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대표적인 느낌은 「감정적」이라고 지적됐다. 40년의 강점과 식민수탈을 단 한마디 「불행했던 과거」라는 표현으로 호도하고 「유감」을 표할지언정 결코 시인 사과는 하지 않는 그들이다. 그런 일본은 요즘 안팎으로 눈부신 변신을 거듭하는 소련을 배울 필요가 있다. 소련은 얼마전 지난 1940년의 카틴숲 학살사건이 당시 그들 내무인민위원국(NKVD)의 주도아래 저질러진 범죄라고 시인하고 폴란드 정부에 사과하는 곰의 재주를 부렸다. 43년 소련을 침공한 나치독일이 스몰렌스크 동쪽 카틴 숲속에서 4천3백구의 유해를 찾아냈을 때 소련은 시침을 뗐었고 지금까지 그랬다. 소련이 과거의 전쟁적 범죄를 시인하고 사과하는데 50년이 걸린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며 사실은 영원히 사실이라는 진리를 일깨워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지난 37년 중국군이 완강하게 버티던 남경시를 함락시킨 일본군은 부녀자 겁탈과 약탈은 물론 닥치는 대로 학살한 양민이 30만을 넘는다. 한국에서의 경우도 그러하다. 태평양전쟁기간중 39년부터 45년까지 6년동안 일본 등지에 노무자로 끌려간 한국인은 1백37만명,국내에서의 강제노역4백50만,군인 군속 소위 여자정신대 등으로 연행된 37만 등 모두 6백만명이 일제에 의해 동원되거나 학살됐다.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유감」표명만으로는 절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일본당국은 연전에 교육용으로 일본역사상 10명의 「위인」을 선정한 바 있다. 그중 근대편에는 길전송음ㆍ서향륭성ㆍ이등박문 등 조선침략의 원흉들이 망라됐다. 군국주의 잔재에 젖어 있는 일본 지도층의 의식의 단면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오래전에 「일본의 한국병합」이라는 책을 쓴 야마베 겐타로(산변건태랑)는 이들 소위 근대화주역들의 행적을 분석한 뒤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시대에 따라 그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언제나 정한론이었다』고 갈파했다. 바로 그것이다. 53년 한일회담 당시 일본대표였던 구보타(구보전관일랑)는 『한일평화조약이 체결되기전에 한국이 독립한 것은 국제법 위반이다』라고 흥분하더니 끝내는 한술 더 떠 조선통치를 「시혜」라고까지 망발을 해 한일관계사에 이른바 「구보타 망언」을 남긴다. 『이등박문의 길을 따라 우리는 한국에 뿌리를 심어야 한다』고 말한 자는 요시다였고 마지막 수석대표였던 다카스기(고삼진일)는 『일본이 한국을 20년은 더 지배했더라면…』하고 아쉬워했다. 30년후인 86년 당시 문부상이던 후지오(등미정행)는 『식민지지배니 하고 떠들어 대지만 일본은 좋은 일을 하지 않았는가』고 근성을 드러냈다. 섬나라 지도층의 한국에 대한 착시와 오만이 이와 같다. 지금도 일본 도처에는 그때보다 더 많은 요시다,구보타,다카스기,후지오들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이 일본에 임한 기본자세는 정신적이며 도덕적이었다. 「정신적 화해」였기도 하다. 반면 일본은 법적ㆍ실무적이었고 경제동물적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지금 막강한 부와 힘을 갖고 있다. NTT(일본전신전화) 한 회사의 주를 팔면 서독의 전 회사주식을 살 수 있고 도쿄를 처분한다면 그 돈으로는 미국 하나반을 살 수 있다. 미국의 핵우산을 빌려 쓰고 풍요를 구가하는 그 사회에 「대동아전쟁긍정론」이 대두된 지는 오래다. 급기야는 군국일본과 일왕찬미의 상징이었던 일장기와기미가요의 사용이 공식화되기에 이르렀다. 패전후엔 그토록 믿었던 힘을 버리고 조심조심 부지런하기 30년만에 졸부가 된 그들이 이제 다시금 축적된 힘에 대한 자신과 오만을 갖고 그것을 활용하고 싶어한다. 그러한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전쟁범죄와 관련된 피해보상문제와 재일동포문제에 있어서는 그렇게 간교하고 이중적이고 인색할 수가 없다. 그래가지고는 한일에 가로놓인 강과 그늘은 영원히 걷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일은 그들의 앞날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일,“한반도침략 반성”/나카야마외상 “군국 식민지배” 공식인정

    【도쿄=강수웅특파원】 나카야마 타로(중산태랑)일본외상은 26일 중의원 예산분과위원회에서 태평양전쟁 이전부터의 한반도와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제2차대전은 근린제국및 그 국민들에게 중대한 손해를 끼친 일본군국주의적인 침략이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밝히고 『한반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가 있다면 그것을 없애기 위해 마음으로부터 과거의 쓰라린 침략의 문제를 겸허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나카야마외상의 이같은 발언은 지금까지의 정부답변과 비교할 때 「침략」을 공식으로 인정했으며 특히 솔직한 표현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및 전쟁중의 행위에 대해 반성을 표명한 것이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날 나카야마외상의 발언은 사회당소속 센고쿠 요시도(선곡유인)의원이 서독정부가 나치시대의 반성을 명확히 표시했던 것 등을 예로 들며,『일본은 과거의 한반도와의 역사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를 표명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나카야마외상은 지난 65년의 한일기본조약등을 들어 『국가로서의 법률적ㆍ국제조약적인 처리는 이미 끝났다는 생각이 행정기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하고 『한일양국이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열기 위해서는 계속 되돌아 보며 자신이 저지른 지워질 수 없는 역사를 생각하면서 한국국민과 손을 맞잡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일본정부의 방침은 25일 개최된 이시하라 노부오(석원신웅)관방부장관을 중심으로 구리야마 쇼이치(율산상일)외무,오카무라 야스다카(강촌태효)법무사무차관및 스즈키 료이치(냉본양일)경찰청차장 등의 차관레벨 협의에서 나온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한국측이 요구하고 있는 9개 항목 가운데 ▲재입국허가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정도로 연장하며 ▲강제퇴거사유는 내란ㆍ외환죄 등 중대범죄에 한정하고 ▲지방공무원의 채용범위를 확대한다는 방침도 거론됐다.
  • KBS사태 새국면/최공보­사원대표 어제 2차례 만나

    정부의 강경대응방침이 천명된 가운데 제작거부및 농성 13일째를 맞고 있는 KBS사태는 24일 최병렬공보처장관과 사원대표가 직접대화에 나섬에 따라 금명간 중대한 분기점을 맞을 전망이다. 또 실국장들도 이날 노사양측의 중재활동에 나선데 이어 이사회에서도 25일 수습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최공보처장관은 이날 하오1시20분쯤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코리아나 호텔에서 KBS 사원비상대책위원회대표 1명을 극비리에 만난데 이어 저녁에도 시내 모음식점에서 비상대책위 정책팀대표 2명을 만나 사태해결을 위한 대화를 가졌다. 실ㆍ국장단 대표 8명과 부장단대표 8명은 이날 하오 공보처로 최병렬장관을 방문,방송정상화를 비롯한 사태수습노력을 최대한 기울이겠다고 밝히고 그 대신에 공권력투입은 신중을 기해줄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최장관은 『공권력 투입은 최대한 신중을 기하겠으나 산업평화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때 무작정 기다릴수도 없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하고 『조속히 방송정상화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KBS이사회(이사장 노정팔)도 25일 하오2시 이사회를 열어 사태수습 4인소위원회로부터 활동보고를 듣고 입장을 정리한뒤 수습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한편 노조측은 25일 남산야외음악당에서 여의도 KBS본사까지 「방송민주화를 위한 평화대행진」을 갖고 26일에는 본관 중앙홀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주최로 시민지지모임을 여는등 다각적 홍보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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