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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자민당 지방선거 공약「침략·식민지배 인정」 삭제

    【도쿄 연합】 일본 집권 제1여당인 자민당은 오는 4월 통일지방선거를 앞두고 마련한 「우리당의 공약」에서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를 인정한 대목을 삭제할 방침인 것으로 2일 알려졌다. 이는 최근 세불리기를 거듭하고 있는 자민당내 부전및 사죄 국회결의에 반대하는 「종전 50주년 국회의원연맹」(회장 오야성량)의 강력한 요구에 따른 것이나 보수우익세력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증명함과 아울러 시대착오적 보수회귀및 국수주의화로 향후 자민당의 움직임이 크게 주목된다. 자민당 소식통은 3일 열리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총무회에서 「우리당의 공약」에 포함된 『우리나라의 침략행위와 식민지배 등으로 많은 사람에게 참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초래했다는 인식에 바탕해』라는 표현을 빼기로 했다고 밝혔다.
  • 3·1만세처럼 뜨거운 대일소송

    ◎“한민족 이름으로 일제침략­만행을 단죄한다”/을사조약·한일합방 무효투쟁/각계 1천여명 자존회복 집념/13일 도쿄서 7차공판… 일도 치밀한 변론준비 「7천만의 이름으로 일본을 재판한다」 침략에서 분단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모든 만행에 대한 민간차원의 대대적인 대일 「민족소송」이 광복 50돌과 3·1절 76돌을 맞아 더욱 거세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 소송은 국권상실 자체에 대한 세계최초의 소송임은 물론 해방이후 제기된 일본 식민지배 관련소송중에서 가장 광범위한 것이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는 13일 도쿄지방법원에서 열릴 공판을 위해 곧 일본으로 떠날 지익표 변호사와 용태영(68)변호사 등 5명의 대표단은 현재 함께 머리를 맞대고 변론준비에 여념이 없다. 소송을 제기한 단체는 「대일민간법률구조회(회장 지익표 변호사·71)」.92년4월20일 한·일간의 어두운 과거를 법적으로 청산하기 위해 원로·소장 각층을 망라한 변호사가 결성한 단체다.이들은 같은 해 국치일인 8월29일 일본 도쿄지방재판소 민사6부에 소를 제기,이번에 7번째 공판을 앞두고 있다.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일제강점을 합법화시킨 「을사조약」의 무효소송.논리는 간단하다.강제로 체결된 이른바 「늑약」이기 때문. 이미 법률적 타당성은 재고할 가치도 없지만 「피고 일본」의 자기변호도 만만치 않기 때문.일본 법무성은 특별히 노모토 마사시로(야본창성) 등 저명변호사 10명을 기용,갖은 법리해석을 총동원해 치밀한 변론준비를 하고 있는데다 재판부 역시 일본인이다.또 언제 결판이 날지 모르는 지구전이어서 한치도 방심할 수 없다. 재판에는 양국의 저명법학자·역사학자·원로들이 참여하고 있어 한·일간 자존심 대결양상까지 띠게 됐다. 이태영(82) 전가정법률상담소장·김은호(78) 전변협회장 등 법조계의 거물들이 고문으로 참가하고 있다.우리측에서 직·간접적으로 재판에 간여하고 있는 변호사만도 3백60명에 이른다. 일반인 소송참가신청자도 1천명을 넘어섰고 서울을 비롯,부산·대구·광주등 전국 곳곳에서 지회가 결성돼 얼마가 들어갈지 모르는 소송경비를 마련하고 있다. 「민족소송」의 골자는 크게 3가지. ▲1904년 한일의정서,1905년 을사조약,1907년 정미7조약,1910년 한일합방조약 등 일련의 늑약과 그에 따른 불법행위 ▲강제이주·징용·정신대·창씨개명 등 한민족에 대한 생명 및 재산의 수탈과 정신적·신체적 고통 ▲태평양전쟁 도발 및 그 여파로 인한 국토양단과 민족이산 및 6·25동족상잔 야기에 대한 원상회복·사죄·손해배상 등이다. 고희를 넘긴 나이지만 줄곧 한국측 대표원고를 맡아온 지 변호사는 『일제의 만행은 국제법상으로는 물론 일본 민법에서도 엄연히 불법으로 규정된 사항이므로 일본 재판부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 한민족 「반일 응어리」 풀기 시도/일 「명성황후 시해」왜 사죄하나

    ◎전범국·식민지착취 오명씻기 모색/과거사 정리… 아주지도국 위상 노려 일본 정부가 명성황후 시해에 대해 사과하기로 한 것은 우리 국민의 마음 속에 응어리 진 반일감정을 풀어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이는 한일관계를 전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양국민간 감정의 골을 메워야 한다는 양국정부의 공통된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전향적인 한일관계의 구축에는 일본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것 같다.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일본은 올해가 종전 50주년,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이라는데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패전 50년이 지난만큼 침략전쟁과 식민지 경영이라는 과거의 굴레를 벗어던지고,올해를 아시아 지역에서의 지도적 위상을 확보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것이 시대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본의 속마음이라고 이 당국자는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도 양국 관계의 전향적인 발전이라는 필요성에는 공감한다.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양국정부는 지난해부터 광복 50주년과,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을검토해왔다. 애당초 일본정부가 원했던 것은 아키히토(명인)국왕의 한국 방문이었다.실제로 일본측은 초대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가 조선에서 수집해간 2천여점의 문화재를 조건없이 반환하는등의 「선물」을 갖고 한국을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양국 정부는 한국민의 감정이 아직까지는 일본왕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으며,양국간에 국교정상화 30주년 기념행사를 논의한다는 자체에도 반감을 갖고 있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어쩔 수 없이 기념행사의 준비는 한일의원연맹과 한일친선협회등 민간기구로 넘어갔다.대신 양국정부는 과거사 정리에 대한 일본의 무성의한 태도가 반일감정의 중요한 이유라는 결론에 도달했으며,한국민의 감정을 푸는 첫번째 열쇠로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사과라는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평시에 타국인이 군대의 비호아래 주권국가의 궁궐을 무단 침입,황후를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끔찍한 만행이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매우 파렴치한 범죄행위로 비난받고 있다.최근 일본 내부에서도 이같은 사실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며,일본정부가 시해에 깊숙히 개입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와 증언이 잇따라 발견돼 왔다.또 명성황후 시해에 사용된 칼이 지난해 8월 규슈(구주)에 있는 신사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일본은 지난 88년 4월28일 참의원 외무위원회에서 후지타(등전) 외무성 아시아국장을 통해 『역사상의 문제는 그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정부관계자가 그것을 받아들여 인식을 깊게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가 있다.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과가 어느 정도로 우리 국민의 가슴에 와닿을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한일 양국 정부의 미래를 위한 과거 정리작업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광복50돌에 맞는 3·1절(사설)

    오늘 우리는 76돌 3·1절을 맞는다.올해 3·1절은 우리국민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안겨주고 있다.하나는 광복50주년을 맞는 해의 뜻깊은 3·1절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 식민지통치의 상징이었던 총독부건물의 철거를 알리는 고유제가 국립중앙박물관앞 광장에서 열린다는 것이다.구총독부청사의 철거는 해방 반세기만에 문민정부의 결단으로 이룩된 쾌거다. 총독부건물의 철거와 더불어 경복궁의 완전복원은 민족정기와 자존을 드높이는 기념비적 역사이다.그러나 종전 50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에게 참담한 고통을 안겨주었던 가해자 일본은 진정한 사죄와 반성을 기피하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에는 국회에서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아시아 식민지를 해방시킨 전쟁』이라고 미화시키는 망발마저 보이고 있다.일본국회의 부전 및 사죄결의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극우세력들이 국회와 민간에서 목청을 높이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참으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될 일본의 복고적 변신이다. 1919년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3·1만세운동은 민족적 에너지가 자유와 독립이란 명제로 활화산처럼 결집된 장엄한 드라마였다.국권을 빼앗긴지 10년째,도탄에 빠진 민생들이 절망과 무기력에 직면해 있을때 놀라운 민족의 에너지가 만세운동으로 분출한 것이다.죽은 줄로만 알았던 한민족의 기개와 투혼이 세계인을 놀라게 하였다. 지금 우리는 「세계화」라는 원대한 국가목표를 설정하고 올해 그 원년을 맞았다.세계화전략을 통해 국력을 키우며 제2의 광복인 통일을 달성하고 나아가 세계중심국가로 발전한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3·1만세운동을 가능케했던 열화같은 우리민족의 에너지를 세계화에 결집시켜 세계일류국가를 만드는 일에 온국민이 합심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이것은 우리 시대와 역사의 소명이기도 하다.
  • 일 자민당내 「종전50년」련/“태평양전쟁 미화”획책

    ◎“아주 해방전쟁”규정… 행사 추진/아시아국 강력 반발 예고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연립정권 제1당인 자민당의 「종전 50주년 국회의원연맹」(회장 오쿠노 세스케 중의원 의원)이 오는 5월말 2차대전 전몰자를 추도한다는 명분으로 「아시아 공생공영 제전」을 대규모로 계획하면서 「태평양전쟁을 구미 열강으로부터 아시아 식민지를 해방시킨 전쟁」으로 미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27일 자민당및 일본 외무성 소식통에 따르면 이 행사는 전몰자 추도대회라고 내세우고 있으나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을 구미 열강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아시아를 해방시킨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어 아시아 각국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민당 소속 중·참의원 3백3명 가운데 1백72명이 가입한 이 단체는 특히 일본군 전사자는 물론 일본 동맹국 전사자,일본군에 소속해 있던 외국인 전사자에 대한 추모행사도 계획하고 있어 침략전쟁으로 전후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로부터 규정돼 온 태평양전쟁을 미화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또한 외국 전사자의 유족을 초대하면서 그 대상을 「동맹국및 일본 군적을 갖고 대동아전쟁에 참여한 국가」와 「대동아전쟁을 계기로 전후 독립을 이룩한 국가」로 규정해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소식통들은 의원연맹이 유족대표로 대만 이등휘 총통도 초청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집권여당안의 이같은 행사는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큰 반발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정 자민­사회당 이견 증폭/일 회의/「불가결의」쟁점화/찬·반론 “팽팽”… 연립정권 붕괴 가능성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이 패전 50주년을 맞아 국회차원에서 불전결의를 채택할 수 있을까.이 문제는 지난 25일 예산안이 중의원 예산위를 통과하면서 일본 정가 최대의 초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 3당은 지난해 6월 연립정권을 발족시키면서 「전후 50년을 계기로 과거의 전쟁을 반성하고 미래의 평화에의 결의를 표명하는 국회결의의 채택 등에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는데 합의했었다.하지만 채택 전망이 불투명하게 돼가고 있다. 이를 둘러싼 여당내의 논란은 연립정권의 유지 문제까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사회당은 3당 합의인 만큼 당연히 채택돼야 한다는 입장.3월까지 여당안에서 부전결의를 마무리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자민당 안에는 부전 내지는 사죄 결의에 반대하는 중·참의원들이 「종전 50주년 국회의원연맹」을 결성하고 있다.여기에는 모리 자민당간사장과 하시모토 통산상,와타나베 전외상 등 거물들이 참여하고 있다.참가자는 자민당 중·참의원 3백3명 가운데 지난 13일까지 1백61명이었으나 27일까지 1백72명으로 늘었다.이들은 ▲과거의 전쟁처리는 평화조약과 강화조약으로 외교상 해결됐으며 ▲입법부가 역사관을 단정하는 것은 권한을 넘는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다.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나카소네 전총리처럼 『사죄할 만큼 사죄했다.사죄 결의는 공허하다.올바른 역사교육이 필요할 뿐이다.부전결의는 자위권마저 부인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이들은 침략전쟁인태평양전쟁이 아시아 식민지 해방전쟁이었다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도 펴고 있다.여기에 야당인 신진당에서도 24명이 참여한 「바른 역사를 전하는 국회의원연맹」은 당이 당론으로 부전결의에 찬성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보 사회당서기장이 연일 『이를 바꾸거나 부정하는 것은 연정출범을 부정하는 것』이라면서 정권 존립을 놓고 자민당의 태도변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전범 출신 등을 총리로 배출했던 자민당이 얼마나 호응할지 불투명하다. 또 부전결의가 채택된다 하더라도 과거의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피해 국가들의 요구가 얼마나 구체화될 수 있을지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 3월1일 철거 선포에 부쳐/김도현 문화체육부 차관(특별기고)

    ◎“옛 총독부청사여,사라짐으로 증언하라”/막혔던 역사,눌렸던 민족 정기 살아 웅비하리니… 구 조선총독부 청사여,마침내 너는 헐린다. 우리 겨레를 말살하기 위해 세워졌고 그 안에서 온갖 흉모와 폭압이 계획되고 집행되었던 너는,우리 겨레가 다시 빛을 찾은지 50년만에 독립의 함성이 지축을 울린 기념일에 퇴장을 선고 받고 해방의 날에 꼭대기를 걷어내는 것으로 시작하여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네가 자취를 감춘 그 자리에는 옛 궁궐이 모습을 다시 갖추고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광화문을 통해 겨레의 정궁이었던 근정전을 볼 수 있게 된다. 저 북한산 북악 그리고 경복궁을 거친 맑은 바람은 더는 흉물에 막히고 휘어지지 않고 세종로로 서울로 한반도로 시원스레 내려올 수 있게 된다. 구 총독부 청사여,너도 나름대로 크기와 쓸모와 내세울 만한 겉모양을 갖추었고 한동안 요긴하게 정부청사와 박물관으로 쓰이기도 했기에 그리고 너무나 중요한 목에 버티고 있었기에 서울의 모습으로 새겨져 있었지만 그래서 이제 임종에 즈음하여 마지막 사랑을 받음직도 하련만,유감스럽게도 너를 위해 울어줄 수 없구나.네가 미워서가 아니고 너의 값어치를 일부러 깎아내려서도 아니고,나아가 네속에서 이루어졌던 갖은 흉책과 그것을 꾸미고 저질렀던 그 사람들을 마냥 지금껏 증오해서도 아니다. 네가 서 있는 그 자리는 이나라의 서울이 비롯되는 얼굴이며 그래서 이 나라가 열리는 머리이며,네가 가로 막은 것은 정부와 백성,이 나라 역사의 흐름이었던 것이다.너는 실로 비대하고 견고한 몸집으로 이 나라 역사를 단절하고 민족을 절멸시키는 자리에서 역할을 했던 것이다.잘못 앉았던 자리를 비워주고 안 했어야 할 일을 영원히 맡아야 한다는 피할 수 없는 업보를 받는 것이다. 혹 너의 없어짐을 잘 모르고 가여워 하거나,너의 모습을 또 다른 저의를 가지고 간직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너를 짓고 광화문을 헐어 낼 때 그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한 같은 나라 사람으로 동양의 아름다움을 아꼈던 이가 쓴 글의 일절을 다시 읽어 주고 싶다. 『가령 지금 조선이 발흥하고 일본이 쇠약하여 마침내 조선에 합병됨으로써궁성이 폐허가 되고 대신 그 자리에 서양식의 일본 총독부 건물이 세워지고 저 푸른 해자너머 멀리 보이던 희벽의 에도성(강호성)이 헐리는 광경을 상상해 주기 바란다』 (야나기 무네요시 1922년 잃어지려는 한 조선 건축을 위해서) 너를 그곳에 둔채 겨레의 치욕을 새기고 뒷날에 가르침을 두자는 소리도 없지 않으나,네가 가로막고 있는 그 자리가 이 나라의 5백년 정궁의 숨통인 것을 바로 그 궁앞에서 너의 등을 본다면 누구나 숨이 막히면서 깨달을 것이다.또 너를 보면서 아직도 용서할 수 없는 향수를 느낀다거나 끔찍한 앞날의 망상을 펴는 무리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동안 나라 형편도 너를 없앨 만큼 넉넉지 못했다.극도의 나쁜 정치행위로 태어난 너 였기에 고도의 좋은 정치적 결단을 새 정부가 내린 것을 오히려 너는 반겨해야 할 것이다.이것은 역설이 아니다.네가 그 자리에서 많은 옳은 이들로부터 저주를 받고 악한 무리를 새로운 역사적 범죄로 유혹하기 보다는 깨끗하게 사라져서 막히고 가려졌던 아름다운 우리나라 서울 옛 정궁을 만천하에드러나게 하는 것은 오히려 복받을 일이다. 사라지는 식민지 총독부와 되살아나는 민족의 정궁은 세계와 역사 앞에 우렁차게 증언할 것이다.다른 나라와 겨레를 빼앗고 누르고 죽이는 일은 오래갈 수 없으며,이 모든 나쁜 일들이 쫓겨난 자리에 아름답고 밝고 시원한 옳고 좋은 일이 온다는 것은 꼭 반드시 이루어지는 역사의 철칙이다.
  • “「기초 지자제」 정당공천 배제”/김 대통령,취임2돌 기자간담

    ◎6월 선거 법대로 실시/지자제 성공위해 지방조직 개혁 필요/선거전 고칠건 국회서 고쳐야 김영삼 대통령은 25일 『오는 6월27일 4대 지방선거는 법대로 반드시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날 상오 취임 2주년을 맞아 청와대에서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다짐한 뒤 『그러나 주민생활자치를 위해 기초자치단체 선거에까지 정당이 관여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것은 생각해봐야 하며 주민자치로 넘기는 것이 옳다』고 말해 기초자치단체장및 의원선거에서 정당의 공천을 배제하는 방안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김 대통령이 지자제선거를 예정대로 실시할 것임을 천명,지방선거 연기의혹을 불식시키면서 선거전 제도개선을 요구함에 따라 국회에서 여야협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면 과거의 지방자치 역사로 미루어 지역이기주의 등에 따른 여러가지 어려운 일이 수 없이 생길 것』이라고 전망하고 『정치권이 이 문제를 충분히 논의,국회에서고칠 것은 고쳐 예방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현명하며 이를 고칠 시간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기초자치단체선거에 대한 정당관여 배제문제와 관련,김 대통령은 『정당이 공천하면 국민의 세금인 국고보조금도 엄청나게 들 것』이라고 말하고 『단체장이 특정정당에 속할때 행정이 제대로 되고 지역주민을 대변할수 있겠느냐』고 문제점을 제기했다. 김 대통령은 그러나 『이미 올해초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대로 지방자치를 제대로 하려면 식민지시대로부터 내려온 행정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하지만 대폭적인 수술은 시간이 많이 필요해 선거전에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서울시 분할논의에 대한 질문에 『정치권에서 논의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그런 문제는 선거전에 실질적으로,시간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우선은 추진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김 대통령은 지방선거문제 등 현정국을 풀어나가기 위해 여야영수회담을 가질 용의가 있느냐하는 질문에 『현재 그런 생각을 특별히 갖고 있지 않다』고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김 대통령은 재벌정책과 관련,『재벌이 문어발식으로 중소기업을 잡아먹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국가경쟁력강화는 세계의 일류기업들과 경쟁해서 이기라는 것이지 중소기업을 잡아먹으라는 것이 아닌만큼 대기업은 업종을 전문화해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헌법개정문제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한다면 임기 5년은 대단히 길다』고 전제,『헌법상 5년 단임제는 대단히 잘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헌법개정 의사가 없음을 거듭 확인했다.
  • 김 대통령 취임2돌 기자간담 연설내용

    ◎「변화와 개혁」은 차질없이 지속추진/지방선거 정치인 아닌 행정가 뽑는일/몇백명 감옥가도 깨끗한 선거 꼭 실현 김영삼 대통령은 25일 상오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민정부 출범 2주년에 즈음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 2년을 평가한 뒤 앞으로의 국정운영방향과 현안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김 대통령의 모두발언과 일문일답내용은 다음과 같다. ▷2년 평가◁ 취임 2년동안 청와대 개방,군의 대대적 개혁,금융실명제 실시,부정부패의 성역 없는 척결,공직자의 재산공개 등 변화와 개혁을 추진했습니다.또 대통령 재직 5년동안 어느 누구로부터도 단 1전의 돈도 받지 않겠다고 역사와 국민 앞에 선언했습니다. 토지실명제 실시,선거법의 개정 등 정치개혁 입법,행정조직의 대대적 개편도 추진했습니다.이러한 모든 개혁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일이었는데 성실하게 약속을 지키고 보안을 지킨 공직자들에게 감사합니다.그런 개혁을 대담하게 하는 데 동참해준 동지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계속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향후각오◁ 3년의 임기를 가진 대통령으로서 새로 취임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각오,새로운 결심으로 새 출발을 할 생각입니다.변화와 개혁은 내 임기중 계속돼서 차질 없이,끊임 없이 지속될 것입니다.반드시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야겠습니다.다음 세대에게 21세기 자랑스러운 나라를 넘겨줄 책임이 우리에겐 있습니다.교육개혁이라든가,사법제도개혁 등의 문제를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앞으로 3년동안 수많은 일을 해내야 되고 또 해내지 않고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외교현안◁ 유럽순방길에서 유엔 주관으로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 참석합니다.역사상 가장 많은 1백30개국의 정상이 모이는 회의입니다.빈곤·사회통합·여성·고용창출문제등이 논의될 것입니다.우리가 유엔에 가입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세계 12위권의 교역규모라는 국력에 걸맞게 적극적으로 유엔에 참여해야 합니다.우리는 전쟁후 연간 국민총생산의 10% 가까이를 미국과 유엔으로부터 원조를 받았습니다.이번에 유엔이 각별히 우리의 참석을요청하는 것도 그런 어려운 과정을 겪고도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룩한 모범국가라는 차원에서 그 경험을 정상회담에서 얘기해주는 것이 모든 개발도상국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EU와 협력 강화 앞으로 유럽연합(EU)과 경제협력·합작투자 등의 폭을 넓힐 것입니다.경제뿐 아니라 정치·문화적인 의미에서도 교류를 확대해야 합니다.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 4각외교에 치중해왔는데 이에 못지않은 중요한 지역이 EU입니다. ▷지방선거◁ 연두기자회견에서 이미 얘기했습니다.지금 더 분명히 얘기하자면 지자제선거는 법대로 6월27일 반드시 실시할 것입니다.일제식민지 때부터 87년동안 유지돼온 지방행정제도를 갖고 지자제를 실시하는 것은 보통문제가 아닙니다.그러나 대대적 수술을 선거 전에 실행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큰 수술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대로 선거를 치른다는 점은 몇차례 얘기했습니다. 법은 법대로 지킬 것입니다.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국민 상당수가 지자제를 처음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처음하는 것이 아닙니다.나 자신 국회의원시절 지자제선거를 경험했습니다.그러나 5·16쿠데타로 지자제가 없어졌습니다.또 국민 시각 가운데 잘못된 것 하나가 지자제가 실시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질 높여야 광역시장·도지사·기초의회장 등을 정치하는 사람들로 착각하는데 정치하는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어디까지나 지방자치입니다.생활자치·국민자치를 하는 사람들입니다.미국과도 다릅니다.미국은 지방정부라고 말합니다.주자체가 헌법을 가지고 있고 또 검찰권과 경찰권을 따로 갖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경찰·검찰권·세무행정권을 모두 중앙정부가 갖고 있습니다.지방은 단지 행정하는 것뿐입니다.이번 지방선거는 주민자치시대를 열어야 하는 것이며 정치인을 뽑는 것이 아닙니다.어떻게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하느냐 하는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국회에서 하는 일을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그러나 고칠 수 있는 것은 국회에서 고치고 자유스럽게 토론해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지방선거가 끝나면 엄청난 어려움이 생기고,물문제·쓰레기문제 등 지역이기주의 때문에 아주 어려운 일이 수도 없이 생길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정치권에서 충분히 논의해서 지방선거가 끝난 뒤 생길 어려운 문제들을 예방할 수 있는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시민의 이익을 위한 지역민의 생활자치를 위해 기초단체까지 정당이 과연 개입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문제입니다.완전히 주민자치로 넘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엄청난 국고가 들고,기초단체장들이 정당에 소속되었을 때 과연 지방행정이 제대로 순탄하게 잘되겠느냐 하는 문제는 크게 제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대로 실시할것 이런 말,저런 말이 있더라도 선거는 반드시 실시합니다.내각이 바뀐 뒤 총리·내무·법무부장관에게 4대선거실시는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절대로 차질없이 실시하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법무부장관에게는 몇백명이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깨끗한 선거를 하도록 지시했습니다.이춘구 대표에게도 법대로 지방선거를 실시할 예정이니 당에서도 그렇게 알고 준비를 해달라고 얘기했습니다.
  • 고려대 졸업식 홍일식 총장 치사

    작금의 국내외 상황은 역사적 대변화의 초기 단계를 지나 이제 그 본류의 거센 흐름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남북한 관계의 새로운 국면이 그러하고,이데올로기 대립의 퇴조와 함께 밀려오는 기술 및 경제의 냉엄한 경쟁체제가 그러합니다.이것은 우리의 주체적 역량을 시험하는 새로운 기회요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이 시대상황은 결코 낭만적 사고나 일시적 임기응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무수한 과제들을 안고 있습니다.그러나 여러분은 온갖 장애와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자신의 성장을 이루며 민족공동체의 미래를 개척해 나아갈 만한 충분한 힘을 갖추었습니다. 국권수호가 최고의 가치였던 우리 근대화의 여명기로부터,국권회복이 민족적 절대명제가 된 식민지 시대를 거쳐,이제 우리는 민족통일이 지상과제로 주어진 분단시대를 살고 있습니다.이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개인과 집단의 성취가 무엇이든 간에 후일의 민족사는 궁극적으로 그것을 민족통일에의 기여라는 관점에서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최근의 국제적 상황에 대응하여 세계화라는 과제가 전사회적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만,진정한 세계화는 민족통일을 거쳐서만 완성되는 것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근년에 들어와서 우리가 누리게 된 경제력에 힘입어 많은 한국인들이 세계와의 인적교류의 범위를 넓혔습니다.그런 가운데서 형성된 우리의 대외적 이미지는 어떠하며,한국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를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스스로를 냉엄하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인종과 문화를 달리하는 외국인들은 물론 해외의 동포들 가운데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국인의 심성과 태도에서 거치른 교만과 사나운 아집을 자주 느낀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도덕적 실정 위에서 어떻게 민족의 분단을 극복할 수 있으며,물리적 통합만이 아닌 진정한 포용과 화합의 대통일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오늘의 사회 상황을 보면 인간가치와 공동체적 이상에 관한 믿음이 실종될 때 미래를 향한 전진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현상의 유지조차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한국 사회 전체의 도덕적 재충전이며,이를 위한 새로운 각성입니다.그리하여 원자화된 개인과 집단들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고 소모적인 무한대립을 넘어서는 통합의 원리로써 이 사회를 든든하게 떠받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그리고 그러한 문화적,도덕적 역량의 넘쳐흐르는 힘이 진정한 통일의 원동력이 되어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우리 민족의 위대한 미래를 이룩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가치 있는 삶은 혼자 거두는 이익보다 「나」와「너」를 하나로 결합하여 「우리 모두」의 위대한 전진으로 드높이는 데서 얻어지는 것입니다.오늘의 우리 사회가 젊은 지성에게 기대하는 정신이 바로 이것이며,민족통일의 대과업에 부응하기 위한 도덕적 역량의 핵심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 지자선거·행정조직 개선 당위성 강조/김 대통령 기자간담 함축

    ◎「기초」 공천 배제 등 여야협상 불가피/지역이기주의 폐단 등 들어 개선촉구 김영삼 대통령의 25일 기자간담회로 지방선거에 관한 여권의 방침이 명확해졌다. 김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지방선거와 관련해 두가지를 분명하게 제시했다. 그 하나는 4개 지방선거를 법률에 규정돼 있는 대로 오는 6월27일 실시하겠다고 못박은 것이다.둘째는 선거 전에 국회가 문제점을 고쳐야 한다고 밝히고 우선적인 과제로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 배제문제」를 제시한 것이다. 김 대통령의 이날 발언으로 민자당이 제기한 지방선거 전 관련법규 개정제안이 지방선거를 연기하기 위한 「연막」은 아니란 점이 분명해진 셈이다.취임2주년 기념 기자간담회라는 격식을 차려 지방선거의 분명한 실시와 가능한 범위 안에서의 개선을 촉구함으로써 야당도 막무가내로 「선거연기 음모」란 주장을 내세우며 논의를 계속 거부하기만은 어렵게 됐다.지방선거 개선문제는 선거전에 문제점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협상의 길로 물길이 잡힐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간담회를 통해 현재의 제도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강조했다.3단계 지방행정구조가 일제 식민지시대의 구조라는 점을 지적하고,이대로 선거를 치르면 지역이기주의로 엄청난 문제들이 발생할 것임을 예고했다.서울시의 분할문제도 논의 자체를 막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러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를 예정대로 실시할 것임을 여러가지 증거를 들어 입증해 보였다.그러면서 김 대통령은 행정조직의 축소나 서울시의 분할등은 시간적으로나 현실질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했다.김 대통령이 이날 지방선거의 개선 필요성과 관련해 관철의사를 명확히 밝힌 부분은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 배제」였다.민자당의 협상전략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질 것임에 틀림 없다.정당공천 배제는 선거공고일 전까지만 고쳐도 되기 때문에 야당쪽의 선거연기 음모설과도 저촉될 소지가 적다.국민적 공감대를 넓혀갈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여권이 기초단체장 공천배제의 논리로 강조하는 것은 주민을 위한 지방자치와 국고낭비의 최소화에 있다. 기초단체장을 공천에서 배제하게 되면 올해 선거를 위해 각정당에 지급할 국고보조금중 3백48억원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올해 1천억원가까운 국고보조금이 정당에 지급되는 데 대한 국민정서는 좋지 않은 편이다.현재의 행정구조에서 전면적인 지자제 실시가 물문제나 쓰레기문제등 지역이기주의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발생시킬 것임에도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여기에 시·군·구청장이 정당공천으로 선출되면 갈등을 극대화하는 최악의 선택이 된다는 게 여권핵심부의 생각이다.서로 이웃한 ㄱ군과 ㄴ군이 서로 다른 정당에 「점령」된다면 현안이 생겼을 때 문제해결이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중앙정치의 지역분할주의가 지방자치에까지 파급될 것임도 당연히 예상할 수 있다. 기초단체장의 공천배제는 그러나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서로 상반된다.여권에서는 광역단체장 선거만 신경쓰면되는데 비해 야당은 우선 전장이 그만큼 줄어들어 손해다.특히 민주당의 동교동계나,지방선거에서 충청권의 바람을바탕으로 정치적입지를 세우려는 김종필씨의 「자유민주연합」은 그만큼 발판을 잃어버리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논의는 시작되겠지만 결코 쉽지 않은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취임 2돌 청와대 이모저모/”최선 다한 2년… 후회 없다”/김 대통령/국무위원·당사자·수석비서관과 조촐한 미역국 조찬 김영삼 대통령은 25일 국무위원및 민자당당직자,청와대수석비서관들과 조찬을 나눈 뒤 기자간담회를 갖는 등으로 취임 2주년을 자축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낮 수석비서관들과 오찬을 겸한 주례 수석회의를 주재했을 뿐 행정부의 장관급 고위공직자,민자당 당무위원및 당직자들과 만찬을 갖고 특별기자회견을 가졌던 지난해 취임 1주년 때와는 달리 특별한 행사를 갖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이날 아침 7시20분부터 국무위원및 민자당당직자 등과 미역국을 곁들인 조촐한 식사를 나누며 임기 3년의 대통령에 새롭게 취임한다는 자세로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며 새출발의 각오를 다졌다. 김 대통령은 특히 지난 2년을 회고하면서 가뭄이 극심한 상황에서해외순방길에 오르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가뭄 때문에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때 나가게 돼 마음이 무겁다』면서 당정이 가뭄극복대책에 만전을 기해주도록 거듭 당부했다. 이에 이홍구 국무총리는 『20년에도 하기 어려운 많은 개혁을 이뤘기 때문에 지난 2년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면서 커피로 건배를 제의했다.이춘구 대표 또한 「앞으로 더 큰 업적을 남기도록 전당원이 단합해서 뒷받침하겠다」는 뜻으로 건배를 제의했고 참석자들은 냉수로 건배. 김 대통령은 9시30분쯤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으로 건너가 출입기자단과 함께 취임2주년 축하시루떡을 잘랐다. 이어 춘추관 소회견실로 자리를 옮겨 1시간10분동안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이곳은 평소 청와대대변인이 각종 발표장소로 사용하는 곳으로 김 대통령이 본관이 아닌 춘추관 소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기는 처음이다. 일문일답에서 김 대통령은 지난 2년동안 아쉬웠거나 가슴아팠던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세상에 제일 불행한 사람은 후회하는 사람』이라고 밝히고 『후회는 없다』는 말로 혼신의 힘으로 최선을 다했음을 강조했다.청와대에 들어와 부부싸움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럴 시간이 없다』면서 『그런일 좀 만들어 달라』고 말해 좌중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 “사죄거부라니…일본은 차라리 침묵하라”/휴코타지 전 주일 영국대사

    ◎“명백한 침략전쟁을 아시아 해방전” 망언/식민 지배 극도 잔학… 피폭책임 일 군부에 일본의 보수·우익세력들은 전후 50주년을 맞아 과거 아시아침략에 대한 반성·사죄를 거부하고 오히려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아시아 해방전쟁」이었다는 망언을 되풀이 하고 있다.일본 우익세력들의 이러한 망언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휴 코타지 전주일영국대사는 산케이신문 기고에서 『일본은 차라리 침묵을 지켜라』고 충고하고 있다.다음은 기고문 내용. 대지진의 비극으로 한 해를 시작한 일본은 올해 전후 50주년을 맞아 쓰라린 코멘트를 많이 듣게 될 것이다.나는 그러나 일본인들이 이러한 논평에 주의깊은 반응을 보이기를 바란다.분노로 성급하게 반응하면 감정이 악화될 뿐 일본의 장기적인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부주의한 발언을 하는 경향이 있는 일본의 정치가들이 위엄있는 침묵을 지키는 노력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올해는 화해에 역점이 두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올해는 승리와 패배를 각각 기리기보다는전쟁이 가져다 준 고통을 공감하고 되새겨보는 해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인들은 지금 제2차 대전중 일본제국군대가 점령한 지역의 주민에 대해 일본과 「천황」의 이름으로 얼마나 광범위하게 불행한 일들을 저질렀는지 또 그 행동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되새겨보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군에 포로로 붙잡혔던 사람들 가운데는 일본군으로부터 받은 취급을 잊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나는 종전직후 싱가포르에서 나의 친척을 포함한 포로들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직접 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심정을 알 수 있다.하지만 기독교인은 「너의 적을 용서하라」는 가르침을 받는다.나는 화해를 바란다. 우리는 일본제국군대의 일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나는 이곳 영국에서 일본인의 친구로서 일본인은 다른 국민과 이질적이라는 말을 믿지 않음을 말하고 싶다.문제는 인종이나 선천적인 특징이 아니다.나는 일본인 가운데 괴로움을 주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한 군인이 있는 한편 연합국측에 복수심에 불타 문명인으로서의 행동의 원칙을 지키지 않은 군인이 있음을 알고 있다.슬픈 이야기이지만 인간에게는 나쁜 짓과 잔학한 행동으로 치달리려는 경향이 잠재해 있다.이 잠재적 요소는 상황과 사상의 교화에 따라 표면화된다.러일전쟁과 1차대전당시 일본에 포로로 잡힌 사람들은 공정한 취급을 받았다.왜 2차대전 당시 일본의 태도와 행동은 돌변했는가. 나의 설명은 이렇다.명치시대의 지도자들은 단결을 강요하고 일본을 구미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신도의 의식과 「천황」숭배를 생각해 냈다.지도자들은 주로 농촌으로부터 징집한 장정들로 강력하게 훈련된 군대를 만들기 위해 잔혹한 신병 이지메(가학행위)를 포함한 엄한 훈련을 강요했다.이지메를 당한 인간이 다시 자신보다 약한 인간을 이지메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사무라이 윤리는 이 과정에서 땅에 떨어졌다.무사도의 진정한 의미는 잃어버렸다.충성심이 변질돼 젊은이들에게는 「천황」을 위해 죽는다는 의식이 심어졌다.하지만 「천황」의 마음이 장군들에의해 강제되고 있는 전쟁을 바라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장교들 가운데는 사물에 대한 태도가 비뚤어져 포로에 대해 생물무기 및 세균무기의 실험을 한 자도 있다.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들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확신한다.나는 민주주의적인 절차와 제도가 일본에 뿌리내렸으며 일본인은 군국주의와 침략전쟁에는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고 믿는다.일본 헌법 9조(교전권과 집단자위권을 인정하지 않음)가 개정된다해도 일본의 평화에의 서약은 지켜질 것이다. 물론 항상 위험은 있다.그 가운데는 전쟁중 일본의 행동을 정당화 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할 위험도 있다. 때때로 일본의 동남아시아점령은 서구의 식민지 지배가 빨리 끝나도록 했다며 정당화 하기도 한다.그러나 나는 이러한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식민지 지배는 전쟁전에 급속히 무너지고 있었다.영국은 그 이상 식민지 지배를 유지할 경제력도 의지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게다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영국의 지배보다 훨씬 가혹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원자폭탄에 대해서는 우리는 투하된 뒤에조차 일본정부가 항복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쇼와(소화)일왕의 개인적인 개입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일본의 군사 지도자들은 「천황」의 항복방송마저 막으려 했던 것이다.원폭으로 죽은 사람들과 피폭자에는 동정하지만 나의 견해로는 히로시마의 비극의 최종적인 책임은 일본의 군사 지도자들에게 있다. ▷약력◁ ■1924년 영국 요크셔 출생 ■세인트 앤드루스대,런던대서 수학 일본어로 학위취득 ■1949년 영 외무부 근무시작 1980 ∼ 84년 주일본대사 역임 ■저서「황금의 섬들,일본의 고지도」 「동의 섬나라,서의 섬나라」 「속 동의 섬나라,서의 섬나라」
  • 「김영삼 정부의 성취」 서울의 외국특파원 평가

    ◎사라진 시위·최루탄… 세계화 “기대”/구로다 가쓰히로 일 산케이신문 지국장/「경제우위·탈정치」 사회기류 주시해야 얼마전 서울에 10년 이상 주재한 일본 기업인의 송별회가 있었다.그때 그는 한국생활을 되돌아보는 인사말에서 한국사회의 최대 변화는 학생시위와 최루탄이 없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5공화국 초기인 1982년 1월 오랫동안 계속돼 왔던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됐다.그러나 지금은 어느 누구도 불편했던 「야간통행금지 시대」를 떠올리지 않으며 훌륭한 역사적 정책결정이었던 「통금해제」를 평가하지 않는다.그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사회로부터 학생시위와 최루탄이 사라진 것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으며 평가하여야 한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 정권 출범후 2년간을 돌이켜 볼때 학생시위와 최루탄이 없어진 것은 틀림 없는 한국사회의 위대한 변화다.그러한 변화는 문민정권의 탄생으로 이루어졌다.확실히 김 정권의 최대의 업적이라고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김 대통령의 그러한 문민정부 성과는 어려운 과도기에민주화를 정착시킨 노태우 정권의 노력 연장선 위에 있다.따라서 문민정부라 해도 과거를 부정만 해서는 안된다.역사에는 정직하지않으면 안된다. 학생시위와 최루탄의 소멸로 상징되는 김 대통령 정권의 2년은 한국 현대정치사상 국내 정치가 가장 안정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그때까지 한국의 대외 이미지는 학생시위와 정치불안이었다.그러나 지금은 반정부운동이 없어졌다.외국인의 눈에는 가장 감명 깊은 변화다. 그러나 국민들, 다시 말해 유권자들은 어느 나라에서든 요구 사항이 많다.정부의 훌륭한 업적을 강조·자랑하고 싶어도 국민들은 「당연한 일」 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며 또 다른 것을 요구하면서 불만을 말한다.국민들에게는 정치안정이나 개혁이라는 업적은 이미 과거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예상 이상의 경제성장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김 대통령은 이때문에 또 다른 업적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최근 김 대통령 정권의 정치스타일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그것은 민자당의 당명 변경 중지와 대표지명이다.국민을 상대로 새로운 당명까지 모집하다가 갑자기 당 이름의 변경을 중지했다.국민들에 대한 공식 사과·헤명도 없었다고 생각된다.새로운 대표자 임명도 당대회 때까지 비밀이었다.김종필씨가 탈당, 신당을 선언하며 지적한 「독선·독단·충격에 의한 정치스타일」 이라는 비판은 당연하다. 김 대통령은 인품이 훌륭해 득을 보고 있으나 그의 정치스타일은 「선의의 지도자 한사람 정치」라 할 수 있다.한국정치는 역시 지도자 한사람의 정치가 아니면 안되는가. 그러나 문민정부의 업적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도 정치의 비중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한국도 경제 규모가 커지며 근본적으로 국가를 움직이고 있는 힘은 정치가 아니라 경제로 옮겨지고 있다. 김 대통령의 최대의 업적은 한국사회를 탈정치화의 길로 이끈 것이 될지 모른다.학생시위의 소멸로 학생들은 이미 탈정치화 되고 있다.6월의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한국은 「정치의 계절」을 맞지만 국민들은 사실 탈정치화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앤드루 스틸 영 로이터통신 지국장/정치안정 바탕,통일에 과감한 도전을 서울 중심가를 조금만 걸어도 김영삼 대통령 취임 이후 2년간 이루어진 한국사회의 변화를 곧 알수 있다.그러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은 앞으로 하여야 할 주요 과제를 안고 있다. 서울 중심에 있는 시청을 출발하면 여기저기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그것은 김 대통령이 이룩한 경제성장과 기업안정의 상징적 조형물이다.김 대통령의 등장으로 실현된 30년만의 문민정권 탄생은 한국의 군사통치와 권위주의의 어두운 시대가 역사속으로 사라졌음을 세계에 알리는 분명한 신호였다.공정한 자유선거를 통해 권력에 오른 그의 길은 번영하는 민주국가로서의 한국의 성공적인 등장을 더욱 확실히 입증하고 있다. 서울시청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는 서울신문을 비롯한 언론사들이 있다.언론은 김 대통령의 부정부패 추방운동이 강력히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비교적 자유를 누려왔다.세계의 언론감시단체들도 한국의 언론은 자유롭고 민주적이라고 선언했다.물론 한국의 언론자유가 완전히 장미빛만은 아니다.군사통치시대에 만들어진 언론자유를 제약하는 낡은 법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김 대통령도 폐지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그러한 법률은 김 대통령 만큼 훌륭하지 못한 미래의 지도자가 등장할 경우 언론제약으로 악용될 잠재적 위험성이 있다. 김 대통령은 개방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한국의 개방화는 아직 초기단계이다.서울에는 세계 주요 수도보다 여전히 외국인이 적다.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은둔의 나라」 시대는 지났으며 한국은 새로운 자화상을 만들고 있다. 김 대통령은 클린턴 미국대통령, 옐친 러시아대통령, 미테랑 프랑스대통령, 강택민 중국국가주석 등 세계적 지도자들과 함께 국제무대를 활보하며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높여 놓았다.한국의 다음 목표는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다.그러한 목표의 실현도 그리 멀지않은듯 하다.그러나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은 아직도 관료주의와 한국사회의 복잡함에 당혹할 때가 있다.김 대통령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 혁명이 공허한 슬로건의 의미 없는 운동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식하지않으면 안된다. 세종로 끝에 있는 국립박물관은 여전히 경복궁과 청와대의 시야를 막고 있다.그러나 일본 식민지배의 잔재인 국립박물관도 많은 논란 끝에 김 대통령이 철거를 결정함에 따라 멀지않아 사라질 것이다.그 결정은 일본및 「빅 브라더」 와의 관계에 있어서 한국의 점증하는 자신감과 함께 김 대통령은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독소를 제거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청와대 뒤에는 그러나 북한의 잠재적 침략가능성에 대비한 장벽이 있는등 무거운 남·북대결의 그림자가 여전히 남아 있다.김 대통령은 수십년간 계속돼온 북한의 불신과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냉전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그런 가운데 김 대통령은 폭발성을 갖고 있는 미지의 인물인 김정일과 조만간 거래하지 않으면 안된다.김 대통령은 한국을 안정된 민주국가로 변화시키고 있지만 과감한 통일에의 도전을 단행하지 않을 경우 그의 성공적인 대통령상은 심각하게 평가절하 될 것임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 모스크바 3상회의(새로쓰는 한국현대사:8)

    ◎미,「신탁통치」 제의… 좌·우 극렬대립 초래/처음엔 온국민 “반탁”… 며칠새 좌익은 “보탁” 돌변/해방정국 혼란의 늪에… 「남북분단 고착」 빌미로/“한국문화·생활수준 높다” 미 군정서도 신탁 반대 광복의 기쁨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 19 45년 겨울 모스크바에서 불어온 한줄기 삭풍은 민족의 가슴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미국 소련 영국 중국 등 4개국이 한반도를 최장 5년 동안 신탁통치한다」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은 비보 그것이었다. ○미 43년초 탁치 첫언급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은 분노로 들끓었다.새 국가의 체제를 놓고 경쟁하던 우익·좌익 양대 세력은 반탁,찬탁으로 갈라서 서로가 적대관계 노선을 치달았다.또 한민족의 신탁통치 반대투쟁 과정을 지켜본 미·소 양국은 「한반도 독차지」의 야욕을 포기하고 자국 세력권에 각각 단독정부를 세우는 쪽으로 선회해버린다.결국 모스크바 삼상회의가 몰고온 「신탁통치 바람」은 남북분단을 고착하는 빌미로 작용했을 뿐이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은 이처럼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확한 내용은 물론 어느 나라가 신탁통치 계획을 주도했는지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한반도를 신탁통치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이를 실현시키려고 애쓴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인 1943년 초 이같은 구상을 처음 드러냈다.그해 3월27일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영국 외상 이든과 만난 자리에서 전후 한국과 인도차이나에 신탁통치를 실시할 뜻을 비쳤다.이어 11월 열린 테헤란회담에서 루즈벨트는 소련의 스탈린에게도 같은 생각을 슬쩍 흘렸다. ○루스벨트 구상 흘려 이후 미국의 계획은 갈수록 구체화됐다.43년 12월 카이로회담에서는 한국을 「적당한 시기에」독립시킨다는 표현으로 나타났다.그리고 얄타·포츠담회담에서는 더욱 은밀하게 추진된다.루즈벨트가 얄타회담에서 필리핀을 예로 들며 한국에서도 20∼30년간의 훈련기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에 스탈린은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고 대답하기에 이른다. 전쟁이 끝나 38선을 경계로 남북에 미·소 양군이 진주하고 군정이시작되면서 「신탁통치」건은 얼핏 사라지는 듯 했다.그러나 10월1일 미국 삼성조정위원회는 맥아더 장군에게 「미군정에 이어 효과적인 4국 신탁통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섭을 시작하라」는 통고를 보낸다.이어 미국이 신탁통치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 고위관리의 발언으로 명확하게 표출됐다.국무성 극동국장 J C 빈센트는 그달 중순 외교정책협의회 포럼에서 『한국에는 당장 자치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우선 신탁관리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 내용은 즉시 한국 언론에 보도돼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매일신문(10월20일자)은 논평에서 신탁통치 기도를 『그것은 식민지화이며,다름아닌 쇠사슬』이라고 비난했다.좌우익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우익인 한민당은 미군정과의 협력을 중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좌익인 인민공화국도 『신탁통치를 강제 결의한다면 한국인은 목숨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거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식민지의 연장” 비난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국립문서보관소(WNRC)에서 최근 찾아낸 미 외교문서와 「신탁통치에 관한 보고서」 등에 따르면 주한 미군정도 사실상 신탁통치안을 반대했다.하지의 정치고문 랭던은 11월20일 맥아더 연합군사령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해방된 한국을 한달 동안 관찰한 경험에 미루어 신탁통치는 불가능하므로 철회해야 한다』고 충고했다.그 까닭을 『한국은 일제치하를 제외하면 남다른 역사를 산 민족이고,문자해득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문화와 생활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하지도 이 무렵 합동참모본부에 보낸 보고서 「한국의 상황」에서 『신탁통치가 지금 또는 장차 적용된다면 한국인들은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우익지 “소련서 제안” 이런 상황속에서 12월16일 소련 수도 모스크바에는 미국의 번스 국무장관,소련의 몰로토프 외상,영국의 베빈 외상 등 3명이 회동했다.얄타회담의 후속으로 마련된 이 모임에서는 한국 말고도 유럽·아시아지역의 여러국가들에 대한 처리방안이 논의됐다. 삼상회의 마지막날인 27일 「한국에 관한 결정」이국내에 보도됐다.우익지의 대표격인 D신문은 27일자에서 「워싱턴 25일발 합동 지급보」란 설명을 붙여 그 내용을 전했다.『소련은 신탁통치 주장,소련의 구실은 분할 점령,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란 제목의 기사는 벌집을 쑤셔놓은듯 파급이 컸다.미국의 「성조지」와 KPP통신도 이날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결국 이같은 첫보도는 한국민에게 ▲「모스크바 결정」의 주내용은 신탁통치 실시이고 ▲이를 주장,관철시킨 쪽은 소련이라는 인상을 깊이 각인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이 회담에서 미국은 4대국에 의한 신탁통치를 5년 동안 실시하되 10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제의했다.반면 소련은 한국의 정당·사회단체와 협의해 임시정부를 수립한 다음 4개국이 원조하자는 안을 내세웠던 것이다. 「한국에 관한 결정」은 미·소 양국안을 절충한 형태로 내려졌다.4개항의 요지는 ①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 ②준비모임으로 미소공동위원회 구성 ③5년 이내의 신탁통치 실시 ④2주 내 남북 주둔군사령부 대표자회의 개최 등으로 돼 있다.따라서 절차상 예비기구 설치를 규정한 조항을 빼놓고 본 주요내용은 「임시정부 수립」과 「5년 이내 신탁통치 실시」이다.특히 「임시정부 수립」에 우선 목표가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공산주의 음모」 오해 당시 일반적인 국민감정은 「어떤 형태로든 외국 지배가 연장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백성의 분노는 당연히 왼쪽을 겨냥했다.더욱이 처음 반탁에 동참했던 좌익세력이 며칠새 찬탁으로 입장이 돌변하면서 「신탁통치 기도는 공산주의의 음모」라는 시각이 자리를 굳혔다.그러나 사실은 곧바로 드러났다.46년 1월25일 소련 타스통신은 『신탁통치를 제안한 쪽은 미국』이라며 미국안을 공개했다. 미국이 신탁통치를 먼저 제의했다는 증거는,서울신문사 특별취재반이 역시 WNRC에서 입수한 「번스 국무장관이 주한미군 정치고문 베닝호프에게 보낸 전문(46년 1월26일)」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이 전문은 「타스통신 보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를 묻는 베닝호프에게 보낸 답신으로,번즈 장관은 『그 내용이 맞다』고 시인한 뒤 『하지 장군이 적절하게 판단해 처리하도록』지시했다. 하지만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의 핵심내용이 무엇인지,누가 신탁통치를 획책했는지가 새로 밝혀졌다고 해서 대세가 달라지지는 않았다.반탁·찬탁 투쟁을 통해 이미 전면전에 들어간 좌우익 세력은 상대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했다.이에 따른 좌우익 충돌은 해방정국을 더욱 깊은 늪으로 빠뜨렸다. ◎한·소 신탁통치 결정 속셈/자기세력권 확보에 유리 판단/한국독립과는 무관… 냉전체제 대비 노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한국에 신탁통치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미국·소련 양국의 속셈은 무엇일까.신탁통치 구상이 처음 나와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결정되기까지 양국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미국은 전후 세계 질서 재편의 한 방안으로 한반도를 비롯한 여러 식민지 국가들을 신탁통치령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미국의 의도는 명확하다.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측을 주도한 미국은 전후세계가 자국 중심으로 개편되기를 원했다.다른 나라보다 보유 식민지가 적었던 미국은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패전국은 물론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은 영국·프랑스의 식민지들을 「민족 독립」의 명분으로 풀어주고자 했다.이는 실질적으로는 해당국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독립한 국가들을 자연스럽게 자국 세력권으로 유도하는 방안이었다.또 당시 이미 싹트고 있던 냉전체제에 대한 대비이기도 했다. 한국에 「4국 신탁통치」가 실시되면 미국은 영국·중국과 손잡고 소련을 견제함으로써 한국을 미국 세력권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같은 이유로 소련은 처음 신탁통치안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그러나 「8·15」 후 북쪽에 진주한 소련은 신탁통치를 하더라도 한반도를 공산주의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나름대로 갖게 됐다.북쪽은 물론이고 남쪽에도 좌익세력이 만만치 않아 결국 대세를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소 양국의 신탁통치 결정은 애당초 한국에 자주독립국가를 세운다는 것과는 상관 없었다.한반도에 들어선 정부를 자국 세력권으로 확보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고 그 전략으로서 신탁통치가 양국의 입맛에 들어맞았을 뿐이었다.
  • 풍수침략(외언내언)

    우리조상들은 몸에 혈관이 있듯이 땅에도 생기의 통로인 혈맥이 있다고 믿어왔다.이른바 지기라는 것이 땅의 혈맥을 통해 순환한다는 것이다.고려시대이후 풍미한 풍수지리설은 이같은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집을 짓거나 묘를 쓸 때 풍수지리를 따졌고 기를 쓰고 명당을 찾았다.이와 함께 마을이나 산의 형세를 빌려 사람들의 미래를 예언하기도 했다.「이 고장이 배모양을 하고 있어 돛대를 세우고 우물을 깊이 파서는 안된다」는 등의 풍수설화도 도처에 산재해 있음을 보게 된다.연못속의 용을 쫓아내고 절을 세웠다는 경주 황룡사의 창건설화는 유명하다. 일제때 이 땅을 강점한 일인들은 전국도처의 명당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한다.지맥을 끊어 우리의 민족정기를 차단해보겠다는 흉계에서였다.식민지지배를 영구히 계속하겠다는 미망이 담겨져 있었다.『설마 그렇게까지 했으랴』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북한산 백운대에서도,속리산 문장대에서도 지맥끊기 쇠말뚝을 뽑아내지 않았는가.아직도 전국 1백30여곳에 이 「치욕의 쇠말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일제가 저지른 최대의 지맥끊기는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정면을 가로막고 세운 총독부건물.4백여칸의 전각을 헐어내고 식민지통치의 상징건물을 세운 것은 왕기를 막고 왕조에 대한 백성의 그리움을 차단하기 위한 술책이었다.오는 광복절에 구총독부청사의 해체작업이 시작되지만 철거된 뒷자리에서 또 무슨 「풍수침략」의 흔적이 나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엊그제 국무회의에서는 광복50주년을 맞아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을 모두 제거하기로 했다.민족정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산 정상에 박힌 것뿐 아니라 우리들의 의식속에 박힌 일제의 쇠말뚝은 없는가 점검해볼 일이다.
  • 문화·의식분야/차하순 박사에 듣는다(세계6대과제/이렇게 풀자:5)

    ◎한국문화 전체성 확립 우선 힘쓸때/의식구조 개혁돼야 선진민주사회 실현/문화는 쌍방흐름… 독선적 자세 추방해야/“외국문화 「수용∼여과기능」 국민에 부여 마땅” 『우리의 정치·경제·사회가 한단계 높은 수준으로 뛰어오르기 위해서는 세계문화와 문명에 대한 연구가 절실합니다.국가발전에는 경제성장과 과학기술의 발달도 중요하지만 문화의 힘이 그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화추진위원 차하순 박사(서강대 명예교수)는 8일 서강대 연구실에서 『우리는 아직도 자기 주변의 이해에 얽혀 합리적인 판단과 이를 실천하는 문화가 부족하다』며 『지금 같은 정서를 갖고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더 이상 키워나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문화와 의식의 세계화는 무엇을 뜻하는지. ▲문화와 의식은 다른 듯하면서 밀접한 관계가 있다.문화의 정신적 기반이 곧 의식구조이기 때문이다.문화는 몇가지 의미가 있으므로 세계화도 몇 갈래로 생각할 수 있다.지적활동의 소산에 따라 고급문화 또는 대중문화로 나눌 수 있고 또 행위의 규범과 행위의 패턴과 관련된 문화가 있다.문화의 세계화는 첫째로 우리의 고급문화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대중문화의 선진화를 의미한다.그리고 우리의 삶의 질과 관계 있는 문화가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의식구조와 밀접한 부문이다.이 의미의 세계화는 시민 각자가 다같이 바른 공중도덕심을 가진 상식을 존중하는 사회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선진국민으로서의 한국인상을 세우려는 노력을 뜻한다. ­문화부문의 세계화 추진과제는. ▲우선 한국문학과 예술의 세계적인 진출과 지식·문화사업의 국제경쟁력강화와 외국문화·문물의 바른 이해와 합리적 수용등을 들을 수 있다.또 기초질서준수의 생활화와 공중도덕심을 기르는 사회교육,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문화를 관광자원화 하는 일,바른 해외여행문화를 세움으로써 국민의 대외적 이미지제고 등도 들을 수 있다. ­문화의 세계화는 자칫 우리문화의 주체성 상실이나 외래문화에 종속되는 식민지화로 오해받을 수 도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은.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세계화는 쌍방통행적이라는 것이다.즉 외국의 것을한국화함과 동시에 우리의 것을 세계화한다는 의미다.그 어느쪽의 독선이어서는 안된다.지금 세계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하나가 되어 있다.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가 고립되고 폐쇄적일 수 없다는 것은 역사적 요청이다.그러므로 문화의 세계화목표는 세계화를 통해서 오히려 한국문화의 아이덴티티를 세우는 것이다. ­의식의 세계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도나 관행의 나쁜 점을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제도나 관행을 개혁해야 하는 점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의식구조가 달라지기 전에는 지속적인 개혁이 될 수 없다.지금 경제적으로는 우리의 살림규모가 어느정도 향상됐다고 하지만 과연 대부분의 시민이 법을 준수하고 질서를 지키며 공중도덕심을 발휘해서 예절바른생활을 하는가 자성해야 한다.이 문제는 의식구조에 연결될 수밖에 없다.이점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의식구조의 선진화를 위한 개혁에는 시일과 인내가 필요하다.또 많은 사람이 한마음으로 동참해야 한다.법으로 할 수 있는것이 있고,언론이나 사회·종교단체의 캠페인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있다.또 가정교육을 통해 준법이나 질서정신을 높이거나 학교교육을 통해 가르칠 수 도 있다.의식의 세계화에는 모든 방법이 동원되어야 한다. ­해외여행자가 늘고 있으나 잘못된 여행문화로 외국인이 보는 한국인의 이미지가 흐려지고 있다.의식의 세계화차원에서 개선책은. ▲해외여행자유화조치로 가정주부에서 학생까지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이 해외여행을 하고 있다.시야를 넓힌다는 점에서는 환영해야 한다.그러나 외국어를 못한다든지 기본적인 국제예절을 모른다든지 또는 풍습과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든지 해서 결과적으로 돈은 돈대로 쓰고 후진국민의 대접밖에 못받는 경우가 허다하다.여행문화의 개선을 위해서는 스케줄의 이행충실도와 여행에 대한 사전정보숙지도와도 상관이 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여행자를 위한 사회교육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외국의 일상용어·사회제도·문화·풍습등에 대한 정보와 편람이 제공되고 비디오필름등을 제작,교육시켜야 한다.다음으로는 관광안내요원의 질적 개선이다.이들에 대한 국가면허시험이나 자격요건이 강화되어야 한다.안내요원은 일종의 민간외교사절이기 때문이다.관광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이 모든 것을 조사·연구·홍보·교육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세계화를 위해 일본 대중문화개방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대중문화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둑을 쌓듯이 법이나 제도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불법적으로 흘러들어오는 저질외래대중문화의 해독은 크다.일본문화뿐만 아니라 외국의 문화를 수용하거나 거부하거나 하는 여과기능을 국민 스스로가 갖도록 해야 한다.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전체가 하나의 생활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 역사의 흐름이다.일본의 대중문화와 다른 외래 대중문화에 대해 한단계 수준 높은 태도를 취해야 한다. 차박사는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브렌다이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61년부터 서강대교수로 재직하면서 문과대학장과 부총장을 역임하고 역사학회회장·한국서양사학회장을 지냈다.
  • 「공연예술의 메카」나윤도특파원 현장리포트(브로드웨이“새바람”:4)

    ◎맨해튼을 거닐며/트라이베카선 드니로 등 명우쉽게 만나/역사의 인물 헤일·그릴리·프랭클린동상 우뚝/구정때면 차이나타운에 용춤 행렬 장관/프랭클린가엔 테디 시어터 등 소극장 많아 『태양은 모든 것을 향해 밝게 빛난다(The Sun it shines for all)』 브로드웨이 280번지,챔버 스트리트와 교차 지점에 있는 시청 부속건물의 외벽 모퉁이에서 브로드웨이 쪽으로 돌출해 있는 작은 시계 「선 클록」(Sun Clock)에 새겨진 이 글귀는 브로드웨이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한면이 50㎝ 정도에 불과한 정육면체의 청동주조물에 8각의 로마숫자판으로 된 이 시계는 스스로 태양이고 싶은 뉴요커들의 심정을 은연중에 대변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원래 이 글귀는 19세기 중반 창간돼 1917년에 이 건물로 옮겨왔던 신문 선(The Sun)의 모토였다.뉴욕시청 바로 뒤에 떡 버티고 서서 격동기 미국 현대사의 감시자 역을 맡았던 선은 뉴욕 최초의 페니 페이퍼(한 부 값을 1센트 정도로 정해 누구나 쉽게 사 볼 수 있게 한 신문)로 모든 뉴요커들에게 따뜻한태양 역할을 자청했던 신문이다. 그후 1952년 이 신문이 폐간되고 한동안 선 클록도 멈춰 있었으나 이 시계를 사랑했던 부근의 시청 직원들과 각회사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보수해 놓았다.결국 선은 없어졌어도 선 클록은 뉴요커들의 희망의 목소리로 그자리에 남아 있다. ○남북 6개블럭 연결 남쪽으로 세인트 폴 교회가 있는 풀턴 스트리트로부터 북쪽으로 챔버 스트리트까지 여섯 블록에 이어지는 브로드웨이의 맞은편은 시빅 센터(Civic Center)라 불리는 곳으로 넓은 시티 홀 파크 공원을 중심으로 시청과 각종 부속건물,시경,각급 법원 및 연방사무소 등 뉴욕의 모든 관공서들이 모여있어 뉴욕의 심장부를 형성하고 있다.1870년 최초로 이 공원을 따라 머레이 스트리트에서 워렌 스트리트간 약1백m에 뉴욕의 첫 지하철이 튜브식 공법으로 시험 건설되었다. 이 지역의 브로드웨이는 2백여년 동안 수많은 영웅들을 위한 환영의 거리,축제의 거리이자 데모의 거리,상업의 거리로 발전해왔으며 자연적으로 미국 자유언론의 전통을 탄생시킨 신문의 거리를형성해 왔다. 특히 1811년 완공된 시티홀 앞 광장은 식민지 시절 뉴욕을 방문하는 영국왕을 위한 환영퍼레이드를 벌이던 전통에서 최근에는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홈팀 선수들의 환영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축제가 벌어져 왔다.그뿐만 아니라 1865년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후 이틀 동안 시신이 안치됐을 때는 6만여 뉴요커들이 조문을 위해 장사진을 치기도 했던 곳이다. 오늘날 이 거리의 역사는 세사람의 동상이 대변해주고 있다.워싱턴 장군의 부하였던 네이선 헤일(1755∼76)과 언론인 호러스 그릴리(1811∼72),그리고 벤저민 프랭클린(1706∼90)이 그들이다. ○19개 신문가 옮겨가 시청 서쪽의 헤일 대위는 예일대 출신 교사로 독립전쟁이 벌어지자 워싱턴 장군의 군대에 합류,맹활약하다 1776년 9월 영국군에 잡혀 바로 다음날 교수형을 당했다.그가 죽기 전 『내가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나의 목숨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 하고 남긴 말이 영원히 기념되고 있다. 동쪽 브루클린 다리를 향해 서있는 뉴욕 트리뷴창간자 그릴리는 남북전쟁 시대의 개혁가로 노예제도를 공격하고 여성의 참정권 허용, 노동조합 장려 등을 강력히 주장했다.그는 특히 서부 공략을 주장한 『서부로 가라,젊은이들이여(Go West,Young men)』라는 글이 유명하다. 공원 옆 페이스 대학 앞에 있는 미국 정치가의 대부이자 언론인,과학자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새정부 수립시 펜실베이니아 대표로 참석,각 주간 이해 대립 조정자로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으며 자신이 창간한 신문 펜실베이니아 거제트를 한손에 들고 서있다.그 동상 옆에는 헝가리 태생의 조셉 퓰리처가 신문왕국의 발판으로 삼았던 뉴욕 월드 옛사옥이 있다. 이렇듯 시티 홀 파크를 사이에 두고 브로드웨이와 파크로 거리 일대에는 19세기 말 19개의 신문사가 밀집해 있을 정도로 번성한 신문의 거리를 이뤘다.이들은 이 지역에서 1733년 뉴욕 위클리 저널을 창간,영국의 식민통치에 과감히 투쟁하던 존 피터 젱거의 정신을 이어받아 자유언론의 전통을 세워나갔다.그러나 오늘날 상당수는 없어지거나 더 북쪽으로 이전해 신문의 거리는역사적 이름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이 거리에는 또 근대 상업의 발상지인 브로드웨이 233번지에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있는 울워스(Wool worth)빌딩이 있다.1879년 이 지역에 새로운 형태의 소매점포를 차린 세일즈맨 프랭크 울워스는 5센트·10센트 균일점이라는 다양한 물품을 박리다매로 판매하는 형태로 운영했다. 순수한 소매업만으로 엄청난 재산을 모은 울워스는 1913년 당시 높이 2백40m,60층의 사옥을 완공시켜 세계 최고의 높이뿐 아니라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더욱이 그는 공사비 1천5백만달러를 은행빚 하나없이 현금으로 지불해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이 건물은 17년간 세계최고의 기록을 보유했으며 아직도 울워스사의 본부로 쓰이고 있다. 이 지역을 지나 챔버 스트리트 북쪽으로 올라가면 브로드웨이의 스카이라인은 마천루 숲을 이루던 남쪽과는 큰 대비를 이룬다.5∼6층 정도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여기저기 중국어 간판이 눈에 들어오면서 브로드웨이는 북쪽의 커낼 스트리트까지 차이나타운의 한부분을 이룬다. 브로드웨이를 서쪽 끝으로 하여 이스트 리버의 맨해튼 브리지까지 넓게 펼쳐진 차이나타운은 구정을 맞아 연일 각종 민속행사가 한창이다.부리부리한 눈에 형형각색의 꽃술이 달린 커다란 두마리의 용이 가게마다 찾아다니며 폭죽을 터뜨리며 1년 동안의 복을 비는 신비한 중국인들의 민속행사들도 브로드웨이의 한부분이 돼 있다. 그러나 브로드웨이의 가장 큰 매력은 역사와의 만남보다도 민속과의 만남보다도 예술과의 만남에 있다.동쪽으로 시빅 센터와 차이나타운을 이끌어온 브로드웨이의 서쪽 일대를 차지하고 있는 트라이베커는 사실상 브로드웨이 예술기행의 출발점이다. ○예술의 감칠맛 더해 「운하 아래 삼각형 모양의 땅」이라는 뜻의 이곳은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백화점들의 창고지역으로 얼핏 보기에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곳이지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광맥을 찾듯 빨려들어가게 하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내놓고 보여주기보다는 더듬고 들여다보고 찾아야 가까스로 조금 보여주는 절제된 아름다움은 브로드웨이 예술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요소가되기도 한다. 브로드웨이 예술의 또하나의 매력은 화제 인물의 체취를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어빙 벌린이 성장한 맨해튼 로어 이스트사이드에서 듣는 노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다르듯이 트라이베커에서 영화배우 로버트 드 니로를 만나는 것은 뉴욕에 대한 새로운 입문이 된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염세주의적인 월남전 공훈 택시 운전사로 만난 니로와 「뉴욕,뉴욕」에서 사랑에 성공한 색소폰 연주자로서의 니로와 이곳 그리니치 스트리트 375번지 트라이베커 필름센터에서 만나는 니로는 사람도 다르고 뉴욕도 다른 뉴욕이다. 이곳에서 두 블록 떨어진 허드슨 스트리트 110번지의 아파트에 살고 있어 트라이베커의 터줏대감인 니로는 옛 커피창고를 개조해 만든 이 필름센터를 스티븐 스필버그,론 하워드,퀸시 존스 등과 함께 사무실겸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밑에는 트라이베커 그릴이라는 찻집도 공동운영,영화예술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화이트 스트리트 38번지에는 네온 미술가 루디 스턴의작업장이자 갤러리인 「네온이 있게 하라」(Let there be Neon)가 있고 웨스트 브로드웨이와 프랭클린 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에는 자유의 여신상 크라운을 쓰고 있는 테디 시어터,원 드림 시어터 소극장 등 구석구석 창조의 공간들로 채워져 있다. 『자유여,상큼한 자유여(Oh,Liberty,Sweet Liberty)』 프랭클린 스트리트의 한벽면을 장식한 이 글은 브로드웨이의 영원한 모토이기도 하다.
  • 형식적 민주주의 내용적 민주주의/이수윤 한국교원대교수(서울광장)

    국민들은 오랫동안 문민정부의 출현을 갈구해 왔다.그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그것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국민들의 신념에 찬 간절한 염원때문이다.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다. 모든 사물에는 형식과 내용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형식과 내용의 유기적 통일을 이룬 사물은 완전하다.형식과 내용이 불일치하고 서로 분리된 사물은 불완전하다.민주주의에도 형식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이 있다.형식적 민주주의는 서민대중들에 의한 정치체제를 가리킨다.내용적 민주주의는 서민대중들을 위한 경제체제를 의미한다.진정한 민주주의,참다운 민주주의 이념은 형식적 민주주의와 내용적 민주주의의 유기적 통일을 추구한다.바로 그것은 고대희랍부터 현대까지 철학자들이 탐구해 온 최선의 국가이념·예비천국이념·정의국가이념·국민적 자유국가이념과 일치한다. 한 사물의 출발과 기원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은 그 사물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확립하는 가장 바른 길이다.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이 논리는 그대로 타당하다.민주주의가 시작된 고대희랍에서는 민주주의의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괴리가 철학적 문제로서 제기되고 있었다.희랍고전철학자들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는 희랍도시국가들이 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희랍고전철학자들은 희랍도시국가들의 정치적 민주주의가 사람들이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서민대중들을 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권적 부자들만을 옹호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희랍도시국가들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특권적 부자들로 하여금 금권과두적 독재정치에서처럼 서민대중들을 노골적으로 압박하지 않고도 사회의 경제적 부를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특권적 부자들은 막대한 부를 배타적으로 향유하는데 있어서 금권과두적 독재정치보다 민주주의를 더 편리한 제도로 여겼다.희랍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특권주의와 결합되어 있었다.희랍고전철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를 통일한 참다운 민주주의 이념을 확립하는데 있었다.희랍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대로 현대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된다. 현대민주주의에서도 민주주의의 형식과 내용의 모순과 불일치라는 문제가 발생한다.현대민주주의에서도 독점적 부자들은 형식적으로는 서민대중을 내세우면서 내용적으로는 그들만을 위한 정치가 행해지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현대민주주의의 근본적 과제도 형식적 민주주의와 내용적 민주주의,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통일에 있다. 지금의 문민정부는 중대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다.지금의 문민지도자는 삭풍이 휘몰아 치는 정치환경을 이겨내고 문민정부의 지도자로 등장했다.국민들은 그에게서 시의적절한 결단력과 난관을 극복하는 돌파력을 기대하고 있다.지금의 문민지도자가 역사방향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그 방향은 정치 민주화에서 더 나아가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것이다.경제민주화 없는 정치민주화는 공허하다.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의 해소에 있다. 진정한민주주의의 기반 위에서만 지금 이 시대의 절박한 요청인 안정된 정치적 구심력이 확립될 수 있다.정치적 구심력이 결여되면 사회적 파탄과 국가적 좌절이 초래될 수 있다.이성적 진보주의에 입각한 안정된 정치적 구심력이 굳건히 확립될 때만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세차게 불어오는 세계화의 바람과 일본으로부터 끈질기게 닥쳐오는 동북아시아화의 기운에 자주적으로 대처하면서 그것을 오히려 국가발전의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켜 민족국가의 통일을 우리의 주도로 실현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나갈 수 있다.
  • 일총리 “한반도분단 일도 책임”발언번복/남·북한과의 외교마찰 덜기

    ◎분단책임론 대두·대북수교협상 부담 우려 무라야마 총리가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한반도의 분할에 일본이 얼마간 책임이 있다고 공식 인정했다가 하룻만에 이를 번복한 것은 한반도 분할이 복잡한 국제문제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무라야마 총리는 지난 30일 중의원 예산위원회 답변을 통해 『역시 일본국민으로서 역사적인 책임이 얼마간 있다고 생각한다.어떤 일이 있더라도 분쟁상태는 절대로 남아있어서는 안된다』고 명확히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날 발언이 전해지자 외무성 등은 정부의 공식견해와는 다르다면서 총리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해명.외무성은 한반도와 관련,일본이 전후 맺은 조약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한일기본조약으로 어느 쪽에도 남북분단을 초래한 것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책임을 극구 부인했다. 결국 무라야마 총리는 31일 같은 위원회에서 다시 답변에 나서 『어제 이야기는 과거 식민지배가 역사적으로 초래한 이제까지의 경위에 있어서의 책임이다.일본 정부가 분단한 것은 아니다.전승국과의 관계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남북이 분단돼 있는 점에 대한 책임은 일본국에는 없다고 명확히 해두고 싶다』고 말을 완전히 바꿨다.결론은 일본 외무성이 정부 공식입장으로 취하고 있는 대로다.일본 관료사회의 파워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총리의 발언 번복을 지진 대책 마련에 허둥대면서 이러저러한 발언을 자주 뒤바꾸는 총리가 경험부족으로 「소박한 심정을 표명한 것」으로 돌리려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첫날 총리의 개인적 견해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으면서도 다음날 총리로 하여금 명확히 부인하도록 한 것은 남북한과의 외교관계를 우려한 때문이었다. 한반도 분단은 전후 한반도 주둔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연합군인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38선을 경계로 진주함으로써 비롯됐다는게 통설.따라서 총리의 책임인정 발언이 번복되지 않으면 새로이 분단책임에 대한 논의가 한국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큰데다 특히 전후 보상까지 요구하고 있는 북한과는 국교정상화를 둘러싸고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컸던 것이다.또 무라야마 총리의 부인 발언 가운데는 「전승국과의 관계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남북한을 전승국의 범위에서 제외시키는 듯한 발언으로 대일선전포고등을 행한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승계를 주장하고 있는 한국,대일유격전을 주장하고 있는 북한등의 입장과는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앞으로 통일 이후까지 전망하면서 면밀한 국제법적인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 유럽의 새모색/「카리스마」보다「융합의 리더」찾는다(신지도자론:3)

    ◎“발전적 EU건설” 외교력을 제일 덕목으로/불/좌파 개혁실패에 민의 우파 선호/독/화학적 민족통합·경제성장 기대/영/강력개혁 대처 영국병 치유 업적 21세기의 유럽국가들은 전반적으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프랑스의 한 국제문제연구소는 『민족주의 강화로 21세기가 반드시 장미빛으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으며 미국의 석학 새뮤얼 헌팅턴은 『앞으로 민족문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민족과 문화에 대한 비전이 미래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떠오를 것이라는 얘기다. 그와 함께 현재 경제적 통합의 중간지점까지 진전된 유럽연합의 앞날을 위해서는 주변 국가들과의 협조 관계를 부드럽게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자질도 요구된다고 보고 있다. 선택은 국민에게 달렸다.시대 변화에 따라 국민이 원하는 국가지도자상은 늘 바뀌어 왔다.유럽 여러나라 지도자들의 진퇴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국민은 지난 58년 드 골장군을 막강한 권한까지 주면서 대통령으로 택했다.그러나 11년 뒤에는 그에게 심한 거부반응을 보여 대통령직을 그만두게 했다.프랑스는 2차 대전이 끝난뒤 정치·사회적인 불안이 계속되는 데다 당시 식민지 알제리에 주둔하던 군부의 쿠데타조짐까지 겹친 위기상황을 맞자 초야에 묻혀 있던 드 골장군을 불렀다.국민들은 대통령에게 외교·국방·내치에 방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5공화국 헌법을 통과시켜주면서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드 골대통령은 카리스마적인 국가경영으로 전반적인 안정기를 이룩하지만 60년대말 새로운 지도자를 요구하는 바람이 불어닥친다.국제적으로는 미국의 월남전 참전에 대한 젊은층의 반전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었고 국내적으로 2.7%라는 당시로서는 높은 실업문제와 학교시설 개선문제 해결등이 요구됐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조르주 퐁피두,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이 등장해 경제적 안정을 이루지만 변화에 대한 국민적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던 것같다.81년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프랑수아 미테랑의 사회당 정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미테랑 대통령에게 가히 혁명적인 개혁을 기대했다.사회당 정권의 출범에 겁을 먹은 일부 부유층은 해외로 도피했을 정도였다.하지만 이상적인 사회주의 정책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점차 퇴색했고 실패한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경고」는 두번의 좌우 동거정부에서 나타난다. 프랑스는 오는 5월 대통령선거에서 21세기 지도자를 선출할 예정인데 그동안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자크 들로르 전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의 인기가 높았다.이들은 정치인 출신이 아닌 행정관료에다 경제전문가라는 특징을 갖고 있어 프랑스의 미래 지도자상을 읽을수 있게 한다. 사회당 집권 14년에 대한 염증에다 사회당 후보로 유력시되던 들로르위원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국민의 선택은 우파로 결정될 것 같다.새로운 지도자의 자질로는 3백만명을 넘어선 실업자 문제 해결책,유럽통합(EU) 비전,외교력의 균형이 새롭게 요구되고 있다. 프랑스가 비교적 폭넓은 지도자의 변화를 추구했던데 비해 이웃나라 독일은 경제및 통일지도자를 한결같이 요구해왔다고 할수 있다.아데나워 총리(재임 49∼63년)은 패전국이던 서독에 완전한 주권을 회복케 하는 강력한 지도자로 적합했고 에르하르트 총리(63∼66년)는 경제부흥을 위한 경제전문가로 등장했다. 경제적인 기적을 이룬 독일국민들이 통일이라는 정치적인 기적을 만들어내기 위해 선택한 지도자는 빌리 브란트(66∼74년),헬무트 슈미트(74∼82년),헬무트 콜총리(82년∼)등으로 이어진다.특히 89년 역사적인 통일을 이룬 콜 총리의 신속한 상황판단과 기민성은 새시대의 지도자 덕목으로 지적된다. 콜 총리는 85년 옛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등장해 신데탕트시대를 맞이하자 이를 적극 활용해 89년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독초청으로 2차대전의 남은 숙제를 해결한다.나아가 그는 동서독과 4대전승국간 회담을 통해 독일통일의 열매를 거둔다. 콜 총리는 지난해 10월 선거에서 국민으로부터 거듭 지지를 받아 16년동안 최장수 총리를 할 수 있게 됐지만 국민이 요구하는 그의 활약상은 분명 바뀌고 있다.이제는 통일이후 문제해결과 화학적인 통합,경제성장을해야 한다는 쪽이다. 종전이후 영국에 나타난 현상은 국영기업의 비효율성,저조한 생산력,전국을 마비시킬 수 있는 호전적인 노동조합등 이른바 영국병의 만연이었다.대영제국의 광영은 커녕 유럽내 2류국가로 전락할 상황에서 국민이 요구한 것은 강력한 지도력이었다. 그래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여사가 79년 등장해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노조의 파업에 강력히 대응하는등 개혁조치를 취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다.대처 총리가 11년만에 다우닝가를 내준 것은 주민세 추진같은 비타협적인 강경함에 국민들이 반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존 메이저 총리는 합의를 중시하는 온건정책을 펴면서 북아일랜드와의 휴전같은 내치문제로 눈을 돌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이제 유럽은 카리스마에 의한 강력한 지도력을 지닌 지도자들이 아닌 합의와 조화를 추구하는 지도자들의 시대가 되고 있다. 결국,지도자란 시대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읽고 목표를 설정하며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 그 목표를 달성케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 중,「강택민체제」 이미 완료/외교부 간부

    ◎“등 사후에도 정책변화 없다” 【도쿄 연합】 중국 외교부의 고위당국자는 25일 등소평 사후의 중국 외교정책과 관련,『일·중관계를 비롯한 세계 각국과의 외교관계에 중대한 변화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일본의 교도통신이 이날 북경발로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의 고위당국자가 등의 건강악화설이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등소평 이후의 외교정책에 관해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통신에 따르면 고위당국자는 일본 기자단과의 간담회를 통해 이같은 견해를 밝히고 『중국은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제2세대」의 집단지도로부터 강택민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제3세대」집단지도에로의 이행을 이미 완료한 가운데 전당(전당)·전국민이 현대화건설 촉진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위당국자의 발언은 중국의 외교를 포함한 모든 정책이 강택민지도부에 의해 결정,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밝힌 것으로 등의 사후에도 정책의 계속성이 유지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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