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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루 수도 리마(세계 문화유산 순례:28)

    ◎침략자 유적에 가려 잉카의 영화는 전설로/정복자에 유린된 찬란한 「황금의 도시」/태양의 제전에는 이방인유적 번듯이/산마르틴 광장에는 유럽·남미문명이 함께 호흡 중남미 광대한 대륙에는 마야문명 말고 또다른 신비의 잉카(Inca)문명이 있다.그 문명의 중심지 페루로 떠나기에 앞서,마야문명을 뒤로 한다는 아쉬움에서 선인장으로 만든 술 데킬라 몇잔을 마셨다.지도로 본 리마는 멕시코시티에서 그리 멀지않은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멕시코시티를 떠나 페루의 수도이기도한 리마까지는 비행기로만 꼬박 7시간이 걸렸다. 밤늦은 시각리마에 닿았다.경제사정이 어렵고 사회가 안정되지 않은 탓인지 숙소로 가는 도중에 만난 사람들 표정은 밝지 않았다.그러나 리마라는 도시 자체는 날이 밝은뒤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리마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역사유적지구라서 그야말로 고색창연했다.그런만큼 많은 유적들을 간직했거니와,스페인 식민지시절(1532년∼1824년)만들어진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리마는 크게 산 마르틴(San Martin)광장을 중심으로 하는 구시가지와 20세기 들어 개발한 신시가지로 구분됐다.지금은 일종의 우범지역으로 변해버렸지만 구시가지는 한때 리마의 중심지였다.산 마르틴 광장 한가운데는 당당한 모습으로 말위에 올라앉은 남미 해방의 영웅 산 마르틴 장군의 동상이 우뚝했다.잉카와 스페인,오늘의 남미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산 마르틴 광장은 「히론 데 라 우니온」(Jiron de la Union)이라 이름붙여진 길을 따라 남쪽으로 통했다.약 1㎞에 이르는 이 길 주변에는 각종 상가건물이 빼곡히 들어섰다.마치 서울 명동거리가 연상됐다.길이 끝나는 곳에는 대통령궁·시청 청사 등이 관아가를 이루었고,바실리아 대성당 등 주요 건물들도 함께 자리했다. 대통령궁은 식민지시대 건축물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었다.1532년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거처했던 곳이기도 했다.대통령궁은 항상 걔방돼 관광객들이 늘 붐볐다. 입구를 지나 중앙통로를 따라 들어섰다.2층의 대통령 집무실로 향하는 계단 양쪽으로 남미 해방의영웅 볼리바르 장군과 산 마르틴 장군의 흉상이 서있다.두 사람은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에서 각각 독립운동을 일으켜 남미대륙 전체에 해방의 기쁨을 안긴 인물들이다.그리고 그 아래 로비 대리석 바닥에는 잉카의 상징인 태양 문양이 각인돼 있었다.300년에 걸친 속박의 사슬을 끊어냈던 해방 당시의 모습을 상징한 것이다. 왼쪽으로 난 통로를 따라갔다.중간쯤에 170여년전 페루 최초의 대통령이 타던 프랑스제 마차가 고풍스런 모습으로 진열됐다.그리고 여러 개의 고급스러운 방이 주위를 빙둘러 이어졌다.1535년 스페인 특산물 타일로 장식한 화려한 벽화가 있는 접견대기실,남미 최고품인 니카라과산 나무 장식장 등으로 치장한 기자회견실도 그 주위에 있다.기자회견실에는 잉카제국 마지막 왕 망코의 둘째아들로 스페인에 맞서 최후까지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호세 가브리엘 곤도르칸키 케초아의 대형초상화가 걸렸다.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따 장엄하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꾸몄다는 귀빈대기실은 관광객들이 탄성을 자아낼 만큼 호화스러웠다. 대통령궁 앞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위병교대식은 흥미로운 것이었다.매일 상오 11시30분이면 푸른색과 흰색 위주의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먼저 등장했다.어린이들이 전통민속춤을 추고나면 위병교대식이 진행됐다.그 의식은 근엄하기 보다는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려는 페루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페루 역시 남미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카톨릭의 영향을 받아 성당 건축물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대통령궁 왼쪽에 자리잡은 바실리아 성당도 그중 하나다.1535년에 시공돼 남미 최초·최대의 성당이기도한 바실리아 성당은 1586년과 1746년·1940년 등 세차례에 걸쳐 지진을 겪고서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리마 사람들의 자랑이 대단했다. 이 성당에는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의 미라가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채 유리관 안에 전시됐다.피사로는 1546년 자신의 심복의 손에 죽음을 맞았는데,미라 옆에는 고향에서 가져왔다는 한줌의 흙을 보관했다.정복자의 수구초심을 읽으면서 흥망성쇠를 안고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 소리를 듣는듯했다. 대통령궁에서 3블럭 정도 동쪽의 산 프란시스코(San Francisco)성당과 부속 수도원 역시 장관을 연출했다.1620년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한 이 성당은,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성당 전면을 장식한 돌조각은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들여온 것으로 그 아름다움은 극치를 이루었다.이 성당의 지하무덤 카타콤(Catacombs)은 유명했다.1788년에 지하 4층 규모로 만든 카타콤에는 성당건립에 기여한 사람들이나 성직자 4만여명이 잠들어 있다. 식민지시대 유적들에 가려 잉카의 흔적들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황금이 많아 엘도라도로 불렸다는 잉카제국.시내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황금박물관」을 맨 먼저 들렀다.풍요로웠던 잉카문명의 역사가 어렴풋이나마 마음속에 들어왔다.태양이 신성한 숭배의 대상이었던 잉카인들에게 황금은 태양이 흘린 눈물을 의미했다. 잉카의 황금유물은 기원전(BC) 4세기에서 기원(AD)2세기까지 융성했던 비쿠스 문명에 뿌리를 두었다.그후 차빈·모체·나스카·와리·치무를 거쳐잉카문명기에 접어들어 더욱 활짝 피어났다.박물관에 전시된 목걸이·반지·코걸이·귀걸이·옷핀 등 장신구와 왕관·악기 등이 모두 황금제품이다.심지어 우의까지 금으로 제작한 것을 보면 황금을 다룬 솜씨인 연금술은 고도의 경지에 이르렀던 모양이다.그러나 풍부한 황금은 유럽 정복자들을 유혹했고,그 문명을 정복자들에게 내주는 비극을 불러들였다. ▷여행가이드◁ 페루의 화폐단위는 솔(Sol)로 미화 1달러당 2.2솔 정도다.시내에 크고작은 숙박시설이 많으나,안전을 고려해 호텔에 투숙하는 것이 좋다. 세비체·로모살타타·안티쿠초 등 페루 전통음식은 15달러로 조금 비싼 편.그러나 일반식당에서 당일 내놓는 메뉴를 주문하면 3달러 정도면 해결할 수 있다.한국식당의 웬만한 음식은 15달러 이상.물론 음료수와 물은 별도 주문이다.팁은 음식값의 10%.리마는 사막위에 세워진 도시인 탓에 지하철이 없고,출퇴근시간에는 교통난이 심한 편이다. 재미있는 것은 리마 시내를 돌아다니는 자동차의 30%정도가 한국산 자동차라는 사실이다.대통령궁이나 성당 등에 들어갈 때는 4∼5솔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 “패션 식민지는 싫다”/업계 PB 붐

    ◎코오롱 「트레미토」­밀라노 컬렉션 호평… 세계진출 “노크”/신세계 「콜릭스」­20대 겨녕한 고급형 영캐주얼 웨어/「상보」 「이지엔느」 「모뎀」도 인기몰이 직수입과 라이센스 일변도의 국내 패션계에 자체 브랜드들이 잇따라 발표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특히 국내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밀라노 컬렉션에 참가한 코오롱상사의 「트레미토」는 현지 언론과 패션디자이너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지난 1일부터 9일까지 밀라노에서 열린 밀라노 컬렉션에 참가,개막식을 장식했던 코오롱상사의 자체 브랜드 「트레미토」는 『실용성을 살리면서도 창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특히 현지 바이어들은 현지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컬렉션에 다녀온 트레미토 관계자는 『현지 바이어중 트레미토와 계약을 희망하는 업체가 많았다』고 소개,디자이너 브랜드가 아닌 내셔날 브랜드의 세계진출 가능성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트레미토」는 코오롱상사가 지난해 봄 출시한 자체브랜드로 복고적인 이미지를 현대감각에 맞게 풀어낸 클래식 진으로 사랑·젊음·지성 등을 의미하는3가지 신화라는 뜻이다.클래식한 영캐주얼 웨어로 21세 남·녀 대학생을 주타깃으로 한다.남·녀 의류비중이 반반이며 진과 속옷류,받쳐입는 웃옷,액세서리류로 돼있다.코오롱상사는 밀라노 컬렉션에 출품됐던 일부 품목을 올가을 국내에도 선보일 예정이다. 코오롱상사는 「트레미토」 브랜드의 세계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현지 판매망을 이용한 판매는 물론 현지 디자인,현지 사업을 위한 사전작업에 들어갔다. 신세계백화점도 자체브랜드(PB) 2개를 동시에 발표했다.PB사업 강화일환으로 신세대를 위한 플럭스(FLUX)와 남성복 마일즈데이비스(Miles Davis)를 지난달 발표,판매에 들어갔다.이로써 독자적으로 개발한 브랜드는 총 24개로 늘어났다.신세계측은 올해 PB매출을 지난해 6백5억원보다 35% 늘어난 8백20억원으로 잡고 있다. 플럭스는 「변화의 흐름」이라는 뜻으로 유니섹스 캐주얼 브랜드이다.주 타깃은 20대 초반의 신세대.기존의 신세대 캐주얼 브랜드들이 진일변도인 것과 달리 고급스러운소재를 사용,자켓과 바지,니트,블라우스,셔츠 등 영캐주얼 웨어의 고급화를 노렸다.신세계백화점측은 가격대가 비슷한 개념을 가진 내셔널 브랜드에 비해 80% 수준으로 슈트 한벌 기준에 29만∼37만원선이라고 밝혔다. 마일즈데이비스는 남성 캐주얼 브랜드로 20·30대 직장남성이 주 공략대상.정장과 캐주얼을 함께 취급하며 가격대는 쓰리피스가 38만5천원.이밖에 올해 출시된 자체 신규 여성브랜드로는 신예 디자이너인 심상보씨의 제2브랜드 「상보(SANG BEAU)」,진도의 성레포츠웨어인 「이지엔느」,에바스패션의 「모뎀」 등이 있다.
  • 컴퓨터 식민지 면하려면(컴퓨터 걸음마:31)

    정보사회에서는 총이나 칼대신 정보를 무기로 사용합니다.하기야 옛날에도 적을 알아야 이긴다고 했으니 적의 정보를 입수하는 것을 중요시하긴 했습니다.정보원을 통해서,간첩을 통해서,외교관을 통해서 등등 여러 통로로 정보를 구했을 것입니다. 정보사회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정보를 구하고 정보를 가공합니다.최신 무기는 컴퓨터로 제어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지금도 수퍼컴퓨터같이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는 함부로 수출하지 않습니다.무기로 사용될까봐 미리 견제하는 것입니다.군사 목적용 컴퓨터 이외에도 원격 교육용 컴퓨터나 의학 치료용 컴퓨터,공항이나 항만 관리용 컴퓨터,하우스 온상재배 관리용 컴퓨터,재택근무용 컴퓨터,기자용 노트북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컴퓨터가 필수적입니다. 정보사회에 필수적인 컴퓨터를 제작하려면 컴퓨터의 머리에 해당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라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일반적으로 CPU(중앙처리장치)라고도 부릅니다.자동차로 친다면 엔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386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하면 386 컴퓨터입니다.마찬가지로 486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만들면 486컴퓨터,펜티엄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만들면 펜티엄 컴퓨터입니다. 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자기 나라에서 제작하지 못하고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면 아무리 컴퓨터를 잘 만들고 많이 수출한다고 해도 그 회사는 어느날 갑자기 문 닫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만일 한 개 30만원 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10배를 올려서 3백만원에 판다면 자기 나라에서 제작하지 못하는 실정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비싸더라도 안 사올수 없는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5백만대가 넘는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됐고 매년 1백만대가 넘는 개인용 컴퓨터가 판매되고 있습니다.만일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드는 회사에서 우리나라에다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팔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우리나라는 컴퓨터를 만들수 없게 됩니다.1년에 100만대도 더 필요한데 1대도 못만든다면 마이크로프로세서 대신에 컴퓨터 완제품을 통째로 수입해야 합니다.컴퓨터 완제품도 팔지 않겠다면 우리나라는 그날부터 새 컴퓨터를 한 대도 사용할 수도 없게 됩니다.어쩔수 없이 마이크로프로세서 생산국에게 예속되는 것입니다.이라크가 몇몇나라에 의해서 무역 금지 조치를 당하니까 국민들이 지금 얼마나 고생하고 있습니까? 국제 사회는 냉엄합니다.우리의 외교 현실을 보아도 대만,중국,베트남,소련 등 과거와 현재의 관계가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정보 시대의 독립국이 되려면 아니 컴퓨터 식민지가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자기 나라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작 기술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드디어 한국과학기술원의 경종민 교수팀이 미국의 인텔 386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완전 호환성을 가진 HK386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해냈습니다.40㎒의 데이터 처리 속도를 가진 이 HK386 마이크로프로세서는 1㎠에 40만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어 넣은 것입니다. 지금 586급과 686급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나오는데 왜 하필 386급 마이크로프로세서냐고 화내는 분도 있습니다.그러나 지금은 세계 일류 수준인 우리나라의 자동차,TV,모니터 기술이 처음에는 어땠었나요? 386급 마이크로프로세서로 386 컴퓨터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전자수첩이나 개인용정보처리 단말기(PDA) 등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더구나 우리 중·고등학교 보유 컴퓨터는 386급 이하가 50.3%(인텔리서치 조사) 아닙니까? 1997년 2월 현재 386급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독자적으로 만들수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10여군데 미만입니다.장하다 경종민 교수팀! 멋있다 경종민 교수팀!〈필자=계원조형예술대학 전자출판과 교수〉
  • 멕시코 유카탄주 칸쿤·툴룸(세계 문화유산 순례:26)

    ◎마야문명을 품은 천혜의 낙원/카브리해안에 신이 빚은 비경따라 마야인 손길로 쌓은 피라미드… 궁터… 돌담…/초록빛 바다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 멕시코는 천혜의 땅이다.아직도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많았다.그리고 200만㎢라는 광활한 영토는 고지대의 만년설이나 맑고 투명한 카리브해의 비경을 끌어 안았다.한 문명을 농염하게 꽃피운 멕시코의 자연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지혜를 깨우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제공했을 것이다. 유카탄 반도의 동쪽끝 칸쿤(Cancun)은 마야문명의 기운이 충만했다.세계적인 휴양지로 널리 알려진 칸쿤은 치첸이차에서 동쪽으로 197㎞ 떨어졌다.그토록 먼 길이 지루하지 않았던 것도 아름다운 자연 때문이었으리라.치첸이차를 출발,잘 닦인 고속도로를 따라 드넓은 평원을 2시간30분쯤 달렸다.허름한 건물이 늘어선 구시가지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세계적으로 이름있다는 휴양지 치고는 너무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해변도로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칸쿤의 진면목이 확인됐다.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한 대형 호텔들과,그 사이사이로 자연조건을 그대로 활용한 갖가지 리조트 시설들….칸쿤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멋들어진 카리브 해안은 신이 태초에 창조한 자연유산이라면,그 주변에 존재하는 마야문명의 독특한 해안양식 유적지들은 인간이 꾸며낸 문화유산이었다.자연과 인간의 손길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땅이 바로 칸쿤인 것이다. 칸쿤은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절 영국·프랑스의 해적들이 자주 출몰하던 해안이었다고 한다.그러다 1970년대 멕시코 대통령 로페스 포르티요 집권기에 대규모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지금은 각종 국제회의가 쉴새 없이 열리는 등 세계적인 명소로 바뀌었다.해변도로는 총 25㎞에 이른다.리츠 칼튼·피에스타 아메리카나·시저 파크 등 전세계적 체인을 가진 초특급 호텔 10여개와 1급 호텔 62개 등 모두 120개가 넘는 각종 호텔들이 밀집했다.그리고 세계 각국의 음식을 골고루 맛볼수 있는 각종 레스토랑과 바가 즐비하게 들어섰다. 그뿐 아니다.호텔 밀집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어렵지 않게 원시의자연을 만날수 있다.무릉도원이 여기가 아닐까 하는 그런 풍광이 펼쳐졌다.카리브해를 수놓은 코슈멜(Cozumel)섬과 여자의 섬이라는 이슬라 무헤레스(Isla Mujeres)는 관광객들을 향해 연신 손짓을 보냈다.또 청정의 푸른 바다를 노니는 물고기를 쫓아 헤엄치는 스킨스쿠버나 스노클링을 만끽할 만한 스카렛과 셸하 같은 천연 휴양지가 수없이 널려 있다. 마야문명의 흔적이 남지 않았더라면,칸쿤은 여느 평범한 휴양지에 불과했을 것이다.칸쿤은 마야유적의 아름다움을 더욱 부추겼다.그 대표적인 유적은 칸쿤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123㎞ 떨어진 툴룸(Tulum)이다.독특한 해안양식의 마야문명을 드러낸 툴룸은 마야말로 「벽」이라는 뜻이다.그래서인지 툴룸 유적지는 전체가 1m 높이의 나즈막한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남북으로 380m,동서로 170m에 이르는 돌담에는 출입문 4개를 터놓았다.툴룸의 원래 이름은 해돋이를 의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바닷가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 보았던 마야인들의 호연지기가 한껏 와닿았다. 툴룸 역시 지극히 마야적이라 할수있는 문명유적이 고스란히 남았다.규모는 조금 작았으나 중앙에는 우선 바다를 등진 「캐슬 피라미드」가 우뚝했다.그리고 주변에 「바람의 피라미드」「뒤짚힌 신의 피라미드」「달력의 피라미드」를 거느렸다.「달력의 피라미드」에서는 AD 6세기 당시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기록한 일지형식의 달력이 발견됐다고 한다.또 「캐슬 피라미드」앞으로는 마야인의 예술성이 돋보이는 벽화가 외벽 가득히 장식된 「벽화의 피라미드」가 자리했다. 관광객들 틈에 섞여 가장 높은 바위에 올랐을때,유적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풍요의 신 「착」의 장식이 가득한 「캐슬 피라미드」와 마치 등대처럼 버틴 「바람의 피라미드」가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그리고 초록빛 카리브해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그렸다.16세기초 칸쿤 해안을 항해하면서 툴룸을 스페인의 미항 세비아에 빗댄 스페인 사람 후앙 데 히르할바의 눈은 그야말로 혜안이었는지도 모른다. 툴룸은 마야인들의 작은 공동체였다.여러개의 피라미드와 귀족들이 살던 궁성터가 있다.궁성터 건너 돌담밖에서는 일반인들이 마야 스타일의 움막을 짓고 살았다.낮은 돌담은 단지 성스러운 지역과 일반 거주지를 구분하기 위한 시설이었을 뿐이다.엄격한 신분차별이나 군사적 의미의 방어시설로 쌓은 성곽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러고 보면,마야인들은 화목하게 생활공간을 공유하면서 공동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분명했다. ▷여행가이드◁ 칸쿤은 유명 휴양지답게 각종 숙박시설이나 음식점 등을 이용하는데 비싼 편이다.하룻밤에 100달러가 넘는 호텔이 많고,각국의 요리를 즐기기에도 값이 만만치 않다.그러나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잘 이용하면 비교적 싸게 3∼4일 정도 즐길수 있는 방법도 있다.스카렛·셸하 등 휴양시설의 입장료는 310∼350페소(미화 45달러 내외)정도. 툴룸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칸쿤에 있는 호텔에 숙박할 경우 대부분의 호텔이 운영하는 관광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툴룸 유적지에서는 입장료를 16페소(2∼3달러)씩 받는다.유적지 내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려면 7.5페소(1∼2달러)를 내면 된다.
  • 알바니아 시위대 수십명 사망설/진압군 배치완료

    ◎희TV,“폭도들 해군기지 1곳 장악”/블로러·사란더 시민 중무장… 충돌 위기고조 【티라나 AFP AP 연합】 초대형 금융사기사건으로 촉발된 반정부 무장소요로 들끓고 있는 알바니아에서는 4일 수십여명 사망설이 나도는 가운데 탱크가 폭동중심지인 남부지역 도시에 진입하는 등 진압군 배치가 거의 완료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소요 중심지인 블로러를 비롯한 남부지역에서는 총기난사와 약탈,공공건물 방화 등 극도의 혼란과 무정부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4살 어린이가 유탄에 맞아 숨지기도 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그리스 민영 SKAI­TV는 소요 중심지중의 하나인 사란더시와 주변에서 민간인 수십여명이 숨졌으며 경찰이 폭도들에게 산 채로 불태워지기도 했다고 목격자들을 인용,보도했다. TV는 이날 소요지역의 그리스계 주민지도자를 전화로 연결,사란더 인접 델빈에서 헬기가 목격된 후 총성이 울려퍼졌으며 「수십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목격담을 전했다. 사란더의 SKAI 특파원은 시내로 침투하려던 경찰이 폭도들과 총격전을벌이다 1명이 산 채로 불태워졌으며 1명이 인질로 붙잡혔다고 전했다. 【티라나 DPA 연합】 알바니아 정부가 피라미드 금융사기로 촉발돼 걷잡을수 없이 확산된 반정부 유혈 소요 진압을 위해 탱크까지 동원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인접 그리스가 유사시에 대비해 8개 사단 병력을 접경으로 이동시켰음이 5일 드러났다. 그리스 TV는 알바니아의 반정부 세력이 6척의 무장함정을 탈취하고 해군기지 한 곳도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 개학 첫날 초등생 1명 압사/울산 남부초등학교

    ◎조례시간 계단 내려오다 뒤엉켜… 10명 부상 3일 상오 10시15분쯤 경남 울산시 남구 야음동 울산 남부초등학교(교장 강성만·61)본관 2층과 1층사이 계단에서 이 학교 학생 20여명이 넘어지면서 1명이 압사하고 10명이 크게 다쳤다. 교사들에 따르면 이날 상오 10시30분쯤 운동장에서 신학기 첫 조례및 교장 취임식을 하기 위해 학생들을 집합시키자 본관과 별관 2층에서 학생들이 한꺼번에 내려오다가 본관 2층과 1층 계단 사이에서 학생들이 넘어졌다. 이 사고로 김영롱양(10·3년)이 깔려 숨지고 임지애양(9·2년)등 10명이 중경상을 입고 병원에 분산돼 치료를 받고 있으나 임양 등 3명은 중태다 학교측은 『2학년과 3학년으로 진급하는 학생들이 바뀌는 새 교실을 보기 위해 2층으로 몰려 갔다가 한꺼번에 계단을 내려오다 한명이 넘지면서 이같은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사상자 명단은.▲사망=김영롱 ▲중상=임지애 정문식(10) 홍현석(10) ▲부상=최민정(여·10) 김치훈(9)오승석(10) 강기원(9) 김진호(10·이상 울산병원) ▲부상=변민지(여·9) 변세희(여·9·이상 백천병원)
  • 중국은 국제관례 따라야(사설)

    북경 한국대사관에 망명중인 북한 황장엽씨 일행의 「서울행」문제를 놓고 한국·중국·북한간에 숨가쁜 3각게임이 한창이라고 한다.망명자의 희망대로 이들을 안전하게 서울로 데려와야 하는 한국입장과 당초부터 「납치」라 주장하며 이를 저지하려는 북한측의 반대공작이 중국을 상대로 치열하게 맞붙어 있는 때문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은 이 문제로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중국은 국제적 관행과 국제규범에 충실하면 그만인 것이다.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 할 이유가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정치적 망명의 처리준거가 되는 「난민지위에 관한 제네바협약」과 「난민지위의정서」에 지난 82년 각각 가입한 체약 당사국이다.협약에 따르면 체약국은 정치적 망명신청에 대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정치적 박해를 받을 것이 확실한 원소속국으로 보낼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이 문제를 중국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보고 있다.중국이 황씨 일행의 의사를 확인하는대로 서울로 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세계가 관심을 갖는 것은 중국과 북한이 매우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우리는 또한 북한 난민문제에 대한 중국의 어려운 입장을 모르지 않는다.그러나 이 문제는 배가 고파 두만강을 건너는 난민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 최선이다.만에 하나라도 중국이 이들 일행을 북한으로 되돌려보낸다고 가정해보면 어떻게 되는가.우리는 또한 89년 「천안문사태」때 미국대사관으로 망명을 요청한 중국 반체제인사 방려지부부를 1년여의 실랑이를 벌였으면서도 끝내는 미국망명을 허용한 「중국의 양식」을 기억하고 있다. 덧붙여 주문하고 싶은 것은 이번 일은 결단이 빠를수록 좋다는 점이다.시간을 끌어 남북한에는 물론 중국에 이로울 게 없다.
  • 황장엽 인도 중에 강력 요청/유 외무 싱가포르 도착

    ◎오늘 전기침 외무와 망명절차 협의/장관특보 북경 파견… 미·일과도 공조 협의 정부는 14일 열리는 유종하 외무부장관과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간의 회담에서 지난 12일 주 중국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망명을 신청한 황장엽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의 신병이 빠른 시일안에 서울로 인도될 수 있도록 중국측이 협조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할 방침이다. 정부는 12일 황장엽 사건이 발발하자 대책마련 등을 위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셈(ASEM)외무장관회담에 유장관 대신 이기주 차관을 보낼 예정이었으나 중국 전 외교부장과 망명절차를 조속히 마무리하기위해 13일 하오 유장관을 급파했다. 유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황비서가 망명요청 직후 영사부에서 작성한 『정치적 이유로 한국에 망명하겠다』는 내용의 메모를 중국측에 전달하고,「난민지위에 관한 국제협약」과 국제관행에 따라 망명요청지인 서울로 신병이 인도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날 회담에서 전기침 부장이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황비서의 신병인도를 명시적으로 약속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있으나 최소한 국제관행에 따른 객관적인 처리방침은 밝힐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이와함께 황비서의 한국 인도를 위한 국제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과의 협의에도 들어갔다.
  • 황 “4자회담 통일지렛대 가치”/일 방문중 회견

    ◎한반도 냉전종식 주변대국이 힘써야 북한의 황장엽 당비서는 일본을 방문중 일본 아사히TV,NHK­TV와 회견을 가졌다. 황의 회견을 간추려본다. ▷북한 경제상황◁ 당과 군대 인민은 최고 영도자를 중심으로 일심단결돼 있다.정치·군사적인 기반은 확고부동하지만 경제적인 난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북한은 기본역량을 경제를 부흥발전시키는데 쏟고 있다.소련 사회주의가 붕괴된 뒤 중공업위주의 경제전략을 농업,경공업,대외무역위주로 바꾸었다. ▷미·북 관계 및 4자회담◁ 한반도가 분열된 근본원인은 동서간 냉전이며 미·소 대립이다.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이 우리를 강제로 식민지화했기 때문이다.통일문제는 민족내부의 문제이다.우리의 바람은 한반도 분열에 관련된 나라들이 통일에 유익하게 작용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미국과의 구체적 교섭에 대해서는 직접 관련이 있지 않지만 실무자들 사이 구체적 조건이 맞으면 합의될 것이다.4자회담에 대해서는 유관국가들이 갈라진 조국을 통일시키고 조선반도 평화보장에 유익하면 우리의 입장에서 가치가 있다. ▷국제관계 전망◁ 냉전종식은 힘의 정책의 파산이다.냉전종식으로 국제관계가 더 민주화되고 평화가 보장되고 세계인민사회가 친선협조하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계건설의 중요한 전제가 마련됐음을 뜻한다.한반도의 경우 냉전의 잔재가 가시지 않았다.당면관심은 조선반도의 평화와 평화적 통일이다.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대국의 관계가 냉전종식 정신에 맞게 변해야 한다.
  • 세네갈 고레섬 「노예의 집」(세계 문화유산 순례:22)

    ◎자유와 영원한 이별… 「속박」으로 떠나는 출발지/노예로 팔려가는 흑인들의 처절한 절규가…/16∼18C 2천여만명 사냥/「돌아올수 없는 문」 거쳐 노예선에 병걸린 6백만명 상어밥 신세/건물 곳곳 몸부림친 그날의 흔적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오른 유적·유물들은 대부분의 경우 인류가 이룩한 숭고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지고 지정된 것들이다.타지 마할,베르사유궁,성베드로성당,마추픽추,자유의 여신상…등등. 그러나 모든 목록이 인류의 숭고한 기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그중에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과거의 기록들도 포함돼 있다.과거의 잘못에서부터도 교훈을 배우자는 뜻에서이다.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나치수용소,그리고 세네갈의 고레섬에 있는 「노예의 집」이 바로 그런 기록들이다.16세기초부터 300여년 동안 아프리카 전역에서 끌려온 2천여만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이 노예의 집을 통해 신대륙 아메리카로 「돌아올수 없는」여행을 떠났다.고레섬은 바로 이들 아프리카인들이 자유와의 영원한 이별을 고하고 속박의 땅을 향해가는 여행의 출발지였다. 고레섬은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서쪽으로 작은 여객선으로 30분 거리에 떠있는 넓이 16만㎡의 작은 섬이다.대서양의 따사한 햇살을 찾아 모여든 유럽의 관광객들이 벗은 몸을 태우는 작은 백사장 옆 부두에서 배를 내려 좁은 골목길을 걸어들어가면 불과 10분이면 이 「노예의 집」앞에 다다르게 된다. 좁은 출입문을 들어서면 서너 걸음 앞쪽에 2층으로 연결되는 나선형 계단이 계단 아래쪽의 어둠을 부여잡은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다.좌우로 말밥굽처럼 뻗어있는 이 계단 바로 아래쪽은 그안에 갖혀있던 아프리카인들의 고통의 삶을 연상시키는 듯 한낮인데도 햇빛이 들지 않아 마치 블랙홀 같은 어둠을 연출하고 있다.건물 1층에 있는 십여개의 크고 작은 토굴같은 방들이 아프리카 전역에서 잡혀온 흑인들이 신대륙으로 떠나기 전 대기하던 곳이다.계단위 2층은 백인 노예상들이 쉬는 넓고 안락한 거실이다. 마당 왼편 첫번째 방은 「고르는 방」.20여평 남짓한 방의 한쪽 시멘트벽에는 60㎏이라는 숫자가 어렴풋이 남아 있다.성인남자 노예를 선발하는 몸무게의 기준이다.여인들은 젖가슴이 제대로 영글었는지를 보고 고르고 아이들은 치아가 여물었는지를 가지고 골랐다.방 한쪽에는 끌려온 아프리카인들의 목과 손발에 채웠던 쇠사슬과 족쇄가 걸려있다.이어서 「처녀의 방」「어린이의 방」「반항자의 방」,그리고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 전 「대기하는 방」식으로 10여개의 시멘트 방들이 촘촘히 연결돼 있다. 신체검사를 통과한 아프리카인들은 정면의 계단 앞마당에서 경매에 부쳐졌다.백인 노예상들은 2층 발코니 난관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코냑을 홀짝홀짝 들이키며 살만한 「물건」들을 골랐다.건물 전면을 정확히 양분하는 중앙의 말발굽 계단 한가운데에서부터 건물뒤편 바다쪽으로는 길게 복도가 나 있다.그 복도 끝 바다 쪽으로 난 장방형의 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블랙홀 같은 어둠의 끝에서 이 문의 존재를 드러내 보여준다.폭 70여 ㎝,높이 2.2m의 이 장방형 문의 이름은 「돌아올수 없는 문」.3∼4개월 동안 토굴방에 갇혀있던 아프리카인들은 마침내 「죽음의 길」인 이 깜깜한 복도를 지나 「돌아올수 없는 문」을 걸어나가서는 200여m 떨어진 선창에 대기하고있던 노예선에 실려 떠났다. 몸무게가 모자라거나 병에 걸린 이들은 선창밖으로 내던져 주위를 맴돌던 식인상어의 밥이 됐다.당시 이 고레섬 인근해역은 유명한 식인상어 출몰지역이었다고 한다.이들은 마치 잡혀올라온 정어리떼 처럼 차곡차곡 선창에 실려 대서양을 건너갔다.도중에 숨이 끊어져 바다로 내던져진 수가 6백여만명이었다고 한다. 목숨을 부지한 이들도 그뒤 인간의 삶을 산것은 아니었다.남편은 미국의 목화농장,아내는 브라질로,그리고 아이들은 아이티나 서인도로 보내지는 식으로 온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생이별을 당했다. 고레섬은 섬전체의 5분의 1가량이 방어요새로 만들어져있어 섬의 험한 역사를 웅변으로 보여준다.노예선 출발지로 최적의 요건을 갖춘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기를 쓰고 덤볐기 때문이다.서북단의 현무암 돌출바위 쪽에는 예외없이 시멘트 포대가 만들어져 있고 바다로 향한 녹슨 대형 포신들이 곳곳에 남아있다.백인들중에서 이 섬을 처음 발견한 것은 1444년 포르투갈인들이었다.아름다운 모래사장과 아늑한 항구를 갖춘 천혜의 요새였다.섬북쪽에는 영화 「빠삐용」에서 스티브 매퀸이 탈옥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내리는 장면을 촬영했다는 절벽도 있다. 지금 남아있는 「노예의 집」은 1776년 네덜란드인들이 지은 것으로 이 섬에 지어진 마지막 노예의 집이다.많을 때는 150∼200명을 수용하는 이런 집들이 수십 곳에 달했다고 한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 세네갈 정부는 통한의 과거사를 보존하기 위해 1975년 섬전체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했고 1978년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이제 당시의 퀴퀴한 감방의 악취와 아프리카인들의 비명소리는 사라졌지만 이곳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추악한 학대행위를 말없이 증언하는 역사의 교사이다. ◎여행가이드/유럽풍 휴양시설 즐비/「사막투어」 색다른 추억 세네갈은 피부색이 검은 아프리카인들이 사는 사하라사막 이남의 소위 블랙 아프리카치고는 기후조건이 좋은 지역.사계절 대서양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프랑스식민지의 영향으로 수도 다카르 해안지대와 고레섬 일대에는 유럽풍의 휴양시설과 레스토랑,고급호텔들이 많다.외국 관광객들이 많은 이유중 하나는 싼 비용으로 휴가를 즐길수있기 때문.호텔등 휴양시설 비용이 유럽의 절반 이하이다. 다카르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만 벗어나면 사하라사막의 서남단.그곳에서 자동차를 타고 하는 2시간짜리 「사막 투어」를 통해 사하라사막을 조금 들여다볼수 있다.사막의 경계지역에서 서식하고 소설「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 군락도 있다. 아프리카판 사해로 호수전체가 붉은색을 띤 「라 크루즈(붉은호수)」도 뺄수 없는 관광코스.다카르해안에서는 한화 1만원이면 자연산 전복,성게를 「한가마니」는 살수 있다는 점도 이곳 한국교민들의 손꼽는 재미중의 하나.마드리드,로마 등 남유럽의 주요공항에서 다카르행 항공편이 있다.
  • “종군위안부 없었다”/일 야당의원 또 망언

    일본 제1야당인 신진당의 니시무라 신고(서촌진오) 중의원은 3일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배할 당시 좋은 일도 했다는 에토 다카미(강등융미) 전 총무청장관의 발언은 올바른 것이라고 망언을 늘어놓았다. 니시무라 의원은 이날 중의원 예산위 질의를 통해 또한 일본정부 대변인 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육) 관방장관이 김영삼 대통령의 일본방문직전 늘어놓은 「당시 공창이 존재했으며 종군위안부라는 말은 없었다」는 망언도 역사적 사실이라고 강변했다.
  • 달나라 “물 존재” 밝혀낼까/남극지대 표면 10㎞ 근접촬영

    ◎미 우주선 「프로스펙터」 9월 확인탐사 착수 【함부르크 DPA 연합】 미국의 루나 프로스펙터 우주선이 오는 9월 달 남극의 「얼음지대」 확인탐사에 나선다. 달표면 10㎞이내 거리까지 근접할 루나 프로스펙터의 탐사 결과 달에 얼음이 존재하는 것이 확인되면 인류가 달을 정복,보다 먼 우주비행을 위한 중간기지로 활용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미 휴스턴 소재 라이스대의 행성학 권위자 폴 스퓨디스 교수가 말했다.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의 전략방위구상(SDI)의 일환으로 94년 발사된 달 탐색우주선 클레멘타인호는 달궤도를 71일간 선회하면서 2백만장의 달사진과 달의 레이저 측정 자료를 지구로 전송했는데 그중 달 남극 에이트켄 분지내 한 분화구에 얼어붙은 호수같은 것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진이 포함돼 있었다. 스퓨디스 교수는 달 표면에서 얼음호수로 보이는 구조가 발견된 사실은 인류의 달 정착 가능성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면서 만약 달의 물 존재가 사실로 확인되면 인류는 언젠가는 달을 「식민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과학자들은 10억여년 전에 혜성의 영향으로 달 남극에 물이 고이게 됐고 태양으로부터 가려져 기온이 영하 2백℃까지 내려가는 이 지대의 분화구에 갇힌 물이 증발하지 않고 얼어붙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오는 9월 발사될 루나 프로스펙터는 달표면 10㎞ 이내의 거리까지 다가가 클레멘타인 관측 결과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우주선에는 달표면의 화학적 구조를 분석하기 위한 5개의 탐지장치가 탑재된다.과학자들은 우주선이 보내오는 첫번째 자료를 수신한지 1개월 이내에 달의 물존재 여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 문화유산 보존지혜/조유전 국립민속박물관장(굄돌)

    나라에서는 올해를 「문화유산의 해」로 정하고 지난 1월21일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국무총리를 위시해 문화계 등 각계 인사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선포식을 가졌다.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시기에는 우리말과 글을 없애고 심지어는 일본식 성과 이름으로 개명하도록 했다.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와 역사를 왜곡하거나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우민화정책은 물론 전국에 분포한 우리 매장문화재를 약탈하고 파괴했다. 광복이 되고나서는 6·25전쟁으로 전국이 잿더미로 변하여 많은 문화유산이 수난을 당했다.그 뿐인가,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오직 잘 살겠다는 일념의 경제개발 우선정책으로 매장 문화유산은 날로 파괴·인멸되고 있지 않은가. 세계화는 자기 문화 바탕 위에 외국문화와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이지 세계 속에 동화되어 자기 문화를 잃는다면 그야말로 문화식민지가 될 것이다.문명한 나라일수록 자기 문화를 숭상하고 계승,발전시키는데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문화유산의 해」에 들어서자 들려오는 소식은 오히려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우리나라 최대의 철새도래지인 창원 주남리저수지 갈대밭에 방화로 보이는 불이 나 철새서식지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되었다는 소식에 이어,창원시에서는 2016년까지 주남리저수지 일대에 대규모 시가지를 조성하는 창원도시기본계획을 마련해 환경부와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연하지 않을수 없다.자연 생태계가 바로 우리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문화유산 아닌가.환경을 무시한 문화유산 보존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문화유산의 해」에 철새들의 낙원을 없애고 환경을 파괴해 후손들에게 문화 야만인이란 소리를 듣지 않도록 다같이 지혜를 짜서 보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굄돌 필진이 바뀝니다◁ 2∼3월에는 박상우·송상용·송우혜·조유전씨가 맡습니다. ▲박상우(58)=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서울대 사학과 졸,미국 미네소타대 박사(농업경제학).행시 4회.농림수산부 차관 역임. ▲송상용(60)=한림대 사학과 교수·도서관장.한국과학사학회장.서울대 화학과·철학과 졸,미국 인디아나대 석사(과학사·과학철학).성균관대 교수 역임. ▲송우혜(50)=소설가.한국신학대 신학과 졸.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84년 중편 「남도행」으로 도의문화저작상 수상. ▲조유전(55)=국립민속박물관장.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졸,동아대 박사(고고학).경주고적발굴단장·청해진유적발굴조사단장 역임.「발굴 이야기」등 저서·논문 다수. 96년 12월∼97년 1월에 수고해 주신 김춘미·양태진·이건영·이영익씨께 감사드립니다.
  • 「통일교육법」 제정 추진/통일원 업무계획

    통일원은 올해 통일준비작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비무장지대와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방안을 강구하고 국민적 합의를 기초로 한 통일교육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탈북주민지원법의 시행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후속법령 제정,재사회화프로그램개발,정착지원시설 건립추진 등에 박차를 가해나가는 한편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사업의 다원화도 모색해나가기로 했다. 통일원은 27일 발표한 「97년도 주요업무계획」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올해 업무의 중점방향을 ▲한국주도의 남북관계 정상화구도모색 ▲통일대비체제의 구체화 ▲국제적 통일환경조성을 위한 인프라확충 등으로 제시했다.
  • 위기처한 홍콩의 인권과 자유(해외사설)

    오는 7월1일 중국에 주권이 이양되는 즉시 홍콩은 인권과 자유를 박탈당할 처지에 놓여 있다.중국 주비위 법률소조는 홍콩 인권법 조례를 폐기·개정하려는 제안을 했다.이는 중국이 홍콩 주민들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것이다.동아시아의 시민 민주주의 모델인 홍콩의 인권이 빈사상태에 빠져 있는데,국제사회는 이를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할뿐이다. 중국 지도부는 홍콩의 번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영국의 식민지인 홍콩은 최근에야 의회 민주주의의 맛을 느끼고 있지만,엄연히 법치국가 체제를 유지해 왔다.하지만 중국정부는 인권을 제한함으로써 반체제가 싹틀 가능성에 쐐기를 박으려는 것같 다.중국은 특히 공공생활의 투명성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성공 모델을 없애려고 한다.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중국에 경제적 합리주의가 정착될 것이라는 기대에 회의가 들게한다. 우리는 지난 89년 6월의 천안문 사태를 기억하고 있다.자유가 확산되는 위험속에서 공산당 지도부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존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중국 당국은 이번에도 홍콩에 무력을 과시하려는 듯하다. 홍콩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고 있으며 이는 도저히 명예스러운 일이라고 할수 없다. 그런데 국제사회가 중국의 계획을 방임하고 있다.영국이 실망을 표시했고 나머지 유럽국가들은 비참하게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자크 시라크대통령은 오는 5월 중국 및 홍콩 방문때 이문제를 제기할수 있을까.홍콩의 민주적 시민들은 환상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그들의 눈은 워싱턴을 향하고 있다.그들은 1기 행정부때 중국과 근거리 외교정책을 전개한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을 난처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영국­홍콩 관계가 이제는 미국­홍콩으로 바뀔 것인가.
  • 멕시코 도시 메리다·욱스말(세계 문화유산 순례:20)

    ◎자연과 조화된 장엄한 피라미드군…/연못·우물 중간크기 저수시설 「세노테」/찬란한 문명 원동력/언덕·산세 최대이용 피라미드·궁성 건축/마야인 지혜에 감탄/마법사 피라미드 높다란 외벽에 기하학적 무늬 가득 멕시코 남동부 유카탄 반도는 마야문명의 중심지다.그리고 스페인이 식민지문명을 처음 심은 지역이기도 했거니와,초기 한국이민사가 기록한 「에네켕 농장」도 이 반도에 있다.그래서 카리브해로 둘러싸인 유카탄은 신비감과 호기심을 안겨주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40분쯤 걸렸을까.유카탄 반도의 주도인 메리다(Merida)에 닿았다.인구 70만의 중소도시답게 한적하고 여유로웠다.그런데 주민들을 만나고 나서 퍼뜩 정신이 들었다.하나같이 머리가 크고 목이 짧아 키가 작달막할수 밖에 없는 주민들이 낯설었기 때문이었다.인상은 아주 선량했다.이들이 바로 고대 마야족의 혈통을 간직한 마야유카탄족이었다.마야문명의 순수성과 원시성이 절로 엿보였다. 유카탄에 와서 느낀 궁금증의 하나가 강이 드물다는 사실이었다.마야인들은 과연 인류문명의 생성근원인 물을 어떻게 조달했을까.그러나 의문은 이내 풀렸다.연못과 우물의 중간크기쯤 되는 세노테(Cenote)라는 저수시설이 그 해답이었다.마야인들은 현명하게도 세노테를 이용한 관개기술을 일찍 터득했다.세노테는 바로 풍요로운 마야문명의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유카탄 지역 마야유적지 곳곳에서 세노테가 발견된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했다. 메리다 시내를 빠져나와 남쪽으로 70㎞쯤 차를 달린지 그리 오래지 않아 욱스말(Uxmal)을 알리는 푯말이 나타났다.욱스말은 인근의 마야판·치첸이차와 함께 후기 고전기 마야문명의 중심지다.기원(AD)700년∼1100년 사이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또 간혹 기원전(BC)3∼4세기의 유적도 발굴됐다.욱스말 유적지는 크게 「마법사의 피라미드」와 수도원,공놀이 유기장인 후에고 데 펠로타(Huego de Pelota),엄청나게 크다는 뜻을 가진 「그란 피라미드」,궁성터 등으로 나누었다.욱스말 유적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마법사의 피라미드」가 눈에 들어왔다.마법사들끼리 놀음을 해 게임에 진 마법사가 하루만에 지었다는 그럴듯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피라미드 뒷면의 경사가 급한 계단을 따라 정상에 올랐다.오른쪽으로 당시 제사장들이 살던 수도원이 보이고,왼쪽으로는 후에고 데 펠로타가 한눈에 들어왔다.그리고 사라진 문명의 위대성을 그 잔영으로나마 보여주는 여러 궁성터와 피라미드들이 죽 늘어섰다. 「마법사의 피라미드」외벽면에는 기하학적 무늬가 가득했다.이와 함께 물과 풍요를 상징하는 신착(Chac)이 휘어진채 삐죽 튀어나왔다.그 벽면을 따라가다 아치형 문을 거쳐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섰다.이 아치형 문은 흔히 알려진 둥근 모양이 아니라 지붕이 뾰족하고 각이 진 것이 특이했다.아치형 문 안쪽에는 누군가 살았을 법한 한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 있다.그러나 좁은데다 창문과 화장실이 전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사람이 산 방으로 보기는 어려웠다.그렇다면 마법사나 신이 거처한 공간으로 덮어두어야 더 신비로울 것이다.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테오티와칸에서와 마찬가지로 머리장식 크리스테리아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여기서 5m쯤 밑으로 내려가면 마치 입을 크게 벌린듯한 모양의 문이 또 나타났다.신의 입을 닮은 문이라고 했다.그러니까 인간들은 이 문을 거치면서 신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영광을 체험했던 것이다. 「마법사의 피라미드」를 내려와 너른 광장에 닿았다.광장 주위에 사제들의 거처 수도원이 자리했다.현재 발굴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수도원 옛 건물마다에는 테오티와칸에서도 보았던 풍요를 상징하는 상상속의 뱀 릴리프가 벽면을 빼곡히 메웠다. 후에고 데 펠로타로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후에고 데 펠로타는 마야인들의 생활상을 살필수 있는 또다른 유적이었다.높이 4m 길이 34m의 높다란 벽이 폭 10m쯤 되는 뜰 양쪽으로 늘어섰다.벽면에는 트럭바퀴처럼 생긴 커다란 돌고리가 달려 있다.당시 마야인들은 어깨와 엉덩이로 고무공을 튀겨 이 고리를 통과시키는 놀이를 했다는 것이다.게임의 승자는 신의 은총을 받았다.그러나 손으로 공을 던져도 좀처럼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이 역시 마야문명의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다.후에고 데 펠로타는 메소 아메리카 문명권에서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모두를 지녔다. 왕족들이 살았다는 궁성터에는 지금 3개의 건축물만이 우뚝했다.그중 2개는 10여m 높이의 돌담위에 서있고,하나는 평지에 버티고 있다.평지의 건물은 아마도 부속건물이었을 것이다.궁성터를 보면서 한가지 궁금증을 지울수 없었다.명칭은 궁성이지만 반드시 왕이 존재했었느냐는 것이다.지금까지 발견된 마야문명 유적 어디에서도 당시에 왕이나 왕족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그렇다면 궁성터에는 누가 살았을까.의문 투성이의 마야유적지는 빠져들수록 불가사의할 뿐이었다. 욱스말 유적은 자연조건이 최대한 활용됐다.그것은 마야인의 지혜이기도 했다.언덕이나 산세(산세)를 그대로 이용,피라미드와 궁성을 지었다.마야인들은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문명을 발달시켰던 것이다.욱스말은 지금으로 말하면 대도시다.근처 10∼100㎞ 이내에 카바(Kabah)·사일(Sayil)·슬라팍(Xlapak)·랍나(Labna)등 위성도시까지 거느리지 않았던가.이들 도시들은 신성한 길 혹은 하얀 길을 의미하는 삭베라는 교통로로연결됐다. 욱스말은 일종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였다.그러나 세노테로도 감당하기 힘든 물 부족 현상과 치첸이차라는 새로운 도시의 발달로 쇠퇴해 버렸을 것이다.마야의 구도시 욱스말,아직도 오늘을 살고있는 작달막한 마야유카탄족들에게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지도 모른다. ▷여행가이드◁ 메리다 시내에 숙소를 정하는 것이 좋다.웬만한 호텔들이 모두 관광버스를 운행하고 있으며,렌터카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욱스말 유적지까지는 대략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유적지에 들어가려면 입장료(16페소)와 문화진흥기금(10페소)를 합해 26페소(미화 4달러)를 내야하며,유적지 안에서 다시 14페소(미화 2달러)를 지불해야 한다.카바·사일 등은 대부분 10∼20페소.단 일요일은 무료다.식사는 메리다 시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다.갖가지 멕시코 요리는 물론 메리다 특유의 음식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수 있다.
  • (주)타프시스템/「낚시광」 시리즈 폭발적 인기

    ◎「물고기 탁본」 출력 “짜릿”/1,2편 6만개이상 팔려나가/95년 게임타이틀 판매 1위/월말 「…스페셜」 일 공략 나서 (주) 타프(Taff) 시스템은 「낚시광」 시리즈로 이름이 알려진 컴퓨터 게임 개발회사.「낚시광」은 게임에 관심이 없던 직장인들 사이에서 이례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사무실마다 누가 더 큰 고기를 낚았는지를 놓고 점심내기가 벌어졌고,자기가 잡은 물고기를 프린터로 인쇄해 벽에 걸어놓을 정도였다.「낚시광」은 순전히 이 회사 정재영 사장(36)의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서 제작됐다. 원래 낚시를 좋아했던 정사장이 어느 날 비가 와서 낚시터에 가지못하게 되자 게임으로는 낚시를 즐길수 없을까하는 생각에서 기획에 들어갔던 것. 처음에는 주변에서 만류도 많이 했다.연속성과 재미가 생명인 게임에서 찌를 던져 놓고 마냥 모니터만 바라봐야 하는 낚시게임은 아무래도 게임으로는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충고였다. 하지만 막상 게임이 출시되자 이런 우려는 기우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의 유명한 민물·바다낚시터 120여곳의 정보가 생생한 그래픽과 함께 소개되고,자기가 잡은 고기가 탁본이 돼서 나오는 기능까지 추가된 이 게임은 낚시광들을 단숨에 사로 잡았다. 낚시광 시리즈 1,2편은 6만개 이상 팔리며 95년에는 국내 게임타이틀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이 달말에는 데이터를 보강한 「낚시광 스페셜」이 일본으로 수출된다. 「낚시광」외에 (주)타프 시스템이 내놓은 게임은 「못말리는 탈옥범」,「사이클 포스」,「K­1탱크」,「SPEED UP」등이 있다.모두 자체 기술로 만든 게임들이다. 정사장은 게임을 내놓기 전에 먼저 유저 입장에서 기존의 게임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분석한 뒤 이를 제작에 반영한다. 「낚시광」에서 잡은 고기를 어탁해서 자기의 사인을 넣어 프린트하는 기능,유명 게임의 인상적인 장면을 인용한 코믹패러디 「못말리는 탈옥범」,국내 처음으로 중앙스크롤방식(화면 전개가 위,아래가 아니라 게이머가 앞으로 달려가는 느낌이 드는 것)을 사용한 「K­1 탱크」등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사장도 실패를 여러번 맛봤다.가장 아쉬움을 갖고 있는게임은 「못말리는 탈옥범」.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공윤에서 「연소자 관람불가」판정을 받았고 도스로 제작했던 것을 미국에 윈도용으로 팔기로 계약까지 맺었지만 막판에 사운드에 문제가 생겨 수출을 포기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주)타프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93년초.정사장과 프로그래머,그래픽 담당 등 3명이 386 컴퓨터 1대로 후배의 화실에 사무실을 차리고 게임을 만들었다. 서울 미대 산업디자인과 출신답게 그래픽은 정사장이 손수 그렸다. 직원이 26명으로 늘어난 올해는 미국시장에만 전력투구 할 계획이다. 『국내 게임시장은 외국게임이 90%이상 잠식하는 등 「게임식민지」가 된지 오랩니다.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시장에서 정면 승부를 걸 생각입니다』 오는 4월 「둠 2」나 「퀘이크(QUAKE)」같은 내용에 전략시뮬레이션을 가미한 새 게임을 미국 시장에 내놓으면 향후 성패를 점쳐볼수 있다.(02)518­1369,549­6168.
  • “진인사”… 여야 후속협상 주시/총재회담 이후 청와대의 기류

    ◎“권위훼손 불구 큰 바둑 뒀다” 자평/“민심수습이 우선” 문책론에 제동 여야 총재회담이후 22일 청와대 분위기는 『김영삼 대통령으로서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안을 제시했으니 이제는 국회가 재개정문제를 포함,모든 것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일단 관망하며 여론과 정치권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자세다. ○…청와대측은 김대통령의 제안이 전향적인 만큼 야당과 노동계에서도 호응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대야 비난을 자제하면서 어떻게든 대화분위기를 이끌겠다는 것이다. 한 고위당국자는 『정부와 청와대는 이제 경제살리기,안보강화 등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끄는데 더욱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일 청와대비서실장은 이날 상오 기자들과 정례간담회를 가졌다.현재의 김대통령과 청와대분위기를 알려주는 언급이 많았다. 다음은 김실장과의 일문일답 요지. ­여권내 강온론이 있는데. ▲그런 것은 없다.상황인식차는 없으며 대통령을 모시는 방법이나 해법에 견해가 다를 수도 있다.너무 단적인 분류나 평가를 하지않았으면 좋겠다. ­총재회담의 평가는. ▲김대통령께서 많은 건의가운데 심사숙고후 「큰 바둑을 두어야 한다」고 내린 결단이다.잘한 일이라고 스스로 확신하시는 것 같다.대통령으로서 하실일은 다했다고 보며 겸허하게 여론향배를 지켜보실 것이다.야당 동의와 관계없이 앞으로도 어제 기조로 그대로 나간다.이미 경찰력철수,영장유예 등 대통령으로 할 수 있는 지시를 내렸다.주한미국대사와 독일대사도 『김대통령의 결단에 대해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해서 부담은 야당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는 얘기를 들었다. ­책임론이 일고 있는데. ▲당장 책임을 묻겠다는게 대통령의 뜻은 아닌것 같다.「비서실장부터 정리해고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사죄말씀드렸더니 「그런 것 따지지말고 국민이 불안하지 않게 수습책을 강구할 때」라고 하시더라.복수노조 유예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인식은 있으신 것 같으나 그 책임을 따지지는 않는 것 같다. ­정부위신 실추 지적이 있는데. ▲대통령께서 가장 고민하고 염려한게 정부체면·대통령권위·여당의 신뢰성이었다.그러나 민주국가에서는 그런 세가지가 국민지지기반위에 서 있을때 진정한 힘을 가지는 것이다.일시 후퇴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국민의사를 존중할때 국민의 존경을 받고 더 권위가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 일 「종가문고」 유출막기 비상/막부시대 대마도영주 외교·무역사료

    ◎후손 1만여점 매각… 정부 되사들이기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에 전해져 내려오는 「종가문고」를 둘러싸고 소유자,쓰시마 지방자치단체(나가사키현)가 얽힌 고문서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종가문고는 쓰시마번(번:봉건영토)을 다스리던 종씨가 막부의 쇄국정책에 따라 조선과 외교·무역에 관한 권한을 일임받은 뒤 조선과 교류한 각종 문서,서화,인장 등을 매일매일 일기형태로 남겨놓은 번정사료.문고 사료는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에 7만2천여점이 보관돼 있고 식민지시대 한국에 보관됐다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도쿄대 사료편찬소,쓰시마 보다이(보제)사에 보관돼 있는 것 등이 남아 있다. 소동이 벌어진 것은 종가의 장손으로 외지에 사는 후손이 3년전 문고의 일부분을 매각한 것이 발단.관동지역으로 옮겨와 살고 있는 이 후손은 지난 93년12월 문고가 보관돼있는 보다이사에 들러 고문서 1만3천여점을 차례로 들어내갔다.절측이 「큰일 난다」고 말했지만 후손은 그대로 후쿠오카현에 거주하는 한 회사 사장에게 팔았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한 대학교수가 논문을 발표,1급사료인 것이 밝혀지면서 소동이 벌어지기 시작.먼저 후쿠오카현 등은 이 사장으로부터 재매입하기 위해 교섭을 시작.나가사키현 이웃의 사가현도 뛰어들었다.결국 도중에 중앙의 문화청이 개입해 나가사키현이 매입교섭의 우선권을 쥐게 됐지만 교섭은 난항.사장은 5억엔은 달라는 것이고 나가사키현은 3억5천만엔 이상은 어렵다는 것. 지난해 11월부터는 문화청이 직접 개입해 소유자와 접촉하고 있지만 아직은 난항중이다.사장은 『해외로부터의 매입 요청도 있으니 언제까지 보관할 생각은 없다』면서 배짱. 일본에 산재한 한국 문화재의 반환과도 무관치 않은 이번 소동이 과연 어떤 형태로 결말을 볼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종군위안부 일 정부차원 보상을(해외사설)

    구일본군의 종군위안부로 됐던 한국여성 7명에 대해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으로부터 「위로금」 등의 지급절차가 개시됐다.그러나 이와 관련,한일관계가 또 「과거」의 청산을 둘러싸고 삐걱거리고 있다. 기금이 7명에의 지급을 선행한 것은 고령이 된 본인의 희망에 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기금의 취지를 생각하면 지급을 서두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한일외상회담에서 한국측은 「전위안부와 지원단체가 총체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절차의 중단을 요구했다.한국의 전위안부와 지원단체는 일본정부에 의한 개인보상을 요구하면서 기금에 반대해 왔다. 정부는 위안소의 경영과 위안부의 모집등에 대해서 당시의 정부·군의 관여 및 강제성을 인정하고 있다.이 점에서 책임을 인정해 국비로 개인보상하는 것이 사리에 닿는 일일 것이다.하지만 조속한 국가보상실현이 곤란하며 전위안부들이 고령화해 가는 점을 생각한다면 (기금의 설치와 정부에 의한 의료 복지 사업은) 현실적 일보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실제 정부도 주요정당도 기금방식에 의탁할 뿐 한층 나아가 나라의 책임을 어떻게 완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검토해 오지 않았다.오히려 자민당안으로부터는 교과서의 종군위안부에 관한 기술의 삭제를 요구하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오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듯한 장로의원의 발언도 반복되고 있다.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당집행부는 방치하고 있는 채다. 이래서는 기금에 갹출한 사람들의 선의가 손상될 뿐 아니라 한국측도 지급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일본에 지금 필요한 것은 한국과 약속한 공동역사연구를 조속히 시작하는 등 사실의 탐구를 한층 깊게 하고 역사인식의 문제에 노력하는 자세를 명확히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 위로금의 지급을 진행시키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원활한 지급의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정부의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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