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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노골화된 에토 망언/강석진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일본의 전 총무청장관인 에토 다카미(강등융미) 의원(자민당)이 13일 기타규슈의 한 강연에서 『조약을 맺어서 결정한 일인데 어째서 침략이란 말인가.정·촌(한국의 읍면에 해당) 합병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가』라고 또 망언했다.위안부에 대해서도 『강제 연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가』라고 강제성을 부인했다. 그는 95년 11월 『식민지 시대 일본도 좋은 일을 했다』고 망언한 사실이 보도돼 사임했었다.그는 당시 장관이었고 지금은 한 의원일 따름이지만 이번 망언은 당시의 발언보다 내용면에서 훨씬 노골적이고 악성이다. 그는 95년 망언파동이 일어났을때 『한일합방조약이 강제적으로 조인됐고 그 결과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막대한 고통을 준데 대해 진심으로 반성과 사죄를 한다고 총리가 말한 것을 인정한다』고 변명했었다.이번 발언은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것으로 당시 변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데 대한 분풀이처럼도 보여진다. 또 한일 외상회담과 정상회담 등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돌출됐다는 점에서 원만한 한일관계 등을 안중에두지 않고 있는 그와 일본의 일부 보수세력들의 자세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성을 더한다. 이번 망언에는 한국이 최근 처한 국내외 사정도 계산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에토의 첫 발언으로 고노 요헤이 당시 외상의 방한이 취소됐지만 이번에는 한일외상회담이 예정대로 진행된다. 에토의 망언이 전해진 14일 일본의 한 신문은 1면에 게재하기 시작한 「2020년으로부터의 경종」이라는 시리즈물의 제13편 「친구가 없다」를 내보냈다.기사는 「세계의 블록화는 가속화된다.진정한 친구가 없는 일본은 몸을 둘 곳이 없게 돼 아시아에서도 한충 고독하게 된다」고 경고했다.일본의 일부 보수세력들이 이같은 경고를 가슴을 치며 듣기를 바란다.보수주의자들은 과거는 잊고 미래를 지향하자고 하지만 망언과 그릇된 역사인식은 미래사의 전개를 어둡게 할 뿐이다.
  • “한·일 합방은 행정구역 통합한 것”/에토 일 전 장관 또 망언

    에토 다카미(강등융미) 일본 전 총무청장관은 13일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지배는 면단위 등의 행정구역통합과 다를게 없다』고 노골적인 망언을 다시 늘어놓았다. 14일자 산케이(산경)신문에 따르면 에토 전장관은 이날 기타규슈(북구주)시내에서 가진 강연에서 한반도 식민지지배에 언급,『국가와 국가가 조약을 체결해 결정한 것이 침략인가,표현은 나쁘지만 정촌(일본의 기초지방자치단체)의 합병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느냐』고 강변했다. 그는 또 교과서 역사기술에 대해 『도대체 일본이 어디를 침략했다는 것인가.왜 교과서에 실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날밤 자신의 발언과 관련한 교도(공동)통신의 취재에 대해 『하나의 국가가 없어질때 국가 전체가 찬성할 리가 없다.그러나 당시의 한국정부는 그러한 선택을 했다』고 강변했다. 건설상과 운수상을 역임한 에토는 지난 95년10월 일제 식민지지배를 미화하는 망언을 했다가 한국측의 반발로 총무청장관직을 사임했다.
  • 홍콩/150년 영국지배 마감/7월1일 중국 품으로

    ◎어떻게 달라지나/특구로 지정… 행정자치 실시/외교·국방 대륙직할… 인민해방군 진주 영국의 직할식민지 홍콩은 올 7월1일자로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로 바뀐다.영국의 유니언잭이 내려지고 오성홍기가 나부끼게 되는 것이다.사자와 용이 방패를 맞잡고 있는 홍콩의 상징디자인도 사라지는 대신 「일국양제」 등 특구를 상징하는 박태기나무(자형)꽃그림이 모습을 보일 것이다.6월 두번째 토요일에 시작되던 영국여왕 탄신기념 연휴 등 영국식 공휴일도 중국의 국경일에 자리를 내주게 되며 나탄로드·퀸스로드 등 영국왕과 총독들의 이름을 딴 거리의 명칭도 바뀌게 된다. 홍콩특구의 최상위법은 특구 기본법이다.이 법은 지난 90년4월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제정됐으며 중국 전인대에서만 개정이 가능하다.150여년동안 영국 왕이 파견하던 총독을 대신해 특구에서 뽑은 행정장관이 행정수반으로서 홍콩을 경영하게 된다.행정장관은 특구선거위의 선출을 거쳐 중국 중앙정부가 임명하며 임기5년에 1차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행정분야가 자치실현을 목표로 했다면 외교·국방은 중국 중앙정부의 직할 아래 들어간다.전군에서 선발된 8천명의 중국인민해방군은 오성홍기를 휘날리며 내년 7월1일 이전 홍콩에 진주,영국군과 자리바꿈을 하게된다.외교 업무는 중국 국무원에서 직접 파견된 외교부 홍콩판사처 주임의 책임아래 이뤄진다.영국 추밀원의 「법사위원회」가 결정하던 재판의 최종심도 특구내에 최종심을 다룰 별도 법원을 설치해 처리하게 된다.입법 분야에선 기존 의회역할을 했던 입법국이 해산되고 대신 주민의 직선 및 직능대표로 구성되는 60명의 입법의회가 각종 법률을 제정·개폐하게 된다. 한편 외국인의 홍콩 장기체류는 더 수월해진다.지금까지 7년 이상 거주해도 체류권만 인정됐으며 추방이 가능한 반면 특구에선 7년 이상 되면 영주권을 얻게 된다.장기거주자에 대한 참정권도 인정되고 의회 정원의 20%내에 외국국적 소지자의 참여도 가능하게 된다.기존의 무비자 입국허용 등 입국제도는 바뀌지 않는다.경제·무역 및 해운·통신·관광·체육분야에선 중국­홍콩(HONG KONG,CHINA)이란 명칭으로 독립된 국제관계를 유지하고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이런 변화에도 97년7월1일 이후 홍콩특구의 운영과 생활은 큰틀에서 변화가 없다고 할수 있다.우선 행정의 틀을 그대로 살렸다.기존 법령은 원칙적으로 유효하다.관습법이 위주인 영국법체계를 대신해 현지 법령화하는 작업은 진행되고 있다.97년 이후에도 홍콩 돈은 그대로 사용된다.독자적인 화폐발행과 의환관리가 유지되고 자유무역,자유항,외환관리정책이 지속된다.외교 및 국방분야에 대한 중국정부의 「직할」을 제외하면 홍콩특구는 옛 홍콩의 연속선상에서 움직여진다고 보면 된다.고도의 자치를 통해 「동양의 진주」를 살려나가겠다는게 중국정부의 입장인 셈이다. ◎반환 의의·과제/역사 치욕 청산… 중 주권회복/사회주의체제에 자본주의 접목 숙제 새해 7월1일 0시를 기해 홍콩의 주인은 영국으로부터 중국으로 바뀌게 된다. 아시아에서 금세기 최후로 이루어지는 식민지 반환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떠나 중국인들로서는 「치욕과 굴욕」의 역사를 청산하는 감회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최고지도자 등소평도 건강이 허락하는한 역사적 반환식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한다. 중국인들의 눈으로 볼때 홍콩의 역사는 치욕이었지만 또다른 한편 150년 치욕의 역사를 보상하듯 홍콩은 세계적인 금융·무역중심지로 성장해서 엄청난 부와 가능성을 안고 중국인의 품으로 되돌아온다. 따라서 홍콩을 반환하는 중국인들은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홍콩을 죽이지 않고 계속 번창하도록 만드는 동시에 대륙의 사회주의 체제가 이 자본주의 실험장으로 인해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쉽지 않은 과제를 떠안게 됐다. 그것은 홍콩인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려온 자본주의의 과실을 계속 누리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중국정부의 인내심의 한계를 넘지 않도록 「몸조심」을 해야한다. 홍콩의 초대행정장관으로 선출된 동건화씨는 당선 뒤 기자회견에서 홍콩어인 광동어,본토어인 만다린,그리고 영어 등 3개어로 인사말을 해 앞으로 특구 홍콩이 헤쳐나가야 할 길이 순탄치 않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반환 뒤 홍콩의 지위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1국 2체제」의 존속으로 요약된다. 이 기본입장은 지난 85년 영·중 사이에 발효된 공동선언에 담겨져 있다. 이 공동선언에서 중국정부는 ▲홍콩을 특별행정구로 지정해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고 ▲외교와 국방은 중앙정부의 관리하에 두며 ▲행정관리권,입법권,사법권은 홍콩에 부여 ▲홍콩정부는 현지인으로 구성 ▲현행사회·경제제도와 생활양식을 유지 ▲이같은 홍콩정책은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에 의해 향후 50년간 지속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홍콩의 미래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들이 혼재하고 있다.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에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에 중국지도부도 홍콩의 자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장래를 불안하게 보는 사람들은 홍콩의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정치의 영향을 결국 받을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편다. 최고실력자 등소평 사후 대륙에서 불어닥칠 격동의 바람을 어떻게 넘길지에 대한불안감도 적지않다. 언론자유 등 기본권이 과연 말 그대로 보장될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중국과 홍콩주민간의 기본인식 및 가치관의 차이도 극복해야 할 과제중 하나이다. 중국은 사회주의,전통적 중화사상의 가치관을 견지하고 있는 반면 홍콩주민들의 의식 수준은 국민소득 2만3천달러의 선진국에 걸맞게 국제화돼 있다. □영의 홍콩지배 일지 ▲1842:아편전쟁후 맺은 남경조약에 따라 홍콩섬 영국에 할양 ▲60:북경조약 체결로 구룡반도 영국에 할양 ▲98.7.1:신계와 235개 부속도서를 99년간 영국에 조차 ▲1941­45:일본군 점령 ▲49:모택동,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선포 ▲72:영·중 외교관계 수립 ▲79:대처 영국총리 북경 방문,홍콩반환 논의 ▲84:대처 영국총리와 조자양 중 총리,홍콩반환 원칙담은 북경선언 채택 ▲89:천안문 사태,홍콩서 대규모 반중국 시위 ▲90:중,홍콩기본법 채택 ▲92:패튼 총독 취임,입법국 직선확대문제로 중·영 관계 악화 ▲95:직선의원이 대폭 확대된 입법국 선거실시 ▲96.12:초대행정원장 동건화 선출
  • 뭐하자는 서행시위 인가(사설)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노동관계법개정에 항의하는 여의도집회 참석차 상경하던 호남,마산 창원 그리고 대전 충남지역 노조원들의 승용차가 수십,수백대씩 떼를 지어 고속도로 버스 전용차로와 갓길까지 차지한채 30∼40㎞로 「서행시위」를 벌였다는 것이다.그 바람에 고속버스와 일반 승용차들이 느닷없는 체증으로 몇시간씩 고속도로에서 고생했다. 노동조합의 파업이나 시위는 기본적으로 사용자측에 단합된 세를 과시하고 일반 국민들에게 노동자들의 입장과 견해를 알려 지지를 얻어내는 캠페인이다.여론의 지지를 얻기위한 노·사,노·정부간 치열한 경쟁인 셈이다.그런데도 노조원들이 고의로 고속도로를 마비시켜 시민들에게 불필요한 불편을 주고 국가경제에도 피해를 준 것은 자해행위가 아닐 수 없다. 「서행시위」는 우발적이 아니라 여러 지역을 출발한 수백대 차량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노조 지휘부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노조 지휘부의 양식과 속셈을 의심치 않을 수 없게 된다. 우선 승용차와 각종 생산품을 수송하는 화물차등의 통행을 방해한 것은 자신들의 불만을 엉뚱하게 남에게 떠넘기는 화풀이나 심술이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가두시위중 차도로 진출,교통체증을 유발한 것과도 다르다.고의적으로 국가경제의 혈관을 막은 것이기 때문이다.노동운동의 목적이 사회질서 파괴는 절대 아니다.왜 국민지지 대신 비난을 자초할 이런 일을 했는지 의문이다. 프랑스 대형트럭 운전사들의 고속도로 톨게이트 봉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면 계산착오다.한국에서 그런 시위는 지탄만 가져다 줄뿐 지지를 확산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자신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건 옳다고 믿고 일반 시민을 가볍게 보는 노조 지휘부의 독선이 빚은 전술적 실수 일 수도 있다.작은 일 같지만 노조운동의 기본 목적이 무엇이며 노조활동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돌이켜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영 통치 벗어나 「항인치항」 진입/홍콩 행정장관 선출 의미

    ◎친중인사 뽑혀 중국과 긴밀한 관계 예고/과도기 50년간 일국양제 기틀마련 과제 해운재벌 동건화의 초대 홍콩행정장관 선출은 150여년에 걸친 영국의 홍콩식민지지배가 막을 내리고 이른바 「항인치항」(홍콩인이 홍콩을 통치)시대가 임박해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이제 오는21일 의회격인 입법국을 대체할 임시 입법회 의원 선출과 행정장관의 주요 고위공직자 임명이 주요 후속조치로 남게됐다. 특별행정구 최고책임자로 동씨를 선출한 것은 내년7월 출범될 홍콩특별행정구(SAR)의 자치실험이 북경당국과 긴밀한 협조아래 진행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홍콩경제계를 대표하는 친중인사의 행정장관직 선출은 미래 홍콩진로를 상징한다.11일 400명의 선거인 가운데 320표란 압도적 표를 얻은 것도 홍콩경제계와 상류사회의 중국과의 협조를 통한 안정 및 홍콩경제 번영유지의 희망으로 풀이된다. 특별행정구의 첫 최고책임자는 정치적 개혁보다 경제적 번영을 통한 안정유지에 최우선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동건화는 과도기의 안정유지와 앞으로 50년동안 유지될 중국의 「일국양제」제도의 기틀마련이란 과제를 안고 있다.높아지는 민주화 열기속에 일반 홍콩국민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도 동씨의 당면과제다.「체육관에서 선출된 중국의 파견총독」이 아닌 홍콩인들을 대변하는 자치정부의 대표란 입지를 중국정부와의 밀월속에서 어떻게 확보할지도 홍콩 자치실현과 관련,주목받고 있다.입법국 해산,기본권법 개정,인민해방군의 재판관할권,형법개정을 강행할 중국측과 홍콩내 민주세력의 정치자유확대 및 민주법제 유지 요구라는 상반된 주장속에서 동씨가 어떻게 운신의 폭을 확대할지도 주목된다.
  • 대하소설 「혼불」 10권 완간/최명희씨,집필 시작 17년만에

    ◎1930년대 매안 이씨 가문 여인3대 얘기/평등과 혁명사상­신분의 굴레에 얽힌 삶 작가 최명희씨가 「혼불」에 마침표를 찍었다.지난 80년 첫 장을 메우기 시작한지 17년만에 대하소설 「혼불」 전 5부,10권이 한길사에서 완간됐다. 제목부터 특이한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미는 예사롭지 않다.1930년대 전북 남원의 매안 이씨라는 양반가문을 내세운 소설은 식민지시대를 배경삼은 여느 역사소설처럼 지식인들의 사상적 방황과 천민들의 신분적 각성을 고루 담고 있지만 그때 사람들의 심중에 들어가 그들의 혼을 빌려 말하는듯 넋이 서린 붓끝으로 이같은 목적의식을 훌쩍 뛰어넘어 감싼다. 시집오자마자 시아버지와 남편의 겹초상을 치렀지만 고결한 기품과 매서운 기상으로 쓰러져가는 매안 이씨가문을 일으켜세우는 청암부인은 소설의 지붕 같은 인물.그는 장손자인 강모를 일찍 장가들여 날로 거세지는 일제탄압에서 가문을 지키려 몸부림치지만 여리고 섬약하기만 한 이 종손은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자조로 식민지의 고통스런 현실을 비껴간다.여기에평등과 혁명사상에 사로잡힌 당시 지식인들,신분의 굴레에 갇혀 버둥거리는 거멍굴 사람들,근대사의 격랑에 맞서 양반가문의 기품을 지켜나가려는 매안 이씨가문 여인 3대의 이야기가 얽힌다. 이같이 다사다난한 한 시대를 그리면서도 이 소설은 이야기가 압도하는 근대소설의 풍경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기후며 풍토,관혼상제,생활습관 등 당시 풍속의 세목을 판소리가락처럼 기름지고 유장한 언어로 풀어놓는 것이 먼저이며 이 가운데 당시의 시대상황과 사람들의 다층적인 삶이 여러가지 무늬를 그리며 자연스레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국어사전에도 나와있지 않은 단어 「혼불」은 육체속에 깃든 영혼의 불덩어리라는 뜻.조상들은 이를 목숨과 삶을 지탱하는 핵심으로 여겨 혼불이 나간 집은 아무리 길어도 사흘을 못넘기고 초상을 치른다고 여겼다 한다. 최씨는 17년간 다른 소설작업을 전폐하다시피 한 채 「혼불」의 집필에만 매달렸다.워드프로세서도 제쳐두고 초고에 종이날개를 달아가며 손으로 수를 놓듯 한뜸한뜸 치밀한 교정작업을 했다.그는 『이작품은 내가 썼다기 보다 내 속에 지펴진 조상의 혼불이 어느 순간부터 절로 써내려갔다고 할만하다.한 민족의 자식으로서 검질긴 혼의 불씨를 지켜온 우리 모든 부모들에게 「혼불」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 “서울대 경성제대 모델 답습”(조약돌)

    ◎교수가 학보에 비판글 기고 ○…서울대 교육학과 김기석 교수(48)는 2일 서울대 학보인 대학신문에 「서울대가 일제때 경성제국대학의 모델을 벗지 못했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해 눈길. 김교수는 『대학본부가 식민지 점령군부대처럼 권력의 핵심부 역할을 하려 한다』면서 『제국대의 권위란 일본의 제국지배에 필요한 소수 엘리트 양성을 위해 생겨난 특권이었는데 서울대가 이러한 병폐를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
  • 일 자민당 거침없는 「극우 드라이브」 배경

    ◎총선승리 고무 “입지회복” 안간힘/과거 양보한 정책 “되돌려놓기” 속셈/견제세력 몰락·보수정당 침묵 동조 일본 자민당이 지난 10월 총선승리후 최근들어 강력하게 극우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자민당은 지난 28일 외교관계합동부회를 열고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 요인들에게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도록 만들자」고 의견을 모으는가 하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회복하는데 전력을 다한다는 외교지침 「일본의 아시아 태평양 전략」을 내세웠다.이 지침은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시 독도가 한국수역에 포함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회의에 참석한 외무성 관계자가 『야스쿠니참배에는 중국이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자 외무성이 중국에 대해 지나치게 배려한다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이에 앞서 27일 열린 국방관계합동부회에서는 방위청을 국방성으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자민당이 한국 중국 등 주변국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 극우적주장을 거침없이 내놓는 것은 지난 총선에서 거둔 「작은 승리」로 단독정권이 가능하게 된 것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93년 7월 총선에서 패배한 뒤 자민당은 목소리를 낮출 수 밖에 없었다.요즘 자민당은 지난 3년동안 어쩔 수 없이 양보해야 했던 그 모든 것을 「원상회복」시키려는 듯 극우 강변을 토해내고 있다.자민당에서는 하시모토 총리가 마닐라에서 강택민 중국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지난해 종전 50주년을 맞아 발표된 8·15 총리담화를 인정한다고 말하자 이를 왜 인정하느냐고 투덜댔다.오쿠노 세이스케 의원 등은 최근들어 「종군위안부는 상행위였다」면서 교과서에서 이 항목을 삭제해야 한다는 망언을 계속하고 있다.그 뿐만아니라 『식민지시대 좋은 일도 했다』(와타나베 미치오 전 외상·에토 다카미 총무청장관)는 식민지시혜론,『한·일 합방조약은 합법적으로 체결됐다』(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한·일 합방합법론,『침략전쟁을 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사쿠라이 신 운수상)는 침략전쟁부인론 등의 망언이 끊이질 않고 계속돼 오고 있다. 이들을 제어할 일본내 세력도 미약하다.사민당 신당사키가케는 몰락했고 민주당은 아직 힘이 충분하지 못하다.신진당은 바탕이 보수인데다가 총선패배,당내분열,부패사건 등으로 자민당의 독무대를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민당의 최근 언동을 보면 역시 자민당이라는 정당의 총체적 의사는 극우를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주변국들로서는 일본이 걸어가는 길에 대해 늘 주의깊게 지켜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지적들이 많다.
  • 대학가 주사파 3개 조직 적발/17명 검거

    ◎북 방송 녹취 「붉은 폭풍」 등 이적물 배포/강원대 「자주대오」·경상대 「활동가」·건대 「노학연대」/9명 구속·1명 입건… 현역군인 등 조직원 7명 조사 경찰청 보안국은 29일 김일성주체사상 등에 입각해 지하조직을 결성,연방제통일과 사회주의국가건설 등을 목표로 활동해온 강원대 「자주대오」와 경상대 「활동가조직」,건국대 충주캠퍼스 「노학연대실천단」 등 3개 조직 17명을 적발,이 가운데 강원대 「자주대오」 중앙위원장 진병환씨(25·회계4) 등 9명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장모씨(24·강원대 임산가공4)를 같은 혐의로 입건했으며,박기춘씨(25·강원대 경영4) 등 4명을 조사중이다. 군복무중인 조성훈씨(24·강원대 한문교육4 휴학) 등 3명은 국군 기무부대의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와 함께 북한방송 녹취문건과 주체사상학습노트 등 유인물 190점과 이적도서·컴퓨터 디스켓 등 996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진씨 등 강원대생 7명은 지난 94년1월 김일성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이적단체 「자주대오」를결성,남한사회를 「미 제국주의에 예속된 신식민지 반자본주의사회」로 규정하고 「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연방제통일투쟁」 등을 강령으로 채택했다. 이들은 이어 강원도내 학생운동권을 장악하기 위해 중앙위원 윤도현씨(24·임산가공4·구속)를 96학년도 강원대 총학생회장과 「강원지역대학 총학생회연합」의장에 당선시켜 배후조종하고 기관지 「조국과 청년」등 이적표현물을 제작해 학원가에 배포하고 사상학습을 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경상대 안미경씨(23·여·식품영양 졸) 등 4명은 지난 93년4월 「경상대 활동가조직」을 결성,학내 빈 강의실 등에서 조직원에게 사상학습을 하고 각종 이적표현물을 제작,배포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건국대 충주캠퍼스 총학생회장 김용직씨(26·경영4) 등 3명은 지난 2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하는 「노학연대실천단」을 결성,기관지 「붉은 폭풍」 등 30여종의 이적표현물을 대학가에 배포하고 총학생회 사무실에서 사상학습을 해왔다는 것이다.
  • 일 자민 “독도 영유권 관철” 주장/아태 외교정책지침으로 내걸어

    일본 자민당 외교조사회(회장 나카야마 다로 중의원 의원)는 28일 마련한 「일본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서 독도 영유권 관철 등을 외교정책지침으로 내걸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외교조사회는 이 지침에서 독도는 『틀림없이 일본의 영토이며 오랫동안 한국이(독도를)점거를 계속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고 전제,2백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 설정시 독도가 한국수역에 포함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 지침은 또 대북한 문제에 대해 조기 남북한 경제교류와 북·일 국교정상화의 실현을 강조하는 한편 북한 내부 붕괴에 대비한 유사 시나리오의 검토를 지적했다. 지침은 한국에 대해 『과거 식민지 지배 문제는 도의적 책임까지 해소됐다고는 말하기 어렵다』면서 한국의 국민감정을 배려,양국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미 자이르파병 전투병은 제외

    【오타와·키갈리 AP AFP 연합】 미국은 자이르에 난민지원을 위한 전투병력을 파견하지 않고 대신 1천명미만의 병참지원병력만을 보낼 예정이라고 19일 미 국방부가 발표했다. 미 국방부 대변인은 『자이르에 전투병력을 파견하지 않는 대신 인도적 지원물자운반을 위한 군수송기 등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12개국이상의 군사기획가와 외교관들이 오는 21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모여 구체적인 지원내용을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 멕시코 멕시코시티(세계 문화유산 순례:14)

    ◎3천년의 역사가 숨쉬는 거대한 「도시 박물관」/「소칼로」 대성당앞 광장에는 화려한 의상의 원주민들이 날마다 향냄새나는 껌질 태우며 멕시카제국의 영광 되찾아 줄 신을 부르는 의식을 올린다 멕시코는 전역에 걸친 유적지가 자그만치 4만여곳에 이르는 것을 보면 나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적지인 셈이다.이 가운데 멕시코시티는 유네스코로부터 도시 전체를 하나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대단위 유적지다.올메카,테오티와칸,마야 등 고대문명의 흔적들은 물론 스페인 정복기(1521∼1810년)문화까지를 포함한 3천여년의 역사가 도시 곳곳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립인류학박물관은 멕시코시티 시내 중심가에 있다.멕시코 문명의 실상을 조감하자면 반드시 들러야 했다.1964년에 개관됐다.멕시코 전역에 흩어진 유물들을 시대별로 구분해놓은 10개 전시실을 갖춘 1층에서 원주민의 생활상을 재현한 2층 민속학박물관으로 연결됐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을 맨 먼저 맞는 유물은 「올메카의 머리상」이다.멕시코만 인근 타바스코주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올메카 문명을 일으킨 주인공들의 석상이기도 했다.입술이 두껍고 코가 낮았다.눈까지 작아 영락없는 동양인 모습을 한 이같은 큰 머리 석상은 멕시코에 많이 남아있다.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질감이 풍부하고 투박한 모습에서 모태문명의 원시성이 짙게 우러났다. 올메카 문명은 발생하고 나서 두 갈래로 갈렸다.그 한줄기가 멕시코 중앙고원의 테오티와칸 문명(AD 200년경∼AD 650년경)·톨테카 문명(AD 700∼AD 1100년)·멕시카 문명(14세기∼16세기)이다.이와 더불어 멕시코 남부 및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엘살바도르·온두라스에서는 전·후기 마야문명(AD 200년경∼∼AD 1521년)이 발전을 거듭했다. 멕시코에 와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멕시코 문명에서 흔히 거론되는 아즈테카(Azteca)문명이 그것인데,이를 멕시카(Mexica)라는 용어로 쓴다는 점이었다.멕시코 사람들은 이를 전설과 연관시켰다. 전설은 1150년경까지 아지틀란이라는 곳에 살던 아즈텍족이 새로운 땅을 찾아 유랑생활을 하던중 우이칠로포치틀리라는 신을 만나는데서 시작됐다.이때 신이 하늘을 날고있던 독수리를 가리키며 『너희에게 번영과 안정을 줄테니 저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는 곳에 나라를 세우라』는 계시를 내렸다.아즈텍족이 독수리를 쫓아 가보니 과연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현재 멕시코시티의 한 부분인 테노치티틀란이라는 얘기다.그리고 신은 또 『너희는 아지틀란을 떠났으니 이제부터는 아즈텍족이 아니라 멕시카족이라고 부르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멕시코시티에서 유적관람을 위한 동선은 박물관에서 과달루페 성당으로 이어졌다.중심가인 레 포르마 거리 북쪽끝에 위치한 이 성당은 멕시코인들에게는 정신적 지주로 우뚝 서있는 성소다. 1533년 건축된 이래 수세기동안 전세계 성직자와 신도들의 순례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성당은 1531년 12월12일 테페약 언덕을 지나던 한 농부앞에 발현한 성녀 과달루페의 계시에 따라 축성됐다고 한다.발현 당시 과달루페는 한겨울에 장미를 만발시키는 기적을 행했다는 이야기도있다.이 때문에 해마다 성녀발현일이면 예수의 고행을 따르려는 신도들이 성당 입구부터 강단까지 무릎으로 기어 열정적인 신앙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과달루페 성당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3문화광장」이 있다.고대 문명·식민지 문명·현대 문명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상거래 지역으로 짐작되는 멕시카족의 틀라텔롤코 피라미드와 17세기에 지어진 산티아고 성당,그리고 현 멕시코 외무부 건물이 모여있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테노치티틀란의 위성도시 성격을 띠었던 틀라텔롤코는 당시 멕시코 계곡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는 것이다. 「3문화광장」에서 다시 20여분가량 시내로 차를 몰아 「소칼로 광장」에 닿았다.「소칼로 광장」은 본래 테노치티틀란이었다.그런데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바꿔 버렸다는 것이다.사방이 각각 240m나 되는 이 광장은 북쪽에 대성당,동쪽에 국립궁전,남쪽에 연방정부 청사가 자리잡고 있는 스페인 식민시대의 전형적인 도심구조를 보여주었다. 「소칼로 광장」의 대성당은 200여년에 걸쳐 완공됐다.대성당 자리는 본래 멕시카인들이 인신공양한 해골들을 모아두던 곳이었다.본 건물은 1548년 완공됐으나 17세기 들어 남쪽부분이 바로크 양식으로,북쪽부분이 네오클래식 양식으로 확장돼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모습이 하모니를 이루었다.이 성당의 검은색 피부를 가진 예수상은 유명한 성물이다.식민정복지에서 원주민을 끌어 안으려 노력한 선교의 한 단면이 들여다 보였다. 성당앞 광장에서는 날마다 흥미로운 의식이 벌어졌다.새의 깃털을 단 화려한 머리장식에 의상을 차려입은 원주민들이 향냄새 나는 코팔나무 껍질을 모닥불처럼 태웠다.그리고 원무(원무)를 추며 흥겹게 돌아갔다.또 하나같이 프라일레라는 나무껍질을 말려 엮은 장식을 발목에 달아 춤을 추며 돌아갈 때마다 「딱,딱」부딪치는 소리를 냈다.그렇게 코팔타는 냄새와 프라일레 소리로 지난날 멕시카제국의 영광을 되찾아줄 신을 날마다 불러댔다. 그런데 이 의식을 유심히 살펴보노라면 원주민 무리속에서 다수의 백인들이 발견됐다.백인 취급을 받지 못하고,그렇다고원주민쪽에도 끼지 못하는 멕시코의 에트랑제들,이들을 「패스포트 퀘스천」(Passport Question)이라고 불렀다.멕시카 후예들에게 동화되고 싶어하는 이들의 몸부림은 역사의 아이러니 바로 그것이었다.
  • 자이르­르완다 분쟁 배경

    ◎르완다­부룬디의 투치족­후투족 반목이 뿌리/자이르의 투치족반군 추방령에 르완다 개입 자이르정부군과 투치족 반군세력간의 자이르내전이 자이르와 이웃 르완다 사이의 전면 국제전으로 비화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두 나라 사이의 적대적 관계의 연원이 두 나라 사이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의 충돌이 아니라 이웃한 르완다와 부룬디라는 두 나라의 지배계급인 소수 투치족(각각 15%)과 다수 후투족(각각 85%)간의 뿌리깊은 종족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즉 두 종족간의 해묵은 「핏줄분쟁」이 자이르에까지 여파를 미치게 된 것이다. 유목민인 투치족은 15세기 이후 원주민인 농경민족 후투족을 지배,이같은 상태로 수백년간 평화롭게 공존해왔다.그러나 1916년 벨기에가 이 지역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지배층인 투치족만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는 등 분리통치술을 구사하자 두 종족간의 반목과 갈등이 싹트면서 증폭되기 시작했다.62년 벨기에로부터 2개의 국가가 독립했을 때 부룬디에선 투치족이 정권을 잡았지만 르완다에서는 그동안 억눌려온 후투족이 정권을 잡았다.보복을 겁낸 투치족은 동족이 정권을 잡고 있는 이웃 부룬디로 대거 탈출,90년 르완다애국전선(FRP)이라는 게릴라부대를 결성,르완다 정부군과 4년간의 내전을 벌인 끝에 94년7월 수도 키갈리를 점령했다.점령군인 투치족은 다수족인 후투족의 온건파를 끌어들여 새 정부를 세웠지만 투치족의 보복을 두려워한 후투족은 이웃한 자이르 국경부근으로 도망,수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94년 자이르로 탈출한 후투족 난민들은 게릴라를 조직,르완다·부룬디 두 나라의 정부군과 전투를 벌여왔고 두 나라는 자이르에 살고 있는 동족 투치족을 부추겨 반격에 나섰다.친후투 입장인 자이르정부가 최근 투치족 반군에 대해 1주일 이내에 떠날 것을 경고하자 투치족이 집권하고 있는 르완다가 동족인 자이르 반군을 돕기 위해 자이르와 직접 대결하게 됐다.
  • 유엔총회서 남·북 핵공방

    ◎남­“북·미 합의 구실 협정불이행” 논리적 비판/북­“유엔 개입은 부당·남한은 미 식민지” 격앙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협정 이행촉구 결의안을 채택한 29일(현지시간)의 유엔총회장에서 남북한은 북핵문제와 관련,2차 답변권을 행사하며 날카로운 공방전을 전개.북한은 수세적 공세에 나서 한반도의 핵문제는 북·미기본합의에 따라 해결돼야 할 북·미간의 정치적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한국 등 40여개 공동제안국의 성실이행촉구에 격앙된 모습. ○…북한 김창국 차석대사는 표결전 「입장설명」을 통해 『한반도의 핵문제는 유엔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변하며 북·미간 기본합의의 전면이행을 역으로 촉구.김대사는 『IAEA관리들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난한 뒤 『핵안전조치 이행압력은 북·미기본합의를 원점으로 돌리려는 시도』라고 불만을 표시. ○…북한 김대사는 결의안이 채택된 후 박수길 유엔주재 한국대사가 북한의 대응태도를 지적한 것을 구실삼아 답변권행사로 한국측에 선제공격.김대사는 『IAEA는 북·미 기본합의를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고 강변한 뒤 한국측에 대해 인신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는데 『남한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들여온 반역자이자 범죄자로서 한반도핵문제에 대해 언급할 자격이 없다.한국대표의 발언에 답변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고 격앙. ○…이에 한국측 천영우 참사관은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IAEA와의 안전조치협정 불이행의 구실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하고 북한의 총회장에서의 「어투」에 대해 유감을 표시.천참사관은 『북한의 불량한 어투에 익숙한 국가에게는 오락으로 간주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표단은 멸종된 냉전의 공룡이나 외계인의 소리를 들은 것으로 착각할 것』이라고 일침.북한의 김대사가 2차답변을 통해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로 칭한데 대해 천참사관은 우리와 수교한 180여개국과 한국을 유엔의 주요기관에 선출해준 유엔회원국에 대한 모독임을 거듭 경고. ○…표결결과 반대표가 2표 나왔으나 레바논이 착오로 반대한 것으로 밝혀지고 바누아투는 『찬성하려 했으나 실수로 기권했다』고 해명함에 따라 결의안은 실질적으로 찬성 142,반대 1,기권 8표로 가결된 셈.반대는 북한만이 한 것으로 나타나 북한은 핵문제와 관련해서도 국제적 고립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지적들.〈유엔본부=이건영 특파원〉
  • 생포 이광수·귀순 곽경일씨 일문일답

    ◎“해상처장 동승은 전쟁관련 임무수행” □이광수 상위 ­남한사람 자연산광어 모를줄 알았다 ­북한 인민들 전쟁나면 이긴다고 믿어 □곽경일 중사 ­입당·군관승진 대상서 제외 귀순 결심 ­탈출때 북 정찰중대원과 수류탄 교전 생포된 무장공비 이광수씨(31)및 휴전선을 넘어 귀순한 곽경일 중사(25)와의 일문일답을 요약한다. ­잠수함의 침투경로는. ▲이=함남 낙원을 떠나기 전날인 9월13일 저녁,인민무력부 정찰국장을 통해 남한침투임무를 처음 알았다.세포총회를 갖고 맹세문 낭독과 수표(서명)를 했다.이튿날 상오5시에 출발,휴전선 경계 5마일 정도에서 기관을 끄고 은밀하게 해안에 접근했다. ○휴전선선 기관 끄고 접근 ­너무 쉽게 잡혔는데. ▲이=훈련을 많이 받았지만 잠수함을 타면 높은 압력때문에 두통과 소화불량으로 고생한다.괘방산을 오를때 배가 너무 고파서 고민끝에 공작원과 떨어져 혼자 북으로 향했다.산마루에서 강릉시내와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민가에서 먹을 것을 구하려다 신고를 받은 경찰에붙잡혔다. ­붙잡힌 뒤 광어회를 먹고 싶다고 말한 이유는. ▲이=나는 해상공작원이라 고급어종인 광어회를 많이 먹어봤다.못산다고 믿었던 남한 사람들은 자연산 광어를 모를 것으로 여겼다. ­침투인원을 처음에 20명이라고 한 이유와 사살된 11명에 대해 말해달라. ○정찰조가 살해 가능성 ▲이=승조원들은 붙잡혀도 임무가 있는 정찰조는 하루만 시간을 끌면 복귀하리라 믿었다.해상처장과 부처장,정찰조는 숨기고 싶었다.사살된 11명은 해상처장이 『포위됐으니 죽자.나를 먼저 쏴라』고 해서 죽었을 것이다.북의 교신을 받고 정찰조가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다. ­곽중사의 탈출 상황은. ▲곽=지난 12일 하오9시쯤 잠복근무중 작업으로 피곤해진 동료들을 자게한 뒤 지휘 전화선을 끊고 총창으로 지뢰를 탐지하며 남으로 향했다.3시간쯤 뒤에 소대원들의 수색작업 소리와 남한측의 귀순 유도방송이 들렸다.13일 상오 뒤쫓아온 정찰중대원 3명과 수류탄을 던지며 교전을 벌였고 부상당한 다리를 이끌고 1시간쯤 도망쳐 국군 초소에 다달았다. ­잠수함 침투사실은 언제 알았나. ○“귀환 도우라” 지시 받아 ▲곽=9월21일 병사들의 외출금지와 지휘관 대기명령이 내려졌고 10월6일에는 소대장이 『좌초된 잠수함에 타고 있던 정찰조원 3명이 복귀할 예정이니 발견하면 무사귀환을 도우라』라는 지시를 받고 알았다. ­김정일이 군부대를 자주 방문하는 이유는. ▲곽=김정일이 군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자주 방문한다고 생각된다. ­남한의 군사시설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법은. ▲이=남한의 통신·방송을 듣고 요원을 남파,육안으로 확인한다. ­곽중사의 귀순동기는. ▲곽=북한의 정치·사회에 대한 의혹에서 시작됐다.남한의 대북방송을 통해 발전상을 동경해 왔다.또 지난해 6월 휴가복귀선물로 부대원들에게 나눠준 가스라이터와 볼펜이 중국을 통해 반입된 남한제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적들 물건의 선전자」로 찍혀 입당과 군관 승진대상자에서 제외됐다.규정을 어기고 지난 94년부터 김정희와 교제,감시를 받았고 김이 임신하게 되자 「생활제대자」로 분류돼 처지가 막막했다. ­세차례 침투한 것이 사실인가.당시 남한군의 경계상태는. ▲이=이전에 세번 침투했다는 말을 들었다.바닷속은 온도차가 커서 남한군의 잠수함 소음탐지기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찾은 일반 시민들을 본 소감은. ▲곽=이들은 8·15와 6·25때 북에서 도망친 친일분자들이 북한땅을 되찾기 위해 전망대를 찾는다고 교육받았다. ­체포된 뒤 남한에서의 생활과 남북한을 비교하면. ▲이=남한은 미국의 식민지라 거리에는 미국인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미국 상품들이 즐비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전혀 달랐다.한 가정집을 방문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고 이들의 행복을 지켜주지 못할 망정 파괴하러 왔다는 사실에 죄의식을 느꼈다.남조선 인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 ­전향의사가 있는가. ▲이=죄인으로 남한정부의 처분에 따르겠다. ­구체적인 침투목적은. ▲이=정찰조 임무는 기밀사항이기 때문에 잠수함안에서도 밥도 따로 먹고 서로에게 묻지 않는다.다만 정찰국의 주요임무가 군사기지 정찰·파괴,중요인물 납치·살해,후방교란인 점과 평소와 다르게해상처장이 동승했다는 사실로 미뤄 전쟁과 관련된 중대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북한의 백배천배 보복 성명이 나온 뒤 북한군의 경계상태는. ○민경대대 정찰임무 강화 ▲곽=민경대대의 잠복근무와 관측정찰 임무가 강화됐다. ­북한군내 식량사정은. ▲곽=전방 민경대대는 식량 사정이 원만한 편이나 민간인들은 「딱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수해로 식량이 부족하다고 교육받았다. ­잠수함이 훈련도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했다는 북의 주장은. ▲이=분명히 훈련은 아니다.정찰국장이 환송파티까지 해주면서 격려했고 내가 당사자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이=북한에서는 전쟁이 나면 당연히 북한이 이긴다고 믿는다.미국은 신형무기를 가졌지만 제일 무서운 것은 「자폭정신」,즉 사상적 무기다.인민들도 어떻게 죽든 마찬가지라는 심정으로 전쟁을 벌이자는 생각이다.〈김경운·김태균 기자〉
  • 한국 OECD 가입 환영한다(해외사설)

    한국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은 세계경제와 한일관계의 전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OECD는 「선진국 클럽」이라고도 불린다.한국은 29번째 가입국이지만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인 2번째이다.아시아의 이웃나라가 선진국 그룹에 들어오는 것을 환영함과 함께 지금까지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한국 국민의 피와 땀의 노력에 비견될 만한 예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이후 사회혼란으로부터 정치혼란,게다가 동족상잔의 전쟁의 비극을 경험했다.그러한 악조건을 극복해 최빈국으로부터 이정도의 단시간에 선진국으로 성장한 예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OECD가입에 대해서 시기상조론과 반대론도 뿌리깊다.경기가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층 경제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그러나 OECD가입을 일본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지지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OECD는 선진국 클럽으로 일컬어지지만 정확하게는 구미제국중심의 클럽이다.이 때문에 아시아에서 유일한 가입국인 일본의 입장과 발언력은 결코 강한 것은 아니었다.이런 의미에서도 한국의 가입으로 아시아의 발언력이 높아져 한일 양국의 협력관계가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선진국 진입은 국제적 기준에 따른 행동을 요구한다.국내적 발상과 민족주의만으로는 국제사회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보다 세계적인 시야가 요구된다.한국과 일본은 지금까지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관계에 있었지만 지금부터는 같은 선진국 클럽의 무대위에서 협력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게 됐다.한일관계는 명실상부하게 역사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한국민의 사이에는 지금까지 스스로에 대해 「경제 1류,정치 2류」라는 말이 들렸다.한국의 선진국클럽 진입이 경제면에서의 평가만이 아니라 정치와 외교전략면에서도 선진국으로서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싶다.
  • “한글을 국보1호로”/“종교·이념 배제한 살아 숨쉬는 문화재”

    ◎재지정 검토관련 PC통신에 지지 쇄도 문화체육부가 국보 1호를 재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과 관련,최근 PC통신에는 「세계 유일의 글자창제 원본」인 훈민정음 원본을 국보 1호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이텔의 조중훈씨(META)는 「국보 1호를 바꿉시다」라는 제목의 게시문을 통해 『일제에 의해 지정되고,이름 또한 숭례문에서 남대문으로 비하된 현 국보 1호는 납득할 수 없다』며 『총독부 건물까지 철거하는 마당에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현재의 국보 1호를 바꾸는 것은 당연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남대문에 대해 토론자들은 『일제 침략 시기에 남쪽(일본)을 향한 문을 국보로 지정한 것은 식민지배를 강화하려는 숨은 의도』(PSALM96),『현재 남대문은 단지 교통지명으로만 가치가 있을 뿐』(junjeik)이라고 깎아내렸다. 김용호씨(Zata999A)는 『한글은 실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종교 및 지역,이념 색채가 없는 거의 유일한 문화유산』이라며 『더욱이 한글은 단순한 보존대상이 아니라 가꾸고 지켜나가야 할 살아 숨쉬는 문화재』라고 강조했다.〈김태균 기자〉
  • 북,난민 고의유출/한·미 위협 가능성/미 「평화연구소」 보고서

    【도쿄 연합】 식량위기에 봉착해 있는 북한은 고의로 어느 정도 난민을 유출시킴으로써 한국과 미국을 위협해 경제적인 요구를 성사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미 평화연구소가 마련했다고 일본 산케이신문이 22일 워싱턴발로 보도했다. 보고서는 특히 북한에 정변이 일어났을 경우 한국군이 북한쪽으로 진입해 난민지역을 설정할 유혹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난민의 잠재적 루트로서 ▲동북쪽 중국 국경 ▲배를 이용한 도일 ▲군사경계선을 통한 남하를 제시하고 북한이 (나름대로) 난민을 통제하면서 유출시키는 방법을 사용해 한국과 미국을 위협하는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일 귀화 한인 거물 누르고 “기염”/일 총선 화제모음

    ◎망언 단골 극우파 오쿠노·에코 당선/관료출신 신인 33명중 12명만 뽑혀/여성 대약진… 9명 늘어 총23명으로 ○…20일의 일본총선에서는 과거 일본의 침략을 미화해온 소위 「망언전문」 인사인 오쿠노 세이스케(오야성양) 전 문부상,에코 다카미(강등융미) 전 총무처장관 등이 당선돼 앞으로 극우적인 망언들이 줄이을 것이란 전망.12선이 된 오쿠노는 『위안부는 대가를 받고 한 상행위였다』는 망언을 했고 9선이 된 에토는 『일본은 식민지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는 망언으로 총무처장관직을 사임했던 인물. ○…재일 한국인으로 일본에 귀화한 아라이 쇼케이(신정장경·48)후보가 일본정계의 거물을 누르고 당선돼 화제.아라이씨는 도쿄 4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자민당공천을 받은 6선의 오우치 게이오(대내계오·66)후보를 누르고 4선의원이 됐다.6월초 신진당을 탈당했던 그는 4선 이상이 돼야 대신이나 차관에 기용될 수 있는 일본의 관행에 따라 재일한국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각료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 ○…이번 선거에서는 관료출신들이 줄줄이 낙선.총선에 출마한 관료출신 신인후보는 모두 33명.이 가운데 소선거구에서 10명,비례대표구에서 2명이 살아돌아왔을 뿐이다.대장성출신의 경우 가장 많은 후보를 냈지만 후보자 8명 가운데 7명이 낙선.신진당 후보로 나선 마스하라 요시다케(도카이재무국장출신)는 『관료출신이라는 점이 유리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정치신인으로서 각료경력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숨. ○…여성의원은 크게 증가.해산전까지 중의원 여성의원은 14명이었던 것이 23명으로 늘어났다.소선거구에서는 7명,비례대표구에서는 16명이 당선.처음 치러지는 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지만 비례대표도 우리나라의 전국구후보와는 달리 격렬한 선거전을 치러야 했던 점을 감안하면 여성들의 정치적 경쟁력이 크게 향상됐음을 보여주는 현상.〈도쿄=강석진 특파원〉
  • 올 노벨평화상 수상 오르타 새달 방한

    ◎5일부터 4일간… 강연·인권단체 면담 올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동티모르의 호세 라모스 오르타(46)가 지식정보연구포럼(대표 김철기·신한국당 중랑갑지구당위원장) 초청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직후인 다음달 5일 우리나라를 방문한다. 오르타는 기자회견과 지식연구포럼에서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아시아의 민주화」에 대한 기념강연 및 만찬에 이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등 인권단체 대표들과 만난뒤 8일 낮 출국할 예정이다. 김위원장은 『오르타가 「한국민주화에 감명을 받고 존경을 하고 있다.앞으로 한국의 격려에 힘입어 아시아의 민주화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초청을 수락했다』고 말하고 『김영삼대통령과의 면담을 희망하고 있으나 성사는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호주에 망명중인 오르타는 인도네시아 식민지인 동티모르의 최대 독립운동단체인 「동티모르 레지스탕스연합(CNRM)을 이끌면서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다.〈박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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