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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티모르 파병 상록수부대 朴仁哲단장

    “동티모르의 평화와 안정 회복을 위해 중립적인 위치에서 치안임무에만 전념하겠습니다” 동티모르 파병에 앞서 29일 오후 육군 흑룡부대에서 창설식을 가진 상록수부대 단장 박인철(朴仁哲·육사 34기·3공수 참모장)대령은 유엔의 지침을철저히 준수하면서 동티모르의 평화 회복과 한·인도네시아 우호 증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다음은 박 단장과의 일문일답. ■발탁 배경은 동티모르에 파병되는 한국군 평화유지단을 지휘 통솔하고 게릴라전을 수행하는 민병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특전부대 경험자가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특전사 대대장과 작전참모,참모장 등을 역임한 것이 단장으로 발탁된 배경이라고 본다. ■작전의 중점 분야는 한국군 평화유지단은 다국적군 사령관의 지휘 아래 부여된 책임지역내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동티모르 평화와 안정 회복을 위해 중립적인 위치에서 치안임무를 수행하겠다. ■대민 지원활동 계획은 지원부대인 의무·공병·통신부대는 다국적군의 활동을 지원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그러나대민지원 수요가 있으면 가용 범위내에서 적극 지원하겠다.또 현지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할 수 있는 기념품을준비,주민들과의 유대를 강화할 계획이다. ■교전 등 불상사 발생시 대응방안은 평화유지군의 임무는 전쟁을 억제하고안정 회복을 위한 치안활동을 하는 것이다.따라서 부대원들에게 감정에 치우쳐 우발행동을 하지 않도록 철저히 교육시키는 등 돌발사태 예방에 최선을다하겠지만 무장 민병대로부터 공격을 받는다면 교전규칙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우득정기자 djwootk@
  • 공항소재 지자체 지원책 공동모색

    강원도 강릉시와 양양·횡성군,서울 강서구,부산 강서구,대구 동구등 공항을 끼고 있는 전국 18개 시·군·구는 29일 공항주변의 항공기소음 저감 및지원대책을 마련해 법제화를 추진하기 위한 실무협의를 다음달 1일 대구 동구청에서 갖고 공동대응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이들 기초자치단체는 김포와 김해 제주등 국제공항에만 국한된 소음대책 대상공항 지정과 소음피해지역지정및 소음부담금 부과·징수 등 현행법상 항공기소음 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공항주변의 각종 규제로 인한 주민피해를 해소하는 방안을 조율하게된다. 이날 모임은 ▲소음피해 방지대책 수립 대상공항을 군용비행장을 포함한 모든 공항으로 확대 ▲공항주변 주민피해조사를 위한 중앙및 지방자치단체 합동조사반 편성 등 건의안을 정리,자치단체장 협의를 통해 중앙정부에 건의할계획이다.항공유 특별소비세중 일정금액을 자치단체에 지원하고,공항 소재자치단체의 교부세 산정요율을 별도 적용하며,공항주변 주민지원기금으로 일정액을 항공기 탑승객으로부터 징수하도록 제도화하는방안도 건의안에 포함시킬 방침이다. 강릉 조한종기자 hancho@
  • 팔당상수원 주변 9개 시군, 공장·여관등 신축 못한다

    환경부는 30일 팔당호∼남한강 충주조정지댐,팔당호∼북한강 의암댐,팔당호∼경안천 발원지 구간의 하천 양쪽 500∼1,000m를 수변구역으로 지정한다고29일 밝혔다. 환경부는 팔당호에 가까워 수질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특별대책지역은 양안 1,000m,나머지 지역은 양안 500m 이내를 수변구역으로 고시했다.수변구역으로 지정되는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용인시·광주군·가평군·양평군·여주군,강원도 춘천시·원주시,충북 충주시 등 9개 시·군 255㎢다. 환경부는 그러나 수변구역보다 더 강력한 제한을 받고 있는 상수원보호구역,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군사시설보호구역은 중복 규제를 피하기 위해 수변구역에서 뺐다.하수종말처리장이 설치된 하수처리구역,도시지역 및 준도시지역 가운데 취락지구 등 이미 개발 용도로 지정된 지역,자연부락처럼 음식점·여관 등 오염원이 새로 들어서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지역도 제외했다. 수변구역으로 지정되면 축사·공장·음식점·여관·목욕탕의 신규 설치가금지된다.기존 음식점·여관·목욕탕도 2002년부터는 오·폐수를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 10ppm 이하로 낮춰 배출해야 한다. 그러나 팔당호로부터 비교적 멀리 떨어진 특별대책지역 밖의 수변구역에서는 오·폐수를 BOD 10ppm 이하로 낮춰 배출할 경우 음식점·여관·목욕탕을설치할 수 있다.축사도 축산폐수를 전량 퇴비화하거나 축산폐수공공처리장으로 보내 처리할 경우 신규 설치가 허용된다.지난달 발효된 ‘한강수계 상수원 수질개선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약칭 한강법)에 따르면 이같은제한을 위반하거나,환경부장관 지방자치단체장의 공사중지명령을 이행하지않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또 시설 개선,이전,제거 등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문호영기자 alibaba@
  • MTV 11시 PD수첩-탈북자문제 인도적 해결책 모색

    “한 모녀가 국경을 넘자마자 붙들렸는데 모녀임을 숨기는 바람에 따로따로인신매매됐어요.한족에게 넘겨진 딸을 찾기 위해 어머니는 동북3성을 7개월동안 샅샅이 뒤졌고.마침내 임신한 딸을 벌금내고 중절시켜 함께 도망친 사례도 있었지요.”28일 밤11시 방영하는 MBC-TV ‘PD수첩-탈북난민 이대로 좋은가’는 그동안이 프로에서 여러차례 다룬 탈북난민 문제를 국가와 이념을 초월한 인도적차원으로 접근,해결책을 제시하는 특별한 시간으로 꾸민다. 제작진의 의지는 새롭기만 하다.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통일에 관한 어떤 논의나 방향제시도 의미없을 수밖에 없다는판단 때문이다. 김영호PD는 최근 9일간 중국을 다녀왔다.중국돈 5,000위안(우리돈 50만원)에 스무살도 안된 딸을 팔아넘기는 부모들,굵은 쇠줄로 온몸을 두들겨맞아 살점이 떨어져나간 10대 소녀의 상처를 지켜보며 할말을 잃은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북한지원 단체인 사단법인 ‘좋은 벗들’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 4월까지 북한을 탈출한남성이 6,871명인데 비해 여성은 2만1,100명으로 남성의 3배가 넘는다.자연 이들을 인신매매하려는 인간사냥꾼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최근 중국 공안당국이 검속을 강화하자 조선족의 도움의 손길도 움츠려들어탈북자 처지는 더욱 처참해졌다. 우리 정부가 인권보호를 위해 탈북자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중국은 ‘주권사항’임을 내세워 반대하고 있다. 김PD는 “탈북자들이 조국을 배신했다는 죄의식에 시달리며 희망없는 삶을꾸려나가는 게 가장 안타까웠다”고 밝혔다.이어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통해 이들이 하루빨리 난민지위를 인정받아 난민캠프에서 보호받아야 하며,장기적으로는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임병선기자 bsnim@
  • [김삼웅 칼럼] 동티모르파병 무엇이 문제인가

    국군 보병부대가 베트남에 이어 두번째로 해외파병길에 오를 것 같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는 지난 16일 420명 규모의 보병부대를 동티모르에 다국적 유엔평화군으로 파견키로 결의했다. 파병문제는 오늘(21일) 국무회의 의결과 국회동의를 거치는 최종 절차가 남았지만 여론의 흐름은 파병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해외파병은 국가적으로 중대하고 민감한 문제다. 따라서 이에 대한 명분과 실리, 국제 역학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최종결정해야 한다. 파병문제는 찬반에서 당위론과 불가론, 그리고 조건부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을 다투는 사안이기 때문에 충분한 토론을 거쳐 빠른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는 파병규모를 특전사 250여명을 주력군으로 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의무·공병·수송·통신 등 170여명 등 모두 420여명으로 확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파병에 따른 문제점과 주변환경을 점검해 보자. [평화애호민족의 전통] 우리는 조선(朝鮮)이란 오랜 국호(고조선·기자조선·근세조선)가 의미하듯이‘조용한 평화의 나라’로 상징된다. 중국‘산해경(山海經)’에도 ‘호양부쟁(好讓不爭)’이라 하여 서로 사양하며 싸우지 않는 평화민족임을 평가했다. 평화애호의 민족답게 한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 그대신 한(漢)나라의 고조선 침략 이래 무수한 외세의 침략을 당했다. 그때문에 평화의 소중함과 약소민족의 설움을 잘 안다. [식민지시대 국제사회의 외면] 일제식민지 시대 외국의 도움이 절실할 때 중국정부 외에는 모두 외면했다. 동티모르가 인구 3분의1을 희생하면서 독립투쟁을 벌이는 데 망국시절 우리 처지를 생각해서라도 도와줘야 한다. [유엔을 모태로 태어난 한국] 대한민국은 유엔을 모태로 하여 건국한 신생국가다.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동티모르에는 23개국 8,000여명의 다국적 유엔 평화군이 파병된다. 유엔의 은혜를 입은 우리가 여기서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6·25전쟁당시 유엔군참전] 6·25전쟁을 치를때 우리와는 생소한 16개국이유엔의 깃발 아래 참전하여 공산침략에서 나라를 구하고 전화 복구를 도와주었다.유엔군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운명은 어찌 됐을까. 개인이나 국가나 어려울때 돕는 것이 참된 우정이요 문명국의 의무다. [인권문제는 인류보편가치] 동티모르 주민은 주민투표에서 78.5%의 압도적다수로 독립을 원했다. 수백년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려는 주민들의 독립의지를짓밟는 식민지배 동조세력의 반인륜적, 반인권적 학살극을 방관할 수는 없다. 우리가 70∼80년대 인류의 보편가치인 인권과 민주주의 투쟁을 벌일때 국제사회의 지원과 성원은 큰 힘이 되고 용기를 주었다. [베트남 참전의 득실] 우리는 8년5개월 동안 국군 32만명을 베트남에 파견하여 월맹군 4만1,000여명을 사살하고 5,000여명의 아까운 아군희생자를 냈다. 베트남 파병은 조약상의 의무가 아닌,미국측이 파병 대가로 전력증강과 차관공여를 약속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용병’이란 비판도 따랐지만 약 10억달러의 외화를 획득하여 연평균 12%의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자원부국으로 인구 2억이 넘는 인도네시아에는 이미100억달러 상당이 투자되고 교민·근로자 등 2만여명이 거주한다. 민족주의세력이 군부를 앞세워 외국군대 주둔에 저항하거나 현지 민병대와 충돌할 경우 두나라 관계가 악화될 우려가 없지 않다. 우리 군은 민병대와 현지주민사이에서 평화와 안전의 중재자 역할만 해야 한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교민과 상사 주재원들의 안전문제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비상사태시의 보험] 우리는 세계유일의 냉전지대라는 화약고를 안고 산다.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마련중이지만 언제 열전화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반도의 유사시에 대비하는 일종의 ‘보험’으로 국제사회에서 필요한 책임을마다해서는 안된다. [파병부대의 성격] 자위권 행사와 평화유지기능 행사를 위해서는 경무장보병요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호전적’이란 인식을 불식시키려면 특전사보다 다른 정예부대를 선발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파견부대원 선발은 지원자를원칙으로 하고 사회지도층 자제들의 참여가 많았으면 한다. 김삼웅
  • [외언내언] 한국철도 100년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1899년 9월18일 경인선 노량진∼제물포 구간이 개통된 후 꼭 100년 세월이 지난 것이다.한국의 철도 개통은 영국 철도가 1825년 9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적을 울린 지 74년,동양에서는 인도 철도가 1853년 처음 부설된 지 46년 만의 일이었다.당시 독립신문은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고 이 문명의 이기에 경탄을 보내고있다.이 기차의 평균시속은 20㎞ 정도였다. 철도 건설의 필요성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구한말 주미 대리공사였던 이하영이었다.그는 귀국하면서 철도모형을 가져왔다.그러나 민족자본에 의한 철도건설은 자금난으로 결실을 맺지 못했고 미국인 J R 모스에게 경인철도 부설권이 주어졌다.모스는 다시 대륙진출 야망을 품은 일본에 철도 부설권을넘겼고 결국 일본인에 의해 우리 철도가 개통되는 기구한 운명으로 한국 철도사는 시작된다. 경인선에 이어 1905년 경부선,1906년 경의선,1914년 호남선과 경원선,1931년 장항선,1942년 중앙선이 잇달아 개통됐으며 일제는 조선 식민지 착취와침략을 위한 군사물자 수송 수단으로 철도를 이용했다.해방후 한때 철도는국가 기간수송망으로서 화물수송 분담률 57%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자동차 교통의 발달로 침체의 길을 걷는다.낙후된 서비스도 철도 만성적자의 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철도의 대량수송기능과 안정성,정시성 등이 새롭게 인식되면서 한국 철도의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있다.눈꽃 순환열차,정동진 해돋이 열차 등 철도와 낭만을 결합시킨 테마관광열차 상품을 개발한 철도청의 새로운 시도 역시 큰 호응을 얻고 있다.세계적으로도 비행기와 경쟁하는 고속철 시대가 열리고 환경친화적 교통수단으로 철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경인선 개통 당시 33.2㎞에 불과했던 총 철도길이는 현재 6,570.2㎞로 거의 200배로 늘었다.앞으로 남은 과제는 2001년 민영화,2004년 경부고속철도 개통,통일에 대비한 남북철도망 구축이다.우리 철도가 허리가 동강난 국토의한쪽 절반을 벗어나 단절된 경의선(서울∼신의주),경원선(서울∼원산),금강산선(철원∼내금강)을 잇고 더 나아가 중국 횡단철도 및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결돼 대륙을 힘차게 달리는 날이 언제쯤 오게 될지 궁금하다.지난 97년 아셈회의에서 아시아 철도망 구축이 합의된 만큼 아시아 철도와 유럽 철도가 이어지는 날도 멀지 않다.‘코레일패스’(Korail-Pass) 한장으로 ‘신(新)실크로드’를 달려 유럽까지 여행하는 날을 꿈꾸며 한국 철도의 새로운 100년을 기대해 본다. 임영숙 논설위원
  • [義烈 독립투쟁] (6) 윤봉길 의사

    1932년 4월29일 오전 11시30분쯤 상하이(上海) 홍구(虹口)공원(현 노신공원)에서는 일본군이 상하이사변의 승전기념식을 겸해 일본국왕의 생일잔치,이른바 천장절(天長節) 기념식이 거행되고 있었다.이날 한국의 의혈청년 윤봉길(尹奉吉)이 그 단상에 폭탄을 던져 상하이 침공의 우두머리인 일본군사령관 시라카와(白川義則)대장을 비롯한 10여명의 원흉들을 쓰러뜨렸다. 당시 현장에서 러시아 여행객이 찍은 비디오를 보면,사열대와 함께 엎어지고 쓰러지는 원흉들의 모습은 마치 일본 제국주의와 세계 제국주의가 함께무너지는 장쾌함을 보였다.윤의사가 세계로부터 정의의 삶을 대변한 ‘의사'로 불리고 있는 것는 바로 이 때문이다.당시 세계의 언론들은 상하이를 주목했는데 인도주의를 지향하는 언론일수록 제국주의를 맹타한 윤의사를 높이치켜세웠고 또 한국의 독립운동을 들먹였다.국내외 동포들은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특히 ‘상하이의거’를 주도한 임시정부와 한인애국단,그리고 한인애국단 단장 백범 김구(金九)를 주목하기 시작했다.임시정부가 한인애국단을 결성해 의열투쟁을 전개했던 것도 그러한 주목을 끌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왜냐하면 1차대전이 끝난 뒤에는 파리강화회의의 안정기조라고 하는 신제국주의적 질서에 온 세계가 눌려 독립운동도 외면당하고 있었으므로 그 신질서를 깨야 할 필요가 있었다.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한인애국단을 만들고 의열투쟁을 전개했던 것이다. 때마침 뉴욕 월가(街)의 증권파동을 계기로 경제공황이 몰아쳐 왔고,일본제국주의가 만주를 침공하더니 다시 상하이를 침공하여 상하이의 한국 임시정부 인사들은 그것을 파리강화체제를 무너뜨리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임시정부는 한인애국단을 만들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대륙침략에 대한 반격작전을 세웠다.이봉창(李奉昌)의사로 하여금 일제의 심장인 도쿄 궁성을,최흥식(崔興植)·유상근(柳相根)의사로 하여금 만주침략의 아성인 관동군사령부를 공격토록 한데 이어 윤의사로 하여금 상하이 침공의 선봉을 꺾어놓는다는 소위 ‘삼면작전’을 세웠다.이같은 작전을 구상한 사람은 백범이었는데윤의사의 ‘상하이 의거’ 성공으로 전세계를 진동시켰다. 윤의사는 원래 농민운동을 통해 고향의 부흥을 꾀하던 진보적 계몽주의자였다.고향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야학당과 청년회·체육회·부흥원을 조직하였으며 ‘농민독본’도 저술했다.그러나 경제공황까지 덮친 식민지 하에서 농민운동이 성공하기는 어려웠다.윤의사는 마침내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즉 ‘대장부는 뜻을 세워 한번 집을 나서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며 중국 대륙으로 향했다.그것이 1930년 윤의사가 23세 때의 일이다. 처음 산둥(山東)반도의 칭다오(靑島)에서 세탁부로 일하던 윤의사는 이듬해5월 상하이로 건너갔다. 때마침 상하이에서 상하이사변이 일어나 일본군과중국군이 싸우는 대포소리를 들으며 고향의 어머님께 보낸 편지에서 “민족과 민족이 부닥치는 소리가 꽝꽝합니다”라고 표현했다. 그 꽝꽝하는,민족과민족이 부닥치는 소리를 들으며 윤의사는 의사가 되기 위해 꿈을 키웠다. 청년 윤봉길은 백범 김구를 찾아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자신의 생명을불태워 정의를 현양하는 꿈을 실현코자 했다. 윤의사는 ‘성인군자는 살아서영예가 있지만 의사는 죽어서 말한다’는‘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다. 1932년 4월29일 아침 윤의사는 일본식 도시락과 물통,일본 국기를 들고 홍구공원을 향해 떠났다.도시락과 물통이 바로 폭탄이었다.이 폭탄은 당시 중국군 장교로 상하이 병공창에 근무하던 김홍일(金弘壹·중국명 王雄·전광복회장)이 만든 것이었다. 의거 당일 아침 윤의사는 백범과 살아서는 ‘마지막 식사’를 같이했다.그리고 윤의사는 자신의 시계와 백범의 시계를 바꾸어 찼다.자신의 시계는 6원짜리였고 백범의 것은 2원짜리였다.“선생님,나는 한시간밖에는 시계가 필요치 않습니다”라며.죽음을 앞에 둔 청년이 보여준 태연한 여유를 보면서 백범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그렇게 떠나간 윤의사에게 시계는 아니나 다를까한 시간밖에 필요치 않았다.11시반쯤 홍구공원의 폭음과 함께 그 시계도 멈추고 말았다. 윤의사의 의거로 침체됐던 독립운동이 생기를 찾고 활기를 띠게됐다.또 국내외 동포가 다시 임시정부로 마음을 모으게 됐고 국제적으로도 한국독립을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중일전쟁 와중에서 임시정부가 중국대륙 곳곳으로 이동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이나 1940년 충칭(重慶)에 정착,8·15광복때까지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은 윤의사의 의거로 국내외 동포들의 마음을 한 군데로 모으고 중국정부를 비롯한 국제적 지원을 얻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의거후 현장에서 체포된 윤의사는 일본으로 이송돼 그해 12월19일 가네자와(金澤)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일제는 윤의사의 시신을 길거리에 묻어 행인들이 밟고 다니게 했는데 이같은 야만성은 일본제국주의밖에는 없다.해방후 윤의사의 유해는 백범의 지시로 이봉창·백정기(白貞基)의사등과 함께 봉환,효창공원에 안장됐다.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 *尹의사의 사회개혁 활동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는 초창기 야학·문맹퇴치운동 등에 헌신한 개혁주의 성향의 농촌운동가였다.윤의사가 20세 되던 해인 1927년에 출간한 ‘농민독본(農民讀本)’은 윤의사의 계몽사상을 집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초3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1권은 유실되고 현재 제2·3권만 전해오고 있다. 제2권은 ‘계몽편’으로 편지 쓰는 법,인사법 등 생활교양과 조선지도,백두산 등에 대한 소개 등 일반상식을 가르치고 있는데 현재 8과까지만 보존돼있다. ‘농민의 앞길’이란 제목의 제3권은 농촌개혁 방향과 농민의 당면과제 등을 제시하고 있다.앞부분에는 ‘소리의 갈래’등 한글맞춤법도 소개돼 있다. 총 25과로 구성된 제3권은 현재 7과까지만 보존돼 있다. 제2권이 기초학습자료라면 제3권은 일종의 사상독본이라고 할 수 있다.당시 윤의사로부터 야학지도를 받은 예산군 덕산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농민독본’을 암송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김학준(金學俊)인천대총장은 윤의사 평전에서 “매헌은 한낱 시골의 야학당교사가 아니라 이미 이 무렵부터 사회개혁과 이상국가 건설을 꿈꾼 선각자적 지식인이었다”고 평했다. 정운현기자 jwh59@kdaily·com *윤봉길의사 직계후손들 근황 윤의사는 부인 배용순(裵用順·88년 작고)여사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윤의사 의거 당시 장남 종(淙)씨는 세살이었고 둘째 담(淡)은 배 여사 뱃속에 있었다.둘째 담은 두살때 영양실조로 일찍 세상을 떴다. 일제때는 일제의 방해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장남 종(淙)씨는 해방후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10여년간 농수산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84년간경화로 타계했다. 윤의사의 부인 배여사는 남편없이 외아들을 키우며 어렵게 살다가 88년 82세로 작고했는데 배여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윤의사 의거 50주년인 82년 배여사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는데 이 해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배용순 효부상’을 제정,매년 윤의사 의거일인 4월29일 예산 충의사(忠義祠)에서 시상하고 있다. 현재 윤의사 직계후손 가운데 가장 웃어른은 윤의사 며느리 김옥남(金玉南·67·서울 동작구 상도동 거주)씨.김씨는 딸 여섯에 끝으로 아들 하나를 두어 겨우 윤의사의 대를 이었다.김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金信)장군이 교통부장관 재직시절 김포공항에 스낵 가게를 주선해줘 겨우 살림을꾸려왔다”며 “윤의사의 후예 7남매를 모두 반듯하게 키운 것이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윤의사의 유일한 손자 주웅(柱雄·29)씨는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현재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 재직중인데 97년에 결혼,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주웅씨 위로 누나 여섯 사람도 모두 출가했다. [정운현기자]
  • 평화군 곧 동티모르 상륙

    동티모르 유엔평화유지군이 실제로 파병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APEC회의에 참석중인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13일 “파병은 가능한한 빨리 이루어져야한다”고 말해 빠르면 수일내 1진이 동티모르에 도착할수 있을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첫단계로 유엔안보리는 13일(뉴욕시간)오후 긴급이사회를 열고 평화군 구성을 공식 승인한다.알리 알라타스 인도네시아 외무장관이 이날 뉴욕으로 가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과 파병문제를 논의한다.하지만 인도네시아는 평화군 구성에 아무런 발언권을 행사할수 없다.이는 전적으로 유엔의 권한이다. 예상되는 파병규모는 7,000명∼1만명 수준.대원칙은 유엔깃발을 달더라도아시아국들이 주축이 되는 ‘아시아군’이 된다는 것.실질적인 주도역할은파병에 가장 적극적인 오스트레일리아군이 맡는다.오스트레일리아는 선발대2,500명과 전함 수척을 이미 24시간 비상대기중이다.오스트레일리아 북부해안에서 동티모르까지 거리는 불과 400㎞. 72시간이면 현지 도착이 가능하다. 뉴질랜드군 역시 병력을 비상대기중이고명령만 떨어지면 48시간∼72시간내에 선발대가 동티모르 공항과 수도 딜리시내 유엔사무소 건물을 장악한다는작전을 세워놓고 있다.기타 말레이지아,필리핀,태국,싱가포르,캄보디아등 아시아국들이 파병의사를 이미 밝혔다.한국도 파병 검토에 들어갔다. 가장 큰 관심은 역시 미국의 참여 폭과 규모.샌디 버거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미군이 “제한적이지만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지상군 파병은 보내더라도 최소한에 그치고 대신 병참,수송,통신지원에 치중할 전망이다. 아시아국들의 병력수송은 미군이 책임진다. 유럽에서는 영국이 가장 적극적이다.브루나이에 주둔중인 구르카인 보병 250명이 출동준비 태세에 들어갔다.로빈 쿡 외무장관은 영국군이 평화군 1진에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동티모르를 식민지배했던 포르투갈도 수백명 단위의 병력파병을 고려중이다. 통상 유엔 평화유지군의 모집과 배치에는 수개월이 걸리나 이번 경우 13일안보리 승인만 나면 수일내 즉각 배치될 수 있을 전망이다. 평화군이 부닥칠 난관중 하나는 현재 동티모르에 주둔중인 수천명에 달하는 인도네시아군의 협조 여부.이들 인도네시아군은 유엔평화군이 파병되더라도 동티모르에 계속 주둔하겠다는 의사를 밝혀놓고 있다. 이기동기자 yeekd@
  • [지구촌 밀레니엄 준비] 남아공/ ‘아프리카 르네상스’이끌 채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새 천년의 과업을 ‘아프리카의 르네상스’로 정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시달려온 남아공으로서는 한시바삐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아프리카인들의 가슴 속에‘희망의 불’을 지피겠다는 의미다. 남아공이 추진하는 아프리카의 르네상스는 철저한 자기인식과 인식전환에서출발점을 찾고있다. 과거의 비참한 역사와 현재의 암울하고 조롱받는 현실을직시,희망찬 미래를 건설하겠다는 취지다. 무엇보다 세계화 시대에 맞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정책을수립했다.대표적인 것이 국가재건개발 정책(RDP)이다.▲기본욕구 해결 ▲인적자본 개발 ▲국가사회 민주화의 3대목표가 근간이다.만델라 대통령의 원대한 구상을 이어받은 음베키 정권의 밀레니엄 청사진인 것이다.수도 케이프타운에서 150㎞ 떨어진 대표적인 휴양·위락도시인 선 시티와 같은 21세기형미래도시도 여러 곳에 건설,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나가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남아공은 지하자원의 보고다.세계 1위 생산을 자랑하는 금과 크롬,망간 등6개 자원을 포함,50여개의 광물 생산국이다.이를 바탕으로 남아공은 2000년GDP성장률을 전년보다 6배 이상 높은 3.3%로 잡았다.100억달러의 정부예산을투입, 낙후지역 인프라 건설 등 대규모 공공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고용창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백인정권이 인종차별정책으로 탈취한 불법토지의 재분배 등의 토지개혁과 30만호 주택 공급사업은 혼신을 기울여 추진하는 국가정책이다.초등학교 급식은 물론 무료 보건서비스,진료소 건립 등 만델라 정권에서 추진했던교육·보건 정책도 21세기에는 과감히 확대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아프리카 르네상스와 관련,음베키 대통령이 최근 큰 성과를 올렸다. 지난 1년동안 끌어왔던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의 내전종식을 위해 음베키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식부터 전력을 투구,지난 8월31일 관련 6개 당사국과 2개반군단체가 모두 정전협정에 서명케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남아공의 역사는 기구했다.17세기부터 유럽대륙의 수탈을 당하다가 19세기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이후 백인(보어인)들의 악명높은 인종차별정책에시달려야 했다.결국 만델라전대통령을 주축으로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끈질긴 저항과 지도력으로 평화의 사도로 거듭 태어났다. 남아공은 이제 아프리카 대륙의 주역이자 유일한 희망이다.아프리카의 르네상스를 제창,새 천년에는 이집트 문명과 카르타고 시대의 영화와 발전을 재현하자는 원대한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박원화 주남아프리카共 대사]
  • ‘돈 경멸’ 선비들의 美德?…평론가 이동하교수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돈’을 천시했다.한마디로 재물을 철저히 경멸했다. 어떤 이들은 그 결과 조선이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고,결국 조금더 빨리 근대화된 이웃나라의 식민지가 되지않았느냐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처럼 돈,나아가 경제활동을 지나치게 경멸한 조선의 선비정신에 오늘날에는 상당한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그렇다면 한국의 문인들이 돈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 것일까. 문학평론가 이동하(서울시립대교수)는 최근 펴낸 산문집 ‘한 자유주의자의세상읽기(문이당)’의 상당 부분을 ‘한국문학과 돈’문제에 할애했다. 결론은 “돈을 경멸하는 조선시대 사상은 염상섭이나 채만식같은 특출한 작가를 제외하면 20세기 들어서도 한국작가 상당수의 가슴속 깊은 곳에,여전히완강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돈을 멸시하는 조선조 선비들의 정신에는 그것대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정신에 깃든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사회를 건강하고,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문화·경제 엘리트가모두 존중받는 가운데 협력하면서,견제하는 관계로 존립해야 한다.그런데 조선조는 앞의 두가지에만 드높은 가치를 부여하고,마지막 한가지는 철저히 배척·부정했다. 이런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한 집단이 그래도 실학파 지식인들 가운데 북학파다.그러나 북학파를 대표하는 연암 박지원 마저 그 한계를 완벽하게 넘어서지는 못했다.‘열하일기(熱河日記)’가운데 ‘옥갑야화(玉匣夜話)’에 나오는 허생은 연암이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스러운 지식인의 모델이다.그러나허생 조차 경제엘리트를 마음속으로 천시하는 등 선비정신의 한계만 선명하게 드러냈다.더 큰 문제는 오늘날에도 ‘옥갑야화’류의 작가정신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20세기 한국소설에서 기업인을 다루는 방식은 천편일률적으로 부정 일변도다.소설속에서 긍정적으로 조명하는 예는 많지않다. 중립적인 시각으로 대하는 때 조차 흔치 않다. 이를 가장 먼저 문제삼은 것은 지난 66년 ‘풍속적 인간’을 발표한 문학평론가 김현이다.그는 “한국소설에서 여러가지 타입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소위 ‘근대인’들이 겪고 있는 치명적인 결점은 돈에 대한 모멸,혹은 경멸에기반을 두고 있는 듯 하다”면서 “한국소설이 그처럼 재미없이 성교를 다루고,그처럼 구질구질하게 관념을 잘게 짓이겨놓은 것은 바로 돈에 대한 경멸때문”이라고 말했다.김현의 통찰은 그러나 아직도 작가와 평론가 모두에게수용되지 않고 있다. 이동하는 조선말의 비극이 시사하듯 “작가들이 돈과 기업인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그리는 경향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그럼에도 그렇게되지못하고 있는 것은 ‘한국 현대 지식인들 일반의 반자본주의적 편향’ 때문이라고 지적한다.결국 우리 사회가 참다운 의미에서 근대적 사회,진보된 사회,열린 사회로 나아가려면 이러한 편향성을 철저하게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이동하의 결론이자 충고다. 서동철기자 dcsuh@
  • [사설] 재벌개혁 확고한 의지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1세기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국가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재벌개혁을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김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21세기를 넘어가는 길목을 담당한 국민의 정부가 100년 전 국정 담당자의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개혁을 성공시켜야 하며,이를 위해선 국정 담당자들이 소명의식을 갖고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밝힌 100년 전은 조선조 말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조선조 말 갑오경장 등 개혁이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마침내 국권까지 상실하고 남북분단의 비극을 맞게 된 것이다.현재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로 인해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에 있다.100년 전 개혁이 실패하고 조선왕조가 식민지로 전락한것같이 국민의 정부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면 21세기에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참여하기는커녕 후진국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김 대통령은 현재 진행중인 재벌개혁을 단순한 제도개혁 차원이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사관적(史觀的) 관점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5대 재벌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이 진행되면서 여권 일각에서 개혁조절론이 나왔고,재계는 때를 맞춰 주가하락과 금리인상 등 금융시장 불안을이유로 속도조절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개혁을 하면 반드시 기득권층의 반발과 저항이 나오게 마련이다.속도조절이나 개혁 완화를 주장하는 측은 첫단계로 개혁의 시계를 늦춘 다음 2단계로는 개혁을 물거품화시키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그렇게 되면 재벌개혁의 원칙인 경영투명성 제고,상호지급보증해소,부채비율 감축,업종전문화,경영책임 강화 등 기존의 5대 원칙과 새로추가된 기업재무구조 개선,제2금융권지배구조 차단,변칙 증여·상속 방지 등 3대 원칙 등 지난 1년반 동안 추진해온 개혁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다. 만약 개혁이 중도에서 중단된다면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땅에 떨어져 IMF관리체제에서 벗어나기조차 힘들지 모른다.대통령이 개혁의 성공을 위해 국정담당자들이 소명의식을 갖고 일해야 한다며 수신(修身)을 강조한 것은 그들이 개혁을 이끌어가야 할 주도적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개혁 과정에서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도자(求道者)의 자세와 같은 개혁정신이다.구도자적 마음가짐이 밑바탕될 때 개혁은 신앙에 가까운 숭고하고 불가항력적인 과업으로 승화되고 국민간에 일체감이 형성되어 성공할 수가 있다.당국자들은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와 호응을 이끌어내 개혁을 반드시 성공시킬 것을 당부한다.재계는 개혁 추진과정에서 한눈을 팔지 말고 정치권은 섣부른 당략적 정치논리로 개혁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 동티모르 독립 78% 찬성 300여년만에 새정부 탄생

    동티모르 독립 여부를 묻기 위해 지난달 30일 실시된 주민 투표결과 78.5%(34만 4580명)의 압도적인 주민들이 독립에 찬성,20세기 마지막으로 새로운독립국이 탄생하게 됐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4일 유엔 안보리 이사회를 긴급 소집,주민투표결과를 발표했으며 인도네시아 B·J하비비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이날“주민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수용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300여년간의 포르투갈 식민지배와 24년간의 인도네시아 통치 종식을 끝내고독립국으로 새출발하는 인구 80만 동티모르의 앞날엔 그러나 서광만 놓인게아니다. 먼저 인도네시아 국가최고의결기구인 국민협의회(MPR)가 헌법개정을 통해독립을 승인하는 절차를 마쳐야 한다.협의회가 열리는 11월까지 아직 2개월이상이 남았으며 그 이후 유엔이 동티모르 과도 정부가 구성될 때 까지 잠정관할권을 행사할 것이란 막연한 합의만 있을 뿐 독립국가 건설과 관련, 구체적이고 명확한 일정이 잡혀있는게 없다.유엔 관리들은 4,000∼7,500명의 유엔평화유지군이 인도네시아로부터 권한을 이양받은 뒤 과도정부 구성을 위해주둔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독립이 결정된 현시점부터 새정부가 구성될 때까지의 동티모르 치안 문제.독립을 반대하는 민병대와 독립운동세력의 대결로 20만명 이상이 희생된 동티모르는 지난달 투표 이후에 24명이 피살됐다.독립이 결정된 4일 이후 독립반대 민명대들의 유엔파견단(UNMET)직원들을 쫓아내고 일부 마을을 장악하는 등 치안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있다. 이지역에 파견된 인도네시아군과 경찰 1만5000여명도 수수방관하는 상태. 오는 8일 석방될 것으로 전해진 동티모르 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도 4일 새로운 대규모 학살이 우려된다며 시급히 국제평화유지군을 동티모르에 파견해줄 것을 유엔에 호소했다. 국제사회는 동티모르 독립에 환영을 표하는 입장이나 질서유지와 관련,강대국들이 주도하는 양상은 아니다.중국이 거부권을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것 때문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 [굄돌]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화가

    몇 년 전 내가 한 화백의 그림 앞에서 받은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몇세대에 걸쳐 진행된 우리 민족의 가장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 생생하게 형상화된 44m에 이르는 연작 그림은 역사를 자료로만 접했던 나를 고통스런 아픔으로 눈물짓게 했다. 식민지 조국을 떠나 연해주에 정착해 살던 구(舊) 소련지역 거주 한인(속칭고려인)들이 일제와 내통한다는 혐의로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중앙 아시아에 강제 이주된 지 60년이 되던 1997년,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 살고 있는 교포 신순남 화백의 ‘수난과 영광의 유민사-신순남’전시회에 걸려 있던 ‘진혼제(鎭魂祭)’가 바로 그 연작이다.‘진혼제’는 “열차를 타고 강제이동중 죽어간 노약자와 어린이들,도착지에 팽개쳐진 카레이스키들의 모습,삭막한 황야,낯선 땅에서 느꼈던 두려움,정착 과정,그리고 황무지를 개척해비옥한 옥토로 일궈낸 카레이스키의 저력”을 대서사시처럼 장엄하게 그려내고 있었다.연해주에서 강제 이주 당할 당시 신순남 화백의 나이 9살이라 했다. 얼마 전 국회에서 통과된 ‘재외동포법’(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관한 법률)은 원래 ‘한민족 혈통을 가진 모든 동포들’에게 내국인과 같은정치·사회·경제적 권리를 인정해주기 위해 제정작업이 시작되었다.그러나소수민족의 민족주의나 분리독립에 경계심을 갖고 있는 중국 등 일부 국가의압력 때문에 그 대상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로 법률안이 바뀌었다. 그 바람에 550만 전체 해외동포 중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전에 이주한 중국동포와 옛 소련동포,무국적 재일동포를 비롯한 280만 동포가 법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버리고 말았다.이 법은 처절한 고통과 절망의역사 속에서도 280만 동포들이 간직해온 민족혼까지 저버린 것은 아닌지.신순남 화백은 ‘진혼제’ 시리즈가 미완성의 작품이라 했다.‘미래의 희망’을 훗날 채워야 할 여백으로 남겨놓았다면서.그 여백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채워질지…….부끄러운 마음에 신순남 화백의 ‘진혼제’가 아픔으로 다시떠오른다.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 기독·불교단체 구제운동 확산/“30만 탈북자도 우리동포 입니다”

    중국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는 탈북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종교계의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현재 정부가 추산하는 탈북자 수는 10만∼30만여명.그러나 종교계는 탈북동포 수가 이보다 훨씬 많다고 밝힌다.최근 사단법인‘좋은 벗들’의 현지조사에 따르면 최소한 30만명 이상의 탈북자가 인신매매,노동착취,강제송환 등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에 따라 종교계는 중국에서 탈북자보호에 직접 나서는 동시에 UN으로부터‘난민’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국제적운동을 펼치고 있다.‘좋은 벗들’ 이사장인 법륜스님, 탈북자의 지위확보를위한 1,000만명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정연택사무총장을 각각 만나 활동상황을 들어본다. □ 정연택 사무총장정연택 총장은 지난 4월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발족한 ‘탈북난민보호 UN청원운동본부’의 부본부장이다.지금까지 국내에서 116만4,000명,해외 127개국에서 2만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그는 “지난 3월 한기총 산하의 미국 교회 관계자가 중국의 탈북자 실태를미국 워싱턴 포스트지에 제보해 기사가 실리면서 해외에서 이에 관한 관심이크게 일었다”고 배경을 말하면서 “이후 교계에서 ‘북한동포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소개한다.이에 따라 중국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UN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이 채택됐다는 것이다.이 운동은 종교지도자협의회에서 적극적으로 전개하면서 범종교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중국 50여곳에 탈북자 보호시설을 운영하고 있지만 시설이 부족할 뿐만아니라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탈북자들의 난민 지위가 인정되면 난민수용소를 합법적으로 세워 탈북자들을 공개적으로 지원·보호할 수 있습니다”연말까지 서명운동을 끝낸 뒤 UN인권위원회에 청원서를 제출할 계획이다.오는 10월 서울에서 열릴 ‘99서울NGO세계대회’에선 각국 시민·사회단체의적극적인 동참을 요구하는 제안도 할 예정이다. □ 법륜 스님법륜스님은 지난 96년 31개 불교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우리민족서로돕기불교운동본부’의 산파.지난해 이 단체는 사단법인 ‘좋은벗들’로 바뀌었고 법륜스님은 여기서 인권운동과 난민지원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고통이 너무 심하고 비공식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엔 상황이너무 엄청납니다” “탈북동포의 70% 이상이 여성입니다.대부분 가족의 먹을 것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으로 나온 것이지요.단속과 체포를 피해 점차 먼 곳으로 숨어들고 있지만 곳곳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들이 ‘난민’지위를 받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라고 한다.국제적으로 명백한 정치적 난민도 난민 인정을 하지않는 추세이고무엇보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큰 변수. 그는 “중국정부의 정치·사회적 부담을 덜어주면서 탈북 동포들을 보호할수 있는 방안을 우리 정부가 찾아야 할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탈북동포들에게 일시적으로 ‘실향유민’지위를 부여하도록 하는 등의 방안도 좋을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해외 박물관 큐레이터에 한국의 참모습 알린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李廷彬)이 해외 박물관에서 한국 문화재를 담당하는 큐레이터들의 ‘한국 전문성’ 함양에 적극 나서고 있다.국제교류재단은국립중앙박물관과 공동으로 ‘제1차 한국담당 큐레이터 워크숍’을 6일부터17일까지 서울 및 지방에서 열 예정이다.한국실이나 한국코너를 맡고 있는외국 큐레이터들이 최초로 한자리에 모이는 이번 워크숍에는 9개국에서 23명이 참여한다. 해외 박물관 한국담당 큐레이터들은 한국관련 전문성이 크게 뒤져 있다.국제교류재단 등의 노력으로 현재 37개 해외박물관에 한국실이 설치되어 있으나 한국실 전담 큐레이터가 있는 곳은 미 샌프란시스코 동양박물관,대영박물관,프랑스 기메박물관,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등 4곳에 불과하다.나아가 이들중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큐레이터는 2곳.대다수 박물관이 중국실,일본실 또는 아시아실 담당 큐레이터들이 한국실을 겸임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교류재단은 한국실 관리 운영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이번 워크숍을국내 전문가들의 강의와 지방 문화유적지 답사로진행한다.국내 전문가들은한국미술의 해외전시사를 필두로 선사미술,도자사,회화사,조각사,불교미술및 건축사를 차례로 국립중앙박물관과 호암미술관에서 강의할 계획이다.이어 해외 큐레이터들은 지방답사에 나서 안동 하회마을,병산서원,경주,해인사,송광사,강진 도요지,부여 및 백제유적지 등을 직접 들러본다. 워크숍에 참가하는 큐레이터 중에는 내년에 영구 한국실을 개관하는 대영박물관의 제인 포털,해외에서 가장 많은 한국 도자기를 소장하고 있는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박물관의 고바야시 히토시,미 앨라배마 버밍햄박물관의 도널드우드,스웨덴 동양박물관의 메티 지그스테트씨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현재 약 7만여 점의 한국문화재가 개화기,식민지 피지배,한국전 등의혼란기에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국제교류재단은 94년 미 시애틀박물관,95년 독일 쾰른 동양박물관,98년 미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이한국실을 설치하는 데 지원했다. 김재영기자
  • [대한시론] 21세기 韓·日관계의 새 모델

    패전 54주년을 맞아 최근 일본 의회가 국가 ‘기미가요’와 국기 ‘히노마루’를 법으로 제정하였다.그리고 세계가 일본을 다시 알자는 쪽으로 기울고있다. 일본이 보수로 우경화하는 추세를 지켜보는 한국의 시각은 우려와 희망이반반이다.국수주의적 내셔널리즘에 발동이 걸려 군국주의 일본으로 회귀하는 것이 걱정된다.한편 부강한 일본이 이웃에 도움이 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새로운 국가로 커가는 것을 보고 싶은 희망도 있다.그러나 최근의 흐름은희망보다는 우려의 쪽으로 일본이 가고 있어 보인다. 세계사의 흐름을 보수와 진보로 해석하는 한 역사학자의 우화가 있다.“배부른 오리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틀고 쉬며,배고픈 오리는 왼쪽으로 고개를틀고 쉰다”는 것이다.이 말은 부강한 나라는 우경화하고 빈곤한 나라는 좌경화한다는 의미를 빗대서 한 말일 것이다. 이제 패전 반백년이 지나 재기한 일본이 우경화하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찾고 있다.지나간 얘기지만 일본은 20세기초 근대화되면서 부강한 국력을 군국주의에 쏟아부어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를 휩쓸고 지나갔다.나라가부강해지면 우경화한다는 역사적 진리에 순응하면서 오늘의 한·일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쇼와(昭和)시대의 일본이 부강해지면서 한·일관계는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는 식민지 역사로 이어졌다.이제 21세기를 면전에 두고 일본이 다시 부강해지면서 최소한 향후 반백년을 내다보는 새로운 한·일관계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그러나 보수화하는 일본과 협력하면서 대망의 ‘태평양시대’를 공동으로 개발해야 하는 한국의 선택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아직도 진정으로 함께 생각하는 공동의 비전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일관계를 두가지 모델에 비추어 생각해 본다.첫째,미국과 멕시코간의 갈등모델이 있다.둘째,미국과 캐나다간의 협력모델도 있다.결론부터말하면,한·일관계는 미국-캐나다 모델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희망이 있다.이는 ‘만족한 파트너’관계가 되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의 한·일관계는 미국-멕시코 모델에 가깝다.이는‘어정쩡한 파트너’관계를 의미한다.오늘의미국-멕시코 관계는 다분히 과거지향적이며 민족감정의 갈등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그렇게 된 역사적 골이깊다.멕시코는 150년 전부터 미국의 지배하에 영토의 일부를 빼앗겼는가 하면,정치·경제 및 문화적으로 부강한 미국의 속박속에 살아왔다.그러면서도미국의 경제적 보호와 정치적 협력이 없으면 멕시코는 매우 어려운 지경에빠지는 구조적 종속관계를 면치 못하고 있다.미국인은 멕시코인을 업신여기며,멕시코인은 미국인을 미워하면서도 부러워한다.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는 미래지향적이며 ‘북아메리카시대’가 ‘우리들의시대’라는 공동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이들이 만든 공동체는 이웃의 단계를 지나 하나로 통합된 생활권을 공유한 연방체제에 가깝다.미국과 캐나다 사이에는 정치적 통합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기능적 통합이 이루어져 양국간에는 이미 전통적 의미의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경제 규모나 기타 종합적인 국력면에서 캐나다는 미국을 따르지 못한다.그렇다고 미국은 캐나다를 무시하지 않는다.캐나다도 막강한 미국을 가진 자의 오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미국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캐나다가 형제처럼 따라붙는다.미국의 배려와 캐나다의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은 서로가 동시에 더욱 솔직할 필요가 있다.한·일 양국은 인종,언어,문화 등 여러 면에서 하나의 뿌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좁은 속과 한국의 퉁명스러운 반발심리 때문에 미국-캐나다 모델로 가지 못하고 있다.말로는 21세기가 한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우리들의 아·태시대’라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본의 우경화가 이미 정해진 일본인의 선택이라면 한국의 선택은 오른쪽으로 고개 돌린 오리의 머릿속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金裕南 단국대교수 한국정치학회장]
  • [대한시론] 기록보존과 문화민족

    1986년 여름,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중앙도서관의 한 모서리에 자리잡은영국성서공회 고문서실에서 100여년이 넘은 한통의 편지를 발견하고 놀랍도록 기뻐하였다.1885년 3월 8일자로 된 이 편지는 당시 만주에 와서 활동하고있던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소속 선교사 존 로스가 쓴 것이었다. 로스는 이 편지에서 서울에 파송한 권서(勸書) 서상륜의 활동보고를 간단하게 썼다.“그가 2년 동안 노력한 결과 현재 70명이 넘는 세례 청원자가 있으며,그가 개종시켜 데리고 온 한 동행자의 말을 빌리면 서울의 서쪽에 있는한 도시에 ‘설교당’을 개설하였고 18명의 신자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록은 한국 기독교회사의 기년을 바꾸는 결정적인 내용이다.위의 예는 보존된 기록이 어떻게 역사적인 사실을 명증하는 위력을 갖고 있는가를보여 준다. 종래 한국 기독교는 복음선교사 아펜젤러(감리회)와 언더우드(장로회)가 한국에 도착한 1885년 4월 5일 이후에 시작되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그러나 로스의 이 편지는 이들 복음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하기 적어도 한달 전에 서울에는 이미 70여명의 세례 청원자가 있었고,서울 서쪽의 한 도시에서도 18명의 신자들이 모여 ‘설교당’을 개설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이 기록은 한국 기독교의 시작 시기를 앞당겨 주었을 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가 외국 선교사가 아닌,열성있는 한국인 권서들에 의해 시작되었음도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단 몇 줄의 기록이 이렇게 역사를 바꿔버렸다. 97년말 IMF 경제위기를 맞을 때,이 나라의 경제를 좌우하고 있던 고급관료두 사람이 보여준 책임전가의 비열한 행태를 우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IMF행을 앞둔 시점에 바뀐 전·현직 재정경제원 장관들은 ‘IMF행 결정시기’의 인계인수 여부를 두고 흙탕물 공방을 벌였고 그 싸움에 전직 대통령까지말려든 적이 있다.이 점은 국회 청문회에서도 분명하게 가려지지 않고 얼버무려지고 말았다.다만 인계했다고 주장한 측은 경제파탄의 책임 여부로 법의심판을 기다리고 있고,인수받지 않았다는 측은 다음 정권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관운을 누리는 듯하다가 다른 일로 역시법의 심판 아래 있다. 왜 이처럼 불필요한 공방이 가능하였으며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을 피곤하고 답답하게 만들었을까.그런 중요한 시점의 인계인수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인계인수서에 그 내용을 남겼다면 머리 좋기로 이름난두 사람인들 어찌 감히 거짓말로 책임전가를 할 수 있었겠는가. 중요한 일일수록 기록으로 남겨져야 한다.그러나 탈법적인 사건일수록 문서로 남겨지기를 원치 않는다.군사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증거를 남기기싫은 일들은 직접 말 혹은 전화로 지시하는 버릇이 있었다.그런 분위기에서문서를 요구하는 깐깐한 합리주의자들의 목이 성할 리 없었다.설령 어쩔 수없이 문서로 남겨졌다 하더라도,그 문서는 검증을 필요로 하는 시기까지 보존되지 않았다. 12·12사태때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전두환이 요구했다는 대통령의재가서는 지금 온데간데 없고,신군부가 자신들의 권력장악을 합리화시키기위해 급조했던 국보위의 기록도 지금 어느 수중에 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당시의 진실을 밝히자면 꼭 필요한이런 문서들은 왜 보이지 않는가.그 기록으로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무리들이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그뿐인가.벌써 몇대째 대통령을 거쳤건만 그들이 재임시에 청와대에서 남긴기록들이 공적으로 보존되어 있지 않다.이것이 21세기 근대국가를 지향하는우리 기록문화의 현실이다. 외국의 여러 기록보존소를 열람하면서 그들의 치밀성과 정직성을 보고 많은것을 느꼈다. 기록보존은 그 사회의 문화적 척도이면서 통치능력의 증거이다.영국이 해외의 식민지를 많이 가졌던 것은 지금에 와서 자랑스러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그 시대에 이미 알차게 정리된 식민지 관련 문서가 영국의 식민통치 능력을 보인다고 한다면,그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라거나 제국주의적인 시각이라고만 할 수 없다. 조선조가 그런 유약한 힘을 가지고서도 500년 넘게 왕조를 유지한 것은 기적같이 보이지만,지금도 남아있는 방대한 기록문화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설명해 주고 있다.기록을 정직하게 남기지 않는 시대는 문화를 논할 자격이 없다.그런 점에서 내년부터 발효될 공공기록보존에 관한 법률의 시행에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李萬烈 숙명여대 교수·한국사]
  • [대한광장] 자유민주주의의 허상과 실상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 일자가 1년도 남지 않았다.총선이란 온국민의 소망을 대변해 정치·경제·사회의 관리운영을 감독하고 새로운 법규 제정을 맡아 할 덕망과 능력있는 봉사자들을 가리는 거창한 국가행사이다.우리사회가민주공화국 호칭의 독립국으로 정치를 시작한 지도 꼭 51년을 넘기고 있다. 그동안 정치운영을 맡은 사람들은 ‘외세의 조종을 받는 1인 독재정권’이니,‘장기집권 야욕’,‘쿠데타 군사독재’라는 등의 부정적 칭호를 들어가면서도 집권세력 자신들은 한결같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임을 굽히지 않고주장하여 왔다. 그리하여 집권세력이나 지배계층의 주장이나 집행행태에 의해 피해를 당하는 서민근로계층 사람들이 그 나름의 권익주장이나 하소연을할 경우 엄연한 객관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체제를 부정·파괴한다며 협박하고,참된 자유민주주의는 공동참여에 있다고 애걸하면,기존의 실정법대로 하자면서 불합리하게 만들어져 있는 법제도를 들먹이며 맹종을 강요하거나 아예 묵살하여 왔다. 돌이켜보면 자유민주주의의 주창의 역사는 아메리카가 식민지 모국인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던 1776년경부터로 추정된다.유럽대륙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국가들의 왕이 ‘짐이 곧 국가’라고 했을 정도의 절대군주 지배체제하에서대다수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을 당시 인류 최초로 자유로운 민의의 수렴과자발적 참여에 의한 의회구성으로 군주를 배제한 국민 자치공화국을 선포하고 이를 무력투쟁으로 실현했다.그것도 독재를 막고 사회 구성원 일반의 권익과 주장을 골고루 보장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삼권분립의 제도적 견제장치까지 마련하여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찬란하게 비춰졌던 만민평등의 민주정부 탄생에는 외부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어두운 허상의 그림자가 있었음을 간과하여 왔다.식민지 이주민들은 250만 전체인구 가운데 아프리카에서 강제 납치되어온 50만명(전체 인구중 20%)의 흑인 노예들을 생산노동의 고통속에 짐승처럼 속박시켜 놓고 있었으며,농사와 목축을 생업으로 하여 평화롭게 살고 있던 4만년전통의 원주민들을 대서양 연안으로부터 차례차례 집단 학살하는 방법으로몰아쳐 가고 있었다. 그후 100여 년에 걸쳐 백인 침탈자들이 개척의 이름으로 태평양 연안까지차지해가며 영토를 확장하고 광산과 철도를 건설하며 산업을 일으켜 가는 과정에서 유색인종은 물론 모든 근로계층 사람들이 당한 억압과 착취의 역사는세계 노동운동의 기념일인 ‘메이데이’가 미국의 파업 노동자를 무자비하게총격,살해한데서 유래된 사실에서도 잘 증명되고 있다. 20세기에 접어들면 중남미를 석권하고 하와이와 필리핀을 병탄하면서 조선과 중국 대륙을 최종 목적지로 설정하고 영국·프랑스·러시아·독일·일본등 제국주의 열강들과 온갖 음모와 무력침공에 의한 살상을 거듭하여 식민지및 반식민지로 점령하고 천연자원 탈취와 강요된 불평등 상거래로 이 지역민들의 피와 땀을 갈취하여 갔다. 더욱이 최근 100년의 역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군사·경제적 침탈과 함께선진 지식과 종교와 도덕률을 언어와 책과 설교와 물리적 강요에 의해 그들의 죄악상은 가리고 유리한 측면만을 전달함으로써 피탈지역민들로 하여금밝은 측면만보고 어두운 측면은 전혀 보지 못하는 의식 장애인이 되게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약육강식에 의한 이기·배타적 경쟁논리는,억강부약의 정의감과 동포애와 같은 도덕적 인간성을 파괴시켰고 생산·건설과 사회발전에누구보다 많은 노력과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생산 근로대중의 정치·경제 관리에 대한 공동참여를 불가능하게 하는 상황을 당연시하고, 정치판을 가진자들만의 출세경연대회장으로 만들어 관람시키는 정도로 변모시켜 놓았다. 물론 정치·경제 공동참여의식의 결여와 억압상황을 제거·극복하지 못해온책임은 우리 사회 스스로에게 있다고 본다.선진사회의 밝은 측면의 가르침을모방하면서 이를테면 ‘산업별 근로전문가 비례대표제’와 같은,법과 제도와의식의 개발에 창의력을 발휘한다면 남을 탓하기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우방을 대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朴 智 東 광주대 교수·언론학]
  • [외언내언]‘8월의 친일인물’

    친일파 청산문제를 줄기차게 추진해오는 민족문제연구소(소장 박봉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8월의 친일인물’로 선정,발표했다.연구소 쪽은 인터넷홈페이지에 박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에 관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는데,박 전대통령이 42년 당시 일본의 괴뢰국이던 만주국 신경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육사를 거쳐 45년 8·15광복을 맞을 때까지 만군 중위로 복무한 것은 잘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70년 여름 필자는 인도네시아에 취재를 갔다가 가루다항공 국내선에서 인도네시아 육군 소령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수하르토의 쿠데타로 축출돼 보고르궁(宮)에서 유폐생활을 하고 있던 수카르노가 얼마전에 사망했던지라,수카르노의 정치적 공과(功過)가 화제에 올랐다.소령은 수카르노가 친공(親共)노선에 기울었고 국제정치적 명성을 얻는 데 집중한 나머지 인도네시아를 가난에 빠뜨렸다고 비난했다.그러면서도 그는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수카르노의 독립투쟁 관련 업적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소령은 지나가는 말처럼 필자에게 물었다.“그런데,박대통령은 ‘패트리엇 헌터’였다면서요?” ‘패트리엇 헌터’라니?‘애국자 사냥꾼’이라면 ‘독립군 토벌대’란 뜻이 아닌가?나는 그가 항일 독립투쟁 시기 박대통령의 관동군 경력을 말하는 것을 깨닫고,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그때 나는 ‘한국의 신문사 기자’이자 ‘예비역 공군중위’라고 나 자신을 소개했던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96년 여름에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가 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옌지(延吉)로 향하던 관광버스 안에서의 일이다.버스가 지린성(吉林省)안투(安圖)를 지나던 때 조선족 관광안내원이 말했다.“이곳이 바로 일본 관동군사령부가 있던 곳으로,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관동군 장교로 조선독립군을 토벌했다고 합니다” 필자를 비롯해서 한국인 관광객들은 대꾸할 말을 잃고 서로 얼굴을 돌아볼 뿐이었다. 8월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국치일(國恥日)과 국권을 회복한 광복절이 함께 들어있는 달이다.친일파 청산문제는 역사의 이름으로 엄정하게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이다.그것은 역사의 기둥을 올곧게 세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그러면서 우리는 오늘날 일본에서 전개되고 있는 ‘신군국주의’경향에 대해서도 경계와 대책을 게을리해서는 결코 안된다./장윤환 논설고문
  • [대한시론] 8·15와 겨레 손잡기

    올해 ‘8·15’는 민족해방의 환희와 민족분단의 비극이 동시에 교차한 저1945년 8월 15일이 의미하고 있는 ‘광복절’ 반세기이자 1900년대를 마감하는 역사적인 ‘8·15’이다. 한민족에게 있어 20세기,즉 현대사 100년은 수난과 오욕으로 얼룩진 역사이며,이 땅의 모두가 식민지 지배,민족분단,민족대동란을 겪으면서 눈물없이는 보낼 수 없었던 고통스런 삶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이 민족의 수난사를 우리는 결코 ‘남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가 역동적인 근대문명의 회오리속으로 휘말려 들어간 19세기에도 여전히 봉건문명과 절대왕정을 고집하다가 나라를 잃었고,민족 내부의 다원주의와 민주적 공존의 원리를 체득하지 못함으로써 강대국들이 좌우한 민족분단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분열과 대립의 역사가 21세기에까지 연장되어서는 안된다는 자각들이 이제 국민들 속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음은 참으로 고무적이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이 다시 하나 되기 위해서는 남북 어느 쪽이나 간에 ‘무력’에 의존하려 해서는 안되고 화해와 교류의 폭을 자꾸만 넓혀가서 마침내는 ‘평화적’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보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공감대의 확산을 우리는 지난 6월의 ‘서해충돌’(필자는 이것을 ‘교전’으로 규정하는 데 반대한다) 당시 국민들의 너무나 차분한 반응에서확인하고자 한다. 이러한 상황변화는 현 김대중 정부가 일시적 돌발사태에 흔들리지 않고 북쪽에 대해 포용정책의 기조를 확고히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한데 힘입은바가 컸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서해충돌’이후 북쪽의 경계심이 증폭되고 남쪽이 ‘상호주의’를 보다 강화함으로써 남북정부간 대화는 일시적으로 교착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 여파였는지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면서 민간인 교류도 뜸해지더니 금강산관광이 재개되면서 이제 민간인 방문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 미묘한 시기에 남한의 200개가 넘는 민간단체들이 ‘99 민족의 화해와평화통일을 위한 겨레 손잡기 대회’ 추진본부를 결성하고 다가오는 8·15에 시민들이 손에 손을 잡고 서울과 판문점 부근에서 ‘인간띠’를 이으면서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기원하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행사에는 단체들 뿐만 아니라 남북 이산가족,청소년,남녀 시민들의 자발적이고도 광범위한 참여가 이루어져 이 ‘인간 띠’가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향한 한 마음을 일궈내는 계기가 되기를….그리하여 이 ‘겨레 손잡기’가 2000년대가 시작되는 내년에도 이어지고 이 화해와 통일을 기원하는 남쪽사람들의 기원이 북쪽에도 전달되어 남북이 손을 맞잡을 때,우리의 평화통일은 그 어느 강대국도 저지할 수 없는 민족적 에너지로 결집되지 않을까 한다. ‘방휼지쟁(蚌鷸之爭)’이란 말이 있다.도요새가 큰 민물조개를 잡아먹으려다 조개에 물려 꼼짝 못하고 있을 때 어부가 둘 다 잡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지금보다 2,000년도 더 이전 중국 춘추전국시대로부터 유래한 고사성어인데 내용인즉 소국들이 작은 이해다툼으로 전쟁으로 해결하려고 다투다가 강대국들의 개입을 가져온 역사적 사례들에 대한 경고의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과거지사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있다.멀리 돌아볼 것도 없이 얼마전 유고연방과 코소보자치주 간의 인종적·종교적 갈등이 내전으로 치달아 국제적 개입을 불러일으키고 마침내 다국적군의 주둔을 초래하지 않았는가? 만약 또 한번 남북이 대결로 치닫는다면 한반도는 다시 국제적 각축장이 될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남북의 화해와 공존,그리고 평화통일로 나아간다면 21세기 한민족은 아시아로,세계로 지금보다 더욱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成裕普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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