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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지식인들의 세계일주기

    ‘모든 문무 고관들이 자기의 부녀를 거느리고 와서 각국 남녀와 어울려 둘씩 둘씩 서로 껴안고 밤새도록 춤을 췄다. 그 광경은…새와 짐승들이 떼 지어 희롱하는 것 같았다.’ 갑신정변 주모자들을 잡아오라는 고종의 명으로 일본에 간 유학자 박대양은 1885년 3월9일 일본 육군경(陸軍卿) 오야마 이와오(大山巖)의 초청을 받아 도포 자락 휘날리며 로쿠메이칸(鹿鳴館) 연회에 참석한 뒤 이런 기록을 남겼다. 당시 왈츠를 몰랐던 그는 남녀가 부둥켜 안고 춤추는 ‘해괴한’ 장면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또 육군경 부인의 손이 느닷없이 자신의 손을 덥석 움켜 쥐는 충격적인 일도 경험한다. ‘창부(娼婦)나 주모(酒母)의 손도 일찍이 한번 잡아본 일이 없는데, 갑자기 이런 경우를 당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소회. 일본 최초의 여자 유학생이자 ‘모던 걸’이었던 육군경 부인은 박대양에게 악수를 청했던 것인데 그는 기함을 하고 만 것이다. 해외를 여행한 근세 조선인들의 기행문에는 당시 지식인들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이승원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은 이처럼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를 찾아 떠난 조선 지식인들의 기행문을 토대로 당시 세계와 만나는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나혜석, 서재필, 유길준 등 식민지 조선 밖의 세계와 마주한 지식인들의 시선은 다양했다. 어떤 이들은 부러움으로, 모방의 대상으로 신세계를 바라봤다. 또 퇴폐와 환락의 서구 도시 문화를 비판하거나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열강 조선’을 꿈꾸는 이도 있었다. 저자는 그들과 같거나, 혹은 어긋난 시선 속에서 조선 지식인들이 해외여행에서 맛본 느낌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1만 6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선임과정 잡음 불식·외환銀 인수 ‘2대 과제’

    선임과정 잡음 불식·외환銀 인수 ‘2대 과제’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KB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된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다가올 금융대전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출발하게 됐다. 5년간 국민은행을 이끌어온 경험이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국내외에 산적한 과제와 함께 회장 내정자 선임 과정에서 제기된 논란을 불식하고 조직을 안정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시주총 때까지 불공정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을 경우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강 행장은 1979년 씨티은행 뉴욕 본사에 입사한 후 뱅크스트러스트그룹, 도이체방크 한국대표를 거쳐 서울은행장을 역임했으며, 2004년 국민은행장에 선임된 이후 특유의 꼼꼼한 경영 스타일로 국민은행의 여러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리딩뱅크의 입지를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불안한 1위 수성, 내실도 다져야 “제일 부러운 곳은 지주의 포트폴리오가 안정적인 신한이다.” 황영기 전 회장이 퇴임 전 사석에서 던진 말은 KB국민지주의 현실을 말해준다. 9월 말 현재 KB금융의 총자산은 331조원이다. 우리금융 지주 321조원, 신한금융지주 311조원인 것을 보면 부동의 1위 같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내용은 다르다. 사실 KB금융지주에서 은행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지난 3·4분기까지 지주 전체의 누적 순익은 5220억원이다. 하지만 은행에서 올린 누적 순익은 4891억원이다. 지주 전체 순익의 93% 이상을 온전히 은행에 기대는 셈이다. 결국 변수에 따라 은행이 부실에 빠지면 지주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구조다. KB지주 측은 “회계상의 차이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지나친 은행 의존은 강 행장 자신도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로 꼽는다. 이 때문에 KB국민지주로서는 인수·합병(M&A)이 지상 과제다. 9월 말 기준 자산 규모가 112조원에 달하는 외환은행의 인수 여부에 따라 2위와의 격차를 벌릴 것인지 1위 자리를 뺏길 것인지가 결정된다.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외환은행 인수는 필요하다. 국민은행 한 임원은 “외환은행 인수는 단지 규모를 늘려 1위를 지키느냐의 문제가 아닌 국제 금융 등으로 앞으로 미래 동력을 갖느냐, 못 갖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아군인 사외이사 개편해야 할지도 회장 선임과정에서 생긴 논란은 당분간 큰 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과 KB지주는 모두 부인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금융권에선 “좋건 싫건 이번 선거는 금융당국에는 ‘관치’라는, KB지주에는 ‘불공정선거’란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아줬다.”는 평이다. KB지주 한 관계자는 “세간에서 나도는 금융당국과의 갈등설은 사실무근”이라면서도 “하지만 갈등설이 떠도는 것만으로도 은행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것이 사실”이라며 부담스러워했다. 내부 일각에서는 회장 선임에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 사외이사들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자칫 강 회장의 가장 큰 지원군인 사회이사들에게 스스로 칼을 겨눠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강 행장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대목이다. 유영규 김민희기자 whoami@seoul.co.kr
  • [씨줄날줄] 올레길 유감/이춘규 논설위원

    사람 사이의 만남과 소통을 돕는 ‘길’이 화제다. 전통시대 전국의 마을어귀 동구 밖 길이나 오솔길 등 정겨운 길들이 많았다. 일제 식민지 초기부터 신작로가 생겨나 제국주의자들의 물자 수탈과 대륙침략 전쟁물자 수송에 이용됐다. 광복 뒤 급격한 도시화는 동네마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만들어냈다. 포장도로, 고속도로는 물자와 사람의 통행을 늘렸다. 수많은 문인들은 길을 주제로 글을 남겼다. 성석제는 “길은 저희들끼리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우리는 언제나 길을 통과하지만, 그 위에서 머무를 수는 없다./그건 단지 통과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라고 철학적으로 읊었다. 수많은 대중가수들이 논두렁길, 밭두렁길, 오솔길, 돌담길, 과수원길을 노래했다. 그리고 길은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며 변했다. 지금 길의 변화가 격심하다. 단독주택 밀집지역에 있던 골목길은 대도시에서는 대규모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대신 곧고 넓은 포장도로, 소방도로가 들어서고 있다. 농어촌 지역의 길들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진흙탕 황톳길은 줄어들고 아스팔트와 시멘트 포장도로가 대신한다. 흙길의 상징이었던 논두렁길도 시멘트 포장길로 바뀌며 농기계의 활용을 쉽게 한다. 옛길이 사라지면서 추억의 길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요원의 불길처럼 뜨겁다. 제주도 올레길이 대표적이다. 올레는 큰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작은 길을 뜻하는 제주도 말이다. 최근까지 15~23㎞의 올레길이 제주도 남쪽 해안가를 중심으로 16개 코스가 조성됐다. 걷기 열풍을 몰고오며 인기가 급상승하자 전국의 지자체 등이 지리산길, 둘레길 등 걷기 편한 길 개발경쟁을 펼친다. 제주 올레길 6, 7코스를 걸어봤다. 6코스 중 서귀포칼호텔과 정방폭포 인근 길은 인공적이어서 만족감이 적었다. 해안가의 흙과 돌길이 많은 7코스는 만족스러웠다. 함께 걸었던 일행은 올레길의 일등공신 서명숙씨를 격찬했다. 반면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어 길의 훼손이 우려됐다. 쓰레기가 길을 더럽혔고, 노점상들이 길의 평화를 위협한 건 유감이었다. 올레길의 매력을 유지하며 자연친화적으로 보전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할 때가 됐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월북’ 꼬리표 때문에 잊혀진 지식인 재조명

    서울 계동 중앙고 교내에 있는 인문학박물관(www.kmoh.org)은 12일부터 ‘우리 인문학의 역사교실’을 연다. 박물관이 소장한 저작물 가운데 역사적 무게가 큰 책들을 골라 관련 전문가와 함께 그 안에 담긴 사상과 인문학적 의미를 가늠해 보는 자리다. 강의는 모두 12회로 구성됐다. 강의의 주제가 되는 12가지 책은 박열의 ‘신조선 혁명론’(1946), 신남철의 ‘역사철학’(1948), 김동석의 ‘뿌르조아의 인간상’(1949), 백남운의 ‘쏘련인상’(1949), 안확의 ‘조선문명사’(1923) 등 주로 월북 지식인의 저작물이다. 저자 대부분은 식민지 시기 한국의 학문 지형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거물급 지식인. 그러나 이른바 ‘월북 지식인’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오랫동안 그에 걸맞은 학문적 조명을 받지 못했다. 연희전문 상과 교수 출신의 경제학자 백남운, 김동리와 벌인 순수문학 논쟁으로 해방공간의 문학계를 달군 평론가 김동석, 벽초 홍명희의 아들로 단군 등 한국 고대신화 연구의 권위자였던 홍기문 등이 그렇다. 이번 인문학 역사교실은 이들의 삶과 사상을 통해 한국 현대 인문학의 뿌리와 정체성을 되짚어 보겠다는 것이다. 분야 역시 문학·철학에서부터 사학·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강연자로는 미학자 진중권, 김재현 경남대 교수, 오제연 서울대 교수, 이상호 건국대 교수 등이 나선다. 이 박물관 인현정 큐레이터는 “청소년들과 일반인들의 역사·문화·사회적 인식욕구를 양질의 판단력과 정서로 채우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것이 기획의도”라며 “해당 저자의 저술동기와 발간에 얽힌 이야기, 인문학의 역사가 걸어온 지형과 지세 등 강의를 통해 우리 문화의 미적 차원에 대해 보다 인문학적인 체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문학 역사교실은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낮 12시30분까지 1시간 강의, 30분 질문과 토론 형식으로 진행된다. 수강료는 회당 4000원. 기초생활수급자는 무료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서울광장] 한일합병 100년과 일본/이춘규 논설위원

    [서울광장] 한일합병 100년과 일본/이춘규 논설위원

    한달 뒤면 한일합병 100년이 되는 2010년을 맞는다. 한국인은 지난 100년간 식민지 피지배민족에서 세계 15위(국내총생산 기준) 경제대국의 국민으로 감격적인 변신을 했다. 일본은 패전국에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그 사이 양국은 피지배와 지배 국가에서 경쟁국이 됐다. 전자, 자동차, 조선 산업 등은 세계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양국은 이제 경쟁과 협력의 동반자 관계지만 숙제도 많다. 1965년 국교정상화 뒤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가해국 일본이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일본 지도자들은 툭하면 과거사 왜곡이나 영토분쟁을 도발해 오고 있다. 과거사 청산을 말했다가 역사 망언을 되풀이한다. 교과서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상태서 한일합병 100년의 해를 앞두고 있다. 이제 일본이 선택해야 한다. 내년은 일본에 중요한 기회다. 아키히토 일왕이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 등이 가슴에서 우러나는 진솔한 과거사 사죄를 하고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한·일 양국의 새로운 100년을 기약할 수 있다. 진정한 과거사 사과 없이는 일본이 세계의 지도국 자격을 갖추는 것도 요원하다. 최근 한·일 양국 언론인들이 참가한 세미나에서 일본 언론인들은 한일합병 100년이 되는 해를 앞두고 일본 내에서 특별한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움직임이 있으면 답하는 형식의 행동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른 일본인들도 유사하다. 반면 한국은 벌써 뜨겁다. 시민단체와 언론 등은 일본에 매듭청산을 요구할 전망이다. 그래서 일본의 대응과 선택이 주목된다. 일본의 선택은 한국 내 기류도 중요하겠지만 하토야마 정권의 향배에 크게 좌우될 전망이다. 그런데 하토야마 정권이 집권 2개월을 겨우 넘긴 상태에서 벌써 고비를 맞고 있다. 일본 내에서는 언론을 포함해 기득권 집단과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다. 동맹관계인 미국과는 패전국의 멍에를 벗어나려는 시도 때문에 계속 삐걱거린다. 한국과는 역사문제 등으로 초기 유화국면이 변화될 조짐을 보인다. 현재 하토야마 정권은 지지율이 70%대에서 60%대로 급락하며 흔들린다. 이유는 첫째, 탈관료를 추진하면서 예산깎기를 강행해 관료집단의 저항이 거세다. 둘째, 하토야마 본인의 정치자금 스캔들이 잇따르고 있다. 전·현직 총리도 성역 없이 수사했던 도쿄지검 특수부의 수사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1994년 정치자금 문제로 8개월만에 낙마했던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의 전철을 우려하는 극단적인 소리도 들린다. 셋째, 일본경제 상황의 악화다. 물가가 떨어지며 경기가 악화되는 디플레이션이 선언됐고 기업들은 다투어 증자를 추진, 주가가 하락 중이다. 하토야마 불황이 우려된다. 급격한 엔고는 수출에 의존하는 일본경제를 직격한다. 자민당 정권이 지난해 경제위기로 위기를 맞자 반사이익으로 정권교체를 달성했던 하토야마 정권도 유사한 경제 문제로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하토야마 정권의 위기는 한일합병 100년 일본 정부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위기상황이 해소되지 않으면 한국에 유화적으로 나올 여력이 떨어진다. 국내 문제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강경하게 나올 수도 있다. 일왕의 방한 추진도 영향을 받게 된다. 하토야마 정권이 한·일관계에서 선택할 카드가 점점 좁아지는 기류다. 일본 내 극적인 분위기와 태도 반전을 기대하면 무리일까.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독자의 소리] 매스컴, 관광 활성화 기여해야/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박민지

    요즘 영화나 TV프로그램의 촬영 장소는 스튜디오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나라 관광지를 배경으로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 촬영지로 매스컴을 탄 곳은 이전보다 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매스컴을 통해 간접적으로 홍보효과를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평의 쁘띠프랑스는 지난해 종영한 베토벤 바이러스의 촬영지로 관심을 받으며 관광객이 증가하였고 차태현, 전지현 주연의 ‘엽기적인 그녀’를 촬영했던 양산시 오봉산의 소나무는 타임캡슐을 묻는 소나무로 유명해지며 많은 관광객이 찾았다. 최근 세계 경제위기, 신종플루 등의 영향으로 해외여행보다는 국내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우리는 이 시기를 잘 이용하여 우리나라의 지역관광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 방법은 바로 매스컴이다. 매달 약 100만명이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 이들의 발길을 국내여행으로 돌리고 지역관광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앞으로 우리나라의 숨은 진가를 알려주는 매스컴들이 더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박민지
  • 임직원 월급떼어 소액서민금융 지원

    임직원 월급떼어 소액서민금융 지원

    정부투자기관 임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정성이 서민금융자금 종잣돈이 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5일 경기 성남 분당 LH 정자사옥에서 신용회복위원회와 제도금융권 이용이 어려운 취약계층 및 영세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한 소액서민금융지원사업 협약을 맺었다. LH는 임대주택 거주자·영세자영업자 등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취약계층의 생활안정자금이나 시설개선 및 운영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최대 32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기부에는 2급(부장) 이상 임직원 700여명이 참여했다. 내년 말까지 15개월 동안 매월 급여의 3(직원)~10%(임원)를 떼어내 기부하는 형태다. 이렇게 조성한 기부금은 ‘LH 행복 Loan’(가칭)으로 별도 관리된다. 대출 금리는 연 2~4%이며, 회수 이후에는 다른 대상자에게 순환 지원한다. 신용회복위원회는 “LH가 지원하기로 한 32억원은 무상대여가 아닌 순수 기부로는 최대 규모이고 임직원들이 임금을 반납해 기부하는 공기업 최초의 사례”라고 밝혔다. 이지송 LH사장은 “서민지원을 확대하고 사회적 책임을 적극 실천해 신뢰받는 공기업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행정플러스] 매립지 주민감시원제도 개선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와 주민지원협의체는 24일 고질적인 주민감시원 비리를 없애기 위해 주민 감시원 선발 제도를 대폭 개선, 이 방식으로 10명을 선발한다고 밝혔다. 이번 선발대상은 지난 7월 감시원 비리로 발생한 결원을 충원하기 위한 것으로, 수도권매립지 주변영향지역 2년 이상 거주자로 제한했다. 개선된 주민 감시원 선발은 ▲완전 공개모집 ▲9명 이내의 인사위원회(협의체 6명, 공사 1명, 시·구의회 의원 2명) 구성 ▲만 40세 이상 61세 이하의 주민 대상으로 선발 ▲근무 성실자에 대한 신분 보장(근무기간 2년 원칙으로 연임 가능) 등으로 강화했다.
  • [토요 포커스] 이북5도청 무슨일을 하나요

    [토요 포커스] 이북5도청 무슨일을 하나요

    우리나라를 ‘팔도강산(八道江山)’이라고 부른다. 8도는 행정구역의 개념으로 저마다 ‘도청’을 갖고 있다. 현재 북한지역으로 행정력은 미치지 않지만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역시 행정기관으로서 도청이 운영되고 있다. 평안도와 함경도의 경우 남·북의 별도 행정기관까지 갖춘 이북5도청이 서울의 북한산 자락인 구기동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상당수의 국민들은 이북5도청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일부에서는 “실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행정구역이나 주민도 없는 곳에 웬 지사발령이냐.”며 존재 이유를 궁금해한다. 이에 대해 권영준 이북5도청 황해도 사무국장은 “한번쯤 관심을 가져준다면 이북5도청의 역할을 금방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독일 통일 20주년 행사로 베를린 장벽을 허무는 퍼포먼스가 세계적인 톱뉴스가 됐다. 이와 동시에 통일 이후 독일의 문제점도 집중 조명됐다. 특히 동독 출신 주민들의 심리적,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동독 출신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통일로 정치이념의 변화와 익숙지 않은 생활패턴으로 많은 이념적 고충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다. 후유증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에 언론들이 주목했다. 이북5도청은 우리도 언젠가는 독일과 같은 통일이 올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이런 갑작스러운 정치체제와 이념의 변화에 대비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삼고 있다. 1949년 5월23일 남한에서 이북5도청이 처음 설립할 때만 해도 영토개념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조직이었다. 헌법 3조가 규정하는 대한민국의 영토에 해당되는 만큼 당연히 정부, 행정조직으로서 도청을 만들었던 것이다. 비록 행정구역이나 주민들에게 행정적인 서비스는 제공할 수 없더라도 상징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또 수복(통일)이 될 경우에 대비한 행정조직으로서의 역할에 한정됐다. 특히 냉전의 이념이 극에 달했던 1970년대까지는 월남 도민지원정책을 주요 업무로 삼으면서 대국민 반공홍보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후 80~90년대는 실향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정신적 지주역할이나 도민을 지원하고 만남의 장소로 제공하는 곳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2000년대 접어들면서 이북5도청은 통일에 대비하는 역량을 키워가는 행정조직으로 역할을 찾아가고 있다. ●독일 통일 이후 집중 연구 특히 이달곤 행정부 장관은 취임 후 첫 업무보고를 받을 때 “통일 이후 사회통합과정에서 이북 5도민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줄 것”을 주문했다. 물론 통일에 대비한 정부 차원의 행정기구는 통일부이지만 그동안 도민회 지원 차원의 명목상으로만 존재했던 행정조직에서 탈피해 새로운 역할을 찾으라는 책무를 부여한 셈이다.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6일로 예정된 ‘통독 사회통합과정에 대한 연수’도 같은 맥락으로 진행된다. 독일 뮌헨과 베를린을 방문해 독일연방의회 등을 방문해 통일과정에서의 역할을 모색해 볼 예정이다. 방문예정 단체 중 하나인 ‘독일 추방자 연맹’의 젤리드 박사는 “이북 5도청이나 도민들은 통일시기에 북한 주민의 생활과 이념을 바꿔주는 전도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그동안 여러 차례 우리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통일시기에 대비한 업무는 현재도 몇 가지 시도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북한 이탈주민(새터민)의 정착지원업무를 꼽을 수 있다. 전국에 흩어져 생활하고 있는 1만 7000여명의 북한이탈 주민들에게 든든한 행정기관 역할을 해주고 있다. 남한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행정적, 재정적 지원뿐 아니라 정신적 상담에서 취미, 취업에 이르기까지 함께 고민해 준다. 지난 19일 이북5도청 1층 상담실에서 만난 70세 할머니는 “지난해 6월 함경북도에서 아들과 딸을 1명씩 데리고 남한을 찾았지만 북한에 두고온 나머지 자식들이 생각날 때마다 분당에서 이북5도청까지 전문가 상담을 받으러 온다.”고 말했다. 한국심리상담연구소 옥숙정씨는 “북에 두고온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이탈주민들이 많다.”면서 “이탈주민에겐 이북5도청이 외로움과 근심을 달래주고, 남한 생활에 적응하는 법을 일러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북5도청은 이들을 대상으로 가족결연사업도 펼쳐 2004년부터 지금까지 417쌍에게 가족의 정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지난 4월에는 400여명의 이탈주민이 이북5도청 강당에 모여 한마을 축제도 펼쳤다. 평양예술단의 공연을 관람하고 장기자랑으로 주민들간의 이웃사랑을 돈독히 하기도 했다. 일자리 알선도 해준다. 평양의 미생물연구기관에서 일했다는 67세의 할머니는 “석사학위에다 각종 전통음식에 대한 지식과 솜씨를 갖췄지만 실력을 발휘할 만한 곳을 못 찾았다.”며 아쉬워했다. ●도지정 문화재 11건 보존 특히 이북5도청은 올해부터 실향민 기록보존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잊혀져 가고 있는 북한지역의 세시풍속과 통과의례, 민속신앙 등을 발굴해 기록으로 보존하려는 것이다. 실향민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만큼 발품이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1900여명으로부터 구술녹취를 받았고 100여명은 동영상도 보관해 놓았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현재 평안도 향두계놀이, 평양검무, 서도선소리산타령 놀량 사거리, 만구대탁굿 등 11건의 도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생각나눔 NEWS] 겨울철 경찰 자전거순찰 효율성 논란

    [생각나눔 NEWS] 겨울철 경찰 자전거순찰 효율성 논란

    “자전거 순찰은 주민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고 지역을 세밀히 관찰할 수 있다. 범죄 발생을 더욱 줄일 수 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범인을 자전거로 잡는 것은 고사하고 따라갈 수나 있나. 고생만 되는 보여 주기 행정이다.” 겨울이 되면서 경찰의 자전거 순찰 효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경찰은 지난 4월부터 자전거 순찰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 244개 경찰서 가운데 197개 경찰서가 1427대의 순찰용 자전거를 운영하고 있다. 자전거는 순찰차가 들어가기 곤란한 공원이나 고수부지, 주택가의 좁은 골목길, 아파트단지 등에서 순찰하기 좋다. 주민접촉 기회가 더 늘면서 지역민은 치안활동을 피부로 느낀다.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추진 방침에도 부응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자전거는 순찰차나 오토바이에 비해 기동력이 떨어진다. 또 농촌지역 등 관할지역이 넓은 곳이나 언덕 등이 많은 곳에서는 약점이 된다. 눈이나 비가 많이 오거나 너무 춥거나 더운 날은 안 되는 등 기후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이런 이유로 일선 경찰의 자전거 순찰 목소리는 엇갈린다. 서울시내 한 지구대 경찰은 “순찰차가 진입할 수 없는 곳에 들어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서울 광진서 관할 지구대의 다른 경찰은 “순찰의 목적도 있지만 주민과 접촉을 더한다는 대민지원의 민생치안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반면 언덕배기에 위치한 지구대의 한 경찰관은 “지금도 자전거를 타기보다는 주로 밀고 다니는데다 날씨가 더 추워져 길이 얼면 이마저도 힘들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시내의 다른 지구대 경찰관은 “자체적으로 기온이 영하일 때는 자전거 순찰을 안 하기로 정했다.”며 “각 지구대나 파출소의 민원담당관이 자전거 순찰을 하는데 나이가 많아 기동력도 떨어지고 힘들고 불편해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자전거 순찰을 보다 활성화할 방침이다. 경찰청 생활안전국 관계자는 “자전거 순찰이 주민 접촉기회가 더 많아 순찰과 민원상담도 같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낮에 다세대 주택을 털려던 이른바 ‘낮털이범’을 자전거로 순찰하던 경찰이 발견해 잡은 적도 있다면서 “자전거로 직접 범인을 잡을 수도 있지만 112 순찰차와의 연락체계 등을 강화해 문제점을 보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청은 일선 경찰서에 겨울철임을 감안해 현행 2~6시간으로 되어 있는 자전거 순찰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라고 지시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윤종찬감독표 고통의 예술 속으로

    최영미의 시 ‘인생’은 ‘…바깥 세상은/ 졸리운 눈 속으로 얼키설키 감겨오는데/ 전선 위에 무심히 내려앉은/ 저걸, / 하늘이라고 그러던가.’라는 읊조림으로 끝난다. ‘나는 행복합니다’ 주인공 만수가 약국을 나오며 바라본 곳에도 ‘여기저기 얽힌 전깃줄과 하늘’이 있다. 사는 데 지친 만수는 편히 잠도 자지 못하는 처지다. 하늘에 대고 세상살이를 한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떤 사람에게 하늘은 무심한 벽이다. ‘나는 행복합니다’는 과대망상증 환자 만수와 정신병동의 수간호사 수경의 고통과 슬픔이 아로새겨진 이야기다. 시골길 옆에서 정비가게를 운영하던 만수에겐 가족이 있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도박에 미친 형을 뒤치다꺼리하느라고 만수는 자기 삶을 챙길 겨를이 없다. 어머니의 실종, 형의 자살, 폭력배의 빚 독촉은 마침내 착한 남자의 정신을 빼앗는다. 직장암에 걸린 아버지를 홀로 돌보는 수경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얼마 전 연인에게 버림받은 그녀는 세상에 남은 유일한 끈인 아버지에게 미치도록 매달린다. 만수와 수경이 막막한 세상과 싸우는 방식은 다르다. 비록 허구 속이지만 백만장자의 삶을 빌린 그는 현실과 등질 수 있어 행복하다. 빈 종이를 이용해 수표를 발행하고, 주변인들의 고민을 해결할 때면 그의 얼굴에 미소가 넘친다. 그러나 깨어 있지 않은 자의 행복이 과연 진실한 것일까. 반대로 수경은 무턱대고 붙잡고 늘어지기만을 계속한다. 주변 사람에게 억지를 부리고, 돈이 모자라면 여기저기서 빌리면서 회복되지 못할 아버지의 병세를 애써 잊으려 한다. 그녀는 삶에 탈출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산다는 게 온통 고통으로 가득하기만 한 걸까. 윤종찬의 영화는 고통의 예술이다. ‘소름’은 사회의 밑바닥 삶을 유지하는 존재들의 본질을 고통에서 찾았고, ‘청연’은 식민지 시대를 사는 조선인이 필연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고통을 직시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 고통이 현실과 부딪힌 결과는 줄곧 ‘죽음’이다. 모두가 윤택한 삶과 미래의 행복을 추종하는 시대에 그는 다독거려야 할 고통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런 이유로 그의 영화를 본 다음엔 숨을 고르게 될 정도로 몸과 정신이 탈진에 이른다. ‘나는 행복합니다’도 여지없이 고통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이번의 결말은 전작 두 편과 사뭇 다르다. 원작소설 ‘조만득씨’를 쓴 이청준은 “미쳐 버리거나 했으면 싶은 심사를 좋이 참으며 산 사람들이 많았던 지난 한 시절, 그 암울스런 현실 속에 ‘우리’의 모습을 대신 비춰줄 한 사내의 이야기를 썼다.”고 밝혔다. 어쩌면 소설의 결말 -만득이 퇴원 후 어미와 동생을 목 졸라 죽인다-이 윤종찬의 영화에 더 어울릴 테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현실로 돌아오되 삶을 택한다. 고민은 거기서 시작된다. 그가 돌아온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사람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만수가 돌아온 집엔 외등 하나만 켜 있을 뿐 주변은 온통 컴컴하다. 오토바이가 밤길을 달리면서 영화는 끝난다. 오토바이의 머리등 앞으로 난 길을 보며 우리는 기도한다. 그의 앞길이 이제는 평안하기를. 그리고 희망한다. 우리가 삶의 방식을 조금만 바꿀 수 있다면 그 빛이 더 환해지고, 그 빛이 비추는 공간이 더 커질 것임을. 26일 개봉. <영화평론가>
  • 박정희 전대통령 등 4389명 수록 친일인명사전 공개

    일제시대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들의 친일 행각과 해방 전후 행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돼 8일 공개됐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묘소 부근에서 일제강점기 친일행위자 4389명의 명단이 들어 있는 친일인명사전 3권을 공개했다. 이번 친일인명사전은 발간작업 이후 8년 만에 이뤄졌으며,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위암 장지연, 장면 전 부통령, 작곡가 안익태, 시인 서정주 등 각계 유명 인사들이 포함됐다. 그러나 신현확(1920~2007) 전 국무총리와 최근우(1897~1961) 전 사회당 창당준비위원장 등 3명은 유족들의 이의 신청 등이 받아들여져 수록 대상에서 빠졌다. 편찬위원회에 따르면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15일 해방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해 민족에 피해를 끼친 자를 친일파로 정의했다. 친일 행위의 자발성과 적극성을 주요 기준으로 반복성, 중복성, 지속성도 고려됐다. 그동안 역사학자 등 150여명의 편찬위원들이 3000여종의 일제강점기 사료를 활용, 2만 5000여건의 친일혐의자 모집단을 추출한 뒤 수록 대상자를 선정했다고 편찬위 측은 밝혔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한국 근·현대사 금기의 영역이 처음 공개된 것을 바탕으로 퇴행적인 역사 인식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공개한 ‘친일인명사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언론인 장지연 등 독립유공자 20명이 포함된 것과 관련, “자료를 입수해 내용을 살펴본 뒤 신중하게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유족이나 친인척들의 명예훼손 소송도 잇따를 전망이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강북구, 정류장12곳 소나무 숨쉬는 공간으로

    강북구, 정류장12곳 소나무 숨쉬는 공간으로

    ‘운치와 멋이 있고 절개를 뜻한다.’ 요즘처럼 온 산이 울긋불긋해질수록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의 매력에 빠진다. 소나무가 강북구의 상징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8일 강북구에 따르면 2003년 시작한 소나무 가로수 심기 운동이 올해 절정을 맞았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중앙차로 버스정류장에 소나무 가로수를 심는 등 올해에만 330여그루의 소나무를 새롭게 식재했다. 구는 지난해까지 솔샘길과 우이동길, 교통광장, 그린파크 등에 430여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관내 소나무 가로수만 760여그루에 달한다. 강북구에는 서울에서 유일한 평지형 소나무밭이 있다. 우이동 삼각산(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솔밭공원으로, 100년생 소나무만 1000여 그루에 달한다. 강북구는 2003년 소나무를 가로수로 채택, 주위를 놀라게 했다. 가로수로 이미 벚나무와 은행나무가 자리잡은 데다 그루당 500만~1000만원을 호가하는 가격, 가로수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변 지적까지 반대가 심했다. 김현풍 구청장은 “소나무는 애국애족의 고장인 강북구에 가장 잘 맞는 나무라고 설득했다.”며 “소나무 가로수야말로 100년 뒤 후손들에게 물려줄 귀한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우려와 달리 소나무 가로수는 큰 어려움 없이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다. 2007년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이 돌았지만, 철저한 방역으로 고비를 넘겼다. 올해에는 도봉로 중앙차로버스정류장 등 12곳에 소나무 가로수를 새롭게 식재했다. 인적이 많고 매연이 심한 중앙차로에 가로수로 소나무가 등장하기는 전국에서 처음이다. 박귀원 공원녹지과장은 “은행나무, 버즘나무 대신 운치 있는 소나무를 심어 특색있는 거리를 조성했다.”며 “소나무는 다른 가로수에 비해 이산화탄소 흡수량과 산소 배출량이 3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시민들 반응도 긍정적이다. 민지혜(29·수유2동)씨는 “처음에는 중앙 차로에 가로수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지난 여름 소나무가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는 모습을 보고 정감이 갔다.”고 말했다. 도봉로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김정남(41·도봉구 창동)씨는 “자동차에 콘크리트만 있던 정류장에 소나무가 있으니 보기에도 좋고 공기도 맑아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소나무 식재로 역사성 회복이란 효과도 거뒀다. 4·19사거리에서 통일연수원에 이르는 4·19길 1.2㎞ 구간은 국립 4·19묘지와 이준 열사 묘 등 순국선열 묘역이 있는 장소이지만 일본사람들이 ‘사쿠라’로 부르며 즐겨 찾는 벚나무가 가로수로 조성돼 있었다. 구는 이곳에 소나무 가로수 140 그루를 새롭게 심었다. 김 구청장의 소나무 사랑은 2004년 우이동 솔밭공원 조성으로 잘 드러난다. 치과의사로 한때 환경운동에 나섰던 그는 애초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던 솔밭을 주민과 힘을 합해 지켜냈다. 생태연못 등이 들어선 공원에는 1000여그루의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김 구청장은 매년 솔밭공원에서 소나무에 막걸리를 주는 이색 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한 막걸리가 소나무 생육에 도움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사설] 이제 친일의 어두운 과거를 물리자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이 어제 발간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장면 전 국무총리, 언론인 장지연, 음악가 안익태·홍난파 등 일제시절 식민지배에 협력했다는 4389명이 명단에 올랐다. 근현대사의 가장 민감한 대목인 ‘친일’ 문제를 다룬 것인 만큼 사전이 나오기까지 논란은 격심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설립된 지 18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한 지 8년의 세월이 지났다. 사전 편찬을 위해 7억여원의 국민성금이 모아지는 등 격렬한 반대만큼이나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우리는 구체적인 친일행적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과거를 기록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장지연 선생 유족 측은 사전 공개에 앞서 “이름을 빼달라.”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모두 기각됐다. 특히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에 대해 “학문적 의견 개진의 한계를 일탈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발간 취지가 공공의 이해와 관련된 사안이므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고 밝힌 점에 주목한다. 비록 불가항력적인 식민지 현실이었지만 선대의 과(過)가 있다면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공(功)은 더욱 가꿔 나가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고 본다. 더이상 친일이라는 어두운 과거에 발목 잡혀 갈등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민족사의 동통(疼痛)을 의연히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친일 문제를 보수·진보의 시각에서 ‘단죄’하듯 접근하는 일면적인 역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친일파 후손이라는 낙인찍기나 연좌제적 발상의 유혹을 떨쳐내야 함은 물론이다. 이제 소모적인 친일 논란에서 벗어나 나라를 온전히 간직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사회적 합의의 틀을 만들어 나가는 일에 사회 지도층이 앞장서야 할 때다.
  • [글로벌 시대]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기/알란 팀블릭 서울글로벌센터 관장

    [글로벌 시대]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기/알란 팀블릭 서울글로벌센터 관장

    나는 나의 나라 영국을 항상 세계에서 가장 국제적이며 다양한 인종에 관대한 나라로 여겨왔다. 영국은 이민자와 침략자 그리고 난민들이 함께 뒤섞여 왔다.영국인의 유전자는 셀틱 브리튼 조상, 로마 식민지 주민, 바이킹 해적, 스칸디나비아 모험가, 독일 북쪽의 앵글로 색슨족, 덴마크 정착자, 프랑스의 노르만계 기사, 그리고 지난 50년간 넓게 퍼져 있던 대영제국의 영토에서 온 남아시아, 캐리비안 인종의 이주노동자와 사업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경우 아마 앵글로 색슨, 웨일스, 아이리시, 그리고 독일인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영국의 많은 섬 사람들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서로 잘 지낸다. 영국이 여러 인종의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 비교적 작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문화, 용맹한 군대, 황실, 학문, 문학, 과학 그리고 팝 음악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어릴 적부터 우리는 단일민족에 같은 역사, 같은 문화,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있다고 가르침을 받은 한국인으로서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한국정부는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에게 열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다문화 사회가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최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00만명 이상으로 크게 늘긴했지만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이 숫자의 대부분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한국에 정착해 사는 외국인의 수는 여전히 다른 나라의 외국인 비율과 비교할 때 매우 적다. 정착해 사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한국사람과 결혼한 사람이거나 해외교포들이다. 대부분의 경우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대략 3년 정도 머물다가 떠나고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거나 한국사회에 동화돼 사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면 외국인에 의해 행해진 범죄는 미디어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비(非)한국인의 인구가 서울에서만 35만명 정도 되고 그 증가율이 높아짐에 따라 외국인에 의한 범죄가 늘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그러한 범죄들은 2004년 1만 3000건에서 2008년에는 3만 4000건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 범죄의 1.25% 수준이다. 통계적으로 볼 때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범죄를 덜 저지른다. 외국인들이 법규를 잘 지키지 않고 평화로운 한국 국민들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가설은 매우 걱정스럽다. 자칫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견을 가지기는 쉽지만 버리기는 어렵다. 나는 한국이 세계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는 데 한치의 의심도 없다. 한국이 다른 나라가 경험한 폭력, 증오, 방어적인 편견 등을 피해 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런 재앙들을 피하기 위한 길은 외국인들을 탄압하거나 갇힌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타조처럼 머리를 모래속에 처박고 있는 것은 세계화의 흐름에 어긋나는 일이다. 다인종 국가인 싱가포르는 새로운 이주민에게서 나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업가 정신으로 계속 새로워지며 번성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것과 서울시민이라고 불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아마 여생을 여기에서 보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태어난 나라로 돌아가는 대신 여기에 정착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말한다. 영구비자를 얻기가 매우 어려우며 이민국에는 그러한 절차들을 도와주는 임무를 배정받은 사람도 없다고. 이제 한국은 세계 모든 나라에 국경을 열고 열린 마음으로 모든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알란 팀블릭 서울글로벌센터 관장
  • [열린세상] 정부와 시장, 그리고 경제발전/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열린세상] 정부와 시장, 그리고 경제발전/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왜 어떤 국가는 잘살고, 어떤 국가는 못사는가? 왜 어떤 국가의 국민은 깨끗한 물조차 부족한 열악한 환경에서 40세까지 생존하지도 못하며, 왜 어떤 국가의 국민은 쾌적하고 활기찬 환경에서 90세까지 장수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인류 복지에 가장 중요한 함의를 갖는 질문들이다.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 대학의 로버트 루카스 교수는 “경제발전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다른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 어렵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동안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에서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는 국가로 발전하였다. 우리가 지난 반세기 동안 달성한 것은 단지 경제적 발전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평균기대수명은 60세에서 80세로 증가하였고, 생활수준과 교육도 크게 높아졌다. 이러한 발전 경험은 유사한 다른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우리나라의 발전전략을 배우고 싶어 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과 같이 아픈 식민지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도 개발도상국들이 우리에 대해 호감을 가지는 이유가 되고 있다. 국가 간 경제발전의 차이는 과연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겉으로 보이는 자본, 노동, 기술의 차이보다 더 근본적인 요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경제발전에 대한 연구를 통해 보다 명확해지고 있다. 사유재산권 보호, 연구개발 유인 제공, 유치산업 보호, 교육, 넓은 시장, 사회통합의 유지 등이 보다 근본적인 경제발전의 요인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경제발전을 위한 근본적 요인들이 갖추어지는 데 있어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시장, 자율, 개방만을 강조하던 신자유주의적인 경제발전 패러다임은 최근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정부와 시장의 조화로운 역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경제발전 모형들이 모색되고 있다. 경제발전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발전단계별로 변화한다. 발전초기에는 자본과 노동 자체가 부족하고 시장도 조성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자본과 노동 공급에 개입하고 시장을 만드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경제발전이 진행됨에 따라 시장이 커지고 개인들의 성과유인과 개별 선호가 중요해진다. 이에 따라 정부의 역할은 자본과 기술을 직접 공급하는 역할에서 연구개발, 교육, 사회보장과 같은 간접적인 영역으로 옮겨가야 한다. 우리 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한 이러한 역할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온 것으로 보인다. 경제발전에 있어서 시장개방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 왔다. 세계화는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는 것인가, 아니면 개발도상국을 저개발국의 고리에 묶어두는 것인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컬럼비아 대학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세계화와 이에 대한 불만’이라는 저서에서 무조건적인 시장개방은 도움이 되지 못하며, 자신의 여건에 부합하는 통제된 수준의 개방이 자국 산업의 장기 경쟁력을 증진시켜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우리의 경제발전 경험은 이러한 주장이 매우 타당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우리나라의 발전 경험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경제발전 패러다임을 논의하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해 나가는 데 우리나라와 국민이 그 위상에 부합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 “교과서서 배운 참여민주주의 체험할 기회 없어”

    “교과서서 배운 참여민주주의 체험할 기회 없어”

    1929년 11월3일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통학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 여학생들을 희롱한 데 대한 항의에서 시작된 패싸움은 금세 ‘식민지 노예교육 철폐, 조선본위 교육확립’을 요구하는 격문과 함께 들불처럼 번졌다. 3일은 광주학생운동을 기념하는 날이다. 서울 송곡고등학교 2학년 김인식(17)군에게 80주년을 맞는 올 학생의 날은 감회가 새롭다. 김군은 학생회 부회장 신분으로 교내 학칙개정운동과 촛불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학교로부터 학생회장 입후보를 저지당한 뒤 지난 7월 이 같은 부당함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한 주인공이다. 김군은 “80년 전 학생들이 국권회복에 힘을 기울였다면 우리 시대 학생들은 인권을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도 학생의 날을 기념하는 홍보물로 학교 측과 실랑이를 벌였다. 김군은 학생회 간부들과 함께 등교시간 교문 앞에서 일제고사 및 입시획일화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담은 홍보물을 학생들에게 배포하려 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사전허락이 없었다.”며 개인소지품과 함께 압수했다. 김군은 “학생이면 공부나 하면 그만이라는 어른들의 강압적 시선에 눌려 할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많다. ”면서 “그러다보니 교과서에서 배운 참여민주주의 등을 실제 체험할 기회가 전무하다.”고 아쉬워했다. 지난해 함께 학생회 활동을 했던 친구의 어머니는 김군에게 “학교랑 사사건건 부딪치는 바람에 우리 아들이 대학가는 데 지장 있으면 어떻게 할거냐.”는 항의전화도 했다고 한다. 그래도 김군과 학생회 친구들의 노력 덕분에 1년간 학교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함께 촛불시위를 했던 친구가 회장에 당선됐다. 학내 민주화를 위한 노력이 친구들의 신임을 얻게 된 것이다. 김군은 “80년전 학생의 날 주인공이었던 우리들이 이젠 입시에 치여 여러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기 힘든 현실이 안타깝다.”면서도 “어른들과 사회가 학생들을 어리다고 치부하지 말고 창의적인 의견을 발언할 기회도 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일제강점기 宮의 굴욕

    일제강점기 宮의 굴욕

    #1. 일제 강점기 일본인 거주지역이었던 남산과 그 주변에는 많은 일본계 사찰이 모여 있었다. 이중 박문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로 일본인 및 친일파 위령제, 태평양전쟁 필승대회 등이 행해진 곳이다. 1932년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이 이곳으로 옮겨져 정문으로 사용됐다. 박문사는 경복궁의 선원전과 그 부속건물까지 옮겨와 사찰 건물로 삼았고, 원구단 자리에 있던 석고전까지 해체해 종각으로 사용했다. 흥화문은 1973년 신라호텔에 인수돼 정문으로 활용되다 1988년 경희궁 복원 계획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2. 풍경궁은 1902년 고종이 평양에 건설한 대한제국의 이궁(離宮)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식민 의료기관인 자혜의원으로 변모하면서 훼손되거나 철거됐다. 풍경궁의 정문인 황건문은 건축적 아름다움과 우수성으로 이름 높았는데 1925년 경성 조계사의 요청으로 수레 열한 대에 실려 230㎞를 이동해 산문으로 사용됐다. 황건문은 이후 동국대 정문으로 쓰이다 1971년 철거됐다. 남한에 남아 있던 평양 풍경궁의 유일한 건축 유산이 속절없이 사라진 것이다. #3. 경복궁의 도면인 ‘북궐도형’(1907년 제작 추정)에 나타난 경복궁 내 건물 수는 509동이다. 하지만 광복 후 남은 건물 수는 40동에 불과했다. 일제는 조선물산공진회를 준비하던 1914년 근정전 전면에 있는 흥례문과 회랑 등을 제거했다. 이때 방매된 궁궐 전각 중 상다수가 남산동, 필동, 용산에 있는 일본계 사찰과 요정, 일본인 부호의 저택으로 팔려 나갔다. 경성부 서사헌정의 남산장은 건춘문 내의 비현각을, 남산정 화월별장은 수정전 남쪽의 한 전각을 이건한 것이었다. 조선 왕조와 대한 제국기의 주요 궁궐은 지난 100년간 역사의 격랑 속에서 처참히 붕괴되거나 훼손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효형출판)은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등 서울의 주요 궁궐과 평양 풍경궁이 일제 강점기에 어떻게 훼철(毁撤)되었는지를 실증적으로 연구·분석한 결과물이다. 우동선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등 8명의 전문가가 공동 집필했다. 1부 ‘황권 강화를 위한 근대 조선(대한제국)의 움직임’에선 대한제국과 고종황제가 추진한 조선 변혁의 움직임을 궁궐 건축의 변화상을 중심으로 펼쳐 보인다. 일본, 러시아 등 외세의 영향력 속에서 고종황제는 중국에 대한 사대의 예를 폐기하고, 근대국가로의 진입을 꾀했는데 이러한 시대적 움직임은 경복궁 중건 및 경운궁(덕수궁), 원구단 건설, 궁궐 의례의 변화로 이어졌다. 2부 ‘일제에 의한 조선 궁궐 수난사’에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조선의 궁궐이 어떻게 훼손되어갔는지를 본격적으로 살핀다. 경복궁, 경희궁, 풍경궁의 굴욕과 더불어 창경궁이 벚나무가 심어진 종합 위락시설 ‘창경원’으로 전락한 과정을 추적한다. 3부 ‘조선의 궁에 들어선 근대건축물’은 경운궁, 창경궁, 경복궁 등지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의 건설 배경과 건축양식, 쓰임에 대해 파악한다. 특히 경복궁이 일제 식민지 경영의 선전장인 박람회장으로 쓰이면서 맞이한 변화상을 건축양식 측면에서 분석하면서 일제의 국력 과시 욕망과 조선인에 대한 상징 조작 행태를 들여다본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1929년 ‘광주학생운동 무죄’ 탄원서 발견

    전남대 김재기(정치외교학과 교수) 학생독립운동연구단장은 3일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리는 ‘학생독립운동 8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앞서 2일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구속된 조선인 학생들의 탄원서를 공개했다. 연구단은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에서 1929년부터 3년 간 만들어 극비로 분류한 ‘사상월보’에 실린 탄원서를 최근 국가기록원을 통해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탄원서는 1930~1931년 강달모 광주사범학교 3학년생, 이동선(광주사범학교 졸업생) 전남 담양군 봉안 보통학교 교사, 임주홍(광주 고등보통학교 졸업생) 일본 니혼대학 1학년생 등 3명이 대구 복심법원(현 고등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A4 용지 크기의 15쪽 분량이다. 강씨 등은 식민지 교육체제에 반대하며 조직한 성진회 회원으로서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일제는 ‘성진회가 일왕의 존재를 무시하는 사회주의단체’라며 이들을 처벌했다. 그러나 이들은 탄원서를 통해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항변했으나 일본 경찰이 악랄한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피고인 강달모는 “중학 2~3학년 정도의 사람이 결사를 조직했다는 것을 누가 믿겠느냐.”고 호소하면서 고문실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日 빅2 거침없는 입

    日 빅2 거침없는 입

    도쿄 박홍기특파원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출범한 지 46일째, 자민당 정권 때에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화끈한’ 광경이 잇따라 펼쳐지고 있다. 중추적 역할은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를 비롯, 간 나오토 부총리, 오카다 다쓰야 외무상 등 정권의 실세들이 맡았다. 때문에 일본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실감하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달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야스쿠니신사 문제와 관련, “머리에서 지워버려라.”라는 말했다. 회담 당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역사 문제에 대해 “중국 인민의 관심이 높다. 하토야마 총리는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견지하고, 역사를 직시하는 올바른 태도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에 “나 자신과 각료들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생각이 없다.”고 거듭 설명한 뒤 “야스쿠니는 머리에서 지워버려 주길 바란다.”고 답했다고 산케이신문이 1일 보도했다. 정권 출범 전부터 강조해오던 자신의 소신을 한층 원색적인 표현을 써서 분명히 밝힌 셈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중·일 양국간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한 동중국해 시라카바(중국명 춘샤오·春曉) 가스전과 관련, 중국 측이 단독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다.”며 신중한 대처방식을 제시했다. 또 “서로 협력해 채굴함으로써 동중국해를 ‘우호의 바다’로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 원 총리도 일정한 동의를 표시했다. 하토야마 정권에 비판적인 산케이신문은 “하토야마 총리의 발언은 중국 측에 공동개발 협상보류로 인식될 수 있다.”고 비꼬았다. 간 부총리 겸 국가전략담당상은 지난달 31일 민주당 도쿄도총지부연합회의 모임에서 관료들을 겨냥, “지혜,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관료들은 성적이 좋지만 상당한 바보다.”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간 부총리는 “효과가 없는 투자를 해 온 일본의 재정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며 재정구조개혁을 설명하면서 화살을 관료들에게 돌렸다. 또 “5000억엔을 투입하면 5000억엔의 효과를, 2조엔을 사용하면 최대한 2조엔의 경제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관료가 말하더라.”라고 소개하면서 ‘상당한 바보’라는 노골적인 용어까지 동원, 유연한 발상의 부족을 강하게 지적했다. 국가의 예산과 외교 기본방침 등을 총괄하는 간 부총리는 조각 과정에서 관료의 개혁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 관방장관을 희망했을 정도로 관료에 대한 불신이 컸다. 물론 탈관료정치와도 맞물려 있다. 간 부총리의 발언은 기자회견 금지 등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관료들의 반발을 부를 가능성이 적잖다. 간 부총리는 최근 TV아사히의 프로그램에 출연, “자민당은 민주당과 달리 모든 정책을 관료에게 맡겨왔기 때문에 야당이 돼도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을 만들 수 없다.”며 공격하기도 했다. h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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