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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전」등 알맹이 뺀채 “겉치레반성”/일여당「전후결의안」합의 의미

    ◎침략·식민지 지배 범죄책임 회피/연정붕괴 우려 「물타기 결의」 변질 산고 끝이라고 꼭 옥동자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본 연립여당이 6일 밤 간사장·서기장급 회담을 열어 오랫동안 논란이 벌어져온 전후 50주년 국회결의안에 합의했다.자민당내 우익정치가를 비롯한 우익세력의 집요한 반대로 무산될 뻔한 결의가 연립여당 안에서 합의에 이른 것은 사회당이 강공을 펼치고 연립정권의 붕괴를 우려해 자민당이 양보한 결과다.또 와타나베의원의 망언에 대해 한국이 단호하게 반발한 것도 합의를 촉진시켰다.이제 남은 절차는 야당인 신진당과 협의를 거쳐 중·참의원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것이다. 합의안이 산고 끝에 나왔지만 그 내용은 피해당사국 주민에게 실망스러운 것들이다.합의안에는 자민당이 반대해온 「침략행위」·「식민지지배」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는 하다.하지만 당초 내건 「사죄」나 「부전결의」라는 말은 모두 빠졌다.결의안의 제목은 「역사를 교훈으로 평화에의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결의」가 돼버렸다.「침략행위」라는 말도 「침략적 행위」라고 바뀌었다.외무성이 영어로 번역하면 「Acts of Aggression」으로 똑같다고 유권해석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한자어권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물타기수법」에 불과하다.많은 역사가가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내용에 대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일본총리들이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를 반성한다』고 말한 것보다도 후퇴한 형태다. 또 일본의 책임을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세계 근대사에 있었던 식민지지배와 침략적 행위에 집착해 우리나라가 이런 행위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비켜나갔다.일본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일본 국회의 결의안이 서구 제국주의국가보다는 아시아국들을 향한 선언이라는 성격이 강한데도 책임부분을 모호하게 만든 것이다. 국회결의가 되더라도 중요한 것은 후속조치다.결의는 법적인 효력을 갖는 문서가 아니다.단지 선언일 뿐이다. 결의내용이 비록 형편없어도 성의 있는 후속조치가 따른다면 일본이 어느정도 반성하고 있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여당안을 마련하는 논의과정에서 보듯이 일본의 지도층에는 과거반성을 거부하는 자들이 두껍게 포진하고 있다.후속조치가 이어질 가능성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 침략 사죄관련 주요 발언 ▲히로히토(유인) 일왕=금세기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84.9.6 전두환 대통령 방일 만찬사) ▲아키히토(명인) 일왕=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90.5.24 노태우대통령 방일 만찬사) ▲가이후(해부) 총리=과거의 한 시기,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하게 된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리고자 한다.(90.5.24 노태우대통령 방일 회담) ▲호소카와(세천) 총리=2차대전은 침략전쟁이었으며 잘못된 전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과 함께 분명한 매듭을 짓고 평화와 국제협조를 위해 책임을 다해 나갈 생각이다.(93.8.10 취임기자회견) ▲하타 쓰토무(우전목) 총리=일본은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 등이 많은 사람에게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과 슬품을 가져다 줬다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94.5.10 참의원 본회의 소신표명연설) ▲무라야마(촌산부시) 총리=우리나라의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데 대해 깊은 반성에 입각,부전 결의하에서 세계평화창조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94.8 전후 50년을 향한 담화)
  • 와타나베 전일 외상 만언을 듣고/신희석(기고)

    ◎일 신보수주의의 한심한 역사왜곡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일본외상이 일본에 의한 한반도 강점의 근거가 되었던 한·일합방조약은 평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체결되었다고 발언하여 또 다시 물의를 빚고 있다.파문이 커지자 「평화적」이라는 발언을 취소하고 사죄의 뜻을 표명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의 발언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역대 일본의 총리나 각료,국회의원등 지도급 인사들은 한·일 국교 정상화 전후를 비롯해 최근에 이르기까지 간헐적으로 이런 발언을 되풀이해 왔다. 그들의 발언양상은 마치 휴화산과도 같다.조용해질까 하면 또 다시 우리를 슬프게 하는 발언을 되풀이함으로써 한·일관계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한·일 우호협력관계의 중요성,그리고 미래지향적인 견지에서 한·일관계를 가일층 발전시켜나가야 할 시점임을 감안할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와타나베전외상의 발언은 세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시기적 문제점이다.일본정부가 전후청산을 위해 노력해왔고 일본국회가 중·참 양원에서 부전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같은 발언이 나온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그런 의미에서 한국정부가 광복 50주년을 맞이해 일본에 의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이에 강력히 대처하기로 한 것은 불가피한 조치라고 하겠다. 전후 50주년을 맞이해 부전·사죄결의를 하자는 일본 연립정권의 노력이 진행되는 시기에 이런 도발성 발언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하겠다.더구나 일본과 북한의 수교교섭 재개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발언의 진의를 의심하게 한다.왜냐 하면 일본의 경제협력과 자본,기술,그리고 쌀을 필요로 하는 북한의 입장으로서는 시기적으로 와타나베 발언에 강력 대응하기에는 불리한 입장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둘째,발언내용의 문제다.일본은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으나 「식민지 지배」를 한 적이 없다니 도대체 와타나베전외상의 역사인식과 양식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일본의 보수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애국주의적인 감상주의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뿐만 아니라 최근 일본 국내에 신보수주의 내지는 신민족주의 사조가 있음을 알고 있다.하지만 이같은 일본 국내의 사상사적 흐름과 배경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와타나베 발언은 한·일관계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매우 한심한 노릇이다.한·일합방은 전전의 일본이 제국주의 대륙침략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책략으로 이루어진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강화도수호조규 을사보호조약등의 불평등조약 역시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상까지 지낸 일본의 지도급 정치인이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경솔한 발언을 한 것은 당연히 규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다케시타,가이후,호소카와등 역대 총리가 공식 석상에서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일본의 기존 자세로부터도 크게 후퇴하고 있다.이같은 여건 속에 미래지향적으로 한·일 우호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셋째,상황적으로도 적당하지 못하다.와타나베전외상이 도치기현 자민당지구대회라는 공식 장소를 빌려서 이런 발언을 경솔하게 한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소양에도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향후 일본 수상을 바라고 있는 지도자가 이같은 상황 판단을 한다면 대국 일본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시대라고 한다.아·태 협력시대에 제일 중요한 동반자는 한·일 양국이다.이같은 상황 속에서 일본 지도급 인사의 경솔한 발언은 우리를 다시 슬프게 하고 있다.우리는 두 민족 모두를 위해 오로지 평화스러운 한·일관계를 바라고 있을 따름이다.
  • 일 연정 국회결의안 전문

    일본 연립여당이 채택키로 한 국회결의안 전문은 다음과 같다. 『국회는 전후 50주년을 맞아 전세계 전몰자 및 전쟁희생자에 대해 추도의 「성」을 바친다. 또 세계 근대사에 있었던 많은 식민지지배와 침략적 행위에 집착해 우리나라가 과거에 행한 이런 행위와 타국민,특히 아시아 여러 국민에게 준 고통을 인식해 깊이 「반성의 염」을 표명한다. 우리는 과거 전쟁에 관한 역사관의 차이를 넘어 역사의 교훈을 겸허하게 배움으로써 평화스러운 국제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국회는 일본 헌법이 내건 항구평화의 이념아래 세계 국가들과 손을 맞잡고 인류공생의 미래를 개척해나간다는 결의를 여기서 표명한다』
  • 일 문화원에 화염병/어제 새벽/와타나베 망언규탄/1·2층내부 불타

    ◎대학생 60여명 6일 상오6시15분쯤 서울 종로구 운니동 주한 일본대사관 광보문화원에 서울대와 동국대학생 등 60여명이 몰려가 와타나베의 망언 등을 규탄하며 화염병을 던져 3층 건물의 2층 유리창 30여장이 깨지고 2층 내부 5평과 1층 2평등 모두 7평이 불에 탔다. 불은 건물 외벽을 그을린 뒤 출동한 소방경찰에 의해 5분만에 꺼졌다. 학생들은 이날 지하철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전철역 앞 4차선도로를 점거하고 화염병 30여개를 던진 뒤 「일본군국주의 부활반대」등 구호가 적힌 유인물 60여장을 문화원주변에 뿌렸다. 학생들은 이어 15분 뒤인 6시30분쯤 안국역 지하구내로 들어가 뒤쫓아간 경찰에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 5개를 던지는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민단도 “규탄” 담화 【도쿄 연합】 재일 한국민단 신용상 단장은 6일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부총리겸 외상의 망언에 대해 『일본의 식민지정책으로 일본에 정주하게 된 재일 한국인들은 어처구니 없고 주체하지 못할 분노를 느낀다』고 규탄했다.
  • “아시아 침략·식민지배 깊은 반성”/일 연정,국회결의안 합의

    ◎「부전」 빠져 한국 등 아주국 반발 클듯 【강석진 특파원】 자민당과 사회당 등 일본 연립여당은 6일 간사장과 서기장급 고위회담을 비롯한 연쇄절충을 벌여 전후 50주년에 즈음한 국회결의 여당안에 합의했다. 연립여당측은 7일부터 통합야당인 신진당 등과 여야협의를 벌여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가 캐나다 핼리팩스에서 열리는 서방 선진7개국(G7) 정상회담에 출국하기 직전인 14일까지 국회에서 결의를 정식으로 채택할 방침이다. 여당결의안은 먼저 전세계 전몰자와 전쟁희생자에게 추도를 표시한 뒤 『세계 근대사에 있었던 많은 식민지지배와 침략적 행위에 집착해 우리나라가 과거에 행했던 이같은 행위와 타국민,특히 아시아 여러국민에게 준 고통을 인식해 깊은 「반성의 염」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날 마라톤식 절충과정에서 자민당의 모리 요시로(삼희랑) 간사장은 『일본이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를 행했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구보 와타루(구보선) 사회당 서기장이 이 말을 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맞서 일반적 상황을 열거한뒤 「우리나라도 과거에 행한 이런 행위」라는 표현으로 절충이 이루어졌다. 역사관이 뚜렷이 다른 양당간 절충으로 자민당 일당지배시절 총재인 내각총리가 여러차례 아시아국가에 되뇌었던 「사죄」라는 표현과 무라야마 총리가 늘 강조해온 「부전」이라는 말은 빠져 한국을 비롯한 중국등 아시아국가의 반발도 예상된다.
  • “통신시설 경비 철저”/정통부·한통 긴급 대책회의

    ◎일부노조원 과격행동 대비/“새 집행부 조속구성” 대화 촉구/회사측,노조 PC통신 서비스 중단/노조 “국민지탄 받을 일 말자” 주요 통신시설에 대한 돌발사태가 우려되는 가운데 정보통신부는 6일 하오2시 경상현 장관주재로 정통부와 한국통신 주요간부들이 합동대책회의를 열고 한통노조 농성간부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집행에 따른 향후대책을 논의했다. 경 장관은 또 조백제 사장 등 한국통신간부들에게 『만의 하나 있을지도 모를 강성노조원의 과격 돌출행동에 대비해 어떤 경우에도 통신시설운영이 지장이 받는 일이 없도록 주요 통신시설에 대한 경비와 점검을 철저히 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어 경 장관은 『수배중인 유덕상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노조간부들이 하루빨리 자수해 그간의 불법행위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고 조속히 직무대행자를 지명,임금과 단체협약등 산적한 노사현안을 논의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한국통신직원들의 동요방지대책과 통신시설 손괴방지및 비상시 통신망운용대책등도 논의됐다. 이에 앞서 한국통신은 농성노조간부들이 연행된 직후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노조측의 불법적인 단체행동 가능성에 대비해 수배중인 노조위원장의 명령체계차단,과격행동자의 현장체포요청등 적극 대응키로 했다. 이에 따라 회사측은 그동안 유노조위원장의 투쟁명령등을 게시해온 PC통신서비스 하이텔의 폐쇄를 요청,한국통신노조통신망(KTTU)이 이날 낮 12시40분부터 서비스가 중단됐다. 한편 노조는 통신망이 폐쇄되자 하이텔의 일반게시판을 이용,전국 각 지부장에게 비상대기할 것과 지시사항외에는 어떤 행동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노조 전북지방본부 이갑열 위원장은 하이텔게시판을 통해 유덕상 위원장의 건재를 알리고 『돌출사태가 발생할 경우에는 이를 이용해 노조를 말살시키려 할 것이므로 우리는 인내하고 국민의 불편등 국민에게 지탄받을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노조측은 이날 공권력투입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지부별로 현충일행사와 함께 공권력투입규탄대회를 가졌으며 위원장의 별도지시가 있을 때까지 일단 위원장의 투쟁지침 2호에 따른 투쟁을 계속하기로 했다.
  • 와타나베 사과와 사실/강석진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올해는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가 응징된 지 50주년을 맞는 해다. 아시아 여러나라의 국민들은 올해가 「밝은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랐다.가장 쓰라린 경험을 한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과거보다는 미래를 개척하자』는 말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확산돼 온 터이다. 그런데 반년이 지나고 있는 요즘 일본에서의 움직임은 주변국들이 충분히 우려해야 할만큼 거꾸로 가고 있다.지난해 연립정권을 세우며 스스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국회에서의 부전결의는 우익세력의 반대로 이미 그 본래의 취지를 잃어가고 있다.자민당 등 일부 우익세력이 반대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말들을 보면서 『정신차리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일본의 역사인식에 있어서 윤리적 불감증은 지난 3일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의 발언에서 다시 한번 입증됐다.친한파라는 그는 『한일합방조약은 원만히 체결된 것으로 무력에 의한 것은 아니다』,『일본이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지만 식민지 지배를 한 적은 없다』는 망언을 내뱉었다. 와타나베는 5일 파문이확산되자 서둘러 사과했다.그의 「코멘트」는 이렇다.『원만히라는 단어를 취소하고 사과한다.일본이 36년동안의 조선반도 통치기간동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준 점을…인정한다.내 발언의 취지는 한일합방조약이 「이미 무효」라는 65년도 한일기본관계조약을 뒤집어서는 안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일본어로 오와비라는 말로 사과한다고 했다.오와비는 사죄에는 못미친다.미안하게 됐다는 뉘앙스가 강하다.일본에서 사과한다고 할 때 오와비라는 말을 자주 쓰기 때문에 이에 대해 가타부타할 생각은 없다.하지만 내용을 보자.그는 그저 「원만히」만 취소했다.무력에 의하지 않았다는,사실과 다른 말은 그대로다.또 식민지지배가 아니라 통치했을 뿐이라는 기본 인식도 그대로다.그의 「사과」는 과거 여러번 되풀이됐던 망언들과 마찬가지로 말만의 사과일 뿐이다. 와타나베식 사과에서 보듯이 일본의 지도층은 과거 침략의 역사,만행의 역사를 반성,새출발을 위한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그러면서 미래를 함께 개척하자고 강조한다.그러나 우리가 미래를 응시하고 있는 사이 그들은 다시 과거사를 뒤집으려 하곤한다.바로 일본의 이러한 이중적 태도때문에 여러가지 낙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지역에는 긴장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일 국회 「침략반성 결의」 서둘라(해외사설)

    자민당 귀하 자민당이 사회당위원장을 총리로 모시기로 결단한지도 1년이 됐습니다. 전후50년 국회결의가 연정3당의 정권합의 내용에 포함돼 있었음에도 불구,구체화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사회당과 신당 사키가케가 추구하는 것처럼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을 명기하는게 왜 「역사의 일방적인 단죄」입니까? 그같은 자민당의 주장은 아시아의 상식에 반하는 것이며,아시아 해방전쟁이라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자민당내에서도 귀를 닫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같은 전쟁관이 자민당내에서 아직 뿌리깊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패전은 「미국의 기술과 물량에 진 것」이라고 규정해 아시아에 민중에 대한 가해의식이 희박한 상태에서 전후 보수정치가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자민당에는 이시바시처럼 전쟁전부터 영토확장주의를 엄하게 꾸짖은 논객도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는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병으로 쓰러졌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로서 그 뒤를 이은 사람은 만주국의 고관을 지냈고,도조내각의 각료로서 A급 전범용의자로 수감돼 있던 기시였습니다.냉전에 따른 미국의 방침전환이 「반공」주의자인 그의 석방을 가능케했지만,기시를 최고권좌에 취임시킨 것은 자민당이었습니다. 그러한 경위에서부터 생각할 때 「침략」과 「식민지」를 반성하지 않는 자민당의 체질을 잘 알 수 있습니다.그러나 냉전이 끝난 것처럼 시대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최근에는 자민당총리도 「침략적 행위」와 「식민지」란 말을 종종 입에 담았습니다.역사교과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고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국민은 없습니다. 아시아의 평화·우호가 중시되는 시대이기 때문이겠지요. 자민당내에도 여러가지 의견이 있습니다.만장일치 결의가 어렵다면 생각이 같은 의원들이 당파를 초월해 결의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무라야마총리는 끊임없이 「중대결의」를 말해왔습니다.책임지고 수습하겠다고….고노총재,이번은 당신이 「중대한 결단」을 할 차례입니다.
  • 와타나베,망언 사과/“한·일 합방 「원만히 체결」 부분 삭제돼야”

    【도쿄=강석진 특파원】 한일합방 관련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일본 외상은 5일 언론매체들에게 성명서를 배포,자신의 발언에서 한일합방이 『원만히』 체결된 것처럼 시사한데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와타나베 전외상은 이 성명에서 『나는 일본의 36년에 걸친 「한반도 통치기간」중 매우 유감스럽게도 한국인들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점을 「개인적으로」 솔직히 인정한다』면서 자신의 발언중에 『「원만히」라는 단어는 삭제돼야 하며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일본이 한반도를 통치한 적은 있어도 「식민지배」를 한적은 없다고 부인했던 대목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와타나베 전외상은 또 한일합방조약에 따른 한반도 점령에 대한 『도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 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식민지 지배 깊이반성/일 정부 대변인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정부 대변인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관방장관은 5일 자민당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부총리겸 외상이 한·일합방조약은 원만하게 맺어졌다고 망언한 데 대해 『한국에 대한 식민지지배는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고통을 준 사실이 있었던 만큼 우리는 이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가라시장관은 그러나 와타나베의원의 발언자체에 대해서는 『정부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에 있지 않다』고 말해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 와타나베 망언은 민족모독이다(사설)

    오늘은 현충일이다.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영령들께 머리 깊이 숙여 절하는 날이다.우리가 오늘 절하고 뵈올 분들 중에는 6·25전쟁에서 꽃다운 나이로 산화한 유무명의 국군 용사도 있고 일제식민지배하에 있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갖 신고를 겪은 독립지사 열사들도 계시다.특히 나라 잃은 설움속에 만리타향을 헤매며 적신을 탄알삼아 침략국의 심장에 타격을 가하려고 생명을 초개같이 버렸던 분들이 묻혀 계시다.광복한지 50년에 이르고도 분단의 운명 때문에 미처 못모신 분들의 유해를 송구해하며 우리는 오늘을 맞고 있다. ○현충일 아침에 듣는 일 망언 바로 그 현충일에 우리는 다시 한번 일본의 해괴한 망언과 접한다.침략의 야심으로 왕비시해의 만행까지 서슴지않고,옥새찍기를 거부한 국왕을 겁주기 위해 온갖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물리력을 다 동원하여 강압으로 성사시킨 이른바 「한일합방조약」이란 것을 『원만히 체결된 조약』일 뿐이라고 망령되게 우기는 사람이 하필 일본의 외교행정을 대표하던 전임 외무장관이다. 그것은 우발적이고 일과적인 말이 아니다.악의적이고 계획된 민족모독의 망언이다.망언 레이스의 선수가 「와타나베」로 이어졌을 뿐 51년에 「요시다 시게루」를 시작으로 53년에 「구보다」가,64년에는 「오노」가,88년에는 「오쿠노」가 이어 뛰고 오늘 「와타나베」가 또하나의 계주선수로 등장한 망언의 집요함에 우리는 넌더리가 난다. ○일과 아닌 계획적 망언계주 그 집요함이 증명하는 것은 이 나라가 지닌 근원적인 부도덕성이다.와타나베의 교언이 가증스런 것은 『공식문서 어디에도』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 했다는 단어가 씌어있지 않다고 한 대목이다.개인이 볼모상태에서 인정한 문서도 억압이 풀리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면 바로 잡는다.국가간의 조약들에서 강압이 이뤄진 것은 역사가 바로 잡는다.그것이 국가간의 양식이고 도의다.일본은 그것을 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것을 뒤집기 위한 망언선수를 내세운다. 망언이 있을 때마다 확인되는 것은 앞으로도 그것이 고쳐질 징조가 안보인다는 것이다.총리로부터 주요장관에 이어지는 거물들의 이어달리기가 전외무로까지 이른 망언계주는 우리에게 분노보다 참담한 실망을 안겨준다.그러나 한국은 일본의 양심을 비치는 거울이다.그것이 일본의 운명이기도 하다. ○도덕적 미성숙의 나라 일본 비록 경제적으로는 거인의 체격을 지녔지만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 역할이 일본에 맡겨질 수 없는 것은 일본이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지적이다.우리는 일본이 그런 나라로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두나라의 운명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일본이 도덕적으로 거듭나 우리곁에 있기를 바란다.그러나 여전히 일본은 선의를 저버린다. 나라사이의 역사도 순환의 원리를 겪는다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문명사의 중심이 동북아에 있을 때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은혜를 입었다.그들이 문명의 주도권을 바꿔쥔 서양을 받아들였을 때 한민족은 그들의 흙묻은 발아래 짓밟혔지만 앞으로 다가 오는 태평양 문화권의 시대에는 한국민족이 뼈대 곧은 중심국으로 설 것이다.그 기운은 일본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도 절실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망언·취소의 놀음도 끝내야 국교정상화 30년을 맞으며 『올바른 역사인식의 바탕으로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정립』하자는 일본에 대한 우리의 제의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영리한 그들도 당연히 알고 있다.그런데 여전히 이런 망언을 뱉어놓는 것은 세계사람들에게 그들의 순화되지 못하는 악의의 본성을 들키는 일이라고 할수 있다. 수치로운 일이다.일본의 생각 깊은 사람들이 나서서 이 소멸될줄 모르는 불순한 인자의 소탕에 힘쓰기를 당부한다.그리고 이제 망언과 취소의 놀음도 여기서 끝내주기 바란다.
  • 「부전결의」 깨기 의도적 도발/와타나베 망언 왜 나왔나

    ◎「전후50년」 일 사회 보수화기류 팽배/자민 등 세확대 노려 「침략미화」 경쟁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외상의 망언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일본의 총리나 각료 등 지도자들은 50년대 이후 망언을 되풀이해 왔다.최근 들어서는 전후 50주년을 맞아 국회에서 부전·사죄결의를 하자는 연립정권 수립 당시의 약속을 깨기 위해 자민당의 상당수 의원들이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우리만 했느냐,그말을 넣으면 배상요구가 다시 나올 것이다,전쟁희생자들을 욕되게 한다」는 따위의 망언을 공공연히 해대고 있다.일본에는 양심적인 인사들도 많이 있지만 삐뚤어진 역사관을 갖고 과거반성을 거부하는 자들이 이웃나라들이 충분히 우려해야 할 만큼 많다.전후 50주년을 맞아 그들은 더 많은 망언을 쏟아놓을 가능성도 높다.와타나베의 망언은 이같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명치유신 이후 정한론 등을 주장하면서 호시탐탐 한반도 강점을 노렸던 사실,무력을 동원한 강압적 합병,식민지에서의 경제적 수탈과 민족말살 기도,징병·징용에 이어여성들을 데려다가 위안부로 삼고 전쟁말기 대부분 살해한 사실 등은 외면한다.그들은 다케시타,가이후,호소카와 등 역대 총리가 국회답변 등 공식석상에서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사실로부터 후퇴하고 있다.이들은 그러면서 미래를 함께 개척하자고 말한다.가해의 역사는 땅에 묻어버리자는 속셈이다. 와타나베는 특히 외상까지 지낸 인물로서 평소 친한파로 여겨져왔다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부전결의를 반대하는 자민당내 의원들가운데는 평소 친한파로 행세해 온 인물들이 많다.이같은 사실은 이제까지 일본에 대한 한국의 자세가 어떤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은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뒤편에서 늘 과거 역사를 왜곡시키려는 엉뚱한 짓을 전개해 왔다.지난해에는 인체실험을 했던 부대터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인골 1백여구를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검사도 않은 채 화장하기로 결정한 바도 있다.이를 막기 위해선 그들의 가해의 역사,반인류의 만행들에 대한 확실한 뒤처리를 일본에 요구해야만 할 것이다. 와타나베는 지난 3월 연립여당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해,국교정상화교섭 재개를 합의했고 지난달에는 북한대표단을 만나 쌀문제 협의를 주도하기도 했다.그는 북한에 대한 쌀제공이 「인도적 차원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무라야마의 연립정권은 그렇지 않아도 국회의 부전결의 채택 문제를 둘러싸고 존립 위기에 처해 있다.어떤 면에서는 일본에서 거세지는 보수화 바람에 편승한 자민당이 이같은 연정의 붕괴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3일 와타나베의 망언도 이같은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봐야할 것같다.
  • 와타나베망언 강력 대처/당정방침/“파렴치한 역사왜곡”… 취소 요구

    정부는 4일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일본중의원 의원의 한일합방 조약 망언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강력히 대처해 나가기로 했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이날 논평을 통해 『한일합방조약은 우리민족의 의사에 반해 강압적으로 체결되었음이 명백하며 따라서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히고 『특히 와타나베의원의 발언은 다시한번 일제 36년 식민지 지배의 쓰라린 역사를 상기시키는 시대착오적인 망언으로 부총리겸 외무부장관까지 역임한 인사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무부는 이와 관련,일단 일본정부의 조치여부를 지켜본뒤 체계적인 대응을 해나간다는 방침을 정했다. 민자당의 박범진대변인도 이날 성명을 내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파렴치한 망언을 즉각 취소하고 사과하라』면서 『일본의 일부 지도층이 망언을 계속하는 것은 과거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아시아지역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일 합방조약 우호적 체결/식민지지배 한적 없다”/와타나메 망언 물의 【도쿄=강석진 특파원】 와타나베 미치오(자민) 전회상은 3일 일제의 한반도 강점(1910∼1945)의 근거가 됐던 한일합방조약은 우호적으로 체결됐으며 일본은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지만 식민지 지배한 적은 없다고 망언,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4월 연립여당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바 있으며 최근 북한에 대한 쌀 제공을 「인도적 차원」의 문제라고 적극 추진하고 있는 와타나베 의원은 이날 도치기현의 한 강연우 기자회견에서 『한일합방조약은 무력으로 한 거서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성립됐으며, 식민지 지배라는 단어는 전후 맺은 샌프란시스코 조약등 어떤 공적 문서에도 씌어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일 「부전결의」 합의 실패/자민·사회·신당사키가케

    ◎「전쟁책임」 사고 이견 【도쿄=강석진 특파원】 전후50주년을 맞아 일본 국회에서 채택할 예정이었던 「부전결의」 문안을 놓고 연립여당인 사회당·신당사키가케와 자민당이 2일 전후프로젝트팀 회의를 열어 의견조정작업을 벌였으나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연립 3당은 다음주 간사장급 고위회담을 열어 협의를 계속하기로 했으나 이번 회기안에 일본 국회가 부전결의를 채택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이날 실무선인 여당 전후프로젝트팀 교섭에서 자민당은 그동안 반대해 오던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라는 단어의 포함에 동의해 왔으며 사회당은 사죄라는 단어를 고집하지 않기로 해 한때 합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양당은 그러나 사회당이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를 일본이 행했다고 표현해 책임을 분명히 인정하자고 주장한 반면 자민당은 일본만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 책임을 명확히 하는데 반대,합의도출에 실패했다.
  • “좌익에 사회혼란 죄과 물어야 안정된다”/건국이념과 정통성

    ◎이철승 민자회공동대표 강연 우리사회의 보수우익단체 가운데 하나인 「자유민주민족회의」가 주최한 광복50주년기념 대강연회가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다음은 이 강연회에서 「자민회」의 공동대표인 이철승씨가 「건국이념과 정통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강연을 요약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정통성은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의 광복운동에서 그 뿌리를 두었다.그 정신은 반공반탁 투쟁과 대한민국 수립으로 이어졌고 스탈린의 꼭두각시인 김일성의 6·25 남침으로부터 조국을 수호한 호국영령들의 희생으로 승화되었다. 그런데 이 땅에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이 뿌리를 내리고 그 선대들의 거룩한 희생의 혜택으로 국민들이 풍요를 구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과거를 잊기 시작했다.김일성사관의 앞잡이들은 좌익수정주의사관의 전도사 부르스 커밍스와 같은 사이비 학자들의 터무니 없는 주장을 내세워가며 우리의 현대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다. 국내 공산당이 소련의 지령을 받아 저질렀던 제주도 반란·대구폭동·여수 순천 반란사건 등이 민중운동으로 둔갑하는가 하면 6·25 남침을 북침이라고 호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우리나라 건국이념의 척추를 부러뜨릴지도 모르는 사태로까지 치닫고 있는 일차적 책임은 후대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시키지 못한 정부와 기성세대들에게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또한 이와 같은 사태가 역대정권의 독재성향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부정할수 없다.그 독재정권하에 반국가적 좌익을 포함한 모든 반정권 세력들이 규합했다.북의 대남 통일전선 전술과 수많은 간첩침투로 지하당인 노동당을 조직했고 과거 보도연맹등의 세력과 그 가족들을 결속시켜 우리 상·하층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다행히 그들 중의 몇몇은 외형으로는 제거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세력을 확장하면서 학계·방송·언론계·노동계·문화계에 모두 침투했다.역사교과서 개편준거안 사건은 막을 수 있었지만 또다시 「카프」작가들의 망령이 되살아나 「태백산맥」「남부군」「여명의 눈동자」「모래시계」등과 같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한문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민족진영에서는 「태백산맥」을 1년전에 고발했다.그러나 검찰은 그 책이 수백만의 독자를 확보한 지가 이미 오래라는 이유로 그 해독성을 인정하면서도 손을 못대고 있다.최근 김숙희 전교육부장관의 『6·25는 명분 없는 전쟁,그리고 월남파병은 용병이었다』라는 망언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그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즉각 북한 노동신문이 김 전장관을 두둔하는 대대적인 선전 공세를 편 것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우리는 심각히 분석해 보아야 한다. 최근 다행히 일부 유력일간지들이 소련의 6·25의 내막이란 비밀문서와 평양주재 초대 소련대사였던 스티코프의 비망록을 입수해서 그 내용을 폭로했다.스티코프는 19 46년9월 중순부터 대구폭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2차에 걸쳐 일화 총 5백만엔을 박헌영 등에게 지원했고 폭동이 끝난 후에도 소련화로 1백22만루블을 빨치산에게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현재까지 6·25남침이나 대구폭동이 민중의 자생적 항쟁이었다는 좌익의 주장은 거짓으로 판명된 것이다. 소련의 강요로백남운의 신민당,여운형의 건민당,박헌영의 공산당이 합쳐서 남로당을 만들어 남한의 폭력 적화를 총지휘 한 것도 드러났다.이제 부르스 커밍스 등의 수정사관을 신봉하던 국내 혁신진보의 탈을 쓴 정치인이나 학자및 좌익이론가들을 그들의 은신처로부터 끌어내어 주사파를 양산하고 학원과 노동계·문화 사회를 혼란케한 죄과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야 우리 사회가 안정이 될수 있다. 지금 탈냉전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남북관계는 더 험악한 냉전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김일성이 남긴 유언중에는 『광복 50주년을 통일의 원년으로 서울에서 경축하자』는 장담을 하다 죽었다.북쪽은 지금 우리 학생및 노동운동권을 총동원하고 선동해서 그 유언을 실천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믿고 있으며 금년에는 그와 같은 책동이 극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여기서 흥청망청하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남북이 함께 망하고 우리 한반도는 19세기말과 같이 또 다시 외세의 간섭을 받는 식민지적인 존재로 타락할 수도 있다.
  • 「5·31개혁안」 교육현장의 평가

    ◎공교육 역할 확대… 세계적 추세 부합/학생 소질·창의력 계발부척 전기 삼아야/종합적 생활평가 감시 제도적장치 필요/고교평준화 해제는 국민화합차원서 재고해야 ▲김준석 연세대입학관리처장=대학자율화의 핵심은 역시 학생선발에 대한 재량권을 대학에 부여는데 있다 할 것이다.97학년도부터 사립대학에 재량권을 대폭 부여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또한 국·공립대학에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를 폐지하도록 한 것도 파행적인 고교교육과 과열과외등 사교육시장의 팽창을 완화한다는 측면에서 필요불가결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연세대등 일부대는 이미 97학년도부터 현 방식의 본고사를 폐지하고 논술고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기 때문에 개혁안이 갑작스럽거나 놀라운 것은 아니다.본고사를 폐지하는 대신 작문수준에 머물렀던 논술고사를 실질적인 논술고사로 끌어올린다면 변별력 제고에도 별무리가 없을 것이다.많은 대학이 이러한 방향에 맞게 논술고사 시험방식및 문제유형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교개위가 본고사를폐지하면서 종합생활기록부를 사실상 대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중요한 전형자료로 확대한 것은 좀 의외다.교개위안이 통과돼 관계법령이 정비되는대로 지금 추진하고 있는 계획에 부분적인 보완작업을 거쳐 신입생선발기준을 빠른 시간안 공표해 수험생의 혼란을 최소화 하도록 하겠다. ▲이수윤 한국교원대교수=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화합이다.국민화합을 이루려면 사회경제적 갈등이 먼저 해소돼야 한다. 고교평준화 해제는 이러한 국민적 여망을 저버린 결정이라 생각한다.평준화가 해제되고 부유한 계층의 자녀만 등록금이 비싼 사립학교에 진학하고 또 이들이 대거 일류 명문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사회적 계층구조가 세습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독일까지 끼어든 세계 최강국들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건곤일척의 세력각축을 전개하고 있는 마당에 국민화합을 이룰 수 있는 실마리를 완전히 허물어 버리는 평준화 해제는 국가장래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이다. 이 방안이 확정된 것인지,아닌지 궁금하지만 앞으로 시간여유가 있기 때문에 지금의 문민지도자가 서민대중을 위한 훌륭한 민주대통령으로 후세 역사에 기록되기 위해서는 고교평준화 해제 방침은 재고돼야 한다고 본다. 오히려 참다운 교육개혁의 방향은 고교평준화 해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특별시와 광역시·도청소재지에 있는 국립대학교를 하나의 이름 아래 이른바 한국대학교(가칭)의 지역 분교로써 평준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참다운 국가발전과 학문발전·지역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기섭 건국대부속고교장=국·공립대의 본고사 폐지는 파행적으로 운영됐던 고교 교육을 정상화 시키는 전기를 제공할 것으로 확신한다. 일선고교는 학생들을 상급학교에 진학시키기위해 불가피했던 「점수따기」위주의 교육에서 이제 「생활위주」의 교육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바꾸어야 한다.결국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특별활동의 개발이 요구되는데 이는 교사들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내신을 보다 발전시킨 「종합생활기록부제」는 학생들의 소질을 분석,개발시킨다는 의미에서 바람직스럽다고 본다. 98학년도 이후 사립고에 한해 학생선발권과 등록금책정권을 부여하는등 사립고의 자율권을 인정함에 따라 사학끼리의 선의의 경쟁을 통한 긍정적인 발전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육개혁안이 발표됐다고 교육환경이 갑자기 바뀌는 것이 아닌만큼 학생·교사·학부모 모두 한꺼번에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조급한 자세를 벗어나야 한다. 이번 교육개혁방안으로 학부모들의 사교육비부담이 줄어들고 학교의 자율권이 강화된 만큼 일선학교는 「하향평준화」가 아닌 실질적인 고교교육의 내실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민우식 서울대치국민학교장=이번 교육개혁은 전체적으로 일선학교의 자율성을 높이고 학생의 개성및 창의력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 것 같아 환영한다. 특히 국민학교 취학을 능력에 따라 5살 어린이도 가능케 한 것은 공교육의 범위를 확대해나가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도 부합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 「학교운영위원회」를 만들어서 교원·학부모·전문가들이 뜻을 모아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나가자는 것도 학교공동체를 이룬다는 차원에서 기대가 큰 부분이다. 새로 도입될 종합생활기록부에는 진정한 인성·적성평가를 담아 전인교육을 이루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 교사·학부모·학생등이 참여,적성·인성등을 정확히 평가할 수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학생의 적성과 능력을 제대로 반영시킬수 있는 길을 터야 한다. 그동안 선택의 폭이 극히 좁았던 상급 학교 진학의 폭을 넓힌 점도 주목된다. 아울러 전체적으로 신장된 자율성을 제대로 살려나가기 위해서는 일선학교의 책임과 의무가 더욱 중요해졌다.치마바람등 과열양상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종합적인 생활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만 이번 교육개혁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 김 대통령,일본인은사 가족 해후

    ◎“와타나베선생은 한인존중한 참스승/미래지향의 한·일관계 표본 삼고싶다” 김영삼 대통령은 25일 낮 모처럼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일본에서 온 「특별한 손님」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청와대에 초대된 사람들은 김대통령의 통영중학 시절 일본인 교감이었던 은사 와타나베 다쓰미(도변손)선생의 장남 고야(공야·53·일본 사카이시 농수산과장)씨 일가 4명으로 부인 지히로(천심),여대생인 두딸 마유코(진유자)와 에미(혜실)양.지난 78년 작고한 와타나베 선생의 부인 히로미(광미)씨는 86세 고령으로 요양중이어서 함께 오지 못했다. 김 대통령은 오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두 따님은 정말 와타나베선생님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고 말하고 『해방된지 50년이 됐지만 지금도 동창생들이 모이면 와타나베 선생님 얘기를 많이 한다』고 소개했다.김 대통령은 이어 『와타나베 선생이 중풍으로 쓰러진뒤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친필 엽서를 보내왔었다』고 선생을 회고했다. 고야씨는 『대통령께서 아버님에 대해 깊은 마음을가지고 우리를 초청까지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감격의 인사를 했다. 김 대통령이 식민지 시절 은사를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당시 와타나베 교감의 한국인 학생들에 대한 태도가 진실해 많은 존경을 받았었기 때문.그는 특히 한국학생들을 멸시했던 기타지마 교장과 대조적이었다고 한다. 김 대통령이 통영중 3년생이던 시절 이 고약스런 기타지마교장과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밉살스런 일본인 교장의 이삿짐을 나르게 된 김영삼소년은 이삿짐 가운데 설탕부대에 조그만 구멍을 뚫어 당시에는 대단한 귀중품이던 설탕이 절반가량 길거리에 흘러버리게 했다.화가 난 기타지마교장은 와타나베교감에게 「범인 색출」과 「엄벌」을 지시했다.김소년은 자신이 했다고 스스로 밝혔지만 와타나베 교감은 이 한국인 학생의 심경을 헤아려 어떻게든 징계의 정도를 낮추며 감싸주려했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와타나베선생은 한국학생을 아꼈던 진정한 스승』이라고 회고하면서 『이런 인물을 미래지향의 한·일관계구축의 표본으로 삼고 싶다』고 피력한 바 있다. 한편 오찬이 끝난 뒤 김 대통령은 이들에게 손목시계를 선물했고 와타나베 선생의 초상화를 답례로 받았다. 김 대통령과 이들의 만남은 지난 4일 김 대통령이 한국주재 일본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와타나베 선생 유족들을 수소문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 남아공의 뿌리 흑백인의 만남(아프리카 기행:12)

    ◎남아공 원래 주인은 “산족 부시맨”/2천여년전 북부서 이주… 17C부터 유럽인 통치/흑인대통령 탄생 불구 경제권 등 백인들이 장악 우리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 지역의 원래 주인은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부시맨들이었다.산족이라고도 부르는 이 유목민들은 2000년전쯤 지금의 수단 땅 아프리카 북부에서 양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차차 남아프리카의 서부해안으로 이주해 이곳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다.그리고 나서 16세기에 비로소 이곳을 찾아온 백인들과 조우했다.다른 한편으로는 부시맨들과 아주 다른 언어인 반투어를 쓰는 코이코이족(네덜란드인들은 이들을 호텐토트족이라 부른다)이 있었는데 이들은 짐바브웨 지역에 살면서 철기를 다루고 소를 길러 양식으로 삼았다.이들 코이코이족은 남아프리카의 동부해안으로 내려와 자리잡았다.현재의 이스턴케이프에 해당하는 지역에 살았던 이들은 17세기에 백인들과 만나면서 서부해안의 부시맨들과는 달리 백인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16세기 백인과 첫 충돌 유럽에서 남아프리카에 최초로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포르투갈인이었다.이들은 1487년부터 1488년 사이에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해내기 위한 항해도중에 남아프리카에 닿았다.그러나 영구적인 정착지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네덜란드인들이었다.1652년 얀반 뢰빅(JANVAN RIEBEECK)은 일단의 네덜란드인들을 이끌고 오늘의 케이프타운에 해당하는 테이블마운틴 아래 해안가에 상륙했다.이 해안선을 지나가는 네덜란드의 선박들을 위한 중간기착기지로 삼기위한 것이었다.그러나 자신들의 식량자급이 힘들어지게 되자 뢰빅은 함께 온 부하들중 일부를 해방시켜 주변의 땅에서 농사를 짓게 하였다.그는 또한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과 극동지방들로부터 노예들을 사들이기도하여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이렇게 해서 네덜란드인들은 해안지방에서 부터 내륙으로 야금야금 침투해 들어가면서 남아프리카를 그들의 식민지로 만들어 갔다.네덜란드에서 온 이주자들은 처음엔 보어인으로 불렀으나 나중엔 본토어에서 파생된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를 쓰게 되면서 그 이름을 따 「아프리카너」라고불리게 되었다.그 뒤 부시맨 그리고 코이코이족과 아프리카너들 사이에서는 케이프컬러드(Cape Colored)라는 혼혈인종이 생겨나게 되었다.아프리카너들은 희망봉 일대에서 내륙쪽으로 이동하여 반유목생활을 하는 농민이 되었는데 주로 피시강 부근에 안정된 농경생활을 하던 이들은 비교적 인구가 많았던 코사족과 충돌하기 시작했다.1775년에는 사소한 소떼의 약탈이 원인이 되어 아프리카너와 코사족의 국경전쟁이 일어나 100년동안이나 간헐적으로 지속되었다. ○1백여년간 국경 싸움 한편 처음 아프리카너들과 충돌하였던 코이코이족은 자신들의 영토에서 쫓겨나 아프리카너들이 경영하는 농장에서 노동을 강요당하는 완전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부시맨들은 불모지나 산악지대로 쫓겨나 굶주렸는데 굶주리다 못한 이들이 가축을 도적질하다가 수천명이 살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아프리카의 영토싸움과 인종차별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1795년에 영국군은 당시 케이프식민지였던 지금의 케이프주를 점령했다가 1802년 그 지배권을양보했었고 1806년 다시 점령지를 되찾는다.영국인들은 국경을 따라 코이코이족을 비롯한 반투어를 쓰는 종족들을 하나하나 정복하기 시작했다.그로써 18 30년대에 이르러 아프리카너들이 노예들을 데리고 오렌지강과 발강을 건너 북상하는 대이주가 시작되었다.바로 이 시기에 아프리카너(보어인)들은 오렌지자유국(1854)과 남아프리카공화국(1838,후에 트랜스발공화국이 됨)을 세운다.두 공화국은 1850년대 모두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되었다.그러나 보어공화국들은 영국인들이 자신들을 남아프리카연방에 포함시키려 하자 이에 맞서 저항하였고 그 결과 1899년 드디어 두 공화국과 영국 사이에 이른바 보어전쟁이 발발한다.그러나 1902년 보어인들의 저항은 진압되었다.두 공화국은 결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포함되고 말았다. 남아공화국의 형성과정은 이토록 복잡한 역사적 질곡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그 나라가 겪고 있는 인종차별도 그런 역사 속에서 명료하게 찾아볼 수 있게 된다.그러한 질곡과 투쟁 끝에 흑인인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트랜스발주에 있는 요하네스버그의 중심시가지에는 흑인노동자들과 노점상,그리고 실업자들이 분주하게 오갔지만 공기 좋고 그늘지고 경관 좋은 곳에 벌어진 벼룩시장의 난전에서는 흑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수도 요하네스버그는 남아공의 수도이고 상업의 중심지로 금광회사의 본사가 대부분 이곳에 있기도 하다.이 나라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기도 한데 유색인종은 이 수도의 서부와 남서부의 특정지역에서만 주로 거주한다.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가 백인이었고 걸어다니는 사람은 흑인들이었다. ○흑인은 거의 걸어다녀 우리를 시내의 언덕 위에 있는 대통령궁으로 안내하였던 백인 운전사는 불과 한달 전에 자신의 아내가 흑인들의 습격으로 숨졌다는 사실을 토로하였는데 운전기사의 표정이 시종 굳어 있긴 하였지만 도대체 불과 한달 전에 아내를 잃은 사람치고는 침울하다든가 슬프다든가 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어 반신반의하게 만들었다.그는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이후로 신문에는 보도되지 않고 있지만 흑인에 의한 백인들의 피해가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하지만 얼른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시선에는 이 나라는 정치와 경제에 있어 아직도 백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증거와 조짐들이 너무나 뚜렷하였다.남아공화국의 법률은 백인,그리고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컬러드인,인도인을 주축으로 한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흑인),4대 인종집단을 인정한다.이중에서 아프리카흑인은 전인구의 3분의 2이상이고 컬러드는 10분의 1,백인은 전인구의 5분의 1이다.이 백인들이 대통령직을 제외한 남아공화국의 모든 것을 쥐고 있다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그러나 남아공의 출입국관리소 백인 직원은 멀리서 온 이 동양인에게 너무나 친절하고 싹싹해서 황송할 지경이었다.
  • 급변하는 성도 곤명시(운남성을 가다:5)

    ◎외국인투자액 3년새 25배 급증/매년 12% 고성장속 마약·매춘 오명/일년내내 봄날씨… 관광객 연 백40만/도심 새벽까지 불야성… 부녀자 인신매매 극성 운남성의 성도 곤명시의 하루는 두번 시작된다.상오8시를 전후해서 각기 직장에 출근하면서 공식적인 하루가 시작되지만 퇴근이후 또다른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하오5∼7시쯤이면 시내의 인도를 온통 노점상들이 차지한다. ○인도 노점상으로 가득 각종 물건과 음식을 파는 장사꾼들로부터 구두닦이,점치는 사람,즉석 건강진단에 나선 병원의사와 의학도,맹인안마사들까지 저녁이면 거리는 커다란 장터가 된다.새벽 1∼2시까지 미용실겸 안마시술소의 불빛과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삼삼오오 짝을 지어 자전거길을 달리는 시민들의 자전거 행렬로 곤명의 밤은 쉼이 없다. 일년내내 봄날씨가 계속된다해서 「상춘지성」이란 별명을 가진 이곳 곤명은「공산당 지배하의 딱딱한 도시」라는 인상이 전혀없이 자유로워 보인다.「서남지역의 진열장」이란 별명답게 중국과 운남성의 고민과 가능성을 모두 안고 있다.마약·매춘·에이즈의 오명과 몇해째 계속되는 12%가 넘는 경제성장률,외국투자의 급증,연 1백40만명이상의 국내외 관광객…. ○차량 연 1백50% 늘어 92년 등소평의 외국투자 제한해제등 전면개방이 시작되면서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91년까지 53㎦였던 도시면적은 몇년사이 1백6㎦로 팽창했으며 자동차는 해마다 1백50%씩 늘고 있다. 외국인투자도 91년 합작기업 35곳,투자액 2천3백만달러에서 지난해엔 6백70곳,5억8천만달러로 기업수는 19배,투자액 25배나 뛰어올랐다. 홍콩·대만기업인들의 투자가 전체투자의 60%를 차지하고 있고 미얀마·싱가포르·태국이 투자순위 6위안에 들어있다.이곳엔 태국과 라오스·미얀마영사관이 있고 베트남도 70년대말 관계악화로 철수했던 영사관의 재개설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창문을 여니 신선한 공기와 함께 모기와 파리가 들어온다」는 등소평의 말처럼 부작용도 긍정적 면과 함께 커가고 있다.직업을 위해 농촌을 떠나온 연 30만∼40만명의 유동인구에 따른 부작용은 마약·매춘·치안악화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다.유동인구중 등소평의 고향인 사천성출신이 80%이상이며 택시 살인사건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는게 시 관계자 설명이다.이 때문에 단기체류 노동자에 대한 거주지등기와 증명이 올부터 의무화됐다. ○홍콩·대만기업 대부분 연간 수백명의 여성이 곤명등지에서 납치된다는게 사실이냐는 질문에 『85년부터 성 전체에서 단지 수백명의 여성이 납치됐다가 구조됐을 뿐』이라는 성부녀연합회 왕의명회장의 답변에서 인신매매가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김용반점,금화대주점,곤명반점등 별4개의 호텔주위에선 밤은 물론 낮에도 어렵잖게 낯선 남자에게 눈짓하는 「수상한」 여인들에 부딪치는 것도 「신선한 공기」와 함께 들어온 불청객임은 물론이다. ○이농인구 30∼40만 78년 문화대혁명이후 이곳에 온 첫 외국인이었던 미국인 엘리자베스 부즈씨의 표현처럼 이곳은 더이상 『도시전체가 황토빛 느낌』도 아니고,『차를 이따끔씩 구경할 수 있는 널따란 대로에서 중국인 친구들과 유유히 이야기하며 자전거를 모는 즐거움』도 더이상 누릴 수없다.그녀가 영어를 가르쳤던 곤명대학의 붉은 진흙벽돌 담벼락도 이젠 모두 콘크리트로 바뀌었다.우중충한 중국옷대신 갖가지 산뜻한 옷을 차려입은 시민들은 「모기와 파리」는 아랑곳않은채 자유롭고 「신선한 공기」를 즐기고 있다. 이들은 곤명이 당·송시대 이래 초웅·대리시등을 통해 미얀마 북부와 인도·아라비아까지 중국 차와 도자기등을 실어나르는 주요 무역로의 위치를 되찾고 있음을 반가워한다.왕곤명시장도 『국경무역과 상호 교차투자,인적인 교류와 원자재의 물물교역등 동남아와의 경제적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경제 도약단계에 있다』고 말한다.93년부터 운남·사천·귀주·광시·티베트등 서부지역 5개성이 매년 8월초 곤명에서 동남아회사들을 겨냥한 교역회를 열고 있다.지난해엔 5천4백여명의 외국바이어들이 참가,1억5천만달러의 교역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당나라 때부터 다마로라 불리며 북쪽의 실크로드 못지않게 번성한 무역로였던 곤명루트는 지금은 아름드리나무와 트랙터·가전제품등을 가득 싣고 베트남·미얀마등 국경지역을 오가는 일본제 대형화물차들이 대신한다. ○대동남아 교역 가속화 이강 시정부 비서장은 『이곳과 미얀마북부 라시오시사이의 2∼4차선도로는 2차세계대전당시 일본군과 싸우던 중국군에 무기와 전쟁물자,증원군을 지원하던 「아시아전선의 생명선」 버마(미얀마)로드 또는 스틸웰(장군)로드로 미국인들에게 기억되고 있다』고 말한다.프랑스인들에겐 1백년전 「대인도차이나 식민지건설의 영광」이라는 전설로 남아있는 곤명에서 하노이까지의 협궤철도는 제대로 연결이 돼있지 않지만 실제 주요 수송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비서장은 『이곳은 운남성 뿐 아니라 아직 미개발상태에 있는 동남아 북부의 개발을 촉진하고 중국의 개방성과와 방향을 가늠하는 척도역할을 하며 발전할 것』이라며 자신있게 진단했다.
  • 일 자민당내 우익의원 단체/“부전결의 채택 보류” 결의

    ◎중·참의원 60%이상 가입… 논란 예상 【도쿄 연합】 종전 50주년에 즈음한 일본 국회의 부전결의 채택에 반대하고 있는 자민당의 「종전 50주년 국회의원연맹」(회장 오야성량)은 17일 총회를 열어 국회결의 채택을 보류시키기로 결의했다. 총회는 『국회결의는 모든 교섭단체가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국론이 분열돼 정치혼란을 가속시키는 상황에서는 결의를 보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자민당은 의결기구인 총무회 간담회를 열어 국회결의 문제에 대한 당론을 논의할 예정이나 중·참의원 전체의 3분의2이상이 가입하고 있는 이 의원단체가 「보류」를 결의함으로써 앞으로 의견수렴에 적지않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의원연맹은 결의에서 『일방적으로 침략행위나 식민지지배를 반성하고 사죄하는 결의를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단죄를 시인하는 것』이라고 늘어놓았다. 의원연맹은 앞서 사회당위원장인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가 자민당총재인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부총리겸 외상,사키가케 대표인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 대장상에게 「국회결의에 침략적행위와 식민지배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밝힌데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 「제3원내 교섭단체」구성여부 관심/자민련­신민 통합선언 그후

    ◎신민일부 강력 반발… 「시분」도 걸림돌 자민련과 신민당이 16일 전격적으로 통합을 선언함에 따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청과 경북권을 기반으로 제3의 원내교섭단체가 등장할 지에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와 신민당 김복동 대표가 통합을 선언한 데 이어 양당은 각각 5명씩 10명이 참여하는 합당수임기구를 구성,빠르면 이달안에 중앙선관위에 합당등록을 마치기로 했다.이미 지도체제와 지분문제 등 쟁점들에 대해 원칙적 합의를 이룬 상태이기 때문에 통합행로에 별다른 문제는 없으리라는 게 양측의 설명이다.그러나 민주당과의 통합을 선호해온 임춘원최고위원등 신민당내 일부 인사들이 통합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법적인 통합까지는 다소의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양당의 통합선언이 이처럼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무엇보다 신민당의 궁색한 처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당세나 국민지지도등을 감안할 때 독자적으로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려웠던 것이다.아울러 신민당내 경북과 강원지역 인사들이 출신지역의 「반민자·비민주」정서를 감안,자민련 행을 강력히 희망한 것도 통합을 재촉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특히 민주당과의 통합에 소극적이었던 김대표측이 자민련과의 통합에는 발벗고 나선 점이 주효했다. 이제 관심사항은 원내교섭단체(소속의원 20명이상의 정당)를 구성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이탈자가 없다면 자민련의 12명과 신민당 10명을 합쳐 모두 22명의 현역의원을 확보하게 돼 가능하다.그러나 신민당의 임춘원최고위원이 통합에 극력 반대하고 있어 이탈할 것이 확실한데다 자민련의 강우혁의원도 인천시장선거 출마를 위해 곧 의원직을 내놓을 예정이어서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게 양당의 설명이다.특히 박철언씨 부인인 신민당 현경자의원이 지역구 정서를 이유로 합류를 망설이고 있어 그의 결정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완전 합의를 보지 못한 지분문제도 암초가 될 공산이 크다.양당은 지도체제를 김종필 총재­김복동 수석부총재로,당명을 자민련으로 한다는 데는 합의를 이뤘다.그러나 지분문제는 일단 지방선거 때까지 현재의 지구당(자민련64개,신민당 1백22개)을 유지하고 구체적인 배분은 지방선거 뒤에 논의하기로 해 추후 이를 둘러싸고 마찰이 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신민당내 일부 인사들의 반발도 문제다.신민당의 임 최고위원 등은 이날 당 통합추진위의 통합결의와 관련,『김복동 대표측이 통합추진위원 2명을 자파 인사로 불법교체한 가운데 이뤄진 것』이라고 통합선언의 무효를 주장했다.이들은 법원에 통합결의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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