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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왕·망명객… 역정/「캄보디아의 국부」 추앙 시아누크(뉴스인물)

    캄보디아 과도연립정부의 총리를 맡겠다고 발표한지 하룻만에 수락의사를 번복한 노로돔 시아누크공(70)은 20여년간에 걸친 망명생활을 거치면서도 좌·우파 모두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군림해온 카리스마적 지도자. 국왕에서 국가주석으로,죄수에서 게릴라지도자로 변신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역정은 바로 캄보디아 현대사 바로 그 자체라 할 수 있다.그는 지난 75년 크메르 루주가 집권했을 때 명목상 지도자로 옹립돼 이용당한후 처형될뻔 했으나 당시 중국 총리인 주은래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이렇게 살아남은 시아누크는 「신격화된 군주」로 범국민적 추대를 받아 지난 91년 내전종식의 기초가 됐던 파리평화협정 체결뒤에도 캄보디아 민족회의(SNC)의장으로 추대됐다. 그는 지난 41년 프랑스식민지 시절 외조부 모니본국왕이 서거하면서 식민지배를 계속하려는 프랑스의 의도대로 아버지를 제치고 왕위에 올라 49년 독립을 선언,국왕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55년 아버지인 스라말릭드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선거를 통해 총리가 된후 60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국가주석으로 다시 복귀했다. 70년 론놀장군의 쿠데타와 79년 베트남의 침공으로 폴 포트정권이 무너지면서 북경과 평양을 오가며 망명생활을 해온 그는 망명기간동안에도 좌·우파를 지휘하며 캄보디아 내전을 「원격조정」해왔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윤세주열사)

    ◎의용군 지휘… 중국 화북서 일군과 전투/중학때 연무단 조직,개천절시위 주도/일경수배 피해 망명… 조선의열단 결성/독립단체 규합… 40만명과 교전중 장렬한 최후 윤세주선생은 1901년 6월24일 경남 밀양군 부북면 강천리에서 부친 윤희규선생과 모친 김경이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성품은 겸손했으나 일본 식민지통치에 대해서는 온 생애를 통해서 저항할만큼 애국심이 깊었다. 윤선생은 국민학교때 일왕 출생 기념일에 받은 일장기를 변소에 버릴만큼 일본을 증오했다. ○독립선언서 낭독 그는 밀양의 사립 동화중학에 입학하면서 항일 인사였던 김홍표교장의 영향을 받아 항일 정신을 키워갔다. 윤선생은 김교장의 애국사상에 감화,학교내의 비밀결사인 연무단을 조직했다.연무단은 당시 금지됐던 개천절 기념행사를 갖고 시위를 벌였다.이 사건으로 동화중학은 폐쇄됐다.그러나 윤선생의 가슴에 반일·배일사상은 영원히 남게됐다. 1919년 3월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한 그는 만세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 동지들을 규합했다.13일 하오1시쯤 수천명이 모인 고향장터에서 그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동지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그를 그냥 둘리 없는 일제의 당장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일본경찰의 수배를 피해 그는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일본은 그해 4월14일 부산지법 밀양지청에서 궐석재판으로 윤선생에게 징역1년6월을 선고했다. 만주로 망명한 그는 요령성 유하현에있는 신흥무관학교에 들어갔다. 신흥무관학교는 당시 국내의 독립운동 비밀단체인 신민회의 결의에따라 이회영형제가 세운 독립군양성 무관학교로 그는 이곳에서 정식으로 군사훈련을 받았다.그는 11월9일 죽마고우 김원봉등 13명의 학생들과 함께 조선의열단을 결성했다. 구체적인 항일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의열단은 조선총독부등 일제 침략기관의 파괴와 원흉들을 살해 하기위한 계획을 세우고 폭탄투척자를 물색하게됐다. 19세의 그는 신철휴 윤치형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했다. 그러나 윤선생일행은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면서 국내동지 50여명과 함께 체포됐다. 5년4개월의 감옥생활을하고 27년 출옥한 그는 중외일보 기자·경남주식회사사장으로 위장,독립운동에서 손을 뗀 양 조용히 지내다가 32년 여름 다시 중국 남경으로 망명했다. ○폭탄투척자 물색 그의 독립운동에 대한 방법도 세련되어갔다.그는 『과거에는 열정과 용기만을 갖고 싸웠으나 앞으로는 혁명적 인생관과 과학적 혁명이론으로 재무장, 정확한 혁명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그는 32년 10월20일 중국군사위원회 간부훈련단 제6대(약칭 조선민족혁명간부학교)에 입교,33년 4월21일 1기로 졸업했다.독립운동전선의 행동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였다. 독립운동단체들은 연합준비위원회를 구성한뒤 해외독립운동단체들을 참가시켜 그해 11월10일 한국대일전선통일연맹을 결성했다. 그는 이 단체에서 안병조·김두봉·김규식·윤기섭·최동오 등과 함께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선출됐다. 이 단체는 33년 7월5일 독립운동가들이 소망하던 민족혁명단을 탄생시키는 모체가 됐으며 그는 이 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그는 또 민족혁명당이 일군에 무력으로 대항하기위해 만든 중국과 제휴해 만든 조선의용대에서도 핵심부서인 편찬위원회 주간이 돼 선전공작 활동을 벌였다.그러나 독립운동의 효과는 호전되지 않고 일군에 유리하게 전개되어갔다.독립운동을 적극 협력해주던 중국 국민당 정부도 38년 10월25일 무한이 일본군에 함락되면서부터는 중공군과의 내전에만 심혈을 쏟았다. 그는 직접 조선의용대 지대를 이끌고 중일전투에 참가했다.41년 4월에 그는 수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황하를 건너 화북을 향해 북상해갔다.그는 마침내 태행산 항일 근거지에 도착, 조선의용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칭하고 중공 8로군과 함께 항일 무장활동에 열중했다.그는 모든 대원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지휘자로 존경을 받았다.42년2월 일본군은 4만명의 군대를 동원,태행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5월에는 20개사단 40만명의 병력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해왔다.조선의용군은 불과 3천∼4천명에 불과했다. ○“끝까지 투쟁” 유언 일본군은 전투기와 전차까지 동원,본격적인 군사작전을 폈다.5월29일 항일 연합군 사령부에서는 조선의용대에 탈출로를 확보하고 탈출할 것을 명령했다.일군이 점령하고 있는 양쪽 산봉우리 사이의 탈출로를 확보하기위해 두 산봉우리를 조선의용군이 공격,전군이 탈출할 때까지 사수하기로 했다.작전개시 5시간만에 탈출로를 확보했다. 그는 이 전투에서 적탄을 맞고 쓰러졌다.3일 뒤 동지들이 중상을 입고 쓰러진 그를 발견했으나 이미 중태였다.6월3일 그는 석굴에서 숨을 거두었다.『단결해서 적을 사살하기 바란다』는게 동지들에게 남긴 그의 유언이었다.선생의 나이 41세였다. 선생이 전사한 뒤 1주년이된 43년 6월 중경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의용군은 합동으로 윤선생의 추도회를 가졌다.대한민국정부는 80년 윤세주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고용기회박탈·경제난 가중” 불만/EC 난민규제조치 배경

    ◎동구권 경제난민 대거 유입 문제화/“이기주의의 비인도적 처사” 비난도 냉전의 종식으로 철의 장막이 걷힌 유럽에 다시 이민족을 차단하기 위한 새로운 장벽이 설치되고 있다. 독일이 지난달 말 난민규제법안의 상·하원 통과로 외국인의 국내유입을 차단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데 이어 인접 프랑스도 2일 외국인의 국내이주를 중단시키기 위한 법안마련 작업에 착수했다. 이에 앞서 그리스는 지난 91년 이민법을 대폭 강화했으며 오스트리아도 지난해에 이미 독일과 유사한 난민규제법안을 마련,현재 시행중에 있다.그밖에 영국은 난민의 피난권을 제한하는 법안이 현재 의회를 통과중에 있고 벨기에·스페인 등도 외국인의 이민조건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처럼 외국난민의 유입을 막기 위해 유럽내 개별국가들이 속속 법적 장치를 강구하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해 유럽공동체(EC)도 2일 12개 회원국 각료회담에서 난민의 수용을 엄격히 규제하는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난민문제에 대한 공동대응에 나섰다. 지금까지 난민을 받아들이는데 비교적 관대했던 서유럽국가들이 이처럼 앞을 다투어 규제장치를 마련하고 있는것은 나름대로의 사정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일찍 정착된 민주주의체제를 바탕으로 한동안 동구공산권·아시아·아프리카·중동 등지의 정치적 망명자들을 인도주의 차원에서 거의 무제한으로 받아들여왔다.그러나 내전을 피해 쏟아져 들어온 대량의 유고난민들은 이들 국가에 난민위기도 함께 몰고 왔다.게다가 과거의 식민지 아프리카와 동구권국가들로부터 부를 찾아 경제난민들이 밀려들어오면서 인도주의 실현이라는 난민수용의 기본취지에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이들 난민은 최근들어서는 상대적으로 고용기회와 복지비용을 빼앗긴 자국민들의 극단적인 불만을 야기,유혈사태로까지 이어짐으로써 가뜩이나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서유럽국가들에 경제적 부담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난민들에 대한 서유럽국가들의 집단적인 배척움직임에 대해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난민규제에 반대하는 인사들은 우선 이같은 조치가 경제적측면만을 고려한 자국이기주의의 단견에서 비롯되는 비인도적인 처사임은 물론 결과적으로 이데올로기에 대신해 최근 고개를 들고있는 민족주의를 부채질,국제평화의 위협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한다.아울러 선진부국과 빈곤국가들의 적대감도 증폭시켜 남북문제의 해결이라는 거시적인 세계적 목표달성에도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우려한다.
  • 국민지지 바탕,「혁명적 개혁」 박차/신한국 건설의 삽질 이렇게

    ◎칼날사정·파격인사… 정관계 대폭 물갈이/「12·12」 등 역사재평가… 기득권층 무장해제/정권의 정통성·도덕정 무흠결이 추진력 배가 김영삼대통령의 취임초기 일부에서는 『누구나 초기에는 개혁을 한다』고 말했다.기득권층의 희망적 예단은 빗나가고 있다.「종교적 열정」으로나 이해가 가능한 개혁드라이브 1백일을 맞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임기중 개혁을 중단없이 계속할 것』이라고 한 김대통령의 말을 의심치 않고 있다. 지난 1백일을 통해 김대통령과 정부는 질풍노도같은 사정과 인사를 통해 문민정부의 개혁토대를 마련하는데 성공했다.그것은 반개혁적이게 마련인 기득권세력의 초토화,개혁에 대한 국민적신뢰와 합의의 구축으로 나타났다. 이 바탕위에서 이제부터는 취임의 슬로건으로 제시했던 「신한국」이란 집의 건축이 시작되려하고 있다.개혁의 법제화·의식화가 기둥이 되고 그 위에 신한국의 구체적 모습인 「깨끗하고 부강하며 모두가 고루 잘사는 사회」의 지붕이 얹히게 될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취임 1백일이 되는 4일은 개혁이 기초정지를 끝내고 구체화로 넘어가는 대전환점으로서의 성격을 갖게 된다. 김대통령의 초기작업은 개혁으로 상징되는 사정과 변화로 의미되는 인사,역사의 재평가를 축으로 해 진행돼 왔다.여기에 YS식정치 특유의 전격·과감성이 가미됨으로써 「개혁의 이름을 빌린 혁명」은 거침없이 「한국병」의 환부를 섭렵해내고 있다. ○걸작드라마 방불 개혁이 대단한 고통과 아픔을 동반하는 것임에도 솔선수범과 화려한 정치술의 뒷받침으로 인해 걸작 드라마처럼 미화되고 있음은 특이하다. 김대통령은 자신과 가족의 재산공개(2월27일),정치자금단절 선언(3월4일)이란 솔선수범으로 개혁의 대장정을 선언했다. 또 다른 솔선수범인 청와대 칼국수는 경제회생을 위한 고통나누기의 의지표시였다.대통령과 핵심세력의 솔선수범을 맛깔나게 만들어 국민의 동참을 이끌어낸 개혁의 양념이다.당연하게도 청와대 칼국수는 외국 언론이 한국의 개혁정치를 소개할 때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한국개혁정치의 마스콧으로 부상하고 있다.일부의 저항과 불만에도 불구하고 개혁은 국내외의 갈채속에서 진행되고 있고,개혁의 장기화가 가능한 이유도 여기서 찾아지고 있다. 일반인이 생각할때 개혁은 사정과 동의어로 여겨질 만큼 사정만이 부각돼온 측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역사의 재평가를 통한 분위기 장악과 과감한 인사를 통한 지원이 없었다면 사정도,개혁도 궤도에 오르기 어려웠을 것이란게 1백일 개혁을 지켜본 사람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김대통령은 공직자 재산공개를 통해 기득권세력의 치부를 국민 앞에 공개하는 것으로 개혁의 첫삽을 떴다.국민의 공분을 일으켜 개혁에 국민적합의와 추진력을 붙여주기 위한 면밀한 계산의 결과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개혁은 이 단계에서 이미 미화되고 국민적 합의를 얻기 시작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세력의 상징적 인물인 전국회의장의 의원직사퇴가 이루어지고 현국회의장의 탈당이 있었다.12·12세력의 원로격인 유학성의원의 사퇴가 뒤따랐다.과감한 물갈이의 서막은 이렇게 장식됐다. ○도덕성시비 불식 개혁작업은 역사의 재평가와 인사의 파격성을 통해 재충전을 하면서사정으로 한국병의 실체에 바로 접근해 들어갔다. 4·19는 혁명으로 재득명했다.5·18은 문민정부가 그 연장선상에 있음이 선포됐다.5·6공의 출발점이었던 12·12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다시 자리매김이 이루어졌다. 이런 일련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재평가는 문민정부의 정통성을 강화해주면서 동시에 기득권 세력의 완전한 무장해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12·12의 재평가가 야당의 요구에의해 이루어졌든,5·18광주재평가가 광주문제해결을 위해 이루어졌든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그 원인이나 계산여부에 상관없이 개혁작업은 이를 통해 비상의 날개를 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문민정부는 비로소 과거정권으로부터 자유스러워 질 수 있었다.과거를 대상으로 한 사정작업이 「일제시대에 살았으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친일파」란 논리의 도덕성 시비에서 자유스러워진 것도 역사의 재평가를 통해 얻은 수확의 하나로 여겨진다. 대통령과 그 세력이 과감한 개혁에 나서고 국민적합의를 무기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정권획득과정의 정통성과 취임 이후의 도덕적 무흠결이다. 최초의 문민정부란 점,선거의 공명성이 개혁의 안전한 발아를 가능케 했다.『단 한푼의 돈도 안받겠다』고 한 취임이후의 선언은 그의 개혁이 「정권의 안정성도모」같은 앞선 정부의 개혁작업과 차별되면서 개혁작업의 도덕성을 완전에 가깝게 끌어올린 것으로 파악된다.기존 권력층의 공개된 치부,그위에 가해진 개혁주체의 높은 도덕성은 당연히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면서 국민의 지지가 다시 개혁의 가장 날카로운 날로 등장하는 새로운 「개혁모델」을 등장시킨 것이다. 김덕용 정무1장관은 세미나에서 정부의 개혁을 「생존을 위한 개혁」으로 정의한바 있다.김대통령은 『경제회복을 위해 부정부패 척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개혁의 목표가 청교도적인 도덕사회의 수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복지국가의 수립에 있음을 분명히 읽게하는 대목이다. ○능동적협력 긴요 국제경쟁력의 회복을 위해서는 기업외적인 비용의 척결이 필요하다.또한 근로의욕을 북돋우기 위해서도불로소득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부동산투기를 없애야만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고 보면 새정부의 개혁은 확실히 더 나은 복지국가를 위한 전단계로서의 의미를 갖는게 틀림없다. 그러나 경제는 투자의욕이 더 중요할 수 있음이 간과돼 왔다.투자의욕과 개혁을 동시에 얻으려는 것이 현정부의 생각이지만 기업투자는 늘지 않고 있고 이를 반영해 청와대는 재계에 잇단 유화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개혁의 법제화나 제도화는 공무원과 기존 정치권의 능동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그러나 이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징후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개혁작업이 민생사정이란 이름으로 개혁대상을 넓혀 갈때 그만큼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개혁지지에서 떨어져 나갈 개연성이 높다. 성공적인 출발과는 상관없이 개혁의 열매를 딸때까지 그 과정은 길고 더 많은 사람의 인내를 요구한다.개혁작업의 난이도도 사실은 더 높아지는 단계일 것이다.
  • “신혼방 한켠을 책으로 채웁시다”/교보간 「지구촌 책정보」지

    ◎예비부부 위한 필독서 안내/사전·관혼상제·성생활 등 1백여권 선정 결혼시즌이다.예비신부들은 장차의 시댁으로 부터 책잡히지 않을 혼수준비에 골몰한다.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 한가지는 어떤 시어머니도 이것을 마련해오지 않았다고 새아기에게 곱지않은 눈초리를 보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그것은 바로 책이다. 대한교육보험과 교보문고가 매달 발행하는 독서정보지 「지구촌 책정보」5월호는 부부가 된 두사람이 한가정을 꾸려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책의 목록을 「혼수목록에 책이 빠져있다」는 제목으로 실었다. 이 목록을 작성한 교보북클럽은 『두 사람의 백년해로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비법으로 혼수목록에 가정용 필수도서목록을 끼워보라』고 권한다.먼저 부부가 되기전 결혼준비에서 부터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살아가는 순간순간 이 책들이 없으면 크게 불편할수 밖에 없다는 것.또 신혼여행에서 돌아온뒤 집들이때 아늑하게 꾸민 신혼방 한 켠에 몇권의 책이 손님들의 눈에 띈다면 「괜찮은 한쌍」이라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렇게조금은 치기어린 이유에서 장만했더라도 생활서적은 쓸모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 목록은 가정용 필수도서를 사전과 가정예절·관혼상제,건강과 임신·출산,요리,가정 처세술,성생활,취미,내집마련 등 8개 항목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있다. 교보북클럽이 추천하는 가정용 필수도서의 목록은 별표와 같다. ◇사전 엣센스 국어사전(민중서림 13,000원) 그랜드 국어사전(금성교과서 30,000원)우리말 큰사전(어문각 240,000원) 동아 한한대사전(동아출판사 60,000원) 우리말속담큰사전(정동출판사 60,000원) 한국인명대사전(신구문화사 72,000원) 세계인명대사전(고려출판사 120,000원) 한국문화상징사전(동아출판사 45,000원) ◇가정예절·관혼상제 결혼과 가족(하우 7,000원) 관혼상제(태서출판사 7,000원) 관혼상제(혜원출판사 4,000원) 규합총서(기린원 4,000원)가정생활상식(예문당 9,000원) 가정보감(홍신문화사 6,000원) 명가의 가훈(명문당 10,000원) 우리의 전통예절(한국문화재보전협회 6,000원) ◇건강,임신·출산 매터니티(임신·출산·육아1·2)(중앙일보사 각7,500원) 신혼·임신·출산 아기백과(효성출판사 12,800원) 임신·출산·아기의 첫 365일(주부생활사 20,000원) 첫임신·출산(주부생활사 5,800원) 아기백과(유아문화사 25,000원) 아들·딸 가려낳기(문학과현실사 4,800원) 태교·출산의 지혜(샘터사 4,000원) 가정의학박사(오늘 5,800원)증상으로 알 수 있는 신체의 이상(동아출판사 6,000원) 여성을 위한 의학책(심지 12,000원) 현대 가정의학백과(동아출판사 40,000원) 홈닥터(주부생활사 15,00원) 여성만의 병(이담 4,800원) 아이큐150 젊은 엄마 천재육아법(오늘 5,000원) 엄마 나를 천재로 길러주세요(민지사 3,500원) 유태인의 천재교육(나라원 3,000원) 우리 아기 잔병치레(좋은글 5,000원) 엄마 아빠 이렇게 키워주세요(교육과학사 5,000원) 보든 자녀교육(전8권)(웅진출판 15,000원) ◇요리 365일 우리집 식단(효성출판사 15,800원) 찌개와 반찬(주부생활사 14,800원) 한국요리베스트 200(한림출판사 12,000원) 8도 맛김치 김장김치(서울문화사 2,800원) 야채요리(국민서관 8,000원) 한국인의 보양식(대한교과서 18,000원)음식궁합(둥지 4,500원) 식품보감(서우 6,400원) 도시락 반찬78가지(주부생활 4,000원) 사계절 밑반찬(주부생활 4,000원)사계절 도시락(주우 1,800원) ◇성생활 웨딩가이드(상·하)(시대문학사 각6,000원) 신부(여원 9,800원) 돌려보는 일기장(여성사 5,000원) 완전한 부부(오늘 4,500원) 신혼은 아름다워라(섭정 4,800원) 결혼과 성의학(내외출판사 3,800원) 침실비밀 69(다사랑 3,500원) 결혼소프트(책이있는 풍경 6,000원) ◇가정처세 사랑받는 아내(속)(언어문화사 4,000원) 사랑받는 며느리 사랑받는 시어머니(기원전 4,000원) 부부가 함께 읽는 행복어 사전(혜진출판사 3,800원) 남편의 지혜(황제 5,000원) 다시 한번 결혼합시다(청림출판 5,000원) 대화의 에티켓(집문당 4,000원) 현대여성의 시간관리(매일경제신문사 4,300원) 당신은 의사전달을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평민사 5,500원) 가사를 즐겁고 손쉽게(말길 4,800원) 젊은 엄마의 생활 아이디어(그린비 8,000원) ◇취미 세광 명가 365곡선(상·하)(세광출판사 각6,000원) 클래식 명곡 대전집(세광출판사 9,000원) 세계영화 스토리(세광출판사 8,000원) 열려라 비디오93(차림 5,000원) 베스트 드라이브코스 101선(강천 8,000원) 주말 하이킹(수문 6,000원) 해외여행가이드(동신출판사 6,000원) 그곳에 다녀오면 살맛이 난다(심지 5,800원) 가족과 함께 떠나는 즐거운 드라이브(정우사 4,500원) 전국 낚시터 365(하서출판사 6,000원) 최신 볼링교실(국일문학사 5,000원) 바둑으로 머리가 좋아진다(민맥 3,800원) 가슴펴고 어깨걸고 1(우리교육 4,000원) 오성 테니스 교본(오성 5,000원) 1993 전국도로지도(성지문화사 10,000원) 서울시 교통지도(중앙지도 10,000원) 장식 테크닉 297(주부생활사 6,800원) 수납 인테리어(서울문화사 5,000원) 인테리어 에센스(중앙일보사 6,500원) POP인테리어(주부생활사 4,300원) 취미분재(전원문화사 6,000원) 애견백과(중앙일보사 6,800원) 관상 열대어 사육과 번식(오성 9,000원) 홈패션(라사라 5,000원) ◇내집 마련 내집마련자금 대출 받으려면(박문각 3,600원) 전세탈출(터 3,500원) 부동산잘 사고 파는 법(둥지 4,000원) 목돈마련 재산증식(심지 4,800원) 은행소프트’93(한빛 5,500원) 아파트 반값 마련 비법(시대평론 6,000원) 쓰러지는 은행 일어서는 은행(현대정보문화사 5,500원) 성공하는 집 실패하는 집(참샘 4,500원) 결혼 그 이후(일터와 사람 5,000원)
  • 김시중장관에 듣는 과학기술행정(국정탐방)/대담=조남진 과학부장

    ◎“세계최고기술개발 「미디엄테크」 추진”/중간기술중 선정… 「G7」과 동시 연구/해외과학자 국내 기업활용 적극 유도/청소년의 과학탐구가 국가미래 좌우… 「책보내기」 적극 동참을 체제 이후 세계는 적과 동지가 사라지고 첨단 과학기술의 개발을 축으로 한 무제한의 경제전쟁에 돌입하고 있다. ○기술혁신 중점투자 선진국들은 지금까지 군수기술에 썼던 힘을 민군 겸용의 기술 혁신에 집중투자하는가하면 기술보호주의와 기술 패권주의의 신국제 기술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냉엄한 현실속에서 「과학기술 소국」인 우리의 낙후를 방치 할때 우리는 세계각국의 기술경제 식민지로 종속되고 만다. 2천년대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세계 역사의 중심에 서고 신한국 창조와 신경제의 건설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느때보다 과학기술의 굳건한 뒷받침이 필요한 때이다. 서울신문사는 국민의 생활과학화및 청소년의 과학화운동을 활성화 하기 위해 초중교에 과학책 보내기 운동을 펴며과학기술 행정의 수장인 김시중 과학기술처장관을 만나 문민시대의 과학기술 국정방향을 들어보았다. ­신한국창조에서 과학기술정책은 어떤 자리에 위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요.그리고 현재의 위상은. ▲오늘날 국가 과학기술의 수준 차이는 결국 국가간의 빈부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이런 때문에 대통령은 「도약하는 과학기술,활기찬 경제」를 신한국 창조의 10대 과제중 하나로 제시한바 있습니다.우리경제는 개방화와 국제화의 과정에서 「기술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따라서 지도층이 과학기술의 시대적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과학기술 개발과 진흥정책을 펴는 동시에 기업은 「기술 중심의 경영」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소장 자율 선출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과학기술의 무게가 종전의 G7프로젝트 중심계획에서 미디엄 테크로 옮겨가고 있는듯한 느낌입니다.과연 정책의 변화로 봐야 할지,또 미디엄 테크의 개념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과학기술 자원이나 기술 축적의 규모면에서 미국이나 일본을 따라가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따라서 규모는 작지만 그 질과 내용에서 경쟁력과 탁월성을 최대한 살릴수 있는 기술개발전략이 필요합니다.그러므로 중장기적으로는 21세기 개척형 미래첨단기술인 11개핵심선도기술(G7)의 개발과 함께 2∼3년안에 세계 최고 기술을 확보 할수 있는 분야를 집중연구토록 하는 것입니다.이것이 중간기술개발의 목표입니다. ­취임이후 전국의 각 기업연구소나 정부 출연연구소 그리고 대학 등의 현장을 둘러보고 시정할 사항이 있으면 직접 장관실로 팩스를 보낼수 있도록 하셨는데 성과는 어떻습니까. ▲예,연구소들에 과천청사 출입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연구원들이 서울이나 들락거리면 연구가 제대로 될리 없지요.건의 사항은 팩스로 보내게 했습니다. 출연연구소의 활성화를 위해 이사회를 개편,연구소장을 자율적으로 선출하는 것에서부터 활성화해나가도록 하고 연구를 위해 횡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실을 축소했으며 소장을 중심으로 늦게까지 연구하는 분위기가 자리잡혀가고 있습니다. ­정부 출연연구소의 사기가 떨어져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사기를 올릴수 있는 방안은. ▲21세기 국가 경영전략을 과학기술에 두어야 한다는 것은 이제 웬만한 사람이면 다알고 있습니다.그간 과학자들이 소외돼왔다면 거시적으로는 국가를 보고 미시적으로는 연구 개발을 보며 고통분담과 국가 발전에 앞서 나갈때 반드시 보상과 영광이 돌아올 것입니다. ­신경제 활성화를 위해 연구인력들이 현장 기술지도에 나서 약 2백50여건의 기술지도가 이뤄졌다고 알고 있습니다.과학기술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려면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재원 인력,산학협동면에서의 구체적인 방안은.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연구실 문을 걸어 잠그고 연구 실험만 열심히하면 그만이란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도 사회를 알고 생산현장과 함께 호흡을 해야합니다.최근 카스라는 체중기 제작회사를 방문 했을때 아주 감명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KIST에서 개발한 감지센서 기술을 이용,숫자로 표시되는 PH미터기및 체중기를 생산하는 회사인데 세계의 체중기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세계특허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무기화학자로 40년간 대학에서 과학교육을 하며 산학협동연구에도 특별한 열의를 갖고 있으시리라 보는데. ▲우리는 인력이 부족합니다.화학분야만 보아도 고분자화학의 전도성 고분자를 연구 할수 있는 사람은 전국에 10명도 채안된다.적은 인력들이 학교,연구소 기업등에 각기 흩어져 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을 긁어모으고 연구하는 서클을 만들어 나가려합니다.이를 위해 협동연구 촉진법을 다음번 국회에서 제정하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무임승차를 한때가 있는가 하면 저임승차로 바뀌었다가 최근에는 동임승차도 거부당하는 형편이 되고 있습니다.돈을 주고도 기술을 살수 없는등 선진국들의 과학기술 보호장벽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이 장벽을 극복할 복안은. ○브레인풀제도 운영 ▲앞으로의 3년간이 우리나라에 중요한 시기가 됩니다.중국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가 지금의 발전추세로라면 곧 우리를 따라 잡을 것으로 보입니다.그러므로 이들과의 격차를 벌려놓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합니다.이를위해 해외 과학자 활용촉진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경제사회 발전5개년계획을 추진하려면 이학,공학,농수산계열등 전분야에 걸쳐 약6천3백여명의 석박사가 부족합니다.해외교포등 우리 두뇌가 약4만명정도 됩니다.우선 이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국내에서 필요한 기술을 가진 기업들과 연결시켜 활용토록 하는 것입니다.한국과학기술 단체총연합회와 재외과협을 창구로 해서 추진하고 산업기술 진흥협회와도 연결해 브레인풀제도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자꾸 미뤄지고 있는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문제는 언제쯤 해결될 것인지요. ▲방사성계기물 처분장 문제는 국가적 역량을 총집결해서 해결해야합니다.지금까지 추진이 안되었던 이유는 정부와 국민들간에 서로 신뢰성이 없었던 때문입니다.정부와 국민사이의 신뢰성 회복이 급선무로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이 원자폭탄과 같은 것이 아니란 것을 알리고 우리가 자원으로 쓸수 있는 것이란 것을 알려주어야합니다.서두르거나 밀실에서 추진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폐기물 관리부지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지역주민 지원촉진법을 제정,선정된 지역에 혜택을 주고 그 지역을 문화도시로 앞서 가꿔 나갈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과학시민으로 키워 ­서울신문사는 과학교육의 해및 책의해를 맞아 잠재성 가능성이 큰 우리 어린이들을 과학시민으로 키우기 위해 초중교에 과학책 보내기운동을 벌입니다.장관께서도 관심을 많이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호기심과 지적 충족욕구가 왕성한 청소년기에 책은 그사람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줍니다.어른들이 흥미위주의 TV나 오락게임등에 열중하는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자연과학의 세계를 담고 있는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장래를 준비하는 일로 대단히 중요합니다.오늘의 어린이들이 이나라의 주인공이 되었을때 그들의 과학실력이 세계를 주도할만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21세기 세계 1등국민이 될수 있습니다.이미 몇차례의 조사에서 남자어린이들의 희망 직업이 과학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런 어린이들이 중학교에 가면 흥미를 잃기 시작하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완전히 외면합니다.고등학교에서 문과반 이과반으로 나눠 공부하는 것부터 잘못돼 있다고 생각합니다.과학을 도구과목으로 생각하는데서 벗어나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소양적인 교육」,「전인교육적인 과학」으로 자리 잡아야합니다.
  • “21세기 최대 부가가치 창출업종”/영상산업에 대기업 경쟁적참여

    ◎삼성·현대 등 극장 임대·건설추진/음향·영상 재생용 SW등 도 개발/전문가들 “투자 더하고 중기와 업무분화·보완필요” 대기업들의 영상산업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기업들 대부분이 영화,비디오테이프,레이저 디스크(LD)등 영상관련 소프트웨어 제작에 적극 나서는가 하면 일부 대기업은 극장업에까지 진출했다.최근에는 음향과 영상을 동시에 재생할 수 있는 콤팩트 디스크 그래픽(CDG),CD-ROM(롬),CD-I(인터액티브),CD비전등을 활발하게 개발하고 있다. 삼성은 스타맥스·제일기획·드림박스·삼성전자 광소프트사업팀,두산은 이스턴킹,선경은 SKC·서륭,현대는 서울프로덕션,럭키금성은 엘지미디어와 미디아트,대우는 동우등의 공식·비공식의 자회사를 통해 영상소프트웨어를 제작하거나 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대기업이 이처럼 적극성을 띠는 것은 영화관련산업이 21세기 최대의 부가가치산업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전 세계의 안방을 시장으로 하는 영상문화산업은 특정 국가를 「문화식민지」로 만들수 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산업과 경제의 패권까지 좌우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더욱이 세계 각국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여가를 즐길수 있는 오락물에 대한 수요는 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예컨대 좋은 영화가 한편 만들어지면 우선 전세계 극장에서 상영되게 된다.이어 그 영화는 유료 유선방송채널(CATV),비디오테이프,일반 TV방송,유선기본채널등의 시장을 거치면서 엄청난 수익과 함께 고용을 창출하게 된다.또한 우리나라에서도 95년초부터 종합유선방송이 방영될 예정이어서 국내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는 점도 대기업들의 참여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대기업이 극장을 인수하는 것도 단기적으로는 영화등 소프트웨어를 상영할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영상관련 하드웨어의 안정적인 판매망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삼성은 현재 휴관중인 명보극장과 임대계약을 체결했고,현대도 서울 도심의 극장을 임대하거나 변두리에 신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럭키금성도 서울도심에 임대계약을 추진하고 있고,선경은 서대문 르네상스 극장 건립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두산은 종로5가에 최근 완공한 연강홀에서 7월부터 영화를 상영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영상업계 일각에서는 우리 대기업들이 우리 경제의 사활이 걸리다시피한 영상소프트웨어산업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의견도 제시한다.여기에는 현재와 같은 정도의 인식과 투자규모로는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의 하드웨어산업마저 미국 일본등 선진외국의 하청업체나 부품제공업체로 전락하고 말것이라는 우려가 깔려있다.소프트웨어없이는 하드웨어를 판매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더욱이 앞으로는 소프트웨어시장이 하드웨어시장에 비해 그 규모가 몇배이상 커질 전망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이에대해 『대기업들은 보다 과감한 투자를 해야하고,중소기업은 시대상황에 맞는 창조적인 기획이라든가 인재의 육성,또는 단순 복제업을 맡는등 업무의 분화와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 청와대 국무회의 배경과 이모저모

    ◎“내각의 불안한 행보에 질책과 격려”/내각이 개혁 못따라… 분위기쇄신 필요/“국민지지 꼭 보답해야” 팀웍 거듭 강조 ○분발·노력 거듭 강조 ○…김영삼대통령은 17일 아침 황인성국무총리를 포함한 전국무위원을 청와대로 불러 아침을 함께 하며 최근 내각이 보여주고 있는 「불안한 행진」을 질책하면서 팀웍과 분발을 강조. 김대통령은 이자리에서 『이제 새정부 출범 80여일이 지났으니 업무가 파악됐을 것으로 본다』고 운을 떼고는 『일부에서 업무파악이 덜 된 것처럼 비치고 있는 것은 유감이며,완벽할 수 없지만 품위를 지키고 권위를 세워야 할 것』이라고 일침.김대통령은 이어 『국민 90%이상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음을 고맙게 생각해야한다』면서 『국민지지를 온몸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보답해야한다』고 강조. 김대통령은 『국무위원과 수석전원은 나의 최고 참모이자 각분야의 최고 책임자』라고 전제하고 『여러분 생각과 결단에 따라 나라운명이 좌우된다』고 참석자들의 분발과 노력을 거듭 강조. ○문제각료 주의환기 ○…이날 청와대의 국무위원 조찬간담회는 일부 문제가 노출된 국무위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나아가서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신임을 보냄으로써 내각의 분위기를 일신시키는데 목적이 있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 내각은 출범이후 청와대의 개혁의지를 앞질러 실천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어왔다는게 민자당과 청와대의 분석.이에 따라 최근에는 부분개각의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해 청와대로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내각을 한번 추스릴 필요가 있었던 것. 그동안 황총리는 12·12국회답변을 둘러싸고,오병문 교육장관은 대입부정합격자 학부모명단 발표과정에서,또 황산성 환경처장관은 잦은 눈물과 장관스럽지 못한 언행으로 청와대를 불편하게 해왔다.여기다 몇몇 여성장관과 학자출신 장관들마저 부처의 관료조직을 장악하지 못해 청와대를 도와주기는 커녕 청와대가 내각의 뒷바라지에 바빴던 형편.모장관의 경우 매일매일 청와대측에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관련해 자신을 변호하는 팩시를 보내와 이자료의 처리를 둘러싸고 관계자들이 고심할 정도라는 후문이다.청와대 관계자들은 이같은 내각의 잦은 실수를 대략 3가지 이유로 파악하고 있다. 하나는 내각전체가 아직 김대통령의 개혁강도와 방향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또하나는 장관 개개인이 업무에 대해 지나치게 문외한이거나 부처장악능력이 없는 탓을 들고 있다.마지막으로는 개혁자체가 못마땅한 관료조직이 직간접으로 장관들에게 저항하고 있음도 한 이유로 파악되고 있다.이권부서에서 이런 관료들의 저항이 심한 것으로 청와대는 파악하고 있다. ○“이기주의 벗어나야” ○…이런사정을 감안한듯 이날 조찬간담회는 다소간 긴장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참석자들이 설명. 품위를 지킬 것을 당부받은 황장관은 『그동안 저와 언론사이에 문제가 약간 있었다』고 시인.황총리는 『여러가지 불민한 탓으로 내각이 심려를 끼쳐드린 것을 다시한번 사과드린다』고 말하고 『오늘 조찬의 뜻을 헤아려 우리스스로 늘 부족함을 느끼면서 배전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 김대통령은 이날 특히 팀웍을 강조했는데 경제계획은 이경식부총리를 중심으로,내각은 황총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달라고 당부.김대통령은 『각부처가 이기주의를 벗어나 신한국창조에 나서면 우리나라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하고 『각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국민에게 보답하는 것』이라고 강조. 김대통령은 이자리에서 광주특별담화와 관련,『우리는 오늘에 살고 있지만 10∼20년뒤의 미래를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현재의 감정만으로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그러기에 잊지는 말되 용서하자고 했다』고 소개.김대통령은 또 『광주시민 84%가 우리의 변화와 개혁을 지지하고 있다』면서 『5·18 기념일을 전후해 자유로운 시위문화가 정착되도록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고 보호하도록 하라』고 내각에 당부.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날 행사가 대통령이 현내각에 대해 다시 분발하도록 촉구한 것과 함께 신임을 확인한 것이기 때문에 내각의 분위기가 한결 새로워 지지 않겠느냐고 기대.또한 내각에 대한 대통령의 재신임이 확인된 만큼 관료조직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
  • 인 간다라미술품 6백점발견/일 교토대팀,펀잡주립박물관에 보존 확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식민지로부터 분리·독립하는 과정에서 행방불명됐던 고대 간다라의 미술품 약 6백여점이 상세한 작품목록과 함께 인도 북서부의 펀잡주립박물관에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간다라 불교유적을 연구하는 일본 교토대학의 서천행치교수팀이 지난해 10월 파키스탄의 한 미술연구가로부터 『찬디가르 펀잡주립박물관에 대량의 작품이 보관돼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듣고 그동안 추적작업을 벌인 결과,최근 확인된 것. 이번 조사팀의 확인으로 그동안 인도인들에게조차 무관심속에 방치돼 왔던 간다라 미술품들은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독립된지 거의 반세기만에 빛을 보게 됐다. 간다라 미술품을 전공하고 있는 해외미술연구가들은 이를 전해듣고 『이는 곧 간다라 미술의 재발견을 의미한다』며 들떠있다. 이 박물관의 수장품들은 불타의 입상과 좌상,미륵보살상,그리고 불타가 가르침을 설파하는 모습을 묘사한 부조등 다양한 작품들인데 특히 그동안 국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들이라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게다가 이번에 발견된 수장품들은 대부분이 간다라 미술의 최전성기였던 2,3세기의 작품들로 간다라 특유의 흑회색 또는 회색의 편암을 사용한 석조작품들. 그동안 간다라 미술품이 매몰된채 방치됐던 것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될 당시 파키스탄의 라호르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작품 가운데 약 40%정도가 인도측에 양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당국이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 인도미술전문가들도 『그당시 인도측에 넘겨진 약 6백12점의 미술품들이 인도의 펀잡주내를 전전하다 1968년에 완성된 찬디가르박물관으로 이전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아무도 챙기지 않아 이같은 일이 벌어진 것같다』고 씁쓸해 했다. 이들은 또 『현재 캘커타미술관만해도 간다라 미술품 1천6백여점이 수장돼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문가가 많지 않아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번에 발견된 작품들이 비록 식민시대의 고고자료에 게재돼 있었던 작품이긴 하지만 그후 소식이알려지지 않았던 간다라 미술의 수작들이어서 간다라 미술의 재평가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미 영화 평균제작비 2백억원/스탤론 주연의「절벽타기」는 584억원

    ◎여름이 성수기… 연수의 40% 올려 흥행성 높은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비용은 얼마나 될까? 근착 외신은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여름 성수기를 겨냥해 촬영하고 있는 주요 영화의 제작비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 가격은 많아야 10억원대 수준인 국내영화 제작비용의 20∼30배가 넘는 수백억원대가 보통이다. 미국영화의 성수기가 한여름인 것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주고객인 청소년층이 방학을 맞기 때문이다. 그들은 연간 영화수입의 40%정도를 여름방학기간을 전후해 거둬들이고 있다.그러나 올해는 주요영화의 촬영일정에 무리가 있어 방학시즌 시작에 맞춰 개봉하는데 따른 졸속제작으로 흥행실패가 우려된다는 소식이다. 어쨌거나 외신이 전하는 제작비용은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절벽타기」(원명 Cliffhanger)가 7백30만달러,한화로 환산하면 약5백84억원이나 되고 닌텐도 비디오게임을 기초로 제작되고있는 「슈퍼 마리오 브로스」는 3백92억원이다.또 공룡의 세계를 그린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주라기 공원」은 4백80억원,아놀드 슈월츠제네거의 「마지막 액션 영웅」은 5백20억원,「강한 자」(원명 The Firm)는 3백60억원이나 된다.비단 이들 영화가 아니더라도 할리우드의 영화 한편의 평균 제작비는 2백억원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영화는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거의 동시에 개봉된다.어떤 영화는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먼저 개봉이 되기도 한다.이는 미국 주요 영화사들이 국내 수입업자를 거치지 않고 직배하고 있기 때문이다.직배영화가 아니더라도 상품성만 있으면 우리나라 수입업자들이 촬영단계에서부터 계약을 맺어 촬영이 끝나는대로 곧바로 들여오는 것이 현실이다. 그 엄청난 미국영화제작비에 비하면 우리나라 수준은 「코끼리 비스켓」에 지나지 않는다.방화 가운데 제작비용을 비교적 많이 들인 것으로 알려진 「하얀전쟁」이 20억원 정도이다.또 「롱런」에 들어간 「서편제」는 7억원,「웨스턴 애비뉴」는 12억원 안팎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대종상 영화제를 휩쓴 이들 영화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영화계에서는 방화 한편의 평균 제작비를 5억원 안팎으로 추산하고 있다. 물론 미국과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전세계가 그들의 시장인 미국은 대작(대작)위주이지만 할리우드와 홍콩등의 외화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는 국내용을 주로 제작하고 있다.그러나 제작비를 적게 들이다보니 상품성이 떨어지는 영화들이 양산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따라서 우리도 이제는 제작비를 좀더 들여 감동적이면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영화계 안팎의 중론이다.현재와 같은 상황 그대로 종합유선방송(CATV)시대,위성방송시대를 맞게 되면 외국의 영상물이 무차별적으로 들어와 「문화식민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한반도인구 세계 14위/올해 남북한 합쳐 6,720만명 돌파

    ◎중국 11억7천여만명 “실두 고수” 올해 중반 남한 인구는 4천4백60만명,북한인구는 2천2백6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돼 남북한을 합칠 경우 한반도는 베트남에 이어 세계 14위의 인구대국이라는 통계가 발표됐다.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있는 인구조사기관인 인구통계국이 10일 발간한 93년도 세계인구통계표에 따르면 또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71세로 연장됐으며 남자 평균수명이 67세인데 비해 여자는 75세로 남녀 평균수명 차가 벌어지고 있다. 북한주민들의 평균수명은 남한보다 두살이 떨어지는 69세(남자 66세,여자 69세)로 나타났다. 최근의 인구성장 추세를 기준으로 추정한 올해 중반 인구수에서 중국이 11억7천만명으로 여전히 1위를 고수했으며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러시아 일본 등이 인구대국 상위에 랭크됐다. 이 통계는 현재 인구가 두배로 되는 시기를 남한은 71년후로,북한은 37년후로 잡았으며 2010년 남한인구는 5천1백70만,북한은 2천8백50만 그리고 2025년 남한은 5천4백80만,북한은 3천2백10만명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인구밀도에 있어 한국은 식민지,부속령등을 통틀어 계산할 때 세계 11위에 랭크됐으나 식민지등을 제외할 경우 단연 세계 상위를 차지했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7·끝)

    ◎지령회복의 정당성/서울신문기원은 1904년 7월18일/「항일선봉」·「친일곡필」 모두 인정해야 정직/최고의 역사… 오늘로 28764호인셈/45년 혁신속간땐 지령 계승… 59년 41년간의 족적 삭제 서울신문은 조국광복과 함께 매일신보의 지령을 계승하여 속간되었다.또한 일제시대 통감부 기관지이던 매일신보는 한말의 구국지이자 민족대변지이던 대한매일신보의 지령을 계승해 발행된 신문이다.따라서 서울신문은 그 뿌리를 한말 최대의 구국민족지이던 대한매일신보에 두고있는 셈이다. 서울신문의 뿌리 대한매일신보(이하 신보)는 항일언론의 최선봉에서 국권회복을 위해 가장 과감하게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한 대표적인 신문이었다. 이 신문은 런던의 크로니클 통신기자였던 영국인 배설(ErnestThomasBethell)과 한말 언론을 주도했던 논객겸 우국지사 양기탁등 민족진영의 인사들이 합세해 창간했다. 창간 날짜는 1904년 7월18일이다. ○일 국권위협에 맞서 이 무렵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이 증대되어 고문정치를 통한 외교 및 내정을 간섭하는등국운이 풍전등화 상태에 놓이던 시기였다.신보는 이러한 암울한 시기에 창간되어 통감부의 기관지로 매수되기까지 일제의 온갖 회유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국권수호운동에 앞장서온 것이다. 신보의 국권수호를 위한 언론구국운동은 동시대 다른 신문과는 현저히 다를만큼 특징적이었다. 창간호부터 항일논조로 일관,갖가지 폭로 고발기사로 사라져 가는 민족혼을 일깨우는데 횃불을 당겨온 것이다.일제의 황무지개관권 요구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한반도 침략음모를 널리 알린 일이며 황성신문의 정간 및 장지연의 구속사건 대서특필,일제의 날조와 허위를 폭로한 고종의 밀서사진 전재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뿐만이 아니다.민족지들의 방향을 주도하는 일방 친일지와 친일파,매국노와 친일매국단체에 대해서도 준엄하고 통렬한 규탄을 서슴지 않았다. 신보의 언론구국운동은 이러한 비판 및 고발에 그치지 않고 민족의 애국투쟁정신을 고취하는데에도 매우 적극적 이었다.고종량위반대·정미7조약반대의 시위운동고취를 비롯해 장인환,전명운의 친일미국인 스티븐스(통감부 고문)처단과 안중근의 이등박문처단을 애국의사의 애국투쟁으로 보도,민족의 분발과 투쟁운동의 치성을 고취한 것이다. ○국채보상운동 주도 또 백년대계의 교육구국운동이며 의병운동,그리고 국권회복을위한 애국계몽운동에까지 나서 선각민족언론으로서의 소임을 적극 전개한 점도 빼놓을수 없다.특히 애국계몽운동의 하나인 국채보상운동은 직접적인 대국민캠페인을 통한 거족적 국민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신보의 언론구국정신을 한눈에 가늠케 하는 것이다. 신보가 이처럼 과감한 구국운동을 전개할수 있었던 것은 이 신문의 발행인이 외국인이어서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은때문이다.그러나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장도빈등 애국민족투사들의 구국정신이 그같은 논조와 운동을 주도했다는데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족진영의 언론보루로서 국권수호운동을 펼치던 신보는 그러나 일제 통감부의 집요한 탄압끝에 배설의 상해옥살이와 양기탁의 구속으로 풀이 꺾이기 시작했다.그리고 영·일간의 외교문제를 꺼리던 주한영국총영사 헨리보나르와 통감부의 회유 및 압력을 받아 끝내 통감부에 매각되기에 이른다.국권회복의 상징적 존재였던 대한매일신보가 마침내 종언을 고한 것이다. 이때의 지령은 제1461호(국한문판)였다.그뒤 대한매일신보는 한일합병 이틋날인 1910년 8월30일부터 제호 가운데 국가를 상징했던 「대한」의 두자를 잘렸다.결국 「대한」을 빼앗겨버린 「매일신보」는 일제의 의도대로 통감부의 기관지로 변신된 것이다.그러면서도 「매일신보」는 「대한매일신보」의 국한문판 종간호인 제1461호(1910년 8월28일)의 지령을 계승,제1462호부터 국한문판을 발간했다. 이 날짜의 사설제목 「동화의 주의」가 상징하듯 얼굴을 바꾼 매일신보(이하 매신)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정책의 첨병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당초 매신은 총독부 일문 기관지인 경성일보에 흡수 통합,경일편집국의 한부서로서 운영되었으며 철저하게 일제의 입장에서 만들어져 편집방향은 「내선일체」를 고수했다.이를위해 총독정치의 선전과 홍보가 위주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합리화하고 식민통치의 모순을 은폐하는 한편 일제에의 복종과 충성을 강요한 것이다. 민족말살을 호도,한국과 일본을 순치의 관계로 묶어서 주장한 민족동화의 논리는 물론 식민통치의 기반구축을 위해 사회환경의 일본식 개량 또한 부추겼다.또 식민경제수탈을 위해 산업의 개량과 일본경제체제로의 예속화,그리고 한국의 자주성 및 전통문화를 단절시키기위한 문화말살에도 앞장섰다.이밖에도 학교와 사회,가정에 이르기까지 「황국신민화」를 위한 식민지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독립운동 탄압에 가세하는등 식민논리로 일관했다. ○해방조선 대변자임 매신은 이처럼 각 방면에 걸쳐 일제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이를 선전하는등 총독부 기관지로서의 대변역활을 수행한 것이다. 이와같은 일제옹호논조는 매신이 기구를 확대해 경성일보에서 분리,1938년 4월16일 독립언론기관으로서 제호를 매일 「신」보로 개제해 출발한(지령은 매신을 계승)이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일제는 패망했다.그리고 매신은 지난날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해방조선의 대변기관」으로서 「서울신문」으로 거듭 나기위해 대대적인 개편수술을 받게된 것이다.서울신문으로의 개편작업이 본격화하기는 1945년 11월10일 미군정청이 매신에 정간명령을 내리면서였다. 이날이 바로 치욕의 매신이 종간된 날로서 지령은 제13737호로 돼있다.그뒤 새로운 간부진용이 구성돼 매신의 시설과 사옥은 물론 6백여 사원을 그대로 흡수,「서울신문」제호의 혁신호를 이땅에 선보였다.초대 사장은 지조 높은 선각언론인이자 애국지사인 위창 오세창이었다. 이날이 1945년 11월22일(발행날짜는 11월23일)이었으며 지령은 매신을 그대로 계승해 제13738호로 기록되어 있다.이 발행호수는 서울신문이 매일신(신)보의 발행기록 12276호와 그 이전 대한매일신보의 발행기록 1461호를 합친 숫자를 기준삼아 지령을 계산한데 따른 것이다.이는 매일신(신)보가 대한매일신보의 지령을 계승한데 따른 자연스런 결과였다.이에따라 서울신문은 이 두신문의 종합지령을 승계한 제13738호로 기록하게 된것이다.서울신문이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매일신보의 계보위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속간된 것이다. 이 지령은 1959년 3월22일까지 그대로 계승,제18214호를 기록하기에 이른다.그러나 서울신문은 지금 이 지령을 쓰지않고 있다.59년 3월23일 당시 사장이던 고 손도심이 근대 신문사에 대한 자체적인 사적평가를 진행하고 회사전체의 의견을 종합,그동안 사용해오던 구지령을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이에따라 1945년 11월23일자로 된 속간호를 제1호로 기산,이날짜(1959년 3월23일)의 지령을 제4477호로 쓰게됐다 ○속간호 1호로 기산 서울신문은 이로써 저 멀리 대한매일신보로부터 이어온 지령 13737호와 41년의 역사를 스스로 잘라버렸다.그러나 이는 서울신문 역사의 기원을 그르치는 사실왜곡에 다름 아니었다.근대사에 각기 공과 과의 지울수 없는 족적을 남긴 두 신문과 서울신문의 맥락은 앞에서 보듯 연면히 이어져온 때문이다. 역사는 정직해야 한다.서울신문이 스스로 도려낸 구지령을 되찾아 바로 잡는 것은 역사에 정직하기 위한 길이다.이는 서울신문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언론사의 재정립이라는 면에서도 그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따라서 서울신문 역사의 기원은 1904년 7월18일 제1호로 창간된 대한매일신보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이날을 기준으로 역산하면 서울신문의 역사는 현존하는 한국의 신문중 가장 오래인 89년이 된다.그리고 잘라버린 지령 13737호를 다시 이으면 오늘 1993년 5월5일자로 제28764호가 되는 것이다
  • 에리트리아 24일 독립/강국 개입없이 자력쟁취

    ◎인구 300만… 70%가 농업 3일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승인을 얻어낸 에리트리아는 지난달 유엔감시하에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주민 99.8%가 독립을 지지,자존의 길을 걷게 됐다. 62년 에티오피아에 강제합병된 이후 이사이아스 에리트리아인민해방전선(EPLF)서기장의 지휘 아래 피나는 독립투쟁을 전개,지난 91년 5월 수도 아스마라를 탈환하면서 사실상의 독립국가로 발돋움했다. 이번의 에리트리아 독립은 터키·이집트·이탈리아·에티오피아 통치하의 4백년 식민지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이웃 소말리아나 유고내전에 비추어 볼때 소수민족이 가야할 정도를 제시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차대전후 강대국의 개입없이 소수민족이 평화적으로 독립한 예는 에리트리아가 처음.인구 3백만,주민의 7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1백50달러. 오는 24일 정식으로 독립을 선포할 예정이며 첫 정부수반은 이사이아스 EPLF서기장의 추대가 확실시된다.
  • 「늘푸른…」/「먼동」/장편 역사소설 서점가서 “불티”

    ◎일제시대 배경… 항일정신 담은 교양물/분단작가 대표작가 김원일·홍성원씨 나란히 출간 김원일·홍성원 두 중견작가가 필력을 기울인 장편역사소설 「늘푸른 소나무」와 「먼동」이 최근 나란히 단행본으로 완간됐다. 이들 두 작품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김원일의 「늘 푸른 소나무」는 9권,홍성원의 「먼동」은 6권짜리 분량의 대작이다.두 작품 모두 신문연재소설의 개작판이며,같은 출판사(문학과 지성사)에서 비슷한 시기에 완간됐다.제목이 주는 상징성 또한 두 작품 공히 순우리말 조어를 통한 강한 시사성을 풍긴다.홍씨는 1937년생 경남 합천출신이며 김씨 역시 1942년 경남 진영에서 태어난 5년 터울의 동년배이기도 하다. 특히 「겨울골짜기」「노을」「불의 제전」「마당깊은 집」(김원일),「남과 북」「기관차와 송아지」「디데이의 병촌」「흔들리는 땅」(홍성원)등 6·25전쟁을 소설의 주요 테마로 천착해온 우리 분단문학을 대표하는 두 작가가 마치 손을 맞춘듯이 시선을 해방이전 일제식민지시대로옮겨 쓴 교양역사소설이란 점도 각별하다.이들 작가의 작품은 현재 서점가에서도 경쟁적으로 팔리고 있다. 「늘 푸른 소나무」는 1910∼20년대 중반까지의 일제강점기전반부를,「먼동」의 경우 구한말에서 한일합방을 거쳐 3·1운동이후에 이르는 역사적 격동기를 각각 시대배경으로 다루고 있다.「소설적 꺼리」가 산재한 중복되는 시기를 두 작가가 나란히 배경으로 선택한 셈이다. 줄거리면에서도 두 작품 모두 비극적인 우리 근대사의 새벽에 피어난 항일정신에 창작의 뿌리를 두고 있다.「먼동」이 동트기 직전에 더 어두운 새벽을 헤치고 살아가는 양반·중인·하층민등 3일가가 출신배경에 따라 운명의 반전을 거듭하는 가족사를,「늘푸른 소나무」의 경우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한 젊은이가 피나는 고행을 통해 자아를 형성한뒤 어둠앞에서 초연히 자기 희생으로 삶을 마감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 독립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의 숨겨진 개인사와 의식을 찾아 내는데 역점을 둔 점도 비슷하다.「먼동」이 의병전쟁에 참가한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과그들의 3세들이 한결같이 3·1만세운동에 연루되는 민중의 삶을 모델로 제시했다면 「늘푸른 소나무」는 1910년대 대한광복회의 활동등 역사적 사실과 맞물리는 국권회복운동을 내세워 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김원일씨는 『시대적 변혁기에 주인공의 정신적 성장을 다룬 교양소설쓰기를 소설가가 되기 이전인 스물살무렵부터 꿈꾸어 왔다』면서 이 소설이 그동안 꾸어온 문학적 지향점의 실현이라고 말했다.홍성원씨 역시 『지난77년 「남과 북」창작을 끝낸이후 역사소설로 방향을 바꾸게 됐다.작가가 해야 할 일은 역사가들이 써놓은 역사를 상상력을 동원해서 문학적으로 읽는 법을 제시하는 것뿐임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 반민족연 김봉우소장 「친일파 99인」 3권 완간(인터뷰)

    ◎“친일인사에 대한 종합 심판서죠”/총독부·경찰서 자료 토대… 정확도 자신 『역사상 식민지 치하에서 벗어난뒤 반역자를 처단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이처럼 사회 전반에 기강이 서지 않는 상황에서 이 책은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친일파에 대한 심판서라고 할수 있습니다』 일제하 분야별 주요 친일인사에 대한 친일이력서라고 할수 있는 「친일파 99인」 전3권(돌베게간)을 최근 완간한 반민족문제연구소 김봉우소장(46)은 『친일 인사에 대한 최초의 심판서가 이제서야 처음 나온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책은 분명 민족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연구 결과입니다.그러나 자기 부정성에 대한 연구는 자기 사랑과 자기 긍정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당연한 욕구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친일파 99인」은 제목 그대로 일제하의 각계 인사 99명에 대한 친일 기록이다.정치와 경제,사회·문화 등 3권으로 묶여진 이 책에는 이완용과 송병준,박영효에서 부터 이능화,김활란,황신덕,모윤숙,현제명에 이르기까지 각계인사들의 친일기록이 담겨있다.이 책은 또 박흥식과 김기창 등 아직 생존하고 있는 인사들의 친일기록까지 싣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연구소의 목표는 사실 「친일 인명사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2만5천명에 달하는 친일인사의 기록을 사전으로 남긴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지요.그래서 사전을 만들기 위한 예비작업을 겸해 사전을 만드는데 대한 국민적 동의를 구한다는 목적에서 이 책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반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임종국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지난 19 91년2월 발족됐다.「친일 인명사전」역시 임선생이 당초 소규모로 구상했던 것을 연구소가 발족된뒤 의욕적으로 범위를 크게 넓힌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을 위해 처음에는 친일인사 2천명을 추렸지요.다시 2백명을 고른뒤 다시 종합적인 점검을 거쳐 마지막으로 각 분야를 대표하는 친일인사 99명을 골라냈습니다.99명을 골랐다는데 대해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미완의 작업을 뜻한다고나 할까요.1백명을 골랐다면 친일인사선별작업이 어느 정도 완료됐다는 느낌을 줄수 있으니까요』 이 책이 발간된뒤 책에 실린사람들의 후손으로 부터 어느 정도의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연구소측이 책의 내용의 정확도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생존하고 있는 인사들로 부터는 아무런 반발이 없었다는데 있다고 했다.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내용은 개인적인 진술이나 소문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조선총독부나 경찰서 등 관청에서 발간한 자료를 기초로 했기 때문이다. 반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책의 완간에 이어 이미 「친일 인명사전」과 「친일파 총서」를 펴내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이 작업은 과거에 있었던 친일인사 규명작업에 대한 공포와 가능성에 대한 회의,시간적으로 너무 늦지않았느냐는 역사인식에 대한 무지를 극복해 나가기 위한 것입니다.그래야 민족의 자주성이 회복되고 주체성도 비로소 세워지지 않겠습니까』 김소장은 「친일파 99인」이 많이 팔려 앞으로의 작업에 국민적 격려가 되고 경제적으로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 웃었다.
  • “보선민의는 개혁선택”/김 대통령,제주도 순방서 강조

    ◎“국민지지 확고… 중단없이 실천/당장 아프더라도 한국병 꼭 치유” 김영삼대통령은 24일 제주도를 방문,『경기도 광명시등 3개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 결과는 변화와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라고 평가,중단없는 개혁을 거듭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지역 각계 인사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3개지역 보선에서 나타난 민의는 변화와 개혁이라는 이 시대의 움직일 수 없는 큰 목표를 향해 가는 우리를 지지하고 선택해 준것』이라면서 『결코 잠시 쉬거나 휴식을 취하지 않고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해 꾸준히 변화와 개혁을 실천해 갈것』이라고 다짐했다. 김대통령은 우근민도지사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뒤 『신한국 건설을 위한 변화와 개혁의 추진에 따라 「한국병」의 정체가 하나씩 밝혀지고 있으며 수십년간 쌓여온 한국병의 증상이 대단히 심각하다』면서 『당장 아프고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이를 덮어둔다면 나라전체가 썩어버리게 될 것이므로 성역없는 사정활동과 법·제도,의식의 개혁을 통해 중단없는 개혁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변화와 개혁에는 우리 모두의 동참과 고통분담을 위한 엄정하고도 새로운 각오가 필요하다』면서 『국민이 변화를 바라고 있음을 역사의 순리로 알고 받아들여야 하며 여기서 잘못 나갈때 불행한 개인이 될수도 있고 국가전체가 잘못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51)

    ◎길림시절:10/「반제청년동맹」의 날조/28년에 결성된 세계반제동맹/“27년 산하청년단체 조직” 주장/31년의 서울상해파공적 가로채 김일성은 1927년 1월이 아니라 이 해 8월에 길림에 왔다.그 증거는 회고록의 다음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길림에 왔을 때 「ㅌ·ㄷ」의 몇몇 성원들은 화전에서 약속한대로 이 도시에 와서 문광중학교를 비롯한 시내 학교들과 기관구·선창 등에 적을 두고 있었다』 ○“「ㅌ·ㄷ」서 개편” 기록 이 이외에 같은 8월에 화전의 「ㅌ·ㄷ」성원들이 만주 각 지방의 조선인 거주지역으로 떠났고 그 중에는 독립군이 된 사람도 있었다고도 적고 있다. ㅌ·ㄷ성원이란 김일성이 68년 이후 제 멋대로 과거의 화성의숙생들에게 붙인 이름이다.화성의숙은 회고록에서는 2년제라든가 학생수가 40명 이상이라든가 하고 있지만 일본기록에는 그 이수 기간이 1년반이며 학생수도 30명으로 되어 있다.그 개학도 26년 3월로 되어 있으므로 이 때 입학한 학생이 졸업한다면 그것은 27년8월이 된다.김일성이 심양에서 길림으로왔을때 중퇴하지 않고 졸업한 나머지 화성의숙생들은 길림을 비롯한 만주 각지의 정의부 관할구역으로 배치되어 갔다.그들 속에는 문광중학교에 들어간 학생도 있었다.김일성은 8월달에 길림에서 화성의숙 졸업생들과 만난 것이다. 김일성이 길림에서 화성의숙의 졸업생들과 만난 일은 이들을 「ㅌ·ㄷ」성원으로 만들어 버린 그에게 경력변조 작업을 한층 더 본격화하는 발판을 제공하게 되었다.예를 들어 83년의 김일성 연표는 그가 1927년8월27일에 「ㅌ·ㄷ」을 반제청년동맹으로 개편한 것으로 하고있다.이 날자 자체는 문제 투성이 이지만 하여간 화성의숙생이 길림에 와서 첫 「동창회」를 열었다면 그 달이 8월 정도로 되는 것은 무리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기작가가 날짜를 매기면서 저지르는 모든 비리에 눈을 감으면 이러한 견해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일 뿐이다.우선 화전현에서 가입시켰다고 주장하는 「ㅌ·ㄷ」성원을 일부러 길림까지 데리고 와서 반제청년동맹 성원으로 삼았다는 말은 지리적으로 보아 무리가 아닐 수 없다.필자는 일찍이 이 점을 신랄하게 지적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그가 길림소년회·유길학우회를 조직한 후 여기에 망라된 회원들을 「ㅌ·ㄷ」에 가입시켰다고 주장하게 되었다.화성의숙 일부 졸업생은 합류한 것으로 처리하여 모순점을 줄인 것이다.물론 우리가 보면 이렇게 해도 「ㅌ·ㄷ」자체가 날조인 이상 「반제청년동맹」도 날조가 아닐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있은 적이 없었던 「김일성의 반제청년동맹」에 대하여 회고록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반제청년동맹은 ㄱ·ㅌ·ㄷ·ㄴ의 구호를 그대로 내세우고 그 강령을 그대로 계승한 반제적이고 대중적인 비합법청년조직이었다.조직의 기본구성은 조선청년이었으나 우리는 반제적 입장이 강한 중국청년들도 거기에 가입시켰다. ○“구호·강령도 계승” 이 조직은 문광중학교·길림제1중학교·길림제5중학교·길림사범학교·길림여자중학교·길림법정대학을 비롯하여 조선학생이 있는 시내의 모든 학교들에 다 들어갔으며 강동·신안둔을 비롯한 길림주변의농촌지역과 유하현·화전현·흥경현 일대에도 뿌리를 박았다.조선청년들이 있는 곳이면 다 퍼졌다.반제청년동맹에서는 얼마후부터 등사판으로 선전용 자료까지 밀어내뜨렸다』 28년에 있었던 코민테른 제6차대회에서는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투쟁과 공산주의자의 임무」란 반제국주의 테제가 나왔고 식민,반식민지의 혁명운동이 많이 토의되었는데 여기에서 대중조직인 반제동맹 결성방침이 결정되었다. 이 6차대회 직후에 조선공산당은 코민테른으로부터 승인을 취소당하였다.이동휘가 그 결정서를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파인 서울상해파의 간부들과 협의하여 곧바로 당재건에 착수하였다.이 파는 29년 초에는 그 본거지를 길림 돈화 지방으로 정하는 것이다. 이해 11월에 일어난 광주학생사건은 그들의 대중적 지반을 확대하는 일인이 되어 30년 1월 상순에는 재만한인반제국주의동맹이 결성 되었다.이 재만한인 반제국주의동맹은 3월17일 전만한인반제국주의대동맹 창립준비회를 개최하였고 이 준비위원회는 맨 먼저 청년반제국주의대동맹을 조직하였다.그리하여 6월3일 재만한인 반제국주의동맹은 청년반제대동맹과 공동으로 길성한인반제국주의동맹 발기회를 발족시키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그후 서울상해파는 코민테른의 1국1당 원칙으로 그 활동을 정지하여야 했다. ○결성 4년 앞당겨 요컨대 전세계의 반제동맹은 28년에 있었던 코민테른 제6차대회 이후에 생겼다.따라서 반제동맹의 청년조직이라는 뜻을 가진 「반제청년동맹」은 27년 8월에는 존재할래야 존재할 수가 없는 조직으로 되기 마련이다.이러한 조작은 서울상해파가 결성한 「청년반제국주의대동맹」의 존재를 알고 있는 김일성만이 할 수가 있다.그는 이 파의 공적을 횡취하고 그 결성연도를 31년부터 무려 4년이나 앞당겨서 「자신의 반제청년동맹」을 조작한 것이다. ①「세기와 더불어 1」206면 ②「불멸의 자욱을 따라 1」234면 ③평전 163면 ④「세기와 더불어 1」247면 ⑤평전 139면 이하
  • 영 여성연극 2편 국내 초연/카릴 처칠작

    ◎「톱걸」 「클라우드 9」 5월26일까지/현대 여성문제 심도있게 조명 사회관심 불러/바탕골 소극장,동숭아트센터서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극작가 카릴 처칠(55)의 대표작 2편이 동시에 국내 연극계에 소개돼 눈길을 끌고있다. 지난 17일부터 서울 바탕골소극장에서 공연중인 서울커넥션 제작·기획의 「TOP GIRLS(부제 철의 여인들)」과 연극집단 뮈토스가 25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CLOUD 9」가 그 작품들. 여성해방론자임을 자처하는 카릴 처칠의 작품이 국내에서 공연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최근 몇년새 우리 문화계전반에 유행처럼 일고 있는 「여성주의문화」보다 한차원 깊게 여성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어서 관심을 끈다. 오는 5월26일까지 공연되는 서울커넥션의 「TOP GIRLS」는 19 82년 런던에서 초연된 뒤 10년동안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고 있는 화제작.사회적 성공을 꿈꾸는 직장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특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하기위해 겪게되는 개인적 시련과 사회적 몰이해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이 연극은 「TOP GIRLS」라는 직업소개소의 부사장으로 승진한 마들렌드가 승진파티를 여는 것으로 시작한다.그런데 초대손님으로는 마들렌드의 친지들이 아닌 역사·문학·예술속에서 빌려온 역사적 전형들이 찾아든다.악마와 싸우는 여인들을 이끄는 부루겔의 그림속에 나오는 여인 그레트,남장을 하고 교황노릇을 했다고 전해지는 조안,영국작가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순종적인 아내 그리셀다등이 그들이다.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 하면서 여성이 성공하려면 가정과 사회생활중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지난해 여성주의연극 「욕탕의 여인들」을 연출했던 김철리씨가 번역과 연출을 했고 이현순 김소숙 이연희등 7명의 여배우들이 출연해 16명의 여인역을 해낸다. 연극집단 「뮈토스」의 「CLOUD 9」은 지난 78년 영국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처칠의 출세작이다.이 작품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시대의 아프리카 식민지와 현재라는 두 시대를 넘나들며 성의 역할과 조건을 다루고 있다.1백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동안 성의 문제를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인식은 겨우 25년에 맞먹는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두작품 모두 사회주의적 시각에서 여성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고 신화와 역사속의 여자들을 현대적 전형으로 끌어내 현대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작가의 개성이 잘 나타나있다. 이 작품들의 국내공연은 여성연극 또는 여성주의연극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교정하고 여성문제의 현주소와 해결책강구가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가하는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추상화가 유경채씨(이세기의 인물탐구:25)

    ◎현상의 내면 꿰뚫는 “심미안 화가”/사물의 정감·생명의 리듬을 독특하게 표출/기하학적 선·색채속 단아한 온기·향내 가득/1회 국전특선작 「폐림지근방」은 “미술입문 교과서” 평가 그의 작품에는 향기와 온기가 얼핏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화면에 반영된 서정적 시상은 극도의 세련미가 일관되어 마치 그의 초기작품인 새로운 「독백」시리즈 앞에 선 느낌이다. 유경채씨의 자연에 대한 애착심과 감흥은 하나의 대상에서 받은 자극과 충동을 작가의 내부에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가 이를 다시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언젠가 그가 말했듯이 『미란 불가사의한 것이며 짧은 인생속에서 미에 대한 정의를 쉽게 내릴수는 없지만 최소한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봐야만 미가 발견되고 성립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맛으로도 귀로도 냄새로 모든 오감으로 미를 바라본다는 투철한 작가 정신속에서 피상의 세계아닌 모든 감각을 동원한 현상의 실상을 꿰뚫어 그 본질에 파고드는 화가이기도 하다. 그의 방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신동 자택2층에 위치한 화실은 언제나 1백호이상 3백호 4백호의 대작과 대결하기 때문에 남보다 배나 크고 채광이 눈부신 편에 속한다.그러나 드넓은 화실에 들어서면 우선 실내가 너무 잘 정돈된 것에 놀란다.그리고 붓이나 팔레트,이젤과 캔버스들이 여기저기 함부로 흐트러져 있지 않은데서 벌써 이 작가의 단아한 단심(단심)을 알게 된다. ○거울과 향 화실 비치 또 화실에는 거울과 향이 비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거울은 그가 들여다보면서 왜 사는지를 자주 자문하고 거울을 통해서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가자신의 마음을 비쳐보는 것이며 향을 피워놓는것은 그가 타놓은 색깔에서 향내같은 것이 났으면 하는 바람과 바로 그런 마음을 모아 온통 붓에다 실을 수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너는 세상과 타협하여 자신도 모르는새 세파에 시달리고 오염되지 않았는가.또는 이정도 이뤘다는 자만으로 자칫 오만에 빠져 나태하지 않은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그 작품속에서 향기를 느끼고 싶은 화가.그래서 그의 화면은 극단적으로 추구해온 창조적 의지가 기하학적인 선과 색채로 엄연하게 도사려있으면서도 긴 명상과 사삭,끝내 온기와 화기,향기를 뿜게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누가보아도 어딘지 화가의 인상을 풍기는 화가는 아니다.베레모를 눌러쓰고 파이프를 물고 머풀러를 휘날리는 40년대식 50년대식의 낭만은 찾아볼 수 없다.오히려 자신의 어느 한구석 머리카락 한올에서 넥타이 하나에 이르기까지 예술가의 티를 풍기게 될것을 철저하게 봉쇄하고 폐쇄하려 든다. 물론 상대방을 들뜨게하는 웅변이나 제스처도 없다.전형적인 대학교수나 고급관리 같은 차림에 다리를 학처럼 꼬고앉아 나직나직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그를 바라 보노라면 이대나 서울대등 그가 몸담았던 대학의 학생들이 「참으로 드라이한,냉철한 화가」라고 한 말이 단박 실감난다.그러나 예술을 추구하는 정신과 집념,번뜩이는 이성과 실천의지는 그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스승이며 이 시대에 얼마나 소중한 화가인가도 일순간에 깨우쳐 준다.그의 주변에 수많은 제자·동료화가들이 범람해 있는 것만 봐도 알수 있다. 류경채씨 처럼 화려한 이력을 지닌 화가도 드물 것이다. 일찍이 1940년 약관 20세의 나이에 선전에 「선」이 입선,49년 창설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영예의 대통령상 수상,관전제1호 최고상 작가라는 것도 특기할만 하지만 81년 제30회로 국전이 폐지되기까지 국전추천·초대작가·운영위원장으로 단 한번도 출품을 거르지않아 그의 그림으로 우리현대미술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있다. ○20세에 「선전」 입선 특히 대통령수상작인 「폐림지 근방」은 현대미술을 말할 때마다 거론되어지는 미술입문 교과서같은 작품의 하나다. 명륜동에서 성북동·인의동에서 필동등을 전전하던 셋방살이 시절,한양대 부근의 한 폐림지를 그린 이 작품은 자연의 구체적이고 외양적인 사실에 앞서 이미 주어진 상황을 「신비의 실존」으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방후 나라전체가 혹독하게 가난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닥치는대로 나무를 베어다가 땔감으로 쓰고 있었고 폐허가 된 산(산)들은 마치 일제식민지하에서 박해받던 민족처럼 황폐하고 피폐했으나 그는 폐허가 된 폐림지에도 영롱한 봄빛이 감돌아 부러진 나뭇가지에 새싹이 트는 듯한 희망을 그려냈고 이 특이한 소재와 발상이 「신선미」와 「최고미」로 받아들여져 화단의 찬사를 한몸에 모았다. 『자연과 인간과의 교감을 간결하고 제약된 색채,형상의 선적 요소를 교차된 리듬으로 고양시키면서 자연의 피상성을 박탈하여 항구적인 요소만을 표상하고 있다』는게 당시의 평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시작된 그의 화풍은 60년대를 앞둔 시점에서 또 한번 커다란 변환을 맞게된다. 서울의 어느 한구석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보다는 서울전체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도심지」를 그릴 무렵 캔버스라는 한정된 공간속에서 그는 수없는 좌절감을 체험했고 그날도 캔버스앞에 속수무책으로 앉아있다가 갑자기 그림을 뭉개고 지우기 시작했다.발작적인 행동이었다.한데 그때 화면속에서 명멸하는 여백과 제3의 공간감을 발견,문득 몸속에서부터 소용돌이치는 환희를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미 주어지고 결정지어진 사물의 현상에 얽매였던 구속과 틀에서 벗어나자 눈앞에서 무한한 세계와 가능성이 순식간에 펼쳐진 것이다. 이것이 그가 구상에서 비구상으로 그러니까 추상세계로 변환하게된 동기이며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할 것인가를 알게된 순간이기도 했다. 형상에 눈뜨고 색채에 눈뜬 그를 향해 평자들은 서슴지않고 「심미안의 화가」란 호칭을 부여했고 그도 혹한의 겨울밤, 앙상한 마른나무 가지에 벌써 봄이 움트고 봄의 화음이 교향락처럼 여울지고 있음을 감동적으로 예견할수 있게 되었다. 『샘이 깊을수록 더욱 청명한 청수를 길러낼 수 있듯이 진짜 가치있는 것은 좀더 깊은 곳에,마음속에 있었다.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남이 한것을 모방하려들 뿐,그러나 자신의 것이 아닌이상 그것은 영원히 생명이 있을수 없다』고 그때의 심정을 그는 후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끊임없는 변모 추구 다시 형과 색채를 소멸시키고 또다시 기하작적인 면과 선을 구성하는가하면 질서의 무한한 지속성을 뛰어 넘어 추상 서정적인 양상을 추구하는등 부단한 시도로 눈부신 변모를 추적해나갔다. 따라서 국전의 아카데미즘 일변도에 안주하지 않고 57년 모던아트의 기치를 내걸고 창작미협을 발족,아세아국제미술전 예술원회원전등 국내외 미술전에 다양한 신작들을 출품,한번 시작한 것은 중간에서 포기하지 않는다는 집념으로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작품활동을 전개해 왔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다하는 개인전을 지난 90년 고희에나 처음 갖게 된것은 화단의 유명한 에피소드로 남게 되었다. 물론 전람회를 열지 않은 것은 그의 고집때문이다.작가는 일생동안 한번정도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작품은 제품이나 공산품은 아니며 작품은 작가의 일생에서 늘 한작품이 이뤄질때마다 단한번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람회는 한번 여는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얘기다. 바로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고희기념전이자 첫개인전에서 이를 기획한 현대화랑대표 박명자씨에게 그는 「이작품에서 저 작품까지는 절대로 내놓지 않는다」 「아무에게나 그림을 팔아선 안된다」 「절대로 비싸게 팔아서도 안된다」는 까다로운 주문을수없이 다짐하여 그때 박명자씨는 『그럼 저보고 어쩌시라는 겁니까』하고 어이없이 웃어버린 예도 있다.그처럼 자신의 작품을 철두철미하게 아끼고 부등켜 안는 작가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가 훌륭한 화실을 가질수 있었던 것은 그의 그림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그러나 이는 50년초부터 그가 펴낸 초·중등 각학년 미술교과서 (교학사간)의 인세로 이루어 졌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화단에서 월전 장우성·오승우화백과 더불어 수준급의 애주가.그러나 그림을 그릴때는 우유한잔도 외면할만큼 식음전폐로 파고든다. 류경채씨는 모름지기 생명의 리듬과 사물의 정감을 서정적 추상회화로 끈질기게 추적해온 우리 화단의 선두주자의 한사람이다.그리고 그의 만년의 작품은 한층 밝고 환한 색면구성으로 「완성」을 향해 무르익어가고 있다.『미술은 자연 모방이 아니라 자연 정화를 의미하는 것이며,스스로를 위한 독자적 세계의 창출』이라는 현대 독일 예술사학자 하인리히 루츨러의 말은 바로 이 노화가의 오늘의 그림세계를 두고 한 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연보 ▲1920년 9월5일(음)황해도 해주 출생 ▲1933년 관리였던 부친 유찬영씨의 전임지를 따라 전주이주 ▲1939년 전주사범 졸업 ▲1943년 일본 동경 녹음사 화학교 졸업 ▲1946∼49년 경기사범(현 서울교대)교사 ▲1951년 초중등 각학년용 미술교과서 출간 ▲1951∼52년 대구사범­진해여고교사 ▲1952∼61년 이대 미대 교수 ▲1961∼86년 서울대미대 교수(86년 정년퇴임) ▲1938년 선만학생미전 입선(전주사범2년) ▲1939년 〃 특선 ▲1940년 제19회 선전 입선 ▲1947년 조선종합미술전 입선 ▲1949년 제1회 국전「폐림지근방」특선(대통령수상)(현재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소장) ▲1949∼81년 제30회 국전(최종전까지)출품(국전추천·초대작가·국전운영위원장) ▲1953년 창작미술협회창립(창단멤버 이봉상 최영재 황유엽 박창돈)현재까지 해마다 회원전개최 ▲1957년 미 뉴욕 월드하우스화랑 초대전·미 샌프란시스코 미술박물관 현대미술전 ▲1962년 문공부주최 34인 초대전 ▲1972∼84년 한·일미술교류전 ▲1973년 한국현대작가100인전 ▲1975년 역대국전대통령상 수상작가 작품전 ▲1978년 정부수립 30주년기념 초대연합전 ▲1979년 현대회화100호전 출품(신세계 미술관 주최) ▲1983년 춘추화랑초대전(원로작가 회고전) ▲1985년∼현재 서울시 미술초대전 ▲1985년∼현재 아세아 국제미술전 ▲1990년 현대화랑초대(첫 개인전)2회 도쿄비엔날레국제전,극동현대미술전,예술원회원전등 전시다수 ▲예술원부회장 회장 88서울올림픽 문화예술행사행진협의회위원역임 예술원회원 창작미협회장 아세아국제미술전람회 한국위원회회장 한국 미협고문 서울시 문화상,국민훈장동백장서훈,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한민국예술원상,3·1문화상 출간
  • 호주,“영연방 탈퇴” 여론 확산(세계의 사회면)

    ◎“실질 독립국” 국민 대다수 지지/대통령 후보론 전 총리부인들 거론/집권노동당선 환영… 야당은 반대 영국연방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최근들어 연방을 탈퇴하자는 여론이 국민들사이에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영국식민지 독립 2백주년인 지난 88년 당시 총리였던 봅 호크에 의해 제기된 영연방탈퇴문제가 이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일간지가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들의 절반이상이 영연방으로부터의 탈퇴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같은 지지도는 지난 87년 첫 여론조사에서 보인 21%보다 배이상 높아진 것이다. 이처럼 많은 오스트레일리아국민들이 영연방과의 단절을 원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국민적인 자존심 때문이다.국민들은 오스트레일리아가 명목상 영연방에 속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독립국가인데 굳이 영연방과의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더 나아가 불명예스런 과거를 빨리 잊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단절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국민들의 여론이 이같은 방향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자 연방탈퇴가 현실화될 경우를 대비한 대통령후보도 심심찮게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물론 대통령후보거론은 아직 때 이른감이 없지 않지만 연방탈퇴는 공화국의 탄생을 의미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한술 더떠 작가이자 「오스트레일리아공화국추진운동」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토머스 커넬리는 앞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대통령은 여성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 이유는 영국의 윈저왕가보다 오스트레일리아 여자대통령이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본때있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대통령후보로 거론하는 인물은 봅 호크 전총리의 부인인 하젤 호크를 비롯해 전총리출신의 부인들이 대부분이다.그밖에 원주민출신의 영화배우 에르니 딩고,은행가인 말콤 턴불등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일부에서는 『김치국부터 마신다』며 못마땅해 하고 있다. 국민들의 여론조사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 또한 만만찮다.집권 노동당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반면 야당인 자유당은 영연방탈퇴는 헌법상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며 반대하고 있다.또한 이같은 여론은 높은 실업률과 무역적자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노동당이 국면전환용으로 조작해내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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